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참성단]서해 수호의 날

'명예훈장(Medal of Honor)'은 미국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훈장이다.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재임 당시 '자유훈장'과 함께 '명예훈장' 시상식을 가장 자랑스러워 했다. 그래서인지 검증작업도 매우 까다롭다. 맥 라이언 주연의 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는 걸프전 복무 중 사망한 여자 조종사에게 사상 최초로 여군 명예훈장을 추서하기 위한 조사단의 검증 과정을 그렸다.'명예훈장'은 1862년 남북전쟁에서 처음 수여된 이래 지금까지 3천400여 명의 군인에게만 수여됐다. 이 중에는 1871년 '신미양요'에 참여한 미군 15명과 한국전쟁 참전용사 146명도 포함돼 있다. 훈장은 백악관에서 대통령에게 직접 받으며 이 과정은 미 전역에 생중계된다. 훈장 수훈자는 대통령부터 장군, 의원들로부터 거수경례를 받는다. 이들 자녀에겐 조건만 되면 추천이나 입학 정원에 상관없이 미국 사관학교 입학이 주어지는 등 14가지의 큰 혜택을 준다. 미국은 이런 예우를 해줌으로써 국민 간 결속을 다진다. 이는 미 국민의 군인에 대한 사랑이 확실하게 몸에 밴 이유이기도 하다.우리의 군인 예우는 미국과 많이 다르다. 지난해 7월 17일 포항에서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이 이륙 도중 추락해 5명의 해병대원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현장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잔해와 시신 등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하지만 정부의 사고 처리는 어이가 없었다. 사고 현장을 즉시 공개하지도 않았다. 청와대 대변인은 "수리온의 성능은 세계 최고 수준"이란 뜬금없는 발표로 국민을 어리둥절케 했다. 대통령의 애도 역시 사고 3일 후에야 나왔다. "유족들이 의전 등이 흡족하지 못해 짜증이 난 것 같다"는 국방부 장관의 실언에 유족은 큰 상처를 받기도 했다.오늘은 4회 '서해수호의 날'이다. 2016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과 제2연평해전 희생 장병을 기리기 위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행사는 천안함이 폭침(2010년 3월 26일)된 3월 넷째 주 금요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치러진다. 1회엔 박근혜 대통령이 2회엔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이 참석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난해 3회 행사엔 이낙연 총리만 참석했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의 참석이 기대됐지만 불참한다고 해서 유가족이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뜻깊은 호국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한다면 국민의 감동도 컸을 텐데, 아쉽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3-21 이영재

[기고]더 넉넉하고 맑은 한강을 꿈꾼다

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주제 올해 관리기본법 본격적인 시행6월 관리위 발족… 담대한 변화 준비 江과 살아가는 사회 후손 물려주자오늘 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이다. 유엔에서 정한 올해 물의 날 주제는 '물,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Leaving no one behind)'이다. 가난, 인종, 성별, 종교, 지역 등 모든 조건을 뛰어넘어 그 누구도 소외받지 않고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는 염원을 담고 있다.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우리 몸의 대부분은 물로 구성되어 있고, 인간의 문명도 물로부터 시작되었다. 세계 4대 문명 모두 큰 강의 유역에 자리 잡아 풍부한 물을 바탕으로 농업과 교통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그뿐인가. 우리는 물에서 안식을 얻기도 한다. 삶의 무게에 어깨가 처진 날, 강가를 찾아 한결같이 흐르는 강물을 보며 삶의 의지를 되새겨 본 경험 역시 누구나 한 번쯤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은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하고 친숙하다.그러나 최근 우리는 미세먼지, 폐기물 등 너무나 많은 환경 이슈에 둘러싸여 물의 소중함을 놓치곤 한다. 물은 우리의 일상에 늘 함께한다. 깨끗하고 안전한 물에 대한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올해는 물관리기본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해다. 물관리기본법 제4조는 누구든지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이용할 수 있고, 재해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건강하고 쾌적한 물 환경을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번 물의 날 주제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물은 본디 우리에게 그래야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사회 변화의 시작에는 항상 언어가 있었다. 우리 사회는 지난해 통합물관리라는 새로운 언어를 가지게 됐다. 수량, 수질, 재해예방의 통일적 관리와 지속가능한 물 관리체계가 마련된 새로운 사회로 도약한 우리는, 이제 물에 대한 더 담대한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6월에는 물관리위원회가 발족한다. 물 관리 분야의 전문가와 사회적 신망이 높은 유역주민이 포함되는 등 새로운 거버넌스 구성을 위한 참여의 문을 연다. 중앙 중심의 획일화된 정책수립에서 탈피하여 지역 실정에 맞는 물관리계획을 세우기 위한 기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새로운 협의체 구성에는 항상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숙의의 과정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갈등과 조정이 미래의 우리를 지치게 만들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가장 중요한 건 그 유역에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다. 상향식 참여의 틀을 적극 활용해 물 문제에서 지역주민 그 누구도 소외받지 않도록, 주민의 삶과 직접 연결되는 유역정책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물은 사람의 삶과 함께 흘러야 한다. 사람과 유리되어 홀로 흐르는 강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사람 또한 생태계의 일원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린 때로 환경보호라는 명분이 앞서 사람의 삶이 배제된 자연을 만들려 드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사람이 강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자. 그러기 위해 우리는 통합물관리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통합물관리의 틀 안에 하천관리까지 포함하여 주민들이 진정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물관리 정책이 시행될 때, 어느새 더 넉넉하고 맑아진 한강이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나정균 한강유역환경청장나정균 한강유역환경청장

2019-03-21 나정균

[풍경이 있는 에세이]말이 없는 사람입니까?

말 많이 하고 나면 며칠간 후유증대체 왜 그런 소리를 했을까 '긍긍'관계지속 행위 피할 도리가 없다상처 입히거나 받지 않는 일 불가능주지도 받지도 않는 일이 최선일까"말이 별로 없으시네요"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내성적인 탓인지, 언젠가부터 나는 으레 말수가 적은 사람, 과묵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전에서 '과묵하다'를 찾아보니 '말이 적고 침착하다'는 제법 고상한 풀이가 나온다. 나쁘지 않은걸,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께름칙한 기분이 드는 건 그 속에 답답하다, 지루하다 같은 뜻도 아울러 담겼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좀처럼 이 과묵을 포기하지 못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나 역시 가끔은 수다쟁이가 된다. 친구가 직장 상사 흉을 볼 때나 먹고사는 일을 염려할 때면 맞장구를 치며 목소리를 높이고 만다. 부러 엉뚱한 얘기를 꺼내 누군가를 웃게 하기도, 의도치 않은 독설을 뱉어 누군가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초면의 누군가를 만날 때는 상대가 너무 어색해하지 않게 실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는데, 이는 물론 어디까지나 직장인으로서 몸에 밴 일종의 제스처다. 상대도 곧잘 눈치채고 마는. 어쩌다 말을 좀 많이 하고 돌아온 날이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게 된다. 후유증이 며칠간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한 말들을 머릿속에 열거하며 대체 왜 그런 소리를 했을까 긍긍하는 것이다. 그저 우스개로 던진 말을 그가 오해하지는 않았을지, 그 말이 그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지 하는 걱정은 나는 왜 겨우 이런 사람인지, 이런 말을 지껄이는 사람인지 하는 자괴감으로까지 이어진다. 하물며 말을 두고 이럴진대 대체 글은 어떻게 쓰는 거죠? 묻는다면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너무나 괴롭다는 말밖에는. 최근 한 선배는 지나는 투로 가볍게 그러나 실은 엄하게 나를 책망했다. "그때 술자리에서 말이야, 네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어. 평소의 너답지 않았달까." 순간 나는 뜨끔했다. 그렇지 않아도 바로 그 '그런 말'이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던 참이었다. 후배의 난해한 패션 센스를 두고 여럿의 장난 어린 놀림이 오가는 가운데 나도 농담 삼아 한 마디 거든다는 게 그만 도를 지나치고 말았다는 생각. 그러나 선배가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하고 말한 순간 나 또한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묘한 화가 치밀기도 했다.그날 그 자리에서 나는 과연 합당하고 품위 있는 말만 들었나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수많은 말들 속에 나 역시 크고 작은 불쾌감을 겪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는 내게 더 심한 말도 했다고! 나도 같이 응수했을 뿐이야. 고작 그 정도 말도 나는 해선 안 되는 거야?"라는 말이 속에서 들끓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어쨌든 나는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엎질러버렸다는 자책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후 한동안은 어느 때보다 입을 굳게 다물고 지낸 것 같다. 관계를 지속하는 한 말을, 말을 하고 듣는 행위를 피할 도리란 없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늘 그렇듯 이런저런 말들이 난무하고, 그 속에는 선의를 빙자한 폭력과 농담을 가장한 힐난이 가득하다. 거기서 빚어진 상처는 뜻 모를 웃음 속에 번번이 묻혀버린다. 집으로 돌아간 뒤 혼자 조용히 꺼내어 들여다볼 뿐. 서글프다. 말이라는 건 지극히 섬세하게 가다듬어져야 마땅할 테지만, 종내 그 100%의 상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말이 있는 한 누구도 상처 입히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말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일, 그런 일이 최선일까. 말을 버리고 사람을 버리는 일. 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런 한편, 이 모든 것과는 별개로 가끔은 정말이지 말을 잃는 순간이 있다. 기꺼이 잊는 순간이. 깊이 애정 하는 사람과 마주할 때인데, 그때는 나도 모르게 입의 존재를 망각하게 된다. 대신 커다래진 귀가 오롯이 남는다. 더, 조금 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하는 일보다 듣는 일에 이 귀한 시간을 써야 한다고, 마음은 끊임없이 속삭이는 것이다./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9-03-21 박소란

[발언대]물을 품은 '시화호 해양관광레저 도시'

하천은 새롭게 떠오르는 도시의 매력적인 장소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수변공간을 활용한 나라들은 수변공간을 관광, 레저, 업무, 주거 등 다양한 용도로 개발하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수변의 랜드마크로 관광자원화하고 있다. 미국의 샌안토니오강, 독일의 예술공간인 라인강 뒤셀도르프미디어하펜은 환경친화적으로 강을 살려냈으며 일본 스미다강은 인공테라스 구축과 크루즈 시설을 접목하며 레저공간 제공은 물론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K-water(한국수자원공사)는 주거·산업·에너지·레포츠·관광 등 시화호 중심의 해양레저도시 조성을 통해 도시와 친수공간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위해 노력해 왔다. 1994년 2월 시화호라는 거대한 인공호수가 탄생하고 시화멀티테크노밸리, 송산그린시티 등 수변관광 자원과 개발용지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한때 시화호의 오염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현재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수질, 대기, 생태를 개선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오염호라는 불명예를 극복하고 생명과 에너지가 넘치는 시화호로 다시 태어났다.미래형 도시계획을 바탕으로 한 시화멀티테크노밸리는 시화, 반월 국가산업단지의 풍부한 배후수요가 뒷받침되는 상업용지를 개발하였고, 거북섬 일대에는 인공서핑장을 중심으로 하는 해양레저복합단지를 조성할 예정이다. 송산그린시티는 동측지구 단독 주택용지, 상업용지 분양과 함께 시화호 남측에 주거와 레저, 문화를 함께 누리는 해양생태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앞으로 한단계 더 발전된 수(水)공간은 도시의 형태는 물론 레저, 문화, 상업적 요소를 담은 다기능 워터프론트로 변화하여 시민의 요구를 담은 친환경 해양생태도시를 만들어 갈 것이다.시화호는 이제 단순히 모이고 흘러가는 물이 아니다. 죽음의 호수에서 생명이 되살아나는 호수로 탈바꿈한 시화호는 인간과 서로 소통하며 친환경 해양레저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회의 물이 될 것이다./이병준 K-water 시화관리처장이병준 K-water 시화관리처장

2019-03-21 이병준

[춘추칼럼]혁신의 길

인간 존재 유한성 그대로지만 변화는 계속요즘 '세상 바꾼다' 의미 실험·창조성 뒤따라변하는 것·안 변하는 것 사이서 살아가는 법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배워야 한다봄이 왔다. 누군가에게는 올 거 같지 않던 봄이, 또 누군가는 그렇게 기다렸건만 끝내 보지 못한 봄이 왔다. 계절이 바뀔 때면 '앞으로 내 인생에서 이 계절을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변하지 않는 사실 속에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변화'가 담겨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비슷하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유한성은 그대로이지만 결국 그 안에서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인간은 조금 더 적극적인 변화를 이끌어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세기에는 이 말이 주는 느낌이 비교적 명확했다면, 지금 21세기에는 쉽사리 설명하기 힘든 주제가 되었다. 전자는 '혁명'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었다. 혁명은 확실한 언어로 설명되거나 이해되었다. 그것은 동시에 과거 많은 이들이 혹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에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이야기되거나 이해된다. '혁명'의 자리에는 '혁신'이 자리 잡는가 하면, 이와 연결하여 '실험'과 '창조성'과 같은 단어들이 뒤따른다. 사회에서 '실험'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러한 모든 것은 개인의 변화보다는 각자가 살아가는 조건으로서 사회의 변화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그 변화는 근본적인 세상의 변화라기보다는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변화이고 새로운 관점의 발견이다. 그것은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이에 대한 영국의 대표적인 혁신기관 네스타(NESTA)의 대표 제프 멀건(Geoff Mulgan)의 지적은 타당하다. 그는 이 시대의 모든 이론이 아주 단순한 오류에서 출발했다고 비판했는데, 그 오류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사회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혁신은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해결해가는 과정이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바라보거나 처리하는 일을 보게 된다. 그것은 유무형의 폭력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상대는 복잡한데 단순하게 반응하면 온전한 관계라고 할 수 없다. 이에 대한 반성과 성찰에서 변화를 이끌고자 하는 새로운 실험과 도전이 바로 '혁신'이라 할 수 있다. "뭔가 옳은 일이 이뤄지길 바란다면, 당신이 직접 하는 게 최선이다." 샤를로트 드 빌모(Charlotte de Vilmorin)의 말이다. 프랑스에서 장애를 갖고 태어나 휠체어를 타야 했던 그녀는, 2015년 휠체어 탑승 차량을 알아보다가 엄청난 비용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스스로 방법을 찾다가 몇 달 후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개조용 차량 공유 플랫폼 휠리즈(Wheeliz)를 열었다. 프랑스에 장애인을 위한 개조 차량이 10만대 정도가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공유 플랫폼을 연 것이다. '휠리즈'는 2017년 유럽에서 가장 혁신적인 프로젝트로 꼽혔다.혁신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내가 사는 곳에서, 내가 직접 느끼는 문제들을 바꾸거나 해결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터가 더 나은 공간으로 바뀌고, 우리의 공동체가 더 건강한 관계로 바뀌는 것을 추구할 때, 그리고 이것을 단순히 추상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구체적인 계기와 활동을 조직하고 수행할 때 변화는 시작된다. 기술은 발달하고, 세상이 바뀌고 있다. 다른 한편, 세상은 그대로이다. 겨울은 가고 봄이 온다. 꽃은 피고 진다.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리고 바로 그 사이에서 변화와 혁신은 시작된다. 변화와 혁신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온전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개인만이 가능하다. 비록 주어진 환경과 조건이 공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차이가 드러나는 서로 다른 조건 위에서 비로소 변화를 위한 혁신은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한때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바뀌지 않는지 궁금했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의 '사이'에서, 서로 다른 조건의 '사이'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이다. 그 '사이'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축복이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9-03-21 권경우

[오늘의 창]국민은 어떻게 듣고 있을까

지난달 27일부터 28일 이틀에 걸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돼간다. 기대감이 컸던 만큼 회담 결렬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안타까움이 더없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북미 간 물밑 접촉과 무엇보다 양측의 지속적인 대화 의지가 보여지는 만큼 정확한 시기를 예상할 수는 없지만 국민들의 대다수는 향후 협상에 대한 여전히 낙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직접 하노이 회담 현장을 다녀온 취재기자로서 이후 계속해서 북미 간, 그리고 한미 간 움직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짧은 소견이지만 하노이 '핵 담판' 결렬 이후 북미 관계도 그렇지만 한미 간 다소 거리감이 있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인권 문제까지 다시 거론하면서 대북 압박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남북경협' 추진으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삼을 수 있다. 그렇다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몰아가기도 무리가 있다. 한미 실무자들 간 다양한 루트의 협상과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이른바 '단톡방'에서 양국의 소통과 협의 상황에 대한 많은 질문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로부터 나오는 대답은 "양국 간 대화채널에 전혀 문제가 없고 지속적인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의 답변이 돌아올 뿐이다. 국가 외교 문제가 '칼로 무 썰듯'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면서도 청와대의 다소 소극적인 해명과 설명으로는 국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지 못하는 만큼 아쉽기만 하다. 산적한 국내 주요 현안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할 말만 하는 정부'보다는 '국민이 어떻게 듣고 있을지'를 염두해 청와대는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주길 바란다. /이성철 정치2부(서울) 차장 lee@kyeongin.com이성철 정치2부(서울) 차장

2019-03-20 이성철

[기고]북핵, 빅딜 위한 협상플랫폼 구축해야

크게 가자는 트럼프·신뢰 못하는 김정은6자회담 당사국과 국제적 대표기구 참여비핵화·제재해제 '맞교환' 연대보증 형식'다자간 거버넌스 체제' 구성 새접근 필요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다. 당초에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신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 일부를 완화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물거품이 됐다. 다행인 점은 북한과 미국이 여전히 비핵화와 경제제재 해소를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점과 미국이 한국에게 중재자 역할을 주문했다는 점이다.이제 한국은 하노이 회담의 합의 결렬에 대한 시시비비를 논하기보다는 중재자로서 향후 북미 간 대화를 어떻게 재개해 비핵화를 완성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고심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하노이 회담에서의 양국 정상 대화를 분석해보면, 향후 성공적인 비핵화를 위한 두 가지의 유용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첫째, 비핵화를 위한 차기 북미회담의 주제는 일괄타결(빅딜)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빅딜을 제안한 이상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접근은 이제 물 건너갔다. 하노이 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강조한 단어는 '크게 가자(go bigger)'와 '한 번에 해결하자(all in)'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논조는 북미대화를 단절시키는 조치라고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재의 국내 정치적 입지와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있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절박하고 절실한 입장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북미 대화를 추동하기 위한 건설적인 평가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빅딜식 접근방법은 하노이 회담의 사전 실무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것으로 회담장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당혹스럽게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트럼프 리스크)이지만, 어쩌면 북한이 줄곧 주장해온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정착이라는 측면에서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이 북미 간의 대화를 중재하기 위해 북한을 설득할 때에는 빅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둘째, 성공적인 차기 북미회담을 위해서는 북미가 안심하고 일괄 타결할 수 있는 '신뢰의 장'을 사전에 조성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빅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공식적으론 상호 '신뢰부재'를 제시했다. 북미 간에 신뢰가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것을 내놓으면서 빅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꿔 생각하면 신뢰만 구축되면 북한은 미국의 빅딜 제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이 논리는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에 대한 지금까지의 일관된 언행과 선제적인 비핵화 조치 그리고 피폐된 인민경제의 현실을 고려할 때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전제로 하는 경우 더욱 신빙성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북한은 빅딜의 당사자로서 미국의 진정성과 중재자로서 한국의 역량을 믿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북한이 마음 놓고 미국과 빅딜할 수 있는 확실한 좌판을 깔아줄 필요가 있다. 북미 간 빅딜을 위한 국제적인 협상 플랫폼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북한의 비핵화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국가들과 국제적인 대표기구가 참여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6자회담의 당사국인 남북미와 중국 러시아 일본과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참여하는 다자간 거버넌스 체제가 구성돼야 한다. 이곳에서 북미가 사전에 상호 협의해 마련한 비핵화와 제재해제의 패키지를 맞교환하도록 하고, 참여 국가들이 양국의 약속이행을 연대 보증하는 형식을 취하면 된다. 이러한 의사결정체제는 북미 간의 상호 불신을 해소하고 약속이행을 담보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소의 범위를 확대하고 그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북미 간의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추동력을 강구함과 동시에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조치를 확증하기 위한 다자간 협의체를 구성하기 위한 노력을 동시에 경주해야 할 것이다./김정완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DMZ연구원장·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 전문위원김정완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DMZ연구원장·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 전문위원

2019-03-20 김정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집지실도: 집착하면 법도를 잃는다

내가 사물을 인식할 때 이미 나에게 익숙해진 방식으로 경험된 인식을 가지고 한다. 그리고 경험된 인식은 반드시 언어를 수반한다.멍하니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양과 개념을 가지고 바라본다는 뜻이다. 이른바 명상(名相)을 초월해서 인식한다는 것은 일상의 인간 삶에서는 불가능하다. 무엇인가를 보고 듣는다는 것은 바로 무엇에 대한 모양과 개념을 업그레이드해서 재확인하는 과정이다. 어릴 때 개에게 물려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도 개를 보면 무섭다고 인식한다. 그러므로 한 번 주입된 인식은 잘 바뀌지 않는다. 바뀌기보다는 오히려 공고해진다. 예부터 내려오는 말에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것도 이런 이치이다.그런데 이전에 갖고 있었던 어떤 모양이나 개념에 익숙해지는 경향은 자칫 집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사물에 대해 판단할 때 사물도 변화하고 나도 변화한다는 변화의 가능성을 도외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역의 이치를 벗어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의 주식에 투자할 때 그 회사에 대한 처음의 정보나 경제적 개념에 집착하게 되면 그 이후의 회사 흐름에 둔탁해질 수 있다. 회사는 조직이기 때문에 흥망성쇠를 겪으며 변화한다. 변화하고 있는 실제를 보지 못하면 그 자체가 투자자에게 손해로 다가온다. 나에게 인식된 어느 한 상태를 고정시켜 너무 집착하면 중도를 잃고 그렇게 되면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3-20 철산 최정준

[경제전망대]봄은 왜 저 캐슬에만 오는 것일까

몇년새 소득격차는 더 벌어졌는데정치-경제권력은 '규제완화' 놓고"투자 더하라" "경제는 경제에게"국민에 와닿지 않는 줄다리기 급급마스크값 걱정 미세먼지에 '한숨만'애들은 싸우면서 큰다지만 큰 어른들이 저러는 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양쪽의 말이 다 맞는다면, 우리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서 둘 다 물러나게 해야 할 법하다. 둘 다 틀린다면 둘 다 유언비어 유포와 혹세무민, 민심교란죄로 자격증을 박탈하는 게 도리다. '수석대변인'이라 하니 '국가원수모독범'으로 받아치는 국회 싸움의 본질은 제3자인 국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자는 편가름이다. 양편 기세가 등등한 걸 보면 서로 다른 한쪽씩만 올바르다는 국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문제는 속성상 정답이 딱 있을까 싶다. 두 개의 정답이 공존하는 것, 설사 진리이며 정답이지만 그런 것 때문에 불편한 사람이 있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살이의 참모습인 것을. 각자 취향이고 성향이고 가치관이니 그럴 수 있다 하자. 맛집과 인증샷으로 하루 거리 행복을 찾는 평범한 우리. 그러니, 나라님들 다툼은 힘 있고 가진 그네들만의 자기보존이자 기득권을 지키자는 거니 신경을 쓰지 말자, 라고 하자?정치 권력이 발끈거리며 서로 싸우는 사이 경제 권력의 성곽은 높아지고 굳어진다. 가장 가난한 가구 20%의 소득은 일 년 전보다 17.7% 떨어졌지만 가장 잘사는 가구 20%는 소득이 10.4% 올랐다. 처분가능소득은 격차가 더 벌어진다. 소득 하위 20%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2017년 4분기 124만9천원이지만 2018년 4분기는 99만1천원으로 20.7%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소득 상위 20% 가구는 2017년 665만7천원에서 722만7천원으로 8.6% 늘어났다. 가구별 소득배율이 5.3배에서 7.3배로 벌어진 셈이다. 통계청의 2018년 4분기 소득 부문 가계동향조사이다. 소득 200만원 미만 가구의 자녀 사교육 참여율은 47.3% 월평균 사교육비는 9만9천원이다. 800만원 이상 가구의 자녀는 84.0%가 사교육을 하고 50만5천원을 지출한다. 통계청의 2018년 사교육비 조사이다. 이런 통계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도 아니며 얼마든지 있다. 최근에는 미세먼지도 리스트에 가세했다. 자녀 학원비 9만9천원이 힘든 가정에 마스크를 두 번 사용하는 건 금물이고, 4인 기준 마스크값이 20만 원이라면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이런 문제를 교정하고 조율하라고 국민이 거두어 주는 세금을 받아, 밥 먹고 집 사고 학원 보내고 유학 보내는 분들이 핏대를 올리며 저리 한다는 건……. 국민은 서글퍼지고 세상이 싫어진다.'빨갱이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역사적인 패배를 한 것은 결국 먹고사는 문제를 처리하는 역량이 지속가능한 정치 권력의 관건임을 검증한 것이다. 민주적이고 행복한 사회일수록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은 상호 창조, 혁신, 경쟁으로 단단해지고 사회적 지지를 얻으며 존속한다. 예를 들어보자. 2019년 대한민국.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은 규제 완화라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정치 편에서는 투자와 일자리를 내놓으라 하고 경제 편에서는 경제는 경제에게 맡기라 한다. 정치권은 규제라는 밥그릇을 내주기 아쉬운 것이고, 기업은 이 기회에 '기업 하기 좋은 조건'을 하나 더 챙기겠다는 속내이다. 지지부진할밖에. 국민에게 와닿고 국민을 위한 규제 완화라면 국민이 팔 걷고 나서야 할 터인데, 아닌 것은 기업의 돈벌이가 국민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알기 때문이다. 국민 관점의 규제 완화를 풀지 못하는 순간, 혁신이니 창조는 영 가능성이 없다. 지금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은 견제와 감시가 아닌 전략적 공생을 하는 셈이다.살 만큼 살다 보니 배고프고 추운 시절을 겪곤 했다. 그때 누가 나에게 따뜻하고 마음 편한 밥 한 끼를 주었던가? 보수인가 진보인가? 타인능해(他人能解)를 찾는 시절이다. 여의도, 세종시, 청운동을 거쳐 도청, 군청을 기웃거린다. 끝내 이장 집까지 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쌀 한 바가지가 거기에 있을는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최승자 시, '삼십 세' 중에서), 바라는 건, 미세먼지만이라도 어찌 안 될까. 봄날 꽃놀이 사치는 애당초 포기했다. 우리들의 봄은 누가 가져갔는가? 봄은 왜 저 캐슬에만 오는 것일까?/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

2019-03-20 조승헌

[참성단]안 들리는 능력

"이 세상에는 귀가 들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그건 못 듣는 게 아니라 안 들리는 능력이 있는 거야. 모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특별히 안 들리는 능력이 더 있는 거니까 신비한 일이지. 너는 축복받은 거야." 청각 장애인인 10대 소녀는 인공와우 수술을 앞두고 언젠가 엄마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정은 작가의 '산책을 듣는 시간'이란 소설 중 한 대목이다.안 들리는 게 능력이고 축복이라고? 뜬금 없는 소리 같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공와우 수술을 받고 나서 소녀가 자신의 목소리로 처음 내뱉은 말은 욕이었다. 구화(口話)를 배운 뒤 비밀 욕 수첩을 만들고, 소설책에서 생전 처음 보는 욕들을 수첩에 옮겨 적었다가 옥상에 혼자 있을 때 꺼내어 소리 나게 읽어보며 발음이 자연스럽게 되도록 연습한 결과였다. 소녀에게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처음에는 정말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소녀의 표현대로라면 '이래서는 살아갈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세상은 시끄러웠다. 소리가 온 몸을 때리는 것 같았다. 방향감각도 이상해져서 종종 땅이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소녀는 말보다 오히려 수화(手語)에서 더 행복감을 느꼈던 듯 싶다. 구화를 배우고 인공와우 수술을 받기 전, 수화가 유일한 의사소통수단이었던 소녀의 독백이다. "나는 손안에 투명한 새 한 마리를 기르는 느낌으로 수화를 하며 걸어 다닌다. 새를 쓰다듬듯이." 수화를 어쩌면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참으로 아름다운 문체다. 소설을 읽으면서 장애인에 대한 관념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 자기반성에 빠졌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청각 장애인도 아니면서 '안 들리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애쓴 이들이 있다. 자전거 경음기나 응원용 나팔로 청각을 일시 마비시킨 뒤 장애진단서를 받는 수법으로 병역 면제를 받거나 시도한 철없는 젊은이들이다. 안 들리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그들이 기울인 노력을 생각하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차 안에서 나팔을 귀에 대고 1~2시간 동안 인상 찌푸리며 고막을 혹사했다지 않은가. 이 같은 기상천외한 수법을 전수해주는 대가로 최고 5천만원 까지 오갔다니 귀가 아니라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 내막이 밝혀진 이상, 이제 그들에게 안 들리는 능력은 축복이 아니라 주홍글씨일 듯 싶다. '병역기피'라는 낙인이 찍힌…. /임성훈 논설위원

2019-03-20 임성훈

[수요광장]함께 할 수 없는 것은 이민자가 아니라 혐오와 차별이다

뉴질랜드 테러로 전세계 큰 충격이주민·난민적대 국내도 예외 아냐고든 올포트 증오범죄 5단계 나눠부정적 발언·기피 극단행위 '씨앗' 평화 지키려면 내부 차별등 맞서야3월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지에 위치한 이슬람사원 두 곳에 백인 우월주의자 브렌턴 태런트가 난입해 총기를 난사했다. 현재까지 50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이민자와 난민, 특히 무슬림에게 반대하며, 백인들만의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 극단주의자다. 그는 이 테러 장면을 생중계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에 관한 많은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무방비의 시민에게 총을 난사해서, 심지어 3살에 불과한 어린아이까지 살해한 행동에 어떤 논리적 해석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테러에 전 세계가 다시 한 번 큰 충격에 빠져있으며, 한국사회도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상황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처지다. 왜냐하면, 이주민, 난민 특히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있어 더 이상 한국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과 며칠 후인 3월 21일은 UN이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이날은 196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샤프빌에서 벌어졌던 인종학살을 기리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샤프빌 사건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에 의해 통행증을 소지하고 다녀야 했던 흑인들이 경찰서에 통행증을 반납하는 비폭력 시위에 백인경찰들이 총기를 난사해서 69명이 사망한 사건이다.이 사건 이후에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정부는 자신들은 인종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각자의 차이에 따라 분리해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종분리를 당연시하고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려 했다. 이에 UN에서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이날을 세계 인종차별철폐의날로 정하고 전 세계에서 기념행사와 더불어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날을 기념하여 기념일과 가까운 3월 17일 일요일에 전국 곳곳에서 행사가 이어졌다. 서울에서 진행된 인종차별철폐의날 기념행사 맞은편에는 비록 30여명의 소수의 인원이지만, 난민과 이주민 그리고 다문화사회에 반대하는 집회가 있었다. 이들은 이주민과 난민은 고국으로 돌아가야 되고,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은 분리되어서 살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과 뉴질랜드 총기 테러범의 주장 그리고 며칠 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반난민, 반이주민 집회의 주장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매우 유사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난민 이주민 반대집회를 보며, 뉴질랜드 총기테러를 연상한다는 것이 너무 과한 상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현재 한국사회에서 혐오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일부의 사람들도 테러를 일으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런 혐오와 차별의 끝에는 결국 이런 비극적 사건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증오범죄를 5단계로 설명했다. 1단계 부정적 발언, 2단계 기피, 3단계 차별 및 은밀한 적대, 4단계 물리적 공격, 5단계 학살의 단계다. 한국사회는 현재 여러 단계에 걸쳐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부정적 발언과 차별이 결국에는 극단적인 배제와 테러행위로 이어지는 씨앗이 된다. 인종차별과 혐오에 대한 대응에 국가와 사회가 전력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총격사건 이후,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우리는 200개 이상의 민족과 160개 이상의 언어로 구성된 자랑스러운 국가입니다.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우리는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상황 그리고 오늘 저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번 참사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공동체에 대한 공감과 지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러한 행동을 저지른 이들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가능한 가장 강력한 규탄입니다. 너희가 우리를 선택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너희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규탄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 그리고 그 너머 세계가 평등하고 평화로운 곳이길 원치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함께할 수 없는 것은 이민자가 아니라 차별과 혐오다. 우리 사회를 평화롭게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으로 규탄하고, 한국사회 내부의 차별과 혐오에 온 힘으로 맞서야 한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19-03-19 이완

[참성단]돌아온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별명은 '기름 장어'다. 민감한 질문이나 난처한 상황을 매끄럽게 잘 피해간다고 해서 언론이 붙여줬다. 본인도 이 별명을 능숙한 외교관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여겨 싫어하지 않았다. 유엔 사무총장 취임 전 기자들에게 스스로 별명의 유래와 의미를 홍보했다. 미국의 한 방송 사회자가 질문마다 모호한 대답을 하는 그에게 "한국에서 당신을 왜 미끄러운 장어라 하는지 알겠다"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반 전 총장이 대권 도전 움직임을 보이자 비판적인 언론으로부터 '기회주의자'로 집중 공격당하는 등 별명 때문에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하지만 반 전 총장 특유의 부지런함과 끈기는 당시 유엔 내에서도 유명했다. 재임 중 수단 다르푸르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아프리카 연합 혼성 평화유지군 파견'이라는 공로를 세웠다. 특히 반 전 총장은 지구 온난화 문제를 국제적 관심사로 부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도 10년 재임 기간 기후변화 분야의 성과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그의 노력의 결실은 2015년 12월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약이다. 이 협약엔 무려 195개국이 동참했다. 그는 이 협약을 위해 전 세계를 직접 뛰어다니며 세계 각국 정상을 만나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반기문이 '미세먼지 해결사'로 돌아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범사회적 기구' 위원장직을 그가 수락했다. 그의 등장으로 대중국 외교력 및 국제사회 영향력으로 인해 미세먼지를 둘러싼 한·중 외교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하지만 중국의 오만한 태도로 인해 획기적인 돌파구가 마련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래도 유명무실하게 방치돼 온 국무총리실 미세먼지특별위원회보다는 외교 전문가로서, 중국 등 주변국과 미세먼지 문제를 협의하고 중재할 능력을 갖춘 반 전 총장의 능력이 더 돋보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반 전 총장은 UN사무총장 퇴임 후에도 기후변화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지난해 3월 서울에 본부를 둔 국제기구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의장에 선출됐는가 하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과 뜻을 모아 기후변화 글로벌위원회(GCA)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지금 우리에겐 암만큼 무서운 게 중국발 미세먼지다. 좋은 의미의 '기름 장어'답게, 미세먼지 척결을 위해 그의 외교적 능력이 발휘되길 기대해 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3-19 이영재

[기고]멈추는 공장 잃어가는 경쟁력

제조업 재고율, IMF수준 가까워높아진 기술력 자랑 중국과 대조한국, 화려한 성장에 안일한 운영정부개입 '온전한 상태' 착각 문제실제 지표들 경고… 대처 필요하다제조업들의 공장가동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생산품의 재고율은 올라가고 있다. 이는 생산품들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고 상품의 판매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하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치게 된다. 통계청은 지난해 12월 제조업의 재고율이 1998년 IMF 외환위기 수준으로 다가섰음을 발표했다. 팔리지 않는 물건이 쌓이고 공장은 시설을 놀리지 못해 생산을 하는 실정이다.경기 탓을 하기엔 남들의 상황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흔히 우리나라를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 모양에 빗댄다. 일본의 높은 기술을 따라잡으려 하고 중국의 싼 인건비와 낮은 기술력에 비해 우리나라는 중국보다 기술의 우위를 자랑하며 '메이드 인 코리아'를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낮은 인건비는 여전하지만 중국의 기술력은 달라졌다. 우리나라를 앞설 만큼 다가섰다. 실례로 삼성의 휴대폰이 세계 1위를 차지했었지만 이번에는 간신히 1위를 지켰다. 그동안 중국 내 삼성 휴대폰이 압도적 우위의 점유율을 가졌었지만 이제 그들의 기술로 만들어진 기업들의 휴대폰 덕분에 작년 중국에서 삼성의 휴대폰 점유율은 1%를 넘지 못했다. 더 이상 싸구려 일회용의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니다. 중국에서 넘어온 토종 브랜드의 스마트폰은 심플한 디자인에 저렴한 가격으로 국내 생산휴대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특히 5G 기술은 메이드인 차이나의 부품을 쓰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우리나라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혹자는 지금 우리나라 제조업들의 생산율과 가동률 저하의 원인으로 경기침체를 들지만 틀렸다. 이는 우리나라 제조업들의 경쟁의 뒤처짐이다. 우리의 생산품과 기술력이 세계 시장에서 밀리고 있음이다. 과거의 화려한 성장곡선만 눈앞에 놓고 안일한 운영을 일삼은 덕분이다. 20여 년 전의 외환위기에 육박하는 위험선을 넘나들고 있음에도 태연한 모습부터 문제이다. 밖에서는 벌써부터 우리를 걱정하는 시각들이 조언을 하고 알림의 메시지를 주었음에도 아직까지 그 정도는 아니라며 우리만 문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 산업, 조선 산업 등 우리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산업이 흔들리고 정상 페이스를 보이지 않음에도 정부의 개입으로 온전한 컨디션인 양 흘러가는 것이 문제이다. 심폐소생술로 일시적으로 숨이 돌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적 문제가 깊다. 정부 개입으로 원활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처럼 보일뿐 크고 작은 생태 줄기가 말라가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폐업이 그렇고 정상적 수주의 발생이 줄어든 것도 그렇다. 경쟁우위에 서게 되는 것은 기술의 우위는 물론 비용과 품질이 받쳐줘야 한다. 이렇게 해서 생산된 물건들이 잘 팔려나가면 성장가도를 달리게 된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가장 우선적으로 기업의 투자가 줄어들었다. 기존 기업들은 물론이고 해외 투자자들이 우리에게 투자를 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 기업들이 방향을 잃었다. 대통령 앞에서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할 만큼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이겨야 살 수가 있는데 경쟁에서 이길 무기가 없다. 기술도 밀리고 인건비도 밀리고 발을 디딘 시장의 점유력도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불리한 비용의 증가를 불러오는 경제정책의 강행은 현장의 손과 발을 다 놓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가설이나 전망이 아닌 실제의 지표들이 보내는 경고이니만큼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처가 필요하다. 여기서 다음 단계로 진행될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지금 해야 할 것들이 눈앞에 보일 것이다./김용훈 국민정치경제포럼 대표김용훈 국민정치경제포럼 대표

2019-03-19 김용훈

[경인칼럼]내재적 관점으로 우리 내부부터 화해하자

보수·진보 대립 '재생불능 과정' 진입 중이념적 내분 친일·친북 굳어질까 두려워'역사적 정의' 수정- '의심' 내려놓길국민 갈라 놓으면 정권탈환이 무슨 소용김영삼 정부부터 계산하면 보수와 진보 진영의 교차집권 기간이 26년이다. 그동안 보수와 진보진영은 각각 3명의 대통령을 세웠다. 우리 현대사의 압축성을 고려하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진영이 이념적 소통과 현실적 공존을 모색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재생불능의 화석화 과정에 진입 중이다. 대립의 양상이 정치이익을 실현하려는 정당들의 정략적 기획 수준을 넘었다. 유튜브 등 새로운 매체로 개인무장한 대중들의 전면적 대치로 확산되고 있다. 진보와 보수 정당들은 '국민'을 강조하지만, 국민은 보수적 시민과 진보적 대중으로 분리 중이다.보수와 진보 진영이 서로를 인식하는 관점은 식민공간과 분단공간을 통해 고착됐다. 진보 진영이 보수 진영을 바라보는 시선엔 '친일(親日)' 세력에 대한 혐오가 있다. 친일 세력의 후예들이 해방공간의 혼란을 틈타 보수의 가면을 쓰고 역사적 정의를 훼손하고 왜곡한 것도 모자라 온갖 적폐를 누적해왔다고 본다.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인식하는 관점은 점잖게는 '친북', 거칠게는 '종북(從北)이다. 분단공간에서 진보 진영의 민주화 운동이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에 오염됐다고 강하게 의심한다.상대를 향한 두 진영의 혐오와 의심은 올해 들어 거대하게 폭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는 일제의 용어라고 규정하고 청산해야 할 친일잔재라고 밝혔다. 진보 진영을 친북, 종북으로 의심하는 보수 진영을 친일 잔재 세력으로 지칭한 셈이다. 이렇게 되면 친일잔재 청산의 대상은 현상이 아니라 세력이 된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기사 인용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을 언급했다. 인용이라지만 해당 기사에 동의하는 진의는 모두가 안다. 연설에서 현 정부를 '좌파정권'으로 지칭했을 때 '좌(左)'에 담긴 중의적 의미 또한 모두 안다. 이러다가 '보수는 친일', '진보는 친(종)북'으로 자동 확정되는 이념적 내분이 굳어질까 두렵다.지난 한세기 우리 민족은 식민공간, 해방공간, 전쟁공간, 분단공간을 차례로 겪으면서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그럼에도 경제적 번영과 민주적 민주화를 성취한 기적을 일구어냈다. 그 공간을 거치면서 현재의 보수와 진보 진영이 성립했다. 시련으로 압축된 역사 속에서도 기적처럼 번영을 꽃피운 현재를 생각하면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성취를 인정하는데 인색할 이유가 없다.보수와 진보 진영이 내재적 관점에서 상대를 이해하는 관용적 태도가 절실하다. 상대에 대한 태도와 인식의 전환은 대북정책, 친일청산, 한미관계, 경제정책, 사회정의 등 모든 분야에서 반목 중인 현안을 서로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대북정책을 예로 들면 진보진영은 보수진영의 엄격한 대북인식의 배경을 보수진영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보수진영은 진보진영이 확신하는 대북 접근방식을 진보진영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입장을 바꾸어 시선을 교차하면 대북정책의 합의와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역사문제도 마찬가지다. 진보진영은 보수진영의 현실적인 일본관을, 보수진영은 진보진영의 엄격한 친일청산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할 필요가 있다. 일본과의 현실적인 공존과 식민역사의 정의로운 청산의 타당성을 서로 인정하면 대일 외교의 전략적 역할을 서로 분담할 수 있다. 지금처럼 일본의 면전에서 한쪽만 죽어라 옳다며 싸우는 상황은 식민 역사 못지 않게 부끄러운 일이다.진보진영은 보수진영에 '친일' 낙인 찍기를 멈추어야 한다. 진보진영 인사들이 식민공간의 항일독립투사가 아니듯이, 보수진영 인사들이 2019년 오늘의 공간에서 식민 부역자의 친일 행위를 할 이유가 없다. 보수진영은 진보진영을 향한 '친(종)북' 낙인 찍기를 그쳐야 한다. 진보진영은 세 번의 정부를 세워 대한민국의 국체를 이어왔다. 불만은 있을지언정 부정하면 안된다. 진보진영은 자신만의 '역사적 정의'를 수정하고, 보수진영은 합리로 포장한 '의심'을 내려놓기를 바란다. 나라를 쪼개고 국민을 갈라 놓고서야 정권재창출이든 정권탈환이든 무슨 소용인가./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9-03-19 윤인수

[노트북]사라져 가는 인천 근대건축물

일제강점기에 지은 인천 부평의 일본식 상가주택이 지역사회 관심 밖에 있다가 지난 13일 다세대주택을 짓기 위해 철거됐다. 아베라는 일본인이 식당을 짓기 위해 건축을 신청하는 문서와 도면이 남아있었고, 일제강점기 말 부평지역 시가지화의 흔적이라 건축학적·역사적 가치가 크다는 게 연구자들 평가였다. 하지만 건물 철거와 신축 관련 행정절차가 막바지에 다다를 때까지도 지자체는 물론 지역사회 전체가 몰랐다.오랫동안 인천 향토사를 연구해온 한 인사는 부평 근대건축물 철거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2016년 철거돼 주차장으로 변한 동구 송림동 1930년대 한옥여관을 언급했다. 일본 근대건축물 철거에도 시끄러운데 왜 근대한옥 철거 때는 조용했는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글이다. 송림동 한옥여관이 무너질 때도 지자체, 언론 등을 포함한 지역사회가 조용했다.인천 중구 송월동의 근대건축물인 이른바 '애경사'(비누공장)는 2017년 거센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철거됐다. 이후 인천시는 문화재가 아니면서도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는 근대건축물을 보존·활용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체감할 만한 대책은 없다. 최근의 부평 근대건축물 철거가 그 증거다.인천에 있는 근대건축물들이 철거되고 있다. 게다가 개발 압력이 높은 구도심에 몰려 있어 사라지는 속도는 시간이 갈수록 빨라질 수밖에 없다. 또 건축물 상당수가 개인 소유라 '보존해 문화유산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지역사회'와 '재산권 제한을 원치 않는 소유주'라는 상반된 입장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개인 재산권도 근대건축물 보존·활용 정책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근대건축물 보존·활용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인천시가 지역사회 의견을 모을 때다. /박경호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pkhh@kyeongin.com박경호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2019-03-19 박경호

[자치단상]골목이 행복해지려면

21개동 돌며 주민들과 쓰레기 치우며 소통'명예사회복지공무원' 복지 사각지대 해소옴부즈맨 운영 행정갈등 완화·신뢰성 강화'주민참여 마을 혁신의 해' 실현 위해 최선설 연휴 지나고 새해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아주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지난 2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시장, 군수, 구청장을 초청한 오찬간담회를 열었다. 전국 226개 기초단체장이 참석한 이날 모임에서 김부겸 행안부장관은 나에게 "남구청장으로 당선되고 초대 미추홀구청장이 된 김정식 청장님 반갑습니다"라며 반겼다. 순간 주위에 있는 단체장들은 가감 없이 부러움의 눈길을 건넸다. 이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그동안 시·군·구 명칭변경이 정부에 의해 진행된 적은 있으나 주민의 의지로 이루어진 사례는 미추홀구가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다. 즉 마을 민주주의 실현의 전형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특별하다.'마을 민주주의 실현'은 정치를 시작하면서 항상 품고 있는 명제다. 마을 민주주의의 기본단위는 골목으로, 골목이 행복해야 주민이 행복해지고 국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지향점을 녹여 만들어진 것이 '골목 골목까지 행복한 미추홀구'라는 민선7기의 정책 비전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첫발은 청소행정으로 뗐다. 사실 쓰레기와의 전쟁은 쉽게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임기 4년 내내 매진해도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민들이 원하는 가장 시급한 사안이 "살고 있는 동네가 깨끗해지는 것"이라는 대목에서 더는 미룰 수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소통로드 21'을 내걸고 관내 21개 동을 한곳씩 다니기 시작했다. 공무원은 물론 주민들과 함께 쓰레기를 치우고 상습투기 지역을 없애는 방안을 찾고 한편으로는 원하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단순처리가 가능한 사안은 즉시 해결하고 예산이 수반되거나 장기 계획이 필요한 건은 관련 부서가 처리하도록 조치했다. 그 결과 7개월여가 지난 현재 조금씩 골목이 깨끗해지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사실 '골목골목까지 행복한' 비전을 구상할 때 지향점은 공동체 회복과 이를 통한 마을 민주주의 실현이다. 또한 그 바탕에는 복지와 인권이 있다. 청소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미추홀구 전체 인구 42만5천여명 중 기초생활수급자는 4만여명, 장애인 2만2천여명, 그리고 노인 인구 6만3천여명 중 74%가 기초노령연금에 의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동마다 맞춤형 복지팀을 설치하고 전담 사회복지공무원을 배치했으나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고심 끝에 해결책을 찾았다. 일명 '명예사회복지 공무원' 제도 운영이 그것이다. 명예사회복지 공무원이란 무보수 명예직 복지활동가로 주민 스스로 복지 위기가정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인적 안전망이다. 마을의 통·반장, 주민자치위원부터 집배원, 검침원 등 동네 구석구석을 잘 아는 이들을 위촉,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내고 따듯한 손을 먼저 내밀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지난 2월 13일엔 명예사회복지공무원 889명을 위촉하는 발대식을 가졌다. 연말까지 그 수를 배로 확대, 따뜻한 골목 경제를 만들고자 한다.정책이 하나 더 있다. 옴부즈맨을 제도권으로 들여와 운영하고 있다. 옴부즈맨은 전문적·중립적 시각에서 주민과 행정간 갈등을 완화하고 행정의 자기 시정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주민의 신뢰를 높이는 데 유용한 장치다. 바로 주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행정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강화하는 데 맞닿아 있다. 2019년 미추홀구 구정 목표를 '주민참여 마을혁신의 해'로 정했다. 올 한해도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의 마을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신발 끈을 단단히 묶고 부지런히 주민을 만나려 한다. 그 첫걸음은 이미 시작됐다./김정식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장김정식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장

2019-03-18 김정식

[오늘의 창]욕속부달(欲速不達)

"취임 9개월여가 지났는데 성과가 없다. 무엇을 한 게 있냐." 성급한 일부 시민들의 성화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엄태준 시장은 "욕심내고 서두르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의미의 欲速不達(욕속부달)을 새해 화두로 정하고 시민들께 약속한 공약과 계획된 사업들을 하나하나 실천해서 '살고 싶은 이천, 떠나기 싫은 이천'을 만들어 가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엄 시장은 지난달 읍·면·동 현실에 맞는 현안사항을 주제로 정하고 주민들과 함께 토론하는 '타운홀 미팅'을 열고, 주민 스스로 마을 문제를 발굴·해결하기 위한 '행복한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이천시는 소그룹 현장을 직접 찾아 자유롭게 토론하고 다양한 의견을 청취·수렴하기 위해 '이천시장이 갑니다'라는 정책을 펴고 있다. 많은 계층과 소통하기 위해 10명 이상이 원하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토론장을 열고 있다. 지난 11일 처음으로 여성회관에서 주부들의 고민거리도 들었다.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여기에 엄 시장은 매월 2개 읍·면·동을 방문, 동사무소에서 하루 일과를 소화하며 기관단체장들과 간담회, 사무소 방문 주민들의 애로사항·건의사항 청취, 면담과 현장 방문을 동시에 진행하며 해결점을 모색하는 방문 간담회도 지난주 장호원읍에서 시작했다. 엄 시장은 "민선 7기 시민이 주인인 이천 구현을 위해 올해 관내 407개 마을을 한 번씩 방문하는 것을 목표로, 시민과 일상을 공유하고 시민이 느끼는 현장소통 체감도를 높이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이어 "14개 읍·면·동 중 기존 1개 면마다 나눠주는 일률적인 예산 편성보다는 407개 마을 전체 방문, 주민이 원하는 곳에 예산을 집중 투입, 이천시 1조원 예산의 가성비를 최고로 높이겠다"며 "도로 포장 등 쉽게 낼 수 있는 것보다는 취약계층·어르신·장애인등 모든 시민의 삶의 질, 행복지수 제고에 역점을 두고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엄 시장이 욕속부달과 애민(愛民) 정신을 뚜렷하게 밝히고 느끼고 있는 만큼 느긋하게 기다려 봄직하다. /서인범 지역사회부(이천) 차장 sib@kyeongin.com서인범 지역사회부(이천) 차장

2019-03-18 서인범

[시인의 꽃]조화弔花

여기 호올로 핀 들꽃이 있어자욱-히 나리는 안개에잎사귀마다 초라한 등불을 달다아련히 번지는 노을 저쪽에소리도 없이 퍼붓는 어둠먼-종소리 꽃잎에 지다아 저무는 들가에 소복히 핀 꽃이는 떠나간 네 넋의 슬픈 모습이기에지나던 발길 절로 멈추어한 줄기 눈물 가슴을 적시다김광균(1914~1993)조화弔花는 고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꽃으로서 삶의 한 가운데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의 초입에서 사계절 동안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조화는 한 생명이 왔던 '순백의 시간'을 펼친다. 그리고 누구도 가로질러 갈 수 없는 죽음 앞에서 고개 숙여 애도하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거기에서 인간은 세계라는 들판에서 '여기 호올로 핀 들꽃'처럼 내일이라는 미지의 '자욱-히 나리는 안개' 속에서 언제 꺼질 줄 모르는 '초라한 등불' 하나 달고 있는 생명체일 뿐이다. 이 순간도 '아련히 번지는 노을 저쪽에 소리 없이 퍼붓는 어둠'이 있다면, 그것은 '먼-종소리 꽃잎에' 지고 있는 누군가의 목숨인 것. "아 저무는 들가에 소복히 핀 꽃"을 보라. 그렇게 떠나간 이들의 '넋'이 슬프게 피어있지 아니한가. 이 봄날, 가슴에 묻은 사람들이 잊지 못해 하얀 그리움으로 당신을 찾아온 것이니.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3-18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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