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하늘 위 주유소

최신예 전투기라 해도 원거리 공격작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연료 보급이다. 적진을 공습하거나 공중전을 벌일 때 최소 한두 곳의 경유지에서 연료를 보급한 뒤 이동해야 한다. 우방국이 있다면 그곳의 기지를 이용하면 되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작전수행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하늘 위 주유소'라 불리는 공중급유기다. 최초의 공중 급유는 1923년 6월로 미 육군 항공단 소속 DH-4B 복엽기가 연료탱크에 호스를 장착해 비행 중인 다른 항공기에 연료를 주입하는 데 성공했다. 두 달 후에는 9차례의 공중급유 끝에 무려 37시간 비행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고속 비행하면서 기름을 주고받아야 하므로 공중 급유에는 늘 위험이 따랐다. 우주 비행 같은 고도의 기술도 필요했다. 급유 중엔 공중급유기와 전투기는 기름을 공급하는 붐(Boom)과 수유구가 붙어 있는 상태로 5분가량 비행을 해야 한다. 급유기와 전투기 사이 거리와 고도를 유지해야 하는 기술이 필요해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정작 사용되지 못했다.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50년 B-29 폭격기를 공중급유기로 개조한 KB-29M 공중급유기 80대를 전력화하면서 '항공전의 혁명'을 불러왔다. 2005년 7월, 1조4천881억원 규모의 우리 공군 공중급유기 사업 기종으로 모두 미국 보잉사가 선정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동안 우리 공군이 미군 급유기로 공중급유 훈련을 해왔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미군 급유기의 지원을 받아 연합작전을 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에어버스사가 선정됐다. 그동안 전투기를 구매할 때 내세운 '한미 동맹'이 무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북한도 공중급유기 도입 결정에 대해 '전쟁범죄 행위'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그제 우리 공군 전투기의 작전 반경을 획기적으로 늘려 줄 공중급유기 1호기가 도착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보잉사를 제치고 선정된 유럽 에어버스 D&S사의 'A330 MRTT'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 3대가 더 도입된다. 공교롭게도 공중급유기가 도착하는 날, 중동부전선 철원지역 비무장지대(DMZ)에선 굴착기를 동원한 감시초소(GP) 철거 작업이 진행됐다. 같은 날 하늘 위엔 주유소가 설치되고 지상엔 GP가 철거되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13 이영재

[참성단]방탄소년단의 역습

일본 방송사들의 방탄소년단(BTS) 방송출연 취소 사태가 국제적인 파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 TV아사이가 BTS 멤버 지민이 2년전 착용한 광복절 티셔츠를 문제삼아 예정된 방송출연을 취소한데 이어 NHK, 후지TV도 출연검토를 보류하자 세계 유력 매체들이 일제히 한일관계를 재조명하고 나선 것이다.대중음악 매체 빌보드는 "국가 간의 오랜 정치 문화 사회적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 역사를 거론했다. 미국 CNN과 영국 BBC도 일본 방송이 원자폭탄 티셔츠를 이유로 BTS의 방송출연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CNN은 '일본의 점령으로 수백만의 한국인이 고통을 겪은 사실'을, BBC는 '일제 강제징용자 배상판결 이후 냉각된 한일관계'를 상세히 보도했다. 전범국 일본의 과거가 새삼스럽게 떠오른 것이다.방탄소년단을 응원하는 팬클럽 아미(ARMY)의 방탄 활약도 대단하다. 이들은 구글 등 인터넷 검색창을 통해 'Why BTS'를 열심히 검색하고 퍼나르고 있다. 일본 방송이 BTS 출연 취소 결정 이유를 확인하는 검색어는 '왜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는가?(Why did japan invaded korea?)'라는 연관 검색어로 번지면서, 전세계 아미들이 일제의 아시아 침략사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BTS 방송출연 금지 배후에는 일본 방송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세력이나 단체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 결정에 적나라하게 반발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 극우매체 및 단체가 의심된다. 하지만 과녁 설정에 실패했다. 제2의 비틀즈로 떠오른 BTS의 글로벌 위상을 너무 쉽게 봤다.BTS에 열광하는 일본 열도의 열기는 오히려 높아졌다. 아홉번째 싱글앨범 타이틀곡인 'FAKE LOVE(페이크러브)'는 일본 오리콤 차트 1위를 질주 중이고 13일 도쿄를 시작으로 내년 2월까지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를 순회하는 돔 투어 공연은 38만장 전석이 매진됐다. 일본 주요 도시에 불어닥칠 BTS 열기는 방송도, 극우세력도 통제하기 힘들 것이다. BTS사태로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피해자 코스프레로 전범의 역사를 덮어 온 일본의 퇴행적 역사인식만 도드라졌다. 일본 방송이 벌집을 건드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12 윤인수

[참성단]슬픈 고시원

'서른일곱 개의 방이 있던 그 집, 미로 속에 놓인 방들. 계단을 타고 구불구불 들어가 이젠 더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작은 부엌이 딸린 방이 또 있던 3층 붉은 벽돌집 … 거기였다. 서른일곱 개의 방 중의 하나, 우리들의 외딴 방. 그토록 많은 방을 가진 집들이 앞뒤로 서 있었건만, 창문만 열면 전철역에서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보였다.' 신경숙 이름 석 자를 세상에 각인시켰던 소설 '외딴방'에 묘사된 '벌집촌' 풍경이다. 70년대 부평과 구로동 산업단지 주변의 여공들이 살던 주거 공간으로 '벌 방' '쪽방'이라고도 불렸다. 작가 조세희가 "'난쏘공'이 시작된 곳"이라고 말한 그곳이다.동생 학비를 벌기 위해 도시로 나온 10대 누이들이 '산업역군'이라는 이름 아래 온종일 노동에 시달리다 그나마 휴식을 취하던 이런 '슬픈 공간'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급격한 도시개발로 일시에 사라진 탓이다. 대신 고시원이 그 기능을 하고 있다. 이젠 고시원은 고시 준비생이 아닌 가난한 이들이 저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하는 그들만의 공간이다. 쪽방 특유의 고립된 환경 탓에 정신건강이 악화된 채 방치되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이나 요양시설의 돌봄을 받을 수 없는 그들의 '최후 거주지'인 셈이다.'소방의 날'이었던 지난 9일 새벽,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졌다. 참사다. 고시원은 지어진 지 35년 된 건물. 2층에 24개, 3층에 29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였다. 이 방에서 50~70대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가 각자 고단한 일상에 시달리며 살고 있었다. 옆 방에 누가 사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곳. 고시원은 '외딴 방' 하나하나가 나름 하나의 고립된 '섬'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불이 난 고시원에 스프링클러가 없어 피해가 컸다고 하지만, 있다 한들 두 명이 동시에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복도가 좁아 비상 시 대피가 어려운 '쪽방' 같은 구조에서 효과가 있었을지도 의문이다.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고시원에 15만 가구가 살고 있다. 이들 상당수가 화재, 붕괴 등 재난에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목숨을 위협받는 '슬픈 고시원'이 아닐 수 없다. 안전의식 부재, 형식적 점검, 사후의 땜질 대응으로 늘 똑같은 참사가 반복되는 우리의 '불감증 사회'가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11 이영재

[참성단]KBS '콘서트 7080'

김대중 대통령은 KBS '동물의 왕국'의 열혈 시청자였다. 이 프로를 보기 위해 회의를 일찍 끝낸 경우도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못지 않았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동물의 왕국'을 자주 얘기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광팬이었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 프로를 즐겨 보는 이유를 "동물은 배신을 안 하니까요" 라고 말한 게 당시 화제가 됐다. KBS 최장수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이 첫 전파를 탄 것은 1969년이었다. BBC, NGC, NHK 등의 수입 자연 다큐멘터리 시리즈에 우리말을 더빙해 방영했다. 종영과 부활을 수없이 반복했다. 2004년 가을 개편에 '동물의 왕국'을 KBS1로 부활시키며 내세운 것이 '공영성 강화'였다. 그 후 '동물의 왕국'은 시청률은 낮지만 KBS가 공영임을 내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익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됐다. KBS가 이번 가을 개편에 장수프로그램을 대거 폐지했다. 그나마 '동물의 왕국'은 용케 살아남았다. 하지만 2004년 시작해 중장년층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콘서트 7080', 성우 박기량의 코믹 해설이 일품이던 'VJ 특공대'도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젊은 방송'을 만든다는 게 폐지 이유였다.시청자들은 당황했다. 특히 70, 80년대 20대를 보낸 세대를 겨냥한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 '콘서트 7080' 폐지에 시청자 실망이 크다. '콘서트 7080'은 당시의 인기곡을 오리지널 가수가 직접 출연해 그 시절의 추억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던, 시청률은 낮지만 두꺼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소개되는 노래마다 우리 시대 추억이 알알이 맺혀있기 때문이다. 공개방송 표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데 진행자 배철수도 몰랐을 정도로 프로그램 폐지는 전격적이었다.올 KBS 예산은 총 1조5천152억원으로 이중 수신료수입이 6천542억원을 차지한다. 모바일로 TV를 시청하는 20대보다 시청료의 상당 부분을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부담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장년층의 유일한 위안거리 '콘서트 7080'을 폐지 시킨 KBS의 용기가 놀랍다. 월 2천500원의 KBS 수신료를 돌려 달라는 민원이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2016년 1만5천746건에서 2017년 2만246건에 이어 올 9월 말 현재 2만5천964건으로 크게 늘었다. KBS가 요즘 왜 이러는지 국민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08 이영재

[참성단]'보헤미안 랩소디' 열풍

최근 한국 영화팬들이 영상으로 완벽하게 부활한 영국 록밴드 퀸과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에게 열광하고 있다. 지난 달 말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이 미풍에서 태풍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70, 80년대 퀸의 전성기를 겪었던 장노년층은 다시보기는 물론이고 싱어롱 상영관을 찾아 떼창을 한다.영화의 미덕은 퀸의 흥망성쇠와 프레디 머큐리의 인생역정 보다는 그들의 명반, 명곡을 완벽하게 재현해낸데 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20분을 1985년 '라이브 에이드' 자선공연 장면으로 꽉 채운 엔딩장면이 압권이다. '보헤미안 랩소디' '라디오 가가' '위 윌 록 유' '위 아 더 챔피언스'까지, 한국 관객들은 영화를 완전체 퀸의 내한 라이브 공연처럼 즐기고 있다.전성기 시절 퀸은 국내에서 인기 상한가였다. 존 디콘과 로저 테일러가 1984년 방한해 잠실체육관에서 내한공연을 한다는 설이 돌았지만 실현되지 않았고, 될 수도 없었다. 당시 국내에선 보헤미안 랩소디가 금지곡이었다. '권총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가사 내용이 문제였을 것으로 추측될 뿐, 분명한 이유는 모른다. '권총'과 '발포'에 대한 당시 정권의 트라우마가 작용한 탓이려니 짐작해본다. 여하튼 퀸에게 대표곡 보헤미안 랩소디가 빠진 공연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89년 해금됐고, 2014년 퀸의 내한 공연이 성사됐다.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 사망한 뒤였다.한국의 50, 60대는 프레디 머큐리의 퀸과 늘 함께였다. 70, 80년 대 가난했던 청춘 시절에는 청계천에서 빽판(불법복제음반)을 구해 친구들과 함께 강렬한 사운드와 프레디의 고음에 심취하며 해방감을 맛봤다. 그들이 소비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퀸의 음악은 광고와 다양한 문화현장의 배경음으로 모든 세대에게 전파됐다.우울한 시대와 경제적 전성기를 거쳐 불안한 미래를 마주한 한국의 7080세대는 시대의 우여곡절로 인해 갈라지고 찢어진 세대다. 그들이 모처럼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세대의 동질감을 확인하고 동시대의 공감각을 체험 중이다.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앞두고 "에이즈의 상징으로 소비되지 않겠다"던 프레디 머큐리는 그의 말 대로 '전설'로 부활 중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07 윤인수

[참성단]仁川 야구

코리안시리즈가 시작됐으나 야구 팬의 의식은 여전히 지난 2일 플레이오프 5차전에 멈춰 서 있다. 명승부를 넘어 한편의 스펙터클한 영화였던 탓이다. 평생 이런 야구를 본 적이 없었다. 야구라고 다 야구가 아니었다. 정규시즌 야구와 포스트 시즌 야구는 분명히 달랐다. 전국 TV 시청률이 무려 8.9%를 기록했다. 야구 팬이 아니어도 그날의 야구를 보았다면 채널을 돌리는데 주저했을 것이다. 연장 10회 말, SK의 공격. 첫 타자는 정규시즌에서 1군과 2군을 오갔던 베테랑 김강민. 김강민은 투 스트라이크 상태에서 4구를 받아쳐 극적인 동점 홈런을 터뜨려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을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진 예고편. 이어 타석에 들어선 한동민이 때린 백구(白球)가 가을 밤하늘을 가르며 백스크린 앞에 떨어졌다. 끝내기 홈런. 환호와 탄성이 일시에 폭발했다. 지난 1994년 태평양 돌핀스가 코리안시리즈 진출을 다투는 한화전에서 연장 10회 초 김경기가 날린 홈런도 여기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 어떤 드라마도 이렇게 극적으로 각본을 짤 수는 없었을 것이다. 누구는 그 경기에서 인천야구의 본질을 보았다고 말했다. 우리의 프로야구 역사는 짧다. 그러나 인천 야구 역사는 길다. 인천은 한국 야구의 본산이다. 5·60년대 인천은 구도(球都)였다. 부산은 비할 바가 못 됐다. 인천고와 동산고를 앞세워 최대 부흥기를 맞았다. 적수가 없었다. 야구는 인천 토박이는 말할 것도 없고 인천에 들어와 살던 실향민들에게도 정신적 위안을 주었다. 야구는 인천사람에게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고된 삶을 잊게 해주는 위안거리였다. '인천사람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었다'. 70년대 서울과 경북 부산 광주 지역 고교 야구팀이 창단되면서 선수부족으로 비록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인천 야구'는 늘 터질 날만 기다리는 거대한 휴화산이었다.인천이 술렁이고 있다. 5년 만에 체험하는 코리안시리즈 때문이다. 1차전 가을의 사나이 박정권의 불같은 타격으로 역대 최강이라는 두산을 7대3으로 격파했다. 2차전은 비록 졌지만, 적지에서의 1승은 큰 수확이다. 1승 1패를 기록하고 오늘부터 두산을 홈으로 불러들여 3연전을 펼친다. 가을야구는 실책이 승부를 가른다. 촘촘한 수비, 불같은 방망이, 민첩한 주루를 기대한다. 반드시 우승이 능사는 아니다. 우린 이미 인천 야구의 '부활'을 보았으니 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06 이영재

[참성단]'우리회사 양진호'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엽기적인 악행이 직장 갑질 미투운동으로 번질 조짐이다. 각종 매체들은 한 시민단체가 자체 수집해 발표한 직장 갑질 사례를 '우리회사 양진호'로 번안해 보도하고 있다. 퇴직 직원에 대한 양 회장의 폭행 동영상 원본을 보면 정말 치가 떨린다. 폭행당한 청년의 처지를 내 가족과 친구의 경우로 바꾸어 상상하면 적개심이 끓어 오를 지경이다. 대학교수 폭행, 직원 학대 등 드러난 악행은 '사과문'으로 마무리 할 수준이 아니다.IT(정보기술)분야 기업들의 사내 문화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자유분방과 상호존중이다. 창의와 협업이 생명인 산업특징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주의적 기업문화를 가진 IT기업들이 많다고 한다. 사업의 비전과 기술을 창업자에게 의지하는 구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창업 초기에 'I'm CEO, Bitch'를 새긴 명함을 뿌렸다. "내가 최고경영자다. 떫냐" 정도로 해석되는데, 그를 페이스북 제국의 나폴레옹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인용하는 사례다.양 회장도 웹하드 업계의 대부라 한다. 주로 웹사이트에서 동영상을 유통시키는 웹하드 업체는 음란물을 포함한 불법 동영상 유포의 핵심 통로로 의심받았다. 특히 양 회장은 불법 동영상을 무차별적으로 유통하는 웹하드 사업과 이를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 사업을 함께 운영했다. 불법 동영상 유통 수익과 피해자의 고통을 지워주는 대가를 동시에 챙겼으니 꿩 먹고 알 먹는 사업모델이다. 자신만의 독점적 사업에서 제왕처럼 군림하다 보니 세상의 상식과 법을 초월한 존재로 착각했던 모양이다.양 회장은 사과문에도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초호화 방탄 변호인단을 꾸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폭행 등 드러난 죄가 명백하고, 음란물 유포 등 밝혀야 할 혐의가 적지 않다. 꼼꼼하게 수사해 엄정하게 법적 처리를 해야 마땅하다. 또한 양진호 갑질의 근원을 제도적으로 도려내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직장 갑질을 방지할 근로기준법 개정은 물론이고, 불법 동영상 유포로 돈을 버는 사업구조도 뿌리를 뽑아야 마땅하다. '우리회사 양진호'가 양진호 회장 사건으로 정신 차린다면 그건 망외의 소득이고….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05 윤인수

[참성단]申星一

이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1957년 당대 최고 감독 신상옥은 신필름을 설립하고 배우 모집에 들어갔다. 264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강영일. 하지만 신 감독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그에게 신필름의 '신', 한국 영화계의 새별이 되라는 의미의 '성', 일등 배우가 되라는 뜻의 '일', 신성일이라는 예명을 지어주었다. 대한민국 아니, 건국 이래 최고의 배우 신성일은 그렇게 탄생했다.50년대 말 한국 영화계는 신상옥 최은희의 신필름과 홍성기 김지미의 홍성기 프로덕션으로 양분돼 있었다. 소속 배우도 신 감독 측엔 김승호 김진규 등이, 홍 감독 측엔 최무룡 장동휘 남궁원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유명 배우만을 선호했다. 무명 배우가 출연하면 흥행이 신통치 않았다. 흥행 실패는 파산을 의미했다. 그래서인지 두 영화사 모두 신인을 키우지 않았다. 신필름이 신성일을 뽑아놓고 미적거린 것도 흥행 실패의 두려움이 작용했다. 신성일이 스타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이런 분위기 탓이 컸다. 신성일은 1960년 신필름의 창립 작품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지만, 그저 잘생긴 배우 정도의 이미지만을 남겼을 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마침내 1964년,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제임스 딘이 그랬던 것처럼, 카리스마 있는 반항아 이미지와 청바지가 잘 어울렸던 신성일은 일약 스타 반열에 올랐고 '청춘물'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의지로 돌파해가는 남성적인 분위기'가 한국 영화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로 시작되는 최희준의 노래도 빅히트를 쳤다. 신성일은 거칠 게 없었다. 1964년부터 8년간 개봉한 1천194편의 작품 중 324편에 그가 출연했다. 특히 1967년 제작된 한국영화 총 187편 중 신성일 출연 작품이 무려 51편이었다.하지만 그는 정치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두 번의 낙선 끝에 '강신성일'로 이름을 바꾼 후 16대 총선에서 당선됐지만 삶은 그리 평탄치 못했다. 옥고도 치렀다. 나운규 이후 최고의 배우이자 '한국의 알랭 들롱', 6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꽃 피웠던 배우 신성일이 4일 새벽 향년 81세로 숨을 거뒀다. 그의 이름 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이 지금 슬퍼하고 있다. 우리 영화사 가장 중심에 서 있었던 최고의 배우가 그 자신이 하나의 역사가 돼 우리 곁을 떠났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04 이영재

[참성단]목구멍

승정원은 조선의 왕명 출납기관이었다. 왕이 내리는 교지는 승지를 통해 해당 관청에 전달되었고, 상소문은 승지를 통해 왕에게 전달됐다. 정승이나 판서 등 신하가 왕을 면담하거나 중요 회의에 배석해 대화 내용을 기록하는 것도 이들 몫이었다. 우리가 자랑하는 기록문화의 꽃 '승정원일기'가 이들의 손에서 작성됐다. 승정원에는 정3품 당상관인 6명의 승지가 있었다. 왕과 늘 가까이 있어 간혹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역사의 중심에 서곤 했다. 승지의 횡포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익히 아는 터다. 임금의 '목구멍(喉)과 혀(舌)'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승정원을 가리켜 후설(喉舌)이라고 했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라는 뜻이다.'디프 스로트(deep throat : 깊은 목구멍)'는 1972년 미국서 제작된 포르노 영화다. 이 영화가 여전히 회자하는 것은 우선 미국 최초의 합법적 포르노여서다. 그럼에도 22개 주에서 상영이 금지되었지만 폭풍 같은 노이즈 마케팅으로 수완 좋은 제작자 제라드 다미아노는 돈벼락을 맞았다. 4만 5천 달러를 투자해 10년 동안 6억 달러를 회수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깊은 목구멍'이 다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이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두 젊은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워터게이트 빌딩 침입 사건을 2년간 끈질기게 취재해 닉슨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것은 내부조력자의 덕이 컸다. 기자에게 지속해서 제보했던 취재원은 익명을 요구했고, 두 기자는 그를 '깊은 목구멍'이라고 불렀다. 그 이후부터 '깊은 목구멍'은 '은밀한 제보자' '내부 고발인'을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깊은 목구멍'이 FBI 부국장 마크 펠트로 밝혀진 건 33년이 지난 2005년이었다.요즘 '목구멍'이 뉴스의 중심에 섰다. 지난 9월 평양 정상회담 때, 리선권 북한 조평통 위원장이 점심 식사 자리에서 기업인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라며 면박을 준 발언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먹는 자리에서 '목구멍' 운운한 것은 우리 정서상 대놓고 욕설을 한 것이다. 여론이 들끓고 있다. 북한에 우호적이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조차 "리선권의 자살골"이라며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을 정도다. 리선권의 '목구멍'을 타고 나온 말이 우리를 기죽이려는 의도라고 하기엔 너무 모욕적이고 무례하다. 우려되는 건, 그 말의 함의가 북한의 본심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01 이영재

[참성단]지연된 정의의 후폭풍

"혼자 있어서 슬프고 초조하다. 울고 싶고 마음이 아프다." 일본과 조국의 법정을 전전하길 21년에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을 받은 이춘식(94) 옹의 비감한 소회다. 배상소송을 함께 했던 징용피해 동료 3명이, 그것도 2명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승소 법정에서 전해 들었다. 승소의 기쁨보다 상실의 비애가 앞섰을 것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격언을 이처럼 실감하는 장면이 또 나올지 의문이다.고 여운택, 신천수 두 강제징용자가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에 피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 1997년 12월이다. 하지만 일본 법원은 이들을 모욕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다는 전제하에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이들의 최종 상고를 기각했다. 두 사람은 또 다른 피해자 고 김규식씨와 이 옹과 함께 2005년 2월 조국의 법원을 찾았다. 일본의 배상을 원했다기 보다는 조국의 법원이 강탈당한 강제징용자의 정의를 인정해주길 바랐던 마음이 컸을 것이다.놀라운 건 대한민국 지방, 고등법원이 일본법원 판결을 인정한 것이다. 이를 대법원이 바로잡았다. 2012년 "일본 판결은 우리 헌법 취지에 어긋나고, 신일본제철은 구일본제철을 승계한 기업"이라며 고법판결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이에 고법이 2013년 신일철주금의 1억원 배상책임을 확정했다. 신일철주금은 즉시 상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시계추는 고법판결을 그대로 확정하는 수순만 남겨둔 채 5년간 멈추었다. 대법원의 잘못은 명백하다. 의혹대로 재판거래 탓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스스로 세운 역사적 정의를 5년간 묻은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그 대가로 정부는 심각한 외교적 후폭풍을 감당하게 됐다. 수상부터 장관까지 일본의 반발은 전면적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거론하며 국제재판소 제소를 거론하고 있다. 대북제재 완화를 놓고 미국과의 갈등설이 나오고, 사드 분쟁 이후 중국과도 어색하다. 북한은 자신들을 향한 남측 정부의 진심을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밥상머리 악담으로 모욕한다. 여기에 한·일 갈등이 추가되는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대법원이 지연한 정의 때문에 우리 운명이 걸린 한반도 외교전선에 대형 악재가 추가됐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31 윤인수

[참성단]10월의 마지막 밤

그때는 몰랐다. 10월은 오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이란 걸. '뜀박질로 왔다가 뜀박질로 떠나는 것이 10월'이라는 이어령의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올 10월은 특히 그랬다. 너무 빨랐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어! 하는 사이에 훅~하고 지나갔다. 조동진의 노래처럼 '여름은 벌써 가버렸나, 거리엔 어느새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다. 10월과 함께 상념도 깊어졌다. 모두 마음이 심란한 탓이다. 어려운 경제, 답 없는 정치, 아니면 거리에 나 뒹구는 낙엽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동잎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가을이 온 줄 알았다'고 쓴 사람은 송강 정철이었다. 외로운 유배지에서 가을을 맞이하는 비참한 심회(心懷)를 이제 알 것 같다.10월이면 이브몽땅의 샹송 '고엽(古葉)'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방탄소년단의 '화양연화 pt.2' 앨범에 수록된 '고엽'이 심금을 울린다. BTS는 노래한다. '저기 저 위태로워 보이는 낙엽은 우리를 보는 것 같아서/손이 닿으면 단숨에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아서/그저 바라만 봤지/가을의 바람과 같이/…/오늘따라 훨씬 더 조용한 밤/가지 위에 달린 낙엽 한 장/부서지네 끝이란 게 보여, 말라가는 고엽/초연해진 마음속의 고요/제발 떨어지지 말아주오/떨어지지 말아줘 바스라지는 고엽'. 젊은이들에게도 10월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이효석은 낙엽을 '꿈의 껍질'이라고 했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우리의 꿈. 그 껍질은 무슨 색이었던가.지난 주말 가을비가 내렸다. 임어당(林語堂)은 '생활의 발견'에서 '봄비는 책 읽기 좋고, 여름비는 바둑 두기에 좋고, 가을비는 오래된 가방이나 서랍을 뒤지기 좋고, 겨울비는 술 마시기에 좋다'고 했다. 가을이 오면 한 해를 보낼 준비를 하란 뜻이다. 오늘 밤은 '10월의 마지막 밤'. 1982년 7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발표되면서 오늘 밤은 언제나 '특별한 밤'이 되었다. 10월. 모두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이룰 수 없는 꿈'만 남긴 채, 10월이 그렇게 떠나가고 있다. 겨울이 오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30 이영재

[참성단]지방자치의 날

30일 17개 시·도지사가 모여 '자치분권 경주선언'을 발표한다. 지방자치의 날인 29일부터 31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제6회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의 주요 이벤트다. 박람회는 전국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의 우수 자치행정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다. 이 자리에서 시·도지사가 일제히 자치분권 강화를 위한 중앙정부의 양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1991년 지방의회 선거를 시작으로 1995년 4대 지방선거로 대한민국 지방자치는 완전하게 부활했지만 제도 자체의 효용은 학계와 정치권에서 여전히 논쟁거리다. 자치분권의 역사적 기반이 뚜렷한 연방제 국가나 봉건제 역사의 국가에서는 지방자치가 활발하다. 중앙 통치체제가 완성되기 전까지 유지됐던 지방 자율의 역사가 자치제도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반면 중앙집권 전통이 유구한 우리 지방자치는 중앙정부 종속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재임 시절 "지방자치는 없고 지방선거만 있다"며 "지방자치는 2할의 자치"라고 권한과 예산 없는 지방자치를 혹평했다.문재인 정부는 지방분권에 호의적이다. 지방분권을 연방제 국가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공언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고치고 행정·입법·재정의 자치권을 명시한 개헌안을 내놓기도 했다. 개헌안은 무산됐지만 자치단체와 자치의회의 요구에 호의적이다. 자치단체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 조정 등 자치재정 확대를, 자치의회는 의회 인사권과 정책보좌관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오늘 지방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한 답변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강화를 지켜보는 여론은 착잡하다. 늘어나는 권한과 재정만큼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독직과 비리가 커지고 지방자치의 고비용 저효율 규모가 더 커질까 해서다. 비리에 연루돼 사법처리되는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너무 많아 헤아리기 힘들다. 무보수 명예직으로 시작한 지방의원들의 보수는 대기업 임금 수준으로 늘었고, 외유성 해외출장은 관행이 됐다.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전임의 정책들을 폐기하는 매몰 비용이 엄청나고, 연임을 위한 선심공약에도 혈세의 낭비가 심각하다.'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학교'라는 말이 맞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 학교는 위기일지 모른다. 지방자치의 권한 강화만큼이나,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등 지방권력의 자질 개혁도 중요하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29 윤인수

[참성단]불 꺼진 다다익선(多多益善)

1985년 11월 15일 국립 현대미술관 과천관 신축 상량식이 열렸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미술 관계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나선형 공간을 계단을 타고 빙 돌아 올라가게 만든 구조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구겐하임을 모방했다" "독창성이 없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김수근이 설계한 부여박물관의 '왜색 논란'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에는 꽤 시끄러웠다.결국 논의 끝에 그 공간에 백남준의 작품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됐다. 이게 '신의 한 수'가 됐다. 88올림픽 개막과 함께 설치된 백남준 비디오아트의 걸작 '다다익선'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름 7.5m 원형에 높이 18.5m, 개천절을 의미하는 1,003개의 모니터 속에는 서울의 풍경과 굿판 등 퍼포먼스 사진과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바이 키플링' 등 위성 프로젝트의 영상을 탑재했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려면 나사형 공간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이게 꼭 우리의 전통 '탑돌이' 의식과 비슷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역시 백남준은 천재였다. 다다익선은 기단부에 10인치 522대, 2단에 25인치 195대와 3단에 20인치 103대, 4단에 14인치 93대, 상륜부에 6인치 TV 60대로 이뤄졌다. 모두 브라운관인 탓에 그동안 중간중간 화면이 꺼져 2003년 전면 교체했다. 그 후에도 2010년 244대, 2012년 79대, 2013년 100대, 2014년 98대, 2015년 320대를 수리하거나 교체했다. 그러다 올 2월 가동이 완전히 중단됐다. 더는 브라운관 TV를 구할 수 없어서다. LCD 모니터로 교체하는 방안과 철거 후 오마주작품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두고 의견 조율 중이나 결론을 내지 못해 여전히 불 꺼진 상태로 있는 중이다.지난 12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 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이 문제를 거론해 다다익선이 또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백남준의 대표작이자 규모 면에서 가장 큰 작품. 외국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다다익선 미술관'으로 더 알려진 것도 그런 이유다. 특히 올해는 작품이 설치된 지 30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하지만 다다익선은 우리의 무관심속에서 8개월 째 먹통이다. 이는 우리 문화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말로만 자랑할 뿐, 정작 고국에서 백남준은 저평가된 예술가로 푸대접을 받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8 이영재

[참성단]최종현 학술원

수원이 배출한 기업인 SK 고 최종현 선대회장은 기업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인재 키우기'라고 보았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만큼 사람이 가장 큰 자원이고, 기업 경쟁력도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1974년 개인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만든 것도 그런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유학생을 선발했다. 그 조건이란 '학비·생활비 무료'였다. 1인당 국민소득 560달러이던 시절, 유학생 1인에게 연간 학비 3천500달러, 생활비 4천달러를 지원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지난 44년 동안 747명의 해외 명문대 박사를 배출한 것을 비롯해 3천700여 명의 장학생을 지원했다. 1973년 후원사를 찾지 못해 폐지 위기에 놓인 TV 프로그램 '장학퀴즈'를 살린 것도 그였다. 최 선대회장은 "청소년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라면 열 사람 중 한 사람만 봐도 무조건 지원하겠다"며 아낌없이 후원했다. 덕분에 장학퀴즈는 국내 최장수 TV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장학퀴즈 500회 특집에서 "장학퀴즈로 벌어들인 돈이 7조원쯤 될 것이다. 기업 홍보 효과 1조~2조원,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교육한 효과가 5조~6조원"이라고 말했다.최 선대회장은 인재 양성에 대한 많은 어록도 남겼다. 1978년 한국고등교육재단 지원으로 유학 가는 학생들에게 "21세기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되고 SK는 세계 100대 기업 안에 들어갈 것이다. 지금은 변방의 후진국이지만 인재양성 100년 계획에 따라 고도의 지식산업사회를 목표로 일등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 말은 현실이 됐다. 고인의 뜻을 기린 '최종현 학술원'이 다음 달 공식 출범한다는 소식이다. 최태원 회장과 SK(주)의 출연 등 1천억원이 바탕이 됐다. 국가의 앞날을 누구보다 더 걱정했던 최 선대회장의 애국심, 자나 깨나 인재 발굴에 골몰했던 뜨거운 열정을 고려한다면 '최종원 학술원' 출범은 사실 늦은 감이 있다. 10년 전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우리에겐 여전히 많은 인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최 선대회장이 타계한 지 20주기다. 고인의 뜻에 힘입어 '최종원 학술원'을 통해 한국의 미래를 이끌 많은 인재들이 육성되길 바란다.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을 묵묵히 수행했던 고인이 유난히 그리운 요즈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5 이영재

[참성단]맥아더 동상 방화

동상을 순례하면 그 나라의 역사를 일별할 수 있다. 동상은 역사와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민족적, 정치적 시선의 변화에 따라 국내외 갈등의 중심에 선 동상이 적지 않다. 프랑스 식민지들은 해방이 되자마자 잔다르크 동상부터 참수해버렸다. 최근에는 뉴질랜드와 호주가 제임스 쿡 선장 동상 훼손을 놓고 이주 국민과 원주민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의 위인이 피해 당사국과 민족에겐 침략의 상징이다.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관통한 우리도 마찬가지다. 일본과는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다. 2011년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이후 일제 피해를 당한 동남아 각국은 물론 유럽과 미국에까지 진출한 소녀상은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고발하는 표상이다. 지난 9월 일본 우익분자가 대만 타이난시의 위안부 동상을 발로 찼다. 국내 여론은 마치 우리 소녀상이 모욕당한 듯 분노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에게 눈엣가시다.박정희 동상을 둘러싼 시비는 업적과 과오가 너무 뚜렷해서다. 이념적, 정파적 시선이 한쪽만 본다. 지난해 박정희 탄생 100년을 맞아 기념재단은 기증받은 그의 동상을 세울 자리를 물색했다. 하지만 광화문은 서울시가, 용산 전쟁기념관과 상암동 박정희기념관은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동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약속으로 지어진 박정희기념관 창고에 들어가 있다. 그의 과오에만 집중하는 세력이 대세인 탓이다. 딸 박근혜가 탄핵당하지 않았으면 그의 동상은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궁금하다.그런데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방화사건은 확정된 역사적 사실을 전제하면 이해하기 힘들다. 인천상륙작전으로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켜 자유 대한민국의 영토를 지켜 낸 맥아더의 업적은 객관적이다. 최근 인천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죽산 조봉암 동상 건립 반대 여론이 일고 있다. 조봉암은 전향한 공산주의자였다. '전향'을 빼고 '공산주의자'만 보는 시선이니 수많은 탈북 전향자를 국민으로 품은 현실과 어긋난다. 마찬가지로 반미단체 회원이라는 이 모 목사가 하필이면 방화시위의 자유까지 지켜 준 맥아더를 표적으로 삼은 건 명백한 오조준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24 윤인수

[참성단]음서(蔭敍)

음서제가 도입된 건 997년 고려 목종 때였다. 관리의 자식이나 친척을 과거시험 없이 관리로 채용하는 게 목적이었다. 초기엔 직위에 제약을 뒀다. 명문가가 아니어도 우국충정이 충만하고, 학문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은, 과거를 통해 등용된 인재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음서제 출신들이 가문의 힘으로 요직을 차지했다. 폐해가 얼마나 심했던지 심지어 5세 아이가 음서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고려는 그러다 망했다.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같은 신진세력들이 음서제의 폐단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공신들과 왕 주변에 서성이던 최측근 신하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음서제 적용 범위를 '공신이나 2품 이상 관의 자(子)·손(孫)·서(壻)·제(弟)·질(姪), 실직(實職) 3품관의 자손으로 제한한다'고 '경국대전'에 명문화시켰다. 그런데 조선도 고려와 같은 길을 걸었다. '한번 금수저는 대역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영원한 금수저'였던 것이다. 이러고도 조선이 500년이 유지됐으니 '기적'이었다.음서제가 출현한 지 1000년이 지난 지금,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 및 고용세습 의혹으로 우리 사회가 또 한 번 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음서제가 사라지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유명 로펌의 경우 정치인, 고위관료 등 유력가의 자식이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다는 '현대판 음서제'가 논란이 된 지 오래다. 대기업 노조의 고용세습도 이미 오래된 관습이었다. 지난 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이 공개한 고용노동부 자료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현재 현대자동차, 금호타이어 등 15개 기업의 단체협약에 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사망 질병 등에 걸렸을 경우 배우자나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조항이 들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청년 백수'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들은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취업절벽' 앞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는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다. 그런데 한쪽에선 귀족노조 고용세습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공공기관 채용과 정규직화 과정에서 '그들만의 검은 거래'가 자행되고 있다니 이 청년들의 탄식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었다. 이 약속은 현대판 음서제를 뿌리 뽑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3 이영재

[참성단]굴업도 수난사

굴업도는 면적이 30만평 정도로 한강이 만든 여의도(약 88만평)보다 작은 섬이다. 해안 길이 12㎞에 가장 높은 덕물산의 해발고도는 122m에 불과하다. 행정구역상 옹진군 덕적면 굴업리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굴압도(屈鴨島)라 했다. 섬의 형세가 물 위에 구부리고 떠있는 오리의 모양과 같다 해서다. 그러나 일제때 '屈業'을 거쳐 '掘業'으로 바뀌었으나 확실한 연유를 남긴 기록은 없다. 다만 일제 초기만 해도 대규모 민어 파시가 열려 수천명이 북적대던 시절, 노동의 의미가 오리의 형상을 대체한 것이 아닌가 싶다.파시가 쇠퇴하고 오랜 세월 뭍에서 잊혀졌던 굴업도는 1994년 이름 석자를 갑자기 세상에 내밀었다. 정부가 굴업도를 핵폐기장으로 선정한 것이다. 반대할 주민이 없던 굴업도 대신 모섬인 덕적도 주민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결국 굴업도 일대 활성단층이 발견되면서 정부가 주장하던 지질 안정성이 무너졌고, 1년도 못돼 지정은 취소됐다. 당시 굴업도를 눈 앞에 둔 서포리 해안에서 주민들이 벌였던 잔치마당에 참석했던 기억은 언제나 흐뭇하다.정부가 물러나자 이번엔 대기업이 굴업도를 세상에 소환했다. CJ그룹 씨앤아이(C&I)레저산업이 2005년 굴업도에 관광호텔·콘도, 골프장, 마리나를 갖춘 오션파크 건립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CJ그룹은 섬 전체 면적의 98%를 사들였지만 역시 지역 환경단체의 반대에 직면했다. 인천시는 섬 훼손을 우려해 골프장을 뺀 개발을 권고했고, CJ그룹은 2014년 골프장 건설 철회 방침을 밝혔다.CJ의 사업이 답보상태에 빠진 요즘 굴업도는 백패킹의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개발에서 소외돼 지질학적 원형이 가장 잘 보전된 굴업도를 백패커들은 한국의 갈라파고스로 부른단다. 주말이면 배낭 하나 메고 굴업도를 찾아 캠핑을 즐기는 백패커가 200명 이상이란다. 그 탓에 굴업도의 목기미 해변, 개머리 초지, 연평산 일대는 해양 쓰레기뿐 아니라 캠핑 쓰레기 범벅이 됐다. 원시의 모습과 별이 아름다운 밤하늘을 간직한 덕분에 쓰레기 세례를 받으니, 정부와 대기업으로부터 섬을 지켜낸 의미가 무색하다.핵폐기장, 오션파크, 쓰레기에 이르기까지 굴업도에는 사람의 욕심에 상처 입은 땅의 역사가 담겨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22 윤인수

[참성단]추억의 인천 미림 극장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전성기였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영화 관람은 유일한 문화생활이었고 일상을 피할 탈출구였다. 남녀노소 영화를 보며 웃고 울었다. '성춘향' '마부' '미워도 다시한번'같은 대박 영화가 나오면 온 나라가 '들썩'였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1960년대 국민 1인당 연간 영화관람 횟수는 평균 5.5회였다. 2016년 4.2회와 비교하면 당시 영화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1990년대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극장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손으로 그린 영화 간판이, 여기저기에 붙어 있던 '만원 사례(滿員謝禮)'가, 명절의 암표상이 추억이 됐다. 인천은 대한민국 극장사(史) 가 그대로 녹아든 곳이다. 한국 최초의 극장 협률사의 전통을 이은 애관극장을 비롯해 문화, 동방, 미림, 오성, 인천, 현대극장 등이 6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함께했다. 그러나 현대화 물결에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애관과 미림극장만 살아남았다.1957년 천막극장으로 시작한 미림은 경영난으로 2004년 문을 닫았다가 지난 2013년 10월 실버극장 '추억극장 미림'으로 재개관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입장료 2천원이면 어르신들은 옛날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었다. 영화만이 아니다. 노인들의 취미, 친목활동 등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으로 지역공동체 친화 극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곳을 찾는 외지인에게서 "내가 사는 곳에도 이런 극장 하나쯤 있었으면…"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림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런 미림극장이 재정문제로 내년 4월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인천시로부터 매년 1억원 정도 받았던 사회적 기업 지원비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추억극장 미림'이 진짜 추억이 될 위기에 처했다.노년층은 여전히 문화생활에 익숙하지 않고 그럴 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버극장은 60, 70년대 고전 영화를 감상할 수 있던 유일한 문화 수단이다. 그 '유일함'이 고작 1억여 원 예산을 지원받지 못해 사라진다면 유서깊은 애관극장을 보유하고 있는 문화도시 인천의 수치다. 미림이 문을 닫는다면 노인은 여전히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홀대받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인천시와 시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미림을 살릴 방안을 꼭 찾길 바란다. 사라진 추억은 손으로 다시 만질 수 없고, 한번 무너진 역사는 복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1 이영재

[참성단]동네 권력 '맘 카페'

"우리 어린이집이 아수라장이 되는데 반나절도 안 걸렸다." 지난 13일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A씨가 근무했던 김포 통진읍 소재 어린이집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A(37)씨는 지난 11일 어린이집 가을 나들이 행사에 참가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회원이 3만명이 넘는다는 지역 커뮤니티 '김포 맘들의 진짜 나눔' 카페에 '아이가 교사에게 안기려고 했지만 교사가 (아이를) 밀쳤다'는 말을 '들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아이의 이모가 쓴 것이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린이집 실명이 공개되면서 항의전화가 쏟아졌다. A씨 신상도 그대로 노출됐다. '신상털이'를 당한 것이다. 수백 개의 댓글과 동조 글이 붙었다. 시민이 고발했다며 경찰까지 찾아왔다. 더구나 아이의 이모가 찾아와 교사 A씨의 무릎을 꿇게 하는 등 인격적으로 모욕을 가하기도 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A씨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네카시즘'은 '네티즌'과 '매카시즘'의 합성어다. 인터넷상에서 익명으로 어떤 이슈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온라인 폭력을 말한다. 네티즌의 일방적인 여론몰이, 마녀사냥과 동의어다. 매카시즘은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매카시 상원의원의 폭로에 따라 어이없는 마녀사냥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다. 요즘 동네 권력이라는 '맘 카페' 회원들의 근거 없는 인신공격은 매카시즘과 너무 유사하다. 익명 속에 숨어 쏘아대는 포화에 누구나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숨을 곳도 없다. 확인도 안 된 "그렇다더라"에 마음 약한 사람은 견디다 못해 목숨을 내놓는다. 지역별로 맘 카페가 없는 곳이 없다. 맘 카페는 원래 지역 소비자운동으로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육아·교육·지역 정보를 공유하는 대형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어마한 '동네 권력'이 된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지역 상권에서 맘 카페의 힘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말한다. 심지어 "찍히면 죽는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끔찍한 마녀사냥도 자행된다. 지난 7월 경기 광주 맘 카페에 올라온 '난폭 운전하는 태권도 학원 차량'도 그런 경우다. 가장 무서운 게 "어디서 들었는데"다. 그러다 문제가 불거지면 "아니면 말고"다. 'A씨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청원에는 벌써 10만여명이 참여했다. A씨는 결혼을 앞두고 있던 예비 신부였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18 이영재

[참성단]이재명 지사의 'SNS 족쇄론'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최근 한 방송에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한때 저의 힘이었는데 지금은 족쇄"라며 "후회스럽다"고 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과의 지난 대선 당내경선 토론 과정을 회고하며 "싸가지가 없었다"고 자책했다. 지난달 초 "페이스북은 저의 가장 큰 방패이자 무기"라던 입장과 사뭇 다르다. 당시 그는 5천명의 '페친'을 향해 악성 조작 왜곡글에 반박 댓글이라도 써주는 '실천하는 동지'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페이스북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이 지사의 핵심 홍보수단이었고, 충성스러운 팔로어들은 그의 표현대로 정적들로부터 그를 보호하는 방패이자 무기였다. 하지만 현재 그를 곤경에 빠트린 진앙 또한 페이스북이다. 김부선씨와는 '가짜 총각'과 '대마 발언'이 증폭돼 자진 신체검증에 이르렀다. '형님 정신병원 강제입원'과 '혜경궁 김씨' 논란은 경찰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대선 경선과정은 친문세력과의 반목으로 이어졌다. 페이스북에 이 모든 논란의 기원이 기록돼 있다. 해명과 부인과 규명은 가능할지라도 '사실'만큼은 지울 수 없다. 누군가 필요할 때마다 재생하고 의도적인 재해석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SNS의 이중성은 너무 극단적이다. 강남스타일을 세계에 퍼트려 싸이를 국내파에서 국제파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구하라는 리벤지 포르노가 SNS에 퍼질까봐 무릎까지 꿇어야 했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은 과거 트위터에서 강조했던 권력의 정당성과 상충되는 외유성 출장이 드러나 정치역정에 오점을 남겼다. 반면 박지원 의원은 부인을 잃은 애통한 심정을 게시해 폭풍 공감을 받았다. 잘 쓰면 축복이고, 아니면 지옥문이 열린다.SNS는 'CIA가 꿈에 그리던 일'이라는 풍자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거주지와 종교적 정치적 견해, 순서대로 정리한 친구 목록,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자신이 찍힌 수백 장의 사진, 현재하고 있는 활동 정보를 공개하고 있어서란다. 더 이상 풍자가 아니다. 모골이 송연한 경고다.정치하는 사람들은 'SNS가 족쇄가 됐다'는 이 지사의 후회를 진지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17 윤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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