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월요논단]요코하마와 오사카 그리고 인천의 드림촌

요코하마, AI·로봇 첨단기술 활용복지·의료·관광·경제등 혁신 가속화오사카, 외국인 전문인력 문호 확대인천, 벤처공간 주민 반대로 '답보'젊은기술자 없는 인천미래 안보여경자년 인천의 미래. 박남춘 시장이 새얼아침대화와 인천경영포럼에서 새해 계획을 밝혔다. 인천의 오랜 과제들을 해결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취지. 박 시장은 난제 해결에 도움을 주었던 분들을 거명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행사 후 티타임에서 몇 분의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진정성이 느껴진다'. '우연히 해결되는 과제도 있다는 말이 남는다'. 박 시장은 새해 과제 가운데 하나로 폐기물처리장의 문제를 꺼냈다. 그는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요코하마와 오사카를 직접 찾아갔었다. 크게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지리적 측면에서 요코하마와 인천은 서울과 도쿄와 같은 유사성을 갖고 있다. 오사카 역시 교토와 함께 간사이 권역의 핵심도시이다. 인구만을 비교하면 요코하마는 370만여명, 오사카시는 270만여명이다.그렇다면 요코하마와 오사카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일본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이 5년 혹은 10년 내에 한국에서도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의 현 단계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준비한다면 일본이 겪는 문제를 우리나라는 피해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까지 지혜로운 대처를 하지 못했다. 사정이야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문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당면할 저출산 문제와 제조업 위기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団塊)의 대거 은퇴가 가져올 과제들을 예측했다. 다양한 대책도 준비했다. 그렇다면 그 과제들은 해결되었을까. 요코하마의 시책을 보면 여전히 자신들을 둘러싼 과제들과 전투 중이다. 75세 이상 인구가 60만명이 되면서 정년연장, 의료, 간병 문제를 최대의 과제로 등장시켰다. 새로운 문제도 있다. 2019년 기준 외국인은 10만명을 넘어섰다. 중국인이 4만1천156명, 한국인이 1만2천930명, 미국인 2천722명, 북한인이 620명 등이다. 당연히 다문화와 공생 전략이 중요하다. 요코하마는 AI와 로봇 등의 첨단기술을 활용한 복지, 의료, 방재, 관광, 경제 등에 대한 서비스 추구와 기술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대책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600만명이 관람한 도시녹화 '요코하마 페어'가 그것이다. 꽃과 초록을 내세워 도시의 색깔을 바꾸고 있다.오사카시는 공항과 항만을 통한 집객력 강화, 인구감소·저출산·고령화에 대비한 인재력 강화, 산업과 기술의 강점 극대화, 물류 인프라의 활용, 도시의 재생을 시의 주요 전략으로 내세웠다. 2018년 오사카부와 시를 찾은 외국인은 1천142만명, 총 숙박인원은 3천990만명, 국제선 LCC취항 편수는 주당 536편이다. 2025년에 개최될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를 준비하고 있다. 입장객수 2천800만여명, 경제파급효과 약 20조원, 건설비 1조2천5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외국인이 일본을 찾는 목적을 통한 전략도 수립하고 있다. 일본의 음식과 문화, 역사, 자연에 대한 관심을 관광과 연계하고 있다. 오사카를 찾는 여행자들이 전통적인 일본의 풍물과 현지인들의 생활문화 체험을 원하고 있다는 점을 활용한 마케팅도 활발하다. 기존의 네트워크와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는 오사카의 3화 정책도 매우 흥미롭다. 공항과 항만의 허브를 위해 각종 인센티브로 화물을 모으는 '집화', 공장과 산업단지의 확대를 통해 새로운 화물을 창출하는 '창화', 항만시설의 기능 확대를 통한 경쟁력의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오사카는 제조업의 메카이기도 하다. 외국인 가운데 고도의 기술 등을 보유한 전문적 인력에게 문호를 확대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과 기술자의 영입확대가 인상적이다. 오사카는 제4차 산업혁명의 필수기술과 에너지 기술을 가진 기업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을 위한 연구와 벤처 공간인 '인천 드림촌'은 주민들의 반대로 답보상태다. 젊은 기술자와 연구자가 없는 인천, 산업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떠나는 인천에 미래는 없다. 박 시장이 아쉬움으로만 표현할 사안이 아니다. 조성지역을 다양화하고, 이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젊은이들이야말로 인천의 미래이자 희망이기 때문이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01-12 김민배

[월요논단]4차 산업혁명 인재상과 핵심역량의 올바른 접근은

혁명위 권고안, 사회문제 논의 부족'창의융합형'→'미래인재' 교육혁신기계 대비되는 인간 고유역량 강조신기술과 노동의 인간화 중심으로비판적 사고력·소통·협업이 중요4차 산업혁명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키워드이다. 4차 산업혁명은 독일의 기술혁신을 통한 제조업 혁신전략이자 산업혁신전략인 '산업 4.0'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우리는 기술혁신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을 이해하곤 한다. 이와 달리 독일은 '산업 4.0'에 이어 노동혁신전략인 '노동 4.0' 수립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기술혁신과 인간조직의 관계(노동의 인간화)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기술체계의 관점으로 접근했다. 2019년 11월 대통령 자문위원회인 '4차 산업혁명위원회'가 발표한 '대정부권고안'은 시민단체와 노동단체에 의해 과학기술과 산업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일자리와 복지 등 사회적 문제 논의는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을 계기로 4차 산업혁명이 대중적으로 체감되기 시작했다. 2017년 11월에는 정보통신과학기술부 등 관계부처와 4차 산업혁명위원회가 공동으로 '혁신성장을 위한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 대응계획'을 발표했다. 4차 산업혁명 대응에 관련된 논의와 정책 제시는 교육계도 예외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인재상과 핵심역량이 제시되고 있다. 우리 교육이 지향하는 인재상은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제시된 창의융합형 인재였다. 창의융합형 인재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추고 바른 인성을 겸비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 역량으로 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역량, 심미적 감성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 등 여섯 가지를 제시됐다.2017년 '미래 인재'라는 개념이 새롭게 등장했다. 2017년 2월 미래창조과학부가 발간한 한 보고서에는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3대 핵심역량이 제시됐다. 기계와 차별화된 인간 고유의 문제 인식 역량, 인간 고유의 대안 도출 역량, 기계와 협력하고 소통할 수 있는 역량이었다. 4차 산업혁명에 즈음해서 기계에 대비되는 인간의 고유한 역량을 강조했다. 인간의 문제 인식 역량과 대안 도출 역량으로 기계와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협력적 소통 역량을 통해 기계 성능을 활용하여 전반적인 인간 인지 과정을 강화할 수 있다. 이렇게 미래역량을 통해 복합적인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면서 기계와 공생해 간다는 것이다. 2019년 8월 교육부는 '인구구조변화와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대학혁신 지원 방안'에서 대학 혁신 4대 정책 방향 중 첫 번째 방향으로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혁신'을 제시했다. 4차 산업혁명위원회의 '대정부권고안'은 단순 반복적인 노동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 반면, 고도의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일자리의 수요는 증가하는 등 고용시장 변동이 예상된다. 고정된 지식을 축적하고 활용하는 능력보다 정보를 적절히 활용하여 문제를 발견하고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역량이 더욱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교육부는 4차 산업혁명으로 기존 일자리 감소와 융합기술 중심의 신산업 분야의 일자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대학의 역할 강화가 요구된다면서 신산업에 대응하는 융합지식과 4C 능력 등을 갖춘 문제 해결형 인재양성을 위한 대학 교육과정 및 교육 환경 등의 전반적 대학교육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4C 능력은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소통능력(Communication), 창의력(Creativity), 협업능력(Collaboration)을 포함한다. 대학에서는 융합교육과정을 통한 4차 산업혁명 친화적 융합지식과 창의력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기술혁신과 노동의 연계와 사회문화적 접근이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에서도 디지털 정보와 콘텐츠에 대한 비판적 이해력과 사회문화·윤리적 접근을 포함하는 비판적 사고, 그리고 디지털 시민의식을 기반으로 소통과 협업 능력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20-01-05 이용성

[월요논단]새해를 시작하며

생명체들에게 중요한 것은 '공존'경자년엔 잘 보고·듣고·많이 웃고진실된 마음으로 성실하게 임하며모르면 묻고, 화내지 말며남의 것 탐하지 않는 한해 살아보자2019년이 다 가고 며칠 남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연말행사, 송년모임, 공연, 시상식 등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매일 같은 해가 떠오르고 어제, 오늘, 내일… 연속되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데 우리는 왜 해가 바뀌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걸까?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우리가 뭔가를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도 하고, 이미 지난 일들은 괜찮다며 용서를 건네기도 하고, 더 이상 끝이 아니라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365일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새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2019년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일은 오랫동안 바라던 새 도서관을 지어 문을 연 것이고 그다음 순위는 그렇게 어렵게 만든 공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 강렬하게 느끼며 올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넓어진 공간에서 더 많은 이용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도 어린아이를 데려오는 부모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많다. 도서관 이용에 대한 예절, 타인과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 대한 배려, 내 것이 아닌 공동의 것에 대한 소중함 등을 찾아보기 어렵다. 마구 뛰어다니고 생각 없이 책을 찢고 도서관 소품들을 던지고 망가뜨린다. 옆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없을 뿐 아니라 사물에 대해 조심스럽게 살피고 대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이런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내버려두는 부모들을 보면 어떤 때는 정말 화가 난다. 멀리 외딴곳의 도서관까지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의 열성을 보면 자녀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지만, 정작 삶에 필요한 것을 가르치지 않는 그들의 사랑방식은 참으로 안타깝다.새로운 시작 앞에, 많은 부모와 아이들을 보면서 딱 맞는 그림책 하나를 발견했다. 그림책 '시작하는 너에게'(마에다 마유미 지음. 강방화 옮김/웅진주니어)에서는 아기 곰이 태어나서 엄마 곰으로부터 독립하기까지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묘사했다. 독립하기 전까지 엄마 곰은 아기곰들이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을 직접 데리고 다니며 알려준다. 계절의 변화는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먹이는 어떤 것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등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알려준다. 부모로부터 독립하게 된 아기 곰들은 엄마와의 이별이 서운했지만 자신이 나아갈 앞날이 조금 설레기도 하다.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아기 곰에게 힘찬 파이팅을 외치는 엄마 곰은 자랑스러운 마음과 공허한 마음이 함께 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중요한 것은 모두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공자가 말한 견리사의(見利思義)처럼 누구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개의치 않고 행하는 행위들은 개인의 욕망만 채우는 것이다. 이익을 취하더라도 의(義)로운 관점에서 판단하고 임해야 할 것이다.새해를 맞이하며 나 자신부터 다짐하고 싶다. 논어의 계씨에 군자유구사(君子有九思)가 있다. 군자로 살아가면서 곰곰 생각해야 할 아홉 가지의 도리이다. 볼 때는 제대로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질 것을 생각하고(視思明), 들을 때는 똑똑하게 들어 상대방을 이해할 것을 생각하고(聽思聰),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色思溫), 태도는 공손할 것을 생각하고(貌思恭), 말을 할 때는 진심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言思忠), 일을 할 때는 공경스럽게 할 것을 생각하고(事思敬), 의심이 들 때는 질문할 것을 생각하며(疑思問), 노여울 때는 곤란해질 것을 생각하고(忿思難), 이득이 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의로운지를 생각하라(見得思義).이제 며칠만 지나면 2020년 새해가 밝아온다. 며칠 남지 않은 올해를 잘 마무리하고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맞이하면서 잘 보고, 잘 듣고, 많이 웃고, 공손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성실하게 임하며 모르면 묻고, 화내지 말며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 그러한 새해를 살아보자./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

2019-12-29 최지혜

[월요논단]해체해야 할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

민주-한국당 표면상 격렬 대립속서로에 대한 분노로 존립근거 다져송나라 신유학자들 왕도정치 구현화해질서·도덕 우월가치로 내세워정치인들 의혹 '수신' 중요성 알아야온 나라가 뒤죽박죽 엉망진창이다. 정부·여당이 지지하는 장관 후보보다 이를 비난하는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더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항변할 때부터 감지하기는 했다. 표면상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으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서로에 대한 분노를 자양분 삼음으로써 각자의 존립 근거가 견고해지는 지점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6일 자유한국당은 국회 경내에서 집회를 가졌고, 이때 다른 당 국회의원·당직자 및 국회 직원에게 폭력과 성추행이 저질러졌다. 자유한국당 지지자들 나름의 존재 증명인 셈이다.선거법 개혁안이 너덜너덜 누더기로 전락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다시 한 번 실감된다. 민의(民意)를 보다 폭넓고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하여 선거제는 마땅히 개혁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자유한국당은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더불어민주당은 개혁 취지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표면상의 격렬한 대립에 아랑곳없이, 낡은 선거법 체제를 가능한 유지하면서 공생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거대 양당에게는 이득이 되는 것이다.정치 지형의 변화는 없이 상호 적대적인 양상은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사법시스템의 작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기에 이르렀다. 19일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공판에서 검찰은 사실상 재판장을 흠집 내고 망신주는 시위를 벌였다. 10일 공판에서 재판부는 조국·정경심 편에 섰다고 몰아붙이는 검찰 측에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고 한다. "제 판단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검사님은 검사님 판단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 안 해 봤습니까?" 이 순간 정부·여당의 반대편에 놓인 검찰의 자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불편부당한 심판자를 자처하고 있으나, 자신의 막강한 권력에 후원이 되어 줄 정치 세력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혐의를 검찰이 떨쳐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분노만 확대 재생산될 뿐 상황을 타개할 전망이 부재한 상황에서 신유학의 성립 과정을 떠올려본다. 신유학을 주창했던 송나라의 지식인들 또한 이처럼 무거운 상황에 직면했었기 때문이다. 거란의 요(遼), 여진의 금(金), 탕구트의 서하(西夏), 베트남 방면의 대월국(大越國) 등과의 치열한 각축 속에서 한족의 송(宋)은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신유학자들은 전쟁 대신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가치를 가다듬었다. 각각의 국가들은 하나의 틀(문명권) 내에서 서로 어울려 공존해야 하는 한편, 나름의 전통과 문화에 입각한 특수성(개별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국가 차원에서 무력이 행사될 위험을 제어하기 위해서 신유학자들은 정통(政統)과 도통(道統)을 분리하였다. 백성·신하 위에 군림하며 힘으로써 통치하였던 황제들의 폐도(覇道) 정치를 거부하고, 고대 성왕에서 공자에게로 이어졌던 덕에 입각한 왕도(王道) 정치를 잇겠다고 표명하였던 것이다. 왕도를 따르고 구현하기 위해서는 신유학자 자신도 스스로 부단하게 수양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학문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하여 도덕적 권위를 마련해 나가는 수신(修身)의 방편으로 자리매김 되었다.물론 전근대의 가치관을 현시대에 그대로 접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신유학이 첨예한 대결 구도를 화해의 질서로 해소해나간 측면이라든가, 도덕의 권위를 무력·금력 따위보다 우월한 가치로 곧추세워 나간 과정 등은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예컨대 나경원·조국·김성태로 대표되는 정치인들을 둘러싼 온갖 의혹들은 수신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새삼 깨우쳐 주는 바 있지 않은가.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에 안착해서는 이러한 현실 너머로 나아갈 희망을 일구어낼 수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보다 더 커다란 그림을 그려나가야 한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9-12-22 홍기돈

[월요논단]몽상과 나비의 꿈 사이

권력잡은 이들 여전히 이익만 좇고청산대상 집단 기득권 유지위해 몽니2020년 SF의 꿈 간절함 향해 비행노동과 가난 열악한 자리 벗어나고성찰의 지성 삶의 일상되길 꿈꾼다공상과학에서나 나올 것 같았던 2020년이 불과 며칠 남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놀랍게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의 낯익은 듯 낯선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정말이지 2020년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런데도 눈을 돌려 주위를 보면 여전히 100여 년간의 혼돈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놀라운 성취를 이룩했고 그때와 같은 결핍과 폭력의 시간은 사라진듯하다. 그렇지만 한 걸음만 더 우리 사회의 속살로 들어가면 그때보다 더 놀라운 야만을 수없이 보게 된다. 가난 때문에 죽어가는 이들과 권력의 횡포에 삶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의 현실은 결코 그때의 폭력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 노동자는 죽어가는데, 재벌과 고위 관료와 법조계 인사는 처벌조차 받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온갖 망발과 탈법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언론이 일등신문이라고 자부한다. 교육은 사람의 됨됨이를 말살하는 가장 빠른 길이 되었다. 우리는 정말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성공한 것일까. 이런 격차와 역기능을 사람들은 20대 80 사회 때문이라거나, 또는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명백히 잘못된 진단이다. 이 말은 현상과 원인을 구별하지 못한 채 그저 보이는 사실을 뒤집어 말하고 있을 뿐이다. 참 "멋진 헛소리"다. 듣기에는 뭔가 있어 보이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인을 명확히 밝혀 우리 사회와 문화의 문제를 뿌리에서부터 해결하고, 가야 할 길을 명확히 보여주지 못하면 불평등과 퇴행은 되풀이될 것이다.우리 사회의 문제는 잘못된 체제와 독점적 관행이 여전하기 때문에 생긴다. 특권을 독점한 집단이 강고하게 공공성을 무시한 채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구조적 불평등이 만연한 것이다. 법과 지대를, 자본과 전문가 인증을 소유한 그들이 권한을 독점하고 공동체와는 전혀 무관하게 자신들만의 이해 놀음에 빠져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지난 100여 년의 시간을 달려왔다. 그럼에도 그 질주는 다만 자본의 불빛이거나, 독점적 권력에 동참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이었을 뿐이다. 현실이 그럴망정 규범과 의식에서라도 공동체 정신과 공동선을 지향한다면 달라질 가능성도 있지만 그런 문화적 자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달력의 시간은 SF적이지만 현실 사회의 시간은 100여 년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지난 몇 달간의 검찰 놀이는 물론,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작태를 냉정히 바라본다면 이 말이 결코 냉소로만 보이진 않을 것이다. 양극화와 불평등을 말하지만, 자본을 향한 몽상은 계층과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개혁을 외쳤던 함성을 딛고 권력을 잡은 이들이 여전히 그들만의 이익을 향해 불나비 몽상을 계속한다. 탄핵과 함께 청산되었어야 할 집단이 언제나처럼 자신의 낡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온갖 몽니를 부리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불의한 구조와 체계에 있으며 이를 지속시키는 사회 문화적 독점, 기득권층의 지배 구조에 있다. 또한 이를 흉보면서 닮는 대중들도 결코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사람의 꿈은 일상에서의 경험과 정보를 정리하는 과정이면서 또한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 간절함을 담고 있다. 그래서 2020년 SF의 꿈은 몽상과 간절함의 골짜기를 비행한다. 그 꿈은 낡은 언론이 본질적으로 탈바꿈하는 몽상, 법이 자신을 빙자하여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마저 빼앗길 사람을 지켜주는 참된 법이 되는 간절함으로 이어진다. 나비의 꿈은 몇 년을 땅 밑에서 선탈을 열망했던 이들의 몫이다. 100년에 걸친 인고의 시간이면 이제는 선탈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노동과 가난이 그 열악한 자리를 벗어나길 꿈꿔도 좋을 것이다. 교육이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되살아나길, 그래서 대학이 성찰의 인간을 위한 학문의 터전으로 거듭나길 꿈꾼다. 자본과 기술이 삶을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향해 탈바꿈하길, 공동선과 규범이, 성찰의 지성이 삶의 일상이 되길 꿈꾼다. 나비의 꿈이 SF에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2019년은 이 꿈이 몽상에 그치는 마지막 시간이었으면 좋겠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9-12-15 신승환

[월요논단]평화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

선거와 표만 의식 신사대주의 판쳐정치권, 민생경제 외면 '정쟁' 올인지금 모두 '한반도 운명' 주목해야'북미 대결'로 혹독한 겨울 될 수도12월 만이라도 싸움 멈추고 뭉쳐야'당파를 형성하는 것은 부귀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무리를 지어서 이익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무리를 이루겠는가.' 성호 이익(李瀷)이 질타한다. '당쟁은 감옥으로 보내기 위한 싸움이다. 지극히 어진 사람이 흉악한 사람으로부터 끝없이 공격을 받는다. 크게 악한 사람이 참으로 착한 사람을 친다'(星湖僿說 黨論有要). 생각한다. 300년 전 조선시대의 당쟁과 현재의 우리정치 현실이 이토록 유사할 수 있을까. 당쟁은 파벌들의 싸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란을 자초한다. 성호는 임진년의 변란은 없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대체 어떤 논거로. '나무가 썩으면 좀이 생긴다. 사람이 피곤하면 병이 찾아온다. 국가도 다르지 않다. 외적은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허실이 드러나면 들이닥치는 것이다'. 그는 서로 협동하여 정책과 전략을 세워 허점을 없앨 것을 강조한다. 성호라면 12월의 한반도 문제에는 여야가 없어야 한다고 충고했을 것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아니어도 정파의 이해관계 때문에 전쟁의 참화로 몰고 갔던 역사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선거와 표만을 의식한 신사대주의가 판을 친다. 일부 정치인들이 국민의 생존보다 자신의 당선을, 한반도의 평화보다 정파의 이익을 우선한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정파의 이해가 대한민국의 존립과 국민의 생명에 우선할 수 없다. 물갈이나 퇴진론으로는 부족하다. 역사와 선열 앞에 사죄해야 한다. 도대체 정치란 무엇인가. 공자가 말했다. '정치란 먹을 것을 충족히 하고 군비를 넉넉하게 하고 백성들이 믿도록 하는 것이다'. 자공이 묻는다.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하는지요'. '먼저 군비다. 그 다음이 먹을 것이다'. 그러나 왕충(王充)이 반박한다. '식량이 없다면 백성은 예의를 저버린다. 겸양은 여유에서 생기고 다툼은 부족함에서 생긴다. 믿음이 아니라 식량이 우선이다'(論衡). 그렇다. 왕충의 비판처럼 명분보다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은 의식주다. 그런데도 민생경제에 올인하는 정치를 본 것이 언제인지. 정쟁에 기울였던 열정을 경제에 쏟았다면. 청문회 호통만큼 경제문제를 파고들었다면. 청년들의 일자리도 명퇴당한 중장년의 일자리도 늘어났을 것이다. 결혼도 출산도 지금처럼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호도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양반이 세습되니 나라에 인재가 없다. 재능과 자질만으로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학문을 숭상하는 자는 번영한다. 무예를 숭상하는 자는 강하다. 문벌을 숭상하는 자는 망한다'. 성호의 비판처럼 인재 등용의 원칙을 바꿔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갖춘 지도자였다. 그를 뛰어넘는 전문가적 문제인식과 국제적 판단력을 갖춘 리더들이 필요하다. 통합과 용인술, 비전 추진과 위기 돌파력, 원칙과 유연한 판단, 과학기술과 경영마인드를 갖춘 리더와 인재들이 세상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재벌과 교회, 전문직과 고용세습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젊은이들이 좌절하는 이유다. 그래서 더 허망하다. 왕충은 현실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헛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허망한 것과 허망하지 않은 것을 판별하는 것은 시비(是非)라고 했다. 시비는 사실과 효험에 의해 결정된다. '눈과 귀(耳目)로 판단하면 허상의 오류에 사로잡히기 쉽다. 반성적 사고로 인식된 심의(心意)로 바로잡아야 한다'. 그는 세상사를 이목이 아니라 심의로 판단할 것을 주문한다.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진실규명을 내세워 정치를 휘젓는 검찰을 보면서 생각한다. 지켜야할 헌법적 가치가 무엇인지. 검찰도 국회도 헌법 아래에 있다. 이목을 흐리는 정파의 이해관계는 봄날이면 사라지는 얼음장에 불과하다. 정치는 칼이 아니라 국민이 심의와 표로 판단하는 것이다. 지금 모두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반도의 운명이다. 남북 간의 봄은 짧았다. 북미가 대결하는 겨울은 더 혹독할 수 있다. 12월만이라도 모두가 정쟁을 멈추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보다 우선하는 어떤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12-08 김민배

[월요논단]우편사업의 공공성과 정기간행물 우편요금 지원

보편적 서비스 제공하는 공익성자체수입 충당 기업성 요구 받아공적기금으로 감액제 지원 필요도서 산간벽지 주민도 알권리언론자유 실현위해 중요한 과제지난 11월 28일 국회에서 정기간행물의 우편요금 감액률(할인율) 조정에 관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토론회는 정기간행물 단체와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들 사이에 치열한 토론이 오갔지만 함께 우편제도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공동 노력하기로 하고 마무리됐다. 우정사업본부가 주요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정기간행물 우편요금 감액을 축소하려고 하는 이유는 올해 우편사업 현금수지가 1천960억원 적자로 돌아설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정사업본부는 5월에 우편요금은 통당 50원가량 인상한데 이어 내년부터 일간지와 주간지 우편요금 감액률을 각각 68%와 64%에서 50%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정기간행물 우편요금 감액제의 주요 대상인 농민신문 등 농업전문언론의 경우, 농민신문 64억원 등 연간 83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신문배달체계를 통하지 못하고 집배원의 우편배달에 의존하고 있는 농업전문언론이나 전문신문(특수주간신문), 지역주간 신문은 상당한 타격이 예고됐다. 우편사업이 보편적인 서비스이자 국민의 알권리와 미디어접근권에 기여하는 가장 중요한 공익적 사업임은 따로 설명이 필요가 없다. 주요 국가와 마찬가지로 우편요금 감액제도는 1994년 도입하여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우편 수지개선을 위해 감액제도를 조정해야 했지만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정부기관으로 우정사업을 운영하는 연방우정청은 2010년 정기간행물 감액제도 등을 포함하는 이유로 지속적인 적자가 발생하자 민영화 압박을 받고 있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우정청은 돈이 안 되는 오지마을까지 편지를 배달하겠지만 민간기업은 그 서비스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정사업이 제공하는 보편적 서비스는 효율성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우리도 우편서비스가 갖고 있는 공공성은 특별하다. 우정사업본부는 우편물을 오지까지 배달하는 보편적 서비스(읍·면 1개 이상 우체국 등)를 하고 있고 최근에는 복지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위기 가구를 관찰·발굴하기 위한 '명예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집배원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정기간행물 우편요금 할인제도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우정사업본부는 정부기업이지만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익성과 함께 자체수입으로 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기업성(독립채산제)을 요구받고 있다. 최근 우편 물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우편요금 감액 부담으로 우편수지가 악화됐다고 한다. 그런데 우정사업본부는 자체 수입 범위 내에서 모든 비용을 충당하는 특별회계로 운영되고 있어 우편적자가 발생해도 일반회계(국가예산)에서 보전받지 못하고 자체적으로 해야 하는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수익을 내고 있는 예금사업도 특별회계에 묶여 있어 이익금 상당부분이 일반회계 등으로 전출되어 우편사업의 적자를 보전하고 추가 사업에 제대로 투입되지 못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정기간행물단체의 요구를 수용하여 11월 13일 일간신문 6% 주간신문 5%로 감액률을 축소(감액률 일간 62%, 주간 59%)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유럽의 스위스,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는 우정기관이 신문을 우편으로 배달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이나 적자를 공적 기금 등에서 보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언론진흥기금을 통해 일간지만 신문 우편발송 지원이 일부 되고 있다. 유럽과 같은 공적 기금 등을 통한 신문 우편배달 지원은 미디어접근권이나 정보복지 차원에서 중요한 신문지원제도로 평가된다. 최근 집배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감안할 때 우정사업의 공공성에 걸맞은 회계구조가 시급히 필요하다. 국회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입법 노력이 있으니 결실이 있어야 할 것이다. 철도는 공익서비스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정부가 보상하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도서 산간벽지에 사는 주민들도 신문과 잡지를 만나 세상일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 미디어접근권, 더 나아가 언론자유의 실현에 있어 중요한 과제이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19-12-01 이용성

[월요논단]모두가 행복한 세상

우린 너무 인간중심으로 살아동물도 '동물답게' 살 권리 있어'동물원' 존재이유 돌이켜본다면그들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뭘 원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최근 몇 년 사이 어린이들의 체험활동이 중요시되면서 다양한 체험들이 많이 생겼다. 그중 동물원에서 동물들의 먹이를 구입하여 직접 먹이를 주고 만져볼 수 있는 어린이 동물원들도 생겨나고 있다. 토끼, 염소, 닭 등 가축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종들이 우리에 갇혀서 이용객들을 맞이한다. 아이들은 당근이나 먹을거리를 직접 먹이고 만져보면서 신기해하고 부모들은 그 모습을 사진 찍으며 흐뭇해한다.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미소를 보면 동물들과 가까이 교감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아 보인다. 하지만 동물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달라진다. 좁은 실내 공간 안에서 너무 많은 어린이 손님 덕분에 이미 충분히 배부른데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먹고, 아이들의 탄성에 응대하는 동물들을 생각하면 순전히 인간만을 위한 장소라는 생각을 지우긴 어렵다.한때 우리나라 서울대공원의 '돌고래 쇼'는 그 인기가 대단했다. 이 돌고래들은 제주도에서 불법 포획된 돌고래로 좁은 수족관에서 고된 훈련을 받으며 돌고래 쇼에 동원되었다. 몇 년 전부터 동물권리 활동가들과 시민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그들의 고향인 제주도로 다시 보내지기 시작했다. 서울대공원은 2017년 5월 마지막 남은 세 마리의 돌고래들을 제주도로 돌려보내고 돌고래 쇼를 완전히 폐쇄하면서 '돌핀-프리'를 선언했다.그림책 '점프 점프/정인석 글·그림/고래뱃속'의 주인공 돌고래 핑크를 떠올리게 된다. 돌고래 핑크는 수족관에서 태어났지만 돌고래 쇼에서 점프하다 우연히 바라보게 된 바다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되는 수족관에서 보이는 바다를 향해 높이 점프한다. '바다야, 진짜 바다…!' 돌고래 핑크는 처음으로 느껴보는 자연의 바다에서 높이 점프한다. 비로소 행복을 찾은 것이다.2018년에 발생한 '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사건 이후에 동물원 폐지에 대한 의견들이 많아지면서 동물원폐지에 대한 국민청원이 5만여명을 넘었었다. 동물원의 존재 여부에 대한 논란은 동물권리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논의되어 온 문제이기도 하다. 동물원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동물원은 동물보호와 멸종위기종 보전 및 복원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존속의 이유를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그런 사례들도 있다. 멸종위기종들을 육종프로그램을 통해 번식시켰으며, 야생으로 다시 되돌아가도록 도운 사례들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종(種)이 너무 많아져서 살처분한 경우도 있고 제한된 범위 안에서의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 피임 등 생식과 양육형태를 인간이 의도적으로 통제하기도 한다. 동물원의 순기능을 강조하면서 동물원이 계속 존재해야 한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물원이 아니라 '동물보호센터'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코끼리를 이용해 코끼리 트레킹, 코끼리 쇼 등 관광 상품을 만들어 왔었다. 그런데 최근 해외에 나가보면 부쩍 눈에 띄는 것은 '코끼리 보호센터'에 대한 안내문이다. 관광으로 이용되며 상처받은 코끼리들을 치료하고 보호하는 단체들을 소개하고 있다. 동물보호의 중요성과 자신들의 활동을 알리면서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게 한다. 숙련된 전문가들과 함께 먹이를 주고, 배설물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는 일을 도울 수 있다. 동물을 좋아하고 동물과 함께 교감을 느끼고 싶다면 동물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우리는 너무 인간 중심의 입장에서 동물원을 만들고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동물원을 무조건 폐지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듯 동물들은 동물답게 살 권리가 있음을 우리가 다시 한 번 기억했으면 좋겠다. '동물원'이 무엇을 위해 왜 존재하는지 근본적인 존재 이유에서부터 우리의 생각이 시작된다면 동물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단지 인간을 위한 구경거리나 전시 수단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동물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지를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인간도 동물도, 우리 모두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

2019-11-24 최지혜

[월요논단]86세대에 대한 단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줄잇는 죽음

지금 바라는건 '민주 vs 반민주' 아닌정치 민주화에 '경제 민주화' 탑재민생정책에서 우위를 증명하는 것'극악 현실' 바꾸려는 사명감 있다면이전 정치인들과 다름을 보여줘야얼마 전부터 일명 86세대가 비판의 표적으로 떠올랐다. 나는 그네들이 386세대니, 486세대니 요란하게 스스로를 치장해 나갈 즈음부터 냉소를 보내고 있었다. 생물학적 연령으로 따지건대, 60년대 태어난 이들이 80년대에 대학 다녔던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 앞에 붙이는 30대, 40대라는 숫자도 그저 젊다는 사실의 강조일 뿐, 생물학적 연령의 조합에 불과한 의미 없는 명명일 따름이다.물론 명명이 작위적이라는 이유로 인해 냉소해 왔던 것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1980년대에 우리 사회는 민주화 측면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 대학생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겠으나, 노동계·종교계의 활동도 적극적이었으며, 시민들의 호응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데도 30대가 된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굳이 자신들을 386세대라 규정했던 까닭은 민주화 성과를 배타적으로 독점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네들은 어떠한 시대정신도 세대 규정 속에 담아내지 못했다. 예컨대 긴급조치와 맞섰던 정신을 담아낸 긴조세대라는 명명과 비교해보라. 86세대란 명명의 경박성은 이로써 명확해진다.70년대에 태어난 나는 90년대 상반기에 대학을 다녔다. 그때 술자리에서 많이 불렸던 노래 가운데 하나가 김호철 선생의 '잘린 손가락'이다. "잘린 손가락 바라보면서 소주 한 잔 마시는 밤, 덜컥덜컥 기계소리 귓가에 남아 하늘 바라보았네./ 잘린 손가락 묻고 오는 밤, 시린 눈물 흘리던 밤, 피 묻은 작업복에 지나간 내 청춘 이리도 서럽구나." 작업하다가 손가락이 잘렸는데 그저 소주잔으로 아픔을 달래야 하는 형편이라니. 노래를 부를 때마다 내심 다짐하였다. 이러한 현실만큼은 바뀌어야 한다, 바꿔야 한다.하지만 삼십여 년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노동현장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11일 충남 태안의 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씨가 컨베이어 롤러에 빨려 들어가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올해 2월 20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는 이모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다. 당진제철소의 경우 2007년부터 2019년 2월까지 사고로 숨진 노동자가 30여 명에 이른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2017년 11월 9일에는 음료 공장으로 현장실습 나간 고등학생 이민호군이 기계에 끼여 숨진 일도 있었다. 충남 공주의 34살 비정규직 집배원 이은장씨가 과로로 돌연사하는 등 올해에만 집배원 노동자 아홉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비정규직의 죽음을 일일이 기록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지경이다.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지난 13일 전태일 동상 앞에서 다음과 같이 현실을 지적하였다. "전태일 열사가 노동하던 때보다 지금 현장에서 더 많은 사람이 죽어간다. 구조적으로 비정규직을 만들어놓고 부품 취급하며 갈아 끼운다." 그리고는 비판을 이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2년까지 산재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현장에선 특별히 변한 것이 없다. 책임자 처벌도, 김용균 특별조사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22개)도 이뤄지지 않았다. 벌써 이러면 앞으로 어떻게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이 행렬을 이루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반민주 세력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희망이다. 나경원이 조국보다 기득권을 훨씬 더 많이 누렸다고 아무리 강변해 보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싹틀 리 만무하다. 지금 86세대에게 시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 입각한 전면적인 진영 대결이 아니라, 정치 민주화에 경제 민주화를 탑재함으로써 민생 정책에서의 우위를 증명하는 작업이다. 극악한 현실을 변혁하기 위한 사명감이 권력욕으로 드러났을 따름이라는 알리바이가 확보될 때, 86세대 정치인들 또한 이전 정치인들과 변별되는 존재 의미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9-11-17 홍기돈

[월요논단]실패와 다른 시작

이제 검찰 개혁마저 흔적으로만 남아사회 상층부 이들의 막강한 힘에변죽 울리다 정치권력 논의로 사라져실패는 '더 큰 상처·과제'로 돌아와 불공정 이기려면 시민정신 회복해야사법 개혁은 이미 철 지난 노래가 되었다. 법원 개혁은 진작 끝났지만 이제는 검찰 개혁마저 그저 흔적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동안의 법조개혁 파동을 거치면서 뼈저리게 알게 된 것은 우리 사회가 너무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사실이다. 사회 상층부에 자리한 이들이 지닌 막강한 권력과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울타리가 이렇게도 강고하다니. 그에 비하면 조국 가족이 누렸다고 말하는 특권 따위는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이 사회는 법의 이름을 빙자한 기득권 사회며, 자본의 횡포를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지켜가는 사회란 사실을 잊고 있었다. 법이 지켜야 할 비례성의 원칙 따위는 고사하고, 이를 넘어 우리 사회의 공정성이란 결국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가슴 아프게 느끼게 된다. 공고한 대학 서열과 그 이후 얻게 될 사회적 권리와 이익에 비춰보면 단순히 대학 입시과정에서 공정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가. 여기에 기회의 평등이란 없다. 끝없이 확대되는 자본 불평등과 세습되는 자본주의 체제를 둔 채 결과의 정의를 말하는 것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재벌에 대한 판결과 노동자에 대한 손배소 기소에, 임대료와 최저임금 논쟁 그 어디에 과정의 공정함이 자리하는가. 전관예우는 법조계뿐 아니라, 고위 관료들과 기업 임원을 비롯한 이 사회의 기득권층에는 변하지 않는 기본 사양이 아닌가. 공정을 말하는 그 입이 너무도 우습다. 검찰총장에게 개혁을 요구하는 대통령의 그 말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착시일까.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하면 가짜 뉴스가 된다. 자본이 주는 한 줌의 풍요에 취해 그들만의 결탁과 독점을 보지 못한 탓이다.사법개혁은 변죽만 울리다가 곧장 그들만의 정치권력 논의로 사라진다. 사법개혁은 결국 울타리 안의 권력게임이 되었다. 정치권은 시민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그들의 이익을 위한 개혁을 말하다가 이제는 총선으로 관심이 쏠렸다. 무엇을 위한 정치권력인가. 검찰 개혁을 요구하면서 광장에 모인 시민은 민주당 유권자가 아니다. 착각하지 마시라. 우리는 검찰 개혁과 그를 위한 지지를 외쳤지, 정권 지지를 말하지 않았다. 당신들이 집권한 이후 대통령만 바뀌었다는 자조가 일부의 것인 줄 아는가. 있을 수 없는 광화문에서의 저 소리를 다만 수구꼴통의 외침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잘못이다. 퇴행적 행태 뒤에 숨어있는 일말의 절박함을 듣지 못하면 실패한다. 사라졌어야 할 저 소리는 왜 여전한가? 그들의 기득권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담대한 개혁이 정치적 결실을 맺을 것이다.실패한 개혁은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그 일은 더 큰 상처로 돌아오며, 실패는 새로운 반동을 불러온다. 마무리 짓지 못하면 더 큰 과제로 남는다. 이 과제는 오직 민주시민 만이 해결할 수 있다.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민주시민으로 자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민주사회에서 권력은 시민에서 나오고 시민이 동의하지 않은 권력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자. 기억하지 않으면 비극으로 되풀이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을 넘어 시민이 되는 것은 우리가 도시민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민정신을 지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자각하고, 그 공동체를 위해 참여하는 시민, 이를 위해 계몽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행동으로 지켜나가는 이들이 시민이다.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을 조화시키면서 권리와 자유를 지켜내는 사람이 시민이다. 이를 위한 자각과 실천은 시민이라면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이다. 이것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심각하게 불공평한 이 사회의 희생자가 된다. 그 사이 우리는 미필적 고의의 가해자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한 배움과 자각은 물론, 그에 필요한 희생과 절제는 시민이 갖춰야 할 덕목이면서 또한 의무이기도 하다. 의무를 다하지 않는 곳에 권리는 있을 수 없으며, 희생 없이는 어떠한 고귀한 가치도 얻을 수 없다."개 돼지 민중"이 되지 않으려면 맞서 일어나야 한다. 맞서기 위해서는 자각해야 하며 투신해야 하며 그에 걸맞게 희생해야만 한다. 법을 가장한 기울어진 운동장, 제도를 빙자한 불평등, 체제 안의 불공정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시민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개혁은 이제 시작이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9-11-10 신승환

[월요논단]중국의 BATi와 토론토 그리고 인천의 AI

中, 2030년 모든 AI분야 최고 꿈꿔관련 특허 출원·논문수 '세계 1위''인천형 AI시대' 만들기 위해선인력 양성·연구소 파격적 지원슈퍼클러스터 구축에 힘 모아야'인공지능(AI) 정부가 되겠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인공지능 콘퍼런스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 역시 AI의 출발점인 '데이터 3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데이터 3법으로 불리는 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정책 전환에 필수적인 법률이기 때문이다. 내년 예산도 4대 혁신성장 분야에 올해보다 50% 증액된 15조9천억원, AI와 데이터 등에 6조7천억원을 투자한다. 그렇다면 인천은 AI사업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을까. 스마트 산단으로 선정된 남동산단에는 7천여개의 기업 중 80%가 소재·부품·장비 분야 기업이다. 2020년부터 4년간 총 5천76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융·복합 신산업 스마트산업단지로 조성한다. 2022년까지 스마트공장 1천개와 AI, IoT, 빅데이터 등의 시스템 구축에 495억원을 투입한다. 하지만 AI시대로 성큼 나아가야 할 시점에 검찰은 AI를 적용한 '타다'를 불법으로 기소했다. 녹슨 잣대로 미래를 막아서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 일본의 수출금지, 미국의 관세 장벽을 보면서도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타다'를 불법으로 판단하는 시각에는 AI시대를 어떻게 선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 '타다'와 택시업계의 갈등은 법제도와 정책의 문제로 풀어야 할 사항이다. 검찰이나 법원이 판단할 사항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직업과 기업들이 기술변화에 의해 사라졌다. AI와 로봇 시대는 더 가혹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AI와 빅 데이터 그리고 로봇시대를 주도하기 위해 선진국들은 사활을 걸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가공할 미래를 예감하기 때문이다. IMD가 지난 9월 발표한 한국의 디지털 경쟁력은 세계 10위이다. 지식, 기술, 미래준비, 로봇 등 종합평가에서 작년보다 4단계나 상승했다. 세계 1위는 미국이고, 싱가포르가 2위이다. 하지만 각국의 구체적인 AI 전략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중국은 2030년에 모든 AI 분야에서 최고를 꿈꾼다. AI를 둘러싸고 기존 업계와 이해관계가 갈등과 충돌로 이어지는 우리 현실과 다르다. 바이두는 자율운행, 알리바바는 스마트시티, 텐센트는 의료, 아이플라이텍은 음성인식에서 중국 정부가 선도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BATi(Baidu, Alibaba, Tencent, iFLYTEK)로 불리는 이들은 미국의 GAFA(Google, Apple, Facebook, Amazon)와 13개 분야에서 전쟁 중이다. 중국은 작년 10월 기준으로 AI 관련 특허출원과 논문수가 세계 1위이다. 미국보다 많은 7만6천876건이다. AI 관련 논문 53%가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발표되었다. 바이두는 3년 내 AI인재 10만명의 육성계획을 발표하였다. 최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한국의 AI인재의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중국과 인재교류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과거의 중국이 아니라는 것을 AI 전략에서 보여주고 있다. 정부도 인천시도 AI 시대의 선두가 되기 위해서는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인천형 AI 시대를 열기 위해 캐나다의 AI 슈퍼 클러스터인 토론토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토론토대·힌튼·10개 핵심연구기관·210개 스타트업기업·구글·삼성·우버로 상징된다. 그곳에는 딥 러닝의 창시자인 토론토대 힌튼(J.Hinton) 교수가 있다. 캐나다 정부는 AI인력 양성과 연구소 지원에 파격적이다. 해외 고급 인력의 취업비자는 2주 내 나온다. 13개의 투자회사가 기술상용화를 지원하고, 산학연이 상호협동하고 있다. 중국의 BATi와 토론토는 인천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AI 시대를 선도하지 못하면 교육도 일자리도 경제도 암울하게 된다. 일본은 올해 인간중심의 AI 사회원칙을 발표하였다. Society 5.0의 AI-Ready를 내세워 산업구조와 사회시스템에 대한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에 예속되는 가혹한 미래를 막기 위해서도 AI 시대를 선도하는 강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시와 기업 그리고 대학 등이 함께 AI 슈퍼클러스터 구축에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11-03 김민배

[월요논단]알릴레오를 어떻게 봐야 하나?

1인미디어 유튜브든 기존 언론이든영향력 걸맞은 책임요구 받는것 당연1967년 함석헌의 '언론 게릴라전'전통적 취재문법 벗어나지 못하는 2019 언론 공정성·윤리 재검토 필요오래전 일이다. 1967년 당시 박정희 정권에 통제되지 않았던 동아일보마저 '신동아 사건'으로 흔들리면서 신문기업이 정권의 영향력에 편입됐고 한때 일간지를 능가하는 판매부수를 기록하기도 했던 종합잡지 '사상계'도 철저한 탄압으로 위기에 직면했었다. 종교언론인 함석헌은 국가권력의 대항언론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되고 미디어가 시장의 논리에 지배되기 시작하자, 이제 대규모 미디어는 비판언론의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점을 파악하고 소규모 언론을 중심으로하는 '언론의 게릴라전'을 제안했다.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공영방송과 신문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자 기존 언론 대신에 새로운 대안언론들이 정치·경제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성급한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에 뉴스타파 등 대안언론이 등장했다. 당시 대안언론의 주력은 지상파방송이나 신문에서 일했던 기자나 피디였다. 그들은 공영방송과 신문에서 훈련된 철학과 문법으로 콘텐츠를 제작했다. 2012년, 2017년 대선에서는 정부가 공영방송을 통제하는 상황에 있었다. 팟캐스트 등 대안언론이 기존 언론과 결이 다른 콘텐츠로 상당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최근 구독자가 100만 명 넘는 유시민 이사장의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가 관심과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알릴레오가 기존 언론의 역할을 대신하여 언론과 검찰이라는 우리 사회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리란 기대가 크다. 1인 미디어가 기존언론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도 있다. 알릴레오는 기존 언론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팩트 체크 기능뿐 아니라 여론조사보도나 한국 언론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짚어보고 있다. 특히 조국 전 법무부장관 관련 의혹보도를 팩트 체크하는 과정에서 영향력이 강화됐다. 알릴레오 방송이 계기가 되어 전통적인 미디어가 인터뷰 대상의 진술 중 일부 내용을 선별적으로 강조해서 진실을 오해하게 하고 검찰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취재 관행이 집중적인 비판을 받게 됐다.알릴레오는 10월 8일 방송에서 조국 전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의 자산관리인 인터뷰를 KBS 법조팀이 보도하지 않았고 인터뷰 내용을 검찰에 알려줬다고 문제제기했다. KBS 법조팀은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고 팩트 확인을 위해 검찰에 일부 내용을 문의한 적은 있다고 반론했다. 알릴레오는 인터뷰 관련 기사가 원래 취지와 다른 것이고 검찰에 팩트를 확인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재반론을 펼쳤다. 10월 15일 'KBS 범조팀 사건의 재구성'이란 라이브 방송에서는 내부 온라인 게시판에 올려진 KBS 사회부장의 입장문을 중심으로 KBS 취재윤리를 지적했다. 또 이 과정에서 참여 패널의 성희롱 발언이 문제가 됐다. 10월 18일 '알릴레오-언론개혁 임파서블'편에서 자산관리인이 KBS 인터뷰 이후 JTBC와 접촉했지만 실패했다는 발언을 했다. JTBC는 21일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냈고 알릴레오 제작진은 유 이사장 발언에 착오가 있었다고 밝혔다.알릴레오 라이브방송 중 성희롱 논란과 일부 주장의 오류는 기존 언론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다. 결국 우리 언론과 조국 전 장관 관련 취재윤리에 대한 문제제기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유튜브 라이브방송의 한계가 드러났다. 기존 언론에 요구되는 수준의 팩트 체크 기능을 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1인 미디어든 대안언론이든 영향력에 걸맞은 윤리와 책임을 요구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정권의 언론통제와 미디어시장의 변화를 반영하여 새로운 대안언론이 필요했던 1967년 상황과 같이. 출입처 등 전통적인 취재문법과 취재윤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존언론이 제 기능하기 어려운 미디어환경을 반영해서 몸이 가볍고 적극적인 공정성을 추구하는 1인 미디어, 유튜브 언론시대가 열릴 것인가? 아니면 기존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까 1인 미디어가 주목받는 것은 아닐까? 어떤 경우라도 언론보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일부 진영의 정치 지지자들의 반응이라고 정리하기엔 기존 언론보도의 문제는 심각하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19-10-27 이용성

[월요논단]돼지 이야기

돼지열병 감염원·경로 '불명확'가축전염병 '방역·살처분'만 반복 2010년 구제역 이야기 담긴 그림책'공장식 축산' 근본적 문제 지적해'동물복지 농장' 전환 확대 노력을열흘 동안의 라오스 학교도서관만들기 프로젝트를 끝내고 인천공항에 도착해 강화도까지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그런데 행선지를 말하고 나니 왠지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다. 택시기사님께서 "강화도는 좀 꺼려지니 택시비를 조금 더 달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기사님 말은 그사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고 초지대교 입구에 소독시설이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를 지나면 자동차에 소독약이 뿌려지면서 차가 지저분해져 지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막상 강화도에 들어와 보니 초지대교에 설치된 방역시설 외에는 그 어떤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평범한 일상들로만 보였다.아프리카돼지열병은 1910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발병하여 유럽을 거쳐 마침내 우리나라까지 온 바이러스로 돼지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우리나라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된 것은 불과 한 달 전인 9월 17일께로 경기도 파주, 연천에 이어 김포와 강화도까지 번졌다. 이 전염병균은 백신도 치료제도 없을 뿐 아니라 돼지와 돼지류에 급속하게 번지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치사율이 거의 100%라고 한다. 그래서 정부는 가능한 남쪽으로 번지는 것을 막고자 감염지역의 모든 돼지들을 '살처분' 했다. 강화도도 마찬가지로 강화도에 살고 있는 모든 돼지는 살처분됐고 심지어 애완으로 키우는 돼지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 돼지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의 감염 경로를 야생 멧돼지로 보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감염원과 감염경로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야생멧돼지 실태를 관리하는 환경부도 가축전염병관리를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부도 방역을 실시하는 시·도와 시·군·구 등 지자체도 명확한 원인분석도 없이 일단은 바이러스성 아프리카돼지열병을 퇴치하고자 방역과 살처분으로 전파경로를 차단했다. 문제 발생 후, 우선적으로 전파경로를 차단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 일인데 문제는 그다음 단계가 없다는 것이다. 살처분으로 전파경로만 차단하고 나면 모든 문제가 종료되는 것일까?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종료된 후 또 다른 가축 전염병이 생긴다면 발등에 떨어진 불 끄듯 방역과 살처분을 반복할 것인지? 과연 그것이 최선의 근본적인 해결 방법인지?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가축 전염병의 근본적인 원인과 사육 환경, 나아가 동물복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무차별 살처분된 돼지들을 생각하며 그림책 '돼지 이야기'(유리 지음/이야기꽃 출판)를 펼쳐본다. 이 그림책은 2010년 겨울에 발병한 구제역이라는 질병으로 돼지들이 대량 살처분 되었던 이야기와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돼지는 원래 흙 밟기를 좋아하는데, 인간의 편의에 따라 공장식 축산으로 평생 콘크리트 위 쇠창살에 갇혀서 살게 된다. 몸도 움직일 수 없는 좁은 우리에 갇혀 살면서 많은 질병에 노출되고, 바이러스에도 쉽게 전염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염병이 한번 돌게 되면 대량으로 살처분 되는데 그날이 돼지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이 된다. '그 뒤로 몇 년이 지났지만 돼지들의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로 끝을 맺고 있다. 몇 년 전에도 '살충제 계란 사태'로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들이 대두되었다. 그 후에도 여전히 많은 동물들이 동물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되는 것은 최근 마트에 가면 '동물복지인증마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동물복지 인증제도란 농장 동물이 본래의 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육환경을 제공하고 스트레스와 불필요한 고통을 최소화하는 등 농장동물의 복지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물복지법의 기준에 따라 동물을 사육하는 농장에 대해서 국가가 인증하고, 인증 농장에서 생산되는 축산물에 '동물복지인증마크'를 표시하고 있다. 아직은 동물복지 인증 농장의 수가 적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동물과 인간이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정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대규모 공장식 축산 농가가 동물복지 축산 농장으로 바뀔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축산 농가는 궁극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위해 동물과 사람에게 건강한 사육환경을 선택해야 하고 소비자는 일반 상품에 비해 다소 비싼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동물의 복지가 보장된 제품을 선택하는 안전하고 현명한 소비가 필요하겠다. 인간은 생태계의 일부이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인 관계 속에 있음을 기억하고 사람과 동물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겠다./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9-10-20 최지혜

[월요논단]A급 전범 사사카와 료이치와 연세대의 아시아연구기금 그리고 류석춘

ICSA, 위안부문제 부정 日극우단체설령 포섭된 학자들 주장일지라도기금·수혜관계 투명하게 밝혀져야유력인사 연루됐어도 멈춰선 안돼보편적 인권가치 지켜져야하기 때문"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이 아니다.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었다." 류석춘 연세대 교수가 망언을 쏟아내었다고 한다.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러려니 했다. 그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아시아연구기금 사무총장을 역임한 인물이 아니었던가. 류 교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이를 마녀사냥으로 규정한 '류석춘 교수의 정치적 파면에 반대하는 연세대학교 재학생 및 졸업생 일동' 명의의 대자보가 붙었을 때도 그럴 만하다고 여겼다. 1995년 아시아연구기금을 유치하여 지금까지 뚝심 있게 운영하고 있는 학교가 연세대이기 때문이다. 유치 당시 설치기금은 100억원 가량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아시아연구기금을 출연한 단체는 일본재단(Nippon Foundation, 사사카와재단)이고, 일본재단의 설립자는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다. 사사카와 료이치는 '가미카제 특공대'를 창안하고 국수의용항공대를 창설한 인물이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A급 전범으로 3년 간 수감되었던 그는 이후 재력을 축적하여 1962년 사사카와재단을 설립하였다. 이후 사사카와 료이치는 재단을 통하여 세계 유수 대학에 기금을 제공하면서 일제의 전쟁 범죄를 미화시키는 한편, 일본 역사의 왜곡을 조직적으로 지원하였다.일본재단의 기본 성향은 1997년 결성된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과의 관계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새역모는 일제의 근대 침략사에 대해 반성하는 자국 역사학계의 경향을 자학사관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극복하겠노라고 조직된 단체다. 물론 그 극복이란 일본 극우파 논리의 마련 및 확산이다. 당시 사사카와재단은 새역모의 자금줄 역할을 담당하였고, 현재 일본재단의 이사장 사사카와 료헤이(笹川陽平, 사사카와 료이치의 3남) 및 평의원들은 여러 방면에서 극우적 발언을 공공연하게 쏟아내고 있다. 일본재단 평의원이 새역모 정신을 이어가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침략전쟁을 긍정하는 새역모 관련 역사교과서는 2001년 채택률이 0.039%에 불과했으나 2013년을 지나면서 70%를 넘어섰다고 한다.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에 한국의 새역모로 평가되는 뉴라이트가 출현하였다. 새역모와 뉴라이트는 그만큼 역사 해석의 관점이 유사한데, 류석춘도 뉴라이트의 일원이다. 뉴라이트는 새역모가 그러했듯이, 근현대사 해석을 둘러싸고 전복을 시도한다. 여러 학자의 글을 모은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 2006), '반일 종족주의'(미래사, 2019) 그리고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 2013)는 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새역모의 뒤를 이어 한국에서 뉴라이트가 출현한 것은 우연일까. 그에 앞서 진출하여 학계에 살포되었을 사사카와재단의 연구기금과는 과연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일까. 아시아연구기금을 누가 받아갔는지 내역은 알 수 없으나, 나는 이러한 합리적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물론 아시아연구기금을 받고 일본 극우의 입장에 입각한 글을 작성한 것으로 확인되더라도 할 말이 있을 터이다. 연구비는 연구비일 따름이며, 연구는 그와는 별개로 학문의 자유에 따라 진행한 것이라는 주장. 즉 학문의 자유를 방패삼으리라는 것이다.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논리 구조가 그러하지 않던가. 그는 일본 극우단체 ICSA로부터 제안과 지원을 받아 UN 인권이사회에 나서서 "일본의 강제징용은 없었다"고 발표하였다. 배경이 드러나자 그는 "일제 강점기 한국인 노무자들이 합법적으로 평등하게 일했다는 건 학문적 판단이고 소신"이라고 밝혔다. ICSA는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극우단체다.설령 아시아연구기금에 포섭된 학자들이 그리 주장할 지라도 우선 연구기금과 그 수혜를 받은 학자들의 관계는 투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진정으로 심각하게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면, 류석춘 교수 파면을 요구하는 연세대 재학생·졸업생들은 아시아연구기금의 운영 내용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한편, 아시아연구기금의 해체 주장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청와대에서 중용하는 유력 인사가 아시아연구기금에 연루되어 있더라도 그러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정치 지형을 떠나, 민족 경계를 넘어 보편적인 인권 가치는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존중받고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9-10-13 홍기돈

[월요논단]또 다른 기회

최우선 과제 '검찰개혁' 자명한데왜 그 사실을 두고 대립하는 걸까숙제 안하고 푸는 방법 싸우는 꼴정치인이 못하니 또 '촛불든 시민'이 찬스 놓치면 정치 퇴행 불가피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검찰개혁에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실질적으로는 법에 의해 다스려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깝게는 87체제 이후 법을 독점해왔던 특정 집단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진작에 의제화되었어야 했다. 너무 늦은 숙제를 지금 마주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광화문에서든 서초동에서든 일관되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그 자명한 과제를 두고 대립하는 것일까. 문제는 도덕과 법, 정치란 범주를 혼동하고, 숙제에 집중해야 할 때 숙제를 푸는 방법으로 다투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개혁임에도 숙제하기 싫은 학생은 연필 탓을 한다. 그러고 보니 연필이 못나기도 했고, 흠집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숙제를 미룰 수는 없지 않은가. 다른 연필 운운하는 순간 숙제할 시간은 지나간다. 범주오류에 빠지지 말자. 개혁해야 할 때는 개혁을 말하고, 품성을 말할 때는 품성을 논의하자. 이번 사태로 계급문제가 불거졌고, 세대 간 불평등이 문제라고도 말한다. 이 논의에 끼지도 못하는 이들이 문제라고 외치기도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무리 옳은 말도 잘못된 자리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외치면 거짓이 된다. 해방의 외침 100년과 정부수립 70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체제 전체를 되돌아보고 새롭게 방향을 정립하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장기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 사회가 성립된 지 100여 년을 향해 가면 당연히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육과 사회 시스템, 경제와 법체제, 언론과 문화 환경을 되돌아보고 나아가야 할 미래를 향한 전망을 되새기는 일은 너무도 중요한 과제다. 가장 중요한 이런 전망을 위해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 그 토대가 이른바 적폐 청산이며, 사법개혁을 비롯한 최소한의 개혁이지 않은가. 지난 정권에서 비롯된 수많은 문제를 얼마나 해결했는가. 100년 이후 우리 사회를 위한 전망은 무엇인가. 그 논의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3년 전 촛불을 들었을 때는 다시는 이렇게 모이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왜 또다시 시민을 광장으로 불러내는가. 당신들이 개혁해야 할 때 개혁하지 못한 탓을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다. 다시금 기회를 주고 있지 않은가. 담대하게 개혁해야 한다고, 연필 탓은 잠시 접어두고 당장 해야 할 숙제라도 마쳐라! 우리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이 체제는 시민의 정치적 의사를 재현하는 데 있다. 그런데 직업정치인들은 얼마나 시민의 뜻을 재현했는가. 약속으로서의 공약이 빈껍데기 공약이 되는 순간 정치는 배반으로 흘러간다. 수없이 목격하는 배반에 진절머리가 난 시민이 또다시 모였다. 광장의 시민은 한결같이 직업으로서의 정치적 타산을 따지지 말고 숙제를 끝내라고 외친다.국회를 점령한 반개혁세력이나 언론 때문이라고 변명하거나, 관료들이 버티고 있어 그렇다고 탓을 돌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과 별개로 개혁과제를 맡은 당신들은 얼마나 이 숙제를 진지하게 수행했나. 아무런 개혁도 이뤄진 것이 없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교육개혁이 원점으로 돌아간 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어 잘못된 대학체제부터 바꾸자고 하더니, 대학문제는 지난 정권보다 더 심각해졌다. 잘못된 경제구조와 재벌개혁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소상공인,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신음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사법농단도, 종편을 비롯한 언론 개혁이나 가짜뉴스와 혐오를 쏟아내는 언론 환경도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그동안 무엇을 하셨기에, 또다시 이렇게 모여 외쳐야 하는가. 좌면우고하지 말고 담대하게 개혁하시라. 이 기회를 놓치면 정권은 반개혁 세력에게 돌아가고, 정치는 심각하게 퇴행할 것이다. 전쟁을 앞두고 장수의 옷가짐 따위로 힘을 빼지 마시라. 검찰개혁이 울타리 안의 권력 싸움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촛불 든 손을 빌려 당신들의 정략적 이익을 채우지 마시라. 시민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다시금 냉소의 시대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담대하게 개혁하시라. 어쩌면 마지막 기회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담대하지 않으면 한없이 몰락한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9-10-06 신승환

[월요논단]글로벌 도시의 품격과 영빈관

외빈에 대한 예우·업무측면 수월관사없는 광역단체장 인천등 8곳'메카'로서 새로운 개념 고민 필요각국 영사관·문화원 설치 적극추진세계를 향한 '교두보 역할' 삼아야'글로벌, 해양, 역사, 평화, 항만, 주택, 균형, 행복, 건강, 시민'. '2040 인천도시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참여한 시민계획단이 선정한 인천의 미래 키워드이다. 현재 인천시는 시민이 원하는 미래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새로운 방식으로 도시계획의 밑그림을 만들고 있다. 물론 전문가들도 참여하지만 과거의 톱다운 방식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6개의 생활권역별로 미래상과 핵심전략들이 제안되고 있다. 시민들이 상호소통하면서 지혜를 모아가는 집단지성의 모델이다. 제안 가운데 일부는 도시기본계획의 성격상 반영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하지만 시민들이 원하고, 고민했던 것들을 미래의 비전으로 설정하는 과정은 매우 뜻깊다. 도시는 시민들의 참여 정도와 행동하는 수준에 따라 발전하고 변화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시민들이 제시한 글로벌 도시란 무엇인가. 인천시는 2030년을 기준으로 세계 20위 수준의 도시브랜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표로서 도시주택, 교통물류, 안전환경, 복지의료, 산업경제, 교육, 문화관광 등 분야가 세계적 수준에 도달할 때 가능한 일이다. 인천에 대한 이미지와 시민들에 대한 평판도 역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그 시작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곳에서 찾아야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IMF 당시 최기선 시장의 결단으로 인천시장 관사는 현재의 역사자료관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일제 강점기의 부윤관사와 과거 시장 관사의 활용계획이 다시 초점이 되었다. 원도심의 재생과 문화관광의 거점이 되는 지역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재평가하자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시장관사나 영빈관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그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선 역시 곱지 않다.물론 자치단체장을 역임한 분들은 투자유치나 외빈을 맞이할 독립된 공적 공간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호텔이나 식당보다 영빈관이나 공관이 상대방에 대한 예우와 업무 측면에서 볼 때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직의 자치단체장 중 누구도 선뜻 나서지를 못한다. 관사를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 때문이다. 현재 17개 광역시·도 단체장 중 독립된 관사는 서울과 부산 등 7곳, 아파트 관사는 2곳, 관사가 없는 곳은 인천 등 8곳이다. 그러나 2040년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어야 하는가. 베이징에서 지방정부의 고위공직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약속장소가 그 공직자가 속한 지방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호텔이었다. 당연히 요리와 차는 자기 지역의 특산품임을 강조했다. 의전과 보안 그리고 지역 홍보를 위해서 베이징에서 일종의 영빈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의 특수사정도 있겠지만 뜻밖의 환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시장이나 기관장이 독점하던 부정적인 관사개념을 넘어 인천을 알리는 메카로서의 새로운 개념의 영빈관 모델을 고민할 때가 되었다. 품격에 어울리는 의전과 식사 그리고 숙소는 대통령과 같은 정상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대화는 물론 머무는 곳이 어디인가에 따라 공식 업무와 비즈니스의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인천에는 서울에 없는 바다와 섬들이 있다. 시립 미술관과 박물관도 새롭게 추진되고 있다.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상대국가에 대한 차원이 다른 예우와 환영은 영빈관에서 시작된다. 워싱턴의 블레어 하우스(Blair House), 베이징의 댜오위타이(釣魚臺), 도쿄의 아카사카 이궁(迎賓館赤坂離宮)의 명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국제적인 도시가 되려면 상대방의 음식과 생활관습, 문화와 역사, 종교와 이데올로기 등에 대해 배려하는 품격이 수반되어야 한다. 과거 인천에는 각국의 영사관들이 있었고, 국제무대의 중심지였다. 현재 부산에 5개, 제주에 2개, 광주에 1개의 영사관이 있다. 각국의 영사관이나 문화원의 인천설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때다. 인천이 세계적인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그 특성을 알리는 발신지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113개국의 상주대사와 23개의 국제기구 등 수많은 국내외 관련자들이 인천공항을 오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출입국 전후에 어떻게 이들과 교류하고 연계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지 않고 있다. 관사가 아니라 인천다운 영빈관을 만들어, 세계를 향한 교두보로 삼을 때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09-29 김민배

[월요논단]조국 장관 관련 단독보도, 문제 많다

한달간 14개 신문·방송 286건 달해정보출처, 검찰·업체·병원 등 다양특종경쟁 매몰돼 '의혹'만 던져줘직접취재·팩트·논리적 제시 필요진실추적 의무 소홀 뉴스 자제해야'조국 정국', '조국 블랙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모든 이슈를 조국 장관 후보자의 검증보도, 가족보도가 빨아들였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수십만 건의 기사를 쏟아 냈다는 조국 관련 보도는 우리 언론에서도 보기 드문 사건이었다. 조국 장관과 가족들이 현미경 검증취재를 받아야 하는지는 차분히 따져 봐야 할 문제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일 임명됐지만 언론은 여전히 조 장관과 가족에 대한 전례 없는 보도를 계속 하고 있다. 검찰이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조국 장관과 가족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 일이 전례가 없었고 언론보도는 그것을 반영한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이미 조국 검증 보도는 넘치고 있었다. 검찰이 범죄 혐의가 있는 사안을 수사하고 언론이 장관급 공직자의 정책 전문성과 도덕성에 대한 검증을 하는 일은 당연하다. 그러나 검찰과 언론, 정당의 관계망 속에서 양산되는 조국 보도는 우리 언론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조국 장관에 관련된 '단독보도'가 특히 문제이다. 단독보도 열풍은 신문, 방송을 가리지 않는다. 공영방송도 단독보도 열풍에 한 몫하고 있다. 시민언론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미디어모니터 결과에 따르면 8월 1일부터 9월 9일까지 7개 종합 일간지의 조국 관련 단독 보도가 185건이나 됐다고 한다. 방송도 단독보도가 100건이 넘었다고 한다.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신문과 관련 종편들이 압도적이었지만 다른 매체들도 적지 않은 단독보도를 쏟아냈다고 한다. 모니터대상 14개 신문·방송에서 한 달간 286건이 넘는 단독 기사를 냈으니 하루에 10건씩 내놓은 셈이다. 단독보도의 정보출처는 신문은 자유한국당과 검찰, 방송은 검찰과 자유한국당이 많았다고 한다.21일 나온 조국 관련 단독보도 몇 가지를 살펴봤다. [단독]추석 전 입원 후 퇴원… 병실 홀로 쓰며 '쉬쉬', '[단독]"정경심 처음 봤다"던 병원장은 서울대 동기였다", [단독] "5촌조카, 정경심에 '2차 전지공장 가보자'", "단순 투자자 아냐", [단독]"투자처 모른다"던 정경심…"주가도 챙겼다" 등이었다. 정보 출처는 검찰, 업체 내부 관계자, 병원 관계자 등이었다. 언론 기사를 통해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사안에 대한 진실이지 의혹이 아니다. 한 달이 넘게 조국 장관과 관련된 의혹이나 부족한 팩트를 근거로 가능성만 던지는 기사를 만나야 했다. 물론 의혹이 꼬리를 물고 등장해서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독보도'의 이름으로 속보와 특종 경쟁에 매몰되어 진실이 무엇인지, 거짓은 무엇인지 사안을 깊이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계속 의혹만 던져주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게 하고 의혹으로 덮어버리기 위해 사실들을 서로 연관시키는 보도 방식이 조국 장관과 버닝썬 관련 의혹 단독보도에서 드러나고 있다. 또 사실을 선별해서 인과관계를 암시하는 방식의 단독보도도 눈에 띈다. 단독보도들이 '단독'의 가치와 권위를 갖추고 있을까? 독자와 시청자의 눈길을 끌어당기고 디지털 뉴스 시장에서 눈에 띄기 위해 갖춰지지도 않았는데 단독보도가 남발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뉴스 가치가 큰 단독보도도 있다. 지역언론의 단독보도는 흔히 묻히곤 한다. 그래서 2016년에 다음뉴스에 의미 있는 단독보도가 검색어 기사(실검기사)에 묻히는 것을 막기 위한 '단독기사 섹션'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단독보도엔 '직접 취재 좀 해라', '팩트가 없다',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댓글이 달리곤 한다. 이제 검찰이나 정당의 정보를 받아쓰기하고 진실추적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단독보도는 자제해야 할 것이다. 2013년 6월 16일 KBS '미디어인사이드'는 "사회 이면에 숨겨진 진상을 파헤쳐 사회의 변화를 이끈 기사야말로 단독 기사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언론사보다 조금 더 빨리 보도하거나, 사회적 파장조차 없는 허울뿐인 단독기사와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허울뿐인 단독보도는 인터넷에서 수익구조와 맞물려 있는 이용자 유인의 의미를 갖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단독보도의 남발은 포털이 지배하는 인터넷뉴스 시장과 소셜미디어의 전파 속도에 압도되어 진실 추적의 사명을 잊어가는 우리 언론의 모습일 것이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19-09-22 이용성

[월요논단]느리게 걸어가자

문명의 이기들 편하고 필요하지만얽매여 살아 정작 중요한것을 잃어인터넷 없이 살고 종이·연필 쓰며걸어서 마트가기·채소 키워먹기…소소한 일로 삶은 더 단단해질 듯도서관 사무실이 새로 지은 옆 건물로 옮겨가면서 인터넷 이전 신청을 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에나 가능하다고 하여, 인터넷 사용이 필요할 때면 이전 건물을 왔다갔다 하면서 업무를 봤다. 불편했지만 일주일 정도는 참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후 인터넷을 이전 설치하러 온 기사는 기존에 사용하던 인터넷 선로를 사용할 수 없고 대규모 공사가 필요하니 다른 담당자를 연결해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대규모 공사라는 말에 당분간은 인터넷을 편하게 사용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런데다 때마침 태풍 링링이 왔다. 강화도 전역은 정전되었고 빠르게 복구된 곳도 있지만 우리 마을은 6시간 정도 정전이 이어졌다. 정말 무인도에 고립된 느낌이었다. 막막한 상황에서 전화도 불통이 되었다. 전기, 인터넷, 전화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은 인터넷도 전화도 없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처음 맞닥뜨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도서관 프로젝트로 매년 방문하고 있는 라오스 오지에서도 이런 경험은 하지 못했었다. 어둠 속. 익숙하고 편리한 문명들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무심코 '커피라도 한잔 마셔야겠다.' 생각하고 일어섰으나 그것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에서 멍하니 앉아있으니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됐다. '이런 상황이 길어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나는 제일 먼저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이런 생각들을 이어가다 보면 더 답답해질 것 같지만 의외로 알 수 없는 해방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문명의 이기들이 우리에게 편리함을 안겨주고 있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거기에 얽매여 살아가며 정작 진짜 중요한 것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정전과 통신 두절 속에 잠시 머물면서 그림책 '숲으로 간 사람들/안지혜 글·김하나 그림/창비'을 떠올리게 됐다. 도시의 대형마트에서 비닐봉지 한가득 음식을 구매해 와서 전자레인지에 데워먹고 밤새 컴퓨터 게임을 즐겨 하던 이들이 인터넷도 전기도 수도도 없는 숲으로 가서 살게 된 이야기이다. 그들은 직접 물을 길어와 장작불을 지펴 밥을 짓고 텃밭에서 채소를 뜯어 반찬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 만든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 도시에서 편리하게 살던 그들이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건 이후, 산과 바다가 오염되고 사람과 동물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것을 보고는 당장 전기 사용을 중단하겠다는 결심으로 숲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전기랑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집에서 사는 게 자랑'이며 '겨울에는 물이 꽁꽁 얼어서 불편할 때가 많지만 온 세상이 하얗고 고요해서 무척 아름답다'고 말한다. 집안을 둘러보면 컴퓨터를 시작으로 핸드폰, 전기포트, 청소기, 세탁기 등 많은 전자 제품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 중 한 가지만 없어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흐름 속에서 아직도 육필 원고를 고집하는 작가들이 있고, 그림책 속 주인공처럼 숲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고, 일상생활 속에서 전기나 화학물질을 적게 쓰면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공유하는 모임들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 마을에도 생활 속 적정기술을 함께 나누는 카페가 생겼다. 우리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간단히 만들어 사용하고 에너지와 화학용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 같다. 이번 링링과 함께 온 정전과 통신 장애를 겪으면서 '일상생활에서 전기나 통신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간다면 어쩌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시작되었다. 일단은 컴퓨터 자판보다는 종이와 연필 사용을 많이 하고, 일주일에 하루는 인터넷 없이 지내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마트에 갈 때는 걸어가기, 텃밭에서 채소 키워먹기 등등 가볍게 시작해보기로 했다. 아주 소소한 일이지만 우리 손과 몸을 움직이며 느리게 걸어가는 생활 방식이 조금씩 우리 삶을 단단하게 채워 주리라 기대한다. 인간이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 때로는 침묵과 고독, 느림 속에서 서두르지 않고 흔들림 없이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야겠다./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9-09-15 최지혜

[월요논단]조국 논란을 바라보는 한 기회주의자의 한탄

몇주간 찬반 명확히 갈려 '격렬논쟁'딸의 대학입학과정 '옹호 VS 분노'모두 옳아 입시체제·정책 손질 필요각종의혹 견딜만한 사람 얼마나될까정치는 최악 선택 피할 수밖에 없다지난 몇 주간 어느 자리를 가든지 온통 조국 얘기였다. 어디서든 찬반이 명확히 갈려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런 와중에 나에게도 파편이 튀곤 하였는데, 파편이 날아든 방향은 언제나 두 갈래였다. 한 가지는 너의 입장은 무엇이냐는 물음이었는데,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나로서는 그 물음이 어느 편인지 밝히라는 요구로 느껴지곤 했다.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은근슬쩍 미끄러져 빠지는 방식을 취했다. 가짜뉴스가 워낙 날뛰고 있는 판이니 지금으로서는 지켜볼 도리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내 태도였다.기회주의로 내몰릴 위험이 있었으나, 기실 뜨거운 대결 구도 속에서 너무나 많은 말들이 검증되지 않은 채 정제되지 못한 방식으로 쏟아지지 않았던가. 예컨대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조국 딸의 한영외고 재학 당시 영어 과목 등급을 들어 논문 영역(英譯)이 가능한지 의혹을 제기했다. 이러한 의혹이 흠집 내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다행히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동양대 총장상을 둘러싼 사실관계는 공수가 바뀌었다. 최성해 동양대 총장의 발언은 오보이며, 동양대 측에서 정정보도를 요청하였다는 내용이 인터넷에 떠돌았으나, 오히려 이러한 정보가 가짜뉴스였다. 다행히 이 사실도 반나절 내에 드러날 수 있었다.또 다른 한 가지 물음은 자식 교육에 대한 것이었다. 결혼을 늦게 하여 큰 아이가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니, 다행스럽게도 여기에 대해서는 여유가 허용되었다. "나중에 문체부장관 후보가 될지 모르니 자식 관리 잘해라." 이러한 농담은 웃음으로 끝맺어졌으나, 어쩌면 농담 속에 생각해봐야 할 주제가 감춰져 있을 수도 있다. 대학교수는 기득권이며, 기득권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펼쳐놓을 비장의 카드를 몇 장 쥐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자식 관리란 그 카드를 사용하지 말라는 조언이라고 나는 받아들였다. 조국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딸의 대학 입학과정에서 위법사항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대학 입학은 법이 허용하는 틀 내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반면 대학생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그러한 편법(便法)은 오직 한정된 기득권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만큼, 불공정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시 기회주의자처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옹호하는 논리도 옳고 분노하는 감정도 옳다. 양자가 모두 옳은 까닭에 대학 입시체제는 대폭 손질되어야 한다. 대학 입시뿐만이 아니라, 대학을 둘러싼 정책 또한 대폭 수정되어야 하며, 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자체까지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와는 별개로, 그동안 조국이 주장했던 바가 그의 삶과 퍽 괴리되었다는 사실은 여실히 드러났다고 해야겠다.애매모호한 자리에 앉아 논란을 지켜보면서 발터 베냐민의 '종교로서의 자본주의'를 다시 읽었다. 베냐민은 자본주의를 '순수한 제의종교(祭儀宗敎·Kultreligion)'라고 파악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것이 자본을 둘러싼 제의와 관련을 맺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 제의는 꿈도 자비도 없이 영원히 지속된다. 내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죄를 씻지 않고 오히려 죄를 지우는 제의의 첫 케이스이다. (중략) 죄를 씻을 줄 모르는 엄청난 죄의식은 제의를 찾아 그 제의 속에서 그 죄를 씻기보다 오히려 죄를 보편화하려고 하며, 의식(意識)에 그 죄를 두들겨 박고 결국에는 무엇보다 신 자신을 이 죄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신 자신도 속죄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과거 사노맹 투사였던 조국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냉혹한 자본주의의 아귀에 잡아먹히고 만 것은 아닐까.그동안 언론은 융단 폭격하듯 조국에 관한 온갖 의혹을 쏟아 부었다. 한국과 같은 천민자본주의 국가에서 그와 같은 의혹을 견디어낼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기득권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조국 지지자들이 인터넷 실검으로 나경원 자녀 의혹, 나경원 사학재단 비리, 나경원 소환조사, 황교안 자녀 장관상 등을 띄운 까닭은 이를 드러내기 위함이었을 터이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정치는 최악의 선택을 피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조국의 법무부장관 임명 여부는 그러한 방향에서 판단해야만 하나. 어찌할 도리 없이, 그러한 선에서 나의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9-09-08 홍기돈

[월요논단]무엇을 위한 개혁인가

기소권 독점·수사권 장악한 검찰저급한 과장 쏟는 황색 저널리즘입시 함몰된 중등교육 개선 전무밖으론 개혁 흉내 안으론 특권욕온갖 위선사회 혁신 시대적 요구자신의 눈에 갇힌 말이 칼이 되어 허공을 떠돌고 있다. 수없이 많은 허망함이 사람을 찌르고 되돌리기 힘든 상처를 입힌다. 그 가운데 누군가는 시나브로 죽어간다.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 기소권을 독점하고 수사권을 장악한 검찰이 저질렀던 사회적 폭력은 법의 허울을 입고 떠돌았다. 절차적 정의를 장악한 법이 칼이 되어 현란하게 춤출 때 시민들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 현란함과 거짓된 법적 정의를 개혁하라고 외쳤다. 그래서 검찰개혁과 사법농단 처벌을 말했지만, 그 요구가 또 다른 칼춤이 되어 우리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 하이에나 같은 황색 저널리즘이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감춘 채 저급한 과장과 거짓된 혀를 마음껏 휘두르고 있다. 사회적 자산을 기반으로 학벌의 특권을 독점한 이들이 공정이란 외피로 더 많은 특권을 향해 양양거리고 있다. 탐욕과 상대적 박탈감이 공정의 옷을 입은 채 혐오와 독설로 난무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개혁이며,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 밖으로 일본과 미국을 통해 주어지는 압박이 새로운 동북아 체제를 추동한다. 어쩌면 전쟁 이후 처음으로 한국은 동북아에서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담대하고 깊이 있게 행동하지 않으면 다시금 굴종의 위치로 떨어질 것이다. 반대로 이 시간을 자율과 자존의 담대함으로 대처한다면 이 위기는 우리를 평화와 자주의 길로 이끌어갈 것이다. 지금의 '조국' 논쟁은 저급한 언론을 개혁할 절호의 기회다. 자신의 정파적 이익을 감춘 채 한 줌의 특권과 절차적 공정만을 되뇌는 무뇌아 언론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제대로 된 언론이란 표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봉하에서, 드루킹 의혹에서 칼춤을 추던 언론은 다시금 과거의 행태를 반복한다. 정파적 이익과 황색 저널리즘의 진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언론 개혁 없이 어떻게 시민 사회가 가능할까. 그들의 속성이 남김없이 드러난 지금, 이들의 행태를 정확히 보고 기억하면서 언론을 정론으로 이끌어갈 기회가 왔다. 적어도 이들을 저급한 황색 저널리즘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손에 달려있다. 외고, 특목고는 물론 입시교육에 함몰된 중등교육의 문제점은 수도 없이 지적했으며, 그 개선을 이 정부는 공약으로까지 내세우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이 문제를 개혁하려는 노력은 전무 했다. 현재의 대학 체제와 폐허가 된 대학을 바꾸지 않고서는 어떠한 입시제도도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 'SKY 캐슬'이 지배하는 학벌 사회는 이 면허증이 불변의 자산이며, 상층부를 향해가는 특급승차권임을 거듭 확인시켜준다. 그런데 어떻게 개인에게 이 체제를 벗어난 도덕을 요구할 수 있는가. 수백만 명의 청소년을 빈사상태로 몰아가는 입시교육을 개선하려는 어떤 노력을 했던가. 학벌의 특권을 누리는 이들은 누구도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죽은 교육에서 자신의 부족적 지위를 확보한다.체제와 구조가 모순적임에도 그 안에서 시민정신과 도덕을 요구하는 것은 위선이다. 제도의 모순을 개인의 도덕성으로 대체하려는 사회는 게으른 사회다. 그 사회는 온갖 모순이 극대화되어 결국 분열되고 해체될 것이다. 합계 출산율 0.98명, 청년 자살률과 노인 자살률 일위 따위의 지표, 극대화된 경제 불평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정책을 장악하고 있다. '헬조선'이란 자조를 이해할 어떠한 감수성도 지니지 못한 이들이 특권을 독점한다. 밖으로는 제도와 체제를 개혁한다는 흉내를 내지만 안으로는 한 줌의 특권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다. 위선 사회다.지금 우리는 안팎으로 한 줌의 정파적 이익에 함몰된 부족주의를 넘어서는 시민정신, 평화와 인간다움의 공동체를 향한 중요한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실용주의를 넘어 의미론적 사회를 향한 문화적 전환을 이룩해야 한다. 그를 위한 개혁이 이 시대의 당위적 요구가 아닌가. 촛불은 그 외침을 담고 있었다. 우리의 열망과 시대적 요청을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문화와 시민사회를 향해 나아갈 중요한 전환점이 다가왔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9-09-01 신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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