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월요논단]삶에서 '집'이 가지는 의미

집은 기본적으로 재충전하는 공간부의 척도·재테크 수단 의미 변화집값·전월세 가격 계속해서 올라패닉바잉 '지금 안사면 못사' 불안'나의 집' 여유가 삶의 목적 가까워우리 삶에서 '집'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집'을 떠올리면 유년시절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부터 시작해서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와 처음으로 혼자 살았던 집, 결혼한 후 새로운 가정을 꾸렸던 집, 그 이후 전셋값에 맞춰 1년에 한 번씩 이사 다녔던 수많은 집들을 순차적으로 기억해 내곤 한다. 각각의 집에 살았을 당시 나에게 중요했던 의미들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내 삶의 큰 변화마다 집도 함께 위치와 형태가 바뀌었다. 돌아보면 나에게 '집'은 내 삶의 형태에 맞게 함께 변화하는 '공간'이었다.'집'은 기본적으로 외부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줄 수 있는 안식처로 존재해 왔다. 그런 의미라면 편안하게 쉬며 재충전할 수 있는 안락하고 쾌적한 공간이면 충분할 테지만, 이제 집은 '공간'의 개념을 넘어 부의 척도이자 재테크의 수단이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부동산 가격 안정은 오래전부터 정부정책의 주요 목표였지만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만 간다.최근 무주택 서민들이 청와대에 '집값. 전셋값 원상회복시켜라'라는 타이틀로 국민청원을 제출한 상태다.(2020년 10월14일) 현 정부는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세금인상, 세입자들에 대한 임대차 3법 등 집값 안정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집값과 전월세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 특히 전세가 사라지고 반전세로 전환되는 곳이 많아지면서 세입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일선에서는 정부의 잦은 개입이 오히려 집값을 상승시키는 역효과를 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집값이 상승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불안 심리는 확산된다. 이러한 심리는자꾸만 오르는 집값에 지금 사지 않으면 영원히 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2030세대의 패닉바잉 사태까지 보태져서 중저가 주택 가격도 급등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현재 부동산 문제는 진퇴양난에 처해있다.그림책 '나의 집'(다비드 칼리 글. 세바스티앙 무랭 그림. 바람숲아이 옮김. 봄개울)은 '집'이라는 소재를 통해 삶의 중요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나한테 딱 맞는 집을 찾는 일이 나는 항상 어려웠어. 어떤 지역에 살까? 어느 도시에 살까?… 사람들은 모두 '나만의 집'을 찾아다녀. 그렇지?'그림책 속 주인공은 바닷가 마을의 작고 허름한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청년이 되어서는 조금 복잡한 소도시로 이사를 가고 점점 성장하면서 대도시로 집을 옮겨 다니며 본인에게 꼭 맞는 집을 찾고자 애쓴다. 그러다 왜 꼭 나만의 집이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갖고 몇 년 동안 집 없이 세계를 무대로 옮겨 다닌다. 노년기가 되어 마지막에 그가 선택한 그에게 딱 맞는 집은 다름 아닌 어린 시절 바닷가의 허름하고 작은 바로 그 집이었다.집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고 사회·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집을 재산증식의 도구로 보고 소유하는 것에 집착하다 보면 집은 우리의 안식처가 아닌 우리의 영혼을 가둬버리는 높은 벽이 될 수도 있다. 부와 명예, 다양한 삶의 경험을 갖게 된 그가 마지막에 선택한 집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바닷가의 작고 허름한 집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우리가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듯하다. 우리 삶의 중요한 가치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에 있지 않고 편리함과 화려함보다는 유년시절의 향수, 여유로움, 단순함이 오히려 우리 삶의 목적에 더 가깝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

2020-10-18 최지혜

[월요논단]민주화운동 관련자 자녀의 입학 특혜와 경쟁사회

文정부 18명 수시합격자 알려지자특혜 의혹·MB때부터 전형 갑론을박맹자 서로 이익만 추구땐 나라 위태중요한 것은 '仁義' 기득권 버려야586정치인 이익정당화 논리 정리를외교부 장관의 남편이 요트 구입과 외유를 목적으로 출국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민들에게 해외여행 자제 권고가 내려진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개인의 자유는 존중해야 한다는 옹호 논리도 있고, 거대야당 출신 민경욱 전 국회의원도 출국하지 않았느냐는 도긴개긴의 대응도 펼쳐졌다. 며칠 뒤에는 문재인 정부 들어 민주화운동 관련자 자녀 18명이 수시모집을 통하여 연세대에 입학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민주화운동 관련 사항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수시전형에 포함되었고, 당시 연세대 법인의 이사장이 조선일보 회장 출신 방우영이었던 만큼, 586자녀 특혜 운운은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제출되었다.갑론을박이 어지러워 '맹자'를 뽑아들었다. "천리를 멀다하지 않고 찾아오셨으니 틀림없이 이롭게 해 줄 일이 있겠지요?" 이익을 바라는 양혜왕의 물음으로 '맹자'는 시작된다. 맹자는 왕의 기대를 단호하게 잘라 버린다. "임금께서는 어찌하여 이익만을 말씀하십니까? 중요한 것은 인의(仁義)일 따름입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다. "임금은 무엇으로 나라를 이롭게 해 주겠는가를 묻고, 대부(大夫)들은 무엇으로 우리 집안을 이롭게 해주겠는가를 물으며, 사(士)와 서민들은 무엇으로 나를 이롭게 해 주겠는가고 묻는다면, 위아래가 서로 이익을 추구하게 되어 나라는 위태로워집니다."돌이켜 보건대 IMF를 경과하면서 한국 사회의 현실은 엄청나게 변모하였다. 사오정(45세 정년퇴직),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따위 신조어가 등장하더니 살벌한 경쟁을 통한 살아남기는 우리 사회의 일상 질서가 되고 말았다. 달리 표현하자면, 삶을 가늠하는 방식이 IMF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로부터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의 방향으로 두드러지게 이동하였다는 것이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그즈음 신용카드 광고에 등장하여 일상 덕담으로 확장되어 유행하였던 문구는 퍽 상징적이라 할 만하다. 기실 최근 여기저기서 분출하는 공정성 논란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 공정성 추궁은 결국 성공을 위한 규칙 및 그 적용의 불편부당함을 따지는 행위인 까닭이다. 결승선만 바라보며 앞으로 질주하는 눈 가린 경주마인 양 우리들 대부분은 이러한 삶을 견디어 내고 있다.위로부터 아래까지 모두가 이익을 좇는 나라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주변의 설레발과 상관없이 거듭 사과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처신은 적절하다. 도긴개긴의 대응은 이 나라를 이 상태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데 머무를 따름이다. 책임 있는 관료·정치가라면 그 바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자녀에게 주어진 특혜 또한 마찬가지다. 움켜쥔 기득권을 내려놓으라는 요구가 586정치인들에게 따라붙고 있다. 민주화운동과 관련자 자녀에게 주어진 입시 특혜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는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상황이다. 후자의 사실은 응당 전자의 맥락 가운데서 읽힐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 방우영 조선일보사 전 회장을 소환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리 만무하다. 정리해야 할 내용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학벌을 통한 계급 재생산에 무임승차한다는 비판으로부터 벗어나려면 586정치인들은 정치 논리 바깥에서 정리해야 할 사항을 제대로 정리해 내어야 한다.설령 민주화운동과 관련자 자녀에게 주어진 입시 특혜의 상관관계를 나름의 논리로 정리해 내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살아남기 위하여 도저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다른 편 입장에서 보자면, 어떠한 수준에서 논리가 마련되든 이는 자기들의 이익을 정당화하는 방편으로만 이해될 따름이라는 것. 결국 위아래가 뒤엉켜 서로 이익을 다투는 모양새를 피할 수 없으리라는 말이 된다. 이런 판에서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하여 사회적 약자는 부득이하게 공정을 집요하게 따질 수밖에 없을 터이니, 기득권을 쥔 부류에서 먼저 더 이상의 이익을 내려놓아야만 이로부터의 출구가 마련된다. 그러한 본보기가 하나의 문화로 정착할 때 지금과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지난 시절의 치열했던 민주화운동이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는 까닭은 온전한 자기희생에 근거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훗날 더 큰 이익을 획득하기 위한 권력투쟁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 거리로 나섰던 대부분의 벗들도 그러하였을 게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20-10-11 홍기돈

[월요논단]너의 목소리가 들려!

우리사회 유기적 관계 파열음 높아곳곳 위기 임계점 가까웠다는 경고언론·법조·지성인 작은목소리 듣고사적이해·욕망 넘어 공동선 향해야의미있는 목소리 낼때 '변화' 가능우리 생명과 마찬가지로 한 사회가 제대로 유지되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이 기적은 조용한 역동성과 끊임없는 경고음을 통합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한 사회는 이 두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 유기적 관계의 파열을 알리는 위기의 조짐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런 위기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 사회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 몸도 마찬가지이며, 생태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금 곳곳에서 보이는 현상은 이런 위기가 임계점에 가까웠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 경고를 무시할 때 파멸은 어느 순간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위기는 전환을 촉구하고, 징후는 대안을 요구한다.위기를 경고하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주류 언론을 접하면 이런 위기가 가까웠다는 경고음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 같다. 이 말이 믿기지 않으면 최근의 조선·중앙일보 등 주류 언론을 읽어보라.(별로 권하진 않지만) 곧바로 이 말을 수긍할 것이다. 위기를 경고하는 소리는 갈수록 커지는데 그 경고음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일까. 오히려 그 소리가 엉뚱하게 울리며 더 큰 위기를 초래하고 있지는 않은가? 공동체가 제대로 기능하는 것은 그 구성원들이 가진 공동체 의식 때문이다. 이 의식은 개인의 삶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공동선을 향한 마음이 함께 할 때 가능하다. 개인의 삶과 공동체는 대치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둘은 상호작용하면서 나와 우리를, 개인과 사회를 정상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필연적 요소다. 지금 혼란을 부추기고 오직 자신이 지녔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거짓 경고음을 울리는 이들은 누구인가? 사적인 집단 이익에 매몰된 이들이야 언제나 있었다. 다만 잘못된 사적 특권을 통제하고, 보다 나은 시민 사회를 만드는 것은 평범한 시민들이 가진 일상적 마음과 행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의 가치와 공동선이 함께할 때 가능한 덕목이다. 정상적인 사회는 이 두 요소가 올바르게 작동하도록 제도와 체계를 만들고, 법과 규범을 통해 이를 현실화하기에 가능하다. 이런 기능을 위해 언론과 법이, 지성인들이 특별한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런데 그들이 잘못된 목소리를 내면 어떻게 될까. 지금의 경고음은 언론이 부추기는 선정적인 혐오와 분열 때문이지 않은가. 법이 사적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란 말인가. 공동선과 공공성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사회의 공적 자리를 독점하고 있다. 철 지난 특권을 당연시한다. 점점 더 사적 이해와 특권을 지키기 위해 거짓 경고음을 남발한다.공적 위치를 점유한 그들이 이 권리를 남용한다. 자신이 누리는 그 권리가 사실은 사회가 부여한 공동선을 위한 책임 때문임을 애써 외면한다. 자신이 가진 한 줌의 신앙을 절대화하는 종교인들이 자신의 교의를 배반하고 있다.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해야 할 지성인들이 그 권리를 어두운 술집에서 오용한다. 법을 사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법조인이야말로 이 사회의 배신자가 아닌가. 그런데 이를 경고하고 비판해야 할 주류 언론은 오히려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거짓 경보와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한 줌의 사익 집단들이 과잉대표되고 있다. 자신의 삶에 충실한 목소리는 가려져 들리지 않는다. 나의 삶과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는 과잉 대표된 그들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자신의 몫과 일상에 충실한, 그러나 가려진 이들 덕택이다. 그들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자를 노예라고 말한다. 노예적 삶을 벗어나기 위해 나의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언론과 법조계, 지성인 집단에서 울리는 작은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작은 너의 소리를 듣자. 그를 위해 언론과 법조계를 개혁하고 교육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럼에도 그 소리는 사적 이해와 욕망을 넘어 공동선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 욕망에 잠긴 목소리는 노예의 말이다. 물적 욕망을 넘어서는, 의미를 향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을 때 변화가 가능하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20-10-04 신승환

[월요논단]회색의 간절함

청년 취업절벽과 중년 시장퇴출 등코로나·4차산업혁명이 가져온 공허피카소가 그린 폐허의 회색과 닮아취업문제, 삶의 시각에서 접근해야더 이상 경쟁시장에만 맡기면 안돼취업준비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무슨 색일까. 면접을 보면서 생각했다. 초록색, 빨간색, 회색. 끝나고 나서 생각하니 '회색'이라고 말한 답이 기억에 남는다. 독일의 화가 리히터(G. Richter)는 회색이 가진 중립성은 다른 색에는 없는 즉, 없음을 보여주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회색은 차분함이나 청빈을 상징하기도 한다. 중세 이후 일부 수도사들이 회색의 수도복을 입은 것도 청빈과 경건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상논쟁이 격렬한 곳에서는 중도적 입장의 사람을 회색에 비유하거나 회색분자라고도 한다.그러나 회색분자라는 평가보다 더 와 닿는 것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성에 있다. 사실 직장이라는 제도권에 속하지 못한 채 실업상태에 있다는 것은 정신적 피폐를 넘어 처참한 생활 그 자체이다. 그런 점에서 회색은 분노와 파괴를 내재한 색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면접까지 온 수험생의 얼굴에는 간절함이 가득하다. 만약 이 기회가 지나가면 다시 희망은 있을까. 다시 회색지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불안감이 스며있다. 준비한 답변을 다 못해서일까. 파르르 떠는 손끝을 애써 외면한다. 이럴 때마다 면접관이라는 자리가 불편해진다.공자는 논어의 위정편에서 마흔을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40대가 되면 떠밀려 전직을 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20년 전 사관학교에 입학했던 군인도 예외가 아니다. 장군이 되라며 온 동네 사람들이 마을 입구에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그러나 계급정년 앞에 그도 다시 취업 시장에 내몰렸다. 자식들이 대학을 마칠 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이를 악물고 있는 다른 퇴직자들처럼 황야로 나가야 한다.그러나 그들은 지휘관으로 혹은 대기업의 부장으로 자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수 백번 원서를 내도 면접을 오라는 연락을 받지 못하는 청년들에 비하면 추억이라도 있다. 취업 시즌이지만 코로나19로 취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직업이라는 시장 자체에 진입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전관의 이름으로 수십억원의 수입을 거둔 변호사들도 있었다. 의료계의 정당성 주장에도 불구하고 파업과 의사고시 거부가 진입 저지에 의한 기득권 수호로 비판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왜 청년들이 공정과 세대 간 정의를 외치는지. 젊은이들의 분노를 직시해야 한다.돌이켜보면 회색은 산업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미래의 희망이라는 제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 박탈이라는 전혀 새로운 형태로 다가오고 있다. 국가의 경제력은 수십 배 향상되었음에도 인간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일을 통해 성취하던 인생과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취직도 결혼도 할 수 없는 청년들의 현실. 자본주의에서 직업이 없다는 것은 생존의 문제를 걱정해야 한다는 불길한 징표이다.피카소(Picasso)는 '게르니카'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독일의 만행을 고발했다. 그는 인간의 광기와 처참한 파괴 그리고 폐허를 회색으로 표현했다. 청년들의 취업절벽, 중년들의 시장 퇴출, 장년들의 빈곤, 노년의 질환과 질병.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온 우울과 공허 그리고 분노와 좌절들은 피카소의 회색과 다르지 않다. 형태만 다를 뿐 초국가적 자본의 탐욕이 인간에게 새로운 좌절과 불안을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다.역사적으로 보면 소유와 기회의 불평등은 사회적 변혁을 불러왔다. 마르크스주의도 파시즘도 극단적인 실업과 불평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국가와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로는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청년들이 하고 싶은 일에 예산을 투입하는 제4지대를 구축해주는 전략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퇴직자를 위한 제5지대도 함께 구축해야 한다. 청년들의 창의성과 퇴직자들의 노하우가 발휘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국가나 기업의 시각이 아니라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경제의 논리가 아니라 인간 삶의 시각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도록 해야 한다. 인간에게는 일과 직업이 생존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더 이상 취업을 경쟁의 시장에만 맡기거나 그것을 정당화할 때가 아니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09-27 김민배

[월요논단]지상파방송의 황혼을 읽는다

'가짜사나이'와 '무한도전'의 추억유튜브·지상파 감성 확연히 다른데자본·인력 투입에도, 예능은 물론 드라마·뉴스·스포츠도 힘 안느껴져시간이 얼마없다 자칫 기억 저편…SBS의 '집사부일체'란 예능프로그램에 이근 대위가 출연했다. 그는 유튜브에서 큰 성공을 거둔 예능콘텐츠 '가짜사나이'에 출연했다가 큰 인기를 얻었다. '집사부일체'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가짜사나이'는 지상파방송 프로그램을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UDT 훈련체험 유튜브 예능 콘텐츠로 8개 에피소드를 합쳐서 5천만에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했고 이근 대위는 유행어의 주인공이 됐다. '가짜사나이' 성공 이후 지상파방송이 이 대위가 출연했던 영상을 유튜브에 방출하기 시작했다. SBS에 출연하기 전에도 이 대위는 종편채널과 지상파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다. '집사부일체'를 통해 이미 유튜브 채널 등에서 수없이 반복됐던 유행어와 스토리가 또 반복됐다.방송산업이나 영화산업이 창의성이 떨어지면 다른 영역에서 아이디어와 크리에이터를 빌려오는 일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이미 지상파방송은 팟캐스트나 유튜브에서 아이디어와 크리에이터를 영입하고 있다. 감각과 문화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크리에이터들을 불러들였다. 지상파로 이동하려 했던 팟캐스트 방송인들이 지상파의 사회적 위상, 엄숙주의, 사회적 논란 등에 의해 희생된 사례도 적지 않다. 지상파가 다급하게 새로운 감각을 충전하기 위해서 불렀을 터인데 영입 불발의 책임을 지지 않았고 상처는 팟캐스트 방송인들이 입었다.지상파방송이 예능과 음악 콘텐츠를 유튜브에 공급하게 되면서 많은 구독자와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추억의 콘텐츠인 음악프로그램은 그렇다 치고 예능은 유튜브의 감성에 맞는 콘텐츠가 주로 성공했다. 무한도전은 유튜브에서도 여전히 뜨거운 사랑을 받는 콘텐츠이다. 예능의 역사, 방송문화의 역사를 바꾼 프로그램이고 일부 세대에게는 특별한 문화적 기반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무한도전의 부활이 가능할까? 회의적이다. 무한도전을 다시 한다면 어떤 감성을 밀고 나가야 할까? 유튜브의 감성과 문법을 따라야 할까? 지상파방송의 경우, 이젠 무한도전 전성기보다 더 촘촘한 문화적 규제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MBC의 '나 혼자 산다'의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유튜브 버전과 지상파 버전이 다른 감성과 문법으로 만들어져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 혼자 산다' 안에 그런 감성과 문법이 내재 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이제 지상파방송의 자본과 인력이 바탕이 된 콘텐츠의 힘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드라마도, 뉴스도, 시사교양도, 스포츠도 콘텐츠의 힘이 그저 그렇다. 우수한 기획 제작인력들이 유출됐을 것이다. 공영방송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지난 보수 정권 기간 콘텐츠 생산구조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콘텐츠의 힘은 재정 등 다른 제도적 기반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지상파방송 모두가 재원 문제에 허덕이고 있고 공적 지원과 규제 완화를 합창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KBS는 지상파 플랫폼과 콘텐츠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공적 지원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지만 방만 경영의 비판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SBS의 지주회사와 관련된 구조변동 과정에서 흘러나온 매각설, 종편 전환설 등이 그럴듯했던 데는 지상파의 위기로 그전 같은 수익성 때문일 것이다.수신료 인상, 수신료 배분 등 재원제도 개선, 중간광고 허용 등 광고제도 개선이 지상파방송 지원방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수신료 인상은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는 공정성과 공공성이 사라진 지상파 방송의 10여년 공백기도 경험했다. 그 사이에 진보나 보수나 팟캐스트나 유튜브에 여론전을 위한 진지를 확보했다. 종편채널의 예능과 케이블방송 드라마, 넷플릭스 드라마가 우리의 시선을 끌고 있다. 지상파방송이 들어갈 틈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를 돌파할 지상파의 콘텐츠 전략은 뭘까? 자본과 인력의 규모나 친숙함 이외에 지상파 방송의 콘텐츠 경쟁력을 제고할 방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혁신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자칫하면 지상파방송 뉴스, 시사, 드라마, 예능의 시대는 기억의 저편이 될 것 같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20-09-20 이용성

[월요논단]마음의 방역이 필요한 때

지난 봄부터 감염병 위기 지속 상황언택트 일상에 쌓이는 심리적 피로물리적 만큼이나 '정서적 방역' 필요죽어가는 나무 위로 손길 기사회생'그 나무…' 함께 극복 공감 응원冊코로나19 2차 확산이 시작되면서 도서관은 또다시 휴관에 들어갔다. 계획되었던 행사와 강연이 취소되었고 회의는 화상회의로 바뀌었다. 지난 봄 휴관이 길어지면서 무기력증을 경험했었고, 이제 겨우 일상을 되찾아가며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있던 터라 우울감마저 느껴졌다. 공연·기획과 관련된 일을 하는 지인들, 맞벌이 가정 등 주변 곳곳에서도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지속되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으로 심리적인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사람들과 부대끼는 변화 없는 일상은 사소한 싸움으로 가기도 하고, 아동학대와 부부싸움이 잦아지면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들의 자살률이 작년에 비해 늘었는데 이는 사회, 경제적인 지지기반이 취약할수록 우울감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진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사회적 거리두기로 모든 것이 멈출 것 같았던 일상에 화상회의,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등 비대면 소통 방식이 일상생활을 계속 이어가게 만들어 주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자리를 기계가 채우게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코로나로 인해 매우 빠른 속도로 언택트(Untact) 방식이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코로나 시대를 지나 자유롭게 직접 대면·컨택트(Contact)하기 위한 과정에 필요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이미 여러 관계 속에서 존재해 왔고 그 안에서 존재 이유를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의 불안·공포와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로 직접 대면할 수 없는 상황이 가져온 심리·정서적 문제들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이다. 물리적인 방역만큼이나 심리적 방역, 즉 마음 방역에 대한 관심과 대책이 필요하다.세계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이 진행되고 있지만, 상용화 시기를 예측하기는 어렵고,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는 더 혼란스러워진다. 코로나19의 위기는 전 세계를 덮쳤고, 우리들의 작은 일상까지 바꾸어 버렸고, 그로 인해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이럴 때 마지막까지 우리를 지켜내는 힘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중심을 잡고 이 시간을 잘 건널 수 있을까?그림책 '그 나무가 웃는다'(손연자 글, 윤미숙 그림, 시공주니어)는 온갖 벌레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나무 한 그루가 어떻게 다시 힘을 얻고 열매까지 맺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 나무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그 나무를 눈여겨 봐주지 않았고 스스로 포기하고 죽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엄마의 죽음으로 아픔을 안고 사는 한 아이와 아버지가 그 나무를 만나게 되고 따뜻한 관심으로 보살피게 된다. 뭔가를 특별하게 해주지 않아도 옆에서 자주 어루만져주고 눈길 한 번 더 주는 작은 위로가 나무를 살린다. 그 나무는 사과나무였고 사과나무는 보답으로 엄마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있는 부자(父子)에게 맛있는 사과를 선물했다. 이제 사과나무도 아이도 아버지도 서로 바라보며 살포시 웃는다.나무는 혼자서는 아무런 희망도 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포기했지만, 한 아이의 관심과 따뜻한 손길로 다시 살아나 열매까지 맺는다. 우리들의 삶 속 잦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나무가 되어 우리를 지켜주는 것, 마음의 아픔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것은 나무와 아이가 그랬듯 서로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서로에게 보내는 응원이 아닐까. 문 닫힌 도서관 마당에서 잠자리를 따라다니며 깔깔깔 웃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덩달아 미소를 짓게 된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웃음을 잃지 않으며 함께 이 시기를 극복해 나가야겠다./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

2020-09-13 최지혜

[월요논단]'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우리 사회의 야만과 공정

마스크 다툼·집회참가자 검사 거부사회적 합의 무시·이성의 부재 탓감염병 위험 확산 외면 무책임 행태전공의 파업·일부 종교탄압 운운도자신만의 공정성, 공공성 우위 안돼도처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투쟁은 두 층위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는 인간이 이성적이지 못한 까닭에 벌어지는 경우다. 마스크 착용을 요청하는 버스 기사에게 기분 나쁘다며 폭행한 여러 사건이 이에 해당한다. 지하철에서도 유사한 싸움은 줄을 잇고 있다. 니가 뭔데 나한테 마스크를 하라, 마라 하느냐는 고성과 위협이 한편에 있는가 하면, 이를 무력으로 응징하는 영상도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다. 이는 잘잘못을 따질 필요가 없다. 각각의 개인들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이다.집단으로 뭉쳤다는 사실이 다르기는 하지만 광화문집회로 상징되는 일련의 움직임 또한 이성의 부재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5일 17시 기준으로 집회 관련 확진자는 510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집회 참가자들이 신원을 숨기고, 연락을 끊고, 검사를 거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개천절에 서울 도심에 다시 모이겠다고 한다. 역학조사를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까지 꺼두겠다고 하니, 이러한 수준이라면 집회 관련자들을 반사회 집단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코로나에 감염될 위험을 기꺼이 감당하면서 이를 사회 전체로 확산시켜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행태이기 때문이다.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다른 층위는 나름의 이성에 입각해 있다. 가령 전공의들이 파업을 벌이면서 따져 묻고 있는 것이 공정성인데, 여기에는 그들 나름의 논리가 있다. 자신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의사 자격을 취득하였으므로 그에 따른 보상은 당연하다는 것. 이는 선발할 의사의 숫자가 늘어난다면 경쟁률이 낮아지니 불공정하며, 그 결과가 자신들이 이미 행사하고 있는 권리의 약화로 이어진다는 데로 이어진다.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라고 스스로를 규정함으로써 타자의 의사 자격을 문제 삼는 장면은 이와 관련된다.공정성이 전공의들 논리의 근거를 이룬다면, 의사의 존재 근거라 할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그 논리를 무화시키고 있다. 의정부와 부산에서 응급실을 찾아 헤매던 환자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연이어 벌어졌다. 의사에게도 파업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게 그네들의 공정이겠지만, '선서'는 "나는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라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선서'는 한낱 걸레쪽으로 전락하며, 그네들의 공정성은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압살하기에 이른다. 대한민국의 인구 1천명당 의사 수가 경제협력기구, OECD 평균의 70%에 불과한 데도 그네들은 충분하다면서 궤변을 늘어놓는다. 지자체 가운데 분만시설이 모자란 지역이 4분의 1, 응급환자가 30분 내 병원에 도착할 수 없는 취약지역도 5분의 2나 되는데, 그네들의 공정성은 이러한 현실 바깥에서 작동한다.이러한 방식의 공정성 담론은 여기저기서 분출하고 있다. 일부 개신교 교회에서는 정부의 대면예배 금지 조치를 종교 탄압으로 규정하여 반발한다. 예컨대 한국교회연합에서는 "생명과도 같은 예배를 멈춰서는 안 된다"라는 문자메시지를 소속 회원들에게 발송하여 대면예배를 독려했다고 한다. 이러한 태도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시니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예배를 올리건 모두 다 헤아려서 듣고 계실 터인데, 이들은 그러한 절대자를 믿지 못함일까. 예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지, 믿는 자들로 하여금 이웃에게 곤란에 빠뜨릴 권한을 부여하지 않으셨다. 그러니 부당함을 호소하는 그네들의 논리에는 하나님도, 예수도 배제되어 버린 형국이라 하겠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접 고용에 대한 정규직 직원들과 취업준비생들의 반발도 마찬가지다. 공정성을 잣대로 불평등을 고착화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인간은 그다지 이성적이지 못하며, 그나마 이성적인 인간은 공정성으로 치장하여 자신의 이익을 꾀하기 일쑤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까닭이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떠한 공정성도 공공성 위에 발 딛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공정성은 사회적 약소자를 보호하는 방편으로 행사되어야 할 것이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20-09-06 홍기돈

[월요논단]가보지 않은 길

무고한 희생초래 폭력탓 전쟁 혐오 코로나 '2차 유행' 국민들 고통시기의료계 파업·일부 대면예배 강행은공동체 외면 배타적자유 외치는꼴절제없는 삶은 야만… 사람의 길 걷자전쟁이 혐오스러운 까닭은 무고한 희생을 초래하는 잔인한 폭력 때문이다. 양민학살이 대표적이다. 어두운 진실이지만 제주에서, 거창과 노근리 등에서 죄 없는 평범한 시민이 '빨갱이'라는 심증만으로 무고하게 학살되었다. 누가 그들을 죽였는가. 총이 그들을 죽였다고 대답할 수는 없다. 총은 직접 그의 목숨을 끊은 작동 원인(작인)이지만 그 뒤에는 이념에 매몰된 이들, 서북청년단 같은 폭도들, 전쟁을 일으킨 북한과 자국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간 잘못된 체제가 원인으로 자리한다. 코로나19의 2차 유행을 눈앞에 두고 온 사회와 대부분의 시민이 엄청난 고통과 불안에 떨고 있다. 이 사태의 작인은 분명 바이러스이지만 원인이 병원균이라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무책임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작인을 넘어 원인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바이러스는 백신과 치료제로 극복할 수 있을테지만 이 사태를 초래한 사회적 문제는 원인에 대해 질문할 때만이 극복할 수 있다. 인수공통 바이러스가 인간을 침해한 원인으로 생태계파괴를 비롯한 환경위기를 거론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또한 지금과 같은 2차 유행은 명백히 사회적 원인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에 덧붙여 뜬금없는 의료계 파업 사태로 전 국민이 초조함과 불안감에 휘둘리고 있다. 의료수가 문제나 공공의료 문제 등 파업의 정당한 이유를 진지하게 들으려는 이들 조차도 파업에 반대하는 까닭을 그들만이 모르는 것일까? 종교자유란 명목으로 예배를 강행하겠다는 일부 교회에 대해 왜 전 국민이 분노하는지를 그들만 외면한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작인을 밝혀야 하듯이 사회적으로 광폭하게 확산되는 2차 대유행의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바이러스가 몸을 해친다면 사회적 바이러스는 우리 삶의 터전과 공동체를 파괴시킨다. 사회적이며 심층적 맥락에서 이 사태의 원인을 해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새로운 문명·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가 아닌가. 개인은 물론 사회나 국가도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도약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근대의 제국주의적 침탈 이후 100여 년 동안 우리는 수많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지금과 같은 문화와 안정을 이룩했다. 지금은 문명의 전환기다. 산업사회로서의 근대는 수명을 다했지만 새로운 사회는 어두움 속에 잠겨있다. 끊임없이 근대 이후와 탈근대 담론을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그 우리는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개인적 자유를 유보하는 이웃들, 평범한 시민들, 바로 당신과 내가 우리다.그런데 대면 예배가 종교자유라고 왜곡하는 이들, 종교인 과세를 탈세의 수단으로 삼으면서 종교자유를 외치는 이들은 누구인가? 법의 이름으로 자신과 집단의 사익을 추구하는 이들이 우리일까. 공공의료의 이름으로 자신이 가진 경제적 기득권을 독점하려는 이들이 나의 이웃인가. 온갖 불법과 탈법적 행동으로 국민적 기업을 상속받으려는 사람이나, 그런 불법을 경제적 안정이란 허상으로 왜곡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언론 자유의 탈을 쓴 채 끊임없이 사실을 왜곡하고 가짜뉴스를 양산하지만 필요한 분석과 전망을 애써 무시하는 퇴행적 언론이 우리일 리는 없다. 한 번의 시험으로 사회적 특권을 독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양산한 교육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공공성 개념을 무시한 채 시장의 배타적 자유만 외치는 반쪽짜리 자유주의자가 흘러넘치는 까닭은 무엇인가. 물어야 하며 대답하고 행동해야 한다. 기득권의 배타적 특권에 맞서야 한다. 그럴 때만이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우리를 지배해온 산업과 자본의 일면적 논리를 넘어 인간다운 삶과 공동체를 살려낼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경제 성장이라는 맹목을 넘어 더불어 함께 살아갈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지 않으면 우리는 파멸할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익숙한 삶의 경로와 존재 양식을 바꾸지 않으면 위기는 되풀이된다. 성찰과 절제 없는 삶은 야만일 뿐이다. 사람답게 살려면 사람의 길을 걸어야 한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20-08-30 신승환

[월요논단]문제가 된 일부 종교의 정치세력화

보수적 종교인 일부 정권교체 내세워친미반공집회·사학법 등 세력 확대종교의 자유 방패 삼아 위법 감행각종 행사에서 정치인들 부르기도생존 문제, 국민이 감내할 이유 없다'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헌법 제20조). 그러나 코로나19 재확산을 보면서 생각한다. 종교와 정치란 무엇인가. 국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국가적 위기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일부 종교의 정치참여 즉, 특정 기독교의 정치세력화가 초래한 결과다. 헌법이 정교분리를 금지한 것도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기초한 것이다. 십자군전쟁이나 마녀사냥처럼 절대성을 추구하는 종교는 이단을 내세워 타 종교를 무참히 탄압하였다. 호메이니처럼 근본주의를 내세운 신정통치는 국민들의 삶을 피폐화시켰다. 정치가 종교를 지배하거나 종교가 정치를 지배할 수 없도록 헌법이 제도적 장치를 한 이유다.돌이켜보면 과거 권위주의나 군사정부시절에는 정교분리를 내세워 인권침해가 있어도 종교가 침묵하였다. 그러자 진보적인 종교인들이 반독재민주화 투쟁에 앞장을 섰다. 그리고 그것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뿌리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 보수적 종교인들 일부가 입법 활동은 물론이고 정권교체를 내세우고 있다. 특히 친미반공집회, 사학법 재개정, 장로대통령 만들기 등을 통해 끊임없이 정치영역으로 세력을 확대하였다. 그 결과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탄생하면서 특정 종교가 정치세력을 선도하기도 했다.물론 독일의 기민당처럼 종교를 바탕으로 한 정당도 있고, 영국과 스페인처럼 형식적으로 국교를 인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한국은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일부 종교가 구체적으로 정당화한 경험도 있다. 평화통일가정당이나 기독자유통일당 등이 그것이다. 정치에 참여하는 종교들은 자신들의 교리에 기초한 종교국가건설을 내세운다. '하느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을 창당목적으로 내건 정당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헌법의 정교분리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하는 것이다.물론 종교인들도 국민으로서 정치참여를 할 수 있다. 그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그러나 월리스(Wallis, J.)의 지적처럼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어젠다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행위를 쉽게 정당화한다. 하느님이나 신의 허락을 받은 것처럼 위법을 합리화하거나 종교를 앞세운 리더들이 절대 권력으로 군림한다. 종교법이 실정법보다 우위에 있다면서 불법을 감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교의 정치화는 종교 본연의 임무와 상반되는 신앙공동체의 부패로 이어진다. 과거 조찬기도회나 청와대 초대를 영광으로 생각하던 종교인들도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각종 종교행사에서 정치인들을 부른다. 신성한 성전을 오염시킨다는 비판도 있지만 표를 이용한 선거마케팅을 외면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오히려 문제가 된 일부 종교행사에 정치인들이 앞장서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종교의 정치세력화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일부 종교가 종교의 자유를 방패로 압력단체를 넘어 위법을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교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가. 이제는 정치가 표를 위해 종교인들을 거리로 내세우는 일을 중지해야 한다. 특정 종교가 이익쟁취에 나서는 입법행태도 중단해야 한다. 정치권력과 신앙은 혼재되어서는 안되는 공존의 축이다. 상호간 공존과 견제를 통해 자유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 종교는 인간의 영적 진리와 구원을 위해 신앙 공동체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더 이상 특정 종교의 위법한 행태들이 불러온 생명의 위협과 생존의 문제들을 국민들이 감내해야할 이유가 없다. 성경에 따르면 생명의 신성함의 원천은 하느님에 있다고 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비슷하게 당신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창세 1,26)." 즉, 생명에는 하느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으며, 하느님이 창조한 비밀로부터 인간의 존엄이나 생명의 외경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일부 종교는 인간의 존엄과 생명에 대한 신성함을 공개적으로 침해하고 있다. 묻고 있다. 종교의 존재이유가 무엇인가. 종교의 이름으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종교의 자유에 포함되지 않는다. 정치권력과 집단이익에 집착하는 일부 종교의 자성이 절실한 때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08-23 김민배

[월요논단]유튜브 인플루언서 뒷광고 논란

인기 등에 업고 협찬 미표시 돈벌이쯔양·양팡 등 강력한 구독거부 직면작년 미디어 광고시장 46.9% 차지사회적영향력 만큼 책무 짊어져야기존 미디어도 투명성 자유로울까지난 3일 밤 구독자가 130만명에 이르는 유튜버 '애주가TV'의 참PD가 라이브 방송에서 유명 유튜버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유료 광고를 표시하지 않는 '뒷광고'를 했다고 폭로했다. 이전에 논란이 됐던 스타일리스트 한혜연과 가수 강민경 등 인플루언서의 협찬 미고지 논란의 연장선이었지만 인터넷을 중심으로 폭로의 파괴력은 훨씬 컸다.지상파방송에도 다수 출연한 인플루언서인 쯔양은 유튜브 방송 초기 일부 콘텐츠에 광고 표기를 하지 않은 정도지만 비난 댓글에 지쳐 은퇴를 선언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그동안 좋은 평가를 받던 쯔양에 대한 동정론이 확산되고 있다. 인기 유튜버인 양팡, 문복희, 엠블로 등이 '뒷광고'를 사과했지만 강력한 구독 거부운동에 직면해 있다.유명 유튜버 도티가 대표로 있는 '샌드박스네트워크'도 '뒷광고' 논란에 휩싸였다. 샌드박스는 7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소속 유튜버들의 유료광고 미표기 영상에 대한 사과와 향후 대책을 제시했다. 사과문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명확한 지침이 없어 유료 광고 영상 표기 위치와 방법으로 '더보기란', '고정댓글'을 이용해 고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도티마저 '뒷광고'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유명 유튜버는 대표적인 인플루언서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국내 상위 인플루언서 계정 광고 게시글을 조사해보니 경제적 대가를 밝힌 게시글은 29.9%에 불과했다고 한다. 경제적 대가를 밝힌 게시글도 표시 내용이 소비자가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상당수였다고 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9월1일부터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지침'이 개정된다. 이에 따라 인스타그램 등 사진을 활용한 추천·보증과 유튜브 등 동영상을 활용한 추천·보증은 표시문자가 명확하게 삽입되어야 하고 방송의 일부만을 시청하는 소비자도 경제적 이해관계의 존재를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표기해야 한다.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크워크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광고를 소셜미디어 광고라고 한다. 소셜미디어 광고시장의 규모는 측정한 자료는 없지만 이를 포함하는 온라인 광고가 2019년 6조5천억원이 넘어서면서 전체 미디어 광고시장에서 46.9%를 차지했다.소셜미디어에서는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유료광고·협찬을 표기하지 않아 소비자를 오인하게 하는 허위과장 광고행위의 위험성도 더 커지고 있다.인플루언서의 미표시 광고논란은 블로거에서 시작됐다. 블로그에 광고주로부터 대가를 받고도 이를 표기하지 않는 파워블로거를 규제하기 위해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지침' 개정내용이 2014년 8월부터 시행된 적이 있었다. 인스타그램도 '표시 광고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광고주들을 제재한 바 있다. 유튜브도 자체적으로 2018년 12월부터 유료 PPL 및 보증 광고에 대한 표시를 요구하는 광고정책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인플루언서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인이다. 인플루언서는 뉴스를 포함하는 콘텐츠 생산자이다. 인플루언서는 전통적 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대중문화와 저널리즘과 경쟁·대립하거나 협력한다. 일부에서는 저널리스트와 인플루언서를 '기레기'와 '관종'으로 악평하기도 한다. 인플루언서는 콘텐츠 생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을 뿐 아니라 기존 미디어의 광고도 가져간다. 인플루언서는 사회적 영향력에 맞는 책무를 짊어져야 한다. 광고 협찬의 투명성 확보도 사회적 책무 중 하나일 것이다.이번 '뒷광고'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기존 미디어와 문화는 인플루언서의 영향력 확대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유튜버 뒷광고 논란에 기존 미디어들은 비판적인 뉴스를 쏟아냈고 일부 과도한 비판도 있었다. 과연 방송과 신문은 광고와 협찬 투명성 논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이미 기존 미디어도 인플루언서와 경쟁하는 콘텐츠 생산자 중 하나가 된 것은 아닐까./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20-08-09 이용성

[월요논단]기후변화시대, 우리 삶의 변화 필요

올해 긴 장마 이상기후 갈수록 심각인간 삶과 밀접 '국가적 대안' 필요세계 각국도 심각성 알고 잇단 방안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서 경고자연은 손대지 않아야 부유해진다올 여름은 장마와 맞물려 기습적인 폭우가 유난스럽다. 지난 주 부산과 대전 지역은 짧은 시간 갑자기 쏟아진 엄청난 양의 폭우로 지하철역, 도로, 아파트가 침수되고 인명피해로까지 이어졌다. 장마전선이 중부지역으로 북상하면서 부산 지역은 장마가 종료되자마자 폭염주의보가 발효 되었고 중부지역에도 물 폭탄이 쏟아졌다. 게다가 올해 장마는 역대 가장 긴 장마가 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지난 100년간 지구의 기온은 꾸준히 상승했고 폭염, 집중호우, 가뭄, 한파, 태풍 등의 이상기후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오래전부터 지구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로 우리에게 꾸준히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는 피부로 느끼지 못해왔다. 그런 사이 기후변화는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우리의 생존에 위협이 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깨닫고 세계 각 국가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7월14일 한국판 그린뉴딜정책을 발표했다. 화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정책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제 지구온난화는 전 지구적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나가야 할 공동의 문제이다.기후변화는 우리의 삶의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국가적인 대안과 함께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우리들 개개인의 변화와 노력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많은 것을 과도하게 소비하고, 많은 것을 버린다. 또 편안하고, 빠르고, 근사한 외형을 선호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지구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근본적인 성찰과 결단이 꼭 필요한 때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1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불필요한 물건은 구입하지 않고, 실내 온도조절로 에너지를 절약하는 등 사소해보일지도 모를 우리의 선택과 행동은 지구를 회복시키는 가장 빠른 지름길일 것이다.지금의 기후변화를 예언이라도 한 듯 그림책 '월든-숲에서의 일 년(헨리 데이비드 소로 글, 지오반니 만나 그림, 정회성 옮김/길벗어린이)'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대자연을 예찬하고 있다. 철학자이자 동식물연구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2년 동안 숲 속에서 혼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았다. 그리고 글을 적어서 세상에 알렸다. 이 그림책은 월든 숲에서 일 년 동안 보낸 사계절의 감동을 전하고 있다. 문명사회의 온갖 편의를 떠나 하늘을 이불삼고 초록이끼 양탄자가 깔린 숲속 거실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그 순간순간을 소소하게 전해준다. 숲에 사는 많은 생명들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듯이 그 또한 숲에서 홀로 살아가는 삶이 외롭지 않았다. 그렇게 숲에서의 그의 일상은 그에게 소박하고 순수한 삶이 주는 행복을 알려주었다. 1800년대를 살면서 소로는 미래를 예측했다. 자연과 멀어지면서 발달된 문명을 권위적으로 누리며 화려한 의복과 물건들로 낭비를 즐기는 삶이 결국은 지구를 파괴시킬 것임을 글로 경고했다.'우리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서 사회의 구성원이라기보다는 자연의 거주민, 또는 자연의 중요한 일부분일 따름이라고 여긴다. "인간은 자연을 손대지 않고 내버려 둘수록 부유해진다"라고 말한 그는 산업의 발달로 자연이 훼손되어가는 것을 가슴 아파했다. 산업의 발전이 인류에게 안락과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에 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메시지가 근간에 폭염, 집중호우 등 이상기후현상을 접하면서 앞으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 깊게 생각해보게 한다. 깊은 성찰과 함께 구체적인 결단과 우리 삶의 변화가 꼭 필요한 때이다./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

2020-08-02 최지혜

[월요논단]존재의 심연에 비춰보는 이육사詩문학상 논란

친일작가 기리는 문학상 받은자가 최종 심사위원 포함 타당성 쟁점화'상장을 접어…' 기형도 시구 떠올라저마다 삶의 방편이 필요하겠지만작가라면 세속 초월 도도한 결기를대구방송에서 주최한 제17회 이육사詩문학상이 논란이다.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한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가 최종 심사위원에 포함되었던바, 그게 과연 타당한가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팔봉 김기진은 친일작가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그러니까 친일작가를 기리는 문학상 수상자에게 항일저항시인 이육사의 이름과 정신으로 수행되는 문학상 심사를 맡긴 것은 잘못된 처사라는 항의가 비판의 요지라 하겠다.논란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기형도의 시구가 떠올랐다.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띄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위험한 家系' 1969) 우리네 삶이란 개천을 떠내려가는 종이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 위태로운 여정의 끝에는 죽음이 놓여 있다. 누군가로부터 부여받은 명예나 권력, 부 따위도 이러한 운명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마련이다. 작가가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자라면 이는 삶이 발 딛고 있는 죽음의 지반을 끌어안은 경지에서 사유하고 행동한다는 의미일 것이다.물론 모든 상장을 접어 종이배로 띄울 수는 없다. 어쨌거나 살아가는 동안에는 삶을 이어나가는 나름의 방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상장을 저 멀리 흘려보내고 어떤 상장을 겸허하게 두 손으로 받아들 것인가. 존재의 심연에 비추었을 때 삶과 관련하여 어떠한 의미를 형성하게 되는가가 판단 근거로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무의 영역으로 수렴하겠지만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확인하는 계기로 작동한다면 받아들이고, 어지러운 욕망의 자극에 불과하다면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재의 심연과 맞대면하고 있는 자는 마땅히 그 정도의 자존심이랄까 오기를 품고 있어야 한다.지금 이 시대는 그러한 유의 오기를 작가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육사詩문학상 논란의 경우에는 민족의식이 기준으로 적용되고 있는데 아무리 견고한 민족의식을 구축했다고 한들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면 손가락질 받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반대로 젠더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치는 작가가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 후보로 올라 비난 받는 경우도 보았다. 거대언론과의 관계 설정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언론 개혁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시급한 과제인바, 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작가는 치켜드는 명예욕을 지긋이 내리누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출판자본의 책임 및 횡포에는 어찌 대응할 것인가.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면 그 기준은 무한정 늘어나게 된다.다양한 기준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예컨대 젠더 문제에 눈 감은 민족의식이나, 친일 잔재 청산에 둔감한 성 평등주의는 각자 자신의 목소리만 높일 뿐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다. 자신의 잣대와 다른 기준은 부차적인 사항에 불과하며 부차적인 논점으로 핵심 논점을 흐리거나 대체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곤란하겠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떻게 모든 기준을 동시에 감당해 나갈 수 있을까. 존재의 심연을 끌어안은 지점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할 도리 이외에는 없다. 세속의 명예, 부, 권력 따위를 도도하게 내려다보는 결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빚어진다.우리 작가들에게는 스스로를 헌신하면서 폭압적인 권력과 맞서 싸워왔던 전통이 있다. 고문과 투옥을 당하면서도 이 나라 민주화에 적극 나섰던 작가들의 구심체 한국작가회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작가들은 그러한 전통을 이어나가되 존재의 심연이라는 지평에서 제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까지 수행하는 지점에 자리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작가가 변화된 시대와 함께 하는 길이다. 세속 어떠한 상장의 권위·명예보다 드높은 곳에 군림하며 호기롭게 제 세계를 드러내는 작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한 작가들의 비중이 한국문학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20-07-26 홍기돈

[월요논단]성찰이 사라진 사회

시장 성추행의혹 극단적 진영 논쟁감염불안에 냉소·분노 증폭 내면화분석·지향 대신 일방적 대립·갈등지성적 성찰 정파적 이익 몰아붙여지난 '100년의 고통' 되풀이할텐가채널A 기자가 현직 검사장과 함께 정권의 향방에 관여하는 모의를 했다고 한다. 그 사건의 수혜자일 수 있는 검찰총장이 사건 수사를 편파적으로 방해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 때문에 시민들의 삶이 불안해지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각종 세제를 대폭 개편하면서 집값 안정을 시도하지만 시장에서의 패배가 예견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해 누구도 만족해하는 것 같지 않다. 마침내 당과 정부가 하나가 되어 그린벨트를 해제해서라도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안과 궁핍을 해소하기 위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하니 다른 취업준비생들이 심각하게 항의한다. 10여년에 이르도록 이 나라 수도의 행정을 도맡아 수많은 업적을 남겼던 인권 변호사 출신의 시장이 성추행 의혹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극단적으로 갈라진 두 진영이 수긍할 수 없는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사건과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점차 사람들은 냉소적으로 변해간다. 그 가운데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불안이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의 냉소와 분노가 증폭되고 내면화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하나의 사건이 있으면 그 사건의 작동 과정과 이유가 있으며, 그것을 초래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불안한 사건과 그렇게 해서 부서지는 사회 및 일상을 원하지 않는다면 사고는 밝혀 대응하고, 그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 진행 과정과 원인을 찾아 고쳐가야 한다. 또한 그 일로 인해 우리 삶과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모든 사람이 한 사건의 심층적 원인과 의미를 밝히는 일에 매진할 수 없기에 먼저 언론이 나서 그 과정과 원인을 밝히고 보도한다. 그 뒤에 담긴 본질적 원인을 논의하고, 그 사건의 의미와 그 이후의 일을 예견하고 대비하기 위해 성찰적 지성을 수행하는 일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한 사회나 국가는 물론 개인조차도 이러한 과정 없이는 자멸할 수밖에 없다.미흡한 대응은 퇴행하며 심지어 파멸하기도 할 테지만, 깊이 있는 대응은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 하나의 담론은 이 모든 과정을 성찰한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찰적 담론이 필요하며, 그 수준에 따라 개인과 사회의 미래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 성찰은 심지어 현재와 과거의 삶까지도 달리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새롭게 언어화 한다.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있어야할 당연한 분석과 지향은 사라지고 오직 대립되는 진영의 갈등과 주장만이 일방적이고 맹목적으로 난무한다. 코로나 감염증이 경고하는 사태는 무엇일까. 그 경고를 다만 마스크와 K-방역으로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공장식 축산과 서식지 파괴로 비롯된 생태적 혼란이 원인임에도 오히려 개발과 성장의 허상을 되풀이 한다.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의 희생을 딛고 유지되는 경제와 사회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본 권력 중심의 논의만 일삼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추동되는 문명사적 전환을 다만 디지털 중심의 경제 논의로 대응하려 한다. 산업화 이후를 말하면서도 사고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 개인과 소외된 이들의 권리, 시민의 보편적 권리를 논의해야할 언론과 법이 권력 논의에 빠져 있다. 언론은 성찰 대신 자사 이익에 따른 선동을 일삼고 있다. 교육 환경과 미래가 급격히 변화할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는 기껏 등록금 반환과 온라인 수업 논의 등의 곁가지만 난무한다. 대학체제 자체가 변화하기에 근본적인 교육혁명이 필요함에도 정책권자는 그들의 기득권만 옹호하려 한다. 맹목적 선언에 휘둘려 지성적 성찰을 정파적 이익으로 몰아붙인다.그 가운데 냉소는 커지고 지성은 진지충이 되며, 성찰적 담론은 사라지고 즉물적 대응이 미래의 지향을 대신한다. 정말 우리는 반짝 빛나는 안정의 시간을 보내고, 겨우 손에 쥔 한 줌의 풍요에 심취해 지난 100년의 고통을 되풀이할 텐가. 지성적 성찰과 예언적 지향이 사라지면 어두운 심연이 우리를 나락으로 이끌 것이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20-07-19 신승환

[월요논단]서울을 재편해야 미래가 있다

또다시 발표된 강력한 부동산정책그러나 반복된 실패사례만 떠올라행정구역 재편외엔 다른방법 없어지방·수도권 없앤 메가시티 조성 등공급부족·공유해법 특권 다 바꿔야또다시 강력한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었다. 종부세와 양도세의 중과가 그것이다. 코로나19의 암울한 상황에서도 부동산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그 많은 정책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이 집을 갖는다는 희망조차 이룰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서울의 집값을 보면서 출퇴근의 어려움을 감내하거나 요령 있게 갭 투자를 못한 현실을 탓하기도 한다. 공직자나 교수들이라도 지역에 거주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울 부동산의 불패 앞에서 무력화되었다. 서울에 집이 있다는 이유로, 지방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부의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다.묻고 있다. 노동은 무엇인가. 공정한 미래사회는 기대할 수 있는가. 왜 정부의 정책은 항상 뒷북이라는 비판을 받는가. 반복되는 정책실패는 역설적이게도 법치주의와 행정의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행정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조직법적 근거와 처분의 근거 법률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해도 국회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국회의 구조는 대립적이다. 공익과 사익의 조정도 언제나 충돌한다. 그 시간과 틈새를 이른바 꾼들은 정확히 파악하고 움직인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득이다. 공직자와 같은 공익의 잣대도 필요 없다. 없는 자를 배려해야할 도덕적 의무도 찾기 어렵다.재개발, 재건축, 대형공사, 펀드, 주식, 비트코인 등 돈이 있는 곳을 헤집고 다닌다. 공직자들은 법의 잣대로 판단하지만 꾼들은 돈이 되는 방식에만 몰두 한다. 나름의 경험법칙과 판단력도 갖고 있다. 부동산과 펀드 등에 전문가에 비견할 만한 지식으로 무장한다. 구글이나 빅 데이터를 통해 매일 세상을 꿰뚫어 본다. 공직자가 세종청사에서 대책을 만들어, 여의도 국회를 거쳐, TV 앞에 설 때면 그들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이후다. 그래서 일까. 성공적인 정책으로 남은 기억이 별로 없다. 과거의 모든 정부가 반복한 저출산 대책이나 지방분권의 실패사례가 자꾸 떠오른다.정부의 반복되는 정책 실패를 보면서 꾼과 공직자들의 차이를 다시 생각한다. 꾼들은 왜 정부보다 앞설까. 정부가 쳐놓은 그물을 피할 수 있을까. 그것은 정부나 공직자가 문제의 본질과 현상을 소홀히 하는데서 시작된다. 서울은 모든 것을 갖고 있다. 누구든지 서울에 살고 싶어 한다. 서울은 세계적인 도시이다. 그러나 주택의 공급은 부족하다. 당연히 주택을 중심으로 불로소득이 창출된다. 불로소득은 서울집중을 더 가속화한다.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땜질식 정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모두가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기득권 시각으로 서울을 보면 답이 없다. 대한민국의 시각으로 서울을 봐야 한다. 서울의 부동산 대책은 서울이 없어야만 가능하다. 이미 서울의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수많은 정책과 논쟁들이 제안되었다. 행정구역에 대한 과감한 재편이 없는 한 어떤 정책도 실패한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때다. 서울과 경기 그리고 인천을 하나의 메가시티로 재편하는 발상의 전환과 실천이 필요하다.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벽도 허물어야 한다. 지방과 수도권이라는 낡은 2분법도 없애야 한다. 수도권만이 아니라 부울경도 호남권도 재편해야 한다.교통, 철도, 공항, 상하수도, 폐기물, 문화, 교육, 복지 등에 대한 공유와 연계를 통해 효과를 극대화시켜야 한다. 공급부족과 공유의 문제는 서울의 재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재택근무의 경험을 통해 재구조화를 준비하고 있다. 구글이 재택근무하면서 주변의 집값들이 하향한다는 미국의 뉴스도 있다. 코로나19는 우리사회에 기존의 삶과 국가구조에 대한 전면 재편을 요구하고 있다. 행정구역의 혁신적 개편과 산업구조의 재구조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학교나 대학을 졸업해도 갈 곳이 없는 사회에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영끌'로 아파트 투기에 나선다는 국가에 무슨 희망이 있는가. 서울의 특권을 전면적으로 재편하는 혁명적 발상과 그 실천이 필요한 때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07-12 김민배

[월요논단]구글의 지역언론 지원을 지켜보며

지역뉴스 사람-사회잇는 주요수단亞太 800개 언론사에 긴급구제펀드'광고' 빼앗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 정부·네이버 외면속, 의미있는 지원 언론, 승산없는 경쟁 가치 유지할까4월부터 구글이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지역언론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구글은 운영 중이었던 뉴스혁신을 지원하는 '구글뉴스이니셔티브' 프로그램에 저널리즘 긴급구제펀드를 편성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오리지널 뉴스와 종합뉴스를 생산하는 중소규모 언론사를 위한 글로벌 지원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만 800개가 넘는 언론사에 지원됐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지역일간지와 지역주간지가 상당수 지원을 받았지만 공식적으로 지원사와 지원액을 밝히지는 않았다.4월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코로나19로 위기에 직면한 신문산업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이 신문협회 등에서 있었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없었다. 특히 신문협회의 정부광고 확대 등의 정책 제안은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코로나19 관련 보도에서 논란이 많았던 대형신문사를 왜 지원하느냐는 비판이었다. 언론노조도 지역신문의 긴급 지원이 핵심이라고 신문협회를 비판했다. 실망한 지역신문에 구글의 간편한 지원은 기분 좋은 기억이 된 것 같다. 정부와 네이버는 뭐 하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정부의 지역언론 긴급지원은 뒤늦게 6월25일 발표됐다.구글은 왜 코로나19로 심각한 위기 속에 있는 지역신문을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했을까? 공개된 구글 관계자의 지역신문 지원에 관련된 입장은 이런 것이었다. "지역뉴스가 사람과 지역사회가 계속해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주요한 수단이라 판단"했고 "지역언론이 자가격리나 학교와 공공시설 폐쇄와 같이 코로나19가 일상생활에 미친 변화를 보도하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 재정 타격에도 불구하고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 지원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저널리즘은 구글 미션의 핵심 위치에 있고 구글과 언론의 미래는 서로 연결돼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구글의 언론 지원은 영향력을 확대하고 언론의 구글에 대한 비판적 감시를 무력화할 거라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구글은 이건 협업을 위한 것이고 지역언론에 대한 관심은 지역뉴스가 지역사회를 계속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코로나19는 분명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꿔가고 있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우리 사회는 달라질 것이고 디지털 세상은 더 가속화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언론이 처한 위기 상황을 글로벌 플랫폼 기업인 구글이 지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도 정부와 네이버의 지원은 이뤄지지 않는 시점에서.구글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자 검색서비스기업이다. 인터넷 검색엔진이 여론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은 계속되고 있고 입증된 사례도 있다. 검색서비스 기업도 언론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 기업이나 네이버는 미디어와 광고를 둘러싸고 경쟁하는 강력한 경쟁자이다. 미국에서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신문광고비가 75% 하락했는데 페이스북과 구글에 대부분이 넘어갔다고 보기도 한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언론 또는 미디어에 승산이 없는 경쟁이다. 광고비 이동의 이유는 이 기업들이 언론이나 미디어에 비해 대중의 주의력을 집중시키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언론은 지금까지 내세우던 저널리즘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 언론의 마지막 희망이자 최대 소비자는 현재까지 남은 구독자나 시청자가 아닐까.구글의 지원이 지역언론과 같이 대안적인 시각과 다양한 의견이 작동하게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구글에 대한 호의적 반응이 이어질 때, 유튜브에 접속하면 "구글LLC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을 이유로 시정명령을 받은 사실이 있음"이란 공지를 볼 수 있었다.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 가입자에 대한 잘못된 조치로 과징금과 시정조치를 명령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구글이 시정명령을 그대로 수용한 점은 전향적인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구글을 어떻게 봐야 할까? 네이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지역언론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20-07-05 이용성

[월요논단]동물과 인간의 공존

고속道 로드킬 5년간 9866건 불구형식적인 생태통로 등 구축에 그쳐다양한 생물종 고려한 '대책' 시급무엇보다 운전자 세심한 주의 필요모든생명 사랑·존중하며 살아가야강화도에 살면서 운전을 하다보면 급정거를 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고라니, 고양이, 개구리, 뱀 등 도로에 뛰어든 동물을 피하기 위해서다. 가까스로 피하게 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미리 보고 정지할 여유가 있다면 정말 다행인데 보통은 갑작스럽게 겪게 된다. 한번은 갑자기 뛰어든 고양이를 피하려고 반사적으로 핸들을 돌려 큰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다. 도로 위에 교통사고를 당한 동물들을 만나기도 한다.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봤을 일이다. 한국도로공사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 고속도로 로드킬은 총 9천866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급증하는 로드킬의 가장 큰 원인은 야생동물의 행동반경을 가로질러 생긴 도로 때문으로 보고 있다. 야생동물은 번식과 먹이를 찾기 위해 이동을 하는데 야생동물이 다니던 길에 도로가 생기면서 도로를 건너다가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로드킬은 심야시간에 더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야생동물의 습성상 늦은 밤과 새벽사이에 이동이 더 잦은데 자동차 전조등 불빛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으면서 피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사고라 생각하고 지나치기엔 너무 많은 애꿎은 동물들이 생명을 잃고 있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인간 중심의 경제논리에서 발생된 문제들을 우리는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한다. 그동안 지자체마다 로드킬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들을 마련해왔다. 하지만 제대로 된 환경조사 없이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하고는 형식적이고 부실한 생태통로를 만들어 보여 주기식 행정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로드킬을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과 야생동물이 함께 공존해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개발 이전에 주변 환경과 생태 조사를 통해 생태계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고 해당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생물종과 그 특징을 고려한 실효성 있는 생태통로와 유도 울타리 등을 통해 야생동물의 안전이 보장되어야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규정 속도를 잘 지키고 야생동물출몰지역 표지판이 있는 곳과 야생동물이 많이 다니는 심야 시간에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그리고 부득이하게 로드 킬이 발생했을 시에는 관할기관에 전화로 알리고 사고수습을 신속하게 진행하여 죽은 동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해서 동물도 또 다른 운전자도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행동의 저변에는 동물이 살던 공간을 우리가 침범했다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기본적으로 가져야겠다.로드킬로 죽어가는 동물들을 안아주는 그림책이 있다. '잘가, 안녕(김동수 지음·보림출판사 펴냄)'은 교통사고를 당해 길바닥에 죽어있는 동물들을 데려와 찢어진 부분은 꿰매주고, 떨어져 나간 부분은 붙여주고, 두 동강 난 동물은 한 몸으로 만들어서 사고전의 원래모습이 된 동물들을 꽃과 함께 보내주는 할머니를 그렸다. 멀어져가는 동물들에게 "잘가, 안녕!"하고 손 흔드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할머니는 길바닥에 피범벅으로 죽어있는 동물들을 집 안까지 데려와서 사람처럼 정성스럽게 염(殮)하고 명복을 빌어준다. 할머니의 쉽지 않은 선행(善行)은 생명의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도서관에 온 3살 아이가 어른의 큰 발에 밟혀버린 거미를 보며 말했다. "거미 밟으면 안 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이렇게 걸으면 거미 안 밟잖아!" 그 아이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조금 늦고 손해를 보더라도 잘 보고, 잘 듣고, 천천히 걷고, 왼쪽도 보고 오른쪽도 보면서 선(善)한 마음으로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

2020-06-28 최지혜

[월요논단]정의기억연대를 둘러싼 논란의 본과 말

지엽말단에 매달린채 본질 '외면'마포쉼터 소장 자살이유 등 보도보수언론 허술한 주장 불구 확산잘못된 '정치적 초기대응'도 일조위안부운동 새방향 모색 계기돼야모든 일에는 본말이 있다. 지엽말단에 매달린 채 본질을 외면하는 논의는 혼란과 왜곡만 불러일으킬 따름이다. 정의기억연대를 둘러싼 일련의 갑론을박 과정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성 싶다. 정의기억연대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후원금 사용에 관한 의혹이라면 검증에 앞서 일단 터뜨리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최근 길원옥 할머니의 뭉칫돈이 어디로 빠져 나갔는가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이들의 태도는 명확하다.예컨대 '조선일보'에서는 마포쉼터 소장의 자살 이유를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길원옥 할머니가 매달 국가지원금을 350여 만원 받았는데, 이 돈이 다른 계좌로 빠져 나갔고, 며느리 조씨가 이를 추궁하자 소장은 아무런 해명도 못한 채 조씨 앞에 무릎 꿇었다고 17일 기사에서 전했다. 이는 조씨의 일방적인 주장일 따름이다. 양아들 황선희 목사 내외가 할머니의 뭉칫돈을 꾸준히 빼먹었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은 만큼 이런 보도는 성급하고 일방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또한 망자에 대한 엄청난 모독이기도 하다.다음 날 기사 '길원옥 할머니 치매 앓는 사이… 통장서 뭉칫돈 나갔다'에서는 정의기억연대와 관련된 단체들까지 한데 엮으려는 의도가 두드러진다. 뭉칫돈을 받아간 단체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미디어몽구의 반박을 보면 '조선일보'의 기사가 얼마나 허술한지 금세 파악할 수 있다. 미디어몽구는 2011년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의 활동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이를 기특하게 여긴 길원옥 할머니가 미디어몽구에 자동이체 방식으로 2013년부터 매달 1만원씩 후원했으며, 2020년 4월까지 77만원 입금됐다. 이게 과연 기사로 다뤄야 할 만큼 심각한 사안일까. 오히려 문제는 온갖 매체가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을 반복하고 있으며, 미래통합당 곽상도 의원과 같은 정치인이 해괴한 추측을 퍼뜨리며 결탁하는 양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는 데는 정의기억연대의 잘못된 초기 대응이 일조한 측면이 있다. 처음 이용수 할머니의 비판이 있었을 때, 정의기억연대는 정치적 입장에 입각한 찬반 전선을 구축하려고 했다. 조국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대립 양상의 재현으로 돌파하고자 했던 셈인데, 이로써 논점은 하나의 방향으로 확정되고 말았다. 정의기억연대가 정치적인 방식의 해결로 나아가려는 까닭은 '지원금 사용이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란 의혹이 프레임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프레임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으나, 이는 대체로 이용수 할머니를 깎아내리고 모욕하는 방식이기에 동의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대구 지역의 정치 성향이 보수란 사실은 분명하지만, 이용수 할머니의 정의기억연대 비판이 지역 성향의 발현이란 반박은 어떠한 논리 근거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국회의원으로 향하는 자신의 꿈이 좌절된 반면,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전 이사장은 국회의원이 되어서 배가 아파 저러는 것이란 비난도 있다. 비유컨대 반민주 세력과 치열하게 맞섰던 민주 인사들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투쟁했던 것일까. 과거 보수언론은 야만적인 시대와의 자기희생적 저항을 개인의 출세욕으로 왜곡하곤 했다. 보수언론의 작태에 냉소하는 나로서는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그와 같은 방식의 혐의에 대해서도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할머니가 92세의 고령이라 기억 왜곡이 있다거나 배후세력이 있다는 의혹은 주체로서의 할머니를 지워버리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내가 바보냐, 치매냐?"란 할머니의 반박에 오히려 동의하게 된다.정의기억연대의 후원금이 타당하게 집행되었는가는 마땅히 따져봐야 하겠지만, 이는 마녀사냥을 하듯 일순간 몰아칠 일이 아니다. 또한 진영에 입각하여 언 발에 오줌 누듯 방어할 일도 아니다. 이보다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기왕의 위안부운동 성과를 계승하는 한편, 새로운 방향으로의 모색을 꾀하는 것이 아닐까. 예컨대 하워드 제어는 피해자의 상처 치유를 위해서는 회복적 정의에 입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잘못을 입증·처벌해낼 도구로 전락할 응보적 정의의 한계와 그 너머를 제시하고 있다.('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그러니까 현재의 시끄러운 논란은 위안부운동의 미래와의 관련 하에서 정리해 나갈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다.피로써 피를 씻을 수는 없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피로써 피를 씻는 데 골몰하면서 놓치게 된 어떤 지점을 돌아보도록 한다. 그런데도 날카롭게 칼을 벼리고 다시 피를 씻겠노라 날뛰는 무리만 늘어났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20-06-21 홍기돈

[월요논단]문명의 전환

곳곳서 위기 파열음 깊어지는 느낌 기껏 바이러스 하나도 못 이기면서인간 초인류 진화 희망에만 부풀어이젠 자본 산업화 근대체제 넘어서생각·일상 바꾸는 새전환 필요시기곳곳에서 위기를 알리는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그 소리가 워낙 크기도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기에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그 결과인지, 어느 것이 우선하는 위기인지 알기도 힘들다. 흘러넘치는 정보와 지식에 묻혀 지난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이 아는 듯한데, 이 파열음의 진정한 원인과 해결책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위기가 깊어지고 있다는 느낌만은 점점 뚜렷해진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적 대감염의 위험은 감지했지만, 이 위험이 깊어질수록 드러나는 숨어있던 수많은 위기는 절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거대담론으로 정치와 경제, 문화와 사회를 말할 수 있지만 위기는 언제나 구체적인 삶에서 시작되며, 불안과 두려움에 빠지게 하면서 점점 더 뚜렷해진다. 그렇다. 바로 너와 나의 삶이 문제가 되고, 나의 실존이 불안에 허덕이고 있다. 마침내 그 불안은 사회적 위기로 나타날 것이다. 위험은 감지하는 것이지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는 위험은 해결책을 보여줄 테니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우리가 감지한 이 위기는 거대한 전환의 시기가 다가왔음을 절박하게 외치고 있다. 아니 그 외침은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다만 우리가 듣지 못하였으며, 들었음에도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 사이 위기는 점점 더 커져 근본적인 전환 없이는 극복할 수 없으리만큼 깊어졌다. 인간의 과거와 미래가 어떤 초월적 존재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현재와 우리 삶은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정보과학기술과 생명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트랜스휴먼의 꿈을 가져다주었다. 온갖 질병과 노화를 넘어설 뿐 아니라, 초지능과 결합하여 초인류로 진화할 것이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심지어 인간이 신의 위치에까지 다가갈 것이라 공언한 역사가가 세계의 각광을 받기도 했다. 신은 아닐지언정, 생물학적 한계 정도는 쉽게 넘어설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찬란한 희망의 불빛에 가려진 현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위기의 파열음을 보내고 있다. 다시금 생각해보라, 정말 인간은 초인류가 될 것인가? 설사 그렇게 된다면 인간이 지닌 모순과 한계, 우리 안의 어두운 심연은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그것이 빗어내는 인간 사이의 문제는 어떤 초지능이 해결해줄 것인가. 기껏 바이러스 하나 이겨내지 못하면서, 그것이 주는 두려움 하나 어찌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가려진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초지능을 갖춘 채 다른 별로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철학적 조류는 80년대를 지나면서 이미 이런 위기를 경고하면서 계속해서 문명과 사유의 전환을 부르짖었다. 다만 듣지 않았다. 산업시대는 지났음에도 자본과 과학기술의 현란함에 가려 그 그림자를 보지 않았을 뿐이다. 정보과학기술의 과도함이 그 미세한 경고음을 듣지 못하게 했을 뿐이다. 지금의 사태는 어쩌면 마지막 경고일지도 모른다.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미시적이면서 거시적이어야 한다. 생각의 틀을 바꾸고 일상의 삶을 바꿔야 한다. 보는 곳을 바꾸고 보는 방법을 전환해야 한다. 현란함과 풍요를 보지 말고 그 뒤에 감춰진 어두움을 직시해야한다. 그 이전부터 들려왔던 패러다임 전환 요구를 새롭게 들어야 한다. 몸과 마음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우리가 사는 일상에서 듣고 말하고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성장과 풍요의 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일상적 삶은 물론, 우리가 사는 공동체조차도 결코 지켜내지 못한다. 자본의 논리와 그 유혹을 벗어야 한다. 재벌이 아니라 공유하는 경제가 살아야 한다. 한 줌의 권력으로 가려진 그들을 보이지 않게끔 만드는 그들을 넘어서야 우리 삶이 살아날 수 있다. 자본과 산업화에 성공한 근대의 체제를 넘어서지 않으면 이 위기는 극복되지 않는다. 넘어서기 위해 체제를 바꿔야하고, 바꾸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언론과 법과 경제의 한 줌 권력에 취한 자들은 보지 않으려 한다. 거부하는 그들을 넘어 너와 나 우리가 변혁해야 한다. 변하기 위해 그 어두움을 봐야 한다. 보면 알게 되고, 알면 바꿀 수 있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20-06-14 신승환

[월요논단]기술패권 전쟁과 한국형 뉴딜정책

지식재산권 침해·홍콩사태 '갈등'中 제조업·첨단 기술 거센 추격에"위험국가" 미국 무역관세로 반격강대국 사이 '한국 힘든 선택' 강요정부 미래인재 육성정책지원 절실G7에 한국이 초대를 받았다. 축하를 받아 마땅한 경사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의 초대에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반대가 많다. 더구나 중국은 초청명단에도 없다. G7과 중·러의 새로운 대결이 예상되는 장면이다. 돌이켜보면 미국은 냉전기에 중국과 결합하면서 소련을 견제하고자 하였다. 값싼 중국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제조업과 금융자본의 이해관계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중국에 대한 관여와 안정화를 통해 정치적 자유화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책임지는 국가가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지식재산권의 침해, 남지나해 인공 섬 조성, 홍콩 사태를 보면서 그 기대를 접고 있다. 오히려 중국이 일부 첨단기술영역에서 추격에 성공했다는 현실 앞에 당황하고 있다.워싱턴의 반격을 보면 중국의 기술성장을 저지하고, 미국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넘쳐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과 관세를 주된 대중압박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의 제조업과 첨단기술을 지켜야 한다는 테크노 내셔널리즘을 분출시키고 있다. 중국이야말로 지식재산권의 침해를 통해 미국의 안전과 번영을 해치는 위험한 국가라는 주장이다. 이미 미국은 '국방수권법'(NDAA)을 통해 화웨이 등으로부터 통신기기나 영상 감시기기의 조달을 금지했다. 올해 8월부터는 이들 회사의 기기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기업과의 계약도 금지한다. 지난 2월13일부터 시행된 '외국투자 리스크심사 현대화법'(FIRRMA)의 시행규칙은 사실상 '중국제조 2025'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은 생명공학·축전지·원자력 등 27개의 산업분야에 대해 중국 등 외국인의 투자를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미국은 중국의 기술추격을 차단하기 위해 인공지능·로봇·양자 정보과학·극초음속 병기 등 첨단기술을 군사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연구·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산업스파이로 지목하여 연구소·대학·방산회사에 소속된 중국 연구자의 비자 등을 취소하는 절차도 시작하고 있다. 21세기 전쟁의 상대는 이념이 아니라 기술패권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첨단기술을 둘러싼 기술 패권전쟁은 왜 격해지고 있는가. 기술패권이란 첨단기술의 개발·이용·관리 등을 장악한다는 의미이다. 기술력이 국가안보 뿐만 아니라 외교적 수단으로 그리고 국력의 원천으로 간주되고 있다. 첨단기술은 군사적 차원의 게임 체인저를 넘어 국제질서를 장악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중국이 디지털 실크로드라는 개념을 내세워 5G의 표준화에 주력하는 이유다. 5G를 앞세운 중국에 맞서 미국이 강력하게 저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기술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각 국가로 연결된 기술에 대한 차단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미래에 지켜야할 최첨단 기술로 게놈공학·AI기계학습·양자암호·양자컴퓨터·첨단감시기술 등을 들었다. 현재 한국은 기술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거대한 국제시장이자 성장하는 중국. 국가안보와 수출의 핵심인 미국과의 동맹관계. 과연 어디를 선택해야 하는가. 선택에 따라서는 첨단기술과 수출입에 큰 위기가 올 수 있다. 이것을 피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계적 수준의 첨단기술을 보유하는 방법밖에 없다.정부는 향후 5년간 76조원을 투자한다는 한국형 뉴딜정책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디지털 뉴딜은 2조7천억원이다. 사업을 보면 데이터·5G·AI인재 육성 정책 등이다. 기술목록을 놓고 보면 삼성전자만도 못하다. 올해 삼성전자는 양자암호통신·차세대 항암제·장애물 뒤 물체 촬영 등을 지원한다. 코로나19 이후를 생각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최첨단기술(emerging technologies)의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통해 우리들은 최첨단기술이 국가안보이자 경제라는 사실을 경험하였다. 앞으로 강대국은 G7의 초대가 아니라 최첨단기술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최첨단기술개발의 핵심은 고급인재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7월에 종합적으로 발표되는 뉴딜에는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최첨단기술에 대한 정책과 지원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06-07 김민배

[월요논단]언론영역 징벌적 손해배상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왜곡보도에 대한 시민 분노 계기피해구제 위한 도입 목소리 커져상징적·실질적 필요성 주장 불구실손해액 3배내 범위 실효성 의문권력 등 감시 기능도 위축 가능성최근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의가 활발해 지고 있다.지난해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김어준의 다스베이다'와 YTN '뉴스N뉴스'에 출연해서 언론의 기본적 취재와 보도의 자유는 제대로 보장받아야 하지만 언론의 왜곡보도를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열린민주당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언론개혁 공약으로 '악의적 허위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제시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5월17일 KBS '저널리즘 토크쇼J'에 출연해 악의적인 허위보도에 대해서는 언론사가 미국의 사례와 같이 징벌적인 배상을 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언론인권센터는 현재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에 의한 언론보도 피해로 인한 손해배상 인용액이 너무 적어 실질적인 피해보상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나 언론보도가 악의적일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최근 언론의 왜곡보도에 분노해서 시민들이 제기한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도 여러 건에 이른다.악의적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2004년에 집중적으로 논의된 바 있다. 당시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는 신문 등 정기간행물에 대한 내용과 함께 언론중재위원회 등 언론보도 피해구제에 관한 내용이 규정되어 있었다. 이 법을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으로 분리하기 위한 법 개정이 추진됐다. 시민언론단체와 언론현업단체가 함께한 언론개혁국민행동과 열린민주당의 언론피해구제 법안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쟁점이 됐다.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해 손해배상이 실시되지만 인정되는 위자료액은 피해자 구제나 회복에 크게 미흡하므로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악의적인 허위보도가 명백한 때에는 법원이 미국과 같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언론인권센터와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 모임 등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찬성했고 기자협회 등 현업단체는 반대했다. 결국 언론중재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도입되지 못했다.2006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기존 손해배상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효과적인 대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인정하고 언론중재법을 포함하는 9개 법에 한정하여 도입하기로 했지만 실제 법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2011년 처음으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실손해의 3배가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됐고 지적재산권과 개인정보보호 관련 법에도 비슷한 내용이 도입됐다.2013년 12월에는 정청래 의원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언론의 악의적 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에 법원은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했다. 국회 검토보고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법이 개정되지는 않았다.악의적인 왜곡보도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도입이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해서 상징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도입되면 얼마나 실익이 있느냐는 의문이다. 법원의 언론보도 피해구제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이면 대개 실손해액의 3배 이내로 정해지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의미가 효과가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특히 정치·경제·종교 권력을 감시해 왔던 'PD수첩' 등 시사프로그램과 '뉴스타파'와 같은 대안언론, 지방권력을 감시하고 있는 지역언론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신중하고 효율적인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의가 필요하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20-05-31 이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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