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노벨문학상과 서정시

특정작품보다 작가 全생애로 수여여성에 장벽 2000년대 들어 비율↑올해는 서정시인 글릭 16번째 수상보편적 감성으로 확장·투명성 제시감염병시대 인류에 위안·치유 믿음12월1일 이화여대에서 '스웨덴-한국 노벨 메모리얼 문학 프로그램'이 개최되었다. 노벨문학상의 위상과 그것이 한국문학에 미친 영향이라는 주제로 스웨덴 발제자와 한국 발제자가 한 사람씩 나서 온라인 실시간으로 진행된 뜻깊은 자리였다. 노벨문학상은 20세기 벽두인 1901년부터 시작되어 올해까지 모두 117명의 수상자에게 주어졌다. 특정 작품보다는 작가의 전(全) 생애에 주어진다는 특성을 지닌 노벨문학상은 시대상황 등 외적 요소도 많이 고려되기로 유명하다. 최초 노벨문학상은 프랑스의 시인 쉴리 프뤼돔이 수상했고, 전쟁이나 특수 상황으로 인해 몇 번의 결락이 있었지만 꾸준히 수상자를 배출하였고 몇 번의 수상 거부라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그런가 하면 '문학상'에 어울리지 않는 분들 여럿이 수상자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철학자 베르그송이나 러셀, 정치인 처칠, 역사가 몸젠 등이 대표 인물들이다. 하지만 가장 예외적이고 충격적인 사례는 아마도 2016년 수상자 밥 딜런이었을 것이다. 그는 작가라기보다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 등으로 유명한 가수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노랫말에 시적 통찰을 담은 그는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불려왔고, 드디어 그의 노랫말이 예술적 언어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특별히 반전(反戰)과 인권 같은 인류 보편의 의제를 노래 안에 담아낸 것이 결정적 수상 이유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노벨문학상도 여성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았다. 첫 여성 수상자는 스웨덴 아동문학가 라겔뢰프(1909)였다. 그 후 여성작가들은 수상자 가운데 10퍼센트 미만 비율을 구성하다가 2000년대 들어 그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도리스 레싱(2007), 루마니아의 헤르타 뮐러(2009), 캐나다의 앨리스 먼로(2013), 벨라루스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2015),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추크(2018)에 이어 올해 수상자인 루이스 글릭은 역대 열여섯 번째 여성 수상자다. 물론 루이스 글릭(Louise Gluck)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의 시인이다. 국내에 번역본 자체가 아직 없다. 글릭은 1943년 뉴욕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자랐다. 25세에 첫 시집 '맏이'(1968)를 펴냈는데 인간의 억압과 고통의 문제를 인상적 이미지에 담아냈다고 평가받았다. 전통 운율과 구어를 활용한 작법에도 호평이 이어졌다. 그리고 '습지의 집', '내림차순', '아킬레우스의 승리', '아라라트' 등의 시집을 연달아 내면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1992년에 나온 '야생 붓꽃'에서는 뉴잉글랜드 정원을 배경으로 하여 다양한 식물들로 하여금 자기 목소리를 발화하게끔 함으로써 그는 서정시인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게 된다. 글릭은 이 서정적인 시집으로 199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2004년에는 9·11 테러를 다룬 장시 '10월'을 펴냄으로써 인류의 고통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는 모습까지 보여주게 된다.스웨덴 한림원은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확고한 시적 목소리로 개별 존재자를 보편적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글릭은 그동안 노벨문학상이 '백인-남성-유럽인-소설가'라는 서구의 시선에 의해 주로 수상자가 선정되어 왔는데 자신은 비록 백인이지만 '여성-비(非)유럽인-시인'이라서 뜻밖이라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그의 시를 원문으로 서투르게 읽어보니 그 세계는 서정적 자아가 빠지기 쉬운 사사로운 감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보편적인 존재자들의 목소리를 다양한 사물들로부터 길어올리는 서정의 확장성과 투명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그럼으로써 그는 이 가파른 감염병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서정시가 커다란 위안과 치유의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한림원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서정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어쨌든 노벨문학상은 첫 수상자와 올해 수상자가 모두 시인이었다. 소수의 문학 장르였고, 그 특유의 모호함으로 시대적 명제로부터 비껴난 자리에 있곤 했지만 이제 세계의 시선은 서정시를 향하고 있다. 노벨문학상에서도 한국 시인들의 쾌거를 마음 깊이 빌어 마지않는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12-01 유성호

[수요광장]빅데이터 시대, 데이터 교육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

소통·관계 '일상이 데이터화' 전환결합 통한 마이데이터산업도 가속개인 정보보호·기업독점 해결 과제국민 적극동참 교육 기회 오픈 절실투명 관리 확보 '디지털 혁신' 기대일상의 모든 것이 데이터화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을 먹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사는지 등 이 모든 것이 데이터가 된다. 소통이나 인간관계 경험이 데이터가 되기도 한다. SNS 데이터를 통한 정서 분석을 활용한 마케팅 사례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마디로 디지털 전환의 그야말로 데이터 활용 시대에 살고 있다. 데이터의 확보와 활용이 개인은 물론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다.코로나19는 우리 모두를 디지털 세계로 밀어넣고 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은 데이터로 새로운 수익 창출이 어렵거나 데이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 생존이 어렵게 된다. 빅데이터의 분석과 활용 등 그 성패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7월 디지털 뉴딜을 포함한 한국판 뉴딜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중에서도 디지털 뉴딜의 주요 정책인 데이터 댐 추진은 산업적 측면에서는 큰 관심과 기대를 받는 동시에 국민적인 우려가 컸다. 그동안 분산돼 있던 데이터 간의 의미 있는 결합이 가능해지면서 개인의 데이터를 전문으로 다루는 마이데이터 산업 시대가 열린 셈이지만, 데이터의 활용과 개인정보 보호의 충돌에 대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수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별다른 개선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필자도, 본인이 활용에 동의한 개인정보가 얼마나 안전하게 쓰일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필자와 비슷할 것이다.마이데이터 시대에, 개인의 데이터 주권 보장 등 개인의 정보 보호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또한 거대 플랫폼 기업의 데이터 독점 문제도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한다. 마이데이터 산업은 정보의 수집과 데이터 관리에 얼마만큼 신뢰를 확보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데이터의 허용범위와 방법, 절차 등에 대한 신뢰를 얻는 방법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관련 법 개정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필자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빅데이터에 대한 교육기회를 오픈, 빅데이터에 대한 지식을 쉽게 획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빅데이터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공유, 최소한의 활용방식을 알게 된다면 데이터 관리의 투명성이 확보되고 자연스레 도용의 두려움도 줄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빅데이터 활용 분야와 유용성은 다양하다. 데이터 분석과 통찰력으로 미래를 예측하거나 위험에 대비, 리스크를 줄여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유용한 데이터를 잘 활용하려면 데이터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공유되고 때로는 오픈되었을 때 가능해진다. 궁극적으로 빅데이터의 활용방식과 이에 대한 공유는 빅데이터 관리에 대한 감시를 용이,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신뢰 확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디지털 기술과 콘텐츠를 활용, 코로나 방역에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며, BTS, K시네마, E쇼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021년 1월까지 6개월간 약 88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공공데이터를 개방한다고 한다. 또 데이터 가공과 기업 매칭에 200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미디어, 헬스케어, 안전, 자율주행 등 여러 영역의 데이터를 12월 말까지 구축한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데이터사업에는 국민적인 신뢰 없이는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정보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정보보안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뒷받침되었을 때 가능하다. 특정 기업이나 특정 전문가가 아닌 일반 국민들도 데이터에 대한 지식이 있을 때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적극적인 동참 과정에서 신뢰도 쌓일 수 있기 때문이다.아울러 활용할 정보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한다면 데이터산업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지치고 각박해진 사회를 극복하고 전 세계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는 날을 기대해본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11-24 김정순

[수요광장]수인선(水仁線) 시리즈를 보고 싶다

막내인 수원 'kt' 전통의 인천 'SK'수도권을 양분하는 프로야구단이다 올해는 kt 2·SK 9위 아쉬운 마감지난 9월 완전 재개통한 수인전철내년엔 그걸 타고 '맞대결' 봤으면두산이 kt를 제압하고 코리안시리즈에 진출했다. kt로선 선전했지만 아쉽다. 정규시즌 2위가 3위에 패했다. 코로나19가 야구 승패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개막이 한 달 늦어졌고, 그에 따라 포스트 시즌도 밀렸다. 추운 날씨로 인해 실내에서 경기를 한 것이 kt에는 불운이었다. 홈구장의 이점이 전혀 없었다. 수원에서 낮경기로 1·2차전이 진행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2020년 kt는 팬들에게 큰 희망과 위안이었다. '수원의 자부심', '나의 사랑 수원 kt위즈' 응원가는 팬들의 자긍심을 높여주었다. 수원은 프로야구의 불모지였다. 프로야구가 시작된 1982년, 수원에는 야구장이 없었고 당연히 팀도 없었다. 원년 팀 삼미 슈퍼스타즈는 인천, 경기, 강원의 광역연고지였다. 1989년에 수원야구장이 생겼고, 프로야구가 처음 열렸다. 삼미를 인수한 태평양은 수원에서 연간 9~12게임을 개최했다.2000년 이후 프로야구는 도시연고제로 전환했다. 인천은 신생 SK가 차지하고, 수원은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의 본거지가 되었다. 서울 이전을 선언한 현대는 수원을 임시거처로 여겼다. 수원에서 8년간 3번의 한국시리즈 챔피언이 되었으나, 수원시민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2008년 서울로 가서 히어로즈가 되었다. 다시 수원에서 프로야구가 사라졌다. 2013년 제10구단 kt가 창단됐고, 2년 후 정규리그에 참여했다. kt는 시작부터 수원시민과 함께 했다. 전주와의 치열한 유치경쟁에 수원시민이 동참했다. kt도 야구장 리모델링, 수원지역 야구부 지원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수원의 프로야구단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1982년의 6개 팀은 현재 10개 팀이 되었다. 당시 일본의 12개 팀은 지금도 12개로 정체되어 있다. 미국은 26개 구단에서 30개 구단으로 확대되었다. 제10구단 kt는 한국경제의 비약적 성장과 수원시의 변화된 위상을 상징한다. 경기도와 인천시의 분리 이전, 수원은 인구, 경제 규모 등에서 인천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인구 백만이 넘고, 수도권 전철과 광역버스가 촘촘히 연결돼 있다. 세계 일류기업인 삼성전자 본사도 수원에 있다.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 배구팀도 보유하고 있다.막내 구단 kt는 정상권에 도전하는 팀으로 성장했다. 반면에 인천 SK는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우선 에이스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전력이 약해졌다. 시즌 도중 감독이 스트레스로 입원을 했고, 연패가 이어져 9위로 추락했다. SK는 지난해 정규시즌 2위, 종합성적 3위(올해의 kt와 성적이 같다)팀이다. 수원과 달리 인천은 전통적인 야구도시(球都)다. 개항기인 1900년대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동산, 인천 등 야구명문고교가 있다. 비록 SK의 올 시즌 성적이 초라했으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다. 시즌 종료와 함께, 사장과 감독을 교체하고 팀을 정비했다. 스토브리그를 거쳐 다시 태어날 것으로 기대한다.kt가 올해의 여세를 이어 내년에도 잘 해주었으면 한다. 한 두 해 반짝하는 것보다는 꾸준한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2021년은 선수 및 지도자, 프런트의 진정한 능력이 시험대에 오르며, 강팀으로 도약하느냐의 분기점이 되는 시즌이 될 것이다. 사회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금년은 어수선하고 우울했다. 야구도 예외일 수 없었다. 무관중 경기였고, 중립구장에서 포스트 시즌이 펼쳐졌다. 경기장에 갈 수는 없지만 kt팬들은 야구를 통해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SK팬들은 야구마저도 속을 상하게 했다.지난 9월에는 수인전철이 완전 개통되었다. 1995년 수인선 협궤열차가 폐선된 후, 사반세기 만에 수원과 인천이 철도로 다시 연결된 것이다. 이제 구로에서 갈아타지 않아도 된다. 2021년은 야구장에 더 많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수도권의 두 팀, kt와 SK가 코리안시리즈에서 만나면 더욱 좋겠다. 2003년 코리안시리즈에서 수원 연고지의 현대와 인천의 SK가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수인전철이 없었다. 새로 개통한 수인전철을 타고, 진정한 의미의 수인선(水仁線) 시리즈를 보고 싶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11-17 이영철

[수요광장]늦가을, 노을, 그리고 이순을 생각하다

사흘간 소백·오대산을 찾았습니다구름처럼 돌아본 부석사·선재길은낙엽·단풍·석양… 가슴시린 황홀경순리대로… 마음을 비우는 삶 생각如如하게 '시작과 끝의 궤'를 맞춰노을처럼 저물어가는 늦가을 날, 사흘간 소백산과 오대산 자락을 돌아보았습니다. 떠 있는 바위가 있는 부석사와 조선 유학의 산실 소수서원 등을 돌아보았지요. 깨달음, 치유의 천년 옛길이라는 고즈넉하고 붉은 단풍 물 젖은 선재 길을 구름처럼 돌아보았습니다. 청아한 물소리에 세상 걱정을 띄워 보내고 바라본 끝자락 단풍이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웠지요. 꽃비처럼 날리는 낙엽과 숨죽인 늦가을의 뒤태가 가슴으로 녹아들었습니다. 노을을 보며 귀 열고 순리대로 산다는 이순(耳順)을 생각했지요. 물 젖은 햇덩이가 새순 돋아나는 풋풋한 싱그러움이라면 중천의 태양은 질풍노도입니다. 짙푸른 하늘빛은 건드리면 터질 듯 찬란하지요. 하지만 빛이 너무 강합니다. 눈이 부셔서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지요. 저녁노을도 싱그러움이나 찬란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침이나 한낮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용이 붉은 여의주를 입에 물고 황금비늘 번뜩이며 한바탕 휘돌다 사라지는 끝머리, 금빛 여운을 남기는 해 질 녘 노을은 아름답지요. 푸근하고 황홀합니다. 해넘이 후에도 그 빛은 한동안 남아있지요. 노을은 올려볼 필요 없이 앉거나 가볍게 서서 눈높이로 서로 마주 볼 수 있습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오랫동안 가슴에 담을 수도 있지요. 이순을 넘어선 중년의 몸짓처럼 여유로움과 평안함을 안겨주는 노을은 하루의 그림자라! 비록 해맑은 아침 햇살처럼 화사하지는 않지만, 깊고 그윽한 그리움에 빠져들게 합니다. 하루의 경계가 다 그러하지요. 한낮의 햇살이 그리워질 때도 있습니다. 하루를 지내온 순간들이 아무래도 어설프고 서툴렀다는 아쉬움, 그런 것들이 남아있기 때문이겠지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했습니다. 함께 가야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 부축해주고 아프면 돌봐줄 수 있지요. 그런 세상이어야 합니다. 지천명을 넘기고 이순에 이르면 생각이 달라지기 마련이지요. 스스로 화두를 던지고 그 답을 스스로 찾기 때문에 삶에 대한 집착이나 두려움이 어느 정도 사라집니다. 한여름 그 붉게 타는 불볕더위와 지루했던 장마를 지나왔지만, 그 조차도 그립게 하는 게 가을이지요.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삶이 소중해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사는 게 버거워 정신없이 지냈으나 지천명을 넘기니 삶에 대한 애착과 치열함이 새로 생겨나더이다. 주름살이 늘어나고 벗어진 머리는 그나마 반백(斑白)이지만,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지요. 외형은 비록 찌그러졌으나 생각은 깊이와 넓이가 더해지기를, 노을빛이 오래 사라지지 않는 여운을 남기는 것처럼 또 다른 삶의 몸짓이 새록새록 생겨나기를,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고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마음을 비우려 합니다. 시작과 끝의 궤(軌)를 놓치지 말아야지요.노을은 그 자체로 넉넉하고 여유롭습니다. 기쁘고 슬프고 아름답던 순간을 모아 어머니 손길처럼 어루만져 보듬어주고 치유해주지요. 그 빛이 가슴으로 스며들어 찌든 삶의 더께를 말끔히 씻어줍니다. 노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숨결이지요. 지나보면 후회되는 일이 있지만 밤이 지나면 다시 물기 가득한 햇덩이로 솟구쳐 오를 것을, 가슴에 녹아들면 그 자체로 여여(如如)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기운이 생겨날 것을, 노을을 보며 새로운 내일을 풀어내는 꿈을 꿉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11-10 홍승표

[수요광장]가을밤에 헤아려보는 별과 시

윤동주의 시집 서문 "죽는날까지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그는 불가피한 운명과 한계 고백자기 완성 향한 끊임없는 반성과어두운 역사 견디는 과정 보여줘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모두 열여덟 편의 작품과 '서시'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시집 서문이 함께 실렸다. 그는 시집을 구성하면서 '별 헤는 밤'을 마지막 작품으로 배치했는데, 1941년 11월 5일에 쓴 것으로 기록된 이 작품은 가을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에게 이름을 하나씩 붙여주는 윤동주의 우주적 상상력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명편이다. 4학년 졸업반이 시작되던 1941년 4월, 윤동주는 자신이 정기적으로 구독하던 '문장' 4월호에 실린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마주하게 된다. 백석 시집 '사슴'을 구하지 못해 한 자씩 필사했던 경험을 가진 그로서는 만주에서 보내온 존경하는 선배시인의 신작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마음 깊이 감동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7개월여 후 자신의 졸업기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맨 마지막에 '별 헤는 밤'을 써서 넣은 것이다.시집의 첫 작품은 잘 알려진 '자화상'이다. '자화상'과 '별 헤는 밤'은 모두 가을밤을 시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자화상'에서 우물에 비친 자신을 미워하고 가엾이 여기고 다시 미워하고 그리워하는 과정을 통해 '추억처럼' 남은 사나이를 노래했던 윤동주는 '우물 안 사나이'에서 '밤하늘의 별'로 시선을 옮겨간다.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을 헤아리면서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보는 과정을 이어간 것이다. 이때 그는 '헤다'라는 함경도 방언을 썼는데, 이 단어에는 '세다'라는 원래 의미와 함께 '뜻을 헤아리다' 같은 부가 의미까지 담고 있어서 작품에 맞춤한 격을 부여하고 있다. 만약 이 작품 제목이 '별 세는 밤'이었으면 어쩔 뻔했는가.윤동주가 정성스럽게 불러보는 기억 속의 이름은 성장기를 함께 했던 친구들, 이국 소녀들, 시집가서 아이 키우는 여자아이들, 가난한 이웃사람들,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그리고 프랑스 시인 잠과 독일 시인 릴케이다. 이러한 스펙트럼은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에 대한 오마주(hommage)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동주는 백석 시편을 닮은 순서로 호명 과정을 수행하고 난 후 자신의 시를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켜감으로써 선행 시편을 넘어선다. 그 하나는 "어머님,/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라는 표현을 통해 이 작품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장면에 있을 것이다. 이 표현을 통해 이 작품은 에누리 없이 일제강점기에 망명의 땅 북간도를 떠나 한반도 중심에 들어와 유학생활을 하는 청년 윤동주의 것으로 정착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윤동주가 부른 마지막 이름이 자신의 것이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에 부끄러운 자신의 이름을 써서 흙을 덮어버린 그는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라는 부활의 예감을 통해 이 작품을 새로운 희망의 차원으로 탈바꿈시킨다.이처럼 윤동주는 시집 첫 걸음을 "한 점 부끄럼"으로 시작하여 마지막을 "자랑처럼"으로 마감했다. 이 구조는 부끄러운 이름을 쓰고 흙으로 덮어버리고 자랑처럼 풀이 재생하는 과정으로 짜여 있는데, 이러한 자연의 섭리에 대응되는 은유적 상관물이 "(부끄러운) 내 이름자"이다. 윤동주는 봄이 오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풀의 생태를 통해 '부끄럼'이 '자랑'으로 부활하는 꿈을 꾼 것이다. 이 과정은 수난과 영광에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 시련을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면서 현실을 견디겠다는 자세도 포괄하고 있다. 시집 서문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괴로워했던 그는 불가피한 운명과 함께 평생 지고 가야 하는 자신의 한계를 정직하게 고백하면서 시집 끝에 '별 헤는 밤'을 수록하였다. 그럼으로써 자기 완성을 향한 끊임없는 반성과 어두운 역사를 견뎌가는 실존의 과정을 함께 보여준 것이다. '부끄럼'에서 '자랑'으로 옮겨가는 이러한 전이 과정이 아름답게 담긴 '별 헤는 밤'을 이 가을밤에 떠올려보는 까닭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11-03 유성호

[수요광장]"아~ 테스 오빠, 원전오염수 방류…일본이 정말 왜 이래?"

방류땐 220일후 제주앞바다 '끔찍'국제적 반대 불구 인류생명 '위협'바다환경 망치고 어민생존권 위태오염어류 자국민·주변국 건강 해쳐미래세대까지 영향… 대안 찾아야27일로 예정됐던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 연기 소식이 우선은 반갑다. 그렇다고 안심된다는 것은 아니다.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겠다는 방침을 철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결정을 미룬 것일 뿐이다. 출범한 지 한 달여 만에 지지율 12%포인트가 급락한 스가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류 결정을 미루게 된 배경을 들여다보면 참 어이가 없다. 한국이나 주변국들의 반대나 해양오염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 인식 때문이 아니고 국제적 비난과 자국 내 거센 반발 때문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오염수의 희석과정에서 방사능 물질이 국제 기준치보다 낮은 농도로 걸러진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신뢰하고 싶어도 도무지 신뢰할 수 없게 된다.제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관련, 일본 어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언론과 자국민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 등의 보고서도 오염수 방류에 따른 해양 수산물의 유전적 손상 등 위험성을 심각하게 지적, 환경피해가 거의 없는 '장기 저장'이라는 안을 내놓은 상태다. 삼중수소(트리튬)의 반감기가 12.3년인 만큼 대형 탱크에 오염수를 옮겨 담아 100여년간 보관한 뒤 방류해 피해를 없애자는 방법이다. 비용은 들어도 인류의 안전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해양 방류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이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재처리하더라도 삼중수소라는 방사성 물질이 남는 것은 사실이지만 희석해 방류할 경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오염수를 희석해 바다로 방류하면 문제가 없다며 심지어 오염수를 희석하면 사람이 마셔도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나 도쿄전력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심지어 비용 절감이라는 손쉬운 선택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심지어 도쿄신문 등 많은 일본 언론들은 희석한 오염수의 70%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방사능 물질이 나왔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또 유럽방사성위험위원회는 더 큰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즉 오염수 희석과정에서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는 방류 오염수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데, 저농도의 삼중수소라도 지속적으로 인체에 유입될 경우 DNA 손상은 물론 생식기능 저해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준치 이상의 삼중수소는 음식이나 공기를 통해 소량이라도 인체에 유입될 경우 세포 손상과 변형이 일어나 각종 암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게 될 경우 220일이 지나면 제주 앞바다에 온다고 하는데 상상만으로도 오싹하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 국제적 반대 여론에도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면 아무 잘못도 없는 인류의 생명이 위협받게 된다. 방류된 오염수가 일본에서 해류를 따라 필리핀, 일본, 러시아, 미국 캘리포니아와 태평양을 거쳐 동해로 유입되면 바다환경오염이 일본 주변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일본을 비롯 주변 국가 국민들의 건강과 어민들의 생존권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중대 사안으로 여기는 이유다. 일본 정부가 기어코 원전 오염수를 방류할 경우 그 위험성은 차고 넘친다.바다는 우리 인류에게 꼭 필요한 식재료를 공급해준다. 특히 어류는 맛도 좋지만 육류보다 지방 걱정 없이 질 좋은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의 선호식품이다. 이제 더는 질 좋은 수산물을 안심하고 먹을 수 없게 될까 걱정이다. 오염된 식재료는 일본 자국민은 물론 주변국 국민의 건강을 해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세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오염수 방류는 일단 한번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원전 오염수 방류는 쉬운 방법일 수도 있지만 많은 이들의 건강을 앗아 갈 수 있다. 원전 오염수 처리에 기회비용이 들더라도 합리적 대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아~테스 오빠, 후쿠시마 원전 오염방류 어떻게 생각해? 일본이 정말 왜 이래요?"/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10-27 김정순

[수요광장]희생자 vs 위선자

조국사건 상반된 시각 '백서·흑서'흑서 필자들 대선서 '문재인 지지'집권세력 모든 의견 귀 기울여야지지하지 않았거나 철회한 사람들'한번도 경험 못해본 나라'서 살아조국 사건과 후임 추미애 법무부 장관 논란은 우리 사회의 여론분열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난 14일 여당 대표와 법무부 장관은 과천의 정부청사에 마련된 공수처 입주 예정 사무실을 방문했다. 야당에 대해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 선임을 압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조국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상반된 시각에서 조국사건을 정리한 책이 출간되었다. 최민희 전 의원이 주도한 이른바 '조국백서'는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오마이북·이하 백서)'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이어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천년의 상상·이하 흑서)'가 발행되었다. 흑서의 필진은 진중권 교수와 참여연대 출신의 회계사와 변호사 그리고 서민 교수, 강양구 기자 등 다섯 명이다. 이들 모두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선택한 사람으로 '추정'된다.백서와 흑서는 조국 전 장관을 각각 '희생자'와 '위선자'로 규정한다.백서는 희생자 입장이다. 검찰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검찰은 완강히 저항했고 여기에 언론이 합세하여 조국 일가의 인권을 무참하게 유린한 것이 이들이 보는 사건의 본질이다. 아무 죄가 없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조국사건은 검찰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유시민의 알릴레오', '시사타파 TV' 등이 큰 기여를 했다. 언론은 개혁 대상이지만 이들은 예외다.흑서는 조 전 장관을 위선자로 본다. 현 집권세력은 적폐청산을 주장했다. 청산된 자리는 누가 차지하는가. 새 집권세력이다. 그들은 집권 이후 신적폐가 되었다. 그러나 자신들은 다르다고 한다. 민주화 운동을 했으므로 정의롭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구 모두 적폐인 것은 마찬가지다. 이제 기득권자가 된 그들에게 바꾸는 것보다는 지킬 것이 많아졌다. 자신들의 특권을 2세에게 대물림하려 한다. 사익추구집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미 보수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와 싸우는 듯한 모순된 태도를 보인다.또한 그들은 선전선동에 능하다. 대중들 스스로가 변화의 주체인 양 착각하게 만들어 광장으로 동원한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방송을 문화콘텐츠로 간주하여 거짓말을 남발한다. '어용지식인' 유시민 이사장은 진실을 자기 맘대로 재해석하는 이른바 '대안적 사실'을 유포한다. 주저와 망설임도 없다. 그래서 사실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들은 자신을 기만하고,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수십억원대의 자산가가 탈법, 편법으로 재산을 증식했다. 자녀의 대입을 위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고 법을 위반했다. 그런 사람이 정의를 수호하고 법질서를 유지하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이것이 흑서가 보는 조국 사건의 진실이다.두 책은 같은 사안에 대해 전혀 다르게 평가한다. 희생자 대 위선자 논쟁은 조국사건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최근 여당 의원이 발의한 민주유공자법, 공공의대 운동권 자녀 특별 전형 등 앞으로도 논란이 지속될 것이다. 이미 일부 사립대의 민주화운동 자녀 특례 입학 사례가 보도되었다.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사람 중에서 계속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철회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흑서의 필자들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이다. 왜 이들은 현 정권을 비판하게 되었을까? 정권교체 이후 '자리'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섰다고 조롱한다면 더이상 논의의 진전은 불가능하다.현 집권세력은 흑서를 읽어야 한다. 지지자는 물론 지지 철회자, 처음부터 지지하지 않은 사람의 의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이 나라는 대통령 '지지자만의 나라'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거나 지지를 철회한 사람은 지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일반 독자 역시 백서 또는 흑서 읽기를 권한다. 자신의 성향에 반하는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상대방의 입장을 받아들여 사고의 폭을 넓히면 더욱 바람직하다. 생각이 유연해지면 확증 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10-20 이영철

[수요광장]정신유산이 소중한 자산입니다

코로나 불황시대에 임대료 할인 등살다보면 작은일에 감동할 때가 있다옛 혼사때 재물보다 가풍을 보듯이한 집안의 내력은 후손들에 나침반잘사는 것보다 잘 사는 걸 보여줘야살다보면 작은 일에 감동할 때가 있습니다. 수원의 먹자골목 인근에 소박한 쌈밥집이 있지요. 손님이 끊이질 않는 걸 보면 연세 지긋한 주인장의 음식솜씨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20년이 넘도록 이 한곳에서 장사하고 있으니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다는 방증이겠지요. 하지만 경제가 나빠져 문을 닫는 곳이 많은데 여전한 걸 보면 특별한 비결이 있을 듯했습니다. 조심스레 물음표를 던졌는데 돌아온 답은 의외였지요. "제 음식 솜씨가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닙니다. 건물주가 오랫동안 세를 올리지 않아 버틸 수 있었던 겁니다." "아!" 탄성이 절로 나왔지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올리려 들텐데 이렇게 오랫동안 그냥 놔두는 건물주가 있구나! 건물주가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데 오랫동안 세를 올리지 않아 다른 건물의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장군은 나라를 구했는데, 후손은 어려운 사람을 구하는 것 같다"며 건물주를 자랑했습니다. 건물주를 존경한다는 느낌을 받았지요.어느 공직 선배가 기억납니다. '요즈음 경제가 어렵고 외환위기 때보다도 힘들다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얼마나 버거우십니까. 하지만 난관 속에서도 정성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다음 달부터 임대료를 낮추겠으니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임대료를 동결하기도 쉽지 않은데 내려주다니, 새삼 그 선배가 존경스러웠습니다. 옛 어른들은 가진 게 적어도 나눌 줄 알았습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스스로의 꿈이나 자존심까지 버려서는 안 되지요.옛날에 혼사를 앞두고 상대 집안의 가풍을 살피는 풍토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인물이 번듯해도 집안 내력이 시원찮으면 '그 나물에 그 밥' 취급했지요. 경주 최씨 집안 가훈이 회자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재산을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재산을 늘리지 말라. 시집올 때 은비녀 이상의 패물을 갖고 오지 말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들어올 것에 맞추어 쓰라. 파장 물건은 사지 말고 값을 깎지 말라.부모의 생각과 발자취는 자식에게 나침반이자 길잡이가 되지요. 그러므로 솔선수범으로 가치 있는 삶의 철학을 실천해야 합니다. 듣기 좋은 말만 백번 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百言不如一行)이 중요하지요. 소중한 자산은 재물이 아닙니다. 재물만 남겨주면 자식은 나태해지기 쉽고 서로 다투는 일을 흔히 보게 되지요. 자식에게 물려줄 유산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어야 합니다. '잘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다르지요. 부자로 사는 것보다 잘 사는 게 무엇인지 보여줘야 합니다.너른 고을 시골에서 태어난 저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이웃을 도우며 양보하고 배려하며 사시던 아버지를 통해 돈보다 가치 있는 게 너무나 많다는 걸 배웠지요. 비록 가진 것이 모자라도 우리 형제들 역시 아버지처럼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내 삶의 보석 같은 자양분, 그것은 부모의 거름으로 가능했지요. 이를 바탕으로 가진 건 없었지만 부끄럽지 않게 늘 당당하고 위엄 있게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물, 불 안 가리고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고관대작이 된 들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요즘 시대에 가훈이나 가풍을 언급하면 구태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오늘이 없이는 미래도 있을 수 없듯 어제 없는 오늘도 없습니다. 전통은 과거 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있게 한 정신적인 유산이지요. 가훈이나 가풍 역시 낡은 교훈이 아니라 미래를 잇는 소중한 가교일 수 있습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10-13 홍승표

[수요광장]'바로 본다는 것'을 위하여

코로나와 싸움서 우린 가능성 발견재난상황에 대한 윤리적 성찰 수행사라마구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평범함의 소중함' 바로 보게 해줘'눈 멂', '진정한 눈뜸' 불가피 과정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사람들은 평범했던 지난날의 일상을 한마음으로 그리워하고 있다. 마스크를 벗고 활짝 웃는 표정이나 많은 이들이 웅성거리면서 축제를 벌이고 응원을 하며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맞았던 시간들은 벌써 8개월째 지난 시대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이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유출 같은 사회적 재난보다 우리에게 훨씬 더 인간의 왜소함과 무력함을 가르쳐주고 있는 이 사태를 통해 우리는 역설적 지혜를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나 제대로 된 성찰은 위기를 기회로, 난경(難境)을 지혜의 산실로 바꾸는 역리(逆理)의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하니까 말이다. 우리는 결국 인간의 지혜와 용기로 이 사태를 이겨나갈 가능성에 대해 신뢰를 보내면서도, 최근 경험한 공포와 초조가 어느새 평범함에 대한 간절함으로 바뀌어 가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한없는 겸손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지 않았는가.사라마구의 장편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1995)는 살아 있는 것들의 욕망에 관한 극한의 드라마를 통해 무섭도록 생생한 감염병 리얼 판타지를 보여준 작품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사라마구는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태어나 기능공, 번역가, 기자 등을 거치면서 삶과 문장을 충실하게 배워갔다. 그는 가시적인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초자연적 요소까지 수용하는 상상력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작가로 이미 유럽 사회에 유명세를 떨쳤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러한 그의 상상력이 구현해낸 극점의 섬광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한 도시 대부분의 시민이 불가해한 이유로 집단 실명하면서 몰락해가는 과정은 영국 작가 존 윈덤이 쓴 SF 소설 '트리피드의 날'(1951)의 영향을 입었다고 할 수 있는데, 세계적으로 대규모 실명 사태가 일어나는 상황 설정이 사라마구의 작품에 암시적 영향을 끼쳤을 것이기 때문이다.'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남자가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눈앞이 하얘지면서 눈이 머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를 만난 사람들도 연쇄적으로 실명하게 되고 어느새 집단 실명은 감염병이 되어 사람들에게 크나큰 존재론적 불안과 공포를 가져다준다. 정부는 사람들을 격리하는 방식으로 전염 확산을 막는다. 이때 주인공인 의사 아내는 눈먼 남편을 위해 자신이 실명한 것으로 속이고 격리시설로 들어간다. 거기서 그녀는 군인들에 의한 살육과 악인들에 의한 약탈과 폭력이 얼룩진 세계를 목격한다. 육체의 질병은 어느새 정신과 영혼의 타락으로 몸을 바꾼 것이다. 그녀는 눈먼 사람들을 데리고 그곳을 탈출하여 돌아오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눈먼 자들은 하나씩 시력을 회복하지만 정작 그녀는 눈앞이 하얘지는 것을 느끼면서 서사는 끝이 난다. 이 탁월한 재난소설은 '눈멂'과 '눈뜸'의 의미를 역전시키면서 우리에게 눈이 멀고서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세계와 눈을 뜨고도 못 보는 세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평범함의 소중함'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명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눈 밝은 이들에게만 보이는 '위대한 축복'이라는 것을 이 소설은 우리에게 전한다.바이러스와 싸우는 동안 어느새 가을이 와버렸다. 정부와 의료진, 국민 모두가 선방한 덕으로 그나마 우리는 다른 국가에 비해 상황이 나은 편이다. 우리는 서구 제국이 얼마나 허약한 선진국이었는가를 알게 되었고, 새삼 우리의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한 객관적 사실에는 눈멀고 유튜브 가짜뉴스 같은 것에는 외진 눈을 뜨는 병리적 현상도 숱하게 목격했다. 이 청명한 가을에 우리는 '바로 본다는 것'의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의미를 숙고해본다. 일찍이 김수영은 '공자의 생활난'에서 "이제 바로 보마"라고 했고, 랭보도 현상 너머를 볼 줄 아는 '견자(見者)'를 열망하지 않았는가. 재난 상황에 대한 윤리적 성찰을 수행한 '눈먼 자들의 도시'는 우리로 하여금 평범함의 소중함을 '바로 보게끔' 해준다. 이때 '눈멂'은 '눈뜸'의 반대말이 아니라 '진정한 눈뜸'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 될 것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10-06 유성호

[수요광장]코로나 시대, 개인 식별 데이터 노출 공포에 대하여

방역지침에 영업장 출입 명부 기록제대로 관리되고 있을까 걱정 앞서매달 8만여건 스미싱 피해 속출 속여성 문자 노출·허위 기재 등 많아당국 철저히 보호 후폭풍 막아내야최근 전화번호 노출로 인한 피해 보도를 많이 접하게 된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으로 커피숍이나 식당 등 영업장소를 이용할 경우, 누구나 성과 전화번호를 기록해야 한다. 이용자들의 개인정보 노출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된 배경이다. 일명 코로나 명부 피해 공포로 불린다. 이 두려움은 쉽게 떨쳐지지도 않는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이용자들이 비슷한 공포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나날이 노출되는 국민의 개인 식별정보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철저히 관리되고 있을까? 실은 궁금증보다 걱정이 앞선다. 개인정보 침해는 언제, 어떻게, 어떤 규모의 피해가 일어날지 피해 발생 직전까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개인정보 피해 두려움 때문에 영업장을 이용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개인정보가 잘 관리되기를 바랄 뿐, 적극적으로 개인이 개입한다거나 어찌해볼 방법이 없어 두려움이 크다.실제로 얼마 전 한 여성에게 온 '외로워서 연락했다'는 한밤중 문자사건도 코로나 방문 전화번호 노출로 인해 비롯된 사고다. 문자를 받은 여성이 큰 공포심을 느껴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사건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나마 이 사건 이후 이름은 적지 않고 성과 전화번호만 기록하도록 지침이 바뀌었다. 그러나 실제로 언론 보도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전화번호 노출 사고는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원, 각종 은행 등 곳곳에서 피해사례를 전하며 스미싱 피해에 주의해 달라는 공지 문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 발표에 의하면 지난 수개월 간 기관 사칭 문자 등 스미싱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자그마치 매달 8만5천건의 스미싱 문자가 수신자에게 읽히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수신자가 메시지 본문에 포함된 링크를 눌렀다고 가정했을 때 의도치 않은 결제와 이체 등 큰 피해를 입게 된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기 번호가 스미싱 등 범죄에 쓰일까 염려돼 코로나 명부 허위 기재도 많은 모양이다. 한 지자체 발표에 의하면 코로나 발생으로 동선 확인 시 기록의 절반 정도가 허위기재로 드러난다고 한다. 할 수 없이 CCTV에 기록된 정보 분석에 의존하는 실정이라고 한다.관련 뉴스를 보면서 필자는 개인정보 피해 공포 대신 차라리 허위기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두려움이 크다. 필자의 우려처럼 이용자가 방문 날짜와 이름, 전화번호 등을 직접 기입하는 수기 출입명부의 경우 개인정보 유출 우려 문제는 상존한다. 국민적 우려를 의식했는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코로나19 개인정보보호 강화대책'을 내놓았다. 그 내용은 한국인터넷진흥원 및 자치단체 인터넷 방역단과 협업해 지난 5월부터 4개월간 자치단체 홈페이지나 SNS 등에 공유된 1천555건의 개인정보를 삭제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자출입명부를 도입한 사업장의 경우 파기 등 관리가 가능함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하지만 우려했던 대로 수기 데이터의 관리는 사각지대였다. 수기 데이터의 경우 업소마다 요구하는 기록방식이 제각각이어서 더 신뢰가 떨어진다. 어디는 이름과 일행 모두의 개인정보를 기록하도록 요구하고, 어느 곳은 일행 중 한 사람을, 또 이름과 성을 모두 요구하는 등 업장마다 달라 혼란스럽고 철저히 관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안 생긴다.우리 국민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정부의 지침이라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자신의 소중한 정보를 순순히 내어준다. 정부 시책을 믿고 따라준 이용자들에게 철저한 개인정보보호 확신을 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이용자들이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고 안심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한마디로 확실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수기 정보 등 이용자 개인정보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 당국은 시간과 품을 들여 관련 업장들의 이용자 개인정보 관리 실태를 일일이 확인, 노출 사고를 방지할 책임이 있다.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영세가게 등 '관리 사각지대'로 불리는 다양한 형태의 개인정보 기록 자료들을 철저히 관리 감독해야 한다. 코로나로 가뜩이나 지치고 힘든 국민의 개인정보 노출 피해 우려를 방치, 거대한 후폭풍을 겪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09-22 김정순

[수요광장]호환(虎患)과 세금

통신비 지원 "안주는 것보다 나아"여 중진발언은 귀를 의심하게 한다 과중稅는 민생도탄 지금도 똑같아세상에 공짜없듯 국가재정도 부담'나라가 니거냐' 폐해 잊지 말아야모든 국민에게 통신비를 지원한다는 정책에 대해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안 주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라고 발언했다. 귀를 의심하게 한다. 1조원에 가까운 돈은 허공에서 생겨나는 것인가. 수십조원을 복지예산으로 지출하고 있으니 1조원 정도는 '푼돈'으로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 푼돈을 대통령이 국민에게 주는 선물로 여기지는 않을까 의심된다. '나라가 니거냐'란 말에 공감한다.상식 있는 국민들은 내심 걱정이 된다. 나라에서 주는 돈이 당장은 달콤하다. 그러나 이 돈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수입에 비해 지출이 많으면 미래가 뻔하다. 파산한다! 추경예산, 국채발행, 부채비율 등의 뜻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국가 재정에 적신호라는 짐작은 간다. 처절했던 IMF의 기억이 아직도 우리에게는 생생하게 남아있다.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가계나 국가 재정이나 다를 바 없다. 누군가는 그 돈을 부담해야 한다. 지금 받는 돈은 이자를 더해서 갚아야 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청구서가 날아온다. 우리가 못 갚으면 자식들이 갚아야 한다. 국가 부채는 상속 포기도 불가능하다. 빚을 부담할 후손들은 조상을 탓할 것이다. 결국 세금은 더 많아지고 삶은 더욱 고단해진다. 과도한 세금이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공자와 제자들이 산길을 가다가 여인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여인은 호랑이에게 시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자식을 잃었다. 산을 떠나면 호환(虎患)을 피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여인은 '이곳은 과중한 세금과 부역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이라고 말한다.정약용도 유배지의 관아 앞에서 울고 있는 여인을 목격했다. '애절양(哀絶陽)'은 양근(陽根)을 자른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탐관오리는 어린 아이와 죽은 자들에게도 군역(軍役)을 부과했다. 새로 태어난 아들이 군역에 포함되자, 애비는 자기를 원망했다. 스스로 생식기를 절단하여 후사를 없앤다. 이에 여인은 통곡한다.조선말의 고부 군수 조병갑도 빠질 수 없다. 벼슬을 얻기 위해 뇌물을 상납했고, 이를 벌충해야 했다. 매관매직이 성행한 당시로서는 관행이었을 것이다. 조상의 송덕비 건립을 위해 세금을 걷고 만석보를 증축하고 세금을 징수하여 착복했다. 이번에는 수세(水稅)다. 살 수가 없는 백성은 저항한다. 고부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되었다.현대사회에서도 과도한 세금은 민심의 이반을 초래한다. 10·26을 촉발한 '부마항쟁' 원인 중 하나로 1977년 여름에 도입된 부가가치세를 꼽는다. 국민들은 세금이 10% 늘어난 것으로 받아들였다.현 정부의 압권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세금정책이다. 중과세로 수요를 억제하고 매각을 유도한다. 여당 국회의원은 자연스럽게 '징벌적' 과세를 말한다. 살 때는 취득세, 살면서는 재산세와 종부세, 팔 때는 양도소득세를 부과한다. 집 없는 사람은 세금 때문에 집 사기 어렵고, 살고 있는 사람은 보유세가 부담이다. 팔려고 해도 양도세가 무섭다. 가히 세금 폭탄이다. 고가주택보유자와 다주택자는 중죄인이다. 한 채만 내 집이고 나머지는 정부 것이라 할 수 있다.부동산정책의 혼선으로 국가의 미래가 위태롭다. 청년들은 주택마련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고 동거한다. 그로 인해 출산율이 저하된다. 무주택 부부는 주택 청약을 위해서, 다주택 부부는 중과세를 피하기 위해 위장이혼을 고민한다. 이런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 이제 호랑이는 멸종되었고, 병역의무도 세금으로 대신하지 않는다. 부동산 세금이 현대의 '가렴주구'요, '애절양'이라 할 수 있다.맹자도 말했다. 어진 정치(仁政)의 요체는 형벌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적게 거두는 데 있다. 그러면 백성들은 밭 손질과 김매기를 잘할 것이다(김학주 역, '맹자' 양혜왕편). 세금이 적으면 근로의욕이 높아지고 잘살게 된다. 개인은 행복하고 나라는 강해진다. 과중한 세금의 폐해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정치의 요체도 고금이 동일함을 위정자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09-15 이영철

[수요광장]기부, 크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100만원 기부금 조롱당했던 배우30년 무료 두리랜드의 유료 전환심장병 아동 돕던 뽀빠이의 누명사람들, 자신 못보고 한없이 비난그자체로 소중한 행동 박수받아야코로나19가 한창 창궐할 무렵,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100만원을 기부한 어느 배우가 곤혹을 치렀지요. 일각에서 기부금액이 적다고 지적하며 문제 삼았고, 그의 선행은 한순간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억대의 금액을 기부한 스타들과 비교하며 중견 연기자로 너무 적게 기부했다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지요. 일부 네티즌들은 "이미지 메이킹이 목적인 것 같다", "생색내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악플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비난에 그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고 인스타그램 활동을 중단했지요. 공인으로 산다는 게 어렵다는 걸 실감했을 겁니다.양주에 있는 '두리랜드'는 유명 배우가 만든 어린이 놀이공원입니다. 190억원이 들어갔다는 이 공원은 개장 이래 지난 30년 동안 입장료를 받지 않고 운영해 왔지요. 그런데 올해 어린이날을 기점으로 재개장하면서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190억원이 들어갔고 150억원 가량을 대출받아 더는 무료 운영이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무료로 운영하다 요금을 받으니 일부에서 비난이 뒤따랐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그래도 긍정적으로 봐주는 분이 더 많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지요. 그의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가 묵직한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이걸 돈 벌려고 하겠습니까. 돈 벌고 싶으면 안 쓰고 갖고 있는 게 낫겠죠. 하지만 내가 죽더라도 두리랜드가 어린이들에게 오래 기억됐으면 해요. 그건 '자긍심'입니다. 사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내 표정도 좋아졌어요." 저는 그 배우의 말을 믿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돈도 안 되는 걸 왜 하느냐고 만류했지만 오직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놀이공원을 만들었다는 그분의 진정성을 믿고 있지요. 더 나아가 빚더미 속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원 운영을 멈추지 않았던 그 열정이 오히려 부러울 따름입니다. 가치 있는 인생이지요.뽀빠이로 불리며 600명에 가까운 심장병 어린이를 수술시킨 분도 성금을 일부 유용했다는 오해로 곤혹스러운 일을 겪었습니다. 밤무대 출연까지 하며 아이들을 도우면서 우정의 무대로 이름을 날리고 심장병 어린이들을 돕는 어린이들의 우상에서 갑자기 추락한 것이지요. 오랜 날들이 지나 재판에서 무혐의로 결론이 났지만 이미 그의 인생은 치명타를 맞은 뒤였습니다. 미국으로 떠나 궂은 일을 하다 돌아왔지만 그가 설 곳은 없었지요. 그 일이 한(恨)이 맺혀 그는 지금도 무혐의 불기소 증명원을 지니고 다닌다고 합니다. 너덜너덜해진 가슴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것이지요.100만원을 기부한 배우를 비난하는 사람 중엔 단돈 100원도 기부하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은 단돈 100원도 기부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기부금액이 적다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요. 오랫동안 놀이공원을 무료로 운영하다 은행 빚 때문에 유료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던 배우를 비난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이들은 당연히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의의 기부금액이 적다고 비난받고 놀이공원을 유료로 전환했다고 비난받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기부는 배틀(battle)이 아니고 그 자체로 소중하니까요.사람들은 자신을 제대로 살피지는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곧잘 비난하곤 합니다. 남을 비난하기에 앞서 과연 자신이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돌아봐야지요. 자신에겐 관대하면서 남에겐 한없이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결국 그 비판이 비방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늘 자신을 비춰봐야지요. 잘못은 앞에서 말하고 칭찬은 뒤에서 말해야 하는 법입니다. 미움을 앞세우면 상대의 장점이 사라지고 사랑을 앞세우면 상대의 단점이 사라지는 게 삶의 근본 이치이지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마음으로 기부하며 사는 분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09-08 홍승표

[수요광장]'위드 코로나' 시대의 미학적 항체

대규모 공연장·행사는 '이젠 옛말'더본질적인 변화의 시점에 서있어속도와 성장 반성 작은공동체 관심생태주의문학 인류사적 과제 부상팬데믹시대 문학적 출구전략 될까'코로나 19'로 빚어진 지구촌 전체의 재난이 인류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바꾸어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통째로 위기를 맞고 있는 그동안의 주류적 삶의 방식에 대한 대안적 실천이 요청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제 10만 관중이 운집한 채 치러지는 월드컵 결승전이나 수만명이 동시에 출발선을 떠나는 마라톤 대회는 당분간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오케스트라 공연장을 가득 채운 수많은 청중이나 한국 영화의 천만 관객도 어쩌면 2020년 이전의 신화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물론 단기간에 어떤 대안 모형이 마련된다면 이러한 변화 양상이 스포츠나 공연 예술의 급격한 퇴조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점에서 참여자 감소 문제는 팬데믹 사태가 불러온 변화 가운데 가장 비본질적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보다는 더 본질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시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누구나 알고 있듯이, 인간의 운명은 생로병사라는 과정적 표현에 압축되어 있다. 태어나 나이 들어 병들고 결국 사라진다는 것, 이것이 불가피한 인간의 보편적 존재론이다. 그 가운데 우리를 한없이 소모시키고 죽음에 접근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확인시키는 물리적 사건은 아마도 '질병'일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몸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의 존재증명을 위해 여기저기 아픈 곳을 드러낸다. 그동안 한국문학에서 이러한 질병의 양상은 개인적 차원에서 발원하는 생리 현상이자 공동체적 소진의 운명을 견뎌가는 은유로 동시에 나타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서의 질병과는 전혀 다른 '감염병'의 낯선 침입은 삶에 대한 여러 비유 체계를 생성해내면서 새로운 문학적 형상과 의미를 부여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한국문학에서 감염병을 형상화해가는 과정은 커다란 역사적 함의를 띠면서, 그동안 근대문학이 주목했던 '질병의 은유'를 부수고 새로운 차원으로 비약해갈 것이 틀림없다.미셸 푸코는 '감옥의 탄생'에서 감옥, 병원, 군대 같은 장치가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사실은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주체를 생산하는 제도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근대문학에 나타나는 이런저런 '병원' 역시 권력을 대리 집행하는 기능을 줄곧 수행하였다. 근대문학은 치밀하게 편제된 권력 장치에 의해 배제되거나 억압되었던 삶을 시종 재현하고 증언하였다. 짐짓 외면하기 쉬운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을 통해 작가들은, 멈포드가 '예술과 기술'에서 언급하였듯이, "폭력과 허무 곧 인간성의 말살이야말로, 현대예술이 가장 자유롭고 가장 순수한 계기들을 통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메시지"라는 전언을 강하게 상기시켰던 것이다. 이때 작가들이 펼쳐낸 근대적 사유란 서구 근대과학과 문명이라는 담론과 강력하게 결합하면서 동시에 그것과 경쟁하고 갈등하는 복잡한 상호과정을 포함한 것이었다.이제 몸의 가치와 의미를 결정하는 의학, 생리학, 위생학, 가정학 그리고 질병 관리와 인구 조절을 담당하는 보건 의료 시스템이 일본과 서구의 지속적 영향 아래 형성되어왔다는 점은, 새로운 차원의 의료 시스템의 완비와 함께 한국문학 내부에서도 감염병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미증유의 감염병은 어떠한 형상과 의미로 한국문학에 수용될 수 있을까.우리는 근원적 차원에서 증언록과 묵시록의 속성을 결속하면서, 근본주의적인 생태적 사유를 기저에 깔면서, 그동안 속도와 성장에 취해 벌려놓은 스스로의 과잉을 반성하면서, 이제 자발적으로 가난해지면서, 작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태도를 가짐으로써 이러한 과제를 인류가 수행해가리라 생각해본다. 1990년대 한때 유행 흐름을 띠었던 생태주의 문학은 이때 새로운 인류사적 과제로서 재설정되면서 '포스트 코로나'가 아닌 '위드 코로나' 시대의 미학적 항체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길만이 지금 시대를 넘어서는 최선의 문학적 출구 전략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 이 낯선 팬데믹 시대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09-01 유성호

[수요광장]한국판 뉴딜 정책, 국민 중심이 되야한다

2025년까지 포스트코로나시대 견인150조원 투입 190만개 일자리 창출그중 비대면 디지털뉴딜 사업 핵심개인 데이터 활용 주권 보장이 과제격차에 적응시켜 함께할 수 있어야수도권에서 시작된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검토란 당국의 발표에 전국이 초긴장하고 있다. 사상 최장기간 지속된 장마와 역대급 물난리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틈도 주지 않고 이번에는 코로나 광풍으로 전국이 초긴장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이 와중에 제8호 태풍까지 북상 중이라고 하니 얼마나 큰 피해를 일으킬 것인지, 비보 일색에 감각조차 무뎌질 정도다. 억지춘향이지만 그나마 위안거리는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코로나 사태를 겪는 OECD 국가 중 1위란다. 게다가 한국판 뉴딜정책이 앞으로 한국경제 회복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란 OECD 전망에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게 된다.이미 알려진 것처럼 한국판 뉴딜은 2025년까지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안전망 강화란 3가지 축을 중심으로 분야별 투자 및 일자리 창출로 코로나로 어려워진 경제를 살리려는 역점사업이다. 150조원 투자로 190만개의 일자리 창출이 최종 목표다. 그중에서도 디지털 뉴딜은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후반 역점사업으로 제시한 한국판 뉴딜의 핵심이다. 코로나19 여파로 확산되고 있는 비대면 디지털 사업은 2025년까지 디지털 뉴딜 정책에 총 58조원 이상을 투자해 디지털 일자리 90만개 창출이란 큰 목표를 세우고 있다.디지털 뉴딜은 한마디로 단절 데이터 정보를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 거래를 공식화하고 개방한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초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으로 그동안 분산돼 있던 데이터 간의 의미 있는 결합이 가능해졌다. 분야별 데이터를 크로스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개인의 데이터를 전문으로 다루는 마이데이터 산업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기업 간 데이터 공유가 활발해지는 만큼 개인의 데이터 주권 보장이란 과제 등 풀어야 할 난제도 많아 보인다. 무엇보다 거대 플랫폼 기업의 데이터 독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정 기업의 데이터 독점은 고스란히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데이터 활용으로 정보 주체의 권리가 침해되거나 민간기업이 개인의 민감정보를 악용하게 될 것이란 지적도 많다. 데이터 간 연계 혹은 결합을 과연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 또한 분분하다. 즉 데이터의 허용범위와 방법, 절차 등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가 시급해 보인다.일각에서는 데이터의 주권을 개인에게 부여함으로써 우려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며 데이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공공 데이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 창출 목적으로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데이터의 본격적인 활용 시행을 앞두고 당면한 문제점과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것은 정부가 풀어내야 할 몫이다. 데이터가 기존 생산요소를 능가하는 데이터 경제와 혁신을 주도하는 핵심자원으로 인정, 우리나라가 데이터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됐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다만 빅데이터 시대에 빅데이터를 잘 모르는 일반 국민에게도 정부의 거대한 디지털 뉴딜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 디지털 산업 발전 구상 어디에도 디지털 격차로 인한 부적응 문제 등 격차 해소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빅데이터 시대에 빅데이터를 잘 모르는 일반 국민도 정부의 거대한 디지털 뉴딜 정책에 대한 청사진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빅데이터 전문가 혹은 빅데이터 플랫폼 관련 기업, 디지털 세상을 잘 아는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를 낳게 해서는 안된다.아무리 좋은 디지털 성장 플랜도 국민이 적응하고 따라갈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정책의 성공은 조금 느려도 국민과 함께일 때 가능하다. 디지털 뉴딜은 빅데이터를 둘러싸고 있는 전문가 특정인들의 리그가 아니라 국민 중심이어야 한다. 데이터 활용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으로 이제 첫걸음을 뗀 디지털 뉴딜 사업에 일자리 창출과 경제적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기대한다면 과욕일까./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08-25 김정순

[수요광장]정책의 배신

최저임금·주52시간제·정년 연장 등약자·평등정책은 기득권 강화 역설靑 결심땐 시장원리 외면 바로 시행정치 이해득실만 좇고 논의는 부재도대체 무슨배짱으로 법을 만들까"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하는 짧은 연설은 초선 정치인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렸다. 전국 지명도의 정치인이 탄생했다.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여야의 역전에도 기여했을 것이다. 품격을 잃지 않고 현 정부의 부동산 실정(失政)을 합리적으로 비판했다. 의정활동의 모범 사례다.경제학자 윤희숙은 올봄에 '정책의 배신, 21세기북스'를 출간했다. 이후 국회의원으로 변신했다. 앞으로 야당의 선봉으로 정부의 경제 실정을 비판할 것이다. 본회의 5분 발언은 그의 등장을 알리는 전주곡인 셈이다. 여당은 상당히 괴로울 것이다.'정책의 배신'은 최저임금, 주 52시간제, 비정규직, 국민연금, 정년 연장, 신산업 등 여섯 분야의 정부 정책을 검토했다. 모두 다 좌파 기득권을 보호하는 반개혁적 정책들이다. 현 정부의 지지기반인 노조와 386 정치권이 결합하여 기성세대의 이익을 보호하고 청년세대의 희생을 강요한다. 청년들의 희망을 빼앗아 버린다. 대한민국의 불평등은 심화된다.최저임금은 충분한 논의 없이,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성급하게 인상했다. 결과적으로 취약한 조건의 저임금 근로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고, 영세 자영업자의 부담도 커졌다.주 52시간제로 공공부문과 대기업 직원들은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았다. 법정 기준을 준수해야 하는 중소기업은 큰 고통을 받게 되었다.비정규직과 정년 연장은 현 정부 지지 세력들이 가장 큰 수혜자다. 노조원 수가 늘고, 결집력은 단단해졌다. 반면에 아직 노동시장에 편입되지 않은 청년들의 취업문은 더욱 좁아졌다. 정규직 보호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자리 창출은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정책목표이기 때문이다.국민연금은 제도 개혁을 외면했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는 고령화와 맞물려 2057년경에 재원이 고갈된다. 미래의 근로자는 소득의 30%를 연금으로 부담해야 한다. 이 정도면 제도의 존속 자체가 위태롭다. 본인 세대들은 이득을 챙기고 이후의 문제는 후세들에게 부담 지우는 매우 이기적인 행태이다.신산업정책은 현 정부의 관리능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타다'가 대표적이다. 혁신기술은 기존 이해관계자와 새로운 사업자 간의 갈등을 초래한다. 정부는 갈등을 조정하지 못했다. 혁신기술은 일부에게는 손해가 발생하지만, 사회 전체로는 이득이 된다. 미래에 어차피 가야할 길이다.'정책의 배신'은 약자 보호와 평등 추구의 정책이 오히려 기득권을 강화하고 불평등을 심화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경제학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기 때문에 배신이 발생한다. 시장원리를 인정하지 않고 당위적 목표만 제시한다. 단기적 효과에 집착하여 장기적 영향은 고려하지 않는다.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단편적이고 지엽적 문제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졸속 정책이 매일매일 등장하는 것이다.더 큰 문제는 부정확한 정보, 왜곡된 정보를 대중선전에 이용함으로써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경제정책을 수립할 때 정치적 이해득실을 가장 먼저 고려하기 때문이다. 다른 의견과 비판은 무시한다. 자신들의 생각만을 독선적으로 주장한다. 지금까지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냉철하고 합리적인 논의는 부재했다. 토론을 통한 숙의 과정이 생략되었다. 특히 4·15 총선 이후 여당은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속전속결로 처리하고 있다. 추경 예산안이나 부동산관련법안이 대표적이다. 청와대가 결심하면 바로 시행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두워지는 것을 '정책의 배신'은 걱정하고 있다.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의 대원칙은 여야, 좌우를 떠나 모두가 동의한다. 문제는 구체적 방법이다. 결국 정책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부작용과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판과 토론이 필수적이다. 의도했던 정책목표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지(叡智)와 함께 겸손도 필요하다. 정책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를 집권여당이 몰랐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면서도 추진했다면 사악하다고 할 수 있다.윤희숙 의원도 "도대체 무슨 배짱과 오만으로 법을 달랑 만듭니까"로 본회의 발언을 마무리했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08-18 이영철

[수요광장]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살면서 많은 사람과 인연을 쌓았다나이를 떠나 배울게 있으면 '형'호칭도청서 근무할때 최기자·모국장 등마음 열어 삶을 넉넉하게 해준 분들그런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경기도청에서 홍보담당으로 일할 때 함께 술자리를 하던 기자가 뜬금없이 한마디 던졌습니다. "형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괜찮지요?" 저보다 아홉 살이 어리지만, 성격이 깔끔한데다 강골로 소문난 출입 기자였기 때문에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공무원을 만났지만 계장님처럼 인간적으로 존경스러운 분은 처음입니다. 함께 일하고 있는 동생 분은 선배라고 부르지만 계장님은 형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으로 부르고 싶으면 그렇게 해" 기분 좋게 말하며 술잔을 부딪쳤습니다. 고맙기도 하고, '마음을 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그와 늦도록 술자리를 함께했지요. 그 후로도 사는 동네가 같아서 함께하는 술자리가 많았습니다.30년 전, 경기도지사 비서실에서 일할 때 얼굴이 유난히 희고 깔끔하게 잘생긴 기자 한 사람이 찾아왔지요. 그의 어르신은 경기도교육청에서 교육감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도지사가 교육위원회 의장을 맡았었지요. 수행 비서였던 저는 매월 한 차례 교육청에서 열리는 교육위원회에 도지사를 모시고 갔습니다. 이때 도지사 비서실과 교육청 비서실이 활발하게 교류했는데, 그 인연이 후대까지 이어진 셈입니다. 아들이 경인일보에 입사해 도청 수습기자로 일하게 되자 저를 찾아보라고 했던 것이지요. 이러한 인연으로 오랜 세월 형제처럼 함께 지냈으니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자와 공직자를 떠나 누구보다 각별하고 소중한 인연이었지요.세월이 흘러 파주 부시장으로 일할 때 '다산 청렴 봉사 대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상금이 1천만원이나 되니 많은 사람이 축하의 덕담을 건네면서 술 한 잔 사라고 했지요. 술을 즐기는 편인지라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쓴 글을 책으로 엮어 선물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표제를 '높이면 낮아지고 낮추면 높아진다'로 정하고 당시 정치 부장이던 그에게 추천의 글을 청했지요. "형! 모시던 도지사도 있고, 아는 분이 많잖아요?….", "무슨 소리야! 최 부장이 나를 잘 알잖아." 최 부장의 추천사는 압권이었습니다. 기자니까 기본적으로 글을 잘 쓰는 게 당연했지만,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최 부장 글을 읽으니 끝까지 읽지 않아도 담긴 글 내용을 알 것 같다고 입을 모았지요. 그만큼 그는 저를 잘 알고 있던 것입니다.민선 L지사 비서관으로 일할 때는 휘뚜루마뚜루 일을 참 잘하는 능력자인 데다가 성격이 유연하면서도 호방해 따르는 사람이 많은 국장이 있었지요. 제가 도지사 수행비서로 일할 때 그는 내무부 장관 수행 비서였습니다. 이때부터 교분을 쌓았는데, 고향인 경기도로 돌아온 것이지요.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석에서는 누가 있든 저에게 꼭 형이라고 불러 가끔 난처해질 때도 있었지요. 문화정책과장으로 일할 때 시흥부시장이던 그가 문화 관광국장으로 와 첫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도 "형! 잘 부탁해요"라고 했습니다. 함께 한 사람들이 깜짝 놀랐지요. 이제 직속상관이니 제발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형은 형이라면서 호칭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퇴직 후에도 그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도 형이라고 부르고 있지요.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에게 직함을 붙여 불렀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거나 어리거나를 떠나 인간적으로 배울 게 있으면 이름 뒤에 '형'이라는 호칭을 붙여 불렀지요. 다섯 살 어린 후배 한 사람에게도 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부르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존경한다는 의미를 담는 방법인 셈이지요.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다고 무조건 형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나름 배울게 많고 존경할 만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야만 형이라고 부르지요. 형이라는 호칭을 붙여 부를 수 있는 분이 있다는 건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다. 삶의 의미를 더 넉넉하게 해주는 분이 있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고 감사한 일이지요.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08-11 홍승표

[수요광장]맛의 경험과 몸의 기억

미각·후각은 어린시절과 깊은관계쓴맛·감칠맛 구수하고 아릿한 냄새백석의 '국수'에서도 기층문화 자리驛마다 후루룩 가락국수 눈에 선해그 순간 복원… 이래저래 먹고싶다인간의 감각 중에서 미각과 후각은 특별히 어린 시절과 깊은 관계에 놓인다. 그 감칠맛과 쓴맛, 그 구수하고 아릿한 냄새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문학작품 속에 미각 충동과 경험이 서린 장면이 나오면 사람들은 으레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그 맛의 경험을 순간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백석의 시 가운데는 맛이나 먹을거리를 핵심 이미지로 삼아 노래한 작품이 제법 많다. 그 가운데 '국수'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다.백석이 만주 살 때 쓴 이 작품은 1941년 4월 '문장' 폐간호에 실렸다. 백석은 같은 지면에 '흰 바람벽이 있어'를 통해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라는 절창을 쏟아놓았고, '국수'를 통해서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간과 공간을 풍요로운 감각으로 재현함으로써 가장 인간다운 삶이 어떤 것인가를 물었다. 그 힘은 우리가 오랫동안 만들고 먹고 누려온 기층문화야말로 저 천하고 폭력적인 군국주의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이어져가야 한다는 믿음이었을 것이다.그런데 이 국수가 '냉면'이라는 점에 주목해보자. 밀가루가 아니라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평안도에서 집집마다 갖춘 국수틀로 빚었던 것인데, 거기에 "겨울밤 쩡 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넣고 "얼얼한 댕추가루(고춧가루)"와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넣어 먹는 서북지역 특유의 국수는, 연전에 남북정상회담 때 화제가 되었던 '평양냉면'의 원조인 셈이다. 나는 이 평양냉면을 좋아한다. 여름이 되면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물냉', '비냉', '회냉'을 다 좋아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평양냉면의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맛이 제일이다. 굳이 말하자면 담백한 맛인데, 백석은 그것을 '고담'과 '소박'이라고 표현했다. 예전에는 꿩고기가 얹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냥 쇠고기를 쓴다. 배도 넣고 동치미 무도 썰어 넣는다. 거기에 달걀 반쪽과 김치를 함께 먹으면 우리가 즐기는 '평양냉면'이 된다. '동국세시기'에도 냉면은 서북지역 것이 최고라고 적혀 있다는데 해방 전후에 월남한 분들에 의해 이 음식은 남쪽에 정착하게 된다.냉면 말고도 여름에 먹는 또 하나의 별미는 단연 콩국수다. 한여름 무더위를 날리는 데 콩국수만 한 서민 식품이 없다. 시원한 콩국에 오이를 썰어 넣고 얼음을 띄우면 냉면과 자웅을 겨루는 여름철 대표 음식이 된다. 그러고 보니 국수의 파생어가 정말 많다. '칼국수'나 '콩국수'에다가 '밀국수', '메밀국수', '쌀국수', '잔치국수', '냉국수', '비빔국수' 등이 떠오른다. 우리가 즐기는 '라면'은 '납면(拉麵)'에서 유래했는데 북한에서는 그 형태 때문에 '꼬부랑 국수'라 부른다고 한다.지금도 기억에 선한 것 하나만 더 이야기해보자. 기차를 타고 가다 잠시 내려 후루룩 먹고는(거의 마시는 수준!) 다시 기차를 타고 먼 거리를 가야 했던 '가락국수'를 아시는지? 특히 대전역 가락국수는 매우 유명했는데 역 승강장 간이식당에서 팔았다. 경부선과 호남선의 분기점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경부선과 장항선의 분기점인 천안역, 중앙선과 태백선과 충북선이 분기하던 제천역, 경부선과 대구선의 분기점인 대구역에서도 가락국수는 다른 것과는 바꿀 수 없는 베스트 음식이었다. 여기서 '후루룩'이라는 의성어를 떠올려보자. 그 안에는 여러 의미가 들어 있을 것이다. 맛이 워낙 좋아 빨리 먹는다는 속도감도 있겠지만, 너무 양이 적어 빨리 먹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가난이 서려 있기도 하다. 이처럼 맛의 경험과 몸의 기억은 선명하게 한 시절을 붙잡고 있고, 또 우리는 그 맛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그때의 순간과 장면을 온전하게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국수'가 먹고 싶은 날이다. 그 안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담과 소박의 맛을 담은 '평양냉면'이든, 여름철 별미인 '콩국수'든, 베트남 브랜드를 달고 있는 '쌀국수'든, 아니면 그 옛날의 '가락국수'든./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08-04 유성호

[수요광장]디지털시대, 강아지와 산책하는 즐거움과 책임

코로나로 세상은 온라인 전환 가속대체불가 영역이 있다면 산책 꼽아애완견이 길동무라면 더 없는 축복문제는 동물을 꺼리는 사람과 갈등공존을 위해선 '펫티켓지키기' 필수코로나19는 세상을 빠르게 변화시킨다. 감염 우려 때문에 선택하게 된 비대면 방식이 세상을 온통 디지털로 이끌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은 디지털 전환 속도를 더 가속화시킬 것이다. 코로나19 장기화와 경기 침체는 비대면 수요의 급증을 일으키면서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코로나와 언택트는 서로 맞물리면서 세상을 디지털 중심으로 바꿔 놓고 있다. 교육, 진료, 이 외에 많은 분야가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있다.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디지털 중심으로 바뀐다 해도, 온라인이 아무리 정교하게 오프라인을 대체해 나간다 해도 대체 불가능한 영역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중의 하나가 산책 아닐까? 산책은 오프라인, 즉 대자연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바람결에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 바람결에 실려 오는 풋풋한 풀향기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위대한 선물인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오솔길 산책의 즐거움은 온라인 세상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더구나 요즘처럼 비가 자주 내리는 장마철, 모처럼 갠 날 오후 산책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감을 준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이슬 머금은 숲속 오솔길 산책은 너무나 좋다. 게다가 필자의 경우는 산책길 사색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말없이 옆에서 길동무를 해주는 귀여운 강아지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축복의 시간인 셈이다.그런데 이처럼 기분 좋은 산책을 방해하는 일이 있다. 바로 치우지 않은 강아지 배설물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정도가 아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 중인 사람으로서 부끄러워 몸 둘바를 모를 지경이다. 옆 사람이 묻지도 않는데 "아니 누가 이렇게 안 치우고 간거야"라며 죄없는 필자의 강아지를 향해 읊조린다. 실은 "우리 개는 범인이 아니에요"라고 변명을 하는 셈이다. 매번 묻지도 않는데 혼자 중얼거리기도 멋쩍어서 최근에는 아예 개 목줄에 눈에 잘 띄는 형광색 배변 봉투를 매달고 다닌다. "제 반려동물의 변은 반드시 치우는 사람"이라고 옹색한 표시를 하는 것이다.동물을 달가워하지 않는 누군가와 부딪힘 없이 기분 좋은 산책을 마치려면 책임이 수반된다. 필자에게는 너무나 행복한 산책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개가 그저 공포의 대상이고 기피의 대상일 수 있다. 애견 1천만 시대라고 하는데 이 숫자의 증가만큼이나 문제점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반려견 때문에 이웃 간에 크고 작은 다툼 발생은 뉴스거리도 아닐 만큼 흔한 일이다. 애견인들은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만큼 챙겨야 할 일이 참 많다. 동물 병원비는 왜 그리 비싼지, 사람 치료보다 더 먹힌다. 미용 비용도 만만치 않다. 사랑하는 만큼 그에 따르는 책임도 참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녀석들이 건네는 행복감은 그 이상의 노고도 마다하지 않고 감당하게 된다.어디 이뿐인가? 필자의 강아지는 천둥벼락이 치는 소리에는 꿈쩍 않지만, 냉장고 문을 여는 작은 소리에는 꿀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체중 증가는 안 된다는 의사의 경고에도 "나는 먹고 싶거든요"라는 애절한 눈빛 애교에 감량 계획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가족들의 타박은 고스란히 마음 약한 필자 몫이 되고 있다. 외식이라도 하고 온 날에는 킁킁검사를 해대는 통에 비만견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먹다 남은 갈비뼈를 몰래 챙겨다 준다. 자책과 후회는 늘 필자 몫이지만, 세상없이 행복하게 먹는 녀석의 모습을 보면 더 큰 행복감이 밀려온다. 참 많은 순간, 위로받는다. 문제는 필자에게는 이렇게 기쁨을 주는 존재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동물을 꺼려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 모두 우리 사회 구성원이다. 갈등 없는 공존의 첫 번째 요건은 '펫티켓' 지키기다. 산책할 때 견주는 "우리 애는 순해요. 안 물어요" 대신에 안전한 길이의 목줄 매기는 물론 배변 수거 등 소소한 것들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펫문화가 바로 서야 평화로운 공존도 가능하다. 바람직한 펫문화 정착 속에 당당하고 기분 좋은 산책을 기대 해본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07-28 김정순

[수요광장]코로나 학기(學期)를 보내며

원격강의시스템 신속 마련됐지만신입생 방 얻고 등교 못하는 처지교수는 녹화·업로드에 많은 시간등록금 반환요구가 합당한가 의문시험 부정행위 방지·학점 주기 '고민'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달라진다고 한다. 대학은 어떻게 될까. 필자는 봄 학기에 신입생부터 4학년 대상의 상담, 이론, 실습과목을 담당했다. 처음에는 개강이 2주일 연기되면 여름방학을 그만큼 축소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강이 계속 지연되면서 수업 일수에 문제가 생겼다. 4월이 되자, 이론과 실습 모두 원격 수업이 불가피해졌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온라인 강의 경험이 없어 난감했으나, 곧바로 과목 특성과 자신들의 강의 스타일에 따라 적합한 강의방식을 개발했다. 화상회의앱,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수업을 하거나 강의 영상을 사전 제작했다. 실습 과목은 과제와 피드백으로 진행하기도 했다.학교 당국도 당혹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원격 강의 운영시스템을 신속하게 마련하고 온라인 수업 매뉴얼을 배포했다. 교수들에게 강의 촬영 서비스를 제공하고 서버를 증설하여 이용의 편의를 증진했다.문제는 교육 효과다.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모든 사립대학은 등록금 반환 이슈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학교 당국은 교수들에게 상담을 독려했다. 전화상담이 불가피했다. 전화를 받지 않기도 하고, 문자를 남겨도 연락이 없는 학생도 있다. 수업시간에 맞춰 전화해 '지금 어딘가?'라고 물으면, 아르바이트 중이라는 경우도 있다. '수업시간인데?'라고 물으면, 영상녹화 수업은 편한 시간에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했다. 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것도 온라인 강의의 장점이다. 학생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통학시간이 절약되었다. 어려운 내용은 반복해서 시청할 수 있다고 한다. 학우들과 교수를 만날 수 없는 것은 아쉽다고 했다.신입생들의 처지는 딱했다. 대학생이 되었으나, 학교에 갈 수 없다. 원룸을 얻고도 등교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씩씩했다. 앞으로 대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등교하면 교수를 꼭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들을 위해서도 하루빨리 학교 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교수의 수업부담은 늘었다. 등하교 시간은 줄었지만, 강의 준비와 녹화, 인터넷 업로드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채점, 특히 과제물에 대한 평가도 힘들었다. 매주 또는 격주로 코멘트를 전달하니 학생의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다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전체 수업에 투여되는 시간은 훨씬 더 증가했다. 등록금 반환 요구가 합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학점도 고민스러웠다. 출석과 과제는 확인이 가능하지만 학생의 이해도와 진정성은 알기 어렵다. 시험부정 행위도 방지하기 쉽지 않다. 절대평가로 전환됐지만 모두에게 좋은 학점을 주는 것은 부담이 된다. 동시에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박한 학점도 마음에 걸린다. 결국 평소에 비해 A학점을 받은 학생 수는 두 배로 증가했다. 학점이 인플레이션되고 변별력이 줄어들어 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방학이 되었다. 지금은 성적 제출을 마감하고 강의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교수도 학생의 평가를 받는다. 처음 도입한 온라인 강의에 대해 학생들은 어떤 점수를 줄지 궁금하다.온라인 강의의 장점이 많이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재택수업의 실효성은 의문이 생긴다. 어린이집은 물론 초·중·고 모두 등교를 하고 있다. 학원도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다. 오직 대학만이 예외였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집에 있는 것도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가고 학원에, 카페에, 술집에 간다. 오히려 방역수칙을 준수하고 등교하는 것이 전염병 예방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대학의 미래도 고민스럽다. 예를 들어 미디어 전공이 있는 모든 대학에서는 미디어 개론 과목을 개설한다. 최소 100명이 넘는 교수가 강의할 것이다. 나도 그중 하나지만, 강의를 잘한다고 자신할 수 없다. 더 훌륭한 강사가 많다. 학생 입장에서는 최고의 강의를 수강하면 되는 것 아닌가. 온라인에서는 수강생 수의 제한도 없다. 이른바 '일타 강사' 수강이 가능하다. 그러면 나머지 교수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대학의 앞날과 교수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것이 코로나 이후 시대의 대학교의 과제가 될 것이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07-21 이영철

[수요광장]내 편 네 편 가르지 말아야

최근 생을 마감한 두 명망가를 두고진영논리로 민심 갈리는 안타까움조국·정의연 사태 때와 다를바 없어법정스님·김수환추기경 행보 반추지금은 다툼이 아닌 국민단합 중요'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물불 안 가린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불가(佛家)에서 나온 말입니다. 스님은 '이판승'과 '사판승'으로 나누는데, 경전을 연구하고 강론하며 수행하고 포교하는 스님이 이판승이고, 사찰의 살림살이를 꾸려나가고 종무를 돌보는 스님이 사판승입니다. 이판승의 꼭짓점은 종정이고, 사판승의 꼭짓점은 총무원장이지요. 가끔 이판과 사판을 두루 거친 스님도 있습니다. 이판이 없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을 수 없고, 사판이 없으면 가람을 존속시킬 수 없지요. 이판과 사판은 서로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고 동반자라는 방증입니다.살아보니 세상사는 일이 수학문제처럼 완벽하게 풀리지 않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비구승이나 대처승이나 추구하는 진리와 궁극적인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지요. 기독교, 불교, 천주교도 추구하는 길이 다를 뿐 궁극적인 지향점은 같다고 봅니다. 비슷한 시기에 선종과 입적을 하신 종교지도자로 한 시대의 큰 스승이셨던 김수환 추기경님과 법정 큰스님은 걸어온 길이 다르지요. 추기경님이 열 살이 더 많아 나이 차이가 있고, 출신도 영·호남으로 다릅니다. 종교 역시 천주교와 불교로 다르니 당연히 삶의 철학이나 추구하는 가치관과 방향이 다르고, 견해 차이도 있었을 겁니다.그런데 두 분의 인연은 길동무처럼 오랜 세월 교감하며 각별하게 이어졌지요. 특히, 두 분은 개인적인 친교를 넘어 한국 사회에서 종교 간 벽을 허무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법정 큰스님이 길상사 개원 법회를 열었을 때 김수환 추기경님이 참석해 축사를 해 주었지요. 법정 큰스님은 그해 성탄절 때 성탄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명동성당에서 특별강론을 했습니다. 추기경님이 선종하자 큰스님은 언론에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시(詩)를 기고하기도 했지요. 두 분의 깊고 넓은 생각과 넉넉한 행보는 아름다운 우정이자 격 높은 어른의 품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최근 생을 마감한 두 명망가의 죽음을 두고 민심이 갈리는 안타까운 일이 생겨났습니다. 진영논리(陣營論理)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게 나타난 것이지요. 자신이 속한 진영의 죽음은 미화시키고 상대진영의 죽음은 폄훼하는 이분법적인 행태를 보인 것입니다. 내 진영의 이념만 옳고 상대 진영의 이념은 그르다는 논리는 위험한 발상이지요. 답을 정해놓고 꿰맞추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을 포함한 사회전체가 진영논리에 갇혀있는 건 불행한 일이지요. 내편이라고 다 옳은 게 아니고 상대편이라고 다 그른 것도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세간에 진영논리가 극명하게 대두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였지요. 그리고 조국사태 이후 촛불 행렬이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눠지고 상반된 주장이 첨예하게 펼쳐졌습니다. 정의연 사태를 두고도 진영에 따라 주장하는 논리가 상반되고 있지요. 분명한 것은 답을 정해놓고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진영논리에 갇혀 내 편 네 편 가리면 우리의 내일은 크게 기대할 게 없어지지요. 현상을 현상 그대로 보는 게 중요합니다. 좌파, 우파, 극우니 빨갱이니 하는 진영논리가 사라지지 않는 한 밝은 미래는 없습니다.살다 보면 죽자 살자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사람이 있지요.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사는 일이 그리 쉽고 간단하게 풀리지도 않고 100% 옳은 일도 없지요. 정치적·이념적으로 편을 가르고, 지역별로 나누어 편향적으로 흘러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은 내 편, 네 편 아옹다옹 다툴 때가 아니라 외환 위기나 코로나19를 극복하며 보여준 국민적 단합이 중요하지요. 김수환 추기경님과 법정 큰스님의 큰 사랑과 자비의 행보, 그 가르침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편 가르지 말고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살아야 사랑과 평화가 온다는 것 아니겠는지요./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07-14 홍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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