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포퓰리즘 팬데믹

신호탄은 차베스가 쏘았다. 1999년 베네수엘라에 차베스 정권이 들어섰다. 오일 머니를 잔뜩 손에 쥔 차베스는 '무상 정책'과 '공짜복지'를 마구 쏟아내며 베네수엘라는 물론이고 남미 국가 국민들까지 열광시켰다. 차베스 포퓰리즘은 마치 감염병 팬데믹(대유행)처럼 주변 국가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그리고 2004년 우루과이 대선에서 중도좌파 바스케스가 당선됐다. 뉴욕타임스 남미지국장 래리 로터는 잇단 사회주의 성향 좌파정권의 등장을 '분홍 물결' 즉 '핑크 타이드(Pink Tide)'라고 명명했다. 공산주의 물결 ,'레드 타이드(Red Tide)'에 빗댄 것이다.2014년까지 남미 12개국 중 무려 10개국에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혁명가 볼리바르 후계자를 자처한 차베스는 세계 최대 석유매장량을 앞세워 이들과 손잡고 강력한 '좌파벨트'를 구축해 미국과 맞섰다. '볼리바르식 사회주의와 아르헨티나 페론식 포퓰리즘의 결합'이란 그럴싸한 말이 이때 만들어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차베스의 죽음과 석유, 구리 등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돈줄이 마르자 '핑크 타이드'는 서서히 퇴조하기 시작한 것이다.바이러스처럼 소리 없이 퍼져나갔던 선심성 복지정책으로 경제는 거덜 나고 재정은 파탄 났다. 식량도 바닥났다. 그러자 민심이 돌아섰다. 그렇다고 좌파정권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녀노소,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공짜'에 한번 맛을 들이면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이처럼 포퓰리즘의 중독성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중남미에선 지금도 살만하면 좌파가 득세하고, 살기 힘들면 우파가 들어서기를 반복한다.이재명 지사가 도민 모두에게 긴급재난지원금 10만원을 지급한다고 발표한 이후 정부, 정치권, 지자체가 지원금 규모를 경쟁하듯 키우고 있다. 그 열기가 너무 뜨거워 마치 '포퓰리즘 팬데믹'을 연상시킨다. "돈이 없어 못 주겠다"며 마지막까지 버티던 남양주 조광한 시장의 행동이 경건하게 보일 정도다. 공돈을 주는데 싫다는 사람은 없다. 포퓰리즘은 인간의 그런 속성을 교묘히 파고든다.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무상보육, 아동수당 등을 없애고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걸 상상할 수 없는 것도 그래서다. 모두 포퓰리즘 바이러스에 감염된 탓이다. 우리라고 포퓰리즘에 골병이 든 남미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세상에 '공짜'란 없으니까. /이영재 주필

2020-04-09 이영재

[참성단]개목걸이

전자발찌의 모티브가 된 게 만화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전자발찌는 1984년 미국 뉴멕시코주 지방법원의 잭 러브(Jack Love) 판사가 실용적인 전자발찌를 고안해 특정 범죄 전과자들에게 착용토록 한 게 시초다. 러브 판사는 만화 스파이더맨에 등장하는 위치추적장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모든 전자기기가 그렇듯이 전자발찌도 진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착용자의 이동 속도나 피부의 알코올 농도를 측정하는 기능이 추가된 전자발찌도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구금 효과 외에 과속이나 음주운전까지 통제 영역을 넓힌 셈이다.그렇다면 전자발찌는 어디까지 진화할까. 30여년 전 개봉된 영화 '웨드록'(Wedlock)에서는 목걸이 형태로 업그레이드된 전자발찌가 등장한다. 국내에서 '개목걸이'란 이색적인 제목으로 개봉해 눈길을 끌었던 영화다. 미래사회가 배경인 이 영화에서는 고도의 과학기술이 탄생시킨 무시무시한 통제시스템이 선보인다. 교도소 수감자들은 전자목걸이를 차야 하는데 이 목걸이는 누구인지 모르는 다른 수감자의 목걸이와 연동돼 있다. 문제는 그 수감자와 100야드 이상 떨어지면 자동으로 목걸이가 폭발하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탈옥을 하려면 자신의 목걸이와 짝을 이루는 목걸이의 착용자를 찾아내 함께 탈옥해야 한다. 탈옥 과정이 첩첩산중인데, 탈옥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평생을 100야드 안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남녀 배우가 주인공인 이 영화의 원제가 'wedlock'(결혼)인 게 뭔가 심상치 않지만 제목에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고 하기에는 영화의 설정이 너무나 끔찍하다. 물론 이처럼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통제시스템은 영화 속 이야기다. 하지만 요즘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일상의 통제영역이 확대되는 것을 보면서 이따금 영화 속 전자목걸이가 떠오른다.코로나19가 위협하는 것은 인류의 건강뿐만이 아니다. 사생활 보호와 자유, 인권 등 인간의 존엄적 가치들이 코로나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 방역의 명분이 워낙 크다 보니 급기야 자가격리자에게 '손목밴드'를 채워 관리한다는 발상까지 나왔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인권과 반인권 사이에서 가치판단의 기준점이 이동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인류가 쌓아온 소중한 가치들이 바이러스에 의해 해체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임성훈 논설위원

2020-04-08 임성훈

[참성단]토리노의 수의

'벤허', '쿠오바디스'에 가려져 그렇지 헨리 코스터 감독의 1953년 작 '성의(聖衣)'는 이들 못지 않은 명작으로 꼽힌다. 리처드 버튼, 빅터 마츄어, 진 시몬즈 등 배역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는 와이드스크린 방식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시네마스코프였다. 이 덕분에 '드미트리우스와 검투사들'이란 속편이 제작될 정도로 20세기폭스는 돈방석에 앉았다.줄거리는 이렇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맡았던 마르셀루스(리처드 버튼). 밤마다 예수가 처형 때 입었던 옷이 나타나는 악몽에 시달린다. 우여곡절 끝에 노예로 살다 자유의 몸이 된 드미트리우스(빅터 마츄어)를 만나 옷을 찾는다. 마르셀루스는 옷에 손을 대는 순간,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느끼며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예수를 따르게 된다. 예수가 마지막에 입었던 옷은 예수의 시신을 덮은 수의(壽衣)와 함께 기독교도에겐 가장 귀한 성물(聖物)로 꼽힌다. 수의가 우리 앞에 나타난 건 1898년 이를 촬영하기 위해 토리노 대성당을 찾은 사진작가 세콘도 피아에 의해서다. 그가 수의를 촬영하고 현상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감광판에 남자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희미한 갈색 형상으로 나타났다. 그 형상이 성경에 묘사된 예수의 모습과 일치했다. 그때부터 토리노는 '통일 이탈리아'의 첫 번째 수도라는 명성 대신 '토리노의 수의'로 더 유명해졌다.그러나 수의의 진위를 두고 논란도 끊이질 않았다. 탄소동위원소로 측정한 결과, 제작 시기가 1260년에서 1390년 사이이며 수의에 남겨진 핏자국 절반이 가짜라는 주장도 나왔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수의에 찍힌 인간형상의 오른쪽 눈에 동전이 있었던 흔적이 있는데, 이는 유대인들의 관습이며 동전 역시 빌라도가 기원후 29년 발행한 '렙톤' 동전과 일치한다는 것이다.수의는 1354년 발견된 이후 중요한 계기가 있을 때만 일반에 모습을 드러냈다. 근대에 들어 1933년 처음 모습을 보인 이래, 2015년까지 여섯 차례 공개됐다. 코로나19로 실의에 빠진 인류와 사태 극복을 기원하기 위해 토리노 수의가 한국시각 12일 0시 온라인으로 공개된다는 소식이다. 이날은 예수가 처형돼 부활하기 전 무덤 속에 있었다는 날로, 가톨릭에선 '성 토요일'이라 부른다.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가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수의 공개로 이 고난을 극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이영재 주필

2020-04-07 이영재

[참성단]킹덤 2의 '오 마이 갓(Oh My Gat)'

넷플릭스가 지난달 공개한 '킹덤 2'가 인기몰이 중이다. 13개국 언어로 더빙해 동시 개봉한 나라마다 시청률이 최상위권이다. 한국판 좀비 시리즈라는 입소문에 탄탄한 시나리오와 긴박한 전개, 등장인물들의 개성 있는 연기력이 돋보인다. 코로나19로 자택연금된 할리우드 스타 사무엘 J 잭슨도 팬 덤 대열에 합세했다는 소식이다. 전작인 '킹덤'도 덩달아 뜨고 있다.나라 밖 시청자들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생경한 화면이 인상적이라는 반응이다. 꼬질꼬질한 검은 색 얼굴에 남루한 옷을 걸친 백성들, 기울어 가는 초가집과 허술한 성곽, 웅장한 궁궐 등 볼거리가 많을 것이다.주요 배역의 의상과 소품들도 눈길을 끄는데, 외국인들은 특히 우리 전통 갓의 매력에 푹 빠진 듯하다. 눈치 빠른 다국적 온라인 유통업체가 갓을 팔고 있다.넷플릭스의 홍보 동영상에는 "오 마이 갓(Oh My God) 아니죠, 오 마이 갓(Oh My Gat)이죠"라는 문구가 나온다. 동영상은 사연을 곁들여 다양한 종류의 갓을 소개한다.극 중에서 도포 자락 휘날리며 여심을 훔치는 세자 이 창은 '흑립'을 착용했다. 사대부가 집에서 손님을 맞을 때나 외출할 때 쓰는 필수 아이템이다. 해원 조씨 가문의 조학주는 3단 모양의 '정자관'으로 카리스마를 극대화했다. 오천원권에 나오는 율곡 이이의 바로 그 갓이다. 실내용으로, 신분에 따라 단이 오른다고 한다.내금위장의 추상같은 위엄을 상징하는 '주립'은 무관들이 쓴다. 장끼의 깃털 장식으로 미적(美的) 완성도를 높였다. 시즌 1에서 왜군과 맞선 범팔의 '전립'은 방탄기능을 갖춘 전시용(戰時用) 갓이다. 낮은 지위는 돼지 털을, 높은 지위는 공작 깃털을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왜군의 조총 탄환에는 무용(無用)했다.갓은 신분제도를 상징한다. 양반만의 전유물인지라 상민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를 모르는 외국인들은 대다수 백성은 왜 상투 튼 맨머리였을까 의아했을 것이다.왕조 500년간 이어진 신분 차별제도가 조선을 망하게 했다는 역사가들이 많다. 조선 말, 남도를 시작으로 들불처럼 번진 민란(民亂)이 외친 건 '양반 상놈 없는 평등한 세상'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고도 외국인들이 'Oh My Gat' 이라 할지 궁금하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04-06 홍정표

[참성단]비누 예찬

인류가 비누를 사용한 역사는 길다. 기원전 2800년경부터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1세기 로마의 학자 플리니우스는 37권으로 이뤄진 백과사전 '자연사'에서 '비누는 갈리아인들이 만들었다. 비누는 동물의 기름과 재로 만든다. 특히 염소의 기름과 너도밤나무의 재가 비누재료로 가장 좋다'고 적었다. 그 후 시대별, 국가별로 비누와 유사한 제품이 꾸준히 만들어져 주로 상류층들이 사용했다.비누가 대중화된 데는 1790년 프랑스 화학자 르블랑이 소다 제조법을 발명하고, 1811년 슈브렐의 '유지(油脂)의 화학적 조성을 위한 연구' 덕이 컸다. 이후 인간은 몸을 규칙적으로 씻고, 세탁 가능한 옷을 입기 시작했다. 특히 유럽인들의 골칫거리였던 '옴'의 퇴치에 비누는 큰 공을 세웠다. 1853년 영국 정부가 비누에 부과된 세금을 철폐한 후로 가격이 하락하고 사용자가 늘면서 옴 환자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독일의 화학자인 리비히의 "한 국가가 소비하는 비누의 양은 그 문명의 척도"라는 발언이 이때 나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 비누는 1956년 애경 유지에서 나온 '미향'이었다. '미향'은 1958년 월 100만개 이상 팔리는 등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손에는 황색포도상구균과 살모넬라균을 비롯해 약 150종류의 세균이 득실거린다. 이를 그대로 두면 세균 수는 시간별로 급속히 늘어나 3시간이 지나면 26만 개체가 된다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악수나 엘리베이터 버튼, 문 손잡이 등을 통해 쉽게 옮겨지는 이유다. 이를 간단하게 차단해 주는 게 비누다. 세정제보다 비누로 손을 자주 씻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건 이미 수많은 연구에서도 입증됐다. 비누 속의 '카르복시기'와 '탄화수소 사슬' 성분이 바이러스를 제거한다는 것이다.정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2주 더 연장했다. 상황이 나빠져서다. 그렇다고 손 씻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손을 씻을 때 반드시 비누를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늘 옆에 있어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누도 그중 하나다. 세면대 옆에 늘 놓여 있는 비누. 그래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비누야말로 지구 상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가장 저렴한 코로나19 방어용품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비누에서 눈을 떼서는 안 된다. 고맙다. 비누야. /이영재 주필

2020-04-05 이영재

[참성단]주식 대박의 꿈

네덜란드 튤립 투기, 프랑스 미시시피 회사와 영국의 남해회사 투기 투자를 초기 자본주의 3대 버블로 꼽는다. 근대과학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은 1720년 남해회사 주식을 샀다가 되팔아 7천 파운드를 벌었다. 하지만 그가 주식을 매도한 후에도 주가는 더 올랐다. 땅을 치고 후회한 뉴턴은 재빨리 다시 사들였지만, 불행히도 그때가 상투였다. 결국, 2만 파운드를 잃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이 미적분법을 창시한 이 수학의 천재에게 주가의 방향을 묻자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주식투자에서 대박을 노렸다가 쪽박을 찬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상대성원리로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21년 노벨상 상금 2만8천 달러를 주식에 투자했다가 대공황이 불어닥치면서 원금을 거의 까먹었다.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도 재산 대부분을 주식으로 날렸다. 그래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트웨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10월은 주식투자에 특히 위험한 달이다. 그다음 위험한 달로는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다." 주식으로 돈 벌 생각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 주식시장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이를 이용해 삼성전자 등 우량주를 집중 매수해 '동학 개미운동' 바람을 일으킨 우리나라 개인 투자가들의 매매 패턴이 바뀌고 있어 이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우량주들이 주춤한 사이 바이오 주, 원유선물 등이 급등하자 이를 추격 매수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주식 매수 대기자금은 44조원에 이른다. 정석 투자를 하지 않을 경우 '동학 개미운동'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주가의 흐름은 아무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주식투자의 적정 기대수익률을 '금리+α'나 '채권 수익률의 2배'로 본다. 현재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연 1%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연 4∼5%가량이면 무난한 수준이다. 문제는 100억원 이상의 슈퍼 투자가의 기대 수익률이 연 5%인데 반해 개미투자가의 기대 수익률은 100%라는 데 있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주식은 하나의 좋은 투자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대수익률을 너무 높게 잡아 단기간에 주식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집착은 금물이다. 과욕은 늘 화를 부른다. /이영재 주필

2020-04-02 이영재

[참성단]걱정 갈아엎어 주세요

오래전 인천에서 한 고등학교 교가가 문제가 된 적 있다. 학교에서 자주 교가를 틀었나 본데 인근 주민들이 시끄럽다며 학교 측과 마찰을 빚기 일쑤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주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교가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사까지 완벽히 꿰차게 됐다고 하니 노래의 힘은 참 대단한 것 같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교가가 이 정도이니 귀에 쏙쏙 꽂히도록 기획된 선거 로고송의 중독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오늘(2일)부터 4·15 총선의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다. 거리 곳곳에서 갖가지 선거 로고송이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질 판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침체된 분위기지만 선거마케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로고송을 정치권이 포기할 리 만무하다. 로고송이 본격적으로 선거운동 현장에 등장한 건 1995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거리에서 확성기 사용이 허용되면서부터다. 그해 6·27 지방선거에서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가 울려 퍼지며 로고송 시대의 막이 올랐다.'비틀스로 귀가 뚫렸다'는 김훈 작가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왔을 때 더 이상 대중음악의 흐름을 따라갈 자신이 없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 댄스음악이 대중음악의 주류로 떠오르면서 중장년 유권자는 따라 부를 엄두조차 나지 않는 '난 알아요'가 선거 로고송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96년 총선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의 로고송 '넌 그렇게 살지마'와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의 '난 알아요'가 맞붙은 것이다. 선거 로고송에서도 여야 격돌현상이 벌어진 게 이때부터 아닌가 싶다.대통령선거에서 최고의 히트곡으로는 'DJ DOC'의 'DOC와 춤을'을 개사한 'DJ와 꿈을'이 꼽힌다.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는 로고송에 맞춰 관광버스춤까지 선보이며 이미지 쇄신에 성공했다. 그가 당선되자 '김대중의 승리가 아니라 로고송의 승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번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걱정말아요 그대'(전인권)를, 미래통합당은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로 시작하는 '사랑의 재개발'(유산슬)을 메인 로고송으로 내세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래 제목만으로도 여야의 로고송 선정 이유가 엿보인다. 정작 국민들이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은 두 곡의 콜라보 버전 격인 '그대여 걱정 갈아엎어 주세요'가 아닐까. /임성훈 논설위원

2020-04-01 임성훈

[참성단]하얀 목련

'일어나'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 히트곡이 쏟아진, 1994년 발매한 김광석의 4집 앨범은 명반으로 꼽힌다. 이들 노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앨범에 실린 곡 중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독 아끼는 곡이 있으니 다름 아닌 '회귀'다. 처연한 모습으로 피어난 목련을 통해 허무한 인간의 삶을 성찰한 곡이다. 김지하의 시에 황난주가 곡을 붙였다.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흙으로 가네/ 검은 등걸 속/ 애틋한 그리움 움트던 겨울날 그리움만 남기고/ 저 꽃들은 가네.'목련에 관한 노래는 셀 수 없이 많다. 양희은의 '하얀 목련'도 그중 하나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 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 거리엔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잊을 수 있을까/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30대 초반 암 판정을 받은 양희은은 친구가 보낸 편지를 읽고, 때마침 창밖에 핀 목련을 보며 노래 가사를 적어 내려갔다. 여기에 김희갑이 곡을 붙였다. 봄날의 찬연한 슬픔과 삶의 쓸쓸함이 담겨있는 두말이 필요없는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목련(木蓮)은 말 그대로 '나무에 핀 연꽃'이다. 순백의 탐스러운 자태는 우아하고 귀족적이다. 아름답지 않은 봄꽃이 어디 있으랴마는 목련의 고고한 기품은 봄의 여왕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고귀함, 숭고한 정신, 우애 등 목련을 따라다니는 꽃말도 많다. 목련은 꽃송이가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피어 예로부터 북향화(北向花)라고 불리며 충절을 상징했다. 그래서인지 목련엔 왠지 처량한 구석이 있다. 절정을 지나 꽃잎을 떨구기 직전의 목련이 가장 슬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코로나19로 정신을 놓은 사이 봄이 벼락처럼 찾아왔다. 주위를 돌아보니 천지가 온통 목련 투성이다. 군무를 추듯 무리를 이룬 벚꽃 때문인지 홀로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목련이 외로워 보인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라는 '4월의 노래'가 떠오르지만, 코로나19는 그런 낭만도 모두 빼앗아가 버렸다. 하얀 마스크를 쓴 한 무리의 학생들이 하얀 목련 아래를 지나가고 있다. /이영재 주필

2020-03-31 이영재

[참성단]'김종인'의 종횡무진

지난 2016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절박했다. 안철수계가 동거를 거부하고 탈당하는 등 제1야당이던 민주당은 고립무원 상태에 빠졌다. 문 대표는 총선을 지휘해 줄 사령관이 절실했고 김종인에게 그 역할을 읍소했다. 그를 선대위원장으로 모시기 위해 그 스스로 "삼고초려했다"고 고백했고, 비상전권을 위임했다. 김 위원장은 결국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단 1석 차이의 제1당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옥새파동으로 자멸한 새누리당 덕을 톡톡히 봤지만, 이해찬을 공천에서 탈락시킬 정도였던 김 위원장의 강력한 지도력도 큰 몫을 한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4년 전 김 위원장의 행적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2012년 19대 총선과 그해 연말 18대 대선 때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 편에서 맹렬히 선거현장을 누비고 다닌 것이다. 보수의 본산인 새누리당에 '경제민주화'라는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이식시켜 큰 효과를 봤다. 총선은 새누리당의 과반수 승리로, 대선은 박근혜의 당선으로 끝났다.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도 김 위원장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두 사람의 득표율 차이는 3.6%, 미세한 득표율 차이에 김종인이 있었다.김종인이 이번엔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으로 21대 총선에 뛰어들었다. "제 인생의 마지막 노력으로 나라가 가는 방향을 반드시 되돌려 놓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라며 통합당 행을 설명했다. 이번에도 자택까지 찾아온 황교안 당 대표의 삼고초려에 몸을 움직였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복고적 구호를 회자시키며 선거 달인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러나 자·타칭 킹메이커로 불리는 김 위원장은 선거가 끝나면 토사구팽 당하길 반복했다. 최근 출간한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한 내용이 적대적이고 냉소적인 이유일 것이다.코로나19,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인한 꼭두각시 비례정당 난립 등 전례 없는 초대형 변수 속에 치러지는 4·15 총선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갇힌 비대면 선거 캠페인, 50㎝가 넘는 정당투표용지 등 생경한 총선 풍경이다. 초대형 변수로 웬만한 변수가 사라진 선거판에 '선대위원장' 전문가 김종인의 등장이 흥미롭다. 여야를 넘나드는 김종인의 종횡무진, 종착지가 궁금하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3-30 윤인수

[참성단]닥터 둠(Dr.Doom)

누군가는 '퍼펙트 스톰'이 온다 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낙관론이 우세할 때, 일엽편주(一葉片舟)에 올라타서 "곧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몰아치니 어서 이 배를 타시오!"라고 소리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2006년 9월 홀연히 나타나 "미국 경제가 머지않아 주택시장 붕괴와 금융회사 파탄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무시무시한 비관론을 설파한 학자가 있었다.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미국 내 대표적인 증시 비관론자, 누리엘 루비니. 우리에겐 '닥터 둠'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당시엔 낙관론이 넘쳐나던 때라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신출내기 학자의 도발적 발언에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2년 뒤인 2008년 9월 그의 말대로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는 등 전 세계를 공포 속에 몰아넣은 금융위기가 들이닥치면서 그는 일약 스타가 됐다. '위기의 예언자'라는 별명도 그때 얻었다. 2009년 '타임'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후 각종 포럼과 세미나에서 인기 있는 초청 대상이 돼 돈방석에 앉았다.닥터 둠, 그가 돌아왔다. 루비니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경기 침체가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지금 상황은 대공황때보다 훨씬 더 나쁘다. V자나 U자형 회복은 기대하지도 마라. I자형 경제의 급전직하가 닥치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장을 날렸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위기는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 세계 경제가 큰 상처를 입으면 단번에 V자 회복은 없으며 몇 년간은 낮은 성장세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는 눈사태와 같아 이를 극복만 하면 원상태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처럼 V자형 회복이 가능하다는 낙관론도 만만치 않다. 분명한 건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가 공포에 휩싸인 지금, 루비니의 발언이 극단적 비관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닥터 둠의 주장이 언제나 맞아 떨어진 것은 아니다. "매번 경기침체를 경고하다가, 몇 년에 한 번씩 운 좋게 얻어걸린다"며 루비니의 비관적 전망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이영재 주필

2020-03-29 이영재

[참성단]'의원 꿔주기'

2000년 4월 13일 치러진 16대 총선은 재적 의원 273명 중 야당인 한나라당이 과반에 4석 모자라는 133석을, 여당인 민주당이 115석, 자민련이 17석을 얻어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됐다. 이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으로 훗날 이때를 회상하며 '정국안정을 희구했지만 나는 늘 뒤뚱거리는 선박의 선장'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예상대로 여소야대로 인한 불안정한 정치지형은 첫해에만 4번의 파행을 부르는 등 국회는 극심한 정쟁 속으로 빠져들었다.이 때문에 16대 국회는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기 위한 '자민련 구하기'가 노골적으로 시도됐다. 그중 하나가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 마침내 2000년 7월 민주당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교섭단체 요건을 원내 의석 20석 이상에서 10석 이상으로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지만, 이만섭 국회의장이 거부해 본회의까지 가지 못했다.그러자 민주당 배기선 의원이 총대를 멨다. 의원 3명이 자민련으로 옮기면 원내교섭단체가 되는 것에 착안, 송석찬 의원과 송영진 의원과 전격 이적한 것이다. 국회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의원 꿔주기'다. 그때만 해도 이 추태가 헌정사상 유례없는 코미디로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되리란 걸 아무도 몰랐다. 이뿐이 아니다. 송석찬 의원이 김 대통령에게 "저는 한 마리 연어가 되어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라는 충성편지를 보낸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배기선 의원은 훗날 인터뷰에서 "이튿날 새벽 김대중 대통령이 전화로 '배 동지가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줄은 몰랐소'라며 감사를 표했다"고 말했다.국회 창고 속에 처박혀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줄 알았던 '의원 꿔주기' 망령이 4·15 총선을 앞두고 정치판을 배회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투표용지 상 앞 순번을 받기 위해서 비례 위성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으로 현역 의원 7명을 보내기로 하면서 '의원 꿔주기'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국회 사상 처음으로 소속 의원 3명을 만장일치로 제명하는 거친 수법이 사용됐다. 4명은 탈당계를 내고 당적을 옮긴다. 미래통합당이 같은 방법으로 의원을 내보낼 때 불법이라며 황교안 대표 등을 고발한 민주당이다. 후안무치(厚顔無恥). 한국 정치의 민낯이다. 이 정도면 3류 측에도 못 끼는 4류 정치다. /이영재 주필

2020-03-26 이영재

[참성단]독도표 진단키트

퓰리처상 수상작인 '총,균,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박사는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란 제목의 논문에서 일본인의 조상에 대한 세 가지 학설을 소개한다. 첫째는 일본 열도의 원주민인 '조몬인'이 점차 현대 일본인으로 진화했다는 설이다. 두 번째 학설은 어마어마한 수의 한국인이 농업기술과 문화, 유전자를 가지고 이주했고, 현대 일본인은 한국인 이민자의 자손이라는 설이다. 마지막 학설은 한국에서부터 이주가 이뤄졌다는 증거는 인정하지만 그것이 엄청난 규모였다는 견해는 부정한다. 하지만 이후 한국인의 수가 급격히 불어나 현대 일본인의 조상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두 번째 학설과 맥을 같이한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골격과 두개골 분석결과 등을 토대로 첫 번째 보다는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학설에 더 무게를 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흥미롭긴 하지만 일본이 저지른 과거를 돌이켜 볼 때 별로 수긍하고 싶지 않은 학설이기도 하다. 일본인의 조상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리 만무한 일본이야 오죽할까.다이아몬드 박사도 이를 의식했는지 "한국인과 일본인은 오랜 시간 서로에 대한 적의를 키워왔지만 이러한 반목은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며 "동아시아의 정치적 미래는 양국이 고대에 쌓았던 유대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제언한다.그러나 '반목을 해결할 수 있다'는 다이아몬드 박사의 긍정적 전망은 상당기간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 같다. 일본이 근현대사마저 왜곡하는 마당에 양국이 '고대에 쌓았던 유대'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일본 정부가 결국 24일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억지 주장이 담긴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총 17종의 검정을 승인했다. 수출·입국 규제에 이어 이번에는 교과서로 또 한번 한국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일본의 역사왜곡에 분을 참지 못했는지 한 시민이 독도와 관련한 이색 제안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롯해 외국에서 코로나19 진단키트 지원 요청 및 수출 문의가 잇따르는 것과 맞물려, 수출용 진단키트의 제품명을 '독도'로 해달라는 청원을 25일 청와대에 접수한 것이다. 실현 여부를 떠나 응원하고 싶은 청원이다. /임성훈 논설위원

2020-03-25 임성훈

[참성단]비례대표

4·15총선을 앞두고 막장의 진수를 보여주는 비례대표의 전신은 '전국구(全國區)'다. 1963년 6대 총선에서 첫선을 보인 전국구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직능대표성을 선출한다는 취지로 탄생했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여당은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정치인과 직능별 지지세력 확보를 위해 전국구를 이용했고, 늘 정치자금이 부족했던 야당은 정치자금 모금창구로 전락시켰다.유신헌법하에 있었던 9, 10대 국회에서 전국구는 유신정우회(유정회)로 바뀐다.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출한 유정회 의원은 여당의 입장을 관철하는 거수기 역할로 '원내전위대', '친위대'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11대 국회 때 부활한 전국구는 16대 국회까지 지역구 의석이나 득표율에 따라 의원을 뽑을 때 당선 가능한 앞번호를 받기 위해서 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30억원 내면 당선되고 20억원 내면 떨어진다는 '30당·20락'이란 말도 그때 나왔다. 특권은 누리면서 지역구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천국구(天國區)'라고도 불렸다.17대 총선부터 1인 2표제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돈 공천 논란은 줄었지만, 특정 계파 공천 논란은 오히려 더 커졌다. 여전히 비례대표 본연의 의미 대신 당 대표나 실력자의 측근들이 포진하는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번 4·15 총선 비례대표의 확보를 놓고 집권당이 급조한 정당과 손을 잡으며 추악한 전쟁을 벌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신생 정당의 난립도 문제다. 이는 작년 말 민주당이 제1야당의 반대에도 '4+1 협의체'를 앞세워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을 높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을 강행 처리해 가능해졌다. 20대 국회가 만든 최악의 부산물이다. 양당제 폐해를 줄이고 군소정당의 당선자를 늘리겠다고 선거법을 개정했지만 이제 두 거대 정당의 의석수가 더 늘어나는 꼴이 됐다. 이 때문에 4·15 총선 투표장에서 유권자들은 생전 처음 보는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망연자실할지도 모른다. 성인 양팔 길이의 투표용지와 당명을 읽는 데만 족히 1분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몸이 불편하거나 눈이 어두운 어르신의 경우 기표가 가능할지 장담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20일 후면 아프리카 신생국의 투표장을 재현한, 황당한 상황이 실제 우리 눈앞에 펼쳐지게 될 것이다. 비례대표를 폐지하라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영재 주필

2020-03-24 이영재

[참성단]도쿄올림픽 덮친 팬데믹

"스포츠적이고, 기사다운 시합은 인간의 최고의 자질을 깨웁니다. 그것은 또한 평화의 정신 안에서 국가들을 결속시키는 것을 돕습니다. 그것이 올림픽 성화가 죽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아돌프 히틀러의 개최 연설 중 한 대목이다. 겉으로는 스포츠를 통한 국제평화를 강조했지만, 나치정권을 수립한 히틀러는 독일 선전을 위해 최초의 성화봉송, 최초의 TV생방송 등 베를린올림픽을 철저하게 기획했다. 하지만 올림픽을 통한 국제평화는 기만이었다. 히틀러는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2차 세계대전의 지옥문을 열었다.1896년 아테네올림픽이 개최된 이래 4년 주기로 열리는 올림픽이 취소된 건 1, 2차 세계대전 시기뿐이다. 1차 세계대전으로 191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이 취소됐는데,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나치의 세계대전 예고편이 됐다. 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인 1940년 일본 도쿄올림픽은 중일전쟁 개전으로 핀란드 헬싱키로 개최지를 옮겼지만 끝내 취소됐다. 1944년 영국 런던올림픽은 아예 개최를 상상할 수 없었다.하지만 세계대전 종전 이후 올림픽은 단 한차례 중단 없이 이어졌다. 오히려 개최국, 개최도시의 영광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졌다. 올림픽 개최가 선진국 통과의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냉전시대에는 동·서 진영의 체제 경쟁으로 인한 정치적 오염이 심각했고, 냉전시대 이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상업성과 개최국의 올림픽 불황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만, 올림픽 개최는 여전히 나라와 민족의 자부심을 상징한다.일본 아베정권이 공들여 준비해 온 제32회 도쿄올림픽 개최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의 세계대전이 한창인 가운데, 올림픽 개최에 대한 부정적인 지구촌 여론 때문이다. 캐나다가 올림픽 불참을 선언했고, IOC도 개최 연기 검토에 들어갔다. 아베 총리도 마지못해 연기 가능성을 언급했다. 아베 정권은 도쿄올림픽을 통해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폭발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려, 2013년 개최권을 따낸 이후 수십조원을 쏟아부었다. 일부 종목의 후쿠시마 개최와 후쿠시마 식자재 사용 등 방사능 올림픽 비판에도 아랑곳 않던 아베 총리도 코로나 팬데믹 앞에서는 무력하다. 세계대전만큼이나 무서운 코로나 팬데믹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3-23 윤인수

[참성단]'동학개미운동'

'톰 소여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투기를 좋아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독하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 그의 투기심리를 부추겼다. 광산에도 투자했고, 도박에도 손을 댔다. 주식투자로 큰 빚을 지기도 했다. '톰 소여 모험'이 대 히트하면서 인세로 큰돈을 손에 쥐었지만, 모두 주식으로 날렸다. 처음엔 일확천금을, 후엔 원금을 찾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실패했다. 전형적인 개미투자가들이 그렇듯 말로는 주식투자는 할 게 못 된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일확천금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최근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동학 개미운동'이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외국인의 매물을 힘겹게 받아내는 개인 투자자들의 모습이 마치 반외세 운동인 동학농민운동을 보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외국인들이 집중적으로 매도하는 삼성전자 주식을 개인들이 매수하고 있다. 3월 들어서 외국인은 삼성전자 주식 4조7천669억원(우선주 포함) 어치를 매도했는데 개인들이 4조5천113억원 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이는 삼성전자라는 세계적인 기업에 투자한다는 심리적인 안정감과 장이 무너져도 삼성전자만큼은 굳건할 것이란 믿음에서 비롯됐다.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했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때 크게 떨어졌던 삼성전자 주가가 제자리를 되찾는 과정을 보면서 터득한 학습효과다. 하지만 개인 투자가들은 빚을 내 주식을 산다는 것이 문제다. 18일 기준 삼성전자의 신용융자잔고는 594만여주로 지난달 말 415만여주보다 70% 가까이 증가했다.1894년 12월 5일 동학군의 마지막 전투인 공주 우금치에서 동학군은 분당 400발을 발사하는 개틀링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2만여명이 사살됐다. 죽창으로 최신식 무기와 대적했으니 결과는 뻔하다. 아무리 개인이 주식운용을 잘해도 총알(자금)이 풍부한 외국인들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외국인들은 매도로 마련한 현금을 본국으로 보내지 않고 비축하고 있다고 한다. 저점에서 다시 들어오겠다는 뜻이다. 반면에 '지금이 바닥'이란 판단으로 빚을 내 뛰어든 개인 투자자들은 투자금이 반 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지금 가장 유망한 종목은 '현금'이다. 현금을 최대한 아끼면서 저점이 확인될 때까지 매수를 자제해야 한다. 주식 매수를 애국운동이라고 생각하면 쪽박을 차기 십상이다. /이영재 주필

2020-03-22 이영재

[참성단]백신

두창, 마마로 불리는 천연두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기원전 1160년경 사망한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5세도 천연두가 원인이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당시 유럽에 천연두가 창궐했다. 이들이 옮겨간 바이러스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3분의 1이 사망했다. 운 좋게 살아도 시력 상실, 곰보 등 심각한 후유증이 남았다. 이는 유럽도 마찬가지였다.1768년 영국의사 존 휴스턴은 우두(牛痘)에 의해 감염된 사람이 천연두에 면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1796년 '면역학의 아버지' 에드워드 제너는 이를 바탕으로 소젖 짜는 여인들이 미약하게나마 우두를 앓자 그 물집의 고름으로 천연두 예방 물질을 개발했다. 수천 년간 인류의 적이던 천연두가 극복되는 순간이었다. 천연두는 1959년을 끝으로 새로운 환자가 보고되지 않았다. 1980년 WHO는 천연두의 지구 상 박멸을 선언했다.인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3만 개의 질병이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인류가 홍역, 장티푸스, 파상풍, 콜레라 등의 감염병 공포에서 벗어난 건 순전히 백신 덕분이다. 백신이란 이름은 파스퇴르에 의해 명명됐다. 자신이 만든 약에 '소'를 뜻하는 라틴어 '바차(vacca)'를 빌려 '백신(vaccine)'이라 하고 투약을 '예방접종(vaccination)'이라 불렀다. 이처럼 백신은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데 가장 크게 이바지한 의학 성과로 꼽힌다.백신 개발은 돈과 직결된다. 세계 유수의 제약사들은 여기에 회사의 운명을 건다. 하지만 소아마비 백신을 만든 의학자 조너스 소크는 달랐다. 원숭이 신장 조직과 200여 후보 물질로 실험한 끝에 1955년 '소크 백신'을 개발했다. 제약회사들이 돈으로 유혹했지만, 이를 거부하고 백신 제조법을 무료로 공개했다. 부모와 아이들이 받는 고통을 돈과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기자들이 백신 특허권에 관해 묻자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라고 했던 말은 지금 들어도 감동이다.코로나 19 종식을 위해선 백신이 유일한 수단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백신 개발이 미·중간 경쟁으로 되면서 안전성이 무시되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백신은 충분한 안전 테스트와 다양한 동물실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백신 개발은 승자를 정하는 게임이 아니다. 인류를 구한다는 사명감이 우선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이영재 주필

2020-03-19 이영재

[참성단]푸틴의 장기집권 플랜

젊은 시절 블라디미르 푸틴은 '위험 불감증' 환자였다고 한다. 구소련 KGB에 들어가 강도 높은 훈련과 고도의 심리전을 배워서인지 위험을 모르고 매사에 자신감이 있었다. KGB 비밀 파일에 푸틴의 단점을 '겁 없음'이라 적을 정도로 모든 게 거침이 없었다. 이런 강한 추진력은 푸틴의 큰 재산이었다. 1996년 대통령 총무실 부실장으로 크렘린에 입성한 지 불과 4년 만에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 자리를 꿰찼다.대통령이 된 푸틴이 가장 먼저 한 건 강한 러시아를 만드는 것이었다. 구소련 붕괴 후 바닥까지 떨어진 경제를 회복하고 강대국으로의 복귀는 푸틴의 지상과제였다. 이런 푸틴의 모습에 국민은 열광했다. 실제 2000~2008년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이 4배, 수출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원유의 탓도 있지만 외환보유액도 크게 늘었고 주가도 폭등했다.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2008년 1차 임기를 마친 푸틴은 70~80%의 높은 국민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정치적 제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제1 부총리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줬다. 하지만 이는 연임을 회피하기 위한 합법적 꼼수였다. 2012년 대통령으로 복귀한 푸틴은 임기를 6년으로 늘려 3선을 하고 2018년 4선에 성공해 오는 2024년까지 재임할 수 있다.나는 새를 떨어뜨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푸틴이지만 그래도 장기집권을 위해서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푸틴이 추진 중인 헌법 개정안이 지난주 러시아 상·하원 심의를 통과했다. 개헌안은 오는 2024년 임기를 마치는 푸틴 대통령의 재선 출마를 위해 기존 임기들을 백지화하는 내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다음 달 개헌안이 국민투표로 통과하면 푸틴은 두 차례 더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승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고 임기가 6년이니 2036년 그의 나이 83살까지 집권할 수 있다는 얘기다. "푸틴은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말이 이래서 나왔다.그동안 러시아는 레닌, 스탈린,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옐친 등 절대권력의 지도자들이 이끌어왔다. 하지만 그들도 푸틴처럼 꼼수를 내세워 장기집권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주가폭락의 한 원인인 이번 미·러·사우디 간의 원유전쟁도 국민에게 '강한 러시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푸틴의 '장기집권 플랜'중 하나다. 지금 푸틴은 겁이 없다. /이영재 주필

2020-03-18 이영재

[참성단]0%대 금리시대

이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골칫거리였다. 구약성서 신명기에 '이웃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지 말라'는 구절이 나올 정도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상거래 가운데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금리를 취할 목적으로 대출해주는 행위'로 보았다.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는 이자를 '가장 큰 죄악 15개 항목' 중 하나로 규정했다. 농경생활시대부터 존재한 이자를 아예 금지하기보다 고리대금으로 인한 부의 편중 심화를 경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최초의 성문법전인 고대바빌로니아 함무라비에는 곡식 이자율의 최고한도를 연 33.33%로, 기원전 로마 12표법에 모든 대출 이자율을 연 8.33% 수준으로 정한 것만 봐도 그렇다.금리에 대한 최고의 문헌으로 평가받는 리처드 실라의 '금리의 역사'(리딩리더 간)를 보면, 고대 바빌로니아와 그리스, 로마시대에 문화가 번성하는 시기에는 이자율이 낮고, 쇠퇴하거나 망하는 시기에는 이자율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고 적고 있다. 또 시간적 차원에서 볼 때 금리의 흐름에는 일정한 추세와 반복적 변동 패턴이 있으며 이런 현상은 한 국가와 전체 문명의 흥망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자율이 낮으면 무엇보다 소비자들은 이자율이 높을 때에 비해 더 많이 지출한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일본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보통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특징으로 저성장·저물가·저금리를 꼽는다. 1990년대 초 일본 경제는 자산 거품이 꺼지면서 장기불황에 빠졌다. 처음 10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고작 0.8%에 그쳤다.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0%를 기록했고, 국채금리는 오히려 마이너스권에 머물렀다. 보통 금리가 낮아지면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고, 경제가 성장하고, 다시 물가가 오르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은행에만 돈을 맡겼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소비가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났다. 저금리가 지갑을 더 닫게 한 것이다. 코로나 19 전 세계 확산으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0.75%로 인하하면서 우리도 '0%대 금리시대'가 열렸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문제는 최근 글로벌 증시급락이 유동성 문제가 아니어서 금리 인하 효과를 볼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성장률, 물가, 금리가 제로 수준이면 이를 '3저 불황'이라 부른다. 0%대 금리가 실현되면서 일본이 걸었던 그 길을 우리가 걷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이영재 주필

2020-03-17 이영재

[참성단]'경기아트센터'의 심리방역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세계가 파랗게 질렸다. 일상은 멈췄고 사람들은 갇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격리의 불안은 바이러스 감염만큼 무섭다. 코로나19는 바이러스에 우울증(코로나 블루)을 동반한 최악의 습격자인 셈이다. '코로나 블루'에 걸리면 우울증, 불안, 분노, 무기력, 대인기피 등 감정적 증상에 두통, 불면, 소화불량, 가슴 답답함, 두근거림 등 신체적 증상이 나타난다. 바이러스 방역과 함께 심리적 방역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서울시는 최근 심리방역을 위한 마음 백신 7종을 제안해 관심을 끌었다. 스스로 격려하는 격려백신, 타인을 돕는 긍정백신, 위생수칙을 지키는 실천백신, 가짜뉴스를 무시하는 지식백신, 언젠가 끝이 온다는 희망백신, 바이러스 유증상시 행동지침을 숙지하는 정보백신, 심신의 균형과, 가정과 일의 균형을 지키는 균형백신이 그것인데 각 분야 전문가들이 집대성한 심리백신인 만큼 응용해 볼 만하다.최근 경기아트센터(구 경기도문화의전당)가 실행해 호평을 받은 무관객 생중계 공연은, 당국에서 심리방역의 대안으로 눈여겨 볼 만하다. 경기아트센터는 지난 12일 도립극단의 작품 '브라보 엄사장'을 유튜브 등 온라인 매체에 생중계했다. 당일 연극중계를 시청한 접속자는 700여명. 연극 공연장인 아트센터 소극장 관객석이 500석인 점을 감안하면 만원사례 공연이고, 이후 누적 접속자가 7천500여명에 이른다니 앙코르 공연도 연일 매진사례인 셈이다.요한 하위징아는 놀이를 인간의 본성으로 보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라는 용어를 창안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학명에 빗대어 인간 본성을 규정한 다양한 작명이 있지만, 코로나 팬데믹에 대응할 심리방역은 인간의 놀이 본성을 십분 감안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 종편채널의 '미스터 트롯'은 관객 없이도 전국민이 결승전에 열광했다. 잠시나마 코로나 블루를 잊은 순간이었을 것이다.연극의 3대 요소인 관객 없이 배우와 무대만으로 국민을 놀이판에 불러낼 수 있다면, 각종 프로 스포츠의 무관중 경기도 강행해 볼 만하다. SNS매체가 대세인 시대다. 관객, 관중의 개념을 꼭 현장에 묶어 둘 필요는 없다. 더 욕심내면 사회적 거리를 감안한 최소 관중 입장을 허용해도 될 듯 싶다. 경기아트센터 무관객 온라인 공연은 이달에만 네차례 더 이어진다. / 윤인수 논설실장

2020-03-16 윤인수

[참성단]공매도

2013년 4월 16일 코스닥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보유주식 전량을 매각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셀트리온을 세계 굴지의 생명공학회사로 키우려 했지만, 공매도 세력의 극성으로 기업을 경영할 의욕을 잃었다는 것이다. 서 회장은 "지난 2년간 공매도 금지기간을 제외한 432거래일 가운데 412일(95.4%)간 공매도가 이뤄졌으며 비중이 10%를 넘는 날도 62일에 달했다"고 하소연했다.공매도(空賣渡)는 하락이 예상되는 종목의 주식을 빌려서 팔고, 가격이 내리면 사들여 빌린 주식을 갚아 수익을 올리는 투자방식으로 우리 시장엔 1969년 도입됐다. 당시 셀트리온에 대한 온갖 루머는 주가를 고의로 떨어뜨려 이익을 보려는 불순한 공매도 세력 때문이었다. 실제 이 기간에 분식회계, 서 회장 도주, 임상시험 실패 등 소문이 무성했다. 이 때문에 당시에도 셀트리온 주식을 갖고 있던 개미투자가에게 공매도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하지만 공매도가 주가를 끌어내린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다. 오히려 상승장에서 주가 폭등을 차단하고, 하락장에서는 거래 유동성을 늘린다는 순기능을 가진다. 문제가 있다면 외국인(62.8%)과 기관투자가(36.1%)의 전유물이라는 점이다. 개인이 주식을 빌리기란 쉽지 않고 어렵게 주식을 빌린다 해도 신용도가 낮아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공매도제도가 개인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다.주가는 국정 성패의 지표가 되곤 한다. 어느 정부건 주가폭락은 큰 부담이다. 선거가 코앞이라면 더 그렇다. 이때마다 '공매도 금지'는 늘 주요 현안이 됐다. 코로나 19로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지자, 금융위원회가 6개월간 공매도 전면 금지를 오늘부터 적용해 실시키로 했다. 공매도 금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2008년 10월부터 5월까지, 유럽재정위기가 불거진 2011년 8월부터 11월까지 실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주식은 '사는 것보다 파는 게 더 중요하다'는 증시 격언처럼 '파는 예술'이다. '하락'을 예측해 공매도했다는 이유로 '투기세력'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시장을 교란하는 불순한 공매도 세력이 있다면 금융당국이 적발해서 처벌하면 된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오히려 주식시장의 불신을 가져올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영재 주필

2020-03-15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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