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남측은 독자성을 강화하고 북측은 경직성을 탈피해야 한다

북한 '통미봉남' 전략 정세 반전 효과 미미올해 자력갱생·전략무기 '정면돌파전' 내놔文대통령, 신중 대응·선순환구조 발전 강조北 국제사회 일원화 남북관계 뒷받침 필수얼마 전 국내외 학자들과 현 한반도 정세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부터 학자들의 최고 관심사는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하겠느냐는 것과 남북관계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느냐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2019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동안의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이러한 북한의 핵폐기 의사를 전제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핵 폐기의 순서, 방식 등 구체적인 협상에 있어서는 북미 양국은 서로가 만족할 만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디테일의 악마는 존재했고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로 나타났다. 지난해 북한은 각종 미사일 발사를 통해 긴장을 고조시키고 실무협상을 거부하면서 미국의 결단을 압박했지만 구체적인 결과물은 없었다.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풀어보려던 북한은 지난해 완전히 '통미봉남'으로 돌아섰다. 자신들이 주도권을 갖는 데 있어 한미관계를 벌리고 우리를 초조하게 하면서 미국과의 담판에 올인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를 결산하고 올해를 전망해 보건대 북한의 전략은 그다지 정세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반전시키는 데에는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연말 시한을 설정했지만 미국의 유연한 조치를 이끌어 내지 못했고 남북관계 역시 합의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북한이 내놓은 것이 '정면돌파전'이다. 북한이 예고한 새로운 길은 제재해제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제재가 계속되더라도 버티는 자력갱생식 경제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국방력은 계속 강화하여 전 세계가 깜짝 놀랄 새로운 전략무기를 공개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겠다는 것도 지난 당 전원회의 결과에 나타난 북한의 전략인 것으로 분석된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반응은 없지만 '선미후남'의 기조는 계속해 나가겠다는 것이 김계관 담화에서 밝힌 내용의 일부이다.그리고 이러한 북한의 입장에 대해 일부에서는 북한의 핵포기 불가론과 남북관계 단절, 대북정책의 실패로 연결시키려 한다. 물론 올 한해도 매우 불투명하고 유동적인 상황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오랜 북한의 협상전략이나 최근 일련의 행보로 볼 때 북미대화와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우선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포기를 우선 조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연말연시 레드라인의 경계선을 넘지 않았고 북미대화를 중단하겠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밝힌 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생일 축하 친서를 보냈고 북한이 즉각 반응을 보인 것도 북미 정상 간의 신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통상 신년사를 통해 대남정책의 기조를 공표하던 것을 생략하고 정세변화를 관망하고 있다. 북한은 대남 선전매체를 통해 대남비난을 하고는 있으나 당국의 공식입장은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지난해 수준에 비하면 수위 조절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 신년사와 이번 신년기자회견에서 차분한 정세판단과 신중한 대응을 강조했다. 남북관계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북미 간 교착국면을 해소하는 데 있어 우리의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주문하였다. 제재 국면이지만 남북 간 할 수 있는 협력을 전개하면 북미대화의 긍정적인 여건이 조성될 수 있음을 설명하면서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선순환 구조로 발전되어야 함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2032년 올림픽 공동개최, 역도 및 탁구 선수권 대회 초청, 올림픽 단일팀 구성, 남북 철도 도로 연결, 비무장지대의 국제 평화지대화 및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개별관광 등 남북 간에 할 수 있는 독자적 영역의 협력 사업들을 제안하였다.문 대통령의 제안은 대부분 남북 간 이미 합의 사항이라는 점에서 의지만 있다면 이행이 어렵지 않다. 한미공조를 저해하거나 대북제재에 정면 위반되는 것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남북 간 합의에 의해 독자적으로 가능한 부분부터 시작해서 분위기를 만들고 영역을 넓혀나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들이 마치 제재나 한미관계를 훼손하면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아님을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호응이 중요하다. 경직성을 탈피하여 우리 대북정책 기조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길 바란다. 북한이 북미관계를 정상화시키고 정상국가로서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탄탄한 남북관계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01-16 양무진

[춘추칼럼]빨라도 너무 빠르다

예전 궁핍할땐 너그럽고 과격하지 않았다고속도로 정상속도 주행이 신고감 이라니무조건 재촉보다는 자신을 살필 필요 있어인생도 조절하면 보이지않던 것이 보인다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서두르고 조급해하는 사람들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속도 제일주의, 조급증이다. 도무지 진득하지 못하다. 무엇이든지 빠르게 뚝딱 해치워야 직성이 풀린다. 참지를 못한다. 기다리지 못한다. 특히 남의 일에 관한 한 더욱 그렇다. 그리고는 쉽게 결론을 내리고 돌아서 버린다. 우리가 예전에도 그랬을까? 내가 살기 이전 세상은 모르겠거니와 내가 어려서 보아온 세상은 조금은 여유가 있고 그윽한 정취가 있었던 세상이었다. 궁핍한 가운데서도 타인에게도 좀 더 너그러웠으며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도 오늘날 우리들처럼 과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이렇게 조급한 사람들이 된 것이다.우선 자동차가 달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지난번 서울서 저녁 행사를 마치고 후배 시인이 운전하는 자동차 편으로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귀가한 적이 있다. 마침 밤이었고 그 운전자가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사람이라서 한껏 속도를 낮추어 한참을 달렸다. 많은 차들이 비껴서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차를 세웠을 때 경찰 한 사람이 다가와 후배 시인을 불러세우는 거였다. "지나가는 자동차 운전자들이 신고해서 왔습니다. 혹시 약주를 잡수셨습니까?" 그러더니 음주측정기를 들이댔다. 결과가 술을 먹지 않은 것으로 나오니 다시 물었다. "혹시 몸이 아프신 건 아닙니까?" 후배 시인이 그렇지 않다고 하니까 경찰은 몇 마디 조언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고속도로에서는 어느 만큼은 속도를 내어 달려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자동차 운전자들이 신고를 합니다."나는 옆에서 들으면서 마음이 많이 착잡했다. 내가 보기론 정상적인 속도로 달리는 것 같던데 그것이 신고의 대상이라니! 그러니까 이것은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으로 통하고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으로 통하는 실례라 하겠다. 우리들 사는 세상이 모두 이렇다. 착한 사람, 정직한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자동차가 웬만큼 달려서는 달리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갑갑하다. 너나 할 것 없이 그건 마찬가지다. 날마다 사용하는 컴퓨터도 그렇다. 컴퓨터가 얼마나 빠르고 좋은 기계인가. 그런데도 컴퓨터가 느리다고 불평한다. 도대체 얼마나 빨라야 빠른 것이 될 것인가. 이는 속도 불감증 수준이다. 일 처리 하나하나가 그렇고 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대응방식이 모두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자신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빨리만 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속도를 아주 내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빠르다는 것을 알고나 빨리 가자는 말을 하고 싶다.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지금 충분히 빠르다는 걸 알게 되면 저절로 속도가 조절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좀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음의 방책이 나오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무조건 서두르고 빨리만 가자고 재촉할 일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으로 잘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부족감을 느끼고 불만을 말한다. 심한 경우는 화가 나 있기도 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는 우리들의 속도감에 있지 않나 싶다.'인생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다.' 이것은 또 괴테의 충고다. 방향을 잘못 정하고 속도만 낸다면 망하는 길이 빠를 뿐이다. 속도를 좀 줄이자. 쉽게 줄어들지 않겠지만 지금 내가 빠르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조절을 해보자. 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빨라도 너무 빠르다. 그러다 보니 어지럼증을 앓는 것이다./나태주 시인나태주 시인

2020-01-09 나태주

[춘추칼럼]"때는 와요"

절망속 내일을 꿈꾸고 노래하는 것이 인간역사적 인물의 삶을 보면 '기다림의 연속'일상속 목표를 향해 타인과 협력하는 태도비난·저주 내려놓고 '좋은 언어'로 채우길새로운 해가 밝았다. 하루하루가 항상 새로운 날이지만, 해가 바뀌는 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랜 세월 인류가 '시간'과 함께해온 까닭이다. 이렇게 새로운 해가 되면 사람들은 결심을 하거나 소망을 품는다. 결심이든 소망이든 결론은 모두 같은 지점을 향한다. 개인이나 공동체의 변화이다. 문제는 개인의 노력으로는 그러한 변화를 일굴 수 없을 때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절망의 영역이다. 실제로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 새해가 되었는데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은 현실이라면, 절망하는 수밖에 무엇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인간은 꿈을 꾸고, 노래하고, 기다린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 기다림이야말로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이끌어온 가장 중요한 동력이 아니었을까. 역사 속 인물들을 보면 갑작스럽게 중요한 일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은 기다림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다림은 포기나 판단중지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직면을 뜻하며 나아가 내일을 모색하는 일이다. 현실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다. 강한 비바람으로 흔들거나 적신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다. 기다림은 단단해지는 일이다. 딱딱해지는 것이 아니라 단단해져야 한다. 단단함은 두껍고 튼튼한 껍데기로 포장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층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이다. 기다림만이 단단함을 만들어낸다.기다림은 태도의 문제이다. 단순히 결심한다고 기다릴 수 있는 게 아니고, 소망한다고 기다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다림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과 맞닿아 있다. 태도는 그 일상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결국 개인은 어떤 목표에 한 순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통해 살아가고, 어느 순간 목표에 이르게 된다. 공동체의 변화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서로 힘을 합치지 않고서 바꿀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태도가 중요한 이유이다.자칫 태도를 예의나 싸가지의 문제로 볼 수 있다. 타자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태도는 존중이자 배려이다. 어떤 태도를 갖겠다, 혹은 유지하겠다는 선언은 단순히 개인적인 결심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며, 동시에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것으로서 목표 달성을 위해 다른 사람, 다른 가치 등을 무시하지 않는 자세이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태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태도를 생각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폭력을 거부하는 자세를 포함한다. 모든 폭력은 위계적이며, 어느 한 쪽의 일방적 관계에서 비롯된다. 사이와 관계를 바라보는 태도는 서로를 바라보게 한다. 태도는 오히려 내면과 외면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타나며, 나와 너가 만나는 그 사이와 경계에서 드러난다. 새해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다시 소망을 품고 때를 기다린다. 자신의 때, 공동체의 때, 인류의 때를 생각하고 기다린다. 때는 올 것인가. 지난해 50주기를 맞은 신동엽 시인은 1970년 <사상계>에 발표한 '좋은 언어'라는 시에서 "때는 와요"라고 말한다. "외치지 마세요/바람만 재티처럼 날려가버려요.//조용히/될수록 당신의 자리를/아래로 낮추세요.//그리고 기다려보세요./모여들 와도//하거든 바닥에서부터/가슴으로 머리로/속속들이 굽어돌아 적셔보세요.//하잘것없는 일로 지난날/언어들을 고되게/부려만 먹었군요.//때는 와요./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이야기할 때//허지만/그때까진/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채워야 해요."시인은 '때는 온다'거나 '때는 올 것이다'라는 단정적 표현이 아니라 '때는 와요'라고 슬며시 말을 내려놓는다. 외치지 말고, 자리를 낮추고, 기다리자고 말한다. 심지어 '그때까진 이 세상을 좋은 언어로 채우자'고 한다. '때는 와요'라는 속삭임은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사랑의 언어이다. 비난과 저주의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을 '좋은 언어'로 채우고 가장 낮은 곳에서 기다리고 단단해져야 한다. 나와 너, 우리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위로받는 한 해를 소망한다. "여러분, 때는 와요."/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20-01-02 권경우

[춘추칼럼]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정부 부동산대책 反시장적 기본권 침해 소지여론조사 긍정 27% 불과… 국민 평가 냉정교육 공정성 강화 지시 '행정 독재' 경고도헌법정신·법절차 준수 민생·도덕성 회복을2019년 기해년 한 해를 보내면서 현 정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헌법정신과 법 절차가 잘 지켜지고 있는가?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시세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서는 대출을 전면 금지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12·16 부동산 대책은 헌법적 가치인 시장경제의 기본정신을 무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충분한 상환 능력이 있는데 고가 주택이라는 이유만으로 재산 가치를 완전히 무시하고, 공급을 늘리는 대책 없이 수요만 잡겠다는 것은 반시장적이고 기본권 침해 소지가 크다. 더구나 경제부총리 말 한마디로 갑자기 대출을 금지한다는 것은 법 위반 소지가 있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촉발된 교육 공정성 강화에 대한 대통령 지시에 교육부는 지난 11월 7일 2025년부터 자사고와 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관련된 사립학교 법인들은 "시행령 개정을 통해 끝내 폐지를 강행할 경우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이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을 국회 논의도, 사회적 합의도 없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시행령을 하나 바꿔 서둘러 추진한다는 것은 '행정 독재'나 다름없다. 국가의 교육정책은 정치적 중립성과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연구가 이뤄진 다음에 진행돼야 한다. 현 정부는 국가교육위원회·국가교육회의가 이런 뜻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검찰이 직권남용 혐의가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청와대는 정무적 판단과 결정을 일일이 검찰의 허락을 받고 일하는 기관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사실상 검찰이 조 전 장관에게 적용한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에 대해 청와대가 사실상 검찰을 압박하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명백한 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한편, 정부의 경제 정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확실히 체감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문 대통령은 지난 12월 19일 확대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우리 경제는 꾸준히 정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실무 부처인 기획재정부에선 "한국 경제가 궤도를 상당히 이탈해 있다는 절박감이 담겨 있다"고 했다. 1%대 경제 성장률, 13개월째 수출 감소세, 40대와 제조업 고용률 추락 등 경제가 침체된 상황을 두고 '궤도 이탈'이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어떠한가? 문 대통령은 지난달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은 안정됐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고 군사 작전을 펼치듯 규제 일변도의 18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냉정하다. 한국리서치·KBS의 여론조사(2019년 12월 5~6일) 결과,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국민은 27%에 불과했다. 경제 현실을 놓고 대통령과 실무 부처가 따로 노는데 어떻게 국민들이 정부의 경제 정책을 믿겠는가? 여러 사례들을 통해 확인되었듯이 문재인 정부는 유독 올해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드레일과도 같은 '법치와 제도적 자제'를 무시한 채 목적을 위해 수단이나 절차를 가볍게 여기며 중요 현안을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공정과 자유의 촛불 민주주의로 탄생했다는 현 정부의 정체성은 무너졌다. 심지어 무능하고 위선적이며 도덕적으로 파탄이 난 정부라는 비난마저 대두되고 있다. 한국리서치의 12월 정기 여론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3명 정도(36%)만이 우리나라 국정방향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 임기 중반을 넘긴 정부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졌다. 헌법 정신과 법 절차를 준수하고 실력을 쌓아 민생 경제를 살리고 정직하게 국정에 임하고 잃어버린 도덕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12-26 김형준

[춘추칼럼]북한의 신년사 예상과 우리의 대응전략

美엔 "적대정책 철회·제재해제땐 조치철회"남측엔 "美 눈치보면 더이상 대화·교류없다"한반도평화 프로세스 원칙적 입장견지 중요中·러·日과 1.5트랙수준 협력분야 개발 시급북한의 신년사는 한 해의 정책방향이 담겨있다. 2020년 신년사의 대미 부분에 있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도 3차 북미정상회담 가능성 및 미국에게 지난 연말까지 시한을 주었으나 미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선제조치를 자신의 과실로서만 활용했다. 부득불 새로운 길로의 전환을 천명한다. 우리가 선의로서 취한 핵과 장거리미사일 시험 유예를 해제하고 다시 활동을 재개할 것이다. 우리는 단계적으로 조치를 확대해 나갈 것이며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바뀔지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다. 우리의 자위적 국방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미국이 제정신을 차리고 적대시정책 철회와 제재 해제에 대한 입장을 내놓는다면 우리의 조치들은 다시 철회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것이고 아무런 기간을 설정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갈 길을 갈 것이다. 우리는 미국 대통령의 재선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미국의 어떤 대통령이 되어도 우리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대남 부분에 있어, "2019년 남한이 대미굴종적 태도를 일관함으로써 한반도 정세는 격화되었다. 금강산 및 개성공단 재개 등에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전의 눈치나 보면서 기회를 저버렸다. 남북공동선언 이행이 미진한 것은 전적으로 남한의 책임이다. 지난해 북미관계 개선은 남한의 도움으로 된 것이 아니다. 북미 정상 간 신뢰에 따른 것이며 비핵화 협상과 관련하여 앞으로 남한 대통령은 더 이상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남한과 대화·교류를 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남한이 계속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외세의존적으로 나아가고 환경과 여건을 만들지 않으면 더 이상의 대화나 교류는 없을 것이다. 특히 한미연합훈련을 재개할 경우 9·19 군사분야합의서의 무효화와 함께 남북관계는 파탄날 것이다. 남한 보수 세력의 비난의 도가 참을 수 있는 인내를 넘어가고 있다. 반북 분위기를 계속 조성한다면 남북관계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남한 내 평화세력과 연대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의 내용이 예상된다. 대외 부분에 있어 "중국과 쿠바, 러시아 등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단결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며 제국주의 미국이 펼치는 압살정책의 부당함을 계속 전파해 나갈 것이다"가 주요 내용으로 담길 듯하다.2020년도 한반도 정세는 엄중함을 예고한다. 엄중할수록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원칙적 입장 견지가 중요하다. 북한의 인위적인 긴장 고조와 통미봉남, 총선을 앞둔 국내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비핵화를 위한 마지막 시도라는 생각으로 원칙에 흔들림 없이 버터 나가야 한다. 긴 호흡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경험적으로 남북관계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발전해 왔다. 정권 담당자가 성과에 서두르게 되면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통한 북핵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도 완전히 판을 깨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고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의 역할은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가 지속적인 관여를 해야 만이 나중에 북미대화 구도가 정립되더라도 '코리아 패싱'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남북관계 차원에서 어떤 비핵화 상응조치를 담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국과의 지속적인 협의가 요구된다.한반도 문제에 있어 남북관계 특수성에 따른 우리의 독자성 확보도 중요하다. 당장 내년초 한미연합훈련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관광·인프라 구축·사회문화·국제경기·대북지원 등 북한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업들에 대한 인내심 있는 관여 노력이 요구된다. 반드시 9·19 군사분야 합의는 지켜야 한다. 이것이 무효화되면 남북관계의 보루가 무너지는 것이다. 접경지역의 긴장관계에 적절히 대응하고 불필요하게 쟁점화하거나 악재로 작용되지 않도록 상황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한 사업은 지속 추진되어야 한다. 중국·러시아·일본 등과의 1.5 트랙 수준에서 협력해 나갈 수 있는 분야 개발이 시급하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중국의 참여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중 정상의 상호 방문 등 정상 차원에서 한중 공조를 해나가는 동시에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진영 구도로 가지 않도록 균형외교를 펼쳐야 한다. 위기와 기회는 모두 사람이 만든다. 우리가 노력하고 지혜를 모은다면 위기 극복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12-19 양무진

[춘추칼럼]진정한 힐링

지난한 삶에 즐거움 준다면 그것이 '힐링'그렇지 못하는건 자연에 못 가서가 아니라가난과 노동으로 휴식이 불가능 하기 때문차라리 책과 노는게 마음만은 부자가 된다별생각 없이 리모컨을 돌린다. 유독 자주 나오는 프로가 있다. 동시에 무려 다섯 개 채널에서 나온다. 하도 자주 나오니 조금이라도 보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처럼 연속성이 없으니 부담도 없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 내가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된다. 나처럼 그 프로를 '자주 본다'는 분을 꽤 만났다.보면서도 스스로 이해가 안 된다. 대체 왜 저것을 보고 있는 건가? 도대체 재미라고는 있을 수가 없잖은가. 출연자는 달랑 두 명뿐이다. 예능인이 산속에 홀로 사는 나이 든 남성(아주 가끔 여성도 있지만)을 찾아가 2박 3일을 보낸다. 산속사람만 달라질 뿐 대동소이하다. 나물이나 약초나 버섯을 채집한다. 나무를 하거나 오르거나 옮긴다. 밭에 무엇을 심거나 풀을 맨다. 잡거나 낚시하거나 사냥한다. 그리고 푸짐하게 먹는다. 샤워라고 말하면 적당하지 않은 것 같은 목욕신도 툭하면 나온다. 산속인의 기이한 언행? 독특하시다는 것 말고 무슨 느낌을 가져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분들이 날것 연기를 참 잘한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 글로벌한 자연이 등장하는 프로들에 비하면 참 소박한 풍경이다.모든 힐링(치유)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의 짜깁기 축약판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에게 힐링과 참된 행복의 의미를 전하는 프로그램'들 말이다. 세계를 찾아다니는 글로벌여행으로 유명한 두 프로그램도 3분 1은 오지를 찾아다닌다. 세계의 오지에서 산속인과 비슷한 이들을 만난다. 무수한 '먹방' 프로와도 궤를 같이한다. 밥 해먹는 장면만 떼어 보면 '세끼'류와 판박이다. 시골 가서 시골 사람 만나는 '고향'류와도 크게 다를 것 없다. 산속인이 힘든 일을 할 때는 '체험'류를 방불케 한다. 시련이야기가 꼭 나오니 '인생'류와도 상통한다. '동물'류 예능과 비슷한 장면도 적잖다.숱하게 제작, 방영되었던(중인) 소위 '힐링'프로의 클리셰(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장면)만 모아 가장 저렴하게 만든 듯하다. 그러니까 방송인들이 말하는 힐링은 '시골 가서 맛있는 거 해먹고 일도 좀 하고 놀다가 이야기하는 것'이다.'자주 본다'는 자체가 착각이 아닐까. 여러 채널에서 무수히 재방송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자 하는 시청자가 많아서 그것이 자주 나오는 게 아니다. 실은 돈 문제. 무수한 채널은 자체 제작으로 24시간을 채울 수 없으니 저렴한 프로를 사다가 수시로 틀어줘야 한다. 그처럼 저렴한 콘텐츠는 없을 테다. 싸게 만든 것이니까 싸게 사서 마구 틀 수 있다.연출된 촬영과 선정적 편집과 그에 따른 조작의혹과 비판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조작이든 왜곡이든 사실이든, 아무튼 '힐링'류가 시청자의 마음을 자극한다면, '자연에서의 삶'에 대한 동경 때문일 테다.사람은 문득문득 꿈꾼다.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져,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 무인도 같은 곳에서 홀로 유유자적 살고 싶다. 구차하고 궁색하면서도 구속되지 않고 평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런 삶은 도시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고 오로지 자연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 그래서 힐링 프로는 자연을 찾아간다. 그런 동경은 말 그대로 동경일 뿐이다. 현대인의 생존필수품(스마트폰, 텔레비전, 컴퓨터, 자동차 등)이 없는 자연 상황에서 하루 이상 안빈낙도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신해주는 방송이라도 본다. 그런데 나는 정말 '힐링'하고 있는 걸까? 하고 있다고 그저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지난한 삶에 즐거움과 감동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힐링일 테다. 대부분의 사람이 '힐링'하지 못하는 건 자연에 못 가서가 아니다. 끝없이 가난하고 힘이 없고 끝없이 노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휴식이 불가능하다. 굳이 자연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겠지만, 차라리 책하고 노는 게 진정한 힐링일 테다. 독서는 노동을 멈추게 하고, 마음만은 특권층·부자로 만들어주니까./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12-12 김종광

[춘추칼럼]무엇을 남길 것인가

한달 남은 올해… 조직은 다양한 방식 평가수익은 수입·지출 비교 객관적 자료 추출성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간단하지 않아기관 목표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좌우열두 달 기준으로 올해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이맘 때가 되면 대부분 한 해를 정리하거나 마무리한다. 개인은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조직은 다양한 방식으로 성과를 살필 것이다. 조직도 그 성격에 따라 수익을 따져 평가하거나 성과라는 이름으로 평가를 진행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이때 수익은 수입과 지출 항목의 비교를 통해 객관적 자료가 추출된다는 점에서 나름 명확한 기준을 갖게 된다. 하지만 '성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일을 많이 한 사람과 가치 있는 일을 한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을 더 높게 평가할 것인가. 이러한 기준은 조직이나 기관의 목표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그런 점에서 공공기관, 특히 수익을 주로 창출하지 않는 곳에서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기준에 따라 조직 운영과 사업 방식 등이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거 공공의 문화 행사나 프로그램은 가능하면 많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전국노래자랑'과 같은 행사를 떠올리면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므로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고, 그 결론은 유명 연예인을 불러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지금도 지역축제에 연예인이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주민 참여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행사와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활동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러한 활동이 지역의 문화/예술 영역에서 중요한 성과가 측정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실제로 정책 차원에서도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과거 '행사'나 '프로그램' 중심에서 '일상' 혹은 '활동'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와 광역단체의 문화정책이 생활문화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처럼 주민들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문화/예술을 창조하거나 생산하는 주체로 드러나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필요한 것은 다양한 주민들이 실제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와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일종의 플랫폼 조성이다. 공공의 방향은 이렇게 가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플랫폼이 주민들이 이용할 때 불편하거나 여러 제한을 겪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정책과 규정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주민들이 직접 공간을 운영하거나 기획하는 자산화 단계가 될 것이다. 이는 주민들이 단순히 관람객이나 소비자가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주도하는 생활예술인, 동네예술가, 마을활동가로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적어도 지역의 문화/예술 영역에서 '성과'로 경쟁해야 할 것은 사람과 경험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맞닿아 있으며 같이 움직인다.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과 행사를 진행했는가 하는 것으로 경쟁하는 시대는 끝났다. 아무리 많은 프로그램을 하더라도 사람을 남기지 못하고, 그 사람의 경험을 남기지 못한다면 그 지역의 문화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도시의 공간을 바꾸는 것은 몇 년 만에 가능할지 모르지만 도시의 문화를 바꾸는 것은 수 십 년, 아니 수 백 년이 쌓여야 한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이윤주 작가의 '나를 견디는 시간'(행성B, 2019)을 읽다가 오랜만에 만난 구절이다. "단 하루의 무상한 삶을 영위하는 하루살이들의 눈에는, 우리 인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겹게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한심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한편 별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일까? 아주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지극히 단단한 규산염과 철로 만들어진 작은 공 모양의 땅덩어리에서 10억분의 1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매우 하찮은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칼 세이건, '코스모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19-12-05 권경우

[춘추칼럼]무엇을 위한 선거법 개정인가?

기존 제도서 비례성 강화 '준연동형 …대표제'의석배분 복잡 유권자 선택권 훼손등 '한계'전세계 대통령제 나라서 채택한 경우 없어'신뢰회복' 같은 목표 위한 개혁 필요하다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이 27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민주당은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1' 협의체를 가동해 처리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패스트트랙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벌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상황에서 극적으로 합의 처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사회의 제도는 규칙과 절차의 집합으로 구성원들의 상호 작용이 전개되는 틀을 제공한다. 한편, 선거제도는 정치 게임의 주요 기본 규칙으로 민주정치의 핵심인 대의 과정의 본질을 규정해준다. 따라서 선거제도가 어떻게 짜여 있느냐에 따라 대의 민주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고, 반대로 퇴보할 수도 있다. 각 정당이나 후보가 얻은 득표를 의석으로 전환시키는 장치인 선거제도가 소수 득표를 한 정당이 다수 의석을 점유하면 민의를 의정에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해 대의 민주주의가 퇴보할 수 있다. 지난 2016년 총선에서 거대 정당들은 자신들이 얻은 득표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가령, 더불어민주당은 정당 득표에서 25.5% 득표했지만 총 의석수에서 41%(123석)를 얻었다. 무려 15.5%의 보너스율(의석률-득표율)을 획득했다. 반면, 국민의당은 26.7%의 정당 득표를 했지만 실제 의석률은 12.7%(38석)에 불과했다. 거대 정당에게 유리한 기존 선거제도에서 비례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하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은 몇 가지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의석 배분 방식이 너무 복잡해서 유권자의 투표 선택권을 훼손시킬 수 있다. 유권자는 자신이 던진 표가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알아야 의미 있는 투표를 할 수 있다. 가령, 기존 선거제도에서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후보가 지역구에서 당선 가능성이 없으면 사표를 생각해 다른 정당 후보를 찍고, 정당 투표에서는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에게 투표할 수 있다. 이른바 '전략적 분리 투표'가 가능하다. 2016년 총선 직후 한국선거학회가 실시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지역구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던 유권자의 12.6%가 정당투표에서는 국민의 당을 지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선거법에는 "비례대표국회의원 의석은 당별 득표비율에 따라 산정한 의석수에서 해당 정당의 지역구국회의원 당선인 수를 뺀 후, 그 수의 50%를 먼저 배분하고, 잔여의석은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의 득표비율에 따라 산정한 의석수를 배분한 다음 6개 권역별로 최종 의석을 배분한다"고 되어 있다. 이렇게 복잡한 배분 방식을 이해하고 투표할 유권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비례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유권자의 전략적 선택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개정인가? 더구나 지역주의 타파 명분으로 지역구(225석)의 3분의 1에 불과한 비례대표 75석을 6개 권역으로 나눠 배분한다는 것도 난센스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지역구와 비례구 의석수가 298명으로 동일하다. 일본에서는 지역구 289석, 비례구 176석, 뉴질랜드에서는 지역구 63석, 비례대표 50석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에서는 적정 규모의 비례대표 의석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를 간과한 채 적은 비례대표 숫자로 비례성 강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전 세계적으로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는 없다.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간의 조화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채택되면 다당제가 부상되고, 이념과 노선이 다른 정당들 간에 '권력 나눠먹기식 연대'가 이뤄질 수도 있다. 어쩌면 정치 갈등과 정치 불안정이 일상화될 개연성이 있다. 미국 정치에서 보듯이, 다당제는 선이고 양당제는 악이란 명제는 없다. '게임의 룰'을 정하는 선거제도를 공수처법과 연계해 처리하는 식의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힘의 논리가 아니라 합의 처리돼야 한다. 득표-의석 간 비례성 증대도 중요하지만 정치 제도 간의 조화성, 정책을 중심으로 한 정당정치의 제도화, 그리고 정치 신뢰 회복과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11-28 김형준

[춘추칼럼]주한미군 주둔은 특혜가 아니다

방위비 분담금 지원 29년동안 '10배' 증가美, 셀프 책정 내년 주둔비 44억6천만달러'부당한 요구' 한미간 특별협정 스스로 위배패권전략 전초기지화 의도 동맹가치 훼손지난 20일 한미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3차 협상이 결렬됐다. 협상은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으면서 입장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이다. 국가간 협상은 이해관계의 정도와 협상의지에 따라 합의되기도 하고 결렬되기도 한다. 동맹은 상호존중의 자세와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일반 국가관계와 다르다. 미국은 다음 협상 날짜도 잡지 않고 협상장을 나가버렸다. 냉전시대 남북협상에서 북한의 행동에서나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은 이미 한국민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기에 스스로 동맹의 가치를 손상시켰다.방위비 분담금의 개념은 주한미군 주둔 경비 일부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재정 지원을 말한다. 법적 근거는 주둔군지위협정(SOFA) 5조에 대한 특별조치협정 및 이행약정에 있다. 5조에는 '미국은 주한미군 유지에 따른 모든 경비를 부담하고,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에 필요한 시설·구역(토지)·통행권을 부담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국이 부담해야 할 항목은 인건비·군사건설비·군수지원비 등이 핵심이다. 인건비는 주한미군사령부가 고용한 한국인 근로자에 대한 비용이다. 100% 현금 지원이다. 군사건설비는 막사·훈련장·환경시설 등 비군사시설에 사용되는 비용이다. 88%의 현물과 12%의 현금 지원이다. 한국이 계약권을 가진다. 군수지원비는 탄약저장·정비·수송·장비 물자·시설 유지 등에 사용되는 비용이다. 100% 현물이다. 미국이 계약권을 보유하고 한국은 승인권을 가진다.방위비 분담금 지원은 1991년부터 시작됐다. 이전에는 미국이 대부분 부담했다. 1991년 이후부터는 한국의 경제력 신장으로 지원 규모가 점점 증가되어 왔다. 1991년 1천73억원을 시작으로 2019년에는 1조389억원을 지원했다. 29년 동안 지원 규모가 10배 증가했다. 지원 비용 결정은 전년도 총액에 매년 소비자물가지수를 반영하고 인상률 상한선은 4%를 적용했다. 2020년도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분담금은 50억달러이다. 미국이 스스로 책정한 2020년도 주한미군 주둔경비는 44억6천만달러이다. 44억6천만달러 속에는 주한미군 인건비 21억 달러, 운영유지비 22억달러, 가족숙소 관련 비용 1억4천만달러, 기타 군사건설비 등으로 구분돼 있다. 2020년도 분담금 요구액이 주둔경비 책정액을 능가한다. 주한미군에 대한 모든 비용을 한국이 책임지라는 것이다.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에는 주한미군 인건비를 제외한 주둔경비 일부를 지원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미국의 요구는 부당할 뿐만 아니라 한미간 특별협정을 스스로 위배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인건비까지 한국이 부담한다면 주한미군이 한국의 용병이 되어야 한다.미국의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는 인도·태평양 전략 등 미국의 세계 패권전략 수행 비용과 연계되어 있다. 한미연합연습에 참가하는 해외 미군, 항모전단 등 전략자산의 전개, 호르무즈 해협과 남중국해 작전 등의 비용 요구에 잘 나타난다. 주한미군 순환배치 비용, 주한미군 작전준비태세 비용 등의 작전지원 신설 항목 요구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세계 패권전략 실행 비용 요구는 한국 방어에 한정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넘어선다. 한국을 패권전략의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것은 동맹 가치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한국은 충분한 수준의 안보분담을 해 왔다. 미국의 주요 동맹·우방국들 가운데 국내총생산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의 국방예산을 지출하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카투사 지원·세금감면·공공요금 감면 등 상당한 수준의 직·간접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평택·오산 등 주한미군 재배치를 위한 사업비 108억 달러를 충당했다. 주한미군은 세계 최대 규모와 최적의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국군은 월남전·이라크전·아프간전 등 미국 주도의 다국적 군사활동에 모두 동참해 왔고 최근까지 12개국에서 파병활동을 하고 있다.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의 한반도 방위 기여도, 한국의 재정부담 능력, 한반도 안보상황,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 보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공평성에 토대한 합리적인 수준에서 책정돼야 한다. 무임승차론이나 주한미군 철수론 같은 낡은 주장은 미국 스스로 논리의 한계성을 보여준다. 오늘날 주한미군 주둔은 더 이상 한국에 대한 특혜가 아님을 미국만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뿐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11-21 양무진

[춘추칼럼]기억하는 법

같은 사람들 같은 일 겪은것 서로 다르게 말해특권층 '모르쇠'·'내로남불'로 잡아떼기 일쑤왜곡·조작·삭제 '복원' 스마트폰 기능 대단지난일 생각해 내는법 잃어버릴까 서글퍼져스무 살 때 강원도의 어느 호수 안에 있는 무슨 섬으로 엠티를 갔었다. '바퀴벌레 한 쌍'이라고 불리던 두 친구의 언약식을 치러주었다. 너무나도 생생한 추억이었다. 어이없게도 나만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동기들에 의하면, 우리는 그 곳에 엠티를 간 적이 없었다. 대학 다니는 내내 '언약식' 따위를 치러준 커플이 전혀 없었단다. 순전히 나만의 기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그 기억을 믿고 있다.그런데 만약 그것이 정말 없었던 일의 기억이라면? 아마도 공상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기억으로 자리 잡은 것일 테다. 꿈이었을 수도, 상상한 스토리일 수도, 망상일 수도 있다. 엠티 가서 언약식 하는 이야기, 얼마든지 공상할 수 있다. 내 바람의 변형이었을 수도 있다. 언약식 같은 특별한 체험을 해보고 싶었던 어쭙잖은 청춘의 간절한 몽상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실제 기억처럼 대뇌피질 어딘가에 박힌 것이다.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내가 들었던, 보았던, 읽었던 장면들이 한 줄기로 꿰어져 내가 겪은 일로 둔갑한 것. 누군가에게 '바퀴벌레 한 쌍'으로 불리는 커플 얘기를 들었고, 어느 드라마에서 대학생들이 언약식 치르는 장면을 보았는데, 그것을 조합하여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본 일로 믿어버리게 된 것이다.나만 이렇게 이상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확신하지만, 어쩌면 실제로는 없었던 일일 수도 있는 기억. 나처럼 극단적인 기억의 모순은 드문 일일지라도, 서로 다른 기억의 충돌은 흔한 일일 테다.남자들의 군대 얘기가 그토록 길고 격렬한 것은 기억의 불일치 때문인 경우가 많다. 수십 년 만에 만난 동창들 모임이 학교 때 얘기만으로 밤을 새울 수 있는 것은 기억들의 중구난방 때문이다. 분명히 같은 사람들이 같은 일들을 겪었는데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흥미로운 것은 기억을 대하는 태도다. 나처럼 내 기억이든 타인의 기억이든 모조리 의심하는 이도 있다. 대개는 내 기억도 타인의 기억도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리다는 식의 열린 자세를 유지한다. 그래야 그 판이 유지되니까. 물론 판이 깨지든 말든 자신의 기억을 맹신하는 이들이 있다. 내 기억은 무조건 틀림없고, 타인의 기억은 무조건 틀렸다는 거다. 이런 사람이 둘 이상이면 필시 고성이 오가게 된다.왜 기억을 나누다가 싸우지는 않더라도 마음이 상하게 되는 걸까. 나는 타인에게 잘 기억되고 싶었던 것일 테다. 이를테면 일관되게 괜찮은 언행을 한 사람으로. 내 기억으로 나는 일관 되게 점잖게 말하고 행동했는데, 타인이 몹쓸 언행불일치자로 기억하고 있으니 언짢아질 수밖에 없다.어쨌든 오래도록 다채로운 기억은 사람의 것이었다. 실제기억이든, 공상기억이든, 표절기억이든 내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기억을 스마트폰이 하는 세상이 되었다. 스마트폰에 담아버리면 끝인 거다.물론 제일 고통 받게 될 사람들은 특권층이나 연예인처럼 온 국민이 다 아는 분들, 이른바 '공인'일 테다. 공인의 말과 행동은 실시간으로 국민에게 기억된다. 하기는 연예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특권층은 별로 문제될 게 없을 수도 있겠다. 그분들의 주특기가 '모르쇠'와 '아니라고 딱 잡아떼기'와 '내로남불'이니까. 그래도 과거처럼 대놓고 적폐를 저지를 수는 없겠다. 딱 잡아떼고 말면 되는 언행도 있겠지만, 감옥에 가야 할 언행도 있으니까.법으로 처벌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왜곡하거나 조작하거나 삭제한 기억을 바로 잡아주거나 복원해주는 등 스마트폰의 순기능은 상당하다.하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서글픈 일이다. 반주 없이도 외워 부르는 노래가 수두룩하던 사람이 노래방기계 없이는 노래를 못 부르듯, 그렇게 길을 잘 찾던 사람이 내비 없으면 길치가 돼버리듯, 스마트폰이 없으면, 그때 내 마음을, 내 생각을, 풍경을, 타인의 언행을 떠올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떤 기억일지라도, 기억 행위야말로 사람을 사람답도록 한다. 기억하는 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기억하는 법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11-14 김종광

[춘추칼럼]언어의 힘

광화문·단톡방… 서로 '죽이는 언어' 난무칭찬·격려하며 '살리려는 것' 찾기 힘들어다양한 형태 작가 생태운동가와 다름 없어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우리도 각자 변해야주문한 시집이 도착했다. 시인을 알지만, 잘 모른다. 그와 알고 지낸 시간이나 함께 나눈 대화는 내 삶의 다른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짧다. 하지만 이제 함께 보낸 시간의 길이가 앎의 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정도는 알게 되었다. 내가 아는 시인은 퉁명스럽지만 따뜻하고, 거칠지만 정교하다. 그는 막연한 낙관이나 섣부른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며, 현실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의 힘은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온다. 그것은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관조와는 다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흐름에 자신의 몸을 담그는 방식이다. 시인은, 당연하게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자신의 몸으로 그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견디는 데서 시를 쓴다. 그의 시는 현실을 이야기하지만 단순한 묘사나 고발에 그치지 않는다. 정확한 현실 인식 너머를 생각한다. 개인과 사회, 개인과 공동체, 개인과 구조 등의 관계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비결을 제공한다. 그것은 어쩌면 어릴 적 고향의 강가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던 강물에서 시작되었고 완성되었다. "어린 내가 서러우면 강둑에 앉아 흐르는 물을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황규관, '강물' 중) 흘러가는 강물은 시작과 끝에 주목하지 않는다.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주목하고, 반응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조바심이 아니라 기다림을 배우는 일이다. 멀리서 정류장으로 차가 들어오면 먼저 타려고 뛰어간다. 차를 놓치면 안 된다는 아우성이 넘치는 시대에 이번 차를, 다음 차를, 다음다음 차를 그냥 보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이다. 그것을 배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번 차는 모른 척 보내고/우두커니 혼자가 되자/혼자가 되어/멀리서 내리는 빗소리를 듣자//다음 차도 보내고/다음다음 차도 보내고/저물녘에 우는 늙은 새울음도 보내고/슬픔에 사로잡힌 영혼도 보내고……"('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중에서)시인의 힘은 그의 언어에서 나온다. 그는 부드럽고 유려한 문체가 아니라 적확하고 명료한 언어의 힘을 지향한다. 그의 언어는 어떤 사상이나 개념이나 집단에 정박하지 않고 흘러갈 따름이다. 언어가 힘을 잃어버린 시대에 그의 언어에서 그 힘을 발견한다. 균형을 잡고 판단을 가늠하는 기준을 세워주었던 '법의 언어'가 사라졌고, 현실과 사실을 가장 정확하고 날카롭게 전달했던 언론의 언어가 실종되었다. 아이들의 언어는 가장 빠르게 오염되고 있으며, 어른들은 더 이상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카톡 단톡방에서 서로 헐뜯고 비방하고 죽이는 언어들이 난무한다.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고 살리는 언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언어가 사라지고 죽어가는 시대에 우리의 언어는 어떠해야 하고 어떤 언어를 지향해야 하는 걸까."가장 큰 언어는 들을 수 없는 언어다./ …가장 깊은 언어는 그 기원을/모른다… /가장 오래된 언어는 그 최종 지점도/없다…//오늘의 언어가/과거의 언어가 아니듯/우리의 언어가 어제의 비명이었고/싸움이었고 사랑이었듯/반달을 바라보는 골목길이었듯/…/국가의 언어 말고/탐욕의 언어 말고/나의 언어를 나의 너/의 언어를//원통하게 죽어간 이의 언어를/언제나 버려졌던 어머니의 언어를/어깨가 떨리는 언어를/바람결에 반짝이는 언어를……"('가장 큰 언어' 중)이 시대에 여전히 '언어'를 붙들고 있는 이들을 주목하자. 시인, 소설가, 비평가, 에세이스트 등 다양한 형태의 작가들은 어쩌면 지구를 지키는 생태운동가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이라도 언어를 붙들고 씨름하자. 그것은 나의 언어를 바꾸는 일이고, 우리의 언어를 바꾸는 일이고, 직장의 언어를 바꾸는 일이고, 공공의 언어를 바꾸는 일이다.가을이 깊어간다. 겨울의 문턱이다. 시집 한 권 읽자, 시집 한 권 사자. 나의 언어, 우리의 언어를 위해./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19-11-07 권경우

[춘추칼럼]문재인 대통령 집권 2년반의 치명적 한계

수십조 투입불구 정규직 줄고 비정규직 늘어가장 큰 업적 꼽는 남북협력체제 '교착상태'정계출신 공공기관장 10명중 7명 '캠코더인사'조국 '불공정'·경제난 '대외여건' 남 탓 돌려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11월10일)을 맞이한다. 지난 2년 반 동안 문재인 정부는 몇 가지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첫째, 무능이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제로(0)'를 '대통령 1호 지시 사항'으로 추진하고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다. 그동안 수십조원의 일자리 예산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정규직은 줄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일자리 참사가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정규직 근로자 수는 전년 대비 35만3천명 줄어든 반면 비정규직은 86만7천명 증가했다. 소득주도성장은 현 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이다. "국민들의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늘어나고, 소비가 늘어나면 투자가 늘어나면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경제가 성장한다. 소득 양극화는 덩달아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지난 8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값)은 5.3배로 2003년 이후 가장 악화됐다. 한국은행은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이전 분기보다 0.4% 성장했다고 밝혔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경제 성장률은 1%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 정부가 가장 큰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남북한 협력체제도 교착 상태에 빠졌다. 북한은 올해 한국을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했고, 문 대통령에 대해 '겁먹은 개', '삶은 소대가리'와 같은 입에 담기 힘든 막말로 비난했다. 심지어 북한은 금강산 내 '남측 시설 철거'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북한의 위협을 애써 외면하고 북한을 감싸면서 비겁하게 인내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정부가 무능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둘째, 위선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민주당은 총 22조원의 예산이 투입된 4대강 사업이 예비 타탕성(예타) 조사 없이 진행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SOC 사업을 '토건 삽질'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 정권은 지난 1월 24조원 규모의 23개 국책사업의 예타를 무더기로 면제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수첩인사, 공기업 낙하산 인사를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국내 공공기관에 정계 출신 기관장 10명 중 7명이 이른바 '캠코더(대선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로 확인됐다. 2015년 9월 9일 당시 제1야당 새천년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는 "2016년 예산안에서 국가채무비율이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여겨 왔던 40%가 깨졌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경제 부총리에게 "국가채무 40% 근거는 뭔가"라고 따졌다.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셋째, 정부가 잘못한 일을 제도와 남의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이다. 가령, 문 대통령은 조국 전 장관 일가의 불법과 부정의 문제를 제도의 탓으로 돌리며 정시 확대를 주문했다. 조 전 장관 개인보다는 '합법적 제도 내 불공정'이 문제라는 인식이다. 정부는 한국 경제가 추락하는 이유로 미·중 무역 전쟁,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등 대외 여건 악화와 언론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IMF가 전망한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2.0%)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3.0%)보다 훨씬 낮고, 미국(2.4%)보다 뒤처진 것은 국내 경제 정책의 실패가 더 큰 요인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집권 2년 반은 그야말로 혼돈과 분열의 연속이었다. 대통령이라는 리더는 있었지만 국민을 설득하고 야당과 협치하는 리더십은 없었다. 문 대통령은 역대 실패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자신과 청와대가 모든 것을 처리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과 적기에 국민이 요구하는 것을 결정하지 못하는 '만시지탄'(晩時之歎) 리더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집권 초기 80%대의 높은 대통령 지지도가 지금은 반 토막이 났다. 문 대통령이 향후 무능과 위선, 무책임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고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인정해야 한다. 대통령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중책을 맡겨야 한다. 진정 경제를 살리려면 확장 재정보다는 정책 기조를 바꾸어야 한다. 오기보다 겸손, 분열보다 통합, 힘에만 의존하는 통치보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에 치중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 → 혁신적 포용 국가 → 평화 경제 →공정 사회 구축과 같이 수시로 국가 어젠다를 바꾸기보다는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과 역사로부터 평가받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10-31 김형준

[춘추칼럼]위기는 곧 기회다

김정은, 선임자들 금강산사업 의존정책 비판대북제재로 어려운 상황 관광사업은 자금줄시설 철거 협의위한 후속조치 취할 가능성민간차원 관광문제 포괄적 논의방안 찾아야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3일 금강산 관광 지구를 현지 지도하면서 남측과 협의하여 금강산 지구 내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지도는 남북관계의 시금석인 금강산 관광 사업의 존폐와 직접 연계되어 있어 주목된다. 금강산 관광 사업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중단된 이후 거의 10년 넘게 사실상 방치되어 왔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이 본격화된 2016년 이후에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대북제재 프레임에 맞물리면서 재개의 기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의 중단은 유엔 대북제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금강산 관광 사업이 지난 1990년대 말 남북관계의 물꼬를 튼 사업으로 시작되면서 사업 대가나 관광수익이 현금으로 지급되는 구조가 되면서 대량현금의 유입을 금지하고 있는 안보리 결의와 맞물려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으로 지난해 9월 남북 정상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아무런 전제 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북한은 우리 측이 대북제재 등을 이유로 금강산 관광 재개에 소극적인 것에 대해 대미굴종행위 등이라며 공개적인 비난의 수위를 높여 왔다.이번 현지지도시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이 남북 간 공유물처럼, 남북관계의 상징, 축도인 것처럼 되어있고 남북관계가 발전하지 못하면 금강산 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그가 이례적으로 선임자들의 잘못된 의존정책을 운운하면서 강도 높은 비판을 한 이유는 지금 북한이 처해 있는 현실과 연관이 깊다. 대북제재로 어려운 경제상황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에 있어서도 관광 사업은 무시할 수 없는 자금줄이다. 중국 등 외국인들이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 한 해 2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완벽한 관광 인프라는 구축되지 않았지만 전 세계 유일의 폐쇄국가의 체험이 관광테마가 되고 앞으로 관광 특구화 혹은 개방화된다면 북한 관광객들은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로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원산 갈마, 마식령 지구에 공을 들여왔고 그리고 지난 16일 김정은 위원장이 재방문한 삼지연군은 백두산 관광과 연계된 관광특구로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 삼지연군의 경우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이후 최대로 많이 현지지도를 한 장소라고 할 만큼 정권차원에서 공적화하는 곳이다. 이러한 북한 입장에서는 금강산 관광 지구도 마냥 묵혀 놓을 수 없는 절박한 사정이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것은 금강산에 있는 이산가족 면회소이다. 이산가족 상봉 사업도 더 이상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이산가족들이 자유롭게 만나는 시설 또한 문을 닫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김정은 위원장은 남측과 협의를 통해 남측 시설들을 철거하라고 하였다. 최고 지도자의 지시는 반드시 이행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북한은 이 문제 협의를 위한 후속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위기는 곧 기회다. 우리로서는 수세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유엔 안보리 조치에는 정작 관광에 대한 제한은 없다. 중국인들이나 다른 외국인들은 정당한 여행경비를 지불하고 북한을 방문한다. 차제에 있을 북한과의 협의에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민간 차원의 관광문제를 포괄적으로 협의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금강산 관광 또한 사업 대가로 대량 현금이 들어가는 사업이 아니라 순수 관광으로 전환될 수 있다면 우리 국민들이 다시 북한을 방문할 수 있을 것이다. 금강산 관광 사업이 중단된 사유이기도 한 우리 국민들의 신변 안전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합리적인 절차를 남북이 합의할 수 있다면 관광 재개의 우호적인 여건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남녘 동포들이 오겠다면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라 하였다. 무조건 폐쇄하고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문제 해결을 위한 양측의 전향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로서는 금강산 관광을 포함, 북한 지역 관광을 남북 교류 재개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 간 대화채널을 열고 필요하다면 미국과 우방국들을 설득해야 한다. 동서독은 통일 전까지 수백만명의 왕래가 있었다. 제한된 조건에서도 여행과 관광의 자유는 보장되었음을 상기하자./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10-24 양무진

[춘추칼럼]진솔하지 않은 책들

정치인들 출판기념회 스펙 쌓고 자금 얻고대부분 "내가 썼다"… 무슨 책이든 '쓴 척'"내얘기 뭔 문제"해도 거짓 대필땐 부메랑검찰 ·언론이 누구 파듯이 하면 재간 없어대개의 작가는 출판기념회 여는 것에 시큰둥하다. 행사를 준비해 본 분은 알 테다. 바쁜 사람 모시는 게 얼마나 힘든지. 또 작가는 부조(책값)를 받는 일이 거의 없다. 오히려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차비를 드려도 시원치 않다. 뷔페 정도는 불러야 한다. 가난한 것으로 소문난 작가는 출판기념회를 누가 열어준다고 해도 기피할 수밖에 없다.무슨 선거가 되었든, 선거를 앞두고 4, 5, 6개월 전에, 소리 소문 없이 줄기차게 열리는 행사가 있다. 정치인이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으면 정치인이 아닌 것처럼 출판기념회가 극성을 부린다. 정치인은 왜 그렇게 출판기념회에 열성적일까?여러분이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첫 번째 이유. 정치자금을 걷기 위해서.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법 제한을 받지 않는다. 금액한도, 모금액수, 횟수에 제한이 없다. 돈을 준다고 해도 안 갈 분도 있겠지만, 돈 내러 가야할 분도 많은가 보다.돈 때문이 아닌 정치인도 있을 테다. 아무리 모금액수에 제한이 없다지만, 출판기념회로 거둬들일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되겠는가. 돈밖에 없는 정치인에게는 돈은 별로 상관없는 문제일 것이다. 책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할 수도 있다.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책이 어마어마하게 나오지만 책 읽는 사람은 드물다. 독자는 거의 없지만 책을 쓴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크다. 책을 내야 인격을 갖춘, 지식을 겸비한, 소양이 높은, 한 마디로 훌륭한 정치인 같다. 즉 책은 정치인의 필수 스펙 혹은 아이템 혹은 보증수표로 자리 잡았다. 책도 안 낸 자는 정치인 자격 자체가 없어 보인다. 정치인이 책 내는 것을 꼴 같지 않게 보는 유권자도, 정작 책이 없으면, 책도 못 내는 무식쟁이 후보라고 깔볼 테다. 그래서 정치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혹은 꿩 먹고 알 먹기로 책을 내게 된다. 안 낼 수가 없으니 내고, 필수 스펙 쌓고 정치자금도 얻는 것이다.그런데 책은 정치인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대개의 정치인은 책을 낼 때 당당히 밝힌다. 내가 썼다고. 그 책이 자서전이든 회고록이든 대담록이든 정치활동자랑담이든 대중교양서든 수필집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쓴 척한다. 진실로 자기가 다 쓴 분도 있다. 심지어 지난한 수정 작업도 스스로 하신 분도 있다. 그런 분은 '저자' 맞다.이런 경우는 어떤가. 정치인은 인터뷰만 했다. 그 인터뷰를 바탕으로 어떤 작가가 원고를 써주었다. 텔레비전에서 보셨다시피 말 되게 말하는 정치인이 드물다. 그 말 되지 않는 말을 읽을 수 있는 글로 변환하는 것은 청계천복원사업 못지않다. 정치인이 자료(메모, 회의록, 신문기사 등등)만 주고 대필자가 다 썼다. 정치인이 에이포지 10장 원고를 주었는데 대필자가 100장 분량으로 늘려 썼다. 이렇게 정치인이 말이나 자료나 일부 원고를 제공했지만 대필자가 거의 다 쓴 책이 숱하다.하나같이 '정치인 아무개 지음'으로 출간된다. 제1저자는 분명 대필자다. 정당한 책이라면 '아무개 작가가 쓴 정치인 아무개 이야기'라는 식으로 나와야 한다. 정치인은 말할 테다. 내 이야기인데 뭐가 문제야! 그게 더 문제일 수 있다. 책에 나오는 내용이 그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내세울 만한 것은 엄청 자랑하고, 꺼림칙한 것은 전혀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허위 기억'과 '자기 모순'과 '위증'이 난무하는 것이다. 대필자의 교언영색을 '진짜'로 착각해버리면 더욱 답이 없다. 저자 표기 문제와 책에 담긴 의심스러운 문장들만으로도, 검찰과 언론이 누구네 파듯이 하면 도무지 안 걸릴 재간이 없을 테다. 정치인에게는 책이 계륵이 돼버린 셈이다. 정치인의 절대 스펙인 책을 안 낼 수는 없다. 책을 내니 뿌듯하고 돈도 생기고 좋기는 하다. 하지만 그 책이 언제 부메랑이 돼서 날아올지 모른다.작가로서 조언을 드리자면, 가장 후환이 두렵지 않은 방법은 진솔하게 자료를 제공하고, 진솔하게 저자 표시를 하라는 것이다. 선거일 90일 이전에 무수히 쏟아지는 정치인의 책 중에 그나마 읽을 수 있는 책은 진솔하려고 노력한 책뿐이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10-17 김종광

[춘추칼럼]지역축제와 지역문화

역사문화 결합 축제가 엉망 되는 이유는 권력자와 장사하는 이가 결탁하기 때문지자체들 규모 키우는 데 신중한 접근을잘되는 식당, 함부로 확장 않는법 배워야축제는 지역문화의 꽃이다. 지역문화 영역에서 일을 하다 보니 여러 지역의 다양한 축제를 접하게 된다. 분명한 사실은 지역축제가 정말 많다는 점과, 그럼에도 그 많은 축제를 왜 하고 있는지 가끔은 궁금해진다는 점이다. 물론 지역문화의 확장과 맞물려 지역축제가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전문가와 시민의 역량이 강화되면서 과거와 같은 획일적인 지역축제를 넘어 지역 특성을 살린 멋진 축제들도 많아졌다. 그렇기에 축제가 많다는 것만으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관점에 따라 축제와 같은 문화행사를 예산의 소모나 낭비로 보기도 하지만, 그렇게 보기 시작하면 사실상 모든 문화와 예술은 '예산 낭비'에 불과하다. 지역축제에 대한 비판은 그 축제들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차별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유사한 방식과 형태의 축제들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규모의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데서 나타난다. 축제를 지역문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관광산업 일변도나 정치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면 외부 이벤트기획사에서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전략을 취하게 됨으로써 지역축제라는 이름으로 일정한 틀에 맞춰 크기만 다르게 찍어내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지역축제에 대한 잘못된 접근 때문이다. 지역축제는 지역문화의 중요한 콘텐츠이고, 이를 통해 다양한 지역문화와 역사문화자원이 결합되어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하는 공동체의 정체성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축제가 일시적 이벤트일지라도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가와 시민, 지자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오랜 신뢰와 경험을 쌓아가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원이 제대로 발현된 결과를 담아내야 한다. 간혹 지역축제가 엉망이 되는 이유는 축제를 '도구'로 생각하는 권력자와 그 주변에서 축제를 통해 '장사'를 하는 이들이 결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지역축제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첫째, 축제 규모를 키우는 일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많은 지자체에서 지역축제를 대규모의 국제적인 축제로 키우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축제가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래야 하는 축제만 그렇게 하면 된다. 장사가 잘 되는 작은 식당이 함부로 가게를 확장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둘째, 지역축제의 본질을 잊으면 안 된다. 지역축제는 '공통 문화(common culture)'를 경험하고 축적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공통 문화는 곧 지역의 특이성이자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으로 나타난다. 지역축제는 지역문화의 고유성과 특이성을 잘 담아내고 드러냄으로써 지역공동체 주민들에게는 스스로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외부의 대중들 또한 그 지역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맛볼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동일한 기준의 경쟁이 아니라 각각의 차이가 잘 드러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지역문화와 지역축제의 가장 중요한 방향이다. 셋째, 지역축제는 지역의 독자적인 콘텐츠를 개발하고 확보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지역축제를 위한 지역의 전문가 및 활동가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직업으로서의 전문가가 아니라 지역문화를 함께 일궈갈 실질적인 주체를 생산하는 일이다. 다양한 주체들이 결합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지역의 문화자원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발굴함으로써 공동의 자산으로 만들어가고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지역문화 관점에서 지역사회의 건강지수를 측정한다면 어떨까? 가장 나쁜 상태는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정치'를 염두에 두거나 눈치를 보면서 활동할 때이다. 소수 정치인을 위해 다수의 주민 활동가들이 존재할 때이다. 반대로 건강한 지역사회는 활동주체들 각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을 적절하게 분배하고 있을 때이다. 정치는 그러한 활동의 결과로 만나는 지점에 불과하다. 정치가 전제되고 활동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활동이 전제되고 정치가 따라와야 한다. 지역사회의 문제와 퇴행은 대부분 이 두 가지가 서로 바뀌어 있기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19-10-10 권경우

[춘추칼럼]대통령의 존재 이유와 검찰 개혁의 본질

조국장관 임명 강행 이념대립 나라 '두동강'국민들 '나라다운 나라' 만드는 대통령 원해檢개혁 조장관 수사후 진행돼야 진정성 담보진보, 폐쇄적 진영논리 벗어나야 미래보여조국 사태가 몰고 온 파장은 자못 크다. 몇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대통령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은 국민의 공복이고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정부를 통치한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고 갈등을 조정하여 국민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다. 이것을 토대로 국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전략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 모두에게 책임을 진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신이 꿈꾸는 대통령의 표상에 대해 다양한 약속을 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심지어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진영 논리에 따른 이념적 대립으로 나라는 두 동강이 났다. 검찰청 앞에서는 진보 진영이 주최한 '조국 수호' 대규모 군중집회, 광화문 광장에서는 보수 진영이 총동원되는 '조국 사퇴 촉구' 집회가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줄곧 "사람이 먼저다"라고 외쳤지만 이제는 "조국이 먼저다"로 방향을 튼 것 같다. 이렇다 보니 문 대통령을 향해 '하조대 대통령'(하루 종일 조국 장관만 챙기는 대통령)이라는 별명마저 생길까봐 걱정된다. 항간에는 문 대통령이 조국에게 무슨 약점이 잡혔거나, 아니면 조국 수사를 막아야 할 무슨 절박하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니냐"라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들이 현시점에서 문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취임사에서 밝힌 약속을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상식과 도덕, 윤리와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통령"이 되길 요구한다. 한편 검찰 개혁의 본질은 무엇인가? 청와대와 여권은 검찰 개혁과 관련 심각한 모순과 착각에 빠져있다. 이들은 '조국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는 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고 의심하는 것 같다. 윤석열 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뿐만 아니라 그동안 검찰 개혁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밝혀왔다. 민주당조차 윤 총장을 "검찰 개혁의 최고 적임자"로 치켜세웠지 않았는가. 더구나 윤 총장은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하라"고 지시한 지 하루 만에 자체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여권은 검찰이 조국 장관과 관련된 의혹을 수사하니까 느닷없이 '개혁 저항', '정치 검찰', '과잉 수사' '고의적 피의 사실 유출' 등 온갖 비난을 퍼붓고 있다.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을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조국 임명 반대'와 '조국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국민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수천명의 전·현직 대학 교수가 '조국 파면' 시국 선언을 하고, 서울대 등 수많은 대학생들이 '조국 아웃'을 외치며 촛불 집회를 여는 현실은 왜 외면하는가? 최근 KBS 여론 조사(10월 26~27일) 결과, 조 장관 가족 수사와 관련해 '지나치지 않다'(49%)가 '지나치다'(41%)보다 훨씬 많았다.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과정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에 대해 '허용돼야 한다'(64%)가 '금지돼야 한다'(24%) 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분명, 집권 세력의 생각과는 달리 민심은 윤 총장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국민은 없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화다. 그런 의미에서 정권에 아부하지 않고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살아있는 권력인 조국 장관을 강도 높게 수사를 하고 있는 윤석열 총장이 검찰 개혁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수사권 조정, 검찰의 수사 관행 등과 관련된 검찰 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개혁은 조 장관 수사가 끝난 뒤에 진행돼야 진정성이 담보된다.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할 법무부 장관이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는 주장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단언컨대,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은 별개다. 개인 조국의 실패는 진보의 실패가 아니다. 이제 진보는 폐쇄적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짓과 위선, 각종 의혹으로 진보를 깊은 수렁 속으로 빠뜨린 조국을 맹목적으로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비판하고 응징해야 한다. 그래야 진보의 미래가 보인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10-03 김형준

[춘추칼럼]한반도 비핵·평화 시동건 대통령의 정상외교

유엔총회 'DMZ 국제평화지대' 제안세계 가치 공유해야할 문화유산 강조9·19 남북공동선언 영향 현실성 갖춰긴장 완화·화해 협력 전개될때 '탄력'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미국을 방문한 계기에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비무장지대(DMZ)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문 대통령은 비무장지대의 평화구축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얻는 것과 동시에 '세계가 가치를 공유해야 할 문화유산'이라고 강조하였다. "남북간에 평화가 구축되면 북한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것"이라고도 언급하였다. 문 대통령의 DMZ 평화지대화 제안이 보다 현실성을 갖는 이유는 지난해 9·19 남북공동선언에 따른 군사분야 합의서의 영향이 크다. 군사분야 합의서에서는 비무장지대를 둘러싼 육해공 지역에서 남북 간 우발적 무력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큰 틀의 합의를 이루었다. 군사분야 합의서 체결 이후 이 지역에서 남북간 충돌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우리 측은 보다 적극적으로 남북 간 합의사항인 JSA의 비무장화 작업과 6·25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파주, 철원, 고성 지역에서는 시험 폭파된 GP 장소를 따라 평화의 길 조성 작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지난 6월 30일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드라마틱하게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군사합의에 따라 판문점 지역에서 왕래가 수월해진 것에 기인한다. 판문점 지역의 자유왕래까지는 아직 논의해야 할 사항이 많지만 우리는 과거와는 다르게 변해가는 남북 접경지역의 모습을 목도할 수 있다.이처럼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은 역대정부에서 늘 있어 왔다. 박근혜 정부 때는 비무장지대 한복판에 DMZ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한다는 구상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접경지역을 둘러싸고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여전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작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실현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언급처럼 판문점과 개성을 잇는 지역을 평화협력지구로 지정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남북이 한반도 번영을 공동으로 설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면 명실공히 국제적인 평화지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비무장지대는 남북의 철책을 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평화, 생태, 문화의 보고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킨 것은 적절했다고 본다. 특히 아직 한반도는 수십만발의 지뢰와 세계 최대의 군사적 화기가 대치하는 정전협정 체제아래 있다. 비무장지대는 정전협정에 따라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고 유엔군사령부가 관리하는 지역으로 되어있다. 유엔의 협조를 받지 않으면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활용하는 문제 자체가 불가능하다. 물론 비무장지대만 평화적으로 관리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는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정착과정과 연결되어 있으며 한 단계로 설정되어 있다. 이번에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시한 전쟁불가, 상호 간 안전보장, 공동번영의 3원칙에 따라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고 한반도 전체의 긴장완화와 화해협력이 전개될 때 평화지대화 작업 역시 탄력을 받을 수 있다.지난 9·23 한미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유도하기 위한 유연한 접근을 심도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면서 단계적인 방식을 통해 북한의 신속한 조치를 유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체제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북한에게 먼저 비핵화 할 것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상응하는 조치들을 촘촘히 만들어 연착륙시켜 나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음은 지난 30여 년간의 협상 경험이 말해 주고 있다. 북한의 핵동결에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를 유도해 내야 함은 자명하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3차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북제재는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과 '지켜보자'는 신중한 입장도 견지하고 있다.우리로서는 앞으로 2~3주내에 개최될 북미 실무협상을 지원하면서 북미가 유연한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조치들을 도출해 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갈 필요가 있다. 북핵문제와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남북관계의 발전과 공동번영의 이슈들이 상호 선순환 하면서 한반도 평화발전을 이끌어 나가길 기대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9-26 양무진

[춘추칼럼]'존경하는' 대신 '존중하는'

국회 상임위원장 회의진행때 서두에 사용아무렇지도 않게 '남발' 도무지 적응 안돼국민 위해 일하는 충복끼리 우스꽝스러워꼭 붙임말 쓰고 싶다면 '존중…'은 어떨지 진정서를 써본 일이 있다. 지인이 갇혀 있기에 마땅한 죄를 지었지만, 부양하는 가장임을 긍휼히 여겨 집행유예로 봐주십사 애걸복걸하는 내용이었다. 반성문보다 더 쓰기 힘든 글이 남을 위해 쓰는 진정서임을 알았다.무엇보다도 첫 문장 때문에 괴로웠다. 진정서를 어떻게 쓰는 건지 대략 알아보았는데, 하나같이 첫 문장이 '존경하는 판사님'이었다. 정말 존경하는 부모와 스승께도 왠지 쑥스럽고 오해받을까 봐 써보지 못한 말을, 생면부지의 판사에게 써야 한단 말인가?판사가 진정서를 틀림없이 읽어주고, 진정서가 판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인다고 치자. 누구나 쓰듯 '존경하는 판사님'이라고 시작하면, 판사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 첫 문장을 신경도 안 쓸 것이다. '존경하는'을 쓰지 않으면 판사의 감정이 상할지 모른다. 진짜 존경하지 않는 것으로 오독할 수도 있다. 불쾌할 수도 있다. "남들 다 쓰는 '존경하는' 말 한마디를 안 붙였네, 성의가 없어!"어느 드라마에서처럼 '친애하는'을 쓰거나 '대쪽 같으신', '사랑해 마지않는', '똑바로 판결해주시리라 믿는', '법의 수호자이신',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하늘님 같으신' 등과 같이, 남다르게 써도 좋은 소리 못 들을 테다. "뭐야, 판사한테 장난쳐?"판사는 실제로 존경할 만한 분일 테다. 공부로 따진다면 내가 한없이 우러러봐야 한다. 일의 가치와 중요성을 생각할 때 절로 존경심이 든다. 경제적인 면을 따지면 나 같이 모자란 사람은 공경을 해도 모자란다.불구하고 '존경하는'이라는 말이 왜 그렇게 쓰기 싫었을까. 아무리 지인을 구하고자 하는 글이지만, 아무리 의례적인 표현이라지만,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호칭이 아니었기에, 그런 판에 박힌, 진심이 담기지 않은 관용어를 쓰는 것이 저어됐을 테다.'존경하는'을 아무렇지도 않게 남발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이 토론인지, 회의인지, 질의인지, 취조인지, 말싸움인지 잘 모르겠지만, 국회의원의 언변 덕분에 곧잘 놀라고 자주 웃는다. 저렇게 재미난 분들이 계신데, 소설이 읽힐 리가 없다. 도무지 적응 안 되는 말이 '존경하는'이다. 주로 진행자인 위원장이 쓰는 말이다. 질의자가 여당의원이든 야당의원이든 꼭 '존경하는 아무개 의원님'이라고 칭하는 것이다.대체 왜? 혹시 반어법일까? 그렇게 보기엔 칭하는 이나 듣는 이나 너무 자연스러운 얼굴이다. 텔레비전 보는 국민을 세뇌시키려는 것일까? 국회의원님을 부를 때는 앞에 '존경하는'을 붙여야 된다고. 국회의원끼리라도 존경해주자는 것일까? 혹시 진심인 걸까? 여야를 떠나서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성별을 떠나서 서로에게 상처를 많이 준 사이더라도, 국회의원으로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동류의식의 표현? '존경하는 의원님'도 '존경하는 판사님' 못지않게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된 관용어일 테다. 내가 추측한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의도가 담겨있다기보다는 위원장쯤 되어 회의진행을 할 때 으레 쓰는 단순관용어일 테다. 품위 없는 언어를 사용하며 다른 당 의원을 자격이 없다고 매도하는 이들도 위원장이 되면 '존경하는 의원님'을 입에 달게 될 테다.어쩌면 '존경하는'은 법원과 국회뿐만 아니라, 판사 못지않은, 국회의원 못지않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고 있는 말일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존경하는' 사람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는 '존경하는 공화국'일지도.'존경하는', 그만하자. 국회의원을 '존경하는(남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하는)' 국민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존경받으면 안 되는 직업이기도 하다. 국민을 위해 일하고 국민한테 칭찬받아야 할 머슴이니까. 국민의 충복끼리 '존경하는' 모습이 참으로 우스꽝스럽다. (진짜 언제쯤 존경하고픈 국회의원을 볼 수 있을까.) 정 무슨 말을 붙이고 싶다면 '존중하는' 어떤가. 사람끼리 존중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못하니 '존중하는'이라는 말이라도 사용하라는 것이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9-19 김종광

[춘추칼럼]공공의 존재 이유

전국지자체 공공시설 미활용·방치 수두룩지역 예술·활동가들 "공간 부족하다" 아우성불균형·불일치 해소 민관거버넌스 역할 중요'공공성' 철저하게 시민으로부터 출발해야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공공과 민간이 만나서 협력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지방분권'이 강조되면서 협치 혹은 거버넌스라는 형태의 구조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혁신'을 가능하게 하려면 민간의 역량을 공공 영역으로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공공과 민간이 만나게 되면 항상 불협화음이 생기게 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발생하는 일은 별도로 하더라도 지자체만 놓고 본다면 힘의 불균형과 속도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다.공공이 갖는 가장 큰 힘은 역시 '예산'이다. 지금처럼 불안한 사회에서는 그나마 공적 자금만큼 안정적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은 없다. 많은 예술가들이 불합리한 지원제도에도 불구하고 공모사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에 이런 부분도 포함될 것이다. 공공의 모든 사업은 예산을 기초로 한다. 차기연도 예산을 수립하는 시기가 되면 정부나 지자체 모든 부서는 예산 확보를 위해 '전쟁'을 치른다. 정해진 예산에서 자기가 속한 부서나 사업에 조금이라도 더 예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때론 눈물겹다. 최근에는 추가경정예산도 치열해져서 사실상 '예산 전쟁'은 1년 내내 전개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동네 곳곳에 '예산 확보'라는 플래카드를 열심히 내거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실제로 예산이 없으면 사업을 진행할 수 없으며 사업을 진행할 이유도 없다. 특히 공공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공공 조직에서는 매년 정해진 사업과 예산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실무자 정체성이 강할수록 이러한 원칙을 더 강조한다. 그렇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매년 하던 사업들을 없애는 일이 쉽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한 예산을 책정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매년 반복되는 보도블록 교체도 비슷한 이유이고, 공공 혁신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은 시민들이 공공 영역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시민과 가장 밀접해야 할 공공이 시민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공공 혹은 행정의 존재 이유라는 물음에 가 닿는다. 행정은 시민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국가와 사회가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게 기본적인 책무일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작동할 때가 많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출발해서 사고하거나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이라는 틀에 나와 있는 법과 규정을 적용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래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위의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전도되어 위의 규칙으로 아래를 통제만 하는 것이다. 사회변화에 따른 새로운 현상이나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는 복잡한 사례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최근 정부가 도시재생과 생활SOC 사업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조만간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결과는 새로운 시설이나 공간 등 하드웨어의 변화일 것이다. 문제는 하드웨어의 변화까지 공공이 책임을 지지만 대부분 그 후에는 제대로 안 된다는 점이다. 공간 운영의 방향과 주체마저도 공간이 완성된 이후에 고민하는 일이 많다.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처음 예산과 사업계획이 정해지면 바로 운영 기획과 방향, 주체 등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226개의 전국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시설 중에 현재 제대로 활용되지 않거나 방치되어 있는 시설과 공간은 수없이 많이 있다. 그런데도 지역 예술가들이나 활동가들은 공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이 불균형과 불일치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앞으로 민관거버넌스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언젠가 공공은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공공영역의 가장 큰 위험성은 자신의 존재, 즉 정체성을 스스로 완성하려고 할 때이다. 자기 스스로 완결구조를 갖추려고 하는 순간, 더 이상 공공성이 설 자리는 없게 된다. 공공성은 철저하게 시민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만약 정부나 지자체가 자기완결성을 갖는 조직이 된다면 대기업과 다를 바 없다.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해 혁신을 하고 잘못하면 망하기라도 하지만, 공공은 잘 망하지도 않는다. 지금처럼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대에 공공의 존재 이유는 더욱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19-09-05 권경우

[춘추칼럼]무엇이 정의고 공정인가?

조국 후보 각종 의혹 촛불정신 '정면 부정''사법개혁' 도덕성·국민 지지 얻어야 가능與, 압수수색 강한 비난 '비뚤어진 감싸기'가족에 맹목적 충성 '공정법치 완수' 불가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던진 충격과 파문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첫째,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신을 계승한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촛불 정신이 지향하는 가치는 공정, 정의, 평등이다. 조 후보자와 관련된 각종 의혹들은 이런 촛불 정신을 정면 부정한다. 조 후보자의 위선과 탐욕으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도루아미타불 물거품이 됐다. 조 후보자의 가장 큰 과오는 현 정부의 정통성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 교수 OUT"을 외치며 촛불을 든 서울대 학생들이 "조국 장관되면 공정·정의 배반이다"라고 했다.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23~24일), 조국 후보자 임명에 대해 국민의 60.2%가 반대했다. 20대 젊은 세대에서는 68.6%가 반대했다. 반대 이유로는 '여러 의혹 때문에 공정·정의 등을 내세울 자격이 없어서'(51.2%)가 가장 많았다. 여론이 이런데도 대통령이 조 후보자 임명을 강행한다면 그것은 아집이고 오기다. 조 후보자는 사법개혁의 적임자라는 이유로 지명됐다. 그런데 도덕적 권위가 무너진 상황에서 사법 개혁을 완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개혁을 하려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한 도덕성과 언행일치, 그리고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야 한다.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조국 캐슬',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 등의 신조어가 등장했다. 단언컨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개혁은 설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이제라도 '읍참조국'(泣斬曺國)을 통해 정의와 공정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것만이 이 정권의 촛불 정통성을 지키는 것이다. 둘째, 집권 여당의 비뚤어진 '조국 지키기'다. 민주당은 검찰이 관계 기관과 협의 없이 조 후보자 주변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에 나선 것을 "적폐", "개혁에 저항", "기관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민주당의 이런 행태는 표리부동의 전형이고 검찰에 대한 정치적 외압이다. 문 대통령은 7월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살아있는 권력에 엄정한 법 집행"을 당부했다. 민주당은 지난 7월 윤 총장 인사청문회 당시만 해도 "검찰을 이끌 적임자", "권력 눈치를 보지 않는 검사"라고 두둔했다. 압수수색을 사전에 알려주는 않은 검찰이 적폐가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검찰을 향해 외압을 가하는 집권당이 적폐다. 집권당은 검찰이 아니라 인사 검증 실패에 대해 청와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집권 여당이 청와대 눈치만 보며 맹목적으로 충성하면 결국 정부를 죽이게 된다. 셋째, '비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와 법치와의 관계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애드워드 밴필드(Edward Banfield)는 '비도덕적 가족주의'란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는 아무리 비도덕적이어도 용인될 수 있다"는 '가족에 대한 무한 충성 감정'이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것은 법치 훼손의 주범이고 사회 불신의 근원이다. 부끄러움 없이 가족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에 빠져있는 조 후보자는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해 법치를 완수할 수 없다. 이제 청와대에게 묻는다. 각종 의혹으로 본인이 수사 대상이고 가족이 출국금지 당한 사람이 아직도 사법개혁의 적임자라 생각하는가? 집권당에게 묻는다. 누가 적폐 대상이고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가? 검찰인가 조국인가? 조국 후보에게 묻는다. "당신이 부르짖었던 정의와 공정은 무엇인가?" 친구 원희룡 지사의 충고처럼 "386세대를 욕보이지 말고 부끄러운 줄 알고 이쯤에서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말로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고 행동은 특권과 반칙으로 점철되면 그것이 위선이고 기만이다. 통상, 대통령이 오기를 부리고 특정 인물에 집착하며 집권당이 낯 뜨거운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면 정부는 실패한다. 박근혜 실패에서 보듯이 이것이 한국 정치에서 입증된 철칙이다. 조 후보자는 이제 허황된 권력에 대한 집착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에게 불철저하고 안이했던 것을 성찰할 때다. 자신이 젊은 시절 매료됐다던 사르트르처럼 자기 안에 있는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해야 한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08-29 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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