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청년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절망에 빠져있습니다
7천만~9천만원 전세금 순식간 잃어
저축에 대출까지… 이젠 빚더미만
인천 청년 1인가구 69.5% 임차 부담
소득 적고 모은 목돈도 넉넉지 않아
수도권 신혼부부 소득의 25.1% 달해
"법률·심리적 지원 등 특단 대책을"
지난 17일 인천 미추홀구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30대 여성 A씨가 병원 이송 도중 숨졌다. 사흘 전인 14일에는 미추홀구 연립주택에서 20대 남성 B씨가, 앞서 2월28일엔 미추홀구 빌라에서 30대 남성 C씨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들은 모두 미추홀구 일대에서 전세사기를 저지른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청년들이다. A씨와 C씨는 소액임차인 권리를 보호하는 '최우선변제금' 지급 대상에서 벗어나 7천만~9천만원의 전세보증금을 모두 떼였다. B씨는 최우선변제금을 제외한 5천600만원을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이들과 같은 처지인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건축왕으로부터 피해를 본 D(27·여)씨도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모은 돈에 대출금을 합쳐 마련한 전세보증금 9천500만원을 모두 잃어버릴 처지다.
D씨는 "매월 내야 하는 월세를 아끼고자 10여 년 동안 저축한 돈을 끌어모아 전셋집을 마련했는데, 모두 잃고 빚만 지게 됐다"며 "지금 피해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 개인회생 또는 파산을 신청하거나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끝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하소연했다.
인천시가 올 1월 발표한 '1인 가구 정책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빅데이터 분석 사업' 결과를 보면 인천지역 청년층(만 19~34세) 1인 가구의 69.5%는 주택 임차 자금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조사에 참여한 중·장년층 1인 가구(52.8%)와 비교해 16.7%p나 높은 수치다. 특히 전·월세 비용이 매우 부담된다고 응답한 청년층은 20.9%로, 중·장년층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국토교통부 '2021 주거실태조사'에서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청년층의 월 소득 중 주택 임차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23.2%, 신혼부부는 25.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월세 비용이 부담된다는 응답도 청년층은 76.1%, 신혼부부는 75.8%나 됐다.
전문가들은 청년 세입자 등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정부가 법률적·심리적 지원이 포함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김태근 변호사(세입자114 위원장)는 "전세사기 피의자의 채권 우선순위 등을 고려하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렵다 보니, 일부 변호사는 피해자들에게 '안타깝지만 전세보증금을 포기하라'는 취지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며 "전세사기로 평생 모은 돈을 잃은 세입자들은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피해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법률 상담이나 심리 지원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종대 임재만(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사기 피해는 이미 개별 세대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가 특별 대책을 만들어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매입하고, 공동 임대 형태로 피해 가구가 우선 거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그래픽 참조·관련기사 3·6면(경매 중단은 임시 방편… 추가대책 요구 쇄도)
/김주엽·백효은기자 kjy8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