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월요논단]유튜브 인플루언서 뒷광고 논란

인기 등에 업고 협찬 미표시 돈벌이쯔양·양팡 등 강력한 구독거부 직면작년 미디어 광고시장 46.9% 차지사회적영향력 만큼 책무 짊어져야기존 미디어도 투명성 자유로울까지난 3일 밤 구독자가 130만명에 이르는 유튜버 '애주가TV'의 참PD가 라이브 방송에서 유명 유튜버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유료 광고를 표시하지 않는 '뒷광고'를 했다고 폭로했다. 이전에 논란이 됐던 스타일리스트 한혜연과 가수 강민경 등 인플루언서의 협찬 미고지 논란의 연장선이었지만 인터넷을 중심으로 폭로의 파괴력은 훨씬 컸다.지상파방송에도 다수 출연한 인플루언서인 쯔양은 유튜브 방송 초기 일부 콘텐츠에 광고 표기를 하지 않은 정도지만 비난 댓글에 지쳐 은퇴를 선언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그동안 좋은 평가를 받던 쯔양에 대한 동정론이 확산되고 있다. 인기 유튜버인 양팡, 문복희, 엠블로 등이 '뒷광고'를 사과했지만 강력한 구독 거부운동에 직면해 있다.유명 유튜버 도티가 대표로 있는 '샌드박스네트워크'도 '뒷광고' 논란에 휩싸였다. 샌드박스는 7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소속 유튜버들의 유료광고 미표기 영상에 대한 사과와 향후 대책을 제시했다. 사과문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명확한 지침이 없어 유료 광고 영상 표기 위치와 방법으로 '더보기란', '고정댓글'을 이용해 고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도티마저 '뒷광고'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유명 유튜버는 대표적인 인플루언서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국내 상위 인플루언서 계정 광고 게시글을 조사해보니 경제적 대가를 밝힌 게시글은 29.9%에 불과했다고 한다. 경제적 대가를 밝힌 게시글도 표시 내용이 소비자가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상당수였다고 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9월1일부터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지침'이 개정된다. 이에 따라 인스타그램 등 사진을 활용한 추천·보증과 유튜브 등 동영상을 활용한 추천·보증은 표시문자가 명확하게 삽입되어야 하고 방송의 일부만을 시청하는 소비자도 경제적 이해관계의 존재를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표기해야 한다.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크워크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광고를 소셜미디어 광고라고 한다. 소셜미디어 광고시장의 규모는 측정한 자료는 없지만 이를 포함하는 온라인 광고가 2019년 6조5천억원이 넘어서면서 전체 미디어 광고시장에서 46.9%를 차지했다.소셜미디어에서는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유료광고·협찬을 표기하지 않아 소비자를 오인하게 하는 허위과장 광고행위의 위험성도 더 커지고 있다.인플루언서의 미표시 광고논란은 블로거에서 시작됐다. 블로그에 광고주로부터 대가를 받고도 이를 표기하지 않는 파워블로거를 규제하기 위해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지침' 개정내용이 2014년 8월부터 시행된 적이 있었다. 인스타그램도 '표시 광고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광고주들을 제재한 바 있다. 유튜브도 자체적으로 2018년 12월부터 유료 PPL 및 보증 광고에 대한 표시를 요구하는 광고정책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인플루언서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인이다. 인플루언서는 뉴스를 포함하는 콘텐츠 생산자이다. 인플루언서는 전통적 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대중문화와 저널리즘과 경쟁·대립하거나 협력한다. 일부에서는 저널리스트와 인플루언서를 '기레기'와 '관종'으로 악평하기도 한다. 인플루언서는 콘텐츠 생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을 뿐 아니라 기존 미디어의 광고도 가져간다. 인플루언서는 사회적 영향력에 맞는 책무를 짊어져야 한다. 광고 협찬의 투명성 확보도 사회적 책무 중 하나일 것이다.이번 '뒷광고'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기존 미디어와 문화는 인플루언서의 영향력 확대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유튜버 뒷광고 논란에 기존 미디어들은 비판적인 뉴스를 쏟아냈고 일부 과도한 비판도 있었다. 과연 방송과 신문은 광고와 협찬 투명성 논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이미 기존 미디어도 인플루언서와 경쟁하는 콘텐츠 생산자 중 하나가 된 것은 아닐까./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20-08-09 이용성

[월요논단]기후변화시대, 우리 삶의 변화 필요

올해 긴 장마 이상기후 갈수록 심각인간 삶과 밀접 '국가적 대안' 필요세계 각국도 심각성 알고 잇단 방안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서 경고자연은 손대지 않아야 부유해진다올 여름은 장마와 맞물려 기습적인 폭우가 유난스럽다. 지난 주 부산과 대전 지역은 짧은 시간 갑자기 쏟아진 엄청난 양의 폭우로 지하철역, 도로, 아파트가 침수되고 인명피해로까지 이어졌다. 장마전선이 중부지역으로 북상하면서 부산 지역은 장마가 종료되자마자 폭염주의보가 발효 되었고 중부지역에도 물 폭탄이 쏟아졌다. 게다가 올해 장마는 역대 가장 긴 장마가 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지난 100년간 지구의 기온은 꾸준히 상승했고 폭염, 집중호우, 가뭄, 한파, 태풍 등의 이상기후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오래전부터 지구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로 우리에게 꾸준히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는 피부로 느끼지 못해왔다. 그런 사이 기후변화는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우리의 생존에 위협이 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깨닫고 세계 각 국가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7월14일 한국판 그린뉴딜정책을 발표했다. 화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정책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제 지구온난화는 전 지구적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나가야 할 공동의 문제이다.기후변화는 우리의 삶의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국가적인 대안과 함께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우리들 개개인의 변화와 노력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많은 것을 과도하게 소비하고, 많은 것을 버린다. 또 편안하고, 빠르고, 근사한 외형을 선호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지구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근본적인 성찰과 결단이 꼭 필요한 때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1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불필요한 물건은 구입하지 않고, 실내 온도조절로 에너지를 절약하는 등 사소해보일지도 모를 우리의 선택과 행동은 지구를 회복시키는 가장 빠른 지름길일 것이다.지금의 기후변화를 예언이라도 한 듯 그림책 '월든-숲에서의 일 년(헨리 데이비드 소로 글, 지오반니 만나 그림, 정회성 옮김/길벗어린이)'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대자연을 예찬하고 있다. 철학자이자 동식물연구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2년 동안 숲 속에서 혼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았다. 그리고 글을 적어서 세상에 알렸다. 이 그림책은 월든 숲에서 일 년 동안 보낸 사계절의 감동을 전하고 있다. 문명사회의 온갖 편의를 떠나 하늘을 이불삼고 초록이끼 양탄자가 깔린 숲속 거실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그 순간순간을 소소하게 전해준다. 숲에 사는 많은 생명들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듯이 그 또한 숲에서 홀로 살아가는 삶이 외롭지 않았다. 그렇게 숲에서의 그의 일상은 그에게 소박하고 순수한 삶이 주는 행복을 알려주었다. 1800년대를 살면서 소로는 미래를 예측했다. 자연과 멀어지면서 발달된 문명을 권위적으로 누리며 화려한 의복과 물건들로 낭비를 즐기는 삶이 결국은 지구를 파괴시킬 것임을 글로 경고했다.'우리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서 사회의 구성원이라기보다는 자연의 거주민, 또는 자연의 중요한 일부분일 따름이라고 여긴다. "인간은 자연을 손대지 않고 내버려 둘수록 부유해진다"라고 말한 그는 산업의 발달로 자연이 훼손되어가는 것을 가슴 아파했다. 산업의 발전이 인류에게 안락과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에 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메시지가 근간에 폭염, 집중호우 등 이상기후현상을 접하면서 앞으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 깊게 생각해보게 한다. 깊은 성찰과 함께 구체적인 결단과 우리 삶의 변화가 꼭 필요한 때이다./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

2020-08-02 최지혜

[월요논단]존재의 심연에 비춰보는 이육사詩문학상 논란

친일작가 기리는 문학상 받은자가 최종 심사위원 포함 타당성 쟁점화'상장을 접어…' 기형도 시구 떠올라저마다 삶의 방편이 필요하겠지만작가라면 세속 초월 도도한 결기를대구방송에서 주최한 제17회 이육사詩문학상이 논란이다.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한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가 최종 심사위원에 포함되었던바, 그게 과연 타당한가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팔봉 김기진은 친일작가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그러니까 친일작가를 기리는 문학상 수상자에게 항일저항시인 이육사의 이름과 정신으로 수행되는 문학상 심사를 맡긴 것은 잘못된 처사라는 항의가 비판의 요지라 하겠다.논란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기형도의 시구가 떠올랐다.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띄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위험한 家系' 1969) 우리네 삶이란 개천을 떠내려가는 종이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 위태로운 여정의 끝에는 죽음이 놓여 있다. 누군가로부터 부여받은 명예나 권력, 부 따위도 이러한 운명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마련이다. 작가가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자라면 이는 삶이 발 딛고 있는 죽음의 지반을 끌어안은 경지에서 사유하고 행동한다는 의미일 것이다.물론 모든 상장을 접어 종이배로 띄울 수는 없다. 어쨌거나 살아가는 동안에는 삶을 이어나가는 나름의 방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상장을 저 멀리 흘려보내고 어떤 상장을 겸허하게 두 손으로 받아들 것인가. 존재의 심연에 비추었을 때 삶과 관련하여 어떠한 의미를 형성하게 되는가가 판단 근거로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무의 영역으로 수렴하겠지만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확인하는 계기로 작동한다면 받아들이고, 어지러운 욕망의 자극에 불과하다면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재의 심연과 맞대면하고 있는 자는 마땅히 그 정도의 자존심이랄까 오기를 품고 있어야 한다.지금 이 시대는 그러한 유의 오기를 작가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육사詩문학상 논란의 경우에는 민족의식이 기준으로 적용되고 있는데 아무리 견고한 민족의식을 구축했다고 한들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면 손가락질 받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반대로 젠더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치는 작가가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 후보로 올라 비난 받는 경우도 보았다. 거대언론과의 관계 설정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언론 개혁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시급한 과제인바, 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작가는 치켜드는 명예욕을 지긋이 내리누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출판자본의 책임 및 횡포에는 어찌 대응할 것인가.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면 그 기준은 무한정 늘어나게 된다.다양한 기준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예컨대 젠더 문제에 눈 감은 민족의식이나, 친일 잔재 청산에 둔감한 성 평등주의는 각자 자신의 목소리만 높일 뿐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다. 자신의 잣대와 다른 기준은 부차적인 사항에 불과하며 부차적인 논점으로 핵심 논점을 흐리거나 대체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곤란하겠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떻게 모든 기준을 동시에 감당해 나갈 수 있을까. 존재의 심연을 끌어안은 지점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할 도리 이외에는 없다. 세속의 명예, 부, 권력 따위를 도도하게 내려다보는 결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빚어진다.우리 작가들에게는 스스로를 헌신하면서 폭압적인 권력과 맞서 싸워왔던 전통이 있다. 고문과 투옥을 당하면서도 이 나라 민주화에 적극 나섰던 작가들의 구심체 한국작가회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작가들은 그러한 전통을 이어나가되 존재의 심연이라는 지평에서 제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까지 수행하는 지점에 자리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작가가 변화된 시대와 함께 하는 길이다. 세속 어떠한 상장의 권위·명예보다 드높은 곳에 군림하며 호기롭게 제 세계를 드러내는 작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한 작가들의 비중이 한국문학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20-07-26 홍기돈

[월요논단]성찰이 사라진 사회

시장 성추행의혹 극단적 진영 논쟁감염불안에 냉소·분노 증폭 내면화분석·지향 대신 일방적 대립·갈등지성적 성찰 정파적 이익 몰아붙여지난 '100년의 고통' 되풀이할텐가채널A 기자가 현직 검사장과 함께 정권의 향방에 관여하는 모의를 했다고 한다. 그 사건의 수혜자일 수 있는 검찰총장이 사건 수사를 편파적으로 방해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 때문에 시민들의 삶이 불안해지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각종 세제를 대폭 개편하면서 집값 안정을 시도하지만 시장에서의 패배가 예견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해 누구도 만족해하는 것 같지 않다. 마침내 당과 정부가 하나가 되어 그린벨트를 해제해서라도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안과 궁핍을 해소하기 위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하니 다른 취업준비생들이 심각하게 항의한다. 10여년에 이르도록 이 나라 수도의 행정을 도맡아 수많은 업적을 남겼던 인권 변호사 출신의 시장이 성추행 의혹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극단적으로 갈라진 두 진영이 수긍할 수 없는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사건과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점차 사람들은 냉소적으로 변해간다. 그 가운데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불안이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의 냉소와 분노가 증폭되고 내면화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하나의 사건이 있으면 그 사건의 작동 과정과 이유가 있으며, 그것을 초래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불안한 사건과 그렇게 해서 부서지는 사회 및 일상을 원하지 않는다면 사고는 밝혀 대응하고, 그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 진행 과정과 원인을 찾아 고쳐가야 한다. 또한 그 일로 인해 우리 삶과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모든 사람이 한 사건의 심층적 원인과 의미를 밝히는 일에 매진할 수 없기에 먼저 언론이 나서 그 과정과 원인을 밝히고 보도한다. 그 뒤에 담긴 본질적 원인을 논의하고, 그 사건의 의미와 그 이후의 일을 예견하고 대비하기 위해 성찰적 지성을 수행하는 일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한 사회나 국가는 물론 개인조차도 이러한 과정 없이는 자멸할 수밖에 없다.미흡한 대응은 퇴행하며 심지어 파멸하기도 할 테지만, 깊이 있는 대응은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 하나의 담론은 이 모든 과정을 성찰한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찰적 담론이 필요하며, 그 수준에 따라 개인과 사회의 미래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 성찰은 심지어 현재와 과거의 삶까지도 달리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새롭게 언어화 한다.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있어야할 당연한 분석과 지향은 사라지고 오직 대립되는 진영의 갈등과 주장만이 일방적이고 맹목적으로 난무한다. 코로나 감염증이 경고하는 사태는 무엇일까. 그 경고를 다만 마스크와 K-방역으로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공장식 축산과 서식지 파괴로 비롯된 생태적 혼란이 원인임에도 오히려 개발과 성장의 허상을 되풀이 한다.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의 희생을 딛고 유지되는 경제와 사회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본 권력 중심의 논의만 일삼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추동되는 문명사적 전환을 다만 디지털 중심의 경제 논의로 대응하려 한다. 산업화 이후를 말하면서도 사고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 개인과 소외된 이들의 권리, 시민의 보편적 권리를 논의해야할 언론과 법이 권력 논의에 빠져 있다. 언론은 성찰 대신 자사 이익에 따른 선동을 일삼고 있다. 교육 환경과 미래가 급격히 변화할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는 기껏 등록금 반환과 온라인 수업 논의 등의 곁가지만 난무한다. 대학체제 자체가 변화하기에 근본적인 교육혁명이 필요함에도 정책권자는 그들의 기득권만 옹호하려 한다. 맹목적 선언에 휘둘려 지성적 성찰을 정파적 이익으로 몰아붙인다.그 가운데 냉소는 커지고 지성은 진지충이 되며, 성찰적 담론은 사라지고 즉물적 대응이 미래의 지향을 대신한다. 정말 우리는 반짝 빛나는 안정의 시간을 보내고, 겨우 손에 쥔 한 줌의 풍요에 심취해 지난 100년의 고통을 되풀이할 텐가. 지성적 성찰과 예언적 지향이 사라지면 어두운 심연이 우리를 나락으로 이끌 것이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20-07-19 신승환

[월요논단]서울을 재편해야 미래가 있다

또다시 발표된 강력한 부동산정책그러나 반복된 실패사례만 떠올라행정구역 재편외엔 다른방법 없어지방·수도권 없앤 메가시티 조성 등공급부족·공유해법 특권 다 바꿔야또다시 강력한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었다. 종부세와 양도세의 중과가 그것이다. 코로나19의 암울한 상황에서도 부동산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그 많은 정책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이 집을 갖는다는 희망조차 이룰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서울의 집값을 보면서 출퇴근의 어려움을 감내하거나 요령 있게 갭 투자를 못한 현실을 탓하기도 한다. 공직자나 교수들이라도 지역에 거주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울 부동산의 불패 앞에서 무력화되었다. 서울에 집이 있다는 이유로, 지방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부의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다.묻고 있다. 노동은 무엇인가. 공정한 미래사회는 기대할 수 있는가. 왜 정부의 정책은 항상 뒷북이라는 비판을 받는가. 반복되는 정책실패는 역설적이게도 법치주의와 행정의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행정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조직법적 근거와 처분의 근거 법률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해도 국회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국회의 구조는 대립적이다. 공익과 사익의 조정도 언제나 충돌한다. 그 시간과 틈새를 이른바 꾼들은 정확히 파악하고 움직인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득이다. 공직자와 같은 공익의 잣대도 필요 없다. 없는 자를 배려해야할 도덕적 의무도 찾기 어렵다.재개발, 재건축, 대형공사, 펀드, 주식, 비트코인 등 돈이 있는 곳을 헤집고 다닌다. 공직자들은 법의 잣대로 판단하지만 꾼들은 돈이 되는 방식에만 몰두 한다. 나름의 경험법칙과 판단력도 갖고 있다. 부동산과 펀드 등에 전문가에 비견할 만한 지식으로 무장한다. 구글이나 빅 데이터를 통해 매일 세상을 꿰뚫어 본다. 공직자가 세종청사에서 대책을 만들어, 여의도 국회를 거쳐, TV 앞에 설 때면 그들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이후다. 그래서 일까. 성공적인 정책으로 남은 기억이 별로 없다. 과거의 모든 정부가 반복한 저출산 대책이나 지방분권의 실패사례가 자꾸 떠오른다.정부의 반복되는 정책 실패를 보면서 꾼과 공직자들의 차이를 다시 생각한다. 꾼들은 왜 정부보다 앞설까. 정부가 쳐놓은 그물을 피할 수 있을까. 그것은 정부나 공직자가 문제의 본질과 현상을 소홀히 하는데서 시작된다. 서울은 모든 것을 갖고 있다. 누구든지 서울에 살고 싶어 한다. 서울은 세계적인 도시이다. 그러나 주택의 공급은 부족하다. 당연히 주택을 중심으로 불로소득이 창출된다. 불로소득은 서울집중을 더 가속화한다.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땜질식 정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모두가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기득권 시각으로 서울을 보면 답이 없다. 대한민국의 시각으로 서울을 봐야 한다. 서울의 부동산 대책은 서울이 없어야만 가능하다. 이미 서울의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수많은 정책과 논쟁들이 제안되었다. 행정구역에 대한 과감한 재편이 없는 한 어떤 정책도 실패한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때다. 서울과 경기 그리고 인천을 하나의 메가시티로 재편하는 발상의 전환과 실천이 필요하다.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벽도 허물어야 한다. 지방과 수도권이라는 낡은 2분법도 없애야 한다. 수도권만이 아니라 부울경도 호남권도 재편해야 한다.교통, 철도, 공항, 상하수도, 폐기물, 문화, 교육, 복지 등에 대한 공유와 연계를 통해 효과를 극대화시켜야 한다. 공급부족과 공유의 문제는 서울의 재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재택근무의 경험을 통해 재구조화를 준비하고 있다. 구글이 재택근무하면서 주변의 집값들이 하향한다는 미국의 뉴스도 있다. 코로나19는 우리사회에 기존의 삶과 국가구조에 대한 전면 재편을 요구하고 있다. 행정구역의 혁신적 개편과 산업구조의 재구조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학교나 대학을 졸업해도 갈 곳이 없는 사회에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영끌'로 아파트 투기에 나선다는 국가에 무슨 희망이 있는가. 서울의 특권을 전면적으로 재편하는 혁명적 발상과 그 실천이 필요한 때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07-12 김민배

[월요논단]구글의 지역언론 지원을 지켜보며

지역뉴스 사람-사회잇는 주요수단亞太 800개 언론사에 긴급구제펀드'광고' 빼앗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 정부·네이버 외면속, 의미있는 지원 언론, 승산없는 경쟁 가치 유지할까4월부터 구글이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지역언론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구글은 운영 중이었던 뉴스혁신을 지원하는 '구글뉴스이니셔티브' 프로그램에 저널리즘 긴급구제펀드를 편성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오리지널 뉴스와 종합뉴스를 생산하는 중소규모 언론사를 위한 글로벌 지원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만 800개가 넘는 언론사에 지원됐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지역일간지와 지역주간지가 상당수 지원을 받았지만 공식적으로 지원사와 지원액을 밝히지는 않았다.4월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코로나19로 위기에 직면한 신문산업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이 신문협회 등에서 있었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없었다. 특히 신문협회의 정부광고 확대 등의 정책 제안은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코로나19 관련 보도에서 논란이 많았던 대형신문사를 왜 지원하느냐는 비판이었다. 언론노조도 지역신문의 긴급 지원이 핵심이라고 신문협회를 비판했다. 실망한 지역신문에 구글의 간편한 지원은 기분 좋은 기억이 된 것 같다. 정부와 네이버는 뭐 하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정부의 지역언론 긴급지원은 뒤늦게 6월25일 발표됐다.구글은 왜 코로나19로 심각한 위기 속에 있는 지역신문을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했을까? 공개된 구글 관계자의 지역신문 지원에 관련된 입장은 이런 것이었다. "지역뉴스가 사람과 지역사회가 계속해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주요한 수단이라 판단"했고 "지역언론이 자가격리나 학교와 공공시설 폐쇄와 같이 코로나19가 일상생활에 미친 변화를 보도하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 재정 타격에도 불구하고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 지원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저널리즘은 구글 미션의 핵심 위치에 있고 구글과 언론의 미래는 서로 연결돼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구글의 언론 지원은 영향력을 확대하고 언론의 구글에 대한 비판적 감시를 무력화할 거라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구글은 이건 협업을 위한 것이고 지역언론에 대한 관심은 지역뉴스가 지역사회를 계속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코로나19는 분명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꿔가고 있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우리 사회는 달라질 것이고 디지털 세상은 더 가속화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언론이 처한 위기 상황을 글로벌 플랫폼 기업인 구글이 지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도 정부와 네이버의 지원은 이뤄지지 않는 시점에서.구글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자 검색서비스기업이다. 인터넷 검색엔진이 여론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은 계속되고 있고 입증된 사례도 있다. 검색서비스 기업도 언론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 기업이나 네이버는 미디어와 광고를 둘러싸고 경쟁하는 강력한 경쟁자이다. 미국에서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신문광고비가 75% 하락했는데 페이스북과 구글에 대부분이 넘어갔다고 보기도 한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언론 또는 미디어에 승산이 없는 경쟁이다. 광고비 이동의 이유는 이 기업들이 언론이나 미디어에 비해 대중의 주의력을 집중시키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언론은 지금까지 내세우던 저널리즘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 언론의 마지막 희망이자 최대 소비자는 현재까지 남은 구독자나 시청자가 아닐까.구글의 지원이 지역언론과 같이 대안적인 시각과 다양한 의견이 작동하게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구글에 대한 호의적 반응이 이어질 때, 유튜브에 접속하면 "구글LLC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을 이유로 시정명령을 받은 사실이 있음"이란 공지를 볼 수 있었다.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 가입자에 대한 잘못된 조치로 과징금과 시정조치를 명령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구글이 시정명령을 그대로 수용한 점은 전향적인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구글을 어떻게 봐야 할까? 네이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지역언론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20-07-05 이용성

[월요논단]동물과 인간의 공존

고속道 로드킬 5년간 9866건 불구형식적인 생태통로 등 구축에 그쳐다양한 생물종 고려한 '대책' 시급무엇보다 운전자 세심한 주의 필요모든생명 사랑·존중하며 살아가야강화도에 살면서 운전을 하다보면 급정거를 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고라니, 고양이, 개구리, 뱀 등 도로에 뛰어든 동물을 피하기 위해서다. 가까스로 피하게 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미리 보고 정지할 여유가 있다면 정말 다행인데 보통은 갑작스럽게 겪게 된다. 한번은 갑자기 뛰어든 고양이를 피하려고 반사적으로 핸들을 돌려 큰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다. 도로 위에 교통사고를 당한 동물들을 만나기도 한다.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봤을 일이다. 한국도로공사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 고속도로 로드킬은 총 9천866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급증하는 로드킬의 가장 큰 원인은 야생동물의 행동반경을 가로질러 생긴 도로 때문으로 보고 있다. 야생동물은 번식과 먹이를 찾기 위해 이동을 하는데 야생동물이 다니던 길에 도로가 생기면서 도로를 건너다가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로드킬은 심야시간에 더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야생동물의 습성상 늦은 밤과 새벽사이에 이동이 더 잦은데 자동차 전조등 불빛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으면서 피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사고라 생각하고 지나치기엔 너무 많은 애꿎은 동물들이 생명을 잃고 있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인간 중심의 경제논리에서 발생된 문제들을 우리는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한다. 그동안 지자체마다 로드킬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들을 마련해왔다. 하지만 제대로 된 환경조사 없이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하고는 형식적이고 부실한 생태통로를 만들어 보여 주기식 행정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로드킬을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과 야생동물이 함께 공존해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개발 이전에 주변 환경과 생태 조사를 통해 생태계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고 해당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생물종과 그 특징을 고려한 실효성 있는 생태통로와 유도 울타리 등을 통해 야생동물의 안전이 보장되어야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규정 속도를 잘 지키고 야생동물출몰지역 표지판이 있는 곳과 야생동물이 많이 다니는 심야 시간에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그리고 부득이하게 로드 킬이 발생했을 시에는 관할기관에 전화로 알리고 사고수습을 신속하게 진행하여 죽은 동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해서 동물도 또 다른 운전자도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행동의 저변에는 동물이 살던 공간을 우리가 침범했다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기본적으로 가져야겠다.로드킬로 죽어가는 동물들을 안아주는 그림책이 있다. '잘가, 안녕(김동수 지음·보림출판사 펴냄)'은 교통사고를 당해 길바닥에 죽어있는 동물들을 데려와 찢어진 부분은 꿰매주고, 떨어져 나간 부분은 붙여주고, 두 동강 난 동물은 한 몸으로 만들어서 사고전의 원래모습이 된 동물들을 꽃과 함께 보내주는 할머니를 그렸다. 멀어져가는 동물들에게 "잘가, 안녕!"하고 손 흔드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할머니는 길바닥에 피범벅으로 죽어있는 동물들을 집 안까지 데려와서 사람처럼 정성스럽게 염(殮)하고 명복을 빌어준다. 할머니의 쉽지 않은 선행(善行)은 생명의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도서관에 온 3살 아이가 어른의 큰 발에 밟혀버린 거미를 보며 말했다. "거미 밟으면 안 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이렇게 걸으면 거미 안 밟잖아!" 그 아이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조금 늦고 손해를 보더라도 잘 보고, 잘 듣고, 천천히 걷고, 왼쪽도 보고 오른쪽도 보면서 선(善)한 마음으로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

2020-06-28 최지혜

[월요논단]정의기억연대를 둘러싼 논란의 본과 말

지엽말단에 매달린채 본질 '외면'마포쉼터 소장 자살이유 등 보도보수언론 허술한 주장 불구 확산잘못된 '정치적 초기대응'도 일조위안부운동 새방향 모색 계기돼야모든 일에는 본말이 있다. 지엽말단에 매달린 채 본질을 외면하는 논의는 혼란과 왜곡만 불러일으킬 따름이다. 정의기억연대를 둘러싼 일련의 갑론을박 과정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성 싶다. 정의기억연대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후원금 사용에 관한 의혹이라면 검증에 앞서 일단 터뜨리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최근 길원옥 할머니의 뭉칫돈이 어디로 빠져 나갔는가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이들의 태도는 명확하다.예컨대 '조선일보'에서는 마포쉼터 소장의 자살 이유를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길원옥 할머니가 매달 국가지원금을 350여 만원 받았는데, 이 돈이 다른 계좌로 빠져 나갔고, 며느리 조씨가 이를 추궁하자 소장은 아무런 해명도 못한 채 조씨 앞에 무릎 꿇었다고 17일 기사에서 전했다. 이는 조씨의 일방적인 주장일 따름이다. 양아들 황선희 목사 내외가 할머니의 뭉칫돈을 꾸준히 빼먹었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은 만큼 이런 보도는 성급하고 일방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또한 망자에 대한 엄청난 모독이기도 하다.다음 날 기사 '길원옥 할머니 치매 앓는 사이… 통장서 뭉칫돈 나갔다'에서는 정의기억연대와 관련된 단체들까지 한데 엮으려는 의도가 두드러진다. 뭉칫돈을 받아간 단체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미디어몽구의 반박을 보면 '조선일보'의 기사가 얼마나 허술한지 금세 파악할 수 있다. 미디어몽구는 2011년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의 활동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이를 기특하게 여긴 길원옥 할머니가 미디어몽구에 자동이체 방식으로 2013년부터 매달 1만원씩 후원했으며, 2020년 4월까지 77만원 입금됐다. 이게 과연 기사로 다뤄야 할 만큼 심각한 사안일까. 오히려 문제는 온갖 매체가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을 반복하고 있으며, 미래통합당 곽상도 의원과 같은 정치인이 해괴한 추측을 퍼뜨리며 결탁하는 양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는 데는 정의기억연대의 잘못된 초기 대응이 일조한 측면이 있다. 처음 이용수 할머니의 비판이 있었을 때, 정의기억연대는 정치적 입장에 입각한 찬반 전선을 구축하려고 했다. 조국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대립 양상의 재현으로 돌파하고자 했던 셈인데, 이로써 논점은 하나의 방향으로 확정되고 말았다. 정의기억연대가 정치적인 방식의 해결로 나아가려는 까닭은 '지원금 사용이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란 의혹이 프레임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프레임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으나, 이는 대체로 이용수 할머니를 깎아내리고 모욕하는 방식이기에 동의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대구 지역의 정치 성향이 보수란 사실은 분명하지만, 이용수 할머니의 정의기억연대 비판이 지역 성향의 발현이란 반박은 어떠한 논리 근거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국회의원으로 향하는 자신의 꿈이 좌절된 반면,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전 이사장은 국회의원이 되어서 배가 아파 저러는 것이란 비난도 있다. 비유컨대 반민주 세력과 치열하게 맞섰던 민주 인사들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투쟁했던 것일까. 과거 보수언론은 야만적인 시대와의 자기희생적 저항을 개인의 출세욕으로 왜곡하곤 했다. 보수언론의 작태에 냉소하는 나로서는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그와 같은 방식의 혐의에 대해서도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할머니가 92세의 고령이라 기억 왜곡이 있다거나 배후세력이 있다는 의혹은 주체로서의 할머니를 지워버리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내가 바보냐, 치매냐?"란 할머니의 반박에 오히려 동의하게 된다.정의기억연대의 후원금이 타당하게 집행되었는가는 마땅히 따져봐야 하겠지만, 이는 마녀사냥을 하듯 일순간 몰아칠 일이 아니다. 또한 진영에 입각하여 언 발에 오줌 누듯 방어할 일도 아니다. 이보다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기왕의 위안부운동 성과를 계승하는 한편, 새로운 방향으로의 모색을 꾀하는 것이 아닐까. 예컨대 하워드 제어는 피해자의 상처 치유를 위해서는 회복적 정의에 입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잘못을 입증·처벌해낼 도구로 전락할 응보적 정의의 한계와 그 너머를 제시하고 있다.('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그러니까 현재의 시끄러운 논란은 위안부운동의 미래와의 관련 하에서 정리해 나갈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다.피로써 피를 씻을 수는 없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피로써 피를 씻는 데 골몰하면서 놓치게 된 어떤 지점을 돌아보도록 한다. 그런데도 날카롭게 칼을 벼리고 다시 피를 씻겠노라 날뛰는 무리만 늘어났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20-06-21 홍기돈

[월요논단]문명의 전환

곳곳서 위기 파열음 깊어지는 느낌 기껏 바이러스 하나도 못 이기면서인간 초인류 진화 희망에만 부풀어이젠 자본 산업화 근대체제 넘어서생각·일상 바꾸는 새전환 필요시기곳곳에서 위기를 알리는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그 소리가 워낙 크기도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기에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그 결과인지, 어느 것이 우선하는 위기인지 알기도 힘들다. 흘러넘치는 정보와 지식에 묻혀 지난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이 아는 듯한데, 이 파열음의 진정한 원인과 해결책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위기가 깊어지고 있다는 느낌만은 점점 뚜렷해진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적 대감염의 위험은 감지했지만, 이 위험이 깊어질수록 드러나는 숨어있던 수많은 위기는 절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거대담론으로 정치와 경제, 문화와 사회를 말할 수 있지만 위기는 언제나 구체적인 삶에서 시작되며, 불안과 두려움에 빠지게 하면서 점점 더 뚜렷해진다. 그렇다. 바로 너와 나의 삶이 문제가 되고, 나의 실존이 불안에 허덕이고 있다. 마침내 그 불안은 사회적 위기로 나타날 것이다. 위험은 감지하는 것이지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는 위험은 해결책을 보여줄 테니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우리가 감지한 이 위기는 거대한 전환의 시기가 다가왔음을 절박하게 외치고 있다. 아니 그 외침은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다만 우리가 듣지 못하였으며, 들었음에도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 사이 위기는 점점 더 커져 근본적인 전환 없이는 극복할 수 없으리만큼 깊어졌다. 인간의 과거와 미래가 어떤 초월적 존재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현재와 우리 삶은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정보과학기술과 생명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트랜스휴먼의 꿈을 가져다주었다. 온갖 질병과 노화를 넘어설 뿐 아니라, 초지능과 결합하여 초인류로 진화할 것이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심지어 인간이 신의 위치에까지 다가갈 것이라 공언한 역사가가 세계의 각광을 받기도 했다. 신은 아닐지언정, 생물학적 한계 정도는 쉽게 넘어설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찬란한 희망의 불빛에 가려진 현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위기의 파열음을 보내고 있다. 다시금 생각해보라, 정말 인간은 초인류가 될 것인가? 설사 그렇게 된다면 인간이 지닌 모순과 한계, 우리 안의 어두운 심연은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그것이 빗어내는 인간 사이의 문제는 어떤 초지능이 해결해줄 것인가. 기껏 바이러스 하나 이겨내지 못하면서, 그것이 주는 두려움 하나 어찌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가려진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초지능을 갖춘 채 다른 별로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철학적 조류는 80년대를 지나면서 이미 이런 위기를 경고하면서 계속해서 문명과 사유의 전환을 부르짖었다. 다만 듣지 않았다. 산업시대는 지났음에도 자본과 과학기술의 현란함에 가려 그 그림자를 보지 않았을 뿐이다. 정보과학기술의 과도함이 그 미세한 경고음을 듣지 못하게 했을 뿐이다. 지금의 사태는 어쩌면 마지막 경고일지도 모른다.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미시적이면서 거시적이어야 한다. 생각의 틀을 바꾸고 일상의 삶을 바꿔야 한다. 보는 곳을 바꾸고 보는 방법을 전환해야 한다. 현란함과 풍요를 보지 말고 그 뒤에 감춰진 어두움을 직시해야한다. 그 이전부터 들려왔던 패러다임 전환 요구를 새롭게 들어야 한다. 몸과 마음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우리가 사는 일상에서 듣고 말하고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성장과 풍요의 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일상적 삶은 물론, 우리가 사는 공동체조차도 결코 지켜내지 못한다. 자본의 논리와 그 유혹을 벗어야 한다. 재벌이 아니라 공유하는 경제가 살아야 한다. 한 줌의 권력으로 가려진 그들을 보이지 않게끔 만드는 그들을 넘어서야 우리 삶이 살아날 수 있다. 자본과 산업화에 성공한 근대의 체제를 넘어서지 않으면 이 위기는 극복되지 않는다. 넘어서기 위해 체제를 바꿔야하고, 바꾸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언론과 법과 경제의 한 줌 권력에 취한 자들은 보지 않으려 한다. 거부하는 그들을 넘어 너와 나 우리가 변혁해야 한다. 변하기 위해 그 어두움을 봐야 한다. 보면 알게 되고, 알면 바꿀 수 있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20-06-14 신승환

[월요논단]기술패권 전쟁과 한국형 뉴딜정책

지식재산권 침해·홍콩사태 '갈등'中 제조업·첨단 기술 거센 추격에"위험국가" 미국 무역관세로 반격강대국 사이 '한국 힘든 선택' 강요정부 미래인재 육성정책지원 절실G7에 한국이 초대를 받았다. 축하를 받아 마땅한 경사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의 초대에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반대가 많다. 더구나 중국은 초청명단에도 없다. G7과 중·러의 새로운 대결이 예상되는 장면이다. 돌이켜보면 미국은 냉전기에 중국과 결합하면서 소련을 견제하고자 하였다. 값싼 중국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제조업과 금융자본의 이해관계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중국에 대한 관여와 안정화를 통해 정치적 자유화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책임지는 국가가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지식재산권의 침해, 남지나해 인공 섬 조성, 홍콩 사태를 보면서 그 기대를 접고 있다. 오히려 중국이 일부 첨단기술영역에서 추격에 성공했다는 현실 앞에 당황하고 있다.워싱턴의 반격을 보면 중국의 기술성장을 저지하고, 미국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넘쳐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과 관세를 주된 대중압박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의 제조업과 첨단기술을 지켜야 한다는 테크노 내셔널리즘을 분출시키고 있다. 중국이야말로 지식재산권의 침해를 통해 미국의 안전과 번영을 해치는 위험한 국가라는 주장이다. 이미 미국은 '국방수권법'(NDAA)을 통해 화웨이 등으로부터 통신기기나 영상 감시기기의 조달을 금지했다. 올해 8월부터는 이들 회사의 기기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기업과의 계약도 금지한다. 지난 2월13일부터 시행된 '외국투자 리스크심사 현대화법'(FIRRMA)의 시행규칙은 사실상 '중국제조 2025'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은 생명공학·축전지·원자력 등 27개의 산업분야에 대해 중국 등 외국인의 투자를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미국은 중국의 기술추격을 차단하기 위해 인공지능·로봇·양자 정보과학·극초음속 병기 등 첨단기술을 군사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연구·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산업스파이로 지목하여 연구소·대학·방산회사에 소속된 중국 연구자의 비자 등을 취소하는 절차도 시작하고 있다. 21세기 전쟁의 상대는 이념이 아니라 기술패권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첨단기술을 둘러싼 기술 패권전쟁은 왜 격해지고 있는가. 기술패권이란 첨단기술의 개발·이용·관리 등을 장악한다는 의미이다. 기술력이 국가안보 뿐만 아니라 외교적 수단으로 그리고 국력의 원천으로 간주되고 있다. 첨단기술은 군사적 차원의 게임 체인저를 넘어 국제질서를 장악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중국이 디지털 실크로드라는 개념을 내세워 5G의 표준화에 주력하는 이유다. 5G를 앞세운 중국에 맞서 미국이 강력하게 저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기술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각 국가로 연결된 기술에 대한 차단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미래에 지켜야할 최첨단 기술로 게놈공학·AI기계학습·양자암호·양자컴퓨터·첨단감시기술 등을 들었다. 현재 한국은 기술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거대한 국제시장이자 성장하는 중국. 국가안보와 수출의 핵심인 미국과의 동맹관계. 과연 어디를 선택해야 하는가. 선택에 따라서는 첨단기술과 수출입에 큰 위기가 올 수 있다. 이것을 피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계적 수준의 첨단기술을 보유하는 방법밖에 없다.정부는 향후 5년간 76조원을 투자한다는 한국형 뉴딜정책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디지털 뉴딜은 2조7천억원이다. 사업을 보면 데이터·5G·AI인재 육성 정책 등이다. 기술목록을 놓고 보면 삼성전자만도 못하다. 올해 삼성전자는 양자암호통신·차세대 항암제·장애물 뒤 물체 촬영 등을 지원한다. 코로나19 이후를 생각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최첨단기술(emerging technologies)의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통해 우리들은 최첨단기술이 국가안보이자 경제라는 사실을 경험하였다. 앞으로 강대국은 G7의 초대가 아니라 최첨단기술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최첨단기술개발의 핵심은 고급인재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7월에 종합적으로 발표되는 뉴딜에는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최첨단기술에 대한 정책과 지원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06-07 김민배

[월요논단]언론영역 징벌적 손해배상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왜곡보도에 대한 시민 분노 계기피해구제 위한 도입 목소리 커져상징적·실질적 필요성 주장 불구실손해액 3배내 범위 실효성 의문권력 등 감시 기능도 위축 가능성최근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의가 활발해 지고 있다.지난해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김어준의 다스베이다'와 YTN '뉴스N뉴스'에 출연해서 언론의 기본적 취재와 보도의 자유는 제대로 보장받아야 하지만 언론의 왜곡보도를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열린민주당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언론개혁 공약으로 '악의적 허위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제시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5월17일 KBS '저널리즘 토크쇼J'에 출연해 악의적인 허위보도에 대해서는 언론사가 미국의 사례와 같이 징벌적인 배상을 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언론인권센터는 현재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에 의한 언론보도 피해로 인한 손해배상 인용액이 너무 적어 실질적인 피해보상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나 언론보도가 악의적일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최근 언론의 왜곡보도에 분노해서 시민들이 제기한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도 여러 건에 이른다.악의적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2004년에 집중적으로 논의된 바 있다. 당시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는 신문 등 정기간행물에 대한 내용과 함께 언론중재위원회 등 언론보도 피해구제에 관한 내용이 규정되어 있었다. 이 법을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으로 분리하기 위한 법 개정이 추진됐다. 시민언론단체와 언론현업단체가 함께한 언론개혁국민행동과 열린민주당의 언론피해구제 법안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쟁점이 됐다.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해 손해배상이 실시되지만 인정되는 위자료액은 피해자 구제나 회복에 크게 미흡하므로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악의적인 허위보도가 명백한 때에는 법원이 미국과 같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언론인권센터와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 모임 등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찬성했고 기자협회 등 현업단체는 반대했다. 결국 언론중재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도입되지 못했다.2006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기존 손해배상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효과적인 대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인정하고 언론중재법을 포함하는 9개 법에 한정하여 도입하기로 했지만 실제 법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2011년 처음으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실손해의 3배가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됐고 지적재산권과 개인정보보호 관련 법에도 비슷한 내용이 도입됐다.2013년 12월에는 정청래 의원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언론의 악의적 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에 법원은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했다. 국회 검토보고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법이 개정되지는 않았다.악의적인 왜곡보도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도입이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해서 상징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도입되면 얼마나 실익이 있느냐는 의문이다. 법원의 언론보도 피해구제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이면 대개 실손해액의 3배 이내로 정해지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의미가 효과가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특히 정치·경제·종교 권력을 감시해 왔던 'PD수첩' 등 시사프로그램과 '뉴스타파'와 같은 대안언론, 지방권력을 감시하고 있는 지역언론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신중하고 효율적인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의가 필요하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20-05-31 이용성

[월요논단]잃어버린 아이들을 찾아서

매년 5월 25일은 '실종 아동의 날'작년 접수 2만명중 100명 찾지 못해가족들 심리 정서적·경제적 어려움제도적 장치, 사건 이후에 효력 발휘우리 사회 함께 관심 모아야 할 때5월은 가정의 달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기념일이 많다. 보통은 함께 기념하고 감사인사를 전하기 위해 여러 모임이 만들어지고, 아이들은 들떠 선물을 기다리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기억하고 함께 하는 시간들 사이에 아직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기념일이 있다. '세계 실종아동의 날'이다. 1983년 미국에서 대통령령으로 선포되어 캐나다와 유럽 등 전 세계가 동참하게 되었고 우리나라도 2007년에 매년 5월 25일을 '실종아동의 날'로 제정했다.실종아동 사건을 생각하면 오래전 일이지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1991년 다섯 명의 초등학생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갔다가 실종된 사건이다. 당시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전국을 수색했지만 아이들을 찾지 못했다. 그 후, 11년 후인 2002년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었고 범인을 찾진 못했다. 아이들의 부모는 생업을 포기한 채 아이들을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매고 다녔고, 유골을 발견한 후에는 사망 원인 등 진실규명을 외치며 평생 지울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사건 외에도 부모와 함께 외출했다가 어느 순간 보호자와 떨어지게 되는 경우, 인간의 추악한 욕심과 비윤리성으로 인해 유괴 당하여 죽음으로 몰리게 되는 경우 등 다양한 유형의 실종 사건이 일어나고 있고 실종된 아동의 가족들은 심리 정서적, 경제적 어려움에 놓이게 된다.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작년 한 해에만 2만명이 넘는 아동의 실종 사건이 접수 되었고, 이중 100여명의 아동은 찾지 못했다. 실종아동 수는 해마다 늘고 있어,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동은 사회적 약자로 보호가 필요하며 보호자가 없을 경우 위험과 범죄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실종아동에 대한 예방과 대책 마련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이에 실종아동에 대한 대책은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을 바탕으로 꾸준히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실종아동 조기발견을 위한 '코드 아담제'와 만8세 미만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사전 지문등록 시스템'을 들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에도 실종아동 수가 줄지 않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법적, 제도적 장치들은 주로 실종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효력을 발휘한다. 실종아동 문제는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정책의 실효성 점검과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겠다.실종아동 문제를 담아낸 그림책이 있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서'(모리스 샌닥 글·그림. 김경미 옮김/시공주니어 출판)의 작가인 모리스 샌닥이 미국에서 일어났던 유괴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아이에 대한 추모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서 아이는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림책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 동생과 함께 집에서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이다는 기쁨에 겨워 아기를 꼭 껴안았어.' 이처럼 작가는 상실과 슬픔을 넘어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우리는 그림책 작가 모리스 샌닥이 희망을 이야기 한 것처럼 모든 어린이와 부모, 특별히 실종 아동과 그 부모에게 어떤 희망을 보여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실종아동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아닐까? 어느 한 개인의 불행이 아닌 사회문제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5월25일 세계 실종아동의 날을 보내며 실종아동을 기억하고 모든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관심을 모아야겠다./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

2020-05-24 최지혜

[월요논단]우리 모두가 삼성의 공모자다

1991년 노조만들다 해고 김용희씨구타·납치 등 압박속 344일째 농성반성·계획 없는 '껍데기 약속' 보며이재용씨 대국민사과 날부터 단식언론도 눈감은 강남역 철탑위 항거올해는 전태일 열사가 몸 사른 지 50년 되는 해다. 살아 있을 당시 열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심심찮게 반복했다고 한다.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아무리 공부해 봐도 어렵기만 했기에 가지게 된 바람이었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되어 '전태일 평전'을 읽을 때 나는 그 대목에 밑줄을 그었다. 열사의 비어있는 대학생 친구 자리에 나 자신을 밀어 넣고자 했던, 나름의 책임감을 다잡는 행위가 밑줄 긋기였던 셈이다.문득 대학 초년생 시절 기억이 떠오른 것은 지금 또 한 명의 전태일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1년 김용희씨는 노동조합을 만들려 했다는 이유로 삼성에서 해고당했고 이를 알리자 명예훼손으로 두 차례 구속됐다. 폭력배로부터의 구타, 삼성 직원에 의한 납치, 성추행이란 무고, 북한 간첩으로의 조작 시도 등도 잇따랐다. 김씨는 현재 삼성사옥이 있는 강남역 사거리 25m 높이의 CCTV 철탑 위에서 344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65㎡(0.5평)에 불과한 철탑 위는 매우 비좁아 누우면 머리와 다리가 허공으로 삐져나온다.별로 놀랄 필요가 없을지 모르겠다. 삼성이 떡값을 돌려 검사들을 어찌 관리해 왔는지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의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설립 요청이 낮은 수준의 양형을 위한 수순으로 이해되는 것은 그 연장이라 할 수 있다. 법을 만지작거리는 부류들이 소위 떡검과 뭐 그리 다르겠느냐는 혐의가 퍼져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재용은 지켜도 그만, 무시해도 그만인 약속을 했다. 수준 역시 구체적인 반성도 계획도 없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이러한 사과를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준법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예상했던 바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전개라 하겠다.언론 또한 사법계와 그리 다를 바 없다. 삼성 비판 내용의 칼럼을 썼던 필자들이 어떻게 필진에서 배제되는지 우리는 익히 목도 한 바 있다.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언론이 광고를 통해 삼성에 길들여 지고 있는 실상은 바로 그 지점에서 폭로되었다. 현재 김용희씨의 고공농성이 주류 언론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까닭도 그러한 현실과 무관치 않을 게다. 서울 번화가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질긴 사건을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난 기자들이 여태 놓치고 있을까. 그가 꿈꾸었던 노동자의 단결권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영민한 기자들이 설마 모르고 있을까.일찍이 이문열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옹호 논리를 다음과 같이 펼쳤던 바 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예는 지극히 사소하고 상식적이어서 얼른 이해가 안 될 테지만, 조금만 기본적인 것으로 눈길을 돌리면 사태는 명백하다. 나치의 법, 또는 스탈린이나 중남미의 법을 보아라. 법조문에는 그 어느 것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 사회의 이상(理想)이 집약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지. 결정하는 것은 다만 그 적용을 결정하는 어떤 흐름뿐이다'('약속', 1982). 이문열은 아마도 전두환·노태우 일당이 법 위에 군림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당대 현실을 감싸고 싶었으리라. 똑같은 논리를 적용하건대 현재의 흐름에 순응하는 이들은 전두환·노태우의 이름 대신 삼성과 이재용의 이름을 품고 있으리라.옴짝달싹 못할 흐름에 갇혀 있음을 깨달았을 때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김용희씨가 전태일 열사와 다른 점은 죽음 대신 지상을 떠나 25m 허공 위로 올라갔다는 사실뿐이다. 그를 접견한 의사는 "당장 지상으로 내려가야 할 정도로 건강이 심각하게 좋지 않다"고 소견을 밝혔다. 나는 그의 모습 위에 전태일 열사의 모습을 겹쳐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와 지상 사이의 허공을 채워 나가는 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것이 대학생 시절 내가 되새겼던 미래의 내 모습이며, 저 야만적인 흐름에 공모하지 않는 유일한 방편이기 때문이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20-05-17 홍기돈

[월요논단]깨어진 일상과 문명의 새로움

코로나19가 멈춰세운 일상 '당혹감'잃었던 가치·인간다움 돌아볼 시간기득권 유지 감춰진 자본 과잉 여전재난 이용 특권 키울땐 더큰 재앙뿐생명·삶 위한 새로운 문명의 전환을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그 익숙함으로 인해 당혹감을 주기도 한다. 그 익숙함 속에서 언뜻 언뜻 낯섦을 마주하게 되거나, 또는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음에도 그렇지 못할 때 오는 당혹감이 그것이다. 일상이 멈출 때 우리는 그 당혹감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된다. 그때의 당혹감은 그 익숙한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또 진부함을 깨고 새롭게 다가오는 그것이 무엇인지 묻게 만든다. 가장 가까운 이의 부재가 우리에게 그 사람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도 그런 경우다. 코로나19가 멈춰 세운 일상은 이 느낌을 통해 익숙했던 과거와 다가올 시간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 우리의 일상이 코로나19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어떤 새로움을 보고 있는 것일까. 돌아갈 수 없는 일상, 벗어나야할 일상은 어떤 것일까.코로나19는 여전하며 위기는 계속된다. 여전히 그 익숙함에 취해 벗어나야할 과거로 돌아가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변화란 익숙함을 막는 장애물이며 문명의 새로움이란 두려운 세상일 뿐이다. 코로나19가 가로막은 일상은 깨어진 삶의 터전을 다시금 보게 만든다. 그 안에서 익숙한 과거로 돌아갈 수도,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무엇을 선택해야할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그 선택을 위해 깨어진 일상은 무엇이며, 다가올 새로움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돌아봐야 한다.이번 총선은 코로나19 선거라고들 말한다. 여당이 이 사태로 인해 정치적 이익을 얻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 결과에는 깨어진 일상을 통해 시민들이 감지한 새로운 삶에 대한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그 의식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 여당에 안겨준 압도적 승리는 압도적 패배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과 같은 삶과 일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느낌은 우리에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상상하게 만든다. 지난 100여 년간 식민지와 분단 상황을 거치면서 겪었던 희생과 고통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편입되면서 얻게 된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잃어버렸던 가치와 인간다움을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 지금 우리 앞에 와있다. 그 안에 희생되고 소외되며, 삶의 사각지로 내몰리는 이들을 공동체 안으로 불러들이지 않으면 이 작은 성공은 더 큰 화가 되어 되돌아올 것이다. 그때는 더 이상 이 정도의 성공조차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무엇이 우리 공동체를 파괴하고, 인간다운 삶을 황폐화시키는가. 방역성공이란 화려함 뒤에 감춰진 자본의 과잉은 여전하다. 불법과 노동탄압을 저지른 재벌총수의 사과는 찾아가야할 김용희의 농성장이 아니라 잘 계산된 정치적 분식에서 공허하게 울리고 있다. 정파적 이익에 매몰되어 맹목적인 분열만 조장하는 언론도, 끝없이 퇴행하던 그 정치도 여전히 한 줌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과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했던 사회와 경제 체제가 사라졌는가? 특권에 안주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법조계는 개혁되었는가? 벗어나야할 익숙함과 관행이 다만 잠시 멈췄을 뿐이다. 이 멈춰선 시간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재난을 이용해 자본의 영악한 이익을 키우고 자신의 특권을 강화할 생각만 한다면 이 기회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의 예고편이 될 뿐이다.파행으로 치닫은 대학 강의에 교육부는 다만 등록금 반환이나 수업 일수 준수 따위로만 대응한다. 줄기차게 대학교육 개혁을 말했지만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철석같이 약속했던 교육개혁은 조금도 이뤄지고 있지 않다. 생태계 파괴로 초래된 생명과 삶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문명의 전환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다. 그런 사회와 문화가 다음의 위기를 벗어날 힘을 얻을 수 있을까. 깨어진 일상을 넘어 다가올 시대의 새로움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를 위해 개혁해야하며 그를 뒷받침할 철학을 찾아야 한다. 방역선진국이라는 외부의 칭찬에 취해만 있다면 그가 바로 후진국이다. 가보지 못한 길을 상상하면서 문화와 사회체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이 새로움을 드러낼 지성적 결단과 미학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생명과 삶을 위한 문명의 전환 없이는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20-05-10 신승환

[월요논단]당대표에 나선 송영길과 홍영표의 과제

선출되면 2022 대선·지방선거 중책洪, 조직 관리 리더십 발휘 CEO형친문 프레임 극복·선거 승리 '과제'宋, 인천시장 경험·원외 움직임도호남에 대한 견제·영남권 설득해야180석의 거대여당. 5월7일 원내대표 선거가 있다. 새로운 권력을 향한 경쟁이 가시화되었다. 원내대표로 나선 김태년 의원과 전해철 의원의 대결이 서막이다. 그러나 인천의 관심은 당권후보에 쏠려 있다. 누가 더불어민주당의 대표가 될 것인가. 5선의 송영길 의원과 4선의 홍영표 의원이 당권에 도전한다. 두 의원이 어떤 관계를 형성할지 관심사다. 경쟁으로 갈지 아니면 양보와 협력을 할 것인지. 오는 8월에 선출되는 당대표는 2022년 3월의 대통령선거와 6월에 동시 지방선거를 책임지게 된다.홍 의원은 신중하지만 할 일을 성취해 내는 힘과 역량을 갖고 있다. 일부의 우려와 달리 원내대표로서 리더십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조직 관리를 통해 리더십을 발휘하는 CEO형이다. 노동부 장관으로도 추천되고 있지만 지역의 GM대우와 현안문제를 해결하려면 산자부장관이 적임일 수도 있다. 정부나 대통령의 정책과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도 그의 성격을 말해준다. 친문의 시각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지원하고, 대선과 지방선거를 관리할 수 있는 적임자로 보는 이유다. 하지만 홍 의원은 친문 원내대표와 친문 당대표 그리고 친문 대통령 후보라는 프레임을 어떻게 극복하고,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것인가 하는 과제에 답해야 한다.송 의원은 친문의 좌장인 이해찬 대표와 맞붙어 지난 당대표 선거에서 2위를 했다. 인천광역시장으로서 행정경험에 이어 원외를 향해서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기회가 주어지면 외교부장관으로 일하고 싶어 하지만 주변에서는 산자부나 통일부를 권한다. 꿈이 크다보니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다른 목소리도 있다. 동남권 신공항문제는 부울경의 목소리를, 원전문제에서는 에너지 산업과 수출의 필요성을 우선한다. 친문의 시각에서 보면 손에 잡히지 않는 야생마이지만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외연을 확대하여 승리를 견인할 수 있는 적임자로 손꼽힌다. 하지만 송 의원은 이낙연 의원이 대권후보가 될 경우 호남 당대표에 호남 대권주자에 대한 견제와 영남권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하는 과제에 답해야 한다.인천 지역에서는 두 의원이 협력하여 정치적 리더로서 각자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장관과 당대표로서의 역할론이 그것이다. 남북철도는 이어지고 있지만 서해평화정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 지역에 산재한 공단들을 새로운 제조업의 메카로, 바이오를 세계적으로 산업으로 견인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경인고속도로 지하화, 제2 외곽순환도로 연결, 인천순환지하철, 강화도 연륙교 등도 뉴딜 정책에 포함되어 가속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그러나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8월까지 수많은 정치적 변수들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대권후보와 당권후보의 치열한 이합집산 그리고 야당의 40대 기수론도 판을 흔들 것이다. 코로나19가 가져올 경제문제는 여당이 온전히 져야할 책임이다. 일부에서는 이낙연 의원의 추대설도 있다. 당연히 승리의 달콤함을 오래 즐기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정도와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국민들은 등을 돌린다. 내편을 챙기는 진영의 논리만으로는 국가를 이끌어 갈 수 없다. 이력서나 주변 인물에 의존하는 위험성은 더불어 시민당의 공천 실패사례로 나타났다. 패자가 된 김영춘 의원은 동남권신공항문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정부에 섭섭함을 나타냈다. 원전문제의 대안으로 준비 없이 진행된 태양광 등 대체에너지 정책도 후반기 문재인 정부에게는 부담이 되고 있다.문재인 정부의 토대가 된 DJ와 노무현 정신은 '기득권의 포기, 이념대립과 지역주의 타파, 정책 승부'로 집약된다. 과연 친문으로 대변되는 기득권을 버리고 국민 속으로 뛰어 들 수 있는가. 광화문의 대립과 지역주의가 되살아난 지난 총선 결과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그것은 당대표의 위상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 대통령의 후반기 지원을 중시할지 아니면 새로운 권력의 창출을 중시할지에 달려 있다. 분명한 것은 뉴 DJ와 새로운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하고 혁신을 선도하는 자가 여당대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거대여당을 탄생시킨 국민들의 뜻이자 한국의 미래를 향한 길이기 때문이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05-03 김민배

[월요논단]종편 재승인 결과를 생각한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 4개, 첫 전파'신문방송 겸영 허용' 문제 우려 속정치적 편향·불공정·오보 등 논란TV조선·채널A 조건부 결정 불가피직접 광고판매 등 특혜 바로잡혀야2009년 한나라당은 야당과 국민 여론의 반대를 뚫고 '신문방송 겸영 허용'을 핵심으로 하는 방송법 등 미디어법 개정을 강행했다. 이를 기반으로 2011년 12월 말 조선, 중앙, 동아, 매경 등 4개 신문이 지배하는 종합편성채널이 첫 방송을 시작했다.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은 여러 가지 우려를 안고 있었다. 종합편성 채널 도입의 문제점은 당시 승인 기본계획에 언급되어 있는 정책목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정책목표는 융합하는 미디어환경변화에 적극 대응, 방송의 다양성 제고를 통한 시청자 선택권 확대, 콘텐츠 시장 활성화 및 유료방송시장의 선순환 구조 확립, 경쟁 활성화를 통한 방송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이었다. 모두 방송영역에서 추진해야 할 목표일 수 있다. 그런데 왜 신문사에게 종편채널을 줘서 이 정책목표를 추진해야 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의 규제 완화는 미디어환경의 변화와 여론지배력의 흐름 등을 장기적으로 검토하고 결정해야 할 중대한 정책적 사안인데도 준비 없는 전격 도입은 위험한 일이었다. 신문은 지상파방송과 함께 정치여론 형성력이 강력한 미디어이다. 신문여론시장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신문들의 여론 지배력이 보도를 하는 방송영역까지 넘어올 수 있다는 우려는 무시할 수 없었다. 미디어 소유 집중으로 정치적 다원주의가 위축되어 궁극적으로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아서 신문방송 겸영 허용은 심각한 문제였다. 종편채널의 극심한 정치적 편향, 불공정, 오보, 막말 등 여러 가지 논란이 계속됐다. 2017년 두 번째 재승인 심사에서 TV조선이 기준점수에 미달했지만 조건부로 승인됐고 채널A도 겨우 기준점수를 통과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에서 중징계인 법정제재를 매년 4건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부여됐다. 그런데 행정소송과 조건이행 실적의 제출 기간 등 일부 행정절차의 허점을 활용하면 이 조건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4월20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전체회의를 거쳐 두 종편채널에 대한 재승인 여부를 결정했다. 심사위원회 심사에서 TV조선은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의 실현 가능성 등의 중점사항이 과락해서 재승인 거부나 조건부 재승인 요건에 해당됐고 청문 절차가 진행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TV조선에 12개 조건과 8개 권고사항을 부가하면서 3년간 조건부 재승인하기로 결정했다. 채널A는 기준점수를 넘었으나 소속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 문제로 의견청취를 실시했으나 사실 파악이 어려웠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채널A의 재승인을 의결하되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가 있을 경우 재승인을 취소할 수 있는 조건을 부여했다. TV조선과 채널A의 승인취소를 요구했던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을 넘고 시민언론단체의 방송통신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현재 제도적 조건에서 이번 결정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TV조선의 2020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법정제재가 4건에 이른다고 하고 채널A 기자와 성명 불상 검사장의 유착 의혹도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이번 재승인 조건은 TV조선의 법정 제재 건수는 연간 5건 이내로 되어 있다. 채널A의 재승인을 취소시킬 수도 있는 채널A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 사건도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종편이 제도적으로 특혜를 받고 있는 부분도 바로잡혀야 한다. 그 가운데 케이블방송 등 유료방송이 종편채널을 의무적으로 전송해야 하는 제도가 폐지됐다. 그러나 종편이 경영과 편성·보도의 분리 원칙을 넘어서 방송광고판매대행사를 거느리고 직접 영업할 수 있게 한 광고판매제도 등은 시급히 개선돼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종편 재승인 과정에서 드러난 심사기준과 행정절차 등의 한계도 개선돼야 할 것이다.공적 책임과 공정성에 있어서 종편의 환골탈태를 기대하기는 무리일까? 11월에는 JTBC와 MBN의 재승인 심사가 예정되어 있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20-04-26 이용성

[월요논단]위기가 가져온 변화의 기회

정치등 모든 분야 영향준 바이러스과학기술 발전도 모든 것 해결 못해우리 삶 '궁극적 가치' 깨달음 필요 그동안 욕심 채우기 위해 살았다면 이제 다함께 '당면문제' 노력할 때'너희가 와야 학교는 봄날'. 어느 학교 앞 현수막에 걸린 문구이다. 도서관에서 이용자를 기다리는 입장에서 너무도 공감이 가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문구였다. 두 달 이상 도서관 문을 닫고 있어 온기가 없어진 공간과 새로 들어와 한 번도 독자를 만난 적 없이 이용자를 기다리고 있는 새 책을 보면서 코로나19가 만든 변화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도서관도 이용자가 와야 봄이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사회 변화에 우리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바이러스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고 우리의 일상생활과 직결된다.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생활을 돌아보면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과는 전화통화와 SNS로 소통하고 있고 필요한 물건은 주로 인터넷을 이용해 주문한다. 아이들은 같은 반 친구 얼굴도 모른 채 온라인학교에 등교하고 최대한 바깥 외출은 삼간다. 거리의 사람들은 영화 속 장면처럼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 닦기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외출 후 집에 들어오거나 장소를 옮길 때마다 손을 자주 잘 닦게 되었다. 시간강사, 자영업자, 공연기획에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수입이 줄어 생계에 어려움이 생겼다. 정부와 각 지자체들은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각 지자체마다 지원금의 조건과 액수가 달라 논쟁이 되기도 했다.현재 코로나19의 확산은 주춤해지고 있지만 이 사태가 언제쯤 안정화 될지는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계속 될 것이라 예측한다. 그러나 누구도 최적의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를 두고 손을 잘 씻는 등의 방역에 중점을 두는 것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가 알게 된 몇 가지가 있다. 전 세계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생명공동체라는 것과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도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예측조차 어려운 세상을 살아갈 우리는 무엇을 중심에 두고 살아야 하는 걸까? 이제는 우리 삶의 궁극적 가치가 무엇인지 근본적인 깨달음이 필요하며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어야 할 때이다.'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리처드 T.모리스 글. 르웬 팜 그림.이상희 옮김/소원나무) 그림책 속 곰은 우연히 강을 따라 걷다가 모험이 시작된다. 곰의 모험 속에 숲속의 다양한 동물들이 한 마리 한 마리씩 함께 하게 된다. 함께 강을 헤엄쳐 나가며 어려움을 극복한다. 그래서 힘들지 않았고 무섭지 않았고 우울하지 않았다. '야호, 신난다! 그동안 여러 친구들은 저마다 따로따로 살아왔어. 여기 이렇게 함께 있게 될 줄 몰랐단다.' 이 그림책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우리도 동물 친구들처럼 바이러스와의 싸움 끝에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서로 경쟁하며 저마다 따로따로 살아왔어. 하지만 우리는 서로 돕고 협력하여 결국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어"라고.그동안 우리는 성장, 개발, 물질에 우선순위를 두고 각자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면 이제 서로 다른 존재이지만 공동의 마음으로 함께 당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할 때다. 즉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모두의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으로 삶의 축을 세워갈 때 무섭지 않고 두렵지 않고 우울하지 않고 모두가 신나는 세상이 올 것이다./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

2020-04-19 최지혜

[월요논단]코로나19 대창궐 시기에 떠올리는 김구의 소원

8세 성리학 시작 한학자에 배움도그의 이념은 '화이부동'과 잇닿아 개별국가 지향할 국제질서의 가치'뉴노멀' 새로운 표준이 現 문명 대안경제·군사력 아닌 문화의 힘에 초점코로나19 대창궐로 전 세계가 두려움에 떠는 와중에 우리는 지난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을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친일이 아니라 독립운동이 우리 역사의 주류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최근 들어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가운데 한 대목을 떠올리고 있던 터라, 그러한 내용의 기념사가 나에게는 퍽 시의 적절하게 느껴졌다.일부 정치권과 언론이 비난을 쏟아내고 있지만 세계 각국에서는 코로나19의 모범적인 대응 사례로 우리나라를 꼽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장비와 자료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으며 도움을 거부했던 국가의 경우에는 사과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현재 진행형인 만큼 속단은 피해야겠으나 대한민국의 위상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사실은 인정할 만하지 않은가 싶다. 이러한 판단 속에서 떠올랐던 것이 김구 선생이 강조했던 문화의 힘이다."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하게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서 실현되기를 원한다."김구 선생은 이러한 이념을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내가 보건대 이는 천하의 평화를 기획하는 방법론 측면에서 성리학의 화이부동(和而不同)과 잇닿아 있는 듯하다. 기실 김구 선생은 여덟 살에 성리학 공부를 시작하여 17세에 과거에 응시한 바 있으며, 20세에는 한학자 고능선(高能善)에게 배움을 얻기도 하였다. 화이부동이란 무엇인가. 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지만, 부화뇌동하여 무턱대고 한데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본래 공자가 군자의 덕목으로 제시한 바 있는 것을, 성리학에서는 개별국가들이 지향해야 할 국제질서의 가치로 다듬어 새롭게 내세웠다.성리학에서 화이부동을 강조했던 까닭은 당대의 국제질서가 그만큼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송의 북동 지역에는 거란의 요(遼, 907~1125)라든가 여진의 금(金, 1115~1234), 서쪽에는 탕구트의 서하(西夏, 1038~1227), 현 베트남 북부 지역에는 대월국(大越國, 1054~1804)이 자리잡고 있었다. 송은 이들 나라와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고 송의 지식인들로서는 이러한 현실을 넘어설 이념이 필요하였던 바 바로 그러한 이념이 화이부동이었다.각각의 지역에는 나름의 전통과 역사·문화가 있고, 전통·문화·역사를 영위해온 종족이 있으니, 이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각 국가의 고유성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 다른 나라에 강요해서 획일화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는 것. 이로써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나뉘던 중화(中華)·오랑캐의 개념은 변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부터 중화는 화이부동의 국제질서 존중 속에서 자신의 문화를 풍성하게 가꾸는 국가를 가리키며, 오랑캐란 무력을 동반하여 화이부동의 질서를 깨뜨리는 국가를 멸시하는 표현이 되었다는 것이다.성리학 이후의 유학을 그 전의 유학과 변별하여 굳이 신유학으로 규정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몽주의 다음과 같은 시편은 그러한 맥락을 전제해야만 이해가 가능해진다. "공자께서 필삭하신 의리가 정밀하니 눈 내리는 밤 푸른 불빛 아래 세밀히 음미하네. 일찍이 이 몸을 이끌고 중화에 나아갔는데 주변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이적(夷狄)에 산다고 말하는구나." 화이부동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었으니 정몽주가 발 딛고 선 그 자리는 바로 중화일 수 있었다.요즘 뉴노멀(New Normal)이란 용어가 부상하고 있는데 새로운 표준이 현 문명의 대안으로서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이나 군사력 따위가 아닌 문화의 힘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그러한 세계의 근원·목표·모범으로 자리매김하기가 김구 선생의 소원이었으리라 싶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20-04-12 홍기돈

[월요논단]일상을 넘어 일상으로

코로나19로 '삶의 이중성'을 본다진부한 반복이지만 존재의 양면성감추임과 드러남통해 의미 일깨워자본 민낯·경쟁 이웃 이젠 벗어날때새로움을 성찰 현실화하는 결단을일상은 매우 이중적이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전도서'의 말처럼 일상은 늘 그렇게 되풀이되는 진부함이기도 하지만, 밤이 되면 어두움 속에서 그 진부함에 가려 보지 못하던 것들이 새롭게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든 아니면 그 고마움이든 반복되는 일상에서 빛이 사라진 세상은 놀랍게도, 보았지만 보지 못했던 사실을 다시금 보게 만든다. 그래서 이제 되풀이 되는 일상이 진부함의 반복이 아니라 우리 삶과 존재가 그 아름다움과 의미를 드러내는 순간의 반복임을 알게 된다. 일상은 진부함과 지겨움의 시간이지만, 다른 한편 놀라움과 새로움의 자리이기도 하다. 일상은 삶의 이중성과 존재의 양면성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는 감추임과 드러남을 통해 그 숨겨진 의미를 알려준다고 말한다. 존재는 그런 순간을 간직한 사건 자체다.코로나19로 인해 이 일상의 이중성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성을 살면서 우리는 일상의 고마움과 아름다움, 그 의미를 새롭게 보게 된다. 일상의 진부함이 사실은 우리 삶의 전부임을, 그 진부함 안에서 순간순간의 새로움과 고마움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우리 삶임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는 위기이지만,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 기회이기도 하다. 위기는 갈라진 길 위에 선 선택의 순간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이것이냐 저것이냐! 그 선택의 시간은 우리 삶 전체가 걸린 절대적 순간이다. 깨어진 일상에서 진부한 과거로 되돌아갈 수도 있지만,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코로나19 이후 우리는 다시금 우리 삶과 사회를 되돌아보게 된다. 진부한 일상 속의 새로움을, 경쟁상대로만 보던 이웃의 고마움을, 성장과 풍요를 말하던 자본의 민낯을 새롭게 보게 된다. 공론장과 정론을 말하던 주류 언론이 당파적 이익에 빠져 얼마나 왜곡과 무지와 선동을 일삼는지를, 경제성장과 기술발전의 화려함이 어떻게 일상의 소소한 아름다움과 평범한 사람들의 소중함을 가려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삶의 고통과 고난을 구원의 말씀이 지닌 화려함으로 가려온 교회,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경제적 현실을 무한성장의 풍요로 가려온 자본, 자기 이익을 위한 법과 언론이 포장한 정의가 얼마나 화려한 위선인지를, 전문지식과 학력이란 꽃으로 성공을 약속하던 교육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데 얼마나 무능했는지를 남김없이 보게 만든다.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이 진부함과 거짓을 벗고 새로움을 향해 가야 한다. 우리 사회와 삶을, 우리 일상을 새롭게 만드는 길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때만이 가능하다. 자연과 다른 생명이 자본과 기술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는 주체임을 자각할 수 있을 때 근대 세계의 화려함을 넘어, 가려진 존재의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 과학·기술의 능력이 자본에 종속된 사회를 벗어나야 한다. 현대 세계의 물질적 성공에 가려 잊어왔던 인간다움의 근원을 새롭게 밝혀야 한다.마침 다음 주면 매우 부족하지만 우리의 선택을 보여줄 기회가 온다. 언제나 둘 중 하나만 강요했던 정치의 진부함을 벗어날 기회다. 미래를 말하지만 끊임없이 과거로 퇴행하는 미래 없는 정당, '더불어'를 외치지만 결국 나만 살자는 정치를 벗어나야 한다. 거짓과 위선이 약속하는 화려함을 깨는 것은 어두운 위기의 순간에서야 가능하다. 이 순간의 결단은 과거의 경로를 벗어날 때 현실이 된다. 언론의 무능과 왜곡을 알면서도 여전히 주류 언론을 신봉하는 맹목, 명문대학을 가야만 성공한다는 상상력의 한계, 신을 파는 교회가 실존적 구원을 보장하리란 허상, 기존 사법제도에 매몰된 법이 정의를 지켜줄 것 같은 착각을 벗어나는 길은 진부한 일상을 결단의 순간으로 바꿀 때만 가능하다. 삶은 이런 결단을 위한 지성적 성찰과 실천을 매 순간 되풀이 하는 과정 자체다.코로나19 이후 새로움 속에서 삶과 인간관계, 정치와 경제를 상상한다면 그 새로움은 진부함을 깨는 결단 없이는 불가능하다. 새로움을 현실화하자, 삶의 퇴행적 경로를 깨고 새로운 일상을 그리자. 해체 없이 새로운 존재의 집은 있을 수 없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20-04-05 신승환

[월요논단]코로나19와 의료 공리주의

폭발하는 환자 伊·美 대응 지침보며선진국 의료시스템 붕괴 다시 생각사람생명 돈으로 환산 뼈아픈 현실영리보다 공공 의료 중요성 일깨워감염병들이 인간에 전하는 메시지젊은이인가. 고령자인가. 이탈리아의 의사들이 폭발적인 코로나19 환자를 놓고, 윤리적 선택에 고통스러워했다. 의료진들에겐 생존 가능성이 큰 환자를 위해 의료자원을 비축하라는 지침도 내려진 바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국방물자생산법을 동원했다. 자동차보다도 마스크와 인공호흡기가 급한 현실. 선진국가의 의료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과연 어떤 문제가 있었던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코로나19처럼 긴급하고 세계적 상황을 예측한 것은 아니지만 의료와 관련하여 선호공리주의를 주장한 학자가 있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 피터 싱어(P.Singer)이다. '중증의 신생장애아는 살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일종의 선호적 공리주의를 주장했다. 1989년 6월 장애인 단체를 비롯한 독일 언론들의 격렬한 항의가 있었고, 결국 그의 심포지엄과 강연은 중단되었다. 그를 강연에 초청한 교수에 대해 해임 운동까지 일어났다. 그의 주장은 연명치료의 중단과 존엄사의 문제로까지 연계된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무엇이며,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하지만 돈이 들거나 생산성이 없는 인간 등에 대한 치료 포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비판을 받았다. 약자는 낳지도 살리지도 않는다는 나치의 논리라고 비난되었다. 7만명 이상의 장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나치의 '안락사' 계획을 상기시키는 극도의 분노를 독일인들에게 일으켰다. 생명의 신성성(Sanctity of Life)을 주장하는 종교의 입장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의료자원의 합리적 이용이라는 선호공리주의에도 불구하고, 생명조작의 추진이나 생명의 탈신성화를 추구하는 일종의 우생이데올로기로서 비판되었던 이유다.그런데도 세계적으로 긴급한 의료 현실이 의료진이나 의료 자원의 분배적 정의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지친 의료현장과 의료진들의 한계 그리고 의료시스템 붕괴의 가능성을 들어 외국인의 입국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차별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료진의 절규나 생명의 존엄에도 불구하고 삶과 죽음의 대상을 선별해야 하는 현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의료자원의 합리적 이용이라는 현실이 싱어가 주장했던 토대와 전혀 다른 상황에서 약자에 대한 포기와 일부환자에 대한 우선권이 정당화되고 있다. 이미 코로나19는 글로벌과 포용정신을 내팽개치고, 자국과 자국민 우선이라는 극단의 이기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코로나19를 피해 요트를 타고 안전한 곳을 찾아 나선 세계적 갑부들도 있다. 벙커로 피신하는 미국인들도 있다. 그러나 70대의 사제는 산소 호흡기를 젊은이에게 양보하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부모가 자식이 감염될까봐 집밖에서 죽음을 선택했다는 외신도 있었다. 특정 종교집단 때문에 치료를 기다리다 숨진 국민들도 있다. 일부의 이기주의적 행태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빛나는 것은 질병에 맞서는 존경스러운 의료진, 평등한 의보체계 그리고 묵묵히 자신에 충실하면서 버텨내는 시민들의 덕분이다.그런데도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생명의 질을 내세워 생명과학이 왜곡시킨 것은 아닌지. 그동안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자본과 결탁하면서 공동체와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잃게 한 것은 아닌지. 투기자본과 의료정책이 공공의료의 구축보다는 의료관광과 장기이식이라는 영리적 목적과 결합한 결과는 아닌지. 줄기세포와 유전자 연구가 영생을 꿈꾸는 자본의 탐욕과 일부 인간들을 위한 욕망의 수단이 된 것은 아닌지. 고령화 사회가 가져온 요양원 정책에는 도대체 어떤 문제가 복합적으로 내재되어 있는지. 영리병원이나 외국병원의 유치를 업적으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공공의료원은 수익성이 없다면서 폐쇄하거나 축소시킨 결과는 아닌지.코로나19는 인간의 존엄과 생명조차도 돈으로만 환산해온 현실에 대한 뼈아픈 경고가 담겨있다. 인간의 생명과 공동체가 없다면 돈도 경제도 없다. 영리적 의료보다는 공공의료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주고 있다. 의료와 생명에 대한 자본의 탐욕을 멈추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에 대한 신성성을 다시 생각할 때다. 그것이 반복되는 감염병들이 인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03-29 김민배
1 2 3 4 5 6 7 8 9 10

경인일보 채널

  • 강원일보
  • 경남신문
  • 광주일보
  • 대전일보
  • 매일신문
  • 부산일보
  • 전북일보
  • 제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