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내 편 네 편 가르지 말아야

최근 생을 마감한 두 명망가를 두고진영논리로 민심 갈리는 안타까움조국·정의연 사태 때와 다를바 없어법정스님·김수환추기경 행보 반추지금은 다툼이 아닌 국민단합 중요'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물불 안 가린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불가(佛家)에서 나온 말입니다. 스님은 '이판승'과 '사판승'으로 나누는데, 경전을 연구하고 강론하며 수행하고 포교하는 스님이 이판승이고, 사찰의 살림살이를 꾸려나가고 종무를 돌보는 스님이 사판승입니다. 이판승의 꼭짓점은 종정이고, 사판승의 꼭짓점은 총무원장이지요. 가끔 이판과 사판을 두루 거친 스님도 있습니다. 이판이 없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을 수 없고, 사판이 없으면 가람을 존속시킬 수 없지요. 이판과 사판은 서로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고 동반자라는 방증입니다.살아보니 세상사는 일이 수학문제처럼 완벽하게 풀리지 않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비구승이나 대처승이나 추구하는 진리와 궁극적인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지요. 기독교, 불교, 천주교도 추구하는 길이 다를 뿐 궁극적인 지향점은 같다고 봅니다. 비슷한 시기에 선종과 입적을 하신 종교지도자로 한 시대의 큰 스승이셨던 김수환 추기경님과 법정 큰스님은 걸어온 길이 다르지요. 추기경님이 열 살이 더 많아 나이 차이가 있고, 출신도 영·호남으로 다릅니다. 종교 역시 천주교와 불교로 다르니 당연히 삶의 철학이나 추구하는 가치관과 방향이 다르고, 견해 차이도 있었을 겁니다.그런데 두 분의 인연은 길동무처럼 오랜 세월 교감하며 각별하게 이어졌지요. 특히, 두 분은 개인적인 친교를 넘어 한국 사회에서 종교 간 벽을 허무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법정 큰스님이 길상사 개원 법회를 열었을 때 김수환 추기경님이 참석해 축사를 해 주었지요. 법정 큰스님은 그해 성탄절 때 성탄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명동성당에서 특별강론을 했습니다. 추기경님이 선종하자 큰스님은 언론에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시(詩)를 기고하기도 했지요. 두 분의 깊고 넓은 생각과 넉넉한 행보는 아름다운 우정이자 격 높은 어른의 품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최근 생을 마감한 두 명망가의 죽음을 두고 민심이 갈리는 안타까운 일이 생겨났습니다. 진영논리(陣營論理)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게 나타난 것이지요. 자신이 속한 진영의 죽음은 미화시키고 상대진영의 죽음은 폄훼하는 이분법적인 행태를 보인 것입니다. 내 진영의 이념만 옳고 상대 진영의 이념은 그르다는 논리는 위험한 발상이지요. 답을 정해놓고 꿰맞추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을 포함한 사회전체가 진영논리에 갇혀있는 건 불행한 일이지요. 내편이라고 다 옳은 게 아니고 상대편이라고 다 그른 것도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세간에 진영논리가 극명하게 대두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였지요. 그리고 조국사태 이후 촛불 행렬이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눠지고 상반된 주장이 첨예하게 펼쳐졌습니다. 정의연 사태를 두고도 진영에 따라 주장하는 논리가 상반되고 있지요. 분명한 것은 답을 정해놓고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진영논리에 갇혀 내 편 네 편 가리면 우리의 내일은 크게 기대할 게 없어지지요. 현상을 현상 그대로 보는 게 중요합니다. 좌파, 우파, 극우니 빨갱이니 하는 진영논리가 사라지지 않는 한 밝은 미래는 없습니다.살다 보면 죽자 살자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사람이 있지요.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사는 일이 그리 쉽고 간단하게 풀리지도 않고 100% 옳은 일도 없지요. 정치적·이념적으로 편을 가르고, 지역별로 나누어 편향적으로 흘러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은 내 편, 네 편 아옹다옹 다툴 때가 아니라 외환 위기나 코로나19를 극복하며 보여준 국민적 단합이 중요하지요. 김수환 추기경님과 법정 큰스님의 큰 사랑과 자비의 행보, 그 가르침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편 가르지 말고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살아야 사랑과 평화가 온다는 것 아니겠는지요./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07-14 홍승표

[수요광장]철학적 사유의 소통을 가능케 한 문장의 친화력

스터디셀러 작가 '수필철학' 3인방김태길 안병욱 김형석 탄생 100주년김태길, 간결한 글 독자 공감·소통 안병욱, 민족정신 녹인 삶의 메시지김형석, 관념·대상 인생사로 풀어내김태길, 안병욱, 김형석 세 분은 모두 주요 대학의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독창적 문장과 사유를 통해 정통 수필가로서도 일가를 이루었다. 1960~80년대에 젊은 날을 통과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이분들의 이름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분들은 독자들을 많이 거느렸던 스테디셀러 작가들이기도 하다. 세 분은 1920년생 동갑내기였으니 따라서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게 된다. 이분들이 수행한 수필과 철학의 상호 결합 방식을 두고 '수필철학(essay philosophy)'이라고 부른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약간이나마 냉소적 반응을 품은 듯한 명명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철학적 사유의 소통을 가능케 한 문장의 친화력으로 이분들 작품의 정수를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김태길은 충북 충주 출신으로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쓴 첫 수필은 1955년 '사상계'에 발표한 '서리 맞은 화단'이었다. 1961년 첫 작품집 '웃는 갈대'를 시작으로 하여 그는 누구보다도 철학과 문학의 접점을 찾으면서 그 장르로 수필을 선택했고, 창작 과정에서 공감과 소통을 가장 중히 여긴 수필가로 인정받고 있다. 단아하고 아담한 문채(文彩)를 통해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글을 주로 썼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 배운 '글을 쓴다는 것'은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짧고 간결한 표현 속에 은근한 함축이 담긴 글을 사랑한다"라는 그의 좌우명을 실천한 사례이다. 그의 글이 독자를 공감과 소통의 장으로 이끄는 것은 이러한 글의 품격과 구체성 때문이다. 중후한 철학적 사색과 매끈한 글쓰기에 매진했던, 스스로의 글쓰기를 즐겁고도 성실한 작업으로 여겼던 수필가가 김태길이었다.안병욱은 평남 용강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생활적 구체성에 토대를 둔 철학적 수필을 쓰면서 일찌감치 여러 베스트셀러를 펴내 삶과 인간에 대한 개성적 메시지로 주목받았다. 안병욱의 이념적 기반은 흥사단의 무실역행 정신이었는데, 3·1운동과 같은 독립운동의 맥락에 놓인 민족정신이 그 실질이었다. 안병욱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도산 안창호의 사상은 이러한 민족정신으로 충일한 것이었다. 명징한 문장과 진리 추구의 열정으로 당대 소개되기 시작한 서구 철학의 요체를 전달해준 공로도 크다. 대표작 '행복의 메타포'는 행복에 대해 일상적 경험과 순정한 필력으로 담아낸 명편이다. 사랑과 노동과 신앙을 행복의 정의로 제시한 이 작품은, 인생의 의미를 행복에 둔다고 할 때 그 실체가 보람을 느끼며 사는 긍정적 생활 태도에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인생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펼쳤다는 점에서 수필의 본질이 잘 드러나고 있다.김형석은 평남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대학 예과와 철학과에서 공부했다. 중학교 교사로 생활하다가 1954년부터 연세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의 수필은 어떤 특별한 주제의 구심보다는 삶에서 마주치는 여러 철학적 관념이나 대상을 구체적 인생사로 풀어내는 경향이 강하다. 순간과 영원을 오가는 수필가로서의 부지런하고 단아한 글쓰기 방식이 그의 양도할 수 없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종교적 감수성에 토대를 둔 공감과 친화의 문장을 통해 진중한 철학적 진경을 열어놓았다. 그의 대표작 '수학이 모르는 지혜'는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증명해준다. 눈앞의 이익에 너무 매달리면 정작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역리(逆理)를 친절한 우화의 제시를 통해 알게 해주는 인생론적 수필이다. 현역으로서 아직도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는 그의 창작 여정이 수필의 한 역사를 쓰고 있는 듯하다.이처럼 세 분은 우리 수필의 품격과 진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난해한 개념으로 인해 다가가기 어렵기만 했던 철학이라는 학문을, 수필이라는 소통 지향적 장르와 결합하여,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끔 한 이분들 공적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많은 이들의 마음에 남기를 소망해본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07-07 유성호

[수요광장]방송 프로그램 효능감, 다양한 편성에서 시작된다.

종편 오디션 프로그램 흥행 힘입어 요즘 '트로트 전성시대' 거센 열풍문제는 인기콘텐츠 우려먹기 병폐방송사마다 비슷한 예능프로 범람획일화는… 시청자 피로·외면 불러전에 없이 트로트 열풍이 거세다. 트로트 예능이 온통 방송가를 점령하면서 양적 성장은 물론 사회적 평가까지 바꿔놓고 있다. 얼마 전 제1야당의 비대위원장이 '백종원' 대세론 거론 당시 '임영웅'(트로트 인기 가수)은 어떤가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다. 물론 조롱에 가까운 비유이고 정치권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트로트 열기의 단면을 보여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사실 트로트 장르는 지난해 TV조선 오디션 프로그램인 '미스트롯'의 인기 덕분에 재조명이 시작됐다. 올 상반기 '미스터트롯'까지 흥행에 성공하면서 트로트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지상파 3사는 물론 종편이나 케이블 채널까지 트로트 예능프로가 11월까지 중점적으로 편성되어 있다고 하니 그 열기를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다.물론 트로트의 가치나 관련 예능 방송을 폄훼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이돌 중심 K팝 일색인 한국 대중음악 장르가 트로트 열풍으로 바뀌면서 저변을 확대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송가인'을 필두로 트로트가 중장년층에게 미친 인기몰이 기세는 실로 엄청났었다. 이 여세를 몰아 올해는 1020 세대까지 즐기는 장르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덕분에 뽕짝이라 불리며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장르가 인기 높은 트로트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방송 광고 수입 하락세 속에서도 트로트 예능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4월 언론사 경영 성적 발표에 의하면 JTBC와 채널A가 각각 252억원, 158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오직 지난해 '미스트롯' 열풍 효과를 톡톡히 본 TV조선만 144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트로트는 예능계의 핫 콘텐츠로 등극한 것이다. 이처럼 트로트 열풍이 방송가나 우리나라 대중문화에 긍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다.그러나 일각에서는 넘쳐나는 트로트 예능으로 인한 시청자의 피로감 문제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방송사들이 스타 트로트 가수들을 앞다투어 출연시키거나 흥행위주의 과도한 트로트 예능이 국민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실정이다.이처럼 트로트 예능 문제 노정 속에서 필자는 무엇보다 방송 예능의 획일성이 걱정이다. 심각한 수준의 획일적인 방송 프로그램에서 과연 효능감이 있을지 우려스럽다. 인기 콘텐츠 우려먹기는 방송사의 고질적 병폐가 아니던가? 새로운 시도 없이 오직 인기 프로그램만 쫓아 방송사마다 비슷한 콘텐츠 범람은 상상만으로도 피로를 느끼게 해준다. 어떤 채널을 돌려도 동일 출연자가 나오거나 엇비슷한 프로그램일 때 그 피로감을 경험해본 사람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이 편성되어야 할 이유는 많다. 시청률과 트렌드만 쫓다 보면 시청자들의 피로감은 높아지고 방송 프로의 효능감은 낮아진다.방송 프로그램의 효능감은 각 프로그램이 가지는 독창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가 가미된 프로의 편성 속에서 가능하다. 그야말로 재탕 삼탕 우려먹기 식의 매번 비슷한 프로를 봐야 하는 식상함 속에서는 방송프로의 효능감을 찾기란 어려운 것이다. 시청률에 매몰되어 비슷한 장르 인기 프로만 고집할 때, 결국은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특정 트로트 가수의 인기몰이도 좋지만 계속 같은 톤의 예능을 고집할 때 이들의 이미지는 곧 소진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트로트 예능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예능프로 편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TV를 보면서 하루 동안의 피로를 풀고 싶은 시청자들의 소박한 바람을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코로나로 힘들고 지친 일상 속에서 가족 간 소통에 도움이 되거나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긍정의 가족관을 심어 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 그립다. 저널리즘의 여러 연구에서 나온 것처럼 방송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주고 상식과 개념형성 기여는 물론 문화 형성에도 영향을 준다. 획일적인 트로트 예능으로 피로감을 주기보다 효능감을 높이는 시사 교양프로 등 다양한 편성이 필요한 이유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06-30 김정순

[수요광장]야구장의 추억

고교야구 성지 동대문구장에 이어숱한 명승부 잠실구장이 사라진다평생 팬을 만들고 소설가도 만들고미·일 프로구장 '전통 고수'와 비교개발 아쉽지만 새구장의 탄생 기대잠실야구장이 사라진다. 지난 5일 서울시는 '잠실 스포츠·마이스(MICE) 민간투자사업' 사업자 선정 공고를 연내에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존 야구장을 허물고 새 야구장을 건설한다. 새 구장은 더 크고, 위치도 한강에 가까워진다. 바다와 인접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같은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설계에 따라서는 홈런 타구가 한강까지 날아 갈 수도 있다. 강물에 '풍덩' 빠지는 야구공을 상상해본다.잠실야구장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개최를 계기로 만들었다. 그 대회 결승전이 한국야구사의 최고명승부인 한일전이다. 선동열 선수의 호투, 김재박 선수의 개구리 번트, 무엇보다 8회말 터진 한대화 선수의 역전 3점 홈런은 전국민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이후 프로야구의 숱한 명승부가 그곳에서 펼쳐졌다. 새 야구장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동시에 추억의 장소가 사라지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이미 우리는 동대문야구장을 잃어버린 아픔이 있다. 그 자리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우주선같이 내려앉아 있다. 중국 관광객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지만 야구의 기억은 다 사라져 버렸다. 미국 프로야구단이 방한했으며(1958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국내 최초로 야간조명시설(1966년)이 설치되었고, 고교야구의 성지였으며, 프로야구 개막전(1982년)이 벌어진 것도 기록으로만 남아있다. 필자의 고향은 수원이다. 수원에 야구장이 생긴 것은 성인이 된 후인, 1989년이다. 초등학교 시절, 형의 손을 잡고 동대문야구장을 처음 찾았을 때의 설렘과 경이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 동대문야구장은 사라져 버렸다.프로야구 경기장은 도심지(都心地)에 있다. 일과를 마친 팬들이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장이 생기면 새로운 중심지가 만들어진다. 1980년대초 잠실 일대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야구장이 들어서고, 지하철이 연결되면서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그러나 야구장의 활용도는 낮다. 시범경기, 포스트시즌을 포함해도 잠실야구장의 사용일수는 연간 200일이 안 된다. 경기 시간도 짧고, 겨울에는 완전 휴장이다. 연중무휴 사용하는 영화관과 비교된다. 도심에 위치한 야구장 부지는 개발사업자의 관심 대상이다. 최근의 마이스사업으로 이 일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고시되었다. 개발의 좋은 점도 있지만, 야구장은 허물어지고 팬들의 추억도 사라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곳이 있다.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필드는 1914년에 지어졌다. 1988년에야 야간조명시설을 설치했다. 그때까지 종종 일몰(日沒) 서스펜디드(일시정지) 게임이 발생했다. 메이저리그 최고(最古)의 구장인 보스턴의 팬웨이파크는 1912년에 개장했다. 관중 수용규모가 가장 적다. 이들 구장은 건설된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하다.고시엔(甲子園) 구장은 갑자년인 1924년에 개장했다. 고시엔대회에 출전한 고교 선수들이 기념으로 그라운드의 검은 흙을 퍼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시엔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한신(阪神) 타이거스도 대회가 열리는 기간에는 홈구장을 양보하고 원정을 떠난다. 오사카(大阪)에 고시엔이 있다면, 도쿄에는 1926년에 개장한 메이지진구(明治神宮)구장이 있다. 우리나라의 임창용 선수가 활약했던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홈구장이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곳이 바로 이 곳이다. 하루키는 1978년 진구구장에서 야쿠르트의 개막전을 보다가 선두 타자의 타구 소리를 듣는 순간, 소설가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반면에 개발을 택한 곳도 있다. 도쿄돔은 예전의 고라쿠엔(俊樂園) 야구장을 헐어버리고 새로 지었다. 그곳은 왕정치(王貞治) 선수가 통산 756호 홈런, 세계기록을 세운 역사적인 장소였다. 도쿄돔은 단순한 야구장이 아니다. 대규모 관객이 참여하는 콘서트, 대형 이벤트와 전시장으로 활용한다. 도심의 복합문화공간인 것이다.야구장은 야구를 하는 곳이지만, 팬들에게는 각자의 추억을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평생 야구팬으로 만들기도 하고, 소설가로 만들기도 한다. 추억의 잠실야구장이 사라지는 것이 무척 아쉽다, 새로운 야구장의 탄생을 기대한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06-23 이영철

[수요광장]누구나 가면(假面)을 쓰고 살아갑니다

이면에는 나를 초월한 욕망의 갈구힘들때 술한잔 기울이며 태연하듯삶의 억압·제약 속 낭만·해학 담겨그래도 눈빛은 내면을 엿볼수 있어감춰진 본모습 '이해' 사랑의 출발복면을 쓴 사람들이 얼굴을 감춘 채 노래 경연을 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는데, 누구인지 맞혀보는 재미가 참 쏠쏠하지요. 감추는 것, 그게 가면의 본질입니다. 실제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것은 모순된 일이지만, 민낯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울 때 가면은 좋은 방편이기도 합니다. 얼굴을 감추고 자신을 초월한 그 무엇인가를 갈구하려는 욕망, 그게 고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면이 소멸하지 않는 이유이겠지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적인 사랑의 대명사로 불리는 명작입니다. 이 작품의 백미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면무도회에서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대목이지요. 가면 속 눈빛에 빠져드는 알 수 없는 이끌림과 가슴 설렘이 그들을 걷잡을 수 없이 불타게 합니다. 얼굴은 가려졌지만, 감춰지지 않는 내면이 엿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우리나라에서는 가면이 세상을 풍자하는 용도로 많이 쓰여졌지요.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양반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양주별산대놀이가 대표적입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도 주인공은 탈을 쓰고 한마당 연회를 신명 나게 이끌어갑니다. 물론, 그것은 흥겨운 잔치가 아니었지요. 가면 속에서 험한 세상과 고관대작들을 조롱하는 사설은 어느 사랑 타령보다도 피를 토하듯 절절하게 마음을 울리지요. 영화 속이지만, 광대 스스로 벅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억압과 제약 속에서도 즐거움과 정겨움과 낭만이 있는 가면 세상. 서양의 가면무도회가 소통하며 즐기는 모임이라면 우리 가면극은 주로 세상을 비판하는 해학과 풍자의 한마당이었지요. 그 게 우리 삶의 가치이자 여유입니다.'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지요. 하늘이 내려준 인연을 맺고 사는 부부, 피를 나눈 자식, 형제자매간에도 감추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지요. 오랜 세월 함께 지낸 친구로부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하고 한동안 공황 상태에 빠진 일이 있습니다. 믿었던 얼굴 뒤에 감춰진 또 다른 모습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 불찰이지만, 가면치곤 너무 무섭고 가혹했지요. 그러나 스스로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제 생각과 다르다고 그게 원망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요. 이해할 수는 없어도 생각이 다를 뿐이지 그 친구의 생각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속내를 감추고 아무 일 없는 듯 지내고 있는 저도 가면을 쓴 셈이지요.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과 다른 행태를 보는 건 참으로 무섭고 위험한 일이지요. 하지만 남을 속이지 않고 사는 사람,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게 인생살이기도 하니까요. 세상이 맘대로 살아지는 게 아니니 말이지요. 하지만 살면서 지켜야 할 상도(常道)는 있습니다. 그것마저 외면하면서 살면 안 됩니다. 그건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지요. 가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저질러 놓고도 아주 당당하게 자기명분을 세우려는 사람이 우리를 당혹 시킬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상대방을 왜곡된 프레임에 가두려는 사악한 일까지 벌여 세상이 무섭다는 걸 절감하게 되는 경우도 생겨나지요.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사는 게 힘들고 버거울 때 초승달 눈 흘기는 포장마차에 들어 눈물이 녹아든 술잔을 기울이곤 태연한 얼굴로 살아가는 게 세상살이이기도 하지요.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생존의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 꺼풀만 벗기면 가면을 쓰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지요. 이렇게 보면 남을 속일 수밖에 없으면 가면이라도 쓰는 게 사람다운 몸짓이 아닐까요. 다만, 가면을 왜곡에 이용하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가면을 써도 사람 된 도리와 본분을 잊어선 안 되지요. 가면을 만든 이유도 최소한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게 숨구멍을 열어 준 것 아니겠습니까. 가면 속에 감춰진 진짜 모습을 보는 것, 그 모습을 이해해 주는 것, 이게 사랑의 출발이 아닐까 합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06-16 홍승표

[수요광장]다시 유월 앞에

대표적 표상은 6·25전쟁 6·10항쟁비극과 혁명의 비대칭 데칼코마니70돌 6·25, 분단·학살 참혹함 경종6·10은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 굄돌평화·개혁의 상징 '균형 실천' 시점유월을 표상하는 사건은 여럿 있다. 그 가운데 오랫동안 우리 역사에 가장 어둑한 그늘을 드리운 것은 1950년 6·25전쟁이었을 것이다. 한때 '사변'이나 '동란'으로 명명되다가 이제는 정부 공식용어로 '전쟁'이 채택되어 쓰이고 있다. 이 전쟁은 호국영령이나 현충일, 보훈 같은 단어로 금세 치환되는 비극적 성격을 강하게 품고 있다. 하지만 유월에는 1987년에 일어났던 6·10항쟁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념비도 있다. 그해 유월을 뜨겁게 달구었던 학생과 넥타이부대의 시민혁명이자 직선제 개헌 투쟁이기도 했던 사건이다. 이렇게 유월은 전쟁과 호국과 분단이 한 축을 이루고 혁명과 개혁과 민주주의가 한 축을 이루는 비대칭적 데칼코마니를 우리에게 던져주는 달이다.올해 70주년을 맞는 6·25전쟁은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Korean War)'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국제전이자 이념전이었으며 더 구체적으로는 동족상잔이었던 이 전쟁은 적의(敵意)와 학살, 월남과 월북, 휴전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부산물들을 생성해냈다. 박찬승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에서는 전쟁 동안 '마을'들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에 주목했는데, 말하자면 당시 마을들마다 벌어진 학살의 갈등 구조를 낱낱이 밝힌 것이다. 마을마다 깊은 골로 잠복해 있던 신분갈등, 계급갈등, 친족갈등, 종교갈등, 이념갈등 들이 전쟁기간 폭발한 실례들을 실증적으로 규명한 이 저작은, 평소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그룹을 치안 부재의 상황에서 어떻게 제거해갔는가를 소상한 증언 채록을 통해 들려준 것이다. 전쟁은 후방의 민간인들에게 더 참혹한 비극을 안겨준다는 역설을 웅변해준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렉시예비치가 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도 반전(反戰)의 메시지로 경청할 만하다. 그녀는 전쟁의 야수성과 그 잔혹한 희생에 대해 주목하면서, 500여 명의 목소리가 전해주는 전쟁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전쟁에 참여했던 소녀들의 실감 있는 증언을 기록하면서 그녀는 전쟁에 기꺼이 참여했던 소녀들이 얼마나 순진한 이상 속에서 비극을 겪어갔는가를 들려준다. 이 두 권의 책은 이 땅에 다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는 까닭을 충실하게 암시해준다. 그야말로 전쟁은 명분도 실익도 없는 전폭적인 상호 패배의 행위가 아니었던가.올해 33주년을 맞는 유월항쟁도 한국 현대사에서 기념할 만한 민주화운동의 큰 봉우리이다. 1987년 1월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대학생 박종철이 사망하자 권력 쪽에서는 의문사로 덮으려고 했지만 시민들은 그의 죽음을 도화선으로 하여 장엄한 항쟁의 역사를 써가게 된다. 4월13일 대통령 전두환의 호헌 선언과 5월18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천주교 사제단의 성명으로 시작된 이 항쟁은 6월9일 대학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지면서 전면적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함성을 전국적으로 이어가게 된다. 결국 29일 여당 대표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면서 이 항쟁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면서 이후 펼쳐지는 한국 민주주의의 확연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이처럼 광주항쟁에서 유월항쟁으로 이어지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커다란 흐름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더없는 굄돌이 되어준 것이다. 항쟁 이후 문민정부가 출범하였고, 수평적 정권교체가 있었으며, 촛불혁명 등 시민혁명들이 이어지면서 우리는 지금 현대사에서 가장 훤칠하고 선명한 민주주의 역사를 써가고 있다.이제 대한민국은 전쟁을 항구적으로 억지하고 민주주의를 점진적으로 키워가는 평화와 개혁의 쌍두마차에 올라타 있다. 양자를 균형 있게 추구하는 설계와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염병이나 공황을 당했을 때 전쟁을 돌파구로 택하곤 했던 파시즘 세력이 역사 속에 늘 있었다는 점을 떠올릴 때, 우리는 코로나 대응을 잘하여 민심이 응집해준 것이 그러한 가능성을 현저하게 줄였거나 없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전쟁과 파시즘이(전염병까지!)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날을 기원하면서 다시 숭고한 희생의 유월 앞에 서 있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06-09 유성호

[수요광장]언택트 시대, 디지털 부적응 등 격차에 대한 해법 마련해야

교수들 '온라인 강의 적응' 어려움비대면 '라이프 스타일' 처음 경험정부 K-뉴딜 '격차해소' 대책 없어산업 성장할 수록 '소외자' 많아져패러다임 전환·대안마련 절실하다마스크를 낀 채 헤드폰을 장착하고 마이크를 확인한다. 마이크를 입에 너무 가까이 댈 경우 거친 숨소리나 불필요한 소음이 발생할 수 있어 체크는 필수다. 노안이 온 필자는 화면에 띄운 PPT를 잘 볼 수 없어 안경을 써야 한다. 마스크와 헤드폰, 마이크와 안경까지 착용하면 우주복이라도 입은 듯 거북하고 갑갑하다.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자못 비장한 마음으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으면 비로소 온라인 강의 준비 끝이다.디지털 문화에 취약한 필자는 강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생소한 것에 눌려 지쳐버리는 느낌이 든다. 이게 다가 아니다. 분명 온라인 수업임에도 오프라인 수업과 다름없이 학교에서 강의를 진행한다. 온라인의 장점은 공간적 제약 없는 접속 아니던가? 누구나 아는 이 사실을 몰라서 멀리 학교까지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필자와 같은 아날로그 세대는 온라인 강의 적응에 어려움이 많다. 온라인 강의에 대한 학교 차원의 별도지원이 없다. 교수들은 각자도생 방식으로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기 일쑤다. 온라인 수업은 파일을 저장해서 학교에 제출해야 되는데 파일 저장 대신에 취소를 눌러 버리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될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과 비대면의 디지털 방식은 교감이 없는 탓인지 불안하다. 특별한 피드백 없이 표정만으로도 교감이 이뤄지는 오프라인 강의실하고는 사뭇 다르다. 필자의 경우는 대학에서 20년 이상 강의를 해 온 터라 강의 자체에 대한 부담은 거의 없다. 그런데 온라인 강의는 시작부터 끝까지 불안감과 부담 자체다. 이런 연유로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조교의 도움이 있는 학교로 가는 것이다. 온라인 수업인데 왕복 3시간이 소요되는 학교로 가는 이유는 어이없게도 디지털 부적응 문제인 것이다.온라인 수업 디지털 부적응으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강의의 질적 하락일 것이다. 온라인이라는 익숙지 않은 강의 방식이 주는 불필요한 긴장은 강의 집중을 방해한다. 실제로 온라인 강의 시작 한 달이 지났지만 익숙해질 기미가 없다. 어쩌면 종강 무렵에나 익숙해질지도 모르겠다.필자를 포함,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부적응 문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는 이렇게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변화 속 혼란을 겪게 하고 있다. 코로나가 만들어낸 비대면으로 인한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는 우리 모두 처음 겪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제도와 관행 속에 변화된 디지털 시대의 상황과 맞물려 부적응 문제가 속출한다.최근에 정부는 K-뉴딜 정책을 천명하며 디지털 산업 발전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디지털 산업 발전 구상 어디에도 디지털 격차로 인한 부적응 문제 등 격차 해소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온라인 강의 특성과 교수 학습방법이 조화롭게 훈련돼 있을 때 온라인 강의가 잘 이뤄질 수 있는 것처럼 디지털 성장 플랜도 국민 모두 적응하고 잘 따라갈 수 있어야 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디지털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디지털 중심으로 산업 구조 전반이 바뀔 것이란 얘기다. 한마디로 코로나와 언택트 비즈니스는 서로 맞물리면서 디지털 중심으로 세상의 자산이 이동되고 있다. 디지털 발전 속도에 비례해 부적응이라는 사회적 문제도 함께 발생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달라진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디지털 세상에 적응은 필수인 것이다.디지털 세상을 선도하겠다는 국정 기조에 맞춰 디지털 산업이 성장하면 할수록 디지털 격차로 고생하며 소외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이러한 사회 현상을 그저 아날로그 세대의 문제쯤으로 봐서는 안 된다. 디지털 격차에서 오는 정보의 불균등으로 인한 사회문제는 앞으로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격차는 빈부의 격차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일 수 있다. 디지털 부적응과 정보격차 해소 방안이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다. 디지털 부적응 문제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디지털 격차 해소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06-02 김정순

[수요광장]슬기로운 야구생활

美 MLB, 시작부터 신문과 공생관계라디오·TV·인터넷 등 미디어 발전韓 프로야구, 130개국 방송 콘텐츠로코로나시대 무관중에도 높은 시청률그럼에도 야구장 응원·치맥 그리워한국 프로야구가 전세계에 중계방송되고 있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지난 22일 미국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을 통해 130개국에 KBO 리그가 방송된다고 밝혔다. 한국프로야구가 세계적인 스포츠 콘텐츠가 된 것이다.프로야구는 시작부터 미디어와 분리할 수 없다. 미국의 메이저리그(MLB)가 시작된 것은 남북전쟁이 끝난 1870년대이다. 신문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시기와 일치한다. 국토가 넓은 미국은 전국 규모의 신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야구 기사는 지역지의 중요한 콘텐츠였다. 매일 경기를 개최하는 야구는 매일 발행되는 신문의 더없이 좋은 파트너였다. 경기기록을 매일 확인하는 야구팬은 신문의 충성 독자가 되었다. 야구와 신문은 공생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20세기는 전파 미디어의 시대다. 1920년, 피츠버그에서 세계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탄생했다. 초기 라디오는 콘텐츠가 빈약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이 야구 중계방송이다. 야구중계는 라디오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동시에 프로야구의 시장도 확대되었다. 전파(電波)가 도달하는 지역까지 팬층이 형성된 것이다.2차 세계대전 후인 1950년대부터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된다. 신생미디어인 TV에서도 야구는 중요한 콘텐츠가 되었다. TV는 전국방송이 가능했다. 또 그 시기부터 비행기가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등장했다. TV와 비행기로 인해 미국 중동부로 한정되었던 야구 시장이 태평양 연안까지 확장되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LA다저스는 원래 뉴욕 브루클린이 본거지였다. 1958년 LA로 홈구장을 이전했다. 이어서 뉴욕 자이언츠도 샌프란시스코로 본거지를 옮긴다.케이블TV는 1980년대에 본격 등장하여 다양한 전문 채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KBO 경기를 세계로 송출하는 ESPN도 이 시기에 스포츠 전문채널로 탄생했다. 카메라를 추가 투입하여 보다 입체적인 화면을 보여주고, 자막 정보를 제공하는 등 중계기술이 발전하게 되었다.1990년대는 위성방송의 시대다. 동구권의 몰락으로 냉전이 종식되자 첩보용으로 사용된 인공위성을 방송 중계에 이용하게 된다. 스포츠는 위성 중계방송의 적합한 콘텐츠이다. 이에 따라 메이저리그도 해외시장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94년에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의 노모 히데오도 같은 시기에 활약했다. 한국과 일본의 시청자들은 새벽에 라이브 중계방송을 볼 수 있었다. 최근의 류현진에 이르기까지 많은 우리 선수들이 미국에 진출했다. 일본도 마쓰이, 이치로, 최근의 오타니 쇼헤이 등 수많은 선수들이 메이저리거로 활동해왔다.2000년 이후는 인터넷의 시대다. 인터넷 사이트인 MLB닷컴을 통해 전경기 실시간 중계, 다시보기, 하이라이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전세계의 팬들에게 제공하고 있다.그리고 코로나의 공포가 세계를 덮친 2020년 야구시즌이 돌아왔다. 사실 우리보다 대만에서 먼저 프로야구가 개막되었다. 그러나 대만의 프로야구는 2009년 승부조작 스캔들로 인해 6개팀에서 4개팀으로 축소되어 팀간 40차전, 팀당 연간 120게임으로 운영되고 있다. 경기수준도 우리보다 낮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미국의 팬들은 메이저리그만이 진정한 야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종 챔피언 결정전도 아메리칸 시리즈가 아닌 월드 시리즈로 부른다. 그들에게 메이저리그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야구는 스포츠뉴스에 간혹 등장하는 진기명기 수준에 불과한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그들보다 앞서 개막한 한국의 프로야구가 주목받는 것이다. 미디어는 새로운 콘텐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코로나19가 우리의 생활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꺼린다면 프로 스포츠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관중이 없어도 시청률은 높게 나타나고 있다. 야구장에 직접 가지 않더라도 팬들의 관심은 여전하다는 징표이다. 그것이 코로나 시대의 슬기로운 야구팬의 자세일지도 모른다.그럼에도 빨리 야구장에 가고 싶다. 관중들과 함께 선수들의 파이팅을 큰 소리로 응원하고 싶다. '치맥'도 생각난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이 그립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05-26 이영철

[수요광장]아이들을 도울 때 진짜 어른

어린이는 미래 희망이라 말하지만선뜻 나서 도와주는 사람은 드물다예전 사회복지공무원 특강 말미에기부 얘기 자발동참으로 확산 기억작은정성이나 큰 의미 멈출수 없어살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한 짧은 식견이지만 도움이 되는 말을 전할 때가 있습니다. 파주에서 일할 때 초빙강사가 사정이 생겨 우연찮게 사회복지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게 되었지요. 강의를 마치면서 뜬금없이 물음표를 던져 보았습니다. "다만 얼마라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시겠습니까?" 열 사람이 채 안 되었지요. 다시 한마디 던졌습니다. "사회복지는 국민 복리 향상을 위한 일, 그중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이 중요한데 실망이 큽니다. 일선 사회복지직 공무원이야말로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슴에 담고 솔선수범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후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매월 월급의 1%를 모금해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지요.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시장께 사회복지직 뿐 아니라 시청 공직자 모두가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들자고 했지요. 설문조사결과 참여 의사를 밝힌 공직자가 98%를 넘었습니다. '공직자라는 사명감이 생각보다 상당하구나!' 새삼 직원들에게서 묵직한 울림과 감동을 받았지요. 용기를 내 시의회와도 협의를 거쳐 공직자 모금액만큼 일반 예산에 반영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내친김에 'LG 필립스' 노조위원장을 만났지요. 박봉의 공직자들이 좋은 일을 하니 기업체에서도 도와달라고 했는데 며칠 후 흔쾌히 동참 의사를 밝혔습니다. 경기도 사회복지 공동모금회도 함께 하기로 했지요. 공직자와 자치단체, 기업, 공익단체가 한마음으로 나선 것입니다.이듬해 1월부터 소년·소녀 가장과 시설 어린이들에게 매월 5만원씩 후원했지요. 공직자와 파주시, LG필립스, 경기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하나로 뜻을 모아 가치 있는 협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들을 돕는 일이 펼쳐지자 시민의 공직자에 대한 인식과 평판도 좋아졌고 공직자들도 생각이 달라졌지요. 세간의 칭찬이 그렇게 만든 측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이들을 돕는다는 보람을 느끼게 된 것이 더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말마다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잡초 뽑기나 도배 등 봉사활동과 함께 위문품도 전달했지요. 서로 힘을 모으면 가치 있는 결실을 맺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건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례는 '2010년 대한민국 휴먼대상' 우수상을 받으며 전국적인 관심으로 이어졌지요."어린이를 도울 때 진짜 어른이 됩니다"라는 크레파스로 쓴 글귀가 생각납니다. 공자는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고(老者安知) 친구들과 신의를 잘 지키며(朋友信知) 아이들을 품에 보듬고 잘 이끌어 주며 살고 싶다(少者懷知)"고 했지요. 사람들은 누구나 미래를 말하고 그 미래의 꿈과 희망은 어린이라고 말하지만 선뜻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은 드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이율배반적인 현상이지요. 우리의 미래는 아이들이라는 말, 너무나 당연합니다.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해야 우리 사회도 밝아진다는 말도 두말 할 필요가 없지요. 그러나 오늘을 사는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이라는 사실, 그건 말로 되는 게 아닙니다. 당연한 말처럼 당연히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 일이지요.너른 고을이라는 시골에서 자란 저도 어렸을 때 학용품을 제대로 못살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해 시작한 소년·소녀 가장 후원이 어느새 30년이 훌쩍 넘었지요. 제 이름 석자가 '초록우산 명예의 전당'에 헌액(獻額)된 영광도 이 때문입니다. 공직 은퇴 후에도 이 일을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지요. 국민 세금으로 살았으니 아이들을 위해 작은 정성이나마 보태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술 한 잔 덜하면 되는 적은 돈이라도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이유이지요. 비록 작은 정성이지만 누군가 기쁜 마음으로 학용품을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소박한 일이지만 의미있는 일인데 멈출 수는 없는 일이지요. 아이들을 도울 줄 알아야 진짜 어른입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05-19 홍승표

[수요광장]오월과 한국문학

동·서양 서정시 역사에서 오월은자연미 정점·내면적 충일의 상징'1980 광주' 폭력 문단 저항의 시작경제 호황에 '대중문화 개화' 공존올 40周… 민주주의 혁혁한 기여19세기 독일의 유명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놀랍도록 아름다운 오월에'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오월에/모든 꽃봉오리가 피어날 때/나의 마음속에서도/사랑의 꽃이 피어났어라//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에/모든 새들이 노래할 때/나의 불타는 마음을/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했어라'라는 내용의 서정시로서, 오월의 청신한 분위기와 사랑의 절절함을 잘 결합한 가편이다. 20세기 한국 서정시의 명편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하염없이 지는 모란꽃을 보면서 "찬란한 슬픔의 봄"을 다시 기다리는 심미적 자세를 노래함으로써, 오월의 순수무구한 이미지와 시인의 내면적 슬픔을 잘 결속한 결실이다. 이처럼 동서양의 서정시 역사에서 오월은 '봄의 여왕'으로서 자연미(美)의 정점과 내면적 충일함을 동시에 상징하는 맞춤한 계절적 소재였다고 할 수 있다.그러다가 1980년 '오월 광주'의 충격을 접하고부터 한국문학에서 '오월' 상징은 크게 변모하게 된다. 어쩌면 1980년대 이후 한국 현대사는 정치적으로는 물론이고 문화적으로도 광주민주화운동에 의해 규정을 받지 않은 곳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월 광주'를 애써 폄훼하려고 했던 이들조차 역설적으로 그 흐름에 긴박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유신의 몰락과 더불어 형성된 새로운 열망들을 하나하나 좌절시키며 등장한 신군부 세력은 '오월 광주'를 폭력으로 진압하면서 80년대 내내 억압의 통치를 이어갔다. 이때 시인들은 권력과의 날카로운 대결과 그로 인한 내면적 저항의 언어를 세상으로 흘려보내게 되었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김남주, '학살 2')에 나타난 시인의 격앙처럼, 우리 시는 불가피하게 이러한 시대적 역학 안에 유폐되었고, 윤리적 자아와 시적 자아 사이의 간극을 스스로 파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캠퍼스 안에서 은밀하게 소통되던 것이든, 훗날 대중적으로 성공한 '모래시계'나 '박하사탕' 같은 영상물에서 확인한 것이든, 이러한 야만의 시대가 남긴 끔찍하고 잔혹한 폭력성은 오래도록 사람들 뇌리에 혈흔처럼 남았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많은 이들의 내면에는 가장 어둑한 충격과 가장 빛나는 저항의 역사가 동시에 아로새겨지게 되었던 것이다.물론 우리가 80년대를 기억할 때 그 시대가 탈(脫)정치적 대중문화가 가장 활발하게 은성한 시대이며, 세계경제의 활력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극점을 이룬 물질적 풍요시대였다는 점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후진적 정치와 호황의 경제라는 기묘한 불균형 속에서 제 물을 만난 것이 바로 문화의 대중화(popularization) 흐름이었는데, 이현세의 장편만화 '외인구단'이 대중들의 이목을 붙들었고, 김홍신의 장편소설 '인간시장'과 서정윤의 시집 '홀로서기' 등이 문학의 밀리언셀러 시대를 열기도 하였다. 그만큼 1980년대는 절대권력의 폭력성과 그것을 후광으로 하는 대중문화의 화려한 개화가 공존하는 시대였다.올해 우리는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다.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보듯, 장훈의 영화 '택시 운전사'에서 보듯, 이제 우리 문학과 예술은 '오월 광주'를 가장 아프고 또 가장 빛나는 사회적, 윤리적 사건이라고 형상화하고 있다. 특별히 '소년이 온다'는 5·18 당시 숨죽이며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소설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광주사태'라는 어처구니 없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고, 객관적으로 밝혀진 것들까지 이념적 폄훼를 가하는 이들이 지금도 있지만,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로운 사회적 시스템이나 더 이상 절대권력이 들어설 수 없는 민주주의 장치 마련에 '오월 광주'가 끼친 기여는 자못 혁혁하다 할 것이다. 그렇게 "놀랍도록 아름다운" 오월은 위대한 역사적 분수령이 되어, 이제 누군가를 더 밝은 빛이 비치는 쪽으로 인도해 가는 역사적 힘으로 남았다. 그 숱한 죽음과 아픔과 헌신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지금 다시 힘겨운 민주주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05-12 유성호

[수요광장]정치인의 가짜뉴스, 엄중한 책임·대응 매뉴얼 절실

정부 "아니다" 여러차례 밝혔는데태영호·지성호 탈북자 출신 당선자北소식통(?) 언급 사망·와병 주장일부 신문은 확인않고 인터뷰 게재공인·공기가… '제재 시스템' 급해4·15 총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지도 벌써 3주째 접어든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정치 평론가들의 갑론을박 호들갑도 줄고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정치적 입장 차이 만큼이나 서로 다른 논평을 내는 듯 보였지만 막말 후보에 대한 의견은 신기하게도 일치했다. 가짜뉴스 생산과 막말을 일삼던 후보들은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이견이 없었다. 쌈꾼보다 일꾼을 원하는 유권자들의 열망이 표출, 일하지 않은 국회에 유권자들의 질책이 담긴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평론가들의 논평이 아니더라도 지난 선거결과는 21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원들이 달라질 것이란 기대감을 만들기에 충분했다.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국민은 일류인데 정치만 삼류에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선자들 역시 국민들의 열망에 부응이라도 하듯 각오를 다지는 모습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종종 보여준다. 필자 역시 역대급 초선의원 당선을 보면서 일하는 국회로 거듭날 것이란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런데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실상은 국민들의 바람과 달랐던 모양이다. 유권자들의 열망을 산산이 부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김정은 건강 이상설과 사망설을 둘러싼 가짜뉴스가 그것이다. 탈북자 출신 야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과 사망설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세상을 혼란 시키더니 가짜뉴스임이 밝혀진 것이다.급기야 지난 4일에는 가짜뉴스 당사자인 미래통합당 태영호·미래한국당 지성호 국회의원 당선자가 '가짜뉴스' 유포 혐의로 시민 단체에 고발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들을 향한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아 보인다.사실 이 문제와 관련 정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에 특이동향이 없다며 여러 차례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태영호 당선자는 정부의 발표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통한 북한 소식통을 언급하며 지난달 28일 CNN과 인터뷰했다. 이에 지성호 당선자까지 가세해 이달 1일 조선일보 인터뷰에 "김 위원장의 사망을 99% 확신한다"는 주장으로 혼란을 부추겼다. 그러나 지난 2일 김정은 위원장이 비료공장 준공식에 나타남으로써 두 사람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먼 가짜뉴스로 판명이 난 것이다. 가짜뉴스 생산과 유포에는 엄격한 처벌이 뒤따른다. 더구나 대한민국 입법부 국회의원 당선자라면 말 한마디의 무게가 남다른 법인데 그것도 안보와 직결된 경우는 더 준엄하게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다.다만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정치적 논리로 일시적 비난이나 비판보다는 공인의 공적 책임에 근거, 체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차후 또 반복적인 일로 국제적 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사회적인 논의와 대응 매뉴얼 마련도 절실하다. 또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배포한 조선일보의 경우 언론 매체로서 책임을 피해서는 안될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데 대북 소식통보다 한국 정부 당국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언론이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논평함으로써 관련 언론의 책임을 완곡하게 표현한 셈이지만 과연 해당 언론사가 반성하고 있을지는 의문이다.우리는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뉴스이용자는 하루에도 수많은 뉴스를 접하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눈길을 끄는 뉴스가 곧 팔리는 뉴스가 된다. 가짜뉴스가 생산되고 유포되는 과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가짜뉴스가 사회 구성원의 통합을 방해하고 극단주의를 초래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국가마다 가짜뉴스 단속을 강화하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지성호·태영호 당선자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도 위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신뢰받는 정치를 원한다면 그에 걸맞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국회의원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없다. 또 이들이 신뢰를 받아서도 안된다.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정치인에 대하여 사회적 제재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 대응 매뉴얼 구축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05-05 김정순

[수요광장]보수의 몰락

박 前대통령 탄핵후 野 행태 난맥상대권만 생각 당대표·원칙실종 공천작은 균열에 둑 무너지듯 선거패배재건 위해선 진정한 보수가치 정립희망비전 국민공유 미래설계 급해끝내 보수는 참패했다. 보수의 몰락 기미는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작은 균열이 거대한 둑을 무너뜨리듯이 보수는 허물어졌다. 유권자들은 보수와 수구를 구별하지 않는다. 특히 젊을수록 야당을 '수구꼴통'으로 본다.왜 보수와 수구가 동일시될까. 그 이유는 집권세력과 야권이 모두 제공했다. 현 집권세력의 제일 과제는 적폐청산이다. 적폐는 특권이며, 기득권이다. 지난 100여년 간 쌓인 것이다. 좌파가 보수를 '토착 왜구' 세력과 등치시킨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성공했다. 이제 보수는 친일파의 후손이다. 친일잔재는 청산 대상이다. 사법 적폐는 청산되었고 이제 검찰 차례다. 검찰의 조국 일가 수사는 공수처법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검찰의 저항이다. 조국 전 장관은 억울한 희생자이며, 그의 위선과 탈법은 문제 될 것이 없다.보수와 수구의 동일화는 현 정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386 운동권이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한 과정과도 일치한다. 좌파세력은 노조, 전교조, 각종 문화운동 등을 통해 헤게모니 싸움에서 승리했다.야권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의 정치 행태는 실망을 넘어 혐오를 불러왔다. 자신들의 작은 이익을 보수로 포장했다. 야당 의원의 판단 기준은 자신의 당선 가능성이다, 선거 과정에서의 난맥상은 참담한 한편의 희극이었다. 당선과 대권 가능성만 생각하는 당 대표, 규율과 원칙은 완전히 실종되어버린 공천, 정체성이 불분명한 외부선대위원장 영입 등이 대표적이다. 압권은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 공약이었다. 보수의 원칙은 물론 품격마저 완전히 저버렸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명분과 체면을 완전히 내팽개친 몰락한 양반의 추태를 보는 듯했다.야당은 재건을 시도 중이다. 패인과 대책이 다양하게 제시된다. '진정한 민의'를 받아들여 '뼈를 깎는 자성'과 '새로운 리더십'으로 '2년 후를 대비'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진정한' 보수의 원칙과 가치를 정립하는 일이다. 일부에서는 보수의 이념은 낡아서 새로운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이른바 실용주의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이념 없는 정당은 집권을 위해 모인 이익집단과 다를 바 없다. 이념으로 무장하고 편 가르기의 투쟁 전략과 선전선동 전술로 공격하는 집권정당에 대응하여 무원칙의 실용주의가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설령 전투에는 이길 수 있어도 전쟁에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현재의 정치 지형에서 보수의 재건은 쉽지 않다. 여당 대표가 말한 '진보 20년 집권'도 가능해 보인다. 보수의 궤멸은 사회주의를 부른다. 야당에 실망하면서도 기대를 버릴 수 없는 이유는 보수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진보의 이념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예컨대 보수주의자에게는 평등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자유도 소중하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해 진정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분배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건전한 노동의 가치와 성실한 노력을 중시한다. 개인의 능력 차이와 취향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또한 인간의 양면성을 인정한다. 이타적 측면과 함께 이기적 속성도 부정하지 않는다, 이타적 속성만을 강조하는 정치집단의 이기적 속셈을 알고 있기 때문에 누가 양의 탈을 쓴 늑대인지를 간파한다. 지상에서 '인민의 낙원을 건설'한다는 거짓에 현혹되지 않는다. 도덕성은 좌우의 차이가 아닌 인간 개인의 문제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보수의 이념 정립이 시급하다. 올바른 원칙과 가치 위에 세워진 비전을 국민과 공유하여 희망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체성은 확립되고 진보의 문제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 연속되는 선거 패배의 충격은 크다. 그러나 눈앞의 단기적 이득에 급급해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우리의 선배들이 온갖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건설해온 대한민국을 후손들은 이어나가야 한다.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것도 보수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의 하나이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04-28 이영철

[수요광장]자신을 속이지 마라

세상사는 동안 가장 힘든일중 하나 선비들이 목숨처럼 여긴 삶의 철학다산 선생 독처무자기와 일맥상통떳떳치 못하면 언젠가 허구드러나스스로 낮추는 불변의 진리 실천을'자신을 속이지 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너를 보고 있다. 열 사람의 눈이 너를 지켜보고 있다. 이 얼마나 무서운 현실이냐!'-증자(曾子) 자신을 속이지 말라(不欺自心)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남을 속일 때가 있지요. 선의든 악의든 옳은 일이 아닙니다. 잠시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지만, 자기 마음마저 속일 수는 없습니다. 남을 속이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지요. 마음을 속이는 건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갈고 닦을 필요가 있지요. 나를 돌아보는 게 불편하고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자신의 뒤를 돌아보며 성찰하며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삶의 철학과 가치를 지키며 보이든 보이지 않든 자신을 속이지 말고 살아야하는 게 상도(常道)이지요.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속이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조선의 선비들이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겼던 삶의 철학이지요.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습니다. 공자는 마지막까지 '민신(民信)'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했지요.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면 조직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다산(茶山) 선생이 오랜 유배 생활 속에서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도 독처무자기(獨處無自欺)의 철학을 지켰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삶 속에서 저술한 책들은 오늘에도 우리 삶의 나침판이자 길라잡이가 되고 있지요.남을 속이고, 자신까지 속이면서 죄 짓는다는 생각은 손톱 만큼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남들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을 속이고 떳떳하지 못한 일을 저지르면 언젠가는 그 허구가 드러나게 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난해 그런 일을 겪었지요. 사회적 명성을 얻고 젊은이들의 존경을 받았던 사람의 민낯이 청문회를 거치면서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정승 자리에 올랐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결국 물러나고 말았지요. 안타까운 것은 나라가 내 편 네 편으로 갈리고 나뉘었다는 것입니다. 특권층의 꼼수를 알게 되었지만 진영논리로 편이 갈라진 건 안타까운 일이지요.살다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접하게 됩니다. 속이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올곧은 철학과 소신이 없으면 안 됩니다. 욕심이 지나쳐 일을 그르치는 것은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지 생각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이 세상엔 고수가 많이 있습니다. 때를 못 만나 능력과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살면서 스스로 깨우침이 넓고 깊어서 지위를 달 수 없을 만큼의 경지에 오른 참된 사람(無位眞人). 모든 미혹(迷惑)함과 깨달음을 초월한 사람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요. 스스로 낮추면 높아지고 높이면 낮아진다는 불변의 진리부터 실천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지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 속에 사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혼자만의 생각은 중지(衆智)를 모으는 것보다는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 꺼풀 벗기면 가면을 쓰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나마 민낯으로 남을 속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면이라도 쓰는 게 사람다운 일이지요. 사후세계(死後世界)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요. 남을 속이지 않고 자신을 속이지 않는 세상이 천국이 아닐까 합니다. 저 역시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은 몰라도 자신까지 속이지 않는다는 건 자신이 없지요. 자신을 속이는 건지 아닌지 모를 때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04-21 홍승표

[수요광장]'시나 쓰라'는 막말의 종언

토론 과정 한 후보가 시인에 한 말'~나 하라' 토씨에는 '너 따위' 내포우월감 앞세운 '폄하의 어감' 짙어자신이 더 낫다는 가치를 호소하되상대방의 인격은 존중할 수 있어야이번 총선의 의미는 여러모로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에 난국이 닥쳤을 때 어떤 태도와 언어와 의지로 임해야 하는지를 국민들은 따졌을 것이고, 대의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보편적인 시민적 가치와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강한 암시를 받았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이념, 지역, 세대, 계층, 젠더 별로 엄존하는 전선이 있고 그 경계선들은 여지없이 배타적인 타자 배제의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래도 이번 총선은 그것을 어느 정도는 뛰어넘었고 어느 정도는 전혀 새로운 틀을 향해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 제도적 차원에서만 보면 여전히 당파적 이익에 골몰하는 후진적 정치의 민낯을 보게 되었지만, 그 과정과 결과를 두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국민들은 오히려 합리적 혜안을 갖추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민들은 정치 환멸의 정서를 부추기면서 자신만은 예외적 우월성을 가지고 국민들을 호도하려 했던 이른바 '꼰대 언론'들에 대해 경고장을 날렸다. 뻔뻔한 이데올로그들이 소속 언론사의 총론에 복무하느라 분주했지만 국민들은 거의 현혹되지 않았다.그리고 이번 총선의 밑바닥에는 폭언과 막말로 얼룩진 도덕적 결여 상태가 깊이 잠복되어 있었다. 예기치 않게 튀어나온 실언이야 귀엽게 봐줄 수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계산된 폭언과 망언은 우리 정치 수준을 여전히 답보 상태로 만들기에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선거 막판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네거티브 공세, 색깔론, 가짜뉴스 등은 정파 사이에 존재하는 소소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발본색원되지 않은 정치적 유습으로 이번 선거 국면을 감염시켰다. 어쨌든 코로나19 사태의 와중에 시행된 선거였던 만큼 국민들은 자신이 지지할 대상이 얼마나 신뢰를 받을 만한 세력인가를 물었을 것이고 폭언과 막말을 멀리 퇴출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그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언론에서 '막말'이라고 규정하는 표현은, 물론 언론사마다 이해관계에 따라 과장하기도 하고 은폐하기도 하지만, 가치판단의 합의가 이루어진 사건에 대한 폄하라든지 신체 비하, 세대 비하, 젠더 비하, 성희롱, 욕설, 비방 등이 단골로 지적되곤 한다. 그러나 거의 보도되지 않은 것 가운데 다음 표현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토론 과정에서 한 후보는 시인인 상대 후보에게 "시인은 시나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대체로 문화예술이나 체육 종사자들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자신의 전문 영역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말을 했던 후보의 소속정당에도 그런 분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탁구나 쳤으면 좋겠다", "바둑이나 두면 좋겠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그분들도 탁구나 바둑의 경험을 정치에 접목하여 우리 사회를 진일보 시키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더구나 이때 '(이)나'라는 토씨에는, 이쪽은 너 따위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우월감을 통한 상대 폄하의 어감이 짙게 내포되어 있지 않은가.한번 생각해보자. 도로를 달리다가 운전하는 여성을 보고는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라고 했다면 그것은 여성에 대한 폄하는 물론 '밥을 하는 노동'에 대한 비하를 안고 있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대통령이나 하라"라고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일이 '(이)나'라는 조사로 포괄하기에는 워낙 막중하고 큰 역량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애나 보라", "밭이나 매라", "노래나 하라"는 모두 보육, 농사, 예술에 대한 무시요, 자기는 그런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우월감의 반영일 뿐이다. 따라서 "시나 쓰라"는 말은 막말 수준인 셈이다. 그는 무의식중에 '시, 정치'라는 불균형을 내면화한 채, 시를 쓰는 후보에 대한 인격적 존중 대신 시 따위나 쓰는 주제에 정치를 하려 하느냐는 타자 배제의 언어를 통해 이 땅의 시인들을 모두 무시한 꼴이 된 것이다. 그에게 이런 말을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너나 잘 하세요!" 그래야 상대 폄하의 막말은 종언될 것이고, 누구든 자신이 상대방보다 더 나은 가치를 품고 있다는 것을 호소는 하되 상대방의 인격과 가치는 존중하는 것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04-14 유성호

[수요광장]재난 극복 모범 국가

코로나19 입국제한 국내인력 부족이주노동자 체류기간 50일 더연장마스크·생계비 지원 제외 '비상식'독일등 해외선 동등하게 일괄지급재난극복 상생 '공동체 의식' 절실'사람'과 '노동력'을 따로 떼어서 처우할 수 있을까? 사람이 노동을 하는 것이니, 두 단어를 따로 생각할 수 없음은 상식적으로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 불가능할 것 같은 질문이 이주민들에게는 예외로 적용되고 코로나 위기 속에서 더욱 확대되고 있다.얼마 전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의 최대 체류허가일이 4년10개월에서 50일이 추가 연장되었다.정부는 신규 이주노동자가 입국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산업현장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의 취업활동기간을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베트남과 중국 등에서 외국인 계절노동자를 도입하고 있었지만 이 또한 인력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문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이 계절노동자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자 한국에서는 공장을 돌릴 인력도, 농어촌에서 일할 인력도 부족해지고 있다. 따라서 기왕에 있는 인력은 더 체류하게 하고 다른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체류 비자를 변경해 농촌에서 일하게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한쪽에서는 한명의 외국인이라도 더 산업과 농어촌 현장에서 일을 시켜 현재의 한국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례 없는 조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그렇다면 이렇게 더욱 귀해진 이주민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지자체 차원에서 나누어 주는 무료 마스크 배부에서 제외됨은 물론이고 이주민 전체의 절반인 120만명은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서 일주일 단 두 장을 살 수 있는 마스크 구매 기회에서마저 제외되고 있다. 더욱이 경기도는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 대상자에서 외국인은 제외한다고 밝히고 있다.이주민들은 똑같이 세금도 내고 일상도 함께 하며 어려움도 같이 겪고 있다. 위기극복을 위해 손을 빌려달라며 5년 가까이 한국에서 일하고 떠나는 이주노동자들을 체류기간 연장으로 붙들고, 다른 목적으로 들어온 이주민들은 농촌에서 일해 달라고 비자를 변경하면서도 위기 극복에 필요한 방역물품 보급이나 긴급 생계 지원에서는 제외한다. 고난을 견디고 힘든 일은 같이 하자고 하면서 위기극복에 꼭 필요한 지원을 할 때는 같은 공동체 구성원 취급은 못한다는 것이다. 함께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하는 이웃으로서 인간적인 도리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그럼 모든 국가가 이런 위기 상황 속 지원에서 이주민을 배제했던 것일까? 가까운 일본에서는 2009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에 모든 외국인을 포함한 시민 전원에게 1만3천엔을 똑같이 나누어 주었다. 또한 이번 코로나 위기 속에서 포르투갈은 신청서를 내는 이주민과 난민에게 6월30일까지 한시적으로 시민권을 주기로 했다. 포르투갈 정부는 이번 조치가 모든 이주자와 난민 신청자들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부여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독일에서는 프리랜서, 자영업자, 소규모 사업자를 대상으로 '코로나 즉시 지원금'을 국적과 상관없이 세금 번호를 받아 수익 활동을 하는 모든 시민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고난을 함께 극복해야 하니 구분과 배제를 하지 않고 똑같은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포르투갈의 내무부장관 에두아르도 카브리타는 "비상사태에서 최우선 과제는 집단 보건과 안전의 방어다. 이 순간에도 이주민의 경우와 같이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주민들의 건강, 사회보장, 직업과 주거안정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는 것은 위기상황에서 굳건한 사회의 의무다"라고 말했다.한국은 효과적인 감염관리를 통하여 국제사회의 모범이 되었고 국민의 자긍심이 높아지고 있다. 위기극복 끝에서, 함께 고난을 헤쳐 온 사람들이 같은 기쁨을 누릴 수 있었으면 한다.이 재난 극복의 열매가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며 주어야 할 것을 덜 주고 얻은 것이 아니어야 한다. 방역모범 국가에서 진정한 재난극복모범 국가가 됐으면 좋겠다. 위기 속에서 더욱 빛나는 올바른 공동체 의식이 필요한 때이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20-04-07 이완

[수요광장]"배달의 민족 수수료 50%인하" 주목

獨업체가 '배달앱 1·2·3위' 독과점자영업자 땀 대가보다 큰이익 문제외국자본 유출·은폐마케팅 논란 속코로나19 소상공인 고통분담 약속사회공헌적 방안 도출 가능성 다행두 달 이상 지속되는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모두를 지치게 하고 있다. 확진자 뉴스에 혹시 우리 집 근처? 매번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 정도로 비보 일색인데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눈에 띈다. 더불어민주당이 '코로나19' 고통 분담을 위해 배달의 민족 등 '배달앱' 업체들의 수수료 50% 인하를 추진한다는 것이다.더 정확하게는 지난 30일 오전 국회에서 "소상공인들이 부담하는 배달앱 수수료를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출 수 있도록 공정위 등 관련 기관들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며 민주당 김진표 후보가 수수료 인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의 수수료 인하문제는 해당 지역 유권자인 외식업자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수수료에 멍드는 전국의 수많은 요식업자를 위한 공공적 성격을 띠고 있다. 한마디로 특정 지역이 아닌 사회 공헌 적인 공약인 것이다. 단순 공약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성과를 나타낼지 귀추가 주목되는 까닭도 그 지점에 있다.사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사회 공헌에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앞장서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회 공헌을 촉발하는 조그만 단체를 이끌면서 공헌 운동의 어려움을 잘 안다. 사회공헌 운동이란 말로만 하는 경우라도 쉽지 않다. 실천으로 사회적 성과를 가져오기란 정말로 어려움이 많다. 더구나 공헌 적인 공약을 실체 있는 성과로 나타내기란 더욱 그렇다.이런 관점에서 김진표 후보의 수수료 50% 인하문제는 결코 쉽게 이루기 힘든 일이어서 그 의미를 크게 보게 된다. 실제 지속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국내 배달앱 관련 문제를 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위 회사 배민이 국내 2위 요기요와 3위 배달통을 운영하는 독일업체 딜리버리 히어로(DH)에 매각되면서 독과점 문제와 국내 자본의 국외 자본 유출 논란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로부터 얻은 이익이 고스란히 외국으로 넘어간다면 이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자본 유출보다 더 심각한 문제점은 자영업자의 땀의 대가 보다 IT 대기업의 배달 중개수수료 이익이 더 많다는 것에 있다. 그런 이유로 김진표 후보의 수수료 50% 인하 추진발표에 반가움과 우려가 느껴진다. 왜냐하면 앱을 통한 주문 시장과 자영업자 간의 갈등과 긴장 국면 등 사태의 심각성과 문제의 본질을 잘 알고 있어야 풀 수 있는 복잡한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망설임 없이 사회 공헌적 공약이라고 이름 붙인 까닭도 그런 이유에서다.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 창출이라고 하지만 서민들, 영세 상인들의 생존권 희생으로 발생하는 이윤이라면 이 문제는 자영업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문제로 깊은 관심을 갖고 함께 풀어내야 한다. 설령 해당 기업이 법적으로는 위법성이 없거나 적법하다 할지라도 부당한 이윤을 취득한 경우라면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무가 있어야 한다. 법적 책임뿐 아니라 윤리적 책임도 사회 구성원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회적 규범이기 때문이다.이와 관련해 자료를 모으고 관찰하면서 배민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몇가지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첫째, 진실을 은폐한 마케팅 의혹이다. 배민 수수료 인하를 발표, 올 4월부터 수수료율 5.8%를 주창하는데 실제 자영업자에게 확인해보면 대략 총금액 수수료율은 15%대를 넘는다는 것이다. 둘째,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의 전단지 배포라는 소소한 일거리를 뺏어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왜냐하면 배민 김봉진 대표는 "왜 전단지를 보고 음식을 주문해야 되지?"라는 의문에서 사업이 시작됐다는 창업 멘트에서도 드러난다. 전단지로 생계를 잇는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권에 대한 인식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셋째, 배달용기의 범람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데 실제 전혀 그렇지 않다. 최소한 배달과 관계된 플라스틱 범람으로 인한 환경부담금을 내든지, 이도 아니면 친환경적인 배달 용기를 개발해야 한다.배민 수수료 문제를 그저 단순한 논란쯤으로 봐서는 안된다. 그나마 김진표 후보의 공약 덕분에 사회적 관심과 논의를 통해 꼼수가 아닌 사회 공헌적 방안 도출 가능성이 열려 다행이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03-31 김정순

[수요광장]공영방송, 존재의 이유를 생각한다

국민 부담 TV 수신료로 운영 불구수당 부당수령 등 사건사고 잇따라정치적 중립·상업성으로부터 독립공익적 '고품격 콘텐츠' 개발 위해종사자들 엄격한 도덕성 전제돼야KBS 일부 아나운서의 '연차수당 부당수령'뉴스는 우리 사회에서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게 한다. KBS는 국가 기간(基幹)방송으로서 그 재원을 시청자인 국민들이 부담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TV수신료' 명목으로 매월 2천500원을 전기료와 함께 징수하고 있다. 고지서에 KBS가 명시되지 않고 비교적 소액이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치는 이들이 많다. 한 가구당 연 3만원이다. KBS도 공익성이 강한 프로그램의 끝에 '여러분의 소중한 수신료로 제작'했다는 자막을 띄운다. 수신료가 헛되이 쓰이지 않았음을 밝히는 것이다.공사(公社) 종사자의 부정행위는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낸다. 그것은 공무원의 세금 횡령과 다를 바 없다. KBS는 방만한 조직 운영과 예산관리, 조직원의 일탈행동 등으로 인해 지속적인 지적을 받고 있다. 특정 출연자의 과도한 출연료, 직원의 유흥업소 출입 등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다른 조직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이다.더 중요한 문제는 KBS가 공영방송 본연의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유튜브'로 대표되는 통신망을 통해 제공되는 동영상 서비스는 물론 민간 상업 방송들과는 차별화되는 공영방송만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가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 시청자인 국민들은 수신료를 부담하는 것이다.눈에 잘 띄지 않지만 공영방송으로서 KBS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한다. 예를 들어 재난방송 주관사를 담당하고 해외방송을 통해 해외교민과 세계인들에게 한국과 한국의 소식을 널리 알리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가시적인 방송프로그램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을 기대한다. 이는 정치적 중립과 객관적 보도, 상업성으로부터 독립, 고품격 콘텐츠로 요약할 수 있다.우선, 뉴스는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아야 한다. 방송법에 방송은 국민통합에 기여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그것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최소한 특정 정파에 편향된 방송을 하여서는 곤란하다. 특히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치적 중립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공영방송 종사자들은 뉴스의 시청률 하락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중립성과 객관성을 상실하면 정치적으로 편향되고 신뢰성은 저하된다. 그러한 뉴스는 시청자가 외면한다.다음은 상업성을 지양해야 한다. 민영방송은 기본적으로 광고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공영방송의 효시인 영국의 BBC는 처음부터 수신료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의 NHK도 마찬가지다. 제작비를 시청자인 국민들이 부담하는 대신 방송은 상업적 고려 없이 국민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무언의 약속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공영방송은 어떠한가. 단적으로 KBS 2TV와 다른 상업방송이 차별화되고 있는가.시청자들은 품격 있는 프로그램을 기대한다. 최소한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내용이 방송되어서는 곤란하다. 기본적으로 폭력과 성적 표현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이에 더하여 절제와 품위 있는 언어 사용의 필요성도 강조하고 싶다. 영국의 표준어는 BBC 아나운서가 사용하는 언어다. BBC 종사자들은 세계의 표준어가 자신들이 사용하는 '말'인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유튜브 영상에는 비속어, 상대방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표현이 난무한다. 학생들이 제작하는 영상과제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이 그 심각함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앞으로 영상 제작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공영방송의 콘텐츠는 모범이 되어야 한다.인터넷, 모바일 기술의 발전으로 방송의 영향력은 축소되고 있다. 더불어 수익도 감소하여 위기라고 한다. 다원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방송, 특히 공영방송의 생존전략은 무엇인가. 공영방송의 본연의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뉴스는 믿을 수 있고, 프로그램은 지나치게 상업적이지 않으며, 자녀들이 안심하고 볼 수 있다면 공영방송은 시청자의 채널 선택의 우선 순위를 차지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시청자들은 수신료 인상에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엄격한 도덕성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03-24 이영철

[수요광장]완장은 권력이 아닙니다

완장 차면 대부분 공익 앞장서지만기업등 일부 저급한 갑질 부끄러워자리 차지하더니 변했단 말 듣거나자신 이익위해 타인 희생시키기도우한 총영사 부임 '희생' 모범답안윤흥길의 소설 '완장' 주인공 종술은 동네 건달입니다. 빈둥거리던 그가 어느 갑부의 저수지를 관리하는 양어장 감시원이 됩니다. 일거리가 생긴 건 좋지만, 그가 차게 된 '완장'이 문제였지요. 사람들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호통을 치고, 물고기를 몰래 잡던 동네 사람을 때리기도 합니다. 완장의 위력을 알게 된 그는 읍내에서도 '갑질'을 합니다.갑질은 갑(甲)의 위치에서 을(乙)에게 일삼는 저급한 행태를 일컫지요. 그가 갑질을 하며 나대는 것은 최 사장이라는 뒷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만행으로 완장을 박탈당하고 동네를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됩니다.완장(腕章)은 자격이나 지위 등을 나타내지요. 보이거나 보이지 않게 완장을 찬 사람은 수없이 많습니다. 대부분 완장을 차면 사회 발전과 공익을 위해 정성을 다해 봉사하지만, 개중에는 감투를 앞세워 저급한 '갑질'을 부리기도 합니다. 기업에선 인사권을 쥔 간부의 행패가 심각하지요. '땅콩 회항' 사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동안 구체적으로 잘 몰랐던 갑질의 실상이 제대로 밝혀졌고, 그의 어머니마저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퍼부은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파장이 컸지요. 이러한 연유로 '갑질 신고센터'까지 생겼으니 정말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입니다.완장에 걸맞은 품격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지요. 완장을 찼다고 반말을 일삼고, 인사 안 한다고 폭행하고, 뜬금없이 목소리를 높이며 거들먹거리고 이권에도 개입하고….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실감 납니다. 완장을 곧 권력으로 인식하니 '셀프 완장'도 생겨나지요. 골프장, 아파트, 물류단지 등이 들어서면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스스로 위원장 감투를 쓰고 행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민을 선동해 투쟁하고 발전기금 명목의 기부(?)를 받기도 하고 정치인으로 변신하기도 하지요. 완장을 차면 세상을 맘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착각 때문입니다.완장은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완장을 찼을 때나 차지 않았을 때나 자신은 별다르게 행동한 것 같지 않은데 "자리를 차지하더니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완장 착용 전후가 달라진 게 없더라도 이렇듯 비판을 받기 쉽지요.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이 완장의 숙명이거든요. 완장을 차게 된 초기에는 안 그랬던 사람도 예우를 받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완장에 대한 욕심이 많아지고 잘못되는 일도 생겨나지요. 완장에도 철학과 인격이 담겨 있는 만큼 높을수록, 많을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가진 게 많은 것도 완장일 수 있지요. 부자라는 것 자체가 완장인데 사장이나 회장이랍시고 거들먹거리며 갑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중엔 종종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서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업보는 고스란히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얻는 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게 마련이고 그게 하늘의 섭리고 세상의 이치이지요. 남보다 가진 게 많다고 다른 사람을 깔보면 안 됩니다. 가진 게 적어도 잘 사는 사람이 많지요. 세상엔 돈보다 더 소중한 게 많은데, 그걸 모르면 사람 노릇 못 합니다.공익을 위해 주어지는 완장의 상징성은 매우 크고 중요하지요. 중국 후베이성 우한(湖北省 武漢)에서 발원된 코로나 19로 지구촌이 온통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가 특별전세기를 보내 우한에 있던 자국인을 본국으로 귀국시켰던 것도 전염공포 때문이지요. 이런 판국에 우리나라의 우한 총영사가 부임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국가와 국민을 위해 기꺼이 희생과 봉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완장을 찰 자격이 있는 것이지요.완장은 결코 권력이 아닙니다. 완장은 찰 사람이 차야 완장이 완장답게 쓰이고 세상이 바로 설 것입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03-17 홍승표

[수요광장]옥중서신

부당한 권력과 싸우다 격리된약자 입장 최후 저항 수단인데탄핵된 박근혜 前대통령 메시지실패한 정치인으로서 성찰 대신훗날 기약하는 '정치적 포고문'옥중서신(Captivity Epistles)의 문헌적 역사는 2천년 전 사도 바오로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그전에도 옥에 갇힌 인사가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한 사례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신약성서 가운데 네 편을 옥중서신으로 남긴 바오로에 이르러 그 원형이 마련되었다고 보아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는 회심 전 모세의 율법에 열심이었고, 당대 최고 학자였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한 유대인이었다. 예수를 핍박하다가 강렬한 빛에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고는 예수 앞에 무너졌다. 그 후 사도로 변신하여 선교하다가 옥중 생활을 겪으면서 서신을 남겼는데, 그 안에는 바오로 자신의 피압박 경험과 새로 얻은 소신들, 교회에 대한 권면을 담고 있었다.옥중서신으로 유명한 또 한 사람은 독일의 사제였던 본회퍼일 것이다. 그는 나치스에 저항하고 히틀러 암살 계획을 세웠다가 체포되어 사형당한 분이다. 당시 독일은 히틀러를 옹호하는 교회와 하느님 중심을 부르짖은 교회로 분열되어 있었다. 본회퍼는 후자인 '고백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자로서 신앙의 양심을 지켜 스위스 국경을 넘는 많은 유대인에게 도움을 주었고, 이차대전의 참상과 독일 교회의 현실을 알리는 운동을 지속했다. 일련의 저항, 체포, 죽음의 과정에서 본회퍼는 자신의 생각을 옥중서신의 형태로 남겨두었는데, 인간의 한계가 곧 신(神)의 역사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믿음으로 불의에 저항했던 그는 종전을 불과 몇 달 앞두고 눈을 감았다. 그의 죽음을 통해 사람들은 본회퍼의 길이 옥중서신에 적힌 대로 "낮아짐의 길이요, 고난의 길이기는 하지만 사랑과 용서의 길"이었음을 깊은 감동으로 알게 되었다.우리 현대사에서도 1970~80년대 김대중의 옥중서신과 김지하나 김남주의 옥중시(詩)는 감옥보다 더 어두운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에게 역설적 광휘를 선사해준 사례들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수인(囚人)들은 잘못을 저지른 죄인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매인 역설적 자유인이었다. 특별히 김남주는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어 만 10년만에 풀려나온 '옥중시인'의 대명사다. 표현의 부자유와 열악한 환경을 생각하면 옥중시는 참으로 쓰기 어려운 것인데, 김남주는 권력에 대한 당당한 분노와 역설적으로 찾아온 따뜻한 희망을 동시에 노래한 탁월한 시인이었다. 한번 읽어보자. "사랑만이/겨울을 이기고/봄을 기다릴 줄 안다//사랑만이/불모의 땅을 갈아엎고/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천년을 두고 오늘/봄의 언덕에/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사랑만이/인간의 사랑만이/사과 하나 둘로 쪼개/나눠 가질 줄 안다"(사랑 1) 옥중에서 전한 소식이 이 정도니 정말 큰 그릇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옥중서신 혹은 옥중시는, 부당한 권력과 정의로운 싸움을 벌이다가 현실적으로 격리된 약자나 소수자의 입장에서 쓰게 되는 최후의 저항 수단이다. 그러니 그 안에는 글쓴이의 삶과 함께 그가 평생 추구해온 가치까지 자연스럽게 담기게 된다. 편지나 시를 읽는 이들은 그들의 한시적 부재를 통해 오히려 그들의 커다란 존재감을 깊은 울림으로 느끼는 것이다.얼마 전 우리 역사에 옥중서신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측근 변호인을 통해 흘려보낸 글이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 세력의 일대 결집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처음 탄핵된 대통령으로서 스스로에 대한 성찰 대신, 현실 정치인으로서 잔광(殘光)을 뿌리면서 훗날을 기약하는 정치 행위를 재개한 것이다. 옥중서신의 역사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한 번쯤 물어야 한다. 그녀는 정의로운 싸움을 하다가 옥에 갇혔는가? 그녀는 부당하게 박해받는 저항 인사인가? 어쨌든 옥중서신의 역사는 오명 하나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녀의 옥중서신은 정의로운 약자도 아니고 탄압받는 소수자도 아닌, 스스로 탄핵을 불러온 실패한 정치인이 다시 지지세력 결집을 유도한 정치적 포고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다시 한 번 해야 한다. 박근혜는 왜 갇혔던가?/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03-10 유성호

[수요광장]더 낮은 곳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증명할 시간이다

전 세계적인 재난 '코로나19 사태'차별받는 집단 가장 큰 고통 받아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대재앙배려·연대 힘으로 주위 둘러보고어려운곳 부터 먼저 손 내밀어야바이러스 감염은 생물학적으로는 종교, 인종, 지역, 소득수준, 장애 여부 그리고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은 저마다 속한 위치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국가적 재난과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결국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사람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차별받는 집단이라는 점이 이번 코로나19 확산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현재까지 이번 사건으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곳은 경북 청도 대남병원이다.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병동 입원환자 102명중 10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중 7명이 사망했다. 이곳에 입원하고 있던 환자들은 의학적으로는 병원에 입원치료가 필요하지 않으나, 가족이 없거나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곳의 환자들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사망자가 다수 나온 점은 "정신질환자가 있는 폐쇄병동으로 환기가 잘 안되어서"라는 당국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이 왜 이렇게까지 열악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는 이후 별도의 조사가 필요해 보이나,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의 사례는 이런 위기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크게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인해 주고 있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도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2월20일 구로중학교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지역의 중국인 및 중국동포 그리고 지역의 교육관계자들과의 간담회가 열렸다. 지역의 학교 선생님들은 겨울방학 종료 후 학교에 모였던 아이들중 한국 아이들이 중국 아이들과 급식을 같이 먹을 수 없다고 거부하고 일부 학부모는 학교로 전화를 걸어와 중국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는 것에 항의전화를 했다고 한다. 개학 이후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학생들간의 혐오와 차별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봄방학 기간인 지금도 학생들이 함께 속해 있는 여러 카톡방에서 "너희들은 개학이 되어도 학교에 못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동포나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가짜뉴스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청도 대남병원의 최초 전파자가 이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조선족 간병인 두 명이라는 유튜브의 방송이 얼마 전 나왔다. 이들이 감염된 상태로 귀국 후 병원에서 간병을 하면서 병원의 다수에게 전염을 시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두 명 모두 두 차례의 바이러스 검사에서 음성으로 판정되었다. 더욱이 이들이 근무했던 3층 일반병동에서는 확진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확진자를 범죄자 취급하거나 확진자가 나온 지역이나 집단을 과도하게 차별하는 일도 큰 문제다. 경남은행에서는 직원들에게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책임을 묻겠다는 문자를 전 직원에게 보냈다. 이후 비난이 일자 곧바로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또한 군인 중에서 확진자가 나온 이후 지역의 군인아파트에 배달을 거부하는 음식점이 나오는 사례도 있었다.이와 반대로 연대와 공동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대구에 의료 인력이 필요하다는 호소에 많은 의료진이 자원해서 대구로 찾아갔다. 지역 곳곳에서 상대적으로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운 곳에 마스크를 찾아가 나누고, 이런 이웃들에게 식료품을 배달해주고 있다고 한다. 역대급 고통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임대료를 할인하거나 일시적으로 받지 않는 착한 임대인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대구와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었던, 광주광역시는 대구의 어려움을 함께 하겠다면서, 대구의 확진자를 수용할 병상을 제공하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전 세계적인 재난 속에서 한쪽에서는 배제 비난 그리고 차별이 또 다른 한쪽에서는 배려, 나눔 그리고 연대가 함께 일어나고 있다.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이 사태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코로나19 사태가 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르나, 결국 미래는 오늘을 함께 겪어나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어깨를 기대가며 함께 살아갈 이들 또한 우리 자신이다. 연대와 배려의 힘으로 주위를 좀 더 둘러보고 어려운 곳을 먼저 살피며 손을 내밀어 함께 나아가야 할 때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20-03-03 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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