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절이제도: 마디로써 법도를 짓는다

길이나 부피나 무게 등의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단위를 도량형(度量衡)이라 한다. 도(度)는 길이를 재는 자이고, 양(量)은 부피나 그것을 재는 되, 형(衡)은 무게나 무게를 재는 저울을 지칭한다.일상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단위는 말 그대로 공통적으로 균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흔히 하는 '이중 잣대'라는 표현처럼 잣대의 단위가 다르면 여러 가지 불편하고 불공평한 문제가 발생한다.그래서 재는 기준이 되는 단위가 다르면 불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산상 피해나 인명의 피해 등 심각한 일까지 벌어질 수 있다. 진시황이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사람들이 인정하는 공적으로 단연 도량형의 통일을 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주역에서 그 기준을 말해주는 괘가 절괘(節卦)이다. 절(節)은 마디이다. 마디를 정할 때 균일하긴 해야지만 획일적이면 안 된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한의학에서 인체의 혈 자리를 잡을 때 사용하는 촌(寸)도 손가락의 작은 마디이다.그런데 사람의 신체는 각각의 사이즈가 있어서 다윗과 골리앗의 마디를 획일적인 거리로 정할 수 없다. 어린이나 작은 키의 소유자는 마디가 그만큼 작을 것이고 성인이나 큰 키의 소유자는 그만큼 마디가 클 것이다.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각종 제도(制度)를 신설하거나 고칠 때는 자기 나라에 알맞은 마디가 무엇인지를 고려해야지 무작정 다른 나라의 제도를 카피해서 붙여놓으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다. 그 알맞음을 보여주는 상이 못 위에 알맞게 차있는 물이다. 못은 자연적 그릇이니 그릇에 맞는 제도만이 국민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니 각종 규제도 마찬가지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1-15 철산 최정준

[생활법무카페]법무사 vs 변호사

"법무사와 변호사는 뭐가 달라요?" 이렇게 묻는 사람들도 꽤 있다. 업무영역은 똑같다. 확실히 다른 점은 변호사는 모든 법정에 출석할 수 있지만 법무사는 단독재판장의 허가에 의하여 제한적으로 출석할 수 있을 뿐이다. 변호사는 법정에 출석하는 사건마다 불리는 이름이 다르다. 민사·가사사건의 경우 대리인, 형사사건의 경우 변호인, 소년사건의 경우 보조인으로 부른다. 대리인인 경우 변호사가 당사자 없이 법정에 출석하고, 변호인·보조인인 경우에는 당사자와 함께 출석한다. 법무사는 법원에 제출하는 서류를 작성, 접수해주고 당사자만 법원에 출석한다. 신청사건(가압류·가처분 등 보전처분사건), 소송사건, 집행사건(경매·추심 등)으로 나뉜다. 생선에 비유하자면 '신청'은 머리부분에, '본안'은 몸통부분에, '집행'은 꼬리부분에 해당한다. 이 중 신청과 집행과 소송사건이 아닌 비송사건은 서류재판인 경우가 많아 법무사가 주로 처리해왔고 본안 소송 사건은 법정에 출석할 수 있는 변호사가 주로 처리해왔다.그런데 20년 전 변호사는 약 5천명으로 당시 6천여명인 법무사보다 적었는데, 현재 변호사는 로스쿨제도 도입으로 2만1천명이상으로 늘어나 법무사 7천여명보다 3배가 넘다 보니 변호사가 담당하는 사건이 전통적으로 법무사가 해오던 신청, 집행, 비송사건까지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법무사와 변호사가 특히 다른 것은 수임료에 있어서 약 5~10배 정도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법정에 혼자 출두하여 소송을 이어가기 어려운 분들에게는 변호사를 선임할 것을 권유하나 변호사 숫자의 기하급수적 증가 이외에도 법률시장에 몰아닥친 불황으로 인한 수임료 부담, 인터넷 발달과 법원의 정보제공도 확대 등으로 인한 나 홀로 소송 증가 등의 이유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같은 이유로 법무사에게 사건을 맡기는 경우도 줄어들고 있다.요즘도 동창회에 나가면 은퇴한 친구들이 "넌 참 좋겠다. 평생 직업이 있으니"라고 부러워할 때마다 "글쎄? 그건 옛날 얘긴데…"하고 말꼬리를 흐린다./이상후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수원지부이상후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수원지부

2020-01-14 이상후

[시인의 꽃]꽃

꽃은 누가 죽어가는 시간에 피어나는 것일까, 그 사람이 힘없이 손짓하던 부름을 말하지 못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여, 피어나는 것일까. //꽃이 피는 시간에 그 주위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또 무엇일까, 꽃 가장이를 예감처럼 돌다가 사라지는 빛은…//아, 꽃은 결국 무슨 뜻으로 저리도 선명한 빛깔로 내게 다가오는가. 이수익 (1942)한 사람이 태어나면 별 하나가 생기고, 그 사람이 죽으면 그 별도 같이 소멸한다고 할 때 우리는 저마다 별 하나씩을 가졌다. 하늘에서 빛나는 별은 멀어서 모두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모습처럼 빛나는 정도도, 크기도, 생김새도 다르다. 이처럼 하늘에 자신의 삶과 같이 하는 것이 '하늘의 별'이라면 반대로 '땅의 꽃'은 누가 태어날 때 시들고 '누가 죽어가는 시간에/피어나는' 것이다. 사람의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저 별과 달리, 이 꽃은 죽은 자가 '말하지 못한 하고 싶은 말을' 전수하기 위해서 피어나는 것. 그래서 '꽃이 피는 시간에' '그 주위'를 맴도는 '바람'과 '꽃 가장이'를 비추는 '빛'은 그렇게 죽어간 영혼이 마지막 머물다 가는 자리인 것, 꽃이 '저리도 선명한 빛깔로 내게 다가오는' 것은 차마 돌아가지 못한 가운데 생애 마지막 아름다움을 남기고 떠나고 싶어 하는 '망자의 말'인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1-13 권성훈

[조성미의 '나무이야기']기품이 있는 황금색 칠감을 생산하는 황칠나무

투명한 광택·내구성 뛰어나최고급 천연 도장재료 적합영양성분 많아 '나무인삼'으로 불려 간기능·혈행개선·면역력강화 효능항암성분, 차가버섯보다 '1.5배'옛날부터 옻나무와 함께 귀하게 대접받은 찬란한 황금색 고급 칠감을 생산하는 나무가 있다. 바로 황칠나무다. 황칠나무는 줄기에 상처를 내면 누런 수액이 나온다고 해서 '황칠(黃漆)'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북한에서는 옻나무와 같은 칠액이 나오는데 노랗다고 해서 노란 옻나무라고 부른다. 잎이 오리발을 닮았다고 해서 압각목(鴨脚木), 황금색 닭발을 의미하는 금계지(金鷄趾)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황칠은 칠 가운데 가장 으뜸으로 꼽았던 전통 공예기술로, 옻칠과 같이 황칠나무의 수액을 채취해 정제 후 사용한다. 황칠나무의 수액도 옻칠과 같이 색이 변하는데, 처음에는 우윳빛이었다가 공기 중에서 점차 산화되어 황금빛을 띠게 된다. 다산 정약용이 '황칠'이라는 시에서 '보물 중의 보물'이라고 표현했고, 황칠나무의 황금빛 액은 '맑고 고와 반짝반짝 빛이 나네'라고 했을 정도로 영롱한 금빛을 띤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황금색을 띠기에 아예 황칠을 금칠(金漆)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쓰임새가 광범위해서 나무와 종이는 물론이고 가죽, 금속, 유리에도 사용할 수 있다. 황칠은 '옻칠 천년 황칠 만년'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장기간 사용해도 변하지 않는등 내구성이 좋다. 투명하고 광택이 우수하며 열에도 강하고 방수성도 뛰어나다. 특히 은공예에 사용하면 탁월한 색상과 고광택을 유지할 수 있어 최고급 천연 도장재료로 전혀 손색이 없으므로 향후 가능성이 매우 무궁무진하다. 황칠의 역사는 굉장히 깊은데 첫 기록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보장왕 4년(645년)에 나온다. 당 태종이 이세적을 선봉에 내세워 요동성을 공격했는데 이 전쟁에 백제가 금칠한 갑옷을 바치고 군사를 파견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바로 황칠을 한 갑옷을 진상한 것이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영원불멸의 삶을 꿈꿨던 진시황이 사방으로 신하를 보내 불로초를 구해오게 했는데, 서복이라는 신하가 제주도까지 와서 황칠나무를 가져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특산물로 매우 귀했기에 주로 왕실에서 사용했고 중국에 보내는 중요한 조공품목이었다. 2007년 경주 황남동에서 황칠이 담긴 토기가 발견되었고, 황칠을 한 백제의 갑옷이 출토되기도 했으며, 2012년 옹진 영흥도 인근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7∼8세기 신라 무역선에서도 황칠이 담긴 토기가 발견되어 황칠무역이 활발했었음을 알 수 있다. 황칠은 나무에서 얻는 것도 소량인 데다가 나무가 자라는 곳이 제주도와 서남해안 일부 지역이라서 더욱 얻기가 힘들었다. 조선말에는 아전들의 수탈이 심해져서 정조 18년에는 호남위유사 서영보가 출장보고서에 "완도의 황칠은 근년 산출이 점점 전보다 못한데도 추가로 징수하는 것이 해마다 늘어나는 폐단이 있고 아전들의 농간이 극심하니 엄격히 규제하여 섬 백성들의 민폐를 제거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라고 올린 것으로 보아 황칠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역사적 부침에도 시간이 흐르며 그나마 명맥이 이어지던 황칠나무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가 황칠의 우수성이 알려지고 다양한 약리작용이 밝혀짐에 따라 새롭게 주목받게 되었다. 학명부터 특이하게 '병을 낫게 하는 나무(Dendropanax morbiferus)'이다. 영양성분이 우수해 '나무 인삼'이라고도 불린다. 황칠나무는 새순과 줄기, 가지를 말려 차로 마시거나 진액, 환, 가루 등으로 만들어 먹는다. 효능으로는 간 기능 및 혈행개선, 정혈작용, 면역력 강화, 심장기능 개선 효과가 있다고 한다. 황칠나무에는 항암 성분인 베툴린이 차가버섯보다 1.5배 많아 항암, 항산화, 기초면역력 증진 등에 효과적이며, 노화 및 주름 예방, 피부미용에도 좋기에 비누, 화장품 원료로도 쓰인다. 천연신경안정제로 불리는 안식향(安息香)이 있어 우울증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황칠나무는 두릅나무과의 늘푸른 넓은잎 중간키나무로 높이는 3∼8m까지 자란다. 7∼8월에 황록색 꽃이 피는데 아카시나무보다 1.7배의 꿀을 생산하는 유망한 밀원식물이기도 하다. 타원형 또는 넓은 타원형 잎이 달리고 어린 가지의 잎은 3∼5개로 갈라진다. 11월경에 검은색 타원형의 열매가 달린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홍보실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홍보실장

2020-01-12 조성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일신기덕: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주역의 괘로 국운이 어찌 되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기자들도 궁금해한다. 자기 한 치 앞도 모르는데 어찌 국운을 장담하겠는가마는 역의 이치는 이치대로 나름 논리가 있기 때문에 참고해볼 필요는 있다. 새해 庚子(경자)의 두 글자를 가지고 괘를 지어보는 방법에 의하면 크게 쌓는다는 대축(大畜)이란 괘가 꾸민다는 비(賁)라는 괘로 변하는 상이 나온다. 질문은 늘 대동소이하다. 올해도 마찬가지이다. 남북관계, 경제, 정치 등등이다. 새해니만큼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괘는 나오는 그대로 말할 뿐이다. 大畜은 '크게 쌓는다'는 뜻을 지닌 괘로 축(畜)에는 그쳐 막는다는 저지의 의미도 들어있다. 간추려 요약해보면 한 편의 陽(양)이 다른 상대의 陽의 진행을 막는 형국이다. 상하나 내외나 피차의 문제로 보면 저지하는 기운이 강하기 때문에 음양적 상호 화합이나 협력은 힘든 괘이다. 그러니 남북문제나 경제의 유통이나 국제 외교적 협력은 기대만큼 이루기 힘든 상이다. 그러나 힘이 든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축이니깐 그런 운을 타개할 덕량을 크게 쌓아야 한다고 했으니 대축괘에 日新其德(일신기덕)이라 한 것이 그것이다. 德(덕)은 선천적으로 얻어진 것이지만 후천적으로 닦으면서 쌓아나갈 때 새로워진다. 큰 하늘을 품고 있는 작은 산의 형상이 대축인데 이때 산은 다름 아닌 사람을 상징한 것이다. 작은 산이 하늘이 춘하추동으로 날로 새로워짐을 꽃피고 열매 맺는 것으로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산속에 하늘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내 안에 쌓여있는 하늘의 덕량을 날로 새롭게 해야(日新其德) 전체적으로 인간사회의 꾸밈이라 할 수 있는 인문(人文)이 이루어진다(化成天下:화성천하)는 것이 올해 괘의 주요메시지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1-08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꽃향기

내 무거운 짐들이 꽃으로 피어날 수 있으면 좋겠네버리고 싶었으나 결코 버려지지 않는결국은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고 온아무리 버려도 뒤따라와 내 등 뒤에 걸터앉아 비시시 웃고 있는버리면 버릴수록 더욱더 무거워져 나를 비틀거리게 하는비틀거림은 비틀거릴수록 더욱더 늘어나 나를 짓눌러버리는내 평생의 짐들이 이제는 꽃으로 피어나그래도 길가에 꽃향기 가득했으면 좋겠네정호승(1950~)오늘은 그동안 살아온 삶이 하루 동안 펼쳐지는 날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 누구도 살아보지 못한 날인 것처럼 새해 속에 함의 된 365일이라는 시간 또한 아무도 살아보지 못한 평등한 날로 존재한다. 그러나 각자 살아온 세월만큼 다르게 축적된 시간을 나이라고 하는데, 이 시간은 "버리고 싶었으나 결코 버려지지 않는" 것이다. 이제 한 살 더 먹은 당신도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고 온" 그것은 육체의 무게에 부가된 '내 무거운 짐들이' 어깨를 누르며, 숨통을 조이고 있듯이. 말하자면 "아무리 버려도 뒤따라와 내 등 뒤에 걸터앉아 비시시 웃고 있는/버리면 버릴수록 더욱더 무거워져 나를 비틀거리게 하는/비틀거림은 비틀거릴수록 더욱더 늘어나 나를 짓눌러버리는" 순간을 살고 있지 않던가. 무거워지려면 채워야 하고 가벼워지려면 버려야 하느니, 그렇다면 더 가지려고 하는 욕망이라는 '평생의 짐'을 나눌 때 "내 평생의 짐들이 이제는 꽃으로 피어나" '평생의 짐들이' 평생의 꽃밭이 되어 '그래도 길가에 꽃향기 가득'하게 진동할 수 있으리.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1-06 권성훈

[손경년의 '늘찬문화']현실 속의 SF, SF 속의 현실

전체주의 공포 보여주는 '1984'사회 억압 지적 '다섯번째 계절'엔데 '지역통화' 만드는 구조 제안 판타지 아닌 '현실' 느꼈다면 '독서의 힘' 쓸만한 것 같다해가 새로 바뀌면 습관에 기대어 계획을 짜긴 하나 한 해의 말미가 되면 시들해져 버린 경험을 많이 했는데, 2020년 1월은 작심삼일의 효력이 지속되어 연말에 짜둔 독서계획이 현재진행형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각종 흥미로운 영상 및 시각적 매체와 속도감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소셜 미디어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드는 책을 고르는, 아니, 책이 나를 선택하는 경험을 하는 것은 마치 도심 한복판의 공원에서 자동차 소리 대신 새소리를 듣는 기분과 비슷하다. 2012년에 출간된 '조지 오웰 -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의 서문 첫 단락에서 저자 고세훈은 "오웰의 고발과 비판은 권력(자)·가해(자)를 향해 치열하게 열려있고, 권력과 가해의 주변에는 늘 지식인이 서성댔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권력 언저리에서 킁킁대며 안일과 위선과 표변을 일삼는 지식인에 대한 거대한 보고서일지 모른다."라고 하는데, 이러한 그의 분석은 SF(Science Fiction) 장르의 거장으로 알려진, 조지 오웰에 대해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권력의 부패한 모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동물농장'(1945)이나 빅브라더를 통한 전체주의의 공포를 보여주는 '1984'(1949)는 당시의 사회주의 지식인에 대한 '내부 비판자'로서의 오웰의 입장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의 책을 '제대로' 읽다 보면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불확실한 소용돌이와 자본주의, 사회주의의 이념, 권력과 지식인의 움직임이 우리 삶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힘을 느낀다.2015년에 발표된 N.K.제미신의 '다섯 번째 계절'은 '고요'라고 불리는 거대한 초대륙에 반년 또는 수세대가 지나도록 지진이 일어나는 재해 시기를 제목으로 삼은 장편 SF이다. 인류 중에 '조산력(造山力)'(지진과 관련된 에너지를 조종하는 능력)을 지닌 '오로진'이라는 종족은 재앙을 불러오는 존재로 여겨져 혐오의 대상이며, '펄크럼'이라는 기관에서 교육받고 관리를 받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 또 교육 후 살아남아도 철저히 도구화되고 착취 받는 존재이다. 제미신은 "내게는 차별을 거부할 특권이 없었다"는 흑인이자 여성의 입장에서 혐오, 인종차별, 성차별이 여전히 작동되는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억압시스템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2016)은 미국인 아버지가 결혼중개회사의 카탈로그에서 고른 열여덟의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어릴 때 어머니가 선물 포장지로 만든 '살아 있는' 종이 동물들과 함께 놀면서 산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어머니가 물려준 피도 싫었던 '나'는 점점 영어로 대화가 안되는 어머니에게 입을 닫았고 그때부터 어머니의 세계도 닫히게 되며, '살아 있는' 종이 동물들도 볼품없는 종이가 되어버린다.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어머니가 남긴 편지를 읽으면서 그제야 종이 동물들이 '살아 있던 비밀'을 알게 된다. "아들, 네가 중국사람처럼 생긴 네 눈을 안 좋아하는 것, 엄마도 알아. 엄마를 닮은 눈 말야(…) 너한테 중국어로 말을 못 걸게 했을 때 엄마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이해할 수 있겠어? 그때 엄만 모든 걸 다시 잃어버린 기분이었어." 켄 리우는 SF, 판타지 문학으로 독자에게 다가와 상상과 환상, 그리고 현실을 교차시키면서 '대화'와 '소통', '공감' 그리고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미하엘 엔데의 '짐크노프'(1960), '모모'(1973), '끝없는 이야기'(1979) 등 동화와 8편의 중·단편들로 구성된 판타지 소설 '자유의 감옥'을 읽다 보면, '현실 너머의 현실'을 넘나드는 판타지 여행을 하면서 우리가 가끔 잊고 살아가는 내면의 세계 및 현재의 문제를 다른 눈으로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된다.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시간경영'이 과연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지를 우화적으로 질문하고 현실의 모순에 대한 미래로부터의 해답을 끌어내고자 하는 엔데는 궁극적으로 '돈'의 문제, 다시 말해 화폐시스템에 대한 '상식'을 의심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지역통화'(경기지역화폐, 부천페이 등과 유사)를 만들어가는 구조를 제안하고 있다. 끝으로 SF 읽기를 통해 판타지가 아닌 현실을 더 명징하게 느꼈다면 '독서의 힘'은 역시 쓸만한 것 같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20-01-05 손경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학이시습: 배우고 때로 익힌다

이론을 아는 것과 그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다양한 이론을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학(學)은 배움인데 어린 아이가 상위에 산가지(爻)를 만지고 있는 모습으로 보기도 한다. 하나 둘 세면서 셈을 하는 모습이다. 그러다 보면 사칙연산을 익숙하게 할 수 있는 지경에 도달한다. 이렇게 배운 가감승제의 원리를 현실에 적용하면서 살아간다. 언제 더하기를 해야 하는지, 언제 빼기를 해야 하는지, 언제 나누기를 하고 곱하기를 해야 하는지는 경험을 통해 익숙해진다. 그래서 습(習)은 익힘인데 주석에 새가 자주 날갯짓을 하는 모습인 여조삭비(如鳥數飛)라고 하였다. 부화하여 세상에 갓 나온 어린 새가 날갯짓을 하며 나는 연습을 하는 모습이라고 하였다. 이런 익힘의 문제는 결국 적시성(適時性)과 관련된다. 경험이 충분히 쌓이기 전에는 나누기를 할 때 곱하기를 하는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경험이 쌓이다 보면 그때그때에 알맞게 적용하니 이것이 시습(時習)이다. 학습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이론에만 정통한 것이 아니라 그 적용에도 탁월하다는 의미이다. 가감승제의 수학 뿐 아니라 인문학적 이론이나 적용도 마찬가지이다. 2020년의 새해 첫날 학습에 관한 단상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1-01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국화꽃 그늘을 빌려

국화꽃 그늘을 빌려살다 갔구나 가을은젖은 눈으로 며칠을 살다가갔구나국화꽃 무늬로 언첫 살얼음또한 그러한 삶들있거늘눈썹달이거나 혹은그 뒤에 숨긴 내어여쁜 애인들이거나모든 너나 나나의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살다가 가는 것들있거늘 장석남(1965~)당신만 빠져있는 세계는 의미가 없듯이 당신만 있는 세계도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모두가 개별적인 존재이지만 공동체를 통해 함께 할 때 존재자로서 자신의 삶을 검증받는다. 이렇게 우리가 속한 사회는 갈등과 분열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 삶의 의지를 지원받고 생명을 연장하면서 하루하루 희망을 공급받는다. 따라서 나는 우리라는 '그늘을 빌려 살얼음판' 같은 세계에서 어제의 절망과 내일의 희망 사이에 '있거늘'. 이 그늘은 같이 있으므로, 있는 것들이 생성해내는 '또한 그러한 삶들'이 있는 동안 피어 올리는 '있거늘'로서 떠나거나 벗어나지 않는 상태의 '서로의 그늘'을 표상한다. 이것은 "모든/너나 나나의/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살다가 가는 것들" 바로 '있거늘'은 오늘을 그토록 살기 원했던 어제 '국화꽃 그늘을 빌려 살다'가 간 어느 '영혼의 자리'기도 하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2-30 권성훈

[주종익의 '스타트업']리버스 이노베이션

아래서 위로 변혁 양상 '역혁신'특정 하드웨어·SW 종속되지 않는오픈 뱅킹 시스템으로 가야생각만 바꾸면 CDMA 경우처럼과감한 '건너뛰기 전략' 시도 충분은행들의 광고전쟁이 불붙었다. 매일 수천만 원도 넘는 신문 전면 광고가 3~4개씩 올라온다. 12월 18일부터 18개 금융기관이 실시한 오픈 뱅킹 서비스 때문이다. 오픈 뱅킹 서비스는 기술적으로는 복잡한 문제가 많지만 보통 수준의 은행 고객 측면에서 말하자면, 여러 은행과 거래를 하는 고객은 이제 한 은행의 앱만 설치하면 모든 은행과 거래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고객을 빼앗기면 큰 손실이 예상되는 1등만이 살아남는 승자독식의 게임에서 성공하기 위해 사운을 걸고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취지가 그럴듯해 오픈 뱅킹 앱을 설치해보기로 했다. 다른 은행의 계좌도 등록하고 요청사항을 입력하는데 약간의 인내와 짜증을 참고 앱을 설치했다. 기대하면서 가장 손쉽고 많이 사용하는 계좌이체 송금을 해보기로 했다. 송금 실패 메시지가 떴다.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도움말을 아무리 찾아도 지점 창구를 가지 않고는 해결될 것 같지 않아 지점 창구에 가서 원인을 알아봤다. 인터넷 뱅킹을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단다. OTP 보안카드와 공인인증서는(이런 것 없애자는 것 아닌가?) 있는지도 물어보길래, 아! 이건 무늬만 오픈 뱅킹이지 기존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여러 은행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문만 하나 더 달았다고 생각했다. 그냥 집에 돌아와 앱을 삭제했다. 앱을 삭제했는데 문제가 생겨서 또 창구를 찾아갔다. 통장 입출금 발생 시 핸드폰으로 알려주는 서비스가 안 되어서 갔더니 다시 신청해야 한다고 해서 또다시 신분증 제시하고 서명하고 신청을 했다. 아니 앱을 지우면 기존의 서비스는 완벽히 복구시켜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조만간 없어질 지점 창구를 문제 해결의 최종 단계로 생각하는 은행의 사고방식은 결국 외부에 의한 혁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리버스 이노베이션이란 말은 미국 다트머스 대학의 비제이 고빈다라잔 교수가 집필한 책 '리버스 이노베이션' 때문에 유명해진 단어이다.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마치 위에서 아래로 물 흐르듯이 전수되던 전통적 혁신의 패턴이 이제는 아래에서 위로 혁신의 양상이 달라지는 '역혁신'이 시작되었다는 이론이다. 우리의 금융기관은 아마도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기는 어려울 듯하다. 오히려 스타트업에 의한 리버스 이노베이션이 일어나도록 지원하고 격려하고 기대하는 쪽이 훨씬 가능성이 높을 듯하다. 실제로 요즈음 핀테크 분야는 스타트업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앱을 통한 송금이나, P2P 서비스, 카카오뱅크나 K뱅크 등의 등장으로 등 떠밀리듯 은행들이 오픈 뱅킹 서비스 같은 것도 시도해보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의 오픈 뱅킹은 무늬만 오픈 뱅킹이다. 오래된 아파트에 페인트 칠하고 창문 고친다고 재건축 아파트와 같을 수는 없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현대는 건너뛰기(skipping) 전략이 가능한 시대이다. 유선전화를 거쳐야 무선전화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가솔린 엔진 자동차 생산을 거쳐야 전기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중국은 유선 전화와 가솔린 자동차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무선전화와 전기자동차 산업을 시작했다. 전기자동차는 우리보다 어느 면에서는 앞섰다. 앱으로 결제하기나(알리페이) 공유경제 택시(디디추싱)도 우리보다 중국이 앞서간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IT 강국이 된 것도 모두가 무선전화 방식 결정을 망설일 때 CDMA 방식을 과감하게 제일 먼저 도전한 건너뛰기 전략 때문이다.현금 없는 디지털 화폐시대, 은행지점이 없는 시대, 보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블록체인의 시대, 어느 특정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에 종속되지 않는 시대를 전제로 하는 오픈 뱅킹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건너뛰기 전략이 시작은 늦은 듯하지만 궁극적으로 시간과 돈을 절약하고 세계를 리드하는 제도가 될 것이다. 중간치기 개선은 나중에 되돌리려면 오히려 앞으로 나간 만큼 손해다. 생각만 바꾸면 CDMA 경우처럼 건너뛰기 전략을 시도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나와 있고 우리의 역량도 충분하다. 혁신적 지도자와 도전이 없을 뿐이다./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에버스핀 감사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에버스핀 감사

2019-12-29 주종익

[생활법무카페]채무자의 재산 찾는 방법은?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아 법적 소송절차를 밟아 승소해도 채무자가 자발적으로 돈을 주지 않는 경우 강제집행을 통해 채권만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강제집행을 하려고 해도 채무자의 재산을 파악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민사집행법 제61조 채무자 재산명시제도가 있습니다. 이는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을 법원의 판사 앞에서 부동산, 자동차, 채권 등 모든 재산을 기재한 재산목록을 제출하고 이것이 진실하다는 선서를 함으로써 채권자는 이를 열람하여 채무자의 재산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여 강제집행을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만약 채무자가 거짓 재산목록을 제출한 경우 민사집행법 제68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재산명시기일에 불출석, 재산목록의 제출거부, 선서 거부한 경우 법원의 결정으로 20일 이내 감치에 처해집니다. 이 제재내용을 고지받은 채무자는 대부분 법정에 나와 재산명시에 따를 것입니다. 부실한 재산목록인지 여부는 여전히 채권자 입장에서 알 길이 없으나 채무자의 자발적인 재산내역 제출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실익이 있습니다. 훗날 허위의 재산목록제출임이 밝혀지는 경우라면 전략적인 형사고소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재산명시는 법원을 통한 개인의 재산과 신용정보에 관한 전산망을 관리하는 공공기관, 금융기관, 단체 등에 채무자의 '재산조회'를 신청하기 전에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재산명시제도를 통해 돈을 대여하고 못 받아 승소판결문까지 받았으나 채무자가 재산을 빼돌리거나 변제를 거부할 때 채무자의 재산을 파악한 후에 강제집행한다는 점에서 사후적으로 담보력을 확보하는 것이지만, 이보다는 금전을 대여할 때 근저당권 설정 등 사전에 담보력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이영옥 법무사·경기중앙지방법무사회 화성지부이영옥 법무사·경기중앙지방법무사회 화성지부

2019-12-26 이영옥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일일삼추: 하루가 삼년과 같다

시간은 상대적이라고들 한다. 객관적으로 동일한 시간대라도 사람의 처지에 따라 흐름의 지속이 다르다. 보통 행복한 시간은 빠르고 괴로운 시간은 느리다고 한다. 실제 괴로움을 겪는 시간은 지루하고 견디기 힘들게 느껴져 빨리 지났으면 한다. 이런 식의 시간의 주관적 상대성은 옛날부터 그래왔다. 시경에 사모하고 그리운 님을 기다리는 시간의 흐름을 하루가 삼년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시간의 상대성 개념이 옛날과 달라졌다. 얼마 전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인 한돌이 이세돌을 이긴 것을 보면 현대문명에서 시간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자체학습진화기능을 지니고 있으니 향후 인공지능의 시간처리는 인간이 하는 시간처리의 수억만 배까지 단축될 것이다. 인간이 삼년 걸려 생각하고 일해서 처리할 것을 단 일각에 인지하고 처리하는 시대이다. 옛날 전설에나 나오는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실현되고 있다. 과학문명의 속도전으로 인해 하루가 삼년 아니라 천년, 만년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요즘 기업들이 속도를 강조하는 맥락이다. 이런 환경에서 인간의 정신이 중심을 잡지 못하면 분열화로 진행될 수도 있으니 이 시대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12-25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수화

손끝에서 피어나는 저 꽃의 말들을좀처럼 읽을 수 없다//허공에 뱉은 말들팔랑팔랑운명을 거부하는 말의 꽃들//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금방 사라지고 말 꽃의 날개들//말을 다 뱉어내고도 꽃섬 가득흩날리는 꽃잎들//손끝에서 사라지는 그리움의 말들배영옥(1966~2018)소리나 시각으로 나타내는 말은 사고의 표현 수단으로써 소통으로 완성된다. 말은 그 뜻이 통하면 소멸되지만 말의 자리에 의미만 남아 저마다 기억 속에 저장되는 것. 그렇지만 우리는 수많은 말 때문에 오히려 말 속에 갇혀 이른바 말의 감옥에서 거주하며 사물들이 내는 고유한 표현들을 모르면서 살아간다. 말없이 말을 하고 있는 수화 속에서 "손끝에서 피어나는 저 꽃의 말들을" 보라. 두 개의 손과 열 개의 손가락이 피어 올린 말의 꽃은, 말이 되지 않는 말로 말을 하고 있지 않던가. '허공에 뱉은 말들이 팔랑팔랑' 날아다니다가 상대방의 가슴 속에 내려앉는 말의 꽃잎들, 꽃의 말들.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금방 사라지고 말 꽃의 날개들"을 보면 "말을 다 뱉어내고도" 다하지 못한 공허한 말의 한계를 실감할 수밖에 없다. 지난날 "손끝에서 사라지는 그리움의 말들" 속에서 '꽃섬 가득' 채울 수 없었던 기억의 '흩날리는 꽃잎들의 말'을 주워 담을 수만 있다면.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2-23 권성훈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비련애가(悲戀哀歌)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 왕비'마리 앙투아네트'의 비극적 사랑누구에게나 비련은 아픔으로 다가와그러나 그 쓰라림에 집착하면 자칫 불행한 운명 직면할 수도비련애가(悲戀哀歌)는 슬프게 끝나는 사랑의 심정을 읊은 노래를 뜻한다. 비련의 정점은 연인과의 이별로 인해 가슴이 구멍 나고 심장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질 때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든지 한두 번쯤 이렇게 비련의 아픔을 겪는다. 하지만 끝도 없이 애련(哀戀)의 괴로움에 머물 수는 없다. 안타까운 슬픈 사랑의 순간은 짧을수록 좋다. 가수 나비가 부른 '너뿐인데' (작사:빨간양말, 고재경, 작곡:빨간양말, 앤드그루브, 고재경) 노랫말은 비련애가 그 자체이다. 가사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날 밀어내는 눈빛 내 맘이 무거워/서러움 밀려와서 많이 두려워/더 이상 너의 사랑이 아닌가 봐/너에게 난 이제 아닌가 봐/'. 사랑하는 연인들은 눈빛만 바라봐도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금방 눈치챈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다. 따라서 눈빛은 서로의 마음을 단숨에 읽어내는 풍향계이다. '너뿐인데'의 화자는 자신을 '밀어내는 눈빛'을 연인에게서 알아차린다. 그의 차디찬 심정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젠 '더 이상' 연인의 사랑이 아닐 수 있다는 염려에 마음을 졸인다. 또한 연인 없이 혼자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이런 와중에 연인이 자신의 곁을 훌쩍 떠난다는 생각에 이르자 '말도 안 된단 말야'라고 현실을 부정하며 서글픔을 토로한다. 연인이 자신의 곁에서 '점점 더 더 멀어져' 간다고 울먹거리는 화자는 결국 쓰라린 눈물을 터뜨린다. 물론 이별을 직감한 가슴 아픈 눈물이다. 그는 연인 '너'만을 사랑하고 있는데 왜 자신을 떠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내 눈물이 모든 걸 말해주잖아/너 없이는 안 된다고/떠나면 안 된다고/'. 이제 화자의 상처받은 마음은 마치 자신의 육신을 '도려내는 바람' 같이 얼얼하고 시리기만 하다. 야속하기 짝이 없는 연인의 '손'에 의해 타의로 떠밀린 화자의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연인에 대해 여전히 아쉬운 미련이 남아 있다. 쏟아지는 '눈물이 앞을 가린대도' 연인밖에는 안 보이고 연인 이외의 목소리는 안 들린다고 애처롭게 고백한다. 셰익스피어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이 로미오와 비밀리에 만나고 고통스럽게 헤어지면서 '달콤한 슬픔(sweet sorrow)'이라고 말한다. '달콤한 슬픔'의 은유 속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랑의 믿음이 깔려있다. 마찬가지로 '너뿐인데'의 화자도 헤어져야 하는 쓰라린 운명 앞에서도 가슴 속엔 언젠가 또 만날 수 있다는 '달콤한 슬픔'을 반복해서 되뇌고 있는지도 모른다.화자는 이별이 엄습해오는 것을 깨닫고 두렵기만 하다. 더 나아가 자신도 믿기조차 힘들 정도로 마음이 처절하고 쓰라리다: '니가 어떻게 날 버려/내가 어떻게 널 잊어/'. 이와 같은 비련애가의 슬픔은 말로는 표현할 수조차 없는 화자의 애타는 절규이다: '내 눈물이 모든 걸 말해주잖아/나 없이는 안 된다고/버리면 안 된다고/'. 화자의 가슴 깊은 곳에서 분출하는 울부짖음은 곧 이별해야 할 운명에 대한 현실 수용으로 마음이 기울어진다. '하루에도 수천 번'이나 아니 수만 번이라도 연인만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그가 아니던가. 그러나 이제 와서 그가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일은 전혀 없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마냥 밉기만 한 것이다. 그로서는 '그냥 이대로' 사랑하는 임을 떠나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애처롭다. 화자의 얼굴엔 아직도 눈물이 흐른다. 그 눈물이 이제는 더 이상 연인을 '사랑해선 안 된다고' 그의 귓가를 구슬프게 적시고 있다.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비극적 결말의 슬픈 사랑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는 인물은 마리 앙투아네트이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서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였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거센 물결에 휩쓸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비련애가의 여인이라 할 만하다. 누구에게나 비련은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비련의 쓰라림에 집착하면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자칫 불행한 운명에 직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2019-12-22 고재경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지일폐관: 동짓날에는 문을 닫는다

양력으로 12월 22일경은 절기상 동지에 해당한다. 동지는 말 그대로 겨울철 음의 기운이 지극하여 더 이상 자라날 수 없어 양의 기운이 처음으로 생기는 때이다. 서양의 고대 로마에서 태양절을 중요하게 여겼던 역사와 의미맥락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동지는 음력으로 11월에 해당하는데 음력 1일에서 10일까지, 11일에서 20일까지, 21일에서 30일까지 구분하여 애기동지, 중동지, 노동지라 부르며 죽과 떡을 만들어 먹는 기준으로 삼기도 하였다. 주역에서 동지는 지뢰복괘의 괘상과 부합하기 때문에 공자는 지뢰복괘에 동짓날 풍속을 소개하였다. 고대 성왕들은 동짓날 성문을 닫아걸고 장사하는 이들이나 여행객들의 통행을 금지시켰다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한해가 시작하는 기준이 되는 절기를 입춘으로 여기고 있고 실제로도 역법에서 한 해의 시작은 입춘이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음이 극한 가운데 양이 처음으로 생겨나는 상을 지닌 동지야말로 새해의 시작점이다. 그러므로 동지에 성문을 닫는 것은 새로 생긴 양기를 소중히 여겨 잘 자라나도록 하려는 마음이 담긴 행위이다. 왕궁만 성이 아니라 우리들 인체도 하나의 성이라고 볼 때 동지에 몸단속을 하며 한 해를 미리 그려보는 것도 좋겠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12-18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달맞이꽃

어머니 저어기 마중 나와 계시다뼈마디 마디 끝마다 불 밝히시고굶주린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어둠 속에 나와 계시다//날마다 나를 설거지하시다늙은 손 굽은 등으로마지막 남은 힘으로 등불 켜시고저 풍전등화의 골목에 나와 계시다//여름 구석에서 가을을 장만하는 풀벌레소리벌써 애간장을 녹이는데//나는 가을이 되면 누구나 한번쯤 하는이별하는 사랑 하나도 이루지 못한 덜 떨어진 놈인데//내 슬픈 길을 밝혀주려어머니 저어기 홀로 나와 계시다김왕노(1957~) 우리는 무엇인가를 자주 떠올릴 때 주로 눈에 비쳤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보단 멀리 있는 것을, 부족하지만 채울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른바 돌아올 수 없는 결핍을 말한다. 생애 처음 당신이 보았던 사람, 당신을 그렇게 지켜주었던 어머니 죽음은 고인 시간 속 흐린 잔상을 통해 각인되고 다시 부활하며 영원히 완성되어 나타난다. 어머니라는 이름 앞에 성장이 멈춘 기억은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가진 7월에 개화하는 2년생 '달맞이꽃'처럼. 삶에서 죽음에의 삶이 시작되는 당신에게 '어머니 저어기 마중 나와 계시'기도 하고, '날마다 나를 설거지하시'듯 씻어주기도 하고, '뼈마디 마디 끝마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등불 켜시고' 계시지 않던가. 그렇다면 당신을 위해 눈물 흘리시던 어머니는 연하고 물기 많은 초본식물같이 어두운 삶의 길목에서 '내 슬픈 길을 밝혀주려 저어기 홀로 나와' 피어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2-16 권성훈

[김나인의 '생활관상']귀는 소통과 불통을 기준하는 대명사

귓불 밋밋하고 탁하면 단명 우려눈썹보다 낮으면 지혜롭지 못해귓구멍 아주 작은 사람은이해심 적어 남의 말 잘 안들어'소귀에 경 읽기'란 말 유래된 듯귀는 관상학에서 매우 중요한 부위로서 강독(江瀆)이라 하여 사독(四瀆)에 배속하였고, 눈·코·입·눈썹과 더불어 오관(五官)으로서 채청관(採聽官)이라 칭하고 있다. 오관 중 한 부위만 좋아도 어느 정도 부귀와 공명을 이루고 살아간다. 오관이 모두 바르고 잘났으면 평생을 살아가면서 의식과 복록이 끊김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나, 유감스럽게도 신(神)은 어느 사람에게도 완벽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게 하지는 않았으니, 아마도 결점을 보완하고 극복하면서 세상을 살라는 의지의 선택적 몫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귀는 각종의 소리를 듣는 감각기관으로서 1세부터 15세까지의 운을 주관한다. 또 신장 콩팥과 연결되어 있어, 신장기능이 저하되면 귀의 색상이 메마르고 꺼칠해지며, 청력에도 문제가 생겨 이명(耳鳴)현상이 생겨나기도 한다. 귀를 살필 때에는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비교적 크고 눈썹보다 높이 붙어야 하며, 귓바퀴는 두툼하고 튼실하며 귓불 역시 두툼히 입 부위까지 걸쳐있으면 귀격이라 볼 수 있다. 눈썹이 신하라면 귀는 임금이라 하였으니, 귀는 당연히 눈썹보다 위에 붙어있어야 세상 다스리는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귀의 빛이 선명하고 맑고 윤택하며 정갈하고 두툼하면 성군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이 된다. 성군도 폭군도 모두가 관상에서 어느 정도는 정해진다고 하니, 나라의 지도자를 뽑을 때는 귀의 형상을 잘 보고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귀의 윤곽이 분명하고 단단하며 높이 솟고 기색이 맑고 선명하면 남의 말을 잘 들어주며, 성정 또한 어진 사람이다. 귀가 뒤로 젖혀져 있거나 귀륜이 칼날처럼 뾰족하고 귓불이 밋밋하며 기색 또한 메마르고 검고 탁하면, 단명하거나 빈곤을 면치 못하고 성격마저 포악하고 간악하여 부모 형제와의 인연도 없고, 주변에 적이 많아 평생 관재와 구설이 끊이지 않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소리를 전달받는 통로를 명문(命門)이라 하는데, 명문이 적당히 넓고 깊어야 하는바, 너무 좁고 삐뚤어져 있으면, 옹졸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고집불통으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니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무시해버리는 성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종합하면, 귓불에 살집이 없고 밋밋하고 기색마저 어두우면, 단명할까 두려우며 이마가 이를 받쳐주지 못하면, 부모형제 덕 또한 없으니 평생 곤고하게 살아가게 된다. 귀의 끝이 뾰족한 사람은 지혜롭고 기회포착을 잘하여 임기응변에 강하나 성격이 거칠고 냉정하며, 의심과 경계심이 많은 사람이다. 또한 귓구멍에 난 잔털은 건강과 장수의 표상인데, 환자에게 잔털이 나면 건강이 회복된다는 암시이니 이를 함부로 뽑아서는 안된다. 귀가 아무리 높이 붙어있어도 귓바퀴가 뒤집혀있거나, 귓불도 귓바퀴도 뾰족하고 기색마저 탁하고 어두우면 이는 하늘이 버린 사람이니 운을 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또한 아무리 귀가 높이 솟고 두툼하며 살집이 붙어있어도, 기색이 어둡고 까칠해지면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운이 쇠한다는 암시임을 알아야 한다. 귀가 쫑긋이 서있는 사람은 자주 놀라며 의심을 많이하고, 움직일 때마다 흔들거리는 귀는 평생 의지할 곳 없이 떠돌며 살아가는 고단한 삶의 주인이 된다. 귀가 눈썹보다 낮게 걸려있으면 사람됨이 모자라고 지혜롭지 못하며, 저울추처럼 역삼각형의 모습이면 부모를 잘 만났어도 결국 가업을 지키지 못하고 탕진하게 된다. 귀의 살집이 너무 얇아 혈관이 보이게 되면 하는 일마다 유시무종(有始無終)이니, 부귀를 논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귀가 짝짝이면 조실부모하거나 남의 부모를 섬기게 되며, 낮게 걸린 귀에 뒤집히고 기색마저 탁하면 육친을 해하고 고향을 등지며, 죄를 밥 먹듯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세상사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을 가진 사람인지 아닌지는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나, 귀의 형상을 통해 알아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귓구멍이 아주 작은 사람치고 도량이 넓고 이해심이 많으며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지금껏 만나지 못한바, 이런 사람을 일러 소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된 듯 하다. 좋은 말은 좋은 귀에서 나온다는 의미가 새로워지는 시간이다. 잘 생긴 귀가 좋은 입술보다 더 진솔한 사람이라는 뜻이니, 입이 타서 침을 자주 바르고 흙빛으로 물들어가는 대통령의 귀가 위태로운 현실이다./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

2019-12-15 김나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무족이행: 발이 없이 다닌다

경험적으로 고전에서 하는 경계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말에 관한 문구다. 말은 한번 내뱉으면 주워담을 수 없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내용, 말은 ktx보다 빠르다는 전파속도를 따라잡아 되돌릴 수 없다는 내용, 말은 자기인생의 영욕을 주관하는 기틀이기에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 위정자의 말은 그 효과가 법제화되어 강력하고 전반적이기에 내뱉기 전에 신중히 검토하라는 내용,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면 더욱 궁색해진다는 내용,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용인하는 말이 아니면 하지 말라는 내용, 말은 마음에서 나오기에 그 사람의 말을 잘 들어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내용, 말은 그와 일치하는 행동이 수반해야 하고, 행동 했으면 자신이 뱉은 말과 일치하는지를 돌이켜보라는 내용, 꾸며대는 말과 함부로 하는 거짓말과 두 가지로 갈라치는 말과 악한 말은 악한 과보를 받는 구업(口業)에 속한다는 말 등등 헤아리기 힘든 정도이다. 오죽하면 공자가 조카의 사윗감을 고를 때 기준으로 말조심을 보았을까! 공자는 자기 제자였던 남용을 조카사위로 삼았다. 남용이 평소 시경의 백규장을 매일 반복해 외는 모습을 보고는 사회가 안정되면 등용될 것이고 난세를 만나게 되더라도 처신을 잘해 큰 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조카사위로 받아들인 것이다. 시경 백규장이란 "흰 옥의 흠은 갈아서 없앨 수 있지만 이 입에서 나간 말의 흠은 어찌할 수 없구나"라는 내용이다. 무족지언비우천리(無足之言飛于千里)라! 회남자에는 뱀을 묘사한 부분이 있는데 뱀은 발이 없는데도 다닌다고 하였다. 연말 모임자리가 많을 텐데 사람들이 하는 말에서 종종 뱀의 모습이 보인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12-11 철산 최정준

[생활법무카페]친생부인의 소 vs 친생부인 허가 청구

전남편과 이혼을 하고 이혼신고를 한 후 300일 이내에 태어난 아이는 전남편의 아이로 법률상 추정이 되고 이를 '친생추정'이라고 합니다. 유전자검사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일단 전남편의 아이로 추정하고 전남편의 아이가 아닌 객관적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친생추정을 배제했습니다. 이때 필요한 소송이 친생부인의 소입니다.친생부인의 소에서 가장 문제는 반드시 전남편이 소송의 피고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엄마는 빨리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싶어도 전남편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몰래 전남편의 아이로 출생신고를 하거나, 친생부인 소송 절차가 지연되는 경우 그동안 아이가 건강보험혜택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아주 많았습니다.그러나 요즘은 머리카락만 있으면 친자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가 있어 더 이상 친생추정이란 개념이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전남편과 이혼 후 300일 이내에 태어난 아이에게 친생부인의소를 제기하지 않고 간단한 절차로 출생신고가 가능하도록 민법이 개정됐습니다. '개정 민법 제854조의2 친생부인허가청구'에 따라 유전자 검사 등으로 전남편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한 경우에는 친생부인의 '소'를 거치지 않고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친생추정의 효력을 배제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결과 친생부인의 '소'를 통해 전남편에게 알리거나 전남편의 소송수행이 없이도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태어난 아이의 출생신고가 가능해졌습니다. 다만 '이미 출생신고가 된 아이의 경우'에는 민법과 가사소송법이 개정된 것과는 무관하게 친생부인의 소로서 친생추정을 배제해야만 합니다.실무적으로는 친생부인허가청구 절차 내에서도 전남편 등에게 의견청취를 구하는 임의적 절차를 고집하며 전남편에게 아이의 출산사실을 알리며, 의견청취서 송달을 요구하는 일부 법원이 있습니다. 아이의 신속한 출생신고를 위해 전남편에게 의견청취통지서 송달조차 장차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주영민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수원지부주영민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수원지부

2019-12-10 주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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