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찰나의 권력으로 오만에 빠지면 실패한다

민주당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방 표결 통과헌법정신 무시 21대 국회 '통법부'로 전락정부·여당 '역풍'… 대통령지지도 데드크로스다수결 폭력 '오만'… 집권 4년차증후군 못피해민주국가 의회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은 지난달 30일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도입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일방 표결로 통과시켰다. 지난 4일에는 세금 인상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3법(소득세·법인세·종부세법)도 표결로 일방 처리했다. 민주당은 국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법안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회법(제58조)이 규정한 소위원회 법안심사, 축조심사, 찬반토론 같은 절차를 무시했다.21대 국회는 삼권분립 헌법정신과 국회법을 깡그리 무시하면서 오로지 청와대 하명에 따라 군사작전하듯 법안을 밀어붙이는 통법부로 전락했다. 통합당은 "입법독재의 완성"이라고 반발했고, 정의당조차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원의 입법권마저 침해했다"고 비판했다.현재 민주당 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유신독재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하명을 받아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했던 '유정회'가 떠오른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검찰총장의 작심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선출된 권력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작금의 '신종 독재' 상황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당장 정부 여당에 역풍이 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는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앞서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고, 서울지역에서 민주당 지지도가 통합당에 역전되는 현상마저 나타났다. 향후 정부 여당이 정책 실패에 무감각해지고 국민 공감 능력을 잃어 가면 이런 추세는 더 악화될 것이다.5년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정치에서 경험적으로 입증된 이른바 '집권 4년차 증후군'이 있다. 절대권력을 누렸던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 4년차로 접어들면서 예외 없이 국정 운영 리더십에서 큰 위기를 맞이했다. 통상 역대 정부는 집권 초기엔 인사 실패로 휘청거리고 중반에는 정책 실패로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며 임기 말엔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 인사 비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대통령은 '레임 덕'(lame duck)이 아니라 정치적 뇌사 상태에 빠지는 '데드 덕'(dead duck)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현 정부는 작년 조국 장관 임명과 같은 인사 대참사로 도덕적 파탄을 맞이했고, 올해는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 경색,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과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란 등으로 민심이 급격하게 이반되고 있다. 향후 정권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비리가 터지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현 상황으로 봐서 민주당은 내년 4월 서울·부산 시장 보궐 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 후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간의 충돌로 집권 세력은 깊은 혼돈에 빠져들지 모른다. 임기 말에 관료사회가 등을 돌리면 권력 누수 현상이 심화되고 결국 현 정부도 역대 정권과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런 실패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정부는 인적 쇄신을 통해 최고 정책 전문가를 등용하고, 새로운 국정과제의 성과를 도출해야 하며, 야당과의 협치를 강화해야 한다.한국리서치는 매월 정부가 추진하는 12개 정책에 대한 국민 평가를 실시한다. 7월 3주차 조사 결과, 주거·부동산 정책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19%로 가장 낮았다. 정책 중요도 평가에선 일자리·고용정책을 최우선으로 꼽은 응답이 58%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 사회안전(47%)과 주거·부동산(45%)이었다. 주거·부동산 정책은 3월 넷째 주 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중요도가 10%포인트 증가했다. 주거·부동산을 최우선 과제라고 인식하는 비율이 아주 높은 반면, 긍정평가가 지극히 낮다는 것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당은 집값 폭등을 이전 보수 정부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야당과 머리를 맞대고 협치를 통해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최고의 부동산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단언컨대, 정부가 정책 실패를 무시하고 찰나의 권력에 도취되어 다수결 폭력이라는 오만함에 빠지면 결국 집권 '4년차 증후군'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20-08-06 김형준

[춘추칼럼]인사청문제도 보완 필요

자질·능력 검증보다 신상털기·흠집내기로野 정쟁 수단·與 보호 급급 본래 목적 변질사전검증 없고 통과 못해도 임명… 무용론도21대 국회 능력·업무중심 제도로 변화되길인사청문회 제도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된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라고 할 수 있다. 인사청문회법 제정 이전엔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무총리나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을 임명해야 했지만 정작 국회가 이들을 검증할 수단이 없었다. 이러한 법적 불비를 보완하기 위해 2000년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되었고 여러 차례의 개정을 통해 헌법상 기관뿐 아니라 각부 장관, 권력기관장들도 인사 청문 대상으로 규정함으로써 국가 권력의 남용을 막고 이를 사전에 통제할 수 있었다. 업무능력과 전문성뿐 아니라 공직 후보자의 자질과 도덕성도 심사의 대상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수십여 명의 고위 공직자 후보들이 부동산 의혹, 자녀 이중국적, 논문표절, 병역회피 의혹 등으로 낙마하기도 하였다. 공직후보자의 도덕성은 중요하다. 위법행위를 한 사람이 어떻게 국민들에게 법을 따르라고 할 것인가? 이는 중요한 검증기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의 청문회 운영을 보면 답답한 마음뿐이다. 고위공직자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기 보다는 이들의 신상털기에 주력해왔고 후보 망신주기, 흠집내기로 변질되어 온 것이다. 특히 후보자 자신보다는 배우자와 자녀들의 신상까지도 무분별하게 털리면서 개인정보 보호 및 기본권 문제까지도 훼손할 우려가 있다. 가족정보들까지 필요하다면 비공개적으로 회의를 전환하여 따로 심의하면 될 것이다.이러한 선진적인 제도들이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운영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정치의 선진화가 민주주의 제도의 선진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야당은 후보자를 검증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인사청문제도를 통해 여당을 공격하는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야당은 언론에 후보자의 신상과 관련된 사항을 공개하면서 언론플레이를 하기도 한다. 여당 역시 국회차원에서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여당 후보자를 보호하는데 급급하다. 이는 여야가 뒤바뀌어도 마찬가지 상황으로 누가 누구를 비난하고 탓할 일은 아니다.둘째 사전검증의 문제이다. 사실 인사청문회 제도의 원조격은 미국의 인준 제도이다. 18세기 말부터 청문제도를 만들고 의회에 막강한 견제 권한을 부여했다. 따라서 행정부는 의회에서 지적받지 않도록 후보자를 선발할 때부터 엄격한 검증과정을 거친다. 백악관 인사팀뿐 아니라 연방수사국, 국세청 등의 엄격한 사전 조사를 통과한 자만이 인준청문의 후보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 검증에만 수개월이 소요된다. 물론 검증되지 않은 사항이 뒤늦게 공개되어 낙마하는 경우도 있고 정말 그 후보자가 필요한 경우는 사전에 여야간 협의를 하기도 한다. 장기간 소요로 인한 업무 공백과 비효율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인준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는 비율이 2~3% 밖에 되지 않는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후보를 서둘러 본 경기에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전 경기를 통해 충분히 역량이 검증된 선수를 내보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셋째, 우리나라 인사청문제도의 맹점이다. 우리나라 인사청문제도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임명권자가 임명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 이전에 낙마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임명권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 자진사퇴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청문회 무용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야당은 어차피 인사청문회를 거치더라도 임명권자가 임명할 것이기 때문에 이른바 '신상털기'와 '모욕주기'로 일관한다.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에도 고의로 협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사청문보고서 채택률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여당이나 후보자의 입장에서는 인사청문기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이다. 민감한 자료는 최대한 제출을 거부하고 의혹제기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일부 의원들은 오히려 후보자의 대변인을 자처하기도 하고 다른 의원들은 부적절한 질문과 언사로 국민들의 눈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지난 6월, 제21대 국회가 출범하였다. 암울했던 20대 국회에 대한 반성으로 21대 국회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국회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인사청문회 제도도 손질할 것은 손을 보고 본 회의에서는 능력과 업무중심으로 검증하는 제도로 변화되기를 기대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07-30 양무진

[춘추칼럼]회복기의 삶

오늘은 하나밖에 없는 새날이자 첫날…죽을병 이기고 나면 조그만 일에도 감동아이 같은 마음 갖고 기대 수준 낮춰보길코로나 사태로 '일상'이 소중하지 않던가우리의 삶은 하루하루가 따분하고 지루하다. 그날이 그날 같고 신나는 일, 즐거운 일이 없다. 그렇지만 말이다. 여기서 한 번 생각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관점과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에머슨이라는 미국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신이 헛되게 불평하면서 보내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도 살고 싶었던 내일이다." 바로 이것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다. 오늘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날이다. 우리 인생에서 가치 있는 날은 오늘뿐이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이다. 그렇다면 오늘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날인가!그래서 나는 오늘은 나의 생애에 남은 날 총량 가운데 오직 하나밖에 없는 새날이고 첫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또 어떤 사람들인가? 그 오직 하나밖에 없는 새날과 첫날에 있어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첫 사람이고 또 새사람이다.이런 생각 하나만 바꿔도 세상은 갑자기 눈을 뜨는 세상이 되고 찬란한 세상이 된다. 부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루한 세상, 누더기같이 낡은 세상이라고 꾸중하지 말기 바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의 세상만 그런 세상에 살게 되는 것이다.이쯤에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의 말을 인용해보고 싶다. 보들레르는 시를 이야기하면서 시인은 회복기에 이른 환자와 같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회복기란 마치 어린 시절로의 회귀와도 같다. (…) 아이는 모든 것을 새롭게 본다. 그는 언제나 도취해 있다. 우리가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아이가 형태와 색채를 흡수하는 기쁨과 가장 닮아있다."우리도 주변에서 가끔 이와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 암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그에게 세상은 오직 새롭고 아름답고 찬란한 세상일 뿐이다. 그에게 있어 무엇 하나 새롭지 않고 감사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그는 조그만 일에도 흥분하는 사람이고 감동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암이란 질병에 걸렸던 것은 분명히 불행이고 악운이고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그 이후의 날들은 축복의 날들이 될 것이다. 실은 나도 그런 일을 겪은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2007년의 일이니까 벌써 13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분명히 죽을병에 걸렸었지만 끝내 살아서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런 이후 나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날마다 기쁘고 즐거운 사람이 됐고 사소한 일에도 취한 사람이 됐고 의미를 찾는 사람이 됐다. 보는 것마다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그것은 취한 삶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서도 취하는 날들이었다.믿지 못하실 것이다. 그냥 터닝포인트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반전의 인생이었다. 비록 몸은 병들고 왜소해졌으며 많은 가능성이 사려져 버렸지만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충분히 감사하고 좋은 것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겨우 이만큼밖에 남지 않았다고 투정하는 사람에서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진정 인생이 지루하신가? 따분하신가? 아무것에도 희망이 없다고 여겨지시나? 그렇다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져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만사 살아가는 기대 수준을 조금쯤 낮출 필요가 있다. 조금쯤 부드럽고 다정한 눈길이 준비되어야 한다.지금 우리는 너무나 외부 지향적이고 타인 지향적이다.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 사태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그런 경험을 충분히 했다고 본다.일상적인 일, 흔한 일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그립게만 느껴지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우리도 한 사람 한 사람 보들레르식으로 말한다면 회복기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부디 자기 자신을 해바라기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때로는 채송화라고 여겨보시라. 세상이 대번에 달라져 보일 것이다. 큰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채송화는 애당초 키가 작은 꽃이기에 해바라기처럼 넘어지거나 줄기가 부러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

2020-07-23 나태주

[춘추칼럼]'문화도시'의 길

'5년 예산 확보' 지자체 사업 선정 경쟁 과열준비하는 과정 초점·상향식 공모 고민 필요지역사회 네트워크 무시 나쁜 사례 걸러내야축제 증가·대형공연장 들어선다고 되진 않아'문화도시' 사업 공모 마감이 7월24일로 다가왔다. 현재 전국의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문화도시 사업을 준비하면서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2018년 처음 시작된 '문화도시 사업'은 2022년까지 30개 문화도시 선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첫 해에는 '예비문화도시'로 지정되고 1년간의 활동을 바탕으로 '법정문화도시'로 최종 선정되면 5년에 걸쳐 최대 200억원(국비와 지방비 매칭 각 50%)이 투입된다. 올해에는 작년 말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된 7개 지자체(부천·원주·천안·청주·포항·영도(부산)·서귀포)가 사업을 시작했으며, 10개 지자체가 예비문화도시로 추가 선정되었다.그렇다면 전국의 지자체와 지역문화재단이 이처럼 문화도시 사업에 집중하는 것은 왜일까? 일단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되면 5년이라는 기간동안 사업 예산을 충분히 확보함으로써 중장기 계획을 가질 수 있다. 열악한 지방 재정을 고려할 때 문화관련 예산은 항상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 사업은 충분한 매력을 갖는다. 다음으로 기초생활권 차원에서 문화영역은 시민들과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정치인으로서 자치단체장 입장에서 괜찮은 손익계산이 되기도 한다.마지막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지역문화재단 설립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현재 전국적으로 100여 개 내외의 지역문화재단이 설립되어 있고, 그 중 기초문화재단은 설립과정에서 많은 반대에 부딪히거나 설립 이후에도 재단의 방향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점에서 문화도시 사업은 지역사회에서 재단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셈이다.결론적으로 전국의 모든 지역이 '문화도시'가 되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하고 좋은 일이다. 그것은 문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의 궁극의 꿈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문화도시 사업에 대해서는 검토와 대안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과열 양상과 대응에 대해서는 문체부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지나친 경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문체부가 공모 절차나 사업 실행을 더 세밀하고 빡빡하게 만들어가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다. 오히려 이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하고, 그 과정이 잘 드러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 공모과정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하향식 일방적 공모방식이 아니라 상향식 공모의 모델을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하다.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지역사회가 작은 공간과 사례, 사람이 얽히고설킨 곳이기 때문에 개별적인 사업으로만 접근하면 갈등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사례는 민관영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이미 많은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공간과 주체와 사례들을 어떻게 지역문화예술생태계 차원에서 연결하고 꿸 것인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역사와 문화자원이 이야기가 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콘텐츠로 생산될 수 있어야 하고,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사업'을 위해 잠시 지역에 머무는 이들이 아니라 지역문화 활동의 실질적인 주체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문화도시의 성과라 할 수 있다.이 과정에서 나쁜 사례는 걸러야 한다. 지역사회 네트워크는 무시한 채 공공기관 중심으로 '문화도시'를 주도하거나, 외부 전문가 중심의 문화도시 사업을 상정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애초에 지속가능한 도시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문화 도시 사업의 목표와도 맞지 않는다.'문화도시'는 '예술도시'와는 다르다. 문화도시는 도시의 체질이 '문화적으로' 바뀔 때 가능하다. 지역축제가 늘어난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대형공연장이 들어선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문화도시는 목표선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그것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의 공간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담고, 다양한 역사와 문화로 축적된 시간의 켜들이 사라지지 않고 미래의 유산으로 남을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과정이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20-07-16 권경우

[춘추칼럼]'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민주주의 적이다

文대통령 국정 지지도 총선 압승이후 하락한마디에 추경 통과·檢 총장 압박 '기현상'보수 몰락… 언론, 이념 소재만 치중한 현실성난 민심 잡으려면 정책 능력 끌어올려야최근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한국갤럽의 7월 1주(6월30일~7월2일)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 한다'는 긍정 평가는 50%였다. 5월 1주(71%)와 비교해 두 달 만에 지지율이 무려 21% 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총선의 총 유권자수가 4천400만명인데, 숫자로만 보면 무려 1천100만명 이상이 이탈한 셈이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논란,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인한 대북 관계 악화, 6·17 부동산 대책 실패, 법무부 장관과 검찰 총장의 격돌 등의 악재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그러나 근원적인 요인은 총선 압승 이후 드러난 정부 여당의 '견제 받지 않는 권력' 때문이다. 최근 대통령 한마디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행정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대통령의 하명에 역대 최대 규모의 35조 추경 예산이 국회에서 5일 심사만에 처리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법무부 장관과 여당이 정권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총장을 압박해 사퇴시키려고 하는 것도 실상 절제되지 않는 권력이 몰고 온 기현상이다. 이렇다보니 "모든 권력이 국민이 아닌 문재인으로부터 나온다"는 '문주주의'(文主主義)라는 신조어마저 등장하고 있다. 통상 견제 받지 않는 권력에 도취된 정부는 정책 실패에 무감각해지고, 자신들의 무능과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남의 탓만 한다. 가령, 부동산 대책 실패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토부 장관은 "지금까지 정책은 다 종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책임을 회피했다.그뿐만 아니라 국회가 오랜 기간에 걸쳐 쌓아온 규범과 관행이 하루아침에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다. 제16대 국회(2004년)부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게 주었던 법사위원장을 여당이 차지했다. 제13대(1988년) 국회부터 의석 비율대로 여야가 상임위원장을 나눠 가지던 협치의 전통마저 깨지고 여당이 17개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 여하튼 민주화 세력을 자부하는 정부 여당이 '제도적 자제와 상호 존중'의 규범을 무시하면서 '일당 독재'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효율적이고 건강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권력은 스스로 견제 받아야 한다. 야당, 언론, 시민단체, 지식인, 그리고 시민들에 의해 권력이 무차별적으로 견제 받아야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성숙한다. 그런데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은 어떠한가? 보수가 몰락하면서 야당은 무기력해졌고, 일부 언론은 '진실 보도'를 외면한 채 정치적·정파적·이념적으로 이용되는 소재에만 치중하고 있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시민단체(NGO)가 정치권력 비판의 칼을 내팽개치고 정치권 진입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오히려 권력화 되고 있다. 양식있는 지식인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어용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몰염치한 인간이 활개치고 있다.촛불 혁명 이후 시민들의 능동적, 자발적 참여는 늘어나고 있다.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코로나19의 재난 극복의 견인차 역할도 했다. 그러나 최근엔 팬덤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명 문빠로 불리는 열성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진영 내 어떠한 이견과 비판을 허용하지 않으며 정부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 적폐 세력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기형적인 상황에서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는 없다. 한국리서치는 '국정 방향 공감도'를 격주로 발표하고 있다. 지난 5월 1주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은 54%, '올바르게 가고 있지 않다'(32%)보다 12% 포인트 많았다. 그러나 7월 1주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43% 대 44%로 역전되었다. 더구나, 16개 정책별 긍정 평가가 대통령 국정 운영 평가보다 훨씬 낮았다. 주거·부동산 긍정 평가는 25%에 불과했다. 이것은 현 정부의 정책 능력이 아주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책 실패로 인한 성난 민심을 잡으려면 정부 여당에겐 지금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점이다. 더욱 겸손한 자세로 권력을 제도적으로 자제하고 최고의 전문가를 등용해서 정책 능력을 끌어 올려야 한다. 분명 겸손과 유능이 최상의 정책이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20-07-09 김형준

[춘추칼럼]볼턴 회고록, 문제 제기에 답하다

외교 기본원칙 훼손하고 왜곡된 내용들진위여부 떠나 文정부 창의적 전략 눈길편견 가진 참모의 협상 진행 뼈아프지만우리의 중재노력 다시 빛 발하기를 기대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발간 여파가 크다. 야당에서는 볼턴 회고록과 관련된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안보분야의 미 대통령 최측근 참모가 현존하는 가장 어려운 협상 중의 하나인 북핵협상과 관련된 숨은 얘기들을 공개했으니 후폭풍이 클 수밖에 없다. 다만 대부분의 언론에서 이미 많은 부분이 공개되었지만 회고록 자체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인색하다.우리측 카운터파트라 할 수 있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외교의 기본원칙을 훼손하고 상당부분의 내용이 왜곡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첫째 우리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과대평가하고 싱가포르 정상회담 등을 무리하게 성사시켰다는 지적이다. 볼턴 회고록에서는 모든 외교적 춤판은 한국이 만든 것이었고 북핵폐기 보다는 통일어젠다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종전선언도 문 대통령의 제안에서 나온 것이며 북미정상회담을 처음 제안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아니라 한국 측이라는 주장이다. 필자는 왜 이것이 정치적인 쟁점이 되는지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가 먼저 제안을 했든지 북미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의 큰 원칙에서 합의할 수 있었다. 전쟁 위협 등 강 대 강으로 치닫던 북미 관계가 우리 측의 중재노력으로 싱가포르 합의를 이룬 것이다.현재 비핵화 협상이 답보국면이기는 하지만 우리 정부가 판문점 선언부터 북한에 비핵화 결단을 요구하고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까지 연결시킨 것은 평가받아 마땅한 것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내정치에 이용했다는 의혹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본다.둘째, 6·30 남북미 정상 회동시 미국과 북한이 우리 대통령을 배제시키고 패싱을 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내용의 진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갑작스럽게 성사된 만남이라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양자간 만남으로 제한하려는 북미간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6·30 남북미 정상회동이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오히려 우리 대통령의 많은 역할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우리 측은 북미간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영토에 온 타국 정상들을 배웅하고 북미간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였다. 외교 현장 즉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는 많은 중간 과정을 거친다. 어느 나라는 이렇게 하기를 원하고 다른 나라는 또 다르게 하기를 원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협의와 타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패싱이라고 하진 않는다.셋째, 볼턴 회고록에서는 6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이 북한에 비핵화에 동의할 것을 요청했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1년 내 비핵화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4·27 판문점 선언에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고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도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할 수 있었다. 볼턴 보좌관 자신이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의심하고 북미정상회담을 뒤에서 조정한 것이지 북한의 비핵화 약속은 남북간, 북미간에 합의한 사항인 것이다. 오히려 회담의 훼방자는 볼턴 전 보좌관이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도 볼턴은 회담을 결렬시키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상 결렬과 관련된 여러 가지 옵션을 제안하였다고 자랑하듯 이야기한다. 한편 종전선언에 우리 정부가 공을 들인 것은 사실이다. 분단국인 우리는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병행 추구하는 전략을 오래전부터 추진해 왔다. 한반도의 분단이 정전협정 체제이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종전선언을 비핵화의 마중물로서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비확산에만 관심있는 미국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실시는 북한의 비핵화 위협 감소에 따라 한미간 협의에 의해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만약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해도 되겠다고 결정을 내렸어도 미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의 문제는 안보의 문제이지 정쟁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볼턴 회고록은 진위여부를 떠나 대체적으로 북미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창의적 전략이 담겨있다. 정치적 계산에 매몰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에 대한 편견으로 사로잡힌 참모 볼턴의 제안에 따라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비핵화 협상이 전개되었다는 점은 매우 뼈아픈 부분이다. 우리로서는 올해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는 분위기 마련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반기로 갈수록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있다. 외교안보진영의 개편을 계기로 우리의 중재노력이 다시 빛을 발하기를 기대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07-02 양무진

[춘추칼럼]코로나 이후

비대면이 사는 길이라니 어쩔수 없는 일절대적 단절의 시대 온라인마저 막혔다면…인간의 고독감·소외감·우울감 더 했을 것어제의 삶 못 돌아가지만 마음은 평안해야세상살이가 많이 달라졌다. 몇십 년은 뒤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적막하다. 길거리 자동차들이 많이 줄었다. 당연히 행인들도 줄었다. 어쩐지 그것이 딴 세상에 온 듯 낯설고 서툴다. 공주와 서울을 오가는 자동차의 횟수가 줄었다. 배차 간격이 떠서 많이 기다려야 한다.공주 시외버스 터미널의 표지판을 보았더니 인천공항행 버스 시간표 위에 까만 표시가 모두 붙어있다. 공항버스 운행을 전면 중단했다는 증거다. 그것은 또 공항에서 비행기가 뜨지 않는다는 얘기다.가치관이 바뀌었다. 이전에 가치 있는 것들이 가치가 없어지고 예전에 가치 없던 것들이 다시금 가치를 얻게 되었다. 이제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대단위로 무슨 일인가를 하는 일부터 불가능하다. 무조건 사람 많은 데는 피하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제는 혼자서 하는 일들이 가치 있는 일이 되었다.비대면, 비접촉,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는 길이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는 혼자서 무슨 일인가를 하면서 사는 연습을 해야만 하겠다. 코로나 사태를 건너오면서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도 절실히 학습해야만 했다. 인생이 외롭고 쓸쓸한데 더욱 인생이 외롭고 쓸쓸하게 되었다.이렇게 오프라인의 삶이 위축된 데 비하여 여전히 작동한 것은 온라인의 삶이다. 절대적인 단절과 고독과 속박의 시대에 온라인마저 막혔다면 어쨌을까? 사람들은 걱정하고 또, 안도한다. 그런대로 답답증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온라인의 역할이 컸다. 어쩌면 앞으로는 이 온라인의 영향의 더욱 증대되겠지 싶다.내가 주로 만나거나 소통하는 사람들은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중에 한 분과 이야기하다가 조용히 놀란 일이 있다. 그분은 출판사 대표인데 코로나 사태 속에서 자기네 출판사에서는 매일같이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코로나 이전 때부터 책의 매출이 더 늘었다는 것이다.무슨 일로? 문제는 책의 종류다. 그분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은 대부분 생활실용서인데 그 가운데서도 꽃 기르기, 실내 화단 꾸미기, 반려동물 돌보기와 같은 책들이 그렇게 잘 나가더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몇 달 실내에 갇혀서 사는 동안 어른들이 가장 많이 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종이접기를 하고 종이 오리기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그러니까 디지털과 어울린 아날로그의 삶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 방식은 디지털이되 그 내용은 아날로그로 가야 한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코로나 이후의 우리네 삶의 새로운 국면이요 피하기 어려운 한 방향이 아닌가 싶다.이런 시기를 맞이하여 시 쓰는 한 사람으로서 생각해본다. 비대면 비접촉이 강화되다 보면 인간은 더욱 고립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고독감, 소외감, 우울감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이런 때 필요한 것은 마음을 다스려주는 그 무엇일 것이다. 울퉁불퉁해지고 울렁거리는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고 쓰다듬는 그 어떤 심리적 작용일 것이다.그것이 그러할 때, 동원되어야 하는 것이 시라는 문학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시는 인간의 감정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문장형식이다. 산문이 작정하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쓰는 글이라면 시는 작정 없이 언뜻 떠오르는 감정을 급하게 쓰는 글이다.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인 문장이라 하겠다.그러므로 좋은 시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격한 마음을 다스려준다. 말하자면 마음의 묘약인 셈이다. 만약에 시가 그런 역할을 감당하기만 한다면 시를 읽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나의 책은 변함없이 팔렸다. 물론 오프라인 서점을 통해서가 아니라 온라인 주문을 통해서였다.코로나 시대. 코로나 이후 시대. 활기차게 자유롭게 살았던 어제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시대. 정작 그것이 그렇다면 마음이라도 평안해야 한다. 마음의 평안이 행복의 기초다. 그렇게 소중한 마음의 평안을 위해 시인들은 더욱 정성껏 시를 써야 하겠다. 그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고 또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길이다./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

2020-06-25 나태주

[춘추칼럼]포스트 코로나와 지역화

동네 문화예술인 익명 후원 프로젝트 호응돕는 행위 넘어 같은 시대 연대감 경험기회삶 뒤흔든 코로나19 근본적 성찰·대안 요구고민 출발점 '지역'서 발견할 수 있지않을까얼마 전 필자가 일하고 있는 동네에서 지역문화생태계 차원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문화예술인을 후원하는 일명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울시 성북구에서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묻거나 따지지 않고' 직접 신청하거나 추천받은 이들에게 10만원을 입금하고, 필요 금액은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별도로 개설된 계좌로 자유로운 입금을 통해 마련했다. 후원자와 후원금을 받는 이를 모두 익명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 청년예술가를 비롯해 약 6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지원받았다.프로젝트명에 사용한 '크리킨디'는 남미 케추아 부족의 이야기로 숲에 불이 나서 다른 동물들이 도망치고 있을 때 작은 부리에 한 모금의 물을 담아 와서 산불을 끄려고 한 '벌새' 이름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뿐이야"라고 답한 벌새 크리킨디의 생각을 담은 것이다.'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의 출발은 '오아시스 딜리버리'에서 착안한 것이다. '오아시스 딜리버리'는 김선아 다큐멘터리 감독이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통장 잔고에 있는 여윳돈을 주변 독립영화인들에게 흘려보내면서 시작되었고, 여기에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SNS를 통해 동참하면서 확산되었다. 또한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를 곁에서 지켜본 지역 청년들이 '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라는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폭넓은 공감을 일으켰고, '전통예술인긴급연대'에서도 이 아이디어를 통한 프로젝트를 통해 4천만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금하기도 했다.이러한 경험은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넘어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일종의 연대감과 공통의 감각을 경험하게 해준다. 공통 감각의 연결은 결국 '움직이는 소수'의 역할이다. 실제로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한 달 쯤 지났을 때 '11만원'이라는 낯선 액수가 입금되었다. 10만원을 신청해서 받은 예술가가 10%를 얹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후원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일종의 지역공동체 차원의 새로운 실험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동체은행이나 협동조합 등 그 이름이 무엇이든 경제적 상호부조의 사례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는 지역단위에서 공동으로 제안했다는 점에서 개인적 차원을 넘어 지역사회를 통한 커뮤니티의 성격을 더한 것이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후원과정이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은 맞지만, 그 과정에서 연계된 선택과 영향력은 지극히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개인적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난 적 없는 다수의 페친들이 프로젝트에 동참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 각자의 삶이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이다.근대 혹은 탈근대의 삶을 통째로 뒤흔드는 코로나19 사태는 근본적인 성찰과 대안을 요구한다. 섣불리 결론이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문제겠지만, 치열한 고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등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지금 시대의 궁극적 대안으로 '지역화'를 강조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그러한 변화를 만들어 낼 결정적 다수를 만드는 것으로서 '큰 그림 행동주의(big picture activism)'를 제시한다. 이론만으로는 시민의식을 높일 수 없으며 새로운 지역화의 감동적인 사례를 끊임없이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지역화는 소규모 활동을 대규모로 하는 것"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내가 하는 일과 활동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속해 있는 가까운 곳에서(local), 혹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유사한 활동을(global) 바라보고, 공유하고, 전달하고, 확산해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치열한 고민과 싸움을 하고 있는 헬레나는 강조한다."바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인 일은 이미 열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지혜와 용기를 자신과 이웃에게 전하는 것입니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20-06-18 권경우

[춘추칼럼]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다른 세 가지

뿌리는 같지만 정치 열매는 전혀 달라친문·운동권 세력 중심으로 '이념 과잉' 선과악 이분법 대결구도는 협치 불가능실용·당정 분리 盧의 정신으로 돌아가야지난 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를 맞이했다. 현 집권 세력은 입만 열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한다. 이 정신의 핵심은 '사회적 약자 곁에 함께 있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꿈꾼 것은 '사람 사는 세상',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펼치는 언행을 보면 '껍데기 노무현 정신'이 판을 치고 있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가족 비리와 '감찰 무마' 의혹 등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다. 조국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해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최강욱 의원에게는 축하 전화를 걸어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역할"을 당부했다. 평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각별했던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정의기억연대 운영에 참여하면서 불거진 각종 논란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최근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이라도 만들라"고 엄포를 놓자 정부는 4시간 만에 "법을 만들겠다"고 기민하게 대응했다. 보수가 몰락하고 총선 압승으로 여권이 권력에 도취되어 상식 밖의 '친문 사는 세상', '특권과 차별이 있는 세상',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씁쓸하다.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국회법에도 없는 '4+1 연대'를 통해 제1야당을 배제한 채 누더기 선거법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관철시켰다. 그 후에 각종 꼼수와 편법으로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만들고 총선 후에 통합했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전례없는 압승을 거두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소 가장 싫어했던 '원칙 없는 승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친여 세력은 종종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 2기'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노·문 정부의 뿌리는 같지만 정치 열매는 전혀 다르다. 첫째, 노무현 정부는 '실용적 진보'를 표방한 반면, 문재인 정부는 '교조적 진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진보 세력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나는 좌파 신자유주의자"라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관철시켰다. 이라크 파병과 제주 해군 기지 건설도 밀어붙였다. 이 모든 것이 이념을 넘어 국익을 위한 실용적 행보였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친문과 운동권 세력을 중심으로 이념 과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주류 세력 교체와 체제 변혁을 핵심 목표로 삼으면서 '토착 왜구' 등 이념으로 가득 찬 구호만 난무했다. 둘째, 노무현 정부에서는 '협치 실천'이 돋보인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협치 절벽'이 지배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4월 사학법 개정으로 정국이 경색되자 청와대로 초대한 여당 원내대표에게 "야당 원내대표 하기 힘든데 양보 좀 하시죠"라면서 통 큰 정치를 주문했다. 2005년 8월엔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필요하다면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고도 했다. 177석의 슈퍼여당인 민주당은 53년 만에 21대 국회를 사실상 단독 개원했고, 그동안 야당 몫으로 지정된 국회 법사위원장마저 차지하겠다면서 원 구성을 지연시켰다. 힘없는 야당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여당이 양보하는 것이 상식이다. 야당을 적폐 세력으로 몰아가고 진영의 논리에 갇혀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대결 구도가 만들어지면 협치와 공존의 정치는 불가능해진다. 셋째, 노 전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핵심 원리로 당·정 분리를 강조했다. 따라서 청와대와 집권당 간에 수평적인 관계가 구축되면서 겸손한 권력이 만들어졌다.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당·정 일치가 강조되면서 청와대가 집권당을 수직 통치하는 것이 일상화 됐다. 심지어 여당 지도부는 강제 당론을 통해 의원들을 거수기로 만들고 있다. 정당 민주화는 퇴보하고 오만한 권력이 꿈틀거리고 있다. 정부 여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코로나 국난 극복의 생산적 정치를 위해 '실용 강화 원칙과 상식', '행동하는 협치', '당정 분리'라는 '노무현 국정 운영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단언컨대, 국정 안정은 국회 의석수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집권 세력의 제도적 자제와 관용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20-06-11 김형준

[춘추칼럼]변화하는 북한의 대외선전 수단과 내용

유튜브에 평양 어린이·주민 영상 올라와일부 주장 SNS 등 콘텐츠 차단 쉽지않아정보 해석력 높은 국민 자정노력에 맡기고'안보 직결' 北 관련 가짜뉴스는 규제 필요얼마 전 유튜브에 평양에 사는 어린이의 일상을 담은 영상이 올라왔다. 다른 계정에는 젊은 북한 여성이 영어로 평양 주민들의 일상을 설명하는 영상을 담았다. 북한의 신종 대외 선전물이라고 판단된다.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각종 SNS가 우리의 일상생활과 공존한다. 이중 유튜브는 수천수만 가지의 정보를 담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SNS 양식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북한의 선전매체도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일부에서는 북한의 이러한 새로운 선전 콘텐츠를 차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동안 우리는 노동신문·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에 대한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고 북한의 각종 출판물은 특수 자료로 별도 취급해왔다. 물론 우리 언론은 조선중앙통신과 계약을 맺어 관련 기사를 실시간 공유하고 있으며 학술적인 목적 등으로 북한 자료를 열람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기존 방식으로 유튜브와 같은 SNS에 올라온 북한관련 콘텐츠를 제한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유튜브를 열면 나오는 수많은 유튜브 영상 속에서 호기심에서 혹은 흥미로울 것 같아서 보는 클릭 행위에 이적성 여부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SNS의 특성상 누가 올렸는지도 알 수도 없고 콘텐츠물 삭제를 게시자에게 요청할 수도 없다. 그리고 '좋아요'와 '구독'을 기반으로 공유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같이 영상을 퍼 나르는 행위도 규제하기 어렵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는 두 가지를 제안해 본다. 첫째, 국민들의 자정노력이다. 우리 국민들은 인터넷 강국을 기반으로 하면서 정보에 대한 해석력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분단 반세기를 지나오면서 북한 정보에 대한 판단 역량도 자연적으로 습득해왔다. 주변에 북한 선전물을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모든 유튜브나 SNS 콘텐츠는 공유자와 구독자들의 댓글과 같은 평가를 담고 있다. 이러한 평가에 북한 콘텐츠가 특별히 취급될 이유가 없다. 북한 선전물 역시 온라인상에서 그에 해당하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최근 북한의 유튜브 콘텐츠는 정치성을 배제하고 있다. 북한의 선전관련 기구 역시 자극적이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선전물을 올릴 경우 평가받지 못한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둘째, 가짜뉴스는 분명히 규제되고 걸러져야 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어떤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비도덕적인 행위이다. 생산자가 부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가짜뉴스를 만들어 올리면 구독자들은 이를 전파시킨다.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바로 이동하거나 삭제한다. 이러한 SNS의 특성을 악용한 가짜뉴스들은 사회를 좀먹는 좀비와 같은 것이다. 북한과 관련된 가짜뉴스는 우리의 안보와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과 유포를 통제하는 조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의도된 세력이나 집단들에 의해 사회의 질서가 위협받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법적 불비는 전체적인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하고 북한 인터넷 선전물에만 한정할 것은 아니다.최근 흑인 용의자를 사망케 한 미국 경찰의 과도한 조치를 담은 동영상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면서 미국 내에 인종차별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2011년부터 중동과 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은 생활고에 따른 튀니지의 한 젊은 청년의 분신 영상으로 촉발되었다. 온라인상에 올려진 동영상 하나가 개인적인 삶뿐 아니라 국가구조와 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영상을 올리는 개인 혹은 집단이나 이를 운영하는 회사들의 도덕성이 중요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보는 시민들이 정보의 인포데믹(info-demic) 현상 속에서 비판적 독해능력(media literacy)을 함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미 200만~300만이 넘는 휴대폰이 북한에서 유통되고 있으며 최근 북한 방송 아나운서의 표정과 옷차림, 말투, 스타일이 달라지고 있다. 관광산업의 육성을 전략산업으로 삼고 있는 북한의 경우 이번 유튜브와 같은 선전물을 앞으로도 많이 유통시킬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북한 사회가 점차 개방화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아직은 통제적인 사회를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북한의 이러한 변화는 계속될 것이고 공동체적 방식을 통해 평화통일의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할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06-04 양무진

[춘추칼럼]하얀 제비꽃

주인 세례명 딴 '루치아의 뜰'은 공주 찻집모처럼 테레사 수녀님 방문 소식에 찾았다 우리문학관도 이미 다녀왔다며 담아온 사진관장이 모친생각 심은 꽃 수녀님도 아셨나모처럼 데레사 수녀님이 공주에 왔다는 전갈에 서둘러 외부 일정을 마치고 루치아의 뜰로 갔다. 루치아의 뜰은 공주의 옛 거리에 있는 찻집으로 오래된 한옥 하나를 고쳐서 만든 찻집이다. 공주의 바닥 사람들에게보다는 외부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잘 알려진 찻집이다. 왜 루치아의 집인가 하면 찻집 주인의 세례명이 루치아이기 때문이다. 짐작하시겠지만 루치아는 천주교 신자. 그래서 찻집 이름도 '루치아의 뜰'인데 이 집에는 그런 연고로 바깥에서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자주 찾아오신다.내가 찻집에 들어섰을 때 수녀님 세 분과 운전을 맡은 남자 한 분이 루치아 내외와 함께 있었다. 데레사 수녀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안의 수녀님이다. 마치 동화나라에서 등불 하나를 들고 이 세상으로 나왔다가 다시 이 세상의 등불로 바꿔 들고 동화나라로 돌아가는 아이와 같다.그렇구나. 데레사 수녀님에게는 우리 공주가 동화나라일 수도 있겠고 또 다른 세상일 수도 있겠구나. 그러기에 그렇게 수녀님은 수녀원에서 짬만 생기면 공주를 찾는 것이고 또 루치아의 뜰과 우리 풀꽃문학관을 방문하는 것이겠구나. 들어보니 수녀님 일행은 이미 풀꽃문학관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나 마침 월요일이라 직원이 출근하지 않았으므로 문학관 안은 들어가 보지 못하고 집 둘레와 꽃밭만 보았노라 한다. 그런데 일행 가운데 나이가 좀 드신 수녀님이 문학관의 꽃밭에서 제비꽃 사진을 여러 장 찍었노란다. 알고 보니 그 수녀님이 데레사 수녀님이 머물고 있는 수녀원의 원장 수녀님. "수녀님, 왜 제비꽃 사진을 찍으셨어요? 다른 꽃들도 많은데." "네, 보통 제비꽃은 보랏빛인데 문학관의 제비꽃은 하얀 색깔이더라구요. 그래서 찍었어요."그러하다. 우리 문학관에는 하얀 제비꽃이 있다. 있더라도 아주 많이 있다. 본래 문학관에는 하얀 제비꽃이 없었는데 문학관 관장의 일을 보는 조동수 선생이 다른 데서 캐다가 심어서 하얀 제비꽃이 살고 있다. 심더라도 아주 많이 심었다. 문학관 둘레 마당과 담장 아래에 촘촘히 가득 심었다. 그걸 또 야생화 연구가인 백승숙 여사가 와서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원장님, 이 제비꽃 이렇게 많이 심으면 안 돼요. 이 녀석들 번식력이 강해서 나중에는 아예 제비꽃 밭이 됩니다." 그래서 꽃을 심어준 조동수 선생의 눈치를 살피며 제비꽃들을 대충 뽑아냈다.결국은 지금 문학관 뜨락에 피어있는 모든 하얀 제비꽃들은 그때 조동수 선생이 심었는데 뽑지 않은 몇 그루 제비꽃들의 후손이다. 말하자면 조동수 선생의 제비꽃인 셈이다. 그래서 나도 더러는 그 꽃을 뽑지 않고 그대로 둔다. 그러면 왜 조동수 선생은 그렇게도 많은 제비꽃을 캐다가 문학관 뜰에 심었을까?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조동수 선생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절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이미 오래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므로 한 분밖에 남아 있지 않던 육친마저 돌아가신 것이다. 젊은 나이이고 집안 대소가도 많지 않아 두서없이 간소하게 어머님 상을 치렀다 한다. 적적하게 어머니 상여 뒤를 따라가면서 둘러보니 자기의 슬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더란다. 그때 문득 눈에 들어온 꽃이 길가에 피어있는 하얀 제비꽃이었다는 것이다.'그래, 내 슬픔을 알아주는 것은 너뿐이구나.' 그런 뒤로 조동수 선생에게 하얀 제비꽃은 어머님의 꽃이 되었고 어머님을 생각하는 꽃이 되었단다. 그러니 어찌 내가 문학관 뜰에 심은 하얀 제비꽃을 깡그리 뽑아낼 수 있었겠나. 몇 그루라도 하얀 제비꽃을 그냥 놔두기를 잘했다 싶다. 이런 조동수 선생의 마음이 해마다 하얀 제비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하얀 제비꽃이 조동수 선생의 어머니이고 조동수 선생의 마음이다. 이것을 원장 수녀님이 느끼시고 영혼의 손으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그래서 수녀님은 다른 예쁜 꽃들, 화려하고 큰 꽃들을 제치고 초라하고도 작은 하얀 제비꽃을 사진기에 담으신 것이리라.그러고 보면 또 수녀님 마음이 하얀 제비꽃의 마음이고 조동수 선생의 마음이고 또 조동수 선생 모친의 마음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세상의 일들은 참으로 깊고도 멀고도 아득하다. 유정하다. 서럽도록 아름답다. 노을 속으로 꽃잎을 싣고 가는 저녁 강물 하나를 본다./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

2020-05-28 나태주

[춘추칼럼]한 사람의 힘

코로나19는 지금 필요한 '생각으로의 초대'유예 활동·격리 시간 불안, 종식이후 삶은?대란도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에 주목 이제는 '공존·연대·희망·감동의 감염' 기대이탈리아 작가 파올로 조르다노는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2020)는 책에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새로운 전염병은 어쩌면 지금 꼭 필요한 '생각으로의 초대'일지도 모른다. 유예된 활동, 격리된 시간들은 그 초대에 응할 기회이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고? 우리는 단지 인간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 섬세하고 숭고한 생태계에서 우리야말로 가장 침략적인 종이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생각의 시간'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지, 어떻게 되돌아가고 싶은지 등을 생각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서 "이 모든 고통이 헛되이 흘러가게 놔두지 말자"고 말한다.정확한 지적이다. 이 '전염의 시대'에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거나 쓸모없는 생각을 한다. 그저 매일 업데이트되는 정보를 보면서 불안과 안도의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할 뿐이다. 그리고 불안을 야기하는 바이러스 확산 주범을 찾아 분노하고 비난한다. 그런가 하면 알 수 없고 어찌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빠져 있기도 한다. 사람들은 언제쯤이면 상황이 나아질 것인지,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묻는다. 하지만 묻는 이들도 알고 있다. 여기에 정확한 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그저 서로에게 정답 없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잠시나마 불안을 떨쳐보려고 애쓸 뿐이다. 수많은 예측은 빗나가고, 막연한 희망은 무너진다. 상황이 바뀌는 것은 없다. 우리가 원하는 일상으로의 복귀가 지연될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듯 하지만 다시 제자리에 서 있다. 이 지연과 반복을 견디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대부분이다.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의 한 복판에서 그나마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건너가고 있는 이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고, 여기까지 이르게 된 인류의 삶을 생각하고, 언젠가 종식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상황 이후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으면서 국가의 역할과 정체성,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대해, 수많은 방역과 검사와 역학조사, 진료 등을 통해 지방정부와 공공의료에 대해 생각한다. 일상의 변화에 따라 삶과 인생, 가족, 공동체, 생태환경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한다.그중에서도 '감염'과 '전염'의 근본적인 의미를 생각해본다. 언론에 보도된 '학원강사발 코로나19 감염 확산'이라는 감염경로는 '한 사람'이 어디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일터와 삶터를 통해 만나는 타인에게 일종의 '감염'이 진행되고, 감염된 주체는 또 다른 타인을 감염시킨다. 이렇게 반복되는 감염이 결국 전염으로 이어지는 것이다.모든 전염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한 사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이 귀하다는 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서운 전염병 대란이 고작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뜻한다. 지금 우리가 주목하는 한 사람은 대구 신천지 신도나 인천 학원강사의 사례처럼 부정적인 사례인 것은 맞지만, 역설적으로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생각해 보면 다른 상상이 가능하다. 바이러스 감염의 주범으로서 한 사람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회적 가치들을 감염시키고 확산시키는 '한 사람'을 상상하는 것이다.결국 '한 사람의 힘'을 생각하자는 말이다. 이때 '힘'은 일방적인 권력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효과'에 가까울 것이다. 한 사람이 무제한적인 힘을 행사함으로써 어떤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구조와 관계, 우연성, 상호성 등으로 구성된 복합적인 것이다. 한 사람이 의도하거나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시작점을 찍는 행위에 가깝다. '한 사람'은 악하고 부정적인 것의 숙주가 될 수도 있지만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나누는 최소이자 최선의 단위이다.그 '한 사람의 힘'을 주목해보자. 내가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 동물, 풍경에 보내는 눈빛과 몸짓, 말이 모여 그 사람이 감염되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또 다른 사람을 감염시킨다고 상상해보자.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 공존과 협력, 연대와 희망, 우정과 환대, 공감과 위로, 감동과 찬사를 전파하고 전염시키자./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20-05-21 권경우

[춘추칼럼]국민·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의 길

집권3년차 文정부 국정지지도 71% 최고치코로나 반사이익… 국민체감 정책성과 없어자칫 통합·공존의 호기 놓친다면 붕괴 의미이젠 용기·협치·겸손의 정책분석 해법 필요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3년(5월 10일)을 맞이했다. 집권 후반기로 들어섰지만 국정 운영 지지도는 71%(한국 갤럽 5월 1주 조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과거 조사한 역대 대통령의 취임 3주년 무렵 지지도는 박근혜 대통령 42%, 이명박 대통령 43%, 노무현 대통령 27%, 김대중 대통령 27%, 김영삼 대통령 41%, 노태우 대통령 12%였다.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70%를 넘은 건 지난 2018년 7월 이후 1년10개월 만이다. 전례 없는 압도적 지지 속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을 통해 남은 임기 2년 동안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겠다는 비전을 밝혔다.최근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는 지난 3년간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 때문이라기 보다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반사이익의 성격이 강하다.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자에게 그 이유를 물은 결과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가 53%로 가장 많았다. 그런데 정책 항목인 '복지 확대'는 4%에 불과했다. 대구·경북에서 긍정 대 부정이 53% 대 30%였다. 60대 이상에서도 그 비율이 64% 대 26%였다.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성과가 없고 전통적인 보수 진영에서조차 문 대통령 지지에 대한 긍정 평가가 상당히 높다는 것은 그만큼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제임스 데이비스(James C Davis)가 제시한 J-커브 이론을 적용하면, 코로나19 사태 해결에 대한 기대와 국민들이 체감하는 성취 간에 인내할 수 없는 격차가 커지면 민심이 폭발할 수 있다.문재인 정부 3년을 아주 냉정하게 평가하면 코로나19 방역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국민이 기대했던 성과는 아직 요원하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구상과 약속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지 못했고,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지 못했으며, 대통령부터 새로워지지 못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지 못했고, 보수와 진보의 갈등도 끝내지 못했으며, 대통령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지 않았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도 체감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통합과 공존'이 아니라 '분열과 독존'이 판을 쳤다.문 대통령이 그토록 갈망하는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한 도덕성, 예리한 역사의식, 저항하기 어려운 설득력, 누구나 희구하는 미래의 비전, 그리고 심금을 울리는 상징성을 토대로 '변혁적 리더십'을 펼쳐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과 대통령과의 관계는 승화되어 정치과정을 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국민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은 물론 국가가 지향하는 큰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국민의 에너지를 최대한도로 끌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용기와 협치, 그리고 겸손이 필요하다. 티머시 스나이더 미국 예일대 교수는 코로나 이후 인류가 경계해야 할 것으로, '전체주의 확산, 포퓰리스트 득세, 이념적 편 가르기, 사실을 무시한 선전·선동, 정부의 공포 마케팅' 등을 제시했다. 그는 "위기 상황인 지금이야말로 공포가 아닌,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냉철한 판단이 중요하다"면서 "코로나라는 위기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 정부가 무엇이든 해도 되는 기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선도형 경제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개척, 전 국민 고용 보험 실시, 한국판 뉴딜 구축, 연대와 협력의 국제질서 선도 등과 같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 못지않게 지금까지 추진했던 핵심 정책들이 왜 성과를 내지 못했는지 깊이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책 오류가 발견되면 정책 기조를 과감히 바꾸는 용기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강성 친문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지지와 성원을 받는 통합 대통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단언컨대, 겸손한 권력만이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 행동하지 않는 도전은 기만이고, 성과 없는 비전은 허구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20-05-14 김형준

[춘추칼럼]가짜뉴스는 공공의 적이다

과거 전쟁사는 '거짓 난무 정보전'이었지만첨단시대 '김정은 신변이상설'은 이해불가정부의 설명에도 계속 확산 무책임한 행태온라인 익명성 파급력 법·제도적장치 급해중국 고전 삼국지의 명장면은 누가 뭐라 해도 적벽대전이다. 수백만 대군을 이끌고 손권의 오나라를 침공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진 조조는 수군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거짓 항복한 방통의 조언대로 배들을 쇠사슬로 묶었다. 묶인 배들간의 왕래는 자유로웠으나 손권-유비 연합군의 불화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결국 전쟁에서 참패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이른바 '연환계'로 잘 알려져 있다. 적벽대전에서는 거짓 항복을 거짓 항복으로 역이용하는 책사들의 두뇌싸움도 흥미진진하다. 손권의 책사 주유는 조조의 부하인 채중과 채화 형제가 거짓 항복한 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심복인 황개를 매질하고 내쫓는다. 내쳐진 황개가 조조에게 투항하자 조조는 그럴 리가 없다며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손권 진영에서 황개가 매질 당하는 것을 목격한 채중·채화 형제가 사실이라는 점을 조조에게 몰래 전하자 조조는 황개의 거짓 항복을 진심으로 믿게 된다. 주유가 자신의 오른팔과도 같은 황개를 심하게 때려서 거짓 투항케 했다는 점에서 '고육책'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하게 되었다. 이렇듯 과거 전쟁사에서는 수많은 가짜뉴스를 둘러싼 정보전이 존재해 왔다. 나쁜 소문을 퍼트려 장군과 군사들을 빼오는가 하면 작은 정보도 크게 부풀려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정보의 진위와 옥석을 가릴 만큼 정보 수집의 양과 방식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초고도 정보화시대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뜬금없이 '김정은 위원장 신변이상설'과 같은 정보의 인포데믹 현상을 경험하였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한반도 상공을 날고 있는 특수정찰기도 없었던 삼국지 시대에는 그렇다 치자. 요즘이라면 곧 들통 날 가짜뉴스들이 계속 확대·재생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신변이상설, 사망설에 휩싸였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20일 넘은 침묵을 깨고 공개 활동을 통해 건재함을 과시하자 무분별한 가짜뉴스의 생산과 확산에 대한 비판론이 실로 크다. 특히 이들은 우리 정부가 충분한 정보자산을 가지고 다각도로 분석한 결과를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들이 믿는 특정 정보 소스에만 의존하면서 의혹만을 부추기는 경향을 보였다. 연예인 SNS에 악성댓글을 다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실로 무책임한 행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가짜뉴스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정보가 너무 많아 옥석을 가리기 힘들어지는 소위 정보의 홍수현상 때문이다. 또한 통신기술의 발달로 정보의 이동수단이 온라인으로 집중됨으로써 가짜뉴스의 피해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카더라'하는 루머에 상처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연예인에서부터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 안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외교안보 분야에 이르기까지 유무형의 피해는 실로 무차별적이다. 적벽대전의 패배에서 보듯 정보 하나하나가 전쟁의 승패와 국가의 흥망까지도 좌우하는데 지금은 오죽하겠는가? 문제는 가짜뉴스 생산과 확산의 보이지 않는 커넥션에 대한 페널티 부과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들 세력은 특정 자본을 매개로 하고 있어 자신들은 전혀 손해를 보지 않는다. 가짜뉴스로 판명되어도 소리소문 없이 잠적했다가 얼마 지나서 또 다른 의혹들을 제기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이를 활용할 의도가 있는 한 이러한 가짜뉴스는 계속 생산될 것이다. 가짜뉴스 생산과 확산에 대한 법·제도적 장치 마련이 되지 않는 한 가짜뉴스는 온라인이라는 익명성과 파급력을 타고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생활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건전성을 좀먹게 될 것이다.이번에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신변이상설이 불거짐으로써 그가 건강하다는 것을 우리 정부가 해명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정부가 특이동향이 없다고 해도 믿지 않으니 공개해서는 안될 전략자산도 은연 중에 드러나게 되었다. 전략자산이 없었던 조조도 스파이를 심어 상대편의 의도를 이중·삼중으로 파악하는데 노력했다. 전 세계 유일 폐쇄국가인 북한과 관련된 정보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신중해야 한다. 통일 전 동독 주민들은 서독 TV를 보면서 서방세계의 자유분방함을 동경했다고 한다. 자극적인 가짜뉴스가 아니라 북한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전달하는 가치 있는 '진짜뉴스'는 없는 것일까? 가짜뉴스가 공공의 적이라고 인식할 때 진짜뉴스가 나온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05-07 양무진

[춘추칼럼]좋아요 어법

거의 날마다 중학교·공공기관서 문학강연10대·20대 젊은층 어법 분명·깔끔 '자신감'부디 '좋다'는 말을 자주·많이 하며 살아야삶·세상 조금씩 좋아지고 긍정적으로 될것최근 몇 년, 청소년들을 만나고 젊은이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기회를 많이 가졌다. 아니, 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날마다의 생활 자체이기도 했다. 거의 날마다 전국의 중학교나 공공기관을 찾아다니면서 문학강연을 했기 때문이다.젊은이들, 특히 10대나 20대 젊은이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동안 새롭게 느끼고 배운 것이 있다. 그들의 어법이 매우 분명하고 깔끔하다는 것이다. 주저함이 없고 굴절하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라는 말은 아니다. 말하자면 자신감 같은 것이다.이것은 매우 반갑고 좋은 현상이고 하나의 바람직한 변화이다. 그만큼 그들의 내면세계가 클린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여유로움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예를 들어 '좋다'는 말도 그렇다. 예전 사람들은 직접 대고 좋다고 말하지 않았다.약간은 미온적이고 보류하는 쪽의 표현이라 할까. '좋은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정도로 에둘러 얼버무렸다. 그러나 요즘 친구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냥 곧바로 '좋아요'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것도 번번이 그렇게 말하고 주저하지 않는다.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바로 이거야.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어법이야. 그만큼 우리의 삶의 형편이 좋아지고 젊은 사람들의 세상이 밝아진 것이다. 이러한 어법 하나에도 우리의 소망이 들어있고 내일에의 가능성이 숨쉬고 있음을 본다.나의 시 가운데 이런 짧은 시 하나가 있다. '좋아요/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좋다'란 이름의 작품이다. 언뜻 보면 뭐 이런 글이 무슨 시인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분명히 시이고 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시를 한 번 들여다보자. 시의 제목까지 합쳐서 총 15개 글자로 구성되어있다. 그런데 '좋다'는 뜻의 단어가 역시 제목까지 합쳐서 네 번이나 나온다. '좋다'란 말이 아닌 말은 '하니까'와 '나도' 두 개의 단어뿐이다. 시 전체가 '좋다'란 단어가 변형되어 반복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그런데도 독자들은 이 시에 나름대로 감동이 있다고 반응한다. 지금 우리는 서로서로 좋다는 느낌을 많이 가져야 하고 또 그렇게 말하면서 살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렇다. 아니다, 싫다가 아니고 그렇다, 좋다이다. 그래야 한다. 긍정이고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처음 내가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우리집 손자 아이 때문이다. 세 살쯤 되었을까. 마침 아이가 말을 배울 때였는데 우리 집에 오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만화영화를 자주 보았다. 아이가 좋아라, 보는 프로그램 가운데 붉은색 커다란 부리를 가진 앵무새가 나오는 영화가 있었다.그 앵무새는 툴툴거리기를 잘하고 화를 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영화를 자주 보아서 그랬을까. 아이에게 말을 걸면 제일 자주 하는 말이 '싫어요'였다. 그러면 안 되는데….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부르는 데도 '싫어요'라고 말하는 저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말을 할까.그런 생각을 바탕에 두고 쓴 시가 바로 '좋다'란 시이다. 그렇다면 이 시를 한번 '싫다'는 말을 넣어서 바꾸어 읽어보자. '싫어요/ 싫다고 하니 나도 싫다'. 대번에 분위기가 달라지고 세상 모습까지 뒤집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렇게 말 한마디가 중요하고 무섭다.이제 우리는 부디 좋다는 말을 자주,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하겠다. 나아가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하겠다. 좋다는 말이나 긍정적인 말을 자주, 많이 하면서 살다 보면 우리들의 삶이나 세상이 조금씩 좋아지고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지 않을까.정말로 그건 그렇다. 상황이나 삶이 긍정적이고 좋아서 좋고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좋다는 말, 긍정적인 말을 자주 하고 자주 들어서 상황이나 삶이 좋은 것이 되고 긍정적으로 바뀌는 세상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세상이 아닐까.그것이 진정 그러할 때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좋아요 어법'은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꿈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부디 우리 좋다는 말을 자주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 회장)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 회장)

2020-04-30 나태주

[춘추칼럼]뉴노멀사회와 수축사회

코로나19로 인류의 삶 총체적 대변동 시기우리는 더이상 과거 일상으로 못 돌아간다미래 현실·가상이 중첩된 '제3의 자리' 전망국가·경제 변화 각자도생의 '낯선세계 문턱' 우리는 과거의 일상(normal)을 잃어버렸고, '뉴노멀(New Normal)'이라고 하는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직면하고 있는 '뉴노멀'이 일종의 트렌드라기보다는 인류의 삶을 통째로 바꾸는 중요한 개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상황은 어느 특정한 지역이나 분야,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전지구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문제라는 점에서 총체적 대변동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그렇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어떤 삶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과거를 회상하거나 추억하는 것은 그것이 사라져서 지금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우리의 삶터를 바꾼 '신도시'와 '아파트'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살던 동네가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몇 년 후 그 자리에는 뉴타운이나 신도시가 들어서곤 했다.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렇게 우리의 삶과 사회는 바뀌어왔다. 그럼에도 지금의 대변동은 전혀 다른 충격을 던지는 것은 분명하다.최근 김호기 교수는 이중적 뉴노멀의 미래를 전망했는데, 경제 영역의 불확실성과 국가의 귀환, '제3의 자리'로 이동하는 사회였다. (국민)국가와 경제의 변화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지만, 사회에서 '제3의 자리'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는 개인적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이러한 흐름이 함의하는 바는, 코로나19 광풍이 그치면 우리가 돌아갈 자리가 옛날의 자리가 아닌 제3의 자리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제3의 자리는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연결이 강화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더욱 중첩되는 공간으로 특징지어질 것이다."현실세계와 가상세계, 혹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연결되거나 중첩되는 공간으로서 제3의 자리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두 세계 사이에서 어떤 대안이 나올 것인지 궁금하다. 이 문제는 국가와 경제(시장)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본다. 이번 사태로 분명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지만, 여전히 세계화와 지역화는 치열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또한 단기적으로 국가의 귀환은 당연해 보이지만, 국가의 역할과 기능, 시민의 역할과 정체성의 문제는 또 다른 논의를 필요로 한다.그런 점에서 2018년 말 출간된 '수축사회'(홍성국 지음/메디치)는 중요한 문제의식을 준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 '낯선 세계의 문턱에서'라는 부제를 달았다.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는 '팽창사회'였다면, 2008년 금융위기 전후로 '수축사회'로 진입하면서 제로섬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수축사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이기주의, 모든 분야에서의 투쟁, 현재에만 집중하는 태도, 팽창사회를 지향하는 집중화, 심리적 문제 등.'수축사회'는 어쩌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수축사회를 돌파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인류 모두가 이타적으로 바뀌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타적으로 바뀐다는 것은 시스템의 문제이기 이전에 마음의 문제이다. 사람들이 어떤 욕망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사회는 달라진다. 따라서 경제적자본 이전에 사회적자본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팽창사회에서 붙잡고 있던 효율성과 합리성이 아닌 도덕과 윤리를 통한 사회적자본의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우리는 '낯선 세계의 문턱'에 서 있다. 결국 각자의 삶을 살펴야 한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누구와 관계를 맺고, 삶이라는 일상을 무엇으로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이것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해야 하는 물음이다. 개인의 질문이 우리의 질문으로 바뀔 때 출구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순서를 잊지 말자. 시장과 국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 다음은 앞이 보이지 않는 이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새겨들을 만하다."나는 어두운 인간 세상의 그림자를 스스럼없이 당신 머리 위로 던져 주겠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 어두운 것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그 안에서 당신에게 참고가 될 만한 것을 끄집어 내십시오."(나쓰메 소세키, '마음' 중)/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20-04-23 권경우

[춘추칼럼]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라

민주당, 총선 포함 4차례 승리한 최초 정당보수 산업 → 진보 민주세력으로 교체 함의그러나 현재·미래 권력간 갈등 충돌은 철칙연말 본격화 개연성 …협치·공존만이 살길문재인 정부 집권 중반 들어서 치러진 '중간평가' 성격의 총선에서 민주당이 전례 없는 압승을 했다. 국민들은 코로나 국난 앞에 '견제'보다 '안정'을 택했다. 민주당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에서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를 포함해 네 차례 연속 승리한 최초의 정당이 됐다. 180석의 '슈퍼 여당'이 된 민주당은 중앙정부, 지방정부, 국회까지 독차지하면서 개헌 빼고는 다 할 수 있게 됐다. 모든 법안·예산·정책을 정부·여당 마음대로 추진할 수 있고, 단독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가 가능해 국회선진화법도 무력화 시킬 수 있다. 이번 총선 결과가 주는 함의는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주류 세력인 보수 산업화 세력이 진보 민주화 세력으로 교체되었다. 기존의 '보수·진보 양당 체제'가 무너지고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진보 좌파 1.5 정당 체제'가 구축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회에서 민주당이 차지하는 의석은 1이고, 그 이외 정당들은 모두 합쳐도 '.5' 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경우다. 일본 자민당이 1955년 창당부터 50년간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 이런 정당체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2018년 8월5일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국 순회 연설회에서 "2020년 압도적 총선 승리와 2022년 재집권을 통해 앞으로 20~30년은 집권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힌 적이 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서 벗어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용어는 미국의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세일러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기업의 M&A 경쟁에서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에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에 많이 사용된다. 특정 정당이 선거에서는 승리했지만 결과적으로 패배를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을 빗대어 사용될 수 있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공천 파동에도 불구하고 153석을 획득했다. 여기에 '친박 연대' 14석과 '친박 무소속 연대' 13명을 더하면 범여 의석은 180석을 차지하게 됐다. 그런데 총선에서 승리한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현재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과 미래권력인 박근혜 전 대표와 내전이 시작됐다. 필자가 2010년 10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소속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정권교체라는 응답이 무려 33.6%나 됐다. 박 전 대표는 전략적으로 국민 지지를 확대하기 위해 시종일관 '여당속의 야당'이라는 이미지 마케팅을 구사했다. 현직 대통령과의 이런 차별화 전략이 2012년 대선에서 인기 없는 여당인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해 51.6%의 득표로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한국 정치에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충돌하는 것은 철칙이다. 조국, 임종석 등과 같은 현재 권력인 대통령 세력(친문)과 현재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며 미니 대선인 종로에서 낙승한 이낙연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미래 권력(친이)간에 대권을 둘러싸고 갈등이 첨예화할 수 있다. 이런 갈등은 문재인 정부 3년6개월이 끝나는 시점인 올 연말부터 본격화할 개연성이 있다. 여기에 민주당과 비례대표 위성 정당을 만들려다가 민주당으로부터 팽 당한 원로 진보 인사들이 중심이 된 정치개혁연합 세력과 친문·친조국 세력간의 갈등도 심화할 수 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진보의 분열이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 분명, 절대 권력은 절대 분열될 수 있다.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분명, 민주당이 이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긴 것이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압승은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여당은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간 성과에 대해 심판받았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위험하다. 민주당이 승리에 도취해 '협치와 포용'보다 극단과 배제의 정치에 몰입해 갈등과 분열을 가져오면 그것이 바로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 이제부터 통합과 공존의 정치에 앞장서야 미래가 있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20-04-16 김형준

[춘추칼럼]동서독 보건의료협력 교훈

북한 코로나19 확진 한명도 없다 주장하나일부 방역·의료체계 감안 적잖은 피해 추측동독도 과거 소극적 협정 통일후에나 성과 차제에 北 관심분야 우선 협력 제도화해야북한은 지난 3월17일 평양에 종합병원을 착공하기로 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참석한 착공식에서 김 위원장은 "인민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하면서 올해 내로 이를 완공할 것을 지시하였다. 연설 중 눈에 띄는 것은 북한의 최고 지도자 스스로가 "수도인 평양에마저 현대적인 의료보건시설이 없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실토한 점이다.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 확산에 북한은 확진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북한의 방역 및 의료체계를 감안할 때 북한도 적지 않은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무성하다. 차제에 남북 방역 및 보건의료분야의 협력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과거 동서독은 어떠했을까? 서독의 동방정책으로 1972년 동서독은 우리의 기본합의서와 같은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교통, 환경, 보건, 체육 등 여러 분야에서 부속협정을 맺었다. 1974년 동서독 보건협정에서는 전염병의 예방과 퇴치에 있어 정보를 교류하기로 하였고, 의약품, 의학 기술품, 소모품 등의 내용을 공유하기로 하였다. 앞서 1973년에는 접경지역의 감염성 질환이나 재난, 환경오염 등이 상대국에 미칠 때 협력하기로 한 공동재난과 관련된 협정도 체결되었다. 사실 이러한 분야의 협력은 동독이 우선적으로 체결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서독에 비해 열세에 있었던 동독은 다른 분야에 비해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이 동독 내에 미칠 영향을 가장 낮게 봤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협정에도 불구하고 통일 전까지 동서독 보건의료 협력분야에 큰 진전은 없었다. 동독이 여전히 소극적인 데다가 국제정세의 악화로 정치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남북간 보건의료분야의 협력은 어떤가.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체제위기 이후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를 경험하였다. 또한 중앙집권적 의료배급 시스템으로 인해 여전히 의약품 부족, 의료시설과 의료기술의 낙후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의료보험 체계의 부재로 도·농간, 계층별 보건의료 혜택이 상이한 것도 사실이다. 2000년대 이후부터 우리는 북한에 대규모 식량과 비료지원을 추진한 바 있고 이후 보건의료분야에 취약한 임산부, 영유아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지원을 지속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로 국제기구나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었고 당국 차원의 구체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지난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의 후속조치로 남북 보건 당국 간에 보건의료 분과회담을 개최된 바 있다. 전염병 방지를 위한 정보교환, 결핵과 말라리아 등 치료협력, 중장기적인 방역과 보건의료협력을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하였지만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이후 추가적인 협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방역과 보건의료체계는 일거에 어느 수준으로 올릴 수 없다. 많은 재정이 필요할 뿐 아니라 전반적인 시스템의 질이 동시에 향상되어야 한다. 병원이 만들어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안을 채워야 할 의료기기와 의료진, 의약품과 기반 시설 또한 선진적인 수준이 되어야 한다. 남북한이 동등한 수준의 복지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십년간의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 독일의 경우 결국에는 통일이 되어서야 보건의료 등 양측의 복지수준을 맞추는데 있어 수천억원의 재정이 투입되었다. 단순히 재정적인 투입을 넘어 남북이 생명과 건강 공동체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남북간에 협력을 해 나가야 함은 분명해 보인다.우리는 아직까지도 코로나19와 지난한 싸움을 지속하고 있지만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코로나 확산에 대응하고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면서 우리가 남북간 보건의료 협력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과거 동독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의 소극적인 자세를 충분히 예견해야 한다. 북한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체제에 부담이 되는 사항은 뒤로 넘기고 예방의학, 한의학, 전염병 치료 등 북한이 관심있는 분야의 정보교류와 기술적인 분야의 협력을 우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세계보건기구(WHO) 등과 같은 국제기구와 연대하여 의료장비와 기술의 지원을 병행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교류가 보다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인적교류가 수반되고 정치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북이 상호 협력할 수 있는 제도화의 과정을 마련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04-09 양무진

[춘추칼럼]사랑의 거리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방 배려·존중 필수미투운동후 사람들 관계 더 조심스런 세상코로나19 확산에 '사회적 거리' 까지 등장이 모든 간격들이 생명을 살리는 해법되길예전, 젊어서 고향에 살 때의 기억이다. 금강 하구 철새도래지로 가끔 청둥오리 사냥을 가는 젊은 축들이 있었다. 그들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백조에 대한 것이다. 백조는 우리 말로는 고니라고 불리는 몸집이 크고 털 빛깔이 새하얀 새이다.녀석들은 갈대숲이나 습지에 무리 지어 앉아있다가 사람이 다가가면 어김없이 사람이 다가간 거리만큼 뒤로 물러난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한 방책이다. 말하자면 생명의 거리인 셈이다. 동물치고는 참 영리하고 똑똑한 녀석들이라 하겠다.인간 세상도 그렇다. 아무리 좋은 사이라 해도 너무 거리가 가까우면 진력이 나고 싫증이 나게 되어 있다. 좋은 사이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려면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친구나 이웃이나 직장 동료 사이도 그렇고 심지어 애인 사이도 그렇다. 가까운 사이 좋은 사이일수록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세심한 조심이 필요하다. 그것은 한집에 사는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상호 존중할 것은 존중하고 삼갈 것은 삼가고 눈감거나 비켜 갈 것은 또 그래야 한다. 그러기에 옛날 어른들도 부부유별이라 했다.부부 사이는 구별이 안 되는 밀접한 인간관계다.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것은 매우 평범하고 당연한 것 같지만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교훈이라 하겠다. 오랫동안 사람들과 사귀면서 내가 지키고 있는 원칙 같은 것이 있다.누구하고든 거리를 지킨다는 것이다. 특히 좋은 사람, 내가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런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지만 지나칠 정도로는 가까이 가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도 모조리 하지는 않고 조금은 아껴 둔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가 미온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연유로 해서 어떠한 경우에도 나빠지지는 않는다. 심지어 오래 만나지 못하고 헤어져 있는 동안에도 좋은 느낌으로 그 자리에 그냥 멈추어 설 수 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좋은 관계로의 새로운 복원이 가능하다.이것을 나는 사랑의 거리라고 말하고 싶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말은 생텍쥐페리의 말이다. '사랑은 둘이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앉아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좋은 관계로 오래 함께 살아온 부부 사이를 말해주는 것도 같다.미투 운동이 일어난 이후로 사람들 관계가 많이 소원해진 경향이다. 언어폭력이든지 성추행이란 말까지 나돌아 특히 남녀 사이가 많이 경직되어 있다. 사랑한다는 말, 좋아한다는 말이 얼마나 따스한 말이고 좋은 말인가. 그러나 그런 말조차도 조심스러운 세상이다.그야말로 이것은 마음의 거리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사랑의 거리가 아니고 강제로 만들어진 마음의 거리다. 왜 우리가 이 좋은 세상을 살면서 서로 사랑한다는 말, 좋아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살게 되었는가. 많이 서글픈 마음이다.최근엔 코로나19 전염병 때문에 사회적 거리란 것이 다시 생겨났다. 일상의 평범한 삶은 멈추고 갑자기 이상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야말로 우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삶과 살아보지 않은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신종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거리를 두어야 하고 신체적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방책이다. 우리 풀꽃문학관만 해도 계속 휴관 중이다. 뜨문뜨문 관광객들이 오고 아는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갑지가 않다.멀리서 바라보며 인사하고 좋은 시절이 오면 다시 오시라 인사를 보낸다. 물론 악수도 하지 않고 사진도 같이 찍지 않고 책을 들고 와 사인을 해달라고 해도 다음에 하자고 미룬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참 많이 소원해진 느낌이다.어쨌든 다 좋다. 고니들에게는 생명의 거리, 나에게는 사랑의 거리, 미투 사태에는 마음의 거리, 코로나19에는 사회적 거리, 모든 거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음의 단절이 있을 수 있고 소통의 부재가 있을 수 있겠다.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 모든 '거리'들이 사람을 살리는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조금쯤 섭섭함과 공허함과 불편함이 있겠지만 그것들을 넘어서 생명의 거리, 소생의 거리, 끝내는 사랑의 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나태주 시인나태주 시인

2020-04-02 나태주

[춘추칼럼]어둠 속의 희망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막연한 불안·두려움지구촌 전체의 일상이 대혼란·격변의 시대문제는 언제끝날지 모른다는 사실 인생 닮아각자 성찰로 공동체의 선한 영향력 쌓을때"미래는 어두운데, 내 생각에는 이것이 대체로 미래가 띨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다."1915년 1월18일, 버지니아 울프가 쓴 일기의 한 대목이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이다. 지금처럼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왠지 위로가 된다. 재난과 위기에만 그런 것은 아니고 미래는 항상 어두운 것이다.'코로나19' 사태는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세계와 공동체에 대한, 자본과 경제에 대한, 노동과 시간에 대한 사유를 통째로 바꾸고 있다. 주변의 일상은 그야말로 대혼란과 격변의 시대이다. 모든 학교가 휴교를 하고, 대학은 온라인강의로 대체되고 있다. 영화관을 찾는 사람도 급감해서 단축 운영 및 휴관이나 폐관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공공시설은 대부분 휴관 상태이다.문제는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예측은 있지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게 보면 지금 사태는 우리의 인생과 많이 닮았다. 우리의 삶 역시 언제 끝날지 모른다. 평균수명과 기대수명으로 90세, 100세를 예측할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질병으로, 누군가는 사고로 일찍 죽는다. 이 불확실성은 우리를 어둠으로 이끈다. 그 결과 불안과 두려움을 낳는다. 그 불안과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하거나 아프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어쩌면 삶의 여정에서 어둠은 당연한 것이기에 그 속에서 '희망'을 떠올린다.'어둠 속의 희망'이라는 책에서 리베카 솔닛은 말한다. "희망하는 것은 도박하는 것과 같다. 희망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산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기에, 희망하는 것은 두려움의 반대다. 희망이란, 약속되거나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솔닛이 생각하는 '희망'은 '세계의 상태'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성취와 성공 가능성이 아니라 '선한 일을 바라보고 그 일을 해나가는 능력'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이 흔들리는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흔들리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지키는 일이다.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좀 더 삶의 근본을 생각하게 된다. 개인은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우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개인과 공동체는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노동을, 시간을, 돈을, 기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삶과 죽음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다음은 리베카 솔닛의 책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어느날 아침 비를 맞으며 케네디의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노라니 참으로 바보 같고 부질없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여성파업' 소속의 그 여성은 말했다. 몇 년 후 그는, 가장 주목받는 반핵행동 중 한 사람이 된 벤저민 스팍 박사가 자기 삶의 전환점은 한 작은 무리의 여성들이 비를 맞으며 백악관 앞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어둠 속에서 희망을 만드는 일은 대단한 성공이 아니라 거대한 악을 제거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지키고 서 있는 일이다. 누군가는 하찮은 것이라고 비웃을지라도, 비록 큰 목소리는 아닐지라도 작은 위로와 격려의 문자를 보내는 것처럼. 그 일이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선을 향해, 그렇게 선한 영향력을 하나씩 쌓아갈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만약 그것을 일상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면 비록 연약할지라도 작은 승리를 만들어가야 한다. 정치와 사회 각 영역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어떤 기준으로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서로의 마음을 살피고 배려하는 일, 서로의 필요를 나누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미래를 향해 걸어갈 수 있는 희망이 아니겠는가./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20-03-26 권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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