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코로나 시대, 개인 식별 데이터 노출 공포에 대하여

방역지침에 영업장 출입 명부 기록제대로 관리되고 있을까 걱정 앞서매달 8만여건 스미싱 피해 속출 속여성 문자 노출·허위 기재 등 많아당국 철저히 보호 후폭풍 막아내야최근 전화번호 노출로 인한 피해 보도를 많이 접하게 된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으로 커피숍이나 식당 등 영업장소를 이용할 경우, 누구나 성과 전화번호를 기록해야 한다. 이용자들의 개인정보 노출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된 배경이다. 일명 코로나 명부 피해 공포로 불린다. 이 두려움은 쉽게 떨쳐지지도 않는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이용자들이 비슷한 공포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나날이 노출되는 국민의 개인 식별정보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철저히 관리되고 있을까? 실은 궁금증보다 걱정이 앞선다. 개인정보 침해는 언제, 어떻게, 어떤 규모의 피해가 일어날지 피해 발생 직전까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개인정보 피해 두려움 때문에 영업장을 이용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개인정보가 잘 관리되기를 바랄 뿐, 적극적으로 개인이 개입한다거나 어찌해볼 방법이 없어 두려움이 크다.실제로 얼마 전 한 여성에게 온 '외로워서 연락했다'는 한밤중 문자사건도 코로나 방문 전화번호 노출로 인해 비롯된 사고다. 문자를 받은 여성이 큰 공포심을 느껴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사건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나마 이 사건 이후 이름은 적지 않고 성과 전화번호만 기록하도록 지침이 바뀌었다. 그러나 실제로 언론 보도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전화번호 노출 사고는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원, 각종 은행 등 곳곳에서 피해사례를 전하며 스미싱 피해에 주의해 달라는 공지 문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 발표에 의하면 지난 수개월 간 기관 사칭 문자 등 스미싱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자그마치 매달 8만5천건의 스미싱 문자가 수신자에게 읽히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수신자가 메시지 본문에 포함된 링크를 눌렀다고 가정했을 때 의도치 않은 결제와 이체 등 큰 피해를 입게 된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기 번호가 스미싱 등 범죄에 쓰일까 염려돼 코로나 명부 허위 기재도 많은 모양이다. 한 지자체 발표에 의하면 코로나 발생으로 동선 확인 시 기록의 절반 정도가 허위기재로 드러난다고 한다. 할 수 없이 CCTV에 기록된 정보 분석에 의존하는 실정이라고 한다.관련 뉴스를 보면서 필자는 개인정보 피해 공포 대신 차라리 허위기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두려움이 크다. 필자의 우려처럼 이용자가 방문 날짜와 이름, 전화번호 등을 직접 기입하는 수기 출입명부의 경우 개인정보 유출 우려 문제는 상존한다. 국민적 우려를 의식했는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코로나19 개인정보보호 강화대책'을 내놓았다. 그 내용은 한국인터넷진흥원 및 자치단체 인터넷 방역단과 협업해 지난 5월부터 4개월간 자치단체 홈페이지나 SNS 등에 공유된 1천555건의 개인정보를 삭제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자출입명부를 도입한 사업장의 경우 파기 등 관리가 가능함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하지만 우려했던 대로 수기 데이터의 관리는 사각지대였다. 수기 데이터의 경우 업소마다 요구하는 기록방식이 제각각이어서 더 신뢰가 떨어진다. 어디는 이름과 일행 모두의 개인정보를 기록하도록 요구하고, 어느 곳은 일행 중 한 사람을, 또 이름과 성을 모두 요구하는 등 업장마다 달라 혼란스럽고 철저히 관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안 생긴다.우리 국민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정부의 지침이라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자신의 소중한 정보를 순순히 내어준다. 정부 시책을 믿고 따라준 이용자들에게 철저한 개인정보보호 확신을 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이용자들이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고 안심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한마디로 확실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수기 정보 등 이용자 개인정보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 당국은 시간과 품을 들여 관련 업장들의 이용자 개인정보 관리 실태를 일일이 확인, 노출 사고를 방지할 책임이 있다.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영세가게 등 '관리 사각지대'로 불리는 다양한 형태의 개인정보 기록 자료들을 철저히 관리 감독해야 한다. 코로나로 가뜩이나 지치고 힘든 국민의 개인정보 노출 피해 우려를 방치, 거대한 후폭풍을 겪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09-22 김정순

[수요광장]호환(虎患)과 세금

통신비 지원 "안주는 것보다 나아"여 중진발언은 귀를 의심하게 한다 과중稅는 민생도탄 지금도 똑같아세상에 공짜없듯 국가재정도 부담'나라가 니거냐' 폐해 잊지 말아야모든 국민에게 통신비를 지원한다는 정책에 대해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안 주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라고 발언했다. 귀를 의심하게 한다. 1조원에 가까운 돈은 허공에서 생겨나는 것인가. 수십조원을 복지예산으로 지출하고 있으니 1조원 정도는 '푼돈'으로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 푼돈을 대통령이 국민에게 주는 선물로 여기지는 않을까 의심된다. '나라가 니거냐'란 말에 공감한다.상식 있는 국민들은 내심 걱정이 된다. 나라에서 주는 돈이 당장은 달콤하다. 그러나 이 돈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수입에 비해 지출이 많으면 미래가 뻔하다. 파산한다! 추경예산, 국채발행, 부채비율 등의 뜻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국가 재정에 적신호라는 짐작은 간다. 처절했던 IMF의 기억이 아직도 우리에게는 생생하게 남아있다.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가계나 국가 재정이나 다를 바 없다. 누군가는 그 돈을 부담해야 한다. 지금 받는 돈은 이자를 더해서 갚아야 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청구서가 날아온다. 우리가 못 갚으면 자식들이 갚아야 한다. 국가 부채는 상속 포기도 불가능하다. 빚을 부담할 후손들은 조상을 탓할 것이다. 결국 세금은 더 많아지고 삶은 더욱 고단해진다. 과도한 세금이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공자와 제자들이 산길을 가다가 여인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여인은 호랑이에게 시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자식을 잃었다. 산을 떠나면 호환(虎患)을 피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여인은 '이곳은 과중한 세금과 부역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이라고 말한다.정약용도 유배지의 관아 앞에서 울고 있는 여인을 목격했다. '애절양(哀絶陽)'은 양근(陽根)을 자른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탐관오리는 어린 아이와 죽은 자들에게도 군역(軍役)을 부과했다. 새로 태어난 아들이 군역에 포함되자, 애비는 자기를 원망했다. 스스로 생식기를 절단하여 후사를 없앤다. 이에 여인은 통곡한다.조선말의 고부 군수 조병갑도 빠질 수 없다. 벼슬을 얻기 위해 뇌물을 상납했고, 이를 벌충해야 했다. 매관매직이 성행한 당시로서는 관행이었을 것이다. 조상의 송덕비 건립을 위해 세금을 걷고 만석보를 증축하고 세금을 징수하여 착복했다. 이번에는 수세(水稅)다. 살 수가 없는 백성은 저항한다. 고부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되었다.현대사회에서도 과도한 세금은 민심의 이반을 초래한다. 10·26을 촉발한 '부마항쟁' 원인 중 하나로 1977년 여름에 도입된 부가가치세를 꼽는다. 국민들은 세금이 10% 늘어난 것으로 받아들였다.현 정부의 압권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세금정책이다. 중과세로 수요를 억제하고 매각을 유도한다. 여당 국회의원은 자연스럽게 '징벌적' 과세를 말한다. 살 때는 취득세, 살면서는 재산세와 종부세, 팔 때는 양도소득세를 부과한다. 집 없는 사람은 세금 때문에 집 사기 어렵고, 살고 있는 사람은 보유세가 부담이다. 팔려고 해도 양도세가 무섭다. 가히 세금 폭탄이다. 고가주택보유자와 다주택자는 중죄인이다. 한 채만 내 집이고 나머지는 정부 것이라 할 수 있다.부동산정책의 혼선으로 국가의 미래가 위태롭다. 청년들은 주택마련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고 동거한다. 그로 인해 출산율이 저하된다. 무주택 부부는 주택 청약을 위해서, 다주택 부부는 중과세를 피하기 위해 위장이혼을 고민한다. 이런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 이제 호랑이는 멸종되었고, 병역의무도 세금으로 대신하지 않는다. 부동산 세금이 현대의 '가렴주구'요, '애절양'이라 할 수 있다.맹자도 말했다. 어진 정치(仁政)의 요체는 형벌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적게 거두는 데 있다. 그러면 백성들은 밭 손질과 김매기를 잘할 것이다(김학주 역, '맹자' 양혜왕편). 세금이 적으면 근로의욕이 높아지고 잘살게 된다. 개인은 행복하고 나라는 강해진다. 과중한 세금의 폐해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정치의 요체도 고금이 동일함을 위정자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09-15 이영철

[수요광장]기부, 크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100만원 기부금 조롱당했던 배우30년 무료 두리랜드의 유료 전환심장병 아동 돕던 뽀빠이의 누명사람들, 자신 못보고 한없이 비난그자체로 소중한 행동 박수받아야코로나19가 한창 창궐할 무렵,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100만원을 기부한 어느 배우가 곤혹을 치렀지요. 일각에서 기부금액이 적다고 지적하며 문제 삼았고, 그의 선행은 한순간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억대의 금액을 기부한 스타들과 비교하며 중견 연기자로 너무 적게 기부했다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지요. 일부 네티즌들은 "이미지 메이킹이 목적인 것 같다", "생색내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악플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비난에 그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고 인스타그램 활동을 중단했지요. 공인으로 산다는 게 어렵다는 걸 실감했을 겁니다.양주에 있는 '두리랜드'는 유명 배우가 만든 어린이 놀이공원입니다. 190억원이 들어갔다는 이 공원은 개장 이래 지난 30년 동안 입장료를 받지 않고 운영해 왔지요. 그런데 올해 어린이날을 기점으로 재개장하면서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190억원이 들어갔고 150억원 가량을 대출받아 더는 무료 운영이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무료로 운영하다 요금을 받으니 일부에서 비난이 뒤따랐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그래도 긍정적으로 봐주는 분이 더 많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지요. 그의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가 묵직한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이걸 돈 벌려고 하겠습니까. 돈 벌고 싶으면 안 쓰고 갖고 있는 게 낫겠죠. 하지만 내가 죽더라도 두리랜드가 어린이들에게 오래 기억됐으면 해요. 그건 '자긍심'입니다. 사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내 표정도 좋아졌어요." 저는 그 배우의 말을 믿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돈도 안 되는 걸 왜 하느냐고 만류했지만 오직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놀이공원을 만들었다는 그분의 진정성을 믿고 있지요. 더 나아가 빚더미 속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원 운영을 멈추지 않았던 그 열정이 오히려 부러울 따름입니다. 가치 있는 인생이지요.뽀빠이로 불리며 600명에 가까운 심장병 어린이를 수술시킨 분도 성금을 일부 유용했다는 오해로 곤혹스러운 일을 겪었습니다. 밤무대 출연까지 하며 아이들을 도우면서 우정의 무대로 이름을 날리고 심장병 어린이들을 돕는 어린이들의 우상에서 갑자기 추락한 것이지요. 오랜 날들이 지나 재판에서 무혐의로 결론이 났지만 이미 그의 인생은 치명타를 맞은 뒤였습니다. 미국으로 떠나 궂은 일을 하다 돌아왔지만 그가 설 곳은 없었지요. 그 일이 한(恨)이 맺혀 그는 지금도 무혐의 불기소 증명원을 지니고 다닌다고 합니다. 너덜너덜해진 가슴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것이지요.100만원을 기부한 배우를 비난하는 사람 중엔 단돈 100원도 기부하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은 단돈 100원도 기부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기부금액이 적다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요. 오랫동안 놀이공원을 무료로 운영하다 은행 빚 때문에 유료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던 배우를 비난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이들은 당연히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의의 기부금액이 적다고 비난받고 놀이공원을 유료로 전환했다고 비난받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기부는 배틀(battle)이 아니고 그 자체로 소중하니까요.사람들은 자신을 제대로 살피지는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곧잘 비난하곤 합니다. 남을 비난하기에 앞서 과연 자신이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돌아봐야지요. 자신에겐 관대하면서 남에겐 한없이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결국 그 비판이 비방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늘 자신을 비춰봐야지요. 잘못은 앞에서 말하고 칭찬은 뒤에서 말해야 하는 법입니다. 미움을 앞세우면 상대의 장점이 사라지고 사랑을 앞세우면 상대의 단점이 사라지는 게 삶의 근본 이치이지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마음으로 기부하며 사는 분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09-08 홍승표

[수요광장]'위드 코로나' 시대의 미학적 항체

대규모 공연장·행사는 '이젠 옛말'더본질적인 변화의 시점에 서있어속도와 성장 반성 작은공동체 관심생태주의문학 인류사적 과제 부상팬데믹시대 문학적 출구전략 될까'코로나 19'로 빚어진 지구촌 전체의 재난이 인류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바꾸어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통째로 위기를 맞고 있는 그동안의 주류적 삶의 방식에 대한 대안적 실천이 요청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제 10만 관중이 운집한 채 치러지는 월드컵 결승전이나 수만명이 동시에 출발선을 떠나는 마라톤 대회는 당분간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오케스트라 공연장을 가득 채운 수많은 청중이나 한국 영화의 천만 관객도 어쩌면 2020년 이전의 신화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물론 단기간에 어떤 대안 모형이 마련된다면 이러한 변화 양상이 스포츠나 공연 예술의 급격한 퇴조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점에서 참여자 감소 문제는 팬데믹 사태가 불러온 변화 가운데 가장 비본질적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보다는 더 본질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시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누구나 알고 있듯이, 인간의 운명은 생로병사라는 과정적 표현에 압축되어 있다. 태어나 나이 들어 병들고 결국 사라진다는 것, 이것이 불가피한 인간의 보편적 존재론이다. 그 가운데 우리를 한없이 소모시키고 죽음에 접근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확인시키는 물리적 사건은 아마도 '질병'일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몸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의 존재증명을 위해 여기저기 아픈 곳을 드러낸다. 그동안 한국문학에서 이러한 질병의 양상은 개인적 차원에서 발원하는 생리 현상이자 공동체적 소진의 운명을 견뎌가는 은유로 동시에 나타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서의 질병과는 전혀 다른 '감염병'의 낯선 침입은 삶에 대한 여러 비유 체계를 생성해내면서 새로운 문학적 형상과 의미를 부여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한국문학에서 감염병을 형상화해가는 과정은 커다란 역사적 함의를 띠면서, 그동안 근대문학이 주목했던 '질병의 은유'를 부수고 새로운 차원으로 비약해갈 것이 틀림없다.미셸 푸코는 '감옥의 탄생'에서 감옥, 병원, 군대 같은 장치가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사실은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주체를 생산하는 제도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근대문학에 나타나는 이런저런 '병원' 역시 권력을 대리 집행하는 기능을 줄곧 수행하였다. 근대문학은 치밀하게 편제된 권력 장치에 의해 배제되거나 억압되었던 삶을 시종 재현하고 증언하였다. 짐짓 외면하기 쉬운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을 통해 작가들은, 멈포드가 '예술과 기술'에서 언급하였듯이, "폭력과 허무 곧 인간성의 말살이야말로, 현대예술이 가장 자유롭고 가장 순수한 계기들을 통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메시지"라는 전언을 강하게 상기시켰던 것이다. 이때 작가들이 펼쳐낸 근대적 사유란 서구 근대과학과 문명이라는 담론과 강력하게 결합하면서 동시에 그것과 경쟁하고 갈등하는 복잡한 상호과정을 포함한 것이었다.이제 몸의 가치와 의미를 결정하는 의학, 생리학, 위생학, 가정학 그리고 질병 관리와 인구 조절을 담당하는 보건 의료 시스템이 일본과 서구의 지속적 영향 아래 형성되어왔다는 점은, 새로운 차원의 의료 시스템의 완비와 함께 한국문학 내부에서도 감염병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미증유의 감염병은 어떠한 형상과 의미로 한국문학에 수용될 수 있을까.우리는 근원적 차원에서 증언록과 묵시록의 속성을 결속하면서, 근본주의적인 생태적 사유를 기저에 깔면서, 그동안 속도와 성장에 취해 벌려놓은 스스로의 과잉을 반성하면서, 이제 자발적으로 가난해지면서, 작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태도를 가짐으로써 이러한 과제를 인류가 수행해가리라 생각해본다. 1990년대 한때 유행 흐름을 띠었던 생태주의 문학은 이때 새로운 인류사적 과제로서 재설정되면서 '포스트 코로나'가 아닌 '위드 코로나' 시대의 미학적 항체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길만이 지금 시대를 넘어서는 최선의 문학적 출구 전략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 이 낯선 팬데믹 시대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09-01 유성호

[수요광장]한국판 뉴딜 정책, 국민 중심이 되야한다

2025년까지 포스트코로나시대 견인150조원 투입 190만개 일자리 창출그중 비대면 디지털뉴딜 사업 핵심개인 데이터 활용 주권 보장이 과제격차에 적응시켜 함께할 수 있어야수도권에서 시작된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검토란 당국의 발표에 전국이 초긴장하고 있다. 사상 최장기간 지속된 장마와 역대급 물난리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틈도 주지 않고 이번에는 코로나 광풍으로 전국이 초긴장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이 와중에 제8호 태풍까지 북상 중이라고 하니 얼마나 큰 피해를 일으킬 것인지, 비보 일색에 감각조차 무뎌질 정도다. 억지춘향이지만 그나마 위안거리는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코로나 사태를 겪는 OECD 국가 중 1위란다. 게다가 한국판 뉴딜정책이 앞으로 한국경제 회복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란 OECD 전망에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게 된다.이미 알려진 것처럼 한국판 뉴딜은 2025년까지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안전망 강화란 3가지 축을 중심으로 분야별 투자 및 일자리 창출로 코로나로 어려워진 경제를 살리려는 역점사업이다. 150조원 투자로 190만개의 일자리 창출이 최종 목표다. 그중에서도 디지털 뉴딜은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후반 역점사업으로 제시한 한국판 뉴딜의 핵심이다. 코로나19 여파로 확산되고 있는 비대면 디지털 사업은 2025년까지 디지털 뉴딜 정책에 총 58조원 이상을 투자해 디지털 일자리 90만개 창출이란 큰 목표를 세우고 있다.디지털 뉴딜은 한마디로 단절 데이터 정보를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 거래를 공식화하고 개방한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초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으로 그동안 분산돼 있던 데이터 간의 의미 있는 결합이 가능해졌다. 분야별 데이터를 크로스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개인의 데이터를 전문으로 다루는 마이데이터 산업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기업 간 데이터 공유가 활발해지는 만큼 개인의 데이터 주권 보장이란 과제 등 풀어야 할 난제도 많아 보인다. 무엇보다 거대 플랫폼 기업의 데이터 독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정 기업의 데이터 독점은 고스란히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데이터 활용으로 정보 주체의 권리가 침해되거나 민간기업이 개인의 민감정보를 악용하게 될 것이란 지적도 많다. 데이터 간 연계 혹은 결합을 과연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 또한 분분하다. 즉 데이터의 허용범위와 방법, 절차 등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가 시급해 보인다.일각에서는 데이터의 주권을 개인에게 부여함으로써 우려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며 데이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공공 데이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 창출 목적으로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데이터의 본격적인 활용 시행을 앞두고 당면한 문제점과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것은 정부가 풀어내야 할 몫이다. 데이터가 기존 생산요소를 능가하는 데이터 경제와 혁신을 주도하는 핵심자원으로 인정, 우리나라가 데이터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됐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다만 빅데이터 시대에 빅데이터를 잘 모르는 일반 국민에게도 정부의 거대한 디지털 뉴딜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 디지털 산업 발전 구상 어디에도 디지털 격차로 인한 부적응 문제 등 격차 해소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빅데이터 시대에 빅데이터를 잘 모르는 일반 국민도 정부의 거대한 디지털 뉴딜 정책에 대한 청사진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빅데이터 전문가 혹은 빅데이터 플랫폼 관련 기업, 디지털 세상을 잘 아는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를 낳게 해서는 안된다.아무리 좋은 디지털 성장 플랜도 국민이 적응하고 따라갈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정책의 성공은 조금 느려도 국민과 함께일 때 가능하다. 디지털 뉴딜은 빅데이터를 둘러싸고 있는 전문가 특정인들의 리그가 아니라 국민 중심이어야 한다. 데이터 활용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으로 이제 첫걸음을 뗀 디지털 뉴딜 사업에 일자리 창출과 경제적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기대한다면 과욕일까./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08-25 김정순

[수요광장]정책의 배신

최저임금·주52시간제·정년 연장 등약자·평등정책은 기득권 강화 역설靑 결심땐 시장원리 외면 바로 시행정치 이해득실만 좇고 논의는 부재도대체 무슨배짱으로 법을 만들까"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하는 짧은 연설은 초선 정치인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렸다. 전국 지명도의 정치인이 탄생했다.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여야의 역전에도 기여했을 것이다. 품격을 잃지 않고 현 정부의 부동산 실정(失政)을 합리적으로 비판했다. 의정활동의 모범 사례다.경제학자 윤희숙은 올봄에 '정책의 배신, 21세기북스'를 출간했다. 이후 국회의원으로 변신했다. 앞으로 야당의 선봉으로 정부의 경제 실정을 비판할 것이다. 본회의 5분 발언은 그의 등장을 알리는 전주곡인 셈이다. 여당은 상당히 괴로울 것이다.'정책의 배신'은 최저임금, 주 52시간제, 비정규직, 국민연금, 정년 연장, 신산업 등 여섯 분야의 정부 정책을 검토했다. 모두 다 좌파 기득권을 보호하는 반개혁적 정책들이다. 현 정부의 지지기반인 노조와 386 정치권이 결합하여 기성세대의 이익을 보호하고 청년세대의 희생을 강요한다. 청년들의 희망을 빼앗아 버린다. 대한민국의 불평등은 심화된다.최저임금은 충분한 논의 없이,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성급하게 인상했다. 결과적으로 취약한 조건의 저임금 근로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고, 영세 자영업자의 부담도 커졌다.주 52시간제로 공공부문과 대기업 직원들은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았다. 법정 기준을 준수해야 하는 중소기업은 큰 고통을 받게 되었다.비정규직과 정년 연장은 현 정부 지지 세력들이 가장 큰 수혜자다. 노조원 수가 늘고, 결집력은 단단해졌다. 반면에 아직 노동시장에 편입되지 않은 청년들의 취업문은 더욱 좁아졌다. 정규직 보호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자리 창출은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정책목표이기 때문이다.국민연금은 제도 개혁을 외면했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는 고령화와 맞물려 2057년경에 재원이 고갈된다. 미래의 근로자는 소득의 30%를 연금으로 부담해야 한다. 이 정도면 제도의 존속 자체가 위태롭다. 본인 세대들은 이득을 챙기고 이후의 문제는 후세들에게 부담 지우는 매우 이기적인 행태이다.신산업정책은 현 정부의 관리능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타다'가 대표적이다. 혁신기술은 기존 이해관계자와 새로운 사업자 간의 갈등을 초래한다. 정부는 갈등을 조정하지 못했다. 혁신기술은 일부에게는 손해가 발생하지만, 사회 전체로는 이득이 된다. 미래에 어차피 가야할 길이다.'정책의 배신'은 약자 보호와 평등 추구의 정책이 오히려 기득권을 강화하고 불평등을 심화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경제학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기 때문에 배신이 발생한다. 시장원리를 인정하지 않고 당위적 목표만 제시한다. 단기적 효과에 집착하여 장기적 영향은 고려하지 않는다.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단편적이고 지엽적 문제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졸속 정책이 매일매일 등장하는 것이다.더 큰 문제는 부정확한 정보, 왜곡된 정보를 대중선전에 이용함으로써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경제정책을 수립할 때 정치적 이해득실을 가장 먼저 고려하기 때문이다. 다른 의견과 비판은 무시한다. 자신들의 생각만을 독선적으로 주장한다. 지금까지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냉철하고 합리적인 논의는 부재했다. 토론을 통한 숙의 과정이 생략되었다. 특히 4·15 총선 이후 여당은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속전속결로 처리하고 있다. 추경 예산안이나 부동산관련법안이 대표적이다. 청와대가 결심하면 바로 시행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두워지는 것을 '정책의 배신'은 걱정하고 있다.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의 대원칙은 여야, 좌우를 떠나 모두가 동의한다. 문제는 구체적 방법이다. 결국 정책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부작용과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판과 토론이 필수적이다. 의도했던 정책목표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지(叡智)와 함께 겸손도 필요하다. 정책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를 집권여당이 몰랐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면서도 추진했다면 사악하다고 할 수 있다.윤희숙 의원도 "도대체 무슨 배짱과 오만으로 법을 달랑 만듭니까"로 본회의 발언을 마무리했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08-18 이영철

[수요광장]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살면서 많은 사람과 인연을 쌓았다나이를 떠나 배울게 있으면 '형'호칭도청서 근무할때 최기자·모국장 등마음 열어 삶을 넉넉하게 해준 분들그런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경기도청에서 홍보담당으로 일할 때 함께 술자리를 하던 기자가 뜬금없이 한마디 던졌습니다. "형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괜찮지요?" 저보다 아홉 살이 어리지만, 성격이 깔끔한데다 강골로 소문난 출입 기자였기 때문에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공무원을 만났지만 계장님처럼 인간적으로 존경스러운 분은 처음입니다. 함께 일하고 있는 동생 분은 선배라고 부르지만 계장님은 형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으로 부르고 싶으면 그렇게 해" 기분 좋게 말하며 술잔을 부딪쳤습니다. 고맙기도 하고, '마음을 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그와 늦도록 술자리를 함께했지요. 그 후로도 사는 동네가 같아서 함께하는 술자리가 많았습니다.30년 전, 경기도지사 비서실에서 일할 때 얼굴이 유난히 희고 깔끔하게 잘생긴 기자 한 사람이 찾아왔지요. 그의 어르신은 경기도교육청에서 교육감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도지사가 교육위원회 의장을 맡았었지요. 수행 비서였던 저는 매월 한 차례 교육청에서 열리는 교육위원회에 도지사를 모시고 갔습니다. 이때 도지사 비서실과 교육청 비서실이 활발하게 교류했는데, 그 인연이 후대까지 이어진 셈입니다. 아들이 경인일보에 입사해 도청 수습기자로 일하게 되자 저를 찾아보라고 했던 것이지요. 이러한 인연으로 오랜 세월 형제처럼 함께 지냈으니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자와 공직자를 떠나 누구보다 각별하고 소중한 인연이었지요.세월이 흘러 파주 부시장으로 일할 때 '다산 청렴 봉사 대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상금이 1천만원이나 되니 많은 사람이 축하의 덕담을 건네면서 술 한 잔 사라고 했지요. 술을 즐기는 편인지라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쓴 글을 책으로 엮어 선물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표제를 '높이면 낮아지고 낮추면 높아진다'로 정하고 당시 정치 부장이던 그에게 추천의 글을 청했지요. "형! 모시던 도지사도 있고, 아는 분이 많잖아요?….", "무슨 소리야! 최 부장이 나를 잘 알잖아." 최 부장의 추천사는 압권이었습니다. 기자니까 기본적으로 글을 잘 쓰는 게 당연했지만,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최 부장 글을 읽으니 끝까지 읽지 않아도 담긴 글 내용을 알 것 같다고 입을 모았지요. 그만큼 그는 저를 잘 알고 있던 것입니다.민선 L지사 비서관으로 일할 때는 휘뚜루마뚜루 일을 참 잘하는 능력자인 데다가 성격이 유연하면서도 호방해 따르는 사람이 많은 국장이 있었지요. 제가 도지사 수행비서로 일할 때 그는 내무부 장관 수행 비서였습니다. 이때부터 교분을 쌓았는데, 고향인 경기도로 돌아온 것이지요.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석에서는 누가 있든 저에게 꼭 형이라고 불러 가끔 난처해질 때도 있었지요. 문화정책과장으로 일할 때 시흥부시장이던 그가 문화 관광국장으로 와 첫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도 "형! 잘 부탁해요"라고 했습니다. 함께 한 사람들이 깜짝 놀랐지요. 이제 직속상관이니 제발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형은 형이라면서 호칭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퇴직 후에도 그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도 형이라고 부르고 있지요.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에게 직함을 붙여 불렀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거나 어리거나를 떠나 인간적으로 배울 게 있으면 이름 뒤에 '형'이라는 호칭을 붙여 불렀지요. 다섯 살 어린 후배 한 사람에게도 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부르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존경한다는 의미를 담는 방법인 셈이지요.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다고 무조건 형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나름 배울게 많고 존경할 만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야만 형이라고 부르지요. 형이라는 호칭을 붙여 부를 수 있는 분이 있다는 건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다. 삶의 의미를 더 넉넉하게 해주는 분이 있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고 감사한 일이지요.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08-11 홍승표

[수요광장]맛의 경험과 몸의 기억

미각·후각은 어린시절과 깊은관계쓴맛·감칠맛 구수하고 아릿한 냄새백석의 '국수'에서도 기층문화 자리驛마다 후루룩 가락국수 눈에 선해그 순간 복원… 이래저래 먹고싶다인간의 감각 중에서 미각과 후각은 특별히 어린 시절과 깊은 관계에 놓인다. 그 감칠맛과 쓴맛, 그 구수하고 아릿한 냄새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문학작품 속에 미각 충동과 경험이 서린 장면이 나오면 사람들은 으레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그 맛의 경험을 순간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백석의 시 가운데는 맛이나 먹을거리를 핵심 이미지로 삼아 노래한 작품이 제법 많다. 그 가운데 '국수'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다.백석이 만주 살 때 쓴 이 작품은 1941년 4월 '문장' 폐간호에 실렸다. 백석은 같은 지면에 '흰 바람벽이 있어'를 통해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라는 절창을 쏟아놓았고, '국수'를 통해서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간과 공간을 풍요로운 감각으로 재현함으로써 가장 인간다운 삶이 어떤 것인가를 물었다. 그 힘은 우리가 오랫동안 만들고 먹고 누려온 기층문화야말로 저 천하고 폭력적인 군국주의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이어져가야 한다는 믿음이었을 것이다.그런데 이 국수가 '냉면'이라는 점에 주목해보자. 밀가루가 아니라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평안도에서 집집마다 갖춘 국수틀로 빚었던 것인데, 거기에 "겨울밤 쩡 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넣고 "얼얼한 댕추가루(고춧가루)"와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넣어 먹는 서북지역 특유의 국수는, 연전에 남북정상회담 때 화제가 되었던 '평양냉면'의 원조인 셈이다. 나는 이 평양냉면을 좋아한다. 여름이 되면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물냉', '비냉', '회냉'을 다 좋아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평양냉면의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맛이 제일이다. 굳이 말하자면 담백한 맛인데, 백석은 그것을 '고담'과 '소박'이라고 표현했다. 예전에는 꿩고기가 얹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냥 쇠고기를 쓴다. 배도 넣고 동치미 무도 썰어 넣는다. 거기에 달걀 반쪽과 김치를 함께 먹으면 우리가 즐기는 '평양냉면'이 된다. '동국세시기'에도 냉면은 서북지역 것이 최고라고 적혀 있다는데 해방 전후에 월남한 분들에 의해 이 음식은 남쪽에 정착하게 된다.냉면 말고도 여름에 먹는 또 하나의 별미는 단연 콩국수다. 한여름 무더위를 날리는 데 콩국수만 한 서민 식품이 없다. 시원한 콩국에 오이를 썰어 넣고 얼음을 띄우면 냉면과 자웅을 겨루는 여름철 대표 음식이 된다. 그러고 보니 국수의 파생어가 정말 많다. '칼국수'나 '콩국수'에다가 '밀국수', '메밀국수', '쌀국수', '잔치국수', '냉국수', '비빔국수' 등이 떠오른다. 우리가 즐기는 '라면'은 '납면(拉麵)'에서 유래했는데 북한에서는 그 형태 때문에 '꼬부랑 국수'라 부른다고 한다.지금도 기억에 선한 것 하나만 더 이야기해보자. 기차를 타고 가다 잠시 내려 후루룩 먹고는(거의 마시는 수준!) 다시 기차를 타고 먼 거리를 가야 했던 '가락국수'를 아시는지? 특히 대전역 가락국수는 매우 유명했는데 역 승강장 간이식당에서 팔았다. 경부선과 호남선의 분기점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경부선과 장항선의 분기점인 천안역, 중앙선과 태백선과 충북선이 분기하던 제천역, 경부선과 대구선의 분기점인 대구역에서도 가락국수는 다른 것과는 바꿀 수 없는 베스트 음식이었다. 여기서 '후루룩'이라는 의성어를 떠올려보자. 그 안에는 여러 의미가 들어 있을 것이다. 맛이 워낙 좋아 빨리 먹는다는 속도감도 있겠지만, 너무 양이 적어 빨리 먹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가난이 서려 있기도 하다. 이처럼 맛의 경험과 몸의 기억은 선명하게 한 시절을 붙잡고 있고, 또 우리는 그 맛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그때의 순간과 장면을 온전하게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국수'가 먹고 싶은 날이다. 그 안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담과 소박의 맛을 담은 '평양냉면'이든, 여름철 별미인 '콩국수'든, 베트남 브랜드를 달고 있는 '쌀국수'든, 아니면 그 옛날의 '가락국수'든./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08-04 유성호

[수요광장]디지털시대, 강아지와 산책하는 즐거움과 책임

코로나로 세상은 온라인 전환 가속대체불가 영역이 있다면 산책 꼽아애완견이 길동무라면 더 없는 축복문제는 동물을 꺼리는 사람과 갈등공존을 위해선 '펫티켓지키기' 필수코로나19는 세상을 빠르게 변화시킨다. 감염 우려 때문에 선택하게 된 비대면 방식이 세상을 온통 디지털로 이끌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은 디지털 전환 속도를 더 가속화시킬 것이다. 코로나19 장기화와 경기 침체는 비대면 수요의 급증을 일으키면서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코로나와 언택트는 서로 맞물리면서 세상을 디지털 중심으로 바꿔 놓고 있다. 교육, 진료, 이 외에 많은 분야가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있다.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디지털 중심으로 바뀐다 해도, 온라인이 아무리 정교하게 오프라인을 대체해 나간다 해도 대체 불가능한 영역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중의 하나가 산책 아닐까? 산책은 오프라인, 즉 대자연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바람결에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 바람결에 실려 오는 풋풋한 풀향기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위대한 선물인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오솔길 산책의 즐거움은 온라인 세상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더구나 요즘처럼 비가 자주 내리는 장마철, 모처럼 갠 날 오후 산책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감을 준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이슬 머금은 숲속 오솔길 산책은 너무나 좋다. 게다가 필자의 경우는 산책길 사색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말없이 옆에서 길동무를 해주는 귀여운 강아지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축복의 시간인 셈이다.그런데 이처럼 기분 좋은 산책을 방해하는 일이 있다. 바로 치우지 않은 강아지 배설물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정도가 아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 중인 사람으로서 부끄러워 몸 둘바를 모를 지경이다. 옆 사람이 묻지도 않는데 "아니 누가 이렇게 안 치우고 간거야"라며 죄없는 필자의 강아지를 향해 읊조린다. 실은 "우리 개는 범인이 아니에요"라고 변명을 하는 셈이다. 매번 묻지도 않는데 혼자 중얼거리기도 멋쩍어서 최근에는 아예 개 목줄에 눈에 잘 띄는 형광색 배변 봉투를 매달고 다닌다. "제 반려동물의 변은 반드시 치우는 사람"이라고 옹색한 표시를 하는 것이다.동물을 달가워하지 않는 누군가와 부딪힘 없이 기분 좋은 산책을 마치려면 책임이 수반된다. 필자에게는 너무나 행복한 산책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개가 그저 공포의 대상이고 기피의 대상일 수 있다. 애견 1천만 시대라고 하는데 이 숫자의 증가만큼이나 문제점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반려견 때문에 이웃 간에 크고 작은 다툼 발생은 뉴스거리도 아닐 만큼 흔한 일이다. 애견인들은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만큼 챙겨야 할 일이 참 많다. 동물 병원비는 왜 그리 비싼지, 사람 치료보다 더 먹힌다. 미용 비용도 만만치 않다. 사랑하는 만큼 그에 따르는 책임도 참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녀석들이 건네는 행복감은 그 이상의 노고도 마다하지 않고 감당하게 된다.어디 이뿐인가? 필자의 강아지는 천둥벼락이 치는 소리에는 꿈쩍 않지만, 냉장고 문을 여는 작은 소리에는 꿀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체중 증가는 안 된다는 의사의 경고에도 "나는 먹고 싶거든요"라는 애절한 눈빛 애교에 감량 계획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가족들의 타박은 고스란히 마음 약한 필자 몫이 되고 있다. 외식이라도 하고 온 날에는 킁킁검사를 해대는 통에 비만견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먹다 남은 갈비뼈를 몰래 챙겨다 준다. 자책과 후회는 늘 필자 몫이지만, 세상없이 행복하게 먹는 녀석의 모습을 보면 더 큰 행복감이 밀려온다. 참 많은 순간, 위로받는다. 문제는 필자에게는 이렇게 기쁨을 주는 존재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동물을 꺼려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 모두 우리 사회 구성원이다. 갈등 없는 공존의 첫 번째 요건은 '펫티켓' 지키기다. 산책할 때 견주는 "우리 애는 순해요. 안 물어요" 대신에 안전한 길이의 목줄 매기는 물론 배변 수거 등 소소한 것들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펫문화가 바로 서야 평화로운 공존도 가능하다. 바람직한 펫문화 정착 속에 당당하고 기분 좋은 산책을 기대 해본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07-28 김정순

[수요광장]코로나 학기(學期)를 보내며

원격강의시스템 신속 마련됐지만신입생 방 얻고 등교 못하는 처지교수는 녹화·업로드에 많은 시간등록금 반환요구가 합당한가 의문시험 부정행위 방지·학점 주기 '고민'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달라진다고 한다. 대학은 어떻게 될까. 필자는 봄 학기에 신입생부터 4학년 대상의 상담, 이론, 실습과목을 담당했다. 처음에는 개강이 2주일 연기되면 여름방학을 그만큼 축소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강이 계속 지연되면서 수업 일수에 문제가 생겼다. 4월이 되자, 이론과 실습 모두 원격 수업이 불가피해졌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온라인 강의 경험이 없어 난감했으나, 곧바로 과목 특성과 자신들의 강의 스타일에 따라 적합한 강의방식을 개발했다. 화상회의앱,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수업을 하거나 강의 영상을 사전 제작했다. 실습 과목은 과제와 피드백으로 진행하기도 했다.학교 당국도 당혹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원격 강의 운영시스템을 신속하게 마련하고 온라인 수업 매뉴얼을 배포했다. 교수들에게 강의 촬영 서비스를 제공하고 서버를 증설하여 이용의 편의를 증진했다.문제는 교육 효과다.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모든 사립대학은 등록금 반환 이슈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학교 당국은 교수들에게 상담을 독려했다. 전화상담이 불가피했다. 전화를 받지 않기도 하고, 문자를 남겨도 연락이 없는 학생도 있다. 수업시간에 맞춰 전화해 '지금 어딘가?'라고 물으면, 아르바이트 중이라는 경우도 있다. '수업시간인데?'라고 물으면, 영상녹화 수업은 편한 시간에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했다. 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것도 온라인 강의의 장점이다. 학생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통학시간이 절약되었다. 어려운 내용은 반복해서 시청할 수 있다고 한다. 학우들과 교수를 만날 수 없는 것은 아쉽다고 했다.신입생들의 처지는 딱했다. 대학생이 되었으나, 학교에 갈 수 없다. 원룸을 얻고도 등교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씩씩했다. 앞으로 대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등교하면 교수를 꼭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들을 위해서도 하루빨리 학교 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교수의 수업부담은 늘었다. 등하교 시간은 줄었지만, 강의 준비와 녹화, 인터넷 업로드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채점, 특히 과제물에 대한 평가도 힘들었다. 매주 또는 격주로 코멘트를 전달하니 학생의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다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전체 수업에 투여되는 시간은 훨씬 더 증가했다. 등록금 반환 요구가 합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학점도 고민스러웠다. 출석과 과제는 확인이 가능하지만 학생의 이해도와 진정성은 알기 어렵다. 시험부정 행위도 방지하기 쉽지 않다. 절대평가로 전환됐지만 모두에게 좋은 학점을 주는 것은 부담이 된다. 동시에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박한 학점도 마음에 걸린다. 결국 평소에 비해 A학점을 받은 학생 수는 두 배로 증가했다. 학점이 인플레이션되고 변별력이 줄어들어 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방학이 되었다. 지금은 성적 제출을 마감하고 강의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교수도 학생의 평가를 받는다. 처음 도입한 온라인 강의에 대해 학생들은 어떤 점수를 줄지 궁금하다.온라인 강의의 장점이 많이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재택수업의 실효성은 의문이 생긴다. 어린이집은 물론 초·중·고 모두 등교를 하고 있다. 학원도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다. 오직 대학만이 예외였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집에 있는 것도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가고 학원에, 카페에, 술집에 간다. 오히려 방역수칙을 준수하고 등교하는 것이 전염병 예방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대학의 미래도 고민스럽다. 예를 들어 미디어 전공이 있는 모든 대학에서는 미디어 개론 과목을 개설한다. 최소 100명이 넘는 교수가 강의할 것이다. 나도 그중 하나지만, 강의를 잘한다고 자신할 수 없다. 더 훌륭한 강사가 많다. 학생 입장에서는 최고의 강의를 수강하면 되는 것 아닌가. 온라인에서는 수강생 수의 제한도 없다. 이른바 '일타 강사' 수강이 가능하다. 그러면 나머지 교수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대학의 앞날과 교수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것이 코로나 이후 시대의 대학교의 과제가 될 것이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07-21 이영철

[수요광장]내 편 네 편 가르지 말아야

최근 생을 마감한 두 명망가를 두고진영논리로 민심 갈리는 안타까움조국·정의연 사태 때와 다를바 없어법정스님·김수환추기경 행보 반추지금은 다툼이 아닌 국민단합 중요'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물불 안 가린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불가(佛家)에서 나온 말입니다. 스님은 '이판승'과 '사판승'으로 나누는데, 경전을 연구하고 강론하며 수행하고 포교하는 스님이 이판승이고, 사찰의 살림살이를 꾸려나가고 종무를 돌보는 스님이 사판승입니다. 이판승의 꼭짓점은 종정이고, 사판승의 꼭짓점은 총무원장이지요. 가끔 이판과 사판을 두루 거친 스님도 있습니다. 이판이 없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을 수 없고, 사판이 없으면 가람을 존속시킬 수 없지요. 이판과 사판은 서로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고 동반자라는 방증입니다.살아보니 세상사는 일이 수학문제처럼 완벽하게 풀리지 않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비구승이나 대처승이나 추구하는 진리와 궁극적인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지요. 기독교, 불교, 천주교도 추구하는 길이 다를 뿐 궁극적인 지향점은 같다고 봅니다. 비슷한 시기에 선종과 입적을 하신 종교지도자로 한 시대의 큰 스승이셨던 김수환 추기경님과 법정 큰스님은 걸어온 길이 다르지요. 추기경님이 열 살이 더 많아 나이 차이가 있고, 출신도 영·호남으로 다릅니다. 종교 역시 천주교와 불교로 다르니 당연히 삶의 철학이나 추구하는 가치관과 방향이 다르고, 견해 차이도 있었을 겁니다.그런데 두 분의 인연은 길동무처럼 오랜 세월 교감하며 각별하게 이어졌지요. 특히, 두 분은 개인적인 친교를 넘어 한국 사회에서 종교 간 벽을 허무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법정 큰스님이 길상사 개원 법회를 열었을 때 김수환 추기경님이 참석해 축사를 해 주었지요. 법정 큰스님은 그해 성탄절 때 성탄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명동성당에서 특별강론을 했습니다. 추기경님이 선종하자 큰스님은 언론에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시(詩)를 기고하기도 했지요. 두 분의 깊고 넓은 생각과 넉넉한 행보는 아름다운 우정이자 격 높은 어른의 품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최근 생을 마감한 두 명망가의 죽음을 두고 민심이 갈리는 안타까운 일이 생겨났습니다. 진영논리(陣營論理)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게 나타난 것이지요. 자신이 속한 진영의 죽음은 미화시키고 상대진영의 죽음은 폄훼하는 이분법적인 행태를 보인 것입니다. 내 진영의 이념만 옳고 상대 진영의 이념은 그르다는 논리는 위험한 발상이지요. 답을 정해놓고 꿰맞추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을 포함한 사회전체가 진영논리에 갇혀있는 건 불행한 일이지요. 내편이라고 다 옳은 게 아니고 상대편이라고 다 그른 것도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세간에 진영논리가 극명하게 대두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였지요. 그리고 조국사태 이후 촛불 행렬이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눠지고 상반된 주장이 첨예하게 펼쳐졌습니다. 정의연 사태를 두고도 진영에 따라 주장하는 논리가 상반되고 있지요. 분명한 것은 답을 정해놓고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진영논리에 갇혀 내 편 네 편 가리면 우리의 내일은 크게 기대할 게 없어지지요. 현상을 현상 그대로 보는 게 중요합니다. 좌파, 우파, 극우니 빨갱이니 하는 진영논리가 사라지지 않는 한 밝은 미래는 없습니다.살다 보면 죽자 살자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사람이 있지요.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사는 일이 그리 쉽고 간단하게 풀리지도 않고 100% 옳은 일도 없지요. 정치적·이념적으로 편을 가르고, 지역별로 나누어 편향적으로 흘러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은 내 편, 네 편 아옹다옹 다툴 때가 아니라 외환 위기나 코로나19를 극복하며 보여준 국민적 단합이 중요하지요. 김수환 추기경님과 법정 큰스님의 큰 사랑과 자비의 행보, 그 가르침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편 가르지 말고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살아야 사랑과 평화가 온다는 것 아니겠는지요./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07-14 홍승표

[수요광장]철학적 사유의 소통을 가능케 한 문장의 친화력

스터디셀러 작가 '수필철학' 3인방김태길 안병욱 김형석 탄생 100주년김태길, 간결한 글 독자 공감·소통 안병욱, 민족정신 녹인 삶의 메시지김형석, 관념·대상 인생사로 풀어내김태길, 안병욱, 김형석 세 분은 모두 주요 대학의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독창적 문장과 사유를 통해 정통 수필가로서도 일가를 이루었다. 1960~80년대에 젊은 날을 통과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이분들의 이름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분들은 독자들을 많이 거느렸던 스테디셀러 작가들이기도 하다. 세 분은 1920년생 동갑내기였으니 따라서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게 된다. 이분들이 수행한 수필과 철학의 상호 결합 방식을 두고 '수필철학(essay philosophy)'이라고 부른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약간이나마 냉소적 반응을 품은 듯한 명명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철학적 사유의 소통을 가능케 한 문장의 친화력으로 이분들 작품의 정수를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김태길은 충북 충주 출신으로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쓴 첫 수필은 1955년 '사상계'에 발표한 '서리 맞은 화단'이었다. 1961년 첫 작품집 '웃는 갈대'를 시작으로 하여 그는 누구보다도 철학과 문학의 접점을 찾으면서 그 장르로 수필을 선택했고, 창작 과정에서 공감과 소통을 가장 중히 여긴 수필가로 인정받고 있다. 단아하고 아담한 문채(文彩)를 통해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글을 주로 썼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 배운 '글을 쓴다는 것'은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짧고 간결한 표현 속에 은근한 함축이 담긴 글을 사랑한다"라는 그의 좌우명을 실천한 사례이다. 그의 글이 독자를 공감과 소통의 장으로 이끄는 것은 이러한 글의 품격과 구체성 때문이다. 중후한 철학적 사색과 매끈한 글쓰기에 매진했던, 스스로의 글쓰기를 즐겁고도 성실한 작업으로 여겼던 수필가가 김태길이었다.안병욱은 평남 용강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생활적 구체성에 토대를 둔 철학적 수필을 쓰면서 일찌감치 여러 베스트셀러를 펴내 삶과 인간에 대한 개성적 메시지로 주목받았다. 안병욱의 이념적 기반은 흥사단의 무실역행 정신이었는데, 3·1운동과 같은 독립운동의 맥락에 놓인 민족정신이 그 실질이었다. 안병욱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도산 안창호의 사상은 이러한 민족정신으로 충일한 것이었다. 명징한 문장과 진리 추구의 열정으로 당대 소개되기 시작한 서구 철학의 요체를 전달해준 공로도 크다. 대표작 '행복의 메타포'는 행복에 대해 일상적 경험과 순정한 필력으로 담아낸 명편이다. 사랑과 노동과 신앙을 행복의 정의로 제시한 이 작품은, 인생의 의미를 행복에 둔다고 할 때 그 실체가 보람을 느끼며 사는 긍정적 생활 태도에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인생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펼쳤다는 점에서 수필의 본질이 잘 드러나고 있다.김형석은 평남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대학 예과와 철학과에서 공부했다. 중학교 교사로 생활하다가 1954년부터 연세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의 수필은 어떤 특별한 주제의 구심보다는 삶에서 마주치는 여러 철학적 관념이나 대상을 구체적 인생사로 풀어내는 경향이 강하다. 순간과 영원을 오가는 수필가로서의 부지런하고 단아한 글쓰기 방식이 그의 양도할 수 없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종교적 감수성에 토대를 둔 공감과 친화의 문장을 통해 진중한 철학적 진경을 열어놓았다. 그의 대표작 '수학이 모르는 지혜'는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증명해준다. 눈앞의 이익에 너무 매달리면 정작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역리(逆理)를 친절한 우화의 제시를 통해 알게 해주는 인생론적 수필이다. 현역으로서 아직도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는 그의 창작 여정이 수필의 한 역사를 쓰고 있는 듯하다.이처럼 세 분은 우리 수필의 품격과 진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난해한 개념으로 인해 다가가기 어렵기만 했던 철학이라는 학문을, 수필이라는 소통 지향적 장르와 결합하여,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끔 한 이분들 공적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많은 이들의 마음에 남기를 소망해본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07-07 유성호

[수요광장]방송 프로그램 효능감, 다양한 편성에서 시작된다.

종편 오디션 프로그램 흥행 힘입어 요즘 '트로트 전성시대' 거센 열풍문제는 인기콘텐츠 우려먹기 병폐방송사마다 비슷한 예능프로 범람획일화는… 시청자 피로·외면 불러전에 없이 트로트 열풍이 거세다. 트로트 예능이 온통 방송가를 점령하면서 양적 성장은 물론 사회적 평가까지 바꿔놓고 있다. 얼마 전 제1야당의 비대위원장이 '백종원' 대세론 거론 당시 '임영웅'(트로트 인기 가수)은 어떤가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다. 물론 조롱에 가까운 비유이고 정치권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트로트 열기의 단면을 보여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사실 트로트 장르는 지난해 TV조선 오디션 프로그램인 '미스트롯'의 인기 덕분에 재조명이 시작됐다. 올 상반기 '미스터트롯'까지 흥행에 성공하면서 트로트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지상파 3사는 물론 종편이나 케이블 채널까지 트로트 예능프로가 11월까지 중점적으로 편성되어 있다고 하니 그 열기를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다.물론 트로트의 가치나 관련 예능 방송을 폄훼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이돌 중심 K팝 일색인 한국 대중음악 장르가 트로트 열풍으로 바뀌면서 저변을 확대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송가인'을 필두로 트로트가 중장년층에게 미친 인기몰이 기세는 실로 엄청났었다. 이 여세를 몰아 올해는 1020 세대까지 즐기는 장르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덕분에 뽕짝이라 불리며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장르가 인기 높은 트로트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방송 광고 수입 하락세 속에서도 트로트 예능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4월 언론사 경영 성적 발표에 의하면 JTBC와 채널A가 각각 252억원, 158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오직 지난해 '미스트롯' 열풍 효과를 톡톡히 본 TV조선만 144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트로트는 예능계의 핫 콘텐츠로 등극한 것이다. 이처럼 트로트 열풍이 방송가나 우리나라 대중문화에 긍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다.그러나 일각에서는 넘쳐나는 트로트 예능으로 인한 시청자의 피로감 문제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방송사들이 스타 트로트 가수들을 앞다투어 출연시키거나 흥행위주의 과도한 트로트 예능이 국민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실정이다.이처럼 트로트 예능 문제 노정 속에서 필자는 무엇보다 방송 예능의 획일성이 걱정이다. 심각한 수준의 획일적인 방송 프로그램에서 과연 효능감이 있을지 우려스럽다. 인기 콘텐츠 우려먹기는 방송사의 고질적 병폐가 아니던가? 새로운 시도 없이 오직 인기 프로그램만 쫓아 방송사마다 비슷한 콘텐츠 범람은 상상만으로도 피로를 느끼게 해준다. 어떤 채널을 돌려도 동일 출연자가 나오거나 엇비슷한 프로그램일 때 그 피로감을 경험해본 사람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이 편성되어야 할 이유는 많다. 시청률과 트렌드만 쫓다 보면 시청자들의 피로감은 높아지고 방송 프로의 효능감은 낮아진다.방송 프로그램의 효능감은 각 프로그램이 가지는 독창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가 가미된 프로의 편성 속에서 가능하다. 그야말로 재탕 삼탕 우려먹기 식의 매번 비슷한 프로를 봐야 하는 식상함 속에서는 방송프로의 효능감을 찾기란 어려운 것이다. 시청률에 매몰되어 비슷한 장르 인기 프로만 고집할 때, 결국은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특정 트로트 가수의 인기몰이도 좋지만 계속 같은 톤의 예능을 고집할 때 이들의 이미지는 곧 소진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트로트 예능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예능프로 편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TV를 보면서 하루 동안의 피로를 풀고 싶은 시청자들의 소박한 바람을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코로나로 힘들고 지친 일상 속에서 가족 간 소통에 도움이 되거나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긍정의 가족관을 심어 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 그립다. 저널리즘의 여러 연구에서 나온 것처럼 방송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주고 상식과 개념형성 기여는 물론 문화 형성에도 영향을 준다. 획일적인 트로트 예능으로 피로감을 주기보다 효능감을 높이는 시사 교양프로 등 다양한 편성이 필요한 이유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06-30 김정순

[수요광장]야구장의 추억

고교야구 성지 동대문구장에 이어숱한 명승부 잠실구장이 사라진다평생 팬을 만들고 소설가도 만들고미·일 프로구장 '전통 고수'와 비교개발 아쉽지만 새구장의 탄생 기대잠실야구장이 사라진다. 지난 5일 서울시는 '잠실 스포츠·마이스(MICE) 민간투자사업' 사업자 선정 공고를 연내에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존 야구장을 허물고 새 야구장을 건설한다. 새 구장은 더 크고, 위치도 한강에 가까워진다. 바다와 인접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같은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설계에 따라서는 홈런 타구가 한강까지 날아 갈 수도 있다. 강물에 '풍덩' 빠지는 야구공을 상상해본다.잠실야구장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개최를 계기로 만들었다. 그 대회 결승전이 한국야구사의 최고명승부인 한일전이다. 선동열 선수의 호투, 김재박 선수의 개구리 번트, 무엇보다 8회말 터진 한대화 선수의 역전 3점 홈런은 전국민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이후 프로야구의 숱한 명승부가 그곳에서 펼쳐졌다. 새 야구장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동시에 추억의 장소가 사라지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이미 우리는 동대문야구장을 잃어버린 아픔이 있다. 그 자리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우주선같이 내려앉아 있다. 중국 관광객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지만 야구의 기억은 다 사라져 버렸다. 미국 프로야구단이 방한했으며(1958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국내 최초로 야간조명시설(1966년)이 설치되었고, 고교야구의 성지였으며, 프로야구 개막전(1982년)이 벌어진 것도 기록으로만 남아있다. 필자의 고향은 수원이다. 수원에 야구장이 생긴 것은 성인이 된 후인, 1989년이다. 초등학교 시절, 형의 손을 잡고 동대문야구장을 처음 찾았을 때의 설렘과 경이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 동대문야구장은 사라져 버렸다.프로야구 경기장은 도심지(都心地)에 있다. 일과를 마친 팬들이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장이 생기면 새로운 중심지가 만들어진다. 1980년대초 잠실 일대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야구장이 들어서고, 지하철이 연결되면서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그러나 야구장의 활용도는 낮다. 시범경기, 포스트시즌을 포함해도 잠실야구장의 사용일수는 연간 200일이 안 된다. 경기 시간도 짧고, 겨울에는 완전 휴장이다. 연중무휴 사용하는 영화관과 비교된다. 도심에 위치한 야구장 부지는 개발사업자의 관심 대상이다. 최근의 마이스사업으로 이 일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고시되었다. 개발의 좋은 점도 있지만, 야구장은 허물어지고 팬들의 추억도 사라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곳이 있다.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필드는 1914년에 지어졌다. 1988년에야 야간조명시설을 설치했다. 그때까지 종종 일몰(日沒) 서스펜디드(일시정지) 게임이 발생했다. 메이저리그 최고(最古)의 구장인 보스턴의 팬웨이파크는 1912년에 개장했다. 관중 수용규모가 가장 적다. 이들 구장은 건설된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하다.고시엔(甲子園) 구장은 갑자년인 1924년에 개장했다. 고시엔대회에 출전한 고교 선수들이 기념으로 그라운드의 검은 흙을 퍼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시엔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한신(阪神) 타이거스도 대회가 열리는 기간에는 홈구장을 양보하고 원정을 떠난다. 오사카(大阪)에 고시엔이 있다면, 도쿄에는 1926년에 개장한 메이지진구(明治神宮)구장이 있다. 우리나라의 임창용 선수가 활약했던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홈구장이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곳이 바로 이 곳이다. 하루키는 1978년 진구구장에서 야쿠르트의 개막전을 보다가 선두 타자의 타구 소리를 듣는 순간, 소설가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반면에 개발을 택한 곳도 있다. 도쿄돔은 예전의 고라쿠엔(俊樂園) 야구장을 헐어버리고 새로 지었다. 그곳은 왕정치(王貞治) 선수가 통산 756호 홈런, 세계기록을 세운 역사적인 장소였다. 도쿄돔은 단순한 야구장이 아니다. 대규모 관객이 참여하는 콘서트, 대형 이벤트와 전시장으로 활용한다. 도심의 복합문화공간인 것이다.야구장은 야구를 하는 곳이지만, 팬들에게는 각자의 추억을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평생 야구팬으로 만들기도 하고, 소설가로 만들기도 한다. 추억의 잠실야구장이 사라지는 것이 무척 아쉽다, 새로운 야구장의 탄생을 기대한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06-23 이영철

[수요광장]누구나 가면(假面)을 쓰고 살아갑니다

이면에는 나를 초월한 욕망의 갈구힘들때 술한잔 기울이며 태연하듯삶의 억압·제약 속 낭만·해학 담겨그래도 눈빛은 내면을 엿볼수 있어감춰진 본모습 '이해' 사랑의 출발복면을 쓴 사람들이 얼굴을 감춘 채 노래 경연을 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는데, 누구인지 맞혀보는 재미가 참 쏠쏠하지요. 감추는 것, 그게 가면의 본질입니다. 실제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것은 모순된 일이지만, 민낯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울 때 가면은 좋은 방편이기도 합니다. 얼굴을 감추고 자신을 초월한 그 무엇인가를 갈구하려는 욕망, 그게 고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면이 소멸하지 않는 이유이겠지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적인 사랑의 대명사로 불리는 명작입니다. 이 작품의 백미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면무도회에서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대목이지요. 가면 속 눈빛에 빠져드는 알 수 없는 이끌림과 가슴 설렘이 그들을 걷잡을 수 없이 불타게 합니다. 얼굴은 가려졌지만, 감춰지지 않는 내면이 엿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우리나라에서는 가면이 세상을 풍자하는 용도로 많이 쓰여졌지요.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양반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양주별산대놀이가 대표적입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도 주인공은 탈을 쓰고 한마당 연회를 신명 나게 이끌어갑니다. 물론, 그것은 흥겨운 잔치가 아니었지요. 가면 속에서 험한 세상과 고관대작들을 조롱하는 사설은 어느 사랑 타령보다도 피를 토하듯 절절하게 마음을 울리지요. 영화 속이지만, 광대 스스로 벅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억압과 제약 속에서도 즐거움과 정겨움과 낭만이 있는 가면 세상. 서양의 가면무도회가 소통하며 즐기는 모임이라면 우리 가면극은 주로 세상을 비판하는 해학과 풍자의 한마당이었지요. 그 게 우리 삶의 가치이자 여유입니다.'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지요. 하늘이 내려준 인연을 맺고 사는 부부, 피를 나눈 자식, 형제자매간에도 감추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지요. 오랜 세월 함께 지낸 친구로부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하고 한동안 공황 상태에 빠진 일이 있습니다. 믿었던 얼굴 뒤에 감춰진 또 다른 모습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 불찰이지만, 가면치곤 너무 무섭고 가혹했지요. 그러나 스스로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제 생각과 다르다고 그게 원망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요. 이해할 수는 없어도 생각이 다를 뿐이지 그 친구의 생각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속내를 감추고 아무 일 없는 듯 지내고 있는 저도 가면을 쓴 셈이지요.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과 다른 행태를 보는 건 참으로 무섭고 위험한 일이지요. 하지만 남을 속이지 않고 사는 사람,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게 인생살이기도 하니까요. 세상이 맘대로 살아지는 게 아니니 말이지요. 하지만 살면서 지켜야 할 상도(常道)는 있습니다. 그것마저 외면하면서 살면 안 됩니다. 그건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지요. 가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저질러 놓고도 아주 당당하게 자기명분을 세우려는 사람이 우리를 당혹 시킬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상대방을 왜곡된 프레임에 가두려는 사악한 일까지 벌여 세상이 무섭다는 걸 절감하게 되는 경우도 생겨나지요.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사는 게 힘들고 버거울 때 초승달 눈 흘기는 포장마차에 들어 눈물이 녹아든 술잔을 기울이곤 태연한 얼굴로 살아가는 게 세상살이이기도 하지요.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생존의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 꺼풀만 벗기면 가면을 쓰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지요. 이렇게 보면 남을 속일 수밖에 없으면 가면이라도 쓰는 게 사람다운 몸짓이 아닐까요. 다만, 가면을 왜곡에 이용하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가면을 써도 사람 된 도리와 본분을 잊어선 안 되지요. 가면을 만든 이유도 최소한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게 숨구멍을 열어 준 것 아니겠습니까. 가면 속에 감춰진 진짜 모습을 보는 것, 그 모습을 이해해 주는 것, 이게 사랑의 출발이 아닐까 합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06-16 홍승표

[수요광장]다시 유월 앞에

대표적 표상은 6·25전쟁 6·10항쟁비극과 혁명의 비대칭 데칼코마니70돌 6·25, 분단·학살 참혹함 경종6·10은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 굄돌평화·개혁의 상징 '균형 실천' 시점유월을 표상하는 사건은 여럿 있다. 그 가운데 오랫동안 우리 역사에 가장 어둑한 그늘을 드리운 것은 1950년 6·25전쟁이었을 것이다. 한때 '사변'이나 '동란'으로 명명되다가 이제는 정부 공식용어로 '전쟁'이 채택되어 쓰이고 있다. 이 전쟁은 호국영령이나 현충일, 보훈 같은 단어로 금세 치환되는 비극적 성격을 강하게 품고 있다. 하지만 유월에는 1987년에 일어났던 6·10항쟁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념비도 있다. 그해 유월을 뜨겁게 달구었던 학생과 넥타이부대의 시민혁명이자 직선제 개헌 투쟁이기도 했던 사건이다. 이렇게 유월은 전쟁과 호국과 분단이 한 축을 이루고 혁명과 개혁과 민주주의가 한 축을 이루는 비대칭적 데칼코마니를 우리에게 던져주는 달이다.올해 70주년을 맞는 6·25전쟁은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Korean War)'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국제전이자 이념전이었으며 더 구체적으로는 동족상잔이었던 이 전쟁은 적의(敵意)와 학살, 월남과 월북, 휴전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부산물들을 생성해냈다. 박찬승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에서는 전쟁 동안 '마을'들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에 주목했는데, 말하자면 당시 마을들마다 벌어진 학살의 갈등 구조를 낱낱이 밝힌 것이다. 마을마다 깊은 골로 잠복해 있던 신분갈등, 계급갈등, 친족갈등, 종교갈등, 이념갈등 들이 전쟁기간 폭발한 실례들을 실증적으로 규명한 이 저작은, 평소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그룹을 치안 부재의 상황에서 어떻게 제거해갔는가를 소상한 증언 채록을 통해 들려준 것이다. 전쟁은 후방의 민간인들에게 더 참혹한 비극을 안겨준다는 역설을 웅변해준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렉시예비치가 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도 반전(反戰)의 메시지로 경청할 만하다. 그녀는 전쟁의 야수성과 그 잔혹한 희생에 대해 주목하면서, 500여 명의 목소리가 전해주는 전쟁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전쟁에 참여했던 소녀들의 실감 있는 증언을 기록하면서 그녀는 전쟁에 기꺼이 참여했던 소녀들이 얼마나 순진한 이상 속에서 비극을 겪어갔는가를 들려준다. 이 두 권의 책은 이 땅에 다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는 까닭을 충실하게 암시해준다. 그야말로 전쟁은 명분도 실익도 없는 전폭적인 상호 패배의 행위가 아니었던가.올해 33주년을 맞는 유월항쟁도 한국 현대사에서 기념할 만한 민주화운동의 큰 봉우리이다. 1987년 1월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대학생 박종철이 사망하자 권력 쪽에서는 의문사로 덮으려고 했지만 시민들은 그의 죽음을 도화선으로 하여 장엄한 항쟁의 역사를 써가게 된다. 4월13일 대통령 전두환의 호헌 선언과 5월18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천주교 사제단의 성명으로 시작된 이 항쟁은 6월9일 대학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지면서 전면적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함성을 전국적으로 이어가게 된다. 결국 29일 여당 대표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면서 이 항쟁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면서 이후 펼쳐지는 한국 민주주의의 확연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이처럼 광주항쟁에서 유월항쟁으로 이어지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커다란 흐름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더없는 굄돌이 되어준 것이다. 항쟁 이후 문민정부가 출범하였고, 수평적 정권교체가 있었으며, 촛불혁명 등 시민혁명들이 이어지면서 우리는 지금 현대사에서 가장 훤칠하고 선명한 민주주의 역사를 써가고 있다.이제 대한민국은 전쟁을 항구적으로 억지하고 민주주의를 점진적으로 키워가는 평화와 개혁의 쌍두마차에 올라타 있다. 양자를 균형 있게 추구하는 설계와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염병이나 공황을 당했을 때 전쟁을 돌파구로 택하곤 했던 파시즘 세력이 역사 속에 늘 있었다는 점을 떠올릴 때, 우리는 코로나 대응을 잘하여 민심이 응집해준 것이 그러한 가능성을 현저하게 줄였거나 없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전쟁과 파시즘이(전염병까지!)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날을 기원하면서 다시 숭고한 희생의 유월 앞에 서 있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06-09 유성호

[수요광장]언택트 시대, 디지털 부적응 등 격차에 대한 해법 마련해야

교수들 '온라인 강의 적응' 어려움비대면 '라이프 스타일' 처음 경험정부 K-뉴딜 '격차해소' 대책 없어산업 성장할 수록 '소외자' 많아져패러다임 전환·대안마련 절실하다마스크를 낀 채 헤드폰을 장착하고 마이크를 확인한다. 마이크를 입에 너무 가까이 댈 경우 거친 숨소리나 불필요한 소음이 발생할 수 있어 체크는 필수다. 노안이 온 필자는 화면에 띄운 PPT를 잘 볼 수 없어 안경을 써야 한다. 마스크와 헤드폰, 마이크와 안경까지 착용하면 우주복이라도 입은 듯 거북하고 갑갑하다.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자못 비장한 마음으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으면 비로소 온라인 강의 준비 끝이다.디지털 문화에 취약한 필자는 강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생소한 것에 눌려 지쳐버리는 느낌이 든다. 이게 다가 아니다. 분명 온라인 수업임에도 오프라인 수업과 다름없이 학교에서 강의를 진행한다. 온라인의 장점은 공간적 제약 없는 접속 아니던가? 누구나 아는 이 사실을 몰라서 멀리 학교까지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필자와 같은 아날로그 세대는 온라인 강의 적응에 어려움이 많다. 온라인 강의에 대한 학교 차원의 별도지원이 없다. 교수들은 각자도생 방식으로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기 일쑤다. 온라인 수업은 파일을 저장해서 학교에 제출해야 되는데 파일 저장 대신에 취소를 눌러 버리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될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과 비대면의 디지털 방식은 교감이 없는 탓인지 불안하다. 특별한 피드백 없이 표정만으로도 교감이 이뤄지는 오프라인 강의실하고는 사뭇 다르다. 필자의 경우는 대학에서 20년 이상 강의를 해 온 터라 강의 자체에 대한 부담은 거의 없다. 그런데 온라인 강의는 시작부터 끝까지 불안감과 부담 자체다. 이런 연유로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조교의 도움이 있는 학교로 가는 것이다. 온라인 수업인데 왕복 3시간이 소요되는 학교로 가는 이유는 어이없게도 디지털 부적응 문제인 것이다.온라인 수업 디지털 부적응으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강의의 질적 하락일 것이다. 온라인이라는 익숙지 않은 강의 방식이 주는 불필요한 긴장은 강의 집중을 방해한다. 실제로 온라인 강의 시작 한 달이 지났지만 익숙해질 기미가 없다. 어쩌면 종강 무렵에나 익숙해질지도 모르겠다.필자를 포함,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부적응 문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는 이렇게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변화 속 혼란을 겪게 하고 있다. 코로나가 만들어낸 비대면으로 인한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는 우리 모두 처음 겪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제도와 관행 속에 변화된 디지털 시대의 상황과 맞물려 부적응 문제가 속출한다.최근에 정부는 K-뉴딜 정책을 천명하며 디지털 산업 발전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디지털 산업 발전 구상 어디에도 디지털 격차로 인한 부적응 문제 등 격차 해소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온라인 강의 특성과 교수 학습방법이 조화롭게 훈련돼 있을 때 온라인 강의가 잘 이뤄질 수 있는 것처럼 디지털 성장 플랜도 국민 모두 적응하고 잘 따라갈 수 있어야 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디지털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디지털 중심으로 산업 구조 전반이 바뀔 것이란 얘기다. 한마디로 코로나와 언택트 비즈니스는 서로 맞물리면서 디지털 중심으로 세상의 자산이 이동되고 있다. 디지털 발전 속도에 비례해 부적응이라는 사회적 문제도 함께 발생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달라진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디지털 세상에 적응은 필수인 것이다.디지털 세상을 선도하겠다는 국정 기조에 맞춰 디지털 산업이 성장하면 할수록 디지털 격차로 고생하며 소외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이러한 사회 현상을 그저 아날로그 세대의 문제쯤으로 봐서는 안 된다. 디지털 격차에서 오는 정보의 불균등으로 인한 사회문제는 앞으로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격차는 빈부의 격차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일 수 있다. 디지털 부적응과 정보격차 해소 방안이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다. 디지털 부적응 문제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디지털 격차 해소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06-02 김정순

[수요광장]슬기로운 야구생활

美 MLB, 시작부터 신문과 공생관계라디오·TV·인터넷 등 미디어 발전韓 프로야구, 130개국 방송 콘텐츠로코로나시대 무관중에도 높은 시청률그럼에도 야구장 응원·치맥 그리워한국 프로야구가 전세계에 중계방송되고 있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지난 22일 미국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을 통해 130개국에 KBO 리그가 방송된다고 밝혔다. 한국프로야구가 세계적인 스포츠 콘텐츠가 된 것이다.프로야구는 시작부터 미디어와 분리할 수 없다. 미국의 메이저리그(MLB)가 시작된 것은 남북전쟁이 끝난 1870년대이다. 신문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시기와 일치한다. 국토가 넓은 미국은 전국 규모의 신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야구 기사는 지역지의 중요한 콘텐츠였다. 매일 경기를 개최하는 야구는 매일 발행되는 신문의 더없이 좋은 파트너였다. 경기기록을 매일 확인하는 야구팬은 신문의 충성 독자가 되었다. 야구와 신문은 공생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20세기는 전파 미디어의 시대다. 1920년, 피츠버그에서 세계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탄생했다. 초기 라디오는 콘텐츠가 빈약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이 야구 중계방송이다. 야구중계는 라디오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동시에 프로야구의 시장도 확대되었다. 전파(電波)가 도달하는 지역까지 팬층이 형성된 것이다.2차 세계대전 후인 1950년대부터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된다. 신생미디어인 TV에서도 야구는 중요한 콘텐츠가 되었다. TV는 전국방송이 가능했다. 또 그 시기부터 비행기가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등장했다. TV와 비행기로 인해 미국 중동부로 한정되었던 야구 시장이 태평양 연안까지 확장되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LA다저스는 원래 뉴욕 브루클린이 본거지였다. 1958년 LA로 홈구장을 이전했다. 이어서 뉴욕 자이언츠도 샌프란시스코로 본거지를 옮긴다.케이블TV는 1980년대에 본격 등장하여 다양한 전문 채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KBO 경기를 세계로 송출하는 ESPN도 이 시기에 스포츠 전문채널로 탄생했다. 카메라를 추가 투입하여 보다 입체적인 화면을 보여주고, 자막 정보를 제공하는 등 중계기술이 발전하게 되었다.1990년대는 위성방송의 시대다. 동구권의 몰락으로 냉전이 종식되자 첩보용으로 사용된 인공위성을 방송 중계에 이용하게 된다. 스포츠는 위성 중계방송의 적합한 콘텐츠이다. 이에 따라 메이저리그도 해외시장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94년에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의 노모 히데오도 같은 시기에 활약했다. 한국과 일본의 시청자들은 새벽에 라이브 중계방송을 볼 수 있었다. 최근의 류현진에 이르기까지 많은 우리 선수들이 미국에 진출했다. 일본도 마쓰이, 이치로, 최근의 오타니 쇼헤이 등 수많은 선수들이 메이저리거로 활동해왔다.2000년 이후는 인터넷의 시대다. 인터넷 사이트인 MLB닷컴을 통해 전경기 실시간 중계, 다시보기, 하이라이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전세계의 팬들에게 제공하고 있다.그리고 코로나의 공포가 세계를 덮친 2020년 야구시즌이 돌아왔다. 사실 우리보다 대만에서 먼저 프로야구가 개막되었다. 그러나 대만의 프로야구는 2009년 승부조작 스캔들로 인해 6개팀에서 4개팀으로 축소되어 팀간 40차전, 팀당 연간 120게임으로 운영되고 있다. 경기수준도 우리보다 낮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미국의 팬들은 메이저리그만이 진정한 야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종 챔피언 결정전도 아메리칸 시리즈가 아닌 월드 시리즈로 부른다. 그들에게 메이저리그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야구는 스포츠뉴스에 간혹 등장하는 진기명기 수준에 불과한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그들보다 앞서 개막한 한국의 프로야구가 주목받는 것이다. 미디어는 새로운 콘텐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코로나19가 우리의 생활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꺼린다면 프로 스포츠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관중이 없어도 시청률은 높게 나타나고 있다. 야구장에 직접 가지 않더라도 팬들의 관심은 여전하다는 징표이다. 그것이 코로나 시대의 슬기로운 야구팬의 자세일지도 모른다.그럼에도 빨리 야구장에 가고 싶다. 관중들과 함께 선수들의 파이팅을 큰 소리로 응원하고 싶다. '치맥'도 생각난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이 그립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0-05-26 이영철

[수요광장]아이들을 도울 때 진짜 어른

어린이는 미래 희망이라 말하지만선뜻 나서 도와주는 사람은 드물다예전 사회복지공무원 특강 말미에기부 얘기 자발동참으로 확산 기억작은정성이나 큰 의미 멈출수 없어살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한 짧은 식견이지만 도움이 되는 말을 전할 때가 있습니다. 파주에서 일할 때 초빙강사가 사정이 생겨 우연찮게 사회복지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게 되었지요. 강의를 마치면서 뜬금없이 물음표를 던져 보았습니다. "다만 얼마라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시겠습니까?" 열 사람이 채 안 되었지요. 다시 한마디 던졌습니다. "사회복지는 국민 복리 향상을 위한 일, 그중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이 중요한데 실망이 큽니다. 일선 사회복지직 공무원이야말로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슴에 담고 솔선수범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후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매월 월급의 1%를 모금해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지요.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시장께 사회복지직 뿐 아니라 시청 공직자 모두가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들자고 했지요. 설문조사결과 참여 의사를 밝힌 공직자가 98%를 넘었습니다. '공직자라는 사명감이 생각보다 상당하구나!' 새삼 직원들에게서 묵직한 울림과 감동을 받았지요. 용기를 내 시의회와도 협의를 거쳐 공직자 모금액만큼 일반 예산에 반영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내친김에 'LG 필립스' 노조위원장을 만났지요. 박봉의 공직자들이 좋은 일을 하니 기업체에서도 도와달라고 했는데 며칠 후 흔쾌히 동참 의사를 밝혔습니다. 경기도 사회복지 공동모금회도 함께 하기로 했지요. 공직자와 자치단체, 기업, 공익단체가 한마음으로 나선 것입니다.이듬해 1월부터 소년·소녀 가장과 시설 어린이들에게 매월 5만원씩 후원했지요. 공직자와 파주시, LG필립스, 경기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하나로 뜻을 모아 가치 있는 협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들을 돕는 일이 펼쳐지자 시민의 공직자에 대한 인식과 평판도 좋아졌고 공직자들도 생각이 달라졌지요. 세간의 칭찬이 그렇게 만든 측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이들을 돕는다는 보람을 느끼게 된 것이 더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말마다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잡초 뽑기나 도배 등 봉사활동과 함께 위문품도 전달했지요. 서로 힘을 모으면 가치 있는 결실을 맺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건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례는 '2010년 대한민국 휴먼대상' 우수상을 받으며 전국적인 관심으로 이어졌지요."어린이를 도울 때 진짜 어른이 됩니다"라는 크레파스로 쓴 글귀가 생각납니다. 공자는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고(老者安知) 친구들과 신의를 잘 지키며(朋友信知) 아이들을 품에 보듬고 잘 이끌어 주며 살고 싶다(少者懷知)"고 했지요. 사람들은 누구나 미래를 말하고 그 미래의 꿈과 희망은 어린이라고 말하지만 선뜻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은 드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이율배반적인 현상이지요. 우리의 미래는 아이들이라는 말, 너무나 당연합니다.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해야 우리 사회도 밝아진다는 말도 두말 할 필요가 없지요. 그러나 오늘을 사는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이라는 사실, 그건 말로 되는 게 아닙니다. 당연한 말처럼 당연히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 일이지요.너른 고을이라는 시골에서 자란 저도 어렸을 때 학용품을 제대로 못살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해 시작한 소년·소녀 가장 후원이 어느새 30년이 훌쩍 넘었지요. 제 이름 석자가 '초록우산 명예의 전당'에 헌액(獻額)된 영광도 이 때문입니다. 공직 은퇴 후에도 이 일을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지요. 국민 세금으로 살았으니 아이들을 위해 작은 정성이나마 보태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술 한 잔 덜하면 되는 적은 돈이라도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이유이지요. 비록 작은 정성이지만 누군가 기쁜 마음으로 학용품을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소박한 일이지만 의미있는 일인데 멈출 수는 없는 일이지요. 아이들을 도울 줄 알아야 진짜 어른입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0-05-19 홍승표

[수요광장]오월과 한국문학

동·서양 서정시 역사에서 오월은자연미 정점·내면적 충일의 상징'1980 광주' 폭력 문단 저항의 시작경제 호황에 '대중문화 개화' 공존올 40周… 민주주의 혁혁한 기여19세기 독일의 유명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놀랍도록 아름다운 오월에'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오월에/모든 꽃봉오리가 피어날 때/나의 마음속에서도/사랑의 꽃이 피어났어라//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에/모든 새들이 노래할 때/나의 불타는 마음을/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했어라'라는 내용의 서정시로서, 오월의 청신한 분위기와 사랑의 절절함을 잘 결합한 가편이다. 20세기 한국 서정시의 명편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하염없이 지는 모란꽃을 보면서 "찬란한 슬픔의 봄"을 다시 기다리는 심미적 자세를 노래함으로써, 오월의 순수무구한 이미지와 시인의 내면적 슬픔을 잘 결속한 결실이다. 이처럼 동서양의 서정시 역사에서 오월은 '봄의 여왕'으로서 자연미(美)의 정점과 내면적 충일함을 동시에 상징하는 맞춤한 계절적 소재였다고 할 수 있다.그러다가 1980년 '오월 광주'의 충격을 접하고부터 한국문학에서 '오월' 상징은 크게 변모하게 된다. 어쩌면 1980년대 이후 한국 현대사는 정치적으로는 물론이고 문화적으로도 광주민주화운동에 의해 규정을 받지 않은 곳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월 광주'를 애써 폄훼하려고 했던 이들조차 역설적으로 그 흐름에 긴박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유신의 몰락과 더불어 형성된 새로운 열망들을 하나하나 좌절시키며 등장한 신군부 세력은 '오월 광주'를 폭력으로 진압하면서 80년대 내내 억압의 통치를 이어갔다. 이때 시인들은 권력과의 날카로운 대결과 그로 인한 내면적 저항의 언어를 세상으로 흘려보내게 되었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김남주, '학살 2')에 나타난 시인의 격앙처럼, 우리 시는 불가피하게 이러한 시대적 역학 안에 유폐되었고, 윤리적 자아와 시적 자아 사이의 간극을 스스로 파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캠퍼스 안에서 은밀하게 소통되던 것이든, 훗날 대중적으로 성공한 '모래시계'나 '박하사탕' 같은 영상물에서 확인한 것이든, 이러한 야만의 시대가 남긴 끔찍하고 잔혹한 폭력성은 오래도록 사람들 뇌리에 혈흔처럼 남았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많은 이들의 내면에는 가장 어둑한 충격과 가장 빛나는 저항의 역사가 동시에 아로새겨지게 되었던 것이다.물론 우리가 80년대를 기억할 때 그 시대가 탈(脫)정치적 대중문화가 가장 활발하게 은성한 시대이며, 세계경제의 활력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극점을 이룬 물질적 풍요시대였다는 점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후진적 정치와 호황의 경제라는 기묘한 불균형 속에서 제 물을 만난 것이 바로 문화의 대중화(popularization) 흐름이었는데, 이현세의 장편만화 '외인구단'이 대중들의 이목을 붙들었고, 김홍신의 장편소설 '인간시장'과 서정윤의 시집 '홀로서기' 등이 문학의 밀리언셀러 시대를 열기도 하였다. 그만큼 1980년대는 절대권력의 폭력성과 그것을 후광으로 하는 대중문화의 화려한 개화가 공존하는 시대였다.올해 우리는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다.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보듯, 장훈의 영화 '택시 운전사'에서 보듯, 이제 우리 문학과 예술은 '오월 광주'를 가장 아프고 또 가장 빛나는 사회적, 윤리적 사건이라고 형상화하고 있다. 특별히 '소년이 온다'는 5·18 당시 숨죽이며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소설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광주사태'라는 어처구니 없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고, 객관적으로 밝혀진 것들까지 이념적 폄훼를 가하는 이들이 지금도 있지만,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로운 사회적 시스템이나 더 이상 절대권력이 들어설 수 없는 민주주의 장치 마련에 '오월 광주'가 끼친 기여는 자못 혁혁하다 할 것이다. 그렇게 "놀랍도록 아름다운" 오월은 위대한 역사적 분수령이 되어, 이제 누군가를 더 밝은 빛이 비치는 쪽으로 인도해 가는 역사적 힘으로 남았다. 그 숱한 죽음과 아픔과 헌신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지금 다시 힘겨운 민주주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05-12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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