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선거제도 개혁의 해법은 없나?

첫째, 정당 득표만큼 의석 배분 '비례성 원칙'둘째, 정국운영 안정 '권력구조·선거제 조화'셋째, 정치권 이해관계 보다 '국민공감 우선'3원칙 바탕 '위원회' 발족 案도출 가장 합리적여야가 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 원칙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첫째, 비례성의 원칙이다. 정당이 얻은 득표만큼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선거구제 단수 다수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선거제도는 거대 정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지난 2016년 총선의 경우,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은 정당 득표에서 각각 25.5%와 35.5%를 득표했고, 실제 의석률은 41.0%와 40.5%였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44석, 새누리당은 18석을 더 많이 획득했다. 한편, 소수 정당인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정당 득표에서 각각 26.7%와 7.2%를 얻었지만 의석률은 12.7%와 2.0%에 불과했다. 국민의당은 무려 45석, 정의당은 17석 적게 배당받았다. 이런 맥락에서 소수 야3당은 표의 등가성을 높이기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준연동형'과 같이 연동의 수준을 낮추자는 입장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정당 투표로 총 의석을 결정한 후, 당선인은 지역구 의석을 먼저 배당한 뒤 그 나머지를 비례대표로 채우는 방식이다. 둘째, 제도의 조화성이다. 무엇보다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간의 조화성은 정국 운영의 안정성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국가 중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제도 궁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채택되면 필연적으로 다당제가 되기 쉽다. 내각제 국가에서는 통상 여러 정당들이 참여하는 연립 내각이 보편화되어 있어 정국 운영에 별로 문제가 없다. 반면, 대통령제에서 다당제는 여소야대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고 이념이 다른 정당들간의 연정이 쉽지 않아 늘 정국 불안정의 요인이 된다. 또한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한 데 야당이 여러 개로 쪼개져 있으면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권력구조개편과 선거제 개편을 동시에 추진하자"고 제안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셋째, 국민 공감의 원칙이다. 정치권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접근할 경우 선거제도 개혁의 효과성에 대한 논의가 실종될 위험성이 크다. 가령,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면 비례성은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의원정수의 과다한 증가다. 지역구 의석이 정당에 배분된 의석보다 많을 경우, 초과 의석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의원정수를 기존의 300석으로 유지한다고 해도 필연적으로 초과 의석이 발생해 의원 정수는 최소 350명까지 늘어 날 수도 있다. 이 제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독일에서 지난 2017년 9월에 치러진 연방 의회 선거 결과, 명목상 의원 정수는 598명이었지만 초과 의석이 무려 111석 발생해 총 709명이 선출되었다. 더욱이 지역구에서는 단 한 석도 얻지 못한 정당이 비례구에서만 80석을 배당받았다. 과연 이런 결과들을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국당이 주장하는 비례대표제 폐지도 국민들이 공감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정치적 약자인 여성의 국회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비례대표제 폐지는 여성 대표성 제고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 세 가지 원칙을 함께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자신들에게 유리한 원칙만을 고집한다면 합의를 통한 선거제도 개혁은 물 건너간다.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보다는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제도개혁 위원회'를 발족시켜 개혁안을 도출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국회 의석을 가진 정당은 의석 규모와 상관없이 단 1명만 위원회에 참석시키고 과반수 이상은 중립적인 외부 전문가로 구성해 국민이 공감하는 선거제도 개혁안을 도출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03-14 김형준

[춘추칼럼]대북강경론을 경계한다

북·미, 어느 누구도 '회담 실패' 판단 안해양측 파이 '공정 배분' 심판役 우리가 해야개성공단·금강산 관광 문제 '분리' 바람직 '한반도 비핵화' 中역할 견인위해 소통 중요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종료된 것에 대한 분석과 후속작업들로 분주하다. 우리 정부는 북미회담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미국으로 떠났고 대통령 주재 국가안전보장회의 전체회의를 열어 우리의 대응책을 논의하였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합의는 도출하지 못했지만 북미가 진정으로 중요시하는 부분에 대한 협상카드가 분명해졌다. 미국은 북한이 전체 핵프로그램을 꺼내놓기 전까지는 대북제재를 해제할 생각이 없으며,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교환방식이 아니고서는 핵프로그램 모두를 꺼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측의 차이는 지난 30년 북핵협상의 핵심 사항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부터 역사적인 북미 정상 간 세기의 담판이 벌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방식의 비핵화 과정과 결과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결과는 아쉽지만 그렇다고 실패로 규정하기에는 이르다. 양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 어느 누구도 이번 회담이 실패했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북한 언론은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보다는 양 정상 간의 건설적인 논의에 맞춰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기자회견과 트위터에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관계는 변함없으며 대화를 이어나가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표출하고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도 축소되었고 북한도 핵능력과 관련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대북강경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이다. 과거에도 협상이 실패를 하면 늘 핵포기불가론, 협상무용론, 선핵포기론 등이 자리를 잡았다. 실패했으면 하는 희망사항이 이뤄진 것처럼 다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우리는 실패와 성공을 규정하기에 앞서 냉정하게 회담의 결과를 분석하고 더 좋은 합의를 위한 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 협상은 크기가 정해져있는 파이를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느냐가 아니다. 파이가 같은 비율로 나눠지지 못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협상 당사자 모두가 그 결과에 만족하면 협상은 '잘' 된 것이다. 또한 양측이 파이의 배분에 있어 문제가 생기면 협상을 잠시 중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협상의 파이가 작다고 느끼면 과감하게 협상 당사자 간 협상의 파이를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앞으로의 협상은 현재 이번 북미회담의 논의구조를 넘어 파이를 키우는 협상이어야 한다. 미국과 북한이 최대한 파이를 키워 모든 핵프로그램과 대북제재 해제를 일괄 타결하고 신속히 동시병행적으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협상이 전개되어야 한다. 이번 회담을 두고 Top-down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으나 사실 이번 협상은 Top-down과 실무협상이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다만 최고지도자들의 결정 부담을 덜고 합의 없이 종료되지 않도록 다음번 협상에서는 대부분의 사항이 타결된 이후 정상회담 일정을 잡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양측간 파이가 최대한 공정하게 배분될 수 있는 심판의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 유도 경기에서 볼 수 있듯이 심판은 한쪽이 소극적으로 공격을 할 경우 주의를 줄 수 있어야 하고 양측의 샅바가 헐렁해지면 타이트하게 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제재를 포함한 경제보상조치가 북핵협상의 핵심이 되는 만큼 양측의 신뢰를 조성하기 위한 밑바탕을 우리가 조성해야 한다. 지난 스웨덴의 사례처럼 남북미 3자 실무협의체가 지속적으로 가동되어야 한다. 그리고 실무협의의 결과가 남북미의 정상에게 지속적으로 피드백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는 재개를 본격화한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인들의 현장확인 수준에서 논의되는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비록 제재의 프레임웍에 속해있지만 또한 남북관계 차원의 사안이기도 하다. 비핵화 협상에 이 문제들이 연동되어 버리면 남북관계 차원에서 우리의 레버리지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분리하여 북한의 비핵화를 신속히 유도하고 우리의 레버리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국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중국 또한 이번 북미회담이 협상 없이 종료된 데 대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는 중국과 우리가 다른 것이 없는 만큼 전략적 소통을 통해 중국의 역할을 견인하는 방법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미세먼지처럼 뿌연 한반도 정세이지만 우리가 이번 회담 결과만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더 큰 합의를 이루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지지하고 성원해 주어야 할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3-07 양무진

[춘추칼럼]보다 공정한 심사를 바라며

구성과정 부터 한없이 의심받는 심사위원공정하게 결정해도 모두만족 '최고'는 없어3·1운동 100주년 사업비 문화예술계 투입혈세 옳게쓰였다고 수긍할만한 행사되길심사는 결코 신뢰받지 못한다. 계량화도 대책이 안 된다. 모두가 인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점 없이(그런 기준점이 불가능하다) 다분히 자의적으로 이루어진 계량화는 딱한 숫자놀음일 뿐이다. '판단'이나 '감상'을 수치화하는 것부터가 신뢰받기 어려운 일이고 사람마다 판단과 감상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심사위원을 결정하는 누군가가 있다. 사실 이분이 모든 심사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분이 어떤 영향력 있는 자의 청탁이나 압력을 받지 않고, 자신의 혈연·학연·지연 등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알아서 뭐하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이 정한 합리적인 기준에 의거하여 객관·공정한 분들을 선택했다면 일단 최상의 심사위원 구성일 테다.그런데 이 단계부터 절대적인 의심을 받는다. 실무자의 기준이 과연 공정했는가. 저 무수한 철밥통 심사위원들은 뭔가? 왜 누구나 예상할 만한 사람이 되겠는가. 불특정다수의 심사위원 풀에서 심사 임박 때마다 랜덤으로 뽑기도 하는데, 그 심사위원 풀은 누가 또 어떻게 선정해서 구성했는가? 의심하기로 들면 한없이 의심스럽다.아무튼 그렇게 해서 심사위원들이 정해졌다. 심사위원들이 어떤 로비도 받지 않고 어떤 인연에도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의 공정한 잣대로 심사했다고 하자. 그게 가능해? 역시 엄청나게 의심받는다. 여러 가지 의심을 받지만, 가장 큰 의심은 그 심사위원 개인의 잣대가 과연 공정할 것이냐는 것이다. 누가 봐도 공정한 심사위원이 누구나 인정할 수 있게 공정하게 심사를 보았다 하더라도 결과는 신뢰받기 힘들다. 왜냐면 혼자 심사 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이상한 일인지 당연한 일인지 아리송하지만 만장일치가 거의 없다. 합의점을 찾으려고 한다. 두어 분이 '최고'라고 강력히 주장하면 될 확률이 아주 높다. 다섯 사람이 '보통'이라고 본 작품이, 한두 사람이 '최우수'라고 주장한 작품들을 이기기도 한다. 다른 이들은 우수하다고 보지도 않았는데, 한 사람이 죽어도 이것이라고 우겨서 1등이 결정되는 때도 있다. 결국 다수결을 자주 한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최선의 방법은 다수결밖에 없으니까. 하도 의견 일치가 안 돼 '당선작 없음'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심사위원부터가 만장일치하지 못한 작품이 대중 사이에서 두루 신뢰받기는 어려울 테다. 심사위원이 만장일치했다고 해서 대중에게 무조건 신뢰받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판단해서 아니면 대중은 아무렇지도 않게 심사위원을 욕한다. 보는 눈이 꽝이네!즉, 제 아무리 공정하게 위촉된 심사위원이 제 양심과 상식과 체면을 걸고 제 아무리 공정하게 심사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최고'이거나 다수결이나 합의상으로는 '최고'일 수 있지만, 모두에게 '최고'인 작품·사업은 절대로 뽑힐 수가 없는 것이다. 딴은 공정하기 위해 예심이나 본심, 1차·2차로 나누어진 심사는 더욱 불공정할 수 있다. 본심에서 최고였을 작품이 예심이나 1차에서 탈락하는 일이 왕왕 있다. 대중에게 최고였을 경우가 심사위원에게 무시당할 수도 있다.비교적 객관·공정하다는 문학판 심사에서도 그럴진대, 지연에 학연에 사제연에 사적인연에 권력에 백에 로비에 알아서 기는 경우에 작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받는 각계 각 분야 허다한 각종 심사 결과를 대중이 신뢰하기란 대단히 어렵다.자기(네) 돈 쓰겠다는 데는 그래도 좀 공정하게 주면 안 될까요, 바랄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국민세금 들어가는 데는, 세금 들어가는 것이 의미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공정해야 한다. 보다 공정한 심사제도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겠지만, 어떻게 해도 제도상 불가능하다면, 결국 심사자 개인의 상식과 양심에 달린 것일까? 역지사지라고, 심사 받는 마음으로 심사를 봐야 할 테다.3·1 만세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서 상당한 돈이 문화예술계에 투여될 모양이다. 아무려나 보다 공정한 심사가 이뤄져, 대중이 문화예술에 국민혈세가 쓰이는 것이 옳은 일이며 옳게 쓰였다고 수긍할 만하게 행사가 이뤄지고 수작이 탄생하기를./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2-28 김종광

[춘추칼럼]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사회 다양한 욕망의 집합체 '인싸'사회 변하지 않는한 개인 행복은 없다사소한 것부터 각자 스스로 수행해야그것이 곧 '지속가능한 공동체' 출발점얼마 전 20~30대 청년들에게 요즘 자신을 붙잡고 있는 단어를 물어본 적이 있다. 꿈, 미래, 생명 등 여러 가지 답변이 나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잔고'였다. 이 시대 청년들의 신산한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 울컥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제 청년들의 힘든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수많은 언론 보도뿐만 아니라 청년수당과 청년창업, 청년임대주택 등 정책적으로도 청년세대와 관련된 지원이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청년들의 삶을 잘 모른다. 어쩌면 애써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그 세대를 지나왔고, 내 아이는 아직 그 세대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당사자'가 아닌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만다.2018년 가장 핫한 유행어 중에 '인싸'가 있다. '인사이더(insider)'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으로, 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인싸템, 인싸음식, 인싸춤, 핵인싸 등의 용어들과 함께 특정 세대뿐만 아니라 전 세대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문체부 2018 문화향수실태조사를 보자. 일상에서 문화행사 관람률은 81.5%로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분야별 관람률에서는 영화관람이 75.8%로 압도적이다. 대중음악이나 미술전시, 연극, 뮤지컬 등은 20% 이하로 큰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 역시 '인싸'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장르 격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 장르 내에서는 '인싸' 현상은 강화된다. 1천만 명이 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전국의 약 3천 개에 이르는 스크린에서도 상영기회를 확보하지 못하는 수많은 독립영화들이 존재한다. 이것이 단순히 시장이나 자본의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싸는 한국사회의 다양한 욕망의 집합체이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뒤처지지 않겠다는 경쟁의식, 조직이건 또래이건 일종의 내부자 심리 등 두려움과 욕망이 뒤범벅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것은 '국민'과 외국인 혹은 난민 등을 구분한다거나 장애인과 성소수자, 비정규직 등 사회적 집단과 계급의 구별에 따른 욕망을 담을 수밖에 없다. 결국 스스로 '인싸'를 선언하거나 혹은 '인싸'가 되고 싶은 것은 같은 맥락이다. 일터에서 수많은 갑질에도 저항할 수 없고 보호받을 수 없는 처지에서 '인싸'는 설령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심리적 안정제 역할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삶의 방향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개인의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혹은 공동체의 변화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아무 상관 없는 별개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어느 하나를 추구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하거나 버려야 할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정말 그런 걸까? 사실 그 두 가지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개인이 행복하지 않은데 공동체가 건강할 수 없으며, 사회가 바뀌지 않는데 개인이 행복할 수는 없다. 동시대 빈곤과 불평등 문화에 대해 평생을 연구한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77)는 최근 인터뷰에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우리는 가능한 한 모두와 함께하고자 둘러봐야 합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옆에 사는 사람들, 일하는 건물에 오가는 사람들과 일상을 나누는 거예요. 어떻게 지내냐고 묻고, 듣고, 영향을 주고받는 겁니다."(<경향신문>, 2019.1.31.)세계적인 석학은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누구나 알고 있고,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어느 시기 어떤 곳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비판하고 단죄하고 처벌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자가 발 딛고 있는 삶터와 일터에서, 즉 자신의 일상에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다. 혼자만이 아니라 나의 언어와 행동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것.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 누구나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을 실제로 자신의 손과 입으로 수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일이다. 이것이 바로 지속가능한 공동체와 사회를 위한 출발점이다. 모든 위대한 일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하자./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9-02-21 권경우

[춘추칼럼]확증편향에서 벗어나야 경제가 산다

소득주도성장, 되레 양극화 심화 '황당 현실''평화가 경제' 많은 시간과 난관 극복 필요성과없는 경제정책 수정·보완 절실하고 시급경제 무너지면 민심이반 진보정부도 '흔들'확증편향(確證偏向)이란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으로 '잘못된 확신'이다. 크게 '통계학적 확증편향'과 '심리학적 확증편향'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통계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확증하는 쪽으로 치우치는 인지적 편향이다. 가령, 현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재인 케어 등을 통해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도 늘어나면서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생산·투자 부진, 자영업 몰락, 고용 참사, 소득 양극화 등의 부작용이 여러 통계 지표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경제 정책 실패를 피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유리한 통계 결과만을 선별해 홍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민간 소비 증가율(2.8%)이 경제 성장률(2.7%)을 웃돌았다"면서 "소비 심리가 하락했으나 실제로는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간소비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1.4%로, 약 52%를 민간소비가 주도했다"는 통계까지 인용했다. 민간소비가 괄목할 성장을 거둔 것은 최저임금 인상 효과 때문이므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 같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와서 민간소비는 계속 줄어드는 반면, 정부 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개인 소득 중에서 의료보험료, 대출 이자 등과 같이 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빼고 남는 돈이 소비가 가능한 '가처분 소득'이다. 현 정부에서 가계소득은 늘었지만 가처분 소득은 줄고 있다는 게 문제다. 진짜 더 심각한 문제는 못사는 사람들(소득1, 2분위)의 가처분 소득은 더욱 빠르게 줄어들고 있고, 반대로 잘 사는 사람들(소득 4, 5분위)은 더 빨리 늘어난다는 점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을 끌어올려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것인데 정반대로 '소득 양극화 심화'라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민생 경제 상황이 이렇게 절박한데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올해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겠다"고 공언했다. 아마도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평화가 경제다'라는 심리적 확증 편향이 강하게 작동된 건 아닌지 싶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이달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 "남북 관계를 한 차원 더 높게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평화가 경제가 되는 우리의 미래를 키우는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말처럼 "평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더구나 평화가 경제가 되려면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 경제 상황은 너무 절박하다. 경제의 두 축인 생산과 투자가 모두 침체하고 있고, 취업자 수 증가폭이 전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런 가운데 세계 경제 성장세 둔화, 미·중 통상 마찰 등 대내외 불확실성도 확대되는 추세다.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평화가 경제가 되기 위해서라도 당장 성과 없는 경제 정책의 수정 보완이 시급하고 절실하다. 여하튼 경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에 빠지면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 반대로 온갖 갈등과 논쟁과 불통을 불러올 뿐이다. 닉커슨(Nickerson) 미국 터프츠 대학교수는 "확증편향은 상당히 강력하고 침투력이 좋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편향이 개인, 집단 또는 국가차원에서 발생하는 온갖 마찰과 논쟁과 오해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면서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 단언컨대 현 정부가 확증편향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진보의 미래는 없다. 경제가 무너지면 민심이 급격하게 이반되어 아무리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진보 정부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 앞엔 장사가 없다. 이 대목에서 "진보의 미래는 국민이 생각하는 것만큼 갑니다"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 깊이 와닿는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02-14 김형준

[춘추칼럼]통일과정의 동서독 교훈

1970년대부터 시작된 양측간의 '긴장완화'대결보다 교류협력으로 고통받는 상처 치유'동방정책 없었다면 동독개혁 불가능' 평가 자유·인권·개방등 국제사회 기준적용 노력내년은 독일 통일 30주년이다.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이룬 동서독 과정은 이미 역사 속의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점이 많다. 냉전시기 분단된 동서독 관계는 동독의 국가성 인정 문제로 출발하였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49년 서독지역에 출범한 아데나워 정부는 반공을 국시로 하여 할슈타인(Halstein) 원칙을 공식화했다. 할슈타인 원칙은 서독정부가 합법적으로 구성된 유일한 정부로서 동독정부와 외교적 관계를 맺는 국가와는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소련의 베를린 봉쇄가 연합국에 의해 좌절되고 동-서 베를린을 통해 동독인들의 탈출 러시가 증가하자 소련과 동독은 1961년부터 베를린 장벽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소련이 서방세계의 완충으로서 동서독 분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독이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서독의 단일 대표성을 인정하였고 동독의 유엔가입은 1973년까지 좌절되었다. 닉슨의 중국 방문 등 동서 냉전이 데탕트 움직임을 보이자 서독의 브란트 정부는 동독의 존재를 인정하고 긴장완화와 상호교류를 골자로 하는 '동방정책'을 추진하였다. 1970년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상주대표부 설치 등을 통해 양독관계는 사실상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발전하였다. 이후 동독은 영국, 프랑스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74년에는 미국과도 국교를 수립하였다. 1980년대 다시 신냉전이 도래하기 전까지 유럽 내에서는 다자간 안보협력회의(CSCE)까지 출범시키는 등 밀월기를 가질 수 있었다. 냉전의 전형적 분단국인 우리도 데탕트에 힘입어 1970년 초부터 남북대화를 시작하였으나 김일성 수령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는 북한과 반공을 국시로 하는 군사정부간의 대결구조 속에서 냉전의 밀월효과를 향유할 수 없었다. 이후 우리의 긴장완화 노력은 유럽보다 무려 20년 늦게 진행되고 만다. 1990년 냉전이 해체되고서야 남북은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다. 북한의 국가성 인정과 특수관계로서의 남북관계를 동시에 규정한 것이다. 동구권 붕괴와 같은 국가붕괴 사태를 겪지 않으려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한 북한과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한미의 대응으로 북한은 냉전 해체기에 처절한 생존에 성공하였다. 동서독이 1970년대부터 시작한 긴장완화와 화해협력이 한반도에서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야 시작될 수 있었다. 이후 10년의 진보, 10년의 보수정부를 거치면서 남북관계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였고 그동안 북한은 핵능력을 고도화하면서 지금의 핵보유국의 길을 걸어오게 된 것이다. 서독의 브란트 정부가 동방정책을 내걸었을 때 서독 내 보수진영의 반대는 극렬했다. 동독 체제의 연장과 통일의 영구적 포기가 반대진영 주장의 골자였다. 그러나 그 당시의 시대적 흐름은 동독 체제를 붕괴시킬 수도 없었고 패전국인 서독이 스스로 통일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오히려 긴장완화와 공존정책을 통해 동독뿐 아니라 동구권 전체의 이완과정을 촉진할 수 있었다. 대결보다는 교류협력을 통해 분단으로 고통받는 동서독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통일 이후 독일 내에서는 동방정책과 같은 긴장완화와 평화정책이 통일에 기여하였는가에 대해 "동방정책이 없었다면 동구권의 개혁이나 동독의 평화운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 다수의 평가였다. 중요한 것은 당시 동독이 보인 변화이다. 동독은 그토록 원하던 국가성을 인정받으면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고 자유, 인권, 개방 등에 있어 국제사회의 기준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인적교류를 허용하고 여행을 자유화하였다. 정치적 박해를 한다는 비난을 받기 싫어서 정치범을 서독에 넘기기도 하였다.냉전이 해체된 지 30년이 지난 늦은 시점이지만 한반도는 전 세계 마지막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대장정에 들어섰다.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개발을 이번엔 반드시 좌절시켜야 한다. 북한을 정상국가화시켜 국제사회의 규범을 따르게 하고 다방면의 교류협력을 확대하여 분단의 고통을 치유하고 남북 간 동질성을 회복해 나가야 한다. 자유왕래와 상호 의존성 확대를 통해 공동체적 통일을 추진해 나가면 점진적 통일과정이 완성될 수 있다. 지난해 남북대화를 비롯하여 새해 벽두부터 북미대화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권과 언론, 일반 국민들은 이를 지지하고 성원해야 한다. 앞으로 있을 북미정상회담과 남북대화를 통해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2-07 양무진

[춘추칼럼]동등한 기회와 조건

이무기가 용 되려면 수많은 시련 극복 필요그러나 용 집안은 처음부터 강력하게 지원우리세대 '보이지않는 카스트제도' 더 강화청년들에게 진정 필요한것은 '균등한 여건'스롱 피아비. 부쩍 매스컴을 타서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3쿠션 당구를 제일 잘 치는 여성 중 한 분이다. 현재 한국랭킹 1위, 세계랭킹 3위다. 그분이 캄보디아에 계속 살았다면 그분은 당구에 '당'자도 모르면서 평생을 살 수 있었다. 캄보디아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당구 인프라가 거의 없는 나라였다. 그분이 한국인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한국인 남편이 그녀를 당구장에 데려가지 않았다면, 당구장에 갔을 때 곧바로 그렇게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남편이 재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면, 그분이 자신의 재능을 믿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면, 아내가 성과를 보인 뒤에도 남편이 계속 격려하고 응원하고 최대한 돕지 않았다면, 그분의 성공신화는 불가능했을 테다. 이런 경우가 희박하기에 뉴스가 되고 화제가 되는 것이다.EBS시사교양다큐 '극한직업'. 방송사의 설명에 따르면, '극한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숭고한 의지와 잃어가고 있는 직업정신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근로자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니고 꼭 '작업자'라고 하는데, 어떤 직업이 되었든 천편일률적으로 나오는 피디와 작업자의 대화가 있다."힘들지 않으세요?" (힘든 사람한테 힘드냐는 질문을 하는 게 왜 우스꽝스러워 보일까? 아무튼) "그럼, 힘들지 안 힘들어. 안 아픈 데가 없지." "이렇게 힘든데 왜 하세요?" "먹고 살려면 해야지." 혹은 "처자식(가족) 먹여 살리려면 힘들어도 참고 해야지." "이렇게 힘든 일을 왜 하세요?" "배운 게 이것밖에 없어."그 육체적으로 힘들고 성취감을 갖기 어렵고(단순반복이고)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몹시 심하여서 견디기 어려운 추위' 같은 '극한'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표정과 말에서, (저분들의 노동 덕분에 내가 편안히 산다는 생각은 들어도) 숭고함과 가치는 느끼기 힘들었다.그런 극한직업에 종사하는 분들 중에도 '스롱 피아비' 같은 분이 수두룩하게 있었을 테다. 그분에게도 어떤 분야에서는 특출한 재능이 있었다. 그 재능을 발견하고 갈고닦아 꽃피울 수 있는 기회와 환경과 조건이 주어졌다면 그도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종사하며 '숭고한 의지'와 '직업정신의 가치'를 누리는 삶을 살았을 테다.인도 카스트제도를 비인간적이라고 비웃는 분이 많은 데, 과연 우리나라가 비웃을 자격이 있는 사회인지 모르겠다. 일제강점기 때부터만 살펴보아도 대대로 금수저고, 대대로 스카이학벌이고, 대대로 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장차관이고, 대대로 건물주고, 대대로 극한직업에 종사한다. 물론 무수한 예외가 있었다. 하지만 '개천에서 난 용'보다 '용 집안에서 난 용'이 훨씬 많았다.개천에서 난 이무기가 용이 되려면 무수한 시련을 극복하며 기회를 쟁취하여 스스로 조건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극한의 노력과 행운이 필요하다. 하지만 용 집안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최대한의 기회와 조건을 제공한다. 행운보다 더 강력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극한직업 종사자들은 '먹고 사는' '먹여 살리는' 수준이니 자식 세대에게 충분한 기회와 조건을 제공할 수 없다. 경쟁에서 밀린 극한직업 종사자들의 자식세대는 '스롱 피아비' 같은 인생역전의 기회가 발생하지 않는 한, 역시 극한직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을 테다. 대대로 부자유전사회인 것이다. 대놓고 세습하는 카스트제도랑, '눈 가리고 아웅' 세습되는 우리나라 사회가 뭐가 다른가.우리 40~50대 아저씨·아줌마들은 반성해야 한다. 민주화운동세대라면서,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사회를 더욱 더 비민주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민주화운동세대가 진정 꿈꾸었던 것은 대개의 청년이 부모의 재력·학벌·권력·직업에 상관없이, 동등한 기회와 조건을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능동적으로 선택하여 숭고함과 가치를 만끽하며 안전하게 살아가는 사회 아니었던가. 그런데 우리 세대는 '보이지 않는 카스트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있잖은가.지금 청년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동등한 기회와 조건'이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1-31 김종광

[춘추칼럼]당신의 정원은 어디입니까?

올해는 수많은 현안 방향 가름하는 시기될듯국가·지역사회 책임지는 '정원사' 역할 중요이제 '우리의 정원'에 쓰레기·돌 던지지 말고팔 걷어붙이고 돌멩이·잡초 솎아내야 한다"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정원은 정원사가 씨앗을 뭉텅뭉텅 뿌려놔 싹이 나온 곳만 뒤엉킨 채 열매를 맺었고 뿌려지지 않은 곳엔 새싹조차 돋지 않았다. 제대로 된 정원사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고 돋아난 열매조차 시들하여 그것을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정원을 제대로 가꾸고 노력할 의지가 없는 정원사는 '올해 농사가 제대로 안되면 다음에 다시 하지 뭐'라는 막연하고도 안이한 생각으로 임하기에 정원은 제대로 가꿔지지 않는다."'민주주의의 정원'(에릭 리우·닉 하나우어, 김문주 옮김, 2017, 웅진지식하우스)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우리의 '정원'은 어떤 상태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속한 사회의 풍경을 보노라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정원의 곳곳이 심각하게 망가지거나 훼손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2019년 기해년은 '우리의 정원'이 더 황폐하게 될지, 아니면 아름다운 장소로 변모하는 기반을 다질 것인지 흐름이 드러나는 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적 현실을 넘어 보수정부와 개혁정부의 중심이동 과정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와 현안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를 가름하는 시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청년실업과 고령화, 젠더·페미니즘, 입시교육, 부동산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빨아들이고 있는 경제위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누군가는 이러한 문제들을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현재 나와 관련된 문제만을 인식하거나 문제 삼는 데 급급한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사실은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인식과는 별개로 개별적인 수준이 아니라 쓰나미처럼 전면적으로 밀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무리 외면하더라도 결국 나의 문제가 될 것이며, 내 가족의 문제가 될 것이며, 우리 이웃의 문제가 될 것이다. 정원을 제대로 가꾸기 위해서는 '정원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원사는 국가와 지역사회를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나 도지사, 시장 등이 그들일 것이고, 국회의원과 시의원, 도의원, 구의원 등도 해당될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상당 부분 결정하고 책임지고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동시에 행정의 영역에서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일상의 영역이며 자율의 영역이다. 개인 혹은 커뮤니티의 일상적이고 자율적인 활동이 그러한 역할을 하게 된다. 시민정치, 마을활동, 사회적경제, 독서, 교육운동, 인문활동, 문화, 예술 등 그 범위는 넓고 다양하다. 그들이 바로 또 다른 의미의 '정원사'가 되는 것이다."훌륭한 정원사는 절대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정원에 대해 책임을 진다. 또한 날씨와 환경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이에 맞춰간다. 아름다운 정원은 지속적인 투자와 개선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훌륭한 정원사는 흙을 갈아엎고 여러 식물을 바꿔가며 심는다."우리의 정원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복합적 관점과 더불어 구체적인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오늘날 정원사는 '날씨'와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건강한 수많은 정원사가 등장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건강한 개인이 많아져야 한다. 건강한 개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정원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이해하는 역량을 갖추고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신체를 갖고 있는 이들이다. 이제 우리는 자문해봐야 한다. '나의 정원은 어디인가?' 그 정원을 가꿀 생각은 하지 않고 정원사만 욕하고 돌만 던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물어야 한다. 이제 '우리의 정원'에 쓰레기를 버리고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팔을 걷고 신발을 벗고 그 정원에 들어가서 잡초를 제거하고 돌멩이를 솎아내는 정원사가 되어야 한다. "사회는 당신이 행동하는 대로 만들어진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9-01-24 권경우

[춘추칼럼]보수의 재건과 통합은 가능한가?

탄핵 당한 박前대통령 무조건 감싸면 안돼궤멸 책임 묻고 비판할 수 있는 용기 필요시대정신에 맞는 새로운 가치로 화합 유도분열의 씨앗 키우는 계파청산 반드시 실천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 후보로 꼽히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황 전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현재 나라 상황이 총체적 난국"이라며 "자유한국당이 국민에게 시원한 답을 드릴 때"라고 입당 배경을 설명했다. 애석하게도 그의 메시지는 울림이 없었다. 무엇보다 "왜 황교안인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못하지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쾌도난마식으로 밝히지 못했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국정 농단 책임에 대해 소신 있는 고뇌에 찬 답변도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잘못됐다고 보는가?"라는 기자 질문에 "우리에게 지금 꼭 필요한 것은 국민 통합이라 생각한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이제 첫발을 내딛는 정치 신인인 황 전 총리에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적기에 말할 수 있어야 정치인의 메시지는 생명력을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황 전 총리의 첫 행보는 '반기문 2'를 연상할 정도로 준비가 약했다. 황 전 총리의 입당은 한국당 당권 경쟁의 판도에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 향후 한국 보수의 미래와 관련해 몇 가지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진다. 첫째, 보수 재건의 가능성 여부다. 한국 보수 세력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그리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궤멸적 참패'를 당했다. 작년 지방선거 직후 진보 언론매체의 한 기자는 "보수는 비겁하고 교만하고 무지했기 때문에 참패했다"고 분석했다. 단언컨대, 보수는 용기 있게 참회하고 겸손하며 실력을 쌓아야 재건될 수 있다. 무엇보다 '보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국민 70%, 국회의원 78.3%(234명), 헌법 재판관 전원이 합의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해 인정하고 참회해야 한다. 권력 사유화와 국정농단으로 치욕적인 탄핵을 당한 박 전 대통령을 무조건 감싸서는 안 된다. 보수 궤멸의 책임을 물어 비판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투쟁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보수 우파 정당들은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대안 정당으로 거듭나야 재기한다. 대한민국 헌법 81조 ②항에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됐다면 황 전 총리는 대통령을 잘못 보좌했다고 볼 수 있다. 황 전 총리는 이를 정치적 업보로 삼아 '도로 친박당' '박근혜 시즌2'로 회귀하는 것을 온몸으로 막아야 보수가 산다. 둘째, 보수 통합의 문제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새로운 가치를 통해 국민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국민들은 자유, 성장, 경쟁, 효율, 안보와 같은 보수의 가치 못지않게 평등, 분배, 투명, 분권, 평화 등 진보의 가치를 중시한다. 따라서 보수는 진보의 가치를 무조건 배격하지 말고 보수의 시각에서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포용적 진보 우파'의 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 내 외연을 확대할 수 있다. '반문 연대'는 보수통합의 가치가 아니다. 전략에 불과하다. 통합은 전략이 아니라 정신으로 하는 것이다. 통합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통합은 과거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향해 가는 것이다. 통합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실력 있는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셋째, 계파 청산 여부다. 김무성 전 대표는 황 전 총리의 전당대회 참여를 반대했다. "차기 대선주자들이 (전당대회에서) 대선 전초전을 앞당겨 치를 경우 그 결과는 또 분열의 씨앗을 잉태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한국당 전당대회가 친박과 비박 간에 골육상쟁의 내전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라도 홍준표, 김무성, 오세훈, 황교안, 김태호 등 모든 후보들이 출마해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승리한 새 당 대표가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내년 총선을 이끌어야 한다. 국민은 아직 무능하고 무책임해서 실패한 보수에 대해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민심은 늘 변화무쌍하고 두렵고 무섭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01-17 김형준

[춘추칼럼]북중정상회담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네번째 방중… 북미회담 임박 암시밀착관계 포석등 향후 전략들 가늠 가능해두번째 만남에 '한반도 비핵화' 명운 달려한미간 조율 중요… 입장 전달할 수 있어야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지난해에 3차례 중국을 방문하고 올해 첫 방문이면서 총 4번째 방중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및 북미협상을 전후하여 중국을 방문하였다. 첫 번째 방중은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해 3월이었다. 5월의 2차 방중에서는 6·12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 회담 전략을 논의하였다. 6·12 센토사 회담 직후 단행된 3차 방중에서는 향후 대응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논의의 연속 선상에서 현재의 네번째 방중을 통해 향후 북한의 전략을 가늠해 볼 수 있다.첫째, 올해 벽두부터 단행된 김 위원장의 방중은 북미정상회담이 임박했음을 암시한다. 지난해 북미고위급회담이 무산된 이후 이렇다 할 북미 간 실무협상이 전개되지 못했다. 완전한 비핵화까지 제재완화를 유보하는 미국에 대해 북한은 상응조치를 요구해 왔다.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 신년사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제재와 압박을 유지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이러한 교착국면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만나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런 인식을 반영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2차 북미정상회담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에도 긍정적으로 화답하였다. 며칠 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간에 정상회담을 위한 장소문제를 계속 협의하고 있으며 짧은 기간 안에 발표할 것임을 언급하였다. 북미 간 일정부분에서 조율이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둘째,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경우 북한은 핵동결을 토대로 미국의 상응조치를 이끌어 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를 최우선 목표로 둘 것이다. 한편 신년사에서 제안한 바 있는 평화체제 다자협상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자와 다자를 병행할 경우 체제보장을 위한 안전판을 보다 신속하고 정교하게 짜나갈 수 있다. 북한이 상응조치로서 요구해 왔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문제도 동시에 다룰 수 있다. 또한 중국의 참여를 공식화할 수 있다. 그간 미국과의 협상에서 부침을 느껴왔던 북한으로서는 중국이 적절한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이번 방중 수행원으로 김영철, 리수용, 리용호 등 북미 협상팀이 총출동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로드맵을 중국과 협의해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셋째, 지난해 3차례의 중국 방문은 미국과의 협상을 앞두고 중국을 배려하는 성격이 강했다. 이번 북중정상회담은 중국과의 밀착관계를 더욱 높이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특히 미중 간 무역협상을 앞둔 틈새의 시점에 방중함으로써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또한 미중 간 무역협상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협상 전략이 휘둘리지 않도록 중국 측에 당부를 요청할 필요도 있다. 올해는 북중수교 7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김 위원장은 많은 문제들을 중국과 협의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결론적으로 북한은 이번 중국과의 협의 이후 바로 북미정상회담 준비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 도중에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나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를 기대하고 있으나 북한이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남북정상회담이 북미정상회담 전에 열릴지 후에 열릴지 불투명하지만 각기 장단점이 있다. 만약 북미회담 전에 열릴 경우 북미정상회담에 우호적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그 이후에 김정은 위원장이 답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만약 북미정상회담 과정에서 우리가 중재해야 할 부분이 생긴다면 지난해 5월 판문점 2차 남북정상회담과 같이 비핵화에 한정하여 약식으로 회담을 개최할 수 있다.북미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온 만큼 이번 북중협의가 북미정상회담에 동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김영철 통전부장의 방미나 폼페이오 장관의 재방북, 여타 고위급·실무급회담도 뒤따라야 한다. 이번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정말 중요하다. 비핵화 협상이 계속되느냐 지지부진하느냐의 분수령이 된다. 한반도 비핵화의 명운이 달려있다. 우리도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협상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 알려진 바 없다. 마지막까지 한미 간 조율이 중요하다. 특사 방북 등을 통해 북한과도 소통채널을 계속 유지하여 우리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1-10 양무진

[춘추칼럼]투플러스원 엄마들

21세기 한국 주부 상당수는 '2+1 노동' 중경단녀 환영 3D업체서 2달 상처·1달 치유'학원비+알파' 벌려고 다른곳 찾을 수밖에보다 사람다운 일터 개선 '법부터 제대로!'어떤 선배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집사람 일하니?" "두어 달 일하고 한 달 쉬어요." "투플러스원(2+1)이구나. 다 그래." 연전엔 아내만 그런 줄 알았는데, 21세기 한국 주부 상당수가 '2+1노동' 중이었다. 왜 끈덕지게 일을 못해? 의아한 이도 있겠지만, 엄마들은 '2+1'일 수밖에 없었다.엄마가 아이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싶기가 무섭게 아이 과외비가 호환마마처럼 다가온다. 엄마는 학원비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일자리를 구한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의 세월 동안 경력 단절 여성이 되었다. 무슨 '맥'(脈)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미혼 때의 경력을 살리는, 재능을 살리고 보람도 얻을 수 있는,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인……, 암튼 마음에 드는, 흡족한 직장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그런데 언제든지 주부들을 환영하는 일들이 있다. "구인광고 보고 전화했는데요……" 하자마자 어서 와보시라고 하는 곳들. 형식상 이력서도 내고 면접도 보지만 거의 일단 채용된다. 바로 3D업체들이다. 'Dirty'하고 'Difficult'하고 'Dangerous'한 일을 하는 곳. 콜센터, 청소, 간병, 식당, 캐셔, 판매, 노가다, 도우미, 공장…….이 일들은 깨끗하다 할 수 없고 어렵고 위험할 뿐만 아니라, 노동의 대가도 아주 적게 받는다. 갖은 까닭으로 덜 주려고 한다. 고용주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게 줄 수밖에 없기는 하다! 고용주는 정부법 탓을 하는데 확실히 법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돈보다 더 문제는 이런 일들의 속성상, 무수히 받는 상처다. 육체적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 고용주에게만 받는 게 아니라 소위 중간관리자한테도 받고 동료끼리도 주고받는다. 물론 가장 큰 상처를 주시는 분들은 '고객님'들이다. 상처로 너덜너덜해지니 사흘 넘기기 어렵고, 삼 주 버티기가 어렵고, 석 달 넘기기가 벅차다. 3D노동은 본디 (한 곳에서 오래 일하기가 힘들어) 잦은 퇴직과 이직이 당연지사라는 얘기다.다시 직장을 구하기까지 한 달 가량 걸리는 것도 당연하다. 두어 달 일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상당히 고장 났기에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그 고생을 했으니 다음 일할 곳을 찾을 때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오래 쉬지도 못한다. 엄마가 버는 돈은 '학원비+알파(대출이자)'라고 보면 틀림없다. 엄마는 쉬어도 아이가 학원을 쉴 수는 없기 때문에, '2'달 일한 후, 쉰다기 보다 전전긍긍하는 기간이 길어야 '1'달인 것이다.대우가 웬만하고 사람대접해주고 보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동의 기쁨을 주는 업체라면 당연히 그만두거나 옮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대개의 엄마들이 '2+1'이라는 것은 가는 곳마다 대우가 웬만하지 않고 보람을 얻기는커녕 상처투성이가 된다는 증거다. 물론 한 번 들어간 곳에서 오랜 기간 일하신 분들도 숱하게 계시다. 직장이 괜찮은 곳인 경우라면 그런 일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인내심이 뛰어난 경우라면 그분들의 인내심 때문에 투플러스원 엄마들이 모욕 받아서는 안 된다. 참는 게 능사만은 아니다. 못 참고 나올 수도 있다! 사실 못 참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이뤄지는 게 개선이다.투플러스원 아내를 둔 남편의 마음도 편할 리 없다. 돈은 남자만 벌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혹은 마초적 사고를 가진 이뿐만 아니라 당연히 같이 벌어야지 생각하는 이라도 아내의 밤새 끙끙 앓는 소리를 견디기 쉽지 않을 테다. 투플러스원 엄마를 둔 자식의 마음도 편하지 않을 테다. 엄마 노동을 긍휼히 여겨 공부를 열심히 해주면 좋겠는데 성장하는 마음의 복잡함을 어찌 짐작하랴. 하지만 자식들도 분명히 알고 있을 테다. 자기들이 동수저급 흙수저급 경쟁이라도 하려면 엄마가 최소 투플러스원 해야 한다는 것을.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의 엄마들이, 3D일을 할 수밖에 없는 엄마들이, 보다 정당한 대우를 받고, 보다 상처를 덜 받으려면, 3D업계가 보다 사람답게 일할 수 있게 개선되어야 한다. 법부터 제대로! 국회의원들이 3D노동을 해봐야 정신 차린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1-03 김종광

[춘추칼럼]모든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편의점·대형마트 입점 '소멸되는 동네슈퍼'도시재생으로 새롭게 꾸며지는 '마을 공간'시간 흐름에 쇠락하는 것들 그저 바라볼뿐2019년엔 남긴 여백에서 새로운 탄생 기대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즈음이 되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밀려온다. 인류의 역사 자체가 생성과 소멸의 과정이다. 그렇게 수 천 년을 반복해온 일이지만 여전히 사라지는 것들은 아쉽고 슬프며, 새롭게 태어나는 것들은 벅차고 기쁘다. 우리는 매일 맞이하는 밤과 낮처럼 그 둘 사이에서 살아가지만, 문제는 그 둘의 균형이 흔들릴 때이다.서울시 성북구 성신여자대학교 근처 골목에는 오래된 동네슈퍼가 있다. 정확하게는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지금은 물건을 팔지 않고 낡은 간판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무 간판에는 하얀색 페인트로 쓴 '봉다리슈퍼'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담겨 있다. 원룸이 많은 대학가 주변이라 장사가 될 법도 하지만, 10여 년 전 바로 옆에 편의점이 들어서면서 이 작은 가게는 판매 물품을 조금씩 줄이면서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몇 년 전 마지막 들렀을 때 팔고 있는 품목으로는 생수가 유일했다. '봉다리슈퍼'는 대형마트와 편의점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낡은 간판으로 마지막 호흡을 연명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동네의 작은 가게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도시의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류 문명의 힘으로 세운 도시의 유효기간이 만료되면서, 다시 새롭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조금씩 다듬고 고쳐서 살아갈 것인가 하는 관점의 차이가 있다. 재건축과 재개발을 넘어 도시재생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등장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순간이고, 새롭게 조성된 매끄러운 편의공간에 금방 익숙해지고 만다. 자본의 특징은 '탐식'이다. 서울의 사례로만 보자면, 홍대에서 삼청동으로, 가로수길로, 서촌으로, 성수동으로, 끊임없이 먹이를 찾아 이동한다. 현재로서는 이 포식자를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나마 희망을 걸 수 있는 곳이 '공공'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쉽지 않다. 정부나 지자체도 공공의 이름으로 '주인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공이나 개인의 소유 개념을 넘어 '공유'(commons) 개념의 확장을 통한 새로운 공간의 확장이다. 단계적으로 '공공의 공간'을 '공유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을 혹은 동네라는 이름의 지역에서 주민과 예술가, 청년 등 다양한 주체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공간의 경험을 막연하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공간'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편리하고 기분 좋게 드나드는 공간일수록 자본이나 공공 등 소위 '주인'의 행세가 가장 적은 곳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난 가을 한 연출가와의 대화에서 "연극인들(예술가들)은 공간을 잃는 일에 익숙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묘한 슬픔이 밀려왔다. 그는 공공의 공간에서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하면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공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의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일종의 체념이자 현실에 대한 인정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공간을 잃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잃는 일' 너머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원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할 것입니다.'라는 태도가 있었다. 그 태도는 단순한 결심이나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축적으로 만들어낸 삶의 표현이었다. 시인 고정희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여백을 남긴다' 중)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쇠락하고 사라지는 것들을 지켜볼 뿐이다. 그것은 참으로 쓸쓸한 일이다. 그렇지만, 시인이 노래하듯이, 사라지는 것들이 남긴 그 여백에서 새로운 탄생을 기대한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에는 파괴와 죽음이 아니라 창조와 생명이 넘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8-12-27 권경우

[춘추칼럼]동상이몽의 선거제도 개혁논란 해법은?

소수 野 3당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연대양당대립 벗어나 다당제·협치 제도화 주장초과의석땐 비례·대표성 훼손 불편한 진실권력구조 개편 맞춰 설계 심도있게 논의를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격돌하고 있다. 소수 야3당(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생존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전체 의석을 정당 득표만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이다. 야3당은 이 제도의 최대 장점으로 사표(死票)를 줄이고 비례성을 강화하며 극단적 양당 대립정치에서 벗어나 다당제와 협치를 제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선거제도는 민주정치의 핵심인 대의 과정의 본질을 규정해 준다. 그런데 선거제도가 왜곡되어 거대 정당이 소수 정당보다 훨씬 유리하고 심각한 표의 비등가성이 노정되면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따라서 심각한 불균형성을 내포하고 있는 기존의 선거 제도를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하는 것은 충분한 명분이 있다. 하지만 선거제도를 둘러싼 각 당의 입장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내년 1월까지 선거구제 개편과 동시에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란 쉽지 않다. 향후 선거제 논의가 정략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이며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논의가 있어야 한다. 가령 이 제도가 도입되면 초과 의석이 발생되어 의원 정수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다. 그 이유는 정당 득표율로 배분 의석을 정한 후, 배분의석 안에서 지역구 의석을 먼저 채우고 잔여 의석은 비례대표 의석으로 배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객관적인 사실을 정직하게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지난 2017년 9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에서 실시된 연방 하원 선거에서 무려 111석의 초과의석이 발생했다. 2016년 총선 결과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시뮬레이션 해본 결과,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41석, 새누리당은 영남에서 11석, 국민의 당은 호남에서 7석 등 59석의 초과 의석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할 경우, 초과 의석이 발생한 지역에서 특정 정당은 비례대표를 단 한 석도 배분받지 못한다. 초과 의석이 발생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장점인 비례성과 대표성도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그런데 초과 의석 문제는 단순히 의원 정수를 늘리고 지역구와 비례구의 비율을 균등하게 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독일 연방 하원은 잠정적으로 의원 정수가 총 598명이고, 지역구와 비례구 비율이 1대1이지만 엄청난 초과 의석이 발생한다. 지역구 소선구제로 인해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싹쓸이하는 지역주의가 맹위를 떨치면 초과 의석은 피할 수 없다. 단언컨대 초과의석을 억제하기 위한 정교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지 않은 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당위성만을 강조할 경우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국민들은 의원 밥그릇을 늘리는 의원 정수 확대에 절대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이다. 둘째, 권력구조 개편에 조응하는 선거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이 제도는 내각제를 채택하면서 다당제에 바탕을 둔 연립정부가 보편화된 나라에서 주로 사용된다. 물론 각국의 선거 제도는 그 나름대로의 역사가 있다. 하지만 국정 안정과 효율성 제고라는 측면에서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권력구조 개편의 핵심 방안인 4년 중임제와 분권형 대통령제에 각각 부합되는 선거제도가 무엇인지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셋째, 국회가 국민에게 약속한 기일 내에 선거제 합의를 하지 못하면 이해 당사자인 정치권은 손을 떼야 한다. 헌법상 독립기구인 중앙선관위에 외부 전문가가 중심이 되는 '선거제도 개혁위원회'를 설치해 선거제도 방식, 의원정수, 지역구와 비례구 의석 비율, 공천 방식 등을 도출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유일한 해법이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8-12-20 김형준

[춘추칼럼]연내 답방 무산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

철도연결 착공식 준비·남북 교류 확대 등비핵화 협상 진전위해 기초다지기 지속돼야신년초 성사땐 내년 남북관계 훈풍 기대기싸움 말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 이끌어야김정은 위원장의 연내답방은 어려워 보인다. 청와대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연내답방과 관련 진척사항이 없으며 서두르거나 재촉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북한의 침묵이 계속되고 있고 이제 연말도 절반이 지나간 만큼 경호, 의전 등 물리적 시간도 부족해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이 연내에 답방을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첫째, 비핵화 부문에서 아직 북미간 기싸움이 지속 중이다. 이러한 교착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 9·19 평양정상회담에서는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 폐기, 상응조치에 따른 영변 핵시설 폐기와 같은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 북미간 신뢰의 접점을 찾기 위한 우리의 중재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북한이 미국에 대해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 북미 고위급회담이 무산된 이후 북미 실무자간의 접촉 움직임은 있으나 특별한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교착국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필수다. 북한으로서는 남북정상회담 보다는 북미정상회담에 올인해야 할 상황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답방을 하더라도 비핵화와 관련된 합의를 이뤄야 하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합의점을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둘째,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도 현재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은 국면이다. 올해 이미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많은 사항에 합의하였다. 물론 그 합의사항들은 착실히 이행되고 있다. 남북 정상간 만남이기 때문에 새로운 비전과 사업들을 제시하여야 하는데 북핵협상의 지연에 영향을 받고 있다. 남북이 새로운 합의를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현실도 고려한 듯하다.셋째, 준비기간의 부족이다. 준비기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돌발 상황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관련되어 우리 사회의 큰 이슈가 되어있다. 국민 60~70%가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환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견해도 있다. 북한 지도부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 서울을 방문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고민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이나 이용호 외무상 등 북한 고위층의 외부 출장도 변수로 작용한 듯하다.결론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올해 답방은 어렵지만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년 초에 반드시 개최되기를 기대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초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사와 자신감을 거듭 내비치고 있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북미간 대화의 모멘텀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다행이다. 김 위원장의 답방은 제2차 북미정상회담 전에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의 입장에서 내년도 신년사를 통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밝히고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이를 재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정상회담이 우호적인 여건을 조성하여 제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2차 북미정상회담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G20 계기 한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답방을 하게 되면 자신의 우호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달라고 요청한바 있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도 우리를 통해 미국의 의사를 탐색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한편 우리가 비핵화 협상의 진전에 대비하여 남북관계의 토대를 닦는 일은 계속해야 한다. 철도연결에 대비하여 착공식을 준비하는 것, 제 분야의 남북관계를 확대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과 같은 인도적 사안의 협의,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남북간 사회문화분야 교류도 지속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남북정상회담은 반드시 개최되어야 한다. 신년 초에 개최된다면 내년도 남북관계의 훈풍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올 한해 남북관계는 무수한 도전과 기회 속에서 비교적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3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두 정상간 신뢰의 기반이 쌓이고 이러한 신뢰의 바탕 아래 남북간 합의사항이 지켜지고 있다. 남북대화에서 비핵화 합의까지 이뤄낸 것도 이러한 신뢰에 기반한 것임은 자명하다. 이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우리가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활용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간이 많지 않다. 과거처럼 주저하거나 기싸움을 해서 시간을 낭비한다면 더 이상 이러한 기회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내년 초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답방을 하여 이러한 기회가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8-12-13 양무진

[춘추칼럼]소설 읽는 사람이 많아지면

"왜 읽어야 합니까?" 어느 수감자 물음에내 답보다 '故 최옥정 작가'의 유언이 명쾌"읽는 사람 많은 만큼 세상은 행복해지고타인이 언제나 마음 열고 인생을 보여줘…"서른다섯 살 때인가 교도소에 갔었다. 동행한 두 분은 단풍놀이라도 온 듯 여유로웠다. 대조적으로 나는 도살장 본 황소처럼 떨었다. "저…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저는 막 춥고 무섭고, 얼빠져 갖고 제정신이 아니네요." 내가 엄벙덤벙 주워섬기자, 환갑의 L이 물었다. "혹시 교도소에 처음 와보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L은 대견하다는 듯이 뇌었다. "너, 참 세상 편하게 살았구나. 참 착하게 살았어." 불혹지년의 J는 "난 고향에 온 것처럼 친숙한데!"라고 했다. J는 젊은 시절에 시국사범으로 옥살이를 했었다.가장 먼저 들른 무슨 '실'에서 주민등록증과 소지품을 꺼내놓고 대신 명찰을 받았다. 명찰에 '지도' 혹은 '선도'라고 씌어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다. 그저 '방문'이라고 적혀있었는지도. 몇 개의 철문을 통과했다. 교도소장은 아니었지만, 교도소에서 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과 차를 마셨다. 그는 좋은 일 하러 오셨다고, 치하해주었다.'글쓰기반' 담당 교도관은 미안해했다. "좀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는데, 신청자가 거의 없네요. 훌륭한 분들 모셔놓고 정말 민망하게 됐습니다. 대개 귀찮아하기는 합니다. 종교 하는 분들, 바른 생활이니 도덕 함양이니 정의 실천이니 하시는 분들 있잖아요, 그런 분들이 자주 오거든요. 그분들이야 봉사하는 마음으로 좋은 말씀을 해주십니다만, 아이구야, 여기 사는 사람들 귀에는 다 지겨운 설교죠. 초코파이나 사탕이나 군것질거리라도 나눠준다고 하면 좀 신청자가 있을까. 그래도 이번 프로그램만큼은 반응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글쓰기 강좌는 진짜 처음이거든요. 시, 수필, 소설! 말만 들어도 황홀하네요. 글 쓰게 도와주고 좋은 책 얘기 들려주고 얼마나 좋아요. 똑같더라고요. 지원자가 여덟 명밖에 없어서 스무 살 갓 넘은 애들 여섯 우격다짐으로 끌어왔습니다. 너희들은 감옥이 대학이거니 생각하고 하나라도 배워야 한다. 너희들이 언제 문학을 배워보겠냐 하고 강제로 포함시켰습니다."나는 덜덜 떨며 무슨 '실'로 들어갔다. '글쓰기반'에 모인 수인들은 가슴에 숫자를 달고 있었다. 세 자리 혹은 네 자리. 수인들의 얼굴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여유로웠다. 표정으로만 따진다면, 내가 더 수인 같았다. 뭐라고 불러야 하지? 수인님? 대놓고 '수인'이라고 호칭할 용기는 없었다. '아저씨?' 갓 스무 살에서 환갑 넘은 게 틀림없는 백발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포진한 사나이들을 '아저씨'로 퉁칠 수 있을까. 열 명은 파란색 옷, 네 명은 황색 옷이었다. '파란색옷님'과 '황색옷님'이라고 부를까."선생님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성의 없게 하자니 별 볼일 없는 놈으로 깐볼 것 같고, 공들여 하자니 때와 장소도 가리지 못하고 잘난 체하는 놈으로 오해 받을 것 같았다. 적당히 하고픈데, '적당히'처럼 어려운 게 없었다. 나는 문학이 어쩌고저쩌고, 글쓰기가 이러니저러니, 독서가 이러쿵저러쿵 마구 주워섬겼다.수인 한 분이 불쑥 물었다. "근데요 소설 쓰시는 분이라니까 한번 물읍시다. 소설을 왜 읽어야 합니까?" 나는 문득 넋이 나가버렸다. 중3 때부터 소설이 쓰고 싶었고 문예창작학과씩이나 다녔고 좋다는 소설깨나 읽었고 심지어 '소설은 사람의 지식과 사상과 감정을 문자로 형상화하여, 사람 간의 이해와 소통을 가능케 하고, 사람의 소양 발전과 인식 확장과 감정 조율 등에 기여한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사실 소설 따위를 왜 읽어야 하는지 자신 있게 알지 못했다.이제 왜 읽어야 하는지 안다. 왜 읽어야 하냐면, 내 말보다, 향년 54세로 올해 9월 이 세상을 떠난 고(故) 최옥정 소설가의 유언이 명쾌하다. "책 좀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특히 소설을 많이 읽기를 바란다. 나는 믿는다. 소설 읽는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내가 아닌 타인이 언제나 마음을 열고 인생을 보여주며 기다리고 있는 소설, 내년에는 많은 사람이 읽기를."/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8-12-06 김종광

[춘추칼럼]호미와 굴착기

수요자 욕구 늘며 지역문화재단 설립 증가시설운영아닌 예술매개 모든 영역 망라 역할지자체 역사·문화 자원 발굴·콘텐츠 생산…굴착기 아닌 호미 들고 동네 삶 속으로 향해야최근 지역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아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16개 광역문화재단을 포함해서 대략 100개의 문화재단이 있고, 현재 많은 지자체에서 설립 준비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4년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에 의해 설립 근거를 갖게 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역문화재단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예술 영역에서 생산자와 공급자 중심의 예술이 아니라 주민들이 즐기고 참여하는 수요자 중심의 예술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고 있으며, 노동 중심의 삶에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에 기초한 문화가 있는 삶에 대한 갈증도 한몫하고 있다.물론 지역문화재단 설립에 대한 오해와 편견 등도 존재한다. 지금까지 지역문화재단은 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한 공연장과 미술전시관, 문화센터 등의 시설을 위탁운영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렇다 보니 문화재단이 만들어지더라도 새로운 변화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이 지역문화재단은 이중적 정체성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공공기관으로서 법령과 규정에 따른 행정 절차를 따르는 부분과 문화예술 영역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지원하는 유연함이라는 정체성의 측면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어느 쪽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역문화재단이 어떻게 일할 것인지의 해답은 지역문화재단이 대부분 기초자치단체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모든 정책의 마지막 종착지인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한다는 의미이다. 정부나 광역 단위의 정책과 사업, 예산은 부서별, 분야별로 모두 나누어져 있다. 하지만 지역 현장에서는 교육과 문화, 도시재생, 사회적경제, 돌봄, 복지 등이 동시에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지역문화재단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일까. 문화재단이라는 이유로 '문화'와 '예술'만 사업 영역으로 설정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할 수 있는 모든 삶의 영역을 망라하고 관통하는 것으로서 지역문화재단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도시재생 사업이 일어나면 문화재단과는 너무나 먼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SOC 투자나 문화적 도시재생 관점으로 들여다보게 되면 도시재생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역공동체의 삶이 단절되거나 파괴되지 않으면서 도시가 새로운 방식으로 디자인될 수 있고 공동체의 삶이 기록되거나 유지되거나 진화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지역문화재단의 역할과 기능이 공연장이나 전시관, 도서관 등 시설운영에만 머무르고 만다면, 아마도 인구절벽과 재정절벽의 시대에 조만간 한계에 도달하고 말 것이다. 이제 지역문화재단은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자원들을 발굴하고, 발견하고, 기록하고, 나아가 다양한 방식으로 고유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축적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에서 이미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을 만나 연결하고, 공공과 민간을 넘어 다양한 공간들을 찾아내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아울러 그 공간의 연계와 활용을 통해 지역공동체가 함께 공유하고 서로의 삶을 경험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일은 무언가 새로운 길을 닦거나 만드는 일이 아니다. 기존의 골목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가보지 않은 골목을 걸어보고 경험하는 일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것은 굴착기를 장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호미이다. 동네의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손에 호미를 하나씩 들고 땅을 파는 일이다. 누군가 고구마 줄기를 발견하면 그 줄기에 엮인 알맹이들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일이 가능하려면 지역문화재단 종사자들이 특별한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하고, 그만큼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경찰이나 군인, 소방관, 의사, 교사 등 사회적으로 특별한 직업을 갖는 이들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공공에서 일한다는 것이 '먹고사니즘'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최소한의 진전으로 향하는 걸음이다. 지역문화재단은 이 시대에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양손에 호미를 들고 굴착기와 싸우는 명분과 자신감으로 무장할 때이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8-11-29 권경우

[춘추칼럼]'5무(無) 정치' 벗어나야 국정 성과가 보인다

정치권, 합의·소통없이 '투쟁' 갈등만 증폭 선출된 대표자들 권력 의존 '리더십 실종' 내각중심 정치로 전환 망가진 경제 챙겨야 잘못된 정책 과감히 바꿀 수 있는 용기 필요 우리 사회가 '5무(無) 정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첫째, 공학만 있고 철학이 없다. 정치권은 '민주당 20년 집권론', '반문 연대' 등 정권을 잡기 위한 정치 공학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오직 표를 얻기 위해 주저 없이 전략적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을 구사한다. 철학이란 '습관적으로 살아온 삶에 대해 변화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는 철학의 빈곤 속에서 대화와 타협보다는 상쟁과 대립, 포용과 협치보다는 독식과 배제, 합의와 소통보다는 투쟁과 불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둘째, 통치만 있고 정치가 없다. 집권 세력은 이념과 코드에 맞춰 통치를 하고 종종 정치를 무시한다. 정치로 풀어야 할 것을 힘으로 밀어붙인다. 현 정부에서 청와대는 자신들이 의식하지 못한 채 군림하고 통치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에 빠져있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추구가 아니라 갈등조정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가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셋째, 리더는 있지만 리더십은 없다. 물리적 강제력을 통해 지시하고 통제하는 권력에만 의존하면 리더십은 발휘될 수 없다. 리더십은 설득을 통해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권력에만 의존했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넷째, 투쟁만 있고 대안은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 투쟁에만 매몰되어 국민들이 공감하는 대안을 적시에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섯째, 대표만 있고 책임은 없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는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지금까지는 국정 과제를 설계했다면, 이제부터는 국정의 성과를 정부와 함께 만들어나가자"고 했다. 하지만 '5무 정치'가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구상하는 '다 함께 잘사는 포용 국가'의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문제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망가지면 경제도 망가지고 사회 갈등도 증폭된다. 문 대통령이 분열과 갈등의 '5무 정치'를 극복해 국정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선 담대한 정치를 펼쳐야 한다. 무엇보다 '청와대 중심의 통치'를 장관에게 전권을 주는 '내각 중심의 정치'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만 '청와대 정부'라는 오명에서 벗어 날 수 있다. 권력을 폭넓게 분산하고 집권당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며 국회와 야당을 존중해야 한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통합과 공존'의 정신과 함께 야당을 적폐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받아 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야당과 뜨거운 협치를 하고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국정 과제 설계가 끝났다고 성과가 저절로 나오진 않는다. 한국갤럽이 향후 1년 우리나라 경기 전망을 물은 결과(11월 6~8일), '나빠질 것'(53%)이라는 응답이 '좋아질 것'(16%)보다 3배 이상 많았다. 문제는 6개월 연속 비관이 낙관을 앞섰다. 상황이 이렇다면 아무리 '소득주도성장'의 방향이 옳더라도 잘못된 정책 기조를 바꾸는 것이 정답이다. 지금부터는 시장과 기업이 반응할 수 있는 혁신 성장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모든 것을 끌고 간다는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인 계도 민주주의와 행정독주적 사고와도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보의 미래'라는 책에서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다. 운동도, 촛불도, 정권도 이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다"고 했다.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겸손한 대통령이 되라는 주문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8-11-22 김형준

[춘추칼럼]가짜뉴스·현상왜곡은 모두의 적이다

美 연구소, 北 삭간몰 기지 속임수라 보도협상 진전없는 민감한 시점 뜬금없는 악재20년 전 '금창리 핵의혹' 불신만 키운 전례현상타파 거부하면 한반도는 영속적 분단 며칠 전부터 난데없이 미국 한 연구소의 분석보고서 내용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미국의 한 언론이 이를 북한의 거대한 속임수·기만 등으로 보도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우선 연구소 보고서에 언급된 삭간몰 미사일 기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우리 군 정보 당국도 파악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동 기지가 비핵화 협상의 중요한 축인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연관이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지금 핵·미사일 관련 북미 간 협상이 진행 중이며 오히려 앞으로의 협상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 기지 폐기문제를 미국과 합의하기도 전에 뒤통수를 쳤다느니 기만하고 있다고 하니 선후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가 굳이 북한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뒤통수를 맞은게 누군지 좀 더 명확히 살펴볼 일이다. 지금은 매우 민감한 시점이다. 6·12 센토사 합의 이후 북미 간 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북미 간 교착국면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 차례 중재에 나서 북미 간 초기 조치의 연결점을 찾기도 하였다, 9·19 남북정상선언에서의 비핵화 관련 합의가 그러한 것이다. 막상 초기 조치로 들어가려니 북한과 미국은 상대방의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여전히 모든 핵 프로그램의 신고를 비핵화 및 제재해제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으며 북한은 핵동결에 따른 미국의 상응조치를 요구하고 있는 국면이다. 얼마 전 개최하기로 한 북미 고위급 대화의 연기도 명목상의 이유야 어찌되었든 양측의 입장차이가 명백히 좁혀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초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여전히 염두에 두고 있으며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2차 정상회담의 준비는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직 내년 초까지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비관적이나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지난한 협상의 과정에서 경계할 점은 상황의 변화와 뜬금없는 악재이다. 미국 중간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하원의 다수를 차지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입지에 변화 가능성이 생겼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잘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북미 협상의 운전자를 자처하고 북한문제 당사자인 우리도 미국 의회 및 조야에 퍼지고 있는 북핵해결 무용론에 대해 많은 설명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보다 정말 경계할 것은 이러한 상황의 변화에 편승한 근거없는 기사들과 어떤 의도가 내포된 주장들이다. 의도를 내포한 주장들은 사안을 왜곡시키고 불신을 조장하고 문제 해결을 지연 시킨다.20년 전으로 되돌아 가보자. 북미 제네바 합의가 체결된 이후 1998년 8월 미국 언론은 갑자기 북한이 몰래 핵개발을 지속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북한이 영변 핵 시설 인근의 평북 금창리에 핵시설을 운용하고 있다는 이른바 '금창리 핵의혹'이 그것이다. 북한은 이를 부인했지만 미국은 사찰단을 꾸려 금창리를 방문하였다. 그러나 사찰단은 텅빈 동굴만 발견했을 뿐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북미 간 불신은 더욱 커졌고 제네바 합의 이행은 늦춰졌다. 뒤늦게 페리 프로세스로 북미 수교협상이 진행되었지만 1~2년간 소비한 시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400여 년 전 우리 역사를 살펴보자. 정유재란 당시 조선의 조정은 일본에서 흘린 허위정보를 신뢰하여 이순신에게 출병명령을 내렸다. 거짓정보라고 판단한 이순신은 출병하지 않았다. 일본군은 당시 조정 내에 만연한 당파싸움을 이용하여 이순신을 모함·체포케 만들었다. 이후 등장한 원균은 칠천량 전투에서 왜군에게 처참히 패하였다. 민감한 시기에서 어떤 사안 하나가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음은 여러 역사적 사건이 증명한다. 지금 한반도는 현상유지 세력과 현상타파 세력 간의 거대한 기싸움이 충돌하고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70년 분단구조에 우리의 삶과 미래를 맞춰놓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우리의 삶의 양식을 바꾸려 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지도 잘 살펴보지도 않고 거부하고 경계를 한다. 이는 미국도, 주변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상을 타파하는 것은 늘 어렵고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을 왜곡하고 조장하면서 현상을 유지하려 해서는 안된다. 계속 그렇게 된다면 우리 한반도는 영속적으로 분단구조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가짜뉴스·현상왜곡은 모두의 적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8-11-15 양무진

[춘추칼럼]소중한 기록자들

학생문학상 덕분에 풋풋한 소설읽는 호사멘토작가로 조언해주면서 오히려 더 배워선입견 없는 자유문체 '천재의 향연' 같아다양한 생각·재능품고 세대대표로 커주길모 학생문학상 덕분에 반년 넘게 풋풋한 소설들을 읽는 호사를 누렸다. 여러 달 동안 학생들이 온라인에 작품을 올리면, 소위 멘토 작가가 조언을 해주고, 학생들이 퇴고하고, 최종 투고하는 방식이었다. 입상 학생들과 직접 만나 1박 2일 동안 문학을 나누기도 했다. 나는 주로 중학생의 소설을 만끽했는데, 지도했다기보다는 외려 느끼고 배웠다.다 같은 소설이 아니다. 소비 행태로 나누면 가장 널리 사랑받는 웹 소설 혹은 인터넷소설, 과거에는 대중소설로 폄훼당하기도 했지만 지금 대세인 장르소설, 교과서에서 배운 소설과 유사한 클래식음악 같은 본격소설. 이야기 방식으로 나누면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듯한 리얼리즘, 마음의 풍경을 그리는 모더니즘, 현실에서 불가능한 상황을 그럴듯하게 다루는 판타지, 여러 경향을 짬뽕한 퓨전….그 밖에도 얼마든지 소설을 나눌 수 있다. 전문가들이나 그런 쓸데없는 분류를 하는 줄 알지만, 실은 모든 사람이 하고 있다. 자기가 좋은/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설정한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맞으면 좋은/재미있는 소설이고 안 맞으면 소설도 아닌 것이다. 대개의 소설가들은 평생 소설을 읽고 평생 소설을 써온 사람들로서 소설에 관한한 최고로 잘 아는 자들이기에, 자기가 최선을 다하여 쓴 소설에 대한, 문외한들의 몰이해와 몰인정이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지만, 당연한 것이다. 독자는 자기만의 소설관에 따라 소비할 뿐이니까. 실은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작가도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쓰는 존재라는 걸, 천진난만한 중학생들이 잘 보여준다. 정말이지 천재의 향연 같았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때, 그토록 할 것도 제약도 많고 즐길 것도 넘쳐 나는 시대에 그처럼 정성껏 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한 학교에 한 명 있을까 말까. 우주를 날아다니고 미래세계를 넘나들고 헛것에 집착하는 판타지가 주류였지만, 역사로부터 성실히 배우려는 알레고리도 있었고, 지금의 학교 문제를 정면으로 고발하는 리얼리즘도 있었고, 마음의 파동을 치열하게 포착한 모더니즘도 있었다. 편의상 억지로 분류한 것일 뿐, 공들여 쓴 소설들에는 저마다의 음색과 재능과 감각이 물씬 배어 있었다. 그렇게 천재적인 작품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덜 배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교과서소설이 문제인 것은 소설이 문제가 아니라 배우는 방식이 문제다. 소설 한 편을 해체하여 부속품 설명서 외우듯 한다. 그렇게 배우면 당연히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 같은 본격소설은 무조건 재미없는 것으로 고정관념처럼 박힌다. 아직 오염되지 않은 중학생은 자기만의 문체로 뭔가를 열정적으로 썼다. 아직 소설이 뭔지 모르지만, 자기가 소설이라고 믿는 글을 썼다. 내 방식으로 소설들을 분류하고 평가하고 순위까지 가렸지만, 그들의 글은 꼰대들이 모르는 새로운 차원을 두드리는 새싹인지도 모른다. 이 소중한 천재들은 무사히 성장할 수 있을까? 십대에 아무리 잘해도 국가대표급은커녕 어른 취급도 받지 못하는 분야가 우리나라에 딱 하나 있다면 문학계다.아무리 잘 써도 구상유취하다는 평가를 받을 테다. 이건 상당히 다행한 일이다. 만약 올림픽 금메달 같은 거라도 걸려 있다면 문학도 스포츠계와 예능계에서 흔히 보는 조기 스타시스템의 폐해로 꼴이 말이 아닐지도. 암튼 읽고 싶은 책 읽고 쓰고 싶은 글 쓰는 생활은 쉽지 않을 테다. 소설을 알면 알수록 자기가 가졌던 음색과 재능과 감각을 잃어버리게 될 테다. 훌륭한 스승들이 제시한 잣대로 자신의 생각과 글을 재단하는 자기 검열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평준화되는 것이다.희귀종들이 고맙다. 진지하게 소설을 쓰는 학생들이 이만큼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나름대로 튼튼하다는 증거다. 이 소중한 기록자들은, 어른들이 흔히 스마트 폰 게임 중독자 취급하는 요즘 학생도, 저마다 다양한 생각과 느낌을 가지며 서로 존중하며 어른을 비판적으로 응시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세대의 대표로서 증명해준 것이다. 몇몇은 미래에도 자기 세대의 기록자 노릇을 맡아줄 것이라고 확신한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8-11-08 김종광

[춘추칼럼]자치분권, 공통경험 통한 '신뢰'에 달렸다

권한·책임 다른 주체에 분배·이양하는 자치성별·세대·직업 등 서로 다른 목소리 수렴 상대방 존재 부정하기보다 인정하는게 중요 다양한 영역의 사례들 믿어주는것도 필요지난 10월 29일부터 31일까지 경북 경주시 화백컨벤션센터에서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 2018'이 열렸다. 총 21만여 명이 참가한 이번 행사는 자치분권의 제도화와 구체화라는 목표를 두고 '중앙권력을 나누면 지방의 역량이 배가 되고 주민 행복이 더해진다'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행정안전부가 주관하고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대거 참여하는 전국적인 행사로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에 대한 다양한 세미나와 토론회가 열리고, 지방자치단체의 생산성 측정 평가를 통한 수상과 함께 읍면동 기초단위의 우수 사례를 전시하고 시상하는 자리도 있었다.'자치분권'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과제라는 점을 넘어 분권이야말로 실제 주민들의 생활과 사고 수준에도 맞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구절벽과 경제위기 등 우리가 직면한 삶의 다양한 현안들을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중요한 출구전략이기 때문이다. 행정의 비효율성을 제고하거나 직접민주주의의 실현 등은 어쩌면 부수적 효과일지도 모른다.이번 박람회를 둘러보면서 자치의 가장 기초단위라고 할 수 있는 전국의 읍면동에서 실제로 만들어가고 있는 자치의 핵심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정이 '자치'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권한과 책임의 분배와 이양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일상을 결정하고 규정하는 많은 권한과 책임이 공무원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조직과 주민자치위원회를 비롯한 소위 '직능단체'의 몫이었다. 자치는 이러한 권한과 책임을 전혀 다른 주체들에게 분배하고 이양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제도와 규정, 절차와 예산 등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껍데기는 훨씬 딱딱하고, 과정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다. 무엇보다 절실한 요소는 구체적인 무엇이라기보다는 '신뢰'의 문제라고 본다. 우리 사회는 이념과 지역 등 오랜 갈등과 반목을 거치면서 '신뢰'를 상실해 버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가 없다. 지역사회에서 개인과 개인, 단체와 단체, 공무원과 주민 등 상호관계에서 신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익이나 욕망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자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주민이나 예술가가 공무원의 행정을 향해 자신들의 활동을 가로막는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신뢰는 구축될 수 없다. 반대로 공무원이 주민이나 예술가를 행정을 알지 못하는 민원인으로만 대한다면 역시 신뢰는 불가능하다. 성별과 세대, 직업 등 다양한 주민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목소리를 자유롭게 표출하고, 정치와 행정은 이것을 잘 끌어안아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치의 성공적인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 다양한 주체의 네트워크라는 사실이다. 행정기관과 중간지원조직, 민간단체 등이 함께 '활동'을 한다는 것인데, 이는 기존의 'OO협의체'와 같은 형식적인 네트워크가 아니라 실제로 지역활동 속에서 새로운 지역문화와 지역경제를 창조하는 영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역 네트워크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신뢰'의 문제이다. 기관과 단체, 개인과 개인 등 사이에 신뢰를 잘 쌓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문제는 우리가 신뢰를 이야기할 때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자기 스스로를 신뢰의 주체로 여긴다는 점이다. 오히려 신뢰는 상대방에 대한 인정에서 비롯된다.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순간, 신뢰는 불가능하다. '자치'는 일종의 혁명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공공과 민간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통의 경험과 사례를 축적함으로써 상호 신뢰를 쌓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제도와 예산, 사람 등 모든 자원을 경험과 사례를 만들어내는 데 쏟아야 할 것이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8-11-01 권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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