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고희 맞은 대한민국 헌법

오늘로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 70주년을 맞았다. 1948년 5·10총선거로 구성된 제헌국회는 7월1일 '대한민국'을 국호로 확정하고, 12일 대한민국 헌법을 성안해 17일 내외에 공포했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하고 정부를 구성한 뒤 8월15일 대한민국 수립을 선포했다.링컨은 "국가는 거기에 거주하는 국민의 것"이라고 했다. 무엇으로 이를 확인하는가. 헌법이다. 헌법은 자유로운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장전이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헌법 10조~39조만 온전히 작동해도 국민은 존엄과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국민 개개인이 헌법을 숙지하고 생활의 준칙으로 삼으면 수많은 사회적 갈등이 해소될 것이다.가령 대한항공 조씨 일가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는 헌법 11조2항의 정신을 존중했다면, 아랫사람들을 그리 함부로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씨 일가 뿐인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정신대로라면 특권의식에 기생한 갑질문화가 발붙일 자리는 없다. 갑질문화는 국민의식이 헌법정신에 못미친다는 증거다. 법 앞의 평등이 돈 앞에서 깨지는 사회는 천박하다.최근 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는 최저임금 논란도 헌법에 기초하고 있다. 정부는 근로자의 고용증진과 적정임금 보장으로 최저임금제 시행(헌법 32조1항) 의무를 수행했지만, 편의점 사장들을 비롯한 소상공인들은 생존권 위기를 호소하며 '헌법에 입각한 국민저항권'으로 맞서고 있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바람에 죽게 생겼으니, 최저임금에 불복하겠다는 얘기다.최저임금 현상유지로 인간적 생존을 유지해달라는 편의점 사장들의 헌법적 권리와, 대폭인상으로 적정임금을 보장하라는 근로자의 헌법상 권리가 충돌한 것이다. 결국 최저임금법의 합리적 운용을 통해 양측의 헌법적, 헌법상 권리를 조화시켜야 할 정부만 사면초가 신세가 됐다.물론 소상공인들의 국민저항권이 헌법에 부합할지는 따져 볼 대목이 많다. 다만 편의점 사장님은 절망하고 아르바이트생은 불안하다니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결과가 '국민의 행복추구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선의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이해가 엇갈리는 모든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려는 정부의 헌법상 의무수행은 매우 섬세해야 한다는 교훈은 남았다. 제정 70주년을 맞는 헌법의 정의를 곱씹어봐야 할 시절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7-16 윤인수

[참성단]여의도 포청천 문희상

8선 이만섭 전 의원은 14대, 16대 두 번 국회의장을 지냈다. 그는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지는 법안 처리를 무척 싫어했다. 14대 의장 때 통합선거법 등의 날치기 처리를 위한 본회의 사회를 거부하면서 김영삼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다. 16대 땐 새천년민주당이 국회 원내 교섭단체의 구성 요건을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상임위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키자 "날치기는 안 된다"며 법안의 본회의 처리를 끝내 거부했다. 그는 국회가 정부가 보내온 법을 통과시키기만 하는 '통법부(通法府)'가 돼선 안 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진 국회의장이었다. 3공화국 이후 권력의 양지에서만 지냈다는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의장 시절 그에 대한 평가가 후한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문희상(경기 의정부갑)의원이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경기도 출신 국회의장은 1·2대 신익희 의장 이후 64년 만이다. 문 의장은 여야를 넘나드는 폭넓은 인맥과 특유의 친화력, 여기에 청와대에 대한 영향력도 상당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국회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지금, 국회 기능을 살리는데 나름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문 의장은 별명이 많다. 북송 시절 명판관 포증(包拯)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판관 포청천'의 주인공과 닮았고, 균형 잡힌 일처리를 한다고 해서 '여의도 포청천'이란 별명이 붙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얻은 '개작두', 외모 덕분에 '겉은 장비 속은 조조' '웃는 돼지' 등 다양한 별명도 갖고 있다. 문 의장은 우락부락한 외모와 달리 '할 말은 하고 풍류도 아는, 여의도에 얼마 남지 않은 정치인'이다.최근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의회주의자’ 문희상이 국회의장이 돼서 다행이다. 의장 수락연설에서 “첫째도 협치, 둘째도 협치, 셋째도 협치”라고 말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힘으로 야당을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린다.정치인은 이해와 현실을 좇고, 정치가는 시대와 역사를 읽는다고 한다. 국회의장이란 자리는 국회 의원이 국민을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자리다. 권력을 쳐다보지 말고 늘 국민의 편에 서서 의회민주주의 전통을 지키는 국회의장이 되길 바란다. 실제 '여의도 포청천'이 돼서 퇴임 후에도 "문희상은 '현실 정치인'이 아닌 '시대의 정치가' 였다"는 평가가 내려지길 기대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15 이영재

[참성단]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2018

세계 3대 영화제로 베니스, 칸, 베를린 영화제를 꼽는다. 각자 색깔과 특성이 다르다. 칸이 작가주의 작품을 선호한다면, 베니스 영화제는 예술적인 작품을, 베를린 영화제는 철학적이고 실험적이며 진보적인 영화를 선호한다. 이들 영화제는 자신들의 색을 갖기 위해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계적인 영화제가 되려면 이들처럼 연륜이 쌓여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정체성 논란을 빚으며 영화제 존폐를 논할 정도의 우여곡절도 겪어야 한다. 그러면 영화제에 나름의 고유 색깔이 입혀진다.부천 판타스틱 영화제(BIFAN)가 어제 개막했다. 22회째다. 역대 BIFAN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으라면 1회 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킹덤'일 것이다. 이 공포 영화는 BIFAN을 다른 영화제와는 분명히 다른, 특별하게 뭔가가 있는 영화제로 각인시킨 일등공신이었다. 이 영화 덕분에 BIFAN은 장르영화제 마니아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아왔다. 표현의 억압과 금기에 도전하는 작품들을 여과 없이 소개하면서, 다양성을 겸비한 독자적인 영화제로의 위치를 굳건히 할 수 있었다. 너무하다 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되는 성과 폭력, 타락한 사회를 시원하게 조롱하는 '그들만의 향연'이었다. 반대로 장르영화제가 갖는 한계는 일반인들의 진입을 막는 벽이었고, 그것은 주최 측에게 늘 커다란 고민이었을 것이다.20회를 기점으로 BIFAN은 큰 변화를 맞았다. 애초 영화제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마니아부터 일반 관객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제로 탈바꿈한 것이다. 당시 '코리안 판타스틱' 경쟁 부문을 신설하고, 가족을 위한 '패밀리 존'을 부활시킨 것도 그런 이유다.올 BIFAN엔 53개국에서 290편의 작품을 출품했다. 개막작에 오성윤·이춘백 감독의 애니메이션 '언더 독', 폐막작이 인도영화 '시크릿 슈퍼스타'인 것은 나름 의미심장하다. 그렇다고 호러 영화가 빠진 것은 아니다. 이름만으로도 오싹한 웨스 크레이븐, 조지 A 로메로, 토브 후퍼 감독의 특별전 '3X3 EYES: 호러 거장, 3인의 시선'은 영화제 고유의 색깔을 지키겠다는 주최 측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특별전만으로도 이번 폭염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여건에도 영화제를 이만큼 성장시킨 BIFAN 집행위원회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부산이 부럽지 않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12 이영재

[참성단]볼음도 은행나무의 딱한 사연

가로수로 친근한 은행나무는 주변에 지천이라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별칭이 무색할 지경이다. 하지만 계문강목과속종(界門綱目科屬種)식 생물분류에 따르면 은행나무는 '식물계·은행나무문·은행나무강·은행나무목·은행나무과·은행나무속·은행나무'다. 공룡이 멸종된 6천600만년 전 신생대 이후부터 한 조상과 한 후손만으로 현재의 자태를 이어왔으니 경이로운 존재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은행나무를 멸종위기종 목록에 올린 것도 스스로 번식 자생하는 야생군락지를 찾기 힘들어서다.계통상 다른 식물들과 섞이지 않는 고고함 때문일까, 은행나무는 수령이 길다. 당연히 사람과의 영적교감이 담긴 설화도 많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수령은 1100~1500여년으로 추정되는데 멀게는 신라시대부터 한자리를 지킨 셈이니, 원래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였다는 전설이 그럴듯하다. 수령 700년의 안동 용계 은행나무는 한일합방 등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우는 신목으로 유명한데, 다시 우는 일이 없어야겠다.신묘한 자태와 달리 살구를 닮은 은행열매는 똥냄새에 버금가는 악취로 악명이 높다. 성균관대 은행나무는 열매 악취로 성균관 유생들의 공부를 방해해 왕에게 혼쭐이 났을 정도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가을이면 악취민원을 일으키는 건, 숫나무만 심어야 하는데 암나무가 섞여든 탓이다. 요즘은 유전자 기술로 묘목단계에서 암수구별이 가능해졌다니 다행이다. 주의할 건 떨어진 열매를 줍는 건 괜찮지만, 나무를 털어 열매를 따면 범죄다. 은행털이는 안된다.자웅이주의 특성상 은행나무는 암수 부부나무가 있어야 종자를 맺는다. 그런데 천연기념물 304호 강화 볼음도 은행나무가 홍수로 아내 나무와 헤어진지 800년, 이제는 남북 이산나무라(경인일보 7월 10일자 1판1면)니 딱하다. 볼음도 남편 나무의 짝으로 알려진 북한 천연기념물 165호 연안 은행나무는 800년 불임의 세월을 어떻게 견뎠을까. 이제라도 인공 수분(受粉)을 통해 부부의 연을 이어주자는 발상은 남북교류의 상징적 행사로 안성맞춤이다. 명맥이 끊어진 부부나무 풍어제도 복원되면 금상첨화다.그런데 남북,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행보가 오리무중이다. 북한 비핵화 시간표가 안나오면서 한반도정세가 꼬이는 형국이다. 볼음도 은행나무와 연안 은행나무의 상봉 시기가 궁금해진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7-11 윤인수

[참성단]鄭基烈의 歸去來辭

도연명이 펑쩌현 현령 자리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귀거래사'로 남길 때, 그의 나이 41세였다. 고향으로 간다고 귀거래사를 '안빈낙도(安貧樂道)'라고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내용은 결연하다. '전원(고향)이 장차 황폐해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라는 첫 구절은 물론이고, '남녘의 거친 들판을 일구며/ 전원으로 돌아가 자연에 묻히리라'는 대목에선 변화무쌍한 자연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했던 도연명의 확고한 의지가 엿보인다. 귀거래사는 세속과의 결연한 결별선언서이기도 하다.'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도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는 '법화경'에 있는 가르침으로 세상의 무상함을 이른 말이다. 아무리 평탄한 삶을 산다 해도 인간은 평생을 통해 한두 번의 귀거래사를 읊조리게 마련이라는 뜻도 된다. 조순 전 부총리는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이란 귀거래사를 남겼다. '일은 사람이 꾀하지만, 그 일이 되고 안 되고는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고 읽히나 '최선을 다한 후에는 그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뜻에 더 가깝다.물러날 때 소회가 없을 수 없다. 하물며 출세의 정상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라면 퇴임의 느낌은 남다를 것이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인생,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고 생각했던 그 길을 접는 퇴임의 변이 사람에 따라, 살아온 인생에 따라 무지개처럼 다양한 빛깔을 갖는 것은 그래서다.지난달 30일로 임기를 마치고 야인으로 돌아간 제9대 경기도의회 정기열 의장이 9일 주변인들에게 퇴임 인사 겸 새 출발을 알리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는 문자를 통해 "7월 2일부터 10년 전 다녔던 자동차회사 안양 동안지점 영업과장으로 복직해 카마스터로 일을 시작했다"며 "앞으로 정치인이 아닌 직장인으로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지역주민과 소통하고 직장인으로서 또다른 꿈을 향해 자동차를 팔면서 꿈을 이루어 가려고 한다"는 귀거래사를 남겼다. 정치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도의회 의장까지 지낸이가 아무리 옛 직업이라 해도 카 마스터로 돌아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1971년생이니 그의 나이 48세, 정치인으로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나이다. 그래서 그의 문자 속엔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뜻이 담겨 있는 듯해 애틋한 느낌마저 든다. 거친 재야에서도 열심히 뛰어다닐 그의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10 이영재

[참성단]김세영의 대기록과 한국 여자골프

한국 여자 프로골프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 '빨간 바지의 마법사' 김세영(25)이 9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사상 72홀 역대 최저타와 최다 언더파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날 김세영의 LPGA 투어 손베리 크리크 클래식 최종 우승기록은 31언더파 257타. 최다 언더파 기록은 안니카 소렌스탐과 자신의 공동기록이던 27언더파를 넘어선 것으로, 남자 투어인 미국프로골프(PGA) 어니 엘스의 기록과 동률이다. 여성으로는 최초로 30언더파를 넘겼으니 좀처럼 깨지기 힘든 기록이다.이제 LPGA는 한국 여성 프로골퍼가 지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만 출발은 초라했다. 1950년 출범한 LPGA투어에서 한국인 첫 우승은 1988년 스탠더드레지스터 대회의 구옥희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나 1998년 혜성처럼 박세리가 등장해 2개의 메이저대회를 포함해 4승을 올리면서 한국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이후 박세리키즈들의 맹활약으로 2014년 이후에는 한해 30여개의 LPGA투어 대회중 절반 이상을 한국과 한국계가 우승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뿐만 아니라 박세리, 박인비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박인비는 커리어그랜드슬램을, 김세영은 LPGA 한국 선수 통산 203승 경기에서 역대 최저타와 최다 언더파 기록을 세웠으니 LPGA는 이제 한국 여성골퍼의 안방무대나 다름없고, 선수들이 상금으로 챙기는 외화도 만만치 않다.박세리의 1998년 US오픈 맨발의 투혼은 당시 IMF 우울증에 시달리던 국민들에게 위기극복의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까만 종아리 밑으로 드러난 새하얀 맨발이 양희은의 상록수와 함께 방영될 때마다 그녀의 투혼이 국민들의 가슴으로 전이됐다. 박인비는 새하얀 그 맨발을 보고 골프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박세리키즈의 탄생이다. 박세리키즈의 막내격인 김세영의 대기록도 경기침체로 한껏 위축된 우리 사회를 위로하기에 충분하다.분명한 것은 박세리, 박인비, 김세영의 대기록도 착실한 한걸음이 누적된 결과라는 점이다. 골프는 무수한 반복을 통해 자신의 스윙을 만들어야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종목이다. 대선수일수록 구도자의 심정으로 연습에 매진한다. 한걸음 한걸음의 축적이 위대한 결과를 만든다. 조급증에 걸린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덕목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7-09 윤인수

[참성단]SF영화가 경고하는 저출산

요즘 마거릿 애트우드의 동명 소설을 드라마화한 '시녀이야기'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 30년 전 출간된 소설이 지난해 아마존이 집계한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 1위, 드라마는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69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시리즈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여우주연상 등 주요 5개 부문을 수상한 관심작이다.내용은 이렇다. 배경은 미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은 '길리어드'. 전쟁과 환경오염, 각종 성질환으로 출생률이 급격히 감소하자 여성들은 통제와 감시 속에서 가임여부에 따라 여러 계급으로 분류된다. 임신 가능한 여성들은 빨간색 드레스에 하얀 베일을 쓴 '시녀'가 돼 아이를 낳는 데만 집중한다. 정해진 기간 내에 아이를 낳지 못하면 식민지로 추방된다.'시녀이야기'를 보면서 공포감이 엄습한 것은 오래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현실로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임신 능력을 상실하여 모든 사람이 더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2027년을 배경으로 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을 보았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브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같이 암울한 미래를 다룬 SF 영화에는 감독이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아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인조인간이 출현하는데 이는 출생률 감소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대통령 직속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가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올해 출산율이 1명 아래로 떨어지고, 2022년 이전에 출산 아동이 20만명 대로 추락한다는 내용이다. 올해 출산 아동은 지난해(35만8천명)보다 적은 32만명대로, 이 예상이 맞는다면 한국은 지구에서 유일한 출산율 0명대 국가가 된다. 어쩌면 그리 오래지 않아 우리 주변에서 '칠드런 오브 맨'처럼 아기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현실과 마주칠지 모른다.통계에 놀라서인지 문재인정부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아이 돌보미 지원 대상 확대, 임금 삭감 없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배우자 유급출산휴가 확대 등 예전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아 예상대로 '무감동'이다. 예산을 9천억원 늘렸다지만 이 정도로 저출산을 막으려 한다면 우물에서 숭늉찾는 격이다. 저출산은 국가 존폐와 직결된다.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는 단지 돈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08 이영재

[참성단]GE와 삼성전자

지난달 21일 제너럴 일렉트릭(GE)이 다우지수 30대 구성 종목에서 제외됐다. GE는 다우지수 출범 때 포함된 종목 중 하나였다. 한때 잠시 다우지수를 떠난 적도 있으나 1907년 다시 편입돼 111년 동안 자리를 지켜왔다. GE의 다우지수 제외는 미국 증시에 큰 충격을 주었다. 말이 제외지 사실상 쫓겨났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GE 주가는 다우지수가 32% 상승한 데 비해 46% 하락했다. 그 기간 시가 총액은 다우지수 퇴출 수준인 1천60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가 가정에 공급되고 전구와 라디오, TV, 냉장고 등 각종 전기제품은 인간의 삶을 상상 이상으로 바꿔놓았다. 제트엔진으로 전 세계가 일일생활권에 들어갔고, 엑스레이로 인간의 생명은 연장됐다. 이는 모두 GE가 기술을 개발했거나 상용화 해 가능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GE는 한때 전 세계 산업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경영 교과서'라 할 정도로 미국 최우량 기업의 상징이자 황제였다. 하지만 GE는 급변하는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블룸버그는 "GE의 찬란했던 역사가 끝날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황제 기업'이 그저 그런 '보통기업'으로 전락한 것이다.황제주 삼성전자가 굴욕의 시간을 맞고 있다. 지난 4월 25일 50대1 액면분할 이후 주가가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어서다. 5월 4일 액면 분할 후 첫 거래를 5만3천원으로 시작한 주가는 이제 4만5천원 붕괴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뿐이 아니다. 공매도와는 거리가 멀었던 주식은 액면분할 후 쏟아지는 공매도 물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삼성전자가 공매도의 표적이 되다니,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삼성전자 주가하락 원인을 실적악화, 미·중간 무역전쟁, 중국의 반도체 추격으로 꼽지만, 정부의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매도 압박'을 꼽는 전문가들도 많다. 실제 지난달 30일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삼성전자 주식 2천700만주를 매각하자 주가가 3.51% 급락해 처음으로 5만원선이 무너졌다. 손해를 본 개미투자자들은 '황제주에서 국민주로, 국민주에서 국민 잡주로 떨어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외국인이 삼성전자를 연일 팔아치우는 지금, 삼성전자는 황제주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이 굴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황제기업 GE의 다우 퇴출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05 이영재

[참성단]일본관중의 청소매너와 욱일기

일본인의 청소매너가 러시아 월드컵에서 화제다. 일본 응원단이 경기 후 관중석을 깔끔하게 청소하는 장면에 세계가 감동한 것이다. 응원단 뿐 아니다. 일본 대표팀도 사용했던 경기장 벤치나 라커룸을 깨끗하게 치운 뒤 "감사합니다"는 메모까지 남겼단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부터 이어 온 청소매너라니 대단하다.덕분에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페어플레이 점수로 16강에 오르기 위해 폴란드에 지고 있는데도 산책축구로 일관했던 무개념 스포츠정신에 대한 비판도 쏙 들어갔다. 영국 BBC는 "일본이 16강에서 꼭 지길 바란다"고 대놓고 멸시했다. 하지만 벨기에전 직후 영국 일간지 더선은 "일본 관중이 경기장의 승리자"라며 찬사를 보냈다.월드컵 청소매너와 관련해 일본의 '메이와쿠(迷惑) 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본래의 뜻과는 상관없이 '민폐'를 뜻하는데, 절대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일본인의 의식을 일컫는다. 한번이라도 일본을 방문한 사람들은 깨끗한 거리에 놀라고 좀처럼 화내는 법이 없는 일본인의 미소에 감탄한다. 일본의 국격이 메이와쿠 문화에서 비롯된다는 기행문은 헤아리기 힘들다.하지만 메이와쿠 문화는 늘 의심받는다. 일본 주류사회가 주변국에 끼치는 역사적 민폐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고 점령지에서 저지른 만행을 부인하는 일본은, 일제 피해국 국민 입장에서는 역사적 철면피나 다름없다. 지진과 쓰나미 등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일본인이 보여주는 질서있는 대처는 메이와쿠 문화의 표본으로 칭송되지만, 그런 일본인이 일제 시절엔 관동대지진의 희생양으로 조선인을 학살했고 중국 난징시민들을 짐승처럼 사냥했었다. 메이와쿠는 일본인 끼리의 내국용 문화이다.그래서 서구 언론은 일본관중의 청소매너에 감동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일제 피해국들은 일본 관중이 휘두르는 욱일기에 경기를 일으킨다. 청소하는 일본인이 일본의 다테마에(建前·겉모습)라면, 욱일기를 흔드는 일본인은 일본의 혼네(本音·본심)로 보인다. 경기장을 일사불란하게 청소하는 일본인의 모습에서 메이와쿠 문화 속에 잔재한 일제 전체주의의 잔향을 의심하면 너무 예민한 건가./윤인수 논설위원

2018-07-04 윤인수

[참성단]황해문화 통권 100호

인천서 발간되는 '황해문화'가 오는 9월 (가을호) 통권 100호를 맞는다. 1년에 4번 발행하는 계간지고, 그동안 단 한 번의 결호도 없었으니 꽉 찬 25년, 사반세기를 달려온 셈이다. 아직 출간도 안 된 100호가 새삼 주목을 받는 것은 지난달 29·30일 인하대학교 정석학술정보관에서 열린 '황해문화 통권 100호 발간 기념 국제 심포지엄'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를 다룬 심포지엄 주제가 늘 한발 앞서 우리 사회의 담론을 제시했던 잡지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황해문화의 저력은 또 돋보였다.대일 굴욕 외교의 결과로 인천이 개항한 것은 1883년이었다. 그로부터 110년 후인 1993년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가슴 서늘한 슬로건을 내 건 황해문화가 인천에서 태어났다. '창작과 비평' 같은 담론의 장이 인천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시작이었다. 왜 그게 인천이었는지는 지금도 운명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지만, 어찌 됐건 지역 문화를 손에 쥐면서 전국을 아우르는 인문교양 계간지가 탄생해 마침내 100호 발간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생각만 해도 경이로울 뿐이다.지금 인천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인천사랑'이다. 산에 나무를 심듯 마음 속에 인천에 뿌리를 내리고 살겠다는 의식을 심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해문화의 통권 100호는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흔히들 말하곤 한다. 인천은 특수한 운명을 타고난 항도라고. 하긴 그렇다. 모든 게 인천으로부터 시작했다. 전기, 기차, 통신, 등대, 짜장면, 갑문, 천일염전 그리고 야구 등등. 숙명이라면 이제 인천은 황해의 중심 항구로서 모든 인종과 어깨를 겨루고 함께 살아야 하는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인천시는 이런 문화의 다양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교향곡과 같은 조화로운 하모니를 창조해야 한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이 최강국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인천 시민의 자존심을 지키고, 인천 문화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풀무의 바람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황해문화에 큰 기대를 거는 것도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그 '힘' 때문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인천이 갖고 있는 문화의 다양성이 문명의 자산으로 전환되는데 황해문화의 역할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황해문화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좌고우면하지 말고 계속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03 이영재

[참성단]무미건조한 이· 취임식

지난해 1월 20일 아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가 백악관으로 오바마 미 대통령 부부를 방문했다. 이날 국회의사당에서 열리는 대통령 취임식에 함께 동행하기 위해서다. 오바마는 백악관을 떠나기전 집무실 책상에 신임 대통령에게 편지를 남긴다. 이후 국회의사당에서 이임 대통령을 비롯한 생존한 전직 대통령 부부 모두가 참석한 가운데 취임식이 성대하게 진행된다.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는 트럼프 대통령 부부의 전송을 받으며 국회의사당을 떠난다. 트럼프는 백악관 집무실로 향해 오바마가 남긴 편지를 읽는 것으로 임기를 시작한다.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정당과 이념을 초월해 영속하는 하나의 미국을 보여주는 성대한 의식이다. 트럼프 지지자는 취임식장에서 환호하고 그를 반대하는 진보시민들은 격렬한 시위로 저항하지만, 그들을 대표하는 전직 대통령들과 의회의 주요 정당인사들은 빠짐없이 참석해 취임연설을 경청한다. 트럼프를 향한 거리의 찬반 의견과는 별개로, 역대 대통령들의 직무수행으로 성취한 미국의 가치에 모든 정치인이 예의를 표하는 것이다.오바마는 트럼프에게 남긴 편지에서 "우리는 일시적인 대통령직을 수행할 뿐"이라면서 "법의 지배나 삼권분립, 법아래 평등, 자유의 권리 등 민주주의 제도의 수호자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공화당의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비판자들 때문에 낙담하거나 항로를 벗어나지 말라"며 "당신의 성공이 곧 우리나라의 성공이며 난 당신을 지지한다"는 편지를 남겼다. 당파를 떠나 미국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복무하는 대통령의 직분을 공유하고 성공을 바라는 전임의 덕담은 신임 대통령이 미국 역사의 일원임을 각성시키기에 충분하다.지난 1일 우중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간소하게 취임식을 가졌다. 지난달 29일 남경필 전 도지사는 도청 실국을 돌며 인사하고 도의회 정례회 참석으로 퇴임식을 대신했다. 치열하게 격돌했던 지난 선거양상을 감안해도, 도정을 인수인계하는 의식과 의전의 부재는 아쉽다. 전임의 노고를 위로하는 신임의 배려와, 신임의 출정을 축하하는 전임의 덕담이 오고가는 과정이 의식과 의전으로 표현되면 도민들은 정파를 초월한 도정의 영속성, 안정성에 안도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물론이요 경기도 또한 전승하고 공유해야 할 가치있는 공동체 아닌가./윤인수 논설위원

2018-07-02 윤인수

[참성단]태풍 '쁘라삐룬'

태풍에 이름이 붙은 건 1953년부터였다. 그 전에는 번호를 사용했다. 더 그 이전 우리 조상들은 바람의 세기와 형태로 구분을 지었다. 삼국사기에는 바람을 '풍' '대풍' '폭풍'으로, 바람의 세기는 '나무가 부러졌다' '기왓장이 날았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고려사에는 바람을 12가지로 세분화해 기록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바람으로 인한 피해 기사 150여 건이 등장한다. 1999년까지 태풍 이름은 미국 태풍 합동경보센터가 정했다. 처음엔 온순하고 조용해지라는 희망으로 여성의 이름을 따서 썼는데 1978년 여성단체들이 반발하면서 남녀 이름을 번갈아 사용했다. 2000년부터 태풍의 영향권에 있는 우리나라, 중국, 북한, 라오스 등 14개국이 국가별로 10개씩 제출한 태풍 이름 140개를 28개씩 5개 조로 나눠 순서대로 사용하고 있다.한반도를 지나간 태풍 가운데 우리 기억에 남는 건 1959년 9월 '사라'일 것이다. 아름다운 이름과 달리 사라의 위력에 온 국민이 혼비백산했다. 849명이 사망하고 37만3천45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002년 8월 31일 단 하루 만에 강릉지방에 870.5㎜의 비를 쏟아 부은 '루사'는 5조4천600억원대의 재산 피해를 남겼다. 그 이듬해 9월 남해안에 상륙한 '매미'는 중심 기압 950헥토파스칼, 순간 최대 풍속 초속 60m로 '사라'의 기록을 모두 갈아 치웠다. 태풍은 초여름이란 고정관념을 깨고 가을에, 그것도 경상도 내륙으로 상륙해 피해가 더 컸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 공전(工典) 천택(川澤) 편에서 "강하(江河)의 물가가 해마다 물에 부딪혀 파괴되어 백성들의 커다란 근심거리가 되는 것은, 제방을 만들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안정하게 하여 주어야 한다"며 태풍과 홍수 피해 예방을 강조했다. 매년 겪는 물난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미리 제방을 쌓아 대비해 백성의 근심을 덜어 주는 것이야말로 지방관들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태국어로 '비의 신'을 의미하는 7호 태풍 '쁘라삐룬'이 접근하고 있다. 이번 태풍은 바람보다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어제 경기도청 재난상황실에서 취임식을 하고 첫 업무로 태풍 대비를 위한 재난안전 대책회의를 가졌다. 잘한 일이다. 비에 취약한 곳을 찾아 미리 예방해 인명 피해가 없도록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01 이영재

[참성단]축구와 도박사

도박사의 눈은 매처럼 예리하다. 감정에 휘둘리는 법이란 없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의 축구 도박사들은 더욱 그렇다. 특히 축구 승패와 관련한 그들의 예측은 논리와 경험이 바탕이 돼 신중하고, 그래서 적중률도 높다. 잘못된 예측은 파산을 의미한다. 유럽 최대 스포츠 베팅 사이트 bwin은 이번 F조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의 승리에 1.2배를 책정했다. 반면 한국이 승리할 경우 배당은 12.5배였다. 1만원을 베팅하면 독일이 승리할 경우 2천원, 한국이 이길 경우는 11만5천원을 받는다는 얘기다. 영국 최대 스포츠 베팅사이트 베트 365와 레드 브룩스는 한술 더 떴다. 한국의 2대0 승리엔 80대1, 독일의 7대0으로 이기는 경우 66대1로 배당을 책정했다. 모두 불가능한 점수라는 뜻이지만, 한국이 2대0으로 이기는 것보다 독일이 7대0으로 이길 확률을 더 높게 본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에는 징크스라는 게 있다. 월드컵 축구도 마찬가지다. 월드컵 '우승팀은 그다음 월드컵의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다'는 게 그것이다. 이른바 '우승팀 징크스'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팀 프랑스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1무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우승팀 이탈리아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 2무 1패로, 또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승팀 스페인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1승 2패로 조별리그서 탈락했다. 예리한 도박사들이 이런 징크스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세계 축구에는 두 종류가 있다. 독일 축구와 그 외 나라의 축구'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지역 예선 10전 전승을 기록했던 독일 만큼은 징크스를 피해갈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스웨덴, 멕시코와의 두 경기에서 최악의 플레이를 펼쳤던 한국축구가 마지막 경기에서 세계 랭킹 1위 독일을 2대 0으로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1966년 영국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이기고 8강에 진출한 것을 뛰어넘는 대이변이다. '역시 공은 둥글다'는 게 다시 입증됐다. 경인일보 인터넷판에는 '손흥민·조현우·김영권, 눈물씻어낸 드라마 주인공'이라는 제목을 달아 선수들의 투혼에 찬사를 보냈다. 잘 싸웠다! 한국 축구. 蛇足-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우리 국민 모두 한국의 2대0 승리에 1만원씩 걸었다면, 오랜 역사의 베트 365와 레드 브룩스는 이번에 파산했을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6-28 이영재

[참성단]법대로 가는 '악연'

법원 송사에 휘말려 본 사람들은 살면서 절대 법원신세 지면 안된다는 것을 안다. 송사에 돈과 시간은 물론 인생까지 잃는 경우가 허다해서다. 홧김에 제기한 이혼소송이 부부를 원수로 만들기 일쑤라 도입한게 이혼숙려제도다. 법대로 하기 전에 화를 가라앉히라는 배려다. '법대로 하자'는 말은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라는 선언과 같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 실제로는 억울한 일을 무수히 참아낸 사람이기 십상이다. 법에 의지하는 일이 험하고 멀다보니 주먹으로 풀려다 법신세를 지는 사람도 허다하고.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과 배우 김부선씨, 바른미래당 김영환 전 경기도지사후보가 험난한 법적 공방에 돌입했다. 이재명 캠프 가짜뉴스대책단이 26일 '김 전후보가 지난 지방선거 도중 이 당선인과 김씨의 '옥수동 밀회'를 주장한 것은 명백한 거짓'이라는 요지의 해명과 함께 김 전후보를 허위사실공표죄로, 김 씨를 공동정범으로 고발했다. 앞서 바른미래당이 김 씨와의 스캔들을 부인했다는 이유로 이 후보를 역시 허위사실공표죄로 고발했으니, 법대로 가리고 밝히지 않고는 못배길 사안이 됐다.양측이 법을 통해 가리자는 진실의 주제는 다르다. 이 당선인측은 김 전후보가 주장한 밀회의 시기에 관련해 김 씨와 이 당선인의 동선과 기상상황을 제시하며, '옥수동 밀회'는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이에대해 김씨는 "날짜를 헷갈렸다고 있었던 일이 없어지지는 않는다"며 핵심은 옥수동 밀회가 아니라 자신과 이 당선인 관계의 진실여부임을 강조하고 있다. 경찰·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심리가 어떻게 전개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인연의 성격에 대해 서로 주장이 다르지만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오늘 같은 처지에 설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희곡 '자에는 자로(measure for measure)'에서 "판사의 법복도 결코 자비의 절반만큼도 위대하지 않다"고 했다. 법으로 실현된 정의도 인간적 용서만 못한 법이다. 이 당선인과 김 씨는 서로에게 용서할 수 없는 악연이 됐다. 법정은 결론을 내리겠지만 판결로 악연이 끝날지는 지켜볼 일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6-27 윤인수

[참성단]JP 국민훈장 추서 논란

훈장제도는 12세기 십자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수십만 명의 십자군을 구분하기 위해서 사용한 표장(標章)이 그 시작이었다. 기사단 특성에 따라 군장의 모양과 색깔을 달리했고 십자가를 독특하게 디자인한 표장을 옷에 달았다. 전쟁 후에도 표장은 국가 또는 왕에 충성을 바친 사람에게 수여하는 명예의 상징이 됐다. 그게 훈장으로 발전했다는 게 정설이다.우리나라 최고의 훈장은 무궁화 대훈장으로 대통령과 그 배우자가 받는다. 그 다음이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산업훈장, 문화훈장, 체육훈장, 과학기술훈장 순으로 훈장 종류만도 11개에 이른다. 무궁화 대훈장을 빼고 각 훈장마다 5등급이 있어 훈장 수는 모두 51개나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때 무궁화 대훈장을 받았다. 단 하루도 대통령직을 수행하지 않고 훈장을 받는 것이 모순이라는 여론이 일자,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직전 이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이 역시 셀프 수여라고 해서 잡음이 일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퇴임 직전인 2013년 2월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이틀 뒤인 2013년 2월에 각각 셀프 수여해 비난에 직면했었다.훈장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었다. 정부는 지난 2006년 개정된 상훈법에 따라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의 서훈을 모두 취소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공로로 받은 태극무공훈장은 물론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등 10여 개 훈장도 포함됐다."상과 벌이 모든 사람들이 공인하는 공과 죄에 따르지 않고 한 개인의 기쁨과 노여움에서 결정된다면, 상을 주어도 권장되지 못하고 벌을 준다 해도 징계하지 못할 것이다. 상과 벌은 공적인 데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정도전은 삼봉집 14권 조선경국전 정전(政典) 상벌(賞罰)에 상과 벌은 주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고 적었다. 조선을 건국하며 상이 제 가치를 갖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정부가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여전히 논란이 뜨겁다. 정치권은 DJP 연합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내 국가적으로 예우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가 5·16 쿠데타 주역이라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도 높다. 만일 생전에 이 상을 주었다면 JP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성격상 분명 고사(固辭)했을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6-26 이영재

[참성단]월드컵과 희생양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노란색 유니폼은 마라카낭의 비극에서 탄생했다. 1950년 월드컵 개최국 브라질은 7월16일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우루과이와 결승리그 선두를 가리는 사실상의 결승전을 가졌다. 비기기만 해도 우승인데다, 앞선 결승리그 전적상 브라질의 압도적 경기가 예상됐다. 브라질의 우승을 단정한 FIFA도 우승 트로피인 쥘 리메 컵을 미리 브라질 월드컵 조직 위원회 측에 넘겨줬을 정도였다. 하지만 경기 결과는 2대1. 우루과이의 역전 우승으로 끝났다.종료 휘슬이 울리자 경기장은 숨막히는 정적에 휩싸였고 20만에 이르는 관중들은 비탄에 잠겼다. 2명이 심장마비로, 2명이 권총자살로 관중 4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전국에서 폭동과 자살이 속출했다. 브라질 축구협회는 상하의 하얀색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수거해 불태운 뒤 유니폼 색깔을 새로 정했으니, 현재의 디자인이다. 2골을 먹은 골키퍼 모아시르 바르보사는 공공의 적이 됐다. 그는 79세로 임종하면서 "그 경기에서 패배했다는 이유만으로 50년을 죄인처럼 지내야만 했다"고 토로했다.국가 혹은 민족대항전으로 비화하기 일쑤인 월드컵에서 패전의 희생양이 된 선수들이 한 둘이 아니다. 콜롬비아 국가대표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1994년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었다는 이유로 고향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하석주가 멕시코전에서 첫 골을 성공시킨 뒤 곧바로 백태클 반칙으로 퇴장당해 몇분 사이 영웅에서 역적으로 전락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차범근 감독을 찾아보지 못한다니 안쓰럽다.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축구 국가대표 장현수를 비난하는 청원이 쇄도하는 모양이다. 24일 멕시코 전에서 태클 실패로 페널티킥을 내준데 대한 화풀이성 청원인데 짐승만도 못한 언어폭력에 귀를 씻고 싶을 지경이다. 장 선수의 신체훼손에서 살해협박도 모자라 가족의 해외추방을 거론하니 일일이 찾아내 엄벌해야 마땅하다. 이렇게 선수를 쥐잡듯 해놓았으니 장 선수가 독일전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축구팀의 패전 보다, 희생양을 찾아 짓밟아대는 익명의 야차들로 인해 더 우울하다. 이런 야차들이 국격의 상징인 청와대의 청원게시판에서 버젓이 활개치는 것도 가관이고…. /윤인수 논설위원

2018-06-25 윤인수

[참성단]'잊혀진 전쟁' 6·25

2013년 7월 27일 미국 워싱턴 DC의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 기념식에 현직으로는 최초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해 기념사를 낭독했다. "여기 미국에서는 어떤 전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의 안전보장에 대한 미국의 약속과 헌신은 결코 약화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동맹은 평화와 안보, 번영을 위한 세력으로 유지될 것이다." 미국에서 6·25전쟁을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미국에선 6·25전쟁을 '역사의 고아'라고도 부른다. 3년1개월2일 동안 연인원 178만9천명의 미군이 참전해 3만6천여명이 전사했지만 2차대전과 베트남 전쟁보다 역사적인 평가에서 철저하게 외면을 받고있다. 6·25전쟁이 승전도 아니고 패전도 아닌 '정전'으로 끝났기 때문에 그렇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공원의 비문에는 '미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라의 자유를 위해 달려갔던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글귀와 함께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라고 적혀있다.오늘은 6·25가 발발한 지 68년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올해 6·25는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하다. 오히려 정전협정을 종전협정, 나아가 평화협정으로 전환 시켜야 한다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북미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똑똑한 터프가이이자 위대한 협상가"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럴수록 조국을 지키기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과 참전용사들의 넋은 더욱더 존중되고 기억되어야 한다.모윤숙은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에서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산맥을 지키다가/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고 노래했다. 한국군 전사자 14만9천5명, 실종자 13만2천256명, 부상자 71만783명 등 목숨을 걸고 자유를 지킨 용사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젊은 세대에게도 6·25가 '잊혀진 전쟁'이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는 것도 그래서다. '호국 보훈의 달'이기도 한 6월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6-24 이영재

[참성단]태양광 시대

우리도 '황금광 시대'라는 게 있었다. 금을 찾는 인간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그런 시대 말이다. 발단은 1930년 1월 일본의 금 수출 재개 선포였다. 준비 없이 화폐와 금의 가치를 연계시키는 금본위제도를 시작한 일본은 오히려 금이 해외로 급속하게 유출되자 당황했다. 끔찍한 대공황을 겪던 전세계 모든 국가가 "역시 금이 최고!"라며 금 확보에 혈안이 된 걸 몰랐다. 일본은 10개월 실시하다가 금 수출은 물론 수입마저 금지했다. 그리고 금 확보에 나섰다. 식민지시대 조선의 골드 러시, 황금광시대는 그렇게 시작됐다. 금을 수입할 수 없으니 온 산하를 까뒤집어서라도 금을 찾아야 했다. 금이 나온다는 소문만 들리면 지식인 농민 할 것 없이 몰려들어 산이건 농지건 하천이건 모두 파헤쳤다. 살인, 도박, 패가망신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오죽하면 일확천금을 노리며 금광으로 떠났던 김유정과 한때 금광 브로커 노릇을 했던 채만식이 각각 소설 '금 따는 뽕밭' '금의 정열'을 써서 식민지 시대의 금광 열풍을 비판했다. 지금 대한민국 온 산하가 태양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저수지, 농지, 건물 옥상 등 가릴 것 없이 태양광 설비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있다. 태양광 발전소를 분양한다며 온·오프라인에서 투자자를 모집하는 업체가 급증하고, 연 수익률 10~20%를 장담하는 전화가 투자자를 유혹한다. 땅 투기를 노린 '태양광 떴다방'도 성행하고 있다.이런 열풍은 정부가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 더 뜨거워졌다. 탈 원전을 선언한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높이고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48.7GW 확충키로 했다. 이를 위해선 여의도 면적의 168배의 부지가 필요하다. 특히 공기업이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는 한국전력이 의무적으로 원가보다 비싼 가격에 최대 20년간 사주기로 했다.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 저수지 4천여 개를 관리하는 농어촌 공사, 전국 댐을 관리하는 한국수자원공사까지 태양광 사업에 뛰어든 이유다. 한때 소나무가 울창했던 곳에 수백 수천 개의 태양광 패널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가 하면, 20일 경인일보에 보도된 안성 금광저수지는 태양광이 설치되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름다운 풍광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은 지금을 가리켜 '황금광 시대' 뺨치는 '태양광(狂) 시대'였다고 말 할지도 모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6-21 이영재

[참성단]평택항 붉은불개미

지난해 9월 부산항 감만부두에서 1천여마리가 발견돼 소동을 일으켰던 붉은불개미가 지난 18일 평택항컨테이너터미널에서 출현해 방역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부산항 붉은불개미 발견 직후 전국의 내륙컨테이너기지를 수색했지만 종적이 묘연했었다. 정부는 올해 1월 3일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하고 붉은불개미 군단의 상륙저지에 나섰다. 하지만 2월 인천항에 도착한 중국산 고무나무 묘목에서 1마리, 5월 부산항 수입 건조대나무 컨테이너에서 2마리 등 군단의 척후병들이 출몰하더니 급기야 평택에서 700여 마리가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소동의 이유는 붉은불개미의 악명 때문이다. 남미가 원산지인 붉은불개미는 엉덩이의 독침으로 솔레놉신이라는 독성물질을 주입한다. 독침에 쏘이면 솔레놉신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사망할 수도 있어 '살인개미'로 불린다. 북미에서만 한해 8만명 이상이 독침에 쏘여 100여명이 사망한다는 통계도 있다. 또 도시의 건축물에 집을 지어 피해를 발생시키는데 붉은불개미로 인한 미국의 경제손실 추산액이 60억 달러에 이른다니 만만히 볼게 아니다.더 큰 문제는 무자비한 공격성으로 상륙지의 토종 개미를 몰아내고 주인행세를 하는데 있다. 식용자원으로 도입했던 황소개구리, 뉴트리아, 배스, 블루길이 토종 생물을 말살해 하천 생태계가 초토화된 실정을 상기하면 심각한 일이다. 붉은불개미는 불청객을 넘어 침략군에 가깝다.우리 문화에서 개미는 근면을 상징하는 곤충이다. 대붕의 꿈을 꾸되 개미처럼 살라는 붕몽의생(鵬夢蟻生)은 큰 꿈을 이루려면 하루하루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경구다. '개미 금탑 모으듯 한다'와 같이 미약한 업(業)의 누적이 이루어내는 커다란 업적을 개미의 노고에 빗댄 속담도 많다. 반면에 주식시장의 개미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보상을 누리지 못하는 미미한 존재로 치부되기도 하니, 이 땅의 개미는 이 땅의 보통사람을 닮았다.그런데 붉은불개미가 토종개미를 몰아내면, 서민을 위로할 개미의 우화는 사라지고 살인개미의 공포만 남을테니 인문자산의 상실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그나마 붉은불개미는 다른 개미 보다는 박멸이 쉽다고 하니 다행이다. 방역당국의 선전을 기원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6-20 윤인수

[참성단]스마트 패스 인천공항

지난 5월 21일 중국 공안은 저장성 자싱시에서 열린 홍콩 스타 장학우 콘서트장에서 수배 중인 용의자를 CCTV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이용해 체포했다. 현장엔 팬 약 6만 명이 모여 혼잡한 상황이었지만, 중국 인공지능회사 '이투커지'의 안면인식기술은 이런 악조건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난달 영국 윈저성에서 열린 해리 왕자와 할리우드 여배우 메건 마클의 세기의 결혼식에는 아마존의 안면 인식 기술 프로그램 '레코그니션'이 이용됐다. 이 기술로 하객으로 참석한 전 세계 유명 인사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SF영화가 그리는 미래사회는 신분증이 필요 없다. 폴 버호벤의 '토탈 리콜'(1990)엔 우주정거장에서 화면에 얼굴을 대면 얼굴 형태나 홍채로 신원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가 그려낸 2054년 미래사회 역시 집과 사무실의 출입문 잠금장치, 지하철 요금 지불 등 모두 안면인식과 홍채인식이 대신한다. 상영 당시 '영화가 너무 오버한다'고 여겨졌던 이런 풍경이 이젠 어두운 콘서트장에서 범인을 잡고, 수천명이 모인 결혼식 하객들의 신원을 순식간에 파악하는 평범한 일상사가 돼가고 있다. 중국과학원이 개발한 '안면인식 기술의 보안검사 보조 검증 시스템'은 13억 중국인 얼굴을 단 3초 만에 식별할 수 있다고 한다. 세계 최고라는 중국의 안면인식 기술이 반체제 인사 동향 감시나 소수민족 탄압 등에 쓰일 수 있지 않느냐는 '빅 브라더'의 우려가 괜한 게 아니다.이르면 내년부터 인천국제공항에서 탑승권이나 여권 없이 출국할 수 있는 '스마트패스' 서비스가 시범 도입된다고 한다. 사전 등록된 안면인식 정보 프로그램 덕분이다. 또 2020년부터는 지문, 얼굴 등 정부가 관리 중인 생체정보를 활용해 사전등록 없이도 전 국민이 스마트 패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영화 속 세상이 현실화 되는 것이다.우리의 삶이 편해질수록 사생활은 누군가에 의해 노출되게 마련이다.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날마다 늘어나는 CCTV와 차량 블랙박스를 통해 누군가 지켜보는 시선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인천공항의 놀라운 변신 같은 일상의 편리함을 외면할 수도 없다. '감시에 길든 일상'과 '편안함'. 거부할 수 없는 이 둘 사이에서 우리는 늘 고민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6-19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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