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창

 

[오늘의 창]정인아 미안해

마감이 끝날 무렵, 후배가 조심스레 물었다. "선배, 지난번에 함께 봤던 소영이(가명)가 어린 시절 학대받은 이야기를 말하고 싶답니다."지난해 보호종료 아동 기획취재를 준비하며 소영이를 처음 만났다. 방황했던 10대 시절을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지금은 꿈을 향해 공부도 시작한 친구였다. 그런 소영이가 털어놓은 이야기(1월 8일자 5면 보도)는 충격이었다. 그 상처에 소영이는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조금은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정인이 사건'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학대 트라우마가 소영이를 괴롭혔다. 매일 밤 그때의 공포가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영이는 "이런 제 이야기도 기사가 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기사가 나온 이후 소영이는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고 했다. 그리고 당부했다. 정인이에게 정말로 미안하다면 지금 내 주변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지속적인 관심이 학대받는 아이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전에도, 그 이전에도 정인이는 있었다. 하지만 항상 그때뿐이었다. 잔혹한 학대 수법만 나열돼 밤잠 이루지 못한 채 분노하다 금세 잊었다.그래도 다행인 건 묻힐 뻔했던 정인이 사건으로 다시 불씨가 살아나 정부가 대책을 세우고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키며 나름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아직 멀었다'는 게 중론이다. 아동학대를 신고했던 학교 교사가 부모에게 멱살까지 잡히며 보복당한 이야기,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아동과 부모를 분리하려 하자 아이 아빠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협박을 일삼은 이야기는 취재과정에서 심심찮게 들은 것이다. 아무리 많은 정책과 법이 생겨도 주변의 지속적인 관심만은 못하다. 이웃어른이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지켜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것이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가 구호로만 그치지 않을 방법이다. /공지영 사회부 차장 jyg@kyeongin.com공지영 사회부 차장

2021-01-21 공지영

[오늘의 창]수도권매립장 종료, 가평군의 대책은

지난해 인천시는 2025년 수도권 매립지 3-1 매립장 반입을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폐기물은 발생지 처리 원칙에 따라 지자체가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인천시의 입장이다.수도권 매립지가 반입을 종료할 경우 해당 지자체들의 쓰레기 대란이 우려된다. 가평군도 예외 일 수 없다.더군다나 수도권 매립장 종료가 군 매립시설 매립장 포화상태(조성용량 91%) 등과 맞물리면서 생활폐기물 처리를 두고 가평군의 고심이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수도권 매립장 종료, 군 매립시설 용량 부족과 생활 폐기물 전처리(MBT)시설 노후화 등으로 생활폐기물 적정 처리에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현재 군은 생활폐기물 전처리시설, 매립시설, 재활용선별 시설과 수도권 매립지 반입 등으로 생활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다. 전처리시설을 통해 가연성·음식물 쓰레기는 중간처리 과정 등을 거쳐 각각 소성로 연료와 농가 보급용 퇴비로 활용된다.잔재물은 수도권 매립장과 군 매립장에 반입 처리하고 있다. 수도권 매립지 반입량은 연 2천700t 규모다. 군 매립시설은 3만3천800㎡ 면적에 45만7천㎥ 용량이다. 무게로 환산하면 연 3천여t에 이른다.수도권 매립장 종료 이후에는 기존 연 3천여t에 두 배인 연 6천여t이 군 매립시설 반입이 예상돼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에 군은 오는 2023년까지 기존 매립시설 4단 제방 증설과 소각시설 신설 타당성 용역을 추진한다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 대책은 반대 의견 등을 의식해 마련한 미완의 대안으로 읽힐뿐 현실 직시의 해결 방안으론 보이지 않는다. 현실성이 결여된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제라도 군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각오로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여과 없이 드러내 매립장 확충, 소각장 조기 건설 등 현실에 맞는 해결책 마련에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 /김민수 지역사회부(가평) 차장 kms@kyeongin.com김민수 지역사회부(가평) 차장

2021-01-19 김민수

[오늘의 창]인천시교육청 챗봇 '응다비'

"응다비야 행복배움학교에 대해 알려줘." "제가 이해하기 어려워요."'응다비'는 지난해 11월부터 인천시교육청이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해 제공하는 민원 안내 '챗봇'(채팅로봇)이다. 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지역 공공기관도 챗봇을 도입해 운영하는 곳이 더러 있는데, 응다비도 그중 하나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민원안내의 필요성이 높아지자 구축했다는 것이 시교육청의 설명이다.최근 인공지능(AI) 챗봇인 '이루다'가 혐오발언, 개인정보 유출 등에 대한 논란이 일자 운영을 중단한 일이 있었다. 난 사실 '이루다'의 존재보다 논란을 먼저 접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지역에서 운영하는 챗봇은 어떤 수준인지, 문제는 없는지 살펴봤다. 이루다와 비슷한 문제라도 발견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과 함께.휴대전화 바탕화면의 노란색 메신저를 클릭해 인천시교육청을 검색, 응다비를 찾았다. 응다비에게 "안녕"하는 인사부터 건넸다. "반가워요. 저는 인천광역시교육청 챗봇 '응다비'에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신기한 마음에 두 번째 질문을 건넸다. 인천 혁신교육을 상징하는 "행복배움학교에 대해 알려 줘"라고 채팅창에 썼다. 흠. 이때부터는 실망의 연속이었다. 응다비는 "제가 이해하기 어렵다"며 "현재 학습 중입니다. 간단한 단어로 다시 문의해 주시거나 전화로 문의하실 수도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실망스런 마음에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인천광역시교육감이 누구지?"라고 물었다.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시교육청이 주력하는 '동아시아교육과정'에 관해 물어도, 지역 학교명 등을 입력해도 대답은 '어렵다'였다. 반면 '학교설립', '검정고시', '졸업증명서' 등의 키워드에는 성실히 답했다.교육청 얘기를 들어봤다. 응다비 구축에 들인 비용은 550만원이 전부인데 인공지능이나 '딥러닝' 등과는 거리가 있다는 수준이라는 것. 시교육청 각 부서에서 제출받은 140개 키워드를 벗어나는 질문은 답변이 힘들단다. 혐오, 차별, 개인정보 유출 등의 걱정은 정말 '기우'에 불과했다. 차라리 잘됐다. 조급해하지 말고 응다비가 인천 교육에 대해 차근차근 배우고 익혔으면 좋겠다. /김성호 인천본사 사회부 차장 ksh96@kyeongin.com김성호 인천본사 사회부 차장

2021-01-17 김성호

[오늘의 창]조두순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다리며…

조두순은 출소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소득층에 지원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 맞춤형 급여를 신청했다. 극악무도한 죄를 지은 데다가 신상정보마저 모두 알려져 일자리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보니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신청한 것으로 풀이된다.게다가 그는 올해 68세로 기초생활보장수급자 기준 연령 65세를 넘어 근로 능력이 없는 노인으로 분류되고, 조씨의 배우자는 만 65세 이하이나 만성질환과 취업의 어려움 등을 호소하고 있어 이들 부부는 일정 기준 이상의 재산이 없으면 무난히 복지급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세금으로 매월 120만원 가량을 지원하는 셈이다.그러자 예상대로 청와대 게시판에 반대 청원이 올라왔다. 범죄자를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꼴이 되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하지만 법이 그렇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범죄자에 대한 제한 규정은 따로 없기에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다면 가능하다. 보건복지부도 죄와 기초생활보장법은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이다.그간 동서양의 역사에서도 죄와 사람을 구분해 왔다. 공자의 9대손인 공부(孔駙)가 편찬한 것으로 전해지는 '공총자(孔叢子)'에서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너무나 익숙한 문구가 기록돼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성경(마태복음 5장)에서도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라고 적혀 있다.다 옳고 맞는 말이다. 다만 조두순을 놓고 봤을 때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은 꽉 막힌다. 아마도 용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지만 12년밖에 죗값을 받지 않았고 또 이 기간에 간절히 죄를 뉘우쳤다는 느낌도 전혀 받지 못했으니 말이다.어찌됐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죗값을 받았고 재범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단 입에 풀칠을 해야 하니 전 국민의 피와 땀이 섞인 세금이라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세금이 투입되기 전에 진정한 뉘우침의 눈물은 보고 싶다. 조두순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다린다. /황준성 지역사회부(안산) 차장 yayajoon@kyeongin.com황준성 지역사회부(안산) 차장

2021-01-13 황준성

[오늘의 창]당신의 아파트는 안전합니까

초등생 아들에게 물었다. "만약 아래층에서 불이 나면 어떻게 할거야?" 아들은 학교에서 배웠다며 자신있게 답했다. "당연히 옥상으로 대피해야죠." 지금 불이 났다고 가정하고 실제로 대피해 보자고 했다. 아이와 함께 계단 통로를 따라 계단이 끝나는 지점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그곳에 비상문은 없었다. 굳게 잠긴 문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만 붙어있을 뿐이었다. 이곳은 권상기실이었다. 옥상 비상문은 한층 밑에 있었다.권상기실은 엘리베이터 기계를 관리하는 장소로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다. 상당수 아파트가 권상기실이 옥상보다 한층 더 위에 위치해 있는 구조로 지어져 위기상황에서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대피시 계단이 끝나는 지점까지 올라갔다간 옥상 비상문이 아닌 권상기실과 마주치게 되는 구조다. 계단 끝까지 대피한다는 상식과 본능만으론 탈출에 실패하게 된다.실제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고가 최근 군포에서 발생했다. 한 달 전 군포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당시 인테리어 공사를 벌이던 근로자 2명 외에 옥상으로 대피하던 이웃주민 2명이 숨졌는데, 이들은 옥상보다 한층 위에 위치한 권상기실 문앞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현장 감식 결과에 따르면 당시 옥상 비상문은 열려 있었다. 다시 말해 실외로 대피가 가능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비상문이 있을 것으로 판단해 열려있는 옥상 비상문을 지나친 채 권상기실까지 올라간 이들은 결국 탈출에 실패,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과연 이들의 잘못일까. 아파트 건축상의 구조적 문제는 차치하고 만약 권상기실로 향하는 계단 통로라도 차단돼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옥상 탈출구가 있다는 건 모두의 상식이다. 더욱이 실제 대피상황이라면 본능적으로도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최고 꼭대기층이 권상기실이란 걸 평소에 인지하고 그보다 한층 아래에 위치한 옥상으로 대피할 수 있는 주민이 몇이나 되겠는가. 제2, 제3의 인명피해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이유다. 지금 당장 자신의 아파트 옥상부터 올라가 보라. 내 가족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황성규 지역사회부(군포) 차장 homerun@kyeongin.com황성규 지역사회부(군포) 차장

2021-01-10 황성규

[오늘의 창]무상버스, 스토리를 입혀라

지난해 말 화성시의회 본회의에서 있었던 시정 질의에서 서철모 화성시장과 국민의당 소속 구혁모 의원은 '무상교통'을 두고 격론을 벌였다. 구 의원은 화성시의 무상교통이 대도시에서는 적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재정상황상 우선 순위에 있을 사업이 아니라는 취지의 비판을, 서 시장은 "무상급식도 도입 초기엔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은 모두 필요성을 인정한다. 무상교통도 이동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며 반박했다. 이같은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무상교통'은 서 시장이 민선 7기 시정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다. 단순히 복지 차원의 '공짜버스'가 아닌 시민이 무료로 버스를 이용함으로써 자가용 이용을 줄여 탄소 배출량을 낮추자는 환경정책이자 경제정책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1일부터 시행한 만 7세 이상 18세 이하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시행에 들어갔지만 기대와 달리 아직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지금의 부진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이 크다. 모임과 이동이 자제되다 보니 대중교통 이용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시민 공감대를 얻기 위한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린 뉴딜 등 거대담론에만 정책에 대한 홍보가 집중돼 있으니 시민들이 실생활을 통해 누리고 기여할 수 있는 무상교통의 이점에 대한 공감이 후순위로 밀려져 있는 느낌이다. 동탄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무상교통을 타고 융건릉에 가 역사 공부를 하고 남양 지역 학생들은 향남으로 이동해 진로체험을 하며 태안지역 학생들이 동탄에서 수영을 배우는 청사진을 화성시가 구체적으로 그려주면 어떨까? 버스 노선도 과감하게 이동권 목적에 맞춰 변경한다면, 보다 시민들에게 체감되는 정책이 되지 않을까?.무상교통은 올 7월부터는 만 65세 이상, 10월 만 23세 이하로 이용 대상이 확대된다. 이용 대상이 전체 시민의 30% 수준으로 상향되는 만큼 사업의 성패가 결정되는 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정책에 스토리를 입혀, 체감도를 높이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김태성 지역사회부(화성) 차장 mrkim@kyeongin.com김태성 지역사회부(화성) 차장

2021-01-07 김태성

[오늘의 창]독자의 관심이 기사로 작성된다

매주 목요일이면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책과 관련된 기사를 쓴다. 적게는 3~4개 작품에서 많게는 10개의 작품까지 분야는 상관없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나름 독자에게 알찬 정보로 이뤄졌는지, 재미가 있는지, 사회 현상을 잘 반영했는지를 꼼꼼하게 확인해 정한다.하지만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소비가 확대되면서 책을 선정하는 기준도 예년과는 달랐다. 2019년에는 사회적 관심사에 따라 '힐링'과 '소확행', '여행'을 주제로 한 책이 대거 소개됐다면 지난해에는 건강과 관련한 책들과 '부'와 '돈'에 집중된 책들이 많이 기사로 다뤄졌다.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집이 주된 생활 공간이 되고,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경제 상황 속에서 부자가 되는 기회를 잡고자 하는 움직임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전망하는 도서가 독자들의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다. 또한 코로나19 영향으로 가속화된 사회적 대변혁에 빠르게 적응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심리가 반영된 도서의 출간이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기사화할 수 있는 책에 대한 선택의 기준도 출판계의 흐름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다만 미디어콘텐츠 소비증가를 이끌었던 영화와 드라마 원작 소설에 대한 소개 기사는 간혹 작성됐다. 그러나 여행 관련 책 소개는 거의 다루지 못했다. 지난해 여행과 관련한 책이 많지 않은 점도 있지만 사회적 현상과 여행이란 주제가 서로 맞지 않다고 자체 판단돼 기사 작성 리스트에서 사실상 배제해왔다.올해 역시 코로나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기사 작성 리스트를 정할 계획이지만 코로나가 진정되지 않으면 당분간 여행과 관련된 책 소개 글은 쓰지 못할 듯 싶다. 책 기사는 정보 제공이 주요 목적이기는 하지만 독자와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 글 자체가 외면받기 쉽다. 신축년 새해가 시작된 만큼 코로나가 하루빨리 종식돼 '여행' 관련 책이 신간 리스트 상위에 배치됐으면 한다. /김종찬 문화체육부 차장 chani@kyeongin.com김종찬 문화체육부 차장

2021-01-05 김종찬

[오늘의 창]평화의 소

정축년(丁丑年)이 시작되던 지난 1997년 1월, 한강하구 중립수역에 위치한 조그만 무인도 김포 유도(留島)에서 대한민국 해병대까지 투입된 소(牛) 구출 작전이 펼쳐졌다. 앞서 1996년 여름 북에서 홍수로 휩쓸려 떠내려와 지내고 있는 소를 뒤늦게 구해내기 위해 어렵사리 UN 정전위원회로부터 상륙허가를 얻어 진행된 작전이었다.우리 해병대는 겨우내 굶은 데다 지뢰까지 밟아 한쪽 다리 발굽이 날아간 죽기 직전의 소를 구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소는 치료를 끝내고 이듬해엔 제주도에서 건너온 '남한 신부'를 맞아 7마리의 새끼를 낳았다.'평화의 소'로 이름 붙여진 이 수소와 암소가 낳은 송아지들은 남북 평화의 상징이 돼 김포는 물론 어미의 고향인 제주도까지 건너가 '통일의 씨앗'을 뿌렸다.경인일보는 2017년 '평화의 소 20년 남북관계 돌파구 찾자'란 제목의 기획기사를 7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북에서 떠내려온 평화의 소 핏줄이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남북 평화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자는 취지의 보도였다. 김포는 물론 제주까지 오가며 발품을 판 끝에 김포의 한 농장에서 평화의 소 '손주' 격인 암소가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신축년(辛丑年) 새해 아침, 회사 노트북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그 평화의 소가 떠올랐다. 그간 남북 관계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타듯 큰 부침을 겪었다.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손에 잡힐 것만 같았던 남북 평화의 희망은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이제는 그 희망의 염원마저도 온 세상을 뒤덮은 코로나19 공포 속에서 잊혀진 것 같다.희망의 빛을 향해 우직하게 전진하는 평화의 소. 남북 모두가 그 기운을 받아 신축년 한해 다시 평화를 노래하는 상상을 해본다. /김명호 인천본사 정치부 차장 boq79@kyeongin.com김명호 인천본사 정치부 차장

2021-01-03 김명호

[오늘의 창]출범 앞둔 시·도 자치경찰위 인선 신중해야

'방구멍'(연의 한복판에 둥글게 뚫은 구멍)을 특징으로 하는 방패연을 잘 날리려면 연을 지탱하는 5개 대나무 살을 쓰임에 맞게 잘 골라야 한다. 머릿살은 5개 중 가장 실한 것으로, 허릿살은 반대로 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중살과 장살은 중간 굵기를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때로는 크기나 위치에 맞게 다듬어야 한다. 이 작업이 잘못되면 방패연을 날리기가 쉽지 않다. 연이 빙글빙글 돌다 땅으로 곤두박질치기 일쑤다.경찰법 개정으로 내년 상반기 출범을 앞둔 '시·도 자치경찰위원회' 구성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총 7명으로 구성되는 시·도 자치경찰위원회는 교통, 생활안전, 여성청소년 등 분야 사건을 다루게 될 '자치경찰'을 지휘·감독하게 된다. 자치경찰의 인사와 예산 같은 주요 정책을 다루고 감찰요구권, 징계요구권 등 권한과 함께 중요 사건·사고에 대한 점검 업무도 맡는 등 상당한 역할이 기대된다. 시·도지사·교육감을 비롯해 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회 의원 등 선출직들이 전체 위원의 절반 이상을 지명·추천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부에선 이를 매개로 외압, 이권개입, 청탁 등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식의 목소리마저 나온다.자치경찰 도입은 경찰행정의 분권과 민주성 반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치경찰을 지휘·감독할 시·도 자치경찰위원회의 역할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철저한 검증과 인선으로 위원회가 첫발을 제대로 내딛도록 해야 한다. 경찰조직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이 높고, 정치적 중립성을 갖춘 인물로 시·도 자치경찰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위원회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잘못 고른 대나무 살 때문에 애써 만든 방패연이 땅으로 곤두박질쳐서야 되겠나. 후회하면 늦는다. /이현준 인천본사 사회부 차장 uplhj@kyeongin.com이현준 인천본사 사회부 차장

2020-12-31 이현준

[오늘의 창]버킷리스트

지금 당신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입니까? 평생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 혹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적은 목록을 버킷리스트라고 합니다.버킷리스트는 새해 다짐처럼 한 해 안에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른 시간 안에 해결된다면 자신만의 또 다른 버킷리스트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버킷리스트 하나하나를 해결하는 것이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더 풍부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즈음 자신의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를 달성하신 분들도 계시겠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버킷리스트를 떠나 올해 세운 목표를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태반일 겁니다.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는 나 홀로 해외여행인 사람이 꽤 있겠지요. 필자의 올해 새해 목표 그리고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도 나 홀로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 경자년 한 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여행 자체를 할 수 없는 해가 돼 버렸습니다.올 한 해는 코로나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 해소하기가 넉넉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해외여행을 목표로 갖고 있던 사람들은 언감생심이겠죠. 이제는 국내 여행도 비슷한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여행은 복잡한 현실을 벗어나 기분 전환은 물론 힐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하지만 올 한 해 마음껏 편히 여행 다녀오신 분들 많으신가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라 국내 여행도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하지만 이제 여행을 떠나야겠습니다! 여행이라는 것은 현재 자신의 자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2021년 신축년이 다가옵니다. 코로나가 바꾼 세상, 백신이 나오지 않는 이상 당분간 해외여행은 불가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젠 우리만의 여행을 떠날 때입니다. 코로나가 끝난 새롭게 시작되는 세상을…./최규원 지역사회부(오산) 차장 mirzstar@kyeongin.com최규원 지역사회부(오산) 차장

2020-12-27 최규원

[오늘의 창]4년 연속 300만TEU 달성 인천항 과제

올해 인천항 컨테이너 물동량이 지난 2일 30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를 돌파했다. 인천항은 2017년부터 4년 연속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 300만TEU를 달성했다. 부산항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연간 300만TEU 이상의 컨테이너를 처리하는 항만은 인천항이 유일하다.코로나19 영향으로 국내 주요 항만의 물동량이 감소한 가운데 인천항은 역대 최대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올해 인천항 컨테이너 물동량이 지난해보다 6.1% 증가한 328만TEU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인천항이 코로나19에 따른 어려운 상황에서도 역대 최대 물동량을 기록한 것은 박수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공(空) 컨테이너 비중을 낮춰야 한다. 올해 3분기까지 인천항의 공 컨테이너 비율은 28.8%로 이는 지난해보다 1.2%p 올랐고 부산(17.3%)과 광양(24.3%) 등 보다 월등히 높다. 공 컨테이너는 화물이 실린 컨테이너보다 하역료와 보관료 등이 저렴하다. 공 컨테이너가 많아지면 컨테이너터미널에서 처리하는 화물의 개수는 늘지만 관련 업계의 수익은 증가하지 않는다.항로 다변화도 숙제다. 인천항은 현재 역대 가장 많은 53개의 정기 컨테이너 항로를 운항하고 있다. 그러나 원양항로는 미주 항로와 아프리카 항로 두 개에 불과하다. 대부분 항로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국가에 치우쳐 전체 컨테이너 물동량 중 중국과 베트남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한다. 두 국가의 경제가 흔들리면 인천항 물동량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올해 성과에 안주해선 안 된다. 공 컨테이너 비율을 낮추고 원양 항로를 추가 개설한다면 인천항만공사가 목표로 하는 2030년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 500만TEU 달성에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김주엽 인천본사 경제부 차장 kjy86@kyeongin.com김주엽 인천본사 경제부 차장

2020-12-20 김주엽

[오늘의 창]코로나19 속 요코하마차이나타운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과 중국·화교문화연구소는 지난 12일 온라인을 통해 국내외 화교 전문가들과 함께 코로나19가 동아시아 차이나타운에 끼친 영향을 논의하는 국제영상회의를 가졌다. 여러 사례 가운데 이토 이즈미 요코하마유라시아문화관 부관장의 일본 요코하마중화가(차이나타운)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항구도시인 요코하마중화가는 연간 2천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번화가다. 올해 1월 중순 일본 첫 코로나19 감염자가 가나가와현의 중국인이라는 소문이 전해지면서, 요코하마의 차이나타운이 일본 감염의 발생지라는 오해가 확산했다. 2월 초순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크루즈여객선 다이아몬드프린세스호에서 수백명의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뉴스가 연일 보도되면서 요코하마중화가를 찾는 발길도 끊겼다고 한다.관광객이 급감했고, 일본의 긴급사태선언 이후인 4월부터는 대다수 상점이 휴업했다. 이른바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도 문제였다. 요코하마 화교 상당수는 2~3세로 요코하마 출신이지만, 차이나타운 점포에는 '일본에서 나가라' 등의 편지가 날아와 화교사회에 깊은 상처를 냈다.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지역 공동체가 큰 힘을 발휘했다. 요코하마중화가발전회협동조합은 '힘내라 요코하마중화가' 캠페인을 전개했다. 세대를 거듭해 뿌리내린 노(老)화교, 새로 들어온 신(新)화교, 일본인이 공존하는 조합은 코로나19로 오히려 결속력이 강화됐다. 감염 확대를 막기 위한 활동, 상점을 위한 금융기관 상담, 식품안전캠페인 등을 이어가면서 코로나19 종식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140년 가까운 역사의 인천차이나타운도 코로나19로 휘청이고 있다. 인천차이나타운 화교의 상당수가 영주권자로 자칫 제도권에서 소외될 우려도 있다. 가까이 있지만 멀게도 느껴지는 오래된 이웃인 인천차이나타운이 다시 활기를 찾을 방안으로 지역 공동체가 힘을 모은 요코하마중화가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적으로도 눈에 띄는 코로나19 극복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박경호 인천본사 사회부 차장 pkhh@kyeongin.com박경호 인천본사 사회부 차장

2020-12-16 박경호

[오늘의 창]3단계, 그리고 3차 재난지원금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하다. 신규 확진자가 세자릿수를 기록한 지 한 달 만에 네자릿수에 올랐다. 확산세가 가라앉기는커녕 껑충 뛰자 방역당국은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검토하고 나섰다. 3단계는 방역당국이 염두에 둔 사회적 거리두기의 가장 높은 단계다. 1주일 새 평균 확진자가 800명에서 1천명을 기록할 때, 2.5단계 상황에서 확진자가 2배 이상 갑자기 늘어날 때 적용할 수 있다. 지금 상황이 1주일가량 이어지면 3단계 격상 요건이 성립된다.3단계 조치에 돌입하면 사실상 일상이 멈춘다. 필수인력 외엔 재택근무가 의무화되고 학교는 원격수업으로 전환된다. 어린이집도 휴원이 권고된다. 음식점 등 저녁 9시까지 문을 열던 곳들도 운영이 제한된다. 경제도 함께 멈출 수밖에 없다. 경제의 가장 아랫부분에 놓인 골목상권은 더욱 피해가 클 터다. '차라리 짧고 굵게 조치를 강화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게 경제와 방역 모두를 잡는 길 아니겠느냐'란 목소리도 있지만 3단계 조치를 적용하고도 확산세가 가라앉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변수다. 고통을 더하고도 혹독한 시기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아픔을 배로 만든다.정부는 내년 본예산에 3차 재난지원금 재정을 확보했다. 시기는 특정하지 않았지만 지금과 같은 대유행이 지속되고 방역 조치가 강화되면 곧 3차 재난지원금 지급도 가시화될 것이다. 이르면 이번 주 시기와 지원대상 등이 구체화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선별적으로 지급된 2차 재난지원금의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지적에도 정부와 국회는 본예산에 3차 재난지원금 재정을 편성하며 선별 지급에 무게를 뒀다. 보편적으로 지급된 1차 재난지원금은 골목상권에 잠시나마 활력이 됐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지금보다 몇 배는 고통스럽지만 가지 않으면 안 될 길 앞에서 지칠 대로 지친 모든 국민에, 그리고 더욱 아픔이 클 골목상권에 작은 희망이나마 절실하다. 재고가 필요하다. /강기정 정치부 차장 kanggj@kyeongin.com강기정 정치부 차장

2020-12-13 강기정

[오늘의 창]끝이 좋아야 다 좋다

'끝이 좋아야 다 좋다'라는 문장은 '시작이 좋아야 끝이 좋다'라는 문장과 대구를 이루어 상투적으로 쓰이곤 하지만 셰익스피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남편에게서 인정받지 못하는 아내가 난관을 극복하고 사랑을 쟁취한다는 내용의 희곡이다. 해피엔딩이라고는 하지만 결과로 가는 과정이 비극적이고 암울해 문제극으로 분류된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이 '끝이 좋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의왕 백운밸리 도시개발사업의 백서가 발간됐다. 개발사업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이름과 개발제한구역 해제지역이지만 부동산 침체기인 탓에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손을 떼고 민간사가 시행하게 된 사연, 도시공사 설립 과정, 사업 진행 과정 등이 하얗고 두툼한 책 한 권에 담겼다. 백서는 개발규제로 의왕시의 도시개발이 늦었지만 기존 도시들이 겪었던 시행착오와 실패들을 거울삼아 앞선 선진 도시개발 정책을 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수도권 내에서 풍부한 생태자원을 기반으로 한 개발제한구역 조정가능지역을 개발하게 된 것이 의왕시에는 큰 행운인지도 모른다고 했다.백서를 보니 백운밸리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는 게 실감 난다. 내부의 갈무리로 백서가 나왔다면 앞으로 외부의 평가가 있을 것이다. 지난 가을에는 의왕도시공사 등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왔고 지금도 외부 기관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한 처분 요구사항은 아직 다 이행되지 않았다. 아직 의료복합시설용지 등 미매각 토지 매각과 훼손지복구 사업 등도 남아있다. 사업의 주축인 의왕도시공사는 이 사업을 마무리 지을 리더를 새로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끝이 좋아야 다 좋다는 말에서는 마무리가 가장 어렵다는 뜻도 찾을 수 있다. 작은 시의 큰 도전으로 시작된 백운밸리 도시개발사업이 좋은 끝을 맞이하길 기대한다. /민정주 지역사회부(의왕) 차장 zuk@kyeongin.com민정주 지역사회부(의왕) 차장

2020-12-10 민정주

[오늘의 창]32살 자치분권 씨의 새 옷

싱가포르에서는 껌을 씹는 행위는 물론 껌을 판매해서도 안 된다. 껌을 씹다가 적발되면 약 80만원에 해당하는 벌금을, 판매하다가 적발되면 1억원 또는 징역형에 가까운 형벌에 처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영국에서는 '연어를 수상하게 들고 있으면 불법'이라는 황당한 법이 존재한다. 우리의 시각으로는 다소 황당한 법이지만, 세계 각국에는 한국인의 눈에는 물론, 자국민의 관점에서도 이상한 법이 다수 존재한다.싱가포르의 껌금지법은 1987년 지하철 MRT가 개통되고 지하철 도어센서에 누군가 껌을 붙여놔 제대로 문이 작동하지 않자, 1992년 1월 제정됐다.영국의 연어법은 1986년 불법 연어잡이를 막겠다며 만들어진 법이라고 한다.법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제정되기 때문에 시대가 바뀌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야 한다. 변해가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면 진지한 고민 끝에 만들어진 법이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건 한순간일 것이다.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됐다.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법이 32년간 별다른 개정 없이 운영되면서 커진 지역의 위상에 걸맞은 옷이 아니었다고 주장해 왔다. 지역특성에 맞는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권한, 그에 따른 예산이 수반돼야 주민들이 행복한 지방자치가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 목소리가 무르익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추진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32살 자치분권의 몸집에 맞는 법인가 고민해야 할 점이 남아있는 듯하다.아쉬운 점도 있겠지만 결국 지자체와 지방의회가 운용의 묘를 잘 살리는 일만이 지방자치법 개정 작업이 시대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는 공감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법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주민들의 공감과 관심 속에서 꾸준히 변화하고 살아있는 법이 되기 위해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더 큰 역할을 기대해본다. /김성주 정치부 차장 ksj@kyeongin.com김성주 정치부 차장

2020-12-09 김성주

[오늘의 창]남을 향한 지적 한마디에도 공부가 필요

지난달 경기도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실시한 경기도체육회와 경기도장애인체육회를 대상으로 한 행정사무감사에서 한 도의원이 도체육회 측에 "전국체육대회에서 우승을 빼앗겼다고 하는데 그게 의미가 있나요? 우승에 왜 목을 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따졌다. 물론 1등만을 추구하는 체육계의 병폐를 지적한 것이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공감을 얻었을지는 미지수다.경기도는 체육계에서 '체육 웅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인구 1천300만명이 집중돼 있는 만큼 학생 및 엘리트(전문) 체육 인재 역시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인재들 속에서 경쟁을 통해 '경기도 대표'로서 전국체전에 출전하게 되고 다른 시·도에 비해 많은 입상자가 배출돼 2018년도까지 17년 동안 종합 1위를 유지하다 지난해 서울에 아쉽게 종합우승 타이틀을 넘겼다.해당 의원은 1등을 차지하기 위해 스포츠 폭력과 성폭력이 체육계에서 무시되고 있다는 부분을 지적하고 싶었겠으나, 뒤이어 "금·은·동 포상금을 동일하게 주는 것은 어떤가"라고 주장을 했는데, 체육인의 자존심을 밟았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체육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정치를 그만뒀어야 할 수준이다.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작은 운동회에서 질 때면 눈물을 보이곤 한다. 승리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체육을 자신의 업으로 선택한 아이들은 추후 대학 또는 실업팀으로 진출해 '경기도 대표'가 될 수도 있고 나아가 '프로선수', '국가대표'도 될 수 있다. 만약 행감장에서 영국 프리미어리거 손흥민, 세계 최고 배구 여제 김연경을 불러 놓고 "우승을 왜 하냐"고 따질 수 있겠는가.선거 등의 과정을 통해 어렵게 배지를 달았다고 해서 남들이 고개를 알아서 숙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지방의원들의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선 상대하는 피감기관에 대한 이해와 공부가 필요하다. 행정사무감사, 업무보고 등을 통해 송곳 질의를 한다고 해서 자신이 인정받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송수은 문화체육부 차장 sueun2@kyeongin.com송수은 문화체육부 차장

2020-12-06 송수은

[오늘의 창]국민이 원하는 정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징계청구와 직무배제 조치 파장이 연말 정국을 집어삼켰다. 법을 다루는 검찰과 법무부가 직무정지 효력을 다투는 소송을 벌이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여야를 비롯한 진보와 보수 진영 간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추 장관과 윤 총장의 극한 대립은 결국 누군가 하나 치명상을 입어야 끝날 듯한 상황으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경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정치권에서는 마치 경주라도 하듯이 경쟁적으로 서로에게 막말을 쏟아내고 '내 편이 아니면 모두가 적'이라는 식의 극한 대립을 보이며 21대 국회 역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수준 높은 정치를 갈망했던 국민들에게 또다시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수년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바 있는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를 보면 '반드시 버려야 할 싸움을 가려내고 이것을 현명하게 선택할 때 진정 중요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구절이 있다.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남과 논쟁하고 대립하고 심지어 싸워야 할 때가 틀림없이 있다.이를 두고 저자는 "비판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뿐더러 사람들 사이에 놓인 분노와 불신의 벽을 더욱 높아지게 할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나와 다른 의견 속에서 티끌만큼 작은 진실이라도 찾아내고자 의도적으로 노력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지난 11월 3일 미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당선인은 "분열이 아닌 통합을 추구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코로나 확산과 인종차별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치러진 선거에서 현재의 미국 사회 내 존재하는 분열과 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만큼 이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문재인 대통령도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국민의 단합을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 서로 비난에만 몰두하는 사이에 위기는 더욱 큰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지금 '분열의 정치'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정치권은 위기 상황에 처한 국민과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이성철 정치2부(서울) 차장 lee@kyeongin.com이성철 정치2부(서울) 차장

2020-12-01 이성철

[오늘의 창]이제 보여주세요, 김보라 시장님이 약속한 '혁신'

'갈 길은 멀고 마음은 바쁘다'.이 말은 19만 안성시민을 대표해 시정을 이끌고 있는 김보라 시장이 현재 느끼고 있는 심정일 것이라 생각된다.김 시장은 지난 4월 치러진 안성시장 재선거 당시 지역발전을 위해 '혁신'을 기치로 내걸어 인근 지자체에 비해 더딘 지역발전 속도에 답답함과 염증을 느낀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이후 김 시장은 취임과 함께 시민들과 약속한 공약 실천을 위해 '광폭 행보'에 나섰다. 하지만 이같은 행보에도 김 시장이 당초 계획한 속도만큼 공약들이 진척되지 않아 스스로 답답한 심경일 것이다.김 시장이 내건 7대 대표 공약 중 이미 공약이 완료된 '코로나19 극복 500억원 규모 추경안 시행'을 제외한 나머지 공약들이 사실상 연내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 반도체 클러스터 편입추진과 버스 준공영제 도입, 무료 와이파이망 구축, 공도시민청 건립, 도시재생사업 추진, 호수관광 벨트화 추진 등의 공약은 상위 기관들과 협조 또는 타당성 용역 결과가 도출돼야 추진이 가능하기에 추진 속도가 생각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김 시장 취임 6개월이 지난 현재,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김 시장의 억울한 입장을 대변하자면 재선거이기에 준비 기간 없이 곧바로 임기에 돌입했고, 코로나19와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수해 피해 등 내우외환에 시달린 지역 실정을 수습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언제나 난세에 영웅을 원하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만큼 그 기대에 부흥하기 위한 시장의 몸부림은 숙명이다. 지금까지는 다소 부족했지만 이 기간을 '더불어 사는 풍요로운 안성'을 만들기 위한 준비운동이었다고 믿고 싶다. 현명한 19만 시민들이 선택한 인물이기에.이제는 보여줘야 한다. 김 시장이 시민들과 약속한 '혁신'이 무엇인지를. /민웅기 지역사회부(안성) 차장 muk@kyeongin.com민웅기 지역사회부(안성) 차장

2020-11-26 민웅기

[오늘의 창]아라뱃길 기능전환 논의, 지금부터가 시작

경인아라뱃길 공론화위원회가 표결을 거쳐 물류를 축소하고 레저를 강화하는 아라뱃길 기능재정립 '최적 대안'을 선정했다. 엄밀히 얘기하면 공론화위는 투표결과를 발표했을 뿐, 아라뱃길 기능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직 정해진 게 아니다. 공론화위가 투표결과를 토대로 정부권고안을 확정하는 절차가 남았고, 정부는 다시 그 권고안을 종합해 아라뱃길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특집기획 '아라뱃길 새길찾기 대작전'을 준비하며 만난 취재원들은 공론화위를 마냥 신뢰하진 않았다. 첨예한 사안에 대한 논의 시간이 부족했고, 산출 수치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라뱃길을 둘러싼 세부 현안들은 애초 공론화위 연구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또 한 번의 '형식적인 용역'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그러나 공론화위는 갈등요소가 첨예한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이상적인 합의 기구로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대규모 국책사업의 리스크 방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도 따랐다. 추후 어떤 것들을 본격적으로 논의할지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은 공론화위의 큰 성과였다.조만간 공론화위가 정부권고안을 확정하고 나면 이 같은 재공론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라뱃길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가고 있지만, 기능 전환을 위해서는 비용 발생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재공론화가 성사될 경우 이번에는 더 많은 정부기관과 도시·관광·문화·레저·해운·물류·디자인·환경·건축 등 더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해야 할 것이다. 아라뱃길 관광레저 활성화의 전초기지인 김포시와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인천 서구, 아라뱃길 연계가 지역경제에 직결되는 계양구 등 인접 지자체도 목소리를 더 내야 한다.그리고 정부는 국민들에게 내용을 충분히 인식시킴으로써 진정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려 노력해야 한다. 다음 단계의 아라뱃길 성패는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에 달려있다. 경인아라뱃길의 기능전환 논의는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김우성 지역사회부(김포) 차장김우성 지역사회부(김포) 차장

2020-11-25 김우성

[오늘의 창]김칫국의 추억

나는 김칫국을 잘 먹지 못한다. 김치볶음밥, 김치찌개같이 김치가 들어간 대부분의 음식을 사랑하지만 유독 김칫국만은 손이 가지 않는다.이렇게 된 건 김칫국을 처음 접했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그 날은 더운 여름날이었고 점심 급식 에 생소한 국이 눈에 띄었다. 조각난 김치와 콩나물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찌개라고 하기엔 너무 묽고 콩나물국이라기엔 약간 붉었다. 김칫국이었는데, 한 숟갈 뜨자마자 도로 뱉어버렸다. 단단히 상한 듯한 비릿한 맛과 향이 입안에 맴돌았다. 함께 식사하던 친구들 모두 그날 김칫국을 먹지 못했다.생각해보면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급식은 맛 없고 부실하기로 유명했다. 한번은 급식에 나온 도토리묵을 먹고 수십 명의 친구 혓바닥이 파래져 양호실이 북새통을 이룬 적도 있다. 어떤 친구는 학교 급식이 부실한 원인을 두고 갖가지 의혹을 제기하며 각 반에 투서를 돌렸다 징계를 받기도 했다. 김칫국 이후 나를 포함해 우리 반 상당수는 도시락으로 급식을 대체했다.최근 성남의 한 놀이학교에서 원아들에게 부실한 급식을 제공해 유치원 급식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엄마에게 보낸 급식 사진은 풍성한 반찬이 가득했는데 실제 급식은 새 모이만큼 적어서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팠다. 안산 유치원 식중독 사태 이후 지금까지 줄기차게 유치원 급식 문제를 지적했다.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이 지치지만, 가장 기자를 지치게 하는 건 교육부, 교육청이 갖는 유치원에 대한 맹신이다. 학교급식법 안에 숨은 '예외조항'을 통해 상당수 유치원이 법망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교육기관' '교육자의 양심'에 따라 각자 상황에 맞춰 법을 따라 줄 것이라며 유치원에 변화를 요구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15년도 더 된 그 날의 김칫국 탓에 지금도 김칫국은 손도 대지 않는 습관을 아이들에게 물려줄 순 없다. 먹는 일은 '본능'인데, 그것조차 안심할 수 없다면 무슨 낯으로 아이를 볼 것인가./공지영 사회부 차장공지영 사회부 차장

2020-11-22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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