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학생 '자봉' 이대로 좋은가?

대부분 혈세로 치르는 단체의 '행사 보조'중·고생 함양할게 없는것 많아 '재고' 필요등급·경쟁 치열·위화감 조장 등 부작용만진정 없애려면 대입 필수조건서 제외해야자원봉사 줄임말로 '자봉'이 널리 회자된다. 자원봉사는 '개인 또는 단체가 지역사회·국가 및 인류사회를 위하여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대가 없이' '자발적', 이거 되게 힘든 일이다. 어쩌면 '자봉'은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대가 없다'지만 실상은 있고, '자발적'이라지만 본질적으로는 강제적인 봉사행위들을 뜻하는 신조어일지도 모른다. 사실 '대가 없는' 것도 문제다. 자본주의(민주주의) 사회의 최고 덕목은 일한 만큼 받는 것이다. 모든 부당한 노동문제는 노동한 만큼 대가를 주지 않았거나 얻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져야 마땅한 사회에서 대가를 받지 않는 노동의 범람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컨대,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다. 일자리가 느는 게 아니라 줄어든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작금에 '자봉'으로 충당되는 일들에,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주면, 더는 자원봉사일 수는 없겠지만, 일자리는 늘어나고 소비경제는 개선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학생의 자봉은 확실하고 분명한 대가를 받는다. 봉사시간 혹은 봉사점수. 게다가 학생들의 '자봉'은 자발성을 매우 의심받는다. 대학입학과 각종 공무원·취직시험에 자봉을 필수조건으로 만든 자들의 취지가 무색해진 지 오래다. 자봉은 그저 더욱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공무원이나 대기업 회사원이 되기 위해 절대적으로 갖춰야 할 스펙일 뿐이다.마침내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만 13~18세의 청소년은 학생이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회'를 이룩했다.(물론 여전히,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공부 대신 노동을 하는 청소년도 상당하다.)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학생을 누가 '자봉'이란 이름으로 무료노동의 세계로 내몰았는가? 그들이 '자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숭고한 가치, 정말 그런 것을 학생이 얻는다고 보는가? 설령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왜 그걸 학교에서 배워야지, 무료노동판에서 얻으라는 건가? 공부는 학원 가서 하듯이 인격도야는 사회 가서 하라는 건가? 도대체 학교는 왜 있는 건가?자봉에도 소위 등급이 있는 모양이다. 알짜(지속성이 있고 시험관에게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자봉은 경쟁이 치열하기도 하지만 결국 스펙 넘치는 부모를 가진 학생에게 주어진다. 시험관이 별로 쳐주지 않지만 시간은 채울 수 있는, 배경 없는 평범한 중·고등학생이(학생 본인이 아니라 부모님이)그나마 쉬이 구할 수 '시간' 자봉은 대개 행사보조다. 국가보조금을 받는 무수한 단체들이 각종 행사를 꾸준히 벌이기 때문이다. 대개 선착순이기 때문에 행사정보를 빨리 얻고 빨리 신청하면 된다. 국민혈세 받아서 그 행사 치르는 단체가 미래를 이끌어나갈 국민(청소년)을 무보수로 부려먹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다른 자봉은 몰라도 중·고등학생의 자봉만은 재고가 필요하다. 학생이 자봉을 통해 함양할 게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부정적인 면이 크다. 학생(부모)의 등급을 가르는 기준으로 작용해 치열한 경쟁과 학생 간의 위화감을 조장할 뿐이다. 자봉 때문에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청소년은 왜 꼭 편의점, 피시방, 주유소, 식당 같은 데서만 일해야 한단 말인가? 일을 해야만 학교에 다닐 수 있고 생활이 가능한 청소년에게 현재 '자봉'으로 충당되는 일자리를 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학생은 공부(자아계발과 품성과 인격을 넓히기 위한 활동 포함)하고 독서해야 하는 이들이다. 공부 안 하는 시간은 놀아야 한다. 학생이 노는 게 그토록 불안하고 두려운가? 우리가 학생이었을 때를 생각해보자.자원봉사가 아닌 자봉이 진정 사라지려면, 대입 시 필수조건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자봉 때문에 얻는 게 있는 자들은 자봉시스템을 유지하려고 애쓸 테니 쉽지 않을 테다. 조금씩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어른들끼리 대가를 주고받으며 일하자. 학생인력이 꼭 필요하다면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주자./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5-23 김종광

[춘추칼럼]지역문화와 학습공동체

한국사회는 다양한 영역에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인구의 급격한 변화, 기술 발달에 따른 사회 환경의 변화, 압축 근대화와 도시화에 대한 대응 등은 단순한 국면 전환을 넘어 사회의 근본적인 전환으로 다가온다. 특히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담론은 우리 인생의 노화처럼, 알고 있지만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다. 물론 중앙 정부 차원에서 '도시재생'이라는 사업에 50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준비함으로써 위기에 대한 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사업 주체에 따라 도시재생이 실제로 도시를 바꾸고, 지역을 살리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남는 의문은 특정 지역이나 계층이나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라는 공동체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 가운데 주목하는 것으로 대학과 지식사회의 풍경이 있다. 현실은 '풍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처참하고 가혹하다. 작년 대비 올해 대학의 강좌수는 6천655개 줄었다. 그 수업을 감당하던 시간강사들의 비명소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들은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자신과 가족만 들을 정도의 신음소리로 이 찬란한 5월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문제가 기본적으로 대학의 문제이자 국가 학문정책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그 영역에서 대안을 강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동시에 여러 대안 중 하나로 지역문화 차원에서 지식연구네트워크와 같은 공동체를 모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식사회의 문제를 지역문화생태계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안을 찾자는 말이다. 지역사회는 교육과 복지, 문화, 환경, 의료 등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현안들이 펼쳐지는 곳이라는 점에서, 파편적이고 전문화된 지식만 넘치는 사회에서 총체적 지식의 향연을 지역사회에서 만들어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식의 문제를 대학과 지식인 등 특정 주체에게 '위탁'해 왔던 게 사실이다. 이제 지식생산의 구조와 방법을 지역문화 생태계 구조에서 고민할 때가 되었다. 지역문화생태계 관점에서 그동안 마을만들기와 마을공동체 복원사업 등은 혁신적인 사례뿐만 아니라 무너져가는 공동체를 살리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은 피로감에 물들어 있음을 보게 된다. 아무리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하는 활동과 주체는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대안이 '학습'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활동을 넘어 학습공동체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공동체의 학습은 단순한 지식과 정보의 공유 차원이 아니라 지식과 토론을 통한 공동체의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이때 학습공동체의 물리적 토대는 도서관과 동네책방, 카페 등 다양한 공간을 생각할 수 있다. 특히 도서관은 공공도서관뿐만 아니라 사립작은도서관 등이 촘촘하게 되어 있는 곳도 많다. 평생학습기관도 중요한 공간이자 자원이다.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공간이자 학습의 공간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가 배우는 공간이다. 지식인과 대중, 전문가와 일반인, 예술가와 주민 등의 구분은 이제 의미가 없다. 우리는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지역사회라는 특정한 시공간적 경험을 공유하는 공동체에서 발휘될 수 있는 일종의 '선한 영향력'이다.다음으로 지역마다 편차는 있지만 대학과의 연계를 통해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대학과의 연계는 대학에 갇혀 있던 교수와 연구자, 학생들이 실제 지역을 경험할 수 있게 되고, 지역사회에서는 지역과 아무 관련성이 없는 외부의 전문가를 불러 일회성 행사를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판문화진흥원은 '인문활동가 지원사업'을 전국 단위로 수년째 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전문가들이 지역사회 차원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과 성과가 지금 하는 것처럼 개인연구자에 대한 일시적 인건비 지원 형태로 그친다면 '인문활동'은 지역의 자원으로 축적될 수 없을 것이다. 인문활동가 사업을 통해 발굴된 지식연구자들은 지역의 도서관과 독서동아리, 시민교육, 평생학습, 예술가 등 다양한 자원들과 연계할 수 있는 출구 전략이 절실하다. 지식인의 역할과 임무를 묻는 시대는 끝났다. 지식인이 아니라 연구자로서 혹은 전문가로서 다양한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삶의 공간에서 일상의 문제를 고민하는 차원의 실천이 필요하다. 대학이라는 공간을 넘어 지역문화 차원에서 혁신적인 모델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지역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짜 지식이 필요한 시대이다. 마을공동체, 시민자산화, 사회적경제, 공공미술, 문화예술교육 등 할 일이 태산이다. 지식이 필요한 곳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이다.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9-05-16 권경우

[춘추칼럼]5무(無) 늪에서 벗어나야 성공한다

지지층만 챙기고 반대층 배제 '통합 상실'62% '경제정책 잘못'·협치없는 적폐청산책임없고 자기 확신만·현실외면 이념치중문정부가 성공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들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이했다. 5년 단임제 국가에서 국민들은 집권 2년이 되면 초기에 갖고 있던 새 대통령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접고 정부의 능력과 성과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고 심판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을 맞아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은 45%로 김대중 전 대통령(49%)에 이어 2위였다. 그러나, 취임 직후 80%대의 높았던 지지가 40% 포인트 가량 급락했다. 역대 대통령처럼 처음엔 화려했지만 종반에는 초라하게 전락하는 '시화종빈'(始華終貧)의 정부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왜 문 대통령 지지율이 이렇게 급락했을까? 치명적인 다섯 가지의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첫째, 약속만 있고 실천은 없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지지층만 챙기고 반대층은 배제함으로써 통합과 공존의 길을 잃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아 자신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이를 맡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탕평 인사 대신 코드 인사가 판을 쳤다. 둘째, 의욕만 있지 성과는 없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저소득층의 지갑을 채워주겠다고 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73조8천억원의 일자리 예산을 편성·집행했지만 국민이 원하는 일자리는 창출되지 못했다. 핵심 노동력인 30~40대 취업자는 25만명이나 감소했다. 작년 4분기 소득하위 20% 계층의 근로소득은 37%나 줄었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62%가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잘못한다'고 평가한 반면, '잘한다'는 평가는 23%에 불과했다. 셋째, 적폐청산만 있고 협치는 없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사회원로 초청 간담회에서 "(적폐)청산이 이뤄진 다음, 협치하고 타협도 할 수 있다"면서 "살아 움직이는 적폐 수사를 정부가 통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야당과 보수 세력을 국정농단과 사법농단에 동조한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삼으면 협치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대통령이 '선 적폐청산 후 협치'를 주장하면 이는 정치를 포기하고 힘으로 통치하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럴 경우, 분열과 갈등의 정치는 심화되고,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넷째, 자기 확신만 있고 책임은 없었다. 현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것에 대해 무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정의롭고 공정한 자신들만이 국민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잘못된 확신속에서 '계도 민주주의'에 도취되어 있다. 더구나, 도덕적 우월주의에 빠져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 관대하다. 드루킹 댓글 조작 연루,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민주노총의 법치 훼손 방치, 인사 검증 실패 등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또한, '편의주의적 정의'에 매몰돼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는 정의를 내세우고 불리하면 관행을 들먹인다. 이것은 '내로남불'의 전형이고 위선이다. 다섯째, 이념만 있고 실용은 없다. 경제, 외교·안보, 고용·노동에서 현실을 외면한 채 좌파 이념에 치중하면서 실리를 추구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3년 남아 있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과감하게 실천하고, 성과가 없는 경제 정책 기조를 바꾸어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내야 한다.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삼아 뜨거운 협치를 하고, 내각과 집권당에게 책임과 권한을 주어 청와대 중심의 구태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불어 노선과 코드를 뛰어넘는 대탕평 인사를 단행하고, 이념 과잉에서 벗어나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실리적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대통령은 민심과 동떨어진 인식을 바꾸고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인정하며 정책과 검증에 실패한 인사들에 대해선 추상같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앞으로 국정 운영에서 성과, 실천, 협치, 책임, 실용 등의 가치가 살아 숨 쉬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05-09 김형준

[춘추칼럼]장기전은 비핵·평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北, 하노이회담이후 남북관계 소극적인 모습남북미협상 유리하게 하려면 통미봉남 안돼북미, 중재자역인 '우리' 활용 대화 나서야올해 '비핵화 협상' 향배 가를 중요한 타이밍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종료된 이후 두 달여가 지났다.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이면서 중재자인 우리의 당초 목표는 하노이 회담에서의 합의를 근거로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포함한 제4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평화체제의 일정표를 앞당기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합의 채택이 불발됨으로써 이러한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협상이라는 것은 늘 희망적(wishful)인 것은 아니다. 잘될 것도 안되는 경우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타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지난 하노이 회담은 결과물 없이 종료되었지만 북미 양측의 주장이 보다 명확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주 우리는 4·27 판문점 남북공동선언 1주년을 맞이하였다. 결론적으로 4·27 판문점 선언이 한반도 평화 발전에 기여한 점은 정당히 평가받아야 한다. 2017년 북미 간 충돌위기를 극복하고 남북 간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에 합의한 점이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한 상시협의 틀을 만든 것은 주요한 성과이다. 체육, 문화, 종교 등 사회문화 분야의 민간교류가 활성화된 것도 중요한 진전이다. 4·27 판문점 선언 이행이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이 선언이 담긴 의미와 내용을 감안할 때 남북이 앞으로 견지해야 할 장전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이 다시 남북관계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사례를 볼 때 북한은 정세가 유리하지 않은 국면에서는 남북관계에 속도 조절을 시도해왔고 통미봉남을 통해 우리와의 대화를 배제하려 하였다. 반면 우리는 비핵화 협상과 남북대화를 병행해 나가는 입장에서 두 가지 트랙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상황을 관리해 왔다. 북한이 앞으로 남-북-미 협상 구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면 통미봉남으로는 안된다. 남북관계에서는 비핵화 협상과 관련 있는 경제협력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문화 교류를 활성화해 나감으로써 남북관계의 토대를 굳건히 하고 정상국가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는 것은 비핵화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제3차 북미정상회담의 여건 조성을 위해서는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이 많다. 우선 한미정상회담 이후 남북 정상 차원의 만남을 통해 다음 플랜을 준비해야 한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미 양측은 지금 협상장 밖에서 날선 비방전을 벌이고 있다. 협상 실무를 관장하는 실무대표들끼리 맞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양측 실무대표들이 앞으로 만날 수 없다. 북미 모두 중재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우리를 십분 활용하여 다시 대화의 테이블에 마주하는 명분과 실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조급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과거 북핵 협상 30년 동안 우리는 '타이밍'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무수한 협상의 과정 속에서 협상이 타결될 수 있는 적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를 놓쳐 30년이 흘렀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때가 그랬고 9·19 공동성명 이후에도 그랬다. 시기가 늘어지게 되면 상수보다는 변수가 많아진다.그간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비핵화 협상은 포괄적인 합의와 압축적인 단계 이행을 통해 일거에 끝내야 한다. 협상 시간이 지연되면 주변국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당사국들의 리더십이 바뀐다. 협상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회의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명분과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게 되면 협상의 동력이 약화된다. 냉전 해체는 개혁개방론자인 고르바초프가 당시 소련의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여건이 마련될 수 있었다. 독일통일은 동독변혁기에 콜 총리가 주변국들을 설득하면서 통일의 기회를 살려나갔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두를 것이 없다는 입장이면서 대선 때까지 핵동결 국면을 끌고 나갈 것으로 보이고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말까지 시한을 설정해 놓고 미국의 입장 변화를 종용하고 있다.올해가 지금까지나 앞으로의 비핵화 협상 향배를 가를 중요한 타이밍이다. 올해 제3차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어 비핵화 방식에 있어서의 포괄적인 합의를 이루고 비핵화에 따른 신뢰조치가 추진되어야 한다. 남북미 모두 장기전에 대비할 만큼 타이밍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남북미 모두 국내 정치적인 요소를 뛰어넘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5-02 양무진

[춘추칼럼]예술가는 동냥아치가 아니다

경쟁 치열 '국가보조금' 계륵이거나 필요악'e나라도움 시스템' 이용 어려워 포기 일쑤기재부는 지원하되 간섭 넘어 통제하려나간소·간략화 촉구하며 '도움' 용어 바꿨으면예술에 '국민의 혈세'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도 많을 테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쌀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그들만의 행위에 왜 세금을 낭비한단 말인가?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로또 등의 복권, 토토 경마 경륜 경정 강원카지노 같은 국가공인 '도박', 술 담배 등에서 뜯어낸 나랏돈 중의 일부를, 예술에 쓰는 것을 너그럽게 보아주신다. '다양한 문화예술'을 통한 건전한 정신, 정서, 인식의 함양 또한 나라를 나라답게 한다는 데 공감하기 때문일 테다.옛날에 자식이 '예술'한다고 하면 부모님들은 화를 내셨다. "굶어 죽으려고 환장했니?" 예술가는 가난하고 굶주리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직업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직업도 아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까? 대중이 아는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돈도 많이 버는 예술가도 1%는 된다.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으며 나름대로 권위와 권력을 누리는 예술가도 5%는 된다. 예술가의 50%는 취미생활로 즐긴다.하지만 예술가의 40% 정도는 '직업예술가'로서 살기가 녹록지 않다. 잠잘 데 있고 밥만 먹을 수 있으면 만사 편안한 세상이 아니다. 예술가 또한 없으면 더할 수 없이 슬프고 끔찍한 상황에 직면해야 할 때가 숱한 그것들을 갖추지 않을 수 없다. 직업예술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수입을 보면, 사실 그 본 예술행위로 버는 돈 보다 강의와 심사와 관련 알바 등의 부수입이 훨씬 많다. 이 생계형 예술가들이 바로 국가보조금 타 먹는 예술가들이다.'창작지원금' 형태로 나오는 국가보조금은, 돈도 돈이지만 상당한 자족감을 준다. 내가 대중이 자기 돈을 직접 들여 소비해주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창작지원금을 탈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작품을 생산하는 진짜 예술가라고! 공연예술 작품은 국가보조금을 받아야만 제작 자체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3천만원 정도 지원받았을 때, 수십여명이 한두 달 이상 준비하고 연습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인건비 수준이다. 하지만 국가보조금 선정 사업이기 때문에 일단 제작에 들어갈 수가 있고 후원도 받을 수 있고 대중의 참여를 얻어낼 수 있다.국가보조금은 예술가에게 계륵이거나 필요악이다. 받고 싶지 않지만 받지 않으면 예술이 불가능하다. 받고 싶다고 쉬이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토록 예술가로 살기 어렵다는데 왜 그렇게 예술가는 많은지 나름대로 경쟁이 치열하다. 국가보조금 받겠다고 경쟁하는 것부터가 왠지 서글프다. 국가보조금 받은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예술가들도 있지만, 부끄러워하는 이들도 있다.'e나라도움'은 보조사업을 원활하게 수행하고 보조금의 중복·부정수급을 방지하며 보조금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보조금 관련 정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기 위하여 구축되었다고 한다. 말은 번드르르 좋은데 실시 3년째, e나라도움 시스템은 악명이 드높다. 공무원은 '써보니 참 편리한 것'일 수 있겠다. 그런데 예술가들에게는 고난도 수학문제나 다름없다.일단 지원할 때부터 쉽지 않다. 하다하다 안돼서, 지원 자체를 포기하는 예술가들이 수두룩하다. 지원대상자로 선정되면 배부른 소리 같지만 더욱 난관이다. '예산 편성·교부·집행·정산 등 보조금 처리의 모든 과정을 자동화, 정보화하여 통합적으로 관리하겠다'는데, 이 '자동화, 정보화'가 예술가에게는 산 넘어 산, '넘사벽'이다. 기획재정부와 재단의 담당공무원에게 여러 번 전화를 하여 정말 큰 도움 받아서 겨우 해낸 이가 대부분이다. 예술가는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감내해야만 마침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기재부는 지원하되 간섭을 넘어 통제하려는 것일까? 예술가가 그 예술에 충실해야지 보조금 타내는 지엽적인 과정에 정열을 낭비해서야 되겠는가. 꼭 필요하다면, 예술가도 좀 쉽게 할 수 있도록 간소화·간략화되기를 촉구한다. 일단 '도움'부터 다른 말로 바꿨으면 좋겠다. 예술가를 무슨 동냥아치 취급하는 말 같다. 예술가는 국민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이들이지 거지가 아니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4-25 김종광

[춘추칼럼]손을 씻는 일

중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공과 사적인 것…구분없이 혼돈의 삶은 발악 아니면 침묵뿐'성실함 공백' 우리사회 한계·문제점 드러내 자기 위치에서 해야할 일 파악하는 것 중요"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우리 훌륭한 사람이 되지 말자'는 거예요. 성실한 연구자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해야 하는 걸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 고려대 김승섭 교수가 최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사회역학 연구를 통해 탁월한 결과물을 내고 있는 저자의 생각이 흥미로웠다. '훌륭한 연구자'가 아니라 왜 '성실한 연구자'일까?의사이자 저술가인 아툴 가완디 역시 성실함을 강조한다. 그는 다양한 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사로서 필요한 덕목을 담은 책 '어떻게 일할 것인가'(곽미경 옮김/웅진지식하우스/2018)에서 우선적으로 '성실함'을 강조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매년 미국인 200만명이 병원 입원 중에 감염되고 그중 9만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감염 예방 측면에서 의사들이 지켜야 할 한 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손을 씻는 일'이다. 그런데 많은 의사들이 이 단순한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한다. "제대로 된 의료란 까다로운 진단을 내리는 것이라기보다 모두가 손 씻기를 확실히 실천하는 것에 더 가깝다."언제부터인가 성실함의 가치는 폄하되거나 부정되어 왔다.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노동 중심의 사회에서 성실함은 자본과의 관계에서 볼 때 긍정적일 수 없었다. 아울러 독재 정권과 같은 비정상의 사회에서 역시 개인의 성실함은 기존 체제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부정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 어쩌면 성실함은 본래 갖고 있는 내재적 가치를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국면과 현실에 맞게 그 가치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우리의 삶은 평면적이라기보다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다. 사람들은 어떤 사실에 접근하지 못하고 그 사이에 떠 있는 수많은 추측들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실'이 있다는 것마저도 망각할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증거'와 '증언'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신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편에서는 비방과 비난, 혐오와 저주의 언어가 난무하고, 그 반대편에서는 기쁨과 행복과 쾌락을 이야기한다. 둘의 공통점은 뿌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말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왜 구분해야 하는지, 구분할 필요가 있는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는 혼돈 속에서 살아간다. 어떤 구분과 갈래가 없는 상태에서 남는 것은 발악 아니면 침묵뿐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고등 교육을 통해 우리가 듣고 배운 지식은 구체적인 현장과 사실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수단이 아니라 타인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한동안 사회적으로 성실함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데에는 성실함을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나 자질 정도로 폄하한 탓이 크다. 사실 성실함의 가치는 지극히 사회적인 것에 있다. 앞에서 지적한 우리 사회의 한계와 문제점은 성실함의 공백을 보여준다. 성실함은 '사실'에 입각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다. 1595년(을미년) 4월 29일 이순신은 일기에 "새벽 2시부터 비가 내렸다. ……노윤발이 미역 99동을 따왔다."고 썼다. 김훈 작가는 100동이 아니라 '99동'이라는 숫자에 주목한다. 이순신의 정신이 바로 이 사실에 입각해 있으며, 그 사실의 힘으로 전쟁을 치른 것이라고 했다. 고문과 감옥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 "적어도 신에게 아직도 12척이 남아 있다"고 보고한 것도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이순신의 언어와 행동은 사실에 기초한 성실함에서 나왔다.성실함은 이 복잡한 세상에서 단순하지 않은 삶을 잘 살아내는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성실함은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사실은 곧 데이터이다. 데이터를 갖는다는 것은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꾸준함을 통해 드러낸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알아가고 그곳에서 내가 할 일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빠뜨리면 안 되는 일을 잘하는 것이다. 그것은 '손을 씻는 일'과 같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9-04-18 권경우

[춘추칼럼]'국민 모두의 대통령' 위한 통치 연합 필요

문대통령 국정수행 '부정평가 49%' 최고치경제위기·인사참사·靑도덕적 해이등 불만선거연합 세력들과 유착 '스스로 동력 상실' 이념적 편향 경제·외교정책 과감히 바꿔야민심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 4·3 보궐선거에서 여당은 단 한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작년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전례 없는 압승을 거두었지만 불과 10개월 만에 민심이 판이하게 돌변하고 있다. 범여권은 단일화를 하고도 영남에서 진보성향 유권자가 가장 많은 경남 창원·성산 선거에서 504표 차이로 신승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작년 통영시장과 고성군수 선거에서 모두 싹쓸이했지만 통영·고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선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23.5%포인트 차이로 완패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4월 첫째 주(4월 2~4일) 조사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가 41%로 추락하면서 취임 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부정평가는 49%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자영업자층의 긍/부정률은 37%/54%, 저소득층에서는 31%/60%였다. 현 정부 핵심 지지층이었던 학생(33%/56%)과 서울(38%/52%)에서도 긍정평가가 30%대로 급락했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2년 만에 왜 이런 엄청난 민심 이반이 발생했을까? 경제 위기, 인사 참사, 청와대의 도덕적 해이 등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선거를 치르듯이 통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셀리그맨(Seligman)과 카빙톤(Covington) 교수는 '선거연합과 통치연합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대통령의 국정운영 위기를 분석했다. 그들은 새 대통령이 대선 때 자신을 지지했던 선거 연합을 깨고 다른 세력으로 통치 연합을 만들면 필연적으로 리더십의 위기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1992년 대선 당시 선거연합인 3당 합당의 한 축이었던 충청의 김종필 총재를 집권당에서 쫓아냄으로써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 이후 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총재와 김종필 총재의 DJP 연대에 정권을 빼앗겼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호남세력에 등을 돌리고 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무너졌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선거연합과 통치연합의 부조화가 아니라 두 연합의 비정상적인 유착으로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민주노총, 참여연대를 포함한 진보 시민단체, 그리고 운동권 세력과 거대한 선거연합을 만들어 집권했다. 그런데 집권 후 이들 선거연합 세력들에 대한 부채 의식과 지나친 유착으로 국정 운영의 동력을 스스로 상실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친노동 정부를 등에 업고 오만의 극치를 보이며 안하무인의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가령, 탄력근로제 확대 입법을 저지하겠다며 국회 담장을 무너뜨리고, 경찰서에서 취재 중인 기자를 집단 폭행했다. 공권력이 민노총의 눈치를 보면서 법치가 무너지고 있다. 야권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노총 공화국이다"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권력을 견제해야 할 시민단체는 극도로 정치화되면서 정부의 각종 인사에서 혜택을 보고 있다. 행정부, 청와대, 사법부, 공공기관의 핵심 인사가 진보 시민단체 출신들로 채워지고 있다. 공정해야 할 인사가 오로지 '정치 공학'에 의해 움직인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인사참사가 끊이지 않고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마저 불거지고 있다. 그런데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 정부에서는 운동권 인맥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포함해 핵심 요직에 포진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강한 이념적 편향성으로 경제 정책은 현실성이 무시되고, 외교 정책에서는 오랫동안 다져온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면 용단을 내려야 한다. 법치 훼손, 인사 참사, 정책 실패를 몰고 온 파행적인 선거연합을 깨고 국민 모두의 대통령을 만드는 새로운 통치연합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04-11 김형준

[춘추칼럼]한반도 평화의 봄은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DMZ 개방, 평화·환경보호 가치 조화 필요내주 한미정상회담, 중재노력 재가동 시점국제사회규범 준수하되 우리역할 해 나가야변화폄하·갈등 부추기는 정치적 목적 무책임지난 9·19 남북공동선언의 합의로 열린 DMZ가 일반인에게 개방된다고 한다. 모든 구역이 개방된 것은 아니지만 올해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바와 같이 비무장지대가 국민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분단 70여 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분단과 대결의 상징이 평화와 개방의 상징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활용에 있어 독일의 '그뤼네스 반트' 사례는 한국에도 이미 잘 소개되어 있다. 먼저 온 통일로서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과 교훈을 준다. 독일은 통일 직전과 직후부터 국경개방에 대비하여 동서독의 환경운동가들이 국경지역을 어떻게 보존하여 후대에게 물려줄지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하였다. 환경이나 인권운동의 역사가 깊은 유럽에서는 환경단체들이 중심으로 동서독 국경을 보존하는 문제에 대해 팔을 걷고 나섰다. 통일과 함께 진행된 이러한 환경보호 운동이 없었더라면 과거 동서독 국경지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이번에 열린 DMZ 평화안보 체험길도 궁극적으로는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방안과 연계되고 국민들의 평화 요구와 환경보호 등 다른 가치들이 잘 조화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아직 완전한 분단 해소를 경험하지 않은 우리로서는 안전문제도 고려해야 하며 향후 비무장지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남북 간 진지한 협의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해 독일의 한 통일인사는 자신들의 그뤼네스 반트에 비해 우리의 비무장지대의 상징적 가치는 훨씬 더 광범위하다고 귀띔해 주었다. 독일은 동서독 장벽이 건설된 지 30년 만에 통일을 했지만 한국의 분단은 70년이 넘어섰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의 환경과 생태적 측면에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비무장지대는 지금 우리에게는 분단과 대결의 상징이지만 앞으로 우리의 미래세대에게는 평화와 번영의 산 교육장이 될 것이다.이처럼 한반도에는 지난해부터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1년 만에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역사적으로도 상상할 수 없었던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이 있었다. 물론 2월 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종료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내주 한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비핵화 회담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들이 다시 전개되고 있다. 하노이 회담에서 북미 간 서로가 원하는 것이 분명해진 만큼 이를 절충하기 위한 우리의 중재노력이 다시 가동되어야 할 것이다. 언제 다시 열릴지는 모르지만 다시 열리게 되는 북미회담에서는 더 이상의 지연과 갈등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북미 간 포괄적인 로드맵을 합의하고 구체적인 조치들을 배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북미 간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옵션들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이제 곧 1주년을 맞는 4·27 판문점 선언에 따른 남북 간 합의사항의 이행도 다시 탄력을 받아야 할 것이다. 지난 남북관계사에서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는 늘 서로 영향을 받았다. 비핵화 협상이 더디면 남북관계도 더디었지만 그런 국면에서도 남북관계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또한 전개되었다. 남북관계의 자율성 확보는 지금 국제사회가 취하고 있는 대북제재의 틀을 훼손하기 위함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규범은 준수하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연결 고리들이 있어야 남북관계에서 우리의 레버리지가 확보될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자주 보고 소통한 사람들끼리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해법을 찾아나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러한 변화와 과정들을 인정하지 않은 시도도 있다. 며칠 전 "한미동맹 공조의 틈을 벌리고 한반도 평화의 물길을 되돌리고 남북미의 대화 노력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갈등과 대결의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은 그런 점에서 이해할 만하다. 이런 사람들에게 비무장지대 평화 안보체험길의 기회를 우선 주었으면 한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변화를 폄하하고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는 무책임하다. 틀린 것이 있으면 건설적으로 비판을 하고 대안을 제시하면 된다. 비판을 위한 비판, 맹목적인 비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꽃샘추위도 있는 봄이지만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이 왔는데 봄을 맞이하여야 하지 않겠는가./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4-04 양무진

[춘추칼럼]5%의 농촌소설

씨가 마른것은 쓰는 작가가 아닌 읽는 독자사투리좀 썼다고 '이문구 따라했네'식 매도조작된 '농촌 판타지' 예능 볼때마다 불편대중들 읽든 말든 '진짜 농어촌' 기록돼야'농촌'은 '농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사회'다. 각기 생각과 습성을 가진 농민과 '농가인구(현재 농가로 정의된 개인농가에서 취사, 취침 등 생계를 같이하는 사람)'와 비농업인이 가족끼리 동네사람끼리 면·읍민끼리 군·시민끼리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곳이다.소설은 당대의 사람과 세태를 기록할 수밖에 없다. 농촌인구가 마구 줄어들면서 농촌소설도 마구 줄어들었다. 급기야 농가인구수는 242만, 농가인구 비율은 4.7%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임촌, 어촌 사는 인구를 더하면 5% 정도 된다. 신기하게도 21세기에는 농(어)촌소설도 5% 정도 생산되고 있다.5%는 정말 바라보기 나름인 듯하다. '농촌소설 쓰는 작가가 씨가 말랐다'다거나, '농촌소설이 멸종했다'고 볼 수도 있다. 씨가 마른 것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다. 소설 자체를 읽는 한국인구가 5%가 될까 말까 한 판이다. 그 소수정예 독자가 그 많은 소설 중에 농촌소설을 찾아 읽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심지어 농촌소설 좀 쓴다는 작가도 자기만 농촌소설을 쓰는 줄 알 정도로 안 읽는다.읽히는 문제와 상관없이, 농촌소설은 필요한 만큼 생산되고 있다고 봐도 좋을 테다. 5%의 농촌을 5%의 작가들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5%의 농촌소설이 안 읽히고 안 알아주는 것 다음으로 섭섭한 것이 '다름'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촌만 나왔다 하면 교과서에서 배웠던 일제강점기소설 같다고 여기는 분이 태반이다. 그나마 소설을 읽은 분들도 '사투리를 썼으니 이문구 따라했네'라는 식이다. 2000년대에도 여러 작가가 저마다 고유의 문체와 시각으로 5% 농민의 현재와 사상과 세태와 생활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개별성과 고유함을 알아봐 주기는커녕, 모조리 '이문구소설' 같다고 매도하고 있다.나는 아이돌 그룹 구성원이 다 똑같아 보인다. 나는 농촌소설에 관심이 많고 사랑하니까 농촌소설 쓰는 작가들을 알고 그들의 각기 다름을 아는 것일 뿐이다. 농촌소설에 관심 없는 분에게 농촌소설은 내가 구별하지 못하는 어떤 아이돌 그룹의 1인일 뿐이다. 대중독자가, 사투리 나오고 농촌 나오면 이문구소설 같네, 하는 것도 당연하다. 아니, 감사해야 마땅하다. 고(故) 이문구의 '우리 동네'를 읽어본 분도 정말 귀한 세상이다. 그런데 농촌소설은 진짜로 왜 안 읽히는 것일까? 상식적으로라면 5%는 읽혀야 되는데 말이다. 5%의 농촌소설이 진짜 농촌을 그리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농촌소설은 소설의 속성상 농촌의 이면과 그늘을 묘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중이 듣고 보고 읽고 싶어하는 농촌얘기는 예능 같은 것이다. 예능(藝能)이 어째서, 연예인이 일반인 대신 먹어주고, 얘기해주고, 웃긴 짓 해주고, 사연팔이 해주고, 감성팔이 해주고, 사회봉사해주고, 군대생활해주고, 세계여행해주고, 낚시해주고, 1박 2일 놀러가 주고 하는 프로그램들을 뜻하게 된 걸까?아무튼 예능프로의 8할이 농어촌 찾아가서 웃다 놀다 먹다 힐링하다 오는 것이다. 한국 농촌이 모자라 전 세계의 오지 농촌을 찾아다닌다. '시사교양'이나 '다큐'를 표방하지만 결국엔 '예능'하는 프로도 허다하다. 농어촌에 사는 것이 얼마나 '극한'스러운지 보여주는 '리얼다큐'들도 농어촌이 아니면 제작조차 힘들다.농촌소설은 5% 이하인데, 농촌예능·리얼다큐는 80% 이상인 묘한 시대다. 농촌소설은 지금의 농촌에서 농가인구와 그 외인이 얽히고설켜 치열하게 사는 삶이 기록되어 있다. 영화로 치면 '다큐영화'일 수밖에 없다.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농촌은 그런 진짜농촌이 아니라 먹방화되고 힐링화되고 예능화된 판타지농촌이다. 나는 농촌예능·리얼다큐에서 그려지는 '농촌'은 조작된 농촌이라고 생각한다. 도시대중이 보고 싶은 것을 담았을 뿐이다. 농촌을 동물원이나 식물원처럼 그린 예능을 볼 때마다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진짜 농어촌을 다룬 소설 또한 5%는 꾸준히 생산되어 대중이 읽어주든 말든 알아주든 말든, 진짜 지금의 농촌을 기록해나갈 것이다. 농어촌의 최후까지./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3-28 김종광

[춘추칼럼]혁신의 길

인간 존재 유한성 그대로지만 변화는 계속요즘 '세상 바꾼다' 의미 실험·창조성 뒤따라변하는 것·안 변하는 것 사이서 살아가는 법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배워야 한다봄이 왔다. 누군가에게는 올 거 같지 않던 봄이, 또 누군가는 그렇게 기다렸건만 끝내 보지 못한 봄이 왔다. 계절이 바뀔 때면 '앞으로 내 인생에서 이 계절을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변하지 않는 사실 속에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변화'가 담겨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비슷하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유한성은 그대로이지만 결국 그 안에서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인간은 조금 더 적극적인 변화를 이끌어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세기에는 이 말이 주는 느낌이 비교적 명확했다면, 지금 21세기에는 쉽사리 설명하기 힘든 주제가 되었다. 전자는 '혁명'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었다. 혁명은 확실한 언어로 설명되거나 이해되었다. 그것은 동시에 과거 많은 이들이 혹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에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이야기되거나 이해된다. '혁명'의 자리에는 '혁신'이 자리 잡는가 하면, 이와 연결하여 '실험'과 '창조성'과 같은 단어들이 뒤따른다. 사회에서 '실험'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러한 모든 것은 개인의 변화보다는 각자가 살아가는 조건으로서 사회의 변화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그 변화는 근본적인 세상의 변화라기보다는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변화이고 새로운 관점의 발견이다. 그것은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이에 대한 영국의 대표적인 혁신기관 네스타(NESTA)의 대표 제프 멀건(Geoff Mulgan)의 지적은 타당하다. 그는 이 시대의 모든 이론이 아주 단순한 오류에서 출발했다고 비판했는데, 그 오류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사회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혁신은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해결해가는 과정이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바라보거나 처리하는 일을 보게 된다. 그것은 유무형의 폭력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상대는 복잡한데 단순하게 반응하면 온전한 관계라고 할 수 없다. 이에 대한 반성과 성찰에서 변화를 이끌고자 하는 새로운 실험과 도전이 바로 '혁신'이라 할 수 있다. "뭔가 옳은 일이 이뤄지길 바란다면, 당신이 직접 하는 게 최선이다." 샤를로트 드 빌모(Charlotte de Vilmorin)의 말이다. 프랑스에서 장애를 갖고 태어나 휠체어를 타야 했던 그녀는, 2015년 휠체어 탑승 차량을 알아보다가 엄청난 비용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스스로 방법을 찾다가 몇 달 후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개조용 차량 공유 플랫폼 휠리즈(Wheeliz)를 열었다. 프랑스에 장애인을 위한 개조 차량이 10만대 정도가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공유 플랫폼을 연 것이다. '휠리즈'는 2017년 유럽에서 가장 혁신적인 프로젝트로 꼽혔다.혁신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내가 사는 곳에서, 내가 직접 느끼는 문제들을 바꾸거나 해결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터가 더 나은 공간으로 바뀌고, 우리의 공동체가 더 건강한 관계로 바뀌는 것을 추구할 때, 그리고 이것을 단순히 추상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구체적인 계기와 활동을 조직하고 수행할 때 변화는 시작된다. 기술은 발달하고, 세상이 바뀌고 있다. 다른 한편, 세상은 그대로이다. 겨울은 가고 봄이 온다. 꽃은 피고 진다.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리고 바로 그 사이에서 변화와 혁신은 시작된다. 변화와 혁신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온전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개인만이 가능하다. 비록 주어진 환경과 조건이 공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차이가 드러나는 서로 다른 조건 위에서 비로소 변화를 위한 혁신은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한때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바뀌지 않는지 궁금했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의 '사이'에서, 서로 다른 조건의 '사이'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이다. 그 '사이'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축복이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9-03-21 권경우

[춘추칼럼]선거제도 개혁의 해법은 없나?

첫째, 정당 득표만큼 의석 배분 '비례성 원칙'둘째, 정국운영 안정 '권력구조·선거제 조화'셋째, 정치권 이해관계 보다 '국민공감 우선'3원칙 바탕 '위원회' 발족 案도출 가장 합리적여야가 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 원칙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첫째, 비례성의 원칙이다. 정당이 얻은 득표만큼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선거구제 단수 다수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선거제도는 거대 정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지난 2016년 총선의 경우,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은 정당 득표에서 각각 25.5%와 35.5%를 득표했고, 실제 의석률은 41.0%와 40.5%였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44석, 새누리당은 18석을 더 많이 획득했다. 한편, 소수 정당인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정당 득표에서 각각 26.7%와 7.2%를 얻었지만 의석률은 12.7%와 2.0%에 불과했다. 국민의당은 무려 45석, 정의당은 17석 적게 배당받았다. 이런 맥락에서 소수 야3당은 표의 등가성을 높이기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준연동형'과 같이 연동의 수준을 낮추자는 입장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정당 투표로 총 의석을 결정한 후, 당선인은 지역구 의석을 먼저 배당한 뒤 그 나머지를 비례대표로 채우는 방식이다. 둘째, 제도의 조화성이다. 무엇보다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간의 조화성은 정국 운영의 안정성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국가 중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제도 궁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채택되면 필연적으로 다당제가 되기 쉽다. 내각제 국가에서는 통상 여러 정당들이 참여하는 연립 내각이 보편화되어 있어 정국 운영에 별로 문제가 없다. 반면, 대통령제에서 다당제는 여소야대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고 이념이 다른 정당들간의 연정이 쉽지 않아 늘 정국 불안정의 요인이 된다. 또한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한 데 야당이 여러 개로 쪼개져 있으면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권력구조개편과 선거제 개편을 동시에 추진하자"고 제안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셋째, 국민 공감의 원칙이다. 정치권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접근할 경우 선거제도 개혁의 효과성에 대한 논의가 실종될 위험성이 크다. 가령,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면 비례성은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의원정수의 과다한 증가다. 지역구 의석이 정당에 배분된 의석보다 많을 경우, 초과 의석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의원정수를 기존의 300석으로 유지한다고 해도 필연적으로 초과 의석이 발생해 의원 정수는 최소 350명까지 늘어 날 수도 있다. 이 제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독일에서 지난 2017년 9월에 치러진 연방 의회 선거 결과, 명목상 의원 정수는 598명이었지만 초과 의석이 무려 111석 발생해 총 709명이 선출되었다. 더욱이 지역구에서는 단 한 석도 얻지 못한 정당이 비례구에서만 80석을 배당받았다. 과연 이런 결과들을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국당이 주장하는 비례대표제 폐지도 국민들이 공감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정치적 약자인 여성의 국회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비례대표제 폐지는 여성 대표성 제고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 세 가지 원칙을 함께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자신들에게 유리한 원칙만을 고집한다면 합의를 통한 선거제도 개혁은 물 건너간다.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보다는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제도개혁 위원회'를 발족시켜 개혁안을 도출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국회 의석을 가진 정당은 의석 규모와 상관없이 단 1명만 위원회에 참석시키고 과반수 이상은 중립적인 외부 전문가로 구성해 국민이 공감하는 선거제도 개혁안을 도출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03-14 김형준

[춘추칼럼]대북강경론을 경계한다

북·미, 어느 누구도 '회담 실패' 판단 안해양측 파이 '공정 배분' 심판役 우리가 해야개성공단·금강산 관광 문제 '분리' 바람직 '한반도 비핵화' 中역할 견인위해 소통 중요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종료된 것에 대한 분석과 후속작업들로 분주하다. 우리 정부는 북미회담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미국으로 떠났고 대통령 주재 국가안전보장회의 전체회의를 열어 우리의 대응책을 논의하였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합의는 도출하지 못했지만 북미가 진정으로 중요시하는 부분에 대한 협상카드가 분명해졌다. 미국은 북한이 전체 핵프로그램을 꺼내놓기 전까지는 대북제재를 해제할 생각이 없으며,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교환방식이 아니고서는 핵프로그램 모두를 꺼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측의 차이는 지난 30년 북핵협상의 핵심 사항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부터 역사적인 북미 정상 간 세기의 담판이 벌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방식의 비핵화 과정과 결과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결과는 아쉽지만 그렇다고 실패로 규정하기에는 이르다. 양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 어느 누구도 이번 회담이 실패했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북한 언론은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보다는 양 정상 간의 건설적인 논의에 맞춰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기자회견과 트위터에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관계는 변함없으며 대화를 이어나가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표출하고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도 축소되었고 북한도 핵능력과 관련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대북강경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이다. 과거에도 협상이 실패를 하면 늘 핵포기불가론, 협상무용론, 선핵포기론 등이 자리를 잡았다. 실패했으면 하는 희망사항이 이뤄진 것처럼 다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우리는 실패와 성공을 규정하기에 앞서 냉정하게 회담의 결과를 분석하고 더 좋은 합의를 위한 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 협상은 크기가 정해져있는 파이를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느냐가 아니다. 파이가 같은 비율로 나눠지지 못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협상 당사자 모두가 그 결과에 만족하면 협상은 '잘' 된 것이다. 또한 양측이 파이의 배분에 있어 문제가 생기면 협상을 잠시 중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협상의 파이가 작다고 느끼면 과감하게 협상 당사자 간 협상의 파이를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앞으로의 협상은 현재 이번 북미회담의 논의구조를 넘어 파이를 키우는 협상이어야 한다. 미국과 북한이 최대한 파이를 키워 모든 핵프로그램과 대북제재 해제를 일괄 타결하고 신속히 동시병행적으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협상이 전개되어야 한다. 이번 회담을 두고 Top-down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으나 사실 이번 협상은 Top-down과 실무협상이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다만 최고지도자들의 결정 부담을 덜고 합의 없이 종료되지 않도록 다음번 협상에서는 대부분의 사항이 타결된 이후 정상회담 일정을 잡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양측간 파이가 최대한 공정하게 배분될 수 있는 심판의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 유도 경기에서 볼 수 있듯이 심판은 한쪽이 소극적으로 공격을 할 경우 주의를 줄 수 있어야 하고 양측의 샅바가 헐렁해지면 타이트하게 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제재를 포함한 경제보상조치가 북핵협상의 핵심이 되는 만큼 양측의 신뢰를 조성하기 위한 밑바탕을 우리가 조성해야 한다. 지난 스웨덴의 사례처럼 남북미 3자 실무협의체가 지속적으로 가동되어야 한다. 그리고 실무협의의 결과가 남북미의 정상에게 지속적으로 피드백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는 재개를 본격화한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인들의 현장확인 수준에서 논의되는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비록 제재의 프레임웍에 속해있지만 또한 남북관계 차원의 사안이기도 하다. 비핵화 협상에 이 문제들이 연동되어 버리면 남북관계 차원에서 우리의 레버리지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분리하여 북한의 비핵화를 신속히 유도하고 우리의 레버리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국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중국 또한 이번 북미회담이 협상 없이 종료된 데 대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는 중국과 우리가 다른 것이 없는 만큼 전략적 소통을 통해 중국의 역할을 견인하는 방법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미세먼지처럼 뿌연 한반도 정세이지만 우리가 이번 회담 결과만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더 큰 합의를 이루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지지하고 성원해 주어야 할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3-07 양무진

[춘추칼럼]보다 공정한 심사를 바라며

구성과정 부터 한없이 의심받는 심사위원공정하게 결정해도 모두만족 '최고'는 없어3·1운동 100주년 사업비 문화예술계 투입혈세 옳게쓰였다고 수긍할만한 행사되길심사는 결코 신뢰받지 못한다. 계량화도 대책이 안 된다. 모두가 인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점 없이(그런 기준점이 불가능하다) 다분히 자의적으로 이루어진 계량화는 딱한 숫자놀음일 뿐이다. '판단'이나 '감상'을 수치화하는 것부터가 신뢰받기 어려운 일이고 사람마다 판단과 감상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심사위원을 결정하는 누군가가 있다. 사실 이분이 모든 심사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분이 어떤 영향력 있는 자의 청탁이나 압력을 받지 않고, 자신의 혈연·학연·지연 등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알아서 뭐하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이 정한 합리적인 기준에 의거하여 객관·공정한 분들을 선택했다면 일단 최상의 심사위원 구성일 테다.그런데 이 단계부터 절대적인 의심을 받는다. 실무자의 기준이 과연 공정했는가. 저 무수한 철밥통 심사위원들은 뭔가? 왜 누구나 예상할 만한 사람이 되겠는가. 불특정다수의 심사위원 풀에서 심사 임박 때마다 랜덤으로 뽑기도 하는데, 그 심사위원 풀은 누가 또 어떻게 선정해서 구성했는가? 의심하기로 들면 한없이 의심스럽다.아무튼 그렇게 해서 심사위원들이 정해졌다. 심사위원들이 어떤 로비도 받지 않고 어떤 인연에도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의 공정한 잣대로 심사했다고 하자. 그게 가능해? 역시 엄청나게 의심받는다. 여러 가지 의심을 받지만, 가장 큰 의심은 그 심사위원 개인의 잣대가 과연 공정할 것이냐는 것이다. 누가 봐도 공정한 심사위원이 누구나 인정할 수 있게 공정하게 심사를 보았다 하더라도 결과는 신뢰받기 힘들다. 왜냐면 혼자 심사 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이상한 일인지 당연한 일인지 아리송하지만 만장일치가 거의 없다. 합의점을 찾으려고 한다. 두어 분이 '최고'라고 강력히 주장하면 될 확률이 아주 높다. 다섯 사람이 '보통'이라고 본 작품이, 한두 사람이 '최우수'라고 주장한 작품들을 이기기도 한다. 다른 이들은 우수하다고 보지도 않았는데, 한 사람이 죽어도 이것이라고 우겨서 1등이 결정되는 때도 있다. 결국 다수결을 자주 한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최선의 방법은 다수결밖에 없으니까. 하도 의견 일치가 안 돼 '당선작 없음'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심사위원부터가 만장일치하지 못한 작품이 대중 사이에서 두루 신뢰받기는 어려울 테다. 심사위원이 만장일치했다고 해서 대중에게 무조건 신뢰받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판단해서 아니면 대중은 아무렇지도 않게 심사위원을 욕한다. 보는 눈이 꽝이네!즉, 제 아무리 공정하게 위촉된 심사위원이 제 양심과 상식과 체면을 걸고 제 아무리 공정하게 심사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최고'이거나 다수결이나 합의상으로는 '최고'일 수 있지만, 모두에게 '최고'인 작품·사업은 절대로 뽑힐 수가 없는 것이다. 딴은 공정하기 위해 예심이나 본심, 1차·2차로 나누어진 심사는 더욱 불공정할 수 있다. 본심에서 최고였을 작품이 예심이나 1차에서 탈락하는 일이 왕왕 있다. 대중에게 최고였을 경우가 심사위원에게 무시당할 수도 있다.비교적 객관·공정하다는 문학판 심사에서도 그럴진대, 지연에 학연에 사제연에 사적인연에 권력에 백에 로비에 알아서 기는 경우에 작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받는 각계 각 분야 허다한 각종 심사 결과를 대중이 신뢰하기란 대단히 어렵다.자기(네) 돈 쓰겠다는 데는 그래도 좀 공정하게 주면 안 될까요, 바랄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국민세금 들어가는 데는, 세금 들어가는 것이 의미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공정해야 한다. 보다 공정한 심사제도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겠지만, 어떻게 해도 제도상 불가능하다면, 결국 심사자 개인의 상식과 양심에 달린 것일까? 역지사지라고, 심사 받는 마음으로 심사를 봐야 할 테다.3·1 만세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서 상당한 돈이 문화예술계에 투여될 모양이다. 아무려나 보다 공정한 심사가 이뤄져, 대중이 문화예술에 국민혈세가 쓰이는 것이 옳은 일이며 옳게 쓰였다고 수긍할 만하게 행사가 이뤄지고 수작이 탄생하기를./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2-28 김종광

[춘추칼럼]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사회 다양한 욕망의 집합체 '인싸'사회 변하지 않는한 개인 행복은 없다사소한 것부터 각자 스스로 수행해야그것이 곧 '지속가능한 공동체' 출발점얼마 전 20~30대 청년들에게 요즘 자신을 붙잡고 있는 단어를 물어본 적이 있다. 꿈, 미래, 생명 등 여러 가지 답변이 나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잔고'였다. 이 시대 청년들의 신산한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 울컥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제 청년들의 힘든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수많은 언론 보도뿐만 아니라 청년수당과 청년창업, 청년임대주택 등 정책적으로도 청년세대와 관련된 지원이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청년들의 삶을 잘 모른다. 어쩌면 애써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그 세대를 지나왔고, 내 아이는 아직 그 세대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당사자'가 아닌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만다.2018년 가장 핫한 유행어 중에 '인싸'가 있다. '인사이더(insider)'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으로, 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인싸템, 인싸음식, 인싸춤, 핵인싸 등의 용어들과 함께 특정 세대뿐만 아니라 전 세대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문체부 2018 문화향수실태조사를 보자. 일상에서 문화행사 관람률은 81.5%로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분야별 관람률에서는 영화관람이 75.8%로 압도적이다. 대중음악이나 미술전시, 연극, 뮤지컬 등은 20% 이하로 큰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 역시 '인싸'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장르 격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 장르 내에서는 '인싸' 현상은 강화된다. 1천만 명이 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전국의 약 3천 개에 이르는 스크린에서도 상영기회를 확보하지 못하는 수많은 독립영화들이 존재한다. 이것이 단순히 시장이나 자본의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싸는 한국사회의 다양한 욕망의 집합체이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뒤처지지 않겠다는 경쟁의식, 조직이건 또래이건 일종의 내부자 심리 등 두려움과 욕망이 뒤범벅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것은 '국민'과 외국인 혹은 난민 등을 구분한다거나 장애인과 성소수자, 비정규직 등 사회적 집단과 계급의 구별에 따른 욕망을 담을 수밖에 없다. 결국 스스로 '인싸'를 선언하거나 혹은 '인싸'가 되고 싶은 것은 같은 맥락이다. 일터에서 수많은 갑질에도 저항할 수 없고 보호받을 수 없는 처지에서 '인싸'는 설령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심리적 안정제 역할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삶의 방향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개인의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혹은 공동체의 변화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아무 상관 없는 별개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어느 하나를 추구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하거나 버려야 할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정말 그런 걸까? 사실 그 두 가지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개인이 행복하지 않은데 공동체가 건강할 수 없으며, 사회가 바뀌지 않는데 개인이 행복할 수는 없다. 동시대 빈곤과 불평등 문화에 대해 평생을 연구한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77)는 최근 인터뷰에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우리는 가능한 한 모두와 함께하고자 둘러봐야 합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옆에 사는 사람들, 일하는 건물에 오가는 사람들과 일상을 나누는 거예요. 어떻게 지내냐고 묻고, 듣고, 영향을 주고받는 겁니다."(<경향신문>, 2019.1.31.)세계적인 석학은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누구나 알고 있고,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어느 시기 어떤 곳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비판하고 단죄하고 처벌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자가 발 딛고 있는 삶터와 일터에서, 즉 자신의 일상에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다. 혼자만이 아니라 나의 언어와 행동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것.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 누구나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을 실제로 자신의 손과 입으로 수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일이다. 이것이 바로 지속가능한 공동체와 사회를 위한 출발점이다. 모든 위대한 일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하자./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9-02-21 권경우

[춘추칼럼]확증편향에서 벗어나야 경제가 산다

소득주도성장, 되레 양극화 심화 '황당 현실''평화가 경제' 많은 시간과 난관 극복 필요성과없는 경제정책 수정·보완 절실하고 시급경제 무너지면 민심이반 진보정부도 '흔들'확증편향(確證偏向)이란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으로 '잘못된 확신'이다. 크게 '통계학적 확증편향'과 '심리학적 확증편향'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통계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확증하는 쪽으로 치우치는 인지적 편향이다. 가령, 현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재인 케어 등을 통해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도 늘어나면서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생산·투자 부진, 자영업 몰락, 고용 참사, 소득 양극화 등의 부작용이 여러 통계 지표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경제 정책 실패를 피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유리한 통계 결과만을 선별해 홍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민간 소비 증가율(2.8%)이 경제 성장률(2.7%)을 웃돌았다"면서 "소비 심리가 하락했으나 실제로는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간소비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1.4%로, 약 52%를 민간소비가 주도했다"는 통계까지 인용했다. 민간소비가 괄목할 성장을 거둔 것은 최저임금 인상 효과 때문이므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 같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와서 민간소비는 계속 줄어드는 반면, 정부 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개인 소득 중에서 의료보험료, 대출 이자 등과 같이 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빼고 남는 돈이 소비가 가능한 '가처분 소득'이다. 현 정부에서 가계소득은 늘었지만 가처분 소득은 줄고 있다는 게 문제다. 진짜 더 심각한 문제는 못사는 사람들(소득1, 2분위)의 가처분 소득은 더욱 빠르게 줄어들고 있고, 반대로 잘 사는 사람들(소득 4, 5분위)은 더 빨리 늘어난다는 점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을 끌어올려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것인데 정반대로 '소득 양극화 심화'라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민생 경제 상황이 이렇게 절박한데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올해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겠다"고 공언했다. 아마도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평화가 경제다'라는 심리적 확증 편향이 강하게 작동된 건 아닌지 싶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이달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 "남북 관계를 한 차원 더 높게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평화가 경제가 되는 우리의 미래를 키우는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말처럼 "평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더구나 평화가 경제가 되려면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 경제 상황은 너무 절박하다. 경제의 두 축인 생산과 투자가 모두 침체하고 있고, 취업자 수 증가폭이 전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런 가운데 세계 경제 성장세 둔화, 미·중 통상 마찰 등 대내외 불확실성도 확대되는 추세다.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평화가 경제가 되기 위해서라도 당장 성과 없는 경제 정책의 수정 보완이 시급하고 절실하다. 여하튼 경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에 빠지면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 반대로 온갖 갈등과 논쟁과 불통을 불러올 뿐이다. 닉커슨(Nickerson) 미국 터프츠 대학교수는 "확증편향은 상당히 강력하고 침투력이 좋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편향이 개인, 집단 또는 국가차원에서 발생하는 온갖 마찰과 논쟁과 오해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면서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 단언컨대 현 정부가 확증편향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진보의 미래는 없다. 경제가 무너지면 민심이 급격하게 이반되어 아무리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진보 정부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 앞엔 장사가 없다. 이 대목에서 "진보의 미래는 국민이 생각하는 것만큼 갑니다"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 깊이 와닿는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02-14 김형준

[춘추칼럼]통일과정의 동서독 교훈

1970년대부터 시작된 양측간의 '긴장완화'대결보다 교류협력으로 고통받는 상처 치유'동방정책 없었다면 동독개혁 불가능' 평가 자유·인권·개방등 국제사회 기준적용 노력내년은 독일 통일 30주년이다.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이룬 동서독 과정은 이미 역사 속의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점이 많다. 냉전시기 분단된 동서독 관계는 동독의 국가성 인정 문제로 출발하였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49년 서독지역에 출범한 아데나워 정부는 반공을 국시로 하여 할슈타인(Halstein) 원칙을 공식화했다. 할슈타인 원칙은 서독정부가 합법적으로 구성된 유일한 정부로서 동독정부와 외교적 관계를 맺는 국가와는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소련의 베를린 봉쇄가 연합국에 의해 좌절되고 동-서 베를린을 통해 동독인들의 탈출 러시가 증가하자 소련과 동독은 1961년부터 베를린 장벽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소련이 서방세계의 완충으로서 동서독 분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독이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서독의 단일 대표성을 인정하였고 동독의 유엔가입은 1973년까지 좌절되었다. 닉슨의 중국 방문 등 동서 냉전이 데탕트 움직임을 보이자 서독의 브란트 정부는 동독의 존재를 인정하고 긴장완화와 상호교류를 골자로 하는 '동방정책'을 추진하였다. 1970년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상주대표부 설치 등을 통해 양독관계는 사실상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발전하였다. 이후 동독은 영국, 프랑스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74년에는 미국과도 국교를 수립하였다. 1980년대 다시 신냉전이 도래하기 전까지 유럽 내에서는 다자간 안보협력회의(CSCE)까지 출범시키는 등 밀월기를 가질 수 있었다. 냉전의 전형적 분단국인 우리도 데탕트에 힘입어 1970년 초부터 남북대화를 시작하였으나 김일성 수령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는 북한과 반공을 국시로 하는 군사정부간의 대결구조 속에서 냉전의 밀월효과를 향유할 수 없었다. 이후 우리의 긴장완화 노력은 유럽보다 무려 20년 늦게 진행되고 만다. 1990년 냉전이 해체되고서야 남북은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다. 북한의 국가성 인정과 특수관계로서의 남북관계를 동시에 규정한 것이다. 동구권 붕괴와 같은 국가붕괴 사태를 겪지 않으려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한 북한과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한미의 대응으로 북한은 냉전 해체기에 처절한 생존에 성공하였다. 동서독이 1970년대부터 시작한 긴장완화와 화해협력이 한반도에서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야 시작될 수 있었다. 이후 10년의 진보, 10년의 보수정부를 거치면서 남북관계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였고 그동안 북한은 핵능력을 고도화하면서 지금의 핵보유국의 길을 걸어오게 된 것이다. 서독의 브란트 정부가 동방정책을 내걸었을 때 서독 내 보수진영의 반대는 극렬했다. 동독 체제의 연장과 통일의 영구적 포기가 반대진영 주장의 골자였다. 그러나 그 당시의 시대적 흐름은 동독 체제를 붕괴시킬 수도 없었고 패전국인 서독이 스스로 통일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오히려 긴장완화와 공존정책을 통해 동독뿐 아니라 동구권 전체의 이완과정을 촉진할 수 있었다. 대결보다는 교류협력을 통해 분단으로 고통받는 동서독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통일 이후 독일 내에서는 동방정책과 같은 긴장완화와 평화정책이 통일에 기여하였는가에 대해 "동방정책이 없었다면 동구권의 개혁이나 동독의 평화운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 다수의 평가였다. 중요한 것은 당시 동독이 보인 변화이다. 동독은 그토록 원하던 국가성을 인정받으면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고 자유, 인권, 개방 등에 있어 국제사회의 기준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인적교류를 허용하고 여행을 자유화하였다. 정치적 박해를 한다는 비난을 받기 싫어서 정치범을 서독에 넘기기도 하였다.냉전이 해체된 지 30년이 지난 늦은 시점이지만 한반도는 전 세계 마지막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대장정에 들어섰다.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개발을 이번엔 반드시 좌절시켜야 한다. 북한을 정상국가화시켜 국제사회의 규범을 따르게 하고 다방면의 교류협력을 확대하여 분단의 고통을 치유하고 남북 간 동질성을 회복해 나가야 한다. 자유왕래와 상호 의존성 확대를 통해 공동체적 통일을 추진해 나가면 점진적 통일과정이 완성될 수 있다. 지난해 남북대화를 비롯하여 새해 벽두부터 북미대화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권과 언론, 일반 국민들은 이를 지지하고 성원해야 한다. 앞으로 있을 북미정상회담과 남북대화를 통해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2-07 양무진

[춘추칼럼]동등한 기회와 조건

이무기가 용 되려면 수많은 시련 극복 필요그러나 용 집안은 처음부터 강력하게 지원우리세대 '보이지않는 카스트제도' 더 강화청년들에게 진정 필요한것은 '균등한 여건'스롱 피아비. 부쩍 매스컴을 타서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3쿠션 당구를 제일 잘 치는 여성 중 한 분이다. 현재 한국랭킹 1위, 세계랭킹 3위다. 그분이 캄보디아에 계속 살았다면 그분은 당구에 '당'자도 모르면서 평생을 살 수 있었다. 캄보디아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당구 인프라가 거의 없는 나라였다. 그분이 한국인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한국인 남편이 그녀를 당구장에 데려가지 않았다면, 당구장에 갔을 때 곧바로 그렇게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남편이 재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면, 그분이 자신의 재능을 믿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면, 아내가 성과를 보인 뒤에도 남편이 계속 격려하고 응원하고 최대한 돕지 않았다면, 그분의 성공신화는 불가능했을 테다. 이런 경우가 희박하기에 뉴스가 되고 화제가 되는 것이다.EBS시사교양다큐 '극한직업'. 방송사의 설명에 따르면, '극한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숭고한 의지와 잃어가고 있는 직업정신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근로자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니고 꼭 '작업자'라고 하는데, 어떤 직업이 되었든 천편일률적으로 나오는 피디와 작업자의 대화가 있다."힘들지 않으세요?" (힘든 사람한테 힘드냐는 질문을 하는 게 왜 우스꽝스러워 보일까? 아무튼) "그럼, 힘들지 안 힘들어. 안 아픈 데가 없지." "이렇게 힘든데 왜 하세요?" "먹고 살려면 해야지." 혹은 "처자식(가족) 먹여 살리려면 힘들어도 참고 해야지." "이렇게 힘든 일을 왜 하세요?" "배운 게 이것밖에 없어."그 육체적으로 힘들고 성취감을 갖기 어렵고(단순반복이고)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몹시 심하여서 견디기 어려운 추위' 같은 '극한'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표정과 말에서, (저분들의 노동 덕분에 내가 편안히 산다는 생각은 들어도) 숭고함과 가치는 느끼기 힘들었다.그런 극한직업에 종사하는 분들 중에도 '스롱 피아비' 같은 분이 수두룩하게 있었을 테다. 그분에게도 어떤 분야에서는 특출한 재능이 있었다. 그 재능을 발견하고 갈고닦아 꽃피울 수 있는 기회와 환경과 조건이 주어졌다면 그도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종사하며 '숭고한 의지'와 '직업정신의 가치'를 누리는 삶을 살았을 테다.인도 카스트제도를 비인간적이라고 비웃는 분이 많은 데, 과연 우리나라가 비웃을 자격이 있는 사회인지 모르겠다. 일제강점기 때부터만 살펴보아도 대대로 금수저고, 대대로 스카이학벌이고, 대대로 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장차관이고, 대대로 건물주고, 대대로 극한직업에 종사한다. 물론 무수한 예외가 있었다. 하지만 '개천에서 난 용'보다 '용 집안에서 난 용'이 훨씬 많았다.개천에서 난 이무기가 용이 되려면 무수한 시련을 극복하며 기회를 쟁취하여 스스로 조건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극한의 노력과 행운이 필요하다. 하지만 용 집안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최대한의 기회와 조건을 제공한다. 행운보다 더 강력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극한직업 종사자들은 '먹고 사는' '먹여 살리는' 수준이니 자식 세대에게 충분한 기회와 조건을 제공할 수 없다. 경쟁에서 밀린 극한직업 종사자들의 자식세대는 '스롱 피아비' 같은 인생역전의 기회가 발생하지 않는 한, 역시 극한직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을 테다. 대대로 부자유전사회인 것이다. 대놓고 세습하는 카스트제도랑, '눈 가리고 아웅' 세습되는 우리나라 사회가 뭐가 다른가.우리 40~50대 아저씨·아줌마들은 반성해야 한다. 민주화운동세대라면서,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사회를 더욱 더 비민주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민주화운동세대가 진정 꿈꾸었던 것은 대개의 청년이 부모의 재력·학벌·권력·직업에 상관없이, 동등한 기회와 조건을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능동적으로 선택하여 숭고함과 가치를 만끽하며 안전하게 살아가는 사회 아니었던가. 그런데 우리 세대는 '보이지 않는 카스트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있잖은가.지금 청년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동등한 기회와 조건'이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1-31 김종광

[춘추칼럼]당신의 정원은 어디입니까?

올해는 수많은 현안 방향 가름하는 시기될듯국가·지역사회 책임지는 '정원사' 역할 중요이제 '우리의 정원'에 쓰레기·돌 던지지 말고팔 걷어붙이고 돌멩이·잡초 솎아내야 한다"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정원은 정원사가 씨앗을 뭉텅뭉텅 뿌려놔 싹이 나온 곳만 뒤엉킨 채 열매를 맺었고 뿌려지지 않은 곳엔 새싹조차 돋지 않았다. 제대로 된 정원사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고 돋아난 열매조차 시들하여 그것을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정원을 제대로 가꾸고 노력할 의지가 없는 정원사는 '올해 농사가 제대로 안되면 다음에 다시 하지 뭐'라는 막연하고도 안이한 생각으로 임하기에 정원은 제대로 가꿔지지 않는다."'민주주의의 정원'(에릭 리우·닉 하나우어, 김문주 옮김, 2017, 웅진지식하우스)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우리의 '정원'은 어떤 상태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속한 사회의 풍경을 보노라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정원의 곳곳이 심각하게 망가지거나 훼손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2019년 기해년은 '우리의 정원'이 더 황폐하게 될지, 아니면 아름다운 장소로 변모하는 기반을 다질 것인지 흐름이 드러나는 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적 현실을 넘어 보수정부와 개혁정부의 중심이동 과정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와 현안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를 가름하는 시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청년실업과 고령화, 젠더·페미니즘, 입시교육, 부동산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빨아들이고 있는 경제위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누군가는 이러한 문제들을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현재 나와 관련된 문제만을 인식하거나 문제 삼는 데 급급한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사실은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인식과는 별개로 개별적인 수준이 아니라 쓰나미처럼 전면적으로 밀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무리 외면하더라도 결국 나의 문제가 될 것이며, 내 가족의 문제가 될 것이며, 우리 이웃의 문제가 될 것이다. 정원을 제대로 가꾸기 위해서는 '정원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원사는 국가와 지역사회를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나 도지사, 시장 등이 그들일 것이고, 국회의원과 시의원, 도의원, 구의원 등도 해당될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상당 부분 결정하고 책임지고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동시에 행정의 영역에서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일상의 영역이며 자율의 영역이다. 개인 혹은 커뮤니티의 일상적이고 자율적인 활동이 그러한 역할을 하게 된다. 시민정치, 마을활동, 사회적경제, 독서, 교육운동, 인문활동, 문화, 예술 등 그 범위는 넓고 다양하다. 그들이 바로 또 다른 의미의 '정원사'가 되는 것이다."훌륭한 정원사는 절대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정원에 대해 책임을 진다. 또한 날씨와 환경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이에 맞춰간다. 아름다운 정원은 지속적인 투자와 개선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훌륭한 정원사는 흙을 갈아엎고 여러 식물을 바꿔가며 심는다."우리의 정원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복합적 관점과 더불어 구체적인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오늘날 정원사는 '날씨'와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건강한 수많은 정원사가 등장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건강한 개인이 많아져야 한다. 건강한 개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정원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이해하는 역량을 갖추고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신체를 갖고 있는 이들이다. 이제 우리는 자문해봐야 한다. '나의 정원은 어디인가?' 그 정원을 가꿀 생각은 하지 않고 정원사만 욕하고 돌만 던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물어야 한다. 이제 '우리의 정원'에 쓰레기를 버리고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팔을 걷고 신발을 벗고 그 정원에 들어가서 잡초를 제거하고 돌멩이를 솎아내는 정원사가 되어야 한다. "사회는 당신이 행동하는 대로 만들어진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9-01-24 권경우

[춘추칼럼]보수의 재건과 통합은 가능한가?

탄핵 당한 박前대통령 무조건 감싸면 안돼궤멸 책임 묻고 비판할 수 있는 용기 필요시대정신에 맞는 새로운 가치로 화합 유도분열의 씨앗 키우는 계파청산 반드시 실천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 후보로 꼽히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황 전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현재 나라 상황이 총체적 난국"이라며 "자유한국당이 국민에게 시원한 답을 드릴 때"라고 입당 배경을 설명했다. 애석하게도 그의 메시지는 울림이 없었다. 무엇보다 "왜 황교안인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못하지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쾌도난마식으로 밝히지 못했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국정 농단 책임에 대해 소신 있는 고뇌에 찬 답변도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잘못됐다고 보는가?"라는 기자 질문에 "우리에게 지금 꼭 필요한 것은 국민 통합이라 생각한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이제 첫발을 내딛는 정치 신인인 황 전 총리에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적기에 말할 수 있어야 정치인의 메시지는 생명력을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황 전 총리의 첫 행보는 '반기문 2'를 연상할 정도로 준비가 약했다. 황 전 총리의 입당은 한국당 당권 경쟁의 판도에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 향후 한국 보수의 미래와 관련해 몇 가지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진다. 첫째, 보수 재건의 가능성 여부다. 한국 보수 세력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그리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궤멸적 참패'를 당했다. 작년 지방선거 직후 진보 언론매체의 한 기자는 "보수는 비겁하고 교만하고 무지했기 때문에 참패했다"고 분석했다. 단언컨대, 보수는 용기 있게 참회하고 겸손하며 실력을 쌓아야 재건될 수 있다. 무엇보다 '보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국민 70%, 국회의원 78.3%(234명), 헌법 재판관 전원이 합의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해 인정하고 참회해야 한다. 권력 사유화와 국정농단으로 치욕적인 탄핵을 당한 박 전 대통령을 무조건 감싸서는 안 된다. 보수 궤멸의 책임을 물어 비판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투쟁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보수 우파 정당들은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대안 정당으로 거듭나야 재기한다. 대한민국 헌법 81조 ②항에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됐다면 황 전 총리는 대통령을 잘못 보좌했다고 볼 수 있다. 황 전 총리는 이를 정치적 업보로 삼아 '도로 친박당' '박근혜 시즌2'로 회귀하는 것을 온몸으로 막아야 보수가 산다. 둘째, 보수 통합의 문제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새로운 가치를 통해 국민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국민들은 자유, 성장, 경쟁, 효율, 안보와 같은 보수의 가치 못지않게 평등, 분배, 투명, 분권, 평화 등 진보의 가치를 중시한다. 따라서 보수는 진보의 가치를 무조건 배격하지 말고 보수의 시각에서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포용적 진보 우파'의 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 내 외연을 확대할 수 있다. '반문 연대'는 보수통합의 가치가 아니다. 전략에 불과하다. 통합은 전략이 아니라 정신으로 하는 것이다. 통합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통합은 과거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향해 가는 것이다. 통합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실력 있는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셋째, 계파 청산 여부다. 김무성 전 대표는 황 전 총리의 전당대회 참여를 반대했다. "차기 대선주자들이 (전당대회에서) 대선 전초전을 앞당겨 치를 경우 그 결과는 또 분열의 씨앗을 잉태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한국당 전당대회가 친박과 비박 간에 골육상쟁의 내전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라도 홍준표, 김무성, 오세훈, 황교안, 김태호 등 모든 후보들이 출마해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승리한 새 당 대표가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내년 총선을 이끌어야 한다. 국민은 아직 무능하고 무책임해서 실패한 보수에 대해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민심은 늘 변화무쌍하고 두렵고 무섭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01-17 김형준

[춘추칼럼]북중정상회담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네번째 방중… 북미회담 임박 암시밀착관계 포석등 향후 전략들 가늠 가능해두번째 만남에 '한반도 비핵화' 명운 달려한미간 조율 중요… 입장 전달할 수 있어야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지난해에 3차례 중국을 방문하고 올해 첫 방문이면서 총 4번째 방중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및 북미협상을 전후하여 중국을 방문하였다. 첫 번째 방중은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해 3월이었다. 5월의 2차 방중에서는 6·12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 회담 전략을 논의하였다. 6·12 센토사 회담 직후 단행된 3차 방중에서는 향후 대응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논의의 연속 선상에서 현재의 네번째 방중을 통해 향후 북한의 전략을 가늠해 볼 수 있다.첫째, 올해 벽두부터 단행된 김 위원장의 방중은 북미정상회담이 임박했음을 암시한다. 지난해 북미고위급회담이 무산된 이후 이렇다 할 북미 간 실무협상이 전개되지 못했다. 완전한 비핵화까지 제재완화를 유보하는 미국에 대해 북한은 상응조치를 요구해 왔다.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 신년사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제재와 압박을 유지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이러한 교착국면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만나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런 인식을 반영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2차 북미정상회담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에도 긍정적으로 화답하였다. 며칠 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간에 정상회담을 위한 장소문제를 계속 협의하고 있으며 짧은 기간 안에 발표할 것임을 언급하였다. 북미 간 일정부분에서 조율이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둘째,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경우 북한은 핵동결을 토대로 미국의 상응조치를 이끌어 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를 최우선 목표로 둘 것이다. 한편 신년사에서 제안한 바 있는 평화체제 다자협상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자와 다자를 병행할 경우 체제보장을 위한 안전판을 보다 신속하고 정교하게 짜나갈 수 있다. 북한이 상응조치로서 요구해 왔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문제도 동시에 다룰 수 있다. 또한 중국의 참여를 공식화할 수 있다. 그간 미국과의 협상에서 부침을 느껴왔던 북한으로서는 중국이 적절한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이번 방중 수행원으로 김영철, 리수용, 리용호 등 북미 협상팀이 총출동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로드맵을 중국과 협의해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셋째, 지난해 3차례의 중국 방문은 미국과의 협상을 앞두고 중국을 배려하는 성격이 강했다. 이번 북중정상회담은 중국과의 밀착관계를 더욱 높이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특히 미중 간 무역협상을 앞둔 틈새의 시점에 방중함으로써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또한 미중 간 무역협상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협상 전략이 휘둘리지 않도록 중국 측에 당부를 요청할 필요도 있다. 올해는 북중수교 7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김 위원장은 많은 문제들을 중국과 협의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결론적으로 북한은 이번 중국과의 협의 이후 바로 북미정상회담 준비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 도중에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나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를 기대하고 있으나 북한이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남북정상회담이 북미정상회담 전에 열릴지 후에 열릴지 불투명하지만 각기 장단점이 있다. 만약 북미회담 전에 열릴 경우 북미정상회담에 우호적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그 이후에 김정은 위원장이 답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만약 북미정상회담 과정에서 우리가 중재해야 할 부분이 생긴다면 지난해 5월 판문점 2차 남북정상회담과 같이 비핵화에 한정하여 약식으로 회담을 개최할 수 있다.북미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온 만큼 이번 북중협의가 북미정상회담에 동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김영철 통전부장의 방미나 폼페이오 장관의 재방북, 여타 고위급·실무급회담도 뒤따라야 한다. 이번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정말 중요하다. 비핵화 협상이 계속되느냐 지지부진하느냐의 분수령이 된다. 한반도 비핵화의 명운이 달려있다. 우리도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협상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 알려진 바 없다. 마지막까지 한미 간 조율이 중요하다. 특사 방북 등을 통해 북한과도 소통채널을 계속 유지하여 우리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1-10 양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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