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통합과 분도(分道)

조선 시대 기본 행정구역은 8도(道) 체제다. 1895년 23부로 변경됐으나 혼란을 초래하자 도 체제로 복귀했다. 다만 경기·강원·황해를 뺀 나머지 5개 도를 남북으로 나눠 13도가 됐다. 해방 후 남한은 8도(황해도가 경기도로 편입)로 유지되다 현재는 17개 광역자치단체가 됐다.광역지자체는 사람 숫자와 상관관계다. 주민이 늘면 행정수요가 늘고, 임계점을 넘으면 분리하는 식이다. 하지만 호남과 영남에서 인구 100만명 남짓한 지자체가 광역단체로 승격하면서 '정치가 개입했다'는 등 뒷말이 많았다.최근 전국 광역지자체들의 행정 통합 움직임이 활발하다. 대구와 경북이 선두주자다. 지난 21일 학계·기업계·시민단체가 참여한 '대구·경북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다. 올해 말 주민투표, 내년 6월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2022년 7월께 통합이 마무리될 것이란 예상이다. 지역에서는 산업 생태계가 붕괴하고 인구가 감소하는 등 위기를 돌파할 묘책이라고 기대한다.광주와 전남도 통합 논의가 한창이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을 묶는 '메가시티'를 만들어 제2의 수도권으로 육성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그런데, 경기도는 반대 방향이다. 의정부시의회는 이달 초 '경기북도 설치 추진위원회 구성 및 운영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가결했다. 경기도는 즉각 의정부시에 재의 요구를 지시했고, 시는 이를 의회에 통보했다. 도는 이에 불응할 경우 대법원에 제소한다는 방침이다.광역지자체들의 통합 목적은 인구 500만~800만명 급의 '슈퍼 지자체'를 만들어 경쟁력을 높이자는 거다. 통합이 실현되면 중복 사업을 피하고 예산을 집중해 규모의 경제를 꾀할 수 있다.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 재정교부금, 지역내총생산이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경기북도 신설 공약은 1980년대 후반 처음 제기됐다. 이후 2010년대까지 여러 차례 제안됐고, 2017년 국회에 '경기북도 설치에 관한 법률안'이 상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분도의 명분과 당위성은 옅어졌다. 이미 의정부에는 도청 북부청사와 교육청, 소방안전본부, 북부경찰청이 설치됐다. 시스템이 개선돼 민원을 보러 수원 본청까지 방문할 필요성도 급감했다. 인구 때문이라면 도를 3~4개까지 쪼개야 한다. 환경이 달라졌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09-24 홍정표

[참성단]'독감 백신' 배달 사고

정체불명의 전염병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인류. 유일한 희망은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인 '네이단 제임스'호다. 함정엔 북극에서 채취한 바이러스 원형으로 백신을 만들 수 있는 여성 과학자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영화채널에서 재방송 중인 미국 드라마 '더 라스트 쉽'의 내용이다. 드라마에서 기관고장으로 함정의 전원이 나가자 비상이 걸린다. 함정 내에서 개발 중인 백신 샘플들이 온도가 올라가면서 사멸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결국 백신을 수온 5도인 깊은 바다에 담가 위기를 모면한다.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래 백신은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해왔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천연두는 이제 박멸됐다. 소아마비, 홍역, 장티푸스, 콜레라, 뇌수막염 등 수 많은 전염병 바이러스는 백신 앞에 맥을 못 춘다. 이런 백신도 약점이 있다. 상온에만 노출돼도 효과가 사라진다. 물 백신이 되는 것이다. 가축 전염병인 구제역 백신과 관련 '물 백신' 논란이 일었을 때, 수입 백신의 효능이 도마에 올랐지만 접종 과정에서 백신을 상온에 장시간 노출시킨 관리 부실도 원인으로 거론된 바 있다.올해는 유난히 독감 백신 접종이 중요해졌다.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창궐하는 트윈데믹이 발생하면, 증상이 비슷한 두 질병을 감별하느라 의료체계가 붕괴되면서 백신 없는 코로나19 희생자가 늘어날 수 있어서다. 통신비 지원 대신 전 국민 독감 백신 무료접종 주장에 여론이 호응한 이유다. 정부·여당이 4차 추경에서 통신비 지원을 줄이고 취약계층 105만명의 무료접종 예산을 편성한 배경이다.그런데 정작 독감 백신이 유통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되는 바람에 국가 무료 접종 사업이 중단됐다. 백신 박스들이 가을 햇살에 달궈진 땅바닥에 쌓여 유통됐다는 제보에 질병관리청이 해당 백신 접종 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질병관리청은 500만명 접종 분량의 백신을 검수 중이다. 하지만 이미 접종을 완료한 백신들은 문제가 없단다. 백신 유통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관행이 있을 것이다. 상온 유통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단언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미 예방접종을 마친 국민에 대한 백신 유효성을 검사해야 한다.코로나19로 엄청난 예산이 소비되고 있다. 독감 백신 무료접종도 코로나19 예방차원의 사업이다. 국민 혈세가 기껏 백신 박스 배달 사고로 물거품이 된다면 너무 허망하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9-23 윤인수

[참성단]끝나지 않은 비극 '천안함 폭침'

"772함 나와라/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린다…작전지역에 남아있는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2010년 3월26일 밤,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영해를 수호하던 포항급 초계함 PCC-772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에 피격돼 침몰했다. 수병 104명 중 58명이 현장에서 구조됐고, 46명이 전사했다. 전사한 아군을 인양하는 동안 국민은 단 한 명이라도 생환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하나 된 국민의 소망을 담아 한 의대 교수가 해군 홈페이지에 시를 올려 '즉시 귀환' 명령을 내렸지만, 끝내 6명은 지금껏 혼백으로 서해를 표류하고 있다.지난 3월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천안함 폭침 등 북한의 서해도발로 희생당한 순국장병 55명을 추모하는 국가기념일, 문 대통령의 참석은 취임 3년 만이었다. 분향하는 대통령에게 한 유족이 다가가 읍소했다. "대통령님. 이게 누구 소행인가 말씀 좀 해주세요. 가슴이 무너집니다." 천안함 순국자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였다. 대통령은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 입장이 있다"고 답했다.온 국민이 수병 한명 한명의 이름을 호명하며 무사 귀환을 명령했던 비극적인 사건을 추모하는 국가행사에서 대통령과 유족 사이에서 민망한 장면이 벌어진 이유가 있다. 민군합동조사단과 국제조사단은 천안함 폭침 원인이 북한 잠수함의 어뢰공격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진보진영 논객과 개인방송들은 좌초설, 미군잠수함 충돌설 등 각종 괴담을 주장했다. 핵심은 북 잠수함 공격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천안함 병사들이 자작극의 희생양일지 모른다는 괴담에 유족들의 한은 깊어졌고, 민 상사의 어머니는 대통령에게 다가선 것이다.영화 '신과 함께'의 원작자인 인기웹툰 작가 주호민이 최근 천안함 폭침 사건을 희화화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북한이 한 게 맞다. 내가 틀렸다"며 "큰 사과밖엔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어젠 조성대 중앙선거관리위원 후보자가 정부의 공식 조사결과를 수용한다며 천안함 유족에게 사과했다. 그는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에 대해 "개그"라며 진실 규명을 요구했었다. 공직후보자 청문회에 오르자 10년 만에 번복하고 사과한 것이다.하지만 괴담은 성행하고, 현 정부는 북한을 가해자로 지목하기 꺼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천안함 폭침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9-22 윤인수

[참성단]탁현민 비서관의 SNS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19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은 BTS의 노래와 춤을 모두 좋아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를 담은 동영상은 500만 뷰어를 넘어섰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 비서관은 다음날 페이스북에 "2039년 제20회 청년의 날을 연출할 연출가에게"라고 시작하는 글을 통해 BTS 청와대 행사의 소회를 남겼다. 그는 청년의 시작 나이 '19세'를 상징하는 19년 후의 미래에 보내는 형식을 빌려 글을 썼다.그가 행사기획을 자신이 했다고 밝히자 야권 인사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나르시즘이 도를 넘었다"며 "탁 비서관에게 대통령의 의전은 여전히 자신을 위한 쇼로 이용될 뿐인가 보다"라고 했다. 허 의원은 SNS를 통해 "나르시즘의 신화를 만든 나르키소스는 결국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며 "제발 정신 좀 차리길 바란다.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안타깝게 생각된다"고 비판했다.지난주 문 대통령은 충북 오성 질병관리청을 찾아 정은경 초대 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대통령이 차관급 인사에게 청와대 밖으로 나가 임명장을 준 건 이례적이다. 이 역시 탁 비서관 작품으로 확인됐다. 이 행사는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총리에게 "문 대통령이 11일 임명장을 수여할 때 100여명의 사람들이 밀접접촉한 상태로 있는 등 방역 수칙을 어겼다"며 "탁현민 비서관에게 규정대로 300만원 벌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탁 비서관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청년의 날 행사도, 정 청장 임명장 수여식도 그의 기획이라고 스스로 드러냈다. '역시 탁현민이다'는 탄식과 '대통령이 들러리가 됐다'는 비판이 갈린다.비서관은 흔히 그림자에 비유된다. 자신의 존재감을 감추고 음지에서 주군을 보좌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유명 정치인이 검찰에 출두하면서 "비서는 입이 없다"고 했다. 위기에 처한 주군을 대하는 처세의 기본을 말한 것이다. '부귀한 자는 마땅히 너그러워야 하고, 총명한 자는 마땅히 재주를 감추어야 한다'(채근담). 탁 비서관이 SNS에 올린 글을 보면서 떠오른 말이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09-21 홍정표

[참성단]호부견자(虎父犬子)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이디푸스는 신이 정한 운명의 거미줄에서 꼼짝 못하는 인간을 상징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자녀를 낳은 진실이 밝혀지면서, 아내이자 어머니는 자결하고 자신은 두 눈을 찔러 실명한 뒤 온 세상 사람들에게 모욕받는 유랑 끝에 숨진다. 납득하기 힘든 인간사를 신의 섭리에 맡겨 버린 고대 그리스인들의 인생관, 그 끝을 보여주는 비극이다.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비극에 착안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이론적 용어를 창안했다. 어린 아들은 유아기에 최초의 이성인 어머니를 독차지하려고, 아버지를 경쟁 상대로 여겨 콤플렉스를 느끼며 증오하는 심리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아들들은 아버지를 향한 증오를 선망으로 바꾸고, 아버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성장하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한다고 봤다.프로이트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 아들들은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닮는다. '부전자전', '피는 못 속인다'는 부자관계에 대한 직관적인 속설이 이를 증명한다. 고대 그리스를 통일한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의 군대로 세계를 정복했다. 이성계는 조선을 창업했고, 아들 이방원은 수성에 성공해 조선 500년의 반석을 놓았다. '호부(虎父) 밑에 견자(犬子) 없다'의 사례다.하지만 오이디푸스가 보여주듯 인간사가 정석대로 전개될 리 없다. 호부 없이 개천에서 용이 된 인물이 수두룩하고, 호부를 두고도 견자에 그치는 자식들도 허다하다. 호부에 호자, 견부에 견자가 정석인 세상이라면 평등과 공정과 정의가 없는 전제세습의 나라일 것이다.그래도 아쉽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제명당한 김홍걸 의원 말이다. 아버지 김대중이 누군가.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이자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다. 이런 김대중을 아버지로 둔 김 의원이 졸렬하게 부동산투기 문제로 '호부견자'라는 조롱을 받으며 소명조차 못한 채 당에서 쫓겨났다. 다름아닌 아버지가 창업한 당이다. 견자라는 조롱은 자신이 감당할 치욕이지만, 아버지를 견자를 둔 호부로 만든 불효는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궁금하다. 국민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금배지를 반납한다면, 그나마 호부 '김대중'의 명예에 합당한 처신일 듯한 데,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9-20 윤인수

[참성단]'불황형 상품' 복권

'여성들의 치마 길이가 짧아지고, 화장이 짙어진다'. 경제 불황에 나타나는 사회 현상을 꼽을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소비심리가 위축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왜 치마 길이가 짧아지는지 잘 모르겠다. 원단 재료비를 아끼려는 의류회사의 꼼수 아닐까. 그렇다면 화장이 짙어지는 건 설명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불경기가 이어지면 사람들의 수면시간이 늘고 여가활동이 늘어난다는 설도 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교수팀이 2003~2010년 사이 미국인들의 생활 패턴을 조사한 결과다. 경제상태가 좋을 때보다 안 좋을 때 평균적으로 1일 수면시간이 10분 늘었다. 여가활동에 투자하는 시간은 21분이 증가했다. 교수팀은 이 같은 현상은 아주 단순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실업률이 높은 만큼 노동시간이 줄어든 탓이라는 것이다.불경기에 잘 팔리는 '불황형 상품'으로 복권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19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올해 상반기 국내 복권 판매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복권 판매액은 2조6천208억원으로 1년 전 동기보다 11.1% 증가했다. 2005년 이후 가장 많은 액수다. 상반기 기준 증가율도 지난 2012년(17.7%) 이후 최고치다.올 상반기 코로나19에 따른 불황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품별로 보면 로또 판매액이 2조3천82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인쇄식 복권이 1천863억원, 연금복권이 855억원, 전자식 복권이 408억원이다.올해는 시중 경기가 나쁠 때 호황이라는 경마와 경정이 수개월 간 열리지 않았다.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인 강원랜드도 문을 걸어 잠갔다. 복권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로또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5천60분의 1이다. 100분위로는 0.0000123%에 불과하다. 지나가다 벼락에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한다.복권방에 줄을 서는 건 '희망 고문'이다. 그래도 꿈을 잃은 사람들은 복권에 기댄다. 팬데믹은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 2단계와 2.5단계를 오가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영업자들은 죽을 맛이다. 올 하반기에 시중 경제는 더 나빠질 것이란 전망이다. 복권방마다 줄이 더 길어질 것 같다./홍정표 논설위원

2020-09-17 홍정표

[참성단]국가지정문화재 '팔미도 등대'

1950년 9월15일 새벽. 인천 앞바다에 집결한 유엔군 산하 8개국 261척의 함대가 월미도 북한군 진지를 향해 일제히 함포사격을 개시했다. 거의 미군 함정이었지만 손원일 제독이 지휘하는 대한민국 해군함정 15척과 해병대도 상륙작전에 참여했다. 주력을 낙동강 전선에 투입한 북한군은 급조한 서해안방어사령부로 방어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지휘한 이날의 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되고, 유엔군은 북진한다. 한국전쟁의 양상이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팔미도 등대는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무모하면서도 결정적인 전투로 평가받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서해에서 월미도와 인천항으로 진입하려면 무의도와 팔미도 사이의 해로를 타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팔미도 등대가 아니면 칠흑 같은 밤바다를 수백척의 함대가 이동할 수 없고, 새벽 기습작전도 가능하지 않았다. 유엔군 사령부가 켈로(KLO)부대의 한·미 특공대원 6명에게 15일 0시 팔미도 등대 점등을 명령한 이유다. 등대는 14일 저녁 11시45분 불을 밝혔고, 유엔군 함대는 줄지어 월미도로 향했다.팔미도 등대는 대한제국이 1903년 6월1일 점등한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다. 조선이라는 국호를 버리고 출범한 대한제국이 근대 건축기술로 지은 최초의 콘크리트 건축물이기도 하다. 지름 2m, 높이 7.9m로 초라한 규모다. 대한제국은 결국 일본에 나라를 잃었지만, 팔미도 등대로 대한민국을 지켜낸 셈이니 작은 등대가 간직한 역사적 의미가 묵직하다.문화재청이 지난 15일 인천상륙작전 70주년을 맞아 팔미도 등대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57호로 지정했다. "6·25전쟁 당시 수도 탈환의 성공적 발판으로 평가받는 '인천상륙작전'에서 연합군 함대를 인천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전쟁의 국면을 일시에 뒤바꾸는 데 이바지한 역사·상징적인 가치가 있다"고 지정 이유를 밝혔다.인천상륙작전 70주년, 정부가 주도한 기념식은 없었다. 해군이 주최한 전승기념행사도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대한민국을 존립시킨 결정적 전투였음을 생각하면 어색하다. 인천상륙작전 70주년 기념일에 맞추어 팔미도 등대를 사적으로 지정한 문화재청의 배려가 돋보이는 이유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9-16 윤인수

[참성단]'서부지검'과 '동부지검'

브라질 연방판사 세르지오 모루는 2014년 브라질 권력의 부정부패를 세차하듯 말끔하게 소탕하기 위한 사정작업, 일명 '라바 자투(Lava Jato·고압 분사기)'를 주도했다. 검사, 경찰, 국세청 직원으로 구성된 드림팀은 성역없는 수사로 국민적 지지를 받던 룰라 전 대통령마저 법대에 세웠다. 2019년 취임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그를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지난 4월 그가 사임했다. 대통령 아들의 범죄혐의를 수사하던 연방경찰청장이 해임되자, 사표를 던진 것이다.모루 전 장관에서 영감을 주었던 이탈리아의 사정작업,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를 주도한 검사들의 뒤끝도 좋지 않았다. 권력의 반격은 잔인했다. 권력에 기생한 언론들은 '나라 말아먹는다'는 식의 여론전을 펼쳤고, 검사들의 사생활을 털었다. 지친 검사들은 줄줄이 사표를 냈다. 마니 풀리테를 이끌며 국부 가리발디 이후 최고 영웅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는, 부패수사 때 특정세력을 봐준 혐의로 기소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물론 법원 판결은 무죄였다.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사정기관의 수사는 어렵다. '반드시 부패하는' 권력의 속성만큼이나, 인사권과 친위언론으로 무장한 권력 앞에 무력한 사정기관의 한계도 분명해서다. 강골 검사 윤석열 검찰총장이 손발이 다 잘린 채 직만 유지하는 '사정 현실'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여론은 두 번의 검찰 인사로 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의혹 수사는 물 건너간 것으로 체념하는 분위기였다.엊그제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이 윤미향 국회의원을 8개 중대범죄 혐의로 기소하자 많은 국민들이 '의외의 결과'에 놀라는 기색이다. 여당 지도부와 진보 여성 시민단체들이 감싼 위안부운동의 상징이자 현역 여당의원 윤 의원의 기소 자체가 '신선한 사건'처럼 보이는 분위기다. 성역없는 수사가 신선한 상황이 난감하다.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휴가 의혹을 8개월 넘게 손 놓고 있었던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이, 추 장관 아들과 보좌관 소환조사에 이어 국방부 압수수색까지 전광석화 같은 수사 행보를 보이고 있다. 동부지검이 간단한 사실관계 확인을 미루는 바람에, 추 장관 아들 사건은 정권을 위협할 지경으로 커졌다. 윤석열 고립으로 초췌해진 검찰 위상이, 서부지검 윤미향 사건 수사로 다소 회복됐다. 이제 동부지검 수사결과가 남았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9-15 윤인수

[참성단]'괴물 신인' 소형준

2006년 10월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의 정규리그 경기. 7회 말 한화의 류현진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 3이닝을 1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프로데뷔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류현진이 프로야구사상 신인 처음으로 200이닝-200탈삼진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역대 기록으로도 통산 10번째 대기록이다. 그해 18승 6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23을 기록한 류현진은 신인왕을 수상했다. 그의 나이 만 19세였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맹위를 떨치는 '몬스터(monster)' 류현진은 떡잎부터 달랐던 것이다.kt 위즈 신인 투수 소형준이 지난 주말 시즌 10승을 신고했다. 수원 홈에서 열린 한화전에 선발 등판해 6과 3분의 1이닝 6피안타 9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했다. 고졸 신인 선발 10승 투수는 류현진 이후 14년 만이다. 시즌 기록으로도 양현종(KIA)·임찬규(LG)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국내 투수 첫 두 자릿수 승수를 쌓았다.야구계는 그를 류현진과 닮았다고 극찬한다. 두 선수 모두 다양한 구종(球種)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포심과 체인지업, 커터, 슬라이더, 커브가 공통 구질이다. 류현진은 싱커를, 소형준은 투심을 던지는 게 조금 다르다.체격 조건도 쌍둥이에 가깝다. 류현진은 키 190㎝에 몸무게 90㎏, 소형준은 189㎝에 92㎏이다. 당돌한 배짱과 구종을 쉽게 익히는 천재성, 다양한 볼 배합으로 삼진을 빼앗는 노련함, 경기 운영 패턴까지 판박이라는 게 야구전문가들의 평가다.소형준이 맹활약하면서 kt 위즈가 가을 야구에 성큼 다가섰다. 14일 현재 58승 1무 46패로 4위 두산과 승차 없는 5위다. 3위 LG와는 단 1게임, 선두그룹 NC·키움과도 3게임 차에 불과하다. 투·타가 안정감을 더하면서 무서운 상승세를 타 선두권도 욕심낼만하다.대형 신인 소형준은 사실상 '신인왕'을 예약했다. 류현진의 뒤를 잇는 유망주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kt뿐 아니라 야구 팬 모두의 즐거움이다. 팬데믹으로 야구장에서 직접 볼 수 없는 게 아쉽다. 소형진이 등판할 포스트시즌의 필수 품목 '점퍼'는 내년에야 입을 것 같다. 14년 만의 10승 투수 탄생과 kt의 마법이 왜 하필 올해인지 원망스럽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09-14 홍정표

[참성단]공인(公人)의 과공(過恭)

2015년 7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미국 방문 중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용사들과, 알링턴 국립묘지의 월튼 워커 장군 묘비에 큰절을 올렸다. 김 대표는 한국전쟁 때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생존 미 참전용사와, 미군 사령관에 대해 한국식으로 극진한 예의를 표한 것이다. 야당과 진보인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의 진중권은 "세계 외교사에서 다시 보기 힘든 해괴한 장면"이라며 집권여당 대표의 과공(過恭)을 비판했다. 김무성을 향한 야당 비판의 핵심은 '대미 사대주의'였다.2년 뒤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방문이 문제가 됐다. 베이징대학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에 비유하면서 "중국몽이 아시아 모두,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란다"며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그 꿈에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야당이 발끈했다. 시진핑의 중국몽을 극찬한 중화 사대주의 외교라 폄하했다. 스스로 소국을 자처한 대목에 반발하는 여론이 작지 않았다. 여당 대표와 대통령의 대미, 대중외교가 '과공' 시비로 본질이 흐려진 장면들이다.일반 시민사회에서 지나친 공손, 과공이 문제되는 경우는 드물다. 처세로는 무례보다 과공이 백번 낫다. 하지만 공인의 과공은 종종 문제가 된다. 우선 국가, 국민, 시민에게 집단적 굴욕감을 줄 수 있다. 여당 대표와 대통령의 대미, 대중 외교가 '과공' 시비에 휘말린 이유다. '트럼프의 푸들'이라는 아베 같은 지도자는 우리 국민 정서에 안 맞는다. 공인의 과공은 직무의 불신을 초래할 수도 있다. 만일 국회의장이, 대법원장이 대통령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다면, 국민은 3권 분립의 적신호로 여길 것이다.지난 11일 문 대통령의 등을 향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90도 폴더인사가 화제가 됐다. 자신의 임명장을 들고 와 질병관리청 출범을 격려해준 대통령에 대한 예의였을 것이다. 지난 7월엔 국회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도 90도 폴더인사를 했더랬다. 대통령과 야당 원내대표에게 90도 인사를 하는 방역사령관의 모습이 '방역의 정치 종속'으로 비칠까 봐 걱정이다. 정 청장은 초대 독립 방역기관장으로서, 방역을 방해하는 정치적 간섭과 결정들을 거부하고 반대해야 할 입장이다. 정 청장의 90도 폴더인사가 방역 소신과는 상관없는, 그저 인품의 발로일 것으로 믿는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9-13 윤인수

[참성단]2차 재난지원금

인도네시아의 발리 섬 동쪽에 있는 탐보라(Tambora) 화산이 1815년 4월 폭발했다. 화산재 150억t이 분출됐다. 지진·태풍 등 지구 상 모든 천재지변을 넘어서는 최악의 재난이었다. 해발 4천m를 넘던 산의 윗부분이 날아가 2천851m로 낮아졌다. 그 섬에서만 1만여명이 사망했고, 병과 기아로 8만2천명이 더 희생됐다.북반구도 초토화됐다. 미국 북동부는 7·8월에 서리가 내렸다. 그해 겨울 옥수수 가격은 2배, 밀은 5배 이상 급등했다. 농부들은 가축의 먹이 풀과 곡물이 모자라 도살하거나 생선을 먹였다. 유럽 쪽 상황은 더 나빴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식량 폭동이 빈번했고, 약탈이 이어졌다. 아일랜드는 기근과 함께 장티푸스가 번져 2년간 5만명이 사망했다.조선 땅도 비켜가지 못했다. 순조 16년 시작된 대흉작은 7년간 이어져 아사자가 592만명에 달했다. 구휼미를 풀었으나 태부족이다. 함경·평안북도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인육을 먹었다고 한다.코로나 재앙으로 힘겨워하는 국민을 위해 정부가 2차 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하고, 7조8천억원 규모의 4차 추경예산안을 마련했다. 정부는 또 13세 이상에 통신비 2만원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9천300억원이 소요된다. 550여만명인 초등학생·유아를 둔 가정에는 자녀 1인당 20만원을 지급한다. 초등학생 한 명, 미취학 아동 한 명이면 40만원이다. 1조1천억원으로 추산된다.특수고용직과 프리랜서를 위한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에 2조원, 자영업자들에겐 3조원 규모의 지원이 이뤄진다. PC방 등 사회적 거리 두기로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는 최대 200만원을 지원받는다.경기도는 추석을 앞두고 지역 화폐 사용자에게 25%의 인센티브를 주는 지원책을 내놨다. 1천억원의 도비가 쓰이는 '경기도식 2차 재난지원금'이다.재난지원금을 두고 여·야가 다투고, 여권 내부가 분열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정부의 선별 지원과 통신비 지원에 비판적이다. 팬데믹이 그치지 않으면 또 지원금을 줘야 한다. 4월에 주고 10월에 줬으니 내년 상반기일 것이다. 씀씀이가 임계치를 지나면 불어나는 빚을 감당키 어렵다. 나라 곳간은 화수분이 아니다. 지원금은 넘치는데 국민들 걱정은 더 커지는 요즘이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09-10 홍정표

[참성단]코로나19 전국민 진단검사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자가진단키트 보급을 통해 코로나19 전국민 진단검사를 주장했다. 한 달에 4억 개인 자가진단키트 생산능력을 감안하면 "한두 달 안에 전국민에 대한 검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100개국 이상에 수출하는 자가진단키트를, 수출국인 우리나라 국민도 써야 한다는 논리였다.주 원내대표의 지적은 상당수 국민들이 갖는 의문을 반영한다. 많은 국민들이 전국민 진단으로 확진자를 가려내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한다. 전체 국민 중 확진자만 가려내 방역행정을 펼치면, 방역도 쉽고, 경제활동도 정상화할 수 있다면서다. 당연한 의문이다. 단 전제가 있다. 진단키트의 정확도가 100%여야 한다.포털사이트의 한 블로거(위니버스)가 이런 의문에 친절하게 답변해놓았다. 이 블로거에 따르면 진단키트의 성능은 민감도와 특이도로 결정된다. 민감도는 감염자를 양성으로 판정하는 확률을, 특이도는 비감염자를 음성으로 판정하는 확률을 말한다. 즉 민감도와 특이도가 99%인 진단키트라도, 감염자를 음성으로 판단하고, 비감염자를 양성으로 판단할 확률이 1%라는 얘기다. 인구 5천만명 중 2%가 감염자라는 가정하에 이 진단키트로 진단을 실시하면, 감염자 100만명 중 1만명이 음성판정을 받고, 비감염자 4천900만명 중 49만명이 양성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이렇게 되면 심각해진다. 가짜 양성자 49만명은 억울한 통제에 갇히고, 국가는 의료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음성 판정을 받는 1만명이다. 이들이 거리를 활보한다면, 그야말로 악몽이다. 현재 민감도와 특이도가 99%인 진단키트 자체가 없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진단키트 승인기준이 민감도 90%, 특이도 95%다. FDA 기준 진단키트로 전국민 진단검사를 하면 상황은 더욱 참혹해질 것이다. 특히 자가진단키트들의 정확도가 70~85% 정도라는 보도가 있었다. 방역현장에서 쓰는 PCR진단키트의 정확도에 한참 못미친다. 자가진단키트를 이용해 개인이 진단결과를 확신하고 행동하는 순간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주 원내대표의 제안을 비과학적이라며 일축한 이유다. 과학적 검증 없이 추상적인 '민심'을 대변하다간 망신 당하기 십상인 시절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9-09 윤인수

[참성단]초대 질병관리청장 '정은경'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한 19세기 대영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런던은 암울했다. 썩어버린 템스 강의 악취로 강변의 국회의사당은 창문을 열 수 없을 정도였다. 더 큰 문제는 해 마다 창궐하는 콜레라였다. 전염병의 원인을 나쁜 공기로 단정했던 의학계로선 대책이 없었다. 그런데 1854년 존 스노우라는 의사가 콜레라 발병자와 사망자들이 특정 지역 식수 펌프를 중심으로 집중된 사실을 발견한다.전염병 역학조사인 펌프 지도를 작성한 스노우는 최초의 방역행정가인 셈이다. 로베르트 코흐가 1883년 콜레라균을 발견했으니, 스노우는 병원균의 정체마저 모른 채, 오직 발병자 역학조사만으로 집단감염원을 차단한 것이다.어제 국무회의에서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질병관리본부를 독립기관인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시키고, 문재인 대통령은 초대 청장에 정은경 현 질병관리본부장을 내정했다. 질병관리청은 12일 공식 출범한다. 중앙보건원(1959년)-국립보건연구원(1966년)-국립보건원(1981년)을 거쳐 2003년 사스 발생을 계기로 2004년 질병관리본부로 확대됐지만 복지 부처 산하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 그러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독립해 방역행정사에 신기원을 열었다.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한창이니 질병관리청과 정은경 초대 청장의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현 정부는 전 세계에 K-방역의 우수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실제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당국자들이 지난 3월 질병관리본부를 방문해 우리나라 코로나19 대응 시스템을 벤치마킹했을 정도다. 하지만 대구 1차 대유행에 이어 현재 수도권 2차 대유행이 증명하듯 방역은 작은 틈만으로도 무너진다. 중국 공산당은 코로나19 종식을 공식 선언했지만, 공산당이라서 가능한 배짱으로 봐야 한다.정 본부장은 지난 6월 코로나19 집단감염과 대유행을 예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을 소비 전선에 내몰았다. 이제 정 청장 내정자는 독립기관의 장으로서 경고의 메시지를 확실하고 단호하게 밝혀야 하고,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은 질병관리청의 방역지휘에 따라야 한다.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목숨 걸고 전염병 발생 경로를 샅샅이 누빈 스노우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조사 결과가 런던 시민의 목숨을 구했다. 정치가 정 청장의 방역 신념을 존중하기 바란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9-08 윤인수

[참성단]바둑의 메카 한국기원

8~9살 무렵, 형들 어깨너머로 바둑을 배웠다. 단수(單手)를 '아다리'라 불렀다. 상대의 돌을 완전히 둘러싸기 바로 전 상태를 말한다. 일본말 아타리(アタリ)에서 비롯됐다. 상대가 '아다리'라 외치는 건 돌을 거두란 뜻이었다. '호구(虎口)'는 누구나 아는 바둑용어다.1954년 사단법인 한국기원이 발족했다. 한국 바둑의 총본산이다. 8 ·15광복과 더불어 바둑계의 재건을 위해 국수(國手) 수준의 고수들이 모여 만든 한성기원(漢城棋院)이 전신이다. 그 후 조선기원(朝鮮棋院)과 대한기원(大韓棋院)으로 변천했다.1968년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한국기원회관'이 건립됐다. 1970년 재단법인으로 바뀌었다. 1989년 월간 '바둑생활'을 창간, 바둑 보급 활동이 본격화됐다. 1년에 4명만 프로 초단이 된다. 1990년도부터 여류 입단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1994년 본원회관을 서울 성동구 홍익동으로 이전했다.한국 바둑의 메카인 한국기원이 2023년까지 의정부시로 이전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임채정 한국기원 대표, 안병용 의정부시장이 지난주 경기도청에서 '한국기원 이전 및 바둑 전용 경기장 건립 협약'을 체결했다. 부지는 의정부시 호원동 403번지 일원이다.1950~60년대 한국바둑은 조남철 시대였다. 현대바둑의 개척, 성장기다. 그는 6개 신문 기전의 1기 대회를 독점 우승했고, 국수전 9연패, 최고위전 7연패, 패왕전 4연패를 이뤘다. '영원한 국수' 김인 9단은 1960년대 중반 이후 10년간을 지배했다. 이어 70~80년대 조훈현에 이어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 신진서가 패자(覇者)의 계보를 잇는다.바둑의 기원은 중국 요순시대로 알려졌다. 5천년 가까운 역사다. 가로·세로 19줄, 반상의 수는 무궁무진하고 변화무쌍하다. 국제기전 판도는 한·중·일 3국이 패권을 다툰다. 70년대까지 일본이 우세했으나 이후 한국, 최근에는 중국이 앞서는 양상이다.수년 전 인공지능(AI)으로 무장한 '알파고'가 등장해 인간계를 평정했다. 이세돌 9단만 유일하게 1승을 거뒀다. 프로기사들 대국의 판세를 AI가 예측한다. 인간과의 격차는 더 커진다. 대국은 승자를 가리게 마련이다. 인공지능에 패한 프로기사들의 입지가 난처해졌다. 바둑에서도 인간이 밀려나고 있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09-07 홍정표

[참성단]'디지털 교도소'와 '법의 정의'

서부영화의 명작으로 꼽히는 '셰인'(Shane). 떠돌이 총잡이 셰인은 개척민 농가에서 하룻밤 신세 지는 바람에 악당의 무리와 맞선다. 개척민들의 땅을 빼앗으려는 목축업자와 그가 고용한 총잡이들을 한 자루 총으로 처리한 뒤, 부상당한 몸을 말에 싣고 쓸쓸하게 떠난다. 지금이라면 그는 떠나는 것으로 용서받을 수 없다. 살인죄로 기소돼 법정에서 죄의 유무를 가려야 한다.현대 문명사회에서 개인 및 단체가 사적으로 형벌을 가하는 사적제재(린치)는 금지된다. 개인이나 집단이 법을 초월해 형벌을 집행하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야만적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건맨과 협객이 악당들을 처단하는 서부영화와 무협영화의 정의는 픽션에 머물러야 한다.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몽둥이로 살해한 택시기사 박기서가 법의 심판을 받고, 아들을 폭행한 가해자를 사적으로 폭행한 한화 김승연 회장이 구속돼 법정에 선 이유다.지난 6월 개설된 웹사이트 '디지털 교도소'가 사적제재 논란에 올랐다. 디지털 교도소는 "대한민국의 악성 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하여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 한다"고 사이트 개설 목적을 밝혔다. 고 최숙현 선수가 지목한 가해자들과, 세계 최대 아동 성범죄 영상 유포자 손정우 등의 신상정보가 공개돼있다. 신상정보 기간은 30년이라니, 여기에 오르면 사실상 사회적 종신형을 받는 셈이다.그런데 최근 디지털 교도소가 지인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하는 '지인 능욕'을 사주한 혐의로 신상을 공개했던 고려대 학생 A씨가 결백을 주장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범죄사실을 부정하고 신상정보를 해킹당했다고 주장했다는데, 디지털 교도소는 그의 신상을 계속 공개했다고 한다.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디지털 교도소는 사회적 심판자가 아닌 가해자일 뿐이다. 경찰은 A씨 주장의 진위를 밝히고, 그와 상관없이 '디지털 교도소'에 대해 추적에 나서야 한다.디지털 교도소는 '법의 정의(正義)'가 의심받는 사회의 위기를 보여준다. 성범죄에 관대한 판결이 디지털 교도소에게 명분을 주었다. 법의 정의를 의심받아 정치·사회적 갈등으로 비화된 검찰 수사와 법원의 판결은 성범죄 분야뿐이 아니다. 또 다른 '디지털 교도소'의 출현이 걱정되는 시절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9-06 윤인수

[참성단]아베 총리의 리트윗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러시아의 야권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를 돕자고 의기투합했다. 지난주 프랑스 대통령의 여름 별장지인 지중해 연안 브레강송 요새에서 가진 정상회담 자리에서다. 두 정상은 나발니 측에 병원 치료나 망명, 보호조치 등 필요한 모든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다.나발니는 지난달 중순 여객기 안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로 갑자기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러시아 옴스크 병원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이송돼 현지 샤리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웃인 프랑스와 독일은 숙적이다. 침략과 약탈, 양민 학살의 흑역사가 반복됐다. 역대 정상 간 사이가 좋을 리 없다. 마크롱과 메르켈은 이런 통념을 깨고 밀월 중이다. 기자회견장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은 다정한 오누이 같았다.마크롱은 2018년 메르켈이 위기일 때 앞장서 도왔다. 총선 패배로 연정 구성에 실패해 낙마 위기에 몰린 메르켈을 지원 사격했다. 마크롱은 "메르켈 총리는 유럽에 대한 열망을 보여줬고, 사민당의 대표도 마찬가지다. 연정의 골격 역시 그렇다"며 사민당의 연정 참여를 촉구했다. 사민당은 연정에 참여키로 했고, 메르켈은 사지(死地)를 벗어났다.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지난달 말 사임 발표를 했다. 일본 헌정 사상 최장기간 집권 기록을 세웠다. 각국 정상들이 그의 업적을 치하했다. 아베는 트위터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상왕(上王)'으로서의 존재감을 국제사회에 과시하기 위한 행보라는 평가다.'친절한 아베 씨'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감사 인사를 받지 못했다. 문 대통령도 아베에게 트윗을 날리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시진핑 주석도 마찬가지다.문 대통령과 아베는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문 대통령은 취임 뒤 한 번도 일본을 국빈방문하지 않았다. 아베 역시 현 정부에서 대한민국을 공식방문한 적이 없다. 정상회담은 수차례 가졌으나 제3국이거나 G20 등 정상회의 기간 짬을 낸 이벤트 성격이었다.새 총리로 지명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취임해도 양상은 다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위안부 문제와 징용 배상 등 현안은 꼬여있고, 양국 국민감정도 나빠진 상황이다. 이웃이 가까우면 사촌보다 낫지만, 원수지간이면 역사가 불행해진다. 브레강송의 밀월은 너무 먼 나라의 동화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09-03 홍정표

[참성단]추미애 장관 아들의 '병가 논란'

한국 여성들이 손사래 치는 대화 주제가 군대와 축구다. 그러니 군대 가서 축구한 얘기라면 질색하는 게 당연하다. 공감할 수 없는 대화에 꼼짝없이 갇히는 일 만한 고역이 없어서다. 연애 초반 군대 가서 축구한 추억을 더듬는 남성은 퇴짜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한국 남성들이 여성들의 구박을 무릅쓰고 평생 군대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건, '군 복무' 경험이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다. 징병제로 강제되는 병역의무는 청년들에게 경력단절과 사회적 격리를 강요한다. 인생의 절정기에서 맞는 두려운 공백이다. 남성이면 피할 수 없는 숙명적 연대감이 아니면 감당하기 힘든 공백이다. 남성들이 군대에서 누가 누가 더 힘들었나 무용담 경연을 펼치는 건 '공백'을 채우기 위한 자기 보상심리의 발동일 것이다. '뻥'인 줄 알면서 '뻥'으로 받아치며 넘어가는 이유다.현역 복무기간이 짧아진 지금은 옛날 얘기가 됐지만, 386세대들은 현역 복무기간에 따라 신의 아들(병역면제자), 장군의 아들(6개월 방위), 사람의 아들(18개월 방위), 어둠의 자식(현역 복무)으로 스스로를 구분했더랬다. 국방의 의무는 신성한 부담이다. 병역의 형평성을 무너뜨린 '특혜자'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이유다.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 서모씨의 휴가미복귀 의혹 사건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1월 야당의 고발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8개월째 결과가 없는 가운데, 야당의원이 '추미애 의원' 보좌관의 병가연장 청탁 전화를 증언하는 녹취록을 공개하면서다. 1차 병가 후 복귀하지 않았다는 당직 사병의 기억만큼 중요한 증언이다. 서씨는 21개월 복무기간 중 19일을 병가로 썼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휴가 명령서가 없다"면서도 "행정상의 오류"라고 답했다.'휴가명령서 없는 휴가'라니. 군대를 다녀 온 대한민국 남성들은 이런 휴가는 없다는 걸 다 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 말대로 "병역 문제가 역린의 문제"인 이유는 서툰 변명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 절반이 남성이고, 이중 30대 이상은 거의 군 복무자였다. 추 장관 아들의 병가가 특혜인지 아닌지는 이미 여론 속에서 판가름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검찰수사가 더딜수록 여론은 민감해질 테고, 병영에선 서씨 수준의 병가 신청이 봇물을 이루고, 청와대엔 병가 상소문이 오를지 모른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9-02 윤인수

[참성단]'BTS', 역사를 쓰다

방탄소년단(BTS)이 세계 대중음악의 성지인 미국에서 마침내 역사를 썼다. 빌보드는 1일 BTS의 최신 영어 신곡 '다이너마이트'가 메인 싱글차트 '핫 100'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2018년 5월 7일 앨범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를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1위에 올린 지 2년여 만에, 가장 의미 있는 인기곡 순위에서도 정상을 차지한 것이다.BTS는 그동안 '빌보드 200' 1위 앨범을 4장이나 내놓았지만 아쉬움이 있었다. 앨범 차트 1위로 뮤지션의 음악적 역량은 과시했지만, 대중의 인기를 즉각 반영하는 싱글 차트에서는 비영어권 노래의 한계 때문에 정상 부근에서 번번이 좌절했다. 앨범 차트 1위에 올랐을 때, 국내에선 비틀스와 영국 뮤지션들의 미국 진출을 일컫는 '영국 침공(British Invasion)'에 빗대어, 'K-팝의 침공'이라 대서특필했지만 아쉬움이 남았던 이유다. 그런데 작심하고 내놓은 영어 신곡으로 '싱글 차트'마저 정복했으니, "역사를 썼다"는 이방카의 말대로 'K-팝의 침공'은 명실이 상부하게 됐다.2013년 데뷔 이후 7년 만에 이룬 BTS의 성취는 신화적이다. 미 경제지 포브스는 지난해 "BTS의 국내총생산 창출 효과가 46억5천만달러(약 5조5천억원)"라며 "7인의 BTS가 삼성 등 대기업들과 같은 경제리그에 참여하게 됐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BTS의 활약은 전공 분야를 초월한다. 2018년엔 유엔총회에서 청소년들의 꿈을 역설하는 연설로 감동을 주었다. 같은 해 일본 방송사들이 BTS 멤버 지민이 2년 전 착용한 광복절 티셔츠를 문제삼아 예정된 방송출연을 취소했다가, 전범국 일본의 과거를 조명하는 전세계 유력 언론의 보도에 시달리는 역풍을 맞기도 했다.BTS는 이제 K-팝의 상징을 넘어 세계 대중문화계의 리더로 떠올랐다. 국내외 팬클럽 아미(A.R.M.Y)의 저변은 엄청나다. BTS는 단지 곡을 쓰고 노래하는 뮤지션을 넘어 세계 청년문화의 뉴노멀이 됐고, K-팝은 현상이 아니라 장르가 됐다.BTS는 이 땅의 '붕어, 가재, 개구리'들도 용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준다. 고마운 일이다. 이제 가장 권위있는 그래미상 수상만 남았다. 빌보드도 그래미상 후보로 전망한다니, 또 한번의 낭보를 고대한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9-01 윤인수

[참성단]심야영업 제한

해방 뒤 시작된 야간통행금지는 1982년 초까지 이어졌다. 통금 시간대는 세상이 조용했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집 밖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후 11시부터 12시 사이, 서울은 귀가 전쟁이 극심했다. 부처님 오신 날과 성탄 이브, 12월 31일은 예외였다. 이런 날, 명동·종로통은 자유를 찾아 나선 청춘들로 들끓었다.밤 12시 사이렌이 울린 뒤 거리에 남은 시민은 경찰서에 구금됐다, 오전 4시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학원도 교습 시간을 줄여 야간 통금에 맞추었다. 당시 김포공항에 착륙하지 못한 국제선 비행기는 일본이나 홍콩, 타이완 등지로 회항해야 했다. 먼 옛날 얘기가 아니다.통금을 해제한 건 전두환 군사정부 초기 시절이다. 안보와 사회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한 조치를 군사정부가 끊어냈다. 대민(對民) 유화책이다. 국민 생활은 확 달라졌다. 술집과 식당의 심야 영업이 일반화됐다. 젊은이들은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의 밤을 보냈다.1990년, 노태우 정부는 유흥업소의 영업을 자정까지 제한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다. 시간 제한이 없는 길거리 포장마차가 애주가들의 발길을 잡았다. 노래방에서 문을 잠그고 망을 보면서 영업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탈·불법의 온상이 된 심야영업 제한은 95년 자율화됐고, 99년 폐기됐다.수도권에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시행되면서 음식점 영업이 밤 9시까지 제한됐다. 다음날 오전 5시까지는 포장·배달만 가능하다. 배달주점, 호프집, 치킨집, 분식점, 패스트푸드점, 빵집 등이 같은 지침을 적용받는다. 헬스장, 골프연습장, 당구장, 볼링장, 수영장, 무도장, 탁구장 등 실내 체육시설은 죄다 문을 닫았다.자영업자들의 한숨이 커진다. 빵집은 되고 카페는 안되는 이유가 뭐냐는 불만도 있다. 힘들다 보니 짜증이 나고, 불만이 폭발하면서 엉뚱한 사고가 잇따른다. 마스크 때문에 지하철에서 난투극이 벌어지는 '웃픈' 나라가 됐다.'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세상이다. 범죄와의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9시 영업제한'은 낯설고 어색하다. 90년대, 영업시간이 지난 술집에서 '단속 나오라 해'라고 호기를 부렸다. 헛웃음 짓게 만드는 젊은 날의 추억이다. 인간사(人間事) 잠깐일 뿐이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08-31 홍정표

[참성단]시무7조 신드롬

지난 달 한 국내 신문이 다이쉬(戴旭) 중국 국방대학 전략연구소 교수의 강연, '중국이 미국에 대해 생각 못한 네 가지와 10대 새로운 인식'을 소개했다. 미국의 경제패권을 넘보는 중국을 향한 트럼프의 경제보복이 상상을 초월하자, 중국의 대미(對美)인식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했는데 우리 입장에서도 경청할 만하다는 취지였다.비판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원한이 이렇게 깊고, (보복) 수법이 이처럼 악독할 줄 몰랐는데, 중국을 지지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고, 미국의 중국 때리기에 여야가 하나가 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오판했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을 새롭게 볼 10대 인식을 제안하는데 그 중 세 가지를 연결하니 '미국은 종이 호랑이가 아니라 사람 잡아먹는 진짜 호랑이라는 점을 깨닫고', '세계의 큰 형님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미국과 끝까지 붙어보겠다고 순진하게 생각해선 안된다'이다. 트럼프의 강공에 허둥지둥 하는 중국 지도부를 향한 '대미정책 시무 10조'쯤으로 볼 수 있다.지난주 '진인(塵人) 조은산'이 폐하(문재인 대통령)께 바친 '시무7조'가 시중의 화제였다. 정권을 향한 비판과 조언이 직설과 은유, 풍자와 해학으로 버무려져 술술 읽힌다. 정권은 뼈아팠겠지만, 대중들은 앞다퉈 돌려 읽으며 열광했다. 청와대는 27일 뒤늦게 청원 게시판에 공개했는데, 나흘만인 30일 오후 청원동참자가 40만 명에 육박한다.야당은 '폐하의 답변'을 궁금해 하지만, 여당의 입은 셧다운을 유지 중이다. 여당은 시무7조에 대해 언급하고 대응할수록, 진인 말씀의 영향력과 파장만 키울 것을 우려하는 모양이다. 무시하고 외면하면 먼지(塵)는 가라앉고 '조은산'이라는 사람(人)은 잊힐 것이다. 시무7조에 대한 폐하의 하교(下敎)는 당금 정치의 수준을 보여주는 가늠자일테지만, 하교가 내려올지 확신하기 힘들다.'시무(時務) 상소'는 왕이 반응해야 의미 있다. 그러려면 진지해야 하고 권력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 다이쉬의 강연이 의미 있었던 건, 중국 군부내 대표적인 매파이자 주목받는 공산당 권력자인 그의 지위 때문이다. 공산당 내부 자아비판이자 대안이라서 권위가 섰다. 만일 여권 내부에서 대통령을 향해 웃음기 싹 뺀 시국건의문이 나온다면 어떨까. 적어도 '진인 조은산의 상소문'은 먼지처럼 흩어질 듯 싶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8-30 윤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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