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안개 속의 한반도 정세

틸러슨 美 국무장관, 한국 경시하는 언행내달 미·중정상회담 한반도문제 집중논의북한, 인민군 창건일 맞아 핵실험 등 예상지난 15∼19일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일·한·중 3국을 차례로 방문했다. 방문기간 동안 수많은 말을 쏟아냈다. 첫째, 한국을 경시하는 언행이 눈에 띈다. 일본은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고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라고 말했다. 외교관계에 있어 일본은 핵심축(linchpin)이고 한국은 주춧돌(cornerstone)인 셈이다. 한미동맹을 미일동맹의 하부구조로 인식하는 느낌이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일본 기시다 외상과 만찬을 함께 했다. 한국의 외교장관과는 만찬을 하지 않았다. 만찬을 함께 하는 것은 친밀감의 표시이다. 초청국인 한국이 의전에 대해 실수한 것일 수 있다. 권한대행 체제가 2개월 후면 끝날 것이라는 것이 만찬 불발의 요인이라면 한국경시의 인식을 지울 수 없다.둘째, 핵무장론에 대한 안일한 태도이다. 북핵의 상황 전개에 따라 한국의 핵무장 허용을 고려할 수 있음을 언급했다. 핵무장을 포함한 어떤 것도 테이블에서 내려놓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북·대중 압박의 메시지와 함께 협상의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북정책의 근간을 흔들 만큼 북핵의 위험성이 심각하다는 판단일 수도 있다. 미국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장을 묵인한 사례가 있다. 이중 잣대에 의한 핵보유국 묵인과 핵은 핵으로 대응하겠다는 냉전시대의 인식이 잔존하는지 의심스럽다.셋째, 새로운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가 실패했음을 분명히 했다. 전략적 인내의 핵심은 한·미·일·중이 공조하여 북한을 압박하는 정책이다. 압박공조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압박의 강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불확실하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포괄적 조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포괄적인 조처 속에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접근이 있는지 불명확하다. 북한의 나쁜 행동에 군사적 대응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나쁜 행동의 기준도 없고 군사적 대응의 범주도 분명치 않다. 유엔헌장에는 직접적인 군사적 침략에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는 직접적인 침략행위가 아니므로 경제적 제재로 제한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언행에 중국과 북한의 대응이 심상치 않다. 왕이 외교부장은 북핵 문제의 본질은 중국이 아니라 미·북 간의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압박을 통한 문제 해결이 실패했기 때문에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로 돌아와야 함을 강조했다. 미·북·중 3자회담을 제안하고 6자회담 재개를 촉구했다. 대화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쌍 중단(북한은 핵실험을 중단하고 미국은 한미군사훈련을 중단)'을 제안하고, 대화의 의제로는 선결조건론이 아니라 '병행론(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동시 논의)'을 제의했다. 북한은 틸러슨 장관의 방중 기간에 신형로켓 엔진시험을 실시했다. 조만간 장거리 로켓 시험발사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중국에는 자주성을 보여주고 미국에는 맞대응 의지를 과시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4월의 한반도 정세 전망은 먹구름이다. 4월 초순 미·중 정상회담이 1차 분수령으로 예상된다. 사드·북핵·평화체제 등 한반도 문제가 집중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 정상 간의 불신과 현안에 대한 입장 차이로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25일 북한군 창건 85주년이 2차 분수령으로 전망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인민군 창건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외적으로는 한미군사훈련에 맞대응하고 대내적으로는 인민군 창건 85주년의 축포로 활용하기 위해 핵실험·인공위성 발사·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이 예상된다.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면 미·중이 한반도 문제의 주도자가 되고 남북한은 이방인이 된다. 한반도의 운명을 미·중에게 맡겨서는 안된다. 권한대행 정부는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사드 장비의 반입을 중단하고 다음 정부에 넘겨야 한다. 중국은 대북특사를 파견하여 김정은 체제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인정이 필요하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실험의 잠정중단 선언으로 화답해야 한다. 미국은 북한의 안보 우려 사안을 포함한 직접 담판의 메시지가 중요하다. 5월이 되면 한국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도 윤곽이 잡힐 듯하다. 새로운 정부가 국민·남북·국제사회와 '더불어 함께 하는 대북정책'을 펼친다면 비핵화와 평화체제, 평화통일도 그리 먼 날은 아닐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7-03-23 양무진

[춘추칼럼]국가 미래 경쟁력, 지식재산

한국, 특허 출원 많은 세계5위 '특허강국''등록특허 보호'·'소송보상액 현실화' 필요전문성 확보위해 '기술판사제' 도입 검토우리가 사는 세상 곳곳은 지식재산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휴대전화 속에만 수십만 개의 특허가 숨어 있다. 세계는 지금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변화하고 있으며 세계경제 질서는 지식재산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구글이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약 13조 원에 인수한 것은 기업이 탐나서가 아니라 모토로라의 특허가 탐났기 때문이다. 삼성과 애플의 세기적인 특허 대결도 미래의 기업 가치는 특허에 의해서 좌우되고 세상의 가치는 창조성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유럽 발 르네상스와 산업혁명도 특허를 통해 발전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특허기술에 대해서 독점권을 부여함으로써 과학자들에게 르네상스의 불꽃을 번지게 했고, 16세기 영국은 과학자들에게 발명품에 대해 독점권을 인정해 주어 이들이 산업혁명의 주역이 되도록 했다. 18세기 미국은 헌법에 특허조항을 명시했고 이런 제도는 에디슨의 탄생으로 이어졌으며 미국이 세계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됐다.필자는 과학자로서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8년간의 국제 특허소송을 직접 경험한 바가 있다. 16년간의 장기연구를 통해서 원자력 신소재 개발을 성공한 경험을 갖고 있다. 연구 프로젝트 착수 시점부터 세계 1등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특허 확보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과정에서 프랑스 기업 아레바가 우리 특허에 대해 무효소송을 제기해 8년간의 특허 전쟁을 치르게 됐다. 아레바는 스마트폰에 비유하자면 미국의 애플 정도로 비견될 수 있는 원자력 분야에서는 세계 최대 회사로 알려져 있는 회사이다. 연구만 하던 필자가 처음으로 외국 기업으로부터 소송을 당했을 때 너무 당황스러웠다. 더욱 어려웠던 점은 이 건에 대해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었다.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리는 최종 승소해 특허전쟁을 마무리하고 산업체에 우리 기술을 이전하는 성공을 이루게 됐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16년간 매진했던 신소재를 개발하는 연구보다 8년간의 국제 특허소송이 필자에게는 더욱 힘들고 악몽 같은 시간으로 기억된다.중소기업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아무리 우수한 세계적인 신기술을 개발한다고 해도 글로벌 대기업으로부터 국제 특허소송을 당했을 때 과연 얼마나 버티고 승리해 우리 기술을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그나마 특허에 대한 보호시스템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대응시스템이 빈약한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장기간의 소송에 매달리다 보면 기업은 성장능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만약에 승소해 특허를 지켜낸다 해도 보상비용은 터무니없이 낮기 때문에 기업은 이미 도산 위기에 빠지게 된다.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특허출원이 많은 특허 강국이다. IT 강국답게 특허 출원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이 있다. 특허를 보호받지 못할 확률이 여전히 높다. 우리나라는 특허침해로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 특허무효 판정을 받을 확률이 50%를 넘어간다. 특허를 보호 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과연 누가 적극적으로 연구개발에 매진해 특허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특허 심사과정에서 면밀한 심사를 거쳐서 확실한 기술에 대해서만 특허를 등록시켜주고, 일단 등록된 특허는 잘 보호해 줘야 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이렇게 해야 기업인이 국가가 인정해준 특허를 믿고 사업을 할 수 있으며, 추후 특허가 무효 되어 사업이 도산하는 불행한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또한 특허침해소송에서 승소하면 손해배상을 받게 되는데 손해배상액이 터무니없이 낮다. 그래서 특허기술을 침해당해도 실질적인 보상이 어렵다. 따라서 특허소송에 따른 보상액을 현실화하는 것도 필요하다.아울러 유럽의 특허청 같이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 기술판사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정부에서는 기술료에 대해서 과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이것이 과연 우리나라 과학기술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한 방향인지에 대해 정책 입안자들이 다시 한번 진중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미래 경쟁력은 지식재산에 의해서 그 운명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식재산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국가적인 차원의 고민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정용환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장정용환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장

2017-03-16 정용환

[춘추칼럼]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대통령이 억울하다고 믿는 태극기 집회특검·언론이 인정하는 '사실' 조차 부정정치적 저항보다 존재론적 축제일 수도지금 대다수 여론조사 문항의 답들은 대략 80대 20 정도로 나뉜다. 20퍼센트가 채 안 되는 사람들 중의 일부가 거리에서 태극기를 들고 연일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단지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집단과 그 집단의 의견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80이 20(중의 일부)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의견으로서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검찰과 특검은 물론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거의 모든 언론이 인정하고 있는 '사실'조차도 부정한다. 그들은 대통령이 억울하다고 믿는다. 대통령 주변의 일들을 대통령은 의도하지 않았거나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생도 충분히 가질만한 이런 의문을 그들은 외면한다. '억울한 사람이 왜 피하는가?' 억울한 사람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진실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밝힐 수 있는 기회(자리)일 것이다. 그런 기회를 스스로 마다한다면 '억울한' 사람이 아니라 '두려운'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통령은 사법 제도와 모든 언론이 열정적으로 제공하려 한 그 기회를 전부 거절하고 어느 인터넷 방송국 진행자를 독대했다. 온 세상이 함께 검증한 사실도 부정하고 명백히 의심스러운 것도 외면하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정신병리학이라면 망상(delusion)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이 경우는 '대통령과 우리는 부당한 박해를 당하고 있다'는 식이니까 피해망상이 되겠다. 의학사전에 이렇게 적혀 있다. '주변 사람이 아무리 그 잘못을 지적해도 교정되지 않으며 또 치료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 망상의 내용을 가지고 논쟁하지 마라.' 환자는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그들을 '피해망상증 환자'로 규정하고 대화를 포기하면 그만일까? 그러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면서도 그 유혹에 저항하려 애쓰고 있다. 그 대상이 누구건 어떤 이들을 간편하게 '규정'하고 '배제'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폭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내가 본 것은 서울 시청 광장에서 노숙하며 태극기 농성을 하는 분들의 인터뷰였다. 세상의 모든 언론에 저주를 퍼붓고 심지어 계엄령의 필요성까지 역설할 때, 그들의 어조는 분명 분노에 차 있었지만, 그 순간 그들에게서 내가 감지한 정서는 어떤 벅찬 충만감이었다. 그것은 아주 오랜만에 '살 맛 나는' 시간을 보내는 중인, 삶의 입맛을 되찾은 이의 에너지였다. 애초부터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이 대통령을 '호위'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이용'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누구나 무엇을 이용한다. 공허한 삶을 '의미'로 채우기 위해서는 이용할 무엇이 필요하다. 나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 그 일을 할 때 나는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살 가치가 있다는 것… 그런 느낌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삶은 얼마나 충만해지는가.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태극기 집회는 정치적 저항이라기보다는 존재론적 축제일지도 모른다. 김현경의 책 '사람, 장소, 환대'에 따르면 '인간'과 '사람'은 다르다. 인간은 그냥 '자연적 사실'의 문제이고 사람은 '사회적 인정'의 문제라는 것. 한 '인간'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 우리 사회가 장년층, 노년층을 사회적 인정의 장에서 배제하고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주고 삶의 의미를 생산해내는 거대한 발전소를 만든 것이라면, 그것은 단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기만 할까. '사회적 인정'의 영역에서도 복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는 날들이다./신형철 문학평론가신형철 문학평론가

2017-03-09 신형철

[춘추칼럼]비겁자 황교안

국민의 뜻과 배치되는 거듭되는 행동알량한 권력·지지층 만족시키겠지만민심 외면하면 좋은 정치인 될수 없어"북한의 안보위협과 어려운 경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오랜 고심 끝에 내린 결정."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이 특검 연장을 거부한 이유란다. 이해할 수 없다. 북한의 안보위협이 최근 더 심해진 것 같지도 않고, 경제는 지난 10년간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다. 특검을 거부하면 북한이 개과천선하고, 어렵던 경제가 살아날까? 거부의 조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검 연장은 그냥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될 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회피로 인해 대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롯데와 SK 등 삼성을 제외한 재벌에 대한 수사는 시작도 못했다. 시간이 촉박한 탓에 우병우의 범죄도 밝혀내지 못했다. 국민의 70%가 특검 연장을 원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는 검사 출신으로, 특검 연장이 필요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알 터였다. 하지만 황 대행은 특검 연장에 대한 의견을 물을 때마다 "면밀히 검토 중"이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며칠 전 노인복지회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특검 연장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는 "노인들이 잘되시도록 바람을 가지고 왔다"는 동문서답을 하기도 했다. 그가 연장을 거부하기로 결정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었으리라. 그럼에도 그가 진작 거부를 천명하지 않은 이유는 그 경우 자신에게 욕이 쏟아질 것을 우려해서가 아닐까? 끝까지 버티다 마지막에 거부하면, 그만큼 욕을 덜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황 대행에 대해 기억나는 몇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2016년 11월, 박 대통령이 이상한 종교를 믿는 게 아니냐고 따져 묻는 민주당 이재정 의원을 째려보던 모습이다. 이재정 역시 지지 않고 눈을 부라려 둘 간의 눈싸움이 한동안 계속됐는데, 이재정이 법조계로 따지면 한참 후배이긴 해도 그가 국민의 대표로서 질문했다는 점에서 그의 째려봄은 국민에 대한 도발로 보였다. 두 번째는 2016년 3월, 그가 부산행 기차를 타기 위해 차를 타고 서울역 플랫폼까지 진입했던 모습이다. 플랫폼에 서 있던 사람들은 "여기도 차가 들어올 수 있나?"라며 놀랐는데, 중증 장애인이 받아야 할 대우를 두 발로 걷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그가 받았다는 점에서 명백한 갑질이었다. 세 번째는 2017년 2월,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한 특검이 청와대 진입을 저지당했을 때다. 특검은 황 대행에게 압수수색에 협조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황 대행의 답변은 허용도 거절도 아닌, 답변을 뭉개는 것이었다. 나중에 국회에서 추궁을 받자 "법령상 판단은 청와대 경호실장과 비서실장이 해야 한다"며 책임을 그들에게 돌렸다. 앞의 두 가지가 출세가도를 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갖게 된 특권의식의 발로였다면, 세 번째 사건은 아직은 대통령인 박근혜의 미움을 사고 싶지도 않고, 국민의 비난도 받고 싶지 않은 황 대행의 '꿩먹고 알먹기' 심리에서 나왔다.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이를 비겁하다고 정의한다면, 황 대행이야말로 비겁의 끝판왕이다. 그는 1983년 청주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28년간 검찰에 몸담으며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그 시절 공안검사로 출세하는 비결은 국가권력에 철저히 순응하는 것이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란 중책을 떠맡았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이 바뀔 수야 없는 노릇이니, 그가 여전히 비겁하게 구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대행은 12.5%의 지지율로 3위를 달리고 있다. 1, 2위가 전부 더불어민주당인지라 황 대행은 보수 진영에서 1위다. 그가 국민의 뜻과 배치되는 행동을 거듭한 것도 보수층의 지지를 잃지 않으려는 얄팍한 속셈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하지만 정치는 국민의 뜻을 따르는 일, 알량한 권력과 자신의 지지층을 만족 시키느라 민심을 외면한 그가 좋은 정치인이 될 확률은 없다. 마땅한 후보가 없는 보수진영을 감안할 때 황 대행이 보수후보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의 운이 좋다면 대통령이 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비겁한 대통령은 무능한 대통령에 버금가는, 국민들의 또 다른 불행이라는 것 말이다./서민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서민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

2017-03-02 서민

[춘추칼럼]김정남 사망 사건 '키맨'은 중국이다

오래전부터 '김정남' 신변보호 해온 中사건발생후 북으로부터 석탄수입 중단사태 관련된 모든 정보 파악하고 있는듯지난 1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북한 국적의 외교여권을 소지한 김철이라는 사람이 사망했다. 말레이시아와 북한 당국은 김철을 김정남으로 확인하지 않고 있다. 우리 정보당국은 김철이 김정남임을 확신한다. 북한은 해외에서 공작이나 정보사업을 할 때 김철·박철·이철 이라는 가명을 많이 사용한다.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 이수용도 스위스 주재 북한대사 시절 이철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5분 동안 액체 분사에 의해 쓰러지기까지 김철의 동영상은 누가 보더라도 김정남임에 틀림없다. 사건 발생 후 아직 김정남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사망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러나 김정남 사망 사건은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만약 …이라면'이라는 가정법을 전제한다.말레이시아 경찰당국은 두 차례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사망자의 신원은 북한 국적의 김철이다. 화학물질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되지만 물질의 종류에 대해서는 계속 확인중이다. 4명을 체포해서 조사했으며 1명은 곧 석방될 예정이다. 북한 국적의 용의자는 6명이다. 1명은 조사중이고 1명은 현지에 은둔중이고 4명은 평양으로 돌아갔다. 북한 국적의 연루자는 2명이다. 1명은 현지 북한대사관 2등서기관이고 1명은 고려항공 직원이다. 여성 2명은 단순 가담자가 아니라 계획된 팀이다.김정남 사망 사건에 대한 말레이시아 당국의 접근은 신중하다. 북한 대사관측에 사망자의 시신 확인을 요청했다. 기본적인 외교적 절차이다. 시신인도에 대해 유족 우선의 원칙을 강조했다. 국제적인 관습이다. 사망자의 신원을 김정남으로 표기하지 않았다. 북한 정권이 배후라는 직접적인 언급도 없다. 반인권·테러라는 표현도 없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북한의 접근은 감정적이다. 거칠고 비외교적이다. 사망의 원인이 심장마비라고 주장한다. 말레이시아 경찰당국이 부검 전에 밝힌 심장마비라는 추정에 말꼬리를 잡는다. 시신 부검을 반대한다. 시신 부검의 여부는 유족 또는 현지 당사국의 법·규정을 따라야 한다. 한국정부와 말레이시아 정부가 결탁해서 북한을 배후로 지목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전형적인 책임전가·물타기 전술이다. 공동조사를 제의한다. 사건 해결의 협조보다 여론전을 통해 조사결과 발표를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있다.한국의 접근은 확대 재생산적이다. 김철을 김정남으로 기정사실화 한다. 김정남에 대한 정보가 많음을 과시한다. 사건 배후도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정권임을 분명히 한다. 북한 당국이 배후가 아니라면 누구냐는 선동적 인식이 담겨있다. 통일부 대변인이 긴급 브리핑을 실시한다. 통일부는 정보부도 아니고 사건조사부도 아니다. 스스로 임무와 역할을 망각하고 품위를 손상한 책임이 크다. 국방부는 사망소식과 함께 김정은 정권의 공포정치를 대북확성기를 통해 심리전을 펼쳤다. 예방안보는 소홀히 하면서 대결안보에는 적극적인 모습이다. 탄핵정국에서 대결안보는 편가르기식 국내정치용이다. 예방안보가 진짜안보이고 대결안보는 가짜안보이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가짜 안보는 대한민국의 적폐로서 척결되어야 한다.정세 분석과 사건 분석의 기본은 선입관의 배제이다. 김정남 사망 사건에 대한 북한의 관련성이 하나하나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협조적 자세가 필요하다. 사건의 책임전가나 지연전략은 북한체제 및 김정은 위원장의 이미지를 훼손할 뿐이다. 한국은 법치국가이다. 국내외 사건에 대해 무죄추정의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사건의 진실 파악을 위해 조용하게 말레이시아 정부와 협조해야 한다. 정보력의 지나친 과시와 사건의 확대재생산은 주변국가로부터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대북압박은 사건종결 후에도 늦지 않다. 중국은 사건발생 후 북한으로부터 석탄수입 중단을 발표했다. 북한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읽힌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도 강조한다. 사건관련 및 관심국가에 대한 권고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김정남에 대한 신변보호·관리를 해 왔다. 북한도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서 김정남 및 일가족들에게 '외교여권'을 허용했다. 중국은 김정남 사망 사건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김정남 사망 사건의 '키맨'은 말레이시아도 한국도 아닌 중국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7-02-23 양무진

[춘추칼럼]시민과 함께 만드는 과학문화

대덕연구원 모임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 한장' 공동체재능 기부로 지역 주민·기업·꿈나무들에 지식 전달벽돌 한 장은 그 자체로 큰 힘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한 장의 벽돌이 모이고 쌓여 따뜻한 집도 만들고 거대한 성도 지을 수 있다. 벽돌이 힘을 갖게 하는 것은 그것의 용도를 상상하고 그 상상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다.대전의 대덕연구단지는 조성된 지 43년이 넘었고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과학자들이 모여 연구하고 생활하는 과학도시이다. 여기서 연구하는 연구원들이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과정에서 주효한 역할을 했다는 것에 누구도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국민의 성원을 얻어왔기에 대덕의 과학자들이 좋아하는 연구를 안정적으로 해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동안 대덕의 구성원들이 국가의 수혜자였다면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의 힘으로 더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대덕연구단지는 자발적인 과학도시라기보다는 정부의 강력한 과학기술 정책에 의해서 형성된 도시이고, 여기서 일하는 많은 과학자들도 지역출신보다는 다른 도시에서 태어나고 공부한 사람들로 구성되다 보니 항상 지역사회와 어울리거나 융합하는데 부족한 점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가 발전하여 지리적으로 경계가 없어지고 대덕의 구성원들도 대전의 전 지역에 걸쳐서 생활하다 보니 이런 고립성이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지역사회와 융합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이러한 차원에서 대덕에서는 구성원들의 자발적 모임인 사단법인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 한 장'이라는 공동체가 탄생한 바 있다.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 한 장은 대덕특구 구성원과 시민이 자발적으로 함께하는 과학문화 조성을 통해 가까운 미래에는 대한민국은 물론 아시아, 더 나아가서 세계 과학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지자는 취지를 갖고 시작됐다.벽돌 한 장만으로는 큰 의미를 가질 수 없지만 벽돌이 하나씩 모아져서 수만 장, 수십만 장 쌓인다면 우리는 이것으로 큰 건축물도 완성할 수 있고, 무엇인가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벽돌 한 장 공동체는 가진 자의 힘으로 한 번에 무엇인가를 이루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작은 참여로 큰일을 하자는 차원에서 이름부터가 색다른 의미를 갖는다.벽돌 한 장 공동체는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과학 대중화 활동의 일환으로 '따뜻한 과학마을 이야기' 강연 프로그램을 매달 한 번씩 개최하고 있는데, 주제는 과학, 기술, 문화, 예술 분야로 다양하게 구성되고 있고, 강사는 모두 재능기부를 통해 참여하고 있다. 또한 매달 대전 대덕구에 있는 기업들을 방문해 기업인들에게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고 과학과 지역사회가 융합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과학 꿈나무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활동, 대전시에서 주최하는 '사이언스페스티벌'과 연계한 X-STEM 강연 등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과학문화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외에 따뜻한 과학마을 조성을 위한 네트워크 사업, 과학문화진흥을 위한 정책 지원 및 건의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처음에는 과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했는데 이제는 뜻을 같이 하자는 사람들이 점차 가정주부, 기업인, 교사, 교수, 언론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분들이 따뜻한 과학마을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고 대전을 넘어 전국적인 자발적 공동체로 성장하고 있다.과학자들은 국가로부터 부여 받은 미션을 수행해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국가 경쟁력을 제고 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가 변해 자기 시간의 일정부분, 자기 재능의 일정부분은 지역사회에 돌려주기 위한 활동,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한 활동, 그리고 따뜻한 과학마을을 만들기 위한 활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선진 복지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 국가에 무엇을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참여하는 공동체 활동과 우리 스스로 가진 것을 내놓아서 따뜻한 마을을 만들려는 자발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이 보유한 작은 벽돌 한장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작은 재능을 한 장씩 내놓음으로써 벽돌은 한 장씩, 한 장씩 쌓아지고, 우리는 이것으로 무엇인가 큰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 스스로 참여하는 작은 벽돌 한 장으로 우리 마을은 점차 따뜻한 과학마을로 변해 갈 것이고 우리 아이들은 이런 마을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정용환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장정용환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장

2017-02-16 정용환

[춘추칼럼]우리가 자유로워지기 위해

중·고등 교육에서부터 헌법·정당정치 배워야세상 바꾸는 정치방법 학교에서 왜 안 가르치나진정한 '자유과' 따로 있다는것을 숨기려하기만대학 제도를 다루는 문헌에 자주 나오는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라는 개념은 라틴어 '아르테스 리베랄레스'(artes liberales)에서 온 것인데 '자유로운 예술'이 아니라 '자유인을 위한 과목'을 뜻한다. 간단히 자유과(自由科)라고 옮길 수 있겠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신분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상류층 엘리트)만 배울 수 있는 학문을, 계몽주의 이후에는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비판적 지성인)이 되려면 배워야 할 학문을 뜻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흔히 '전공 교육'과 반대되는 '교양 교육'을 뜻하여, 특수한 전문가가 아니라 전인적 교양인을 기르겠다는 취지의 대학을 '리버럴 아츠 칼리지'라 한다. 대학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워야 할 필수 교양 과목이 있다는 발상 자체를 새삼 음미해 보려고 꺼낸 말이다. 고대 이래의 '자유과'(더 정확히는 '자유7과')는 문법, 수사(修辭), 논리, 산술, 지리, 천문, 음악으로 구성됐다. 이 과목 구성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고 실제로도 그러지 않는다. 각 시대 모두 나름의 사상과 필요에 따라 교육의 실제 내용을 달리해 왔다. 우리 시대의 조건이 반영된 자유과는 무엇일까. 우리가 그야말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헌법이다. 고등학교 때 헌법의 기능과 개정 역사 등을 배웠을 테지만 조문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곱씹은 기억은 없다. '헌(憲)'은 '법'이나 '관청'을 뜻하는 글자인데, 글자를 분해해 보면 '해로운'害' 일이 없도록 눈'目'과 마음'心'으로 감시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고 전하는 자전의 풀이가 과연 타당한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법의 세부 내용은커녕 헌법이라는 글자 자체의 뜻도 모르고 살아왔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물론 이 1조 1항과 2항 정도는 외우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규정과 그 뒤를 잇는 '국민주권론'의 선언이 얼마나 엄중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에 대한 나의 공부는 여전히 부족해서 '헌법 사용 설명서'(조유진, 이학사)를 읽었고 처음 알게 된 것들이 많다. 로마가 마지막 왕을 축출한 이후 스스로를 '공화국(republic)'이라 했는데 이는 '공공의 것(res publica)'이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이라 한다. 말하자면 공화국이란 일차적으로 '왕이 없는 나라'를 뜻한다. '평등한 개인들의 동의에 의해 만들어진, 사적 이해가 아니라 공적 가치에 의해 구성되고 운영되는'이라는 뜻의 '공화(共和)'가 그로부터 파생·심화됐다. '국민주권론'에 대해서도 다 안다고 할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에서 '권력'이라는 말은 '권리' '권한' 등과는 달리 법률용어가 아니라는 것, 이 "의지와 감정이 담긴 대단히 정치적인 말"이 우리나라 최고 법규범인 헌법에 쓰였다는 것은 "헌법이 고도로 정치적인 문서"임을 뜻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처럼 헌법을 공부한다는 것은 법만이 아니라 정치도 함께 공부하는 일이다.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임을 확인하고 실제로도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이른 시기부터(최소 중고등교육에서부터) 필수적으로 헌법을 공부해야 하고, 또 그로부터 출발해 여타의 법과 동시대의 정당 정치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등학생들이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는 현실을 방치하면서 왜 그들에게 노동법을 가르치지는 않는가.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정당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방법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가. 우리가 자유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이들은 그것을 숨기려 한다. 진정한 '자유과'는 따로 있다는 것을./신형철 문학평론가신형철 문학평론가

2017-02-09 신형철

[춘추칼럼]특검과 검사의 차이점

정치적 고려없이 법의 잣대로만 죄 판단하는 '특검'정치권 눈치 보지않도록 검찰 인사권 독립 필요대선후보 '인사권 독립 안지키면 사퇴' 공약 넣어야박영수 특검의 인기가 뜨겁다. 주말과 설연휴를 가리지 않고 일하는 성실성도 국민들을 감동시켰지만, 이재용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저돌성은 역대 어떤 검찰에서도 보기 힘든 덕목이었다. 게다가 모든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했던 김기춘과 장황한 동문서답으로 보는 이들의 혈압을 올린 조윤선을 구속시키는 치밀함도 갖췄으니, 이런 특검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궁금증이 생긴다. 도대체 이들은 어디서 뭘 하다 갑자기 나타났을까? 특검을 맡은 박영수를 검색해보니 다음과 같은 경력이 뜬다. 서울지검 강력부 부장검사, 대통령 민정수석 사정비서관, 대검 중수부장,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요직이란 요직은 다 거쳤다. 이런 질문을 해보자. 1999년부터 10년간, 즉 이분이 검찰의 핵심요직에 있던 그 시기 검찰의 신뢰는 어땠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특검이 받는 환호의 100분의 1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시기 검사들은, 지금 검사들이 그러는 것처럼,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의 실세에게 한없이 약했고, 삼성을 필두로 한 재벌들에게 순한 양처럼 굴었다. 그랬던 그들이 특검으로 발탁되자 갑자기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는 건 무슨 연유일까? 추측컨대 더 이상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리라. 우리나라에선 대통령이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을 임명한다. 높은 곳에 오르고픈 검사라면 청와대의 뜻을 거스르기 힘들다. 그리고 우병우처럼 능력있는 검사가 청와대에 들어가 검찰수사에 간섭한다. 설령 검사에게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의지가 있다 해도 제대로 수사하기가 쉽지 않다. 특검은 다르다. 박영수 특검은 2월 말까지로 예정된 임기가 끝나면 다시 본업인 변호사로 복귀한다. 대통령에게 잘 보여봤자 아무런 혜택이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특검이 일을 잘 하는지 국민들의 관심이 높으니, 정치적 고려 없이 오로지 법의 잣대로만 죄의 유무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특검은 박수를 받는다. 그 값어치를 하고 있긴 하지만, 특검은 매우 비싼 조직이다. 검사 옷을 벗고 다른 일을 하던 분들이니, 특검팀에 차출할 때 그에 걸맞은 월급을 줘야 한다. 사무실 임차료까지 계산하면 120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 특검을 위해 쓰는 돈은 25억원 가량이다. 이건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지불된다. 아깝지 않은가? 우리가 검사를 뽑아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이유는 법질서를 바로 세워 달라는 취지에서다. 검사가 제 역할을 한다면 최순실 게이트는 시작도 하기 전에 뿌리가 뽑혔을 테고, 특검이란 조직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검사들이 일을 제대로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검찰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인사권을 독립시켜 주면 된다. 대통령이 행사하는 인사권을 검찰 인사위원회가 행사하도록 하자는 얘기다. 그리고 청와대에 검사를 파견하는 악습을 없애면 된다. 일부 그렇지 않은 검사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검사는 수사를 잘 해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니, 이 정도 제도적 뒷받침만 된다면 신이 나서 일을 할 것이다. 이 쉬운 일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은 대통령의 욕심 때문이다. 검찰을 시켜서 자기를 괴롭히는 상대방을 잡아넣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검찰의 인사권 독립에 찬성하다가, 막상 대통령이 되면 반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헌재에 의해 탄핵이 인용된다면 조만간 대통령선거가 열릴 것이다. 각 후보마다 화려한 공약을 내세우겠지만,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이 바로 검찰의 인사권을 법으로 보장하는지 여부다. 물론 대통령이 된 뒤 마음이 바뀔 수 있으니, 공약에 다음과 같은 사항도 집어넣어야 한다. 취임 후 1년 내에 인사권 독립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물러나겠다고 말이다. 좀 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것만 기억하자.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서민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서민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

2017-02-02 서민

[춘추칼럼]외교는 국가이익이 우선이다

사드·소녀상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실책국익·안보·국가미래 고려해 문제에 접근을한 나라의 외교정책은 군자의 도를 행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관계에서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영국의 정치가 팔머스톤(Viscount Palmerston)은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고, 오직 국익만 영원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이익이 외교의 최우선임을 보여준다. 한국의 정치권은 탄핵정국에 의한 조기대선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사드배치와 평화의 소녀상 설치 문제가 정치적 논쟁을 뛰어 넘어 사회적 갈등으로 확산되는 느낌이다. 두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적 실책으로써 한국의 차기 정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될 듯하다. 사드배치에 관한 논쟁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조속한 배치론, 조속한 철회론, 당분간 절차 논의 중단론 등이다. 조속한 배치론은 북한 핵탄도 미사일 위협의 절박함을 강조한다. 남한 공격을 기정사실화하고 충분히 대비하자는 것이다. 중국의 압박은 현실화되고 있지만 대비책은 보이지 않는다. 조속한 철회론은 한반도의 평화를 강조한다. 한반도가 최첨단무기 각축장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군비확대는 쉽지만 군비축소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유발한다. 남북간의 경쟁이 미중간의 경쟁으로 확대되고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로 나아간다면 모든 부담은 남과 북이 져야 한다. 당분간 절차 논의 중단론은 국익을 중시한다. 정당한 절차와 외교적 노력을 통해서 국민과 미국,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평화의 소녀상 설치에 관한 논쟁은 크게 두 가지이다. 설치론과 철거론이다. 설치론은 역사성과 민간성을 강조한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반인권적 범죄를 저질렀고 오늘날 반성도 없다는 것이다. 소녀상 설치는 국가 차원이 아닌 민간 차원의 행위라고 주장한다. 설치의 상징적인 의미는 있다. 국가적 재원이 직접 투입되면 외교적 마찰 요인이 될 수 있다. 독도에 설치되면 영토문제와 연계되면서 일본의 '독도 분쟁화' 의도에 휘말릴 수 있다. 철거론은 합의성, 외교성, 미래성을 강조한다. 소녀상 철거를 포함한 위안부 문제는 한일 정부간의 12.28 합의에 의해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대사관 앞에 소녀상의 설치는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한일관계의 발전적 미래를 위해 위안부 문제를 털고 가자는 것이다. 정부의 반성과 일본의 사죄 없는 철거는 국민정서에 반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사드배치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만 평화의 소녀상 설치에 대해서는 모호성을 지닌다. 사드의 조속한 배치를 촉구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명백하고 실존하는 위협이며 사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필수적 방어수단"이라고 주장한다. 한미간 합의서를 이행을 하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평화의 소녀상 설치에 대해서는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민간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관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양국간 관심사항이기 때문에 정부도 여러 루터와 채널로 협의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한일간에 포괄적 합의는 했지만 합의 이행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성을 보여준다. 외교정책 추진에는 기본원칙이 중요하다. 사드 문제는 국가이익, 국가안보, 국가미래의 3대원칙 하에서 접근해야 한다. 평화의 소녀상 문제는 피해자의 고통, 가해자의 반성, 양국관계의 미래 등 3대원칙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이다. 외교합의는 반드시 이행해야 할 고정불변이 아니다. 국가이익에 따라 변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동맹보다 국가이익을 중시한다. 중국의 핵심가치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한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에 서명했다. 양자간, 다자간의 외교합의가 하루아침에 백지화 되는 느낌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합의 파기가 우리에게 닥칠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반성과 사죄'가 담긴 고노·무라야마 담화를 잊은 지 오래다.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이끌고 있다. 국익 대 국익으로 미국과 맞서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국민정서만으로 일본을 극복할 수 없다. 이슈 선점, 선택과 집중, 전략적 접근, 설득의 지혜가 요구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7-01-30 양무진

[춘추칼럼]영화 속 과학이야기 '판도라'

국내 원전은 '규모 7.2 지진'에도 견디도록 설계 사고 발생땐 수소가스 배기해 격납건물 폭발 안해지난 연말에 개봉한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가 흥행하면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느낀다. 영화 자체는 가상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해서 제작됐다고 하지만, 영화를 본 많은 사람에게 우리나라의 원전 안전시스템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영화는 규모 6.1의 지진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원전인 한별 1호기 냉각재 밸브에 균열이 생기고, 정부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원자로 격납건물이 폭발하고 국민들이 방사능 공포에 휩싸이게 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영화 전개를 보면 감독은 아마 후쿠시마 사고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든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의 핵심원인인 규모 9.0의 대지진과 이에 따른 쓰나미는 등장하지 않는다. 위의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설정됐다면 과학자들도 영화 전개에 대해서 많은 부분 공감을 할 수 있으나 영화에서 나타난 규모 6.1의 지진과 쓰나미가 없는 전개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입장에서 공감대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경우 규모 9.0의 대지진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쓰나미가 몰려오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원전의 경우 지진 발생이 감지되면 제어봉이 자동으로 작동해 핵분열 반응을 멈추게 한다. 그러나 핵연료는 여전히 고온 상태이므로 냉각수를 공급해 온도를 낮춰야 한다. 냉각수를 공급하려면 모터를 돌려야 하고 모터를 돌리려면 전기가 있어야 한다. 모터를 돌리지 못하면 핵연료 온도는 점점 올라가서 피복관이 녹아내리게 되는데 이것이 중대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후쿠시마에서는 대지진으로 송전탑이 쓰러져서 전기공급이 끊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원전 내 비상 디젤발전기를 설치해 대형사고를 막게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원전과는 달리 후쿠시마 원전의 비상 디젤발전기는 지하에 설치되어 있었고 쓰나미가 덮치면서 비상발전기를 침수시켜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지진 발생이 곧 대형 원전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인과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처럼 규모 6.1의 지진에서 중대사고가 일어날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우리나라 원전은 규모 6.5(0.2g), 7.0(0.3g)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으며, 특히 중요 구조물은 규모 7.2(0.4g)에도 견디도록 설계돼 있다. 지진은 규모가 1.0 증가할 때마다 강도가 32배 커지므로 규모 9.0의 지진은 규모 6.1의 지진보다 약 2만9천배 큰 강도이다.영화에서 보면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격납건물이 달걀 깨지듯이 깨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에 최악의 중대사고가 일어나더라도 격납건물은 영화에서처럼 폭발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원전의 격납건물은 65~120㎝의 매우 두꺼운 구조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만약 대량의 수소가 발생하더라도 격납건물이 폭발하기 전에 수소가스를 배기해 압력이 낮아지도록 설계돼 있다.영화 마지막 부분에서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조의 폭발을 막기 위해서 작업자들이 고군분투하고 저장조 바닥을 임의로 폭파해 대형사고를 막는 상황이 전개되는데 우리나라 원전의 경우, 암반 위에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그 위에 저장조를 건설하기 때문에 저장조 하부에 공간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저장조 하부를 인위적으로 폭파할 경우에 오히려 사용후핵연료를 파괴할 가능성이 커지므로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과학자의 입장에서 기술적 오류를 바로잡아 불필요한 오해를 막고자 설명을 했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원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인 것을 이해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원전의 안전성을 더욱 향상 시킬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국민에게 신뢰를 받는 원자력이 되길 바란다. 최근 필자는 사용후핵연료 및 방사성폐기물 현안으로 지역주민이나 언론 관계자를 자주 접촉하면서 과학자가 생각하는 안전과 일반시민이 생각하는 안전의 온도차가 매우 큰 것을 느끼게 됐다. 이는 결국 소통의 부족에서 기인됐다고 생각한다. 국민과 함께하는 원자력을 만들기 위해 주민과 소통하려는 노력,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할 것이다./정용환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장정용환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장

2017-01-19 정용환

[춘추칼럼]메릴 스트립의 용기

'할리우드·배우·권력·언론이란 무엇인가' 언급우린 지금 '물러나는 권력' 열정적으로 비판하지만그녀가 맞선건 '들어서는 권력' 트럼프였다는 사실최근 특검이 밝힌 바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창작과비평'이나 '문학동네' 같은 좌파 문예지들만 지원하고 건전 문예지들은 지원을 안 해서 건전세력이 불만이 많으니" 해당 출판사에 대한 지원을 삭감하라는 지시를 직접 했다고 한다. '좌파 문예지' 제작자들을 감옥에 처넣지 않고 그저 돈줄만 죄었으니 차라리 고맙다고 해야 할까. 사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반대자들을 배제(exclusion)하는 정도가 아니라 절멸(extermination)시켜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배제(exclude)에는 포함(include)이라는 반대말이 있지만 절멸(exterminate)에는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 끝장내버리는(terminate) 일이다. 저들을 '괴물'이라고 간주해 버리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나를 그들로부터 완벽하게 구별/구원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윤리적 판타지다. 다른,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끔찍한 이들에게 나도 그런 욕망을 품는다. 비근한 예로 나는 광화문에서 단식 중이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 앞에서 피자를 시켜 먹는 이들을 보며 저들을 절멸시켜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나는(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인정과 공존의 윤리를 교육받은 민주 시민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감히 그런 욕망을 실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질 수 없으므로 그러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면? 그러므로 권력은 위험한 것이다. 배제 혹은 절멸에의 욕망을 강하게 품고 있는 자가 권력을 가지게 될 때 특히 그렇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 필요한 것이다. 권력자가 자신의 욕망에 패배하지 않도록 그의 욕망을 대신 감시해 주는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난 8일 골든 글로브 시상식장에서 메릴 스트립이 그의 놀랍도록 용기 있고 지적이며 감동적인 수상 소감을 통해 내게 새삼 가르쳐준 사실이기도 하다. 5분 30초 동안 진행된 그 연설은 구조적으로 완벽했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메시지를 담고 있었으므로 여기에서 소개할 가치가 있다. 메릴 스트립은 먼저 '할리우드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그는 현장에 있는 여러 배우들의 출신 지역과 성장 배경을 다정한 어조로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단지 예닐곱 명만을 언급했을 뿐인데도 그 면면은 다양했다. 차이를 차이 자체로 존중하는 그 호명만으로도 이미 뭉클했다. 그 호명의 끝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할리우드는 다양한 아웃사이더와 외국인들로 들끓는 곳입니다. 이들을 다 내쫓으면 미식축구와 격투기 외에는 볼 것이 없겠죠." 트럼프의 배타주의를 비꼬는 그의 말에 박수가 쏟아졌다. 이어 그는 '배우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배우가 하는 유일한 일은 우리와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서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메릴은 작년 최악의 연기로 트럼프가 장애인 기자를 흉내 내던 순간을 꼽았다. 타자에 대한 공감을 유도하는 것이 연기의 본질인데 트럼프의 그것은 정반대의 목적에 기여하는 연기였기 때문이라는 것. 다음과 같이 말할 때 메릴은 조금 울먹였다. "그 연기는 제 가슴을 무너지게 했고 지금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화가 아니라 실제였으니까요." 그러므로 그의 연설이 '권력이란 무엇인가'로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혐오는 혐오를 부르고 폭력은 폭력을 선동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가 타인을 괴롭히기 위해 제 지위를 이용할 때, 우리는 모두 패배할 것입니다." 단 1초도 버릴 것이 없는 5분 30초의 연설이었지만 나는 특히 이 문장에 밑줄을 그어 우리의 대통령에게 보내드리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메릴은 '언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그 말을 요약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점을 곱씹고 싶다. 우리의 언론이 지금 열정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물러나는' 권력이지만, 그날 메릴 스트립이 무대에서 맞서고 있었던 것은 '들어서는' 권력이었다는 사실 말이다./신형철 문학평론가신형철 문학평론가

2017-01-12 신형철

[춘추칼럼]박사모의 헛다리

'최순실 국정농단' 태블릿피씨 통해 최초 입증모든 사실 검찰수사 통해 밝혀진 것들이기 때문"최순실 것 아니다"라는 한결같은 주장 아쉽기만"한번도 사익을 취하지 않았다" "피곤해서 태반주사 좀 맞은 게 그렇게 큰 죄가 되느냐?"시간은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 그때는 몰랐던 것을 시간이 지나서 깨닫는 경우도 있고, 아무리 아픈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희석되게 마련이다. 또한 시간은 궁지에 몰린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곧 하야라도 할 것 같던 박근혜 대통령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특유의 뻔뻔함을 회복했다.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촛불을 들었던 12월 2일, 박사모를 봤다. 그들은 서울역 한구석에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박대통령은 죄가 없다고 외치고 있었다. 수십명 될까말까한, 초라한 행색의 그들을 보면서 분노보다는 연민의 감정이 먼저 들었다. 주군의 활약에 힘을 얻어서일까, 한동안 웅크리고 있던 박사모도 힘을 낸다. 이젠 박사모도 광화문 한편을 내놓으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숫자 또한 늘어서, 이제는 수만명의 인파를 헤아린다.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도 상당부분 박사모의 것이다. 하지만 그 댓글들을 보면 좀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그들이 헛다리를 짚고 있는 듯해서다. 지금 그들이 물고 늘어지는 것은 JTBC가 특종으로 보도한 태블릿피씨다. (1) 그 취득 자체가 불법으로 이루어진 데다, (2) 그게 최순실의 것도 아니며, (3) 안에 담긴 내용도 다 JTBC의 조작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태블릿피씨에 매달리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박대통령이 이 지경으로 전락한 시초가 다 태블릿피씨가 아니던가. 그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은 환상에 빠진다. 태블릿피씨만 없애버린다면 박대통령이 탄핵당할 일도 없고, 박대통령이 최순실의 지시를 받고 나라를 다스리던 그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 말이다. 그들의 단순무식함이 한편으로는 부럽고, 또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이 시점에서 태블릿피씨는 없어도 되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태블릿피씨가 박정권의 몰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사실이었다는 것이 태블릿피씨를 통해 최초로 입증됐기 때문일 뿐, 국정농단의 증거는 그 후 이루어진 검찰의 수사에서 밝혀진 것들이다. 기업을 협박해 뜯어낸 돈으로 최순실이 지배하는 재단을 만든 것, 삼성에게 좋은 일을 해주고 그 대가로 삼성이 최순실을 돕게 한 것, 최순실 지인의 회사가 현대자동차에 납품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한 일, 최순실이 다니는 단골 성형외과 의사의 부인이 경영하는 업체를 물심양면으로 도운 것 등등 박대통령과 최순실이 공모해 국정을 농단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 물론 박대통령은 시종일관 자신의 관련성을 부인하지만, 그건 사람이 뻔뻔해서 그런 것일 뿐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석고대죄하고 대통령직을 물러났으리라. 사정이 이런데도 박사모는 한결같다. 이 순간에도 포털사이트 기사를 찾아가 "태블릿피씨 최순실 거 아니예요"라며 징징거리고 있는 중이니까. 그래서 아쉽다. 박사모에 제대로 된 리더가 없다는 것이 말이다. 다음 사례를 보자. 어느 분이 "BBC에서도 촛불집회를 비판했다"는 글과 함께 비틀즈의 명곡 '에스터데이'의 영문판 가사를 박사모 게시판에 올렸다. 다들 난리가 났다. "역시 BBC!"라는 댓글부터 "우리나라 언론이 빨갱이라서 그렇지, 공정한 해외언론은 다 박대통령 편이다"라는 댓글까지, 수십개의 댓글이 박사모 게시판을 수놓았다. 그 중 영어를 읽을 줄 아는 한 분이 '이거 좀 이상하다'고 지적함으로써 사태가 일단락됐다. 얼마 전에는 박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김정일에게 보낸 감동적인 편지가 "문재인이 보냈다"며 박사모 게시판에 올라온 적이 있다. 그때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됐다. 물론 무식하다는 이유로 위와 같은 장난을 치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박사모에 제대로 된 리더의 필요성에는 공감할 것이다. 그래서 부탁한다. 괜찮은 분들을 모신 뒤 그들의 지침에 따라 행동하시라. 이때다 싶어 기어 나오신 윤창중이나 정미홍처럼, 상식 있는 사람들은 다 무시하는 분들과 더불어 짠 작전은 박사모를 점점 더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만들 뿐이니까./서민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서민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

2017-01-05 서민

[춘추칼럼]두차례 분수령이 예상되는 2017년도 한반도정세 전망

2~3월 실시 한·미합동 군사훈련과 차기정부 출범국민·남북·국제사회의 대북정책, 위기 기회될 수도2017년은 한반도의 긴장국면이 지속될 것인지, 대화국면으로 전환될 것인지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정세는 탄핵정국의 촛불집회, 개헌담론과 대선정국, 그리고 지도자와 정책변화에 대한 기대와 우려 속에서 다소 혼란이 예상된다. 탄핵의 결과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특검과 탄핵의 결과가 다르면 대립과 갈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개헌담론이 부각되면 정당정치는 사라지고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이 이루어질 것이다. 대선은 정책경쟁이 아니라 이념경쟁의 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념경쟁에서 진보는 평화안보를 강조하고 보수는 대결안보를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평화안보는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는 탈냉전적 사고이다. 대결안보는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 냉전적 사고이다. 보수가 안보를 잘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권력집중을 비판하지만 직접선출을 선호한다. 개헌은 찻잔속의 미풍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차기정부는 6월 중 출범이 예상된다.북한 국내정세는 김정은 유일영도체계 강화가 예상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생일(1월 8일), 김정일 출생 75주년(2월 16일 광명성절), 김일성 출생 105주년(4월 15일 태양절), 인민군 창건 85주년(4월 25일), 백두산위인 칭송대회(8월 중), 김정숙 출생 100주년(12월 24일) 등 정유년의 정치행사가 잡혀있다. 김정은 위원장을 김정일과 김일성의 동격 반열에 올려놓는 우상화작업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핵보유국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군사강국을 선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핵보유국의 동등한 입장에서 미북 군축협상 또는 평화협정 논의를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분야는 자강력제일주의와 북중간의 교류협력을 유지하면서 6·28 조치와 5·30 방침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것으로 보인다. 장마당을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리하면서 생필품의 수요와 공급 균형을 유지시킬 것이다. 고위관료들에게는 공포정치를 펼치면서 주민들에게는 친화정책으로 다가가는 이중적인 접근이 예상된다.2017년 남북관계는 변화가 예상된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실패했다. 남북한간 신뢰도 쌓지 못했고 대결만 조장했다. 북한의 비핵화는 커녕 핵능력 고도화를 방조했다. 북한 주민들은 대남 동경심보다 적개심이 커지고 있다. 남북한 모두 지난 10년 동안 대립과 대결로 피로감에 쌓여있다. 남한의 차기 정부 출범은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기회요인으로 작용 될 것이다. 북한은 미북대화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남북관계를 이용할 것이다. 남한은 경제위기 극복이 시급하다. 북한은 경제발전5개년전략의 성과적 달성이 필요하다. 남북한 모두 경제발전의 활로로써 남북이 함께하는 평화경제협력이 중요하다. 2∼3월 실시 예정인 한미합동군사훈련이 한반도정세의 도전요인으로 작용될 것이다.2017년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전망은 유동적이다. 미중관계의 악화가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자의 미국 우선주의와 시진핑 주석의 민족주의는 충돌을 예고한다. 북핵문제에 대해 미국은 중국의 책임론을 주장하고 중국은 북미간의 직접해결을 강조한다. 미러관계는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관계는 트럼프와 푸틴의 신뢰에서 출발한다. 한반도문제에 대한 미국의 역할은 크지만 러시아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과 러시아를 활용할 것이다.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 북핵문제보다 납치문제가 우선순위이다. 미일동맹의 강화 속에서 중국, 러시아, 북한과는 등거리 외교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핵문제와 사드문제가 부각되면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가 예상된다.2017년도 한반도정세는 두 차례의 분수령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1차적 분수령은 2∼3월 실시예정인 한미키리졸브훈련과 독수리훈련이다. 2차적 분수령은 우리의 차기정부 출범이다. 역사는 진보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이끈 사례가 많다. 국민과 남북이, 그리고 국제사회와 함께하는 대북정책을 펼친다면 그것이 바로 기회로 이어질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12-29 양무진

[춘추칼럼]가벼움의 미학

자신의 생각 유머스럽게 표현 하는건 소중한 가치엄중한 시절 관용과 너그러움의 회복을 기다린다처음 유학을 갔더니 영어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비속어를 도통 모르는 탓이라 지레짐작하고 공부를 하려고 이 분야의 강자라는 에디 머피의 스탠딩 코미디 비디오를 빌려다 여러 번 들었다. 인종비하에서 여성비하까지, 난무하는 온갖 금기어는 심약한 청년에겐 가히 문화적 충격이었다.이런 발칙한 비디오를 파는 나라에서, 소수인종의 대학입학 비율을 정한 '입학 쿼터제'가 비하적 표현이라며 난리더니 긍정행동(affirmative action) 정책이라는 난해한 표현으로 정리되는 건 또 뭔지. 풍자와 해학의 표현 자유는 존중하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전혀 다른 수준의 엄정한 잣대를 고수하는 건가.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가 항상 지금 같진 않았다. 매카시즘의 출현이 한고비였는데, 1950년부터 6년간 지속한 2차 적색공포 시기에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J. McCarthy)에 의해 주도됐다. 정치인뿐 아니라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연예인 다수도 핍박받았고, 과학자도 광풍을 피해 가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대량살상무기의 파괴성을 절감하고 반전 평화운동에 나섰던 아인슈타인이나 오펜하이머가 그랬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리더로 원자폭탄을 탄생시킨 오펜하이머는 1954년에 한 달 동안 상원 청문회에 불려가 고초를 겪었다. 중국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주도한 과학자 첸쉐썬(錢學森)은 매카시즘의 감시와 통제를 못 견디고 미국에서 중국으로 돌아간 탓에, 매카시즘이 중국에 보낸 최대의 선물이라고 한다.저명한 수학자 스테판 스메일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며 반전운동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활동을 한 덕분에 한때는 미국을 피해서 브라질의 순수응용수학연구소(IMPA)에서 연구활동을 했다. 1966년 모스크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상 강연을 하면서는 소련 정부의 인권탄압을 비판하는 바람에 구금되어 외교 문제로 비화하기까지 했다. 표현의 자유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솔제니친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아내는 수학자였다. 스탈린을 비난하는 개인 서신이 문제가 돼서 11년간 투옥과 유배 생활을 했다. 이 경험을 쓴 작품으로 노벨상을 받았으니 스탈린이 문학에 보낸 최대의 선물이려나.캐나다에서 활동하던 세계적인 한국인 수학자 이림학 교수는 반독재 활동 탓으로 수십 년간 고국 방문이 불가능했다. 이제 대한민국 과학기술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유일한 수학자가 됐으니 상전벽해다.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쳐 지금 수준의 표현의 자유에 다다른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엔 문화적으로 후퇴의 조짐도 있다. 많은 이들이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 대한 비판을 못 견뎌 하고 풍자와 해학에 관대하지 않다. 지역 비하, 직업 비하, 여성 비하, 남성 비하라는 다양한 이유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 무차별적이다. 풍자를 근본으로 하는 개그 프로그램에도 분노한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고 말하면 웃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사생결단을 내려고 한다. 얼마 전 대학 강의에서 사대강 찬성 주장으로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청중의 분노를 이해하지만,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논쟁과 공론화를 통해 자신의 주장에 책임지게 하는 것으론 부족할까? 미국에서도 반전 활동으로 고초를 겪은 오펜하이머의 대척점에 맨해튼 프로젝트의 다른 멤버인 폰 노이만이 있었다. 수백만의 유태인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온 그는 평화유지와 전쟁억지를 위해 수소폭탄 개발에서도 주요 역할을 맡았다. 수학과 컴퓨터 개발의 천재적 재능으로 핵분열과 핵융합 모두를 무기로 구현했으니, 반전주의자들에겐 불가사의한 존재였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정의의 개념조차도 상대적일 수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공포감 없이 얘기할 수 있는 권리는 좀 더 보편적인 가치가 아닌가. 유머러스함은 소중한 가치 아니던가. 엄중한 시절이지만, 그럴수록 조금 가벼워지면 어떨까. 관용과 너그러움의 회복을 기다린다./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12-22 박형주

[춘추칼럼]혐오와 농단

올해의 단어는 단연 '미소지니(여성혐오)'·'국정농단'대통령과 비선실세들 이익 저울질하느라 국정 망가뜨려40대이상 남성 구조적 폭력 주체 되지않도록 성찰 필요'올해의 단어'를 꼽으라면 가장 강력한 두 후보가 바로 '미소지니(misogyny, 여성혐오)'와 '국정농단(國政壟斷)'일 것이다. 물론 신조어는 아니어서 그간 사용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학계 내부에서 사용되거나 신문 기사 등에서나 볼 수 있는 말이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2016년에는 한국어 사용자 모두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기에 이르렀으니 올해의 단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하나의 언어공동체가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일이 갖는 의미는 크다.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으나 간과되거나 무시되다가 정확한 개념이 언중에게 주어질 때 뒤늦게 가시화되고 공론화되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일단 '미소지니'라고 먼저 쓰고 '여성혐오'를 괄호 안에 넣은 것은 이 번역어 자체가 최선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어서다. "근대에 이르러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하고도 정교한 방식으로 여성이 배치된 원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미소지니의 구조적 측면이 이 용어[여성혐오]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김신현경) 핵심은 '구조적 혐오'에 있는데 그보다 '개인적 혐오'의 층위를 먼저 떠올리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 그래서 남성들로 하여금 '나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라는 개인적 층위의 반론을 제기하게 만드는 면도 있다는 것. 일각에서는 말을 어떻게 바꿔도 이해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할 것이라는 회의론도 있지만 말이다. 딴에는, 이참에 '혐오'라는 말 자체의 근본적 의미를, 이를테면 애초 '혐오'라는 감정 자체가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만은 아니라 '구조'에 의해 습득된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새롭게 성찰해 보기 위해서라도, 번역어를 교체하지 말고 그냥 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번역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것이 이 사안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도 나쁠 것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속해 있는 세대의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은 낯선 담론이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관심과 긴장의 끈을 놓고 살아왔다는 반성을 시작한 남성들이 많아 보이며, 부끄럽지만 나도 거기에 속한다. 한편 '국정농단'에서 '농단'이라는 말이 짐작과는 달리 '희롱'이 아니라 다른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나로서는 올해의 일이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전에는 그 뜻이 이렇게 요약돼 있다. "깎아 세운 듯이 높이 솟은 언덕. 홀로 우뚝한 곳을 차지한다,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이익과 권력을 독차지한다, 라는 말." 유래는 '맹자'에 있다. 한 상인이 있어 가장 높은 곳('농단')에 올라가 시장의 구조를 파악한 뒤 어떻게 해야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저울질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그 얄미운 상인에게 세금을 물리기 시작한 데서 '농단'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대통령과 그 비선 측근이 대한민국의 최정상에서 그들의 이익을 저울질하느라 국정을 망가뜨렸다는 점에 있으니, '게이트'보다는 '농단'이 더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들 뿐이겠는가. 최정상 농단을 차지한 이들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부근 어디쯤에서 특혜를 누려온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대다수의 당사자들에게 부끄러움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선택받은 소수'인 자신들에게 따르는 당연한 보상이라 생각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타고난 악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혜택 앞에서 서서히 자기 성찰 능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라면 나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혐오'에 대해서나 '농단'에 대해서나 내가 이야기의 끝에 자꾸 '나'를 주어로 삼은 문장을 써보고는 하는 것은 의례적인 반성적 제스처를 집어넣어서 스스로 면죄부를 발송·수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기 위해서다. 위 두 사안 사이에는 차이점이 훨씬 많지만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을 때 그 안에서 성찰적 긴장을 잃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의 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일말의 공통점도 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40대 이상의 남성이 여하한 구조적 폭력(혐오와 농단)의 주체가 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필사적인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신형철 문학평론가신형철 문학평론가

2016-12-15 신형철

[춘추칼럼]느려도 법치주의를 따라야 한다

엄중한 '대통령 탄핵' 헌정사적 불행 우리 눈앞에가결땐 헌재심판 과정서 많은 의혹 사실여부 가려져대통령·여야, 정략적 판단 계산기 두드릴때 아냐박근혜 대통령의 검찰수사 거부에 비판이 쏟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수사를 성실히 받겠다는 약속을 어긴 게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누가 강요했던 것도 아니다. 국민 앞에 공표한 담화에서 스스로 밝힌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법치주의의 요구 때문이다. 대통령도 법 앞에서는 일반 국민과 다를 바 없다는 국민의 법감정을 무시한 것이다. 법치에 대한 요구는 이처럼 국민의 생각 속에 스며들어 있다. 최고 권력자도 법에 따라야 한다는 법치주의 사상은 기실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경우는 더구나 그렇다. 나와 같은 대다수 장년층은 헌법마저 장식에 불과했던 엄혹한 시기를 몸소 겪었다. 복잡한 심경으로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는 것도 그래서이다. 매일 같이 경쟁하듯 박 대통령과 관련된 이상한 소식이 쏟아져 나온다. 더 듣고 싶지도 않은 내용 들이다. 급기야 청문회 석상에서 '최순실-박근혜 공동정권' 얘기까지 나왔다. 차은택씨가 최씨에게 장관과 수석을 추천하니 그대로 되는 걸 보며 이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다고 증언한다. 정말 이럴 수가 있나. 분노, 자괴감, 배신감, 허탈함에 휩싸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실이라면' 당장이라도 대통령직을 내려놓는 게 마땅하다.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대통령 파면이 정당화되는' 기준을 이렇게 설정했다.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얘기들만 보면 이 기준을 충족하고도 남는다.문제는 아무것도 '확정된 사실'은 없다는 점이다. 수많은 국정농단 사례들을 보면서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언론보도는 여전히 의혹 수준이다. 아직 법의 문턱도 넘지 못했다. 검찰수사 역시 마찬가지다. 법의 문턱을 겨우 넘었지만 갈 길이 멀다. 대통령 본인 수사는 시작도 못했고, 검찰 발 기사 역시 부인되기 일쑤다. 대법원 판결까지 나와야만 확정된 사실로 다룰 수 있다. '당장 하야'를 외치는 감정에는 부합하지 않을 수 있어도 그게 법치주의의 요구사항이다. 대통령도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나, 의혹만으로 유죄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얘기는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탄핵 역시 이런 법치주의의 산물이다. 왕의 목을 치거나 유폐시키는 등의 역사를 겪은 유럽에서 먼저 만들어진 제도이다. 영국에서는 여전히 탄핵재판에서 사형까지도 과할 수 있다. 미국은 공직에서의 파면과 공직취임 자격 박탈로 제한한다. 우리 헌법은 탄핵심판에서는 공직 파면으로 그친다. 일종의 역사적 진화인 셈이다. 법을 위반한 대통령이라도 재직 중에는 형사기소를 못하는 대신 탄핵을 하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president)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직(presidency)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탄핵이 대통령에 대한 유일한 민주적 징벌장치인 셈이다. 중요한 역사적 선례를 위해서도 탄핵은 필요하다. 최종 기각된 노 대통령 탄핵과 달리 이번에 탄핵이 인용된다면 대통령 파면이 정당화되는 기준을 만들 수 있다. 후세의 대통령이나 권력자들에게 경계의 척도가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나 친박계 의원들을 위해서도 탄핵은 바람직하다. 박 대통령은 근본적으로 본인 잘못이 없다는 입장이다. 사심 없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했을 뿐이라고 한다.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많은 의혹의 사실 여부가 가려질 수 있다. 친박계 의원들은 따라서 굳이 탄핵 자체에 저항할 필요가 없다. 야당 역시 탄핵이 가결된다면 당장 물러나라는 주장을 멈춰야 한다. 2004년 이전, 대통령 탄핵이 현실화될 것이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엄중한 의미를 갖는 대통령 탄핵이다. 불과 10여년 만에 탄핵이 되풀이되는 헌정사적 불행을 우리 눈앞에 두고 있다. 대통령도 여당도 야당도 정략적 판단으로 계산기를 두드릴 때가 아닌 것이다. 답답해 보이지만 법치주의는 역사적 지혜의 산물이다. 느려도 법치주의를 충실히 따를 때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노동일 경희대 법과대학 교수노동일 경희대 법과대학 교수

2016-12-08 노동일

[춘추칼럼]트럼프 행정부 '先이익後동맹' 전망

한미동맹 유지하되 현안 조정 '실리주의'로 갈 듯'북핵불용 원칙' 고수하며 수단은 냉·온탕법 예상도널드 트럼프 당선자는 대선기간 클럽이나 거리에서 수많은 얘기들을 쏟아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면서 담론을 지배했다. 지지자들은 1970∼80년대 세계화정책이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굴뚝산업이 해외로 빠져 나간 자리에 정보통신(IT)산업이 들어 왔지만 일자리는 화이트칼라가 차지했다고 지적했다.한반도 안보문제와 관련된 트럼프 당선자의 지배담론은 한미동맹, 방위비, 북핵문제로 요약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과정은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대선공약에서 상호모순점이 많다. 트럼프 당선자의 대선공약과 공화당의 정강정책간의 충돌 부분도 있다. 트럼프 당선자의 실리주의와 정책참여 예상자들의 이념주의간의 갈등도 예상된다.트럼프 당선자는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한다. 동맹도 필요하지만 미국의 국가이익을 중시한다. 공화당은 '미국의 부활'을 주장한다. 동맹강화를 통해 미국을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다. 국제무역이 곧 미국이익이라는 인식을 가진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과정 참여 예상자들은 '강경 보수적 성향'을 지닌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마이클 플린(Michael Flynn), 부보좌관 내정자 개슬린 맥파랜드(Kathleen McFarland), 유력한 국방장관 후보자 제임스 매티스(James Mattis) 등은 네오콘이라고 불리는 신보수주의자들이다. 네오콘은 군사력이 국력의 원천이고 미국의 패권질서 유지를 위해 선제공격을 포함한 적극적 군사개입을 강조한다.트럼프 행정부의 대한반도정책 노선은 '실리주의'로 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자의 관심도는 국가이익, 동맹협력, 국제개입 순이다. 한미동맹의 역할은 유지하되 현안은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동맹의 역할은 대북억제·대중견제·한미일 공조체제 구축이다. 주한미군의 방위비는 동맹의 현안문제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한국의 안보무임승차론을 주장한다. 안보의 경제적 접근이 예상된다. '선 이익, 후 동맹'의 관점에서 주한미군의 방위비 증액을 강력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핵불용의 원칙은 확고하지만 수단은 온탕 냉탕이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자는 대화를 통해 핵동결부터 시작해야 함을 내비친다. 정책과정 참여 예상자들은 압박을 통한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강조한다. 트럼프 당선자와 정책 참여 예상자들은 중국의 대북압박론에 대해 이견이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북핵문제 접근 시나리오는, 첫째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실패 평가 공유, 둘째로 대화와 압박의 병행전략, 셋째로 대화로 동결부터 시작, 넷째로 북한의 합의 위반시 군사적 옵션 등으로 예상된다.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대한 북한의 태도는 신중하다. '다음기 대통령 트럼프'의 표현만 있고 구체적인 당선 사실 보도는 없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의 실패를 부각시킨다. 11월 11일자 북한의 인터넷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이 파산에 직면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당선자 측에게 정책전환을 우회적으로 촉구하면서 기대를 표하기도 한다. 조선중앙통신 11월 10일자 논평에서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장의 북핵정책 실패 발언을 부각시키면서 대북적대시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조선신보 11월 18일자 메아리 코너에서는 '트럼프 공약, 상식적이고 타당한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북한과 미국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11월 18∼19일 트랙2 회의를 개최했다. 탐색적 대화이지만 북한은 트럼프측과의 직접적인 접촉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내년 1월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 후 6개월이 중요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내년 자신의 생일과 김정일 출생 75주년, 김일성 출생 105주년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국내외의 안정이 필요하다. 수면위에서는 수사력을 동원한 기싸움을 하면서도 수면하에서는 국면전환을 위한 탐색적 대화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체제 및 존엄문제에 자극을 한다면 6차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발사를 통해 맞대응 무력시위 가능성도 있다. 한반도문제는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상호존중하는 가치동맹으로 발전해야 한다. 방위비는 과하면 줄이고 부족하면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는 최종적이고 대화의 시작은 핵동결부터 해야 한다. 판문점연락사무소의 정상화가 시급하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12-01 양무진

[춘추칼럼]국제정치의 탁류에 빠진 기후변화

트럼프, 석탄사용 감축정책 유도 '공장 中이전' 노려中, 공해재앙 인식 '2030년 온실가스 총량감축' 추진세계 탄소배출량 통제불능 우려에 美, 더 늘리겠다니미국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경쟁자보다 적은 득표수를 얻고도 당선된 경우는 도널드 트럼프가 5번째다. 여러모로 이단아의 풍모를 가진 트럼프는 기후변화에 대한 견해도 독특한데, 중국이 허구의 기후변화 위험을 과장한 배후라고 주장한다. 기후변화 재앙의 과장을 통해 미국 정부의 석탄사용 감축 정책을 유도해서 미국 내의 제조 공장이 문을 닫고 중국으로 이전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자극적인 음모론은 항상 사람들을 피 끓게 하는 걸까. 기후변화 중국 음모론을 주장한 그의 2012년 트위터 글은 10만 번 이상 공유됐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는데, 너무 어처구니없는 얘기라서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리 없다고 믿었던 모양이다.예전에 본 장면과 뭔가 흡사하다.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가 맞붙은 2000년 미국 대선에서 고어는 득표수에서 이기고도 대선에서 패배했다. 8년 동안 부통령을 한 검증된 정치인이었고, 인터넷 초기에 미국 전역에 인터넷을 보급하는 데 앞장선 덕에 인터넷의 아버지라는 영광스런 칭호까지 따라다닌다. 기후변화가 인류에게 닥친 대재앙임을 인식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 채택에 주요 역할을 했다. 환경활동가로서의 기여를 인정받아 2007년엔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다. 부시는 어땠나. 기후변화는 인간이 유발한 것이기보다는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에 가깝다는 시각을 가졌고 미국 내의 석유 시추 확대를 지지했다. 국제공조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앨 고어의 방식이 미국 내 제조업의 위축을 부를 것을 염려한 미국인들 상당수는 부시를 지지했고, 선거인단 간접선거라는 미국의 독특한 대선 방식은 부시에게 유리하게 작동했다.국가 단위의 노력만으로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가 역부족이어서, 세계의 지도자들이 파리에 모여서 국제협약을 체결한 게 1년 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현된 지금은 미국의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염려하는 지경이 됐다. 그가 전통적인 제조업의 미국 복귀를 추진할 것은 분명해 보이고, 각종 환경규제는 약화될 것 같다. 태양광 발전이나 전기자동차 같은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며 테슬라의 충격 같은 신세경(新世景:새로운 세상의 풍경)을 거침없이 보여주던 미국이 아닌가.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화성 이주 계획을 발표한 게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해서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돈다.세계의 공장이자 공해유발자라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이름으로 불렸던 중국은 정반대의 길을 가는 중이다. 중국 각지의 사막화가 확산되고 서부 산악지대에서 빙하가 녹아내리는 등 기후변화는 신기루가 아니라 실재하는 거대 재앙임을 인식하고 있다. 아직 수도 베이징의 하늘은 뿌옇지만, 내연기관 자동차를 빠르게 전기자동차로 대체하는 등 강력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서 2030년을 정점으로 온실가스 총량의 감축을 추진 중이다. 미국인 한 명이 연평균 17.6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중국인 평균은 아직 6.2t에 불과하다. 이 차이가 줄수록 세계의 탄소배출량은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치달을 거라는 우려가 컸는데, 이젠 미국이 오히려 더 늘리겠다니.유네스코는 2013년을 'MPE의 해'(Year of Mathematics of Planet Earth)로 선포했다. '지구를 위한 수학'의 해라는 뜻이다. 실험이 힘든 기후변화 연구의 특성 때문에, 축적된 방대한 기후변화 데이터를 활용한 수학적 접근을 통해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정책으로 구현 가능한 대응책을 만들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후변화 문제와 맞서 싸우는 최일선에 수학자들이 있다. 알파고 스타일의 데이터 관점 접근도 있고 미분방정식을 사용하는 기후변화 모델링 접근도 활발하다. 국내에서도 국가수리과학연구소가 내년도에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수학'을 주요 연구주제로 설정하고 해양과기연과 극지연구소 및 지질자원연구원과 협력연구를 계획 중이다. 위기가 기회다. 미국이 멈칫하는 시기를 우리는 연구력을 보완해서 주도하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11-24 박형주

[춘추칼럼]대통령을 위한 다섯개의 메모

끝까지 생각하고 언제나 성찰할 준비로 살았는지최씨 일가를 만나고 40여년간 되돌아본적 없었는지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에 있지 못했던 걸까#1 내가 교수로서 하는 일은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배우는 일이다. 정확히 가르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이 직업의 본령은 차라리 배움에 가깝다. 게다가 학생이 하는 질문 중 어떤 것은 내게 와서 오히려 답이 되는 일도 많다. 맹렬하게 인문학을 공부하는 한 제자가 내게 말했다. 지식에 대한 자신의 욕망이 본질적으로는 권력에 대한 욕망처럼 느껴진다고. 아니, 도대체가 무언가를 알려고 덤벼드는 것 자체가 그 대상에 대한 폭력인 것은 아니냐고. 과한 반성이라고 답을 건넸지만, 그 질문의 여운이 내게는 길었고, 그래서 지금은 다시 말해주고 싶다. 너의 그와 같은 근본적인(radical) 고민은 그 고민 자체가 바로 답이라고.#2 재직 중인 학과에서는 매학기 문인 특강을 여는데 이번에는 이성복 시인을 초대했다. 학생들에게 시인을 소개하면서 내가 아는 이런 내용을 전했다. 시인은 평생 접한 문장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모아 몇 권의 노트를 만들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가 그 노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운다는 것. 그래서 운동을 할 때면 그 문장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하고는 한다는 것. 무엇하러 외우기까지 하는가. 어디 가서 폼 나게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그 문장들 속에 담겨 있는 질문을 수시로 다시 묻기 위해서, 하여 바닥까지 남김없이 다 물어버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누구나 생각을 한다. 그러나 끝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3 얼마 후 손택수 시인도 특강을 했다. 시인은 대상을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관찰하는 것이야말로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이라고 했다. 자신은 고등학교 3년 내내 교정의 석류나무를 보았고 어쩌면 그때 시인이 된 것 같다고. 강연 말미에 한 학생이 시인에게 물었다. '요즘에는 무엇을 즐겨 보시나요?'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으나 뜻밖에도 시인의 대답은 심각했다. '학생의 질문은, 당신은 지금 이 사회와 주변 사람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가, 라는 꾸짖음으로 들립니다. 맞아요. 반성할 일입니다.' 말하자면 동문서답이었는데 이 순간이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원래 시인이란 작은 것에서 큰 반성을 이끌어내는 이들인 것이다. #4 학생들과 오스카 와일드의 유명한 동화 '행복한 왕자'에 대해 토론한 것은 며칠 후다. 살아서는 궁전 안에서만 지냈으므로 세상만사가 행복했던 왕자가 죽어 동상이 되어 도시 높은 곳에 세워져서는 세상에 숱한 불행이 있음을 뒤늦게 보고 알게 되어 비통해한다. 왕자의 부탁을 받아 왕자의 동상 곳곳에 박혀 있는 보석을 떼어 불행한 이들에게 전달하던 제비는 그만 때를 놓쳐 겨울을 맞아야만 했고 진정한 사랑을 깨달으며 행복하게 죽어간다. 이 동화의 외곽 주제 중 하나는 '변화'다. 존재의 변화는 아름답다는 것.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그토록 어렵다는 것. 왕자와 제비는 둘 다 죽음을 통과하면서 진정으로 변할 수 있었으므로. #5 '듣기의 철학'(와시다 키요카즈)이라는 책을 보니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하는 어느 직원의 말이 인용돼 있었다. 그에 따르면 '터미널 케어'(말기 간호)의 경우 어떤 병원에서 어떤 의료 행위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환자가 '누구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가'에 그 본질이 있다는 것이었다. 죽어가는 사람 옆에 있어주는 일, 그것이 가장 중요한 케어라는 것. 그러므로 케어란 누군가에게 '시간을 주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재앙의 현장에서도 단지 '옆에 누가 함께 있다'는 그 느낌이 서로에게 가장 큰 힘이 된다는 말도 거기에 있었다. 이상 다섯 개의 삽화들은 모두 최근의 것이다. 경험과 독서가 자꾸 하나의 주제로 모여드는 때가 있는데 요즘이 그렇다. 근본적으로 고민한다는 것(#1), 끝까지 생각한다는 것(#2), 언제나 반성(성찰)할 준비를 갖추고 산다는 것(#3), 그를 통해 존재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4), 그리고 가장 필요한 곳에 가서 선다는 것(#5). 이 모든 것을 대통령과 더불어 생각한다. 최씨 일가를 만나고 40여 년 동안 그는 근본적으로 돌아본 적이 없었을까, 그래서 한 번도 결정적으로 변해본 적이 없었을까, 그래서 2014년 4월 16일과 그 이후에도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에 있지 못했던 것일까. 그를 생각하며, 그라는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날들이다./신형철 문학평론가신형철 문학평론가

2016-11-17 신형철

[춘추칼럼]'대통령 탈당'과 '김병준 총리'로 풀어라

박대통령, 총리권한 국민앞에 분명하게 선언해야진정 거국중립내각 만들겠다면 당적 이탈 필수野, '김병준 카드' 받고 마비된 국정 풀어 나가야'미국판 문화대혁명'. '트럼프 당선'에 대해 중국 일각에서 나오는 평가다. 설마가 현실이 된 것이다. 민주당 정권 8년을 지났으니 이번에는 공화당 차례였다. 미국 정치의 법칙이 그렇다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당장 걱정은 우리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이다. 미국 45대 대통령 당선인은 기행과 막말을 일삼던 인물이다. 우리가 보아서 알지만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트럼프의 공약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멕시코 국경 장벽설치' '무슬림 입국 금지' '불법이민자 추방' 등은 실현되기 어렵다. 비용이나 정치적 역학 관계, 법률적 문제 등이 얽혀 있다. 그에 반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등은 비교적 쉬운 문제다. 자유무역협정은 일방이 통보하면 180일 후 자동 종료된다. 미국에 유리하게 재협상하지 않으면 자동종료 조항을 발동할 수도 있다. 미군 주둔 비용에 충분히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미군 철수를 들고 나올 수도 있다. 모두가 트럼프 지지층으로부터 환영받을 일이다. 북한 핵 문제는 완전히 외면하거나 선제공격론이 현실화되거나 극단을 오갈 수 있다. 어찌 되었건 한미 관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는 엄청난 격변이 예상된다. 중국과 일본이 바짝 긴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가장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대한민국 정치권은 아직 한가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지만 크게 힘이 들어가 보이지는 않는다. 통치의 도덕적 정당성과 정책집행의 동력을 이미 상실한 탓이다. 야당은 총리 후보 추천 거부에 이어 이번 토요일 촛불집회에 참석하겠다고 한다. 물론 트럼프 당선 소식이 전해지기 이전의 행보이다. 문제는 앞에서도 말했듯 상황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급변 사태가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대통령이나 여야 모두 지금과 같은 정치적 교착상태를 더 끌고 간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국면이 초래될 수도 있다.변화의 물꼬는 박대통령이 터야 한다. 총리 권한 보장을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청와대는 야당 추천으로 임명할 총리에게 국무위원 제청권, 해임건의권, 국정통할권 등을 보장할 것이라고 한다. 현행 헌법대로 하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헌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권한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국민 앞에 분명하게 선언할 필요가 있다. 왜 대통령은 침묵을 지키고 청와대 관계자가 설명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두 번째는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이다. 진정으로 거국중립내각을 만들겠다면 대통령의 당적 이탈은 필수적인 요건이다. 하야나 탄핵은 헌정사에 불행한 오점을 남기는 것이다. 탈당이야 대부분의 대통령이 선택한 길로 새삼스러울 것 없다.야당은 이에 답해 김병준 총리 카드를 받아야 한다. 야당이 총리 추천을 거부한 속내는 절대로 합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솔직히 밝힌 바대로 네가 추천하면 내가 싫고, 내가 추천하면 네가 싫다고 할 게 뻔하다. 김병준 총리 내정자는 야당의 대안으로서 훌륭한 선택이다. 총리의 권한을 100% 행사하겠다는 게 김 내정자의 포부다.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야당 사람이기도 하다. 국정운영의 심장부에서 일해 본 경험은 어려운 시기에 귀중한 자산이다. 성공하거나 실패한 경험 모두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실질적인 내각통할권을 행사하며 내년 선거까지 관리한다면 야당의 걱정도 크게 덜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추천한 총리라서 싫다면 좁쌀 정치나 다름없다. 끝까지 밀어붙여 하야까지 생각한다면 더 큰 혼란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경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한다. 대통령과 정치권이 국정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자칫 외환위기 같은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야당 역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과유불급이고, 나설 때가 있으면 물러설 때를 알아야 한다. 대통령과 야당이 한발씩 물러서서 사태 수습에 나서야 할 때다. 대통령 탈당과 김병준 총리 카드는 좋은 정치적 교환품목이다./노동일 경희대 법과대학 교수노동일 경희대 법과대학 교수

2016-11-10 노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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