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공무원과 정치인도 기업과 같은 잣대를…

입력 2020-01-29 20:45
지면 아이콘 지면 2020-01-30 19면
기업 CEO 처벌 법령 20년전比 42% 증가
직원 범죄땐 법인·대표이사도 함께 책임
국민적 '눈높이' 정치·행정분야 도입해야
70여일 앞둔 21대 총선, 국민 위한 공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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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규 사회부장
# "공직자 여러분, 오늘 이 순간부터 앞으로 4년간 저와 여러분들은 일심동체입니다. ○○시민들을 위한 '(주)○○시'의 CEO와 임직원으로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입니다."

지난 2010년 경기도내 한 단체장이 취임식에서 던진 사자후(獅子吼)다. 취임사의 한 토막을 더 인용하면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하는 행동과 행정, 하나하나의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저를 믿고 저와 함께 '(주)○○시'의 힘찬 미래를 위해 전진합시다." 이후 해당 지자체는 대통령 표창을 비롯 행안부 등 정부 각 부처와 경기도 등 대내외 기관으로부터 4년 동안 매년 100개 이상의 국내외 수상실적을 올린데 이어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외국 단체로부터도 적지 않은 수상 실적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 직원들이 실수로 잘못을 해도 기업 최고경영자(CEO)까지 처벌하는 법령의 형사처벌 항목이 2천657개로 20년 전보다 42% 증가했다고 한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경제관련 법령 285개를 전수조사한 수치다. 이 중 2천205개는 범죄를 저지른 직원뿐 아니라 법인과 대표이사가 함께 처벌을 받는다.

유예조치돼 기업들이 숨통을 돌리긴 했으나 300인 미만 기업까지 확대되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위반하면 대표이사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하도급 업체 직원이 자칫 사망할 경우에도 원청업체 대표가 징역형을 받는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등이 새로 강화된 법들이다.

일부에서는 "대한민국이 점점 기업하기 힘든 나라로, 국제적 경영추세에도 맞지 않은 규제 일변도로 정부의 혁신성장과 규제개혁과도 정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 국내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기업들에는 '녹슨 칼'을 들이대면서 정작 국내 기업만 옥죄고 있다며 시대적 변화에 역행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표이사 및 경영자는 기업의 법령 준수를 총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무한하다.

#기업에 대한 이 같은 국민적 '눈높이'를 정치와 행정에도 도입해야 한다. 대통령과 청와대, 국무총리와 정부 각 부처에도, 국회의 의장과 국회의원·지방의회의 의장과 지방의원에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각급 법원에도, 광역 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에도 도입해야 한다. 기업과 경영자에게는 과도하리만치 엄정한 잣대를 적용하면서 그들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치며 국민들의 삶을 좌우하는 이들이 법의 장막 뒤에 가려 있으면 안 된다.

당당히 앞으로 나와 기업과 경영자가 불투명한지, 정치와 행정과 사법이 더 불투명한지 가늠해봐야 한다. 기업이 불신을 받는지, 분립돼 있는 3권(입법, 행정, 사법)이 불신을 받는지 따져봐야 한다.

청와대, 국무총리실, 정부 각 부처, 국회 및 그 보좌진, 지방의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각급 법원, 광역 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소속 공무원 등이 범법을 하거나 일탈을 하거나 할 경우 그 소속의 장(長)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 직원들이 실수로 잘못을 해도 기업 최고경영자까지 처벌하는 2천657개 형사처벌 항목과 같이.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하는 행동과 행정, 하나하나의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라고 말한 한 단체장의 취임 일성과 같이.

'국민들은 몰라도 된다'는 희한한 산식이 도입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국회의원을 뽑는 4·15 총선이 7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위 일성을 모든 정당, 모든 후보들이 국민을 위해 공약으로 내세우는 허망한 희망을 품어본다.

/이재규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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