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참성단]'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서구의 직장문화는 수평적이고 개인주의적이다. 냉정한 고용계약이 바탕에 있다. 미국 회사의 고용 계약서에는 '당신은 임의로 고용된 근로자이며 이는 회사가 당신을 언제든지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무시무시한 문구가 있다. 취업 리얼리티쇼를 진행했던 트럼프는 "You're Fired(넌 해고야)"라고 소리쳤지만, 실제로는 회사가 직원을 자르는데 큰 소리칠 이유가 없다. 출입증을 정지하고 컴퓨터 로그인을 막거나, 조용히 불러 통보하면 그걸로 끝이다. 사정이 이러니 직원들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태도로 회사와 상사를 대한다.반면에 유교적 전통이 유장한 우리나라 직장문화는 이와 사뭇 달랐다. 고용계약서는 존재하지만 한번 직장은 평생직장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회사도 직원들을 가족으로 여기며 범죄적 해사행위가 아니면 고용을 유지했다. 집안마다 가풍이 다르듯 회사마다 고유한 사풍으로 직원들을 통제하는 폐쇄적 구조는 직급에 따른 수직적 상명하복 직장문화를 만들어냈다. 상사의 지시가 부당해도, 폭언은 물론 폭행을 당해도 조직을 위해 참고 넘기는 걸 미덕으로 여겼다.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평생직장 개념이 깨지는 중이고 고용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노동조합의 권력은 정부와 정당만큼 강력하고, 무엇보다 신세대 직장인들의 근로의식은 유교문화와 거리가 멀다. 직원들에게 막말하고 부당한 지시를 남발하는 상사들은 직원들의 요시찰 대상이 된다.이런 시대적 추세에도 여전히 직장 갑질을 일삼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오늘부터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즉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됐다.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 우월적 지위나 관계를 이용해 ▲업무상의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는 금지된다. 가해자 대신 사용자가 처벌받는다. 직장내 괴롭힘이 없도록 직원들 교육을 똑바로 시키라는 뜻이다.폭력적인 직장문화를 바꾸고 이를 법으로 강제하는 일은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직원을 존중하는 자발적 환경변화일 것이다. 귀하게 얻은 인재를 직장내 괴롭힘으로 잃을 바보 같은 기업은 없다. 천지에 청년 실업자가 널려있고 이들을 값싸게 고용하는 현실이 직장내 폭력의 근본적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7-15 윤인수

[홍창진 칼럼]부부

부부 사랑은 '서로 주고 나누는 것'일방적일땐 상처… 공감능력 필요인격은 물론 '마음'까지 보살펴야이혼위기 왔을 때 이혼은 답 아냐부부의 인연 지속위해 '사랑이 답'부부로 인연을 맺고 사는 일은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둘을 연결하기 때문에 생기게 됩니다. 부부의 알맹이는 사랑입니다. 부부 사랑은 서로 주고 나누는 것이어서 어느 한 편이 일방적으로 주고 어느 한 편이 일방적으로 받는다면 반드시 한 편에 상처가 남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부부 사랑을 유지하려면 공감능력이 필요합니다. 서로를 살피고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해주어야 합니다. 공감능력이 부족해 자신이 원하는 것만 고집하는 사람들은 결국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부부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이전에 자신만을 사랑하던 때로 돌아서는 부부가 많습니다. 연애 감정도 사라지고 아이 키우는 일에 지치면서 어느새 부부의 알맹이인 사랑은 사라지고 결혼 전 솔로의 세계로 회귀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알맹이를 잃고 거죽만 남은 채 홀로 된 사람들은 가끔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알맹이를 채워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실패한 부부 생활을 다시 시작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전에 맺은 부부의 인연은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고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그것은 식어버린 자기감정만 보기 때문입니다. 부부 사랑에 있어 감정은 일부일 뿐 그것이 사랑의 전부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부부 사랑은 두 인격이 진지하게 나누는 보다 책임 있는 행위입니다. 중요한 경기에서 페널티 킥을 실축한 축구 선수에게 다시 한 번 공을 차도록 기회를 주는 심판은 없습니다. 결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잃어버린 사랑의 알맹이를 누군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개인적으로 사별이나 사기 결혼 외에 재혼을 반대합니다. 최근 저명한 인사가 새로운 사랑을 만났다며 지금 배우자와의 이혼을 법정 다툼으로 몰고 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세상의 평가도 다양합니다. 사랑 없는 결혼을 지속할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있고 법이 보장하는 혼인의 신성함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일전에 제가 담당하고 있는 성당에 초상이 생겼습니다. 50대 후반에 5평 남짓한 쪽방에 사는 독거자였습니다. 그는 성당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천주교 세례를 받은 사람이어서 한 달에 한 번 성당의 봉사자들이 방문해 간단한 식음료를 챙겨드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 봉사자들이 한 달 주기가 되어 그 집을 가보니 그는 이미 3주 전에 사망해 시신에서 악취가 나고 있었습니다.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연고자를 찾았습니다. 동생이 천주교 신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는 봉사자들의 얘기를 듣고 수소문 끝에 동생 신부님을 찾았습니다. 그 신부님은 당시 큰 수도원 원장님이었습니다. 저도 명성을 들어 잘 아는 신부님이었지요.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로마 유학을 거쳐 수도원장에 이르는 종교계의 엘리트였습니다.둘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수도원을 들어갈 때만 해도 형님은 사업가로 성공한 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부양은 걱정하지 않고 신부의 길을 선택했는데 갑자기 닥친 사업실패와 이혼이 형님을 폐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당장에라도 수도원을 나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내가 맺은 하느님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신부들은 하느님과 사랑에 빠져 하느님과 결혼하는 사람들이니 그분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신부의 알맹이는 하느님 사랑이니까요.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하는 사랑은 그와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하나요? 공감능력이 없는 아이처럼 자기만 좋으면 내 짝은 상처를 받든 말든 상관 않는 사람들이 하는 사랑을 과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단순한 자기감정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인격은 물론 세세한 마음까지 보살피고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나는 사라지고 내가 너가 되고 그가 내가 되는 것입니다. 이혼의 위기가 왔을 때에 이혼은 답이 아닙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의 힘으로 공감능력을 회복해 부부의 인연을 지속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에게 상처만 주고 본인도 상처받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07-15 홍창진

[자치단상]부천시 행정혁신 완성, 광역동 전환

기존 36개 행정동 → 10개 '행정체제 개편'주민밀착 사무위주 현장·복지서비스 강화민원처리 빨라지고 주민자치 활성화 기대26개 남는 청사 '교육·여가' 등 활용 계획부천시는 지난 1일 기존 36개 행정동을 10개 부천형 광역동(廣域洞)으로 행정체제를 개편했다. 전국 유일무이의 행정혁신이다. ■ 행정환경 부합, 미래지향형 행정체제 개편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전국기준 인구동향은 전년 대비 출생 6.2%, 사망 13.6%, 혼인 2.7%가 감소했다. 인구총조사 결과 노인인구가 2000년 7.3%에서 2010년 11.3%로 증가했다. 인구는 급격히 줄어드는데 노인인구는 꾸준히 늘었다. 고령층·여성·청소년 계층의 복지행정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인구구조의 변화로 인해 세수가 줄어 지자체는 사업 재원 마련에 허덕이고 있다. 지자체의 '일하는 조직과 방식'이 과연 미래지향적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수요자 중심 광역 행정조직, 광역동부천시 인구는 약 87만이고 면적은 53.44㎢이다. 행정동 관할 평균면적이 1.48㎢로 전국 행정동 평균면적 5.10㎢, 경기도 28개 시 행정동 평균면적 5.38㎢와 비교해도 좁다. 게다가 사통팔달 도로, 대중교통 등 기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행정기관 접근성이 좋다. 30분 정도면 어디든 도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IT강국답게 전산·온라인화, 각종 민원증명 발급기관 확대로 행정기관 방문 처리 사무는 줄고 있다. 부천시는 복지행정수요의 증가, 세수부족, 행정기관 접근성 발달, 행정사무 온라인화 등의 배경을 바탕으로 수요자 중심의 행정혁신을 결정했다. 핵심은 26개 일반동을 10개 책임동으로 합쳐 광역동으로 개편하고, 공무원 증원없이 주민밀착 사무위주로 '현장·복지' 행정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이다. ■ 전국 지자체 중 최초 일반구 폐지부천시의 이러한 행정개혁은 처음이 아니다. 3년 전에도 시-구-동의 3단계 중층 구조를 폐지하고 시-동(책임·일반동) 2단계 개편을 했다. 당시에도 최초의 일반구 폐지였다. 부천시는 1988년 인구 50만 이상 도시로 중구·남구를 설치했다가 1993년 1개 구를 신설해 원미·소사·오정구로 명칭을 변경, 3개 구를 운영해 왔다. 그러나 3개 구 간 심각한 행정적 불균형, 동 인력부족, 시·구 사무중복 등으로 지난 2016년 7월 4일 책임동 10개·일반동 26개로 과도기 광역센터를 추진했었다. ■ '현장·복지' 행정서비스 강화부천시는 다시 일반동을 책임동에 흡수시키는 광역동을 시행함으로써 적어도 여섯가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먼저 민원처리가 빨라질 것이다. 시가 담당했던 235개의 사무를 광역동으로 이관해 '작은 구청'의 역할을 하게 할 것이므로 인허가 등 생활민원을 자체 처리 하게 된다. 두 번째로 주민생활이 보다 편리해진다. 청소, 소도로, 가로등·보안등 등을 광역동에서 직접 관리하는 등 현장행정이 강화된다. 세 번째, 보건·복지 서비스가 확대·강화된다. 방문건강관리 및 복지서비스 연계 등 찾아가는 복지행정이 광역동에서 추진된다. 네 번째 주민자치가 보다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주민자치회 전환으로 주민이 주도해 마을사업을 계획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됐다. 다섯 번째 폐지된 행정동 청사를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다. 26개의 남는 청사는 교육·여가·문화·복지 등 주민편익시설로 활용할 계획이다. 여섯 번째 행정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행정조직 재편으로 26개 통합동 근무인력을 주민생활지원·현장행정 분야로 전환 배치했기 때문이다. ■ 부천시 행정혁신 완성, 이정표 기대부천시 행정혁신을 대외에 알리는 광역동 개청식은 끝났지만 극복해야 될 과제도 있다. 일부 광역동 청사는 증원된 직원수용에 '사무·편의·주차' 공간이 협소하다. 광역동 설치기준이 인구 7만~10만명 규모로 행정구역 획정 시 선거구 고려를 권고하고 있다. 행정구역과 생활권 일치 추진이 과제로 남았다.시민과 공무원의 다양한 고견을 듣고, 불편사항 해소 방안을 만들겠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행정체제 개편에 노력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부천시민과 공무원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70여 년간 '획일적·경직적'으로 유지되던 지자체 동(洞)의 부천형 행정체제 개편이 대한민국 행정사에 이정표로 제시될 수 있기를 감히 기대해 본다./장덕천 부천시장장덕천 부천시장

2019-07-15 장덕천

[오늘의 창]'기대 반, 우려 반' 민간인 체육회장

"저희도 답답해요. 정치와 체육을 떼어놓자고 하는 일인데…."수화기 너머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대한체육회 한 관계자는 "여·야 정치권의 입장 차가 너무 크다"며 "이달(6월) 안에는 (민간인 체육회장) 선출 방식을 정하고, 7월 둘째 주까지는 가이드라인을 공개할 것이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토로했다.전국 17개 시·도(시·군·구)는 올해 안에 체육회장을 새로 선출하게 된다.'시장(市長)'이나 '도지사(道知事)' 등의 체육단체장 겸직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자치단체장 등이 맡은 현 체육회장의 임기(내년 1월 중순)가 끝나기 전에 민간인으로 새 회장을 뽑아야 한다.'정치와 체육의 분리', '체육의 독립성과 자율성 확립', '체육 단체의 선거조직 이용 차단' 등이 법의 개정 취지다.하지만 정작 체육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체육회장을 겸임하던 자치단체장이 물러나고 민간인 체육회장이 들어서면, 지자체에 손을 벌리기가 더 어려울 것이란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만약 단체장과 '코드'가 맞지 않는 민간인 체육회장이 선출될 경우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되다시피 하는 체육회와 직장경기운동부 등이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을 뒷받침하고 있는 지자체 소속 실업팀 등이 예산 부족으로 휘청거리면, 초·중·고교·대학 운동부 등도 줄줄이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민간인 체육회장이 자치단체로부터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민간인 체육회장은 연내 선거를 통해 뽑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는 분위기다. 체육계는 벌써 선거 과열, 줄 세우기, 공정성 시비 등을 염려한다. 대한체육회가 이달 중 발표할 체육회장 선출 방안 등에 대해 체육계 안팎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임승재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임승재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

2019-07-15 임승재

[노트북]공직자 변화·의식 개선 '디테일의 행정'

"디자인하지 않으면 사임하라(Design or resign)!"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이 한 말이다. 디자인이 기업의 핵심 가치로 떠오른지 오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나 잭 웰치 GE 전 회장은 21세기 경영의 승부처로 디자인을 꼽았다. 행정이라고 다르지 않다. 최근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시민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따뜻한 행정이 필요하다. 공직자가 추구하는 것은 시민에게 참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디테일한 행동으로 이 가치를 실현할 때 지속가능성이 담보된다"고 말했다. 공직자들에게 따뜻한 행정, 참 가치를 주문하면서 그것을 '디테일한 행동'으로 실현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디자인이 색의 빛깔, 선의 유연함, 재질의 질감 등 미세한 디테일에서 격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처럼 조 시장은 공직자 행동의 디테일을 개선하는 데서 행정을 개혁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공직자 스스로 의식 전환이 안되면 (그것은)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다"고도 했다. 디테일에 강한 문화를 세우기 위해 공직자가 본인의 작은 습관을 바꿔야 한다며, 행동을 바꾸고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라고 요구한다. 시는 이러한 '디테일의 행정'을 3기 신도시에도 적용하고 있다. 조 시장은 LH나 국토부 주체가 아니라 "시와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우리 시의 미래도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왕숙신도시 이매진 콘테스트(imagine contest)를 열고, 월례회의에서 3기 신도시 관련 콩트를 만드는 등 3기 신도시를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덕분에 남양주 3기 신도시에 대한 수많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직원들간 토론 문화가 형성되면서 남양주에 의한 남양주 만의 도시를 만드는 첫 걸음이 시작되고 있다. 조 시장의 '디테일의 행정'이 성공하려면 그가 주문한 것처럼 공직 사회 스스로가 변화되고 기존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 또한 그에 대한 시민 동참이 필요하다. 부디 조 시장의 개혁바람이 제2건국운동으로 확산돼 정약용의 후예답다는 평을 듣길 바란다. /이종우 지역사회부(남양주) 기자 ljw@kyeongin.com이종우 지역사회부(남양주) 기자

2019-07-14 이종우

[데스크 칼럼]두 개의 자아(自我)

인간의 뇌, 한쪽은 계획·다른쪽은 방해 '명령'누구나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유혹 휘말려인생의 진정한 실패자는 '희망 포기한 사람'자신위한다면 '이야기하는 자아' 귀기울여야나이가 들수록 TV 리모컨(리모트 컨트롤·remote control)의 유혹을 떨쳐내기가 힘들다. 모처럼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거나 읽고 싶었던 책이라도 찾아보려고 하면, 어디선가 리모컨이 짠하고 나타난다. 재미난 볼거리가 가득 찬 영상세계의 문을 열어주는 리모컨의 유혹은 항상 즐겁다. 요즘처럼 재밌고 다양한 예능· 교양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케이블TV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단점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거다. '30분만, 딱 한 편만 보고'라고 했다가 어느새 리모컨의 메뉴 단추를 눌러 미처 보지 못한 전편이나 다른 프로그램(대부분 유료임에도)을 찾아내 밤늦도록 누워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리모컨에 곁눈질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한 날도 어김없이 손에는 리모컨이 쥐어져 있다.학자들은 인간의 한쪽에서는 계획을 세우도록 명령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것을 방해하도록 하는 두 개의 뇌가 있는데 이를 두고 서로 다른 자아(自我)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운동이나 독서를 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자아보다 소파에 누워 재밌는 드라마를 보자고 하는 또 다른 자아의 힘이 더 강력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출신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교수는 자신의 저서(호모데우스)에서 전자를 '이야기하는 자아', 후자를 '경험하는 자아'라고 설명하고 있다. 새해를 맞아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매일 운동하기로 하고 막상 운동할 시간이 되면 운동하러 가고 싶지 않아 피자를 주문한 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켜는 것은 '경험하는 자아'가 '이야기하는 자아'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여름휴가에 맞춰 식스팩 복근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거나, 비키니를 입고 해변을 거닐겠다고 마음을 다진 청춘남녀들이 닭가슴살과 식욕을 억제하는 건강식품으로 식단을 조절하고 하루 2~3시간씩 열심히 운동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TV를 켜면 유독 '먹방' 프로그램만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어도 눈앞에서 음식이 아른거리고 뱃속에서는 먹을 것을 넣어 달라고 야단이다. 결국 '맛있는 녀석들' 프로그램을 보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항복선언'을 하고 피자를 주문한다. 당장 건강을 해치거나 신앙을 저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둥, 내일부터 하면 된다는 누구나 다 생각하는 '꼼수'를 신의 한 수인양 찾아내 스스로 위안한다.예전에 다녔던 인천 중구 중앙동의 한 피트니스센터 사장이 고깃집 때문에 황당한 일을 겪었던 얘기다. 시설도 깔끔한 피트니스센터는 2층에 있었는데 어느 날 아래층에 고깃집이 들어섰다. 날씨가 따듯해지면서 창문을 연 뒤로 회원들이 줄기 시작했다. 러닝머신 위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으면 창문을 통해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고, 운동 중에 배고픔을 참지 못한 회원들이 다른 곳으로 옮겼던 것이다. 피트니스 사장은 어쩔 수 없이 창문을 막고 환기시설과 냉방시설을 추가로 설치했다. 운동 중에 맡는 고기 굽는 냄새는 정말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때 알았다. 고깃집 위층에 피트니스센터를 열면 폭삭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누구나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다. 인생의 진정한 실패자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희망을 포기한 사람이라고 한다. 단맛은 먼저 다가와 짧게 머무르겠지만, 쓴맛은 나중에 찾아와 길게 남게 된다.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쉽고 편한 것에 만족하다 보면 나아지는 삶이 아니라 정체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나 자신을 위한다면 '이야기하는 자아'의 말에도 귀 기울여 보자. 눈과 입에 즐거운 것만 찾다 보면 몸과 생각의 근육은 둔해지게 마련이다./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2019-07-14 이진호

[월요논단]정책과 리더십의 변화가 필요한 박남춘 시장

키워드 불분명·시민역량 결집 미흡혁신·소통 주장 불구 '변화' 못느껴교통·원도심 재생 가시적 효과 없어적수 등 현안대처 방식 '큰 실망감'경제 살리기·선도사업 집중 필요2019년 3월 45.5%에서 6월 39.1%로 하락. 리얼미터가 발표한 박남춘 인천광역시장에 대한 직무수행지지도다. 물론 예상치 못한 수돗물 사태가 6월 지표에 반영돼 하락한 점이 크다. 같은 시기인 7월 1주차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평가 52.4%, 더불어 민주당의 지지도 42.1%보다도 낮았다는 점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많은 기대를 갖고 출발한 박 시장은 5대 시정목표에 20개 핵심전략 그리고 140개의 공약과제를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다.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방식도 파격적이다. 신선하다는 평가와 다소 당황스럽다는 평가가 공존하지만 과거와 다른 것은 분명하다. 소외된 계층과 시민들을 우선하며 현장을 누비는 방식도 눈에 띈다. 그런데도 시민들의 지지도는 여전히 차갑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인천의 행정이 공약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첫째 원인은 공약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전문가·공무원·시민들이 당선 후 6개월간 다듬은 공약들이다. 그렇다면 인천을 대표하는 비전은 무엇인가. 한때 인천은 트라이포트, 경제수도 등으로 불렸다. 그러나 박 시장을 대변하는 키워드가 무엇인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시민들의 힘을 모으는 구심점이 미흡하다는 뜻이다.둘째, 시민들의 체감도가 낮다는 점이다. 박 시장은 혁신과 소통을 말하지만 정작 시민들은 무엇이 변하였는지 느끼지 못한다. 아마 시·군·구가 자체 평가한 공약의 이행도는 모두 중간 이상일 것이다. 그런데도 시민들은 전임시장이나 구청장들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가를 되묻고 있다. 그것은 공약에 내재된 한계에서도 기인한다. 조금 야박하게 말하자면 공무원들이 평가받기 좋은 지표와 척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약의 달성도와 시민들의 체감도가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다.셋째, 가시적 효과가 아직 없다는 점이다. 물론 취임 1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성과에 너무 조급하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하지만 교통인프라 공약의 경우 임기 내내 시민들이 체감하기 어렵다. 검단 1호선 연장 등을 제외하면 노력의 결과는 임기 후에 가시화된다. 인천의 최대 난제인 원도심의 재생사업도 각종 소송이나 부동산 경기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그러나 넷째, 현안대처 방식에 대한 실망감이 가장 크다. 수돗물 사태 이전에도 현안대처 방식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석모도의 문제가 무의도 연도교 임시개통에서 똑같이 반복됐다. 화장실과 쓰레기, 주차장과 식수 문제, 지역발전과 경제활성화 연계방안 미흡 등. 시와 경제청 그리고 중구가 사전에 힘을 합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발전의 좋은 기회가 됐을 것이다.이것은 공약과 또 다른 차원에서 일부 정책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과 직결돼 있다. 박 시장이 후보경선단계에서 제안을 받고 스스로 정책화하고자 했던 초심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인고속도로의 일반화와 각종 산업단지의 고도화 사업을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 송도 유원지를 판교를 능가하는 R&D 거점으로 만들 수는 없는가. AI와 제조업을 연계한 발전방안은 무엇인가. 기초와 광역이 함께 국책사업을 선도할 방안은 무엇인가.박 시장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한국갤럽에 의하면 문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지난해 8월 17%에서 올해 5월에는 62%에 달했다. 그렇다면 정책의 변화는 산업 경제를 최우선으로 추진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인천시는 부채감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상황을 보면 지방채 상환보다 경제 살리기에 우선 투입해야 할 때다. 일부 사업의 과감한 정리도 필요하다. 예산에 제로섬 제도를 도입하고, 선도사업에 집중해 성과를 내야 한다. 정책 추진의 주체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 청와대와 인천시는 수준도 방식도 다르다. 누구와 어떻게 과감히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산하 기관장에 대한 평가도 냉정해야 한다. 밖은 어둡다. 대학생과 청년들의 좌절, 비정규직과 노인들의 빈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눈물을 멈추게 해야 한다. 산업경제에 올인하는 박 시장의 변화된 정책추진이 시급하다. 과감한 정치적 결단과 함께 선도에서 지휘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한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07-14 김민배

[조성면의 '고서산책']전통과 근대 사이의 과도적 한자 학습서 '통학경편'

1916년 참사 황응두가 펴낸 아동용천문·지축·신체등 13부로 나누고해당 한자 4구로 제시한 교재1244자 한글자석 일본어 발음 추가전통·근대사이 과도기적 교과서언제쯤이던가. 퇴근 후 습관처럼 단골서점에 들렀는데 낡고 허름한 한적(漢籍) 한 권이 눈에 띄었다. '통학경편(通學徑編)'이라고 '천자문' 같은 한자 학습서였다. 그러고 보니 풋내기 대학원생 시절 인사동 골목에서 칠서(七書)들, '박통사 언해' 등과 섞여 있는 것을 얼핏 본 적이 있는 흔한 책이었다. 그때는 심드렁하게 지나쳤는데 어느새 구경하기 어려운 희귀본이 돼서 20~30년 만에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니 울컥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판권도 없고 책 상태가 험해서 1만원에 내놓기는 했는데, 이미 예약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체념하고 돌아왔지만 머리에 남았다. 고서는 주머니 사정도 받쳐줘야 하지만, 부지런해야 하고 타이밍도 중요하다. 하루 이틀 전에만 먼저 갔어도 수집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그냥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단념한 채 며칠 뒤에 같은 서점을 찾았는데 '통학경편'이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게 아닌가. 예약만 하고 고객이 아직 구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약자는 나도 잘 아는 분이어서 서점에 양해를 구하고 잠깐 책을 빌려보고 며칠 만에 돌려줬다.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예약자가 한 달 넘어 두 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기에 결국 단돈 1만원에 '통학경편'을 소장하게 되는 큰 행운을 누리게 됐다. '통학경편'은 1916년 신녕군 참사(參事) 황응두(黃應斗)가 펴낸 아동용 한자 학습서인데, 필자의 소장본은 1921년에 중간된 목판본이다. 참사라는 벼슬은 토관직(土官職)으로 지역 양반에 주는 정9품의 말직이었다. 저자 황응두가 누구인지 아직까지 자세하게 알려진 바 없다. '통학경편' 초판본이 간행된 시기는 1916년이고, 발행처는 경북 영천의 혜연서루이며, 판매소는 대구에 총판을 둔 영흥서림이다. '천자문'은 대표적 한자교재로 4언 고시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룻밤 사이에 이 글을 짓고 그만 저자 주흥사의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려 백수문(白首文)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반면 '통학경편'은 '천자문' 같은 한자 학습서지만, 물목명칭(物目名稱)을 천문·지축·신체·인륜·음식·의복 등 13부로 나누고 해당 한자를 4구로 제시한 보다 근대화한 교재이다. 가령 인륜부에는 군사부모(君師父母) 형제숙질(兄弟叔姪) 등 가족과 관련된 단어들이, 곤충부에는 승문조슬(蠅蚊蚤슬)처럼 파리·모기·벼룩·이 등 해충 관련 한자들까지 제시돼 있어 무척 흥미진진하다. '통학경편'은 모두 1천244자의 한자가 새김 혹은 훈으로 불리는 한글 자석(字釋)에 일본어 가나 발음까지 추가돼 있다. 앞부분에는 한글자모와 가타카나가 제시되는 등 시대상이 반영된 학습서이며, 한자 교육은 물론 계몽과 훈몽서(訓蒙書)의 기능도 갖고 있다. 그런데 교재가 집필, 발행된 때가 1916년, 1921년으로 일제강점기였기에 한자에 일본어 발음이 포함돼 있어 흥미롭기는 하나 한편으로 뒷맛이 씁쓸하다. 알다시피 교과서는 그 시대 그 나라의 이념과 교육철학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며, 시대상을 반영하는 역사의 나이테와도 같은 것이다. '통학경편'은 전통교육이 근대교육으로 재편되던 시기에 발행된 학습서로서 근대화한 '천자문' 또는 전통시대와 근대 사이에 위치한 과도기적 한자 교과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근대 사회의 한자, 근대 시기의 일본어, 그리고 현재의 영어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등장하는 중요 언어가 험난했던 우리 민족사를 반영하는 것 같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책 한 권에도 이렇게 깊은 사연과 역사가 깃들어 있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9-07-14 조성면

[참성단]사라지는 주유소

세계 최초의 주유소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나 지붕이 있고 넓은 주차시설과 급유기를 갖춘 현대식 주유소는 1907년 스탠다드 오일사가 워싱턴주 시애틀에 세운 게 최초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주유소는 서울역 앞에 세운 '역전주유소'로 알려졌지만, 이것저것 함께 취급하는 석유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펌프식 주유기를 갖춘 최초 주유소로는 1910년대 후반 자동차 판매상 테일러가 서울 조선호텔 건너편에 세운 게 처음이라고 한다.6·25전쟁 후에도 주유소가 없어 장거리 여행 때 차에 기름통을 싣고 다녔다. 본격적으로 주유소가 들어선 건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부터였다. 한국 최초 현대식 주유소는 1969년 한국석유공사가 홍대 인근에 설립한 '청기와 주유소'다. 그 후 자동차가 보급되고 주유소가 떼돈을 버는 사업으로 소문나면서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주유소 사업을 발판으로 성공한 사업가들이 많았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석유를 몰래 들여와 팔고, 더러는 가짜 휘발유를 팔아 폭리를 취하기도 했다. '주유소 사장님' 소리를 들으면 그 동네에서 영락없는 알부자요 유지였다. 주유소는 부의 상징이었다.'대를 이어 먹고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황을 누렸던 주유소가 요즘에는 '황금 알 못 낳는' 사양산업이라고 경인일보가 보도했다. 주유소는 1991년 거리제한이 완화된 뒤 3천382곳이 2010년 1만3천3곳으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특히 2011년 알뜰주유소까지 도입되면서 주유소 간 피 말리는 생존경쟁을 벌여야 했다. 무료 세차는 기본이고 휴지·생수 같은 물품공세를 편 것도 이때다. 과당경쟁과 친환경 차의 증가 등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하면서 전국적으로 매년 150여 개 주유소가 운영을 중단하거나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폐업 비용이 부담스러워 임시휴업 중인 주유소도 전국적으로 600여 개에 달한다. 주유소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어 전기차 충전부터 택배, 편의점까지 첨단·편의·공간 활용 등의 키워드를 담은 주유소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주유소는 이제 더는 기름만 넣는 곳이 아니다. 여관은 호텔·모텔에 밀려 사라지고, 동네 극장은 멀티플렉스와 텔레비전에 밀려 전성시대를 일찍 마감했다. 이제 주유소도 우체통과 공중전화처럼 찾는 이 없는 신세가 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7-14 이영재

[풍경이 있는 에세이]해인사와 팔만대장경

천년세월 변함없이 지켜온 경판들오랜 침묵 전하는 메시지 크고 장엄고작 한나절에 불가사의한 말씀들다 새긴다는것은 허무맹랑한 욕심눈과 마음으로 차곡차곡 담아본다집을 나선 지 나흘째, 가야산 자락으로 들어선다. 계곡의 물소리는 짐승의 포효처럼 우렁차다. 다행히 바람은 알맞게 살랑거리고 햇살은 대지를 뜨겁게 달군다. 얼마 만에 찾아가는 해인사인가. 거두절미 천년의 시간을 견뎌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판으로 알려진 팔만대장경(불교경전을 종합적으로 모아 기록한 기록물)이 예전 그대로 잘 있는지 보고 싶었다. 해인사 가람 배치도를 보면 일주문, 봉황문, 해탈문, 구광루를 지나 정중탑과 대적광전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면 네모 모양의 장경판전이 기다린다. 그 뒤로 수미정상탑이니 영락없이 부처님께서 대장경판을 머리에 이고 있는 셈, 여기서 북쪽 건물은 법보전 남쪽 건물은 수다라전이다. 해인사가 자리한 지형은 떠가는 배의 형국이라 돛대바위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겨 근자에 다시 세운 탑이 단아하기 이를 데 없는 8각 7층 석탑이다.해인사라면 그 무엇을 봐도 대장경을 보는 것이라 했던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약 20분쯤 오르막을 걸어 일주문을 통과 대적광전을 지나 가장 뒤쪽에 자리한 장경판전 앞에 서자 가슴이 설렌다. 아침나절이라 햇살이 서고 안쪽으로 길게 들어서고 나무 칸막이 사이로 천년의 시간을 변함없이 지켜온 경판들, 보일락 말락 하는 오랜 침묵의 시간들이 내게 전하는 메시지는 크고 장엄했다. 생각해 보라. 우리 조상들은 후세를 위해 목판본을 만들고 이걸 지키기 위해 얼마나 동분서주했겠는가. 경판이 보관된 법보전에는 스님 한 분이 나지막이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읊고 계셨다. 사람들은 흐르는 물처럼 잠시 왔다가 서둘러 돌아가기 바쁘지만 나는 쉬이 자리를 뜰 수 없다. 천년의 시간과 불가사의하다는 말씀들을 나 같은 범인이 고작 한나절에 새긴다는 건 얼마나 허무맹랑한 욕심이겠는가. 허나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저 경판들, 손으로 쓰다듬을 수 없으니 눈으로 마음으로 더듬고 또 더듬을 수밖에, 그리고 차곡차곡 심연 깊이 눌러 담아 두는 도리밖에.해인사를 감싸고 있는 주변의 숲은 우람하고 계곡의 노거수들은 푸르다 못해 검다. 이 좋은 자리에 대장경을 모시고 유구한 세월을 견디고 있는 저 부처님의 살 같은 말씀들, 불자가 아니어도 사람인 우리가 새기며 살아야 할 말씀들은 얼마나 차고 넘치던가.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많을 것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판 팔만대장경은 1962년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경판은 8만1천258판이다. 8만여 판에 8만4천 번뇌에 해당하는 법문이 실려 있어 팔만대장경이라 이른다. 1237년(고종 24)부터 16년간에 걸쳐 고려에 침입한 몽골군의 격퇴를 발원((發願)하여 대장도감과 분사도감을 두어 만든 것이라고. 경판고 안에 5층의 판가를 설치하여 보관하고 있으며, 판가는 천지현황 등의 천자문 순서로 함의 호수를 정하여 분류배치하고, 권차와 정수의 순으로 가장하였다고 한다.경판의 크기는 세로 24㎝ 내외, 가로 69.6㎝ 내외, 두께 2.6∼3.9㎝로 양 끝에 나무를 끼어 판목의 균제를 지니게 하였고, 네 모서리에는 구리판을 붙이고, 전면에는 얇게 칠을 하였다. 판목으로 산벚나무, 돌배나무, 자작나무, 소나무, 후박나무 등의 목재를 썼고, 무게는 3∼4㎏가량으로 현재까지 보존 상태는 양호하며, 천지의 계선만 있고, 각 행의 계선은 없이 한쪽 길이 1.8㎜의 글자가 23행, 각 행에 14자씩 새겨져 있는데, 그 글씨가 늠름하고 정교하여 고려시대 판각의 우수함을 보여주고 있다고한다.처음엔 강화 서문(江華西門) 밖 대장경판고에 두었고, 그 후 강화의 선원사(禪源寺)로 옮겼다가 1398년(태조 7)에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19-07-11 김인자

[참성단]살찐 고양이 법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문학과지성사 간)은 1730년대 파리 생 세브랭가의 한 인쇄소에서 일어난 고양이 무더기 학살사건이 프랑스 대혁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다루고 있다. 인쇄소 주인이 키우는 고양이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견습공들은 고양이로 상징되는 주인을 재판하고 자백을 받아 사형시키는 극을 만들어 법과 사회 질서에 분노를 공유했고 결국 집단적 저항으로 이어져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양이는 탐욕에 찬 부르주아를 일컫는다.미국에선 부자들을 '살찐 고양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모든 부자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욕심 많은 기업인이나 은행가 등 부정적 의미의 배부른 자본가들이다. 우리도 그렇지만 어느 나라건 '부자=욕심'이란 공식이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부자가 존경받기란 그만큼 어려운 세상임은 분명하다. '살찐 고양이'는 1928년 프랭크 켄트의 저서 '정치적 형태'에 논의된 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미 금융회사 경영진들의 도덕적 해이가 부각 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직원들은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에 내몰려 있는데 정작 경영실패 책임을 져야 할 경영진은 거액의 연봉과 퇴직금을 챙겨갔기 때문이다. 이때 제기된 것이 '살찐 고양이 법'이다. 경영진들이 받아가는 연봉이 근로자와 그들이 한 일에 비해 적정한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들의 연봉을 규제하자는 것이다. 개인이 벌어들이는 연 소득에 상한선을 정하고, 이 상한선을 최저임금에 연동시키는 '최고임금제' 같은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지난 2016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민간 대기업 임직원들은 최저임금의 최고 30배, 공공기관 임직원은 10배,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는 5배가 넘는 임금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최고임금법'을 대표 발의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경기도가 이를 도입할 모양이다. 산하 공공기관 임원의 연봉을 최저임금의 7배인 1억4천만 원 이내로 제한하는 조례안이 16일 도의회 본회의에서 의결을 앞두고 있다. 부산 서울 제주 광주 등 요즘 '살찐 고양이 법'이 지자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취지는 이해할 것 같은데 문제는 실효성이다. 근대민법의 3대 원칙 중 하나인 '계약자유의 원칙'이 무력화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 연봉에 유능한 인재를 구하는 게 그리 만만치가 않다. 유행을 뒤쫓다 후에 낭패를 당하는 걸 우리는 종종 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7-11 이영재

[기고]경기북부 지자체, 소기업소상공인 노란우산공제 가입 적극 지원을

근로시간 단축·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자영업자 폐업률 해마다 늘어나국가경제 근간 흔들릴 수도'…희망장려금' 예산 확보'가입률 제고' 정책집행 서둘러야소기업·소상공인들의 삶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대표적인 소기업·소상공인으로 분류되는 자영업자의 폐업률이 2016년 77.7%, 2017년 87.9%, 2018년 89.2%로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이는 최근 2년간 29.1%가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과 지난해 7월 시행한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최저임금 인상에 기댄 소득주도 경제성장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창출이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가며 그 피해를 자영업자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에 자영업자들은 고용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근로시간을 줄임으로써 당초 정책 취지와 달리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임금이 오히려 낮아지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학계의 지적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마저도 견디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은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음에도 최근 고용노동부의 최저임금현장실태조사에서 드러났다. 소기업·소상공인들이 벼랑 끝에 매달려 생존을 위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소기업·소상공인 업체 수는 약 346만 개로 전체기업의 97.6%에 달하며, 종사자 수는 약 1천746만명으로 전체종사자 수의 61.3%를 차지하고 있다.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 이들이 곤경에 처하면 국가경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으며 경제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작금의 소기업·소상공인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으며 이들을 보호·육성해야 하는 이유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해 소기업소상공인 활력회복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007년부터 소기업·소상공인들이 폐업이나 노령 등의 생계위협으로부터 생활 안정을 꾀하고 사업재기의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 근거해 사업주의 퇴직금 마련을 위한 노란우산공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노란우산공제 납입부금은 압류가 금지되고 소득공제, 복리이자 지급 혜택이 있다. 2019년 5월 말 현재 가입자 수가 약 115만명으로 전체 소기업·소상공인의 33.3%가 가입해 생계위협으로부터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 반면 66.7%는 아직도 폐업 등 생계위협에 대한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들이 극빈층으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서는 노란우산공제 가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2016년 서울시를 시작으로 올해는 광역지자체 17개 가운데 경북을 제외한 16개 광역지자체가 '노란우산공제 희망장려금' 예산을 확보해 당장의 부담으로 가입을 주저하는 소기업·소상공인들에게 월 1만~5만원을 최대 30개월 지원함으로써 소기업·소상공인들의 안전망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올해부터는 양산시, 광양시, 당진시 등 기초지자체들도 '노란우산공제 희망장려금' 자체 예산을 확보해 관내 소기업·소상공인들의 노란우산공제 가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다행스럽게도 올해부터 경기도도 20억원 예산을 확보해 도내 소기업·소상공인들의 노란우산공제 가입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그동안 경기북부 소재 중소기업들은 군사지역 및 상수도보호지역이란 이유로 경기남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제한돼 도로 등 인프라가 부족하고 인력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경기남부(39.9%)에 비해 낮은 경기북부(36.4%)의 노란우산공제가입률(2019년 5월 기준)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경기북부 지자체들도 '노란우산공제 희망장려금' 예산을 확보해 관내 소기업·소상공인들의 노란우산공제 가입률 제고에 앞장서야 할 때다. 경기남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경기북부 소기업·소상공인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을 확보해 주는 것이 경기북부 지자체들이 정책 집행 최우선순위에 둬야할 일이다./이희건 경기북부중소기업회장이희건 경기북부중소기업회장

2019-07-11 이희건

[오늘의 창]법보다 돈이 갑인 이야기의 결말

팩트(fact)아니면 지어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당사자만이 그 진실을 안다. 이야기다.이 이야기에는 굴지의 기업으로 꼽히는 A사의 넘버원과 B사의 넘버투가 등장한다. 풍광이 기막힌 광활한 들판에 넘버원은 카지노 건설을 기획하고 그 주변에 지어진 골프장을 함께 운영하는 계획을 세웠다. 100억원을 투자하면 3천억원대의 골프장을 손에 넣을 수도 있는 사업이었다. B사의 넘버투는 A사 넘버원이 눈독을 들인 골프장에 탐이 났다. 자회사에서 시공에 참여했고 시행사의 자금난을 알게 된 후다.나쁜놈이 주인공인 영화에서처럼 이들 넘버원, 투 주변에는 수족 같은 부하들이 등장한다.개발사업자의 빈 주머니를 옥죄는 방식으로 그들은 억대 연봉을 받으며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다.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이들의 계획의 결말은 '실패'였다. 하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승자가 떠안는다.항상 그랬다.넘버원의 부하들은 자신들의 사업계획이 틀어지자 법정에서 위증까지 하며 시행사를 골탕먹인다. 자신들의 죄는 '돈'으로 해결한다. 넘버투의 직원들은 법을 이용, 금전적 이익을 주인에게 상납한다. 그래도 시나리오의 결말은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가 아니다. 이들은 수년 후에도 억대연봉을 받으며 승승장구한다. '돈'은 언제나 '법'보다 강했다.지난 2017년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文 정부' 출범 후 대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칼을 빼들었다. 대기업의 횡포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아직도 현실에선 '법'은 '법'인가 보다. 대기업 불공정행위는 여전하고 드러난다 하더라도 벌을 받지 않는다. 이제는 돈보다 '법'이 우선이 되는 결말이 나올 때도 된 것 같은데 말이다. /김영래 사회부 차장 yrk@kyeongin.com김영래 사회부 차장

2019-07-11 김영래

[춘추칼럼]청년창업과 도시재생

'청년창업가게 1호점' 지역변화 새싹 역할'갬성' 자극하는 거리풍경 바꾸는 것 중요오랜 문제점 파악후 해결 '지역재생' 필수많은 사람들 다양한 영역 활동 '변신 가능'최근 서울시 성북구에서는 '지역을 바꾸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유흥업소 밀집 지역에서 유흥업소 폐업 공간에 '청년창업가게'를 오픈하는 것이다. 출발은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었다. 자신들의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인근에 흔히 '맥양집'(맥주와 양주를 주로 판매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됐다)이라는 유흥업소가 밀집돼 있으니 유해환경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이에 대한 행정의 대응은 강력한 단속뿐만 아니라 주민협의체 등과 지속적인 협력이었다. 덕분에 업소 10여 곳이 문을 닫았다. 이러한 결과는 민원제기와 단속의 효과로 일반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성북구에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 다음 단계의 출구 전략을 고민했다. 단속 부서인 보건소와 성북문화재단이 함께 청년문화와 청년창업이라는 화두를 갖고 지역을 바꾸는 방법을 고민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폐업으로 빈 가게를 청년창업 및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행정안전부의 '청년창업공간만들기' 공모사업으로 예산을 마련해서 3개의 청년팀을 선발했다.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수 십 년 된 건물은 구조적 문제와 복잡한 소유권, 법적 문제 등을 안고 있었으며 건물주를 설득해서 임대차계약을 맺는 일 등은 오롯이 실무자의 몫이었다.이렇게 수 개 월간의 노력을 기울인 탓에, 지난 7월 초 '낭만덮밥'이라는 청년가게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오픈식이 있던 날에는 그 주변의 왕복 800m 거리에 90개 부스가 참여하는 '두근두근 별길마켓'이라는 행사를 열어 지역주민들에게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풍경을 제공했다. 성인 대상의 유흥업소가 많은 지역이다 보니, 야간에는 일반인들의 왕래가 드물어 동네상권은 활기를 띨 수 없었다. 휴일 오후와 저녁 시간에 1만5천여명의 주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모습은 이전에 결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주민들은 일시적인 변화 속에서 미래를 상상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청년창업가게 1호점'은 지역변화의 새싹과 같다. 새싹이 자라나 나무가 될 것이고, 또 다른 새싹이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을 바꾸는 일은 공간과 거리를 바꾸는 일이자, 또한 '풍경'을 바꾸는 일이다. 도시 공간과 거리는 '계획'으로 바뀌지 않는다. 도로를 새롭게 포장하거나 가로등을 교체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공간이 자리를 잡아야 하고, 궁극적으로 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거리를 찾아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맛집이나 예쁜 카페를 찾기도 하지만, 자신의 두 발로 걸어가면서 일종의 '갬성'을 느낄 수 있을 때 거리를 찾아온다. 비록 대단한 계획이나 예산, 사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재생'이라는 관점에서 지역의 오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하나씩 찾아가는 작업은 그 과정 자체가 '도시재생'이라 할 수 있다. 막대한 예산과 사업이 아니라 할지라도 지역공동체와 함께 만들어가는 다양한 사례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사례들이 '도시재생'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모든 사람들이 '변화'를 이야기한다. 변화는 어떤 하나의 사건, 한 사람의 힘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작지만 수많은 사건들이 축적될 때 변화가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몇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이어갈 때 변화가 가능하다. 지역을 바꾸는 일은 바로 이러한 진실을 제대로 파악할 때 가능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복잡성과 복합성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을 외면한 채 마치 어떤 단면만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고 해결하려고 한다면 결과는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성북구와 성북문화재단의 실험은 그 복잡성을 인정하면서 지역공동체와 상생하는 청년창업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곧 말로만, 계획서로만, 돈으로만 하는 도시재생이 아니라 진짜 도지재생, 지역재생을 상상하는 일이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9-07-11 권경우

[오늘의 창]흑묘백묘(黑猫白猫)

'黑猫白猫 住老鼠 就是好猫(흑묘백묘 주노서 취시호묘)'. 1970년대 말부터 덩샤오핑(鄧小平)이 취한 중국의 경제정책으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의 흑묘백묘론은 지금까지 실용주의 대표적인 접근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다.2019년 상반기 경기도 특별조정교부금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하남시가 다시 새겨봐야 할 부분이다. 하남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산, 즉 돈이다. 미사강변도시 등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급속하게 팽창하고 있는 하남시는 들어오는 세수가 증가했지만, 쓸 곳은 오히려 더 많이 늘었다.지난해 말 중앙부처로부터 예산을 확보하는데 공로가 있는 6급 팀장을 5급 사무관으로 고속 승진시켰을 정도로 하남시는 예산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번 특별조정교부금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예산 확보에 대한 하남시 공무원의 무관심과 자질부족, 소통 부재 등 그동안 쌓여왔던 문제점을 드러내며 하남시는 기본적인 경기도의원들의 몫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특별조정교부금은 늘 예산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는 기초자치단체들에겐 사막의 단비와 같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도의원들뿐만 아니라 내년 총선을 앞둔 국회의원들까지 나서는 등 특별조정교부금 배분때만 되면 경기도청은 소리 없는 전쟁터가 된다.하지만 하남시 공무원들은 김진일·추민규 도의원 등 전쟁터에서 선봉에 서야하는 장수들을 아예 배제한 채 교부금 사업 신청자를 김상호 하남시장으로 하는 등 '김상호 하남시장' 깃발만 들고 전쟁터로 나섰다. 장수없이 전쟁터에서 승리할 수 없기에 당연한 결과가 나왔다.뿐만 아니라 예산을 총괄하는 혁신기획담당관과 도의원들간 교류가 사실상 없는 데다 특별조정교부금 신청에 문제가 있어 도에서 수차례 확인을 했음에도 이를 제때 파악하지 못한 것은 자질부족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정말 교부금을 '김상호 이름으로 받았느냐, 김진일·추민규 이름으로 받았느냐'가 중요한 문제였을까. /문성호 지역사회부(하남) 차장 moon23@kyeongin.com문성호 지역사회부(하남) 차장

2019-07-10 문성호

[기고]모두의 안전위해 여기는 꼭 비워두세요

소화전 주변 5m·버스정류소 10m 이내교차로모퉁이 5m이내·횡단보도 주정차'4대 불법주정차 금지구역' 나부터 실천대형 화재피해 막고 교통사고 예방해야불법주정차의 이유는 다양하고 저마다 사정이 있다. 문제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불법 주정차를 할 경우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피해가 크다는 것이다. 2017년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는 불법주차 차량 때문에 좁은 도로가 막혀 소방차 진입이 늦어지면서 피해가 커졌다. 5명이 사망한 의정부 아파트화재 사고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아파트 진입로 양옆에 늘어선 불법주차 차량 탓에 소방차가 10분 이상 현장에 접근하지 못해 인명피해를 키웠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4대 불법주정차 주민신고제'를 불가피하게 시행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불법주정차 주민신고제'란 정부가 지난 4월 17일부터 시행 중인 제도로 4대 불법주정차 금지구역인 소화전 주변 5m 이내, 버스정류소 10m 이내, 교차로 모퉁이 5m 이내, 그리고 횡단보도 위에 주차하거나 정차한 차량을 안전신문고 앱을 통해 신고하는 제도다.위반차량을 발견했을 경우 안전신문고 앱을 열어 차량번호가 식별 가능한 사진을 1분 이상 간격으로 동일한 위치에서 2장 이상 촬영해 신고가 이뤄지면 단속 공무원의 현장 출동 없이 위반자에게 과태료가 부과된다. '안전신문고' 앱은 안드로이드 구글 플레이나 아이폰 앱 스토어에서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앱을 구동하면 4대 불법주정차, 일반신고라는 2개의 유형이 나오고, 4대 불법주정차를 선택하면 소화전, 교차로, 버스정류소, 횡단보도라는 4개의 메뉴가 나온다. 해당 메뉴를 선택해 불법 주·정차된 차량의 사진을 2번 찍고 제출버튼을 누르면 신고가 완료되고 그 처리결과는 문자로 알려준다.경기도가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4대 불법주정차 주민신고제 시행 후 두달여 만인 6월 21일 기준으로 31개 시군의 안전신고 접수건수는 총 3만6천730건이 접수됐다.유형별로는 횡단보도 위 불법주정차 위반 1만9천562건(53.2%)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교차로 모퉁이 5m 이내 위반 7천27건, 버스정류소 10m 이내 위반 6천308건, 소화전 5m 이내 위반 3천833건 순이었다. 지역별로는 안산시가 6천464건으로 제일 많았고, 이어 성남시 4천774건, 수원시 3천599건, 부천시 2천853건, 용인시 1천950건으로 뒤를 이었다.전문가들은 "시야를 가로막는 불법 주·정차는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아울러 행정안전부에서는 전국 안전보안관을 지난해의 2배 수준인 1만5천여명으로 확대해 생활주변 위험요소를 신고하고, 주정차위반 등 안전무시관행도 개선해 나가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운전자와 신고자가 불법주정차 단속지역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소화전 부분 경계석에 절대 주정차 금지구간임을 알 수 있게 적색으로 표시하고, 교차로 모퉁이 등 3개 구역 노면에는 황색 이중선을 표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도내 31개 시·군에 특별교부세로 7억9천만원을 교부한 바 있다.불법주정차 특별단속구역인 4곳은 도민 모두의 안전을 위해 꼭 비워둬야 하는 장소라서 시행 초기 불편이 다소 있겠지만 불법주정차를 예방해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도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불법주정차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우리 모두 주변을 돌아보고 서로의 안전을 위해 4대 불법주정차 금지구역에 불법주정차 안 하기를 나부터 지켜나가야 할 때다./송재환 경기도 안전관리실장송재환 경기도 안전관리실장

2019-07-10 송재환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행이현원: 가까운 곳에서의 행동이 먼 곳에서 보인다

한 5년 전 어느 날 필자의 딸이 스마트폰을 옆으로 세워놓고 보며 찰흙 같은 것을 주물럭거린다. 스마트폰 동영상에서는 손으로 찰흙을 만지면서 뭐라고 간혹 설명도 한다. 딸에게 그게 뭐냐고 물어보니 액괴라고 한다. 액괴가 뭐냐고 하니 액체괴물이라나! 만져보니 촉감이 나쁘진 않았는데 어느 날은 또 슬라임이라고도 한다. 그렇게 동영상을 보고 따라하더니만 어느 날부터는 자기도 제작해서 유튜브에 올려놓는다. 정보의 전달방식이 신문 등의 종이에서 인터넷사이트로 옮기더니 이젠 확실히 불특정 개인간 채널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1인', '개인'이 핵심어로 급부상한 시대가 된 것이다.주역에 중부(中孚)괘가 있다. 중부(中孚)괘에는 어미와 새끼 간의 자연스럽고 진실한 감응과 공명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어미 학이 새끼를 찾아 울면 새끼 학이 그 소리를 듣고 화답하는 학명자화(鶴鳴子和)의 장면이다. 공자는 이 장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설을 펼쳐놓았다. "사람이 자기 방에 있으면서 착한 말을 하면 천리 밖에서도 그 말에 호응하고 착하지 못한 말을 하면 천리 밖에서도 그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는 행동도 가까운 곳에서 했을 따름인데 천리 밖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니 더욱 언행을 조심하지 않으랴!" 마치 삼천년 전에 지금 시대를 예견이라도 한 것 같은 말씀이다. 현대는 마음만 먹으면 내가 방안에서 한 말과 행동이 지구 반대편에 실시간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나타나는 시대이다. 그러나 효과적인 파급력에 비례해서 되 담을 수 없는 위험도도 증가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에 대해 언행의 신중함이 제기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7-10 철산 최정준

[경제전망대]솔개의 선택

장수기업 되려면 뼈 깎는 고통 감내앞날 준비하는 노력 소홀해선 안돼새로운 성장동력·과감한 변신 필요'주력산업 혁신·미래핵심 사업 창출'경영전문가들 '양손잡이 경영' 권고매목 수리과에 속하는 솔개는 최장 70년을 산다고 한다. 70년의 수명을 다 누리기 위해서는 40년쯤 되는 시점에서 매우 고통스럽고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약 반년에 걸친 매우 고통스러운 갱생의 과정을 수행하든지의 선택이다.갱생을 결정하면 높은 산의 정상에 둥지를 틀고 맨 먼저 하는 것은 40여 년간 사용해 오던 낡고 약해진 부리를 바꾸는 작업이다. 자신의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한다. 그러면 서서히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게 된다. 다음으로는 새로 돋아난 부리로 낡고 부실해진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그리고 새로 발톱이 돋아나면 이번에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이렇게 약 반년의 고통스러운 갱생과정을 거치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된다. 장수를 희망하는 것은 인간이나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은 건강하게 장수하고픈 욕망이 있고 기업은 좋은 평판, 우량한 경영실적으로 지속성장 경영을 원한다. 장수라는 과실을 얻고자 하면 솔개와 마찬가지로 그에 상응하는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장수기업의 특징은 외부변화에 항상 능동적으로 대응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룬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혹할 만큼의 내실경영으로 내부역량을 극대화한다. 얼마 전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설이 나왔을 때 시장은 충격이었다.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의 논리가 깨진 것이다. 한마디로 경영의 실패이다.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미래준비에도 소홀하여 쓸데없는 일에 자원을 낭비하고 건강한 조직문화 형성에 실패해 조직 구성원들에게 동기부여하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장수기업은 일본 오사카에 있는 콩고구미(金剛組)라는 사찰건축 전문회사다. 사천왕사라는 가장 오래된 사찰을 건립한 1441년 전인 578년에 백제인 류중광에 의해 창립된 회사다. 전쟁 중에 사찰을 지을 수 없을 때는 회사의 지속성을 위해 죽은 군인들의 관을 만들어 회사를 운영했다고 한다. 장수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할 정도로 내실경영과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노력도 해야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큰 물결과 저성장이 뉴노멀(New Normal)이 되는 시대에 기존의 사업만으로는 기업들이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경영혁신으로 주력사업의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동시에 새로운 사업을 발굴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들의 미래 신사업 발굴은 그리 쉽지가 않다. 미래에 대한 준비에서 위험을 감내할 체력과 용기가 없고, 외부환경변화에서 오는 기회와 위기의 조짐을 제때 파악하지 못하며, 과거와 현재 사업의 성공경험에 매몰돼 신사업 추진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지금이야말로 기업들의 과감한 변신이 필요한 때이다. 바로 기업의 트랜스포메이션이 필요한 것이다. 환경과 기술의 변화에 따라 기업은 끊임없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사업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의 주력사업을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변환시킴으로써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이젠 고전이지만 전통 판매방식에서 렌탈서비스로의 전환은 좋은 사례이다. 다음으로 회사가 아예 새로운 사업을 발굴해 미래 핵심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광고사업을 하던 구글이 자율주행차 사업에 뛰어들어 새로운 미래사업을 만들어 낸 것도 좋은 사례일 것이다. 물류사업이 주 사업이었던 아마존이 클라우드컴퓨팅 사업을 시작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을 꾀한 것도 참고할 만한 사업전환이다. 경영전문가들은 비즈니스 전환을 이루기 위해 주력사업의 혁신과 더불어 미래핵심 사업을 만들어가는 '양손잡이경영'을 권고하고 있다. 주력사업으로 수익극대화를 하고 미래사업을 인큐베이팅하는 선순환의 고리를 원활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공했던 기업들이 지속혁신에 성공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이유는 잘나가는 기존사업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했고 미래를 위한 투자에 소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확실성 시대에 기업의 지속가능성장을 위해서는 과감한 내부혁신으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용기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솔개처럼 고통을 감내하여 장수할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감한 용기와 결기가 절실한 때이다./이세광 한국조직문화연구소장이세광 한국조직문화연구소장

2019-07-10 이세광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