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반갑다, 추신수!

프로야구의 시작… 3월, 봄이 왔다올해 수도권 팬들에게는 더욱 특별추신수 품은 인천 '신세계' 펼치고수원 'kt'는 강팀 반열에 오를 기회연고팀 간 '수인선더비' 발전했으면3월이다. 봄은 왔다. 그러나 봄의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일 수 없고 상가(商街)는 일찍 철시한다. 그렇지만 봄과 함께 야구도 온다. 야구팬들의 일년은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시작한다.작년의 야구는 아쉬움이 많았다. 대부분의 경기가 무관중으로 열렸다. 올스타전이 취소되었다. 포스트 시즌도 서울의 돔구장에서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全) 경기를 소화한 것은 대단한 성과다. 미국과 일본은 게임 수를 축소했다. 야구는 역사와 전통을 소중히 여긴다. 매 시즌 조건이 동일해야 한다. 시즌별로 경기 수가 달라지면 기록의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수도권 야구팬들에게 2021년은 특별하다. 우선 '인천 SK'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인천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지난해 성적이 부진했던 SK는 일찌감치 사장과 감독을 교체하고 2021년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야구단의 주인이 아예 바뀐 것이다. 이어서 지난달 23일에는 추신수 선수 영입을 발표했다. 코리안 메이저리거를 대표하는 투수가 박찬호라면 타자는 추신수다. 그는 연봉과 성적이 메이저리그 상위권인 현역 선수다.부산 출신의 추신수 선수가 왜 인천 연고팀에서 활동할까. 프로야구 선수들의 노동시장이 일반인과 다르기 때문이다. 프로야구는 독점 성격이 강한 독특한 비즈니스다. 각 팀의 목표는 우승이지만 팀 간의 전력이 불균형하면 팬들은 흥미를 잃는다. 전체 리그의 활성화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야구단의 사업권 보호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선수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제한된다. 드래프트 제도(신인선수 선발 시에 성적의 역순으로 구단이 선수를 지명), 보류선수 조항(구단의 동의 없이 다른 구단으로 이적(移籍)이 불가능한 선수)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난 2007년에는 당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특별 드래프트가 이루어졌다. 이들이 국내로 돌아올 경우, 선수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소속 구단을 정해 놓았다. 광주 출신의 김병현 선수가 서울 연고의 히어로즈에 입단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때 추신수 선수는 SK의 지명을 받았다. 그 권리를 신세계가 승계했다.추신수 선수의 활약을 가까이서 자주 볼 수 있는 인천의 팬들은 행복하다. 작년에 김광현 선수를 내준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팀 전력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신세계의 포스트 시즌 진출 가능성이 높아졌다. 새로 출발하는 신세계가 인천의 팬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선사했다고 할 수 있다.수원의 kt도 금년이 중요하다. 연속해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강팀의 반열에 오른다.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으로 성장하고 팬층도 확대된다. 반면에 성적이 부진하다면 한 시즌 '반짝'한 팀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kt는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배출했다. 이 둘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로하스 주니어는 일본 한신(阪神) 타이거스로 이적했다. 신인선수는 2년 차에 부진하다는 징크스도 있다. 새로 보강된 전력도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지만 신생팀의 티를 벗고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선수들의 경험과 자신감은 큰 자산이 되었다. kt야구단의 역량과 리더십을 진정으로 평가받는 한 해가 될 것이다.현재 kt는 울산에서 동계훈련 중이다. 신세계는 제주도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오는 20일부터 시작하는 시범경기를 통해 겨울동안 준비한 것을 최종 점검하고, 4월3일 개막전에 맞춰 팬들에게 최선의 기량을 선보인다.2021년. 인천과 수원 야구팬의 기대는 높다. 더 나아가 수원과 인천 연고팀의 대결이 수인선(水仁線) 더비로 발전하면 좋겠다. 메이저리그의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의 매치, 서울의 LG와 두산의 라이벌전처럼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간다면 팬들의 관심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구단, 선수들의 노력은 물론 미디어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kt와 신세계의 첫 대결은 4월27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펼쳐진다. 지겨운 역병(疫病)이 빨리 물러가고 추신수 선수를 경기장에서 직접 볼 수 있으면 야구팬들은 더 행복할 것이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1-03-02 이영철

[수요광장]어머니와 다듬이질

가부장제·남존여비 심했던 어릴적어머니의 억눌린심정 달랬던 도구恨으로 맺히기전 분출시킨 두드림한밤 달빛타고 들려올 땐 제법 운치귓전에 맴도는 그리움 고향의 소리다듬이질이 있었습니다. 돌로 만들어진 다듬이 위에 옷감을 접어 올려놓고 홍두깨로 두들겨 다듬는 일이었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려웠던 시절을 살던 우리 어머니들의 말 못 할 심정을 달래는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다듬이질할 때 그 내려치는 소리의 강약은 가슴 속에 숨겨져 있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지요. 사람들은 다듬이질 소리를 들으며 그 가락의 강도로 아낙네들의 심정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우리의 어머니들은 케케묵은 가부장제와 남존여비 관습에 얽매이고 시어머니와 시누이 등 시집 식구의 참견과 질책에 억눌려 살아야만 했지요. 말 못 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던 그 울분이 한(恨)으로 맺히기 전, 분출시킬 수 있는 것이 다듬이질이었습니다. 다듬이질 소리가 밤이 깊어질수록 요란하게 울렸던 것은 그만큼 맺힌 사연이 구구절절했다는 반증이지요.다듬이질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정말로 애원하고 하소연하는 듯 들립니다. 고혹한 달빛을 타고 들려올 때는 제법 운치가 있는 가락으로 안겨들기도 하지요. 할머니와 어머니가 마주 앉아 양손에 홍두깨를 들고 박자를 맞추어 두드리는 소리는 참으로 절묘하고, 저절로 신명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자칫 방심하면 엇박자가 나기도 하지요. 네 개의 홍두깨가 섞이다 보니 조금만 소홀히 하면 서로 부딪치기도 합니다.다듬이질은 마음이 하나 되지 않으면 속도와 박자를 맞출 수가 없지요.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두 여인이 한 집안에 시집와서 시어머니가 되고 며느리가 된 것은 운명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숙명을 짊어지고 살다 보니 고운 정, 미운 정이 가슴에 쌓여 한(恨)이 되었을 테지요. 그래서 응어리진 한을 깨부수듯 어금니를 질끈 물고 홍두깨를 움켜잡아 내리치면서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북받쳐 남모르게 눈물을 삼키며 울었을지도 모릅니다.애틋한 사연이 담긴 삶의 응어리를 한 자락 소리로 거침없이 풀어내는 다듬이질 소리는 바람을 일으키고 큰 산을 흔들었지요. 밀어치고 당겨치고, 맺고 풀어내며 어둠을 빛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어놓고, 정처 없이 떠돌다가 다시 또 휘몰아치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꿈이나 사랑을 일깨우고 다시 돌아올 기약 없이 먼 길을 떠나버리곤 했습니다.눈 오시는 밤이면 화롯가에 둘러앉아 군밤이나 군고구마를 먹으며 눈 날리듯 정겹게 날아드는 다듬이질 소리를 들었지요.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저희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지만,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다듬이질로 지치셨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잠시 쉬면서 함께 군고구마를 먹으며 어머니는 가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지요. 그 얘기가 아득하게 꿈결같이 느껴질 때쯤이면 스르르 잠이 들곤 했습니다.다듬이질하는 할머니와 어머니 모습은 더없이 보기 좋았지요. 다듬이질 소리가 커지면 '무언가 못마땅하고 화나는 일이 있구나!' 숨죽이며 지켜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일없이 일정한 가락의 다듬이질로 잘 다듬어진 옷감은 가족의 옷이 됐지요. 어머니의 손길로 만들어진 옷, 그 따뜻한 사랑이 있어 어려운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귓전을 울리는 다듬이질 소리, 달빛을 타고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에 눈을 감으면 어느새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웃음 짓곤 하지요.세월이 흐르고 연륜이 더해져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의 소리를 듣는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작은 일에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는 여여함도 얻게 되었지요. 세상이 바뀌고 세월이 지나면서 사라진 것들이 많이 있지만 사무치게 그리운 얼굴과 귓전을 맴도는 소리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고 다듬이질 소리는 어린 시절 기억 속 고향의 소리로 남아있지만, 문득문득 어머니와 다듬이질 소리가 그리운 것은 결코 추억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1-02-23 홍승표

[수요광장]서정시의 비밀 지도

실존적 고투 자기 고백의 서정시는 소수 애호가들 사이에서 창작유통운명적인 명제는 요즘에 더욱 실감詩 '저녁의 노래·봄의 과수원' 보면시간 예술로의 속성 또한 분명하다코로나19가 일상화하고 있는 신산한 시대가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상수로 하면서 지금도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진단하고 정신적 지남을 제안해야 할 인문학 역시 그 물리적, 심리적 기반이 점점 약화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변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과거처럼 인문학적 지식이나 감수성이 교양인으로서 필요한 인프라로 기능하기보다는 자본 창출을 늘리는 데 복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지식이 도구적 합리성의 질료가 되어 자본 증식에 기여하게 된 이 시대에 인문학이 추구해왔던 지향은 '지식=자본' 등식으로 왜소화되어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공동(空洞) 현상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시대에도 하나의 확실한 지표를 제공해 주는데, 그것이 바로 인공지능이나 제4차 산업혁명 등을 예거하면서 운위되곤 하는 인문학의 위기 흐름일 것이다.이러한 시기에 문학의 위기 혹은 서정시의 위기를 말하는 것은 대안 없는 자기 위안의 형식이기 쉬울 것이다. 서정시가 위기 아닌 시대는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서정시는 언제나 소수 애호가들 사이에서 창작 유통되었고, 근대 이후에도 예술 장르 가운데 가장 적은 수요자들을 거느려왔다. 그런데 서정시가 운명적으로 소수 독자를 가진다는 명제는 요즘 들어 더욱 실감을 더해가고 있다. 이는 서정시가 독자의 숫자에 집착했을 때 언어의 이완을 통한 감상벽(癖)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떠올리게 해준다. 다시 말해 서정시의 위기가 적실성을 얻으려면 독자 수 감소에 따른 시장에서의 소외현상이 아니라 서정시의 정체성 차원에서 의제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서정시는 시인 자신의 실존적 고투를 내용으로 삼는 자기 고백의 양식이다. 거기에는 한 시대의 주류와 대항하면서 자신만의 외따로운 개성적 사유와 감각을 통해 새로운 상상적 질서를 구축하려는 시인 자신의 열망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서정시의 위의(威儀)를 다시 세워 보려는 고전적 열망과 깊이 닿아 있는 어떤 것일 터이다. 또한 서정시가 시간의 흐름에 의해 완성되고 그것을 향수하는 데에는 일정한 시간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시간예술로서의 서정시의 속성 또한 분명해 보인다. 타고르의 시 '저녁의 노래'는 어떠한가. "오래전에, /내가 아직 어렸을 때,/저녁이 그 평안함으로 대지를 덮듯이/그대는 그대의 사랑으로 나를 감싸주었다./저녁이 그 마력을 가르쳐준 것이었을까?/이는, 당신이 나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별들이 모두 나타나기에./그대는 내 자신의 숨겨진 보물을 내게 보여주고 당신 자신은 한 마디도 노래 부르지 않고, 오늘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노래를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이는 서정시가 탈환하는 시간이 얼마나 근원적인 것인가를 보여주는 더없는 사례일 것이다.다음 시를 더 읽어보자.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어요./당신이 안 오신다면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겠어요?/당신이 오신다면 또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겠어요?"(J. 루미, '4행시 888번') 루미의 언어는 부재를 통한 현전의 가능성을 통해, 텅 비어 있지만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떤 존재를 향한 갈망을 드러낸다. '봄의 과수원'은 꽃과 술과 촛불로 채워져 있다. '당신이 안 오신다면' 이런 것들이 소용없겠지만, 혹시라도 '당신이 오신다면' 다른 차원에서 이런 것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봄의 과수원'은 어떤 이유에서건 '당신'의 부재를 완성하는 사랑의 비밀 지도를 품고 있는 셈이다.어쨌든 서정시는 시간을 대상으로 시간을 원질(原質)로 하는 언어예술이다. 그 순간이란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 나타난 '충만한 현재형'일 테니까 말이다. 그 충만함이 우리로 하여금 시간의 가혹한 흐름 속에서 잃어버린 서정시의 원리를 회복하게끔 유도해 갈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가능한 것 역시 그 안에 호환할 수 없는 예술적 아우라가 출렁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출렁임과 스며듦의 순간이 바로 우리가 서정시의 비밀지도를 읽는 빛나는 특권의 시간이 아니겠는가./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1-02-16 유성호

[수요광장]쿡방·먹방 열풍에 자극적인 미각 변화, 괜찮을까?

방송에 유튜브까지 온통 요리예능식생활이 삶의 모든 것인 양 과하다무엇보다 단짠매운 맛에 길들여져시청률만 좇다 국민건강 해칠 우려집밥을 즐기는 가족 모습이 그립다쿡방과 먹방의 전성시대다. 공중파 방송뿐 아니라 유튜브까지 온통 요리 예능이 넘쳐난다. 채널을 이리저리 아무리 돌려봐도 요리 예능이 판을 치고 있다. TV를 켜기가 싫어질 정도로 넘쳐난다. 물론 직접 요리할 형편이 못 되거나 음식을 맘껏 먹기 어려운 누군가는 요리 예능을 보며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다. 애써 이해하자면 혼밥이 대세인 현대인의 라이프 패턴을 반영한 시대적인 흐름일 수도 있다. 코로나19 방역지침으로 집콕 신세를 면치 못하는 사회적 여건도 요리 예능 편성을 부추겼을 것이다.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식생활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인 듯 먹는 요리 프로를 과하게 많이 다루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 폐해가 염려스러울 정도다. 혹자는 폐해랄 것까지 있느냐며 반문할 수 있지만, 시청자들에게 주는 부정적인 영향은 분명해 보인다. 대중 매체의 현실 구성 효과를 규명한 거브너의 '배양이론(cultivation theory)'에 의하면 'TV 시청'과 '세상에 대한 인식'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폭력물을 많이 시청하는 사람일수록 세상을 폭력적으로 인식하는 등 매체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도한 요리 예능의 영향 역시 그리 간단치가 않을 것이다.무엇보다도 입맛 기준의 변화이다. 방송에 노출된 달고 짜고 매운 자극적인 맛에 길들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요리 예능과 대중의 입맛 변화에 대한 인과관계를 단정적으로 언급하기는 한계가 있겠지만, 대중적 미각 기준이 바뀌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시중 음식 대부분이 달고 짠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식재료에 양념은 가능한 적게 넣는 것을 즐긴다. 원재료의 식감을 살리기 위해서다. 음식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지만 필자의 요리는 자녀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너무 올드하고 밍밍한 맛이라며 '엄마나 많이 드세요'라는 식이다. 이미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탓에 집밥을 밍밍하게 느낀다. 미각 기준도 시대에 따라 바뀐다고 하지만 실은 미각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리 예능에 빗대어 과하게 단맛 중심인 음식 트렌드를 장황하게 말했지만 실은 식문화에 대한 철학적 부재가 만들어낸 산물을 지적하고 싶다. 요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유행 음식에 대한 성찰도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음식에 '설탕 몇 스푼'이라는 간편 요리법을 개발(?)한 유명 셰프 탓인지, 이를 부추기는 방송 탓인지 잘 분별이 안된다. 암튼 요즘 시중 음식이 대체로 너무 달고 짜서 건강을 해칠 우려가 없다고는 못할 것 같다.더 심각한 문제는 방송 프로그램의 획일성이다. 프로를 다양하게 제작하지 않고 오로지 시청률과 트렌드만 좇아 유사 프로그램을 양산하고 있다. 간혹 요리 프로에 새로운 시도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형식을 나름 덧붙이고는 있지만, 몇몇 유명 셰프나 요리로 잘 알려진 연예인 위주의 단순 구성을 못 벗어나고 있다.과도한 요리 프로그램이 국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온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앉아 맛을 이야기하는 달콤하고 느린 일상을 즐기며 소통하는 과정 없이 그저 먹는 행위·맛만 강조하는 먹방식 요리 프로그램이 식탐 문화를 조장하고 비만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 문제도 예사롭게 넘길 일은 아니다.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초고도비만 인구 비율이 특히 10~30대 사이에서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 또한 고민해봐야 할 사회적인 문제다."방송사는 왜 음식을 다루는가. 현재의 음식문화가 가진 딜레마는 무엇인가에 대한 실체적 고민 없이, 단지 시청률에 급급해 현란한 테크닉으로 현실을 호도하고 있다"며 음식 프로를 호되게 비판하는 어느 음식 평론가의 한마디가 생각난다. 그저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이유로 몸에 안 좋은 설탕과 조미료를 듬뿍 넣는 조리법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보다 가족이 식탁에 모여 정을 나누며 집밥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싶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1-02-09 김정순

[수요광장]나의 시대정신

한 시대 모든 영역 관통 이념·태도이승만 '통일' 박정희 '경제발전' 등대통령의 정책공약은 '협의의 반영'그렇다면 다음 정권의 시대정신은기득권 놓은 공명정대·언행일치 ? 시대정신이란 한 시대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모든 영역에 관통하는 정신이나 이념 태도를 말한다. 시대정신이라는 개념은 18세기 각 유럽 민족국가의 역사발전 단계에 따른 민족정신과 결부시키며 헤겔, 괴테 등이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민주주의와 선거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대통령이나 지도자의 자격 중 시대정신을 갖춘 사람을 뽑는 것이 출신, 경력, 돈, 인성, 정책, 공약, 홍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국민들 사이에 자리 잡아가고 있다.30여년 한 세대를 관통하는 광의의 시대정신이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는 협의의 5년 단위 대통령 임기 중에 필요한 협의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정책공약을 일컬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시대정신을 가장 잘 갖추어 이를 제대로 수행하면 국민들에게도 행복한 것이고,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사람을 잘못 뽑았을 때 그 불행은 국민들에게 돌아온다.해방 이후 통일과 친일청산, 토지개혁이 시대정신이었던 시절의 이승만 대통령, 민주적 리더십의 강화와 경제 발전이 시대정신이었던 시절의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정부 수립, 기업 구조조정 등 경제 내실화가 시대정신이었던 시절의 노태우·김영삼 대통령, 정권교체와 남북평화 정착 및 지역주의 극복이 시대정신이었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경제발전과 일자리 창출, 경제민주화 복지국가가 시대정신이었던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적폐 청산, 남북관계개선, 일자리 창출, 복지국가 양극화 해소 주택문제해결이 시대정신인 문재인 대통령! 이분들에 대한 평가는 국민들과 역사가 냉혹히 평가할 것이다.이렇듯 우리 정치사에서 어떤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거대한 시대정신이라는 흐름이 있다. 국민들은 시대정신을 가장 잘 체득하고 있는 지도자감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간다. 물론 국민들이 제대로 뽑은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으며, 기대에 충분히 부응한 대통령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어쩌면 이러한 권리와 책임이 사실은 뽑힌 대통령 이전에 뽑은 국민들에게 있는 것이다.국민들이 바라는 다음 정권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최근 몇 년간의 대학 교수회가 선정한 사자성어들을 살펴보면 다음 시대정신이 무엇인가를 반추해 볼 수 있다. 2017년 파사현정(破邪顯正)-사도를 깨고 정도를 나타냄, 2018년 임중도원(任重道遠)-맡은 바 임무는 무겁고 실천할 길은 멈, 2020년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너는 틀림, 내로남불 등이다.2022~2027년 우리 대한민국을 관통할 시대정신은 무엇일까?교수들의 사자성어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정리해보면 (1)공명정대(公明正大)-부패하지 않고 기득권을 타파하며 밝고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2)실사구시(實事求是)-좌우이념, 당리당략,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으며 국민들의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느냐가 모든 정책 결정의 기준이 된다. (3)언행일치(言行一致)-불필요한 갈등과 비용을 줄이며 신용도 높은 사회로 가기 위한 대한민국 모든 분야 모든 국민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정책적으로는 (1)권력기관 간 상호감시, 고위공직자 및 사회지도층 부패에 엄벌, 지방자치로의 분권강화, 중대재해기업처벌 강화, (2)4차 산업혁명 사회에 맞는 경제, 일자리, 자영업자, 비정규직 대책 및 복지 강화, 기본소득 기반구축, 실용적 남북관계개선, 교육의 공정성과 실용성 확보, (3)고위공직자 1주택 이하 승진 인사 철저히 반영, 부동산 백지신탁, 정치인 매니페스토 공약이행률 정당공천 반영제도화, 사회지도층 주택소유 탈세 여부 범죄사실 등 자격요건 강화, 언론의 가짜뉴스 징벌적 손해배상 및 처벌강화, 유권자와 국민도 언행일치 등이 다음 정부의 시대정신에 필요한 몇 가지 대표적인 정책들이 아닌가 생각한다.이러한 시대정신을 구현할 철학과 경험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 누구일까? 국민들은 고민하고 있다. 또한 나는 이러한 시대정신에 저항하는 기득권은 아닌지, 시대정신에 부합하기 위해서 내가 내려놔야 할 기득권은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겠다. 정치인 고위공직자에게는 손가락질하면서 정작 나는 어떤가? 되물으며 이 글을 마친다./김문수 경기신용보증재단 전략이사김문수 경기신용보증재단 전략이사

2021-02-02 김문수

[수요광장]마을공동체와 코로나19

감염병 종식돼도 삶의 변화는 가속일·가정 양립시대 돌봄·교육등 해법 시설이 아닌 공동체의 몫 인식 확인마을은 중앙·지방정부의 연결지대현장 소통·합의주체 정책성공 열쇠코로나19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변화는 너무 크고, 깊어서 코로나19가 깨끗이 종식된다고 해도 이전 생활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전으로 복귀가 어렵다는 의견 중 하나는 변화의 폭과 깊이뿐만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 때문이다. 변화는 팬데믹시대를 겪지 않았어도 가야 할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변화의 속도를 가속화하여 미래를 앞당겼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적극 공감하는 주장이다.고령화, 일과 가정의 양립시대를 살아가는 돌봄 문제 해법이 무엇인지를 코로나19는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대규모 시설로 노인 돌봄을 해결할 수 없음을 확인했다. 시설이 아닌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 어르신을 보살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아이 돌봄 역시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소규모 돌봄 시설과 함께 마을공동체의 역할에 많은 시민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인식이 이러한 미래시간의 앞당김을 보여준다.돌봄 문제를 넘어서 마을공동체는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힘으로 작용한다. 마을은 사적 공간인 가정과 공적 영역인 국가와 지방정부를 연결하는 중간지대이다. 코로나19 대응과 피해에 대한 지원, 회복을 위한 많은 정책들이 국가 차원에서 결정되고 지방정부를 통해 각 시민들에게 이르는 길목에 마을이 있다.긴급하게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구체적 정책 내용을 설계할 때 답은 현장에 있다. 마을 현장에서 정확한 실상이 제공되고 주민들 사이의 의견 합의가 신속하게 이루어질 때 정책은 성공한다. 또한 정책 집행과정에서도 마을공동체의 힘은 발휘된다. 공적마스크 공급 과정이나 긴급 지원이 필요한 주민의 발굴, 방역과정에서 피해를 본 업소 선정, 피해 보상 지원금 지급 과정 등을 복기해 보면 마을공동체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다.지역 주민들의 삶과 생활이 활발한 소통을 통해 이웃과 공유되고 이러한 과정을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이 책임 있게 추진해나간다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당연히 정책 집행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추진될 수 있다. 마을공동체가 갖는 힘이다.복지 분야로 눈을 돌려봐도 마을공동체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동사무소를 행정복지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사회복지사를 추가로 배치한다고 복지 사각지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안타깝고 불행한 사연들이 이어지고 있다. 답은 간단하지만 우리는 어렵게 그 길을 가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고 서로를 보살필 때 복지 사각지대는 사라진다.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되면 매년 반복되는 불행한 일들을 예방할 수 있다.최근 몇몇 지역에서 4년마다 수립하는 지방정부의 지역사회보장계획을 마을단위까지 확장하여 수립하고 있다. 마을 주민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복지 분야에서부터 마을공동체의 힘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활 현장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정책성과는 높아질 것이다. 초기 과정에서는 시행착오가 없지는 않겠지만 동 단위 지역사회보장 계획은 지방정부 단위의 정책보다 훨씬 좋은 성과를 보여줄 것이다.교육 분야도 학교와 마을공동체와의 협업에 주목하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이 확산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적응하는 다양한 직업교육을 담장에 갇힌 학교 안에서만 진행할 수 없다. 직업 활동이 이루어지는 마을로 나와야 하며 마을에 있는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마을에는 수많은 자원이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생활하고 있으며 문화·역사자원을 비롯하여 생태·환경 자원도 활용할 수 있다.코로나19 위기를 통해 주목을 받고 있는 마을공동체의 중요성은 이미 20여년 전부터 제안되어 왔다. 위기는 그 시간을 앞당겨 주었을 뿐이다.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돌봄 마을, 복지 사각지대가 없는 복지 마을, 학교와 마을이 협력하는 마을교육공동체가 코로나19를 극복하면서 만들어질 것이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인식의 전환은 코로나19가 준 교훈이다./유문종 수원2049시민연구소장유문종 수원2049시민연구소장

2021-01-26 유문종

[수요광장]"그래도 애써보자" 말의 무력함에 대하여

양부모 학대·미혼모 아이 창밖던져사건속 얘기는 일상과 꿰어져 있다살아내야하는 것은 온통 개인의 몫누군가의 가난·박탈·죽음엔 침묵가진것들에 욕망 크기는 안줄인채부모는 이혼했고 아픈 형제를 간호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휴학의 이유였다. 1년 뒤 그는 복학했다. 부모는 각자의 가정을 꾸렸고 간호는 여전히 그의 몫이다. 자취하는 친구 집에 몇 명의 친구가 모여 함께 지냈다. 휴학하던 시기에는 우울증으로 상담을 받았고 복학할 때에는 디스크 치료까지 받게 됐다.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거나 과제를 하기 위해 앉아 있는 시간도 그에겐 고통스러웠다. 코로나19가 잠깐 주춤하던 시기, 대면 수업이 열렸다. 버스를 타고 학교 오는 길, 통증을 감당할 수 없어 중간에 택시를 탔다. 돌아가는 길에도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표정이 없었고 그만큼 이야기는 담담했다. "고생했네"란 말로 시작해서 "그래도 애써 보자"란 말로 끝낸 위로를 건넸다. 그 '말'의 순간이 문득, 그렇지만 자주 생각났다.뉴스를 보다 한 이야기가 오래 남았다. 집에 보호자 없이 남겨진 8살, 10살 형제는 화재를 피하지 못했고 8살 동생은 깨어나지 못했다. 서른 살 젊은 엄마는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되어 검찰에 송치됐다. 스물에 첫 아이를 낳은 엄마는 남편 없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매달 수급비를 받으면서도 종이가방을 접고 포장작업을 했다. 지난해 7월에는 그마저도 일이 끊겼다. 종이가방을 접고 포장작업을 해서 버는 60만원은 더 이상 마련할 수 없었다. 첫째 아이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판정을 받았고 우울증을 앓던 엄마는 수차례 아동학대로 신고당했다. 주어는 매번 다르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사건 속의 이야기와 일상이 보이지 않는 실로 꿰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 '미혼모 신분으로 아이를 기를 수 없어 입양기관에 보낸 아이가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했다', '자택 화장실에서 출산한 둘째 아이를 4층 창밖으로 던져 숨지게 한 이십대 엄마가 7살 아이와 함께 도주하다 잡혔다',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연명치료를 포기한 41살 엄마가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결국 인공호흡기를 떼어 사망했다'는 기사들 말이다.살아내야 하는 것이 온통 개인의 몫이다. 돌봐줄 부모를 갖는 것,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고 과제를 해내고 팀 프로젝트에 제 몫으로 참여하고 제때 졸업하고 취업해서 돈을 버는 것이 온전한 개인의 능력이 아님은 오늘의 일상을 통해 증명된다. '그럴만한 노력의 결과로 얻은 성공'은 그 반대, '변명의 여지 없는 뒤쳐짐', 그래서 '연민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결과'란 무의식적 신념도 함께 만들어 냈다.온종일 일해도 어떤 일들은 최저 시급에 머무른다. 아무리 원해도 누군가는 배우고 안정된 직업을 갖는 것이 어렵다. 개인의 나태와 무능이 아니라 불운을 개인의 능력으로 치부하는 구조의 나태와 무능이 더 큰 원인이라는 것을 이젠 우리 모두 안다. 지나치게 화려한 공공건물들과 굳이 필요없는 더 빠른 데이터 통신망의 시절에도, 걱정 없이 배우고 큰 어려움 없이 자신과 가족을 돌보며 살아 내기 어려운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아파트 보유세 907만원이 4천754만원이 됐다는 분노는 그렇게 폭등한 세금을 가능토록 한 가파른 집값 상승과 그 이면의 목소리, 그러니까 누군가의 가난, 누군가의 박탈, 누군가의 죽음에는 침묵한다. 가진 것들에 대한 욕망의 크기를 줄이지 않은 채, 한 사람을 처벌하고 관련 법을 개선하자는 말로 쌓은 분노와 "그래도 애써보자"란 위로만으론 그이들의 비통에 닿을 수 없다./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2021-01-19 김명하

[수요광장]네비게이션이 필요한 교통방송

서울시장의 영향력하에 있는 TBS폭설 방기·1(일)합시다 중립 논란스마트폰시대 존립 근거 희박한데 정치적 편향성 노골화에 잇단 지적거짓논리 반복 객관적사고 어렵다지난 6일 폭설이 내렸을 때 TBS교통방송(이하 TBS)의 방송내용에 대해 야권 정치인이 문제를 제기했다. 긴급 상황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통방송의 역할을 방기하고 시민에게 '고통'을 주는 방송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TBS는 폭설에 대응하여 교통정보를 충분히 제공했다고 해명했다. 기본편성표만 보고 실제 방송내용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을 왜곡했다고 반박했다.'#1(일)합시다'도 논란이다. TBS는 자사의 유튜브 구독자 증가를 위한 홍보영상이라고 설명한다. 야당에서는 4월 보궐선거를 앞둔 선거운동이라고 주장한다. TBS 출연자가 등장하여 푸른색의 1번 민주당을 '찍으라'고 노골적으로 선동한다는 것이다. TBS의 책임과 정치적 중립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TBS는 1990년에 출범했다. 경제성장으로 자동차가 급속도로 보급되었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주로 교통정보와 음악을 내보냈다. 세월이 변했다. 이제 운전자들은 네비게이션을 통해 교통정보를 얻는다. 교통방송의 존립근거가 희박해진 것이다. 공공조직은 탄생하기도 어렵지만 한번 만들어지면 쉽게 없어지지도 않는다. 조직 자체의 생존이 조직의 목표가 되어버린다. 본래의 설립 목적을 벗어나 사업 범위를 확대한다. FM방송에서 시작한 TBS는 케이블TV와 지상파DMB에 진출했고 영어FM과 중국어방송도 실시한다.여기에 정치인들의 욕심이 더해진다. 방송은 일상생활의 일부다. 정치인들이 방송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은 어느 정파를 막론하고 동일하다. TBS는 서울시장의 영향 하에 있다. 청계천 개발이 칭송되었고, 새빛섬이 찬양되었다. 정치적 편향성이 노골화된 것은 고 박원순 시장부터라는 것이 정설이다.친여 성향의 사람들이 프로그램 진행자가 되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대표적이다. 동시간대에 청취율이 가장 높지만 동시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가장 많이 받는 시사 프로그램이다. 이용수 할머니에게 '기자회견 냄새가 난다'(주의)가 대표적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김어준이 '수많은 거짓말'과 '온갖 음모론'을 양산하다고 지적한다. '가짜' 뉴스공장이라고 비판한다. 사실을 왜곡하고 편파적인 내용을 통해 청취자를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하여 청취율을 올리는 것이다.서울시도 이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TBS를 산하기관에서 출연기관화하여 재단으로 전환했다. 방송의 독립과 운영의 자율을 보장한다는 모양새와 명분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관리감독의 최종 책임은 시장에게 있다. 이를 외면하면 직무유기다. 지난 6일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재단 이사장을 선임했다. 이사장의 임기는 3년이다.TBS는 서울시가 재원을 부담하고 운영하지만 가청지역은 경기도와 인천시를 포괄한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전파는 행정구역의 경계를 초월한다. 경인지역의 운전자들도 주요 청취층이다.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경인지역 주민들도 혜택을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에 노출되는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경기도는 유일하게 지역방송국이 없는 광역자치단체다. 춘천, 청주에도 TV방송국이 있다. 인구 100만이 넘는 수원에는 방송국이 없다. TV는 물론 라디오도 없다. 경기방송이 2020년 3월 사업권을 반납한 이후 지역방송이 사라졌다. 경기도의 방송, 최소한 경기방송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라디오 방송이 있어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경기도의회와 경기도에서도 경기교통방송에 대한 타당성 검토용역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문화의 활성화를 위한 경기방송의 필요성은 적극 공감한다.경기도는 서울을 둘러싸고 있다. 경기도 전역에서 동일한 주파수로 방송을 송출하면 서울과 인천도 가청권에 들게 된다. 경기도 방송이지만 수도권방송이 되는 것이다. 방송을 이용하려는 욕망이 경기도 기반의 정치인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렇지만 TBS와 같은 논란이 반복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거짓과 편향된 논리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거기에 동화되고, 그러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사고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TBS에 대한 우려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1-01-12 이영철

[수요광장]우생마사(牛生馬死), 우보만리(牛步萬里)

새해는 늘 새롭고 다른 설렘의 시작남탓 말고 정성을 다해 살아갑시다씨줄, 날줄 엮인 세상, 일체유심조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어요소의 우직 행보로 '여여한 세상'을새해 새 아침입니다. 붉게 솟구친 햇덩이가 온누리를 더없이 따뜻한 손길로 살포시 보듬어 감쌉니다. 새해는 늘 새롭고 다른 설렘으로 안겨오지요. 지난 한해는 '코로나19'로 우리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지난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이른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의 의미를 지닌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선정됐지요. 잘못을 서로 남 탓으로 돌리고, 상대를 비난하는 싸움만 무성했다는 방증입니다.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도 난무했지요. 그러나 그치지 않는 비는 없는 법입니다. 과거에 매달리면 밝은 내일은 보이지 않지요.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는 꿈과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겠는지요.새아침 문득, 화가 이중섭의 흰 소(白牛)가 떠오릅니다. 백의(白衣)민족의 굳은 의지와 늠름한 기상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유명하지요. 흰 소는 설산(雪山)에서 맑은 물과 향기로운 풀만 먹는 신성한 동물로, 꿈속에서 만나면 행운이 깃든다고도 합니다. 소는 한 식구와 같은 노동력의 핵심이었지요. 유순한 데다 우직하고 끈기 있게 일을 잘해 농경시대에는 최고의 역용(役用)동물이었습니다. 논밭을 파 엎고 무거운 짐을 운반할 때는 열 사람 이상의 몫을 해내곤 했지요. 그런가 하면 애경사가 생겼을 때는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든든한 재산이 되었습니다. 이제 농경의 기계화로 옛이야기가 됐지만, 저에게 소는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오르막 내리막 가리지 않고 늘 뚜벅뚜벅 걸어가라는 가르침을 준 존재였지요.학창 시절, 시골에서 머슴처럼 소를 키우고 농사일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는 소의 얼굴은, 힘겨움 속에서도 포근함이 가득한 어머니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둠 속 워낭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린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소의 평화로운 얼굴은 삶의 질곡을 온몸으로 견디신 아버지 모습이었지요. 입에 거품을 물고 달구지를 끌거나, 어금니를 질끈 물고 밭을 갈고 질펀한 논의 굴곡진 바닥을 써레질로 고르는 소의 뒤태는 아버지 뒷모습과 아주 비슷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논밭으로 달려가 부모님과 힘든 일을 묵묵히 해내곤 했지요. 잔꾀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습관을 소에게 배웠고, 제 삶의 소중한 자양분이 됐습니다.'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말이 있지요. 말은 거센 물살 속에서 질주 본능으로 죽어라 헤엄치지만 제자리를 맴돌다 죽고, 소는 물살에 몸을 맡기면서 조금씩 헤엄쳐 결국 뭍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여름에도 홍수 때문에 물에 떠내려간 소가 수십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있는 것을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지요. 내 능력을 과신해 거센 물살을 거스르면 말처럼 익사하기 쉽고, 물살에 몸을 맡기면서 뭍으로 향해 가면 소처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했습니다. 호시우보(虎視牛步)라는 말이 있지요. 호랑이가 먹잇감을 노리는 것처럼 날카롭게 상황을 판단하되 황소처럼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저는 호시는 못돼도 적어도 우보로 걷고자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올해는 우직하게 걸어가는 우보만리(牛步萬里)로 남 탓하지 말고 정성을 다해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어떻게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면 더 나은 세상이 열리는 법이지요. 세상 모든 형상은 씨줄, 날줄로 엮어져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여러 상황의 흐름과 운이 조화를 이루면 좋겠지요. 일체 유심조(一切 唯心造)라,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 했습니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지는 법, 기쁘고 보람이 있을 일부터 찾으면 세상이 달리 보이지 않겠는지요. 가슴 속 꿈과 희망이 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풍요로운 열매를 맺어 서로 나누는 넉넉한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소박한 삶의 성취가 기쁨 되고 감동이 되는 여여(如如)한 세상이 되기를…./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1-01-05 홍승표

[수요광장]2020년의 언론과 문학

코로나19가 '삶의 상수'가 된 요즘 언론을 보면 불균형보도 사례 심각K방역·검찰개혁 등 편향이 판친다문학은 집콕환경 영향 그나마 선전 새해는 소띠해 牛步虎視하길 대망2020년은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시작하여 그것으로 저물어간다. 기억할 만한 대소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은 곁가지에 불과했다. 이렇게 감염병 바이러스는 우리를 한 해 내내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삶의 낯선 변수가 아닌 익숙한 상수(常數)가 되어가고 있다. 올해 우리는 방역이라는 미증유의 과제로 정말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의료진과 정부와 민간이 잘 협력하여 우리는 서구 선진국들의 무력한 방역 체계를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태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과 경제불황으로 인한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지만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지금도 하루에 수만 명의 확진자가 지금도 나오는 데 비하면,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런데 많은 언론은 다른 국가와의 비교는 점점 줄여가면서 우리의 방역 초기와 현재 수치를 비교하면서 K-방역이 망했다느니 하는, 누가 보아도 한쪽으로 치우친 정략적 언어를 기사로 내보내고 있다. 피로감과 불안감에 공포감까지 얹는 것은 방역 최전선에서 혼신을 다하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정치적으로 핫이슈였던 검찰개혁에 대해서도 많은 언론은 선택적 정의에 따른 자사(自社) 이익의 보도 관행을 버리지 못했다. 현실정치 안에서 어떤 힘들이 충돌할 때는 내적 논리의 필연성과 진행 과정의 적법성 등을 잘 따져 균형 있게 보도해야 할 터인데, 많은 언론은 아직도 무차별적 침소봉대와 저주의 악담으로 자신들만의 불가피한 생존 논리를 첨예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 일간지에서 데스크와 상치되는 칼럼을 썼다고 논설위원이 좌천되고 사표까지 내게 된 것이 그 극명한 사례일 것이다. 유형무형의 광고주들과 긴밀하게 얽힐 수밖에 없는 생존방식이 다양한 기사들의 갈등적 공존이 아니라 특정 세력의 유불리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기사들의 일률적 도열을 초래한 것이다. 어쩌다가 우리 언론 생태계가 이렇게까지 극심한 불균형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앞으로 이러한 균형을 찾는 것도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임이 분명해진 한 해였다.대규모 청중이나 관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니 한국문학은 그래도 코로나 시대의 직접적 피해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아동 청소년과 국내소설 부문은 작년 대비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고도 한다. 연극, 영화, 뮤지컬 같은 분야에 미안할 만도 하다. 집에만 있어야 했던 강제적 환경이 책을 가까이 하게끔 했고, 그만큼 문학이 선호되는 빈도가 늘어났을 수도 있다. 내용적으로는 특별히 페미니즘의 주류화가 선명해졌고 사회적 약소자들에 대한 발견과 탐색이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일국 차원의 '노동', '젠더', '몸'의 범주를 넘어 국경을 넘어서는 난민이나 디아스포라 문제에까지 관심을 가짐으로써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으로의 끝없는 도전과 성취를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보편성과 특수성을 잘 결합하여 세계무대에서 두루 읽히는 성과를 내기를 소망해본다. 올해에도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인 많은 어른들이 세상을 떠났다. 시인 문덕수, 소설가 남정현, 천승세, 조해일, 현길언, 박기동, 정소성, 비평가 신동욱, 김종철 선생 등이 타계하였다. 평안하시길 빈다. 또한 올해는 한국 역사의 물줄기를 근본에서부터 바꾼 6·25전쟁, 4·19혁명, 전태일 분신, 광주민주화운동 등이 동시에 70주년, 60주년, 50주년, 40주년을 맞아 근대사를 성찰하게끔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아직도 미해결인 역사적 쟁점과 그로 인한 진영 간 분쟁은 한국 사회의 갈등적 국면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갈 길이 멀다.이제 의학적으로 코로나 시대가 종식된다 하더라도 이전의 대규모 스포츠 관람이나 군중집회 같은 방식은 2020년 이전의 역사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그야말로 전혀 새로운 문화 형성의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새해 신축년은 소띠 해다. 우보호시(牛步虎視)라는 말이 있거니와 소처럼 느리게 걸으면서 호랑이처럼 단호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언론과 문학을 대망한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의 종언과 함께 근원적인 성찰과 예지를 통한 치유와 회복의 시대가 열리기를 희원해 본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12-29 유성호

[수요광장]잃어버린 2020년을 돌아보며

올 한해는 세계가 코로나19로 고통마스크를 찾느라 허둥댔던 기억뿐연말 나눔의 김장·봉사 등 사라지고끝모를 정치권 갈등·언론 편향보도내년 이맘때는 다시 웃음 가득하길어느덧 2020년 해가 저물고 있다. 연말이면 늘 그렇지만 올해는 유독 무엇을 하면서 1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마스크는 챙겼는지 허둥댄 기억밖에 없다. 지난 21일엔 서울시와 경기도, 인천시가 23일 0시부터 내년 1월3일까지 5인 이상 사적 모임을 금지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3단계로 격상되는 게 아닌지, 긴장감이 고조된다.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사정에 이 고비를 이겨 낼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혹시나 하면서 연말 특수를 조금은 기대했을 외식업자들의 고충은 얼마나 클지, 이들의 애로가 가늠된다는 위로의 말이 무색할 것 같다. 그렇다. 올 한 해는 나라 안팎, 모두가 코로나19로 고통스럽다. 오죽하면 2020은 '잃어버린 1년'이라고 했을지 격하게 공감된다.세계는 지금 코로나와의 전쟁으로 잿빛 공포를 경험하고 있다. 경제적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올해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을 -4.2%로 예고했다. 더 큰 문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가가 코로나 백신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백신을 구하지 못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깜깜하고 긴 터널을 건너고 있다. 코로나 장기화로 피로감과 고립감으로 우울감이 깊어진다고 한다. 이처럼 코로나는 우리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으로 내몰면서 연말 세시 풍속까지 바꿔놓고 있다.실제로 연말 이맘때면 어김없이 등장, 뉴스를 장식하던 장면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취를 감추었다. 빨간 장갑을 끼고 단체로 오손도손 모여 앉아 김치를 담가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는 풍경은 볼 수 없다. 대기업의 임직원들이나 봉사 단체 회원들이 좁은 골목길에 긴 줄로 서서 땀을 흘리며 연탄을 나르는 모습도 사라지는 풍경 중의 하나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그 앞에서 돈을 넣으려고 줄 서는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이쁜 손은 보기 힘들 것이다.이 모두가 코로나 감염 우려 때문에 사라지는 풍경이다. 사회가 아무리 어려워도 연말 뉴스를 통해서 전달되는 크고 작은 선행들은 우리에게 큰 감동과 위로를 준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가슴을 훈훈하게 녹이기 충분하다.그런데 올해는 우리 마음을 녹이는 따듯한 풍경이나 나눔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갈등으로 얼룩진 불편한 뉴스만 넘쳐난다. 정치권의 끝 모를 진영 싸움에 여·야 갈등 양상은 해가 가도 끝낼 기미가 없어 보인다.갈등이 정치뿐일까? 언론의 편향적 보도도 갈수록 수위가 높아 간다. 설상가상, 얼마 전에 국민적 관심을 집중시킨 '성범죄자 조두순'의 출소를 둘러싼 장면은 가뜩이나 편치 않은 우리 사회를 더 불편하게 했다. 그야말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속죄하는 모습 대신 마치 유명인사라도 되는 양, 뒷짐 지며 인사하는 '조두순'의 출소 장면은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했다. 게다가 국민적 불안과 분노 사건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유튜버의 보도 행태는 더 불편했다. 24시간 '조두순'에 대한 밀착 감시가 얼마나 잘 이루어질지 염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성범죄는 본능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범죄의 유형 중에 재범률이 특히 높다는데 관련 대책은 또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하는 건지 답답할 뿐이다.올 한해 우리 사회 이슈나 주요 키워드 중에 세계적인 쾌거로 국민을 기쁘게 해준 좋은 뉴스도 많은데 필자가 혹여 너무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BTS'의 세계적인 성공,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그랬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의 자랑스러운 쾌거는 국민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구세군 종소리가 애달픈 연말이다. 저만치 멀어져가는 2020년 끝자락에서 필자 자신을 되돌아본다. 올해는 필자에게도 어려운 일이 많았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고 이들에게 따듯한 손길을 내미는 필자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훈훈하고 행복해진다. 올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후회나 허탈감 대신 뿌듯함이 느껴지는 마무리를 다짐하면서, 내년 이맘때는 우리 모두 눈물 나도록 웃을 수 있는 기쁨이 가득하기를 소망해 본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12-22 김정순

[수요광장]방송을 위한 광고, 광고를 위한 방송

지상파 메인뉴스는 1·2부로 쪼개고건강프로엔 연관식품 편법 뒷광고공신력 뒷전 수익증대 위한 눈가림시청자 다 아는데… 연계편성 반복유튜브에도 밀려 신뢰회복만이 생존#1. MBC, SBS의 저녁 메인 뉴스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중간광고 때문이다. 1부가 끝나기 직전에 자막을 통해, 또는 앵커를 통해 잠시 후 '흥미 있는' 뉴스가 이어진다고 예고한다. 광고 수익을 위해서는 시청자 이탈을 방지해야 한다.#2. 지상파방송 건강정보 프로그램. 의사, 약사 등의 전문가와 연예인들이 출연한다. 성인병, 과체중, 스트레스 등의 원인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예방책을 논의한다. 효과적인 건강식품도 소개한다. 방송이 끝나고 채널을 돌리면 옆의 홈쇼핑 채널에서 '신기하게도' 방금 지상파방송에서 소개한 건강식품을 판매하고 있다.#3. 우리나라의 홈쇼핑 채널은 모두 17개다. 법적으로 TV홈쇼핑과 데이터홈쇼핑으로 구분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같은 홈쇼핑이다. 유료방송(지역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IPTV)은 한 채널 건너 홈쇼핑을 편성한다. 특히 지상파방송 사이의 채널(6번, 8번, 10번, 12번)에는 홈쇼핑이 자리잡고 있다.2020년은 우리나라에 TV방송이 본격 도입된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1961년 12월31일 KBS는 TV방송을 시작했다.장면1과 2는 지상파방송의 위기를 보여준다. 지상파방송의 광고수입은 급감하고 있다. 수익 증대를 위해 온갖 편법과 꼼수가 동원된다. 그 결과 방송의 공신력은 추락하고 있다. 단기 이익에 급급하여 장기 생존은 더욱 어려워진다,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이다.지상파방송의 중간광고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스포츠 중계방송은 예외다. 유료방송만 중간광고가 허용된다. 중간광고는 말 그대로 프로그램 중간에 삽입되는 광고다. 지상파방송은 하나의 프로그램을 1부와 2부로 나눈다. '쪼개기'를 통해 별개의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그 사이에 광고를 내보낸다. 실질적인 중간광고다.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에서 시작한 쪼개기가 이제는 메인 뉴스에도 도입되었다.이른바 '연계편성'은 지상파방송에서 소개한 상품을 같은 시간에 인접한 홈쇼핑 채널에서 판매하는 것이다. 종합편성채널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지상파방송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이다(장면3). 지상파방송 사이에 홈쇼핑을 편성하는 유료방송, 매출증대를 기대하는 홈쇼핑, 그리고 수익확대에 고심하는 지상파방송 등 3자의 이해관계가 만들어냈다.중간광고와 연계편성을 통해 지상파방송의 수익은 조금 증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너무나 크다. 뉴스 앵커가 '잠시 후에 2부에서는'을 운운하면 그것은 뉴스가 아니다. 광고 멘트가 된다. 한때 국민들은 지상파방송의 메인 뉴스를 가장 신뢰했다. 그 바탕에는 방송사와 뉴스를 전달하는 앵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의 연계편성 효과는 매우 컸다. 시청자들이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연계편성으로 인해 시청자들은 건강정보가 상품판매를 위한 수단이었음을 깨달았다. '당했다'는 생각과 배신감을 느낀다. 시청자는 예전처럼 지상파방송을 믿지 않는다.이제 방송은 '유튜브', '넷플릭스' 등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동영상서비스와 경쟁하고 있다. 이들은 통신으로 분류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방송과 통신의 차이가 없다. 같은 동영상이다. 정보를 얻기 위해, 오락을 위해 소비할 뿐이다. 지상파방송 독과점시대는 이미 끝났다. 오히려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밀리는 형국이다. 지상파방송은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지상파방송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그 해답은 방송 본연의 목적에서 찾을 수 있다. 방송법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강조한다. 방송과 통신(인터넷)의 동영상서비스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송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다. 방송의 독립은 정치적, 상업적 독립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정파의 이익을 초월하고, 상업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뉴스가 필수적이다. 일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가짜뉴스와 '뒷광고'가 성행하는 인터넷과의 경쟁에서 지상파방송은 이길 수도 없고 이겨서도 안 된다. 시청자의 신뢰 회복을 통해서만이 지상파방송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12-15 이영철

[수요광장]코로나19로 얻은 것도 있다

지난 봄 장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감염병 창궐에 가족 장례로만 치러줄폐업·개학연기 등 모든일상 고립이런 지경에도 '선진 국민의식' 희망절제·양보·배려 확산… 자랑스러워"아버지가 잠깐 다녀가라 해서 갔더니 자그만 종이 가방을 주셨지요. '뭐지?' 하며 들여다보니 마스크와 손 세정제가 있더군요. 순간, 울컥했습니다."'아는 형님'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우가 눈시울을 붉히며 한 말입니다. 연로하신 아버지가 줄을 서서 기다려 방역물품을 사고는 바깥출입도 하지 않은 채 아껴뒀다가 아들에게 줬다는 건데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여든 되신 어르신을 만났는데, '코로나19' 안부를 묻고는 당신도 매주 약국 앞에서 줄을 서서 마스크 두 장을 산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헤어질 때 제게 마스크 몇 장을 건네주셨습니다. 어찌나 고맙고 죄송한 마음이 교차하던지…. 마스크가 생기니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약국 앞에 줄을 서 기다리면서 지금 내가 뭐하는 거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요. 기다리는 게 정말 지루했지만 늦게 와서 못 사고 돌아서는 사람보다는 행복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코로나19가 창궐하던 지난 봄, 뇌경색으로 투병 중이던 장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이때 장인어른도 충격을 받으셨으니 무척 당황했지요. 모두 저만 바라보았습니다. 7남매 중 하나뿐인 처남이 막내라서 누나와 매형들이 결정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했는데 제가 맏사위였기 때문이지요. 각자 가족에게만 부음을 알리자고 했습니다. 처제와 동서 중엔 가까운 친구나 모임을 갖는 사람들에겐 알려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지만, 토론 끝에 제 의견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가족끼리 장례를 마쳤는데, 왜 연락도 하지 않았느냐고 핀잔을 듣기도 했으나 "섭섭하지만 잘했다"란 말이 더 많았지요.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혀 신랑·신부가 신혼여행을 못 가거나 아예 결혼식을 미루는 사람들이 속출했잖습니까. 부음을 알리는 것 자체가 코로나19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일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추석 명절에도 생전 처음 고향을 가지 못했지요. 어른들은 물론 자식들과 손주들이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나들이를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 소주잔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미처 몰랐지요. 아들 내외와 손주들과 함께 지내는 소소한 일상 또한 얼마나 소중한 삶의 활력소인지, 감사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생기더군요. 건강하다는 게, 일터가 있다는 게, 이렇게 소중한 것인지 예전엔 정말 몰랐지요. 집에서 '삼식(三食)이'로 지내며 책은 많이 읽었지만 답답했습니다. 마스크 사러 가는 게 기다려질 정도였지요.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식당이 줄지어 휴·폐업하고, 대중교통 이용률도 크게 줄었습니다. 특히 여행업계는 완전 초상집 분위기이고 전통시장이나 백화점 등도 매출이 크게 떨어져 고전을 면치 못했지요. 실업자가 사상 최대로 늘어나고, 입학과 개학이 연기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참아야 할 때 절제하고 양보하고 배려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지요.이런 고통을 참고 살다 죽으면 사리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진담처럼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보았지요. 의료진과 소방관, 군의관과 간호 장교들이 대구로 달려가고, 수많은 사람이 자원봉사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기업인은 물론, 많은 국민이 성금과 물품을 기증했지요. 월급의 일부를 기탁한 공무원들과 재난지원금을 기부한 사람도 많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우려는 우리의 미덕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한 것이지요. '사회적 거리두기'도 잘 지켜졌고 사재기도 없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선진 시민의식을 보여준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지요.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새삼 다시 한 번 깨달았지요. 코로나19로 힘들었지만, 이렇듯 얻은 것도 많습니다.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국민 저력을 확인한 건 그 어떠한 자산보다 소중한 것이 아니겠는지요. 그래도 코로나19가 빨리 사라지면 좋겠습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12-08 홍승표

[수요광장]노벨문학상과 서정시

특정작품보다 작가 全생애로 수여여성에 장벽 2000년대 들어 비율↑올해는 서정시인 글릭 16번째 수상보편적 감성으로 확장·투명성 제시감염병시대 인류에 위안·치유 믿음12월1일 이화여대에서 '스웨덴-한국 노벨 메모리얼 문학 프로그램'이 개최되었다. 노벨문학상의 위상과 그것이 한국문학에 미친 영향이라는 주제로 스웨덴 발제자와 한국 발제자가 한 사람씩 나서 온라인 실시간으로 진행된 뜻깊은 자리였다. 노벨문학상은 20세기 벽두인 1901년부터 시작되어 올해까지 모두 117명의 수상자에게 주어졌다. 특정 작품보다는 작가의 전(全) 생애에 주어진다는 특성을 지닌 노벨문학상은 시대상황 등 외적 요소도 많이 고려되기로 유명하다. 최초 노벨문학상은 프랑스의 시인 쉴리 프뤼돔이 수상했고, 전쟁이나 특수 상황으로 인해 몇 번의 결락이 있었지만 꾸준히 수상자를 배출하였고 몇 번의 수상 거부라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그런가 하면 '문학상'에 어울리지 않는 분들 여럿이 수상자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철학자 베르그송이나 러셀, 정치인 처칠, 역사가 몸젠 등이 대표 인물들이다. 하지만 가장 예외적이고 충격적인 사례는 아마도 2016년 수상자 밥 딜런이었을 것이다. 그는 작가라기보다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 등으로 유명한 가수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노랫말에 시적 통찰을 담은 그는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불려왔고, 드디어 그의 노랫말이 예술적 언어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특별히 반전(反戰)과 인권 같은 인류 보편의 의제를 노래 안에 담아낸 것이 결정적 수상 이유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노벨문학상도 여성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았다. 첫 여성 수상자는 스웨덴 아동문학가 라겔뢰프(1909)였다. 그 후 여성작가들은 수상자 가운데 10퍼센트 미만 비율을 구성하다가 2000년대 들어 그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도리스 레싱(2007), 루마니아의 헤르타 뮐러(2009), 캐나다의 앨리스 먼로(2013), 벨라루스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2015),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추크(2018)에 이어 올해 수상자인 루이스 글릭은 역대 열여섯 번째 여성 수상자다. 물론 루이스 글릭(Louise Gluck)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의 시인이다. 국내에 번역본 자체가 아직 없다. 글릭은 1943년 뉴욕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자랐다. 25세에 첫 시집 '맏이'(1968)를 펴냈는데 인간의 억압과 고통의 문제를 인상적 이미지에 담아냈다고 평가받았다. 전통 운율과 구어를 활용한 작법에도 호평이 이어졌다. 그리고 '습지의 집', '내림차순', '아킬레우스의 승리', '아라라트' 등의 시집을 연달아 내면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1992년에 나온 '야생 붓꽃'에서는 뉴잉글랜드 정원을 배경으로 하여 다양한 식물들로 하여금 자기 목소리를 발화하게끔 함으로써 그는 서정시인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게 된다. 글릭은 이 서정적인 시집으로 199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2004년에는 9·11 테러를 다룬 장시 '10월'을 펴냄으로써 인류의 고통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는 모습까지 보여주게 된다.스웨덴 한림원은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확고한 시적 목소리로 개별 존재자를 보편적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글릭은 그동안 노벨문학상이 '백인-남성-유럽인-소설가'라는 서구의 시선에 의해 주로 수상자가 선정되어 왔는데 자신은 비록 백인이지만 '여성-비(非)유럽인-시인'이라서 뜻밖이라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그의 시를 원문으로 서투르게 읽어보니 그 세계는 서정적 자아가 빠지기 쉬운 사사로운 감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보편적인 존재자들의 목소리를 다양한 사물들로부터 길어올리는 서정의 확장성과 투명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그럼으로써 그는 이 가파른 감염병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서정시가 커다란 위안과 치유의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한림원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서정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어쨌든 노벨문학상은 첫 수상자와 올해 수상자가 모두 시인이었다. 소수의 문학 장르였고, 그 특유의 모호함으로 시대적 명제로부터 비껴난 자리에 있곤 했지만 이제 세계의 시선은 서정시를 향하고 있다. 노벨문학상에서도 한국 시인들의 쾌거를 마음 깊이 빌어 마지않는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12-01 유성호

[수요광장]빅데이터 시대, 데이터 교육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

소통·관계 '일상이 데이터화' 전환결합 통한 마이데이터산업도 가속개인 정보보호·기업독점 해결 과제국민 적극동참 교육 기회 오픈 절실투명 관리 확보 '디지털 혁신' 기대일상의 모든 것이 데이터화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을 먹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사는지 등 이 모든 것이 데이터가 된다. 소통이나 인간관계 경험이 데이터가 되기도 한다. SNS 데이터를 통한 정서 분석을 활용한 마케팅 사례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마디로 디지털 전환의 그야말로 데이터 활용 시대에 살고 있다. 데이터의 확보와 활용이 개인은 물론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다.코로나19는 우리 모두를 디지털 세계로 밀어넣고 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은 데이터로 새로운 수익 창출이 어렵거나 데이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 생존이 어렵게 된다. 빅데이터의 분석과 활용 등 그 성패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7월 디지털 뉴딜을 포함한 한국판 뉴딜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중에서도 디지털 뉴딜의 주요 정책인 데이터 댐 추진은 산업적 측면에서는 큰 관심과 기대를 받는 동시에 국민적인 우려가 컸다. 그동안 분산돼 있던 데이터 간의 의미 있는 결합이 가능해지면서 개인의 데이터를 전문으로 다루는 마이데이터 산업 시대가 열린 셈이지만, 데이터의 활용과 개인정보 보호의 충돌에 대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수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별다른 개선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필자도, 본인이 활용에 동의한 개인정보가 얼마나 안전하게 쓰일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필자와 비슷할 것이다.마이데이터 시대에, 개인의 데이터 주권 보장 등 개인의 정보 보호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또한 거대 플랫폼 기업의 데이터 독점 문제도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한다. 마이데이터 산업은 정보의 수집과 데이터 관리에 얼마만큼 신뢰를 확보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데이터의 허용범위와 방법, 절차 등에 대한 신뢰를 얻는 방법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관련 법 개정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필자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빅데이터에 대한 교육기회를 오픈, 빅데이터에 대한 지식을 쉽게 획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빅데이터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공유, 최소한의 활용방식을 알게 된다면 데이터 관리의 투명성이 확보되고 자연스레 도용의 두려움도 줄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빅데이터 활용 분야와 유용성은 다양하다. 데이터 분석과 통찰력으로 미래를 예측하거나 위험에 대비, 리스크를 줄여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유용한 데이터를 잘 활용하려면 데이터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공유되고 때로는 오픈되었을 때 가능해진다. 궁극적으로 빅데이터의 활용방식과 이에 대한 공유는 빅데이터 관리에 대한 감시를 용이,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신뢰 확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디지털 기술과 콘텐츠를 활용, 코로나 방역에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며, BTS, K시네마, E쇼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021년 1월까지 6개월간 약 88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공공데이터를 개방한다고 한다. 또 데이터 가공과 기업 매칭에 200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미디어, 헬스케어, 안전, 자율주행 등 여러 영역의 데이터를 12월 말까지 구축한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데이터사업에는 국민적인 신뢰 없이는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정보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정보보안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뒷받침되었을 때 가능하다. 특정 기업이나 특정 전문가가 아닌 일반 국민들도 데이터에 대한 지식이 있을 때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적극적인 동참 과정에서 신뢰도 쌓일 수 있기 때문이다.아울러 활용할 정보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한다면 데이터산업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지치고 각박해진 사회를 극복하고 전 세계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는 날을 기대해본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11-24 김정순

[수요광장]수인선(水仁線) 시리즈를 보고 싶다

막내인 수원 'kt' 전통의 인천 'SK'수도권을 양분하는 프로야구단이다 올해는 kt 2·SK 9위 아쉬운 마감지난 9월 완전 재개통한 수인전철내년엔 그걸 타고 '맞대결' 봤으면두산이 kt를 제압하고 코리안시리즈에 진출했다. kt로선 선전했지만 아쉽다. 정규시즌 2위가 3위에 패했다. 코로나19가 야구 승패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개막이 한 달 늦어졌고, 그에 따라 포스트 시즌도 밀렸다. 추운 날씨로 인해 실내에서 경기를 한 것이 kt에는 불운이었다. 홈구장의 이점이 전혀 없었다. 수원에서 낮경기로 1·2차전이 진행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2020년 kt는 팬들에게 큰 희망과 위안이었다. '수원의 자부심', '나의 사랑 수원 kt위즈' 응원가는 팬들의 자긍심을 높여주었다. 수원은 프로야구의 불모지였다. 프로야구가 시작된 1982년, 수원에는 야구장이 없었고 당연히 팀도 없었다. 원년 팀 삼미 슈퍼스타즈는 인천, 경기, 강원의 광역연고지였다. 1989년에 수원야구장이 생겼고, 프로야구가 처음 열렸다. 삼미를 인수한 태평양은 수원에서 연간 9~12게임을 개최했다.2000년 이후 프로야구는 도시연고제로 전환했다. 인천은 신생 SK가 차지하고, 수원은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의 본거지가 되었다. 서울 이전을 선언한 현대는 수원을 임시거처로 여겼다. 수원에서 8년간 3번의 한국시리즈 챔피언이 되었으나, 수원시민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2008년 서울로 가서 히어로즈가 되었다. 다시 수원에서 프로야구가 사라졌다. 2013년 제10구단 kt가 창단됐고, 2년 후 정규리그에 참여했다. kt는 시작부터 수원시민과 함께 했다. 전주와의 치열한 유치경쟁에 수원시민이 동참했다. kt도 야구장 리모델링, 수원지역 야구부 지원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수원의 프로야구단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1982년의 6개 팀은 현재 10개 팀이 되었다. 당시 일본의 12개 팀은 지금도 12개로 정체되어 있다. 미국은 26개 구단에서 30개 구단으로 확대되었다. 제10구단 kt는 한국경제의 비약적 성장과 수원시의 변화된 위상을 상징한다. 경기도와 인천시의 분리 이전, 수원은 인구, 경제 규모 등에서 인천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인구 백만이 넘고, 수도권 전철과 광역버스가 촘촘히 연결돼 있다. 세계 일류기업인 삼성전자 본사도 수원에 있다.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 배구팀도 보유하고 있다.막내 구단 kt는 정상권에 도전하는 팀으로 성장했다. 반면에 인천 SK는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우선 에이스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전력이 약해졌다. 시즌 도중 감독이 스트레스로 입원을 했고, 연패가 이어져 9위로 추락했다. SK는 지난해 정규시즌 2위, 종합성적 3위(올해의 kt와 성적이 같다)팀이다. 수원과 달리 인천은 전통적인 야구도시(球都)다. 개항기인 1900년대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동산, 인천 등 야구명문고교가 있다. 비록 SK의 올 시즌 성적이 초라했으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다. 시즌 종료와 함께, 사장과 감독을 교체하고 팀을 정비했다. 스토브리그를 거쳐 다시 태어날 것으로 기대한다.kt가 올해의 여세를 이어 내년에도 잘 해주었으면 한다. 한 두 해 반짝하는 것보다는 꾸준한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2021년은 선수 및 지도자, 프런트의 진정한 능력이 시험대에 오르며, 강팀으로 도약하느냐의 분기점이 되는 시즌이 될 것이다. 사회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금년은 어수선하고 우울했다. 야구도 예외일 수 없었다. 무관중 경기였고, 중립구장에서 포스트 시즌이 펼쳐졌다. 경기장에 갈 수는 없지만 kt팬들은 야구를 통해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SK팬들은 야구마저도 속을 상하게 했다.지난 9월에는 수인전철이 완전 개통되었다. 1995년 수인선 협궤열차가 폐선된 후, 사반세기 만에 수원과 인천이 철도로 다시 연결된 것이다. 이제 구로에서 갈아타지 않아도 된다. 2021년은 야구장에 더 많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수도권의 두 팀, kt와 SK가 코리안시리즈에서 만나면 더욱 좋겠다. 2003년 코리안시리즈에서 수원 연고지의 현대와 인천의 SK가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수인전철이 없었다. 새로 개통한 수인전철을 타고, 진정한 의미의 수인선(水仁線) 시리즈를 보고 싶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11-17 이영철

[수요광장]늦가을, 노을, 그리고 이순을 생각하다

사흘간 소백·오대산을 찾았습니다구름처럼 돌아본 부석사·선재길은낙엽·단풍·석양… 가슴시린 황홀경순리대로… 마음을 비우는 삶 생각如如하게 '시작과 끝의 궤'를 맞춰노을처럼 저물어가는 늦가을 날, 사흘간 소백산과 오대산 자락을 돌아보았습니다. 떠 있는 바위가 있는 부석사와 조선 유학의 산실 소수서원 등을 돌아보았지요. 깨달음, 치유의 천년 옛길이라는 고즈넉하고 붉은 단풍 물 젖은 선재 길을 구름처럼 돌아보았습니다. 청아한 물소리에 세상 걱정을 띄워 보내고 바라본 끝자락 단풍이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웠지요. 꽃비처럼 날리는 낙엽과 숨죽인 늦가을의 뒤태가 가슴으로 녹아들었습니다. 노을을 보며 귀 열고 순리대로 산다는 이순(耳順)을 생각했지요. 물 젖은 햇덩이가 새순 돋아나는 풋풋한 싱그러움이라면 중천의 태양은 질풍노도입니다. 짙푸른 하늘빛은 건드리면 터질 듯 찬란하지요. 하지만 빛이 너무 강합니다. 눈이 부셔서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지요. 저녁노을도 싱그러움이나 찬란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침이나 한낮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용이 붉은 여의주를 입에 물고 황금비늘 번뜩이며 한바탕 휘돌다 사라지는 끝머리, 금빛 여운을 남기는 해 질 녘 노을은 아름답지요. 푸근하고 황홀합니다. 해넘이 후에도 그 빛은 한동안 남아있지요. 노을은 올려볼 필요 없이 앉거나 가볍게 서서 눈높이로 서로 마주 볼 수 있습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오랫동안 가슴에 담을 수도 있지요. 이순을 넘어선 중년의 몸짓처럼 여유로움과 평안함을 안겨주는 노을은 하루의 그림자라! 비록 해맑은 아침 햇살처럼 화사하지는 않지만, 깊고 그윽한 그리움에 빠져들게 합니다. 하루의 경계가 다 그러하지요. 한낮의 햇살이 그리워질 때도 있습니다. 하루를 지내온 순간들이 아무래도 어설프고 서툴렀다는 아쉬움, 그런 것들이 남아있기 때문이겠지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했습니다. 함께 가야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 부축해주고 아프면 돌봐줄 수 있지요. 그런 세상이어야 합니다. 지천명을 넘기고 이순에 이르면 생각이 달라지기 마련이지요. 스스로 화두를 던지고 그 답을 스스로 찾기 때문에 삶에 대한 집착이나 두려움이 어느 정도 사라집니다. 한여름 그 붉게 타는 불볕더위와 지루했던 장마를 지나왔지만, 그 조차도 그립게 하는 게 가을이지요.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삶이 소중해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사는 게 버거워 정신없이 지냈으나 지천명을 넘기니 삶에 대한 애착과 치열함이 새로 생겨나더이다. 주름살이 늘어나고 벗어진 머리는 그나마 반백(斑白)이지만,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지요. 외형은 비록 찌그러졌으나 생각은 깊이와 넓이가 더해지기를, 노을빛이 오래 사라지지 않는 여운을 남기는 것처럼 또 다른 삶의 몸짓이 새록새록 생겨나기를,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고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마음을 비우려 합니다. 시작과 끝의 궤(軌)를 놓치지 말아야지요.노을은 그 자체로 넉넉하고 여유롭습니다. 기쁘고 슬프고 아름답던 순간을 모아 어머니 손길처럼 어루만져 보듬어주고 치유해주지요. 그 빛이 가슴으로 스며들어 찌든 삶의 더께를 말끔히 씻어줍니다. 노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숨결이지요. 지나보면 후회되는 일이 있지만 밤이 지나면 다시 물기 가득한 햇덩이로 솟구쳐 오를 것을, 가슴에 녹아들면 그 자체로 여여(如如)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기운이 생겨날 것을, 노을을 보며 새로운 내일을 풀어내는 꿈을 꿉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11-10 홍승표

[수요광장]가을밤에 헤아려보는 별과 시

윤동주의 시집 서문 "죽는날까지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그는 불가피한 운명과 한계 고백자기 완성 향한 끊임없는 반성과어두운 역사 견디는 과정 보여줘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모두 열여덟 편의 작품과 '서시'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시집 서문이 함께 실렸다. 그는 시집을 구성하면서 '별 헤는 밤'을 마지막 작품으로 배치했는데, 1941년 11월 5일에 쓴 것으로 기록된 이 작품은 가을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에게 이름을 하나씩 붙여주는 윤동주의 우주적 상상력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명편이다. 4학년 졸업반이 시작되던 1941년 4월, 윤동주는 자신이 정기적으로 구독하던 '문장' 4월호에 실린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마주하게 된다. 백석 시집 '사슴'을 구하지 못해 한 자씩 필사했던 경험을 가진 그로서는 만주에서 보내온 존경하는 선배시인의 신작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마음 깊이 감동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7개월여 후 자신의 졸업기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맨 마지막에 '별 헤는 밤'을 써서 넣은 것이다.시집의 첫 작품은 잘 알려진 '자화상'이다. '자화상'과 '별 헤는 밤'은 모두 가을밤을 시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자화상'에서 우물에 비친 자신을 미워하고 가엾이 여기고 다시 미워하고 그리워하는 과정을 통해 '추억처럼' 남은 사나이를 노래했던 윤동주는 '우물 안 사나이'에서 '밤하늘의 별'로 시선을 옮겨간다.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을 헤아리면서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보는 과정을 이어간 것이다. 이때 그는 '헤다'라는 함경도 방언을 썼는데, 이 단어에는 '세다'라는 원래 의미와 함께 '뜻을 헤아리다' 같은 부가 의미까지 담고 있어서 작품에 맞춤한 격을 부여하고 있다. 만약 이 작품 제목이 '별 세는 밤'이었으면 어쩔 뻔했는가.윤동주가 정성스럽게 불러보는 기억 속의 이름은 성장기를 함께 했던 친구들, 이국 소녀들, 시집가서 아이 키우는 여자아이들, 가난한 이웃사람들,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그리고 프랑스 시인 잠과 독일 시인 릴케이다. 이러한 스펙트럼은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에 대한 오마주(hommage)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동주는 백석 시편을 닮은 순서로 호명 과정을 수행하고 난 후 자신의 시를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켜감으로써 선행 시편을 넘어선다. 그 하나는 "어머님,/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라는 표현을 통해 이 작품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장면에 있을 것이다. 이 표현을 통해 이 작품은 에누리 없이 일제강점기에 망명의 땅 북간도를 떠나 한반도 중심에 들어와 유학생활을 하는 청년 윤동주의 것으로 정착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윤동주가 부른 마지막 이름이 자신의 것이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에 부끄러운 자신의 이름을 써서 흙을 덮어버린 그는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라는 부활의 예감을 통해 이 작품을 새로운 희망의 차원으로 탈바꿈시킨다.이처럼 윤동주는 시집 첫 걸음을 "한 점 부끄럼"으로 시작하여 마지막을 "자랑처럼"으로 마감했다. 이 구조는 부끄러운 이름을 쓰고 흙으로 덮어버리고 자랑처럼 풀이 재생하는 과정으로 짜여 있는데, 이러한 자연의 섭리에 대응되는 은유적 상관물이 "(부끄러운) 내 이름자"이다. 윤동주는 봄이 오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풀의 생태를 통해 '부끄럼'이 '자랑'으로 부활하는 꿈을 꾼 것이다. 이 과정은 수난과 영광에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 시련을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면서 현실을 견디겠다는 자세도 포괄하고 있다. 시집 서문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괴로워했던 그는 불가피한 운명과 함께 평생 지고 가야 하는 자신의 한계를 정직하게 고백하면서 시집 끝에 '별 헤는 밤'을 수록하였다. 그럼으로써 자기 완성을 향한 끊임없는 반성과 어두운 역사를 견뎌가는 실존의 과정을 함께 보여준 것이다. '부끄럼'에서 '자랑'으로 옮겨가는 이러한 전이 과정이 아름답게 담긴 '별 헤는 밤'을 이 가을밤에 떠올려보는 까닭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11-03 유성호

[수요광장]"아~ 테스 오빠, 원전오염수 방류…일본이 정말 왜 이래?"

방류땐 220일후 제주앞바다 '끔찍'국제적 반대 불구 인류생명 '위협'바다환경 망치고 어민생존권 위태오염어류 자국민·주변국 건강 해쳐미래세대까지 영향… 대안 찾아야27일로 예정됐던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 연기 소식이 우선은 반갑다. 그렇다고 안심된다는 것은 아니다.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겠다는 방침을 철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결정을 미룬 것일 뿐이다. 출범한 지 한 달여 만에 지지율 12%포인트가 급락한 스가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류 결정을 미루게 된 배경을 들여다보면 참 어이가 없다. 한국이나 주변국들의 반대나 해양오염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 인식 때문이 아니고 국제적 비난과 자국 내 거센 반발 때문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오염수의 희석과정에서 방사능 물질이 국제 기준치보다 낮은 농도로 걸러진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신뢰하고 싶어도 도무지 신뢰할 수 없게 된다.제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관련, 일본 어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언론과 자국민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 등의 보고서도 오염수 방류에 따른 해양 수산물의 유전적 손상 등 위험성을 심각하게 지적, 환경피해가 거의 없는 '장기 저장'이라는 안을 내놓은 상태다. 삼중수소(트리튬)의 반감기가 12.3년인 만큼 대형 탱크에 오염수를 옮겨 담아 100여년간 보관한 뒤 방류해 피해를 없애자는 방법이다. 비용은 들어도 인류의 안전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해양 방류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이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재처리하더라도 삼중수소라는 방사성 물질이 남는 것은 사실이지만 희석해 방류할 경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오염수를 희석해 바다로 방류하면 문제가 없다며 심지어 오염수를 희석하면 사람이 마셔도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나 도쿄전력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심지어 비용 절감이라는 손쉬운 선택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심지어 도쿄신문 등 많은 일본 언론들은 희석한 오염수의 70%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방사능 물질이 나왔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또 유럽방사성위험위원회는 더 큰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즉 오염수 희석과정에서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는 방류 오염수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데, 저농도의 삼중수소라도 지속적으로 인체에 유입될 경우 DNA 손상은 물론 생식기능 저해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준치 이상의 삼중수소는 음식이나 공기를 통해 소량이라도 인체에 유입될 경우 세포 손상과 변형이 일어나 각종 암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게 될 경우 220일이 지나면 제주 앞바다에 온다고 하는데 상상만으로도 오싹하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 국제적 반대 여론에도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면 아무 잘못도 없는 인류의 생명이 위협받게 된다. 방류된 오염수가 일본에서 해류를 따라 필리핀, 일본, 러시아, 미국 캘리포니아와 태평양을 거쳐 동해로 유입되면 바다환경오염이 일본 주변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일본을 비롯 주변 국가 국민들의 건강과 어민들의 생존권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중대 사안으로 여기는 이유다. 일본 정부가 기어코 원전 오염수를 방류할 경우 그 위험성은 차고 넘친다.바다는 우리 인류에게 꼭 필요한 식재료를 공급해준다. 특히 어류는 맛도 좋지만 육류보다 지방 걱정 없이 질 좋은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의 선호식품이다. 이제 더는 질 좋은 수산물을 안심하고 먹을 수 없게 될까 걱정이다. 오염된 식재료는 일본 자국민은 물론 주변국 국민의 건강을 해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세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오염수 방류는 일단 한번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원전 오염수 방류는 쉬운 방법일 수도 있지만 많은 이들의 건강을 앗아 갈 수 있다. 원전 오염수 처리에 기회비용이 들더라도 합리적 대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아~테스 오빠, 후쿠시마 원전 오염방류 어떻게 생각해? 일본이 정말 왜 이래요?"/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10-27 김정순

[수요광장]희생자 vs 위선자

조국사건 상반된 시각 '백서·흑서'흑서 필자들 대선서 '문재인 지지'집권세력 모든 의견 귀 기울여야지지하지 않았거나 철회한 사람들'한번도 경험 못해본 나라'서 살아조국 사건과 후임 추미애 법무부 장관 논란은 우리 사회의 여론분열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난 14일 여당 대표와 법무부 장관은 과천의 정부청사에 마련된 공수처 입주 예정 사무실을 방문했다. 야당에 대해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 선임을 압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조국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상반된 시각에서 조국사건을 정리한 책이 출간되었다. 최민희 전 의원이 주도한 이른바 '조국백서'는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오마이북·이하 백서)'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이어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천년의 상상·이하 흑서)'가 발행되었다. 흑서의 필진은 진중권 교수와 참여연대 출신의 회계사와 변호사 그리고 서민 교수, 강양구 기자 등 다섯 명이다. 이들 모두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선택한 사람으로 '추정'된다.백서와 흑서는 조국 전 장관을 각각 '희생자'와 '위선자'로 규정한다.백서는 희생자 입장이다. 검찰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검찰은 완강히 저항했고 여기에 언론이 합세하여 조국 일가의 인권을 무참하게 유린한 것이 이들이 보는 사건의 본질이다. 아무 죄가 없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조국사건은 검찰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유시민의 알릴레오', '시사타파 TV' 등이 큰 기여를 했다. 언론은 개혁 대상이지만 이들은 예외다.흑서는 조 전 장관을 위선자로 본다. 현 집권세력은 적폐청산을 주장했다. 청산된 자리는 누가 차지하는가. 새 집권세력이다. 그들은 집권 이후 신적폐가 되었다. 그러나 자신들은 다르다고 한다. 민주화 운동을 했으므로 정의롭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구 모두 적폐인 것은 마찬가지다. 이제 기득권자가 된 그들에게 바꾸는 것보다는 지킬 것이 많아졌다. 자신들의 특권을 2세에게 대물림하려 한다. 사익추구집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미 보수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와 싸우는 듯한 모순된 태도를 보인다.또한 그들은 선전선동에 능하다. 대중들 스스로가 변화의 주체인 양 착각하게 만들어 광장으로 동원한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방송을 문화콘텐츠로 간주하여 거짓말을 남발한다. '어용지식인' 유시민 이사장은 진실을 자기 맘대로 재해석하는 이른바 '대안적 사실'을 유포한다. 주저와 망설임도 없다. 그래서 사실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들은 자신을 기만하고,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수십억원대의 자산가가 탈법, 편법으로 재산을 증식했다. 자녀의 대입을 위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고 법을 위반했다. 그런 사람이 정의를 수호하고 법질서를 유지하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이것이 흑서가 보는 조국 사건의 진실이다.두 책은 같은 사안에 대해 전혀 다르게 평가한다. 희생자 대 위선자 논쟁은 조국사건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최근 여당 의원이 발의한 민주유공자법, 공공의대 운동권 자녀 특별 전형 등 앞으로도 논란이 지속될 것이다. 이미 일부 사립대의 민주화운동 자녀 특례 입학 사례가 보도되었다.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사람 중에서 계속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철회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흑서의 필자들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이다. 왜 이들은 현 정권을 비판하게 되었을까? 정권교체 이후 '자리'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섰다고 조롱한다면 더이상 논의의 진전은 불가능하다.현 집권세력은 흑서를 읽어야 한다. 지지자는 물론 지지 철회자, 처음부터 지지하지 않은 사람의 의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이 나라는 대통령 '지지자만의 나라'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거나 지지를 철회한 사람은 지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일반 독자 역시 백서 또는 흑서 읽기를 권한다. 자신의 성향에 반하는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상대방의 입장을 받아들여 사고의 폭을 넓히면 더욱 바람직하다. 생각이 유연해지면 확증 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10-20 이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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