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손경년의 '늘찬문화']예술이라는 '언어'로 소통하기

16일까지 'BIFAN' 반갑다엄격방역 제한관람 영화 집중하게일어난 일 아닌 일어날 법한 일 담은문화·예술은 역사보다 더 철학적소통 어려운 시대 긍정의 가치경험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는 기존의 에스에프 영화가 보여주는 접근방식과 좀 다르다. 내용을 보면, 지구에 12개의 비행물체가 느닷없이 나타났고, 세계의 나라들은 외계인의 방문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언어학자 루이스를 보내며, 루이스는 외계인과의 대화를 시도, 결국 무기를 주겠다는 그들의 말을 이해하였고, 무기는 그들의 '언어'였다. 그리고 그 '언어'는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 시작과 끝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로 진행되는 선형적인 형태의 지구 언어와 달리, 외계인의 '언어'는 과거, 현재, 미래가 원형으로 연결, 공존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어서 '언어'를 얻은 루이스는 현재에서 미래를 보고 과거에서 문제를 해결하여 인류의 파국을 막는다. 그리고 자신의 불행한 미래를 보았으나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언어'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의사소통이다. '컨택트'를 보면 지구인이 외계인과 소통이 되지 않자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서 두려움과 긴장,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소통이 부재하게 되면 개인 간의 갈등, 사회의 혼란, 국가 간의 전쟁 등으로 표면에 드러난다. 사실 외계인과의 소통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같은 습관과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소통 부재로 인한 갈등과 혼돈이 늘 있었다. '같은' 것이라고 여겼던 것은 사실 '같지 않음'이었고, 그렇게 많이 발화된 말들은 소통을 위한 노력이라기보다 위계를 만들고 존엄을 훼손하는 도구로 쓰인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문화예술계가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는 요즘, 지난 7월 9일 시작해 16일까지 이어질 제24회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BIFAN)가 참으로 반갑다. 화려한 레드카펫과 부대행사는 없었지만 엄격한 방역과 거리두기 제한 관람으로 오롯이 영화에 몰두함으로써 영화제의 본질이 무엇이었던가를 되새김해보는 계기가 된 듯하다. 오랜만에 영화관 객석에 앉아 보게 된 한 편의 영화는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진다. 야마모토 타츠야 감독의 '노사리:순간의 영원'은 '활발'했던 도시의 과거와 텅 빈 아케이드 거리의 불안정한 청년들의 현재, 그리고 '당연한 것'은 잃어버리고 난 다음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진짜'가 사라졌을지라도 사람은 '모조품'을 통해 살아 나갈 수 있다는, 다소 쓸쓸한 '소멸도시'의 풍광을 그려내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고민한 작품이었다.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과 예술이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라고 말한다. 역사는 '일어난 일들'을 보여 주지만, 예술은 인간의 삶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예컨대 예술작품을 만나면 우리는 스스로 의문을 가지면서 '일어날 법한 일들'에 주목하게 되고, 뒤이어 정치와 사회적 현상에 관심을 두는 계기를 얻는다. 향유자의 감성과 창작자의 상상력이 만나 소통을 하는 것, 다시 말해 예술이라는 '언어'로 소통을 하면 개인적 삶, 국가와 사회, 계층과 계급 등의 큰 사안들이 서로 분리되어 이해되지 않도록 도움을 받으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현재 상황에서 나와 같은 방식으로 혹은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최근 우리의 하루하루 삶은 매우 구체적인 상황에 있다. 코로나19의 시기에 '예술을 통한 소통'을 갈망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요청과 다수의 생명과 연동되기 때문에 다중이 모이는 장소를 폐쇄해야 한다는 '방역의 요구'를 동시에 들어야 하는 공공문화시설 운영자는 어떤 언어로, 누구와 소통해야 할 것인지 짚어봐야 한다. 동시에 좀 더 중장기적 관점으로 시야를 넓혀, 지금까지의 문화예술의 생산 및 소비의 방식을 '개인적 계산보다는 공동작업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며, 지속적인 대화와 비교, 풍부한 맥락 검토 등을 통해 세상과 사람에 대한 내러티브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경험을 의미'하는 웨인 부스(wayne Booth)의 '공동-추론(co-duction)' 방식으로 재구조화할 필요도 느낀다. 어쨌거나 우리는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는 시대일수록 영화나 연극, 콘서트와 무용 그리고 문학과 전시를 통해, 소통의 왜곡과 변형을 그나마 본래의 뜻으로 돌려줄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는 믿음을 쉽게 버리지 못할 것이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20-07-12 손경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지기소궁: 궁색함을 안다

내가 남을 평가하고 더 나아가 비판을 하거나 심지어 비난을 하고 남도 나를 평가하고 비판하거나 비난을 할 수 있다.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말인데 그 말을 들어보면 그 내용을 알 수 있고 심지어 그 말을 한 사람의 마음씨를 볼 수 있다. 나무의 열매가 말이라면 그 뿌리는 마음씨에 해당한다. 나무 열매의 색깔이나 수분이나 맛이나 건실한 정도를 살펴보면 그 나무의 근본 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 그런데 뿌리는 땅속에 묻혀있어 보이지 않으니 볼 수 없고 밖으로 드러난 가지나 잎이나 열매를 통해 본질을 추정할 수 있다.맹자는 말과 마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피사지기소폐(피辭知其所蔽) 음사지기소함(淫辭知其所陷) 사사지기소리(邪辭知其所離) 둔사지기소궁(遁辭知其所窮)" 풀이하자면 편벽된 말을 통해 가려져있는 마음을 알 수 있고, 방탕한 말을 통해 푹 빠져있는 마음을 알 수 있고, 부정한 말을 통해 정도를 이탈하려는 마음을 알 수 있고, 도피하는 말을 통해 궁색한 마음을 알 수 있다. 이건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해당된다기보다 모두 자신을 돌이켜보면 이 중에 한 유형과 근접함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또 이 네 가지는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만 판단해서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기도 한다. 이 중에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려할 때 종종 하는 말이 도피하는 말에 해당하는 둔사(遁辭)이다. 무언가 마음이 막다른 곳에 막혀있을 때 나오는 말이다. 또 이것이 습관화된 사람이라면 그 성향도 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7-08 철산 최정준

[생활법무카페]권리금 회수방해를 이유로 한 손배청구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 4(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등)에 의한 권리금 회수를 위해 유의할 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첫째, 임차인은 기간 종료 6개월 전부터 임대인에게 계약갱신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이 좋습니다. 통지방법은 내용 증명이 최선이고 임대인의 메일이나 문자메시지, 카톡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주의할 것은 새로운 임대차계약에 대한 임대조건을 알려달라고 해야 나중에 불필요한 마찰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임대인이 알려주지 않으면 새로운 임차인과 전과 같은 조건으로 임대할 수 있음을 고지하면 되고 무리한 조건이면 항의를 해 둬야 나중에 권리금 회수를 방해했다는 증거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둘째, 임대인이 스스로 사용하겠다고 하는 경우 새로운 임차인을 구할 필요는 없지만 미리 권리금 협상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법원(2019년 7월4일 선고 2018다284226) 판결은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권리금 회수 방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하기 위해선 원칙적으로 임차인이 신규 임차인을 주선했어야 한다. 그러나 임대인이 직접 사용할 거라면서 신규 임차인이 생기더라도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정적으로 표시했다면 이런 경우까지 임차인에게 신규 임차인을 주선토록 요구하는 것은 불필요한 행위를 강요하는 결과가 돼 부당하다'고 판시, 임차인이 신규 임차인을 주선하지 않더라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셋째, 권리금 방해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는 시효가 3년이란 점을 감안, 부동산 인도 후 즉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도 돼 일단 협의 기간을 갖는 것도 좋습니다. 넷째, 다른 채권자가 경매신청을 한 경우 임대차 기간이 남아 있더라도 배당 요구를 하면 임대차 계약 종료로, 권리금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어 유의해야 합니다./서동선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안양지부

2020-07-07 서동선

[시인의 꽃]하늘공원 야고

난지도 새 이름 하늘공원에만발한 억새풀 사이 걷다 듣는다.귀에 익은 종소리, 물 건너 제주에서 듣던 그 종소리,바람 불 때마다 딱 한번만 들려주는 소리,무자년 분홍 종소리 예서 듣는다부끄럼에 상기한 볼, 아니란다.억새 뿌리에 몸을 감춘 채살아야, 살아남아야 했던 이유 있었단다.잎사귀 같은 서방 산으로 가 소식 끊기고돌배기 딸년의 울음소리 데리고 찾아 나선 길,어디서 시커먼 그림자 서넛이휘릭 바람을 타고 지나칠 때아이의 울음 그러 막으며 억새밭에 납작하게 엎드린 목숨,이제나 저저나 수군거리는 소리 잦아들까.변종태(1963~)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기생하며 살아간다. 자신도 모르게 기생하면서도 기생 당하는 것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면서. 여기서 기생하는 것은 기생의 시간에, 기생당하는 것은 숙주의 시간에 의존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혼자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인생도 이러한 기생의 삶이 연속되지 않는 이상, 삶 또한 지속할 수 없는 것. 제주도 억새풀에 서식하는 '야고'의 꽃은 둥근 달걀모양을 하고 마치 작은 종처럼 피어난다. 이러한 '야고'가 서울 '난지도 새 이름 하늘공원에 만발한 억새풀 사이'에서 "물 건너 제주에서 듣던 그 종소리"를 내고 있다. 그것도 "바람 불 때마다 딱 한번만 들려주는" 환상의 소리를 통해 새로운 기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그렇지만 미안한 듯 '부끄럼에 상기한 볼을 억새 뿌리에' 비비면서 야고는 버티고 있는 것이다. 거기 '억새밭' 같은 세상 속에서 '납작하게 엎드린 당신의 목숨'이 보이는가. 그렇다면 "살아야, 살아남아야 했던 이유"도 둥글게 굽어진 당신의 등 뒤에 있지 않던가./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7-06 권성훈

[주종익의 '스타트업']혼돈의 가장자리로 가라

큰 기회는 통상 혼돈의 시기에 온다사피바칼 '룬샷'이 핵심으로 꼽은상 전환은 물의 고체·액체화 과정형태 변화시점 '기업의 흥망' 결정혼돈 가장자리 의미, 과감한 도전을창세기는 태초에 혼돈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이야기다(혼돈에서 질서로). 혼돈의 세상에는 생명체가 없다. 질서를 찾아가는 혼돈의 가장자리에 생명체가 탄생한다. 동양의 기철학에서는 기가 모이면 살고 기가 흩어지면 죽는다고 믿는다. 기가 양에서 음으로 흐르는 기의 가장자리에 생명이 있다. 혼돈과 질서가 만나는 양쪽으로 5~10% 정도가 혼돈의 가장자리이다.스타트업의 필독서이며 요즈음 가장 핫한 베스트셀러인 사피 바칼의 룬샷(Loonshot)은 그 핵심으로 상 전환(Phase Transition)을 꼽았다. 상 전환도 혼돈의 가장자리를 논할 때 꼭 동반하는 개념이다.물은 0℃에서 얼고(고체) 100℃에서 기체가 된다. 이 과정을 상 전환이라고 한다. 상 전환 시기에 혼돈의 가장자리와 같은 어마어마한 혁신적 현상이 일어난다. 물은 0℃때 액체 상태와 고체 상태가 일정 기간 공존한다. 이때 분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지듯 잘나가던 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망하는 것은 조직이 액체에서 고체로 상 전환하고 있음을 경영층이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 노키아, 코닥, 모토로라, 제록스 등등 수많은 기업이 이렇게 사라졌다.세상의 추가 혼돈에 가까우면 전쟁도 일어나고 지금의 코로나 같은 전염병도 유행한다. 혼돈은 스스로 자기 조직화와 공진(共振)과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으로 서서히 질서를 찾아 평화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질서에 내성이 생기고 엔트로피의 증가(열역학 제2 법칙, 무질서가 증대되는 현상)와 갈등과 불안과 욕심으로 또다시 혼돈으로 변환하는 사이클이 반복된다. 큰 기회는 통상 혼돈의 시기에 있다는 것이 과거의 정치 경제의 흐름이나 1차, 2차, 3차의 산업혁명 과정이 잘 말해준다.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을 겪고 있는 지금이 혼돈이고 기회의 시기이다. 혼돈의 가장자리는 복잡계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다. 복잡계에서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SNS 마케팅의 네트워크 효과도 복잡계의 일종으로 고객이나 회원의 숫자가 열 명 증가하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열 배가 아니라 10의 제곱인 100배의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스타트업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에 어떤 아이템을 하면 성공할 수 있으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팀원이 성공의 요인인 것은 알겠는데 어디에서 그런 팀원을 확보할 수 있는가? 투자는 어떻게 받을 수 있어요? 등이 있다. 개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를 수 있으나 그 저변에 깔린 관점이나 근본 원리는 모두 동일하다. 혼돈의 가장자리에 가면 그 답을 얻을 수 있다.혼돈은 새로운 기술, 사유의 변화, 관점의 변화, 환경 파괴, 테러, 자연재해, 범죄, 전쟁, 전염병, 이념 분쟁, 욕망, 가치관, 종교 등의 극적인 변화 시점에 발생한다. 마이크로 소프트, 애플,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우버, 에어 비엔비, 유튜브, 테슬라, 줌, 국내에서는 네이버 카카오, G마켓, 쿠팡, 토스, 마켓컬리 등 셀 수 없이 많은 스타트업들이 혼돈의 가장자리로 과감하게 도전하고 그곳에서 성공을 거두어 기업이라는 생명체를 만들어 냈다.나폴레옹보다 더 혼돈의 가장자리 주제에 걸맞은 인물은 없는 듯하다. 16살에 육사 포병 장교로 임관해서 20세에 혼돈의 프랑스혁명을 경험한다. 공화정부는 미국밖에 없던 시대에 공화정을 선언한 프랑스는 주변 국가의 강력한 공격을 받는다. 1793년 툴룽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24세의 포병 대위가 일약 육군 준장이 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나에게 5만명의 군대를 주면 주변의 모든 저항을 한 번에 잠재울 테니 허가해달라고 한다. 혁명 정부는 그에게 5만명의 병사를 주고 맹렬히 싸워 전사하여 돌아오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보란 듯이 이탈리아를 정복하고(1796) 거기서 얻은 많은 돈으로 프랑스 해군을 이끌고 이집트 원정까지 자행하고 돌아와 쿠데타를 일으켜 제1차 통령 정부를 수립한다. 이때 그의 나이는 30세였으며 34세에 스스로 프랑스의 황제가 된다. 큰 성공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혼돈의 가장자리로 가라./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에버스핀 감사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에버스핀 감사

2020-07-05 주종익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불출문정:문 밖에 나가지 않는다

올해 초 주역의 설시점을 통해본 괘가 '절괘(節卦)'였다. 절괘는 마디 절자로 대나무의 마디처럼 인체의 관절처럼 일정한 한계로서의 한절(限節)을 뜻한다. 보통의 나무는 줄기가 하나로 쭉 뻗어서 마디가 없지만 대나무는 일정한 마디가 있어 마디와 마디 간 제한이 있다. 없는 마디에 마디를 만들면 서로 구분되고 격리된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절괘를 '지(止)'라고 정의하였다. '止'는 발을 상징한 글자인데 걷거나 뛰는 발이 아니라 멈추어있는 발을 상징한다. 그래서 멈추거나 그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올해는 '세계일가(世界一家)'나 지구촌을 말하는 중에 갑자기 각국이 서로 마디를 만든 형국이다.절괘에 '문밖에 나가지 못해 흉하다'는 효사가 있다. 절은 조절의 의미도 있으니 사람이 나갈 땐 나가고 나아가지 않을 땐 나아가지 않는 것이 조절이나 절제를 잘하는 것이어서 '중절(中節)'이라고 한다. 나아가지 않아야 할 때 나아가고 나아가야 할 때 안나가 거꾸로 하면 '불절(不節)'이 되어 흉하다고 하였다. 전 세계가 몇 달 동안 서로 '불출문정(不出門庭)'의 형국이었다. 구한말 문호(門戶)를 개방하느냐 마느냐의 논의에 못지않게 지금 세계는 이 문제에 대해 고민과 방법을 찾고 있는 듯하다. 절괘에서 문호를 열고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지 못하면 흉하다 했는데 시의에 적절한 방법이란 언제나 어려운 것 같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7-01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얼음새꽃

아직 잔설 그득한 겨울 골짜기 다시금 삭풍 불고 나무들 울다꽁꽁 얼었던 샛강도 누군가 그리워 바닥부터 조금씩 물길을 열어 흐르고눈과 얼음의 틈새를 뚫고 가장 먼저 밀어 올리는 생명의 경이 차디찬 계절의 끝을 온몸으로 지탱하는 가녀린 새순마침내 노오란 꽃망울 머금어 터뜨리는 겨울 샛강, 절벽, 골짜기 바위틈의 들꽃, 들꽃들 저만치서 홀로 환하게 빛나는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아니 너다곽효환(1967~ )땅에서는 하늘을 그리워하고, 하늘에서는 땅을 그리워하기에 더 멀리 더 높이 나는 새들도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 저 높이 있는 '잔설 그득한 겨울 골짜기'의 '꽁꽁 얼었던 샛강도 누군가 그리워'하면서 봄이 되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지 않던가. 그것은 '눈과 얼음의 틈새를 뚫고' 바닥을 보인 겨울이 녹으면서 새의 날개 짓처럼 펼쳐지며 물길을 열어주면서 시작되는 것. 또한 우리는 '가장 먼저 밀어 올리는 생명의 경이'를 땅에서 하늘을 향해 '차디찬 계절의 끝을 온몸으로 지탱하는 가녀린 새순'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힘센 존재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존재가 강한 것을 '노오란 꽃망울 머금어 터뜨리는' 꽃의 비상에서 지각할 수 있다. 저만치 '겨울 샛강에서, 절벽에서, 골짜기 바위틈에서 피어있는 들꽃들'은 연약해 보이지만 사바의 세계 속에서 살아남은 존재가 환하게 보내오는 '화엄의 시그널'이 아닐 수 없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6-29 권성훈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몽중상심(夢中相尋)

품안에 있는 연인 함께있는 세상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향'사랑이 이루어지든 아니든 꿈에서는 서로 그리워할 수 있어국경 없는 사랑의 영토이기 때문몽중상심(夢中相尋)은 몹시 그리워서 꿈속에서 서로 찾는다는 뜻이다. 꿈에서까지 연인을 사모함은 그만큼 사랑의 온도탑이 빨갛게 물들고 있음을 암시한다.추가열이 부른 '상사몽' (작사·작곡 추가열)은 곡목이 시사하듯 남녀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내용의 꿈 노래이다. 가사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품 안에 있는 세상은/다른 세상이요/꽃비가 내리고/단비가 흐르는/그런 세상이요'. 화자에게는 지금까지 사랑을 키워오고 있는 아름다운 연인이 있다. 어느 날 꿈에 자신의 연인이 나타난다. 연인을 보게 된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즉 만남의 기쁨에 잔뜩 취해 마음이 하늘을 날아갈 듯하다. 꿈 속 세상은 두 발을 내딛고 있는 현실 세상이 아닌 신세계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연인과 함께 있는 세상은 '다른 세상'이 된다. 즉 젖과 꿀이 흐르는 세상처럼 '꽃비가 내리고/단비가 흐르는' 이상향이 그의 눈앞에 화려하게 펼쳐진다.이렇게 창조된 유토피아 공간에서 화자는 연인에게 마음을 적시는 사랑을 고백한다. '힘이 들 때면 내게 오오/사각거리는 저고리 품안에 안겨/꿈을 꾸어요'. 온갖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고 무거울지라도 자신의 '품 안에 안겨' 안식의 꿈을 꾸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포근하다. 그래서 차가운 비바람이 몰아쳐도 화자의 '품 안'은 언 손을 녹여줄 수 있는 겨울 필수템인 따뜻한 난로와 같을 듯싶다. 이러한 별천지 '꿈나라'는 '별나비'가 춤추고 '오색이 아름다운 노래로 수를 놓은' 꿈의 세계이다. 별이 반짝이는 '꿈의 세계'에서 화자는 마지막으로 그리운 사랑의 맹세를 남긴다. '비단 도포 휘날리듯/산 바람 들 바람 부여안고/사랑할테요'.김동률이 부른 '꿈속에서'(작사·서동욱, 작곡·김동률) 노랫말에서도 몽중상심의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잠든 어느 캄캄한 밤에 화자는 '하얀 꿈'을 꾼다. 그 꿈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숨소리'만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꿈속 공간은 온통 어두운 세계이다. 게다가 화자는 점점 취기가 오르지만 자신을 '깨워주는 사람' 하나도 없다. 바로 이 순간 절대 고독감이 파도처럼 마구 밀려든다. '몸을 뒤척여' 그리운 연인 '너'를 불러본다. 그러나 그 노래는 그저 '까만 허공'에 메아리칠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연인에 대한 사모의 정이 담긴 노래를 부르지만 이상하게도 그 노래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소리 없는 노래를 어찌 상상해 볼 수 있을까. 이는 보고 싶은 연인에 대한 화자의 간절한 심정을 나타내는 강력한 반어법적 역설이다.연인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화자는 목이 메이며 '울먹'거린다. 큐피드는 화살을 가지고 있지만 멀리 날아가 상대방의 가슴을 늘 명중시킬 수만은 없다. 마찬가지로 꿈속의 화자도 연인의 심장 과녁을 관통해서 당장이라도 사랑을 쟁취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그를 암흑의 별 세계에 다시 '재우고' 달아난다. 이때 그가 마시던 '술잔 속'에 가득 찬 쓰디쓴 '웃음'과 '한숨'이 '출렁이는 달빛에' 유유히 흘러간다. 지금 곁에 연인이 없는 꿈속의 그는 이렇게 절규한다. '날 깨워줘/네가 없는 꿈속은 난 싫어/아무도 없는 하얀 꿈속에/너를 한없이 부르네'. '하얀 꿈속'은 순백의 청정 무풍지대이다. 그는 이러한 공간에서 연인과 함께할 수 없는 현실에 몸부림친다. 그래서 하루빨리 자신을 깨워달라고 간청한다. 이처럼 꿈속에서 그리운 임을 찾아 애원하는 사모의 정이 바로 몽중상심이다.황진이는 명시 '상사몽(相思夢)'에서 몽중상심을 이렇게 읊조린다. '서로 그리워 만나는 건/다만 꿈에서나 볼뿐/내가 임 찾아갈 때/임은 날 찾아왔네/바라거니 아득히 먼/다른 밤 꿈에서는/일시에 함께 꾸어/길 중간에서 서로 만나기를'. 이와 마찬가지로 곡명 '상사몽'과 '꿈속에서'는 연인과 만날 길이 꿈길 밖에 없음을 노래한다. 사랑이 이루어지든 아니든 꿈에서는 서로를 그리워할 수 있다. 왜냐하면 꿈길 세상은 국경 없는 사랑의 영토이기 때문이다./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2020-06-28 고재경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음식연락: 마시고 먹으며 잔치하고 즐겨라

기다림! 아기 때는 배 고프면 본능적으로 엄마의 젖을 기다리고 이성이 싹트고 세상을 알아가면서는 많은 것들을 기다리며 사니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여행객이 비바람이 그치길 기다리고 한 여름 가뭄에 농부가 비 오기를 기다린다. 직장인이 월급날을 기다리고 장사하는 이들은 물건을 사가는 이를 기다린다. 출근길 늦으면 택시를 기다리고 해외에 여행갈 준비를 하는 이는 출국일을 기다린다. 부모는 자식의 성공을 기다리고 자식 또한 내리사랑으로 자기 자식의 성공을 기다린다.문제는 기다린다고 다 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아무리 밤을 새워 기다려도 오지 않을 것은 오지 않는다. 제발 오지 않았으면 기원해도 올 것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빨리 오길 기다리고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은 빨리 나가길 기다리지만 생각대로만 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기다림에 있어 심리적인 시간과 물리적인 시간의 속도와 방향이 서로 반대가 되기 때문이다. 똑같이 내일 해가 뜨는 물리적인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사람의 처지마다 내일의 일출시까지의 심리적인 시간은 다르다. 사형집행을 받아놓고 있는 이에게는 너무나 야속하게 빠르고, 일확천금이 입금되는 이에게는 너무나 더디다.결국 올 것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안 올 것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제발 좀 끝나라, 아무리 속을 썩어도 끝날 때가 돼야 끝이 난다. 24시간 코로나 시황판만 틀어주는 언론은 어떤 면에서 보면 국민의 안정적 심리를 해치고 있다. 몸으로 거리두며 조심할 것은 하되 그렇다고 하루종일 코로나종식의 노예가 되어 오장육부를 태우며 노심초사할 필요가 있는가. 주역에서는 기다림에 대해서 마음을 편히 갖고 마시고 먹으며 기다리라고 하였다. 목을 빼고 기다린다고 빨리 오는 것이 아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6-24 철산 최정준

[생활법무카페]자녀의 성과 본의 변경

재혼 후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의 성과 본을 현 남편의 성·본으로 바꿀 수 있다. 가정법원에서 성·본 변경허가 신청 허가를 얻어 행정관청에 성·본 변경신고를 하는 제도이다.성과 본의 변경허가신청서를 제출해 허가를 확정하고, 이후 1개월 내에 재판서의 등본과 확정증명서를 첨부, 사건본인의 등록기준지 또는 신고인의 주소지나 현재지(관할 시·구·읍·면사무소)에 성·본 변경신고를 하면 됩니다. 신청서 첨부서류는 신분관계증명서류와 사건본인의 진술서(가정법원은 사건본인이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인 경우)와 친부의 동의서입니다.진술서의 경우 아직 어린나이의 사건본인이 성이 다름으로 인해 겪은 상황을 진술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친부의 동의서도 역시 연락두절이나 명시적인 거부 의사 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법원은 자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므로 친부의 동의서는 고려대상일 뿐 필수적인 요소는 아닙니다.특히 유의할 점은, 자의 성·본이 바뀐다 해도 친부와의 관계는 단절되지 않고 상속관계 등 법적인 권리의무는 친부와만 관련이 있게 됩니다. 즉, 가족관계등록상의 아버지는 여전히 친부이기에, 사건본인 아이의 가족관계등록부상에는 생부의 성과 자녀의 성이 다르게 기재돼 있게 되므로 오히려 더 혼란이 클 수도 있습니다.성과 본이 바뀌면 당장 눈에 보이는 주민등록등본에는 현재의 남편과 같은 성으로 기재할 수 있게 되지만, 나중에 아이가 성인이 돼 분가하거나 이사를 하면 주민등록이 따로 편성되기 때문에 주민등록등본상 문제가 되는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물론 사건본인의 자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되, 주민등록등본상 계부와 함께 같은 성으로 기재되는 시간에 비해, 가족관계등록부상의 친부의 이름은 평생 유지되는 점을 고려해 자의 성과 본 변경신청은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박재승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성남지부박재승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성남지부

2020-06-23 박재승

[시인의 꽃]포텐셜 에너지-꽃씨

꽃의 임종 후봉인된 유언이 되어 대지에 심어진검은 혀무한히 날고 있다 그것은지상과 천상,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둥근 문모든 물(物)과 빛시간과 어둠이 점으로 응집된광대한 우주 함기석(1966~)무구한 역사 속에서 이름을 남긴 자들은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한다. 이러한 죽은 사람의 '검은 혀'는 시간을 거슬러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무한히 날아다니며' 어떠한 에너지를 공급해준다. 몸도 없고 실체도 없는 것이 생성해 내는 힘으로부터 결여를 보충하는 것이야말로 신화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여기서 영웅 신화가 탄생되는 지점이 아니겠는가. '포텐셜 에너지'의 원리에서 강철공이 땅에 떨어져 있을 때보다 땅 위로 올려질 때 더 큰 위치 에너지를 가지는 것처럼. 죽음으로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지상과 천상,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지금 시들어 떨어지는 민들레꽃을 보라. 살아 있을 땐 한 송이지만 그 하나의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 수천, 수만 송이로 변환된 꽃들은 '모든 물(物)과 빛'과 '시간과 어둠이 점으로 응집된' 세계의 '광대한 우주'를 말 많은 세상에 말없이 보여주고 있지 않던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6-22 권성훈

[김나인의 '생활관상']자식교육은 지식의 축적만큼 관상 잘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얼굴은 자신의 가치 매기는 상품과거와 현재 등 모든 삶의 흔적고스란히 담겨 있는 귀중한 자산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미래가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 아냐이번 시간에도 눈의 특성을 통한 어린이의 관상을 함께 살펴보고 고민함으로써 온전한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교육의 지침이 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아이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인성이나 성격 등을 보다 자연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서 이를 적극 활용한다면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해 가면서 보다 안정적이고 수월하게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눈의 구조가 세모 모양으로 된 눈을 도끼눈 또는 삼각안이라고 하는데, 이런 눈을 가진 남자아이가 왼쪽 눈이 더 커보이면 고집이 매우 세며 집착력 또한 대단하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대다수이니 이런 아이를 이기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성격이 거칠고 폭력적이고 냉혹하게 비춰지기때문에 대하기가 힘든 유형이라 보여지는데, 고객과의 상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독하다 해도 이렇게 독한 자식은 없다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이런 삼각안에 인당 부위인 눈과 눈꺼풀 사이가 너무 좁아 강하게 억누르는 모습이면 성격이 불같이 급하며 눈에서 살기가 뻗치는 경우도 흔한 일이니, 아이를 막아 제지하면 성질에 못 이겨 까무러치는 아이도 흔히 있음을 알 수 있다. 눈이 너무 크면 사교성도 있고 활동적이고 비밀이 없으며 눈물도 많고 정도 많으나, 일은 잘 벌리지만 뒷심이 부족하고, 남의 일에 관심이 많고 개입하기를 좋아하니 늘 주변의 시선이 집중돼 구설이 끊이지 않고, 자신을 돌출시키는 성격이기 때문에 또래나 주변 사람의 꾐에 빠져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이 있다.얼굴은 자신의 가치를 매기는 상품이고, 자산을 증대시키는 에너지원이며,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창고이기에, 현재는 물론 과거와 미래의 거의 모든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 귀중한 자산을 어떻게 교육을 통하여 관리하고 다스려 나가느냐에 따라 자식의 미래가 정해진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특히 관상학에서 눈은 마음의 거울이고 해와 달을 상징하며, 마음을 담은 그릇이라 말하고 있다. 눈을 보면 아이의 성정과 성격이 어떤지 알 수 있고, 눈의 모양과 눈빛을 통해서 아이의 정신기혈의 작용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사람의 뇌는 온갖 것의 지식으로 채워질 수 있지만, 세상 살아가는 지혜는 담을 수 없는것이다. 훈육이란 태어날 때부터 아이가 갖고 있는 잠재적 가치를 최대한 끌어내고 발굴하여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한 아이는 부모의 과거이며 현재이고 또 다른 부모의 미래다. 남보다 더 훌륭하고 큰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하는 부모의 바람과 욕망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 밖에 태어난 아이는 유년의 명운이 있는 것이니, 그 자식이 유복하고 건강하게 유년시절을 보내는 명운이라면, 그런 지위와 조건을 지닌 부모라야 가능한 것이고, 태어난 아이가 부모와 생별하고 고단하고 힘겨운 출발을 하게 된다면, 복 있는 부모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새로 태어난 아이가 이마가 둥글둥글하고 단단하며 높이 솟고 널찍하고 풍융한 모습이라면 부모 덕이 있음이니, 어찌 부모가 가난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인연을 만나겠는가. 무릇 새로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귀에 그 명운의 흐름이 생겨나는 것이니, 귀가 높이 솟고 방정하며 귓불이 튼실하고 기색이 희고 밝고 선명하면, 아이의 덕으로 부모의 명운이 좋아지게 되는것이니, 하루도 빠짐없이 신경 쓰고 살펴야 하는 것은 학업을 통한 지식의 축적 말고도 관상을 살피는 일이 아이의 미래를 그려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일상의 일이 되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

2020-06-21 김나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일월영측: 해와 달은 차면 기운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파장은 거의 전 영역에 걸쳐 지대하다.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고 있으며 향후 이런 양상은 지속될 것이라는 게 다수의 견해이다. 여러 방면에서 그런 모습들이 나타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정점에 있는 주식시장을 보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대폭락 이후 주도주의 변화이다. 삼성전자에서 카카오나 네이버 등의 비대면 관련주가 최상위그룹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면 이렇게 영원히 가는 것일까? 견물생심(見物生心)인지라 앞에 있는 사물을 보게 되면 자연스레 마음이 그렇게 이끌려가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그래서 동일한 모습만 반복적으로 보여주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겨 의심하지 않게 되고 어느덧 확신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물 자체가 변화하는데 어떻게 그 사물을 보고 생기는 마음이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지금은 사방팔방이 코로나이기 때문에 마음이 졸아붙고 있지만 코로나 또한 미세한 사물이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천자문에서는 변화의 진리를 해와 달로 이야기해 놓았다. 중천에 떠있던 해도 어느덧 서산으로 기울고 꽉 찼던 보름달도 어느덧 하현달로 줄어들어 간다. 작든 크든 형상이 있는 모든 것들은 변화한다는 진리를 말해준다. 다만 그것이 언제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6-17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꽃잎에게 나는

떨어지는 꽃잎에게 / 나는 두 번째라네 / 깊은 그늘에 숨어싱그러운 눈짓을 바라보았지놀라워라 햇살이 물방울처럼 돋아 / 길을 만드네숲의 안쪽에서 그녀만이 온전히 주인이 숲에선 상상조차 그녀에게 헌납되었지그녀는 속삭임, 그녀는 무도회, / 잊혀지는 저녁과 귀기울임이 숲은 그녀의 것 / 꽃잎에게 두 번째는 없지망설이지 않고 사라지는 저것에게 /나는 두 번째여서 우두커니 선채로 어두워지네 / 그리고, 모든 게 눈 앞이지떨어지는 동안, 내내 / 꽃잎은 세상의 모든 것에 앞서네노춘기 (1973~)최고의 자리는 어느 순간 바뀌지만 처음의 자리는 바뀔 수 없는 것. 언제나 최고는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위태로우나, 최초는 언제나 처음으로 굳게 기억되고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의미를 찾는다면 두 번째부터는 큰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순서가 아무리 늘어나도 다음만을 이어나가며 처음과는 점점 차별화되고 멀어진다. 미처 찾아내지 못했거나 아직 알려지지 아니한 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최초의 새로움을 더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누구나 매일 같이 어제의 누구도 가보지 못한 '깊은 그늘에 숨어' 있는 오늘이라는 '싱그러운 하루'를 처음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보아라 어제 '잊혀지는 저녁'을 지나 오늘 아침 '햇살이 물방울처럼 돋아 길을' 만들고 있지 않던가. 우리도 꽃잎처럼 '두 번째는' 없는, 목숨을 매달고 살면서 '우두커니 선채로 어두워지'는 저녁을 맞이하고 있다. 모든 떨어지는 것이 있다면 '떨어지는 동안, 내내' 생각해 보라. 그것은 처음으로 갈 수 없기에 처음으로 길을 멀리 떠나는 것이니./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6-15 권성훈

[조성면의 '고서산책']횡보 염상섭, 생활과 삶을 이야기하다

한국 문학의 큰별 유작만 467편마지막 작품집 '일대의 유업'은열여섯편 단편소설 수록미소 분할·좌우 대립 등 격변기소시민 고된 삶, 요즘의 삶과 '상통'지천명을 지나 이순을 향해 가는 나이지만 삶은 여전히 불가해하다. 모든 게 허망한 것 같아도 포기할 수 없으며, 감사와 은혜로 가득하면서도 온갖 역경과 쪼금의 즐거움이 뒤엉켜 있는 리얼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온갖 시비이해와 소음들로 가득하나 아무런 의미가 없는(signifying nothing) 백치들의 이야기요,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맥베스의 절규가 그저 연극의 대사로만 여겨지지 않는다.여기 삶의 이야기, 리얼한 생활의 이야기가 있다. 횡보 염상섭(1897~1963)의 마지막 작품집 '일대의 유업'(1960)이 그렇다. 짧은 '춘향전 전시'를 끝내고 서가를 정리하다 조우한 '일대의 유업'(1960)을 펴들고 잠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염상섭은 한국문학의 큰 별이다. 그가 없는 한국문학, 한국소설은 상상하기 어렵다. 걸작 '만세전'(1922)이나 '삼대'(1931)를 비롯해서 그가 남긴 작품만 해도 467편을 헤아린다. 스물여섯 편의 장편소설, 오십 편의 단편소설은 그의 문학적 열정과 작가로서의 역량이 어떠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극심한 좌우의 이념대립 속에서 양주동과 함께 절충파를 이끌었던 횡보의 문학이념과 작가정신이 잘 드러난 작품이 '이합'(1948)과 '재회'(1948)다. '이합'의 주인공 장한이 보기에는 소련군이나 미군 모두 일본과 다를 바 없는 새로운 점령군이었으며, "어딜 가나 별 수 있나"하는 장탄식에서 거대한 세계사의 흐름 앞에 무기력한 지식인의 절망과 작가의 속내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김구의 노선을 지지했고, 보도연맹에도 가입하는 등의 고초를 겪었으면서도 문학의 자율성과 작가정신을 굳게 지켜나갔다.'일대의 유업'은 모두 열여섯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된 작품집인데, 표제작 '일대의 유업'과 '두 파산'이 눈에 띈다. '일대의 유업'은 연작소설로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가 된 지주부댁-기현 어머니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남편 지주부가 남긴 집 한 채와 아들 둘에 의지하면서 하숙도 치고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간다. 우연히 김선생이라는 젊은 남자가 하숙하게 되고, 기현 어머니는 그에게 묘한 연정을 느낀다. 여기서 소설은 얼핏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나 작품의 실상은 젊은 과수댁의 생존기요, 생활의 이야기다. 평생 한약사로 일하던 남편이 남긴 집 한 채가 '일대의 유업'이 되는 이야기에서 문득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값에 신음하는 현대인들의 삶이 어른거린다. 어쩌면 평생 갚아나가야 하는 아파트 대출금이 흡사 현대판 환곡(換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두 파산'은 해방공간기의 세태와 생활의 단면을 그린 작품으로 정례 모친과 김옥임, 그리고 교장이라 불리는 사채업자와의 경제적 갈등을 다룬다. 두 개의 파산은 학창시절 셰익스피어· 입센·엘렌 케이 등의 원서를 끼고 다니던 문학소녀 옥임이 친구인 정례 모친에게까지 가혹하게 빚 독촉을 할 정도로 타락한 그녀의 정신적 파산을, 놀고 있는 남편을 대신해 빚을 얻어 문구점을 얻었다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빚의 굴레에 갇혀버린 정례 모친의 생활의 파산을 의미한다. 횡보는 두 여성의 삶을 통해서 미소분할과 좌우대립 등의 격변기 시절 생활고에 시달리는 동시대 소시민들의 고된 삶을 그려내고 있다.인생을 산다는 건 옛 사람이나 우리에게나 만만치 않은 일이다. 삶의 무게를 견뎌낼 정신의 체력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마음이 쉴 수 있는 내적 망명처도 있어야 한다. 선인들의 사상과 체취를 느끼며 예스런 장정과 디자인을 완상(玩賞)하는 고서수집도 하나의 방편은 될 것이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

2020-06-14 조성면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중불자란: 중을 얻으면 스스로를 어지럽히지 않는다

내면과 외부의 문제는 한 인간이 삶에 있어 늘 화두가 된다. 물리에 원심력과 구심력이 있듯이 외부의 세계에 치우치면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센 기류에 휩쓸리거나 외풍에 휘청거려 넘어지기 쉽다. 거꾸로 내면의 세계에만 빠져서 밖을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도외시하면 세상과의 교류와 어울림이 끊어지면서 주관적 판단에 머물기 쉽다. 자신이 중심을 잡고 외부와 어울려나가는 것이 쉽지가 않다. 안팎을 잘 조절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그러나 현대사회는 상대적으로 외부의 힘이 너무 강한 시대다. 그러므로 늘 외부세계의 흐름 속에서 떠다니기 쉽다. 하루에도 홍수처럼 쏟아지는 소식들을 외면하면서 살아가기 힘들다. 그럴수록 그 흐름에 무작정 끌려가면 잘못되기 쉽다. 주역에 신을 신고 길을 걸어간다는 천택이괘(天澤履卦)가 있다. 하늘과 못으로 상하를 상징하였다. 하늘은 맨 위에 있고 못은 아래에 있으니 세상 질서와 예의의 기본인 상하를 잘 이행하며 살아가면 무탈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세상을 호랑이로 비유하여 호랑이 꼬리를 밟아도 물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더불어 외부의 이끌림에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자신을 지킬 중심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6-10 철산 최정준

[생활법무카페]부동산매매계약 후 매도인 사망 경우

의뢰인은 작년 10월 초순경 '갑'과 '갑'소유 아파트에 대해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당일 계약금 3천만원을 지급했고 정한 날짜에 중도금을 지급하려 했으나 '갑'이 계약체결 직후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했음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이럴 경우, 미처 지급하지 못한 중도금과 잔금을 어떻게 지급하고 위 아파트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받을 수 있을지 문의했습니다.원칙적으로 사망한 사람을 상대로는 어떠한 행위를 할 수 없고 따라서 이는 당연무효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우에는 사망한 자와 체결한 매매계약에 따라 중도금 및 잔금을 지급함에 있어, 그 사망한 사람의 상속인이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경우 또는 그 공동상속인들의 상속지분을 모르는 경우에는 사망한 사람을 피공탁자로 해 변제공탁을 해도 무방합니다.판례도 매매계약의 중도금 지급기일을 앞두고 사망한 매도인에게 상속인들이 여러명이 있고 그중에는 출가했다가 자식만 남기고 사망한 딸도 있는 등 매수인으로서는 매도인의 공동상속인들이나 그 상속인들의 상속지분을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면 중도금 지급기일에 사망한 매도인을 피공탁자로 해 중도금의 변제공탁을 한 것은 민법 제487조 후단에 해당해 유효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공탁을 함에 있어 공탁서의 피공탁자란에는 "망 ○○○(상속인)"이라고 표시하고 망인의 주민등록번호, 주소지를 기재해야 합니다.한편 소유권이전등기를 함에 있어서도 판례는 '피상속인(사망한 사람)소유의 부동산에 관해 피상속인과의 사이에 매매 등의 원인행위를 한 경우에는 상속인은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를 첨부해 피상속인으로부터 바로 원인행위자인 매수인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신청할 수 있고, 그런 경우에는 상속등기를 거칠 필요가 없이 바로 매수인 앞으로 등기명의를 이전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고 있어, 의뢰인의 경우 사망한 사람의 상속인들 명의로 상속등기를 경료하지 않고 곧바로 매수인인 귀하명의로 이전등기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망개시일에 법률의 규정에 의해 발생하는 상속인들에게 대한 '상속취득세' 및 국세인 '상속세'는 사안별로 별도 문의해야 할 것입니다./김종철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수원지부김종철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수원지부

2020-06-09 김종철

[시인의 꽃]저것은 국화 이것은?

노란색이 이거다 싶게 / 국화는 국화 / 만개하여 뒤집힌 꽃 //내가 늙으면 저렇게 될까 싶게 / 차가운 할머니가아파트 뒤편에 몰래 심은 꽃 / 몰래 심었지만 가릴 수 없이 큰 꽃저것은 국화//아름답다 국화 / 몇 달째 잘 가꿔진 꽃 / 오래가는 죽음국화가 피어 있는 동안//먼 친척이 결혼을 하고 / 삼촌이 돌아가시고 / 딸아이가 돌을 맞고//이번 주에도 다음 달에도 /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이근화(1976~)가장 먼저 와서 맨 나중에 가는 꽃이 있다. 장례식장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국화. 흰 국화는 조문객보다 빨리 와서 화환으로 서 있기도 하고, 한 송이씩 영전에 올려 망자의 넋을 기리기도 한다. 이러한 전통적인 풍속은 문명 이전인 10만 년 전 살았던 인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네안데르탈인에도 존재했다고 하는데, 독일의 네안데르 골짜기에서 발견된 이들도 장례를 치르고 꽃을 바쳤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처럼 '만개하여 뒤집힌 꽃'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산자와 죽은 자를 배웅하는 꽃으로 '오래가는 죽음'을 기억하기 때문에 피어나는 것인가. '국화가 피어 있는 동안'에 '먼 친척이 결혼을 하고 삼촌이 돌아가시고 딸아이가 돌을 맞고'. 지금 새로운 삶을 시작하거나 뜨거웠던 생명이 다하는 사람 곁에 머문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야 하는 알 수 없는 미래의 오늘을 위해 국화는 '이번 주에도 다음 달에도' 그렇게 당신을 희미하게 쳐다보며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라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던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6-08 권성훈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이유가 있겠지요

대학로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파인텍 노동자 고공농성 모티브편의점 직원·주인·배달 알바…'삶의 마지막' 내몰린 사람들절박함에 터져나온 목소리 담아지난 5월7일부터 31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이연주 작, 이양구 연출, 2019년 초연) 공연이 있었다. 파인텍 노동자의 고공농성을 모티프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이 재공연 중이던 지난 29일 강남역 철탑 위에서 김용희씨가 내려왔다. 철탑에 오른 지 355일만의 일이다.지붕, 옥상, 다리, 망루, 굴뚝, 크레인, 광고탑, 전광판, 조명탑, 철탑. "땅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란 말을 전하기 위해 올라간 곳. 1931년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올랐던 강주룡에서부터 2019년 서울 강남역 철탑에 올랐던 김용희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노동자가 마지막으로 택한 곳.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가 모티프로 하고 있지만 무대에 나오지 않는 고공.작품의 배경은 편의점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편의점 뒷마당이다. 왜 편의점일까. 편의점은 주인공 정화의 일터이다. 그의 일터에 다른 인물이 찾아오며 이야기가 모인다. 명호, 선영 그리고 보람이 그들이다. 그들을 따라 사건이 편의점 뒷마당에 펼쳐지고 쌓여간다.명호는 정화를 누나라고 부른다. 명호는 정화 남편의 회사 동료다. 남편은 굴뚝 위에 있었고 명호는 그 아래에 있었다. 밧줄 하나로 묶인 두 사람이었으나 남편이 굴뚝에서 내려온 뒤로는 그 끈이 끊어졌다. 집밖을 나가지 않는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리는 정화의 입장에서는 명호를 마주할 수 없다. 그런 명호가 편의점으로 찾아온 것이다. 남편이 빌려간 돈을 돌려 달라며.선영은 학습지 교사이다. 교사로 처음 가르친 학생이 정화의 아이들이다. 밀린 학습비를 대납할 정도로 애정이 많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며 그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졌다. 실적이 좋지 못해 학습지 교사 자리가 위태롭다. 하루에 만원씩이라도 받아야겠다며 편의점에 찾아온 것이다. 보람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지금은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편의점 점주가 지급하지 않은 임금을 받기 위해 편의점에 온다. 점주를 만나지 못하고 정화에게 서류를 맡기고 간다. 배달로 바쁜 시간에 왜 오는지 모르겠다는 점주에게 "시간이 아까우니까 오는 거겠지요"라는 말은 하지만 정작 서류를 전달하지 못한다. 명호에게 줄 돈 삼백만원을 빌려야 하는 처지여서 내밀었던 서류를 다시 가져간다.점주는 2호점을 내고 싶어 한다. 단시간노동자를 짜내는 방법도 안다. 달래거나 협박하는 화법에도 능하다. 정화의 노동시간도 그렇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2호점을 내려면 본사와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밀린 임금 사백오십만원보다 많은 돈을 보람에게 계좌로 입금한다. 그러나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른다.그렇게 90분간의 연극은 마지막 한 장면을 위해 차곡차곡 쌓여간다. 돈을 받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보람의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유리창에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편의점 문을 안에서 잠근다. 이 장면에서 정화는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꾼다. 정화는 비상키로 문을 열라는 점장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안에 사람이 있어요. 들어간 이유가 있겠지요"라며 점장을 호출한다. 그리고 문 밖에서 보람의 곁에 앉는다. 명호와 선영도 따라 앉는다. 옆에 함께. 그렇게 연극은 끝난다.연극 '이게 마지막이야'는 마지막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게 마지막이야", "약속할게".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순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오는 말,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나서야 처음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했다는 사실에 멈칫하게 되는 말, 무너지는 자존감보다 절박함이 앞서 다시 튀어나오는 말. 그러면서도 옆에 함께 앉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일상의 공간이 어쩌면 지붕, 옥상, 다리, 망루, 굴뚝, 크레인, 광고탑, 전광판, 조명탑, 철탑의 고공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밀려난 목소리를 남기며 연극 무대는 어두워진다. 어둠 속에서 "안에 사람이 있어요. 들어간 이유가 있겠지요"라는 정화의 말은 무대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남편에게 전하는 말로 바뀌는 듯하다. "위에 사람이 있어요. 올라간 이유가 있겠지요."/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6-07 권순대
1 2 3 4 5 6 7 8 9 10
  • 강원일보
  • 경남신문
  • 광주일보
  • 대전일보
  • 매일신문
  • 부산일보
  • 전북일보
  • 제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