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시인의 꽃]들국화

산등선 외따른데,애기 들국화바람도 없는데괜히 몸을 뒤누인다.가을은다시 올 테지.다시 올까?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지금처럼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천상병(1930~1993)늦은 11월까지 꽃을 피우는 들국화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국화과 식물을 두루 일컫는 보통명사다. 산과 들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절초, 쑥부쟁이, 감국, 산국 등과 같이, 가을에 등장하는 이러한 꽃을 들국화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식물마다 꽃말이 다른데, 구절초는 가을 여인, 쑥부쟁이는 기다림과 그리움, 감국은 가을의 향기, 산국은 순수한 사랑 등 다양하다. 국화과 식물들의 특징으로 작고 가녀린 형체를 떠올릴 수 있는데, 화자는 이름 모를, 이 꽃을 '애기 들국화'라고 하는 것. 이 시는 산등선 외딴곳에 얼굴을 내민 '애기 들국화'와 시선을 마주치면서 시상이 확장되고 있는 점이다. 어느 늦은 가을날 "바람도 없는데" 몸을 눕히는 연약한 들국화를 보면 언젠가 저렇게 홀로 시들어 갈 인생과 겹쳐져 '나'와 '들국화'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심상. 그것은 우리의 내면에 깃든 '애기 들국화'와 동화되어 안쓰러운 마음이 절로 생기게 되는 것이다. 잠시 생명에의 기쁨을 주고 가는 들국화에게서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을 달래듯이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작고 적은 것들 속에서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을 크고 많은 것들로 바꾸어 보라. 당신의 향기로움은 "다시 올 테지"라고 처음 만난 타인일지라도 그 영혼 속에 남아 기다림을 간직하게 되리니.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1-12 권성훈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노발충관(怒髮衝冠)

쉽게 성을 내고 화를 삭이지못하는 분노조절 장애 발생이갈수록 늘고 있다그러나 터무니없이자신과 타인에게 날리는 묻지마식 노여움의 하이킥은현대인의 이성을 마비시킨다노발충관(怒髮衝冠)은 격렬한 분노에 머리털이 관을 밀어낸다는 뜻이다. 특히 배반당한 모욕감에 몹시 성이 난 모양을 비유하는 말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화가 나야 털이 뻣뻣이 일어날까. 누구든 노발충관 상황에 직면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치밀어 오른 감성이 합리적 이성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연인에게 배신당한 여성이 날린 분노의 하이킥이 에일리가 부른 '보여줄게'(작사·강은경 작곡·김도훈/이현승) 곡목 가사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화자는 남자로부터 버림받은 여자로 등장한다. 자신의 연인과 '함께한 날이 얼마인데'라고 스스로 비웃으며 연인을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다. 또한 저 멀리 흘러간 '시간이 억울해서 자꾸 눈물이' 두 뺨을 적신다. 남자가 그녀 곁을 떠난 이유는 또 다른 여자가 남자 앞에 홀연히 나타났기 때문이다. 화자 자신이 사준 옷을 입고 향수를 뿌리고 새 여자를 만나 히히덕거리며 웃는 남자의 불쾌한 모습을 그녀는 상상한다. 그 후 번민의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거침없는 발차기를 남자에게 날린다. 말하자면 구남친 퇴치를 위한 선전포고를 한다: '더 멋진 남잘 만나 꼭 보여줄게/너보다 행복한 나/너 없이도 슬프지 않아/무너지지 않아/boy you gotta be aware'. 여자는 이제 자신의 곁을 떠난 남자의 잔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거하려 한다. 그리고 기약 없는 먼 훗날 남자에게 '완전히 달라진 나'를 반드시 보여주겠다는 보복 의지를 굳게 다진다. 또한 지금부터 '바보처럼 사랑 때문에' 떠나버린 연인 때문에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말한다. 결국 여자는 남자로부터 받은 반지를 버린다. 연애편지도 모두 지우고 '미련 없이 후회 없이' 모두 잊겠다고 선포한다. 아울러 여자는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화장도 새로 고치려 한다. 일부러 '하이힐에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신의 남자였던 '널' 만나면 '놀란 니 모습 뒤로 한 채 또각또각' 걸어가겠다고 단단히 벼른다. 그리고 치명적인 하이킥을 작렬 시키겠다고 울분을 토한다.이소라가 부른 '화'(작사·이소라 작곡·UNKNOWN) 노랫말 속에도 노발충관의 진노가 드러난다. 곡목 '화'의 첫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난 뭐든지 너무 쉽게 화가 나/그럴 땐 추악해/아직도 치밀어 와/'. 화자는 왜 이렇게 자신에 대해 화를 내는 걸까. 왜 화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노발대발하는 걸까. 과거 연인으로부터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걸까. 아니면 씻을 수 없는 '기억'이 그녀를 억압하고 있는 걸까. '비틀어진' 마음이라고 스스로 조언을 해도 '내가 날 막을 수' 없다면서 자신을 극도로 부정한다. 망각의 저 편 '어둠' 속에서 '날이 선 가위로' 화자에게 뼈아픈 '기억'이 다가온다. '남 모르게' 불끈 성이 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인내의 임계점을 넘어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까지 다다른다.화자는 누구의 그 어떠한 말도 아직까지 '지금도' 불신하기 때문에 주의 깊게 경청하려 들지 않는다. '내가 날 막을 수 없어/죽임 같은 거/아무도 믿을 수 없어 지금도/'. 화가 홀아비 동심(動心)하듯 치밀어서 분노한 머리털이 화자의 관을 밀어내는 모습은 노발충관 그 자체이다. 이처럼 자신뿐만 아니라 연인으로부터 당한 배신감은 영국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명작 '폭풍의 언덕'에 등장하는 광기의 주인공 히스클리프를 연상시킨다. 자신의 사랑을 배신한 캐서린과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에 대한 잔인한 복수심에 불타 인생의 파멸에 이르는 히스클리프! 제어할 수 없는 분노에 가득 찬 21세기형 현대판 노발충관의 화신인 듯싶다. 요즘 쉽게 성을 내고 화를 삭이지 못하는 분노조절 장애 발생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최근 발생한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과 부산 일가족 살인사건 등이 적절한 예이다. 의학적으로 분노 호르몬이 분비되면 뇌신경이 흥분하고 호흡이 가빠진다고 한다. 그러나 터무니없이 자신과 타인에게 날리는 묻지마식 노여움의 하이킥은 현대인의 이성을 마비시킨다./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2018-11-11 고재경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정위응명: 자기의 바른 자리에서 소명을 완성하라

命의 갑골문의 본래 글자는 명령 령(令)자이다. 명령 령(令)자는 삼각형 모양의 모을 집( )아래에 영어의 p자형태의 병부 절( )로 되어있다. 모을 집( )자는 덮개를 의미한다. 작은 경우는 모자에 해당하고 큰 경우는 사람이 거처하는 건물[궁궐, 대궐, 조정...]을 의미한다. 병부 절( )자는 사람 인(人)자의 변형으로 사람이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명령을 내리는 것인데 그 의미를 확실히 하기 위해 입 구(口)자가 첨가되어 명(命)이 되었다. 명령(命令)의 의미이다. 명령(命令)이란 글자에 들어있는 절( )은 무릎의 마디를 의미하는 마디 절(節)의 의미가 파생되었다. 대나무 마디를 가지고 옛날에는 병부(兵符)를 만들었다. 명(命)자에서 건물 안에서 명령을 내리는 가장 높은 사람을 '임금'으로 보는데 그러면 임금의 명령이 된다. 옛날에 임금이나 명령권자가 명령을 내릴 때 쓰던 도구를 병부(兵符)라고 한다. '병부'는 주로 병력을 동원할 때 쓰던 도구이다. 대나무를 두 조각으로 나누어 만들었다. 조선시대의 경우는 반쪽 나뭇조각은 관찰사나 절도사 등이 보관하고 나머지 반쪽 나무는 궁중에서 보관했다. 군대(軍隊)를 동원(動員)하는 표지(標識)로 쓰이던 동글납작한 나무패로 병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을 때 명령을 내리는 임금이 교서와 함께 한 쪽 나무 조각을 보내면 관찰사나 절도사는 그것을 자기가 보관하고 나머지 반쪽과 맞추어보고 틀림없을 경우 병력을 동원했다. 병부(兵符)는 봉화(烽火)와 더불어 통신(通信)체계의 원형이기도 하다. 우리는 명령(命令), 천명(天命), 생명(生命), 수명(壽命), 성명(性命), 운명(運命) 등등을 이야기한다. 명은 주어지는 면도 있고 그것을 인식하는 면도 있고 그것을 이행하는 면도 있고 변화시키는 면도 있다. 어떤 의미이든 현실에서 각자의 소명을 잘 알고 그것을 완성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천명을 알고 이루는 길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1-07 철산 최정준

[김나인의 '생활관상']선행인지 악행인지 묻고싶거든 음덕문(陰德門) 형상을 보라

눈 밑 누당 부위가 어두컴컴하거나불그레한 좀살이 돋아나면도(道)를 지나친 악행의 흔적이는 하늘이 노해 징벌 내린것으로 절대 속일 수 없다는 증거인간의 행위는 행(行)하는 업(業)에 따라 선(善)이 되기도 하고 악(惡)이 되기도 하는데, 그에 대한 과보(果報)는 하나도 빠짐없이 하늘이 응하여 밝고 선명한 자색의 기색을 누당(눈 밑)에 머무르게 한다. 그 사람에게 하늘에서 보은이 내림을 일러주는 곳을 음덕문(陰德門)이라 하는데, 눈 밑 부위가 그곳이다.세상(世上)의 일은 원인(原因)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結果)를 낳게 되는 것이고, 결과는 원인 없이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평소 행하는 행위의 결과는 복록으로 이어지고, 때로는 응징의 징벌로 내려지는 것이니, 눈 밑 누당 부위가 검은 먹구름 같은 어두컴컴한 기색이나 또는 굴뚝에서 나오는 탁한 연기와 같은 희끄무레한 기색으로 가득 차오르거나, 불그레한 좀살이 돋아나고 어지럽게 가로세로 줄 문양이 생겨나면, 도(道)를 지나친 악행의 흔적이다. 이는 하늘이 노하여 인간을 대신하여 징벌을 내리는 것이니, 인간과 세상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늘은 절대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눈 밑의 형체와 기색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행한 모든 과업의 흔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숨어서 몰래 행하는 악업(惡業)은 들어오고 나가는 문을 순간은 알 수 없으나 악업이 쌓이고 쌓여 그 도(道)를 넘어서면, 화흉(禍凶)이 되는 것이니, 어찌 선을 행하고도 고통의 과보라 말할 것이며, 남 몰래 행하는 악행 역시 그 문이 열리는 것을 쉽게 알 수 없으나, 선업(善業)이 쌓여 하늘에 닿으면 길복(吉福)이 되는 것이니, 어찌 하늘이 이를 외면하겠는가. 그 사람이 행하는 모든 행위의 결과는 반드시 과보로 남겨지게 되는 것이고, 눈가 밑에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아 음덕문이 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노자는 도덕경을 통하여 '하늘은 성글어도 인간 행위 하나하나 절대로 놓치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음덕문은 마음의 바탕에 기준하여 열리고 닫히는 것이며, 그 행위가 선행인지 악행인지에 따라 흔적을 남기는 일이니,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행동은 진정한 의미에서 선행이라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세상에 나올 때 누구라도 자신이 직접 부모를 결정하고 얼굴형체를 만들고 나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며, 부모라는 인연이 만들어준 하나의 생명체로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부유한 부모를 두는 것도, 가난한 부모를 두는 것도 모두가 전생(前生)의 업보(業報)에서 출발하여 현생(現生)의 과보로 이어지는 일이니, 인간의 능력과 의지에 물을 일이 아닌 것이다. 이마가 풍륭하고 넓은 것도, 이마가 좁고 낮은 것도 눈썹이 수려하고 단정한 것도, 건강한 몸도 병약한 몸도 자신이 직접 만들어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기에 선과 악의 업보로 윤회를 통하여 또 다른 현생으로 이어지는 과보의 결과물을 갖고 태어나는 일이니 얼굴의 형체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전생의 과보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다면 한 번 부여받은 명운(命運)은 절대 변화시킬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의 얼굴의 체형과 짜임새는 선천적(先天的)인 명운이기에 쉽게 바꿀 수는 없는 일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마음가짐에 따라 눈동자의 빛과 얼굴의 기색은 얼마든지 변화되고 바뀌게 되는 것이다. 어렵고 고단한 살림살이라도 성정이 맑으며, 얼굴 기색이 밝고 깨끗하면 하늘이 음덕을 베풀어 장차 부귀를 취할 사람이니, 좋은 환경을 만나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관상을 살필 때는 그 사람의 외형만 취하지 말고, 마음의 바탕인 심상(心相)을 잘 헤아리고 살피라 하는 것이다. 남을 자신의 몸과 마음처럼 아끼고 돌보며 선업을 즐겨 하는 사람에게는 음덕문이 열려 현생의 길을 밝게 비춰주는 것이니, 어찌 이마가 좁고 코가 부실하고 턱이 빈약하다 하여 부귀공명과 무관한 사람이라 하겠는가.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며 돕고 손잡아 주는 일은 얼굴의 생김새에 묻는 일이 아니라 심성에 물을 일이다. 이런 사람의 관상을 보면 비록 삶이 곤고하고 넉넉지 않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누당의 기색이 밝아오며 눈빛의 광채가 은은히 뻗어나면 그 사람의 내적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이니, 어찌 이런 사람의 심상을 100억에 비하겠는가./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

2018-11-04 김나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저양촉번: 숫양이 울타리를 부딪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서로 고육지계(苦肉之計)로 들어섰다. 그 둘 가운데 낀 나라의 경제적 손실과 심리적 불안도 더해간다. 일종의 힘겨루기인데 너무 나가는 것 아닌가 싶다. 주역에서 힘을 쓰는 도리나 상황에 대해 羊을 가지고 말해놓았다. 여기에서의 양은 뿔 달린 염소를 이야기한다. 羊은 겉으로 유순해 보이지만 속에는 강한 힘과 고집스러운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런 양이 자신이 지닌 힘을 과시할 때 벌어지는 상황을 저양촉번(저羊觸藩)이라고 묘사하였다. 숫양이 울타리를 부딪친다는 뜻이다. 양을 키우기 위해 만든 것이 울타리인데 여기에서 울타리는 일종의 한계와 경계를 뜻한다. 양이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사용하게 되면 울타리를 들이받아 부딪치는데 그러다가 뿔이 울타리에 걸려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런 것이 저양촉번(저羊觸藩)이다.주역에서 羊은 태괘(兌卦)에 해당하고 방위로는 서방(西方)에 해당하고 현재 나라로는 서양의 강대국을 상징한다. 대표적으로는 羊자가 들어있는 아름다울 美자인데 美를 파자(破字)하면 대양(大羊)으로 큰 양이다. 나라로는 힘센 대국인 미국(美國)이다. 아무리 경제에 문외한이지만 벌어지는 꼴을 보자니 꼭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 넘어가고 싶은 모양새다. 그러나 보이는 한정된 이 세계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서운 울타리가 존재한다. 그 보이지 않는 울타리는 인과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데 내게서 나간 것은 반드시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백지를 기계로 돌려 무한정의 화폐를 자기들 마음대로 찍어내는 대국이라지만 그런 대국도 이 인과의 섭리를 어기면 멀지 않아 저양촉번(저羊觸藩)의 꼴을 당할 것이다.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동북공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31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따알리아

가을 볕 째앵 하게내려 쪼이는 잔디밭.//함빡 피여난 따알리아.한낮에 함빡 핀 따알리아.//시약시야, 네 살빛도익을 대로 익었구나.//젖가슴과 부끄럼성이익을 대로 익었구나.//시약시야, 순하디순하여다오.암사심처럼 뛰여 다녀 보아라.//물오리 떠돌아다니는힌 못물 같은 하늘 밑에,//함빡 피여나온 따알리아.피다 못해 터저 나오는 따알리아정지용(1905~?)국화과 여러해살이 풀인 다알리아(Dahlia) 꽃은 멕시코가 원산지로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A. Dahl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7~11월 사이 개화하는 이 꽃에 얽힌 전설이 전해진다.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구하던 중 한 여자 미라를 발견했는데, 그 손에 꽃 한송이가 있었고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그 꽃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꽃씨가 되어 떨어졌다. 이를 영국으로 가져와 모종을 했더니 싹이 자라서 꽃이 피었는데, 이 꽃을 재배했던 식물학자 '다알'의 이름을 따서 '다알리아'라고 호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한창 '가을 볕 째앵 하게/내려 쪼이는 잔디밭'에 "함빡 피여난 따알리아"를 보면 살갗이 익을대로 익은 '색시 젖가슴'처럼 부끄러움도 없이 자태를 드러낸다. '순하디 순한 암사슴'같이 '연못가에 함빡 핀' 물오른 이 꽃의 꽃말은 화려, 우아, 감사 등으로 사람들 입가에서도 피어난다. 누군가에게 화려함으로, 우아함으로, 감사함으로 "피다 못해 터져 나오는" 다알리아를 보면 나는 어떠한 꽃으로 피어나 있는가, 자문하게 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0-29 권성훈

[조성면의 '고서산책']넘버원 애장서, '문학의 논리'

임화의 빼어난 평론집으로우리 문단·정치·비평이론사를좌우 종횡으로 연결하는사통팔달의 문화 허브이자문학사의 보고라 할 수 있다고서 시장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장르는 시집이다. 다음이 소설이요, 평론집은 그다음이다. 이 같은 가격의 하이어라키를 수긍하기 어렵지만, 현실은 그렇다. 그렇다고 평론집들이 시장에서 다 죽을 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임화의 '문학의 논리'(1940)나 최재서의 '문학과 지성'(1938)은 시집 못지않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임화의 '문학의 논리'는 한국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임화는 한국근대비평사의 '별'이자 한국문학연구자들이 넘어야 할 '벽'이다. 임화는 누구인가. 그는 불꽃같은 삶을 산 문학인이었다. 시집 '현해탄'(1938)을 남긴 시인이자 탁월한 외모로 네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주연을 맡기도 했던 '조선의 발렌티노'였다. 또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 대한 평론을 비롯해서 모두 18편의 영화비평을 남긴 전방위적 문학평론가였고, 카프 서기장을 역임했으며, 해방공간에서 '조선문학가동맹'의 창설을 주도한 진보문학운동의 이론가요 지도자였다. 월북해서 남로당계 문인으로 활동하다 '미제 스파이 혐의'로 북한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인 마츠모토 세이쵸는 임화의 이 비극적인 삶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 '북의 시인'(1962)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연구들을 보면, 임화가 부당한 마녀사냥식 재판에 항거한 것으로 나와 있다. 군사재판을 받던 도중 안경알을 깨서 오른팔 동맥을 끊어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53년 8월 6일 사형 판결을 받기는 했으나 실제로 사형이 집행된 것은 1956년이었다는 새로운 주장도 있다. '문학의 논리'는 지금 봐도 여러모로 문제적인 평론집이다. 빼어난 논리와 평론가적 안목도 돋보이지만, 루카치 · 발자크 · 프리체 등 서구의 유명작가와 이론가들의 저작들이 인용되거나 활용되고 있으며 여기에 문화인류학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등 지금 봐도 놀라운 첨단의 평론집이었다. 임화의 공식학력은 보성고보 4학년 중퇴가 전부이나 카프 초기를 주도했던 회월 박영희와 '무산자사'의 리더 이북만의 각별한 뒷받침이 있었다. '조선소설사'로 유명한 김태준, 역사철학자 신남철, 영문학도였던 시인 임학수 등 경성제국대학 출신 학자들은 물론 당시 문단의 거목이었던 월탄 박종화와도 깊은 교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지적 배경이 필시 그를 최고의 평론가로 키워냈을 것이다. 얼마 전 '화봉문고'의 고서 경매에 연속해서 출품됐던 2권의 '문학의 논리'가 잠시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임화가 자신의 평론집에 서명하여 회월과 월탄에게 선물했던 책이 각각 두 달의 시차를 두고 경매시장에 나왔던 것이다. 인천근대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문학의 논리'는 임화가 시인 임학수에게 증정한 서명본이라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임화의 문단 인맥과 교류의 양상을 말해주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문학의 논리' 초판본은 1940년 최남주가 사주로 있던 학예사에서 출판됐다. 사주는 최남주이나 운영은 임화가 도맡았다. 평론집 표지 디자인과 장정은 근원 김용준의 솜씨다. 근원 김용준은 화가이자 미술사가로서 유명할 뿐 아니라 '근원수필'이라는 베스트셀러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문학의 논리'는 빼어난 평론집일 뿐 아니라 우리 문단사와 정치사와 비평이론사를 좌우 종횡으로 연결하는 사통팔달의 문화 허브이자 우리 문화사의 안팎을 연결하는 문학사의 보고라 할 수 있다. 1986년 초가을 무렵 처음으로 임화의 평론들을 접하고 난 뒤 '문학의 논리'는 필자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서슬 퍼런 겨울공화국 시대 그 이름조차 금기였던 상황이었는지라 복사본과 영인본만으로도 마냥 행복해하다가 30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에 원본 소장의 꿈을 이룬 필자의 넘버원 애장서가 바로 임화의 '문학의 논리'이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8-10-28 조성면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소이수신: 몸을 닦기 위한 방법

닦는다는 말은 길을 닦으면 수도(修道)이고 마음을 닦으면 수심(修心)인데 몸을 닦으면 수신(修身)이다. 수신은 몸을 씻는다는 세신(洗身)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수심을 포함한 말이다. 마음이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존재이지만 당장에 존재하는 몸을 이야기하면 한량없는 마음은 그 가운데 갖추어져있다고 볼 수 있다. 심신을 닦아나가는 문제는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 사람마다 가장 중요한 문제다. 또한 사회속의 생활인으로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다. '중용'에서는 몸을 닦아나가는 방법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하나는 호학(好學)이고 하나는 역행(力行)이고 하나는 지치(知恥)이다. 호학(好學)은 배움을 좋아한다는 뜻이고, 역행(力行)은 힘써 실행한다는 뜻이고 지치(知恥)는 부끄러움을 안다는 뜻이다.여기에서의 배움이란 중용의 도리에 관한 배움을 말한다. 어떤 것이 진정 인간으로서 내가 가야 할 길인가? 이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호학(好學)이며 이렇게 되면 지(知)에 가까워진다. 그것을 알고는 힘써 행하는 실행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역행(力行)이다. 알고 나서 실행하려면 자신의 사사로움을 극복해야 하니 역행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인(仁)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이다. 배우고 실천하는 학행(學行)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나태함을 부끄럽게 여기며 자신을 분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태해질 때 부끄러워할 줄 알고 분발시키는 힘은 용기(勇)에 가깝다. 삼달덕(三達德)이라 부르는 지인용(知仁勇) 세 가지는 배우고 행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데서 이루어지니 이것이 몸을 닦기 위한 방법이다. 확충해보면 비단 몸을 닦는데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고 어떤 기술적인 분야에서도 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24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밤은 영양이 풍부하다

무르익은/과실의 밀도密度와 같이/밤의 내부는 달도록 고요하다.//잠든 내 어린것들의 숨소리는/작은 벌레와 같이/이 고요 속에 파묻히고,//별들은 나와/자연自然의 구조에/질서 있게 못을 박는다.//한 시대 안에는 밤과 같이 해체解體나 분석分析에는차라리 무디고 어두운 시인들이 산다. 그리하여 토의의 시간이 끝나는 곳에서밤은 상상으로 저들의 나래를 이끌어 준다.//꽃들은 떨어져 열매 속에/그 화려한 자태를 감추듯……//그리하여 시간으로 하여금새벽을 향하여 이 풍성한 밤의 껍질을 서서히 탈피케 할 줄을 안다.김현승(1913~1975)봄에 떨어진 꽃들은 깊어져 가을에 열매를 수확한다. '달도록 고요한' 그 열매의 내부는 밤과 같이 무르익고 밤과 같이 어둡다. 이때 밤은 '과실'이며 동시에 '어둠'으로서 시의식을 통해 배태된 양가적 상징물이 된다. 그러기에 밤은 밤이면서 밤이 아니지만 둘 다 "자연自然의 구조에/질서 있게 못을 박는" 거스르지 못하는 자연의 이치로서 전적으로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에 달려있다. 이것은 구조학의 해체 또는 논리학의 분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시인의 '무디고 어두운' 밤의 시간으로서 '상상으로 저들의 나래를 이끌어' 비로소 밤은 밤으로서 관통하며 밤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꽃들은 떨어져 열매 속에" 보이지 않지만 숨겨진 "그 화려한 자태를" 감각할 수 있는 자만이, 이 가을 "풍성한 밤의 껍질을" 밤바다 벗기며 모든 사물이 비롯된 '새벽을 향하여' 근원에로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0-22 권성훈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질문이 곧 답인데…

연극 '오이디푸스…' 관객 능동적 위치 전환배우가 의문 던지면 함께 공론장 참여 형식사회성숙도 힘 아닌 대화로 갈등 조정 직조지연·중지담론 경계 질문 그치면 진실 닫혀지난 10월 11일부터 14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단 놀땅의 '오이디푸스-알려고 하는 자'(2016년 초연) 공연이 있었다. 오이디푸스는 소포클레스 이후 여러 이미지로 변주되어 온 인물이다. 스스로를 희생하여 역병에서 도시를 구하는 인물, 눈이 멀어 볼 수 없으나 통찰력을 지닌 인물, 왕을 죽이고 왕이 된 인물, 그리고 은폐된 진실을 조사하는 인물 등 시대와 작가에 따라 다양하다. 극단 놀땅의 오이디푸스는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질문하는 자로 조사하는 인물에 가깝다. 올해로 세 번째인 이번 공연은 우리 사회가 왜 오이디푸스를 다시 호명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연극이 시작하면 무대는 광장으로 바뀌고, 관객은 시민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아니다. 도시의 광장에 시민이 모이자 비로소 연극이 시작한다. 광장으로 바뀐 무대에서 관객은 처음에는 관찰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지만 연극이 진행되면서 참여자의 위치로 점차 옮겨가게 되며 종국에는 배심원의 자리에 앉게 된다. 무대의 배경은 세월호 이후 역병이 창궐한 도시이다. 눈이 먼 거지로 등장하는 오이디푸스가 의문을 던지면 관객은 배우와 함께 공론장을 만들게 된다. 우리 사회가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전환하였는지 아니면 생명과 안전을 경시하는 사회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지에 대해 관객이 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연극은 끝난다.샤츠슈나이더는 정치가 갖는 역동성의 기원이 갈등에 있다고 주장하며 갈등을 민주주의의 엔진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정치의 과정과 결과는 갈등을 구성하는 네 가지 차원(범위, 가시성, 강도, 방향)에 달려 있다. 그 중에서 갈등의 범위는 누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갈등에 관여하는가의 문제이다. 관찰자의 위치에 있던 사람이 행위자로 참여하게 되면 힘의 균형에 변화가 생긴다. 기존 질서의 힘에 균열을 가해야 하는 약자는 다수가 개입하도록 해서 갈등의 범위를 확장하여야 한다. 연극 '오이디푸스-알려고 하는 자'가 관객을 수동적 위치에서 능동적 위치로 전환하는 형식을 가져온 까닭이 여기에 있다.질문이 사라진 사회는 얼마나 위태로운가. 질문하지 않는 사회는 겉으로 평온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질문이 없어 역동성이 사라진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사라진 질문으로 인해 갈등마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 있다. 극 중에서 오이디푸스가 아무리 "질문이 곧 답인데…"라고 외쳐도 시민이 나서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무대가 광장이나 교실로 바뀐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한 사회의 성숙한 정도는 그 사회가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물리적 힘에 의한 해결이 아니라 대화를 통한 갈등의 조정 과정에서 그 사회의 빛과 그늘이 직조하는 무늬가 그려지기 때문이다.갈등의 사회화 과정에서 경계해야 하는 대표적인 두 목소리는 지연과 중지의 담론이다. 지연의 담론은 "당신에게 권리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몫의 배분을 결정하는 현재의 조건을 아직은 바꿀 때가 아니라고 말하며 미래로 지연시킨다. 중지의 담론은 "당신은 할 만큼 했다. 그러므로 이제 그만하라"라고 말한다. 이미 충분히 노력했으니 이제 어쩔 수 없고 우리는 지쳤다고 말하며 현재에서 중지시킨다. 두 담론 모두 지금의 경계선을 유지하려는 목소리이다. 갈등의 범위를 확장하고 그 방향을 전환하려는 주장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알려고 하는 자'는 주로 후자의 담론을 극장으로 가져와 관객과 함께 토론하는 연극이다.질문이 그치면 진실의 문은 닫히고 만다. 진실의 문을 여는 질문의 힘은 '오이디푸스-알려고 하는 자'의 초연이 있던 2016년 겨울에만 유효하지 않다. 광장에서 촛불과 외침이 잦아들었다고 해서 물어야 마땅한 질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 우리 사회가 세월호 이후 생명안전사회의 건설로 전환하지 못했다면 더욱 그러하다./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

2018-10-21 권순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상기자부: 재물과 권력을 잃는다

인생이 나그네란 말이 있다. 나그네란 주인과 달리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존재이다. 그렇게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한 곳에 영원히 상주하질 못한다. 먼 길을 떠나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 여행자의 숙명을 지닌 나그네는 임시적으로 머물 여관과 같은 곳이 있어야 한다. 먼 길을 돌아다니려면 여행경비가 필요한데 옛사람들은 노자(路資)라고 불렀다. 자부(資斧)에서 자(資)는 본래 노자를 뜻하는데 이 노자가 재물의 뜻으로 통용되었다. 또 나그네에게는 초행길이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신변에 위협을 가할 요소들이 산재해있다. 그래서 옛날 나그네 길에 자기 몸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도끼를 지니고 다녔는데 도끼는 육체의 힘을 강력하게 연장하는 효과를 지니기에 권력의 뜻으로 통용되었다. 나그네의 자부(資斧)가 인생 나그네들에게 재물과 권력의 의미인 것이니 사람들의 경제적·정치적 권력을 상징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때로 이런 힘을 얻을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데 주역에서는 그런 힘을 잃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권력을 잃는 이유에 대해서 그 자체에서 답을 제시하고 있다. 권력의 권(權)은 저울질의 뜻으로 시세의 무게를 잘 달아보면서 쓰는 것이다. 시세의 무게를 달아보기 위해서는 저울을 가감도 해보고 위치도 좌우로 변경해보면서 때에 적절한 저울질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면 권(權)을 잃은 것이고 힘만 억지로 지탱하려는 꼴이 된다. 때와 장소가 달라지면 그 방법을 달리해야 그 자부를 잃지 않지 만약 획일적 방법만 고집한다면 잃어버리기 쉽다. 특히 지금처럼 가속도가 붙은 시대에서 국가나 기업의 경제와 정치력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도 그럴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17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수출서물: 여러 인물에서 하늘이 출현한다

하늘은 생명활동이 가능하도록 시간도 베풀어주고 공간도 만들어준다. 그러기에 공자도 하늘은 아무 말 없이 세월을 운행하며 모든 생명을 생육시킨다고 찬탄하면서 자신도 하늘처럼 살고 싶다고 하였다. 주역에서 하늘은 인체의 머리로 비유된다. 형상의 차원에서 볼 때 머리는 인체의 꼭대기에 있으면서 둥근데 하늘도 위에 있으면서 둥글게 인식되어왔다. 그 성격의 차원에서 볼 때 머리에는 우리의 생각을 통솔하는 뇌가 있는데 하늘은 땅과 대비될 때 형이상적으로 규정된다. 그래서 하늘 천자의 옛 글자를 보면 사람의 형상에서 머리를 부각시켜놓았다. 우리나라에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내려왔는데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사람 속에 내재되었다고 여겨지는 하늘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발현시켜 써먹을지에 관한 것이다. 내 속에 있는 하늘만이 진짜라고 우기면서 싸워오고 지금도 싸우는 것이 인간 종교전쟁의 역사임을 돌이켜보면 하늘은 생각하기도 싫은 이름이다. 주역에서는 하늘은 한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평범한 여러 사람들인 서물(庶物)에 내재되어있으니 평범한 여러 사람들에게서 출현해야만 세계에 평화가 온다고 하였다. 어느 한 사람의 구세주가 나타난다 해서 이 세상에 평화는 오지 않는다. 게다가 겉으로만 평화를 말하고 속으로는 싸움을 그치지 않으면서 하늘을 전파하는 행태로는 이 세상에 평화는커녕 재앙만을 재촉할 것이다. 공자는 하늘은 모든 사람 속에 있고 다양하고 평범한 여러 사람 속에서 하늘이 출현할 때만이(首出庶物) 온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올 것이라고(萬國咸寧) 하였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10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각종기류: 각기 그 부류를 따른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처럼 사람들의 모임은 관찰해보면 그 모임에 소속된 사람들끼리 무언가 서로 비슷한 점이 있다. 정치판을 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당과 야당의 행태를 보면 대체로 일정한 사안에 대해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데 끼리끼리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동양의 고전에서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생각을 공유하고 비슷한 행위를 하는 원형을 자연계에서 찾는다. 동물도 물에 모여 사는 물고기들은 비늘이 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은 날개가 있다. 이런 도리를 "솔개는 하늘을 날아다니고(鳶飛戾天) 물고기는 연못에서 헤엄치며 뛰고 있구나(魚躍于淵)!"하고 시로 읊조린다. 중용에서는 이런 도리는 모두 상하의 천지에 근본을 둔 것이라고 보았다. 주역에서는 끼리끼리 모여들고 따르며 감응하는 도리를 여러 가지 차원에서 구분해서 표현하였다. 사람이나 새나 물고기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지만 귀에 들리는 소리를 통해서도 이런 도리는 드러난다. 겨울철 동지(冬至)가 되면 음악에서 황종(黃鐘)이라는 율관이 상응하여 동지의 음률을 낸다. 이것이 해당부류의 소리가 감응하는 동성상응(同聲相應)이란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근저에는 기(氣)의 운동이 있으니 기(氣)의 운동이 상호 감응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에 보고 듣는 현상계의 상호감응도 가능하다. 해당 부류가 기의 차원에서 상호 추구하는 것을 동기상구(同氣相求)라 한다. 본질적인 기(氣)가 다르면 드러나는 소리나 색이 다르고 다른 부류끼리 모여서 활동하니 자연 당파(黨派)가 생긴다. 그러니 당파끼리 매일 앙앙대며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런 건 지나온 역사가 증명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03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꽃들, 바람을 가지고 논다

꽃들, 줄기에 꼼짝 못하게 매달렸어도바람들을 잘도 가지고 논다.//아빠꽃 엄마꽃 형꽃 누나꽃 따라/아기꽃 동생꽃 쌍둥이꽃바람들을 잘도 가지고 논다.//바다에서 파도를 일으키며 놀던 바람도산속에서 바윗덩이를 토닥이며 놀던 바람도공중에서 날짐승을 날게 하던 바람도//꽃들 앞에선 오금을 쓰지 못한다./꽃들 앞에선 그 형체까지를 잃는다.//팔다리 몸통 줄기에 붙들렸어도그 자태만으로 바람의 팔다리를 묶으며그 향기만으로 바람의 형체를 지우며//잘도 가지고 논다.잘도 달래며 논다.조태일(1941~1999)오래 기억되는 시일수록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런 시는 기존의 상식을 깨뜨리고 고정된 의미를 변화시켜 새롭게 만든다. 우리가 아는 한, '바람'은 불어오는 것이며, 바람을 맞이하는 사물의 움직임을 통해 그것의 방향과 세기를 감지한다. 그런데 이미 구축된 바람에 관한 인식을 "꽃들, 줄기에 꼼짝 못하게 매달렸어도/바람들을 잘도 가지고 논다."라고 함으로써 우리는 바람을 낯설게 보게 되는 것. 이제 바람이 주체가 아니라, 꽃이 주체가 되는바, 바람이 꽃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꽃이 바람을 움직이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바다' '산속' '공중'을 가지고 놀던 거대한 바람이라는 존재는 '꽃들 앞에선 오금을 쓰지'못하고 '그 형체까지를 잃어버리는 것' 시는 바로 이러한 역발상을 통해 사람들의 '팔다리 몸통 줄기에' 붙어 있는 고착된 생각을 해체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는 기호의 "그 자태만으로" 의미의 "그 향기만으로" 언어가 시작된 이래 변함없이 우리를 "잘도 가지고 논다./잘도 달래며 논다."라고 할 수 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0-01 권성훈

[주종익의 '스타트업']1조달러 스타트업

애플은 스타트업 DNA를언제나 유지하길 바라겠지만스타트업에서는 닮지 않았으면… 처한 환경 다른 비밀주의 경영얼마나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1조 달러라면 세계 최대의 초대형 기업인데 신생초기 기업인 스타트업이라니? 나는 애플을 이렇게 정의한다. 애플에는 스타트업 DNA가 아직도 살아있기 때문이다. 1조 달러라면 엄청나게 큰돈이다. 우리나라 2017년도 국민 총생산액이 약 1조5천억 달러 정도이니 우리나라의 GDP의 70%에 달하는 금액이다. 애플은 2018년 8월 2일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달성했다. 최근(9월 4일)에 아마존도 한때 1조 달러를 돌파하였으니 애플과 아마존의 주식을 팔면 우리나라 증권시장에 등록된 모든 회사를 다 사고도 남는 금액(2017년 우리나라 증시 시가총액은 1조7천억 달러 정도임)이다. 12만3천명(2017년 Annual Report)의 거대한 기업이 어떻게 스타트업과 같이 민첩하고 일에 대한 독기가 빠지지 않았을까? 통상 배부르고 등 따시면 게을러지고 놀고 싶고 폼도 잡고 싶고 거드름도 피우고 위험은 피하려고 할 텐데 아직도 혁신과 도전과 오기가 여전하다. 애플의 기업문화가 그렇다애플은 최고 최상의 상품을 골동품 만들듯이 예술적이고 모두가 갖고 싶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명품주의를 고수하는 회사이다. 스타트업 성공의 요인 중에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남과 다른 차별화된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 제품을 개발한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개발을 직접 한 것은 없다. 스티브 잡스의 천재성은 제품 개발에 있지 않다. 그의 천재성은 좋은 사람을 끌어오고 아이디어를 훔쳐다가 남들이 생각 못 한 부족한 부분을 집어넣어 전혀 새로운 창의적인 제품을 만드는데 인문학적인 통찰력과 디자인 우선 전략을 수립해서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능력에 있다.애플은 경영학 교과서를 따르지 않는다. 권한이양이나 자율경영 보텀업(Bottom up·하부의견수렴) 정보공유 등등 경영기본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스타트업도 경영학이 상당기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고객의 요구를 철저히 따르도록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고객은 무지하기 때문에 물어볼 필요 없다는 주의다. 애플에게만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니 고객이 그 물건을 알 리가 없다.애플 직원은 자기일 이외는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직원도 들어가지 못하는 비밀 장소가 칸막이처럼 쳐져 있다. 세상에 없는 최고의 것을 만들려면 비밀주의는 어쩔 수 없다. 경영학 교과서에 있는 대로 민주적이고 차별 없는 자율적인 조직으로는 안될 것이다. 그 대신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정해진 목표와 일정은 칼같이 맞춰야 한다. 애플에 친구가 있어도 자유스럽게 못 만난다. 만일 기밀이나 내부이야기를 잘못하면 모가지가 잘린다. 톱 다운(Top Down·시키는 대로 하기)은 똑똑한 경영자가 깃발을 들고 나만 따라오면 된다고 생각하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경영이다. 미국의 유수한 기업은 모두 회장이 직접 스타트업을 시작해서 키워낸 사람들이라 실무자보다 더한 마이크로 경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회장은 막강한 권한은 있지만 해본 경험이 없으니 참모진의 의견을 자기 것 화하는 사람들이다. 한국과 미국은 회장의 질이 다르다. 삼성이 2016년 3월 스타트업 삼성을 선언했다. 왜 하고많은 단어 중에 스타트업을 택했을까? 삼성은 애플과 같은 스타트업 DNA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독기가 빠졌다고 회장은 느꼈다는 뜻이고 애플을 본 것이다. 그러나 애플은 다니고 싶은 회사는 절대 아니다. 태릉 선수촌과 같은 회사이다. 다녀야만 하는 회사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으면 태릉선수촌에 들어가지 않고는 죽어도 딸 수가 없다. 아침 4시에 일어나서 불암산을 수도 없이 오르내려야 하고 자동차 타이어를 허리에 매고 운동장을 돌지 않으면 금메달은 생각도 말아야 한다. 땀을 3t이던 4t이던 흘려야 가능한 것이다. 애플은 그런 계륵 같은 곳이다. 삼키기는 싫고 뱉어내자니 아깝고.애플은 스타트업 DNA를 언제까지나 유지하기를 바라겠지만 스타트업은 애플을 닮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한 환경이 다르다. 애플은 애플 하나로 족하다. 또 하나의 애플은 없다. 애플의 명품 비밀주의 경영이 얼마가 갈수 있을지 궁금하다./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

2018-09-30 주종익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명야유성: 천명이지만 본성이 있다

한 일 없이 가을밤에 보름달만 쳐다본 것이 벌써 몇 해인가? 생각이 심각해지니 오늘은 인간의 본질적 주제인 천명과 본성에 대해 소개해본다. 성명(性命)은 동양철학의 핵심주제이며 인간의 본질에 관한 화두이다. 성(性)은 성리(性理)적 의미인데 누구나 지니고 있는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존재로 파악된다. 이에 비해 명(命)은 기수(氣數)적 의미인데 사람마다 다 다르게 타고난 이질적 존재로 파악된다. 성(性)이 일체를 수용하는 자유에 가깝다면 명(命)은 일정한 절도가 있는 구속에 가깝다. 본성은 사람이 얻고자 노력하면 얻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명은 얻고자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종류가 아니다. 그래서 맹자는 천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하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그리 되는 것이 천(天)이고(莫之爲而爲者天也) 이르려 하지 않았는데도 그곳에 이르는 것이 명(命)이다(莫之致而至者命也)." 결국 천명이란 나의 본성과 관계없이 유행하는 비교적 현실적 기수(氣數)의 세계로 드러난다. 공자가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있다."고 하면서 천명(天命)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천명에만 매어서 살 것인가? 맹자는 천명은 따르되 더 중요한 것은 본성을 되찾는 것인데 사람들은 거꾸로 한다고 생각했다. 구해도 얻지 못할 명(命)은 욕심을 내어 구하려 들고 배워서 깨달아 알 수 있는 성(性)은 포기해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인(聖人)들이 천도를 깨닫는 일이 물론 천명(天命)에 가까운 부분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구나 지닌 본성(本性)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일을 천명으로만 돌려 포기하지 말고 힘써 공부하라는 뜻이다. 몽고인들의 시력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타고난 것이 천명인데 본성이라 여겨 나의 시력도 그리되길 바라고 성인의 깨달음은 우리도 지니고 있는 본성에 근거한 것인데 천명으로 여겨 멀리한다는 뜻이다. 성인의 출세도 천명이긴 하나 본질적으로는 우리와 똑같은 본성이 있음에 근거한 것임을 늘 잊지 말고 공부하라는 뜻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9-26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일폭십한: 하루는 햇볕을 쪼이고 열흘은 춥게 한다

추석을 앞두고 올해 농사는 망쳤다는 말을 듣는다. 날씨가 따라주지 않은 탓에 그렇다. 곡식은 싹도 중요하지만 그 싹을 잘 길러야 풍성한 곡식을 수확할 수 있다. 하루 동안은 햇볕이 나다가 열흘 동안 날씨가 쌀쌀해져 따스한 온기가 없으면 곡식이 제대로 생육할 수 없어 결국 죽기 쉽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날씨가 그 지역의 일정한 기후를 따라 일정하게 변화해야만 곡식이 제대로 발육된다. 곡식의 발육에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기후의 일정함이나 항상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맹자는 싹이 아무리 좋아도 일정함이나 항상성이 유지되지 않으면 망치는 것을 사람에게 적용하였다. 그 싹이란 바로 실마리 혹은 단서라고 부르는 것인데 맹자는 이를 사단(四端)이라는 인간이 지닌 마음의 싹으로 말했다. 이른바 싹수가 있는 지도자라도 지속적으로 그 싹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그 싹수는 잘 유지되어 자라나기 힘들다. 맹자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책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보았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책임자의 싹수가 아무리 훌륭해도 아래나 주위의 참모들이 선량하지 않거나 선량하더라도 그 말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여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 싹수는 쓸모가 없다. 자신의 충언을 듣고 실행하다가 열흘은 자신을 멀리하여 그 말을 듣지 않는 임금을 맹자는 이렇게 일폭십한의 비유를 들어 비판했다. 임금만을 지목해 말한 것이 아니다. 공자는 사람의 마음은 잘 잡으면 보존되지만 놓아버리면 없어져 버리니 그 들고남이 정한 때가 없으며 그 방향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도 하루는 자기의 마음을 잘 잡고 있다가 열흘을 놓아버리면 그것이 바로 일폭십한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9-19 철산 최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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