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홍창진 칼럼]정직한 사람이 만드는 사회

코로나 신천지사태 위기를 겪으며조사 불응·확진판정자 접촉 숨기기사이비종교 거짓말 행태 슬픈 현실위선 넘치는 우리사회 민낯 보는듯소외된 이웃 진심의 위로 손길 필요코로나19로 지구촌은 엄청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고 바이러스 전염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고 일상적인 생활에도 여러 제약이 따르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이번 사태에서 신천지라는 사이비 집단이 문제의 중심으로 드러났습니다. 조사 과정 중에 이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온 국민이 경악했지요. 이런 시급한 상황에서도 전염 가능성이 있는 명단을 공개하지 않거나 조사에 불응해 국가의 방역 업무를 방해하는 것은 물론, 한 신도는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과 접촉한 사실도 숨긴 채 병원에 출근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이런 일련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종교 행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사이비 종교나 사기 등 '사' 자로 시작하는 현상의 특징은 철저히 속이려는 대상의 입장에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4년째 취업 준비 중인 청년에게 가장 간절한 것은 취직입니다. 그러면 취업을 미끼로 접근합니다. 취직을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다름 아닌 '가난'입니다. 가난은 배움도 부족하게 하고 인맥도 부족하게 합니다.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사람들은 결국 취업 현장에서도 소외되게 마련입니다. 가난이 서러운 사람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가난 때문에 무시당하고 기회에서 밀려난 열패감과 열등의식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것입니다. 사이비 종교는 이런 위로를 잘해줍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위로를 전하기 위해 지도자급이 아닌 같은 처지의 동년배 교도를 접근시킵니다. 따뜻한 심성을 가진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등을 두드리며 처진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순간 이미 한 청년의 영혼은 그들에게 넘어갑니다. 그다음 단계는 공동체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집단 활동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직업을 제공합니다. 다단계식 직장을 통해서 성취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지요. 이들에게 자기들만 구원된다는 선민의식만 심어주면 그때부터는 행복이 충만한 로봇으로 변신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위로받은 고마움에서 시작했지만 지도부와 그의 측근 집단이 설계한 영혼 탈취 프로그램에 의해서 상식을 넘어서는 로봇으로 변신합니다.사이비 교주들은 목적이 뚜렷합니다. 거짓 신을 만들고 거짓말로 사람을 속여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입니다. 사기는 재물만 가로채 가지만 사이비 종교는 재물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영혼까지 가로채 갑니다. 그래서 사기는 당하는 순간 바로 알지만 사이비 종교는 당하고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신천지 같은 사이비 종교는 수없이 많습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고 그 소외된 심정을 정직하게 위로해주는 이웃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날 정치권의 정의사회 구현은 구호에 불과하고 실제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한다는 기성 종교는 먹고 살 만한 사람들끼리만 서로 위로하는 모습입니다. 안타깝지만, 소외된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그들의 골수를 빼먹고 싶은 사이비 교주들뿐입니다. 너무 슬픈 현실입니다. 정직한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밀려나면 사이비와 사기는 이 사회에 만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코로나19와 신천지 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회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우리 사회는 정직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 거짓 사랑과 거짓 위로를 통해 자기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위선자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위선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코로나19 같은 위기가 닥치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런 흉측한 우리 사회 민낯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회를 정상화할 수 있을까? 신천지를 제거하면 가능할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 사회의 소외 계층에게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이비가 거짓 위로로 팽배하지 못하도록,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보통의 정직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소외된 사람들이 사이비들 때문에 두 번 소외당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03-23 홍창진

[이영재 칼럼]그래도 봄은 온다

이번주도 역시… 약국에 마스크는 동났다줄서기 대란은 정부의 무능과 직결된 사례대통령은 '中전달·생산 충분' 허세끝 '송구'하늘 도왔나 진정세… 성숙대응 국민만 빛나역시 허탕이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도 약국을 찾았지만, 마스크는 없었다. 늦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약사는 "지금 이 시각에 와서 무슨 마스크를 찾으슈"라는 표정을 지었다. 약사와 나는 서로 얼굴을 보며 픽 웃고 말았지만, 왠지 뭔가 손해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 약국에도 마스크는 이미 모두 동난 상태였다. 약국 안까지 들어올 필요 없다며 입구에 '공적 마스크 매진'이라고 친절하게 써 붙인, 잔뜩 때가 묻은 A4 용지는 한 귀퉁이가 떨어져 바람에 펄럭였다. 그 몰골이 찢어진 우리의 자존심처럼 보였다.이번 코로나 19사태로 우리 국민의 자존심에 많은 상처가 났다. 그중 정부의 무능과 직결되는 중국인 입국 문제와 마스크 대란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기에 정부 고위관리의 실언이 더해져 국민의 자존심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중국에서 들어온 관광객이 감염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중국을 다녀온 우리 국민이 감염원으로 작동한 경우가 더 많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중국이 우리에게 각별히 감사해야 한다."(추미애 법무부 장관) "스스로 방역 능력이 없는 나라들은 입국 금지라는 투박한 조치를 하고 있다."(강경화 외교부 장관)그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 전화를 걸어 "중국의 아픔은 우리의 아픔"이라고 한 것은 정말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국민은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누구의 대통령인가. 그 후 중국은 마치 폐렴의 진원지가 우리나라인 듯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지난 19일 자국민에게 한국 등 10여 국에 당분간 여행 금지를 권고했다. 사실상 한국으로의 여행을 금지한 것이다. 전 세계 189개국을 무비자로 갈 수 있었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여권은 이제 중국에서조차 천대받는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이때 많은 국민은 '삼전도의 굴욕'을 떠올렸다.마스크 문제도 그렇다. 마스크 두 장을 사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서면서 느껴야 했던 그 참담함을, 줄을 서보지 않은 정부 고위관리들은 잘 모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종료된 후 가장 먼저 할 것은 마스크 대란 국정 조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중에 마스크가 사라졌는데 당시 왜 총리실에서 "정부는 마스크 200만 개를 중국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허세를 부렸는지 반드시 규명해야 할 것이다. 그 후 어떤 보고를 받았기에 문 대통령이 "마스크는 수요를 감당하기 충분한 생산 능력이 있다"고 말했는지, 그 충분한 생산능력이 어떤 마술을 부렸기에 다음 날부터 전국적으로 '줄서기 대란'이 일어났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날 이후 사태가 험악해지자 "수요만큼 충분히 공급할 수 없다면 현실을 알리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라"는 문 대통령의 말이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문 대통령은 "마스크를 신속하고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국민들에게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19사태가 터진 후 대통령의 첫 공식 '사과'가 아닌 첫 공식 '송구'였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늘 그렇지만 우리 국민의 저력은 위기상황에서 빛난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가 자화자찬만 늘어놓고 있을 때, 우리 국민이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은 감동 그 자체였다.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했다. 마스크를 사려고 긴 줄이 생겼지만, 새치기는 없었다. 사재기는 더더욱 찾아볼 수도 없었다. 확진자와 생이별을 하는 기막힌 현실에서도 가족들은 속으로 눈물을 삼킬 뿐, 당국의 대응지침에 잘 따랐다. 이 기간 대구시민들이 보여준 품격과 의료진들의 눈물겨운 희생정신은 '코로나 의병'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이런 국민이 사는 나라다.주말에 조선 시대 역병을 다룬 좀비물 '킹덤 2'를 보았다. 주인공인 의녀 서비가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면 이 모든 악몽이 끝날 것"이란 말이 가슴을 쳤다. 나에겐 이 말이 코로나 19로 무너진 자존심으로 힘들어 하면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로 들렸다. 하늘이 도왔는지 코로나 19도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여전히 어렵지만, 우리는 모두 이겨내고 우리가 있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봄이 오고 있다. 이 악몽도 곧 끝날 것이다./이영재 주필이영재 주필

2020-03-23 이영재

[방민호 칼럼]귀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말기암으로 투병중이셨던 선생님세상살이·가는 곳 조차 '까다로운'언제나 올곧은 마지막 '선비' 모습이권·속임수… 허깨비 같은 세상속진실된 삶이란 무엇인지 되돌아봐지난 일요일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말기암으로 투병하고 계시던 선생님께서 영면에 드셨다는 것이다. 바로 금요일까지만 해도 아주 평온한 모습이셨다. 통증이 얼마나 있으시냐고 여쭈었을 때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고 하셨다. 몹시 위중한 중에도 아직 여명이 남아 계시리라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그러나, 들으니, 그 다음날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셨다고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나와 댁으로 가시려던 계획도 실행치 못한 채 그만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했다.코로나19 때문에 호스피스 병동 출입을 엄격히 금한다고, 간호사가 쫓아와 자꾸 독촉하는 바람에 단 2분여 뵌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허망하고 안타까울 수가 없다.선생님의 말기암 투병기간은 그래도 짧지만은 않으셨던 것 같다. 2018년 8월 말에 당신께 그런 악독한 병종이 자리를 잡은 사실을 뒤늦게 아셨다. 항암투병에서 호스피스 병동에 드시기까지 1년6개월여를 굳세게 삶의 의지를 불태우셨다.낮에 대전에서 소식을 듣고 서울로 올라와 급한 일들을 되는 대로 해치우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저녁 일곱시가 넘어서였다. 차를 바로 앞 주차장에 세우지 못하고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려 하니 체온 재고 출입기록관리하는 사람이 마스크를 가져왔느냐고 묻는다. 몹시 허둥대는 바람에 차 안에 마스크를 버려두고 뛰듯이 서둘렀던 것이다.이날 따라 바람은 왜 이렇게 맵찬지, 서울 상경 길부터 이십 년래 처음 겪어보는 강풍이었다. 두 번 걸음으로 마스크를 가져오는데 거센 바람이 허술한 옷 속으로 사정없이 밀려들었다. 겨우 마스크를 쓰고 체온을 재고 기록을 남기고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신 빈소로 향했다.흰 국화 한 송이를 바치고 절을 드리는데도 슬픔이고 뭐고 느낄 겨를이 없다가 낮에 소식 전해 주신 분을 뵙자 그때야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코로나19든 뭐든 선후배들 오신 분들과 앉아 생전의 선생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문객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을까. 하기는 당장 오늘 낮에 전해진 소식이고 하필이면 코로나19라고 병원, 장례식장은 특히들 꺼리는 시절이다.선생님은 양산 사람으로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 입학과 더불어 상경 이래 서울 사람이 되시다시피 했지만 지금껏 부산 사람의 기질과 정서를 잃어버리지 않으신 분이었다. 사투리도 사투리지만, 세상살이의 태도에 엄격하고 먹는 것, 가는 곳을 고르는데 언제나 '까다로우신' 그 변함없는 태도는 당신이 이 땅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멸종 위기 '선비'족의 일원임을 증명하고도 남았다.이기영이라고, 저 일제 강점기에 이름 높던 카프 작가, 덕수 이씨 이순신 장군의 12대 지손이었던 그를 가계도까지 그려내며 연구하신 '진보파'였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 들어서서는 안 되는 길에는 손도 발도 대지 않는 그 엄격함은 당신을 차라리 '보수' 본당이라 여겨야 맞을 것도 같았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나는 경직된 '만능' 이분법을 지독히도 혐오해 마지 않는다.평소 세상에 대해서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단순하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배경과 맥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밝히고서야 왜 그 일이 그런 뜻을 갖는지 하는 결론을 말씀하실 때쯤이면 듣던 우리 모두 지쳐 나자빠지고야 말, 별명이 '지하철 2호선', 순환선인 분이셨다.그러셨건만 삶의 막바지에 이르셔서는 '시원스럽게' 탁탁 말씀하셔서 맞장구쳐 드리기 좋았다. 코로나19에, 선거에, 정부에, 아무개에, 경제에, 눌러두셨던 판단들을 다 드러내셨지만 이미 너무 오래 담아두기만 한 날카로운 생각들이셨다.한밤에 늦게 장례식장을 나오는데, 삶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생각한다.선거에, 명분에, 이권에, 속임수에, 겉과 속 다른 온갖 일들이 한순간도 지치지 않고 이어지는 이 허깨비 같은 거품 세상.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진실을, 진짜를 귀하게 여겨 볼 수는 없을까./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20-03-16 방민호

[이남식 칼럼]창조의 섭리

감염증 방어 기제 '사이토카인'과잉 분비땐 패혈증 등 치명적숙주 사멸 바이러스 증식 막아어쩌면 팬데믹 예방 안전장치'폭풍 현상' 심도 깊은 연구를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전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비하여 매우 높은 전염성을 가지고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매우 흔한 감기 바이러스로 그동안 생명에는 크게 위협을 미치지 않는 존재였으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이나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과 같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조류나 낙타를 통하여 변이가 일어나 동물에서 인간으로 이종감염되면서 전염성과 치사율이 높아지고 전 세계적인 감염(팬데믹)이 일어나 큰 위협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번의 코로나19도 크게 보면 사스나 메르스와 비슷하게 고열, 기침, 호흡곤란 등의 증상과 심한 경우 폐렴, 호흡부전과 신부전 등이 나타난다. 치사율은 2.3% (중국 질병예방통제본부가 2월 17일에 발표한 4만5천건의 자료분석결과)로 낮으나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감염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사망자의 절대적인 숫자도 증가, 심리적인 위협이 더욱 크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주로 노년층과 기저질환을 가진 경우가 더 위험하여 건강한 사람은 1% 이하의 치사율을 보인 반면, 심혈관 질환을 가진 사람의 사망률은 10.5 %, 당뇨병 환자의 경우 7.3 %, 만성 호흡기 질환, 고혈압 또는 암 환자의 경우 약 6%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사스나 메르스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치료가 어려워지는 '사이토카인 폭풍' 현상이다. 사이토카인은 감염증에 대한 면역계의 방어 기제로, 면역세포가 분비하는 세포신호전달에 관여하는 단백질로 세균이나 병원균이 몸 안에 들어오면 면역세포들이 감염부위로 모여들게 하여 (염증반응) 효과적으로 방어하도록 하는 물질이다. 하지만 사이토카인이 과잉으로 분비될 경우, 고열이 발생하며 통제 불가능한 염증이 일어나, 기도 폐쇄나 다발성 장기부전을 유발하며 패혈증도 일어나게 된다. 특정한 바이러스(스페인 독감, H5N1 조류독감, 에볼라, 돼지독감,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이 사이토카인을 과잉으로 생성시키고, 과량의 사이토카인은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도 치명적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의 치사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이토카인이 과잉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아직 어떤 상황에서 '사이토카인 폭풍'이 촉발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으며 치료법을 위한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코로나19는 스스로는 생존하지 못하며 숙주의 신체 내에서만 RNA가 복제되면서 생존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바이러스의 독성이 너무 강하면 숙주들이 모두 죽으며 바이러스 또한 소멸하게 될 것이다.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숙주의 면역계가 적당히 강하여 자신들에게 지나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반대로 인간의 입장에서는 특히 코로나19처럼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가 몸 안에서 급속하게 증식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를 옮기는 '슈퍼 전파자'가 많아진다면, 인류 전체가 위험에 직면하게 되고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보자면 '사이토카인 폭풍'은 인류를 이러한 팬데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창조의 섭리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본다. 즉 일종의 '자살 폭탄'으로 침입한 바이러스에 견디지 못하고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되면 안전장치로서 '사이토카인 폭풍'이 오히려 숙주를 사멸시킴으로써 더 이상 특정 바이러스가 증식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앞으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사이토카인 폭풍'이 촉발되며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시 한 번 창조주의 섭리를 느끼며 모든 것이 인간의 교만함에서부터 기인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2020-03-09 이남식

[윤상철 칼럼]정보민주주의? 정보포퓰리즘!

조국이어 코로나19 사태 사회 쟁점인터넷이 '해법 공론장' 기대했으나국가·자본의 네트워크 개입 사유화개개인은 의견 취합전에 편식·잡식집단간 대화·토론부정 반민주공간최근 두 가지의 정치사회적 쟁점이 한국사회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하나는 소강상태에 이른 '조국사태'이고 다른 하나는 절정을 향해 치닫는 '우한폐렴 사태'이다. 두 사건 모두 국민의 일상적 삶에 깊숙하게 관여하는 사안인 만큼 국민들은 이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게 드러내려 한다. 이미 국민들은 자신들이 모두 발언할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고 있다. 두 사안의 의미를 진단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나 해법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도 국민들은 극단적으로 상반된 입장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미 국민들은 사안들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서로 확신한다. 또한 으레 그렇듯이 두 사안 모두 정치세력들간의 결사항전의 메뉴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국민들을 대표하는지 아니면 동원하는지 알 수 없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물론 두 사안 다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되고, 외적 상황에 의해 봉합될 수도 있지만, 여진이 가시지 않은 휴화산일 뿐 언젠가 다른 쟁점으로 다시 소환될 것이다. 198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는 거대하고 중층적인 변화를 겪었다. 권위주의체제로부터 민주화된 직후부터 지구화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민주화 자체도 지구화의 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지구화와 함께 대중들의 일상생활을 더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흐름은 정보화였다. 민주화를 성취한 한국인들은 정보화에 대해서도 진보적 낙관론을 가질 수 있었다. 권위주의체제의 폐쇄성, 즉 정보의 비대칭성이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결정적 장애였다고 생각하고, 정보화는 이러한 장애를 넘어서 정보로 무장한 민주적 시민들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배양할 거라고 기대했다. 심지어 자본주의체제의 불평등성도 기본적으로 노동자와 자본가 간 정보격차를 해소하면 완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민주주의와 미디어 간의 관계를 갈파한 미국의 언론학자 로버트 맥체스니는 '디지털 디스커넥트'라는 책에서 미디어는 더 이상 하버마스가 그렸던 '공론장'이 아니라고 말한다. 정부 간섭이나 통제로부터 벗어나 국가의 정책에 대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과 논쟁을 벌이는 공간이기를 멈추고 자본에 의해 사유화되고 소비자의 정보가 상품화되고 광고의 경제학이 지배하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인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보화사회의 꽃인 인터넷 역시 자본의 욕망과 국가권력의 통제가 투사되면서 민주적이고 자율적이고 사회적인 대중소통의 공간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즉, 정보화가 보다 풍요롭고 평등하게 정보를 공유하게 해줄 거라는 기대는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한 국가와 자본에 의해 분절된 사회인 미국에서 정보민주주의의 희망이 사라졌다면, 그나마 상대적으로 강한 사회를 지닌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정보화를 기반으로 네트워크로 연결된 민주주의를 이루었을까?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국가와 자본은 정보화사회의 네트워크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개입한다. 물론 정보화 자체의 왜곡 혹은 결함도 있다. 사이버공간의 압도적 이미지는 사적인 욕망과 기호가 분출하면서 정보의 경중과 정오를 가리기 힘들어진 정보의 쓰레기장이다. 대부분의 개인들은 정보를 취하기 전에 그 막대한 양에 압도당하고 만다. 전문성과 도덕성 등의 기준이 없는 그 공간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기호에 따라 편식하거나 잡식할 뿐이다. SNS 등으로 대표되는 정보화의 또 다른 특징은 이른바 '유유상종' 혹은 '호모필리(homophily)'이다. 카카오톡, 라인 등 다양한 DM(Direct Message)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 팟캐스트나 유튜브 등도 자유로운 공론장이기보다 비슷한 특성과 취향에 따라 모여서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공간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인터넷 공간은 일군의 사람들이 정보의 쓰레기장의 한 귀퉁이를 자신들의 영토로 선언하고 다른 집단간의 대화와 토론을 부정하는 반민주주의적 공간이 되고 있다.정보화가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정보불균형을 해소하여 더 깊은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려면, 이에 덧붙여 집단간 소통과 타협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집단들은 국가와 자본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정보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집단간 격리와 균열을 더욱 확산시켜 '디지털 디스커넥트'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나아가 일부 시민들은 국가와 자본에 의해 분리되거나 동원되고, 나머지 시민들은 또다른 비집권 정치세력에 의해 동원되는 사회는 더 확신에 찬 '정보포퓰리즘'을 낳을 수 있다. 그 포퓰리즘 안에서 민주주의는 질식된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20-03-02 윤상철

[전호근 칼럼]우한(武漢)과 우정

코로나19로 봉쇄 한 달 지난 '우한''지음' 백아·종자기 우정 자리한 곳인류가 만나보지 못했던 바이러스감염 우려로 인한 '혐오'를 멈추고최선 다해 싸우는 이들을 응원해야나는 2009년 여름에 우한(武漢)에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우한은 내게 중국이 혼돈의 국가라는 인상을 남겼다. 고색창연한 고대의 유적과 현대식 마천루가 마주 보고 있었고 화려한 백화점과 이웃한 곳에 오래된 전통시장이 불을 밝히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한마디로 전통과 현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혼재하는 불가사의한 도시라 하겠지만, 또한 내가 아는 우한은 가장 오래된 우정을 간직한 고장이기도 하다. 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이 깃든 고금대(古琴臺)가 자리한 곳이기 때문이다.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은 동아시아에서 벗에 관한 가장 오래된 이야기다. 백아는 거문고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다. 그가 거문고를 타면 말들이 춤을 출 정도로 아름다운 연주였지만 동시대의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아가 산속에서 홀로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데 나무꾼 종자기가 그곳을 지나다가 그의 연주를 듣게 되었다. 그때 마침 백아는 태산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는데 종자기가 듣고는 "훌륭하구나, 거문고 연주여! 태산처럼 높고 높구나!"라고 했다. 잠시 뒤에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연주하자, 종자기가 또 말하길 "참으로 훌륭한 연주다. 넘실대는 것이 흐르는 물 같구나!"라고 했다. 백아는 비로소 자신의 음악을 알아듣는 벗을 만난 것이다.종자기가 죽었을 때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어버렸다. 이후로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는데 이를 백아절현(伯牙絶絃,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버림)이라고 한다. 백아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거문고 연주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여기까지가 《여씨춘추》에 전해져오는 이야기이고 우한의 고금대는 이 두 사람이 우정을 나눈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두 사람이 처음 만날 때 백아가 연주한 두 곡이 고산곡(高山曲)과 유수곡(流水曲)이다. 이후 이 음악은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인들의 우정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고 이로부터 마음에 꼭 맞는 벗을 가리키는 지음지우(知音之友,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알아듣는 친구)라는 말이 나왔다.그런데 종자기가 죽으면서 두 사람의 우정은 끝났다고 여기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로부터 천여 년 뒤 당나라에 유학한 신라의 최치원은 비 내리는 가을밤에 등불을 밝히고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리워했고, 18세기 조선의 박지원과 이덕무는 만약 벗이 있다면 높은 산(高山)과 흐르는 물(流水)에 자신의 마음을 담겠노라 노래했으며, 김정희와 전기는 그림 속에 두 사람의 우정을 그려 넣었다. 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은 한 시대나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2천년도 더 된 긴 시간을 넘어 이웃나라까지 전해진 것이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이 깃든 유서 깊은 도시 우한이 중국 당국에 의해 봉쇄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우한을 오가던 항공편이 끊어지고, 기차 또한 우한의 주요 역을 무정차 통과하고 있으며 우한 주변에는 검문소가 들어서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넘어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죽는 일까지 일어나면서 우한 시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더욱이 감염을 우려하는 외부의 사람들에게 우한은 마치 바이러스의 온상처럼 여겨져 우한 사람을 혐오하는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감염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로부터 감염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일은 나와 그가 같은 존재라는 생물학적 자기고백이다. 그렇다면 감염된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은 자기혐오와 다른 것이 아니다. 우한 밖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우한 시민들이 두려워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감염의 가능성은 혐오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함께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뿐이다. 우한이 안전해져야 우리가 사는 곳 또한 안전해지기 때문이다.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류가 이제껏 만난 적이 없는 새로운 감기바이러스로 이에 대한 대처는 전 인류의 문제다. 생물 분류상 단일종인 인류의 특성상 한 사람에게 위험한 것은 곧 인류 전체에게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선을 다해 굳게 싸우고 있는 이들을 우정으로 응원하는 일이다. 너를 살려야 나도 사는 것이니 얼마나 절박한 우정인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2-24 전호근

[이영재 칼럼]지도자의 리더십은 위기에서 빛난다

'9.11 테러' 수습한 줄리아니 前 뉴욕시장항암제 먹어가며 안간힘… 전 세계 '감동'첫 단추 잘못 끼운 코로나 사태 악화일로정치 논리 싹 빼고 국민 생명부터 살려야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107대 뉴욕시장을 지낸 루돌프 줄리아니에게 2001년은 시장 임기 마지막 해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대충 시간을 보내도 그를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재임 중 뉴욕의 범죄조직을 소탕해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범죄율을 가장 많이 감소시킨 시장으로 이미 등재된 그였다. 한밤중 뉴욕 지하철을 자유롭게 탈 수 있게 된 것도, 한때 우범지역이었던 타임스퀘어가 전 세계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것도 그의 덕분이었다. 그것만으로 그의 업적은 충분했다.9월 11일 아침. 뉴욕의 쌍둥이빌딩이 뉴욕시민들의 눈앞에서 무너졌다. 뉴욕 시민들이 공포에 휩싸인 순간, 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온통 먼지를 뒤집어쓴 줄리아니 시장이었다. 그는 제일 먼저 뉴욕지역 방송사를 통해 사고 상황을 시민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했다. 우왕좌왕하는 시민들에게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덧붙였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시간별로 기자회견을 계속하면서 공포에 휩싸인 시민들이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그렇게 시민 곁에 있었다. 뉴욕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줄리아니가 지금 암 투병 중이었고, 항암제까지 먹어가며 아픈 몸을 이끌고 사태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임기 마지막 해, 온 힘을 다해 사태수습을 하려는 그의 모습은 뉴욕을 넘어, 미국 아니 전 세계에 감동을 줬다.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사태를 수습하는 줄리아니를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위기 상황에서 솔선해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지도자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코로나 19가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발생 한 달 만에 사망자와 확진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대구 경북지역을 넘어서 이젠 전국적으로 확산해 "머지않아 종식될 것. 일상으로 돌아가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무색하게 했다. 희망사항인 '종식'이 '증식'이 돼버린 꼴이 된 것이다. "중국은 이웃"이라는 등 감상적인 대응이 화를 불렀다. 그래서 우리는 궁금하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어려움은 우리의 어려움"이란 시진핑의 전화를 받았는가.시작부터 잘못됐다. 마스크 300만장을 중국에 보낸다고 할 때 너무 나간다 싶었다. 집에 마스크 한 장 준비하지 못하고 있던 우리 국민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마침내 마스크 대란이 터지면서 정부가 우왕좌왕할 때, 뭔가 잘못돼 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때라도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걸 알았으면 얼른 중단하고 다시 꿰어야 한다. 그걸 모르고 끝까지 가면 마지막 단추는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법이다. 단추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사람이 잘못이다. 지금이 꼭 그런 꼴이다. 국민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또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기생충' 제작진을 청와대에 불러 짜파구리를 먹으며 파안대소하는 대통령 부부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 그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청와대가 무슨 생각으로 그 사진을 공개했는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불행히도 사진이 공개된 그 날부터, 코로나 19는 불꽃처럼 타올랐다. 사진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국민의 마음을 깊게 베었다. 5년 전 메르스 사태를 경험했던 우리였기에 아픔은 더 크다. 화도 난다. 국가적 재난도 지나고 나면 쉽게 잊는 한국인 집단 망각의 악습이 재현된 것 같아서 더 그렇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이제는 지금의 아픔을 또 잊어서는 안 된다.줄리아니는 대통령도 아닌 그저 시장에 불과했다. 사태를 수습하면서 공화당, 민주당 편을 가르지도 않았다. 모든 사람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 지금 우리에겐 그런 지도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 지도자가 꼭 대통령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질병관리본부장이 될 수도 있고, 자치 단체장이 될 수도 있고, 이름없는 어느 의사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정치적인 논리는 싹 빼야 한다. 제 잘났다고 떠드는 정치인들은 이제 모두 입을 다물길 바란다. 국민의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다.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공포도 극에 달하고 있다. 지금은 국민 생명을 살리는 게 먼저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절체절명 위기 상황에서 빛난다./이영재 주필이영재 주필

2020-02-24 이영재

[이명호 칼럼]전염병으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민낯

코로나19로 전세계가 감염공포안전에 대비하는 것은 좋지만통제·봉쇄·인종차별 과도한 조치 언론보도도 두려움만 키워 역효과과학적 상식 기반한 현명 대처를코로나19로 우리 사회, 우리 인류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여전히 인류는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전염병은 국가의 쇠락을 가져온 역사적인 사례가 많다. 기원전 431~404년 아테네를 강타한 전염병은 아테네 인구의 25%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아테네의 지도자도 전염병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아테네는 전쟁에서 패하고 쇠퇴의 길을 걸었다. 로마 제국도 서기 165년 외국에서 돌아온 군인들에 의해 확산된 전염병으로 6천만~7천만 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전염병의 위기를 겪은 로마는 하수 시스템과 목욕탕 같은 위생시설뿐만 아니라 병원과 같은 의료시설을 만들어내면서 도시 위생시설의 건설자로 역사에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이는 로마가 번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종류의 전염병은 계속해서 인류의 존망까지 위협했다. 천연두는 남아메리카 원주민 인구의 90%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잉카와 아즈텍 제국의 멸망을 가져왔다. 흑사병은 역사적으로 세 번의 판데믹(대유행 전염병)이 있었고, 유럽 인구의 4분의 1이 흑사병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19세기 인도에서 시작된 콜레라는 인도와 아시아 대륙에서 1천500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1940년대 들어서야 페니실린이 발명되면서 인류는 박테리아에 의한 감염성 질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18년에는 세계적으로 대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 2천만명이 사망하였지만, 지금은 타미플루 치료제가 개발되어 바이러스성 독감은 완치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되었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종류도 많고 쉽게 변형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사스나 메르스 치료제를 개발하여도 다음에는 전혀 다른 바이러스(이번에는 코로나19)가 창궐하는 것이다. 에볼라, 사스,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의 특징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바이러스가 아니고 야생동물에서 유래했다는 특징이 있다. 야생 서식지 파괴로 인한 야생동물과 인간과의 접촉, 식재료 이용 등이 질병을 불러왔다. 인간이 숲을 파괴하면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줄어들고, 아프리카 원주민 또한 더 깊은 숲 속으로 이주하면서 야생동물(박쥐)을 잡아먹게 된 것이 에볼라의 기원이다. 인간이 박쥐의 서식지를 위협하면서 박쥐의 몸에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을 위협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 인류를 위해서도 생태계와 야생의 서식지 파괴는 멈춰야 한다. 한편 바이러스가 위험한 질병이지만, 인간이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중국인 출입금지' 같은 안내문이 등장했고,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동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와 인종차별 현상까지 나타났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가짜뉴스와 이에 따른 혐오와 차별은 오히려 질병의 통제를 어렵게 한다. 우한에서 귀국하는 교민들의 수용을 반대하는 집회가 있었지만, 지역 주민들이 마음을 바뀌어 교민을 수용하고 어려움을 같이 나눈 것은 질병 통제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일본의 크루즈선 입국 봉쇄조치는 탑승자 3천700명 중 10%가 감염되는 최악의 결과로 치닫고 있다. 이는 과도한 공포에 빠져 적절한 통제를 포기하고 인류애를 저버린 실패한 정책으로 남게 될 것이다. 안전에 대비하는 것은 좋지만 과도한 대응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감염자가 머무른 공간에 대한 봉쇄 조치와 기피는 과학적인 상식을 넘어 공포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는 밖에 나오는 순간 5초 이내에 바닥에 가라앉고 소독을 통해 하루 안에 소멸한다고 한다. 우려를 넘어 미신과 공포는 우리 사회의 기반이 되어온 과학적 상식을 무너뜨릴 수 있다. 후베이성 이외 중국의 코로나19 감염증 치사율은 0.16%로 독감 수준이고, 통상적 접촉으로 인한 감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국내에서는 아직 한 명도 사망하지 않았는데, 언론의 보도는 천연두나 흑사병이 돌고 있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이미 경제 침체와 서민 경제의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다. 상식에 반하는 공포와 과학적 통제 사이에서 우리의 현명한 행동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20-02-17 이명호

[홍창진 칼럼]좋은 친구

나이 들수록 '내 주변 관계 유지얼마나 잘하나'가 행복지수 가늠깊은 고독·우울증에 시달린다면친구관계 돌아보라고 말해줘주저말고 서로 사랑나누길 바라얼마 전에 회갑을 맞았습니다. 요즘에는 회갑이라고 해도 친지나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이지 않고 부부 동반, 혹은 친구끼리 여행을 간다고 합니다. 자녀들은 여행 경비를 드리는 것으로 회갑 선물을 대신합니다. 간혹 누가 회갑연을 한다고 하면 웬 구시대 유물이냐며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과 지인을 모두 불러다 잔치를 벌였습니다. 보통 사람도 아니고, 가난을 몸소 실천해야 하는 성직자가 무슨 호사를 누리겠다고 회갑잔치를 벌이느냐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초대장까지 만들어 보냈습니다. 다만 초대장엔 '선물은 사절, 회비만 받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었습니다. 한마디로 회갑연이라고 해도 각자 회비 내고 밥 먹자는 얘기였죠. 회갑 잔치를 하지 않는 이유가 수명이 늘어서라고 합니다. 회갑을 맞는 게 전만큼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장수를 축하하려면 칠순, 아니 팔순은 돼야 한다고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부터 내려오는 이런 잔치들이 꼭 장수만을 축하하는 의미일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갑, 칠순, 팔순은 물론이고 모든 생일은 반드시 많은 사람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일은 나와 사랑을 나눈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옛날에는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큰 의미가 되었지만, 100세 시대를 맞은 요즘의 생일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유대의 끈을 돈독히 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생일마저 혼자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SNS만 봐도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생일을 보낸다는 사연이 종종 눈에 띕니다. 사람들과 만나는 걸 번거로워하는 이도 있고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도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요? 혹시 나를 사랑해주는,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진정한 친구가 없는 건 아닐까요? 중국 사람들은 친구를 세 등급으로 나눈다고 합니다. 그저 아는 사이를 '친구', 관계를 맺은 지 3년 이상 되었고 서로 해를 끼칠 일이 없는 가까운 이를 '좋은 친구', 나를 대신해 감옥살이까지 해줄 사람을 '오랜 친구'라 부른다고 합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이름들을 살펴보면, 우리도 이 기준으로 친구를 구별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생일에 혼자 보내지 마십시오. '좋은 친구'는 꼭, '오랜 친구'는 반드시 초대해서 잔치를 벌이시기 바랍니다. 바빠서, 혹은 부담을 주기 싫어서 생일 초대를 하지 않는 건 친구를 밀어내고 자신의 욕망을 선택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일 년 중 생일잔치에 몇 번이나 초대되고 있습니까? 설혹 초대받았더라도, 내 생일에 그를 초대한 적이 없다면 그 자리가 겸연쩍고 민망할 겁니다. 그러면 자연히 초대 자리를 피하게 되고, 친구 사이가 소원해집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좋은 친구'가 그냥 '친구'로 바뀌고, '친구'는 '남'이 될지도 모릅니다.나이가 들수록 행복지수를 가늠 짓는 결정적인 요인은 '나를 둘러싼 관계의 넓이와 깊이를 얼마나 잘 유지하고 키우느냐'입니다. 젊은 시절은 그저 자기 잘난 맛으로 행복지수를 올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인생은 고독해집니다. 이 고독이 깊어지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면과 우울을 호소하며 저를 찾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친구 관계를 돌아보라고 말해줍니다. 친구들에게 소외된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관계도 좋지 않습니다. 가족 관계는 사실 한 번 틀어지면 회복이 어렵습니다.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친구 관계는 회복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친구 관계를 먼저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제 회갑 잔치의 제목은 '세 번째 스무 살 잔치'였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장수를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 사랑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이 친구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면서 늙어간다고 생각하니 나이 먹는 일이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되레 살아온 시간이 내게 이 사람들을 선물해주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생일잔치를 벌이고 사랑의 기쁨을 누리길 바랍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02-10 홍창진

[방민호 칼럼]인구 문제와 물질주의

국가가 신생아 미래 책임 못지고경제는 산모 배려 못해 출산 회피젊은세대들 부모세대 가치관 수용'비혼·독거주의' 실행으로 옮겨삶의 본질에 대한 이해폭 넓혀야중국 우한에서 발원했다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섭기는 무섭다. 하지만 한국의 놀라운 자살률, 인구 감소세에 비추어 보면 그렇게 무서운 것만은 아니다. 프레시안에 실린 한 칼럼은 한국의 출산이 매년 1만 내지 5만씩 감소해 가고 있다고 했다. 이 글을 쓰신 이상이라는 분은 인구 통계를 상세하게 인용했다. 보통 합계 출산율이 2.1은 되어야 인구의 현상 유지가 가능하고, 1.7 이하가 되면 저출산, 1.3 이하가 되면 초저출산이라고 한다. 한국은 이미 1985년부터 저출산 상태였고, 2002년부터는 초저출산 상태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국제통화기금 총재를 지낸 사람이 이 인구 감소 추세를 들어 한국을 '집단자살 사회'라고 했다고도 한다. 어째서 이런 '비극적 현상'이 연출되기에 이른 것일까? 요즘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 등장하는 대통령 시대에 지도자들은 근대화만이 살길이라고들 외쳤다. 그 근대화는 '수출 백억 불 달성' 같이 물량적인 수치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이었다. 급증하는 인구는 이러한 경제적 성장을 위협하는 요소로 간주되었다.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1970년대의 표어는 근대화와 인구 사이의 부조화 또는 반비례 관계를 압축적으로 가르쳐 주는 표어였다. 물질주의적 근대화 전략은 생명의 탄생을 가난을 불러들이는 '저주'처럼 인식하여 출산을 강력하게 억제하려 했다. 이 물질주의적 근대화 전략은 1970년대 내내 가혹한 노동조건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노동을 행하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생명들인데 이 생명이 근대화라는 예정 지향적인 전략에 의해 억압, 훼손되는 일들이 만연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물질주의에 대한 저항을 이념적으로 '완성한' 1980년대의 마르크시즘 운동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물질주의였다. 물량적 팽창을 추구하는 물질주의적 근대화주의에 계급적 갈등을 중심으로 한 물질주의적 치유 전략이 팽팽하게 맞선 것이 바로 1980년대의 한국 사회였던 것이다. 필자는 바로 이것이 1980년대의 사회 변혁 운동의 약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주역들은 정치 체제를 대통령 직선제로 바꾸기는 했지만 경제 체제를, 그것을 운용하는 근대화주의적 전략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고, 그 체제 안에 '포섭'되어 적응하고 살아남기에 급급했다. 그들은 그들이 저항했던 물질적 근대화주의의 인구 표어를 극단적으로 진화시켜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들 했다. 국가가 권장하기 전에 먼저 386세대 스스로가 알아서들 하나만 낳고자 작정했고, 더 '진보적인' 사람들은 출산이나 결혼 자체를 거부했다. 국가가 신생아들의 미래를 책임지지 못하고 경제체제가 산모들을 배려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출산이 가능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제 2010년대의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의 가치관을 급격히 '수용'하여 '비혼주의'와 '독거주의'를 실행에 옮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고통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새로운 자아주의를 실천하는 젊은 세대들의 다음 세대는 어떤 또 다른 실천을 감행할 것인가.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복지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은 부당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그것은 물질주의에 대해 물질적 보상으로 문제를 풀자는 해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삶의 본질과 본령에 대한 이해가 사회적으로 신장되어야 한다. 삶이 생명이요, '자아'의 쾌락과 행복만으로는 이 생명을 지속시켜 갈 수 없음을 사회적으로 깨달아야 한다. 다시 말해 이 삶의 연속이 만들어가는 문화와 전통과 역사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경제적 보상을 위주로 한 복지 정책만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 개체들은 자신들이 포함된 '공동체'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개체들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이들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생명은 자손을 낳아 번성함으로써 지속되는 것이다. 올해는 경자년, 쥐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올해는 사람들의 삶이 어느 때보다 넓게 펴지고 두터워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20-02-03 방민호

[이영재 칼럼]벼랑 끝에 선 민주주의

설 밥상에 올라온 '조국사태'·'윤석열의 검찰'생각 다르면 언쟁 '두개의 국민'으로 갈려분열된 사회보다 더 무서운건 무너진 법치靑, 하명수사 거부 등 민주주의 근간 부정법치가 훼손되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꺼내 보는 책이 있다. 벌써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렛 교수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다. 지난해 조국 사태 때 많은 언론인과 학자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할 때마다 인용됐던 그 책이다. 2018년 12월 국내 초판이 나올 때만 해도 이렇게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몰랐다. 이들은 '포퓰리즘과 손을 잡는 정치인과 정당' '경쟁자를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는 정치인'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 '의회를 패싱하고 행정명령을 남발하는 대통령' '국가기관을 여당인사로 채우고 비판적 언론을 명예훼손 소송으로 입을 막는 권력' 등을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는 구체적 신호로 제시한다. 명쾌하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놀랍다. 민주주의 위기가 세계적인 현상이라지만 우리 상황과 너무도 닮아서다.연휴 기간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특히 이런 대목이 눈에 띈다. '독재정권은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 독재자는 헌법과 선거 시스템, 그리고 다양한 제도를 바꿈으로써 저항세력을 약화하고, 경쟁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운동장을 기울인다.' 4+1 협의체를 앞세워 공수처법과 선거법을 통과시키고, 무소처럼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현 정권의 모습이 겹쳐진다. 하지만 이들은 처방도 제시한다.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막기 위해선 확고한 3권분립, 여기에 언론의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두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된 후, 전통의 미국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절박감에서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과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구분해 "토마토를 던지는 사람을 보거든 두들겨 패라. 소송비용은 내가 책임지겠다"면서 노골적으로 폭력을 선동했다. 입으로는 '국민'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만 쳐다보았다.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은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쓰레기통"이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그가 그럴수록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열광했고, 이제 그들을 등에 업고 트럼프는 재선을 노리고 있다. 설 연휴가 끝났다. 이번 설 밥상에 올라온 주제는 예상대로 '조국 사태'와 '윤석열의 검찰'이었지만, 더 우울한 징후는 서로 정치적 견해가 다른 두 부류로 확연하게 나뉘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조국사태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추석 때보다 더 심해졌다. 지난해 광화문과 서초동의 광장 정치를 보면서 이 역시 민주주의이고,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족, 친지, 친구 간 서로 생각이 다르면 아예 입을 꽉 다물었고, 대화가 이뤄져도 두 마디 이상 말하면 언쟁이 커지며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생겼다. 이미 우리 사회는 '두 개의 국민'으로 나뉜 것이다.'두 개의 국민'이란 말을 처음 쓴 건 19세기 영국 총리 벤저민 디즈레일리였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심각한 빈부 격차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계층 간 갈등도 심했다. 이를 보고 개탄한 디즈데일리는 "영국은 '두 개의 국민'(two nations)으로 분열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통합 정책의 하나로 집권 6년 동안 공중위생과 노동조건을 개선하였고 국민교육법을 제정하였으며 선거권을 확대했다. 만일 디즈데일리가 자신을 지지한 한 쪽 국민만 바라보고 개혁정책을 펼쳤다면 '해가 지지 않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의 이름 앞에 '명재상'이란 칭호를 붙여주는 건 분열된 국민을 하나로 만든 그의 타고난 지도력 때문이다.하지만 '두 개의 국민'으로 분열된 우리 사회보다 더 무서운 건, 무너진 법치다. 청와대 하명수사,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청와대가 거부했던 게 그 대표적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를 청와대가 대놓고 부정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벼랑 끝에 서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광이다.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 스스로 '활자 중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고백할 정도다. 휴가 때는 매일 한 권씩 읽는다고 한다. 문 대통령에게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일독을 권한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20-01-27 이영재

[이남식 칼럼]인공육의 시대

現 축산규모로 늘어나는 육류수요대안없이는 문제해결 쉽지않을 듯국내 바이오시밀러산업 성장한만큼반도체처럼 초기에 거대자본 투입새로운 기회 미래 먹거리 선점 필요매년 새로운 기술이 발표되면서 세계의 주목을 끄는 소비자가전전시회(Consumer Electronic Show·CES)에서 인공지능 못지않게 화두가 된 것이 바로 인공육(artificial meat)이다. 식물성 단백질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지만 진짜 햄버거와 맛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임파서블버거 2.0'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음식문화를 열게 하고 있다. 인류가 수렵과 채집의 생활에서 농경과 목축으로 발전하면서 기아로부터 해방되고 안정적인 생활을 통하여 인구의 증가가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목축과 양식을 통하여 동물성 단백질을 대량으로 공급하므로 전 인류의 영양 상태는 급격하게 개선되었고 수명도 늘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전 지구의 인구가 76억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2050년에는 100억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여 동물성 단백질의 늘어나는 수요를 현재와 같은 방법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목축의 심각한 문제는 매년 560억 마리의 가축과 가금류가 도살되며 지구상에서 소비되는 물의 70%, 사용되는 토지의 40%, 그리고 온실가스의 15%가 목축과 양계에서 발생된다는 점이다. 또한 반추동물의 경우 메탄가스를 많이 배출하는데, 이는 이산화탄소보다 20배나 더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동물을 사육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에 비하여 고기를 얻게 되는 효율도 매우 낮아서 10㎏의 사료를 먹이며 500g정도의 고기를 얻을 수 있다.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더불어 단백질 공급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인공육은 크게 동물의 세포조직을 실험실에서 배양해서 만드는 배양육과 식물성 단백질을 기반으로 고기와 유사하게 만드는 유사육이 있다. 2013년에 최초로 실험실에서 세포 배양된 고기로 만든 배양육 패티는 무려 3만2천500달러의 비용이 들었으나 현재는 100g당 8달러 수준으로 낮아졌으며 조만간 1㎏에 10달러 정도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채식을 선호하는 트렌드에 따라 식물성 단백질을 기반으로 한 유사육의 발전도 놀랍다. 초기의 콩 단백질을 기반으로 한 유사육은 맛이 진짜 고기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뇌과학자들이 연구에 참여하여 과연 인간이 고기 맛을 인지하는데 기여하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방대한 연구를 통하여 맛, 씹는 질감, 냄새 등의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고기로 인지하게 만드는 중요한 단서가 바로 '피맛' 즉 육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파서블버거의 경우 'Heme'(헤모글로빈에서 온 듯)이라는 인공육즙을 첨가하여 진짜 고기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 햄버거 패티를 개발하였다. 굽기 전에는 선홍색이던 고기 색깔이 구운 후에는 브라운컬러로 변하는 것까지 똑같은 인조육을 내어 놓게 되었으며 많은 햄버거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메뉴 중에 인공육 햄버거를 출시하게 되었다. 결국 현재의 축산 규모로는 증가하는 육류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엄청난 가격의 상승이 예상되므로 인공육과 같은 대안이 없이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가축보다 훨씬 에너지 전환 효율이 좋은 곤충을 키워서 식용 단백질을 공급하는 방안도 연구되고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 뇌과학의 연구결과를 적용한다면 매우 효과적으로 인공육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간 우리의 축산업은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으나,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되었다 할 수 있다. 이미 국내에는 대량으로 세포를 배양하여 복제약을 생산하는 바이오시밀러 산업이 자리 잡고 있다. 반도체 산업처럼 초기에 거대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므로 시장을 선점하고 진입장벽을 높이는 것이 가능한 분야가 아닌가 한다. 인공지능의 열풍 속에 인공육의 새로운 기회를 미래의 먹거리로 점검해야 할 때다./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2020-01-27 이남식

[윤상철 칼럼]청년, 여성, 그리고 광장민주주의?

젊은 학자들 비정규직 미래 불투명남성중심 기득권체제서 女 더 열악직접민주주의 목청 포퓰리즘 양상과도할땐 특수이익만 배타적 반영공화주의, 민주주의적 독재 처방전지난주에 한 학회의 워크숍에 참석했다. 토론의 주제는 '갈라진 진보, 세대와 광장의 정치'였다. '진보'라는 말이나 좌파·우파의 구분은 정치세력들의 자의적 개념 사용으로 인해 그 '정명(正名)'이 어렵기는 하다. 그럼에도 참석자들의 논의를 대략 정리하면, 현집권세력은 한국의 정치 지형상 좌파로 규정할 수 있고, 집권 전까지 단일한 대오로 뭉쳐 있던 좌파세력이 집권 후반기로 가면서 이른바 '조국사태'를 계기로 내부적으로 분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이들에 친화적이었던 청년, 여성 세력들이 점차 이탈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문제 제기는 자유민주주의의 통치형태인 의회민주주의가 그 정치적 효용성과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광장민주주의 등의 직접민주주의를 대체재 혹은 보완재로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이른바 '86세대' 남성엘리트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의회와 정당체제가 여성이나 청년들의 이해관계를 전혀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학계가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쏟아졌다.청년과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학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교수 및 연구자의 길을 가고 있는 젊은 학자들은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르는 대학구조개혁의 찬바람을 맞으면서 비정규직 강사와 연구원으로서 열악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 미래도 대단히 불투명하다. 그 이유는 국가발전의 토대인 지식생산자들을 국가와 사회가 여전히 유한계급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취업절벽 앞에서 헬조선을 부르짖기는 여느 청년들과 마찬가지이다. 여성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예비연구자들의 성비나 여성들의 연구역량 등이 과거와 다르게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의 기득권적 대학교원체제는 요지부동이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여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결혼, 출산, 육아 등의 압력을 더 받고 있으며 남녀의 상대적 차이를 논할 바가 아니다. 그로 인해 이들은 이제까지 결과적 평등과 소수자 및 약자의 배려를 주장해왔던 좌파들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면서 그들과 연합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한국 좌파에 실망하고 전지구적 좌파의 무관심과 무능력에 좌절하면서 현재의 정치적 거버넌스를 부정하고 새로운 급진민주주의적 개혁의 수레에 올라타고자 한다.정치적 대표성을 상실했다고 생각하는 세력들은 의회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지만, 우회적인 수단으로 의회에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이른바 '광장민주주의'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양상들이다. 서초동과 광화문, 그리고 혜화동은 소용돌이치는 대중들의 반란이다. 이 광장에서 청년과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이익들이 정치적으로 이슈화되고 동원된다. 일부 이슈들은 정치세력들을 통해 의회민주주의의 방향을 이끌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정치적 과실은 이들에 편승하거나 이들을 동원하는 정치 세력의 차지일 뿐이다. 더 안타까운 일은 대통령권력의 위임민주주의나 야당세력의 권력정치의 포퓰리즘적 선동에 동원되는 양상이다. 또한 광장민주주의가 갖는 감성적 소용돌이는 대중독재와 광장파시즘을 우려하게 하면서 체제의 불안정성을 키우기도 한다. 그들이 스스로를 동원하면서 내심 요구하고 있는 이익들은 일시적으로 표면적으로 정치적 담론에 반영되는 듯하다가 정치적 담합에 의해 어느덧 사라진다. 광장민주주의는 광장에서 먼지처럼 사라지고 잊혀간다.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과도하게 주장되면, 그 결과 힘을 지닌 집단의 특수한 이익이 선택적으로 수용되면, 다양한 집단의 이익갈등을 조정하여 최선의 일반의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민주주의를 배반하게 된다. 이에 일반적 정의와 모두의 이익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체로 나서는 공화주의가 거론된다. 공화주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특수한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반영하는 민주주의적 독재로 변모하지 않도록 하는 처방전일 수 있다. 동양이나 한국의 공화주의는 그 서구적 경험이 없고 진영논리가 팽배한 상황에서 이른바 협치 거버넌스를 통하여 모두의 이익이 대표되면서 상호조정되는 그러한 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과도한 광장민주주의는 공화주의가 부재한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파탄케 할지도 모른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20-01-20 윤상철

[전호근 칼럼]탕임금의 목욕통

통에 '날마다 자신 새롭게한다'는 뜻'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글귀새겨세상이 변함없이 진부하게 느껴질때자신이 낡은건 아닌지 되돌아보고주관 새롭게하면 객관세계 새로워져동아시아 역사상 최초로 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바꾼 인물은 탕(湯)임금이다. 3600년 전 그는 폭군이었던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桀)을 쳐부수고 상나라를 세워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을까? 그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리를 규합하거나 군대를 양성하여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아니라 놀랍게도 날마다 목욕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일이었다. 그의 목욕통에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유명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를 탕지반명(湯之盤銘, 탕임금의 목욕통에 새겨진 글이라는 뜻)이라 하는데 그 내용이 유학의 고전 '대학'에 전해온다. 완전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평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짧은 문장이지만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고대의 한문은 글자 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뜻을 전달하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조사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주어나 목적어까지 생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문장도 그렇다. '구일신(苟日新)'은 '만약 날마다 새로워진다면'이라고 옮길 수 있는데, 원문 어디에도 주어나 목적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읽으면 누가 무엇을 새롭게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무의미한 동어반복이 되기 십상이다.번역하는 이들은 이런 경우를 만나면 앞뒤의 맥락을 더듬어 주어와 목적어를 찾아 넣어서 문장을 완성한다. '대학'의 앞뒤 문장을 참고하면 이 문장의 주어는 '나'이고 목적어는 '나 자신', 정확하게는 내 안에 있는 '덕(德)'이다. 그러니까 '구일신(苟日新)'은 '만약 내가 나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으로 옮길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하고 나면 이어지는 '일일신(日日新)'의 뜻은 저절로 분명해진다. '일일(日日)'은 하루하루, 그러니까 매일이라는 뜻이다. 결국 이 두 구는 내가 나 자신을 새롭게 하면 나에게 다가오는 나날, 곧 객관 세계가 새로워진다는 뜻이다. 마지막 구 우일신(又日新) 또한 같은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나에게 다가오는 객관 세계가 새로워지는 '일일신(日日新)'이 조건이 되면 새로움을 맞이하는 주체인 나 또한 새로워지는 것이다.탕임금은 왜 이 글을 목욕통에 새겼을까? 목욕은 자신을 새롭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고대인들은 목욕통을 '감(鑑, 거울)'이라 했는데 그 까닭은 목욕통에 물을 가득 채워놓고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는 거울로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탕임금은 목욕할 때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깨끗하게 닦았는지 살펴보기 위해 이 글을 자신의 목욕통에 새겼던 것이다. 날마다 몸을 깨끗하게 닦으면서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하고자 하는 뜻을 새겼으니, 목욕통에 새기기에 이보다 맞춤한 글귀가 있으랴.내가 새롭지 않은 채로 하루를 맞이한다면 내가 맞이하는 세상 역시 새로울 것이 없다. 나날이 새롭지 않다면 내가 맞이하는 나날이 구태의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탕임금의 목욕통에 새겨진 글은 바로 세상이 새롭지 않고 진부하다고 느낄 때, 혹시 정말 진부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 아닌지 돌아보도록 일러준다. 살아가면서 날마다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새롭게 하면 '나날이 새로워진다(日日新)'는 것이 어쩌면 '나날이 좋은 날(日日是好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나 자신, 나의 주관을 새롭게 하면 나에게 다가오는 객관 세계가 새로워지고, 객관 세계가 새로워지니까 내가 또 새로워지는 것이다.이제 문장을 완성해보자."만약 날마다 나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내가 맞이하는 나날이 새로워질 것이고, 나날이 새로워지면 나 자신이 또 새로워질 것이다."세상이 참 지루하고 진부하다고 느껴질 때면 탕임금처럼 자신을 돌아보며 물음을 던져보자. 정말 세상이 진부한 건지, 아니면 내가 진부한 건지. 뻔한 좌우명이라고? 천만에, 혁명을 이룬 이가 날마다 새겼던 글귀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1-13 전호근

[이명호 칼럼]10년 후 평화의 꿈을 꾼다

나의 소박한 꿈은 부모님 고향인황해도 배천서 어머니와 거니는 것제재상황이라도 지금 '왕래' 원해개성공단이든 금강산 관광이든우선 허용하면서 남북문제 풀어야십(10)이라는 숫자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다. 십이라는 수는 완성, 충만의 숫자로 인식되어왔다. 손가락으로 개수를 셀 때 열 개가 되면 꽉 차고 만족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도 십이 가진 '이상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힘은 우리의 심리적 힘이다. 그래서 동서양 모두 십계명, 십장생 등 십이라는 숫자를 빌려 사람들의 심리에 영향력을 미쳐왔다고 볼 수 있다. 십은 완성이기 때문에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큰 계획을 세울 때 10년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2020년 올해는 십 단위의 해인데 희망과 시작의 힘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불완전 수라는 의미가 있는 9의 기운이 아직도 우리의 심리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한 해는 정말 혼란의 시대였지만, 한시대의 마감이었다고 역사가들은 평가할 것이다. 난장판 국회였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새로운 선거법이 만들어졌다. 조국 법무부장관 사태는 우리 사회의 이면을 다 드러내 보이며 치열한 갈등을 유발시켰지만, 사람들의 윤리적 기준을 높였고, 결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이 통과되어 검찰의 기소독점권이 폐지되었다. 4월에 새로운 선거법하에서 새로운 국회가 구성되고, 7월에 공수처가 설치되면, 작년 한 해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고통의 시기였다는 희망을 갖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 희망은 다양성, 견제와 균형이 우리 사회에 더 공고히 정착되어 공정성과 공평함을 더 느끼며 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한 희망이다. 국내 정치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일정표가 제시되었는데, 아직도 희망의 일정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남북관계이다. 앞을 알 수 없는 남북관계가 2020년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를 여전히 불안하게 한다. 2018년 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2019년 북미회담까지 이어지게 하였지만, 지금은 서로에 대한 호감을 거둬들이고, 섭섭했던 마음들을 드러내놓고 있다. 아직까지 다시 잘해보자는 속내는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섭섭함이 쌓이면 증오로 변한다는 인생사를 남북과 북미 간에 보게 될까 걱정된다. 잠시의 기대와 희망이 더 큰 절망과 낙담으로 이어질까 두렵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 간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미국-한국과 중국-북한의 대립구도로 바뀔까,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 한국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끌려갈까 걱정된다. 그래도 나는 2020년을 맞이하며, 10년 후의 꿈을 그려본다. 10년 후에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아서 결국 새로운 남북관계가 열렸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십 년 동안 꿈을 간직할 생각이다. 내 꿈은 어머니가 90세가 되시기 전인 5년 내 어머니와 같이 황해도 배천을 방문하는 거다. 10년 후에도 어머님이 건강하게 내 손을 잡고 배천을 돌아보는 것도 기대한다. 황해도 배천은 부모님 두 분이 태어나시고 자라신 고향이다. 부모님들은 배천 자랑을 많이 하셨다. 연백평야 지역이라서 농사가 잘되고, 황해를 접하고 있어서 수산물도 많고, 배천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깨끗한 물이 많고 온천까지 있어서 살기 좋은 동네였다고 한다. 38선 이남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휴전선 이북이 되어서 더 애틋함이 크신 것 같다. 서울이라는 곳이 전형적인 고향이라 지리적 풍광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배천이 고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소박한 꿈이 모두의 꿈이 될 때 꿈은 희망이 되고, 의지가 되고, 계획이 되고, 실천이 될 것이다. 꽉 막힌 듯한 남북, 북미 관계를 보면서 꿈이 현실이 되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일을 하면서 항상 염두에 두는 개념이 있다. "생각은 크게, 시작은 작게, 그러나 빠르게 움직여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라는 큰 목표를 위하여 작은 시작이 절실한 시기가 되었다.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란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위한 것이다. 결국 제한적이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왕래이다. 평화통일 후의 자유로운 왕래가 아니라 분단, 제재 상황이라도 왕래는 할 수 있기를 지금 원한다. 개성공단이든 금강산 관광이든, 먼저 왕래를 허용하면서 남북문제가 풀어져 나가야 할 것이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20-01-06 이명호

[홍창진 칼럼]마음의 유익균

비만 큰영향 미치는 장내 유해균유익균 많으면 날씬함 유지 쉬워우리 마음 속도 마찬가지로 작용고독을 택하면 유해균 키우는 것몰두할 수 있는 즐거운일 찾아야'비만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외모지상주의라는 시대적 가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비만은 건강을 해치는 대표주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런 관심을 반영해서인지 아침방송만 해도 비만 탈출 비법을 종종 소개합니다. 저 또한 나이가 나이인지라 건강 관련 방송을 보면 일단 채널을 고정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요즘 방송을 보니, 비만의 원인이 단지 과식에만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과식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장내에 있는 유해균이라고 합니다. 우리 장 안에는 수많은 균이 존재하는데, 유해균이 유익균보다 많으면 아무리 적게 먹어도 살이 찐다는 것입니다. 반면 유익균이 더 많은 사람은 설사 과식을 좀 하더라도 날씬한 몸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비만을 탈출하려면 가장 먼저 장내에 유익균을 키워야 하고, 운동이나 식이조절은 그다음이라는 것이지요. 가만히 보면, 유익균과 유해균은 장내에만 작용하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서도 똑같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연말이 되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한해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이 고백성사를 하러 성당을 찾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작년에 범한 죄를 또 짓고 같은 고백을 반복합니다. 어느 꼬맹이는 고백소에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동생에게 욕도 했고, 서로 백 번도 넘게 싸웠어요"라고 말합니다. 어떤 청년은 직장동료가 너무 미워 마음을 안정시키기 어렵다고 합니다. 중년의 주부는 "남편만 없으면 죄지을 일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불안과 분노를 안고 살다 보면 불면증도 쉽게 찾아오고 마음의 괴로움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매사에 의욕이 없고 그저 우울하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은 일단 서로 같이 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서로 좋아서 결혼하지만 같이 살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고받을 일이 생깁니다. 피를 나눈 가족조차도 어쩔 수 없는 갈등에 시달립니다. 하물며 사회에서 만난 사람은 어떨까요. 아주 작은 이해관계 하나로 서로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달팽이가 껍질 속에 숨듯,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가 스스로 고독을 선택합니다. 관계를 끊고 혼자 있기를 택하는 건, 괴로움과 우울에서 벗어나는 데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장에 빗대어 말하면, 고독을 선택하는 건 유해균을 키우는 행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유해균이 유익균보다 많은 한 우리의 삶은 결코 행복하거나 건강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좀먹는 걱정과 슬픔을 날려버리려면, 마음 안에 유익균을 대량 투입해야 합니다. 마음의 유익균 중 대표격은 '몰입'입니다. 주어진 일에 보다 열정을 갖고 몰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천직이라 여기고 사랑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가치를 느낄 만한 대상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유익균은 '명상'입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스스로를 들여다보면서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명상하는 사람은 절대로 절망이나 슬픔에 빠지지 않습니다. 세 번째 유익균은 여행이든 운동이든 자기가 제일로 좋아하는 취미에 심취해 사는 것입니다. 취미를 즐기는 사람은 짜증 내는 일이 없습니다.투명한 유리컵에 물을 오래 담아두면 앙금이 생깁니다. 앙금을 없애려고 수저로 휘적거리면, 물만 흐려질 뿐 컵 바닥에 눌어붙은 침전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럴 땐 앙금이 있는 채로 수돗물을 콸콸 쏟아부으면 됩니다. 힘찬 물줄기에 앙금이 사라지고 어느덧 컵은 깨끗해집니다. 우리 마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 안의 괴로움, 슬픔, 우울 짜증을 억지로 없애려는 건 마치 비만에서 탈출하겠다고 억지로 배고픔을 참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억누르고 참다가 결국엔 폭발하고 맙니다.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면 유익균을 취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겠다고 그에 집중하기보다, 차라리 내가 몰두할 수 있는 일, 내 마음에 안정을 주면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장에 좋은 유익균을 넣어주듯, 우리 마음 안에 유익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불어 넣어주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12-30 홍창진

[이영재 칼럼]2019년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친 것들

조국사태·한일관계등 주류 이룬 10대 뉴스유난히 많았던 '가족의 비극' 도 다시 봐야국민·기업에 걷은 세금 선심쓰듯 뿌리는데한 가정 속절없이 무너진 이유 설명해줘야2019년 10대 뉴스가 일제히 발표됐다. 언론사의 성향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국사태, 지소미아 파기로 인한 한일관계, 부동산값 폭등, 청와대 하명수사 등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뉴스에 빠져 무심코 지나친 게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 하나의 유형으로 고착돼버린 '가족의 비극'이 그것이다. 2019년은 생활고에 견디다 못한 일가족의 극단적 선택이 유난히 많았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이미 선진국에서 '살해 후 자살'로 명칭 되는 '가족 동반 자살'이 올해는 유난히 많았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개인의 극단적인 선택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일가족이 함께 생을 마감하는건 흔치 않은 경우다. 통상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빈곤층이 늘어나면 자살 등의 극단적인 선택도 증가한다는 것은 이미 통계에서 밝혀졌다. 문제는 이들이 판단력이 없는 어린 자식들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점이다. 비록 부모일지언정 자식의 삶과 죽음에 관여하고 더구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갈 권리는 없다. 극단적 선택을 앞둔 그 시간, 그 공간을 상상해 보자. 아이들은 곧 있을 자기 죽음을 눈치채고 있을까. 평소와는 다르게 안절부절못하는 부모의 이상한 행동을 보면서 아이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부모의 뜻이라면"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러는 살려달라고 저항하는 아이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올해 이런 비극이 너무 많았다.1월 24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에서 40대 부부와 딸(18)과 아들(10)의 극단적 선택을 시작으로 공식적으로만 전국적으로 20여 건이 발생했다. 그중 3월에만 4건, 10월에 4건, 11월에 3건이 발생했다. 모두 기막힌 사연을 갖고 있지만, 그중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시흥의 한 농로에 세워 둔 렌터카 안에서 젊은 부부와 아들(4), 딸(2) 등 4명이 숨진 사건이다. 그날은 5월 5일 어린이날이었고, 부부는 35세 동갑내기였다. 이틀 후엔 시흥시 정왕동에서 C 씨(48) 부부와 아들(15), 딸(12) 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또 있다. 국회에서 초유의 막장 드라마가 열리던 그 날, 대구에서 40대 초반 부부와 중학생 아들, 초등생 딸 등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온 세상에 하나님의 축복이 내린다는 크리스마스 성탄절 이틀 전이었다. 하지만 축복은 이 집만 피해갔다. 자영업을 하던 가장이 몇 년 전 부도가 난 뒤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이들은 기초 생활수급자도 아니었다. 이들의 집 앞에도 은행과 대부업체 등에서 보낸 독촉장과 세금 미납 고지서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우왕좌왕하며 이들이 눈물의 밤을 보냈을 이틀 전, 문재인 대통령은 근로 장려금과 자녀장려금 지급 등 현금을 뿌리는 복지행정을 잘한 우수 일선 세무서 24곳에 피자 400판을 돌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민과 기업으로부터 걷어 들인 막대한 세금을 정부가 선심 쓰듯 마구 뿌려대는데도 한 가정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이유를, 나는 누군가가 설명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이 너무 기구하다. 국회의장인 어떤 아버지는 자식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기 위해 500조원이 넘는 국회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야당이 제출한 수정안에 대한 토론을 외면한 채 의사봉을 마구 휘둘렀다는 의심을 받고 있고, 생활고에 견디다 못한 어느 부모는 어린 자식들을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 의장이 그날 통과시킨 예산안 중 아동수당·기초연금 등 현금 살포성 복지지출 예산은 54조원이었다.12월 마지막 날에 쓰는 글이다. 보통 이런 날의 칼럼은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며… '로 시작되는 '송구영신'의 글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지금 그런 말을 나눌 기분이 전혀 아니다. 우리는 1년 내내 캄캄한 방안에 갇혀 있었다. 하루속히 출구를 찾아 이 어두운 방에서 나가야 하는데 도무지 출구를 찾을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 출구를 찾으려고 이 어두운 방을 더듬거리며 모든 시간을 허비했는지도 모른다. 내년 경제는 더 암울하다고 한다. 빈곤은 더 심해질 것이다. 우리는 넘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 출구가 있기는 한 걸까./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12-30 이영재

[방민호 칼럼]북한 문제에 관해 생각한다

'강대국만 핵을 가질수 있다' 발상美 불평등체제 어떤 도전도 용납못해北 여전히 핵무장 포기 않는 정황자신들 뜻대로 안 움직이는 美 대신'말리는 시누이' 한국에 불만 쏟아내최근 들어 남북관계가 아주 악화된 듯한 인상이다. 지난 두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었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반면, 최근의 남북 관계 악화는 다소 의외라는 느낌을 준다. 곰곰이 따져 보면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거릴 일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은 지금 핵 문제를 둘러싸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겉으로는 서로 사이가 좋은 것 같은 포즈를 취하지만 가슴속 생각은 전혀 다른 것 같다. 미국은 지속적으로 북한의 핵실험을 문제 삼고 있는데, 북한은 어떻게든 완전한 핵무장 해제는 피하려 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는 물론 강대국들만 핵을 가질 수 있다는 식의 '특이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러한 '불평등' 체제에 대한 어떤 도전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 쪽에서는 핵이야말로 현재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완전하게 들어줄 생각은 있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적 시선이 집중된 길주 풍계리 같은 곳의 핵시설은 폐기하는 포즈를 취하기는 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는 듯한 정황을 엿볼 수 있게 한다.과연 북한과 미국의 '대타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극히 불확실해 보이지만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곤란은 특히 한국 정부 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지난 정부와 달리 남북한 사이의 긴장 완화, 평화 안착을 추진해 왔다. 한국 정부가 북한과 미국 사이를 중재하는 제3자적 위치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 안정이 급선무라고 생각한 것이다. 각종 경제 제재 등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박을 풀어줄 수 있는 실질적 힘은 미국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먼저 나서서 북한 쪽과 '주체적인' 대화, 교류, 협상을 시도하는 것도 좋은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미국 대신에 '말리는 시누이'격인 한국정부를 향해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남북 대화, 교류의 상징인 금강산의 현대 시설물들을 철거하라는 식의 난폭한 요구는 '겉으로는' 남북 대화, 교류, 협상을 추진하면서도 '속으로는' 미국 뜻 안에서 움직이는 한국 정부를 향한 불만을 표현한 것이라고밖에는 해석할 길이 없다.그렇지 않아도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와 현 정부의 대북한 유화 정책에 대한 비난에 시달리며 어떤 성과에 목말랐을 정부로서는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진퇴양난의 질곡에 빠진 셈이 되었다. 과연 어디서부터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것일까? 물론 필자는 이런 큰 문제에 문외한일 수밖에 없다. 다만 이른바 '급진사상'에 경사된 경험을 가진 386세대의 일원으로서 북한 체제에 대한 판단이 일층 근본적으로 날카로워져야 한다는 점을 짚어보아야 할 것 같다. 현재의 북한 체제가 전체주의 체제의 하나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독일 나치즘, 이탈리아 파시즘, 일본 천황제 파시즘, 구 소련의 소비에트 사회주의 같은 전체주의 체제들은 국가 목적 아래 사회 전체 구성원을 획일적으로 정렬시키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고, 현재의 북한 체제는 그러한 메커니즘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열거한 전체주의 체제들에서 국가 위에 당이 군림하고 있었던 바, 현재의 북한 체제는 그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어떻게 이 체제의 변화를 가능케 할 수 있을까? 하면 한국사회의 많은 사람들, 세력들이 생각하고 있듯이 무조건 틀어막는 것이 능사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 체제의 여러 문제들을 외면한 무조건적인 용인과 대화, 협상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도그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지혜로워질 수 있을까? 하고 필자는 생각해 본다. 여당과 야당, 또 그들을 둘러싼 시민운동 단체들이 각자의 견해만을 내세우며 대립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을 것 같다. 서로가 가진 문제의식과 해법의 가능성을 두루 포용하고 또 함께 풀어가자는 지혜로운 태도만이 '우리'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북한 체제에 대한 협상과 비판 모두를 포용하는 더 큰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나 할까. 그러려면 '우리'는 먼저 '내'가 대립하는 상대방이 바로 '우리'의 일원임을 깨우쳐야 하리라./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9-12-23 방민호

[윤상철 칼럼]세대의 지배, 전근대의 지배

'신분제 해체·서로 존중 사회…''자유로운 개인·독립의 개체…'두 주장 틀렸다고 탓하기보다우리사회 어떤 결핍 보았는지동의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야'불평등의 세대'란 책이 올해 학계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주로 정치적인 해석이 덧붙여지고 있지만, 독자들은 자신이 속한 세대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표출한다. 계급적 시각에서 불평등을 바라보던 진보진영에서는 사회적 균열에 대한 세대적 시각에 동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의 근간이었던 민주주의연대가 오히려 다른 세대에 대한 독점적 지배의 자원이 되었다는 점에 매우 부당해 한다.저자인 이철승 교수는 세대의 정치가 어떻게 불평등의 구조를 낳게 되었는가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그는 386세대의 '네트워크 위계'가 '한국형 위계 구조'로 진화했다고 본다. 여기에서 위계구조는 첫째, 나이에 기반한 '연공구조'를 한편으로 하고 둘째, 세계화로 인한 노동시장 유연화 기제, 대·중·소기업 간 지배종속 관계, 그리고 노동조합을 통해 3중으로 중첩된다. 이 우연적 결합의 중심에 386세대의 네트워크가 최대의 수혜자로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들은 이른바 민주주의연대를 매개로 자본주의 하의 시민사회를 처음으로 조직한 세대였다. 또한 그들은 이전 산업화세대가 퇴출된 공간을 차지하고 후세대의 편입을 선별함으로써 정치적으로 과대대표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으로 과대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제는 경제적으로도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약속했던 민주주의의 확장을 저버렸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반일종족주의'란 책은 역사학과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사회운동권에 두루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인문학 도서로는 보기 드물게 1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한다. 독자들은 자신의 역사관이나 정치관에 따라 격분하기도 하고, 합리적 정당화의 지적 자원을 찾았다고 득의만만하기도 한다.이영훈 교수 등의 주장도 기존 역사학계의 통념을 뿌리째 흔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년기부터 그렇게 교육받고 성장한 국민들의 민족주의적 정서와 충돌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분노를 드러내며 친일파 혹은 '토착왜구' 등으로 먼저 낙인찍는다. 일본제국주의의 경제적 수탈을 시장적 교환으로 해석하고, 강제노동과 민족간 임금차별, 그리고 강제징병을 부정하고, 한일회담이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청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한민족 민족주의의 상징인 백두산과 독도 문제의 뿌리 얕은 내막을 드러내고, 쇠말뚝신화의 허구성을 밝히며, 구총독부 청사의 해체를 반달리즘식 문화테러로 보기도 한다. 고종을 망국의 암주가 아닌 개명군주로 둔갑시키는 정치적, 역사적 '조작'에 맞서서 백성과 국민에 무책임한 이 나라 지배층과 엘리트들을 성토한다. 위안부와 공창제 문제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바 그대로다.나는 위의 두 책의 주장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동의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왜 이 연구에 대해서 '동의'에서 나아가 '환호'하는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이철승 교수는 시장의 근본적 모순인 자본과 노동 간의 근본적 해결을 주장하는 구조주의 좌파에 맞서 '사회적 자유주의'를 주장한다. 계급의 덫에 빠져서 실제의 사회적 지배와 신분제에 눈감고 이를 존속시키는 우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는 시장경쟁의 폭압에 국가가 개입해 사회와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국가와 사회의 속박을 공히 부정한다. 이영훈 교수는 샤머니즘적 반일종족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와 근대화된 세계주의를 열고자 한다. 반일종족주의의 기형적 산물인 북한의 신정체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전근대적 권위주의가 어떻게 근대적 민주주의의 확산과 심화를 억누르고 있는지를 지적한다. 이철승 교수는 "신분제 사회를 해체하고 내 자식과 다른 자식들이 자유로운 개인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사회적 위험을 분담하며, 노동의 대가를 적절히 공유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이영훈 교수는 "자유로운 개인, 독립하는 개체, 충일한 개성, 고양하는 예술, 과학하는 정신, 협력하는 사회, 경쟁하는 기업, 세계와 통상하는 나라, 그러한 아름다움… 근대문명", 즉 자유로운 개인의 근대국가를 꿈꾼다.진단이 틀렸으니 처방인들 맞겠는가 탓하기보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결핍을 보았는가, 그리고 그들의 독자인 시민들이 또한 그러한 진단에 동의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만하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9-12-09 윤상철

[전호근 칼럼]책 도둑

30년전 '논어 완질' 훔쳐갔던 청년새삼 그 일이 떠오른 까닭은얼마전 논어 번역서 탈고하며올바로 읽고 풀이했는지 두려움과그에게 뭘 훔치진 않았나 의심 때문나는 대학원을 다닐 때 양현재(養賢齋)라는 곳에서 조교로 일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금속활자본 고서가 소장되어 있었고 그중에는 7책으로 구성된 논어 완질도 있었다. 그 책과 얽힌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도둑이 들어 논어 완질을 훔쳐간 것이다.그날 아침 출근해서도 도둑이 든 줄 모르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책을 들고 와 이 책이 여기 있던 물건이 맞느냐고 물었다. 나는 비로소 서가의 한 곳이 텅 비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깜짝 놀라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그는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였다. 이야기인즉은 그날 도둑이 이곳에 들어와 책을 훔쳐 가지고 나가다가 경비의 눈에 띄어 붙잡혔다는 것이다. 이어 나에게 경찰서로 가서 참고인 진술을 하고 책을 도로 찾아가라고 했다.밖에 나갔더니 경찰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앞쪽에는 경비 아저씨가 앉고 나는 뒷자리에 앉았는데 뒷좌석에는 이미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옆에 있던 경찰로 보이는 이에게 말을 걸었다."유식한 도둑인가 봅니다. 아니 어떻게 그 책이 귀한지 알아보고…."대꾸가 없어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살피려던 나는 흠칫 말꼬리를 흐렸다. 경찰인 줄 알고 말을 걸었던 그 사내의 손목에 채워진 금속물질이 어두운 차 안에서도 차갑게 반짝거렸던 때문이다.그제야 그의 초라한 행색이 눈에 들어왔다. 피의자는 대략 20대 후반으로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그는 낡은 청바지에 때 묻은 운동화, 항공점퍼 비슷한 윗도리를 걸치고 있었는데 몸에서 다소 불쾌한 냄새도 났다.그는 이미 모든 걸 체념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숨소리마저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전문적인 고문서 도둑 같아 보이지는 않았고 일시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책을 훔치다 잡힌 것으로 보였다. 차를 타고 경찰서까지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도둑이 도둑다워 보이지 않는 데다 그가 나와 비슷한 또래인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에서 공부하며 논어를 읽는데 저 사람은 어쩌다가 학교에 몰래 들어와 논어를 훔치는 사람이 되었을까. 꼬리를 무는 상념 끝에 나는, 성현의 말을 훔치는 나 같은 자나 성현의 글이 적힌 책을 훔치는 그나 피차에 나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침묵 속에 경찰서에 도착한 뒤 나는 담당 형사에게 따로 그 도둑에게 다른 전과가 있는지 물었다. 예상대로 그는 초범이었다.이윽고 조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경찰에게 어제 퇴근한 시간, 그리고 다시 출근한 시간, 또 그가 훔친 책 외에 달리 없어진 물건은 없다고 일러주었고 경비 아저씨도 자기가 목격한 일을 진술했다. 그런 뒤 경찰은 이 책이 권당 얼마나 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대략 3만원 정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당시 그보다 못한 책들이 인사동에서 권당 5만원을 호가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가능하면 금액을 적게 이야기하는 것이 그 도둑이 그나마 처벌을 약하게 받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경비 아저씨가 저렇게 귀한 책이 그리 쌀 리가 있겠느냐며 자꾸 10만원이 넘는 물건이라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약간의 언쟁마저 있었지만 내가 한사코 3만원이라고 주장해서 결국 조서에는 훔친 물건의 액수가 21만원 상당의 책자 7권인 걸로 기록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다였다.그 일이 있기 전에 나는 어느 옛 책에서 선비의 집에 쌀을 훔치러 들어갔던 도둑이 선비가 밤늦게까지 글 읽는 소리를 듣고 훔치기를 단념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감동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그 이야기가 과연 사실인지 의심스러워졌다. 과연 배고픈 도둑의 귀에 선비의 글 읽는 소리가 들어왔을까.30년도 더 된 일이 떠오른 까닭은 얼마 전 논어 번역서를 탈고하면서 내가 그동안 논어를 올바로 읽고 풀이해 왔는지 두려운 마음과 함께 이런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지키던 책을 훔치려 했지만 혹 내가 그의 무엇을 훔쳤던 것은 아닌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12-02 전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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