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노트북]재량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초등학생 아들이 지난달 현충일 즈음 갑자기 장기휴가(?)에 돌입했다. 연휴 사이 끼어있는 평일에 학교를 안 간다는 것이었다. 왜 안 가냐고 물으니 '학교장 재량'이라고 했다. 징검다리 연휴의 이점을 살린 유연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맞벌이 부부에겐 썩 반갑지 않은 결정일 수 있겠다 싶었다.얼마 전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를 둘러싸고 교육청 재량 평가가 뜨거운 논쟁이 됐고, 최근 프로야구에서도 경기 막판 심판 재량 비디오 판독을 시행한 부분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진 바 있다.재량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는 뜻이다. 원칙이나 규칙, 규정과 달리 주관적이고 예외적인 개념이다. 재량권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융통성으로 이어지지만, 반대의 경우 공정성 논란에 휩싸이거나 명분·핑곗거리로 전락한다.최근 한세대학교에서 비정규직 교직원 김모(24)씨의 계약해지 사건이 이슈가 됐다. 계약기간을 채운 시점에서의 계약 종료 통보는 언뜻 보면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평가를 거쳐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는 당초 채용조건과 달리 평가를 생략한 점, 해당 직원과 동일한 조건으로 입사한 다른 계약직 직원은 앞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점 등의 이유로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올해부터 계약직의 경우 계약기간만 근무하는 것으로 방침을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학교 재량에 따른 결정이었다. 평가 기회조차 받지 못한 김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반발했지만, 재량 앞에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이에 한세대 노조가 나섰고, 여기에 시민단체와 시의회 등 지역사회까지 힘을 보태 김씨 살리기에 나섰다. 결국 학교 측은 계약해지 통보 두 달만에 해당 직원을 정규직으로 임용했다. 올해부터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은 없다던 방침과 달리, 학교 측이 다시 한 번 재량을 발휘한 셈이다.재량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재량은 원칙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원칙의 빈틈을 악용하기 위한 핑계의 수단으로 남용해선 안 된다. /황성규 지역사회부(군포) 기자 homerun@kyeongin.com황성규 지역사회부(군포) 기자

2019-07-16 황성규

[노트북]공직자 변화·의식 개선 '디테일의 행정'

"디자인하지 않으면 사임하라(Design or resign)!"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이 한 말이다. 디자인이 기업의 핵심 가치로 떠오른지 오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나 잭 웰치 GE 전 회장은 21세기 경영의 승부처로 디자인을 꼽았다. 행정이라고 다르지 않다. 최근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시민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따뜻한 행정이 필요하다. 공직자가 추구하는 것은 시민에게 참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디테일한 행동으로 이 가치를 실현할 때 지속가능성이 담보된다"고 말했다. 공직자들에게 따뜻한 행정, 참 가치를 주문하면서 그것을 '디테일한 행동'으로 실현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디자인이 색의 빛깔, 선의 유연함, 재질의 질감 등 미세한 디테일에서 격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처럼 조 시장은 공직자 행동의 디테일을 개선하는 데서 행정을 개혁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공직자 스스로 의식 전환이 안되면 (그것은)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다"고도 했다. 디테일에 강한 문화를 세우기 위해 공직자가 본인의 작은 습관을 바꿔야 한다며, 행동을 바꾸고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라고 요구한다. 시는 이러한 '디테일의 행정'을 3기 신도시에도 적용하고 있다. 조 시장은 LH나 국토부 주체가 아니라 "시와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우리 시의 미래도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왕숙신도시 이매진 콘테스트(imagine contest)를 열고, 월례회의에서 3기 신도시 관련 콩트를 만드는 등 3기 신도시를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덕분에 남양주 3기 신도시에 대한 수많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직원들간 토론 문화가 형성되면서 남양주에 의한 남양주 만의 도시를 만드는 첫 걸음이 시작되고 있다. 조 시장의 '디테일의 행정'이 성공하려면 그가 주문한 것처럼 공직 사회 스스로가 변화되고 기존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 또한 그에 대한 시민 동참이 필요하다. 부디 조 시장의 개혁바람이 제2건국운동으로 확산돼 정약용의 후예답다는 평을 듣길 바란다. /이종우 지역사회부(남양주) 기자 ljw@kyeongin.com이종우 지역사회부(남양주) 기자

2019-07-14 이종우

[노트북]부동산 신앙

"집은 백일몽을 꾸게 해주는 보금자리고, 몽상가를 보호하며, 평화로운 꿈을 꾸게 한다."20세기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생각한 '집의 장점'이다. 그는 경제논리가 아닌 자기만의 둥지 개념으로 집을 바라봤다.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은 그의 말에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인에게 집은 곧 재산이다. 부를 쌓는데 욕망을 자극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대상이다. 그래서 바슐라르의 말은 우리에게 냉혹한 현실을 모르는 낭만에 불과할지 모른다.집을 향한 우리의 욕망은 아파트입주예정자협의회(이하 입예협)를 통해 표출되곤 한다. 입예협을 통해 사람들은 아파트의 부동산 가치를 올리기 위해 열을 올린다. 벽을 대리석으로 바꿔달라, 오르막길에 열선을 설치해라, 흙 놀이터를 물놀이터로 바꿔라 등 입주 전후 아파트값을 높일 수 있는 요소를 찾아 건설사에 요구하며, 필요할 땐 단체행동까지 불사하는 용기도 보여준다. 이렇다 보니 유능한(?) 입예협은 입주예정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신격화'가 된다. 내 욕망이 투영된 집값을 올려주는 이들에게 맹신에 가까운 믿음을 보낸다.최근 취재한 광교의 한 신규 아파트 단지도 마찬가지였다. 이 아파트는 분양가보다 아파트값이 두 배가량 상승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입예협이 있었다. 이들이 속한 비공개 카페에서 입예협은 절대적인 위치다. 입주민들은 입예협 임원들이 무엇을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공무원이 직위를 숨긴 채 회장을 맡고, 자신이 투자한 부동산으로 매물을 유도해도 문제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하다며 수천만원을 건넸다. 보다 못한 입예협 임원이 이를 폭로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왜 그러냐"는 비난뿐이었다. 내부의 조롱과 왜곡을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입을 닫았다.집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게 틀린 건 아니다. 다만, 과몰입과 맹신은 옳지 않다. 최소한 공(公)과 사(私)는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김동필 사회부 기자 phiil@kyeongin.com김동필 사회부 기자

2019-07-07 김동필

[노트북]다양한 청년정책, 다른 연령 배척은 안돼

경제가 어렵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유는 다양하다.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경기 침체로 청년들의 취업난이 심각한 수준이다. 대학생들이 1학년 때부터 토익 등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이제는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정부도 이러한 어려움에 도움을 주려고 정책을 쏟아냈다. 대학생을 포함한 청년들의 창업을 장려하기 위해 각종 지원책이 마련됐다. 구직하는 청년들을 위해서는 '청년수당'이 지급된다. 청년수당은 서울시 등에 이어 인천도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청년이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청년에 대한 많은 지원을 두고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이는 고민해 봐야 한다.최근에 만난 50대 스타트업 대표는 이러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창업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여러 기관의 문을 두드렸지만 대부분이 '청년' 대상 지원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청년에 대한 지원도 좋지만 우리 같은 40·50대는 정책에서 소외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분명 40·50대 창업을 지원하는 기관도 있다. 이 창업가도 지원기관의 도움을 받고 있다. 청년층에 비해 지원이 너무 적다는 하소연일 것이다. 창업 분야만 보면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이 많아 보인다. 대학마다 창업 관련 기관들이 있고 정부도 청년 창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이 '쏠림'이라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창업 지원을 예로 들면 지원 기준에서 '연령 제한'만 삭제해도 이러한 소외감이 들지 않을 수 있다. 각 분야에서 예산 배분이 연령대별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분석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기계적으로 모든 연령층이 같은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차이가 너무 크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청년은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고 나갈 중요한 세대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연령층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정운 인천본사 경제부 기자 jw33@kyeongin.com정운 인천본사 경제부 기자

2019-07-02 정운

[노트북]주 52시간제, 기형적 노동시스템 변화 기대

"근로시간이 줄면 그 자체로도 00.0%의 임금인상 효과가…", "아직 준비가 덜된 상황인 만큼 계획을 연기해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대한 기사가 아니다. 지난 2002년 9월 주 5일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한 매체에 보도된 내용이다. 당시 재계 총수들은 한자리에 모여 정부 정책을 규탄했다.시계를 다시 돌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 주52시간제 도입을 확정 지으면서 지난 2002년 기사에 주어만 바꾼듯한 기사들이 쏟아졌다.다시 2019년 6월. 당장 다음 달 1일부터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이 같은 반응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들린다. 특히, 경기·인천지역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대란'이 발생할 조짐을 보이면서 '역시 시기상조였다'는 주장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시스템. 초과근무를 해야만 기본적인 생활 수준에 맞출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던 '버스업계', 늘어나는 수요를 근로자 숫자가 따라가지 못해 과로사가 빈번한 '집배원'까지 파업이 예고된 업계는 그 어떤 곳보다 기형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던 곳이다.최근 OECD가 집계한 지난해 우리나라 1시간 노동생산력은 평균 34.3달러다. 전년보다 다소 높아진 수치지만, OECD 회원국 22곳 가운데 17위로 저조한 성적이다.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근로자 1인당 근로시간이 지나치게 많아 시간당 노동 생산력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 2016년 우리나라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회원국 평균보다 405시간이나 많은 2천69시간으로 매일 최소 1시간 이상씩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근로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을 떠받혀온 시스템이 문제다. 다음 달로 다가온 주52시간제 도입이 단순히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그간 기형적이었던 시스템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지금의 성장통을 기꺼이 감내하는 이유다. /김성주 정치부 기자 ksj@kyeongin.com김성주 정치부 기자

2019-06-23 김성주

[노트북]소각장 이전, 의정부시 행정의 아쉬움

의정부시가 소각장 이전을 추진 중이다. 쓰레기 소각장이라는 시설은 지역에 꼭 필요한 시설임에 틀림없지만, 아무도 내 집 가까이 들어서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 역시나 주민들은 물론 포천시와 양주시 등 인근 지자체까지 반대하고 나섰고, 반대에 부딪힌 의정부시는 내구연한을 넘긴 현 소각장이 멈추기 전 대안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그러나 째깍째깍 '쓰레기 대란' 초시계를 앞에 두고 떠밀리듯 소각장 이전 건립을 추진하는 의정부시의 행정을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현 소각장이 노후하기 전 과거 15년 동안 충분히 장기계획을 짤 시간이 있었을 텐데, 이제 와 시간에 쫓겨 업체의 제안서 외에는 대안이 없는 듯 말하는 시의 설명은 이해하기 어렵다. 소각장 이전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주민이나 시민단체에 의견을 묻는 과정이 없었던 점도 아쉽다. "입지 선정과정에서 가용부지를 모두 검토했지만, 시 경계와 접하지 않는 곳은 없었다. 그나마 자일동이 대규모 취락지구가 없고, 초등학교가 가깝지 않은 곳이었다"는 담당 공무원의 설명은 의정부시가 얼마나 좁은 곳인지, 기피시설 설치가 어려운 곳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동시에 의정부시가 가진 환경조건이 그렇다면 양주시가 동두천시와, 구리시가 남양주시와 각각 협력해 광역 자원회수시설 설치를 논의할 때 왜 뒷짐 지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소각장 이전에 문제를 제기하는 지역의 한 정치인은 "시계를 돌려 2년 전으로 되돌리고 싶다. 답을 정해놓고 통보하는 것이 아닌, 주민을 비롯한 다양한 주체와 논의를 통해 해법을 찾는데 시간을 썼다면 지금의 갈등과 불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각장 분쟁은 언젠간,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낼 것이다. 이미 내구연한을 넘긴 현 소각장을 언제까지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매일 쓰레기는 수십t씩 꾸준히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결정이 앞으로의 20년을 좌우하는 만큼 미래의 우리가 또다시 과거를 후회하지 않도록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김도란 지역사회부(의정부) 기자 doran@kyeongin.com김도란 지역사회부(의정부) 기자

2019-06-18 김도란

[노트북]지긋지긋한 송전탑 갈등, 10년 뒤에도 계속될까

어린이 문화시설이 들어설 용인시민체육공원 바로 옆 '345㎸ 송전탑', 주거단지가 몰린 일부 인천·부천지역 지하 8m 깊이를 지날 '고압 송전선', 반도체공장 전력 공급을 위해 안성·평택지역 일부 마을 인근에 설치될 '송전탑과 송전선로'. 이에 건강·재산권 등이 침해된다며 반발하는 주민들과 이들 요구를 수용하려면 막대한 추가 비용이 든다고 맞서는 기업들. 길게는 5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는 고압 송전설비 관련 갈등 사안들이다. 지난 2년간 이를 취재하며 지켜만 본 기자도 '송전탑·송전선로' 단어가 지긋지긋한데, 직접 머리띠 매고 나선 주민들과 중재·해결 방안 찾느라 골머리 앓는 기업·공무원들은 오죽할까. 다행히 정부가 이 같은 갈등과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생산전력을 수요처까지 공급하기 위해선 (갈등을 조장하는)고압 송전설비 건설이 필수인 화력·석탄발전소 등 '집중형'을 줄이고, 태양광·풍력 및 연료전지 등 수요처 인근 소규모 발전이 가능한 '분산형' 발전시설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특히 '연료전지'는 송전설비가 필요없는 건 물론 무소음·저공해 등 친환경적이면서 안정적 고효율 발전까지 가능해 차세대 신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는다.경기도에선 이미 6년 전부터 국내 최대 연료전지 발전소가 가동되는 등 분산형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 발전소가 파산 위기를 맞아 오히려 뒤처질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원천기술 보급을 맡은 포스코에너지가 내부 적자 부담을 사실상 발전소에 떠넘기며 터무니없는 재계약 금액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포스코에너지와 계약을 맺은 도내 다른 업체들도 불똥이 튈까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런데 초기 발전소 건립비 470억원까지 투입한 정부는 정작 수수방관이다. 그러면서도 '2030년 연료전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가 정부 목표라는데, 그때도 송전탑 갈등 현장에 취재를 가야 할 것만 같다. /김준석 경제부 기자 joonsk@kyeongin.com김준석 경제부 기자

2019-06-09 김준석

[노트북]중학교 신설에 필요한 숫자

'어벤져스:엔드게임'은 최근 천만 관객 영화에 등극했다. 이 영화에는 흥행 성적에 걸맞은 역대급 빌런이 등장한다. 이전의 많은 악당들이 지구나 우주를 지배하겠다는 야욕을 부린 것과 달리, 어벤져스의 '타노스'는 생명체의 절반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했다. 우주의 균형을 유지하려면 생명체 절반만 남아야 한다고 그는 믿었고, 이를 실현했다. 생명체가 남은 이유도, 사라진 이유도 '절반'이라는 숫자다. 방금 막 태어났다거나, 오랜 계획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거나 등등 개인의 어떠한 사정도 절반이라는 수를 넘어서지 못했다. 세상사라는 것이 각자의 사정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그것을 통째로 무시해버리는 걸 보니, 진짜 나쁜 놈이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각자의 사정이 숫자로 인해 묵살되는 경우는 사실 흔하다. 의왕시 내손동 주민들은 내손 2동에 중학교를 신설해 학생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10년째 요구하고 있다. 내손2동에 사는 아이들은 청계동에 있는 중학교까지 가려면 12개의 건널목을 건너야 하고, 내손1동 아이들 일부는 등하굣길에 모텔촌을 지나야 한다는 사정이 있다. 그러나 교육지원청은 빈 교실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불가 입장을 유지해왔다. 학부모들은 아이를 중학교에 입학시키고 3년 동안 마음을 졸이거나, 안심하고 학교를 보낼 수 있는 동네로 이사를 갔다. 가까이 지내던 이웃이 학부모가 되면 사라지곤 했다.참다못한 주민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이 무기로 꺼내 든 것은 다름 아닌 숫자다. 내손동에 있는 3개 초등학교 학생수와 학급수를 파악했다. 1학급당 30명 정원을 기준으로 2개 학교에 모든 초등학생이 수용 가능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1개 초등학교를 중학교로 변경할 것을 제안했다. 김상돈 의왕시장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어벤져스가 사라진 절반의 생명을 되찾을 가능성은 14000601분의 1이었다. 승리의 확률로서 의미 있는 숫자는 아니다. 아마 그 숫자는 절실함의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민정주 지역사회부(의왕) 기자 zuk@kyeongin.com민정주 지역사회부(의왕) 기자

2019-06-04 민정주

[노트북]청소년 흡연 예방, 道·도교육청 적극 나설때

일반 담배에서 궐련형 전자담배, 그다음은 액상형 전자담배로 국내 담배시장이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지난 24일 전자담배 업계의 애플'이라 불리는 액상형 전자담배 '쥴(JUUL)'이 국내에 출시되고, KT&G도 쥴의 대항마로 지난 27일 릴 베이퍼(lil vapor)를 출시했다.서울지역 편의점 GS25와 세븐일레븐에서 단독으로 팔기 시작한 쥴은 주말 사이 대부분 매진됐다. 이번 주 발주물량도 선 예약 고객이 많아 흥행몰이를 이어갈 전망이다.문제는 흡연율 증가다. 특히나 쥴이 미국에서 청소년 흡연자를 양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만큼 국내 청소년 흡연율에 얼마만큼의 악영향을 미칠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쥴은 담배같지 않은 디자인과 담뱃재나 담배냄새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특징 때문에 청소년 흡연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잇따랐다.이에 보건복지부는 편의점 등 담배소매점에서 청소년에게 전자담배와 흡연기구를 판매하는 행위를 6월까지 집중 단속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인터넷 중고거래 등을 통해 쥴과 유사제품이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이미 청소년들은 흡연의 유혹에 노출돼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사실상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 및 가정에서 흡연을 원천 차단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경기도와 도교육청은 흡연 예방에 소극적인 자세다. 서울시와 시교육청이 한발 앞서 청소년 흡연을 막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반면 도와 도교육청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도와 도교육청이 청소년 흡연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서 쥴 출시 이후 청소년 흡연율이 증가했다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준석 경제부 기자 ljs@kyeongin.com이준석 경제부 기자

2019-05-29 이준석

[노트북]수원FC의 큰 변화

프로축구 수원FC가 달라지고 있다.김호곤 단장이 자리하면서 팀의 분위기와 위상 자체가 올라갔고, 덕분에 선수들이 믿는(?) 구석이 생겨 힘을 내는 모양새다.수원FC는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하위권을 맴돌았고, 단장 자리는 퇴직한 고위 공무원이 버티기만 하면 2년을 보장받았던 자리였다. 하지만 올 시즌을 앞두고 공석이었던 수원FC 단장자리에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지닌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김호곤 신임 단장이 취임했다. 예전과 다른 큰 변화였다. 수원FC는 2013년에 2부 리그(당시 챌린지)로 시작했다. 2015년부터 현 부산 아이파크 조덕제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 '막공축구'로 효과를 보면서 2016년에는 1부리그(당시 클래식)로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한 시즌을 버티지 못하고 2017년 다시 2부로 떨어졌다. 조덕제 감독이 2017시즌을 마치지 못하고 성적 부진으로 자진사퇴한 후 김대의 신임 감독을 선임했지만 재미를 보지 못하고 하위권에 머문 수원FC는 한동안 그저 그런(?) 팀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올 시즌 수원FC는 상반기 열린 12경기에서 6승 2무 4패를 기록하며 3위로 올라 상위권에 링크되어 있다. 수원FC는 최근 3경기에서 2경기는 선제골을 내주며 어렵게 시작했지만 역전승을 거뒀고, 나머지 한 경기 역시 2-2까지 동점을 내줬지만 안병준이 버저비터골을 성공시키며 3연승을 달리고 있다.지난 시즌에는 선제골을 내주거나 경기에서 패하면 무기력해지며 어렵게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이었던 것과는 딴판인 모습이다. 이는 2년 차인 김대의 감독의 부족한 부분을 김 단장이 멀리서 지켜보면서 선수 개개인들에게 힘이 되는 말들을 전하면서 파이팅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선수들은 물론 코칭스태프와 구단 프런트까지도 김 단장을 통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았고 팀 분위기 또한 상승했다. 올 시즌 수원FC의 1부리그 재승격이 기대된다. /강승호 디지털미디어본부 콘텐츠팀 기자 kangsh@kyeongin.com강승호 디지털미디어본부 콘텐츠팀 기자

2019-05-23 강승호

[노트북]남한강 인도교 설치 무엇이 문제인가

여주시는 남한강에 인도교 설치를 놓고 찬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여주에 강북에 해당하는 오학동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교통대란이 우려되는데, '대교를 놓아야지 인도교가 왜 필요하냐'라는 주장이다. 인도교 설치는 이항진 여주시장의 공약사업이다. 시청과 오학동을 잇는 인도교를 통한 강남·강북의 생활권 연결과 남한강의 밤을 아름답게 수놓는 낭만이 넘치는 가족과 연인들의 다리를 놓겠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여주시가 오학동 둔치 공원화 사업과 연계해 인도교 설치를 위한 타당성 조사용역을 추진하는 가운데, 오학동 발전위원회와 통장협의회에서 인도교 설치를 반대하고 가칭 제2 여주대교 건설을 요구하고 나섰다. 당연히 인도교보다 차량통행이 가능한 대교가 백번 낫다. 하지만 그동안 왜 여주의 미래발전을 위해 대교 건설을 못 했나 짚어볼 문제다.우선 제2 여주대교는 민선4기 이기수 군수 재임 시절인 2007년에 추진하다가 중단됐다. 2007년 기본설계 시 약 85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고, 12년이 지난 현재 1,300~1,5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결과,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기준인 B/C가 1.0을 넘지 못한 0.34로 나왔다. 순수 시비로도 대교 건설은 못한다. 혹자는 인도교에 쓰이는 예산(200억 상당)을 아껴 대교 건설에 투입하면 될 거 아니냐고 말한다. 인도교 예산은 4대강 사업에서 발생한 준설토 판매 수익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준설토 판매 수익금은 하천과 친수구역 관리 이외에는 쓰지 못한다. 통행이 목적인 대교 건설에는 쓸 수 없다. 게다가 여주대교 건설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시청사 이전이다. 여주초교가 역세권으로 옮겨가고, 시청사를 정비하려면 최소 5~10년의 기간이 소요되고, 대교는 그 이후에나 논의될 사안이다.2025, 2030 여주시 중장기 발전계획에 어디를 찾아봐도 대교 건설에 관한 사항은 없다. 그렇게 중요한 사업이 왜 빠져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대교 건설을 원한다면 인도교와 관계없이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한다. 양동민 지역사회부(여주) 기자/coa007@kyeongin.com양동민 지역사회부(여주) 기자

2019-05-16 양동민

[노트북]'오토배너호 화재' 진압 비용 받아내야

지난해 5월 인천 내항 1부두에 정박해 있던 파나마 국적 자동차 운반선 '오토배너'호(5만2천422t급)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인천소방본부는 불을 끄기 위해 헬기 2대와 소방차 241대, 847명의 소방대원을 투입했다. 화재는 소방당국이 진화작업에 나선 지 67시간 만에 완전히 꺼졌다.장시간 이어진 화재로 인천 소방의 피해도 컸다. 진화작업에 투입된 화학차, 물탱크차, 굴절차 등 소방차량 10대가 고장 났고, 소방대원 1명이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넘어져 다쳤다. 소방당국은 진화작업에 어려움을 겪자 내부에 있는 열기를 배출하기 위해 용역업체를 투입해 선체 외벽에 구멍을 뚫기도 했다. 해외국적 선박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수억원의 행정비용이 투입된 것이다.인천소방본부는 최근 전문가의 유권해석 등을 통해 해외국적 선박인 오토배너호 선주 측에 화재 진압활동으로 들어간 행정비용을 청구했다. 오토배너호는 소방 역할인 '국민'의 재산 보호가 아닌 해외국적 선박이기 때문에 상법상 청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오토배너호 선주와 선체보험 변호인 측은 인천소방본부가 행정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없다며 맞서고 있어 법적 다툼이 예상되고 있다.우리나라 소방당국이 국내에 정박 중인 해외국적 선박화재 진압과 관련해 행정비용을 청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만큼 오토배너호 화재진압 사례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 결과가 오토배너호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우리나라 소방당국이 처리 비용을 떠안느냐, 그렇지 않으냐를 가름하는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항만시설을 갖춘 인천지역은 매년 1만4천척의 해외국적 선박이 오가고 있다. 오토배너호 선박 화재와 같은 사고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싸움은 시작됐다. 인천 소방은 법적 다툼으로 번지더라도 선주 측으로부터 화재진압 비용을 받아낼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김태양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ksun@kyeongin.com김태양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2019-05-14 김태양

[노트북]기획부동산에 당한 서민을 투기꾼이라고?

'쓸모없는 땅 개발된다… 기획 부동산 사기 극성' 2004년 2월 12일 경인일보 기사 제목이다. 토지 수요를 부추기는 정책이 발표되면서 파주와 김포, 광명, 하남 등 수도권지역 땅값이 급등하고 개발차익을 노리는 부동산 투기꾼들이 설치고 있다는 내용을 다룬 기사였다. 15년이 지나면서 이 기사를 쓴 선배는 중학생 때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의 시아버지가 됐다.반 세대가 지난 현재까지도 기획부동산이 활개를 친다. 성남과 의왕 경계를 아우르는 청계산 정상도 부동산 경매 컨설팅 업체를 빙자한 기획부동산 업자들의 주무대가 됐다.현재로선 개발 가능성이 전혀 없는 땅이 제3판교테크노밸리 호재와 더불어 대규모 택지로 조성되리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리에도 소시민들은 쌈짓돈을 넣었다. 무엇이 그들의 자식 학원비, 퇴직금, 식비, 옷 사 입을 돈을 잡풀만 무성한 공터를 사는 데 쓰게 했을까.업자들은 1970년대 서울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를 끄집어냈다. 투자자들은 가까운 미래를 보라는 업자들의 사탕발림을 그대로 믿었다. 이들에게 투기꾼 꼬리표를 붙일 수 있을까.'일비 7만원' 기획부동산 홍보 전단지에 적힌 복수의 연락처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에서 흘러나온 컬러링은 찬송가였다. 피해 제보를 해온 수많은 아버님, 어머님들의 컬러링도 마찬가지. 항상 좋은 것 주신다는 그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서로를 속이고 눙치면서 부동산 불패교를 믿고 있었다.업체들은 일비를 받으러 온 판촉 직원들에게 경제지 월 구독료를 제외하고 돈을 지급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력 경제신문들은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이상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땅을 '품절 임박' 운운하며 홍보했다. 조율이 필요하다. 잠자는 나라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 사이비 부동산 불패교를 신봉하는 우리 지역민들을 어여삐 여기시고 조율 한번 해주시라. /손성배 사회부 기자 son@kyeongin.com손성배 사회부 기자

2019-05-09 손성배

[노트북]당신의 열여섯은

내 기억 속 열여섯의 나는 굉장히 불안했던 것 같다.2006년쯤만 해도 내가 살던 곳은 여전히 고교평준화가 이뤄지지 않아 인문계고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곧잘 해야 했다. 관내 인문계고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좋은'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도 있었다. 물론, '왜'는 빠져있었다. 아무래도 주변에서 '대학', '대학'을 외치니까 나도 모르게 대학은 '무조건'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바람을 타고 순항하는 요트 마냥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면서 그렇게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했다. 열여섯부터 그렇게 10년. 나의 진로는 이 시간 안에서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만들어졌다.요즘 특성화고를 졸업한 학생들을 만나면서 이들이 삶을 대하는 '진중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열여섯 나이에 이미 대학이 아닌 '취업'을 선택했다. 반드시 대학을 가지 못할 성적 때문만이 아니다. 꾸준히 반에서 5등 안에 들어야 받을 수 있는 중학교 내신성적 190점 이상(200점 만점) 학생들도 특성화고를 포함한 직업계고에 가는 시대다.그러나 특성화고 학생들이 졸업 후 마주하는 건 이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견고한 '고졸'의 장벽이다. 비정규직 신세, 전공과 무관한 직무, 무시와 차별, 승진 배제 등은 졸업생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는 처절한 현실이다.어쩌면 어린 학생들의 '성숙함'이 특성화고가 운영되는 가장 큰 동력일지도 모른다. 특성화고를 통해 고졸취업을 확대하겠다던 국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들의 성숙함이 좌절감으로 물들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이다. 졸업생들은 열여섯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다시 특성화고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보호받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의 짝사랑이 너무 슬플 것만 같다. /배재흥 사회부 기자 jhb@kyeongin.com배재흥 사회부 기자

2019-04-23 배재흥

[노트북]경기도 지역화폐 '인싸머니'로 거듭나려면

지난 17일과 18일 이틀간 경기도 지역화폐를 직접 사용해봤다. 발급부터 충전, 결제까지 과정 하나하나를 기사에 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틀 동안 8곳 중 2곳에서만 결제에 성공했다. 일상에서 쉽게 가던 곳 중 실제 지역화폐를 쓸 수 있는 가게는 많지 않았다.그럼에도 기자는 기사가 나간 이후인 주말에도 내내 지역화폐인 '수원페이'를 사용했다. 지역화폐로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했고, 커피 몇 잔을 사 마시기도 했다.카드단말기에서 영수증이 출력되고 나서야 '아, 이곳에선 지역화폐를 쓸 수 있구나'라고 알 수 있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장점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10만원을 충전하니 6%에 해당하는 6천원을 서비스로 받았고, 관련 애플리케이션에 개인정보를 등록하니 지역화폐 결제 금액에 대해선 소득공제 30%도 받을 수 있었다.이재명 도지사의 말처럼 '몰라서 못 쓰지, 알면 굳이 안 쓸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위기에 처한 골목상권을 살리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뿌듯함은 덤일 터.다만 장점과 당위성만으로 소비자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경인일보 본사가 소재한 수원의 지역화폐를 발급 신청한 탓에 '수원페이' 실사용기를 지면에 담았지만, 비단 수원페이만의 일일까. 지역화폐가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 많은 도민들의 생활 속에 자리 잡는 '인싸머니'로 거듭나려면 소소한 불편함일지라도 최대한 덜어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일례로 기사에는 미처 담지 못했지만 도내 시·군 중 일부는 지역화폐와 연동된 모바일 앱을 다르게 쓰고 있다. 수원에서 김포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두 지역 모두에서 지역화폐를 쓰고 싶으면 앱 두 개를 설치해야 하는 것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는 일 역시 중요한 과제다. 진통 끝에 탄생한 지역화폐가 제대로 빛을 발하게 하려면 경기도와 시·군이 계속 머리를 맞대야 한다. /강기정 정치부 기자 kanggj@kyeongin.com강기정 정치부 기자

2019-04-22 강기정

[노트북]세월호 참사, 아프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지난 16일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아 다양한 행사들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안산에서 열렸던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과 경기도교육청의 '노란 리본의 날 추모식'을 비롯해 광화문, 진도 팽목항, 대구, 제주 등 전국에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당시 세월호 참사를 경험했던 시민들의 기억은 다를 수 있지만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추모하는 학생, 시민들은 한가지 공통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공유하면서 하루빨리 시민들이 안심하고 다양한 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동시에 취재 중 만난 이들은 세월호 참사가 점차 잊혀져가는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도교육청에서 세월호 참사 5주기 행사 중 일환으로 진행한 청소년 영상공모전에 참여했던 한 학생은 "세월호 참사가 대중들에게 잊히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껴 이번 공모전에 참여하게 됐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영상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추모행사에 참여한 한 초등학교 교사도 "학년이 낮은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가 어떤 사건이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며 "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세월호 참사는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아픔을 남겼다. 하지만 이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그에 따른 재발 방지 대책은 참사가 일어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최근 정치권에서는 세월호 사태 비하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는 잊어서는, 잊혀져서는 안되는 사건이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공감하고 기억하는 것은 이제는 진보·보수의 이념을 넘어 시민사회가 지켜가야 할 숙제다. /이원근 사회부 기자 lwg33@kyeongin.com이원근 사회부 기자

2019-04-21 이원근

[노트북]전통시장 진입 식자재마트, 상생안 마련 최선

"식자재 마트 들어오면 시장 상인들은 다 죽어요. 어떡해야 하나요." 인천 계양구는 최근 계산동 계산시장 인근에 식자재 마트를 짓겠다는 건축 허가 신청을 또 다시 반려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반려 조치다. 지난해에는 교통 혼잡 유발에 따른 대책 미흡을 이유로, 올해는 시장과의 상생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식자재 마트 입점 예정지와 계산시장은 직선거리로 약 500m 떨어져 있다. 정부는 전통시장 반경 1㎞를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이 구역 내에서는 대규모 점포의 입점을 제한할 수 있다. 전통 상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계산시장도 2011년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런데 식자재 마트는 현행법상 대규모 점포에 포함되지 않아 이 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현장에서 만난 시장 상인들은 "식자재 마트도 지역 내에선 대형 마트 역할을 한다"며 시장 인근 입점을 제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법의 취지를 강조했다. 취재를 하며 만난 사업주도 불만은 있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건축을 제한하는 게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최근 인천지역 곳곳에 식자재 마트가 들어서면서 전통시장까지 위협받고 있다. 특히 계산시장은 지난해 정부가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며 특성화시장 육성사업 대상지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다. 계양구도 건축 허가 신청에 법적 위반 사항이 없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법으로도 전통시장을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식자재 마트와 전통시장 상생이다. 사업주는 시장과의 상생안을 마련하라는 계양구의 요구에 시장 상인들을 몇 차례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사업주가 시장발전기금 등의 금전적 지원을 주장한 반면 상인들은 매장 면적 축소 등 실질적인 식자재 마트 운영 최소화를 요구하며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계양구가 진정으로 전통시장과 식자재 마트의 상생을 원한다면 이 갈등의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 /공승배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ksb@kyeongin.com공승배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2019-04-09 공승배

[노트북]소방관용 공기호흡기 관납비리 새판짜야

오멜라스. 어슐러 K 르귄이 쓴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가상의 유토피아다. 르귄은 '적자생존' 정글과 같은 세상과 딴판인 세상을 글로 그리며 단 하나의 비극적인 장치를 심었다. 오물로 가득 찬 지하실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어린아이다. 오멜라스의 아이들은 청소년이 되기 전 이 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동시에 이 아이가 비참한 삶을 사는 덕분에 자신들과 공동체의 행복이 보전된다는 교육을 받는다. 문제를 마음 한 구석에 묻고 행복하게 살 텐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 오멜라스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화재 현장에 가면 소방관들은 얼굴에 검댕이를 잔뜩 묻히고 등에는 'SANCHEONG'이라고 쓰인 공기통을 멘 채 잰걸음으로 움직인다. 그 공기호흡기에 미인증 밸브가 결합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더해 정부 지원을 받은 개발 기술에 문제가 불거진 방위사업과 판박이로 자사 기존 특허를 심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소방관용 공기호흡기 관납 시장은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단 하나의 업체가 수십년간 쥐락펴락하는 독식 구조였다. 경인일보는 지난 2월 26일 (주)한컴산청이 납품한 소방관용 공기호흡기에 미인증 밸브가 결합됐다는 첫 보도 이후 한 달여 납품업체, 소방당국, 수상한 검사기관 등 업계에 만연한 문제점을 짚었다. 지속적인 보도가 이뤄지자 소방청과 소방산업기술원은 제조업체 3사를 불러 모아 공기호흡기 검사·규격 개정안을 논의했다.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발을 뗀 것이다.문제를 그대로 두고 그들만의 오멜라스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지하실의 아이 같은 숨겨진 구조적 병폐를 꺼내 새 판을 짤 것인가. 현장 소방관들의 안전을 내팽개치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적당히 넘어간다면 당근색 옷을 입은 소방관을 존경하는 아이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손성배 사회부 기자 son@kyeongin.com손성배 사회부 기자

2019-04-04 손성배

[노트북]반도체클러스터 개발정보 유출 '비밀은 없다'

120조가 투입되는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가 사실상 용인시 원삼면 일대로 확정됐다. 그런데 이미 2년 전부터 원삼면 독성리, 고당리 등지에선 매년 1천여 건에 달하는 토지 거래가 이뤄지며 투기 광풍 조짐이 확인됐다.이에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위해 수도권 규제 푼다… 낙후지 원삼면 일대 부동산 들썩'이란 기사 출고 후 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땅값이 올랐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대화를 회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한 주민이 다가왔다. 그는 "어디서 나오셨나요? 차 한잔 하시죠?"라며 자신의 사무실로 이끌었고, 10분 정도 지났을까. 그는 현장을 보여주겠다며 길을 재촉했다. 사무실을 나와 원삼면사무소 앞을 지날 때 즈음 그는 "이곳이 출입구가 될 자리입니다"라며 첫 마디를 건넸다. 당시 개발 후보지 신청 소식 외에 개발계획 등은 전혀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어 그는 "이곳은 수용되고 여기는 비수용 지역입니다. 여기가 작년 10월 지인이 대기업 직원에게 판 땅입니다. 이쪽은 게이트가, 여기 보건소까지가 모두 수용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의 토지이용계획을 훤히 꿰고 있었다. 1시간 가까이 독성리와 고당리 현장을 돌면서 개발 정보가 사전에 유출됐음을 직감했다. 그는 취재팀에게 한 달 전 지인에게 받았다며 사진 두 장을 건넸다.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문서 형식의 사진과 반도체 클러스터의 토지이용계획이었다.3기 신도시 도면 유출 사태가 떠오른 취재팀은 '용인시 원삼면 반도체 클러스터 정보 사전 유출·투기세력 활용 의혹'이란 단독 보도와 영상을 출고했고, 타 매체들도 앞다퉈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이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용인시는 전담반을 구성해 단속에 나섰고, 경기도는 원삼면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전했다. 정부의 신속한 대처에 박수를 보낸다. /이상훈 디지털미디어본부 비즈엠 취재부 기자 sh2018@kyeongin.com이상훈 디지털미디어본부 비즈엠 취재부 기자

2019-03-27 이상훈

[노트북]수원화성과 노키즈존

기다란 봉이 버스 안을 가로질렀다. 봉 앞쪽 의자마다 백인들이 앉았고, 그 뒤편에 흑인들이 비좁게 서 있다. 편안하게 앉은 백인을 바라보는 흑인 여성의 얼굴에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정이 교차한다. 20세기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다룬 영화 '헬프'의 한 장면이다. 영화에는 차별을 묘사한 장면들이 쏟아진다. 가장 황당했던 것이 화장실을 분리한 것인데, 흑인 가정부가 집 안 화장실을 사용하는 게 불쾌하다며 별도의 화장실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우스꽝스러운 장면이다. 영화를 보는 지금이야 그때 그 시절의 차별이 도무지 납득가지 않는 옛이야기라 여길 테지만 이런 식의 차별이 지금은 없을까.오랜만에 하늘이 맑았던 주말, 수원화성 나들이에 나섰다. 5살 딸 아이는 추운 날씨에도 하늘 높이 연을 날리며 즐거워했다. 때마침 불을 밝힌 화성 야경을 보며 운치 있게 차 한잔 하려 카페를 찾았는데, 그 많은 카페 중에 우리가 앉을 곳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5살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담합이라도 한 듯 화성을 마주한 거리의 카페 입구마다 '노키즈 존' 혹은 '어린이 출입금지'가 적혀 있었다. 노키즈존 논란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며 부모를 타박한다. 일부 타박받을만한 부모들도 없진 않으니, 가게마다 그마다 사정이 있었으리라 이해해본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건, 영문도 모른 채 출입조차 거부당한 아이들에게 노키즈존은 어른들이 행하는 명백한 '폭력'이란 사실이다. 또 음주를 심신미약으로 이해하는 어른들의 느슨한 사회의식 속에서 유독 아이에게만 가혹하게 적용되는 어른들의 처벌(?)은 '나이'를 무기로 삼았다고밖에 해석할 도리가 없다. 꼭 한마디 덧붙이자면, 수원화성은 모두의 유산이다. 결코 일부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공지영 사회부 기자 jyg@kyeongin.com공지영 사회부 기자

2019-03-26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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