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책 구매 인증 시위

이달 초 느닷없이 '김지은입니다'가 온라인 서점 알라딘 종합 인기도서 1위, 교보문고 일간 베스트 정치·사회 분야에 1위를 차지했다. 이 책은 안희정 전 충남 지사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가 성폭력 피해를 세상에 알리고 대법원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까지 장장 544일간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출간한 지 4개월이 지나서야 뒤늦게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누구도 예상 못 한 일이었다.이유가 있었다. 지난 5~6일 치러진 안 전 지사의 모친상에 문재인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고 이낙연 등 유력 정치인들이 조문한 것에 대한 2030 여성들의 분노가 김 씨의 책 구매로 이어진 것이다. 일종의 시위였던 셈이다. 성폭력 가해자에게 살아 있는 '권력'이 거리낌 없이 조화를 보내거나 앞다퉈 상가에 집결하면서 피해자인 김씨가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할지 모른다는 우려에 2030 여성들이 격려 차원에서 '행동'에 돌입한 것이다. 구매자의 대부분이 30대 여성(33.9%)과 20대 여성(24%)이었다. 이들은 트위터 등 SNS에 해시태그 '#김지은입니다'를 달고 책 구매를 인증하는 게시물을 올리며 책 구매를 독려했다. 최근 이런 구매 인증 시위가 또 일어났다. 이번에는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다. 이 책은 공교롭게도 성추행으로 고소당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 이후 피해자를 향해 쏟아지는 2차 가해가 소설의 내용과 유사하다는 얘기가 퍼지며 온라인 서점 예스24 종합 순위 34위로 오르는 등 매출이 크게 늘었다. 이번 역시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 여성과 연대(連帶)하려는 2030 여성들이 이 책으로 구매 인증시위를 펼치는 까닭이다. 이들은 성희롱을 당했던 기억을 공유하고, '#박원순_시장을_고발한_피해자와_연대합니다'라는 해시태그를 한 사람에게 책을 무료로 보내주기도 한다. 도서관에 이 책을 희망도서로 신청하는 경우도 꽤 있다.소설 속의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가해였다"는 문장은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구며 2030 여성들을 한데로 묶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책 구매 인증시위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호의적이다. 이제 '촛불'을 들어야만 저항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책을 구매해 읽으며 응원한다"는 책 구매 인증 시위가 바야흐로 신세대들의 새로운 저항 수단으로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이영재 주필

2020-07-14 이영재

[참성단]수난받는 존 웨인

80이 넘은 '올드팬'들은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가 풍긴 물씬한 '사내 냄새'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평원을 질주하는 마차. 험산 준령을 넘나드는 말 탄 사나이. 그들의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진한 땀방울. 백인 우월주의가 밑바닥에 짙게 깔렸었지만, 그걸 따질 겨를 없이 서부영화의 황금시대는 배우와 관객이 서로 뒤엉키며 그렇게 지나갔다.서부영화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마을을 지키는 보안관과 떠돌이 총잡이와 시시껄렁한 악당들이 등장하는 서부영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선한 눈매를 갖고 있을뿐더러 대체로 말이 없다. 왜 그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도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지독한 악당이 선량한 마을 사람과 힘없는 농장주를 못살게 굴 때 비로소 총을 잡는다. 총구에 불이 번쩍하면, 악당들은 속절없이 쓰러지고 만다. 권선징악은 물론, 악당은 지옥으로다. 무지렁이인 줄만 알았던 그는 가벼운 미소만 남긴 채 홀연히 떠난다. 홀로된 농장 여주인의 애틋한 눈빛도 외면한 채.인디언과 제7 기병대가 등장하는 서부영화는 상황이 좀 다르다. 총을 쏘고 괴성을 질러대며 달려드는 인디언들. 위기의 순간이면 트럼펫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기병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인디언들. 그때는 몰랐다. 미국의 역사를 뒤집으면 인디언 멸망사가 된다는 걸. 이런 부류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배우는 단연 존 웨인이었다. 195㎝에 몸무게 102㎏의 건장한 체격, 그야말로 '남성성의 상징'이었다. 서부극의 단역이나 조연에 불과했던 그가 스타 반열에 오른 건 불세출의 감독 존 포드를 만나면서였다. 1939년 '역마차'에 출연하면서 만인의 스타가 됐다.사후 40여년이 지나 기병대장 존 웨인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생전의 인터뷰, "나는 흑인들이 교육을 받아 책임감을 가지게 될 때까지는 백인들이 여전히 우월하다고 믿는다. 무책임한 사람들에게 리더십과 판단력이 필요한 지위와 권위를 주다니, 그건 안될 말이다"는 빙산의 일각이다. 그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오렌지카운티 존 웨인 공항의 이름 변경과 동상 철거에 이어 명문 LA USC 영화 대학원 내에 있는 그의 동상마저 곧 철거된다고 한다. 조지 루카스가 졸업한 미국 최고의 영화학과에 있던 동상이라 상징하는 바는 크다. "그때는 그런 시대였어"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 세상이다. /이영재 주필

2020-07-13 이영재

[참성단]사라진 老兵

6·25 전쟁의 최대 격전지로는 1950년 8월1일부터 9월24일까지 55일간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와 학산리 일대에서 벌어진 다부동 전투를 꼽는다. 우리 군과 미군의 첫 연합작전이라 그 의미는 크다. 광복절을 부산에서 치르겠다는 김일성의 호언에 인민군의 공세는 격렬했고, 패배하면 전쟁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여서 우리 군 역시 방어에 사활을 걸었다. 그날 우리가 졌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그때 그 전투의 지휘관은 백선엽 1사단장이 있었다. 극도로 사기가 저하된 사병에게 백 사단장의 그 유명한 말 한마디, "내가 등을 돌리면 나를 쏘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고지로 뛰어오르자 병사의 사기가 높아졌다. 그의 그런 호기로움에 미군의 막강 화력까지 더해져 마침내 승기를 잡았다. 당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던지 우리 군 2천300명, 미군 1천200명, 인민군 5천700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히자 백 장군의 1사단은 가장 먼저 평양에 입성하는 부대가 됐다. 백 장군은 1952년 32세로 최연소 육군참모총장이 됐고 이듬해 대한민국군 최초의 4성 장군에 올랐다. 정전 회담 때는 한국군 대표로 참가했다. 백 장군은 1959년 합참의장을 지낸 뒤 1960년 5월 31일 예편했다. 그 후 프랑스, 캐나다대사와 교통부 장관을 두루 거쳤지만, 일체의 정치 활동은 하지 않았다. 다부동 전투의 영웅이자 창군 원로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지난 10일 별세했다. 향년 100세.백 장군은 '한미동맹의 상징'이다. 우리보다 미군들로부터 더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지난해 11월 99세 백수(白壽 )기념 잔치도 미 8군이 준비했다. 그날 백 장군 앞에서 무릎을 꿇어 예의를 다한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의 모습은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부음을 접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진심으로 그리워질 영웅이자 국가의 보물"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그러나 정작 우리 정부의 백 장군에 예우는 너무도 인색하다. 백 장군이 친일 전력이 있다는 일부 정치권의 극렬한 반대에 서울 현충원 대신 대전 현충원 장군 2 묘역에 안장된다. 더불어 민주당에선 백 장군의 죽음에 그 어떤 성명서도 내놓지 않았다. 국론은 또 반으로 갈라졌다. 그럼에도 죽지 않고 사라진 노병은 하늘에서도 우리 조국을 지켜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영재 주필

2020-07-12 이영재

[참성단]버블(bubble)

아름다운 꽃이 그렇게 많은데 그들은 유독 터키에서 들어 온 '튤립'에 푹 빠졌다. 처음 본, 단아하고 명징한 꽃잎에 모두 넋을 잃었다. 빚어낸 조각인가 했는데 만져보니 살아있었다. 때는 1610년대 초반, 네덜란드에 '튤립 광풍'이 불었다. 노랑, 빨강 등 단색의 꽃잎보다 다채로운 색상이 어우러지거나 줄이 가 있는 변종에 더 값이 치러졌다. 꽃값은 순식간에 천정부지로 뛰었다.처음엔 튤립 구입은 귀족들의 호사한 취미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시민, 농민 등으로 확산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산업의 호황과 동인도회사로 유럽에서 가장 풍요로운 삶을 영위했다. 모두 주머니에 돈이 넘쳐났다. 누구나 튤립 한 송이 정도는 살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냥 꽃을 사고파는 정도였으니까. 소동은 이듬해 수확하는 튤립 뿌리 선물거래에서 발생했다. 현물시장에서 튤립 값이 급등하는 걸 체험한 사람들이 튤립 뿌리를 사려고 선물거래에 몰렸다. 조금 희귀하다 싶은 튤립 뿌리 하나가 '새 마차 한 대. 말 두필'과 교환됐다. "희귀종만 손에 쥘 수 있다면 가게를 넘기겠다"는 자영업자들도 부지기수였다. 누가 봐도 '버블(bubble)'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꽃이 피기 전까지는 어떤 색깔의 꽃이 필지 알 수 없었는데도 너도나도 뿌리 사재기 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튤립 광풍은 1637년 2월 한순간에 거품이 꺼졌다. 가격은 100분의 1로 폭락했다. 눈물과 탄식이 네덜란드를 뒤덮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파산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튤립 파동은 거대한 '버블경제'를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일확천금을 노리며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이들의 심리상태를 가리켜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도취적 열병'이라고 지칭했다. 주식시장이 뜨겁다. 특히 제약 바이오 등 일부 종목은 마치 2000년 초반 IT 광풍을 연상케 한다.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해 최근 상장된 SK 바이오팜의 연속 상한가는 실적이 아닌 기대심리에 따른 것이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불안감과 신약 개발의 기대감이 맞물리며 거대한 버블을 형성한 느낌이다. 물론 시장에 풀린 막대한 자금도 한 몫 하고 있다. 곧 공매도가 풀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튤립 파동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조심 또 조심할 때다. /이영재 주필

2020-07-09 이영재

[참성단]문제는 치마 보다 단추다

옷을 입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통 남자 옷에는 단추가 오른쪽에, 여자 옷에는 왼쪽에 달려 있다. 남자 여자 불문하고 오른손잡이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왜 단추의 위치는 다른 것일까. 사실 단추의 위치가 다른 이유를 알 수 있는 명확한 기록은 없다. 대신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씨는 '옷장 속 인문학'이란 책을 통해 몇 가지 설을 제시한다. 우선 여성들의 모유 수유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아기를 안은 모습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기를 안을 때 왼팔로 아기의 머리를 받치고 오른팔로는 아기를 감싸 안는다. 이런 자세에서는 왼쪽에 단추를 다는 것이 아기에게 젖을 주는 데 유리(?)하다. 이처럼 모성애가 느껴지는 첫 번째 설과 달리 두 번째 설은 다분히 남성적이다. 중세 기사들의 결투에서 기원을 찾기 때문이다. 기사들은 주로 칼을 왼쪽에 차고 다녔는데, 칼을 뽑기 위해서는 칼을 덮은 웃옷 단추부터 풀어야 했다. 오른손으로 칼을 뽑고 왼손으로는 단추를 재빨리 풀기 위해 단추를 오른쪽에 달았다는 설이다.두 가지 설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유력한 설은 따로 있다. 중세시대에는 남자를 자립적인 존재로 보고 스스로 옷을 입고 단추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오른손잡이가 대부분인 것을 감안해 단추를 오른쪽에 달았다. 반면 여자는 하녀의 도움을 받아 옷을 입었기 때문에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로 보고 단추를 왼쪽에 달았다는 것이다. 남성우월주의에서 비롯된 '위치 선정'이라 할 수 있다. 경찰청이 여경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포순이'를 치마 대신 바지를 입은 모습으로 바꾸기로 했다. 기존의 포순이가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적 편견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게 캐릭터 변경 이유인데 '지지'보다는 '비난'여론이 압도적이다. 인터넷에 "화장실 남녀 구분 표지판도 바꿔라" 등 조롱성 댓글이 잇따르더니 여경의 자질을 둘러싼 젠더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스코틀랜드의 킬트(Kilt)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국가의 사롱(sarong)처럼 남자들이 치마 형태의 옷을 입는 모습은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치마를 바지로 바꾸는 것이 경찰청의 의도대로 성차별적 편견을 없애는 데 얼마나 기여할지 궁금하다. 차라리 경찰청이 "남성우월주의의 잔재인 단추의 위치를 여경 유니폼에서부터 바꾸겠다"고 선언했다면 어땠을까. /임성훈 논설위원

2020-07-08 임성훈

[참성단]슬픈 홍콩

그때 홍콩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화려한 야경과 물질적인 풍요, 영연방 국가로 그들이 누리고 있는 정치적 자유. 전쟁 직후인 1954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로 시작되는 금사향의 노래 '홍콩 아가씨'의 유행도 이런 정서와 무관하지 않았다. 60, 70년대 홍콩 영화는 또 어떤가. 홍콩 영화를 보기 위해 꾸역꾸역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왕유의 외팔이 시리즈와 쿵후 영화를 하도 많이 봐 제작사 '골든 하베스트'로고를 외울 정도였다.우리만이 아니다. 홍콩은 중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경제적 상황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중국에선 찾을 수 없는 '자유' '개방' '중립'이 홍콩에는 있었다. 많은 젊은이가 '홍콩 드림'을 꿈꾸며 모여들었다. '중국 청년 소군(리밍)도 그때 홍콩으로 들어와 맥도날드 가게 종업원 이요(장만옥)를 만난다. 모두 홍콩 드림의 주인공들이다. 사랑은 쉽게 이뤄지지 않고, 이별과 재회만 계속한다. 마침내 엇갈린 운명으로 각자의 길을 가는 두 사람…' 1997년 타임 지 선정 세계 10대 영화에 오른 첸커신( 陳可辛) 감독의 슬픈 영화 '첨밀밀(甛蜜蜜)'은 '홍콩 드림'이 그대로 녹아든 영화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들이 홍콩 반환을 앞두고 뉴욕으로 떠났듯, 별들의 도시 홍콩은 1997년 7월 1일 중국 반환 이후, 점점 과거의 명성을 잃기 시작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사회적 분위기가 변화무쌍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행정·입법·사법의 자치권을 홍콩에 주며 '항인치항(港人治港: 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을 말했지만, 그럴수록 중국 정부를 믿을 수 없었다. 정치적 자유도, 경제적 풍요도 모두 잃을 거란 두려움이 홍콩인을 늘 따라다녔다. 홍콩인들은 하나둘 미국이나 캐나다 또는 본토로 넘어가기 시작했다.지난 7월 1일 보안법 시행으로 홍콩이 대 전환의 길을 맞고 있다. 많은 이들이 체포되고 체재 비판 서적들은 판매금지 됐다. 미국의 홍콩 특별지위 박탈까지 더해지면서 글로벌기업과 금융자본이 동요하는 등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벌어진 '홍콩 탈출' 이른바 '헥시트(HK+exit)'가 재현될 조짐을 보인다. 이미 이민 상담과 해외 부동산 매입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홍콩의 밤에 더는 별들이 소곤 되지 않는다. '첨밀밀'처럼, 그저 슬픈 홍콩인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을 뿐이다. /이영재 주필

2020-07-07 이영재

[경인칼럼]광명·시흥 '눈물의 10년'

MB정부때 지정한 매머드급 보금자리지구변죽만 울리다 지정 철회후 특별관리 번복주민만 골탕… 6·17 부동산 대책 낙제점속정부 추가대책엔 '새공공택지에 포함' 마땅'6·17 부동산 대책'은 낙제점을 받았다.서울과 수도권은 상승세가 여전하고, 전세는 매물을 감췄다. 국민들 마음은 탈탈 털렸다. '내 집 마련의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불만이 폭발했다. 30·40대도 등을 돌렸다. 여권의 든든한 지원군이 변심한 것이다. 민심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청와대는 사과했고, 여당 대표가 두 차례 고개를 숙였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21차례나 대책을 내놨는데 약발은 없었다고 비판한다. 국토부는 단편 빼면 종편은 4번뿐이라고 부득부득 우긴다. 효과 검증이 실없는 차수 논쟁으로 번졌다.역대 정부의 '부동산 때려잡기'는 두 갈래다. 중과세와 규제 강화가 한 묶음인 수요 억제책과 공급 확대 방안이다. 조세와 규제는 상황에 따라 조였다 풀었다 해도 뒤탈은 별 게 아니다. 반면 공급의 변환은 후유증이 심각하다. 보상이 따르는 공공 개발은 덤이 분명하나, 바뀐 정부가 변죽을 울리거나 늘어지면 재앙(災殃)이 된다. 광명·시흥이 그렇다.이명박 정부는 2010년 광명시와 시흥시 일원 17.4㎢를 묶어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정했다. 함께 지정된 4개 지구와는 비교 불가한 매머드 체급이다. 분당신도시(19.6㎢) 버금가는 면적에 사업비가 23조9천억원(2010년 기준)이다. 국토부 행동대장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시행자로 낙점됐다. 주민들은 들떴고, 지역은 요동쳤다. 장밋빛 전망이 나돌았고, 조용하던 마을이 북적였다.요란 법석은 오래가지 않았다. 스텝이 꼬였고, 나가야 할 진도는 제자리였다. 거래는 묶였고, 토지와 건물 보상은 기약이 없다. 정권이 바뀌면서 '보금자리가 애물단지 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꿈은 악몽이 됐다. 불안과 불만이 폭발 지경이었다. 보상을 염두에 두고 돈을 끌어다 쓴 주민은 피눈물을 흘렸다. 정부는 4년이 지난 2014년 지구 지정을 철회했다. 재원이 부족하고 사업성이 나빠졌다고 발뺌했다. 수도권에 새 정부 신상인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이 유행할 즈음이었다. 전(前) 정부 상품을 용도폐기한 거다.지구 해제 뒤 광명·시흥지구는 2015년 특별관리지역으로 다시 묶였다. 10년이 지나면 효력을 잃게 되나, 그 사이 환지방식으로 도시개발사업이 가능하다. 이번에도 LH는 딴청이었다.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개발'을 제시했다. '주민 스스로'는 역부족이다. 또 5년이 지났다. 주민들은 공동대책위를 만들었다. 14개 마을별로 각개 전투를 하거나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출발이 앞선 동네는 진척이 빠르다. 정비사업 계획안을 내놨다.광명시와 경기도, 국토부는 엇박자 행보다. 시는 개별 사업이 난개발을 초래한다며 난색이다. 주민들이 어깨동무해야 빨리 갈 수 있다고 설득한다. 도는 어정쩡하다. 결정권한이 없다며 선을 긋는다. 관리계획 변경 권한을 쥔 국토부 눈치를 본다. 중앙정부는 팔짱을 풀지 않는다. 지자체가 알아서 추진하라는 거다. 주민 주도로 개발사업이 가능하도록 약속했기에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한다. 주민들만 죽을 맛이다.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은 국정의 최대 현안'이라고 했다. 관련 부처에는 보완책을 주문했다. 징벌적 조세와 공급 확대에 방점을 찍었다.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부는 새 대책을 서두른다. 7월 중 국회 통과가 타임 라인이다. 다주택자·임대법인의 등록세와 보유세 양도세 중과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재건축·재개발 활성화와 함께 수도권 4기 신도시가 거론된다.광명·시흥지구는 후보지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사통팔달 교통 인프라에 서울 구로와 마주해 접근성이 뛰어나다. 길 하나 건너면 서울이고 강남이다. 강남 대체재에 목마른 무주택자들을 유인할 수 있다. 고양 하남은 경쟁이 되지 않는다. 지역을 쪼개도 분당 절반의 주거물량이 확보된다. 지친 주민과 지역이 막아설 이유가 없을 것이다.정부의 22차 부동산 대책안이 조만간 공개된다. 새 공공택지는 광명·시흥이어야 마땅하다. 이만한 입지와 조건이 없다. 주민들의 '10년 눈물'을 그치게 할 처방이다. 일석이조다./홍정표 논설위원홍정표 논설위원

2020-07-07 홍정표

[참성단]명맥 끊긴 '부천 도당굿'

굿의 사전적 정의는 '민속 무속의 종교 제의'이다. 무당이 음식을 차려 놓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귀신에게 인간의 길흉화복을 조절해 달라고 비는 의식이다. 주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한다. 지역마다 명칭을 달리 부른다. 황해도는 내림굿, 전라도는 씻김굿, 제주도는 심방굿이라 한다.경기도에서는 '도당굿'이라 불린다. 도당(都堂)이란 당을 높여서 부르는 말로 으뜸이 되는 곳을 상징하기 때문에 마을에서 최고의 신격이 거처하는 곳이다.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관장하는 으뜸의 신당이라는 의미다.열화당 출판사가 펴낸 '경기도 도당굿'이란 책에는 부천시 중동 장말(장 마을)의 '장말 도당굿'을 화보로 생생하게 전한다. 굿이 열린 때는 1982년 12월 8일과 9일이다. 먼저 윗당으로 신을 모시러 가기 전에 아랫당에서 몸을 떨면서 춤을 추고 있는 도당할아버지의 모습을 소개한다. 할아버지가 걸친 두루마기는 몇 세대를 이어 전해지면서 낡을 대로 낡았다. 이어 도당할아버지가 앞장서고 그 뒤를 잽이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따라간다. 마을 사람들은 젯상과 음식을 들고 그 뒤를 따른다. 윗당에 도착해 젯상을 차리고 삼현육각을 올리며 절을 한다. 윗당은 커다란 바위와 당나무로 이뤄져 있다. 굿이 끝나면 동네 청년들은 마을의 동서남북 네 군데 세워진 장승과 우물을 돌며 돌돌이를 하러 간다. 말미에는 마을의 아낙네들이 당집 안으로 들어와 합장 재배하며 다음 굿할 때까지의 복을 빈다.도당굿 대표 주자인 부천의 '장말 도당굿'이 사라질 위기다. 1990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3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덕수 장씨들의 집성촌인 장말에서 이어진 마을 공동체 축제의 장이다. 중동 신도시가 들어선 이후 민원(民怨)이 됐다고 한다. 주민들은 혐오시설인 굿당 자리에 주차장을 만들어 달라고 조른다. 굿 보유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후계자도 마땅치 않다는 소식이다.수원의 '영동 거북산당 도당굿'과 '평동 벌말 도당굿'은 이름만 남았을 뿐이다. 도당굿을 하면 굶어 죽는다는 생각에 아무도 전승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생계가 되지 않으니 문화도 전통도 살아남지 못한다. 소중한 정신의 줏대가 편견과 개발에 밀려 사라져 간다. 한국인의 정체성도 덩달아 희미해진다. 마을의 안녕은 누가 빌어주나. /홍정표 논설위원

2020-07-06 홍정표

[참성단]'강남 사랑'

지금은 유명무실하지만, 과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한 후보자들이 꽤 많았다. 2002년 장상 국무총리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강남 위장전입이 문제가 된 인사청문회 첫 낙마자였다. 당시 의원들의 추궁에 장 후보자는 "재산문제는 모두 시어머니가 맡아 했기 때문에 나는 몰랐다"고 해 혼쭐이 났다. 2008년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서초동 오피스텔 투기가 불거지자 "유방암 검사에서 정상이 나오자 남편이 기념으로 사준 것"이라고 답했다가 서민들의 공분을 샀다. 이 후보자는 어렵사리 청문회를 통과했지만, 부동산 과다보유와 투기 의혹이 계속되자 자진사퇴해 헌정사상 최초로 정부 출범 전 국무위원 내정자가 사퇴하는 기록을 남겼다.고위관료 정치인들의 '강남사랑'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1980년 서울시의 고교 배정 기준이 출신 학교에서 거주지 학교로 바뀌면서다. 이때부터 명문고가 많이 모인 강남·서초·강동·송파구 등 이른바 '8학군'에 주소를 옮기거나 아예 학교 주변에 집을 사는 이들이 속출했다. 얼마나 극성이던지 주소지만 옮긴 학생이 35%를 차지하는 학교도 있었다. 직업군을 살펴보면 기업의 고위임원과 고위공직자, 정치인의 자녀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맹모삼천'을 핑계로 도덕성을 상실한 채 강남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문재인 정부는 수많은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 투기과열지구를 지정하고, 대출 규제도 강화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규제만 내세우고 알맹이가 없자 2018년부터 갑자기 '똘똘한 한 채' 보유 심리가 퍼졌다. 특히 지난해 12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의 다주택자들에게 "집 한 채만 남겨두고 모두 팔라"고 한 것이 오히려 '똘똘한 한 채' 갖기에 불을 지펴 강남 집값을 더 끌어 올렸다는 게 중론이다.최근 서초구 반포동과 청주시에 아파트 2채를 갖고 있던 노 비서실장이 반포아파트를 팔겠다고 했다가 50분 만에 청주 아파트를 팔겠다고 해서 모양새가 영 우스워졌다. '강남사랑'을 자인하며 강남의 '똘똘한 한 채'를 고수한 그의 고뇌 어린 결단에 고향 청주 시민은 물론, 국민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율배반적인 노 실장의 경질을 요구하는 여론도 들끓고 있다. 강남 아파트 한 채를 고수하기 위해 3선 의원까지 만들어 준 지역구민을 외면한 한 정치인의 뜨거운 '강남사랑'에 그저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영재 주필

2020-07-05 이영재

[참성단]동학 개미와 주식 양도세

세금을 얘기할 때 늘 등장하는 두 가지의 예화가 있다. 하나는 프랑스 루이 14세 때 재무담당 콜베르의 '증세기술론'이고, 또 하나는 제정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치하의 그 유명한 '이득발안자(利得發案者)'이다. 소리소문없이 세금을 거둬들이는 기술, 이른바 '거위 깃털 뽑기'로 유명한 콜베르는 "과세의 기술은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도록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박근혜정부 시절, 담뱃값 인상에 이어 주민세·자동차세 인상안이 발표되자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거위 깃털 뽑기'라고 칭해 크게 회자되기도 했다.'이득발안자'는 정부가 세금을 거둬들이는 데 도움이 되도록 새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사람들이다. 요즘으로 치면 조세정책을 입안하는 관리쯤 될 것이다. 자신이 내놓은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정부로부터 큰 상금을 받거나 공무원으로 특채됐다. 표트르 대제 때 쿨바토프라는 농민의 '인지세' 아이디어가 채택되어 그는 일약 중앙정부의 공무원이 됐다. 이를 계기로 기상천외한 세금 안이 공모 됐다. 모자를 쓰는 데도, 빨래를 하는 데도 세금을 부과하고 심지어 수염을 기르는 데도 세금을 부과하자는 안이 쏟아지면서 '모자세' '세탁세' '수염세'가 생겼다.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른 전제군주 치하니까 가능한 얘기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목들이다. 하긴 멀리 갈 것도 없다. 조선 후기는 전정· 군정· 환정 등 이른바 '삼정(三政) 문란'이 극에 달했다. 빈 땅에 세금을 매기는 백지징세(白地徵稅), 어린이와 죽은 사람을 군적에 올려 병역세를 부과한 황구첨정(黃口簽丁)과 백골징포(白骨徵布)는 19세기 크고 작은 농민항쟁의 주요한 원인이 됐다.정부가 전면 폐지키로 했던 증권거래세는 찔끔 인하하고, 2023년부터 2천만 원 이상 주식 양도 차익에 대해 양도세 20%를 부과키로 하자 '동학 개미'들이 잔뜩 화가 났다. 거래세에 양도세까지 '이중과세'라며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매년 4조~5조원의 증권거래세는 정부 입장에선 포기하기가 쉽지 않은 액수다. 그래도 국민에게 한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동학 개미들이 이룩한 증시 호황에 정부가 숟가락을 슬쩍 얹었다는 비난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과중한 세금을 내는 국민은 씩씩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세금은 국민을 허약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정부는 간과해선 안 된다. /이영재 주필

2020-07-02 이영재

[참성단]저어새 구하기

'저어새'는 주걱처럼 생긴 부리를 저어 먹이를 잡아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새는 물속에서 쉼 없이 부리를 젓다가 물고기가 닿으면 순식간에 부리로 낚아채는 방식으로 먹이 활동을 한다. 부리에 있는 민감한 신경들이 일종의 센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저어새가 살기 위해서는 이처럼 부리를 맘껏 저을 수 있는 갯벌이나 습지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갯벌 매립 등 개발과 맞물려 서식지는 점차 줄고 있다. 덩달아 저어새도 전 세계적으로 4천800여 마리 밖에 남지 않았다. 천연기념물 제205-1호이자 멸종위기 1급 보호조류인 저어새에게 인천은 고향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서해안에 전 세계 번식 개체의 약 90%인 1천400여 쌍이 번식하고 있는데 이 중 1천200여 쌍이 인천에서 새끼를 낳는다. 저어새 10마리 중 8~9마리는 '인천 출신'인 셈으로, 인천에는 강화를 비롯해 곳곳에 저어새의 서식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남동공단 내 유수지는 아주 독특한 서식지다. 언제부턴가 갈 곳 없는 저어새들이 이 유수지의 인공섬에 날아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기 시작했다. 공장지대를 끼고 있어 수질이 나쁜데도 둥지를 틀었다. 주거환경은 열악하지만, 인근에 갯벌이 있어 그나마 식생활(?)은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이곳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너구리가 인공섬으로 헤엄을 치고 건너와 알을 깨 먹기 시작한 것이다. 너구리 또한 소중한 생명이지만 저어새에겐 공포의 대상이었을 터다. 2017년만 하더라도 유수지 인공섬에선 233마리의 저어새가 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너구리의 침입이 잦던 지난해 이곳에서 태어나 살아남은 저어새는 15마리에 불과했다. 급기야 유수지엔 너구리의 침입을 막기 위한 전기 철책이 설치되기도 했다.이처럼 갖가지 위기에 처한 저어새를 보호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추진된 프로젝트가 1일 결실을 보았다. 국립생태원이 지난해 3월 유수지를 비롯해 수몰지역인 강화 각시암 등에서 저어새 알 수십개를 구조, 인공부화를 시켰는데 부화에 성공한 새끼 중 몇마리를 이날 야생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이들 저어새는 방사에 앞서 비행 및 먹이 사냥, 대인 기피 등 자연적응 훈련을 받았다. 발에 위치추적기까지 부착됐다고 하니 최첨단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저어새가 '생존'과 '번식'으로 인간의 정성에 보답하는 일만 남았다. /임성훈 논설위원

2020-07-01 임성훈

[참성단]타는 목마름으로 2020

다시 읽어도 가슴이 먹먹하다. 세 가지 이유다. 지금도 여전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처절했던 그때 그 기억. 그리고 김지하. '신 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오직 한 가닥 있어/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이다. 이 시는 1975년 창작과비평 봄 호에 발표된 시로 독재정권하에서 한동안 금지됐다가 1982년 김지하의 시선집 '타는 목마름'에 재수록됐다. 하지만 이 시집도 군사정권에 의해 금지서적으로 묶였다.타·는·목·마·름·으·로 7자에는 유신에 반대하다 옥살이를 한 김지하의 영혼, 저항정신이 깃들어 있다. 노래로 만들어 지면서 3연 25행의 이 시는 '민주화의 상징'이 됐다. 몰래 대자보를 붙이고, 누군가 뒤따라 올까 봐 어둠 속을 쏜살같이 도망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여명을 헤치고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민주화를 갈망하던 시절이었다.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발자국 소리 호루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중략) 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이 시집을 다시 꺼내 읽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다시 든 건 대학가에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는 소식을 접해서다. 대학 캠퍼스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인 20대가 최근 법원에서 '건조물침입' 혐의로 벌금 50만원의 유죄 선고를 받자, 보수 성향 단체가 이에 반발해 전국 430개 대학에 대자보를 붙였다고 한다. 지금은 2020년. 40여 년 만에 '타는 목마름으로'가 소환된 것이다.이 시를 읽고, 이 노래를 부르며,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애타게 찾던 이들 상당수가 지금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에서 일하고 있다. 그랬던 그들이 정권을 잡은 후 그들이 그토록 경멸했던 타도 세력을 닮아가고 있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하는 소리도 터져 나온다. 어찌됐건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 한다. "국민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 그래서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이영재 주필

2020-06-30 이영재

[참성단]제주 남방큰돌고래의 모성애

화산 폭발로 한 순간에 사라진 고대 도시 폼페이는 지금도 발굴이 진행 중인데, 비참하기 짝이 없는 시민들의 화석은 당시의 재앙이 얼마나 순간적이며 참혹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아이를 끌어안고 그대로 숨진 어머니의 화석은 지옥불 보다 뜨거운 모성애로 감동을 준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금언은 진리다. 위기의 순간에 자녀를 지키려는 모성애가 빛났던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다.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를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 '피에타'는 모성을 신성(神性)으로 승화시킨다.동물의 모성애도 인간 못지 않다. 최근 제주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 어미 하나가 죽은 새끼 돌고래를 며칠 째 업고 다니는 동영상이 공개돼 큰 감동을 남겼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가 처음 발견했을 때 새끼는 이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패했다고 한다. 이 센터의 김현우 박사는 "어미 돌고래가 2주 이상 이런 행동을 계속 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제주 돌고래를 연구해 '남방큰돌고래'라는 이름을 작명한 그에 따르면 죽은 새끼를 향한 어미 돌고래의 모성이 이전에도 관찰됐다고 한다. 돌고래는 숨을 쉬어야 하는 포유류다. 새끼를 수면 위로 밀어올려 호흡을 시키려는 동영상 속 어미의 모성애는 인간의 그것과 한치의 차이도 없었다.물론 모성애를 달리 보는 시각도 있다. 리차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모성애를 유전자의 발현이라고 강조했다. 생물학적으로는 유전자(새끼)를 지키려는 유전자의 명령이자, 진화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성계는 모성애가 여성 차별을 정당화하는 프레임으로 작동할 것을 경계한다. 프랑스의 시몬 드 보부아르는 "모성은 여성을 노예로 만드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라고 모성애 담론 자체를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생물학적 주장과 사회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모성은 어머니가 있는 한 불변의 인간적 가치이다. 엽기적인 자녀학대 사건이 속출하는 패륜의 시대에는 더더욱 존중해야 할 덕목이다.제주 남방큰돌고래가 우리 사회에 간간이 던지는 사회, 문화적 화두가 묵직하다. 동물학대 논란을 던지고 제주바다로 돌아간 제돌이·태순이·복순이에 이어 이번엔 어미 돌고래 'JBD085'가 모성의 가치를 되새겨주었다. 그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요즘 고래관광 선박들의 지나친 접근으로 괴로워한다고 한다. 100여 마리에 불과한 멸종위기종이다. 자제해야 한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6-29 윤인수

[참성단]햄버거 병

1982년 미국 오리건주와 미시간주의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오염된 쇠고기 분쇄육이 들어간 햄버거를 먹고 40여명이 경련성 복통, 구토, 설사 증세를 보였다. 조사결과 병원체 'O-157:H7'로 인한 장출혈성 대장균 합병증인 '용혈성 요독증후군(HUS)'으로 밝혀졌다.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병원체고, 심할 경우 콩팥에 심각한 손상을 줘 큰 뉴스가 됐다. 햄버거를 먹다가 감염됐다고 해서 그때부터 '햄버거 병'으로 불렸다.우리나라에서도 2016년 9월 평택에서 4세 아이가 부모와 유명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햄버거를 먹고 HUS에 걸려 신장장애 2급 판정을 받기도 했다. 부모는 패스트푸드점을 상대로 오랜 소송을 진행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는 등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햄버거 병'은 신장이 불순물을 제대로 걸러주지 못해 손상된 적혈구가 콩팥에 찌꺼기로 쌓이면서 생긴다. 건강한 성인은 1~2주 이내에 큰 후유증 없이 치유되나 5세 미만의 어린이와 노년층은 이 균에 취약해 HUS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햄버거 병'은 환자의 5%가 손상된 콩팥이 회복되지 않아 평생 투석치료를 받아야 하는 심각한 감염병이다. 감염병 예방관리법에 따라 결핵, 수두, 홍역, 장티푸스, 한센병 등과 함께 제2급 감염병으로 지정돼 발병 또는 유행 시 24시간 내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안산의 한 유치원에서 장출혈성대장균 감염증이 집단 발병해 방역 당국의 역학조사가 진행 중이다. 환자 111명 중 15명이 이른바 '햄버거 병'으로 불리는 HUS 의심 증세를 보이고, 이중 4명이 신장기능 저하로 투석 치료까지 받고 있다고 한다.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 환자는 2016년 104명, 2017년 138명, 2018년 121명, 2019년 144명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이번 안산사고는 국내 최대 집단발병일 가능성이 높다. HUS는 대부분 충분히 가열하지 않은 소고기 가공품에서 발견되지만, 드물게 오염된 퇴비로 기른 채소류 등을 통해서도 감염된다. 고기는 충분히 익히고 날 음식과 익힌 음식의 조리도구도 따로 사용해야 한다. 가령 고기를 구운 후 생고기가 있던 접시에 담는 것도 위험하다. 음식이 상하기 쉬운 여름철이다. 위생관리가 까다로운 어린이 집단시설에서는 사람끼리의 감염도 발생할 수 있으므로 그 어느 때보다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영재 주필

2020-06-28 이영재

[참성단]김현과 '문학의 시대'

'문학이 죽었다'고 한다. 살아있는 생명체도 아닌데 죽었다니. 이는 소설, 시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요즘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면 증권, 자기 계발, 가벼운 수필류가 상위를 차지할 뿐, 소설집, 시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디어가 문학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에 '김현' 두 글자를 치면, 전 국회의원 김현이 메인으로 뜨는 것도 이제 '문학의 시대'가 아님을 반증한다. 시집은 100권을 팔기 어렵고, 서점에서 문학평론집이 사라졌다. 미디어 홍수 시대에 이제 더는 문학이 설 자리는 없는 것일까.70, 80년대를 '문학의 시대'라고 한다. 소설집은 말할 것도 없고, 시집 초판 1천권이 순식간에 매진되기도 했다. 100만권 넘게 팔린 시집 때문에 저 멀리 프랑스 문학계가 충격에 빠졌을 정도다. 심지어 문학평론집을 찾는 독자도 많았다. 문학이 융성할 수 있던 배경에는 물론 작가의 분투가 컸지만, 김현이라는 독보적인 문학평론가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해방 이후 우리 글로 교육받은 한글 세대, 비평을 창작의 경지로 끌어 올렸고, 자신의 비평을 '김현 체'라는 언어로 풀어냈던 평론가 김현. 내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주기가 되는 날이다."내 육체의 나이는 늙었지만 내 정신의 나이는 언제나 1960년 18세에 멈춰있다. 나는 거의 언제나 4·19세대로서 사유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내 나이는 1960년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 김현은 4·19 정신으로 글을 사유하고 글을 썼다. 비록 무명작가의 작품이라 해도 밤을 새워 꼼꼼히 읽고 세심하게 평을 해 주었다. 그의 평에 용기를 얻어 훗날, 한국 문단을 이끄는 중견작가가 한두 명이 아니다. 가스통 바슐라르, 롤랑 바르트, 르네 지라르의 신비평을 국내에 소개한 것도 그였다.계간지 '문학과 사회' 여름호는 '고 김현 30주기 추모 특집'을 싣고 그를 추념했다. 8월에는 '김현의 프랑스 문학 연구와 한국문학 비평'을 주제로 심포지엄도 열릴 것이다. 비 오는 날, 그의 유고집 '행복한 책 읽기'(문학과 지성사 간)를 꺼내본다. 1989년 고 기형도 시인의 '입속의 검은 잎' 해설에 수록된 한 구절에 눈길이 머문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 정신적으로 죽는다." /이영재 주필

2020-06-25 이영재

[참성단]금개구리의 재발견

'개구리가 울면 비가 온다'는 속담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 개구리를 비롯한 양서류는 폐호흡 외에 피부호흡도 한다. 때문에 피부가 젖어있어야 공기 중의 산소를 받아들이기 쉽다. 그래서 날이 건조할 땐 물 속에 들어가 있지만 공기 중 수증기가 많아져 습도가 높으면 수면 밖으로 나와 운다. 정확히는 우는 게 아니라 피부가 촉촉하니 기분이 좋아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며칠 전 금개구리 한 마리가 경인일보의 1면 사진을 장식했다. 인천시 계양구 3기 신도시인 계양테크노밸리 사업 예정지에서 카메라 앵글에 잡혔다. 금개구리는 울음주머니가 없어 작은 소리밖에 낼 수 없다고 한다. 어쨌든 물웅덩이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 금개구리가 울어서인지 장마가 시작됐다. 금개구리는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돼 있다. 별명은 '멍텅구리'다. "팔짝 팔짝 개구리됐네"라는 노래 가사가 말해주듯 개구리의 상징과도 같은 '점프력'이 다른 개구리에 한참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참개구리가 뛸 수 있는 150㎝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0㎝밖에 뛰지 못한다고 하니 개구리치곤 여간 굼뜬 게 아니다. 하지만 금개구리는 'K-POP'이나 'K-방역' 처럼 당당하게 이름앞에 'K'(Korea)가 붙은 대표적인 한국 고유종이다. 생물 종을 구분할 때 국제적으로 학명(學名)과 함께 널리 쓰이는 게 영명(英名)인데 금개구리의 영명은 'Korean Golden Frog'이다. 'K-개구리'인 셈이다. 맹꽁이(Boreal Digging Frog)나 두꺼비(Asiatic Toad) 보다 '정체성'(?)이 뚜렷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금개구리가 지난 23일 토론회의 주인공이 됐다. 인천녹색연합이 금개구리를 '6월의 멸종위기야생생물'로 선정한 것을 계기로 열린 '양서류 서식지 보전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다. 어찌 보면 사람 건강 챙기기도 힘겨운 팬데믹 상황에 걸맞지 않는 토론회다. 하지만 오히려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토론회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파괴에서 비롯됐다. 양서류는 환경이 훼손되면 가장 먼저 그 영향이 나타나는 분류군이다. 토론회는 바로 인간에게 보내는 금개구리의 경고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계양테크노밸리 사업이 본격화하면 금개구리는 서식지를 잃게 된다. "금개구리는 지금껏 농부 곁에서 살아왔다"는 한 토론자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임성훈 논설위원

2020-06-24 임성훈

[참성단]확성기 방송

'심리전'은 전쟁 없이 상대를 굴복시키는 고도의 전쟁기술이다. 그중 확성기 방송을 '심리전의 꽃'이라고 한다. 비무장지대(DMZ)에서 확성기 방송이 시작된 건 1962년부터다. 시작은 북한이 먼저 했다. 우리보다 경제상황이 좋았던 북한은 시도 때도 없는 대남방송으로 우리 병사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한밤중 '불효자는 웁니다'를 틀어대면 병사들은 소리죽여 울음을 삼켰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대남방송에 속아 상당수가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우리 경제력이 북한을 넘어선 1980년대부터 상황이 역전됐다. 우리 확성기는 야간에 24㎞, 주간에 10여㎞ 떨어진 곳에서도 들릴 만큼 고음질을 자랑했다. 이를 통해 일기예보 같은 생활정보에 대중음악까지 곁들이며, 간간이 북한 체제를 비판하면서 북한 병사의 마음을 흔들었다. 반면 북한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질이 너무 떨어져 우리 병사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등 '햇볕정책'의 영향으로 확성기 방송시간과 횟수가 크게 줄었다. 북한 측의 지속적인 방송 중단 요구도 한몫 했다. 북한 병사들이 대북방송에 심하게 동요한 게 원인이었다. 마침내 남북은 장성급 군사회담 후속 합의서를 통해 MDL(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을 전면 중지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2004년 6월 15일 0시를 기해 확성기를 모두 철거했다.그러나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 조치로 MDL 일대 11곳에 다시 대북확성기가 설치됐지만, 방송은 하지 않았다.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공격으로 다시 대북방송이 재개됐으나 북한이 우리 쪽으로 1발의 포탄을 발사하고 우리가 포탄 20발을 대응 포격하는 큰 소동이 일어났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합의에 따라 양쪽 모두 40개의 확성기를 철거함으로써 DMZ에 60여 년 만의 고요가 찾아왔다.북한이 2년 만에 DMZ 20여 곳에 대남 확성기를 다시 설치했다. 효과가 없을 텐데 무모하게 설치한 걸 보면 꽤 다급했던 모양이다. 위기상황을 느끼면 협박과 폭언으로 전쟁 열기를 고조시키는 수법은 북한의 전매특허다. 이는 내부결속을 다지고 전쟁공포를 키워 우리의 국론분열과 갈등유발을 겨냥한 일종의 심리전이다. 지나치게 양보하면 상대는 늘 깔보게 마련이다. 북한이 방송을 시작하면 우리도 '심리적 핵폭탄'인 대북 확성기 방송을 고려해야 한다. /이영재 주필

2020-06-23 이영재

[참성단]대북·대남전단 유감

초등학생 때 북에서 날려보낸 삐라를 몇 차례 주워봤다. 겨울철 동네 어귀 논밭에서다. 지폐 크기에 삽화는 조잡하고, 구호는 살벌했으나 놀라지는 않았다. 반복된 반공교육의 효과일 것이다. 손에 쥔 삐라는 다음날 학교 선생님께 드렸다. 삐라를 소지하는 건 나쁜 행동이라고 배웠다.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했다. 국민 혈세 170억원을 들여 2018년 9월 준공한 화해·공존·평화의 상징물이다. 황해도 해안가 포문이 개방됐고, 북측 GP 초소가 재건됐다.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은 피의 보복을 언급했다.김 부부장의 분노와 남북경색을 부른 건 대북전단이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절대로 용납치 못할 적대행위'라고 비난했다. 김 부부장은 "버러지 같은 자들이 우리의 최고 존엄까지 건드리는 천하의 불망종 짓을 저질러도 남조선에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고 했다. 인간쓰레기들의 경거망동이라는 폭언이 뒤따랐다.대북전단은 남·남 갈등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파주·연천 등 접경지에서는 보수단체와 진보단체가 옥신각신한다. 경기도는 대북전단 살포를 '사회재난'으로 규정해 전면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대북전단을 주도하는 보수단체 대표의 무허가 주택은 철거 절차를 밟고 있다.이재명 경기지사 공관과 분당 사저에 경찰력이 배치됐다. 도청사 방호 인력도 늘렸다. 한 보수성향 인사가 이 지사 집 근처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고 이를 막으면 가스통을 폭파하겠다고 위협하면서다.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북한엔 항의 한 번 못하면서 힘없는 탈북자 집엔 공무원을 동원해 요란한 쇼를 연출했다"고 비판한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전단 살포는 법적으로 재난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과잉 행정이라고 했다. 이 지사는 "대북전단 살포로 북한을 자극해 접경지역 도민들을 군사적 위험에 노출시키는 게 사회재난"이라고 반박했다. 입씨름이 인신공격으로 격화하고 있다.영어 'bill'에서 유래한 일본말 삐라는 2차대전 말 연합군이 처음 사용했다. 대표적인 심리전 매체로 한국전쟁에서 맹위를 떨쳤다. 북한은 대남전단을 뿌리겠다고 예고했다. 내용 일부도 공개됐다. 삐라가 한반도에서 제2 전성기를 맞고 있다. 복고풍(Retro style)이 유행이라지만 백해무익한 사특한 바람이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06-22 홍정표

[참성단]회고록

회고록과 자서전의 경계는 모호하다. 그게 그거지만 굳이 따진다면 회고록은 사건의 내막과 진상을 중심으로 기록하는 데 반해 자서전은 자신의 일생을 이야기하면서 그때그때 일어난 사안을 다룬다. 진실하게 집필된다면 이들의 역사적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자신의 치적을 지나치게 부풀리거나 사실을 왜곡해 사료적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두환 전 대통령 자서전이나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가 움직인다'처럼 사안이 민감한 경우 내용의 진위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다.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회고록을 꼽는다면 단연 1980년대 출간된 '김형욱 회고록'일 것이다. 출간 당시에는 '박사월'이란 가명으로 출간됐지만, 훗날 김경재 전 의원이 대필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으로 망명한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구술을 받아 쓴 것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비방으로 채웠다. 김형욱의 주장이 너무 일방적이어서 사료적 가치가 훼손됐으나 독재정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까발린 덕분에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당시 서점에서 책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 출판사가 수십억 원을 벌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메모광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으로 미국과 관련국이 시끄럽다. 어제 미국 법원이 미 법무부가 신청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조만간 이 회고록이 시중에 뿌려진다. 트럼프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측근들은 볼턴이 돈을 벌기 위해 '리벤지 포르노(헤어진 연인에게 복수하려 유포하는 동영상과 사진)'를 발간했다고 비난하고 있어 파문은 더 커질 것이다. 회고록이라기보다 '볼턴의 트럼프 대통령 관찰기'에 더 가까우나 어찌 됐건 언론이 대서특필 해주면서 볼턴과 출판사 '사이먼엔슈스터'만 큰돈을 벌게 생겼다.최근 우리 서점에도 최서원(최순실)의 회고록 '옥중 회오기-나는 누구인가'가 선을 보였다. 초판이 매진돼 증쇄에 들어가는 등 제법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뉘우치고(悔), 깨우쳤다(悟)'는 것과 달리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는 내용이 주류라 언론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다. 이처럼 모든 잘못은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을 미화하는 것은 회고록과 자서전이 갖는 한계다. 역사의 평가를 받을 좋은 기회가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되는 점은 아쉽다. /이영재 주필

2020-06-21 이영재

[참성단]위기의 손정의

재일교포 3세인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느낌'으로 투자하는 걸로 유명하다. 2000년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을 만나 그에게서 강렬한 카리스마 리더십을 '느껴 '6분 만에 2천만 달러 투자 결정을 내린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손 회장은 이 투자로 2014년 알리바바가 상장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로켓 배송시스템'을 도입해 물류혁명을 주도한 쿠팡의 24시간 배달시스템에 반해 1조원을 투자한 것도 손 회장 아니면 엄두를 못 낼 일이다.손 회장은 24세이던 1986년 당시 일개 벤처회사에 불과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성장성을 알아차리고 소프트웨어 일본독점 판매권을 따내 큰돈을 벌었다.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 판매 기업 소프트뱅크를 세웠다. 손 회장은 기업인수합병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96년 창업 6개월밖에 안 된 야후의 지분을 인수해 야후 재팬을 세웠고 언론재벌 머독과 합작해 J스카이B와 재팬텔레콤 등 IT 통신업체에 손을 대 크게 성공했다.이때부터 손 회장에게 '투자의 신' '미다스의 손'이란 별명이 따라다녔다. 보통 투자자들은 투자하려는 회사의 미래 전망과 관련 시장 등을 꼼꼼하게 살피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손 회장은 다르다. 미래를 선도할 기술 기업이란 '느낌'이 오면 일단 과감하게 지르고 본다. 이 때문에 저평가된 우량 기업에 장기 투자하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 종종 비교되곤 한다.'50수 앞을 내다보는 투자'라는 손 회장의 이같은 투자법이 위기에 직면했다는 소식이다. 평생 그가 그토록 신봉한 '공유공제'가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지난해 투자한 차량 공유업체 우버의 주가가 공모가(45달러)보다 30%가량 하락하고, 85억 달러를 투자한 사무실 공유기업 위워크의 적자로 소프트뱅크 그룹은 1분기 적자만 1조4천381억엔(약 16조원)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손 회장의 투자 능력이 전 같지 않다며 세계 언론들이 그의 판단력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자금압박에 몰린 손 회장이 지난 4월 현금확보를 위해 알리바바 주식 1조2천500억엔을 매각한 데 이어 최근 22조원어치 T모바일 지분 매각에 나섰다고 한다. "나는 워런 버핏과는 다른 모험투자가"라며 알리바바와 쿠팡, 야후 쇼핑을 통합해 아마존에 맞서려 했던 손정의의 야심에 찬 꿈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영재 주필

2020-06-18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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