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시인의 꽃]조화弔花

여기 호올로 핀 들꽃이 있어자욱-히 나리는 안개에잎사귀마다 초라한 등불을 달다아련히 번지는 노을 저쪽에소리도 없이 퍼붓는 어둠먼-종소리 꽃잎에 지다아 저무는 들가에 소복히 핀 꽃이는 떠나간 네 넋의 슬픈 모습이기에지나던 발길 절로 멈추어한 줄기 눈물 가슴을 적시다김광균(1914~1993)조화弔花는 고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꽃으로서 삶의 한 가운데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의 초입에서 사계절 동안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조화는 한 생명이 왔던 '순백의 시간'을 펼친다. 그리고 누구도 가로질러 갈 수 없는 죽음 앞에서 고개 숙여 애도하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거기에서 인간은 세계라는 들판에서 '여기 호올로 핀 들꽃'처럼 내일이라는 미지의 '자욱-히 나리는 안개' 속에서 언제 꺼질 줄 모르는 '초라한 등불' 하나 달고 있는 생명체일 뿐이다. 이 순간도 '아련히 번지는 노을 저쪽에 소리 없이 퍼붓는 어둠'이 있다면, 그것은 '먼-종소리 꽃잎에' 지고 있는 누군가의 목숨인 것. "아 저무는 들가에 소복히 핀 꽃"을 보라. 그렇게 떠나간 이들의 '넋'이 슬프게 피어있지 아니한가. 이 봄날, 가슴에 묻은 사람들이 잊지 못해 하얀 그리움으로 당신을 찾아온 것이니.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3-18 권성훈

[조성미의 나무이야기]역사의 암흑기 시련을 함께 한 한반도 고유종 미선나무

3·1운동과 임정 수립 100주년우리나라에만 자생 고유식물미선나무, 관심 높아져 재조명학계에 처음 보고된 지 올해로 100년을 맞이했기 때문봄은 쉬이 오지 않는가 보다.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로 인해 겨울의 그림자가 채 가시기도 전인 이른 봄 척박한 돌밭에서 단아한 흰색의 꽃을 피우는 미선나무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더 큰 희망과 의지를 갖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온 우리 민족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다.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고유식물인 미선나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재조명되고 있는데, 미선나무도 학계에 처음 보고된 지 올해로 100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한 세기 동안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며 역사의 암흑기를 이겨낸 한반도 특산식물 미선나무는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이다.미선나무는 한국 식물학의 개척자인 정태현 박사에 의해 1917년 충북 진천 용정리에서 자생지가 발견되었고, 1919년 일본인 나카이 다케노신 박사에 의해 학계에 처음 보고되면서 한반도를 대표하는 특산식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우리나라 나무 이름을 가장 많이 붙인 나카이 박사는 조선총독부의 지원 아래 한반도 전역의 식물에 대한 조사, 연구를 시행해 왔다. 미선나무와 개나리를 비롯한 327종의 학명에 '나카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어 우리가 접하는 나무 이름에는 일제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아직도 남아 있다. 학계에 보고될 당시 미선나무는 일본 이름인 '부채나무'로 소개되었다. 미선(尾扇)이라는 이름은 대나무 줄기를 잘게 쪼개어 둥글게 펴고 실로 엮은 뒤 종이로 앞뒤를 바른 둥그스름한 모양의 부채로 미선나무 열매의 모양이 이 부채와 닮았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미선은 옛날이야기 속 왕이나 옥황상제 옆에서 시녀가 들고 있는 하트모양의 부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중국에서는 둥근 부채 같은 나무를 의미하는 '단선목(團扇木)'이라 부르며, 서양에서는 미선나무를 하얀 개나리를 뜻하는 '화이트 포르시시아(White Forsythia)'로 부른다.미선나무는 물푸레나뭇과의 낙엽이 지는 관목이다. 물푸레나뭇과에 속하지만 미선나무속에는 이 나무만 존재하는 1속 1종 식물로 그 어느 나라에도 없고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아주 귀한 나무이다. 그 희귀성과 식물분류 및 분포학적인 가치가 높게 평가되어 전국의 자생지들은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충북 괴산과 영동, 전북 부안 변산반도 등 5곳에 있는 자생지는 모두 깊은 산속이 아니라 마을 가까운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사람의 손을 쉽게 타서 수난을 당해 왔다. 특히 최초로 발견되어 천연기념물 14호로 지정되었던 진천의 자생지는 무단채취로 인해 훼손되어 1969년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고 말았다. 미선나무는 볕이 잘 드는 산기슭에서 자란다. 다 자란 나무의 높이는 1∼1.5m 정도로 옆으로 가지를 많이 만들며 퍼진다. 가지는 끝이 아래로 처지며 자줏빛이 도는 반면 새로 난 어린 가지는 둥글지 않고 네모난 것이 특징이다. 3월에 피는 꽃은 그 어느 꽃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화사하고 아름답다. 꽃 모양은 개나리를 닮았지만 꽃이 좀 작고 하얀색이며 개나리보다 더 일찍 개화한다. 줄기를 타고 수북하게 피어나는 꽃은 일정한 간격으로 층을 이루며 한 자리에 서너 개에서 십여 개의 꽃들이 모여 달린다. 미선나무 꽃은 향이 없는 개나리와는 달리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을 붙잡을 만큼 매우 달콤하고 좋은 향기가 난다.꽃이 먼저 피고 난 후에 나오는 잎은 가지 양쪽에 마주 보며 달리는데 끝이 뾰족하고 밑부분은 둥글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미선나무는 꽃도 아름답지만 꽃이 지고 난 뒤 맺히는 열매는 더욱 매력적이다. 9월쯤 익는 얇고 납작한 열매는 가운데 두 개의 종자가 들어있고 둘레 부분이 얇은 날개 역할을 해 바람을 타고 날아갈 수도 있게 만들어졌다. 미선나무는 꽃이나 꽃받침의 색, 열매의 모양에 따라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분홍꽃이 달리면 분홍미선나무, 상아색 꽃이 피면 상아미선나무, 꽃받침의 빛깔이 푸른 것은 푸른미선나무, 열매 끝이 오목하지 않고 둥근 것은 둥근미선나무로 부른다. 최근에 각종 연구에서 미선나무 추출물이 미백과 주름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화장품과 비누, 탈모방지샴푸 등에 사용되고 있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홍보실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홍보실장

2019-03-17 조성미

[풍경이 있는 에세이]어느 긴 새벽에 대하여

우린 제마음 읽는법 배워본적 없다마흔 넘도록 선택할 땐 손끝 파르르내가 다섯살짜리 키우기 벅찬시대열여덟살 엄마가 갓난아이 키우는데'좋은시절 금방 온다' 헛된꿈도 못꿔집 근처에는 김밥집이 한 곳 있다. 내 손바닥 반만 한 길이로 말아주는 꼬마김밥집인데 메뉴가 수십 가지다. 햄치즈 김밥, 제육 김밥, 낙지 김밥, 게살 김밥 등등 고르는 데에도 머리통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한 줄에 천 원. 두 줄을 주문하면 내 속에 딱 맞았다. 그날 김밥집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한 손님이 막 나가던 길이었고 나는 김밥 진열대 앞에 서서 "아줌마, 불오뎅 김밥 두 줄 주세요." 그러면서 이천 원을 건넸다. 주인아줌마는 약간 골이 나 있었다. "아니, 지가 매운 걸 시켜놓고 맵다고 야단이면 어째?" 나는 좀 뜨끔했는데 생전 먹지도 않던 매운 음식이 당겨 마침 불오뎅 김밥을 주문한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막 나간 그 손님이 매운 걸 먹다 말고 투덜거린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그 조막만 한 김밥들을 절반도 먹지 못했다. 매워도 너무 매웠다. 주인아줌마 눈치가 보여 기를 쓰고 먹어보려 했지만 별 수 없었다. 슬그머니 반 넘어 남긴 접시를 두고 일어서는데 딱 걸렸다. "왜? 매워? 매워서 못 먹겠어?" 나는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배가 불러서요!"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도 그랬다. 늘 가던 콩나물국밥집이었는데 그날도 희한하게 매운 국물이 먹고 싶어서 처음으로 매운 콩나물국밥을 주문했다. 역시나 나는 반도 먹지 못했다. 내가 절절 매니 깍두기를 더 주러 다가왔던 아줌마가 혀를 끌끌 찼다. "그러게 왜 먹지도 못하면서 매운 걸 시킬까나? 그냥 먹던 대로 먹지." 분명 내 입맛이,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인데도 무언가를 주문하면서 실패를 거듭한다. 아기 내복이나 좀 살까 싶어 들어갔던 인터넷쇼핑몰에서 봄 원피스를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기에 나는 열 벌도 넘게 샀다. 백화점에 가면 한 벌도 못 살 값이었다. 옷감이 좀 후지더라도, 디자인이 좀 촌스럽더라도 어차피 아이들은 쑥쑥 자라니 만원 값만 하면 된다 생각한 거였다. 하지만 막상 배송이 된 옷들을 쳐다보자니 한숨이 절로 났다. 정말 딱 만 원짜리들이었다. 이걸 입혀 어딜 데리고 나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 원 값만 하면 된다 해놓고는 이 무슨 변덕이람. 옷장 속에 개어 넣으면서 이 옷들을 정말 입히게나 될까, 싶었다. 매운 걸 시켜서 매운 음식이 나왔고, 만 원짜리 옷을 사서 만 원짜리 옷이 온 걸 나는 어쩌자고 후회하고 있는 걸까. 다 내가 고른 것인데.친구는 새벽녘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의 울음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여고 2학년 딸이 아기를 낳겠다고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딸의 마음은 확고하고 단단해서 더는 어쩌지 못하겠다 말하며 그녀는 펑펑 울었다. 알겠다고, 돕겠다고 말은 했다는데 아직 제 마음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했다. 내 딸은 아직 다섯 살이라 나로서는 상상도 안 갈 일이었다. 친구의 딸이 마음을 이미 다졌다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이를 응원하는 일뿐이었다. "꼭 전해줘. 이모가 응원한다고.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고도 전해줘." 고작 엄마 친구가 응원하는 일이 그 아이의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지만 다른 건 해줄 것이 없어서 나는 그 말만 바보처럼 되풀이했다. 친구가 말했다. "난 마흔도 넘었지만 내 선택을 온전히 믿지 않아. 아직도 내 선택을 내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아. 그런데 그 앤 고작 열여덟 살이야. 그 앤 정말 제 선택을 믿고 있는 걸까? 이왕이면 그 애가 끝까지 제 선택을 스스로 믿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제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는 법, 우리는 그런 것을 배워본 적이 없다. 배워서 될 일이 아니겠지만. 친구의 말처럼 나 역시 마흔도 넘었지만 무언가를 선택할 때마다 손끝이 파르르 떨릴 때가 많다. 살아도, 살아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도 여태 무능한 나를 반성하느라 나는 친구의 전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마흔이 넘은 내가 다섯 살 아이를 키우기도 벅찬 시대인데, 갑자기 천지개벽해 열여덟 살짜리 엄마가 갓난아기를 키우기 좋은 시절이 금방 오리라는 헛된 꿈을 꾸지도 못했다. 새벽은 길었고 친구의 울음도 길었다. 무섭도록 긴 밤이었다./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19-03-14 김서령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제출호진: 임금이 동방에서 출현한다

아직 아침저녁으로 남아있는 한기는 있지만 그렇게 추웠던 날이 가고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 왔음을 실감한다. 봄의 상징인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마음도 하나 둘 열리는 느낌인데 제출호진(帝出乎震)이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동양에서 지리를 볼 때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나침반이 패철인데 지남철이기 때문에 '쇠'라고도 부른다. 이 지남철은 말 그대로 남향을 가리키는 쇠이다. 이 지남철을 가지고 방위를 보고 길흉을 따진다. 지남철에 정해진 방위의 원리는 주역이라는 고전에서 유래한다. 주역에서 유래한 방위를 보는 방법은 남방(南方)을 정면으로 향해 서있을 때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랬을 때 동서남북 사방만 따지자면 남방이 앞의 이괘(離卦)이고 북방이 뒤의 감괘(坎卦)이다. 동방이 왼쪽의 진괘(震卦)이고 서방이 오른쪽의 태괘(兌卦)이다. 동서남북의 사방은 각자 지니고 있는 개성이 있으며 동시에 시간적 의미도 포함한다. 동방을 예로 들면 해가 떠오르는 방위이지만 시간으로 보면 하루 중 해가 떠오르는 아침에 해당하고 한 해로는 생명의 싹을 지표에 내는 봄에 해당한다. 예로부터 해는 임금의 상징이기 때문에 임금이 동방에서 출현한다는 말은 해가 동쪽에서 떠오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제출호진(帝出乎震)이라 하였으니 동방은 해가 떠오르는 곳이고 해가 떠오름에 따라 만물이 소생해 나오는 때라는 의미를 함축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 말을 한 때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성군이 출현한다는 비사( 辭)로도 사용했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진단(震檀)이라 하는데 震은 중국의 낙양에서 볼 때 동쪽을 뜻하고, 檀은 우리나라의 시조인 단군을 뜻하는 말이다. 굳이 비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봄을 맞아 누구에게나 잠재해있는 태양처럼 밝은 상제(上帝)의 마음과 힘이 출현하기를 바라본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3-13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산유화

산에는 꽃피네 /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피네 //산에 / 산에 /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 꽃이 좋아 / 산에서 /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 꽃이 지네 /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지네.김소월(1902~1932)산유화는 꽃 이름이 아니라 '산에 꽃이 있다' 라는 의미로 '산유화(山有花)'다. 이른 봄부터 산에 피는, 이름 모를 꽃들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는데, 거기에는 기다림도 설렘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산유화는 언제 피는지, 언제 지는지에 관한 물음을 접은 채, 피어나고 지는 데 있다. 그 꽃은 '갈 봄 여름 없이' 보는 사람에게 피어나는 꽃이며, 반대로 '갈 봄 여름 없이' 지는 꽃으로서 산속 어딘가에서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을 뿐. 마치 겨울을 홀로 보낸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함의 얼굴이 있다면 그러하리라. 따라서 산유화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통과하여 더 이상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은 상태로서 고독의 절정이 피어 올린 근원적 존재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 '산에서 우는 작은 새도 고독이라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는 것같이 누구나 세계라는 산속에서 잠시 홀로 왔다가 간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3-11 권성훈

[손경년의 '늘찬문화']지역문화의 중요성과 양적성장 속의 지역문화재단 역할

전국 75개 기초문화재단 운영중지역 기반의 중요 시책 심의·지원수요 많아지는 만큼 성장 가속화운영 전문성 요구되는 '대표이사'고도화된 리더십 요구 부응해야2014년 46개였던 기초문화재단이 2019년 2월 현재 서울 15개, 부산 1개, 인천 2개, 대구 6개, 울산 1개, 경기 14개, 강원 9개, 충북 3개, 충남 4개, 경북 6개, 경남 6개, 전북 3개, 전남 5개 등 총 75개가 설립·운영되고 있다. 이는 전국 226개 시군구 중 33.2%에 해당한다. 광역단위에서는 경기문화재단, 서울문화재단 등 16개 재단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 기초문화재단들은 '사단법인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이하 전지연)'를, 광역문화재단들은 '사단법인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이하 한광연)'를 구성하여 전국적인 협력망을 형성,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알다시피 재단의 설립은 정부, 기업 그리고 개인 차원에서 가능하며, 그 역할과 임무는 다양하다. 한 예로 국가와 정부가 재단을 설립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공식적인 정부행정체계 내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혹은 수행한다 하더라도 효율적이지 못한 임무나 역할을 준 민영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며, 또한 공공의 목적에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로 여기기도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지역사회 및 지방자치정부가 공공서비스의 효율적인 전달을 위해 지역재단의 개념을 도입하는 사례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그러나 우리나라 지역문화재단의 경우를 보면 설립목적과 역할 등이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다소 차이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2014년에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 제19조와 20조에 의한 '지역문화재단의 설립, 지원' 등의 규정과 [지방자치법] 제2조와 19조의 규정을 근거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유산, 문화예술, 생활문화, 문화산업 및 이와 관련된 유형·무형의 문화적 활동의 진흥에 관한 중요 시책을 심의·지원하고 그 사업을 수행하는 공공문화재단'의 개념을 준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각 지자체의 조례에 의해 설립·운영되고,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출연기관이며, [민법] 중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을 적용해야 하는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주민의 문화욕구 증가와 새로운 삶의 방식 등장, 미래가치의 수용 및 시민의 문화권 확장요구가 커짐에 따라 이를 담아 낼 지역단위의 기구에 대한 수요가 더 많아지고 있고 이로 인해 지역문화재단의 양적 성장은 가속화될 것으로 본다. 따라서 지역문화재단의 수가 늘어나는 속도만큼 재단의 질적 역량 또한 함께 상승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올 초, '전지연'에서는 기초문화재단을 대상으로 [기초문화재단 설립 실태조사 및 지역문화재단 역량강화를 위한 전략과 방향 연구](연구책임 디자인 자리)를 수행하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초문화재단의 정규직 성비 분포는 남성 55%, 여성 45%이며, 임원(이사)의 구성은 남성 80%, 여성 20%로 조사되었다. 조사대상 기초문화재단 중 16%는 임원에 여성 구성원이 전혀 없었다. 운영되고 있는 사업의 범위는 기초지자체의 행정업무 분산, 문화시설운영 및 지역축제운영 등 행정 필요에 의한 사업 및 기초지자체의 위탁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대표이사 인사에 영향을 미친 사례도 있었다. 지역문화재단 설립 시 기본 요건으로 문화예술의 특성 및 전문성이 반영될 수 있는 독립성과 자율성의 보장, 즉 '팔길이 원칙'이 지켜지기를 기대하는데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아직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인다.지역문화재단의 질적 역량 향상을 위해서 독립성과 자율성은 필요한 요소이다. 이를 근간으로 지역이 가진 특성과 주민들의 삶의 여건을 반영한 재단비전 설계가 이루어져야 하고 동시에 지역의 문화정책수립과 사업추진의 투명성·공정성을 위한 재단운영의 민주화, 권력형 위계문화의 타파, 성 평등 문화의 정착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최근 몇몇 지역의 문화재단 대표이사 공모 후의 뒷말들이 무성한 것 같다.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예술기구로서 운영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이니만큼 기관장의 자질 및 리더십에 대한 지역사회의 상당한 수준의 요구는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모든 사회문제로부터의 고립이 아닌, 시대정신과 사회적 이슈로부터 균형을 유지하고 정치적, 행정적 간섭과 사적지배로부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문화재단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지역문화재단은 고도화된 리더십 요구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9-03-10 손경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근묵자흑: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

최근 연달아 어두운 먼지가 창공을 뒤덮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흙먼지로 둘러싸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이 곧 닥칠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자는 동안 목이 불편하더니 집에서 나올 때도 마찬가지이다. 취약한 아이들이나 노인들 그리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겐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방송을 들어보니 전문가들에게 원인과 처방을 요구하지만 딱히 속 시원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원인은 중국의 문제가 크고 국내에서도 원인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이다. 해결책으로는 하나같이 중국은 거시적이고 우리나라가 아니니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정답이라고들 한다.그러나 중국의 산업화와 그로 인한 화석연료 사용에 따라 그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른바 어쩔 수 없는 지정학적 근묵자흑이다. 중국에 가까운 나라이고 매년 중국에서 기류가 봄철이면 우리나라를 향해 유입된다. 사람이 달에도 가고 화성에도 가는 기술력을 자랑하면서도 당면한 기후변화에는 쩔쩔매고 있다. 사람의 기술력이 위대해지는 반면 상대적으로 사람의 인문학적 정신력은 기술의 뒤꽁무니를 따라가기 바쁘다. 지금까지의 과거는 어쩔 수 없다 치고 향후 기술력의 방향을 기후변화에도 집중하면 어떨까? 우주를 항해하는 기술력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데 사용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면서도 동시에 당장 필요한 인공강우 등의 기술에 적극적으로 힘을 써야 한다. 중국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문제의 원인에 대한 인식과 개선책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주어진 근묵자흑이기 때문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3-06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노변의 꽃들

저것들에게도 분명 무슨 말들이 있을 거다 / 그렇지 않고선 어찌 / 저렇게 온종일 / 바람과 낄낄거린다는 말인가저것들에게도 분명 무슨 사연들이 있을 거다 / 그렇지 않고선 어찌 / 저렇게 밤을 새워 기다린다는 말인가저것들에게도 분명 무슨 사랑들이 있을 거다 / 그렇지 않고선 어찌 / 저렇게 곱게 몸단장을 한다는 말인가그리고 저것들에게도 분명 무슨 미련이 있을 거다 / 그렇지 않고선 어찌 / 저렇게도 해마다 해마다 그 자리 / 그곳에 다시 피어난다는 말인가 / 그러나 나의 길은 가면 못 오는 길한번 지나갈 뿐 / 이제 그 길을 나는 지금 고속으로 / 너를 보며보며 지나가고 있는 거다 / 이렇게 나머질.조병화(1921~2003)이유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그냥 피어나는 꽃들도 없을 것이다. 가꾸지 않았는데도 길가 봄기운과 함께 움트고 있는 꽃들도 그러하리. 3월 어느 날 자신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한 세상 뿌리내린 이름 없는 꽃들을 바라본다. 꽃들의 말이, 꽃들의 사연이, 꽃들의 사랑이 들리는가. 그렇다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해 마다 그 자리'에 피어나는 그들의 생각도 읽을 수 있으리라. 반면 꽃들의 길은 가고 올 수 있지만 사람의 길은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것. 그것도 고속으로 '한번 지나갈 뿐' 그렇게 지나가고 있는 이 길에, 당신은 꽃보다 할 말이, 사연이, 사랑이 그리고 인생의 미련이 얼마나 아름답게 남았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3-04 권성훈

[주종익의 '스타트업']스타트업 3.0

최대 관심사 '1.0' 시작·'2.0' 성장빠르고 크게 성공 방점 찍힌 '3.0' 배짱좋은 경영자 드라이브 걸 시점우리는 아직도 중국보다 못한 '0.8'10년 후 취업환경 생각하면 답답아주 아주 거칠고 짧게 말하면 나의 정의는 이렇다. 스타트업 1.0=제발 좀 스타트업을 하라(Start). 스타트업 2.0= 스타트업했으면 성장하라(Up). 스타트업3.0=빨리빨리 크게 성장해라(Scale). 최근 미국 스타트업 계의 관점이 달라졌다. SNS나 블로그는 물론이고 아마존에서 판매되는 책이나 벤처캐피털이나 액셀러레이터들의 행사 내용들을 보면 확실히 방점이 찍히는 곳이 달라졌다. 나는 지금 미국의 상태를 스타트업 3.0이라고 규정한다. 스타트업 초기인 1.0시대에는 온통 '스타트업을 하라 그것도 지금 당장'이 최대의 관심사다. 주체적인 인생을 살고 싶다면 눈을 스타트업으로 돌리라고 한다(just start). 왜 스타트업을 해야 하는지? 스타트업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기업가정신이 무엇인지? 누구랑 해야 하는 것인지? 자금은 어떻게 조달하는지? 비즈니스모델이란 무엇인지? 등등의 사업 경험이 없는 대학생들에게 어떻게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운영하는지 기초적인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핵심이다. 개척과 도전 정신이 강한 청교도의 후예답게 독립정신이 투철한 미국의 대학생들은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았고 교수들은 열심히 이들을 자극하고 독려하고 동참해서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도전했다. 이제는 스타트업의 숫자가 넘쳐나도록 많아졌다. 팀들이 많아지자 더 이상 스타트업에 도전하라고(just start) 외칠 필요가 없어졌다. Start 한 기업가들이 이제는 죽지 않고 잘 성장하는 Up 단계로 들어가는 스타트업 2.0으로 축이 바뀐다. Up단계는 성장에 중점이 있는 만큼 성장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과 도구, 행사, 정책 등의 경영전략이 핵심을 이룬다. 이 시점에는 Data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분석한 방법을 실험하고 홍보와 광고를 활발하게 진행한다. A/B test를 많이 한다. Start단계에서 제품과 시장의 궁합이(Product Market Fit) 어느 정도 확인이 되었다는 확신이 서면 적극적인 성장 전략인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 전략을 추진하게 된다. 전문 그로스 해킹 팀을 구성하고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강한 견인력(traction)을 만들어 낸다. 고객을 유치(acquisition)하고 활성화(activation)하고 유치한 고객을 유지(retention)하고 매출(revenue)을 발생시키고 유치한 고객으로부터 추천(referral)을 받는 소위 AARRR이라는 데이터 분석에 열중한다. 성공하는 기업들의 성공사례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성공사례가 또 다른 성공사례를 만들어 낸다. 이제는 성공의 크기와 얼마나 빨리 그 지점에 도달하였느냐에 방점이 찍히면서 자연스레 스타트업 3.0으로 넘어간다. 스타트업 3.0은 빨리 크게(시가총액 10조원이상) 성공하는 방법과 전략이 관심사다. 초 강대 기업들의 창립 연도를 보자. 애플(76), 아마존(94), 구글(98), 페이스북(2004), 트위터(2006), 드롭박스(2007), 애어비앤비(2008), 우버(2009). 과거보다 최근에 성공한 기업들의 성장곡선이 훨씬 가파른 것을 보면서 통찰력과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 "빨리빨리"이다. 이 시기는 경영학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역행하여야 하는 것이 많다. 때로는 빨리빨리가 효율성 합리성 최적화 등보다 훨씬 우선한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 모든 부분의 혁신이 수행된다. 경영전략, 비즈니스모델, 조직, R&D, 마케팅, 의사결정 등의 혁신을 수행할 탁월한 능력과 배짱 좋은 경영자가 과감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 기간이다. 우리는 아직도 스타트업 1.0이다. 제발 대기업 취직만 하려고 하지 말고 스타트업을 하라고 하지만 학생들은 꿈쩍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수나 지도자들도 별로 관심이 없고 경험이나 능력도 부족하니 어쩌면 1.0이 아니라 0.8쯤이 아닌가가 싶다. 중국보다도 훨씬 못하다. 앞으로 10년 후의 우리 젊은이들의 취업 환경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왜 우리는 뻔한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일까? 꼭 장마 때가 돼서 지붕을 고쳐야하나? 몰라서 못하는 것인가(주지주의) 의지가 없어서 못하는 것일까(주의주의)?/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

2019-03-03 주종익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비구혼구: 도적이 아니라 혼인할 짝이다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사람과 사람의 인간관계를 큰 틀에서 우호적이냐 적대적이냐로 구분할 수 있다. 주역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대표하는 말이 혼구(婚구)인데 혼구란 혼인할 대상이나 혼인을 청하는 사람 혹은 혼인을 중매하는 사람이다. 혼인은 인륜의 시작인 부부관계를 맺는 약속이므로 이보다 우호적인 관계는 찾기 힘들다. 이에 비해 적대적인 관계를 대표하는 말이 도적인데 도적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생명과 재산에 해를 입히는 사람이다.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상호관계에서 오해나 의심으로 인하여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주역에서 '도적이 아니라 혼인할 짝이다'라고 하였다.그렇다면 한반도의 남과 북은 혼구인가 도적인가? 이것은 세대 간 치른 역사적 경험과 그에 관한 인식에 따라 다를 수는 있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부부도 영원히 사랑을 간직하고 사는 관계가 최선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 사랑할 때와 불화를 겪는 시절이 있듯이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원래 한 식구지만 아픈 역사가 갈라놓은 이별을 겪는 시절에는 상호 도적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시절이 바뀌어 운수가 도래하면 사람의 마음도 바뀐다. 나를 해치는 도적인가 싶어 활시위를 매겼다가 다시 눈을 뜨고 보니 나와 혼인할 상대라는 말이다. 그동안의 의심이 신뢰로 전환되는 상황을 표현한 말이 비구혼구(匪寇婚구)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2-27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국화

서리에 피는 국화선생이라 불렀더니뜻을 알아주기동지라 여겼더니오늘은아내 사랑을네게 온통 바친다이은상(1903~1982)고통은 극복하고 초월하는 문제가 아니라 참고 견디어 내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고통일수록 배가되며 머물렀다가는 시간마저도 알 수 없기에, 힘든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에 눈을 감고 돌아서지 않으면서 그것에 삶의 의미를 더하여 오히려 즐긴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자는 고통 속에서 꽃을 피우는 존재에게서 고통을 대하는 실천적 방법을 배우는 자세로 사물을 바라본다. 가령 '서리에 피는 국화'를 하나의 자연현상으로 본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이지만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자 한다면 '선생'이 되는 것이다. 사실 국화를 선생으로 있게 한 것은 국화가 아니라 '서리'인바, 이 서리라는 고통이 가중될수록 반대로 선생은 더욱 심오해지며, 연민까지 더해져 '동지' '아내'로 확대된다. 바람 잘날 없는, 오늘도 당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있다면 뛰어넘으려고 하지 말라, 그럴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으니. 어차피 그것은 와 있는 것이니, 지나가는 동안 현자로서 마주하라.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2-25 권성훈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거자필반(去者必返)

누구든지 쓰라린 눈물로얼룩진 이별은 슬프다그러나 별리의 아픔 뒤에는 떠난 님이 다시 돌아올 내일의 희망을 꿈꿀 수 있기에 고통을 참는다거자필반(去者必返)은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뜻이다. 이승에서 못다 핀 꽃 한 송이가 다음 생애에서 활짝 만개하기를 소망하는 것도 거자필반의 은유적 표현이다. 대체로 헤어짐을 영원한 이별로 등식화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별리는 훗날 아름다운 재회의 기폭제가 되는 반전의 매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김현철 외 13명이 함께 부른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작사/작곡·배훈) 노랫말은 뜨거운 운명적 재회의 거자필반 내용을 담고 있다. 인용한 곡목의 가사에 등장하는 화자는 복수형 '우리'이다. 반면에 화자의 연인은 단수형 '그대'이다. 그 연인은 이승의 '우리' 곁을 오래전에 떠나 유명을 달리한 인물이다. 생존 시에는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대는 아는 가요/이 세상을 떠나간 뒤/그대 심은 나무가 이처럼 자랐음을/우리는 알고 있죠'. 머나먼 캄캄한 이별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연인의 유산인 '아름드리 한 그루' 나무의 결실에 마음으로부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우리'의 노래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헌정한다. '이제 그대의 작은 나무/우리에게 큰 그늘을 드리고 있죠/이 노래 드릴께요'. 어느 날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난 님 '그대'가 눈이 부실 정도로 환생한다. 그리고 '우리' 옆으로 정겹게 돌아온다. '이제 다시 돌아온 그대'는 '우리'의 영롱한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당당히 자리 잡는다. 또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이에게 '큰 그늘을' 드리운다. 그리고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뚜벅뚜벅 걸어온다.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이 외로워져도' '그대'를 다시 바라보는 꿈이 변하지 않는다고 세상을 향해 선포한다. 그리고 '그대'와 같이 호흡하며 '우리'는 환희의 눈물을 흘린다. 아울러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변치 않는 연인을 바라보는 꿈을 꾸면서 기쁨의 재회 순간을 만끽한다. 이은미가 부른 '이제야 돌아온 그대'(작사/작곡·김현철) 노랫말에서 거자필반의 예를 찾아보자. 곡목이 시사하듯 화자와 그 연인은 헤어진 채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왔다. 보통 연인의 경우 헤어진 후 재회할 때는 다시 만난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뜨기 마련이다. 곡명 '이제야 돌아온 그대' 가사에서 긴 세월이 흐른 뒤에 연인을 만나러 가는 화자도 '저만치 누군가가' 보인다며 반가워한다. 하지만 일반적 예상과 달리 의외로 차분하게 곧 평정심을 유지한다. 자신의 곁에 다시 돌아오는 연인을 보자 오히려 '그저 웃음질 뿐'이다. '지금 그저 웃음질 뿐이네/이제야 돌아온 그대를 외면할 수 없네'. 여기서 화자의 웃음은 희열의 감정 표현이 아니라 허탈한 듯 웃음 짓는 연민의 감정이 아닌가싶다. 사랑의 오랜 공백을 경험한 후 귀환한 연인을 바라보는 화자의 솔직한 현재 심정은 어떠할까. '내 마음을 내 사랑을 내 가슴을 내 세월을' 송두리째 가져간 연인에 대한 원망이 한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불평을 토해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느낌을 철저히 억누르고 있음에 틀림없다. 말하자면 비통함이 화자의 내면에 응축되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야속한 감정으로 변해 여기저기 뒤엉켜 있다. 그래서 '억지로 눈물이 나오려 해도' 화자는 연인을 '외면'하지 못하고 그저 웃음 짓는 것이다. '이제야 돌아온 그대' 노랫말에서 표현된 다시 만남은 기쁨과 환호의 재회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연인의 재회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어색하고 겸연쩍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두 사람의 만남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운명적 재회의 거자필반이라 하겠다.시인 만해 한용운은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고 갈파했다. 누구든지 쓰라린 눈물로 얼룩진 이별은 슬프다. 그러나 별리의 아픔 뒤에는 떠난 님이 다시 돌아올 내일의 희망을 꿈꿀 수 있기에 오늘의 고통을 참는다. 어찌 보면 인생은 마치 돌고 도는 물레방아와 같다. 거자필반의 수레바퀴 안에서 끊임없이 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2019-02-24 고재경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부지불온: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

인간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고 소원하는데 무언가를 욕구하는 것이다. 서양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이 욕구하는 내용을 다섯 가지로 보았다. 그는 인간이 욕구하는 것을 평면적으로 보지 않고 수준별로 상하의 계층이 있다고 보았다. 동시에 하층의 욕구들이 상층의 욕구들이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으로 보았다. 총 5층의 구조로 보았는데 맨 아래의 1층이 먹고 싸고 자는 등의 생리적 욕구라는 것이다. 2층은 죽음이나 질병 등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안전의 욕구이다. 3층은 사람들과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애정과 소속의 욕구이다. 4층은 타인으로부터 나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존중의 욕구이다. 5층은 내재되어있는 능력을 구현해내고자 하는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그 후 클레이튼 앨더퍼라는 학자는 이 이론이 근거하여 존재욕구와 관계욕구와 성장욕구 3단계로 축소하여 포괄하였다.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존중을 받고자 하는 욕구는 다섯 가지로 보면 4층에 해당하고 세 가지로 보면 관계의 욕구에 해당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타인과의 관계를 떠나 자신의 존재를 생각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누구든 사회 속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존중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욕구를 품는 것은 자유지만 그것의 실현 여부는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욕구를 품는 자체보다 그것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의 심리적 자세도 중요한 것이다. 논어의 첫 대목에 등장하는 부분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는가!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은가! 타인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군자가 아닌가! 이 대목에서 읽을 수 있는 공자의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와 관계의 욕구이다. 자아실현의 욕구가 성취되었을 때 관계의 욕구가 이루어지면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서 성낼 것까지는 없지 않겠는가!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2-20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난蘭

이쯤에서 그만 하직下直하고 싶다. //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 나머지 허락 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 // 여유 있는 하직은 // 얼마나 아름다우랴. // 한 포기 난蘭을 기르듯 //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 조용히 살아나고, // 가지를 뻗고, // 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 //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 아아 // 먼 곳에서 그윽이 향기를 // 머금고 싶다.박목월(1915~1978)인간의 욕심은 있는 것과 있어야 할 것 사이에서 생긴다.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있는 것 이상,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욕심은 부피를 채워간다. 가령 욕심은 없음에서 있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있음에서 더 있음으로의 충족되지 않는, 탐함이라고 할 수 있다. 욕망이라는 두 글자에 서식하는 욕구와 요구에 관한 양상과 대상은, 지구적이라고 할 만큼 다양하다. 그것은 충족 가능한 생물학적인 기질과 다르게 충족될 수 없는 주체와 주체 사이, 구성원과 구성원의 상호 관계를 매체로 진화하는데, 거기에는 갈등과 분쟁, 불화와 분열 등이 등식처럼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 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하는, 것은 물욕과 작별하는 것이며, 욕망에 하직을 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유가 생기는 그 사이 난초와 같이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히 살아나는' 것은 정신이며, 그 정신은 가지를 뻗고 '스스로 꽃망울'의 고귀함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윽이 향기'를 머금고 있는 난초꽃은 분명 무욕이 피워 올린 없음에서 있는 꽃이 아닐 수 없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2-18 권성훈

[김나인의 '생활관상']오성과 오악은 전생·현생·후생 가늠하는 인생행로의 표상

세상, 오행으로 이루어져 작용자연의 이치에 따른 운기의 흐름이 사람의 얼굴에도 그대로 나타나 명운에 영향을 끼치고 순환·반복후천적 선업으로 형상 바뀔 수 있어오성(五星)이란 5가지의 별이란 뜻으로,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오행(五行)을 말하는데 관상학(觀相學)에서는 이마·코·입·양쪽 귀를 말한다. 별의 형상으로 비춰지니, 이 부위는 은은히 빛나고 밝고 맑아 광채가 있고 높이 솟아 꽉 채워져야 오성으로서의 귀격(貴格)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으며, 전생(前生)의 선업(善業)으로 천덕(天德)을 받고 태어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는 오행으로 이루어져 있어 상생과 상극작용을 통하여 무한히 변화를 반복하는데, 인간의 역사 또한 윤회라는 작용으로 무한의 영혼과 유한의 육신이 한 생명체(生命體)를 이루면서 무한히 반복되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오행의 작용(作用)에 의하여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이 생기고 한습조열이 생기고 우레가 생기고 바람이 생겨나기를 반복하는 이치와 다를 바 없다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연의 이치에 따른 운기의 흐름이 사람의 얼굴에도 그대로 나타나 인생행로의 표상으로서 그 사람의 명운에 영향을 끼치고 갖가지 흔적을 남기며 순환 반복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오성의 부위가 맑고 초롱초롱 빛나며 기색(氣色)이 윤택하고 높이 솟고 풍륭해야 귀격으로 보고 있는데, 인간이라면 누군들 이런 상(相)을 갖고 태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유전적 결합물로 만들어진 각자 인간의 얼굴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세상 밖으로 갖고 나올 수 없는 일이니, 전생의 업과 연계된 윤회라는 자연작용에 따라 인간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주어진 틀에 따라 얼굴의 형상과 형태가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접근이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현생이 다소 불우하고 어려운 삶이라 해도 후천적인 노력과 선업을 행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형상은 바뀔 수 있는 것이니, 현실적인 삶이 조금은 부족하고 고단하다 해서 실망할 일만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마는 화성이고 하늘을 지칭하니, 넓고 둥글고 원만하며 밝고 깨끗하며 높이 솟아야 하고, 코는 토성이니 높이 솟고 기름지어 윤택하고 길게 뻗어 이마까지 뻗어 올라가야 귀격이다. 귀는 금성과 목성이니 눈썹보다 높이 솟고 귀륜이 방정하며 기색이 희고 맑아야 귀격이고, 입은 수성이고 바다, 창고로 표현하니 넓고 맑고 풍륭하고 선명해야 귀격이라 말할 수 있다.오성은 골고루 균형 있게 발달해야 하니, 이마는 높고 넓고 풍륭한데 코가 삐뚤거나 함몰되면 귀격이라 볼 수 없으며, 코는 풍륭하고 높이 솟아 있으나 귀가 낮게 걸리고 귀륜이 뒤집어지거나 기색이 탁하고 검으면 이 역시 귀상이라 볼 수는 없는 것이다. 턱과 입이 뾰족하고 좁으며 종이쪽처럼 얇고 지저분하며 쭈굴쭈굴하면 일찍 부귀공명을 이루었다 해도 말년이 되면 먼저처럼 사라지게 되는것이다. 입술은 방정하고 널찍하고 선명함을 요하니, 탁하고 어두우며 쭈굴쭈굴하거나 뒤로 젖혀져있으면 거짓말을 잘하며, 말이 화근이 되어 항상 구설과 관재가 끊이지 않는다. 오악(五嶽)은 높고 큰 산의 형상에 비유하고 있는데, 얼굴에 솟아있는 다섯 군데 부위를 지칭하며 이마·코·턱·양쪽 관골을 말한다. 큰 산처럼 높이 솟고 웅장하며 풍륭해야 기세를 얻은 것이니 이런 형상을 갖추면 귀격이라 볼 수 있다. 오악의 형상을 통하여 그 사람의 기세와 세력을 가늠할 수 있으니, 리더십의 유무와 사회적 위치나 작용력을 알수있는 중요부위이다. 따라서 오악인 이마·코·관골·턱은 명산처럼 높이 솟아있고 웅장하고 풍륭해야 귀격이라 말할 수 있으며, 이 부위가 낮거나 패이고 밋밋하거나 좌우 균형을 잃고 기색마저 어둡고 주름이 어지러이 널려있고 상처나 흠결이 있으면 경제적 능력과 리더십이 약한 사람이라 보는 것이다. 아무리 오악이 풍성하고 풍륭하게 골격이 잘 갖추어졌더라도 운로에 그 좋은 기운이 미치지 못하는 것은 현생(現生)의 업(業)이 부덕하다는 징후이다. 오악중에 코는 얼굴의 중심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산봉우리로 보며, 좌우 관골은 동서로 뻗어 이어지는 산맥으로 보게 되니, 중악(中嶽)인 코를 중심으로 웅장하고 풍륭하게 품어 안고 있어야 귀격이라 볼 수 있다. 이마가 좋으면 일찍 벼슬길에 나서고 부모의 덕이 있게 되며, 코가 좋으면 재물을 많이 모으고 현명한 배우자를 얻게 되며, 턱 부위가 좋으면 말년에 이르기까지 편안한 삶을 살게 되고 효도하는 자식을 두게 되는 것이다./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

2019-02-17 김나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천하언재: 하늘이 어찌 말을 하는가!

입춘도 지나고 절기상으로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찾아왔다. 체감은 차갑지만 봄이 오는 것이 은근히 느껴지니 하늘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논어에 보면 공자가 어느 날 무언(無言)을 하고자 한다고 말씀하셨다. 무언이란 말이 없다는 뜻이니 표면적으로 읽으면 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자공이 묻는다. "선생님이 말씀을 안 하시면 우리가 어떻게 선생님의 견해를 기록하고 전한단 말입니까?" 그러자 공자는 하늘을 찬탄하면서 "하늘이 어찌 말을 하는가! 하늘은 다만 사계절을 운행하고 만물을 생육한다. 하늘이 어찌 말을 하는가!"라고만 하였다. 그렇다. 하늘은 아무 말이 없다. 사계절을 운행하겠다거나 만물이 생육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하거나 약속한 적도 없다. 그렇지만 하늘은 아무 말이 없는 가운데 사계절을 운행시키고 만물을 낳고 기르도록 해주는 장본이다. 하늘은 이처럼 행위로써 말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이 하는 행위가 곧 하늘이 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얼었던 계곡의 물이 녹아 흐르기 시작하면서 소리를 내면 봄이 온 것을 알 수 있다. 봄이 찾아오는 징후가 곧 봄의 소리요 봄의 말이다. 봄이 오면 봄의 말을 하고 봄의 말을 하면 반드시 봄이 오는 것이 하늘의 말과 행동이다. 그래서 고인들은 천도(天道)는 거짓이 없다고 하였다. 이에 비하면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의 공약을 비웃기 전에 내가 한 말을 돌이켜보면 그 가운데 지키지 못한 말들이 얼마나 많던가! 사람은 열 번을 말해놓고 한 번을 실행하기 힘든데 하늘은 단 한마디 말도 없는 가운데 만물을 낳고 기르고 사계절을 운행하니 공자는 그 하늘의 위대함을 닮고 싶다는 것이다. 거짓이 없는 것이 하늘의 도라면 그렇게 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이 행해야할 도라는 뜻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2-13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낙화

돌돌돌 가랑잎을 밀치고어느덧 실개울이 흐르기 시작한 뒷골짝에 멧비둘기 종일을 구구구 울고 동백꽃 피 뱉고 떨어지는 뜨락 // 창을 열면 우윳빛 구름 하나 떠 있는 항구에선 언제라도 네가 올 수 있는 뱃고동이 오늘도 아니 오더라고 / 목이 찢어지게 알려오노니 //오라 어서 오라 행길을 가도 훈훈한 바람결이 꼬옥 향긋한 네 살결 냄새가 나는구나 네 머리칼이 얼굴을 간질이는구나 //오라 어서 오라 나의 기다림도 정녕 한이 있겠거니 그때사 네가 온들 빈 창밖엔 멧비둘기만 구구구 울고 뜰에는 나의 뱉고 간 피의 낙화!유치환(1908~1967)겨울은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그 기세를 몰고 오지만 그럴수록 봄은 조금씩 겨울을 파고들고 있다.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겨울과 오려고 하는 봄은 숙명적으로 가고 오지만 그 사이 무엇이 있는가. 겨울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인연처럼 묶여 있다가 '돌돌돌 가랑잎을 밀치고 실개울이 흐르기' 시작할 때 즈음 낙화하는 "동백꽃 피 뱉고 떨어지는 뜨락"처럼 목매는 기다림이 있는 것. 이제 곧 '훈훈한 바람결'에서 '향긋한 네 살결 냄새'에서 '간질이는 네 머리칼'에서 그리움이 봄바람에 실려 올 것이다. 그러나 항구의 뱃고동이 목이 찢어지게 우는 것은,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늘도 아니 오더라고" 애절하고 서글픈 사연들 때문이다. 낙화한 동백꽃은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오라 어서 오라" 애타게 부르다가 '피' 토한 붉은 '그리움의 언어'인 것처럼.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2-11 권성훈

[조성면의 '고서산책']3·1운동 백주년에 꺼내 보는 '삼일운동 비사(秘史)'

3·1운동이 백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비폭력 평화운동이며, 백성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만방에 알린 민주공화정신이 백 살이 된 것이다. 3·1운동을 두고 이념적 지향이 뚜렷하지 않은데다가 조직화되지 못했고, 쌀값 폭등에 대한 민중적 분노의 표출이기도 하며, 때마침 국장일(고종인산일)이었기에 대규모 군중집회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냉정한 지적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3·1운동은 이런 비판들을 상쇄하고도 남는 세계사적 사건으로 임시정부 수립의 근거였으며, 헌법 전문을 장식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기도 하다. 그 3·1운동이 백주년을 맞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백(百)은 완전수요, 완성의 동의어다. 백일기도·백화점·백과사전·백발백중 등에서 보듯 백은 '모든 것', '완전함' 등과 관련이 있다. 백의 순우리말은 '온'인데, 모두를 뜻하는 '온통', '온갖'도 여기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3·1운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은 이병헌의 '삼일운동비사'(1959)와 홍성원의 대하소설 '먼동'(1992), 그리고 횡보 염상섭의 대표작 '만세전'(1922)이다. '만세전'은 아내의 부고를 받아든 동경유학생 이인화의 귀국 과정과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을 그린 중편소설이다. '만세전(萬歲前)'이라는 제목이 말하듯 시간적 배경은 만세 이전의 시기 곧 3·1운동 이전의 시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분단극복이라는 민족적 과제와 이상사회 건설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3·1운동의 정신은 여전히 미완의 상태 곧 '만세전'의 상황에 머물러 있다. 오암 이병헌(1896~1976)의 '삼일운동비사'(이하 '비사')는 3·1운동 연구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는 저서이다. 1천17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비사'를 쓴 이병헌은 경기도 진위군 권관리, 즉 현재의 평택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민도는 유학자였음에도 일찍 동학에 입도했다. 부친의 영향으로 오암도 동학에 투신했으며, 의암 손병희의 각별한 신임을 받으면서 천도교 수원 지부를 창설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평택에서 태어나 서울을 오가며 주로 수원에서 활약한 애국지사, 이를테면 평택시민과 수원시민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경기의 문화인물이며 국가유공자다. 오암의 '비사'는 '독립선언서'를 비롯하여 49인의 애국지사들에 대한 취조서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지역별로 정리해놓고 있다. '비사'에 따르면, 경기도의 만세운동은 수원군 23건과 인천부 4건 등을 포함 모두 119차례에 걸쳐 전개됐다. 요즘처럼 빅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실증적으로 자료를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더러 부분적인 오류나 신뢰하기 어려운 기록도 있기는 하다. 가령 '비사'에는 3월 1일 수원 방화수류정(용두각)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아쉽게도 일제 측 자료와 『매일신보』 기사 등 어디에서도 당일 수원에서 만세운동이 있었다는 기록이나 정황 증거를 확인할 수 없다. 연구에서 정확성과 실증은 양보할 수 없는 대원칙이다. 오암의 '비사'는 정확성과 실증에 방점을 찍고 있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비사'는 실증을 압도하는 정신에 가치가 있다. 해방된 조국에서도 여전히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정부를 비롯해서 그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았던 3·1운동에 대해 고군분투하며 이를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해주려 했던 오암의 고귀한 정신과 혼신의 글쓰기가 바로 그것이다. 팔만대장경이 마음 심(心)자 하나를 이길 수 없듯 때로는 한 개인의 정성과 정신이 국가와 사회 전체를 앞지를 수 있다. 백년을 맞이하는 3·1운동이 살아있는 정신이요 우리의 역사적 과제로 남아있는 한 '비사'는 재야사학이 아니라 '정사(正史)'이며, 흘러간 '고서'가 아니라 동시대성을 갖는 엄연한 역사서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9-02-10 조성면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무평불피: 평지에 비탈이 없을 수 없다

새해 바다 건너 미국대통령 트럼프의 메시지가 전해온다. 최강대국의 국정운영방안은 여타의 나라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소홀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크다.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니 프레임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미국!' 연설을 들어보니 앞으로 세계도 어려운 한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 삶의 주체를 무엇으로 규정하는가의 철학의 문제는 중요하다. 과연 개인과 국가나 민족 등이 우리 삶의 주체가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현실적인 차원에서 보면 개인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사회주의 등으로 규정하면서 다양한 수사를 동원하여 규정짓는다. 이른바 프레임이다. 트럼프의 연설을 들어보니 그가 구사하는 프레임은 이것이다. '미국은 배타적인 최고를 지향하고 당신들은 미국의 국민이다.' 이 연설은 미국인에게 한 대내적인 연설이긴 하지만 뒤집어보면 향후 세계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된다. 그러므로 이 아이디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배타적인'이라는 단어이다. 남을 배척한다는 '배타(排他)'라는 말은 '이타(利他)'나 공존(共存)을 지워버린 생각이다. 다시 말해 남을 밀쳐내고 내가 사는 것이 미국의 애국자이고 영웅이라는 주의이다. 그러므로 미국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살면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우주의 무한공간을 미국에 묶어놓았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 인해 최근 일시적으로 집중된 미국의 힘을 과시하면서 시간도 그의 재임 기간에 묶어놓는다. 무한한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한시적으로 한정적으로 묶어놓고 그 안에 사는 미국인은 행복하니 그것을 계속 지키기 위해서는 계속 배타적으로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연설의 요지이다. 그러나 주역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영화는 한시적이고 한정적이라고 말한다. 마치 평평한 땅을 계속 걷다 보면 반드시 비탈을 만나게 되니 조심하고 자만하지 말라고 하였다. 현재 최강대국의 정치경영인식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2-06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현주미담: 물의 맛은 담박하다

최근까지 맛이 키워드이다. 먹거리가 주목받으면서 먹는 것이 방송의 주요 재료로 등극하였다.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바로 연예인들의 먹는 모습이다. 이른바 먹방이 유행하면서 맛에 대한 관심과 흥미도 더해졌다. 심지어 최근에 자율감각쾌락반응(ASMR)이라 하여 맛을 청각화하여 들려주고 듣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맛이라 하면, 오미(五味)라 해서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짠맛을 이야기하였다. 전통적으로는 이 맛을 가지고 오행에 배속시켜 요리나 약재로 건강을 증진시키는데 주력하였다. 이때 맛의 키워드는 조화이다. 조화란 오미를 섞는 것뿐 아니라 그 음식을 먹는 사람과의 궁합이나 적합성을 뜻한다. 그 사람과 궁합이 맞으면 그 음식의 맛은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좋지 않은 맛이다. 이런 조화의 정신은 계승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언제나 인정받으며 궁합이 맞는 최고의 맛은 무얼까? 중국의 역학자 소강절은 맹물의 맛을 들었다. 예전에 제사 지낼 때 발효된 술 대신 맑은 물을 올리는데 이를 현주(玄酒)라 한다. 현(玄)이란 검다는 뜻이 아니라 가물가물하여 정체를 헤아리기 힘들다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현주(玄酒)를 번역하면 '현묘한 맛' 정도가 될 것이다. 맹물이 현묘한 맛을 낸다는 뜻을 포함한다. 아무리 맛있고 강한 맛이 뇌신경을 자극해도 그 맛을 매일 맛보라고 하면 얼마 못가 질리는 법이다. 그렇지만 물은 매일 맛보아도 담담할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물은 맛보지 않으면 목숨을 유지하기 힘들기에 계속 맛보아야 하지만 자극적인 음식의 맛은 맛보지 않아도 사는데 지장이 없다. 사람도 그렇다. 새해를 맞으며 서로에게 오랜 소중한 사이로 남으려면 물을 마셔보고 그 담박한 맛을 기억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1-30 철산 최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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