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사동 234번지와 242번지 사이 100여척 배 오가던 안산 마지막 포구 이방인에게 보금자리 되어준 곳 저는 '안산토박이'입니다. 안산에서 태어나 안산에 있는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렇게 서른해 동안 안산 곳곳을 누비며 살아왔습니다. 덕분에 '안산의 아들'이라는 닉네임(?)을 얻었고, 그 덕에 레트로K 안산편 취재에 참여했습니다. 안산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했던 저도 불과 30년 전까지 안산에 어업을 하던 포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어촌보다는 '공업도시', '계획도시', '이주민의 도시', '세월호의 도시'가 제게 더 친숙하기 때문이죠. 반월국가산업단지가 위치한 공업도시 안산은 대표 관광지인 대부도가 있어 서해와 밀접한 바닷가 도시이기도 합니다. 저도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엔 대부도로 소풍을 많이 갔습니다. 방아머리 해수욕장에서 밀물 땐 물장구를, 썰물 땐 갯벌 체험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성인이 돼서는 광활한 서해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보기 위해 차를 몰고 구봉도 낙조 전망대도 여러 번 갔죠. 이들 대체로 안산 중심에서 차를 타고 1시간 이상은 가야 하는 지역입니다. 그렇게 보니, 안산의 본질은 '어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성곶포·조구나루·원당포·별망포구·사리포구 등 조선 후기 때부터 번성했던 포구와 나루가 한둘이 아니죠. 외곽지역에서만 어업을 했던 건 아닙니다. 시 중심부에서 차로 10분, 걸어서 30분이면 갈 수 있는 사동 호수공원도 한때는 주말에 많으면 수천 명이 찾는 포구였습니다. 포구의 이름은 사리포구. 30년 전까지 이 공원에 100여척이 넘는 배들이 왔다 갔다 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안산 사동 234번지와 242번지 사이에 위치해 있었던 사리포구는 1950년 형성돼 1999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1987년 시화방조제가 건설되기 시작하면서 배들이 경기만으로 나갈 수 없게 되자 제대로 된 어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죠. 50년 가까이 안산 시민과 경기도민의 일터이자 관광지였던 사리포구는 안산의 마지막 포구였습니다. 그나마 안산 시민들에게 친숙한 이름이죠. 50년 전 사리포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30년 가까이 흐르는 지금 포구에서 일했던 주민들은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사리포구를 일군 건 6.25 전쟁 이북 실향민과 댐건설로 살 곳을 잃은 호남지역 이주민들입니다 사리포구를 일군 건 국가도, 지자체도, 안산 토박이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1950년 6.25 전쟁 당시 이북에서 넘어온 실향민들과 1962년 정부의 섬진강 다목적댐 건설로 살 곳을 잃자 안산으로 온 호남 지역 이주민들입니다. 말투, 고향, 출신, 배경 등이 다른 이주민들은 오로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똘똘 뭉쳤습니다. 어업 경험이 있던 실향민들이 주로 배를 몰았고, 호남 지역 이주민들 가운데 남자는 선원 생활, 여자는 생선 장사를 했죠. 이처럼 지역 주민들이 똘똘 뭉쳐 만든 사리포구는 1980년대 전성기를 맞습니다. 80년대 시화반월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안산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 찾는 손님이 많아졌기 때문이죠. 또 사리포구는 주변 풍경이 아름답고 거리가 가까워 주말이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오는 휴양지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리포구의 수산물시장인 물량장에선 매일 배에서 어획된 25~30t(톤)가량의 싱싱한 새우, 꽃게, 가재, 망둥이 등이 주로 판매됐습니다. 특히 김장철엔 새우젓을 사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는 일화가 참 유명하죠. 한창 잘 나갈 땐 147척의 배가 상시 어업하고, 270여개의 횟집과 포장마차에선 다라이(대야)를 가져다 놓고 손님들을 반겼다고도 합니다. 하도 손님들이 많아 주말이면 차 댈 곳이 없었고 장사가 너무 잘돼도 너무 잘돼, 사리포구에선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사리포구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했던 노영자(71)씨는 당시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놀러오기 좋은 곳이라 인기가 좋았어요. 물 들어올 때 되면 여자손님 업고 뛰어다니고 그랬는데 참 재미있었어요. “덕적도에 살다가 6살 때 사리로 이사 왔어요. 부모님이 실향민이셨고 초창기에 아버지가 배를 가지고 어업을 하셨어요. 아버지가 처음 사리포구에 왔을 때, 정말 아무것도 없는 동네였어요. 아버지가 고기를 잡아오면 엄마가 다른 동네로 나가 쌀로 받아오고, 다른 먹을 것으로 물물교환해서 오면 그걸로 생계를 이어 나갔어요. 그러다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고, 아버지 처럼 배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점점 포구의 모습이 돼갔어요. 우리같은 2세대들이 성장하면서 이제 갓 잡아온 생선을 회로 썰어 파는 좌판들도 생기고 횟집들도 생기구요. 저도 남동생이 배 타서 잡아온 고기로 포구에서 포장마차를 차려 장사했죠. 그때 얼마나 장사가 잘됐냐면, 소래포구보다 우리가 훨씬 인기가 더 좋았어요. 주말되면 큰 버스가 수십대가 몰려와서 따로 버스 주차장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수원, 안양 같이 인근에서도 오기 좋고 서울 사람들도 주말에 왔다 가기가 좋잖아요. 손님들이 회 먹고 술 마시다 보면 물이 막 들어올 때가 되거든요. 저희가 여자 손님들은 막 업고 뛰어나오고 그랬는데, 참 재미있었어요." 영자씨는 힘들었지만, 힘든 줄도 모르고 신나게 장사하면서 이웃들과 돈독한 정을 나눴던 그때를 참 그리워했습니다. 사리의 맛은 인심이었어요. 그 집 숟가락 몇갠지 알 정도로 친하니까요. 어려서부터 먹고 살려고 일 밖에 안했는데 저는 그게 다 추억이에요. 그냥 우리를 사리에 두었으면 더 잘 살지 않았을까 싶고… “우리 사리의 맛은 '인심'이었거든요. 서로 아끼고 도와주면서, 인심이 정말 좋았어요. 좌판에서 같이 장사하면서 밥도 같이 해먹고 함께 놀기도 했어요. 그 집 숟가락이 몇갠지 까지 다 알 정도로 친하니까요. 특히 남자들은 고기를 잡고 여자들이 좌판에 나와 장사하면서 아이들도 키우고 어른들도 모시고 했단 말이에요. 사는 모습도 비슷하고 서로서로 집안 경조사도 챙겨주고 하다보니 우리끼리 '맏며느리 모임'을 만들자 했고 그게 벌써 30년 째 한달에 한번, 지금까지 만나고 있어요." 1997년 사리포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후에, 사리포구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영자씨는 그때 오이도로 넘어와 다시 장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이도로 옮긴 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어갔지만, 사리포구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영자씨가 운영하는 횟집 이름은 '사리공주네'. 영자씨의 출발이 사리였다는 걸 꼭 알려주고 싶었답니다. “다 사라진 것에 대해서 생각하면, 서글퍼요. 아직도 그 근처에 사니까, 출퇴근길에 '사리 사거리'를 지나거든요. 어려서부터 줄곧 먹고 살려고 일 밖에 안해서 장사한 게 전부인데, 저는 그게 다 추억이에요. 우리를 그냥 사리에 두었으면 더 잘 살지 않았을까 싶고.." 사리포구 가는 길엔 꼬마 협궤 열차도 있었습니다. 1937년 일제강점시 시절 만들어져 1995년 폐선된 수인선을 다니던 열차였죠. 사람들은 동명의 역인 사리역에서 내려 사리포구를 찾았습니다. 사리역을 만들 때도 사리포구 주민들의 강한 생활력이 또 한 번 발현됩니다. 당시는 버스 노선이 많지 않았기에 주민들의 교통은 오직 수인선 협궤 열차 하나였습니다. 사리포구 주민들 입장에선 가장 가까운 거리가 좀 있는 일리역(현재 한대앞역 인근)이었죠. 주민들은 직접 땅을 내놓거나 정부에 요청하는 등 끈질긴 노력 끝에 1966년 간이역 임시 정류장인 사리역을 세웠습니다. 영화 <기적>처럼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거죠. 이들의 염원이 열차를 달리게 했습니다. 그렇게 1995년 폐선될 때까지 수원행엔 통학하는 학생들이, 인천행엔 농작물을 재배해 판매하는 보따리 상인들이 협궤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앞사람과 무릎이 닿을 듯 말 듯 좁디좁은 객차였지만 열차엔 사리 주민들의 설렘, 희망, 피로가 서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사리역을 추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리포구에 맏며느리 모임이 있다면, 사리역 주변 마을에선 막내로 태어나 학창시절을 같이 보낸 이들이 만든 모임도 존재합니다. 한우물 모임, 일명 '막둥이 모임'이라고 불리죠. 9살 차이가 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형, 동생하면서 40년 넘게 만남을 이어오고 있답니다. 가깝게는 수원, 멀게는 의정부까지 몸은 안산을 떠났지만 마음은 언제나 함께라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1987년 시화방조제 착공이 본격화되면서 사리포구의 운명도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방조제가 완공되면 바다로 나가는 길이 막혀 어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죠. 심지어 사리포구 사람들은 공사가 시작된 지 모르고 있어 대응도 늦었습니다. 불이 한창 타오를 때 꺼져버릴 위기에 처한 셈이죠. 결국 시화방조제는 1994년 완공됐습니다. 따라서 사리포구에서 경기만으로 향하는 뱃길도 막혔습니다. 50년 가까이 지속됐던 어업은 끝이 났고, 어촌계를 꾸리며 활동했던 지역 주민들도 사리를 떠나면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사리역도 같은 운명을 걸었습니다. 버스 노선이 확대되면서 수인선 승객들이 줄었습니다. 협궤 열차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1995년 폐선에 이르렀죠. 1937년 3월부터 운행했던 수인선은 1995년 12월 31일 마지막 운행을 끝으로 멈췄습니다. 사리포구가 사라진 자리엔 안산 호수공원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습니다. 호수공원은 매일 산책하는 시민들로 붐빕니다. 시민들은 여기서 운동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돗자리를 펴 휴식을 취합니다. 한때 이곳이 드넓은 경기만으로 향하는 뱃길이었다는 사실은 사리포구 역사를 기록한 조그만 비석만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리역은 2020년 수인선이 재개통되면서 새 역사로 재탄생했습니다.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선됐지만 25년 만에 교통 편의라는 이유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보다 더 쾌적한 환경에서 더 멀리 갈 수 있지만 예전 분위기를 느낄 수 없어 아쉬워하는 주민들이 많습니다. 협궤 열차가 달렸던 철길은 그대로 방치된 게 대부분입니다. 일부 구간만 추억을 위해 모형 열차를 세워두고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사리포구와 옛 사리역의 역사를 기록하는 모임이 안산 사동에 있습니다. 2015년 결성된 사동지역사모임입니다. 사동지역사모임의 신대광 선생님은 사리포구와 사리역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서로 다른 이주민들이 사리포구에서 어떻게 뭉쳤을까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주민이라서 뭉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려면 마을을 함께 만들어야 공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사리포구의 역사를 아는 게 중요한 이유가 이 때문이죠. 하지만 사리포구와 옛 사리역을 추억할 수 있는 유산은 방치된 상태에요. 꼬마 열차가 다니던 빈정철교만 하더라도 안산과 화성 경계에 있어 아무런 지자체도 신경 안 쓰고 있죠. 좋은 지역 문화유산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지자체에서 나설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강산이 네 번 흘러가는 동안 어촌 마을은 수도권 최대의 공업도시로 바뀌었습니다. 포구는 공원이 되고, 누군가의 고향과 인심 넘치던 지역 공동체는 사라졌습니다. 이주민들이 지역 주민으로 거듭나면서 일군 사리포구와 옛 사리역은 이제는 현존하지 않습니다. 다라이와 꼬마 협궤 열차에 담겼던 희망과 추억은 이제 책이나 사진,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중앙 주도의 개발 시대에서 지역이 놓쳤거나 포기해야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비석에 새긴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중앙 주도 개발 시대가 지역에 남긴 흔적을 되짚어보는 지금, 부활한 사리역에선 열차가 오늘도 안산시민들의 설렘, 희망, 피로가 담긴 이야기를 싣고 달립니다. /김동한·공지영·김대훈기자 dong@kyeongin.com
'우리나라는 아니겠지' 우리가 무심한 사이, 조용했지만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4년 연속 전국의 하수처리장에서 마약류 검출 여부를 조사했는데, 모든 하수처리장에서 4년 연속 빠짐없이 '필로폰'이 검출됐다. 그 외 암페타민, 엑스터시, 코카인 등 다양한 마약성분까지 '골고루' 나왔다. 경기도와 인천은 전국 최대치로 필로폰이 검출됐다. 가장 많이 검출된 지역은 경기도 시화하수처리장이다. 천명당 일일 평균 사용추정량이 4년연속 제일 많은데, 4년 통틀어 평균값이 124.31㎎이다. 그 외에도 수원, 굴포, 안산, 석수, 성남, 안양(박달) 순으로 필로폰이 검출됐다. 경기 시화 다음으로 높은 곳이 인천 남항하수처리장이다. 남항은 4년 평균값이 67.84㎎이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센터장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전국 하수처리장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이제 마약이 안퍼진 곳이 없다"며 “마약중독과 관련한 모든 것을 이제 우리 사회의 양지로 꺼내야 한다. 이제 양지에서 예방교육을 해야 하고, 양지에서 치료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괜한 말이 아니다. 사실 정부도 이미 알고 있다. 마약중독은 범죄이면서 병이라는 사실을 깊게 인지하고 있다. 경기도도 잘 알고 있다. 다만 '대놓고' 말하지 못할 뿐이었다. 정부도 집중단속·적발과 함께. 치료와 재활에 방점을 찍는 추세로 정책을 내고 있다. 올해 3월부터는 마약류 투약이나 중독으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24시간 전화상담이 가능한 '1342 용기 한걸음센터'를 구축, 익명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권역별 치료보호기관과 재활서비스제공기관 등을 확대해 접근성 개선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전국 최초로 공공마약 중독치료센터를 시작했다. 경기도는 지난달 24일부터 용인 경기도립정신병원 내에 마약류 치료 '전담'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마약중독자만을 전담으로 맡겠다는 의지다. 시작은 10병상, 안정실 3병상이지만 이용 수요 등을 보고 병상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문을 연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현재 3명이 입원했다. 경기도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도 그 심각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최소한 마약 중독을 회복하려는 의지가 있는 경기도민이 마약 치료를 위해 인천 참사랑병원으로, 경남 국립부곡병원으로 '원정'까지 가서 또 무한정 대기하다 치료 골든타임을 놓치는 상황만은 막겠다는 취지다. 병원 관계자는 “유선 상담 문의 등 중독자들의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며 “치료 뿐 아니라 재활센터, 자조모임 연계, 지역사회 연계서비스 제공 등 회복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뒤를 이어 서울시도 오는 10월, 은평병원에 서울시마약관리센터를 만들어 상담과 검사, 치료·재활, 마약 관련 학술 연구까지 포괄적인 기능을 담아 운영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공공이 마약 치료·재활의 적임자 전문가들은 공공이 마약 치료·재활을 도맡아야 되는 적임자라고 강조한다. 수익성을 따질 수밖에 없는 민간의료기관에선 제대로 마약 치료·재활시설을 운영하기 어렵다. 공공의료기관들이 나서 안정성을 바탕으로 치료와 관리를 담당하는 컨트럴타워가 돼야 한다. 이렇게 정부 및 지자체가 마약중독 치료·재활 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중요한건 이제부터다. 치료재활시설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한 의료진, 행정적 연계 시스템 등 확실한 체계가 갖줘져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다. “청소년 마약사범은 정말 많이 늘었어요. 우리 병원 입원환자 중 15%가 청소년이에요. 외래진료에서도 심심찮게 볼수 있습니다. 제가 치료한 환자 중 가장 어린 친구가 중학교 1학년이었어요." 김재성 인천 참사랑병원 원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숙하게 청소년이 마약문제에 시달린다고 했다. “약물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깊이 아이들 사이에 파고들었어요. 불우한 가정환경을 가졌거나, 지나치게 입시 압박을 받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찾는 게 값싼 마약이에요. 치료한 청소년 환자들이 '반 친구들 절반은 다 쓴다' '노는 친구들은 다 필로폰을 하는데, 치료받는 얘들은 없다'고 말하는 경우를 많이 봤죠." 배한진 변호사도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다. “마약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게 체감이 돼요. (사무실로) 10대 청소년이 부모님과 같이 상담을 오는 일이 늘었죠. 청소년 마약문제는 아무래도 법적 지식이 없고, 판단력 자체가 미숙하니 범죄 자체가 대형급으로 확대돼 입건되는 경우가 많아요. 쉽게 말해 비행청소년의 일탈행위가 최근엔 마약으로 넘어오는 그런 상황이죠." 범죄에 대한 무지를 떠나 투약 후 부작용에 대해서 아무런 판단력이 없는 청소년들은 '호기심'으로 마약을 접하는데, 텔레그램 등 온라인 마약판매는 이들의 무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최적화돼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텔레그램이 청소년 판매를 위한 홍보에 주력하고 있어요. 홍보 부서를 마련하고 새로운 투약자를 만들기 위해 이벤트를 열기도 해요. “텔레그램이 친숙한 청소년들에게 아예 텔레그램 안에서 기업화돼 (청소년 판매를 위한) 홍보에 주력하고 있어요. 광고메뉴판에 마약을 광고하는 홍보부서가 있고, 새로운 투약자를 계속 만들기 위해 마약방 참여하면 무상지급하겠다는 이벤트성 무료 (마약) 던지기도 해요. 결국 그동안의 예방교육이 잘못된 겁니다. 마약의 종류가 어떤건지, 살빼는 약 등 의약품도 왜 위험한지, 초중고 수준별로 자세히 알려줘야 하고, 학교·학급에 모여서 서로 이야기하면서 토론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중독이 되지 않게끔 '마음'을 상담하고 단련하는 교육도 필요하구요."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센터장은 청소년이 마약을 투약하는 건 '정부의 책임'이라고 꼬집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마약을 했다는 건 그 책임은 정부에 있는 거에요. 예방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을 겁니다. 지금 20·30대 성인들도 금연·성교육은 받았겠지만 마약은 받아본 적이 없어요. 교육도 못받아본 상태에서 사회 인식은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같이 마약에 대한 경각심 조차 없으니, 마약에 대한 경계가 없는 거에요. 마약예방교육에 집중하지 않는 교육부, 정부가 문제입니다. 그나마 요즘 학생들은 이제서야 교육을 시작하고 있어요. 의료용 약물사용법이나 약물관리 등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하나하나 짚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마약중독을 간병하는 '가족'을 위한 지원도 튼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활하고 회복하는 과정은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다. 아들이 교도소에 간 날 제 삶도 무너졌어요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 때문에 숨었어요 곪을대로 곪아 우울증까지 왔습니다 김재성 인천 참사랑병원 원장도 가족의 힘을 강조했다. “회복과정에서 혼자 있는 게 가장 위험해요. 누군가의 지지나 애정어린 감시, 위로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만 하는데, 아무래도 가족이 함께 해야 하죠. 그러려면 가족이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하는지 가족교육이 필요하고 회복을 위한 가정환경도 필수적입니다." 특히 취재진이 만난 가족들도 마약중독자를 간병해야 하는 가족의 어려움과 지원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마약중독에 빠진 아들을 구하기 위해 해외를 떠돌다 결국 자수했고, 변호사에게 더 강한 처벌을 요구해야 했던 이선민 기독교마약중독연구소 이사장도 아들을 간병하며 무너졌던 지난 날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들이 마약중독으로 교도소에 간 날, 제 삶도 무너졌어요. 부모가 똑같은 죄인이 되는거죠. 마약중독은 범죄에 연루된,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니까 가족이 다 같이 숨었어요. 우리 역시 (해외생활을 한 것도) 그게 아들을 지키는거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곪을대로 곪아 우울증까지 왔습니다." 마약중독자 가족의 이야기는 이제껏 조명받지 못했다. 마약에 대한 편견은 중독자를 음지로 몰아넣었다. 곁을 지킨 가족의 삶도 온전할 수 없었다.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들이 숨어버리면,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요. 치료받지 못하면, 마약중독의 끝이 죽음인 것처럼 가족들도 끝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정도로 폐해가 심각합니다." 우리가 만난 또 다른 가족인 이경선(가명)씨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가족들 모두 치료를 받아야 해요. 아이가 구속됐을 때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순간적인 해리가 올 정도로. 가족 중 누군가 마약중독이라면, 가족이 같이 마약퇴치운동본부를 꼭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너무 무섭겠지만, 부모가 아는 만큼 도울 수 있어요. 마약에 대해 배우고, 알면 안심이 되고 같이 위로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도 5년 전부터 마약중독자를 간병하는 가족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가족을 위한 치료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또 마약중독자 가족들이 모이는 자조모임도 유일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만큼 마약중독자의 가족을 교육하고 치료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에게 다시 묻는다. 마약중독은 여전히 범죄일 뿐인가. 마약중독의 다른 얼굴, 질병코드 T40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가./ 끝 /공지영·이시은·이영지기자 jyg@kyeongin.com
대기업 불법파견 '꼼수' 리포트 23명 목숨 앗아간 화성 리튬전지 제조공장 아리셀인건비 낮고 처우 덜 보장받는 하청업체 외국인들사측은 정규직처럼 근무시켜놓고 '직접고용' 안해최근 불법파견 인정하는 법원 판결 속속 나오지만기업들 본사 아닌 자회사 만들어 정규직 고용 우회소송제기하지 않겠다는 조건의 '합의서'까지 요구현대위아·롯데케미칼·포스코·현대제철·SPC 등하청노동자들 불법파견 소송 제기하자 편법 도입최종 판결까지 오래 걸리는 점 악용, 회유·협박도긴 투쟁에 지친 노동자들, 울며 겨자먹기로 '사인'본사보다 낮은 임금 악조건에도 不제소합의 족쇄 정규직 고용은 기업에 부담이다. 비용 절감을 추구하는 시장경제 본령상 인건비가 저렴한 비정규직이나 하청노동자로 대체하고 싶은 것이 기업의 심리다. 다만 정도가 과하면 고용불안이 만연하고 노동약자를 양산할 여지가 커진다. 그래서 국가는 법으로 기준을 정했다.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의 보호받을 권리를 명시했고, 파견법은 적정한 하청업체 운영 방식과 하청노동자 처우 등을 규정했다.그래서 '불법파견'은 문제다. 법을 넘어선 과도한 외주화로 정규직 고용을 회피하고 하청노동자 처우를 침해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한 달 전 대형화재가 발생한 화성 리튬전지 제조공장 아리셀도 그랬다. 숨진 노동자 23명 중 대부분은 인건비가 낮고 처우를 덜 보장받는 하청업체 외국인이었다. 사측은 정당한 도급 계약을 맺었다고 해명했지만, 숨진 노동자들이 사실상 정규직처럼 근무해 왔다는 정황은 뚜렷해지고 있다. 이들은 합당한 처우는커녕 기초적인 안전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타지에서 일하다 숨을 거뒀다.다행히 최근 기업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속속 나오고 있다. 아리셀 참사 사망자들처럼,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외양만 하청노동자인 이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법원 명령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기업이 대응하는 방식은 최근 새로운 양상을 띤다. 하청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겠다며 동시에 그룹 내 자회사를 새롭게 만들고, 본사가 아닌 신설 자회사 정규직 고용을 절충안으로 내세우는 식이다. 조건으로 향후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합의서까지 받는다.소송만 수년, 기나긴 투쟁에 지친 하청노동자들은 그나마 나은 처우라도 받기 위해 자회사 채용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꼼수'라고 비판하는 일부는 몇 년이 걸리든 정당하게 본사 직접 고용 결정을 받아내겠다며 지금도 법정으로 나선다. 10년 전 250여명으로 시작해 현재 14명 남은 금속노조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소송단도 그들 중 하나다.■ "직접 고용하라" 최후의 14인 법원으로"직접고용 하라는데 자회사가 웬말이냐!"김호성(56) 지회장은 지난 5월 수원지법 평택지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2020년 소장을 접수하고 4년 만에 얻은 결과다. 원고는 김 지회장을 포함한 현대위아 평택공장 사내하청업체 직원 15명(1명 포기)이고, 피고는 현대위아 주식회사다.원고 측은 피고에 '고용의사표시'와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하청임에도 사실상 정규직처럼 일을 시켜온 사측에 정당하게 직접 고용하고 그동안 정규직으로 받아야 했던 임금만큼을 배상하라는 취지였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고용의 의사표시를 하라"면서 13억여원을 배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김 지회장의 손을 들며 사측이 불법파견을 해왔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그러나 아직 1심이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고 직접 고용이 이행되려면 수년이 더 걸릴 것은 뻔하다. 사측은 지난달 항소했고 수원고법에서 열리는 2심은 아직 첫 기일도 지정되지 않았다. 앞서 동료 하청노동자들도 그랬다. 2014년 처음 문제를 꺼낸 1차 소송단 64명은 7년이 지난 2021년에야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2차 소송단 33명은 2017년부터 2022년까지 5년이 걸렸다.장기전은 예상하고 있었다. 문제는 회유다. 김 지회장이 3차 소송단 대표로 소장을 접수한 2020년 현대위아는 신규 자회사를 설립했다. 향후 평택공장을 신규 자회사로만 운영하고 기존 사내하청업체는 울산공장으로 이전시킨다며 하청노동자들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승계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조건도 있었다. 당시 진행되던 불법파견 소송을 모두 취하하고 향후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부제소합의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평택공장에서 부제소합의를 전제한 자회사 채용을 거부하는 하청노동자들은 울산으로 강제 전보된다는 뜻이었다.김 지회장을 비롯한 1~3차 소송단은 이를 '꼼수'이자 '협박'으로 받아들이고 불복했다. 그러나 대다수가 뜻을 같이하진 않았다. 당시 지회 추산 전체 하청노동자 250여명 중 120여명이 자회사 채용을 택했다. 법적 다툼에 동참해도 적어도 수년은 버텨야 하는데, 대부분 하루 생계를 걱정하는 입장에서 터전을 옮기면서까지 투쟁을 감수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는 1차 소송의 승소 확정 판결도 나오기 전이어서, 지난한 다툼 끝에 결국 패소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절반 가까이 자회사로 넘어가고, 먼저 확정판결을 받은 1·2차 소송단 97명은 결국 직접고용이 이뤄져 본사 정규직으로 일하게 됐다. 불법파견 인정 대상은 3차 소송단만 남은 셈인데, 회유는 현재 진행형이다. 당초 김 지회장과 함께 소송을 준비한 인원도 26명에서 일부가 자회사 채용을 택하거나 포기하고 다른 직장을 찾으면서 14명으로 줄었다. 더구나 평택공장이 2년 전 자회사만의 설비로 재편되면서 소송단은 졸지에 '해고 투쟁'까지 나서게 되는 악재까지 겹쳤다.그럼에도 김 지회장은 얼마나 더 걸리든, 1심 승소를 시작으로 정당한 직접 고용을 받아내겠다고 다짐한다. 앞서 정규직 직접 고용을 쟁취해낸 1·2차 소송단 동료들과도 멀리서나마 경제적 지원 등으로 응원을 보태고 있다고 한다. 김 지회장은 "직장을 잃고 각자 숨만 쉬며 살 길을 알아서 찾는 상황이지만, 정당하게 받아낼 것은 받아내고자 끝까지 투쟁하려 한다"고 했다. 금속노조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소속 하청노동자들이 현대위아 평택공장 내부와 대법원 등에서 집회를 열고 사측의 파견법 위반을 규탄하며 정규직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모습. /지회 제공■ 시간 빌미로 하청노동자 옥죄는 '자회사 꼼수'현대위아뿐이 아니다. 불법파견 소송에 연루된 굴지의 대기업들이 그룹 내 자회사를 통해 합법적으로 이중노동구조를 유지시키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당장 생계가 힘든 하청노동자들이 최종 확정판결을 받으려 해도 수년씩 걸리는 점을 빌미로 '회유'와 '압박' 목적으로 자회사를 제시하는 방식이다.롯데케미칼은 2019년 하청노동자 400여명이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하자, 지난해 6월 일부 사내하청업체들과 계약을 종료하고 하청노동자들을 자회사로 직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원고로 참여한 노동자 중 310여명이 이탈했고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포스코는 2022년 하청노동자 55명의 불법파견 소송에서 11년 만에 최종 패소했고, 이후 당해만 1천여명에 달하는 하청노동자들이 추가로 포스코에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자 포스코는 지난해 초 6개 자회사를 새로 설립할 계획을 발표,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직원을 우선채용하는 등 장기적으로 하청업체들을 통폐합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제철도 2011년 하청노동자 160여명의 불법파견 소송에서 13년 만인 지난 3월 최종 패소하고 직접고용명령을 받았는데, 소송과 동시에 2021년부터 올해까지 전국 4개 공장을 신규 자회사로 전환하면서 하청노동자들을 채용하고 있다.자회사라 해도 처우가 정당하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자회사들은 대개 본사보다 낮은 임금 수준과 부제소합의 등 악조건을 전제로 채용하는 탓에 약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불법파견을 주장한 제빵사들에게 사회적 합의 이행까지 약속하고 자회사 '피비파트너즈'를 설립해 채용한 SPC의 경우, 합의 이행 여부를 두고 6년여 동안 노사 갈등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특정 노조를 와해하려는 시도가 경영진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의혹으로 허영인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구속기소되기도 했다.김유정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장)는 "법원에서 직접 고용 명령을 받았다면 당초 본사 정규직과 같은 업무와 같은 임금이 주어지는 것이 합당한데, 대법원 판결까지 시간이 너무 걸리다보니 하청노동자들이 회유를 못 이기고 일부라도 보장받기 위해 스스로 절충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부제소합의 등을 전제로 한 채용의 위법성은 아직 법원의 판단을 받은 전례가 없기 때문에 향후 특정 사건을 계기로 자회사 설립의 적법성이 다퉈질 여지는 있다"고 했다. /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생성형 AI(인공지능) 미드저니로 만든 그림을 그래픽기자가 재가공한 이미지.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금속노조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소속 하청노동자들이 현대위아 평택공장 내부와 대법원 등에서 집회를 열고 사측의 파견법 위반을 규탄하며 정규직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모습. /지회 제공금속노조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소속 하청노동자들이 현대위아 평택공장 내부와 대법원 등에서 집회를 열고 사측의 파견법 위반을 규탄하며 정규직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모습. /지회 제공
안녕하세요 중독자 OO입니다 안녕하세요 성별도, 나이도 제각각인 30여명의 사람들이 긴 책상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인사를 나눴다. 이름 대신, '닉네임'으로 나를 소개하면,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반갑게 인사했다. 지난달 13일 늦은 오후, 서울시 영등포에 위치한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찾았다. 이 날은 마약중독자들이 매주 모여 자조모임 'NA'를 하는 날이다. 취재를 위해 참관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가만히 있겠다'는 약속을 한 터였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으니,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하면서 살짝 긴장도 됐다. 약속시간이 다 되자 하나둘 사람들이 모였다. 구면인듯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이들도 있고, 몇몇은 어색한 듯 긴장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평범했다. 마약중독을 치료하는 중이라고 밝히지 않는다면 직장에서, 학교에서, 길거리에서 보는 평범한 이웃의 모습이었다. 사회자가 모임의 시작을 알리자 가장 먼저 '왜 우리가 이 모임에 왔는지'를 묵상하는 시간이 시작됐다. 모두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생각이 끝나면, “나는 마약중독자임을 인정한다"로 시작하는 NA 12단계 프로그램을 한명씩 낭독한다. 이 프로그램은 일종의 마약중독 치료를 위한 주기도문이다. 치료를 위해 중독자들이 항상 명심하고 지켜야 하는 일종의 규칙이다. 낭독이 끝나고 나면, 각자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꺼내놓는다. 모두가 마약중독을 겪었고 극복하는 과정에 놓여 있으니, 그 마음을 서로 이해할 것이라는 바탕에서 출발한다. 말하지 않는 것 역시 자유다. 가만히 듣고 있어도 괜찮다. 이곳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모임이 끝나는 동시에 '비밀'로 부쳐진다. NA 모임의 규칙인데, 그래야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어서다. “주약물은 필로폰이고요, 10여년 동안 (수사망에) 안걸렸는데, 살기 위해 자수했습니다" “6개월만에 모임에 참석했어요. 이직하고 바쁘게 지냈는데 이전에 마약을 하던 시절 알고 지냈던 친구가 교도소에 잡혀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마음을 다잡고자 오랜만에 모임에 왔습니다" “오늘 출소하자마자 NA 모임을 찾았습니다" “며칠 후에 선고재판이 있어 다음주 NA 모임엔 참석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연은 다양했지만, 서로의 고백에 진심어린 박수갈채를 보냈다. 마약중독의 굴레 속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걸 잘 알기에, 서로에게 보내는 공감과 응원이다. NA는 미국에서 시작된 마약중독자 자조모임으로, 한국에선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정기 모임은 18개로, 온라인 모임·영어 모임·성소수자 모임 등 형태는 다양하다. NA는 마약중독자들이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없어선 안되는 징검다리다. 이곳에서 중독자들은 서로의 경험을 교류하며 회복 의지를 다진다. 매주 NA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일주일을 참는 것 만으로 단약을 관리할 수 있어서다. 청소년 시절부터 투약하기 시작한 마약을 50세가 넘을 때까지 끊지 못하고 교도소를 드나들었던 김재현(가명)씨는 처음엔 NA 모임에 나오라는 권유를 받고 코웃음을 쳤다. 수십년을 마약범죄에 길들여진 그의 입장에서 NA 모임은 '마약 처음하는 사람들이나 가는 모임'정도로 여겼다. 그랬던 그는 이제 NA모임만을 바라보고 살고 있다. “NA 모임하며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행복을 알게 됐어요. NA에서 친해진 사람들과 같이 저녁먹고 서로 치료하는 이야기도 나누는 게, 그게 참 소소하지만 행복으로 다가오더라구요. 이전엔 계속 교도소에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했는데, 처음으로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회에 나와있어요. 다 NA 모임 덕분입니다." 재현씨는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마약중독자들에게 길잡이가 돼주고 싶어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한 대학교의 사회복지과 입학을 앞두고 있다. 그는 자신이 단약을 위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중독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사는게 목표다. 자조모임은 회복의지가 있는 마약중독자들이 사회를 향해 한 발씩 내딛을 수 있도록 돕는 건널목이다.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갈망에 대비해 마약중독자들이 단약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역할이다. 이는 NA 모임이 지금보다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NA 모임은 현재 서울, 인천, 부산, 대구 등 전국 대도시 중심으로만 운영되고 있어 모임에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기회가 적다. 심지어 지난해 기준 전국 마약사범이 가장 많이 적발된 경기도엔 자조모임이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NA 모임을 진행하게 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는 당초 마약 예방 목적으로 세워진 기관이지만, 최근엔 NA 모임과 같은 마약중독 재활에 집중하며 프로그램을 늘려나가고 있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센터장은 마약중독자가 단약을 이어가기 위해선 치료·재활·자조모임 모두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유기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치료기관은 갈망이 계속되고 재발하는 사람이 가야되고, 재활센터는 사회복귀를 위한 훈련장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자조모임인 NA는 중독 증상이나 경험을 고백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면서 공감하는 곳이죠. 12단계를 따라가면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사실 박영덕 센터장 또한 청소년 시절부터 20여년간 마약을 끊지 못했던 중독자였다. 그는 정신병원에 10번도 넘게 입원했을 정도로 단약과 재발을 반복했다. 마약을 끊고 싶었지만 끊지 못했던 시절, 상담받을 곳이 한 곳도 없어 괴로웠던 기억을 되새기며 지금은 중독자들의 단약을 돕고 지원한다. 누구보다 마약중독자들의 고통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마약중독자들이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마약을 접했을지라도, 결국엔 희망이 없어서 마약을 끊지 못하는 거예요. 물론 정부가 마약 치료·재활 예산을 점차 늘리는 등 인식을 바꾸려고는 하고 있습니다. 다만, 마약중독자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놓는게 중요한데, 지금은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정부가 전국에 마약류 중독재활센터 17개를 설치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센터가 제대로 잘 운영되려면, 저와 같이 각 센터에서 마약중독자 출신 회복가를 양성해서 관리하고 교육하는 게 이상적인 모델입니다" /이영지·공지영·이시은기자 bbangzi@kyeongin.com
"유럽선 축구 유니폼이 패션… 신포시장 어르신도 입는날 오길" 韓 대표팀·나이키·아디다스부터 최근 김민재 소속팀 콜라보 제작도인천Utd 창단 20周·SSG랜더스 등 고향팀과 작업 "행복했던 경험"글로벌 구단과 협업하며 스포츠 문화 확산 도움 "하나의 장르되길""신포시장의 할머니도 인천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자연스럽게 입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프로축구나 프로야구 유니폼은 '직관 갈 때 입는 옷'이라는 인식이 짙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니폼을 일상에서나 여행 갈 때 입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들이 마케팅 수단으로 유니폼의 일상화를 추구하는 게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했기 때문이다.축구를 주제로 한 패션 브랜드인 '오버더피치'의 최호근 대표는 유니폼과 스포츠 관련 상품의 일상화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그는 "팬이 아닌 사람도 축구 패션을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소화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며 "미국이나 유럽처럼 국내에서도 스포츠 유니폼을 자연스럽게 입는 문화가 퍼지길 꿈꾼다"고 했다.■ 축구선수 꿈 포기했지만 결국 축구로 향한 디자이너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최 대표의 꿈은 축구선수였다. 브라질의 축구 스타 호나우두의 팬이었고, 그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축구 유니폼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학생 때는 프로축구 인천유나이티드가 주최하는 미들스타리그에 학교 대표로 참가해 문학경기장에서 열리는 결승전까지 뛰었던 축구광이었다.그는 "농구로 유명한 송도중학교와 야구 역사가 오래된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모든 스포츠를 좋아했지만, 축구를 향한 꿈이 더 컸다"며 "집안의 반대로 축구선수의 길을 포기한 뒤에도 계속 운동장에서 축구공만 찼다"고 했다.인천대에서 시각디자인학과를 전공한 최 대표는 학부생 시절 축구와 디자인을 접목한 활동에 나섰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오롯이 축구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최 대표는 "처음에는 축구 유니폼 디자이너를 하고 싶어 포트폴리오를 만들 겸 아마추어 팀 유니폼을 디자인하거나, 축구용품과 관련된 콘텐츠를 제작했다"며 "창업이 뭔지도 몰랐고 대학교 동기 친구들과 학교 안의 빈 사무실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프로구단에서도 협업 제의가 왔다"고 했다.■ 갈등 많았던 초창기…'구단 포스터·현수막도 팀의 정체성 녹아야'그가 본격적으로 K리그 팀들과 작업을 시작한 2015년만 해도 프로스포츠 구단의 브랜드 개념이 전무한 시기였다. 각 구단의 직원들은 최 대표를 외주 제작업체 직원 정도로 여겼다고 한다. 최 대표는 디자이너의 시선에서 팀의 정체성을 살린 디자인을 하려 노력했지만, 구단 측에서는 자신들이 요구한 내용만 반영해 달라고 한 탓에 갈등도 많았다. 그는 "당시 구단들의 홍보 포스터나 경기 일정 안내 현수막은 간판업체나 인쇄소에서 제작하는 수준이었다"며 "디자인과 축구를 접목하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구단에서는 글씨체나 색깔 종류까지 지시하다 보니 언성 높여 싸운 적도 있다"고 했다.하지만 최 대표는 구단들을 끊임없이 설득하면서 결과물을 만들어냈고, 그의 디자인을 눈여겨본 팀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국내 축구 팬들이 유럽 축구를 접하면서 유니폼 디자인이나 마케팅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가자, 국내 구단들 사이에서 이를 따라가기 위한 인식이 퍼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최 대표는 이후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나이키·아디다스 등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와 함께 스포츠 패션을 주제로 다양한 협업을 펼쳤다. 최근에는 축구국가대표팀 수비수 김민재의 소속팀인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과 콜라보레이션 유니폼을 제작하기도 했다.■ 애정 지닌 고향팀과의 협업… 다시 태어난 '슈퍼스타즈'수많은 팀과 작업해온 그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경험은 인천 프로스포츠 팀과의 협업이다. 오버더피치는 지난해 인천유나이티드 창단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프로젝트 작업을 진행했고, 인천의 첫 프로야구팀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영감을 얻어 SSG 랜더스와 협업한 '슈퍼랜더스' 유니폼도 제작했다.지역과 종목을 가리지 않고 많은 팀과 일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인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건 다른 구단과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경기장조차 찾지 않았던 최 대표에게 두 팀과의 작업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는 "지금껏 일을 해오면서 느낀 점은 인천이 저에게 정말 좋은 자양분을 제공해 준 고향이라는 것"이라며 "작년에 공교롭게도 두 구단에서 먼저 제안이 와서 작업하게 됐는데, 인천팀에 대해 항상 많은 애정을 품고 있었던 터라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작업했다"고 했다.■ 해외로 보폭 넓히는 오버더피치최 대표는 '스포츠 문화의 확산'을 꿈꾸고 있다. 남녀노소 모두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이나 굿즈를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착용하는 '문화'가 자리 잡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그는 "뉴욕에 가면 누구든지 양키스의 모자를 쓰고, 유럽에서는 어느 지역이든 연고 팀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며 "경기장이 아닌 그 지역의 중심가나 관광 명소에서도 구단 관련 상품을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일상에 스며드는 게 스포츠가 하나의 문화로 정착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인천을 예로 들면 신포시장의 어르신들도 인천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인천공항에서 SSG 랜더스의 유니폼을 살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며 "인천유나이티드가 신포시장에 '블루마켓'이라는 상설 매장을 냈고, SSG 랜더스도 모기업인 이마트에 유니폼과 굿즈를 파는 매장을 운영하는 행보는 정말 좋은 사례"라고 했다.최 대표는 앞으로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스포츠 구단들과의 협업을 통해 브랜드 확장을 도모할 계획이다. 해외 팀들과 작업하면서 국내 스포츠팀들이 참고할 만한 사례를 많이 만들어야 스포츠 문화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그는 "축구뿐 아니라 야구와 농구, 모터스포츠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협업하면서 얻은 결과물을 국내 시장에 접목해 하나의 패션 장르로 만들어내고 싶다"고 했다.글/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최호근 대표는?▲1990년생▲인천 제물포고등학교 졸업▲인천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졸업▲2014년 ~ 현재 H9pitch 스튜디오 대표이사▲2016년 '오버더피치' 브랜드 론칭주요 활동▲2002 월드컵 20주년 기념 유니폼 제작 프로젝트▲KBO리그 출범 40주년 기념 콜라보레이션 상품 출시▲K리그 출범 40주년 기념 브랜딩 작업최호근(34) 오버더피치 대표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축구나 야구 유니폼을 일상에서도 편하게 입는 문화가 국내에 정착했으면 한다"며 "경기장뿐 아니라 인천공항이나 신포동 등 인천의 주요 명소에서도 인천 연고 프로구단들의 유니폼과 상품을 더 많이 접할 여건이 형성되길 바란다"고 했다.
회복자 본받아 중독자들도 벗어나자는 것 서울다르크가 바란 것이었다. 2012년 다르크 들여온 조성남 전 국립법무병원장 “마약중독 회복자가 운영하는 민관 협력 치료시설이 필요합니다. 민관 협력 치료재활시설을 모델로 한 중심 병원, 지역병원, 자조모임이 연결된 의료체계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조성남 전 국립법무병원장을 만났다. 조성남 전 원장은 마약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37년간 마약중독 치료에 힘써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오랫동안 마약중독 치료를 연구해온 그는 이제 국가가 나서 마약중독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됐다고 강조한다. 터부시했던 민간 치료·재활시스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공공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관리하면서,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재활시설, 자조모임 등의 치료재활 네트워크를 형성해 유기적으로 마약중독 환자를 관리해야 한다는 게 요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미 마약중독을 극복해낸 '회복자'가 마약중독환자를 도울 수 있도록 '회복자 활동가'의 양성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조성남 전 원장은 지난 2012년 일본 다르크를 국내로 들여온 장본인이다. 다르크는 마약중독 회복자가 운영하는 입소형 재활시설이다. 단약 중인 이들이 모여 24시간 동안 서로를 관리감독하는 회복시설이다. 다르크는 치료할 병원, 재활할 시설 하나 제대로 없던 한국의 마약중독자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이 돼 왔다. 공공이 운영하는 치료재활시설은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조성남 전 원장은 일본의 '다르크'를 왜 국내로 들여왔을까. 2004년 6월26일 세계마약퇴치의 날, 그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세미나에 참석해 일본 다르크의 마약중독 회복자 자조모임을 접하게 됐다. 이미 회복자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미국 마약중독 치료시설의 장점에 호기심을 갖고 있던터라, 회복자 자조모임과 다르크라는 일본 모델이 우리 사정에 접목할 수 있는 모델이라 생각했다. “미국 연수 중에 교도소마다 마약중독 치료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영 중이었습니다. 회복자가 치료를 돕는 활동가가 돼, 마약중독자를 상담하고 교육하는 병상이 교도소마다 200~300개씩 있더라고요. 이게 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복자 본인이 나를 본받아 단약 중인 중독자에게 같이 생활하자고 하는 게 다르크의 기본 형태거든요. 마침 제가 한국에서 약물병동 퇴소자들이 함께하는 이화모임(매주 화요일마다 만나는 모임)을 운영 중이었어요. 이화모임은 마약중독 회복자 모임인데 자조모임 형태로 발전시켰터라, 이들을 중심으로 다르크를 운영하게 됐습니다." 당시 일본 다르크는 일본 정부가 인정한 마약중독 회복 기관으로, 공공의 손길이 뻗치지 못하는 재활치료 분야의 빈틈을 메워오고 있었다. 일본 전역에는 70곳 안팎의 다르크가 있었고 한 곳에 적게는 3~4명, 많게는 50명까지 살았다. 사정이 어려운 다르크에는 기금을 모아 지원해줄 정도로 다르크간 교류가 활발했다. 오래된 호텔을 기증받거나 주택을 얻어 생활하는 등 시설 형태도 다양했다. 조성남 전 원장은 일본 다르크를 본떠 국내에 마약중독 민간재활치료시설을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서울 다르크'였다. 서울다르크 센터장은 조 전 원장이 부곡병원에서 치료했던 회복자 A씨가 맡았다. A씨는 부곡병원에서 입원해 치료받던 3년 동안 대학교 입학,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할 만큼 회복에 전력을 쏟았다. 조 전 원장은 “A씨가 사회로 돌아가면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게 안타까웠다"며 “마침 다르크를 만들려던 때라 A씨에게 다르크 센터장을 맡아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운영 예산은 일본 다르크에서 지원받았다. “당시 운영할 만한 자금이 없었어요. 일본다르크가 3천만원을 모금해서 전달해준게 기반이 됐죠. 당시 서울 목동에 보증금 1천만원에 70만원짜리 조그만 주택 1층을 빌려서 시작했어요. 방 3개에 4명정도 수용 가능했거든요" 어렵게 시작한 서울 다르크는 순탄하게 운영되는 듯했다. A씨가 정신보건사회복지사 자격을 얻으면서 그룹홈 인가도 받았고 서울시로부터 운영비 지원도 이뤄졌다. 초창기 입소자들의 입소비(당시 인당 15~20만원)와 기부금 등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운영해왔던 것에 비하면 재정적인 상황도 눈에 띄게 나아졌다. 그러던 중 2022년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다르크 운영을 A씨에게 오롯이 맡겼던 게 화근이 됐다. A씨의 알코올중독이 재발한 것. 그런데 마약중독환자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그를, 그 안에서 관리감독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다르크라는 조직 자체가 금 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서울 다르크의 존폐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조성남 전 원장은 문제점을 이렇게 기억한다. “A씨에게 혼자 맡겨 둔게 잘못된 거 였어요. 자조모임을 매주 하는데 이 친구가 소홀해지는 게 눈에 보였는데.. 제가 그때 법무병원장 맡아서 공주로 내려가 서울로 올라오기가 힘들어지며 연락 빈도도 줄었죠. 처음에는 열심히 조직을 이끌어갔는데… 그래서 감독을 철저히 해야합니다." 결국 서울다르크는 문을 닫았다. 그 즈음 공교롭게도 경기도와 경남 김해에 각각 다르크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경기다르크의 경우 마약중독에 대한 지역사회의 혐오와 편견에 부딪혀 운영이 쉽지 않았고, 올해 초 끝내 문을 닫았다. 다르크의 문제점은 '민간'에만 의존한 재활치료시설이라는 데서 비롯됐다. 운영 주체인 회복자는 분명 입소자의 재활을 돕고 제대로 감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회복자 역시 평생 관리해야 하는 환자의 범주 안에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같은 경험을 통해 조성남 전 원장은 민관이 협력해 재활치료시설을 운영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조성남 전 원장은 마약중독 재활치료시설 운영은 민간이, 관리감독은 공공에서 해야한다고 언급했다. 비록 서울다르크와 같이 실패사례가 있지만, 여전히 회복자가 마약중독환자를 돕는 활동가가 돼야 한다는 의견도 변함이 없다. 눈빛만 봐도 갈망의 정도를 알 수 있는 건 경험해본 이들만 갖는 노하우다. 실제로 정부 지정 마약중독 회복 시설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는 회복자를 센터장으로 두고 있다. “(비록 사건이 있었지만) 회복자를 중독치료의 전문가로 양성해야 합니다. 의료진, 상담가 등 전문가가 회복자가 될수는 없지만, 회복자를 전문가로 만들 수 있거든요. 회복자는 마약 투약 경험, 관련 지식이 있으니 재활센터에 꼭 필요한 사람이죠. 회복자를 활동가로 양성해 센터를 운영하되, 예산 등 전반적인 운영과 감독을 공공에서 개입해 지원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그는 공공이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는 기본 인프라가 구축되면, 병원과 재활시설, 자조모임 등 치료회복을 위한 네트워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조성남 전 원장은 다음달부터 서울 은평병원에 들어설 서울마약관리센터의 수장으로 다시 마약치료 전선에 선다.그는 이 곳에서 마약중독치료 네트워크를 실험할 계획이다. “재활치료시설 간 네트워킹이 필요합니다. 현재 민간의 그룹홈을 (공공이 지원하는) 재활센터로 만들고, 지역에 있는 의원급 병원과도 연계할 계획입니다. (마약중독자가) 지역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고 갈망 등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면 바로 은평병원으로 입원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거죠. 중심병원 하나를 두고 지역병원들이 연결된 하나의 의료공동체이죠. 세미나를 통해 중독환자 치료 노하우를 공유하고, 직원 및 전문가 양성 교육, 회복자 교육 시스템도 만들고 자조모임까지 공유하는 체계를 만들겁니다." /이시은·공지영·이영지기자 see@kyeongin.com
장애인 학생들 사회성 키워주는 '셔틀콕 전도사' 8년째 재능기부… 임기후 지속 활동활성화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모색G-스포츠클럽 엘리트 육성하고파"재능기부 요청에 의해 장애인 학생과 그 학부모에게 8년간 봉사활동을 이어가게 됐어요."제3대 의왕시배드민턴협회장인 임윤옥(53)씨는 2017년도부터 의왕시의 장애인 가족을 대상으로 배드민턴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당시 의왕시 장애인복지관에서 협회로 재능기부 차원에서 지도·교육 요청이 들어왔는데,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보유한 임 회장(당시 경기운영 이사) 등 집행부가 요청을 수락하면서 현재까지 인연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임 회장은 22일 "체육인이라면 잘 알고 있듯 장애를 안고 있는 학생들에 대한 체육 지도의 목표는 사회성 함양을 위해서다"라며 "배드민턴을 통한 다른 파트너들과의 활동이 지속된다면 대회 입상을 넘어 일반인들과의 생활도 가능하게 되는데, 많은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을 협회장직을 마치게 돼도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시배드민턴협회는 임 회장을 포함해 장애 학부모에 대한 생활체육 지도가 장애아동을 키우는 어려움을 운동으로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복지차원에서 1주 2차례 가량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데다가, 보다 활성화 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 가동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배드민턴 종목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엘리트(전문체육)팀이 단 1개도 없는 의왕시에서 대한체육회로부터 예산을 배정받아 10~19세 남녀 학생 동호인 등을 대상으로 한 생활체육대회인 '2024 대한배드민턴협회 유·청소년클럽리그'를 경기도 권역에서는 의왕에 유치를 이뤄 우수선수 발굴 및 육성 등 저변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여기에 지난 5월 열린 제70회 경기도체육대회에서 의왕시가 배드민턴 종목에서도 입상을 거두는 등 2년 만에 2부 우승을 탈환하는 데 힘쓰기도 했다.임 회장은 "의왕시체육회와 이른 시일 내에 G-스포츠클럽 종목을 운영해 엘리트 선수 육성을 도모하고 싶다. 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차기 회장이 나와 함께 G-스포츠클럽 운영에 밀알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왕/송수은기자 sueun2@kyeongin.com
[FOCUS 경기] 꿈이 현실로… 스마트도시 발돋움하는 안양시 GTX-C·월판·인동·신안산선 지역 통과경기남부 교통중심 넘어 '철도혁명' 중심박달시티, 친환경 융합스마트밸리로 조성호계자족도시, 안양교도소 이전 부지 개발인덕원도시개발지구, 콤팩트시티로 추진CCTV 7천대 스마트도시통합센터 운영서울 삼성역에서 출발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 열차는 15분만에 인덕원역에 정차했다. 인덕원은 요즘 수도권에서도 '핫한' 곳으로 꼽힌다. GTX-C 노선뿐 아니라 4호선, 월곶~판교선, 인덕원~동탄선까지 연결된 '4중 역세권'으로 서울 및 경기남부 주요 도시들과 사통팔달 이어진다.인덕원역에서 내리면 거대한 초현대식 건물을 만난다. 복합환승센터와 지식산업센터, 상업 및 업무 공간, 청년주택 등이 입점해 있고 압도적인 규모와 독특한 디자인 때문에 인덕원의 랜드마크가 됐다.인덕원역을 나와 첨단기업들이 밀집한 '박달스마트시티'로 향했다. 도로가 차량들로 북적였지만, 차량 흐름이 좋아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스마트도시통합센터'의 첨단 시스템 덕이다. 옆을 보니 자율주행버스 '주야로'가 달리고 있다. 이제 주야로는 모든 시민들이 즐겨타는 교통수단이다.미래의 안양시를 그려 본 이런 모습은 상상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추진되고 있거나 일부 실현이 되어 있고, 앞으로 몇 년 후면 완성될 '가까운 미래'의 모습이다.미래도시로 도약하는 안양시 발전의 원천에는 '교통혁명'과 '미래형 도시개발', '스마트 기술'이 자리해 있다. 최대호 시장은 민선 8기 취임 2주년을 맞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안양의 미래 전략을 소개했다.■ 철도가 변화를 이끌다안양시 변화의 바탕에는 산업과 지역경제를 이끌 핵심으로 떠오른 '철도망'이 자리해 있다. 이미 오래전 부터 경기남부 교통 중심지로 자리잡아온 안양은 앞으로 GTX-C, 월곶~판교선, 인덕원~동탄선, 신안산선이 추가로 지나면서 '철도 혁명의 중심'으로 탈바꿈한다.GTX-C는 양주(덕정역)~수원(수원역)을 잇는 연장 86.46㎞ 노선으로, 당초 계획된 노선에서는 안양지역을 무정차로 통과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안양시민 15만6천여 명이 서명에 참여하며 역 신설을 강력히 추진한 끝에 인덕원역 추가 설치를 이뤄냈다. 안양시는 지난 1월 민자사업시행사와 'GTX-C노선 인덕원역 설치협약'을 체결했으며, 올해 하반기 본격 착공에 들어간다.월곶~판교선은 월곶(시흥)~광명~안양~의왕~판교(성남)로 이어지는 연장 34㎞의 노선이다. 안양에는 4개 역(가칭 만안교역, 안양역, 안양운동장역, 인덕원역)이 신설되며, 오는 2028년 개통 예정이다. 지난해 2월 안양역 6공구 공사가 먼저 착공됐고, 올해 하반기에 남은 3개역 공구가 착공될 예정이다.인덕원~동탄선은 동탄(화성)~수원~의왕~인덕원(안양)을 잇는 연장 39㎞의 노선이다. 오는 2028년까지 안양에 3개역(가칭 인덕원역, 안양도매시장역, 호계역)이 신설될 예정이다. 지난 2021년 11월에 동안구 벌말오거리 일원의 1공구 터널 공사를 착공했고, 올해 하반기에 남은 공구를 착공할 예정이다.신안산선은 안산~광명~안양~여의도로 이어지는 연장 44.7㎞의 광역철도 사업이다. 화성~시흥~광명 노선도 연결된다. 안양에는 석수역이 신설돼 만안구 발전을 이끈다. 전체 노선은 2019년 착공했으며, 내년 4월 개통 예정이었으나 오는 2026년 말로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성장동력이 될 '3개의 축'시는 미래 안양 발전을 이끌어갈 성장의 기반으로 '새로운 3개의 축'을 추진하고 있다. 안양1번가 일대, 인덕원 일대, 평촌신도시 일대로 구성된 성장축을 더 크게 확장해 서쪽의 '박달스마트시티', 남쪽의 '호계스마트자족도시', 북쪽의 '인덕원도시개발지구'로 이어지는 새로운 성장축을 구성한다는 것이다.박달스마트시티는 만안구 박달동 일대 328만㎡의 부지에 친환경 융합 스마트밸리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그동안 탄약고 등 군부대 시설이 자리잡아 단절된 지역이었던 곳을 개발해 오는 2033년까지 친환경 첨단산업과 주거가 어우러진 복합단지를 조성한다. 국방부와 군시설 이전 및 지하화 협의가 마무리됐고,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거쳐 최근 특수목적법인(PFV) 설립까지 마쳤다.호계스마트자족도시는 호계동 일대에 자리해 있는 안양교도소를 이전하고 그 부지에 오는 2030년까지 스마트 자족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호계동 일대는 오는 2026년에 인덕원~동탄선 호계역(가칭)이 신설돼 성장이 기대되는 지역이다. 하지만 1963년 조성된 안양교도소가 성장의 발목을 잡아 왔다. 최 시장은 민선 8기 취임과 동시에 "안양교도소 부지는 안양시 미래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간"임을 천명하고 법무부와 적극적인 협의에 나섰다. 이미 큰 틀의 합의가 이뤄졌고, 올해 말께 법무부와 합의각서를 체결할 계획이다.인덕원도시개발지구는 4개의 철도망이 교차해 교통의 중심지가 될 인덕원 일대를 첨단 기술과 새로운 디자인이 적용된 '콤팩트시티'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인덕원역을 중심으로 관양동 약 15만㎡에 복합환승센터, 공공주택(청년주택 포함), 첨단산업시설 등을 조성한다. 올해 보상 및 실시계획인가 등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부지 조성공사를 시작해 오는 2028년 완공이 목표다.■더 스마트한 도시철도교통과 '3개 축' 개발로 더 크게 확장될 안양시는 첨단 기술이 접목된 '스마트 도시' 조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안양시는 이미 7천여대의 방범·교통·안전 CCTV를 통합해 모니터링 하는 스마트도시통합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는 국가재난안전망부터 안전귀가서비스, 미세먼지 측정, 스마트 AED(자동심장충격기)까지 관리하는 스마트도시통합시스템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이 같은 스마트도시통합시스템은 자율주행버스 운영의 기반이 된다. 자율주행버스는 스마트도시통합센터와 '고정밀 지도'를 공유하고, CCTV와 라이다(LiDAR·레이저 탐지 및 측정 장치), 레이더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주변 상황을 인식해야 정확한 주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시는 지난 4월부터 자율주행버스 주야로 시범운행을 시작했다. 매일 낮시간 동안구청~비산체육공원 왕복 6.8㎞,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는 인덕원역~안양역 왕복 14.4㎞를 운행하고 있다. 안양시는 자율주행버스 시범운행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와 노하우를 스마트 도시기술은 물론 IoT기술에도 접목해 첨단기술 발전을 이끌어갈 계획이다. 안양/이석철·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최대호 안양시장이 민선 8기 취임 2주년을 맞아 지난 1일 진행한 '시민과의 대화'에서 안양의 미래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양시 제공4중 역세권 및 콤팩트시티 조성을 통해 안양 북부지역 발전의 축으로 거듭나게 될 안양 인덕원 사거리 일대 전경. /안양시 제공인덕원 주변 개발사업 조감도. /안양시 제공7천여개의 CCTV 등을 통해 안양시 주요 지점의 안전과 교통 등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스마트도시통합센터 관제실. /안양시 제공박달스마트시티 조감도. /안양시 제공호계스마트자족도시 조감도. /안양시 제공
진료 난이도 최고 수준 모두가 기피하는 마약 치료 현장 개인 사명감에 기대면 희망 없어 “조현병 환자 10명을 치료하는 일이 알코올중독 환자 1명을 치료하는 것과 같다고 봐요. 알코올중독 환자 10명보다 어려운 게 성격장애 환자 1명을 돌보는 거구요. 그런데 성격장애 10명을 치료하는 난이도가 마약중독 환자 1명을 치료하는 것과 같아요." 정신의학과 의사가 진단하는 병 중에서 난이도가 가장 높은 병을 꼽으라면 '마약중독'이다. 마약중독을 치료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을 비교하며 나온 말인데, 그만큼 마약중독 치료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마약중독자는 금단 증상과 뇌손상으로 인한 인지 능력 저하, 공격적인 성향 등의 특성을 지녔다. 이런 특성 때문에 치료과정에서 의사가 폭행당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마약중독 자체가 범죄인 만큼 법적인 문제가 얽혀있어 일단 치료에 들어가기까지 복잡한 과정이 있어 마약치료는 자연스럽게 의료진 사이에서 기피하는 진료과목이 됐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의료계가 잠정 추정하는 국내 마약중독 전문의는 5명 안팎이다. 얼마나 진료가 어려울까. 취재진이 무작위로 연락한 '정부 지정 마약중독 치료기관(5곳)' 모두 마약중독 치료 전문의가 없었다. 이중 2곳은 마약중독 치료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글쎄요. 저희가 정부 지정 병원은 맞는데… 마약 환자는 지금 잘 안받고 있거든요. 오셔서 상담받는 것까지는 상관이 없는데, 의사 선생님마다 진료 요일이 달라서요. 그러다보니까 사실상 일괄적으로 (치료가) 안된다고 말씀드릴 수 없는 상황이에요. 선생님마다 성향이 다르다보니…" “의사선생님이 마약 치료를 안한지 5~6년 됐어요. xx병원으로 가보시는건 어떠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음성은 '마약'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외래 치료도 어려운지 재차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난처하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입원 치료는 불가하다고 먼저 선을 긋는 곳도 있었다. 외래 위주로 치료한다는 한 병원은 “진료 과목이 마약이어서 그렇다"며 다른 치료기관을 안내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치료 자체를 꺼리니, 치료는 특정 기관에 몰린다. 지난해 마약중독자 치료 86%를 인천 참사랑병원, 경남 국립부곡병원에서 담당했다. 정부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 대책도 내놨다. 현재 시행 중인 마약류 전담 치료기관 지원 제도는 크게 두가지다. 이마저도 마약중독 치료 기관에 대한 지원 필요성이 심각하게 제기되고서야 올해부터 시작됐다. 환경개선금 지원 사업은 기관 내 소방·안전 조치 이행 비용으로, 5억원(전액 국비)을 선정된 1개소에 지급한다. 전국 8개소에 1억원(전액 국비) 운영비를 지급하는 권역치료보호기관 지원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이 지원금은 치료기관 운영비로 사용된다. 이정도 대책으로 과연 충분할까. 현장에선 현저히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마약중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치료할 수 있는 병원 자체가 없고, 의료진 등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실마리는 있을까. 우리가 만난 전문가들은 '개인의 사명감에 기대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인의 사명감에 기댄 시스템은 언젠가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다. 특히 폭증하는 마약중독은 이제 국가가 신경써야 하는 필수 중증 질환 중 하나로 인식해야 한다. 치료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확실한 '당근'이 필요하다는 게 의료계의 목소리다. 대상은 개인뿐 아니라 의료 행위 전반에 해당한다. 마약중독자 재활치료는 거대한 의료 공동체가 합심하는 분야다. 전문의, 간호사, 임상심리사, 회복자 상담가까지. 이들 모두에게 어렵지만 꼭 필요한 병을 치료하는 '적절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37년간 마약중독 치료 분야에 몸 담아온 조성남 전 국립법무병원장은 보상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금전적 보상이나 개인 성취감 필요 환자 연구·진료에 더해질 동력 될 것 “결국 의사가 오게 하려면 보상체계가 있어야하거든요. 환자 연구, 진료 환자와 관련한 여러가지를 할 수 있게 하려면 금전적인 보상이나 개인 성취감이 필요하죠. 그런거 없이 월급만 주고 환자만 보라고 하면 누가 하나요. 의사가 안오면 오게 만들어야합니다. 경쟁 체계를 만들어서 서로 오게 만들어야 하고 경쟁을 붙여 우수한 사람을 뽑아 일을 시켜야 합니다." 의대생 전공 선택 때 참관·파견 도입 마약중독 치료 막연한 편견 깨는 것도 방법 마약중독 치료 분야는 특히 전문의 수급이 절실하다. 치료의 난이도가 높은 만큼, 근속연수가 유독 짧은 분야이기도 하다. 김재성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마약중독 치료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깰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짚었다. “의대생이 전공 선택 실습 때 참관해본 곳에 지원을 많이 하거든요. 자라나는 정신과 의사들이 수련 과정에서 마약 중독 관련 접해볼 기회가 전혀 없어서, 막연한 생각을 가지는 것도 전문의가 부족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참관이나 파견 등 여러 방식 통해서, 환자들이 기능이 많이 떨어졌다가 극적으로 회복해서 돌아오는 모습을 본다면 의학 연구자로서의 학문에 대한 관심,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마약중독 치료 분야에 들어오는 방법이 될겁니다." /이시은·공지영·이영지기자 see@kyeongin.com
작은 도서관·골목 서점에 '풍덩'… 책속으로 '피서 삼매경' 노인 위한 도서관 '큰 글자 그림책 가득'… 희망 동화 서점서 바로 대출도림초 교실서 매주 왁자지껄 '독서모임' 각자 이야기 에세이 출간 목표공공도서관 복합문화공간 '진화' 노후 설계·음악회·카페형 열람실 검토시교육청, 지역서점·작은 도서관과 협업 '읽·걷·쓰' 학부모작가 교실도매년 여름이면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휴가를 보내려는 시민들이 저마다 즐길거리를 찾아 나선다. 최근 무더운 날씨와 장마 등으로 외부 활동이 힘들어지면서 여유로운 '북캉스'로 눈길을 돌리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이번 여름 지역 곳곳에서 책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 인천이 '책 읽는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을 짚어본다.■ 읽고 싶은 책이 생각날 때, 우리 집 앞 '작은도서관'인천 부평구 주택가에서 마주한 '춤추는달팽이도서관'. 이곳은 마을 주민들이 멀리 떨어진 공공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언제든 집 앞에서 책을 빌리고 읽을 수 있게 조성된 도서관이다. '노인을 위한 도서관'을 지향하는 만큼 이곳에는 저시력자를 위한 큰 글자 그림책이 가득하다.공간이 좁아 가끔 주민들이 찾는 책이 없을 때도 있지만, '상호대차 서비스'를 신청하면 부평구립도서관이나 인천북구도서관 등 인근 도서관에서 책을 제공한다. 또 인천시가 작은도서관 우수사례와 운영이 미흡한 곳을 매칭시켜 컨설팅을 지원하는 등 지역 작은도서관의 역량은 점차 강화하고 있다.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최선미(57)씨는 "인천시의 지원으로 노인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 인생을 돌아보고 그림책을 만드는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그동안 작은도서관 4곳에 운영 방식, 회계 처리, 프로그램 구상 등 전반에 걸쳐 컨설팅을 제공했는데, 눈에 띄게 성장했다"고 말했다.도서관에 원하는 책이 없다면 '희망도서 바로 대출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대표적으로 부평구 지역 서점인 '사각공간'에서는 동화책 '별이달이'를 빌릴 수 있다. 이 책은 인천시교육청이 운영하는 9개 도서관 어디에도 비치되지 않은 책인데, 인천시교육청의 '희망도서 서점 바로대출 서비스'를 이용하면 바로 검색이 가능하다.기자가 직접 '희망도서 서점 바로대출' 홈페이지에서 빌릴 책과 서점을 선택하자, 서점 운영자가 곧바로 신청 내역을 확인하고 책을 빌려줬다. 책을 다 읽고 서점에 반납하면, 인천시교육청이 이 책을 구매해 인근 도서관에 비치한다. 기자가 빌린 동화책 '별이달이'는 곧 부평도서관에 놓여 인천시민 모두가 읽을 수 있게 된다.사각공간을 운영하는 김성열(48) 대표는 "시민들은 도서관에 없는 책을 무료로 읽을 수 있고, 서점은 책을 판매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라며 "시민들이 부담 없이 지역 서점으로 발걸음할 기회가 마련된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학교와 지역 서점이 상생하는 '읽·걷·쓰' 독서모임아이들이 떠난 늦은 저녁, 일주일에 한 번 남동구 인천도림초등학교 4학년 4반 교실이 왁자지껄해진다. 도림초가 부평구 지역 서점인 '북극서점'과 매주 운영하는 독서모임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달 9일에는 학부모 5명과 교사 3명, 북극서점의 슬로보트(활동명) 대표가 모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주제로 짧은 글도 썼다. 참여자들은 서로 사연을 나누며 웃고, 박수 치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인천시교육청은 '읽(기)·걷(기)·쓰(기)' 사업 중 하나로 이와 같이 지역 서점과 연계한 독서모임을 독려하고 있다. 도림초 모임은 함께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는 등 역량을 키운 뒤, 올해 말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출간하기로 목표를 세웠다. 세 번의 출판 경험이 있는 슬로보트 대표가 글쓰기 교육부터 편집, 교열 등 출판 과정을 돕는다.학부모 박미현(56)씨는 "항상 나의 이야기를 담은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모임에서 글쓰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의 글도 읽으면서 독서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어서 무척 기쁘다"며 "그동안 지역서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이번 모임을 계기로 책과 글쓰기, 지역 서점 등에도 관심이 더 생겼다"고 말했다.■ 초고령사회, 공공도서관도 변화한다인천 남동구 미추홀도서관에서 독서에 열중하던 김종민(69)씨는 "둘레길 산책을 왔다가 도서관이 있어 '오랜만에 책이나 읽어볼까'하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평소에 틈이 나면 어디 놀러 가거나 취미활동을 했지, 도서관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는 그다. 김씨가 도서관을 찾은 오후 3시께는 평일 낮 시간대라 그런지 일반자료실이나 디지털열람실(디지털@터), 지하1층 열람실에 빈자리가 많았다. 모처럼 도서관을 찾았다는 그는 "보통 책을 빌리거나 시험 공부를 하는 곳이지 않나. 공간도 잘 꾸며져 있고 시설도 깨끗하지만, 왠지 너무 조용하고 어색해서 오래 머물지는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최근 인천시는 인구 고령화 시대를 맞아 공공도서관의 사회적 기능이나 역할 강화 등에 대한 구상에 들어갔다. 인천시가 수립하는 '초고령사회 대응을 위한 공공도서관 운영 혁신 추진계획(안)'은 지역 공공도서관이 단순히 도서를 열람하고 대출하는 기본적인 역할을 넘어, 모든 연령대가 편하게 찾아오고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복합지식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취지다.인천 공공도서관은 시립도서관 13곳, 인천시교육청 소속 도서관 9곳, 군·구립도서관 42곳 등 모두 64곳이다. 각 도서관에서는 문화 행사나 작가와의 만남 등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시민들의 도서관 이용이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인천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에 주목해 노후 도서관 환경 개선, 은퇴(예정)자가 참여할 수 있는 문화·교육 프로그램 활성화, 음악회를 비롯한 시민 문화 향유 기회 확충 등을 검토하고 있다.인천시 문화정책과 관계자는 "독서실 형태의 도서관 열람실을 카페형 열람실처럼 조금 더 열린 공간으로 바꾸는 등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함께 만드는 '책 읽는 도시 인천'인천 지역 공공기관과 공공도서관은 책을 구입할 때 100% 지역서점을 이용한다. 또 공공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각종 독서문화 프로그램도 지역서점과 협업해 진행한다.주민들이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작은도서관에 대한 지원도 늘렸다. 인천시는 지난해보다 관련 예산을 2천여만원 늘렸는데, 운영이 미흡한 도서관에 대해서는 우수 도서관이 운영 방식이나 회계 처리, 도서 선별, 독서프로그램 운영 등 노하우를 전수하는 컨설팅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인천시교육청도 지역서점, 작은 도서관과 함께 '읽·걷·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학생, 학부모, 교직원의 글쓰기 교육이나 출판 활동 등에는 지역서점, 작은 도서관 운영자들이 참여한다. 올해 4월 '읽·걷·쓰 출판전시회'에선 지역서점, 작은 도서관 운영자들과 시민이 교류하는 만남의 장이 열렸다.부평구 지역서점 '낮잠과 바람'에선 매주 목요일 '읽·걷·쓰 연계 학부모 작가 교실'이 열린다. 서점 인근 부평공고, 부일여중 학생들이 서점에 찾아와 독립출판에 대해 배워가기도 한다. 낮잠과 바람 조다애(38)대표는 "공공기관과 협력해 독서 프로그램 진행하면 서점을 홍보하는 효과도 있고 독서문화 확산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인천시는 정부가 전액 삭감한 '북스타트 사업' 운영 예산도 100% 시비로 편성해 추진한다. 북스타트 사업은 영유아들에게 연령별로 맞춤형 책 꾸러미를 선물하는 사업이다.인천시 문화정책과 관계자는 "독서 활성화에 관심이 많은 시민과 인천시의회의 지원 덕분에 독서 관련 예산을 늘릴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인천시민들이 독서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희연·정선아기자 khy@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생성형 AI 미드저니 이미지 재가공·클립아트코리아인천시교육청이 지난 4월 인천 부평구 부평서여자중학교에서 진행한 '읽·걷·쓰 가족 북클럽 발대식'. /인천시교육청 제공지난 5월 인천 남동구 도림초등학교 4학년 4반 교실에서 학부모 5명과 교사 3명, 부평구의 독립서점 '북극서점'의 슬로보트 대표가 각자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주제로 적은 글을 발표하고 있다. /경인일보DB인천 부평구의 서점 '사각공간'은 인천시교육청이 추진하는 '희망도서 서점 바로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은 책을 판매하는 서점이지만 인천시교육청 도서관 회원이라면 누구나 서점에 있는 책을 무료로 대여할 수 있다. /경인일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