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월요논단]언론영역 징벌적 손해배상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왜곡보도에 대한 시민 분노 계기피해구제 위한 도입 목소리 커져상징적·실질적 필요성 주장 불구실손해액 3배내 범위 실효성 의문권력 등 감시 기능도 위축 가능성최근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의가 활발해 지고 있다.지난해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김어준의 다스베이다'와 YTN '뉴스N뉴스'에 출연해서 언론의 기본적 취재와 보도의 자유는 제대로 보장받아야 하지만 언론의 왜곡보도를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열린민주당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언론개혁 공약으로 '악의적 허위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제시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5월17일 KBS '저널리즘 토크쇼J'에 출연해 악의적인 허위보도에 대해서는 언론사가 미국의 사례와 같이 징벌적인 배상을 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언론인권센터는 현재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에 의한 언론보도 피해로 인한 손해배상 인용액이 너무 적어 실질적인 피해보상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나 언론보도가 악의적일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최근 언론의 왜곡보도에 분노해서 시민들이 제기한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도 여러 건에 이른다.악의적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2004년에 집중적으로 논의된 바 있다. 당시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는 신문 등 정기간행물에 대한 내용과 함께 언론중재위원회 등 언론보도 피해구제에 관한 내용이 규정되어 있었다. 이 법을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으로 분리하기 위한 법 개정이 추진됐다. 시민언론단체와 언론현업단체가 함께한 언론개혁국민행동과 열린민주당의 언론피해구제 법안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쟁점이 됐다.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해 손해배상이 실시되지만 인정되는 위자료액은 피해자 구제나 회복에 크게 미흡하므로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악의적인 허위보도가 명백한 때에는 법원이 미국과 같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언론인권센터와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 모임 등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찬성했고 기자협회 등 현업단체는 반대했다. 결국 언론중재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도입되지 못했다.2006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기존 손해배상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효과적인 대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인정하고 언론중재법을 포함하는 9개 법에 한정하여 도입하기로 했지만 실제 법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2011년 처음으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실손해의 3배가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됐고 지적재산권과 개인정보보호 관련 법에도 비슷한 내용이 도입됐다.2013년 12월에는 정청래 의원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언론의 악의적 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에 법원은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했다. 국회 검토보고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법이 개정되지는 않았다.악의적인 왜곡보도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도입이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해서 상징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도입되면 얼마나 실익이 있느냐는 의문이다. 법원의 언론보도 피해구제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이면 대개 실손해액의 3배 이내로 정해지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의미가 효과가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특히 정치·경제·종교 권력을 감시해 왔던 'PD수첩' 등 시사프로그램과 '뉴스타파'와 같은 대안언론, 지방권력을 감시하고 있는 지역언론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신중하고 효율적인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의가 필요하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20-05-31 이용성

[월요논단]잃어버린 아이들을 찾아서

매년 5월 25일은 '실종 아동의 날'작년 접수 2만명중 100명 찾지 못해가족들 심리 정서적·경제적 어려움제도적 장치, 사건 이후에 효력 발휘우리 사회 함께 관심 모아야 할 때5월은 가정의 달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기념일이 많다. 보통은 함께 기념하고 감사인사를 전하기 위해 여러 모임이 만들어지고, 아이들은 들떠 선물을 기다리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기억하고 함께 하는 시간들 사이에 아직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기념일이 있다. '세계 실종아동의 날'이다. 1983년 미국에서 대통령령으로 선포되어 캐나다와 유럽 등 전 세계가 동참하게 되었고 우리나라도 2007년에 매년 5월 25일을 '실종아동의 날'로 제정했다.실종아동 사건을 생각하면 오래전 일이지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1991년 다섯 명의 초등학생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갔다가 실종된 사건이다. 당시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전국을 수색했지만 아이들을 찾지 못했다. 그 후, 11년 후인 2002년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었고 범인을 찾진 못했다. 아이들의 부모는 생업을 포기한 채 아이들을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매고 다녔고, 유골을 발견한 후에는 사망 원인 등 진실규명을 외치며 평생 지울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사건 외에도 부모와 함께 외출했다가 어느 순간 보호자와 떨어지게 되는 경우, 인간의 추악한 욕심과 비윤리성으로 인해 유괴 당하여 죽음으로 몰리게 되는 경우 등 다양한 유형의 실종 사건이 일어나고 있고 실종된 아동의 가족들은 심리 정서적, 경제적 어려움에 놓이게 된다.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작년 한 해에만 2만명이 넘는 아동의 실종 사건이 접수 되었고, 이중 100여명의 아동은 찾지 못했다. 실종아동 수는 해마다 늘고 있어,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동은 사회적 약자로 보호가 필요하며 보호자가 없을 경우 위험과 범죄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실종아동에 대한 예방과 대책 마련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이에 실종아동에 대한 대책은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을 바탕으로 꾸준히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실종아동 조기발견을 위한 '코드 아담제'와 만8세 미만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사전 지문등록 시스템'을 들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에도 실종아동 수가 줄지 않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법적, 제도적 장치들은 주로 실종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효력을 발휘한다. 실종아동 문제는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정책의 실효성 점검과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겠다.실종아동 문제를 담아낸 그림책이 있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서'(모리스 샌닥 글·그림. 김경미 옮김/시공주니어 출판)의 작가인 모리스 샌닥이 미국에서 일어났던 유괴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아이에 대한 추모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서 아이는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림책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 동생과 함께 집에서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이다는 기쁨에 겨워 아기를 꼭 껴안았어.' 이처럼 작가는 상실과 슬픔을 넘어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우리는 그림책 작가 모리스 샌닥이 희망을 이야기 한 것처럼 모든 어린이와 부모, 특별히 실종 아동과 그 부모에게 어떤 희망을 보여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실종아동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아닐까? 어느 한 개인의 불행이 아닌 사회문제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5월25일 세계 실종아동의 날을 보내며 실종아동을 기억하고 모든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관심을 모아야겠다./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

2020-05-24 최지혜

[월요논단]우리 모두가 삼성의 공모자다

1991년 노조만들다 해고 김용희씨구타·납치 등 압박속 344일째 농성반성·계획 없는 '껍데기 약속' 보며이재용씨 대국민사과 날부터 단식언론도 눈감은 강남역 철탑위 항거올해는 전태일 열사가 몸 사른 지 50년 되는 해다. 살아 있을 당시 열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심심찮게 반복했다고 한다.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아무리 공부해 봐도 어렵기만 했기에 가지게 된 바람이었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되어 '전태일 평전'을 읽을 때 나는 그 대목에 밑줄을 그었다. 열사의 비어있는 대학생 친구 자리에 나 자신을 밀어 넣고자 했던, 나름의 책임감을 다잡는 행위가 밑줄 긋기였던 셈이다.문득 대학 초년생 시절 기억이 떠오른 것은 지금 또 한 명의 전태일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1년 김용희씨는 노동조합을 만들려 했다는 이유로 삼성에서 해고당했고 이를 알리자 명예훼손으로 두 차례 구속됐다. 폭력배로부터의 구타, 삼성 직원에 의한 납치, 성추행이란 무고, 북한 간첩으로의 조작 시도 등도 잇따랐다. 김씨는 현재 삼성사옥이 있는 강남역 사거리 25m 높이의 CCTV 철탑 위에서 344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65㎡(0.5평)에 불과한 철탑 위는 매우 비좁아 누우면 머리와 다리가 허공으로 삐져나온다.별로 놀랄 필요가 없을지 모르겠다. 삼성이 떡값을 돌려 검사들을 어찌 관리해 왔는지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의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설립 요청이 낮은 수준의 양형을 위한 수순으로 이해되는 것은 그 연장이라 할 수 있다. 법을 만지작거리는 부류들이 소위 떡검과 뭐 그리 다르겠느냐는 혐의가 퍼져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재용은 지켜도 그만, 무시해도 그만인 약속을 했다. 수준 역시 구체적인 반성도 계획도 없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이러한 사과를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준법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예상했던 바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전개라 하겠다.언론 또한 사법계와 그리 다를 바 없다. 삼성 비판 내용의 칼럼을 썼던 필자들이 어떻게 필진에서 배제되는지 우리는 익히 목도 한 바 있다.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언론이 광고를 통해 삼성에 길들여 지고 있는 실상은 바로 그 지점에서 폭로되었다. 현재 김용희씨의 고공농성이 주류 언론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까닭도 그러한 현실과 무관치 않을 게다. 서울 번화가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질긴 사건을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난 기자들이 여태 놓치고 있을까. 그가 꿈꾸었던 노동자의 단결권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영민한 기자들이 설마 모르고 있을까.일찍이 이문열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옹호 논리를 다음과 같이 펼쳤던 바 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예는 지극히 사소하고 상식적이어서 얼른 이해가 안 될 테지만, 조금만 기본적인 것으로 눈길을 돌리면 사태는 명백하다. 나치의 법, 또는 스탈린이나 중남미의 법을 보아라. 법조문에는 그 어느 것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 사회의 이상(理想)이 집약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지. 결정하는 것은 다만 그 적용을 결정하는 어떤 흐름뿐이다'('약속', 1982). 이문열은 아마도 전두환·노태우 일당이 법 위에 군림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당대 현실을 감싸고 싶었으리라. 똑같은 논리를 적용하건대 현재의 흐름에 순응하는 이들은 전두환·노태우의 이름 대신 삼성과 이재용의 이름을 품고 있으리라.옴짝달싹 못할 흐름에 갇혀 있음을 깨달았을 때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김용희씨가 전태일 열사와 다른 점은 죽음 대신 지상을 떠나 25m 허공 위로 올라갔다는 사실뿐이다. 그를 접견한 의사는 "당장 지상으로 내려가야 할 정도로 건강이 심각하게 좋지 않다"고 소견을 밝혔다. 나는 그의 모습 위에 전태일 열사의 모습을 겹쳐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와 지상 사이의 허공을 채워 나가는 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것이 대학생 시절 내가 되새겼던 미래의 내 모습이며, 저 야만적인 흐름에 공모하지 않는 유일한 방편이기 때문이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20-05-17 홍기돈

[월요논단]깨어진 일상과 문명의 새로움

코로나19가 멈춰세운 일상 '당혹감'잃었던 가치·인간다움 돌아볼 시간기득권 유지 감춰진 자본 과잉 여전재난 이용 특권 키울땐 더큰 재앙뿐생명·삶 위한 새로운 문명의 전환을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그 익숙함으로 인해 당혹감을 주기도 한다. 그 익숙함 속에서 언뜻 언뜻 낯섦을 마주하게 되거나, 또는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음에도 그렇지 못할 때 오는 당혹감이 그것이다. 일상이 멈출 때 우리는 그 당혹감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된다. 그때의 당혹감은 그 익숙한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또 진부함을 깨고 새롭게 다가오는 그것이 무엇인지 묻게 만든다. 가장 가까운 이의 부재가 우리에게 그 사람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도 그런 경우다. 코로나19가 멈춰 세운 일상은 이 느낌을 통해 익숙했던 과거와 다가올 시간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 우리의 일상이 코로나19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어떤 새로움을 보고 있는 것일까. 돌아갈 수 없는 일상, 벗어나야할 일상은 어떤 것일까.코로나19는 여전하며 위기는 계속된다. 여전히 그 익숙함에 취해 벗어나야할 과거로 돌아가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변화란 익숙함을 막는 장애물이며 문명의 새로움이란 두려운 세상일 뿐이다. 코로나19가 가로막은 일상은 깨어진 삶의 터전을 다시금 보게 만든다. 그 안에서 익숙한 과거로 돌아갈 수도,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무엇을 선택해야할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그 선택을 위해 깨어진 일상은 무엇이며, 다가올 새로움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돌아봐야 한다.이번 총선은 코로나19 선거라고들 말한다. 여당이 이 사태로 인해 정치적 이익을 얻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 결과에는 깨어진 일상을 통해 시민들이 감지한 새로운 삶에 대한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그 의식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 여당에 안겨준 압도적 승리는 압도적 패배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과 같은 삶과 일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느낌은 우리에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상상하게 만든다. 지난 100여 년간 식민지와 분단 상황을 거치면서 겪었던 희생과 고통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편입되면서 얻게 된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잃어버렸던 가치와 인간다움을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 지금 우리 앞에 와있다. 그 안에 희생되고 소외되며, 삶의 사각지로 내몰리는 이들을 공동체 안으로 불러들이지 않으면 이 작은 성공은 더 큰 화가 되어 되돌아올 것이다. 그때는 더 이상 이 정도의 성공조차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무엇이 우리 공동체를 파괴하고, 인간다운 삶을 황폐화시키는가. 방역성공이란 화려함 뒤에 감춰진 자본의 과잉은 여전하다. 불법과 노동탄압을 저지른 재벌총수의 사과는 찾아가야할 김용희의 농성장이 아니라 잘 계산된 정치적 분식에서 공허하게 울리고 있다. 정파적 이익에 매몰되어 맹목적인 분열만 조장하는 언론도, 끝없이 퇴행하던 그 정치도 여전히 한 줌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과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했던 사회와 경제 체제가 사라졌는가? 특권에 안주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법조계는 개혁되었는가? 벗어나야할 익숙함과 관행이 다만 잠시 멈췄을 뿐이다. 이 멈춰선 시간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재난을 이용해 자본의 영악한 이익을 키우고 자신의 특권을 강화할 생각만 한다면 이 기회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의 예고편이 될 뿐이다.파행으로 치닫은 대학 강의에 교육부는 다만 등록금 반환이나 수업 일수 준수 따위로만 대응한다. 줄기차게 대학교육 개혁을 말했지만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철석같이 약속했던 교육개혁은 조금도 이뤄지고 있지 않다. 생태계 파괴로 초래된 생명과 삶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문명의 전환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다. 그런 사회와 문화가 다음의 위기를 벗어날 힘을 얻을 수 있을까. 깨어진 일상을 넘어 다가올 시대의 새로움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를 위해 개혁해야하며 그를 뒷받침할 철학을 찾아야 한다. 방역선진국이라는 외부의 칭찬에 취해만 있다면 그가 바로 후진국이다. 가보지 못한 길을 상상하면서 문화와 사회체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이 새로움을 드러낼 지성적 결단과 미학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생명과 삶을 위한 문명의 전환 없이는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20-05-10 신승환

[월요논단]당대표에 나선 송영길과 홍영표의 과제

선출되면 2022 대선·지방선거 중책洪, 조직 관리 리더십 발휘 CEO형친문 프레임 극복·선거 승리 '과제'宋, 인천시장 경험·원외 움직임도호남에 대한 견제·영남권 설득해야180석의 거대여당. 5월7일 원내대표 선거가 있다. 새로운 권력을 향한 경쟁이 가시화되었다. 원내대표로 나선 김태년 의원과 전해철 의원의 대결이 서막이다. 그러나 인천의 관심은 당권후보에 쏠려 있다. 누가 더불어민주당의 대표가 될 것인가. 5선의 송영길 의원과 4선의 홍영표 의원이 당권에 도전한다. 두 의원이 어떤 관계를 형성할지 관심사다. 경쟁으로 갈지 아니면 양보와 협력을 할 것인지. 오는 8월에 선출되는 당대표는 2022년 3월의 대통령선거와 6월에 동시 지방선거를 책임지게 된다.홍 의원은 신중하지만 할 일을 성취해 내는 힘과 역량을 갖고 있다. 일부의 우려와 달리 원내대표로서 리더십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조직 관리를 통해 리더십을 발휘하는 CEO형이다. 노동부 장관으로도 추천되고 있지만 지역의 GM대우와 현안문제를 해결하려면 산자부장관이 적임일 수도 있다. 정부나 대통령의 정책과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도 그의 성격을 말해준다. 친문의 시각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지원하고, 대선과 지방선거를 관리할 수 있는 적임자로 보는 이유다. 하지만 홍 의원은 친문 원내대표와 친문 당대표 그리고 친문 대통령 후보라는 프레임을 어떻게 극복하고,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것인가 하는 과제에 답해야 한다.송 의원은 친문의 좌장인 이해찬 대표와 맞붙어 지난 당대표 선거에서 2위를 했다. 인천광역시장으로서 행정경험에 이어 원외를 향해서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기회가 주어지면 외교부장관으로 일하고 싶어 하지만 주변에서는 산자부나 통일부를 권한다. 꿈이 크다보니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다른 목소리도 있다. 동남권 신공항문제는 부울경의 목소리를, 원전문제에서는 에너지 산업과 수출의 필요성을 우선한다. 친문의 시각에서 보면 손에 잡히지 않는 야생마이지만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외연을 확대하여 승리를 견인할 수 있는 적임자로 손꼽힌다. 하지만 송 의원은 이낙연 의원이 대권후보가 될 경우 호남 당대표에 호남 대권주자에 대한 견제와 영남권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하는 과제에 답해야 한다.인천 지역에서는 두 의원이 협력하여 정치적 리더로서 각자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장관과 당대표로서의 역할론이 그것이다. 남북철도는 이어지고 있지만 서해평화정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 지역에 산재한 공단들을 새로운 제조업의 메카로, 바이오를 세계적으로 산업으로 견인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경인고속도로 지하화, 제2 외곽순환도로 연결, 인천순환지하철, 강화도 연륙교 등도 뉴딜 정책에 포함되어 가속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그러나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8월까지 수많은 정치적 변수들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대권후보와 당권후보의 치열한 이합집산 그리고 야당의 40대 기수론도 판을 흔들 것이다. 코로나19가 가져올 경제문제는 여당이 온전히 져야할 책임이다. 일부에서는 이낙연 의원의 추대설도 있다. 당연히 승리의 달콤함을 오래 즐기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정도와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국민들은 등을 돌린다. 내편을 챙기는 진영의 논리만으로는 국가를 이끌어 갈 수 없다. 이력서나 주변 인물에 의존하는 위험성은 더불어 시민당의 공천 실패사례로 나타났다. 패자가 된 김영춘 의원은 동남권신공항문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정부에 섭섭함을 나타냈다. 원전문제의 대안으로 준비 없이 진행된 태양광 등 대체에너지 정책도 후반기 문재인 정부에게는 부담이 되고 있다.문재인 정부의 토대가 된 DJ와 노무현 정신은 '기득권의 포기, 이념대립과 지역주의 타파, 정책 승부'로 집약된다. 과연 친문으로 대변되는 기득권을 버리고 국민 속으로 뛰어 들 수 있는가. 광화문의 대립과 지역주의가 되살아난 지난 총선 결과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그것은 당대표의 위상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 대통령의 후반기 지원을 중시할지 아니면 새로운 권력의 창출을 중시할지에 달려 있다. 분명한 것은 뉴 DJ와 새로운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하고 혁신을 선도하는 자가 여당대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거대여당을 탄생시킨 국민들의 뜻이자 한국의 미래를 향한 길이기 때문이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05-03 김민배

[월요논단]종편 재승인 결과를 생각한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 4개, 첫 전파'신문방송 겸영 허용' 문제 우려 속정치적 편향·불공정·오보 등 논란TV조선·채널A 조건부 결정 불가피직접 광고판매 등 특혜 바로잡혀야2009년 한나라당은 야당과 국민 여론의 반대를 뚫고 '신문방송 겸영 허용'을 핵심으로 하는 방송법 등 미디어법 개정을 강행했다. 이를 기반으로 2011년 12월 말 조선, 중앙, 동아, 매경 등 4개 신문이 지배하는 종합편성채널이 첫 방송을 시작했다.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은 여러 가지 우려를 안고 있었다. 종합편성 채널 도입의 문제점은 당시 승인 기본계획에 언급되어 있는 정책목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정책목표는 융합하는 미디어환경변화에 적극 대응, 방송의 다양성 제고를 통한 시청자 선택권 확대, 콘텐츠 시장 활성화 및 유료방송시장의 선순환 구조 확립, 경쟁 활성화를 통한 방송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이었다. 모두 방송영역에서 추진해야 할 목표일 수 있다. 그런데 왜 신문사에게 종편채널을 줘서 이 정책목표를 추진해야 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의 규제 완화는 미디어환경의 변화와 여론지배력의 흐름 등을 장기적으로 검토하고 결정해야 할 중대한 정책적 사안인데도 준비 없는 전격 도입은 위험한 일이었다. 신문은 지상파방송과 함께 정치여론 형성력이 강력한 미디어이다. 신문여론시장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신문들의 여론 지배력이 보도를 하는 방송영역까지 넘어올 수 있다는 우려는 무시할 수 없었다. 미디어 소유 집중으로 정치적 다원주의가 위축되어 궁극적으로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아서 신문방송 겸영 허용은 심각한 문제였다. 종편채널의 극심한 정치적 편향, 불공정, 오보, 막말 등 여러 가지 논란이 계속됐다. 2017년 두 번째 재승인 심사에서 TV조선이 기준점수에 미달했지만 조건부로 승인됐고 채널A도 겨우 기준점수를 통과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에서 중징계인 법정제재를 매년 4건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부여됐다. 그런데 행정소송과 조건이행 실적의 제출 기간 등 일부 행정절차의 허점을 활용하면 이 조건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4월20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전체회의를 거쳐 두 종편채널에 대한 재승인 여부를 결정했다. 심사위원회 심사에서 TV조선은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의 실현 가능성 등의 중점사항이 과락해서 재승인 거부나 조건부 재승인 요건에 해당됐고 청문 절차가 진행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TV조선에 12개 조건과 8개 권고사항을 부가하면서 3년간 조건부 재승인하기로 결정했다. 채널A는 기준점수를 넘었으나 소속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 문제로 의견청취를 실시했으나 사실 파악이 어려웠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채널A의 재승인을 의결하되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가 있을 경우 재승인을 취소할 수 있는 조건을 부여했다. TV조선과 채널A의 승인취소를 요구했던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을 넘고 시민언론단체의 방송통신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현재 제도적 조건에서 이번 결정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TV조선의 2020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법정제재가 4건에 이른다고 하고 채널A 기자와 성명 불상 검사장의 유착 의혹도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이번 재승인 조건은 TV조선의 법정 제재 건수는 연간 5건 이내로 되어 있다. 채널A의 재승인을 취소시킬 수도 있는 채널A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 사건도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종편이 제도적으로 특혜를 받고 있는 부분도 바로잡혀야 한다. 그 가운데 케이블방송 등 유료방송이 종편채널을 의무적으로 전송해야 하는 제도가 폐지됐다. 그러나 종편이 경영과 편성·보도의 분리 원칙을 넘어서 방송광고판매대행사를 거느리고 직접 영업할 수 있게 한 광고판매제도 등은 시급히 개선돼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종편 재승인 과정에서 드러난 심사기준과 행정절차 등의 한계도 개선돼야 할 것이다.공적 책임과 공정성에 있어서 종편의 환골탈태를 기대하기는 무리일까? 11월에는 JTBC와 MBN의 재승인 심사가 예정되어 있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20-04-26 이용성

[월요논단]위기가 가져온 변화의 기회

정치등 모든 분야 영향준 바이러스과학기술 발전도 모든 것 해결 못해우리 삶 '궁극적 가치' 깨달음 필요 그동안 욕심 채우기 위해 살았다면 이제 다함께 '당면문제' 노력할 때'너희가 와야 학교는 봄날'. 어느 학교 앞 현수막에 걸린 문구이다. 도서관에서 이용자를 기다리는 입장에서 너무도 공감이 가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문구였다. 두 달 이상 도서관 문을 닫고 있어 온기가 없어진 공간과 새로 들어와 한 번도 독자를 만난 적 없이 이용자를 기다리고 있는 새 책을 보면서 코로나19가 만든 변화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도서관도 이용자가 와야 봄이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사회 변화에 우리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바이러스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고 우리의 일상생활과 직결된다.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생활을 돌아보면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과는 전화통화와 SNS로 소통하고 있고 필요한 물건은 주로 인터넷을 이용해 주문한다. 아이들은 같은 반 친구 얼굴도 모른 채 온라인학교에 등교하고 최대한 바깥 외출은 삼간다. 거리의 사람들은 영화 속 장면처럼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 닦기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외출 후 집에 들어오거나 장소를 옮길 때마다 손을 자주 잘 닦게 되었다. 시간강사, 자영업자, 공연기획에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수입이 줄어 생계에 어려움이 생겼다. 정부와 각 지자체들은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각 지자체마다 지원금의 조건과 액수가 달라 논쟁이 되기도 했다.현재 코로나19의 확산은 주춤해지고 있지만 이 사태가 언제쯤 안정화 될지는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계속 될 것이라 예측한다. 그러나 누구도 최적의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를 두고 손을 잘 씻는 등의 방역에 중점을 두는 것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가 알게 된 몇 가지가 있다. 전 세계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생명공동체라는 것과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도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예측조차 어려운 세상을 살아갈 우리는 무엇을 중심에 두고 살아야 하는 걸까? 이제는 우리 삶의 궁극적 가치가 무엇인지 근본적인 깨달음이 필요하며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어야 할 때이다.'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리처드 T.모리스 글. 르웬 팜 그림.이상희 옮김/소원나무) 그림책 속 곰은 우연히 강을 따라 걷다가 모험이 시작된다. 곰의 모험 속에 숲속의 다양한 동물들이 한 마리 한 마리씩 함께 하게 된다. 함께 강을 헤엄쳐 나가며 어려움을 극복한다. 그래서 힘들지 않았고 무섭지 않았고 우울하지 않았다. '야호, 신난다! 그동안 여러 친구들은 저마다 따로따로 살아왔어. 여기 이렇게 함께 있게 될 줄 몰랐단다.' 이 그림책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우리도 동물 친구들처럼 바이러스와의 싸움 끝에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서로 경쟁하며 저마다 따로따로 살아왔어. 하지만 우리는 서로 돕고 협력하여 결국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어"라고.그동안 우리는 성장, 개발, 물질에 우선순위를 두고 각자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면 이제 서로 다른 존재이지만 공동의 마음으로 함께 당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할 때다. 즉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모두의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으로 삶의 축을 세워갈 때 무섭지 않고 두렵지 않고 우울하지 않고 모두가 신나는 세상이 올 것이다./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

2020-04-19 최지혜

[월요논단]코로나19 대창궐 시기에 떠올리는 김구의 소원

8세 성리학 시작 한학자에 배움도그의 이념은 '화이부동'과 잇닿아 개별국가 지향할 국제질서의 가치'뉴노멀' 새로운 표준이 現 문명 대안경제·군사력 아닌 문화의 힘에 초점코로나19 대창궐로 전 세계가 두려움에 떠는 와중에 우리는 지난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을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친일이 아니라 독립운동이 우리 역사의 주류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최근 들어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가운데 한 대목을 떠올리고 있던 터라, 그러한 내용의 기념사가 나에게는 퍽 시의 적절하게 느껴졌다.일부 정치권과 언론이 비난을 쏟아내고 있지만 세계 각국에서는 코로나19의 모범적인 대응 사례로 우리나라를 꼽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장비와 자료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으며 도움을 거부했던 국가의 경우에는 사과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현재 진행형인 만큼 속단은 피해야겠으나 대한민국의 위상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사실은 인정할 만하지 않은가 싶다. 이러한 판단 속에서 떠올랐던 것이 김구 선생이 강조했던 문화의 힘이다."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하게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서 실현되기를 원한다."김구 선생은 이러한 이념을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내가 보건대 이는 천하의 평화를 기획하는 방법론 측면에서 성리학의 화이부동(和而不同)과 잇닿아 있는 듯하다. 기실 김구 선생은 여덟 살에 성리학 공부를 시작하여 17세에 과거에 응시한 바 있으며, 20세에는 한학자 고능선(高能善)에게 배움을 얻기도 하였다. 화이부동이란 무엇인가. 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지만, 부화뇌동하여 무턱대고 한데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본래 공자가 군자의 덕목으로 제시한 바 있는 것을, 성리학에서는 개별국가들이 지향해야 할 국제질서의 가치로 다듬어 새롭게 내세웠다.성리학에서 화이부동을 강조했던 까닭은 당대의 국제질서가 그만큼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송의 북동 지역에는 거란의 요(遼, 907~1125)라든가 여진의 금(金, 1115~1234), 서쪽에는 탕구트의 서하(西夏, 1038~1227), 현 베트남 북부 지역에는 대월국(大越國, 1054~1804)이 자리잡고 있었다. 송은 이들 나라와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고 송의 지식인들로서는 이러한 현실을 넘어설 이념이 필요하였던 바 바로 그러한 이념이 화이부동이었다.각각의 지역에는 나름의 전통과 역사·문화가 있고, 전통·문화·역사를 영위해온 종족이 있으니, 이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각 국가의 고유성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 다른 나라에 강요해서 획일화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는 것. 이로써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나뉘던 중화(中華)·오랑캐의 개념은 변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부터 중화는 화이부동의 국제질서 존중 속에서 자신의 문화를 풍성하게 가꾸는 국가를 가리키며, 오랑캐란 무력을 동반하여 화이부동의 질서를 깨뜨리는 국가를 멸시하는 표현이 되었다는 것이다.성리학 이후의 유학을 그 전의 유학과 변별하여 굳이 신유학으로 규정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몽주의 다음과 같은 시편은 그러한 맥락을 전제해야만 이해가 가능해진다. "공자께서 필삭하신 의리가 정밀하니 눈 내리는 밤 푸른 불빛 아래 세밀히 음미하네. 일찍이 이 몸을 이끌고 중화에 나아갔는데 주변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이적(夷狄)에 산다고 말하는구나." 화이부동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었으니 정몽주가 발 딛고 선 그 자리는 바로 중화일 수 있었다.요즘 뉴노멀(New Normal)이란 용어가 부상하고 있는데 새로운 표준이 현 문명의 대안으로서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이나 군사력 따위가 아닌 문화의 힘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그러한 세계의 근원·목표·모범으로 자리매김하기가 김구 선생의 소원이었으리라 싶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20-04-12 홍기돈

[월요논단]일상을 넘어 일상으로

코로나19로 '삶의 이중성'을 본다진부한 반복이지만 존재의 양면성감추임과 드러남통해 의미 일깨워자본 민낯·경쟁 이웃 이젠 벗어날때새로움을 성찰 현실화하는 결단을일상은 매우 이중적이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전도서'의 말처럼 일상은 늘 그렇게 되풀이되는 진부함이기도 하지만, 밤이 되면 어두움 속에서 그 진부함에 가려 보지 못하던 것들이 새롭게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든 아니면 그 고마움이든 반복되는 일상에서 빛이 사라진 세상은 놀랍게도, 보았지만 보지 못했던 사실을 다시금 보게 만든다. 그래서 이제 되풀이 되는 일상이 진부함의 반복이 아니라 우리 삶과 존재가 그 아름다움과 의미를 드러내는 순간의 반복임을 알게 된다. 일상은 진부함과 지겨움의 시간이지만, 다른 한편 놀라움과 새로움의 자리이기도 하다. 일상은 삶의 이중성과 존재의 양면성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는 감추임과 드러남을 통해 그 숨겨진 의미를 알려준다고 말한다. 존재는 그런 순간을 간직한 사건 자체다.코로나19로 인해 이 일상의 이중성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성을 살면서 우리는 일상의 고마움과 아름다움, 그 의미를 새롭게 보게 된다. 일상의 진부함이 사실은 우리 삶의 전부임을, 그 진부함 안에서 순간순간의 새로움과 고마움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우리 삶임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는 위기이지만,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 기회이기도 하다. 위기는 갈라진 길 위에 선 선택의 순간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이것이냐 저것이냐! 그 선택의 시간은 우리 삶 전체가 걸린 절대적 순간이다. 깨어진 일상에서 진부한 과거로 되돌아갈 수도 있지만,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코로나19 이후 우리는 다시금 우리 삶과 사회를 되돌아보게 된다. 진부한 일상 속의 새로움을, 경쟁상대로만 보던 이웃의 고마움을, 성장과 풍요를 말하던 자본의 민낯을 새롭게 보게 된다. 공론장과 정론을 말하던 주류 언론이 당파적 이익에 빠져 얼마나 왜곡과 무지와 선동을 일삼는지를, 경제성장과 기술발전의 화려함이 어떻게 일상의 소소한 아름다움과 평범한 사람들의 소중함을 가려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삶의 고통과 고난을 구원의 말씀이 지닌 화려함으로 가려온 교회,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경제적 현실을 무한성장의 풍요로 가려온 자본, 자기 이익을 위한 법과 언론이 포장한 정의가 얼마나 화려한 위선인지를, 전문지식과 학력이란 꽃으로 성공을 약속하던 교육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데 얼마나 무능했는지를 남김없이 보게 만든다.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이 진부함과 거짓을 벗고 새로움을 향해 가야 한다. 우리 사회와 삶을, 우리 일상을 새롭게 만드는 길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때만이 가능하다. 자연과 다른 생명이 자본과 기술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는 주체임을 자각할 수 있을 때 근대 세계의 화려함을 넘어, 가려진 존재의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 과학·기술의 능력이 자본에 종속된 사회를 벗어나야 한다. 현대 세계의 물질적 성공에 가려 잊어왔던 인간다움의 근원을 새롭게 밝혀야 한다.마침 다음 주면 매우 부족하지만 우리의 선택을 보여줄 기회가 온다. 언제나 둘 중 하나만 강요했던 정치의 진부함을 벗어날 기회다. 미래를 말하지만 끊임없이 과거로 퇴행하는 미래 없는 정당, '더불어'를 외치지만 결국 나만 살자는 정치를 벗어나야 한다. 거짓과 위선이 약속하는 화려함을 깨는 것은 어두운 위기의 순간에서야 가능하다. 이 순간의 결단은 과거의 경로를 벗어날 때 현실이 된다. 언론의 무능과 왜곡을 알면서도 여전히 주류 언론을 신봉하는 맹목, 명문대학을 가야만 성공한다는 상상력의 한계, 신을 파는 교회가 실존적 구원을 보장하리란 허상, 기존 사법제도에 매몰된 법이 정의를 지켜줄 것 같은 착각을 벗어나는 길은 진부한 일상을 결단의 순간으로 바꿀 때만 가능하다. 삶은 이런 결단을 위한 지성적 성찰과 실천을 매 순간 되풀이 하는 과정 자체다.코로나19 이후 새로움 속에서 삶과 인간관계, 정치와 경제를 상상한다면 그 새로움은 진부함을 깨는 결단 없이는 불가능하다. 새로움을 현실화하자, 삶의 퇴행적 경로를 깨고 새로운 일상을 그리자. 해체 없이 새로운 존재의 집은 있을 수 없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20-04-05 신승환

[월요논단]코로나19와 의료 공리주의

폭발하는 환자 伊·美 대응 지침보며선진국 의료시스템 붕괴 다시 생각사람생명 돈으로 환산 뼈아픈 현실영리보다 공공 의료 중요성 일깨워감염병들이 인간에 전하는 메시지젊은이인가. 고령자인가. 이탈리아의 의사들이 폭발적인 코로나19 환자를 놓고, 윤리적 선택에 고통스러워했다. 의료진들에겐 생존 가능성이 큰 환자를 위해 의료자원을 비축하라는 지침도 내려진 바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국방물자생산법을 동원했다. 자동차보다도 마스크와 인공호흡기가 급한 현실. 선진국가의 의료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과연 어떤 문제가 있었던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코로나19처럼 긴급하고 세계적 상황을 예측한 것은 아니지만 의료와 관련하여 선호공리주의를 주장한 학자가 있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 피터 싱어(P.Singer)이다. '중증의 신생장애아는 살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일종의 선호적 공리주의를 주장했다. 1989년 6월 장애인 단체를 비롯한 독일 언론들의 격렬한 항의가 있었고, 결국 그의 심포지엄과 강연은 중단되었다. 그를 강연에 초청한 교수에 대해 해임 운동까지 일어났다. 그의 주장은 연명치료의 중단과 존엄사의 문제로까지 연계된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무엇이며,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하지만 돈이 들거나 생산성이 없는 인간 등에 대한 치료 포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비판을 받았다. 약자는 낳지도 살리지도 않는다는 나치의 논리라고 비난되었다. 7만명 이상의 장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나치의 '안락사' 계획을 상기시키는 극도의 분노를 독일인들에게 일으켰다. 생명의 신성성(Sanctity of Life)을 주장하는 종교의 입장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의료자원의 합리적 이용이라는 선호공리주의에도 불구하고, 생명조작의 추진이나 생명의 탈신성화를 추구하는 일종의 우생이데올로기로서 비판되었던 이유다.그런데도 세계적으로 긴급한 의료 현실이 의료진이나 의료 자원의 분배적 정의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지친 의료현장과 의료진들의 한계 그리고 의료시스템 붕괴의 가능성을 들어 외국인의 입국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차별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료진의 절규나 생명의 존엄에도 불구하고 삶과 죽음의 대상을 선별해야 하는 현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의료자원의 합리적 이용이라는 현실이 싱어가 주장했던 토대와 전혀 다른 상황에서 약자에 대한 포기와 일부환자에 대한 우선권이 정당화되고 있다. 이미 코로나19는 글로벌과 포용정신을 내팽개치고, 자국과 자국민 우선이라는 극단의 이기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코로나19를 피해 요트를 타고 안전한 곳을 찾아 나선 세계적 갑부들도 있다. 벙커로 피신하는 미국인들도 있다. 그러나 70대의 사제는 산소 호흡기를 젊은이에게 양보하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부모가 자식이 감염될까봐 집밖에서 죽음을 선택했다는 외신도 있었다. 특정 종교집단 때문에 치료를 기다리다 숨진 국민들도 있다. 일부의 이기주의적 행태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빛나는 것은 질병에 맞서는 존경스러운 의료진, 평등한 의보체계 그리고 묵묵히 자신에 충실하면서 버텨내는 시민들의 덕분이다.그런데도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생명의 질을 내세워 생명과학이 왜곡시킨 것은 아닌지. 그동안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자본과 결탁하면서 공동체와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잃게 한 것은 아닌지. 투기자본과 의료정책이 공공의료의 구축보다는 의료관광과 장기이식이라는 영리적 목적과 결합한 결과는 아닌지. 줄기세포와 유전자 연구가 영생을 꿈꾸는 자본의 탐욕과 일부 인간들을 위한 욕망의 수단이 된 것은 아닌지. 고령화 사회가 가져온 요양원 정책에는 도대체 어떤 문제가 복합적으로 내재되어 있는지. 영리병원이나 외국병원의 유치를 업적으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공공의료원은 수익성이 없다면서 폐쇄하거나 축소시킨 결과는 아닌지.코로나19는 인간의 존엄과 생명조차도 돈으로만 환산해온 현실에 대한 뼈아픈 경고가 담겨있다. 인간의 생명과 공동체가 없다면 돈도 경제도 없다. 영리적 의료보다는 공공의료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주고 있다. 의료와 생명에 대한 자본의 탐욕을 멈추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에 대한 신성성을 다시 생각할 때다. 그것이 반복되는 감염병들이 인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03-29 김민배

[월요논단]소수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연동형비례 첫 적용 총선 코앞인데취지 안맞게 소수당·후보 정보부족미래당 녹색당 정책·공약 무엇인지정의·민중당 어떻게 다른지 '깜깜'정확·공정 판단기준 적극소개해야4·15 국회의원 선거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되는 첫 선거다. 소수 정당과 후보자에게 도움이 되는 선거제 개혁이 시도된다. 거대 양당의 비례 위성정당으로 선거제 개혁의 방향이 흔들리고 있긴 하지만 소수정당의 비례대표 진출 가능성은 여전히 높을 것이다. 그런데 소수정당과 비례 후보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이전부터 선거 또는 선거보도에서 신진·소수 정치세력에 대한 관심과 제도적 배려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시민언론단체의 선거보도감시 준칙을 마련할 때도 신진·소수정당과 그 후보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언론중재위원회 세미나에서 '선거방송 심의규정'에는 '소수자에 대한 기회부여'란 내용이 있지만 '선거기사 심의규정'에는 그런 내용이 없으니 보완하자고 지적한 적도 없다. 이번 총선 보도도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는 듯하다.거대 양당의 비례 위성정당 논란으로 선거판이 복잡해졌다. 헷갈리는 이름의 비례정당이 등장하고 서로 비난을 주고받는다. 언론은 갈등과 충돌을 중계하고 지식인과 전문가가 등장해서 첨예한 비판을 가한다. 거대 양당과 언론이 정치혐오와 선거혐오를 만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거대 양당의 비례위성 정당 추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선거제 개편을 주도한 민주당이 비례 위성정당에 참여하는 일은 더 큰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언론은 비례위성 정당 추진의 피해자가 유권자 시민이고, 소수정당에 가야할 표가 거대 양당에 돌아가 민의와 표심이 왜곡될 거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를 '역병'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다 옳은 이야기다. 그렇지만 뭔가 문제가 있다. 우리에게 대안이 될 수 있는 소수 정당과 소수정당 비례후보자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지역에 출마하는 후보자와 비례대표 후보자들은 어떤 다른 기준으로 봐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정의당과 민중당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 미래당과 녹색당은 정책·공약이 무엇인지, 거대 양당의 비례 위성정당은 정책·공약을 갖추긴 했는지 등이 궁금하다. 비례후보자들도 궁금하다. 비례 위성정당 후보자만 언론의 검증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회 진출 가능성이 높아진 소수 정당에 대해서도 과거보다는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소수 정당이 얼마나 진보적인지 혹은 보수적인지 정책·공약과 후보자들에 대해 어떤 정보가 제공되고 검증이 될 것인지 관심 있게 봐야 한다.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정의당 등 소수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넘치고 있다. 과도하고 정확하지 않은 내용도 있지만 쟁점을 명확하게 확인하고 정리해주는 언론을 찾아보기 어렵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국회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소수 정당과 소수 정당 후보자에 대한 관심과 정보가 필요하다.언제나 우리 선거에서는 시민들, 유권자들이 합리적이고 전략적 선택행위로 투표를 해왔다. 여당이 오만하면 심판했고 야당이 무능하면 심판했다. 유권자들이 소수정당과 그 후보자들을 평가하고 판단한 내용이 투표행위에 반영될 것이다. 그래서 더 정확하고 공정하고 충분한 정보가 필요하다. 언론은 소수정당의 정책·공약과 비례 후보자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자. 소수정당이나 비례정당 홈페이지를 찾아가 봐도 정보가 부족하다. 시민언론단체들이 만든 '2020 총선 미디어감시연대'도 소수정당에 대한 언론 보도가 부족한데 비례 위성정당 논란으로 더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선거제 개혁의 취지를 살리고 유권자들에게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제공을 해야 하는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소수정당과 비례후보자에 대한 보도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20-03-22 이용성

[월요논단]건강한 삶을 위한 생태적 각성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지 모른채농약·화학비료 무분별하게 사용식물 키우며 생명존중성 알리는그림책 '우리가족은 정원사…'몸살 앓는 '지구 회복' 중요성 알려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길어지고 아직은 여기저기서 한숨이 새어 나오고 있지만, 자연의 약속은 늘 어김이 없다. 어느새 봄이 찾아와 생강 꽃이 피고 땅속 새싹들이 세상 밖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새들의 움직임도 바빠 보인다. 겨우내 얼굴 마주치기 힘들었던 이웃들도 밖으로 나와 종일 마당을 정리하고 도서관 주변 논, 밭의 주인들은 밭을 갈고 퇴비를 뿌리며 농사 준비를 시작한다. 도서관 정원에는 잡초들이 가장 먼저 초록을 자랑하며 하루하루 커가고 있었다. 잔디를 예쁘게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며칠 동안 호미를 들고 잡초를 뽑아내는데, 이웃으로부터 '잔디는 남고 잡초만 죽이는 제초제를 뿌려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어야 했다. 잡초 때문에 고구마 농사를 망친 경험이 있기에 잡초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잡초보다 제초제가 훨씬 더 무섭다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다. 텃밭에 당근, 토마토, 고추, 오이 등을 키우고 있고 어느새 일곱 해를 반복하고 있지만 매번 수확이 형편없다. 어떤 때는 무성한 잡초로 뒤덮여 작물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고, 벌레가 다 먹어 먹을 게 없기도 하고, 당근이 새끼손가락 굵기인 적도 있었다. 농사일에 재주가 없고 부지런하지 않은 이유가 크겠지만 제초제와 농약을 쓰지 않는 것도 한 이유이다. 강화도 농촌 마을에 살면서 놀라운 것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화학농약을 사용하는 것이다. 심지어 가족이 먹게 될 작은 텃밭 채소에도 살충제와 제초제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라게 된다. 우리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화학농약 사용이 거의 일반화되어 있다. 살균제, 살충제, 제초제, 성장 촉진제 등 다양한 농약이 있고, 이것은 식물을 재배하는데 큰 편리함을 안겨주었다. 작은 텃밭이 아니라면 농약 없이 농사짓기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화학농약이 어떤 성분으로 만들어졌고 얼마나, 어떻게 유해한지 잘 모른 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몬산토 회사에서 개발한 것으로 글리포세이트(Glyphosate) 성분이 함유된 라운드업(Roundup) 제초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단위 농장에서 사용되었다. 글리포세이트가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지에 대한 사실들이 직접적 피해자들(라운드업 사용으로 기형아 출산 등의 피해 사례자)과 그 분야의 전문 연구원들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나라는 강력한 규제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구체적인 규제가 없는 실정이다. 심지어 농촌진흥청은 2017년 1월 농약안전성심의위원회에서 동물실험 결과 발암 위험성이 낮았다며 글리포세이트의 출하 제한 처분을 해제했다. 현재도 글리포세이트는 아무런 규제 없이 다양한 제초제에 사용되고 있다. 지금 우리 땅은 무분별한 농약과 화학비료의 범람으로 이미 많은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다. 일찍이 농사는 살아있는 생명을 길러내는 일임을 알리며 몸소 농사를 지으며 화학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을 개탄한 분이 있다.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생명운동을 시작한 고 장일순(1928~1994. 사회운동가·생명운동가)이다. '힘들어도 이건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를 새롭게 만드는 일입니다.' 이처럼 무위자연(無爲自然-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는 그대로의 자연)을 설하며 생명사랑을 주장했다. 그의 싹이 틔워져 무농약, 무제초제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서 우리는 희망을 가져본다. 식물을 직접 키우면서 생명존중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 있다. '우리 가족은 정원사입니다./조안나 게인즈와 아이들 글·줄리아나 스웨이니 그림·김정하 옮김/나는별'. 이 그림책 속 조안나는 말한다. '우리 가족은 정원사예요! 누군가는 씨앗에서 싹이 트기만 하면 정원이 된다고 하지만 우리는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정원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삶이 그렇듯 정원을 가꾸는 건 참 힘든 일이랍니다.' 꼬마정원사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단단한 각오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구에 의존해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당장엔 편리하고 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생태적 각성과 변화 없이는 지속적이고 건강한 삶을 꿈꾸기는 어렵다. 이러한 단단한 다짐이 따뜻한 봄 햇살을 비추듯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다시 회복시킬 것이다./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

2020-03-15 최지혜

[월요논단]구원이 되지 못하는 종교 혹은 진리

신천지·집회 주도 전광훈 목사진리 정답으로 알고 죽음 몰라'구원 약속… 야외 무감염' 장담진리·이념보다 삶의 가치 우선땐코로나19 극복할 동력 만들어낼 것대한민국 건국을 앞둔 1948년 상반기 문단에서는 김동리와 조연현의 논쟁이 벌어졌다. 김동리는 문학이란 구경적(究竟的) 삶의 추구라고 견해를 피력했던바, 이에 대하여 조연현이 종교와 문학의 경계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하고 나섰던 것이다. 김동리의 답변은 이러했다. 종교란 기원하고 귀의해야 할 신(神)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까닭에 의존적인 반면, 문학은 스스로 사색하고 상상하면서 신을 찾아 나서는 행위인 까닭에 주체적일 수밖에 없다.김동리의 논리는 진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종교는 종종 진리(眞理)를 내세워서 다른 가치를 억압하곤 한다. 절대자에 의존하다 보니 결과론에 치우치는 경향을 드러낼 때도 있다. 예컨대 복덕(福德)을 기원하거나 현재 벌어진 사태를 신의 징벌로 수용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반면 문학은 주체적인 면모로 인하여 일리(一理)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또한 아무리 멀리 나아간들 작가는 결코 신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 작가에게는 결과가 아닌 과정이 중요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다.종교가 극단으로 치우쳤을 때 문학의 자리에서 그 한계를 적극적으로 심문했던 작가로는 알베르 까뮈를 꼽을 수 있다. '이방인' 말미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신부(神父)에게 쏟아 부었던 발언이 대표적이다.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 오랑을 배경으로 삼는 '페스트'의 주동인물 리유 또한 마찬가지다. '페스트'에는 파늘루 신부가 등장하는데, 작품 앞부분에서 그는 페스트의 창궐을 죄의 대가라고 강연하고 있다."이 재앙이 처음으로 역사상에 나타났을 때, 그것은 신에게 대적한 자들을 쳐부수기 위해서였습니다. 애굽왕은 하느님의 영원한 뜻을 거역했는지라 페스트가 그를 굴복시켰습니다. 태초부터 신의 재앙은 오만한 자들과 눈먼 자들을 그 발아래 꿇어앉혔습니다. (중략) 반성할 때가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일에 하느님을 찾아뵙기만 하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너 번 무릎을 꿇는 것으로 여러분의 그 죄스러운 무관심에 대한 대가를 하느님께 갚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미지근하지 않으십니다."반면 신을 믿느냐는 물음에 의사(醫師) 리유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다.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나는 어둠 속에 있고, 거기서 뚜렷이 보려고 애쓴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전능한 신을 믿는다면 자기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일을 그만두고 그런 수고는 신에게 맡겨 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신을 믿는다는 파늘루까지도, 그런 식으로 신을 믿는 이는 없는데, 그 이유는 전적으로 자기를 포기하고 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며, 적어도 그 점에 있어서는 리유 자신도 이미 창조되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거부하며 투쟁으로써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삶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는 것이 리유의 입장이다. 파늘루의 맞은편에 자리하였으니 진리라고 했겠으나, 페스트 창궐에 맞선 의사로서 그의 활동은 일리라고 이해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어둠과 맞서는 리유에게 명확한 정답은 없었고, 다만 어둠을 건너가려는 나름의 헌신적인 도전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위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방안을 모색하는 리유의 면모 또한 일리에 입각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관에 근사하지, 진리가 행사하기 쉬운 배타적인 폭력성과는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다.문득 종교를 문학의 자리에서 바라보게 된 것은 신천지 때문이다. 광화문집회를 주도했던 전광훈 목사 때문이기도 하다. 그네들은 진리를 명확한 정답으로 손에 쥐고 있기에 존재가 딛고 있는 죽음(어둠)을 모른다. 그래서 감히 구원을 약속할 수 있고, "야외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라고 호언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존재가 딛고 선 죽음을 직시하면서 어떠한 진리·이념 따위보다 삶의 가치를 우선하는 편에 섰을 때, 이는 지극히 위태롭게 느껴질 따름이다. '페스트'에서 그러하였듯이, 창궐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극복할 동력은 후자의 편에 선 이들이 만들어낼 것이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20-03-08 홍기돈

[월요논단]검은 장막을 거두어

바이러스 원인 생태계 파괴한 인간사람 구원한다는 '맹목적 신앙'신의 아름다움을 공포로 팔아공동체 해체 죽음으로 몰아지금이야말로 지성적 성찰 필요새벽같이 와닿은 호소문은 '대구 경북을 살려내라'고 외치고 있었다. 진보운동 가운데 가끔 얼굴을 마주했던 동료 교수의 글이다. 초중등 교육을 대구에서 마쳤고, 지금도 많은 친척과 지인이 대구에 살고 있기에 그 호소가 참 가슴 아프다. 그 안에 담긴 정부를 질타하는 매서움이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다른 한편 이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해 온몸을 던져 일하는 분들과 그럼에도 장악 가능한 상태에 놓인 현 상황을 돌아보면 나름의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우리 몸을 해치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생물학적 바이러스가 생명을 위협한다면, 사회적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과 공동체를 해체시킨다. 그러나 그에 대한 두려움은 더 많은 증오와 탓을 만들어 우리 삶과 마음을 파괴한다. 중세 흑사병 사례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진실을 담고 있다. 알지 못하는 죽음의 그림자는 맹목적인 신앙과 증오를 부추기고, 이웃에서 마녀를 찾는다. 심지어 있지도 않은 자신의 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침내 몸이 무너지고 마음이 파괴된다. 있지도 않은 죽음의 유령이 존재를 파멸시킨다. 알지 못하면 두렵고 그 두려움은 알지 못하는 그만큼 커진다.바이러스에 백신이란 치료약이 있어야 하듯이 무지의 바이러스에는 지성의 백신이 필요하다. 증오와 음모의 사회적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이웃 사람에 대한 신뢰와 공동체를 위한 공감의 백신이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몸의 요구와 정신의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몸이 생리적 조건을 채워야 살아갈 수 있듯이 마음과 정신은 그에 걸맞은 지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지성은 전문지식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정신의 기본적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성이라 부르는 마음과 정신의 기능이 작동한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으며, 그 크기만큼 사람의 크기가 결정된다. 마음과 정신의 백신은 우리의 지성적 성찰을 떠나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누가 생물적 바이러스를 넘어 사회적 바이러스를 양산하고 있는가. 이 바이러스에 맹목적으로 휩쓸릴 때 우리 삶과 마음은 파괴되고 우리 존재는 해체된다. 자신들의 검은 이익을 위해 우리를 두려움으로 몰아가고, 사회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어두운 세력은 누구인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원인을 밝혀야 할 책임을 지닌 전문가와 언론이 오히려 이 두려움을 부추기고 있다. 사람을 구원한다는 종교가 앞장서 자신의 철 지난 교리를 강변한다. 신은 자연을 만들지만, 그 안에서 죽음의 병균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무지와 맹목이다. 신은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했지만, 인간은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세상을 검은 그림자로 뒤덮는다. 이 바이러스의 원인은 생태계를 파괴한 인간이며, 좁디좁은 정치적 이익을 노린 검은 언론과 맹목적 신앙, 파당적 정치세력이 아닌가. 신의 아름다움을 공포와 증오의 그림자로 바꿔놓은 그들이 원인이 아니란 말인가. 그들은 무한한 언론 자유를 누리고, 경제적 풍요를 독점하면서 나라가 재앙에 빠졌다고 앙앙거린다. 공동체를 해체하고 증오를 증폭하면서 신의 이름을 팔아 이익을 챙긴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면서 구원을 말한다.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을 딛고 만들어낸 나라의 풍요를 온갖 불법적 특권으로 독점하면서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간다. 정치의 시간이 다가왔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란 흑사병이 기회가 되었다. 우리의 위기를 그들은 정치의 기회로 활용한다. 그들은 누군가. 어려움이 닥칠 때 참된 친구가 다가오듯이, 무지와 두려움의 장막을 시간이 거둬 가면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 종교와 교회가, 그 신문과 정당이 누군지 똑똑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억하자. 그래서 그들을 몰아낼 수 있을 때, 그들이 부추긴 무지와 맹목의 어두움을 걷어낼 때 우리 삶과 공동체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100여년의 고통과 잘못을 반복할 수는 없다. 지성적 성찰은 정신을 지닌 인간의 의무다. 이것을 꼰대란 말로 폄훼하지 말라.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사회적 바이러스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20-03-01 신승환

[월요논단]코로나19와 동물의 역습

인간·경제우선주의가 불러온 사태중국을 '세계의 공장' 치켜세우며 도넘는 자연파괴·동물착취 부추겨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져'생명체 대한 새로운 야만' 자성할때'코로나19'. 마귀의 짓인가. 하나님의 심판인가. 우리들의 삶을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가 종교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특정 종교 활동을 통해 급속히 환자가 늘면서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특정 종교에 대한 비판은 물론 유사 종교 간 비난도 거세다. 그 시작은 형체도 냄새도 없는 바이러스였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끝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새로운 불안감이 갑자기 확대되면서 우리들을 더 위축시키고 있다. 졸업식도 취소되었다. 사진 몇 장으로 대학생활을 마무리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하다. 중국 유학생들로 대학캠퍼스는 긴장하고 있다. 식당도 거리도 한산하다. 한때 일본 크루즈 사태와 관련하여 도쿄올림픽 개최 여부를 우려했다. 하지만 우리의 4·15 총선이 제대로 실시될지 걱정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글로벌 체제에 연계된 중국 시장의 마비가 가져오고 있는 경제적 충격도 일파만파다. 조만간 사태가 진정이 되지 않는다면 헌법 제76조 1항의 대통령의 특별한 권한들이 발동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재정경제상의 위기타파를 위한 긴급명령뿐만 아니라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들이 실시될 수도 있다. 시시각각 늘어나는 환자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생각한다. 도대체 이 사태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종교적 차원에서는 마귀와 하나님 논쟁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전문가들은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한 팬데믹(pandemic)이 주기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을 경고해왔다.중국은 즉각 부인했지만 실험실의 동물로부터의 발병 가능성을 주목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중국의 발표처럼 야생동물의 식용과정에서 발생했을 수도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실험동물이든 식용의 과정이든 동물이 관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들은 동물을 인간과 다른 차원에서 취급해왔다. 호모사피엔스에 기반을 둔 인간중심주의가 그것이다. 동물을 단지 인간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삼아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생명의 존엄이라는 차원에서 동물에게도 일종의 인격을 부여하려는 움직임들이 구체화되고 있다. 이른바 동물의 권리와 동물의 복지 논쟁이 그것이다. 독일과 핀란드에서는 헌법차원에서도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동물복지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2014년 세계동물보호단체(World Animal Protection)가 50개 국가를 대상으로 한 평가에 따르면 영국은 A, 한국과 일본은 D, 중국은 E평가를 받고 있다. 지표는 각국의 동물 보호의 중요성과 가치 인식, 동물 복지 관련 법률과 정책에 관해 15항목을 평가하고 있다. 동물의 권리나 복지 차원이 아니더라도 이른바 가축공장에서 생산된 계란이나 고기들의 판매를 제한하거나 거부하고 있는 세계적인 움직임도 주목 대상이다. 공업적 방식으로 사육되고 대량생산된 동물이 인간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하여 이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국가들은 농업용, 애완용, 실험용, 전시용, 식육용 동물 등의 보호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각종 법규와 지침에도 불구하고 그에 입각한 사육이나 관리가 실시되고 있지 못하다는 세계적인 보고서들이 발표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의 대학이나 연구소 그리고 기업 등에서 행해지는 실험용 동물들과 그 처리는 과연 규정대로 이뤄지고 있는가. 우리의 실험실과 전통시장은 과연 안전한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동물에 대한 실태조사와 정책의 보완 등이 실시되어야 한다. 코로나19는 마귀의 짓도 하나님의 심판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중심주의와 경제우선주의가 불러온 일종의 재앙이다.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치켜세우면서 자연을 급속히 파괴시킨 결과물이다. 자연이 파괴되면 일차적으로는 수목과 동물이 피해를 입는다. 그러나 그 결과에서 인간이 피해갈 방법은 없다. 도를 넘는 자연파괴와 동물들에 대한 착취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코로나19에 대한 의료전문가와 정부의 의견을 존중하고 협조해야 할 때다. 하지만 인간의 광기에 가까운 욕망과 생명체에 대한 새로운 야만에 대해 자연과 동물들의 역습이 시작된 것은 아닌지. 모두가 자성할 때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02-23 김민배

[월요논단]혐오를 넘어선 정확한 코로나19 보도를 기대한다

이미 세계로 번진 '위험의 일상화'일부언론 메르스의 교훈 잊었는지대응력 부족하면 비판 마땅하지만확인안된 허위정보 인터넷등 전파中혐오·근거없는 정부비판도 문제국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 29명 중 9명이 완치되어 격리 해제됐다. 16일 29번째 확진자가 발생했고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의 동향도 심상치 않다. 중국은 이미 지역사회 유행이 진행됐고 일본도 의심받고 있다. 2015년 5월 20일부터 시작된 메르스 사태는 우리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최대 유행지라는 평가를 얻었다. 그해 12월 23일 상황 종료를 선언할 때까지 환자 186명, 사망자 38명이 발생했다. 당시 정부 대응은 심각하게 부실했다. 위기상황에서 소통 부재가 가장 큰 문제였다. 신종 감염증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데도 정부는 신뢰할 만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당시 정부와 일부 언론은 확진자 이동경로와 관련 병원 정보를 공개한 박원순 서울시장을 집중 비판하기도 했다. 2016년 발행된 보건복지부의 '메르스 백서-메르스로부터 교훈을 얻다'에 따르면 메르스 환자 대부분이 병원에서 감염됐고 감염자 중 의료기관 종사자는 13.4%였다. 감염자의 역학조사와 통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정부의 메시지는 실제 상황과 달랐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2015년 메르스 경험을 바탕으로 신종 감염병 대응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2018년 8월 메르스 의심환자가 발생했을 때, 이 시스템으로 신속 대응한 바 있다. '2018년 메르스 중앙방역대책본부백서'에 따르면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고 허위정보에 대응하기 위한 메르스 팩트체크 Q&A가 제작됐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지난 신종 감염증 사태의 경험을 잃어버린 것 같다. 코로나19를 정부 비판의 계기로만 인식하는 것 같다.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이 부족하다면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정부의 코로나 대책을 비판하다가 일본 정부의 크루즈 봉쇄를 칭찬한 어떤 신문 사설은 여전히 화제가 되고 있다. 아직도 일부 언론은 코로나19를 우한폐렴이라고 쓰고 있다. 가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같이 써주기도 하지만 왜 그러는지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불렸던 것은 중국에 저자세라거나 반중 정서 차단 차원이 아니라 WHO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친중파 정부가 중국의 책임을 덜기 위해서 명칭을 변경'했다는 프레임을 위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역명을 병명에 붙이는 일은 편견만 낳을 뿐이다.코로나19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허위정보가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고 있다. 중국정부의 코로나19 정보통제가 이를 가중 시켜 허위정보를 양산시킨 책임이 크다. 그런데 확인되지 않은 유튜브 영상을 일부 언론이 그대로 전달했다가 삭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속보의 욕망을 자제하고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일수록 팩트체크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아산·진천의 중국 우한 교민 임시시설에 대한 부정확한 보도와 사생활 침해보도도 문제였다. 부정확하고 오해를 일으키는 보도는 계속됐다. 중국을 방문한 뒤 수원에서 뇌졸중으로 숨진 40대 남성에 대한 기사를 일부 언론이 인용보도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뉴스통신사 등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기사제목을 써서 문제가 됐다. 2월13일 염태영 수원시장은 SNS를 통해 '수원에서 코로나19 의심환자 사망사건 파악 중'이란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언론사에서는 우리 시민들이 자칫 동요할 수 있는 표현을 자제하여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고 적었다. 2012년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과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가 공동으로 제정한 감염병 보도준칙은 첫 번째 준칙으로 '감염병 보도의 정확성'을 강조한다. "감염병 보도는 현재 시점까지 사실로 밝혀진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신뢰할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코로나19에 대한 정확하고 신중한 보도, 혐오와 편견을 뛰어 넘는 언론보도가 필요하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20-02-16 이용성

[월요논단]무엇이 우리를 지켜줄까

인류 위협해 온 '바이러스 공포''신종 코로나 사태' 전세계 불안감염 우려 모든 일상생활 변화위생 철저·예방수칙 준수 중요성숙한 시민의식도 뒤따라야지구의 역사를 보면 인류와 함께 다양한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들이 존재해왔고 바이러스는 인류를 지속적으로 위협해왔다. 먼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도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는 이미 조류독감,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을 경험해 알고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생겨나고 치료제나 백신을 만들기 전에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한다. 그렇게 바이러스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며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의학이 발달하고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현시대에 감기증세와 비슷해 보이는 질병의 백신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 의아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바이러스를 다룬 SF영화처럼 바이러스가 인류를 멸망위기까지 몰고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엉뚱할 수도 있는 앞선 걱정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 세계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중국은 확진자수가 급속하게 늘고 있으며 사망자도 700명을 넘었다. 이미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까지 28개 국가에서 감염자가 나왔다. 우리나라는 확산방지 및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 신종코로나 중앙사고수습본부를 통해 사태를 주시하며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 감염에 대한 우려로 학교 졸업식 풍경이 달라졌고, 많은 행사들이 취소되고 있다. 학원, 식당, 마트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고 휴업에 들어간 곳도 많다.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구하기도 쉽지 않아졌다.다행스러운 소식은 우리나라의 경우 확진 환자 대부분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으며 몇 명은 완치되어 퇴원을 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들의 불안과 걱정을 조금은 덜어주고 있다. 백신도 없으며 치료제도 없는데 어떻게 호전되어 퇴원을 할 수 있었을까? 국립중앙의료원측에서는 치료제가 없는데 어떻게 좋아졌냐는 물음에 '자연적으로 치료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이 작동해 저절로 치료가 되었다는 말이다. 면역력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부분 평소 꾸준한 건강관리와 함께 스스로의 믿음과 강한 의지가 있을 때 활성화된다.바이러스를 이겨내고 완치되어 퇴원하는 분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그림책이 있다. 그림책 '하루거리'(김휘훈 글·그림/그림책공작소)의 주인공 순자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큰집에 더부살이를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데, 하루걸러 아프다는 '하루거리(학질)'에 걸렸다. 죽는 게 나을 만큼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해 동네 친구들이 저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민간요법으로 병을 낫게 하려고 애쓴다. 뱀이 하루거리를 싹 물어간다며 몰래 뱀 모양의 차가운 수건을 목에 둘러 주기도 하고, 고약한 병엔 고약하게 맞서야 낫는다며 화장실에서 삶은 계란을 먹게 하기도 한다. 외롭고 힘들기만 했던 순자는 처음으로 동무들과 해가 저물도록 뛰어논다. 그리고 '다음 날 순자는 하루거리가 별똥처럼 뚝 떨어졌대'로 마무리 짓는다. 살포시 웃음이 난다. 순자의 하루거리가 떨어진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뱀이 물어 갔을까? 아니면 고약한 화장실 냄새 때문일까?… 아마도 늘 외롭고 고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순자 옆에 나타난 동네 친구들의 따뜻함이 순자의 하루거리를 뚝 떨어뜨렸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하루빨리 종식되길 바라고 있는데 그다음엔 또 어떤 바이러스가 우리 앞에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매번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잔뜩 사놓고 과도한 걱정 속에 사람들을 피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바이러스로 인한 혼란 속에서도 따뜻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감염 취약계층을 위한 마스크 기부,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노력, 감염 예방을 위한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이러스에 맞서기 위해서 철저한 위생관리와 예방수칙을 준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거기에 성숙한 시민의식과 연대의식이 더해져 우리가 함께 한다면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별똥별 떨어지듯이 뚝 떨어지지 않을까./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

2020-02-09 최지혜

[월요논단]이상문학상 논란의 향방과 작가들의 안티조선 운동

좋은 소설 골라 상 주면 그만이지어떤 조항 붙는다면 문학상 불순해져1926년 12월 창립 조선문예가협회소속작가 스스로 정신노동자 규정소시민 결벽성 탈피 경제투쟁 결의얼마 전 이상문학상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우수상 수상자로 결정된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씨가 불공정한 조항을 지적하며 수상거부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수상자는 수상작의 저작권을 이상문학상 운영 출판사인 문학사상사 측에 3년간 양도해야 한다는 조항. 좋은 소설을 골라내서 상을 주면 그만이지, 여기에 어떤 조항이 따라붙는다면 그 순간 문학상은 불순해진다. 그런 점에서 이번 논란은 출판사의 불공정한 처사도 문제이겠고, 작가가 가지게 마련인 특유의 자존심을 자극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논란이 불거졌을 즈음 이기영에 관한 논문을 읽고 있었다. 이기영은 1926년 12월 25일 창립된 '조선문예가협회'에 참가하였다. 조선문예가협회는 잡지, 신문, 출판업자를 상대로 원고료 최저액을 결정하고자 했던 일종의 작가조합이었다. 조선문예가협회가 창립된 지 두어 달 지나 잡지 『현대평론』이 당국에 압수되어 삭제 처분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잡지사는 이를 이유로 여기 게재된 이기영의 「호외」에 대한 원고료 지급을 거부하였고, 조선문예가협회는 모든 회원의 『현대평론』기고 중지를 선언하며 맞섰다. 『현대평론』 측은 결국 조선문예가협회가 성명을 발표한 열흘 뒤 원고료 지급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문예가협회에 새삼 주목하게 되었던 까닭은 그네들의 지향이 현재 작가들에게 시사하는 바 있으리라 싶었기 때문이다. 조선문예가협회 소속 작가들은 스스로를 정신노동자로 규정하면서 소시민적 결벽성에서 탈피하여 경제 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니까 작가는 금전 문제로부터 초연해야 한다는 재래의 통념을 소시민적 결벽성으로 규정, 배격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억과 현진건을 제외한 조선문예가협회 발기인들이 모두 카프 소속 작가였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즉 그네들은 노동자로서의 당파성을 명확히 되새기는 계기로써 조선문예가협회 창립에 나섰던 셈이다.기실 우리 사회에서 불공정 계약은 비일비재하게 널려 있다. 이상문학상 논란을 야기한 잘못된 규정 따위는 새삼스러울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란은 많은 매체에 신속하게 보도되었다. 다른 경우와 달리 이들 작가들이 내몰렸던 조건은 쉽사리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셈인데, 이러한 대우는 작가에게 부여된 일종의 기득권이 작동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작가들이 잘못 대처했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작가들의 선택을 지지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행사할 수 있는 상징권력(기득권)을 적절하게 행사하였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렇지만 이상문학상 관련 작가들이 조선문예가협회의 사례와 달리 느껴졌다는 점은 부기할 수 있겠다. 조선문예가협회 소속 작가들이 경제 투쟁을 통하여 무산자·노동자 계급과 함께할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던 반면, 이상문학상 논란의 경우엔 계약의 불공정 문제가 사회 전체에 팽배한 유사한 사안으로까지 나아가려는 경향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 물론 이상문학상을 둘러싼 계약 문제는 돌발 사안이었기에 조선문예가협회의 경우와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엔 다소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이상문학상 논란이 작가 또한 각각 노동자, 시민이라는 자각을 확보하고 매개해나갈 계기가 되기에는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지난 2019년 한국과 일본이 역사·무역 문제로 심각하게 맞서고 있을 시기 『조선일보』 일본어판이 문제된 적 있었다. '일본의 한국 투자 1년대 -40%, 요즘 한국기업과 접촉도 꺼려'(7.4), '국채보상, 동학운동 1세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청와대'(7.15)라는 기사의 제목을 각각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 투자를 기대하나?(韓はどの面下げて日本の投資を期待すゐか?)",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국민의 반일감정에 불을 붙인 한국 청와대(解決策を提示せず國民の反日感情に火をつけゐ韓國大統領府)"로 바꾸어 일본어판에 게재하였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자 조선일보사에서는 해당 기사를 야후 재팬에서 삭제하였는데, 이는 사실관계와 다르게 분쟁의 책임을 한국 측으로 돌려세우는 행위가 분명하며, 언론의 사명과 동떨어진 정치행위에 불과할 따름이다. 당시 나는 이러한 생각을 했더랬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조선일보』에 기고할 테고, 동인문학상 받겠노라 줄을 서겠지?만약 작가들이 스스로가 깨어있는 시민임을 충실하게 자각하고 있다면, 자신의 손아귀에 크든 작든 어느 정도의 상징권력(기득권)이 쥐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면, 과감하게 목소리를 모아 "안티조선"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안티조선 운동'은 이상문학상 논란이 향후 작가들의 움직임에 어떤 계기로 작동하는 하나의 사례가 되는 셈이라고 하겠다. 2000년대 전반기의 안티조선 운동이 실패해버린 지점에 서서 예컨대 나는 그러한 가능성을 기대해본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20-02-02 홍기돈

[월요논단]2020년, 돌아서야 할 시간

선거·검찰 개혁, 또다른 특권 방조언론, 당파성과 협소함에 빠져있어사회의 맹목성 추인하는 현장 헤매독점·당파적 이익은 파멸로 이끌어역사를 성찰하고 인간다움 모색해야독립국과 자주민임을 선언했던 담대함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100년 동안 우리는 길을 찾지 못했다. 이제는 아예 길을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시대의 흐름을 보지 않은 채 자기만의 세계 안에서 작디작은 이익을 추구했던 사회가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온몸으로 겪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돌려 그 틀을 벗어나 가야 할 길을 보려하지 않는다. 여전히 나만의 이익과 당파적 싸움에 빠져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지겹게 겪은 야만과 폭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지금 보고 있는 이 불의와 불공정을 벗어날 길을 찾으려는 노력은 어디에 있는가. 선거제도 개혁과 검찰 개혁이라는 당위는 특권을 독점해온 반민주적 행태를 바꾸려는 노력이었지만, 그 뒤에서 또 다른 특권을 방조하려 한다. 검찰개혁이 이 사회에 공정과 민주적 법치를 강화하는 줄 알았는데, 새로운 독점 권력을 만들어 내거나 재벌의 금융범죄를 방조하는 쪽으로 흘러간다면, 그 역시 당파적 이익에 매몰되었던 지난 역사를 되풀이하는 길이 아닌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에 대한 법적 결정은 이런 의혹을 가름하는 중요한 표지가 된다. 16세기 이래 변화된 시대상에서 그들만의 역사적 경험에서 만들어낸 유럽 근대의 세계체제는 19세기에 이르러 우리를 파멸적 고난으로 몰아세웠다. 그 고난에서 구미의 체제와 철학을 수용함으로써 나름대로 이룩한 성취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와 민주주의적 사회 환경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정치·경제 체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표징은 흘러넘치고 있다. 이 경고는 근대의 실증적 체계를 극복하는 그 이상의 철학과 규범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 좁은 물질적 달콤함에 빠져 그 체제가 전부인 줄 알고 있다. 실증주의와 자유주의 철학의 한계는 파멸적 미래의 표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후위기, 과잉의 자본주의, 파열된 법치의 파행을 어떻게 넘어서려 하는가. 그 파행을 경고하고 성찰하면서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줘야 할 언론은 더 심한 당파성과 협소함에 빠져있다. 성찰적 지성은 어디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단지 이 사회의 맹목성을 추인하는 매몰된 현장에서 헤매고 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말할 자는 누구인가.서구의 근대성은 선험적 규범의 세계를 벗어나 인간의 생물성을 잘 대변함으로써 짧은 시간 놀라운 물질적 성취를 이룩했다. 그에 뒤따라 어느 정도의 계몽적 가치를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경제체제가 그 대표적 성취이며, 과학기술이 이룩한 결과 역시 그런 철학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 성취가 일면적이며, 그것이 인간과 생명, 자연과 세계가 가야 할 궁극의 길이 아님도 역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거대담론이 우리와 무관한 것은 절대 아니다. 인간은 물질적으로 한계 지어져 있고, 실증적 조건에 매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그 한계와 조건성을 넘어, 인간다움의 길을 향해 초월해 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의 고난을 뚫고 어렵게 이룩한 성취가 인간을 위한 성취로 남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인간다움을 지켜낼 역사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체제를 성찰하고, 그 뒤에 있는 근대성을 감내하면서 극복해야 한다. 산업화 시대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않으면 결코 근대성의 폭력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맹목적 자유주의 철학에 매몰되어 그 작은 물질적 풍요를 탐닉하고 있다. 특권과 독점, 당파적 이익은 인간적 삶과 미래를 파멸로 이끌어갈 것이다. 찾아야 할 길은 찾지 않고 발밑에 놓인 달콤함만을 찾고 있다.역사를 성찰하고 인간다움의 지평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인간과 생명의 본성을 재개념화하고, 세계와 문화의 의미를 일상에서 다시금 언어화해야 한다. 생명성과 미적 감수성을 회복하고, 인간다움의 연대와 공감을 새롭게 드러내야 한다. 이 새로운 길은 100년의 어두움을 뚫고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시간이다. 그 전환은 오로지 새로운 꿈을 꾸는 너와 나,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다. 필요한 것은 그를 위한 열정과 결단뿐이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20-01-19 신승환

[월요논단]요코하마와 오사카 그리고 인천의 드림촌

요코하마, AI·로봇 첨단기술 활용복지·의료·관광·경제등 혁신 가속화오사카, 외국인 전문인력 문호 확대인천, 벤처공간 주민 반대로 '답보'젊은기술자 없는 인천미래 안보여경자년 인천의 미래. 박남춘 시장이 새얼아침대화와 인천경영포럼에서 새해 계획을 밝혔다. 인천의 오랜 과제들을 해결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취지. 박 시장은 난제 해결에 도움을 주었던 분들을 거명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행사 후 티타임에서 몇 분의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진정성이 느껴진다'. '우연히 해결되는 과제도 있다는 말이 남는다'. 박 시장은 새해 과제 가운데 하나로 폐기물처리장의 문제를 꺼냈다. 그는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요코하마와 오사카를 직접 찾아갔었다. 크게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지리적 측면에서 요코하마와 인천은 서울과 도쿄와 같은 유사성을 갖고 있다. 오사카 역시 교토와 함께 간사이 권역의 핵심도시이다. 인구만을 비교하면 요코하마는 370만여명, 오사카시는 270만여명이다.그렇다면 요코하마와 오사카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일본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이 5년 혹은 10년 내에 한국에서도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의 현 단계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준비한다면 일본이 겪는 문제를 우리나라는 피해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까지 지혜로운 대처를 하지 못했다. 사정이야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문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당면할 저출산 문제와 제조업 위기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団塊)의 대거 은퇴가 가져올 과제들을 예측했다. 다양한 대책도 준비했다. 그렇다면 그 과제들은 해결되었을까. 요코하마의 시책을 보면 여전히 자신들을 둘러싼 과제들과 전투 중이다. 75세 이상 인구가 60만명이 되면서 정년연장, 의료, 간병 문제를 최대의 과제로 등장시켰다. 새로운 문제도 있다. 2019년 기준 외국인은 10만명을 넘어섰다. 중국인이 4만1천156명, 한국인이 1만2천930명, 미국인 2천722명, 북한인이 620명 등이다. 당연히 다문화와 공생 전략이 중요하다. 요코하마는 AI와 로봇 등의 첨단기술을 활용한 복지, 의료, 방재, 관광, 경제 등에 대한 서비스 추구와 기술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대책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600만명이 관람한 도시녹화 '요코하마 페어'가 그것이다. 꽃과 초록을 내세워 도시의 색깔을 바꾸고 있다.오사카시는 공항과 항만을 통한 집객력 강화, 인구감소·저출산·고령화에 대비한 인재력 강화, 산업과 기술의 강점 극대화, 물류 인프라의 활용, 도시의 재생을 시의 주요 전략으로 내세웠다. 2018년 오사카부와 시를 찾은 외국인은 1천142만명, 총 숙박인원은 3천990만명, 국제선 LCC취항 편수는 주당 536편이다. 2025년에 개최될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를 준비하고 있다. 입장객수 2천800만여명, 경제파급효과 약 20조원, 건설비 1조2천5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외국인이 일본을 찾는 목적을 통한 전략도 수립하고 있다. 일본의 음식과 문화, 역사, 자연에 대한 관심을 관광과 연계하고 있다. 오사카를 찾는 여행자들이 전통적인 일본의 풍물과 현지인들의 생활문화 체험을 원하고 있다는 점을 활용한 마케팅도 활발하다. 기존의 네트워크와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는 오사카의 3화 정책도 매우 흥미롭다. 공항과 항만의 허브를 위해 각종 인센티브로 화물을 모으는 '집화', 공장과 산업단지의 확대를 통해 새로운 화물을 창출하는 '창화', 항만시설의 기능 확대를 통한 경쟁력의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오사카는 제조업의 메카이기도 하다. 외국인 가운데 고도의 기술 등을 보유한 전문적 인력에게 문호를 확대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과 기술자의 영입확대가 인상적이다. 오사카는 제4차 산업혁명의 필수기술과 에너지 기술을 가진 기업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을 위한 연구와 벤처 공간인 '인천 드림촌'은 주민들의 반대로 답보상태다. 젊은 기술자와 연구자가 없는 인천, 산업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떠나는 인천에 미래는 없다. 박 시장이 아쉬움으로만 표현할 사안이 아니다. 조성지역을 다양화하고, 이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젊은이들이야말로 인천의 미래이자 희망이기 때문이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01-12 김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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