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근근이 먹고산다

내가 보기엔 지금 기적처럼 잘 살고 있어그런데도 사람들은 불평불만 많고 '한숨'지나치게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마음만은 너그럽고 풍부하게 가지길 바라"우리 집은 아빠가 선생질을 해 근근이 먹고 산다."지금도 이 문장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파온다. 이 문장은 우리 집 아들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다닐 때 여름방학 숙제로 쓴 일기장에 들어 있던 문장이다. 마침 그때는 나도 아들아이가 다니던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던 시절인데 여름방학이 지나고 여름방학 숙제 검사를 하던 아들아이 담임선생님이 일부러 나를 불러서 보여준 문장이기도 하다. 아들아이가 일기장에 쓰기는 했지만 이 말은 애당초 아들아이의 것이 아니다. 아이의 엄마가 아들아이에게 자주 해준 말이다. 그러기에 아이가 그것을 외워두었다가 마침 일기장에 아무 것도 쓸 거리가 없는 날 이 말을 기억해내고 무심히 옮겨 적은 것이다.우리가 살던 집, 아주 작은 단독주택 앞에는 동네 사람들이 홍가가게라고 부르던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었다. 그 가게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들이 여러 가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들아이는 그 장난감들에 눈독 들여 살았다. 들락날락 가게 문을 드나들며 엄마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랐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장난감을 넉넉하게 사줄 만한 돈이 아내에게 있을 까닭이 없었을 터. 늘 푼돈으로 쪼개어 써도 돈이 부족한 형편이었다. 쌀값, 연탄값, 반찬값을 제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었으니까 말이다.그런데도 아이는 새로운 장난감에 마음을 뺏기고 자꾸만 엄마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랐으리라. 그럴 때마다 아내가 아이의 등짝을 한 대씩 때리면서 했던 말이 바로 그 말이다. "우리 집은 아빠가 선생질을 하여 근근이 먹고산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나 아이의 등짝을 때리며 경각심을 심어주던 아이의 엄마나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참으로 한심한 인물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한심한 사람은 바로 나. 그래, 학교 선생으로 일한다는 사람이 아이에게 장난감 하나 시원시원 사주지 못하고 아내에게 그런 소리를 하게 만들고 또 아이에게는 그걸 또 일기장에 쓰게 했단 말인가!이제 와서 가족들에게 참 미안하고 송구한 심정이다. '근근이'란 말은 일상 흔하게 쓰이는 말이 아니다. '어렵사리 겨우'란 뜻의 부사이다. 또 이 말은 한자에 그 뿌리를 둔 말이기도 하다. '근근이'에 쓰여지는 근(僅)이란 글자는 여러 가지 뜻인데 한결같이 부정적이며 마이너의 뜻이다. '겨우, 거의, 가까스로, 다만, 단지(但只), 희미하게(稀微--), 적게'의 뜻이 그것들이다.정말로 그 시절 우리 가족의 삶이 그러했다. 매우 왜소하고 매우 부족하고 매우 썰렁하고 매우 춥게 살던 시절이다.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형편이나 상황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우리가 사는 것은 근근이 어렵게 사는 삶이다. 시간이 그렇고 건강이 그렇고 인간관계가 그렇고 세상 돌아가는 형편이 두루 그러하다.오늘날 우리는 단군 임금 이래 가장 잘 사는 세상을 살고 있다. 들쑥날쑥이 있기야 하겠지만 의식주가 그런대로 해결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한껏 보장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이런 나의 발언이 선뜻 짐작이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대로 나잇살이나 먹은 내 눈으로 보기엔 우리는 지금 분명히 잘 사는 사람들이다. 그냥이 아니라 기적처럼 잘 사는 사람들이다.그런데도 사람들은 불평불만이 많고 자기만 낙오자라고 투덜거린다. 마이너라고 루저라고 한숨을 짓는다. 모두가 상대적 비교 탓이다. 자기의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남의 것만 흘낏거린 탓이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기에 앞서 자기의 것을 소중히 아름답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을 보다 더 사랑하고 아끼고 자랑스럽게 여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자존감을 높여야 할 일이다.'근근이 먹고 산다'는 이 말을 우리는 지나치게 부끄럽게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상 우리는 모두 오늘날도 여전히 근근이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안쓰럽고 아름답고 눈물겨운 사람들이다. 비록 근근이 먹고 살지만 마음만은 더욱 너그럽게 부드럽게 풍부하게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길이 정말로 물질로 마냥 풍요로운 오늘날 우리가 잘 사는 길이라 생각한다./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

2020-10-22 나태주

[춘추칼럼]체념과 희망

인간은 항상 '시궁창' 같은 현실에 '절망'온통 주식·부동산으로 '富축적' 강조할때누군가 '사람이 살고 죽어간다'고 말하고그곳으로 발걸음 옮겨 손 내밀 수 있어야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그 동안 삶에서 익숙하지 않았던 단어들이 훅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주름, 흰머리, 뱃살, 노안 등이 대표적이다. 이것들이 주로 외모나 신체와 관련된 것이라면 실패와 좌절, 절망, 불안, 우울 등은 심리적이고 정서적 표현들이라 할 수 있다. '체념'이라는 단어 역시 그 중 하나다. 실패나 좌절이 더 깊고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이라면, 체념은 기대를 접는 데 있어서 뭔가 순간적 감정이나 판단 등 일시적 느낌으로 남는 듯하다.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체념은 항상 인간에게 힘과 새로운 희망의 샘이었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오히려 그것을 기초로 삼아 자신의 이승에서의 삶의 의미를 쌓아올리는 법을 배웠다"라고 썼다. 칼 폴라니는 죽음이라는 좀 더 궁극적인 절망 앞에서 '체념'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은 일상의 다양한 체념에 익숙해지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의 시간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이제 그것을 할 수 없다는 체념 사이에서 흘러간다.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곳을 갈 수 있고,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던 꿈은 이제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 체념의 숫자를 늘려가는 중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수많은 체념으로 구성된다. 동그란 공으로 하는 스포츠라면 거의 좋아했다. 잘한다는 말도 꽤 들었다. 하지만 이제 내 몸은 과거의 몸이 아니다. 초등학교 운동회때 부모들이 이어달리기에서 많이 넘어지는 이유도 머리가 과거의 몸을 기억하고 달려가기 때문이다. 이제 조심해야 할 때가 되었다. 무엇보다 체념할 때가 된 것이다. 가장 정확하게 내 몸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체념과 포기는 다르다. 체념이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시간에 따른 판단 행위를 뜻한다면, 포기는 미래를 포함한 시간에 대한 판단과 결정이다. 그런 점에서 체념은 새로운 시작과 출발로 이어질 수 있다. 체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체념 이후의 판단과 행위가 중요하다. 체념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체념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찾거나 발견하기도 한다. 체념이 없다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아 새로운 것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체념한다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나 과거와 단절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한 단절이야말로 새로운 상상,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한다. 절망과 죽음이라는 극단의 비극에서 비로소 희망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살면서 더 필요한 일은 수많은 체념 속에서 희망을 엿보는 일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Lady Windermere's Fan)'라는 작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빠져 있다네. 하지만 우리 중 몇몇은 별을 바라보고 있지."(We are all in the gutter, but some of us are looking at the stars.) 사실, 언제나 그랬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희망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인간은 항상 '시궁창' 같은 현실에 절망했고 좌절했다. 그 속에서 체념은 지극히 당연한 대다수의 선택이었다.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체념 가운데 별을 바라보는 일이다. 시궁창에서 허우적대면서도 별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우리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저 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시궁창에 있다는 사실을 잘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 시궁창 안에서도 탐욕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기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있다고 말을 해주어야 한다. 칼 폴라니가 말한 '죽음이라는 현실을 기초로 삶의 의미를 쌓아올리는 것'은 어쩌면 이 땅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현실적인 노력이 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전환을 이야기하면서 온통 주식과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하는 방법만 강조할 때, 누군가는 저기 사람이 살고 있다고,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있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손을 내밀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체념 가운데 삶의 의미를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겠는가./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20-10-15 권경우

[춘추칼럼]야당이 야당다워야 나라가 바로 선다

국민의 힘, 친박·비박 갈려 여전히 싸움만정부·여당 비판만 한채 국민공감 대안 없어'호감 간다' 18~29세·30대 '15%·17%' 불과참회 하고 실력 쌓고 혁신해야 '존재' 가능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약 1년 6개월 정도 남았다. 역대 정부에서는 통상 이 시점이 되면 대통령의 지지도가 30%대 이하로 추락하면서 레임덕이 시작됐다.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기대와 성취 간의 인내할 수 있는 격차가 커지고, 대통령의 핵심 지지 계층에서 균열과 이탈이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추석 이후 문 대통령 지지도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면서 이런 패턴이 재연될지 주목받고 있다. 데일리안·알앤써치가 추석 직후에 실시한 조사(10월 5~6일)에서 문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42.3%다. 반면, 부정평가는 53.2%였다.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인 40대에서 긍정 평가는 전주보다 19.6%p 급락한 44.6%, 부정평가는 18.8%p 급등한 51.7%였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추미애 장관 아들 군 복무 특혜 의혹, 북한의 공무원 피살 사건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론된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40개월을 회고해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우선, 정부는 정책 실패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줄기차게 야당 탓, 언론 탓을 한다. 가령,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의 정규직화로 불공정 논란이 확산되자 보수 언론의 가짜뉴스와 왜곡 보도 탓으로 돌렸다. 정부의 미숙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민생경제가 나빠져도 야당의 정치 공세와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정부의 이런 무책임한 태도는 정책 방향(목적)이 옳으면 그것을 추진하는 방식이 잘못돼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 기인한다.둘째,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위선의 모습이 자주 연출됐다. 집권 세력은 줄곧 표현의 자유를 외쳤지만 자신들을 비판하면 고소 고발을 남발했다. 입만 열면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었지만 조국 사태에서 보듯이 권력을 이용한 특권과 반칙이 판을 쳤다. 문 대통령은 신임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해놓고 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자 검찰을 무력화시켰다. 셋째,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을 닮아가고 있다. 현 집권세력은 자신들의 의견이나 가치만 옳다고 주장하고, 국민들을 노골적으로 갈라치기 하면서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힘에만 의존하는 정치로 야당과의 대화·타협은 실종되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 8월 '한국의 리버럴 정권이 내면의 권위주의를 드러내다'라는 기사에서 "현 정부가 민주를 표방하면서 권위주의적 통치를 한다"고 비판했다.그렇다면 촛불로 탄생한 자칭 민주주의 정부에서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문 대통령의 독특한 인지 스타일,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학습, 소위 문빠 팬덤정치에 대한 과신 등이 결합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야당이 야당답지 못한 것이 핵심 이유다. 야당은 분열되고, 무능하고, 비겁해서 2016년 총선 이후 지난 4번의 전국 선거에서 연패했다. 그런데 야당은 박근혜 탄핵을 둘러싸고 여전히 친박과 비박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고,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만 하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 이런 정당에 국민이 어떻게 호감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한국갤럽 조사(9월 22~24일)에 따르면, 국민의 힘에 '호감이 간다'는 비율은 겨우 25%였다. 18~29세와 30대에서는 그 비율이 각각 15%와 17%에 불과했다. KBS 조사(9월 26~28일)에서는 국민의 힘 쇄신 노력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비율은 38.6%인 반면,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이 '잘못하고 있다'(39.4%) 또는 '모르겠다'(22.0%)고 했다. 집권 세력이 유례없는 야당 복을 타고 났다는 것이 빈말이 아니다. 정부 여당은 호감도 가지 않고 혁신도 제대로 못하는 야당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국민들이 야당보다 가수 나훈아의 말에 더 공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언컨대, 야당이 힘이 있어야 정부 여당이 국민을 두려워하고 함부로 못한다. 보수 야당은 참회하고, 실력을 쌓고, 혁신해야 한다. 그래야만 존재할 수 있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20-10-08 김형준

[춘추칼럼]종전선언은 다시 추진되어야 한다

文 대통령, 9·23 유엔총회서 '재추진' 제기하노이결렬후 북미협상 돌파구 가능성 때문北 당창건 75주년·美 대선 앞두고 제안한 듯향후 비핵화 협상 중요한 기폭제역할 충분 종전선언은 법적 용어는 아니다. 대립 되는 분쟁 당사자들 사이에서 전쟁을 종결하자고 합의하는 정치적 선언이다. 다만 일방 당사자가 또다시 전쟁을 걸고 들면 이 선언은 파기될 수밖에 없다.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아직 정전협정 체제이다. 70년 전 6·25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고 휴전협정 상태라는 것이다. 한반도의 남과 북, 주변국들이 보는 휴전상태, 정전체제를 보는 시각은 각기 다르다. 북한은 탈냉전 이후 1990년대 들어 흡수통일의 불안감 등으로 정전협정 체제의 무력화 조치를 시행해 왔다. 정전협정 이행의 중요한 기구인 군사정전위원회, 중립국감독위원회 등을 차례로 무력화시키고 북-미 사이에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다. 평화협정 체결 이전에라도 새로운 평화보장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면서 군사정전위원회를 대신하는 조미 군사기구를 조직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들을 위협하는 것은 미국이며 따라서 자신들과 미국이 주체가 되어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미국과 중국은 어떤가? 이들의 대한반도 정책, 정전협정을 보는 시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6·25전쟁과 냉전, 그 이후의 역사적 맥락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된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열세에 처한 남한을 돕기 위해 미국이 참전했다. 미군과 유엔군의 반격으로 한반도가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북한을 돕기 위해 중국이 참전했다. 미국은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했고 중국은 이른바 '항미원조' 즉 미국의 대한반도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참전하였다. 20세기 동서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6·25전쟁이었다는 점에서 냉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내재되어 있는 한반도의 분단선은 주변 강대국들의 지역 패권의 임계철선인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지난 70년간의 동북아 질서를 완전히 전환시키는 작업인 것이다.2차 세계대전과 동서냉전을 거치면서 사분오열한 유럽국가들은 냉전체제를 극복하고 하나의 유럽연합 체제로 전환하였다. 유럽연합 회원국들간 경계와 철조망을 없애고 화폐와 관세도 통합하였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자유롭고 군사적인 적대행위가 종식되었다. 유럽은 하나의 거대한 평화체제인 셈이다. 유럽의 역사만큼 역사의 상호작용이 심했던 동북아시아에서 유럽연합과 같은 공동체가 형성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최소한 냉전체제가 남아있는 한반도만이라도 정전체제를 극복하고 평화체제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평화체제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상호 간 위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시키고 비핵화를 추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원칙에 입각하여 남북이 중심이 되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입장 하에 노력해왔다. 그리고 남북관계뿐 아니라 북미 관계의 개선을 위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전개를 측면에서 지원해 왔다. 지난 2018년 4·27판문점 선언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우리 정부가 노력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안전보장을 교환한 싱가포르 북미 합의도 커다란 진전이 있었지만 당시 종전선언을 도출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시점에 도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오랜 분단 구조하에 상호 신뢰가 부족한 한반도 상황에서는 평화체제의 시작점으로서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종전선언 당사국들간의 정치적 의무, 국제적인 책임을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9·23(한국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 추진을 다시 제기하였다. 종전선언은 지난 1·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미 간에 논의를 한 바 있고 북미 모두의 관심을 환기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대선일정, 북한의 고립적인 대외전략 등을 감안할 때 북미 관계에서 커다란 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을 제안한 이유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협상의 돌파구를 열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당 창건 75주년, 미국 대선 등 굵직한 정치행사로 인한 동북아 정세의 가변성을 감안한 제안으로 해석된다. 정세변화에도 불구하고 대화 기조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줬다고 본다. 비핵화 협상이 북미 구도로 흐를 경우 우리 측이 소외될 수 있다는 점, 종전선언을 통해 남북미 구도로 협상을 전환시킬 수 있다는 전략적인 고려도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하노이 회담 이후 2년 가까이 되도록 북미 간 실질적인 비핵화 협상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종전선언은 향후 비핵화 협상을 추동하는 중요한 기제로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09-24 양무진

[춘추칼럼]사람 나이 50쯤이면

구분지어 살순 없지만 이전과 다른 삶 필요인생 족적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 가져야누군가의 한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한 나'독립된 개체로 살아가는 기간 반드시 올것사람이 나이 50살쯤이면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좀 어려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공자님은 사람의 나이 50을 일러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라고 하셨다. 지천명이라? 공자님 당신께서 50 나이에 이르러 하늘의 명령, 하늘의 뜻을 헤아려 알게 됐다는 말씀이다.글쎄, 보통 인간들도 50쯤 나이가 되면 하늘의 뜻을 알게 될까? 어림없는 말씀이시다. 그것은 오직 공자님이니까 그렇게 아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 대놓고 자기 나이가 50이 됐으니 지천명의 나이라고 말하는 것은 망발 가운데 망발이다.나이 50과 관련지어 생각나는 사람은 또 러시아의 소설가 톨스토이다. 톨스토이는 50세 이전까지는 아주 자유롭고 호기롭게 산 사람이었다. 작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누릴 것은 모두 누리며 산 사람이었다. 건강과 돈과 명예와 사랑이 모두 그와 함께 있었다. 모든 일을 가능한 일로 알고 살았던 톨스토이. 그는 50세에 이르러 자신의 인생을 스톱시켜 놓고 회심(回心)의 기회를 갖고 통렬히 반성하고 나서 그 이후의 삶을 완전히 바꿔 살았다 한다. 지금까지 산 인생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산 인생이었다면 그 이후의 인생은 남을 위한 인생이었다. 비로소 자기가 쓰고 싶은 작품을 쓰면서 자기가 얻은 재화를 자기가 아닌 타인, 세상을 위해서 사용하면서 나머지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32년. 참으로 장한 인생이고 보통 사람은 꿈꾸기조차 어려운 아름다운 인생이다.인도 사람들은 또 어떻게 인생을 경영했을까? 인도의 힌두교에는 인생 4단계론이 있는데 25세까지를 학습기(學習期), 50세까지는 가주기(家住期), 50세를 넘어 75세까지를 임서기(林棲期), 75세가 넘으면 유랑기(流浪期)라 한다고 한다. 참 특별한 인생 경영이다. 어쨌든 인생살이에서 50살은 매우 중요한 나이이고 계기로 보인다. 50살이 돼 무언가 이전의 삶과 다르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로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늘의 보살핌이 있고 신의 도움이 큰 사람, 행운의 사람이라 하겠다.나의 생각은 그렇다. 사람이 비록 50살이 돼 그렇게 분명하게 구분 지어 살 수는 없는 일이지만 무언가는 좀 다르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전의 삶과는 다르게 살아보려는 노력, 자기 삶의 족적을 돌아보고 스스로 반성해 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누구나 유소년기에 사람은 자신의 완성을 위해서 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가 가족이 생기고 이웃이 생긴 뒤로는 가정과 사회의 구성원으로 산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사람으로 사는 삶이다. 그렇게 살아 늙은 사람이 된다. 필경 그가 늙은 사람이 돼 신의 축복을 받고 선택을 입은 사람이라면 그에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시간이 허락되리라고 본다. 누군가의 한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한 나, 독립된 한 개체로 살아가는 기간이 열리리라고 본다. 더욱 좋은 축복이 있고 신의 선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자기를 위해서 살면서 다시금 타인을 위해서 사는 삶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혼자만의 능력으로 늙은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과 협력 안에서 늙은 사람이 된 것이다.늙은 사람이 된 것도 커다란 은혜 입음이다. 그러므로 갚음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나눔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내가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식을 나누고 내가 재능이나 재물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들을 나눠야 한다. 그것만이 늙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나누게 되면 늙은 사람의 한탄과 고독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늙어서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젊은이 흉내를 내는 일이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늙은 사람은 늙은 사람이다. 만족이 있어야 한다. 유지하려고 해야지 확장하려고 해서는 낭패다. 진정 그렇게 사는 것이 늙은 사람의 삶이고 또 그것이 늙은 사람의 명예를 지켜주는 좋은 길이다. 요즘 인생은 60부터다, 70부터다 하는 말은 지나친 억지다. 거짓말이다. 속지 말고 속이지 말 일이다. 나는 70살이 넘어서 조금이라도 타인을 생각하면서 사는 삶을 알게 돼서 매우 기쁘다./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

2020-09-17 나태주

[춘추칼럼]어두운 터널을 건너는 법

'코로나'라는 끝 보이지 않는 답답한 현실 긴장감 점점 높아지고 감정은 날카롭기만 우두커니 있지말고 서로 묻고 듣고 생각하자아무것도 안하면 미래에 볼 수 있는건 없어지금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기차를 타고 '코로나'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가는 중이다. 도착지는 서로 다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암울한 나날이다. 잠시 출구가 보이는가 싶더니, 다시 어두운 터널이 계속되고 있다. 모든 세대, 모든 공간에서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 답답한 심정만 토로할 따름이다. 남아 있는 것은 터널을 달리는 규정 속도와 안전 수칙뿐이다. 기차 객실을 나와서 돌아다니는 것도 쉽지 않고, 최소한의 이동만 가능하다. 객실에서 웃거나 떠들 수도 없고, 음식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긴장감은 높아지고, 감정은 날카롭다.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설프게 제안하거나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모두의 견제를 받게 된다.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생각할 수 있는 거라고는 '언제쯤이면 이 터널의 끝을 만날까?' 정도이다. 아무도 알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한 질문만 붙잡고 하루하루 살아간다.더 큰 문제는 달리는 기차 안에도 다양한 계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똑같은 상황에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누군가는 생존 자체가 위태롭고, 답답하지만 그럭저럭 살아가는 이도 있다.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삶의 질적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터널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편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상태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우두커니'라는 단어가 아닐까. '우두커니'라는 단어는 사전에 '넋이 나간 듯이 가만히 한자리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양'으로 정의되어 있다. 처음에는 외부의 요인에 의해 우두커니 있었다면, 지금은 우두커니 있는 모습이 일상이 되고 말았다. 언제 나올지 모를 출구를 기다리면서 마냥 '우두커니' 있을 것인가. 혹여 지금 지나고 있는 터널의 끝을 만날 수 있겠지만, 만약 또 다른 터널이 그 앞에 놓여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두커니'라는 단어를 만난 시를 읽어본다."나는 가끔 후회한다/그때 그 일이/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그때 그 사람이/그때 그 물건이/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더 열심히 파고들고/더 열심히 말을 걸고/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더 열심히 사랑할걸….//반벙어리처럼/귀머거리처럼/보내지는 않았는가/우두커니처럼…./더 열심히 그 순간을/사랑할 것을….//모든 순간이 다아/꽃봉오리인 것을,/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전문(<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문학과지성사/1989))대부분의 사람들은 터널의 끝과 출구만 생각하고 기다린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한 게 없으면 추억도 없다. 삶의 축적이라는 관점에서 '지속가능성' 개념을 떠올릴 수 있다. 처음 이 개념을 사용한 것은 임업분야였다. '나무를 베는 만큼 나무를 심는다'는 의미에서 출발한다. 현재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심는 일은 미래를 상상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10년 후, 100년 후, 나아가 1천년 후를 상상하는 일이다. 지금 모든 것이 멈추고 의미 없어 보일지라도,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끝을 모르는 터널의 연속이다. 코로나라는 터널이 아니라도 원래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게 삶이다. 시인의 말처럼,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하자.' 우두커니 앉아 있지 말자. 일어나 걷자. 홀로, 같이, 걷자. 서로 안부를 묻자. 더 많이 보고, 더 자주 듣고, 더 깊이 생각하자. 누군가는 터널을 탈출해야 가능하다고 말하겠지만, 속지 말자. 터널 안이든 밖이든,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심자. 그 결과는 우리의 몫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만약 지금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10년 후, 100년 후, 1천년 후 미래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20-09-10 권경우

[춘추칼럼]'이낙연 정치'로 협치하고 혁신하라

결국 '어대낙'… 민주당 전대 이변은 없어핵심과제는 대통령과 당·청관계 새로 정립'野와는 닥치고 협치' 미움 받을 용기 필요이념·진영 벗어난 실용과 디테일로 성과를이낙연 의원이 8·29 전당대회에서 60.8%의 압도적 득표로 민주당 신임 대표로 선출되었다. 결국 '어대낙'(어차피 당 대표는 이낙연)' 이변은 없었다. 이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코로나 전쟁 승리, 국민의 삶 지키기, 코로나 이후 미래 준비, 통합의 정치, 혁신 가속화' 등 "5대 명령을 이행하는 데 역량을 쏟아 넣겠다"고 다짐했다. 가장 시급한 건 "코로나19 극복"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대표에게는 이에 못지않은 중대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이낙연 독자 정치'를 펼쳐야 한다. 핵심은 대통령과 당·청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문 대통령이 공언한 '민주당 정부'는 사라지고 오직 청와대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청와대 정부'만 존재했다. 청와대는 민주당을 수직·통치했고, 민주당은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했으며 청와대가 집권당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는 정치 적폐가 지속되었다. '엄중 낙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대표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역력하다.특히 문재인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두드러진다. 통상 대통령과의 관계는 크게 일체화, 독자화, 차별화로 구별된다. 이 대표는 현직 대통령과 섣부른 차별화를 했다가 실패한 2002년 새천년민주당 이인제 후보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이낙연 대표가 6개월 남짓한 임기 동안 대통령과 철저하게 일체화하면서 친문에 얹혀가려고 한다면 이재명 지사와의 경쟁 구도에서 밀릴 수도 있다. 국민들은 '문재인 시즌 2'를 선호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범주류였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일체화 되기 보다는 독자화 노선을 걸으면서 성공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둘째, 인식의 대전환을 통해 '용기 있는 협치'를 실천해야 한다. 이 대표는 "원칙은 지키면서도 야당에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원칙 있는 협치'에 나서겠다"고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친박 일색으로 망한 게 미래통합당인데, 민주당은 친문 일색으로,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원칙 있는 협치'란 친문의 눈치를 보면서 야당이 협조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어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 대표가 진정 통합 정치의 물꼬를 트기 위해선 야당과의 '닥치고 협치'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자신의 지지층으로부터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셋째, 시대정신에 맞는 비전과 가치를 제시해 호남과 친문을 넘어 확장성을 확보해야 한다. 역대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는 예외 없이 자신이 추구하려는 가치를 통해 '이슈 파워'를 선점했다. 가령, 노무현 후보의 '특권과 차별이 없는 사람 사는 세상', 박근혜 후보의 '원칙과 신뢰' 등이 대표적이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전 최고위원이 임기를 마치면서 "지도부가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국민께 진솔하게 말씀드려야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문재인 정부와 여권 인사들에 대해 "남에 대한 비판은 잘하면서 남의 비판은 못 참는다"고 지적했다. 현 집권 여당이 안고 있는 거짓과 위선, 무능과 교만의 한계를 극복하고 향후 유력한 대권 후보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선 이 대표가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로 '정직과 소통'이 바람직할 것 같다. 이를 기반으로 '모두가 하나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넷째, 정책성과를 통해 혁신의 가속화를 이뤄내야 한다. 집권당이 중심이 되어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효과가 없으면 혁신 성장으로, 수요 억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집값 폭등의 주범이라면 공급 확대 정책으로, 회전문 인사가 잘못되었으면 대탕평 인사로 기조와 방향을 바꾸어 성과를 내야 한다. 이 대표는 국무총리 시절 정책 세부 영역까지 관장한다고 '이테일'(이낙연+디테일)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정책으로 촉발된 의료계 파업은 국회가 문제 해결에 나서고 협의체를 통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향후 정책을 추진하는데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실용과 디테일로 성과를 내야 한다. 이것이 혁신이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20-09-03 김형준

[춘추칼럼]남북교류협력법은 남북관계 비전 담아야

노태우 정부시대 법제화후 30년만의 개정정보화시대 '北주민 접촉 완화' 삭제 의문외교부 '대북 제재 고려 수정안' 안타까워우리현실 맞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 절실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하 교류협력법)' 개정안이 입법예고(8월27일) 되었다. 30년 전인 1990년 제정된 교류협력법을 변화된 상황을 반영하여 개정한다고 한다. 1988년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선언)', 19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등 노태우 정부의 시대전환적 대북정책을 법제화한 것이 1990년 교류협력법 제정이었다.하지만 남북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오랜 시간 지켜본 입장에서 이번 교류협력법 개정안과 관련해 두 가지 상황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우선, 개정안에 꼭 반영되기를 희망했으나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지난 5월 공청회때 공개된 개정안에는 접촉신고를 대폭 완화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는데 이번 입법예고안에 빠진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해당 조항이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접촉은 방북, 교역, 협력 사업과 같은 다른 교류협력 행위의 전제가 된다. 현행 교류협력법과 같이 모든 북한 주민 접촉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해외여행 중 우발적인 북한 주민과의 만남, 이산가족이나 북한이탈주민의 재북 가족·친지와의 단순 연락, 순수 학술 목적을 위한 연구활동 등 모든 접촉은 현행법상 신고의 대상이다. 법이 제정될 당시인 1990년에는 모든 접촉은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혁명시대이다. 인터넷으로 북한의 노동신문을 읽거나 북한 주민의 유튜브 채널에 '좋아요'를 클릭하는 것까지 위법 여부를 고민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 오늘의 현실을 법률에 반영하는 차원에서 접촉신고의 완화 또는 폐지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교류협력법 개정을 추진하는 통일부의 접근이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이에 대해 우리 사회내에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 발전의 비전을 갖고 주무부처가 선도적으로 길을 만들어 나가는 부분도 필요하다고 본다.교류협력법 제1조에 따르면 이 법의 목적은 남과 북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 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해야 남북 간 교류·협력이 활성화될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할지, 통일부가 반대하는 국민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설득했어야 한다고 본다.다음으로 최근 KBS에서 보도된 외교부의 이견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느낀다. 보도에 따르면 외교부는 교류협력법 개정안에 대해 '제1장 총칙과 관련된 조항에 국제사회 제재 상황을 고려한 전제조건 마련 필요'라는 수정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수정안을 제시한 이유는 '개정안 일부 내용의 경우 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에 저촉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외교부가 이같은 수정안을 제시한 것이 타당한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법률'인 교류협력법이 제재에 저촉된다고 볼 수는 없다. 제재의 대상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재와 관련된 일반 총론을 법률에 반영하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주권을 스스로 속박하는 행위라고 볼 수도 있다. 교류협력법은 북한 주민과의 접촉, 방북, 물품의 대북 반출·반입 등 모든 과정에서 통일부장관의 신고수리 또는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그간 협력 사업이나 반출·반입 승인 과정에서 대북제재를 고려하여 결정해왔다.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미국과 세세하게 협의하고 제재면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외교부가 교류협력법 총칙에 대북제재를 고려하는 조항을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대미사대주의라 아니할 수 없다.이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를 우리 법과 제도 안에 담아내어 향후 남북교류협력을 견인할 새 그릇이 필요한 시점이다. 30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교류와 협력 사업이 법적인 뒷받침 아래 이루어졌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이산가족 상봉 등 많은 성과도 있었다. 교류협력법이 변함없이 미래의 남북관계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야 할 것이다. 통일부의 분발을 촉구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08-27 양무진

[춘추칼럼]마당을 쓸었습니다

인생 후반기 많은 교훈을 준 김기평 선생님정년 퇴임후 사서삼경 완역 무욕의 삶 실천고령에 몽당비 들고 대문밖 나선 모습 감동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다나는 어려서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로부터 별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학력이라야 고작 고등학교 졸업. 12년 동안 나를 특별하게 귀여워해 줬다든가 사랑해준 선생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키가 작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가 아니었으므로 특별히 미움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그저 그런 아이였고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런데 어른이 돼 교직 생활을 하면서 한 선생님을 나는 다시 만나고 그분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다름 아닌 김기평 선생님. 그분은 내 고등학교 시절인 공주사범학교 학생 때 국어 선생님이셨던 분이다.1979년 30대 초반의 나이로 공주교육대학교 부설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부터이다. 그 학교로 내가 갈 수 있었던 것도 선생님의 추천 덕분이다. 선생님은 당시 공주교육대학의 교무과장 직책에 있으면서 내가 그 학교로 갈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아주셨다.그로부터 40년 세월이다. 나는 선생님을 지근거리로 만나면서 인생의 후반기 많은 교훈을 얻었다. 먼저 온유한 성품이다. 선생님은 어떤 경우에도 말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고 그 누구에게든 겸허하게 인격적으로 대우하시는 분이었다. 몸에 밴 인품이었다.그다음은 호학(好學)과 성실함이었다. 선생은 65세 대학에서 정년 퇴임하신 뒤 26년 동안 혼자서 공부해 중국의 고전인 사서삼경을 완역해 주해서를 출간하셨다. 인생 후반부의 삶과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란 것을 몸소 실천해 보여주신 실례다.그리고 무욕의 삶이다. 선생님은 식사나 일상생활, 대인관계에도 일말의 사심이 없었고 무엇이든지 줄여서 조그만 인생을 사시려고 애썼다. 그리고 부지런하셨다. 90대에 들어서 시력이 극도로 나빠지신 후에도 선생님은 하루하루 무언가를 하시면서 부지런히 사셨다.어쩌다 선생님 댁을 방문해 보면 무슨 일이든 일을 하고 계신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을 읽지 못하니까 정원의 꽃들을 살핀다든지 텃밭에 나가 채소를 가꾼다든지 그런 일을 하면서 소일하시는 것을 보았다. 틈이 나시면 몽당비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와 도로를 쓸기도 하셨다.나의 대표작 가운데 한 편이기도 한 '시'라는 작품을 쓴 것도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영감 덕분이다. 대문 밖 도로를 쓰시는 모습이 나에겐 그렇게 잔잔한 감동이었다.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2009년 내가 공주문화원장이 돼 선생님을 고문으로 모셨을 때 선생님은 흔쾌히 수락하시면서 나의 강력한 후원자가 돼 주셨다. 해마다 1월 초순이면 어김없이 후원금을 들고 원장실로 오신 선생님은 조용히 돈을 놓고 가시면서 절대로 이름을 밝히지는 말라고 당부하시곤 했다. 액수도 적지 않았다. 어느 해는 백만원을 주시고 어느 해는 이백만원을 주시기도 했다. 일단 돈을 주셨다면 선생님의 기준은 백만원이셨다. 노인이 연금으로 생활하시면서 어쩜 그렇게 배포가 크신지 번번이 놀라는 바가 있었다.2017년 7월 문화원장의 임기를 마치고 이임식이 있던 날, 나는 비로소 해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선생님'이 바로 그분임을 말했다. 그 자리에도 선생님은 와 계셨다. 이미 90대 중반의 노인이시라 지팡이에 의지하고서도 따님과 사위 되는 분의 부축을 받고 계셨다.왈칵 눈물이 솟았다. 문화원장에서 물러나는 것이 서러운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보살핌과 사랑이 마음에 와닿아 그랬다. 그로부터 3년. 선생님은 건강이 아주 힘들어지셨고 드디어 100세가 됐다. 놀라운 일이다. 내 생전에 100세 되신 분을 가깝게 뵙다니! 비록 나는 정식으로 학교 다니던 시절 학생으로서 선생님들로부터 두루 사랑을 받지는 못한 사람이었지만 학교를 떠나 어른이 돼 살면서 한 선생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또 그분으로부터 인생의 교훈을 얻은 것에 대해 매우 만족하고 기쁘게 생각한다. 선생님과의 아름다운 인연에 감사한다./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

2020-08-20 나태주

[춘추칼럼]내가 살고 싶은 동네

부동산·주식, 더 나은 물적 자원 확보 욕망'더 나은' 이라는 상대적 비교 그치지 않고'모든'이라는 절대적 목표 추구하는게 문제자본주의 시장 유혹 이기는 힘 동네서 찾자코로나19와 장마, 부동산과 주식.만약 지금 한국사회를 표현한다면 이 4개 단어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 단어들이 함축하는 바와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다. 이 단어들을 구분하자면, 코로나와 장마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큰 영역이라고 한다면, 부동산과 주식은 개인의 선택과 관심, 조건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는 영역이다.예를 들어, 코로나 확산을 개인위생과 방역을 통해 어느 정도 막을 수는 있지만 코로나의 발생과 소멸을 인간이 통제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장마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520억원짜리 슈퍼컴퓨터를 갖고 있는 기상청을 비난하지만, 사실상 오늘날 기후변화는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 가깝다. 어쩌면 앞으로 이런 일은 더 자주, 더 강하게 닥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부동산과 주식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 온 나라가 부동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다양한 조건들을 제외하고 보면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욕망의 격전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 다양한 생활문화시설 등 인프라를 갖춘 시설 등 더 나은 주거환경을 추구하는 동시대인의 욕망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주식은 또 어떤가. 요즘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주식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물론 주식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닐 테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탐욕의 리그가 안타까울 뿐이다. 적절한 노동과 그에 따른 보상, 그리고 공동체와 사회 등 온전한 삶이 불가능해지고 있다.결국 인간의 삶은 욕망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부동산과 주식이라는 영역을 놓고 보면 더 나은 돈과 환경 등 물적 자원을 확보하려는 욕망의 결과이다. 문제는 '더 나은'이라는 상대적 비교에 그치지 않고 점차 '모든'이라는 절대적 목표를 추구한다는 데 있다. 필자 역시 어렸을 때는 삶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을 거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결코 그렇지 않음을, 절대 그럴 수 없음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모든 것을 가져야 한다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부추긴다.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그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렸다.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과연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대단한 지름길이나 확실한 해법은 아닐지라도 하나의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발견하는 일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가 아무리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삶을 꾸려가야 한다. 삶의 대부분을 살아가는 지루한 일상을 건너뛰고 특별한 순간을 맞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외치면서 우리를 유혹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목소리도 있다.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논리와 힘을 갖고 있다. 그 유혹을 이기는 힘은 오히려 가장 작은 일상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동네'에서 가능하다. 동네는 군 단위나 작은 도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울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 '동네'가 있다.2020년은 문명의 전환을 이야기할 정도로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코로나와 기후위기만 생각하더라도 삶의 방식 자체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결국 '가치'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우리의 삶에서 어떤 가치를 앞자리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다. 우리의 학습과 경험 또한 이 문제를 중심으로 펼쳐질 필요가 있다.동네는 그러한 학습과 경험을 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골목에서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어 공동체를 경험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를 향한 욕망이 생겨날 것이다. 서로의 욕망이 모여 지금까지와 다른 욕망의 길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삶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방법을 함께 찾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을 할 수 있는 동네를 만들어가자. 17개 광역시도가 아니라, 226개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1천개의 동네, 아니 1만개의 동네를 만들자.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들자./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20-08-13 권경우

[춘추칼럼]찰나의 권력으로 오만에 빠지면 실패한다

민주당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방 표결 통과헌법정신 무시 21대 국회 '통법부'로 전락정부·여당 '역풍'… 대통령지지도 데드크로스다수결 폭력 '오만'… 집권 4년차증후군 못피해민주국가 의회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은 지난달 30일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도입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일방 표결로 통과시켰다. 지난 4일에는 세금 인상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3법(소득세·법인세·종부세법)도 표결로 일방 처리했다. 민주당은 국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법안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회법(제58조)이 규정한 소위원회 법안심사, 축조심사, 찬반토론 같은 절차를 무시했다.21대 국회는 삼권분립 헌법정신과 국회법을 깡그리 무시하면서 오로지 청와대 하명에 따라 군사작전하듯 법안을 밀어붙이는 통법부로 전락했다. 통합당은 "입법독재의 완성"이라고 반발했고, 정의당조차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원의 입법권마저 침해했다"고 비판했다.현재 민주당 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유신독재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하명을 받아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했던 '유정회'가 떠오른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검찰총장의 작심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선출된 권력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작금의 '신종 독재' 상황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당장 정부 여당에 역풍이 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는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앞서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고, 서울지역에서 민주당 지지도가 통합당에 역전되는 현상마저 나타났다. 향후 정부 여당이 정책 실패에 무감각해지고 국민 공감 능력을 잃어 가면 이런 추세는 더 악화될 것이다.5년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정치에서 경험적으로 입증된 이른바 '집권 4년차 증후군'이 있다. 절대권력을 누렸던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 4년차로 접어들면서 예외 없이 국정 운영 리더십에서 큰 위기를 맞이했다. 통상 역대 정부는 집권 초기엔 인사 실패로 휘청거리고 중반에는 정책 실패로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며 임기 말엔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 인사 비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대통령은 '레임 덕'(lame duck)이 아니라 정치적 뇌사 상태에 빠지는 '데드 덕'(dead duck)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현 정부는 작년 조국 장관 임명과 같은 인사 대참사로 도덕적 파탄을 맞이했고, 올해는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 경색,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과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란 등으로 민심이 급격하게 이반되고 있다. 향후 정권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비리가 터지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현 상황으로 봐서 민주당은 내년 4월 서울·부산 시장 보궐 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 후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간의 충돌로 집권 세력은 깊은 혼돈에 빠져들지 모른다. 임기 말에 관료사회가 등을 돌리면 권력 누수 현상이 심화되고 결국 현 정부도 역대 정권과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런 실패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정부는 인적 쇄신을 통해 최고 정책 전문가를 등용하고, 새로운 국정과제의 성과를 도출해야 하며, 야당과의 협치를 강화해야 한다.한국리서치는 매월 정부가 추진하는 12개 정책에 대한 국민 평가를 실시한다. 7월 3주차 조사 결과, 주거·부동산 정책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19%로 가장 낮았다. 정책 중요도 평가에선 일자리·고용정책을 최우선으로 꼽은 응답이 58%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 사회안전(47%)과 주거·부동산(45%)이었다. 주거·부동산 정책은 3월 넷째 주 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중요도가 10%포인트 증가했다. 주거·부동산을 최우선 과제라고 인식하는 비율이 아주 높은 반면, 긍정평가가 지극히 낮다는 것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당은 집값 폭등을 이전 보수 정부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야당과 머리를 맞대고 협치를 통해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최고의 부동산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단언컨대, 정부가 정책 실패를 무시하고 찰나의 권력에 도취되어 다수결 폭력이라는 오만함에 빠지면 결국 집권 '4년차 증후군'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20-08-06 김형준

[춘추칼럼]인사청문제도 보완 필요

자질·능력 검증보다 신상털기·흠집내기로野 정쟁 수단·與 보호 급급 본래 목적 변질사전검증 없고 통과 못해도 임명… 무용론도21대 국회 능력·업무중심 제도로 변화되길인사청문회 제도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된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라고 할 수 있다. 인사청문회법 제정 이전엔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무총리나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을 임명해야 했지만 정작 국회가 이들을 검증할 수단이 없었다. 이러한 법적 불비를 보완하기 위해 2000년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되었고 여러 차례의 개정을 통해 헌법상 기관뿐 아니라 각부 장관, 권력기관장들도 인사 청문 대상으로 규정함으로써 국가 권력의 남용을 막고 이를 사전에 통제할 수 있었다. 업무능력과 전문성뿐 아니라 공직 후보자의 자질과 도덕성도 심사의 대상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수십여 명의 고위 공직자 후보들이 부동산 의혹, 자녀 이중국적, 논문표절, 병역회피 의혹 등으로 낙마하기도 하였다. 공직후보자의 도덕성은 중요하다. 위법행위를 한 사람이 어떻게 국민들에게 법을 따르라고 할 것인가? 이는 중요한 검증기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의 청문회 운영을 보면 답답한 마음뿐이다. 고위공직자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기 보다는 이들의 신상털기에 주력해왔고 후보 망신주기, 흠집내기로 변질되어 온 것이다. 특히 후보자 자신보다는 배우자와 자녀들의 신상까지도 무분별하게 털리면서 개인정보 보호 및 기본권 문제까지도 훼손할 우려가 있다. 가족정보들까지 필요하다면 비공개적으로 회의를 전환하여 따로 심의하면 될 것이다.이러한 선진적인 제도들이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운영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정치의 선진화가 민주주의 제도의 선진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야당은 후보자를 검증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인사청문제도를 통해 여당을 공격하는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야당은 언론에 후보자의 신상과 관련된 사항을 공개하면서 언론플레이를 하기도 한다. 여당 역시 국회차원에서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여당 후보자를 보호하는데 급급하다. 이는 여야가 뒤바뀌어도 마찬가지 상황으로 누가 누구를 비난하고 탓할 일은 아니다.둘째 사전검증의 문제이다. 사실 인사청문회 제도의 원조격은 미국의 인준 제도이다. 18세기 말부터 청문제도를 만들고 의회에 막강한 견제 권한을 부여했다. 따라서 행정부는 의회에서 지적받지 않도록 후보자를 선발할 때부터 엄격한 검증과정을 거친다. 백악관 인사팀뿐 아니라 연방수사국, 국세청 등의 엄격한 사전 조사를 통과한 자만이 인준청문의 후보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 검증에만 수개월이 소요된다. 물론 검증되지 않은 사항이 뒤늦게 공개되어 낙마하는 경우도 있고 정말 그 후보자가 필요한 경우는 사전에 여야간 협의를 하기도 한다. 장기간 소요로 인한 업무 공백과 비효율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인준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는 비율이 2~3% 밖에 되지 않는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후보를 서둘러 본 경기에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전 경기를 통해 충분히 역량이 검증된 선수를 내보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셋째, 우리나라 인사청문제도의 맹점이다. 우리나라 인사청문제도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임명권자가 임명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 이전에 낙마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임명권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 자진사퇴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청문회 무용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야당은 어차피 인사청문회를 거치더라도 임명권자가 임명할 것이기 때문에 이른바 '신상털기'와 '모욕주기'로 일관한다.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에도 고의로 협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사청문보고서 채택률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여당이나 후보자의 입장에서는 인사청문기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이다. 민감한 자료는 최대한 제출을 거부하고 의혹제기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일부 의원들은 오히려 후보자의 대변인을 자처하기도 하고 다른 의원들은 부적절한 질문과 언사로 국민들의 눈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지난 6월, 제21대 국회가 출범하였다. 암울했던 20대 국회에 대한 반성으로 21대 국회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국회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인사청문회 제도도 손질할 것은 손을 보고 본 회의에서는 능력과 업무중심으로 검증하는 제도로 변화되기를 기대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07-30 양무진

[춘추칼럼]회복기의 삶

오늘은 하나밖에 없는 새날이자 첫날…죽을병 이기고 나면 조그만 일에도 감동아이 같은 마음 갖고 기대 수준 낮춰보길코로나 사태로 '일상'이 소중하지 않던가우리의 삶은 하루하루가 따분하고 지루하다. 그날이 그날 같고 신나는 일, 즐거운 일이 없다. 그렇지만 말이다. 여기서 한 번 생각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관점과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에머슨이라는 미국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신이 헛되게 불평하면서 보내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도 살고 싶었던 내일이다." 바로 이것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다. 오늘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날이다. 우리 인생에서 가치 있는 날은 오늘뿐이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이다. 그렇다면 오늘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날인가!그래서 나는 오늘은 나의 생애에 남은 날 총량 가운데 오직 하나밖에 없는 새날이고 첫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또 어떤 사람들인가? 그 오직 하나밖에 없는 새날과 첫날에 있어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첫 사람이고 또 새사람이다.이런 생각 하나만 바꿔도 세상은 갑자기 눈을 뜨는 세상이 되고 찬란한 세상이 된다. 부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루한 세상, 누더기같이 낡은 세상이라고 꾸중하지 말기 바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의 세상만 그런 세상에 살게 되는 것이다.이쯤에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의 말을 인용해보고 싶다. 보들레르는 시를 이야기하면서 시인은 회복기에 이른 환자와 같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회복기란 마치 어린 시절로의 회귀와도 같다. (…) 아이는 모든 것을 새롭게 본다. 그는 언제나 도취해 있다. 우리가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아이가 형태와 색채를 흡수하는 기쁨과 가장 닮아있다."우리도 주변에서 가끔 이와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 암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그에게 세상은 오직 새롭고 아름답고 찬란한 세상일 뿐이다. 그에게 있어 무엇 하나 새롭지 않고 감사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그는 조그만 일에도 흥분하는 사람이고 감동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암이란 질병에 걸렸던 것은 분명히 불행이고 악운이고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그 이후의 날들은 축복의 날들이 될 것이다. 실은 나도 그런 일을 겪은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2007년의 일이니까 벌써 13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분명히 죽을병에 걸렸었지만 끝내 살아서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런 이후 나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날마다 기쁘고 즐거운 사람이 됐고 사소한 일에도 취한 사람이 됐고 의미를 찾는 사람이 됐다. 보는 것마다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그것은 취한 삶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서도 취하는 날들이었다.믿지 못하실 것이다. 그냥 터닝포인트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반전의 인생이었다. 비록 몸은 병들고 왜소해졌으며 많은 가능성이 사려져 버렸지만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충분히 감사하고 좋은 것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겨우 이만큼밖에 남지 않았다고 투정하는 사람에서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진정 인생이 지루하신가? 따분하신가? 아무것에도 희망이 없다고 여겨지시나? 그렇다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져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만사 살아가는 기대 수준을 조금쯤 낮출 필요가 있다. 조금쯤 부드럽고 다정한 눈길이 준비되어야 한다.지금 우리는 너무나 외부 지향적이고 타인 지향적이다.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 사태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그런 경험을 충분히 했다고 본다.일상적인 일, 흔한 일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그립게만 느껴지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우리도 한 사람 한 사람 보들레르식으로 말한다면 회복기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부디 자기 자신을 해바라기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때로는 채송화라고 여겨보시라. 세상이 대번에 달라져 보일 것이다. 큰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채송화는 애당초 키가 작은 꽃이기에 해바라기처럼 넘어지거나 줄기가 부러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

2020-07-23 나태주

[춘추칼럼]'문화도시'의 길

'5년 예산 확보' 지자체 사업 선정 경쟁 과열준비하는 과정 초점·상향식 공모 고민 필요지역사회 네트워크 무시 나쁜 사례 걸러내야축제 증가·대형공연장 들어선다고 되진 않아'문화도시' 사업 공모 마감이 7월24일로 다가왔다. 현재 전국의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문화도시 사업을 준비하면서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2018년 처음 시작된 '문화도시 사업'은 2022년까지 30개 문화도시 선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첫 해에는 '예비문화도시'로 지정되고 1년간의 활동을 바탕으로 '법정문화도시'로 최종 선정되면 5년에 걸쳐 최대 200억원(국비와 지방비 매칭 각 50%)이 투입된다. 올해에는 작년 말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된 7개 지자체(부천·원주·천안·청주·포항·영도(부산)·서귀포)가 사업을 시작했으며, 10개 지자체가 예비문화도시로 추가 선정되었다.그렇다면 전국의 지자체와 지역문화재단이 이처럼 문화도시 사업에 집중하는 것은 왜일까? 일단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되면 5년이라는 기간동안 사업 예산을 충분히 확보함으로써 중장기 계획을 가질 수 있다. 열악한 지방 재정을 고려할 때 문화관련 예산은 항상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 사업은 충분한 매력을 갖는다. 다음으로 기초생활권 차원에서 문화영역은 시민들과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정치인으로서 자치단체장 입장에서 괜찮은 손익계산이 되기도 한다.마지막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지역문화재단 설립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현재 전국적으로 100여 개 내외의 지역문화재단이 설립되어 있고, 그 중 기초문화재단은 설립과정에서 많은 반대에 부딪히거나 설립 이후에도 재단의 방향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점에서 문화도시 사업은 지역사회에서 재단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셈이다.결론적으로 전국의 모든 지역이 '문화도시'가 되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하고 좋은 일이다. 그것은 문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의 궁극의 꿈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문화도시 사업에 대해서는 검토와 대안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과열 양상과 대응에 대해서는 문체부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지나친 경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문체부가 공모 절차나 사업 실행을 더 세밀하고 빡빡하게 만들어가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다. 오히려 이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하고, 그 과정이 잘 드러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 공모과정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하향식 일방적 공모방식이 아니라 상향식 공모의 모델을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하다.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지역사회가 작은 공간과 사례, 사람이 얽히고설킨 곳이기 때문에 개별적인 사업으로만 접근하면 갈등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사례는 민관영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이미 많은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공간과 주체와 사례들을 어떻게 지역문화예술생태계 차원에서 연결하고 꿸 것인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역사와 문화자원이 이야기가 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콘텐츠로 생산될 수 있어야 하고,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사업'을 위해 잠시 지역에 머무는 이들이 아니라 지역문화 활동의 실질적인 주체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문화도시의 성과라 할 수 있다.이 과정에서 나쁜 사례는 걸러야 한다. 지역사회 네트워크는 무시한 채 공공기관 중심으로 '문화도시'를 주도하거나, 외부 전문가 중심의 문화도시 사업을 상정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애초에 지속가능한 도시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문화 도시 사업의 목표와도 맞지 않는다.'문화도시'는 '예술도시'와는 다르다. 문화도시는 도시의 체질이 '문화적으로' 바뀔 때 가능하다. 지역축제가 늘어난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대형공연장이 들어선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문화도시는 목표선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그것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의 공간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담고, 다양한 역사와 문화로 축적된 시간의 켜들이 사라지지 않고 미래의 유산으로 남을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과정이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20-07-16 권경우

[춘추칼럼]'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민주주의 적이다

文대통령 국정 지지도 총선 압승이후 하락한마디에 추경 통과·檢 총장 압박 '기현상'보수 몰락… 언론, 이념 소재만 치중한 현실성난 민심 잡으려면 정책 능력 끌어올려야최근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한국갤럽의 7월 1주(6월30일~7월2일)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 한다'는 긍정 평가는 50%였다. 5월 1주(71%)와 비교해 두 달 만에 지지율이 무려 21% 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총선의 총 유권자수가 4천400만명인데, 숫자로만 보면 무려 1천100만명 이상이 이탈한 셈이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논란,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인한 대북 관계 악화, 6·17 부동산 대책 실패, 법무부 장관과 검찰 총장의 격돌 등의 악재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그러나 근원적인 요인은 총선 압승 이후 드러난 정부 여당의 '견제 받지 않는 권력' 때문이다. 최근 대통령 한마디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행정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대통령의 하명에 역대 최대 규모의 35조 추경 예산이 국회에서 5일 심사만에 처리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법무부 장관과 여당이 정권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총장을 압박해 사퇴시키려고 하는 것도 실상 절제되지 않는 권력이 몰고 온 기현상이다. 이렇다보니 "모든 권력이 국민이 아닌 문재인으로부터 나온다"는 '문주주의'(文主主義)라는 신조어마저 등장하고 있다. 통상 견제 받지 않는 권력에 도취된 정부는 정책 실패에 무감각해지고, 자신들의 무능과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남의 탓만 한다. 가령, 부동산 대책 실패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토부 장관은 "지금까지 정책은 다 종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책임을 회피했다.그뿐만 아니라 국회가 오랜 기간에 걸쳐 쌓아온 규범과 관행이 하루아침에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다. 제16대 국회(2004년)부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게 주었던 법사위원장을 여당이 차지했다. 제13대(1988년) 국회부터 의석 비율대로 여야가 상임위원장을 나눠 가지던 협치의 전통마저 깨지고 여당이 17개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 여하튼 민주화 세력을 자부하는 정부 여당이 '제도적 자제와 상호 존중'의 규범을 무시하면서 '일당 독재'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효율적이고 건강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권력은 스스로 견제 받아야 한다. 야당, 언론, 시민단체, 지식인, 그리고 시민들에 의해 권력이 무차별적으로 견제 받아야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성숙한다. 그런데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은 어떠한가? 보수가 몰락하면서 야당은 무기력해졌고, 일부 언론은 '진실 보도'를 외면한 채 정치적·정파적·이념적으로 이용되는 소재에만 치중하고 있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시민단체(NGO)가 정치권력 비판의 칼을 내팽개치고 정치권 진입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오히려 권력화 되고 있다. 양식있는 지식인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어용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몰염치한 인간이 활개치고 있다.촛불 혁명 이후 시민들의 능동적, 자발적 참여는 늘어나고 있다.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코로나19의 재난 극복의 견인차 역할도 했다. 그러나 최근엔 팬덤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명 문빠로 불리는 열성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진영 내 어떠한 이견과 비판을 허용하지 않으며 정부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 적폐 세력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기형적인 상황에서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는 없다. 한국리서치는 '국정 방향 공감도'를 격주로 발표하고 있다. 지난 5월 1주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은 54%, '올바르게 가고 있지 않다'(32%)보다 12% 포인트 많았다. 그러나 7월 1주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43% 대 44%로 역전되었다. 더구나, 16개 정책별 긍정 평가가 대통령 국정 운영 평가보다 훨씬 낮았다. 주거·부동산 긍정 평가는 25%에 불과했다. 이것은 현 정부의 정책 능력이 아주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책 실패로 인한 성난 민심을 잡으려면 정부 여당에겐 지금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점이다. 더욱 겸손한 자세로 권력을 제도적으로 자제하고 최고의 전문가를 등용해서 정책 능력을 끌어 올려야 한다. 분명 겸손과 유능이 최상의 정책이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20-07-09 김형준

[춘추칼럼]볼턴 회고록, 문제 제기에 답하다

외교 기본원칙 훼손하고 왜곡된 내용들진위여부 떠나 文정부 창의적 전략 눈길편견 가진 참모의 협상 진행 뼈아프지만우리의 중재노력 다시 빛 발하기를 기대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발간 여파가 크다. 야당에서는 볼턴 회고록과 관련된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안보분야의 미 대통령 최측근 참모가 현존하는 가장 어려운 협상 중의 하나인 북핵협상과 관련된 숨은 얘기들을 공개했으니 후폭풍이 클 수밖에 없다. 다만 대부분의 언론에서 이미 많은 부분이 공개되었지만 회고록 자체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인색하다.우리측 카운터파트라 할 수 있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외교의 기본원칙을 훼손하고 상당부분의 내용이 왜곡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첫째 우리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과대평가하고 싱가포르 정상회담 등을 무리하게 성사시켰다는 지적이다. 볼턴 회고록에서는 모든 외교적 춤판은 한국이 만든 것이었고 북핵폐기 보다는 통일어젠다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종전선언도 문 대통령의 제안에서 나온 것이며 북미정상회담을 처음 제안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아니라 한국 측이라는 주장이다. 필자는 왜 이것이 정치적인 쟁점이 되는지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가 먼저 제안을 했든지 북미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의 큰 원칙에서 합의할 수 있었다. 전쟁 위협 등 강 대 강으로 치닫던 북미 관계가 우리 측의 중재노력으로 싱가포르 합의를 이룬 것이다.현재 비핵화 협상이 답보국면이기는 하지만 우리 정부가 판문점 선언부터 북한에 비핵화 결단을 요구하고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까지 연결시킨 것은 평가받아 마땅한 것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내정치에 이용했다는 의혹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본다.둘째, 6·30 남북미 정상 회동시 미국과 북한이 우리 대통령을 배제시키고 패싱을 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내용의 진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갑작스럽게 성사된 만남이라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양자간 만남으로 제한하려는 북미간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6·30 남북미 정상회동이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오히려 우리 대통령의 많은 역할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우리 측은 북미간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영토에 온 타국 정상들을 배웅하고 북미간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였다. 외교 현장 즉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는 많은 중간 과정을 거친다. 어느 나라는 이렇게 하기를 원하고 다른 나라는 또 다르게 하기를 원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협의와 타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패싱이라고 하진 않는다.셋째, 볼턴 회고록에서는 6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이 북한에 비핵화에 동의할 것을 요청했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1년 내 비핵화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4·27 판문점 선언에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고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도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할 수 있었다. 볼턴 보좌관 자신이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의심하고 북미정상회담을 뒤에서 조정한 것이지 북한의 비핵화 약속은 남북간, 북미간에 합의한 사항인 것이다. 오히려 회담의 훼방자는 볼턴 전 보좌관이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도 볼턴은 회담을 결렬시키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상 결렬과 관련된 여러 가지 옵션을 제안하였다고 자랑하듯 이야기한다. 한편 종전선언에 우리 정부가 공을 들인 것은 사실이다. 분단국인 우리는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병행 추구하는 전략을 오래전부터 추진해 왔다. 한반도의 분단이 정전협정 체제이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종전선언을 비핵화의 마중물로서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비확산에만 관심있는 미국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실시는 북한의 비핵화 위협 감소에 따라 한미간 협의에 의해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만약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해도 되겠다고 결정을 내렸어도 미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의 문제는 안보의 문제이지 정쟁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볼턴 회고록은 진위여부를 떠나 대체적으로 북미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창의적 전략이 담겨있다. 정치적 계산에 매몰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에 대한 편견으로 사로잡힌 참모 볼턴의 제안에 따라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비핵화 협상이 전개되었다는 점은 매우 뼈아픈 부분이다. 우리로서는 올해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는 분위기 마련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반기로 갈수록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있다. 외교안보진영의 개편을 계기로 우리의 중재노력이 다시 빛을 발하기를 기대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07-02 양무진

[춘추칼럼]코로나 이후

비대면이 사는 길이라니 어쩔수 없는 일절대적 단절의 시대 온라인마저 막혔다면…인간의 고독감·소외감·우울감 더 했을 것어제의 삶 못 돌아가지만 마음은 평안해야세상살이가 많이 달라졌다. 몇십 년은 뒤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적막하다. 길거리 자동차들이 많이 줄었다. 당연히 행인들도 줄었다. 어쩐지 그것이 딴 세상에 온 듯 낯설고 서툴다. 공주와 서울을 오가는 자동차의 횟수가 줄었다. 배차 간격이 떠서 많이 기다려야 한다.공주 시외버스 터미널의 표지판을 보았더니 인천공항행 버스 시간표 위에 까만 표시가 모두 붙어있다. 공항버스 운행을 전면 중단했다는 증거다. 그것은 또 공항에서 비행기가 뜨지 않는다는 얘기다.가치관이 바뀌었다. 이전에 가치 있는 것들이 가치가 없어지고 예전에 가치 없던 것들이 다시금 가치를 얻게 되었다. 이제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대단위로 무슨 일인가를 하는 일부터 불가능하다. 무조건 사람 많은 데는 피하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제는 혼자서 하는 일들이 가치 있는 일이 되었다.비대면, 비접촉,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는 길이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는 혼자서 무슨 일인가를 하면서 사는 연습을 해야만 하겠다. 코로나 사태를 건너오면서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도 절실히 학습해야만 했다. 인생이 외롭고 쓸쓸한데 더욱 인생이 외롭고 쓸쓸하게 되었다.이렇게 오프라인의 삶이 위축된 데 비하여 여전히 작동한 것은 온라인의 삶이다. 절대적인 단절과 고독과 속박의 시대에 온라인마저 막혔다면 어쨌을까? 사람들은 걱정하고 또, 안도한다. 그런대로 답답증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온라인의 역할이 컸다. 어쩌면 앞으로는 이 온라인의 영향의 더욱 증대되겠지 싶다.내가 주로 만나거나 소통하는 사람들은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중에 한 분과 이야기하다가 조용히 놀란 일이 있다. 그분은 출판사 대표인데 코로나 사태 속에서 자기네 출판사에서는 매일같이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코로나 이전 때부터 책의 매출이 더 늘었다는 것이다.무슨 일로? 문제는 책의 종류다. 그분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은 대부분 생활실용서인데 그 가운데서도 꽃 기르기, 실내 화단 꾸미기, 반려동물 돌보기와 같은 책들이 그렇게 잘 나가더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몇 달 실내에 갇혀서 사는 동안 어른들이 가장 많이 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종이접기를 하고 종이 오리기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그러니까 디지털과 어울린 아날로그의 삶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 방식은 디지털이되 그 내용은 아날로그로 가야 한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코로나 이후의 우리네 삶의 새로운 국면이요 피하기 어려운 한 방향이 아닌가 싶다.이런 시기를 맞이하여 시 쓰는 한 사람으로서 생각해본다. 비대면 비접촉이 강화되다 보면 인간은 더욱 고립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고독감, 소외감, 우울감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이런 때 필요한 것은 마음을 다스려주는 그 무엇일 것이다. 울퉁불퉁해지고 울렁거리는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고 쓰다듬는 그 어떤 심리적 작용일 것이다.그것이 그러할 때, 동원되어야 하는 것이 시라는 문학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시는 인간의 감정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문장형식이다. 산문이 작정하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쓰는 글이라면 시는 작정 없이 언뜻 떠오르는 감정을 급하게 쓰는 글이다.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인 문장이라 하겠다.그러므로 좋은 시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격한 마음을 다스려준다. 말하자면 마음의 묘약인 셈이다. 만약에 시가 그런 역할을 감당하기만 한다면 시를 읽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나의 책은 변함없이 팔렸다. 물론 오프라인 서점을 통해서가 아니라 온라인 주문을 통해서였다.코로나 시대. 코로나 이후 시대. 활기차게 자유롭게 살았던 어제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시대. 정작 그것이 그렇다면 마음이라도 평안해야 한다. 마음의 평안이 행복의 기초다. 그렇게 소중한 마음의 평안을 위해 시인들은 더욱 정성껏 시를 써야 하겠다. 그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고 또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길이다./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

2020-06-25 나태주

[춘추칼럼]포스트 코로나와 지역화

동네 문화예술인 익명 후원 프로젝트 호응돕는 행위 넘어 같은 시대 연대감 경험기회삶 뒤흔든 코로나19 근본적 성찰·대안 요구고민 출발점 '지역'서 발견할 수 있지않을까얼마 전 필자가 일하고 있는 동네에서 지역문화생태계 차원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문화예술인을 후원하는 일명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울시 성북구에서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묻거나 따지지 않고' 직접 신청하거나 추천받은 이들에게 10만원을 입금하고, 필요 금액은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별도로 개설된 계좌로 자유로운 입금을 통해 마련했다. 후원자와 후원금을 받는 이를 모두 익명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 청년예술가를 비롯해 약 6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지원받았다.프로젝트명에 사용한 '크리킨디'는 남미 케추아 부족의 이야기로 숲에 불이 나서 다른 동물들이 도망치고 있을 때 작은 부리에 한 모금의 물을 담아 와서 산불을 끄려고 한 '벌새' 이름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뿐이야"라고 답한 벌새 크리킨디의 생각을 담은 것이다.'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의 출발은 '오아시스 딜리버리'에서 착안한 것이다. '오아시스 딜리버리'는 김선아 다큐멘터리 감독이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통장 잔고에 있는 여윳돈을 주변 독립영화인들에게 흘려보내면서 시작되었고, 여기에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SNS를 통해 동참하면서 확산되었다. 또한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를 곁에서 지켜본 지역 청년들이 '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라는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폭넓은 공감을 일으켰고, '전통예술인긴급연대'에서도 이 아이디어를 통한 프로젝트를 통해 4천만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금하기도 했다.이러한 경험은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넘어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일종의 연대감과 공통의 감각을 경험하게 해준다. 공통 감각의 연결은 결국 '움직이는 소수'의 역할이다. 실제로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한 달 쯤 지났을 때 '11만원'이라는 낯선 액수가 입금되었다. 10만원을 신청해서 받은 예술가가 10%를 얹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후원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일종의 지역공동체 차원의 새로운 실험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동체은행이나 협동조합 등 그 이름이 무엇이든 경제적 상호부조의 사례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는 지역단위에서 공동으로 제안했다는 점에서 개인적 차원을 넘어 지역사회를 통한 커뮤니티의 성격을 더한 것이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후원과정이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은 맞지만, 그 과정에서 연계된 선택과 영향력은 지극히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개인적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난 적 없는 다수의 페친들이 프로젝트에 동참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 각자의 삶이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이다.근대 혹은 탈근대의 삶을 통째로 뒤흔드는 코로나19 사태는 근본적인 성찰과 대안을 요구한다. 섣불리 결론이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문제겠지만, 치열한 고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등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지금 시대의 궁극적 대안으로 '지역화'를 강조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그러한 변화를 만들어 낼 결정적 다수를 만드는 것으로서 '큰 그림 행동주의(big picture activism)'를 제시한다. 이론만으로는 시민의식을 높일 수 없으며 새로운 지역화의 감동적인 사례를 끊임없이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지역화는 소규모 활동을 대규모로 하는 것"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내가 하는 일과 활동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속해 있는 가까운 곳에서(local), 혹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유사한 활동을(global) 바라보고, 공유하고, 전달하고, 확산해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치열한 고민과 싸움을 하고 있는 헬레나는 강조한다."바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인 일은 이미 열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지혜와 용기를 자신과 이웃에게 전하는 것입니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20-06-18 권경우

[춘추칼럼]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다른 세 가지

뿌리는 같지만 정치 열매는 전혀 달라친문·운동권 세력 중심으로 '이념 과잉' 선과악 이분법 대결구도는 협치 불가능실용·당정 분리 盧의 정신으로 돌아가야지난 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를 맞이했다. 현 집권 세력은 입만 열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한다. 이 정신의 핵심은 '사회적 약자 곁에 함께 있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꿈꾼 것은 '사람 사는 세상',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펼치는 언행을 보면 '껍데기 노무현 정신'이 판을 치고 있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가족 비리와 '감찰 무마' 의혹 등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다. 조국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해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최강욱 의원에게는 축하 전화를 걸어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역할"을 당부했다. 평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각별했던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정의기억연대 운영에 참여하면서 불거진 각종 논란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최근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이라도 만들라"고 엄포를 놓자 정부는 4시간 만에 "법을 만들겠다"고 기민하게 대응했다. 보수가 몰락하고 총선 압승으로 여권이 권력에 도취되어 상식 밖의 '친문 사는 세상', '특권과 차별이 있는 세상',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씁쓸하다.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국회법에도 없는 '4+1 연대'를 통해 제1야당을 배제한 채 누더기 선거법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관철시켰다. 그 후에 각종 꼼수와 편법으로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만들고 총선 후에 통합했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전례없는 압승을 거두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소 가장 싫어했던 '원칙 없는 승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친여 세력은 종종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 2기'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노·문 정부의 뿌리는 같지만 정치 열매는 전혀 다르다. 첫째, 노무현 정부는 '실용적 진보'를 표방한 반면, 문재인 정부는 '교조적 진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진보 세력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나는 좌파 신자유주의자"라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관철시켰다. 이라크 파병과 제주 해군 기지 건설도 밀어붙였다. 이 모든 것이 이념을 넘어 국익을 위한 실용적 행보였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친문과 운동권 세력을 중심으로 이념 과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주류 세력 교체와 체제 변혁을 핵심 목표로 삼으면서 '토착 왜구' 등 이념으로 가득 찬 구호만 난무했다. 둘째, 노무현 정부에서는 '협치 실천'이 돋보인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협치 절벽'이 지배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4월 사학법 개정으로 정국이 경색되자 청와대로 초대한 여당 원내대표에게 "야당 원내대표 하기 힘든데 양보 좀 하시죠"라면서 통 큰 정치를 주문했다. 2005년 8월엔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필요하다면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고도 했다. 177석의 슈퍼여당인 민주당은 53년 만에 21대 국회를 사실상 단독 개원했고, 그동안 야당 몫으로 지정된 국회 법사위원장마저 차지하겠다면서 원 구성을 지연시켰다. 힘없는 야당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여당이 양보하는 것이 상식이다. 야당을 적폐 세력으로 몰아가고 진영의 논리에 갇혀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대결 구도가 만들어지면 협치와 공존의 정치는 불가능해진다. 셋째, 노 전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핵심 원리로 당·정 분리를 강조했다. 따라서 청와대와 집권당 간에 수평적인 관계가 구축되면서 겸손한 권력이 만들어졌다.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당·정 일치가 강조되면서 청와대가 집권당을 수직 통치하는 것이 일상화 됐다. 심지어 여당 지도부는 강제 당론을 통해 의원들을 거수기로 만들고 있다. 정당 민주화는 퇴보하고 오만한 권력이 꿈틀거리고 있다. 정부 여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코로나 국난 극복의 생산적 정치를 위해 '실용 강화 원칙과 상식', '행동하는 협치', '당정 분리'라는 '노무현 국정 운영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단언컨대, 국정 안정은 국회 의석수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집권 세력의 제도적 자제와 관용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20-06-11 김형준

[춘추칼럼]변화하는 북한의 대외선전 수단과 내용

유튜브에 평양 어린이·주민 영상 올라와일부 주장 SNS 등 콘텐츠 차단 쉽지않아정보 해석력 높은 국민 자정노력에 맡기고'안보 직결' 北 관련 가짜뉴스는 규제 필요얼마 전 유튜브에 평양에 사는 어린이의 일상을 담은 영상이 올라왔다. 다른 계정에는 젊은 북한 여성이 영어로 평양 주민들의 일상을 설명하는 영상을 담았다. 북한의 신종 대외 선전물이라고 판단된다.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각종 SNS가 우리의 일상생활과 공존한다. 이중 유튜브는 수천수만 가지의 정보를 담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SNS 양식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북한의 선전매체도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일부에서는 북한의 이러한 새로운 선전 콘텐츠를 차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동안 우리는 노동신문·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에 대한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고 북한의 각종 출판물은 특수 자료로 별도 취급해왔다. 물론 우리 언론은 조선중앙통신과 계약을 맺어 관련 기사를 실시간 공유하고 있으며 학술적인 목적 등으로 북한 자료를 열람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기존 방식으로 유튜브와 같은 SNS에 올라온 북한관련 콘텐츠를 제한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유튜브를 열면 나오는 수많은 유튜브 영상 속에서 호기심에서 혹은 흥미로울 것 같아서 보는 클릭 행위에 이적성 여부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SNS의 특성상 누가 올렸는지도 알 수도 없고 콘텐츠물 삭제를 게시자에게 요청할 수도 없다. 그리고 '좋아요'와 '구독'을 기반으로 공유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같이 영상을 퍼 나르는 행위도 규제하기 어렵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는 두 가지를 제안해 본다. 첫째, 국민들의 자정노력이다. 우리 국민들은 인터넷 강국을 기반으로 하면서 정보에 대한 해석력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분단 반세기를 지나오면서 북한 정보에 대한 판단 역량도 자연적으로 습득해왔다. 주변에 북한 선전물을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모든 유튜브나 SNS 콘텐츠는 공유자와 구독자들의 댓글과 같은 평가를 담고 있다. 이러한 평가에 북한 콘텐츠가 특별히 취급될 이유가 없다. 북한 선전물 역시 온라인상에서 그에 해당하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최근 북한의 유튜브 콘텐츠는 정치성을 배제하고 있다. 북한의 선전관련 기구 역시 자극적이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선전물을 올릴 경우 평가받지 못한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둘째, 가짜뉴스는 분명히 규제되고 걸러져야 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어떤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비도덕적인 행위이다. 생산자가 부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가짜뉴스를 만들어 올리면 구독자들은 이를 전파시킨다.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바로 이동하거나 삭제한다. 이러한 SNS의 특성을 악용한 가짜뉴스들은 사회를 좀먹는 좀비와 같은 것이다. 북한과 관련된 가짜뉴스는 우리의 안보와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과 유포를 통제하는 조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의도된 세력이나 집단들에 의해 사회의 질서가 위협받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법적 불비는 전체적인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하고 북한 인터넷 선전물에만 한정할 것은 아니다.최근 흑인 용의자를 사망케 한 미국 경찰의 과도한 조치를 담은 동영상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면서 미국 내에 인종차별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2011년부터 중동과 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은 생활고에 따른 튀니지의 한 젊은 청년의 분신 영상으로 촉발되었다. 온라인상에 올려진 동영상 하나가 개인적인 삶뿐 아니라 국가구조와 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영상을 올리는 개인 혹은 집단이나 이를 운영하는 회사들의 도덕성이 중요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보는 시민들이 정보의 인포데믹(info-demic) 현상 속에서 비판적 독해능력(media literacy)을 함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미 200만~300만이 넘는 휴대폰이 북한에서 유통되고 있으며 최근 북한 방송 아나운서의 표정과 옷차림, 말투, 스타일이 달라지고 있다. 관광산업의 육성을 전략산업으로 삼고 있는 북한의 경우 이번 유튜브와 같은 선전물을 앞으로도 많이 유통시킬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북한 사회가 점차 개방화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아직은 통제적인 사회를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북한의 이러한 변화는 계속될 것이고 공동체적 방식을 통해 평화통일의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할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06-04 양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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