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윤상철 칼럼]청년, 여성, 그리고 광장민주주의?

젊은 학자들 비정규직 미래 불투명남성중심 기득권체제서 女 더 열악직접민주주의 목청 포퓰리즘 양상과도할땐 특수이익만 배타적 반영공화주의, 민주주의적 독재 처방전지난주에 한 학회의 워크숍에 참석했다. 토론의 주제는 '갈라진 진보, 세대와 광장의 정치'였다. '진보'라는 말이나 좌파·우파의 구분은 정치세력들의 자의적 개념 사용으로 인해 그 '정명(正名)'이 어렵기는 하다. 그럼에도 참석자들의 논의를 대략 정리하면, 현집권세력은 한국의 정치 지형상 좌파로 규정할 수 있고, 집권 전까지 단일한 대오로 뭉쳐 있던 좌파세력이 집권 후반기로 가면서 이른바 '조국사태'를 계기로 내부적으로 분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이들에 친화적이었던 청년, 여성 세력들이 점차 이탈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문제 제기는 자유민주주의의 통치형태인 의회민주주의가 그 정치적 효용성과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광장민주주의 등의 직접민주주의를 대체재 혹은 보완재로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이른바 '86세대' 남성엘리트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의회와 정당체제가 여성이나 청년들의 이해관계를 전혀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학계가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쏟아졌다.청년과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학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교수 및 연구자의 길을 가고 있는 젊은 학자들은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르는 대학구조개혁의 찬바람을 맞으면서 비정규직 강사와 연구원으로서 열악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 미래도 대단히 불투명하다. 그 이유는 국가발전의 토대인 지식생산자들을 국가와 사회가 여전히 유한계급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취업절벽 앞에서 헬조선을 부르짖기는 여느 청년들과 마찬가지이다. 여성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예비연구자들의 성비나 여성들의 연구역량 등이 과거와 다르게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의 기득권적 대학교원체제는 요지부동이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여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결혼, 출산, 육아 등의 압력을 더 받고 있으며 남녀의 상대적 차이를 논할 바가 아니다. 그로 인해 이들은 이제까지 결과적 평등과 소수자 및 약자의 배려를 주장해왔던 좌파들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면서 그들과 연합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한국 좌파에 실망하고 전지구적 좌파의 무관심과 무능력에 좌절하면서 현재의 정치적 거버넌스를 부정하고 새로운 급진민주주의적 개혁의 수레에 올라타고자 한다.정치적 대표성을 상실했다고 생각하는 세력들은 의회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지만, 우회적인 수단으로 의회에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이른바 '광장민주주의'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양상들이다. 서초동과 광화문, 그리고 혜화동은 소용돌이치는 대중들의 반란이다. 이 광장에서 청년과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이익들이 정치적으로 이슈화되고 동원된다. 일부 이슈들은 정치세력들을 통해 의회민주주의의 방향을 이끌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정치적 과실은 이들에 편승하거나 이들을 동원하는 정치 세력의 차지일 뿐이다. 더 안타까운 일은 대통령권력의 위임민주주의나 야당세력의 권력정치의 포퓰리즘적 선동에 동원되는 양상이다. 또한 광장민주주의가 갖는 감성적 소용돌이는 대중독재와 광장파시즘을 우려하게 하면서 체제의 불안정성을 키우기도 한다. 그들이 스스로를 동원하면서 내심 요구하고 있는 이익들은 일시적으로 표면적으로 정치적 담론에 반영되는 듯하다가 정치적 담합에 의해 어느덧 사라진다. 광장민주주의는 광장에서 먼지처럼 사라지고 잊혀간다.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과도하게 주장되면, 그 결과 힘을 지닌 집단의 특수한 이익이 선택적으로 수용되면, 다양한 집단의 이익갈등을 조정하여 최선의 일반의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민주주의를 배반하게 된다. 이에 일반적 정의와 모두의 이익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체로 나서는 공화주의가 거론된다. 공화주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특수한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반영하는 민주주의적 독재로 변모하지 않도록 하는 처방전일 수 있다. 동양이나 한국의 공화주의는 그 서구적 경험이 없고 진영논리가 팽배한 상황에서 이른바 협치 거버넌스를 통하여 모두의 이익이 대표되면서 상호조정되는 그러한 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과도한 광장민주주의는 공화주의가 부재한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파탄케 할지도 모른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20-01-20 윤상철

[전호근 칼럼]탕임금의 목욕통

통에 '날마다 자신 새롭게한다'는 뜻'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글귀새겨세상이 변함없이 진부하게 느껴질때자신이 낡은건 아닌지 되돌아보고주관 새롭게하면 객관세계 새로워져동아시아 역사상 최초로 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바꾼 인물은 탕(湯)임금이다. 3600년 전 그는 폭군이었던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桀)을 쳐부수고 상나라를 세워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을까? 그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리를 규합하거나 군대를 양성하여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아니라 놀랍게도 날마다 목욕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일이었다. 그의 목욕통에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유명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를 탕지반명(湯之盤銘, 탕임금의 목욕통에 새겨진 글이라는 뜻)이라 하는데 그 내용이 유학의 고전 '대학'에 전해온다. 완전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평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짧은 문장이지만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고대의 한문은 글자 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뜻을 전달하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조사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주어나 목적어까지 생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문장도 그렇다. '구일신(苟日新)'은 '만약 날마다 새로워진다면'이라고 옮길 수 있는데, 원문 어디에도 주어나 목적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읽으면 누가 무엇을 새롭게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무의미한 동어반복이 되기 십상이다.번역하는 이들은 이런 경우를 만나면 앞뒤의 맥락을 더듬어 주어와 목적어를 찾아 넣어서 문장을 완성한다. '대학'의 앞뒤 문장을 참고하면 이 문장의 주어는 '나'이고 목적어는 '나 자신', 정확하게는 내 안에 있는 '덕(德)'이다. 그러니까 '구일신(苟日新)'은 '만약 내가 나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으로 옮길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하고 나면 이어지는 '일일신(日日新)'의 뜻은 저절로 분명해진다. '일일(日日)'은 하루하루, 그러니까 매일이라는 뜻이다. 결국 이 두 구는 내가 나 자신을 새롭게 하면 나에게 다가오는 나날, 곧 객관 세계가 새로워진다는 뜻이다. 마지막 구 우일신(又日新) 또한 같은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나에게 다가오는 객관 세계가 새로워지는 '일일신(日日新)'이 조건이 되면 새로움을 맞이하는 주체인 나 또한 새로워지는 것이다.탕임금은 왜 이 글을 목욕통에 새겼을까? 목욕은 자신을 새롭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고대인들은 목욕통을 '감(鑑, 거울)'이라 했는데 그 까닭은 목욕통에 물을 가득 채워놓고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는 거울로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탕임금은 목욕할 때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깨끗하게 닦았는지 살펴보기 위해 이 글을 자신의 목욕통에 새겼던 것이다. 날마다 몸을 깨끗하게 닦으면서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하고자 하는 뜻을 새겼으니, 목욕통에 새기기에 이보다 맞춤한 글귀가 있으랴.내가 새롭지 않은 채로 하루를 맞이한다면 내가 맞이하는 세상 역시 새로울 것이 없다. 나날이 새롭지 않다면 내가 맞이하는 나날이 구태의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탕임금의 목욕통에 새겨진 글은 바로 세상이 새롭지 않고 진부하다고 느낄 때, 혹시 정말 진부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 아닌지 돌아보도록 일러준다. 살아가면서 날마다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새롭게 하면 '나날이 새로워진다(日日新)'는 것이 어쩌면 '나날이 좋은 날(日日是好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나 자신, 나의 주관을 새롭게 하면 나에게 다가오는 객관 세계가 새로워지고, 객관 세계가 새로워지니까 내가 또 새로워지는 것이다.이제 문장을 완성해보자."만약 날마다 나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내가 맞이하는 나날이 새로워질 것이고, 나날이 새로워지면 나 자신이 또 새로워질 것이다."세상이 참 지루하고 진부하다고 느껴질 때면 탕임금처럼 자신을 돌아보며 물음을 던져보자. 정말 세상이 진부한 건지, 아니면 내가 진부한 건지. 뻔한 좌우명이라고? 천만에, 혁명을 이룬 이가 날마다 새겼던 글귀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1-13 전호근

[이명호 칼럼]10년 후 평화의 꿈을 꾼다

나의 소박한 꿈은 부모님 고향인황해도 배천서 어머니와 거니는 것제재상황이라도 지금 '왕래' 원해개성공단이든 금강산 관광이든우선 허용하면서 남북문제 풀어야십(10)이라는 숫자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다. 십이라는 수는 완성, 충만의 숫자로 인식되어왔다. 손가락으로 개수를 셀 때 열 개가 되면 꽉 차고 만족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도 십이 가진 '이상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힘은 우리의 심리적 힘이다. 그래서 동서양 모두 십계명, 십장생 등 십이라는 숫자를 빌려 사람들의 심리에 영향력을 미쳐왔다고 볼 수 있다. 십은 완성이기 때문에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큰 계획을 세울 때 10년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2020년 올해는 십 단위의 해인데 희망과 시작의 힘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불완전 수라는 의미가 있는 9의 기운이 아직도 우리의 심리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한 해는 정말 혼란의 시대였지만, 한시대의 마감이었다고 역사가들은 평가할 것이다. 난장판 국회였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새로운 선거법이 만들어졌다. 조국 법무부장관 사태는 우리 사회의 이면을 다 드러내 보이며 치열한 갈등을 유발시켰지만, 사람들의 윤리적 기준을 높였고, 결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이 통과되어 검찰의 기소독점권이 폐지되었다. 4월에 새로운 선거법하에서 새로운 국회가 구성되고, 7월에 공수처가 설치되면, 작년 한 해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고통의 시기였다는 희망을 갖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 희망은 다양성, 견제와 균형이 우리 사회에 더 공고히 정착되어 공정성과 공평함을 더 느끼며 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한 희망이다. 국내 정치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일정표가 제시되었는데, 아직도 희망의 일정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남북관계이다. 앞을 알 수 없는 남북관계가 2020년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를 여전히 불안하게 한다. 2018년 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2019년 북미회담까지 이어지게 하였지만, 지금은 서로에 대한 호감을 거둬들이고, 섭섭했던 마음들을 드러내놓고 있다. 아직까지 다시 잘해보자는 속내는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섭섭함이 쌓이면 증오로 변한다는 인생사를 남북과 북미 간에 보게 될까 걱정된다. 잠시의 기대와 희망이 더 큰 절망과 낙담으로 이어질까 두렵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 간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미국-한국과 중국-북한의 대립구도로 바뀔까,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 한국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끌려갈까 걱정된다. 그래도 나는 2020년을 맞이하며, 10년 후의 꿈을 그려본다. 10년 후에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아서 결국 새로운 남북관계가 열렸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십 년 동안 꿈을 간직할 생각이다. 내 꿈은 어머니가 90세가 되시기 전인 5년 내 어머니와 같이 황해도 배천을 방문하는 거다. 10년 후에도 어머님이 건강하게 내 손을 잡고 배천을 돌아보는 것도 기대한다. 황해도 배천은 부모님 두 분이 태어나시고 자라신 고향이다. 부모님들은 배천 자랑을 많이 하셨다. 연백평야 지역이라서 농사가 잘되고, 황해를 접하고 있어서 수산물도 많고, 배천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깨끗한 물이 많고 온천까지 있어서 살기 좋은 동네였다고 한다. 38선 이남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휴전선 이북이 되어서 더 애틋함이 크신 것 같다. 서울이라는 곳이 전형적인 고향이라 지리적 풍광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배천이 고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소박한 꿈이 모두의 꿈이 될 때 꿈은 희망이 되고, 의지가 되고, 계획이 되고, 실천이 될 것이다. 꽉 막힌 듯한 남북, 북미 관계를 보면서 꿈이 현실이 되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일을 하면서 항상 염두에 두는 개념이 있다. "생각은 크게, 시작은 작게, 그러나 빠르게 움직여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라는 큰 목표를 위하여 작은 시작이 절실한 시기가 되었다.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란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위한 것이다. 결국 제한적이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왕래이다. 평화통일 후의 자유로운 왕래가 아니라 분단, 제재 상황이라도 왕래는 할 수 있기를 지금 원한다. 개성공단이든 금강산 관광이든, 먼저 왕래를 허용하면서 남북문제가 풀어져 나가야 할 것이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20-01-06 이명호

[홍창진 칼럼]마음의 유익균

비만 큰영향 미치는 장내 유해균유익균 많으면 날씬함 유지 쉬워우리 마음 속도 마찬가지로 작용고독을 택하면 유해균 키우는 것몰두할 수 있는 즐거운일 찾아야'비만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외모지상주의라는 시대적 가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비만은 건강을 해치는 대표주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런 관심을 반영해서인지 아침방송만 해도 비만 탈출 비법을 종종 소개합니다. 저 또한 나이가 나이인지라 건강 관련 방송을 보면 일단 채널을 고정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요즘 방송을 보니, 비만의 원인이 단지 과식에만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과식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장내에 있는 유해균이라고 합니다. 우리 장 안에는 수많은 균이 존재하는데, 유해균이 유익균보다 많으면 아무리 적게 먹어도 살이 찐다는 것입니다. 반면 유익균이 더 많은 사람은 설사 과식을 좀 하더라도 날씬한 몸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비만을 탈출하려면 가장 먼저 장내에 유익균을 키워야 하고, 운동이나 식이조절은 그다음이라는 것이지요. 가만히 보면, 유익균과 유해균은 장내에만 작용하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서도 똑같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연말이 되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한해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이 고백성사를 하러 성당을 찾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작년에 범한 죄를 또 짓고 같은 고백을 반복합니다. 어느 꼬맹이는 고백소에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동생에게 욕도 했고, 서로 백 번도 넘게 싸웠어요"라고 말합니다. 어떤 청년은 직장동료가 너무 미워 마음을 안정시키기 어렵다고 합니다. 중년의 주부는 "남편만 없으면 죄지을 일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불안과 분노를 안고 살다 보면 불면증도 쉽게 찾아오고 마음의 괴로움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매사에 의욕이 없고 그저 우울하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은 일단 서로 같이 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서로 좋아서 결혼하지만 같이 살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고받을 일이 생깁니다. 피를 나눈 가족조차도 어쩔 수 없는 갈등에 시달립니다. 하물며 사회에서 만난 사람은 어떨까요. 아주 작은 이해관계 하나로 서로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달팽이가 껍질 속에 숨듯,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가 스스로 고독을 선택합니다. 관계를 끊고 혼자 있기를 택하는 건, 괴로움과 우울에서 벗어나는 데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장에 빗대어 말하면, 고독을 선택하는 건 유해균을 키우는 행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유해균이 유익균보다 많은 한 우리의 삶은 결코 행복하거나 건강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좀먹는 걱정과 슬픔을 날려버리려면, 마음 안에 유익균을 대량 투입해야 합니다. 마음의 유익균 중 대표격은 '몰입'입니다. 주어진 일에 보다 열정을 갖고 몰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천직이라 여기고 사랑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가치를 느낄 만한 대상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유익균은 '명상'입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스스로를 들여다보면서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명상하는 사람은 절대로 절망이나 슬픔에 빠지지 않습니다. 세 번째 유익균은 여행이든 운동이든 자기가 제일로 좋아하는 취미에 심취해 사는 것입니다. 취미를 즐기는 사람은 짜증 내는 일이 없습니다.투명한 유리컵에 물을 오래 담아두면 앙금이 생깁니다. 앙금을 없애려고 수저로 휘적거리면, 물만 흐려질 뿐 컵 바닥에 눌어붙은 침전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럴 땐 앙금이 있는 채로 수돗물을 콸콸 쏟아부으면 됩니다. 힘찬 물줄기에 앙금이 사라지고 어느덧 컵은 깨끗해집니다. 우리 마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 안의 괴로움, 슬픔, 우울 짜증을 억지로 없애려는 건 마치 비만에서 탈출하겠다고 억지로 배고픔을 참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억누르고 참다가 결국엔 폭발하고 맙니다.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면 유익균을 취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겠다고 그에 집중하기보다, 차라리 내가 몰두할 수 있는 일, 내 마음에 안정을 주면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장에 좋은 유익균을 넣어주듯, 우리 마음 안에 유익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불어 넣어주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12-30 홍창진

[이영재 칼럼]2019년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친 것들

조국사태·한일관계등 주류 이룬 10대 뉴스유난히 많았던 '가족의 비극' 도 다시 봐야국민·기업에 걷은 세금 선심쓰듯 뿌리는데한 가정 속절없이 무너진 이유 설명해줘야2019년 10대 뉴스가 일제히 발표됐다. 언론사의 성향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국사태, 지소미아 파기로 인한 한일관계, 부동산값 폭등, 청와대 하명수사 등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뉴스에 빠져 무심코 지나친 게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 하나의 유형으로 고착돼버린 '가족의 비극'이 그것이다. 2019년은 생활고에 견디다 못한 일가족의 극단적 선택이 유난히 많았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이미 선진국에서 '살해 후 자살'로 명칭 되는 '가족 동반 자살'이 올해는 유난히 많았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개인의 극단적인 선택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일가족이 함께 생을 마감하는건 흔치 않은 경우다. 통상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빈곤층이 늘어나면 자살 등의 극단적인 선택도 증가한다는 것은 이미 통계에서 밝혀졌다. 문제는 이들이 판단력이 없는 어린 자식들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점이다. 비록 부모일지언정 자식의 삶과 죽음에 관여하고 더구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갈 권리는 없다. 극단적 선택을 앞둔 그 시간, 그 공간을 상상해 보자. 아이들은 곧 있을 자기 죽음을 눈치채고 있을까. 평소와는 다르게 안절부절못하는 부모의 이상한 행동을 보면서 아이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부모의 뜻이라면"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러는 살려달라고 저항하는 아이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올해 이런 비극이 너무 많았다.1월 24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에서 40대 부부와 딸(18)과 아들(10)의 극단적 선택을 시작으로 공식적으로만 전국적으로 20여 건이 발생했다. 그중 3월에만 4건, 10월에 4건, 11월에 3건이 발생했다. 모두 기막힌 사연을 갖고 있지만, 그중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시흥의 한 농로에 세워 둔 렌터카 안에서 젊은 부부와 아들(4), 딸(2) 등 4명이 숨진 사건이다. 그날은 5월 5일 어린이날이었고, 부부는 35세 동갑내기였다. 이틀 후엔 시흥시 정왕동에서 C 씨(48) 부부와 아들(15), 딸(12) 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또 있다. 국회에서 초유의 막장 드라마가 열리던 그 날, 대구에서 40대 초반 부부와 중학생 아들, 초등생 딸 등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온 세상에 하나님의 축복이 내린다는 크리스마스 성탄절 이틀 전이었다. 하지만 축복은 이 집만 피해갔다. 자영업을 하던 가장이 몇 년 전 부도가 난 뒤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이들은 기초 생활수급자도 아니었다. 이들의 집 앞에도 은행과 대부업체 등에서 보낸 독촉장과 세금 미납 고지서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우왕좌왕하며 이들이 눈물의 밤을 보냈을 이틀 전, 문재인 대통령은 근로 장려금과 자녀장려금 지급 등 현금을 뿌리는 복지행정을 잘한 우수 일선 세무서 24곳에 피자 400판을 돌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민과 기업으로부터 걷어 들인 막대한 세금을 정부가 선심 쓰듯 마구 뿌려대는데도 한 가정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이유를, 나는 누군가가 설명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이 너무 기구하다. 국회의장인 어떤 아버지는 자식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기 위해 500조원이 넘는 국회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야당이 제출한 수정안에 대한 토론을 외면한 채 의사봉을 마구 휘둘렀다는 의심을 받고 있고, 생활고에 견디다 못한 어느 부모는 어린 자식들을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 의장이 그날 통과시킨 예산안 중 아동수당·기초연금 등 현금 살포성 복지지출 예산은 54조원이었다.12월 마지막 날에 쓰는 글이다. 보통 이런 날의 칼럼은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며… '로 시작되는 '송구영신'의 글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지금 그런 말을 나눌 기분이 전혀 아니다. 우리는 1년 내내 캄캄한 방안에 갇혀 있었다. 하루속히 출구를 찾아 이 어두운 방에서 나가야 하는데 도무지 출구를 찾을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 출구를 찾으려고 이 어두운 방을 더듬거리며 모든 시간을 허비했는지도 모른다. 내년 경제는 더 암울하다고 한다. 빈곤은 더 심해질 것이다. 우리는 넘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 출구가 있기는 한 걸까./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12-30 이영재

[방민호 칼럼]북한 문제에 관해 생각한다

'강대국만 핵을 가질수 있다' 발상美 불평등체제 어떤 도전도 용납못해北 여전히 핵무장 포기 않는 정황자신들 뜻대로 안 움직이는 美 대신'말리는 시누이' 한국에 불만 쏟아내최근 들어 남북관계가 아주 악화된 듯한 인상이다. 지난 두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었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반면, 최근의 남북 관계 악화는 다소 의외라는 느낌을 준다. 곰곰이 따져 보면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거릴 일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은 지금 핵 문제를 둘러싸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겉으로는 서로 사이가 좋은 것 같은 포즈를 취하지만 가슴속 생각은 전혀 다른 것 같다. 미국은 지속적으로 북한의 핵실험을 문제 삼고 있는데, 북한은 어떻게든 완전한 핵무장 해제는 피하려 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는 물론 강대국들만 핵을 가질 수 있다는 식의 '특이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러한 '불평등' 체제에 대한 어떤 도전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 쪽에서는 핵이야말로 현재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완전하게 들어줄 생각은 있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적 시선이 집중된 길주 풍계리 같은 곳의 핵시설은 폐기하는 포즈를 취하기는 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는 듯한 정황을 엿볼 수 있게 한다.과연 북한과 미국의 '대타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극히 불확실해 보이지만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곤란은 특히 한국 정부 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지난 정부와 달리 남북한 사이의 긴장 완화, 평화 안착을 추진해 왔다. 한국 정부가 북한과 미국 사이를 중재하는 제3자적 위치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 안정이 급선무라고 생각한 것이다. 각종 경제 제재 등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박을 풀어줄 수 있는 실질적 힘은 미국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먼저 나서서 북한 쪽과 '주체적인' 대화, 교류, 협상을 시도하는 것도 좋은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미국 대신에 '말리는 시누이'격인 한국정부를 향해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남북 대화, 교류의 상징인 금강산의 현대 시설물들을 철거하라는 식의 난폭한 요구는 '겉으로는' 남북 대화, 교류, 협상을 추진하면서도 '속으로는' 미국 뜻 안에서 움직이는 한국 정부를 향한 불만을 표현한 것이라고밖에는 해석할 길이 없다.그렇지 않아도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와 현 정부의 대북한 유화 정책에 대한 비난에 시달리며 어떤 성과에 목말랐을 정부로서는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진퇴양난의 질곡에 빠진 셈이 되었다. 과연 어디서부터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것일까? 물론 필자는 이런 큰 문제에 문외한일 수밖에 없다. 다만 이른바 '급진사상'에 경사된 경험을 가진 386세대의 일원으로서 북한 체제에 대한 판단이 일층 근본적으로 날카로워져야 한다는 점을 짚어보아야 할 것 같다. 현재의 북한 체제가 전체주의 체제의 하나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독일 나치즘, 이탈리아 파시즘, 일본 천황제 파시즘, 구 소련의 소비에트 사회주의 같은 전체주의 체제들은 국가 목적 아래 사회 전체 구성원을 획일적으로 정렬시키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고, 현재의 북한 체제는 그러한 메커니즘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열거한 전체주의 체제들에서 국가 위에 당이 군림하고 있었던 바, 현재의 북한 체제는 그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어떻게 이 체제의 변화를 가능케 할 수 있을까? 하면 한국사회의 많은 사람들, 세력들이 생각하고 있듯이 무조건 틀어막는 것이 능사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 체제의 여러 문제들을 외면한 무조건적인 용인과 대화, 협상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도그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지혜로워질 수 있을까? 하고 필자는 생각해 본다. 여당과 야당, 또 그들을 둘러싼 시민운동 단체들이 각자의 견해만을 내세우며 대립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을 것 같다. 서로가 가진 문제의식과 해법의 가능성을 두루 포용하고 또 함께 풀어가자는 지혜로운 태도만이 '우리'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북한 체제에 대한 협상과 비판 모두를 포용하는 더 큰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나 할까. 그러려면 '우리'는 먼저 '내'가 대립하는 상대방이 바로 '우리'의 일원임을 깨우쳐야 하리라./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9-12-23 방민호

[윤상철 칼럼]세대의 지배, 전근대의 지배

'신분제 해체·서로 존중 사회…''자유로운 개인·독립의 개체…'두 주장 틀렸다고 탓하기보다우리사회 어떤 결핍 보았는지동의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야'불평등의 세대'란 책이 올해 학계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주로 정치적인 해석이 덧붙여지고 있지만, 독자들은 자신이 속한 세대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표출한다. 계급적 시각에서 불평등을 바라보던 진보진영에서는 사회적 균열에 대한 세대적 시각에 동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의 근간이었던 민주주의연대가 오히려 다른 세대에 대한 독점적 지배의 자원이 되었다는 점에 매우 부당해 한다.저자인 이철승 교수는 세대의 정치가 어떻게 불평등의 구조를 낳게 되었는가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그는 386세대의 '네트워크 위계'가 '한국형 위계 구조'로 진화했다고 본다. 여기에서 위계구조는 첫째, 나이에 기반한 '연공구조'를 한편으로 하고 둘째, 세계화로 인한 노동시장 유연화 기제, 대·중·소기업 간 지배종속 관계, 그리고 노동조합을 통해 3중으로 중첩된다. 이 우연적 결합의 중심에 386세대의 네트워크가 최대의 수혜자로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들은 이른바 민주주의연대를 매개로 자본주의 하의 시민사회를 처음으로 조직한 세대였다. 또한 그들은 이전 산업화세대가 퇴출된 공간을 차지하고 후세대의 편입을 선별함으로써 정치적으로 과대대표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으로 과대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제는 경제적으로도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약속했던 민주주의의 확장을 저버렸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반일종족주의'란 책은 역사학과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사회운동권에 두루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인문학 도서로는 보기 드물게 1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한다. 독자들은 자신의 역사관이나 정치관에 따라 격분하기도 하고, 합리적 정당화의 지적 자원을 찾았다고 득의만만하기도 한다.이영훈 교수 등의 주장도 기존 역사학계의 통념을 뿌리째 흔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년기부터 그렇게 교육받고 성장한 국민들의 민족주의적 정서와 충돌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분노를 드러내며 친일파 혹은 '토착왜구' 등으로 먼저 낙인찍는다. 일본제국주의의 경제적 수탈을 시장적 교환으로 해석하고, 강제노동과 민족간 임금차별, 그리고 강제징병을 부정하고, 한일회담이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청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한민족 민족주의의 상징인 백두산과 독도 문제의 뿌리 얕은 내막을 드러내고, 쇠말뚝신화의 허구성을 밝히며, 구총독부 청사의 해체를 반달리즘식 문화테러로 보기도 한다. 고종을 망국의 암주가 아닌 개명군주로 둔갑시키는 정치적, 역사적 '조작'에 맞서서 백성과 국민에 무책임한 이 나라 지배층과 엘리트들을 성토한다. 위안부와 공창제 문제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바 그대로다.나는 위의 두 책의 주장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동의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왜 이 연구에 대해서 '동의'에서 나아가 '환호'하는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이철승 교수는 시장의 근본적 모순인 자본과 노동 간의 근본적 해결을 주장하는 구조주의 좌파에 맞서 '사회적 자유주의'를 주장한다. 계급의 덫에 빠져서 실제의 사회적 지배와 신분제에 눈감고 이를 존속시키는 우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는 시장경쟁의 폭압에 국가가 개입해 사회와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국가와 사회의 속박을 공히 부정한다. 이영훈 교수는 샤머니즘적 반일종족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와 근대화된 세계주의를 열고자 한다. 반일종족주의의 기형적 산물인 북한의 신정체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전근대적 권위주의가 어떻게 근대적 민주주의의 확산과 심화를 억누르고 있는지를 지적한다. 이철승 교수는 "신분제 사회를 해체하고 내 자식과 다른 자식들이 자유로운 개인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사회적 위험을 분담하며, 노동의 대가를 적절히 공유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이영훈 교수는 "자유로운 개인, 독립하는 개체, 충일한 개성, 고양하는 예술, 과학하는 정신, 협력하는 사회, 경쟁하는 기업, 세계와 통상하는 나라, 그러한 아름다움… 근대문명", 즉 자유로운 개인의 근대국가를 꿈꾼다.진단이 틀렸으니 처방인들 맞겠는가 탓하기보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결핍을 보았는가, 그리고 그들의 독자인 시민들이 또한 그러한 진단에 동의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만하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9-12-09 윤상철

[전호근 칼럼]책 도둑

30년전 '논어 완질' 훔쳐갔던 청년새삼 그 일이 떠오른 까닭은얼마전 논어 번역서 탈고하며올바로 읽고 풀이했는지 두려움과그에게 뭘 훔치진 않았나 의심 때문나는 대학원을 다닐 때 양현재(養賢齋)라는 곳에서 조교로 일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금속활자본 고서가 소장되어 있었고 그중에는 7책으로 구성된 논어 완질도 있었다. 그 책과 얽힌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도둑이 들어 논어 완질을 훔쳐간 것이다.그날 아침 출근해서도 도둑이 든 줄 모르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책을 들고 와 이 책이 여기 있던 물건이 맞느냐고 물었다. 나는 비로소 서가의 한 곳이 텅 비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깜짝 놀라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그는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였다. 이야기인즉은 그날 도둑이 이곳에 들어와 책을 훔쳐 가지고 나가다가 경비의 눈에 띄어 붙잡혔다는 것이다. 이어 나에게 경찰서로 가서 참고인 진술을 하고 책을 도로 찾아가라고 했다.밖에 나갔더니 경찰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앞쪽에는 경비 아저씨가 앉고 나는 뒷자리에 앉았는데 뒷좌석에는 이미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옆에 있던 경찰로 보이는 이에게 말을 걸었다."유식한 도둑인가 봅니다. 아니 어떻게 그 책이 귀한지 알아보고…."대꾸가 없어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살피려던 나는 흠칫 말꼬리를 흐렸다. 경찰인 줄 알고 말을 걸었던 그 사내의 손목에 채워진 금속물질이 어두운 차 안에서도 차갑게 반짝거렸던 때문이다.그제야 그의 초라한 행색이 눈에 들어왔다. 피의자는 대략 20대 후반으로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그는 낡은 청바지에 때 묻은 운동화, 항공점퍼 비슷한 윗도리를 걸치고 있었는데 몸에서 다소 불쾌한 냄새도 났다.그는 이미 모든 걸 체념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숨소리마저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전문적인 고문서 도둑 같아 보이지는 않았고 일시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책을 훔치다 잡힌 것으로 보였다. 차를 타고 경찰서까지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도둑이 도둑다워 보이지 않는 데다 그가 나와 비슷한 또래인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에서 공부하며 논어를 읽는데 저 사람은 어쩌다가 학교에 몰래 들어와 논어를 훔치는 사람이 되었을까. 꼬리를 무는 상념 끝에 나는, 성현의 말을 훔치는 나 같은 자나 성현의 글이 적힌 책을 훔치는 그나 피차에 나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침묵 속에 경찰서에 도착한 뒤 나는 담당 형사에게 따로 그 도둑에게 다른 전과가 있는지 물었다. 예상대로 그는 초범이었다.이윽고 조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경찰에게 어제 퇴근한 시간, 그리고 다시 출근한 시간, 또 그가 훔친 책 외에 달리 없어진 물건은 없다고 일러주었고 경비 아저씨도 자기가 목격한 일을 진술했다. 그런 뒤 경찰은 이 책이 권당 얼마나 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대략 3만원 정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당시 그보다 못한 책들이 인사동에서 권당 5만원을 호가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가능하면 금액을 적게 이야기하는 것이 그 도둑이 그나마 처벌을 약하게 받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경비 아저씨가 저렇게 귀한 책이 그리 쌀 리가 있겠느냐며 자꾸 10만원이 넘는 물건이라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약간의 언쟁마저 있었지만 내가 한사코 3만원이라고 주장해서 결국 조서에는 훔친 물건의 액수가 21만원 상당의 책자 7권인 걸로 기록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다였다.그 일이 있기 전에 나는 어느 옛 책에서 선비의 집에 쌀을 훔치러 들어갔던 도둑이 선비가 밤늦게까지 글 읽는 소리를 듣고 훔치기를 단념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감동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그 이야기가 과연 사실인지 의심스러워졌다. 과연 배고픈 도둑의 귀에 선비의 글 읽는 소리가 들어왔을까.30년도 더 된 일이 떠오른 까닭은 얼마 전 논어 번역서를 탈고하면서 내가 그동안 논어를 올바로 읽고 풀이해 왔는지 두려운 마음과 함께 이런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지키던 책을 훔치려 했지만 혹 내가 그의 무엇을 훔쳤던 것은 아닌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12-02 전호근

[이영재 칼럼]나의 시대는 끝났다

김동길 교수의 '3김 낚시론' 떠오르는 요즘민주 '586'·한국당 '3선' 퇴진론 '내홍' 때문모두 고민하는척 하지만 진정성 보이지않아정부에서도 호기롭게 떠나려는 사람 안보여1985년 4월로 기억된다. 연세대 김동길 교수가 한 일간지에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씨에게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가 낚시나 해라"며 퇴진을 주장하는 '3김 낚시론'을 기고했다. 세 사람이 싸우다가 '서울의 봄'을 허망하게 날려 보냈고, 앞으로도 후보 단일화를 이루기도 어려울 테니 이제 정치판을 기웃거리지 말고 낚시나 가라는 것이었다. 좋은 낚시터도 알아봐 주겠다고 덧붙였다.이 글은 뜨거운 찬반논쟁을 불렀다. 서정적 제목과는 달리 내용이 당시 한국 정치를 호령하는 3김에 직격탄을 날렸기에 더욱 그랬다. 민주화의 열망이 뜨거웠던 시절이었다.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화를 이루는데 이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때였다. 그런데 "정치의 판도가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는 이때에 이들 세 김씨의 재등장을 바라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 김씨의 시대는 이미 갔습니다"라고 했으니 시끄러운 건 당연했다.김 교수는 3김 퇴진을 주장하면서 하버드 대학 네이던 퓨지 총장의 예를 들었다. 60년대 미국의 대학은 월남전을 반대하는 시위가 잇따르면서 학내가 큰 혼란에 빠졌다. 하버드대학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경찰 투입을 두고 교수들 간의 의견이 둘로 나뉘었다. 하지만 퓨지 총장은 일부 교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학내에 불러들여 학내 데모를 진압하고 학교를 정상화시킨 후 임기 2년을 남기고 퇴진을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과 맞서 반대 의견을 내세웠던 법과대학의 젊은 교수를 후임 총장으로 지명했다. 그때 퓨지 총장이 떠나면서 발표한 성명문 제목이 그 유명한 '나의 시대는 끝났다'였다. 김 교수는 3김에게 필요한 건 퓨지 총장 같은 결단이라고 주장했다.80년의 봄 3김이 분열하지 않고 단일화를 이뤘다면 전두환 군부독재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광주의 아픔도 없었다. 그러나 3김은 '단일화'라는 국민의 뜨거운 염원을 무시한 채 권력욕으로 분열하면서 군부 출현의 빌미를 주었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 뼈아픈 실책으로 기록되고 있다. 김 교수가 3김 퇴진론을 거론한 것도 그 일과 무관하지 않다. 김 교수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다.김 교수의 칼럼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기수는 이제 40대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들에게 길을 열어 주고 기회를 주기 위해서 동교동파니 상도동파니 하는 따위의 낱말도 더 이상 듣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리고 두 김씨가, 가능하면 세 김씨가 '우리는 간다'는 내용의 성명서나 하나 발표하고 이 나라의 어느 시골로 낙향한다면 얼마나 멋진 정경이 되겠습니까. 산 좋고 물 좋아 은퇴하여 낚시질하기 꼭 알맞은 곳을 소개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양 김씨여, 세 김 씨여, 아직 빛이 있는 동안에 서울을 떠나세요. 어서 떠나세요. 어둡기 전에, 어서." 이 글로 논란이 커지자 김 교수는 유신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절필을 선언했다. 그러나 김 교수의 글은 그냥 뜬금없이 나온 게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도 3김을 잘 알고 있던 김 교수는 어떤 상황이 와도 이들은 절대 단일화를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로부터 3년 후 6·29선언으로 이 땅에 민주화가 찾아온 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3김은 결국 단일화를 하지 못하고 노태우에게 정권을 넘겨주었다. 당시 김 교수의 칼럼을 읽은 3김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건 1971년 '40대 기수론'을 주창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66세(1993년), 김대중 대통령은 4번 출마해 72세(1997년)에 대권을 잡았다는 것이다.문득, 김 교수의 '3김 낚시론'이 떠오른 것은 요즘 정치판에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화두로 떠오른 '물갈이론' 때문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586 정치인들의 퇴진으로, 야당인 한국당은 3선 중진 퇴진론으로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이들 모두 고민하는 척하지만, 이는 겉으로만 보이는 것일 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늘 이런 식이다. 어찌 됐건 사상 최악의 20대 국회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어디에도 제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다. 생각 같아서는 모두 물갈이를 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나의 시대는 끝났다"고 호기롭게 말하는 퓨지 총장 같은 이가 없으니 이제 우리라도 이렇게 말해주자. "너희 시대는 끝났다. 가라! 낚시."/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11-25 이영재

[이명호 칼럼]꼰대와 멘토 감별법

기성세대, 자리떠나면 능력부족 자책조직 발휘력 '자신의 힘'으로 착각도젊은세대에게 실력있는 멘토 되려면목표 정해주고 수단 자율에 맡기고다양한 방식 시도하도록 격려해야꼰대라는 말이 들리면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제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름 젊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도 '꼰대'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를 의식하게 된다. 수 천년 전에 건축된 이집트 피라미드에 '요즘 세상과 젊은이들 보면 난세'라는 글이 기록돼 있다고 하니 세대 간의 차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세월과 함께 따라오는 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안일한 것 같기도 하다. 꼰대가 아닌 멘토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얼마 전 여럿이서 기업의 변화에 대해 토론을 하다 갑자기 꼰대라는 말이 나오면서 세대 간 차이를 목격했다. 저런 말 하면 꼰대라고 할 텐데 걱정을 하면서도, 저런 '조언'도 수용 못하면 그것도 문제지 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그 선배의 주장은 이렇다. 우리가 회사를 다니는 것은 회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회사 안에 있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들고, 팀을 만들고, 같이 일해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90년대 이상의 Z세대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래서 함께 일하거나 동료 경험을 하지 못한다.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오죽하면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나왔겠는가. 그냥 다르다가 아니라 왜 달라졌는가에 대한 근본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 이 세대들은 스마트폰과 같이 성장한 세대이다. 옆의 친구와도 밥 먹으면서 카톡하는 세대이다. 대화할 줄을 모른다. 그리고 꼰대와 일하기 싫어한다. 윗사람들을 다 꼰대로 본다. 자기가 의견을 냈는데 팀장이 반대하면 팀장이 생각이 막혀서 자기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세대들은 페이스북과 인스타의 '좋아요'만 받은 세대이다. 거부당하지 않고 늘 칭찬만 받아왔다. 그래서 회사 등 조직에 들어가서 비판을 들으면 감당을 못한다. 이 세대들이 40대가 돼서 사회의 주력 인사가 됐을 때, 후배와 조직을 어떻게 이끌고 협력을 해나갈 것인지가 걱정된다고 말을 마쳤다.반면에 젊은 친구들은 듣는 내내 자기들을 너무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젊은세대는 누구보다 자기 의견이 뚜렷하고, 얇지만 넓은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가지고, 다양한 의견을 듣는 세대라고 강변했다. 단지 지금의 회사나 조직의 경직된 문화, 수직적 위계적 관계를 불편해하는 것이고, 바뀌어야 할 문화로 보고 있기 때문에 적응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을 기성세대는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느 의견에 더 공감하는가에 따라 꼰대냐 아니냐의 레이블이 붙여질 것이다. 분명 기존 세대보다 다양한 스마트 기기와 도구를 다룰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업무 생산성도 높다. 최근에 한 공익근무 청년이 수작업으로 몇 달 걸리던 일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30분 만에 처리했던 이야기가 젊은이들의 커뮤니티에서 유행했던 적이 있다. 기성세대, 기존 조직은 일을 막무가내로 시킨다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되돌아봐야 할 기성조직의 단면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세대가 자신의 경험 중심으로 조언하는 것은 젊은세대에게 별 도움이 못된다. 많은 기성세대들이 조직을 떠나면, 자신의 능력이 이렇게 변변치 못한 것인가를 자책한다. 직책을 자신과 동일시하였는데, 직책이 떨어지면 평범한 동네 아저씨일 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회사에서 역량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쓸모없는 잔재주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조직이 발휘하던 힘을 자신의 힘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면 젊은세대에게 말만 앞서는 꼰대가 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능력 있는 멘토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필자가 경험한 한 멘토가 생각난다. 조직에서 멘토는 폭의 관리자, 목표에 의한 조직 관리자이다. 목표를 정해주고 수단은 개인의 자율적인 폭을 인정하고, 그 경험 속에서 성장하게 한다. 수단에 개입하면 자율성이 떨어지고 개인의 자율성이 높을 때 창의성과 헌신성이 나온다. 많은 기업들의 선의 관리(주어진 규율에 맞춰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관리 방식)는 안정적이지만 조직의 혁신과 개인의 성장이 없다. 개인의 실패가 조직의 실패가 되지 않도록 대비하고, 개인이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도록 격려한다. 노력이 부족하면 엄하게 꾸짖고, 자신의 한계에 맞부딪쳐 이를 극복하며 성장하도록 한다. 그러면 젊은 직원들은 어떤 과제도 감당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물론 일부는 탈락해서 떠난다. 그렇게 직원을 성장시키는 사람이 꼰대가 아니고 멘토가 될 수 있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9-11-25 이명호

[홍창진 칼럼]친절할 준비

내 기분 상관없이 누굴 만나든지무조건 '친절, 친절, 친절!' 외친후억지로라도 환한 미소 짓기로 결심그런데 신기하게도 우울감 횟수가점점 줄어드는 '작은 기적'을 체험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남에게 친절한 사람으로 비치기를 바랍니다. 친절한 사람으로 평가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과연 나는 얼마나 친절한 사람일까요? 휴대전화를 열고 최근 문자를 나눈 열 사람을 차례차례 떠올리면서 점수를 한번 매겨 보십시오. 과연 이 사람이 나를 친절하다고 생각할지 따져보는 겁니다. '그렇다'는 1점, '잘 모르겠다'는 0점, '아닐 것 같다'는 -1점으로 정하고 총점을 산출해보십시오. 상대가 아닌 내 생각이 기준이다 보니 이 점수는 십중팔구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그 점수에서 50%는 삭감해야 객관적인 점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얼마 전에 늘 다니던 체육관에 회원 등록을 다시 하면서 생긴 일입니다. 늘 친절하던 직원이 그날따라 너무 신경질적으로 업무 처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반사적으로 화가 났습니다. '내 돈 내고 이용하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더욱이 그 사람의 월급은 고객으로부터 나오는 것일 텐데 말입니다. 다행히 잘 참고 등록을 마쳤지만, 마음이 영 불편했습니다. 며칠이 지나 다시 서비스 데스크에서 그분을 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처럼 또 친절하게 응대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커피를 한 잔 사들고 가서는 당시 전후 과정을 설명하고 그땐 왜 그랬는지 넌지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습니다. 되레 "제가 그랬었나요?" 하며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수차례에 걸쳐 사과를 거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스스로를 두고, 적어도 업무에 임할 때만큼은 친절하고 배려 깊은 사람이라고 자부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은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마음속 기분이 표출되게 마련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 자체가 밖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족 간에 다툼이 있거나, 병에 걸렸거나,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면 말하지 않아도 그 상황이 밖으로 표현됩니다. 반대로 승진이나 시험 합격 등 기쁜 상황도 밖으로 드러나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성당의 신부는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위로와 기도를 구하고자 찾아오는 분도 있고, 성당 업무 처리를 위해 대면하는 분도 있습니다. 보다 친절하게 그 모든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가 않습니다. 내가 친절했는지 불친절했는지는 만남이 끝난 후에 바로 압니다. 조금이라도 불친절했다면 상대방의 표정에 그대로 나타나고, 체증이 느껴질 만큼 마음이 답답합니다. 아들의 암 발병으로 반죽음이 돼 찾아온 어머니를 대하면서 그분의 아픔에 깊이 동참해야 하는데 "열심히 기도하세요"라는 건조한 답변을 드리고 면담을 마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신자는 성당의 발전을 위해 제도를 개선해달라고 건의합니다. 그에 대해 별 설명도 없이 "안돼요"라고 퉁명스럽게 답변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가끔 있는 일입니다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까요. 생각해 보면 제가 가끔 하는(몰라서 그렇지, 자주일 수도 있겠네요) '불친절 실수'는 주로 제 기분이 우울할 때 벌어집니다. 결국 저는 기분이 좋으면 친절한 사람이고, 기분이 나쁘면 불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친절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늘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건데,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그래서 저는 내 기분과 상관없이 늘 친절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좀 우울한 기분이 들더라도 누구를 만나는 상황이 되면 무조건 "친절, 친절, 친절!" 세 번을 외친 다음 억지로라도 이가 드러날 만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만남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친절의 준비 자세를 갖추는 일종의 주술과 예비동작인 셈입니다. 내 기분에 따라 어떤 사람은 위로받고 어떤 사람은 상처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시작한 일입니다.그런데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신기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주기적으로 찾아들던 우울한 기분의 정도가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찾아들던 우울이라는 녀석의 방문횟수가 그만큼 줄었다는 얘기입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속담처럼, 친절할 준비를 꾸준히 하다 보니, 내 안의 우울감도 따라 줄어드는 작은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11-18 홍창진

[방민호 칼럼]반드시 밝혀야 할 '세월호' 진실

해경청장 헬기로 이동하는 사이배로 옮겨다니다 희생된 학생이야기일부 구조담당자 책임으로 축소 우려중추·하위 권력이 무슨일 벌였는지왜 구하지 않았는지 명백히 밝혀져야 세상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홍콩에서는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해 맞은 사람이 위독상태라고 한다. 시위 중 추락사 한 대학생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여한 사람을 향해 또다시 국가적 폭력이 행사된 것이다. 사태가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 중국 정부에서는 의도적으로 '비상사태'를 방치 내지 유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 홍콩 사태는 당장 1989년 4월에 베이징에서 일어난 천안문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 중국 정부는 대학생이 주축을 이룬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해서 오늘에 이르렀던 것을, 이번에는 중국에 반환된 홍콩에서 새로운 '반복' 조짐이 나타나는 것이다.홍콩 사태에 관해 채널 티브이들은 숨 가쁜 어조로 그 심각성을 전달한다. 그러나 좀처럼 이 사태를 한국의 과거에 오버랩시키는 것은 자제하고 있지만 아는 사람은 알고 느끼는 사람은 느낀다. 경찰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쏜다는 것, 그것은 1980년에 우리 군부가 광주 시민들을 향해 참혹한 폭력을 행사했던 사실에 직접 연결된다. 헬리콥터에서 기총 소사가 있었다는 최근의 '전언'은 '5·18'이 사십 년 가까운 지금에까지 아직도 진행 중임을 시사한다. 국가 또는 국가의 특정한 중심 세력이 국민, 시민을 향해 살상 무기를 드는 행위는 현대 국가가 결코 문명적으로만 운영되고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문명이 진보하는 만큼이나 야만도 훨씬 더 큰 규모로 증대하고 있는 것이 이 현대 국가의 커다란 모순 중 하나다. 프랑스 현대비평가 미셸 푸코는 현대 이전에 '국가'는 그 구성원들을 죽게 내버려두거나 살게 하는 반면, 현대 '국가'는 그들을 살게 하거나 죽게 내버려 둔다고 했다. 이를 받아 이탈리아 비평가 조르지오 아감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예증을 들어, 이제 이 현대국가는 '생명 정치'만큼이나 '죽음의 정치'를 행한다고, 이 수용소 같은 국가 체제는 그 구성원들의 생명을 처분할 수 있는 전대미문의 권력을 소유한다고, 그리하여 죽음으로부터 간신히 살아남는 인간들을 재생산하는 체제라고 말한다. 정확히 옮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아감벤의 '죽음의 정치'는 필자로 하여금 필자의 시선을 늘 2014년 4월 16일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기이하고도 참혹한 참사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일어난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처음에 기성세대들은 한껏 양심적인 척하면서 경제주의, 물질주의의 탐욕이 이 참사를 불렀다고 입을 모았다.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안개 짙은 밤에 출항을 결정한 선박회사의 책임을 부각시키면서 이 책임을 다시 사회 전체와 특히 기성세대의 물질주의로 분산, 해소시키는 논리였다. 필자 또한 처음 며칠 동안은 그렇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생중계를 하는 와중에 어떤 구원의 손길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침몰해 가던 배 안의 고등학생들의 절규는 그러한 분산, 해소 논리를 의심하게 했다. 해경청장이 헬기를 타고 날아가는 사이에 배에서 배로 옮겨 다니다 생명을 잃은 학생의 이야기도 자칫 무성의하고 안일한 일부 구조 담당자들의 도덕적, 법적 책임 문제로 세월호 참사를 축소시키기 쉽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때 국가가, 국가를 움직이던 중추 세력이, 그 상위 권력의 의지를 받든 하위 권력이 무슨 일을 어떻게 벌였는지 알아내야 한다. 도대체 왜 가만히 있으라 했는지, 왜 구하지 않았는지, 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들을 가로막았는지 밝혀져야 한다. 국가가 국가의 이름으로 명백하게 또는 은밀하게 행사하는 죽음의 통치 시대를 끝내야 한다. 이 나라에서도, 황해 너머에서도, 현해탄 건너에서도 국가의 죽음의 폭력을 은폐하고 왜곡하고 변명하는 시대에 종언을 고해야 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9-11-11 방민호

[이남식 칼럼]위기가 기회다

한국 내수부진으로 투자·소비 위축'日 잃어버린 20년' 상황 비슷 우려 '노후경제·출산율' 해결열쇠 대학 수출산업으로 전환 변화 추구해야교육당국, 미래문제 해결정책 기대우리나라는 수출의 감소, 내수부진으로 경기가 둔화되고 경제성장률은 1%대로 하락하였으며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 52시간제로 소득이 감소하고 저금리정책으로 가계부채가 늘어나며 이의 부실이 커지고 있다. 또한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인구가 급격하게 감소되고 부양해야 할 노인인구는 급증해 각종 의료 복지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총선을 앞둔 현재 경제민주화나 복지의 명분으로 현금성 수당과 혜택이 늘어나고 있어 미래의 정부 재정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비슷한 상황으로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 부동산침체 및 가계부채 부실화로 인한 금융부실화를 우려하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제조업은 향후 생산인구의 감소로 큰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한편 미국은 기대수명이 20년 늘어나는데 90년이 걸렸는데 우리나라는 1970년 62.2세였던 기대수명이 2017년 82.6세로 불과 47년 만에 20년 늘어나게 되었다. 2017년 WHO와 영국의 임페리얼컬리지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OECD 35개국 중 우리나라에서 2030년에 태어나는 남녀의 기대수명이 90세가 넘어 세계 최장수국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의 앞선 의료보험과 세계 최고의 의료전달 체계로 말미암아 이러한 결과가 예상되는데,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의료비용과 노인요양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또한 지난 10년간 150조원을 쏟아부은 출산율을 올리는 각종 정책에도 불구하고 2009년 44만명의 신생아는 2018년 32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정도쯤 되면 이제는 관점을 바꿀 때가 되었다고 본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이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청년실업의 문제는 조만간 청년인구의 감소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며 진짜 심각한 것은 평균 90세 이상 사는 노인들의 노후경제 문제이다. 또한 출산율 문제도 이민정책에 대한 전향적인 패러다임의 변화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대학에 있다고 본다. 이제는 삼모작 시대이므로 60세 이후에 대학에서 평생직업교육을 통하여 노인인구를 재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과거의 평생교육은 교양이나 취미 등이었으나 향후에는 생산인구의 연령을 확장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을 통하여 노인인구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대학의 중요한 역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대학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대상을 바꾸어 새롭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전환이 시급하다. 호주의 경우 세 번째로 큰 수출산업이 교육이다. 즉 해외 유학생들이 2017년 호주에서 쓴 교육비가 무려 247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하루속히 국제적인 교육의 통용성을 갖는다면 해외에서 한국의 앞선 과학기술과 문화를 익히기 위하여 수많은 유학생들이 오게 되고 특히 이러한 교육과정을 거쳐서 우수인력은 우리의 부족한 생산과 소비의 인구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미 미국, 캐나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정책을 펼쳐 2017년 기준으로 미국에는 4천441만, 캐나다 786만, 독일 1천217만, 영국 884만, 프랑스 790만, 이탈리아 519만,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홍콩 228만, 싱가포르 262만, 태국 359만, 일본 232만명의 외국인 거주자가 있다. 같은 통계에 우리나라는 아직 100여만명에 불과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통념은 외국인거주자=외국인근로자이나 이를 바꾸어 높은 학력과 경제력을 갖춘 이민자들을 우선적으로 받는다면 국가경제를 활성화 시킬 뿐만 아니라 국가 R&D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이 예를 들면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입학 때부터 높은 수준의 한국어 어학능력만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오히려 다른 나라들처럼 영어실력을 갖출 경우 유학을 허용하고 홍콩·싱가포르처럼 영어로 대학교육을 진행한다면 전 세계로부터 유학생이 몰려올 것이다. 당연히 외국인 교수도 다수 채용하여 완전히 국제적인 수준의 대학으로 탈바꿈한다면 지금과 같은 인위적인 대학의 구조조정은 전혀 필요 없으며 오히려 대학이 수출산업으로 전환 될 것이다. 그간의 고정 관념에 빠져 변화를 추구하지 못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대학 입시를 수시냐 정시냐를 큰 이슈로 삼을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는 큰 정책을 교육당국에 기대해 마지않는다./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2019-11-04 이남식

[이영재 칼럼]다시 읽는 대통령의 취임사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조국 사태로 명문장서 조롱의 상징으로이제 남은 2년 6개월은 '대통령의 시간'잘못된 결정 있었다면 수정하는게 의무며칠 후면(1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5년의 반환점을 지나게 된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예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라며 희망찬 취임사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집권기 반이 지난 것이다. "아직도 반이 남았다"고 하는 국민도 더러 있을 것이고, "벌써 반이 지났나"라며 시간의 빠름에 새삼 놀라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이제 언론은 반환점을 돌고 있는 문 대통령의 2년 6개월에 대해 많은 논평을 쏟아낼 것이다. 전임 박근혜 정권은 '불통'으로 일관하다 몰락했다. 그것을 지켜본 2년 6개월 전 문 대통령은 '불통'이 아닌 '소통'의 길을 가겠다는 구호로 집권했다. 마치 전 정권의 실정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민심의 출렁임과 경고를 엄중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꺼내 읽은 것도 그래서다. 취임사는 구구절절 명문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는 말할 것도 없고,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라며 소통을 강조한 부분에서는 지난 취임사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다.그러나 문 대통령은 취임사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라고 했지만, 공허한 구호였다. 언론을 멀리한다며 전임 대통령을 그토록 비판했으면서도, 정작 문 대통령의 공식 기자회견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물론 반대 진영이나 야당 인사들을 만나 의견을 구하지도 않았다."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약속했지만, 조국사태로 국론은 찢어지고, 갈리고, 분열되며 '조국 지지'와 '조국 반대' 집회가 대규모 세 대결 양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광장 정치를 뜨겁게 달궜다. 그래서 민심과 동떨어진 문 대통령의 인식과 발언은 여러 번 논란이 됐다.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오른 적도 있었다. 문 대통령 취임사 내용 중 백미는 단연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일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대통령의 취임사가 있었지만, 집권기간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을 이렇게 시적 문장으로 아름답고 명쾌하게 적시한 취임사는 없었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의 자녀 입학 과정이 드러나면서 '공정 사회'에서 살고 싶었던 20대는 좌절했고, '정의 사회'에 살고 싶었던 국민은 분노해 이 시적 문장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조롱하는 상징의 문장이 되었다. 2017년 5월 10일 취임사를 읽던 문 대통령은 2년 6개월 후, 우리 사회가 이렇게 분열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입만 열면 촛불 혁명으로 태어나 공정, 평등, 정의로 가득 차있을 것 같은 대한민국이 2년 6개월 만에 이렇게 처참하게 부서질 줄도 몰랐을 것이다. 취임사 중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이 지켜졌을 뿐,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가 "그럼 이건 나라냐"라는 푸념으로 되돌아올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반환점을 돌면 후회는 많아지고 시간은 더 빠르게 지나간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이 내려올 땐 보이네'라는 시처럼, 확실해 보였던 정책도 "그때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던가"라는 후회가 남는 경우가 많다. 이제 남은 2년 6개월은 '대통령의 시간'이다. 그것도 레임덕이 없을 경우를 가정해서다. 잘못된 결정이 있었다면 남은 시간에 이를 수정해야 한다. 그건 용기가 아니라 대통령의 의무다. 판단 착오를 인정하기 싫다고 외면할 경우,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아직도 임기가 반이 남았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10-28 이영재

[윤상철 칼럼]거짓말로 무너지는 사회

'사기' 발생건수 모든 범죄 중 1위OECD국가 중 관련범죄율도 최고권력과 이익 취하기 위한 '거짓말'교양있는 시민도 진위 파악 어려워신뢰 상실하고 밑으로부터 '붕괴'영국의 총리 디즈레일리는 "세상에는 3가지 거짓말이 있다"고 말했다. 거짓말, 지독한(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한다. 선의의 거짓말이나 위선적 거짓말은 사회적으로 권장되지는 않지만 스스로의 편익을 취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용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취하기 위한 지독한 거짓말은 사회적 신뢰를 약화시켜 사회적 행위의 비용을 증가시키고 나아가 온 사회를 타락하게 한다는 점에서 묵과하기 어렵다. 더구나 "하나의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기 위해서는 항상 일곱 가지 거짓말을 필요로 한다(마르틴 루터)." 여기에 불공정한 언론과 정치편향적인 조사기관, 그리고 이해당사자들이 만드는 통계까지 더해진다면 그 사회의 성원들은 정의/부정의, 삶의 목표, 후세대의 교육 등 일상적인 삶에서 아노미 상태에 이른다. 예부터 우리 사회의 '중요한 타자'들은 "착하지. 거짓말은 하지 마라"며 아이들을 격려하곤 했다. 이렇게 자리 잡은 사회적 규범은 경제적 저발전과 빈곤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이웃, 나아가 사회를 신뢰하는 기반이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거짓말이 많아졌다. 대검찰청의 '2018년 범죄현황'에 따르면, 2015년부터 사기발생건수가 모든 범죄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세계보건기구의 2013년 발표한 '범죄유형별 국가 순위'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37개 회원국 중 사기범죄율 1위를 기록했다. 무고사건 역시 2015년을 고비로 연 1만건을 넘어섰고, 김영란법과 맞물리면서 급속하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일본의 한 경제잡지에는 한국에서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 수가 일본의 66배, 인구 대비로는 165배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최근 이른바 조국사태에서 우리들은 한 번의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만들어내는지, 한 사람의 거짓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추가적 거짓말을 필요로 하는지 직접 체험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은 기자간담회와 국회청문회에서 자신을 향한 의혹에 대해 '모른다'거나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했었다. 블라인드펀드, 펀드의 실제 소유자, 자녀 입학 관련 논란 등은 위법 여부를 떠나 곧바로 확인된 거짓말들이다. 법무장관과 그 가족들의 거짓말은 더 많은 거짓말을 만들어냈다. 국무총리의 압수수색 언급은 그가 중요한 정보로부터 차단당해 있거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당대표는 조국관련 보도건수 언급이나 검찰의 결론 없는 먼지떨이 수사 등의 근거 없는 거짓말로 검찰을 압박하거나 국민들을 현혹시켰다. 조국 전 장관의 강력한 지원자인 유시민씨의 '증거보전'논란이나 김어준씨의 SAT점수 혹은 논문제출논란 등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곧바로 확인될 거짓말로 자기 대중을 포획하는 사례들이었다. 조국씨가 장관직을 사퇴한 이후에도 그들의 거짓말은 스스로에 의해 확인되지 않았다.같은 시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만을 위한 개별 대통령기록관 예산을 본인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의결해놓고도 언론이 문제 삼자 "지시도 원치도 않은 일이라 격노했다"고 청와대 브리핑은 전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 산하 교통공사의 고용세습과 채용비리가 감사원 감사로 확인되자 "채용비리는 사실이 아니었다"고 대담한 거짓말을 하면서 거꾸로 언론을 비난하기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처럼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쉽게 화를 내는 모양이다. 스스로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타인을 공격하거나 비난하기도 한다. 교양있는 시민이라 하더라도 타인의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쉽게 간파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얼마 동안 속일 수는 있고, 또 몇 사람을 늘 속일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을 늘 속일 수는 없다고 링컨은 말한다. 또한 그 거짓말은 스스로에게 자살행위일 뿐 아니라 건전한 인간사회에 대해 칼을 꽂는 행위라고 에머슨은 일갈한다. 거짓말이 횡행하고 거짓 선동이 이뤄지는 동안 우리 사회는 인간 상호 간의 신뢰를 상실하고 밑으로부터 붕괴하고 있다. 심지어 그 거짓말을 지켜내거나 반박하기 위해 대중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전혀 무관한 정치적 명분을 제시하지만 사실은 그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거짓말에 정치적 경제적 명운을 건 세력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셈이다. 젊은이들이 말하는 '헬조선'은 그러한 거짓말이 세운 사상누각일지도 모른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9-10-28 윤상철

[전호근 칼럼]그레타 툰베리

영향력 커진 스웨덴의 중학생매주 금요일 학교수업 거부하고의사당 앞에서 홀로 '기후 시위'급기야 선생님까지 함께 피켓들어인류의 미래 감히 빼앗을 수 있나얼마 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조롱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간 보아온 트럼프의 인격을 감안할 때 전혀 놀랄 일이 아니지만 전 세계에서 화석 연료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의 대통령이 어떻게든 의견을 표명해야 할 정도로 툰베리의 영향력이 커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일이다.내가 툰베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지난 학기 '세계와 시민' 교과목을 강의하면서였다. 학생들에게 '세계 시민 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일국 단위의 시민운동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한 다음 그런 한계를 돌파한 사례를 찾다가 툰베리를 알게 된 것이다.툰베리는 스웨덴의 중학생으로 올해 열여섯 살이다. 애초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고 나서 어른들이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기리라 기대했으나 어리석은 어른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걸 금방 깨닫는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한 끝에 그는 매주 금요일 학교 수업을 거부하고 스웨덴 의사당 앞에서 홀로, 기후를 위한 스트라이크를 시작했다.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에 툰베리의 제안을 거절했던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고 급기야 선생님까지 함께 피켓을 들더니 마침내 학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교 측은 자신들의 학생에게 일어날 수업결손을 보충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학생을 돕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다. 나는 정말 놀랐다. 학생이 수업을 거부하고 하는 일에 선생이 참여하고 학교가 따르는 일은 다른 곳에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처음 툰베리가 수업을 받지 않고 피켓을 들겠다고 했을 때 그의 부모와 선생, 다른 어른들 모두 반대하면서 한 말은 이렇다.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고 장래 뛰어난 기상과학자가 되어 기후문제를 해결하라고. 하지만 툰베리는 그들의 거짓말을 믿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이미 세상에 넘칠 정도로 많지만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스스로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른들은 기후 변화를 중지하기 위해 무엇을 중단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제 어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 어른 말을 잘 들을 때가 아니라 아이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에서 보이저 1호가 61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촬영한 지구 화상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했다."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먼지 같은 작은 점,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다. 그런 지구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위기는 한 개인이나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없다. 인류 탄생 이래 처음으로 인류가 모든 차이와 경계를 넘어 실천해야 해결이 가능한 문제에 맞닥뜨린 것이다. 만약 이 위기를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 미래는 없을 것이다.툰베리는 가진 게 없다. 그가 가진 건 그의 미래뿐이다. 그것은 툰베리의 미래일 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이기도 하다. 어떻게 감히 그에게서 미래를 빼앗을 수 있겠는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10-21 전호근

[이명호 칼럼]일본의 노벨상, 부러워 하기전에 부끄러워해야

日, 연구제안서 준비 기간만 10년장비 개발·성과 얻기 '12년 소요'우리나라, 연구자 프로젝트단위로정부예산 받아 1~5년 정도 수행자력 연구비 확보땐 통제도 안받아매년 10월이 되면 과학기술계에 되풀이되는 질문이 있다. 언제 우리나라는 노벨과학상을 탈 수 있나?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의원들은 올해 일본 노벨화학상 수상을 거론하며 왜 우리나라는 노벨과학상을 타지 못하냐며 과학기술자들을 질책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한 야당의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과학기술 입국이라는 꿈으로 53년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만들어 줬으면 지금쯤 되면 노벨과학상 나와야 한다"며, 아직도 노벨상 하나 타지 못한 것은 결국 과학기술인들의 노력이 부족하고 마음가짐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과학기술계 답변도 판박이였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은 "일본 정도의 연구 인프라와 역사, 자율성, 지속성이 확보되면 자연스럽게 노벨상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덧붙여 "우리나라에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이 25개 있다면 일본은 기초원천 연구를 수행하는 리켄(RIKEN·이화학연구소) 등은 우리나라보다 최소 2배 이상의 연구기관 규모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도 노벨과학상 수상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로 "출연연의 정비, 지원 등을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과학기술계 책임자들은 "인력 규모는 물론 예산 규모도 일본이 우리보다 1.5~2배 정도 크다며, 연구의 질은 그 규모에 비례한다"는 답변을 반복하였다.정말 우리가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가 노력 부족이거나, 규모의 문제일까? 우선 규모의 문제를 살펴보자. 과학기술계 정부 출연연 25개의 전체 인원은 1만6천명 수준으로 기관별 평균 630여명 수준이다. 가장 인원이 많은 기관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으로 2천100명, 한국원자력연구원 1천200여명이고, 대부분의 기관들은 20%에 달하는 정원 외 비정규직까지 포함하여 200~300명 수준이다. 규모의 경제, 융합 연구, 연구의 질을 위한 규모로서는 턱도 없이 적은 규모이다. 왜 이런 작은 규모의 연구소들이 난립한 것일까? 과학지식의 축적과 진화를 무시한 채 새로운 유행을 좇아 특정 연구소를 만들어 나간 무원칙한 과학기술 정책과 그 이면에는 정치논리로 자기 지역에 연구소를 유치하려고 하거나, 기관장 수를 늘려 공무원의 자리를 만들려는 관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다수의 노벨상을 배출한 일본의 리켄은 어떠한가? 리켄은 기초원천 연구를 하는 연구소라기보다는 일본에서 유일한 통합과학을 수행하는 종합연구소이다. 인원은 약 3천400명에 달한다. 1917년에 설립된 리켄은 일본 왕실의 하사금과 정부보조금, 민간기부금 등 정부와 민간기업의 협력으로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재단법인으로 설립되었으나 주식회사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독립행정법인이 되었다. 2~3년마다 개최하는 리켄자문위원회에서 연구 평가의 기본 잣대와 5년간 R&D 방향을 정한다. 이런 구조가 있기에 독립적, 자율적, 창의적인 연구, 장기적인 연구가 가능했다. 한 리켄의 이사장은 입사한지 25년이 되었는데, 연구 제안서를 준비하는 데만 10년, 연구장비 개발하고 연구 결과를 얻기까지 12년이 걸렸다고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장기연구가 가능한 테뉴어 연구원은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90%는 5년마다 평가를 통해 연구원 신분을 유지하는 임기제 연구원이다. 대부분의 신진 연구자들은 선임 연구자들과 함께 대형연구를 수행해보는 경험을 쌓고 대학으로 돌아가서 독립적 연구를 수행하며 연구소와 인력교류를 한다. 이러한 두뇌의 순환이 리켄의 핵심적 가치 중 하나다. 또한 리켄이 장기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기초연구에 집중하면서도 연구성과물을 사회에 환원하는데도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63개의 기업이 설립되었고 사업화에 따른 수익이 다시 기초과학에 쓰이는 구조를 만들었다.반면에 우리나라 정부 출연연의 연구 환경은 어떠한가? 연구소의 자체 연구 기획과 예산배분 권한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연구자가 제안서를 만들어 프로젝트 단위로 정부 예산과 인건비를 받아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정도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자기 노력으로 연구 예산을 딴 연구원은 연구소의 통제도 받지 않는 구조이다. 연구소 내의 협력은 기대하기 어렵고 지식이 연구소 내에 축적되지도 않는다. 장기간의 꾸준한 연구는 있을 수 없다.일본이 노벨상을 받는 것을 부러워하기 전에 아직도 정부에 종속된 연구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9-10-14 이명호

[홍창진 칼럼]마음의 문턱

상대방이 호의적이지 않는 이유는생각보다 높은 내마음의 문턱 원인누군가 말문 닫는다면 나를 돌아봐그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관찰하고적극적으로 물어 관계를 회복해야산다는 건 결국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 서로 주거나 받는 일을 해나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를 시작으로 형제, 친구 이어서 학교와 직장 인연까지 평생에 걸쳐 무수한 인간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이런 여러 관계 속에 돈이든 마음이든 무엇을 얼마만큼 주고받느냐에 따라 사람의 됨됨이가 평가됩니다. 그 평가에 따라 상처받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지요.나는 이 정도면 많이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턱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때 상대는 아쉬워하고 아쉬운 표현을 들은 사람은 "너는 내게 무얼 해주었느냐"며 화를 냅니다. 하지만 서로의 잘잘못을 따져봐야 감정의 골만 깊어질 뿐,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서먹해지고 맙니다.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본 내용입니다. 그 프로그램은 어떤 관계에 놓인 두 사람이 5분간 대화 없이 눈 맞춤을 하고 그다음 서로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제가 본 장면에서는 스물여섯의 미혼모가 일곱 살 난 아들과 출연했습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눈을 맞추는 순간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젖은 눈을 쳐다보다말다 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약간 원망이 섞인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았습니다. 눈 맞춤이 진행되기 전에 왜 어린 아들과 눈을 맞추고 싶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사실 엄마는 스물이 채 되기도 전에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 아빠와 그의 집안에서 낙태를 종용해 결국 외부모가 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아빠 없이 홀로 아이를 낳았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아이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무슨 일이든 마다않고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 날 일곱살배기 아들이 갑자기 가출을 했다는 겁니다. 엄마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고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서 이 프로그램에 출연 신청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5분간의 눈 맞춤을 끝낸 엄마와 아이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먼저 물었습니다. "왜 그때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간 거니?" 한참 동안 몸을 꼬며 말을 않던 아이가 엄마의 거듭된 질문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큰 소리로 말했잖아."그토록 사랑한 아들이지만 마음만 앞섰을 뿐 표현은 늘 큰 소리로 화난 듯 말하기 일쑤였던 겁니다. 생각해보면 엄마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그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어 아빠 없이 아이를 키우려니 얼마나 무섭고 불안했겠습니까? 각박한 현실을 홀로 맞서 살아내려니 사랑하는 아이에게조차 지친 마음과 짜증이 묻어나온 것입니다. 아들을 얼싸안으며 엄마는 "앞으로 절대 큰소리로 말하지 않을게. 엄마가 잘못했어"라며 울먹였습니다. 아이는 엄마 품 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매일 뽀뽀해주고 안아줘."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 아이의 엄마처럼 나를 돌아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족과 이웃을 향한 내 마음의 문턱이 무척 낮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배우자에게, 자녀에게, 친구와 동료에게 나는 할 만큼 잘하는데 왜 나를 따뜻하게 대하지 않느냐고 투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높은 내 마음의 문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우리 마음의 문턱을 낮추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상대를 관찰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주 물어보는 것입니다. 누군가 내게 말문을 닫는다면 그건 내 마음의 문턱에 하자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그를 세심히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물어야 합니다. 그 답이 구해지면 내 문턱을 더 낮춰서 그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사람이 많이 행복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10-07 홍창진

자궁내막증 생리통과 부정출혈 증상이 있다면, 원인 치료가 중요

자궁내막증은 자궁내막 조직이 자궁 바깥에 붙어 살게 되어서 염증을 유발하고 유착 반응을 일으켜서 계속되는 생리통, 심한 월경통, 만성적 골반통증과 부정출혈, 배변통, 성교통, 요통, 불임과 유산을 일으킬 수 있는 만성적인 여성 자궁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가임기 여성의 약 10~15%에서 발생되는 자궁내막증은 월경을 하는 여성과 초경에서 폐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에서 생길 있고 최근 젊은 20~30대에서도 자궁내막증 등의 여성자궁질환 발병이 늘고 있고 불임이나 난임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자궁건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예방과 적극적인 치료가 중요하다. 또한 자궁내막증은 발병 후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발견초기에 적절한 치료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자궁내막증으로 인한 증상이 심할 때에는 상당수가 낭종이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한 경우도 많다. 그와 반대로 통증 증상이 호전되면, 낭종도 성장이 억제되어 더 이상 커지지 않고 유지되거나 혹은 축소되기도 한다. 따라서 종종 증상이 심할 땐 증상 등을 호전 시 킬 수 있는 한방 치료를 받는 것이 병의 진행을 막고 낭종의 성장을 막을 수 있는 치료 방법이다. 한방치료의 장점은 진통제 성분이나 호르몬 성분이 없으면서도 자궁환경을 개선함으로써 부작용 없이 증상들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염증이나 유착이 아직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자궁내막증 증상은 없으나 혹이 있는 경우 별다른 증상이 없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갑자기 증상이 생기면서 커질 수도 있으니 난소 혹의 축소를 목표로 삼아서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자궁내막증은 수술을 받고 난 이후에도 재발되는 경우가 많다. 또 자궁내막증 수술은 내막증의 결과인 복강 내 유착 제거와 난소의 혹 제거만이 가능해 자궁내막증 원인을 해결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자궁내막증의 재발율이 높은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또 자궁내막증수술 후 재발을 막기 위해 호르몬 치료로 가폐경 상태를 유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갱년기증상 등의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양한방 통합 진료 시스템은 산부인과 검사를 통해 필요한 검사를 진행 및 진단하고, 맞춤형 치료플랜을 제안하는 것이다.자궁내막증 한방치료는 탕약과 약침 치료이며 이는 내막증의 원인인 골반강내 순환의 문제와 자궁 내 환경문제의 개선을 통해 병변이 있는 내막의 회복을 돕는다.마지막으로 자궁내막증은 병변의 위치와 침범된 장기 그리고 병변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증상을 보일 수 있으므로 증상만으로는 진단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여성질환의 임상경험이 많고 풍부한 진료경험이 많은 전문의를 통해 적절하고 체계적인 검사와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도움말 강남 교대역 이음여성한의원 김우성 대표원장강남 교대역 이음여성한의원 김우성 대표원장

2019-10-04 김태성

[방민호 칼럼]관전평

조국이 문제다·윤석열이 문제다…요즘 나라가 '두쪽… 세쪽' 난 느낌'시비 가리지말라' 부처님 말씀 무색日·北·中·美 앞에서 두패로 갈려 난리패 나눈 어느 한쪽 선택당하지 않길…토요일에는 춘원연구학회 주관의 학술대회가 있었다. 춘원은 이광수의 호, 그러니까 이광수 문제를 연구하는 학회다. 서울여자대학교 정문 앞 어문교육회관이 대회 장소, 필자는 여기서 '김구의 '백범일지'와 이광수'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김구라면 기미년 삼일운동 직후 중국 상하이로 가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이래 광복 때까지 독립 투쟁에 헌신한 분인데, 어째서 이 분의 '자서전' '백범일지'가 '대일협력자'로 '악명' 높은 이광수에 의해서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미 김원모 선생 같은 역사학자가 이 문제를 논문으로 밝힌 적도 있지만 역사와 문학이 만나고 항일 독립운동가와 대일협력자가 만나는 이 진귀한 풍경을 명쾌하게 논의하기란 쉽지 않았다.몇 주간 이기웅 선생의 열화당에서 3년여 각고 끝에 2015년에 펴낸 '백범일지' 한글 정본을 가지고 다니며 '상권', '하권', '계속' 편 등으로 이루어진 김구 '직필'의 '백범일지'을 읽다 보니 모르던 사실도 많고 '깨닫는' 일도 많다. 그중에 생각하게 되는 한 가지는 김구 선생이 '한국독립당'을 이끌어 나간 어떤 방침에 관한 것이다. 당시에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등이 여러 갈래를 치며 분립해 있었고 이 분산된 역량을 하나로 모을 지혜가 절실한 터였다. 이때 김구, 이시영, 조소앙, 차리석 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한국독립당이 내건 이념은 '독립'이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으니 어떤 주의보다 앞서는 가치는 독립일 것이요, 이 독립이 이루어지고서야 민주주의든 공산주의든 그 밖의 어떤 주의든 독립된 사회를 어디로 만들어 가자는 논의가 현실성을 이룰 수 있을 것이요, 그러므로 현재는 모든 주의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 '독립'을 향해 나아가자는 것이 바로 한국독립당의 취지였던 것이다. 이 문제를 국민대학교의 장석흥 교수는 차리석의 논리를 들어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 이를 차리석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던 안창호의 '대공주의' 이념에 연결 지었다. 이 대공주의는 여러 가지로 규정할 수 있겠지만 작은 '나', 작은 분파의 이익이나 이념에 치중하지 않고 전체가 함께 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 함께 노력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김구는 이러한 안창호, 그리고 차리석 같은 사람의 논리를 실천에 옮긴 독립운동가였다. 학술대회가 끝나고 저녁식사도 마치고 마침 자동차가 갑자기 방전이 되어 긴급출동을 불러 어렵게 고치고 집으로 향하는데 강남에서 강북으로 가는 길이 멀었다. 더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서초동 검찰청, 사랑의교회가 있는 큰길에서 교대 앞 사거리까지 교통을 완전 통제 중이었다. 이날의 교통 통제가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요즘 어디 가도 나라가 두 쪽, 세 쪽이 난 느낌이다. 도대체 조국을, 검찰을 어찌해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조국이 문제다, 윤석열이 문제다, 진중권, 유시민은 왜 저러느냐, 황교안, 나경원은 어떻다, 김어준이 어떻다, 세상에 정권 잡고 있으면서도 데모하는 건 또 뭐냐 등등 세상이 난리가 나도 이런 난리가 없다. 불교에 시비를 가리지 말라 했건만 요즘 세상은 부처님 말씀 무색하게 시비투성이이다.대공주의, 독립노선, 이런 것은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듯이 한갓 몽상적 이상에 불과하단 말이냐. 세상은 어찌 됐든 보수나 진보, 우파나 진보, 이런 식으로 쪼개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냐. 일본, 북한, 중국, 미국 앞에서 우리는 지금 두 패로 나뉘어 난리를 치른다. 왜 호불호가 없겠는가, 왜 어디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없겠는가. '절대로' 이 나라의 거대한 두 파 중 어느 한쪽 편에 서고 싶지는 않다. '김갑수 TV', '장기표', '이해생각' 같은 생각들에 귀 기울여 보며 두 패로 나눈 어느 한쪽을 선택 당하지 않는 길을 생각한다. 어둠과 혼란, 혼돈이 이렇게 넓고 깊기도 어렵지 않은가 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9-09-30 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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