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월요논단]좀비의 활보·가짜뉴스의 범람과 우리 사회의 비극성

비극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인과관계·역사모순 형상화 탁월반면 국내 이념형 마타도어 횡행5·18관련 전두환·김진태 등 뻔뻔나경원 강성발언 개연성 확인안돼고대 그리스의 최고 비극 작품은 무엇일까. 관점에 따라 다를 터,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전범으로 꼽고 있다. 플롯·장소·시간의 통일이 잘 이루어졌다는 것이 근거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중에서도 특히 플롯에 주목하였다. 인물들의 행동이 상호 인과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있으므로 개연성과 필연성을 획득하였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았으니 발견이 나타났고, 애초 기대했던 바와 상반되는 결과가 펼쳐졌으니 급전 또한 끌어안았다는 점도 고평 되었다. 공포와 애련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발견과 급전인바, '오이디푸스 왕'은 이를 구현하였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이다.반면 헤겔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최고의 작품으로 내세운다. 역사 전환기에 나타나는 모순을 등장인물들 사이의 갈등으로 집약하여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혈연에 입각하여 안티고네는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주검을 매장하고자 한다. 이는 부족사회의 윤리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폴리네이케스는 매장 금지의 죄를 짓고 죽었다. 따라서 크레온 왕은 매장을 불허하는데, 이때 크레온은 국가법의 상징으로 자리하게 된다. 한편 사적 층위에서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과 약혼한 여성이 안티고네였던 것. 결국 크레온에 맞섰던 안티고네, 사랑 잃은 하이몬, 아들 하이몬을 상실한 에우리디케는 차례대로 죽음에 이른다. 그러니 헤겔은 충돌하는 역사 이행기의 두 이념이 등장인물의 전형으로 얼마나 성취되는가의 관점에서 비극을 이해하였던 셈이다.문득 그리스 비극을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 국내 정치 상황이 도무지 현실로서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1987년 6월항쟁이라든가 2016년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민주주의의 정착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뎠다고 여겼더랬다. 그런데도 어떻게 역사의 뒤안길로 진작 사라졌어야 할 이념형의 마타도어가 버젓이 횡행하고, 이를 방관 혹은 묵인하는 세력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보건대, 5·18 당시 발포 명령을 내렸느냐는 물음에 "이거 왜 이래!" 목소리 높인 전두환 씨는 한낱 좀비에 불과하다. 5·18 북한군 개입설의 후원자를 자임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국회의원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역시 좀비에 감염된 좀비일 따름이다. '햄릿'의 망령은 그 억울함만 해명되면 다시 출몰하는 일이 없을 터이나, 저들 좀비들은 대체 어찌 처리해야 하나. 우리 정치의 비극이 바로 이 지점에서 부각된다.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연이은 강성 발언들 역시 지극히 퇴행적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은 개입하지 않았다. 이는 사실의 문제이다. 그런데도 이를 다양한 해석 가운데 하나로 정리해 버리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데 머무른다. "선진국에는 비례대표제가 없다"라고 주장하였는데, 37개의 OECD 가입국 가운데 24개 나라에서 비례대표만으로 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즉 나경원 대표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거짓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 "의원 정수는 300석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의 헌법 정신에 반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면 "의원 정수가 무한히 확대될 수 있다."대북 정책에 관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극적인 변모에서는 어떤 개연성도 확인할 수 없다. 2016년 6월 비핵화에 대한 유연한 접근을 요구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제 정권이 바뀌든 안 바뀌든 일관된 우리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는 통일정책을 만들어 가야 된다"고 주장했던 나 대표다. 그러한 나 대표가 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딱지를 붙여대는 것일까. 책임지는 정치인이라면 그러한 인식 변화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명이 뒤따라야 하겠다. 해명이 없어서야 그 독기 어린 비난이 실상 전형적인 내로남불에 불과하며, 나 대표는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꾼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겠기 때문이다.죽은 폴리네이케스가 걸어 다니면 '안티고네'는 성립할 수 없다. '오이디푸스 왕'이 가짜뉴스의 희생양이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고평했을 리 만무하다. 좀비가 활보하고 가짜뉴스가 뻔뻔하게 유포되는 지점에서 우리 사회의 덜 떨어진 비극이 펼쳐지고 있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9-03-17 홍기돈

[월요논단]위선을 넘어 성찰로

반성않는 일상 우리사회 퍼져 있어5·18 망언·한유총 사태·사법농단불의 용납하면 되풀이 하게 만들어아프지만 '치욕·모순' 성찰하는 일우리를 충만함·행복으로 이끌어18세기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세계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유럽이 세계 문명의 방향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으며, 이제껏 보지 못했던 과학기술 혁명의 결과로 산업화에 성공함으로써 세계는 그야말로 인간의 시간과 공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그 이전의 어떤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폭력과 야만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 모두는 17세기 이래 유럽이 이룩한 근대의 혁명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은 이 근대 혁명을 누구보다 빨리 습득함으로써 유럽 밖에서는 유일하게 그 문화의 혜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아쉽게도 그들은 유럽의 죄악조차 답습했다. 이 모든 역사의 격동을 겪어낸 것이 우리의 지난 100년이었다. 그 야만과 폭력의 시간을 버티고 견디면서 그럼에도 인륜과 자주를 갈망했으며 나름의 물질적 풍요와 성공을 이룩한 시간이 또한 지난 100년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지난 시간은 역사에서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변화와 전환을 경험한 때였다. 그 역사와 그 삶을 되돌아보는 작업은 지금의 삶과 내일의 시간을 위해서는 결정적 의미를 지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찰과 전망에 있다. 뼈저린 후회와 자괴감이 들지언정 잘못된 역사를 성찰하는 작업, 직면하기 싫지만 그럼에도 나아갈 길을 위해 차디찬 지성과 열망으로 전망하지 않을 때 우리 삶은 다시금 나락으로 빠져들지 모른다.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반성하지 않은 일상이 우리를 옥죄는 현상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5·18 광주에서의 학살을 부정하는 망언은 결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 반인륜적이며 야만적인 부정을 정략적인 이유로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다시금 이런 패륜과 폭력을 되풀이하게 만든다. 우리 삶이 왜 지옥 같을까. 이런 야만과 불의를 용납했기에, "여기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미 벌써 사라졌어야 할 정치적 모리배가 국회란 배경을 무기로 앵벌이 노릇을 계속하고 있다. 한유총 사태는 조기에 수습되어 사안이 해결된 듯이 보이지만 이 사태 뒤에는 맹목적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립이 자리한다. 교육의 공공성은 물론, 재산권의 자유를 공동선의 관점에서 새롭게 정립해야 할 기회임에도 단순히 한유총 해체만으로 이 사태를 덮어두어서는 안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사법농단 문제는 법치국가라는 우리 사회의 본질을 부정하는 일임에도 지금의 대응을 보면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는가.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정략적 보도를 일삼은 언론의 반사회적 태도와 의도적 무지를 넘어서지 않은 채 어떠한 밝은 미래도 전망할 수 없다. 지금처럼 부서지고 망가진 교육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은 채 공정한 사회와 미래를 바라는 엄청난 착각이 어떻게 가능할까. 각자가 원하는 삶의 의미와 행복은 물론, 최소한의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바라면서 지금의 교육체계와 폭망한 학문을 방치하는 현실은 거대한 위선에 불과하다. 경제성장이란 주술에 사로잡혀 우리 삶을 몰아가는 망상을 깨지 않은 채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가. 거짓이다. 저출산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그 맹목적 대응에 헛웃음이 나온다. 일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12번째 국가에서 에너지는 펑펑 쓰고 환경은 무분별하게 파괴하면서 미세먼지는 없기를 바라는 모순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 100년 서구 근대에 의해 침탈되고 강요되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역사와 삶을, 사회와 문화를 성찰하고 전망함으로써 우리가 주체가 되어야 할 때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마주하기엔 너무도 아프지만 그럼에도 직시해야 할 과거의 치욕과 현재의 모순을 성찰하는 일이다. 힘겹지만 일상의 위선을 깨고 나아가야 할 미래를 전망하는 일은 우리의 지성적 정직함에 달려있다. 지성적 성찰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의무다. 지성은 가방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인간이 인간인 까닭은 우리가 직관과 감정을 넘어 성찰과 전망의 지성을 수행한다는 데 있다. 그 길에 들어설 수 있을 때 우리 삶과 존재는 의미를 지니며, 그 해명의 작업이 우리를 충만함과 행복으로 이끌어간다. 결단 없이 바뀌는 것은 없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9-03-10 신승환

[월요논단]다 잘 될 거야

고르디우스 매듭 떠오른 북미회담트럼프·김정은, 정해진 시간 쫓겨역사적 경험 반복·불쾌한 사실 전개한반도 평화는 '생존과 삶'의 문제 '노딜'이었지만 비핵화 피할 수 없어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 신화 등에 의하면 수레를 묶은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섰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를 해결한 자가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여기까지는 학설도 대체로 일치한다. 그러나 해결법을 두고는 의견이 다르다. 정설은 알다시피 칼로 매듭을 잘라버렸다는 것. 하지만 매듭을 고정하고 있던 못을 뽑아 끈의 실마리를 찾아 풀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 예언의 결과에 대한 해석도 다르다. 알렉산더 대왕은 예언대로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었다. 하지만 매듭을 풀지 않고 끊어버린 탓에 그의 제국은 얼마 가지 못하고 분열되었다는 것이다.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하노이 회담을 보면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단칼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쪽과 복잡한 매듭의 일부라도 풀어내려는 쪽의 대결. 지금까지는 드러난 대로 미국은 일괄타결을, 북한은 단계적 해결방안을 선택하였다.이처럼 엇갈린 방안을 서로 선택한 것은 두 정상이 처해있는 위치와 직접 연계되어 있다. 탄핵위기와 내년 대통령 재선이라는 정치적 난제와 목표를 해결해야 하는 쪽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강력한 제재로 주민들의 삶에 다가오는 악영향과 경제적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쪽은 김정은 위원장이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정해진 시간 때문에 쫓긴다는 점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것이 북미 간의 대화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이기도 하다. 회담의 결과는 '노딜'이었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비핵화라는 과제를 피할 수 없다. 당장은 정치적 선택에 좌우될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인류 전체를 위한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돌이켜보면 이번에도 역사적 경험이 반복되고, 불쾌한 사실들이 전개되었다. 일본은 북미 간 회담의 성공을 두려워했다. 자신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북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인 납치문제를 거론해주기를 원했다. 비핵화와 북한의 유엔제재 해결보다는 아베정부의 정치적 입장과 이해관계를 관철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진정으로 북한 인권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1959년부터 1984년까지 니가타 항에서 만경봉호 등을 타고, 북한으로 간 9만3천340여명의 동포들의 안부를 함께 묻는 것이 예의다. 식민지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로서 남북한의 분단을 초래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와 역사에 대한 책임을 지는 국가이자 지도자라면 남북통일을 지원해야 하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일본의 우익세력과 정치인들 대부분은 남북한의 분단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한다.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일방주의는 그러하다 치고, 미국의 각 기관이나 정파들도 통일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국에 대한 국내 일부 세력의 맹신에 가까운 신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한반도의 평화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의 시각에서 통일과 평화 문제를 재정립해야만 뼈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역사적 교훈을 상기해준 제2차 북미회담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이 한반도의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각국의 이해관계에 휘둘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정부와 국민들이 힘을 모을 때다. 문 대통령이 겹겹이 얽힌 매듭의 크기와 길이 등을 잘 파악하여 북미는 물론 관련 당사국에 전해야 한다. 단칼에 끝낼지. 못을 뽑아야 할지. 하나씩 풀어야 할지. 그 방안과 해법까지도 제시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다시 부여받았다. 한반도의 평화는 우리들의 생존과 삶의 문제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노력에 국민들의 성원이 필요한 이유다. 오랜 고통 속에서도 큰 기대를 했던 이산가족과 개성공단 그리고 금강산 관련 기업 등에 희망의 메시지를 다시 전할 때다. 회담결렬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후배 신한용 개성공단협의회 회장에게 전하고 싶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생각하세. 다 잘 될 거야(All is well)"./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03-03 김민배

[월요논단]민주주의 역사 부정도 범죄일 수 있다 - 여야 3당의 '5·18 특별법 개정안' 추진에 부쳐

5·18 혐오표현 법적규제 첫 단추종편·유튜브서 왜곡 발언 쏟아져선동·전파 제한 차원 큰 의미예술·학문·역사진행 보도 등은위법성 인정안해 표현의 자유 고려23일 서울 청계광장에 전국에서 5천명이 모여 '5·18 망언 3인 퇴출'을 외쳤다. 16일 광주 금남로 집회 이후 두 번째였던 이날 집회에서는 5·18 왜곡 처벌 특별법 제정 등이 촉구됐다. 22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3당 소속 의원이 5·18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한 경우 처벌하는 '5·18민주화운동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 발의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부인하거나 왜곡하는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의 첫 단추가 시작된 것이다. 혐오표현은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하여 차별·혐오하거나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혐오표현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크든 작든 해악을 끼친다. 그중 구체적인 행위를 촉발할 수 있는 증오선동을 사회적 해악이 가장 큰 혐오표현이라 할 수 있다. 국제적 기준에서도 증오선동은 금지대상이다. 일반적으로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고려해서 직접적인 선동이나 반복적이고 노골적인 선동을 담고 있는 혐오표현만 처벌 가능하다고 본다. 일부 인터넷커뮤니티, 종합편성채널 등을 무대로 5·18 민주화운동 등을 왜곡·날조하는 행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2013년부터 혐오표현 규제와 형사처벌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일제의 만행과 헌정파괴범죄와 같은 반인류 범죄를 부인하고 민주화 운동을 왜곡·날조하거나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여 허위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에 처벌하자는 법안들이 발의된 적이 있었다. 이 법안들은 반인류 범죄의 부정을 처벌하는 역사 부정죄나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 금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에 관해서는 호남지역에 대한 차별과 연결되고 관련된 사실이 이미 법률적이고 사회적으로 확정됐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1994년 독일 정부가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집회 연설을 규제하자 극우정당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헌법 소원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무수한 목격담과 문서, 형사법정의 사실 인정, 역사학의 인식에 비추어 홀로코스트 부인은 허위 사실임이 증명됐다고 판시했다. 증명된 허위사실은 의견이 만들어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이와 같은 경우일 것이다. 22일 여야 3당이 공동 발의한 법안은 기존 발의된 법안에 비해 진일보했다고 판단된다. 법안은 5·18 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에겐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형사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신문, 잡지, 방송, 그 밖에 출판물 또는 정보통신망의 이용 ▲전시물 또는 공연물의 전시·게시 또는 상영 ▲기타 공연히 진행한 토론회, 간담회, 기자회견, 집회, 가두연설 발언 등을 처벌 대상으로 했다. 최근 종편과 유튜브 채널에서 5·18 민주화운동 관련 사실을 왜곡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현실에서 개정안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하겠다.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차별적 혐오발언의 선동과 전파를 제한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차별적이고 적대적인 혐오발언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해지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허위정보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법안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도 놓치지 않고 있다. 법안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날조 등 행위가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사건이나 역사의 진행과정에 관한 보도 등의 목적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내용이 형사처벌의 실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있지만 독일의 사례나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고려한 적절한 접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사실을 부정하는 선동적인 행위가 법적으로 규제돼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일이 사라지길 기대한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19-02-24 이용성

[월요논단]세상을 바꾸는 작지만 확실한 행동

설 연휴 골목 곳곳에 쌓인 쓰레기세계 '쓰레기 대란' 망가지는 지구폐기물 관리·재활용으로 해결안돼'덜' 만들어내는 정책·실천 필요'4R운동' 힘 합쳐 작은 행동 시작을설 연휴 기간 동안 도심의 골목 곳곳, 건물 사이사이마다 쓰레기가 쌓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휴 막바지에는 쓰레기가 산을 이루며 길 바깥으로 넘쳐났다. 인상이 찌푸려지지만 나 또한 그 쓰레기 더미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만 해도 명절 선물에서 나온 상자, 스티로폼 등의 포장 쓰레기와 명절 음식을 준비하며 나온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가 베란다 한쪽에 수북했다. 쓰레기들이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은 어디인지, 어떻게 처리되는지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지금 이대로 살아가도 되는 것인지 많은 걱정이 생긴다. 서울의 아파트에 살다가 강화도로 옮겨 온 지 여섯 해를 맞이하고 있는데, 쓰레기 문제에 대해서 서울에서보다 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아파트 생활에서는 분리수거 하는 날 정해진 곳에 분리 배출을 성실하게 하고 나면 마치 환경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쓰레기의 이후 행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시골 살이를 하면서 해당 면사무소에서 쓰레기를 배출하는 곳이라고 지정한 곳에 가보면 분리가 되지 않은 쓰레기부터 큼직한 가구들까지 온갖 폐기물들이 마구잡이로 버려져있다. 심지어는 음식물 쓰레기까지 버려져 있다. 차마 그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못해 하루 종일 차에 싣고 다닌 적도 있다. 쓰레기 배출 하는 곳 이외에도 야산 입구나 인적이 뜸한 곳곳에 누가 버렸는지 모를 온갖 쓰레기 더미들이 몇 달이고 계속 쌓여만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재활용업체에서 필리핀으로 수출한 재활용 쓰레기가 다시 평택항으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쓰레기들을 수출할 때에 플라스틱의 원재료로 사용될 수 있는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신고되어 필리핀으로 향했지만 실제로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쓰레기와 기저귀, 배터리, 전구 등이 가득 섞인 불법 폐기물이었다. 우리나라에 다시 가져왔다고 모두 해결된 상황이 아니다. 전체 6천300t 중 일부인 1천200t만 돌아온 상황이고, 현재 남아 있는 쓰레기가 오랫동안 방치되어 썩어가면서 발생하는 악취와 해충으로 환경오염과 현지 주민들의 건강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국제적인 망신이고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이 재활용 쓰레기 수입을 전면 중단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근래는 중국을 대신해 동남아 국가들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쓰레기 수입을 중단하게 된다면 그 다음은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이제는 더 이상 폐기물 관리와 재활용에 초점을 맞추어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끊임없이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쓰레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인류의 등장이 지구 최악의 환경 재앙을 불러왔다고 보아도 과장된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가 도달해야 할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쓰레기를 덜 만들어내는 국가 정책과 함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절박한 현실을 잘 이야기해주는 그림책이 있다. '내일을 바꾸는 작지만 확실한 행동'(시릴 디옹. 피에르 라비 글. 코스튐 트루아 피에스 그림. 권지현 옮김/한울림어린이)에서 지구가 얼마나 망가졌는지에 대해 실제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가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작지만 우리가 힘을 모으면 내일을 바꿀 수 있어요. 내일은 우리 손에 달려 있어요!'라고. 이제는 우리가 행동해야 할 때임을 말하고 있다. 세계의 많은 환경단체에서 부르짖고 있는 4R운동부터 실천해보면 어떨까. Refuse(불필요한 물건은 사지 말 것), Reduse(쓰레기 줄이기), Reuse(쉽게 버리지 말고 반복해서 사용하기), Recycle(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나 하나 이런다고 뭐가 바뀌겠냐는 의구심은 버리자. '개미가 힘을 합치면 코끼리도 들어 올릴 수 있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지구가 더 이상 망가지지 않게 결연한 다짐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작지만 확실한 행동을 시작해보자./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9-02-17 최지혜

[월요논단]영화 속 김원봉, 이극로가 반가운 까닭

조선의용대 대장 출신이었던 '金'친일경찰 노덕술에 치욕 결국 월북베를린대학서 언어학 공부한 '李'국문의식 세워나가는데 기반 제공치열했던 '그들의 이름' 간직해야올해는 3·1운동이 벌어진 지 100년 되는 해다. 영화·텔레비전에서 소개되는 항일투사의 면면에서 나는 그 사실을 실감하곤 한다. 이런 분들은 우리가 마땅히 끌어안아야 하지 않나, 싶었던 사례가 대중들에게 속속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세부 전공이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현대문학을 전공한 내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조금이나마 식견을 가지게 된 것은 연구대상이 되는 시인·작가들이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나갔던 덕분이다. 예컨대 저항시인 이육사의 경우를 보자. 조선혁명군정치간부학교 제1기 졸업생인 그는 '연인기'(戀印記)에서 귀국 직전의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 "몇 사람이 모여 그야말로 최후의 만찬을 같이" 하였는데, 그 중 S에게는 "무엇이나 기념품을 주고 와야 할 처지였다." 그래서 그는 "꼭 목숨 이외에 사랑하는 물품"이랄 수 있는 비취인장에 "贈S·一九三三·九·一○·陸史"라고 새겨 선물하고 조선으로 돌아왔다.여기서 S는 윤세주다. 훗날 윤세주는 조선의용대 부대장으로 활약하던 중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일제 측 조서에 따르면, 교장 김원봉과의 의견 차이로 인해 졸업 후 귀국했다고 되어 있으나, 육사가 취조 받으며 내놓은 답변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 일제는 왜 경북 안동에서 체포한 육사를 굳이 중국 북경으로까지 끌고 가서 고문해야만 했을까. 김원봉·윤세주와 절연하기는커녕 물밑에서 연계하여 치열하게 활동한다고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북경감옥에서 육사는 유고시로 '광야'(曠野), '꽃'을 남겼다. 이 두 편의 시는 육사의 죽음 위에서 읽어야만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난다.1933년 9월 10일 S 등과 가졌던 저녁 모임은 "그야말로 최후의 만찬"이었다. 1942년 윤세주는 전사하고 말았으니,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던 "내가 바라는 손님"은 결코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육사마저 1944년 고문 끝에 사망하고 말았으니,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 둘 사람조차 부재한 상황이었다. 청포도는 그들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익었던 셈이었다고 할까. 그렇지만 그 청포도조차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을 만큼 제대로 익지는 못했다. 해방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용대 대장을 지낸 김원봉이 친일 고문경찰 출신의 노덕술에게 온갖 치욕을 당한 끝에 결국 북조선으로 넘어가야 했던 정황이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김동리가 이태준과 관계 맺는 양상도 단순치 않다. 1934년 동리는 3대 민간신문 신춘문예의 시·소설 부문에 모두 투고하였으나, '조선일보'에 시가 당선도 아닌 입선에 그쳤을 따름이었다. 실의에 빠진 동리에게 백형 김정설은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 이태준을 만나도록 한다. 이후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동리는 이태준에게 소설 창작에 관한 설명을 들었고, 1935년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화랑의 후예'가 당선함으로써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구인회 좌장이자 잘 나가는 소설가였던 이태준은 한낱 풋내기에 불과한 동리에게 왜 이토록 공을 쏟았을까.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산 안희제를 알아야 한다. 백산 안희제는 임시정부 운영 자금의 60퍼센트 이상을 전달한 인물이다. 장학회 사업도 벌였던 그는 김정설, 이극로, 안호상, 신성모, 이태준 등을 외국 유학 보내기도 하였다. 신문사 취업에 번번이 실패하던 이태준은 백산의 중외일보(조선중앙일보) 사장 취임과 더불어 기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태준과 동리(김정설)를 매개하는 인물이 바로 백산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태준이 국문의식을 꼿꼿하게 세워나가는 데 기반을 제공했던 이는 이극로였다.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언어학을 체계적으로 습득한 이극로가 귀국한 뒤 조선어연구회는 조선어학회로 거듭날 수 있었고, 여기서 표준어사정위원회를 두 차례 열었을 때 '문장 강화'의 저자 이태준은 각각 전형위원과 기록을 담당하였다.조선어학회사건이 터지자 이극로는 당연히 옥고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극로와 관련이 있는 단체까지 탄압을 피해갈 수 없었으니 대종교가 임오교변을 겪는 과정에 잡혀간 백산은 고문 끝에 1943년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해인사사건으로 엮인 김정설도 영어의 운명을 피해가지 못했다. 조선어학회 사건, 임오교변, 해인사사건은 하나의 뿌리를 가진 세 개의 가지였던 셈이다. 흥미 삼아 덧붙이건대, 동리의 첫 번째 결혼식 주례는 김정설과 호형호제하였던 만해 한용운이었다.하나하나 되짚어보다가 문득 나 자신을 왜소하게 느끼게끔 만드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치열함을 감히 따르지 못하더라도, 그 이름만이라도 간직하는 게 우리의 일이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9-02-10 홍기돈

[월요논단]새로운 100년의 문화혁명

지난 100년간 엄청난 역사 썼지만불안·갈등은 왜 여전히 존재할까일상의 야만·폭력·불의·부패 고통우리 스스로 걷어내지 못한다면'찬란한 문화적 삶' 전환 불가능100년 전 3월 1일 독립요구의 외침이 전 한반도를 뒤흔들었다. 이 외침은 강압적 식민통치를 거부하고 조선의 독립을 요구한 데서 출발했지만, 그 뒤에는 보편적인 인간다움에 대한 요구가 담겨 있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반인륜적 통치와 야만에 맞서 인간의 인간다움을 찾는 강력한 원의가 이 외침에 담긴 본질적인 의미였다. 이후 100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 삶은 어떻게 변했는가? 외적인 폭력과 탄압은 물론, 정신적인 파괴와 전향까지도 강압하던 무단 통치를 거부하고 그와는 전혀 다른 민주와 인간성에 대한 요구는 우리 삶과 문화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2년 전 또다시 이런 강압을 거부하고 새로운 정치를 요구했던 외침은 지금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류 역사에서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그 현란함을 벗어나 보면 우리 삶의 실제적 상황에 본질적 차이가 없음을 안타깝게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풍요로움에 비해 삶과 문화가 피폐하고 허무하다면, 왜 그런 것일까. 여전히 내면의 불안과 갈등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헐벗음으로 허덕인다면 우리는 그 100년 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대한민국은 지난 100년 사이 역사를 새롭게 썼으며,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발전했다. 그런데 여전한 불안과 갈등은 왜일까. 왜 삶과 사회에는 여전히 허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일까. 지난 시간 대한민국이 이룩했다는 성공은 어떤 것인가. 삶과 문화에서도 성공한 것일까. 아니라면, 그 반쪽의 성공을 넘어서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지금 이 시간은 우리가 이 질문을 마주하고, 그에 대해 대답하고 실천적 대응을 말해야 할 그 순간이다. 이것은 단순히 100년이란 시간이 지났기에 제기하는 물음이 아니라, 촛불을 통해 새로움을 요구했음에도 여전한 이 삶의 황폐함을 벗어나기 위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정권에서조차 우리는 100년 전의 외침을 되풀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 점점 더 분명히 민중의 정치적 의사를 재현한다는 국회의 허위와 법의 위선을, 정치 경제적 현란함에 비해 턱없이 역행하는 현실을 접하게 된다. 이제 너무도 분명하게 정치와 행정, 언론과 법을 장악한 그들이 결코 우리가 외쳤던 공의로움과 공동선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지난 역사를 통해 우리는 그들 정치가와 지도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회와 삶의 주체임을 배웠다. 우리 스스로 삶의 의미와 사회적 가치와 올바름을, 경제정의와 법의 공정함을 향해 일어서지 않을 때 이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 100년의 시간이 야만과 폭력에 맞선 고통과 투쟁의 시간이었다면 이제 새로운 시간은 그 모든 어두움을 빛으로 바꾸는 문화적 전환의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변혁은 우리 각자에서 시작된다. 일상의 야만과 불의, 부패를 우리가 걷어내지 않으면 결코 가능하지 않다. 노동을 탄압하고 배제하는 사회, 한 줌의 특권을 독점하는 사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자를 몰아가는 문화를 거부하지 않으면 우리의 일상은 지난 시대로 역행할지도 모른다. 다시는 야만과 폭력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기에 그에 맞선 문화와 삶을, 그런 의식과 태도를 우리 안에 확고히 해야 한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던 그 외침을 우리 안의 제국주의에 돌려야 한다. 누군가의 죽음 위에서야 가능한 풍요를, 거짓과 허위로 가득 찬 문화를, 근대화 이후 켜켜이 쌓인 시대의 모순을 넘어서야 한다. 독과점 구조와 위선의 문화를 뒷받침하는 모든 시스템을 바꾸고, 우리 생각과 의식을, 일상 삶을 그렇게 되돌려야 한다. 우리가 그런 주체가 될 때 비로소 현재의 식민성을 벗어날 수 있다.우리가 원하고 행동할 때 그들의 오랜 결탁과 독점이, 그 허위가 무너질 것이다. 정의와 평화를, 공정을 원한다면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삶을 원한다면 현란함을 넘어 의미와 직면해야 한다. 지성적 성찰은 그렇게 필요하다. 다가올 100년, 문화와 삶의 혁명을 이룩할 때가 다가왔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9-01-27 신승환

[월요논단]심해어류 증후군과 견리사의

잇단 폭로·불안정한 경제현실 원인文정부 정책실패서 찾으려는 심리통일·남북문제외 국민들 기대 부족획기적 대안 제시로 미래 선도하는 새로운 장관·자치단체장 내세워야'사케가시라(Trachipterus ishikawae)'. 지진어류 혹은 산갈치로 불리는 심해어의 일종이다. 최근 동해연안에서 200m 심해에서 산다는 산갈치가 발견되자 지진의 징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에서는 지진 직전 해저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변화의 결과라거나 해수온도의 변화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하지만 오리하라(織原義明) 교수팀은 2017년 말 일본지진학회에서 지진과 산갈치는 상관성이 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연구팀은 1928년부터 2011년까지 심해어와 지진 발생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363건의 사례 중 지진이 발생한 경우는 13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인간이 산갈치 등장을 지진의 징후로 예측하거나 방재에 유용한 정보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어류가 지진을 예측하는데 필요한 수단으로 쓸모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심해에 대한 조사의 한계로 지진의 전조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적 해명과 달리 인간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산갈치의 등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심해저에 대한 궁금증이나 심리적 불안감에서 기인한다. 심해의 어디에선가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김태우 수사관과 기재부 신재민 사무관의 폭로 그리고 손혜원 국회의원을 둘러싼 논쟁들이 진실성 여부와 무관하게 일파만파인 것도 그 때문이다. 청와대나 권력기관, 그 어디에선가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뜻이다. 경제의 불안정한 현실과 그 논거를 문재인 정부나 정책 실패에서 찾으려는 심리적 요소들도 확산에 가세하고 있다. 국민의 힘으로 탄생한 촛불정부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로와 험난한 경제를 둘러싼 상상력의 증폭이 문재인 정부가 당면할 전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왜 폭로되는 사안들이 진실여부와 관계없이 확대되고 있는지. 우려하는 국민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지. 첫째는 통일과 남북한 문제를 제외하면 국민들이 기대할 만한 정책이나 비전이 부족하다. 산업정책이나 일자리 정책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은 새로운 경제정책의 추진에서 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도 바이오와 블록체인, 게임 산업과 e-스포츠와 같은 성장 분야에 대해 규제정책을 우선하고 있다.둘째, 존경하고 신뢰할 만한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미래를 선도해야 할 장관이나 시도지사들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존재감이 없는 장관이나 시도지사들에 대해 지난 정부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부정적 평가들이 제기되고 있다. 셋째, 대들보와 서까래의 혼용법을 활용하지 않는다. 지난 선거가 박빙이었다면 신세 진 사람들이 있겠지만 압도적이었으니 챙겨야 할 사람들도 상대적으로 적다. 시민들을 의식하는 긴장감도 떨어지고 획기적인 정책을 만들어 추진하는 동력도 낮다. 그렇다 보니 내 편을 써야 할 분야와 전문가로 승부수를 내야 할 분야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개별 사안들이 혼재되어 증후군으로 확대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정책에서 극적인 반전을 이루지 못하는 한 내년 총선에서 다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들이 제기되는 이유다. 물론 남북통일을 향한 대통령의 행보가 가시적 성과를 내면서 극적인 돌파구를 열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대북제재를 쥐고 있는 한 국민들이 체감하는 성과가 바로 나타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정부와 여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장관과 자치단체장은 미래의 획기적 정책들에 대해 정치적 능력과 재량권을 발휘하도록 권한을 부여받은 자리다. 법령과 예산 그리고 규제 안에 안주하는 공무원과 달라야 한다. 개각을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미래를 선도하는 정책에 혼신을 다하는 장관과 기관장을 갈망하는 이유다. 새로운 리더를 내세워 국민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다짐할 때다. 견리사의(見利思義). 눈앞의 이익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촛불로 염원했던 국민들에 대한 의리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국민들이 왜 산갈치를 보면서 정부와 국가를 걱정하는지.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고민하고 있는지. 깊이 헤아려야 한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01-20 김민배

[월요논단]'유시민의 알릴레오'의 등장과 언론의 위상

중요 이슈 정리·가짜뉴스 팩트체크언론, 제대로 역할 못한다는점 강조권력감시·공정성등 고려 기능 중요디지털·유튜브 전략 걱정할때 아닌어떻게 신뢰 얻을지에 더 고민해야2002년 대선에서 인터넷이 중요한 역할을 하자, 미디어권력이 이동했다고 주장한 인터넷언론인이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여론형성력은 보수정권이 연이어 들어서면서 통제되기 시작했고 미디어권력은 다시 보수화된 지상파방송과 신문에 돌아갔다. 지난 대선국면에서는 기존 언론의 영향력이 제한적이었고 팟캐스트 등 새로운 미디어와 SNS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최근에는 유튜브가 향후 정치권력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는 다소 이른 전망이 등장했다. 보수 정치 유튜브 방송의 활성화가 이런 전망에 근거처럼 제시됐다.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정치 유튜브 방송이 출현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월 5일부터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유튜브, 팟캐스트(팟빵 등), 카카오TV, 네이버TV을 통해 방송하기 시작했다. '유시민의 알릴레오'는 우리 시대 중요한 이슈를 정리하고 가짜뉴스도 팩트체크하는 방송을 표방한다. 구체적으로 '언론보도가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문재인정부 정책과 행정의 뿌리와 배경, 핵심을 찾아가기 위한 네비게이트' 역할을 자임한다.이 방송은 보수정치 유튜브와 다른 '정치 사회 경제 영역에서 사실의 증거를 토대로 합리적으로 추론해서 시민의 지혜로워지려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송'을 표방한다. 유 이사장의 정책 현안과 사회 이슈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과 대중적 인지도를 기반으로 이 방송의 영향력은 막강하다.'유시민의 알릴레오' 1회는 유튜브의 경우, 13일 오후 1시를 기준으로 조회 수가 257만에 이르고 콘텐츠를 올린 지 하루가 된 2회는 64만회에 이른다. 유 이사장의 대선 출마여부를 팩트 체크한 '고칠레오 1회'는 120만회의 조회를 기록했다. 이 방송영상 채널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은 구독자가 61만명이 됐다. 진보성향 팟캐스트가 상위권을 점하고 있는 팟방에서도 일간 종합순위가 2위였다.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제공하는 플랫폼 가운데 유튜브가 가장 파급력이 크다.'유시민의 알릴레오'에 대해 이 방송이 여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유 이사장의 영향력 확대나 종편 출연 보수 논객이나 보수정치인의 방송으로 기울어진 정치 유튜브 방송지형의 지각 변동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하는 보수언론의 비판이 맹렬하다.유 이사장이 언급하는 국가정책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정책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론환경이 정부정책에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여전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부 정책홍보가 문제라고 보인다. 그러나 '유시민의 알릴레오'는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김어준이 주요 이슈의 본질과 맥락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부분이 핵심 콘텐츠이다. 팟캐스트 콘텐츠인 '김어준의 다스베이더'도 핵심 이슈를 정리하고 이를 쉽게 설명해줄 전문가를 출연시키고 있다. 언론이 뉴스를 단순 전달할 뿐 핵심과 맥락이 알기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대중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여기에 맥락저널리즘과 팩트체크 저널리즘을 표방한 인터넷미디어 '뉴스톱'도 등장했다. 이 미디어는 뉴스콘텐츠를 통해 사건의 전후 맥락을 이해하고 관점이 풍부해질 수 있도록 하는 맥락 저널리즘과 가짜뉴스(허위정보)를 검증하는 팩트체크 저널리즘을 강조하고 있다.우리 언론이 계속되고 있는 언론 불신의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고서는 이런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다. 시민과 전문가와 정치인, 정부가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 대중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 플랫폼을 직접 활용하고 있다. 과연 언론이 배제되는 정치와 국민의 만남, 정부와 국민의 만남이 바람직한 것일까? 신재민 전 사무관 사건과 같이 유튜브 개인방송을 언론이 취재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그러나 언론의 권력감시 기능, 공정성 등의 뉴스 가치 등을 고려하면 언론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언론은 디지털전략, 유튜브 활용전략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어떤 저널리즘을 지향해야 할지, 독자와 어떻게 만나서 신뢰를 얻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19-01-13 이용성

[월요논단]행복한 삶이란…

삶 편리해지는데 마음 공허한 이유과도하게 물질에만 치우쳤기 때문변화 속에서 균형잡힌 삶 살려면'나는 누구인가?'가 무엇보다 중요정직·엄격하게 내 자신 마주해야기해년(己亥年) 새해를 맞이하고 며칠이 지났다. 새해를 맞이하며 사람들은 서울 종로에 있는 보신각에 종소리를 들으러 모인다. 또 어떤 이들은 동해에서 해돋이를 보며 한해를 시작한다. 몇 년 전 양양 낙산사에 머물면서 의상대에서 해돋이를 보고 가슴이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의상대 옆에는 '의상대 해돋이'라는 제목의 조종현 선사의 시조비가 있다. '천지개벽이야! 눈이 번쩍 뜨인다. 불덩이가 솟는구나. 가슴이 용솟음친다. 여보게 저것 좀 보아! 후끈하지 않은가.' 해돋이를 보고 이 시조를 낭송하면서 정말 가슴에 불덩이가 솟구치는 듯했다. 뭔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시작'이라는 말에는 희망, 용기, 용서의 기운이 담겨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번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른 해와 달랐던 점은 '새해'가 시작된다는 것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심지어 우리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독서모임을 하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선물도 받았지만 이상하게 크리스마스 느낌이 없어요.", "해가 바뀌었다는 것도 별로 실감이 안나요."라고 말한다. 세상은 계속 발전하고 더 좋아지는 것 같고, 우리의 삶은 편리하고 풍요로워지는 것 같은데 마음이 더 공허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세상은 계속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특히 과학기술은 우리가 예측하기도 어려울 만큼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 기술들이 우리의 실생활에 이렇게 빨리, 이렇게 깊숙이 들어오게 될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고 윤택한 삶을 살아가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과도하게 물질에만 치우쳐 인간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잃어가고 균형이 깨지면서 인간은 자꾸자꾸 공허(空虛)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이스라엘 학자 유발리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오늘날의 인류는 지난 과거의 세대보다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오늘날 아이들이 배우는 대부분의 기술이 2050년에는 쓸모가 없어질 수 있다' 고도 말한다. 그래서 아이나 어른이나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키워야 하고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과 새로운 변화에 정신적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는 힘만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의 말이 다 맞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공감하고 있다. 조선 정조 때의 유명한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500여권의 저작물을 냈지만 그의 마지막 공부는 송나라 진덕수의 심경(心經)을 바탕으로 한 마음공부였다. 마음공부는 '나'라는 존재의 중심을 지키는 것에 그 종착점이 있다고 본다. 유발리 노아 하라리도 정약용도 '나는 누구인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균형 잡힌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본질적인 나(我)란 존재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정직하고 엄격하게 내 자신을 마주하며 새해를 맞이하면 좋겠다. 새로운 시작 앞에 가만히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펼쳐보는 그림책이 있다. '첫 번째 질문/오사다 히로시 글. 이세 히데코 그림/김소연 옮김/천개의바람'을 찬찬히 보면서 소리 내어 낭송하다 보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리가 된다. "아름다워!"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세상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어떤 건가요?,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인생의 재료는 무엇일까요? 행복이란 무엇일까요?세상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아름다워!" 라면 참 좋겠다./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9-01-06 최지혜

[월요논단]대통령 지지도의 하락과 구두선에 머무르는 사회적 가치 실현

추락 거듭하다가 43.8% 내려앉아최저임금·강사법등 정책 악재로엉뚱한 곳에 불필요한 대립 전선명목 매달려 무책임한 시행 아닌지의지 있다면 철저한 구조 만들어야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추락을 거듭하여 결국 43.8%로 내려앉았다. 반면 부정 평가는 51.6%였다. 12월 3주차의 민심인데, 앞으로도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성싶다.기실 일개 책상물림에 불과한 내가 보기에도 일련의 어설픈 정책들은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가령 최저임금 정책을 보자.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4가구 당 1가구로 매우 높은 편이다. 미국의 4배, 일본의 2.5배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이 취약 계층이거나, 취약 계층을 겨우 면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더 많은 비용을 부담시키는 게 합리적인 정책일까. 동의하기가 어렵다.최저임금을 올리는 데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엉뚱한 곳에 불필요한 대립 전선을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로 인해 혀를 차는 것이다. '자영업자 vs 아르바이트생(직원)'의 대립 구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예컨대 건물주가 쓸어가는 임대료를 제한하고, 그렇게 절감된 비용의 일부가 아르바이트생(직원)의 임금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할 수는 없었을까.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방향을 가늠하지 못한 채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명목에만 매달려 무책임하게 정책을 실행해 본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거둘 수 없다.강사법 시행도 마찬가지다. 시간강사의 신분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비용이 따른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대학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십여 년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대부분의 대학은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대학들은 당연하다는 듯 개설과목의 기준 요건을 강화하고, 대폭적인 시간강사(과목) 숫자 줄이기에 나선다. 강사법이 강사를 잡아먹는 형국이 펼쳐지는 것이다.아마 여력이 뒷받침되었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으리라 짐작된다. 1995년 '5·31 교육개혁안'이 시행되면서부터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점차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면모를 강화시켜 나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학문공동체라거나 지식의 공공성이라는 의식보다는 수익 창출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현 대학들의 이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고부응 중앙대 교수의 '대학의 기업화'(한울, 2018)를 참조하는 게 좋겠다. 뻔히 예상되었던 이러한 사태에 맞닥뜨려 정부는 제대로 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김용운 건국대 교수의 '국정가치로서 사회적 가치의 한계와 과제'를 읽다 보니 어째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지 파악할 단서가 포착되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두 달 뒤인 2014년 6월, 국회의원 문재인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을 대표발의하였다. 그는 제안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제는 이윤과 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를 지향하도록 국가 시스템을 바꾸어야 할 때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비전·전략 체계도'를 보면, 이때 제출하였던 문제의식이 "사회적 가치 실현"이란 용어로 집약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그런데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깃발은 실상 구두선(口頭禪)에 그치는 모양새다. 공공기관 평가기준을 보건대, 시장경쟁 및 효율성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가치' 관련 지표들이 큰 비중으로 자리를 잡고 있고, '사회적 가치' 관련 지표들의 배점이 다소 상향된 수준에서 그와 병존하고 있다. 대립하는 두 개의 가치가 사이좋게 나란히 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지표의 배점 상향 조정도 그리 획기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평가받는 기관에서는 비중이 큰 평가 항목에 집중하며, 이와 배치되는 항목은 구색 맞추기 수준에서 유야무야 얼버무리기 마련이다.문재인 정부는 정말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의지가 있는 것일까. 신자유주의 질서를 기꺼이 용인하면서 최저임금, 강사법 등을 내놓아 보아야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만약 의지가 있다면 좀 더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대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가치 창출과 연동하는 정책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은 그 길을 따르며 상승하게 될 것이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8-12-30 홍기돈

[월요논단]돌아서야 돌릴 수 있다

마치 경제정책 실패·개혁 피로감지지율 하락 원인 몰아가는 세력눈앞의 정권 수호에만 열 올리는정치 모리배들 시대적 요구 무시지금 깨닫지 않으면 침몰 가능성정부출범 초기에 비해 대통령 지지율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그동안 숨어있던 온갖 거부와 불만의 소리가 범람하고 있다. 심지어 이를 이용해 시민 대다수가 지지했던 공정과 공평에의 요구조차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럼에도 돌아봐야 할 것은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은 다양한 갈래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심지어 전혀 상반된 입장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게 나라인가!"라는 외침으로 시민들이 전 정권을 심판한 것은 분명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었다. 시민의 요구를 시대정신이란 관점에서 파악한다면 그 안에는 해방과 정부수립 시 설정했던 대한민국의 지향성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있었다. 해방 이후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는 근대를 선점한 이른바 선진국을 추격함으로써 국가 공동체의 안녕과 복리를 지향하는 것이 당시의 시대적 요구였다면, 지금 가시적 경제성장과 일면적일망정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뒤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돌아보고, 시민적 합의에 따라 그 지향점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는 암묵적 요구가 그 안에 담겨있다. 그것은 국가 공동체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질문이면서, 또한 그 안에서 일상의 삶을 이끌어가는 우리의 실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국가는 실존적 삶을 살아야 하는 개인과 그들이 결코 떠날 수 없는 사회적 관계에 부응하면서, 언제나 그 구성원이 일상과 정치적 관계에 답하고, 그 지향점을 실천하는 사회적, 정치적 공동체이다. 국가는 그럴 때만이 의미를 지닌다. 이 요구에 상응하지 못할 때 그 국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해방 이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새로운 지향점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후기 근대를 넘어 포스트휴먼을 말하는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실존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정신이라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정권은 자신이 이룩한 조그마한 정치적 성과와 지지율에 취해 이 시대정신과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고 한 줌의 정치적 이익에 올곧이 빠져있다. 공정성과 올바름, 사람다운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그 모두를 외면하는 정책으로 시대정신에 역행한다. 담대함과 원칙이 필요할 때, 작은 정략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모든 개혁을 허상으로 만들고 있다. 이제는 심지어 꺼뜨렸다고 생각했던 온갖 기득권 세력이 부활하고 있다. 꺼진 불이 살아나 이 나라를 그 이전 부패하고 불의했던, 자칫 파멸로 이끌 수도 있었던 시대로 되돌리고 있다.무엇이 바뀌었는가. 온갖 현란한 거짓과 왜곡으로 기득권을 옹호했던 수구 언론이 변했는가? 공정해야 할 법을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간주했던 법조계는 어떠한가. 지옥과도 같은 교육 개혁은 첫걸음도 떼지 못했다. 진작 물러났어야 할 지난 정권의 정치적, 관료적 체제는 오히려 더 힘을 받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시민들의 일상적 삶은 다시금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최근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마치 경제 정책의 실패와 개혁 피로감이 지지율 하락의 원인인 듯이 몰아가는 세력은 통계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이 모든 시대적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당파적 이익에 연연해 눈앞의 정권 수호에만 열을 올리는 정치모리배들은 여기에 현혹되어 거대한 시대정신을 보지 않으려 한다. 아니 오히려 그 시대정신에 역행하고 있다. 지금 돌아서지 않으면 이 정권은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시민의 요구가 무엇인지, 이 시대와 공동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거시적으로 마주해야 한다. 그 정신과 필요를 절감한 뒤 담대하고 원론에 기반한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꺼진 불들이 살아나는 악몽의 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안에서 확실하게 침몰할 이 정권의 앞날이 우려스럽다. 지금 구악과 타협하려 했던 정략적 사고를 버리지 않으면 실패는 현실이 된다. 거듭되는 실패는 시민과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질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실패이며, 해방 이후의 기획이 실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언은 자기회귀적이다.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서지 않으면 시대의 요구를 실현할 수 없다. 돌아서야만 시민을 돌릴 수 있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8-12-23 신승환

[월요논단]경제 정책과 결정 장애

정부 지지율 떨어진 것 우연 아냐최저임금등 '선제대응 실패' 축적인천현안 GM도 '검토 중' 답변뿐경제정책 뒷북, 일자리 작동 안돼'결정 장애, 불황 주요인' 직시해야짬뽕·자장면·탕수육.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점심 때마다 고민한 경험들이 있다. 그러한 '결정 장애'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메뉴가 '짬자탕'이다. 짬뽕·자장면·탕수육이 각각 3분의 1씩 나오는 메뉴다. 물론 한 가지를 먹는 것보다는 비싸다. 하지만 모두를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 크다. 이러한 융합은 결과 때문에 망설이는 결정 장애를 해소시켜주는 동시에 복잡한 현대인들의 과도한 욕망을 적절히 조절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책 결정에서 이러한 방식을 도입할 수는 없는가. 각종 현안들에 대해 이런저런 제안들을 하지만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사안일수록 시간이 더 걸린다. 물론 관련자의 과도한 욕심이나 이해충돌도 주된 원인이다.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이나 감사와 징계를 꺼리는 공무원들은 문제가 폭발하기까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결단의 타이밍을 실기하는 순간 결정 장애의 후폭풍이 작동된다. 문제가 커지고 나서야 그때 결정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한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민선 7기인 지자체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비정규직, 청년실업, 자영업, 명예퇴직으로 불리는 어두운 그림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압도적이던 지지율이 45%대로 떨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상화폐, 최저임금, 아파트 가격 폭등과 미분양에 이르기까지 선제대응에 실패한 사례들이 축적된 결과다. 남북관계를 제외하면 초라한 성적표이다. 경제가 불안한 것은 과감한 정책으로 국민의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정책, 책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장관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 주식 투자자들은 공매도 폐지를 주장한다. 그런데도 다른 나라에도 있다는 한심한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부터 수정할 것인가 하는 고민조차 없다. 국민들이 묻는다. 금감원과 금감위는 누구를 위한 기관인가. 미래의 산업이라던 바이오나 제약 산업에 대한 대처도 마찬가지다. 인천의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셀트리온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회계 등의 위법을 넘어 검찰까지 나서고 있다. 바이오나 제약의 경우 개발에 수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의 리베이트 네트워크를 뚫기도 어렵다. 국가핵심기술을 지정할 때에도 바이오와 제약의 경우 해외기술이전에 예외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던 이유다. 그런데도 미래 산업과 일자리 그리고 해외수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장관들의 목소리가 없다. 무엇을 먼저 하고 나중에 해야 하는지 부처 간 손발이 엇갈리고 있다. 받아 적기에만 열심이었다던 박근혜 정부의 장관들과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나.인천의 현안인 GM대우를 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GM이나 자동차 산업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연내 3억7천500만 달러를 투입해야 하는 산업은행이나 정부가 국민들에게 설명한 내용은 없다. GM의 법인분리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 그나마 희망이다. 향후 어떻게 될 것인지. GM의 R&D가 지향하는 것이 전기차인지 수소차인지, 부품회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남동공단의 현장은 절박하게 외쳐대고 있다. 그런데도 GM의 사업계획서를 전문기관이 검토 중이라는 답변뿐이다.인천항만의 물동량에서 GM대우와 중고자동차를 무시할 수 없다. 평택항이나 당진항으로 이전소식이 나올 때마다 인천항만은 요동을 친다. 송도에 중고차 단지가 위법을 감수하면서 버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을 일자리와 지역경제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할 수는 없는가. 차라리 유원지 기능을 폐지하고, 밀폐형의 클린 중고차단지를 만들 수는 없는가. 당진항은 되는데 인천항은 왜 안되는지,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밖은 춥다. 트럼프와 시진핑으로 대변되는 세계경제는 한 치 앞이 어둠이다. 그런데도 정부 부처들은 집토끼를 잡는데 더 열심이다. 도대체 무엇으로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인가. 위법으로 처벌받아야 할 사람과 기업들을 부도로 몰아가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경제정책이 극단적이거나 뒷북치는 사회에서 투자와 일자리는 작동되지 않는다. 정책의 성패는 타이밍이 생명이다. 정책을 둘러싼 '결정 장애'가 지지율 하락과 경기침체의 주된 요인이라는 점을 직시하기 바란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12-16 김민배

[월요논단]허위조작정보 대책, 무엇부터 해야 할까?

민주주의 위협하는 가짜뉴스 심각'표현의 자유' 두고 정부 대응 신중생산·유통 규제대책 마련 쉽지않아법적 규제는 '혐오 표현 방지' 충분급한 일은 '사회적 합의기구' 추진허위조작 정보(가짜뉴스) 문제가 심각하다. 가짜뉴스의 확산은 전통적인 언론의 신뢰성 저하와 막강한 확산속도와 확산 용이성을 갖춘 미디어 플랫폼, 정치적 대립이 첨예화되고 강화된 정보 이용자의 편향적 정보 소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가짜뉴스가 선거와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등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통을 규제하기 위한 대책은 쉽지 않다.지난 10월 국무총리가 허위조작정보가 국론을 분열시키고 민주주의를 교란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허위조작정보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이 마련되는 등 허위조작정보 대책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정부의 허위조작정보 대책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 등이 있다는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가 계속됐다. 이에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이 가짜뉴스의 기준과 범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접근하겠다고 밝히면서 정부의 대응이 신중해졌다. 그러나 허위조작정보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지난 4월 발의했던 '가짜정보 유통방지에 관한 법률안'을 보완한 '허위조작정보 유통방지에 관한 법률안'을 준비 중이다. 시민사회는 이 법안에 대해 비판적 분위기다. 허위조작정보의 정의와 범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허위'는 사실 여부를 따져 확인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조작'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지? 허위조작 정보를 언론중재위원회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나 절차는 갖고 있는지?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허위조작정보의 법적 규제 모델이 되고 있는 독일의 '소셜 네트워크법집행법'과 프랑스의 '정보조작대처법안'도 같은 논란을 안고 있다.독일의 '소셜 네트워크법집행법'은 소셜 네트워크 제공자에게 위법한 콘텐츠를 신속하게 삭제하거나 차단할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에 대해서, 민간 네트워크 사업자에게 규제 책임을 전가해서 정당한 내용에 대한 과도한 삭제나 차단 등이 우려되고 위법한 콘텐츠 등 명확하지 않는 콘텐츠 삭제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의 '정보조작대처법안'은 지난 11월 진통 끝에 하원을 통과했다. 이 법안은 선거기간 중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허위정보 유통 금지명령을 법원이 신속하게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도 허위정보 정의가 모호하고 이를 판단하는 판사의 전문성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지난 11월 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소위원회가 허위조작정보로 신고된 유튜브 영상 및 게시물을 심의하여 '해당 없음' 또는 '각하'로 결정했다. 제재가 적절하지 않거나 이미 삭제돼 심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삭제 요청된 정보 대부분은 경찰이 삭제를 요청했고 대통령에 대한 비방이나 정부 대상 음모론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12월 4일 시민단체 '오픈넷'은 이 결정이 "정부 여당의 과도한 가짜 뉴스 대응에 제동을 걸고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의 근본적 의미를 숙고한 것으로 환영한다"는 논평을 냈다.정부·여당이 추천한 통신심의소위원회 위원들의 발언을 통해 가짜뉴스 규제의 한계와 해결 방향을 찾아볼 수 있다. 위원들은 이런 정보가 문제가 있지만 해법은 정보 차단이 아니라 허위정보를 검증하려는 언론의 책임과 정부의 투명한 소통 행정, 수용자의 미디어교육 등이라고 지적했다. 가짜 뉴스의 법적 규제는 현행법에 증오·혐오 표현 방지 규정과 소셜미디어 등으로 인한 피해구제 규정을 보완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더 긴급한 일은 학계와 시민사회, 언론과 미디어플랫폼 등이 참여하는 가짜뉴스 판별을 위한 팩트체크 프로젝트와 미디어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정책 공론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의 추진일 것이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18-12-09 이용성

[월요논단]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왕따등 끊이지 않는 청소년 문제그들에게 친구란 어떤 존재일까입시 위주의 교육이 가져온 병폐범람하는 영상매체 영향도 심각사랑의 마음 절실한 요즈음이다학창시절을 되짚어 보면 그 시절 친구는 참 소중한 존재였다. 좋은 일이 있으면 친구를 떠올리며 친구와 함께 하고 싶었고,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해결해줄 아무 능력도 없었지만 함께 슬픔을 나눴다. 한번은 어떤 친구에게 부모님에게 받은 귀한 물건을 선물로 주었다. 그때 내 엄마는 나의 머리를 맨주먹으로 아주 세게 쥐어박았다. 눈물이 찔끔 나왔지만 마음은 왠지 슬프지 않았다. 그 정도는 참을 만했던 것 같다. 왜냐면 그때는 친구가 참 좋았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눌 것 같은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옆에 있었으니까. 그만큼 친구라는 존재는 중요했다. 그 시절은 그거면 되었다. 요즘은 청소년들 사이에서의 학교폭력, 집단폭행, 왕따, 자살 등 청소년 문제가 끊이지 않고 보도되고 있다. 최근, 인천에서 한 남학생이 또래 학생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뒤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학생은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를 부모로 둔 학생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일 목격자들의 증언과 사진이 공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거기에 가해 학생이 경찰서에 소환되었을 때 죽은 아이의 외투를 입고 출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여름 인천 모 중학교 여학생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투신자살의 이유를 살펴보면, 아는 오빠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그 사실을 같은 학교 남자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위로나 어떤 대책을 바라며 얘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남자친구는 오히려 그것을 빌미로 성폭행을 했다. 그 사실이 유포되면서 또 다른 남학생이 또 성폭행을 했다. 이러한 아픔을 안고 그 15세 여중생은 아파트에서 죽음을 택했다. 그 과정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친구란 어떤 존재인 건지 궁금해진다.이번에 죽음을 맞은 소년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그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러시아에서 힘들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어찌 되었든 살아보고자 노력한 그 애달픈 여인을 생각하면서 어머니로서의 내 경험이 떠올랐다. 내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2학년 올라갈 때 우리는 집안 사정으로 이사를 했다. 그 학교는 외부의 접근을 싫어하는 특별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1년이 지난 후 아들이 말했다. "엄마! 엄마는 내가 3개월 동안 학교 급식을 혼자 먹었는데, 그런 건 생각도 못 하셨죠?"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어요. 나는 혼자서 말 한마디 없이 3개월을 지냈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때서야 하루 종일 울었다. 부모의 마음은 그냥 아픈 것이었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나의 경험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청소년 문제를 보면 먼저 가해 학생들의 잘못을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지만, 한 명 한 명 개개인만의 문제로 보이지만은 않는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가져온 병폐이기도 할 테고, 범람하는 영상매체의 영향도 심각하다고 본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배워야 할 가정과 학교에서 부모와 교사들이 그들에게 보여준 것이 무엇이었을까 싶다. 사람이라면 어진 마음을 바탕으로 긍휼지심(矜恤之心)을 가짐과 동시에 타인에 대해 마땅히 지켜야 할 의(義)로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 피폐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가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 무거운 마음으로 한 권의 그림책을 소개한다. <친절한 행동/재클린 우드슨 글. E.B. 루이스 그림/김선희 옮김/나무상자>은 미국의 어떤 학교에 전학 온 아이를 친구로 받아들이지 않고, 놀리고 따돌려서 결국은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게 만드는 내용의 그림책이다. 그 아이가 전학을 간 후,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말한다. "우리가 친절을 베풀 때마다 세상을 조금씩 더 나아지게 한단다."라고. 전학 온 아이의 짝꿍이었던 이 책 주인공은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친절하지 못했던 행동을 후회하며 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제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면서 생각해본다. 나는 2018년 한 해 동안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다가간 적이 있는가? 그림책 속 항아리에 떨어지는 돌멩이가 만들던 잔물결처럼 누군가를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은 적이 있는가? 척박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사고들을 접하면서 작은 친절이라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베푸는 우리가 되면 좋지 않을까.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사랑의 마음이 절실한 요즈음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L.N. 톨스토이-/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8-12-02 최지혜

[월요논단]지금 한국 사회의 교육에 대하여 물어야 할 것

한유총, 비리근절방안 거부 '생떼'이에 호응하는 정치 세력도 있어중국, 박사학위 관련 교육부 항의대학 사회 요동치는데 묵인·방조중'대입 평가방식만 교체' 변화요원얼마 전 치른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어려웠다고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교육 전문가들의 진단과 대안이 제시되고 있는데, 다소 생뚱맞을 수 있겠으나,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시간대 여러 사건들을 겹쳐서 보게 된다. 그래야만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교육 문제의 실체가 비로소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먼저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의 사례를 보자. 감사 결과 사립유치원 운영자가 유치원비로 명품백, 성인용품 따위를 샀다는 등의 문제가 알려졌다. 자, 이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한유총은 비리 근절 및 투명성 확보 방안 도입을 거부하고 있다. 유치원은 사유재산이라는 게 근거다. 기실 이는 전혀 말이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가 자유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옹호하는 것은 맞지만, 타인 또는 사회 영역에 해악을 끼치는 경우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질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런 식의 생떼 쓰기는 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가관인 것은 이에 호응하는 만만찮은 정치 세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아교육법 개정안 통과에 딴죽 거는 자유한국당을 겨냥하여 홍문종, 나경원, 장제원 의원의 실명을 거론한 바 있다. 사학재단 집안 출신인 이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한유총의 주장하는 바가 일치하기에 옹호하는 게 아니냐는 힐난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두 가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첫째,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이들이 어째서 자유민주주의의 논리 근거에조차 무지할 수 있을까. 둘째, 어떤 명문대를 졸업했든 간에, 공익과 맞서는 사적인 이익을 국가 운영의 원리로 내세우는 이들을 과연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인터넷 실시간 검색에 '조선일보 손녀'로 올라있는 사건 또한 퍽 상징적이다. 국·영·수 교과목 과외뿐만 아니라, 글짓기와 성악, 싱크로나이즈, 발레 등 상류층 엘리트 코스 교육을 받고 있는 열 살 먹은 아이가 50대 후반의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쏟아냈다. "네 부모님이, 네 모든 식구들이 널 잘못 가르쳤네." "아저씨 해고야. 정말 미쳤나 봐." 흔히들 이를 어린아이의 갑질이란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내가 정작 주목하는 것은 '상류층 엘리트 코스 교육'이라는 표현이다. 대체 사람들은 교육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가르치지 못하면서도 엘리트 교육이란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대학 현실도 암담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 대사관으로부터 교육부가 받았던 항의를 보라. 충북대, 계명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등에서는 외국인 대상으로 한 학기 15주에서 16주 동안 진행해야 할 교과목들을 단 12일 만에 끝내고 박사학위를 내어줬는데, 이렇게 한국에서 받아온 박사학위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 중국 측의 항의 내용이었다. 교육이란 이름으로 학위 장사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은 이들 세 대학의 문제는 극단적인 사례인 까닭에 불거졌을 뿐, 대부분의 대학들이 이와 같은 흐름에 편승하는 양상이라는 데 있다. 한국어 소통이 용이치 않은 외국인 학생들이 왜 대학 강의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가.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대학에서는 왜 그와 같은 학생들 유치에 목을 매고 있는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 어디 학생들의 미래에 대한 고려가 있으며,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인 교육이 들어서 있는가. 대학의 숨통을 쥐고 있는 교육부는 이를 묵인·방조하고 있다. 시간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 사회는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는데, 교육부는 이에 대해서도 수수방관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폭탄 돌리기 하듯 다시 한 번 시행 유예를 선언할 수도 있겠다.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와 관련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껏 늘어놓은 물음들에 대해 답변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교육이 무엇인가를 묻지 않은 채 대학 입시의 방편으로 그저 학생들의 평가 방식만을 교체해 나간다면, 불수능의 반복은 피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의 변화는 요원할 터이기 때문이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8-11-25 홍기돈

[월요논단]촛불이 꺼진 뒤

우리 경제는 성장 부족이 아니라'구조적 불평등'이 더 큰 문제권력·이익 독점세력 특권 더욱강화이 구조 깨지 못하면 파행은 지속정권이 안 바꾸면 시민이 바꿔야 촛불이 꺼진 뒤 우리 사회는 다시금 어둠 속으로 급속히 빨려들고 있다. 촛불을 딛고 정권탈환에 성공한 이 정부는 미시적 정치공학의 논리에 빠져 그들의 정치권력이 자신의 힘으로 얻은 듯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마치 20년은 더 집권할 수 있을 듯이 말하지만, 그들이 결코 촛불을 들었던 민중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고 있음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은 다음 총선까지 자신의 정치적 독점이 이어지리라 생각하지만, 그야말로 커다란 착각이다. 수구 세력의 퇴행적 행보가 민주당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정치적 배경이 된다면 그야말로 너무도 한심하지 않은가. 여전한 수구 언론과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세력이 민주주의와 자유의 적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시민이 촛불을 든 것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불평등과 불공정을 해소하고, 지대를 독점한 이들의 배타적 권력을 보장하는 왜곡된 사회 구조를 바꾸라는 외침이었지만, 아무런 울림이 없는 것은 역시 이 정권도 그런 구조와 체제에서 이익을 얻기 때문이 아니란 말인가.담대하게 구조적 개혁에 집중해야 할 때, 그들은 권력의 허상에 빠져 자신이 지닌 특권에 만족하고 있다. 촛불을 든 시민은 분명히 이 시대가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경제 민주화와 공정을 원하는 이들에게 공허한 성장 담론으로 대답하는 정부, 입시지옥을 벗어나길 원하는 데 정시, 수시 비중 차이로 대답하는 교육부, 학문의 죽음을 초래하는 재정지원과 평가정책에 기본역량진단 사업으로 대답하는 정부, 사법 농단에 침묵하고 배타적 특권을 옹호하는 정부가 어떻게 시대정신을 읽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촛불의 동력을 다만 정치권력 체제 변화로만 받아들인 그들, 공공성을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는 정권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촛불이 꺼진 것은 협치 부족 때문이거나 수구적 야당의 훼방 때문이 아니다. 삼성 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한 기업 회계 부정과 아시아나 항공과 같은 재벌의 비인격적 행위에 정당하게 대체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 국회 때문인가. 진정 삶을 드높일 수 있는 개혁, 불공정하게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그 불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분열과 파행으로 이끌어갈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으면 경제성장이란 허상에 불과하다. 이 정부는 시대적 요구를 읽지 못하고 다만 이를 경제성장이란 말로 대신하려 한다. 설사 사람들이 경제적 불평등이 경제성장으로 해소되기를 기대할지언정, 불평등한 구조개혁 없는 성장은 단지 특권층의 이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책 집행자만이 모른단 말인가. 우리 경제는 성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이 더 큰 문제임을 익히 알지 않는가. 한국사회의 권력과 이익을 독점한 집단이 구조적으로 불평등을 양산하고 특권을 강화하고 있다. 이 구조를 해소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파행은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다.경제적 안정은 너무도 필요하고 가장 기본이 되는 자유의 터전임에는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 안정 없이 어떠한 자유도 어려움에 처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어떤 경제적 안정 위에서 자유가 가능할까. 어떤 공정함과 평등이, 자유와 인권이 얼마 정도의 경제적 풍요 위에서 지켜질 수 있을까. 지금처럼 특권계층이 저지르는 반사회적이며 공공성을 해치는 가운데 가능한 성장을 용납한다면 우리의 자유는 근본적으로 위험에 처해질 것임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그때 보편적 경제 성장도 불가능하게 된다. 지금은 구조개혁을 통해 총체적인 경제 질서를 새롭게 설정할 때이다. 그럼에도 다만 수치로서의 성장에만 매달려 있다. 촛불은 당면한 전쟁 위험은 껐지만 다른 아무것도 끄지 못했다. 그 사이 한유총과 같은 사익집단이 시나브로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꺼진 불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들이 벌리는 사익을 향한 좀비 행렬이 허용되는 것은 잘못된 경제성장의 욕망 때문이다. 지금 이 욕망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다시금 부활한 좀비세력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정권이 바꾸려 하지 않으면 시민이 바꿔야 한다. 우리가 공정과 평등을 말해야 한다. 그 길은 우리 욕망을 다시금 살펴보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8-11-18 신승환

[월요논단]우리의 입시제도는 공정한가

시험지 유출·교수 자녀 공동논문 등대학입시 불공정·위법 갈수록 진화도쿄대 부정·하버드대 亞계 차별…日·美서도 계속되는 '공정성 논쟁'관련자 재량폭 줄여 정의 회복해야11.15.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간절한 마음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사찰에도, 교회에도, 성당에도 수험생을 위한 부모님의 소원이 가득하다. 성공한 자녀교육을 좋은 대학입학으로 판단하는 우리의 현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하지만 그 진입을 위한 대학입학제도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고 있다. 이른바 숙명여고 사태는 현행 대학입시제도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보여 주고 있다. 시험문제 유출과 성적, 교수와 자녀의 공동논문, 각종 표창과 허위 실적 조작에 이르기까지 불공정과 위법의 사례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그것은 입시의 불공정을 넘어 우리사회의 근간을 훼손하는 우려할 만한 사건들이다.입시가 공정한가에 대한 논쟁은 일본과 미국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일본은 도쿄 의과대 입학부정 사건이 밝혀지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도쿄 의과대가 여학생이나 3수생과 4수생 등에게는 가점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불합격시켰다. 외국학교 출신자나 검정고시 출신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2년의 입시에서 대학의 부정한 점수 조작에 의해서 101명이 불합격했다. 문제는 81개의 일본 의과대학 중에 최소 6개 대학에서 불공정한 입학전형이 실시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하버드대가 입학 사정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입학 지원자들을 지속적으로 차별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A)'은 하버드대가 학업성적 이외의 지표인 주관적 개인평가에서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낮은 점수를 부여하여 입학 심사에서 아시아계를 차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아시아계는 개성평가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2013년의 경우 학업 성적만을 따지면 아시아계 미국인의 비율이 전체 입학자의 43%가 되어야 하지만 다른 평가 요소를 도입하여 19%로 떨어졌다는 것이다.일반적으로 학업성적과 시험점수가 우수한 것으로 알려진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성적 이외의 다른 지표들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이 일부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대학입학에서 소수집단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폐기시키겠다고 한 트럼프 정부의 개입이 알려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인종 다양성을 반영한 입시정책을 두고 미국 법무부와 하버드대·컬럼비아대 등이 충돌하고 있다. 물론 학업성적과 시험점수가 대학에서의 학문적 성공이나 개인의 사회적 성공을 예견하는 최고의 지표인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입학자에 대한 전형은 대학의 판단에 맡겨져 있으므로 대학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생 선발에 대한 재량이 있다고 해도 그 방법은 공정하고 타당해야 한다. 입시제도의 기본인 성적과 활동사항들이 조작되고 있는데도 그에 바탕을 둔 대학입시는 계속되고 있다. 묻고 있다. 우리의 입시는 과연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인가. 왜 학생과 학부모들이 분노하는가. 각종 조작과 과대 실적 등에 기초한 수시제도가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박탈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최근 불거진 입시제도의 문제점들에 대해 각 대학과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분노가 들끓는데도 특정학교의 일탈로만 보고 있다. 어느 대학도 숙명여고 사태 등을 입학정책에 어떻게 반영하여, 이것을 근절시킬 것인가를 밝힌 것이 없다.대학입시에서 공정성과 정의를 회복하는 것은 입시 관련자의 재량의 폭을 줄이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주장은 수험생에 대한 예단이나 편견을 제거하고, 개인의 능력을 측정하는데 적합하다는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1회의 수능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혹하다면 학년별 혹은 연 2~3회로 수능을 확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학은 사회적 책무와 대학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공정한 입시와 경쟁을 보장하는 새로운 입학 제도를 제시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도 입시에서 자행되는 각종 편법과 위법을 법적으로 엄중히 제재하고 처벌해야 한다. 입학제도는 사회의 공정성과 정의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때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11-11 김민배

[월요논단]정부·여당의 지역신문지원 확대를 촉구한다

디지털 콘텐츠 유통혁신 지원할발전기금 규모·사업 모두 부족지역신문 역할은 지역의제 설정등사회의 공론장으로 확대되고 있어많은 관심 가져주길 바란다11월 2일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주최하는 지역신문 콘퍼런스가 '지역신문, 새로운 시장을 향하여'란 주제로 열렸다. 지역신문의 '새로운 시장'이라니, 지역신문 콘퍼런스 자료집을 살펴봤다. 그러나 '새로운 시장'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독자 참여형 기사나 지역주간신문 중심으로 진행된 미디어융합 이외에는 눈에 띄는 내용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새로운 지역신문시장 창출이란 여전히 남아 있다. 지역신문을 읽는 사람을 만나보기 어려울 정도로 지역신문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지역신문의 위기는 지역의 위기가 함께 가기 마련이겠지만. 지역신문의 존재가 지역의 위기를 해소하는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역신문의 공적인 지원이 마련되곤 한다. 경기·인천 지역일간신문은 다른 지역일간지와 비교하면 인구나 경제 여건 등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갖지만 전국 일간지를 포함하는 신문시장의 치열한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지역신문의 최대 위기는 종이신문 전반이 직면한 미디어환경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신문이 콘텐츠 경쟁력을 갖추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지역신문이 기획기사 등 뉴스 콘텐츠의 질을 제고한다고 하자. 뉴스 소비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네이버 중심 뉴스유통환경 등을 감안하면 지역신문의 뉴스 콘텐츠 경쟁력이 온전히 발휘될 수는 없다.신문콘텐츠의 유통을 신문 배달과 같은 전통적인 시각으로 보는 시대는 흘러갔다. 지역신문의 콘텐츠가 온라인에 유통되어야 매체 영향력이 확대되고 광고 수입도 증대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역신문이 발굴해낸 특종들이 네이버를 거치고 전국일간지와 방송이 받으면서 원작자로서 가치가 사라지는 장면을 지켜보는 경우가 드물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얼마 전 지역 주요 일간지들이 공동으로 칼럼을 연재 한 바 있다. 지역언론 기사를 네이버 등 포털이 의무적으로 게재하도록 하는 포털과 지역언론 상생 법안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역신문 경쟁력 강화에 지역신문 콘텐츠 유통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지역언론 기사 의무 게재 관련 법안을 야당 의원들만 발의했다. 지역신문 지원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지역신문을 지난 2005년부터 지원하고 있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규모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지역신문발전기금은 2005년 250억원에서 2018년 80억원으로 3분의 2나 축소됐다고 한다. 2019년도 정부 예산안에서는 10억 가까이 줄어 71억5천만원만 편성된다고 한다.지역신문발전기금은 감소하고 있는데, 지원대상사는 늘어나고 있다. 선택과 집중으로 우수한 지역신문만 지원한다는 취지는 어디 갔는지? 대통령 공약에는 '지역언론 육성을 위해 지역신문 지원 확대 추진'이 포함되어 있었다.2017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역신문발전 3개년 계획(2017~2019)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서 비전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융합·혁신의 미디어서비스(지역 언론의 다양화·지역문화와 혁신 선도·지역사회와 상생발전'이고 목표는 '역동적 혁신을 통한 디지털 부가가치 창출(우선지원대상사의 디지털 부문 매출 10% 성장)'이었다. 비전과 목표가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부가가치 창출로 설정되어 있다. 예산 탓인지, 역량 부족인지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지원사업 중 디지털 부가가치 창출이란 목적에 해당되는 사업은 '기사 자료 디지털화 지원사업' 이외에는 없었다. 지역신문 디지털 콘텐츠의 유통 혁신을 지원할 지역신문발전기금의 규모나 사업이 모두 부족하다. 지역신문발전 3개년 계획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지역신문은 지역 의제 설정 등 지역사회의 공론장으로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다시 한번 정부와 여당의 지역신문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18-11-04 이용성

[월요논단]축제의 계절

평소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설렘과 즐거움 안겨주는 행사일회성 아닌 지속 연구·발전시켜 '그 책 축제는 가볼만하다' 라는좋은 평가가 나와야 할 것이다매년 9월과 10월이 되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축제들이 열린다. 지역 특산물 축제와 가을의 풍광을 만끽하기 위한 축제들이 대부분인데, 최근 몇 년 사이 각 지자체들이 책과 도서관에 관심을 기울이며 전국 곳곳에서 책 관련 축제들이 열리고 있다. 무엇보다 책을 주제로 하여 축제가 기획된다는 것은 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다.그런데, 전국에서 열리는 책 축제들을 보면 특색 있는 기획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곳에서 출판사 부스들을 줄지어 세워놓고 단순히 책을 전시·판매하는 것에 치중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지역의 책 축제를 그대로 들어다 다른 곳에 옮겨 놓는다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기서 거기인 비슷한 행사들이 많다. 이 와중에 출판사라도 재미를 본다면 다행이겠지만,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아 고스란히 다시 가져온다는 이야기도 많이 전해 듣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 축제를 즐기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축제인지 다시 한 번 되짚어보아야 하지 않을까?책 축제에 대해 아쉬움을 갖다보면 부산 국제영화제 같은 영화 관련 축제들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영화제가 있는데, 보통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특별한 장르의 영화를 수집해서 상영한다. 그리고 영화 상영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물론 책을 영화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긴 어렵지만, 영화제의 중심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화 그 자체가 주인이듯 책 축제 또한 책이 주인이 되어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더 이상 여러 출판사를 불러 모아 책을 전시하거나 책은 빠진 채 체험 행사들로 채워진 행사가 아닌, 지역문화와 어울리고 각자의 특색을 지닌 깊이 있는 책 축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몇년 전 프랑스에 살면서 책에 관련된 행사에 참석하는 기회가 있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의 탄생기념식을 하면서 그 작가의 삶에 대한 전시와 함께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생각하면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조용하면서 깊이 있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어가 부족하여 이해도가 낮았음에도 그 작가의 작품세계를 느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책 도시 베슈렐(Becherel)의 책 축제 또한 요란한 행사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책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책을 만져보고 바라보는 신비로움은 특별한 기억을 심어주었다. 책 만드는 과정을 직접 해보는 체험은 조용하고 진지하고 깊이 몰입되면서 설렘을 듬뿍 안겨주었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경험한 책 축제에는 책의 중요한 부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그림책 '중요한 사실'(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 최재은 그림.최재숙 옮김/보림)에서 그림책 작가는 본질적인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한 장면, 한 장면을 말해주고 있다. 눈은 차갑고, 가볍고, 하늘에서 살포시 내려오고,눈은 환하게 빛나고, 조그만 별이나 수정처럼 생겼어.눈은 언제나 차가워. 그리고 눈은 녹아.하지만 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눈이 하얗다는 거야.'눈이 하얗다'는 사실처럼 책 축제에서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조용하고 쾌적한 공간을 마련하여 한 명 한 명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만들고, 그 속에서 책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책과의 만남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에 책 행사의 열쇠가 있지 않을까.축제라는 것은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설렘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래서 우리는 축제를 기다렸다가 참여한다. 그런데 그 축제들이 일회성 행사로 행사를 위한 행사에 그치지 말고 '왜, 이 축제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물음과 답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조금씩 발전시켜서 축제 자체가 역사를 갖게 되어 '그 책 축제는 가볼만 하다'는 평가가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8-10-28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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