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갑질에 대처하는 법

인격 짓누르고 파탄내는 극악한 범죄 행위부당함 즉각 항의하고 바로잡고자 힘써야갑질은 또다른 갑질 불러… 참아선 안된다정당한 분노·저항 자신의 자존감 지켜줄것최근 한 야당 국회의원이 보궐선거 개표상황실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당직자의 멱살을 잡고 정강이를 걷어차 갑질 논란에 휘말렸다. 갑질은 한국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 중 하나다. 이른바 대한항공 086편 회항사건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갑질 사례일 것이다. 2014년 12월5일, 미국의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떠나는 여객기에서 대한항공 총수 가족이자 부사장인 조현아씨가 객실승무원의 서비스를 트집 잡아 항공기 회항을 지시하고 이륙을 지연시켰다. 이 갑질 사태로 기업의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기업의 인사구조 변화까지 불러오는 파장을 낳았다.고용주와 피고용주, 직장 상사와 하급 직원, 아파트 입주민과 경비원, 선배와 후배… 같이 부나 직위, 나이의 격차로 인해 갑과 을이라는 비대칭 구도가 생긴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갑질이란 힘의 위계에서 비대칭 관계인 갑이 을에게 윽박지르며 월권적 위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갑질은 갑의 우둔함과 무신경함에서 비롯되는데, 무엇보다도 개별자의 비뚤어진 인성, 인권에 대한 인지적 감수성의 부재, 즉 인격의 막돼먹음이 가장 큰 발생 이유일 것이다. 갑이 을의 인권을 침해하고 이익을 빼앗을 때 위력 행사는 갑질 당사자의 비루함은 그 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갑질은 피해자의 내면에 트라우마를 남기며, 삶의 의욕을 고갈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태다. 갑질 피해자의 일부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렇듯 타인의 인격을 짓누르고 파탄 낸다는 점에서 갑질은 극악한 범죄 행위다.갑질의 행태는 실로 다양하다. 부당한 강요, 협박, 막말(반말과 욕설), 폭행, 임금 떼먹기, 열정 페이… 따위가 다 갑질이다. 과시적인 소비문화와 함께 갑질이 활개를 치는 천민자본주의 세상은 너저분하고 미친 세상일 것이다. 몇 해 전 한 방송사 외주 프로그램 제작사의 조연출 일을 하던 한 청년은 모욕과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여긴 미친 세상이야!"라고 외치고 자살했다. 그런데 갑과 을은 고정불변의 관계가 아니다. 어제의 갑이 오늘은 을이 되고, 어제의 을이 오늘은 갑이 될 수가 있다. 이렇듯 갑과 을의 관계는 유동적이다.갑질사건 때마다 대중의 분노가 들끓고 벌통을 쑤신 듯 소동이 벌어지는데도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없는가? 유교적 가부장제 내에서 작동하는 수직화된 힘의 위계와 질서를 한국 사회가 관습적으로 수용하여 문화정서적 기율로 삼은 것도 원인 중 일부일 것이다. 또한 깊은 삶의 생태학이 부재하는 사회의 낮은 단계의 인권 감수성과 천박한 물질만능주의도 갑질이 창궐하는데 한 몫을 했을 테다.갑질은 구역질 나는 행위다. 어떤 경우에도 갑질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갑질에 대처하는 을의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가? 즉각적으로 갑의 부당한 행위에 항의하고 바로잡고자 애써야 한다. 강자들은 내심 약자의 저항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갑질을 당하고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은 철학자 니체가 말하는바 우리 안에 잠재된 '노예의 속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예의 속성'은 힘의 위세 앞에서 저자세와 굴종을 낳는데 이것을 약자가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처세술이라고 호도해서는 안 된다. 철학자는 부당함에 저항하지 않는 을을 두고 "재빨리 영합하는 자, 개처럼 툭하면 벌렁 드러눕는 자, 비굴한 자"라고 꼬집는다. 더 나아가 "결코 자기 자신을 지키려 하지 않는 자, 독성 있는 침이나 사악한 눈길도 받아들이는 자, 지나치게 인내심이 강한 자, 무슨 일이든 만족하는 자를 증오하고, 그런 자들에게 구역질을 느낀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고 말한다. 그렇다. 갑질에 대한 인내심은 우둔함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노예 도덕에 대한 비겁한 굴종이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모욕과 폐해에서 자신을 지키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갑질은 또 다른 갑질을 불러온다. 갑질에 속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참아서는 안 된다. 즉각 분노하고, 항의하라! 그 정당한 분노와 항의가 당신의 자존감과 인격을 지켜줄 것이다./장석주 시인장석주 시인

2021-04-15 장석주

[춘추칼럼]세대를 뛰어넘는 공감

24개월·6·7·9세 어린이들과 미식회 진행걱정과 달리 꼭 집어내는 '절대 미각' 지녀9살짜리 퀸 노래로 50년 나이차 극복 '공감'진정한 소통은 상대방 눈높이 맞추려는것요리를 만들고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다양한 연령대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요리를 직업으로 택한 이후 가장 재미있는 주제의 제안이 들어왔다. 그중 한 방송국에서 어린이와 미식회를 진행하여 동영상 채널에 올리고 싶다는 것이다. 어린이와의 미식회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어린이들의 연령이 궁금했다. 어린이들은 24개월, 6세, 7세, 9세의 남·여아라고 한다. 어린이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다.그동안 우리는 세대에 대한 많은 담론이 있어 왔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신세대 구세대로 양분하는 것이 전부이던 것이 나보다 연배가 높은 선배들은 베이비붐세대로, 나는 386세대, 후배들은 X세대, IMF와 월드컵을 겪어낸 세대는 Y세대 Z세대 즉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른다. Z세대까지 다 써먹었으니 더 이상 세대를 구분할 글자도 없다. 그런데 음식을 나눌 대상이 채 열 살이 안 된 어린이라고 하니 일을 하겠다고 결정하는 순간부터 고심이 깊어졌다.메뉴는 준비하는 내내 24개월 어린이가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내가 하는 음식은 중국음식이라서 이 어린이들이 나를 통해서 처음으로 중국음식을 접할 수도 있다는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요리의 가짓수는 열 가지로 하고 육지에서 구할 것, 바닷재료 등 골고루 선택하고 각각의 재료에 사용할 양념은 어린이들이 먹을 수 있을까 고심하면서 메뉴를 만들고 수정해 나갔다. 매일 하는 요리지만 그래도 어린이들이 잘 먹게 하려면 신경을 쓰고 또 써야 했다.진짜 걱정은 그다음이었다. 어린이들과 나의 나이가 50살이 넘게 차이가 난다. 이 나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까 고심하다가 뜬눈으로 지샜다. 미식회 당일 어린이들은 힘찬 소리와 함께 계단을 올라왔다. 막상 만난 어린이들은 의젓했고 밝았다. 24개월 된 어린이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기에 바빴다. 새우를 튀겨서 케첩에 조리는 요리를 하면서 풍미를 증진하기 위해서 조금 넣은 중국의 두반장에는 좀 매운데요? 라면서 넣은 양념을 바로 읽어냈고 매울까봐 케첩만 넣었더니 단순한 케첩 맛이 나는데요? 라면서 꼭 집어냈다. 어린이들은 절대 미각을 갖고 태어난 듯 보였다. 짜장면을 먹을 때는 오늘 짜장면 먹었다고 광고를 하는 것처럼 온 얼굴이 모두 짜장면으로 물들었다. 볶음밥은 한 그릇 더 달라고 곱빼기 주문이 들어왔다. 45㎝ 잉어로 만든 탕수생선 앞에서는 환호성을 질렀다.그중 9살짜리 한 어린이는 꿈이 래퍼였다. "함께 노래할까. 무슨 노래를 하고 싶어?" 했더니 영국 그룹 퀸의 노래를 불렀다. 9살짜리 어린이가 퀸의 노래를 하다니. 나는 서랍에서 잠자고 있던 미니 마이크도 꺼내고 컴퓨터에 꽂아서 쓰는 노래방등도 켰다. 미식회로 시작해서 음악회가 되어간다. 이게 웬일인가? 우리는 노래 하나로 50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나이도 잊은 채 함께 즐거워했다. 흥 많은 한국인인 우리네 정서를, 식사를 하면서도 노랫가락 한 소절을 부르면 더 행복한 유전자를 어린이들도 공유하고 있었다. 미식회로 시작한 우리들의 시간은 그렇게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함께 막을 내렸다.사람들은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옛날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나도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옛날이야기를 즐겨한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할 때 나는 즐겁지만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살짝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대마다 사용하는 어휘도 달라 간혹 세대 간 대화가 막히기도 하고 과도하게 줄인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이해하는 척하기도 하고 무슨 뜻이냐고 물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신세대인 밀레니얼과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도 나와 있다. 진정한 소통은 무엇일까? 상대방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오늘 하루 그렇게 보내보면 어떨까한다./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2021-04-08 신계숙

[춘추칼럼]나의 담낭 절제기

견딜수 없어 '제거' 쓸개 빠진 인간 돼버려獨의사 칼 랑겐바흐 절제술 현대에 이르러과거와 달리 1㎝구멍에 복강경 수술 보편화새로운 의술 묵묵히 개척한 의사들에 경의"강하고 담대하라."이집트에서 노예생활 하던 유대인을 탈출시킨 지도자 모세가 죽은 후 유대 민족을 고향 가나안으로 인도할 책임에 힘겨워하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당부하신 말이다.쓸개 담(膽) 클 대(大), '쓸개가 크다'는 뜻의 담대(膽大)는 겁 없고 용감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용감한 사람을 '담력(膽力)이 세다'고 한다. 반대로 용기나 줏대 없는 사람을 '쓸개 빠졌다'고 한다. 인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던 시절 용기는 쓸개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쓸개, 즉 담낭(膽囊)은 '쓰다'에서 나왔다. 오월동주(吳越同舟), 고대 중국 오나라와 월나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월(越)과 전쟁에서 아버지와 형을 잃은 오나라 왕자 부차는 편한 잠자리 대신 장작 위에 누워 자고 쓰디쓴 쓸개를 씹으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는 말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씹어보진 않았으나 쓸개액은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쓰다고 한다. 쓸개액 담즙(膽汁)은 이름과 달리 쓸개가 아니라 간에서 만들어진다. 쓸개는 간에서 흘러온 액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즉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소장으로 내려보내 소화를 돕는데 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니 위치도 간 바로 밑이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쓸개가 탈 나서 아팠다. 처음에는 별로 심하지도, 자주 아프지도 않고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을 때만 아프다 보니 오히려 '음식 조심하라'는 몸의 경고로 생각하고 참고 견뎠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자주, 심하게 아파서 급기야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없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싶어 수술하기로 했다.시간 내기가 어려워 오전 진료 마치고 점심시간에 입원해서 오후에 수술하기로 했는데 생전 처음 하는 수술이라 살짝 긴장도 되었지만 수술대에 눕고 약물이 들어가자마자 곧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마취 회복실. 그리고 쓸개가 사라졌고 고통도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쓸개 빠진 인간이 되었고 이틀 후 퇴원, 일주일 후 업무에 복귀하였다.지금이야 그다지 어려운 수술이 아니지만 불과 150여년 전만 해도 담석증은 불치병이었다. 제대로 된 마취도 없고 "배를 열면 공기에 노출된 내장에 염증이 생겨 죽게 된다"고 알던 시절이라 수술은 꿈도 못 꾸었다.1867년, 미국 의사 존 스토 밥스는 4년 간 통증에 시달리던 환자가 "죽어도 좋다"며 매달리자 수술을 결심했다. 쓸개에 구멍을 뚫어 돌과 쓸개즙을 빼내어 고통을 덜어줬지만 쓸개는 그대로 둔, 돌과 즙이 쓸개에서 흘러나오는 길을 남겨놓은 불완전한 수술이었다. 그러나 통증이 사라진 환자는 만족했다.1882년, 독일 의사 칼 랑겐바흐는 쓸개를 제거하는 새로운 수술법 개발을 위해 수년간 연구 끝에 최초의 담낭절제술을 시행했다. 16년간 통증에 시달려 체중이 40㎏이나 감소한 43세 환자의 수술은 성공리에 끝났고 6주 후 건강하게 퇴원하였다. 랑겐바흐는 이 사례를 학회에 발표했으나 무시당했다. 의사들은 여전히 쓸개에 구멍 뚫는 수술을 고집하며 랑겐바흐를 비난했다. 하지만 랑겐바흐는 좌절하지 않고 담낭절제 수술을 계속한 끝에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인정받게 되었고 담낭절제술은 이제 충수절제술(맹장 수술) 다음으로 많이 하는 복부 수술이 되었다.불과 이십 년 전만 해도 담낭절제술은 오른쪽 갈비뼈 밑에 20㎝ 정도 긴 수술 자국을 남기고 1~2주의 입원 기간, 한 달 이상 회복기가 필요한 큰 수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1㎝ 정도의 작은 구멍만 내고 내시경을 넣어 쓸개를 잘라내는 복강경 수술이 보편화 되면서 입원 기간과 회복 기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심지어 멀리 떨어진 환자에게 원격으로 로봇을 조종해서 수술할 정도에 이르렀다.지금 기준으로 과거를 돌아보면 어이없듯 미래 의사들은 병든 장기를 잘라내는 현대 의료를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에도, 오늘날도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금 의학이 가장 최신 의학이다. 그리고 새로운 의술에 몸을 맡기는 환자들과 무관심 및 비난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개척한 의사들 덕분에 의학은 조금씩 발전한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2021-04-01 김성호

[춘추칼럼]레임덕에 다가선 문대통령 지지율

부동산정책 무능·檢 개혁 정권의제 피로감경제성과 미미한 탓 대통령 임기말 급락세코로나 허니문 불구 'LH 사태'로 기름붓기중도층에 이어 일부 지지층까지 이탈 조짐임기 5년 대통령의 레임덕 패턴을 보면 임기 초 정치사회 개혁으로 지지율을 유지한 후 중·후반에 경제로 떨어지다가 임기 말에 권력형 비리로 급격한 레임덕을 맞는다. 결국 경제가 나아지길 기다리던 국민에 대한 배신의 분노가 분출되는 과정이다.3월 들어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의 하락이 예사롭지 않다. 19일 발표된 갤럽조사의 37%에 이어 22일 리얼미터 34.1%,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 34.0%, 24일 데이터리서치 31.4%로 35%선이 무너졌다.레임덕은 경제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경제와 정치사회 개혁에 대한 국민과 대통령 간의 허니문 기간이 각각 다르다. 대체로 정치사회 문제는 임기 초반에 기대한다. 그래서 대통령은 취임 이후 1∼2년 초기에 정치사회 개혁에 집중한다. 그만큼 정치사회 문제에 있어 국민과 새 대통령 간의 허니문 기간은 짧다.반면 경제의 허니문 기간은 길다. 국민은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경제가 단기간에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 2년 이상은 감내한다. 특히 코로나19와 해외 경제위기 같은 외부 요인이 있거나 정부가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정으로 열심히 노력할 경우는 2년보다 더 길 수 있다.그렇다고 5년 내내 기다리지는 않는다. 5년 임기가 끝나가면서도 경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들은 차기 대권주자에게 기대를 걸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급격한 권력 누수가 발생한다.역대 대통령 대부분은 임기 중반 경제로 지지율이 하락한다. 그러나 대통령 지지율은 국정수행의 평가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국정운영의 동력이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 지지율 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역대 정부에서 그 방법은 2가지다.먼저 경제 부양책이다. 그러나 과거 부양책들은 효과보다 풀린 돈으로 인해 부동산 상승 등 부작용이 더 컸다. 또한 각 경제주체의 부양책에 대한 학습효과로 부양책의 지속기간도 점점 짧아져 1·2개월로 끝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부양책을 함부로 쓰기도 힘들다. 그래서 경제적 부작용을 피하면서 대통령 지지율을 유지시키기 위한 두 번째 방법으로 정치사회 개혁으로 되돌아간다. 단 정부 초기와 달리 개혁 강도가 높아진다.문재인 정부도 처음에는 경제였다. 소득주도·혁신·공정성장과 사회경제 개혁 등에 집중했다. 그러나 경제정책들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논쟁에만 휩싸였다. 그러자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평화와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검찰개혁을 강화한다. 이로 인해 국민 시선을 경제에서 벗어나게 했다. 또한 코로나 사태는 경제 외부 요인으로 경제성과에 대한 좋은 면책사유이기도 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는 경제문제와 관련해서 다른 정부보다 허니문 기간이 길었다.그렇다고 문 대통령도 경제를 벗어날 수는 없다. 정권 초기 경제성과를 내지 못한 가운데 부동산 정책의 무능, 인사에서 내로남불 논란, 검찰개혁 등 정권 의제에 대한 피로감으로 중도층에 이어 일부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도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이런 가운데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건이 터졌다. 내부 정보로 투기를 한 사람들 중 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안정 등 정책 수혜자이거나 현 정부에서 급격히 늘어난 공공기관의 임직원이 적잖은데, 문제는 이들이 문재인 정부의 주요 지지층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다.데이터리서치의 24일 조사에 의하면 현 정부의 코로나 대책 신뢰도는 53.2%다. 작년 코로나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 지지율은 정부의 코로나 대책 신뢰도와 동조현상을 보였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는 지금까지의 동조현상이 깨어졌다. 정부의 코로나 대처 신뢰도가 나름 높음에도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수준인 31.4%까지 하락했다. 바로 이러한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내린 것은 다름 아닌 23.8%에 불과한 부동산정책 신뢰도 때문이다. 결국 이번 LH 사건이 그렇지 않아도 국민으로부터 비판을 받아오던 부동산정책 신뢰도를 파탄나게 하고 대통령 지지율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임기 1년여를 남기고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도 이전 대통령들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지 대통령 친인척이나 핵심권력의 스캔들이 아니라 현 정부의 기강잡기 실패로 인한 핵심 지지층의 도덕적 해이로 국민의 분노를 산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진퇴양난이다./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2021-03-25 홍형식

[춘추칼럼]그 많던 코미디프로그램은 어디 갔을까?

웃음은 근심·시름 잊게하는 카타르시스役독재에 균열 일으키고 악에 항변하는 저항가짜가 아닌 진짜 즐거움으로 꽉찬 유머들불황·전염병… 팍팍한 서민삶 살리는 명약언제부터인가, 티브이 방송 편성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코미디 프로그램은 찾아볼 길이 없다. 그 많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티브이 지상파 방송 편성에서 왜 사라졌는지, 나는 그 사정을 알지 못한다.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유머 1번지', 가장 최근의 '개그 콘서트'에 이르기까지 숱한 코미디 프로그램이 유머와 위트를 뒤섞은 콩트로,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쓴 쩨쩨한 정치에 대한 날선 풍자로 서민에게 웃음을 주며 번성기를 누렸다. 이제 코미디 프로그램은 명맥이 끊겼다. 팍팍한 나날의 삶에서 그나마 근심과 걱정을 덜어주는 노릇을 하던 코미디가 없으니 사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 티브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웃음을 주던 그 많던 코미디언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을까?웃음이 항상 기쁜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은 아니다. 웃음은 복잡한 프로세스 속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한 표현이다. 웃음은 대상과 당위적 기대 사이에 비대칭이 형성되는 찰나에 솟구친다. 잘 차려입은 신사가 거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질 때 사람들은 웃는다. 이때 제3자는 그 실수의 주체가 자기가 아니라는 안도감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이 웃음에는 주체의 우월감과 짓궂음이 묻어난다. 타자의 낭패에서 즐거움의 계기를 찾는 이 무의식의 행동에 깃든 짓궂음은 악취미에 지나지 않는다.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북동쪽에 위치한 압달라에서 살았는데, 백과사전 같은 지식을 가진 철학자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나이 아흔 살에 이르렀을 때 그는 온종일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항구로 나와서 부둣가 노동자를 바라보며 웃어대는 그를 가리키며 노망이 들었다고 수군거렸다. 유명한 의사인 히포크라테스가 이 늙은 철학자를 관찰한 뒤 그가 미친 것도, 병에 든 것도 아니라고 단정했다. 늙은 철학자가 온종일 발작하듯이 웃어댄 것은 주민들의 부조리한 상업 활동과 어리석음에 대한 경멸의 표현이었던 것이다.생리학자들은 웃음이 인간 내부에 있는 과도한 우월의식을 드러내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코미디언들의 바보 연기가 웃음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비실이' 배삼룡, '맹구' 이창훈, '영구 없다'의 심형래 같은 바보 연기의 달인들은 무의식중에 우리 안의 우월의식을 부추긴다. 그들이 연기한 바보스러움과 엉뚱함이 우리 안의 '자만과 착란'을 자극해 웃음을 터지게 한다. 광대의 익살극이 유행하던 시대의 천재시인 보들레르가 웃음을 '불행의 징후'라고 했다. 웃음이 제 고통에 대한 신체적 경련일 때, 혹은 제 자만의식을 분출하는 행위일 때 이것은 내면의 불순물이고, 제 안의 '불행의 징후'를 타인에게 되비춘 것에 지나지 않을 테다.인간은 웃을 줄 아는 유일한 존재다. 웃음은 근심과 시름을 잊게 하는 카타르시스 역할을 하고, 억압과 고통에 맞서는 비판과 저항의 뜻을 담아낸다. 웃음은 근엄한 독재와 파시즘, 광신주의에 균열을 일으키고, 악에 항변하는 저항의 한 방식이었다. 경제 불황에 전염병의 팬데믹이 덮치면서 서민의 삶은 더욱 암울하고 팍팍해졌다. 그럴수록 유머와 웃음이 필요하다. 웃음은 현실 극복 의지를 북돋는 청량한 자극제가 되거나, 유언비어와 가짜 뉴스들에 찌든 마음의 치유제가 될 수도 있을 테다. 맘껏 웃다 보면 감정을 옥죄는 불안과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테니까.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진 자리를 '먹방'이 꿰찬다. 하지만 상업주의에 매몰된 개인 미디어에서 방출하는 '먹방'이 자아내는 웃음은 상품으로 소비될 뿐이다. 코미디를 대신하는 '먹방'은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것은 비틀린 웃음만을 낳는데, 그런 웃음은 가짜 치료제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진짜 즐거움으로 꽉 찬 유머들, 남이건 자기건 아무도 해치지 않는 무해한 웃음들이다. 그런 유머와 웃음들이 우리를 살리는 명약이다. 우리를 웃기는 코미디언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그들의 활동무대인 공중파 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부활하기를 기다린다./장석주 시인장석주 시인

2021-03-18 장석주

[춘추칼럼]지금은 대차고 올곧은 정치가가 필요한 시대

진정한 정치가는 초지일관 '소신'이 있어야김구선생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보다아름답고 높은 문화의 힘 갖춘 나라 원했다현재 올곧은 철학으로 정치하는 사람 안보여해마다 3월은 봄이 왔다는 설렘에 앞서 일제강점기에서 독립한 날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더욱이 올해는 서울, 부산 등 대도시의 보궐선거를 치러야 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와 정치가의 의미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 서울, 부산 등지에서는 당마다 대표적인 주자를 정하고 선거운동에 한창이다. 누군가에게 한 표를 찍어야 하는데 누구를 찍을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였다. 누가 우리를 코로나 19 팬데믹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을까. 누구의 부동산 및 주거정책이 좀 더 명확하고 효율적인가.각 후보는 '35층 층높이 제한을 완화하겠다' 또는 '대대적 재개발과 재건축을 추진하겠다'. '신혼부부용 한강변 초고층 아파트를 짓겠다', '뉴타운 65만가구를 공급하겠다', '65세 이상 1주택자 종부세를 면제하겠다', '주택청약 세대별 할당제를 실행하겠다'고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부동산 문제는 완전히 해결될 것 같기도 하다.선거는 입후보한 사람에게는 될 수 있는 한 각종 방법을 다 동원하더라도 되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드나 보다. 권력이 있는 사람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권력 있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표가 절대적일 것이다. 그래서 전직 대통령을 찾아가고 전직 대통령 부인을 찾아가고 서로 간에 나눈 대화가 신문 방송을 통해 보도되기도 한다.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대학 때 배운 맹자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맹자 이루하'편에 보면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에 부인과 첩을 두고 사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남편이 밖에 나가기만 하면 술과 고기를 아주 많이 대접받고 왔다고 하는 것이었다. 부인이 "오늘은 누구랑 만나서 그렇게 드셨어요?"하고 물으니 "오늘은 고관대작하고 마셨지"하는 것이다.부인이 첩에게 "우리 집 남편이 집에서 나가기만 하면 저렇게 고기와 술을 대접받았다고 하면서 매일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데 그 정도면 남편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해준 손님들이 집에도 와야 하는데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없고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내일은 남편이 밖에 나가서 누구를 만나서 뭐하고 술을 누구와 마시는지 한번 미행해보겠다"고 하고 따라 나가 보았다.남편은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다른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마침내 동광에 이르렀을 때 한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남편은 그곳에 가서 구걸하면서 남은 음식을 얻어먹고 그곳에서 부족하면 또 다른 곳에서 얻어먹고 있었다.그걸 본 부인이 집에 와서 첩에게 하는 말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러러보며 살아야 하는 양반이 이러고 있으니 어쩌면 좋으냐며 서로 붙잡고 울 때에 남편은 이런 일도 모르고 또 밖에서 돌아와 잘난 척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진정한 정치가는 초지일관 소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존경하는 김구 선생님은 그의 한평생을 온전히 조국의 독립과 평화통일을 위해 바쳤다. 동학에 입도하였고 유가 학문을 공부하였으며 의병 활동에도 가담하였다. 옥중에서 새로운 문물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고 승려가 되기도 했다. 고향에서 농장의 관리인 생활을 하며 농민계몽 운동에 헌신하였다.3·1운동 이후에는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으며 중국에서 항일운동의 최선봉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다. 한평생 민족 자체의 통일독립국가 건설을 주장하였고 민족통일을 위한 노력에 매진하였다.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 중에서 이렇게 말했다.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나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은 원하지 아니 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시장은 있는데 정치가는 없고 국회의원은 많은데 올곧게 철학을 갖고 정치를 하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대차고 올곧은 시장을 뽑고 싶다./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2021-03-11 신계숙

[춘추칼럼]누가 먼저

'더 가치있는 생명' 누구도 판단할 권리 없어코로나 백신 접종… 관심도 많고 말도 무성희생자 줄이고 효율성 따져 순서 정했을 것양 충분한 만큼 기다렸다 빠짐없이 맞아야대학 시절 어느 교수님이 이런 질문을 하셨다. "배가 난파되었는데 하나뿐인 구명보트에는 2명만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배우자, 아들, 나 이렇게 네 명이 남았습니다. 누구를 구명보트에 태우겠습니까?" 많은 의견이 다양한 이유와 함께 나왔다. 심지어 "아무도 타지 말고 온 가족이 같이 죽자"라는 주장까지.10여년 전 의료 수준과 장비가 극도로 열악한 나라에 국내 모 투석회사가 혈액투석기 2대와 관련 물품을 무상으로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 혈액투석이 낯선 그 나라 의사들에게 의료 기술 전수를 위해 방문한 적이 있었다. 투석기가 2대밖에 없는 그 병원에서는 1주일에 세 번씩 평생 투석을 해야 하는 말기신장병 환자 대신 1~2주 정도만 투석으로 버텨주면 콩팥 기능이 회복되어 살아날 수 있는 급성신손상 환자에게만 투석 치료를 하고 있었다. 제한된 의료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궁여지책이었던 셈이다.전방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대량 전상자 분류는 의무부대의 가장 중요한 훈련 중 하나였다. 전쟁으로 많은 병사가 다치거나 죽은 상황에서 군의관과 위생병은 전장을 누비며 환자들에게 빨강, 노랑, 초록, 검정 표식을 달아줬다. 빨간색은 빨리 치료하면 살 수 있지만 위중한 환자, 노란색은 위독하진 않으나 조기 치료가 필요한 상태, 초록색은 가벼운 부상, 그리고 검은색은 적극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이 어렵거나 이미 사망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 우선순위 표식을 보고 환자를 후방으로 옮겨서 치료하는데, 이 중증도에 따른 치료 우선순위 분류법을 '선별'을 의미하는 트리아지(Triage)라고 부른다. 트리아지는 1797년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 군의관이던 도미니크 장 라레가 전쟁터 부상병을 치료 가능한 곳으로 빨리 수송하기 위해 '날아다니는 구급차(Ambulance volante)'라는 이름을 가진 '비록 날 수는 없었지만 날듯이 빨리 후방으로 환자를 옮기는' 마차 형태의 운송 수단과 함께 처음 도입하여 수많은 생명을 살렸고, 현재 많은 응급실과 재난 현장에서 이 분류법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고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코로나19 대유행으로 환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의료 장비와 침상, 인력이 바닥난 나라 의사들은 끔찍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누구에게 인공호흡기와 중환자실을 우선 배분할 것인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포기할 것인가? 환자로 넘쳐나던 일부 병원에서는 실제로 나이가 많거나 아주 위중한 환자는 인공호흡기 대신 산소만 공급받기도 하였다. 인력과 장비가 충분하다면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살리는 것이 마땅하지만 중환자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자원과 인력 한계로 모든 환자에게 같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는 생존 가능성이 큰 환자에게 치료를 집중함으로써 최대한 많은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선택적 의료 배급(rationing care)'을 선택한 것이다.하지만 누구 생명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평소 생명 존중을 최상의 가치로 삼던 의사들이다 보니 살릴 자와 죽을 자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기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최상의 결과를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회생 가망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 쏟을 시간과 인력, 장비를 살릴 수 있는 환자에게 더 집중하여 최대한 많은 생명을 구하려는 '최대 다수의 최대 구명',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추구'라는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주장한 공리주의의 재난 버전이라고나 할까.지난주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 맞을 것인가, 어떤 백신이 내게 돌아올까 관심도 많고 말이 무성하다. 백신 접종 순서는 희생자를 최소화하면서도 빠르고 효율적으로 코로나19를 물리치는 방향으로 정해졌을 것이다. 백신 접종 순위에 빨강, 노랑, 초록 표식은 있어도 검은 표식은 없다. 전 국민에게 돌아갈 충분한 양이 확보되었다고 한다. 내 순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빠짐없이 맞는 일만 남았다./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2021-03-04 김성호

[춘추칼럼]국민의힘 이제는 다를까?

'여론' 국민의 눈 아닌 자신 시각으로 읽어보고싶은 것만 보고 그야말로 '아전인수격'국민이 원하는 정책·공약과 전략 구사해야민심 제대로 읽어야만 보선·대선 승자 될것민심은 천심이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 민심은 오늘날 주로 여론조사로 읽는다. 그리고 정치권이 민심을 얻었느냐 얻지 못하였느냐는 선거결과로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DJ 사례와 최근 보수 야권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먼저 DJ의 경우 1987년 치러진 13대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주진영에서는 김영삼·김대중 양김 단일화의 요구가 컸다. 그러나 단일화 논쟁에서 수세에 있던 김대중은 단일화를 거부했는데 그 근거로 자신이 앞서 있다는 여론조사를 내세웠다.문제의 여론조사는 친 김대중진영의 단체가 실시한 조사였으나 엄밀한 표본의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한 김대중에게 유리한 결과였다. DJ는 이러한 여론조사 수치를 근거로 자신이 앞서 있기에 후보를 양보할 수 없다고 끝내 버텨 후보 단일화가 무산됐다.결국 13대 대선에서 노태우가 36.6% 역대 최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 뒤를 이어 김영삼 28%, 김대중 27%, 김종필 8.1%로 김대중은 3위를 차지했다. 선거결과는 참혹했다. 단일화를 거부한 양김 중 3위를 한 사람이 더 큰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인지라 결국 DJ는 자발적으로 정치은퇴까지 선언한다.그후 김대중은 1992년 14대 대선에서도 13대 대선의 정치적 책임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한다. 그러나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전략을 바꾼다. 그 유명한 뉴DJ플랜이다. 이때 뉴DJ플랜은 이미지 전략이지만, 또 한편에서는 여론을 따르는 것이다. 자신의 DJ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DJ로 스스로 바뀌어 다가간 것이다. 물론 당시 재야세력의 반발은 컸다. 그럼에도 DJ는 여론에 대한 대전환을 했고 여론을 바로 읽고 따랐기에 대통령의 꿈을 이루게 된다.그로부터 20년이 흘러 2017년 19대 대선에서 보수진영은 홍준표를 내세워 문재인과 대결했다. 그러나 결과는 문재인 41.1%, 홍준표 24.0%로 보수진영이 역대 최대 참패를 한다. 당시 홍준표 후보는 선거기간 여론조사에 대해 가짜여론조사라거나 내가 이긴다는 식으로 여론조사를 무시했다.그러다 보니 홍준표는 선거 기간 선거전략을 바꿀 이유가 없었고 끝까지 홍준표 특유의 선거 캠페인을 이어 갔으며 결국은 선거에 참패한다.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미래통합당으로, 그리고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꾸고 비대위 체제로 생존을 위한 변신을 시도했지만, 대선과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연이어 참패했다. 그리고 올 4월과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국민의힘 정당지지도, 차기대권주자 지지도, 서울시장후보 지지도 등 각종 여론지표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왜 국민의힘 관련 각종 지표가 지지부진한가? 그 이유는 여론을 대하는 보수진영의 태도 문제다. 국민의힘이나 과거 보수당의 여론관의 특징을 보면 첫째 여론을 자신의 시각으로 읽는다. 국민의 눈이나 심지어 지지층인 보수의 눈으로도 읽지 않는다. 두 번째는 취사선택이다. 즉 자신의 눈으로 보면서도 다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세 번째는 여론을 쉽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눈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니 여론은 아주 단순해 보인다. 그야말로 아전인수격이다. 여론이 무섭거나 두렵지도 않다. 그러니 따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맞서거나 바꾸려 든다.결론적으로 이러한 대중관은 국민을 객체로 본다. 기본적으로 민심을 따르기보다는 가르치거나 맞서거나 때에 따라서는 조작 통제의 대상이다. 이렇게 되는 순간 정치인은 갑이 되고 국민은 을이 된다. 즉 정치인의 갑질이다. 그것도 여당도 아닌 정권을 잃은 야당인 국민의힘이 이런 여론관을 가지면 각종 여론지표가 낮을 수밖에 없다.곧 큰 선거가 다가온다. 선거는 여론을 정확히 읽고 시민이나 국민이 원하는 정책과 공약, 그리고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쪽이 올 4월 서울시장 선거와 내년 대통령선거의 승자가 될 것이다. 대선 3수를 한 DJ는 늦게라도 이러한 민심을 알았기에 대통령 꿈을 이루었다. 탄핵을 당하고 이어 대선·지방선거·총선 연이어 참패를 한 국민의힘이 이번엔 다를 수 있을는지 여부는 오로지 민심을 제대로 읽어내느냐에 달렸다./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2021-02-25 홍형식

[춘추칼럼]쓰레기 분리수거의 날에 생각한 것들

인간 관점에선 효용 가치 다한 자연이지만그 용도 미처 찾지 못한 물건일지도 몰라…인류의 번성은 지구 생태계에 미증유 재앙'무관심 편향'이 기후재난 시한폭탄 시작점화요일은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날이다. 재활용할 종이, 박스, 비닐, 유리병,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을 분리해서 내놓는다. 여러 가구에서 나온 생활 쓰레기가 작은 동산을 이룬 것을 볼 때마다 가느다란 죄책감을 느낀다. 우리가 이용하던 신선식품 배송업체는 식품을 제각기 다른 박스에 담아 배송한다. 박스를 줄여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시정되지 않아 배송업체를 바꾸었다. 새 배송업체는 주문식품을 한 재활용 비닐박스에 넣어 배송하고 다음 배송 때 수거해 간다. 따로 버릴 박스가 없으니 그만큼 분리수거의 필요를 덜어주는 것이다.지구 인구가 늘면서 쓰레기의 배출량도 늘어난다. 자연을 가공하는 문명화 과정에서 쓰레기 발생은 피할 수 없다. 인간의 손에서 설계와 제작을 거쳐 나온 물건은 본디 쓰임을 다하고 폐기될 때 쓰레기로 돌아간다. 쓰레기란 인간의 관점에서 효용가치가 다한 자연이다. 인간이 생산과 창조활동을 하는 곳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생산의 이면에 가려진 비밀이고, 그 처리는 인간이 풀어야 할 영구적 난제 중 하나다.산업 쓰레기와 생활 쓰레기가 지구의 생태학적 균형을 깨트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쓰레기가 꼭 나쁘기만 한 것일까? 누군가에겐 쓰레기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자원이다. 쓰레기는 그 용도를 미처 찾지 못한 물건일지도 모른다. 쓰레기는 매혹과 혐오라는 양면성을 다 갖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쓰레기는 모든 창조의 산파인 동시에 지극히 가공할 만한 장애물이다"라고 말한다.지구 인구가 10억명이 되는데 20만년이 필요했지만, 70억명이 되는데 불과 20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구에 생육하고 번성한 인류는 자연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서 과부하로 인한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지구 자원을 제 마음대로 퍼 쓰는 인류의 번성은 지구 생태계에는 미증유의 재앙일 테다. 인류는 육류와 동물성 제품을 얻으려고 680억 마리의 가축을 사육한다. 가축 사육에 어마어마한 곡물을 쓰고, 울창한 숲을 목초지로 바꾸며, 인간이 쓰는 담수 3분의 1을 쏟아붓는다. 축산업이 전 지구적으로 온실가스의 18%를 발생시킨다. 이산화탄소, 메탄, 이산화질소로 이루어진 온실가스는 기후재난의 주요 원인이다.지구는 지난 세기보다 더 자주 기상 이변을 겪는다. 초강력 태풍이 오고, 해수면은 상승하며, 잦은 가뭄과 물 부족 사태가 빚어지고, 대기와 해양은 각종 쓰레기로 뒤덮여 간다. 사하라 사막에 난데없는 폭설이 내리고, 페루 바닷가는 죽은 정어리 떼로 뒤덮이며,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가 강으로 떨어져 나와 홍수를 일으켜 인근의 수력발전소 댐을 붕괴시키고 마을을 휩쓰는 것도 기후변화의 영향이다. 기후재난은 지구 생태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있다는 전조증상이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우리가 날씨다'에서 "기후변화는 재깍거리는 시한폭탄이다"라고 경고한다. 우리 안에 퍼진 '무관심 편향'이 기후재난이라는 시한폭탄이 재깍거리는 시작점이다.오늘 태어난 아기에게 '지구라는 초록별에 온 걸 축하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인류는 미래 세대에게 생태적 빚을 지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 깨끗한 대지와 공기들은 미래 세대가 누릴 것을 빌려 쓰는 셈이다. 쓰레기는 소각되거나 땅에 묻혀 썩는다. 하지만 잉여의 쓰레기는 늘 골칫덩이다. 바다로 흘러든 플라스틱 쓰레기는 대양에서 섬을 이루고 떠돈다. 전 세계가 한 목소리로 탄소발자국을 줄이자고 한다. 그것을 줄이는 확실한 방법은 인류가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인간사회는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일종의 초유기체, 즉 하나의 덩어리다. 한 사람의 문제는 모두의 문제이고, 모두의 문제는 결국 한 사람의 문제다. 인류가 현재 수준의 쓰레기를 지속적으로 배출한다면 지구는 곧 쓰레기로 뒤덮일 테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우리에게 달렸다. 우리 각자가 생태적 각성과 더불어 쓰레기를 덜 배출하는 윤리적 실천에 나서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장석주 시인장석주 시인

2021-02-18 장석주

[춘추칼럼]김치, 이제는 세계인의 음식

한국·중국, 때아닌 '김치 종주국' 논쟁각국 사람들 한식에 대해 '특별한 관심''어떻게 발전시켜 나아 갔느냐'가 중요이젠 '세계인의 것'이라고 표현 할때다입춘을 앞뒤로 강풍과 한파가 동시에 휘몰아치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은 때아닌 김치 종주국 논란으로 뜨겁다. 한국에서는 우리가 김치의 종주국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중국이라고 한다.문제의 중심이 된 곳은 구독자 1천400여만명을 둔 중국인의 유튜브였다.유튜브를 찾아 들어가 보니 출연자가 밭에 나가 뜯어온 배추로 김치를 담그나 보다. 밀가루 풀을 쑤고 풀이 식기도 전에 고춧가루를 넣고 양념을 하여 김치를 담는다. 그리고 1주일 후 돼지고기를 썰어 넣고 김치찌개를 만들고 해시 태그에 'chinese food'라고 달아 놓았다.이것을 본 젊은 한국인 유튜버가 김치는 한국이 종주국인데 왜 김치를 'chinese food'라고 하느냐고 한 것에서 논쟁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두 젊은이가 인터넷상에서 벌인 논쟁에 두 나라의 언론이 반응을 하였고 김치와 관계가 있는 유관기관에서는 대책 마련에 고심하나 보다.김치는 중국에서 파오차이(泡菜)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이 논쟁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김치는 고유명사다. 중국에서도 김치를 김치라고 부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중국어 발음에는 '김'이라는 발음이 없다. 가장 근접한 발음을 찾아봐도 '진' 아니면 '신'이다. 그렇다면 진치, 신치가 되어야 하는데 그 발음으로 김치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그런 상황에서 중국에서 한국의 김치를 표현할 말을 찾아야 하는데 그 발음은 없고 중국의 쓰촨성에 파오차이라는 요리가 가장 유사한 것으로 보이니 한국파오차이라고 부르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김치는 배추를 절이고 젓갈과 고춧가루, 새우젓 등을 무에 버무리고 비벼서 배추의 사이사이에 속을 채우고 김칫독에 꾹꾹 눌러 담은 후 발효가 되면 먹는다. 반면 쓰촨파오차이는 산초, 계피, 팔각, 월계수잎 등의 향신료를 물에 넣고 끓여서 식힌 다음 물에 소금, 파, 마늘, 양배추, 무, 당근, 샐러리를 썰어 넣고 고량주를 넣는다. 가장 빠르게는 1주일에서 보름 후부터 재료만 건져서 먹고 그 국물에 또 채소를 넣고 발효되면 또 재료만 건져 먹는 음식이다. 우리의 김치가 김칫국까지 모두 먹는 반면 파오차이는 국물을 먹지 않는다. 김치와 파오차이는 이렇게 다르다.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므로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긴 겨울을 나기 위해서 김장을 담가 저장을 해야 했다. 고춧가루는 색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방부제 역할을 하고 젓갈은 발효를 촉진 시켜 맛을 내고 있다.쓰촨파오차이를 만들어내는 쓰촨지역은 중국의 서남부에 땅이 아래로 움푹 들어간 분지를 이루고 있다. 여름에는 무척 습하고 더우며 겨울은 속으로 스미는 음습한 추위가 스민다. 따라서 여름은 더위를 식힐 음식으로 겨울은 입맛을 돋울 수 있는 음식으로 파오차이가 만들어지게 되었다.이와 같이 음식은 자연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먹기에 적합한 것으로 만들어지고 전파된다. 전파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음식문화와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융합되기도 하고 또 다른 음식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정착되기도 한다. 간혹 어떤 두 나라가 정치적으로 긴장상태가 되더라도 민간인들이 문화, 예술방면의 교류를 통해서 두 나라 사이의 얼음을 녹이는 과정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꾸로 김치논쟁이 정치적으로 번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된다.우리는 그동안 우리 음식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한식세계화'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그 결과 세계 각국 사람들이 한식에 대해 혹은 김치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종주국의 개념은 '어디서 발원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발전시켜 나아갔느냐'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전 세계에 김치를 어떻게 만들어 어떻게 잘 팔 것인가를 각 방면으로 연구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는 뉴욕의 한복판에 김치는 한국 것이라고 쓸 것이 아니고 통 크게 김치는 세계인의 것이라고 써야 할 때 아닌가./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2021-02-04 신계숙

[춘추칼럼]100년이 지났어도

스페인 독감 '기억하고 대비한다' 구호처럼환자 조기발견·격리 등 '감염 전파 최소화'빠른 치료제·백신개발 코로나 퇴치 머지않아손씻기·거리두기·마스크… 끝까지 긴장해야"전염병이 퍼져 사람들이 죽어 나가자 학교·극장·상점은 폐쇄되고 모임도 금지되었다. 마스크 착용은 의무화되고 마스크 없이는 외출도 대중교통 이용도 할 수 없었다. 경찰은 심지어 담배 피우려고 마스크 벗는 사람까지 체포하여 벌금을 부과하거나 구류에 처했다. 장례식은 15분내에 끝내도록 제한되고 도시마다 관이 동나고 묘 파는 인부와 장의사가 부족한 사태가 발생했다. 도로에 화학 약품이 살포되고 일부 도시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증명서 없이는 출입할 수 없었다. 의료 인력이 부족하자 자원봉사자, 군의관을 동원했으며 급기야 의과대학 3·4학년 과정을 중단하고 학생을 병원에 투입해 의료 업무를 맡겼다."익숙해 보이는 이 장면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겪고 있는 지금이 아니라 100년 전 16억 세계 인구 중 6억명 감염에 5천만명이 사망한 스페인 독감 당시 상황이다. 지금과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인다.스페인 독감. '1918년 인플루엔자 범유행'이 정식 명칭이지만 보통 '스페인 독감'으로 부르고 있다. 사실 스페인은 억울하다. 독감은 스페인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미국 캔자스에서 시작되어 인근 신병 훈련소로 확산된 독감은 1차 세계대전 중 유럽에 파견된 미군을 통해 유럽 전역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전쟁이 한창이던 참전국들은 적국에 이로운 상황이 알려지는 것을 피하고 아군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검열을 강화하는 등 독감 관련 보도를 철저히 통제하였다. 하지만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던 스페인에서는 언론이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스페인에서만 800만명의 환자가 발생하자 독감과 그 영향에 대해 깊이 있게 보도하였다. 여기에 더해 국왕 알폰소 13세까지 감염되면서 스페인은 오명을 뒤집어썼다.예년 독감과 달리 스페인 독감은 폐렴으로 빠르게 진행하여 걸린 지 2, 3일 만에 사망할 정도로 치사율이 높았다. 밤늦도록 카드 게임을 같이 한 여성 4명 중 3명이 다음 날 아침에 죽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또한 특이한 점은 젊은 인구의 높은 사망률로 희생자 대부분이 65세 이하였으며 특히 20~45세가 전체 사망자의 60%를 차지하였다. 세계는 대혼란에 빠졌다.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1차 세계대전 희생자보다 3배나 많아지자 전쟁은 서둘러 매듭지어졌고 평화 조약이 맺어졌다. 수많은 희생자를 남기고 독감은 자취를 감추었다.그리고 100년이 지난 2019년 12월, 중국 어느 도시에서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하였다. 처음에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았고 그저 중국의 한 도시에서 생긴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교통의 발달과 사람의 이동이 많다 보니 급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국경을 봉쇄하였지만 이미 한 발 늦었다.100년만에 다시 겪는 대유행! 워낙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지만 치료제도 백신도 없다 보니 100년 전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이동 제한, 모임 금지, 상점 폐쇄, 도시 봉쇄 그리고 마스크와 거리두기, 손 씻기.하지만 우리는 지난 100년을 결코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2018년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가 발표한 스페인 독감 100주년 기념 구호 '우리는 기억하고 대비한다(We remember. We prepare.)'처럼 인류는 전염병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왔다. 역학 조사를 통해 환자를 조기에 발견·격리하여 감염 전파를 최소화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 염기서열을 밝혀내고 신속한 진단 기술을 개발하였다. 음압 병상, 인공호흡기 등으로 중증 환자를 치료하면서 100년 전 같았으면 죽었을 환자도 이제는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축적된 의학 기술의 발달 덕분에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항체 치료제와 백신 개발로 코로나19를 물리칠 날이 멀지 않았다.우리나라에서도 다음 달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고 한다. 일 년간 힘든 날을 견뎌온 우리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손씻기, 거리두기, 그리고 마스크.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는 그 날까지!/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2021-01-28 김성호

[춘추칼럼]문 대통령 지지율과 레임덕

신년 여론조사에서 35~40% 지지율 보여강도 보면 '대립적 갈등형'… 심리적 체감이전 정권보다는 '선방'하고 있다고 봐야 기대 대한 성과로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대통령 임기 1년 4개월을 남겨 둔 연말 연초에 여러 대통령 지지율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각종 신년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도는 35% 전후까지도 내려가는 등 대체로 35∼40%의 지지율을 보였다. 최근 한길리서치 1월 2주 조사에서는 40.7%, 갤럽 1월 2주 조사는 38%였다.그럼 대통령 지지율이 얼마가 되었을 때 레임덕으로 봐야 할까? 물론 이에 대한 정확한 기준은 없다. 단지 역대 대통령의 4, 5년 차 무렵 레임덕 현상을 보인 시기의 지지율로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대체로 역대 대통령의 경우 30%가 무너지면 레임덕 현상을 보이고 20%가 무너지면 레임덕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단순지지율로만 판단한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레임덕 여부를 판단하려면 단순지지율뿐만 아니라 지지율의 강도와 정치적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단순 지지율은 정량적 측면이고 지지율 강도는 정성적 측면이다. 그리고 정치적 상황은 수치와 강도의 역학이 작동되는 에너지의 장이 된다.먼저 문 대통령의 단순 지지율로 레임덕 여부를 보면, 현재 문 대통령의 35% 전후∼40% 초반 지지율로는 레임덕이라 보기는 어렵다.그러나 정성적 측면 즉 지지율의 강도를 보면 달라진다. 한길리서치 1월 2주 조사의 대통령 긍정평가는 40.7%지만 아주 잘하고 있다는 20.9%, 다소 잘하고 있다는 19.8%다. 반면 부정평가는 56.9%인데 아주 잘못하고 있다는 41.3%, 다소 잘못하고 있다는 15.6%다. 이러한 문 대통령 지지율 분포 모양은 바가지를 업어놓은 모양(정규분포)이 아니라 바가지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분포다.즉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중립적 합의형이 아니라 대립적 갈등형 분포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 지지율의 전체 긍정평가(40.7%) vs 부정평가(56.9%) 배율이 1.40이지만, 매우 긍정(20.9%) vs 매우 부정(41.3%) 배율은 1.98로 더 커진다. 결국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의 힘도 크지만, 레임덕 원심력인 비토층의 힘이 두 배나 더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통령의 레임덕에 대한 심리적 체감 현상이 나타난다.마지막으로는 정치적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전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당선된 대통령이다. 다시 말해서 생태적으로 적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탄핵을 처음부터 반대했던 보수층의 반동적 저항은 당연히 강하다. 또한 중도층도 탄핵에 동의했기에 현 정부에 대한 잣대나 기대치는 전 정부보다 더 높고 엄격하다. 이런 정치적 역학의 상황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전의 대통령에 비해 10%p 정도는 더 높아야 한다. 즉 정치적 역학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40% 지지율은 과거 대통령의 30% 정도 지지율의 국정 장악력이 된다.결론적으로 말해 문 대통령의 단순 지지율 35∼40% 수준으로는 레임덕이라 볼 수 없다. 그러나 비토그룹의 크기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한 체감 지지율은 레임덕 상황이다. 그래도 현시점에서 이 정도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이전 정권보다는 선방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대통령 지지율은 4년 동안 국정수행에 대한 결과적 평가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의 국정운영의 동력이다. 그러면 문 대통령의 임기를 마무리하기 위한 지지율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앞서 말한 대로 과거 정권 말기 레임덕이 시작된 30%보다는 10%p 더 높은 40% 수준이다.그런데 임기 말 대통령 지지율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임기 말은 국민들이 임기 초기 기대감으로 바라보던 허니문 기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내심으로 4년을 기다린 국민들은 구체적 성과를 보고 평가한다. 따라서 임기 말 대통령이 정쟁을 통한 비교우위나 책임 전가, 현란한 언변(레토릭), 인사나 국면전환용 대증요법으로 국정운영을 하면 역효과가 나타난다.국민의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진정성과 소통의 리더십으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 사회 양극화가 해소되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다. 그러기에 당연히 문 대통령도 이 기대에 대한 성과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2021-01-21 홍형식

[춘추칼럼]호로고루 사적지에서

성벽 쌓고 전쟁중 주검돼 묻힌 무명병사들천지간 나고 죽음 사람이나 새나 마찬가지한줌 지혜없이 늙고 죽는다는 생각에 쓸쓸이제 쓸데없는 걱정 내려놓자고 다짐한다새해 들어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니 늙는다는 실감이 또렷해진다. 눈이 침침하고 근력은 떨어졌다. 명민함과 정기도 사라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나이 듦의 기색이 완연한 내 모습에 놀란다. 늙는 건 누구나 처음 겪는 일이다. 노년의 실감이 늘 생경하고 쓸쓸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나이 듦과 죽음은 노력하지 않아도 맞는 실존 사건이다. 오늘 아침 라디오 국영방송 채널을 틀어놓은 채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살지 못하고 삶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죽지 못한다'라는 구절이 전두엽에 번개처럼 꽂혔다. 나는 죽음을 걱정했던가? 그건 우주의 섭리이고, 풀어야 할 실존의 수수께끼일 뿐인 것을.북극의 한랭전선이 남진하며 매운 추위가 몰려왔다. 한강이 얼음으로 덮이고 중부 내륙도 얼었다. 오후에 집을 나서 호로고루(瓠蘆古壘) 사적지를 찾았다. 집에서 멀지 않아 답답할 때면 찾는 곳이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비강(鼻腔)으로 밀려든 찬 기운이 식초인 듯 따가웠다. 평지로 내려서니 언 강과 응달쪽 잔설, 쨍하니 파란 하늘, 임진강 너머에서 남쪽을 향해 나는 쇠기러기떼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 지역에서 쇠기러기나 두루미 같은 겨울 철새가 자주 목격되는 것은 철새들 먹잇감이 흔한 들녘과 장항 습지, 임진강이 한데 몰려 있는 탓이리라.호로고루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의 임진강 변 현무암 절벽 위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 사적지다. 호로고루는 임진강의 옛 이름을 '호로하(瓠蘆河)'라 불렀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일대는 기원 6세기 중엽 이후 200여년간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 지역이었다. 누군가의 아버지, 삼촌, 아들이던 이들이 고향에 부모, 형제, 처자식을 두고 떠나와 낯선 땅에서 무장을 한 채 국경을 지키느라 낮과 밤을 흘려보냈으리라. 스무 해 전쯤 유적 발굴조사로 땅속에 묻혀 있던 삼국 시대의 성벽과 우물이 나오고 다수의 연화문 와당, 토기, 철기 유물 등이 출토되었다. 지금은 평평한 구릉에 고구려 점령기에 쌓은 성벽과 성곽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강변 갈대숲에서 날지 않는 쇠기러기를 만났다. 깃털은 윤기를 잃고 사체는 얼어서 딱딱했다. 함부로 방치된 조류 사체는 죽음이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사건임을 말한다. 천지간에서 나고 죽는 건 사람이나 조류나 마찬가지다. 1500년 전 번성하던 고대 국가의 흔적을 밟고 세월의 무상함 속에서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고 묻는 일은 범상하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성벽을 쌓고 전쟁을 치른 이들은 무명의 병사들이다. 더러는 전쟁 중 팔다리를 잃은 채 귀향하고 더러는 차디찬 주검이 되어 낯선 땅에 묻혔으리라.공자는 물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흘러감이 마치 이 물과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구나! 시간은 저 아득한 근원에서 흘러와서 현재에 닿건만 현재는 유동하는 가운데 또 다른 현재에 닿는다. 인간은 그 유구한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멸의 연쇄라는 굴레를 벗지 못한다. 하지만 내 생명은 나만의 것인가? 생명은 부모에게 받은 것, 내 의지로 살아낸 것,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것이다. 세 겹인 것을 굳이 내 것으로 한정할 때 생명이 품은 뜻은 협소해진다. 사람도, 새도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떠나간다. 오래된 경전에 말하듯이 흙은 흙으로, 재는 재로, 티끌은 티끌로 돌아가는 것이다.젊을 땐 이런저런 걱정을 하느라 세월을 헛되이 썼다. 괴로워 술을 마시고 방황하던 젊은 날의 내 어리석은 선택과 행위들이 뼈에 사무친다. 결핍에 허덕이느라 현재에 더 충실하지 못했다. 너무 젊었던 탓이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 한 줌 지혜도 품지 못한 채 늙고 죽음을 맞는다는 생각에 쓸쓸해진다. 나이 들어 대리석을 깎아 새집 지을 욕망 따위는 품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무덤을 생각하며 비감에 젖는 자에게 한 줌의 지혜가 있으리라. 이제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걱정거리는 내려놓자고 다짐한다. 오늘은 호로고루 사적지를 다녀왔고, 날 풀리면 속초의 겨울바다를 보러 가야겠다./장석주 시인장석주 시인

2021-01-14 장석주

[춘추칼럼]국민의 마음 읽기

現 정부 단숨에 성과 내려다가 '민심 간과'25번째 부동산 특단조치 새로운 묘수보다기존 정책중에 폐단을 없애는게 답일 수도그동안 정부에 외쳤던 '규제철폐' 일맥상통영하 15도에 눈까지 내려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달력을 보니 소한이 지났다. 어른들이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 ,' 소한 추위는 꾸어라도 한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소한이 지나면 멀지 않은 곳에 봄이 있다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일간지의 뉴스를 훑어보니 이번 주는 부동산에 관한 뉴스와 주식 뉴스가 크게 보인다. 작년 한 해 동안 아파트값이 20%나 올랐고 올해도 또 오른다고 한다. 주식은 코스피 3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렇게 다 오르는데 어째 내려가는 것이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지지율이 36.6%로 최저치를 기록했다.지지율 하락의 주원인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인가 보다. 대통령은 공공임대주택을 방문해서 '2022년까지 총 650만호를 공급하겠다',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공공임대주택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은 '양질의 값싼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줘서 집값을 안정시키겠다', '설날 이전에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국민은 또다시 스물다섯 번째로 발표되는 '특단의 대책'에 관심을 가져본다. 1970년대에 방주연이라는 가수가 '당신의 마음'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모래밭에 사랑하는 사람의 눈, 코, 입 모두 그리고 입가에 미소도 그렸지만 당신의 마음 그 한 가지는 몰라서 못 그렸다는 내용이다. 마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요즘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 걸 보니 현 정부가 한가지 놓친 것이 있다. 무엇이든 단숨에 다 이루고 성과를 내려고 하다 보니 국민의 마음 읽기를 간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이 시대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힘들다. 첫째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기도 힘들다. 핸드폰에서 화면을 누르지 않아도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면 전화를 걸어준다. 곧 자율주행차를 타게 된다고 한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했더니 이런 변화가 모두 4차 혁명시대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둘째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하여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상을 살아내기에 힘들다. 젊은이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도 집 한 채 살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빠져있고 평생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해서 한 칸 장만한 사람들은 세금 때문에 시름이 깊다.셋째 정부와 소통이 안돼서 힘들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려나 보다. 기자회견이라는 단어도 오랜만에 듣는다. 왕이 종과 북을 치고 피리를 불고 노래를 하자 백성들은 왕이 우리의 삶을 이렇게 곤궁하게 해 놓고 뭐가 좋다고 저렇게 시끄럽게 노래를 하느냐며 이마를 찌푸렸다. 왜냐하면 임금이 백성과 함께하지 않고 혼자서 즐겁게 놀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금이 종과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노래를 했더니 백성들이 우리 임금님께서 편찮으신 데는 없으신가. 음악 소리가 참으로 즐겁다고 했다. 이는 임금이 백성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맹자 '양 혜왕 하'편에 있는 내용인데 '소통'과 '함께함'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구절이다.중국 청대 문인이면서 관직에 종사했던 원매 선생은 그가 지은 조리서 '수원식단'에서 위정자가 할 일은 한가지 정책을 더 만드는 것보다 국민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폐단 한 가지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본다면 스물다섯 번째 발표될 부동산 정책 특단의 조치는 새로운 묘수를 만들어내는 그것보다는 이미 있는 정책 중 폐단으로 여겨지는 한 가지를 빼는 것이 답일 수도 있다. 이것은 그동안 각계각층에서 정부에 대고 수도 없이 외쳐온 '규제 철폐'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나라이건 기관이건 간에 리더가 몇 명의 참모만 가지고 좋은 나라 좋은 기관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국민이 원래 자기가 살아오던 방식대로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루어가는데 무엇이 불편한지 그 불편함을 제거해 주는 것이 정치다. 어디 그런 세련된 정치를 할 사람 없는가?/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2021-01-07 신계숙

[춘추칼럼]쥐의 해 가고 소의 해 오라

수많은 전염병중 가장 치명적인 건 뭘까쥐들이 퍼뜨린 흑사병이 중세를 무너뜨려오랜기간 괴롭힌 천연두, 박멸엔 소가 역할'백신'은 암소 뜻하는 라틴어에서 가져와콜레라, 말라리아, 독감, 에이즈 등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한 수많은 전염병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黑死病)과 지금은 박멸된 적사병(赤死病)이라고도 불리던 천연두가 아닐까 한다.흑사병은 페스트균을 벼룩이 쥐로부터 사람에게 옮기는 병으로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1을 희생시키면서 중세 암흑기를 끝내고 르네상스를 태동시킨, 역사를 바꾼 전염병이다.흑사병은 14세기 중앙아시아 건조한 평원지대에서 시작하여 몽골군이 서쪽으로 침략할 때 따라왔다. 1346년 몽골군은 흑해 북쪽 제노바 무역기지 카파를 포위 공격하면서 흑사병으로 숨진 흉측하게 썩은 시신을 성벽 안으로 던져 넣어 적의 사기를 꺾으려 했다. 생화학 테러의 원조인 셈이다. 그 시체에 있던 페스트균은 벼룩을 통해 쥐에게 옮겨갔고 그 쥐는 상인들의 화물선에 무임 승선하면서 이탈리아반도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한때 배고픈 고양이들이 쥐들을 열성적으로 공격한 덕분에 흑사병은 조금 주춤하기도 했으나 가톨릭교회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고양이를 불태워 없애기 시작하면서 마르세이유에서는 고양이 보기가 어렵게 되었고 그로 인해 쥐들은 대거 흑사병을 퍼뜨렸다. 마침 수년간의 대기근으로 허약해진 유럽인들은 속수무책 쓰러졌고 유럽 사회는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 절대 진리로 군림하던 가톨릭교회조차 어쩔 도리가 없었다.사람들은 신의 저주를 풀기 위해 회개하고 고행을 하거나, 반대로 종교를 버리고 '어차피 죽을 거 즐기다 죽자'며 쾌락주의로 빠져들었다. 전염병이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고 감염자, 유대인, 이교도, 나병환자를 악마로 몰아 화형 시켰다. 인구가 너무 많이 줄어들어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농노를 중심으로 유지되던 장원제도는 붕괴되고 중세를 지배하던 종교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르네상스가 싹트기 시작했다. 쥐들이 퍼뜨린 흑사병이 중세를 무너뜨린 것이다.흑사병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무서웠던 전염병으로 천연두가 있다. 천연두는 오랜 기간 인류를 괴롭혀 왔는데 이집트 파라오 미라에도 천연두 마마자국이 남아있고 수백명에 불과한 스페인 군대가 아즈텍제국과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것도 우수한 무기보다는 신대륙에 옮겨간 천연두가 원인이었다. 18세기 이전까지 유럽에서 매년 40만명이 천연두로 죽었으며 감염자의 20~60%, 소아는 80%가 사망한 무서운 질병이었다. 살아남아도 얼굴에 마마자국이 남거나 합병증으로 실명하는데 18세기 런던 수용소의 시각장애인 중 3분의2가 천연두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 천연두가 1979년 드디어 지구상에서 영원히 박멸되었는데 거기에 소가 큰 역할을 했다.예로부터 천연두를 막기 위한 시도로 천연두 환자의 고름 딱지를 피부나 코에 접종하는 인두법이 중국, 인도, 아프리카 등에서 시행되었지만 인두법은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감염시키기 때문에 심각한 부작용이나 사망,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킬 위험성이 있었다. 그런데 영국의 시골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소젖 짜는 여인들이 우두(牛痘)를 앓고 나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우두를 접종하면 소가 된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어 우두 접종이 쉽지 않았다. 1796년 5월 소젖 짜는 여인 사라 넬름즈의 손의 우두 고름을 하인의 아들 8살 제임스 핍스의 팔에 접종한 후 2개월 지나 천연두 고름을 접종시켰으나 천연두가 생기지 않았다. 이를 왕립협회에 보고하였으나 인증을 받지 못하자 제너는 자비로 우두법에 대한 논문을 발간하며 홍보했고, 많은 시간이 지난 끝에 인증을 받았다. 제너는 자신의 이 예방 접종법을 '암소'를 뜻하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가져와 '백신(vaccine)이라고 명명하였다. 암소 덕분에 전 인류는 천연두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쥐의 해 2020년이 지나가고 소의 해 2021년이 밝았다. 쥐의 해에는 쥐가 퍼뜨린 흑사병만큼이나 코로나 대유행으로 전 인류가 힘들었다면 소의 해에는 소(vacca)로부터 시작된 백신으로 인류가 코로나19로부터 해방되기를 기대해 본다. 희망찬 새해!/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2020-12-31 김성호

[춘추칼럼]금강산은 민족의 명산이고 남북화해협력의 상징이다

북한 매체는 지난 주 북한 경제 총책임자인 내각총리가 금강산 관광지구를 현지 방문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내각총리가 금강산 지구를 돌아보면서 당의 구상을 금강산관광지구총개발계획에 정확히 반영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 실무적인 문제들을 토의했다고 한다. 코로나19 방역으로 현지지도, 활동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동계기간, 그것도 연말을 앞두고 내각총리가 갑자기 금강산관광지구를 방문한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이 내년도 당 대회를 기점으로 새롭게 계획하고 있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금강산 관광지구를 포함하여 관광분야의 정책목표와 비전이 상당히 비중있게 포함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부 통계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북한의 특성상 관광수입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코로나 발생 이전 2019년, 중국정부의 관광완화 조치에 따라 20만명의 중국 관광객들이 북한을 다녀갔다. 북한은 주로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오고가는 평양이나 백두산에 이어 마식령, 원산갈마지구 개발 등을 진행해 왔다. 제조업 등 수출산업 기반이 낙후된 북한에 있어 관광수입은 매우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이 될 수 있다. 특히 관광사업은 일정부분 대북제재에도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경제난 타개를 위한 전략산업으로 이를 육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내각총리의 방문과정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내에 금강산 관광지구 개발문제를 어떻게 담으면 좋을지에 대한 종합토론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북한의 금강산 관광지구 종합개발계획에는 지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 이후 중단된 채 사실상 방치된 우리측 시설물을 철거하는 문제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금강산 관광지구 남측 시설물 철거를 지시하였고 지구개발에 있어 대남 의존적인 선대의 태도를 비판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북한이 관광지구를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면서도 민족적 특성과 현대성이 결합된 우리 식으로 건설하겠다고 하며 주체적 건축사항과 건설정책을 철저히 구현하기 위한 대책들이 토의되었다"고 한만큼 북한은 향후 우리측 시설물에 대한 철거 문제를 다시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우리 정부는 북한의 금강산 관광지구 조치에 있어 남북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듯하다. 낙후된 우리측 시설물 철거는 하더라도 동해지구 관광벨트 조성차원에서 북한의 금강산 관광특구 개발에 있어 우리측의 참여문제가 고려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또한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북한 개별관광 구상도 마련했으나 이 구상은 코로나 19로 현재 실행이 늦어지고 있다. 유엔 대북제재로 북한에 대한 합작과 투자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북한의 독자적 금강산 관광지구 개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 개발은 남북간 합의사항이며 지구에는 아직 우리측 투자시설물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금강산 면회소도 우리측의 출자로 조성되어 있다. 금강산 관광길이 열렸던 당시 200만명의 남측 주민이 금강산을 다녀간 것과 같이 앞으로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게 되어도 남측의 관광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개발함에 있어 우리측 강원, 설악과의 연계관광을 염두에 둔다면 훨씬 더 많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측 시설물을 내보내고 일방적으로 우리측을 배제하기 보다는 남북 상생의 협력사업으로 이를 조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금강산은 민족의 명산이며 남북화해 협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금강산 관광을 통해 북녘 땅을 밟아 보기도 하였고 남북 주민들이 어울릴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되었다. 많은 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에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북한이 무조건 자력갱생 방식이 아닌 미래를 보면서 좀 더 거시적으로 금강산 관광지구 개발을 진행하길 바란다. 금강산 관광이 근원적으로 재개되기 위해서는 북미협상이 조속히 재개되어야 한다.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진지하게 북미간 비핵화 협상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 핵을 유지한 채 폐쇄적인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국가로 거듭나고자 할 때 대북제재가 완화되고 금강산 관광지구를 남북 합작의 관광특구로 개발하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우리로서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맞게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과 같이 중단된 남북협력 사업이 제재의 예외, 제재의 완화 조치로 포함될 수 있도록 사전에 새 미 행정부와 진지하게 협의해 나가야 할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12-24 양무진

[춘추칼럼]눈으로 말하기와 경청하기

일상에서 마스크 쓰기가 필수가 된지 오래대화를 나눌땐 표정도, 의중도 알기 어렵다다시금 깨닫게 되는 마음·영혼의 거울 '눈'경청도 습관화… 좋게 변화한 삶의 새풍조이제 우리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바깥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됐다. 자기 집 문밖을 나서는 순간 그 무엇보다 먼저 챙겨야 할 물건이 마스크다. 마스크 착용 없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고 공공장소는 물론 공원이나 예식장, 헬스클럽조차 드나들기 어렵게 됐다.심지어 가게나 식당에 갈 때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안 된다. 이제 마스크는 생활필수품이 돼버린 지 오래다. 오죽하면 속옷 없이는 살아도 마스크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이 다 나왔을까. 그런데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니 언뜻 사람을 알아보기 어렵고 대화하기도 힘들다. 더러는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 싶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특히 마스크를 쓴 여성분들은 이쪽에서 헤아려 알기가 쉽지 않다. 마스크가 입술과 코를 비롯한 얼굴 아랫부분을 모두 가리는 바람에 이마와 눈썹과 눈만 빼꼼히 나와 있는 모습으로는 상대방의 특징이나 표정을 읽기가 어렵다. 도무지 누구인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눈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마스크를 쓰면서 알게 된 것은 의사소통에 있어 입술과 볼의 기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소리로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만, 입술의 움직임이나 볼의 움직임으로 먼저 상대방의 의중을 짚어 알게도 된다. 그런데 그 입술과 볼이 가려진 형편이니 답답한 일일 수밖에 없다.그래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인간에게 눈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하는 것 말이다. 눈이야말로 마음의 창이다. 영혼의 거울이다. 마음의 속내를 숨김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얼굴의 기관이 바로 눈이다. 마스크 차림으로 사람들과 눈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전보다 훨씬 밀도 있는 대화를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이것도 실은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역작용으로의 효능이다. 더러 젊은 여자분들 말을 들어보면 마스크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얼굴 화장을 하더라도 윗부분만 하게 돼 오히려 편해졌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래선지 여자분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마스크 벗기를 꺼리는 추세이기도 하다. 이 또한 마스크가 가져다준 새로운 삶의 풍조 가운데 하나다.'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 사람이 살아서 알아야 할 것은/ 오직 이것뿐/ 나는 지금도 술잔에 입술을 대고/ 그대를 바라보며 눈물 글썽이고 있다'.이것은 내가 자주 외우는 시로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술 노래'라는 작품이다. 글의 제목은 '술 노래'지만 글의 내용은 사랑이다. 마스크를 쓰면서 오랫동안 살다 보니 새삼 이런 시가 가까이 다가오는 요즘이다.더하여, 최근 우리에게 생긴 것은 경청의 문화다. 경청이란 글자의 뜻 그대로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말이다. 우리가 그래도 예전에는 경청하는 문화가 있었다. 어른이 말하든 아이가 말하든 누군가 말을 하면 귀를 기울여 정성껏 들었고 또 거기에 정성껏 반응했다.그런데 세상이 복잡해지고 피차간 하는 일이 바빠지다 보니 이야기할 때도 상대방의 말에 정성껏 귀 기울여 듣고 조심스럽게 말해주는 대화 문화가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가 수월찮게 소원해지고 데면데면해진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사는 날들이 지속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경청하는 습관이 새로 생겼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를 하게 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만 해도 문학강연에 가서 독자들이 책을 들고 와 사인을 해달라고 할 때 그 이름을 물어 적어주는데 경청이란 것을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름을 잘못 쓸 때는 저쪽도 불편하고 이쪽도 민망한 일이 된다. 그래서 아예 복사지를 하나 준비해서 거기에 이름을 적어 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가 코로나19 이후 마스크 쓰기를 하면서 새롭게 생긴 삶의 형태, 문화 풍조다.그렇다. 이참에 우리도 이런 것들을 새롭게 익히면서 조금쯤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됐으면 싶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의 형태를 바꿔놓기는 했지만 이렇게 좋은 쪽으로도 바꿔놓았노라 자위 아닌 자위를 해보기도 한다./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나태주 시인(한국시인협회장)

2020-12-17 나태주

[춘추칼럼]삶은 선택이다

'책임 따르는 선택하는 삶' 개인을 존중한다계부에 죽임당한 아이 삶 선택할 수 없었다'내 뜻대로 살 수 없는 시대' 점점 늘어가고결정한 삶 살아가는것은 의무에 가까운 듯성경의 마가복음 6장에는 '오병이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과 5천여명의 무리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대해서는 해석과 논쟁보다는 그 자체 상황에 주목해보자.일단 당시 상황을 보면 네 종류의 주체가 등장하는데, 예수와 제자들, 5천여명으로 표현되는 성인 남성들, 그리고 무리 속에 있었지만 기록되지 못한 여성과 아이들이 그들이다. 무엇보다 이 주체를 바라보는 예수와 제자들의 시선이 다르다. 제자들은 본인이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 예수와 모인 무리들의 관계로 바라본다. 제자들이 말하기를, "여기는 빈 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헤쳐, 제각기 먹을 것을 사 먹게 근방에 있는 농가나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예수와 무리의 관계가 있을 뿐, 예수와 제자의 관계, 제자와 무리의 관계는 빠져 있다. 예수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항상 제자의 역할, 제자의 길을 강조한 것은 이유가 있다. 본인이 모든 일을 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일을 하도록 한다.제자들은 선택하지 않았다. 빈 들에 모인 배고픈 무리들의 현실을 자신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수는 제자들이 상황을 회피한 것을 알고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럼에도 제자들은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다. 퇴로는 없다. "너희에게 빵이 얼마나 있느냐? 가서, 알아보아라." 그 후에 나온 결과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라는 대답이다. 비로소 제자들은 무리의 굶주림과 결속되었다.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선택을 강요하거나 선택하지 않는 것을 지지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살아가면서 맞닥뜨린 모든 것을 선택하고 판단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앞서 소개한 성경 본문에 "여기는 빈 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빈 들'과 '날이 저문' 것은 우리 앞에 주어진 현실이자 조건이다. 예수는 그것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있는 곳이 '빈 들'이니까 속히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날이 저물었으니 흩어져 집으로 가야 한다는 제자들의 말을 뒤집는다.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꽃이 지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그것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한없이 오만하여 맘대로 살거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체념 속에 빠질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해가 지는 것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비구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해가 진 다음에, 바람이 불 때, 비가 내릴 때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요청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정작 바람을 멈추게 하려는 이들은 바람이 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비가 내리는 걸 막으려고 했던 이들은 정작 비가 내리면 나 몰라라 한다. 우리가 처한 시간과 공간을 생각해본다. 우리는 지금 '날이 저문 시각'에 '빈 들'에 서 있다. 이곳이 갑자기 아름다운 숲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고 태양이 떠오르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남은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삶은 선택이다. 선택은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선택하는 삶이야말로 개인을 존중한다. 계부에 의해 죽임을 당한 다섯 살 아이는 삶을 선택할 수 없었다. 선택할 수 없는 삶이 늘어가는 시대에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권리보다는 책임에 가까운 것은 아닐지."다섯 살 아이에게는 삶이나 죽음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그 어린이는 다른 사람의 의지로 인해 죽었다. 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문제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날마다 살기로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나처럼 선택의 순간을 가졌든 아니든 간에,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어떻게든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나아가겠다고 선택하는 것이니까. 나아가려면 외면할 수 없으니까. 나아가려면 맞서야 하니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사계절, 165쪽)/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20-12-10 권경우

[춘추칼럼]불통과 침묵은 파멸의 전주곡이다

文대통령 '추미애 블랙홀'서 빠져 나와야국민 59.3% "추 장관·윤 총장 국정조사"지지층 미움사도 관철시키는 용기 필요'대통령 중심제'서 '책임제'로 전환해야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월24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기습적으로 징계요청과 직무정지 처분을 명령했다. 그러자 전국 59개 검찰청의 모든 평검사와 검사장, 고검장들이 "부당하고 위법하다"며 들고 일어났다. 급기야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 우려가 있다"고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검란(檢亂)이라고 부른다.하지만 법을 수호해야 할 법무부 장관이 헌법과 법치를 훼손한 것에 대해 검찰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총체적으로 저항한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정치가 검찰을 내려친 '추미애의 난'(秋亂)은 법원과 검찰 감찰위원회에서 제압됐다. 법원은 윤 총장 직무 정지 명령이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몰각하는 것"이라면서 윤 총장 복귀 결정을 내렸다. 감찰위는 추 장관의 조치에 대해 "중대한 절차적 흠결이 있다"고 만장일치로 의결했다.사태가 이쯤 되면 추 장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문 대통령은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럼에도 징계위원회를 강행하는 것은 권위주의적 발상으로 법과 국민에 대한 도전이다. 리처드 E. 뉴스타트는 '대통령의 권력'이라는 책에서 대통령의 힘은 설득에서 나온다고 했다. 대통령의 간결하고 명쾌하며 정곡을 찌르는 메시지는 설득의 요체가 될 수 있다. 검찰이 집단 반발하는 데 "모든 공직자는 집단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받들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공허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검사와의 담판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야 울림이 생기는 법이다. 대통령의 침묵은 설득의 적이고, 불통보다 더 나쁘다. 문 대통령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월성 1호기 평가 조작, 윤석열 직무 배제 등 현 정부에 불리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침묵을 지켜왔다. 근본 이유는 자기부정에 대한 부담감 때문으로 보인다. 가령, 문 대통령은 과거 "검찰 독립이 중요하고 검찰 독립에는 검찰총장 임기보장이 결정적이다"고 했다. 따라서 윤 총장 해임은 문 대통령이 공언했던 검찰권 독립 및 검찰 개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여하튼 대통령이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스스로 권위를 훼손시키고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다.'대통령의 위기'라는 책을 쓴 크리스 윌리스는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부터 조지 W.부시 대통령까지 16명의 대통령의 통찰력과 결단력을 분석했다. 핵심은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암묵적 동의여부와 상관없이 추 장관의 일탈과 독선은 결국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놓고 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집권 3년 6개월이 경과하면 예외 없이 위기를 맞고 레임덕에 빠졌다. 실패한 대통령의 공통점은 위기인데도 위기인지 모르거나, 위기인지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다"는 유아적인 생각과 "자신은 역대 대통령과는 다르다"는 허황된 믿음 때문이다.현 정권은 경기 침체, 부동산 정책 실패, 추미애의 난 등으로 위기로 치닫고 있다. 최근 문 대통령 지지도는 작년 조국 사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여권의 유력 대권후보들의 지지도는 링에도 오르지 않은 윤석열 총장에게 역전되기도 했다. 심지어 유권자 절반이 내년 재·보궐선거에서 야당 후보 지지 의사가 있다는 조사도 나왔다. 문 대통령이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추미애 블랙홀'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국민 10명 중 6명(59.3%)은 추 장관과 윤 총장에 대한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지금 문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지지층으로부터 미움을 받더라도 국민들의 이런 요구를 관철시키는 책임과 용기다.우리는 평소 대통령제를 '대통령 중심제'라고 부른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대통령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한국 정치의 비극은 대통령이 중심에만 있고 침묵하면서 책임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누구를 의지하고 믿을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대통령 책임제'로 전환해야 한다. 설득과 용기는 위기 극복의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지만, 불통과 침묵은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를 종식시킬 수 없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20-12-03 김형준

[춘추칼럼]동결, 감축, 폐기의 3단계 접근이 현실적이다

강경 대북정책 '도발→보상→파기' 악순환바이든 新행정부, 北과 적극적인 대화 필요한국 입장 반영 신속하게 북핵협상 나서야文정부, 北 잘못된 선택않도록 관계 복원을예고된 대로 바이든 신 행정부는 확실히 트럼프 행정부와는 다른 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민주당 행정부가 그래왔듯이 바이든 차기 행정부도 명분과 원칙을 존중하고 동맹 강화와 다자적 접근을 통한 대외전략을 추구해 나갈 것이다. 국제질서에 있어 미국의 리더십을 강조해 온 토니 블링큰을 첫 국무장관에 지명한 것은 그가 클린턴 정부시절부터 오바마 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주당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깊이 관여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그의 대북관은 상당히 원칙론적이다. 바이든 당선자가 김정은 위원장을 불량배라고 부른 것과 같이 블링큰 국무장관 후보도 폭군이라고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비핵화 협상을 벌여왔다고 비난했다. 그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포괄적행동계획(JCPOA)이라는 이란 핵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에도 관여한 바 있다. 북핵문제도 트럼프식의 톱-다운 방식이 아닌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실무적인 부분부터 꼼꼼히 따져 나가는 바텀-업 방식의 협상을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동북아 정세에 있어 한·미·일 3자 협력구조를 탄탄히 하여 북한을 후원하고 있는 중국을 압박하고 북한이 핵포기 의사를 명확히 밝히기 전까지는 대북제재를 지속 유지해 나갈 것으로 판단한다. 한 인터뷰에서 동맹국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쥐어짜야 하며 경제적 압박을 위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말한 것만 봐도 그의 접근법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접근법은 사실 오바마 행정부 시절과 거의 유사하다. 바이든 당선인이 오바마 행정부 부통령이었고 블링큰 국무장관 후보자 역시 오바마 행정부시절 백악관 참모였기 때문에 큰 틀의 차이는 없을 것이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원칙외교, 다자협력 외교를 통해 초국가적 안보문제에 대한 협력을 이끌었고 이란, 쿠바, 미얀마 등 적대 국가들과도 관여정책을 통해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도 초기 과감한 접근을 시도하려 했으나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로 인해 오바마 행정부는 강경한 대북정책으로 선회하였다. 물론 북미간 협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북한의 핵 활동을 동결시키고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는 식으로 하여 2·29 합의를 도출하였지만 이 역시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로 좌초되고 말았다.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기대를 접고 전략적 인내로 회귀했고 중국을 압박하여 북한이 협상장으로 나오도록 했으나 이 역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북핵 위기의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다. 이를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북핵 협상과 관련하여 지나온 역사를 리뷰해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대부분의 북핵 위기가 우리와 미국의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이러한 과도기의 틈을 활용하여 북한은 핵능력을 강화해 왔고 결국 이에 대한 대응은 강경한 대북정책으로 귀결되었다. 강경한 대북정책은 '도발-보상-파기'의 악순환을 형성하면서 다시 북한의 핵능력 강화를 초래하는 패턴을 반복시켜 왔다. 바이든 신행정부와 블링큰 국무장관 후보자 역시 오바마 행정부와 같이 대북제재를 유지하는 가운데 북핵 불용의 입장에서 원칙적인 대응을 해 나갈 것이다. 그런데 만약 북한이 오판하여 또다시 핵·미사일 도발을 감행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바이든 신 행정부도 오바마 행정부와 같이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고 협상장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추구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간 북미간 합의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한반도는 다시 북핵위기의 긴장과 위협 속에 격랑으로 표류할 것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북한의 핵능력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기간 동안 북한은 실질적 핵보유국을 선언하였다. 과거와 같이 불완전한 핵능력을 가지고 핵능력의 모호성을 유지한 채 살리미 전술을 통해 딜을 하려는 시기는 지났다. 북한의 핵위협은 훨씬 강화되고 현실화되었다.바이든 신 행정부는 북한을 방치하는 것이 아닌 북한과 적극적인 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동맹국으로서 한국의 전략과 입장을 반영하여 신속하게 북핵협상에 나서야 한다. 동결-감축-폐기에 이르는 3단계에 맞는 상응조치를 추진함으로써 단계적으로 북한 핵폐기를 유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과거와 같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남북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여러모로 우리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전방위적 외교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11-26 양무진
1 2 3 4 5 6 7 8 9 10
  • 강원일보
  • 경남신문
  • 광주일보
  • 대전일보
  • 매일신문
  • 부산일보
  • 전북일보
  • 제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