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집가벌가: 도끼자루를 잡고 도끼자루를 벤다

최근에 형성된 '내로남불'이라는 용어는 현재 우리의 정치문화를 대변해주고 있다.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무디지만 남이 하면 공격해대는 것은 사실 정치문화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목격하고 느끼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개인적 도덕성의 타락으로만 볼 수 없고 오히려 사회 전체적 인식수준의 흐름으로 보아야 한다. '중용'에 도끼자루를 만들기 위해 산에 나무를 베러 가서 어떤 모양의 나무를 어느 정도의 크기로 벨지를 몰라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바로 자기 손에 도끼자루의 해답을 쥐고 있으면서 엉뚱하게 멀리서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은 허물을 저지르는 존재이지만 그 허물이 과하면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그 과한 허물을 법적인 죄라고 한다면 사회는 죄를 저지르면 범죄라 하여 처벌을 한다. 공자는 법을 어겨 처벌을 내리는 제도에만 의존하면 사회가 염치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경계하였다. 법적인 그물망만 저촉되지 않으면 된다는 인식이 보편화되면 양심에 바탕한 염치는 잃어버리게 되는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현대 법치사회는 보편성과 객관성 내지 형평성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제도를 구현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쉬운 구석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의 양심과 결단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진퇴의 판단은 자신의 몫이다. 다른 곳이 아닌 자신의 손에 잣대가 들려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9-18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들꽃

이름을 가진 것이이름 없는 것이 되어이름 없어야 할 것이이름을 가진 것이 되어길가에 나와 앉았다.꼭 살아야 할 까닭도목숨에 딸린 애련 같은 거 하나 없이하늘을 바라보다가물들이다가바람에 살을 부비다가외롭다가잠시 이승에 댕겼다가 꺼진반딧불처럼고개를 떨군다.뉘엿뉘엿 지는 세월 속으로만.이근배(1940~)이름이 없다는 것은 하나의 이름에 묶여있지 않다는 말이다. 사물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는 이름은 한번 붙어진 이상 그 이름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법. 야생에 핀 들꽃은 온실에서 자라는 꽃들이 가지지 못한 몸짓으로 피어나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는 자유를 가졌다. 보통명사 들꽃은 고유한 이름이 없기에 고유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이름을 가진 것이/'이름 없는 것이 되어/이름 없어야 할 것이/이름을 가진 것이 되어 길가에 나와'있지 않던가. 거기서 이름 없는 것들이 이름 있는 것들을 보면서 '꼭 살아야 할 까닭도 목숨에 딸린 애련 같은 거 하나 없이'도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준다. 이른바 이름 있는 당신을 향해 '하늘을 바라보다가/물들이다가/바람에 살을 부비다가/외롭다가' 그렇게 반짝 생을 마감하는 '반딧불처럼' 들꽃은 없는 이름으로, 있는 이름을 소리 없이 가르쳐 주며 '고개를 떨군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 마다 자신을 흔들며 '뉘엿뉘엿 지는 세월 속으로만' 걸어가고 있지 않던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9-16 권성훈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애별이고(愛別離苦)

'용두산 엘레지' 화자처럼아픔을 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누구든지 별리의 고통도마음먹기 따라 열정적인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애별이고(愛別離苦)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과 슬픔을 뜻한다. 부모 또는 이성과의 이별로 인한 괴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다. 특히 현재 열애에 빠진 정인과의 헤어짐은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최근 대세 중의 대세인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가창을 통해 대중의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던 '용두산 엘레지'(작사 최지수·작곡 고봉산) 노랫말에서 애별이고의 예를 찾아보자. 엘레지(elegy)는 슬프고 애잔한 노래인 비가(悲歌) 또는 슬픈 마음을 읊은 노래인 애가(哀歌)이다. '용두산 엘레지'의 가사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용두산아 용두산아/너만은 변치 말자/한 발 올려 맹세하고/두 발 디뎌 언약하던/'. 용두산은 고유명사로서 사물이다. 그런데 화자는 마치 용두산을 사람에 비기어 사람처럼 생명과 성격을 부여하면서 의인화시킨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랑을 확신한다.대부분의 경우 '변치' 않는 마음을 확인하고 싶을 때에는 '맹세'를 하거나 '언약'을 한다. 즉 손가락 걸고 맹세 다짐을 하거나 말로 굳은 약속을 한다. 그러나 인용한 곡의 화자는 한 발을 올려 서약하고 두 발을 디뎌서 언약한다. 아마도 화자와 연인은 계단을 오르며 밀어를 속삭이며 사랑의 맹세를 하는 듯싶다. '일백 구십 사 계단'을 함께 오르며 사랑을 다짐할 때 두 연인은 심장이 콩닥콩닥 숨이 가빠온다. 물리적으로 숨이 차기도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폭풍이 휘몰아치듯 사랑의 감정이 용솟음칠 것이다. 드디어 화자는 연인의 마음 깊은 곳에 '사랑 심어 다져' 놓는 데 성공한다.여기까지가 화자의 과거 플래시백 회상이다. 이제 그는 현재로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과거 연인인 '그 사람은 어디 가고/나만 홀로 쓸쓸히도/그 시절 못 잊어/' 괴로움과 슬픔에 젖는다. 절대 고독을 느끼고 있는 지금의 그는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과 교제 기간 동안 별리의 아픔에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도대체 연인에 대한 사랑의 가로 세로 깊이 넓이가 얼마나 방대하길래 '그 시절'을 이토록 잊지 못할까. 화자는 감격과 희열로 가득 찼던 연인과의 사랑의 순간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결국 사랑의 상실감에 괴로워 목 놓아 우는가 보다.세월이 흐르면서 사랑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무너지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같이 우왕좌왕한다. 하물며 남녀 간 사랑이야 오죽하겠는가. 좋아할 땐 질풍노도 같은 미친 사랑을 한다. 그러나 사랑이 증오로 바뀌면 변심하여 사랑의 파국을 맞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연인과 '둘이서 거닐던' 194 계단에서 확인한 사랑을 화자는 이렇게 상기한다: '즐거웠던 그 시절은/그 어디로 가버렸나/'. 아마 그는 광풍이 부는 광적인 사랑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아름다운 사랑은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저 멀리 '그 어디로'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없다. 자신의 심장에 사랑의 꽃을 피우게 했던 연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화자는 이러한 냉혹한 현실을 수용하면서도 쓰라린 작별의 엘레지를 이렇게 노래한다: '잘 있거라/나는 간다/꽃피던 용두산/아~아~아~아~용두산 엘레지'.가수 이미자는 애별이고로 대변되는 엘레지의 여왕이다. 그녀 이후 오디션 우승과 함께 신데렐라로 등장한 송가인이 엘레지의 여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와 '한 많은 대동강' 등 그녀가 부른 비가는 이별의 슬픔을 온몸으로 그려낸다. 또한 최근 윤민수, 치타 등과 소름 돋는 환상적인 콜라보로 열창한 '님아'도 애절한 애가의 전형이다. 곡명 '용두산 엘레지'의 화자처럼 애별이고의 아픔을 쓸개처럼 쓰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든지 별리의 고통도 마음먹기에 따라 열정적인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이별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수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헤어짐의 쓰라림은 오히려 미래에 아름다운 사랑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2019-09-15 고재경

[생활법무카페]공증의 효력?

어느 날 한 학생이 "공증사무실이 뭐하는 데야"라고 물으니 다른 학생이 "돈 꿔 줄 때 증서를 발급해주는 곳이야." "그럼 공증 받으면 돈 받을 수 있어?" "그럼. 채무자가 안주면 공증사무실에서 책임지기 때문에 공증비가 비싸지." 이 대화를 듣고 공정증서(금전소비대차계약 또는 약속어음)을 작성한 경우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았을 때 법원의 소송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강제집행할 수 있을 뿐 공증사무실이 돈을 받아주는 것이 아님을 설명해주었다.가끔 "공증 받으면 효력 있나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돈을 빌려주면서 은행계좌로 송금한 경우 차용증조차 안 받아 나중에 채무자가 돈을 빌린 사실이 없다고 할 경우에 대비할 때와 소송절차의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을 때 공증이 유용하고, 재산과 수입이 없는 사람에게는 공증 받아봐야 별 소용이 없다고 답변해준다. 즉 재산이 전혀 없는 채무자의 공증보다 '재산이 있는 보증인'의 자필 메모(주민등록번호 기재)가 훨씬 더 유용한 증거라는 말을 자주 한다.사실 악덕 채무자가 공증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사기는 돈을 빌려 갈 당시 변제의사나 변제능력이 있느냐가 관건인데 악덕 채무자는 갚을 의사 없이 공증은 선뜻 해주면서 채권자를 안심시키고 사기로 형사고소 당하면 공증을 해주었기 때문에 형사문제가 아니고 민사문제라고 강변한다. 예전에 공증사무실에 간 적이 있는데 '공증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는 벽에 붙은 안내 문구를 보고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더구나 2004년부터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이 시행된 이후에는 공증을 받거나 판결을 받아도 채무자가 면책을 받으면 채권자는 구제받을 길이 없어졌다.따라서 필자는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할 경우 고이자, 투자금에서는 고배당의 유혹을 벗어나고 원금상환 또는 이자상환의 연체 여부를 떠나 무조건 추가대출 또는 추가투자를 삼가고 돈을 빌려줄 때 배우자와 상의하고 사고가 났을 때에도 혼자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전문가와 꼭 상의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이상후 법무사·경기중앙지방법무사회 수원지부이상후 법무사·경기중앙지방법무사회 수원지부

2019-09-10 이상후

[시인의 꽃]민들레 꽃씨

날아가 닿는 곳 어디든 거기가 너의 주소다조심 많은 봄이 어머니처럼 빗어준 단발머리를 하고푸른 강물을 건너는 들판의 막내둥이 꽃이여너의 생일은 순금의 오전너의 본적은 햇빛 많은 초록 풀밭이다달려가도 잡을 수 없던 어린 날의 희망열다섯 처음 써 본 연서 같은 꽃이여너의 영혼 앞에서 누가 짐짓 슬픔을 말할 수 있느냐고요함과 부드러움이 세상을 이기는 힘인 것을지향도 목표도 없이 떠나는 너는보오얀 몸빛, 버선 신은 한국 여인의 모시 적삼 같은 꽃이여너는 이 지상의 가장 깨끗한 영혼공중을 날아가도 몸이 음표인땅 위의 가장 아름다운 소녀들 이기철 (1943~)욕망에도 무게와 부피가 있던가. 채울수록 무거워지고 부피를 더해가는 짐처럼 욕망은 채울수록 들어차면서 늘어난다. 가중되는 무게와 커가는 부피를 통해 욕망은 욕구를 키우면서 자신마저 그 안에 전복시키고 만다. 그러면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끝없이 부유하는 물질 앞에서 빈번히 무릎을 꿇으며 고유한 자신의 정체성마저 상실해 버린다. 반면 가벼움은 무거움으로 측정할 수 없는 무게를 가졌다. 채울수록 무거워지는 욕망을 '버림'으로 벼리는 것같이 가벼움은 무거움을 버리고 민들레 꽃씨처럼 날개 없는 날개를 달 수 있다. "고요함과 부드러움이 세상을 이기는 힘인 것을" 아는 민들레 꽃씨는 '날아가 닿는 곳 어디든 거기가 너의 주소'가 생기는 것처럼. 봄에 개화하여 '몸이 음표인' 꽃씨를 남기는 민들레의 꽃말이 '행복'인 것은, 비로소 '깨끗한 영혼'으로 가벼워져 얻게 된 '비움의 자유'를 이르는 말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9-09 권성훈

[김나인의 '생활관상']인중, 인생행로 주체에너지가 자손에게 이어지는 길목

위 아래 좁고 중간만 넓으면후손 병약 질병으로 고생가로주름 심하면 우울증 앓기도검고 탁하면 재액 암시 잘 관찰유산의 수로같아 곧고 단정해야인중(人中)이란 준두(準頭)인 코끝의 아래로 펼쳐져 있는 세로로 이어진 선을 말하는데, 51세부터 59세까지의 중년 운을 주관하고 있다. 몸속의 피가 통하고 상류에서 나온 물이 통과하는 수로(水路)와 같은 곳이니, 인중골이 깊지 않으면 물이 새어나가게 되고 심하면 홍수로 물이 넘치니 좋지 않다. 인중의 길고 짧음을 보고 수명의 장단을 판단할 수 있고, 넓고 좁음을 보고 다산의 여부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중은 길고 곧아야 좋으며 가운데는 좁고 깊으며 아래로는 넓고 곧아야 한다. 인중의 골은 틀어지거나 굽어지지 않고 바르게 나 있어야 좋다고 보는 것이다. 인중이 너무 가늘고 좁아 보이면 삶이 고단하고 의식이 궁핍하다 말할 수 있다. 인중이 너무 밋밋하여 없는 것 같으면 수로에 물이 없는 것과 같으니 일찍이 부귀공명을 이루었다 해도, 중년 이후 운(運)이 쇠하게 됨을 이런 형상의 인중을 가진 사람에게서 많이 관찰되고 있다. 또한, 인중 위와 아래는 좁고 중간에만 넓으면 자손이 병약하여 질병으로 고생하게 된다. 인중이 너무 평범하고 엷으며 있는 듯 없는 듯 보이면 정신기(精神氣)의 작용이 온전하지 못하고 결단력도 없으며 주체성이 부족하여 리더로서의 길은 기대하기 어렵다.예로부터 우리네 조상들은 인중의 생긴 형상을 보고 수명 장단을 말하곤 했다. 인중이 엷고 짧으며 굽어있거나, 가로세로 줄무늬가 인중을 가로지르면 건강에 장애가 생기며 수명이 길지 않은 사람이 많다. 자식 복(福) 또한 기대하기 어려우니 자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인중이 굽은 사람은 성정도 삐뚤어져 있고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이며, 인중이 단정하고 곧게 뻗어있고 윤곽이 뚜렷하면 강직하고 의리있는 사람이다.인중에 가로주름이 생겨나면 자식에게 문제가 생긴다. 인중이 좌측으로 굽어 있으면 정신에 장애가 있는 경우가 많으며, 소심하고 융통성이 없어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며, 심하면 우울증을 앓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간혹 인중에 우물 정(井) 자 모양의 주름이 생겨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수액이 생겨난다는 징후로 물과 연관된 일이 생기며, 항상 물가를 조심해야 한다. 인중은 정갈하고 맑고 깨끗하며 곧고 적당히 깊어 가지런해야 한다. 좌우로 틀어지고 윗입술이 말려 올라가 인중을 덮고, 짧고 엷고 기색(氣色)이 탁하며 가로세로 줄무늬가 거미줄처럼 얽혀있으면 수명을 보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성정도 바르지 못하고 자손과의 인연이 좋지 않다고 본다.인중은 사람마다 그 형태와 형상이 다르고 복잡 다양하다. 인중의 폭이 아주 좁은 사람, 매우 넓은 사람, 위는 넓고 아래는 좁은 사람, 위는 좁고 아래는 넓은 사람, 밋밋하여 거의 없는 사람, 폭이 좁고 깊이 팬 사람, 길고 폭도 넓은 사람, 중간부위가 넓은 사람, 중간이 둥그런 사람, 윗입술에 말려 올라간 사람 등 인중은 사람마다 그 형태와 형상이 다르고 복잡 다양하다.인중에 생겨나는 기색도 잘 관찰해야 한다. 인중에 줄무늬가 얽혀 생겨나거나, 불그레한 반점이 생겨나거나, 검고 탁한 먹구름이 몰려와 머무르면 자손에게 재액이 생김을 암시하는 것이니 평소 잘 살피고 헤아리는 일이 중요하다. 말려있던 인중이 풀리거나, 밋밋한 인중에 골이 생기거나 어둡고 탁한 흑기(黑氣)나 잔주름이 사라지고 밝은 빛이 자리하면 자신은 물론 자손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는 암시이다. 인중은 인생행로(人生行路)의 주체에너지가 자손(子孫)에게로 이어지는 결실의 길목을 상징하기에, 자신의 삶의 흔적을 더듬어 어떤 수확을 거두어 입(食口·식구)속에 채워놓을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인중을 통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인중은 또 한 사람의 부모가 되어 또 한 사람의 자식에게 남겨지는 유산(遺産)을 실어나르는 수로(水路)와 같은 것이니, 수로가 곧고 깊고 단정해야 입속으로 향해 흐르는 물 또한 깨끗하고 풍성하지 않겠는가.한가위 보름달이 나의 인생행로에 어떤 형상으로 비쳐 얼마만큼의 풍성함을 더할지, 올해의 추석은 그런 기다림으로 맞아보는 것이 어떨까. 인중골 수로에 담긴 자손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밝고 환한 모습이기를 기대해본다./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

2019-09-08 김나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칠서벽경: 글을 쓰고 옻을 칠해 벽 속에 감춘 책

90년대부터 중국에서 공자를 정통 문화브랜드로 삼아 나라를 선양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당시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한국의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에 찾아와 공자에게 드리는 제사인 석전(釋奠)의 의례를 물으러 온 일이 있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공자가 '반동'의 우두머리로 찍혀있었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는 오랜 세월 공자의 사상과 예법 등에 관해 정통적으로 계승발전시키고 있었다. 3년 전 오산시의 초청으로 공자사상에 대해 특강을 할 겸 중국의 공묘(孔廟)일대에 간 일이 있었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물건이 바로 노벽(魯壁)이다. 노벽은 한나라대 노나라 공왕이 확장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 옛 공자의 고택을 허물었는데 그 벽속에서 '논어'를 비롯한 경전이 고문(古文)의 형태로 나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명나라 때 세운 벽이다. 그 책들은 진시황의 분서를 피해 후대에 전해주기 위해 공자의 직계 9대손인 공부가 벽속에 숨겨놓았던 것이다. 이후 고문(古文)과 금문(今文)은 지금까지 경전연구가들의 핵심 주제이다. 사라져야 할 것이 있는 반면 지켜야 할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음력 초하루가 되면 양을 희생으로 삼아 고유를 하고 새 책력(冊曆)을 나누어주는 전통이 있었는데 논어에 보면 자공은 세월이 흐르고 예법이 무너지면서 전통은 실제대로 행해지지도 않으면서 희생양만 아깝게 잡는 것은 허례라고 생각하여 폐지하려고 하였다. 자공은 늘 경제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스타일이었다. 그러자 공자는 "사야! 너는 그 양을 아끼려 하느냐? 나는 그 예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은 당장의 경제적 비용만 따지지 말고 먼 안목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멀리 전할 가치가 있다면 당장의 타산은 접어야할 때도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9-04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해바라기

구름을 넘는구나 / 빗방울을 뚫는구나따라 도는 / 꽃 / 읽는 해 가던 / 같이 가던 / 길을 / 앓아 / 동행이냐 장마에 / 꽃잎 더 / 노래지는 / 해바라기야함민복 (1962~)해가 움직이는 대로 고개를 움직인다는 해바라기는 8~9월에 개화하고, 꽃말은 숭배와 기다림이다. 하나만을 바라보고 그리워하다가 시들어 말라가는 해바라기는 하늘 먼 곳을 향해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배반과 변절로 얼룩져 있는 우리 사회를 보면 해바라기에게서 숭고미를 느끼게 된다. 해바라기의 절대적인 바라봄은 해를 가리고 있는 '구름' 너머로 비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빗방울'을 맞으며 온 얼굴을 허공에 매달고 있다. 하늘에서 돌고 도는 태양은 자신을 '따라 도는 꽃'을 아는지 그렇게 해바라기를 저녁이 될 때까지 마주 보고. 비록 그 거리는 가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있지만 그러한 해바라기의 마음을 하루 종일 와닿으며 읽고 있는 해. 해바라기와 해는 서로 '같이 가던 길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서로 비추면서 가는, 말하자면 '동행'과도 같은 것. 당신도 이러한 동행 하나 있다면 어렵고 힘든 세상의 장마에 가려져 있더라도 '장마에 꽃잎 더 노래지'듯이 서로가 서로에게 노랗게 닳아 닮아갈 수 있으련만.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9-02 권성훈

[조성면의 '고서산책']전설의 한국SF만화 '라이파이'

B급 문학으로 간주하던 시대어린이만 '열광' 어른들은 '금지'사회를 바꾸고 세상 변화시키는엉뚱한 막내들의 상상력 도전50~60년대 하위문화의 유쾌한 반란세상을 바꾸는 것은 모범생이 아니라 비범한 말썽쟁이나 막내들이다. 장남 · 장녀는 강한 책임감으로 보수파 모범생이 많이 나오고, 장남과 막내 사이에 낀 둘째는 살아남기 위해 존재감을 과시하는 일을 많이 벌이거나 사교술에 능란하며, 막내 가운데서 반항아와 혁명가들이 많이 나온다는 믿거나 말거나 통계가 있다. 집안에서는 막내라고 귀여움을 독차지하다가 사회에 나와서는 집안에서 받던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하여 자연 불평불만이 많아진 막내가 결국 기존의 판을 뒤집는 혁명가가 된다는 것이다. 유교와 숭문주의 전통이 강한 한국문화에서 SF는 담론의 관심 밖에 있었던 '둘째'였고, 만화는 논의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문화적 '막내'였다. 그러니 SF만화는 더 말할 나위 없었다. 담론의 주변을 떠돌던 SF만화가 지금 고서시장에서는 한적(韓籍)들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김산호 화백의 SF만화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1959~1962)는 아직 완질본을 확인하지 못한 극희귀본이다. '라이파이'는 몇 살 터울의 선배들에게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그러나 웬일인지 그 옛날에도 실물은 없고 전설로만 떠돌던 만화였다. 십수 년 전 서울대역 근방의 헌책방에서 마침내 그 전설과 조우했다. 2003년 부천만화정보센터에서 영인한 양장본 초판 '라이파이'였다. 언제 나왔는지도 모르게 나왔다 금세 절판되어 귀중본이 된 책인지라 주인장이 15만원을 불렀다. 당시 대학 시간강사 신분이었던 터라 당연히 입수해야 하는 자료임에도 한참 동안 실존적 고민(?)을 거듭하다 무리해서 가까스로 구입했다. 그 '라이파이'를 강의 자료로 잠깐 사용하고 잊고 있었다가 우연히 김산호 선생을 자택 만몽재(卍夢齋)를 방문하여 '인인화락'(수원문화재단刊, 2014년 겨울호)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 영인 양장본에 라이파이 캐릭터 그림과 함께 저자 친필 사인까지 받았다. 고서를 접하다 보니 가끔은 이렇게 뜻하지 않은 행운과 영광을 누리는 경우도 생긴다. 지금이야 '라이파이'가 한국SF만화의 전설로 대접받고 있지만, SF는 한국문화사에서 푸대접은 고사하고 아예 무대접이었다. 약관의 청년 김산호가 SF만화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았을 때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도서출판 남훈사의 부엉이 시리즈로 '라이파이'가 출간되자마자 대박을 쳤다. 종래에는 출판사 직원이 갈비 반 짝을 사들고 집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라이파이' 신간이 나오는 날에는 만화가게 앞에 수십 수백 명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당시 공무원 사무관 월급이 4천~5천원일 때 '라이파이' 한 편당 무려 50만원 넘게 벌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광의 순간은 짧았다.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김산호는 전격적으로 남산의 중앙정보부로 연행돼 심한 고초를 겪는다. 혐의점은 1958년 데뷔작 '황혼에 빛난 별'의 별이 김일성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또 '라이파이'에 어째서 인공기와 같은 별이 들어간 이유가 무엇인가 등의 황당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작가 김산호는 창작의 자유를 찾아 훌쩍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서도 김산호의 활약은 대단했다. 마블, DC와 함께 빅3 코믹스였던 찰튼 코믹스와 손잡고 '샤이안 키드(Cheynne Kid)' 등 600여권의 단행본을 발표했다. 한국SF만화의 효시가 어떤 작품인지 단정하기 어려우나 현재까지는 1952년 일신사에 나온 최상권의 3권짜리 딱지본 만화 '헨델박사'가 가장 앞선다. SF만화는 SF를 B급 문학으로 간주하던 시대에 나온 만화라서 어린이 독자만 열광하고 어른들은 금지하는 정크요, 하위문화(subculture)였다.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엉뚱한 막내들의 기발한 상상력과 금기를 깨는 도전이었다. '라이파이'는 5~60년대 문화판의 질서를 뒤집은 막내요, 하위문화가 벌인 유쾌한 반란이었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9-09-01 조성면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전전반측: 몸을 뒹굴면서 뒤척인다

남녀 간 그리워하는 모양을 표현한 시가 많은데 그 원형으로 거론되는 것이 시경에 들어있다. 물가에서 정겹게 짝지어 놀고 있는 새를 보고도 연인을 그리워한다. 봄철에 들에서 나물을 이리저리 손으로 뜯으면서도 마음은 그리움의 대상을 따라가 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 한 생각 때문에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룬다. 그러다가 서로 만나 금슬을 연주하며 즐긴다. 이렇듯 자나깨나 생각하면서 그리워하는 대상과의 만남을 노래하고 있는데 시경 맨 처음의 시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젊은 시절 남녀 간 그리움이 사무쳤을 때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이든 원하는 것이 간절하면 잠자리에 들어도 그 생각뿐이다. 이런 원리를 응용하면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잘 성취하기도 한다. 그래서 불가의 공부법에도 자나 깨나 한결같이 하라는 말이 전해온다. 그러나 공부의 주제는 남녀 간 애정지사 같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거리가 멀다. 그래서 잠잘 때는 고사하고 깨어있을 때도 생각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생이지지의 자질이 아닌 한 그것을 가까이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고인들도 오죽 공부가 안되면 현명한 이를 친하고 싶은 마음 갖기를 이성에 끌리는 것처럼 하라고 하였을까? 그러나 이건 공부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에 대해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며 한결같은 생각이 있다면 그것이 허황된 욕심이 아닌 한 이루어질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8-28 철산 최정준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컵이네요

청소년이 사물로 바뀌는 '엑소더스'변신하는 이유·진단 없는 '절멸'한때 익숙하고 자명한 사실들낯선 시선으로 돌아보게 해현실세계 드리운 그늘 성찰 유도지난 8월 3일부터 17일까지 동양예술극장 2관에서 '엑소더스'(이시원 극작, 연출) 공연이 있었다. '엑소더스'는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변신'을 재창작한 작품이다. 사람이 사물로 바뀌는 '변신'의 주요 모티프를 그대로 살리면서 에피소드를 추가하여 분량을 늘렸다. 이번 공연이 이전과 가장 달라진 점은 중장년층의 이야기에서 청소년의 이야기로 재창작한 것이다. 연극이 시작하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상황이 제시된다. 청소년이 사물로 바뀐다는 설정이다. 중앙변신대책관리본부로부터 상자에 담긴 머그컵을 전해 받은 어머니가 말한다. "컵이네요." 며칠이 지나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지만 왜 바뀌는지는 알 수 없다. 언제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지도 밝혀지지 않는다. 중앙변신대책본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뀐 물건의 신원을 확인해 가족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전부이다.청소년들은 스마트폰, 운동화, 스티커, 자전거, 피아노, 의자 따위의 물건으로 바뀐다. 그런데 바뀐 물건이 파손되면 사람으로 돌아오더라도 다치거나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돌멩이가 가장 안전해 보인다. 변신이 전국으로 확산된다. 국가재난상황으로 치닫지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 폭탄으로 바뀌는 사례가 발생한다. 터진다. 그리고 집단으로 변신한다. 청소년들이. 연극 '엑소더스'는 절멸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설명이 없다. 변신의 이유를 말하지 않고, 진단도 없다. 절멸을 말하지만 그 원인은 안중에도 없다는 투로 이야기한다. 마치 다 알면서 뭘 물어보냐는 것처럼, 진정 문제 해결을 바라기는 하냐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것은 실태를 진단하고 원인을 파악할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는 선언이다. 절멸 앞에서 우리 사회에 보내는 최후의 신호가 아니라면 이 연극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당신들은 지구를 위협하는 진짜 문제들보다 나와 시위에 가세하는 청소년들을 더 무서워하는군요." 지난 7월 프랑스 의회에서 그레타 툰베리가 한 말이다. 그는 2003년 이 별에 왔다. 이 별에 온 지 16년이 된 그가 보기에 지금 상태라면 지구사회는 지속불가능하다.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캠페인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그와 함께 세계의 청소년이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으로 기후재앙의 절박함을 외치고 있지만 지구사회가 바뀌고 있다는 소식은 여전히 잘 들리지 않는다. 그 목소리가 작아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외침을 듣고도 듣지 못하는 데 있다. 현재의 삶의 방식을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실천으로 전환하지 않기 때문이다.연극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청소년의 변신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자 비상토론회가 열린다. 각계각층을 대표해서 토론자가 모였다. 저마다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토론회는 토론은 토론일 뿐이라는 사실만을 증명하고 끝난다. 이 장면의 압권은 토론회를 마칠 무렵에 펼쳐진다. 토론회에 참석한 각계각층의 대표자가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이 따로 있다. 바로 자신들의 연금이다. 청소년이 모두 사라진 후 발생할 연금 고갈 사태를 걱정하고 있다. 진정 비상한 토론회가 아닐 수 없다.변신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곰이나 백조에서부터 벌레까지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변신 이야기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인간적인 것을 낯설게 만들기 위한 방편이 아닐까.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삶의 방식으로부터 벗어나 지금의 삶의 방식을 넘어서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머나먼 타지에 갔다가 돌아오면 자신이 살던 곳이 낯설게 보이는 그러한 여행에 가깝다. 그렇지 않다면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변신 이야기에는 우리가 한때 익숙하고 자명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을 낯선 시선으로 돌아보도록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으로 지금의 세계에 드리운 그늘을 성찰하게 되는 것이다. 연극 '엑소더스'가 지금의 세계를 벗어나기 위한 탈출의 이야기를 하는 까닭도 다르지 않다./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

2019-08-25 권순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금선탈각: 황금빛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날아가다

이제 늦여름 울어대던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진행되니 새삼 변화에 대해 생각해본다. "원형을 보존하고 그 형세를 완비하면 우군은 의심하지 않고 적군도 움직여 쳐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은 산풍고(山風蠱)괘의 '공손히 그쳐있는 것이고'라는 것을 응용한 것이다." 36계 중 제21계 금선탈각의 원문내용이다. 늦여름 우는 매미를 보고 착안하였고 그 이치는 주역의 산풍고괘에서 착안한 계책이다. 매미의 경우 수컷은 울림판이 있고 암컷은 산란관이 있는데 우는 매미는 수컷이라 한다. 그 울음이 듣기 좋은 소리를 내는 매미가 참매미이고, 듣기 거슬리는 소리를 내는 매미가 말매미라 한다. 매미의 일생과 변태(變態)를 생각해보면 변화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매미는 알에서 깨어나 땅속으로 들어가서 6년간 땅속에서 4번의 탈피과정을 겪는다고 한다. 7년째 되는 해 땅 밖으로 나와 나무 위로 올라가 허물을 벗고 몸과 날개를 펼치는 탈각(脫殼)과 우화(羽化)의 과정을 거쳐 날아오른다. 그 후 2주 동안 교미를 통해 알을 낳고 죽는다. 매미가 알에서 깨어나 기어 다니다 하늘을 날게 되는 것은 그야말로 질적인 변화이다. 일상에서도 변화란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깊이 생각해볼 기회는 많지 않다. 변(變)과 화(化)는 다르다. 변(變)은 누에가 나방으로 우화(羽化)하기 위해 고치를 지으며 변태를 하는 과정이다. 화(化)는 왼쪽의 사람(亻)과 오른쪽의 사람(匕)으로 구성된 글자로 왼편은 살아있는 사람이고 오른편은 죽어있는 사람으로 완전히 달라진 결과를 의미한다. 완전한 성충으로서의 나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송대 학자 주자는 중용의 변화를 풀이하면서 '변(變)'이 '화(化)'로 가는 과정(變者化之漸)이라면 '화(化)'는 '변(變)'의 결과(化者變之成)라고 하였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8-21 철산 최정준

[생활법무카페]대항력·확정일자 마친 임차인의 지위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은 통상의 임대차계약과는 달리 국민의 주거생활 안정을 위해 특별한 규정들을 두고 있습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1항은 '임대차는 그 등기가 없는 경우에도 임차인이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마친 때에는 그 다음 날부터 제3자에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 이 경우 전입신고를 한 때에 주민등록이 된 것으로 본다'는 규정을 두어 임차권등기를 하지 않은 경우에도 주택의 인도와 전입신고를 마친 임차인에게 새로운 소유자를 비롯한 계약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게도 계약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대항력을 인정하고, 대항력을 갖춘 경우 같은 법 제3조 제4항은 '임차주택의 양수인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함으로써 법률상 당연 승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임차인은 새로운 소유자와 다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전 소유자 사이에 체결된 임대차계약상의 권리를 새로운 소유자에게 그대로 주장할 수 있으므로,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기존 임대차계약을 합의 해지하고, 다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임차인에게 불리하지 않다면 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이와 같이 당연승계 규정을 둔 이유는 유동적인 사람의 신용보다 가치의 변동이 적은 부동산과 함께 임대인의 의무를 승계시키는 것이 임차인을 두텁게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판례도 부동산의 양수인이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는 경우에는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도 부동산의 소유권과 결합하여 일체로서 이전하는 것이므로, 양도인의 임대인으로서의 지위나 보증금 반환채무는 소멸한다고 판시하고 있어, 원칙적으로 전 소유자에 대하여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다만, 임대차보호법 제3조 4항은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을 전제로 하는 규정이므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임대인의 지위는 승계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전입신고 및 임대차계약서상의 확정일자를 받아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이상훈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용인지부이상훈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용인지부

2019-08-20 이상훈

[건강 칼럼]치매·파킨슨병 위험신호, 수면 중 폭력적 행동 '렘수면행동장애'

렘수면행동장애가 치매 및 파킨슨병의 위험신호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세포·시스템 생물학과 딜론 맥케나(Dillon McKenna) 교수팀은 '렘수면행동장애와 시노크리노병증'에 대한 연구논문을 국제학술지 '렘수면장애수면행동장애'(Rapid eye movement sleep behavior disorder)에 게재했다.연구진에 따르면 렘수면은 활발한 꿈, 빠른 안구 운동, 일반적인 골격근 마비가 동반된 피질활동이 정상적인 수면활동이다.그러나 수면 중 종종 과도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보인다면, 렘수면행동장애로 의심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연구진은 합병증이 없는 렘수면행동장애 환자의 대다수(80~90%)에게 결국 시노크리노병증(synucleinopathy), 즉 파킨슨병이나 치매, 다발성 위축증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렘수면행동장애와 후기 시노크리노병증은 높은 연관성이 있다. 이는 렘수면행동장애 자체가 렘수면에서 근육활동을 정상적으로 억제하는 뇌간 회로의 퇴행으로 인한 시노크리노병증을 발전시키는 초기 증상으로 볼 수 있다.렘수면행동장애가 정상 렘수면에서 근육 마비를 조절하는 뇌간 영역을 통해 진행되는 시노크리노병증에 의해 야기된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임상 및 기초 과학 증거로 설명할 수 있다. 렘수면장애를 이해하는 것은 시노크리노병증을 대비할 수 있으므로 매우 중요하다.렘수면행동장애는 중년 이후에 종종 발생할 수 있는 수면질환으로, 수면 중 꿈을 꾸는 내용을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아,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도 위험할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렘수면행동장애는 수면 중에 혼잣말, 고함, 욕설, 주먹질, 발차기 등 이상행동으로 인해 본인과 가족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다.렘수면 중에는 일반적으로 신체 근육에 힘이 빠져서 꿈 내용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그러나 뇌줄기 세포가 손상되면 꿈 수면 중에서도 신체 근육이 움직일 수 있게 된다.렘수면행동장애는 추후 파킨슨병, 치매 등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조기진단을 통해 증상을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렘수면행동장애는 수면다원검사 및 신경심리검사를 통해 해당 수면질환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치매 역시 조기에 진단할 수 있다./도움말 코슬립수면클리닉 신홍범 대표원장·김태성기자 mrkim@kyeongin.com코슬립수면클리닉 신홍범 대표원장

2019-08-20 김태성

[조성미의 '나무이야기']삭막한 회색빛 도시에 푸르름을 선사하는 플라타너스

1910년께 들어온 '버즘나무과'높이 50m·지름 1m까지 자라미세먼지등 대기오염에 강하고재질 단단 가구목재로 많이 사용씨 털 날려 알레르기 주범 신세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시작이라는 입추(立秋)가 지났건만 아직도 한낮에는 뜨거운 태양으로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도 며칠 전에 비해서는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열대야에 잠 못 이뤄 지쳤던 몸과 마음을 더없이 편안하게 해준다. 올여름 더위는 8월 말까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길을 걷다 보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서서 무성하게 자란 잎으로 짙은 녹음을 만들어 우리에게 청량함을 선사하는 플라타너스의 시원한 그늘이 그리워진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는 도로 양쪽에 사열하듯이 줄지어 서서 철 따라 말없이 다른 모습으로 넉넉하고 편안하게 사람을 품어준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1953년 '문예'지에 발표된 김현승 시인의 '플라타너스' 시처럼 사람의 눈길이 머무르지 않아도 우리 곁에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할 도리를 다하는 나무이다.도시의 가로수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타너스의 우리말 이름은 양버즘나무이다. 서양에서 들어온 버즘나무라는 뜻이다. 버즘나무라는 이름은 줄기의 어두운 적갈색이나 밝은 회색의 수피가 불규칙하게 갈라져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 특유의 얼룩무늬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얼굴에 허옇게 피는 버짐과 닮아 붙여졌다. 플라타너스는 학명에 등장하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리스어 '플라티스(platys)'에서 유래되었는데 '잎이 넓다'는 뜻으로 잎을 강조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양버즘나무를 '미국오동', 버즘나무를 '법국오동(法國梧桐)'이라고 부르는데, 법국은 프랑스에 대한 음역이고 잎이 오동나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한에서는 가을에 달리는 열매가 방울 모양이라고 해서 '방울나무'라고 부르며, 영어 이름도 비슷한 뜻의 '버튼우드(buttonwood)'다.플라타너스는 버즘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이 지는 큰키나무로 높이 50m, 지름 1m까지 자란다. 추위에 강해 우리나라 전역에 식재가 가능하다. 잎은 넓은 달걀 모양이거나 둥근 모양으로 손바닥처럼 갈라져 있는데 서로 어긋나게 달린다. 4∼5월에 달리는 꽃은 암수한그루에 피며 공 모양의 열매는 10월에 익는다. 전 세계에 분포하는 버즘나무속에는 10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북아메리카 원산인 양버즘나무와 남유럽과 서남아시아가 원산지인 버즘나무, 이 두 종의 잡종인 단풍버즘나무가 있다. 이 세 종류의 나무는 대부분의 특징이 비슷하지만 잎과 열매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양버즘나무의 잎은 가로길이가 세로길이보다 길고 방울 같은 열매가 하나씩 달리는 반면 버즘나무 잎은 가로보다 세로가 더 길고 열매도 한 줄에 세 개 이상 달리며, 단풍버즘나무는 열매가 2개 달리고 잎의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비슷하다.플라타너스는 우리나라에 1910년께 들어왔는데 생장속도도 빠르고 추위에 강하며 건조하고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서 관리가 손쉬운 편이라 주로 가로수나 공원수, 학교 등 공공건물의 정원수로 많이 심었다. 매연 등 도시공해에 강하며 특히 미세먼지와 대기오염물질의 흡수력이 뛰어나고 공기정화 능력이 좋아 마로니에, 히말라야시다와 함께 세계 3대 가로수에 속하는 등 인기가 많았고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가로수 랭킹 2, 3위를 다투기도 했다.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5세기경에 플라타너스를 가로수로 심었을 정도로 역사가 깊으며,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에도 가지를 전정하지 않고 그대로 살린 아름다운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이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봄철 알레르기의 주범으로 꼽히면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 있는 나무도 베어져 나가고 새로 가로수로 심는 일도 많이 줄었다. 플라타너스 종자에는 바람에 씨가 잘 날리도록 털이 붙어 있는데 이 씨의 털이 솜뭉치를 이루면서 거리 곳곳에 뒹굴어 다니다가 사람들에게 호흡기 알레르기질환을 일으키는 것이다.플라타너스의 목재는 재질이 단단하고 색상도 아름다우며 무늬가 좋아 과일·채소 바구니나 식품의 포장재를 비롯해 일반 용재나 가구재, 철도 침목, 펄프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홍보실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홍보실장

2019-08-18 조성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이대도강: 복숭아를 위해 자두를 버리다

손익(損益)은 사람들이 매일 다투는 개념이다. 개인간 회사간 국가간 생명체간 할 것 없이 모두 손익을 다툰다. 예전엔 노골적으로 총칼을 들고 손익을 다투었고 지금은 총칼을 뒤에 쌓아놓고 경제를 가지고 다툴 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한국의 도사들이 지리산에 모였다. 국운을 천문으로 점쳐보니 진사(辰巳) 손방(巽方)에서 사달이 날 조짐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동남방인 손방(巽方)을 일본으로 통변하였다. 일본이 쳐들어오는데 다행히 진(辰)년에 쳐들어오면 나라가 멸망에 이르진 않겠지만, 사(巳)년에 쳐들어오면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고 점쳤다. 임진(壬辰)년이 되자 일본이 쳐들어왔다. 선조는 조정에 신하들을 모아놓고 목성(木星)이 조선을 비추니 타격은 받겠지만 멸망에 이르진 않을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2019년 일본이 다시 싸움을 걸어왔다. 싸움엔 여러 가지 전략이 복합적으로 활용되지만 이번에는 이대도강(李代桃僵)의 전략이 깔려있다. 복숭아와 자두는 둘 다 맛있는 과일이지만 하나를 희생해서 하나를 취하라 할 때 자두나무를 희생해 쓰러뜨려 복숭아나무를 살리는 전략이다. 예전에 제나라의 전기라는 장군이 말 경주에 써먹은 전략이기도 하다. 적군의 가장 빠른 말을 나의 가장 느린 말과, 나의 가장 빠른 말과 적군의 보통 빠른 말을, 적군의 가장 느린 말과 나의 보통 빠른 말을 경쟁시켜 2대1로 이긴 전략이다. 어느 하나를 희생해서 둘을 취하는 전략이다. 아마도 일본은 지금 그리 계산하여 대한국 수출입 품목리스트를 정하였을 것이다. 나의 살이 잘리는 대신 너의 뼈를 취하겠다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전략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8-14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연꽃 밭에서

진흙 밭에 빠진 날, 힘들고 지친 날 눈도 흐리고, 귀도 막혀서 그만 자리에 눕고 싶은 날 연꽃 보러 가자, 연꽃 밭의 연꽃들이 진흙 속에서 밀어 올린 꽃 보러 가자, 흐린 세상에 퍼지는 연꽃 향기 만나러 가자, 연꽃 밭으로 가자, 연꽃 보러 가자 어두운 세상 밝혀 올리는 연꽃 되러 가자. 연 잎 위를 구르는 이슬 만나러 가자, 세상 진심만 쌓고 쌓아 이슬 되러 가자, 이슬 되러 가자, 눈도 흐리고, 귀도 막혀서 자리에 눕고만 싶은 날 이건청(1942~)한편의 시가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감각과 지각의 차원을 넘어 행동하는데 있다.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 감정, 의지와 같이 느끼고 자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행위를 보였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 우리의 감정을 쉽게 자극하는 시일수록 정서에 와 닿는 속도가 빠르게 작동하는데, 오래 남고 많이 회자되는 시들의 공통점도 이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다. 일생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진흙 밭에 빠진 날, 힘들고 지친 날 눈도 흐리고, 귀도 막혀서 그만 자리에 눕고 싶은 날'은 감각으로 이루어지며, '연꽃 보러 가자, 연꽃 밭의 연꽃들이 진흙 속에서 밀어 올린 꽃 보러 가자, 흐린 세상에 퍼지는 연꽃 향기 만나러 가자, 연꽃 밭으로 가자, 연꽃 보러 가자'는 지각으로 생겨나는 것. 이와 다르게 '어두운 세상 밝혀 올리는 연꽃 되러 가자. 세상 진심만 쌓고 쌓아 이슬 되러 가자, 이슬 되러 가자'는 목적을 향한 실천적인 것이 되는 것으로써 그러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눈도 흐리고, 귀도 막혀서 자리에 눕고만 싶은 날'을 살고 있는 당신도 한편의 시를 통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8-12 권성훈

[손경년의 '늘찬문화']주체였던 사람이 진정한 주체 '되어야 하는' 생활문화를 위해

레이몬드 윌리엄즈는 '문화는 일상'(Culture is ordinary)'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내 방식대로 해석한다면 '연속되는 일상이 이루어지는 삶이 곧 문화'이다. 그러니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삶은, 문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정답이 없으며, 따라서 질문을 하는 행위는 삶의 지속성을 의미한다. 누군가 '오늘의 나'에게 '어떤 삶을 원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고르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고르게'와 '인간답게'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과 구체적 실천방식이 있을 것이다. 각자의 생각을 대화와 토론, 논쟁과 담론의 과정을 통해 실천방식을 찾을 것이며, 실천의 결과는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 변화를 가로막는 장벽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실천이 힘을 얻는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안전하면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우리의 손'으로 열어갈 때 비로소 가능하며, 이를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할 역할과 개인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각기 '협의-합의'의 과정에서 '시대의 가치가 반영된 균형 잡기'가 어느 선에서 이루어질 것인가 다시 말해 특정한 누군가에 의해 제시되는 하나의 답이 아닌, 지속적인 질문과 성찰, 수정과 변경의 과정을 어떻게 열어둘 것인가가 한 사회의 문화수준을 이해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 같기도 하다.'부천생활문화페스티벌-다락'이 벌써 5년째 접어들고 있다. 5년 전의 고민을 되돌아보면, 당시 시 행정부와 문화재단, 그리고 이미 동아리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던 활동가들과 함께 '수동적 향유에서 능동적 주체로서의 부천시민, 행복을 스스로 만드는 부천시민, 자율성과 자발성을 내적 동력으로 삼으면서 공적 영역의 부천시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시작한 축제였다. 그때는 생활문화라는 개념을 정립하는 것도 어려웠고 동아리지원을 정부가 해야하냐는 지적에 대해 딱 부러지는 답을 내놓기도 힘들었다. 인구 87만의 부천시민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해야 할 것인지, 주민참여를 독려하는 다양한 공동체 프로그램이 있지만 참여의 방식은 적절한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지라도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은 모여보자고 시작한 2015년 첫 모임은 공무원, 문화재단담당자, 생활문화장르별연합회, 생활문화협동조합 등의 활동가들이었다. 첫 축제에 123개의 동호회가 참여, 생활문화가 시민축제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칭찬도 있었지만, 시민이 아닌 생활문화 강사 중심의 활동이 아니냐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181개의 동호회가 참여한 2016년은 콜라보레이션 방식의 공연을 발표하면서 전년도에 비해 협력수준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생활문화페스티벌의 비전을 제대로 고민했냐는 자기반성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237개 팀이 참여한 2017년도는 공연, 전시 등과 함께 생활문화동호회들이 직접 창작뮤지컬을 만들어 발표함으로써 시민의 자발적 참여 및 창작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과정에서의 '참여 피로도'상승의 고민과 다양한 생활문화동호인들의 의견의 장, 다시 말해 시민참여범위가 적절한가에 대해 참여단체들이 스스로 문제 제기를 했다. 계속되는 문제의식, 질문, 그리고 '적절함'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2018년도는 축제추진자문단을 꾸렸고, 축제준비를 위한 생활문화프로그램 매니저의 운영과 공간별로 참여자의 자발적 운영을 시도했다. 여전히 시민의 참여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방법 모색에 대해서는 고민을 늦추지 않았다. 이제 8월 14일부터 시작되는 전시와 더불어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부천의 수주고등학교 등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 체험 등이 진행된다. 올해는 '축제추진단'을 통해 분야별 콜라보레이션 혹은 시민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장소로 찾아감으로써 지역사회가 반기는 축제운영을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장자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걸음으로써 길을 만든다." 부천에서는 생활문화를 통해 제도화에 갇혀있기보다는 그 제도 속에 포함된 사람들의 목표, 재능 등 공통된 욕구의 변화가 부천시민의 손에 달려있다는 경험을 얻고 '우리'가 걸어가면서'길'을 만들고 '우리는 늘 주체였었고 주체이며, 주체일 것이다'라는 것을 배워가는 중이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9-08-11 손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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