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윤인수 칼럼]문재인 정권, 국민 삶 속에 스며들라

코로나로 일자리 줄고 자영업자 무너지고…내가 죽겠는데 적폐청산·검찰개혁 무슨 소용국민, 자신 삶 외면한 정치과잉 선거로 심판文정부 '위기시대' 자성하고 실수 반복 안돼지난해 4월 이 칼럼 제목은 '절대 권력, 작은 일에 쓰면 안 된다'였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180석의 배타적 입법권력을 차지한 직후였다.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역사는 이를 증명하는 기출문제집"이라며 "당·청이 배타적 권력을 감당할 수 있는 민주적 역량을 발휘하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여권의 장자방 양정철은 "무섭고 두렵다"고 했다. 이해찬은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세웠다. 5월 칼럼 제목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대통령 권력'이었다. 집권 4년차에 돌입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70%를 넘었다. 행정, 사법, 입법권력 독점에 전례없는 임기 말 지지율. "대통령에게 행운일까" 물었다.1년 후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위기에 봉착했다. 집권세력 내부에선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참패가 위기의 시작일 뿐이라는 자성이 터져 나온다. "그때 '당헌·당규'를 안 바꾸고 그냥 '무공천' 했다면 어땠을까?" 한 언론이 "민주당 내부에서 최근 회자되는 질문"이라고 보도했다. 민주당은 자당 소속 당원의 성범죄로 인한 보궐선거엔 후보공천을 금지하는 당헌이 있었다. 도덕성을 버리고 당헌을 개정해 후보를 공천했지만 선거를 잃었다.대통령과 민주당에겐 뼈 아픈 가정법 질문이 적지 않다. '그때 정권이 조국과 인연을 끊었다면 어땠을까?' 조국을 윤석열에게 맡겨 놓았다면, 대통령의 '마음의 빚'은 남았겠지만 정권이 내로남불 오명을 뒤집어쓰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정권의 정의와 공정 지수는 높아지고, 윤석열은 대통령에 대한 '마음의 빚'을 자진사퇴로 갚았을 수도 있다. 임기를 마치더라도 정권을 향한 비수(?)가 되는 일은 없었을테다. '그때 180석이 아니라 과반인 150석가량만 얻었으면 어땠을까?' 지리멸렬한 야당이 반성도 없이 획득한 견제의석으로 사사건건 정권에 반대하다가 국정 실패의 책임을 공유했을지 모른다. 역사와 정치에서 가정법은 무의미하지만, 같은 실수를 막을 자성의 계기일 수는 있다.독립운동가 후손인 김원웅 광복회장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에서 다른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멱살을 잡혔다. 문재인 정권 내내 기승을 부렸던 기형적인 정치 과잉 현상이 빚어낸 결정적 파국이다.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우리 역사의 발원을 되새기며 우리가 하나임을 잊지 않는 신성한 제의가 폭력으로 얼룩졌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기원이다. 정치가 대한민국 발생 원점까지 오염시켰다.정치가 삶과 분리됐었다. 국민의 삶은 구체적 현실이다. 일자리가 있어야 하고, 월급과 장사 이문을 모아 집도 살 수 있어야 하며, 퇴직하면 남은 재산으로 연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코로나19가 무너뜨렸다. 일자리는 줄고 자영업자는 무너졌다. 정책의 빈틈을 타고 잉여자본이 몰리자 집값이 미치고 청년들은 한꺼번에 벼락거지로 내몰렸다. 수입 없는 노령자들은 종부세와 재산세 노이로제로 우울하다. 내가 죽겠는데 적폐청산이나 검찰개혁이 무슨 소용인가. 더구나 청산과 개혁은 주체의 위선과 결과의 반전으로 퇴색했다. 보수의 적폐를 청산하면서 진보의 적폐가 드러났다. 고위공직자 범죄를 추상같이 처벌해야 할 공수처는 고위공직 범죄 혐의자 의전에 극진하다.국민은 자신의 삶을 외면한 정치과잉 행위를 선거로 심판했다. 결과는 폭력적이다.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야당을 말살시킨 분노가 이번엔 여당을 향했다. 정치과잉이 정치부재를 잉태하는 한국정치의 부조리가 유권자들의 가학적 쏠림 현상을 강화하고 있다. 국민은 자신의 삶과 상관없는 정치에 분노하고 있다. 이 분노의 그물에 걸리면 말살된다.문재인 정권은 가정법 질문을 통해 자성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코로나19 위기는 여전하고 이를 해결할 현재의 정권이라서다. 위기의 시대, 정권의 불행은 국가와 국민의 폭망이다. 정권이 국민의 삶 속에 스며들기를 바란다./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1-04-12 윤인수

[이명호 칼럼]부동산과 주거, 미래의 관점에서 본 트렌드

코로나로 생활중심 집으로 옮겨져세계가전 스마트홈 제품 주목받아'로컬 생활권 재편' 가속화 될 전망부동산대책, 수도권 공급확대 아닌'라이프스타일' 지역 수요로 봐야주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눈에 띄는 것은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로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코로나19로 각국 정부에서 재정 부양책을 실시하면서 현금이 너무 많이 풀리고 유동성이 커진 것은 실물자산인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데 영향을 미쳤다. 경기 침체 속에서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적다면 크게 부동산이 폭등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코로나19가 가져온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의 활동 공간이 집으로 옮겨가고,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 등 집에서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주택에 대한 관심과 수요 증가에 일조했다.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이끄는 지역은 상대적으로 도심에서 벗어난 지역이라는 특징이 있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미국이나 유럽에서 인구 밀집이 높은 도심에서 인근 변두리 지역으로 이주가 늘어났다. 그러나 사실 코로나19 이전부터 도심에서 멀더라도 개발이 잘 되어있고, 주변 환경이 좋은 지역의 인구 유입이 지속되고 있었다. 수도권에서도 기존의 도심에서 벗어나 새롭게 정비된 아파트 단지 지역에서 집값 상승이 일어나면서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어떤 영향에 의한 주거문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코로나19로 증폭되었다고 봐야 한다.주목할 수 있는 현상은 홈코노미(Home+Economy)라는 새로운 흐름이다. 코로나19는 집에서 일하고, 수업하고, 쇼핑하고, 오락을 즐기고, 영화를 보고, 운동하는 등 많은 일상생활이 집을 중심으로 재편되도록 했다. 집은 안식처, 주거 공간을 넘어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의 중심 공간이 되면서 집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형성했다. 좋은 위치의 집이라기보다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인 집에 대한 수요이다. 가사노동이나 잠을 자는 공간에서 보다 여유로움과 휴식 등의 공간으로 집을 새롭게 인식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이다.이는 디지털 라이프가 가져온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기존에는 어떤 서비스를 즐기기 위해서는 특정 위치로 이동해야 했다.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 유통업이 자리 잡고, 그런 지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집의 가치가 높았다. 유명 백화점 인근, 더불어 유명한 학원 인근의 아파트 단지가 높은 부동산 가격의 공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이 온라인 쇼핑은 물론, 음식배달, 홈엔터테인먼트, 홈케어 서비스 등 생활의 중심을 집으로 옮기고 있다. 교통 요지라는 위치의 중요성이 줄어든 것이다. 백화점에 가지 않고 명품도 집에서 사게 되면서 백화점 인근에 사는 매력이 줄어들었다.결국 수십년간 유통산업을 대표해온 백화점, 대형 쇼핑몰 등 전통 유통사들은 코로나19로 위기를 겪고 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감하였다. 반면에 성장 기회를 맞이한 곳들도 있다. 온라인 쇼핑의 증가와 더불어 번잡한 곳을 피해 소비자들이 선택한 곳은 주거지에서 가까운 소규모 편의점과 가게였다. 근거리 쇼핑 선호도가 높아지자, 편의점업계는 오프라인 유통의 핵심축으로 떠올랐다. 편의점들은 기존 공공요금 수납, 현금인출, 휴대폰 충전 서비스 등의 서비스를 넘어 배달, 보험 판매, 무인 복합기 등 신규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위치의 평준화라고 할 수 있다.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올해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에서 주목을 받은 분야는 스마트홈 제품이었다. 가사 노동을 줄여주는 청소, 요리, 돌봄 로봇은 물론 집에서 운동을 하고, 오락을 즐길 수 있는 많은 제품이 등장하고 주목을 받았다.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더 발달하면서 상당히 많은 집안일이 자동화되고, 그만큼 사람들은 집에서 더 새로운 일을 즐길 수 있는 스마트홈 기기들을 원할 것이다. 집 근처를 중심으로 한 소비와 여가활동도 늘어날 것이다. 로컬의 재발견, 로컬 중심의 생활 재편이 가속화될 것이다. 이때쯤 되면 사람들은 점점 더 도심에서 먼 지역의 독특한 문화가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지역으로의 이동도 늘어날 것이다. 부동산 대책, 수도권 지역의 공급 확대가 대책이 아닐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이 있는 지역의 부동산 수요를 내다봐야 한다./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

2021-04-12 이명호

[홍창진 칼럼]꿈꾸는 자녀들

부모는 아이가 16세에 이를때까지꿈 실현토록 살피고 기반 닦아줘야자녀의 꿈에 부모의 꿈 실어선 안돼자식들 고통 몰아가는 불행의 시작의외로 많은 청소년들 괴로움 호소'내가 만일 결혼을 해서 자녀가 있다면 나는 과연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가끔 합니다. 부모들과 대화하다 보면 아이를 너무 자기 생각대로만 교육하거나, 자기 소유로 생각해 집착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러지 말라는 취지로 조언하면, 다른 얘기를 할 때는 신부님 말씀이라며 곧잘 수용하는 사람들이 유독 자녀 문제만큼은 지지 않고 맞섭니다. 심지어는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는 분이 뭘 안다고 나서느냐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저는 자녀가 태어나서 부모와 같은 하나의 인격체가 되는 때를 대략 16세로 봅니다. 그전까지는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자녀 교육은 16년 정도의 시간에 이뤄집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자녀의 인격 형성에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부모는 이 시기에 자신의 삶을 투영해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자녀를 통해 보상받으려 합니다. 어떤 부모는 출세를 자녀교육의 목표로 정하고,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스펙을 만들어 주기 위해 온 정성을 다 쏟아붓습니다.자녀를 잘 교육하려면 '목표 설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일전에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분은 자녀가 제발 우여곡절 없이 평탄한 길만 걸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혹시 본인의 인생은 우여곡절이 없었냐고 물으니 "말도 마세요. 저는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모두 겪었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본인인들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살았을까요. 세상사가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본인 스스로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미래에 산전수전 없기를 기대하는 건 상식이 아닙니다. 내 미래든 자녀의 미래든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측한대로 흘러가는 인생이 아니니까요.결국 자녀교육의 목표는 아이로 하여금 어떤 미래를 만나든지 유쾌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그토록 바라는 재물의 축적이나 지위의 확보만으로는 미래의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과연 미래를 개척하고 자기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아이 스스로 자기 마음속에 있는 꿈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잘 살펴보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꿈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이기도 합니다. 꿈을 이루며 살 때 사람은 온전한 자기 모습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를 그가 되도록 돕는 것이 교육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16세에 이를 때까지 꿈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해 주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함께 살피고, 그에 맞는 기반을 잘 닦아야 합니다. 16세가 지나면 이를 기반으로 제 스스로 알아서 나아가도록 놓아주어야 합니다.자녀의 꿈에 부모의 꿈을 실어선 안 됩니다. 더더욱 세상이 원하는 꿈을 실어서도 안 됩니다.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자녀를 고통으로 몰아가는 불행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부모의 이런 교육 때문에 제게 괴로움을 호소합니다. 외양적인 기질을 가진 아이들은 반항으로 의사 표시를 하지만 내성적인 아이들의 일부는 몰래 저 혼자 작은 자해를 하기도 합니다. 가뜩이나 험한 세상에서 자기 꿈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은 마당에, 부모의 방해로 좌절부터 체험하고 힘을 잃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사람은 무엇으로 살까요? 사람은 자신만의 꿈을 갖고, 이를 이루며 얻는 보람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꿈은 사람을 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동력을 잃은 배는 항해할 수 없습니다. 배가 힘차게 항해할 수 있도록 자녀의 동력을 빼앗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부모는 자녀의 꿈을 듣고는 한숨부터 내쉽니다. '우리 아이가 시류의 짧은 유혹에 현혹되어 연예인이 되려고 한다. 어쩌면 좋으냐!' 안정된 미래를 꿈꾸기는커녕 밥벌이도 안 되는 일만 고집한다며 볼멘소리를 합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입니다. 그들의 꿈에 힘과 격려를 보내주십시오. 직업 자체가 꿈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꿈이라는 동력으로 어떤 일을 준비하다 배를 갈아타기도 합니다. 동력만 있으면 배를 바꾸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꿈을 향해 전진하는 튼튼한 엔진만 있으면 오늘은 연예인, 내일은 소설가, 모레는 사업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지닌 잠재력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1-04-05 홍창진

[방민호 칼럼]'자연' 인간과 '국민' 인간

사람은 자연스러운 소산으로 탄생국가의 재산되고 권리·의무 짊어져청년·장년·노인… 삶의 시간 '훌쩍'어느쪽이 되든 '죽고 사는 일' 없는평화롭고 헛웃음 짓는 세상됐으면드디어 봄이 온 것 같다. 오는 것 같기만 하고 꽃샘추위에 날씨가 한참 흐리고 짓궂더니 이제야 뼈에 스며드는 한기도 가시고 산에 들에 꽃 천지다.진달래 하면 늘 생각하는 것은 저 북한산 진관사 계곡의 진달래꽃 사태다. 진달래꽃은 철쭉과 달리 무더기무더기 피면 제맛 아니건만 이상하게도 진관사 계곡 그늘에 늦게 오는 진달래꽃은 무리져 피어도 헐하지가 않다.언제 피었지 싶게 봉천고개 오르는 언덕에 샛노란 개나리가 황사 공기 속에서도 새 생명다운 빛을 낸다. 나무에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달리는 개나리의 초록빛 없이 노란 꽃들을 보면 그렇게 흔하디흔하건만 천해 보이지 않음은 왜일까 생각하게 된다.봄이라도 계절이 이제 막 바뀌어 천지의 기운이 달라 보이는 요맘때쯤 되면 사람은 역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존재로구나, 겨울이 아무리 좋아도 역시 봄이 좋아 사람들은 이렇듯 새 계절을 기다리는 것이려니 한다.봄이 이렇게 온 천지에 다가와 사람들로 하여금 봄빛을 즐기라고, 생명이 새로 맞는 새 계절을 누리라고 할 때, 서울대입구역 사거리를 지나다 보니, 아하, 선거철이구나 싶게 하는 각 당의 운동원들 모습이 보인다.어째서 이렇게 관심이 가지 않는 건지, 아침에도 무슨 무슨 후보들 지지율이며 동정 얘기가 인터넷 다음(daum) 뉴스 기사들 맨 윗단을 장식하고 있었건만, 들어가 볼 생각은 하지 않고 결말까지 알려주는 유튜브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클릭하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단일화다, 뭐다 해서 꼭 시선이 안 갔던 것만은 아닌데 막상 다 결정되고 보니 이제 뭔가 새로운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정신을 가다듬고 이번 선거만은 선거다, 어느 당이다, 누가 맞다 하는 얘기에 정신 다 쏟지 말고 이 아름다운 봄이 왔다 가는 하루하루의 동정에 눈과 귀를 잘 기울여 보겠다고 생각한다.사람은 세상에 날 때 이 세상에 가득한 옷이며 신발이며 어느 하나 가진 것 없이 벌거숭이로 나게 되니 이것을 가리켜 '자연' 인간이라 한다. 하지만 이 '자연' 인간은 오늘날에는 태어날 때부터 병원 신세를 지고 인공 의료 기계들의 도움을 빌리는가 하면 '나자마자' 국가에 신고하여 '국민' 인간으로 등록된다. 나오기는 엄마, 아빠의 사랑의 자연스러운 소산으로 아무 지닌 것도 없이 세상에 나오되 '나자마자' 국가의 재산이 되고 국가의 권리와 의무를 짊어진 '인공적' 존재로 전변되는 것이다.이렇게 해서 병역도 있고 선거도 있고 세금도 있고 코로나19 시절이라 살기 어렵다 해서 일인당 얼마씩 받는 혜택도 있게 되니, '국민' 인간이라는 숙명이 아예 저주받은 것만도 아니로되 하루도 이 '국민'임을 잊지 않고는 살 수 없을뿐더러 이 나라를 누가 이끌 것이냐, 누가 되어야 세상이 좋을 것이냐를 두고 하루하루 숨 가쁜 논의에 논쟁을 거듭하게 된다.그런 사이에, 생각해 보면 십 년도 가고 이십 년도 훌쩍 가버린다. '자연' 인간의 모습은 청년에서 장년으로, 그리고 노인으로 변모해 가고, 돌이켜 보면 삶의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허무감에 사로잡히는 때가 많아진다. 그런데도 또다시 하루하루는 '국민' 인간의 스케줄을 따지고 여론과 승패에 일희일비하는 일들로 채워지는 것이다.이번 선거에는 서울 시민은 시민이로되 '생애' 최초로 누가 되는지에 너무 골몰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어느 쪽이 되든 죽고 사는 일이야 일어나지 않으리라 기대하며 국민, 시민으로서 사는 것만큼이나 '나'라는 한 자연인이 '생로병사'의 낱낱의 과정을 이 봄에도 시시각각 겪어나간다는 자명한 사실을, 피부에 봄바람처럼 절감하여 지내보기로 한다.그리고 세상도, 어느 쪽을 선택하고 어느 쪽이 선택되든 죽고 사는 일 없는 평화로운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으면 한다. 지나고 보면 그렇게 난리 칠 일도 아니었던 것이라고, 헛웃음 지을 수 있는 세상이 조금은 더 가까워져야 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21-03-29 방민호

[이남식 칼럼]메타버스에서의 자산관리

새로운 메타버스시대 따라가려면실감콘텐츠관련분야 기술개발 시급코로나로 예술·엔터테인먼트 산업신기술과 융합되는 시기 더 빨라져한류콘텐츠에 도입 영향력 키워야코로나19로 인하여 비대면 경제가 확산되면서 온라인거래플랫폼 기업인 쿠팡은 뉴욕증시 상장을 통하여 기업가치가 100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수혜를 누리게 되었다. 아직까지 엄청난 누적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기업이 코로나라는 변수가 없었더라면 과연 이러한 뉴욕증시의 상장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처럼 지금까지 막연히 미래에 가능할 것이라 여기던 많은 일들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으며 그 중의 하나가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현실세계와 가상세계가 함께 공존하는 메타버스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현실세계와는 평행인 또 다른 디지털 트윈의 세계이거나 또는 완전히 다른 지배법칙 (또는 세계관)을 가지는 메타버스 세계 속에서 새로운 고민거리는 바로 무한 복제가 가능하며 원본과 복사본을 구별할 수 없는 디지털의 세상 속에서 어떻게 원본의 권리를 보존하며 아이덴티티를 지켜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동안 디지털권리관리(DRM·Digital Rights Management)를 위하여 출판자 또는 저작권자가 그들이 배포한 디지털 자료나 하드웨어의 사용을 제어하고 이를 의도한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제한하는 데 사용되는 기술을 개발하여 왔지만 콘텐츠와는 독립적으로 복사를 방지하거나 사용기간을 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추진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에 블록체인기술을 이용하여 대체 불가능 토큰(Non-fungible token, NFT)은 디지털 파일에 대한 소유권을 블록체인상에 저장함으로써 위조 및 변조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어 영구 보존하고, 그 소유권을 탈중앙화한 형태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그동안의 암호화폐는 본질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 실체에 대한 논란이 많았으나, NFT의 경우에는 게임, 음악 그리고 가상공간에서 거래되는 모든 아이템의 거래에 사용될 수 있으므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최근 전 세계 예술경매시장을 뒤흔든 사건이 발생했는데, '비플'이라 불리는 디지털화가 '마이크 윈켈만'이 경매에 부친 작품이 무려 6천930만 달러(약 785억원)에 낙찰되어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NFT는 유일무이의 대체 불가능성을 입증하므로 디지털 세계에서의 진본임을 효과적으로 보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NFT라는 '디지털 정품인증서'가 보편화되면 메타버스의 모든 디지털 자산들이 실세계에서처럼 거래되는 새로운 경제계가 열리게 되며 실세계에서의 자산에 덧붙여 가상세계에서의 디지털 자산이 더해지게 될 것이다. 만약에 BTS가 가상세계에서 멤버들의 캐릭터들에 NFT를 적용하여 팬클럽인 '아미'들에게 제공한다면 그 가치는 엄청날 것이며 아마도 이러한 금융상품을 거래하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최근 게임엔진 '언리얼엔진'으로 유명한 에픽게임즈에서 새로운 기능을 부가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메타휴먼' 크리에이터라는 것으로 진짜 사람과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정밀성을 가지고 가상세계에서의 '사람'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여기에 표정이나 동작, 목소리 등을 인공지능기술로 부가함으로써 진짜 사람처럼 여겨지는 인물을 가상세계에 등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가상현실을 넘어 진정한 혼합현실(Mixed Reality)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물론 현재는 게임의 캐릭터나 영화를 제작하는데 사용되지만 더 나아가서는 가상배우, 가상 인플루언서 등이 광고 등 다양한 콘텐츠에 나오게 될 것이다. 그간 딥페이크 등으로 AI를 이용한 진짜 같은 가짜에 대한 우려가 많았으나 만약 NFT를 적용한다면 디지털 정품을 가릴 수 있어 딥페이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새로운 메타버스의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실감콘텐츠와 관련된 분야의 인력양성과 기술개발이 국가적인 과제이다. 예술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이제 새로운 기술과 융합되는 시기가 코로나19로 말미암아 한층 빨라지게 된 것이다. 이제 한류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이때에 새로운 기술을 과감하게 한류 콘텐츠에 도입함으로써 한류의 영향력을 더욱 키우는 기회로 삼는다면 이야말로 코로나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2021-03-22 이남식

[윤상철 칼럼]누가 시대정신을 구현하나?

보선후 대선에 모든 관심 집중될것누구는 배제, 누군가를 동원한다면집권해도 사회 균열·갈등 심화시켜'국민참여 정치공동체' 외면한다면또다시 광적인 '빠정치'만 낳을 수도바야흐로 정치의 시대가 왔다. 4월7일 보궐선거가 끝나면 본격적인 대통령선거 국면이 펼쳐질 것이다. 오래전부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정치인들과 더불어 검찰총장 출신의 새로운 후보가 거론되고 있고, 이제까지와 다르게 다크호스의 등장도 점쳐지고 있다. 그들과 사회세력, 정당과 지지자들이 어울려 향후 1년간은 모든 관심과 언론기사가 대통령선거에 집중될 것이다. 이미 후보들은 선거공약에 가까운 주장이나 정책들을 내걸고 있다. 한 후보는 기본소득을, 다른 후보는 안심소득을, 또다른 후보는 공정과 정의를 내걸고 있다. 다 듣기에 좋은 말이고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이 내걸 만한 그럴듯한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하다. 다수의 정치평론가들은 새로운 대통령은 시대정신과 부합하거나 국가경영에 필요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노련한 한 정치인은 천운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짧은 정치적 연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오르거나, 대통령직의 수행이 기대에 못미치는 경우를 말할 것이다.먼저 한국의 대통령들이 시대정신을 스스로 잘 구현했는지를 돌이켜 보기로 하자.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와 반공이었고, 박정희는 경제산업화와 민족통일, 전두환은 정의사회구현, 복지사회건설, 선진조국창조, 노태우는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 김영삼은 민주주의와 군정종식, 김대중은 평화적 정권교체, 노무현은 특권과 기득권 타파, 이명박은 경제살리기, 박근혜는 경제민주화였다. 우파의 대통령들은 자신들이 구상하는 사회만들기를 시대정신으로 보았고, 좌파의 대통령들은 특정한 사회적 대상에 대한 비판 혹은 배제를 통한 새로운 사회 만들기였다. 우파의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슬로건으로 사회적 통합의 구상을 말했던 데 반해, 좌파의 대통령들은 사회적 균열을 포착하되 통합된 사회는 제시하지 않는 방식을 취하였다. 우파의 대통령들은 국민 모두의 참여를 독려하였지만 이에 따르지 않는 국민들은 배제될 운명을 만들었고, 좌파의 대통령들은 처음부터 일정한 국민들을 배제함으로써 좋은 나라, 나라다운 나라를 꿈꾸었다.문재인이 취한 시대정신은 공정, 평등, 정의였다. 그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추구한 공정, 평등, 정의는 모두가 아닌 누군가를 배제하는 좌파 전래의 시대정신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른바 적폐청산으로 그의 임기 대부분을 보내고 말았다. 그의 공정, 평등, 정의는 자기들만의 내로남불이자 부패완판으로 기울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가 이미 나오고 있다. 언론에 거론되는 차기 대통령 후보가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고 그가 시대정신을 잘 포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하니 말이다. 다른 좌파의 후보들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이나 안심소득은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를 시대정신으로 보고 있지만,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통한 소득과 자산이 많은 이들을 설득하지 않고는 또다른 균열의 정치로 나아갈 뿐이다.요컨대 누군가를 배제하고 누군가를 동원하는 시대정신은 설사 집권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사회의 균열과 갈등을 심화시킨다. 이와 관련하여 이른바 차기 대선구도가 어떻게 치러질 것인가가 거론된다. 제3지대 형성이나 여야 정당들의 분열 가능성 등이 거론된다. 양자구도보다는 다자구도가 더 유력하게 전망되기도 한다. 여권 지지층에서 이탈한 2030세대, 야권으로 옮겨가지 않는 중도층, 부동산 문제에 분노하는 수도권 유권자 등 사회집단들이 거론된다. 이런 구도일수록 특정 세력이나 집단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다른 세력을 위압하지 않는 유연한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유권자들은 시대정신을 내건다고 쉽게 마음을 내줄 수 없는 경험을 이미 치렀기 때문이다.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타협으로서의 민주주의와도 정확하게 부합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가 사라진 민주주의는 공화국의 자치정신과 충돌한다. 모두가 주체로서 참여할 몫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는 게 시대정신이라고 말하지만, 이로써 국민 모두를 포섭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국민들이 참여하여 스스로의 정치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하는 책임과 의무이자 권리를 말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자기들만의 집단주의적이고 광적인 '빠정치'만을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시대정신을 말할 수 있지만, 개개의 살아있는 모든 국민이 이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21-03-15 윤상철

[전호근 칼럼]푸른바다거북의 오디세이

석달간 3800㎞ 귀향길 성공한 거북언젠간 제주 모래톱 찾아 산란 기대온 바다에서 멸종 않고 살아갔으면인간은 우주에서 그리워하기 보다지구에서 함께 살아갈 것 궁리해야푸른바다거북은 해양 생물 중에서 가장 신비하고 아름다운 동물의 하나로 꼽힌다. 바다거북과에 속하는 푸른바다거북은 큰 것은 등딱지의 길이가 150㎝, 몸무게가 200㎏에 이를 정도로 비교적 대형에 속하는 종이며, 자연상태에서 수명이 80년을 넘을 정도로 장수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등딱지가 아름다운 초록빛이라 푸른바다거북으로 불리는 이들은 본래 대서양, 인도양, 지중해, 태평양 등 전 세계의 바다에 고루 분포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남해안과 동해안 일대에서도 자주 발견될 정도로 흔했다.우리나라 인근에 사는 푸른바다거북은 일본 오키나와 해안에서 알을 낳고 일부는 한반도 남쪽 해안이나 동해안 쪽으로 올라와 서식하는데, 국립수산과학원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부터 2009년까지 겨우 26마리가 발견되었을 뿐이며 최근에는 지난 2019년에 죽은 개체가 포항에서 발견된 이래 더 이상 살아있는 개체가 확인된 적이 없다. 이들은 한때 개체수가 수백만 마리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개체수가 급감하여 대부분 국가에서 보호조치가 내려져 있는 상태다.푸른바다거북의 개체수가 급감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광범위한 해양오염이라고 한다. 실제로 폐그물에 걸려 익사하거나 비닐을 해파리로 착각해 흡입했다가 숨이 막혀 죽은 바다거북이 여러 차례 발견되기도 했다. 그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서식처를 보호하고 해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성과는 아직까지 미미한 실정이다.바다거북은 적어도 1억5천만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구의 바다 곳곳을 누비며 살아왔다고 하니 6천500만년 전에 공룡이 멸종했던 백악기 말 대멸종에서도 살아남았고, 기껏해야 몇 백만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난 인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지구 생물의 주인공 역할을 해왔다고 하겠다. 그런 바다거북이 지금 인간의 무책임함 때문에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현재 푸른바다거북을 비롯하여 바다거북 7종 중 6종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그런데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인공 부화한 푸른바다거북 여덟 마리를 제주 바다에 풀어주었더니 그중 한 마리가 석 달 동안 무려 3천800㎞를 헤엄쳐 어미 거북의 고향인 베트남 해안까지 갔다고 한다. 가히 푸른바다거북의 오디세이라고 할 만하다.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자신의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험난한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항해 중에 세찬 바람이나 거센 파도는 말할 것도 없고 귀향을 방해하는 온갖 괴물들과 사투를 벌이는가 하면 사이렌의 유혹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돛대에 자신의 몸을 묶기도 하고 키르케의 마법에 걸려 부하들과 오디세우스 자신이 돼지로 변하기까지 하는 등 온갖 어려움을 겪는다. 그럼에도 오디세우스는 포기하지 않고 끝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가 고향을 떠난 지 20년이 흐른 뒤였으니 청년 오디세우스는 중년이 넘어서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모르긴 몰라도 푸른바다거북의 귀향길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석 달 동안 3천800㎞를 갔다면 하루에 40㎞ 이상을 헤엄쳐야 했을 테니 잠시의 쉴 틈도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GPS도 없이 그 먼 거리를 헤엄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자신의 고향에 정확하게 도착한 것을 보면 참으로 놀랍고 갸륵하다. 도대체 그 푸른바다거북은 왜 자신이 가본 적도 없는 어미 거북의 고향을 찾아갔을까?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아마 인간이 고향을 찾아가는 이유와 같을지도 모르겠다.연구진은 제주 바다에 방류한 거북이들이 언젠가 다시 제주 모래톱을 찾아와 산란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제주의 모래톱이 푸른바다거북의 고향이 되기를 바라는 것일 테다. 나는 꼭 제주의 모래톱이 아니라도 좋다고 생각한다. 제주든 베트남이든 애초에 푸른바다거북의 서식지는 지구의 온 바다였으니 모든 푸른바다거북이 지구라는 고향에서 멸종하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푸른바다거북의 고향 지구는 인류의 고향이기도 하니까 말이다.P.S. 달나라며 화성에 인류의 새로운 거처를 시도해보겠단다. 우주로 나간 인간은 고향에서 헤엄치는 푸른바다거북을 내내 그리워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느니 푸른바다거북과 이 고향 지구에서 함께 살아갈 것을 궁리할 일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1-03-08 전호근

[윤인수 칼럼]이재명 對 윤석열

대항해 선두경쟁 유지하려면 바다 읽어야대중의 집단적 지성·감성이 '시대정신' 예고대권이라는 신대륙에 인도할 가장 큰 바람그 바람 못 찾으면 민심의 바다는 좌초시켜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직 보너스를 톡톡히 챙겼다. 8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32.4%로 1위에 올랐다(TBS·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여권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4.1%,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4.9%로 2, 3위를 기록했다. 14.9%였던 1월 지지율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총장직을 던진지 나흘 만에 터진 상종가다. 검찰총장 징계 정국이 끝나면서 흐릿해졌던 정치적 존재감이 사직서 한 장으로 훨씬 선명해졌다. 이 지사가 유탄을 맞았다. 총장 징계 정국이 종료되면서 윤석열이 여론의 시야에서 멀어지자 모든 여론조사들이 차기 대권후보 1위로 그를 지목했다.군주민수(君舟民水). 지도자는 민심의 바다에 뜬 배다. 민심의 바다는 너울성 파도가 유난히 심하다. 배는 파도 속에 가라앉아 솟았다 가라앉았다 반복하며 항해해야 한다. 파도의 이랑에 올라탔다 환호하고 고랑에 처박혔다 절망하는 얇은 인격으로는 민수(民水) 항해가 불가능하다. 영국인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 대신 그의 정적에게 국가재건을 맡겼다. "전쟁에서는 한 번 죽지만 정치에서는 여러 번 죽는다." 처칠의 통찰은 지금도 유효하다. 윤석열이 뜬다고 이재명이 절망하고, 이재명이 주춤한다고 윤석열이 우쭐할 일이 아니다. 정치에서는 여러 번 죽는다는 금언은 여러 번 살 수도 있다는 역설적 맥락을 포함하고 있어 희망적이다. 대권을 향한 대항해는 이제 시작이다. 요체는 파도에 전복돼서 침몰하지 않는 것이다.이 지사에게 윤석열은 항해의 끝에 마주할 파도다. 천운이 따른다면 윤석열 파도는 아예 없을 수도 있다. 집권여당의 승인이 관건이다. 경선이라는 파도를 무사히 넘어야 한다. 민심의 너울보다 당심의 너울이 더욱 고단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대선후보 경선을, 친문 핵심 전해철 행안부 장관과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을 치른 이 지사다. 경선은 치열했고 팬덤의 충돌은 심각했다. 반석 같은 문재인 팬덤은 진영 안에서 사람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민심은 현재의 권력보다 개선된 권력을 희망한다. 이런 민심에 부응하려면 상처 입은 현재 권력과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결이 전혀 다른 당심과 민심은 삼각파도를 빚어낼 것이다. 이 지사가 대항해 중에 맞이할 가장 큰 파도다.윤석열의 가장 큰 위기는 장판처럼 매끄러운 바다다. 잔잔한 바다는 바람이 없다는 증거다. 바람이 없으면 파도도 없지만, 배 또한 앞으로 가지 못한다. 잊혀지면 죽는다. 정권이 일으킨 박해의 폭풍우는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 민심의 바다에 화려하게 진수시켰다. 그 폭풍우가 잠시 잠잠해지자 민심의 바다도 잔잔해졌고 그는 항해를 멈출 판이었다. 기적처럼 '검수완박' 폭풍이 불었고, 파도가 일렁이자 사표를 던지고 항해를 재개했다. 하지만 신풍(神風)의 기적은 두 번으로도 과분하다. 이젠 정권의 박해를 받는 검찰총장이 아니다. 검증 없이 정치인, 대권주자로 환골탈태할 수 없다. 검증의 파도가 쉴 새 없이 사납게 달려들 것이다. 무주공산인 야당에 무임승차하는 쉬운 선택은 안락한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지금 이재명 지사와 윤석열은 대항해의 선두에서 경쟁한다. 선두 경쟁을 유지하려면 바다를 읽어야 한다. 가까운 파도 보다 먼 파도를 바라보고, 잔잔한 바람에서 큰바람을 찾아내야 한다. 대중은 중우(衆愚)가 아니다. 대중의 집단적 지성과 감성이 시대정신을 예고한다. 시대정신은 대권이라는 신대륙에 인도 할 가장 큰 바람이다. 민심은 가치가 흔들리고 질서가 어긋나는 혼돈의 바다 너머를 동경하고 있다. 인격과 경륜으로 시대정신에 조응하기 바란다. 그 바람을 찾지 못하면 민심의 바다는 이재명-윤석열 선두그룹을 좌초시킬 것이다. 이재명은 여권의 대세인듯하여, 윤석열은 야권의 대안인듯하여 어지러운 글을 올렸다./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1-03-08 윤인수

[이명호 칼럼]일하는 시간 줄이기가 복지

취업자 1인 年노동시간 1993시간OECD 평균보다 '260시간' 많아현명한 사회는 일하는 시간 줄여복지비 지출은 줄이고 생산성과행복을 늘리는 선택을 할 것이다조삼모사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원숭이를 기르던 노인이 식량이 부족해지자 아마 원숭이에게 아침과 저녁으로 4개씩 주던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주기로 했다. 원숭이가 아침에 4개 먹던 것을 3개 준다고 반발하자 노인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주기로 하니 원숭이가 만족해했다는 이야기다. 합은 7개로 똑같은데 먼저 4개를 준다는,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에만 급급하는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다. 그럼 우리 인간은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주던 것을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주는 것으로 바꿔도 합이 7개로 같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할까? 아마 많은 사람들은 바뀌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침에 1개 덜 받았는데 저녁에 1개 더 줄 것인지 불안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신뢰의 정도에 따라 변경을 수용하는 정도가 차이가 날 것이다.이 비유를 이렇게 대치해보면 어떨까. 한 사회에 일할 수 있는 사람이 10명이 있다. 그런데 8명만 취업자이고 하루에 10시간 일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80시간의 생산활동이 이뤄진다. 취업자 8명에게서 세금 1씩 걷어 일이 없는 빈곤한 2명에게 4씩 생계 보조금을 준다. 그런데 한 노인이 다르게 바꾸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취업자 8명이 10시간씩 일하던 것을 8시간 일하는 것으로 줄이고, 나머지 2명도 8시간 일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10명 모두 8시간 일하게 되어 사회 전체적으로는 동일하게 80시간의 생산활동이 일어나 경제 규모는 변동이 없다.이전의 취업자는 소득이 10에서 8로 줄지만 일이 없던 2명의 복지비로 나가던 세금 1이 줄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1만 감소한다. 일이 없던 사람도 복지비로 4를 받던 것에서 일해서 8을 받을 수 있어 행복하다. 이전의 취업자는 소득이 10에서 9로 줄었지만, 노동시간이 2시간 줄어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된다. 소득 1을 줄여 2시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만족도는 2배가 된다. 2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자녀와 함께 놀거나 공부를 가르치면 가족도 화목해지고 자녀들도 행복해할 것이다. 학원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일이 없던 2명이 일을 하면 그 가족과 자녀들도 행복해할 것이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행복은 증가한다.기업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총 노동시간은 80시간으로 같지만, 취업자가 2명이 증가하여 그만큼 사람들의 교류에서 생겨날 새로운 아이디어도 2개 더 늘어나고, 8명의 경쟁에서 10명의 경쟁이 되어 더 뛰어난 인재를 발굴할 수 있다. 취업자도 과로하지 않고 일과 생활, 휴식의 밸런스를 유지하여 실수와 사고가 줄고,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전 취업자는 줄어든 1의 소득을 만회하기 위해서 더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하게 된다. 결국 기업의 생산성은 증가하게 된다.이것이 노동시간이 적은 선진국이 계속해서 잘 사는 비결이다. 201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취업자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1천993시간으로 OECD 평균대비 260시간 많다. 미국 1천780시간, 일본 1천680시간, 독일 1천390시간이다. 선진국 대비 노동시간이 긴 만큼 노동생산성은 더 낮아지게 된다. OECD 주요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US달러, 2018년 기준)은 한국 39.6, 일본 45.9, OECD 평균 53.4, 독일 66.4, 미국 70.8달러이다. 노동시간이 적어지면서 노동시간당 일의 강도, 집중도가 증가하여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일부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하고 노동시간이 줄면 안 된다고 말한다. 여전히 이런 생각이 든다면 앞의 조삼모사, 8명 10시간 노동과 10명 8시간 노동의 의미를 다시 보기 바란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노동시간 총량은 같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취업자 1인당 노동시간이 긴 것이 문제다.기본소득 대 신복지체제를 둘러싼 논쟁에 더하여 복지비가 늘면 세금이 는다고 반대한다. 현명한 사회는 일하는 시간 줄이기로 복지비 지출은 줄이고 생산성과 행복을 늘리는 선택을 할 것이다./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

2021-03-01 이명호

[홍창진 칼럼]슬기로운 격리생활

고독의 시간 겁 먹을 일 절대 아냐스스로 눈을 감는 순간이 곧 '명상'사랑·의미라는 세계 보이기 시작'시간 어떻게 보낼까' 두려워 말고눈부터 감으면 지혜 발견할수 있어주위에 코로나19 확진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지인 한 분은 본인의 감염으로 부모님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감염되어 정신적 패닉 상태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감염되어 업무상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이 모두 자신의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14일 동안 생업을 포기하고 격리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그 미안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중 일부는 감염까지 되어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 시대의 아픔을 더욱 더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SNS를 통해 수많은 지인들이 격리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물론 격리생활은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슬기롭게 이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천주교 수도회 전통에는 일부러 독수 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불교 스님들도 1년에 두 차례 여름과 겨울에 한 달 정도 독거 수행을 합니다. 수도자가 아니더라도 재속 신부로 있는 저도 1년에 2주일은 독수 피정의 시간을 의무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종교인들은 왜 이런 홀로 침묵하는 시간을 일부러 가질까요?사람은 가끔 홀로 침묵 중에 자신 만을 바로 보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삶의 맛을 더 맛나게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현대인들은 그 전 시대에 비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또 따로 혼자의 시간을 갖는 일이 무슨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독거한다고 모두 혼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혼자 보고서를 써도 상대와 교신하고 있는 것이고 게임을 해도 영화를 즐겨도 거기에 나는 없습니다. 고독의 시간이라는 것은 상대 없이 오로지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입니다.30대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에게 누구나 욕망이 있고 조건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내가 욕망껏 사는 것이 무슨 죄입니까?" 이 친구는 말려도 그렇게 살 친구이기 때문에 저는 한 번 지칠 때까지 욕망껏 살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욕망에 비해 우리의 조건이 대부분 비루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도 그는 여유가 되는 대로 욕망껏 살았습니다. 집은 월세여도 좋은 차를 사고 미모의 여자 마음을 사기 위해 돈도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돈이 다 떨어지기 전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요즘 마음이 너무 허합니다. 좋은 차로 허세 부리는 것도 맛이 안 나고 미모의 여자들을 만나도 설렘이 없네요." 요즘 얘기로 현타가 온 것입니다.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욕망으로만 살지 못합니다. 우리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안에는 감성의 세계인 오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도 있고 영성도 있습니다. 이성의 세계인 지식욕이나 판별력을 통한 결과의 만족과 같은 욕구도 채워져야 하고 영성의 세계인 신과의 교류나 현세를 초월하는 세상과 교감하는 욕구도 채워져야 비로소 사는 맛을 제대로 느끼게 됩니다.청년의 현타는 여기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서 끌어 오르는 욕망을 오감의 만족만으로 채워 보려고 한 미련한 생각과 행동이 낳은 결과입니다. 자기를 자기 스스로 돌아보는 고독은 바로 이성은 물론 자기의 영성까지도 돌아보는 작업입니다. 인류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들은 물론이고 자기 인생을 만족도 있게 살아낸 사람들은 모두 일정 시간 자기를 돌아보는 고독의 시간을 가졌습니다.고독의 시간을 대단한 작업으로 생각하고 겁을 먹을 일이 아닙니다. 그저 나 이외에 어떤 사람들하고도 교류를 끊고 스스로 눈을 감기만 하면 시작되는 것입니다. 거창하게 명상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이 순간이 바로 명상입니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면 서서히 다양한 자신의 욕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랑이라는 세계도 보이고 의미라는 세계도 보입니다.격리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권유하고 싶습니다. 시간을 어떻게 때울까 전전긍긍하며 폰만 주무르지 말고 우선 눈부터 한 번 감아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고독의 시간을 통해서 슬기로운 격리생활을 할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1-02-22 홍창진

[방민호 칼럼]'강한 자'가 되어라

거짓 권력에 나약하게 굴복 안돼한 인간으로 존립해야 하기 때문각인된 트라우마 치유 어렵지만자기 스스로 자신 버리지 않는 한아무도 영원히 고립시킬 수 없다'학원 폭력'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요즈음이다. 이 말은 듣기만 해도 나의 폐부를 찌른다. 백석의 시에 나오는 몽둥발이로 살아야 했던 어려운 시절의 일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대학원 가서 힘센 선배 하나가 군대 휴가를 나왔다. 후배들은 이 선배가 반갑다고 신사리까지 나가서 실컷들 술을 마셨다. 1차가 끝나고 2차로 가려고 이동 중에 지금은 없어진 신림극장 앞에서 사달이 났다. 요즘 후배들 '네 가지'가 없다고 일렬횡대 '헤쳐 모여'를 시킨 것이다. 다들 극장 앞에 일렬로 죽 늘어섰을 때 그가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뺨을 한 대씩 후려갈기며 내 쪽으로 왔다. 나는 네 번째쯤 서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맞지 않겠다고 했다. 이러려고 대학원 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일렬횡대는 무너져버렸지만 그로부터 시작된 시련 아닌 시련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자를 맵게 다스리는 야만적 관행은 어제오늘의 일이라고 할 수 없으니, 이런 일은 대학 입학 직후에도 있었다. 같은 학교를 나와 같은 대학에 왔다고 선배들이 뜨겁게 환영을 해준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한 달이나 지났을까, 한국 사회, 특히 학교나 군대 어디에나 있는 이 관행이 고개를 들었다. 선배들이 부른다고, 밤에 기숙사 뒤편 공터에 모이라 해서 가자 바로 앞에서 말한 것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이미 각목이 몇 자루 준비되어 있었고, 일단 엎드려 뻗치라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뜨겁게 친해지려면 이런 통과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때도 나는 맞지 않겠다고 일어섰다. 그로부터 동창회는 가깝지 못한 '공동체'가 되고 말았다.자신이 체제를 운영하고 그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그렇지 못한 자를 향해 완력을 휘두르고 아무렇게나 욕설을 내뱉고 술잔을 끼얹거나 뺨을 때리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벌인다. 이렇게 해서도 굽히지 않는 자는 이른바 그 '왕따'라는 것으로 다스리려 하는데, 자신들이 중심이 된 어느 곳에서나 그 말 안 듣는 자에 대한 온갖 험담을 늘어놓고 프라이버시고 뭐고 없이 소문을 내돌리고 조금이라도 이득이 될 만한 일에는 절대 끼워주지 않는 것으로 본때를 보인다. 그뿐 아니다. 그 말 안 듣고 내돌려진 자가 가까스로 작은 기회라도 얻어 자기 스스로 살아 보려 하면 어떻게 그 기미를 알아챘는지 대놓고 나서서 훼방을 놓고도 그것이 권력을 가진 자기의 당연한 권리인 양 으스대는 것이다.이런 야만적 폭력에 노출된, 고립된 사람이 겪는 고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어느 힘 약한 중학생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힘깨나 쓰는 불량배 서넛에 의해 강제로 으슥한 골목으로 이끌려진다. 오늘 한 번 주머니나 책가방 속에 든 돈을 털리고 나면 끝날 일이 아닌, 어제도 내일도 계속될 것 같은 협박과 완력에 노출된 '아이'의 공포심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네들은 일단 한 방씩 돌아가며 가슴이며 뺨이며 명치 끝을 가격함으로써 아이로 하여금 저항할 의지를 품지 못하게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막막한 공포가 그네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아이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 버린다.그러나 아이는, 절대로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그네들 거짓 권력 앞에 나약한 아이로 굴복해서는 안 된다. 이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또 사회에 나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치졸하고 저열한 횡포에 노출되고도 모자라 그것에 순응하게 된다면, 그의 심중에 깊이 각인된 트라우마는 영영 치유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상처 입은 '아이들'의 세계는 결코 강인할 수 없다. 부정의와 부패에 대한 내성을 키울 수도 없다.강한 자가 되어라. 어두운 골목을 지배하는 '조폭'의 체제에 저항하라. 고립과 시련을 견디고 자기의 세계를 완강히 지키라. 이것이 불의한 자들을 상대하는 유일한 방책일 것이라고, 오늘도 그런 폭력 앞에 서 있는 아이들, 학생들, 어른들에게 권고하고 싶다.사람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버리지 않는 한, 아무도 그를 영원히 고립시킬 수 없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21-02-15 방민호

[이남식 칼럼]메타버스가 오고 있다(The metaverse is coming)

물리적 현실 적용 가상세계 집합체삶이 확장되고 새로운 가치들 창출공연예술 설자리 완전히 잃은 요즘실감나는 콘텐츠로 현실 무대 넘어전세계인에 보여줄 '감동무대' 가능그래픽카드와 기계학습에 효과적인 그래픽처리장치인 GPU를 만드는 세계적인 기업 '엔비디아'의 젠슨 황 회장이 2020년 10월 GPU개발자 대회에서 한 기조연설 제목은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물리적인 이동이나 집회가 제한되다 보니 자유로운 여행이나 만남에 대한 요구가 어느 때 보다 커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바뀐 것은 변화의 방향보다 변화의 속도라는데 대해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모든 사람들이 모바일로 시장을 보고 줌(Zoom)으로 화상회의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을 아우르고 넘어서는 확장현실(eXtended Reality XR)의 세계가 열리고 있다. 이를 달리 메타버스라 표현하며 초월한다는 의미의 메타(meta)와 세계라는 의미의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말이다. 가상과 현실이 완전히 융합되는 미래를 꿈꾸는 것으로, 엔비디아에서는 기술적으로 XR이 가능하도록 하는 플랫폼을 '옴니버스'라 하여 내놓게 되었다.컴퓨터그래픽으로 현실과 구별이 안 되는 가상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되자 각종 게임이나 가상의 세트에서 영화를 찍어서 아바타나 알라딘 같은 라이브액션 영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ASF(가속연구재단·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의 정의에 의하면 메타버스란 가상화된 물리적 현실(중력, 재질, 텍스처, 색상, 소리 등)이 적용된 실존하는 가상세계들의 집합체로서 증강-시뮬레이션의 축과 외부와 내부의 2X2 메트릭스로 분류해 보면 증강현실 세계, 라이프로깅 세계, 가상세계 그리고 거울세계로 나뉜다.포켓몬으로 익숙해진 증강현실 세계는 물리적 공간 위에 가상세계를 중첩시켜 마치 요사이 모든 영상에 자막이 첨부되어 편이성과 정보성을 높이는 것처럼 현실세계에 각종 정보가 확장되는 것이다. 라이프로깅의 세계는 각자의 삶을 디지털 가상의 공간에서 재현하는 것으로 인스타나 페이스북의 나는 분명히 나이지만 다른 아이덴티티를 가지는 메타버스 속의 나이다. 거울세계는 4차 산업혁명에서 말하는 디지털 트윈이 아닌가 한다. 실제 세계와 동일한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로 실제 세계를 조종하기 위해서 가상에서 시뮬레이션할 수 있으며 현실에서의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Virtual Reality- 즉 가상세계이다. 지금은 HMD(안경처럼 머리에 쓰고 즐기는 영상표시장치)를 쓰고 가상의 3차원 공간 안으로 들어가나, 미래에는 뇌의 시각중추에 전기적인 자극이나 망막디스플레이 (retinal display)를 이용하여 시자극을 완전히 대체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같은 맥락에서 정부에서는 최근 가상·증강현실(VR·AR) 등 가상융합기술(XR)이 산업구조 혁신과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되는 가상융합경제 실행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가상융합경제의 원년인 올해에는 공공·산업분야에서 ▲가상융합기술 활용 확산 ▲디지털콘텐츠 인프라 강화 ▲핵심기술 확보(R&D) ▲전문인력 양성 ▲제도·규제 정비 등 5대 기능을 중심으로 R&D 투자가 이루어지며 가상·증강현실 등 가상융합기술을 제조·훈련·건설 등 타 분야에 융합하는 'XR 플래그십 프로젝트', 길 안내, 쇼핑·관광 정보 등 위치기반 증강현실 정보서비스, 사회적 약자 지원 가상융합기술 서비스와 같은 '국민체감형 XR 서비스 개발·보급' 등 가상융합기술 활용 확산이 진행된다.이쯤되면 메타버스 안에서 우리들의 삶이 확장되고 새로운 가치들이 창출될 것이다. 요사이 공연예술이 설 자리를 완전히 잃었다. 메타버스를 통하여 실감 있는 콘텐츠가 제공된다면 이제 현실의 무대를 넘어서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감동의 무대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코로나가 가져다주는 놀라운 반전의 선물이 될 것이다. 코로나의 와중에도 새로운 희망을 잃지 말고 미래를 향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2021-02-08 이남식

[윤인수 칼럼]김명수 대법원장

거짓말로 대한민국 양심에 좌절한 국민들'법률 차치' 법·정치 동격인식 정치적 의심자신이 '삼권분립 한 축'임을 스스로 부인대법원 사법정신 훼손 당사자가 치유해야지난해 타계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은 진보진영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그런 긴즈버그가 자신의 생애에 흔치 않은 오점을 남겼다.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그가 당선되면 이민 가겠다"고도 했다. 연방대법관의 정치발언에 비난 여론이 일었다. 긴즈버그는 "경솔했고 후회한다"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우리 같았으면 나라가 뒤집어질 일이다. 대법원의 밤은 촛불로 대낮처럼 환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긴즈버그의 사과로 넘어갔다. 연방대법원에 대한 신뢰와 존중은 웬만한 정치 시비로 깨지지 않는다. 미국인은 연방대법관들을 정의의 화신(Justice)으로 존칭한다. 연방대법원장(Chief Justice)은 정의의 수장이고, 8명의 연방대법관(Associate Justice)은 각자가 정의의 일원이다. 미 헌법 3조는 '선한 행동을 하는 한(During Good Behavior)' 대법관의 임기를 보장한다. 악한 행동을 할 리 없다는 믿음으로 종신직을 보장한 것이다.트럼프는 재임 중 한 판사가 자신의 이민정책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놓자 '오바마 판사'라고 비난했다.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공식 성명으로 답했다. "미국에는 '오바마 판사'나 '트럼프 판사', '부시 판사'나 '클린턴 판사'는 없다. 우리에게는 자신들 앞에 선 모든 이들을 공평하게 대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헌신적인 판사들의 비범한 집단만 존재할 뿐이다." 연방대법관은 정파가 임명하지만 정파를 초월한 정의의 수호자로 신뢰받기에 연방대법원은 권위를 유지한다. 트럼프를 아무리 미워해도, 트럼프가 법정에 서면 정의에 따라 공평하게 판결할 것이란 신뢰가 있다. 긴즈버그가 죽음으로 임기를 마칠 수 있었던 이유다.우리 대법원도 그랬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를 겪고서도 대법원은 권위를 존중받았다. 대법관은 정파가 임명하지만 판결은 정파를 초월한다는 신뢰가 있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찬반 시비와 정파적 해석들은 최소한의 의사표명이었지, 대법원에 대한 부정은 아니었다. 국민은 대법원 부정을 대한민국 정의의 부정으로 여겨 선을 넘지 않았다. '임성근 판사 녹취록' 이전까지는 그랬다.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로 대한민국 대법원이 중대한 기로에 섰다. 대한민국 양심의 본산인 대법원의 정의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녹취행위의 도덕성을 문제 삼지만 사족이다. 대법원장의 거짓말을 덮기엔 역부족이다. 국민들은 대법원장의 거짓말로 대한민국 양심의 보루가 무너진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김 대법원장의 남다른 정치적 감수성도 거짓말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다.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이랄까, 생각해야 하잖아. 그중에는 정치적인 성향, 상황도 살펴야 하고." 사표 수리를 요청하는 임 판사에게 김 대법원장이 한 말이다. 차치(且置)의 사전풀이는 '내버려 두고 문제 삼지 아니함'이다. 대법원장이 법률을 차치한다? 법을 정치적 상황과 동격으로 인식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대법원은 정치적 의심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래 설치고 있는데 내가 지금 사표 수리했다고 하면 그 국회에서 또 무슨 얘기를 듣겠냐는 말이야." 대법원장 자신이 삼권분립의 한 축임을 스스로 부인했다.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는 사법권력 오·남용의 문제였다. 행위의 적법성 문제다. 재판에 따라 유무죄가 갈릴 것이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거짓말과 정치적 감수성과 삼권분립 부정으로 대법원의 정의를 이단적 정치 영역에 하차시켰다. 사법정신 훼손의 문제다. 당사자 말고는 치유할 방법이 없다.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을 'CJ'로 약칭하는 모양이다. 미 연방대법원장의 존칭(Chief Justice)에서 착안했을 것이다. "한국에는 '박근혜 판사'나 '문재인 판사'는 없다." 이렇게 당당할 수 있어야 가능한 약칭이고 존칭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정의'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봐야 한다./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1-02-08 윤인수

[윤상철 칼럼]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역사적 사실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고종을 '매국노' 해석 동의 쉽지않아우리는 기시감 가득한 위기국면서'경험 못해 본 나라' 꿈꾸다 말지도경험했지만 성공 못한것부터 극복언제부터인지 정치인들이나 언론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회자되었다. 신채호, 박은식, 윈스턴 처칠 혹은 미국 작가인 데이비드 매컬러가 말했다지만 별 근거도 없고 또한 중요하지도 않다. 우리 사회가 어떤 맥락에서 이 말을 화두로 삼는지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 흔히 우리 국가 혹은 민족의 잘못된 과거를 잊지 말고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달리 우리가 타국 혹은 타민족에게 당한 치욕이나 수모를 기억하고 반드시 되갚아주자는 의미로 더 자주 사용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왜 치욕과 수모를 당했는지 그 배경과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어 우리 스스로의 잘못이나 실수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되갚아 주기보다 되풀이하기가 더 쉬울지도 모른다.최근에 '매국노 고종'이라는 다소 선정적인(?) 제목의 서적이 출간되었다. 대한제국의 황제로서 근대를 열어가는 '개혁군주'였고, 강대국들이 각축하는 한반도에서 조선을 지켜내기 위해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하고 전국적인 반일의병투쟁을 배후에서 진두지휘했던 민족 투사였으나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당하고 결국은 독살된 '비운의 황제'에게 이러한 제목은 사실을 왜곡하는 불경스러운 호칭이었고 민족주의적 교육과 정치담론에 익숙한 사람들을 극도로 경악시켰다.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고종은 목숨을 걸고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고독하게 투쟁한 지도자였고, '을사오적'과 같은 친일 정치모리배들에 의해 조선은 일본에 팔려 나갔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서술은 민족적 자긍심과 자주독립에의 열의를 북돋우고 국민들의 감성을 감싸 안았지만 그 스토리의 중간중간에 생략, 비약 그리고 비이성이 너무 많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역사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고종을 암군이자 매국노로 해석하는 입장에 손을 들어주기란 쉽지 않다. 국제정치외교에 무능했고,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백성을 학살하고, 혁신을 거부하고 개혁세력을 몰살했다는 객관적인 사실들이 드러남에도 여전히 그렇다. 이럴 때면 이른바 '하인리히의 법칙'이 떠오른다. 하나의 대형참사가 발생하기까지 인명피해가 없는 300건의 사고에 이어서 29건의 경미한 부상 사고가 선행한다는 이론이다. 한일합방이라는 민족사적 대형참사가 고종이나 을사오적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사적 이익의 추구에서 곧바로 발생하기는 쉽지 않다. 국가의 수준과 역량이 어떠했길래 고종의 실정이나 대신들의 탐욕으로 인해 곧바로 망국으로 치닫게 되었는지 의문스럽다. 동학농민운동, 임오군란이나 의병투쟁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한제국의 멸망이 비교적 조용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길고 다층적인 과정에 의해 조선은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매국노 고종'에 동의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개혁군주 고종을 내세운 '일제종족주의'의 주장에 동의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이러한 논의들로 인해 우리는 '역사를 잊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배워온 조선 패망의 역사는 잊혀진 역사가 아니라 왜곡된 역사였는지도 모른다. 가산제적 황제전권국가에서 몇몇 대신들이 압박하여 황제가 을사늑약이나 한일합방에 동의하도록 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황제와 대신들을 포함한 조선의 지배엘리트들이 백성들을 배신하고 나라를 팔아넘기는데 담합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그렇다고 사악한 제국주의 국가의 강력한 발굽 아래 허약하지만 선한 국가와 황제가 짓밟히면서 근대로의 민족자존의 희망이 유린당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제국주의시대에 국가 간의 관계를 이념적 선악으로 구분하는 것은 전근대적 봉건국가에서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을 자본주의적 계급갈등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다.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러나 역사를 왜곡한 민족에게 현실이 먼저 왜곡되기 마련이다. 앞서의 어떤 해석을 택하든 결국 우리가 어떻게 왜 망했는지 모르는 결과를 초래한다. 겉보기에 유사한 내부의 적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로 소비될 뿐이다. 결국 우리는 기시감 가득한 극적인 위기국면에서 엉뚱하게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꿈꾸다 말지도 모른다. 우선, '여러 번 경험하면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위기'를 먼저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21-02-01 윤상철

[전호근 칼럼]외투

추위 호소 노숙인에게 벗어준행인이야말로 진정한 가치 입증그에게 말하고 싶다당신의 옷 덕분에 따뜻해진 건노숙인만이 아니었다고…조간신문을 받아들었다. 1면의 왼쪽에는 한 재벌 총수가 구속되었다는 기사가 널찍하게 지면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세상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오른쪽에 실린 사진은 대번에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신문의 1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이 아니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가운데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외투를 입혀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의 풍경을 접하기라도 한 듯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 아래의 설명을 읽어보았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서울역 광장이었다. 추위에 떨던 어느 노숙인이 광장을 지나던 사람에게 너무 추워서 그러니 따뜻한 커피 한 잔만 사달라고 부탁했단다. 그러니까 사진의 두 사람은 노숙인1과 행인1인 셈이다. 여기까지의 장면은 흔히 있는 일이다. 나도 서울역 광장을 지나다가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진이 포착한 장면은 지금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풍경이었다. 노숙인의 청을 들은 그 행인은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서 입혀주고는 지갑에서 5만원권 지폐 한 장을 꺼내 건네준 뒤 눈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현장에서 그 장면을 목격한 이들도, 나처럼 신문지면을 통해 사진을 본 사람들도 모두 현실감이 없기까지 한 그 장면에 뭔지 모를 상념들이 머릿속을 오갔을 것이다. 나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고 눈 속으로 사라진 그 행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다가 러시아의 문호 고골의 단편소설 '외투'를 떠올렸다. 페테르부르크의 말단 관리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왜소한 체구에 머리가 약간 벗겨진 보잘것없는 외모의 소유자로 동료들로부터 늘 무시당하는 처지였지만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정직한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외투가 너무 낡아 수선할 수 없게 되자 새 외투를 사기로 마음먹는다. 외투는 무척 비쌌지만 외투 없이는 페테르부르크의 매서운 추위를 견딜 수 없기에 그는 저녁 끼니를 거르고 밤에 촛불도 켜지 않는 궁핍한 생활 끝에 마침내 새 외투를 구입한다. 새 외투를 입고 출근하던 날 그는 외투의 따뜻한 온기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 데서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 외투란 단지 추위를 견디게 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멸시를 물리치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그는 잠시 행복한 순간을 맛보지만 그날 연회에 참석했다 돌아오는 길에 강도를 만나 외투를 빼앗기는 불행을 당하고 만다. 다급해진 아카키예비치는 외투를 찾기 위해 경찰서장과 고관을 찾아가 도움을 호소하지만 돌아온 건 호된 질책뿐이었다.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집에 돌아온 뒤 급성 폐렴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듯 보이지만 정작 소설의 중요한 대목은 이후부터다. 아키키예비치가 죽은 뒤 페테르부르크 거리에는 행인들의 외투를 빼앗아가는 유령이 출몰한다. 아카키예비치의 유령이 나타난 것이다. 외투를 찾아달라고 호소하던 생전의 아카키예비치에게 그까짓 일로 나를 찾아왔냐며 호되게 질책했던 고관도 그 유령을 만난다. 그가 외투를 빼앗긴 뒤에는 유령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서장과 고관은 왜 도움을 호소하는 그를 질책했을까? 그에게는 외투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카키예비치의 외투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실은 그 같은 말단 관리의 삶이야 어찌되든 관심 밖이었기 때문이다. 고관은 유령에게 외투를 빼앗기고 나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닫는다.'외투'의 외투는 인간의 속물적 욕망을 상징한다. 아카키예비치가 새 외투를 사기 위해 끼니마저 굶는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동료들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추위를 막아주는 외투는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다. 앞의 외투가 껍데기라면 뒤의 외투야말로 외투의 진정한 가치다. 그러니 외투의 진정한 가치는 걸칠 때가 아니라 벗을 때 드러나는 것이다.(아카키예비치도 고관도 외투를 빼앗기면서 외투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된다.) 사진을 다시 본다. 추위를 호소하는 노숙인에게 자신의 외투를 벗어준 사진 속의 행인이야말로 외투를 벗음으로써 외투의 진정한 가치를 입증한 사람이 아닌가. 그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외투 덕분에 따뜻해진 건 그 노숙인만이 아니었다고./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1-01-25 전호근

[이명호 칼럼]코로나 블루와 인공지능 친구

성희롱·소수자 차별·편견 논란등챗봇 '이루다'의 윤리 언급하면서사회 윤리의식 문제점 거론 안해2007년 국회 발의 아직도 표류중인'차별금지법' 지금 우리에 필요한때코로나19 사태가 1년이 넘어가면서 여러 심각한 사회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과 동시에 사회적 활동 및 사람들과의 교류 감소는 '코로나 블루(우울감, 무기력증)'라는 새로운 현상을 불러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우울증 고위험군이 20%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5명 중에 1명이 상당한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비율도 코로나 초기인 지난해 3월 9.7%에서 9월 13.8%로 6개월 만에 1.4배 늘어났다.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 문제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사회적 교류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코로나 블루',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감이 깊어지는 상태에서 작년 말에 서비스를 시작한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주 만에 이용자가 75만명에 달했다. 개발사는 '인간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AI가 앞으로도 소외된 사람, 사회적 약자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따뜻한 대화 상대'가 되길 바랬지만 곧바로 성희롱, 소수자 차별, 편견 논란에 휩싸였다. 20대 여성 대학생이라는 캐릭터는 짓궂은 일부 이용자들의 놀잇감이 되었다. 성적 단어를 금지어로 지정해 필터링하였지만 이를 우회해 성희롱 대상으로 삼거나 성적인 대화를 나누는 방법이 커뮤니티에 공유되기도 했다. 결국 '이루다'는 대화 중 장애인,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발언을 내뱉으면서 3주 만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용자가 채팅 창에 "여성 인권은 중요하지 않다는 소린가?"라는 물음에 이루다는 "난 솔직히 그렇게 생각함"이라고 답하고, 레즈비언에 관해 묻자 "진짜 싫다", "혐오스럽다"고 답한다. "네가 장애인이라면 어떻게 할 건지" 묻자 "그냥 죽는 거지"라고 답했다고 한다.'이루다'는 인간 같은 인공지능 챗봇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은밀한 곳에 내재한 차별의식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이루다'는 '연예의 과학'이라는 연예 상담 사이트에서 축적한 100억건의 남녀 대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즉 남녀 간의 대화를 학습하면서 말을 배웠는데 우리 사회의 일상 언어 속에 잠재 되어 있는 편견과 차별의식을 드러낸 것이다.성적 단어를 금지어로 지정해 필터링했음에도 불구하고 성희롱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개발사가 충분한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개발사가 인공지능이 윤리적인 문제에 직면하지 않도록 충분히 고려하고 개발했어도 현실 세계의 풍부함을 당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앞으로 개발사는 윤리적인 의식을 가진 AI를 개발하겠다고 하고 있으나 사실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16년 AI 챗봇 '테이'를 출시했으나 인종차별 데이터 학습 논란으로 16시간 만에 운영을 중단한 바 있다. 물론 오픈 AI에서 개발하여 작년에 공개한 GPT-3는 인간과 같은 작문 실력을 보여주어 화제가 되었다. 3천만명이 사용하는 공개 채팅사이트에서 GPT-3 봇은 1주일 동안 수백개의 글을 올렸지만 인공지능이 작성했다고 의심받지 않았다. 봇이 작성한 댓글(응답) 대부분은 해롭지 않았고 자살을 주제로한 한 글에는 5-6 단락으로 자기를 지지해 준 부모를 생각하면 자살을 포기하게 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로는 GPT-3가 이러한 윤리적인 문제를 포함하여 인간과 비슷한 작문 실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 공식적인 서비스를 시작하지 않고 여전히 테스트 중에 있다. 인공지능이 건전한 상식, 윤리적인 의식을 갖고 인간과 같이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이루다' 이슈를 보면서 드는 문제점은 인공지능 윤리를 언급하면서 우리 사회의 윤리 의식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다는 것이다. '이루다'는 단지 우리 사회의 편견을 그대로 따라했을뿐이다. 2007년에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표류 중이다. 인공지능이 윤리의식을 갖도록 요구하는 만큼, 우리 사회에서도 윤리의식을 갖도록 규제하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

2021-01-18 이명호

[홍창진 칼럼]감당할 수 없는 일

우리안에 꿈틀거리는 불길한 상상막상 닥치면 의연히 해결할 일인데가능성 없는 일들로 인해 괴로워 해누구나 미숙함 있다는것 인정 중요믿을만한 사람과 사연 나누길 바라인생을 살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상황에 처했을 때 종교인을 찾습니다. 그러다 보니 종교인 입장에서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가 막힌 사연이 참 많습니다. 중증 장애인 아이를 둔 부모, 사업의 부도로 이혼은 물론 온 가족이 해체를 겪는 중년의 가장, 가정폭력으로 괴로워하는 아내 등등 사연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괴로움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저마다 괴로움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각자 해답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별말씀 안 드리고 그저 공감하고 들어주었을 뿐인데 그들은 눈물을 흘리는 중에도 앞으로의 대안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결심에 기도를 부탁하곤 길을 떠났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다시 보면 모두들 잘 극복하고 씩씩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사람은 막상 정말 큰 불행이 닥치면 의연하게 잘 대처합니다. 그런데 작은 시련에는 오히려 몸 둘 바를 모르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안정된 직장을 다니며 맞벌이하는 아내와 함께 아이 둘을 키우는 가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취미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초등학교 동창 모임은 물론 각종 골프 모임에 남자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영 께름칙하다는 겁니다. 골프가 끝나면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아내를 보면서 좋지 못한 상상을 시작했습니다. 의심을 시작하고부터는 마음이 괴로워지고 힘들어졌습니다.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 어느새 아내의 휴대전화를 뒤져보고 메시지 내용들을 왜곡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언성을 높이다 폭력에 이르게 되어 급기야 별거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무 증거도 없는 일에 상상력이 더해져 일어난 일입니다. 사과를 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맹세까지 한 뒤에 다시 함께 살고는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하루에도 수십번 떠오르는 망상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또 한 예가 있습니다. 영상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자신이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감염되면 같이 사는 부모님을 비롯해 다른 가족도 감염될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괴로움을 키웠습니다. 코로나를 맞아 오히려 영상 작업은 일거리가 많아졌는데 다른 때 같으면 좋아서 쾌재를 외칠 이 상황에 그는 일하는 자체가 불안을 키우는 원인이었습니다. 출연자 중에 무증상자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사람들과 의식적으로 더 거리를 두고 대화를 삼가는 것까지는 정상이지만 두려움에 떨면서 이 상황을 견디는 건 본인이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심지어 이런 모든 걱정으로 인해 잠도 못 자고 의욕도 사라진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세상에 감당하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이라도 막상 닥치면 사람은 모두 의연하고 대범하게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능력을 타고났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를 괴롭히는 괴물은 외부에서 오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불길한 '상상'입니다. 의처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코로나 블루를 자청해 겪고 있는 사람도 확신하건대 막상 문제가 닥치면 의연하게 해결할 이들입니다. 그런데 0.1%도 가능성 없는 일을 현실로 끌어들이고 괴로워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찾아와 상담을 하면 우리 종교인도 몹시 어렵습니다. 있는 일도 아닌 것을 해결해 달라고 하면 우린들 달리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사람은 누구나 하자가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그것을 믿고 있지도 않은 미래를 앞당겨 걱정을 합니다. 우리 안에 이런 미숙한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끔 말도 안 되는 몹쓸 상상이 찾아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종교인들이나 믿을 만한 벗에게 이런 자신의 한심한 점을 나누길 바랍니다. 사연을 털어놓다 보면 한심한 자신을 더 선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고 확인해 주는 일이 이 괴물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1-01-11 홍창진

[윤인수 칼럼]"살려달라"는 절규에 누가 답할 것인가

수감자·자영업자 등 생존위협 간절한 외침보선·대선… 국민들 구조손길·반응에 선택여야 정당·인물들 여전히 진영에 갇힌 형국지긋지긋한 정략참호 누가 먼저 탈출할건지누군가 "살려달라"고 하면 즉각 반응하고 구해야 한다. 인지상정이고 사회의 규범이며 국가의 의무다. 바다를 표류하는 조난자에게 총탄을 퍼붓는 짓은 상상할 수 없는 야만이다. 잊어선 안되고 잊힐리도 없다.연말연시 대한민국에서 "살려달라"는 절규가 이어졌다. 서울 동부구치소 수감자들은 창문 밖으로 "살려달라"는 대자보를 흔들었다. 헬스장 등 실내체육시설 운영자들도 "살려달라"고 했다. '살·려·달·라'는 네 음절은 생존을 위협받는 인간의 가장 짧은 외침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간절함의 무게는 천근만근이다.동부구치소 수감자들의 "살려달라"는 호소는 목숨을 위협받는 재난현장을 고발했다. SOS 대자보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그들의 공포에 공감하고 반응하기까지 한참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법에 의해 격리당한 사람들이 모인 구치소는 사회적 관심에서도 격리됐고 방역행정에서도 격리됐다. 정부는 신천지교회를 압수수색하고 청와대 비서실장은 광화문집회 주동자를 향해 "살인자"라고 고함쳤다. 코로나19 방역 방해행위를 반사회적 간접살인으로 본 것이다. 그런 정부가 동부구치소를 코로나 소굴로 만들었다. 변명과 사후조치로 봉합할 수 없는 방역실패와 인권유린의 주체가 된 것이다.실내체육시설 자영업자들의 "살려달라"란 투쟁은 경제적 생존을 위한 자구행위이다. 코로나는 1천명이 넘는 국민 생명도 앗아갔지만, 수백만에 이르는 영세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밥그릇도 깨트렸다. 그래도 국민을 위해 참고 인내한 착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인내에도 한계가 있고, 인내의 끝에서 희생의 공정과 형평이 깨진 현실을 목격한 순간, 그 착했던 사람들이 "살려달라"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철창 시위는 살기 위해 정부 지시를 거부하겠다는 본능적인 생존 의지였다.정부와 방역당국의 자영업 영업제한 규제엔 원칙도 현실도 없었다. 많은 언론이 지적했지만 외면했다. '현실적이지 않았다'는 정부의 뒤늦은 고백은 허무하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자영업자의 고통에 눈물 흘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국민을 K방역의 주체로 떠받들었다. 하지만 국민은 눈물과 말의 성찬이 밥그릇을 지켜주지 않는 현실과 오늘도 전쟁 중이고, 전선의 어딘가에서 "살려달라"는 절규가 들려와도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다.선거의 해가 열렸다.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이어 곧바로 대선정국이 펼쳐진다. 시대가 절박한 만큼 국민의 선택도 절박해질 것이다. 단언하건대 국민은 "살려달라"란 외침에 반응하고 구조의 손길을 내미는 정당과 인물을 선택할 것이다.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여론조사는 국민의힘이 앞선다는 지표를 보여준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힘 후보들이 단일화에 성공하면 승리한다는 예측이다. 착각이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여론은 대통령을 향한 부정여론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나마 국민의힘이 잘해서 획득한 지지가 아니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라질 수 있는 지지다. 후보단일화 과정을 치졸한 정략으로 더럽히는 순간 선거는 뒤집어질 수 있다.내년 3·9대선을 앞둔 정국은 여당에 유리하다. 범야권 후보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거론되는 현실은 제1야당의 정권 불임 현실을 반영할 뿐이다. 그래도 속단은 금물이다. 여당을 호령하는 '문재인 팬덤'이 복병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마저 전직 대통령 사면론으로 체면을 구겼다. 대선후보 1위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문재인 팬덤의 승인 없이는 불안하다. 정 총리의 '단세포' 직격에 움추린 이유다. 대법원이 이 지사를 살렸듯이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살린다면 당내 경선은 예측불허가 된다. 문재인 팬덤은 당내 경선을 혼란에 빠트리고 본선에선 대선후보의 외연 확장을 제한할 것이다.국민은 "살려달라"고 절규하는데 여야 정당과 인물들은 진영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국민은 이 지긋지긋한 정략의 참호에서 제일 먼저 벗어나 자신들과 마주하는 정당과 인물을 기다린다. 누가 먼저 나설 것인가./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1-01-11 윤인수

[방민호 칼럼]늘 오는 새해가 아니라

새로움이 새롭지 않아 보일땐 실망올바름이 그렇지 않을땐 고개 돌려모든 변화속 변치않는 진실 있듯이예측 못한 변화 이해하고 타협해야이번 새해만큼은 특별한 해 됐으면새해다. 그러나 매번 오는 새해일 것이니 정녕 새해가 될 만한 생각 없다면 별반 새로울 것 없는 말만의 새해리라.다석 유영모라는 현대 철학자가 있어 신묘한 사상을 펼쳐 놓고 가셨으니 그것을 가리켜 '다석일지'라 하고, 이 '말씀'을 경전 삼아 주석을 붙인 이가 있으시니 그분은 김흥호라는 분이며 그 책이 '다석일지 공부' 일곱 권이다.예부터 예수가 바울 없이 오늘에 온전히 전해질 수 없었을 테요, 공자가 자공 없이 가르침을 제대로 전할 수 없었을 테니, 오늘에도 그와 같은 전도가 있다면 바로 유영모와 김흥호 같은 관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세상의 좋은 가르침은 항상 두 가지 부면을 포괄하는 법이다. 하나는 자기 공부요, 다른 하나는 세상 공부일 테니, 이 두 가지는 완성을 추구하는 사상에서는 서로 불가분리 떨어질 수 없어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부단히, 서로를 지향함을 볼 수 있다.1955년 4월26일부터 이듬해 같은 날까지를 죽음 공부를 하기로 죽음을 살기로 작정한 유영모는 하루하루의 '일생'을 그만의 독특한 문체의 시문으로 남겨 놓았다. 물론 일지는 그후로도 계속되지만 필자 생각에, 그렇다면 그 '일지'는 미리 정해 놓은 죽음의 날을 향해갈수록 치열하고 뜨거운 것들로 가득하리라 했다.이 다석의 귀한 말씀이 후세대에 전해지지 못할 것을 염려한 김흥호 선생이 칠십대 중반의 나이에 이 '일지'의 풀이 작업을 1만2천매 원고로 뜨거운 한여름에 마쳐 놓았다 한다. 과연 세상이란 신비로운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여기 이런 말이 있다. 1956년 2월7일 다석의 기록에 대한 풀이다."좋은 나라는 먹을 것이 넉넉하고 문화가 풍성하여야 한다.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 밥과 말씀이 다 있어야 좋은 나라다. 사람의 입이 많으면 먹이는 일이 가장 큰일이다. 밥을 먹여 놓으면 매번 거짓말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더운밥 먹고 식은 말 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다. 밥 먹고는 일하고 문화를 창조하여 참말을 하여야 하는데, 일도 안하고 문화도 창조 안 하고 놀며 거짓말만 하니 큰 문제다. 나라고 하는 것이 이미 거짓말이다. 나는 내가 아니다. 하나님만이 나다. 나는 저다. 옛날부터 백성들을 제대로 먹인 일이 없다. 정신도 나갔고 육체도 쓰러진다. 먹이고 참말 하여야 복지국가다. 말씀이 있고 먹이가 있어야 하나님 나라다."필자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다석도 그런 의미의 신자는 아니었던 듯하다. 또 필자는 한국인이 거짓말만 하는 사람들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말이든 새겨들어야 하리라.세상은 참으로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뭉쳐 있는 것 같으면 흩어지고 서 있는 것 같으면 움직이며 올라 서 있는 것처럼 보이던 것이 아래를 향해 간다.새로워 보였던 것이 더 이상 새롭지 않아 보일 때 사람들은 적잖이 실망하게 된다. 올바르게 보였던 것이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 않을 때도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게 된다. 그렇다 해서 사람들은 과거의 것이 다시금 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는 바라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과연 새해를 맞이하는 이 나라는 어떤 상태에 있는 걸까? 진정한 위기는 코로나19가 1천명을 넘어섰다는 데 있는 것 같지만은 않다. 이 전염병조차 이리 끌어다 붙이고 저리 끌어다 붙이는, 명분과 빌미의 투쟁욕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함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모든 것이 변화하여 성하던 것이 쇠하고 건강하던 것이 병들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왕은 왕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백성들은 백성다워야 한다. 모든 변화의 이면에 변치 않는 진실이 있음을 알고 또 변하지 않음 위로 예기치 못한 변화가 박두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타협하고 환대할 수도 있으리라. 이번의 새해만은 늘 오는 새해가 아니라 특별한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21-01-04 방민호

[이남식 칼럼]모바일혁명이 가져온 새로운 트렌드

코로나로 미래 속도 엄청 빨라져모든 게 모바일 환경에 맞춰지니ARM기반 CPU가 트렌드로 변화자택 머무르는 긴 시간 기회 삼아집안정보화 업그레이드 시켜보자이제 2020년이 저물어간다. 올 한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다행히도 모바일 혁명으로 상거래뿐만 아니라 회사의 업무, 교육과정, 각종 문화예술 공연에 이르기까지 코로나19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기술의 진보에 따라 5G 통신이 보편화 되고 스마트 폰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 또 다른 새로운 트렌드가 예고되고 있다.올해 국내 업계의 M&A 중 최대 규모는 SK하이닉스가 인텔의 NAND 사업부를 10조3천억원에 인수한 것이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인텔인사이드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i5, i7 등 컴퓨터 CPU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인텔사가 왜 사업부를 매각했을까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경쟁자인 AMD가 7nm 미세공정과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는 것도 있으나 애플이 노트북에 더 이상 인텔 CPU를 사용하지 않고 ARM 기반 CPU로 교체하겠다고 선언하였고 또한 MS의 경우도 노트패드인 서피스의 CPU를 자체 개발한 ARM 기반 CPU로 교체한다고 발표하여 인텔의 주가가 절반 가까이 떨어지게 되었다. 이에 새로운 기술투자를 위해서는 경쟁력이 낮은 사업부를 정리하여 투자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해 본다.대체 ARM이란 무엇인가? ARM은 'Acron RISC Machine'의 첫 글자로 전기소비가 아주 적은 소형의 CPU를 만들기 위하여 CPU가 사용하는 명령어 세트가 단순화된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 방식을 채택하여 설계한 CPU이다. 스마트 폰에 사용되는 CPU인 AP(Application Processor)는 모두 이러한 방식으로 개발되어 왔다(소형, 저전력, 저발열). 반면에 컴퓨터용 CPU는 CISC(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er) 방식을 채택하여 열도 많이 나고 상대적으로 부피도 커졌다. 그러나 모바일폰이 빠른 속도와 고도의 성능을 요구하면서 모바일 AP도 컴퓨터 CPU 못지 않은 성능을 갖게 되면서 서서히 패드나 노트북부터 CPU를 ARM 기반으로 바꾸는 트렌드가 나타나게 되었다. 현재로서는 초기이기는 하나 애플의 노트북에 ARM기반의 M1 칩을 사용하였는데 컴퓨팅 성능은 전과 비슷하면서 인터넷 접속, 배터리 사용시간, 발열은 압도적으로 좋아져 이제는 대세로 자리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노트북이나 패드에서는 인텔이나 AMD의 CPU가 아닌 ARM 기반의 CPU가 대세가 될 전망이다.ARM은 또한 회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손정의 회장이 2016년에 38조원에 인수하였다가 올해 엔비디아에 47조5천억원에 매각하면서 4년만에 9조5천억원을 벌게 해준 회사다. 이 회사는 ARM 기반의 모바일폰 칩의 RISC설계 기술을 가지고 있어 퀄컴, 삼성전자, 애플 모두가 ARM의 설계도를 로열티를 주고 사서 자체 AP를 개발하고 있다. 앞으로 자율주행차에 사용되는 CPU는 ARM 기반으로 갈 확률이 높다. 이유는 ARM을 인수한 엔비디아는 GPU(Graphic Processing Unit)의 최강자로 인공지능 연산에는 GPU가 아주 유용하기 때문에 향후에는 ARM기반 CPU와 GPU가 하나가 되어 자율주행의 브레인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엔비디아도 앞으로 매우 주목해야 할 기업이라 볼 수 있다.코로나로 말미암아 미래로 향하는 방향보다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모든 것이 모바일화되다 보니 노트북도 보다 모바일 환경에 맞도록 되어야 하겠고 그러다 보니 지난 수십년간 CPU의 대명사가 되어온 인텔이 퇴조하고 ARM 기반의 CPU가 트렌드가 되고 있다. 더 접속이 잘 되고 오래 가고 가볍고 열이 안 나는 마치 스마트폰과 같은 노트북이나 컴퓨터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이 기간을 통하여 집안의 정보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되면 코로나를 오히려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2020-12-28 이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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