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조성면의 '고서산책']전통과 근대 사이의 과도적 한자 학습서 '통학경편'

1916년 참사 황응두가 펴낸 아동용천문·지축·신체등 13부로 나누고해당 한자 4구로 제시한 교재1244자 한글자석 일본어 발음 추가전통·근대사이 과도기적 교과서언제쯤이던가. 퇴근 후 습관처럼 단골서점에 들렀는데 낡고 허름한 한적(漢籍) 한 권이 눈에 띄었다. '통학경편(通學徑編)'이라고 '천자문' 같은 한자 학습서였다. 그러고 보니 풋내기 대학원생 시절 인사동 골목에서 칠서(七書)들, '박통사 언해' 등과 섞여 있는 것을 얼핏 본 적이 있는 흔한 책이었다. 그때는 심드렁하게 지나쳤는데 어느새 구경하기 어려운 희귀본이 돼서 20~30년 만에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니 울컥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판권도 없고 책 상태가 험해서 1만원에 내놓기는 했는데, 이미 예약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체념하고 돌아왔지만 머리에 남았다. 고서는 주머니 사정도 받쳐줘야 하지만, 부지런해야 하고 타이밍도 중요하다. 하루 이틀 전에만 먼저 갔어도 수집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그냥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단념한 채 며칠 뒤에 같은 서점을 찾았는데 '통학경편'이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게 아닌가. 예약만 하고 고객이 아직 구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약자는 나도 잘 아는 분이어서 서점에 양해를 구하고 잠깐 책을 빌려보고 며칠 만에 돌려줬다.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예약자가 한 달 넘어 두 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기에 결국 단돈 1만원에 '통학경편'을 소장하게 되는 큰 행운을 누리게 됐다. '통학경편'은 1916년 신녕군 참사(參事) 황응두(黃應斗)가 펴낸 아동용 한자 학습서인데, 필자의 소장본은 1921년에 중간된 목판본이다. 참사라는 벼슬은 토관직(土官職)으로 지역 양반에 주는 정9품의 말직이었다. 저자 황응두가 누구인지 아직까지 자세하게 알려진 바 없다. '통학경편' 초판본이 간행된 시기는 1916년이고, 발행처는 경북 영천의 혜연서루이며, 판매소는 대구에 총판을 둔 영흥서림이다. '천자문'은 대표적 한자교재로 4언 고시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룻밤 사이에 이 글을 짓고 그만 저자 주흥사의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려 백수문(白首文)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반면 '통학경편'은 '천자문' 같은 한자 학습서지만, 물목명칭(物目名稱)을 천문·지축·신체·인륜·음식·의복 등 13부로 나누고 해당 한자를 4구로 제시한 보다 근대화한 교재이다. 가령 인륜부에는 군사부모(君師父母) 형제숙질(兄弟叔姪) 등 가족과 관련된 단어들이, 곤충부에는 승문조슬(蠅蚊蚤슬)처럼 파리·모기·벼룩·이 등 해충 관련 한자들까지 제시돼 있어 무척 흥미진진하다. '통학경편'은 모두 1천244자의 한자가 새김 혹은 훈으로 불리는 한글 자석(字釋)에 일본어 가나 발음까지 추가돼 있다. 앞부분에는 한글자모와 가타카나가 제시되는 등 시대상이 반영된 학습서이며, 한자 교육은 물론 계몽과 훈몽서(訓蒙書)의 기능도 갖고 있다. 그런데 교재가 집필, 발행된 때가 1916년, 1921년으로 일제강점기였기에 한자에 일본어 발음이 포함돼 있어 흥미롭기는 하나 한편으로 뒷맛이 씁쓸하다. 알다시피 교과서는 그 시대 그 나라의 이념과 교육철학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며, 시대상을 반영하는 역사의 나이테와도 같은 것이다. '통학경편'은 전통교육이 근대교육으로 재편되던 시기에 발행된 학습서로서 근대화한 '천자문' 또는 전통시대와 근대 사이에 위치한 과도기적 한자 교과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근대 사회의 한자, 근대 시기의 일본어, 그리고 현재의 영어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등장하는 중요 언어가 험난했던 우리 민족사를 반영하는 것 같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책 한 권에도 이렇게 깊은 사연과 역사가 깃들어 있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9-07-14 조성면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행이현원: 가까운 곳에서의 행동이 먼 곳에서 보인다

한 5년 전 어느 날 필자의 딸이 스마트폰을 옆으로 세워놓고 보며 찰흙 같은 것을 주물럭거린다. 스마트폰 동영상에서는 손으로 찰흙을 만지면서 뭐라고 간혹 설명도 한다. 딸에게 그게 뭐냐고 물어보니 액괴라고 한다. 액괴가 뭐냐고 하니 액체괴물이라나! 만져보니 촉감이 나쁘진 않았는데 어느 날은 또 슬라임이라고도 한다. 그렇게 동영상을 보고 따라하더니만 어느 날부터는 자기도 제작해서 유튜브에 올려놓는다. 정보의 전달방식이 신문 등의 종이에서 인터넷사이트로 옮기더니 이젠 확실히 불특정 개인간 채널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1인', '개인'이 핵심어로 급부상한 시대가 된 것이다.주역에 중부(中孚)괘가 있다. 중부(中孚)괘에는 어미와 새끼 간의 자연스럽고 진실한 감응과 공명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어미 학이 새끼를 찾아 울면 새끼 학이 그 소리를 듣고 화답하는 학명자화(鶴鳴子和)의 장면이다. 공자는 이 장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설을 펼쳐놓았다. "사람이 자기 방에 있으면서 착한 말을 하면 천리 밖에서도 그 말에 호응하고 착하지 못한 말을 하면 천리 밖에서도 그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는 행동도 가까운 곳에서 했을 따름인데 천리 밖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니 더욱 언행을 조심하지 않으랴!" 마치 삼천년 전에 지금 시대를 예견이라도 한 것 같은 말씀이다. 현대는 마음만 먹으면 내가 방안에서 한 말과 행동이 지구 반대편에 실시간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나타나는 시대이다. 그러나 효과적인 파급력에 비례해서 되 담을 수 없는 위험도도 증가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에 대해 언행의 신중함이 제기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7-10 철산 최정준

[의학기고]놓쳐서는 안 되는 소아청소년의 고혈압

고혈압은 소아청소년에서 유병률이 1~3% 정도로 흔하지 않지만, 최근에 소아청소년 비만이 증가하면서 일차성 고혈압도 증가하고 있다. 학교검진에서 혈압이 조금 높다고 병원을 찾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는 고혈압약을 평생 먹어야 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고혈압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며, 그다음은 고혈압의 원인을 찾아 개인에 맞춤화된 관리를 하는 것이다.소아는 같은 나이, 성별, 키에 따라 수축기 또는 이완기 혈압의 백분위 수를 기준으로 하여 고혈압을 정의한다. 2017년에 미국심장협회와 미국심장학회에서 고혈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발표했고,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기준을 사용해 진료하고 있다.수축기 또는 이완기 혈압이 90 백분위 수 미만을 정상 혈압으로 하고, 90~95 백분위 수를 상승혈압, 95 백분위 수 이상을 고혈압으로 정의한다. 만 13세 이상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부터는 성인과 같은 기준을 적용하며, 정상혈압은 120/80mmHg 미만, 상승혈압은 120~129/80mmHg, 고혈압은 130/80mmHg 이상으로 정의한다.고혈압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혈압을 정확히 측정해야 하고, 시기를 달리해 3회 이상 측정해 반복적으로 혈압이 높은지 확인해야 한다. 혈압을 측정할 때 진동 혈압계를 사용하는 경우 청진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혈압치가 5~10mmHg 정도 높게 나온다. 또, 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때 불안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백의고혈압(white coat hypertension)'도 있기 때문에 평소 집에서 측정한 혈압과 비교하거나, 휴대 혈압 감시 장치로 일정한 시간에 지속해서 혈압을 재 감별하기도 한다.고혈압으로 진단된 경우는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주산기력, 과거력, 가족력, 영양력, 심리사회력, 신체 활동력을 확인하고, 신체 진찰과 더불어 의심되는 질환에 대한 검사를 선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고혈압은 원인에 따라 일차성 고혈압과 이차성 고혈압으로 분류되는데, 소아는 나이가 어릴수록 어떤 원인 질환이 있어서 오는 이차성 고혈압이 많기 때문에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기 위한 검사가 필요하다. 이차성 고혈압의 원인에는 신장 실질적 질환, 선천 신기형, 신증후군, 다낭 신장, 신장 동맥 이상, 신장 동맥 혈전과 같은 신질환이 가장 많다. 갑상샘 항진증, 선천 부신과다형성, 당뇨병, 갈색세포종과 같은 내분비 질환이나, 신경계 질환, 심리적 스트레스와 불안도 고혈압을 일으킨다. 뚜렷한 원인이 없는 일차성 고혈압은 과체중이나 비만, 고혈압의 가족력을 가진 소아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소아청소년의 고혈압은 임상 증상이 심하지 않다고 방치하면, 좌심실 비대와 같은 표적 장기의 변화가 잘 일어나고 성인 고혈압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정확한 진단과 더불어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고혈압을 일으키는 전신 질환이 있다면 그것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고, 완전히 치료되지 않는 질환이나 일차성 고혈압은 단계적인 치료적 접근으로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선향 교수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선향 교수./순천향대 부천병원 제공

2019-07-10 경인일보

[생활법무카페]가계약금만 포기 매매계약 해약 가능한가

A씨는 공인중개사로부터 특정아파트에 대하여 매매대금을 10억원으로 하고 계약금은 1억원, 중도금 3억원은 앞으로 한달 후에 지급하기로 하고 다른 약정 없이 공인중개사가 알려준 매도인 B씨의 계좌번호로 우선, 가계약금 조로 1천만원을 이체해주었습니다. 그러나 A씨는 은행대출이 쉽지 않아 아파트를 매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매도인 B씨에게 가계약금을 돌려달라고 하였으나 오히려 B씨는 가계약도 엄연한 계약이므로 A씨는 나머지 계약금 9천만원을 해약금조로 더 지급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내왔습니다. 이와 같이 가계약만 한 상태에서 계약파기를 위해 손해를 봐야 할 금액은 약정한 계약금 중에서 실제로 지급한 계약금의 일부(일명 가계약금)인지 아니면 당초 약정한 계약금인지가 문제가 됩니다. 대법원은 "실제 교부받은 계약금의 배액만을 상환하여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면 이는 당사자가 일정한 금액을 계약금으로 정한 의사에 반하게 될 뿐 아니라 교부받은 금원이 소액일 경우에는 사실상 계약을 자유로이 해제할 수 있어 계약의 구속력이 약화되는 결과가 되어 부당하기 때문에 계약금 일부만 지급 된 경우 수령자가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해약금의 기준이 되는 금원은 실제 교부받은 계약금이 아니라 약정 계약금이라고 봄이 타당하므로 매도인이 계약금의 일부로서 지급받은 금원의 배액을 상환하는 것으로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즉, 이 사례에서는 가계약금을 포기하는 것 만으로는 계약해제를 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따라서 구체적 사례마다 다를 수는 있으나, 가계약금 지급 시에는 보다 신중하게 주의를 요하는 바 "구체적이고 확정적인 계약서는 추후에 쓰기로 하고 그전까지는 계약 의사가 번복될 수도 있다" 또는 "계약체결의 의사가 없게 된다면 실제로 준 돈 가계약금만 기준으로 포기하거나 배액 상환하기로 한다"라는 문자 등의 증거를 남기는 것이 분쟁해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김정준 법무사 경기중앙법무사회 수원지부김정준 법무사 경기중앙법무사회 수원지부

2019-07-09 김정준

[시인의 꽃]그 꽃의 기도

오늘 아침 마악 피어났어요 / 내가 일어선 땅은 아주 조그만 땅 /당신이 버리시고 버리신 땅 //나에게 지평선을 주세요 / 나에게 산들바람을 주세요 /나에게 눈 감은 별을 주세요 //그믐 속 같은 지평선을 / 그믐 속 같은 산들바람을 /그믐 속 같은 별을 //내가 피어 있을 만큼만 / 내가 일어서 있을 만큼만 / 내가 눈 열어 부실 만큼만 //내가 꿈꿀 만큼만강은교(1945~)꽃씨를 사랑에 비유하면 사랑을 피우기 위한 요소들이 있다. 그것은 사랑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과 꽃필 수 있는 햇빛 그리고 필요적으로 관심이라는 물이 있어야 하는 것. 말하자면 사랑을 둘러싼 조건들인데, 이러한 것들이 충족되지 않는 이상 사랑은 피지도 못한 채 시들어 버리는 것. 사랑의 힘은 약하지만 '내가 일어선 땅은 아주 조그만 땅'일지라도 끊임없는 시선과 열정으로 한번 피어난 사랑은 힘을 가지게 되며, 사랑의 힘은 모든 것들을 변화시키게 한다. 하지만 '당신이 버리시고 버리신 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지금이라도 사랑이 움틀 만큼만 그에게 '지평선'과 '산들바람'과 '별'을 보게 하라. 그러면 '그믐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나 일어날 것이며, 눈먼 밤하늘에서도 눈이 부실 정도로 서로를 열어 줄 것이니.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7-08 권성훈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난 그걸 만들 줄 모릅니다

후안 마요르가의 '비평가'에등장하는 스카르파와 볼로디아둘 사이 '인정욕망' 둘러싼 갈등연극은 끝났지만 관객들은 궁금왜 중심인물은 스카르파가 아닐까연극이 끝난 이후가 궁금한 작품이 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나 입센의 '인형의 집'이 그러한 작품이다. 자신의 눈을 찌르고 테베를 떠난 오이디푸스는 어찌 되었을까. 스스로 인형의 집을 나선 노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러한 종류의 궁금함은 작품의 완결성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작품의 텍스트를 풍성하게 하는 읽기에 가깝다.후안 마요르가의 '비평가'(6월 27일~7월 7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연극이 끝난 이후가 궁금한 작품 목록에 추가할 만하다. '비평가'에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한 인물은 극작가인 스카르파, 다른 한 인물은 비평가인 볼로디아. 연극은 비평가인 볼로디아가 자신의 집을 급히 떠나고, 극작가인 스카르파가 신문사에 공연평을 전한 후 끝난다. 스카르파는 작품을 계속 쓸 것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난 이 장면을 수없이 봤어요. 난 그걸 만들 줄 모릅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볼로디아는 이후의 삶이 궁금하다.후안 마요르가가 2012년에 발표한 '비평가'는 2017년 국내에서 초연한 이후 지금까지 매년 무대에 오르고 있는 작품이다. 한국에서 '비평가' 외에 '다윈의 거북이', '맨 끝줄 소년'이 이미 공연될 정도로 그의 희곡은 인기가 많다. 후안 마요르가의 작품이 갖고 있는 매력 중의 하나는 관객에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독특한 방식에 있다. 그는 "관객의 상상은 무대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관객의 머리 안에 존재한다"라고 말한다.이를테면, '다윈의 거북이'에서 해리엇은 교수에게 "전 다윈의 거북이예요"라고 소개한다. 연극이 시작하자마자 펼쳐지는 이 장면은 관객에게 연극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초대장을 내미는 순간이다. 지금부터 극적 사건을 함께 하겠냐고 말을 거는 것이다. 이 말 걸기에 관객이 호응해야만 연극은 시작할 수 있다. 그 불가능한 이야기에 함께 하겠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만 연극은 시작할 수 있다. '비평가'에도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치가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10년이나 이어지는 두 인물 사이의 갈등을 압축하는 과정이다. 어떤 갈등이라야 10년이나 지속할 수 있을까. 대체 그 갈등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극작가인 스카르파는 10년 전 볼로디아의 혹평을 접한 후 그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작품을 쓴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그 좌절이 창작의 원천이 되는 시간을 견디면서 쓰고 또 쓴다. 마치 볼로디아가 유일한 관객인 것처럼. 드디어 10년이 지난 오늘 공연에서 스카르파는 15분이나 이어지는 관객의 기립 박수를 받는다. 그럼에도 스카르파는 볼로디아의 평이 궁금하다. 볼로디아가 신문사에 보낼 연극평을 미처 쓰기도 전에 찾아온다. 둘 사이의 인정 욕망을 둘러싼 연극이 비로소 시작한다. 인정 욕망을 둘러싼 갈등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내내 스카르파는 난타당한다. 그러나 극중극 형식으로 펼쳐지는 권투 이야기에서처럼, 스카르파는 쓰러지기 바로 직전에 카운터펀치를 날린다. "만약 그녀가 문을 열어주길 바란다면, 당신은 적당한 단어들을 찾아야 할 겁니다." 볼로디아가 마지막 대사를 남기고 집을 나선다. "난 이 장면을 수없이 봤어요. 난 그걸 만들 줄 모릅니다." 연극은 그렇게 끝난다.연극은 끝났지만 관객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제목이 비평가일까. 중심인물은 스카르파가 아니란 말인가.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비평이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직 가능했던 세계에 터전을 두고 있다면, 볼로디아는 이후에도 비평을 계속할 수 있을까. 스카르파의 말에서 볼로디아가 힌트를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의 흐름에서 벗어나, 감히 고독이나 조롱거리와 마주하세요. 그리고 저항하기 위한 눈을 준비하세요."이러한 궁금함은 이 연극을 풍요롭게 한다. 후안 마요르가는 "예술은 관객을 놀라게 하고 위험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해야" 하며,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확신을 강화시켜 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

2019-07-07 권순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수신위본: 몸을 닦는 것이 근본이다

동양에서 본말에 관한 체계를 세워놓은 고전이 대학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살면서 가장 근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대학에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몸을 닦는 것을 근본적인 일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동양의 고전에서 보통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곤 한다. 대학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마음의 근본적 지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마음이 떠난 몸은 시신과 같아서 일체의 인식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별도로 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마음을 바로 다스리는 일이 정심(正心)이라면 몸을 바로 다스리는 일이 수신(修身)이다. 마음과 몸은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의 작용은 몸에 의지하고 몸의 작용은 마음에 의존한다. 아무리 마음이 근본이 된다 하더라도 그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몸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천자에서 서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신이 근본이라고 한 것이다. 꿈을 꿔보면 알 수 있듯이 꿈속에서는 여러 가지 일을 수동적으로 겪을 뿐 고의성이나 주재성이 없다. 이른바 몽신(夢身)의 부자유함을 미루어보면 육신을 떠난 영혼으로서의 업신(業身)의 부자유(不自由)에 대해 짐작해볼 수 있다. 존재론적으로는 마음이 우주의 근본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실천적 차원에서는 몸이 근본이라 할 수 있다.대학에서 몸이 근본이라 한 것은 단순히 100세 건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주적 자아라 여기는 마음도 몸이 없이는 닦을 수 없기에 하는 말로 볼 수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7-03 철산 최정준

[조성미의 '나무이야기']품격과 실용성을 두루 갖춘 오동나무

습기·불에 잘 견디고 가벼운 편부드럽고 마찰 강해 가공 편리좀벌레도 잘 생기지 않아 장롱·문갑 등 가구재료 적합공명 뛰어나 악기 만드는데 제격화려한 벚꽃과 수수한 진달래, 노란 개나리 등 성대한 꽃들의 축제가 펼쳐지고 난 후 멀대처럼 키가 큰 오동나무가 한껏 곱게 꽃단장을 한다. 봄이 끝나고 여름의 문턱에 들어가기 전 오동나무는 튼튼한 줄기를 쭉 뻗어 올리고 초롱같은 보랏빛 꽃송이들을 매달아 놓아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단박에 마음을 빼앗아버린다.오동나무는 현삼과에 속하는 큰 키의 낙엽이 지는 나무로 우리나라 중부 이남 지방에 분포한다. 다 자라면 15m까지 크고 수피는 담갈색이며 암갈색의 거친 줄이 가로로 나 있다. 오각형의 큼직한 잎을 가진 오동나무는 우리나라에 자라는 1천여 종의 나무 중에서 잎사귀의 크기로 따지면 남부지방에 자라는 팔손이와 랭킹 일이등을 다툰다. 커다란 잎은 바람에 찢어지기 쉽고 해충의 공격대상이 되기도 하나 더 많은 햇빛을 받아들일 수 있어 광합성을 통해 양분을 만들어 굉장히 빠른 속도로 키와 몸집을 키운다. 대략 1년에 키 1∼2.5m씩 초고속성장을 하는 오동나무는 15년에서 20년 정도면 제법 재목으로 쓸만하게 된다. 짧게는 40~50년, 길게는 100년 정도 되어야 재목으로 쓸 수 있는 나무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목재로서 아주 쓸모있는 나무이다.우리 조상들은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을 낳으면 소나무를 심었다. 딸이 성장하여 결혼할 나이가 되어 혼례 치를 날을 받으면 심었던 오동나무를 잘라 농짝이나 반닫이를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딸을 보낼 때쯤 쓸 수 있을 정도로 생장속도가 빠르지만 자라는 속도에 비해 재질이 단단한 오동나무는 목재로서 장점이 많다. 습기와 불에 잘 견디는 편이며, 가볍고 부드러우며 마찰에 강해 가공이 쉬운 편이다. 또 잘 트지 않고 좀벌레도 잘 생기지 않아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들기 아주 좋다. 당연히 쓰임새도 다양해 장롱이나 문갑, 소반 등 생활용품에 오동나무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아주 고급스럽고 무늬가 아름답지는 않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이 서민적이어서 생활도구를 만드는 데 많이 이용되었다. 특히 오동나무는 소리를 전달하고 공명하는 힘이 뛰어나 가야금이나 거문고, 비파 등 악기를 만드는데 가장 적합하다. 신라 진흥왕 때 가야국 가실왕의 악사였던 우륵이 신라로 가서 가야금을 만든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그 가야금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도록 오동나무로 공명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오동나무로 만든 가야금은 애절한 소리로 듣는 이에게 애수와 정한을 심어주고, 거문고는 둔탁하지 않으면서도 유장한 소리를 낸다.성인 얼굴을 가릴 수 있을 만큼 큰 오동나무잎은 토란잎과 함께 임시 우산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요즘 같은 장마철 비가 오락가락할 때 갑자기 맞이한 빗줄기를 피하는 데 아주 적격이었다. 무성하고 넓적한 오동나무잎 위로 투두둑거리며 장맛비가 떨어지면 빗소리는 더 시원하고 정감 있는 소리로 들려온다. 옛 어른들은 재래식 화장실에 오동잎 몇 장을 놔두어 벌레와 악취 제거에 이용하기도 했다. 오동나무는 잎이 바람에 스쳐 떨어지는 풍경으로 가을을 대표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자잘한 잎들이 우수수 흩날리며 떨어지는 일반 낙엽들과 달리 커다란 잎새가 허무하게 툭 떨어지는 오동잎을 보면 아무래도 가을을 연상하게 된다.옛 문헌에는 관청이나 서원에 있는 오동나무를 함부로 베었다가 관리가 파직 등 중징계를 받은 기록이 눈에 띈다. 조선 명종 15년 영천군수 심의검이 거문고를 만들려고 향교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었다가 벼슬에서 쫓겨났고, 현종 11년에는 남포현감 최양필이 향교의 오동나무를 베었다가 파직당한 기록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청렴함을 엿볼 수 있는 일화도 있다. 이순신 장군이 발포 만호로 재임 시 전라좌수사 성박이 거문고를 만들기 위해 발포 진영 뜰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오라고 했으나 뜰의 오동나무도 나라의 재산이라며 단호히 거절했고 이순신 장군은 이 일이 빌미가 되어 파직되었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줄기와 껍질을 사용한다. 생약명은 동피 또는 백동피라 불리며 종기나 타박상, 피부염을 비롯해 여러 가지 증상의 치료에 사용했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홍보실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홍보실장

2019-06-30 조성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아구유질: 나의 짝이 질병을 지니고 있다

정치의 범주를 아홉 가지로 정리해놓은 서경의 홍범구주에 보면 일왈식(一曰食)이라 하였다. 정치의 가장 우선순위는 백성이 먹고사는 문제라는 것이다. 백성은 밥을 먹고 산다. 주역에 솥을 상징하는 화풍정(火風鼎)괘가 있다. 정(鼎)은 솥으로 솥은 밥을 하는 도구이다. 밥을 할 때 솥단지를 걸고 그 안에 물과 쌀을 넣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바람도 들여 익힌다. 끝까지 잘 익히면 타지도 설지도 않은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서두르면 때로 설익거나 타버린 밥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솥을 상징하는 정괘는 정치하는 원리를 말해준다. 한 쪽으로 치우치면 타거나 설어서 먹을 만한 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좌우의 한쪽으로 치우쳐 백성의 민생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정괘에서 밥을 하는 과정에 아구유질(我仇有疾)이라는 표현이 있다. 밥을 하는 과정을 보면 맨 처음 솥의 묵은 찌꺼기를 버리고 새로운 음식재료를 넣는다. 이를 정치로 말하면 지난 정권의 잔재를 털고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를 상징한다. 그다음 중요한 게 있는데 쌀과 물을 솥에 부었는데 그것이 아래로 흘러버리거나 새어나가면 모든 게 허사이다. 밥이 되려면 아래가 아닌 위를 지향하여 수북하게 올라가야 한다. 이를 정치로 말하면 아래의 친한 짝에 얽매여 국민의 민생을 위한 정치를 망각하면 그 정치는 허사란 의미이다. 부자는 유친(有親)이지만 군신은 유의(有義)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내각은 국민의 민생을 위해 의(義)를 따져야지 친소(親疏)를 위주로 하여 아래에 친한 짝들에게 자꾸 가면 마치 밥솥의 쌀과 물이 아래로 새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특히 권력을 잡은 정치인들이 조심해야 할 상황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6-26 철산 최정준

[생활법무카페]전세 만료됐는데 보증금 안돌려주면?

전세가 만료되었는데도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이런 경우 아무런 조치 없이 이사를 하게 되면 전입신고 및 확정일자를 통해 얻게 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상실한다는 것은 임차주택이 제3자에게 이전되거나 경매로 넘어갈 경우 임대인 이외의 제3자에게 우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이때 필요한 것이 주택임대차보호법 상의 임차권등기명령제도입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임대차가 종료된 후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했을 때 임차인 단독으로 임차주택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법원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임차권등기명령에 따른 임차권등기를 마치면 그때부터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취득하게 되며, 임차권등기 이전에 임차인이 가지고 있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의 효력은 이사를 가도 그 효력이 그대로 유지됩니다.한편 임차권 등기가 되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 등기부등본에 공시되어 후속 세입자나 제3자가 알게 되므로 임차권등기명령은 보증금의 지급을 강제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임차권등기가 끝난 주택을 그 이후에 임차한 임차인은 우선변제권이 없으므로, 반드시 등기부등본의 확인을 통해 임차권등기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또한 임차권등기명령은 집행권원이 될 수 없으므로, 임차권등기명령 신청과 동시에 보증금반환청구 소송을 병행하는 것도 향후 강제집행을 위한 유용한 방책이 될 것입니다.끝으로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때를 대비하여 사전에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이나 서울보증보험의 '전세금보장 신용보험' 등 보험 상품에 가입하는 것도 좋은 대비책이 될 수 있음을 꼭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박영극 법무사 경기중앙법무사회 안양지부박영극 법무사 경기중앙법무사회 안양지부

2019-06-25 박영극

[손경년의 '늘찬문화']법정 문화도시 지정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

지정후 사업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어젠다 공유·합의 방법 고민 필요사회·경제·환경·문화등 모든 영역공공이익과 사회적 가치 이해권리보장 스스로 만들어 가야전국의 지자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문화도시 사업은 작년 예비도시로 지정된 10개의 도시 외에 올해 35개 이상의 지자체가 신청한다는 소문이 있다. 알다시피 문화도시·문화지구의 지정 및 지원에 관한 내용은 '지역문화진흥법' 제4장에 담겨있다. '문화예술, 문화산업, 관광, 전통, 역사, 영상 등 지역별 특색 있는 문화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문화 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정된 도시'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소속으로 설치되어있는 문화도시심의위원회는 지자체가 제출한 문화도시 조성계획 추진 실적을 평가, 계획의 승인일부터 1년 이후 심사를 거쳐 해당 지자체를 문화도시로 지정하게 된다. 이와 함께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지정된 경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승인받은 문화도시 조성계획을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또는 계획의 이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자발적으로 취소를 요청하는 경우는 문화도시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많은 지자체가 법정 문화도시의 지정에 관심을 갖는 일차적인 이유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작년에 선정된 예비사업 도시들은 그동안 컨설팅 및 현장실사를 거쳐 올해 문화도시로 최종 선정될 것이며, 이 경우 일대일 대응방식으로 최대 200억원의 예산지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2019년 예비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자체들은 예산확보라는 입장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미 도시에 대한 문화적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시민들과 지자체의 경우 굳이 문화도시 지정을 원하는 이유는 다양한 문화의 공존과 시민 공감 및 함께 즐길 수 있는 고유한 문화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과 성장이 이루어지는, 그래서 삶의 질이 보장되는 도시를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지역마다 문화도시를 어떻게 꿈꾸는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만 그래도 위로부터의 계획과 실행의 방식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방식, 다시 말해 시민의 주체적인 참여를 통해 '시민들이 원하는 도시'의 모습을 상상하고 만들 수 있는 계획수립을 위해 지자체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이 사업이 설계될 때 고려되었던 미덕이 어느 정도 작동되고 있는 모습의 하나라 여겨진다. 다시 말해 문화도시 예비사업 지정 및 법정문화도시 지정을 위해 준비하는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전문가 컨설팅뿐만 아니라 시민의견 수렴의 방식으로 다양한 주제를 가진 워킹그룹을 조직하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공간문화센터 대표 최정한은 우리가 꿈꾸는 문화도시의 실현이란 '내 안의 시민성을 우리의 시민력으로 변환시키는 문화적 힘이 어떠한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다양성, 지속성, 개방성, 관용성, 자기주도성, 관계지향 및 과정을 통해 시민성을 이끌어내고 궁극적으로 내 삶 및 도시의 관계를 직접 바꾸어 나가는 계기, 즉 '문화를 통한 지역의 재구성'이 이루어질 때 문화도시로서의 면모가 발현된다는 것이다. 특히 '과정'과 '환류'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문화도시 사업의 지향점은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아는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주권자'라는 말에서처럼 '주권자로서의 시민으로부터 뿌리를 먼저 내리는 과정을 포함한 사업수행역량'과 '지속가능한 도시로서의 발전체계를 갖춘 도시'에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도시 예비사업 및 문화도시로 지정되었다 함은 지정 그 자체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지정된 후 어떻게 사업을 진행해 나갈 것인가, 진행과정을 통해 도시 어젠다를 어떻게 시민과 공유, 토론, 합의해 나갈 것인가의 본격적인 과제가 사실상 시작된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법정문화도시로서의 지정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의미는, 사업을 기획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소리, 냄새, 미세먼지, 최소단위의 생활기반조건, 에너지, 반려동물 생존조건, 공공재' 등에 관한 고민을 '위임, 분권, 자율, 협치'와 '우정, 환대, 협력'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나가면서 '사회, 경제, 환경,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이해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시민이 당연한 권리의 보장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실천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9-06-23 손경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양두구육: 양의 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판다

양두구육은 겉으로 좋은 것을 내세우지만 속은 변변치 않은 경우 흔히 쓰이는 말이다. 양의 머리를 매달아 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의 현양두매구육(縣羊頭賣狗肉)의 약자이다. 상점의 간판에는 전시용으로 좋은 물건을 걸어놓고는 실제로는 값싼 물건을 판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영공은 예쁜 여자에게 남자의 옷을 입혀 남장을 시키고는 즐기는 변태적인 취미를 지니고 있었다. 궁궐 안의 이런 행태가 바깥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제나라의 거리에는 남장한 미인들의 숫자가 날로 늘어났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임금은 천한 것들이 감히 자기를 따라 한다고 불쾌하게 여겨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한번 번진 풍조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옆에서 안자가 그 까닭을 말해준다. "임금께서는 예쁜 여자에게 남장을 시키시면서 밖으로 백성들에게는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십니다. 이것은 소머리를 문에다 걸고 말고기를 안에서 파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궁궐 안에서 먼저 금지령을 내리면 밖에서도 백성들이 감히 따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소머리와 말고기로 종류가 바뀌어 표현되었지만 내내 맥락은 같은 이야기이다. 영공이 금지령을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아 제나라 전체에 남장여인이 사라졌다. 현대에는 홍보가 과대한 시대라 이른바 짝퉁의 문제를 조심해야 하는데 양두구육의 맥락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6-19 철산 최정준

[주종익의 '스타트업']테라노스의 교훈

지위가 높고 학식 높은 사람 말은무조건 믿는 '극장의 우상'미모에 학식, 세계적인 거물들로 장벽을 치자 묻지도 않고 믿어사기꾼들은 이런 심리를 이용한다테라노스는 피 한 방울로 250여종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의료장비 에디슨을 개발한 실리콘밸리의 최고 메디컬 스타트업이었다.스탠퍼드 대학 화공과를 중퇴한 미모의 엘리자베스 홈즈가 19살에 설립한 회사로 기업가치가 10조원에 달하였던 기업이었으나 월스트리트 저널의 존 캐리루의 끈질긴 추적조사 끝에 2015년 사기임이 들통나면서 지금은 파산기업이 되었다. 조지 슐츠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윌리엄 페리와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샘넌 전 상원 군사위원장, 로버트슨 스탠포드 대학교 공대 교수이자 엘리자베스의 은사, 루퍼트 머독 폭스 뉴스 회장, 벤처 투자자이며 드레이퍼 대학 설립자 팀 드레이퍼, 거물 IT투자자 도널드 루커스,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 대형 슈퍼마켓 세이프웨이, 대형 약국체인 월그린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거물들이 어마어마한 후광효과를 만들어주고 사기에 농락당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1.스티브 잡스 함정: 엘리자베스는 고등학교 때 소프트웨어 컴파일러를 개발해서 중국 대학에 팔면서 사업에 자신감을 얻었다. 미모와 학력과 야망을 겸비하고 있다고 자존감에 빠지면서 우상을 찾았다. 여자 스티브잡스 이름만 들어도 날뛸 일이다. 스티브 잡스 동일시 현상에 빠졌다. 베끼려면 스티브 잡스의 전 인생을 베껴야 하는데 성공한다는 결과만 모방했다. 이 세상에 스티브 잡스는 하나면 족하다. 르네 지라르는 '욕망의 모방'을 말했다. 욕망을 모방하려다 스티브 잡스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2.감추어진 배후: 인도 출신 서니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전자상거래 프로그램을 커머스 원에 팔아 약 4천만달러를 벌었다. 서니는 엘리자베스와 동거를 하며 자신의 신분 상승 먹잇감으로 삼았고 엘리자베스는 서니를 신경안정제처럼 기대는 공범이었다. 3.극장의 우상과 첫인상 효과 콩깍지: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의 정신적 오류에 4가지 우상을 말했다. 그중 '극장의 우상'은 지위가 높고 학식 높은 사람이 말하는 것은 무조건 믿는 현상을 말한다. 콩깍지가 씌어 첫눈에 반하면 보이는 것이 없다. 미모에 학식과 세계적인 거물들로 장벽을 치자 모두가 묻지도 않고 믿어버렸다. 사기꾼들은 모두 이런 심리를 이용한다. 그 장벽의 첫 번째가 팀 드레이퍼, 로버트슨 교수, 도널드 루커스와 래리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였다.4.FOMO: FOMO(Fear of missing out)란 제외되면 손해를 볼 것 같은 두려움을 말한다. 홈쇼핑 호스트가 "곧 매진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지금 안 사면 손해 볼 것 같은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여유 있는 초기 투자자는 정보를 얻었을 때 바로 투자한다. '하나만 똑똑한 것 전략'은 돈에 여유 있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고위험 고수익 방법이다. 실패는 개의치 않는다. 친구의 아버지가 유명한 드레이퍼였다. 똑똑한 엘리자베스가 구상을 설명하자 그 자리에서 백만달러 수표를 끊어주었다. 첫 번째 펭귄(First Penguin)이 물속에 뛰어드니 나머지 펭귄은 그냥 뛰어들었다. 5.믿습니다: 믿음(Belief)의 세계는 종교만이 가능하다. 기업은 믿음의 세계가 아니라 사실(Fact)의 세계이다. 모든 일의 시작은 믿음으로 시작하지만 믿음-의심-검증-사실의 과정을 거쳐 사실의 세계로 발전할 때 성공한다. FDA 승인이나 의학 전문 지식투자자는 한 명도 없다. 확실한 제품도 없이 마케팅을 시작했다. 오직 성공한다는 믿음뿐이었다. 6.CEO갑질-변호사 만능: 미국의 CEO 권한은 하늘 같다. 의사결정이 100% 한사람에 집중돼있었다. 의심하거나 말 안 듣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해고했다. 법률사무소와 유명한 데이비드 보이즈 변호사 등이 앞장서서 비싼 돈을 받으면서 악역을 담당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인데 어떻게 감히 FDA를 피해갈 생각을 했을까? 정신이 나간 법률가들이다.7.거짓이 거짓을 낳는 리플리 증후군: 거짓말이 반복되면 점점 방법이 과격해지고 사실처럼 착각하는 것이 리플리 증후군이다. 사람을 차단시키고 물어보면 비밀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나를 믿게 하는 거짓말을 끊임없이 했다./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에버스핀 감사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에버스핀 감사

2019-06-16 주종익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몽잡이저: 교육은 섞이어 있는 나타남이다

산에서 샘물이 흘러 나와 계곡으로 내리고 계곡에서 내를 지나 강물을 이루고 강을 거쳐 바다에 이른다. 맨 처음 산속에서 물줄기가 나와 샘을 이룬 상을 주역에서 산수몽괘(山水蒙卦)라 한다. 몽괘는 샘물이 처음에는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몰라 앞길이 막막해 발걸음이 멈추어있는 상이다. 그러나 그대로 멈춰있으면 영영 바다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마니 과감하게 흘러가야 한다. 이렇듯 과감하게 흘러가야 하는데 앞길이 어둡고, 앞길은 어두운데 과감히 진행은 해야하는 상황이 몽괘의 정황이다. 잘못 흐르면 강물을 타지 못하고 새어나가 버릴 수 있는 상황이다. 고인들은 이 몽괘를 보고 교육을 떠올렸다. 어린 아이가 세상에 나와 아무것도 모르는데 향후 성장해나가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면 이성이 계발되지 않아 천치로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러니 이것저것 배워야 한다.그래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교재 등에 가르친다는 의미를 강조해서 훈몽(訓蒙)이라 하고, 열어준다는 의미를 강조해서 계몽(啓蒙)이라 하고, 엄하게 회초리를 든다는 의미로 격몽(擊蒙)이라 부르기도 한 것이다. 이런 몽괘에 대해서 뒤죽박죽 섞인 가운데 하나하나 구분되고 분별되는 이성적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섞임이란 혼돈의 상태처럼 분별심이 없는 것이다. 분별심이 없다가 하나하나 세상 물정을 알아가는 과정을 잡이저(雜而著)라 하였다.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을 교육할 때 참고할 만한 말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6-12 철산 최정준

[생활법무카페]금전거래 안전장치는 무엇이 있나요?

금전거래는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좋으나,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려주어야 되는 경우에는 훗날 채무자가 갚기로 약속한 날짜에 갚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돈을 빌려줄 때 사용할 수 있는 안전장치로는 예컨대 채무자나 물상보증인이 제공하는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것과 같이 물적담보를 제공받는 방법과 재력이 있는 사람을 연대보증인으로 세우는 것과 같이 인적담보를 제공받는 방법이 있다. 이 중에서는 담보가치가 충분한 부동산에 곧바로 소송절차 없이 경매신청을 할 수 있는 근저당권 설정이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라 하겠다.한편 채무자나 물상보증인의 근저당권설정을 제공받기가 여의치 않은 경우라면, 공증사무실에 가서 공정증서(금전소비대차계약 또는 약속어음 등)를 작성한 후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는 경우에 복잡한 법원의 소송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강제집행을 할 수 있어 시간이 절약되고 간편한데, 다만 강제집행할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또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는 훗날 채무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법원의 소송절차를 진행할 경우를 대비하여 대여금액과 대여일자, 변제기, 이자율 등을 명확하게 기재한 차용증(금전소비대차계약서, 현금보관증, 지불각서 등 명칭 불문)을 작성하여 두는 것이 좋다. 특히 채무자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주민등록상 주소, 연락처 등 인적사항은 반드시 기재하고, 더 나아가 주민등록증을 복사하여 첨부하게 하거나 인감 도장을 찍고 인감증명서를 첨부하도록 한다. 이는 모든 일이 종료될 때까지 잘 보관하여야 한다. 그러나 결국 가장 좋은 안전장치는 상대방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냐 여부를 판단하여 금전 거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 하겠다./장지수 법무사·경기중앙법무사회 수원지부장지수 법무사·경기중앙법무사회 수원지부

2019-06-11 장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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