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시인의 꽃]꽃나무

벌판 한복판에 꽃나무 하나가 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 하나도 없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으로 꽃을 피워가지고 섰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수없소. 나는 막 달아났소 한 꽃나무를 위하여 그러는 것처럼 나는 참 그런 이상스러운 흉내를 내었소.이상(1910~1937)사회 전체나 모든 인류를 특정할 때, 거시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세계다. 세계는 너무나 크고 방대해서 그 깊이와 넓이의 정도를 감지하지 못하여 추상적으로 생겨난 테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영역을 수사적으로 말할 때 '벌판'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세상이라는 '벌판한복판'에 사는 것이며, 언젠가 비, 바람 속에서 소멸될지 모르는 연약한 '꽃나무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이 고독한 근원에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듯이, 자신을 닮은 꽃나무(사람)가 많더라도 당신을 대리할 수 있는 "꽃나무가하나도없소"라고 성찰하게 된다. 벌판 한 복판에 버려진 인생은 스스로 짊어질 수밖에 없는, 가시밭길 속에 피어난 '꽃나무 십자가'인바, 자신을 위하여 '열심으로 생각'하고 '열심으로 꽃을 피워가지고' 산다. 그러나 나라는 '꽃나무'가 타자라는 '꽃나무'에게 다가가면 갈수록 그 '꽃나무는' 당신이 '생각하는 꽃나무'가 아니기에 멀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사는 살벌한 벌판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생각은, 달리 말하자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중심축'이 세계라는 점에서 이제 "이상스러운 흉내" 보다는 당신의 빛깔과 향기에 맞는 고유한 꽃을 피우시길.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9-17 권성훈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여측이심(如측二心)

열렬히 사랑했던 이의 이별통보원망과 배신감에 괴로운 연인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자신속에 제2의 자아와 싸우며속 다른 두얼굴 감추고 사는지도여측이심(如측二心)은 뒷간에 갈 적과 나올 적 마음이 각각 다르다는 뜻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줬더니 오히려 보따리 내놓으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과도 일맥상통하는 사자성어이다.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여측이심의 행태는 반드시 불행을 부른다.태진아가 부른 '바보'(작사 조성현, 작곡 박성훈) 노랫말에는 여측이심의 예가 뚜렷이 나타난다. 곡명 '바보'의 가사 도입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마음 주고 정을 준게 바보였구나/사랑을 한 내가 바보였구나/거짓말인가 정말인가요/날 두고 가신다는 그 말이'. 화자는 속 다르고 겉 다른 연인의 배신에 뒤통수 맞은 듯 뼈에 사무쳐 있다. 그는 오직 '마음'과 '정'과 '사랑'만을 연인에게 헌신해왔다. 그러나 이제 연인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사랑이 위기에 봉착하자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이런 와중에 어느 날 그는 연인으로부터 헤어지자는 가슴 쓰라린 말을 듣는다. 이별 통보를 처음 접했을 때 긴가민가하지만 곧이어 극심한 모욕감에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처음엔 왜 몰랐을까 이렇게 끝나는 것을/속 다르고 겉 다른 당신'. 이렇게 화자는 연인의 여측이심 변심에 분통을 터뜨리며 비분강개한다. 어찌 보면 그에게 연인은 로마신화에 나오는 일그러진 두 얼굴을 지닌 야누스형 인물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또한 꽤 오래전 방영된 미국 TV 드라마 '두 얼굴의 사나이'의 등장인물인 분노의 화신인 괴물 '헐크'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을 수 있다. 즉 화자는 자신의 연인이 너무나 달콤한 말로 치장한 이중적 인물임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이에 따른 심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선택의 여지없이 헤어짐의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왕에 가실려거든 내 눈 속에 남아있는 눈물도' 전부 회수해가라고 '바보'처럼 체념하며 자신의 연인을 포기한다. 인순이가 부른 '잠깐'(작사·작곡 나훈아) 노랫말에도 여측이심의 예가 선명히 드러난다. 가사에 등장하는 화자는 사랑했던 자신의 연인과 이별의 문턱에 서 있다. 그러나 왜 헤어져야 하는지 정작 그 이유를 전혀 알 길이 없다. 다만 그 연인이 '도망치듯 달아나듯' 돌아서서 떠나려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화자의 현재 심경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복잡다단하다. 그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연인에게 자신을 떠나려는 '이유라도' 꼭 알고 싶다며 되묻는다. '잠깐 묻고 싶은 말이 있어요/왜 가는지 왜 가는지 떠나가는 이유라도 들어 봅시다'. 화자와 연인 사이의 사랑은 처음에는 영원히 지속 가능할 것처럼 미친 듯이 사랑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 화자는 이별여행을 준비할 수밖에 없어 심적인 허탈함과 혼돈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화자는 자신의 진심 어린 사랑을 '농담처럼 장난'으로 생각한 연인에 대해 몹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그는 연인에게 자신의 전부를 바치며 열렬한 애정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두커니 별리의 정거장에 멈춰 서 있다. 그리고 변소 갈 때와 나올 때가 너무나 다른 연인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을 토로한다. 그러나 오랜 생각 끝에 푸념을 늘어놓으며 헤어짐의 현실을 받아들인다.'잠깐 그럴 수가 있나요/가더라도 가더라도 마지막 술잔이나 비우고 가소'.화자는 이제 겉과 속이 완전히 상반된 여측이심의 화신인 연인의 달달한 사랑 고백에 기만당했던 자신의 아둔함에 후회막급이다. 아울러 자신의 처지를 원통해하고 한숨을 쉬며 탄식한다. '사랑한단 그 말을/믿은 내가 바보지 믿은 내가 바보야/믿은 내가 어리석지'.스코틀랜드 작가 로버트 스티븐슨의 고딕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의 여측이심의 이중성을 신랄히 고발한다. 선의 상징 지킬 박사의 자아 안에 악의 화신 하이드라는 별개의 인격체가 충돌한다. 이 같은 정체감 장애는 지킬 박사의 자살로 막을 내린다. 현대인도 자신의 자아 안에 내재하는 비뚤어진 제2의 자아에게 쫓기고 있을 수 있다. 어찌 보면 지킬 박사처럼 겉과 속이 다른 두 얼굴을 감추고 사는 지도 모른다./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2018-09-16 고재경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수불승화: 물이 불을 이기지 못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이 지닌 도덕적 가치의 우위와 현실적 능력의 우위는 일치하지 않는다. 도덕적 명분과 현실적 능력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하고 갈등하지 않기도 한다. 맹자는 인간은 누구나 양심이 있기 때문에 선악을 구분하고 실천할 수 있는 도덕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이른바 양지양능(良知良能)의 이론이다. 그러나 이건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서로가 목숨을 놓고 싸우는 전쟁에서는 이기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에 선악은 저 아래 묻히기 마련이다. 중국의 전국시대는 어찌 보면 약육강식의 전쟁의 시절이었는데 맹자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도덕적 판단과 실천을 잃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정당함이 부당함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은 비일비재인데 일관성 있게 도덕적 주장을 하려니 도덕과 힘을 대비시켰다. 그래서 『맹자』를 읽다 보면 그런 대비를 자주 보게 된다. 그중 하나의 대비가 물과 불로 나타났다. 물로 불을 끄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원리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원리가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물이 불을 이기지 못한다'고 푸념한다. 다시 말해 양심적인 사람이 비양심적인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푸념한 것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자주 푸념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맹자는 다음과 같이 변명한다. "어짊이 어질지 못함을 이기는 것은 마치 물이 불을 이기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한 잔의 물을 가지고는 한 수레 가득한 나무에 붙은 불을 끄려 하다가 꺼지지 않으면 물이 불을 이기지 못한다고 푸념한다." 맹자에 의하면 여전히 물이 불을 이기는 성질은 변함이 없다. 다만 그 당연한 성질을 사람들이 현실에 구현하지 못해 벌어지는 것뿐이다. 하지만 맹자 말을 뒤집어보면 인간들이 대체로 양심을 회복하는 힘이 강해지지 못하면 불이 물을 이기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9-12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김춘수(1922~2004)'누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서로의 관계맺음을 표상하는 것처럼 이름이 잦아드는 것은, 그 만큼 관계맺음에서 멀어진다는 것. 안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인바, 기억 속에 당신의 이름을 꺼내어 호명함으로써 '내가' 여기 '그에게' 살아 있음을 승인받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사실상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행위로서 자아는 타자의 생각 속에 이름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마치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아무것도 아니며 길가에 지나는 사람들같이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것같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유의미한 그 무엇인가 된다. 당신은 이름 속에 들어있고, 이름은 당신이라는 기억으로 타자에게 전치되는 것이기에, 당신의 그 이름은 누군가에게 당신이 가진 '빛깔과 향기'로서 살아있다. 그렇지만 꽃과 같이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피어 올려야 하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9-10 권성훈

[김나인의 '생활관상']억만금을 주고도 강제로 꾸미거나 살 수 없는 것이 눈빛이다

선(善)과 악(惡)으로 갈리는 업보얼굴 모습 변화시킬 수 있지만 눈의 형상·눈빛은 바꿀 수 없어하늘영역의 가치 기준이기 때문에관상학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눈이 어둡고 흐릿하며 술에 취한 듯 초점이 흩어지고 눈동자가 불명하거나 흰자위에 붉은 줄이 생기면 기혈작용이 막혀있다는 징후이니 마음에 근심을 안고 사는 사람이며, 현재의 운이 불길하다 말할 수 있다. 평소와는 달리 눈이 갑자기 튀어나온 듯 보이며, 눈동자가 간질간질하고 무겁고 아픈 증상이 생기면 해와 달이 구름 속에 갇혀 정기를 잃어버린 것과 같으니 신변에 불리한 일이 생긴다 보는 것이다.아무리 얼굴이 맑고 풍륭해도 눈빛이 흐릿하고 초점이 흩어지고 어두우면 잘 되어가던 일도 갑자기 막혀 고전하게 되며 심하면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 등으로 생명에까지 위태로운 일이 발생 되는 것이다. 중병으로 죽어가던 사람도 눈빛이 밝아지고 은은한 광채가 발하면 그때부터 회복되기 시작하여 건강을 되찾게 되나, 이와 반대로 안신이 꺼져가는 불빛처럼 흐릿하고 탁해지면,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니 부귀영화도 물거품처럼 흩어져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눈은 크기와 상관없이 광채가 나고 초점은 분명하며 맑고 선명해야 정신기(精神氣)의 상태가 온전하고 기혈작용이 정상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마음의 바탕에 담긴 정신의 상태에 따라 운의 흐름이 눈에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니, 그래서 눈은 마음의 거울이고, 마음을 담은 그릇이라 말하는 것이다.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건강해 보여도 얼굴에 담겨있는 기색의 형상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에 따라 상(相)은 변하고 바뀌게 된다. 좋은 생각, 배려와 관심 그리고 작은 성의와 정성이 그 사람의 명운을 좋게 만드는 경우가 흔한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이익이 아닌 타인을 위하는 마음으로부터의 출발, 그것이 양심이며 양심이란, 내가 행하여 싫은 것은 남에게도 보여주거나 강제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배고픈 사람이 더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나누어 함께 먹는 일, 그것이 선업이고 양심 있는 삶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본의 아니게 남에게 피해와 상처를 남기는 일이 너무도 많다. 무심코 던진 사소한 말 한마디가 상대방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고, 작은 배려가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사람이 행하는 모든 행동은, 그것이 비록 미미하고 사소하여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일이라 해도 모두가 선(善)이든 악(惡)이든 업(業)을 남기는 일이며, 훗날 과보가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 오는 것이니, 이 업보에 따라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어 명운의 틀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은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선업과 악업은 남몰래 숨어 행한다 하여 언제까지나 감출 수만은 없는 일이며, 드러내놓고 행한다 하여 모두가 칭송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이해가 아닌, 갓 태어난 어린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생명의 소중함 외에 그 어떤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진정한 배려요 선업이라 할 수 있다. 선을 행하는 마음에 사람이든 동물이든 가릴 것은 없다. 이런 실천을 행하는 사람의 마음의 바탕에서 돋아나는 눈빛은 그래서 맑고 밝고 선명하며 은은한 광채를 발하는 것이다. 이런 눈빛을 가진 사람에게 어찌 자손에게 이로움이 없다 말하며, 그 집안이 흥함을 의심하겠는가. 때가 되면 반드시 발하는 것이 과보이니, 훌륭한 부모를 둔 것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생을 하며 살아온 것도, 형제 덕이 있고 좋은 친구를 만나는 일도, 좋지 않는 친구를 곁에 두어 쇠락의 길을 동행하는 것도 모두가 전생의 과보일진대, 누군들 부잣집에서 태어나 고생 없이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망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라도 부모를 직접 선택하고, 자신의 얼굴을 직접 만들고, 세상에 태어나는 날을 직접 가리어 세상에 나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니 이것이 숙명이요, 과보에 따른 현생에서의 출발선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 의지와 맞물려 운명이라는 틀에서의 또 다른 업보를 만들게 되는 것이고, 이 업보가 선(善)과 악(惡)이라는 어떤 결과물로 나타나는바, 얼굴 모습은 다르게 꾸미고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지만, 눈의 형상과 눈빛의 기색만은 그 어떤 것으로도 꾸미거나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인간 의지를 넘어서는 하늘의 영역에서의 가치기준에 기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상학에서도 눈의 형상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

2018-09-09 김나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경천지유: 하늘의 달라짐을 공경하라

좋은 일이 잘 보존되면 그 이상 좋을 게 없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히 보존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좋은 일이 점점 좋지 않게 변해간 '시경'에서는 그 주체를 천하의 정치를 들어 경천지유(敬天之 )를 읊었지만 정치뿐이 아니다. 개인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고 세계도 그렇고 지구도 그렇고 태양계도 그렇고 우주도 그렇다. 이렇듯 좋은 것이 좋지 않게 변해갈 때는 그 달라지는 징표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미세한 단계로 나타나 보여주면 그것이 조짐이요 기미이고 현저하게 드러나면 이미 현실로 구현되어버린 것이다. 달라질 조짐이 보이면 두려워하고 공경하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후천(後天)이 되면 세계가 일가(一家)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 선천은 봄여름에 해당하여 발산하는 시절이고 후천은 가을겨울에 해당하여 수렴하는 시절이다. 한곳으로 수렴하니 세계도 일가(一家)로 수렴한다는 것인데 세계일가라는 이 말은 흥하면 같이 흥하고 망하면 같이 망하게 되니 세계 온 나라가 운명공동체가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개인이나 한 나라가 자기만 잘났다고 해서 자기만 잘살아지는 세계가 아니라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선천이 각자도생의 시절이었다면 후천은 공동운명의 시절이다. 이런 천도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모두 쫄딱 망한다는 뜻이다. 아직도 이런 변화를 공경하지 않고 그저 내 나라만 잘살면 된다는 강대국의 리더십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인간만 잘살면 된다는 발상이 북극의 빙하를 녹여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는 지금의 두려운 변화를 보면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인간과 자연도 공동운명이 된 이 마당에 인간끼리의 공동 운로(運路)야 말할게 뭔가!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9-05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풀꽃과 더불어

아파트 베란다/난초가 죽고 난 화분에 잡초가 제풀에 돋아서/흰 고물 같은 꽃을 피웠다.//저 미미한 풀 한 포기가영원 속의 이 시간을 차지하여무한 속의 이 공간을 차지하여한 떨기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생각하면 할수록/신기하기 그지없다.//하기사 나란 존재가 역시영원 속의 이 공간을 차지하며/무한 속의 이 공간을 차지하며저 풀꽃과 마주한다는 사실도/생각하면 생각할수록/오묘하기 그지없다.//곰곰 그 일들을 생각하다 나는/그만 나란 존재에서 벗어나그 풀꽃과 더불어//영원과 무한의 한 표현으로/영원과 무한의 한 부분으로영원과 무한의 한 사랑으로//이제 여기 존재한다.구상(1919~2004)존재하는 것들의 존재방식을 환원한다면 시―공간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나'란 누군가 있었던 자리에 잠시 머물렀다 돌아가기에 '지금―여기'는 살아있음을 알리는 표상이 된다. '난초가 죽고 난 화분'에서 또 다른 '잡초가 제풀에 돋아'나듯이, "나란 존재가 역시" '영원 속의 이 시간'과 '무한 속의 이 공간'을 임차하고 '흰 고물 같은 꽃'을 피워 올리고 있는 것. 그러나 쓸모없이 보이는 '풀꽃'도 누군가에게는 기쁨과 희망으로서 쓸데 있게 다가가듯이, 자아를 찾는 것도 이처럼 유의미한 원리로 작동된다. 길가에 홀로 핀 풀꽃을 마주하고 생각이 생각 속으로 이어질 때 '그만 나란 존재에서 벗어나' 나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풀꽃'만 남게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영원과 무한 사이'에서 살아있음을 증명할 '한 표현'이 있다면 '한 부분'을 인정하고 '한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쓸모 있는 척하는, 당신도 '이제 여기' 진정으로 존재하게 되리니./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9-03 권성훈

[조성면의 '고서산책']'삼국유사'의 역사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유사'는 보각국사 일연(1206~1289) 시대 고려본이 아니라 1512년 경주부윤 이계복이 펴낸정덕본 또는 중종임신본이다우리는 이야기들에 둘러싸여 산다. 일상적 대화에서 소설·역사·뉴스·영화·게임·드라마 등 찬찬히 돌아보면 우리의 삶은 온통 이야기들이다. 이야기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유발 하라리(1976~)도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 전역에 퍼져나가면서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야기를 가지지 못한 민족은 존속할 수 없다. 신화 · 전설 · 민담은 이야기의 조상이며, 민족적 정체성의 근간을 이룬다. '삼국유사'는 이야기의 보물창고요, 역사며, 민족문화의 밑바탕이다. 우리가 신화와 이야기에 관한 한 남부럽지 않은 민족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삼국유사'(이하 '유사') 덕택이다. 단군신화와 가락국기에 김유신 · 만파식적 · 선덕여왕 등 '유사'는 가히 국민적 스토리들이요, 문학과 사상과 역사를 포괄하는 종합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조동일 교수는 '삼국사기'를 정사로 중시하고 '유사'를 야사로 보는 관점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유사'를 '대안사서'로 부르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유사'는 보각국사 일연(1206~1289) 시대의 고려본이 아니라 1512년 경주부윤이었던 이계복이 펴낸 정덕본(正德本) 또는 중종임신본(中宗壬申本)이다. 임신본보다 앞선 판본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 연대를 확인할 수 없고 임신본보다 시기가 앞서면 관행상 고판본이라 통칭한다. '유사'의 완질본은 서울대 규장각, 고려대 도서관, 덴리대 도서관 소장본 등을 꼽을 수 있다. 덴리대 소장본은 순암 안정복(1721~1791)의 수택본으로 1916년 이마니시가 입수했고, 다시 이를 덴리대학이 소장하게 된 것이다. 그 밖의 낙질본 혹은 영본으로 육당 최남선(1890~1957)이 가지고 있던 고려대학 소장 광문회본과 연세대학이 소장한 파른 손보기(1922~2010)의 파른본 등을 꼽을 수 있다. 해방 후 '유사'의 최초 번역본은 1946년 사서연역회가 임신본을 저본으로 하여 고려문화사에서 펴낸 판본이다. 사서연역회는 김춘동 · 이가원 · 이민수 · 홍기문 등 당대 최고 지성들의 모임이었다. 사서연역회의 국역 이후, '유사'의 번역은 백가쟁명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종열(1954), 이병도(원문병역주 삼국유사, 1956), 이재호(1967), 이민수(1975), 권상로 역해본(1978), 성은구 역주본(1981) 등이 대표적이다. 북한에서 나온 '유사'의 번역본으로는 리상호 역주본(1960)이 있다. 이는 1999년 도서출판 까치에 의해 국내에서도 출판된 바 있다. 북한판 '유사' 번역본은 철저한 한글전용 원칙과 대중친화용 원칙을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단군신화의 풍백(風伯) · 우사(雨師) · 운사(雲師)를 각각 바람 맡은 어른 · 비 맡은 어른 · 구름 맡은 어른으로, 심지어 만파식적(萬波息笛) 같은 고유명사마저 '거센 물결 잠재우는 젓대'로 번역하는 등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한국의 문화원형인 '삼국유사'는 막상 독서용이나 참고자료로 이용하려 하면 지나치게 많거나 지나치게 없으며, 너무 알려져서 읽었다 착각하고 아예 안 읽는 '말로만 고전'으로 남아있는 게 아닌가 하여 매우 안타깝다. 몇 해 전 단골 고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서가에 꽂혀있는 사서연역회의 '삼국유사'를 한참 망설이다 구입했다. 당연히 사야 할 책이었건만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고민하다 결국 골랐던 다른 책들을 포기하고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꼭 사야 할 고서라면 망설임 없이 즉시 구입해야 한다. 삶도 책도 그 순간이 지나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일기일회(一期一會)가 아니던가./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

2018-09-02 조성면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일도사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한 방법으로 백성을 부린다

요즈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부의 경제정책을 두고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 어떤 정책이 좋은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얼까? 경제적 전문지식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 말고도 인문학적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는 문제이다. 고전에 도(道)라는 글자가 자주 나온다. 道란 길이다. 이 길은 사람들이 오가며 통행하는 길이다. 사람은 오갈 때 길을 통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길은 당위(當爲)의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이 반드시 행해야 할 그 무엇을 도(道)라고 한다. 길은 서로 연결되어 통해있기 마련이므로 길이 있다면 어디든 목적한 곳에 다다를 수 있다. 그래서 道는 고전에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목적이 정해지면 그에 맞는 방법이 따르기 마련이다. 일도(佚道)에서 일(佚)이 목적이라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이 도(道)이니 일도(佚道)란 '편안하게 해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정도로 새길 수 있다. 사민(使民)은 말 그대로 백성을 사역하는 것이니 각종 부역과 세금을 의미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세금을 올려서 부세(賦稅)하는 것이 바로 사민(使民)이다. 세금을 자꾸 올리면 백성들이 좋아할 리 없다. 그런데 맹자는 편안하게 해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세금을 올리면(佚道使民) 비록 힘들어도 원망하지 않는다(雖勞不怨)고 하였다. 그러므로 정부의 정책은 그 목적과 방법이 일도(佚道)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백성들이 자신들이 힘들어도 수긍을 한다고 보는 것이 맹자의 견해이다. 어떤 정책을 낼 때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말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8-29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꽃그늘에서

눈물은 속으로 숨고웃음 겉으로 피라우거진 꽃송이 아래조촐히 굴르는 산골 물소리……바람 소리 곳고리 소리어지러이 덧덮인 꽃잎새 꽃낭구꽃다움 아래로말없이 흐르는 물아하 그것은내 마음의 가장 큰 설움이러라하잔한 두어 줄 글 이것이어찌타 내 청춘의 모두가 되노조지훈(1920~1968)빛을 가린 물체 뒷면에 생긴 검은 그늘인 그림자(shadow)를 심리학에서는 은폐되고 억압되어 있는 또 하나의 인격체로 말한다. 이른바 '눈물은 속으로 숨고'있지만 겉으로는 '웃음'으로, '우거진 꽃송이 아래' 지나가는 '물소리'로, '꽃다움 아래로' '말없이 흐르는 물'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림자는 겉과 속의 이중성 또는 양면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꽃그늘'은 꽃의 그림자가 아니라 아무리 아름다운 꽃일지라도 그것에는 억압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송이 꽃도 그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어지러이 덧덮인' 시간을 관통하며 왔는지, 구구절절 알 순 없지만 짐작할 뿐. 마치 당신 "마음의 가장 큰 설움"이 그러하듯, 그것을 '두어 줄 글'을 통해 전할 수 없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빛나는 만큼 빠르게 지나간 '청춘'을 보면 '꽃그늘' 드리워져 있지 않던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8-27 권성훈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저기, 안에 있어요?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방문 두드린것은 월세 독촉하거나 욕정의 대상을 찾을 때였다그때의 '저기'는 그를 사람이 아닌 사물로 대하는 그저 소리였을 뿐지난 8월 14일부터 19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극단 나베의 '예술이 죽었다' 공연이 있었다. '예술이 죽었다'는 한 사람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이는 28세. 직업은 소설가. 등단한 적은 없으나 신춘문예 심사평에 언급되었고 소설을 쓰고 있으니 소설가라 해도 되지 않을까. 비록 자신이 쓰고 싶은 소설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잡지사가 요구하는 대로 써야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벌이가 신통치 않아 월세는 밀렸고, 냉장고는 비어 있다. 지병이 악화되어 상태가 심각하나 치료는 엄두를 낼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쓴다. 쓰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는 것처럼.연극은 그의 죽음으로 끝난다. 아니 주검이 발견되지 않은 채 끝난다. 사회에서 밀려나고 밀려나 홀로 고립된 죽음 뒤에 그의 몫으로 남겨진 것은 밀린 고지서 다발이다. 학자금 대출에서부터 신용카드까지 각종 고지서 다발만이 그가 죽음에 이르는 동안 벌인 사투의 시간을 말해주고 있다. 밀린 고지서의 두께는 그가 고립된 채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의 두께이다. 그 두께가 두꺼워지는 동안 그의 고립은 깊어 갔다. 짐작했겠지만, 이 연극은 연극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다.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라는 마지막 문장을 남긴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을 이제는 망각하지 않았는지 연극은 묻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5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예술 활동 수입의 중앙값은 300만원이며 평균값은 1천255만원이다. 조사 대상에 포함된 분야는 평균값이 높은 순으로 건축, 방송, 만화, 영화, 음악, 연극, 대중음악, 공예, 국악무용, 사진, 미술, 그리고 문학이다. 문학 분야의 중앙값은 10만원이며 평균값은 214만원이다. 연극분야의 중앙값은 500만원이며 평균값은 1천285만원이다. 연극분야의 경우 '연극인, 우리 스스로의 복지' 실태조사(2017년)에서 1천319만원으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다만 수입에서 연극공연 수입은 351만원이며, 연극공연 외 활동이 385만원, 연극외 예술 활동이 241만원, 예술과 무관한 활동이 393만원으로 조사되었다. 예술인 복지법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의 통계들이다.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이 문장은 물음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던지는 문장이다. 단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불안 정도만 담고 있다면 미지의 가능성을 창조할 힘이 그 속에 있으니 스스로의 재능을 갈고닦으라고 말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생존의 위기 앞에서 '언제까지 꿈꿀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로 그만 탈바꿈하고 만다. 물론 이른바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말이 자성의 문장이 아니라 탄식과 자조의 문장으로 전락하게 되는 배경에는 창작자의 능력과 무관한 사회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자기 좋아서 하는 일이며, 그래서 모든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다고 말하는 사회는 얼마나 참혹한가. 적어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말이 그런 답으로 돌아와서는 안 되는 것이다.연극 '예술이 죽었다'의 그는 이야기를 만들다가 그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그가 단칸방에 고립된 채 죽어가는 동안 "저기, 안에 있어요?"라며 그의 방문을 두드린 이웃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 방문을 두드린 '저기'는 밀린 월세를 독촉하거나 욕정의 대상을 찾을 때였다. 그때의 '저기'는 그를 사람이 아니라 사물로 대하는 그저 소리였을 뿐이다. '저기'가 단지 소리에 그치지 않고 이웃에게 말을 거는 감탄사의 '저기'로 복원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죽는 것이 예술이 아니라 사람이기에. 연극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음식을 들고 찾아온 이웃의 말을 그가 끝내 듣지 못하는 비극을 만들지 않으려면 말이다./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

2018-08-26 권순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풍우최납: 바람과 비에 꺾이고 부러진다

올해 학교수업에서 필자가 한 학기 동안 황제내경 강의를 하였다. 주로 기후와 날씨예측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슈퍼컴퓨터로도 알기 힘들고 귀신도 모른다는 날씨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아마도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할 것이다.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가능성과 당위성의 문제는 다르다. 마치 장사하는 사람이 오늘 손님이 몇이 올지 몰라도 대략 예정해서 물건을 준비해야 하는 것과 같다. 옛사람들은 기계도 없던 시절 이런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을까? 황제내경이란 고전에 보면 그 해 간지(干支)를 활용해 기후를 예측하는 운기론의 방법이 소개되어있다. 2018년은 간지로 무술(戊戌)이다. 우리나라의 늦여름에는 어느 해가 되었든지 후덥지근하기 마련이지만 매해 구체적으로는 서로 다른 기후 현상을 보인다. 우리나라는 늦여름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데 태풍이 오면 피해를 입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황제내경의 운기론에 따르면 태풍이 오고 안 오고를 결정하는 것은 객기(客氣)인데 올해의 늦여름 구간에 찾아오는 객기(客氣)는 바람이다. 그래서 무술(戊戌)년의 늦여름 기후양상을 풍우최납(風雨최拉)이라고 표현해놓았다. 우기(雨期)에 풍기(風氣)가 더해져 나무를 부러뜨리고 가지도 꺾어버리는 양상을 정의한 것이다. 태풍의 피해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8-22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채송화

불볕이 호도독호독내려쬐는 담머리에한올기 채송화발돋움하고 서서드높은 하늘을 우러러빨가장히 피었다.조운(1900~?)한 여름 양지바른 곳에서 피는 채송화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담벼락이나 산책로에 낮은 자세로 알록달록 수놓는 이 꽃은 볼수록 앙증맞으며, "불볕이 호도독호독" 지나가는 더위 "내려쬐는 담머리에" 고개를 내민 채송화를 눈높이에 맞춰보며 삐죽삐죽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이에 천진난만과 순진 그리고 가련함이라는 꽃말을 가진 채송화에 얽힌 페르시아 전설이 전해온다. 페르시아에 사치스러운 여왕이 있었는데, 이 여왕은 보석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백성들에게 세금도 보석으로 내라고 할 정도였다. 어느 날 한 노인이 수많은 보석이 담긴 12개의 상자를 가지고 여왕을 찾아와서, 이 보석 하나가 페르시아 백성 한 사람의 몫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왕은 상자 안의 보석을 모두 차지하기로 했고, 노인이 보석 하나를 줄 때마다 백성 한 사람씩 사라져 마지막 하나만 남게 된다. 이미 나라에는 백성이 한 명도 없었음에도 여왕은 망설임 없이 남은 보석을 가지려고 상자를 집어 드는 순간 보석과 상자가 터지면서 여왕도 함께 사라졌고, 보석들의 파편들이 떨어져 채송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채송화는 욕심의 굴레 속에 있는 우리에게 "드높은 하늘을 우러러" 살아갈 것을 "빨가장히" 전언하고 있는 줄 모른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8-20 권성훈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위군자유: 군자다운 선비가 되어라

공자가 제자인 자하(子夏)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군자다운 선비가 되고 소인 같은 선비가 되어서는 안 된다.[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 진정한 선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인데 과연 진정한 선비란 무엇일까? 선비 '유(儒)'자 속에서 찾아본다. 유(儒)는 '수인(需 )'으로 주역 64괘에 들어있는 수괘(需卦- )에서 본래의 깊은 의미를 만날 수 있다. 需卦는 물 기운이 하늘위에 있는 형상으로 하늘위에 물 기운이 형성되어있는데 아직 내리고 있지 않아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상이다. 생물이 비를 기다리며 살기에 수(需)란 일차적으로 '기다림'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모두들 기다리는 사람이 군자다운 선비의 첫 번째 조건이다. 그럼 두 번째 조건은 무엇일까? 역에서 상중하(上中下)의 천지인(天地人)은 상천(上天)과 하지(下地) 중인(中人)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동양에서 오랫동안 천지의 가운데 있는 존재라는 우주적 위상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사람자체가 가운데라는 '중(中)'이란 의미를 지닌다. 도상(圖象)으로 가운데에 위치한다는 쉬운 의미에서 중용, 중심, 근본 등등의 깊은 철학성으로 확충되면서 유학의 중(中)사상은 발전을 거듭해간 것이다. 동양철학의 핵심사상의 중(中)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시대에 맞는 중용을 행하면서 동시에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이 바로 선비[儒]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8-15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꽃덤불

태양(太陽)을 의논(議論)하는 거룩한 이야기는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달빛이 흡사 비오듯 쏟아지는 밤에도우리는 헐어진 성(城)터를 헤매이면서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오는 봄엔 분수(噴水)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보리라.신석정(1907~1974)날이 아무리 뜨거워도 이와 같이 뜨겁게 달아오른 날이 있었겠는가. 일제강점기 35년 억압과 수탈의 폭염 속에서 '민족의 태양'을 다시 찾은 날 '그 어느 언덕'에서나 '거룩한 꽃덤불'로 피고. '그러는 동안'에 자신이 자신을, 서로가 서로를 '잃어버린' '떠나버린' '팔아버린' 수많은 것들을 생각하면, 왜 8월이 "분수(噴水)처럼 쏟아지는 태양" 볕에 그을려 있는지 알 것도 같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가'에서 평화와 자유 평등의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오롯한 태양'을 저마다 모시고, 이 강산을 푸르게 해야 할 책무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반만년 역사의 꽃씨' 속에서 나온 '꽃덤불'이기 때문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8-13 권성훈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삼계화택: 모든 세계가 불난 집과 같다

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류의 문명을 촉발시킨 것이 불의 발명이라지만 요즈음처럼 불이 짜증 나고 무서울까? 기후학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지구는 계속해서 급속하게 가열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더운 여름인데 지구온도의 그래프는 계속해서 우상향(右上向)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집 저집 할 것 없이 다 불이 붙은 것처럼 헉헉대니 삼계화택의 비유가 생각이 난다. 불가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중생이 살고 있는 세계를 삼계(三界)라 하는데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라 구분하기도 한다. 중생은 이 삼계를 윤회하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 삼계가 모두 불이 난 집과 같다. 그래서 삼계가 편안하지 못함이(三界無安) 마치 불난 집과 같다(猶如火宅)고 하였다.불은 중생의 한시도 쉬지 않고 들끓는 번뇌를 비유한 것으로 번뇌가 몸과 마음을 태우며 사는 존재가 삼계의 중생이다. 현실적으로도 지금의 지구환경은 인간의 번뇌에 의해 만들어진 측면이 강하다. 인간의 근본번뇌란 어리석음과 그로부터 발출된 탐심과 진심(瞋心)인데 이 마음에 의해 지금의 지구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역사상 자연주기에 의한 지구 온도의 승강은 있어왔지만 지금의 지구 온도의 상승은 자연주기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현대 문명은 우리에게 화두를 던져주었다. 이미 집에 불은 붙었는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8-08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시들지 않는 꽃

미美는 언제나영혼의 겨울인 눈앞에 있다.산다는 것은 보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안 보는 사람에게 꽃은 없는 것.박희진(1931~2015)우리가 아는 아름다움은 조화와 균형 속에 보여지는 우아미를 말하지만 사실상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미학에서 미란 조화와 갈등으로 빚어지는 '있어야 할 것'과 '있는 것'의 양상으로서 여러 형태의 미적 아름다움을 말한다. 물론 미적인 것을 발견하는 사람마다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까지 다르게 인식하는데, 바로 아는 것만큼 미적인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같은 현상과 사물을 관찰하더라도 미적인 것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은 직감적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내적으로 무던히 미학의 세계를 궁구할 때, 그 전에 알지 못했던 미적 가치를 판독하게 된다. 미적 깊이가 더할수록 거기에서 파생되는 미감은 심오해지게 마련이며, 자신이 성장해가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따라서 '미美는 언제나' 존재하는 것 속에 놓여 있으나 '영혼의 거울인 눈'이 있어야 볼 수 있는 것. "산다는 것은 보는 기술을 배우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만 봤으면서 모두 본 것 같이 살고 있지 않은가. 오늘도 하나만 아는 것이 다 모르는 것과 진배없음을 모르는, 게으른 당신에게 "안 보는 사람에게 꽃은 없는 것"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달궈진 여름만큼 뜨겁게 성찰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8-06 권성훈

[주종익의 '스타트업']안나 카레니나 법칙

'안나 카레니나'는 '전쟁과 평화'와 함께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대표작품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시작은 이렇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보통 이 말을 이렇게들 해석한다 "행복하고 잘 나가는 집안은 모두 생각이 비슷해서 화목하고 넉넉하고 걱정도 없고 엇비슷하지만 잘 안 되는 불행한 집안은 그 안 되는 이유가 천차만별이고 말도 많다." 수많은 신문의 칼럼이나 강연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법칙이다. 대부분 정치 경제 사회현상을 설명하면서 안나 카레니나 법칙을 비유적으로 지금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다.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법칙으로 소개한 사람은 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품이었던 '총. 균. 쇠'의 저자이며 진화 생물학자인 UCLA의대 교수 재러드 다이아몬드이다. '총. 균. 쇠' 9장이 안나 카레니나 법칙에 관한 내용이다. 세상에 수많은 동물 중에 가축이 된 동물은 대개 엇비슷하게 몇 가지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 가축이 되었지만 가축이 못된 동물들은 가축이 되지 못한 이유가 천차만별로 제각기 다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인용하면서 Anna Karenina Principle(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라고 소제목을 붙였다. Principle(보통은 Law를 법칙이라 함)을 법칙으로 번역했다. 정말 법칙일까? 법칙이란 말을 붙이려면 어느 경우에나 반드시 그 법칙이 참일 때 만 붙이는 것이다. 가령 뉴턴의 법칙, 만유인력의 법칙, 에너지 불변의 법칙 등이 한국에서는 참인데 미국에서는 참이 아니라한다면 법칙일까? 안나 카레니나 현상 정도라면 몰라도 행복과 불행에 법칙이라고 붙이기에는 그 정의부터 불분명하다. 법칙이라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술 더 떠서 최근에는 안나 카레니나 법칙을 사업의 성공법칙과 실패 요인을 말하고자 할 때 많이 인용하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요인은 엇비슷하고 실패한 사람들은 그 원인이 잡다하고 제각각이라는 취지로 결론짓기 위해서다. 그러면 정말로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천차만별이고 가축화한 동물은 엇비슷하고 가축화되지 못한 동물들은 그 원인이 제각각이고 성공한 기업가는 성공 원인이 엇비슷하고 실패한 사람들은 실패의 원인이 천차만별이고 제각각일까? 아니다. 행복한 가정, 가축화된 동물, 성공한 기업가도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 가축화 못된 동물, 실패한 기업가도 엇비슷하며 그 반대로 생각하면 이들 모두가 제각각이고 천차만별이다. 관점의 차이이다. 보통 긍정적인 결과를 낸 경우는 총론을 말하니까 엇비슷할 수밖에 없고 부정적인 결과를 낸 경우는 이유를 설명하고 변명하려니까 총론을 말하지 않고 시시콜콜 각론을 늘어놓기 때문이다.행복한 가정은 "성격이 잘 맞는다고 엇비슷하게 말하지만 이혼하는 부부는 성격차이의 내용을 수도 없이 나열하니 제각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성공한 기업가는 고객의 니드를 잘 맞추어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실패한 기업가는 고객의 니드가 천차만별이라면서 그것을 제각기 나열한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성공 신화의 그룹 중에 이베이(e-bay) 사단이라는 것이 있다. 이 사단의 총 대장이 우리나라에 몇 년 전에 방문하여 한국 스타트업을 휘젓고 간 Zero to One의 저자인 피터틸이다. 전기 자동차의 대부 엘론머스크도 이베이 사단의 멤버이다. 피터틸은 그의 저서 제로투원에서 안나카레니나법칙에 대하여 스타트업은 그 법칙과 반대라고 했다.실패한 사람들은 엇비슷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잡다한 제각각의 문제를 해결하고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관점을 실패한 사람들은 총론을 말했고 성공한 사람들은 각론을 해결한 사람들이라고 보았다. 성공한 기업가의 강연을 듣고 성공해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하다. 그 사람이 성공한 것은 그때 그런 생각과 그런 방법으로 성공한 것이다. 성공 사례를 발표하는 사람은 보통 어느 정도 자신을 미화하며 총론만 몇 개 자랑스럽게 말하고 만다. 수능 만점 맞은 학생은 그 비결을 말할 때 뻔한 얘기만 한다. 잠 잘 것 다 자고 수업에만 충실하고 과외는 하지 않고 등등… 총론만 말한다. 오히려 성공하고 싶으면 실패한 사람들의 자질구레한 여러 개의 문제점들을 모아서 하나하나 해결하겠다는 생각이 더 똑똑한 생각인지 모른다. 그래서 실패에서 배운다는 말을 많이 하고 어차피 스타트업 성공확률이 10% 내외이니까 빨리 의미 있는 실패를 경험하고 그 경험에서 성공의 핵심을 발견하라고 한다. 그리고 실패의 경력이 가장 좋은 자신의 스펙이 된다는 것을 빨리 터득하면 좋겠다.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

2018-08-05 주종익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욕파불능: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 둘 수 없다

어떤 일을 하게 되면 일종의 단계가 있다. 그 일을 시작하는 단계가 있고 해나가는 단계가 있고 완성하는 단계가 있다. 시작과 중간과 마무리의 세 단계로 볼 수 있는데 이 세 가지 단계가 연속성이 있어야만 어떤 일이든 완성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일 중에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안연은 스승인 공자의 경지에 대해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이 있고 뚫어보고자 하나 더욱 견고하다'고 말하였다. 이만하면 자신의 경지가 높아졌다고 생각해서 스승을 쳐다보니 스승의 경지가 이전보다 더욱 높다는 것이고, 어느 정도 경지를 뚫었다고 생각해서 스승을 쳐다보면 그 경지가 더욱 견고하게 느껴지더라는 뜻이다. 이 정도 되면 포기할만한데 안연은 그 때의 심정을 '그만 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해놓았다. 왜 그랬을까?안연은 스승과 같이 되어야겠다는 공부에 대한 진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후대에 주석가들은 이 대목에 대해서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지 않을 수 없고 배고픈 사람이 밥을 찾지 않을 수 없는 지경과 같다고 풀이하기도 하였다. 세상에 어떤 종류의 공부든 하다가 포기하는 것은 진심이 발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목이 마르면 어떻게 물을 찾는 일을 포기할 수 있을까? 공부가 밀쳐내도 떠나가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욕파불능(欲罷不能)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쁜 일은 이렇게 되기 쉽지만 좋은 일은 어렵다. 금연하려 담배를 밀쳐내도 담배가 떠나가지 않듯이 확 뒤집어서 좋은 일을 이렇게 하면 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8-01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꽃 1

그는 웃고 있다. 개인 하늘에 그의 미소는 잔잔한 물살을 이룬다. 그 물살의 무늬 위에 나는 나를 가만히 띄워본다. 그러나 나는 이미 한 마리의 황黃나비는 아니다. 물살을 흔들며 바닥으로 바닥으로 나는 가라 앉는다.한나절, 나는 그의 언덕에서 울고 있는데, 태연히 눈을 감고 그는 다만 웃고 있다.김춘수(1922~2004)하나의 형상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수많은 상상을 자극한다. 형상이 체험한 것의 실체성이라면, 상상은 유사성에서 오는 심상으로서 이미지가 된다. 이 이미지는 상상을 통해 가공된 것이지만 원본인 형상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비 개인 강가에 일렁이는 물결의 파장이 한 송이 꽃잎이 피어나는 것 같이. 동그랗고 작은 물결이 점점 크게 번져가는 형상 속에서 꽃을 상상하고 꽃 이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 물살의 무늬 위에 나는 나를 가만히 띄워'보는 것은 '꽃무늬' 같은 물속에 비친 나의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황黃나비'와도 같이 "물살을 흔들며 바닥으로 바닥으로 나는 가라 앉는다"는 것이다. 상상이라는 '그의 언덕에서' 상상은 '태연히 눈을 감고' 더 많이 '울고' '웃는' 이미지를 불러온다. 김춘수는 여기서 '나'라는 의미의 형상(존재)을 지웠을 때, 수많은 이미지(의미)를 만나게 되는 것을 '무의미시'라고 명명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7-30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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