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홍창진 칼럼]감당할 수 없는 일

우리안에 꿈틀거리는 불길한 상상막상 닥치면 의연히 해결할 일인데가능성 없는 일들로 인해 괴로워 해누구나 미숙함 있다는것 인정 중요믿을만한 사람과 사연 나누길 바라인생을 살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상황에 처했을 때 종교인을 찾습니다. 그러다 보니 종교인 입장에서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가 막힌 사연이 참 많습니다. 중증 장애인 아이를 둔 부모, 사업의 부도로 이혼은 물론 온 가족이 해체를 겪는 중년의 가장, 가정폭력으로 괴로워하는 아내 등등 사연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괴로움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저마다 괴로움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각자 해답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별말씀 안 드리고 그저 공감하고 들어주었을 뿐인데 그들은 눈물을 흘리는 중에도 앞으로의 대안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결심에 기도를 부탁하곤 길을 떠났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다시 보면 모두들 잘 극복하고 씩씩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사람은 막상 정말 큰 불행이 닥치면 의연하게 잘 대처합니다. 그런데 작은 시련에는 오히려 몸 둘 바를 모르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안정된 직장을 다니며 맞벌이하는 아내와 함께 아이 둘을 키우는 가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취미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초등학교 동창 모임은 물론 각종 골프 모임에 남자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영 께름칙하다는 겁니다. 골프가 끝나면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아내를 보면서 좋지 못한 상상을 시작했습니다. 의심을 시작하고부터는 마음이 괴로워지고 힘들어졌습니다.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 어느새 아내의 휴대전화를 뒤져보고 메시지 내용들을 왜곡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언성을 높이다 폭력에 이르게 되어 급기야 별거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무 증거도 없는 일에 상상력이 더해져 일어난 일입니다. 사과를 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맹세까지 한 뒤에 다시 함께 살고는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하루에도 수십번 떠오르는 망상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또 한 예가 있습니다. 영상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자신이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감염되면 같이 사는 부모님을 비롯해 다른 가족도 감염될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괴로움을 키웠습니다. 코로나를 맞아 오히려 영상 작업은 일거리가 많아졌는데 다른 때 같으면 좋아서 쾌재를 외칠 이 상황에 그는 일하는 자체가 불안을 키우는 원인이었습니다. 출연자 중에 무증상자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사람들과 의식적으로 더 거리를 두고 대화를 삼가는 것까지는 정상이지만 두려움에 떨면서 이 상황을 견디는 건 본인이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심지어 이런 모든 걱정으로 인해 잠도 못 자고 의욕도 사라진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세상에 감당하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이라도 막상 닥치면 사람은 모두 의연하고 대범하게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능력을 타고났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를 괴롭히는 괴물은 외부에서 오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불길한 '상상'입니다. 의처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코로나 블루를 자청해 겪고 있는 사람도 확신하건대 막상 문제가 닥치면 의연하게 해결할 이들입니다. 그런데 0.1%도 가능성 없는 일을 현실로 끌어들이고 괴로워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찾아와 상담을 하면 우리 종교인도 몹시 어렵습니다. 있는 일도 아닌 것을 해결해 달라고 하면 우린들 달리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사람은 누구나 하자가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그것을 믿고 있지도 않은 미래를 앞당겨 걱정을 합니다. 우리 안에 이런 미숙한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끔 말도 안 되는 몹쓸 상상이 찾아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종교인들이나 믿을 만한 벗에게 이런 자신의 한심한 점을 나누길 바랍니다. 사연을 털어놓다 보면 한심한 자신을 더 선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고 확인해 주는 일이 이 괴물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1-01-11 홍창진

[윤인수 칼럼]"살려달라"는 절규에 누가 답할 것인가

수감자·자영업자 등 생존위협 간절한 외침보선·대선… 국민들 구조손길·반응에 선택여야 정당·인물들 여전히 진영에 갇힌 형국지긋지긋한 정략참호 누가 먼저 탈출할건지누군가 "살려달라"고 하면 즉각 반응하고 구해야 한다. 인지상정이고 사회의 규범이며 국가의 의무다. 바다를 표류하는 조난자에게 총탄을 퍼붓는 짓은 상상할 수 없는 야만이다. 잊어선 안되고 잊힐리도 없다.연말연시 대한민국에서 "살려달라"는 절규가 이어졌다. 서울 동부구치소 수감자들은 창문 밖으로 "살려달라"는 대자보를 흔들었다. 헬스장 등 실내체육시설 운영자들도 "살려달라"고 했다. '살·려·달·라'는 네 음절은 생존을 위협받는 인간의 가장 짧은 외침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간절함의 무게는 천근만근이다.동부구치소 수감자들의 "살려달라"는 호소는 목숨을 위협받는 재난현장을 고발했다. SOS 대자보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그들의 공포에 공감하고 반응하기까지 한참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법에 의해 격리당한 사람들이 모인 구치소는 사회적 관심에서도 격리됐고 방역행정에서도 격리됐다. 정부는 신천지교회를 압수수색하고 청와대 비서실장은 광화문집회 주동자를 향해 "살인자"라고 고함쳤다. 코로나19 방역 방해행위를 반사회적 간접살인으로 본 것이다. 그런 정부가 동부구치소를 코로나 소굴로 만들었다. 변명과 사후조치로 봉합할 수 없는 방역실패와 인권유린의 주체가 된 것이다.실내체육시설 자영업자들의 "살려달라"란 투쟁은 경제적 생존을 위한 자구행위이다. 코로나는 1천명이 넘는 국민 생명도 앗아갔지만, 수백만에 이르는 영세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밥그릇도 깨트렸다. 그래도 국민을 위해 참고 인내한 착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인내에도 한계가 있고, 인내의 끝에서 희생의 공정과 형평이 깨진 현실을 목격한 순간, 그 착했던 사람들이 "살려달라"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철창 시위는 살기 위해 정부 지시를 거부하겠다는 본능적인 생존 의지였다.정부와 방역당국의 자영업 영업제한 규제엔 원칙도 현실도 없었다. 많은 언론이 지적했지만 외면했다. '현실적이지 않았다'는 정부의 뒤늦은 고백은 허무하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자영업자의 고통에 눈물 흘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국민을 K방역의 주체로 떠받들었다. 하지만 국민은 눈물과 말의 성찬이 밥그릇을 지켜주지 않는 현실과 오늘도 전쟁 중이고, 전선의 어딘가에서 "살려달라"는 절규가 들려와도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다.선거의 해가 열렸다.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이어 곧바로 대선정국이 펼쳐진다. 시대가 절박한 만큼 국민의 선택도 절박해질 것이다. 단언하건대 국민은 "살려달라"란 외침에 반응하고 구조의 손길을 내미는 정당과 인물을 선택할 것이다.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여론조사는 국민의힘이 앞선다는 지표를 보여준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힘 후보들이 단일화에 성공하면 승리한다는 예측이다. 착각이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여론은 대통령을 향한 부정여론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나마 국민의힘이 잘해서 획득한 지지가 아니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라질 수 있는 지지다. 후보단일화 과정을 치졸한 정략으로 더럽히는 순간 선거는 뒤집어질 수 있다.내년 3·9대선을 앞둔 정국은 여당에 유리하다. 범야권 후보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거론되는 현실은 제1야당의 정권 불임 현실을 반영할 뿐이다. 그래도 속단은 금물이다. 여당을 호령하는 '문재인 팬덤'이 복병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마저 전직 대통령 사면론으로 체면을 구겼다. 대선후보 1위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문재인 팬덤의 승인 없이는 불안하다. 정 총리의 '단세포' 직격에 움추린 이유다. 대법원이 이 지사를 살렸듯이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살린다면 당내 경선은 예측불허가 된다. 문재인 팬덤은 당내 경선을 혼란에 빠트리고 본선에선 대선후보의 외연 확장을 제한할 것이다.국민은 "살려달라"고 절규하는데 여야 정당과 인물들은 진영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국민은 이 지긋지긋한 정략의 참호에서 제일 먼저 벗어나 자신들과 마주하는 정당과 인물을 기다린다. 누가 먼저 나설 것인가./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1-01-11 윤인수

[방민호 칼럼]늘 오는 새해가 아니라

새로움이 새롭지 않아 보일땐 실망올바름이 그렇지 않을땐 고개 돌려모든 변화속 변치않는 진실 있듯이예측 못한 변화 이해하고 타협해야이번 새해만큼은 특별한 해 됐으면새해다. 그러나 매번 오는 새해일 것이니 정녕 새해가 될 만한 생각 없다면 별반 새로울 것 없는 말만의 새해리라.다석 유영모라는 현대 철학자가 있어 신묘한 사상을 펼쳐 놓고 가셨으니 그것을 가리켜 '다석일지'라 하고, 이 '말씀'을 경전 삼아 주석을 붙인 이가 있으시니 그분은 김흥호라는 분이며 그 책이 '다석일지 공부' 일곱 권이다.예부터 예수가 바울 없이 오늘에 온전히 전해질 수 없었을 테요, 공자가 자공 없이 가르침을 제대로 전할 수 없었을 테니, 오늘에도 그와 같은 전도가 있다면 바로 유영모와 김흥호 같은 관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세상의 좋은 가르침은 항상 두 가지 부면을 포괄하는 법이다. 하나는 자기 공부요, 다른 하나는 세상 공부일 테니, 이 두 가지는 완성을 추구하는 사상에서는 서로 불가분리 떨어질 수 없어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부단히, 서로를 지향함을 볼 수 있다.1955년 4월26일부터 이듬해 같은 날까지를 죽음 공부를 하기로 죽음을 살기로 작정한 유영모는 하루하루의 '일생'을 그만의 독특한 문체의 시문으로 남겨 놓았다. 물론 일지는 그후로도 계속되지만 필자 생각에, 그렇다면 그 '일지'는 미리 정해 놓은 죽음의 날을 향해갈수록 치열하고 뜨거운 것들로 가득하리라 했다.이 다석의 귀한 말씀이 후세대에 전해지지 못할 것을 염려한 김흥호 선생이 칠십대 중반의 나이에 이 '일지'의 풀이 작업을 1만2천매 원고로 뜨거운 한여름에 마쳐 놓았다 한다. 과연 세상이란 신비로운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여기 이런 말이 있다. 1956년 2월7일 다석의 기록에 대한 풀이다."좋은 나라는 먹을 것이 넉넉하고 문화가 풍성하여야 한다.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 밥과 말씀이 다 있어야 좋은 나라다. 사람의 입이 많으면 먹이는 일이 가장 큰일이다. 밥을 먹여 놓으면 매번 거짓말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더운밥 먹고 식은 말 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다. 밥 먹고는 일하고 문화를 창조하여 참말을 하여야 하는데, 일도 안하고 문화도 창조 안 하고 놀며 거짓말만 하니 큰 문제다. 나라고 하는 것이 이미 거짓말이다. 나는 내가 아니다. 하나님만이 나다. 나는 저다. 옛날부터 백성들을 제대로 먹인 일이 없다. 정신도 나갔고 육체도 쓰러진다. 먹이고 참말 하여야 복지국가다. 말씀이 있고 먹이가 있어야 하나님 나라다."필자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다석도 그런 의미의 신자는 아니었던 듯하다. 또 필자는 한국인이 거짓말만 하는 사람들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말이든 새겨들어야 하리라.세상은 참으로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뭉쳐 있는 것 같으면 흩어지고 서 있는 것 같으면 움직이며 올라 서 있는 것처럼 보이던 것이 아래를 향해 간다.새로워 보였던 것이 더 이상 새롭지 않아 보일 때 사람들은 적잖이 실망하게 된다. 올바르게 보였던 것이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 않을 때도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게 된다. 그렇다 해서 사람들은 과거의 것이 다시금 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는 바라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과연 새해를 맞이하는 이 나라는 어떤 상태에 있는 걸까? 진정한 위기는 코로나19가 1천명을 넘어섰다는 데 있는 것 같지만은 않다. 이 전염병조차 이리 끌어다 붙이고 저리 끌어다 붙이는, 명분과 빌미의 투쟁욕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함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모든 것이 변화하여 성하던 것이 쇠하고 건강하던 것이 병들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왕은 왕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백성들은 백성다워야 한다. 모든 변화의 이면에 변치 않는 진실이 있음을 알고 또 변하지 않음 위로 예기치 못한 변화가 박두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타협하고 환대할 수도 있으리라. 이번의 새해만은 늘 오는 새해가 아니라 특별한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21-01-04 방민호

[이남식 칼럼]모바일혁명이 가져온 새로운 트렌드

코로나로 미래 속도 엄청 빨라져모든 게 모바일 환경에 맞춰지니ARM기반 CPU가 트렌드로 변화자택 머무르는 긴 시간 기회 삼아집안정보화 업그레이드 시켜보자이제 2020년이 저물어간다. 올 한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다행히도 모바일 혁명으로 상거래뿐만 아니라 회사의 업무, 교육과정, 각종 문화예술 공연에 이르기까지 코로나19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기술의 진보에 따라 5G 통신이 보편화 되고 스마트 폰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 또 다른 새로운 트렌드가 예고되고 있다.올해 국내 업계의 M&A 중 최대 규모는 SK하이닉스가 인텔의 NAND 사업부를 10조3천억원에 인수한 것이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인텔인사이드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i5, i7 등 컴퓨터 CPU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인텔사가 왜 사업부를 매각했을까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경쟁자인 AMD가 7nm 미세공정과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는 것도 있으나 애플이 노트북에 더 이상 인텔 CPU를 사용하지 않고 ARM 기반 CPU로 교체하겠다고 선언하였고 또한 MS의 경우도 노트패드인 서피스의 CPU를 자체 개발한 ARM 기반 CPU로 교체한다고 발표하여 인텔의 주가가 절반 가까이 떨어지게 되었다. 이에 새로운 기술투자를 위해서는 경쟁력이 낮은 사업부를 정리하여 투자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해 본다.대체 ARM이란 무엇인가? ARM은 'Acron RISC Machine'의 첫 글자로 전기소비가 아주 적은 소형의 CPU를 만들기 위하여 CPU가 사용하는 명령어 세트가 단순화된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 방식을 채택하여 설계한 CPU이다. 스마트 폰에 사용되는 CPU인 AP(Application Processor)는 모두 이러한 방식으로 개발되어 왔다(소형, 저전력, 저발열). 반면에 컴퓨터용 CPU는 CISC(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er) 방식을 채택하여 열도 많이 나고 상대적으로 부피도 커졌다. 그러나 모바일폰이 빠른 속도와 고도의 성능을 요구하면서 모바일 AP도 컴퓨터 CPU 못지 않은 성능을 갖게 되면서 서서히 패드나 노트북부터 CPU를 ARM 기반으로 바꾸는 트렌드가 나타나게 되었다. 현재로서는 초기이기는 하나 애플의 노트북에 ARM기반의 M1 칩을 사용하였는데 컴퓨팅 성능은 전과 비슷하면서 인터넷 접속, 배터리 사용시간, 발열은 압도적으로 좋아져 이제는 대세로 자리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노트북이나 패드에서는 인텔이나 AMD의 CPU가 아닌 ARM 기반의 CPU가 대세가 될 전망이다.ARM은 또한 회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손정의 회장이 2016년에 38조원에 인수하였다가 올해 엔비디아에 47조5천억원에 매각하면서 4년만에 9조5천억원을 벌게 해준 회사다. 이 회사는 ARM 기반의 모바일폰 칩의 RISC설계 기술을 가지고 있어 퀄컴, 삼성전자, 애플 모두가 ARM의 설계도를 로열티를 주고 사서 자체 AP를 개발하고 있다. 앞으로 자율주행차에 사용되는 CPU는 ARM 기반으로 갈 확률이 높다. 이유는 ARM을 인수한 엔비디아는 GPU(Graphic Processing Unit)의 최강자로 인공지능 연산에는 GPU가 아주 유용하기 때문에 향후에는 ARM기반 CPU와 GPU가 하나가 되어 자율주행의 브레인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엔비디아도 앞으로 매우 주목해야 할 기업이라 볼 수 있다.코로나로 말미암아 미래로 향하는 방향보다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모든 것이 모바일화되다 보니 노트북도 보다 모바일 환경에 맞도록 되어야 하겠고 그러다 보니 지난 수십년간 CPU의 대명사가 되어온 인텔이 퇴조하고 ARM 기반의 CPU가 트렌드가 되고 있다. 더 접속이 잘 되고 오래 가고 가볍고 열이 안 나는 마치 스마트폰과 같은 노트북이나 컴퓨터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이 기간을 통하여 집안의 정보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되면 코로나를 오히려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2020-12-28 이남식

[윤상철 칼럼]포퓰리즘의 종말

민주주의 결손서 생기는 '포퓰리즘'특정한 소망만을 감성적으로 동원그 파국적 결과는 충분히 예측 가능민주주의의 균형과 견제 사라지면포퓰리즘 기반은 서서히 자리잡아사회적 불평등이 극심하고 여기에 경제위기가 도래하면 민주주의적 정치제도는 불안정해지고 그 틈새에 포퓰리즘이 스며든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라틴아메리카를 휩쓴 이른바 '핑크타이드(pink tide)'는 중도좌파정권의 포퓰리즘 광풍이었다. 이제 그 포퓰리즘은 점차 종말을 맞고 있다. '남미의 북한'으로 불리는 베네수엘라가 비참한 종말이라면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등은 실용노선과 경제적 시장주의를 통하여 포퓰리즘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흔히 포퓰리즘은 인민주의 혹은 대중주의로 해석된다.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인민주의는 국가사회주의로 변질되면서 인민을 유기했다. 엘리트와 갈등하는 대중주의는 대중영합주의를 따르면서 정치적, 경제적 파국을 낳았다. 그럼에도 포퓰리즘은 다두제적 대의민주주의에서 소외되는 시민의 소망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직접민주주의를 가능케 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포퓰리스트들은 일반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여 자신이 표방하는 정책에 대한 지지를 획득하고 이후에 그러한 정치적 동원력을 바탕으로 기득권 정당 안에 진입한다. 그들은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연합에 의지하고 대의민주제를 공격하기도 한다. '남아메리카 포퓰리즘의 거시경제학'의 공저자인 세바스티안 에드워드와 루디거 돈부시는 포퓰리즘을 "지속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재정적자와 통화팽창 정책을 구사하는 한편, 생산성 향상과는 아무 상관없는 공공부문 근로자들의 임금을 인상함으로써 소득을 재분배하는 경제정책"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 결과 포퓰리즘은 초기에는 대중들에게 엄청난 희열을 주지만 점차 급격한 인플레이션, 실업률 증가, 임금하락과 같은 참혹한 종말을 낳는다.전통적인 포퓰리즘과 달리 이른바 네오포퓰리즘은 재정 및 통화팽창정책을 노골적으로 강조하거나 공공부문 임금을 대폭 인상하지는 않는다. 재정 적자보다는 정부통제나 제도적 규제를 늘려가는 방식을 취한다.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는 조세정책이나 노동정책에 직접 개입하게 된다.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서 권력을 장악한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포퓰리즘의 도래를 인식하지 못한다. 확고한 민족주의자들은 아니지만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와 그 산물인 사회적 양극화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그럼에도 네오포퓰리즘 역시 파국적인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한국 역시 남미와는 다르지만 포퓰리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국은 토지분배, 공공부문의 재정지출, 교육제도 등에서 남미와는 현저하게 다른 사회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낳은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른바 '소득주도성장'과 공기업 주도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내세웠다. 코로나19의 팬데믹사태로 변명하였지만 실업률 상승, 자영업의 몰락, 수출의 지속적 감소 등 경제적 불안정성은 피할 수 없었다. 수요공급의 논리를 벗어난 부동산정책은 주택가격 급등과 전세난을 낳았다. 남북평화와 통일을 앞세운 민족주의적 담론은 한국의 오늘을 있게 해준 동맹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불안하게 하고 남북간의 평화는 더욱 위협받고 있으며, 브레튼우즈체제의 최고 수혜자인 한국경제의 앞날을 요동치게 하고 있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서는 내부의 친일파를 청산하고 일본과의 전쟁도 불사한다는 민족주의적 감성을 동원한다. 현실적인 '에너지전환' 정책이 결여된 '탈원전' 정책은 '탄소중립 2050비전'의 실효성을 의심케 할 뿐만 아니라 원전산업과 에너지안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문재인 케어는 건강보험 재정악화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문재인 푸어'를 맞게 될 수 있다. 민주주의가 균형을 잃으면서 진행된 K-방역은 백신의 준비상황이나 방역 자체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에 있어서 결코 후하지 않다.세바스티안 에드워드는 그의 저서 '포퓰리즘의 거짓 약속'에서 '경제정책에서 실제적이고 장기적인 발전을 이루려면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입법부와 사법부에 대등한 권력을 주는 자유민주주의적 정치개혁을 실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포퓰리스트 의제를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의 권력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고 이를 강화시킴으로써 그 균형을 파괴한다.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자 시도하고 이러한 정치지형 속에서 성공하기도 한다. 마침내 경제정책도 파산하고 포퓰리즘의 비극적 종말이 나타나게 된다.포퓰리즘은 결손된 민주주의 하에서 발생하여 특정한 소망만을 감성적으로 동원하며 그 파국적 결과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민주주의는 사회세력간의 팽팽한 균형 속에 이루어진다. 그 균형과 견제가 사라지면 국가권력 내부의 균형과 견제도 사라지며 포퓰리즘의 기반은 자리잡게 된다. 한때는 스웨덴인가 미국인가를 논했던 한국이었지만 이제는 차베스인가 룰라인가를 선택해야 될지도 모른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20-12-21 윤상철

[전호근 칼럼]백양사 가는 길

금방은 '두시간'·다 온건 '한시간'이후 난 내안의 시간을 조정하고공부와 살아가는 법도 함께 배워비빔밥처럼 삶에도 맛이 있다면'천천히' 해야 누린다는 걸 깨달아오래 전 한창 한문을 배우던 시절 나는 1분 1초의 시간을 아끼며 공부에 매진했다. 오죽하면 내가 잠꼬대를 한문으로 한다며 아내로부터 핀잔 아닌 핀잔까지 들었겠는가. 그렇게 한문 공부에 여념이 없었던 어느 겨울, 나는 머리라도 식히고자 장성에 있는 백양사에 간 적이 있다.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정읍에 도착한 뒤 버스터미널에서 백양사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나이 지긋한 운전기사에게 백양사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더니 버스기사 왈,"금방 가."예정된 시간보다 20분 늦게 출발한 버스는 읍내를 벗어나더니 포장도로가 아닌 꼬불꼬불한 산길을 터덜터덜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는데 바퀴에 큰 돌이라도 걸리는지 자주 덜컹거리며 차체가 흔들거리곤 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달렸는데도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궁금해진 나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시골 노인에게 백양사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물었다. 할아버지 왈,"다 왔어!"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백양사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도 더 지나서였다. 그때 나는 시골 사람들의 시간관념이란 도무지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했다. 두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금방이라 하고 한 시간도 더 남았는데 다 왔다고 하니 실제와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 나는 시골 사람들의 엉터리 시간 관념에 속아 시간을 허비하기라도 한 것처럼 억울한 심정이 들었다.백양사 입구에 도착한 나는 죽 늘어서 있는 식당 중 한 곳에 들어가 산채비빔밥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바깥을 내다보았다. 때마침 눈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배가 고팠던 나는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아 답답한 나머지 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이윽고 내가 시킨 비빔밥이 나왔다. 음식을 내오던 초로의 아주머니가 연신 물을 들이켜던 내 모습을 보았는지 이렇게 말했다."젊은 양반, 천천히 드시게."나는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비로소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풍철이 지난 식당과 거리는 모두 한산해서 마치 세상이 정지한 것 같았는데, 그런 풍경이 그제야 비로소 편안하게 느껴졌다. 창밖을 내다보니 멀리 백양사가 자리하고 있을 법한 산자락이 그새 굵어진 눈발 사이로 흐릿하게 보였다.식탁 위에는 따뜻한 밥이 담긴 큼직한 비빔밥 그릇과 열 종류가 넘는 산나물이 접시에 담겨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느린 동작으로 나물과 양념이 골고루 섞일 때까지 비빔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입 한 입 '천천히' 먹기 시작했는데 혀끝에 전율이 느껴졌다.그 맛은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치 비빔밥에 영혼이라도 담겨 있는 것처럼 난생처음 먹어보는 맛이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비빔밥은 내게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나는 그 까닭을 알아챘다. 그때까지 비빔밥이 맛이 없었던 까닭은 비빔밥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비빔밥을 잘 못 먹었기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허겁지겁 먹는다면 무슨 맛을 느낄 수 있겠는가. 급히 먹지 말라는 것은 꼭 체하기 때문만이 아니다.나는 비빔밥을 천천히 먹으며 버스를 타고 오면서 느꼈던 답답함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곳 사람들이 금방이라고 여기는 거리와 시간을 내가 멀고 길다고 여긴 까닭은 내 안의 시계가 너무 빠르게 움직인 데 있었던 것이다. 결국 엉터리는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나는 어리석게도 아침 해를 일찍 보기 위해 나무 위에 오르는 바보였던 것이다. 이후 나는 내 안의 시계를 조정했다. 금방은 두 시간이고 한 시간 남았으면 다 온 것이다.나는 백양사 가는 길에 시간 맞추는 법과 비빔밥 먹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공부하는 법과 살아가는 법도 함께 배웠다. 비빔밥처럼 공부와 삶에도 맛이란 게 있다면 모름지기 '천천히' 해야 누릴 수 있는 것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12-14 전호근

[윤인수 칼럼]'원칙 없는 승리'에 서늘해진 민심

與, 입법권 독점 마음먹은 법안 줄줄이 통과정권 진열장에 트로피 쌓일수록 여론 냉랭윤석열 삭제·친정권 공수처장 '권력 과용'文정권, 노무현 길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다문재인 정권은 2020년 원했던 모든 것을 이뤘다. 4월 총선 압승으로 거추장스러운 야당의 견제에서 자유로워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언제든 180석 이상을 동원할 수 있는 배타적 국회지배권은 상상하는 모든 걸 입법으로 성취하는 마법의 절대반지이다. 입법권을 독점한 여당은 공수처법개정안을 비롯해 마음먹은 법안들을 줄줄이 통과시켰다. 이제 윤석열만 찍어내면 되고 찍어낼 것이고 찍어낸 뒤엔 법으로 대통령 출마를 봉쇄하면 된다.신기한 건 민심이다. 정권의 진열장에 승리의 트로피가 쌓여갈수록 여론이 등을 돌린다. 정권을 응시하는 대중의 시선이 서늘하다. 대통령 지지율은 2주째 바닥에서 바닥을 향한다. 정권 지지대열에서 이탈하는 중도층 기세가 심상치 않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정권 내내 연전연패한 부동산정책에 분노한 민심은 퇴임 후 대통령 사저를 6평으로 제한해달라는 국민청원을 올릴 정도로 악화됐다. 윤석열 찍어내기가 기름을 부었다. 법은 선택적으로 작동하고 절차는 편파적으로 진행된다. 정도와 상식을 벗어난 정권의 집단 이지메가 빚어낸 막장 드라마. 대중은 몰입하며 악역에 눈을 부라린다.정권의 자부심이던 K방역도 부실한 실체를 드러냈다. 병상이 씨가 말랐고 백신 확보는 긴가민가하다. 코로나 추경 66조8천억원 중 진짜 코로나에 집중한 예산은 없었다. 전문가 보다 정권의 운(運)을 믿은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번엔 신천지교회도 광화문 보수집회도 없다. 겨울 대유행을 일으킨 '살인자'는 누구일까. '5·18 정신 국정화(國定化)'도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결사반대한 정권이 '5·18'을 신성불가침으로 만들어, 자유의 절대적인 가치를 상대적으로 격하시켰다.정권의 실력에 실망한 여론이 정권의 폭주와 가벼움에 놀라고 정권의 자유민주주의를 의심하면서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형국이다. 놀라운 건 정권의 여유다. 여당 의원들은 윤석열을 대권주자 1위로 만든 여론이 윤석열을 삭제하는 순간 흩어질 것이라 장담한다. 추미애는 윤석열 사태에 중립적으로 침묵한 법관들에게 "아쉽다"고 역정을 내고, 대통령은 진선미의 임대주택 구설을 반복한다.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견고한 문재인 팬덤이다. 문재인 팬덤은 정권의 혁명수비대이자 장기집권의 전위들이다. 이들이 건재하는 한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하는 여론은 결정적인 순간에 포획하면 그만이다. 지리멸렬한 제1야당 국민의힘도 정권의 힘이다. 정권을 의심하는 여론의 폭등은 부담이지만, 여론이 고일 야당은 금가고 이가 빠졌다. 정부를 비난하는 여론은 고일 곳도 흐를 곳도 없이 말라버릴 것이다. 정권의 오늘만 보는 시각이다.4년 전 박근혜를 탄핵시킨 주역은 민심이었다. 세월호에 분노한 민심이 최순실 국정농단에 광화문에서 폭발했다. 민심이 광화문에서 범람하자 견고했던 박근혜 팬덤은 침묵하고 흩어졌다. 역풍을 우려해 탄핵시위 동참을 망설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뒤늦게 합류하고서도 정권을 접수했다. 120여석에 불과한 폐족 정당에게 굴러온 행운이다. 독점할 수 없어서 행운이다. 다른 시기 다른 정당에게도 반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대한민국 국민은 빵 달라 밥 달라 광장에 모인 적이 없다. 독재타도를 위해 민주화를 위해 국정농단 탄핵을 위해 모인다. 배고픈 건 참아도 자유와 민주와 정의의 결핍엔 목숨을 걸고 일어난다. 문재인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을 보는 순간 재현될 일이다. 지금 민주주의를 '문주주의'로 읽는 여론이 늘어나고, 진보 지식인들은 여론의 전방 곳곳에서 정권 비판의 참호를 파고 있다. 최장집은 정권의 전체주의를 걱정하고, 진중권은 진보의 몰락을 전망하고, 최진석은 '나는 5·18을 왜곡한다'며 저항한다.노무현은 원칙 있는 패배가 원칙 없는 승리보다 낫다고 했다. 하지만 노무현의 계승자들은 윤석열을 삭제하려 권력을 낭비하고, 친정권 공수처장을 세우려 권력을 과용했다. 절대권력으로 획득한 전리품이 노무현이 경멸한 '원칙 없는 승리'다. 문재인 정권은 노무현의 길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고, 요동치는 민심은 가볍지 않다./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0-12-14 윤인수

[이명호 칼럼]호텔 거주의 로망과 '호텔 거지'

청년들 값싼 임대료로 거주 시작활동 많아 거의 외부에서 머물러기본요소 갖춘 주거 제공 효과적원격근무·여가 즐기는 생활 가능'영끌' 내집마련보다 여유 더 많아호텔에 사는 것을 꿈꿔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호텔의 장점은 편리함이다. 호텔은 도심에 있어서 활동하기 편리하고, 청소나 세탁 같은 집안일을 덜고, 호텔 안에서 운동과 식사 등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바쁜 사람들에게는 장점이 많은 주거 형태이다. 그렇지만 비싼 것이 단점이라서 누구나 선택하기는 어렵다. '집 없는 억만장자'로 유명한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은 집 없이 호텔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 부자' 중에 한 명으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성공한 투자자이지만, 본업인 투자사업보다는 1억 달러를 투자해 싱크탱크를 설립하고 21세기에 맞는 지성적인 거버넌스 시스템을 개발하고 구현하기 위하여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재벌 총수, 유명 가수 등이 호텔에 사는 것으로 관심을 받기도 했다. 물론 단기 투숙 이외에도 비즈니스를 위해 몇 달, 몇 년 호텔에 장기 투숙하는 경우도 있다.몇 년 전에는 한 작가가 외국의 유명한 시인이 호텔 방에서 살다가 죽은 뒤에 그 방을 '시인의 방'으로 이름 붙여 문화상품으로 만든 사례를 들면서 방을 제공해줄 호텔을 찾기도 했다. 그 시인은 월세 만기가 되어 집을 빼라고 하여 호텔을 홍보해주고 살 방법을 찾고자 한 궁여지책이었지만, 여론의 눈총을 받았다. 그러나 부자들만을 위한 호텔이 아니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거주지로 유명해진 호텔도 많다. 뉴욕 맨해튼의 첼시호텔은 예술가들의 거주지로 유명해졌다. 값비싼 임대료와 작업실 부족으로 재능을 펼치기 어려운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첼시호텔은 20세기 미국의 문화예술을 견인한 근원지로 등장했다. 잭슨 폴락, 딜런 토마스 같은 개성파 예술가들의 활동 무대, 밥 딜런이 새로운 곡을 쓴 방을 찾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호텔이 되었다. 첼시호텔에 거주했던 가난한 예술가들은 그림을 교환하거나 재능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숙박비를 지불했다고 한다.이렇듯 호텔을 집같이 사는 것은 일반인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주거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청년들이 값싼 임대료를 내고 호텔 주거를 시작하자, 갑자기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서 '호텔 거지'를 양산한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아무리 정부의 주거 정책이 잘못돼서 집값이 올랐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주거정책을 반사적으로 비판하고 비꼬는 한계를 넘었다. 정부가 청년 주거지원 정책의 하나로 호텔을 개조해 임대주택을 공급한 것이기 때문에 호텔 주거는 아니고, 호텔형 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외국 관광객이 사라진 상태에서 경영이 어려운 호텔을 인수하여 주택으로 전환한 것은 오히려 신속한 행정의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서울에서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할 수 있는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7만∼35만원 수준으로 대로변에 있는 4~5평 방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일부에서는 주방과 세탁실 등 집에 필요한 요소가 없다고 비판을 하지만, 이는 호텔 주거의 장점을 모르는 소리이다. 호텔 주거는 비즈니스맨 등 사회 활동이 활발한 사람들의 주거 형태이다. 주방과 세탁실과 같은 개인 공간을 제거하고 공유 공간으로 제공하는 것이 공간 활용에 더 좋다. 개인에게 꼭 필요한 실내 공간을 더 넓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청년들은 활동이 많아 집보다는 외부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도심에 기본적인 요소만을 갖춘 주거를 제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주거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최근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원격근무를 하는 기업들과 직장인들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주거 문화가 등장하고 있다. 지역의 작은 민박집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달 살면서 일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주거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호텔이 원격근무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낮에는 일하고 일과 후에는 관광지로 퇴근(?)하여 여가를 즐기는 생활이 기능해졌다. '영끌' 내집 마련에 나서는 청년보다 더 많은 활동과 경험을 쌓으며 인생의 여유를 찾는 청년들에게서 희망을 본다./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

2020-12-07 이명호

[홍창진 칼럼]스스로 만족하기

삶의 환경은 선택아닌 찾아오는 것너무 불행감에 빠져 있지 마세요화만 내지 말고 가끔 격려도 필요가정은 누구 탓 할 수 없는 운명체아이는 부모가 버티면 행복한 존재한국 사회에서 만족할 만한 삶의 환경은 어느 정도일까요? 일류대를 나와 대기업에서 넉넉한 연봉을 받으면서, 자녀는 둘 정도 키우고, 부모를 비롯해 건사해야 할 군식구가 없으면(거기에 물려받을 유산이라도 조금 있으면) 만족할 만한 수준인가요?요즘 들어 남편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다는 40대 주부가 있습니다. 초등학생 아이가 둘이 있어서 교육비는 엄청나게 드는데, 집 한 채 없이 전세대란을 면치 못하는 자기 신세가 너무 불안합니다. 남편은 잘 오르지도 않는 박봉을 몇 년째 받으며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나마 업무량도 많아 야근하는 날이 빈번합니다. 퇴근해서는 잠깐 아이와 놀아주고 바로 잠에 곯아떨어지곤 하지요.남편이 잘못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남편 얼굴만 보면 마음 안의 불안과 세상에 대한 원망이 모두 짜증이 되어 튀어나옵니다. 이 나이 먹도록 돈도 못 벌고 뭐했나 싶고, 나는 이렇게 걱정이 태산인데 남편은 무사태평인 것 같아 화가 더 치밀어 오릅니다. 남편 잘못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고 한편으론 남편이 측은하지만, 아이들 교육비에 집 걱정을 하다 보면 어느덧 남편에게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체 못하는 감정 때문에 스스로도 힘들지만 남편에게 자꾸 상처를 주게 되고, 아이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 됩니다.그런데 저는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만일 자기 소유의 집이 있고 남편 직장이 월급 많이 주는 대기업이라면 이 주부의 화가 가라앉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궐 같은 집에서 많은 돈을 가진다 한들 또 다른 이유로 화가 날 것이 뻔합니다. 이 주부의 화는 불안한 전세나 남편의 박봉 때문이 아니라,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의 환경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병든 시부모를 모시는 건 물론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까지 수발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때 아닌 사고로 남편이 장애를 입기도 하고 아이가 심각한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불행을 토로하며 사는 건 아닙니다. 내가 처한 환경이 모든 화를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삶의 환경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입니다. 부모가 나를 찾아와 만나고, 배우자도 그렇게 찾아와 만나고, 자녀도 그렇게 찾아와 만나게 됩니다.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불행한 일도 찾아오고 행복한 일도 찾아옵니다. 지금 내 처지는 내 선택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나 자신을 원망할 이유도 남편을 원망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도 화를 낼 남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화가 치밀어도 화를 낼 대상이 없는 가정이 세상에는 참 많습니다. 산에서 도를 닦으며 사는 게 아닌 바에야, 화가 날 때 화를 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화냈다가 뒤돌아서 좀 미안해 하고, 어느 날은 또 기분 좋은 순간을 맞기도 하고…. 그렇게 지지고 볶고 사는 것이 재미 아닐까요? 그러니, 너무 불행감에 빠져서 우울한 상태에 머무르지 마십시오.자기 처지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인 이상 욕심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화내고 싸우고 울게 되더라도, 이것이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과정, 누구나 겪는 삶의 일부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화만 내지 말고 가끔 격려와 칭찬이라는 깨소금도 가미하면 좋겠습니다. 돈 못 벌어 오는 남편이 짜증 나서 화는 너무 자주 내는데, 가끔 그가 불쌍하고 측은하게 느껴질 때는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습니까? "남편, 요즘 고생이 많아. 힘내!" "우리 식구는 당신 덕에 사는 거야. 몸조심해." 열 번 화를 냈어도 이런 격려 한마디로 우울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처지를 버텨 낼 힘이 생긴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최근 들어 많은 부부들이 이혼을 합니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결국 서로 탓만 하다가 가정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운명체입니다. 부부는 선택일 수도 있지만, 운명으로 만난 아이는 부모가 그저 버텨주기만 해도 행복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11-30 홍창진

[방민호 칼럼]미국 대통령 선거를 다시 생각한다

이념 무관 상류층-중하층 '양극화'트럼프가 얻었다는 7300만표 의미총선치른 우리 사회의 문제와 겹쳐부동산값 급등·전세난·코로나 타격'중하층 불만 고조' 간과해선 안돼미국에서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국민적 투표가 치러진 날은 지난 11월 3일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근 20일이나 지났는데, 과연 차기 대통령은 정해졌다고 할 수 있는가? 공중파나 주요 언론을 보면 확실히 조 바이든이 차기 대통령 당선자인 것 같은데, 유튜브의 '불만' 많은 채널들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확실히 이상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늦어도 하루나 이틀쯤 되면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지 정해지고 승자와 패자 사이에 어떤 정리 신호들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신에 트럼프 현 대통령은 이번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며 우편투표다, 도미니언이 어떻다 하고 줄리아니, 파웰 같은 거물급 변호사들을 동원하여 연일 '비정상적인' 공세를 퍼붓고 있다. 어느 쪽이 맞고 뭐가 맞는 건지 모를 지경이라고나 해야 할까? 분명 조 바이든의 승리겠지 하면서도 또 어떤 언론인 말을 들으면 트럼프가 지금 이렇게까지 하는 것도 어느 시점까지는 아주 비난받을 일만은 아니라고도 한다. 미국 헌법상 부여된 문제제기 절차요 기간이라는 것이고, 왕년에 부시 대통령이 재선될 때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면서 말이다.승부가 어느 쪽으로 낙착이 되든 필자는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가 얻었다는 7천300만표라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사실 트럼프는 뉴욕타임스나 CNN 같은 주요 언론은 물론이요, 이번에는 폭스 티비로부터도 지원을 받지 못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 이런 정도의 득표가 가능했단 말일까? 더구나 이 득표수는 그가 힐러리 클린턴을 이길 때 얻었던 표보다도 어마어마하게 많다.트럼프라면 그가 도전할 때나 처음 당선될 때 공화당에서조차 빈정거리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많은 득표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사실 언론에 비친 트럼프는 그 과장스러운 표정하며 몸짓에, 신뢰가 가지 않는 '워딩'으로 인해 광대나 광인 같은 느낌을 주기까지 하는데, 이런 사람을 공화당 후보로 다시 옹립한 것은 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치고 그 많은 사람들이 지지 투표를 한 것은 결코 예삿일이라 할 수 없다.여기에는 점점 양극화되는 미국인들의 속사정이 개입해 있다고 해석해 볼 도리밖에 없다. 그런데 이 양극화는 흔하고 '전통적인' 좌우 대립,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아니라, 이념과 상관없이 부와 권력을 누리는 상류계층, 기득권층, 부유층과 그로부터 소외된 중하층 국민들 사이의 양극화라는 점에 초점이 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이제 백인들도 많은 경우 가난하고 히스패닉도 어떤 의미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할 수 있는 토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주요 언론과 미국인들의 저층, 밑바닥 민심은 심각하게 괴리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이민자들이나 이방인을 향한 인권, 평등권 보장이나 환대의 원리도 중요하지만 당장 장벽을 헐음으로써 입는 경제적 타격과 정치적 소외감을 이미 많은 미국인들이 느껴왔다는 것이다.이러한 미국 선거의 의미는 바로 올봄에 총선을 치른 우리 사회의 문제와 겹쳐지는 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총선은 지금 여당의 압도적 승리로 귀결되었지만 바로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올라가고 전세난이 일고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커짐에 따라 중하층 국민들의 비판과 불만이 현저히 고조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이런 불만이 곧 상대 진영의 지지로 옮아가지 않는 것은 이 비판, 불만의 의식이 여야, 보수나 진보, 같은 전통적 대립축을 중심으로 형성되지 않은 것임을 의미할 수 있지 않겠는가?눈을 감아도 떠도 2020년 연말을 고통스럽게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모두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풀뿌리를 위한 일에 나서야 할 때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20-11-23 방민호

[윤인수 칼럼]'대상화(對象化) 정치'로 몰락한 트럼프

이익 도구로 쓰다 실익없고 걸리적대면 폐기포용·결속 유지 美 연방민주주의 정신 배신文정권, 단 한명 국민도 권력의해 분리 안돼정권 연장위해선 통치 전면전환 결단할 때다지난 5일 대법원은 전 남편을 살해 유기한 고유정의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하지만 여론이 주목했던 의붓아들 살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검찰은 정황 증거를 댔지만 대법원은 "피해자가 함께 자던 아버지에 의해 눌려 숨졌을 가능성이 있고, 고의에 의한 압박으로 사망했더라도 피고인이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이 피해아동의 사망 원인을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증거 재판주의' 원칙이다.이 판결을 접하고 연평도에서 북한군에 사살된 공무원으로 생각이 번졌다. 해양경찰청은 지난달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피격 공무원의 '월북'을 실질적 '사실'로 확정했다. 월북 판단의 근거는 인터넷 도박 몰입, 도박채무, 꽃게 구매 대행 자금 횡령 등이다. 모두 정황 증거다. 그의 월북을 의심할 여지 없이 증명할 증거는 없다. 대법원 판례대로라면 피격 공무원은 '고의적인 월북을 단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다.그의 월북 여부가 논란이 되면서, 정작 북한군에 사살된 대한민국 국민은 실종됐다. 더 심각한 건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명확한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 자국민을 이적행위자로 '판단'한 사실이다. 증거가 없으면 무죄이듯, 증거가 없으면 월북이 아닌 원인미상의 사고에 머물러야 맞다. 더군다나 우리 국민, 그것도 공무원 아닌가. 어쩌면 그렇게 냉정한가. 그는 정황만으로 월북자로 대상화, 타자화돼 대한민국에서 분리되는 중이다.피격 공무원뿐 아니다. 최근 정권에 불편한 집단과 현안들을 대상화시켜 사회와 공론장에서 분리하려는 의도와 의지를 드러낸 여권 인사들이 속출했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광화문 집회 주동자는 살인자"라고 단정했다. 정권에 반대한다고 해도 '주동자'들은 '국민'이다. 코로나 방역을 방해한 사회적 도덕적 책임이 있다 해도 국민이 맞다. 사회적, 도덕적 비난이라는 정황만으로 '살인자'로 대상화해 분리할 수 없다. 박원순·오거돈 시장의 성 스캔들로 실시되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성인지감수성에 대한 집단학습 기회"라고 한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의 발언도 잔인하다. 회복이 불가능한 피해 여성들을 시민 집단학습의 도구로 대상화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서다. 정권에 호의적인 내재적 태도로 여가부 장관이 지켜야 할 여성은 타자화됐다.당·정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하는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당·정은 전 정권 적폐 수사 검사 윤석열에 환호했고,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당부하며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정작 윤석열이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나서자 검찰개혁의 적으로 규정한다. 윤석열은 전 정권 사냥을 위한 도구였다가, 이젠 정권을 위해 없애야 할 표적이 됐다. 검찰총장은 자율성을 잃고 식물이 됐다. 당정은 윤석열을 도구로 쓰다가 표적으로 세워 분리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 지목했다. 검찰개혁의 본질인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실종됐다.도널드 트럼프는 모든 반대자들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해 분리시켰다. 이익이 되면 도구로 쓰다가 실익이 없어지고 걸리적대면 폐기했다. 서슴없이 인종을 차별하고 계층을 분리했다. 반대자들을 표적으로 대상화 시켜 철저히 걸러내 지지층의 순혈성을 고도화하는 통치술이다. 포용과 결속으로 유지되는 미국의 연방 민주주의 정신을 배신했다. 그 결과 측근들과 가족들이 줄줄이 그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회고록을 출판하고, 사망한 공화당원 매케인이 애리조나를 민주당에 바치고, 공화당 원로와 의원들은 승복을 종용한다. 국민을 도구적 유용성으로 분리하는 대상화 정치가, 대상들의 역습에 의해 종식됐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도 흔들릴 것이다.문재인 정권은 사람을 이념보다 앞세우는 진보정권이다. 단 한 사람도 국민의 권리와 보편적 인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평생을 헌신했다는 사람들의 정치적 결사체다. 이런 역사적 이념적 배경을 가진 정권에선 단 한 사람의 국민도 권력에 의해 분리되면 안 된다. 정권 유지와 연장을 소망한다면 통치행위의 전면적인 전환을 결단할 때다./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0-11-09 윤인수

[윤상철 칼럼]민주주의를 지키려면

민주주의는 문화적 전파이든국제적 유인이든, 내부적 투쟁이든쉽게 제도로서 복사될 수 있지만이를 변함없이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내·관용·자제·희생등 절대 필요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당당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취업은 어렵고 미래는 불투명한 헬조선에 산다는 그들이 결코 주눅들고 억압된 존재들은 아니다. 아마도 그들이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낳은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민주화가 가져온 자유와 평등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잘 꾸려져야 할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더 많은' 부를 '탐욕'으로 비판하고 절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더 많은' 민주주의는 지극히 당연하게 여긴다. 경제는 상대적이어서 더 많이 추구할수록 더 큰 착취와 불평등을 낳지만, 민주주의는 무한히 추구할 수 있는 화수분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민주주의 역시 이해와 생각이 다른 사람집단 간의 관계이기 때문에 자제와 균형이 이뤄질 때에 유지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과도하면 사회적 균열과 붕괴를 낳기 마련이고 민주주의 없는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사람들은 잘 설계된 헌법은 전제주의를 막는 방파제이자 민주주의의 버팀목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현실 정치에 의해 자주 배반당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을 기반으로 잘 설계된 헌법에도 불구하고 링컨시대의 행정부 권력집중과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낳았다. 그 고귀한 헌법은 트럼프의 인종차별과 비도덕적 포퓰리즘을 막지 못했다.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히틀러에 의해 유린당했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헌법 역시 바르가스 군사독재정권과 페론이즘에 의해 짓밟혔다. 필리핀은 마르코스 독재에 의해서, 한국은 이승만체제나 유신독재에 의해 얼룩졌다. 2차 대전 이후 신생 공화국들은 미국 헌법을 교본으로 민주주의적인 헌법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유지하지 못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그들의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헌법의 불완전성과 다의성을 지적한다. 나아가서 헌법을 기계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법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고 한다. 오히려 헌법보다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완충적 가드레일의 역할을 하면서 일상적인 정쟁이 전면적인 분열과 내전으로 치닫지 않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 첫번째 규범은 상호관용이다. 정치경쟁자가 헌법을 존중하는 한, 그들이 존재하고 서로 권력경쟁을 벌이며 사회를 통치할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정치적 경쟁자를 적폐세력 혹은 주사파 친북세력으로 매도하거나, 상대 세력을 배제한 새로운 정치구도를 희망하는 한 이들 사이에 더 이상 민주주의는 없다. 상대세력에 대해 반민주적 폭력이나 대중선동과 길거리정치로 대응하는 한 민주주의는 유지되기 어렵다. 두번째 규범은 제도적 자제이다.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 혹은 법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입법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태도이다. 제도적 자제는 민주주의보다 더 오래된 정치적 전통이기도 하다. 영국의 왕은 총리임명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수당의 대표가 맡는 관습에 따랐다. 미국의 대통령은 두 번의 임기를 넘지 않는 관습을 지켜왔다. 만일 헌법을 기계적으로 해석하여 제도적 특권을 함부로 휘두르는 이른바 '헌법적 강경태도'를 견지하면서,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고자 한다면 그 결과는 파국적이다. 민주적 헌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행정, 사법, 입법의 3권이 균형과 견제를 유지해야 한다. 의회를 장악한 야당이 제도적 특권을 활용하여 대통령 탄핵을 모의하고, 사법부의 임명을 거부하고, 행정각료의 임면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면, 입법부와 사법부를 장악한 여당이 헌법적 의무보다 대통령의 불법적 행위를 묵인하고 오히려 그 권력 강화에 집중한다면, 그를 위해 입법부의 제도적 관행을 어기고 상대가 반대하는 법률을 일방적으로 세우려 든다면 민주주의는 유지되기 어렵다. 대통령이 행정명령과 사면권을 남용하고 정파적으로 대법관을 임명하려 든다면, 정치인 법무장관이 준사법기관인 검찰을 수사지휘권을 들어 핍박한다면 제도적 자제를 넘어선 것이다.민주주의를 지탱하게 하는 사회적 규범은 제도정치를 넘어서서 시민사회의 영역에서도 필수불가결하다. 사회집단 간의 상호관용이 없다면 그들의 지지에 기반을 둔 정당 간의 상호관용도 존재하기 어렵다. 민주적으로 제도화된 사회에서 자제되지 않는 길거리의 정치와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 정체성의 정치는 대통령 등 행정부와 입법부의 자제력을 상실케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문화적 전파이든, 국제적 유인이든, 내부적 투쟁이든 쉽게 제도로서 복사될 수 있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내, 관용, 자제, 희생 등의 가치규범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20-11-09 윤상철

[전호근 칼럼]청년이라는 광원(光源)

이웃집에 '위로' 응원 문구 붙이고농촌에서 문화예술 즐기고 싶다는하고싶은게 많은 1999년생 이야기그는 실패 두려움 없이 빛을 내며 생각대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두 학기 째 학생 없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외로움마저 느끼던 차에 한국문화의집협회에서 '생활 인문 릴레이 포럼'에 참석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이야기 나눌 주제가 무엇인지 살펴봤더니 '사회적 유대, 너를 쬐어야 한다'는 제목이 보였다. 바로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다 싶어 냉큼 달려갔다. 지난 주 목요일 저녁이었다. 문화컨설팅 바라의 권순석 대표가 사회를 맡고 마을운동가 임선이 선생, 그리고 1999년생 해금연주가 곽도연 청년이 초대 손님으로 참여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임선이 선생은 빛고을 광주에서 오랫동안 마을 만들기 운동을 실천해온 분이다. 뒤에 전해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지난 2005년 광주 북구문화의집에서는 '문흥동 살림살이전'을 열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집 구석구석을 뒤져서 발견해 낸 모든 것들을 전시했는데 그 중에는 오랜 세월 작성해온 가계부도 있었다. 거기에는 월급이 얼마에 육성회비는 얼마, 버스요금과 전기요금, 두부와 콩나물 가격이 얼마였는지 모두 기록돼 있었는데, 1980년 5월에는 유독 버스비 지출 항목이 없었다고 한다.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이 버스를 무료로 운행했다는 사실을 증언한 셈이다. 그곳이 폭동의 현장이라고 보도한 당시 언론보다 평범한 시민의 가계부가 더 정확하게 광주의 진실을 기록한 것이다.대구에서 올라온 곽도연씨는 '동거, 남(=타인)'이라는 이색적인 이름의 인문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지난 7월부터 집에 돌아오면 힘내라는 응원 문구를 적은 쪽지를 이웃집 문에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선택한 문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말한 "내 기분은 내가 정해. 나는 오늘 행복으로 할래", 곰돌이 푸가 말한 "매일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와 같은 명언들이었다. 때론 그날 자신을 위로해주었던 노랫말을 적기도 하고 그날 자신의 집에서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과일이나 음식을 적어놓기도 했다.처음에는 반응이 없었다가 어느 날 쪽지에 쓰인 문구로 위로받았다는 메시지가 왔다. "저도 타지에서 올라와 살고 있어서 응원 문구에 크게 공감했어요.", "오늘도 쪽지를 보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 반응이 오자 이번에는 신기하게도 곽도연씨 자신이 위로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웃과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택배를 보관해주거나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이 실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그는 우리가 농촌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예전에 농촌에 계시는 어르신들은 한 분 한 분이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르신들이 하는 고추장 담그기나 종이를 꼬아 장식품을 만드는 일 등은 그 어르신만 가지고 있는 소중한 기록이라는 이야기였는데 그 말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농촌에 계시는 어르신 한 분이 사라지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그분들만 알고 있는 삶의 비결과 순박한 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찾아간 농촌은 우리 같은 청년을 필요로 했습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그 곳을 저희는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그는 앞으로 농촌으로 가서 그곳의 어르신들에게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고 함께 문화 예술을 즐기는 농촌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나는 그날, 만들어진 마을에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만드는 일을 꿈꾸는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었고,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청년은 스스로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대는 제 스스로 빛을 내는, 청년이라는 이름의 광원(光源)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11-02 전호근

[이명호 칼럼]불안을 키우는 사회와 인공지능

인터넷 미디어·유튜브·블로그 등독감백신 위험성 자극 '클릭 장사'무한 가짜정보 공급기술까지 등장오도된 여론에 감염되지 않기위해'건강한 상식'이란 마스크 써야할듯코로나19로 민감한 때 불안감을 더해 주는 기사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독감(인플루엔자) 백신 접종 후 신고된 사망자가 매일 몇 명에 달한다는 기사가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부모님이 독감백신 접종을 하셔야 하는지, 어린 자녀들에게 안전할까 걱정하지 않는 국민이 없을 것이다. 기사를 볼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었지만 기사들은 내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하고 연일 같은 내용의 기사만 내보내고 있다. 달라진 내용은 지역, 연령의 차이뿐이다. 궁금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독감백신을 접종했는지다. 전체 접종자수 대비 사망 신고자수를 알면 각자 나름대로 위험성을 판단할 수 있다. 23일 기준으로 사망 신고자수가 48명에 달했다. 만일 접종자수가 1만명이라면 위험률(사망률)이 0.48%이기 때문에 많이 염려해야 한다.그런데 기사들을 보면 한결같이 전체 접종자수가 나와있지 않다. 인터넷 검색으로 간신히 찾아보니 23일 기준 예방접종 건수는 1천427만건이다. 그럼 위험률은 0.00034%가 된다. 우연히도 완벽한 품질관리의 기준이 되는 6시그마(100만개 중에 3.4개의 불량률)와 일치한다. 물론 의약품에서 이 수치도 높은 수치이다. 그러나 질병관리청은 역학검사를 한 사망자 26명 가운데 6명은 사인이 백신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나머지도 백신과 관계가 거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예방접종 피해 조사반과 예방접종전문위원회를 개최하여 역학조사 결과를 검토한 결과, 예방접종을 지속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국민에게 당부하였다. 아울러 알게 된 정보는 지난해 독감백신 접종 뒤 7일내 사망 신고된 노인이 1천500명에 달하고 매해 독감으로 3천명 정도가 사망한다는 것이다.내가 내린 결론은 올해 독감백신이 다른 해와 다르게 위험하지 않으며 독감 사망자가 코로나19 사망자 457명보다 많다는 것이다. 물론 위험률에 대해 사람마다 불안을 느끼는 정도는 다르다. 그 사망자 한 명이 나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우리는 매해 교통사고 사망자 3천~4천명,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 1.6명, 산업재해 사망자 1천명에 달하여 OECD 평균보다 2배 정도 높은 최상위 위험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에 비하면 독감백신 위험률은 새발의 피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독감백신이 위험한 것으로 인식을 시키고 있다. 둘 중에 하나이다. 과학적 사고력이 결여되어 있거나, 의도적으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거나다. 그런데 이런 불안 장사를 본업으로 하는 집단은 따로 있었다. 인터넷상의 수많은 미디어, 유튜브, 블로그, 댓글 등이 대중을 자극하는 클릭 장사를 하고 있는데 언론이 중심을 잃고 이 판에 끼어들고 있다.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시각에서 이슈를 검증해줘야 하는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인공지능 기술은 더 걱정스럽다. 무한의 가짜 정보를 공급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연구소 'OpenAI'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작문 프로그램 GPT-3는 사람과 같은 수준의 작문(아직 영문), 대화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GPT-3 봇은 3천만명이 사용하는 인기 채팅 사이트 'AskReddit'에서 1주일 동안 1분에 한 번씩 댓글을 달았지만 아무도 사람이 아닌 봇이 작성한 글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자살을 주제로 한 한 댓글에는 "자기를 지지해 준 부모를 생각하면 자살을 포기하게 된다"는 내용의 글을 써 사람들이 157회 찬성 표시를 하였다. 고객 상담용으로 사용하면 사람이 응답한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댓글 조작에 사용되면 단순히 퍼나르는 매크로는 저리가라 수준으로 맥락에 맞게 지속적으로 거짓 메시지를 내면서 여론을 오도할 수 있다. 기술의 발달과 감시, 끊임없는 경주에서 인간이 지게 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신뢰하는 언론을 찾게 될 것인데,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이 남아 있을까 걱정이다. 여론이 분열되고 혼란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감염병의 일차적 방어책은 마스크라는 것이 검증되었듯이, 각자 오도된 여론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건강한 상식'이라는 마스크를 써야 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

2020-10-26 이명호

[홍창진 칼럼]폭력의 원리

사랑이란 명목 폭력행사 비합리적자기생각만 옳다는 이기적 욕심뿐일방적인 강요 지나친 소유욕으로심하게 화낸다면 자신 돌이켜보고상대하기전 마음부터 바로 잡아야 40대 가장의 사연입니다. 1남 2녀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두 누이에게 부러움을 샀습니다. 단지 아들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로부터 편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항상 하나뿐인 아들을 두고 "집안의 대들보", "가문을 책임질 사람"이라며 사교육은 물론 밥상에서조차 차별해서 잘해주었습니다.하지만 그는 그런 아버지가 무서웠습니다. 아버지는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지만 "남자가 이 것도 못하느냐", "친척들 볼 낯이 없다"며 비난을 일삼았고,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시엔 심하게 체벌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런 아버지가 두려웠고, 자신만 특별대우를 받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성년이 되어 군대에 가게 되었을 땐, 단지 아버지와 떨어져 살 수 있다는 이유로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남들은 다들 괴롭다는 군대생활이 그에겐 오히려 휴식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결혼을 했고, 분가를 하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나는 아버지처럼 자식을 억압하는 부모로 살지 않겠노라'고 굳게 결심했습니다.그런데, 어느 명절날 부모님 댁에서 차례를 지내던 차에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버지가 어린 손자에게 절 하나 제대로 못하느냐며 손찌검을 하려 들었던 것입니다. 평생을 아버지에게 억눌려오던 아들은 그 순간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몰라도 제 자식에겐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난생 처음 아버지에게 화를 낸 아들은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그 길로 문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다시는 본가에 오지 않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한 채 말입니다. 그는 지금 앞으로 어떻게 아버지를 대해야 할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가부장적 문화가 잔존한 한국의 가정에서 흔히 있을 법한 일이라 간과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심각하게 다뤄야 합니다. 어느 경우에서든 폭력은 훈육이 될 수 없습니다. 가장, 즉 가해자의 자기중심적인 아집일뿐더러, 나아가 인격 형성에 큰 장애를 줄 뿐입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다며, 혹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태도로 아무 일도 아닌 듯 덮고 넘어가서는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게 됩니다. 한 번 발생한 폭력은 대부분 습관으로 고착되어 더 큰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가정폭력의 해결책은 첫 번째가 '격리'입니다. 그다음 가해자의 치료가 따라야 합니다. 만일 가해자가 치료를 거부하면 격리는 장기화할 수밖에 없는데, 때로는 격리의 장기화 자체가 치료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가해자에게 종교가 있다면, 가족이 함께 성직자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폭력 가해자의 상당수가 남의 말을 잘 안 듣지만, 믿는 종교의 성직자의 말은 곧잘 듣기 때문입니다.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그저 자기 생각만이 옳다는 이기적 욕심의 결과일 뿐입니다. 자기 생각만이 절대 진리인 사람에게 자녀는 소유물에 불과합니다. 내 소유물 중 최고인 자식이 자기 말을 안 들으니 용서가 되질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해 폭력까지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주는 아니더라도 폭언 혹은 폭력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 당시는 분명 아이를 위한 것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내 욕심, 나를 중심에 둔 생각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간혹'은 병이 아니지만 '상습'은 병입니다.부부 사이의 상습 폭력, 연인 사이의 데이트 폭력도 이유는 하나입니다. 어느 한쪽이 사랑한다는 감정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자기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사랑이 아닌, 소유하려는 욕심에서 생기는 것입니다.살다 보면 자제력을 잃고 화를 내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입니다. 상대가 잘못했고 정의롭지 못했다고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은 것뿐입니다. 화를 내는 직장상사, 술자리에서 언성을 높이는 친구들, 만나기만 하면 비난 일색인 가족들…. 그들 모두 내 생각이 옳고 내 마음에 안 들어서 상대에게 상처를 줍니다.살면서 지나치게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상대를 바라보지 말고 나 자신을 돌이켜봐야 합니다. 혹시 자기애와 자기연민에 빠져서 멀쩡한 사람에게 상처나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살펴보길 바랍니다. 그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는 욕심, 내 생각만이 옳다는 아집이 도사리고 있다면 타인을 상대하기에 앞서 내 마음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10-19 홍창진

[방민호 칼럼]북한에서 열린 심야의 열병식

김정은의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인민들에 고맙고 미안하다는 표현북한, 수해·코로나·경제난 '삼중고'뭔가 절실히 원한다는걸 짐작케 해측은지심 솟는것은 어찌할 수 없어며칠 전 북한에서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열병식이 열렸다. 자정부터 시작된 이 심야의 열병식은 북한의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한다. 10월10일은 북한 최대의 명절 가운데 하나다. 이상한 일이지만 말이다.필자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이 굉장한 열병식을 보고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광경은 확실히 과거의 틀에 박힌 군중행사와는 다른 면이 있었고 북한 문제에 관하여 여러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북한의 중앙방송은 한밤의 평양 전경을 카메라를 천천히 옮겨 가며 충분히 보여주었다. 카메라에 비친 평양의 고층 건물들과 널찍한 거리는 우리가 보아오던 평양과는 많이도 달랐다. 비록 건물 층층이 불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사회주의' 체제답게 빈틈없이 구획된 엄숙하고도 장엄한 도시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행사를 기다리는 병사들과 인민들의 엄숙한 모습을 몽타주식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열병식 행사를 일층 장엄하고도 엄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 방식은 마치 일본의 NHK가 일본 전국 각 절의 신정(新正) 타종을 카메라를 옮겨가며 비추어 주는 것과도 같았다. NHK가 그런 방식으로 일본이 하나의 불국토임을 보여주고자 하듯이 이 열병식은 북한 인민들이 하나임을 보여주고자 했다.한껏 연출된 숭고미를 배경으로 드디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무대'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반임을 상징하는 인민복을 입고 다니던 그의 회색 싱글 정장 차림은 그가 스위스 유학파 출신임을 새삼 생각하게 했다. 그의 좌우에 늘어선 다른 고위인사들도 군인들을 제외하면 모두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북한의 분위기를 사뭇 달라 보이게 했다.충격적인 것은 그의 연설 내용이다. 무엇보다 그는 연설 중에 한국인들을 향해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에게도 따듯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낸다"라고도 했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라고도 했다. 방송 중계 직후에 한 시사뉴스 토론자는 고 김대중 대통령이 연설 때마다 항상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하셨던 것을 떠올리기도 했다.사랑한다는 말은 어떤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갖는 법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지금 필자는 이 말을 비난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사실 우리는 북한의 지도자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대신 그네들 아나운서의 적대감 서린 거친 목소리를 듣는데 익숙하지 않았던가. 바로 얼마 전만 해도 해양수산부 소속의 한 공무원이 무슨 이유인지 북쪽으로 넘어갔다가 총격을 받아 사망하고 시신까지 불태워지는 일이 발생했었다. 그래도 북한 지도자가 진지한 어투로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이라고 하는 데는 그런 참혹한 사건을 접했던 때와는 또 다른 감회가 생겨남을 다 막을 수 없다.놀라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는 사상 최대의 수해를 당한 북한 인민들을 향해 고맙다는,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을 한껏 낮추는 어법은 우리가 아는 북한의 지도자들로서는 결코 익숙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북한은 주체사상이라는 것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지만, 역사의 주체는 인민대중이라 하면서도 수령은 그 인민대중의 뇌수라 하니, 바로 여기에 주체사상의 전체주의 이념으로서의 '독소'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 지도자는 그 '팔다리' 인민을 높이 떠받드는 연출을 통하여 이 사상의 약점을 상당한 정도로 가려 놓은 것이다.필자는 어느 곳에서든 정치란 상당 부분 연출에 지나지 않는 면이 있다고 믿는다. 다만 새롭게 연출된 이 심야의 열병식은 지금 북한이 수해와 코로나19, 경제난의 극심한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음을, 그들이 뭔가 절실히 원하는 것이 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비록 독재 체제, 전체주의 국가이지만 측은지심이 솟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어쩌랴. 같은 단군의 자손들인 것을. 우리 또한 북한 문제를 놓고 너무 싸우지만 말고 현명한 타협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평화도 살리고 그 사회의 민주화도 앞당길 수 있는./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20-10-12 방민호

[윤인수 칼럼]상자 속에 가둘 수 없는 민심

스키너 "조작된 조건 인간행동 통제 가능"진보세력, 보수 부정적 시그널로 선거 승리文정권, 문팬 지지·보수현실 안주할때 아냐'적폐' 실망한 대중들 상자밖 세상 의심 시작지난 1월부터 국민은 정부의 방역정책에 순종하고 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의 공포로 정부의 통제를 거부하지 못했다. 인적이 드문 공원에서 마스크를 벗었다가 아내에게 혼난 적이 여러 번이다. 100m 이상 떨어진 사람을 의식해 마스크를 쓰라는 아내의 지적은 논리보다는 사회적 분위기, 감성의 영역이다. 감염 사정거리를 벗어났다는 논리적 반박이 먹히질 않는다. 자율방역이라는 자유의지를 주장하기엔 집단감염의 공포감이 워낙 크다.하지만 개천절과 한글날, 차벽으로 봉쇄된 광화문 광장과 인파로 붐빈 행락지 풍경의 대조는 방역정책에 스며있는 정부의 선택적 의지를 직감케 한다. 정치 집회의 자유는 제한하면서 행락의 자유는 허용하는 정부의 선택적 방역행정은 방역의 논리가 아니라 정치적 논리에 따른 것이라는 의심이다. 온몸으로 민주주의 권리를 쟁취한 국민들이 행락의 자유를 즐기며 제한되는 집회의 자유를 무심히 넘긴다. 자유에 대한 정부의 취사선택을 국민이 수용하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이 코로나19로 가능해졌다.권력의 선택적 행동은 방역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 국방부는 월북이 의심되는 공무원이 서해를 표류하다 북한 수역에서 북한 해군에 의해 사살된 뒤 소각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국방부가 밝힌 최초의 진상과 멀어지고 있다. 정부는 월북을 추정하는 정황만 반복하면서, 북한이 부인하자 소각됐다던 시신을 찾느라 20여일간 서해를 수색 중이다. 명확한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도 그의 표류는 실족이 아닌 월북이라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정부의 선택적인 정보 공개에 피살 공무원의 인간적 존엄은 무너졌다.검찰개혁에 올인한 권력의 전략적이고 선택적인 법무행정은 사정기관의 본질을 해치고 있다. 조국 수사팀과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팀이 해체되고 흩어진 사이, 그 자리를 채운 수사팀은 추미애 장관의 결백을 밝혔다. 하지만 추 장관은 '옆집 아저씨'라던 당직병에게 고소당했고, 윤미향 사건 수사는 지지부진하고, 사모펀드 비리는 고개를 쳐들고 있다. 법원은 교사 채용 비리를 주도한 조국 동생보다 하수인에게 더 높은 처벌을 내렸다. 권력의 검찰개혁과 법원독립이 이룬 결실에 국민 절반은 환호했지만, 좌절하는 절반의 집회는 막혔다.행동심리학의 대가 B.F.스키너는 역작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에서 조작된 조건으로 인간의 행동을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상자 속에 갇힌 동물들에게 조작된 조건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강화하면서 반응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실험적 결과를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자유, 존엄과 같이 증명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검증된 조작적 수단이라는 얘기다.동물들을 외부적 조건으로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스키너의 상자'를 완벽하게 인간계에 구현한 국가가 북한이다. 전체 인민을 수령주의 체제에 가두어 놓고 처벌과 보상이 수반된 세뇌교육으로 철저히 통제하는 사회다. 노엄 촘스키가 행동주의 심리학과 스키너를 "전체주의 사상의 지지자들"이라고 우려한 이유이다.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권력의 선택과 집중은 권력 자체의 권위와 대중매체의 해석을 통해 대중들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2016년 가을과 2017년 봄 사이 박근혜 탄핵정국은 한국의 진보와 보수를 향한 대중의 인식에 결정적인 조작적 조건을 형성했다. 대중은 적폐의 굴레를 쓴 보수를 부정하고, 개혁의 월계관을 쓴 진보에 긍정하는 스키너의 상자에 갇혔다. 진보 권력은 상자 밖에서 보수에 대한 부정적 시그널만 주면 대중이 알아서 정권지지와 선거승리로 반응했다.하지만 자유와 존엄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과학적 검증을 초월한 본성이다. 문재인 정권은 조건 없는 '문팬'들의 지지와 적폐낙인에 신음하는 보수의 현실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정권 스스로 쌓은 적폐에 실망한 대중들이 상자 밖 세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존엄은 상자에 가둘 수 없다./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0-10-12 윤인수

[이남식 칼럼]코로나 시대의 공연예술

젊은이들 '바이털 사인' 무대 기획생체신호 통해 다양한 형태로 전달아이돌그룹 가상무대 글로벌 공연예술·기술 결합 새로운 시장 개척정부·기업, 든든한 미래 위해 투자코로나19 감염병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택트'의 시대라 할 만큼 모든 만남이 화상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비대면 회의, 비대면 교육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화상회의인 줌(ZOOM)을 사용하다 보면 쉽게 피로해지는 '줌 피로'(ZOOM fatigue)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다수의 인원이 접속하는 데 대한 어려움, 제한된 화면크기, 영상과 소리의 시차, 음질불량 등으로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비대면의 상호소통을 위해서 얼마나 거리감을 느끼지 않고 실제감(presence)을 느끼느냐에 따라 피로도가 줄어들 수 있게 될 것이다. 대면의 상황에서는 우선 시야에 제한이 없으며 상대방의 호흡, 몸짓(제스처) 등 서로 교감하는 데 필요한 디테일한 정보들이 현재의 화상회의 시스템에서는 전달되지 못하기 때문에 대면에 비하여 상호소통의 질이 저하되고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보다 실제감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을 통하여 향후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비대면의 만남이 대면 못지 않은 품질을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 특히 공연예술 분야는 코로나로 인하여 가장 타격을 받고 있는 분야가 되었으며 수많은 공연예술인들이 무대를 잃고 있다. 연극, 뮤지컬, 무용, 음악공연 등 실제에서 생생한 만남을 통하여 무대와 객석이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내는 감동의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 물론 유튜브 등의 비디오스트리밍을 시도해 보기는 하나 현장의 감동을 전달하기에는 아직 부족함을 모두 느낄 수 있다.이러한 때에 젊은 예술인들과 연구자들이 함께 힘을 합하여 '바이털 사인(Vital Signs)'이라는 무대를 기획하고 있다. 우리 몸의 다양한 생체신호-즉 심장박동을 나타내는 심전도,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뇌파, 감정의 상태에 따라 오르내리는 혈압과 맥박 그리고 호흡과 같은 생체 신호를 기존의 양상과 음향 외에 다양한 형태로 전달하며 한국과 미국의 예술인들이 원격에서 공연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으로 앞으로 비대면 공연의 형태를 바꿀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 보려는 노력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이외에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큰 화두 중 하나가 사이버-물리 시스템(Cyber Physical System)으로 가상의 세계에 실제와 동일한 평행세계를 구축하여 실제 세계의 현상을 미리 시뮬레이션하여 최적의 상태로 통제하고자 하는 시도인데 이미 항공기 시뮬레이터 등은 조종사의 훈련에 필수 불가결의 존재가 되고 있으나 일상에서는 많이 쓰이지 못했다. 최근에는 게임을 개발하는데 사용하는 게임엔진들이 발전되어 그래픽스 (realtime graphics) 기능과 다양한 물리엔진 (물체간의 충돌, 재질의 속성, 빛의 반사, 중력 등을 표현하는 기능)을 포함하고 있어 실시간으로 가상세계의 물체 (objects)들이 실제세계와 동일하게 작동되게 만들 수 있어 단순히 애니메이션처럼 미리 만들어진 영상이 아니라 가상세계의 물체들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으므로 마치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다. 따라서 가상의 세트에서 공연이 가능하며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아주 쉽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첨단 기술이 가장 빨리 실현되는 분야가 예술 특히 공연예술분야가 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아이돌 그룹들이 가상의 무대에서 유튜브를 통하여 실제보다 더 화려하고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어 공연장에서 만나는 것 보다 수십 배의 관중들이 전 세계에서 유료관람을 하게 한 시도는 공연예술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이러한 예술과 기술의 결합 시도는 새로운 큰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앞에서 설명한 '줌 피로'를 개선하는 노하우가 비대면 예술공연을 시도하는 가운데서 얻어지게 될 것이다. 관객과 교감을 더 잘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화면의 크기, 질, 영상과 음향의 시차를 줄이는 방법, 오감을 전달하는 기술 등 다양한 시도가 5G로 엄청나게 증가한 통신용량에 부가되면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실감통신, 실감영상 기술이 완성되어 21세기에 우리나라가 다시 도약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미래의 영상회의, TV 등을 우리나라가 주도하기 위해서는 이제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도 예술가들에게 투자하는 시대가 되어야 하겠다. 지금과 같이 어려운 코로나 시대에 무대를 잃고 어려움에 처한 공연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이야말로 정말 미래에 대한 든든한 투자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이남식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2020-10-05 이남식

[윤상철 칼럼]민주주의의 위기는 왔는가?

진보인사들 민주정권 부정적 평가가짜뉴스 민주주의 뿌리째 병들어네트워크로 권력장악 성공한다면사회적 문제해결도 포퓰리즘 변질정치적 감응력 갖춘 시민 필요할때민주주의는 항상 논란의 대상이다. 그 민주주의의 계기는 '총을 가진 사람들이 총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고, 그 동기는 적대적 투쟁에서 죽을 수 있는 공포로부터의 해방일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민주주의는 사회갈등의 근본적 해결책이기보다 잠정적인 타협에 가깝다. 그러나 근본주의적 한국사회는 인간과 사회의 한계와 잠정적 타협에 동의하지 못한다. 친일청산이나, 민주화운동 명예회복이나 잠정적 해결책에 동의하지 못하고 끝없이 진행된다. 제주 4·3사태, 광주민주화운동, 천안함폭침사건, 세월호, 대통령탄핵, 삼성불법경영승계 등 우리 역사와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어왔던 문제들이 해결되지도 종료되지도 않고 끝없이 반복된다. 지뢰밭을 걸어가는 형국이다. 운동장이 언제 어느 방향으로 기울지 모른다.한국의 민주주의는 근원적으로 착근하기 어렵지만, 현존 민주주의 역시 불협화음을 내면서 정치적 효능감을 감쇠시킨다. 이제 진보적(?) 민주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공공연히 그 내부로부터 나온다. 현 집권세력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진중권은 촛불정권이 연성독재로 전락했다고 질타한다. 진보좌파개혁세력과 정부에 몸담았던 한상진은 그들의 국가권력중심주의를 지적하고, 최장집은 인민민주주의적인 전체주의의 도래를 우려한다. 보수적 우파들의 견해를 차치하더라도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 위기와 파국에 다가가고 있는 듯 보인다.영국의 정치학자인 데이비드 런시먼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종말을 고하는가?'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 등 세 가지의 계기로 온다고 분석하고 있다. 첫 번째 징후는 쿠데타이다. 쿠데타의 원인으로는 이념적 좌우대립, 국가 기구 간의 분열, 정치적 파벌 간의 불신, 국책책임자의 부재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충분히 무르익은 나라에서도 군사적 쿠데타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현대의 쿠데타는 조용하게 다가올 뿐이다. 집권 세력들이 민주주의를 유예하는 행정부 쿠데타나 전략적 선거조작 혹은 부정투표 등이 있을 수 있다.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부여받은 세력들이 공약을 내세워 민주주의를 장악하기도 한다. 이러한 조용한 쿠데타를 수행하기에 민주주의의 절차는 썩 괜찮은 외양이 되기도 한다. 그로 인해 '민주주의를 지지하던 것이 오히려 가장 큰 위협이 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던 것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방어벽이 되는' 역설이 발생한다.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또 다른 계기는 핵전쟁이나 환경재앙 그리고 나치즘과 같은 대재앙의 위기로서 실존적 위협이기도 하다. 물론, 대참사가 낳는 세상의 종말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어날지 모르는 최악의 사태를 걱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실존적 위험 앞에서 생명과 제도가 저울질 될 때 민주주의는 소모품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이론가 일레인 스캐리는 "우리는 핵무기를 철폐하는 대신 의회와 시민을 제거해 버렸다"고 말한다.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 대한 공포 속에서 우리들은 자유, 인권, 민주주의가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정보권력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컴퓨터가 인간의 반응을 유도해 내는 능력이 오용되면 민주주의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편향을 조장하고자 특정 성향의 유권자들을 겨냥해서 기계가 메시지를 보내고 가짜 뉴스를 만들어 간다면 민주주의는 뿌리째 병들게 된다. 민주국가의 힘은 상의하달식 권위와 폭넓은 포용성의 적절한 결합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이 권위만을 내세워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와 포털 그리고 SNS와 같은 네트워크에 기반한 정보권력 리바이어던을 수하로 부리게 된다면 민주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 민주주의란 애초에 오랜 시간을 숙고하면서 의사결정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국가 혹은 정치권력이 더 많은 정보와 지배적 지위를 가지고 조정하면서 확증 편향에 물들은 군중의 '다수의 횡포'를 민주정치의 양념이라고 호도한다면 더 이상 기대할 수 있는 민주주의는 없다. 네트워크의 힘으로 사회운동에 성공할 수는 있지만 권력 장악에도 성공한다면 사회적 문제 해결도 포퓰리즘으로 흐르고 민주주의도 점차 쇠약해진다.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적극적이면서 성찰적인 시민들이 필요하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위기징후를 포착할 수 있는 정치적 감응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문제 해결에 무능하더라도, 당면한 사회적 문제 해결이나 진영적 독선을 위해 민주주의를 버리는 우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야말로 실존적 죽음을 부르는 사회적 공포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20-09-28 윤상철

[전호근 칼럼]덕분에

대중교통은 혼잡하고 밀폐된 공간코로나19가 전파되기 좋은 환경뜻밖에도 감염사례가 나오지 않아방역당국 아무리 예방 애쓰더라도 평범한 사람들 노력없이는 불가능지하철을 탔다. 퇴근 시간 무렵이라 꽤나 북적인다. 외신으로 보거나 전해 들은 다른 나라의 텅 빈 지하철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선을 스마트폰에 고정하고 있지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거나 드물게 책을 펼쳐 든 이들도 보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킬 수 없을 정도로 가깝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말이 없다.예전이라면 이런 풍경이 괴기스럽게 보였겠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마스크를 써 표정은 보이지 않고 눈만 보이지만 사람들의 눈빛에서 무언가 간절하게 기다리는 마음이 읽힌다. 아마 나 또한 같은 것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러고 보니 아직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나는 이게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중교통 수단은 대개가 혼잡하고 밀폐되기 쉬운 공간인지라 코로나19가 광범위하게 전파되기 좋은 환경이다. 이렇게 감염 위험이 큰 곳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중교통 수단에서 뜻밖에도 감염 전파 사례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그 까닭을 의료진이나 방역 당국의 노력에서 찾는 것은 합리적이다. 아울러 환경관리 노동자들의 노고 또한 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공간이 있다면 그 또한 누군가 사람들의 손이 닿는 곳을 일일이 닦아내며 소독을 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결국 혼잡한 대중교통 공간에서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는 것은 의료진과 방역 당국의 노력에 더해 환경 노동자들의 노고가 빛을 발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하지만 나는 감염이 일어나지 않은 데에는 이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바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노력이다. 방역 당국이나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아무리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애쓰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예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그러니까 생업을 이어가며 부지런히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은 자신과 이웃 그리고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마스크를 단단히 착용하고 방역 수칙을 잘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웃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많이 모여도 안전한 것이다. 어떤 이는 이른바 깜깜이 감염이 대중교통 수단에서 일어났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고 보면 정작 깜깜한 것은 대중교통 수단이 아니라 감염되고 나서도 자신의 이동 경로를 밝히지 않는 이들의 마음 속이 아닐까.자신은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잘 쓰지도 않고 사람들을 만날 때도 조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신은 감염되지 않는다고 자신하거나 감염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혹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과 달리 치료를 받기 위해 일을 쉬어도 생계에 지장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특별함은 공동체의 안위를 염두에 두지 않는 어리석은 이기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에도 지하철이나 버스로 출퇴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대다수는 생산직이나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임금 노동자들이거나 영세 자영업자들이며 코로나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는 지하철을 탈 때면, 이 속에서 모종의 동맹 의지마저 느낀다. 내가 안전해야 당신이 안전하며, 당신이 안전해야 내가 안전하다는, 그리고 이곳의 안전은 절대 지켜져야 한다는 굳은 동맹 말이다.평범한 시민들의 방역과 관련된 노력은 놀라울 정도다. 마스크를 쓰거나 손을 자주 씻는 생활 수칙은 말할 것도 없고 모임이나 여행을 자제하는가 하면 심지어 명절 귀성마저 삼가고 있다. 우리는 감염 예방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하철에서 본 사람들의 눈빛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눈빛이었다.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렇게 굳건하다면 우리 공동체는 마스크를 벗고 살아가는 일상을 틀림없이 회복할 것이다. 우리 공동체가 다른 곳보다 안전하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버스와 전철 속의 안녕을 지켜나가는, 바로 당신과 나의 덕분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9-21 전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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