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홍창진 칼럼]폭력의 원리

사랑이란 명목 폭력행사 비합리적자기생각만 옳다는 이기적 욕심뿐일방적인 강요 지나친 소유욕으로심하게 화낸다면 자신 돌이켜보고상대하기전 마음부터 바로 잡아야 40대 가장의 사연입니다. 1남 2녀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두 누이에게 부러움을 샀습니다. 단지 아들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로부터 편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항상 하나뿐인 아들을 두고 "집안의 대들보", "가문을 책임질 사람"이라며 사교육은 물론 밥상에서조차 차별해서 잘해주었습니다.하지만 그는 그런 아버지가 무서웠습니다. 아버지는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지만 "남자가 이 것도 못하느냐", "친척들 볼 낯이 없다"며 비난을 일삼았고,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시엔 심하게 체벌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런 아버지가 두려웠고, 자신만 특별대우를 받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성년이 되어 군대에 가게 되었을 땐, 단지 아버지와 떨어져 살 수 있다는 이유로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남들은 다들 괴롭다는 군대생활이 그에겐 오히려 휴식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결혼을 했고, 분가를 하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나는 아버지처럼 자식을 억압하는 부모로 살지 않겠노라'고 굳게 결심했습니다.그런데, 어느 명절날 부모님 댁에서 차례를 지내던 차에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버지가 어린 손자에게 절 하나 제대로 못하느냐며 손찌검을 하려 들었던 것입니다. 평생을 아버지에게 억눌려오던 아들은 그 순간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몰라도 제 자식에겐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난생 처음 아버지에게 화를 낸 아들은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그 길로 문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다시는 본가에 오지 않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한 채 말입니다. 그는 지금 앞으로 어떻게 아버지를 대해야 할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가부장적 문화가 잔존한 한국의 가정에서 흔히 있을 법한 일이라 간과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심각하게 다뤄야 합니다. 어느 경우에서든 폭력은 훈육이 될 수 없습니다. 가장, 즉 가해자의 자기중심적인 아집일뿐더러, 나아가 인격 형성에 큰 장애를 줄 뿐입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다며, 혹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태도로 아무 일도 아닌 듯 덮고 넘어가서는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게 됩니다. 한 번 발생한 폭력은 대부분 습관으로 고착되어 더 큰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가정폭력의 해결책은 첫 번째가 '격리'입니다. 그다음 가해자의 치료가 따라야 합니다. 만일 가해자가 치료를 거부하면 격리는 장기화할 수밖에 없는데, 때로는 격리의 장기화 자체가 치료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가해자에게 종교가 있다면, 가족이 함께 성직자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폭력 가해자의 상당수가 남의 말을 잘 안 듣지만, 믿는 종교의 성직자의 말은 곧잘 듣기 때문입니다.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그저 자기 생각만이 옳다는 이기적 욕심의 결과일 뿐입니다. 자기 생각만이 절대 진리인 사람에게 자녀는 소유물에 불과합니다. 내 소유물 중 최고인 자식이 자기 말을 안 들으니 용서가 되질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해 폭력까지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주는 아니더라도 폭언 혹은 폭력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 당시는 분명 아이를 위한 것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내 욕심, 나를 중심에 둔 생각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간혹'은 병이 아니지만 '상습'은 병입니다.부부 사이의 상습 폭력, 연인 사이의 데이트 폭력도 이유는 하나입니다. 어느 한쪽이 사랑한다는 감정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자기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사랑이 아닌, 소유하려는 욕심에서 생기는 것입니다.살다 보면 자제력을 잃고 화를 내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입니다. 상대가 잘못했고 정의롭지 못했다고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은 것뿐입니다. 화를 내는 직장상사, 술자리에서 언성을 높이는 친구들, 만나기만 하면 비난 일색인 가족들…. 그들 모두 내 생각이 옳고 내 마음에 안 들어서 상대에게 상처를 줍니다.살면서 지나치게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상대를 바라보지 말고 나 자신을 돌이켜봐야 합니다. 혹시 자기애와 자기연민에 빠져서 멀쩡한 사람에게 상처나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살펴보길 바랍니다. 그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는 욕심, 내 생각만이 옳다는 아집이 도사리고 있다면 타인을 상대하기에 앞서 내 마음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10-19 홍창진

[방민호 칼럼]북한에서 열린 심야의 열병식

김정은의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인민들에 고맙고 미안하다는 표현북한, 수해·코로나·경제난 '삼중고'뭔가 절실히 원한다는걸 짐작케 해측은지심 솟는것은 어찌할 수 없어며칠 전 북한에서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열병식이 열렸다. 자정부터 시작된 이 심야의 열병식은 북한의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한다. 10월10일은 북한 최대의 명절 가운데 하나다. 이상한 일이지만 말이다.필자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이 굉장한 열병식을 보고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광경은 확실히 과거의 틀에 박힌 군중행사와는 다른 면이 있었고 북한 문제에 관하여 여러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북한의 중앙방송은 한밤의 평양 전경을 카메라를 천천히 옮겨 가며 충분히 보여주었다. 카메라에 비친 평양의 고층 건물들과 널찍한 거리는 우리가 보아오던 평양과는 많이도 달랐다. 비록 건물 층층이 불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사회주의' 체제답게 빈틈없이 구획된 엄숙하고도 장엄한 도시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행사를 기다리는 병사들과 인민들의 엄숙한 모습을 몽타주식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열병식 행사를 일층 장엄하고도 엄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 방식은 마치 일본의 NHK가 일본 전국 각 절의 신정(新正) 타종을 카메라를 옮겨가며 비추어 주는 것과도 같았다. NHK가 그런 방식으로 일본이 하나의 불국토임을 보여주고자 하듯이 이 열병식은 북한 인민들이 하나임을 보여주고자 했다.한껏 연출된 숭고미를 배경으로 드디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무대'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반임을 상징하는 인민복을 입고 다니던 그의 회색 싱글 정장 차림은 그가 스위스 유학파 출신임을 새삼 생각하게 했다. 그의 좌우에 늘어선 다른 고위인사들도 군인들을 제외하면 모두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북한의 분위기를 사뭇 달라 보이게 했다.충격적인 것은 그의 연설 내용이다. 무엇보다 그는 연설 중에 한국인들을 향해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에게도 따듯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낸다"라고도 했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라고도 했다. 방송 중계 직후에 한 시사뉴스 토론자는 고 김대중 대통령이 연설 때마다 항상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하셨던 것을 떠올리기도 했다.사랑한다는 말은 어떤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갖는 법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지금 필자는 이 말을 비난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사실 우리는 북한의 지도자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대신 그네들 아나운서의 적대감 서린 거친 목소리를 듣는데 익숙하지 않았던가. 바로 얼마 전만 해도 해양수산부 소속의 한 공무원이 무슨 이유인지 북쪽으로 넘어갔다가 총격을 받아 사망하고 시신까지 불태워지는 일이 발생했었다. 그래도 북한 지도자가 진지한 어투로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이라고 하는 데는 그런 참혹한 사건을 접했던 때와는 또 다른 감회가 생겨남을 다 막을 수 없다.놀라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는 사상 최대의 수해를 당한 북한 인민들을 향해 고맙다는,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을 한껏 낮추는 어법은 우리가 아는 북한의 지도자들로서는 결코 익숙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북한은 주체사상이라는 것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지만, 역사의 주체는 인민대중이라 하면서도 수령은 그 인민대중의 뇌수라 하니, 바로 여기에 주체사상의 전체주의 이념으로서의 '독소'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 지도자는 그 '팔다리' 인민을 높이 떠받드는 연출을 통하여 이 사상의 약점을 상당한 정도로 가려 놓은 것이다.필자는 어느 곳에서든 정치란 상당 부분 연출에 지나지 않는 면이 있다고 믿는다. 다만 새롭게 연출된 이 심야의 열병식은 지금 북한이 수해와 코로나19, 경제난의 극심한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음을, 그들이 뭔가 절실히 원하는 것이 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비록 독재 체제, 전체주의 국가이지만 측은지심이 솟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어쩌랴. 같은 단군의 자손들인 것을. 우리 또한 북한 문제를 놓고 너무 싸우지만 말고 현명한 타협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평화도 살리고 그 사회의 민주화도 앞당길 수 있는./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20-10-12 방민호

[윤인수 칼럼]상자 속에 가둘 수 없는 민심

스키너 "조작된 조건 인간행동 통제 가능"진보세력, 보수 부정적 시그널로 선거 승리文정권, 문팬 지지·보수현실 안주할때 아냐'적폐' 실망한 대중들 상자밖 세상 의심 시작지난 1월부터 국민은 정부의 방역정책에 순종하고 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의 공포로 정부의 통제를 거부하지 못했다. 인적이 드문 공원에서 마스크를 벗었다가 아내에게 혼난 적이 여러 번이다. 100m 이상 떨어진 사람을 의식해 마스크를 쓰라는 아내의 지적은 논리보다는 사회적 분위기, 감성의 영역이다. 감염 사정거리를 벗어났다는 논리적 반박이 먹히질 않는다. 자율방역이라는 자유의지를 주장하기엔 집단감염의 공포감이 워낙 크다.하지만 개천절과 한글날, 차벽으로 봉쇄된 광화문 광장과 인파로 붐빈 행락지 풍경의 대조는 방역정책에 스며있는 정부의 선택적 의지를 직감케 한다. 정치 집회의 자유는 제한하면서 행락의 자유는 허용하는 정부의 선택적 방역행정은 방역의 논리가 아니라 정치적 논리에 따른 것이라는 의심이다. 온몸으로 민주주의 권리를 쟁취한 국민들이 행락의 자유를 즐기며 제한되는 집회의 자유를 무심히 넘긴다. 자유에 대한 정부의 취사선택을 국민이 수용하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이 코로나19로 가능해졌다.권력의 선택적 행동은 방역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 국방부는 월북이 의심되는 공무원이 서해를 표류하다 북한 수역에서 북한 해군에 의해 사살된 뒤 소각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국방부가 밝힌 최초의 진상과 멀어지고 있다. 정부는 월북을 추정하는 정황만 반복하면서, 북한이 부인하자 소각됐다던 시신을 찾느라 20여일간 서해를 수색 중이다. 명확한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도 그의 표류는 실족이 아닌 월북이라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정부의 선택적인 정보 공개에 피살 공무원의 인간적 존엄은 무너졌다.검찰개혁에 올인한 권력의 전략적이고 선택적인 법무행정은 사정기관의 본질을 해치고 있다. 조국 수사팀과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팀이 해체되고 흩어진 사이, 그 자리를 채운 수사팀은 추미애 장관의 결백을 밝혔다. 하지만 추 장관은 '옆집 아저씨'라던 당직병에게 고소당했고, 윤미향 사건 수사는 지지부진하고, 사모펀드 비리는 고개를 쳐들고 있다. 법원은 교사 채용 비리를 주도한 조국 동생보다 하수인에게 더 높은 처벌을 내렸다. 권력의 검찰개혁과 법원독립이 이룬 결실에 국민 절반은 환호했지만, 좌절하는 절반의 집회는 막혔다.행동심리학의 대가 B.F.스키너는 역작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에서 조작된 조건으로 인간의 행동을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상자 속에 갇힌 동물들에게 조작된 조건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강화하면서 반응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실험적 결과를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자유, 존엄과 같이 증명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검증된 조작적 수단이라는 얘기다.동물들을 외부적 조건으로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스키너의 상자'를 완벽하게 인간계에 구현한 국가가 북한이다. 전체 인민을 수령주의 체제에 가두어 놓고 처벌과 보상이 수반된 세뇌교육으로 철저히 통제하는 사회다. 노엄 촘스키가 행동주의 심리학과 스키너를 "전체주의 사상의 지지자들"이라고 우려한 이유이다.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권력의 선택과 집중은 권력 자체의 권위와 대중매체의 해석을 통해 대중들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2016년 가을과 2017년 봄 사이 박근혜 탄핵정국은 한국의 진보와 보수를 향한 대중의 인식에 결정적인 조작적 조건을 형성했다. 대중은 적폐의 굴레를 쓴 보수를 부정하고, 개혁의 월계관을 쓴 진보에 긍정하는 스키너의 상자에 갇혔다. 진보 권력은 상자 밖에서 보수에 대한 부정적 시그널만 주면 대중이 알아서 정권지지와 선거승리로 반응했다.하지만 자유와 존엄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과학적 검증을 초월한 본성이다. 문재인 정권은 조건 없는 '문팬'들의 지지와 적폐낙인에 신음하는 보수의 현실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정권 스스로 쌓은 적폐에 실망한 대중들이 상자 밖 세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존엄은 상자에 가둘 수 없다./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0-10-12 윤인수

[이남식 칼럼]코로나 시대의 공연예술

젊은이들 '바이털 사인' 무대 기획생체신호 통해 다양한 형태로 전달아이돌그룹 가상무대 글로벌 공연예술·기술 결합 새로운 시장 개척정부·기업, 든든한 미래 위해 투자코로나19 감염병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택트'의 시대라 할 만큼 모든 만남이 화상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비대면 회의, 비대면 교육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화상회의인 줌(ZOOM)을 사용하다 보면 쉽게 피로해지는 '줌 피로'(ZOOM fatigue)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다수의 인원이 접속하는 데 대한 어려움, 제한된 화면크기, 영상과 소리의 시차, 음질불량 등으로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비대면의 상호소통을 위해서 얼마나 거리감을 느끼지 않고 실제감(presence)을 느끼느냐에 따라 피로도가 줄어들 수 있게 될 것이다. 대면의 상황에서는 우선 시야에 제한이 없으며 상대방의 호흡, 몸짓(제스처) 등 서로 교감하는 데 필요한 디테일한 정보들이 현재의 화상회의 시스템에서는 전달되지 못하기 때문에 대면에 비하여 상호소통의 질이 저하되고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보다 실제감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을 통하여 향후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비대면의 만남이 대면 못지 않은 품질을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 특히 공연예술 분야는 코로나로 인하여 가장 타격을 받고 있는 분야가 되었으며 수많은 공연예술인들이 무대를 잃고 있다. 연극, 뮤지컬, 무용, 음악공연 등 실제에서 생생한 만남을 통하여 무대와 객석이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내는 감동의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 물론 유튜브 등의 비디오스트리밍을 시도해 보기는 하나 현장의 감동을 전달하기에는 아직 부족함을 모두 느낄 수 있다.이러한 때에 젊은 예술인들과 연구자들이 함께 힘을 합하여 '바이털 사인(Vital Signs)'이라는 무대를 기획하고 있다. 우리 몸의 다양한 생체신호-즉 심장박동을 나타내는 심전도,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뇌파, 감정의 상태에 따라 오르내리는 혈압과 맥박 그리고 호흡과 같은 생체 신호를 기존의 양상과 음향 외에 다양한 형태로 전달하며 한국과 미국의 예술인들이 원격에서 공연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으로 앞으로 비대면 공연의 형태를 바꿀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 보려는 노력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이외에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큰 화두 중 하나가 사이버-물리 시스템(Cyber Physical System)으로 가상의 세계에 실제와 동일한 평행세계를 구축하여 실제 세계의 현상을 미리 시뮬레이션하여 최적의 상태로 통제하고자 하는 시도인데 이미 항공기 시뮬레이터 등은 조종사의 훈련에 필수 불가결의 존재가 되고 있으나 일상에서는 많이 쓰이지 못했다. 최근에는 게임을 개발하는데 사용하는 게임엔진들이 발전되어 그래픽스 (realtime graphics) 기능과 다양한 물리엔진 (물체간의 충돌, 재질의 속성, 빛의 반사, 중력 등을 표현하는 기능)을 포함하고 있어 실시간으로 가상세계의 물체 (objects)들이 실제세계와 동일하게 작동되게 만들 수 있어 단순히 애니메이션처럼 미리 만들어진 영상이 아니라 가상세계의 물체들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으므로 마치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다. 따라서 가상의 세트에서 공연이 가능하며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아주 쉽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첨단 기술이 가장 빨리 실현되는 분야가 예술 특히 공연예술분야가 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아이돌 그룹들이 가상의 무대에서 유튜브를 통하여 실제보다 더 화려하고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어 공연장에서 만나는 것 보다 수십 배의 관중들이 전 세계에서 유료관람을 하게 한 시도는 공연예술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이러한 예술과 기술의 결합 시도는 새로운 큰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앞에서 설명한 '줌 피로'를 개선하는 노하우가 비대면 예술공연을 시도하는 가운데서 얻어지게 될 것이다. 관객과 교감을 더 잘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화면의 크기, 질, 영상과 음향의 시차를 줄이는 방법, 오감을 전달하는 기술 등 다양한 시도가 5G로 엄청나게 증가한 통신용량에 부가되면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실감통신, 실감영상 기술이 완성되어 21세기에 우리나라가 다시 도약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미래의 영상회의, TV 등을 우리나라가 주도하기 위해서는 이제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도 예술가들에게 투자하는 시대가 되어야 하겠다. 지금과 같이 어려운 코로나 시대에 무대를 잃고 어려움에 처한 공연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이야말로 정말 미래에 대한 든든한 투자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2020-10-05 이남식

[윤상철 칼럼]민주주의의 위기는 왔는가?

진보인사들 민주정권 부정적 평가가짜뉴스 민주주의 뿌리째 병들어네트워크로 권력장악 성공한다면사회적 문제해결도 포퓰리즘 변질정치적 감응력 갖춘 시민 필요할때민주주의는 항상 논란의 대상이다. 그 민주주의의 계기는 '총을 가진 사람들이 총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고, 그 동기는 적대적 투쟁에서 죽을 수 있는 공포로부터의 해방일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민주주의는 사회갈등의 근본적 해결책이기보다 잠정적인 타협에 가깝다. 그러나 근본주의적 한국사회는 인간과 사회의 한계와 잠정적 타협에 동의하지 못한다. 친일청산이나, 민주화운동 명예회복이나 잠정적 해결책에 동의하지 못하고 끝없이 진행된다. 제주 4·3사태, 광주민주화운동, 천안함폭침사건, 세월호, 대통령탄핵, 삼성불법경영승계 등 우리 역사와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어왔던 문제들이 해결되지도 종료되지도 않고 끝없이 반복된다. 지뢰밭을 걸어가는 형국이다. 운동장이 언제 어느 방향으로 기울지 모른다.한국의 민주주의는 근원적으로 착근하기 어렵지만, 현존 민주주의 역시 불협화음을 내면서 정치적 효능감을 감쇠시킨다. 이제 진보적(?) 민주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공공연히 그 내부로부터 나온다. 현 집권세력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진중권은 촛불정권이 연성독재로 전락했다고 질타한다. 진보좌파개혁세력과 정부에 몸담았던 한상진은 그들의 국가권력중심주의를 지적하고, 최장집은 인민민주주의적인 전체주의의 도래를 우려한다. 보수적 우파들의 견해를 차치하더라도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 위기와 파국에 다가가고 있는 듯 보인다.영국의 정치학자인 데이비드 런시먼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종말을 고하는가?'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 등 세 가지의 계기로 온다고 분석하고 있다. 첫 번째 징후는 쿠데타이다. 쿠데타의 원인으로는 이념적 좌우대립, 국가 기구 간의 분열, 정치적 파벌 간의 불신, 국책책임자의 부재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충분히 무르익은 나라에서도 군사적 쿠데타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현대의 쿠데타는 조용하게 다가올 뿐이다. 집권 세력들이 민주주의를 유예하는 행정부 쿠데타나 전략적 선거조작 혹은 부정투표 등이 있을 수 있다.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부여받은 세력들이 공약을 내세워 민주주의를 장악하기도 한다. 이러한 조용한 쿠데타를 수행하기에 민주주의의 절차는 썩 괜찮은 외양이 되기도 한다. 그로 인해 '민주주의를 지지하던 것이 오히려 가장 큰 위협이 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던 것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방어벽이 되는' 역설이 발생한다.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또 다른 계기는 핵전쟁이나 환경재앙 그리고 나치즘과 같은 대재앙의 위기로서 실존적 위협이기도 하다. 물론, 대참사가 낳는 세상의 종말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어날지 모르는 최악의 사태를 걱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실존적 위험 앞에서 생명과 제도가 저울질 될 때 민주주의는 소모품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이론가 일레인 스캐리는 "우리는 핵무기를 철폐하는 대신 의회와 시민을 제거해 버렸다"고 말한다.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 대한 공포 속에서 우리들은 자유, 인권, 민주주의가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정보권력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컴퓨터가 인간의 반응을 유도해 내는 능력이 오용되면 민주주의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편향을 조장하고자 특정 성향의 유권자들을 겨냥해서 기계가 메시지를 보내고 가짜 뉴스를 만들어 간다면 민주주의는 뿌리째 병들게 된다. 민주국가의 힘은 상의하달식 권위와 폭넓은 포용성의 적절한 결합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이 권위만을 내세워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와 포털 그리고 SNS와 같은 네트워크에 기반한 정보권력 리바이어던을 수하로 부리게 된다면 민주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 민주주의란 애초에 오랜 시간을 숙고하면서 의사결정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국가 혹은 정치권력이 더 많은 정보와 지배적 지위를 가지고 조정하면서 확증 편향에 물들은 군중의 '다수의 횡포'를 민주정치의 양념이라고 호도한다면 더 이상 기대할 수 있는 민주주의는 없다. 네트워크의 힘으로 사회운동에 성공할 수는 있지만 권력 장악에도 성공한다면 사회적 문제 해결도 포퓰리즘으로 흐르고 민주주의도 점차 쇠약해진다.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적극적이면서 성찰적인 시민들이 필요하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위기징후를 포착할 수 있는 정치적 감응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문제 해결에 무능하더라도, 당면한 사회적 문제 해결이나 진영적 독선을 위해 민주주의를 버리는 우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야말로 실존적 죽음을 부르는 사회적 공포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20-09-28 윤상철

[전호근 칼럼]덕분에

대중교통은 혼잡하고 밀폐된 공간코로나19가 전파되기 좋은 환경뜻밖에도 감염사례가 나오지 않아방역당국 아무리 예방 애쓰더라도 평범한 사람들 노력없이는 불가능지하철을 탔다. 퇴근 시간 무렵이라 꽤나 북적인다. 외신으로 보거나 전해 들은 다른 나라의 텅 빈 지하철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선을 스마트폰에 고정하고 있지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거나 드물게 책을 펼쳐 든 이들도 보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킬 수 없을 정도로 가깝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말이 없다.예전이라면 이런 풍경이 괴기스럽게 보였겠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마스크를 써 표정은 보이지 않고 눈만 보이지만 사람들의 눈빛에서 무언가 간절하게 기다리는 마음이 읽힌다. 아마 나 또한 같은 것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러고 보니 아직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나는 이게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중교통 수단은 대개가 혼잡하고 밀폐되기 쉬운 공간인지라 코로나19가 광범위하게 전파되기 좋은 환경이다. 이렇게 감염 위험이 큰 곳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중교통 수단에서 뜻밖에도 감염 전파 사례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그 까닭을 의료진이나 방역 당국의 노력에서 찾는 것은 합리적이다. 아울러 환경관리 노동자들의 노고 또한 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공간이 있다면 그 또한 누군가 사람들의 손이 닿는 곳을 일일이 닦아내며 소독을 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결국 혼잡한 대중교통 공간에서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는 것은 의료진과 방역 당국의 노력에 더해 환경 노동자들의 노고가 빛을 발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하지만 나는 감염이 일어나지 않은 데에는 이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바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노력이다. 방역 당국이나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아무리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애쓰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예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그러니까 생업을 이어가며 부지런히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은 자신과 이웃 그리고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마스크를 단단히 착용하고 방역 수칙을 잘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웃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많이 모여도 안전한 것이다. 어떤 이는 이른바 깜깜이 감염이 대중교통 수단에서 일어났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고 보면 정작 깜깜한 것은 대중교통 수단이 아니라 감염되고 나서도 자신의 이동 경로를 밝히지 않는 이들의 마음 속이 아닐까.자신은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잘 쓰지도 않고 사람들을 만날 때도 조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신은 감염되지 않는다고 자신하거나 감염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혹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과 달리 치료를 받기 위해 일을 쉬어도 생계에 지장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특별함은 공동체의 안위를 염두에 두지 않는 어리석은 이기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에도 지하철이나 버스로 출퇴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대다수는 생산직이나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임금 노동자들이거나 영세 자영업자들이며 코로나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는 지하철을 탈 때면, 이 속에서 모종의 동맹 의지마저 느낀다. 내가 안전해야 당신이 안전하며, 당신이 안전해야 내가 안전하다는, 그리고 이곳의 안전은 절대 지켜져야 한다는 굳은 동맹 말이다.평범한 시민들의 방역과 관련된 노력은 놀라울 정도다. 마스크를 쓰거나 손을 자주 씻는 생활 수칙은 말할 것도 없고 모임이나 여행을 자제하는가 하면 심지어 명절 귀성마저 삼가고 있다. 우리는 감염 예방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하철에서 본 사람들의 눈빛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눈빛이었다.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렇게 굳건하다면 우리 공동체는 마스크를 벗고 살아가는 일상을 틀림없이 회복할 것이다. 우리 공동체가 다른 곳보다 안전하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버스와 전철 속의 안녕을 지켜나가는, 바로 당신과 나의 덕분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9-21 전호근

[이명호 칼럼]사무실 출근이 사라지면

기업들 도심 고가 건물 필요없고직장인 비싼 주거비용 부담 줄어외곽의 로컬 일상 중요지역 등장문화·여가활동 '커뮤니티' 재조명산업사회서 해방 공동체시대 도래재택근무를 하다 보면 사무실이라는 존재가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느낌이다. 자료공유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면 사무실 컴퓨터와 집에 있는 컴퓨터가 항상 동일한 자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사무실에서 문장을 쓰다가 끝마치지 않은 상태로 퇴근해도 집에서 문장을 이어서 쓸 수 있다. 서류를 들고 다니지 않으니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에서 결재도 가능하다. 회의도 온라인으로 하고 세미나도 온라인으로 한다. 내 컴퓨터만 있으면 카페 등 어디나 사무실이라고 할 수 있다. 직원과의 연락은 메신저나 전화로 하면 된다.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아도 특별히 불편함은 없다.두 번째 느낌은 사무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다. 모순되는 느낌이고 습관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주는 여러가지 측면을 떠오르게 한다. 매일 출근하는 사무실은 일터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잠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빼고는 사무실은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이며, 가족보다 더 많이 직장의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상사와 선배들에게서 업무를 배우고 사회생활, 인생의 경험을 배우는 성장의 공간이기도 했다. 비공식적인 대화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 상호작용을 통하여 생산성과 창의성을 높이고 동기부여를 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무실은 삶의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사무실이 아니어도 일을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습관적으로 일하러 가는 사무실이라는 공간은 사실 이미 다른 의미가 더 큰 공간이었다. 1975년 미국 LA의 한 보험회사에서 처음으로 실시되었던 재택근무가 실패했던 이유는 경영자들은 재택근무하는 직원들을 전과 같은 방식으로 통제할 수 없었고, 직원들은 사무실 생활에서 오는 사회적 분위기를 잃을 것이라는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재택근무를 처음으로 실험하였던 잭 닐스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길에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은 없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러시아워의 장거리 출퇴근은 교통 정체와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비효율적이다. 특히 한국 직장인의 평균 통근시간 40분(편도)은 OECD 평균 통근시간 23분의 두 배에 달한다. 장거리 출퇴근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건강과 대인관계를 해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을 하면서 느끼고 있다.사무실이라는 사회생활의 공간도 유지하고, 출퇴근을 안하고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장기화 되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새로운 근무 모델이 제안되고 있다.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 가상과 현장 작업,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근무 모델이다. 업무는 주로 재택으로 하고, 여러 명이 모여서 협력 작업이 필요할 때 사무실에 모이는 방식이다. 목표를 세우고 업무를 분장하는 회의를 한 후 각자 흩어져 원하는 공간에서 일을 한다. 사무실은 업무 공간의 용도가 줄어들고 주로 회의, 브레인스토밍, 워크숍, 세미나, 교육, 팀 빌딩 등의 복합적인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기업들도 비싼 도심지에 큰 건물을 유지할 필요가 없이 건물 면적을 줄이거나 도심 외곽으로 이사하여 부동산 경비를 낮출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러한 업무 방식이 전 세계에서 유능한 인재를 끌어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직장인들이 1주일에 3~4일은 집에서 일하고, 1~2일은 사무실에 출근한다면 도심 주거지의 매력도 떨어질 것이다. 많은 회사가 도심에 있고, 출퇴근 거리를 줄이기 위하여 비싼 주거 비용을 지불하고 도심 가까이에 거주하였는데, 그럴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좋은 자연환경을 갖춘 도시 외곽의 거주지, 커뮤니티가 중요해지고, 로컬에 사람들이 몰리고 로컬이 일상의 중요 지역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회생활의 경험을 배우고, 주민들과 함께 지역의 발전을 모색하고, 문화와 여가활동을 줄기는 공간으로서 커뮤니티가 재조명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산업사회, 회사인간의 시대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시민, 커뮤니티의 주민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될 것이다./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

2020-09-14 이명호

[홍창진 칼럼]당당한 삶

삶은 나자신이 중심 힘든일 겪어도주어진 여건하에 지킬방법 찾아야경험상 '주변의 진상'들은 안변해그럴땐 '무시·긍휼의 법칙' 적용을부당 처사 분명한 시정 요구 내권리한 청년이 코로나 때문에 밥벌이가 어려운 지경에 처했습니다. 다니던 직장이 한시적으로 폐업에 들어가는 바람에 덩달아 휴직할 수밖에 없었지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급히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다가 겨우 어느 카페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그렇게 일을 시작한 지 며칠 후, 한 손님이 아이스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사장님에게 배운 대로 만들었는데 돌아오는 말이 이랬습니다. "너무 차가워 머리가 아플 지경이네요. 다시 만들어주세요." 당혹스러운 속내를 감추고 다시 커피를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또 커피가 너무 미지근하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커피도 못 만들면서 카페에서 일하느냐, 사장 나오라고 해라 등등 얼토당토않은 말들을 퍼부으며 말입니다. 결국 사장이 와서 환불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청년이 당한 수모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손님이 돌아간 뒤 사장으로부터 환불한 커피 값을 아르바이트 비용에서 차감하겠다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진상 손님에게 시달린 것만도 힘들었는데, 사장으로부터 납득할 수 없는 말을 듣고 나니 서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생계가 어려우니 참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진상 손님에게 시달린 것도 힘든데, 억울한 손해까지 입게 되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서러울지 십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힘든 상황일수록 주어진 여건 안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삶은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 삶을 영위할 보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고 주변인들에게 마음을 다치는 일이 거듭되면 결국 이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 내 삶을 망치고 맙니다. 매일 겪는 힘든 일들을 상처가 아닌 보람으로 바꾸는 노력을 계속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겪은 일을 통해 내가 배우고 얻는 것은 무엇인지 자문해 보면서, 내일은 조금 더 강한 내가 되리라 다짐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주변인들과의 관계 정립도 다시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험으로 비춰볼 때 소위 '진상'들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대할 때에는 일명 '진상 불변의 법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첫째, 무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끝까지 그저 "예"라고 응대하는 것입니다. 속으로야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도, 겉으로는 "예" 하며 무시하는 마음가짐으로 무장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입니다. 둘째, 그도 불쌍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각자 어떤 환경에서 나고 자랐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 대부분은 열등의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누군가를 무시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한 사람을 성숙한 내가 좀 봐준다는 측은지심으로 그들을 대해보십시오. 이 두 가지 지혜를 갖추면 몰상식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그런데, 앞서 말한 청년의 경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사장의 처우를 그대로 수용한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직원의 실수가 아님에도, 그런 비인도적인 결정을 내린 것은 법적으로도 합당하지 않은 처사입니다. 청년의 입장에서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겠지만, 부당한 상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후회를 넘어 자책까지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당한 처사라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자존심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며 보람을 만드는 기둥입니다. 코로나라는 재앙이 생계의 어려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스스로 부당한 처우를 받도록 방치해선 안 됩니다.인생은 변화무쌍합니다. 좋은 일도 있고 불행한 일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거친 파도 위에 있든 순풍을 타고 있든 흔들림 없이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한 청년을 소개했지만, 그의 모습은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정신 바짝 차리고,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나를 지키며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당당한 삶을 살게 되고 어떤 위기도 보람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09-07 홍창진

[방민호 칼럼]자유와 안전의 바꿔치기 - '예외 조치'의 일상화 시대

장례식장 오래 머무를 수도 없고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재난문자 개인 사생활 보장 희생시켜 '안전' 20년간 한국사회 개방 내달렸지만 폐쇄된 시대… 시민의식 작동해야'코로나19'의 재확산은 우리들 삶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다른 어떤 힘도 해내지 못한 일을 '코로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다 해내고 있다.오늘은 오전이 다 되도록 '안전 안내 문자'라는 것이 하나밖에 오지 않았다. 내용인 즉슨, 9월6일까지 코로나 대응을 위한 수도권 강화 조치를 시행한다는 것이다. 음식점이나 제과점은 21시 이후에는 포장, 배달만 허용된다고 한다. 프랜차이즈 커피숍도 포장, 배달만 허용되며, 학원과 실내체육시설은 집합이 금지된다고도 한다.어제는 모두 다섯 개의 문자를 받았는데, 오늘 받은 것과 같은 내용 문자 둘에 은평구, 고양시, 동작구 등에서 보내온 확진자 발생 안내 문자들이었다. 어제 고양시에 간 일이 없는데 은평구 가까운 곳이라서 온 것 같기도 하고, 동작구는 확실히 중앙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다녀온 일이 있었다.선배 작가의 모친상을 치르는 장례식장은 출입구부터 체온을 체크하고 방문객 정보란을 작성하고 스티커를 발부받아야 했다. 벌써 몇 달째 서너 번은 꼭 같은 절차를 밟아 문상을 했고, 조문 이후에는 결코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어제는 앞으로 오래 보지 못할 선배를 만나 바깥을 나가 음식점을 찾았지만 대부분 철시 분위기에 그나마 연 곳도 여덟 시 반까지만 영업한다고 했다.그저께는 문자가 세 개가 왔고, 더 며칠 전에는 여섯 개, 그 전날은 여덟 개까지도 받은 기록이 있는 것이 확인된다. 그러니까 재난 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상황인데, 하루 확진자가 삼백명을 넘어서고 태풍 '바비'에 '마이삭'이 온다면서 문자 세례는 더욱 빈번해졌다.그전 같으면 미세먼지 안내문자 같은 것을 받으면서도 뭔가 푸코적인 감시의 시선이 나 자신을 따라붙는 것 같은 불안감을 예민하게 의식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이런 문자는 일상의 풍경이 되어버린 것 같다. 개인의 사생활의 보장을 희생시켜 안전이라는 두 글자를 선사받은 것이다.이와 같은 예외 상황, 예외 조치가 코로나 19 재확산 속에서 사회 모든 곳에 '침투'하고 있다. 각급 학교에서는 앞으로 언제까지일지 모르나 학생들이 함께 등교하는 것도 어려워졌고, 대학에서는 당분간 거의 모든 수업을 '비대면'으로 진행해야 하며, 각종 교수회의나 개강모임, 학술답사 등등도 언제 정상화 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모든 '정상적' 일정 소화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더 간접적이고 축소된, 그래서 안전을 도모하는 방식들이 모든 곳에서 선호되고 있다.언론과 정부가 계속해서 '가짜뉴스'에 대한 경계, 경고와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아예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확실히 최근 들어 빈번해진 감이 있다. 이 가짜뉴스라는 것이 옛날 같으면 '유언비어'일 것이요, 가짜뉴스 제작 유통은 유언비어 유포 행위에 해당할 것이다. '간첩' 잡으라던 그 옛날에 공포심을 자아내던 이 '유언비어'라는 말이 이제 '가짜뉴스'라는 것이 되어 우리 생활 주위에 유령처럼 출몰, 범람한다는 것이다.유튜브며 페이스북이며 트윗, 그리고 수많은 사회 관계망 온라인 서비스(SNS)들은 확실히 신빙성 없는 정보들을 순식간에 대량 전달 가능한 상황을 창출했고, 이는 특히 오늘날과 같은 역병 창궐 시대에 치명적인 독소를 뿜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가짜뉴스'라는 낙인이 한 번 찍히면 아무리 용을 써도 몸을 빼낼 수 없는 시대적 함정도 없다고 할 수 없다. 현상들의 종합, 분석, 추리에 바탕을 둔, 특정한 시각의 '정상적' 활동들이 자칫 '가짜'라는 낙인이 찍혀 무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21세기 들어 지난 이십 년간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열정적으로 개방과 교류를 향해 내달려 왔다. 코로나19 시대는 이 역사적인 활동적 국면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제 사람들은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비대면'의, '언택트(untact)'한, 포장과 배달로 접촉을 최소화 하는 삶이 일상화 되고 있다. 모든 출입과 이동에는 기록이, '큐알 코드'가, 음산하게 표현하면 '666'의 낙인이 뒤따른다. '코로나19' 대유행은 과연 언제쯤이나 정리될 수 있을까? 백신도 치료제도 소문만 무성한 지금 올해는 너끈히 넘길 것 같은 역병의 위력이다. 이 예외적 상황의 예외적 조치들은 과연 역병이 물러나면 더불어 사라질 수 있는 것일까? 개인들의 사적 정보들이 안전을 위해 공유되고, 너무 많은 통제들이 정당화 되는, 이 예외적 시대를 향한 시민적 의식이 살아 작동해야 할 것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20-08-31 방민호

[이남식 칼럼]타이태닉호에서 얻는 교훈

결정적 침몰원인은 빙산 충돌 아닌단순 리벳 불량으로 철판 벌어진 탓코로나 사태 자체가 주는 충격보다우리사회 지탱하는 요소들 결함이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어1912년 4월 15일 당시 세계 최대 호화유람선으로 영국의 사우스햄튼을 출발, 미국의 뉴욕까지 대서양 횡단 처녀출항에 나선 '타이태닉'호가 빙산과 충돌한 지 불과 2시간40분 만에 침몰하면서 1천514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최고의 기술로 건조된 '타이태닉'호는 별명이 '결코 침몰하지 않는 배'(unsinkable)라 불릴 만큼 큰 선박으로 길이가 269m, 폭이 28m이며 최고 높이가 58m, 그리고 11층으로 구성된 당시 세계 최대의 여객선(4만6천328t)으로 모두 16개의 방수격벽이 있으며 이중 4개에 물이 가득 차도 떠 있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방수격벽의 높이가 충분히 높지 않았던 탓에 6개의 방수격벽에 물이 차게 돼 침몰하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모두 65개로 설계되었던 구명정이 선박 외관상 고려와 안전기준 불비로 20개밖에 준비되지 않았던 까닭에 피해가 더 커지게 되었다.타이태닉호가 침몰한 곳은 깊이가 3천800m나 돼 쉽게 선체를 발견하기 어려웠으며 오랫동안 정확한 침몰의 원인을 밝히기 어려웠다. 1985년에 비로소 심해잠수정을 동원해 타이태닉호의 침몰 잔해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심해 탐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해저에 두 동강 난 선체의 잔해를 발견하게 되었으며 이는 침몰하는 순간에 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가운데 부분이 두 동강 난 것으로 조사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정작 빙산과 부딪치면서 배의 우현에 적어도 90m 가량의 큰 스크래치가 있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선체에는 불과 1m 정도 크기의 손상이 있었을 뿐이었으며 이런 구멍으로 들어오는 물의 양으로는 도저히 침몰이 설명되지 않는 미스터리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표준과학연구원 (NIST) 과학자들은 해저에서 발견한 배의 리벳(Rivet)의 성분을 분석해본 결과, 리벳이 슬러지와 같은 불순물을 많이 함유한 불량품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20세기 초 세계의 조선산업은 영국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당시에는 철판을 덧대어 구멍을 뚫고 리벳으로 고정해 건조하는 방식으로 모든 선박을 건조하였다. 특히 대서양을 횡단하는 여객선사에서는 두 대를 대서양에 투입하는 것이 경제적이므로 동시에 두 척을 건조하였으며 '타이태닉'호와 자매선인 '올림픽'호가 거의 같은 시기에 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건조되었다. 배 한 척당 300만개의 리벳이 들어가다 보니 양질의 리벳을 구하는 것이 어려웠으며 숙련된 리벳공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불량한 리벳이 많이 쓰이게 됐고 특히 영하 2도 정도의 찬 바닷물 속에서 항해하다 보니 큰 충격을 받을 경우 리벳의 머리 부분이 부서져서 빠져버리게 되었다.타이태닉 사고 전 자매선인 올림픽호가 작은 선박과 충돌사고가 났을 때에도 리벳이 빠지는 일이 발생되기도 하였다. 물론 큰 사고가 일어날 때는 여러 가지 실수들이 중첩되곤 한다. 이미 출항 당시부터 북대서양에 빙산이 많이 보인다는 정보를 흘려 들었으며 전신기 고장으로 사고 전날 다른 배들로부터 빙산을 조심하란 전문들이 제대로 선장이나 항해사에게 전달되지 못해 사고 당시 타이태닉호는 최고 속도에 가까운 시속 40㎞/h로 항해 중이었으므로 (대서양 횡단의 신기록 단축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빙산과 충돌 시에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침몰의 원인은 충돌의 충격으로 배에 구멍이 난 것이 아니라 가장 싼 부품 중의 하나인 리벳이 불량으로 빠져버려서 배의 철판을 연결하는 부위가 벌어지게 되고 일시에 많은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외부의 큰 충격이 우리를 위험에 빠지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사태도 빙산에 부딪히는 것과 같은 큰 충격이며 우리는 안되는 일들에 대해 이것이 원인이라고 핑계를 대기도 한다. 하지만 타이태닉호의 교훈에서처럼 실제 배를 침몰시킨 것은 빙산과의 충돌이 아닌 철판을 연결하는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리벳의 결함이었다. 우리 사회에도 매우 다양한 리벳들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데 이것에 결함이 있을 때 작은 충격에도 우리 사회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회를 연결하는 신뢰라는 리벳이 깨질 때 타이태닉과 같은 운명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2020-08-24 이남식

[윤상철 칼럼]껍데기만 남은 사회규범을 위하여

민주주의는 국내 최상위 정치규범최근 3권분립.소수존중 등 동요 목도'서울시장 사건'에 페미니즘의 회의환경생태주의도 '4대강 논란' 퇴색실천적 실재 못찾는 현실 안타까움지난 40년간 한국사회의 최상위 정치 규범은 민주주의였다. 여야와 좌우를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 수준은 매우 높았다. 사회적 배경에 따라 다르기도 했지만, 지역간의 차이는 비교적 선명했다. 특히 호남지역은 5·18 민주화운동 이후 민주주의와 민주당 계열 정당에 대해 굳건한 지지를 보여줬다. 최근 진보적 원로정치학자인 최장집은 현 정부 들어 나타난 정치적 양극화와 민주주의의 퇴행을 들어 현 정권의 민주주의는 실상 다수결로 무장한 전체주의라고 일갈한 바 있다. 어떤 보수 정치철학자는 현 정권을 연성 파시즘으로 규정한다. 국가주의적 이념의 혼란을 감안한다면 전체주의적 포퓰리즘 독재가 더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최근 우리는 정치적 다원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체제 하에서 볼 수 있었던 삼권분립, 법의 지배, 언론의 독립, 소수에 대한 존중 등이 동요하고 있음을 목도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현 정권의 진보적 좌파성향과 민주주의 성향을 중시하여 지지를 해왔던 호남지역은 가장 먼저 그 정치적 지지를 철회하거나 약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다른 지역민들의 정치적 지지가 눈에 띄게 퇴조하는 상황에서 호남지역의 지지는 철옹성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지지했던가?페미니즘 혹은 성평등주의는 또 하나의 최상위 정치규범이다. 대통령조차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칭하고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여성가족부'가 날로 그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스스로를 페미니즘과 동일시하지 않고서는, 정치인도 교사도 학자도 그 사회적 입지가 흔들리고 노골적인 비난에 직면하며, 심지어 평범한 남성들도 사회적 삶을 견뎌내기 버거운 꼰대로 전락한다. 비례대표 여성할당제 등으로 인해 여성 국회의원들의 비중은 점차 높아지고 있고, 성평등교육은 정부기관,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일반기업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현직 서울시장의 성추행사건이 수년간에 걸쳐 진행되고 있었을 때에 그 피해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와 조직 그리고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전직 비서가 마침내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이를 고발했을 때에 여성가족부도, 여성국회의원들도 그녀를 위해 나서지 않았다. '피해호소인'이란 생소한 명칭을 사용했고, 가해자의 사망에 따른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하고자 했으며, 피해자에 대한 인터넷 댓글 공격이나 5일간의 '서울특별시장'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가혹하기만 했다. 그들의 페미니즘은 무엇이었던가?환경생태주의 역시 중요한 정치규범이자 생활규범이다. 환경생태의 향상과 보존은 경제성장이나 삶의 질과 으레 충돌하거나 길항관계에 있기 마련이어서 매 사안마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과학적 분석과 민주적 토론을 같이 해야 한다. 4대강 사업에 대해 환경생태와 삶의 질 개선을 둘러싸고 상반된 주장들이 충돌해왔다. 사업이 끝난 후에도 16개 보의 개방 및 철거를 두고 온갖 정치적인 논란이 반복됐다. 그 환경생태주의자들은 탈원전정책 이후 진행된 태양광발전과 에너지 전환에 대해서는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는다. 원전을 대체하는 석탄발전이나 화력발전 그리고 LNG 발전의 미세·초미세먼지나 지구온난화 배출가스의 증대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장기간의 장마로 인한 산사태가 태양광패널을 설치하기 위해 이뤄진 삼림파괴와 어떠한 관련이 있으며, 무너진 발전시설로 인한 오염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용하기만 하다. 과연 이들이 환경생태주의자인지 의심스럽다.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을 가진 나라에서 우리 민족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 눈감고 있고, 정권에 속한 일부 특권세력 피의자의 인권을 중시하는 반면,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려는 언론사 기자나 검사에게 그 기준은 적용되지 않는다. 차라리 인권을 말하지 말라.정치적 자유를 보호하고 다원적 가치를 인정하는 문제는 민주주의 이전의 가치이자 민주주의의 주춧돌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성평등주의, 환경생태주의, 그리고 인권 그 모두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지배적 규범들이다. 하나의 가치가 상위에 서서 다른 가치들을 전제적으로 배타적으로 지배하고, 가치들 상호간에 위계서열이 존재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로 인해, 그리고 집단의 세속적 이익이나 관심에 따라, 어떤 지고한 규범이 묵살되거나 감춰지는 상황도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근대적 보편적 인본적 가치들이 내세워지지만 그 실천적 실재를 찾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20-08-17 윤상철

[전호근 칼럼]호우부지시절(豪雨不知時節)

때를 모르고 오는 비는 반갑지않다이 비가 그치면 얼마나 피해가 클까고대 동아시아 시대는 재난이 일상국가 부축적도 이들 백성 삶 보듬기지금도 매한가지 공동체 힘 모을때미안하게도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반갑지 않다.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이라.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 했는데 이번 비는 그렇지 않아서 잠 못 이루는 이들의 근심이 깊어가기만 한다. 이 비가 그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가지가 꺾이고 얼마나 많은 논밭이 물에 잠기고 또 얼마나 많은 귀한 생명이 떠내려갈 것인가.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재난은 일상이었다. 때마다 가뭄과 홍수가 일어나고 전염병이 창궐하여 삶을 위협하고 급기야 메뚜기 떼가 날아와 수확을 앞둔 농작물을 먹어치운다. 유학의 경전 '예기'의 기록에 따르면 작은 재난은 3년에 한 번, 큰 재난은 10년에 한 번꼴로 찾아온다고 했다. 그 때문에 나라가 9년 치의 곡식을 비축하지 못하면 부족하다 했고 6년 치의 곡식이 없으면 위급하다 했고 3년 치의 곡식조차 없다면 그런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고 했다. 국가가 부를 축적하는 이유는 재난이 닥쳤을 때 백성의 삶을 보살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재난이 닥치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이다. 유학의 이상 정치를 가리키는 말인 왕도(王道)는 바로 이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을 보살피는 통치원리였다. 맹자가 제나라에 갔을 때 제나라 왕이 왕도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늙어서 아내 없는 것을 '홀아비(鰥)'라 하고, 늙어서 남편 없는 것을 '과부(寡)'라 하고, 늙어서 자식 없는 것을 '홀로 사는 사람(獨)'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 없는 것을 '고아(孤)'라 합니다. 이 네 부류는 천하에서 가장 가난하고 하소연할 곳 없는 사람들인데 이들을 먼저 보살피는 것이 왕도입니다."맹자가 말한 '환과고독(鰥寡孤獨)' 중에서 '환(鰥)'은 본디 물고기를 가리키는 말인데, 홀아비는 근심 때문에 밤에도 눈을 감고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것이 마치 물고기와 같다는 뜻에서 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세 부류, 곧 과부, 홀로 사는 노인, 고아가 편히 잠든다는 뜻은 아니며 이들도 잠 못 이루기는 마찬가지일 테고 오히려 홀아비는 그중 사정이 가장 나은 편일지도 모른다.유학을 국가 통치 이념으로 나라를 세웠던 조선의 경우는 건국 초부터 재난이 닥쳤을 때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맨 먼저 보살피도록 명문화했다. 왕도를 표방했던 태조의 즉위교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홀아비, 과부, 고아, 의지할 곳 없는 노인(鰥寡孤獨)은 왕도 정치를 베풀 때 가장 먼저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니, 마땅히 불쌍히 여겨 돌보아야 할 것이다. 해당 지역의 관청에서는 굶주리고 궁핍한 사람을 구휼하고 부역을 면제해 주도록 하라."태종실록의 기사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백성들을 제생원에 모아들여 돌보게 했다. 의정부에 하교하기를, '환과고독(鰥寡孤獨)과 독질자(篤疾者), 폐질자(廢疾者), 실업(失業)한 백성들이 어찌 얼고 주려서 비명에 죽는 자가 없겠느냐? 내가 매우 불쌍히 여기니 여러 관청의 관리들로 하여금 빠짐없이 거두어 보살피게 하라'고 했다."이 기록에는 맹자가 이야기한 환과고독에 더해 독질자와 폐질자까지 아우르고 있다. 독질자란 불치의 병에 걸린 이들이고 폐질자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국가가 나서서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시되었던 것이다.지금도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이 발달했다지만 재난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어려운 가운데 유례없는 폭우가 쏟아져 온 나라가 최악의 물난리를 겪고 있다. 둑이 터지고 마을이 물에 잠기고 소들이 지붕 위에 올라갔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애통해 하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잃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재난이 닥치면 가장 크게 고통 받는 이들은 언제나 평소 어렵게 살던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이재민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공동체 모두가 힘을 합쳐 그들을 돕는 일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8-10 전호근

[윤인수 칼럼]현실로 다가오는 수도권 쓰레기 대란

인천시 '매립지 2025년 폐쇄' 입장 확고한데경기·서울시·환경부 대안 마련은 뒷전 느긋정치적부담 회피 대체지 용역결과조차 봉인문제는 연장해도 기반공사 늦어져 사용불가지금 수도권 민심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 때문에 분노하고, 긴 장마에 한숨 짓고, 그보다 더 긴 코로나 빙하기로 죽을 맛이다. 여기에 또 다른 대란을 경고하자니 심란하지만 미안하게도 외면할 수 없다. 예상이 아니라 예정된 대란이라서다. 바로 쓰레기 대란이다.인천시 서구의 수도권매립지는 수도권 3개 시·도 시·군·구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매립하는 공공시설이다. 원래 2016년에 사용 종료될 예정이었다. 그 즈음 인천시는 예정대로 사용종료를 주장했지만, 서울시와 경기도의 간청으로 2025년까지 사용연장에 합의했다. 인천·경기·서울시와 환경부가 2015년 맺은 4자 협의체 합의문에 서명했다. 연장합의엔 조건이 붙었다. 2025년까지 대체매립지를 조성하되, 안되면 현 매립지의 잔여부지를 추가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4자 협의체는 약속대로 대체매립지 조성을 위해 2017년 후보지 물색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용역결과는 지난해 3월 나왔다. 그런데 용역결과는 지금까지 봉인된 상태다. 단체장들은 이심전심 후보지 공개 이후 감당해야 할 정치적 부담을 회피했다.이제 정치만 남았다. 인천시의 입장은 확고하다. 2025년 수도권매립지의 조건 없는 폐쇄를 밀어붙이고 있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시 자체 매립지 조성과 쓰레기 소각장 신·증설 사업을 공식화했다. 경기도·서울시와 환경부에 2015년 합의의 매립 연장 단서조항을 거부한다고 통보했다. 역대 인천시장에게 수도권매립지는 정치적 종양이었다. 사용 연장을 반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매립지 인근 청라지구의 악취 민원은 해마다 반복된다. 매립 연장 동의는 인천시장의 정치적 자살이다.인천시의 주장대로 수도권매립지가 2025년 폐쇄되면 결과는 초등학교 산수처럼 명확하다. 갈 곳 없는 쓰레기가 발생지에 그대로 쌓인다. 소각하면 된다고? 서울시는 소각장 지을 땅도 없다. 경기도는 땅은 있지만 목숨 걸고 반대하는 주민들도 있다. 인천시 공론화위원회가 권고한 청라소각장 증설에 국회의원과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더군다나 현재 수도권의 소각장 대다수가 내구연한을 넘나들고 있다. 증설이든 신설이든 소각장들이 잇따라 멈춰서면 수도권매립지 반입을 늘려야 할 형편이다. 매립하지 못하면 수도권 시·군·구엔 합·불법적인 쓰레기 산들이 쓰레기 산맥을 이룰 것이다. 당장 내년부터 수도권매립지 폐기물 반입총량제를 위반한 수도권 30여개 시·군·구가 5일 동안 동네에 쓰레기를 쌓아두어야 한다.인천시가 2025년으로 못박은 예정된 대란이다. 문제는 예정된 위기를 위기로 극복하려는 경기도와 서울시, 환경부의 태도다. 느긋하다. 실제로 쓰레기 대란이 닥치면 인천시가 수도권매립지를 폐쇄할 수 없을 것이라는 복심인 듯하다. 이 문제가 급하다고 협의를 보채도 모자랄 판에 모르쇠로 일관한다. 앞으로 수십년간 사용할 수 있는 수도권매립지가 있는데, 쓰레기 대란으로 수도권 민심을 잃을 정권은 없다. 대란이 임박하면 정치적 결단과 타결은 불가피해진다. 최소한 경기·서울은 의도적 침묵으로 파국의 순간을 기다리는 듯하다.그런데 문제가 있다. 위기에 임박해서 수도권매립지 사용 연장에 극적으로 합의한다 해도, 정작 매립이 불가능해질 수 있어서다. 쓰레기를 매립하려면 기반시설을 조성해야 한다. 현재 수도권매립지 3-1 매립장은 2025년 8월에 꽉 찬다. 사용을 연장하려면 3-2 매립장 기반공사를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다음 달부터는 착공이 늦어지는 만큼의 기간이 2025년 8월 이후 수도권매립지 임시폐쇄 기간이 된다.지난 7월 31일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미래통합당 김 웅 의원은 뻔히 보이는 위기를 지적하며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면 장관을 비롯해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대란의 주범"이라고 일갈했다. 조명래 장관은 문제 해결을 위한 4자 협의체 가동을 알리며, 수도권 지자체의 소각장 건설과 대체매립지 확보를 낙관했다. 지자체들이 한다고 하니 잘 될 것이란 맥락의 답변이었다. 수도권 쓰레기 대란을 걱정하는 국회의원은 단 한 명이고, 장관은 여유롭다. 아무래도 쓰레기 대란은 현실이 될 모양이다./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0-08-10 윤인수

[이명호 칼럼]지구도 휴식이 필요하다

코로나사태 글로벌경제활동 위축봉쇄 조치 도로·항공 교통량 감소NASA "세계 대도시 대기질 개선"사람유발 지구의 진동 평균 50%↓도시민 공기·식물 중요성 깨달아인간의 활동이 멈추거나 줄어드니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들이 관찰되고 있다. 당장 대기가 개선된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미세먼지도 확 줄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처음 발견된 우한 등 중국 중부 산업지역에서 일산화질소 농도가 평소보다 10~30% 낮아졌다고 한다. 한국 역시 공기 질이 좋아진 영향을 받았다. 멀리 인도 북부에서는 30년만에 160㎞ 떨어진 히말라야 산봉우리를 볼 수 있었다. NASA는 위성사진을 분석해 전세계 주요 도시지역의 대기 질이 개선되었다고 발표했다. 특히 대도시에서 이산화질소량이 50% 이상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호흡기 질환 감소로 수십만 명의 생명을 구했을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이는 물론 봉쇄조치와 경제활동 위축에 따른 에너지 사용의 감소, 특히 교통의 감소에 기인한다. 애플의 아이폰 이용자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절정인 2020년 3월에서 5월 사이에 미국, 호주 및 독일 등에서 대중교통 이용률은 전년 대비 70% 이상 감소했다. 전세계 항공기 운항도 5월 기준으로 작년보다 66% 급감했다.대기 질이 좋아진 것 이외에 우리가 못 느끼는 또 다른 현상도 나타났다. 지진이 감소한 것이다. 벨기에 왕립 천문대가 주도한 전세계 5곳의 기관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3~5월 사이에 인간에 의해 유발된 지구의 진동(지진, 지각 소음)이 평균 50% 정도 감소했다. 인구 밀집 지역에서 '지각 소음'의 감소가 더욱 두드러졌다. 지각 소음은 지구 내 진동으로 지진, 화산 및 폭탄뿐만 아니라 여행 및 산업과 같은 일상적인 인간 활동에 의해서도 유발된다. 과학자들은 인간에 의한 왜곡 진동없이 지구의 자연 진동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사람이 유발한 소음과 자연 신호를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되어, 자연 재해를 경고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한 인간 활동의 급속한 감소가 지구의 환경 악화에 인간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교 연구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코로나19 봉쇄 조치로 도로, 항공의 교통량 감소로 전세계가 조용해지자 지구의 몸살(진동)도 줄어든 것이다. 소음은 물론 지구만 몸살을 앓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더 큰 고통을 받는다. 유럽 환경청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 인구의 20%가 교통 소음이 건강에 해로운 지역에 살고 있다. 소음(시끄러운 환경)은 오염이지만 대기 오염과는 달리 보거나 냄새를 맡을 수 없고, 일시적이기 때문에 심각성을 인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소음은 사람을 산만하게 하여 업무, 교육, 수면 등에 만성적 영향을 미치고 효율성을 저하시킨다. 철길과 접한 쪽의 교실 학생들의 독서 점수는 건물의 다른 조용한 쪽보다 1년 뒤떨어진다고 한다. 공항 근처에서 살았던 어린이들의 독해 능력은 공항이 이사한 후에 개선되었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낮아졌다는 등 많은 연구가 소음의 악영향을 경고하고 있다. 50㏈(데시벨) 이상에 장기간 노출되면 청력 손상, 혈압과 스트레스 수준 증가, 우울증의 위험이 두 배 증가하고 정신력이 저하한다. 반면에 조용한 환경은 생체 활력을 높인다. 생쥐에게 조용한 환경을 만들어주니 새로운 뇌 세포 생성이 활발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60년 전에 영국이 소음 저감법을 제정한 이후 전세계 각국이 소음 수준을 규제하고 있으나, 전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세계보건기구의 권고 기준인 65㏈을 초과하고 있다. 도로변 주거지역(낮) 소음이 서울 68㏈이고 대구, 인천, 부산 모두 65㏈ 이상이다. 밤 소음은 서울 66㏈이고 광주까지 밤 기준인 55㏈을 넘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건강에 위험한 소음 지역에 살고 있는 것이다.경제 악화와 생명의 위협이라는 팬데믹은 도시 거주자들에게 더 깨끗한 공기, 더 조용한 도로, 더 많은 식물의 중요성을 느끼게 했다. 인간이 얼마나 지구를 힘들게 하는지도 알게 됐다. 도시 환경이 개선된 녹색 세계에 살고 싶어하는 경향이 증가한 것은 팬데믹이 준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

2020-08-03 이명호

[홍창진 칼럼]원수는 내 운명

사람이 살면서 한번 척을 지게되면 화해를 시도해도 회복이 쉽지않다서로 잘못한 경우가 대부분인데…용서 차원서 상대방 생각하기 때문미워할 바엔 곁에 두고 사는 지혜를가끔 신자들과의 모임에서 묻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원수진 사람이 없는 분 계십니까?" 원수진 사람이 없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사업을 같이 하다가 돈 문제로 친구와 적이 되기도 하고 연애 중에 상대가 신의를 저버려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합니다. 직장 동료가 자기를 헐뜯고 다닌 걸 뒤늦게 알고 척을 지기도 하고 고부간의 갈등으로 시댁과 원수가 되는 것도 다반사입니다. 꼭 드러내놓고 다투지 않더라도 내 마음 안에서 이미 관계를 끊어버리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지요.한번 척을 지게 되면 나중에 화해를 시도한다 해도 관계가 회복되는 예가 거의 없습니다. '잘못은 상대에게 있고 나는 용서하려는 차원에서 손을 내미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잘못도 있다고 인정한다 해도 거기에는 이런저런 변명이 붙습니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상대가 조금이라도 싫은 소리를 하거나 지적을 하면 화해하려는 마음은 더 큰 분노로 바뀝니다. 일전에 미술인들과 미술 시장 활성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의 낙후된 어느 지역에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있었는데 재건축을 진행한지 15년이 되도록 진전이 안 돼 곧 계획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파트는 흉가나 다름없이 방치되어 있었지요. 만일 미술인들이 이 헌 아파트를 싼값에 한 채씩 매입한다면 더 이상 젠트리피케이션에 위협받지 않는 것은 물론 공동체에서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조합을 만들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신나게 이런저런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그런데 재건축 조합이 극적으로 다시 살아나서 우리 사업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 일에 앞장섰던 저와 집행부는 마치 사기꾼처럼 몰려 비난을 받았지요. "천주교 신부여서 믿고 함께했는데 이게 뭐냐! 신부도 사기 치냐!" 소액이지만 십시일반 부담했던 조합 회비를 내놓으라며 으름장을 놓는 이도 있었습니다. 운영비 한 푼 받기는커녕 오히려 쌈짓돈 털어 기부까지 했는데 결국 인연이 끊긴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어언 10여 년. 돌이켜보면 여전히 속이 상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에서 그래도 관계를 회복해야겠다 싶어 인연이 끊긴 이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하지만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냉대로 마음만 혼란해질 뿐 마음이 통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에게 "밀 이삭을 심었는데 가라지 싹이 보이네요. 우리가 가라지들의 싹을 잘라버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놔두어라. 지금 가라지 싹을 뽑으려다 밀까지 뽑을 수 있다. 그러니 추수 때에 가라지와 밀이 선명히 드러나면 가라지를 뿌리째 뽑아 불에 태워버려라"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선한 이와 악한 이가 함께 살고 있는데 악한 이는 종말에 가서 내가 심판할 테니 너희는 남을 심판하려들지 말고 착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이렇게 빗댄 것입니다. 원수져 싸울 때 보면 어느 한 쪽이 옳은 듯 보여도 서로 잘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느 측면에서 보면 저이가 옳고 또 어느 측면에서 보면 그이가 옳습니다. 여기에 개인적인 상황까지 결부되면 시시비비를 가리기란 끝이 없습니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리는 갈등에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밀이고 상대는 가라지라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그보다는 나도 누군가에게는 가라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상대를 적으로 두고 심판하는 건 내 인생의 폭을 좁게 만들 뿐입니다. 결국 답답하고 화가 나는 건 자기 자신뿐입니다. 원수는 나의 운명입니다. 피하려 해도 원수 없이 살 수는 없는 게 인생사입니다. 보지 않고 멀리 지내도 기억에 남아 수시로 마음에 상처를 냅니다. 멀리 보내려 하면 할수록 그는 끈질기게 나를 찾아옵니다. 그럴 바에야 미워하면서 괴로워하기보다는 차라리 곁에 두고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겠지'하고 그를 풀어 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07-27 홍창진

[이영재 칼럼]"나, 이재명 좋아질 뻔했어"

대법 판결후 주택난 해결·종부세 폭탄 등정국 현안에 '사이다 발언' 쏟아내자 깜짝"장사꾼도 손실 감수" 무공천 언급땐 압권이틀후 "의견과 주장은 달라" 변심에 실망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후, 주요 정국 현안에 대해 발언을 쏟아내자 모두 깜짝 놀랐다. 이 지사의 '사이다 본능'이 더 강력하고 신선해졌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판결 다음날 그린벨트 해제 지역에서 아파트 분양권에 당첨되는 걸 로또에 비유하면서 "집값은 못 잡고, 전국적으로 분양 광풍만 일어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발 더 나아가 대안도 제시했다. 그린벨트 해제 대신 도심 재개발이나 용적률 상향 조정으로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역시 대치동 '일타 강사' 뺨치는 발언이었다.종부세 폭탄과 관련해서도 사이다 발언이 이어졌다. "비싼 집에 사는 게 죄인가. 집값 올랐다고 마구 세금을 때리면 안 된다. 주택은 가격보다 숫자, 숫자보다 실거주 여부를 따져 중과세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은 계속 이어졌다. "실거주 1가구 1주택이 고가라는 이유로 압박하고 제재하는 방식을 동원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집 한 채 끌어안고 전전긍긍하던 50· 60대들은 이 지사 말에 감동했다.이 지사의 정치감각이 '천부적'이라는데 누구나 동의한다. 홍준표 의원보다 두 수 정도 위라는 말도 있다. 자신의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열광시키는 방법을 이 지사는 잘 알고 있다. 민주당의 지지자들을 넘어 중도층까지 아우르기 위해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고 있다. 자신의 발언이 불러올 파장도 분명 예상했을 것이다. 그 다음 날 발언은 정말 압권이었다. 이 지사는 "장사꾼도 신뢰를 유지하려고 손실을 감수한다"며 "아프고 손실이 크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 공천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서울·부산시장 공천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지사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그분(이낙연)은 엘리트 출신이고 난 변방의 흙수저"라고 말했다. 이낙연 의원과의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의원에 대한 공개 도전장으로 비쳤다. 이 발언에 충격을 받은 건 이낙연 의원도, 청와대도 아니다. 통합당 지지자까지 포함한 중도층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어설픈 정책으로 전전긍긍했었는데 이 지사의 사이다 발언에 얹혔던 체증이 한순간에 꺼졌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이날 밤, 지인들과 소통하는 단톡방이 시끄러웠다. 평소 이 지사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한 지인이 "나 이재명 좋아질 것 같아"라며 마치 커밍아웃하듯 말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두세 명이 이 말에 동조하면서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물론 "아직은 믿을 수 없다"는 부류도 있었지만, 머리 좋고 상황 판단 빠른 이 지사가 무심코 이런 발언을 하진 않았을 거라는 게 중론이었다. 거칠다는 문재인 지지자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그냥 쇼 한번 하겠다고 저런 무리수를 두겠냐는 것이다.만나는 사람마다 이 지사의 발언이 화제였다. 통합당에 변변한 출마자가 보이지 않는데 이 지사가 정말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면 굳이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호불호가 분명한 이 지사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권력을 잡는다면 신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것도 그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날 실시간 검색 상위에 오르는 등 이 지사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느낌이 역력했다. 우리는 2016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과정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의 발언을 기억한다. 문 후보는 라디오에서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을 칭찬하며 "제가 들어도 시원할 만큼 사이다가 맞다"면서 "분명하고 위치 선정이 빠르고 아주 훌륭한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그만큼 이 지사는 대중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가려운 곳이 어디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정치인이다. 이 때문에 '포퓰리스트'라는 말도 듣긴 하지만 지금 대중이 원하는 건 이 지사처럼 의견이 분명한 정치인이다.그러나 슬프게도, 이틀 후 이 지사는 자신이 했던 공천과 관련된 발언을 뒤집었다. "나는 무공천을 주장한 적이 없다"는 말도 그렇지만, "의견과 주장은 다르다"는 말에 많은 이들이 실망을 금치 못했다. 정치는 이 지사 말대로 '생물'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그 단톡방이 또다시 뒤집어졌다. "나 이재명 좋아질 것 같아"라며 몹시 흥분했던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나, 이재명 좋아질 뻔했어. ㅜㅜ"/이영재 주필이영재 주필

2020-07-27 이영재

[방민호 칼럼]새로운 좀비 영화 '반도'의 충격

개봉 5일만에 180만 관객 흥행돌풍코로나19 대유행 맞물려 가히 리얼현대 두개의 역설 인문학적인 문제산 시체 '좀비' 죽은듯 사는 '무젤만'원한 이념 여전 누가 과연 좀비인가흥행돌풍이라고 한다. 개봉 닷새만에 벌써 18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것이다. 2016년 유일한 천만 돌파 영화 '부산행'에 이어 이번 좀비 영화도 심상찮은 조짐이 엿보인다고나 할까? 도대체 이 영화가 어떻기에 이런 바람이 불었을까?이 영화는 한반도에 정체모를 바이러스가 퍼져 난리가 나면서 시작된다. 뭔지 모르지만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좀비가 되는 것이다. 그럼 좀비란 무엇이냐? 하면 간단히 말해 살아 있는 시체를 말한다. 서인도 제도의 민속 신앙, 부두교 신앙에서 유래한 이 살아있는 시체는 '반도'나 '부산행'에 따르면 영국에 건너간 저 루마니아 괴물 드라큘라처럼 사람 목을 물어뜯기도 하고, 그러면 물린 자도 괴물이 되어 버린다.좀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나머지 한반도는 좀비 세상이 되어 버렸다. 좀비가 사람들을 물어뜯어 모두들 몹쓸 병에 걸려 정상인들이 다 사라질 정도로 좀비 세상이 되어버린 한반도를 사람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좀비들로 폐허가 된 마지막 피난선을 타고 홍콩으로 건너간 지 4년만에 고립된 한반도로 되돌아가게 된 강동원 분 '정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개체수'가 엄청난 좀비들뿐이다.그런데, 미래공포영화라 할까 액션 스릴러라 할까 모를 이 '반도'는 아직 통일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완전한 미래형은 아닌 것 같다. '북한'에서는 한반도 '남한'이 좀비 세상이 되어 버리자 아예 문을 닫아걸어 버리는데, 사실 진짜 좀비들이 더 만연, 창궐하는 곳은 저쪽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 이 영화의 한 가지 난센스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쪽에 지금 좀비가 창궐하는 것은 사실은 사실이니 크게 나무랄 수는 없다. 아무튼 좀비들, 이 살아있는 시체들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모르게 한반도를 뒤덮어 서울이며 인천이며 피할 곳 없을 지경이 되어 버렸다는 모티프는 코로나19 대유행의 세계적 현상이나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맞물려 가히 리얼하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좀비 영화의 세계적 흥행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현대에 접어들어 두 개의 역설이 인문학적인 문제가 되는데, 하나는 좀비, 즉 '살아있는 시체'이며 다른 하나는 '무젤만' 즉 '죽은 것 같은 산 사람'이다. 이 둘을 모두에 간단한 상징적 해석을 가하면 좀비란 이미 죽은 존재, 가치들이 아직도 산 것처럼 힘을 미치는 것이고, 무젤만은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이 말하듯 현대의 잔인한 생명정치에 의해 죽음으로까지 내몰리는 산 자들, 나아가 산 가치를 말한다. 세계를 극단적인 증오와 대결, 단죄로 몰고 가는 원한의 이념은 이미 파산을 선고받았으되 아직도 무진장 힘을 발휘하고 있고, 진짜 생명적 가치는 죽음의 차원으로까지 내몰려 비난과 기피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렇게 만드는 힘들이 작동한다. 이 좀비의 반도에서 말이다.저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에서 오이디푸스가 떠난 테베의 왕위를 차지한 안티고네의 삼촌 크레온 왕은 안티고네의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장사 지내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의 시신을 들판에 버려 명부로 들어가지 못한 채 새와 짐승의 밥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왕의 명령은 지엄하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권력은 오로지 이승의 것일 뿐 죽은 자의 세계에까지 미칠 수는 없노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왕의 명을 어기고 오빠를 땅에 묻고 죽음을 당한다. 새와 짐승의 밥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물어뜯음, 죽은 뒤에까지 물어 뜯김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마찬가지로,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사육신이 일어나 질서를 바로잡으려 했으나 거열형이라는 처참한 형벌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때 새남터에 버려진 사육신의 시신을 거두어 몰래 묻어준 이가 생육신의 하나로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이었다.죽은 자를 땅에 묻으라. '반도'는 묻히지 않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원한을 보여준다. 그러나 누가 과연 좀비인가? 누가 물어뜯기고 물어뜯는가? 나는 아직 이 이상한 세상을, 나라를 알지 못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20-07-20 방민호

'역병(疫病:감염병)'과 '한의약'

모든 의학의 역사는 역병과 투쟁의 역사다. 한의학 역시 역병(疫病), 즉 감염병의 실체를 밝히고 적절한 방역(防疫)의 방법을 찾고, 감염병의 예방과 치료를 연구하며 발전해 온 의학이다.작년 연말부터 중국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와 전세계를 힘들게 했던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잠잠해지나 싶더니 다시 끊이지 않고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 이 코로나19 역시 새로운 역병(疫病)이다. 역병의 창궐은 재난상황이다. 재난 앞에서 인류는 모든 정보를 교류하고 힘을 합하여 대응해야 한다.필자도 '코로나19 한의전화진료센터'에 봉사자로 참여하여 외국인환자도 비대면진료하고 여러환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본인이 참여한 서울진료센터에서는, 하루 평균 20여명의 한의사와 20여명의 한의대생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많은 코로나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5월말 기준으로 전체코로나 환자의 20%이상이 한의진료를 경험하게 되었고, 만족도 또한 매우 높게 나왔다. 코로나 19의 한의진료는 WHO의 권고사항이다. WHO는 2020년 2월에 에볼라 치료제로 유명한 렘데시비르, 신종플루때 나왔던 아비간,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퀴닌, 코로나19를 극복한 사람들의 혈장을 이용한 혈장요법과 더불어 각국의 전통의학을 Immediate Therapeutics로 권고하고 있다. 이에 대한한의사협회는 코로나 19에 대한 진료매뉴얼과 진료지침서를 만들고 시시각각 업데이트하면서 이에 대응하고 있다. 실제 양한방 협진 체제가 잘 운용되는 중국의 경우 코로나19 바이러스 치료에 한의학적 치료를 가미해 많은 효과를 내고 있으며, 보고에 의하면 85%의 확진자들에게 한약을 투여해 완치 기간을 앞당기고 있다.한의학은 인류의 오랜 질병의 역사와 함께해 왔고 역병(감염병) 치료를 위한 많은 솔루션을 축적해 왔다. 이미 후한(後漢)시대 장중경의 상한론(傷寒論)과 청대(淸代)의 온병학(溫病學)을 위시해 많은 의서를 통해 역병의 생성과 그 발전, 소멸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에 대해, 역병의 기전은 물론 상세한 치료법까지 모두 구축해 놓고 있다. 그리고 현대한의학에서는 각 한의과대학의 예방한의학교실과 호흡기내과학교실에서 학부과정은 물론 대학원 박사과정, 한방병원의 전문의과정까지 개설되어 예방한의학 전문가와 감염병 전문한의사를 양성 배출해오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재난상황에서마저 일부 의사단체의 직역이기주의로 인해 정부의 감염병 대응지침에 한의사 전문가들의 참여가 배제된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그나마 경기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한의사 역학조사관을 임명하여, 심층 역학조사는 물론 검체채취에도 참여하고 있지만, 질병관리본부의 이기적인 대응지침으로 인해 격리중인 환자의 치료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재난 앞에 직역이기주의는 죄악이다.한의학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계속된 감염병의 역사속에서 그 역할을 내려놓은 적이 한번도 없다. 항상 감염병과 싸우면서 더 나은 방법을 찾아왔다. 한의학은 이번 코로나19 이후에도 계속해서 감염병과 싸울 것이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건강을 지킬 것이다. /경기도한의사회장 윤성찬(한의학박사)

2020-07-14 윤성찬

[이남식 칼럼]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

지나친 개입으로 부동산광풍 시작아직도 '세금으로 해결' 망상 빠져결국 도심공급 늘어나야 가격 안정국민들 권한 위임 받은 정치·행정시장기능 회복되도록 심기일전을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삶을 살면서 과거의 삶이 얼마나 귀중했는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모든 뉴스 매체에서는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부동산 광풍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정말 아파트 한평(3.3㎡)이 1억원을 넘고 엄청난 부동자금이 투기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몰려드니 21번의 대책이 아무 소용이 없는, 그리고 더 높은 강도의 대책이 발표되는 가운데 그저 오랫동안 한곳에 살아온 분들에게도 천문학적인 보유세나 종부세가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닌 패닉에 빠지게 되었다.2017년 이 정부의 출범 이후 부동산에 대한 징벌적인 정책을 강력하게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오늘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나 돌이켜보면 징벌적인 의도를 가지고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함으로써 일을 그르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구체적으로 정확한 경제학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것은 아니나 강남의 아파트 재개발로 인하여 큰 수익을 얻게 되자, 재개발 가능 아파트에 대한 투자로 가격이 오르고 2만~3만가구의 재개발로 인한 이주세대가 전세금을 올리는 상황에서 정부정책의 출발은 재개발을 막아 투기를 원천 차단하겠다 하였으나 오히려 공급이 줄어 가격 상승을 촉발하였고 도심이 아닌 외곽지에 신도시를 개발하면서 2019년에만 45조원의 토지보상금이 풀리고, 이는 다시 부동산시장의 시드 머니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실제적인 부동산의 가치와 가격 사이에 괴리 (decoupling)가 엄청나게 발생되는 투기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가격을 억제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한다 하니 공급이 더욱 위축되고 가격이 오르니 너도나도 저금리에 빚을 내어서라도 아파트를 사려는 심리가 발동된 것이다. 시장의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인 가격 결정기능이 지나친 정책적 개입으로 말미암아 군중심리가 작용하여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박병석 국회의장께서는 40년간 서초동의 아파트에서 그냥 사셨다. 그런데 65평쯤 되는 아파트의 현재 시세가 60억원이라고 나오고 재개발 입주 시에는 95억원에서 100억원의 가격이 된다는데 이는 당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이루어졌으니 억울하실 만하다. 그러나 정치가 지나치게 모든 부분에 개입함으로써 만들어진 부동산 광풍에 대하여 정치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우실 수 없을 듯하다. 도저히 정상적이지는 않은 상황인데 아직도 당국자들은 도심의 공급을 늘릴 생각은 안하고 세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다. 물론 도심 과밀화의 문제가 있다. 따라서 도심재개발을 허용하되 일본처럼 주차장이 없는 아파트를 도심에 만들어 젊은층에게 보다 싸게 주거 제공을 하고 인근의 사무실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여 출퇴근할 수 있도록 교통수요를 줄이면 과밀효과를 감소시킬 수 있다. 결국 공급이 늘어나야 가격이 안정되지 않겠는가? 지금처럼 가면 국회의장처럼 한곳에서 그냥 오래 살던, 특히 은퇴자들은 세금 폭탄 속에서 매우 암울한 노후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은행금리도 1%대이고 수입도 없는데 집을 가졌다고 세금폭탄만 맞을 것이니 말이다. 관계 당국의 엇박자 처방이 증폭되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 시키는 것이 모바일 앱들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파트 전체 단지 중에서 한 두 채인데 이러한 가격이 금방 아파트 전체의 가격으로 알려지고 그 가격 이하로는 팔지 않으려는 심리가 작용하여 실제 가치와 가격 사이의 괴리를 키우고 있지 않은가 한다. 또 다른 디커플링의 현장이 증시가 아닌가 한다. 기업의 영업성과나 미래가치와는 무관하게 투기적인 상황이 전개된다면 이 또한 향후 대폭락의 과정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되지 않을까 한다. 성실하게 일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보상받는 사회가 아닌 투기에 동참하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를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 대체 정치란, 그리고 행정이란 무엇인가. 백성들이 편안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많은 권한을 위임해준 것이 아닌가. 이제 정책이 해결할 수 있다는 망상을 버리고 시장기능이 회복되도록 심기일전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2020-07-13 이남식

[윤인수 칼럼]백선엽, 박원순이 남긴 질문

하루사이 유명 달리한 진보·보수진영 명사집권여당, 朴시장은 功·白장군엔 過 부각여성계·野 반발 부르고 국민통합기회 날려文정부·與 최종답안 국민·역사가 지켜볼것공교롭다. 진보와 보수 진영의 두 명사가 하루 사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장맛비 속에 어제 진보 진영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서울시장장으로 영면에 들었다. 한국 시민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내일엔 보수진영의 백선엽 장군이 육군장으로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다.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켜 낸 호국 영웅이다. 광화문 광장엔 두 사람의 빈소가 나란히 차려졌다. 박 전 시장의 빈소는 서울시가, 백 장군의 빈소는 보수 청년단체가 세웠다. 조문객은 진영으로 분리됐다.박 전 시장과 백 장군의 죽음엔 얼룩이 묻었다. 박원순의 얼룩은 개인적이다. 죽음의 방식과 여비서 성추행 의혹이다. 그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성추행 고소를 덮었다. 백 장군의 얼룩은 역사적이다. 일제의 간도특설대 복무 이력으로 전쟁 영웅의 고별 행보가 어지러워졌다.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한 정권의 태도가 중요했다.청와대는 두 죽음에 모두 입을 닫았다. 대신 집권여당이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장례에 거당적으로 참여해 박 전 시장의 공(功)을 앞세웠다. 당 홈페이지 전면에 추도 성명을 내걸었고, 거리 곳곳에 '님의 뜻을 기억하겠습니다'는 추모 현수막을 걸었다. 백 장군에겐 침묵으로 과(過)를 부각했다. 신분을 숨긴 당 관계자는 "백 장군이 4성 장군으로서 한국전쟁 때 공을 세운 것은 맞으나 친일 사실도 밝혀진 바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박 전 시장의 개인적 얼룩엔 관대했고, 백 장군의 역사적 얼룩엔 엄정했다. 정권이, 집권여당이 정 반대의 선택을 했다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여당은 박 전 시장의 죽음을 선양함으로써 여성계와 야당의 반발을 불러오는 정치적 분쟁을 일으켰다. 박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 자체는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공인의 선택으로 합당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남겨진 성추행 고소인이 논란의 핵심이다. 피고소인 박 전 시장은 죽음으로 책임을 졌지만, 동시에 젊은 여성 고소인을 그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처지에 남겨 놓았다. 여당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할수록 성추행 고소인을 향한 2차 가해는 독해졌다. 집권여당이 '가해'와 '피해'를 역전시킨 셈이 됐다. 50만명 이상이 서울시장장 반대 청원에 동참한 건 비정상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정권과 집권여당은 백 장군의 죽음엔 침묵함으로써 역사적 화해와 국민적 통합의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 백 장군이 이승에 남긴 백년 행적은 두개의 역사적 공간으로 이어진다. 식민지 공간에서 그는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이 설립한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부터 3년간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일제의 군인으로 독립운동가들과 맞섰다. 식민지 공간에서 그는 민족에 죄를 지었다. 역사는 그랬던 그를 전혀 다른 공간에서 부렸다. 6·25 전쟁 공간에서 그는 낙동강 전선을 지켜냈다. 그 전선이 무너졌으면 지금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일지도 모른다. 이 공간에선 대한민국이 그에게 큰 빚을 졌다.일제의 장교로 독립을 방해한 죄와 대한민국의 장군으로 나라를 구한 공로가 충돌하는 백 장군의 인생 행로는 우리 사회 진영 대립의 역사적 연원을 보여준다. 역사의 표류자 백선엽을 진보는 일제 장교 백선엽으로, 보수는 대한민국 장군 백선엽으로 분절했다. 대한민국 역사의 맥락을 잇는 정권과 집권여당이라면 백 장군의 죽음은 소중한 기회였다. 분절된 그의 삶을 이어줌으로써 단절된 역사에 갇혀 대립하는 진영을 화해시키고 통합시킬 메시지를 발령할 수 있었다. 대통령이, 집권여당이 '식민시절의 죄과는 역사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나, 대한민국을 지켜 낸 공로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전우와 함께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정도의 언급만 했어도, 국민은 다른 차원의 시대를 예감했을 것이다.역사는 백선엽과 박원순의 사망을 통해 정권에 질문을 던졌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은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최종적으로 어떤 답안을 작성할지 국민과 역사가 지켜볼 것이다./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0-07-13 윤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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