[사설]일본 조형물 철거 계기로 개항장 역사 되돌아 봐야

경인일보

발행일 2019-09-03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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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가 중구청사 앞에 설치한 일본 민속의 복(福)고양이 조형물 한 쌍과 일제 강점기 하층 청년 노동자의 모습을 본뜬 인력거상을 지난달 30일 철거했다. 중구는 중구청 앞 일대가 일본 조계지였음을 알리고,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2014년 조형물을 설치했다. 당시 지역 예술인들은 역사적 고증이나 교훈적 내용이 없는 단순한 볼거리로 일본풍의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근 한일 갈등이 깊어지면서 일본풍의 조형물을 없애고 이곳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오자 중구가 이를 받아들여 철거한 것이다.

인력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894년(고종 31년)으로 일본인 하나야마(花山帳場)가 10대를 수입, 서울 시내 및 서울과 인천 간 운행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초기 인력거꾼은 일본인이었으나 뒤에 우리나라 사람으로 바뀌었다. 주로 하층 청장년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력거를 끌었다. 나라를 빼앗은 자들이 들여온 인력거를 끌어야 하는 하층 청년들은 고된 노동보다도 망국의 설움이 더욱 컸을 것이다.

중구 개항장에는 인천일본제일은행지점, 인천우체국, 홍예문, 인천일본18은행지점, 일본제58은행인천지점 등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지은 건축물이 박물관이나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중구 요식업조합 건물로 사용 중인 '일본58은행인천지점'은 1892년 일본 오사카(大阪)에 본점을 두고 조선 재물을 침탈하기 위해 만들어진 은행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이곳을 찾아보면 일제 강점기 조선 침탈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다. 지금은 인천 시민의 사랑을 받는 자유공원 홍예문조차 일제 강점기에 일인들이 빼앗은 물자를 인천항으로 쉽고, 빠르게 옮기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중구 일본 조계지는 조선의 물자를 침탈하는 대표적인 역할을 했던 곳이었다. 수치스러운 역사를 뒤로 숨겨두고 관광객들에게 단지 '오래된 건물'이라는 포장을 씌워 관광상품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중구 일본 조계지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사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중구 개항장을 찾는 이유가 구 홈페이지 문화재여행 코너에 소개된 100여 년 전의 건축 양식을 보러오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번 일본풍 조형물 철거를 계기로 중구 개항장에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 있는지, 잘못된 고증으로 설명되는 곳이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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