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전호근 칼럼]빛이 된 두 사람

참형 당한 동학 1대 교주 '최제우'제자 최시형이 후천개벽 시점 묻자"때가 있으니 마음 급히 하지 말라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연히…"그의 말은 절망의 시대 비추는 '빛'1864년 3월 10일, 경상도 대구의 관덕정 뜰에서 동학의 1대 교주 수운 최제우가 참형에 처해졌다. 사도를 일으켜 정도를 어지럽혔다는 좌도난정(左道亂正)의 죄목이었다. 그의 나이 41세, 동학을 창도한 지 3년 만이었다. 그는 죽기 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등불이 물 위에 밝았으니 의심이 없고(燈明水上無嫌隙) 기둥이 마른 것 같지만 아직 힘이 남아 있다(柱似枯形有餘力)."최제우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제자 최시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861년 여름이었는데, 이후 최제우는 최시형의 득도를 인정하고 1863년 7월 23일에 그에게 해월(海月)이라는 도호를 내린 바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등불이 물 위에 밝았다"는 말은 바로 바다 위에 떠오른 달 '해월(海月)'을 가리키는 비유다.최제우가 최시형에게 도를 전수하게 된 데는 깊은 내력이 있다. 최제우가 관의 지목을 피해 전라도 남원으로 피신했다가 몰래 경주로 돌아와 은신하고 있던 1862년 봄의 일이다. 스승의 종적을 알 수 없게 된 최시형이 스승을 그리워하며 수행하던 중, 반 종지의 기름으로 스무하루 동안 밤을 새우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그는 그때의 체험을 이렇게 이야기했다."임술년(1862) 정월이었다. 여러 달 동안 밤이 새도록 등불을 켰기 때문에 기름이 반 종지밖에 남지 않았다. 다시 스무하루 동안 밤새움을 했는데도 기름이 닳지 않았다. 이로써 마음에 '자연의 이치'가 있음을 알아차렸다."이렇게 마음에 있는 '자연의 이치'를 터득한 그는 누가 일러주지 않았는데도 스승이 있는 곳을 알고 찾아가게 된다. 최제우는 그가 찾아오자 깜짝 놀랐다. 당시 최제우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있는 곳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은 그가 아직 전라도 어딘가에 피신하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최시형의 체험을 기록한 이 일화는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시 두 사람의 눈에 비친 세상은 참혹했다. 거듭된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은 무너졌고 아무리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끼니를 잇기 어려웠으며 나쁜 병이 퍼져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시대였다. 빛이 없는 시대에는 스스로 빛이 되는 수밖에 없다. 순도는 그렇게 예정된 것이다. 기름 없는 등잔에서 빛을 보았다는 것은 어둠의 시대에 자신의 몸을 살라 스스로 빛이 되겠다는 결심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리라. 최시형은 스스로 빛이 되었기에 어둠 속에서도 스승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이로써 최시형의 득도를 알아차린 최제우는 자신이 오래지 않아 체포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고 1863년 8월 14일 최시형에게 도통을 전수하여 동학교도를 이끌게 한 뒤 11월에 관에 체포되어 이듬해 순도하였다. 당시 그에게 직접 도를 전수받은 제자들 대부분이 함께 죽거나 유배형에 처해졌기 때문에 동학은 거의 끊어질 뻔했지만 그의 마지막 말처럼 최시형이 남아 있었기에 동학은 이어질 수 있었다. 스승을 이어 이후 35년간 동학을 이끌던 최시형은 1898년 4월 5일 밤 강원도 원주에서 관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5월 30일 그는 스승과 같은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6월 2일 단성사 뒤편 당시 육군법원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나이 72세, 동학에 입교한 지 38년 만의 순도였다.일찍이 그는 후천개벽의 시점을 묻는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때는 그때가 있으니 마음을 급히 하지 말라.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오리니. 만국 병마가 우리나라 땅에 왔다가 물러가는 때이니라."스승이 그를 남겨 후천개벽의 시대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 또한 스승의 말을 세상에 전함으로써 절망의 시대를 비추는 빛이 되고자 하였다. 마치 기름 없는 등잔이 어둔 방을 비추듯./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11-12 전호근

[이명호 칼럼]정부는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없는가?

국민 안전 보호·국가 운영 방법과학기술에서 찾겠다는 자세 필요남의 일보다 자신 문제 해결 우선공무원의 'R&D 권한' 넘겨 받아DARPA같은 조직으로 창업 유도며칠 전에 한 연구관리 전문기관에서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PM(프로그램 매니저) 제도를 설명해 달라는 요청으로 대전에 가서 DARPA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R&D 시스템에 대하여 2시간 동안 강연과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차를 몰고 올라오면서 그 열띤 진지함이 또 한 번의 좌절로 끝날 것을 생각하니 허망했다. DARPA PM 제도의 벤치마킹은 과학기술과 R&D에 대한 지금의 정부와 공무원의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R&D 정책과 제도는 미국의 것들을 '한국 실정에 맞게(적당히)' 벤치마킹한 것이 많다. 심하게 말하면 기술도 보고 베꼈듯이 정책도 베낀 것이다. 그런데 왜 정부가 세계 최고수준의 R&D 예산(올해 20조 원)을 투입하고 있는데, 여전히 성과가 없다는 평가가 반복되는 것일까? 수십 년 넘게 혁신성장동력을 마련한다고 했는데, 왜 경제는 혁신동력을 잃어가는 것일까? 노벨상을 바라보며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60년 된 DARPA PM 제도의 핵심은 과제기획 기능과 동시에 우리는 못 갖고 있는 예산집행의 전권과 재량권을 갖고 있다가 아니다. DARPA의 핵심은 국가가 왜 과학기술에 투자하고 R&D를 하는가 하는 철학의 문제이다. 학문의 증진, 산업의 육성, 경제 발전 등은 부차적인 것이다. 국가가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강력한, 효율적인 국가와 정부조직이 되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첨단기술을 개발하여 국가를 지키고 국민의 안녕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60년 전에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을 쏴서 미대륙을 위협하는 사건, 4년 전 세월호 같은 사건이 안 일어나게 하겠다는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성찰과 대비이다.외부로부터의 기술적 충격,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위협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정부가 먼저 새로운 기술에 대한 도전을 계속해서 하겠다는 것이다. 국가가 먼저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조직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전에 시도된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많은 실패, 그에 따른 예산의 낭비가 전제되지만, 만일 경쟁국이 더 먼저 앞선 기술을 개발했을 때 닥칠 위험에 비하면 그런 실패는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9·11테러가 방대한 정보 분석의 실패에 따른 반성에서 방법을 찾다 보니 인공지능 기술이 나오고(이 기술은 금융권의 사기 감지 기술로 활용되고 있음), 부상당한 응급한 수술이 필요한 군인을 야전에서 수술하기 위해 수술 로봇을 개발하는 것이다(우리도 수술로봇 개발한다고 정부 돈 낭비했는데, 의료헬기 몇 대 더 장만하면 충분했을 것임). 정부, 즉 국민이 그 기술의 수혜자이면서, 최첨단의 기술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국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을 개발하는데 대학의 연구소, 공공 연구소, 기업이 같이 참여하게 하여 창업과 첨단 산업을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인터넷, GPS, 반도체, 자율주행차, 드론, 아이폰 시리 등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얼마 전에 정부가 몇 년 동안 투자해 온 머신러닝 플랫폼 사업을 포기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똑같은 패턴의 반복이다. 인공지능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여 일반인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대학에 몇 십억을 투자했다. 여전히 국가, 공무원들이 산업을 육성한다고 R&D 예산의 50% 이상(OECD 국가들은 20% 수준) 쓰고 있다. 한때 이 방식은 잘 작동했다. 모방해야 할 기술을 선정하는 데는 공무원이라고 못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기가 지났다. 기업체가 알아서 더 잘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부에서 행정혁신을 위해 머신러닝 플랫폼을 개발했다면 적당히 연구비 받아서 개발하는 시늉만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이제는 정부가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법, 국가를 잘 운영하는 방법을 과학기술에서 찾겠다는 자세에서 시작해야 한다. 정부가 남의 문제 해결하겠다고 하지 말고 정부 자신의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전략의 전환이 필요하다. 공무원이 좌지우지하는 R&D 권한을 넘겨 DARPA 같은 조직을 만들어라. 그러면 자연스럽게 과학기술 전문가가 열심히 해결책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가지고 나가 창업을 할 것이다. 그렇게 혁신동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부가 혁신적이면 국가 전체가 혁신적이 된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8-11-05 이명호

[홍창진 칼럼]평등 사회

우리나라 성범죄는 남녀 사이에서불평등한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힘 있는 자가 행사하는 '인권유린'범죄없는 성숙한 사회 만들기위해서로 배려·존중하는 마음 지녀야최근 우리 사회는 '미투(Me Too) 운동'을 체험하면서 양성 평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남성과 여성은 구별될 뿐 차별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언론을 통해 수많은 성폭력 고발 사례를 접하면서 그동안 묵과하던 행동들이 범죄가 된다는 것도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친근감의 표시로 변명되던 술자리 스킨십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사람도 많으리라 봅니다. 지난 3월 문화체육부와 국가인권위원회는 특별 조사단을 만들어 문화예술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성폭력, 성추행 고발을 접수했습니다. 100일간 진행된 특별 조사는 상당수의 고발 건이 시효가 만료되는 등 가시적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성적 측면에서 얼마나 불평등한가에 대한 실상이 제대로 드러났고, 이것이 바른 변화를 이끌어내는 큰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제가 소속되어 있는 천주교 성직자계도 이번 미투 운동으로 큰 충격을 겪고 내부적으로 쇄신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등 성 평등에 관한 인식 전환을 체험 중에 있습니다. 특히 교구 소속 사제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닷새간의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았습니다. 또한 해당 사제에게는 정직이라는 중징계가 처해졌습니다.6년 전부터 서울대병원 부설 서울 해바라기센터에서 운영위원으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국립양성평등원의 성폭력 예방교육 강사 자격을 이수했고, 나름 준전문가 입장에서 성폭력 사례를 수십 차례 상담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피해자를 대면하는 동안 한 가지 의문이 계속 되었습니다. '왜 성범죄가 발생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는 남녀 간의 불평등한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본질적으로 성범죄는 권력이 있는 쪽이 권력이 없는 쪽에 행사하는 인권유린입니다. 이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다움을 버리고, 인성보다 동물성에 충실하려는 저급한 의식에서 비롯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노인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성범죄입니다. 단지 힘이 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힘없는 노인과 어린이를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권력이 존재하는 어느 조직에서든 성범죄는 일어납니다. 사회에 속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에게 조직 생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조직은 여전히 여성보다 남성에게 훨씬 큰 권력이 부여되고 있습니다. 성범죄의 이면에 권력의 횡포가 숨어있다고 볼 때, 이 사회의 전 분야에 걸쳐 성범죄가 만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인성이 문화를 만들어야 행복한 사회에서 살 수 있습니다. 동물처럼 힘의 논리에 의해 문화가 만들어지면 우리가 사는 이곳은 공포 사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범죄를 없애려면 우선 인권운동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48년, 유엔은 '세계인권선언문'을 선포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평등하다. 그 이유는 인간의 타고난 존엄성 때문이다"라고 요약되는 이 선언문은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좋은 문화의 산물입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생활지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 신부는 한 성당, 즉 한 조직의 최고책임자입니다. 당연히 막강한 권력이 주어집니다. 더군다나 종교라는 특수성 때문에, 조직구성원인 신도들은 신부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합니다. 돌아보면 신자들의 인권을 무시한 경험이 많습니다. 성당 운영위원회 회의 때 위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결정지은 적도 여러 번입니다. 종교인과 신도는 구별될 뿐 차별되지 않는 것은 복음의 진리입니다. 이를 잊고 주어진 권력을 남용한 것입니다.가정에서 쉽게 아내 혹은 남편 그리고 자녀의 인권을 무시한 적이 없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권 의식이 없으면 여러 가지 사고가 발생합니다. 성범죄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성범죄 없는 성숙한 사회가 되려면 대상이 누구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8-10-29 홍창진

[이영재 칼럼]나폴레옹과 모니퇴르

동서고금 막론 권력자들 비판적 뉴스 경계당정, 1인미디어 '가짜뉴스 진원지'로 판단국가가 나서 손 보려한다면 부작용은 더 커표현의 자유등 민주주의 기본가치 훼손때문프랑스혁명 직후 분위기를 작가 앙드레 모루아는 '밀고가 시민의 의무였고, 단두대는 미덕의 제단이었다'며 한 줄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혁명은 많은 피를 불렀다.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 그 틈을 이용해 권력을 장악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그 지긋지긋한 피를 더 흘려서는 민심을 얻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언론이었다. 언론을 장악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언론과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쿠데타 직전에 73개였던 파리의 신문사가 1800년에는 13개만 남았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1805년 그는 비밀경찰 책임자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내 이익에 반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인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1811년 신문은 4개만 남았다. 모두 친나폴레옹계 신문이었다. 정부의 실정(失政)은 물론 국민의 피폐한 삶은 한 글자도 보도되지 않았다. '모니퇴르'도 그중 하나였다.모니퇴르는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시민들 편에 섰던 신문이다. 덕분에 혁명 후 프랑스 최고 언론의 위치에 섰다. 시민들은 모니퇴르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자 그의 편에 섰다. 나폴레옹이 권력을 잃고 엘바 섬으로 유배된 후에는 부르봉 왕조에 붙어 나폴레옹을 공격했다. 그러던 중 1815년 3월 1일.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했다.이 소식을 모니퇴르가 모를 리 없었다. 나폴레옹이 파리로 입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일. 그 기간 모니퇴르의 1면 헤드라인은 수없이 바뀌었다. '식인귀, 소굴에서 탈출 - 호랑이, 카르프에 나타나다-괴물, 그레노블에 야영-폭군, 벌써 리옹에 진입-찬탈자, 수도 100㎞에 출현-보나파르트, 북으로 진격 중 -나폴레옹, 내일 파리 도착 예정-나폴레옹 황제, 퐁텐블로 궁에 도착하시다-어제 황제 폐하께옵서 충성스런 신하들을 대동하시고 퇼드리 궁전에 납시었다.' 언론의 변절을 지적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은 비판적인 뉴스의 확대를 경계한다. 권력을 위태롭게 한다고 믿어서다. 나폴레옹은 언론과 전쟁을 치르면서 "적대적인 신문 4개가 총검 1천개보다 더 무섭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나폴레옹은 파리에 입성한 후 모니퇴르를 정부 기관지로 만들었다.후세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이 언론을 탄압하지 않았다면 프랑스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거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언론이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견제했다면 대륙 봉쇄령이나 스페인 전쟁, 러시아 침공은 수정됐을 것이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은 그의 권력은 더 오래갔을 거란 얘기다. 언론 탄압은 나폴레옹의 최대 실수였다. 나폴레옹도 파리의 신문들이 어용이란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그들의 기사를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정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외국에선 어떻게 평가되는지 궁금해 영국 신문들을 밀수해서 읽었다.당·정이 1인 미디어를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보고 규제하려는 모양이다. 지난 2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에 대해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사회의 공적으로, 사회 불신과 혼란을 야기하는 공동체 파괴범이며 민주주의 교란범"이라고 비판한 이후, 법무부와 민주당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법무부는 '가짜뉴스 엄정대처'라는 보도자료를 돌리고, 민주당 가짜뉴스대책특위도 전문가를 불러 토론회를 하는 등 가짜뉴스 근절에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그런데 걱정이다. 박정희 정권때부터 여러 번 독재 권력을 지켜본 입장에서 지금의 상황이 마치 과거로 회귀한 느낌이 들어서다. '유언비어'나 '괴담'이 아닌, 정말 가짜뉴스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 부작용은 분명 클 것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나서서 손을 보려 한다면 그 부작용은 더 크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민주주의 기본 가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1인 미디어를 규제함으로써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모니퇴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뇌 과학자 이반 로버트슨은 '승자의 뇌'에서 "진정한 승자는 자신의 자아가 늘 위험하고 사나운 개라는 사실을 알고, 권력이란 무거운 짐을 잘 사용하기 위해 그 개를 멀찍이 떼어놓는다"고 적었다. 지금 딱 어울리는 말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2 이영재

[방민호 칼럼]지금, 국가와 정부, 그리고 시민들

현재 국민들 환상에 머무는데 익숙보여주는것에 만족하고 찬사 보내그 덕에 인터넷이 언론과 표현 점령오늘날 민주주의 과거보다 더 위험진실 가리는 정보들 교묘하게 작동어느 순간, 더 이상은 나라가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둘 수 없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때가 있다. 예전에는 무엇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 비교적 명백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때는 '나'도 주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단순하게, 투명하게 생각할 줄 알면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사태는 결코 명백하지 않고, 늘 알 수 없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고 의문을 갖는 순간, 복잡함, 불투명함을 자기 사유의 기반으로, 근본적 조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부주의하거나 둔감하게 지나치면 이 순간은 다시 사라져버린다.국가를 믿고, 국가가 시민들의 의지에 의해 수립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러지 않은 정부라면 뒤집어 버리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때, 국가가 없는 세계야말로 유토피아겠지만 그 국가 없는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국가 아닌 국가', '국가를 폐절시키는 국가'의 단계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때도 순진하다면 순진했다. 그런 국가가 얼마나 타락했던가를 깨닫고 국가 없는 세계에 대한 꿈도 함께 잊었을 때 국가라는 문제는 곧 어떤 정부냐 하는 문제로 바뀌어버렸다. 국가를 심문하지 못하게 되자 '근본주의'적 사유는 빛을 잃고 앞에 놓인 정부들 중 하나를 양자택일 식으로 골라잡는 일에 매달리게 되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순진함이여, 썩 물러가라. '내'가 선택하고 지지한 어떤 정부도 선하지만은 않았으니, 다시는 '내' 의지를 어떤 정부를 위해 사용치 말라. 아깝지 않느냐, 낭비해 버린 젊음의 시간들이. 위선에서 교활을 거쳐 야만으로. 그리고 이제 다시 쇼로. 쇼가 펼쳐지는 무대 뒷면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홉스는 만약 정부가 없다면 사람들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날을 지새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자연 상태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정부에 위임코자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정부를 갖고 있는가? 악 대신에 선이 활동하는 국가 말이다. 살의에 관해서 생각한다. 만약 정부가 선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사람들의 살의는 정부의 선한 중재에 의해 사그라들 수 있겠다. 과연 정부는 그런 선의로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가?과거에 어떤 정부는 자신이 저지른 악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그런 때만 해도 좋은 통치를 위한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선의를 위한 타협과 거짓, 선을 행하기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와 단 한 번 계약을 맺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의 본분은 유혹에 빠뜨려진 자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 유혹에 응한 욕망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 그 어떤 정부는 악마의 손아귀에 들어 갈기갈기 찢기우고 말았다. 악수인 줄만 알았던 것이 수렁에 빠진 격이 되어 끝 모를 이중성을 이어가다 마침내 파멸해 버린 것이다. 만약 순진했던 정부가 악에 익숙해지면 어떻게 될까. 정부를 이끄는 사람들이 이중성에 익숙해지면, 무대에서는 선을 보이고 장막 뒤에서 악을 행하는 데서 편리를 취하는 기술을 익힌다면. 그 어떤 파산한 정부의 뒤를 이은 정부들은 사실상 그러했다. 그들은 교활하기도 했고 야만적이기도 했지만 나아가 보여주고 보임 뒤에서 다른 수를 내는데 익숙했다. 오늘날에도 시민들은 순진하고 환상에 머무는데 익숙하다. 그들은 보여주는 것에 만족해서 찬사를 보내며 머물기 좋아한다. 옛날에 어떤 지도자는 그래서 국민들보다 반 보만 앞서 가라 했지만, 차라리 반 보를 늦게 가야 더 큰 찬사를 받을 수 있는지 모른다. 보여지는 것에 약한 시민들 덕분에 인터넷 가상 현실이 언론과 표현을 점령하다시피 한 오늘날 민주주의는 과거보다 더 큰 위험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 빠르고 광범위한 전파 능력은 보여주는 세력에게만 이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환각 이면의 진실을 탐색하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하기는 한다. 그러나 사태는 절대 간단치 않다. 진실을 가리는 정보들의 숱한 집적과 '좋은' 정보를 향한 접근 자체를 가로막는 온갖 교묘한 기술과 트릭이 작동한다. 지난 여름부터 가을까지 정치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실감하게 되면서, 아하, 이제 천치가 되자 생각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진정한 친구가 어디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편할 것 같다. 이미 모든 게 뒤얽히고 엎어져 버렸다. 이 비관은 어디에서 오는가.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할 수도 없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8-10-22 방민호

[이남식 칼럼]국부의 창출과 분배

수 십년간 국가경제 근간 이뤄온조선·자동차·전자 등 한계 도달단순 여론조사로 정책방향 잡기보다현장목소리 듣고 유연하게 대처지속가능한 정부·경제발전 가능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민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의 안보나 국민의 안전, 그리고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함으로써 자유롭게 원하는 일들을 이루어 자존감과 행복감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부의 창출과 분배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한다. 즉 경제의 생산성을 높여 파이를 키우는 동시에 고용을 창출하여 파이를 잘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생산성 위주의 성장주도 전략을 펴다보면 환경 복지에 불균형이 누적되어 분배중심의 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이번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이 아닌가 한다. 개인의 소득이 늘어나는 것을 누군들 싫어하겠는가? 문제는 나누어 줄 재원을 키우면서 이에 비례하여 소득이 늘어나도록 해야 지속가능한 소득의 증대가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인위적으로 소득을 늘리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가정 하에 최저임금을 16.4%를 올리고 비정규직을 없애는 쪽으로 정책을 펴다보니 오히려 일자리가 늘어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정부가 나서서 양질의 일자리인 공무원을 대폭 증원하겠다고 하고 있다.모두가 안정적이고 좋은 급여를 받는 일자리를 원한다. 하지만 제한된 국가예산을 미래의 국부창출과 산업경쟁력을 위한 투자 보다 당장에 일자리를 늘리는 쪽에 우선 순위를 둔다면 과연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게 된다. 정부의 역할은 일자리를 직접 나서서 늘리기보다 일거리를 늘려 간접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나게 해야 지속가능해 질 것이다. 국민들의 안전을 향상하기 위해 경찰관의 숫자를 많이 늘리는 것은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면 인공지능을 갖춘 CCTV를 촘촘하게 배치할 수 있도록 정부가 프로젝트를 만들면 기업이 이러한 국가수요에 참여하기 위하여 기술을 개발하고 인력을 충원하여 국민의 안전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보기에 따라서는 전자의 정책이 당장에는 더 환영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지속적으로 많은 국가 재정을 필요로 하며 후자는 해외에 기술 수출 등 확대 재생산이 가능하나 경찰관은 수출이 불가능하다. 결국 일자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업정책을 통하여 일거리를 확장하고 노동정책을 통하여 노동의 유연화를 통하여 다양한 일자리를 확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새로운 기술을 요하는 직업과 보편화된 역량을 요구하는 직업은 확연히 다르므로 비정규직이나 파견 근무직 등을 대폭 늘려 연령에 제한 없이 일정 수준의 능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정규직만을 강조하다보면 오히려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 뿐만 아니라 노동의 유연성이 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다.매우 복잡한 경제 질서와 사람들의 심리를 하나의 정책으로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고 본다. 정부는 운영의 묘를 살려 유연하게 정책을 펼쳐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결국 국가의 혁신역량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민의 역량이 배양되지 않으면 경제의 총량이 늘어나기 어렵다. 이를 위하여 규제의 개혁, 교육의 혁신,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예측 역량을 배양하는 것이야말로 원천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최근에 우리의 기간산업이라 할 수 있는 조선, 자동차, 전자, 석유화학 등 지난 수 십년간 국가경제에 근간을 이루어온 분야들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어떻게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대응하기도 쉽지 않은데 기업의 경영활동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크나큰 내부 도전을 만나게 되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단순 여론조사에 의하여 정책방향의 당위성을 찾을 것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 정책의 유연성을 펼쳐가는 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경제발전과 더불어 지속가능한 정부가 가능해질 것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원전의 수요가 늘고 있는데 정부가 앞장서서 일거리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과 같은 대형사업도 정부가 앞장서서 확보해야 할 일거리 인데 적극성 부족으로 멀어져가는 안타까움이 크다. 결론은 우리의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론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인데 정부의 신중한 선택과 유연한 운용을 기대해 본다./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8-10-15 이남식

[윤상철 칼럼]창의성의 사회적 장애

자유화는 문화적 취향 소비 통해과시·타인과 구별 결과만 초래자발·독립성 찾아내기 어렵다정치적 억압 수동적 만들진 않지만창의력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냐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 폐막식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국기자들에게 질문을 받고자 했다. 그러나 한국기자들은 오바마의 두 차례 요청에 거듭 침묵을 지켰고 정작 그 마이크는 중국기자에게 넘어갔다. 그 자리의 한국 기자들이 마땅한 질문거리를 준비하지 못했을까?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고 국가의 위신을 세워야 한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울렁증 때문이었을까? 청와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사전에 협의된 질문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 발언하지만, 대통령의 두루뭉술한 답변에 대해 재차 캐묻거나 약속된 범위를 넘어서는 질문을 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언어문제는 아니다.최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중고교생 두발자유화선언'을 발표했다. 그는 "머리 모양을 정하는 것은 학생들의 '자기결정권'에 해당하며 기본권으로서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차원에서 각 학교 단위에서 이를 공론화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학생들을 피동적, 수동적 존재로 보고 제한만 하는 낡은 교육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가 기대하는 결과는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능동적이고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학생이자 시민이었을 것이다. 두발자유화가 기본적 인권의 문제이고 이를 민주적 공론화 과정을 통해 성취해내면 기자들이 보여준 억압된 피동성을 벗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창의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 중국사회에서 성장하고 활동해온 중국인 기자가 보여준 무례할 정도의 당당한 모습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그 핵심적 문제로 보기도 어렵게 한다. 이미 상당한 정도로 진전된 두발자유화가 교육감의 선언으로 촉발되어 설사 민주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더라도 학교 내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고 나아가 학생들의 자기주도성과 민주성, 그리고 창의성을 높일 것 같지도 않다.돌이켜보면, 자유화는 항상 기대했던 바의 바람직한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이후, 2011년에는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이른바 '등골브레이커'점퍼가 유행하였고, 작년에는 연예인이나 축구선수들의 전유물이었던 롱패딩이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새로운 '잇템'으로 떠올랐었다. 자유화 세례 이후 맘카페가 확산시킨 유기농 수제 '미미쿠키'를 먹고 자란 학생들은 '스타벅스'와 같은 카페브랜드를 소비하고, 이제는 프리미엄 취향의 '시그니처' 메뉴와 그 매장을 문화적으로 소비하게 된다. 이렇게 성장한 대학생들은 해외여행과 해외어학연수는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고, 독립적인 개성으로서의 워킹홀리데이와 해외생활을 시도해야 한다. 용돈을 마련하고자 많은 시간을 알바에 투입하면서도 해마다 바뀌는 휴대폰 신모델을 구입해야 한다. 자유화가 문화적 취향의 소비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고 타인과 자신을 구별 짓는 결과만을 낳을 뿐 그 어디에도 자발성과 독립성, 그리고 창의성을 찾아내기 어렵다. 즉, 정치적 사회적 억압이 반드시 수동적 존재를 만들지도 않지만, 자유화가 창의성의 필요충분조건도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거쳐 교수로 자리 잡은 중국인 교수 동거는 "표현에 서투르고 토론을 기피하는 한국인들은 과정과 결과를 다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살면서 모든 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만의 것에 대한 확신을 포기한다"고 말한다(중앙일보 10월 5일자). 자유화가 정치적 억압을 벗어버리고 원하는 바 풍성한 열매를 맺기 전에 사회적 억압이라는 장애물을 만나서 개인적 창의성보다는 비교적 안전한 선택인 사회적 유행의 따라잡기와 사회적 구별짓기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사회학자 막스베버는 젊은이들이 '개성'과 '체험'이라는 우상을 숭배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자기의 일에 대한 도취와 헌신, 그리고 영감을 통해 그 일의 정점에 오르기보다는 단지 남과 다른 체험을 자신의 독특한 개성으로 과시한다는 것이다. 에디슨의 '99%의 노력과 1%의 영감'과 달리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체험을 영감으로 동일시한다. 정작 우리 사회 안에는 베버나 에디슨이 그리는 방향으로 젊은이들을 이끌고 격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결여되어 있다. 젊은 청년창업가 표철민씨의 말의 울림이 오래 느껴진다(중앙일보 10월 5일자). "성장이 느리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평생 할 수 있습니다. 평생 할 각오로 꾸준히 임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그가 지닌 용기와 확신이 살아온 동안의 불편을 연상시킨다. 자유화는 억압을 없애는 출발점일 뿐이고 그 열매는 사회적 자유화 속에서 영글어 갈 수 있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10-08 윤상철

[전호근 칼럼]위대한 패배

1907~1910년 일제강점기 의병들맨몸으로 일본군 신식무기에 맞서이길 수 없는 전쟁 치른 이유는억압하고 핍박하던 못난 나라도자유로운 삶 위해 지켜야했기 때문"다 죽는구나. 다 죽어."드라마를 보던 아내가 길게 탄식을 내뱉는다. 무슨 드라마인가 물었더니 한말 의병과 관련된 이야기를 배경에 깔고 있는 '미스터 션샤인'이라며 줄거리를 간단하게 이야기해준다. 이야기를 들은 나는 이 드라마가 의병운동의 실상을 제대로 그려냈구나 싶었다. 동학 농민 전쟁부터 시작해 한말의 의병 운동은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1년여 전 나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개최한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장일순의 평화사상을 주제로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함께 학술대회에 참여했던 동학연구자인 원광대 박맹수 교수는 '전봉준의 평화사상'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나는 박교수의 발표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전쟁이라고 생각했던 전봉준의 무장투쟁이 실제로는 일방적인 피학살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박교수가 발굴한 자료에 따르면 전봉준의 지휘에 따른 농민군은 전쟁 내내 철저하게 불살생(不殺生)의 원칙을 지켰다. 전봉준이 내린 군령의 첫 번째 조항에는 적을 마주할 때 병기의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기는 것을 으뜸가는 공훈으로 삼는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또 어쩔 수 없이 싸우더라도 결코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을 최고로 친다는 내용과 함께 행군하는 곳마다 절대 백성들의 물건을 해하지 말라는 명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무지 군령이라고 볼 수 없는 내용이다.실제 동학농민군을 시종일관 비판적인 입장에서 기술했던 매천 황현의 '오하기문'에 따르더라도 1차 동학 농민혁명당시 농민군은 민폐를 전혀 끼치지 않은 반면, 서울에서 파견된 홍계훈의 경군은 막대한 민폐를 끼쳤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도쿄아사히 신문', '시사신보' 등 일본측 신문에도 일본 상인 가운데 농민군에게 피해를 입은 상인은 단 한 명도 없었으며, '조선잡기'에는 동학농민군의 규율을 두고 '문명적'이라고 기술하기도 했다.그날 뒤풀이 자리에서 박교수는 1894년 12월에 있었던 일본군과 동학농민군 간의 갑오농민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 희생자 한 명당 동학농민군 희생자는 3만 명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동학농민혁명은 처참한 자기희생일지언정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동학농민혁명뿐 아니라 일제의 강점을 전후한 시기에 활동한 의병도 마찬가지였다. 1907년부터 나라가 병탄되던 1910년에 이르기까지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지만 그들 대부분은 일제의 진압에 무자비하게 학살되었다. 초기 독립운동 기록을 살펴보면 의병 70여 명을 일본군 헌병 세 명이 출동하여 몰살시키는 식이다. 의병들의 무기는 몽둥이, 낫, 도끼, 화승총 따위였고 일본군은 신식 무기를 갖추고 있었으니 상대가 될 수 없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일제 강점 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영규의 '강화학 최후의 광경'을 읽어보면 정원하와 이건승을 비롯한 양명학자들은 만주로 가 독립운동에 참여하지만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손자병법에 따르면 전쟁은 이길 수 있을 때만 하는 것인데 동학농민군이나 이후의 의병과 독립군들은 모두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한 것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더욱이 그들이 지키려던 나라는 그들을 억압하고 핍박하던 못난 나라 아닌가? 그들은 그들의 가난한 무기와 움켜쥔 주먹으로 외세와 부패한 권력을 몰아내고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1907년 의병활동을 취재하기 위해 조선에 온 영국의 기자 매켄지는 당시 항일 의병을 이끌던 젊은 의병 지휘관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싸우다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노예로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게 낫다."그들은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라도 나서야 하며 자유로운 삶을 위해 못난 나라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내가 드라마의 마지막 편을 보면서 대사를 따라 중얼거린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불꽃으로 살다가 가겠다, 이게 나의 세계다.혹 이 나라를 침략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들처럼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나설 수 있을 것인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10-01 전호근

[이명호 칼럼]우리 정부는 플랫폼 정부인가?

美, '챌린지'로 난제 시민과 해결우리도 '정책 플랫폼' 있었다면최저임금·영세업체 매출 감소로자영업자 대책 세우는일 없었을 것 국민이 정책 생산·실행 참여할 때잘 나가는 글로벌 기업의 특징은 플랫폼 기업이라는 것이다. 구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 등 시가 총액 세계 5위까지 모두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다. 핸드폰 사용자라면 누구나 일상적으로 접속하는 구글의 플레이 스토아와 유튜브, 애플의 앱스토아와 아이튠, 페이스북은 다 플랫폼이다. 플랫폼이 만들어지면 수많은 공급자가 자발적으로 제품과 서비스, 콘텐츠를 올리고 소비자는 쉽게 구매하거나 받아 쓸 수 있다. 플랫폼은 중개인의 개입 없이 공급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제품과 서비스를 찾는 탐색과 유통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어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또한 플랫폼이 일정 규모의 사용자를 확보하면,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 더 쉽게 더 많은 사용자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면서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인다. 잘 만든 콘텐츠 하나가 입소문만으로 수백만 명, 수천만 명에게 전달이 되는 것도 플랫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서 기업들은 플랫폼이라는 마당을 조성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기존의 포털 같은 정보서비스가 일방향의 서비스라면 플랫폼은 쌍방향으로 생태계(시장)를 형성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나라도 카카오톡, 배달의 민족, 쿠팡 등이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한마디로 플랫폼 기업들이 주도하는 플랫폼 경제의 시대이다. 지난 달에 정부도 빅데이터·블록체인·공유경제, AI(인공지능), 수소경제를 혁신성장 전략투자 분야로 선정하고 플랫폼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투자 규모도 대대적이다. 내년에만 5조 원을 투자하고 향후 5년간(2019~2023년) 9조~10조 원 규모 투자가 이뤄질 계획이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등 여러 산업에 걸쳐 꼭 필요한 인프라,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여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플랫폼 경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플랫폼 경제로 전환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보면서 우리 정부는 정말 플랫폼의 장점을 잘 알고 플랫폼 경제로 전환시킬 능력이 있는 정부인가를 되물어 보게 된다. 70~80년대 고도성장기에 8~9%대를 유지하던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김영삼 정부 말에 IMF를 맞이한 후, 김대중 정부에서는 평균 5.32%, 노무현 정부 4.48%, 이명박 정부 3.2%, 박근혜 정부 3%로 정부가 바뀌면서 1%씩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경제 성장률 저하가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겠지만, 정부와 관료조직이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국민의 불신과 불만이 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좋은 플랫폼 경제를 부르짖는 정부는 좋은 정책을 만들어 내는 플랫폼 정부인가를 되묻게 된다. 플랫폼은 공급자와 소비자라는 쌍방향이 만나는 공간이다. 정부의 플랫폼은 크게는 정책의 공급자(정부, 정당)와 소비자(국민, 이해관계자)가 만나 새로운 정책이 생산되고 확산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작게는 정부 내에서 각 부처가 통계와 자료를 공유하고, 정책을 조율하고 창출하는 공간이다. 미국은 '챌린지'라는 플랫폼을 활용하여 연방정부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를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통해 해결하면서, 정부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싱가포르는 2014년부터 '스마트 네이션 플랫폼'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전자정부나 정책 포털을 넘어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정책 플랫폼이 있었다면, 최저임금 인상과 52시간 노동제가 자영업, 소상공인 등 영세업종의 매출 및 고용 감소로 이어지면서 부리나케 자영업자 대책을 세우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정책 근거가 되는 데이터와 통계에 대해서도 혼란을 불러일으켰다.이제는 정부와 국민이 정책의 생산과 실행에 참여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현재 국민의 모든 생활과 경제활동 등에 영향을 미치는 법정계획으로 정부가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정책이 330여개, 종합계획은 120여개가 된다. 그러나 인터넷 어디에서도 이런 계획 자료를 한곳에서 찾을 수 없다. 순환보직으로 자리를 옮겨 다니는 어느 공무원의 책상 위에 기본계획 하나 식 있을 것이다. 수많은 정책에 관련된 데이터나 정책의 변천, 성과를 분석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은 당연히 없다. 플랫폼 시대에 정책 플랫폼이 없는 것이다. 유능한 정부를 기대할 수 있을까? 플랫폼을 운영해본 적이 없는 정부가 제대로 플랫폼 경제를 육성할 수 있을까?/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8-09-17 이명호

[홍창진 칼럼]결심과 실천

'사랑' 말로 하기는 참 쉬워혈연외에 어떤 사랑도 없다면동물의 왕국과 무슨 차이일까행복이란 서로 움켜쥐는게 아니라주고 받는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스스로를 "바보"라고 칭했습니다. 말로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믿는 자'의 삶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며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했지요.매 주말 강론을 통해 신자들에게 '행동의 중요성'을 전해야 하는 성직자들의 흔히 경험하는 속내를 김 추기경은 팔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 솔직하게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부끄럽다는 그 고백 이면에서 오히려 강한 실천 의지가 느껴집니다. 실천하지 못했다는 반성은 곧 실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바보 선언'을 한 그의 삶에서 여느 고위 성직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사회 참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시대의 어른조차도 결심에서 실천에 이르는 길이 이토록 멀고 험한 것이라면 우리는 어떨까요?조카뻘 되는 어느 여자 이야기입니다. 미국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들른 한인성당에서 교포 2세 남자를 만났습니다. 서른쯤인 여자는 한국에서 취업을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미국 여행길에 혹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고 합니다. 남자는 편의점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 현지 명문대를 졸업한 뒤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둘은 첫눈에 서로 호감을 느껴 몇 차례 데이트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 여자가 귀국하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남자는 결혼을 결심하고 한국에 와 청혼을 했습니다. 여자의 부모에게도 허락받은 뒤 둘은 바로 미국에 건너가 남자의 부모에게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마침 미국에 갔을 때 사업을 하는 남자의 고모가 여자의 취직까지 해결해 주었습니다. 누구나 인생에 한두 번쯤 큰 행운이 온다고 하는데, 마침 그 여자에게 그런 행운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그러나 한국에 들어온 여자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예비 시댁 식구들과의 첫 식사 자리에 남자의 누나가 나왔는데 중증 발달장애자였던 겁니다. 물론 남자가 데이트 중에 장애인 누나가 있다고 얘기는 했지만,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하니 충격이 무척 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끝내고 둘이 있을 때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누님을 돌볼 능력이 없어지면 그때는 자기가 맡아서 돌봐야 한다고….여자에게는 인생에 한두 번 찾아오는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이 역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도 반대했고 친구들도 말리고 나섰습니다. 여자는 생각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결혼할 수 없다.' 중증 장애를 지닌 누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건 감내하기 힘든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여자는 행운을 불운으로 결론짓고, 미국행을 포기하기로 했답니다.사랑을 말로 하기는 쉽습니다. 남의 위대한 사랑에 박수 치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실천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만일 중증 장애를 지닌 딸을 보살피는 부모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TV에 방영된다면,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감동의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여자도 그런 프로그램을 보았다면 감동의 눈물을 흐리며 동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내 일이 되었을 때는 상황이 180도 달라집니다. 혈연으로 묶인 관계가 아닌 다음에야, 헌신하는 사랑을 감내하는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 없으면 이 세상은 사막처럼 답답해질 것입니다. 혈연 외에는 어떤 사랑도 없다면 동물의 왕국과 무슨 차이일까요? 약육강식만이 존재하는 살벌한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이란 움켜쥐는 것이 아닌,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서 생기니까요. 어느 누구도 여자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강요하지 못했습니다. 사랑은 스스로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그의 부모는 또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겠지요. 그들의 손을 잡아 줄 용기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여자가 한 사람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더 이상 삭막해지지 않으면 참 좋겠습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8-09-10 홍창진

[방민호 칼럼]말의 피흘림

세상 사람은 모두 불쌍한 존재월급 못받고 주지도 못해 딱하다서로의 처지 관대하게 볼 줄 알고이해·동정의 마음 담은 말들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썼으면 한다인터넷이 지금처럼 활성화되기 시작한 때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때 말의 피흘림도 함께 시작되었다. 인터넷 댓글은 피 흘리는 말들의 전시장 같았다. 댓글은 어떤 기사나 의견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는 글인데,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다룰 때 그것은 거의 언제나 비판을 넘어 비난과 비방, 비아냥, 냉소로, 또 한도를 넘는 잔인한 공격으로 나타나곤 했다. 옳은 견해도 말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정중하게, 유머러스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그 거침과 투박함, 공격성으로 인해 듣고 보는 사람의 오해를 사고,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그 올바름마저 옳지 못한 것으로 뒤바뀌기까지 한다. 옛날부터 말을 곱게 해야 한다 했다. 옛날에 국왕이 남면해야 한다고 한 것은, 단순히 남쪽을 바라보고 앉아야 한다는 것만 아니라 부드럽고 따뜻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국왕부터, 그러니까 지금 식으로 말하면 정치 지도자부터 말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간결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곡진하고, 때로는 완곡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민심이 덩달아 편안해질 수 있다는 뜻이리라.말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넘쳐나는 좌니, 우니,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보다는 그 말을 쓰는 사람이나 집단의 성정에 관계하는 것이다. 돌아가신 어느 대통령께서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면 부드럽고 완곡하게 말씀하시는 장면을 잘 보여주지 않았고, 이 때문인지 그분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치적 견해가 조금만 차이나도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자유자재로 퍼나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조롱과 풍자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말의 쓰임 가운데 하나일 수 있지만 이것이 지나쳐서 같은 '편' 사람들조차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는 정도가 되면 아주 곤란하다. 그래도 그분은 뜨거운 사람이어서 그 안에 어떤 모순과 잘못됨이 있었는지 몰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은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말이 피 흘리는 일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지난 십 년 사이에 사람들은 진정함이 결여된 말의 성찬, 차라리 교활하다고까지 해야 할 어법에 잔인하고 비정한 짓누름의 말들을 '위'에서 보고 '아래'에서 함께 썼다. 말로 이루어지는 온갖 담론 장들, 토론과 댓글과 선언, 성명 같은 모든 곳에서 말들은 피를 흘린다. 상처가 덧나 염증이 생기고 병세가 아무리 심각해져도 사람들은 말쯤이야 자신들의 의지와 올바름과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한갓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예전에 우리에게도 뛰어난 말의 예술사 한 분이 계셨다. 돌아가신 대통령 가운데 한 분으로, 늘 비방, 마타도어에 시달리는 처지였건만 야당 지도자일 때도 여간해서는 화내는 표정을 보이지 않으셨다.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거나 새해 인사를 할 때는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좌중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이끌곤 하셨다.이 분이 돌아가셨을 때 필자는 동교동의 어떤 출판사에서 책 편집 일을 하다 장례 주최 측에서 나누어주는 그분의 일기 발췌본을 받아보았다. 그중 어떤 부분은 음력설을 앞둔 때의 기록이었다. 거기서 그분은 설을 앞두고 생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면서, 월급을 받지 못한 사람들뿐 아니라 월급을 주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동정을 금치 못하셨다. 그때 필자는 세상 경험이 적은 데다 없는 사람 편을 들어야 한다는 마음만 확고하던 때였다. 제때 월급 못 받으며, '노동 착취' 당하는 사람들을 말할 수 없이 동정하면서도, 월급을 주지 못해서 당하는 괴로움 같은 것이 있으리라고는 별반 헤아려 보지도 못했었다. 확실히 세상 사람은 모두 불쌍한 존재인 것이다. 월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주지 못하는 사람도, 그리고 돈이 아주 많은 사람도 사실은 불쌍하다. 사람들은 서로의 처지를 보다 관대하게 볼 줄 알아야 하고 이 이해와 동정의 마음을 담은 말들을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때가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8-09-03 방민호

[이영재 칼럼]우리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

야구광이며 운동권 출신인 자영업자 A씨"AG로 프로야구 중단 팬들에 예의 아냐정부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대책' 어이없어최저임금 독약 국민들 알면서도 계속 마셔"자영업자 A씨는 요즘 즐겁고 행복한 일이 1도 없다고 한다. 야구광이며 대학 시절 운동권이기도 했던 A씨를 만나 왜 요즘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은지 들어봤다. A씨는 프로야구, 특히 SK 와이번즈의 열렬한 팬이다. 요즘 그를 힘들게 하는 건 '프로야구 일시 중단'이다. A씨는 말한다. "아시안게임 출전으로 프로야구를 통째로 중단하는 게 말이 되느냐. 프로 축구도 하지 않느냐. 지금이 '까라면 까는' 군사독재시대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봉 수십억 원을 받는 선수들이 아시안게임 출전 핑계로 거의 한 달을 통째로 노는 것은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A씨는 주장했다. 야구사랑이 넘치는 미국도 일본도 올림픽 때문에 프로리그를 중단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KBO는 달랐다. 8월 17일부터 9월 3일까지 일정을 중단했다. 그러자 '병역특혜논란'이 나왔다. A씨는 KBO와 구단이 몇몇 선수들의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 의기투합했다고 생각한다. 몇몇 선수는 상무와 경찰청 지원을 미루고 대표팀 자리를 노렸다고 확신하고 있다. 병역 미필자가 애초 7명이었는데 부상선수 교체를 핑계로 9명으로 늘어난 걸 보라는 것이다. A씨는 KBO와 구단이 모종의 야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A씨는 "내가 요즘 즐겁지 않은 건 자영업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씨는 편의점주다. A씨는 지난주 정부가 발표한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대책'을 어이없어했다. "정부가 정책실패 등 계속 헛발질을 해놓고 왜 국민 세금으로 우리를 지원하려고 하느냐. 우리가 거지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린 게 독약이었다. 그런데도 계속 독약을 마시고 있다. 문제는 독약인 줄 알면서도 계속 먹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말이 아팠다. "그 독약을 누가 마시냐. 결국 우리 국민들이 마시는 거다."A씨의 말은 점점 거칠어 졌다. A씨는 문재인 정부에 큰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놓는 정책마다 자영업자들을 힘들게 해 '지지철회'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요즘 A씨는 차라리 월급을 또박또박 받고 52시간 근무로 '저녁이 있는 삶'을 영위하던 직장에 좀 더 있을 걸 그랬다고 후회하고 있다. "정책입안자들이 편의점 체험 1주일만 하면 무엇인 문제인지 금세 알 수 있을 텐데" 라며 A씨는 혀를 끌끌 찼다. A씨는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대학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당시 젊은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A씨도 그 누구보다 민주화를 열망한 학생이었다. 도서관에 처박혀 영어단어나 외우는 그런 학생이 아니었다. 전두환 정권 말기 A씨는 아스팔트 위에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화염병도 제법 던졌다. 건대 사건 때에는 최후까지 남기도 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A씨는 그때, 자신이 '겁많은 데모꾼'이었다고 말했다. 운동권 주변을 맴돌았을 뿐, 그 중심으로 뛰어들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학내 데모의 단골 멤버였지만, 늘 두 번째 줄에 섰다"고 말했다. 야학은 했으나 위장 취업할 용기가 A씨에겐 없었다. "그때 학교(감옥)에 한번 갔다 왔으면 인생이 바뀌었을 텐데. 운명이었는지 이상하게 그런 상황은 나를 피해 갔다." A씨와 얘기하고 있을 때 TV에 운동권 출신 공직자가 나오자 그의 표정은 묘하게 변했고, 혼자 뭐라고 중얼거렸다. TV 소리 때문에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내가 장남만 아니었어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물론 저 소득계층도 더 어렵겠지만, 자영업자 소상공인은 요즘 정말 어렵다. 만일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제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뭘 제대로 하려는지 말하려다가 A씨는 입을 닫아 버렸다. 그때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A씨는 얼른 창밖으로 얼굴을 돌렸다. 나는 A씨에게 말했다. "지금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건 당신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PS: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A씨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우리 야구가 실업팀이 주축인 대만 야구에 졌는데도 기분 나쁘지 않은 경우는 내 평생 이번이 처음입니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7 이영재

[이남식 칼럼]대입제도 개편 유감

미래 준비위한 교과과정 변화 아닌수능 통한 정시모집 확대에 불과눈치작전·대입컨설팅 성행 불보듯되레 공교육 정상화 노력 역주행이젠 학생 역량 키우는데 중점둬야오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최근 2022년 대입제도 개편 방안이 확정되어 현 중3 학생들의 대입이 바뀌게 되었다. 가장 크게 바뀌는 내용은 4차 산업혁명 등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교과과정의 변화와 이에 따른 선발방식의 개선이 아닌 수능을 통한 정시 모집의 확대에 불과하다.그간은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하여 평소 학교생활의 누적적인 기록인 학생부를 중심으로 선발의 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하여 수시모집을 늘려왔으며 그 결과 일부 대학에서는 전체 80% 정도를 수시에서 선발하기에 이르렀다.우리의 교육이 기-승-전-대학입시가 되다보니 모든 교육의 관심이 대입에만 첨을 맞추게 되고 교육과정보다는 궁극적으로 대학입시에 유리한 조건을 충족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게 된다. 이번 공론화의 과정에서 학생부에 대한 불신 내지는 수능으로 한 번에 만회하는 기회를 늘리며 816가지나 되는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결론이나 한 마디로 미래지향적인 교육에 대한 어떠한 변화도 찾아볼 수 없는 오히려 온갖 눈치작전과 편법, 대입컨설팅만 성행하게 될 것임이 불 보듯 뻔하게 되었다.이런 상황 속에서 학생주도형 스스로 학습, 융합형 교육, 플립트 러닝 (거꾸로 교실), 인성교육 등이 학생이나 학부형들에게 무슨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학생, 교사와 교육과정, 교육환경을 어떻게 개선하고 향상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없이 단순히 대입선발 방식만 아무리 논의해도 결론은 항상 제자리 일 것이다. 가장 정확한 학생에 대한 평가는 시험점수가 아니라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교사들이 내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문가의 주관적인 평가는 매우 객관적이라는 것을 신뢰할 때 교육을 통하여 성장하는 차세대를 제대로 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이제 교사의 가장 큰 책무는 학생들을 관찰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학생 각자의 자질과 능력을 발견하고 성장 시키는 것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에서 학생들의 경험을 늘리고 인생의 방향을 설정해주는 역할로 바뀌어야하며 이를 사회 모두가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이번 논의에서도 학생부에 대한 불신이나 교사들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어야 하므로 학생부 비중을 낮추어야한다는 시각은 오히려 이제까지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에는 역주행하며 수능시험 한 번으로 모든 것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기회주의적인 사고만 키우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결국 초·중등 교육을 통하여 수많은 교사들이 관찰한 학생들의 모든 것을 빅데이터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객관화하여 대학입시뿐만 아니라 기업에서 직원을 선발하는 데에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12년간의 초·중등 교육 기간을 통하여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도록 미래의 시민을 양성하는 것을 역행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질 것이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중시하는 것 또한 교육의 가치가 아닌가? 궁극적으로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사람다운 사람을 키우기 위하여 교육하는 것이지 어떻게 해서든지 나만 잘되면 되는 사람을 만들고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올해 우리의 교육 예산은 68조원에 달하고 초·중등교육에만 53조원을 쏟아 붓는데 이중 65%가 교원의 인건비이다. 약 38조원을 교사 급여로 지급하고 있다. 아마 단일 항목으로는 가장 비중이 큰 국가예산 항목일 것이다.이것은 교사의 역할이 매우 크기 때문에 국가가 이를 부담하는 것으로 이러한 사회적 투자와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한 교사들의 노력과 더불어 이러한 막대한 투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없다면 왜 이렇게 큰 비용을 지불하는가? 묻고 싶다. 이러한 공교육을 제쳐두고 또 다시 인기 스타 강사나 학원에 교육의 미래를 맡길 것인지에 대하여 진지하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이제 학생역량을 키우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하며 당연히 학생들의 학습 성취나 역량의 평가 방식도 바뀌어져서 정말 자기 능력과 소질을 알고 거기에 합당한 교육을 통하여 모두가 행복해지는 미래가 열리기를 소망한다./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8-08-27 이남식

[윤상철 칼럼]'내로남불'의 집단극단화

국가 구성하는 개인들 생각이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하면소통통해 먼저 풀어 나가야그 뿌리 사회에서 정치로 뻗었다면치유의 출발은 사회안에 있다는것이른바 '내로남불'이란 말이 갈등하는 집단 간에 상대를 비난하거나 자신을 변명하는데 자주 사용된다. 정치와 언론을 넘어 지식인까지 두루 사용하고, 나무위키에 열거된 사례들을 보면 희소한 일탈현상은 아닌 듯하다. 개인적 에피소드에서 집단과 사회조직, 나아가 정치권력과 국가권력에 이르기까지 나타나는 현상이다. 얼핏 보면 크게 다를 바 없는 현상을 상대에 대하여 전혀 다르게 극단적으로 규정하는 점도 독특하다. 새정부 들어 인사청문회의 기준이 흔들리면서 여당의 '적폐청산'에 야당은 '내로남불'로 맞섰다. 6년 전의 국가정보원 여론조작사건(혹은 대선개입사건)과 작년부터 발생한 드루킹 댓글조작사건은 행위자와 이해당사자가 다를 뿐 민주주의의 근간인 국민의 여론형성을 심각하게 왜곡한 사례들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이어 '국가주의'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야당은 '촛불혁명'을 초래한 국정농단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여당은 시장과 국가의 역사적 성패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다. 내로남불은 주로 정치의 언어로 사용되지만, 돌아보면 그 뿌리는 넓게 퍼져있다. 정치인 팬덤현상들도 제3자의 눈에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른바 '깨시민'이나 그들의 비판대상이나 진리에 있어서는 똑같이 독선적이다. 내부자 출신 정치인들에 대해서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참여연대나 비정규직 문제해결은 정부와 재계에 넘기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만을 옹호하는 민주노총도 다르지 않다. 워마드는 이른바 미러링으로 변명하면서 그들의 비판대상인 '한남'을 닮아갈 뿐 아니라 범죄를 예고하는 일탈을 쉽게 벌인다. 일부 기독교계는 입국 금지된 이슬람국가에 들어가 선교하면서도 무슬림의 국내 입국에 대해서는 공포증을 조장한다. "롤리콤은 범죄지만 쇼타콤은 취향"이라고 말하는 교수나 여성과 남성의 비혼에 대해 근거 없이 상반된 기준을 들이미는 교수의 편협한 시각도 이제 낯설지 않다. 어쩌면 내로남불은 전 사회적인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지금은 옳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상황논리로 변명하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다 옳거나 다 틀렸기 쉽다. 더 아쉬운 사실은 서로 분열된 집단 내에서 상대에 대해 동의하거나 이해하는 목소리도, 자기 집단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목소리도 듣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지키려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양성, 토론과 합의, 그리고 양보와 협력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넛지'의 저자인 캐쓰 R. 선스타인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라는 책에서 이러한 집단의식의 모습을 '집단극단화'로 규정한다. 그에 의하면 사람들은 서로 생각이 유사한 집단 속에 들어가면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극단주의 성향이 심화되고, 내부 다양성은 저하되며, 나아가 상대집단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는 것이다. 집단 내부에 동일한 성향의 정보가 쏟아지고 사람들은 사회적 평판을 고려하여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일반적으로 극단적인 입장일수록 훨씬 설득력을 얻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정보화시대에 들어서면서, 인터넷 공간은 더 신속하고 폐쇄적인 정보순환을 가능하게 하여 집단극단화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선스타인은 집단극단화를 막는 세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전통주의 혹은 선인들의 지혜에 대한 존경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과거를 시대적 한계가 아닌 적폐로 치부하는 우리에겐 적합하지 않다. 결과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미래에 적용하는 대안이 있지만,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우지 않으며 인물과 조직의 대체를 선호한다. 마지막 대안은 견제와 균형이다. 링컨이나 루스벨트가 그랬듯이 동조하는 집단들로 이루어진 '정보의 반향실'이 아닌 반대하는 집단들로 '정보의 풀'을 넓히거나, 유유상종을 회피하고, 제도적으로는 3권 분립과 헌법상 독립기관의 권위를 존중하는 일이다. 그마저도 '청와대정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같은 뿌리의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찾기 어렵다. 우리에게 남은 대안이 있다면, "정부는 그 나라를 구성하는 개인들을 반영한다"는 샤무엘 스마일즈의 말처럼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통하여 먼저 내로남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뿌리가 사회에서 정치로 뻗어나간 것이라면 그 치유의 출발은 사회 안에 있다는 말이다. LA흑인폭동의 주인공 로드니 킹은 사건 이후 진행된 인종 간의 분노와 혐오, 그리고 좌절을 겪은 후에 이렇게 말했다. "우린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잖아요?"/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08-20 윤상철

[전호근 칼럼]어느 가족이 본 '어느 가족'

'혈연 아닌 서로 필요해서 산다'는영화속 다섯명의 주인공들마지막 장면에서는 서로를 위해자신이 가장 소중한 것을 준다내가 본 '유일한' 가족 영화였다며칠 전 가족과 함께 집 근처 영화관을 찾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을 보기 위해서다. 당초 식구 넷이 다 같이 편안하게 즐길 만한 영화로는 적당치 않을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염려가 없지 않았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지만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기에는 적잖이 불편한 장면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가족 모두 어엿한 성인인데다 의견 일치가 쉽지 않은 우리 가족의 특성상, 모처럼 같이 영화를 보기로 한 드문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가족 간 의견 일치가 어떻게 쉽지 않은지 궁금해하실 분이 계실 것 같아 잠시 옆길로 새자면, 우리 가족은 좋아하는 음식도 각기 다르고, 독서나 음악 취향도 모두 다르며 세대 차이도 꽤 심각한 편이다. 무엇보다 밥상머리 대화에서 다른 사람 이야기는 잘 듣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끝까지 해대는 통에 번번이 논쟁이 일어나 서로 얼굴 붉히기가 십상이다.이처럼 모래알 같은 가족이 한 명의 반대도 없이 '어느 가족'을 보는 데 찬성했으니 영화를 보기도 전에 고레에다 감독의 위대함에 고개가 숙여졌다.'어느 가족'은 원제가 '만비키 가족(万引き家族)'이다. '만비키'는 물건을 사는 척하면서 훔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원제를 우리말로 옮기면 '좀도둑 가족' 정도가 된다. 제목만 놓고 보면 가족 영화가 아니라 오히려 가족파괴 영화라 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직업으로 간주할 수 없는 도둑들의 이야기가 어찌 가족 영화일 수 있단 말인가.게다가 주인공들 중 사회가 용인하는 정상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가족 구성원 중 남편 역할을 하는 오사무는 아이를 시켜 가게의 물건을 훔치게 하고 때로 자동차의 창문을 부수고 직접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아내 역할을 하는 노부요는 세탁소에서 일하지만 세탁물에 잘못 딸려온 고객의 물건을 수시로 훔친다. 딸 역할을 하는 아키는 유사 성행위 업소에서 일하며 돈을 번다. 할머니 하츠에는 전 남편이 남겨준 연금으로 생활하지만 생전의 남편과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아들 역인 쇼타는 책가방을 메고 다니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으며 책가방 안에는 책 대신 훔친 물건이 들어있다. 새로 가족의 일원이 된 유리는 오빠인 쇼타를 따라 가게에서 물건 훔치는 법을 배운다.이들은 혈연 유대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에 따라 함께 살게 된 것일 뿐이다. 할머니는 돌봄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은 할머니의 연금에 의지하여 생활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함께 모여 살게 된 이유는 가출이나 버려짐 또는 유괴의 결과일 뿐이다. 그러니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이들을 가족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이 세상 사람들이 '내다 버린' 가족의 가치를 가장 잘 지키고 있다면?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할머니 하츠에가 죽자 두 부부는 연금을 계속 타기 위해 할머니의 시신을 몰래 땅속에 파묻는다. 나중에 경찰이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추궁하자 노부요는, 자신들은 '버린 것'이 아니라 '주운 것'이라며 버린 사람은 따로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관객에게 그대로 꽂힌다. 내가 바로 노부요가 말하는 그 '버린 사람'은 아닌가.주인공들이 함께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 깊다. 그들은 불꽃은 보지 못하고 지붕 너머로 폭죽 소리만 들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느 가족보다 더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 장면은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할머니가 해변에서 놀고 있는 다섯 명의 가족을 바라보며 입술만 움직여 말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물론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쇼타가 입술을 움직이는 장면과 함께, 들리지 않아도 들을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영화의 막바지에서 두 부부는 자신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쇼타에게 내어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아들로 여겼던 쇼타 그 자신이다. 노부요는 쇼타에게 친부모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알려준다. 그리고 오사무는 자신의 본명과 똑같은 이름을 지어준 아들 쇼타에게 이렇게 말한다."아빠는 이제 아저씨로 돌아갈게."주인공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준 것이다.'어느 가족'은 '훌륭한' 가족 영화가 아니라 내가 본 '유일한' 가족 영화였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8-13 전호근

[이명호 칼럼]최저임금과 52시간제, 얻는 것과 잃는 것

영세자영업자 임금인상 폐업 속출실업자↑ 근로시간 줄여 매출도 ↓반면 취업자 고임금에 소비력 상승고용구조 개선·워라밸 효과 얻지만채용증가로 이어지긴 어려워 보여한국은 외국 여행자들에게 천국 같은 나라이다. 도시는 밤늦게까지 붐비고, 가로등과 네온사인은 밤인지를 잊게끔 밝다. 택시비도 싸고 늦게까지 돌아다녀도 안전하다. 늦은 밤까지 식당들은 붐빈다. 밤늦게 음식을 배달해서 먹을 수 있고,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들도 많다. 자영업자 비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두 배에 달하는 25%를 둔 우리가 누리는 혜택이었다. 유럽이나 선진국들을 여행하다 보면 이러한 혜택을 절감하게 된다. 도시의 가로등은 어둡고, 에어컨은 미지근한 바람이 나오고, 8시가 넘으면 음식점과 상가들은 문을 닫고 늦게까지 술을 마실 곳이 없다. 역시 우리나라가 놀기 좋은 나라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그 많은 혜택을 제공해주던 자영업이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 대부분이 망한다는 자영업의 치열한 경쟁 상황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자영업자들이 집단적으로 더 이상 자영업 하기 어렵다는 한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세한 자영업자에게 종업원 임금을 10% 올려주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고, 많은 자영업자조차 버는 돈이 최저임금 수준밖에 안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 52시간제는 자영업 매출조차 줄이고 있다. 긴 노동에 쌓인 피로를 회식과 술로 풀었는데, 일찍 끝나고 집에서 가족들과 같이 보내거나 여가나 취미활동을 하는 직장인들이 늘어서 음식점 매출이 줄고 있다. 자영업 상황이 IMF 때보다 안 좋다는 여론의 불만 속에 경기 지표들도 하락세로 돌아서고, 고용 상황이 악화되면서 모든 경제 문제의 원인이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라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말 그런 것일까? 먼저 우리나라는 왜 자영업이 많은지를 볼 필요가 있다. 기업, 특히 대기업의 고용 비중이 낮기 때문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고용자의 수를 늘리기보다는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더 좋다. 노동의 유연성이 낮은 상황에서 노동자의 단결을 막고, 주당 68시간까지라는 긴 노동 시간으로 임금인상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취업 시장이 어려우니 우선 자영업이라도 할 수밖에 없고, 긴 노동의 스트레스를 격렬하게 푸는 방법은 회식과 술이기에 이는 자영업의 수요가 되어 주었다. 이러한 유흥문화가 주 52시간제로 타격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이에 더해 최저임금 인상은 영세한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저임금 경쟁력을 빼앗아 실업을 증가시키고, 폐업을 늘려 고용을 감소시키는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은 경제학의 상식이다. 반면에 취업자는 상대적 고임금과 노동시간 감소에 따른 소비력 증가라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소득주도 성장이 노리는 효과이면서도, 고용의 감소라는 역풍에 직면하게 되는 한계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추겠다고 한발 물러났다. 그럼 52시간제는 고용을 늘려줄 것인가? 그렇게 될 가능성은 높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제조업 가동률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고용을 늘릴 요인이 약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52시간제가 자영업 감소와 기업 고용 증가라는 원하는 결과를 얻더라도 전체적으로는 플러스, 마이너스여서 고용구조 개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의 효과는 있겠지만, 고용의 증가로 이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이 절실한데, 혁신의 동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방향을 못 잡고 있다. 4차산업 혁명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규제개혁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혁신성장동력으로 빅데이터,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드론 등을 강조하며 여전히 기술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다. 정부가 지도하겠다는 관료적 사고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사람중심 국가 R&D혁신'이라는 모호한 개념에 매달려 있다. 혁신이 일어나는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조차 부족해 보인다. 신규 고용과 혁신은 주로 기술 기반의 창업에서 나온다. 그리고 창업의 기반이 된 많은 기술은 국가 운영을 혁신하고 첨단화하기 위한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에서 나오고 있다. 기업보다 못한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과 운영 시스템을 가진 국가, 정부가 혁신을 이끌 수 있단 말인가?/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8-08-06 이명호

[이영재 칼럼]먹방과 비만

보건복지부 '방송규제' 밀어붙이기식 잘못우선 '비만 심각성' 공지후 영향 미쳤는지최소한 통계 자료라도 냈다면 좋았을 것그후 방송사 자체적 제재했다면 더 효과적지난주 보건복지부가 '국가 비만 관리 종합 대책'을 내놓으며 '먹방' 가이드 라인 운운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시청자의 예상치 못한 격렬한 저항에 식겁한 보건복지부는 "진의는 그게 아니었다"며 얼른 발을 뺐다. 그럴 줄 알았다.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모르지만 지금 먹방 인기가 어느 정돈지도 모르는, 정말 세상 물정 캄캄한 공무원임이 분명하다. 며칠 전 종편 예능 프로를 보다 깜짝 놀랐다. '밴쯔'가 출연한 것이다. 밴쯔가 누군가. 인터넷 먹방의 지존. 먹방 콘텐츠만으로 구독자 250만 명을 돌파하고 연간 10억의 수입을 올린다는 슈퍼스타다. 밴쯔는 한 상 가득 쌓인 음식을 깔끔하게 먹어치우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짜장면 10그릇을 13분에 해치웠다. 그의 먹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대리만족하며 열광한다. 그가 마침내 인터넷 방송을 평정하고 종편 방송 고정출연자가 됐다. 우린 이제 곧 지상파에서도 음식을 먹어치우는 밴쯔를 보게 될 것이다. 시청률만 오른다면 무엇이든 하는 방송사들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방을 우려하는 시선도 없진 않다. 먹방에 채널권을 뺏겼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사실 먹방이 많긴 많다. 못 믿겠다면 직접 확인해 보면 안다. 지상파, 종편, 케이블 할 것 없이 예능 프로 중 50% 이상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먹는 것과 연결된다.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다루는 예능은 예외 없이 무언가를 열심히 해먹는다. 냉장고까지 통째로 들고 나와 요리 대결도 벌인다. 심지어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 가서 한 끼 얻어먹는 예능도 있다. 상황이 이러니 국민의 건강, 나아가 비만에 신경을 써야 하는 정부가 폭증하는 먹방에 우려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이 비만이고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천문학적이다. 그러나 먹방이 비만과 어느 정도 인과관계인지 밝혀진 것은 없다. 통계도 없다. 다만 추측만 가능하다. 방송에 맛집이라고 소개되면 도대체 그 많은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다음날부터 식당 앞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방송에서 탄수화물은 적게 먹고 버터와 육류 등 고지방 음식이 건강과 다이어트에 좋다고 소개되면 실제 마트에서 버터 품귀 현상이 일어난다. 2년 전 실제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심지어 삼겹살을 버터에 구워 먹는 삼겹살 버터구이까지 등장해 불티나게 팔렸다. 누군가 맛있게 먹으면 따라 먹게 되고, 좋다는 소문을 들으면 식당으로, 마트로 달려간다. 이게 먹방의 위력이다. 얼마 전 중학교 30명과 함께 '미래의 꿈'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요리사가 되겠다는 학생이 8명으로 단연 1위였다. 의사 변호사가 되겠다는 학생은 1명도 없었다. 이게 쿡방의 위력이다.2013년 4월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뉴욕의 공공장소에서 500㎖ 이상의 탄산음료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뉴욕 시민 3명 중 1명이 심각한 비만이라는 조사 결과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패소 후 블룸버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것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다. 우리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인 비만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자 인간의 수명을 늘리려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저소득층 비만을 매우 심각하게 봤다. 부자는 알아서 살을 뺀다는 것이다. 중독성이 강한 탄산음료에 세금을 높게 매긴다고 해서 이미 맛에 중독된 저소득층의 소비가 크게 줄지 않을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었다. 차라리 공공 장소에서 탄산 음료을 팔지 못하게 하는 게 효과가 있다고 본 것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논리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에 월스트리트 저널은 "대용량 탄산음료가 대중의 건강에 좋은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블룸버그 시장이 제대로 된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먹방 규제도 보건복지부 절차에 무리가 있었다.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우선 비만의 심각성을 공지하고, 먹방이 비만에 영향을 미치는지 최소한 통계 자료라도 제시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 후 정부의 인위적 규제가 아닌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규제하는 방법을 택했다면 훨씬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 '먹방'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국민들도 꽤 많기 때문이다. 모처럼 좋은 기회를 놓쳤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7-30 이영재

[홍창진 칼럼]가벼운 마음

미래에 대한 걱정 쌓아둔다고당장 해결 되는 일은 없다주어진 현실 외면하라는게 아니라달라지지않는 일 고민에 발목잡혀고통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것해마다 여름이 되면 성당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캠프 준비로 바쁩니다. 당연히 신부는 봉사해줄 청년을 찾습니다. 그러나 요즘 도시 성당에서 청년 봉사자를 찾기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한국에 사는 청년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안고 있는 걱정이 있습니다. 바로 취업입니다. 취업문이 너무 좁은 탓에 방학 동안에도 쉬지 않고 스펙을 쌓아야 합니다. 물론 봉사도 스펙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성당 오빠, 성당 언니 스펙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해외연수나 국내에서의 극한 체험, 전공과 관련한 자격증 취득 등이 그나마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스펙입니다. 어떤 청년은 스펙을 쌓기는커녕 당장 학비 마련도 힘겨워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며 더위와 씨름하고 있습니다.이 위기를 넘기고자 어머니 봉사자를 모집했습니다. '모집 인원 ○○명'에 지원자는 정말 0명이었습니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은 겁니다. 청년들보다는 어머니들 사정이 좀 낫겠지 싶어 어머니 봉사자를 모집했지만, 그분들 상황은 청년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어머니들 대부분이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무게를 감내해야 하는 고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가사 노동과 아이 교육까지 도맡아야 하니, 일요일에 성당에 나와 주일미사에 참석하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성당의 주일학교 교육이 아직 무급봉사에 의존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유급교사로 전환하지 않으면 길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마지막으로 아버지 봉사자를 모집해봤습니다. 공고를 내기도 전에 앓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옵니다. "성당 아이들 교육도 중요하지만 우리 아빠들 죽어나가는 사정도 좀 들어주세요." "해고 걱정, 폐업 걱정, 대출 상환 걱정! 신부님,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버지 봉사자 모집은 방도 못 붙이고 계획을 철회했습니다.여름 캠프 봉사자 모집은 아쉽게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청년들과 어머님, 아버님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많은 일을 감당하며 바쁘게 사는 것은 좋은데, 그분들에게서 지친 모습만 보일 뿐 희망이나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걱정과 불안만 가득한 그들의 눈은 다가올 미래를 암울하게 응시하고 있었습니다.우리 마음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보면 얼마나 될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마음을 어떻게 측량할까 싶지만, 실제로 잴 수 있다고 해도 아마 0.0001그램도 안 될 겁니다. 그러나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그 마음이 걱정과 근심 때문에 천근 혹은 만근처럼 무겁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감내해야 할 현실의 무게는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 밖의 위기가 산적해 있다고 해서 이를 고스란히 내 안으로 가져와 차곡차곡 쌓아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미래에 대해 걱정을 쌓아둔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없습니다. 어차피 걱정한다고 당장 무슨 일이 바뀌지 않는다면 미래는 신의 영역에 맡긴 뒤 걱정을 내려놓고, 우리는 그저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주어진 현실을 외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고민한들 달라지지 않는 걱정거리에 발목을 잡혀, 내게 주어진 오늘을 고통으로 점철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을 만나게 됩니다. 30% 인원 감축을 통보한 직장 현실, 대출까지 받아 장만한 아파트가 급락해 이자도 못 갚는 현실, 가진 돈 모두 털어 창업을 했는데 경제 상황이 악화돼 폐업 위기에 몰린 현실은 분명히 내 노력과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이런 현실에 놓여 있다고 해도 그 현실이 내일 똑같이 펼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 그간의 인생 경험에서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쁜 일이 항상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좋은 현실도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는 것을, 신은 늘 그래 왔다는 것을.여름 행사 봉사자를 모집하며 어느새 저도 모르게 제 마음에 근심과 걱정을 얹어 놓고 힘겨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걱정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봉사자들이 없으면 없는 대로 떠나 볼 생각입니다. 바다에서 아이들이 하루 종일 신부와 수영만 해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고, 나라도 없었으면 그마저도 못하지 않을까 싶어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8-07-30 홍창진

[방민호 칼럼]고독한 항해사 최인훈 선생

소년시절 북한 초기사회주의 경험월남이후 그의 문학에 결정적영향전후 남북 이념대립 '광장'에 녹여자신을 난민간주 이상적사회 추구고단했던 탐색자여 고이 잠드소서작가 최인훈 선생이 영면에 드셨다. 공식적으로는 1936년생이라지만 실제로는 1934년생, 1·4 후퇴를 앞두고 북한 원산에서 부산으로 월남해서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셨다. 원래 원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계셨지만 여기 와서 다시 입학해야 했고 부모님이 학교 다니기 좋게 출생 연도를 낮춰 주었다고 한다. 필자는 요즘 이른바 월남문학이라는 것에 관심이 간다. 처음 이 말을 쓸 때는 국문학자가 베트남 문학을 공부하느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렇지만은 않다. 1945년 8월 15일 해방부터 1948년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을 거쳐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에 이르는 약 8년의 세월 동안 남으로 내려올 사람들은 '전부' 내려오고 북으로 올라갈 사람들은 '전부' 올라갔다. 최인훈 선생은 원산고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 이른바 원산철수라는, 흥남철수 직전의 철수 작전 때 한 가족 모두가 미군 수송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최인훈 문학은 바로 이러한 '월남'이 낳은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결코 간단치 않은데, 왜냐하면 소년 최인훈은 해방부터 월남하기까지 모두 5년 정도 북한 초기 사회주의 체제를 경험한 사람이 되었고 이것이 그의 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해방이 되자 소년 최인훈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중에 최인훈은 그의 긴 소설에서 해방이 되자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무엇보다 사람을 때리지 않는 것이었다고 했다. 해방되기 전에는 조선 사람은 어디서든 얻어맞았다고 했다. 병원에서까지 사람을 때렸다는 문장을 읽을 때 필자는 가슴이 아팠다. 해방이 되자 북한 사회주의 정권은 학교나 병원에서 아이들을 때리지 않는 대신 유산자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살던 곳에서 추방시키고 학교에서는 계급주의 사상교육을 기계적으로 시행했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목재소를 운영하던 최인훈의 부친은 유산자 계급으로 몰려 재산을 내놓아야 했고 원산으로 이주했다. 원산 중학교의 소년 최인훈은 소설에 따르면 공부를 잘했어도 계급이 다르다는 이유로 담임선생이 사주하는 냉혹한 '자아비판'에 시달려야 했다.원산고등학교에 가서는 경험의 빛깔이 달라지기는 한다. 그러나 전체주의-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체험적 인식은 월남 후 그가 자신의 이념적 방향을 조율해 나감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과연 이상적인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이분법적 대립을 거절하는 최인훈 문학의 고유한 특질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문제작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친일파가 득세하는 남한 사회를 떠나 월북하지만 북한 체제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 그는 6·25 전쟁 중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남과 북이 아닌 제3국을 선택한다. '회색인'이라는 소설 속 주인공 독고준은 '임박한 파국'을 앞두고 혁명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친구의 주장을 거절하고 사랑을 원리로 삼는 이상적 사회를 구상하기 위한 고독한 작업에 몰두한다. 앙가주망, 곧 참여냐, 순수냐 하는 이분법적 선택을 거절하는 독고준의 '회색빛' 이념은 순백색이나 순적색보다 진실에 가까운 빛이라고, 필자는 늘 생각하고 있고, 지금도 그것은 그러하다.미군 수송선을 타고 월남했던 그는 그 자신을 '난민'으로 간주했고 전후의 한국 사회 또한 '난민촌'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스마트폰, 인터넷에 온갖 첨단 문화로 들썩이고 있으므로 이런 규정은 비록 비유적일지라도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모른다.그러나 이 고도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현대 문명이라는 거친 바다를 풍파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도는 폐선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으리라. 아무리 높이 쌓아 올리는 고층 아파트에서도 싸구려 임시가옥 냄새가 나지 않던가? 오래된 것들은 어느 사회에서보다 일찍 제 빛을 잃고 혼탁한 대기 속으로 사라져버리지 않던가?최인훈은 한국 사회가 난파선으로 현대의 바다를 이리저리 표류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한 작가였다. 그러기 위해 그는 '화두'라는 소설이 보여주듯 미국과 구 소련이라는 두 개의 제국을 차례로 순례했다. 제국과 식민지, 좌와 우, 남과 북이라는 이항대립의 주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평생을 건 긴 여행을 했다.고단하고 외로웠던 문명의 탐색자여, 풍랑치는 현대 바다 위 고독한 항해자여, 이제 고이 안식을 취하소서. 그대의 오랜 손때 묻은 키를 누군가는 이어받을 수 있으리니./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8-07-24 방민호

[이남식 칼럼]공간과 미래 교육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는창의성·혁신·기업가 정신 갖춰야이를 위해선 교육공간 변화 필수이재정 도교육감, 우수학생 육성학습의욕 돋우는 행정 펼치길 바라미국 서해안 샌디에고 인근의 라 호야에는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은 솔크 생명과학 연구소가 있다.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요나스 솔크 박사가 1960년에 설립한 연구소로 지난 58년간 11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이곳을 거쳐 간 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탁월한 연구 성과를 거둔 연구기관이다. 그런데 이곳의 연구원들은 하나같이 바닷가에 마치 수도원과 같은 분위기의 연구소 공간이 창의성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루이스 칸이라는 걸출한 건축가가 설계했는데 솔크 박사는 건축가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건축 아이디어를 주었다고 한다. 소아마비 백신 연구 중에 수년간 진척이 없자 솔크 박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당 (Basilica of St. Francis of Assisi)을 방문하여 머물게 된다. 그런데 이곳의 독특한 공간, 13세기부터 지어진 고딕과 로만 양식의 높은 천장 그리고 기둥이 정렬된 아케이드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백신 연구를 완성할 수 있었다. 루이스 칸은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바다, 석양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공간을 디자인한 결과 그간의 탁월한 연구 성과가 공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가 되었다. 원스턴 처칠의 '우리가 건물을 짓지만, 결국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는 명언처럼,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최근에는 기능적 MRI (fMRI)를 활용하여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특히 핀란드에서는 미래지향적인 교육을 위하여 학교의 교육공간을 바꾸기 시작했다. 천장의 높이가 높고 교실의 벽을 없애며, 가구 또한 이동 가능하며 혼자 또는 그룹으로 수업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배치 가능하게 하여 문제해결 중심, 그리고 학생 참여형 교육으로 그 틀을 바꾸고 있다. 3년마다 OECD에서 실시하는 국제학생역량평가 (PISA 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에서는 전 세계 70개국 이상의 16세 학생을 대상으로 독해력, 수학, 과학 분야의 역량 평가 결과를 발표하는데 그간 한국은 세계 최정상 수준을 보여 왔으나 최근에는 싱가포르 중국 일본 대만 등에 밀리며 점점 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방 예산보다도 많은 매년 60조가 넘는 교육예산을 쏟아 붓고 있으며 경기도 또한 17조에 달하는 예산을 교육에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학생들이 학업에 의욕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상당수의 학생들이 기초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사회에 진출하게 되어 취직이 어렵고 소득격차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하루속히 개선하기 위해서는 수업의 공간을 개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경건축학 (neuro architecture)은 집중력을 높이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공간, 그리고 학생들이 학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공간을 조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교사들에게 거꾸로 교실을 아무리 하라 하여도 공간의 변화 없이는 수업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핀란드의 경우 숙제는 없으며 수업 중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서로 묻고 가르치는 참여형 학습으로 거의 100%에 가까운 학생이 교과내용을 이해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70% 정도 밖에 이해하지 못하므로 방과 후 학습이나 기타 사교육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는 창의성, 혁신, 기업가 정신을 갖춘 인재로 현재와 같이 교사 중심, 강의중심의 교육방식으로는 키우기 어렵다고 본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교육공간의 혁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겠다. 이제 경기도도 민선 교육감 2기의 새로운 출발을 함에 있어 미래교육에 대한 청사진을 만들어 우수한 학생은 더욱 우수하게 하는 동시에 평균 이하의 학생들이 학습의욕을 가지고 학습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는 교육행정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8-07-16 이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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