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이영재 칼럼]'공정' '정의' '통합' '화해'라는 단어들

文 대통령 취임사 역대 최고라고 생각한다문장마다 감동 '특권·반칙없는…'에선 열광취임 3주년… 총선 압승·60% 지지율 불구과거와 다른 연설·상황… 약속은 지켜지길역대 대통령 취임사 중 최고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꼽는다. 문장 하나하나가 살아 숨을 쉬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글에서 풍기는 진정성은 가슴을 파랗게 적실 정도로 신선하다. 어쩌면 이런 좋은 말만 골랐는지 감동 그 자체다. 가슴에서 우러러 나온, 고뇌하는 대통령의 취임사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는 대목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59%의 국민도 받들어 모시며 국정에 매진하겠다는 대통령의 넓은 포용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문 대통령을 뽑지 않았지만, 이 대목에 크게 감동했다는 이들이 꽤 많다. 취임식 날 저녁, "문구 하나하나에 진정성이 느껴져 감동한 나머지 취임사 읽고 밤새 펑펑 울었다"는 친구의 SNS 메시지를 받은 기억이 난다.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고 또 읽는다. 내 경우도 그렇다. 읽을 때마다 감동이 화수분처럼 솟는다. 술 한잔 걸치면 감동은 배가된다. 고통과 회한으로 점철된 40년 정치사를 관통했기 때문인지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는 대목에서는 감정이 격해지곤 했다. 해방 이후 반세기 넘게 벌였던 국민 간의 갈등은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몰면서 삿대질하고, 주먹질하고 심지어 뒤엉켜 싸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갈등의 종지부를 찍고 '통합과 화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니 이 말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뿐만이 아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습니다'는 대목도 빼놓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학연, 지연, 혈연은 물론 이념에 얽매인 동지애도 끊어내고 능력 위주의 인재 발탁을 하겠다는 말에 국민은 "이제야 진정한 우리의 대통령이 탄생했다!"며 무릎을 쳤다. 거기에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말까지 더했으니 국민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특히 '공정'과 '정의'가 주는 강렬한 임팩트에 가슴은 마구 뛰었다. 앞으로 누가 대권을 잡아도 이는 다시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여기에 마지막 카운터 펀치가 있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국민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 드리겠습니다'에 우리는 모두 '오 마이 갓!'을 외쳤다. 정말 멋진 대통령이었다.지난 5월 10일 문 대통령은 취임 3주년을 맞아 대국민 연설을 했다. 4·15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고, 대통령 지지율 역시 60%를 넘는 시점이라 이 연설에 거는 기대가 컸다. 계층과 이념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고, 일부 특정인들의 특권과 반칙으로 인해 공정과 정의가 훼손되고 있는 조짐이 보여 더욱 그랬다. 아니, 무엇보다 취임사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었던 국민들이 TV 앞에 모였다. 하지만 '통합' '공정' '정의' '화해' '반칙 없는 세상' 이란 단어는 찾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코로나' '일자리' '한국판 뉴딜','5G 방역' 같은 단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의혹이 연일 악취를 풍기며 국민을 경악시키고 있다. 이미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진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수사건에 대한 '재심'논의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정의와 공정이 무시되고, 반칙과 특권이 스멀스멀 살아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정의연 사태를 두고 청와대와 집권당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에서 불행하게도 '제2의 조국사태'가 읽힌다.언제나 가슴 뛰게 했던 취임사를 다시 꺼내 읽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는 대목에서는 까닭 모를 화가 치민다. 코로나 19로 만신창이가 된 지금, 또다시 조국사태처럼 분열과 갈등이 온다면 정말 슬픈 일이다. 취임사를 빛나게 했던 단어들을 찾아 다시 꿰매어,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건 오직 문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이영재 주필이영재 주필

2020-05-25 이영재

[윤상철 칼럼]탈성역의 민주화

날로 커지는 '정의연·윤미향 사태' 사회공동체 파수꾼 역할이 목표인시민단체의 권력유착 폐해를 본다문제는 그 이후 '은폐·호도' 집착땐사회운동 대의는 살아남기 어려워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전 이사장의 사태가 날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성금 횡령이나 배임의 의혹은 시민단체가 경제적 이권을 찾아 타락하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국회의원 당선자인 윤 전 이사장에게 시민단체 활동은 정치권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통로였을 수 있다. 시민단체 활동가가 위안부 문제에 당사자들을 배제하고 개입함으로써 국가간 외교를 왜곡시키고 국내정치까지 소용돌이치게 한 사실은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돌아볼 일이다.세계적인 사회학자 찰스 틸리는 '동원에서 혁명으로'라는 저서에서 정치세력이 시민사회세력을 동원하고 호선하는 양상은 다원민주주의체제 하에서 불가피하다고 갈파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시민단체가 권력화하거나 시민운동가가 출세하는 일은 사회적으로는 부수적인 현상일 뿐이다. 모든 사회구성원들이나 집단이 사회문제를 의사결정하는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한 불가피하다. 사회문제를 위임하거나 대표하지 않고 스스로 정책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 또한 부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그럼에도 시민운동단체가 특정 정치권력과 지속적 유착관계를 맺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비정부기구로서 정파적, 계급적, 집단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전체 사회공동체의 생존과 발전에 기여해야 할 시민운동단체가 그 안에 갇힘으로써 우리 사회가 잃는 손실은 너무도 크다. 더군다나 그들이 공식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피해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소망을 펴보지도 못하고 사라져가거나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비난을 받거나 심지어 매도되면서 거듭된 피해와 고통을 받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이 그들의 지지에 기반을 두고 정치적, 정책적 선택을 수구할 수밖에 없다면, 변화하는 현실에 무능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여기까지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 어떤 진영에 속한 사람이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여기까지는 쉽게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문제이다. 시민운동단체가 정치권력이라는 뒷배와 묻지마 지지를 외치는 진영 내의 군중을 믿고서 은폐와 호도를 일삼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시민운동을 우리 사회의 파수꾼으로 기대할 수 없다. 손잡고 협력해왔던 부적절한 동거가 무너지면서 스스로의 권력기반이 약화될까 두려워 정치권력이 이들을 두둔하고 나아가 타락한 정치공세를 지속한다면 이 나라의 정치와 역사는 다시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다.여기부터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끝없이 확장되고 심화됨으로써 그 완성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산업화에 따르는 국가주의와 발전주의를 넘어서는 과정에서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갖는 성역과 금기들을 무너뜨렸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성역들을 만들어냈다. 민주주의를 촉발시키고 밀어준 사람, 장소, 사건, 그리고 이데올로기들이 성역화되었다. 보수적 산업화세력의 역사적 성찰성 결핍과 개혁적 민주화세력의 권력집착으로 인하여 우리 국민들은 진지하게 성찰하고 토론하면서 합의로 나아가기 보다는 사람들이 더 이상 건드려서는 안되는 성역들을 쌓아올렸다. 불가피했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쌓아 올린 성역들은 약간의 틈새나 지진에도 쉽게 무너져 버림으로써 그 가치들을 훼손시켜버린다. 강변한다고 해서 사회운동의 대의는 살아남기 어렵다.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성역 만들기가 횡행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미 이루어졌음에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여기저기 성역을 쌓아 올린다. 압축비약적 발전이 천민자본주의를 낳음으로써 가진 자들의 갑질과 사회적 양극화를 낳았었다. 그럼에도 토론과 합의가 부재한 민주주의는 5·18민주화운동을 지속적으로 폄훼와 반동에 시달리게 한다. 이처럼 졸속적 민주화의 길을 간다면 사회적 평등과 삶의 질, 생명과 안전이라는 기본적인 가치들도 페미니즘에 대한 냉소와 세월호에 대한 비인륜적 패악질로 나타날 것이다. 스스로 납득할 기회와 과정을 만들지 못하였으니 그들은 틈만 나면 못들은 체 하면서 트집을 잡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법과 제도로 짓누르겠다고 하면 우리 사회는 과거의 권위주의체제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것인가? 아무리 정의로운 가치와 이념이라도 비민주적 권위주의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20-05-25 윤상철

[전호근 칼럼]잊지 말아야 할 것

코로나로 美 일간지 부고 2배 이상인류 진화사상 죽음의 경고도 의미바이러스와 온몸 투쟁 역사에 동참고대 로마 개선행렬 '메멘토 모리'승자와 모든 산자들에 대한 경계로미국의 어느 일간지에 16개면에 달하는 부고(訃告)가 실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들의 수가 많아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라 한다.기사에 실린 해당 신문의 부고면 사진이 또렷하지 않아 내용을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부고면에 이름을 올리는 이들이라면 저명한 인사들은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라면 신문 기사에 이름이 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 부고면에는 부고 당사자의 이름과 사진,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삶이 적혔을 법한 짧은 글들이 빼곡히 배열되어 있었는데 지면을 주의 깊게 살피다가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신문의 부고면은 일종의 묘비명이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이 묘비명에서나마 기록되기 시작한 건 동서양을 통틀어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의 '사생활의 역사'에 따르면 서양의 경우 19세기에 접어들어서야 자기 자신만을 위한 독창적인 이름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개별화된 묘비명이 세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이 점은 이름을 각별히 중시하는 문화전통을 지니고 있는 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해야 세울 수 있는 5천자가 넘은 신도비는 말할 것도 없고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글자를 새기는 묘갈명이나 묘지명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양반 신분 계층이 아니면 꿈도 꿀 수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이 작품에서나마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일러야 패관 문학이 유행하기 시작한 18세기 후반이었으며 묘지명을 새길 수 있게 된 것은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생각해보면 인류는 진화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병원체와 싸우며 삶을 이어왔다. 그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은 어쩌면 그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인지도 모른다.진화의 역사에서 보면 의미 없는 삶이 없듯 의미 없는 죽음도 없다. 그들이 죽음으로써 경고해주었기 때문에 인류가 위험을 인지하고 생존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치료하거나 돌보거나 떠나보내며 인간에게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번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어떤 사람은 살아남았고 어떤 사람은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죽은 이들이 이번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그들이 온몸으로 바이러스와 싸웠다는 사실이다. 그들 또한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기나긴 진화의 역사에 동참한 것이다.고대 로마의 공화정 시절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은 성대한 전차 퍼레이드를 벌이며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 성대한 전차 행렬에서 가장 특이한 존재는 장군의 옆 자리에 앉아 쉴 새 없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를 외치는 한 사람의 노예였다. 모든 사람이 승자의 영광을 구가할 때 그가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을 되뇌는 까닭은, 승자의 영광이란 전쟁터에서 죽은 모든 이의 죽음을 딛고 선 것이며, 장군 당신 또한 언젠가는 죽을 목숨이 분명하니 그들 앞에서 결코 오만하지 말라는 경계였을 것이다.어차피 인간의 삶은 끝이 있는 것이고 보면 우리는 누구나 사망률 100%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메멘토 모리'는 승자의 오만에 대한 경고일 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이에 대한 경계다. 죽음이 저토록 가까이 있는데 마치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인 것처럼 살아간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거니와, 우리 모두 누군가의 삶과 죽음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큼 우리가 왜 서로 연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알려주는 절실한 대답은 없을 것이다.신문의 부고면은 내 이름 또한 언젠가 저곳 한 귀퉁이에 자리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코로나 이후의 삶이 이전과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삶을 생각하기 이전에 나는 기억할 것이다. 반드시 그들의 이름이 부고면에 실려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내 이름이 반드시 빠져야 할 이유 또한 없다는 사실을./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5-18 전호근

[이명호 칼럼]미래의 경험, 온택트 근무

코로나19로 일상생활 '새로운 경험' 1975년 '재택근무' 개념 최초 등장성공의 핵심은 '직원 자율권' 강화감독 아닌 '성과 중심의 문화' 필요지구 온난화 대응하는 '친환경 정책'코로나19는 이전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얼마나 많이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집콕족'으로 살기 위하여 온라인 쇼핑, TV와 동영상 시청, 게임 등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의 수요가 증가했다. 그 중에서도 새로운 경험은 집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재택(원격) 근무와 온라인 수업이었을 것이다.어느 정도 재택근무가 실시되었는지에 대한 통계는 없으나 일부 조사 등에 따르면 몇 주간 재택근무를 실시한 기업은 약 3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는 재택근무에 따른 다양한 애로 사항에서부터 적극적인 장점까지 많은 의견들이 올라왔다. 출퇴근 시간이 절약되어 개인적인 시간이 늘어나고, 방해 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어서 좋은 반면에, 혼자 일하는 외로움, 의사소통의 어려움, 불명확한 업무 지시, 일과 삶의 균형의 붕괴, 근무시간 이외의 근무지시, 논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자기검열에서 오는 스트레스, 가족과 자녀의 업무 방해 등의 부정적 효과를 토로하고 있다.지금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면서 기업들은 재택근무에서 대부분 정상근무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준비 없이 급격하게 실행할 수밖에 없었던 수주 간의 재택근무 경험이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측면도 많았겠지만, 재택근무와 온라인 교육은 우리에게 '이미 와 있는 미래'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앞으로 재택근무라는 미래는 정말 앞당겨질 것인가?사실 우리나라의 재택근무 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무척 낮은 1% 미만 수준이었다. 미국은 3%, EU 전체가 5%이고, 가장 높은 비율은 네덜란드로 13.7%가 재택근무제를 활용하고 있다. 원격근무(재택근무)란 조직의 근무자들이 적어도 주 1회 이상 집, 위성사무실, 원격근무센터 등 기존 사무실 중심 근무현장 이외의 장소에서 정보통신장비를 사용하여 일하는 대안근무를 의미한다.재택근무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재택근무라는 개념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75년이다. 미국 LA로 출근하던 한 과학자는 러시아워로 길에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했다. 긴 차량 통근은 교통정체와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직장인들도 매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한국의 통근시간은 평균 40분(편도)으로 OECD 평균 통근시간 23분 보다 약 두 배에 달한다. 그 과학자는 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 보험회사의 재택근무를 시험하였다. 그러나 경영자들이 재택근무하는 직원들을 전과 같은 방식으로 통제할 수 없어서 곧바로 중지되었다. 이후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1990년대에 접어들며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게 되었다.재택근무 성공의 핵심은 ICT 기술이 아니라 직원들에 대한 통제를 유지할 것이냐, 직원들의 자율권을 강화할 것이냐에 따라 결정된다. 재택근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과정에 대한 감독이 아니라 성과와 결과 중심의 업무문화가 필요하다. 눈 앞의 직원이 열심히 일하는 듯이 보여야 안심하는 수직적 통제방식으로는 재택근무에 성공할 수 없다. 업무위임이 명확하고 책임과 자율권이 주어져야 집이나 어디서든 독립적, 주도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있다. 자율적이고 성과중심의 업무문화는 바로 생산성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은 수직적 통제방식의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고, 이는 낮은 생산성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성공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은 바로 생산성의 향상을 의미한다.정부가 코로나19 포스트 시대에 대비해 디지털 뉴딜을 추진하고 있다. 언택트, 비대면 ICT 일자리 활성화 등에 대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많은 부분이 공급중심의 디지털 인프라 투자에 쏠려있다. 재택근무는 언택트(Untact, 비대면)가 아니고 온라인으로 협력하는 온택트(Ontact)이다. 온택트 근무라는 수요가 확대되면 자연스럽게 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수요가 늘고 투자가 늘어나게 된다. 온택트 근무는 생산성 향상은 물론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에 대응할 수 있는 친환경 정책이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20-05-11 이명호

[윤인수 칼럼]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대통령 권력

文대통령 4년차 진입 경이로운 '71% 지지율'코로나 앞에 경제비판 대중도 '희망봉' 지목지선 개입의혹등 정권비판 이슈 모두 '각설'임기말 전례없던 '힘'… '민주주의 운명' 달려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국민적 지지가 경이롭다. 취임 3년을 마치고 4년차에 진입한 대통령의 지지율이 71%다. 한국 갤럽이 지난 8일 발표한 결과다. 40대의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평가 비율이 무려 85%다. 전 연령대에서 60%대를 훨씬 웃돈다. 중도층(69%)은 물론 보수층에서도 긍정평가가 부정평가를 앞섰다. 문 대통령의 집권 3년차 지지율은 27%에 그쳤던 김대중·노무현을 압도하고, 40% 초반에 머물렀던 이명박·박근혜를 굽어본다. 진보, 보수 진영을 통틀어 전직 대통령들이 꿈도 꾸지 못한 경지다.과거 정치 관행대로라면 지금쯤 문 대통령은 서서히 권력 누수를 걱정해야 할 시기다. 전례 없는 초 거대여당의 출현은 그 자체로 집권세력 내부에 신구 권력교체의 신호탄을 쏘아올렸을 것이다. 정국 주도권은 청와대에서 여당으로 넘어가고, 여론과 언론도 차기를 노리는 대권 잠룡들의 언어와 행보에 집중할 때다. 그런데 여당 내부에서 누구 하나 고개를 쳐드는 잠룡이 없다. 용은커녕 이무기 흉내조차 삼간다. 대신 대통령에 대한 헌사가 넘친다. 대통령은 태종과 같고(이광재), 지난 3년 위기극복 리더십을 발휘하셨으며(정세균), 대통령을 모신 건 제 일생의 큰 영광이니(고민정), "감사합니다. 대통령님"이다(박범계).임기 말을 향해 걸음을 뗀 문 대통령을 향한 초현실적인 국민적 지지와 거대여당의 복속은 정치사에 없던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인 장면이다. 무엇이 이처럼 이례적인 정치현상을 초래했을까. 코로나바이러스 말고는 설명할 만한 변수가 없다. 죽음의 망토를 걸치고 등장한 코로나는 인류의 삶 전체를 새롭게 규정할 기세다. 2019년을 기준으로 AC(After Covid19)라는 새 연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농담이 진담이 될 판이다. 코로나 출현은 예수 탄생만큼이나 역사적이며 등장 전과 후의 세상은 완전히 다를 것이란 전망이 대세다.코로나가 문 대통령을 우뚝 세웠다. 경제 침체를 이유로 그를 비판했던 대중들도, 자신의 생명을 지켜 줄 희망봉으로 그를 지목했다. 공포에 직면한 대중은 공포를 해결해 줄 초월적 권위와 권력을 찾거나 만들어낸다. 대중의 시선에 딱 한 사람 문 대통령이 포착됐다. 보수 야당은 스스로 공포 해소자의 역할을 걷어찼다. 정치적 대안과 비전과 인격을 상실한 보수 정치인들은 대통령을 슈퍼히어로로 빛내주는 빌런(악당)을 자처했다. 빌런이 날뛸수록 대중은 슈퍼히어로에 집중했다. 성공적인 방역은 대통령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경제위기, 내로남불 도덕성, 지방선거 개입의혹 등 대통령 집권 3년 동안 전개된 정권 비판 이슈들이 모두 각설(却說)됐다. 코로나 초기방역 실패론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이런 추세라면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는 쉽게 꺾일 기미가 없다. 일각에서는 코로나가 지나간 이후 찾아올 파국적 경제에 놀란 국민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야당의 찌질한 빌런 짓이 이어지고, 여권의 잠룡들이 대통령의 친위 여론에 예속된 상황이 지속된다면, 대통령의 나홀로 독주는 임기 말까지 충분히 가능하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차기 권력을 사실상 선택하고 세우는 상황도 얼마든지 가능할 듯하다. 태종과 같은 대통령, 공상이 아닐 수 있다.사법, 입법권력 장악에 이은 국민 지지율 70%. 과연 코로나가 선물한 특별하고 예외적인 권력은 대통령에게 행운일까. 임기 말 대통령에게 전례가 없었던 권력이니 답도 없다. 해답은 특별한 권력의 주인공인 대통령이 직접 써야 한다. 취임사에서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이 민주화 이후 어떤 대통령도 경험해 보지 못한 독점 권력을 가졌다. 그 권력으로 삼권분립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리더십을 보여준다면 그 자체가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코로나 이후 우리 민주주의의 운명은 전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달렸다./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0-05-11 윤인수

[방민호 칼럼]AC(anno covid-19) 원년

與 총선대승에도 민심이면은 복잡세월호서 시작 '삶의 혁명'과정 이해정부, 경제·정치적 '무능력' 딛고코로나19로부터 국민 생명 지켜내생존이 척도라는 새 세계체제 서막국회의원 선거가 여당 쪽의 압승으로 정리된 모양새다. 물론 이 큰 승리는 표면이 그렇다는 것이다. 진짜 민심의 흐름, 이면의 움직임은 간단치만은 않을 테다. 그러나 복잡한 민심의 사정이 일단 여당의 대승으로 낙착된 데는 만만찮은 사연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고 굴려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힘을 코로나19의 '혁명적인' 의미에서 찾으려 한다.세월호 참사로부터 코로나19까지. 나는 이것을 '삶의 혁명'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배에 갇힌 아이들의 꽃다운 생명이 국가의 음모, 또는 무능력으로 인해 사태 지듯 스러졌을 때 우리들은 도대체 국가란, 정부란 무엇이냐, 무엇이어야 하느냐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지난 정부의 일대 몰락이 시작되었다. 국민의 생명을 저버리는 국가란 어떤 정치적, 경제적 명분을 내세워도 용납될 수 없음을, 세월호 참사로부터 '촛불혁명'까지의 일들은 크게 말해 주었다.정부가 바뀌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듯한 사건들이 줄을 이은 적도 있었다. 때문에 이번 선거는 정부, 여당에 그렇게 좋지 못하리라고들 했다. 무엇이 이 상황을 바꾸어 놓았던가? 바로 코로나 집단 감염 사태였다. 마치 1980년에 광주가 모든 '정치혁명'의 진원지가 되었듯이 이번에는 대구가 '뜻하지 않게' '삶의 혁명'의 실험 무대로 소환되었다. 대규모 감염, 확진자 급증, 신천지 교회, 의료 체계 붕괴 위기 속에서 정부, 여당은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던 비판 여론에 떠밀려 가버릴 듯했다.한 달 '코로나 정국'이 전개되는 사이에 모든 것이 급전되어 버렸다. 중국인들 입국을 금지하지 않아 이 야단이 났다고 야당들이 비난을 가하는 사이에 질병본부와 지자체장들, 그리고 정부는 용케도 확진자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막아냈다. 뒤이어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미국, 독일…. 급기야 일본으로까지 코로나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사이에, 뜻밖에도 한국이 방역 시스템 면에서 그들을 훌쩍 능가할 만큼 '선진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모든 경제적, 정치적 '무능력'을 딛고 현 정부는 '갑작스레'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최저임금 '사태'로 인한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어려움, 법무장관 임명을 둘러싼 모든 이해할 수 없는 과정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냈다. 뒤이어 생존의 위기에 몰린 소상공인과 실업자들, 중산층, 하층 국민들을 원조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줄을 이었다. 사태가 워낙 급박했기에, 국민들 모두가 생활의 작동이 정지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피부로 절감하고 있었기에, 아니, 코로나19보다 이 '정지' 사태가 사람들을 더 먼저 질식시킬지도 몰랐기에, 포퓰리즘이라는 비난도, 근시안에, 퍼주기식 물량공세라는 비판도, 선거용이라는 힐난도 모두 배부른 소리로 들리기 쉬웠다. 코로나 사태가 사람들을 삶의 최저한으로 내몰고 있었기에, 정치는 더 이상 통상적인 경제 문제를 다루는 기술에 머물러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삶의 정치, 생존을 위한 정치가 되어야 했다.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된 '삶의 혁명', 그러니까 통상적인, 있어왔던, 낡은 제도상의 정치나 경제보다 삶이, 생존이, 인간적 생명의 최저한이 모든 것의 새로운 척도가 되어야 함을 코로나19, '세계어'로 '코비드 19' 사태는 말해 주었다. 트럼프의 과장 섞인 '허세'도, 아베의 '혐한' 편승 정치술도, '코비드 19'는 그 부끄러운 본색을 벗겨내고 말았다. 만년 선진 열강이라고 믿어지던 서구 제국들이 얼마나 낡았는지, 섬세하고 꼼꼼하다고 '자랑질' 하던 일본이 얼마나 뒤졌는지 '코비드 19'는 알게 해주었다.나는 지금 현 정부를 지지하고 있는 게 '아니다'. AD, 즉 'anno domini'처럼 이 시대는 'anno covid-19', 새로운 원년이자, '포스트콜로니얼'을 넘어선 새로운 세계체제의 서막이다. 우리의 감각, 정서, 인식이 이 생명의 원리를 따라 구각, 그 낡은 껍질을 벗어버려야 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20-04-27 방민호

[이영재 칼럼]진보와 보수의 저녁 식사

총선끝난 3일째 상가에서 친구들을 만났다공교롭게도 '보수·중도·진보' 2명씩인 6명정치얘기 사절 묵계깨고 주고받는 비판 속결론은 '초유의 이상선거' 동의… 잘 하겠지4·15 총선이 끝난 지 3일째 되던 날, 상가(喪家)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코로나 사태로 모두 뜸했는데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한 명, 두 명씩 모여 어느새 여섯 명이 되었다. 첫날이라 한가했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는 몰라도, 집 식구가 몇 명인지는 잘 아는 어린 시절 친구들이었다. 물론 정치적 성향도 잘 알고 있었다. 공교롭게 진보 2명 보수 2명 중도 2명이었다. 수다가 여자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아는 남자들의 번개 저녁 식사가 그렇게 시작됐다.처음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고인의 연세가 94세였다는 상주의 말에 모두 놀랐다. 우리는 점점 늘어나는 인간 수명과 고령화 시대의 노후대책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이 때부터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여차 여차해 재난 기본소득에 이르면서 보수 1이 선거를 앞두고 실시한 그 진정성에 의심을 표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진보 2가 그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추세라고 답했다. 미국이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러자 보수 2가 선거를 앞두고 돈을 퍼붓는 것은 금권선거와 뭐가 다르냐고 끼어들었다. 그러자 진보 1은 "하여튼 보수들 생각은 늘 저래"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이때 중도 1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판은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언젠가, 태극기 집회에 갔다 왔다고 말 한 보수 1과 태극기 집회를 극도로 혐오하는 진보 2가 승강이를 벌인 후, 정치 얘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 사이의 일종의 '묵계'였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술이 한 잔씩 돌아가자 보수 1이 진보 1·2를 보면서 "그래서 좋아"하고 다시 운을 뗐다. 이번 총선에서 180석을 가져갔으니 기분이 좋으냐는 뜻이었다. 조금의 비아냥이 섞여 있었지만, 진보 2가 의외의 말을 했다. "우리도 놀랐어. 180석이 뭐야." 표정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보수 2가 그걸 고깝게 받아들였다. "2중대까지 포함하면 190석이야, 어리버리한 보수 몇 명 끌어들이면 개헌도 가능하지."중도 1은 분위기가 과열된다 싶으면 열심히 술을 따랐다. 덕분에 분위기가 진정됐다. 하지만 이번 4·15 총선이 사상 유례없는 이상한 선거였다는 데는 모두 동의했다. 막판까지 논란을 일으킨 미래 통합당의 한심한 공천에 대해서는 보수 1·2 진보 1·2 중도 1·2 모두 혀를 끌끌 찼다. 이런 정당에 과연 미래를 맡길 수 있느냐고 진보 1이 또다시 목소리를 높이려고 하자, 진보 2가 더는 말하지 말라고 그를 툭툭 쳤다. 그건 보수 1· 2가 할 얘기지 진보 1이 참견할 건 아니라는 것이다. 일종의 배려였을 것이다. 비례대표 연동제라는 근본도 없는 제도가 만든, 3번부터 시작하는 48.1㎝의 투표용지에 대해서는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진보 1은 벌써 노안이 와서 지지 정당에 기표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그때 중도 2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정치 얘기가 제일 재밌기는 해. 근데 지금 하는 거 보니 21대 국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봐.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선거를 치렀니. 표 구걸 하려고 선거 때만 저랬지, 막상 의원 금배지만 달면 사람이 바뀌잖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거대 여당체제라는 것도 실은 두려워. 또 2년 후에는 대통령 선거도 있잖아. 대통령 권한이 무지막지하게 센 나라라 아마 그 자리 차지하려는 싸움이 볼만할 거야. 그런 면에서 민주당의 앞길도 탄탄대로는 아니라고 봐. 여론조사에서 늘 1위를 차지하는 이낙연과 친 문 세력의 갈등이 커져 어쩌면 당이 깨질지도 모르지."우리는 중도 2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우리의 저녁 식사는 그렇게 끝났다. 결론은 중도 1이 내렸다. "아무렴. 건강이 최고야. 술 조금만 먹고, 나라 걱정 적당히 하고 건강 잘 챙기길 바래. 나라야 잘난 정치인들이 알아서 지져 먹고 볶아먹으며 잘 끌고 나가겠지. 진보 1. 너 대학 다닐 때 백골단으로 데모 막았잖아. 그리고 보수 2. 기억 안 나? 시청 앞에서 데모하다 누가 던졌는지 머리에 돌을 맞아 피나고 생난리 피운 거. 그런데 어떻게 성향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어. 하긴 우리나라에 진보 보수가 어딨겠니. 이제 앞으로 만나면 우리 정치 얘기는 그만하기. 이제 정치는 여기서 끝!"/이영재 주필이영재 주필

2020-04-27 이영재

[이남식 칼럼]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트렌드

인공지능 음성인식 기술등 앞세워생활 전반에 걸쳐 '비대면' 보편화유전체 분석등 의료부문도 '개인화''가상화' 교육 방법, 확장되는 기회위기를 기회로 '디지털 변이' 가속최근에 'BC'와 'AC'를 'Before Corona'와 'After Corona'로 부르며 AC의 새로운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U자로 시작하는 세가지 키워드에 주목해 보기로 하자. 우선 '비대면 (Untact)'이다. 많은 패스트푸드 식당에나 카페에서 주문하는 방식이 완전 비대면으로 바뀌고 있으며 상거래에 있어 모바일 거래는 급증하고 있으나 대형마트에서의 구매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특히 신선식품에서까지 새벽 배송 등으로 비대면 구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더불어 대면 자체를 줄이다보니 생활 전반에 걸쳐 비대면이 보편화 되고 있다. 금융, 교육, 문화분야에서도 비대면이 보편화되고 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집에 머물다보니 극장이나 공연장은 많은 타격을 받고 '넷플릭스(Netflix)'나 '유튜브 프리미엄(Youtube Premieum)'처럼 영상 구독서비스가 급격히 신장하고 있을 때, 베를린필하모니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실황을 구독하는 사이트를 무료로 개방하여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공연예술의 무대를 확장하는 것도 새로운 기회를 활용하는 사례가 아닌가 한다. 비대면을 가능하게 하는 많은 기술들이 있는데 5G를 기반으로 한 블루투스나 스트리밍 기술들, 안면인식을 포함한 생체인식을 통한 식별기술들, 인공지능을 이용한 음성인식, 음성합성기술, 다양한 핀테크 기술들, VR(가상현실)이나 AR(증강현실)과 같이 멀리서도 실제감을 느끼도록 하는 기술들이 융합되어 비대면이 더욱 보편화 될 것으로 여겨진다.두 번째 키워드는 '개인화(Unscale)'이다. 기존에는 규모의 경제가 매우 중요하여 일정 규모 이상의 대중을 대상으로 서비스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인맞춤형 서비스가 매우 어려웠으나 비대면과 더불어 이제는 모든 서비스가 원격에서 이루어지며 소프트웨어에 접속하여 이루어지다보니 데이터 분석을 통하여 각각의 개인이 원하는 다양한 필요들을 채워주는 서비스가 보편화 된다. 특히 아마존의 경우 수억 가지의 물품이 판매되지만 주문자의 니즈에 맞는 최적화된 상품을 추천해 줌으로써 오프라인에서 누리지 못하는 혜택을 누리게 되어 고령자들조차도 코로나 상황으로 할 수 없이 모바일 등 온라인을 사용하다 보니 새로운 장점들을 경험하여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확진검사는 DNA나 RNA의 분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의료의 경우에도 유전체 분석에 의한 맞춤식 의료가 보편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결국 빅데이터와 이를 분석하는 애널리틱스가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해 주는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세 번째 키워드는 '가상화(Unreal)'라 할 수 있다. 현장에 있지 못하지만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하며 실제 존재하지는 않으나 가상에도 동일한 실체로 존재하는 사이버물리시스템 (Cyber Physical System)이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경험이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실제와 아주 비슷한 상황이 바람직하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통하여 실제 진료상황에서 수련의로서 생생한 경험을 얻게 되는데 현장에 갈 수 없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도 다양한 시뮬레이터를 이용하여 실제 상황을 그대로 연출하고 경험할 수 있다. 파일럿의 경우도 비행시뮬레이터를 이용하여 실제 비행 이전에 충분히 훈련을 받아 비용과 위험을 줄이면서 비행경험을 전수할 수 있다. 우리가 평소에 경험하기 어려운 상황도 모사하여 보다 폭 넓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방법이 오히려 이 시기에 역설적으로 확장되는 기회를 맞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코로나19 사태는 인류가 오랜만에 맞게 된 위기이기는 하나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맞아 사회 전반에 디지털 변이(DT:digital transformation)을 가속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의 상황은 국경을 닫고 세계적인 물류체계가 마비되며 경제적 대공황의 조짐이 보이나 국가적인 위기관리 능력을 배양하면서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소중한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2020-04-20 이남식

[윤인수 칼럼]절대 권력, 작은 일에 쓰면 안된다

국회의석 180석, 개헌만 빼고 전능한 권력고용쇼크 등 경제기반 자체 무너뜨릴 기세코로나 국난극복 위해 국민이 헌정한 보검기업규제 혁파 위한 진보진영 설득에 써야문재인 대통령이, 여당이, 진보진영이 마침내 의회권력까지 독차지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당선, 2018년 지방권력 장악에 이은 입법권력 독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차지한 국회의석 180석은 개헌만 빼고는 전능한 권력이다. 여기에 정의당, 열린민주당, 호남 무소속을 합친 10석은 덤이다. 대법원, 헌법재판소는 국회동의를 거쳐 진보인사들이 대거 포진된 상태다. 대한민국 행정, 입법, 사법을 민주적 절차를 거쳐 1당이 장악했다. 초현실적이다. 민주화 이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정치지형이다. 양정철은 "무섭고 두렵다"고 했다. 낯선 길에 들어선 국민들도 두렵다.전설적 영웅 아서는 바위에 꽂힌 엑스칼리버를 뽑아 신탁대로 왕이 됐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의회권력이라는 엑스칼리버를 뽑아들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암반에 꽂혀 요지부동이었던 엑스칼리버다. 무소불위의 무기다. 예산은 물론 모든 법안, 동의안을 홀로 처리할 수 있다. 미래통합당에 돌아갈 몇몇 국회 상임위도, 실제 위원장은 민주당 간사다. 야당은 의석은 있되 행사할 권력이 없다.다음 대선까지는 진보진영의 독주다. 대통령의 꿈과 당의 의지를 모두 현실로 만들 수 있다. 당·청이 내딛는 발자국이 대한민국의 길이 된다. 그러나 영웅에게 시련은 필수인가. 대한민국의 위기는 진보진영이 엑스칼리버를 뽑아들기 전 그대로이거나 더욱 심각해지는 중이다. '코로나 국난'은 바이러스 감염 자체보다는 경제분야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고용쇼크, 수출위기, 마이너스 성장이 경제기반 자체를 무너뜨릴 기세다. 내수 활성화를 위한 재난기금으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코로나19가 종식되고 세계경제가 정상화될 때까지 산업기반을 보전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동시에 포스트 코로나 이후, 세계경제 특수를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경제체질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국민은 코로나 국난 극복을 위해 독점적 의회권력이라는 보검을 대통령과 여당에게 헌정했다. 진영을 초월한 엑스칼리버다. 당·청은 보수진영의 반대에 만신창이가 됐어도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였다. 이제는 진보진영의 만류로 망설였던 규제혁파로 혁신성장에 매진할 때다. 당·청의 독점적 권위를 기업규제 혁파를 위한 진보진영 설득에 써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은 독점권력이란 엑스칼리버를, 우리 경제의 숨통을 조이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끊는데 사용해야 한다. 알렉산더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고 제국을 열었듯, 문재인 정권도 완벽한 권력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진로를 여는데 써야 한다.문재인 정권에게, 민주당에게 외부의 적은 없다. 내부의 적이 있을 뿐이다. 큰 권력을 작은 일에 쓰자는 사람들은 내부의 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조짐은 뚜렷하다. 진영 일각에서 쏟아내는 윤석열에 대한 저주의 언어는 살벌하다. 모든 권력을 가진 정권이 검찰총장과 전면전을 벌인다면, 소 잡을 칼로 닭을 겨누는 꼴이다. 윤석열을 놔두는 아량, 공수처장을 야당과 협의해 결정하는 관용으로, 절대권력에 대한 신뢰를 높여야 한다.이해찬 대표는 민주당 앞에 열린우리당이라는 거울을 세워 놓았다. 노무현 탄핵에 반발한 격정적 여론이 탄생시킨 열린우리당은 견제 없는 폭주로 해체됐다. 이해찬 대표는 열린우리당의 뼈 아픈 실패를 걱정한다. 노장의 정치적 지혜는 녹슬지 않았다. 견제 없는 권력은 맹목이 되기 십상이다. 이 정권에 윤석열은 보약일 수 있다. 윤석열이 가려내는 내부의 적폐를 도려내면, 잠시 아프겠지만 새살이 돋는다.그래도 걱정은 남는다. 극단적인 권력집중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역사는 이를 증명하는 기출문제집이다. 당·청이 배타적 권력을 감당할 수 있는 민주적 역량을 발휘하기 바란다. 4·15 대첩은 진영을 초월해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귀속되어야 한다./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0-04-20 윤인수

[데스크 칼럼]시민을 위한 진정한 행정

주민을 위한 진정한 행정이란 바로 이런 행정이 아닐까.지난달 말 수원지역 여론은 어수선했다. "다 주는데 왜 우리 수원시만 안주냐"는 비아냥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코로나 19 관련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발표가 늦어진 비난이었다.심지어 옆동네로 전입을 시도(?)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관공서엔 재난기본소득 지급여부를 묻는 전화까지 빗발쳤다. 실제 벌어진 일로 "3초마다 울리는 '재난소득 문의전화 행복센터 마비"라는 제목의 기사까지 경인일보에 게재됐다.당연, 염태영 수원시장에게 쏟아지는 비난도 컸다. "왜 욕을 먹으면서까지 재난기본소득 지급여부를 발표를 하지 않냐"는 염 시장의 답은 "때가 아니다"라며 발표를 늦췄다.그 까닭은 이랬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의 대표회장을 맡고 있어 수원시의 결정이 기초지자체의 일반적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주고, 안주고를 떠나 정부와 광역지자체의 대책이 발표된 후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게 진정한 지방자치행정이라는 설명이었다.염 시장의 판단은 옳았다.타 지자체들보다 뒤늦은 4월 2일에서야 지급 결정을 내렸지만 수원시민들은 9일부터 재난기본소득을 최초 지급받는 시민(지난달 31일 기준 119만2천762명)이 됐다.첫째날 실제 1004명이 그 수혜자가 됐다.시의회에서도 염 시장의 철저한 행정에 신속한 심의로 보답했다.수원시의회는 지난 6일 신속하게 원포인트 임시회(제350회)를 열고 의원 모두의 만장일치로 재난기본소득 지급 관련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속전속결(速戰速決) '이었다.조명자 의장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조 의장은 추경 심의 후 "재난기본소득 지급과 관련된 조례안과 예산안을 긴급히 처리함으로써 수원시 재난기본소득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 지역경제 회복의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결국 수장의 올바른 판단이이 119만 2천762명의 시민을 웃게 만든것이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디딤돌이 된 것이다.염시장의 주민을 위한 행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코로나 19 사태로 경제위기 속에 시민들과 함께 '기부'라는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이 것이 코로나를 시민들과 함께 이겨내기 위한 염 시장의 복안인 것이다. /김영래 사회부장김영래 사회부장

2020-04-10 김영래

[전호근 칼럼]비누 두 장과 118만원

코로나19 발생하자 대구서 '사투' 다큐멘터리 방송 후원품 개봉장면시가보다 배송비큰 비누등장에 떨려암보험 해지해 기부한 지체장애인우리는 '무언가' 넘어서고 있는 것한 달 전 대구 경북지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집단감염이 대규모로 발생하자 온 나라의 의료진과 소방대원, 자원봉사자들이 대구 경북지역으로 달려가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였다. 당시 한 방송사에서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제작하여 방송했다.방송 중에 코로나19 환자를 천안으로 이송하는 소방대원들이 출발 전에 기저귀를 챙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취재기자가 환자용이냐고 묻자 그중 한 대원이 해맑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저희들이 사용하는 겁니다. 감염의 우려가 있어 중간에 주유소를 들러도 보호복을 벗을 수 없기 때문에 기저귀를 차는 겁니다."이어서 간호사들이 잠시 마스크를 벗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카메라에 비쳤다. 콧등에는 다들 밴드를 붙이고 입가에는 마스크 자국이 완연했는데 이마에는 저마다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그들의 주름은 근심의 흔적이 아니라 방호복을 착용한 흔적이다.방송에 따르면 방호복을 입고 움직이면 전신이 금세 땀으로 흠뻑 젖고 고글까지 착용하면 습기가 차서 앞도 잘 보이지 않는데 그렇게 24시간을 3교대로 근무하며 환자를 보살피다보니 코피를 쏟거나 탈진해 쓰러지는 간호사들이 하루에 한 명 꼴로 나온다고 한다.밤샘근무를 마치고 나오는 한 자원봉사자에게 기자가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거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애초 기약 없이 왔습니다."갓 스물이 된 그 청년은 앞으로 소방대원이 되어 인명을 구조하는 일에 함께 하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했다.대구에 답지한 후원물품을 개봉하는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자원봉사자들의 분주한 손놀림을 따라가다가 작은 종이봉투를 비추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달랑 비누 두 장이 들어 있었다. 봉투를 연 사람의 손이 잠시 떨렸고 화면을 보고 있던 내 마음도 따라서 떨렸다.아마 저 비누 두 장의 시가(市價)는 배송 비용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내는 비용이 더 들었을 테니 시장 원리에 따르면 비누를 보낸 것은 보내지 않은 것만 못한 일이 된다. 시장의 정의는 상호이익인데 보낸 사람과 받은 사람 모두의 이익에 마이너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저 비누 두 장이 필요한 사람에게 배달된 것은 시장의 논리를 넘어서는 다른 무언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게 뭔지 지금까지 생각중이지만 분명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3월 2일에는 서울의 한 주민센터에 어느 시민이 찾아와 봉투를 건네며 "대구 코로나19 피해 주민을 위해 써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봉투를 열어보니 현금 118만7천360원과 함께 편지가 들어 있었고 편지에는 "나는 기초수급자로 그동안 나라에서 생계비를 지원받아 생활했다. 대구 코로나19 피해 소식에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 준비했다"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다리가 불편해 지체장애 5급 판정을 받은 시민으로 7년간 유지하던 암보험을 해지하고 그 돈을 주민센터 직원에게 건넨 것이라고 한다.이보다 하루 앞선 3월 1일에는 광주공동체 특별담화문이 발표되었다. 대구 경북지역에 병상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광주가 대구 경북지역의 환자를 받아들여 치료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후 광주에서 치료를 받았던 환자는 전원 완치되어 대구로 돌아갔다.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험지로 달려가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본 의료진과 소방대원들, 생업을 제쳐두고 이웃을 위해 궂은 일을 맡아준 자원봉사자들, 비누 두 장을 기부한 이름 모를 시민의 아름다운 마음, 보험을 해지한 기초생활수급자의 성금 118만원,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이웃을 받아들여 정성껏 치료해 건강을 되찾아준 광주공동체의 아름다운 배려. 이들이야말로 지난 몇 주 간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영웅들이다. 특히 비누 두 장과 118만원의 기부는 도움을 받아야 할 이들이 보내는 도움의 손길일지 모른다. 희망은 늘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굳이 서둘러 나의 울타리를 치고 남의 마스크까지 빼앗아가며 허둥대는 이기적인 사례와 비교하지 않아도, 인간과 공동체의 품위는 어디에서 바닥을 드러내는지 보인다. 희망이 보이는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언가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4-06 전호근

[이명호 칼럼]이제 조심해서 살아야겠습니다

수만년 전부터 바이러스 공존했지만박쥐 서식지 사라져 숙주 이동 과정면역력 없는 '코로나19'등 자주 등장밀림·생태계 파괴 인간에게 '반격'물자 소비 줄이면 '안전' 보장된다코로나19는 우리에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살지 말라는 사전 예고는 아닐까? 물론 바이러스가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결국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게 된 것은 아닐까? 우리의 평온한 삶이 바이러스에 의해 깨졌듯이 바이러스의 삶도 우리 인간에 의해 깨진 것은 아닐까?우리는 일상을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데, 이 균형이 깨진 것은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바이러스들은 우리의 조상이나 우리가 생활하면서 접했던 바이러스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정도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 수천, 수 만년 전에 우리 조상들이 야생의 개, 돼지, 소 등을 가축으로 길들이면서, 이런 야생 동물에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 오면서 인간은 전염병이 도는 치명적인 위협을 받았지만 이후 이런 바이러스에 적응하면서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치료제나 면역력이 생기게 하는 백신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고통을 받더라도 바이러스와 우리의 균형이 깨지지 않는다. 그런데 에볼라,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은 새로운 바이러스여서 우리가 면역력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그런데 왜 이렇게 새로운 바이러스가 갑자기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전염병 연구자들에 의하면 새로운 바이러스들은 주로 박쥐를 숙주로 했던 바이러스라고 한다. 곤충을 잡아먹는 충식성 박쥐와 과실을 먹는 과일박쥐가 널리 분포되어 있지만, 다양한 식성의 박쥐들은 무려 1천종이 넘는다. 박쥐는 포유류 중 가장 많은 종류를 차지하여 포유류 종의 4분의 1이 박쥐다. 그리고 포유류이면서 날아다니는 박쥐는 신체적인 특성상 몸 안에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를 갖고 있어도 바이러스에 의해 질병이 생기지 않는다.박쥐가 많은 바이러스를 갖고 있지만 다른 포유동물과 인간에게 위협이 적었던 이유는 다른 포유동물과 서식지를 공유하지 않고 동굴 등 고립된 지역에서 집단 서식하기 때문이다. 근대화와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많은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왔지만, 박쥐는 상대적으로 서식지 파괴가 적었다고 할 수 있다. 아마 마지막 남은 야생동물 박쥐의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바이러스가 박쥐가 아닌 다른 숙주를 찾아 서식지를 옮기는 과정이 바로 전염병의 창궐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숲이 파괴되면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줄어들고, 원주민 또한 개발로 인하여 더 깊은 숲 속으로 이주하여 침팬지나 박쥐에 의해 전염된 야생동물을 잡아먹게 된 것이 에이즈와 에볼라의 기원이다. 사스, 메르스 또한 박쥐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향고양이, 낙타에 의해 인간이 감염된데 기인한다. 조류독감, 돼지열병도 마찬가지이다. 야생 조류의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야생 조류와 닭과 같은 가금류의 사육지가 가까워지자 야생 조류의 바이러스가 가금류에 집단 감염을 일으키고 있다.지구의 야생 밀림과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지구의 정복자로 자처하던 인간이 결국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의 반격을 받고 있다. 야생동물에 대한 위협을 줄여야 인간도 새로운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다. 결국 야생 생태계 파괴를 멈춰야 한다. 야생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은 우리의 풍요한 생활 때문이다. 석유 한 방울, 나무 하나, 쌀 한 톨도 다 자연으로부터 오고, 우리가 쓰고 버리고 낭비할수록 자연은 더 오염되고 생태계가 줄어든다. 이미 우리는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의 1.7배를 지구에서 착취하고 있다.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온실가스와 지구 온난화이다. 산업혁명 이전보다 지구 평균기온이 1℃ 높아졌으며, 이번 세기 중반에 기온이 1℃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 1℃의 차이가 호주 전체 숲의 약 14%를 태워버리고 북극의 빙하를 녹이고 있다. 다음에 예견되는 사건은 수만년 동안 얼어있던 '영구동토층'이 녹기 시작하며 과거 바이러스와 병원체들이 부활하는 것이다. 기상이변 등으로 생태계가 교란되면 사람도 이동하고, 바이러스와 병원균도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이동한다. 또 다른 전염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물자 소비를 줄이면 그 만큼 자연과 생태계의 교란을 줄일 수 있다. 우리의 안전도 더 보장된다. 더 조심하면 더 안전하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20-03-30 이명호

[홍창진 칼럼]정직한 사람이 만드는 사회

코로나 신천지사태 위기를 겪으며조사 불응·확진판정자 접촉 숨기기사이비종교 거짓말 행태 슬픈 현실위선 넘치는 우리사회 민낯 보는듯소외된 이웃 진심의 위로 손길 필요코로나19로 지구촌은 엄청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고 바이러스 전염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고 일상적인 생활에도 여러 제약이 따르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이번 사태에서 신천지라는 사이비 집단이 문제의 중심으로 드러났습니다. 조사 과정 중에 이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온 국민이 경악했지요. 이런 시급한 상황에서도 전염 가능성이 있는 명단을 공개하지 않거나 조사에 불응해 국가의 방역 업무를 방해하는 것은 물론, 한 신도는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과 접촉한 사실도 숨긴 채 병원에 출근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이런 일련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종교 행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사이비 종교나 사기 등 '사' 자로 시작하는 현상의 특징은 철저히 속이려는 대상의 입장에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4년째 취업 준비 중인 청년에게 가장 간절한 것은 취직입니다. 그러면 취업을 미끼로 접근합니다. 취직을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다름 아닌 '가난'입니다. 가난은 배움도 부족하게 하고 인맥도 부족하게 합니다.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사람들은 결국 취업 현장에서도 소외되게 마련입니다. 가난이 서러운 사람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가난 때문에 무시당하고 기회에서 밀려난 열패감과 열등의식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것입니다. 사이비 종교는 이런 위로를 잘해줍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위로를 전하기 위해 지도자급이 아닌 같은 처지의 동년배 교도를 접근시킵니다. 따뜻한 심성을 가진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등을 두드리며 처진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순간 이미 한 청년의 영혼은 그들에게 넘어갑니다. 그다음 단계는 공동체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집단 활동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직업을 제공합니다. 다단계식 직장을 통해서 성취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지요. 이들에게 자기들만 구원된다는 선민의식만 심어주면 그때부터는 행복이 충만한 로봇으로 변신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위로받은 고마움에서 시작했지만 지도부와 그의 측근 집단이 설계한 영혼 탈취 프로그램에 의해서 상식을 넘어서는 로봇으로 변신합니다.사이비 교주들은 목적이 뚜렷합니다. 거짓 신을 만들고 거짓말로 사람을 속여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입니다. 사기는 재물만 가로채 가지만 사이비 종교는 재물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영혼까지 가로채 갑니다. 그래서 사기는 당하는 순간 바로 알지만 사이비 종교는 당하고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신천지 같은 사이비 종교는 수없이 많습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고 그 소외된 심정을 정직하게 위로해주는 이웃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날 정치권의 정의사회 구현은 구호에 불과하고 실제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한다는 기성 종교는 먹고 살 만한 사람들끼리만 서로 위로하는 모습입니다. 안타깝지만, 소외된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그들의 골수를 빼먹고 싶은 사이비 교주들뿐입니다. 너무 슬픈 현실입니다. 정직한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밀려나면 사이비와 사기는 이 사회에 만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코로나19와 신천지 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회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우리 사회는 정직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 거짓 사랑과 거짓 위로를 통해 자기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위선자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위선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코로나19 같은 위기가 닥치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런 흉측한 우리 사회 민낯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회를 정상화할 수 있을까? 신천지를 제거하면 가능할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 사회의 소외 계층에게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이비가 거짓 위로로 팽배하지 못하도록,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보통의 정직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소외된 사람들이 사이비들 때문에 두 번 소외당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03-23 홍창진

[이영재 칼럼]그래도 봄은 온다

이번주도 역시… 약국에 마스크는 동났다줄서기 대란은 정부의 무능과 직결된 사례대통령은 '中전달·생산 충분' 허세끝 '송구'하늘 도왔나 진정세… 성숙대응 국민만 빛나역시 허탕이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도 약국을 찾았지만, 마스크는 없었다. 늦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약사는 "지금 이 시각에 와서 무슨 마스크를 찾으슈"라는 표정을 지었다. 약사와 나는 서로 얼굴을 보며 픽 웃고 말았지만, 왠지 뭔가 손해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 약국에도 마스크는 이미 모두 동난 상태였다. 약국 안까지 들어올 필요 없다며 입구에 '공적 마스크 매진'이라고 친절하게 써 붙인, 잔뜩 때가 묻은 A4 용지는 한 귀퉁이가 떨어져 바람에 펄럭였다. 그 몰골이 찢어진 우리의 자존심처럼 보였다.이번 코로나 19사태로 우리 국민의 자존심에 많은 상처가 났다. 그중 정부의 무능과 직결되는 중국인 입국 문제와 마스크 대란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기에 정부 고위관리의 실언이 더해져 국민의 자존심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중국에서 들어온 관광객이 감염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중국을 다녀온 우리 국민이 감염원으로 작동한 경우가 더 많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중국이 우리에게 각별히 감사해야 한다."(추미애 법무부 장관) "스스로 방역 능력이 없는 나라들은 입국 금지라는 투박한 조치를 하고 있다."(강경화 외교부 장관)그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 전화를 걸어 "중국의 아픔은 우리의 아픔"이라고 한 것은 정말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국민은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누구의 대통령인가. 그 후 중국은 마치 폐렴의 진원지가 우리나라인 듯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지난 19일 자국민에게 한국 등 10여 국에 당분간 여행 금지를 권고했다. 사실상 한국으로의 여행을 금지한 것이다. 전 세계 189개국을 무비자로 갈 수 있었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여권은 이제 중국에서조차 천대받는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이때 많은 국민은 '삼전도의 굴욕'을 떠올렸다.마스크 문제도 그렇다. 마스크 두 장을 사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서면서 느껴야 했던 그 참담함을, 줄을 서보지 않은 정부 고위관리들은 잘 모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종료된 후 가장 먼저 할 것은 마스크 대란 국정 조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중에 마스크가 사라졌는데 당시 왜 총리실에서 "정부는 마스크 200만 개를 중국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허세를 부렸는지 반드시 규명해야 할 것이다. 그 후 어떤 보고를 받았기에 문 대통령이 "마스크는 수요를 감당하기 충분한 생산 능력이 있다"고 말했는지, 그 충분한 생산능력이 어떤 마술을 부렸기에 다음 날부터 전국적으로 '줄서기 대란'이 일어났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날 이후 사태가 험악해지자 "수요만큼 충분히 공급할 수 없다면 현실을 알리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라"는 문 대통령의 말이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문 대통령은 "마스크를 신속하고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국민들에게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19사태가 터진 후 대통령의 첫 공식 '사과'가 아닌 첫 공식 '송구'였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늘 그렇지만 우리 국민의 저력은 위기상황에서 빛난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가 자화자찬만 늘어놓고 있을 때, 우리 국민이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은 감동 그 자체였다.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했다. 마스크를 사려고 긴 줄이 생겼지만, 새치기는 없었다. 사재기는 더더욱 찾아볼 수도 없었다. 확진자와 생이별을 하는 기막힌 현실에서도 가족들은 속으로 눈물을 삼킬 뿐, 당국의 대응지침에 잘 따랐다. 이 기간 대구시민들이 보여준 품격과 의료진들의 눈물겨운 희생정신은 '코로나 의병'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이런 국민이 사는 나라다.주말에 조선 시대 역병을 다룬 좀비물 '킹덤 2'를 보았다. 주인공인 의녀 서비가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면 이 모든 악몽이 끝날 것"이란 말이 가슴을 쳤다. 나에겐 이 말이 코로나 19로 무너진 자존심으로 힘들어 하면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로 들렸다. 하늘이 도왔는지 코로나 19도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여전히 어렵지만, 우리는 모두 이겨내고 우리가 있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봄이 오고 있다. 이 악몽도 곧 끝날 것이다./이영재 주필이영재 주필

2020-03-23 이영재

[방민호 칼럼]귀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말기암으로 투병중이셨던 선생님세상살이·가는 곳 조차 '까다로운'언제나 올곧은 마지막 '선비' 모습이권·속임수… 허깨비 같은 세상속진실된 삶이란 무엇인지 되돌아봐지난 일요일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말기암으로 투병하고 계시던 선생님께서 영면에 드셨다는 것이다. 바로 금요일까지만 해도 아주 평온한 모습이셨다. 통증이 얼마나 있으시냐고 여쭈었을 때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고 하셨다. 몹시 위중한 중에도 아직 여명이 남아 계시리라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그러나, 들으니, 그 다음날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셨다고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나와 댁으로 가시려던 계획도 실행치 못한 채 그만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했다.코로나19 때문에 호스피스 병동 출입을 엄격히 금한다고, 간호사가 쫓아와 자꾸 독촉하는 바람에 단 2분여 뵌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허망하고 안타까울 수가 없다.선생님의 말기암 투병기간은 그래도 짧지만은 않으셨던 것 같다. 2018년 8월 말에 당신께 그런 악독한 병종이 자리를 잡은 사실을 뒤늦게 아셨다. 항암투병에서 호스피스 병동에 드시기까지 1년6개월여를 굳세게 삶의 의지를 불태우셨다.낮에 대전에서 소식을 듣고 서울로 올라와 급한 일들을 되는 대로 해치우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저녁 일곱시가 넘어서였다. 차를 바로 앞 주차장에 세우지 못하고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려 하니 체온 재고 출입기록관리하는 사람이 마스크를 가져왔느냐고 묻는다. 몹시 허둥대는 바람에 차 안에 마스크를 버려두고 뛰듯이 서둘렀던 것이다.이날 따라 바람은 왜 이렇게 맵찬지, 서울 상경 길부터 이십 년래 처음 겪어보는 강풍이었다. 두 번 걸음으로 마스크를 가져오는데 거센 바람이 허술한 옷 속으로 사정없이 밀려들었다. 겨우 마스크를 쓰고 체온을 재고 기록을 남기고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신 빈소로 향했다.흰 국화 한 송이를 바치고 절을 드리는데도 슬픔이고 뭐고 느낄 겨를이 없다가 낮에 소식 전해 주신 분을 뵙자 그때야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코로나19든 뭐든 선후배들 오신 분들과 앉아 생전의 선생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문객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을까. 하기는 당장 오늘 낮에 전해진 소식이고 하필이면 코로나19라고 병원, 장례식장은 특히들 꺼리는 시절이다.선생님은 양산 사람으로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 입학과 더불어 상경 이래 서울 사람이 되시다시피 했지만 지금껏 부산 사람의 기질과 정서를 잃어버리지 않으신 분이었다. 사투리도 사투리지만, 세상살이의 태도에 엄격하고 먹는 것, 가는 곳을 고르는데 언제나 '까다로우신' 그 변함없는 태도는 당신이 이 땅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멸종 위기 '선비'족의 일원임을 증명하고도 남았다.이기영이라고, 저 일제 강점기에 이름 높던 카프 작가, 덕수 이씨 이순신 장군의 12대 지손이었던 그를 가계도까지 그려내며 연구하신 '진보파'였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 들어서서는 안 되는 길에는 손도 발도 대지 않는 그 엄격함은 당신을 차라리 '보수' 본당이라 여겨야 맞을 것도 같았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나는 경직된 '만능' 이분법을 지독히도 혐오해 마지 않는다.평소 세상에 대해서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단순하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배경과 맥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밝히고서야 왜 그 일이 그런 뜻을 갖는지 하는 결론을 말씀하실 때쯤이면 듣던 우리 모두 지쳐 나자빠지고야 말, 별명이 '지하철 2호선', 순환선인 분이셨다.그러셨건만 삶의 막바지에 이르셔서는 '시원스럽게' 탁탁 말씀하셔서 맞장구쳐 드리기 좋았다. 코로나19에, 선거에, 정부에, 아무개에, 경제에, 눌러두셨던 판단들을 다 드러내셨지만 이미 너무 오래 담아두기만 한 날카로운 생각들이셨다.한밤에 늦게 장례식장을 나오는데, 삶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생각한다.선거에, 명분에, 이권에, 속임수에, 겉과 속 다른 온갖 일들이 한순간도 지치지 않고 이어지는 이 허깨비 같은 거품 세상.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진실을, 진짜를 귀하게 여겨 볼 수는 없을까./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20-03-16 방민호

[이남식 칼럼]창조의 섭리

감염증 방어 기제 '사이토카인'과잉 분비땐 패혈증 등 치명적숙주 사멸 바이러스 증식 막아어쩌면 팬데믹 예방 안전장치'폭풍 현상' 심도 깊은 연구를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전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비하여 매우 높은 전염성을 가지고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매우 흔한 감기 바이러스로 그동안 생명에는 크게 위협을 미치지 않는 존재였으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이나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과 같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조류나 낙타를 통하여 변이가 일어나 동물에서 인간으로 이종감염되면서 전염성과 치사율이 높아지고 전 세계적인 감염(팬데믹)이 일어나 큰 위협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번의 코로나19도 크게 보면 사스나 메르스와 비슷하게 고열, 기침, 호흡곤란 등의 증상과 심한 경우 폐렴, 호흡부전과 신부전 등이 나타난다. 치사율은 2.3% (중국 질병예방통제본부가 2월 17일에 발표한 4만5천건의 자료분석결과)로 낮으나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감염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사망자의 절대적인 숫자도 증가, 심리적인 위협이 더욱 크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주로 노년층과 기저질환을 가진 경우가 더 위험하여 건강한 사람은 1% 이하의 치사율을 보인 반면, 심혈관 질환을 가진 사람의 사망률은 10.5 %, 당뇨병 환자의 경우 7.3 %, 만성 호흡기 질환, 고혈압 또는 암 환자의 경우 약 6%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사스나 메르스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치료가 어려워지는 '사이토카인 폭풍' 현상이다. 사이토카인은 감염증에 대한 면역계의 방어 기제로, 면역세포가 분비하는 세포신호전달에 관여하는 단백질로 세균이나 병원균이 몸 안에 들어오면 면역세포들이 감염부위로 모여들게 하여 (염증반응) 효과적으로 방어하도록 하는 물질이다. 하지만 사이토카인이 과잉으로 분비될 경우, 고열이 발생하며 통제 불가능한 염증이 일어나, 기도 폐쇄나 다발성 장기부전을 유발하며 패혈증도 일어나게 된다. 특정한 바이러스(스페인 독감, H5N1 조류독감, 에볼라, 돼지독감,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이 사이토카인을 과잉으로 생성시키고, 과량의 사이토카인은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도 치명적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의 치사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이토카인이 과잉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아직 어떤 상황에서 '사이토카인 폭풍'이 촉발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으며 치료법을 위한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코로나19는 스스로는 생존하지 못하며 숙주의 신체 내에서만 RNA가 복제되면서 생존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바이러스의 독성이 너무 강하면 숙주들이 모두 죽으며 바이러스 또한 소멸하게 될 것이다.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숙주의 면역계가 적당히 강하여 자신들에게 지나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반대로 인간의 입장에서는 특히 코로나19처럼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가 몸 안에서 급속하게 증식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를 옮기는 '슈퍼 전파자'가 많아진다면, 인류 전체가 위험에 직면하게 되고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보자면 '사이토카인 폭풍'은 인류를 이러한 팬데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창조의 섭리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본다. 즉 일종의 '자살 폭탄'으로 침입한 바이러스에 견디지 못하고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되면 안전장치로서 '사이토카인 폭풍'이 오히려 숙주를 사멸시킴으로써 더 이상 특정 바이러스가 증식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앞으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사이토카인 폭풍'이 촉발되며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시 한 번 창조주의 섭리를 느끼며 모든 것이 인간의 교만함에서부터 기인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2020-03-09 이남식

[윤상철 칼럼]정보민주주의? 정보포퓰리즘!

조국이어 코로나19 사태 사회 쟁점인터넷이 '해법 공론장' 기대했으나국가·자본의 네트워크 개입 사유화개개인은 의견 취합전에 편식·잡식집단간 대화·토론부정 반민주공간최근 두 가지의 정치사회적 쟁점이 한국사회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하나는 소강상태에 이른 '조국사태'이고 다른 하나는 절정을 향해 치닫는 '우한폐렴 사태'이다. 두 사건 모두 국민의 일상적 삶에 깊숙하게 관여하는 사안인 만큼 국민들은 이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게 드러내려 한다. 이미 국민들은 자신들이 모두 발언할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고 있다. 두 사안의 의미를 진단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나 해법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도 국민들은 극단적으로 상반된 입장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미 국민들은 사안들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서로 확신한다. 또한 으레 그렇듯이 두 사안 모두 정치세력들간의 결사항전의 메뉴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국민들을 대표하는지 아니면 동원하는지 알 수 없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물론 두 사안 다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되고, 외적 상황에 의해 봉합될 수도 있지만, 여진이 가시지 않은 휴화산일 뿐 언젠가 다른 쟁점으로 다시 소환될 것이다. 198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는 거대하고 중층적인 변화를 겪었다. 권위주의체제로부터 민주화된 직후부터 지구화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민주화 자체도 지구화의 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지구화와 함께 대중들의 일상생활을 더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흐름은 정보화였다. 민주화를 성취한 한국인들은 정보화에 대해서도 진보적 낙관론을 가질 수 있었다. 권위주의체제의 폐쇄성, 즉 정보의 비대칭성이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결정적 장애였다고 생각하고, 정보화는 이러한 장애를 넘어서 정보로 무장한 민주적 시민들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배양할 거라고 기대했다. 심지어 자본주의체제의 불평등성도 기본적으로 노동자와 자본가 간 정보격차를 해소하면 완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민주주의와 미디어 간의 관계를 갈파한 미국의 언론학자 로버트 맥체스니는 '디지털 디스커넥트'라는 책에서 미디어는 더 이상 하버마스가 그렸던 '공론장'이 아니라고 말한다. 정부 간섭이나 통제로부터 벗어나 국가의 정책에 대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과 논쟁을 벌이는 공간이기를 멈추고 자본에 의해 사유화되고 소비자의 정보가 상품화되고 광고의 경제학이 지배하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인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보화사회의 꽃인 인터넷 역시 자본의 욕망과 국가권력의 통제가 투사되면서 민주적이고 자율적이고 사회적인 대중소통의 공간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즉, 정보화가 보다 풍요롭고 평등하게 정보를 공유하게 해줄 거라는 기대는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한 국가와 자본에 의해 분절된 사회인 미국에서 정보민주주의의 희망이 사라졌다면, 그나마 상대적으로 강한 사회를 지닌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정보화를 기반으로 네트워크로 연결된 민주주의를 이루었을까?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국가와 자본은 정보화사회의 네트워크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개입한다. 물론 정보화 자체의 왜곡 혹은 결함도 있다. 사이버공간의 압도적 이미지는 사적인 욕망과 기호가 분출하면서 정보의 경중과 정오를 가리기 힘들어진 정보의 쓰레기장이다. 대부분의 개인들은 정보를 취하기 전에 그 막대한 양에 압도당하고 만다. 전문성과 도덕성 등의 기준이 없는 그 공간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기호에 따라 편식하거나 잡식할 뿐이다. SNS 등으로 대표되는 정보화의 또 다른 특징은 이른바 '유유상종' 혹은 '호모필리(homophily)'이다. 카카오톡, 라인 등 다양한 DM(Direct Message)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 팟캐스트나 유튜브 등도 자유로운 공론장이기보다 비슷한 특성과 취향에 따라 모여서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공간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인터넷 공간은 일군의 사람들이 정보의 쓰레기장의 한 귀퉁이를 자신들의 영토로 선언하고 다른 집단간의 대화와 토론을 부정하는 반민주주의적 공간이 되고 있다.정보화가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정보불균형을 해소하여 더 깊은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려면, 이에 덧붙여 집단간 소통과 타협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집단들은 국가와 자본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정보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집단간 격리와 균열을 더욱 확산시켜 '디지털 디스커넥트'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나아가 일부 시민들은 국가와 자본에 의해 분리되거나 동원되고, 나머지 시민들은 또다른 비집권 정치세력에 의해 동원되는 사회는 더 확신에 찬 '정보포퓰리즘'을 낳을 수 있다. 그 포퓰리즘 안에서 민주주의는 질식된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20-03-02 윤상철

[전호근 칼럼]우한(武漢)과 우정

코로나19로 봉쇄 한 달 지난 '우한''지음' 백아·종자기 우정 자리한 곳인류가 만나보지 못했던 바이러스감염 우려로 인한 '혐오'를 멈추고최선 다해 싸우는 이들을 응원해야나는 2009년 여름에 우한(武漢)에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우한은 내게 중국이 혼돈의 국가라는 인상을 남겼다. 고색창연한 고대의 유적과 현대식 마천루가 마주 보고 있었고 화려한 백화점과 이웃한 곳에 오래된 전통시장이 불을 밝히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한마디로 전통과 현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혼재하는 불가사의한 도시라 하겠지만, 또한 내가 아는 우한은 가장 오래된 우정을 간직한 고장이기도 하다. 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이 깃든 고금대(古琴臺)가 자리한 곳이기 때문이다.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은 동아시아에서 벗에 관한 가장 오래된 이야기다. 백아는 거문고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다. 그가 거문고를 타면 말들이 춤을 출 정도로 아름다운 연주였지만 동시대의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아가 산속에서 홀로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데 나무꾼 종자기가 그곳을 지나다가 그의 연주를 듣게 되었다. 그때 마침 백아는 태산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는데 종자기가 듣고는 "훌륭하구나, 거문고 연주여! 태산처럼 높고 높구나!"라고 했다. 잠시 뒤에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연주하자, 종자기가 또 말하길 "참으로 훌륭한 연주다. 넘실대는 것이 흐르는 물 같구나!"라고 했다. 백아는 비로소 자신의 음악을 알아듣는 벗을 만난 것이다.종자기가 죽었을 때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어버렸다. 이후로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는데 이를 백아절현(伯牙絶絃,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버림)이라고 한다. 백아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거문고 연주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여기까지가 《여씨춘추》에 전해져오는 이야기이고 우한의 고금대는 이 두 사람이 우정을 나눈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두 사람이 처음 만날 때 백아가 연주한 두 곡이 고산곡(高山曲)과 유수곡(流水曲)이다. 이후 이 음악은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인들의 우정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고 이로부터 마음에 꼭 맞는 벗을 가리키는 지음지우(知音之友,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알아듣는 친구)라는 말이 나왔다.그런데 종자기가 죽으면서 두 사람의 우정은 끝났다고 여기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로부터 천여 년 뒤 당나라에 유학한 신라의 최치원은 비 내리는 가을밤에 등불을 밝히고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리워했고, 18세기 조선의 박지원과 이덕무는 만약 벗이 있다면 높은 산(高山)과 흐르는 물(流水)에 자신의 마음을 담겠노라 노래했으며, 김정희와 전기는 그림 속에 두 사람의 우정을 그려 넣었다. 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은 한 시대나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2천년도 더 된 긴 시간을 넘어 이웃나라까지 전해진 것이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이 깃든 유서 깊은 도시 우한이 중국 당국에 의해 봉쇄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우한을 오가던 항공편이 끊어지고, 기차 또한 우한의 주요 역을 무정차 통과하고 있으며 우한 주변에는 검문소가 들어서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넘어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죽는 일까지 일어나면서 우한 시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더욱이 감염을 우려하는 외부의 사람들에게 우한은 마치 바이러스의 온상처럼 여겨져 우한 사람을 혐오하는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감염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로부터 감염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일은 나와 그가 같은 존재라는 생물학적 자기고백이다. 그렇다면 감염된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은 자기혐오와 다른 것이 아니다. 우한 밖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우한 시민들이 두려워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감염의 가능성은 혐오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함께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뿐이다. 우한이 안전해져야 우리가 사는 곳 또한 안전해지기 때문이다.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류가 이제껏 만난 적이 없는 새로운 감기바이러스로 이에 대한 대처는 전 인류의 문제다. 생물 분류상 단일종인 인류의 특성상 한 사람에게 위험한 것은 곧 인류 전체에게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선을 다해 굳게 싸우고 있는 이들을 우정으로 응원하는 일이다. 너를 살려야 나도 사는 것이니 얼마나 절박한 우정인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2-24 전호근

[이영재 칼럼]지도자의 리더십은 위기에서 빛난다

'9.11 테러' 수습한 줄리아니 前 뉴욕시장항암제 먹어가며 안간힘… 전 세계 '감동'첫 단추 잘못 끼운 코로나 사태 악화일로정치 논리 싹 빼고 국민 생명부터 살려야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107대 뉴욕시장을 지낸 루돌프 줄리아니에게 2001년은 시장 임기 마지막 해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대충 시간을 보내도 그를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재임 중 뉴욕의 범죄조직을 소탕해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범죄율을 가장 많이 감소시킨 시장으로 이미 등재된 그였다. 한밤중 뉴욕 지하철을 자유롭게 탈 수 있게 된 것도, 한때 우범지역이었던 타임스퀘어가 전 세계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것도 그의 덕분이었다. 그것만으로 그의 업적은 충분했다.9월 11일 아침. 뉴욕의 쌍둥이빌딩이 뉴욕시민들의 눈앞에서 무너졌다. 뉴욕 시민들이 공포에 휩싸인 순간, 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온통 먼지를 뒤집어쓴 줄리아니 시장이었다. 그는 제일 먼저 뉴욕지역 방송사를 통해 사고 상황을 시민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했다. 우왕좌왕하는 시민들에게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덧붙였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시간별로 기자회견을 계속하면서 공포에 휩싸인 시민들이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그렇게 시민 곁에 있었다. 뉴욕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줄리아니가 지금 암 투병 중이었고, 항암제까지 먹어가며 아픈 몸을 이끌고 사태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임기 마지막 해, 온 힘을 다해 사태수습을 하려는 그의 모습은 뉴욕을 넘어, 미국 아니 전 세계에 감동을 줬다.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사태를 수습하는 줄리아니를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위기 상황에서 솔선해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지도자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코로나 19가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발생 한 달 만에 사망자와 확진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대구 경북지역을 넘어서 이젠 전국적으로 확산해 "머지않아 종식될 것. 일상으로 돌아가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무색하게 했다. 희망사항인 '종식'이 '증식'이 돼버린 꼴이 된 것이다. "중국은 이웃"이라는 등 감상적인 대응이 화를 불렀다. 그래서 우리는 궁금하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어려움은 우리의 어려움"이란 시진핑의 전화를 받았는가.시작부터 잘못됐다. 마스크 300만장을 중국에 보낸다고 할 때 너무 나간다 싶었다. 집에 마스크 한 장 준비하지 못하고 있던 우리 국민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마침내 마스크 대란이 터지면서 정부가 우왕좌왕할 때, 뭔가 잘못돼 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때라도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걸 알았으면 얼른 중단하고 다시 꿰어야 한다. 그걸 모르고 끝까지 가면 마지막 단추는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법이다. 단추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사람이 잘못이다. 지금이 꼭 그런 꼴이다. 국민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또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기생충' 제작진을 청와대에 불러 짜파구리를 먹으며 파안대소하는 대통령 부부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 그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청와대가 무슨 생각으로 그 사진을 공개했는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불행히도 사진이 공개된 그 날부터, 코로나 19는 불꽃처럼 타올랐다. 사진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국민의 마음을 깊게 베었다. 5년 전 메르스 사태를 경험했던 우리였기에 아픔은 더 크다. 화도 난다. 국가적 재난도 지나고 나면 쉽게 잊는 한국인 집단 망각의 악습이 재현된 것 같아서 더 그렇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이제는 지금의 아픔을 또 잊어서는 안 된다.줄리아니는 대통령도 아닌 그저 시장에 불과했다. 사태를 수습하면서 공화당, 민주당 편을 가르지도 않았다. 모든 사람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 지금 우리에겐 그런 지도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 지도자가 꼭 대통령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질병관리본부장이 될 수도 있고, 자치 단체장이 될 수도 있고, 이름없는 어느 의사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정치적인 논리는 싹 빼야 한다. 제 잘났다고 떠드는 정치인들은 이제 모두 입을 다물길 바란다. 국민의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다.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공포도 극에 달하고 있다. 지금은 국민 생명을 살리는 게 먼저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절체절명 위기 상황에서 빛난다./이영재 주필이영재 주필

2020-02-24 이영재

[이명호 칼럼]전염병으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민낯

코로나19로 전세계가 감염공포안전에 대비하는 것은 좋지만통제·봉쇄·인종차별 과도한 조치 언론보도도 두려움만 키워 역효과과학적 상식 기반한 현명 대처를코로나19로 우리 사회, 우리 인류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여전히 인류는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전염병은 국가의 쇠락을 가져온 역사적인 사례가 많다. 기원전 431~404년 아테네를 강타한 전염병은 아테네 인구의 25%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아테네의 지도자도 전염병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아테네는 전쟁에서 패하고 쇠퇴의 길을 걸었다. 로마 제국도 서기 165년 외국에서 돌아온 군인들에 의해 확산된 전염병으로 6천만~7천만 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전염병의 위기를 겪은 로마는 하수 시스템과 목욕탕 같은 위생시설뿐만 아니라 병원과 같은 의료시설을 만들어내면서 도시 위생시설의 건설자로 역사에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이는 로마가 번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종류의 전염병은 계속해서 인류의 존망까지 위협했다. 천연두는 남아메리카 원주민 인구의 90%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잉카와 아즈텍 제국의 멸망을 가져왔다. 흑사병은 역사적으로 세 번의 판데믹(대유행 전염병)이 있었고, 유럽 인구의 4분의 1이 흑사병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19세기 인도에서 시작된 콜레라는 인도와 아시아 대륙에서 1천500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1940년대 들어서야 페니실린이 발명되면서 인류는 박테리아에 의한 감염성 질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18년에는 세계적으로 대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 2천만명이 사망하였지만, 지금은 타미플루 치료제가 개발되어 바이러스성 독감은 완치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되었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종류도 많고 쉽게 변형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사스나 메르스 치료제를 개발하여도 다음에는 전혀 다른 바이러스(이번에는 코로나19)가 창궐하는 것이다. 에볼라, 사스,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의 특징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바이러스가 아니고 야생동물에서 유래했다는 특징이 있다. 야생 서식지 파괴로 인한 야생동물과 인간과의 접촉, 식재료 이용 등이 질병을 불러왔다. 인간이 숲을 파괴하면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줄어들고, 아프리카 원주민 또한 더 깊은 숲 속으로 이주하면서 야생동물(박쥐)을 잡아먹게 된 것이 에볼라의 기원이다. 인간이 박쥐의 서식지를 위협하면서 박쥐의 몸에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을 위협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 인류를 위해서도 생태계와 야생의 서식지 파괴는 멈춰야 한다. 한편 바이러스가 위험한 질병이지만, 인간이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중국인 출입금지' 같은 안내문이 등장했고,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동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와 인종차별 현상까지 나타났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가짜뉴스와 이에 따른 혐오와 차별은 오히려 질병의 통제를 어렵게 한다. 우한에서 귀국하는 교민들의 수용을 반대하는 집회가 있었지만, 지역 주민들이 마음을 바뀌어 교민을 수용하고 어려움을 같이 나눈 것은 질병 통제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일본의 크루즈선 입국 봉쇄조치는 탑승자 3천700명 중 10%가 감염되는 최악의 결과로 치닫고 있다. 이는 과도한 공포에 빠져 적절한 통제를 포기하고 인류애를 저버린 실패한 정책으로 남게 될 것이다. 안전에 대비하는 것은 좋지만 과도한 대응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감염자가 머무른 공간에 대한 봉쇄 조치와 기피는 과학적인 상식을 넘어 공포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는 밖에 나오는 순간 5초 이내에 바닥에 가라앉고 소독을 통해 하루 안에 소멸한다고 한다. 우려를 넘어 미신과 공포는 우리 사회의 기반이 되어온 과학적 상식을 무너뜨릴 수 있다. 후베이성 이외 중국의 코로나19 감염증 치사율은 0.16%로 독감 수준이고, 통상적 접촉으로 인한 감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국내에서는 아직 한 명도 사망하지 않았는데, 언론의 보도는 천연두나 흑사병이 돌고 있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이미 경제 침체와 서민 경제의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다. 상식에 반하는 공포와 과학적 통제 사이에서 우리의 현명한 행동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20-02-17 이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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