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노트북]돌아봐야 할 보호 외국인의 삶

'누구든지 보호시설을 형 집행법상의 수용자를 수용하는 시설로 이용해서는 아니 된다'.외국인보호규칙 제3조는 보호소, 보호시설은 수형자와 미결수용자 등을 수용하는 수용시설과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3월 한 달 동안 만난 보호 외국인들이 말하는 보호소는 수용시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같은 보호복을 입고, 정해진 음식을 배급받으며 하루 내내 보호실에 갇혀 지내는 삶은 흡사 교도소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더욱이 보호 외국인 대부분은 출국을 권고하는 명령 대신 곧바로 보호소에 보호되는 강제퇴거 명령을 받는다. 그들 중에는 난민신청으로 돌아갈 본국이 없거나, 코로나19 확산에 비행편을 구하지 못하는 보호 외국인도 있다. 이 경우 언제 보호소를 나갈 수 있을지 가늠조차 못 한 채 1년 이상 보호소에서 지내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불안정한 삶이 보호소의 삶보다 낫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사실 이 같은 보호소의 인권문제는 과거부터 계속돼 왔다. 그러나 법무부는 개선에 소극적이었고 문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더 큰 문제는 국가가 이들을 '보호'라는 명분 아래 무기한 구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용자도 정해진 형량을 채우면 나올 수 있지만, 난민 신청 등으로 돌아갈 곳이 없는 보호 외국인은 국가가 무기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인권 침해를 저질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제기구도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최소 기간에 최후의 수단으로 구금할 것을 권고했지만, 우리 사회는 변하지 않고 있다.보호 외국인의 무기한 구금을 가능케 한 출입국관리법 제63조가 '위헌'이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헌법재판소도 해당 법률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앞두고 있다. 헌재는 과거 출입국관리법상 보호는 주권국가 기능 수행 등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바 있지만, 난민 등 돌아갈 곳이 없는 이들마저 일률적으로 보호소에 가둬 기본권을 침해하는 게 진정 주권국가 기능에 필요한지는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다. /신현정 사회부 기자 god@kyeongin.com신현정 사회부 기자

2021-04-15 신현정

[노트북]"민주주의는 국경이 없다"

"미얀마에서 과거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에서 겪었던 아픔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큰 도움이 되진 않더라도 미얀마 시민들을 지지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지난달 27일 오후 6시께 인천시 부평구 부평역에서 열린 미얀마 희생자 추모 집회에 참석한 한 대학생의 말이다. 이날 집회는 전국 곳곳에서 열렸으나 미얀마인들에게 의미가 남다른 지역을 찾아 대구에서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인천 부평은 미얀마에서 온 이주민이 대거 정착해서 사는 곳이다. 미얀마 불교사원이 있고 한국에 유학 중인 학생, 노동자, 활동가 등 재한 미얀마인들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가 활성화한 곳이다. 최근 미얀마 군부에 의해 공개 수배된 소모뚜 미얀마군부독재타도위원회 위원장도 이곳에서 자국의 동료들과 함께 미얀마 전통 음식점, 소매점 등 협동조합형 기업 '브더욱 글로리'를 운영하고 있다. 정치적 난민인 그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소모뚜 위원장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요청한 미얀마인 비자 발급 연장 제안도 최근 수용되면서 2만5천여명의 미얀마인들은 안전하게 한국에 머무를 수 있게 됐다. 소모뚜 위원장은 "진정한 민주주의는 국경이 없다. 군부 쿠데타에 맞서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미얀마를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모여 미얀마의 민주화를 이뤄내는 것"이라며 "SNS를 통해 한국 시민들이 지지하는 모습을 미얀마 시민들과 공유하는데, 다들 '먼 곳에서 지지해주니 큰 힘이 된다'고 고마워한다"고 말했다.소모뚜씨의 바람대로 지역사회에선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며 구금자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등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인천시의회와 부평·계양구의회는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지역 종교단체선 후원금을 모금해 미얀마인들에게 전달했다. 최근엔 기초자치단체인 부평구도 미얀마를 도울 방안을 찾기 위해 나섰다. 한국에서 보내는 지지와 연대가 미얀마의 봄을 앞당기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 /박현주 인천본사 사회팀 기자 phj@kyeongin.com박현주 인천본사 사회팀 기자

2021-04-12 박현주

[노트북]수원시청역 사거리

지난 2일 저녁 수원시청역 사거리는 또다시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이번에도 '지반침하'에 따른 도로 균열을 보수하는 작업이다. 올해만 4번 진행된 이런 보수공사로 수원시청역 사거리 도로는 누더기가 된 지 오래다.수원시청역 사거리 지반침하는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이 지역은 분당선 복선 전철 5공구 구간으로 지난 2015년 4월 공사가 끝났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6년 4월부터 수원시청역과 매탄권선역 인근 도로에서 지하철 공사 때 다짐 불량으로 잇달아 지반침하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2018년엔 4월·8월·10월 연달아 3번이나 발생했다. 지반침하는 자칫 잘못되면 대형 싱크홀로 악화해 참사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런 우려에 수원시와 현대건설은 지난 2019년 말부터 2020년 초순까지 GPR(Ground Penetrating Radar·지표 투과 레이더)을 이용한 동공탐사를 통해 지반침하 발생이 예상되는 4곳을 찾아낸 뒤 골재를 치환해서 다시 포장했다. 당시 보강공사가 끝난 뒤엔 이 같은 지반침하가 재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번에 또다시 발생한 것이다.시는 올해 첫 지반침하가 발생했던 지난 2월 1.5~2m 깊이 구간에 대한 지반 탐사를 마쳤다. 여기서 위험 동공 5개를 포함해 총 10개의 동공을 발견해 보강공사를 진행했다. 시는 재발 방지를 위해 정기적인 탐사·보수를 계획하고 있다. 1년마다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방안을 구상하겠다는 것이다.일각에선 2m정도 깊이가 아닌 전체 지반을 대상으로 탐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구멍이 생기면 메우는 식의 보강이 아니라 원인을 명확히 규명해 재발의 씨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의 보강공사는 곤란하다. 참사로 이어지기 전에 정확한 재발방지책이 필요한 때다. /김동필 사회부 기자 phiil@kyeongin.com김동필 사회부 기자

2021-04-07 김동필

[노트북]50만원 주고 얻은 가상화폐 교훈

한번 경험해보자는 식으로 100만원을 넣었다. 최근 너도나도 뛰어드는 가상화폐 투자 이야기다. 결론은 50만원짜리 값진 경험이었다.투자금 절반의 손실을 맛봤지만 적어도 가상화폐 시장에 단기간 수익을 바라보고 뛰어들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3월의 어느 날 가상화폐 투자로 수천만원을 벌었다는 지인의 얘기를 듣고 한 종목을 100만원어치 사들였다.그런데 하루를 기준으로 30%의 가격 변동 상한이 정해져 있는 주식시장과 다르게 가상화폐 시장에서는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단 하루 만에 100%, 200%는 물론 무한대의 등락에 따른 시장 마감가격 결정이 가능한 것이다. 실제 한 가상화폐 종목은 지난달 하루에만 2천%가 오른 사례도 있다.직접 한 종목을 매수해 하루 동안 지켜보니 하루는커녕 단 몇 분 사이에도 가격이 10~20%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게 일반적이었다.이렇다 보니 상승세에 있는 종목에 단 몇 분만 넣었다 빼도 수십만원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수십만원을 벌긴 했다. 다만 잠깐이었다. 약 30만원 수익이 발생해 더 오르겠다는 기대감을 가지는 순간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하락세가 시작됐지만 다시 오르겠지 하는 기대에 버티기에 들어갔고 결국 50% 손실이 발생했다.이미 잃은 50만원을 언젠가 회복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처음에 넣어둔 100만원은 결국 가상화폐 시장에 묶인 돈이 돼 버렸다.경제부 기자로 근무하다 보니 주변 곳곳에서 비트코인(가상화폐)을 사도 되는지 묻는 지인들이 많다. 직접 경험해 본 단 하루 만의 50만원짜리 '작은 경험'을 참고하기 바란다. /김준석 경제부 기자 joonsk@kyeongin.com김준석 경제부 기자

2021-03-31 김준석

[노트북]땅투기 사태에 대한 단상

경자유전(耕者有田). 농사짓는 사람이 밭을 소유해야 한다는 뜻이다. 헌법 제121조는 국가가 이 원칙을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경자유전의 원칙은 애초 농사꾼을 보호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었다.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농민들은 땅 가진 부자로부터 항상 수탈당해왔다. 한 해 동안 논과 밭에서 쉴새 없이 일하고도 땅 주인에게 소작료를 지급하고 나면 항상 배를 곯았던 소작농의 아픔을 우리는 역사책에서 수없이 봐왔다. 현대에 들어 불공정한 구조에서 일하는 소작농을 없애고 자영농을 육성해야 한다는 기치 아래 등장한 것이 경자유전의 원칙이었던 것이다.그런데 최근 전국 각지의 땅 투기 사례를 보면 새로운 형태의 불공정 구조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을 포함해 전국 각지에서 불거져 나오는 땅 투기 의혹의 대상 토지 대부분은 전, 답 등 농지다. 투기꾼들은 버젓이 직장을 다니면서 농사를 짓는다며 농업 경영체로 등록하고, 보상을 많이 받기 위해 (진정한 농사꾼이라면 하지 않았을) 수목의 생장과 상관없이 빽빽하게 버드나무를 심었다.그러는 동안 정작 농부들은 오르는 땅값에 못 이겨 점점 험지로 이동하거나 농사를 포기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작물을 키우면 흉년이어도 걱정, 풍년이어도 걱정인 농민들의 삶에 가짜농부들의 땅 투기가 지가상승을 부추겨 무거운 짐을 더했던 것이다. 실제 전국의 논과 밭 경지면적은 매년 수원시 면적(121㎢)의 두 배에 가까운 면적(약 214㎢)이 줄어드는 추세다. 일파만파 퍼지는 땅 투기 의혹에 농부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이유다.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농지가 땅 투기에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만연해서 당연한 것으로 치부했을 뿐이다. TV에 선글라스를 낀 부잣집 사모님이 검은 세단에서 내리며 시골 땅을 둘러보는 모습이 나와도 그러려니 웃고 넘겼을 정도로. 이제는 원칙을 상기할 때다. 논과 밭은 진짜 농사짓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 /김도란 지역사회부(의정부) 기자 doran@kyeongin.com김도란 지역사회부(의정부) 기자

2021-03-29 김도란

[노트북]부모에게도 트라우마 남긴 인천 어린이집 상습 학대

"사람을 대할 때 의심부터 하게 되고, 누구든 쉽게 믿을 수 없게 됐다."인천 서구 국공립 어린이집 원생 학대사건의 피해 아동 엄마들이 입을 모아 한 말이었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상처 입은 아이들뿐 아니라 원생 부모들에게도 이번 사건은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들의 트라우마는 보육교사와 전 원장에 대한 '배신감'이었다.원생 부모들 앞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보육교사의 모습은 천사와 같았다. 등원할 때면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환하게 웃어주고, 볼 뽀뽀까지 해주던 보육교사들. "사랑으로 돌보겠다", "훈육할 때 절대 때리지 않는다"는 보육교사의 말에 부모들은 자녀가 학대를 당할 것이라곤 상상 조차 못했다. 한 피해 원생 엄마는 학대 사건이 밝혀지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지인에게 해당 어린이집을 추천했다고 한다. 그만큼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들을 믿었다.부모들의 믿음은 지난해 말 학대 사건이 밝혀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어린이집 폐쇄회로 CCTV 화면에서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고 있는 보육교사를 보는 순간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믿었던 보육교사들과 원장 중 누구 하나 학대를 막은 사람이 없었던 것에 대한 배신감이 거대한 파도가 돼 밀려왔다. 자녀를 학대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부모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부모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고 거리로 나왔다. 아이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때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하지만 정작 피해 아동 부모들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료할 시간조차 없다.어린이집 등 보육기관에서의 아동학대는 아이들과 부모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피해 아동과 함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부모의 상처도 함께 치유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바란다. /김태양 인천본사 사회팀 기자 ksun@kyeongin.com김태양 인천본사 사회팀 기자

2021-03-22 김태양

[노트북]인천시의 환경특별시 도전, 바보같은 지혜 필요

인천시는 최근 '2025년 수도권매립지 종료'후 사용할 자체매립지 대상지로 옹진군 영흥도를 확정했다. 박남춘 인천시장이 직접 나서 주민 수용성 확보를 위한 '제2영흥대교' 건립 계획까지 발표할 만큼 수도권매립지 종료에 대한 인천시의 의지는 확고하다.하지만 이를 현실화하기까지 풀어야 할 문제는 한두 개가 아니다. 인천 내부뿐 아니라 인접 지자체 반발에도 부딪히면서 말 그대로 '가시밭길'이다.먼저 여전히 매립지 조성에 반대하고 있는 영흥 주민들의 마음을 돌리는 게 관건이다. 인천시는 영흥도를 친환경 특별섬으로 만들겠다며 발전계획 등 영흥 주민들에 대한 세부 지원방안을 주민협의체와 협의하기로 했는데, 이 주민협의체를 구성하기 위해선 반대 주민들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인천시가 인센티브의 핵심으로 내세운 '제2영흥대교'는 경기 안산시의 반대에 부딪혔다. 안산시와 주민들이 폐기물 차량 통행에 따른 지역 환경 피해를 우려하며 반발에 나선 것이다. 윤화섭 안산시장까지 나서 "(인천시가) 단 한 차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대부도 지역을 포함한 매립지 건설계획을 발표한 데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한 상황이다. 또 부평구와 계양구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함께 처리할 '부천 소각장 광역화' 계획은 부천 시민들의 강한 반발에 맞닥뜨렸다.다음 달 14일이면 환경부의 수도권 대체매립지 후보지 공모도 끝난다. 공모가 사실상 불발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현재 운영 중인 수도권매립지의 사용 연장 논리가 다시금 고개를 들 수 있다. 인천시가 '환경특별시'로 가기 위해 고려해야 할 변수는 너무나도 많다. 지금까지 인천시가 보여준 모습을 보면 자원순환 정책 대전환에 대한 강한 의지는 느낄 수 있다. 남은 건 산적한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바보 소리를 듣더라도 당당히 미래를 향해 직진하겠다"는 박남춘 인천시장의 말처럼, 인천시의 '바보' 같은 지혜를 기대한다. /공승배 인천본사 정치팀 기자 ksb@kyeongin.com공승배 인천본사 정치팀 기자

2021-03-15 공승배

[노트북]90년대생 신입사원의 종말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직전인 2020년 1월 경인일보에 운 좋게 입사했다. 최근 고용동향을 보면 그때 한 달만 늦었더라도 평생 정규직이 되지 못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전국의 신규 취업자 수는 100만명 가까이 감소해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같은 달 경기도 실업자 수는 36만4천명으로 광주시 전체 인구에 육박했다. 한 대학 교수는 코로나19로 특정 세대가 채용시장에서 붕 떠버리는 '세대 공백'을 우려했다.세대 공백 우려는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한 취업정보사이트에 따르면 경기 침체 등으로 대·중견기업 1천468곳 중 89%가 올해 상반기 채용을 확정하지 못했다. 당초 2020년부터 2025년 전후 입사 예정이었던 1990년대생 신입사원이 종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조심스레 나온다. 이는 결코 가볍게 넘겨선 안 되는 일이다. 한국에서 취업이 늦은 청년이 감수해야 할 금전적 손해는 막대하다. 1년 치 소득을 3천만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취업이 3년만 늦어지더라도 1억원 가까이 손해 보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결혼과 내 집 마련도 덩달아 몇 년씩 밀린다.단지 1990년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한 세대가 이러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조금 무책임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크지 않은 사회였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한국사회는 그렇지 않다. 2019년 기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는 143만6천원에 이른다. 근속 1년 차와 30년 차의 임금격차는 2016년 기준 3.28배로 미국(5.08배)과 칠레(4.72배)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호경기에 그야말로 운 좋게 정규직에 진출한 기성세대가 1990년대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뉴딜 일자리, 노사정 대타협, 지역경제 활성화 등 진영에 따라 답은 여러 가지로 갈리겠지만 미래 세대를 위한 진정성을 가지고 대승적으로 결단해야 한다. /이여진 경제부 기자 aftershock@kyeongin.com이여진 경제부 기자

2021-03-03 이여진

[노트북]찾아가는 서비스와 1분

수원에 이사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부산이어서 지난해에는 신청하지 못했던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을 올해는 신청할 수 있게 된 것도 그중 하나다. 1992년생이라 생년월일 끝자리에 맞춰 지난 2월2일 오전 휴대전화로 홈페이지에 접속해 신청했다. 경기도 어느 시·군에 사는지, 신청하고 싶은 카드는 무엇인지를 선택한 뒤 본인 인증을 거치면 끝. 대기시간을 제외하면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지난달 15일 수원 장안구에 있는 유모 할아버지와 박모 할머니가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을 신청하는 데 걸린 시간도 1분이었다.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이 이름, 생년월일, 휴대전화 번호, 주소, 경기지역화폐 카드번호까지 적힌 신청서를 들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신청서에 적힌 휴대전화번호와 생년월일을 확인한 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서명하자 신청이 끝났다.만약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이 방문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는 오프라인 신청이 시작되는 3월 직접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야 했을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의 몫까지 신청하기 위해서다. 행정복지센터까지 이동도 어렵지만 도착한 뒤에도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재난기본소득 신청서를 작성하고 전산 등록을 마쳐야 경기지역화폐 카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누군가에겐 고된 일이 될 수 있었던 재난기본소득 신청은 '찾아가는 서비스' 덕분에 온라인 신청만큼 간편한 일이 됐다. 찾아가는 서비스는 온라인 신청이나 현장 수령이 어려운 도민들을 찾아가 직접 신청을 받는 서비스다. 도내 시·군별로 대상자 목록을 확인한 뒤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은 물론 시·군 담당 공무원이 개개인에게 연락해 방문 신청 여부를 확인하고 날짜를 잡아 찾아갔다. 그 결과, 지난 2월1일부터 26일까지 도민 57만1천734명이 찾아가는 서비스로 재난기본소득을 신청했다. /남국성 정치부 기자 nam@kyeongin.com남국성 정치부 기자

2021-03-01 남국성

[노트북]코로나 재난상황에 현장 혼란만 준 정부 지침

며칠 전 부천지역에 있는 한 요양병원 원장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당장 내일부터 코로나19 백신을 받아야 하는데 전용냉장고에 알람 온도계를 부착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첫 접종을 앞둔 지난 23일 '코로나바이러스-19 예방접종사업 지침'을 내놨다. 이 지침은 지역 보건소와 요양병원 등 접종시설에 전달됐다. 해당 지침을 보면 백신 보관 방법으로 냉장고 내부온도 유지가 중요하기에 24시간 관찰할 수 있는 디지털 온도계 및 온도 일탈 시 알람기능이 있는 온도 확인 장치(알람 온도계)를 부착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그런데 요양병원 등 일부 백신 접종 위탁의료기관에선 50만원이 넘는 알람 온도계 구매비용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급작스런 지침이 내려진 탓에 혼선을 빚고 있다. A원장은 "백신을 받지 않을 수도, 그렇다고 정부 지침을 지키지 않을 수도 없어 참 난처하다"면서 "알람 온도계 구매 비용 25만원 정도가 국비로 지원된다고는 하는데 구매과정도 쉽지 않다. 일단 백신은 받겠지만, 이렇게 중요한 국가 중대사를 무책임하고 조급하게 처리하는 처사에 기가 찬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일부 보건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알람 온도계를 빨라야 3월 초에나 부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애초 예상보다 빠르게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일부 지역의 경우 알람 온도계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게 보건소 관계자의 설명이다.앞서 백신 접종에 불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문재인 대통령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첫 번째 접종을 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적인 지침마저 지켜지지 않은 채, 아니 이를 지키지 못한 채 백신 접종이 진행된 사실이 알려지면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정부가 마련한 지침이 일선 현장에 혼란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상훈 지역사회부(부천) 기자 sh2018@kyeongin.com이상훈 지역사회부(부천) 기자

2021-02-28 이상훈

[노트북]쉽게 잊히지 않는 학폭의 기억

스포츠·연예계 등에서 연일 학교폭력(학폭) 논란이 불거지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학폭에 대한 심각성이 크지 않았던 시절, 5명가량의 또래 친구들이 나와 내 친구를 포함한 이들에게 협박 등을 했던 적이 있다.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말해도 들어주지 않았다.무섭고 억울한 마음에 당시 담임 선생님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학교는 방패막이 되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상담 사실을 그 친구들이 알게 되면서 늦은 밤 동네 길거리에서 그 친구들 부모님들로부터 '단순한 다툼을 왜 학교에까지 얘기하느냐'라는 등의 말을 들었었다.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집으로 돌아와 우는 모습을 본 엄마가 무슨 일인지 물어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담임 선생님께 했던 도움 요청도 흐지부지된 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0년을 훌쩍 넘기면서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가끔 SNS로 그 친구들의 일상을 마주할 때마다 그 당시 아무런 대응도 못 하고 무기력했던 내 모습이 계속 떠오른다.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일부 연예인과 운동선수가 과거 학교폭력 가해자였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가해자는 처분을 받고 끝이겠지만, 피해자는 치유될 때까지 오랜 기간 또는 평생 그때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꺼내기 어려운 얘기를 털어놓고도 사실 여부를 파악한다면서 2차 가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학교폭력 논란에 대한 사실관계 파악도 배제해선 안 된다. 그러나 성인이 돼서야 목소리를 낸 이들을 좀 더 깊이있게 들여다보는 게 우선이다. 과거 학교폭력 피해 당시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유 받지 못했던 문제를 살피고, 현재는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돼 있는지를 돌아봐야 할 때다. /신현정 사회부 기자 god@kyeongin.com신현정 사회부 기자

2021-02-25 신현정

[노트북]독립운동가 후손에게 쏟아지는 도움의 손길

인천에서 유학 중인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후손이 수술비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연이 알려지자 지역 사회 곳곳에선 너 나 할 것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조국 광복을 알린 3·1절을 며칠 앞두고 당시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데 앞장섰던 이들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최재형(1860~1920)선생은 연해주에서 한인 노동자를 돕고 독립단을 조직해 항일 무장투쟁에 나섰던 독립운동가다. 러시아 내 한국 교민단체가 발행하던 신문 '대동공보'가 폐간될 땐 거금을 들여 인수했다. 재외 교포와 국내 독자에게 항일 사상을 알리기 위한 의지였다. 그는 1920년 일본군에 붙잡혀 총살당했고, 이후 후손들은 소련 강제이주 정책으로 흩어졌다. 최용규 인천대학교 이사장은 2019년 최재형 선생 직계 후손으로 러시아에 거주하는 초이 일리야 세르게예비치(19)군의 소식을 접하고 그를 독립유공자 국비 장학생으로 인천대에서 공부하도록 도왔다. 일리야군이 한국, 그중에서도 인천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최재형 선생이 순국한 지 100년가량 지나 후손인 일리야군이 이 땅에서 할아버지의 업적이 어떤 의의를 갖는지 배우고 있다.그런 그가 최근 선천적인 질병으로 인해 수술을 앞두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연이 경인일보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이 이야기가 전해진 지 하루 만에 인천시와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앞장선 최재형 선생 후손인 만큼 지원할 수 있는 건 뭐든 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병원 측은 애초 예상보다 수술비가 2배 넘게 들었지만, 흔쾌히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은 일리야군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자긍심을 높이고 빨리 건강을 되찾길 바란다. 이 땅의 독립 유공자 후손들은 아직도 제대로 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독립 유공자와 후손들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박현주 인천본사 사회팀 기자 phj@kyeongin.com박현주 인천본사 사회팀 기자

2021-02-22 박현주

[노트북]'경악'과 알페스-섹테

'경악''소스라치게 깜짝 놀란다'는 뜻을 가진 이 말은 수년 전 '어뷰징'에 주로 쓰였다. 어뷰징이 포털에서 막힌 뒤 대폭 줄긴 했지만, 취재기자로서 쓰지 말아야 할 단어로 몇 가지 생각해둔 것 중 하나가 됐다.그런데 '알페스'·'섹테'란 신종 디지털 성착취물을 처음 접한 순간 그야말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섹테는 그 강도가 더했다. 남성 아이돌 두 명이 서로 성행위를 하며 내는 듯한 신음소리가 짧게는 십수초, 길게는 분 단위로 이어지는데, 도저히 들을 수가 없어 인터넷 창을 종료해야만 했다.섹테란 실존하는 아이돌 가수의 음성을 편집해 성행위 신음소리처럼 만든 파일을 뜻한다. 일부 검은 화면에 편집된 신음소리가 나오는 형태도 있고, 얼굴을 합성해 '딥페이크' 영상처럼 꾸며둔 것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섹테는 구글과 같은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단 한 번의 검색만으로 찾아 들을 수 있었다. 아이돌의 주된 팬층인 초·중·고등학생들도 마음만 먹으면 온라인상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성착취물 영상을 몇 초 만에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알페스는 초기 실존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동성애 콘텐츠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최근엔 '야설' 수위를 넘는 적나라한 성행위를 표현한 글과 아이돌 얼굴 등을 합성한 삽화 등으로 구성된 성착취물이 됐다. 이 또한 누구나 너무도 손쉽게 접할 수 있다.사고파는 정황까지 적나라하게 보였다. 공개된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상품을 소개하고, 비공개 트위터나 결제한 이들만 들어올 수 있는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에 소비자를 끌어들여 더 수위 높은 게시글을 공급하는 형식이다. 이렇게 글·삽화,·음성이 합쳐지면 한편의 적나라한 성착취물 한 편이 완성된다.일각에선 단순 팬심의 표현일 뿐, 표현의 자유는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하지만 분명한 건 그 누구도 알페스·섹테의 주인공이 되길 원하질 않는다는 것일 테다. /김동필 사회부 기자 phiil@kyeongin.com김동필 사회부 기자

2021-02-17 김동필

[노트북]공매도 유감

지난해부터 시작된 주식 열풍에 내 주위도 예외는 아니었다. 5천만원짜리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 전액을 주식에 쏟아부은 사례까지 있다. 돈 가는데 관심이 가게 마련이어서 회사 일을 하며 하루 60번까지 주식 앱을 켜봤다는 간증까지 나왔다.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공매도'다. 개미 투자자로 공매도에 극렬히 반대하는 내 지인들도 대체로 공매도의 순기능은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신기한 건 주식시장의 거품을 얘기한다는 것이다. "지금 코스피는 버블이지. 이렇게까지 오를 건 아니야"라는 말을 여럿에게서 들었다.거품을 조정하고, 가치에 맞는 주가로 되돌린다는 공매도를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가슴으로는 거부하는 이중성이 이들에게서 보이는 공통점이다. 연말 모임에서도 신년회에서도 주식은 늘 화두였다. 그런데 이들의 말에는 단순히 "내 돈을 잃기 싫다"는 마음 그 이상의 정서가 있었다. '두려움'이었다.30대 중반의 전세를 사는 친구는 말 그대로 천장 없이 치솟은 집값에 혀를 내두르며 동유럽 이민까지 고민한다고 했다. 5천만원을 주식에 투자한 지인 역시 '삼백돌이'(월급 300만원 직장인을 일컫는 속어)로는 희망이 없다고 얘기했다. 해일이 밀려오기 전의 잔잔한 떨림처럼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었다. '벼락거지'가 두렵고, 평생 집 없이 살아야 할까봐 두렵다고 했다.1980년대에 태어난 우리는 60만명이 동시에 수능을 치렀고, 툭하면 100대1이 넘는 취업 경쟁률을 뚫어야 했고, LTV·DTI·규제지역 같은 용어를 이해해야만 살 수 있는 시대를 생존해가고 있다. 만기 40년짜리 주담대 대출 등장에 "이제 걱정 없이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고 안심하는 바보는 없다. 공매도 반대는 시장에 무지한 개미의 투정이 아니라 "나를 거지로 만들지 말라"는 절규에 가깝다. 공매도 재개는 4월 재·보궐 선거 뒤로 밀렸다. 각자도생의 세상 속에 개미를 기만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답답함만 지속할 따름이다. /신지영 경제부 기자 sjy@kyeongin.com신지영 경제부 기자

2021-02-15 신지영

[노트북]'광주대단지 사건'서 현 정부 부동산정책을 본다

'모월 모일까지 주소를 이전하라'. 트럭에 이삿짐이 한가득 실렸다. 공무원이 결정하고 국민은 따랐다. 번듯한 도시에 살게 해주겠다는 말만 믿고 거금을 들여 이사했는데 실상은 달랐다. 일자리는 없고 교통은 턱없이 불편했다. 게다가 투기꾼까지 몰려 집값이 최고 100배 올랐다. 투기를 없앤다며 정부가 높은 부동산세를 부과하자 빈민들은 순식간에 극빈층으로 전락했다.1971년 박정희 정부의 강제이주정책으로 불거진 광주 대단지사건의 전모다. 당시 정부는 서울 청계천과 용산 일대 판자촌 주민들을 경기도 광주(현재 성남)에 이주시키기 위해 분양권을 평당 2천원에 팔았다. 그러나 분양권 가격이 너무 저렴해 타 지역에서 유입된 '일반 입주자' 비중이 49%까지 높아지고 투기꾼도 끼어들었다. 투기를 잡기 위해 원분양가의 4~8배에 해당하는 토지대금을 일시불로 내게 하고 고액의 취득세까지 청구하자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결국 해방후 최초 빈민 투쟁이 발생했다.현 정부는 50년 전 광주대단지 사건과 똑같은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집값을 잡는다며 서울 전 지역과 경기도 대부분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월세가 오르자 이번엔 임대차 3법을 만들었다. 이후 내 집 마련에 목마른 서민들이 경기도 외곽의 싼집 매수에 나서면서 집값은 도미노로 오르고 있다. 잘못된 정책으로 오른 집값을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 인상으로 잡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사 목적으로 입주권을 산 1주택자도 취득세 중과세를 내야 하는 등 허점도 노출됐다. 실수요자 지갑은 얇아지고 정부 곳간은 두둑해질 것이다.안정된 집에서 살 권리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무리한 부동산 규제를 펼쳐 집값을 올리고 애꿎은 실수요자의 부동산 거래까지 옥죄는 이 정부는 국민의 기본권을 전혀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일부 국민은 임대차 3법에 이어 종부세에도 위헌소송을 제기하면서 집단 반발에 나섰다. 정부가 국민의 절실한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이여진 경제부 기자 aftershock@kyeongin.com이여진 경제부 기자

2021-01-25 이여진

[노트북]재난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신입생이 된 지 두 달도 안 됐을 때 대학교 학생 커뮤니티에서 영어 영상 번역 공고를 발견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덥석 응했다.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 동기의 손까지 빌려 마감을 맞췄다. 하지만 메일을 읽었다는 표시 외에는 의뢰자로부터 어떤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사회 초년생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창구들을 알고 있다. 근로계약상 문제가 있다면 고용노동부 또는 지역내 노동권익센터에 연락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인권 단체 관계자들은 내국인과 달리 외국인들의 법적 보호 장치가 미약하다고 지적한다. 소관 부처 자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인권 보호가 설립의 주된 목적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유일한 구제 기관인 셈이다. 인권위 홈페이지에 있는 결정례들을 보면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외국인이란 이유로 게임 아이템 판매 제한, 외국인이란 이유로 병원의 진료 거부, 외국인이란 이유로 음식물처리기 판매 거부. 목록은 이어진다.지난해 정부의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과 관련해서도 5건의 진정이 접수됐다. 외국인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지 않는 건 차별이라는 이유에서다. 인권위는 해당 진정을 기각했다. 경기도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외국인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란 판단과 상반된 결정이었다.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자치법에 따라 외국인 주민에게 동등한 행정혜택을 제공해야 하지만 정부는 이 법에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인권위는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이 외국인을 배제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란 재난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부과되는 의무나 행동지침은 외국인도 따라야 한다. 따라서 외국인 주민에 대해서도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인권위의 언어를 그대로 인권위에 되묻고 싶다. /남국성 정치부 기자 nam@kyeongin.com남국성 정치부 기자

2021-01-20 남국성

[노트북]'안산 유치원 식중독 사태' 재발 막기 위해선

지난해 6월 안산시 상록구에 있는 한 유치원에서 장출혈성대장균(O157)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100여명에 가까운 유치원 원아와 가족이 식중독 의심 증상을 보였고 그중 16명의 아이는 합병증인 용혈성요독증후군(HUS) 진단을 받았다. 지난 12일 해당 유치원 원장과 영양사, 조리사에게 검찰은 징역 3~5년을 구형했다. 식중독 사태가 불거진 지 약 7개월 만이다.검찰이 최종의견을 제시하며 구형을 한 결심공판에서 피해 원아 학부모 2명이 피해자 진술을 대신했다. 그들의 손에 든 종이에는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피해 원아와 가족들이 겪은 고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6살 아이의 아버지 A씨는 혈변과 구토를 반복하면서 지쳐가는 아이를 보면서 삶이 무너져 내렸다. 투석을 하면서 혈압이 올라 아이가 정신을 잃을 때마다 아이가 잠들지 않도록 아이 뺨을 때려야 했다. 퇴원 후에도 매주 피를 뽑고 20살까지 관찰 검사를 계속 해야 한다.유치원의 부실했던 위생관리가 가져온 이같은 고통에 법정에 있던 다른 피해 원아 학부모는 물론 그 상황을 겪어보지 못한 이들까지 눈물을 흘렸다. 피해 원아 학부모들은 합당한 판결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물었을 때 당당하게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원장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말할 수 있도록,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는 호소였다.이번 식중독 사태는 원장과 영양사, 조리사, 납품업체 중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자신의 아이에게 줄 음식이라 생각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겉핥기식으로 사립 유치원 위생지도점검을 해온 지자체와 교육 당국의 안일함도 원인 중 하나다. 이달 말부터 50인 이상 사립 유치원이 학교급식법을 적용받는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법만 뜯어고쳐선 안 된다. 사립 유치원 원장과 급식 종사자의 안일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며 교육 당국은 철저한 관리·감독, 사후조치로 피해 원아 가족의 호소에 답해야 한다. /신현정 사회부 기자 god@kyeongin.com신현정 사회부 기자

2021-01-18 신현정

[노트북]고양이 반려동물 등록제, 생명 존중 계기로

"나만 없어 고양이."고양이를 좋아하지만 키우지 못하는 사람들의 하소연이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온·오프라인에서 통용되는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반려견과 함께 요즘엔 반려묘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인터넷으로 다른 사람이 키우는 고양이 사진과 영상을 즐겨보는 '랜선 집사'들도 등장했다.반려묘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커지는 만큼 버려지는 고양이 수도 증가하고 있다. 2018~2020년 인천에서 버려진 고양이 수는 20% 늘었다. 이 기간 유기된 반려견 수가 20%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최근 길고양이 보호·구조활동에 나서면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10마리 중 2~3마리는 된다는 게 동물보호 활동가들 이야기다. 길고양이와 달리 곧잘 사람을 따르고 가까이 가면 샴푸 냄새가 나는 게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틀림없다고 한다. 분양비로 적게는 50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까지 하는 고양이들이 길거리에 버려지는 것이다. 버려진 고양이까지 합세해 늘어난 길고양이는 또 다른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반려묘가 늘어나는 사회적 변화에 발맞춰 농림축산식품부는 2022년까지 고양이를 등록대상동물로 포함했다. 인천시는 올해부터 기초자치단체의 등록대상 동물을 고양이까지 확대했다. 반려묘에 내장형 칩을 삽입하면 소유자 이름과 연락처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되는데 기존엔 반려견에만 한정됐던 제도다. 한 동물보호활동가는 "예쁜 품종을 인형 고르듯 데리고 왔으나 사료비부터 관리비용까지 만만치 않으니 물건처럼 버리는 사례가 많다"며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그에 걸맞은 동물보호 문화가 안착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등록하는 제도가 유기묘 문제를 해결하고 생명에 대한 존중 의식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하길 바란다. /박현주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phj@kyeongin.com박현주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2021-01-14 박현주

[노트북]영동선 버스전용차로

영동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가 소폭 축소된다. 기존 '신갈분기점~여주분기점' 구간 41.4㎞에서 운영하던 버스전용차로가 '신갈분기점~호법분기점'의 26.9㎞로 14.5㎞ 단축하는 것이다.텅 빈 채 '카니발', '스타렉스'와 같은 9인승 차량 전용도로로 쓰인다는 비판이 나왔던 차로기에 반겨야 할 조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 있다. 객관적 기준을 바탕으로 마련한 기존 개선안보다 5㎞ 정도 소폭 늘어난 까닭이다. 영동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는 지난 2017년 8월부터 시행됐다. 평창올림픽 등을 이유로 고속버스 운행량 증가가 예상되자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엔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일반 차로는 정체되는 데 반해 버스전용차로는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아 운전자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온 것이다.이에 경찰은 한양대 연구팀에 용역을 의뢰해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 설치 기준 및 운용지침'에 대한 정량적 기준을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9월엔 '신갈분기점~덕평나들목'구간 21.1㎞로 축소하기로 행정 예고했다.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되려 개선안보다 늘어났다. 경찰은 행정예고기간 동안 접수된 의견을 수렴한 결과란 설명이다.볼멘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현재도 주말이면 꽉 막힌 일반 차로와 달리 버스전용차로엔 9인승 차량이 막힘없이 질주하는 까닭이다.연구팀은 앞선 용역에서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운영할 때 2년마다 재검토를 받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버스전용차로에 대한 정확한 운영 타당성을 평가하기 위함이다. 이번 개선안도 또 재평가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는 대다수 일반 시민들이 정체로 고통받으며 '폐지'를 외치고 있다는 점도 유념할 때다. /김동필 사회부 기자 phiil@kyeongin.com김동필 사회부 기자

2021-01-11 김동필

[노트북]글라스 와인의 기억

10년 전 이맘때 한 달 남짓 프랑스에 머물 기회가 있었다. 생경하기만 한 유럽 풍경에 설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직후, 바삐 지나가던 사람과 어깨를 부딪히며 '한국에 도착했구나'란 것을 새삼 느꼈다. 파리시민들은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라도 서로 몸을 맞닿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이후에 산업은행 고위직으로 일하던 외삼촌과 여행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식당에서 와인 한 잔(glass)을 시켜 마셨던 이야기를, 그때 느꼈던 여유를 얘기했다. 그러자 삼촌은 대뜸 "유럽 나라는 경제가 죽어서 와인도 한 잔씩 파는 거다. 한국처럼 성장하고 있는 국가는 병째 팔지 한 잔씩 팔지 않는다. 그건 여유가 아니라 국가 경제 성장이 끝났다는 증거"라고 말했다.세밑에 그때 기억을 자주 소환한다. 지난해는 '다이내믹 코리아'를 체감한 한 해였다. 1천400까지 붕괴한 코스피는 3천에 육박하더니 결국 3천에 도달했다. 아파트 가격은 유럽 여행을 다녀왔던 저 2011년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지난해 아파트 매매차익으로 3억~4억원씩 쥔 사람들이 서넛은 된다. 안양이 규제지역으로 지정되기 전, 전세를 끼고 신축 대단지 아파트를 구매한 친구는 "이제 결혼할 수 있겠다"는 말을 했다.전세, 매매, 땅값, 주식, 유가…. 안 오르는 가격을 찾는 게 힘든 시기가 됐다. 배달 앱을 켜도 최소 주문 금액은 1만4~1만5천원 이상, 떡볶이도 1만5천원을 주고 먹어야 하는 시대다.현기증이 날 정도로 정말 순식간에 세상이 다이내믹하게 변했다. 이 흐름에 탑승하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은 그저 10년 전 삼촌의 말을 되새길 뿐이다.흐름의 끝에 경험해보지 못한 양극화가 도래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앞선다. 종전까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양극화를 상징하는 말이었다면 마주하게 될 앞으로 세상엔 자산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뉠 것이고 종전보다 깊고 큰 골이 그 사이에 존재할 것 같다. /신지영 경제부 기자 sjy@kyeongin.com신지영 경제부 기자

2021-01-06 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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