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톡', '디지샵79'. 디지털 성범죄와 피싱 사기로 수많은 피해자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 이름들이다. 똑같은 운영자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범죄 사이트들은 언제 또 새로운 얼굴로 등장할지 모른다. 그간 해외 IP와 대포 통장을 무기로 경찰 수사망을 보란 듯이 피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시크릿톡은 '티티톡'으로, 디지샵79는 '디지원샵(dg one shop)'으로 이름만 바꿔 새 피해자를 물색 중이다. 지난 2020년 붙잡힌 'N번방 사건' 주범들처럼 범인 검거를 위해 경찰 수사력을 한데 동원한 집중 수사가 근본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이달 중순 경인일보 최초 단독 보도(2월15일자 7면 보도=송금 요구하고 신체사진 협박… 피싱 채팅사이트 활개)로 세상에 알려진 '시크릿톡 사건'을 A부터 Z까지 모조리 파헤치며 남은 과제를 짚었다.

성인 전용 채팅사이트 '시크릿톡'
초대 코드 받아야 가입 가능 구조
시크릿톡은 성인 전용 채팅사이트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폐쇄형 사이트인 탓에 카카오톡으로 관계자에게 주소와 초대 코드를 받아야만 회원 가입을 할 수 있다. 시크릿톡 관계자들은 SNS를 활용해 시크릿톡에서 채팅 남성과 '대화만'하면 하루 30만원가량을 벌 수 있다고 홍보했다.
직접 시크릿톡에 가입해 활동해보니(2월16일자 7면 보도=피싱 채팅, 직접 해보니… 순식간에 '코인 100만개' 쌓여) 홍보와 달리 오직 '대화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또 하루 30만원을 벌어도 정작 '가져갈 수가 없는 구조'였다. 채팅 남성과 대화를 한마디 할 때마다 포인트가 적립됐으나, 상대방은 더 많은 포인트를 선물로 주겠다며 집요하게 신체 사진을 요구했다.
이런 의미 없는 대화 몇 마디만 나눴을 뿐인데 어느새 10만 포인트가 쌓였다. 현금 10만원에 해당하는 이 포인트를 환전하려 했지만, "일반회원 등급으로 환전신청이 불가하니 고객센터에 문의하세요"라는 안내 창이 떴다. '다이아 등급'으로 승급해야만 환전할 수 있으며, 추후 승급 금액까지 모아 환전해준다는 게 고객센터 설명이었다. 승급을 위해 80만원을 안내해주는 계좌로 입금하라는 말도 곁들였다.
금새 현금 10만원 해당하는 포인트 쌓여
'다이아 등급' 승급해야 환전 가능 안내
승급 위해 80만원 입금하라는 말 곁들여
"모니터링에 걸렸다… 해제하려면 비용"
뒤늦게 사기 인지하고 신고하겠다고 하면
신체 사진 유포하겠다며 협박 '본색 드러내'
포인트 환전은 허상이었다. 대화 메시지 하나만 오가도 한 건당 현금 100원에서 많게 3천원까지 적립되는 것도 이상했다. 뒤늦게 피싱 사기임을 인지한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시크릿톡은 신체 사진을 유포하겠다며 협박을 시작했다. 피해자 B씨에게는 "(돈을 입금 못 하면) 사진을 트위터, 네이버 카페에 올려 드리겠다"고 겁박하기도 하고, C씨에게는 "신상 털리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라. 사진 가족들이나 친구한테 보낼까?"라는 협박 메시지를 보냈다.
'초대 코드' 보낸 인물이 사진 유출 협박
1:1 채팅방 오간 사진 관계자가 알고 있어
대화 상대방 '시크릿톡 관계자' 아닌가 의심
피해자들의 증언에 나타난 공통된 특이사항은 이들에게 카카오톡으로 시크릿톡 가입 초대 코드를 보낸 인물이 사진 유출 협박을 한다는 점이다. 1:1 채팅방에서 오간 사진을 이 관계자가 알고 있는 상황(2월21일자 온라인 보도=신종 피싱 '시XX톡' 관계자가 사진 수집했나… 채팅 상대 위장 가능성)이라 대화 내용을 지켜보고 있다고 의심받는 이유다.
이외에도 시크릿톡은 채팅하는 상대방이 실제 이용객이 아니라 시크릿톡 관계자임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들이 곳곳에 있었다. 특히 '성인 전용 채팅 사이트'라는 홍보가 무색하게 '10 to 8'이란 업무시간을 철저히 지켰다. 한밤중에는 셔터를 내리고 아침에 다시 영업했다. 또 시크릿톡 가입 초대코드를 보낸 인물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상담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라고 명시해 놨다.

수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시크릿톡에서 모은 금액이 100만코인이 넘은 뒤로 채팅 남성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가입 초대 코드를 보내온 관계자에게 실시간으로 카카오톡 메시지가 날아왔다. 100만코인을 모으면 무조건 환전해야만 채팅을 이어갈 수 있는 게 이용 규칙이다. 환전을 진행하기에 앞서 '다이아 등급' 승급 금액인 80만원을 계좌 이체로 보내야 하는데, 이 과정을 무시하고 채팅을 계속하면 계정이 정지된다.
'다이아 등급'으로 승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직접 채팅 남성에게 메시지를 보내 봤다.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관계자에게 "왜 말을 안 듣나. 대화만 해도 코인이 (자동으로) 쌓이는 거다. 승급한 뒤에 환전받고 이용해야 한다"는 경고 카톡이 왔다. 1:1 채팅을 모니터링하는 걸로 의심되는 상황이나, 이 관계자는 "나는 그냥 추천인이다. 환전하지 않고 대화하면 (나한테) 감지된다"고 얼버무렸다.
두 사이트 피해자 공통점 '정OO' 계좌에 입금
조직적 피싱 계속 '범죄 규모·피해' 막대할 듯
피싱 범죄에 디지털 성범죄를 접목한 신종 범죄를 벌이는 시크릿톡 운영자는 '디지샵79'라는 또 다른 피싱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으로(2월17일자 5면보도=구매대행서도 신종 피싱사이트 같은 방식 범죄 정황) 추정된다. 사이트 하나만 운영하는 게 아닌, 조직적으로 피싱 범죄를 이어가기에 범죄 규모와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시크릿톡에서 사기와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입은 피해자 A씨, B씨, C씨. 디지샵79라는 온라인 구매대행 사이트에서 60만원을 사기당한 D씨. 이들의 공통점은 '정OO'이란 인물 명의의 계좌에 돈을 입금했다는 점이다. 시크릿톡과 디지샵79는 대포통장으로 의심되는 이 계좌를 피해자들에게 안내하고 입금을 요구했다.
그간 디지샵79는 '재택알바, 고수익 보장'이란 문구로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공고를 게시했다. 디지샵79라는 이름 대신 '혁신수학과학학원'이란 가짜 상호명으로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했다. 피해자들에게는 온라인쇼핑몰 디지샵79에서 포인트를 충전하라고 지시했다. 충전한 포인트로 물건을 구매하면 물건값과 수수료를 한꺼번에 포인트로 환급해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명목상 포인트만 환급될 뿐, 시크릿톡처럼 실제 현금으로 환전은 해주지 않았다. 이런 수법으로 경남에서는 1억원가량 금전 피해가 접수되기도 했다. 포인트 환급을 요구한 뒤로 관계자는 묵묵부답이다.
온라인 홈페이지 구색 갖추려 '명의 도용'
항의전화 수차례 받은 해당 기업도 피해
경찰에 사건 접수했으나, 금전 피해 없어
고소 진행해도 실익이 없다는 안내 받아
시크릿톡과 디지샵79 홈페이지에는 사업자등록번호와 사업장 소재지, 대표 이름을 명시해놨다. 하지만 이는 온라인 홈페이지라는 구색만 갖추려 다른 소상공인들의 명의를 도용한 것(2월20일자 7면 보도=주소지·사업자등록번호 전부 명의 도용… '신종 피싱' 시XX톡·디XX 모든게 가짜)이었다. 실제 인천 연수구와 부평구에 있다는 시크릿톡과 디지샵79 사업장 소재지를 찾아가니, 다른 중소기업이 사무실을 쓰고 있거나 일반 가정집이었다.
사업자등록번호를 조회해보니 시크릿톡은 부산에, 디지샵79는 대구에 있는 소상공인 업체들이었다. 이들 업체는 시크릿톡과 디지샵79 피해자들에게 항의 전화를 수차례 받았다고 한다. 명의를 도용당했기에 경찰에 사건을 접수했으나, 모두 직접 금전 피해를 받은 게 없어 고소를 진행해도 실익이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현재도 이들 소상공인 업체는 손을 놓고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형편이다.
아이돌 출신 배우도 피해사실 밝혀
다음날 사이트 접속 바로 차단됐지만
이름 바꾼 '티티톡' 반나절 만에 부활
경인일보의 '시크릿톡 사건' 최초 단독 보도 이후 최근 아이돌 그룹 AOA 출신 권민아씨도 시크릿톡에서 당한 피해 사실을 밝혔다. 앞서 피해 사실을 토로한 피해자 A씨, B씨, C씨와 똑같은 패턴이었다. 환전을 미끼로 입금을 유도하는가 하면, 신체 사진을 빌미로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이외에도 지금도 수많은 시크릿톡과 디지샵79 피해자들이 하나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피해 사실을 호소하는 목소리만 가득할 뿐, 정작 사건 해결을 위한 움직임은 더디다. 지난 20일 권민아씨가 피해 사실을 이야기한 뒤 시크릿톡은 다음날 바로 사이트 접속이 차단됐다. 과연 시크릿톡은 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시크릿톡은 '티티톡'이란 새 얼굴로 사이트 접속 차단이 이뤄진 지 반나절 만에 부활(2월23일자 6면 보도=어제의 '시XX톡' 오늘은 '티X톡'… 이름만 바꿔 수사망 피해가는 '피싱 채팅사이트')했다.
티티톡은 시크릿톡과 이름만 다르고 사이트 구조와 운영방식 등이 똑같다. 시크릿톡에서 사용하던 계정을 티티톡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포인트와 고객센터 문의 글이 그대로 옮겨 왔다. 시크릿톡에서 오간 1:1 채팅 내역과 자료 등이 고스란히 티티톡으로 이전된 것이다. 아울러 티티톡보다 한참 앞서서는 '달링톡'을 운영하다 시크릿톡으로 사이트 이름을 바꾼 바 있다. 그간 시크릿톡에는 "저희 달링톡에서는 안전한 거래를 위해 계좌번호는 1회만 입력하도록 설정했다"는 공지사항이 게시돼 있었다. 앞서 디지샵79도 사이트 주소와 이름을 바꿔 '디지원샵'이란 새 피싱 사이트를 만들고 범행을 유유히 이어가고 있다.
피해자들은 경찰서에 조사를 접수한 뒤에도 변함없는 현실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피해자 A씨는 "해외 IP나 대포 통장일 가능성이 있지만, 경찰이 더 경각심을 갖고 바라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B씨는 "사진유출과 협박이 여전히 우려되고 다른 피해자가 또 생길 수 있어 무섭다. 흔한 피싱 범죄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지방경찰청에 아예 전담 수사팀을 따로 만들어 범인을 빨리 붙잡았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집중 수사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이트 차단 넘어 여러 증거 모아
사례 특성 파악해 범인 특정해내야 한다
동일 업체에서 발생한 피싱과 디지털 성범죄로 전국 곳곳에서 피해 속출하지만, 경찰 수사는 피해자가 신고 접수한 개별 경찰서 차원에서 이뤄지는 실정이다. 시크릿톡 수사는 권민아씨가 사건을 접수한 서울을 비롯해 인천연수경찰서, 대구동부경찰서, 전주완산경찰서 등에서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파편적으로 수사가 진행되는 터라 계좌 정보나 피해 금액 등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범죄 패턴 등을 분석해내기란 어렵다.
해외 IP와 대포 통장을 사용하기에 일선 지역 경찰서 차원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힘든 점도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시크릿톡과 티티톡은 일본 도쿄에, 디지샵79와 디지원샵은 홍콩에 서버를 뒀다. IP를 추적해도 해외에 공조 수사를 요청하기 힘들고, 대포 통장 소유자를 찾아도 이 사람도 피해자인 경우가 다반사다. 집중 수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찰청 차원에서 전담팀을 만들고, 피해 사실을 취합해 수사망을 좁혀야 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면 범인들은 미러 사이트(모든 구조가 똑같고 이름만 다른 사이트)를 만들어 범행을 이어간다. 개별 경찰서에서 다룰 경우 인력 상황이나 수사관 개개인 능력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로 나오고 만다"며 "총책을 검거해야 제2의 범죄 사이트가 음지에서 나타나는 걸 막을 수 있다. 피해자 신고 중심' 수사 방식에서 '케이스 중심'으로 바꿔야 검거 확률이 높아진다. 한 경찰청에 몰아 집중 수사하는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이트 차단을 넘어 여러 증거를 모아 사례 특성을 파악해 범인을 특정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