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윤상철 칼럼]불공정의 사회, 불신의 사회

공정·진보 상징 법무장관 임명자자녀 입시과정서 특혜·편법 의혹분노한 20代 청년 후보퇴진 호소대통령은 "나쁜 선례될 것" 훈계개혁 배반 가치 내장 사회는 파산아들과 엄마는 설전 중이다. 대학 졸업과 취업을 앞두고 모자는 예민해져 있다. 엄마의 눈에는 취업을 준비하는 아들이 느슨해 보이지만, 아들은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한다. 모자간의 대화 아닌 갈등은 길게 이어지지만 세대 간의 균열을 보여줄 뿐이다. 엄마는 걱정 섞인 질책을 하고, 아들은 물려줄 건물이 있는지, 소개해줄(아들 세대는 '꽂아줄'로 표현한다) 인턴이나 일자리는 있는지 항변하면서 간섭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이미 아들은 취업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체득하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경쟁의 공정성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아들은 대학 입시와 군복무를 마칠 때까지 이 사회의 공정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부모와 학교로부터 배운 공정성과 정직성의 가치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열심히 노력하면 사회는 자신에게 반드시 보상하리라고 기대하였다. 이제 불공정한 이 사회에서 살아갈 방법을 깨달은 듯했다. 아마도 아들은 부모의 시대착오적 현실인식이나 사회적 무능력을 탓하거나 스스로 좌절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부모는 아들의 판단과 선택을 그저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이 시점에 이른바 최고 대학의 법대 교수이자 공정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의 진보적 상징이었고, 젊은 세대의 멘토였으며, 이른바 촛불정부의 민정수석을 거쳐 법무부장관에 임명된 사람의 특권적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보통사람들에게는 가시밭길이자 지뢰지대인 고교 이후 의학전문 대학원까지의 입시과정을 그의 자식들은 공항의 무빙워크를 걷는 듯했다. 그 과정에서 온갖 특혜와 편법 등이 동원되었고, 위법으로 의심되는 사안들도 더러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사회적 격려가 주어지기도 했다. 20대 청년들은 즉각 분노했다. 직접 관련된 대학의 학생들은 극한의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위법이나 불법, 탈법이나 편법을 넘어서서, 가치와 도덕의 아노미에 빠진 이 사회를 고발하고 그 위선적인 당사자의 퇴진을 외쳤다. 국민들은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경계를 넘나드는 법무장관 후보에 대해 대통령이 바로 잡아 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개혁성이 강한' 후보를 격려하는 반면 국민들에게는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훈계하였다. 지식인들은 익명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거나 심지어 답변을 거부하기도 했다. 개인적 일탈이나 위선으로 판단하거나 심지어 세대의 문제로 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지배집단의 도덕적 불감증으로 보기도 한다. 다른 이는 자기주장이나 자기 정당화가 강하여 객관적인 자기평가를 할 수 없다고 한다. 환경 안에서의 인간의 한계로 말하기도 한다. 자녀교육의 문제라고 설득하려 한다. 심지어 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작은 것은 희생할 수도 있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자신들의 문제인 양 다양한 변명을 만들어낸다.설사 이 문제가 특정한 개인이나 세대의 문제인가? 그 개인의 과거와 현재를 정치적, 진영적 논리로 덮어버리는 다른 정치지도자나 정치지지자들이 있는 한, 이제 우리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문제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밝혀졌을 때에 특정한 개인이나 세대의 문제로 만들 수 있는 다른 개인이나 세대가 있었다면, 20대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모든 개인들과 세대들은 이제까지 견지해온 사회적 가치와 사회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면서 안도하는 심정으로 조용히 퇴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특히 젊은 세대들이 그러한 편법적, 탈법적 행태에서 도덕과 가치를 붕괴시키고 오로지 더 많은 것들과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을 사회적 가치로 체화한다면, 그 장관과 이 정부가 이루고자 하는 개혁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젊은 세대를 좌절시켜 사회적 삶의 준거를 잃어버리게 한다면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개혁을 한다는 것인가? 보다 정의롭고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개혁이 정치적 권력 경쟁의 슬로건으로 전락하고, 그로 인해 시민들에게 개혁에 배반하는 가치를 내장하게 한다면 이 사회의 파산은 불을 보듯 명확할 뿐이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9-09-16 윤상철

[전호근 칼럼]아침에 도를 듣고자 하면

바라던 일 이루면 여한 없다던 공자윤봉길, 문자 그대로 목숨 바쳐 거사논어 어떻게 읽었는지 알 수 있어 선서문 말미 적힌 국호 '대한민국'그가 지키려 했던 나라 명명백백논어를 읽다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는 대목에 이르러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매사에 중용을 따르는 공자가 어찌하여 '죽어도 좋다'는 과격한 말을 했을까? 설마하니 도를 듣고 나면 죽어야 한단 말인가? 목숨 바칠 만한 도가 과연 있기나 한 걸까? 공자는 나이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고 하니 그때 도를 들었다고 할 법한데 왜 죽지 않고 73세(혹은 74세)까지 살았을까?별의별 의심이 꼬리를 물어 생각이 길어졌지만 이 말을 꼭 죽겠다는 결연한 각오가 아니라 간절히 바라던 일을 이루고 나면 더 이상 여한이 없겠다는 일상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예컨대 나도 한때는 십삼경을 모두 풀이하고 나면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물론 그때도 정말 죽을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이렇게 기억의 한 구석으로 밀려났던 논어의 이 대목이 다시 염두에 놓인 건, 언젠가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장부가 한번 집을 나서면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음)'이라고 적힌 글씨를 보았을 때였다. 처음에는 어떤 허풍쟁이가 저런 허튼소리를 했는가 싶어 아연했다가 종내 그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글을 남긴 사람이 매헌 윤봉길이었고 그의 삶이 과연 저 말과 부합했기 때문이다. '조문도 석사가의'를 문자 그대로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아, 그렇구나. 죽기를 기약하지 않고는 도를 들을 수 없는 것이로구나. 그렇다면 저녁에 죽고자 함은 아침에 도를 듣기 위해서구나. 이 사람은 논어를 제대로 읽었구나. 논어에 이르길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삶을 구하기 위해 인(仁)을 해치는 일은 없고 자신을 죽여 인을 이룬다 하지 않았던가.그는 1930년 3월 6일 고향 예산을 떠나 중국 상해로 망명했는데 2년 뒤 일제가 상해를 침략하자 고향의 동생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집을 떠날 때 각오한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의 결심을 이번에 실행한다. 너에게 부탁하니 부모님을 공양하라. 효가 나라사랑의 근본이다."마침내 1932년 4월 29일, 일제가 전승 축하행사를 열고 있던 상해 홍구공원에 간 그는 일본군 장교들이 모여 있던 단상 위로 폭탄을 투척했다. 이 의거로 일본군 대장 시라카와는 폭사하고 노무라 중장은 실명, 우에다 중장은 다리가 절단되는 등 다수의 일인들이 죽거나 다쳤다.거사 후 체포된 윤봉길은 한 달이 채 안 된 5월 25일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12월 19일 가나자와 육군 형무소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그의 나이 25세였다. 일제는 그의 시신을 공동묘지로 가는 길목에 매장하여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게 함으로써 끝까지 저열한 보복으로 그를 모독했다. 그의 시신은 광복 이후 고국으로 옮겨져 현재는 효창공원에 안장되어 있다.짧은 삶을 살았던 윤봉길은 논어를 풀이하거나 번역한 적이 없지만 그의 삶을 보면 그가 논어를 어떻게 읽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논어를 읽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어떤 자는 논어를 읽고 나라를 팔아먹는다. 논어는 읽는 사람의 그릇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것이다.p.s. 다음은 윤 의사가 거사에 나서기 전 작성한 선서문의 내용이다."나는 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서하나이다. 대한민국 14년 4월 26일 선서인 윤봉길 한인애국단 앞"말미에 분명히 적혀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에서 그가 지키려 했던 나라가 대한민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48년 이전에는 대한민국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눈을 씻고 살펴야 할 것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9-09 전호근

[이명호 칼럼]그래서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개인 권리, 공동체 위해 양보됐지만지금 그 반대 작용 나타나고 있어언론의 '무차별 신상털이' 당연시사회분열 등 고질적인 문제 반복전문가 집단 부재가 더 큰 '문제'얼마 전 한 정부부처 위원회에서 간담회 자리를 갖자는 연락을 받았다. 사회적 가치와 정부 혁신이라는 주제였다. 언뜻 내 전문분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동안 내가 쓴 글 등을 읽고 초대하는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고 하여 수락하였다. 미팅 날짜가 가까워 오면서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질문에 직접 답을 하는 것보다는 우회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가치를 논하는데 기본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를 중심으로 대화 자료를 준비하였다. 사회적 가치의 세부분야를 보면, 인권, 안전, 건강·복지, 노동, 기회제공·사회통합, 상생·협력, 일자리, 지역사회, 지역경제, 기업 CSR, 환경, 참여, 공동체·공공성 등 13 분야에 달한다. 보편적 가치로 필요한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추구해야 할 시대적 가치로서의 사회적 가치는 무엇인가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가지 방면의 접근을 해보았다. 인류 보편성이라는 방면과 한국 사회의 시대적 과제라는 방면이었다. 보편성이라는 방면에서 사회적 가치는 개인, 공동체,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라는 3가지 측면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역사적으로 변해왔다. 개인의 측면을 보면 크게 자유와 안전, 생존권이라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해 달라는 것으로 시대를 거쳐 진화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민주화 요구는 개인의 권리에 대한 요구였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의 존중, 즉 자아실현의 공정한 기회와 여건에 대한 요구로 바뀌고 있다.공동체의 측면에서 공동체의 안전과 번영에 대한 요구가 중요했다. 산업화는 부(재화)를 만들어 안전과 번영을 달성하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이 희생되었다. 오염, 양극화, 상대적 박탈감, 갈등 등. 앞으로는 공동체 내의 화합과 협력, 생태와 환경을 고려한 공동체의 지속적 발전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서 보면 조화가 중요했다. 개인의 권리는 공동체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양보, 희생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 반대 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개인의 권리의식은 공동체에 대한 반발로 공공선에 대한 합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신뢰자본이라고 할 수 있는 공공선의 부족으로 개인 권리의 양보 없는 추구는 만인대 만인의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용히 해달라는 것도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화를 내고, '갑질'도 나의 권리이고, 심지어 일본의 식민지 경험에서 형성된 반일의식을 '반일 종족주의' 라고 주장하는 것도 내 권리가 되었다. 모 장관 후보자의 자녀에 대한 '신상털이'가 언론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어도 '개인의 알 권리와 검증'으로 당연시되고 있다. 개인의 존중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할 것인가? 공동체 속에서 개인이 존중되고, 개인이 공동체의 가치와 그 지속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조정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이때 '개인과 공동체의 역동성'이 살아난다고 본다. 필자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불행한 개인과 사회의 역동성 저하'라고 진단한다. 성장의 침체, 좋은 일자리 감소, 불공정한 관행, 노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사회부담과 세대갈등, 미세먼지 등 환경 위기의 상황에서 정치권은 갈등 조정기능이 마비되고 오히려 증폭시키는 정치 무능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작은 이슈에도 불안감은 분노로 증폭되어 언론의 여론몰이에 대중이 동원되는 '방향을 잃은' 시대가 되었다. 장관 후보자 검증이라는 일년에도 십여 차례 진행되는 이벤트가 한 장관 후보자 검증에서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본의 화이트 국가 제외와 수출 규제,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중단,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과 기술 패권 경쟁, 북한의 무력시위 등 한반도를 둘러싼 격변의 위기를 가리고 있다. 개인도 없고 공동체도 없는 무능한 정치권과 언론의 국민동원과 사회분열은 유일하게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런 고질적인 문제가 지속되는 것일까? 필자는 책임과 권한을 가진 전문가 집단의 부재라고 본다. 전문가 집단에서 검증되고 자정돼야 할 것들이 대중의 판단과 심판 대상이 된다. 제도의 문제인지, 그 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을 막지 못한 전문가의 문제인지에 대한 검토는 사라지고 전문가가 다뤄야 할 제도와 현실의 모호한 영역에 법이 칼을 들이대고 있다. 필자는 이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모 후보자에 대해서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9-09-02 이명호

[홍창진 칼럼]열린 마음

'밥 잘 사주는' 누나·오빠들 인기내 것 내어주는 건 사실 쉽지않아결혼 후 가정 이루면 닫히는 지갑산술적 돈 계산만 하면 친구 떠나베푼 지출 내역 많을수록 더 행복성당의 남자 청년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사람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입니다. 여자 청년들은 밥 잘 사주는 잘생긴 오빠를 제일 좋아하지요. 젊은이들뿐이 아닙니다. 칠십이 넘은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지갑을 잘 여는 사람이 제일 인기가 좋습니다. 밥을 사준다는 행동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선 내 것을 준다는 기부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 것을 내어주는 건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쉽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을 비롯해 주변을 잘 살펴보면 가진 것을 움켜쥐고 끌어안기 바쁠 뿐, 여간해서는 선뜻 내놓지 않는 것이 보통의 모습입니다. 나 혼자 사는 것도 너무 힘겨워 작은 것 하나 나눌 여유가 없다는 사고가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습니다.가족조차 나누며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혼 전에는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용돈을 주기도 하고 사정이 어려운 형제가 생기면 없는 형편에서도 서로 돕곤 하지만, 결혼으로 각자 새로운 가정을 이루면 돈 지갑이 닫히기 시작합니다. 부모가 유산이라도 좀 남기면 변호사 비용을 들여서라도 제 것을 챙기기에 안달하지 먼저 나서서 양보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럴 때 유독 공평한 것이 정의라고 강조합니다.천주교 사제로서 암으로 투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분들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한결같이 깨닫는 것은 생명의 소중함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간 서로 사랑하며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소중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아서 보고 싶은 사람도 많고 해주고 싶은 말도 많은데, 하나같이 바쁘고 부담스럽다는 핑계로 피하기만 합니다. 가끔 안부라도 묻는 사람이라곤 병자 방문이라는 성당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찾아주는 성당 신부가 고작입니다. 그러다가 투병생활이 길어지면 가족마저 떠나고 돈 주고 고용한 간병인만 남고 맙니다.어느 환우 분의 말씀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꺼져가는 생명 하나만 겨우 쥔 채 깨달은 것은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었습니다. 살면서 누군가를 진정 사랑했더라면, 그래서 내가 가진 걸 함께 나누었더라면 그도 기쁘고 나도 기뻤을 텐데 나는 왜 이렇게 혼자 외롭게 살아왔을까요? 가족조차 나 중심으로만 사랑했지 그들이 원하는 사랑을 주지 못했습니다. 너무 외롭고 쓸쓸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처절히 후회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100세 시대'라는 보험회사의 선전 문구에 너무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00세 시대를 준비한다며 50세부터 남은 50년의 생활비를 저축하고 노후를 위협하는 지출은 절대 할 수 없다는 삭막한 셈법으로는 친구에게 밥 한번 사기 어렵습니다. 병문안을 가서 봉투를 전하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모처럼 오랜 친구끼리 가진 모임에서 식사비용으로 회비를 내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회비 내기도 어려운 친구들은 점점 모임에서 사라집니다. 돈을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면 친구가 떠나갑니다. 그러나 돈을 마음의 크기로 계산하면 친구들이 모입니다. 우선 마음을 열고 친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친구를 만나서 그가 아픈지, 기쁜지, 외로운지 살펴야 합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다 보면 밥 살 일이 자연스럽게 생기겠지요. 어느 순간에는 내가 얻어먹을 날도 있을 겁니다. 서로 챙기고 사랑해주는 관계 속에서 돈은 수단일 뿐 결코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인생을 너무 산술적 계산에 맡겨두어선 안 됩니다. 숫자로 따질수록 친구는 사라지고 결국 외로움 속에 홀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통장의 잔고가 여생의 행복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생명과 재물은 절대 한 세트가 아닙니다. 세상에 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순간 내 곁에서 울어줄 친구는 통장 잔고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생의 행복은 친구에게 베푼 지출 내역이 많은 사람에게 더 유리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08-26 홍창진

[방민호 칼럼]사람의 통성으로 역사를 생각할 때

동북부 대지진·후쿠시마 원전 참상日 국민 마음에 큰 구멍 뚫렸을 것'제국'의 총칼 아래 삼십오년 고통조국 산야 잃은 마음은 어떠했을까'아베' 같은 이들에게 묻고 싶은 말3·11 때가 생각난다. 2011년이었을 것이다. 일본 동북부에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정확히 말하면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이 동북부를 강타하며 거대한 쓰나미를 몰고 온 것이었다. 그때 한국에서 유튜브가 막 활성화되고 있었다.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하나가 되어 있는 세상에서 나는 한밤 내내 유튜브를 통해서 전달되는 대지진과 쓰나미의 참상을 보고 안타까워했다.재난은 단지 땅이 흔들리고 바다가 밀려오는 것에만 있지 않았다. 미증유의 규모였지만 그렇게 갈라지고 넘어지고 휩쓸려 유명을 달리하는 일도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아물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연이어 벌어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태는 그날의 일들을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는 일들로 만들었다. 모두 네 개의 원자로가 있었고 그것들이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작동이 중지되면서 냉각수를 돌리는 기능들이 마비되고 원자로가 달구어지면서 노심이 녹고 수소폭발이 일어나고 원전 사람들이 황급히 대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풍문에 들으면 원래 곡창지대고 과일도 잘 되는 곳이라 했다. 그 좋은 땅들이 그날 이후 사람이 제대로 들어가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했다. 나는 그날 일본 사람들의 마음에 큰 구멍이 뚫리고 말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토를 사랑하기는 일본 사람도 한국사람 못지않고 자신들만큼 완전하게 무엇인가를 해내온 사람들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네들이다. 그런 사람들로서 뜻하지 않은 원전 사태로 후쿠시마 주변 반경 몇십 킬로미터까지는 아예 버려진 땅이 되어 버렸을 때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필자가 무슨 특별한 동정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보면, 이렇게 남이 아픈 일을 당하면 동정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역시 사람의 보편적인 심성에서 우러나는 감정의 작용이라 할 것이다. 사람은 자기 새끼손톱 밑에 조그만 상처만 나도 아려하고 괴로워하는 짐승이다. 하물며 한 민족이 정들여 사는 땅이, 그것도 '본토' 한복판이 하루아침에 몹쓸 곳이 되었을 때, 그들이 느꼈던 아픔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없지 않다. 도쿄에서 조금 있으면 올림픽이 열리기도 한다는데, 사람은 살아갈 수 있는 땅을 가져야 하므로, 나는 일본이 원전 사태의 괴로움에서 하루바삐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그렇다면 이른바 '제국'의 총칼 아래 삼십오년을 살아야 했던, 조국의 산야를 잃어버린 백성들은 그 마음이 어떠했을 것인가. 들어줄 리도 없지만 아베 같은 이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최근에 그는 한국을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한다고 하면서 이른바 '경제 제재'라는 '무기'를 들고 흔들어댔다. 마치 상대방을 후안무치한 사람 대하듯, "약속" 운운하며,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들한테는, 그러니까 또 국가한테는 이런 식으로 행동해도 좋다고, 얼굴이 뻘겋게 되도록 언성을 높이는 그는 마치 술이라도 한 잔 걸친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이름도 얄궂은, 고노 다로인지 야로인지 모르는 외상은 예절을 어디서 배웠는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막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주일 대사를 불러 젖혀서는 하는 말도 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는 그만이었다. 도대체, 징용이니 위안부니 하는 문제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가? 일본 국민들이 다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통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생겨난 일들은 아니었다. 일 억 일본 국민을 그때 움직이던 도조 히데키니, 고노에 후이마로 같은 지도자들, 버마 방면의 15군을 이끌며 '천황'의 '적자'들을 3만 명씩이나 죽음으로 몰아넣은 무타구치 렌야 같은 지휘관들, 바로 그들이 패전 전의 일본을 움직이며 일본인들과 아시아인들을 죽음과 환란에 몰아넣었던 것이다.경제전쟁이라고 하지만 독일에서 일본을 비판하듯이, 이 사태의 본질은 역사인식에 있다. 일본 정부, 특히 아베 같은 이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과거에 무슨 일을 벌였는지 잊고 싶어 하거나 알지 못하거나 반성이 필요 없다고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념 가득한 데마고그들, 정치 선전꾼들이 나라를 전화에 밀어 넣고 이웃나라 사람들을 즐겨 괴롭히고도 늘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9-08-19 방민호

무더위에 악화되는 하지정맥류, 다리 혈액순환 미리 확인해야

장마철과 함께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하지정맥류'로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정맥류는 혈액순환에 장애가 일어나 정맥이 부풀어오르며 다리 저림, 통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혈관질환이다. 무더위에 악화되는 하지정맥류 치료를 위해서는 정확한 원인과 증상을 파악해야 한다.하지정맥류는 최근 들어 운동부족, 음주, 흡연 등 생활습관으로 인한 후천적 요인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또한 평소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이라면 하지정맥류에 쉽게 노출되며 중장년층에서 주로 나타나므로 나이가 들수록 관리가 필요하다. 다리가 쉽게 피로해지고 붓는다면 하지정맥류의 초기 증상일 수 있으며 그 외 증상으로는 통증 및 다리 쥐, 가려움, 경련 등과 심각한 경우 색소 침착부터 출혈까지 다양하다.하지정맥류는 조기에 발견될 경우 자세 교정이나 운동 치료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정맥류용 압박스타킹과 같은 의료용 보조 기구도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준다. 시술 및 수술적 치료로는 경화요법 주사, 혈관 내 시술, 절개 수술 등이 있으며 질병의 상태와 환자의 체질에 따라 적절한 치료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혈관 염증, 피부 궤양 등 또 다른 질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하지정맥류는 겉으로 혈관 돌출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다리의 느낌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거나 통증, 발 저림 증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면 질환을 의심해보고 전문가에게 상담 받는 것이 좋다. 또한 초음파 검사 등의 정밀 검사를 통해 질환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절개 수술이나 혈관 내 시술 등 수술적 치료를 받아야 할 경우에는 체질에 따라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경험이 있는 의료진에게 진료받는 것을 권장한다.하지정맥류는 일상생활에 불편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각종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치료 및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더라도 주기적으로 다리 건강을 체크하는 것이 좋다. 하지정맥류 예방을 위해서는 조깅이나 실내 자전거 등 가벼운 운동이나 마사지, 스트레칭을 자주 해주는 것이 좋다./도움말 구리 굿병원 전태호 원장·혈관외과 김서전 과장·김태성기자 mrkim@kyeongin.com구리 굿병원 전태호 원장

2019-08-16 김태성

[이남식 칼럼]한류의 위기와 기회

기생충·BTS… '글로벌 인기'속에한일 관계·버닝썬 사태등 저해 요인아이돌의 기본에 대해 재점검 필요소비국의 사회·문화 발전 기여하는'신한류'로 힘찬 전진할 때 아닌가최근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아이돌 그룹인 BTS가 미국의 빌보드차트에서 K-pop 한국가수 사상 최초로 1위에 오르며 전 세계 순회공연을 통하여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2003년 4월 '겨울연가'가 NHK를 통하여 방영되면서 일본 열도에 욘사마 신드롬을 일으키며 콘텐츠가 만들어내는 영향력에 모두가 놀랐다. 겨울연가, 대장금 등 K-drama로 시작된 한류는 K-pop으로 이어지면서 완전히 전 세계적인 문화 장르로 소비되기 시작하였다. 최근 넷플릭스(Netflix)의 다큐 시리즈인 'Explain'(세계를 설명하다 시리즈)에서는 왜 K-pop이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갖는지 분석한 프로그램이 소개되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을 K-pop의 시발점으로 보며 그 이후 SM, YG, JYP와 같은 전문 프로덕션에 의하여 장기간에 걸쳐 양성된 아이돌 그룹이 일본, 중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로부터 인기를 얻으며 성장하게 되었다. 이는 세계 최고의 작곡, 안무, 뮤직비디오 팀을 동원하고, 유튜브나 SNS를 통한 마케팅 등 철저하게 글로벌 시장을 대응하여 제작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하나의 곡에 다양한 음악 장르를 섞는 매시업을 통하여 보다 폭넓은 팬층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정말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드' 사태 이후 한중 관계나 최근의 한일 관계 등 정치 외교적인 이슈들이 향후 한류에 상당히 마이너스적인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최근 '버닝썬' 사태 이후에 벌어지고 있는 아이돌과 프로덕션의 일탈적인 행태로 말미암아 팬들에게 상당한 실망감을 주면서 한류에 대한 외면을 낳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하여 큰 인기를 얻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아이돌들과 이를 만들어내는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이 시점에서 성공 방정식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아이돌이 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기본에 대하여 다시 돌아보면서 인기인이 가져야 할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인기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보호도 필요하다. 각종 언론 미디어의 지나친 보도로 개인의 사생활을 지키기 어려운 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각종 악플로 엄청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문제도 하루속히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에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하여 '신한류' 확산 전략이 발표된 바 있다. 신한류는 한류 소비국의 사회·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장려되어야 하며 세계인의 일상 속에서 한류 콘텐츠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활동을 키워가는 것으로, 한국과 해외 현지에 파급되는 긍정적인 한류의 영향을 증진 시켜 한류의 안정적인 확산과 지속성을 도모하고자 하고 있다. 따라서 K-드라마, K-팝을 넘어서 K-푸드, K-뷰티, 그리고 K-에듀에 이르기까지 한류의 범위가 생활 전반에 크게 확산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개선되는데 기여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여배우인 안젤리나 졸리의 아들이 K-pop의 열성팬으로 유학지로 한국을 선택하여 대학 입학예정이며 향후 동생들도 한국에 유학 올 의사를 밝힌 것은 한류로 인해 외국인들에게 한국이 매력적인 나라로 비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최근에 국악에 록과 재즈를 결합하여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씽씽밴드'의 경우도 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의 이수자인 이희문, 추다혜 등이 결성한 프로젝트 밴드로 전통콘텐츠를 독특한 비주얼과 현대적인 사운드에 입혀 전 세계적으로 차별성을 인정받은 사례라 할 수 있다. 반주는 현대적 악기로 이루어지나 메인 싱어의 노래는 완전한 경기민요 스타일로 전통의 세계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문화콘텐츠 산업이 속한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여타 분야보다 2배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로 적합한 분야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분야로 진출하기 위하여 많은 학생들이 이 분야의 학과로 대학을 진학하고 있어 인력양성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그간 국제적인 정치와 국내 여러 가지 사건 사고로 위축된 한류를 다시 점검하여 신한류로 힘찬 전진을 하여야 할 기회의 때가 아닌가 한다./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2019-08-12 이남식

[윤상철 칼럼]'없는 것'과 '가진 것'

집착·보상 욕구 부르는 빈곤·결핍집단 확산땐 조급증·의구심 낳기도결과의 평등, 사회 발전잠재력 침식강한 열망 오늘의 한국 만든 원동력역사의 변증법 개인·국가 성찰해야최근 주말드라마를 보다가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어떤 결핍감이 이후의 삶을 얼마나 왜곡할 수 있는지를 새삼 돌이켜 보게 되었다. '어머니를 존경하거나 사랑한 적이 없다'는 남자의 내면에 깔려 있는 결핍이 자신의 딸을 평생 짓누르게 될 걸 걱정하는 다른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갑작스러운 부자들이 자신의 자식을 교육수준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집안사람과 맺어주려는 정략적 결혼이 낳은 파국들은 TV드라마들의 흔한 소재이기도 하다. 빈곤과 결핍이 낳는 '상대적 박탈'이나 '지위불일치'가 가져오는 좌절과 보상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리를 두고 보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에 과하게 집착하고, 스스로 '가진 것'을 가볍게 여기기 쉽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개인 차원의 보상 욕구가 사회 수준의 문제로 확산되면 좀 더 복잡해진다. 제도, 법, 그리고 정책을 통한 사회적 조정의 과정에서 또 다른 불일치를 낳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국민들은 군사쿠데타와 돌진적 산업화를 용인했고,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유린되었고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산업재해, 그리고 사회안전망 없는 저임금에 시달려야 했다. 국가주의적, 자본주의적 발전전략은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낳았기에 이를 낙수효과가 부재한 이윤주도성장으로 인식하고 노동자를 중시하는 소득주도성장으로 나아갔지만 급속한 최저임금인상과 52시간 근무제, 그리고 과도한 복지확장은 경제성장을 지연시킨다. 과도하게 이상적이고 지연된 적폐청산은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를 제시하고 있지만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권력을 활용하여 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또 다른 유사 적폐를 낳고 있다.우리에게 없는 것은 더 커 보이고 우리가 이룬 것은 누구나 어느 나라나 다 쉽게 이룰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사회의 진화발전과정이라는 생각이 경제발전과 정치발전을 동시에 성취해낸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 진로를 너무 조급하고 더 소용돌이치게 만들고 있다.오랜 남북갈등은 평화를 희구하게 했고 민족분단은 민족적 완성체를 당장의 대안으로 생각하게 한다. 전쟁과 충돌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곤궁해지고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사회적으로 균열과 갈등을 체험하면서 평화적 결과보다 평화적 과정을 우선시하는 조급증은 국가의 영토가 유린되고 국민들이 기본적인 안전망에 의구심을 갖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민족분단은 늘 국제지정학에 의해 국가와 민족의 행로가 좌우되는 불편한 경험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대안이 폐쇄적 쇼비니즘적 '우리 민족끼리'를 앞세워 우리 사회를 어떠한 가치와 이념 속에서 세울 것인지에 대한 대안 없이 수십 년간 같이 해온 정치군사적 경제적 동맹들을 다 뿌리치는 편협한 홀로서기로 갈 일은 아니다.사려깊게 구상되지 못한 평등은 타인의 자유도 사회의 발전도 침해하기 마련이다. 결과의 평등에 사로잡히다 보면 구사회주의의 길이 아니더라도 국가주의의 함정에 침몰할 수 있다. 개인들은 자유와 삶의 동기를 잃음으로써 이 사회의 발전잠재력은 침식되게 된다. 아직까지도 역사적 시대와 사회적 집단의 우열은 사회적 생산력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사회는 생산력의 발전 위에서 분배와 평등, 그리고 개개인의 자유와 성취가 확산된다. 사회집단 간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있어서도 또 다른 불평등의 도래에 유의해야 한다. 모든 사회는 역사적으로 계승되지만 항상 새로운 개인들에 의해 재구성된다. 과거의 불평등에 대한 연좌제적 복수가 불가할 정도로 사회의 구성원은 계속 바뀌고 그들에 의해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게 된다. 최근 인류의 발전은 정당성 있는 주체가 씨족, 부족, 가족, 국가가 아닌 집단에서 개인으로 진화해왔다. 그러나 사회의 지속은 개인만으로 이뤄질 수 없고 사람들의 삶을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촘촘히 메우고 연결하는 다양한 사회단위를 필요로 한다. 너무 과도한 개인주의와 국가와 사회의 무능력은 장기적으로 그 사회를 해체하게 될 수 있다. 다른 희망이었던 민족은 더더욱 멀어지게 된다.우리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강한 열망은 오늘의 한국사회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추구해온 모든 가치들은 다 특정한 역사와 발전시기에 필요한 덕목이었고 당시 사회를 추동하는 힘이었다는 점을 성찰해야 한다.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은 이전에 추구했던 가치가 현재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가를 말할 뿐 결코 이를 폐기하거나 대체하지는 않는다. 500년된 예멘의 아파트를 고집하지는 않더라도 30년이 되기도 전에 재개발을 시도하는 우리들이 "시체에서 악취가 나지 않게 하려는 것보다 어렵고 비싸지만 쓸데없는 일은 없다"라는 말이나 어설픈 진보로 변명하고 있지는 않은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성찰해볼 일이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9-08-05 윤상철

[이영재 칼럼]그때는 몰랐다

주변국 사이 갈팡질팡, 구한말과 겹쳐 보여조·청·일·러서 한·미·일·북·중·러로 늘고북한이 핵보유국, 그때보다 복잡하고 험악또 잘못 선택한다면 후세 무능한 조상으로 그때는 몰랐다. 역사는 무조건 외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역사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무조건 외우는 거다." '미친개'란 별명을 갖고 있던 국사 선생님도 박달나무를 허공에 휘두르며 그때 그렇게 말했었다. "백제멸망 660 정말 슬픈데 /고구려도 망했다 668/ 발해건국 699에 번영하다가/ 멸망이 웬 말이냐 926." '연대 강박증'에 시달리던 우리는 윤극영의 동요 '반달'을 개사한 이런 노래도 불렀다. 하긴 당시 시험문제의 수준도 이랬다. '다음 사건을 시대순으로 옳게 나열한 것은 ?'. 그래서 '미친개'가 무조건 외우라고 했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역사는 외우는 게 아니라 이해해야 한다는 걸. '한국사 연표'를 직접 만드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도 후에 알았다. 기존의 연표를 대충 눈으로 읽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다. 내 손으로 연표를 작성하되 여유가 있어 세계사 연표까지 함께하면 금상첨화다. 국사와 세계사를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이른바 '일타쌍피'. 가령 '고구려가 낙랑군을 점령한 313년 그해, 콘스탄티누스가 밀라노칙령을 공포해 기독교를 공인하고, 백제를 번성케 한 근초고왕이 죽던 해(375년)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이런 식이다. 눈을 감으면 뭔가가 그려진다.그때는 몰랐다. 역사는 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발원지에서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흐름만 알면 역사공부는 끝난 거다. 그래서 연표가 중요하다. 이탈리아 메디치가의 번영으로 피렌체의 르네상스 문화가 절정을 구가하던 1453년, 동방의 조그만 나라 조선에서는 수양대군이 친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권력이 뭐라고, 그걸 잡기 위해 쇠몽둥이로 무자비하게 정적을 제거하고 '피의 축제'를 벌이며 마침내 조카의 목숨까지 빼앗은 그때, 먼 나라에선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간중심의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었다. 가슴이 뭉클하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연표 때문에 가능한 상상이다.하지만 이런 연표도 근대사에 이르면 혼란을 맞게 된다. 우리 근대사가 썩 유쾌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정말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건이 수없이 일어나서다. 1866년 병인양요,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시작으로 신미양요(1871), 운요호 사건(1875), 강화도조약(1876), 임오군란·제물포조약(1882), 갑신정변(1884), 동학운동·청일전쟁 (1894), 을미사변 (1895), 아관파천(1896), 대한제국선포(1897), 을사조약·가쓰라 태프트 밀약 (1905), 한일합병(1910)까지 매년 매월 국운을 뒤흔든 사건이 일어났다.무엇하나 뺄 거 없이 '조선'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가 감당하기에는 엄청난 사건들이었다. 연표만 가지고는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이 사건들이 계산된 듯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근대사 교육은 중립적인 시각을 가진 누군가의 설명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미친개'는 어설픈 민족주의자였다. 청나라,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의 움직임은 생략한 채 우리 입장만 가르치려고 했으니 불쌍한 '조선'이 왜 백척간두에 놓였는지 어린 학생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최근 우리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가 마치 구한말 같다고 한다. 헷갈리던 근대사를 다시 공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소리까지 들릴 정도다. 주변국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가련한 모습이 구한 말과 겹쳐 보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조·청 ·일 ·러 4개국에서 한·미·일·북·중·러 6개국으로 늘어난 것도 그렇고, 한반도가 두 쪽으로 갈라졌으며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란 사실 때문에 상황은 그때보다 복잡하고 훨씬 더 험악하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E. H.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비록 반복되는 역사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지만 답은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 알았으니 무능했던 우리의 조상들이 택하지 않은 길로 가면 된다. 만일 이번에 또 길을 잘못 선택한다면, 우리는 후세에게 130년 전 조상보다 더 무능한 조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다시 그 길 앞에 선 대한민국. 슬프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7-29 이영재

[전호근 칼럼]오지 않은 학생들의 이야기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결석한 학생열외자·꼴찌들의 이야기에 가까워내가 궁금한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모든 것을 던져 이룬 일등의 성취사람들 삶을 보려하지는 않아…지난 학기 학교 축제 기간 중 강의에 출석하는 학생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강의를 듣기 위해 한결같이 출석하는 성실한 학생들을 바라보고 정성을 다해 강의했지만 나오지 않은 학생들에게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왜 결석했을까? 나는 강의 들으러 온 학생들이 왜 왔는지는 궁금하지 않았지만 결석한 학생들의 사정은 무척 궁금했다. 학생들이 강의에 출석하는 이유는 거개가 같을 테지만 결석한 이유는 다 다를 것이었기 때문이다.축제가 끝난 뒤 나는 지난 시간 출석하지 않았던 학생들에게 무슨 재미난 일이 있어서 강의에 나오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다.한 학생은 신종 독감에 걸렸는데 친구들에게 옮길까 봐 안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이 학생은 친구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이타적인 이유로 결석한 것이다. 거룩한 학생이다.또 다른 학생은 학과대표로 뽑혀 축구 시합에 나가느라 강의에 오지 못했다고 했다. 시합에 이겼느냐고 물었더니 아깝게 졌다고 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축구에 인저리 타임이 있는 것처럼 내 강의에도 인저리 타임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뛰라고 이야기했다.또 한 학생은 게임을 하느라 밤을 새워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아주 솔직한 학생이다. 자신에게 불리함에도 진실을 밝힌 학생에게 칭찬을 해주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또 어떤 학생은 미리 나에게 사정을 알리고 허락을 구했다. 학교에서 개교 7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있어 티켓을 신청했는데 운 좋게 당첨되었단다. 무슨 공연인지 물어보았더니 무려 프랑스 오리지널팀을 초청하는 레미제라블 뮤지컬이란다. 나라도 강의 빼먹고 갈 것이라고 이야기해줬다.또 병무청 신체검사를 받느라 참석하지 못한 학생도 있었다. 국가의 정당한 부름에 따른 이런 학생은 국가가 보호해야 할 것이다.결석하지 않고 강의실에 온 학생 중에는 지난밤 학과 주점에서 과음한 탓에 강의시간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잔 학생도 있었다. 내 강의가 얼마나 듣고 싶었으면 저런 몸을 이끌고 강의실까지 찾아왔을까 싶어 감동받았다. 내가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실은 이런 학생들 때문이다.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결석한 학생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일등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열외자, 꼴찌들의 이야기에 가깝다. 하지만 내가 그들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세상 사람들은 일등 이야기를 열심히 퍼나르지만 일등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뻔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축구 황제로 불렸던 에우제비오는 "모든 경기를 마지막 경기라 생각하고…", 히딩크 감독은 "나는 아직도 승리에 배가 고파서…" 죽어라 뛰었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 미국육상대회에서 마지막 순간 결승선을 향해 몸을 던져 일등을 차지한 허들 선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김연아 선수의 발이나 이상화 선수의 발이나 모두 상처투성이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던져 이룬 일등의 성취는 영광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 해도 재미는 별로 없다. 사람들이 삶을 보려 하지 않고 일등으로 귀결된 경쟁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꼴찌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이야기가 다 달라서다. 프로야구 원년 팀 중 만년 꼴찌였던 '삼미 슈퍼스타즈'만이 유일하게 소설로 쓰인 까닭도 다르지 않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치기 힘든 공을 치기 위해 밤새 배트를 휘두르고 잡기 힘든 공을 잡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일등들은 죽었다 깨나도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그러니 말이다. 일등들은 꼴찌들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들은 단지 당신들처럼 모든 것을 던지지 않았을 뿐이다. 당신들이 던져버린 것들 중에, 그리고 그들이 던지지 않은 것 중에, 혹 던지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지 어찌 알겠는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7-29 전호근

[기고]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기리며

오는 7월 27일은 '유엔군 참전의 날'이다. 1950년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분의 희생이 있었다.22개국 195만명의 유엔군 참전용사분들은 한 번도 와보지도 못한 이름도 낯선 대한민국의 땅에서 피와 땀을 바쳤다. 정부는 그분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기 위해 정전 60주년이 되던 지난 2013년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제정하여 매해 국가보훈처 주관의 정부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6·25전쟁은 발발한지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뺏길 만큼 우리의 전력이 열세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여 북한의 남침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유엔결의문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유엔회원국 중 16개국이 우리나라에 전투병력을 보내왔고 6개국이 의료지원을 보내왔다. 열세했던 한국전쟁은 유엔군의 참전 이후 전세가 뒤바뀌었다. 우리가 38선을 탈환하고 압록강까지 북진하는 등 우세를 보였다가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는 등의 교착상태가 반복되는 와중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체결함으로써 3년여간의 전쟁은 휴전을 맞이하게 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휴전 이후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이는 6·25전쟁 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유엔군 참전용사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던 기념비 문구는 아직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조국은 그들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조국의 부름에 응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유엔군 참전용사분들의 희생에 다시 한 번 존경과 경의를 표하며,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정전이 된지 66년이 흐른 지금 꽃다운 희생의 피가 평화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최근 남북정상 및 북미정상 간의 만남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들을 제거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안착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평화의 한반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를 위해 땀과 피를 흘리며 희생하신 유엔군 참전용사분들의 희생과 공헌에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맞이하여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을 되뇌며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가지는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이주미 국립이천호국원 현충과 주무관

2019-07-25 이주미 국립이천호국원 현충과 주무관

[기고]왜(倭)의 경제침탈에 한 목소리로 대처해야

선조 23년(1590년) 조선 조정은 왜국(倭國)에 통신사 일행을 파견했다. 이듬해 귀국한 정사 황윤길(黃允吉, 서인)은 왜병이 반드시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고 말하자, 부사 김성일(金誠一, 동인)은 왜군의 침략 징후를 보았음에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보고한다.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안보를 해친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592년 조선은 왜(倭)의 침략을 받아 백성들의 생명과 국토가 유린당하는 대참사를 겪었다. 그런데도 조선은 당파싸움 속에서 국론이 분열되어 그로부터 300여 년 만에 또다시 왜국에 나라가 병합되는 수모를 당했다. 과거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은 망각의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옛날에는 땅을 지배해야 식민지였지만 현대에는 경제로 지배해도 식민지가 될 수 있다.요즘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가 심상치 않다.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가 독도 영공과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한 뒤 러시아는 영공침범을 부인하고 한국 조종사가 오히려 위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또한 왜국은 3개 반도체 소재에 대해 대(對)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가운데 화이트리스트(White List) 국가에서 제외하는 경제 보복도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 3개 소재에서 1천여 개 품목 규제로 확대된다. 왜는 타국을 침탈하는 습성에 따라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가하는 동시에 과거의 불법행위를 정당화시키려고 수출규제와 외교적 보복을 감행하고 있다. 왜의 DNA는 원천적으로 타국을 침략하게 돼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남북 간의 교류협력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찰총국 소속의 간첩을 남파하고 단거리 미사일 2발을 발사하는 등 국제적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에 정치권에서는 상대 탓만 하고 있다. 차제에 이것만은 분명히 말하고 싶다. 정부는 민족적 감정에 기인한 선동 형 대책보다 대왜(對倭) 경제의존도를 줄이는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반도체 소재에 관한 한 러시아가 불화수소 등 일부 소재를 제공할 의향을 밝혀온 점을 고려, 일본의 1천여 개 규제품목에 대해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것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미국을 압박하는 효과적 수단이 될 수 있을뿐더러, 일본과의 경제관계 재정립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또한 러시아도 왜국과 북방 4개 섬 분쟁이 있기 때문에 독도에 관한 한 우리나라에 우호적일 수 있다. 이러한 점이 이번 KADIZ 침범을 계기로 독도 영공이 한국 영유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도록 외교적 협상을 전개해야 하는 이유다. 그동안 미국을 짝사랑했는데 일본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애매하기 그지없다. 미국 일변도의 짝사랑에서 벗어나 러시아와도 부분적이나마 교제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략적 방안이 있으면 뭐하겠는가. 국가(國家)가 반으로 갈라진 것도 서러운데 국론(國論) 역시 반으로 나뉘어 버렸으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요즘 정치가 나라를 망친다는 소리를 심심찮게 듣는다. 국가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당리당략에 따라 '친일파' 또는 '좌파' 운운하는 국회의원들을 영구 추방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서로가 한 발씩 양보하여 최소한 왜국에 대한 사안만이라도 한목소리를 내야 또다시 시작된 왜의 경제침탈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 텐데 걱정이다. 제발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희망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초당적 방안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가 오죽하면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를 쓰지 않고 왜국(倭國)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진종구 환경안보아카데미 원장

2019-07-25 진종구 환경안보아카데미 원장

[이명호 칼럼]한일 산업생태계의 '식민지' 전쟁

일본 정부의 '경제 규제' 이면에는'한국, 여전히 경제적 식민지' 인식반도체등 韓산업생태계 약점 공격부품·소재 경쟁력 뒤돌아봐야할때대기업·협력기업 '상생 관계' 필요식민지 시대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경제 규제 이면에는 한국과 일본의 경제 경쟁이 깔려 있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명을 넘는 '30-50클럽'의 7번째 국가가 되었다. 식민지가 되었던 나라 중에서는 유일하다. 다른 6개국(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은 모두 식민지를 착취한 제국주의 전력이 있는 나라들이다. 더구나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은 일본과 대등한 정도로 성장한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나라이다. IMF 2019년 자료에 따르면 1인당 명목 GDP가 한국이 3만2천달러로 일본의 4만1천달러 대비 78% 수준이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1인당 GDP는 일본이 933달러, 한국이 108달러로 9배 차이가 났다.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1% 수준의 일본에 비해 2배에 달하기 때문에 2022년에는 한국이 1인당 GDP에서 일본을 따라잡거나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일본이 1억2천600만명으로 한국의 5천200만명의 2배가 넘는다. 그러나 향후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의 7천700만명이 만들어낼 역동적인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현재 일본의 반응은 바로 한국의 성장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위기의식과 조급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그동안 일본은 한국이 여전히 일본이 만들어 논 경제적 틀 속에서 움직이는 나라로 보았다. 아베와 보수적인 인사들의 "한국이 전후 체계를 만들어 가는 가운데 한일관계 구축의 기초가 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반하는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은 정말로 유감"이라는 언사는 바로 한국을 여전히 경제적 식민지로 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본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하면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한국 정부에 5억달러(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의 경제협력자금을 제공한 것이 한국 경제 성장의 기반이 되었다고 본다.사실 1965년 한일협약 이후 일본 자금으로 포항제철이 지어지고, 창원과 구미, 부산 일대에 수출자유지역이 조성되면서 한국은 일본의 기술지도를 받아 원자재를 만들어 공급하는 일본 경제의 밸류 체인에 편입되었다. 이후 55년이 되도록 한국은 일본과의 무역수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적자폭이 감소하고 있지만, 누적 적자액이 700조원에 달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에 대한 수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중국 등으로 수출을 늘리고 자체 기술을 개발하면서 일본 경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있지만, 핵심산업에 대한 일본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한국은 여전히 경제적 식민지이고, 착취적 관계로 성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결국 한국의 성장에 위협을 느낀 일본은 특히 일본의 부품·소재 기술력에 기댄 채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등을 키워온 우리 산업생태계의 취약점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왜 부품·소재의 기술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였는가를 뒤돌아봐야 할 것이다. 벤처 캐피탈은 국내 대기업에 부품 등을 납품하는 협력(벤더) 기업에 투지하지 않는다고 한다. 납품 마진이 대기업에 의해 통제(착취)되는 상황에서 벤더기업에 대한 투자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에 네덜란드 대사관의 과학기술혁신 담당관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네덜란드의 대기업은 벤더기업의 거래처 확보와 기술개발을 지원한다고 한다. 거래처의 리스크 관리와 부품의 품질 향상은 대기업의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 규제에 대하여 여론이 분열되고 있다. 경제 강국 일본과 맞서서는 안되고 타협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식민지 의식을 청산하고 진정한 독립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진정 필요한 것은 우리 안의 경제적 식민지 관계의 청산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경제적 식민지로 인식하고 있듯이 우리 대기업은 벤더기업을 식민지 기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런 관계에서는 상호이득이 되는 상생협력이 불가능하다. 우리 안의 식민지 관계가 남아 있을 때 진정한 경제적 독립도 어렵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9-07-22 이명호

[홍창진 칼럼]부부

부부 사랑은 '서로 주고 나누는 것'일방적일땐 상처… 공감능력 필요인격은 물론 '마음'까지 보살펴야이혼위기 왔을 때 이혼은 답 아냐부부의 인연 지속위해 '사랑이 답'부부로 인연을 맺고 사는 일은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둘을 연결하기 때문에 생기게 됩니다. 부부의 알맹이는 사랑입니다. 부부 사랑은 서로 주고 나누는 것이어서 어느 한 편이 일방적으로 주고 어느 한 편이 일방적으로 받는다면 반드시 한 편에 상처가 남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부부 사랑을 유지하려면 공감능력이 필요합니다. 서로를 살피고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해주어야 합니다. 공감능력이 부족해 자신이 원하는 것만 고집하는 사람들은 결국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부부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이전에 자신만을 사랑하던 때로 돌아서는 부부가 많습니다. 연애 감정도 사라지고 아이 키우는 일에 지치면서 어느새 부부의 알맹이인 사랑은 사라지고 결혼 전 솔로의 세계로 회귀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알맹이를 잃고 거죽만 남은 채 홀로 된 사람들은 가끔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알맹이를 채워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실패한 부부 생활을 다시 시작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전에 맺은 부부의 인연은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고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그것은 식어버린 자기감정만 보기 때문입니다. 부부 사랑에 있어 감정은 일부일 뿐 그것이 사랑의 전부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부부 사랑은 두 인격이 진지하게 나누는 보다 책임 있는 행위입니다. 중요한 경기에서 페널티 킥을 실축한 축구 선수에게 다시 한 번 공을 차도록 기회를 주는 심판은 없습니다. 결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잃어버린 사랑의 알맹이를 누군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개인적으로 사별이나 사기 결혼 외에 재혼을 반대합니다. 최근 저명한 인사가 새로운 사랑을 만났다며 지금 배우자와의 이혼을 법정 다툼으로 몰고 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세상의 평가도 다양합니다. 사랑 없는 결혼을 지속할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있고 법이 보장하는 혼인의 신성함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일전에 제가 담당하고 있는 성당에 초상이 생겼습니다. 50대 후반에 5평 남짓한 쪽방에 사는 독거자였습니다. 그는 성당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천주교 세례를 받은 사람이어서 한 달에 한 번 성당의 봉사자들이 방문해 간단한 식음료를 챙겨드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 봉사자들이 한 달 주기가 되어 그 집을 가보니 그는 이미 3주 전에 사망해 시신에서 악취가 나고 있었습니다.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연고자를 찾았습니다. 동생이 천주교 신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는 봉사자들의 얘기를 듣고 수소문 끝에 동생 신부님을 찾았습니다. 그 신부님은 당시 큰 수도원 원장님이었습니다. 저도 명성을 들어 잘 아는 신부님이었지요.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로마 유학을 거쳐 수도원장에 이르는 종교계의 엘리트였습니다.둘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수도원을 들어갈 때만 해도 형님은 사업가로 성공한 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부양은 걱정하지 않고 신부의 길을 선택했는데 갑자기 닥친 사업실패와 이혼이 형님을 폐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당장에라도 수도원을 나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내가 맺은 하느님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신부들은 하느님과 사랑에 빠져 하느님과 결혼하는 사람들이니 그분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신부의 알맹이는 하느님 사랑이니까요.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하는 사랑은 그와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하나요? 공감능력이 없는 아이처럼 자기만 좋으면 내 짝은 상처를 받든 말든 상관 않는 사람들이 하는 사랑을 과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단순한 자기감정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인격은 물론 세세한 마음까지 보살피고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나는 사라지고 내가 너가 되고 그가 내가 되는 것입니다. 이혼의 위기가 왔을 때에 이혼은 답이 아닙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의 힘으로 공감능력을 회복해 부부의 인연을 지속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에게 상처만 주고 본인도 상처받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07-15 홍창진

[방민호 칼럼]트럼프 대통령

우방 관계 해친다는 비판 '아랑곳'김정은 치켜올리면서도 대북제재 사업가 출신… 협상 성공법 '자신'평화 유지될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아기대·우려 함께 품고 기다려 볼 뿐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북한 쪽 지역으로 건너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북한 지역에 발을 디딘 첫 대통령이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 말들이 아주 많았다. 미국의 지성인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했다. 유럽에서도 트럼프 당선은 무슨 재앙이라도 만난 듯 충격을 받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미국의 언론 주도층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 때문에 페이스북 같은 신종 '독립' 매체를 통한 직접 호소 방식을 즐겨 활용한다. 그가 한국인들의 관심 대상이 된 것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가 고작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 그의 이미지는 그렇게 긍정적이었던 것 같지 않다. TV 화면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과장된 것 같았다. 강한 자신감을 피력한다기보다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바다 건너에서 보기에도 어째서 미국인들이 저렇게 안정감 없어 보이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걸까 하고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점이 없지 않았다.원래 미국 공화당은 우파, 보수파라 하고, 민주당은 좌파도 더러 섞인 진보파라 생각하는 게 통상적이다. 당연히 미국 공화당은 한국으로 보면 현재의 야당에 가까운 정강 정책들을 가졌을 법하다. 민주당은 또 우리의 여당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트럼프의 대북 정책은 그런 통념을 바꾸어 놓았다. 지금 민주당의 유력 후보 가운데 하나인 존 바이든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맹렬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그의 대북 유화 제스처가 일본과 한국 같은 전통적 우방들과의 관계를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김정은과 자신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앞으로 북한이나 김정은에게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는 것이다. TV 앞에서 한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을 양옆에 세우고 사진을 찍은 그는 자신이 주도하는 대북 정책이 북한 수뇌부의 태도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한편으로 김정은을 치켜올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북 제재를 쉽게 끝낼 수는 없다는 그는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의 여유 같은 것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는 기자 회견 중에 국무장관 어디 있느냐며, 그가 협상을 이끌 것이라고 고개를 돌려 폼페이오를 찾았는데, 이 또한 미리 예정한 연기 같은 인상을 주었다. 한편으로는 김정은과 계속 협상을 하겠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폼페이오에 대한 신임을 거듭 재확인한다?듣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원래 사업가였다고 한다. 사업가라면 밀고 당기는 협상이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는 오랜 경험을 통해서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법을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듯도 하다. 그 하나의 예로 지난 대통령 선거 때의 인상적 기억 하나. 그는 공화당 지지자들을 향해 자신은 이기는 법을 알고 있다며 팔을 치켜세우고 흔들었던 것이다. 과연 트럼프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이기는 법을 알고 있는 그는 다가오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당선될 수 있는 전략을 찾고 있다. 외교 분야에서 그것은 아마도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이 아니면서도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장을 스스로 풀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가장 값이 싸게 먹히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이니 그는 여유 있게 북한의 최고 지도자를 치켜올리 며 핵무장을 풀기만 하면 뭔가 획기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실제로 그런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자신이 의도한 대로 핵무장을 당장 풀지 않아도 나쁠 것은 없다. 한반도 문제가 자신의 손안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연기를 즐기는 북한의 지도자와 함께 자주 등장하면서 웃고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입증하면 그뿐이다.한국 정부도 그것이 꼭 나쁘지는 않다. 평화와 대화가 그로써 그만큼은 유지될 수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 과연 어떻게 될까? 무대가 무대만은 아니라 현실이기를, 연기가 연기만은 아니기를 기대와 인내와 우려를 함께 품고 기다려 볼 뿐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9-07-08 방민호

[이남식 칼럼]디즈니의 매직

새로운 콘텐츠 트렌드 '실사 영화' 잘 알려진 스토리·제작비 절감 장점특수컴퓨터 힘으로 화면 편집 '마법''황금종려상' 쾌거 이어가기 위해선전세계적인 변화에 주목해볼 필요 6월 30일 판문점에서는 또 하나의 트럼프 매직이 이루어졌다. G20 회담 후 1박2일 여정으로 불과 24시간여 한국에 체류하면서 미국의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고 북미 핵 협상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트위터와 미디어가 이루어낸 새로운 정치 매직이다. 매년 발표하는 세계적인 브랜드에서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IT기업을 제외하고 항상 상위권에 머물고 있는 기업은 코카콜라, 맥도널드 그리고 디즈니다. 월트디즈니는 1923년 월트와 로이 디즈니가 창업한 디즈니브라더즈만화스튜디오로 출발하여 미키마우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50년대부터 테마파크 사업을 확장하여 디즈니랜드와 디즈니월드를 구축하였으며, 전 세계에 14개의 테마파크와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는 M&A를 통하여 픽사, 마블 스튜디오, 루카스 필름, 20세기폭스, 폭스서치라이트 픽처스, 그리고 블루스카이 스튜디오, ABC방송 네트워크, 내셔널 지오그래픽 네트워크 및 A&E를 소유하여 세계 최대의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그룹이 되었다. 그런데 디즈니가 만들어내는 콘텐츠 중 새로운 트렌드가 바로 실사영화 (Live-action movie)라는 장르이다. 이번 여름 우리나라에서 '기생충' 못지않은 흥행을 기록한 영화 '알라딘'은 이미 1992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던 것을 최신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동원하여 실제 배우들과 컴퓨터로 그리는 원숭이, 호랑이, 마법양탄자가 등장하는 리메이크영화로 사실성이 높은 일종의 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 영화라 할 수 있다. '정글 북', '미녀와 야수'로 시작하여 '알라딘'에 이어 앞으로 '라이온 킹', '잠자는 숲속의 공주', '레이디와 트램프', '뮬란' 등의 애니메이션이 실사화된 영화로 등장할 예정이다. 알라딘의 경우 미국과 전 세계적으로 6월 첫째 주 기준으로 약 8.4억 달러(약 9천700억원)의 수입을 올려 1.8억 달러(약 2천80억원)를 제작비로 쓴 것에 비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참고로 1992년에 제작한 애니메이션 알라딘은 2.8억 달러가 들었다). 이러한 새로운 트렌드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스토리와 애니메이션에 비하여 제작기간이나 제작비가 훨씬 덜 들어가는 까닭이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전으로 몇 장의 사진만 있으면 배역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은 영상(CGI-computer generated imagery)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요사이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하여 립싱크를 정확히 맞춘다든지 좀 더 자연스러운 표정, 배경을 만들어낼 수 있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시각화할 수 있게 되어 영화를 만들어내는 자유도가 한층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모든 CGI들이 3차원으로 제작되어 재활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국 미래의 영화산업에 있어서 CGI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지 않나 한다. 소위 특수효과(VFX visual effect)라는 범주가 초고속으로 영상을 만들어내는 특수한 컴퓨터의 힘을 입어 화면을 편집함으로써 그야말로 매직(Magic)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명량', '신과 함께' 등의 영화에서 CGI를 많이 사용하였으나 아직 완성도 면에서는 디즈니에 미치지 못해 보인다. 우리 영화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쾌거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의 변화를 잘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스티브 잡스와 디즈니의 관계이다. 스티브 잡스가 1997년 애플에 복귀한 이후 애플의 CEO로서 14년간 매년 1달러의 연봉만 받았고 스톡옵션도 없었다. 스티브 잡스가 죽고 난 후 약 67억달러의 유산을 남겼는데 대부분이 픽사(PIXAR)라는 컴퓨터애니메이션 회사를 디즈니에 팔면서 받은 디즈니의 주식 평가액이 전체의 약 65%가 되어 또 다른 디즈니 매직을 남겼다./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9-07-01 이남식

[이영재 칼럼]6·25 아침에

해마다 이날 슬픈 이야기 주고 받았는데언제부턴가 의미가 점점 빛 바래'잊혀진 전쟁'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오늘은 '호국영령 이야기' 귀 기울이는 날해마다 이날이 되면 우리는 슬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주로 듣는 편이었다. 이제는 잊을 만한 한 평안도 사투리가 '방언'처럼 쏟아져 나왔다. 너무 생생해서 그 아비규환의 현장이 또 눈앞에 펼쳐졌다. 묘하다. 달달 외울 정도로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 속이 멍해지는 느낌을 받으니 말이다. "죽지 못해 살아남았다"로 이야기는 끝났다.밥상머리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며 자랐던 아이는 이제 제 자식에게 아버지한테서 들었던 그 날의 슬픈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최첨단 아이맥스 돌비 서라운드로 영화를 감상하는 신세대 아이에게, 그것도 전해 들은 전쟁 이야기가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지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입을 다문다고 해서 주저리주저리 얽힌 그 숱한 사연을 담은 비극의 가족사와 남북 분단사를 두부 모처럼 잘라내지는 못할 것이다.그해 6월의 마지막 일요일은 너무도 평온했다고 한다. 딸기를 씹는 것 같은 싱싱한 6월. 투명한 6월의 태양이 비치는 강물은 해조처럼 싱싱하게 흔들렸고, 붉은 장미처럼 생명의 열정이 만방에 꽃을 피운 6월이었다. 살살 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때로 소낙비를 몰고 오기도 하다가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햇빛을 뿌리기도 했다. 해방을 성취한 젊은이의 터질 것 같은 마음은 춘향이가 그네를 타듯이 한없이 펄럭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 새벽, 화단에 핀 붉은 장미가, 딸기를 담은 투명한 유리컵이, 어린이들이 타던 그네가 있던 놀이터의 평화가 순식간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미국에선 6·25전쟁을 '역사의 고아'라고도 부른다. 3년 1개월 2일 동안 연인원 178만9천명의 미군이 참전해 3만6천여명이 전사했으나 역사적인 평가에서 철저하게 외면을 받고 있어서다. 승전도, 패전도 아닌 '정전'으로 끝났기 때문에 그렇다는 의견도 있다. 분명한 건 미국은 6·25전쟁에 대한 준비도, 의지도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공원의 비문에는 '미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라의 자유를 위해 달려갔던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글귀를 적어 놓아 찾는 이를 숙연하게 만든다.우리 역시 언제부턴가 6·25 전쟁의 의미가 점점 빛이 바래고 있다. '한국전쟁'이라 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심지어 '내전'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재작년에 이어 지난 6일 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6·25전쟁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현충원에 잠든 대부분 영령이 6·25 전쟁 전사자들인데도 말이다. 오슬로를 방문해 행한 포럼 연설에서는 "독립 후 '한국 전쟁'을 겪고서도, 7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이라 했고, 스톡홀름 의회연설에서는 "반만년 역사에서 남북은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한 적이 없다"며 북의 남침으로 발발한 6· 25전쟁을 외면했다. 하지만 국군 전사자 13만명, 부상자 45만명, 10만명이 넘는 전쟁고아와 1천만명의 남북 이산가족이 발생한 6 ·25전쟁을, 그 아픈 역사를 하루아침에 지워버릴 수는 없다. 가족사처럼, 역사도 지운다고 말끔하게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지우려다 남은 흔적이 더 흉하고 더 오래가는 법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6·25전쟁을 외면하고,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로 시작되는 '6·25 노래'가 더는 우리 사회에서 불리지 않는다면, 6·25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6·25 아침이다. 이어령은 '시간에 세우는 기념비'라는 글에서 "아, 6·25! 오수(午睡)를 거부하라"며 "6월 25일은 검은 구름과 천둥소리에 우리의 어린 것들이 피를 흘렸던 기억, 우리의 사랑이 어떻게 찢기는가를 듣는 것"이라고 적었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6·25의 의미를 되새기고, 나라 위해 목숨 바친 호국영령들의 그 슬픈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그런 날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6-24 이영재

[윤상철 칼럼]정치시민교육이 필요한가?

서구 민주화 과정보면 값을 치러야반복할 필요 없지만 건너뛸 수 없어한국사회, 방향·내용 합의 쉽지않아재사회화된 시민, 자유 실현할 주체가치 지탱할 훈련해야 하지 않을까지난 주말에는 컴퓨터 앞에서 폭력예방교육을 받으며 보냈다. 양성평등기본법 등 여러 법률에 따르는 법적 의무로서 대학 교직원 모두가 연 1회를 이수해야 한다고 한다. 교육내용은 양성평등, 성희롱, 성매매, 성폭력, 가정폭력 예방교육 등 5개 과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과목당 2시간 이상 지속되는 교육을 제한된 시간 내에 마치지 못하고 결국 비이수자로 남게 되었다. 교육을 받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유용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별로 와 닿지도 않는 내용으로 국가예산 낭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내용을 판단하기 전에 국가주도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방식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사회적으로 충분한 합의의 과정이 이뤄졌다고 보기도 어렵고, 더러 다른 사안들과 충돌하는 윤리적, 정치적 내용들을 국가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판단하고 이를 전파하는 방식이 자못 불편하다. 대부분 사회학적으로 재사회화에 해당되는 내용들이어서 더 조심스럽다.서구의 민주화 과정을 돌이켜보면, 민주주의정치야말로 그만큼의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진민주주의의 동요와 내파를 보면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 나아가 양성평등의 쟁점들까지도 시민들의 의식 속에 쉽게 내장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무슨 방안이 가능할까? 우리가 어떻게 인류보편적 가치에 동의해갈 수 있을까? 세계화의 시대에서 우리가 서구의 과거 역사를 반복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건너뛸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압축적 정치시민교육을 주장한다. 정치인이 아닌 시민으로서 살기 위해서도 정치시민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연고 및 정파, 그리고 그 집단적 극화가 심각하고, 정치적 가십을 정치로 혼동하고, 정치인들을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삼지만 동시에 과도하게 동일시하는 사회에서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어느 커뮤니티에서나 정치와 종교, 그리고 젠더를 금기시하는 고착된 한국사회에서 정치시민교육은 그 방향과 내용에 합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정치를 잘 알고 실천한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여기에서 플라톤의 원취지와는 다르지만 그 시민적 버전인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치적 무지는 정치권력자들의 선거놀음의 대상일 뿐이다. 물론 정치에 대한 교육과 토론은 극단적인 갈등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대화가 없으면 정치적 사고는 더 극화될 뿐이다. 탐욕스런 권력자는 스스로의 권력만을 추구하는 '총탄형 정치가'이거나 대중의 선호에 휘둘리는 '뗏목형 정치가'이거나 간에 시민들에게 바람직한 정치를 주지 않는다. 이 중간 어느 지점에서 우리 사회의 활로를 찾아야 할 것이다.정치시민교육의 장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되, 타인의 생각을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대통령선거의 토론처럼 서로 비난만 하거나 딴전을 부려서는 안 된다. 상대는 생각을 달리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일 뿐, 제거되어야 하는 적폐일 수 없다. 우리는 대선 토론에서 특정 후보와 말하지 않겠다는 후보들처럼 일상을 살 수는 없다. 서로 의견이 다르지만 정답은 그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상대의 어떤 생각도 존중되어야 하고 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해보기로 하자. 정치인이나 정당은 우리가 선택하는 대상일 뿐, 우리가 동일시하면서 추종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우리의 대리인일 뿐이다. 우리의 미숙한 정치행위의 결과에 대해 직접민주주의를 대안으로 내세우지 말자. 아직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도 행동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가기까지 우리는 서로 싸우거나 교육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포스트 자본주의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제조업의 고용규모나 부가가치 생산이 낮지 않지만 더 확장될 가능성은 회의적이다. 탈산업사회라고 보기는 다소 성급하지만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주변에 밀려오고 있다. 더 많고, 더 어려운 사회적 정치적 이슈들을 해결해내야 한다. 과거의 민주주의를 구성하던 주체들, 부르주아 혹은 프롤레타리아, 나아가 대중적 포퓰리즘도 더 이상 새로운 민주주의를 이끌 수는 없다. 정치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고 이후 재사회화된 시민들이야말로 이른바 포스트자본주의 시대에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와 평등을 실현할 주체들이다. 특히 젊은 청년들에게는 평생의 직장도, 근대적 보호막으로서의 조직도 집단도 없다.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에 스스로 인류가 만들어낸 가치를 지탱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하지 않을까?/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9-06-24 윤상철

[전호근 칼럼]아버지의 아버지생각

커다란 고무신 물끄러미 바라보며할아버지 그리워하던 아버지 얼굴그후로 기억에서나마 만날수 있어공광규 시인 '소주병' 뜻밖에 읽고초라해진 나의 부친 초상과 같았다"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가 읽던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은 손때(手澤)가 남아있기 때문이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쓰던 그릇을 쓰지 못하는 것은 입때(口澤)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유학의 고전 '예기'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왜 아버지의 경우에는 '책'이고 어머니의 경우에는 하필 '그릇'을 예로 들었는지 다소 유감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문제를 따지는 일은 다른 기회로 미루기로 하자. 어쨌거나 이 말은 지금 곁에 없는 어떤 사람을 추억하는 데 평소 그가 애용하던 사물이 때로 긴요한 역할을 한다는 작은 진실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나에게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사물이 있다. 나는 중학교 시절 이후로 지금껏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이곳에서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어릴 때부터 집을 떠나 서울에서 홀로 생활했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버지가 서울에 오신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학교에서 학부모 면담이라도 하게 되면 아버지가 올라와서 선생님을 만나곤 했고 그런 경우는 일 년에 한두 번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아버지는 생전에 서울 땅을 밟아본 적이 별로 없었다.아무튼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적 진학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아버지가 서울에 왔을 때의 일이다. 둘이서 시장 길을 지나고 있었는데, 문득 아버지가 보이지 않기에 뒤돌아보았더니 아버지는 어느 가게 앞에 우두커니 서 계셨다. 뭘 보시나 했더니 아버지의 눈길은 신발 가게에 진열된 커다란 고무신에 멈춰 있었다. 그리곤 혼자 말처럼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저 고무신을 사다 드릴텐데…" 하셨다.어촌의 농사꾼이었던 할아버지는 발이 유난히 컸다. 그 때문에 꼭 맞는 신을 구할 수 없어서 고무신 뒤축을 가위로 잘라서 신고 다니기 일쑤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장이 들어서는 날이면 큰 고무신을 찾아 돌아다니곤 했지만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이라 할아버지의 발에 맞는 고무신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환한 얼굴로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날 운 좋게 "맞으면 신고 가세요!"라는 문구가 써져 있는 신발가게에서 사이즈가 큰 고무신을 구한 것이다. 그날 아버지의 밝은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리고 서울 시장 길에서 커다란 고무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당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얼굴 또한 잊지 못한다. 그 이후로 나는 고무신만 보면 기억에서나마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고무신을 흔히 보지 못하게 되면서 그런 일도 조금씩 줄어들었다.그런데 얼마 전 어느 도서관에 강의하러 갔다가 뜻밖에 거기서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앞에 시 바구니가 걸려 있었는데, 반가운 마음으로 한 개를 꺼내 펼쳐보았더니 거기에 공광규 시인의 '소주병'이라는 시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옮겨본다.'술병은 잔에다 /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 속을 비워간다 /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 길거리나 /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 문 밖에서 /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 나가보니 /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 빈 소주병이었다'.시의 제목은 '소주병'이지만 실은 아버지를 그리는 노래다. 시인이 그린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비우고 또 비운 나머지 마침내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처럼 초라해지고 만 내 아버지의 초상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공광규 시인이 부럽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소주병은 고무신과는 달리 아직은 흔히 볼 수 있어서 자주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을 테니 부럽다. 또한 도처에서 아버지를 만나니 그 마음이 애달픈 순간도 무시로 닥칠 터이다. 그것은 부러운 일인지 아닌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6-17 전호근

[이명호 칼럼]파란하늘은 계속돼야 한다

1만년 이상 변함없던 지구 평균기온불과 300년도 안된 사이 1℃ 상승인류, 핵전쟁보다 큰 위험에 직면 한국 1인당 에너지 소비, OECD 5위많은 비용 들기 전 '재생' 투자해야며칠째 맑고 청명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찬 기온과 바람이 만든 파란 하늘과 구름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사람들의 표정도 밝은 것 같다. 미세먼지(오염공기) 속에 마스크를 쓴 표정없던 사람들이 같은 사람들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맑은 날이 주는 공짜 행복이다. 아니 지구가 주는 공짜 행복이다. 지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다. 공기, 물, 땅…. 원래 지구의 것인데 땅은 공짜가 아닌 누군가의 소유가 되었다. 물도 더 이상 공짜가 아니고 사야 한다. 아직 공기는 공짜다. 그런데 땅과 물과 같이 공기도 공짜가 아닌 날이 올 것이다. 사실 지금도 맑은 공기는 더 이상 공짜가 아니다. 맑은 공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내가 직접 지불하지는 않지만, 인류 전체가 지불하고 있다. 우리가 배출한 온실가스에 의한 공기 오염과 지구온난화에 대한 비용이다. 현재 지구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평균 온도가 1℃ 올라갔다. 작년 인천에서 열렸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총회에서는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가 배출되면 2040년에 1.5℃ 상승할 것이고 2℃ 이상 상승하면 지구가 위험하니 상승을 1.5℃로 제한하자는 특별보고서를 발표했다. 얼마 전 호주의 과학자들은 30년 뒤인 오는 2050년에는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전 세계 대부분의 주요 도시가 생존이 불가능한 환경으로 변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가뭄, 해수면 상승, 식량·물 부족, 아마존 열대우림과 북극 빙하 등 생태계 파괴로 수십억 명의 인구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찜통 지구(Hothouse Earth) 효과로 지구 면적의 35%, 전 세계 인구 55%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생활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전 세계 해안도시가 범람할 것으로 전망했다. 찜통 지구란 지구가 그동안 흡수해왔던 온실가스를 방출하면서 기온이 가속적으로 상승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되면 인류는 핵 전쟁보다 더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문제는 과학자들이 이렇게 위험을 경고해도 우리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데 있다. 1~2℃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전인 1750년대의 지구 평균기온은 14℃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온도는 무려 1만년 이상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불과 300년도 안된 사이에 1℃, 무려 7% 이상이 상승한 것이다. 우리 체온이 7% 이상 오르면 위급한 상황이다. 더 오르면 사망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지구는 괜찮을 거야'라고 안심할 것인가? 지구 온난화의 1차 요인은 화석연료이고, 2차 요인은 주로 화석연료가 연소되면서 나오는 온실가스, 이산화탄소(CO2)다. CO2는 100개의 공기 분자 중에 1개만 있어도 지구 평균기온이 100℃에 도달할 정도로 강력한 온실효과를 일으킨다. 산업혁명 이전 대기 중 CO2 농도는 280PPM을 유지했으나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300년도 안되는 사이에 125PPM이 급증하여 현재 405PPM을 넘어버렸다. 현재의 CO2 농도를 과거에서 찾으려면 300만~500만 년 전까지 거슬러 가야 한다. 그 당시 기온은 지금보다 1~2도 더 높았고, 해수면은 10~20m 더 높았다. 지구평균온도 상승을 1.5℃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2010년 대비 CO2 배출량을 2030년까지 최소 45% 감축해야 하며 2050년까지 순 제로 배출이 달성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에너지 소비, 특히 화석연료 소비는 중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에너지를 싸게 쓰고 싶어한다. 나중에 더 크게 들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금 행동에 나선다면 기후변화 대응비용이 GDP의 1% 정도면 될 것이지만, 지금 대응을 전혀 하지 않으면 이번 세기 중반에 기후비용이 세계 GDP의 5~20%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 우리나라는 에너지 과소비 국가다. OECD 국가 중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다섯 번째이고, 석탄 소비량은 2위이다. 다른 OECD 국가들이 감소세를 보였지만, 한국은 오히려 늘었다. 발전 비중에서 석탄과 원전은 72%에 달하는데, 재생에너지는 2.8%로 OECD 평균 12.2%의 4분의 1 수준이다. 파란 하늘을 유지하는데 더 큰 비용이 들기 전에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싼 에너지를 원하며 맑은 공기를 동시에 누릴 수 없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9-06-10 이명호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