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월요논단]다시 찾아온 오월

39주년 맞은 5·18 광주민주화운동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지난사건들 다르게 기억되곤 하지만근본적 사실은 물처럼 변하지 않아치유·화해·용서로 희망의 5월 되길같은 시간을 살아왔음에도 우리는 저마다 다른 기억을 가지게 된다. 오월은 유난히도 기억할 것이 많은 달이다. 가정의 달로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기념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가족모임과 감사를 전하는 자리로 채워진다. 그런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픈 기억들로 가득한 시간이다. 지난 토요일,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어느덧 39회째를 맞이했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아픈 사건이지만, 우리는 그 시간을 지울 수 없기에 더욱더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는 1980년 5월 18일에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을 '광주사태'라 기록하고 있다. 마치 지록위마(指鹿爲馬) 격이다. 사슴을 말이라 주장하고 스스로 영웅시한다. 중국 진나라 때 환관 조고가 지록위마를 계기로 그의 권력을 확고히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영원할 수는 없었다. 이처럼 거짓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최근 김용장 전 주한미군 정보요원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1980년 5월 21일 낮 12시를 전후로 K57(광주 제1전투비행단)을 방문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숨 가빴던 당시 오월의 기록이 김현경(예비역 육군중령)씨로부터 세상으로 나왔다. 당시 20살이었던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 김현경 학생은 시민군으로 도청에서의 열흘 동안의 체험을 기록한 대학노트를 공개했다. 잘못된 기록은 지우개로 지우고 진실된 기록들은 지워지지 않는 연필로 다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오월에는 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억한다. 평생을 불굴의 의지로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투쟁 같은 삶을 살다 2009년 5월 23일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서거 10주기를 맞이하는 우리는 정치적 측면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서 다른 시점으로 다가간 기록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영화 '물의 기억'(진재운 감독)이다.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온 고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어릴 때 개구리 잡고 가재 잡던 마을을 복원시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실천했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거짓말처럼 생태계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물은 모든 걸 기억한다. 그가 꿈꾸었던 '생명농법'을 중심으로 물이 주는 생명력과 순화, 자연의 기적을 동물과 식물의 섬세한 움직임으로 담아냈다고 진재운 감독은 말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생각해보게 하는 다른 시점의 기록이다. 스페인의 비교종교철학교수이자 신부였던 라이몬 파니카(Raimon Panikkar. 1918~2010)는 물을 모든 것의 기원으로 보면서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물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물이 비록 오염되어 변형된 것 같아 보일지라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봉하마을 생태농법에서 10년 사이 다시 살아난 물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물방울이 바다에 떨어지면(라이몬 파니카 원작, 엔스 키스텔 브랑코 지음/권혁주 옮김/한울림어림)'그림책에서 라이몬 파니카는 말한다. '물은 살아 있어요. 끊임없이 움직이고 모습을 바꾸어도 물은 언제나 물이에요'.우리들의 기억에 존재했던 지나온 사건들이 사실과 다르게 기억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본연의 사실은 물처럼 변하지 않는다. 물론 정확한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능사는 아니다. 진실된 규명으로 서로 용서와 화해의 마음이 물이 다시 살아나듯이 상생(相生)해야 할 것이다. 치유, 화해, 용서의 꽃을 피워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아야 하겠다.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고 또다시 5월이 찾아온다. 다시 찾아오는 5월은 아픔의 오월이 아니라 희망의 오월이 되길 바란다./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9-05-19 최지혜

[월요논단]경기도 게임, 내일은 맑음

11회 맞은 '플레이엑스포축제' 성황道, 中企·e스포츠·마이스산업 연계4년간 게임산업 육성 533억원 투자국내·외 민간파트너들과 협업 확대기술·시장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나흘간의 게임 축제가 막을 내렸다. 올해로 11회를 맞이한 PlayX4(이하 플레이엑스포)는 지난 2009년 경기도에서 시작하여 10년간 50만9천593명이 다녀갔고 국내외 3천570개사가 참가한 종합 게임행사로 거듭났다. 플레이엑스포는 인디게임과 상업게임을 동시에 체험하고, 게임 산업 종사자와 게임유저가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게임 산업의 발전을 견인하는 중요한 연중행사로 자리매김하였다. 매년 플레이엑스포라는 종합 게임쇼를 치러오면서 게임의 오늘을 보여줌과 동시에 게임의 미래도 함께 그려보게 된다. 연초부터 구글, 애플, 스팀 등 글로벌 플랫폼 업체들은 앞다투어 신기술 기반의 게임 서비스를 선보였다. 특히 금년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 'GDC 2019'(Game Developers Conference 2019)를 통해서 미래의 게임은 어떤 모습일지 확인할 수 있었다. GDC 2019에서 가장 주목받은 주제는 최근 대두되고 있는 5G 기술이다. 5G는 클라우드 서비스와 결합하여, 특정 공간에서만 즐길 수 있던 게임을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도록 시공간의 확장성을 부여한 것이다. 실내에서 PC와 콘솔로만 즐기던 고사양 게임을 다양한 휴대용 플랫폼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게임의 토대가 된 것이다. AR(증강현실) 기술을 게임으로 구현한 '포켓몬GO'의 세계적인 성공은 기술을 바탕으로 현실과 게임이 융합하면 어떤 모습이 될지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이다. AI(인공지능) 기술 또한, 게임 내 가상 캐릭터에 실시간 반응성을 부여함으로써 게임과 게임유저가 일체화되어 게임을 플레이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과거 90년대 국내 게임들은 게이머가 집에서 혼자 컴퓨터를 상대로 즐기는 게임에서 시작되었다. 20년이 지난 오늘의 게임은 언제 어디서든 휴대폰으로 수십 명이 동시에 접속해 가상공간에서 실시간으로 어울리는 게임들이다. 게임을 즐기는 공간과 방식, 상대하는 대상까지, 과거의 게임과 현재의 게임은 같은 듯 보이지만 전혀 다른 환경에서 플랫폼과 플레이 방식을 가지고 새로운 놀이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기술적 진화를 바탕으로 미래의 게임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과 여가문화를 바꾸고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인지 기다려지게 만드는 대목이다. 경기도는 지난 30일 '경기도 게임 산업 육성 추진 계획'을 발표하였다. 특히 중소게임기업 집중지원과 e스포츠육성, 마이스산업과 연계한 산업생태계 활성화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2022년까지 4년 동안 게임 산업 육성을 위해 533억원을 투자한다. 해당 정책을 통해 경기도에서 개발되는 게임의 다양성을 확대하고, 새로운 기술과 만난 게임이 미래 산업의 동력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여기에 국내외 높은 관심이 산업 성장세와 맞물려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e스포츠 산업의 육성 정책에도 가속화를 붙일 전망이다. 경기도는 그동안 문화부와 함께 지역 게임 산업 육성을 추진하며 차세대 게임 산업의 생태계를 일구어 왔다. VR(가상현실)/AR뿐 아니라 웹툰IP와의 융합, 기술 기반의 콘텐츠 제작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게임아카데미 '오픈세미나', '글로벌 콘퍼런스'를 통해 국내외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소개하고 융합을 지원함으로써 게임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앞장서고 있다. 또한 플레이엑스포를 통해 VR/AR 게임, 체감형 시뮬레이터, 5G기반 게임을 전시하는 등 차세대 게임 콘텐츠 발굴에도 노력을 하고 있다.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결과적으로 기술과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지원 사업이 필요할 것이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ETRI, 네이버웹툰, 라인, 카카오 등 국내외 민간 파트너들과의 협업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게임 산업의 미래를 준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벌써 내년 게임 행사를 위해 다음을 고민하고 있을 직원들의 노고를 격려하며 경기도 게임 산업의 내일을 응원한다./오창희 경기콘텐츠진흥원장오창희 경기콘텐츠진흥원장

2019-05-12 오창희

[월요논단]인간의 도리와 귀환한 동물국회

문의장 '성추행 주장' 임의원설령 법정에서 승리한다 한들국민은 '별개의 정치심판' 할 것인간과 동물의 변별성은 품위'수신'이야말로 유력한 방편어릴 적 동네 어른께 3여년 동안 붓글씨를 배웠다. 처음에는 돼지털 붓으로 시작하였으나, 시간이 지나 황모(黃毛) 붓·노루털 붓으로 바꾸었던 기억이 난다. 일정 수준에 오르자 글씨 연습은 한글에서 한자로 옮겨갔다. 이후 유독 반복했던 글자가 '삼강오륜(三綱五倫)'과 관련된 덕목 그리고 '인의예지(仁義禮智) 효제충신(孝悌忠信)'이었다. 선생님께서 쓰라고 하셔서 썼을 뿐, 그 의미를 이해했던 것은 아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덕목이 있고, 따라야 할 도리가 있다." 선생님께서도 다만 그 정도로 설명하셨던 듯싶다.삼강오륜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내 나이 이립(而立) 즈음, 최봉영의 '주체와 욕망'을 읽으면서였다. 나를 존재케 한 분들이 부모이니, 부모의 은혜를 잊어서는 아니 된다. 선비에게 직업 세계로의 진입이란 출사인바, 왕을 정점으로 하는 그 세계에서는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남자와 여자는 같지 아니하므로, 그 차이를 알아 서로 존중해야 한다. 예컨대 부위자강(父爲子綱),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이란 그러한 관계들의 교차 가운데서 자신의 자리를 마련해 나가라는 지침이었던 것이다.근대 체제의 작동 방식과 비교했을 때 이는 실로 주목할 만한 내용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우선 자유로운 개인을 전제로 한다. 홀로 떨어져 존재한다면 완전한 자유를 향유할 수 있을 터이나, 실상 그는 사회 내에서 다른 개인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사회계약에 따라 자유가 제한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떤 개인에게 허용된 무한한 자유는 필연코 다른 누군가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개인은 계약 사항, 다시 말해 법의 울타리만 넘어서지 않는다면 그 안에서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반면 우리네 선인들은 자유로운 개인에 앞서서 마땅히 따라야 할 도리를 강조하였다. 도리가 부각되었던 까닭은 이 세계를 관계들의 총합인 통체(統體)로 전제하였기 때문이다.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을진대, 어찌 그 관계를 전제치 않는 자유로운 개인을 상정할 수 있단 말인가. 개인의 자리를 규정하는 관계가 그 하나로 한정될 리 만무하다. 이로써 개인은 통체의 부분자(部分子)로 자리매김하게 되며, 부분자는 선재하는 도리의 체득을 위하여 힘써야 했다. 수신 주체인 개인이 근대의 주체인 개인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요즘 국회에서 생산하는 뉴스를 접하노라면, 최소한의 수신마저 증발해 버린 정치권의 민낯을 확인하게 된다. 민주주의가 민의의 반영으로부터 성립함은 상식에 속한다. 국회의원 선출 방식이 승자독식 구조에 갇혀 있으니, 다양한 민의를 보다 정확하게 반영하려는 변화는 당연히 모색되어야 한다. 각 정당의 손익계산이야 피할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이러한 대전제는 마땅히 수용해야 하는 것 아닐까. 자유한국당은 그동안 이와 관련된 논의에 딴죽 걸면서 밖으로만 빙빙 내 돌았다. 지금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는 데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은 패스트트랙 적용이 위법하다고 사생결단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적법성 여부야 따져볼 수 있겠으나, 볼썽사나운 동물국회의 귀환은 동의하기 어렵다. 제 눈의 들보는 못 본다고, 폭력성을 앞세운 동물국회가 준법에 근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의 문희상 국회의장에 대한 성추행 고소는 동물국회를 막장으로 이끌고 있다. 영상을 보면, 그녀는 끌어안듯이 두 팔을 활짝 펼치고서 "나 건들면 성추행"이라며 국회의장을 몰아붙이던 상황이다. 우르르 몰려들어 국회의장을 겁박하던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여성의원들이 나서라" 소리가 흐르기도 했다. 국회의장이 페이스에 말려들고 말았으니, 일견 그네들이 이긴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지켜보는 국민들은 임 의원이 목소리 높여 피력하는 "감당할 수 없는 수치심과 모멸감"의 진정성을 어찌 생각할까. 판단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이 한다. 설령 법정에서 임 의원이 승리한다고 한들 국민들은 그와 별개로 정치적 심판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선인들은 왜 하필이면 스스로를 수신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려고 했을까. 한낱 동물에 불과한 인간이 여타 동물과 변별되는 품위를 획득하기 위해서이다. 수신이야말로 인간의 품위를 확보하는 가장 유력한 방편일 수 있다. 동물국회를 보면서 내린 나의 결론이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9-04-28 홍기돈

[월요논단]지금 여기서!

위기 의식·시대정신 못 읽는 정부정략적 이익 매몰돼 역행하기 때문시민들 새 정치·사회체제 원하기에정의·평화·공공성 '재개혁' 필요삶의 원칙·행동 우리가 결정할 때대통령은 해외순방 중 이미선 판사를 헌법재판관에 임명했다. 그 이전 국회청문회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몇몇 장관들은 그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위법한 사안이 없었기에 임명 자체가 불법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왜 야당은 장외투쟁까지 감행한 것일까. 이미 3년 전 새로운 정치와 체제 개혁을 요구한 시민들은 이들을 심판했으며, 이제는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어야 할 그들이 오히려 갈수록 기세를 높여가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벌써 3명 중 1명의 국민이 이미 사라졌어야 할 수구 반동 세력을 지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정권은 아무런 위기의식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최소한의 정치적 책임도 지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민들이 원하는 정치를 배반하고 있다. 역사와 정치는 퇴행한다.원인은 이 정권이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며, 다만 그들의 정략적 이익에 매몰되어 역행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저하는 동안 시민들은 공정과 공의, 공공성의 회복을 기다렸지만 세월은 거꾸로 가고 있다. 몇 번에 걸쳐 경고하고, 촉구했지만 다만 정권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현상이 그 결과다. 여전히 정권창출 따위의 정략적 발언만이 난무한다. 고위공직자 청문회가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불법은 없었지만, 공평과 공정도 없었다. 그 행동은 우리가 원한 새로운 정치와는 전혀 다르다. 전 청와대 대변인은 아내가 해서 나는 모른다고 말한다. 신임 헌법재판관은 남편이 해서 모른다고 한다. 월급을 받고 사는 나는 통장 채로 모든 재정을 아내에게 맡기고 있다.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재촉받고 책임져야 하는 데서 내가 면제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사회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그분들은 남편과 아내가 다른 살림을 사는 듯하다. 시민이 원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정치며, 그를 통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촛불로 외치고 집회를 통해 요구하고 선거로 심판해도 불공정한 이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체제를 바꾸라는 데 얼굴만 단죄한다. 그 자리에 그들이 대신 자리할 뿐이다. 시민을 뺀 그들만 "우리"가 된다. 개혁을 말하는 데 정권창출로 대답한다. "가만히 있으라!" 5년이 지났음에도 세월호는 계속된다. "각자 도생!" IMF 구제금융 사태의 교훈이 10년이 넘도록 여전히 삶의 지혜로 작동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장자연, 김학의 사건, 버닝썬 사건은 꼬리 자르기에 그친다. 그동안 시민들이 학습한 결과다. 법조계는 지금처럼 유지된다. 주류 언론은 여전히 그런 수준일 테고, 반종교적 종교와 반교육적 입시, 반지성적 대학도 계속된다. 재벌이 사회적 기업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편한 진실은 계속된다. 얼굴은 바뀌지만 체제는 지속된다. 이익의 독점도 여전하다. 한국당이 불공정하고 염치없게도 노골적으로 자신의 특권을 지킨다면, 민주당과 이 정권은 덜 불공정하게, 덜 불의하게 그들의 이해관계에 골몰한다. 이들은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다. 낮의 정치는 법을 말하고 밤의 정치는 이익을 마신다. 시민이 원하는 것은 공정과 공평, 공의로움이다. 시민은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사회 체제를 바란다. 우리는 그들의 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부를 원한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촛불을 들어도, 선거를 해도 바뀌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다시금 개혁과 변혁이 필요하다. 지금은 잊힌 말들, 정의와 평화와 공공성을 말해야 한다. 그들이 빼앗은 올바름과 부끄러움을, 사람다움을 되찾아야 한다. 그들이 하지 않으면 우리가 해야 한다. 이 지옥을 만드는데 우리조차 거들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돌아서야 한다. 경제적 안정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곧 불의하고 불공정한 부가 아님을 말해야 한다. 경제만 보면 사람과 삶은 사라진다. 인간다운 삶, 행복한 일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들이 아닌 우리가 삶의 주체기에 삶의 원칙과 행동을 우리가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지금 여기서! 그 길이 사람다운 삶, 인간다움을 생각하고 배우고 행동하는 데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9-04-21 신승환

[월요논단]WTO 역전승과 향후 과제

후쿠시마 인근 농수산물 수입 금지일본, 한국만 대상으로 WTO 제소최종심 승소했지만 배울 점 있어국제기구 인재육성 정책 추진 등양국간 문제 대응전략 재점검 기회일본에 역전승. 우선 우리 식탁과 검역주권을 지켰다는 안도감이 든다. 한국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자 후쿠시마 인근 농수산물 수입을 금지하였다. 2013년 9월에는 후쿠시마를 포함한 주변 8개 현 28개 어종의 수산물에 수입금지 특별조치를 했다. 그러자 일본은 2015년 5월 한국만을 대상으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관련해 일본산 식품의 수입을 규제하는 국가와 지역은 54개에 달했다. 그리고 알려진 대로 1심에서는 일본이 그리고 최종심인 2심에서는 한국이 승리하였다. WTO 상소기구는 한국의 수입금지 조치가 자의적 차별에 해당하지 않으며 부당한 무역 제한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막판 '역전패'를 당한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 일본 NHK와 신문 그리고 통신들은 관련 내용을 속보로 전했다. 일본은 WTO에서 승소하면 이를 계기로 23개 다른 나라와 규제 철폐를 위한 협상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었다. 사실 일본은 원자로와 방사능의 후유증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안전한 일본을 홍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이 패소에 당황하는 것은 그러한 전략에 큰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국제적 위상이 한국보다 높다고 생각했던 자신감에도 상처를 입었다. 그동안 일본은 세계적인 기구나 단체들에 정기적으로 인재를 파견하거나 주요 직책에 선출되도록 지원해 왔다. 국제적 기관에서 그 위상을 차지하기 위한 일본의 전략은 매우 체계적이고 지속적이다. 국가적 차원의 중장기 목표도 있다. 그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일본은 분쟁의 국제화를 시도한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독도에 대한 도발과 영토의 분쟁화도 국제적 기구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점에 기초한 전략이다. WTO가 일본 언론이나 정부의 예측과 달리 한국의 손을 들어주자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승소가 바로 식탁의 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최근 발표에 의하면 2010년에 비해 작년 일본산 수산물 수입량은 3만4천904t으로 58.5% 감소하였다. 하지만 일본산 가오리는 1천509t으로 250배, 방어는 1천570t으로 100배 이상 수입이 급증하였다. 최근 5년간 적발한 일본산 수산물의 원산지 표시 위반행위는 349건이다. 러시아산으로 거짓표기하거나 표시를 하지 않는 방식이다. 일본에게 승소를 했다는 것과 국민의 건강한 식탁을 지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이 WTO에서는 승소를 했지만 일본이 구사한 이번 전략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 일본처럼 한국도 국제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각종 국제기구나 단체 등에 인재를 키우는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각종 분쟁에 대비하여 한국의 전문가들이 국제기구 등에 근무하도록 해야 한다. 일본은 최신 기술의 표준화를 위해 관련 기관을 선점하는 정책을 광범위하게 추진하고 있다. 기술의 표준화가 산업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다른 한편 일본처럼 국제분쟁에 대비해 선공을 하는 전략도 추진해야 한다. 2028년 종료예정인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협정이 그것이다. 1978년 발효 이후 2010년까지는 공동개발과 낮은 단계의 공동연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한국석유공사의 조광권이 2017년에 종료한 후 일본은 공동개발에 나서지 않고 있다.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추후 해양경계협정에서 일본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협정에 따른 공동개발을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대륙붕 공동개발협정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과 함께 조광권자 지정절차를 진행하면서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을 적시할 필요가 있다. 2025년부터 일본은 종료 통고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일간 해저자원의 공동개발이 목표이지만 협정이 2028년도 이후에도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일방탐사도 고려해야 한다. 향후 국제중재재판을 통해 협정위반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들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역전승을 했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 한·일간 헝클어진 문제들을 대응하는 각종 정책과 전략들을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04-14 김민배

[월요논단]지역언론·포털 상생관계 구축, 더 기다릴 수 없다

페이스북, '뉴스 사막화' 개선위해지역뉴스 우선 노출 알고리즘 변경다양한 지원 정책 지속 추진 '주목'네이버 등 지방언론 전용공간 마련협력관계 만드는 계기 되길 바란다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 4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네이버의 모바일 뉴스 서비스에서 지역신문을 구독할 수 없는 상황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네이버 등 포털이 지역 민주주의와 여론 다양성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관련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포털의 인터넷 홈페이지 및 모바일 첫 화면에 지역언론 기사 게재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 3월 16일에는 전국 주요 지역일간지 발행인으로 구성된 한국지방신문협회가 "지역언론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다. 네이버의 모바일 뉴스페이지 개편과 뉴스검색 알고리즘 개편으로 지역언론 기사는 노출이 힘들어졌다. 우리나라 뉴스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네이버의 지역언론 배제는 디지털 공론장에서 지역언론 추방과 다름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역언론이 거대 뉴스유통사업자인 네이버를 집중 성토하고 있는 가운데, 소셜미디어사업자이자 뉴스유통사업자로 볼 수 있는 페이스북은 지역언론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미국도 많은 지역신문이 폐간 위기에 직면해 있고 지역신문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뉴스사막'이 확산되고 있다. 페이스북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1월 지역뉴스가 우선 노출되도록 알고리즘을 변경했다고 한다. 지역공동체 관련 뉴스에 노출 우선순위를 준 것이다. 포털에서 지역신문 기사가 제대로 노출되길 원하는 우리 지역언론에게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네이버의 알고리즘 변경으로 지역신문의 단독보도와 1보 기사가 포털의 검색 첫 화면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페이스북은 이용자의 50%가 플랫폼 내에서 더 많은 지역뉴스와 정보를 원한다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한다. 페이스북은 미디어 블로그를 통해 2017년 2월부터 성공적인 지역뉴스 사례를 '스포트라이트 온 로컬' 시리즈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또한 '오늘의 지역 소식' 뉴스 피드를 통해 지역뉴스와 정보를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기능은 2018년 11월 미국과 호주 내 400개 도시로 확대됐다. 네이버 등 포털에서 지역신문을 위한 공간을 요구해온 지역언론에게 부러운 소식이다. 페이스북은 지역뉴스를 위한 재정 지원도 최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18년에는 지역신문의 디지털 구독 확대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도 했다. 지난 1월 15일 페이스북 미국 본사는 3억 달러를 출연하여 지역 뉴스를 지원하는 공익단체의 서비스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등 지역뉴스의 파트너십과 구독모델 구축에 기여하겠다고 발표했다. 페이스북은 '지역언론사가 성장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기회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페이스북은 지난해 12월 영국에서 지역언론 지원을 위한 600만 달러 지원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기금으로 지역언론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 80여 명을 채용하여 2년간 지역언론사에 배치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지원방식은 우리 지역언론에게도 효과적일 것이다. 거대 플랫폼기업에 대한 비판여론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플랫폼기업이자 뉴스 유통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으로서 언론에 대한 지원은 공익적 책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네이버 등 포털이 지역언론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기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관련 법 개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네이버가 지역언론과 협력체제 구축에 의지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2019년에는 네이버 등 포털과 지역언론이 상생시스템을 구축되는 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네이버 등 포털이 뉴스 메인 페이지에 지역뉴스 전용 공간을 마련하고 더 나아가 지역언론의 지속적인 생존을 위한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일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길 바란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19-04-07 이용성

[월요논단]환경을 고려한 재생에너지 정책

고수익 올리려는 '태양광발전사업'자연·생활 등 환경영향평가 없이무분별 시설 설치 많은 문제 발생미래위해 친환경에너지 필요하지만서두르지 말고 철저하게 조사해야최근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정부에서는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에너지전환을 적극 추진 중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움직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기 위해 기존 정부와 기업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서 일반 주민 참여형 에너지 정책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개인이 소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해 직접 에너지를 생산해서 사용하고 남는 전력을 다시 판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아주 작게는 도시의 아파트 베란다에 작은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자체의 보조금을 통해 저렴하게 설치가 가능하면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를 직접 생산해내면서 화석 에너지나 원자력 에너지의 비중을 줄여갈 수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최근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마을 한가운데 4천950㎡ 가까이의 고구마밭에 태양광발전 시설이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들리면서 온 마을이 시끄러워졌다. 마을 사람들 불만은 다각도로 터져 나왔다. '오랫동안 농사일을 해오던 우리들의 삶의 자리가 태양광 패널로 가득 채워져 자연 경관을 해치는 게 싫다', '땅이 좋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와 집 짓고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집 앞에 태양광 발전 사업이라니 날벼락 맞은 것 같다', '검증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전자파나 유해물질로 마을이 오염되면 어떻게 하냐' 등등. 이것은 우리 마을만의 문제가 아니라 태양광발전 사업으로 고수익을 창출하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여러 마을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정부에서 권장하고 있고, 친환경 재생에너지라 불리는 태양광 발전 사업이 마을에 분란을 만들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뭘까? 우선은, 정책 시행을 위한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시행규칙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무분별한 태양광 발전 시설 설치에 앞서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가 실시되고 있지 않다. 우리 마을에 태양광 발전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부지는 농림지역으로 농가와 주택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주택에서 불과 50m도 떨어져 있지 않고 고구마 등 밭농사를 짓는 밭과도 바로 붙어 있다. 사업의 시행으로 영향을 받게 될 자연환경, 생활환경, 사회 및 경제 환경 등의 전반적인 사전 평가가 필요하다. 대기, 물, 지반 반사광, 생태계, 경관, 폐기물 등 구체적인 항목까지 고려되어야 하겠다. 처음 태양광 발전 사업을 시작할 때는 건물 옥상, 옥외 주차장 지붕 등의 유휴 공간을 이용해서 설치했었다. 그런데 태양광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산림을 훼손하며 시설을 설치하여 산사태가 일어나기도 하고 농사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 농사를 그만두고 버섯 재배사를 위장해 허가를 받기도 한다.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얻기 위해 자연이 훼손되고 마을 공동체가 파괴된다면 그것이 진정 친환경 에너지라고 할 수 있을까? 쉽게 빨리, 무분별하게 가는 길이 과연 좋을까? (지름길 /도널드 크루스 지음/이주희 옮김/논장)라는 그림책이 그 답을 말하고 있다. 어두워지는 시각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가기 위해 넓고 안전한 길로 가지 않고 좁고 위험한 기찻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일반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은 아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큰길의 건널목을 건너지 않고 기찻길을 따라가다가 예상치 못한 화물기차를 만나게 되고 다행히 위험으로부터는 긴박하게 피해서 무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주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두 번 다시 지름길로 가지 않았어요'라고 아이들은 독백으로 말하고 있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의 전환'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할지라도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그것이 과연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조금 늦게 가더라도, 조금 덜 이루더라도 철저한 조사와 환경평가를 통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9-03-31 최지혜

[월요논단]콘텐츠에 봄이 오나 봄

올해 유통·플랫폼 많은 변화 예상中企 기술·글로벌 시장 진출 지원청년 창업 '클러스터 생태계' 조성'자유로운 창작' 다양한 기회 제공'일자리 창출과 풍요로운 삶' 기대춘분(春分)이 지났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봄을 맞이하면서 새로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의 선조들은 처음, 새것, 새로운 일 앞에 모두 '新'(새로울 신)을 붙였다. 영어의 'new'라는 단어도 전에는 없던 것이 최근에 생겼거나 만들어졌거나 도입된 것을 지칭한다. 경기도에서는 민선 7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표방했다. 새로움의 사전적 정의가 '지금까지 있은 적이 없는 것'임을 비추어볼 때 슬로건에 새로움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정의와 공정의 가치가 실현되는,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경기도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차별을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 억울함이 없는 세상. 소외된 이들에게도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기회가 토양이 되어 성공으로 이어지는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출발인 것이다. 예전보다 사회가 가진 자본의 양과 기회는 늘어났는데도 모두가 결핍을 느끼는 세상에 대한 대안이 되기 위함이다. 새로움에 공정이란 가치가 더해져 부조리함이 물러나고 약자도 보호받는다면 모두의 삶이 풍요롭게 향상될 것이다. 그렇다면 콘텐츠에게 있어 새로움은 무엇일까. 올 한해 콘텐츠 산업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 유통과 플랫폼에서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AI 기술 주목과 함께 오디오북 콘텐츠가 증가하고 공간 기반의 출판 콘텐츠 서비스가 확대될 것이다. 웹툰의 큐레이션 서비스가 가속화되고,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 대중음악과 만나며, '보는 게임'(게임 플레이 스트리밍)이 고려된 게임제작 환경의 변화가 예상된다. 넷플릭스 등 새로운 플랫폼을 겨냥한 작품 기획이 활성화되고, 1인 마켓의 성장과 함께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활성화, 5G 네트워크 시대가 여는 AR/VR 캐릭터 시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장르와 플랫폼을 넘어 기술과 비즈니스가 활발하게 융합하며 발전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대내외 변화 속에서 경기 콘텐츠에도 새로움이 있다. 첫째, 급변하는 시장에 대응하여 기술 융합과 비즈니스 모델 고도화를 위한 '콘텐츠 산업 혁신 성장'을 지원한다. 영상, 음악, 출판 등 장르를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 산업 고유의 경쟁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투자 지원, 글로벌 진출 등 중소 콘텐츠 기업의 활동을 촉진하는 지원에 나선다. 책 생태계 활성화, 인디음악 뮤지션 발굴을 지원하는 인디스땅스, 거대 자본에 대안이 될 인디영화 상영배급 지원, 게임 산업 및 VR/AR 산업 육성이 그것이다. 둘째, 지역의 기업, 인재, 학교 등 각 플레이어가 공정하게 협력하도록 지원하는 '콘텐츠 지역클러스터 생태계 활성화'를 꾀한다. 지역별 콘텐츠 산업의 특성에 맞는 선순환 생태계 조성을 통해 장기적인 지역 발전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 청년 인재의 창업과 성장을 도와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청년들이 창업을 준비하고 스타트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판교, 광교, 의정부, 시흥, 고양에 이어 6번째 혁신 클러스터 공간도 조성된다. 셋째, 도민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공정한 콘텐츠 창작과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풍요로운 콘텐츠 창작·향유 기반을 조성'한다.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창작 환경을 만들고 소외 계층의 지역민들도 차별 없이 최신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찾아가는 영화상영, 경기도 1인 크리에이터 육성, 지역 미디어센터 운영, e스포츠 대회 출전지원, 경기 메이커스 활성화 지원을 통해 모두가 콘텐츠를 향유하도록 돕고자 한다. 이와 함께 정보시스템 고도화 및 사업데이터 축적을 통해 내외부 고객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도정 가치를 실현하는 콘텐츠산업 선도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새로움이란 언제나 설레고 즐겁게 기다려지는 일이다. 하지만 새로움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치열한 혁신과 과정에 충실한 노력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경기도의 콘텐츠 산업이 새로움과 공정함을 통해 창조성에 기반을 둔 일자리 창출과 도민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오창희 경기콘텐츠진흥원장오창희 경기콘텐츠진흥원장

2019-03-24 오창희

[월요논단]좀비의 활보·가짜뉴스의 범람과 우리 사회의 비극성

비극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인과관계·역사모순 형상화 탁월반면 국내 이념형 마타도어 횡행5·18관련 전두환·김진태 등 뻔뻔나경원 강성발언 개연성 확인안돼고대 그리스의 최고 비극 작품은 무엇일까. 관점에 따라 다를 터,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전범으로 꼽고 있다. 플롯·장소·시간의 통일이 잘 이루어졌다는 것이 근거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중에서도 특히 플롯에 주목하였다. 인물들의 행동이 상호 인과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있으므로 개연성과 필연성을 획득하였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았으니 발견이 나타났고, 애초 기대했던 바와 상반되는 결과가 펼쳐졌으니 급전 또한 끌어안았다는 점도 고평 되었다. 공포와 애련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발견과 급전인바, '오이디푸스 왕'은 이를 구현하였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이다.반면 헤겔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최고의 작품으로 내세운다. 역사 전환기에 나타나는 모순을 등장인물들 사이의 갈등으로 집약하여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혈연에 입각하여 안티고네는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주검을 매장하고자 한다. 이는 부족사회의 윤리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폴리네이케스는 매장 금지의 죄를 짓고 죽었다. 따라서 크레온 왕은 매장을 불허하는데, 이때 크레온은 국가법의 상징으로 자리하게 된다. 한편 사적 층위에서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과 약혼한 여성이 안티고네였던 것. 결국 크레온에 맞섰던 안티고네, 사랑 잃은 하이몬, 아들 하이몬을 상실한 에우리디케는 차례대로 죽음에 이른다. 그러니 헤겔은 충돌하는 역사 이행기의 두 이념이 등장인물의 전형으로 얼마나 성취되는가의 관점에서 비극을 이해하였던 셈이다.문득 그리스 비극을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 국내 정치 상황이 도무지 현실로서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1987년 6월항쟁이라든가 2016년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민주주의의 정착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뎠다고 여겼더랬다. 그런데도 어떻게 역사의 뒤안길로 진작 사라졌어야 할 이념형의 마타도어가 버젓이 횡행하고, 이를 방관 혹은 묵인하는 세력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보건대, 5·18 당시 발포 명령을 내렸느냐는 물음에 "이거 왜 이래!" 목소리 높인 전두환 씨는 한낱 좀비에 불과하다. 5·18 북한군 개입설의 후원자를 자임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국회의원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역시 좀비에 감염된 좀비일 따름이다. '햄릿'의 망령은 그 억울함만 해명되면 다시 출몰하는 일이 없을 터이나, 저들 좀비들은 대체 어찌 처리해야 하나. 우리 정치의 비극이 바로 이 지점에서 부각된다.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연이은 강성 발언들 역시 지극히 퇴행적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은 개입하지 않았다. 이는 사실의 문제이다. 그런데도 이를 다양한 해석 가운데 하나로 정리해 버리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데 머무른다. "선진국에는 비례대표제가 없다"라고 주장하였는데, 37개의 OECD 가입국 가운데 24개 나라에서 비례대표만으로 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즉 나경원 대표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거짓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 "의원 정수는 300석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의 헌법 정신에 반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면 "의원 정수가 무한히 확대될 수 있다."대북 정책에 관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극적인 변모에서는 어떤 개연성도 확인할 수 없다. 2016년 6월 비핵화에 대한 유연한 접근을 요구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제 정권이 바뀌든 안 바뀌든 일관된 우리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는 통일정책을 만들어 가야 된다"고 주장했던 나 대표다. 그러한 나 대표가 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딱지를 붙여대는 것일까. 책임지는 정치인이라면 그러한 인식 변화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명이 뒤따라야 하겠다. 해명이 없어서야 그 독기 어린 비난이 실상 전형적인 내로남불에 불과하며, 나 대표는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꾼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겠기 때문이다.죽은 폴리네이케스가 걸어 다니면 '안티고네'는 성립할 수 없다. '오이디푸스 왕'이 가짜뉴스의 희생양이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고평했을 리 만무하다. 좀비가 활보하고 가짜뉴스가 뻔뻔하게 유포되는 지점에서 우리 사회의 덜 떨어진 비극이 펼쳐지고 있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9-03-17 홍기돈

[월요논단]위선을 넘어 성찰로

반성않는 일상 우리사회 퍼져 있어5·18 망언·한유총 사태·사법농단불의 용납하면 되풀이 하게 만들어아프지만 '치욕·모순' 성찰하는 일우리를 충만함·행복으로 이끌어18세기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세계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유럽이 세계 문명의 방향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으며, 이제껏 보지 못했던 과학기술 혁명의 결과로 산업화에 성공함으로써 세계는 그야말로 인간의 시간과 공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그 이전의 어떤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폭력과 야만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 모두는 17세기 이래 유럽이 이룩한 근대의 혁명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은 이 근대 혁명을 누구보다 빨리 습득함으로써 유럽 밖에서는 유일하게 그 문화의 혜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아쉽게도 그들은 유럽의 죄악조차 답습했다. 이 모든 역사의 격동을 겪어낸 것이 우리의 지난 100년이었다. 그 야만과 폭력의 시간을 버티고 견디면서 그럼에도 인륜과 자주를 갈망했으며 나름의 물질적 풍요와 성공을 이룩한 시간이 또한 지난 100년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지난 시간은 역사에서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변화와 전환을 경험한 때였다. 그 역사와 그 삶을 되돌아보는 작업은 지금의 삶과 내일의 시간을 위해서는 결정적 의미를 지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찰과 전망에 있다. 뼈저린 후회와 자괴감이 들지언정 잘못된 역사를 성찰하는 작업, 직면하기 싫지만 그럼에도 나아갈 길을 위해 차디찬 지성과 열망으로 전망하지 않을 때 우리 삶은 다시금 나락으로 빠져들지 모른다.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반성하지 않은 일상이 우리를 옥죄는 현상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5·18 광주에서의 학살을 부정하는 망언은 결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 반인륜적이며 야만적인 부정을 정략적인 이유로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다시금 이런 패륜과 폭력을 되풀이하게 만든다. 우리 삶이 왜 지옥 같을까. 이런 야만과 불의를 용납했기에, "여기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미 벌써 사라졌어야 할 정치적 모리배가 국회란 배경을 무기로 앵벌이 노릇을 계속하고 있다. 한유총 사태는 조기에 수습되어 사안이 해결된 듯이 보이지만 이 사태 뒤에는 맹목적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립이 자리한다. 교육의 공공성은 물론, 재산권의 자유를 공동선의 관점에서 새롭게 정립해야 할 기회임에도 단순히 한유총 해체만으로 이 사태를 덮어두어서는 안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사법농단 문제는 법치국가라는 우리 사회의 본질을 부정하는 일임에도 지금의 대응을 보면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는가.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정략적 보도를 일삼은 언론의 반사회적 태도와 의도적 무지를 넘어서지 않은 채 어떠한 밝은 미래도 전망할 수 없다. 지금처럼 부서지고 망가진 교육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은 채 공정한 사회와 미래를 바라는 엄청난 착각이 어떻게 가능할까. 각자가 원하는 삶의 의미와 행복은 물론, 최소한의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바라면서 지금의 교육체계와 폭망한 학문을 방치하는 현실은 거대한 위선에 불과하다. 경제성장이란 주술에 사로잡혀 우리 삶을 몰아가는 망상을 깨지 않은 채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가. 거짓이다. 저출산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그 맹목적 대응에 헛웃음이 나온다. 일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12번째 국가에서 에너지는 펑펑 쓰고 환경은 무분별하게 파괴하면서 미세먼지는 없기를 바라는 모순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 100년 서구 근대에 의해 침탈되고 강요되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역사와 삶을, 사회와 문화를 성찰하고 전망함으로써 우리가 주체가 되어야 할 때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마주하기엔 너무도 아프지만 그럼에도 직시해야 할 과거의 치욕과 현재의 모순을 성찰하는 일이다. 힘겹지만 일상의 위선을 깨고 나아가야 할 미래를 전망하는 일은 우리의 지성적 정직함에 달려있다. 지성적 성찰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의무다. 지성은 가방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인간이 인간인 까닭은 우리가 직관과 감정을 넘어 성찰과 전망의 지성을 수행한다는 데 있다. 그 길에 들어설 수 있을 때 우리 삶과 존재는 의미를 지니며, 그 해명의 작업이 우리를 충만함과 행복으로 이끌어간다. 결단 없이 바뀌는 것은 없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9-03-10 신승환

[월요논단]다 잘 될 거야

고르디우스 매듭 떠오른 북미회담트럼프·김정은, 정해진 시간 쫓겨역사적 경험 반복·불쾌한 사실 전개한반도 평화는 '생존과 삶'의 문제 '노딜'이었지만 비핵화 피할 수 없어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 신화 등에 의하면 수레를 묶은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섰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를 해결한 자가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여기까지는 학설도 대체로 일치한다. 그러나 해결법을 두고는 의견이 다르다. 정설은 알다시피 칼로 매듭을 잘라버렸다는 것. 하지만 매듭을 고정하고 있던 못을 뽑아 끈의 실마리를 찾아 풀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 예언의 결과에 대한 해석도 다르다. 알렉산더 대왕은 예언대로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었다. 하지만 매듭을 풀지 않고 끊어버린 탓에 그의 제국은 얼마 가지 못하고 분열되었다는 것이다.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하노이 회담을 보면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단칼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쪽과 복잡한 매듭의 일부라도 풀어내려는 쪽의 대결. 지금까지는 드러난 대로 미국은 일괄타결을, 북한은 단계적 해결방안을 선택하였다.이처럼 엇갈린 방안을 서로 선택한 것은 두 정상이 처해있는 위치와 직접 연계되어 있다. 탄핵위기와 내년 대통령 재선이라는 정치적 난제와 목표를 해결해야 하는 쪽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강력한 제재로 주민들의 삶에 다가오는 악영향과 경제적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쪽은 김정은 위원장이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정해진 시간 때문에 쫓긴다는 점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것이 북미 간의 대화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이기도 하다. 회담의 결과는 '노딜'이었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비핵화라는 과제를 피할 수 없다. 당장은 정치적 선택에 좌우될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인류 전체를 위한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돌이켜보면 이번에도 역사적 경험이 반복되고, 불쾌한 사실들이 전개되었다. 일본은 북미 간 회담의 성공을 두려워했다. 자신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북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인 납치문제를 거론해주기를 원했다. 비핵화와 북한의 유엔제재 해결보다는 아베정부의 정치적 입장과 이해관계를 관철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진정으로 북한 인권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1959년부터 1984년까지 니가타 항에서 만경봉호 등을 타고, 북한으로 간 9만3천340여명의 동포들의 안부를 함께 묻는 것이 예의다. 식민지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로서 남북한의 분단을 초래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와 역사에 대한 책임을 지는 국가이자 지도자라면 남북통일을 지원해야 하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일본의 우익세력과 정치인들 대부분은 남북한의 분단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한다.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일방주의는 그러하다 치고, 미국의 각 기관이나 정파들도 통일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국에 대한 국내 일부 세력의 맹신에 가까운 신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한반도의 평화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의 시각에서 통일과 평화 문제를 재정립해야만 뼈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역사적 교훈을 상기해준 제2차 북미회담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이 한반도의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각국의 이해관계에 휘둘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정부와 국민들이 힘을 모을 때다. 문 대통령이 겹겹이 얽힌 매듭의 크기와 길이 등을 잘 파악하여 북미는 물론 관련 당사국에 전해야 한다. 단칼에 끝낼지. 못을 뽑아야 할지. 하나씩 풀어야 할지. 그 방안과 해법까지도 제시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다시 부여받았다. 한반도의 평화는 우리들의 생존과 삶의 문제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노력에 국민들의 성원이 필요한 이유다. 오랜 고통 속에서도 큰 기대를 했던 이산가족과 개성공단 그리고 금강산 관련 기업 등에 희망의 메시지를 다시 전할 때다. 회담결렬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후배 신한용 개성공단협의회 회장에게 전하고 싶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생각하세. 다 잘 될 거야(All is well)"./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03-03 김민배

[월요논단]민주주의 역사 부정도 범죄일 수 있다 - 여야 3당의 '5·18 특별법 개정안' 추진에 부쳐

5·18 혐오표현 법적규제 첫 단추종편·유튜브서 왜곡 발언 쏟아져선동·전파 제한 차원 큰 의미예술·학문·역사진행 보도 등은위법성 인정안해 표현의 자유 고려23일 서울 청계광장에 전국에서 5천명이 모여 '5·18 망언 3인 퇴출'을 외쳤다. 16일 광주 금남로 집회 이후 두 번째였던 이날 집회에서는 5·18 왜곡 처벌 특별법 제정 등이 촉구됐다. 22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3당 소속 의원이 5·18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한 경우 처벌하는 '5·18민주화운동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 발의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부인하거나 왜곡하는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의 첫 단추가 시작된 것이다. 혐오표현은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하여 차별·혐오하거나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혐오표현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크든 작든 해악을 끼친다. 그중 구체적인 행위를 촉발할 수 있는 증오선동을 사회적 해악이 가장 큰 혐오표현이라 할 수 있다. 국제적 기준에서도 증오선동은 금지대상이다. 일반적으로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고려해서 직접적인 선동이나 반복적이고 노골적인 선동을 담고 있는 혐오표현만 처벌 가능하다고 본다. 일부 인터넷커뮤니티, 종합편성채널 등을 무대로 5·18 민주화운동 등을 왜곡·날조하는 행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2013년부터 혐오표현 규제와 형사처벌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일제의 만행과 헌정파괴범죄와 같은 반인류 범죄를 부인하고 민주화 운동을 왜곡·날조하거나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여 허위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에 처벌하자는 법안들이 발의된 적이 있었다. 이 법안들은 반인류 범죄의 부정을 처벌하는 역사 부정죄나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 금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에 관해서는 호남지역에 대한 차별과 연결되고 관련된 사실이 이미 법률적이고 사회적으로 확정됐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1994년 독일 정부가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집회 연설을 규제하자 극우정당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헌법 소원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무수한 목격담과 문서, 형사법정의 사실 인정, 역사학의 인식에 비추어 홀로코스트 부인은 허위 사실임이 증명됐다고 판시했다. 증명된 허위사실은 의견이 만들어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이와 같은 경우일 것이다. 22일 여야 3당이 공동 발의한 법안은 기존 발의된 법안에 비해 진일보했다고 판단된다. 법안은 5·18 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에겐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형사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신문, 잡지, 방송, 그 밖에 출판물 또는 정보통신망의 이용 ▲전시물 또는 공연물의 전시·게시 또는 상영 ▲기타 공연히 진행한 토론회, 간담회, 기자회견, 집회, 가두연설 발언 등을 처벌 대상으로 했다. 최근 종편과 유튜브 채널에서 5·18 민주화운동 관련 사실을 왜곡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현실에서 개정안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하겠다.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차별적 혐오발언의 선동과 전파를 제한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차별적이고 적대적인 혐오발언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해지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허위정보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법안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도 놓치지 않고 있다. 법안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날조 등 행위가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사건이나 역사의 진행과정에 관한 보도 등의 목적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내용이 형사처벌의 실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있지만 독일의 사례나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고려한 적절한 접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사실을 부정하는 선동적인 행위가 법적으로 규제돼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일이 사라지길 기대한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19-02-24 이용성

[월요논단]세상을 바꾸는 작지만 확실한 행동

설 연휴 골목 곳곳에 쌓인 쓰레기세계 '쓰레기 대란' 망가지는 지구폐기물 관리·재활용으로 해결안돼'덜' 만들어내는 정책·실천 필요'4R운동' 힘 합쳐 작은 행동 시작을설 연휴 기간 동안 도심의 골목 곳곳, 건물 사이사이마다 쓰레기가 쌓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휴 막바지에는 쓰레기가 산을 이루며 길 바깥으로 넘쳐났다. 인상이 찌푸려지지만 나 또한 그 쓰레기 더미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만 해도 명절 선물에서 나온 상자, 스티로폼 등의 포장 쓰레기와 명절 음식을 준비하며 나온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가 베란다 한쪽에 수북했다. 쓰레기들이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은 어디인지, 어떻게 처리되는지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지금 이대로 살아가도 되는 것인지 많은 걱정이 생긴다. 서울의 아파트에 살다가 강화도로 옮겨 온 지 여섯 해를 맞이하고 있는데, 쓰레기 문제에 대해서 서울에서보다 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아파트 생활에서는 분리수거 하는 날 정해진 곳에 분리 배출을 성실하게 하고 나면 마치 환경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쓰레기의 이후 행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시골 살이를 하면서 해당 면사무소에서 쓰레기를 배출하는 곳이라고 지정한 곳에 가보면 분리가 되지 않은 쓰레기부터 큼직한 가구들까지 온갖 폐기물들이 마구잡이로 버려져있다. 심지어는 음식물 쓰레기까지 버려져 있다. 차마 그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못해 하루 종일 차에 싣고 다닌 적도 있다. 쓰레기 배출 하는 곳 이외에도 야산 입구나 인적이 뜸한 곳곳에 누가 버렸는지 모를 온갖 쓰레기 더미들이 몇 달이고 계속 쌓여만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재활용업체에서 필리핀으로 수출한 재활용 쓰레기가 다시 평택항으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쓰레기들을 수출할 때에 플라스틱의 원재료로 사용될 수 있는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신고되어 필리핀으로 향했지만 실제로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쓰레기와 기저귀, 배터리, 전구 등이 가득 섞인 불법 폐기물이었다. 우리나라에 다시 가져왔다고 모두 해결된 상황이 아니다. 전체 6천300t 중 일부인 1천200t만 돌아온 상황이고, 현재 남아 있는 쓰레기가 오랫동안 방치되어 썩어가면서 발생하는 악취와 해충으로 환경오염과 현지 주민들의 건강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국제적인 망신이고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이 재활용 쓰레기 수입을 전면 중단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근래는 중국을 대신해 동남아 국가들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쓰레기 수입을 중단하게 된다면 그 다음은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이제는 더 이상 폐기물 관리와 재활용에 초점을 맞추어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끊임없이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쓰레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인류의 등장이 지구 최악의 환경 재앙을 불러왔다고 보아도 과장된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가 도달해야 할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쓰레기를 덜 만들어내는 국가 정책과 함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절박한 현실을 잘 이야기해주는 그림책이 있다. '내일을 바꾸는 작지만 확실한 행동'(시릴 디옹. 피에르 라비 글. 코스튐 트루아 피에스 그림. 권지현 옮김/한울림어린이)에서 지구가 얼마나 망가졌는지에 대해 실제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가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작지만 우리가 힘을 모으면 내일을 바꿀 수 있어요. 내일은 우리 손에 달려 있어요!'라고. 이제는 우리가 행동해야 할 때임을 말하고 있다. 세계의 많은 환경단체에서 부르짖고 있는 4R운동부터 실천해보면 어떨까. Refuse(불필요한 물건은 사지 말 것), Reduse(쓰레기 줄이기), Reuse(쉽게 버리지 말고 반복해서 사용하기), Recycle(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나 하나 이런다고 뭐가 바뀌겠냐는 의구심은 버리자. '개미가 힘을 합치면 코끼리도 들어 올릴 수 있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지구가 더 이상 망가지지 않게 결연한 다짐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작지만 확실한 행동을 시작해보자./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9-02-17 최지혜

[월요논단]영화 속 김원봉, 이극로가 반가운 까닭

조선의용대 대장 출신이었던 '金'친일경찰 노덕술에 치욕 결국 월북베를린대학서 언어학 공부한 '李'국문의식 세워나가는데 기반 제공치열했던 '그들의 이름' 간직해야올해는 3·1운동이 벌어진 지 100년 되는 해다. 영화·텔레비전에서 소개되는 항일투사의 면면에서 나는 그 사실을 실감하곤 한다. 이런 분들은 우리가 마땅히 끌어안아야 하지 않나, 싶었던 사례가 대중들에게 속속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세부 전공이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현대문학을 전공한 내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조금이나마 식견을 가지게 된 것은 연구대상이 되는 시인·작가들이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나갔던 덕분이다. 예컨대 저항시인 이육사의 경우를 보자. 조선혁명군정치간부학교 제1기 졸업생인 그는 '연인기'(戀印記)에서 귀국 직전의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 "몇 사람이 모여 그야말로 최후의 만찬을 같이" 하였는데, 그 중 S에게는 "무엇이나 기념품을 주고 와야 할 처지였다." 그래서 그는 "꼭 목숨 이외에 사랑하는 물품"이랄 수 있는 비취인장에 "贈S·一九三三·九·一○·陸史"라고 새겨 선물하고 조선으로 돌아왔다.여기서 S는 윤세주다. 훗날 윤세주는 조선의용대 부대장으로 활약하던 중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일제 측 조서에 따르면, 교장 김원봉과의 의견 차이로 인해 졸업 후 귀국했다고 되어 있으나, 육사가 취조 받으며 내놓은 답변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 일제는 왜 경북 안동에서 체포한 육사를 굳이 중국 북경으로까지 끌고 가서 고문해야만 했을까. 김원봉·윤세주와 절연하기는커녕 물밑에서 연계하여 치열하게 활동한다고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북경감옥에서 육사는 유고시로 '광야'(曠野), '꽃'을 남겼다. 이 두 편의 시는 육사의 죽음 위에서 읽어야만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난다.1933년 9월 10일 S 등과 가졌던 저녁 모임은 "그야말로 최후의 만찬"이었다. 1942년 윤세주는 전사하고 말았으니,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던 "내가 바라는 손님"은 결코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육사마저 1944년 고문 끝에 사망하고 말았으니,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 둘 사람조차 부재한 상황이었다. 청포도는 그들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익었던 셈이었다고 할까. 그렇지만 그 청포도조차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을 만큼 제대로 익지는 못했다. 해방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용대 대장을 지낸 김원봉이 친일 고문경찰 출신의 노덕술에게 온갖 치욕을 당한 끝에 결국 북조선으로 넘어가야 했던 정황이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김동리가 이태준과 관계 맺는 양상도 단순치 않다. 1934년 동리는 3대 민간신문 신춘문예의 시·소설 부문에 모두 투고하였으나, '조선일보'에 시가 당선도 아닌 입선에 그쳤을 따름이었다. 실의에 빠진 동리에게 백형 김정설은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 이태준을 만나도록 한다. 이후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동리는 이태준에게 소설 창작에 관한 설명을 들었고, 1935년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화랑의 후예'가 당선함으로써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구인회 좌장이자 잘 나가는 소설가였던 이태준은 한낱 풋내기에 불과한 동리에게 왜 이토록 공을 쏟았을까.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산 안희제를 알아야 한다. 백산 안희제는 임시정부 운영 자금의 60퍼센트 이상을 전달한 인물이다. 장학회 사업도 벌였던 그는 김정설, 이극로, 안호상, 신성모, 이태준 등을 외국 유학 보내기도 하였다. 신문사 취업에 번번이 실패하던 이태준은 백산의 중외일보(조선중앙일보) 사장 취임과 더불어 기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태준과 동리(김정설)를 매개하는 인물이 바로 백산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태준이 국문의식을 꼿꼿하게 세워나가는 데 기반을 제공했던 이는 이극로였다.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언어학을 체계적으로 습득한 이극로가 귀국한 뒤 조선어연구회는 조선어학회로 거듭날 수 있었고, 여기서 표준어사정위원회를 두 차례 열었을 때 '문장 강화'의 저자 이태준은 각각 전형위원과 기록을 담당하였다.조선어학회사건이 터지자 이극로는 당연히 옥고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극로와 관련이 있는 단체까지 탄압을 피해갈 수 없었으니 대종교가 임오교변을 겪는 과정에 잡혀간 백산은 고문 끝에 1943년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해인사사건으로 엮인 김정설도 영어의 운명을 피해가지 못했다. 조선어학회 사건, 임오교변, 해인사사건은 하나의 뿌리를 가진 세 개의 가지였던 셈이다. 흥미 삼아 덧붙이건대, 동리의 첫 번째 결혼식 주례는 김정설과 호형호제하였던 만해 한용운이었다.하나하나 되짚어보다가 문득 나 자신을 왜소하게 느끼게끔 만드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치열함을 감히 따르지 못하더라도, 그 이름만이라도 간직하는 게 우리의 일이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9-02-10 홍기돈

[월요논단]새로운 100년의 문화혁명

지난 100년간 엄청난 역사 썼지만불안·갈등은 왜 여전히 존재할까일상의 야만·폭력·불의·부패 고통우리 스스로 걷어내지 못한다면'찬란한 문화적 삶' 전환 불가능100년 전 3월 1일 독립요구의 외침이 전 한반도를 뒤흔들었다. 이 외침은 강압적 식민통치를 거부하고 조선의 독립을 요구한 데서 출발했지만, 그 뒤에는 보편적인 인간다움에 대한 요구가 담겨 있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반인륜적 통치와 야만에 맞서 인간의 인간다움을 찾는 강력한 원의가 이 외침에 담긴 본질적인 의미였다. 이후 100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 삶은 어떻게 변했는가? 외적인 폭력과 탄압은 물론, 정신적인 파괴와 전향까지도 강압하던 무단 통치를 거부하고 그와는 전혀 다른 민주와 인간성에 대한 요구는 우리 삶과 문화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2년 전 또다시 이런 강압을 거부하고 새로운 정치를 요구했던 외침은 지금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류 역사에서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그 현란함을 벗어나 보면 우리 삶의 실제적 상황에 본질적 차이가 없음을 안타깝게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풍요로움에 비해 삶과 문화가 피폐하고 허무하다면, 왜 그런 것일까. 여전히 내면의 불안과 갈등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헐벗음으로 허덕인다면 우리는 그 100년 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대한민국은 지난 100년 사이 역사를 새롭게 썼으며,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발전했다. 그런데 여전한 불안과 갈등은 왜일까. 왜 삶과 사회에는 여전히 허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일까. 지난 시간 대한민국이 이룩했다는 성공은 어떤 것인가. 삶과 문화에서도 성공한 것일까. 아니라면, 그 반쪽의 성공을 넘어서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지금 이 시간은 우리가 이 질문을 마주하고, 그에 대해 대답하고 실천적 대응을 말해야 할 그 순간이다. 이것은 단순히 100년이란 시간이 지났기에 제기하는 물음이 아니라, 촛불을 통해 새로움을 요구했음에도 여전한 이 삶의 황폐함을 벗어나기 위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정권에서조차 우리는 100년 전의 외침을 되풀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 점점 더 분명히 민중의 정치적 의사를 재현한다는 국회의 허위와 법의 위선을, 정치 경제적 현란함에 비해 턱없이 역행하는 현실을 접하게 된다. 이제 너무도 분명하게 정치와 행정, 언론과 법을 장악한 그들이 결코 우리가 외쳤던 공의로움과 공동선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지난 역사를 통해 우리는 그들 정치가와 지도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회와 삶의 주체임을 배웠다. 우리 스스로 삶의 의미와 사회적 가치와 올바름을, 경제정의와 법의 공정함을 향해 일어서지 않을 때 이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 100년의 시간이 야만과 폭력에 맞선 고통과 투쟁의 시간이었다면 이제 새로운 시간은 그 모든 어두움을 빛으로 바꾸는 문화적 전환의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변혁은 우리 각자에서 시작된다. 일상의 야만과 불의, 부패를 우리가 걷어내지 않으면 결코 가능하지 않다. 노동을 탄압하고 배제하는 사회, 한 줌의 특권을 독점하는 사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자를 몰아가는 문화를 거부하지 않으면 우리의 일상은 지난 시대로 역행할지도 모른다. 다시는 야만과 폭력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기에 그에 맞선 문화와 삶을, 그런 의식과 태도를 우리 안에 확고히 해야 한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던 그 외침을 우리 안의 제국주의에 돌려야 한다. 누군가의 죽음 위에서야 가능한 풍요를, 거짓과 허위로 가득 찬 문화를, 근대화 이후 켜켜이 쌓인 시대의 모순을 넘어서야 한다. 독과점 구조와 위선의 문화를 뒷받침하는 모든 시스템을 바꾸고, 우리 생각과 의식을, 일상 삶을 그렇게 되돌려야 한다. 우리가 그런 주체가 될 때 비로소 현재의 식민성을 벗어날 수 있다.우리가 원하고 행동할 때 그들의 오랜 결탁과 독점이, 그 허위가 무너질 것이다. 정의와 평화를, 공정을 원한다면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삶을 원한다면 현란함을 넘어 의미와 직면해야 한다. 지성적 성찰은 그렇게 필요하다. 다가올 100년, 문화와 삶의 혁명을 이룩할 때가 다가왔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9-01-27 신승환

[월요논단]심해어류 증후군과 견리사의

잇단 폭로·불안정한 경제현실 원인文정부 정책실패서 찾으려는 심리통일·남북문제외 국민들 기대 부족획기적 대안 제시로 미래 선도하는 새로운 장관·자치단체장 내세워야'사케가시라(Trachipterus ishikawae)'. 지진어류 혹은 산갈치로 불리는 심해어의 일종이다. 최근 동해연안에서 200m 심해에서 산다는 산갈치가 발견되자 지진의 징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에서는 지진 직전 해저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변화의 결과라거나 해수온도의 변화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하지만 오리하라(織原義明) 교수팀은 2017년 말 일본지진학회에서 지진과 산갈치는 상관성이 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연구팀은 1928년부터 2011년까지 심해어와 지진 발생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363건의 사례 중 지진이 발생한 경우는 13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인간이 산갈치 등장을 지진의 징후로 예측하거나 방재에 유용한 정보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어류가 지진을 예측하는데 필요한 수단으로 쓸모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심해에 대한 조사의 한계로 지진의 전조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적 해명과 달리 인간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산갈치의 등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심해저에 대한 궁금증이나 심리적 불안감에서 기인한다. 심해의 어디에선가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김태우 수사관과 기재부 신재민 사무관의 폭로 그리고 손혜원 국회의원을 둘러싼 논쟁들이 진실성 여부와 무관하게 일파만파인 것도 그 때문이다. 청와대나 권력기관, 그 어디에선가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뜻이다. 경제의 불안정한 현실과 그 논거를 문재인 정부나 정책 실패에서 찾으려는 심리적 요소들도 확산에 가세하고 있다. 국민의 힘으로 탄생한 촛불정부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로와 험난한 경제를 둘러싼 상상력의 증폭이 문재인 정부가 당면할 전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왜 폭로되는 사안들이 진실여부와 관계없이 확대되고 있는지. 우려하는 국민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지. 첫째는 통일과 남북한 문제를 제외하면 국민들이 기대할 만한 정책이나 비전이 부족하다. 산업정책이나 일자리 정책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은 새로운 경제정책의 추진에서 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도 바이오와 블록체인, 게임 산업과 e-스포츠와 같은 성장 분야에 대해 규제정책을 우선하고 있다.둘째, 존경하고 신뢰할 만한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미래를 선도해야 할 장관이나 시도지사들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존재감이 없는 장관이나 시도지사들에 대해 지난 정부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부정적 평가들이 제기되고 있다. 셋째, 대들보와 서까래의 혼용법을 활용하지 않는다. 지난 선거가 박빙이었다면 신세 진 사람들이 있겠지만 압도적이었으니 챙겨야 할 사람들도 상대적으로 적다. 시민들을 의식하는 긴장감도 떨어지고 획기적인 정책을 만들어 추진하는 동력도 낮다. 그렇다 보니 내 편을 써야 할 분야와 전문가로 승부수를 내야 할 분야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개별 사안들이 혼재되어 증후군으로 확대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정책에서 극적인 반전을 이루지 못하는 한 내년 총선에서 다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들이 제기되는 이유다. 물론 남북통일을 향한 대통령의 행보가 가시적 성과를 내면서 극적인 돌파구를 열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대북제재를 쥐고 있는 한 국민들이 체감하는 성과가 바로 나타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정부와 여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장관과 자치단체장은 미래의 획기적 정책들에 대해 정치적 능력과 재량권을 발휘하도록 권한을 부여받은 자리다. 법령과 예산 그리고 규제 안에 안주하는 공무원과 달라야 한다. 개각을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미래를 선도하는 정책에 혼신을 다하는 장관과 기관장을 갈망하는 이유다. 새로운 리더를 내세워 국민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다짐할 때다. 견리사의(見利思義). 눈앞의 이익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촛불로 염원했던 국민들에 대한 의리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국민들이 왜 산갈치를 보면서 정부와 국가를 걱정하는지.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고민하고 있는지. 깊이 헤아려야 한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01-20 김민배

[월요논단]'유시민의 알릴레오'의 등장과 언론의 위상

중요 이슈 정리·가짜뉴스 팩트체크언론, 제대로 역할 못한다는점 강조권력감시·공정성등 고려 기능 중요디지털·유튜브 전략 걱정할때 아닌어떻게 신뢰 얻을지에 더 고민해야2002년 대선에서 인터넷이 중요한 역할을 하자, 미디어권력이 이동했다고 주장한 인터넷언론인이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여론형성력은 보수정권이 연이어 들어서면서 통제되기 시작했고 미디어권력은 다시 보수화된 지상파방송과 신문에 돌아갔다. 지난 대선국면에서는 기존 언론의 영향력이 제한적이었고 팟캐스트 등 새로운 미디어와 SNS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최근에는 유튜브가 향후 정치권력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는 다소 이른 전망이 등장했다. 보수 정치 유튜브 방송의 활성화가 이런 전망에 근거처럼 제시됐다.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정치 유튜브 방송이 출현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월 5일부터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유튜브, 팟캐스트(팟빵 등), 카카오TV, 네이버TV을 통해 방송하기 시작했다. '유시민의 알릴레오'는 우리 시대 중요한 이슈를 정리하고 가짜뉴스도 팩트체크하는 방송을 표방한다. 구체적으로 '언론보도가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문재인정부 정책과 행정의 뿌리와 배경, 핵심을 찾아가기 위한 네비게이트' 역할을 자임한다.이 방송은 보수정치 유튜브와 다른 '정치 사회 경제 영역에서 사실의 증거를 토대로 합리적으로 추론해서 시민의 지혜로워지려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송'을 표방한다. 유 이사장의 정책 현안과 사회 이슈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과 대중적 인지도를 기반으로 이 방송의 영향력은 막강하다.'유시민의 알릴레오' 1회는 유튜브의 경우, 13일 오후 1시를 기준으로 조회 수가 257만에 이르고 콘텐츠를 올린 지 하루가 된 2회는 64만회에 이른다. 유 이사장의 대선 출마여부를 팩트 체크한 '고칠레오 1회'는 120만회의 조회를 기록했다. 이 방송영상 채널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은 구독자가 61만명이 됐다. 진보성향 팟캐스트가 상위권을 점하고 있는 팟방에서도 일간 종합순위가 2위였다.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제공하는 플랫폼 가운데 유튜브가 가장 파급력이 크다.'유시민의 알릴레오'에 대해 이 방송이 여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유 이사장의 영향력 확대나 종편 출연 보수 논객이나 보수정치인의 방송으로 기울어진 정치 유튜브 방송지형의 지각 변동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하는 보수언론의 비판이 맹렬하다.유 이사장이 언급하는 국가정책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정책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론환경이 정부정책에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여전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부 정책홍보가 문제라고 보인다. 그러나 '유시민의 알릴레오'는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김어준이 주요 이슈의 본질과 맥락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부분이 핵심 콘텐츠이다. 팟캐스트 콘텐츠인 '김어준의 다스베이더'도 핵심 이슈를 정리하고 이를 쉽게 설명해줄 전문가를 출연시키고 있다. 언론이 뉴스를 단순 전달할 뿐 핵심과 맥락이 알기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대중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여기에 맥락저널리즘과 팩트체크 저널리즘을 표방한 인터넷미디어 '뉴스톱'도 등장했다. 이 미디어는 뉴스콘텐츠를 통해 사건의 전후 맥락을 이해하고 관점이 풍부해질 수 있도록 하는 맥락 저널리즘과 가짜뉴스(허위정보)를 검증하는 팩트체크 저널리즘을 강조하고 있다.우리 언론이 계속되고 있는 언론 불신의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고서는 이런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다. 시민과 전문가와 정치인, 정부가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 대중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 플랫폼을 직접 활용하고 있다. 과연 언론이 배제되는 정치와 국민의 만남, 정부와 국민의 만남이 바람직한 것일까? 신재민 전 사무관 사건과 같이 유튜브 개인방송을 언론이 취재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그러나 언론의 권력감시 기능, 공정성 등의 뉴스 가치 등을 고려하면 언론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언론은 디지털전략, 유튜브 활용전략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어떤 저널리즘을 지향해야 할지, 독자와 어떻게 만나서 신뢰를 얻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19-01-13 이용성

[월요논단]행복한 삶이란…

삶 편리해지는데 마음 공허한 이유과도하게 물질에만 치우쳤기 때문변화 속에서 균형잡힌 삶 살려면'나는 누구인가?'가 무엇보다 중요정직·엄격하게 내 자신 마주해야기해년(己亥年) 새해를 맞이하고 며칠이 지났다. 새해를 맞이하며 사람들은 서울 종로에 있는 보신각에 종소리를 들으러 모인다. 또 어떤 이들은 동해에서 해돋이를 보며 한해를 시작한다. 몇 년 전 양양 낙산사에 머물면서 의상대에서 해돋이를 보고 가슴이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의상대 옆에는 '의상대 해돋이'라는 제목의 조종현 선사의 시조비가 있다. '천지개벽이야! 눈이 번쩍 뜨인다. 불덩이가 솟는구나. 가슴이 용솟음친다. 여보게 저것 좀 보아! 후끈하지 않은가.' 해돋이를 보고 이 시조를 낭송하면서 정말 가슴에 불덩이가 솟구치는 듯했다. 뭔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시작'이라는 말에는 희망, 용기, 용서의 기운이 담겨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번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른 해와 달랐던 점은 '새해'가 시작된다는 것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심지어 우리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독서모임을 하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선물도 받았지만 이상하게 크리스마스 느낌이 없어요.", "해가 바뀌었다는 것도 별로 실감이 안나요."라고 말한다. 세상은 계속 발전하고 더 좋아지는 것 같고, 우리의 삶은 편리하고 풍요로워지는 것 같은데 마음이 더 공허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세상은 계속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특히 과학기술은 우리가 예측하기도 어려울 만큼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 기술들이 우리의 실생활에 이렇게 빨리, 이렇게 깊숙이 들어오게 될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고 윤택한 삶을 살아가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과도하게 물질에만 치우쳐 인간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잃어가고 균형이 깨지면서 인간은 자꾸자꾸 공허(空虛)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이스라엘 학자 유발리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오늘날의 인류는 지난 과거의 세대보다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오늘날 아이들이 배우는 대부분의 기술이 2050년에는 쓸모가 없어질 수 있다' 고도 말한다. 그래서 아이나 어른이나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키워야 하고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과 새로운 변화에 정신적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는 힘만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의 말이 다 맞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공감하고 있다. 조선 정조 때의 유명한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500여권의 저작물을 냈지만 그의 마지막 공부는 송나라 진덕수의 심경(心經)을 바탕으로 한 마음공부였다. 마음공부는 '나'라는 존재의 중심을 지키는 것에 그 종착점이 있다고 본다. 유발리 노아 하라리도 정약용도 '나는 누구인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균형 잡힌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본질적인 나(我)란 존재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정직하고 엄격하게 내 자신을 마주하며 새해를 맞이하면 좋겠다. 새로운 시작 앞에 가만히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펼쳐보는 그림책이 있다. '첫 번째 질문/오사다 히로시 글. 이세 히데코 그림/김소연 옮김/천개의바람'을 찬찬히 보면서 소리 내어 낭송하다 보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리가 된다. "아름다워!"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세상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어떤 건가요?,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인생의 재료는 무엇일까요? 행복이란 무엇일까요?세상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아름다워!" 라면 참 좋겠다./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9-01-06 최지혜

[월요논단]대통령 지지도의 하락과 구두선에 머무르는 사회적 가치 실현

추락 거듭하다가 43.8% 내려앉아최저임금·강사법등 정책 악재로엉뚱한 곳에 불필요한 대립 전선명목 매달려 무책임한 시행 아닌지의지 있다면 철저한 구조 만들어야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추락을 거듭하여 결국 43.8%로 내려앉았다. 반면 부정 평가는 51.6%였다. 12월 3주차의 민심인데, 앞으로도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성싶다.기실 일개 책상물림에 불과한 내가 보기에도 일련의 어설픈 정책들은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가령 최저임금 정책을 보자.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4가구 당 1가구로 매우 높은 편이다. 미국의 4배, 일본의 2.5배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이 취약 계층이거나, 취약 계층을 겨우 면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더 많은 비용을 부담시키는 게 합리적인 정책일까. 동의하기가 어렵다.최저임금을 올리는 데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엉뚱한 곳에 불필요한 대립 전선을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로 인해 혀를 차는 것이다. '자영업자 vs 아르바이트생(직원)'의 대립 구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예컨대 건물주가 쓸어가는 임대료를 제한하고, 그렇게 절감된 비용의 일부가 아르바이트생(직원)의 임금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할 수는 없었을까.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방향을 가늠하지 못한 채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명목에만 매달려 무책임하게 정책을 실행해 본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거둘 수 없다.강사법 시행도 마찬가지다. 시간강사의 신분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비용이 따른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대학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십여 년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대부분의 대학은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대학들은 당연하다는 듯 개설과목의 기준 요건을 강화하고, 대폭적인 시간강사(과목) 숫자 줄이기에 나선다. 강사법이 강사를 잡아먹는 형국이 펼쳐지는 것이다.아마 여력이 뒷받침되었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으리라 짐작된다. 1995년 '5·31 교육개혁안'이 시행되면서부터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점차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면모를 강화시켜 나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학문공동체라거나 지식의 공공성이라는 의식보다는 수익 창출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현 대학들의 이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고부응 중앙대 교수의 '대학의 기업화'(한울, 2018)를 참조하는 게 좋겠다. 뻔히 예상되었던 이러한 사태에 맞닥뜨려 정부는 제대로 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김용운 건국대 교수의 '국정가치로서 사회적 가치의 한계와 과제'를 읽다 보니 어째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지 파악할 단서가 포착되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두 달 뒤인 2014년 6월, 국회의원 문재인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을 대표발의하였다. 그는 제안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제는 이윤과 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를 지향하도록 국가 시스템을 바꾸어야 할 때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비전·전략 체계도'를 보면, 이때 제출하였던 문제의식이 "사회적 가치 실현"이란 용어로 집약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그런데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깃발은 실상 구두선(口頭禪)에 그치는 모양새다. 공공기관 평가기준을 보건대, 시장경쟁 및 효율성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가치' 관련 지표들이 큰 비중으로 자리를 잡고 있고, '사회적 가치' 관련 지표들의 배점이 다소 상향된 수준에서 그와 병존하고 있다. 대립하는 두 개의 가치가 사이좋게 나란히 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지표의 배점 상향 조정도 그리 획기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평가받는 기관에서는 비중이 큰 평가 항목에 집중하며, 이와 배치되는 항목은 구색 맞추기 수준에서 유야무야 얼버무리기 마련이다.문재인 정부는 정말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의지가 있는 것일까. 신자유주의 질서를 기꺼이 용인하면서 최저임금, 강사법 등을 내놓아 보아야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만약 의지가 있다면 좀 더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대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가치 창출과 연동하는 정책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은 그 길을 따르며 상승하게 될 것이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8-12-30 홍기돈

[월요논단]돌아서야 돌릴 수 있다

마치 경제정책 실패·개혁 피로감지지율 하락 원인 몰아가는 세력눈앞의 정권 수호에만 열 올리는정치 모리배들 시대적 요구 무시지금 깨닫지 않으면 침몰 가능성정부출범 초기에 비해 대통령 지지율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그동안 숨어있던 온갖 거부와 불만의 소리가 범람하고 있다. 심지어 이를 이용해 시민 대다수가 지지했던 공정과 공평에의 요구조차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럼에도 돌아봐야 할 것은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은 다양한 갈래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심지어 전혀 상반된 입장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게 나라인가!"라는 외침으로 시민들이 전 정권을 심판한 것은 분명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었다. 시민의 요구를 시대정신이란 관점에서 파악한다면 그 안에는 해방과 정부수립 시 설정했던 대한민국의 지향성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있었다. 해방 이후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는 근대를 선점한 이른바 선진국을 추격함으로써 국가 공동체의 안녕과 복리를 지향하는 것이 당시의 시대적 요구였다면, 지금 가시적 경제성장과 일면적일망정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뒤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돌아보고, 시민적 합의에 따라 그 지향점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는 암묵적 요구가 그 안에 담겨있다. 그것은 국가 공동체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질문이면서, 또한 그 안에서 일상의 삶을 이끌어가는 우리의 실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국가는 실존적 삶을 살아야 하는 개인과 그들이 결코 떠날 수 없는 사회적 관계에 부응하면서, 언제나 그 구성원이 일상과 정치적 관계에 답하고, 그 지향점을 실천하는 사회적, 정치적 공동체이다. 국가는 그럴 때만이 의미를 지닌다. 이 요구에 상응하지 못할 때 그 국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해방 이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새로운 지향점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후기 근대를 넘어 포스트휴먼을 말하는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실존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정신이라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정권은 자신이 이룩한 조그마한 정치적 성과와 지지율에 취해 이 시대정신과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고 한 줌의 정치적 이익에 올곧이 빠져있다. 공정성과 올바름, 사람다운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그 모두를 외면하는 정책으로 시대정신에 역행한다. 담대함과 원칙이 필요할 때, 작은 정략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모든 개혁을 허상으로 만들고 있다. 이제는 심지어 꺼뜨렸다고 생각했던 온갖 기득권 세력이 부활하고 있다. 꺼진 불이 살아나 이 나라를 그 이전 부패하고 불의했던, 자칫 파멸로 이끌 수도 있었던 시대로 되돌리고 있다.무엇이 바뀌었는가. 온갖 현란한 거짓과 왜곡으로 기득권을 옹호했던 수구 언론이 변했는가? 공정해야 할 법을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간주했던 법조계는 어떠한가. 지옥과도 같은 교육 개혁은 첫걸음도 떼지 못했다. 진작 물러났어야 할 지난 정권의 정치적, 관료적 체제는 오히려 더 힘을 받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시민들의 일상적 삶은 다시금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최근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마치 경제 정책의 실패와 개혁 피로감이 지지율 하락의 원인인 듯이 몰아가는 세력은 통계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이 모든 시대적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당파적 이익에 연연해 눈앞의 정권 수호에만 열을 올리는 정치모리배들은 여기에 현혹되어 거대한 시대정신을 보지 않으려 한다. 아니 오히려 그 시대정신에 역행하고 있다. 지금 돌아서지 않으면 이 정권은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시민의 요구가 무엇인지, 이 시대와 공동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거시적으로 마주해야 한다. 그 정신과 필요를 절감한 뒤 담대하고 원론에 기반한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꺼진 불들이 살아나는 악몽의 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안에서 확실하게 침몰할 이 정권의 앞날이 우려스럽다. 지금 구악과 타협하려 했던 정략적 사고를 버리지 않으면 실패는 현실이 된다. 거듭되는 실패는 시민과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질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실패이며, 해방 이후의 기획이 실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언은 자기회귀적이다.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서지 않으면 시대의 요구를 실현할 수 없다. 돌아서야만 시민을 돌릴 수 있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8-12-23 신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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