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춘추칼럼]'존경하는' 대신 '존중하는'

국회 상임위원장 회의진행때 서두에 사용아무렇지도 않게 '남발' 도무지 적응 안돼국민 위해 일하는 충복끼리 우스꽝스러워꼭 붙임말 쓰고 싶다면 '존중…'은 어떨지 진정서를 써본 일이 있다. 지인이 갇혀 있기에 마땅한 죄를 지었지만, 부양하는 가장임을 긍휼히 여겨 집행유예로 봐주십사 애걸복걸하는 내용이었다. 반성문보다 더 쓰기 힘든 글이 남을 위해 쓰는 진정서임을 알았다.무엇보다도 첫 문장 때문에 괴로웠다. 진정서를 어떻게 쓰는 건지 대략 알아보았는데, 하나같이 첫 문장이 '존경하는 판사님'이었다. 정말 존경하는 부모와 스승께도 왠지 쑥스럽고 오해받을까 봐 써보지 못한 말을, 생면부지의 판사에게 써야 한단 말인가?판사가 진정서를 틀림없이 읽어주고, 진정서가 판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인다고 치자. 누구나 쓰듯 '존경하는 판사님'이라고 시작하면, 판사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 첫 문장을 신경도 안 쓸 것이다. '존경하는'을 쓰지 않으면 판사의 감정이 상할지 모른다. 진짜 존경하지 않는 것으로 오독할 수도 있다. 불쾌할 수도 있다. "남들 다 쓰는 '존경하는' 말 한마디를 안 붙였네, 성의가 없어!"어느 드라마에서처럼 '친애하는'을 쓰거나 '대쪽 같으신', '사랑해 마지않는', '똑바로 판결해주시리라 믿는', '법의 수호자이신',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하늘님 같으신' 등과 같이, 남다르게 써도 좋은 소리 못 들을 테다. "뭐야, 판사한테 장난쳐?"판사는 실제로 존경할 만한 분일 테다. 공부로 따진다면 내가 한없이 우러러봐야 한다. 일의 가치와 중요성을 생각할 때 절로 존경심이 든다. 경제적인 면을 따지면 나 같이 모자란 사람은 공경을 해도 모자란다.불구하고 '존경하는'이라는 말이 왜 그렇게 쓰기 싫었을까. 아무리 지인을 구하고자 하는 글이지만, 아무리 의례적인 표현이라지만,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호칭이 아니었기에, 그런 판에 박힌, 진심이 담기지 않은 관용어를 쓰는 것이 저어됐을 테다.'존경하는'을 아무렇지도 않게 남발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이 토론인지, 회의인지, 질의인지, 취조인지, 말싸움인지 잘 모르겠지만, 국회의원의 언변 덕분에 곧잘 놀라고 자주 웃는다. 저렇게 재미난 분들이 계신데, 소설이 읽힐 리가 없다. 도무지 적응 안 되는 말이 '존경하는'이다. 주로 진행자인 위원장이 쓰는 말이다. 질의자가 여당의원이든 야당의원이든 꼭 '존경하는 아무개 의원님'이라고 칭하는 것이다.대체 왜? 혹시 반어법일까? 그렇게 보기엔 칭하는 이나 듣는 이나 너무 자연스러운 얼굴이다. 텔레비전 보는 국민을 세뇌시키려는 것일까? 국회의원님을 부를 때는 앞에 '존경하는'을 붙여야 된다고. 국회의원끼리라도 존경해주자는 것일까? 혹시 진심인 걸까? 여야를 떠나서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성별을 떠나서 서로에게 상처를 많이 준 사이더라도, 국회의원으로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동류의식의 표현? '존경하는 의원님'도 '존경하는 판사님' 못지않게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된 관용어일 테다. 내가 추측한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의도가 담겨있다기보다는 위원장쯤 되어 회의진행을 할 때 으레 쓰는 단순관용어일 테다. 품위 없는 언어를 사용하며 다른 당 의원을 자격이 없다고 매도하는 이들도 위원장이 되면 '존경하는 의원님'을 입에 달게 될 테다.어쩌면 '존경하는'은 법원과 국회뿐만 아니라, 판사 못지않은, 국회의원 못지않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고 있는 말일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존경하는' 사람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는 '존경하는 공화국'일지도.'존경하는', 그만하자. 국회의원을 '존경하는(남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하는)' 국민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존경받으면 안 되는 직업이기도 하다. 국민을 위해 일하고 국민한테 칭찬받아야 할 머슴이니까. 국민의 충복끼리 '존경하는' 모습이 참으로 우스꽝스럽다. (진짜 언제쯤 존경하고픈 국회의원을 볼 수 있을까.) 정 무슨 말을 붙이고 싶다면 '존중하는' 어떤가. 사람끼리 존중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못하니 '존중하는'이라는 말이라도 사용하라는 것이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9-19 김종광

[노트북]'취향 고백'

'젊은 꼰대'라는 말이 있다. 자기 경험을 중시하고 타인의 사생활을 지적하는 사람을 뜻한단다. 한 포털에서 조사한 결과 직장마다 20%의 꼰대가 있고, 그 중 2030의 '젊은 꼰대'가 새로 떠오른다고 한다.나도 '젊은 꼰대'다. 고백하자면, 이따금 사람들의 옷차림을 지적하고 싶은 유혹을 참기 힘들 때가 많다. 지난 여름 기업들은 물론, 경기도와 각 시군에서 반바지 입기를 권했다. 반바지는 운동복쯤으로만 보는 나는 간혹 마주하는 반바지 차림의 남자 직장인들을 보면 당혹감마저 들었다.하지만 반바지를 입지 못하게 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할 순 없다. 직장인들에게 반바지를 판매할 수 없도록 법 제정을 청원하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내 취향'이니까.처음 회사에 들어와 기사를 쓸 때 배운 것 중 하나가 '취향 고백'을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취향을 사회의 기준처럼 제 멋대로 확대치 말라는 경고였다.그러나 최근 경기도의회 '성평등 기본조례' 폐지 촉구 주장을 듣자면 특정집단의 '취향'을 법안에 담겠다는 얘기같이 들린다. 조례는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지원하는 내용이지만, 단지 '양성'이 아닌 '성'을 썼다는 이유로 어디에도 명시되지 않은 동성애 프레임이 씌워져 비난받고 있다. 동성애자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심지어 혐오하는 것도 개인의 취향이지만, 한 데 모여 입법활동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단 한 글자만 가지고 '남자 며느리'나 '성전환자의 여성 스포츠경기 참여 가능' 등을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다. 1950년대 영국은 화학적 거세를 할 정도로 동성애를 막으려고 했지만, 컴퓨터의 아버지 엘런 튜링을 잃기만 했지 막지 못했다. 반대로 조례 하나로 동성애를 확산할 수 있을까.도와 도의회의 해명에도 조례가 성의 개념을 뒤흔들어 놓을 것이라는 일부 종교단체의 표어가 순수성을 의심받는 이유다. 어디까지가 '취향 고백'이고 어디까지가 '신앙 고백'일까. 매일 도의회를 지나며 나누기, 빼기를 반복한다. /김성주 정치부 기자 ksj@kyeongin.com김성주 정치부 기자

2019-09-19 김성주

[열린글밭]그때… 문화충격

뉴욕 맨해튼 지하철 철로위 쥐떼직접 본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쇼'세계적 큰 행사 '핼러윈 축제'귀신쫓는 우리 '팥죽 풍습' 잊은채해골 분장 밤새 광란파티 '쇼크'며칠 전, 인터넷 신문을 뒤적이다가 '수십 마리의 쥐를 한꺼번에 잡는 신제품 기계'를 소개하는 미국 뉴욕발 기사를 발견했다. 기사의 제목만으로도 오래전 목격했던 뉴욕 지하철의 분주한 쥐떼를 떠올리며 내 몸은 진저리를 쳤다. "그때가 언제인데 아직도…."1987년부터 1992년까지였다. 외국 나가기가 지금처럼 자유롭지 않았고, 미국 비자 받기도 매우 까다롭던 시기였다. 그러나 책과 유행가, 영화, TV 뉴스에서 빈번하게 접한 뉴욕은 가보지 않아도 친숙한 도시였다. 특히 '뉴욕은 연극의 메카'라는 믿음이 있어서 꼭 가보고 싶은 동경의 도시였다. 예술인들이 사전 심의와 검열을 받아야 했던 당시, 처음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도착해서 맨해튼의 숙소로 향하는 차창을 통해 마주했던 뉴욕 풍경은 역시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지하철을 이용하며 겪은 뉴욕(맨해튼)은 크고 작은 문화 충격의 연속이었다. 철로와 벽을 타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쥐떼들, 중증장애걸인들이 컵 속의 동전들을 흔들어 소리를 내는 구걸 행위, 수준 높은 음악가들의 연주 등이 오래된 지하철 공간에 뒤섞여 공존하고 있었다.주로 런던과 파리 등지에서 검증된 작품을 사다가 잘 만들어서 비싼 관람료를 받는 상업주의 브로드웨이 쇼는 뮤지컬이다. 유명한 작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걸 넘어서 관객의 기호에 맞춘 브로드웨이 쇼와 대비되는 실험적인 작품들은 세계연극사에서 이론으로만 배운 '오프(off) 브로드웨이 쇼'였다. 더욱 실험적인 작품들 즉, 오프 브로드웨이 쇼를 오프하는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 쇼'를 눈으로 확인하는 현장탐방도 견문을 넓히는 긍정적인 문화 충격이었다. 다양한 공연장을 탐방하며 때때로 일본의 문화정책 흔적들을 발견하고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공연장 출입구 등 곳곳에 세워진 다양한 일본의 평화적 이미지(글과 조형물)는 뜻밖의 충격이었다. 그때 일본은 전범국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긴 세월 후원하던 맨해튼의 '아시안 소사이어티'에서 발을 빼고 '재팬 소사이어티'를 만들어 독립했다고 들었는데, 여름방학이면 북적대던 일본 젊은이들이 세계 각국에서 모인 젊은이들과 교류하다가 개학하면 사라지는 현상도 내겐 충격이었다. 아직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우리의 젊은이들과 일본 젊은이들이 비교되며 우려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너무 뒤지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뉴욕에서는 해마다 10월 31일에 세계적인 큰 행사가 열린다. 유럽의 오래된 한 전통풍습을 기초로 뉴욕대(NYU) 랄프 리 교수가 고안한 축제를 여는 날인데 그 퍼레이드가 장관을 이룬다. '핼러윈 축제'다. 퍼레이드 외에 큰 늙은 호박 속을 파내고 안에 불을 밝혀 문밖에 두고, 이 집을 찾은 (분장한) 나쁜 마귀는 매우 위협적인 어조로 "한 번 당해 볼래? 아니면 나를 대접할래?(Trick? or Treat?)"라고 물으면, "대접할게요(Treat)"라고 답하며 미리 준비해 두었던 초콜릿, 사탕 등을 대접해 보내는 세시풍속을 재현하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대문과 집주변에 바르고 뿌리며 나쁜 기운이나 귀신이 집과 사람에게 해하는 걸 예방하는 동짓날의 오래된 세시풍속이 있는데 가을걷이를 끝내고 치르는 이 동서양의 풍습들은 불운을 예방하고 풍요를 기원하는 근본이 같다는 생각이다. 매년 10월 한 달 동안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느라 맨해튼 거리가 온통 빗자루를 든 마귀할멈과 해골, 거미줄 등 핼러윈 장식이 넘치는 하필 그때에 뉴욕을 여행한 사람이 "뉴욕은 요즘 해골이 유행"이라고 하던 일화도 생각난다. 우리의 팥죽 풍습은 아예 잊은 채, 핼러윈 데이에 한국에서 해골 분장을 하고 광란의 파티로 시월의 마지막 밤을 지새는 것 또한 문화 충격이다./박은희 연출가·극단 고향 대표박은희 연출가·극단 고향 대표

2019-09-19 박은희

[풍경이 있는 에세이]송강과 진옥의 화답시

광해군 세자책봉 진언 '강계 유배'깊은 밤 취흥 도도해지자 '즉흥시' 조용히 듣고있던 진옥 수줍게 화답적소생활 청산 기쁨속 이별의 고통詩 '송별'로 아픈마음 가슴에 새겨기녀 진옥은 오로지 송강 생각뿐이었다. 어떤 여흥의 자리에 불려나가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던 것은 송강이 정신적인 주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송강의 시문을 거문고에 실어 노래하는 것으로 모련(慕戀)과 그리움을 달래며 10년이었다. 송강이 왕의 진노로 강계에 유배되어 힘겨운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말을 풍문으로 듣고 그를 찾아 나선 것이 달포 전이었다. 전라도 남원에서 평안도 강계까지 삼천리 길을 걸어서 마침내 그의 적소에 이르러 위리안치의 초막을 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계곡을 찾아가 목욕재계 후, 가지고 온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는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송강을 위해 술과 안주를 장만하고 거문고를 손에 들고 그의 적소를 찾았다. 밤중에 죄인의 적소를 찾은 그녀를 송강은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송강에게 큰절을 올렸다.송강 정철(1536-1593)은 풍운의 정객으로 정적에게 가혹했던 가사문학의 대가다. 송강의 나이 48세에 전라감사로 남원에 내려갔을 때 자미라는 어린 기생의 머리를 올려준 일이 있었다. 시문에 재능을 보이는 그녀를 가까이 불러 거문고를 뜯게 하거나 자신이 쓴 시를 읊게 했었다. 머리를 올려주었다고는 해도 너무 어린 기생이어서 송강은 그녀를 고이 지켜주었고 그녀는 그런 송강의 인간적인 배려에 감동 받아 평생의 지아비로 생각하게 되었다. 자미라는 기녀의 이름을 강아라고 바꾼 것도 송강의 '강'을 빌어쓰는 것으로 송강의 여자임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송강은 일 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한양으로 자리를 옮겨가게 되었을 때 '자미화를 읊다'라는 시를 강아에게 준다.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펴/그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라/거리에 가득한 사람들 모두 네 모습 사랑하리라'라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남원을 떠났던 것이다. 강아는 그 후 진옥이라는 이름으로 남원 일대에서 춤과 노래와 거문고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송강은 56세 때 광해군의 세자책봉을 진언하다 선조의 노여움을 사 강계로 유배를 갔다. 유배를 떠날 때 선조로부터 '대신으로서 주색에 빠져 있으니 나랏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노골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던 송강이다. 그의 유배와 낙향은 관동별곡, 사미인곡, 성산별곡, 속미인곡 등 불후의 가사문학을 남기게 했다. 유배지의 밤은 깊어가고 취흥 도도해지자 송강은 진옥에게 화답시를 제안한다. 진옥은 말없이 거문고의 현을 고른다. 송강이 먼저 즉흥시를 읊는다. '옥이 옥이라커늘 반옥만 너겼떠니/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적실하다/내게 살송곳 잇던니 뚜러 볼가 하노라'. 조용히 듣고 있던 진옥이 거문고 낮은 현을 고르더니 수줍게 화답시를 읊는다.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만 녀겨떠니/이제야 보아하니 정철일시 분명하다/내게 골풀무 잇던니 뇌겨 볼가 하노라'. 지그시 눈을 감고 듣고 있던 송강이 필경, 와락 진옥을 끌어안았을 것이다. 그녀는 이미 스물대여섯의 아리따운 여인이었다. 그 밤이 얼마나 짧았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송강첩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진옥의 시가 이 화답시다. 그 후 강계의 유배생활은 송강에게 새로운 활력과 재기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강계의 초막에서 송강이 풀려난 것은 임진왜란 때문이다. 선조 25년 5월의 일이었다. 송강이 왕명을 받아 전라와 충청지방의 도체찰사로 나가게 되었을 때 진옥은 매우 기뻤으나 한편으로는 두렵고 불안했다. 송강 역시 적소의 생활을 청산하는 기쁨 속에서도 진옥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마음 아팠을 것이다.진옥은 송강을 환송하는 자리에서 그녀의 시라고 알려진 이옥봉의 '송별'을 읊어 이별의 아픔을 가슴에 새긴다. '오늘 밤도 이별하는 사람 하 많겠지요/슬프다 밝은 달빛만 물 위에 지네/애닯다 이 밤 그대는 어디서 자나/나그네 창가엔 외로운 기러기 울음뿐이네'. 진옥은 그 후 강계를 떠나 여승이 되었다고 전한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19-09-19 김윤배

[참성단]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언론

장기미제사건 형사들의 활약상을 그린 TV 드라마 '시그널'에서 프로파일러 박해영은 '연쇄 살인'의 조건으로 "최소한 3명의 피해자가 발견되고, 살인사건 사이에 냉각기가 있으며 서로 분리된 상황에서 피해자가 살해된 정황이 확실할 때"라고 정의한다. 1986년 9월 19일 오후 2시, 하의가 벗겨지고 목이 졸린 채 숨진 이모(71) 씨가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에서 발견됐을 때, 이를 보도한 언론이 단 한 곳도 없었던 것도 어쩌면 이와 무관치 않다. 더 변명하자면, 5일 전 5명이 사망한 '김포공항 국제선 대합실 폭발사고'와 다음날 개막하는 아시안 게임으로 이 사건을 언론은 주목하지 못했다.'선보러 집 나갔던 처녀 수로에서 알몸 시신으로…. 10월 23일 오후 2시 30분께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콘크리트 용수로 내에서 박모(25) 양이 알몸으로 숨져 있는 것을 근처에서 콩을 뽑던 윤모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는 기사가 24일 경인일보 사회면에 2단 기사로 실렸다. 2차 희생자였다. 그러나 더 이상의 후속 보도는 없었다. 이때까지도 이 사건이 영구 미제사건으로 역사에 남을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그로부터 두 달 후 1986년 12월 12일 3차 사건이, 14일 4차 사건이 이틀 만에 발생했다. 하지만 3차 사건의 시신이 4개월 뒤인 1987년 4월 23일, 4차 사건은 1주일 후인 12월 21일 발견돼 경찰과 언론이 큰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그 후 모방사건인 8차를 제외하고 다섯 차례 더 발생했지만,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2차부터 후속 보도를 좀 더 충실히 했다면 사건의 방향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후회'는 경인일보 편집국엔 뗄 수 없는 큰 짐이었다.그 후 2001년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만든다며 경인일보를 찾았을 때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픈 부채의식을 조금 덜어내도 되는 것일까. 살인죄로 부산 교도소에 수감 중인 56세 이모씨의 DNA가 5차(1987년 1월), 7차(1988년 9월), 9차(1990년 11월) 등 3건의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건 분명 하늘이 도운 거다.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 사건 해결을 위해 아직 할 일이 많지만, 33년 만에 용의자를 특정한 쾌거를 거둔 경기 남부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에 큰 박수를 보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9-19 이영재

[기고]중소기업 경쟁력 핵심은 기술인력 확보

우리 경제 최대 이슈 '일본 수출규제' 부상대외 의존도 높은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지방 중소제조업 기피 심화 인재 유입 애로병역특례제 폐지·축소땐 득보다 실 많을듯얼마 전 언론을 통해 "중소기업 80% 이상이 병역대체복무제도 존속을 원한다"는 기사를 접한 바 있다. 내용인즉슨 출생인구 감소에 따른 병적자원 부족으로 인해 과학기술전문요원 및 산업기능요원 등 그동안 중소기업의 기술기능인력의 한 축을 담당해오던 병역특례제도를 대폭 축소 내지 폐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관계부처의 입장에 대한 중소업계의 현실적 애로가 담겨 있는 기사였다. 물론 출산율 저하에 따른 입대연령 청년층 인구의 감소 추세 지속, 남북대립, 불확실한 안보환경 등을 감안 시 관계 당국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관련 논의가 수시로 있었으며 본인도 과거 10여 년 전 중소기업 인력지원업무를 담당하면서 산업기능요원 폐지방침에 대해 교육부, 국방부, 병무청 등과 수차례 회의 등을 거치면서 우리 경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과 중소기업이 처해있는 당면한 인력난 등에 대해 피력하면서 존속 필요성을 피력한 결과 중소 기업인들의 절대적인 요청 등에 힘입어 폐지기한을 겨우 늦추었던 경험이 있어서 더욱 신경이 쓰인다.중소기업 인력부족문제는 물론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과거에는 중소기업의 열악한 임금 및 복지수준 등이 우수인력 영입을 가로막는 저해요인으로만 여겨왔으나 오늘날은 일-가정 양립이라는 가치에 걸맞게 청년 구직자들의 경우 일이나 직장에의 몰입보다는 개인적 여가와 문화생활에 투자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어 상대적으로 관련 인프라가 낙후되어있는 비수도권지역의 인력유입요인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경기지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수도권이라 하지만 성남 판교 등 젊은 인재들이 구직행렬로 줄을 잇는 지역이 있지만 북부지역의 경우 대기업 못지않은 급여 수준을 제시하고도 인력확보에 애로를 겪고 있는 기업들의 하소연을 직접 접한 바 있다. 최근 우리 경제의 최대이슈는 아무래도 일본의 수출규제일 것이다. 물론 동 사태가 어떤 상황으로 흘러갈지 구체적으로는 언제 종료될지 어떤 피해가 어느 정도 발생될지 등은 아무도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대응도 단기적으로는 피해기업에 대한 지원과 함께 중장기대책의 핵심은 무엇보다 일본 등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핵심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일 것이다. 얼마 전 관계부처 합동으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이 발표됐다. 크게는 정부예산 증액 등 R&D 투자 확대, 세제 및 금융지원, 규제 완화 및 제도개선 등이 주요 내용이었는데 궁극적으로는 기술력을 보유한 소재·부품·장비전문기업 집중육성을 통해 자립화 수준을 단계적으로 높여나가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R&D는 오랜 시간에 걸친 꾸준한 인적, 물적 투자가 핵심인데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의 전진기지인 대다수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의 기술인력 확보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특히 앞서 얘기한 판교의 경우도 사실은 제조업보다는 대규모 게임업체 등이 입지하고 있고 문화 및 교통여건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라 청년 구직자들이 몰리는 것이 현실이다.최근 어느 책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 성장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위협요인 중 하나로 주력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를 들고 있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안그래도 중소기업 기피 특히 지방소재 중소제조업 기피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여러 가지 상황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소재·부품·장비기업을 비롯한 중소제조업 기술인력 확보의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는 병역특례제도의 폐지나 축소는 득보다는 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병역자원으로서의 봉사도 중요하지만 산업역군으로서 진정한 극일 전선의 선봉장 역할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어쩌면 비전문가적인 입장에서의 한 가닥 우려이다./홍진동 경기지방중소벤처기업청 조정협력과장홍진동 경기지방중소벤처기업청 조정협력과장

2019-09-18 홍진동

[오늘의 창]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국내 최대의 스포츠 축제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가 다음 달 4일 서울에서 개막한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아마추어 스포츠 선수들이 총출동해 기량을 겨루는 최고 권위의 대회다. 선수와 코치·감독 등 체육인들이 한해 농사의 결실을 보는 셈이다.전국체전은 '종합 점수'로 전국 시·도별 순위를 매긴다. 영광의 금·은·동메달 외에도 순위 점수를 더해 산출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비록 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어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투혼을 발휘한 선수들에게도 따뜻한 격려가 이어진다.전국 1위를 놓치지 않는 경기도는 기념비적인 이번 전국체전에서 '18년 연속 종합 우승'에 도전한다. 인천시는 '3년 연속 광역시 1위'(종합 7위) 달성을 기대하고 있다.시작이 좋다. 전국체전 개막에 앞서 사전 경기로 치러진 하키 종목에서 경기도 대표로 출전한 성남시청(남)과 평택시청(여), 인천시 대표로 나선 인천시체육회(여)가 나란히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이들 팀은 지난 7일에 열릴 예정이던 결승전이 제13호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취소되면서 금메달을 나눠 가졌다. 인천시체육회 남자하키팀은 동메달을 건졌다.핸드볼 사전 경기에서도 희소식이 있었다. 경기도 소속으로 뛴 경희대(남)와 SK슈가글라이더즈(여)가 각각 동메달을 수확했다. 여자핸드볼 전통 강호인 인천시청은 준우승을 차지하며 값진 은메달을 품에 안았다.올해 전국체전은 '한국 여자 복싱의 간판' 오연지(60kg급·인천시청) 등 내년 도쿄올림픽에 나설 국내 스포츠 스타들의 기량을 점검할 무대로도 관심을 끈다.흔히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선수들의 굵은 땀방울로 엮어낼 감동과 환희의 순간들, 그리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할 짜릿한 대반전이 연일 펼쳐지는 제100회 전국체전을 기대해본다. /임승재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 isj@kyeongin.com임승재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

2019-09-18 임승재

[경제전망대]화난 원숭이

기성세대 "나를 따르라" 꼰대 방식우리 기업 목표달성 전쟁터 탈바꿈신입사원 아이디어 침묵으로 전환90년대생들 '가고싶은 직장 만들기'조직문화 혁신으로 경쟁력 차별화"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즐거운 마음으로 직장에 간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과연 이런 회사가 있을까? 'Workday'라는 회사는 조직구성원의 대다수가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2005년에 설립된 미국 샌프란시스코 이스트베이 지역에 위치한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이다. 미국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순위 7위이며 "나는 내일 아침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에 가기 위해 일요일 밤에 완전한 행복감으로 잠자리에 든다" 이런 생각을 하며 직원들 모두가 즐거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모든 기업은 목표달성을 위해 우선 직무 분장을 한다. 창업자 혼자 다 할 수 없으니 부사장도 뽑고, 본부장, 부장, 과장, 대리, 사원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을 선발하여 훈련하고 역할을 분담하여 조직 목표를 달성한다. 경영목표를 설정하고 사업전략을 수립하고 이의 달성을 위한 전략과제를 도출하여 오로지 여기에만 매달린다. 돌격 앞으로 식의 하드웨어적 접근에만 익숙해 있다. 이들 목표달성은 사람이 한다. 그러나 조직구성원들을 위한 조직문화 개선에는 매우 인색하다. 조직문화는 마치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같은 취급을 한다. 문제는 오직 하드웨어 접근방식에 익숙한 조직의 목표 달성 방법에 있다. 압축성장의 경험을 가진 기성세대 리더들의 과거의 성공경험이 살아있는 전설로 회자되며 확인불가의 무용담까지 늘어놓아 분위기를 마치 전쟁터의 전투현장으로 탈바꿈시킨다.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하면 된다", "나를 따르라" 등의 전근대적인 꼰대의 방식으로 조직구성원들을 다그치고 몰아붙인다. 한마디로 시대정신을 결여한 '무식이 용감'한 현상이다. '화난 원숭이' 이야기로 우리 조직사회의 문화적 후진성을 묘사해본다. 원숭이 세 마리가 우리 안에서 화가 잔뜩 나서 얼굴이 빨개져 있다. 이유는 그 좋아하는 바나나를 눈앞에 두고 못 먹게 된 일이 발생한 것이다. 바나나 한 송이를 장대 끝에 꽂아 높이 세워 놓았다. 이틀을 굶은 배고픈 원숭이들은 바나나를 따먹으려고 점프하며 잡아채려는 찰나에 머리 위로 찬물 세례를 받게 된다. 세 마리가 교대로 바나나 낚아채기에 몰두할수록 찬물 세례는 계속된다. 한동안의 시간이 흘러 원숭이들은 지치고 힘들어 포기한다. "에이~ 이 바나나는 못 먹는 거야" 학습이 이루어진 것이다. 얼마 후 학습된 원숭이 한 마리를 우리에서 빼내고 새로운 원숭이 한 마리를 우리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 신입 원숭이는 저 맛있는 바나나를 먹지 않는 동료들을 야유하며 바나나를 잡기 위해 점프하는 순간 다른 두 마리의 원숭이가 양다리를 하나씩 잡고 늘어지며 "야, 그 바나나 건들지 마라!"며 강력 제지한다. 말 안 듣는 신입 원숭이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고참 두 마리 원숭이는 신입을 때려 혼내준다. 결국 한 마리씩 세대교체를 했지만 이후로 아무도 바나나를 손대지 않았다 한다. 이 화난 원숭이 이야기에서 우리 직장의 모습을 본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뭔가 조직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 아이디어를 낸다. 고참들은 "또야?"하며 귀찮아한다. "이봐 그건 우리도 다 알고 있고, 우리 팀장님이 안 좋아해. 주어진 일이나 열심히 해" 이 몇 마디를 몇 번 학습하면 분위기가 파악된 신입사원은 이후로는 침묵 모드로 전환 된다. 사육당하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쉽게 몸에 익힌다. 전통이 생겨난다. 이후의 신입들을 이들이 배운 대로 똑같이 다룬다. 몹쓸 전통이다. 이제 우리도 조직문화는 경영기법의 범주를 넘어 조직에서의 구성원들의 삶의 질은 물론 삶의 방식 전체로 이해되어야 하며, 모방하기 힘든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새롭게 인식되어야 한다. 밀레니얼세대들이 대세인 세상이다. 90년생들이 몰려오고 그들이 사회 곳곳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이들의 생각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조직문화 혁신이 경쟁력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즐거운 마음으로 가고 싶은 직장' 만들기로 기업은 물론 한 차원 높은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선진국으로의 국가품격에 국민들이 자부심 가득한 나라를 만들어보자./이세광 한국조직문화연구소장이세광 한국조직문화연구소장

2019-09-18 이세광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집가벌가: 도끼자루를 잡고 도끼자루를 벤다

최근에 형성된 '내로남불'이라는 용어는 현재 우리의 정치문화를 대변해주고 있다.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무디지만 남이 하면 공격해대는 것은 사실 정치문화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목격하고 느끼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개인적 도덕성의 타락으로만 볼 수 없고 오히려 사회 전체적 인식수준의 흐름으로 보아야 한다. '중용'에 도끼자루를 만들기 위해 산에 나무를 베러 가서 어떤 모양의 나무를 어느 정도의 크기로 벨지를 몰라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바로 자기 손에 도끼자루의 해답을 쥐고 있으면서 엉뚱하게 멀리서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은 허물을 저지르는 존재이지만 그 허물이 과하면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그 과한 허물을 법적인 죄라고 한다면 사회는 죄를 저지르면 범죄라 하여 처벌을 한다. 공자는 법을 어겨 처벌을 내리는 제도에만 의존하면 사회가 염치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경계하였다. 법적인 그물망만 저촉되지 않으면 된다는 인식이 보편화되면 양심에 바탕한 염치는 잃어버리게 되는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현대 법치사회는 보편성과 객관성 내지 형평성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제도를 구현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쉬운 구석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의 양심과 결단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진퇴의 판단은 자신의 몫이다. 다른 곳이 아닌 자신의 손에 잣대가 들려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9-18 철산 최정준

[참성단]삭발과 자유의지

추석 전 금기어로 '조국'이 꼽힌 적이 있다. '조국 정국'을 둘러싼 의견차이로 화기애애했던 술자리가 파탄(?)이 나는 경우가 발생하곤 했는데, 피를 나눈 가족들이라 해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추석이 지나고 나서는 '삭발'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양상이다. 다행히 서로 등 돌리고 헤어지는 '조국 논쟁'보다는 강도가 덜하다. 하지만 삭발 정치인들의 '결기'에 대한 평가는 희석되고 정치는 희화화되기 일쑤다. 삭발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분통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손톱의 네일아트에 관심을 갖는 격 아닌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과연 삭발을 할 것인지 여부도 안줏거리다. 이 대목에서 자유의지와 결정론을 다룬 SF작가 '테드 창'의 단편이 떠오른다. 소설에서는 버튼과 LED등이 달려있는 예측기라는 기계가 등장한다. 이 예측기는 버튼을 누르기 1초 전에 불빛이 반짝인다. '네거티브 타임 딜레이'란 회로가 장착돼 1초 전의 과거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예측기를 속일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장난감 같은 기계가 불러오는 파장이 엄청나다. 상당수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다시 말해 결정론을 신봉하게 되면서 선택행위 자체를 거부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무동무언증에 빠져 음식도 섭취하지 않는다.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만 소설 속 설정이기에 망정이지 내용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위안이라면 결정론과 관련해 모든 것이 결정돼 있으니 미래를 포기하라고 말하는 철학자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나 대표는 제대로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있을까? 철학적 사유가 아닌 정치역학적으로 볼 때 '정치예측기'는 삭발이라는 결정론적 틀을 갖추기 위해 점점 충전되고 있는 것 같다. 당 내의 삭발 요구 등으로 볼 때 나 대표의 선택범위가 점점 좁아지는 형국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 대표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다."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 자유의지의 가치가 깃들어 있다고 믿으며 정치권이 한번 낭송해보기를 권한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9-18 임성훈

[노트북]의정부시 'THE G&B 프로젝트' 성공하길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사는 지역을 평가하곤 한다. 어떤 도시는 주민 편의시설이 많아 살기 좋다는 소리를 듣는가 하면, 어떤 도시는 교통망이 잘 발달해 편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려한 자연환경 덕에 사람이 모여드는 도시도 있다. 이처럼 지역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고, 때로는 주관적이다. 도시의 가치를 평가하는 여러 항목 가운데 요즘 의정부시는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도시 곳곳에 꽃과 나무를 심고, 미관을 가꾸는 데 행정 역량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정부형 도시 녹화 사업인 'The G&B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초록의 'Green'과 아름다움을 뜻하는 'Beauty'의 앞글자를 딴 사업의 명칭처럼 푸르고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것이 이 사업의 목표다.안병용 시장은 출장차 방문했던 해외의 한 지자체에서 사업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눈만 돌리면 꽃과 나무가 있고, 잘 정돈된 거리의 모습을 보면서 도시의 외관을 가꾼다는 건 주민을 위한 일인 동시에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그의 구상처럼 'The G&B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가동할 경우 시의 경관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마을의 자투리 공간과 관공서 주변, 도로와 하천 주변이 모두 꽃과 나무로 채워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꽃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사람에게 미치는 심리적 안정감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공원과의 거리가 주택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단지 내 녹지 비율이 아파트를 대표하는 홍보 포인트가 될 정도로 생활 속 자연환경의 중요성은 커졌다. 꽃과 나무를 통해 도시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의정부시의 시도가 성공하길 바란다. 또 그것이 오랜 시간 각종 규제로 고통을 받은 지역 주민에게 치유와 보상이 되길 기대한다. /김도란 지역사회부(의정부) 기자 doran@kyeongin.com김도란 지역사회부(의정부) 기자

2019-09-17 김도란

[경인칼럼]조국 장관과 진영논리

장관 임명 후에도 정파 입장따라 갈등 계속찬반 구도 형성… 여야 지지층도 결집 양상한국사회의 분열 일으켰던 '편가르기' 우려중도층 정치 의사 반영될 곳은 점점 좁아져'포스트 조국 장관 임명' 정국의 대치는 이미 예견됐다. 자유한국당은 조국 사퇴를 압박하면서 문재인 정권 퇴진 투쟁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바른미래당 역시 조국 사퇴 이슈에서 한국당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조국 변수는 장관 임명 후에도 각 정파의 입장에 따라 복잡다단한 고차방정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정치지형의 새로운 축이 형성됐다. 보수 대 진보의 구도에 더해 조국 찬성 대 반대가 진영논리로 전환되면서 여당지지 성향은 임명 찬성, 야당 지지성향은 반대의 구도가 형성됐다. 적대적 공생의 극단적 구도가 강화되면서 양 진영의 지지층도 결집하는 양상이다.조국 후보자에 대한 찬반을 보수 대 진보의 진영 프레임에 가두는 설정은 조국 후보자에게 제기된 흠결을 덮는 효과가 있었다. 전형적 프레임 정치다. 조국 후보자와 가족, 주변에 제기된 의혹들은 정의와 공정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으며 이는 이념의 잣대로 봐서는 안된다는 논리는 보편적인 상식의 영역이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에서 조국 장관 임명에 반대하지만 진보적 의제에 동의하는 세력의 입지는 모호해졌다. 이미 진영싸움으로 번진 상황에서 조국 반대는 진보·여권 진영에서의 이탈을 의미하고, 이는 정치권과 관련 '업계' 종사자로서는 회복하기 힘든 치명상이다. 게다가 내년 총선을 의식하는 여당의원들로서는 비록 경선으로 공천을 결정한다해도 진영과 결이 다른 소신 발언은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는 자기검열이 작동할 것이다. 이는 조국 정국에서 입증된 바다. 공정과 정의, 평등 등 민주주의의 가치에 공감하지만 조국 임명을 반대한다면 이는 한국당과 동일시되며 매도되는 진영 논리는 또 다른 파시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당내 비판 세력의 부재와 맥락을 같이 하는 구태의 전형이다. 한국사회의 분열은 해방 공간의 극단적 편가르기였고, '빨갱이론'은 낙인효과로 상대를 매장시키는 살인 병기였다. 이승만과 박정희 등 독재세력의 전가의 보도였음은 말 할 나위가 없다. 진영논리는 편가르기의 다른 표현이다. 양 극단의 정치집단과 이념 사이에 분포하는 중도층의 정치적 의사가 표현되고 반영될 공간은 점점 협소해 지고 있다. 이른바 실검색어 전쟁이라고 불린 포털의 검색어도 과다대표와 과소대표의 문제를 그대로 노출시킨다. 거대 양당제의 기득 카르텔의 폐해는 조국 후보자를 둘러 싼 갈등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범여권을 지지했으나 조국 임명에 실망한 유권자가 한국당 지지로 정치 행태를 바꿀 가능성 역시 희박하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논리로 진영을 가르려는 태도는 위험할뿐더러 정치를 더욱 강대강의 적대적 구도로 몰고 갈 수밖에 없다. 식민사관이 아니더라도 조선정치는 분명 무리를 지어 당파를 형성하는 붕당정치의 폐해가 있었다.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사림정치가 남인·북인, 노론·소론으로 나뉘면서 극한적인 권력투쟁으로 이어지고 결국 목숨을 앗아가는 살육의 정치로 귀결되곤 했다. 그럼에도 조선의 사대부 정치에서는 삼사라는 언관들이 목숨을 걸고 진언과 충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른바 공론정치가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하는 강력한 시스템으로 작동한 것이다. 탄핵 받은 선비나 관료는 실체적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벼슬에서 물러났다. 탄핵을 받은 자체를 목민관으로서의 자격상실로 받아들인 추상같은 도덕성과 윤리가 작동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각 비서실에 선물했다는 춘풍추상의 글귀의 함의일 것이다. 내부견제가 작동하지 않는 권력은 진화할 수 없고, 강해지기 어렵다. 조국 사태는 한국정치에 많은 함의를 던지고 있다. 기승전 검찰개혁이 조국 장관 임명의 명분이었으나, 국민은 검찰개혁의 당위가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개혁 주체의 도덕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까. 검찰수사 결과가 조국 장관에 불리하게 나와도 정치검찰로 몰아붙이면서 검찰개혁만을 부르짖을지 지켜볼 일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9-09-17 최창렬

[참성단]시국선언

사회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 지식인들이나 종교인들이 모여서 시국이나 사회 현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것을 '시국선언(時局宣言)'이라고 한다. 암울한 군부 독재 시절을 경험한 우리에게 '시국선언'은 그리 낯선 단어는 아니다. 1970년대의 박정희 정권의 유신 시대부터 10·26, 12·12 그리고 1980년 '서울의 봄'.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과 1987년 6월 민주항쟁. 20여 년간 파노라마처럼 이어진 아픈 현대사에서 교수와 종교인의 시국선언은 국민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3·15부정선거에서 촉발된 4·19 혁명이 절정을 보인 1960년 4월 25일, 서울과 지방의 대학 교수 258명이 서울대 교수회관에 모여 발표한 시국 수습을 위한 14개 항의 전국대학교수단 시국선언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 낸 결정적 계기가 됐다. 70, 80년대 군사 독재가 민초를 끊임없이 짓밟아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각계의 시국선언은 들불처럼 피어올랐다. 교수단 시국선언은 학생들과 시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당시 시국선언은 절대적 권력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 행사라는 나름의 큰 의미가 있었다.하지만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시국선언은 시국에 편승해 본래의 뜻에서 크게 변질한 모습을 보인 적도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스크린 쿼터 사수, 제주 해군기지 중단 시국선언 등은 시국선언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집단의 일방적 주장이 여과 없이 노출되기도 했다. 특히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민주노동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시국선언을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내린 것은 선거운동이 시국선언으로 포장됐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가 시국선언을 불러냈다. 제자들의 '촛불시위'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던 전·현직 대학교수 2천여 명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국 법무부 장관의 교체를 요구하는 시국 선언서에 서명했다. 교수들은 시국 선언서에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의 사회정의와 윤리가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며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초심으로 돌아가길 요청한다"고 적었다. 정치적이나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교수들의 시국선언이라 눈길이 간다. 조국 장관 임명 후에도 의혹이 가시기는커녕 점점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점점 깊은 수렁 속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지 정말 걱정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9-17 이영재

[수요광장]단정하고 강한 항심(恒心)의 산문

부드러운 표현·진솔한 고백 '산문'비평집엔 시큰둥하던 친구도 반색충격적 정보 '스캔들화' 하는 요즘과잉문장으로 사람들 내면에 상처산문 통해 한시적 소음 벗어났으면얼마 전 처음으로 산문집을 한 권 냈다. 그동안 펴냈던 비평서들이 워낙 전문적 내용을 담고 있어서 지인들에게 읽어보라고 대뜸 주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과감하게 '자연인 아무개'가 간직하고 있는 섭렵과 경험의 기억들을 한번 읽어보라고 건네줄 수 있었다. 그렇게 글에는 전문성과 보편성 혹은 낯섦과 친숙함이 상대적으로 담기게 마련인데, 흔히 '산문'의 범주로 묶이는 것들은 대체로 부드러운 표현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욕망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산문'의 반대는 '비평'이 아니라 '운문'이 아니었던가.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리듬에 언어를 대응시켜 낭독과 음송에 어울리는 형식을 입힌 글을 운문이라고 한다면, 산문은 그러한 외적 리듬보다는 내용상의 명료함과 서사성을 강화하다 보니 생겨난 줄글 형식을 말한다. 장르로 말하면 소설, 수필, 비평 등이 모두 산문이다. 사전에서는 "운문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리듬이나 정형성에 제약받지 않는 자유로운 문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하지만 산문에 무한정한 자유가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장르적 관습(convention)과 함께 오랫동안 사람들이 그 장르를 통해 경험하고 또 기대해왔던 어떤 기율이나 원리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산문을 가장 잘 쓴 작가들은 누구일까. 내 기준으로 본다면 가장 심미적이고 예술적인 개성을 담은 산문을 쓴 분은, 일제강점기만 예로 든다면, 정지용과 이태준과 이효석과 김기림과 이상(李箱)이다. 이분들은 본인들의 주력 장르였던 시나 소설이나 비평만큼 아름다운 산문을 우리 문학사에 남겨주었다. 아쉽게도 김소월, 백석, 윤동주는 그분들이 남겨준 탁월한 시적 성과에 비해 산문적 충격은 약한 편이다. 반대로 산문에서 일가를 이룬 변영로, 양주동, 김진섭, 이양하, 피천득 등의 수필가들도 어김없이 떠오른다. 그 점에서 근대문학사는 산문의 일대 부흥을 이룬 시대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9세기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C. Baudelaire)는 산문을 일러 "영혼의 서정적 격정에도, 몽상의 파동에도, 의식의 충격에도 능히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하면서도 강한" 글이어야 하고, "이러한 이상(理想)은 무엇보다도 도시와 서로 무수하게 얽힌 복잡한 관계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운문인 서정시가 격정과 몽상과 충격을 순간적으로 주는 근대 이전 사회의 잔광(殘光)이라면, 산문은 막 떠오르는 근대 도시의 문학이요 서정시를 유연하고도 강하게 감싸고 있는 서광(曙光)임을 말함으로써, 자본주의가 형성시켜가는 '산문적 현실'을 토로한 것이다. 그만큼 산문은 근대의 본격적 산물인 셈이다.어쨌든 '산문'은 진솔한 고백을 통한 자기 확인을 욕망하면서, 특정 토픽에 대해 독자와 소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타자들의 눈과 귀를 열어줌으로써 그들의 삶과 생각에 충격과 변형을 주려는 계몽 의지가 그 안에 흐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러나 여기에서의 계몽이 위압적 훈계나 자기 확신의 강요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공감에의 간곡한 요청이요 오랜 경험과 기억을 나누자는 호소일 뿐이다. 그러니 문장이 글쓴이의 인격이나 사람됨을 담고 있다면, 그 대표 사례는 아마도 산문일 것이다. 그동안 진력해온 비평과 달리 산문이 이러한 소통과 공감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산문집을 건네니까, 비평집에는 시큰둥하던 친구들도 더러 반색을 해준다. 네 글이 재밌다면서 말이다. 나로서도 재미난 경험이 아닐 수 없다.우리는 지금, 충격적인 정보를 스캔들화(化)하는 데 앞장서는 과잉 문장들에 사람들의 내면적 상처가 오히려 깊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말을 고르고 다듬고 세련화해야 할 주체들이 그러한 언어 과잉을 통해 존재론적 잔명(殘命)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럴 때 한편으로는 친숙하고 평화로운 위안을 주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삶의 충전을 꾀하는 산문을 통해 그러한 한시적 소음에서 벗어나 단정하고 강한 항심(恒心)을 가다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9-09-17 유성호

[기고]경기북부지역 장애인고용의 현재와 미래

북부에 道 전체 장애인 31% 거주의무고용 사업체 비율은 21% 그쳐서울·경기남부 비해 대기업 적고직업훈련기관도 부족해 큰 아쉬움인적자원 활용 공동투자·실천 필요지난 8월 14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남북장애인고용 및 교류 활성화 방안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본 토론회에서는 '장애인 고용'이라는 의제로 남북의 장애인고용 관련 현황 및 제도를 비교해 보고 향후 발전적 교류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북장애인고용 및 교류 활성화가 가시화된다면, 남한에서 지리적으로 최북단에 위치한 장애인고용업무 수행기관인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경기북부지사가 가장 최전방에서 전초기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으로 예상하기에 본 토론회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 토론회를 통해 처음으로 접하게 된 북한의 장애인고용 현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 애써 보면서, 남북장애인고용 및 교류 활성화에 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아울러 분단과 이별의 아픔을 품고 있는 경기 북부지역의 장애인고용 현재와 미래전략에 대해 생각해봤다.먼저 현재 경기북부 지역의 장애인고용 환경은 어떠한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경기북부지사가 담당하고 있는 지역은 경기도 29개시와 2개군 중 9개시 2개군이다. 장애인구현황을 살펴보면 경기북부에는 경기도 전체 장애인의 31%에 해당하는 17만2천834명의 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다. 아울러 최근에는 신도시 건설과 도시의 팽창으로 장애인을 비롯한 인구의 유입이 가속화 하는 추세다. 한편 2018년 12월 기준 의무고용사업체 현황을 살펴보면 경기도 소재 의무고용 사업체수는 6천162개소로 전체 사업체 2만8천704개소 중 21.4%를 차지하고 있고, 경기북부 소재 사업체는 1천242개소로 경기도 사업체 중 20.1%를 차지한다. 장애 인구 비율에 비해 사업체의 비율은 낮은 것이다. 관내 사업장의 상황을 살펴보면 서울지역이나 기타 경기남부 지역에 비해 대기업의 비중이 매우 낮은 가운데, 중소영세 사업장의 분포도가 높고 제조업 비중이 높은 특성을 보인다. 공단 산하 장애인고용서비스 기관 현황을 살펴보면 경기도에는 경기지역본부, 경기동부지사, 경기북부지사가 있다. 직업훈련기관으로는 수원에 위치한 경기발달장애인훈련센터, 판교지역에 올 하반기 개소 예정인 경기맞춤훈련센터가 있다. 인천에는 인천발달장애인훈련센터, 인천맞춤훈련센터가 운영 중이다. 반면 경기북부에는 국내 최초로 1992년부터 운영된 공공직업훈련기관인 일산직업능력개발원 외에는 아직 새로운 직업훈련기관이 설립되지 못한 실정이다.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발달장애인의 직업훈련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경기북부지역 발달장애인 부모와 당사자들이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 일례로 올해 초 수원에 경기도발달장애인훈련센터가 설립됐지만, 경기북부지역 거주 발달장애인들은 편도 이용거리가 2시간30분에 달해 현실적으로 이용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경기북부 발달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훈련센터 설립이 시급한 이유다.경기북부는 장애인고용에 있어 다양한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남북장애인고용활성화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경기북부지사에서는 올 하반기부터 경기도청, 경기장애인부모연대 북부사업단, 교육청, 관내 장애인 고용기업의 자원을 연계해 중증장애인의 고용기회를 확대하는 상생고용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관내 직재시설 표준사업장화, 컨소시엄형 장애인표준사업장 설립 등 다양한 방식을 적용, 다양한 주체들과 손을 잡고 범 장애인고용협력체계 구축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경기북부 지역은 장애인 인적자원이 풍부한 특성을 갖고 있으므로 이들의 직업적 잠재력을 극대화할 체계적인 직업훈련 및 직업지원 서비스 제공과 장애인고용 기업에 대한 최적의 지원을 통해 밝은 미래를 열어가고자 한다. 장애인고용이라는 공동이슈에 대한 다양한 주체들의 공동투자와 공동실천이 필요한 때다.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이효성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경기북부지사장이효성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경기북부지사장

2019-09-17 이효성

[윤상철 칼럼]불공정의 사회, 불신의 사회

공정·진보 상징 법무장관 임명자자녀 입시과정서 특혜·편법 의혹분노한 20代 청년 후보퇴진 호소대통령은 "나쁜 선례될 것" 훈계개혁 배반 가치 내장 사회는 파산아들과 엄마는 설전 중이다. 대학 졸업과 취업을 앞두고 모자는 예민해져 있다. 엄마의 눈에는 취업을 준비하는 아들이 느슨해 보이지만, 아들은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한다. 모자간의 대화 아닌 갈등은 길게 이어지지만 세대 간의 균열을 보여줄 뿐이다. 엄마는 걱정 섞인 질책을 하고, 아들은 물려줄 건물이 있는지, 소개해줄(아들 세대는 '꽂아줄'로 표현한다) 인턴이나 일자리는 있는지 항변하면서 간섭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이미 아들은 취업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체득하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경쟁의 공정성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아들은 대학 입시와 군복무를 마칠 때까지 이 사회의 공정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부모와 학교로부터 배운 공정성과 정직성의 가치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열심히 노력하면 사회는 자신에게 반드시 보상하리라고 기대하였다. 이제 불공정한 이 사회에서 살아갈 방법을 깨달은 듯했다. 아마도 아들은 부모의 시대착오적 현실인식이나 사회적 무능력을 탓하거나 스스로 좌절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부모는 아들의 판단과 선택을 그저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이 시점에 이른바 최고 대학의 법대 교수이자 공정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의 진보적 상징이었고, 젊은 세대의 멘토였으며, 이른바 촛불정부의 민정수석을 거쳐 법무부장관에 임명된 사람의 특권적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보통사람들에게는 가시밭길이자 지뢰지대인 고교 이후 의학전문 대학원까지의 입시과정을 그의 자식들은 공항의 무빙워크를 걷는 듯했다. 그 과정에서 온갖 특혜와 편법 등이 동원되었고, 위법으로 의심되는 사안들도 더러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사회적 격려가 주어지기도 했다. 20대 청년들은 즉각 분노했다. 직접 관련된 대학의 학생들은 극한의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위법이나 불법, 탈법이나 편법을 넘어서서, 가치와 도덕의 아노미에 빠진 이 사회를 고발하고 그 위선적인 당사자의 퇴진을 외쳤다. 국민들은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경계를 넘나드는 법무장관 후보에 대해 대통령이 바로 잡아 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개혁성이 강한' 후보를 격려하는 반면 국민들에게는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훈계하였다. 지식인들은 익명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거나 심지어 답변을 거부하기도 했다. 개인적 일탈이나 위선으로 판단하거나 심지어 세대의 문제로 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지배집단의 도덕적 불감증으로 보기도 한다. 다른 이는 자기주장이나 자기 정당화가 강하여 객관적인 자기평가를 할 수 없다고 한다. 환경 안에서의 인간의 한계로 말하기도 한다. 자녀교육의 문제라고 설득하려 한다. 심지어 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작은 것은 희생할 수도 있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자신들의 문제인 양 다양한 변명을 만들어낸다.설사 이 문제가 특정한 개인이나 세대의 문제인가? 그 개인의 과거와 현재를 정치적, 진영적 논리로 덮어버리는 다른 정치지도자나 정치지지자들이 있는 한, 이제 우리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문제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밝혀졌을 때에 특정한 개인이나 세대의 문제로 만들 수 있는 다른 개인이나 세대가 있었다면, 20대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모든 개인들과 세대들은 이제까지 견지해온 사회적 가치와 사회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면서 안도하는 심정으로 조용히 퇴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특히 젊은 세대들이 그러한 편법적, 탈법적 행태에서 도덕과 가치를 붕괴시키고 오로지 더 많은 것들과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을 사회적 가치로 체화한다면, 그 장관과 이 정부가 이루고자 하는 개혁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젊은 세대를 좌절시켜 사회적 삶의 준거를 잃어버리게 한다면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개혁을 한다는 것인가? 보다 정의롭고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개혁이 정치적 권력 경쟁의 슬로건으로 전락하고, 그로 인해 시민들에게 개혁에 배반하는 가치를 내장하게 한다면 이 사회의 파산은 불을 보듯 명확할 뿐이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9-09-16 윤상철

[참성단]포토라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93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출석하다가 봉변을 당했다. 언론의 취재경쟁에 휩쓸려 기자의 카메라에 부딪혀 이마가 찢어진 것이다. 언론단체는 이런 난장판 취재를 막기위해 1994년 포토라인 운영 선포문을 만들었다. 이후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주요 사건 피의자들은 검찰과 경찰에 출석할 때마다 포토라인에 멈춰선 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통과의례를 거친다. 사회적 성취와 명예, 도덕적 권위가 큰 공인일수록 포토라인에서 무너진 명예를 감당하기 힘들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9년 박연차 게이트로 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뒤 3주 뒤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평검사들과 맞짱 토론을 벌일 정도로 검찰개혁 의지를 불태웠다. 검찰청 포토라인 통과의례 자체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엔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영장심사를 받기 전 수갑을 찬 채 포토라인에 섰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포토라인의 법적 근거는 없다. 국민의 알권리를 대신하는 언론의 취재 편의를 검·경이 묵시적으로 양해한 관행이다. 하지만 포토라인이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고, 그 자체가 사회적 형벌이라는 비판도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청 포토라인을 당당하게 무시하고 패싱한 것도 이 때문이다.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포토라인 폐지를 포함해 피의사실 공표를 전면 제한하는 훈령 제정을 추진할 모양이다. 사실 당정이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관행을 손보기로 마음 먹은지는 오래됐다. '논두렁 시계' 논란으로 노 전 대통령을 잃었다는 오래된 분노가 배경이다. 법무부가 마련한 초안에 따르면 검찰은 일체의 피의사실을 공개해선 안된다. 피의자 검찰 출석 공개와 소환날짜 공개도 안된다.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 내용을 유포한 검사를 감찰할 권한을 준다고 한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깜깜이 수사에 따른 부작용과 국민 알 권리 침해를 우려하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죄추정의 원칙 실현과 국민의 알 권리를 절충한 논의가 진행돼야 할 사안이다. 그리고 미안한 얘기지만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 종료 이후에 거론해야 맞다. 수사 전 과정이 생중계된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봐도 그렇고, 직전 장관도 조국 사태 때문에 유보한 사안 아닌가. 조 장관 일가의 검찰 수사와 검찰 출두를 앞두고 갑자기 '피의사실 공개 금지' 원칙을 강조하면, 그 원칙이 의심받는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9-16 윤인수

[발언대]직원의 행복을 시민의 행복으로

안성경찰서 직장분위기에 신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달 취임한 김동락 서장은 강원도 화천서장을 비롯해 경찰서장을 네번째 하고 있다. 직원들의 복지처우 개선을 최우선시하는 서장의 노하우는 남다르다. 본서 근무복을 입는 내근직원들의 편안함과 활동성을 고려해 매주 수요일 가정의 날에 한해 '사복데이'를 지난 8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또한 민원실 직원들은 업무 특성상 항시 교대로 점심을 먹고 휴식시간이 없는 점을 감안해, 9월부터 월 2회 민원실 전원이 다 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동료 직원들이 업무를 지원하는 '민원실 지원근무'도 시행할 계획이다.'좋은 직장 만들기'는 우리들의 행복을 시민행복으로 승화시키는 활동이다. 고객인 시민에게 행복을 전달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행복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들의 행복을 찾고 즐기는데, 서장이 그 선봉에 나서 그동안 엄두도 못 냈던 직장 분위기를 개혁하고 있다. 특히 내가 몸담고 있는 경찰의 조직 문화는 다른 공공기관들과는 달리 상하를 뚜렷이 구분하는 계급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현 사회 분위기에 다소 부합되지는 않지만 상명하복의 문화가 사실상 존재한다. 그러기에 조직의 수장이 개혁의 물꼬를 터주지 않는다면 아래로부터의 개혁은 성공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서장의 '좋은 직장 만들기'로 발생된 행복 바이러스는 직원들뿐 아니라 경찰서를 찾는 민원인과 지역주민들에게까지 전파돼 어느 경찰서보다 더 좋은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성과로도 이어져 실제 2019년도 치안고객만족도 상반기 평가 도내 1위, 직무만족도 도내 5위를 차지했다. 직장의 힘든 일과를 마치고,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찾는 곳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가정이다. 정시 퇴근을 위해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퇴근을 독려하는 지휘관과 함께 근무하는 우리들은 행복하다. '명장 밑에 용장 나오고, 명장 밑에 약졸 없다'는 옛말이 있듯이 다음에는 우리 경찰서에 어느 용장이 또 나올지 기대된다./이우희 안성경찰서 경무계장이우희 안성경찰서 경무계장

2019-09-16 이우희

[자치단상]'스마트 행복도시'의 꿈을 찾아서

인구 80만명·1인당 GDP 3110달러의 소국느리더라도 모두가 만족하는 길 택한 부탄경쟁치중 빈부격차 커져가는 한국에 교훈패자에게 기회주는 사회 안전망 만들어야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다. 2만 달러 달성 이후 12년 만에 이룩한 쾌거이고, 인구 5천만 이상 국가 중에서는 7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눈부신 경제발전을 달성해왔다.하지만 경제적 풍요와 비교해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이라는 측면에서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도 많다. OECD 34개국 중에서 우리나라의 행복순위는 32위다. 전 세계 행복평등도 순위는 96위다. 국가경제력과 비교해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이 전체적으로 낮고 구성원 간의 행복감 편차는 심하다는 뜻이다.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우리 사회를 '패자부활'이 어려운 사회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실패나 질병에 대한 위기감도 컸다. '사업실패나 파산 등의 상황을 맞이하면 웬만하면 회복할 수 없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55.9%였다. 패자를 일으켜 줄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강한 것이다.이러한 결과는 지금까지 우리가 달성해온 경제적 풍요로움이 행복으로 직결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안양시장으로서 '시민과 함께하는 스마트행복도시 안양'이라는 시 슬로건을 내걸고 시정에 임하고 있다. 모든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4차산업혁명 육성, 시민소통 강화, 청년이 살고 싶은 도시 안양 등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민 끝에 히말라야 산맥에 자리한 작은 나라, 부탄을 찾았다. 인구가 80만 명밖에 되지 않고 1인당 국민소득(GDP)이 3천110달러에 불과한 나라. 그런데도 행복평등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그 행복의 비밀을 발견하기 위해 '부탄'을 찾아 부탄 총리와 각 부처 장관들을 만나고 돌아왔다.디첸 완모 보건부 장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완모 장관은 "부탄의 4대 왕이신 '지그메 싱게 왕축'은 한나라의 발전 정도는 사람들의 행복에 의해 측정돼야 하며, 따라서 GDP보다 GNH(국민총행복)를 더 중요하게 여기셨다"고 강조했다. 조금 느리더라도 가능한 최대의 국민이 행복한 길을 택하는 것. 그게 행복국가 부탄의 비밀이었다.심지어 로테이 체링 부탄 총리는 "국왕은 지금의 부탄이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빠르게 진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최신 기술을 시민의 삶에 접목하면 행복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으로 생각했던 내게 울림을 주는 이야기였다.물론, 경제성장과 국민행복은 모두 중요하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안락 중에 어느 하나만 고를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부탄 총리의 말은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기에 충분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우리 사회는 그동안 충분히 오랜 시간 경제성장 제일주의 속에서 지나친 경쟁을 치러왔다.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 빈부격차가 심화됐고 정을 기반으로 하는 마을 공동체가 파괴됐으며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비정한 사회가 됐다.이제 우리도 오직 '성장'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국민총행복의 관점에서 바라볼 시기가 됐다. 교육, 의료 등 사람이 갖춰야 할 기본적 권리에 해당하는 사회 안전망을 더욱 촘촘히 만들고 국민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패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너그러운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성장을 위해 일부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던 시대를 넘어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삶을 향유하고 나눌 수 있는 시대로, 지금까지의 노력으로 달성한 경제적 풍요로움이 조금은 더 국민의 행복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절실한 시점이다./최대호 안양시장최대호 안양시장

2019-09-16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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