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코로나19 이후 한국 산업이 나아갈 길

산자부, 감염병 등 현안 지적하며구조 혁신·활력 제고·연대 협력3가지 '산업 대응전략' 제시친환경·디지털화·한국판 뉴딜…기업간 정부간 공조, 인천시 선도를인천시가 지난달 16일 노후된 산업단지를 미래형 첨단산업단지로 탈바꿈하는 남동스마트산단 조성을 위해 '스마트산단 통합관제센터 구축사업'에 들어갔다.인천시가 추진하는 스마트산단 통합관제센터는 각종 센서를 통해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해 산단을 관리·운영하고 일원화된 플랫폼과 ICT 인프라를 통해 스마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 산단 두뇌역할의 핵심 기반시설이다. 인천시에서 이런 일을 책임지고 하는 부서는 일자리경제본부다. 박남춘 시장 출범 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많은 성과를 내고 있는 부서다. 특히 일자리경제본부는 코로나19가 1년 넘게 장기화할 경우에 대비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각종 정책과 지원을 하고 있다.최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요 민간 연구기관장들과 산업전략 간담회를 갖고 코로나19 시대 산업정책 방향을 논의했다.산업통상자원부는 코로나, 기후변화, 미국 새정부 출범 등을 우리 산업의 중요 현안으로 지적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3가지 산업전략을 제시했다. 3가지는 산업구조 혁신, 산업활력 제고, 산업간 연대·협력이다.첫째, 산업구조 혁신은 친환경, 디지털화 흐름을 적극 반영한 산업구조 개선이다. 우리의 주력산업인 철강, 석유화학 등을 혁신적 기술개발을 통해 친환경화로 전환하고 4차 산업의 핵심인 바이오, 전기차 등 저탄소 신산업을 적극 발굴해 지원·육성하는 것이다. 디지털화는 주력산업에 데이터, 5G, AI(인공지능) 등을 접목하여 신제품과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예를 들어 조선산업의 경우 자율 운항선박, 스마트 조선소로 육성하고, 철강은 AI기술을 융합해 고부가 철강과 공정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둘째, 산업 활력 제고는 한국판 뉴딜 추진과 바이오, 전기차, 시스템 반도체로 대표되는 빅3 신산업을 육성해 침체된 산업 활력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빅3 신산업은 우리 산업의 혁신성장 아이콘으로 기술개발과 인프라 지원을 통해 제2, 3의 반도체로 육성하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연대·협력은 중소, 중견기업과 대기업, 지역과 수도권, 정부와 지자체, 민·관이 함께 성장하는 발전 모델이 필요하다. 즉 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간 상호 연대와 협력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뿌리산업의 소재·부품·장비 공동개발, 전기차 배터리 리스 사업,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이다.한반도 서해권의 핵심도시인 인천시는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과 뿌리산업 육성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바이오, 항공관련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수립은 타 지자체가 놀라워할 정도로 빠른 추진력으로 진행하고 있다.한국은 OECD 국가 중 경제성장률 전망이 가장 높고 코로나 방역과 경제 양면에서 비교적 안정된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평가는 뿌리산업의 근간인 제조업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등 우리 기업들이 수출 전선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한국이 선도형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과 실천이 중요하다.세계적 투자자인 짐 로저스는 한국을 "기술과 인적자원이 있는 언제나 새로운 혁신이 나오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한국은 경제개발 초기 20달러에 불과했던 GDP(국내총생산)를 불과 반세기만에 1조6천억 달러로 성장하는 세계 10위권으로 올라섰고 무역규모는 세계 9위인 1조 달러로 발돋움했다. 이런 한국 산업을 지속 가능케 하려면 정부 정책이 민간과 같이 가야 한다. 정부가 민간과 얼마나 자주, 많이 소통하고 살펴보느냐가 중요하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민간과 충분히 소통하면서 미래 산업을 구체화해야 하며 그 선도적 역할을 인천시가 해주길 바란다./강천구 인하대 초빙교수(에너지자원공학)강천구 인하대 초빙교수(에너지자원공학)

2020-12-01 강천구

[수요광장]노벨문학상과 서정시

특정작품보다 작가 全생애로 수여여성에 장벽 2000년대 들어 비율↑올해는 서정시인 글릭 16번째 수상보편적 감성으로 확장·투명성 제시감염병시대 인류에 위안·치유 믿음12월1일 이화여대에서 '스웨덴-한국 노벨 메모리얼 문학 프로그램'이 개최되었다. 노벨문학상의 위상과 그것이 한국문학에 미친 영향이라는 주제로 스웨덴 발제자와 한국 발제자가 한 사람씩 나서 온라인 실시간으로 진행된 뜻깊은 자리였다. 노벨문학상은 20세기 벽두인 1901년부터 시작되어 올해까지 모두 117명의 수상자에게 주어졌다. 특정 작품보다는 작가의 전(全) 생애에 주어진다는 특성을 지닌 노벨문학상은 시대상황 등 외적 요소도 많이 고려되기로 유명하다. 최초 노벨문학상은 프랑스의 시인 쉴리 프뤼돔이 수상했고, 전쟁이나 특수 상황으로 인해 몇 번의 결락이 있었지만 꾸준히 수상자를 배출하였고 몇 번의 수상 거부라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그런가 하면 '문학상'에 어울리지 않는 분들 여럿이 수상자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철학자 베르그송이나 러셀, 정치인 처칠, 역사가 몸젠 등이 대표 인물들이다. 하지만 가장 예외적이고 충격적인 사례는 아마도 2016년 수상자 밥 딜런이었을 것이다. 그는 작가라기보다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 등으로 유명한 가수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노랫말에 시적 통찰을 담은 그는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불려왔고, 드디어 그의 노랫말이 예술적 언어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특별히 반전(反戰)과 인권 같은 인류 보편의 의제를 노래 안에 담아낸 것이 결정적 수상 이유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노벨문학상도 여성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았다. 첫 여성 수상자는 스웨덴 아동문학가 라겔뢰프(1909)였다. 그 후 여성작가들은 수상자 가운데 10퍼센트 미만 비율을 구성하다가 2000년대 들어 그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도리스 레싱(2007), 루마니아의 헤르타 뮐러(2009), 캐나다의 앨리스 먼로(2013), 벨라루스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2015),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추크(2018)에 이어 올해 수상자인 루이스 글릭은 역대 열여섯 번째 여성 수상자다. 물론 루이스 글릭(Louise Gluck)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의 시인이다. 국내에 번역본 자체가 아직 없다. 글릭은 1943년 뉴욕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자랐다. 25세에 첫 시집 '맏이'(1968)를 펴냈는데 인간의 억압과 고통의 문제를 인상적 이미지에 담아냈다고 평가받았다. 전통 운율과 구어를 활용한 작법에도 호평이 이어졌다. 그리고 '습지의 집', '내림차순', '아킬레우스의 승리', '아라라트' 등의 시집을 연달아 내면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1992년에 나온 '야생 붓꽃'에서는 뉴잉글랜드 정원을 배경으로 하여 다양한 식물들로 하여금 자기 목소리를 발화하게끔 함으로써 그는 서정시인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게 된다. 글릭은 이 서정적인 시집으로 199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2004년에는 9·11 테러를 다룬 장시 '10월'을 펴냄으로써 인류의 고통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는 모습까지 보여주게 된다.스웨덴 한림원은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확고한 시적 목소리로 개별 존재자를 보편적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글릭은 그동안 노벨문학상이 '백인-남성-유럽인-소설가'라는 서구의 시선에 의해 주로 수상자가 선정되어 왔는데 자신은 비록 백인이지만 '여성-비(非)유럽인-시인'이라서 뜻밖이라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그의 시를 원문으로 서투르게 읽어보니 그 세계는 서정적 자아가 빠지기 쉬운 사사로운 감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보편적인 존재자들의 목소리를 다양한 사물들로부터 길어올리는 서정의 확장성과 투명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그럼으로써 그는 이 가파른 감염병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서정시가 커다란 위안과 치유의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한림원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서정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어쨌든 노벨문학상은 첫 수상자와 올해 수상자가 모두 시인이었다. 소수의 문학 장르였고, 그 특유의 모호함으로 시대적 명제로부터 비껴난 자리에 있곤 했지만 이제 세계의 시선은 서정시를 향하고 있다. 노벨문학상에서도 한국 시인들의 쾌거를 마음 깊이 빌어 마지않는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12-01 유성호

[참성단]국토의 막내 '서해5도'

"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튀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중략)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청마 유치환이 읊은 '울릉도'다. 문학 속에서 섬(島)은 대개 소외와 고립의 상징으로 은유되고 그리움과 동경의 발원이자 대상이다. 하지만 청마 시절의 서정의 끄트머리엔, 뭍에서 떨어진(落) 바람에 형편없었던 낙도(落島) 사람들의 팍팍한 삶이 매달려 있었다.이제는 섬을 향한 관념적 서정도 메마르고, 섬사람들의 생활도 훨씬 나아졌다. 섬과 뭍을 꼼꼼하게 이어주는 연륙교 덕분이다. 지난해 개통된 전남 신안군의 '천사(千四)대교'가 압권이다. 목포와 연륙교로 연결된 압해도와 암태도를 이어 붙였다. 암태도엔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자라도가 연륙교로 매달려 있었다. 5천800억원 짜리 천사대교로 연륙된 섬들은 수백만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고, 1만명이 채 안 되는 섬사람들의 삶은 달라졌다.전라남도뿐 아니다. 부산 경남에도 수많은 연륙교가 섬을 육지로 만들었다. 1조4천억원 짜리 거가대교는 거제도를 부산 생활권으로 만들었고, 부산 가덕도는 신공항 혜택까지 받을 모양이다. 연륙교의 대부분이 전남과 부산·경남에 집중된 걸 보면, 정권을 탄생시킨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 결과인 듯 하나 단정할 순 없는 노릇이다. 울릉도에도 2025년에 공항이 생긴다니, 청마의 애틋한 시정(詩情)이 여객기 소음에 묻힐 날도 머지않았다.청마가 애달파한 국토의 막내라면, 이젠 서해 5도(백령·대청·소청·연평·우도)가 유일하지 싶다. 북방한계선 바다에 흩어진 서해 5도는 정서적으로 행정적으로 여전히 낙도다. 백령도 앞바다에서 천안함이 침몰당했고, 연평도는 북한 포사격으로 불바다가 됐으며, 중국 해적어선들이 어장을 독차지한 서해 5도 국민의 삶은 전쟁이다. 그런데 보상이 없다. 백령도 공항은 지지부진하고, 연평도 포격피해 보상 특별정책자금 9천억원은 절반도 못썼다. 연평도 주민이 온라인 쇼핑을 하려면 전국에서 가장 비싼 배송비를 지불해야 한다."조기를 담북잡아 기폭을 올리고/ 온다던 그배는 어이하여 아니오나/ 수평선 바라보며 그이름 부르면/ 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연평도 공영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노래비다. 1964년 히트한 옛 가요란다. 서해 5도는 여태 이 시절에 갇혀있다. 애달픈 국토의 막내들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2-01 윤인수

[경인칼럼]거리두기 시대의 집과 생활문화

코로나19 위기로 강요당하는 새 일상 '집콕'자족시설에서 '복합공간'으로 역주행 초래부작용 속… 도시·국가·세계로 동심원 확장대면 중요 문예생태계도 변화 효율 지원을집으로! 코로나19 위기가 강요하고 있는 새로운 일상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집의 내부를 의미하는 메인 로고와 '모두를 위해' 집에 머물러 달라는 재택 슬로건을 게시하기도 했다. 감염확산을 막기 위한 집으로의 피난현상을 국민들은 '집콕'이란 신조어로 부르고 있지만 실은 누구도 원치 않는 가택연금(軟禁)이요, 자발적 '위리안치(圍籬安置)'이다. '숙소'에 불과했던 집이 졸지에 복합공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동안 집은 침실로서 휴식공간으로 축소돼 왔다. 전통사회의 집, 특히 농촌사회의 집은 공동의 노동, 식사, 휴식과 놀이, 양육, 탄생과 죽음, 질병의 치유 기능을 갖추고 있는 자족적 공간이었지만 그 같은 기능들은 차츰 공장과 일터, 학교, 병원, 식당과 같은 '사회적 집'으로 '이양'돼 왔다. 집은 더이상 육체의 확장, 삶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수익성이 높은 투자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집이 가지고 있던 본질적 가치는 무시되고 교환가치로만 측정되기 시작한 것, 이러한 현상은 물신사회에서 모든 사물과 인간이 겪어야 하는 운명이라고 할 수 있으나, 부동산 가격 폭등과 전세난과 같은 고질적 사회문제를 초래한 원인이기도 하다.팬데믹 이후의 가족이 모두 집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사회에 양도했던 집의 기능을 회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재택' 생활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온 가족이 한 공간에서 일하고 식사하고 휴식까지 함께 해야 하니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다. 낮에는 비어 있던 집이 사무실로, 온라인 학습장으로, 식당으로, 문화공간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 같은 공간의 역주행은 마을과 도시, 국가와 세계라는 더 확장된 공간 단위에서도 동심원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재외국민들은 귀국하고, 시민들도 이동을 최소화하고 집과 집 근처로 행동반경을 축소하며 생활한다.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 가정으로, 혹은 주부들에게 전가되고 집중되면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코로나19는 문화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대면이 중요한 문화예술의 창작, 제작, 유통, 소비, 향유 등 문화예술생태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적인 봉쇄조치, 사회적 거리두기, 격리, 방역지침은 문화시설의 휴관, 공연·전시·축제 등의 취소로 이어져 문화예술활동의 중단과 심대한 위축을 가져왔다. 위기 속에서 기회도 있다. 아동청소년 도서나 투자·재테크 관련 도서에 집중되고 있긴 하나, 도서판매량이 전년도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하고 있다. 재택근무와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집에서 여가와 취미생활을 하는 '홈하비(Home Hobby)' 현상도 거리두기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이다. PC방, 노래방, 영화관 등 외부에서 즐기던 문화 소비활동이 집으로 들어왔다. 가정내 취미활동의 증가는 관련 상품 판매량 통계에 의해 확인된다. 집에서 영화관람을 즐길 수 있는 '프로젝터용품'과 영화 'DVD'의 판매량이 급증하고 유화와 드로잉 등 미술용품 신장세도 가파르다. '유화용품' 판매량이 3배 가까이 증가했고, '드로잉용품'과 '조소용품'도 늘고 있다. 사운드바를 포함한 '오디오'와 음악 감상을 위한 '음반'도 증가했다. 대표적 취미 상품인 악기 판매량도 증가하고 있다. 피아노와 트럼펫은 두 배 이상 팔리고 있다. 가정내 취미생활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활패턴으로 자리잡게 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가정내 취미활동과 예술활동은 늘어난 여가시간을 활용하고 코로나 우울증을 극복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이 같은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한다면 당면한 코로나 위기는 국민들의 문화 향유와 창조 역량을 드높이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2020-12-01 김창수

[오늘의 창]국민이 원하는 정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징계청구와 직무배제 조치 파장이 연말 정국을 집어삼켰다. 법을 다루는 검찰과 법무부가 직무정지 효력을 다투는 소송을 벌이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여야를 비롯한 진보와 보수 진영 간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추 장관과 윤 총장의 극한 대립은 결국 누군가 하나 치명상을 입어야 끝날 듯한 상황으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경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정치권에서는 마치 경주라도 하듯이 경쟁적으로 서로에게 막말을 쏟아내고 '내 편이 아니면 모두가 적'이라는 식의 극한 대립을 보이며 21대 국회 역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수준 높은 정치를 갈망했던 국민들에게 또다시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수년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바 있는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를 보면 '반드시 버려야 할 싸움을 가려내고 이것을 현명하게 선택할 때 진정 중요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구절이 있다.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남과 논쟁하고 대립하고 심지어 싸워야 할 때가 틀림없이 있다.이를 두고 저자는 "비판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뿐더러 사람들 사이에 놓인 분노와 불신의 벽을 더욱 높아지게 할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나와 다른 의견 속에서 티끌만큼 작은 진실이라도 찾아내고자 의도적으로 노력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지난 11월 3일 미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당선인은 "분열이 아닌 통합을 추구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코로나 확산과 인종차별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치러진 선거에서 현재의 미국 사회 내 존재하는 분열과 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만큼 이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문재인 대통령도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국민의 단합을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 서로 비난에만 몰두하는 사이에 위기는 더욱 큰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지금 '분열의 정치'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정치권은 위기 상황에 처한 국민과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이성철 정치2부(서울) 차장 lee@kyeongin.com이성철 정치2부(서울) 차장

2020-12-01 이성철

[홍창진 칼럼]스스로 만족하기

삶의 환경은 선택아닌 찾아오는 것너무 불행감에 빠져 있지 마세요화만 내지 말고 가끔 격려도 필요가정은 누구 탓 할 수 없는 운명체아이는 부모가 버티면 행복한 존재한국 사회에서 만족할 만한 삶의 환경은 어느 정도일까요? 일류대를 나와 대기업에서 넉넉한 연봉을 받으면서, 자녀는 둘 정도 키우고, 부모를 비롯해 건사해야 할 군식구가 없으면(거기에 물려받을 유산이라도 조금 있으면) 만족할 만한 수준인가요?요즘 들어 남편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다는 40대 주부가 있습니다. 초등학생 아이가 둘이 있어서 교육비는 엄청나게 드는데, 집 한 채 없이 전세대란을 면치 못하는 자기 신세가 너무 불안합니다. 남편은 잘 오르지도 않는 박봉을 몇 년째 받으며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나마 업무량도 많아 야근하는 날이 빈번합니다. 퇴근해서는 잠깐 아이와 놀아주고 바로 잠에 곯아떨어지곤 하지요.남편이 잘못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남편 얼굴만 보면 마음 안의 불안과 세상에 대한 원망이 모두 짜증이 되어 튀어나옵니다. 이 나이 먹도록 돈도 못 벌고 뭐했나 싶고, 나는 이렇게 걱정이 태산인데 남편은 무사태평인 것 같아 화가 더 치밀어 오릅니다. 남편 잘못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고 한편으론 남편이 측은하지만, 아이들 교육비에 집 걱정을 하다 보면 어느덧 남편에게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체 못하는 감정 때문에 스스로도 힘들지만 남편에게 자꾸 상처를 주게 되고, 아이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 됩니다.그런데 저는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만일 자기 소유의 집이 있고 남편 직장이 월급 많이 주는 대기업이라면 이 주부의 화가 가라앉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궐 같은 집에서 많은 돈을 가진다 한들 또 다른 이유로 화가 날 것이 뻔합니다. 이 주부의 화는 불안한 전세나 남편의 박봉 때문이 아니라,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의 환경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병든 시부모를 모시는 건 물론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까지 수발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때 아닌 사고로 남편이 장애를 입기도 하고 아이가 심각한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불행을 토로하며 사는 건 아닙니다. 내가 처한 환경이 모든 화를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삶의 환경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입니다. 부모가 나를 찾아와 만나고, 배우자도 그렇게 찾아와 만나고, 자녀도 그렇게 찾아와 만나게 됩니다.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불행한 일도 찾아오고 행복한 일도 찾아옵니다. 지금 내 처지는 내 선택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나 자신을 원망할 이유도 남편을 원망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도 화를 낼 남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화가 치밀어도 화를 낼 대상이 없는 가정이 세상에는 참 많습니다. 산에서 도를 닦으며 사는 게 아닌 바에야, 화가 날 때 화를 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화냈다가 뒤돌아서 좀 미안해 하고, 어느 날은 또 기분 좋은 순간을 맞기도 하고…. 그렇게 지지고 볶고 사는 것이 재미 아닐까요? 그러니, 너무 불행감에 빠져서 우울한 상태에 머무르지 마십시오.자기 처지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인 이상 욕심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화내고 싸우고 울게 되더라도, 이것이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과정, 누구나 겪는 삶의 일부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화만 내지 말고 가끔 격려와 칭찬이라는 깨소금도 가미하면 좋겠습니다. 돈 못 벌어 오는 남편이 짜증 나서 화는 너무 자주 내는데, 가끔 그가 불쌍하고 측은하게 느껴질 때는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습니까? "남편, 요즘 고생이 많아. 힘내!" "우리 식구는 당신 덕에 사는 거야. 몸조심해." 열 번 화를 냈어도 이런 격려 한마디로 우울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처지를 버텨 낼 힘이 생긴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최근 들어 많은 부부들이 이혼을 합니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결국 서로 탓만 하다가 가정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운명체입니다. 부부는 선택일 수도 있지만, 운명으로 만난 아이는 부모가 그저 버텨주기만 해도 행복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11-30 홍창진

[참성단]K리그 멤버 수원FC

2016시즌 K리그에서 수원 삼성과 수원FC가 맞붙었다. 이른바 '수원 더비'다. 서울FC와의 '슈퍼 매치'에 구름 관중이 몰리는 전통의 명가 수원 삼성과 새내기 수원FC 더비는 일방적일 것이란 예상을 깨고 매 경기 치열했다. 수원 FC는 전반기 1-2, 0-1로 연패했으나 후반기 첫 경기에서 5-4로 첫 승을 거뒀다. 비록 마지막 경기를 2-3으로 내줬으나 4게임 모두 1점 차 박빙이었다. 전력차이를 비웃는 라이벌전의 묘미다.프로축구단 수원FC가 2021시즌 K리그에서 팬들과 다시 만난다. 수원FC는 지난 29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경남FC와의 K리그2 플레이오프에서 1대1로 비겼다. 무승부일 경우 정규리그 우선 순위팀에게 어드밴티지를 주는 리그 규정에 따라 수원FC가 극적으로 승격했다.후반 인저리 타임에 극장 골이 터지는 드라마 장면이 연출됐다. 수원은 전반 27분 상대 수비수 최준의 오른발슛이 굴절되면서 선제골을 허용했다. 파상 공세가 번번이 막히고 오히려 수차례 결정적 위기를 넘긴 수원은 후반 시간이 다 지나고도 만회 골을 넣지 못해 패색이 짙었다. 주심이 시계를 보는 순간 상대 진영에서 크로스 볼을 다투던 수원의 정선호 선수가 넘어졌고, VAR 판독 결과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올 시즌 리그 득점왕 안병준이 키커로 나서 침착하게 오른쪽 골네트를 갈랐다. 5년 만에 1부리그로 승격하는 순간이었다.수원FC는 2003년 수원시 소속 실업팀으로 창단한 수원시청축구단이 전신(前身)이다. 2008년 재단법인으로 재출범해 2012년 프로로 전환했다. 2015년 플레이오프에서 부산 아이파크를 꺾고 1부리그인 K리그 클래식 승격에 성공했다. 2016년 10승 9무 19패로 리그 최하위로 밀리면서 다시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다.팬들은 벌써 2021시즌 삼성 블루윙즈와 수원FC가 맞서게 될 '수원 더비' 장면을 그려본다. 영국 맨체스터시의 맨유와 맨시티 더비와 같은 명물 라이벌전을 기대하는 거다. 김도균 감독의 지휘 아래 강팀으로 도약한 수원의 전력은 1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이란 평가다. 팬들도 '5년 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벼른다. K리그의 명품'슈퍼 매치'에 '수원 더비'까지. 수원 축구의 '르네상스'를 알리는 신호탄이 쏘아졌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1-30 홍정표

[노트북]경기북부와 미군기지

경기북부에 있는 4개 지자체 의정부, 동두천, 연천, 파주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6·25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한 곳이라는 점이다. 이 지자체들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미군기지와 고락을 함께 했다. 특히 전체면적의 42%에 달하는 면적을 미군기지로 내어줬던 동두천은 도시 전체가 미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2004년 정부와 미군은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 협정에 따라 주요 기지를 통합하고, 한강 이북 주요 부대를 평택·군산 등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어 간격을 두고 몇몇 미군기지가 환경정화 과정을 거쳐 각 지자체로 소유권이 넘겨졌다. 그러나 경기북부의 굵직한 미군기지는 아직도 미군이 주둔 중이거나 반환이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남은 곳이 의정부의 캠프 레드 클라우드,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 호비 등이다.아직도 반환되지 않은 미군기지가 있는 의정부와 동두천 등은 지연되는 반환 일정에 답답함을 호소한다. 지자체별로 공여구역과 주변지역 지원을 위한 발전종합계획을 수립해 추진 중이지만, 반환이 늦어지고 여건이 변하면서 대다수 현실과 동떨어진 계획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넓은 남은 미군기지들의 면적은 지자체 차원의 개발을 어렵게 한다. 경기연구원이 동두천시의 사례를 들어 미군 주둔에 따른 기회상실 비용을 추산한 적이 있다. 당시 연구원은 1952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3천243억원, 2015년부터 2020년까지 한 해 예산에 달하는 연평균 5천278억원을 시가 손해를 보고 있다고 계산했다.경기북부 주민들에게 미군기지는 애증의 대상이다. 한때는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우리를 지켜주고 도움을 주는 대상이었다.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싫든 좋든 도시의 성장에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미군 평택 이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 그들이 남기고 간 유산이 미래를 위한 동력이 될 수 있도록 큰 틀에서의 실질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김도란 지역사회부(의정부) 기자 doran@kyeongin.com김도란 지역사회부(의정부) 기자

2020-11-30 김도란

[자치단상]영흥 쓰레기매립지 철회, 소통·협치로 원점 재논의

석탄화력발전소로 이미 막대한 주민 피해'재활용률 95%' 현실성 없는 매립량 제시작년 폐기물 12만t넘어 인천시 주장 '허구'건강·환경 잃는데 파격 인센티브 무슨 소용인천시는 지난달 12일 '친환경 에코랜드(쓰레기매립지) 및 자원순환센터(소각장)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옹진군 영흥면 외리 248-1번지 일대를 자체 쓰레기매립지 후보지로 지목했다.영흥도는 수도권 전력의 20% 이상을 책임지는 석탄화력발전소가 소재한 지역이다. 2004년 석탄화력발전소 1·2호기가 처음 가동되면서부터 지금까지 영흥도 주민은 건강 등 생활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연 210여t의 미세먼지와 수백여 t의 초미세먼지로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연 54억t의 온배수 해양 배출로 갯벌은 황폐화하고 어민 소득은 급감했다. 게다가 회 처리장 석탄재 비산과 연 5만t의 석탄재 육상 반출로 농작물 피해와 도로파손, 교통체증 등 주민의 건강과 경제적·환경적 피해는 지난 20여년간 계속되고 있다.이러한 수도권 환경피해지역인 영흥도에 인천시 자체 쓰레기매립장까지 추가로 설치한다는 것은 영흥도 주민을 향한 사형선고이자, 영흥도를 죽음의 땅으로 내모는 처사다. 영흥도 주민은 크게 반발하고 있으며 추운 날씨와 코로나의 엄중한 상황에도 생존권 사수를 위해 반대 집회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투명하지 못하고 소통 없는 정책결정 과정도 큰 문제다. 1970~1980년대 중앙집권적 밀어붙이기식 불통행정을 보여주고 있다. 인천시는 자체매립지 조성 시 공론화추진위원회를 열어 시민 참여와 숙의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대상지역인 영흥도 주민과 옹진군은 철저히 배제했다. 후보지 발표 이후에도 관련 용역결과와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도 비공개로 일관하며 더 큰 불신을 낳고 있다.더욱이 '폐기물처리시설 설치 촉진 및 주변 지역 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서 폐기물매립시설 입지 선정 시 1일 매입량 300t·조성면적 15만㎡ 이상일 경우 주민대표가 참여하는 입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문연구기관의 타당성 조사를 통해 입지를 선정해 해당 지자체와 협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레기 재활용률 95% 달성을 전제로 한 현실성 없는 160t의 1일 매립량을 제시하고, 14만8천500㎡라는 끼워 맞추기식 조성면적 설정으로 주민대표가 참여하는 입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하라는 취지의 인천시 공론화위원회 권고사항도 무시하고 있다. 이는 법에서 정하고 있는 입지선정위원회 구성마저 생략하는 밀어붙이기식 꼼수·불통행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과연, 쓰레기 재활용률 95%가 가능할까. 작년 기준 인천광역시에서 발생한 불연성 폐기물만 해도 12만t이 넘는다. 1일 328t을 매립해야 하는 양으로, 인천시의 주장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인천시가 이렇게 소통과 협치를 무시하고 법 규정을 교묘히 회피하며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인가.수도권쓰레기매립장 종료는 300만 인천시민 앞에 놓인 모두의 숙제로 섬 지역 적은 인구의 힘없는 영흥도 주민에게 일방적으로 전가시켜서는 안 될 문제다. 영흥도는 이미 수도권 전력생산의 전초기지로서 인천시민과 수도권 시민을 대신해 환경적 피해를 수십 년간 감수하며 살아왔다.인천시 쓰레기 배출량 중 1% 미만을 차지하는 옹진군에서 인천시 전체 쓰레기를 감당하는 것이 정당한 정책인지 의문이다. 인천시는 수십억원 규모의 파격적인 인센티브 지원을 얘기하지만, 건강과 환경, 경제를 모두 잃은 상황에서 이런 지원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인천시는 지금이라도 영흥면 자체매립지 후보지 발표를 조속히 철회해야 한다. 미래 40년을 책임질 쓰레기매립지 등 환경시설에 대한 논의를 행정 편의주의와 정치적 이해득실을 배제하고 소통과 협치를 통해 원점에서 재검토하길 촉구한다./장정민 옹진군수장정민 옹진군수

2020-11-30 장정민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말은 흔적이죠

연극 '배를 엮다' 는 13년 넘게사전을 만드는 이야기다만든 순간 낡아 가는데 왜 일생을 그래도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 흔적 남겨야… 결국 사라지게 되더라도연극 '배를 엮다'(강현주 연출, 11월 5~8일, 여행자극장)는 사전을 만드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미우라 시온의 소설 '배를 엮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을 연극으로 만들도록 이끈 힘은 과연 무엇일까. 사전인가, 아니면 사전을 만드는 사람인가.사전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는 어떤 형식이 적합할까. 이야기를 장악할 수 있는 형식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1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전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좀 다를 수 있다. 소설, 영화 그리고 연극은 그 장르의 형식에 최적화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해야 한다. 특히 연극의 경우에는 그 13년의 시간을 한정된 무대의 시간으로 어떻게 압축할 것인지가 힘겨운 숙제일 수밖에 없다.사전을 만드는 작업은 시간과 싸우는 과정이다. 단어를 찾고, 용례를 모으고, 그렇게 쌓인 말 가운데 실을 것과 버릴 것을 고르고, 표제어로 선정한 말의 뜻을 풀이해야 한다. 출판까지의 작업은 지난한 반복의 시간을 견디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그 지루한 반복의 시간을 연극 무대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나름의 장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권투 영화라고 해서 권투 장면만 내내 보여줄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영화 '록키'에서 권투 장면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도 마찬가지이다.연극 '배를 엮다'는 그 13년의 시간을 두 번 생략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한 번은 12년 후, 다른 한 번은 1년 6개월 후. 그러니까 이야기가 시작한 시간에서 12년을 건너뛰고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다시 1년 6개월을 건너뛰는 생략의 방식을 택했다. 그 방식이 최선이었는가를 묻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생략과 휴지의 시간이 과연 사전은 무엇일까, 사전을 만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물음으로 이끌도록 했다.미우라 시온의 소설 '배를 엮다'에는 사전 편찬자인 야마다 다다오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 나온다. 연애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 부분으로 짐작할 수 있다. "특정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느껴 고양된 기분으로 둘이서만 함께 있고 싶고, 정신적인 일체감을 나누고 싶어 하며, 가능하다면 육체적인 일체감도 얻길 바라면서,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까워하거나 드물게는 이루어져서 환희하는 상태에 있는 것." 야마다 다다오는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에서 개성이 넘치는 풀이를 하고 있다. 이를테면, 백도를 "과즙이 많고 맛있다"로, 범인(凡人)을 "스스로를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거나 공명심을 갖고 있지 않거나 다른 것에 대한 영향력이 전무한 채 일생을 마치는 사람. 가정 제일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대다수 서민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로 풀이했다.사사키 겐이치가 쓴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는 야마다 다다오와 함께 겐보 히데토시를 다루고 있다. 사사키 겐이치에 따르면, 두 사람은 사전에 삼켜진 삶을 살았다. 광대한 말의 사막에서 잡으려고 하면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가 사라지고 마는 말에 평생을 사로잡혔다. 145만개의 용례 카드를 수집한 겐보와 개성 넘치는 뜻풀이의 야마다에게 과연 사전은 무엇이었을까. "붙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바람에 의해 모래 표면에 생기는 모양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문(風紋)"과도 같은 사전을 만드는 일에 평생을 몰두한 사람에게 사전은 무엇일까.말의 바다라는 표현에서처럼, 흔히 말은 광대한 바다로 비유된다. '배를 엮다'라는 제목도 말의 바다에서 온 것이다. 사전을 엮는 과정을 배를 엮는 과정에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엮은 배가 만들어진 순간부터 낡아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생을 바치는 사람에게 과연 사전은 무엇일까. 연극이 끝날 무렵 도달한 곳은 다음 문장이다. "말은 흔적이죠.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 그래서 어딘가엔 분명 남겨야 합니다. 결국 사라지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혹시 사전의 마지막 말이 궁금하지 않은가. 그 많은 사전의 마지막 말이 모두 같을까. 당신의 사전은 마지막에 어떤 말을 엮어 놓았을까./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11-29 권순대

[월요논단]서해5도와 평화수역으로서의 브랜드화

北의 연평도 도발이후 특별법 마련10년간 절반 예산도 집행못한 이유는주민 절박 현안 외면·의견 청취 불신안보 우선·중앙·공무원 '잣대' 원인정부·인천시 법·제도 변화 지원 절실서해 5도. 남북간 긴장과 평화의 상징이다. 지난 24일로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되었다. 야당은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10주기'에 대통령이 침묵했다면서 비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서해 5도의 발전과 평화를 위해 정부와 인천시 그리고 정치권이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를 묻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서해 5도 지원특별법을 2025년까지 연장하였다. 국비 투자 규모도 4천599억원에서 5천557억원으로 확대했다. 그런데 연장할 수밖에 없었던 주된 이유는 책정된 사업예산들이 집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까지 78개 사업에 9천109억원을 집행할 예정이었지만 43개 사업에 3천794억원을 집행했다. 예산을 정해 놓고도 10년간 절반도 집행하지 못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서해5도를 방문한 사람이 접하는 것은 섬에 설치된 대형화된 안보시설들이다. 포격사태의 경험을 토대로 대피시설들도 갖추어져 있다. 서해5도 지원특별법 내용의 대부분은 2011년 국토연구원 등이 수행한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수립연구'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서해5도에 잠재된 여건 차이 등을 법령이나 주민 사업에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국가안보 우선과 중앙정부 그리고 공무원의 시각이 더 강조된 것이다. 이러한 점을 의식한 정부가 지원계획을 연장하면서 비전과 추진 방향을 새롭게 내세웠다. 약속대로 2025년에는 과연 '풍요로운 평화의 고장, 서해5도'가 되어 있을까. 주민이 희망하는 사업이 우선 반영될 것인가. 실현 가능한 사업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주민들은 자신의 삶과 섬에 필요한 절박한 현안들을 여러 방식으로 제시하였다. 서해5도의 어장 확장을 놓고 대대적인 홍보를 했지만 정작 현지 어민들은 물고기가 있는 어장과 야간 조업 확대를 원했다. 불법 어로 행위 등에 대한 적극적인 단속도 요구하였다. 어선과 그물 등 청소를 위해 다량으로 사용되는 락스가 해양생태계 파괴의 주범이라고 했다. 어구 실명제와 불법 어구 방치에 대한 행정대집행도 강력하게 주장했다. 섬의 생활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어민들 대부분이 고령화로 어업에 종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외국인 인력 지원방안도 섬의 화두였다. 섬에 쓰레기만 남기고 가는 관광도 새로운 과제다. 물가 및 생활안정을 위해서는 택배 및 물류비 지원이 시급하다고 했다. 중국의 어선에 의한 불법조업, 항만부두 확대 및 공동이용, 백령도 공항문제도 단골 주제다. 일부 어민들이 주장하는 중국 어선의 배후 지원 세력이 한국인이라는 주장에도 실태조사가 필요해 보였다. 이처럼 다양한 주민들의 요구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어떻게 예산이 남았을까. 그것은 공무원과 정부의 잣대로는 집행할 수 없는 사안이라거나 법령에 지원근거가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형식적인 간담회나 의견 청취를 불신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서해5도 주민들은 군인들의 근무 기간보다 더 오래도록 경계의 바다와 국토를 지키고 있다. 서해5도를 향한 인천시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인천시 남북교류 협력과는 과장 1명에 12명의 직원이 있다. 경기도는 평화부지사를 중심으로 72명, 강원도는 평화지역발전본부에 64명이 포진하고 있다. 금강산과 DMZ, 원산과 백두산을 연계하는 '고성 UN평화특별도시'도 제안되어 있다. DMZ나 한강하구사업도 한참 앞서 있다. 서해5도에 대한 직제도 평화정책도 인천시는 뒤떨어져 있다.법과 제도의 변화도 필요하다. 다음 달에는 김교흥, 박찬대, 배준영, 배진교 국회의원, 인천시, 서해5도 평화운동본부, 인하대 로스쿨 등이 가칭 '서해5도 평화기본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한다. 법률안은 '서해5도 지원특별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서해5도 수역의 평화정착, 남북교류와 협력의 활성화, 주민들의 권익보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법학자, 역사학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언론사 등이 함께 서해5도를 새롭게 집중조명하는 별도의 사업도 준비 중이다. 중앙정부와 인천시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다면 서해5도의 희망은 더 커질 것이다. 평화의 바다로서 서해5도를 브랜드화하는 새로운 출발점이기를 기대한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11-29 김민배

[참성단]중국의 '김치 침공'

김장철이 한창이다. 전통적인 겨울맞이 통과의례인 김장문화는 지난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한국 문화의 정수이다. 지난 22일은 제1회 '김치의 날'이었다. 올 2월 김치산업 진흥법 개정으로 탄생한 법정기념일이다. 김치 소재 하나하나(11월)가 모여 22가지(22일)의 효능을 나타낸다는 의미를 담았다는데, 김장철이 한창인 때니 금상첨화다. 첫 기념일인 만큼 대형 김장축제도 있을 법했지만, 코로나19 탓인지 밋밋하게 넘어간 건 아쉽다.한국인과 김치는 떼려야 뗄 수 없다. 방금 무쳐낸 겉절이로 입맛을 돋우고 묵은지 김치찌개로 미각을 충전한다. 배추김치는 기본이고, 각종 무 김치에 갓김치, 파김치 등 재료와 숙성 정도에 따라 염장한 모든 채소는 김치가 될 자격이 있다. 한국인에게 김치는 영혼이다. 즐기지 않아도 김치 빠진 식탁은 미완성이니, 김치는 한국인의 영혼이다. 누구도 김치에서 소외되면 안 된다. 동네 전체가 김장 품앗이를 하고, 어려운 이웃에 김장김치를 나누어 주는 이유다. 김장 품앗이로 이룬 김치 공동체다.어제 중국 환구시보 뉴스가 기막히다. 중국이 김치산업 국제표준국이 됐다는 것이다. 중국이 상임이사국인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지난 24일 중국이 제안한 김치제조 국제표준을 승인했다는데, 한국을 조롱하는 부연 설명이 뼈 아프다. 한국은 김치무역 적자국이며, 한국 김치 소비량의 35%를 차지하는 수입 김치의 99%가 중국 김치라며 '김치 종주국의 굴욕'이라고 보도했다.국내 반응은 대체로 차분하다. 민간기구인 ISO의 인증이 김치무역을 규제할 국가간 표준도 아니고, 표준 명칭도 '김치(kimchi)'가 아닌 '파오차이(paocai)'라서다. 파오차이(泡菜)는 절임 채소를 통칭하는 단어다. 한국 김치를 '파오차이'로 부르던 그대로 국제표준으로 올려놓고 김치 표준 운운한 것이다. 한국 김치는 중국이 파오차이로 둔갑시킬 수 없는 정체성이 뚜렷한 음식이다. 하지만 한복, 판소리, 아리랑을 자국의 변방문화로 종속시키려는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 도발이 김치에까지 이른 점은 경계해야 마땅하다.1인 가구 증가와 품앗이문화 쇠퇴로 공장김치 유통이 늘면서, 저가 중국 김치의 침략이 거세진 건 사실이다. 김치 종주국의 위엄을 지켜낼 국제적인 문화교류와 김치산업 표준 제정이 시급하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1-29 윤인수

[데스크칼럼]기억해야 할 '국민방위군'

1·4후퇴를 앞두고 60만명 이상 반강제 징집한국전쟁 70년 역사 속에 숨겨진 '민간인軍'국가지원 못받아 상당수 아사·동사·전염병관련보도 잇단 제보, 이제라도 재조명 시급한국전쟁 70년, 잊힌 군인들이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역사 속에 숨겨진 '국민방위군'이다. 수십 만명의 민간인으로 구성된 국민방위군은 상당수가 굶어 죽거나 얼어 죽었다. 그나마 이들에게 지급돼야 했던 각종 국고와 물자들은 간부들이 착복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재조명이나 명예회복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책 없는 징집에 수많은 희생이 따랐지만 책임도 없었다.국민방위군 사건을 재조명해 준 유정수(1925~2010)씨의 일기에는 '사랑하는 내 어머니와 아내와 동생들에게 이 기록을 드리노라'라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국민방위군에 징집된 1950년 12월23일부터 이듬해 3월까지 76차례 일기를 작성했다. 이 일기에는 극한의 추위와 굶주림 속에 이동하는 과정이 기록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국민방위군 희생에 대해 어떤 보상도 사과도 이뤄지지 않았다.국민방위군은 한국전쟁 당시 반강제로 징집된 민간인으로 구성된 부대다. 서울이 북한군에 의해 다시 점령되는 1·4후퇴를 앞두고, 정부는 급하게 민간인을 징집해 국민방위군으로 편성했다. 이때 국민방위군 징집총수는 60만명 이상이다. 이들은 남쪽 지역에 설치된 교육대로 이동해 교육을 받았다. 이때 제대로 된 피복과 음식 없이 급하게 이동하며 상당한 국민방위군이 거리와 산속에서 동사하거나 아사하게 된다. 더욱이 어렵게 도착한 교육대는 시설이 열악했고, 질병으로 또다시 많은 국민방위군이 희생되기도 했다. 1950년 12월 17일 공포된 국민방위군 설치법은 사실상 강제 징집이었고 40세가 넘는 고령자나 학생, 공무원 등도 징집 대상이었다.이들은 죽어서도 버림받았다. 대다수가 '전사통지서'도 받지 못했다. 유해가 암매장된 곳이라고 주장하는 곳은 현재 경작지로 바뀌어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도 없다. 세월은 현장을 바꿔 놓았고, 기억에만 의존하는 증언들은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정부의 공식 사과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다시 국민방위군을 조명하는 움직임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이정식(89) 명예교수는 최근 펴낸 자서전에서 국민방위군 경험을 소개했다. 1950년에 국민방위군으로 활동한 그는 경인일보 보도로 알려진 것처럼 피복이나 보급식과 같이 기본적인 국가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이동한 것과 민가에서 식사를 얻어먹어야만 했던 열악한 환경을 설명했다.한국현대사를 전공한 성공회대 이임하 교수도 전염병을 매개로 국민방위군 사건을 다시 들여다본 '전염병 전쟁'을 펴냈다. 이 교수는 대부분 동사·아사로 피해를 입은 줄 알았던 국민방위군이 발진티푸스라는 전염병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결국 한국전쟁 당시 징집된 국민방위군이 전염병인 발진티푸스를 전국적으로 퍼뜨린 원인이었던 것인데, 군복조차 지급받지 못한 비위생적인 상태에서 징집당했기에 발생한 일로 국가의 과실이 다시 한 번 증명됐다는 주장이다.이 때 징집됐던 국민방위군 가운데 일부는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제보도 이어지고 있다. 관련 보도를 접하고 본인이 전염병으로 피해를 입었고, 증언해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제보자 대부분은 과거 강제 징집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사실이 묻히기를 바라지 않는 데서 시작하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제보자 대부분이 90세가 넘는 고령으로 자녀 등 가족들이 주선돼 피해 구제와 명예 회복에 나서고 있다. 쉽지는 않다. 워낙 오래전 일이고 관련 증거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관심이다. 강제로 징집됐던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이들에 대한 구제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민방위군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정부의 빠른 대처와 노력을 기대해 본다./조영상 경제부장조영상 경제부장

2020-11-29 조영상

[발언대]겨울철 악재(惡材)를 막는 방법

매년 겪는 추운 겨울철이 다시금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화재예방을 위해 다양한 대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기존에 추진하던 겨울철 화재 예방대책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학생들의 원격수업이 시작되면서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주택용 소방시설의 중요성이 더욱 증가됐다. 주택용 소방시설은 전국 모든 소방관서의 주요 과제로 전 국민의 안전을 위해 설치 및 지원 서비스를 시행 중에 있으며 온·오프라인을 통해 전방위적인 홍보를 추진하고 있다.지난 9월 14일 인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발생한 '인천 라면형제 화재' 사고는 주택용 소방시설의 중요성과 소방안전교육, 홍보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켰다.현재 코로나19로 인한 수많은 변수에도 불구하고 '라면형제 화재'와 같은 화재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게 다양한 겨울철 소방안전대책을 추진 중이다. 취약대상 아동을 대상으로 우선 주택용 소방시설 무상 설치를 실시하고 있으며 여러 유관기관과 협업을 통한 주택 화재 안전점검 등으로 안전한 겨울철 나기에 모든 소방관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매년 11월은 '불조심 강조의 달'로 지정하여 화재 예방 및 안전문화 정착에 모든 관심과 열정을 쏟고 있다. 국민들과 소통하는 화재예방 분위기 조성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다양한 비대면 행사를 추진하고 있으니 불조심 강조의 달에 관심을 갖고 화재 예방에 우리 모두 힘써주길 바란다.끝으로 끊임없는 코로나의 위협 속에서 안전한 겨울철을 보내기 위해 '1(하나의 가정에) 1(한 대 이상의 소화기와 감지기를) 9(구비) 한다'는 슬로건 아래 겨울철 단 한 건의 화재도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직원들과 의용소방대원의 노력에 감사드리며 국민 모두 안전한 2020년 겨울철이 되기를 기원한다./강한석 인천 계양소방서장강한석 인천 계양소방서장

2020-11-29 강한석

[기고]아련한 추억 속 '도랑' 우리가 살려야 한다

기후변화로 매년 강우량 편차 심각물 안정적 확보 노력 절실이제는 소규모 하천 살리기 집중수질개선·수생태계 연속성 복원맑고 깨끗한 수질환경 제공해야'도랑(개울)'하면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구석진 시골은 물론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도 마을마다 도랑은 흔히 볼 수 있었고 사시사철 물이 흘렀다. 여름철 아이들은 더위를 피해 알몸으로 도랑에 뛰어들어 시원함을 만끽하고 물놀이를 즐겼으며 가재, 피라미를 잡기도 했다. 아낙들은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고 수다를 떨며 마을의 온갖 소식들을 주고받던 장소이기도 하다.물은 산꼭대기나 계곡에서 시작되어 도랑을 따라 소하천으로 그리고 큰 하천으로 유입되고 바다로 흘러간다. 하지만 지금은 물이 흐르는 소하천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도심 곳곳이 아파트, 주차장, 도로 등 콘크리트로 뒤덮여 비가 올 경우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않고 소하천과 강을 거쳐 바다로 곧바로 빠져나간다. 따라서 토양이 지하수를 담아둘 수 있는 양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도 도랑에 물이 말라가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강우량의 편차가 심하다. 대만과 같이 연간 강우량이 거의 일정한 국가가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6월과 9월 사이에 70% 정도의 강우가 집중되고 있다. 2014년, 2015년 사상 최악의 가뭄이 있었는가 하면, 올해는 비교적 많은 비가 내렸다. 이런 이유로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그동안 수질관리정책은 팔당상수원을 비롯한 한강수계 등 비교적 규모가 있는 하천의 수질관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환경기초시설의 확충 등 수질개선 노력을 기울인 결과, 대규모 하천은 비교적 안정적인 수질로 개선되었다. 이제는 소규모 하천 살리기에 집중할 때이다. 환경부에서도 하천의 수생태계 연속성 회복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하지만 도랑은 오랜 세월 동안 법적관리 대상에서 제외되어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지하수·하천 등으로 유입되는 최상류 물길인 도랑의 개선 없이는 수질·수생태계 건강성 회복에 한계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국가하천, 지방하천, 소하천과 달리 '하천법'이나 '소하천정비법'의 적용 또는 준용을 받지 않는다. 2011년부터 환경부가 일부 시군에 대해 제한적으로 복원사업을 지원하고 있으나 효과가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또한 행정안전부는 '소하천정비법' 시행령 제2조에 마을을 관통하거나 100m 이내로 인접하게 존재하는 소하천 규모(평균 하천 폭이 2m 이상이고 시점에서 종점까지의 전체길이가 500m 이상)에 미달하는 세천을 도랑으로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도랑을 명확히 구분해 내기에는 애매한 기준이다. 이에 경기도는 도랑을 '지속적으로 유속이 있거나 유수가 있을 것이 예상되는 폭 5m 내외의 물길'로 조례에 정의하고 도랑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섰다.우선 경기도는 2018년 3월 '경기도 도랑 복원 및 관리 조례' 제정 및 '경기도 도랑 실태조사 및 복원 5개년 추진계획' 수립으로 도랑 살리기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또한 2018년 8월부터 올 1월까지 도내 도랑 분포 현황에 대한 조사와 복원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했고, 경기도 내 총 1만9천848개소, 1만1천805㎞의 도랑분포현황을 파악했다. 이후 조사 대상범위 설정, 우선 복원대상 70개소 선정, 도랑별 관리 방안 수립 등을 추진했다. 올해는 8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도내 7개 시·군 8개소의 도랑 살리기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경기도는 앞으로도 하천으로 유입되는 도랑에서부터 지류·지천까지 꾸준히 수질개선사업을 추진해 수생태계 연속성과 복원을 꾀할 계획이다. 이 사업을 통해 수생태계의 건강성을 지속적으로 증진해 나감으로써 도민이 맑고 깨끗한 수질환경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최영남 경기도수자원본부 수질정책과장최영남 경기도수자원본부 수질정책과장

2020-11-26 최영남

[참성단]'축구 영웅' 마라도나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1986년 멕시코월드컵 8강전. 후반 6분, 잉글랜드 문전에서 골키퍼 피터 쉴튼과 공중볼 경합을 벌인 마라도나 선수가 선제 헤딩골을 넣었다. 쉴튼은 신장 185㎝, 마라도나는 165㎝. 더구나 골키퍼는 손을 쓸 수 있어 헤딩슛은 불가능해 보였다. 비디오 판독 결과 마라도나가 손을 쓴 장면이 확인됐다. 세계를 뒤흔든 '신의 손' 사건이다.'악마의 골'을 넣은 마라도나는 5분 뒤 중앙선부터 수비수 6명을 따돌리고 질주한 끝에 골키퍼까지 제치고 골네트를 흔들었다. 당시 외신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골과 가장 추한 골이 동시에 나왔다"고 평했다. 잉글랜드는 게리 리네커가 만회 골을 넣었으나 승부를 뒤집지는 못했다. 아르헨티나는 결승에서 서독을 3대 2로 누르고 FIFA 컵을 차지했다. 대회 5골을 넣은 마라도나는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25일(현지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외신이 전했다. 앞서 지난 3일 두부 외상 후에 출혈이 생겨 뇌수술을 받고, 1주일만인 11일 퇴원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즉각 3일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마라도나는 펠레와 함께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펠레는 '축구 황제'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얻었지만, 그는 '축구 악동'이라 불렸다. 거침없는 언행과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과 미움이 엇갈렸다.1960년 10월 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3남 4녀의 첫째로 태어났다. 빈민가에서 성장했으나 천부적 축구 재능을 인정받아 16살 때 프로에 데뷔했다. 아르헨티나의 명문 보카 주니어스를 거쳐 FC 바르셀로나, SSC 나폴리, 세비야 FC에서 뛰었다. 마라도나를 영입한 이탈리아 나폴리팀은 1987년 사상 첫 리그 정상에 올랐다. 1989년 유럽축구연맹(UEFA)컵 우승, 1990년 리그 우승 등 전성기를 보냈다.현역 은퇴 이후 대체로 불운했다. 약물 복용과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모국의 국가대표팀과 프로팀 감독을 지냈으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취재 기자에게 총을 쏴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축구 팬들은 그의 마법 같은 플레이를 그리워한다. 때론 신(神)으로 추앙한다. 하느님도 어떤 신인가 궁금해 때 이르게 부른 듯하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1-26 홍정표

[풍경이 있는 에세이]퇴계와 두향과 매화

백매화 매개로 사랑 나눈 두 사람퇴계, 풍기군수 자리로 가게 되자밤 깊도록 침묵속 이별주만 나눠두향은 말없이 떨며 붓만 적시고둘은 그 밤이 영원한 이별이었다퇴계 이황(1501~1570)은 성리학의 대가다. 그는 19세에 주자의 '성리대전'을 읽고 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쁨이 솟아나고 눈이 열렸다'고 고백했다. 타고난 성품이 순수하고 학식이 뛰어났던 그는 늘 성현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여 뜻을 맑게 지녔으며 행실을 독실하게 했다.퇴계는 오랫동안 고시 낭인의 생활을 거친 후 34세가 된 1534년 과거시험 문과 초시에서 2등으로 급제했다. 43세까지 종3품 성균관 대사성까지 올랐지만 정치적 파당과 정쟁에 휘말리면서 자의와 타의로 귀향과 귀경을 반복하게 된다. 집권세력의 전횡으로 국사가 날로 어지러워지자, 병을 핑계로 경상도 예안 지방으로 낙향했다.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배우는 사람의 큰 병이다. 천하의 의리에 끝이 없는데, 어찌 자기만 옳고 남은 그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 퇴계의 생각이었다.퇴계는 21세에 허씨부인과 결혼했지만 둘째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사별한 뒤 3년째가 되던 해, 예안에 귀양 와 있던 권질이 그를 불러 '집안의 참극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여식이 있는데, 자네가 아니면 내 딸을 맡아줄 사람이 없네'라며 간곡하게 부탁했다. 퇴계는 정신질환이 있는 권질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권씨부인은 퇴계가 47세 때 아이를 낳다 죽는다.그는 1548년 외직인 단양군수로 부임한다. 그의 나이 48세 되던 해 정월이었다. 연회에서 관기 두향을 만난다. 두향은 시서와 거문고에 능했고 매화를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시와 매화가 대화에 올랐다. 퇴계도 매화를 몹시 좋아하고 사랑했다. 그에게 매화를 읊은 시가 여러 편인 것은 그 때문이다. 퇴계는 대학자이면서 시문에 능한 시인이었다.퇴계는 자신의 매화 시편을 두향에게 읊어주었다. '뜰을 거니니 달이 나를 따라오네/매화 언저리 몇 번이나 돌았던고/밤 깊도록 앉아 일어나길 잊었더니/꽃향기 옷 가득 스미고 그림자 몸에 가득하네'. 그날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지만 그뿐이었다. 퇴계에게는 두 번째 부인과 사별한 지 2년이 지난 때였다. 더구나 둘째 아들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 퇴계는 시름 깊은 밤을 보내고 있었다.슬픔과 비탄과 상심으로 홀로 시를 쓰고 글을 읽는 퇴계를 두향은 사모하게 되었다. 두향은 정표로 여러 가지 선물을 퇴계에게 보냈으나 매번 물리쳤다. 그녀는 매화를 좋아하는 퇴계를 위해 여러 지방에 수소문해서 희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백매화를 구해서 보냈다. 귀하다는 백매화를 받은 퇴계는 '매화야 못 받을 것 없지'하며 동헌 뜰에 심고 정성껏 가꾸고 즐겼다.그 일이 있은 후 퇴계는 두향의 재능을 가상히 여겨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매화를 매개로 두 사람의 정은 깊어지고 마침내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길지 않았다. 단양군수 재직 9개월 만에 퇴계가 풍기군수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이 소식은 두향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뜨거운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두향에게 이별은 견디기 힘든 아픔이고 충격이었다. 두 사람은 이별주를 앞에 놓고 밤이 깊도록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무겁고 긴 침묵이었다. 만 가지 감정이 복받치는 침묵이기도 했다. 두향은 말없이 먹을 갈아 떨리는 붓을 적셨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어느덧 술 다 하고 님 마저 가는구나/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한 동안 두향의 어깨가 출렁였다. 퇴계는 그녀의 어깨를 조용히 안았다. 그 밤의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가 70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서신 왕래가 있어 1552년에 퇴계가 보낸 시를 두향은 거문고 가락에 실어 그리움을 달랬다.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마주하고/빈 방 안에 초연히 앉았노라/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 다시 보니/거문고 줄 끊겼다 한탄하지 않으리'. 두향은 기적에서 이름을 지우고 퇴계와 자주 찾았던 강선대에 초막을 짓고 은둔 생활을 했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20-11-26 김윤배

[오늘의 창]이제 보여주세요, 김보라 시장님이 약속한 '혁신'

'갈 길은 멀고 마음은 바쁘다'.이 말은 19만 안성시민을 대표해 시정을 이끌고 있는 김보라 시장이 현재 느끼고 있는 심정일 것이라 생각된다.김 시장은 지난 4월 치러진 안성시장 재선거 당시 지역발전을 위해 '혁신'을 기치로 내걸어 인근 지자체에 비해 더딘 지역발전 속도에 답답함과 염증을 느낀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이후 김 시장은 취임과 함께 시민들과 약속한 공약 실천을 위해 '광폭 행보'에 나섰다. 하지만 이같은 행보에도 김 시장이 당초 계획한 속도만큼 공약들이 진척되지 않아 스스로 답답한 심경일 것이다.김 시장이 내건 7대 대표 공약 중 이미 공약이 완료된 '코로나19 극복 500억원 규모 추경안 시행'을 제외한 나머지 공약들이 사실상 연내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 반도체 클러스터 편입추진과 버스 준공영제 도입, 무료 와이파이망 구축, 공도시민청 건립, 도시재생사업 추진, 호수관광 벨트화 추진 등의 공약은 상위 기관들과 협조 또는 타당성 용역 결과가 도출돼야 추진이 가능하기에 추진 속도가 생각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김 시장 취임 6개월이 지난 현재,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김 시장의 억울한 입장을 대변하자면 재선거이기에 준비 기간 없이 곧바로 임기에 돌입했고, 코로나19와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수해 피해 등 내우외환에 시달린 지역 실정을 수습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언제나 난세에 영웅을 원하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만큼 그 기대에 부흥하기 위한 시장의 몸부림은 숙명이다. 지금까지는 다소 부족했지만 이 기간을 '더불어 사는 풍요로운 안성'을 만들기 위한 준비운동이었다고 믿고 싶다. 현명한 19만 시민들이 선택한 인물이기에.이제는 보여줘야 한다. 김 시장이 시민들과 약속한 '혁신'이 무엇인지를. /민웅기 지역사회부(안성) 차장 muk@kyeongin.com민웅기 지역사회부(안성) 차장

2020-11-26 민웅기

[춘추칼럼]동결, 감축, 폐기의 3단계 접근이 현실적이다

강경 대북정책 '도발→보상→파기' 악순환바이든 新행정부, 北과 적극적인 대화 필요한국 입장 반영 신속하게 북핵협상 나서야文정부, 北 잘못된 선택않도록 관계 복원을예고된 대로 바이든 신 행정부는 확실히 트럼프 행정부와는 다른 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민주당 행정부가 그래왔듯이 바이든 차기 행정부도 명분과 원칙을 존중하고 동맹 강화와 다자적 접근을 통한 대외전략을 추구해 나갈 것이다. 국제질서에 있어 미국의 리더십을 강조해 온 토니 블링큰을 첫 국무장관에 지명한 것은 그가 클린턴 정부시절부터 오바마 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주당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깊이 관여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그의 대북관은 상당히 원칙론적이다. 바이든 당선자가 김정은 위원장을 불량배라고 부른 것과 같이 블링큰 국무장관 후보도 폭군이라고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비핵화 협상을 벌여왔다고 비난했다. 그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포괄적행동계획(JCPOA)이라는 이란 핵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에도 관여한 바 있다. 북핵문제도 트럼프식의 톱-다운 방식이 아닌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실무적인 부분부터 꼼꼼히 따져 나가는 바텀-업 방식의 협상을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동북아 정세에 있어 한·미·일 3자 협력구조를 탄탄히 하여 북한을 후원하고 있는 중국을 압박하고 북한이 핵포기 의사를 명확히 밝히기 전까지는 대북제재를 지속 유지해 나갈 것으로 판단한다. 한 인터뷰에서 동맹국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쥐어짜야 하며 경제적 압박을 위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말한 것만 봐도 그의 접근법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접근법은 사실 오바마 행정부 시절과 거의 유사하다. 바이든 당선인이 오바마 행정부 부통령이었고 블링큰 국무장관 후보자 역시 오바마 행정부시절 백악관 참모였기 때문에 큰 틀의 차이는 없을 것이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원칙외교, 다자협력 외교를 통해 초국가적 안보문제에 대한 협력을 이끌었고 이란, 쿠바, 미얀마 등 적대 국가들과도 관여정책을 통해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도 초기 과감한 접근을 시도하려 했으나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로 인해 오바마 행정부는 강경한 대북정책으로 선회하였다. 물론 북미간 협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북한의 핵 활동을 동결시키고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는 식으로 하여 2·29 합의를 도출하였지만 이 역시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로 좌초되고 말았다.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기대를 접고 전략적 인내로 회귀했고 중국을 압박하여 북한이 협상장으로 나오도록 했으나 이 역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북핵 위기의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다. 이를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북핵 협상과 관련하여 지나온 역사를 리뷰해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대부분의 북핵 위기가 우리와 미국의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이러한 과도기의 틈을 활용하여 북한은 핵능력을 강화해 왔고 결국 이에 대한 대응은 강경한 대북정책으로 귀결되었다. 강경한 대북정책은 '도발-보상-파기'의 악순환을 형성하면서 다시 북한의 핵능력 강화를 초래하는 패턴을 반복시켜 왔다. 바이든 신행정부와 블링큰 국무장관 후보자 역시 오바마 행정부와 같이 대북제재를 유지하는 가운데 북핵 불용의 입장에서 원칙적인 대응을 해 나갈 것이다. 그런데 만약 북한이 오판하여 또다시 핵·미사일 도발을 감행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바이든 신 행정부도 오바마 행정부와 같이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고 협상장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추구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간 북미간 합의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한반도는 다시 북핵위기의 긴장과 위협 속에 격랑으로 표류할 것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북한의 핵능력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기간 동안 북한은 실질적 핵보유국을 선언하였다. 과거와 같이 불완전한 핵능력을 가지고 핵능력의 모호성을 유지한 채 살리미 전술을 통해 딜을 하려는 시기는 지났다. 북한의 핵위협은 훨씬 강화되고 현실화되었다.바이든 신 행정부는 북한을 방치하는 것이 아닌 북한과 적극적인 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동맹국으로서 한국의 전략과 입장을 반영하여 신속하게 북핵협상에 나서야 한다. 동결-감축-폐기에 이르는 3단계에 맞는 상응조치를 추진함으로써 단계적으로 북한 핵폐기를 유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과거와 같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남북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여러모로 우리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전방위적 외교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11-26 양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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