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이명호 칼럼]지구도 휴식이 필요하다

코로나사태 글로벌경제활동 위축봉쇄 조치 도로·항공 교통량 감소NASA "세계 대도시 대기질 개선"사람유발 지구의 진동 평균 50%↓도시민 공기·식물 중요성 깨달아인간의 활동이 멈추거나 줄어드니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들이 관찰되고 있다. 당장 대기가 개선된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미세먼지도 확 줄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처음 발견된 우한 등 중국 중부 산업지역에서 일산화질소 농도가 평소보다 10~30% 낮아졌다고 한다. 한국 역시 공기 질이 좋아진 영향을 받았다. 멀리 인도 북부에서는 30년만에 160㎞ 떨어진 히말라야 산봉우리를 볼 수 있었다. NASA는 위성사진을 분석해 전세계 주요 도시지역의 대기 질이 개선되었다고 발표했다. 특히 대도시에서 이산화질소량이 50% 이상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호흡기 질환 감소로 수십만 명의 생명을 구했을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이는 물론 봉쇄조치와 경제활동 위축에 따른 에너지 사용의 감소, 특히 교통의 감소에 기인한다. 애플의 아이폰 이용자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절정인 2020년 3월에서 5월 사이에 미국, 호주 및 독일 등에서 대중교통 이용률은 전년 대비 70% 이상 감소했다. 전세계 항공기 운항도 5월 기준으로 작년보다 66% 급감했다.대기 질이 좋아진 것 이외에 우리가 못 느끼는 또 다른 현상도 나타났다. 지진이 감소한 것이다. 벨기에 왕립 천문대가 주도한 전세계 5곳의 기관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3~5월 사이에 인간에 의해 유발된 지구의 진동(지진, 지각 소음)이 평균 50% 정도 감소했다. 인구 밀집 지역에서 '지각 소음'의 감소가 더욱 두드러졌다. 지각 소음은 지구 내 진동으로 지진, 화산 및 폭탄뿐만 아니라 여행 및 산업과 같은 일상적인 인간 활동에 의해서도 유발된다. 과학자들은 인간에 의한 왜곡 진동없이 지구의 자연 진동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사람이 유발한 소음과 자연 신호를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되어, 자연 재해를 경고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한 인간 활동의 급속한 감소가 지구의 환경 악화에 인간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교 연구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코로나19 봉쇄 조치로 도로, 항공의 교통량 감소로 전세계가 조용해지자 지구의 몸살(진동)도 줄어든 것이다. 소음은 물론 지구만 몸살을 앓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더 큰 고통을 받는다. 유럽 환경청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 인구의 20%가 교통 소음이 건강에 해로운 지역에 살고 있다. 소음(시끄러운 환경)은 오염이지만 대기 오염과는 달리 보거나 냄새를 맡을 수 없고, 일시적이기 때문에 심각성을 인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소음은 사람을 산만하게 하여 업무, 교육, 수면 등에 만성적 영향을 미치고 효율성을 저하시킨다. 철길과 접한 쪽의 교실 학생들의 독서 점수는 건물의 다른 조용한 쪽보다 1년 뒤떨어진다고 한다. 공항 근처에서 살았던 어린이들의 독해 능력은 공항이 이사한 후에 개선되었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낮아졌다는 등 많은 연구가 소음의 악영향을 경고하고 있다. 50㏈(데시벨) 이상에 장기간 노출되면 청력 손상, 혈압과 스트레스 수준 증가, 우울증의 위험이 두 배 증가하고 정신력이 저하한다. 반면에 조용한 환경은 생체 활력을 높인다. 생쥐에게 조용한 환경을 만들어주니 새로운 뇌 세포 생성이 활발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60년 전에 영국이 소음 저감법을 제정한 이후 전세계 각국이 소음 수준을 규제하고 있으나, 전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세계보건기구의 권고 기준인 65㏈을 초과하고 있다. 도로변 주거지역(낮) 소음이 서울 68㏈이고 대구, 인천, 부산 모두 65㏈ 이상이다. 밤 소음은 서울 66㏈이고 광주까지 밤 기준인 55㏈을 넘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건강에 위험한 소음 지역에 살고 있는 것이다.경제 악화와 생명의 위협이라는 팬데믹은 도시 거주자들에게 더 깨끗한 공기, 더 조용한 도로, 더 많은 식물의 중요성을 느끼게 했다. 인간이 얼마나 지구를 힘들게 하는지도 알게 됐다. 도시 환경이 개선된 녹색 세계에 살고 싶어하는 경향이 증가한 것은 팬데믹이 준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

2020-08-03 이명호

[홍창진 칼럼]원수는 내 운명

사람이 살면서 한번 척을 지게되면 화해를 시도해도 회복이 쉽지않다서로 잘못한 경우가 대부분인데…용서 차원서 상대방 생각하기 때문미워할 바엔 곁에 두고 사는 지혜를가끔 신자들과의 모임에서 묻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원수진 사람이 없는 분 계십니까?" 원수진 사람이 없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사업을 같이 하다가 돈 문제로 친구와 적이 되기도 하고 연애 중에 상대가 신의를 저버려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합니다. 직장 동료가 자기를 헐뜯고 다닌 걸 뒤늦게 알고 척을 지기도 하고 고부간의 갈등으로 시댁과 원수가 되는 것도 다반사입니다. 꼭 드러내놓고 다투지 않더라도 내 마음 안에서 이미 관계를 끊어버리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지요.한번 척을 지게 되면 나중에 화해를 시도한다 해도 관계가 회복되는 예가 거의 없습니다. '잘못은 상대에게 있고 나는 용서하려는 차원에서 손을 내미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잘못도 있다고 인정한다 해도 거기에는 이런저런 변명이 붙습니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상대가 조금이라도 싫은 소리를 하거나 지적을 하면 화해하려는 마음은 더 큰 분노로 바뀝니다. 일전에 미술인들과 미술 시장 활성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의 낙후된 어느 지역에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있었는데 재건축을 진행한지 15년이 되도록 진전이 안 돼 곧 계획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파트는 흉가나 다름없이 방치되어 있었지요. 만일 미술인들이 이 헌 아파트를 싼값에 한 채씩 매입한다면 더 이상 젠트리피케이션에 위협받지 않는 것은 물론 공동체에서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조합을 만들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신나게 이런저런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그런데 재건축 조합이 극적으로 다시 살아나서 우리 사업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 일에 앞장섰던 저와 집행부는 마치 사기꾼처럼 몰려 비난을 받았지요. "천주교 신부여서 믿고 함께했는데 이게 뭐냐! 신부도 사기 치냐!" 소액이지만 십시일반 부담했던 조합 회비를 내놓으라며 으름장을 놓는 이도 있었습니다. 운영비 한 푼 받기는커녕 오히려 쌈짓돈 털어 기부까지 했는데 결국 인연이 끊긴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어언 10여 년. 돌이켜보면 여전히 속이 상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에서 그래도 관계를 회복해야겠다 싶어 인연이 끊긴 이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하지만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냉대로 마음만 혼란해질 뿐 마음이 통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에게 "밀 이삭을 심었는데 가라지 싹이 보이네요. 우리가 가라지들의 싹을 잘라버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놔두어라. 지금 가라지 싹을 뽑으려다 밀까지 뽑을 수 있다. 그러니 추수 때에 가라지와 밀이 선명히 드러나면 가라지를 뿌리째 뽑아 불에 태워버려라"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선한 이와 악한 이가 함께 살고 있는데 악한 이는 종말에 가서 내가 심판할 테니 너희는 남을 심판하려들지 말고 착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이렇게 빗댄 것입니다. 원수져 싸울 때 보면 어느 한 쪽이 옳은 듯 보여도 서로 잘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느 측면에서 보면 저이가 옳고 또 어느 측면에서 보면 그이가 옳습니다. 여기에 개인적인 상황까지 결부되면 시시비비를 가리기란 끝이 없습니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리는 갈등에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밀이고 상대는 가라지라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그보다는 나도 누군가에게는 가라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상대를 적으로 두고 심판하는 건 내 인생의 폭을 좁게 만들 뿐입니다. 결국 답답하고 화가 나는 건 자기 자신뿐입니다. 원수는 나의 운명입니다. 피하려 해도 원수 없이 살 수는 없는 게 인생사입니다. 보지 않고 멀리 지내도 기억에 남아 수시로 마음에 상처를 냅니다. 멀리 보내려 하면 할수록 그는 끈질기게 나를 찾아옵니다. 그럴 바에야 미워하면서 괴로워하기보다는 차라리 곁에 두고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겠지'하고 그를 풀어 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07-27 홍창진

[이영재 칼럼]"나, 이재명 좋아질 뻔했어"

대법 판결후 주택난 해결·종부세 폭탄 등정국 현안에 '사이다 발언' 쏟아내자 깜짝"장사꾼도 손실 감수" 무공천 언급땐 압권이틀후 "의견과 주장은 달라" 변심에 실망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후, 주요 정국 현안에 대해 발언을 쏟아내자 모두 깜짝 놀랐다. 이 지사의 '사이다 본능'이 더 강력하고 신선해졌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판결 다음날 그린벨트 해제 지역에서 아파트 분양권에 당첨되는 걸 로또에 비유하면서 "집값은 못 잡고, 전국적으로 분양 광풍만 일어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발 더 나아가 대안도 제시했다. 그린벨트 해제 대신 도심 재개발이나 용적률 상향 조정으로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역시 대치동 '일타 강사' 뺨치는 발언이었다.종부세 폭탄과 관련해서도 사이다 발언이 이어졌다. "비싼 집에 사는 게 죄인가. 집값 올랐다고 마구 세금을 때리면 안 된다. 주택은 가격보다 숫자, 숫자보다 실거주 여부를 따져 중과세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은 계속 이어졌다. "실거주 1가구 1주택이 고가라는 이유로 압박하고 제재하는 방식을 동원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집 한 채 끌어안고 전전긍긍하던 50· 60대들은 이 지사 말에 감동했다.이 지사의 정치감각이 '천부적'이라는데 누구나 동의한다. 홍준표 의원보다 두 수 정도 위라는 말도 있다. 자신의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열광시키는 방법을 이 지사는 잘 알고 있다. 민주당의 지지자들을 넘어 중도층까지 아우르기 위해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고 있다. 자신의 발언이 불러올 파장도 분명 예상했을 것이다. 그 다음 날 발언은 정말 압권이었다. 이 지사는 "장사꾼도 신뢰를 유지하려고 손실을 감수한다"며 "아프고 손실이 크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 공천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서울·부산시장 공천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지사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그분(이낙연)은 엘리트 출신이고 난 변방의 흙수저"라고 말했다. 이낙연 의원과의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의원에 대한 공개 도전장으로 비쳤다. 이 발언에 충격을 받은 건 이낙연 의원도, 청와대도 아니다. 통합당 지지자까지 포함한 중도층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어설픈 정책으로 전전긍긍했었는데 이 지사의 사이다 발언에 얹혔던 체증이 한순간에 꺼졌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이날 밤, 지인들과 소통하는 단톡방이 시끄러웠다. 평소 이 지사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한 지인이 "나 이재명 좋아질 것 같아"라며 마치 커밍아웃하듯 말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두세 명이 이 말에 동조하면서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물론 "아직은 믿을 수 없다"는 부류도 있었지만, 머리 좋고 상황 판단 빠른 이 지사가 무심코 이런 발언을 하진 않았을 거라는 게 중론이었다. 거칠다는 문재인 지지자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그냥 쇼 한번 하겠다고 저런 무리수를 두겠냐는 것이다.만나는 사람마다 이 지사의 발언이 화제였다. 통합당에 변변한 출마자가 보이지 않는데 이 지사가 정말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면 굳이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호불호가 분명한 이 지사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권력을 잡는다면 신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것도 그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날 실시간 검색 상위에 오르는 등 이 지사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느낌이 역력했다. 우리는 2016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과정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의 발언을 기억한다. 문 후보는 라디오에서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을 칭찬하며 "제가 들어도 시원할 만큼 사이다가 맞다"면서 "분명하고 위치 선정이 빠르고 아주 훌륭한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그만큼 이 지사는 대중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가려운 곳이 어디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정치인이다. 이 때문에 '포퓰리스트'라는 말도 듣긴 하지만 지금 대중이 원하는 건 이 지사처럼 의견이 분명한 정치인이다.그러나 슬프게도, 이틀 후 이 지사는 자신이 했던 공천과 관련된 발언을 뒤집었다. "나는 무공천을 주장한 적이 없다"는 말도 그렇지만, "의견과 주장은 다르다"는 말에 많은 이들이 실망을 금치 못했다. 정치는 이 지사 말대로 '생물'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그 단톡방이 또다시 뒤집어졌다. "나 이재명 좋아질 것 같아"라며 몹시 흥분했던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나, 이재명 좋아질 뻔했어. ㅜㅜ"/이영재 주필이영재 주필

2020-07-27 이영재

[방민호 칼럼]새로운 좀비 영화 '반도'의 충격

개봉 5일만에 180만 관객 흥행돌풍코로나19 대유행 맞물려 가히 리얼현대 두개의 역설 인문학적인 문제산 시체 '좀비' 죽은듯 사는 '무젤만'원한 이념 여전 누가 과연 좀비인가흥행돌풍이라고 한다. 개봉 닷새만에 벌써 18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것이다. 2016년 유일한 천만 돌파 영화 '부산행'에 이어 이번 좀비 영화도 심상찮은 조짐이 엿보인다고나 할까? 도대체 이 영화가 어떻기에 이런 바람이 불었을까?이 영화는 한반도에 정체모를 바이러스가 퍼져 난리가 나면서 시작된다. 뭔지 모르지만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좀비가 되는 것이다. 그럼 좀비란 무엇이냐? 하면 간단히 말해 살아 있는 시체를 말한다. 서인도 제도의 민속 신앙, 부두교 신앙에서 유래한 이 살아있는 시체는 '반도'나 '부산행'에 따르면 영국에 건너간 저 루마니아 괴물 드라큘라처럼 사람 목을 물어뜯기도 하고, 그러면 물린 자도 괴물이 되어 버린다.좀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나머지 한반도는 좀비 세상이 되어 버렸다. 좀비가 사람들을 물어뜯어 모두들 몹쓸 병에 걸려 정상인들이 다 사라질 정도로 좀비 세상이 되어버린 한반도를 사람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좀비들로 폐허가 된 마지막 피난선을 타고 홍콩으로 건너간 지 4년만에 고립된 한반도로 되돌아가게 된 강동원 분 '정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개체수'가 엄청난 좀비들뿐이다.그런데, 미래공포영화라 할까 액션 스릴러라 할까 모를 이 '반도'는 아직 통일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완전한 미래형은 아닌 것 같다. '북한'에서는 한반도 '남한'이 좀비 세상이 되어 버리자 아예 문을 닫아걸어 버리는데, 사실 진짜 좀비들이 더 만연, 창궐하는 곳은 저쪽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 이 영화의 한 가지 난센스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쪽에 지금 좀비가 창궐하는 것은 사실은 사실이니 크게 나무랄 수는 없다. 아무튼 좀비들, 이 살아있는 시체들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모르게 한반도를 뒤덮어 서울이며 인천이며 피할 곳 없을 지경이 되어 버렸다는 모티프는 코로나19 대유행의 세계적 현상이나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맞물려 가히 리얼하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좀비 영화의 세계적 흥행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현대에 접어들어 두 개의 역설이 인문학적인 문제가 되는데, 하나는 좀비, 즉 '살아있는 시체'이며 다른 하나는 '무젤만' 즉 '죽은 것 같은 산 사람'이다. 이 둘을 모두에 간단한 상징적 해석을 가하면 좀비란 이미 죽은 존재, 가치들이 아직도 산 것처럼 힘을 미치는 것이고, 무젤만은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이 말하듯 현대의 잔인한 생명정치에 의해 죽음으로까지 내몰리는 산 자들, 나아가 산 가치를 말한다. 세계를 극단적인 증오와 대결, 단죄로 몰고 가는 원한의 이념은 이미 파산을 선고받았으되 아직도 무진장 힘을 발휘하고 있고, 진짜 생명적 가치는 죽음의 차원으로까지 내몰려 비난과 기피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렇게 만드는 힘들이 작동한다. 이 좀비의 반도에서 말이다.저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에서 오이디푸스가 떠난 테베의 왕위를 차지한 안티고네의 삼촌 크레온 왕은 안티고네의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장사 지내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의 시신을 들판에 버려 명부로 들어가지 못한 채 새와 짐승의 밥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왕의 명령은 지엄하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권력은 오로지 이승의 것일 뿐 죽은 자의 세계에까지 미칠 수는 없노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왕의 명을 어기고 오빠를 땅에 묻고 죽음을 당한다. 새와 짐승의 밥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물어뜯음, 죽은 뒤에까지 물어 뜯김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마찬가지로,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사육신이 일어나 질서를 바로잡으려 했으나 거열형이라는 처참한 형벌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때 새남터에 버려진 사육신의 시신을 거두어 몰래 묻어준 이가 생육신의 하나로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이었다.죽은 자를 땅에 묻으라. '반도'는 묻히지 않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원한을 보여준다. 그러나 누가 과연 좀비인가? 누가 물어뜯기고 물어뜯는가? 나는 아직 이 이상한 세상을, 나라를 알지 못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20-07-20 방민호

'역병(疫病:감염병)'과 '한의약'

모든 의학의 역사는 역병과 투쟁의 역사다. 한의학 역시 역병(疫病), 즉 감염병의 실체를 밝히고 적절한 방역(防疫)의 방법을 찾고, 감염병의 예방과 치료를 연구하며 발전해 온 의학이다.작년 연말부터 중국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와 전세계를 힘들게 했던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잠잠해지나 싶더니 다시 끊이지 않고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 이 코로나19 역시 새로운 역병(疫病)이다. 역병의 창궐은 재난상황이다. 재난 앞에서 인류는 모든 정보를 교류하고 힘을 합하여 대응해야 한다.필자도 '코로나19 한의전화진료센터'에 봉사자로 참여하여 외국인환자도 비대면진료하고 여러환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본인이 참여한 서울진료센터에서는, 하루 평균 20여명의 한의사와 20여명의 한의대생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많은 코로나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5월말 기준으로 전체코로나 환자의 20%이상이 한의진료를 경험하게 되었고, 만족도 또한 매우 높게 나왔다. 코로나 19의 한의진료는 WHO의 권고사항이다. WHO는 2020년 2월에 에볼라 치료제로 유명한 렘데시비르, 신종플루때 나왔던 아비간,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퀴닌, 코로나19를 극복한 사람들의 혈장을 이용한 혈장요법과 더불어 각국의 전통의학을 Immediate Therapeutics로 권고하고 있다. 이에 대한한의사협회는 코로나 19에 대한 진료매뉴얼과 진료지침서를 만들고 시시각각 업데이트하면서 이에 대응하고 있다. 실제 양한방 협진 체제가 잘 운용되는 중국의 경우 코로나19 바이러스 치료에 한의학적 치료를 가미해 많은 효과를 내고 있으며, 보고에 의하면 85%의 확진자들에게 한약을 투여해 완치 기간을 앞당기고 있다.한의학은 인류의 오랜 질병의 역사와 함께해 왔고 역병(감염병) 치료를 위한 많은 솔루션을 축적해 왔다. 이미 후한(後漢)시대 장중경의 상한론(傷寒論)과 청대(淸代)의 온병학(溫病學)을 위시해 많은 의서를 통해 역병의 생성과 그 발전, 소멸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에 대해, 역병의 기전은 물론 상세한 치료법까지 모두 구축해 놓고 있다. 그리고 현대한의학에서는 각 한의과대학의 예방한의학교실과 호흡기내과학교실에서 학부과정은 물론 대학원 박사과정, 한방병원의 전문의과정까지 개설되어 예방한의학 전문가와 감염병 전문한의사를 양성 배출해오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재난상황에서마저 일부 의사단체의 직역이기주의로 인해 정부의 감염병 대응지침에 한의사 전문가들의 참여가 배제된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그나마 경기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한의사 역학조사관을 임명하여, 심층 역학조사는 물론 검체채취에도 참여하고 있지만, 질병관리본부의 이기적인 대응지침으로 인해 격리중인 환자의 치료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재난 앞에 직역이기주의는 죄악이다.한의학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계속된 감염병의 역사속에서 그 역할을 내려놓은 적이 한번도 없다. 항상 감염병과 싸우면서 더 나은 방법을 찾아왔다. 한의학은 이번 코로나19 이후에도 계속해서 감염병과 싸울 것이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건강을 지킬 것이다. /경기도한의사회장 윤성찬(한의학박사)

2020-07-14 윤성찬

[이남식 칼럼]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

지나친 개입으로 부동산광풍 시작아직도 '세금으로 해결' 망상 빠져결국 도심공급 늘어나야 가격 안정국민들 권한 위임 받은 정치·행정시장기능 회복되도록 심기일전을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삶을 살면서 과거의 삶이 얼마나 귀중했는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모든 뉴스 매체에서는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부동산 광풍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정말 아파트 한평(3.3㎡)이 1억원을 넘고 엄청난 부동자금이 투기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몰려드니 21번의 대책이 아무 소용이 없는, 그리고 더 높은 강도의 대책이 발표되는 가운데 그저 오랫동안 한곳에 살아온 분들에게도 천문학적인 보유세나 종부세가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닌 패닉에 빠지게 되었다.2017년 이 정부의 출범 이후 부동산에 대한 징벌적인 정책을 강력하게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오늘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나 돌이켜보면 징벌적인 의도를 가지고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함으로써 일을 그르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구체적으로 정확한 경제학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것은 아니나 강남의 아파트 재개발로 인하여 큰 수익을 얻게 되자, 재개발 가능 아파트에 대한 투자로 가격이 오르고 2만~3만가구의 재개발로 인한 이주세대가 전세금을 올리는 상황에서 정부정책의 출발은 재개발을 막아 투기를 원천 차단하겠다 하였으나 오히려 공급이 줄어 가격 상승을 촉발하였고 도심이 아닌 외곽지에 신도시를 개발하면서 2019년에만 45조원의 토지보상금이 풀리고, 이는 다시 부동산시장의 시드 머니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실제적인 부동산의 가치와 가격 사이에 괴리 (decoupling)가 엄청나게 발생되는 투기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가격을 억제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한다 하니 공급이 더욱 위축되고 가격이 오르니 너도나도 저금리에 빚을 내어서라도 아파트를 사려는 심리가 발동된 것이다. 시장의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인 가격 결정기능이 지나친 정책적 개입으로 말미암아 군중심리가 작용하여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박병석 국회의장께서는 40년간 서초동의 아파트에서 그냥 사셨다. 그런데 65평쯤 되는 아파트의 현재 시세가 60억원이라고 나오고 재개발 입주 시에는 95억원에서 100억원의 가격이 된다는데 이는 당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이루어졌으니 억울하실 만하다. 그러나 정치가 지나치게 모든 부분에 개입함으로써 만들어진 부동산 광풍에 대하여 정치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우실 수 없을 듯하다. 도저히 정상적이지는 않은 상황인데 아직도 당국자들은 도심의 공급을 늘릴 생각은 안하고 세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다. 물론 도심 과밀화의 문제가 있다. 따라서 도심재개발을 허용하되 일본처럼 주차장이 없는 아파트를 도심에 만들어 젊은층에게 보다 싸게 주거 제공을 하고 인근의 사무실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여 출퇴근할 수 있도록 교통수요를 줄이면 과밀효과를 감소시킬 수 있다. 결국 공급이 늘어나야 가격이 안정되지 않겠는가? 지금처럼 가면 국회의장처럼 한곳에서 그냥 오래 살던, 특히 은퇴자들은 세금 폭탄 속에서 매우 암울한 노후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은행금리도 1%대이고 수입도 없는데 집을 가졌다고 세금폭탄만 맞을 것이니 말이다. 관계 당국의 엇박자 처방이 증폭되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 시키는 것이 모바일 앱들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파트 전체 단지 중에서 한 두 채인데 이러한 가격이 금방 아파트 전체의 가격으로 알려지고 그 가격 이하로는 팔지 않으려는 심리가 작용하여 실제 가치와 가격 사이의 괴리를 키우고 있지 않은가 한다. 또 다른 디커플링의 현장이 증시가 아닌가 한다. 기업의 영업성과나 미래가치와는 무관하게 투기적인 상황이 전개된다면 이 또한 향후 대폭락의 과정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되지 않을까 한다. 성실하게 일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보상받는 사회가 아닌 투기에 동참하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를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 대체 정치란, 그리고 행정이란 무엇인가. 백성들이 편안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많은 권한을 위임해준 것이 아닌가. 이제 정책이 해결할 수 있다는 망상을 버리고 시장기능이 회복되도록 심기일전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2020-07-13 이남식

[윤인수 칼럼]백선엽, 박원순이 남긴 질문

하루사이 유명 달리한 진보·보수진영 명사집권여당, 朴시장은 功·白장군엔 過 부각여성계·野 반발 부르고 국민통합기회 날려文정부·與 최종답안 국민·역사가 지켜볼것공교롭다. 진보와 보수 진영의 두 명사가 하루 사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장맛비 속에 어제 진보 진영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서울시장장으로 영면에 들었다. 한국 시민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내일엔 보수진영의 백선엽 장군이 육군장으로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다.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켜 낸 호국 영웅이다. 광화문 광장엔 두 사람의 빈소가 나란히 차려졌다. 박 전 시장의 빈소는 서울시가, 백 장군의 빈소는 보수 청년단체가 세웠다. 조문객은 진영으로 분리됐다.박 전 시장과 백 장군의 죽음엔 얼룩이 묻었다. 박원순의 얼룩은 개인적이다. 죽음의 방식과 여비서 성추행 의혹이다. 그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성추행 고소를 덮었다. 백 장군의 얼룩은 역사적이다. 일제의 간도특설대 복무 이력으로 전쟁 영웅의 고별 행보가 어지러워졌다.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한 정권의 태도가 중요했다.청와대는 두 죽음에 모두 입을 닫았다. 대신 집권여당이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장례에 거당적으로 참여해 박 전 시장의 공(功)을 앞세웠다. 당 홈페이지 전면에 추도 성명을 내걸었고, 거리 곳곳에 '님의 뜻을 기억하겠습니다'는 추모 현수막을 걸었다. 백 장군에겐 침묵으로 과(過)를 부각했다. 신분을 숨긴 당 관계자는 "백 장군이 4성 장군으로서 한국전쟁 때 공을 세운 것은 맞으나 친일 사실도 밝혀진 바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박 전 시장의 개인적 얼룩엔 관대했고, 백 장군의 역사적 얼룩엔 엄정했다. 정권이, 집권여당이 정 반대의 선택을 했다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여당은 박 전 시장의 죽음을 선양함으로써 여성계와 야당의 반발을 불러오는 정치적 분쟁을 일으켰다. 박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 자체는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공인의 선택으로 합당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남겨진 성추행 고소인이 논란의 핵심이다. 피고소인 박 전 시장은 죽음으로 책임을 졌지만, 동시에 젊은 여성 고소인을 그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처지에 남겨 놓았다. 여당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할수록 성추행 고소인을 향한 2차 가해는 독해졌다. 집권여당이 '가해'와 '피해'를 역전시킨 셈이 됐다. 50만명 이상이 서울시장장 반대 청원에 동참한 건 비정상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정권과 집권여당은 백 장군의 죽음엔 침묵함으로써 역사적 화해와 국민적 통합의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 백 장군이 이승에 남긴 백년 행적은 두개의 역사적 공간으로 이어진다. 식민지 공간에서 그는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이 설립한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부터 3년간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일제의 군인으로 독립운동가들과 맞섰다. 식민지 공간에서 그는 민족에 죄를 지었다. 역사는 그랬던 그를 전혀 다른 공간에서 부렸다. 6·25 전쟁 공간에서 그는 낙동강 전선을 지켜냈다. 그 전선이 무너졌으면 지금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일지도 모른다. 이 공간에선 대한민국이 그에게 큰 빚을 졌다.일제의 장교로 독립을 방해한 죄와 대한민국의 장군으로 나라를 구한 공로가 충돌하는 백 장군의 인생 행로는 우리 사회 진영 대립의 역사적 연원을 보여준다. 역사의 표류자 백선엽을 진보는 일제 장교 백선엽으로, 보수는 대한민국 장군 백선엽으로 분절했다. 대한민국 역사의 맥락을 잇는 정권과 집권여당이라면 백 장군의 죽음은 소중한 기회였다. 분절된 그의 삶을 이어줌으로써 단절된 역사에 갇혀 대립하는 진영을 화해시키고 통합시킬 메시지를 발령할 수 있었다. 대통령이, 집권여당이 '식민시절의 죄과는 역사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나, 대한민국을 지켜 낸 공로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전우와 함께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정도의 언급만 했어도, 국민은 다른 차원의 시대를 예감했을 것이다.역사는 백선엽과 박원순의 사망을 통해 정권에 질문을 던졌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은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최종적으로 어떤 답안을 작성할지 국민과 역사가 지켜볼 것이다./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0-07-13 윤인수

[윤상철 칼럼]'적'과 동침하는 민주주의

다수를 존중하고 소수를 배려하는'자유민주적 질서'가 체제운영원리선거통해 권력의 정당성 상호인정특정이익 추구땐 사회적반발 초래복원시키려면 엄청난 희생 불가피대한민국의 정치체제는 헌법 전문에 이어 제4조에서 반복되듯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규정되어 있다. 헌법 전문의 내용들은 대부분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국가의 목표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체제운영원리는 오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담겨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반한 질서'에서 민주적 기본질서는 헌재의 판례에 따르면 '모든 폭력적, 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다수를 존중하면서도 소수를 배려하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기본원리로 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이다. 즉, 헌법에는 체제 운영의 기본 원리만이 제시되어 있을 뿐,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정의는 찾기 어렵다. 이렇듯 광의의 방어적 정의로 인하여 어떤 체제운영원리가 수용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통합진보당의 위헌정당해산에서 볼 수 있듯이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최근의 정치상황과 국민의식을 살펴보면, 민주적 기본질서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민주주의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일정한 절차에 따라 움직이는 '적과의 동침'이다. 화해불가능한 적도 있고, 적인지 친구인지 불명확한 대상도 있고, 이해를 같이 하는 친구도 있다. 그러한 관계가 항상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상황에 따라서 적이 친구로 될 수도 있고 친구가 적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 이러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황에서 가능하면 더 많은 친구를, 가능하면 더 적은 적을 두고 있을 때에 더 안전하고 더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적이 없는,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추구했던 실험들은 결국 국가체제 자체를 붕괴시키거나 국민들의 삶을 나락으로 빠뜨렸다.민주주의는 특정한 세력이 주장하는 선과 정의를 실현하는 체제가 아니다. 그러한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장단기적 목표들을 서로 합의해내고 실현하기 위한 형식적 규칙들이다. 적과의 갈등을 풀어내는 제도화의 방식이다. 잠을 자지 않고 살 수 없는 인간들이 안전하게 적과 동침하기 위해 만들어낸 제도의 묶음이다. 내가 생존하기 위해 적의 생존을 보장하는 제도인 것이다. 즉, 친구도 아니지만 적도 아닌 기묘한 사회관계의 양식이 민주주의로 서로 얽힌 것이다.그 민주주의는 극단적인 갈등과 폭력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어낸다. 정기적인 선거를 통하여 권력을 위임하고, 그 권력의 정당성을 상호 인정한다. 위임의 내용과 한계, 그 절차 등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규정되지만 완벽하지 않다. 이 경우에 우리는 상식과 관행에 따라 법의 미비점을 보완한다. 역사적 선례와 과거의 지도자들은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 예기치 않게 법을 재해석하거나 사문화된 법률조항을 되살려내는 행위는 법논리상 옳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의 합의정신과 충돌한다.일반적인 사회규범 역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제약조건이자 균열을 메우는 시멘트이다. 평등과 차별금지의 에토스는 그 어떤 가치나 이데올로기로도 유보될 수 없다. 유교적 권위주의적 질서는 사회에 짙게 드리워져 있지만, 신분과 계급의 질서를 덧씌우기는 어렵다. 기회의 균등과 결과의 평등이 갈등하고 있지만 공정성을 배반하는 행위에 분노한다. 자본주의가 낳는 사회적 양극화에는 분노하지만, 그렇다고 경쟁의 가치와 사적 소유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반드시 유교에 기반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생래적 가족주의적 가치관 역시 강하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어떤 진보나 보수라도 이에 대항한다면 그 긍정적 가치를 실현하지도 못하고 무너지게 된다. 산업화와 민주화, 민족주의와 반외세 등의 가치도 어느 것 하나 양보하기 어렵다. 자유의 가치 역시 또다른 사회적 억압이 체제화된다면 국민 모두가 호출할 것이다.이렇듯 민주주의는 여러 가지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 유산과 제약들을 담고 있다. 특정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하여, 특정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민주주의를 파산시킨다면, 그들이 추구했던 것들을 이루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또다시 복원시키기 위해 엄청난 희생과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인류의 집단지혜는 민주주의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어렵게 만들어낸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훼손시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20-07-06 윤상철

[전호근 칼럼]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

美흑인살해 촉발 BLM운동 확산속이들에 맞선 All lives matter시위얼핏 들으면 포괄된 가치의 말이나'발화된 상황' 안맞을땐 조롱의 뜻말은 자격있는 사람이 외칠때 진리지난 5월말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관이 흑인 시민을 무릎으로 눌러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살해당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는 숨지기 직전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을 했고 이후 여러 차례 '엄마'를 불렀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를 찾았던 것이다. 그를 살해한 경찰관은 그 말을 듣고도 "말을 할 수 있다면 괜찮은 건데?"라고 조롱하며 무릎의 힘을 풀지 않았고 결국 조지 플로이드의 숨은 끊어지고 말았다.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를 부르는 사람을 살해한다는 것은 어머니 앞에서 자식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잔인한 일이다. 인간으로서는 차마 저지를 수 없는 이 야만적인 살인사건은 한 시민이 소셜 미디어에 자신이 촬영한 동영상을 공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경찰관이 백인이었고 살해 당한 시민이 흑인이었기에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구호가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한국사회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에 공감하여 BLM(Black lives matter) 해시태그운동에 동참했다.인종 차별 반대 시위가 확산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반대하는 이들은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All lives matter)"는 구호를 외치며 인종 차별 반대 시위에 맞섰다.얼핏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은 아무 문제가 없을뿐더러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보다 오히려 더 나은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의 생명' 안에는 '흑인의 생명'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란 그 말이 발화된 상황과 떼어놓을 수 없다. 어떤 말이 진리에 가깝기 위해서는 그 말이 나오게 된 상황이 그 말과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어떤 혐오도 담고 있지 않지만 지하철 경로석에 붙여두면 경로우대에 대한 조롱으로 읽힐 수 있다.마찬가지로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도 그 자체로는 어떤 혐오도 담고 있지 않지만 그 말을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내뱉을 경우에는 조롱과 경멸의 표현이 된다. 소중하게 여겨야 마땅한 '모두의 생명' 속에 흑인의 생명은 포함시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자들이나 할 수 있는 염치없는 말이다.말은 누구를 향해 하느냐가 중요하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흑인의 생명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과 흑인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구체적 사건에서 발화된 것이며, 백인의 생명은 소중히 여기면서 흑인의 생명은 동등하게 중시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절규하듯 외치는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이미 흑인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향해 외치는 말이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BLM운동이 전세계로 확산되는 가운데 지난 6월14일 영국에서는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이에 반대하는 극우파 시위대가 충돌했는데, 이 과정에서 흑인 시위대에게 맞아 피 흘리던 한 극우파 백인 시위자를 흑인 시위자가 도와서 피신시킨 것이다. 아마도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자신을 쫓던 악랄한 경찰관 자베르의 생명을 구해준 장발장의 모습이 저랬을까싶다. 장자크 루소는 '에밀'에서 이렇게 말했다."당신의 학생이 모든 사람들을, 심지어 인간을 경멸하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도록 가르치라. 그래서 그가 어떠한 계급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계급에 속하도록 만들라. 학생 앞에서는 연민과 동정심을 가지고 인류에 대해 말하며, 결코 경멸을 담지 말라. 인간이여, 결코 인간을 모욕하지 말라."말은 누가 하느냐도 중요하다.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은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을 구한 트라팔가 광장의 흑인이 외칠 때 진리일 수 있다. 오직 그만이 모든 사람을 향해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6-29 전호근

[이영재 칼럼]백종원이 어때서

거대與 야당몫 법사위 꿰차며 협치 와르르원구성 난항 국회 공전 이유는 윤석열 제거와중에 김종인 '대선후보 백종원' 발언 시끌경제 알고 유머까지 겸비… 안될 이유가 ?거대여당 민주당이 원 구성을 끝내면 당론 1호 법안으로 '일하는 국회법'을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 웃음이 나왔다. 법안이야 뚝딱 통과시키겠지만, 이를 지키기가 쉽지 않아 보여서다. 176명이라는 거대여당, 여기에 친여 성향 의석수까지 포함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굳이 법안까지 만들며 요란을 떨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주당은 유례없이 단독개원을 한 후, 야당 몫이던 국회 법사위원장 자리를 빼앗으며 스스로 '협치'를 무너뜨렸다. 그로 인해 원 구성은 난항을 겪고, 국회는 개점 휴업상태가 됐다.민주당이 체면도 내팽개친 채 법사위원장을 가져간 이유도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거기엔 윤석열 검찰 총장과 공수처가 있었다. 윤 총장 쳐내려는 민주당의 집착은 의원들의 언행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5선 의원인 당 최고위원부터 초선의원까지 합창하듯 윤 총장에게 조롱과 비난을 쏟아부었다. 그럴수록 '윤석열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는 걸 뒤늦게 깨달은 이해찬 당 대표의 만류가 있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눈치 빠른 국민들이 이를 알아차렸고, 여기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 총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나서면서 '윤석열 제거작전'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그런데, 윤 총장이 집중포화를 받던 지난주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느닷없이 "(대선후보로) 백종원 씨 같은 분은 어때요?"라고 말을 꺼내 정치판을 뒤집어 놓았다. 통합당 초선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차기 대선을 논하며 백종원의 이름이 거론된 것이다. 김 위원장이 백종원을 꼭 짚어 대통령 후보라고 한 발언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너무나 커서 일반인이거나 또는 백종원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가진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될 수도 있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언론은 백종원으로 낙점된 양, 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언론은 '유명인으로 대선을 치르겠다는 발상'이라며 대체로 비판 일색이었다. 통합당의 한 중진 의원은 "김 위원장이 정치를 희화화한다"며 뜬금없이 비판하고 나서기도 했다.하지만 흥미로운 건 백종원과 관련된 기사보다 거기에 달린 댓글이었다. 비판적인 댓글도 있었지만, 우호적인 댓글도 만만치 않았다. 비록 '골목식당'이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장사가 안되는 집에 찾아가 레시피부터 경영 기법까지 일일이 알려주고, 제대로 장사를 하는지 꼼꼼하게 사후관리 해주는 백종원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에게 대통령의 자질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헌신적이고 진실하게 소통하는 마인드로 나라를 이끈다면 국민 고생은 시키지 않을 것이란 댓글도 눈에 띄었다. 이 문제로 정치판이 시끄러워지자 김 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선)주자가 되려면 자기 비전을 제시하고 뛰어 나와야 한다. 프랑스의 마크롱처럼. 그런데 아직 그런 게 잘 안 보인다. 백종원을 얘기한 것은 그런 유형의 대선 후보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의 시선을 자기 몸에 받을 수 있도록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한발 뒤로 뺐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해명에도 백종원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모이면 백종원 얘기였다.이를 보면서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이 떠올랐다. 정치에 꿈이 있던 레이건은 무명의 단역 배우에 불과했다. 미남도, 특출나게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할리우드에는 레이건보다 잘난 배우가 쌔고 쌨다. 굳이 내세운다면 뛰어난 유머감각 정도였다. 그가 정계에 뛰어들었을 때, 많은 이들이 비웃거나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그러나 그는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됐고, 두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로 인해 '보수의 가치'가 화려하게 꽃을 피웠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레이거노믹스'는 무너진 미국 경제를 살려냈다. 소련과의 군비경쟁에서 승리하면서 냉전 시대를 종식한 것도 레이건이었다.인기로 따진다면 레이건은 지금의 백종원과는 비교도 안 된다. 그런데 왜 백종원은 대통령 후보가 되면 안 되는 걸까. 경제를 알고, 유머도 있고, 인상도 후덕하고, 고향도 충청도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국민에게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남발하고,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닳고 닳은 정치인은 대통령 후보가 되고, 백종원이 안되는 이유는 뭔가. 백종원이 어때서. 백종원은 절대 될 수 없다고 하는 이들에게 꼭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러면 "윤석열 씨 같은 분 어떠세요?"/이영재 주필이영재 주필

2020-06-29 이영재

[이명호 칼럼]출퇴근이 사라지면 부동산 시장은?

정부가 내놓은 22번째 부동산대책수도권·도심 포화 집값잡기 어려워투기 규제로 두더지잡기 게임 반복코로나영향 재택근무 일상화 가능 확대 정책 부동산 안정 발상 전환을정부가 22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급격한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규제, 금융, 세제강화 등 모든 카드가 총망라됐다. 기본적으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수도권에 충분한 물량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수도권, 특히 강남의 '갭투자' 매물 막차 수요를 잡기 위하여 '현금 부자'가 몰리고 이는 인근 부동산 가격을 자극하여 동반 상승시키고 있다. 규제지역의 매물이 줄어들면 돈은 다시 규제지역 밖으로 몰리는 두더지 잡기 게임이 반복되고 있다.수도권 강남과 도심지역의 집값이 높은 이유는 이 지역에 대기업과 좋은 직장이 몰려 있고, 의료와 문화시설이 많아 여러 가지 생활의 편익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택 공급은 이미 포화되어 있어 주택의 상대적 가치가 커질 수밖에 없다(다른 지역이 오르면 이 지역은 더 오르게 되어 있다). 이미 직장 인근의 집을 원하는 실수요보다 집이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실수요자 이외의 투기를 규제하는 것은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수도권 강남과 도심지역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수도권의 출퇴근 거리와 시간을 보면 알 수 있다. 직장인들의 전국 평균 출퇴근 시간은 79.3분으로 OECD 평균의 2배에 달한다. 특히 수도권은 서울 96.4분, 인천 92.0분, 경기 91.7분으로 1시간30분이 넘는다. 출퇴근 거리는 서울 13.3㎞, 인천 15.7㎞, 경기 16.7㎞에 달한다. 경기도와 인천에 거주하면서 서울로 가는 통근자가 하루 133만명에 달하고, 전체 통행량의 24.2%를 차지한다. 즉, 4명 중에 1명은 서울로 장거리 출퇴근을 한다.출퇴근 시간의 가치는 얼마일까? 2013년 연구에 따르면 직장인이 1시간 통근으로 상실하는 행복의 경제적 가치는 한 달에 94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수도권 출퇴근 1시간30분의 경제적 가치는 월 150만원, 1년이면 2천만원에 달한다. 장거리 출퇴근은 건강과 가정생활도 해친다. 장거리 출퇴근자는 비만과 고혈압에 걸릴 가능성도 높다. 출퇴근이 10분 늘 때마다 사회적 관계가 10% 감소하고, 이혼율도 높아진다. 결국 직장과 집이 가까우면 만족도 증가, 스트레스 감소, 신체 및 정신건강, 가정생활에도 좋다. 이런 것이 도심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다.그러나 문제는 좋은 직장이 몰려있는 도심에 집을 더 이상 공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희소성이 주택 가격 차이를 더 키운다. 이런 상태에서 수도권 인근의 주택 공급 확대는 출퇴근 거리와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대책이 되지 못한다. 수도권 도심의 대기업을 수도권 인근으로 이전시키는 것도 대책이 될 수 있지만, 기업들이 많은 비용을 들여서 이전할 동기가 없다. 좋은 인재들이 이미 수도권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출퇴근을 없애는 방법은 어떨까? 코로나19 기간 동안 많은 기업들, 특히 수도권에 있는 대기업들과 화이트칼라 직종은 재택근무를 실시하였다. 이미 많은 업무가 온라인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커다란 어려움 없이 재택근무로 전환할 수 있었다. 직원들은 출퇴근을 안하고 집에서 일하는 장점을 경험했다. 출퇴근 없이 재택근무가 가능한 세상이 된 것이다. 코로나19로 아직까지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는 유럽과 미국의 기업들은 직원들이 원하면 영구적인 재택근무를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회사 빌딩 면적을 줄이거나 없애는 방침까지 고려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서울 도심 본사로 출근하는 대신 서울 전역과 인근 도시의 분산 사무실로 출근할 수 있도록 하여, 전 직원의 출근시간을 20분 이내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사람들이 대도시의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으면 도심의 주택 수요도 감소하고 도심 상권도 침체되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게 되어 있다. 반대로 경기와 인천 거주 지역은 상권이 살아나고 자족기능이 강화될 수 있다. 출퇴근 없는 재택근무를 확대하는 정책이 부동산도 안정화 시키고 지역 균형 발전에도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20-06-22 이명호

[홍창진 칼럼]가족은 운명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린 가장의 고민'알코올중독자'였던 아버지의 그늘차단할수록 옥죄는 부모 형제 굴레가족, 끊는다고 끊어지지 않는 운명마음 열고 받아들이면 삶의 안식처아내와 자녀 둘을 둔 40대 가장의 고민입니다. 부모의 지원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 대학을 마쳤고 그 어렵다던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가정까지 꾸렸으니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입니다. 생활이 안정된 후 그는 자녀교육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개인교사를 붙여 영재학교에 보냈습니다. 앞으로도 더 힘을 써서 미국 명문대에 진학시킬 계획입니다. 부모에게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던 자신의 지난날과 달리 사랑하는 자녀들은 그 어떤 아픔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러는 한편, 그는 자신에게도 많은 보상을 하며 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고급 주택에 최고급 승용차를 갖고, 주말이면 골프를 즐기면서 가난으로 맺힌 한을 풀고 싶었습니다.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부러워했습니다. 어느 한 가지인들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삶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는 풍요로운 삶을 누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남모르는 괴로움을 간직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그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습니다. 단순히 술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음주 후에는 항상 폭력이 따랐습니다. 그의 유년시절부터 상습적으로 어머니를 폭행했고, 어린 그와 동생들도 무차별적으로 손을 댔습니다. 그가 그토록 공부에 매진한 것도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굳은 의지로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해 마침내 아버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만, 두 동생은 가정 폭력의 트라우마로 성인이 되어서도 좀처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무위도식하는 인생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는 지금도 매달 두 동생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내 모르게 동생들을 챙기는 것은 참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이 정도는 참고 견딜 만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에 두어 번 걸려오는 어머니의 전화는 그를 고통으로 내몰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버지는 어머니를 폭행했고, 참다못한 어머니는 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아버지의 가정폭력이 아내와 자녀들에게 너무 창피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부모형제와 지금의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노력 끝에 이룬 자신의 가정이 부모와 형제들로 인해 망가질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의 극단적인 선택은 차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차단하면 할수록 부모형제의 굴레는 강하게 자신을 압박했습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날이 계속되다 보니 불면증과 우울증이 찾아왔고, 급기야 약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좋은 집에 고급 승용차도 더 이상 뿌듯하지 않았고, 주말에 골프를 치러 나서도 기분만 더 가라앉았습니다. 그 어떤 일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고, 무슨 일을 해도 재미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별반 다를 게 없는 나날이 그를 조금씩 병들게 했습니다.가족은 운명입니다. 끊는다고 끊어지지 않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그 부모는 이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부정합니다. 꽤 긴 날을 한탄하고 우울해 하다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를 자신의 인생 안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오히려 괴로움은 사라집니다. 남보다 조금 부족한 그 아이가 자신에게 사랑을 알려주고, 살아가는 보람을 안겨다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그도 이제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를 인정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로 인해 공포에 떨고 있는 어머니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트라우마로 사회에 적응 못하는 형제를 더 이상 부끄러워해선 안 됩니다. 가족은 객체인 듯 보여도, 한 나무에서 자란 가지라는 걸 살면 살수록 깨닫게 됩니다. 아내와 자녀들도 그의 슬픔과 괴로움을 알아야 합니다. 용기를 내 부모형제와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더 이상 삶의 무게를 혼자 견뎌서는 안 됩니다. 가족은, 피하고 외면할 때 속박과 굴레이지만,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때 세상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든든한 안식처이자 버팀목이 됩니다.가족의 치부를 드러내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감추고 외면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내 인생의 일부로 생각하고 살다 보면, 현실이 바뀌진 않겠지만 적어도 내 삶이 망가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느 장애인 부모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이 아이가 없었다면 평생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거고, 삶의 가치도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06-15 홍창진

[방민호 칼럼]이제 일본을 어떻게 볼 것인가?-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

'亞 유일 G7' 한국 내려다보던 日코로나19 관련 은폐·축소 드러나美·中·유럽도 내재적 능력 시험대우리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뒤집혀한결 성숙한 문명사 인식적용 필요코로나19의 세계적인 유행,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면서 함께 나타난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각각의 문명권과 국가, 사회들의 '내재적' 능력이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미국은 지금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만 십만 명이 넘는 가운데 마흔여섯 살의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 의해 목이 졸려 죽은 사태로 인해 전국적인 시위, 폭동에 휘말려 버렸다. 미국이 의료보험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나라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던 터다. 그리고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달라 보이는 백만장자 대통령에 이번에 나타난 문제들까지 연일 화상에 오르내리고 보면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던 미국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유럽은 어떤가 하면 이 나라들 역시 만만찮은 약점을 노출한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영국 등 유럽 '공동체'를 이루는 주요 국가들이 보여준 코로나19 대응 양식은 스웨덴의 집단 면역 전략의 허실까지 합쳐져 '선진' 제국들에 대한 인식을 자못 뒤바꾸어 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 희생되었건만, 적절한 방역보다 개인의 자유 운운하는 '한가로운' 주장으로 문명국의 위상을 지탱해 보려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게 돌출하곤 한다.한국인들이 가장 놀라웠던 것은 바로 옆 나라 일본일 것이다. 일본은 한국을 35년씩이나 강점했고 패전 이후에도 한국전쟁을 지렛대 삼아 재기에 성공, 오랫동안 아시아에서 유일한 G7 멤버라는 자부심 속에서 한국 사회를 한 단계 아래로 내려다보아 왔다. 한국인들도 일본이 저지른 만행과 악행들에 대해서는 반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더 발전된 사회라는, 그들이 믿는 '신화'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라면 사실이다.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 이후 오래 지속되어온 이 인식의 구조를 이번의 코로나19 사태는 단번에 해체시키고 있다 해도 큰 틀림은 없을 것 같다.온갖 매체를 통해서 들리고 보이는 일본의 코로나19 방역 능력은 낡디 낡았고 무능력했으며 은폐와 축소로 점철되어 있다. 아베의 '혐한' 선동 정부는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인한 희생자 숫자부터 속이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폐렴 '초과 사망' 숫자가 코로나 19 사태의 도래와 더불어 비정상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데서도 확실히 드러난다. 한국처럼 그네들도 긴급 재난 구호금을 십만 엔씩 주겠다고 했지만 종이 서류에 의존하는 낡은 행정 인프라와 유령 업체에 외주를 주는 부패한 정부로 인해 국민 모두가 혜택을 입는 날은 멀기만 하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일본 사회가 세밀하고 원칙적이고 이타적이라는 신화적 선입견을 인정해 주어 왔건만 정작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드러난 일본 사회와 그 구성원들은 엉성하고 임시방편적이고 이기적이기까지 했다. 방역 시스템이 구비되지 않은 다른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감염된 사람이 병원에 출입하는 것을 꺼리는가 하면, 검사를 극히 억제하는 풍토 탓에 고립된 죽음을 당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마지막으로 중국도 미국처럼 코로나19 유행에 이어 홍콩 사태까지 겪고 있어 미·중 갈등에 '일국양제(一國兩制)' 문제까지 미래를 점치기 어려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근대 이행기의 위기를 겪고도 큰 땅덩이를 지금껏 유지해 왔지만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험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에 있어 '자유'는 좋은 삶의 근원적 조건임을 재확인해 두어야 한다.결과적으로, 한국인들은 미국과 유럽, 일본, 그리고 중국 같이, 이제까지 자신들보다 우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었고, 또 믿어주었던 나라들이,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도 할 수 있다. 필자는 코로나19의 팬데믹과 더불어 새롭게 인식된 이 상황을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말로 정리하고자 한다. 해방 이후 이제까지 한국인들이 식민지적 잔재를 극복해야 한다는 뜻에서 '포스트콜로니얼'한 시대를 보내왔다면 지금부터는 '우리가' 세계사와 보편, 동등을 공유한 사람들임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지금 '윤미향' 사태가 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필자는 이 문제가 누구의 잘못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를 처리하는 우리의 세계사 인식, 한일 관계 인식이 새로운 터전 위에 서 있어야 하리라는 것이다. 한결 성숙한 문명사의 인식 적용이 필요한 때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20-06-08 방민호

[윤인수 칼럼]코로나19 희생자 잊지 말아야

스페인 정부·미국 언론 사망자 추모 앞장타 국가들에 비해 성공적 방역 수행 불구병원 전전하다 숨진 고교생 등 273명 '사망'상대평가에 가려진 생명 예우하는 건 당연지난 1월 20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30대 중국인 여성. 후베이성 우한시 화난시장을 방문했던 30대 중국인 여성이었다. 당시만 해도 코로나19는 정식 명칭도 없이 우한폐렴으로 불렸다. 그녀는 2월 6일 완치판정을 받았다. 자신을 치료한 의료진을 "나의 영웅"이라고 칭송한 뒤 한국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가 떠난 뒤에도 우한폐렴은 조용히 확산 중이었다. 31번 확진자가 발생한 2월 18일. 이 날을 기점으로 세상이 뒤집어졌다. 2월 29일 3천150명, 4월 3일 1만62명. 단 40여일 만에 대한민국은 공포의 도가니에 갇혔다.1번 확진자 발생 이후 대구·신천지교회 1차 팬데믹을 거쳐 지금 우리는 n차감염 시대를 살고 있다. 1차 팬데믹은 4월 초순경 진정됐지만, 생활방역 전환 이후 5월 황금연휴 이후 발생한 이태원클럽형 집단발생이 수도권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감염경로가 오리무중이다. 우한폐렴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당당하게 '코로나19' 대관식을 마치고 AC(After Covid19) 시대를 열어제쳤다.인류에겐 슬픈 대관식이었다. 코로나19의 침략은 기습적이고 전면적이었다. 엄청난 인명이 영문도 모른 채, 병원에도 가보지 못한 채 죽음에 내몰렸다. 7일 오전 9시 기준으로 전세계 코로나19 환자는 679만8천808명이고 사망자는 39만7천936명이다. 미국 사망자 10만9천702명은 베트남전 전사자의 두배다.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사망자는 각각 수만명에 이른다. 코로나19의 불가항력성을 인정하더라도, 방역과 의료의 구멍이 너무 컸다.스페인 정부는 지난달 27일부터 열흘간 코로나19 사망자를 기리는 공식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전국 모든 공공기관 건물과 해군 함정에 조기를 게양했고, 마지막 날 국왕이 공식 추모식을 주재했다고 한다.미국에서는 언론이 사망자 추모에 앞장섰다. 진보매체인 뉴욕타임스(NYT)는 1면 전체를 코로나19 사망자들의 이름과 짧은 부고로 채웠다. "늘 웃어주셨던 우리 증조할머니." "우리집의 반항아." "누구도 그녀처럼 크림 감자와 튀긴 옥수수 요리를 하지 못했다." 한 줄의 부고는 짧지만 강렬하다. NYT의 편집배경 설명이 인상적이다. "숫자는 일부만 보여준다. 이들이 어떻게 아침을 맞이하고 밤에 잠이 들었는지는 결코 전달하지 못한다." 모든 삶은 불가역적 가치를 갖는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차별은 있을 수 없는 인생이고 삶인데 어떻게 사망자 총인원수에 가둘 수 있겠는가.코로나19는 우리에게도 273명(7일 기준)의 희생자를 남겼다. 사망자 상당수가 1차 팬데믹 기간에 불행을 당했다. 당시 대구는 아비규환이었다. 중증, 경증 구분없이 음압병실을 운영하는 바람에 입원대기 중 자택에서 사망한 환자들도 있었다. 한 고교생은 병원을 전전하다 사망했다. 1차 팬데믹에 넋이 나간 정부의 방역행정 혼란에 희생된 셈이다. 60대 여성인 31번 확진자가 양심불량죄로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방역당국은 대구 신천지교회 집단감염 경로 파악에 실패했다. 이미 1차 팬데믹 자체가 기원을 알 수 없는 n차감염의 대참사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사망자 273명의 생명이 더욱 안타까워진다. 방역전선 어딘가에 뚫린 구멍이 그려지기 때문이다.정부가 코로나19 방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은 맞다. 터무니 없는 희생을 치른 국가들과의 객관적 비교로 방역선진국의 위상은 선명하다. 덕분에 여당은 전대미문의 총선압승을 거뒀고, 문재인 정부는 요새 처럼 탄탄해졌다.하지만 방역선진국의 방역전선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다. 미세한 구멍으로 스며든 바이러스가 273명의 국민 목숨을 앗아갔다. 코로나19와의 전쟁 희생자들이다. 국민들은 바이러스와 정신없이 싸우느라 산발적으로 발생한 희생들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정부의 방역성공에 가려진 가치있던 생명들을 예우하는 건 당연하다. 코로나19 희생자 273명. 상대평가에 가두어 소홀히 할 생명들이 아니었다. 희생은 더 늘어날 것이다. 이제 정부가 코로나19 희생자들을 공식적으로 애도할 때가 됐다./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0-06-08 윤인수

[이영재 칼럼]'공정' '정의' '통합' '화해'라는 단어들

文 대통령 취임사 역대 최고라고 생각한다문장마다 감동 '특권·반칙없는…'에선 열광취임 3주년… 총선 압승·60% 지지율 불구과거와 다른 연설·상황… 약속은 지켜지길역대 대통령 취임사 중 최고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꼽는다. 문장 하나하나가 살아 숨을 쉬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글에서 풍기는 진정성은 가슴을 파랗게 적실 정도로 신선하다. 어쩌면 이런 좋은 말만 골랐는지 감동 그 자체다. 가슴에서 우러러 나온, 고뇌하는 대통령의 취임사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는 대목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59%의 국민도 받들어 모시며 국정에 매진하겠다는 대통령의 넓은 포용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문 대통령을 뽑지 않았지만, 이 대목에 크게 감동했다는 이들이 꽤 많다. 취임식 날 저녁, "문구 하나하나에 진정성이 느껴져 감동한 나머지 취임사 읽고 밤새 펑펑 울었다"는 친구의 SNS 메시지를 받은 기억이 난다.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고 또 읽는다. 내 경우도 그렇다. 읽을 때마다 감동이 화수분처럼 솟는다. 술 한잔 걸치면 감동은 배가된다. 고통과 회한으로 점철된 40년 정치사를 관통했기 때문인지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는 대목에서는 감정이 격해지곤 했다. 해방 이후 반세기 넘게 벌였던 국민 간의 갈등은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몰면서 삿대질하고, 주먹질하고 심지어 뒤엉켜 싸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갈등의 종지부를 찍고 '통합과 화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니 이 말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뿐만이 아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습니다'는 대목도 빼놓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학연, 지연, 혈연은 물론 이념에 얽매인 동지애도 끊어내고 능력 위주의 인재 발탁을 하겠다는 말에 국민은 "이제야 진정한 우리의 대통령이 탄생했다!"며 무릎을 쳤다. 거기에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말까지 더했으니 국민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특히 '공정'과 '정의'가 주는 강렬한 임팩트에 가슴은 마구 뛰었다. 앞으로 누가 대권을 잡아도 이는 다시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여기에 마지막 카운터 펀치가 있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국민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 드리겠습니다'에 우리는 모두 '오 마이 갓!'을 외쳤다. 정말 멋진 대통령이었다.지난 5월 10일 문 대통령은 취임 3주년을 맞아 대국민 연설을 했다. 4·15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고, 대통령 지지율 역시 60%를 넘는 시점이라 이 연설에 거는 기대가 컸다. 계층과 이념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고, 일부 특정인들의 특권과 반칙으로 인해 공정과 정의가 훼손되고 있는 조짐이 보여 더욱 그랬다. 아니, 무엇보다 취임사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었던 국민들이 TV 앞에 모였다. 하지만 '통합' '공정' '정의' '화해' '반칙 없는 세상' 이란 단어는 찾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코로나' '일자리' '한국판 뉴딜','5G 방역' 같은 단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의혹이 연일 악취를 풍기며 국민을 경악시키고 있다. 이미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진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수사건에 대한 '재심'논의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정의와 공정이 무시되고, 반칙과 특권이 스멀스멀 살아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정의연 사태를 두고 청와대와 집권당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에서 불행하게도 '제2의 조국사태'가 읽힌다.언제나 가슴 뛰게 했던 취임사를 다시 꺼내 읽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는 대목에서는 까닭 모를 화가 치민다. 코로나 19로 만신창이가 된 지금, 또다시 조국사태처럼 분열과 갈등이 온다면 정말 슬픈 일이다. 취임사를 빛나게 했던 단어들을 찾아 다시 꿰매어,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건 오직 문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이영재 주필이영재 주필

2020-05-25 이영재

[윤상철 칼럼]탈성역의 민주화

날로 커지는 '정의연·윤미향 사태' 사회공동체 파수꾼 역할이 목표인시민단체의 권력유착 폐해를 본다문제는 그 이후 '은폐·호도' 집착땐사회운동 대의는 살아남기 어려워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전 이사장의 사태가 날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성금 횡령이나 배임의 의혹은 시민단체가 경제적 이권을 찾아 타락하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국회의원 당선자인 윤 전 이사장에게 시민단체 활동은 정치권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통로였을 수 있다. 시민단체 활동가가 위안부 문제에 당사자들을 배제하고 개입함으로써 국가간 외교를 왜곡시키고 국내정치까지 소용돌이치게 한 사실은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돌아볼 일이다.세계적인 사회학자 찰스 틸리는 '동원에서 혁명으로'라는 저서에서 정치세력이 시민사회세력을 동원하고 호선하는 양상은 다원민주주의체제 하에서 불가피하다고 갈파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시민단체가 권력화하거나 시민운동가가 출세하는 일은 사회적으로는 부수적인 현상일 뿐이다. 모든 사회구성원들이나 집단이 사회문제를 의사결정하는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한 불가피하다. 사회문제를 위임하거나 대표하지 않고 스스로 정책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 또한 부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그럼에도 시민운동단체가 특정 정치권력과 지속적 유착관계를 맺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비정부기구로서 정파적, 계급적, 집단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전체 사회공동체의 생존과 발전에 기여해야 할 시민운동단체가 그 안에 갇힘으로써 우리 사회가 잃는 손실은 너무도 크다. 더군다나 그들이 공식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피해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소망을 펴보지도 못하고 사라져가거나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비난을 받거나 심지어 매도되면서 거듭된 피해와 고통을 받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이 그들의 지지에 기반을 두고 정치적, 정책적 선택을 수구할 수밖에 없다면, 변화하는 현실에 무능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여기까지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 어떤 진영에 속한 사람이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여기까지는 쉽게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문제이다. 시민운동단체가 정치권력이라는 뒷배와 묻지마 지지를 외치는 진영 내의 군중을 믿고서 은폐와 호도를 일삼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시민운동을 우리 사회의 파수꾼으로 기대할 수 없다. 손잡고 협력해왔던 부적절한 동거가 무너지면서 스스로의 권력기반이 약화될까 두려워 정치권력이 이들을 두둔하고 나아가 타락한 정치공세를 지속한다면 이 나라의 정치와 역사는 다시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다.여기부터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끝없이 확장되고 심화됨으로써 그 완성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산업화에 따르는 국가주의와 발전주의를 넘어서는 과정에서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갖는 성역과 금기들을 무너뜨렸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성역들을 만들어냈다. 민주주의를 촉발시키고 밀어준 사람, 장소, 사건, 그리고 이데올로기들이 성역화되었다. 보수적 산업화세력의 역사적 성찰성 결핍과 개혁적 민주화세력의 권력집착으로 인하여 우리 국민들은 진지하게 성찰하고 토론하면서 합의로 나아가기 보다는 사람들이 더 이상 건드려서는 안되는 성역들을 쌓아올렸다. 불가피했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쌓아 올린 성역들은 약간의 틈새나 지진에도 쉽게 무너져 버림으로써 그 가치들을 훼손시켜버린다. 강변한다고 해서 사회운동의 대의는 살아남기 어렵다.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성역 만들기가 횡행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미 이루어졌음에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여기저기 성역을 쌓아 올린다. 압축비약적 발전이 천민자본주의를 낳음으로써 가진 자들의 갑질과 사회적 양극화를 낳았었다. 그럼에도 토론과 합의가 부재한 민주주의는 5·18민주화운동을 지속적으로 폄훼와 반동에 시달리게 한다. 이처럼 졸속적 민주화의 길을 간다면 사회적 평등과 삶의 질, 생명과 안전이라는 기본적인 가치들도 페미니즘에 대한 냉소와 세월호에 대한 비인륜적 패악질로 나타날 것이다. 스스로 납득할 기회와 과정을 만들지 못하였으니 그들은 틈만 나면 못들은 체 하면서 트집을 잡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법과 제도로 짓누르겠다고 하면 우리 사회는 과거의 권위주의체제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것인가? 아무리 정의로운 가치와 이념이라도 비민주적 권위주의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20-05-25 윤상철

[전호근 칼럼]잊지 말아야 할 것

코로나로 美 일간지 부고 2배 이상인류 진화사상 죽음의 경고도 의미바이러스와 온몸 투쟁 역사에 동참고대 로마 개선행렬 '메멘토 모리'승자와 모든 산자들에 대한 경계로미국의 어느 일간지에 16개면에 달하는 부고(訃告)가 실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들의 수가 많아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라 한다.기사에 실린 해당 신문의 부고면 사진이 또렷하지 않아 내용을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부고면에 이름을 올리는 이들이라면 저명한 인사들은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라면 신문 기사에 이름이 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 부고면에는 부고 당사자의 이름과 사진,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삶이 적혔을 법한 짧은 글들이 빼곡히 배열되어 있었는데 지면을 주의 깊게 살피다가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신문의 부고면은 일종의 묘비명이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이 묘비명에서나마 기록되기 시작한 건 동서양을 통틀어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의 '사생활의 역사'에 따르면 서양의 경우 19세기에 접어들어서야 자기 자신만을 위한 독창적인 이름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개별화된 묘비명이 세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이 점은 이름을 각별히 중시하는 문화전통을 지니고 있는 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해야 세울 수 있는 5천자가 넘은 신도비는 말할 것도 없고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글자를 새기는 묘갈명이나 묘지명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양반 신분 계층이 아니면 꿈도 꿀 수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이 작품에서나마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일러야 패관 문학이 유행하기 시작한 18세기 후반이었으며 묘지명을 새길 수 있게 된 것은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생각해보면 인류는 진화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병원체와 싸우며 삶을 이어왔다. 그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은 어쩌면 그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인지도 모른다.진화의 역사에서 보면 의미 없는 삶이 없듯 의미 없는 죽음도 없다. 그들이 죽음으로써 경고해주었기 때문에 인류가 위험을 인지하고 생존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치료하거나 돌보거나 떠나보내며 인간에게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번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어떤 사람은 살아남았고 어떤 사람은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죽은 이들이 이번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그들이 온몸으로 바이러스와 싸웠다는 사실이다. 그들 또한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기나긴 진화의 역사에 동참한 것이다.고대 로마의 공화정 시절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은 성대한 전차 퍼레이드를 벌이며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 성대한 전차 행렬에서 가장 특이한 존재는 장군의 옆 자리에 앉아 쉴 새 없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를 외치는 한 사람의 노예였다. 모든 사람이 승자의 영광을 구가할 때 그가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을 되뇌는 까닭은, 승자의 영광이란 전쟁터에서 죽은 모든 이의 죽음을 딛고 선 것이며, 장군 당신 또한 언젠가는 죽을 목숨이 분명하니 그들 앞에서 결코 오만하지 말라는 경계였을 것이다.어차피 인간의 삶은 끝이 있는 것이고 보면 우리는 누구나 사망률 100%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메멘토 모리'는 승자의 오만에 대한 경고일 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이에 대한 경계다. 죽음이 저토록 가까이 있는데 마치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인 것처럼 살아간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거니와, 우리 모두 누군가의 삶과 죽음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큼 우리가 왜 서로 연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알려주는 절실한 대답은 없을 것이다.신문의 부고면은 내 이름 또한 언젠가 저곳 한 귀퉁이에 자리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코로나 이후의 삶이 이전과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삶을 생각하기 이전에 나는 기억할 것이다. 반드시 그들의 이름이 부고면에 실려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내 이름이 반드시 빠져야 할 이유 또한 없다는 사실을./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5-18 전호근

[이명호 칼럼]미래의 경험, 온택트 근무

코로나19로 일상생활 '새로운 경험' 1975년 '재택근무' 개념 최초 등장성공의 핵심은 '직원 자율권' 강화감독 아닌 '성과 중심의 문화' 필요지구 온난화 대응하는 '친환경 정책'코로나19는 이전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얼마나 많이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집콕족'으로 살기 위하여 온라인 쇼핑, TV와 동영상 시청, 게임 등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의 수요가 증가했다. 그 중에서도 새로운 경험은 집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재택(원격) 근무와 온라인 수업이었을 것이다.어느 정도 재택근무가 실시되었는지에 대한 통계는 없으나 일부 조사 등에 따르면 몇 주간 재택근무를 실시한 기업은 약 3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는 재택근무에 따른 다양한 애로 사항에서부터 적극적인 장점까지 많은 의견들이 올라왔다. 출퇴근 시간이 절약되어 개인적인 시간이 늘어나고, 방해 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어서 좋은 반면에, 혼자 일하는 외로움, 의사소통의 어려움, 불명확한 업무 지시, 일과 삶의 균형의 붕괴, 근무시간 이외의 근무지시, 논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자기검열에서 오는 스트레스, 가족과 자녀의 업무 방해 등의 부정적 효과를 토로하고 있다.지금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면서 기업들은 재택근무에서 대부분 정상근무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준비 없이 급격하게 실행할 수밖에 없었던 수주 간의 재택근무 경험이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측면도 많았겠지만, 재택근무와 온라인 교육은 우리에게 '이미 와 있는 미래'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앞으로 재택근무라는 미래는 정말 앞당겨질 것인가?사실 우리나라의 재택근무 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무척 낮은 1% 미만 수준이었다. 미국은 3%, EU 전체가 5%이고, 가장 높은 비율은 네덜란드로 13.7%가 재택근무제를 활용하고 있다. 원격근무(재택근무)란 조직의 근무자들이 적어도 주 1회 이상 집, 위성사무실, 원격근무센터 등 기존 사무실 중심 근무현장 이외의 장소에서 정보통신장비를 사용하여 일하는 대안근무를 의미한다.재택근무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재택근무라는 개념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75년이다. 미국 LA로 출근하던 한 과학자는 러시아워로 길에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했다. 긴 차량 통근은 교통정체와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직장인들도 매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한국의 통근시간은 평균 40분(편도)으로 OECD 평균 통근시간 23분 보다 약 두 배에 달한다. 그 과학자는 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 보험회사의 재택근무를 시험하였다. 그러나 경영자들이 재택근무하는 직원들을 전과 같은 방식으로 통제할 수 없어서 곧바로 중지되었다. 이후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1990년대에 접어들며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게 되었다.재택근무 성공의 핵심은 ICT 기술이 아니라 직원들에 대한 통제를 유지할 것이냐, 직원들의 자율권을 강화할 것이냐에 따라 결정된다. 재택근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과정에 대한 감독이 아니라 성과와 결과 중심의 업무문화가 필요하다. 눈 앞의 직원이 열심히 일하는 듯이 보여야 안심하는 수직적 통제방식으로는 재택근무에 성공할 수 없다. 업무위임이 명확하고 책임과 자율권이 주어져야 집이나 어디서든 독립적, 주도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있다. 자율적이고 성과중심의 업무문화는 바로 생산성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은 수직적 통제방식의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고, 이는 낮은 생산성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성공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은 바로 생산성의 향상을 의미한다.정부가 코로나19 포스트 시대에 대비해 디지털 뉴딜을 추진하고 있다. 언택트, 비대면 ICT 일자리 활성화 등에 대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많은 부분이 공급중심의 디지털 인프라 투자에 쏠려있다. 재택근무는 언택트(Untact, 비대면)가 아니고 온라인으로 협력하는 온택트(Ontact)이다. 온택트 근무라는 수요가 확대되면 자연스럽게 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수요가 늘고 투자가 늘어나게 된다. 온택트 근무는 생산성 향상은 물론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에 대응할 수 있는 친환경 정책이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20-05-11 이명호

[윤인수 칼럼]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대통령 권력

文대통령 4년차 진입 경이로운 '71% 지지율'코로나 앞에 경제비판 대중도 '희망봉' 지목지선 개입의혹등 정권비판 이슈 모두 '각설'임기말 전례없던 '힘'… '민주주의 운명' 달려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국민적 지지가 경이롭다. 취임 3년을 마치고 4년차에 진입한 대통령의 지지율이 71%다. 한국 갤럽이 지난 8일 발표한 결과다. 40대의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평가 비율이 무려 85%다. 전 연령대에서 60%대를 훨씬 웃돈다. 중도층(69%)은 물론 보수층에서도 긍정평가가 부정평가를 앞섰다. 문 대통령의 집권 3년차 지지율은 27%에 그쳤던 김대중·노무현을 압도하고, 40% 초반에 머물렀던 이명박·박근혜를 굽어본다. 진보, 보수 진영을 통틀어 전직 대통령들이 꿈도 꾸지 못한 경지다.과거 정치 관행대로라면 지금쯤 문 대통령은 서서히 권력 누수를 걱정해야 할 시기다. 전례 없는 초 거대여당의 출현은 그 자체로 집권세력 내부에 신구 권력교체의 신호탄을 쏘아올렸을 것이다. 정국 주도권은 청와대에서 여당으로 넘어가고, 여론과 언론도 차기를 노리는 대권 잠룡들의 언어와 행보에 집중할 때다. 그런데 여당 내부에서 누구 하나 고개를 쳐드는 잠룡이 없다. 용은커녕 이무기 흉내조차 삼간다. 대신 대통령에 대한 헌사가 넘친다. 대통령은 태종과 같고(이광재), 지난 3년 위기극복 리더십을 발휘하셨으며(정세균), 대통령을 모신 건 제 일생의 큰 영광이니(고민정), "감사합니다. 대통령님"이다(박범계).임기 말을 향해 걸음을 뗀 문 대통령을 향한 초현실적인 국민적 지지와 거대여당의 복속은 정치사에 없던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인 장면이다. 무엇이 이처럼 이례적인 정치현상을 초래했을까. 코로나바이러스 말고는 설명할 만한 변수가 없다. 죽음의 망토를 걸치고 등장한 코로나는 인류의 삶 전체를 새롭게 규정할 기세다. 2019년을 기준으로 AC(After Covid19)라는 새 연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농담이 진담이 될 판이다. 코로나 출현은 예수 탄생만큼이나 역사적이며 등장 전과 후의 세상은 완전히 다를 것이란 전망이 대세다.코로나가 문 대통령을 우뚝 세웠다. 경제 침체를 이유로 그를 비판했던 대중들도, 자신의 생명을 지켜 줄 희망봉으로 그를 지목했다. 공포에 직면한 대중은 공포를 해결해 줄 초월적 권위와 권력을 찾거나 만들어낸다. 대중의 시선에 딱 한 사람 문 대통령이 포착됐다. 보수 야당은 스스로 공포 해소자의 역할을 걷어찼다. 정치적 대안과 비전과 인격을 상실한 보수 정치인들은 대통령을 슈퍼히어로로 빛내주는 빌런(악당)을 자처했다. 빌런이 날뛸수록 대중은 슈퍼히어로에 집중했다. 성공적인 방역은 대통령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경제위기, 내로남불 도덕성, 지방선거 개입의혹 등 대통령 집권 3년 동안 전개된 정권 비판 이슈들이 모두 각설(却說)됐다. 코로나 초기방역 실패론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이런 추세라면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는 쉽게 꺾일 기미가 없다. 일각에서는 코로나가 지나간 이후 찾아올 파국적 경제에 놀란 국민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야당의 찌질한 빌런 짓이 이어지고, 여권의 잠룡들이 대통령의 친위 여론에 예속된 상황이 지속된다면, 대통령의 나홀로 독주는 임기 말까지 충분히 가능하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차기 권력을 사실상 선택하고 세우는 상황도 얼마든지 가능할 듯하다. 태종과 같은 대통령, 공상이 아닐 수 있다.사법, 입법권력 장악에 이은 국민 지지율 70%. 과연 코로나가 선물한 특별하고 예외적인 권력은 대통령에게 행운일까. 임기 말 대통령에게 전례가 없었던 권력이니 답도 없다. 해답은 특별한 권력의 주인공인 대통령이 직접 써야 한다. 취임사에서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이 민주화 이후 어떤 대통령도 경험해 보지 못한 독점 권력을 가졌다. 그 권력으로 삼권분립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리더십을 보여준다면 그 자체가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코로나 이후 우리 민주주의의 운명은 전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달렸다./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0-05-11 윤인수

[방민호 칼럼]AC(anno covid-19) 원년

與 총선대승에도 민심이면은 복잡세월호서 시작 '삶의 혁명'과정 이해정부, 경제·정치적 '무능력' 딛고코로나19로부터 국민 생명 지켜내생존이 척도라는 새 세계체제 서막국회의원 선거가 여당 쪽의 압승으로 정리된 모양새다. 물론 이 큰 승리는 표면이 그렇다는 것이다. 진짜 민심의 흐름, 이면의 움직임은 간단치만은 않을 테다. 그러나 복잡한 민심의 사정이 일단 여당의 대승으로 낙착된 데는 만만찮은 사연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고 굴려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힘을 코로나19의 '혁명적인' 의미에서 찾으려 한다.세월호 참사로부터 코로나19까지. 나는 이것을 '삶의 혁명'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배에 갇힌 아이들의 꽃다운 생명이 국가의 음모, 또는 무능력으로 인해 사태 지듯 스러졌을 때 우리들은 도대체 국가란, 정부란 무엇이냐, 무엇이어야 하느냐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지난 정부의 일대 몰락이 시작되었다. 국민의 생명을 저버리는 국가란 어떤 정치적, 경제적 명분을 내세워도 용납될 수 없음을, 세월호 참사로부터 '촛불혁명'까지의 일들은 크게 말해 주었다.정부가 바뀌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듯한 사건들이 줄을 이은 적도 있었다. 때문에 이번 선거는 정부, 여당에 그렇게 좋지 못하리라고들 했다. 무엇이 이 상황을 바꾸어 놓았던가? 바로 코로나 집단 감염 사태였다. 마치 1980년에 광주가 모든 '정치혁명'의 진원지가 되었듯이 이번에는 대구가 '뜻하지 않게' '삶의 혁명'의 실험 무대로 소환되었다. 대규모 감염, 확진자 급증, 신천지 교회, 의료 체계 붕괴 위기 속에서 정부, 여당은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던 비판 여론에 떠밀려 가버릴 듯했다.한 달 '코로나 정국'이 전개되는 사이에 모든 것이 급전되어 버렸다. 중국인들 입국을 금지하지 않아 이 야단이 났다고 야당들이 비난을 가하는 사이에 질병본부와 지자체장들, 그리고 정부는 용케도 확진자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막아냈다. 뒤이어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미국, 독일…. 급기야 일본으로까지 코로나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사이에, 뜻밖에도 한국이 방역 시스템 면에서 그들을 훌쩍 능가할 만큼 '선진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모든 경제적, 정치적 '무능력'을 딛고 현 정부는 '갑작스레'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최저임금 '사태'로 인한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어려움, 법무장관 임명을 둘러싼 모든 이해할 수 없는 과정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냈다. 뒤이어 생존의 위기에 몰린 소상공인과 실업자들, 중산층, 하층 국민들을 원조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줄을 이었다. 사태가 워낙 급박했기에, 국민들 모두가 생활의 작동이 정지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피부로 절감하고 있었기에, 아니, 코로나19보다 이 '정지' 사태가 사람들을 더 먼저 질식시킬지도 몰랐기에, 포퓰리즘이라는 비난도, 근시안에, 퍼주기식 물량공세라는 비판도, 선거용이라는 힐난도 모두 배부른 소리로 들리기 쉬웠다. 코로나 사태가 사람들을 삶의 최저한으로 내몰고 있었기에, 정치는 더 이상 통상적인 경제 문제를 다루는 기술에 머물러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삶의 정치, 생존을 위한 정치가 되어야 했다.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된 '삶의 혁명', 그러니까 통상적인, 있어왔던, 낡은 제도상의 정치나 경제보다 삶이, 생존이, 인간적 생명의 최저한이 모든 것의 새로운 척도가 되어야 함을 코로나19, '세계어'로 '코비드 19' 사태는 말해 주었다. 트럼프의 과장 섞인 '허세'도, 아베의 '혐한' 편승 정치술도, '코비드 19'는 그 부끄러운 본색을 벗겨내고 말았다. 만년 선진 열강이라고 믿어지던 서구 제국들이 얼마나 낡았는지, 섬세하고 꼼꼼하다고 '자랑질' 하던 일본이 얼마나 뒤졌는지 '코비드 19'는 알게 해주었다.나는 지금 현 정부를 지지하고 있는 게 '아니다'. AD, 즉 'anno domini'처럼 이 시대는 'anno covid-19', 새로운 원년이자, '포스트콜로니얼'을 넘어선 새로운 세계체제의 서막이다. 우리의 감각, 정서, 인식이 이 생명의 원리를 따라 구각, 그 낡은 껍질을 벗어버려야 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20-04-27 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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