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민주주의와 자제의 규범

대통령 연임은 1회에 국한 '규범' 확립 불구美루스벨트는 대공황 이용 3선에 성공 인물한국정치도 관용·자제 규범 사라진 격투판野 반대일변·권력집단 法잣대만… 지양을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을 이겨 낸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수정헌법 22조(대통령 임기 제한)를 세상에 나오게 한 장본인으로서 대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재앙을 이용하여 3선에 성공한 인물이다. 물론 그의 3선은 헌법 위반은 아니다. 루스벨트의 3선 성공 당시 미국은 연임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성문화된 헌법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대통령 연임은 1회에 국한한다는 '규범'이 확립되어 있었다.또한 그는 1936년 재선에 성공한 후 보수적인 연방대법원을 제어하기 위하여 대법원 판사의 수를 늘리려고 했다. 정권에 우호적인 판사를 대법원에 심겠다는 심산이었다. 물론 헌법에서는 대법관의 수를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루스벨트의 생각은 당시의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결국 야당인 공화당은 물론 언론과 지식인, 집권당인 민주당의 많은 인사들까지 반대하는 바람에 그의 생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가 대공황의 중대한 국가위기 상황임에도 미국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했다.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상호보완의 관계지만 갈등적 관계일 때도 무수히 많다. 국회에서 의결된 탄핵소추가 비선출 권력인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되는 것도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와의 대립이란 관점에서 논쟁의 대상이다. 물론 헌법과 법률이란 테두리 내에서 합법이다.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규범이다. 관용과 자제의 규범이 사라진 정치판에는 경쟁자는 존재하지 않고 어떤 수단과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반드시 꺾어야 하는 적(敵)만이 존재할 뿐이다. 위법은 아니지만 제도적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서 영원히 퇴출시키겠다는 적개심이 정치의 동력으로 작용한다.이러한 태도는 극단적 분열과 대립을 가져오고 정치는 배타적 승부만 난무하는 격투로 변한다. 외국의 예가 아닌 바로 한국 정치의 모습이다. 민주화 이후에 여전히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인 까닭이다. 야당은 진영에 상관없이 집권세력을 감시하는 견제견이 아닌 투쟁으로 일관하는 투견이 된다. 여당은 권력을 감시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감시견이 아닌 순종적인 애완견으로 전락한다. 이는 쟁점적 사안을 일단 고발부터 하고 보는 극한적인 정치의 사법화와 무관하지 않다. 정치가 사법화된다면 사법 또한 정치화될 수밖에 없다.지금 목도하고 있는 전형적 모습들이다. 사법개혁을 외치지만 검찰과 법원은 종종 정쟁에 휘말린다. 사법농단이 그것이고 최근 대법원장의 거짓도 마찬가지다. 인사청문회를 거친 고위공직자 후보자가 야당의 동의 없이 임명되는 숱한 사례들은 대통령의 권한이 자제의 덕목을 발휘하지 않는 좋은 예다. 인사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야당 동의 여부가 인사권 행사에 아무런 견제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인사청문회 제도는 폐지해야 마땅하다. 물론 인사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므로 헌법과 법률이라는 제도적 테두리 내에서 아무런 하자가 없다.검찰 인사는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므로 청와대 민정수석이 배제되어도 법률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오히려 민정수석의 행위를 항명으로 몰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축적된 관행이 척결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왜곡되고 뒤틀린 적폐가 아니라면 규범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규범이 무시된다면 민주주의는 오로지 성문화된 법률만으로 지탱되어야 하며 그 결과는 극한 대립과 분열이다. 권력을 향유하는 집단이 이를 무시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새삼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권력은 최대한 자제되어야 하고, 권한은 신중하게 행사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요체인 자제의 규범은 사라지게 된다.자제가 사라지고 나면 다수결이라는 제도적 장치에 의해 소수의 의견은 무시될 수밖에 없고 합의제 민주주의 역시 설 땅을 잃게 된다. 야당의 반대 일변도의 정치행태, 권력을 가진 집단이 법률의 잣대만을 가지고 권한을 휘두르며 강성 지지자를 의식하는 정치행태는 모두 지양되어야 한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2021-02-23 최창렬

[경인칼럼]공급 폭탄 '200만 호'

2014년 '부동산 제3 파동' 꺼지지도 않았는데文정부 임기말, 83만호 주택 공급 25번째 대책 3기 신도시 117만호 합치면 가히 물량폭탄李지사 '기본주택' 해법에도 대폭락 재앙 우려2014년, 국내 부동산시장이 재폭발했다. 서울 강남에서 발화돼 강동·송파와 마포·용산·성동으로 번졌다. 달아오른 열풍은 경기·인천 등 수도권을 지나 대전·부산·대구를 휩쓸었다. 지방 광역시에 중소도시 아파트까지 몸값이 뛰었다. 지금껏 7년이 넘도록 꺼지지 않는 불길을 두고 198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이은 '부동산 제3 파동'이라 한다.노태우 정부는 분당·평촌·일산 1기 신도시에 주택 200만호를 지었다. 주민들이 경부고속도로를 점거하는 민란(民亂)을 겪었으나 입주 무렵 시장은 가라앉았다. 10여년 뒤 다시 강남이 들썩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중과세로 '대못을 박겠다'고 했으나 불은 더 번졌다. 동탄·김포 등 2기 신도시 계획이 나오면서 시장이 잠잠해졌다.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광풍의 위력을 가볍게 봤다. 투기를 잠재우고 가수요를 누르면 상승세가 꺾일 것으로 낙관했다. 1·2차 파동 때 공급을 확 늘려 시장을 안정시킨 것과 다른 방향이었다. 불안한 세입자에 '집 사지 않아도 된다'며 임대차 보호법을 강화했다. '집 사세요'가 '세 사세요'가 됐다. 수요 억제와 임대 장려는 불구덩이에 기름을 끼얹는 오판이었다.정부는 임대사업자의 지방세를 감면해주고 양도소득세 중과도 유예했다. 2017년 말 발표한 임대주택등록 활성화 방안이다. 8년 이상 장기보유하는 경우 특별공제 70%를 적용했다. 종부세 합산에서 배제하고 건강보험료까지 감면하는 종합선물세트가 더해졌다. 임대사업자는 150만을 넘어섰고, 갭(Gap) 투자가 성행했다. 다주택자의 조세 도피처가 됐고, 투기 수요를 부추겼다. 8년 이상 장기 보유 사업자가 늘면서 매물 잠김 현상이 일어나 집값이 치솟았다. 참여연대는 임대사업자에게 과도한 특혜를 줬다며 정부 관련 부처를 대상으로 공익감사를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지난해 임대사업자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집값 안정의 주역이라던 임대인들이 천덕꾸러기가 됐다.정부가 이달 초 '부동산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 주택 83만호를 공급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규제 완화와 공공주도의 절차 간소화, 이익 공유제를 버무려 추진 동력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3기 신도시 117만호를 합하면 200만호에 달하는 물량 폭탄이 쏟아지게 됐다.정책이 공적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제될 게 있다. 당위성과 실행방안, 시의성이다. 2·4 대책은 신규 택지 후보지를 특정 짓지 못했다. 뭔가에 쫓기듯 서두른 느낌이다. 야권은 서울 시장 선거를 겨냥한 선심이라 비판한다. 인구가 감소하는 마당에 그 많은 물량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경기·인천 170만호는 숨이 막힌다. 과잉공급으로 대폭락을 부르는 재앙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출구 없는 전·월세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양도세 한시 면제 등 매물 물꼬를 틀 유인책도 내놓지 않았다.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2·4 대책으로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 강조한다. 상반기 중 수도권에 20개 넘는 신규 택지를 확정하겠단다. 임기 말 정책을 다음 정부가 이어받은 사례를 경험하지 못했다. '반값 아파트'라는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 주택과 박근혜 정부의 중장기임대형 '뉴스테이'가 그렇다. 시장 반응이 싸늘한 이유다.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해법은 공공임대인 '기본주택'이다. 주택 정책 모범국인 싱가포르를 배우고 싶다며 주한 대사를 만났다. 싱가포르는 자가 보유율이 90%를 넘고, 주민 80%가 공공주택에 거주한다. 합리적 대안으로 국민 공감을 이끌어낸 뒤 끈질기게 추진한 결과물이다.정부는 4년 동안 25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출범 초 서울 30만호와 3기 신도시를 발표했다면 스무 차례 넘는 추가대책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불안한 30·40대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빚더미를 안고 집을 사고 나서야 운전대를 돌렸다. 임기 후반 느닷없는 공급 폭탄에 시장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폭등보다 두려운 건 폭락이다. 200만채가 지어질까 걱정들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낮은 게 위안이라고 한다./홍정표 논설위원홍정표 논설위원

2021-02-16 홍정표

[경인칼럼]뉴타운 광풍과 도시 생태계

서울시장 보선에 '13년전의 갈등' 재현 조짐우상호 16만·안철수 74만·김선동 80만호 등1년 임기일 뿐인데… 저마다 주택 물량공세 저급 포퓰리즘 두고두고 비판받을 애드벌룬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13년 전에 불던 '뉴타운' 광풍이 재현되고 있다. 2008년 총선 당시 서울지역에 출마한 여야 국회의원이 모두 '뉴타운' 공약을 내걸었다. 선거 후 대다수 뉴타운은 구역지정이 해제되었고 집값 폭등이나 원주민과 세입자가 쫓겨나는 등 무수한 사회적 갈등과 후유증을 남겼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든 여야후보들이 내건 제1호 선거공약도 한결같이 주택물량공급을 늘리겠다는 약속이다. 우상호 의원이 16만호 공급을 약속하자,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65만호를, 박춘희 전 송파구청장은 70만호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74만호를, 김선동 국민의힘 전 의원은 80만호를 공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120만호 추가 공급 주장도 나왔다. 국토교통부는 서울 32만가구 개발사업을, 전국적으로 공공주도 83만가구를 개발하겠다는 대규모 주택공급 대책을 발표하면서 광풍에 가세하고 있다.이 같은 주택공급 물량 공세가 1년 임기의 서울시장이 약속하기 어려운 정책일 뿐 아니라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조율 없이는 물리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애드벌룬에 불과하다. 지난 30년간 서울시 주택 인허가 건수는 연평균 8만~9만호 수준으로 연간 10만호를 넘어서기 어렵다. 사정이 이런데도 수십만호 공급을 공약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의 요인을 공급 부족에서 찾는다면 주택건설에 올인하는 정책을 수긍할 수 있겠지만 서울시의 현재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고 할 수도 없다는 주장도 있다. 수십만호의 주택건설이 단기간에 이뤄진다해도 문제이다. 개발계획과 추진은 투기 수요를 부르고 결과적으로 집값 상승으로 이어져 오히려 서민들의 주거 환경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른바 '신속공급'으로 원주민들과 세입자들의 주거는 더욱 불안정해질 것이다. 대규모 주택공급은 필연적으로 서울로의 인구 집중을 부른다. 과밀이 불러올 부작용은 아랑곳하지 않는 공급 만능의 단순 접근법에서 벗어나야 한다.주택보급률이 96%에 달하고 서울시 인구가 해마다 감소추세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공급확대가 대안이 될 수 없다. 1~2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위기와 맞물린 초저금리 추세가 주택 수요로 몰리면서 발생한 것이다. 1년 임기 중에 가능하지 않은 공급확대 목표를 부풀려 제시하는 것은 저급한 포퓰리즘이며, 무리한 추진으로 큰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 주택공급확대 위주의 대증요법식 처방은 서울의 도시 생태계를 훼손할 것이 분명하다. 모든 후보들이 주택 공급량을 늘리기 위한 층고제한이나 용적률 완화를 전제로 고밀도 개발을 약속하고 있다. 교통과 일조권과 조망권, 인프라 부족으로 주거환경과 도시기능 악화를 초래하고 초고층화는 안전문제도 제기된다. 그린벨트를 풀어 신규택지를 개발하겠다는 정부 대책은 난개발을 부르는 하책이다. 미세먼지로, 또 코로나19 위기로 도심 공원과 녹지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도심의 허파와 시민의 휴식처를 줄이는 것은 두고두고 비판받을 역주행 정책이다.일부 후보들이 기존의 도시재생 정책을 주택문제를 초래한 원흉(?)처럼 비난하고 있지만, 도시재생은 부동산 경기의 장기 침체로 유명무실해진 뉴타운 사업을 대체하면서 지역자산을 활용한 지역경제 활성화로 도심 공동화를 최소화하고 기존 거주자 중심의 마을공동체를 비롯한 역사와 문화로 형성돼온 도시 경관과 생태계 보전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주택가격 폭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택문제를 공급확대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 주택보급률은 96%에 달한다. 개발 이익은 투기세력이나 부동산 소유자들에게 돌아가고, 도시 주거환경과 안전문제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뉴타운' 경쟁은 중단돼야 한다. 여야 후보들과 정부가 온갖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집값은 오름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투기를 억제하면서 주거환경과 도시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는 공급 연착륙 정책이 절실하다./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2021-02-09 김창수

[경인칼럼]좌초 또는 난파의 위기

朴시장의 '힘겨운 매립지싸움' 노력에 지지종료후 조성된 땅 피해시민에… 명분·박수 그러나 한달도 채 안돼 주도권 정치권으로 '4자합의 단서' 변수까지… 아무래도 실수 같아두 달 전, 경인칼럼 '수도권매립지를 떠도는 유령'(2020년 11월25일자 19면 보도)은박남춘 인천시장의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응원했다. 오는 2025년 수도권매립지를 마감하고자 하는 박 시장의 의지와 노력에 지지를 보냈다. 역대 정부는 단 한 번도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밝힌 적 없지만 1987년 '수도권 쓰레기광역해안매립계획'을 확정할 때부터 이미 영구사용을 염두에 뒀다. 그런 속셈을 당시 언론을 통해선 '150년 이상 매립 가능'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지난 30년 세월 동안 서울시와 경기도의 적극적인 후원, 그리고 인천시의 묵시적인 동조 속에 어느덧 세계 최대 규모가 돼버린 인천의 수도권매립지 위로 여전히 영구존속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박 시장은 한 세대가 태어나고 자라 30대 성년이 되도록 수도권매립지를 지배하고 있는 구조화된 불공정 합의를 꿰뚫어 보았을 것이다. 중앙정부를 포함한 이해관계 주체들 간의 매립지 영구사용을 위한 암묵적 합의가 실재하는 것으로 판단했음직하다. 각오하고 정의와 공정을 외쳤을 것이다. 물론 민선 7기 역점사업인 '구도심 균형발전'이 지지부진하자 인천의 숙원인 매립지 이슈를 대신 띄워 재선 고지를 노린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수도권매립지 사용에 종지부를 찍고, 기왕에 조성된 땅을 그동안 가장 큰 피해를 입어왔던 인천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정의고, 공정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새로운 매립지 정책은 지역사회의 그런 희망과 바람을 담아냈다. 명분을 갖췄고, 박수를 받을 만했다.그런데 그 이후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인천시 자체 매립지의 유력한 후보로 지목된 옹진군의 거센 반발은 일찌감치 예상됐던 일이다. 결사항전을 부르짖지 않는다면, 단식투쟁에 돌입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수상했겠다. 소각장 신·증설을 둘러싸고 몇 개 구가 연합해서 벌인, 합리로 가장한 매우 비합리적인 저항 역시 예측 가능했던 범위였을 것이다. 나머지 기초지자체장들은 시장과의 관계나 정치적인 이해로 인해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거나 아예 내지도 않았다. 그 정도면 시장으로선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내재된 폭발력에 비해 실제 후폭풍은 결코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채 한 달도 안 돼 사안의 주도권이 정치권으로 넘어가 버렸다.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이 매립지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대안을 제시키로 한 것이다. 박 시장도 합의했다. 인천시로선 먼 바다로 항해하기 위해 닻을 거두고, 돛을 올리고, 물길을 잡기도 전에 배의 키를 놓아버린 꼴이 됐다.밖에서도 변수가 발생했다. 환경부, 서울시, 경기도 3자가 대체 매립지 공모에 나섰다. 하지만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이어 펼쳐질 대선 레이스를 감안하면 '실패하기 위해 만든' 공모라는 게 중론이다. 공모를 했으나 대체 매립지 확보에 실패했으니 4자 합의 '단서조항'에 따라 기존 매립지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예정된 결론에 이르기 위한 과정으로 보인다. 지난달 29일 임명장을 받은 '실세' 한정애 환경부 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매립지 사용 종료 시점이 2025년 이후로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이 SNS를 통해 항의성 질의도 해봤으나 호수에 돌 던지기와 다를 바 없었다.정치의 개입이 오히려 문제를 더 꼬이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누구로부터도 욕을 먹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행정이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이쪽저쪽 욕먹을 각오가 돼 있기 때문이다. 맷집도 좋다. 공공의 이익영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누구보다 박 시장이 잘 알 터이다. 새로운 매립지 정책은 어느 쪽으로든 반드시 거센 삼각파도를 맞게 돼 있는 공공선(公共善)의 배다. 박 시장과 인천시가 키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고 가야 했던 이유다. 어차피 별도 보이지 않고, 풍랑도 거친 바닷길이라고 처음부터 모질게 마음먹지 않았던가. 정치권에 덜컥, 키를 넘겨준 건 아무래도 실수 같다. 그들에게 맡겨두면 무역항도 아니고 어항도 아닌, 달빛 어지러운 이상한 항구에 닻을 내릴 수도 있다. 좌초 또는 난파되거나./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

2021-02-02 이충환

[경인칼럼]벼랑 끝의 아시아적 가치

日기업 '150년 연공서열제 파괴' 변화 감지 군수재벌 미쓰비시케미컬도 100% 직무성과오너, 직원 가솔 간주한 亞고도성장론 요체유교자본주의… 한국선 더빨리 사라질조짐일본 기업사회에 패러다임의 변화가 감지된다. 간판기업인 토요타, 후지츠, 히타치, 손보재팬 등의 성과연봉제 도입 선언에 이어 일본 최대의 화학기업 미쓰비시케미컬이 올해 4월부터 1만2천여사원 인사평가에 근무 연차 항목을 없애고 리더십, 사업능력, 문제해결능력 등을 반영하기로 했다. 대리가 부장보다 연봉을 더 받거나 후배가 먼저 승진하게 된다. 근속 연수에 상관없이 100% 직무성과로 연봉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연공서열제가 임직원들의 혁신과 도전의식을 약화시키고 자리보전에만 집착케 해서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미쓰비시케미컬은 일본근대화의 선구자인 이와사키 야타로(岩崎미太郞, 1835~1885)가 1870년에 창업한 미쓰비시그룹의 핵심계열사여서 더 주목된다. 미쓰비시는 일본제국주의에 편승해서 최대재벌로 성장한 군수기업이자 태평양전쟁 때 조선인 강제징용으로 물의를 일으킨 일본의 대표적 극우기업이다.연공서열제란 근무기간이 길수록 직급과 월급이 상승하는 시스템으로 일본경제 근대화 150년 역사의 키워드이다. 미국의 동북아 권위자인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교수는 일본기업의 고속성장 비결로 연공서열제를 꼽았다. 보겔은 이 제도가 직원들에게 안정적인 미래를 제시해서 애사심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라 진단했다. 일본인들은 일본 특유의 기업문화로 산업별 노조가 아닌 '기업내 노조'와 '종신고용' 그리고 '연공서열'을 내용으로 하는 '삼종(三種)의 신기(神器)'를 자랑한다.일본인들은 자신보다 크거나 강한 존재에게 순종하고 의지하는 습성이 있다.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 빈번한 자연재해 탓이 큰데 오늘날에도 일본이 여전히 세계 최고의 '신(神)들의 나라'인 점이 시사하는 바 크다. 이런 습성은 사회생활에도 강한 영향을 미쳐 일본인들은 모든 사회조직을 집(家)으로 간주하고 가부장주의를 맹신했다. 국가의 최고 통치자, 기업의 오너경영인은 조직원들을 한솥밥을 먹는 가솔(家率)로 간주한다.지난해에 작고한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는 이를 일본인들의 집단무의식으로 규정했다.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브 융은 집단무의식을 인류가 오랜 경험을 통해서 축적한 모든 잠재적 기억의 흔적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미국 하버드대학 중국학 종신교수인 뚜웨이밍(杜維明)은 연공서열제를 인의(仁義)의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동양사회 고도성장론의 요체로 일반화했다. 유교자본주의 혹은 아시아적 가치론의 탄생배경이다.한국에서는 유교자본주의 문화가 더 빨리 사라질 조짐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종신고용 관행이 사라진 터에 직장에서 '우리'를 강조하는 선배사원들을 '꼰대'로, '나'를 우선하는 밀레니엄세대 사원들을 '싸가지'로 갈등하는 추세여서 성과연봉제가 쉽게 안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정부의 제임스 매티스 초대 국방장관의 발언이 떠올려진다. 해병대 대장출신이자 '전사(戰士)수도사'로 존경받았던 매티스는 2018년에 국방장관으로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북한핵 문제나 중국의 부상, 중동 불안, 사이버 공격 등이 아닌 미국 군인들의 '소외감'이라 답변해서 주변을 당혹케 했던 것이다."자신이 더 큰 무언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잃는다면 동료들을 위해 애쓸 필요가 있을까요?"매티스는 애국심과 전우애로 상징되는 군대조직 특유의 사회적 자본의 상실을 우려한 것이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을 '개인 사이를 연결하는 사회관계망과 그로부터 생성되는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이라 정의했다. 신용이나 의리, 충성심 등은 사람들 간 유대의 산물로써 선의와 선행에 보답하는 행위의 원천인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군사적 열세에도 진주만기습을 감행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일본군인의 '진충보국(盡忠報國)'정신을 확신했던 때문이었다.사회적 자본은 기계, 부동산, 화폐 등 물적 자본에 버금가는 매우 중요한 경제적 자원이다. 아시아사회의 근대화를 실증해낸 유교자본주의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2021-01-26 이한구

[경인칼럼]단일화의 명암

4월 서울시장 보선, 野 후보 결정 초미관심그러나 지지율탓 국민의힘·안철수 간 삐걱후보 단일화는 선거 승패 결정적 요인 작용거대당 기득권·도취 버리고 以退爲進 하길선거정치에서 후보 단일화는 승패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소주의적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처음 실시된 13대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는 단순한 선거공학으로 볼 수 없는 민주주의의 시금석이었다. 국민의 피와 희생으로 쟁취한 민주화의 과실을 또다시 12·12 쿠데타의 핵심이었던 인물에게 넘기느냐의 절체절명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노태우의 승리였고 결정적 원인은 민주진영의 단일화 실패였다. 2002년에 노무현과 정몽준의 포장마차 단일화가 성사됐지만 노무현 승리에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2011년에 안철수의 양보는 박원순 승리의 초석이 됐으나 2012년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는 정치적 의미가 현저히 반감된 정치이벤트에 그쳤다.다가올 4월 서울시장 선거의 보수야권 후보 결정은 보궐선거의 최대 관심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지지율이 국민의힘 후보들의 지지율을 앞서면서 국민의힘과 안 대표와의 단일화 논의가 본질을 벗어나고 있다. 후보 단일화가 현실적 선거공학의 차원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유권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단일화가 얼마나 무력한지는 경험으로 입증되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우상호 의원의 경선과정이 본격화되면 안 대표의 출마선언과 국민의힘과의 단일화 논의로 선거 초반에 우위를 점하는 것처럼 보였던 구도도 깨질 수 있다.서울시장 선거에서 보수야권이 패배한다면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 이후 전국 규모 선거에서 5연패를 기록하게 된다. 이 패배는 차기 대선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면에서 국민의힘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선거다. 여당으로서도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최근의 여권 지지율 정체와 부동산 정책 실패, 경제 양극화 등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다음 대선에서 반전을 꾀하기 어렵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여야에게 건곤일척의 승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선거 승패를 가르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이번 선거의 최대변수는 야권 단일화 여부다. 보수야권의 후보 결정 과정의 첫째 관건은 국민의힘이 거대정당으로서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안 대표의 국민의당이 3석임을 감안할 때 결코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란 권력쟁취를 위한 투쟁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안 대표의 지지율이 높은 것이 오히려 야권 후보 단일화를 어렵게 하는 요소라는 역설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현 단계는 국민의힘이 안 대표에 대한 견제를 넘는 배제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양상이다. 국민의힘이 3석을 가진 정당 대표와 외부에서 경선을 치를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이는 거대정당의 기득권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안 대표 입당 후 경선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당 대표가 경선을 위해 합당도 아닌 상황에서 자신이 속한 정당을 이탈하는 것은 정당문법상 상도(常道)가 아니다. 국민의힘 후보가 정해지고 안 대표와 다시 경선을 치르는 과정이 진행될지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지조차 안갯속이다.둘째 안 대표도 지지율에 도취해서 자신으로 단일화되는 것만이 보수야권이 승리할 것이라는 착시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선거국면 초반의 높은 지지율이 최종 후보로 결정되는 것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국민의힘의 정당지지율이 민주당보다 앞서는 여론조사가 많은 것을 감안한다면 안 대표가 진정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문재인 정권을 견제할 수 있는 초석이 되겠다는 진정성을 가질 때 오히려 승리에 가까이 갈 수 있다.국민의힘이 기득권을 쉽사리 내려놓지 않는다면 선거는 보수야권에게 불리해질 수 있다. 최근의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안 대표를 의식적으로 배제하는 듯한 발언이 전략적 고려에서 나온 것일 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단일화가 상대폄하나 권력투쟁의 양상으로 흐른다면 단일화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단일화는 승리의 필요조건일 수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닐 뿐만 아니라 단일화에의 과도한 집착이 결과를 그르칠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나 안 대표 모두 제갈량의 책략인 '이퇴위진(以退爲進, 물러나감으로써 나아간다)'의 의미를 새겨야 한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2021-01-19 최창렬

[경인칼럼]팔당상수원 46년의 족쇄

용산참사·조안면 청년의 극단선택을 보며'생계형 저항'에 국가의 역할을 생각해본다 동부권 7개 시군 특별대책지역도 마찬가지 정부 지속 규제 합당근거 빈약한데 모른체2009년 1월19일 새벽,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빈 건물을 철거민 32명이 기습 점거했다. 국내 대기업 건설사가 주도하는 재개발사업 보상에 불만인 세입자와 철거민 단체 간부들은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인화물질을 반입했다. 다음 날 새벽 경찰의 무력 진압과정에서 불이 나 민간인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고, 농성자 전원이 연행됐다. '용산참사'의 전말(顚末)이다.이 사태를 보면서 '국가의 역할을 생각하게 됐다'는 유시민 작가는 '국가란 무엇인가'란 책을 냈다. 유 작가는 '명백한 불법행위라 할지라도, 공권력을 무분별하게 행사하여 사람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국가의 행위는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농성) 빌딩에서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그것이 훌륭한 국가가 할 일이라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비판했다.2017년 7월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20대 청년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아버지를 도와 식당을 운영하는 건실한 청년이었으나 버거운 생을 버텨내지 못했다. 식당 건물은 무허가였고, 행정·사법 합동단속반에 적발돼 강제 철거될 처지였다. 유서를 본 유가족은 오열했다. "이 가게 잘 될 수 있는 수호신이 될게요". 마지막 순간에도 청년은 가족의 생계가 달린 식당 걱정을 놓지 못했다. '용산 세입자들의 국가'와, '조안면 청년의 국가'는 무엇이 다른가.그가 나고 자란 조안면 운길산역 일대는 1975년 팔당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린벨트에 수도권정비계획법이 더해진 중첩규제로 개발이 묶였다. 생계가 막막한 주민들은 버섯재배사와 창고, 주택을 식당과 카페로 무단전용했다. 행정·사법 당국에 수차례씩 적발되면서 과징금이 쌓였고, 전과자가 늘었다. 2016년 한해 검찰 단속으로 84개 업소가 문을 닫았다. 계속되는 단속과 처벌에 주민들은 분노했고, 단체 행동에 나섰다. 환경부가 내놓은 대책은 고작 푸드트럭 허용이었다.주민들은 지난해 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상수원관리규칙'에서 규제하는 건축물의 설치, 영업허가 제한은 불합리하다.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과 직업선택의 자유, 재산권을 침해한다. 공권력 행사주체인 남양주시도 주민 편에 섰다. '상수원보호구역 규제로 지방자치권과 시의 재산권 행사에도 침해가 발행한다고 판단해 지역주민들과 함께 헌법소원 청구에 참여했다'고 한다.강남·분당과 가까워 개발 압력이 거센 광주시 오포읍 일대는 공장 난개발의 대표 사례다. 상수원 보호에 수도권정비계획까지, 거미줄 규제로 공업지역마저 1천㎡ 이상 규모의 생산시설이 원천 봉쇄된 결과다. 그물망을 피하려는 탈·불법에 편법이 횡횡하면서 동네가 망가졌고, 멀쩡한 앞산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맑은 물을 공급해야 한다'며 정부가 특별대책 지역으로 지정한 남양주·광주·양평·이천·여주·가평·용인의 안타까운 현실이다.광주시 도척면 임야에는 수도권정비계획법, 배출시설설치제한, 상수원특별대책 1권역, 산지관리법이 적용된다. 반세기 가까이 덧씌운 규제의 틀은 집요하고 가혹하다. 경기도는 동부권 7개 시·군의 그물망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달라고 건의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공청회 자리에서다. 정부는 말이 없다.오·폐수 처리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하수처리장으로 흘러든 생활용수를 1급수로 정화해 하천으로 돌려보낸다. 환경부는 상수원 규제가 여전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특정 지역에 대한 무기한 중복 규제가 합당하다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는 빈약해 보인다. 그런데도 정부는 주민과 지자체의 아우성을 모른 체한다.1973년 팔당에 물이 차고, 주민들은 조상들의 땅을 떠나야 했다.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부자 마을이 될 것이라던 정부는 2년 뒤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었다. '식수원을 깨끗하게 지켜야 한다'는 규제의 당위성은 눈부신 문명 앞에 무력해진다. 주민들의 의문은 증폭되고, 불만은 분노로 번지고 있다. 남양주에서 발화한 주민 저항은 폭발력을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의 침묵은 사태를 키울 뿐이다./홍정표 논설위원홍정표 논설위원

2021-01-12 홍정표

[경인칼럼]양비론의 계절

선거때면 진영 나눠져 부정적 비판만 난무논리의 비약 상대 배려 외면에 기준도 모호언론·지식인들 공정성유지 명분 흔한 논조본질호도 잘못된 여론 조성… 사회적 손실양비론이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 왔다. 선거가 다가오면 진영을 나누어 정당과 정파 간 비난은 더욱 신랄해지고 비전이나 정책은 뒷전이고 오직 선거 승리를 위한 정치공학적 통합론만 무성하다. 양비론의 매력은 대립 갈등하고 있는 두 주장이나 명제를 한꺼번에 비판하는 논리여서 쾌도난마(快刀亂麻)처럼 호쾌해 보인다. 일상생활에서도 양비론은 효과적인 것처럼 보인다. 형제가 사소한 일로 다툴 때 말리는 부모의 말은 대체로 양비론이다. 피해가 경미한 접촉사고 현장에서 화해를 유도하기 위해 교통경찰이 양측의 실수를 지적하면 좀 불만이 있어도 수긍하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양비론은 위태로운 논리이다. 각각 다른 기준으로 대상을 비판하거나 지나치게 이상적 관점에서 현실의 대상을 평가할 경우 대상들 간의 상대적 차이는 무시되고 부정적 성격만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오십 보 도망가나 백 보 도망간 병사나 매한가지라는 '오십보백보'는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 병사가 적진으로 도망갔다면 걸음 수를 기준으로 평가할 내용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양적인 기준과 질적인 기준을 의도적으로 뒤섞어 더 나쁜 대상을 옹호하는 물타기 논리로 사용되는 경우이다. 우리 사회에서 '논객'이라고 불리는 지식인의 주장에서 자주 발견되는 오류의 유형이다. 부분으로 전체를 공격하는 논리적 비약을 서슴지 않는다. 맥락도 없고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최소의 배려도 없는 언어들이 난무한다. 말은 시비를 가리는 도구가 아니라 증오와 환멸을 부르는 주술처럼 사용되는 것이다. 논객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기존의 주장을 싸잡아 비판하는 태도는 곤란하다. 비판은 취향에 따른 선택과 달리 제3자나 비판 대상이 수긍할만한 기준이나 원칙이 있어야 한다. 기준이나 원칙이 분명하지 않은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다.그런데 양비론이 외형적으로 객관성과 중립적인 관점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태도는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공정성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흔히 사용하는 논조이지만 실은 본연의 책임을 회피하는 교묘한 기회주의이다. 어느 한쪽을 지지했다가 받을 수 있는 비난을 의식한 '균형감'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의 본질은 외면하고 사건의 주변 상황을 기사화하여 본질을 호도하여 잘못된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 정론직필은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팩트'를 직핍하여 시비곡직을 엄정하게 밝히는 용기이다. 합리적 판단에 의한 양비론이라면 그 논리적 귀결은 질적으로 '새로운 길'이어야 한다. 양자의 단점을 모두 보완하면서 장점까지 내다 버리지는 않는 지양(止揚)의 대안이어야 한다. '새로운 길'은 없고 통합론만 내세우는 것은 기계적 중립주의이며 본질적으로는 내용 없는 양비론에 불과하다. 이같은 양비론이 횡행하면 비판 대상과 현실에 대한 냉소주의나 사회적 결정장애 상태를 야기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다. 정당 간 진흙탕 싸움과 같은 과도한 정쟁이 유권자들의 환멸감을 부르고 이것이 정치무관심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중국의 선진(先秦 )시대 제자백가들이 저마다의 사상과 논리를 기초로 한 경세와 치국론을 내세워 우열을 치열하게 다툰 시대였다. 대분열의 시기처럼 보이지만 중화문명을 형성하여 일약 세계의 선진문명 반열에 올랐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미칠 정도로 문화적 대도약이었다. 유가와 도가, 법가를 비롯한 다양한 학자와 학파들이 경쟁했던 백가쟁명(百家爭鳴)처럼 보궐선거와 대선을 앞둔 우리 정당들도 국가 비전과 지방 경영의 어젠다를 놓고 격돌하는 정책경쟁의 일대 난장을 만들면 좋으련만! 양비론이 부상하는 이 계절은 지식인들과 언론의 역할이 한층 중요한 시간이기도 하다./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2021-01-05 김창수

[경인칼럼]'백신'의 정치공학

트럼프는 "대선이후 백신개발 발표는 음모" 獨·佛·伊 등은 동시접종 조율 공동성명 결속 日 스가 지지반등 노림·中 시진핑 치적 선전 우리도 '늑장확보' 논란… 자만한 정부 자초'백신(vaccine)'이라는 이름을 처음 쓴 이는 '미생물학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다. 가축 질병이었던 닭 콜레라와 탄저병의 예방법을 개발한 파스퇴르는 인간의 감염성 질환으로 연구를 확장했다. 광견병까지 정복한 1880년대에 이르러 예방접종을 위해 독성을 줄인 균으로 만든 약을 '백신'이라 이름 붙였다. 80여년 전 에드워드 제너가 소의 우두를 이용해 인류를 괴롭혀온 천연두의 예방법을 개발한 데서 영감을 얻었던 그는 암소를 의미하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약 이름을 찾았다. 제너를 기리는 헌사였다. 영화로 치자면 일종의 '오마주'였던 셈이다.인류를 역병에서 구해낸, 숭고하고 헌신적이며 존경의 의미까지 품고 있는 백신이 한 세기 반이 지나 돌연 정치공학적 키워드로 바뀌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발표가 대선 이후에 이뤄진 것은 자신의 재선을 막기 위한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트럼프와 백악관은 '트럼프 백신'이라 부르면서 자찬하고 있다. 지난 21일 방송과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백신을 공개 접종한 바이든 당선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이라고 추켜세우는 여유를 부렸다.유럽에선 크리스마스 다음날부터 27개 EU 회원국들이 일제히 백신 접종에 들어갔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백신을 빨리 승인하라며 유럽의약품청을 강하게 압박한 결과다. 앞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백신 동시접종을 조율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등 백신을 정치적 매개로 삼아 전에 없이 강한 결속을 보여주었다. "내년 상반기까지 모든 일본인이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누차 밝혀온 스가 일본 총리는 이미 확보한 충분한 양의 백신과 내년 초 조기접종을 지지율 반등의 디딤돌로 삼으려 한다. 중국은 자체 개발한 시노백 백신을 시진핑 주석의 치적으로 내세우며 '우한포비아'를 망각의 강 너머로 밀어내고 있다.이 겨울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의 백신 확보 실기(失機) 여부를 둘러싼 논란으로 세밑 정국이 뜨겁다. '조국사태'로 시작해 이제는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모양새가 되어버린 '윤석열사태', 스무 번이 넘는 대책에도 여전히 답 없는 '부동산사태'와 더불어 정권의 안위를 좌우할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그 잠재적 파괴력은 집권여당이 '제2의 부동산사태'가 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일 정도다. 성마른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까지 연결 짓는다.사실 논쟁 자체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정을 총괄하는 국무총리가 백신 조기도입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음을 시인했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최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한 정세균 총리는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도입 논의를 시작할 당시 확진자 수가 적었기 때문에 백신에 크게 의존할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고 밝혔다. "철저한 방역, 치료제를 통한 환자 최소화, 그 다음에 백신 사용을 통해 코로나19 상황으로부터 가장 빨리 벗어나는 전략을 세웠다"고 설명했다.오판(誤判)은 정부 스스로 'K방역'의 함정에 빠져든 결과다. K방역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주는 국민을 배경 삼아 칭찬에 취하고, 평가에 환호하며, 부러움에 자만한 정부가 자초한 낭패다. 백신이야말로 진짜 '게임 체인저'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가볍게 여기고, K방역을 호위의 방패막이로 삼은 정치적 타산의 필연이다. 그런데도 "다른 나라의 부작용 사례를 확인한 뒤 접종하기 위해서"라거나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는 상황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변명은 차라리 가소롭다. 정 총리처럼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면 그 다음 말이 간단·단순·명료해지는 법인데 그걸 억지로 피하려하니 말이 말 같지 않게 되는 것이다.말도 안 되는 논쟁을 벌이는 사이 주한미군을 위한 백신이 지난 2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에 첫 반입됐다. 그들에겐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다. 오래된 사진첩 속의 흑백사진을 다시 꺼내보는 것 같다. 이 불편하고 자존심 상하는 기분은 도대체 무어람./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

2020-12-29 이충환

[경인칼럼]정치가 과학을 농단하면

건축비만 최하 10조원 이상 동남권 신공항경제성 논란에도 與 힘의 논리 가덕도 추진이자만 年 4천억 4대강·아라뱃길 사례 경종'바른 과학기술…' 국가적 재앙 백지화 주장10년 이상을 끌던 동남권 신공항이 부산 앞바다에 자리 잡을 모양이다. 이르면 내년부터 터파기공사가 점쳐지나 건축비만 최하 10조원 이상이어서 예비타당성조사 통과가 관건이다. 가덕도에 공항을 건설하면 김해신공항보다 최소 3조∼4조원의 혈세가 더 소요돼 경제성 논란이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힘의 논리로 반대세력에 재갈을 물리기로 했다.지난달 26일에 소속의원 135명의 연명으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는 내용의 '가덕도 신공항 건설촉진 특별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예타 면제 구실로 지역균형 발전을 내세웠다. 국가재정법 제38조에는 정부 재정이 대규모로 투입되는 사업의 경우 반드시 사전에 정책적, 경제적 타당성 조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타 조사대상은 총비용이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각종 사업이다.1999년에 김대중 정부가 부실한 타당성조사에 따른 국책사업 실패 재연을 방지하고자 예타 제도를 도입했다. 예타 평가항목은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등인데 핵심은 경제적 타당성 검토(재무분석)이다. 투자비용과 장래의 예상수입(편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서 점검하는 것이다. 비용편익(B/C)분석기법을 사용하는데 편익을 투자비로 나눈 값이 1보다 크면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다른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더라도 경제성 분석결과가 사업의 성패를 가늠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재무분석 수치 왜곡으로 천문학적인 혈세를 투입한 공공사업이 애물단지로 전락한 사례는 수두룩하다. 고질적인 정경유착 비리의 온상이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외환위기로 경황이 없음에도 김대중 대통령이 예타의 법제화를 서둘렀겠는가. '3조원짜리 자전거길'이란 별명의 경인아라뱃길이 새삼 주목된다. 길이 18㎞, 폭 80m, 수심 6.3m의 인공수로 건설 및 서해안과 경기도 김포의 한강 길목에 대규모 물류단지를 조성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이명박정부는 인천항과 경인고속도로의 과부하를 줄이는 물류혁명이라며 2009년 1월에 착공해서 2012년 5월에 개통했다. 공사비용은 약 2조7천억원이었다.성과는 어떠한가. 개통 첫해부터 지난해까지 8년 동안에 경인항 김포터미널에서 처리한 화물은 당초 예측치의 1%에 불과하고 김포터미널과 인천 서구 검암동 시천교를 오가는 유람선사업은 갈수록 승객이 줄어 전망이 불투명하다. 교량 통과높이, 수심, 운하폭 등 외항선 통행조건에 미달한 것이 결정적이다. 한겨울에는 물길이 얼어붙는 날이 많은 점도 매력을 떨어뜨렸다. 더 실망인 것은 아라뱃길 착공 전에 이미 인천신항 건축계획이 확정되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경인수로가 '배가 다니지 않는 뱃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타당성 평가가 화근이었다. 2008년 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제출한 '경인운하 수요예측 재조사' 보고서를 근거로 공사를 시작했다. 당시 KDI는 편익(B)/비용(C) 비율을 1.065로 제시해 사업성을 확인했다. 1988년 노태우정부 이래 20여년 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타당성을 검토했는데 B/C비율이 0.92에서 2.07까지 정권 입맛에 따라 널뛰기했다. 동일한 연구기관이 같은 자료들로 경제성을 검토하는데 B/C값이 달랐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덕분에 우량공기업이던 한국수자원공사는 졸지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4대강과 아라뱃길 건설로 수공의 부채가 2007년 말 5천억원에서 2016년에는 11조4천억원으로 불어난 것이다. 수공이 갚아야 할 이자만 연평균 4천억원 이상이어서 2016년부터 정부가 매년 혈세로 이자를 대신 갚아주고 있다. 수공이 로또 대박을 맞지 않는 한 천문학적 규모의 원리금 전부를 국민들이 갚아야 할 판이다. 국민들은 무용지물인 아라뱃길만 떠올려도 속이 쓰리다.지난달 24일 800여명의 분야별 과학자들을 회원으로 둔 '바른 과학기술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은 가덕도 신공항 백지화를 주장하며 "국책사업에서 정치가 과학을 뒤엎으면 국가적 재앙만 초래한다"고 경고했다./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2020-12-22 이한구

[경인칼럼]보수에게 과거와 단절할 용기는 있는가

4년전 '朴탄핵' 이후 거칠게 없었던 文정권작금도 절차 무시 독주와 오만 계속되는데견제할 제1야당은 '탄핵사과 분열'등 무기력책임정치의 부재 탓… 발상 전환만이 살길4년 전 12월 9일 국회는 234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박근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다음 해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그를 파면시켰다. 그리고 대선에서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권은 거칠 것이 없었다. 제1야당은 이후 선거에서 연전연패했다. 지난 4월의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궤멸적 참패를 감수해야 했다. 행정부와 입법부 권력은 물론이고 지방권력까지 장악한 여권 독주의 대척에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제1야당이 존재한다.문재인 정권 초기 보수야당이 절대적 열세에서 벗어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작금의 더불어민주당과 집권세력의 절제를 잃은 듯한 윤석열 찍어내기는 국민의힘의 빈사상태를 반전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기저효과에 힘입어 집권하고 지지율 상승을 구가했듯이 이번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양상이다. 국민의힘이 대안세력으로 인식되어서가 아니라 집권세력의 오만함이 지지층을 떠나게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국민의힘이 강력한 견제세력과 대안정당의 가능성을 보이려면 당에 대한 일반의 비호감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출발은 당연히 박근혜 탄핵 사과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사과를 결행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사과는 당내 친박에 의해 훼손됐다. 사과하면 당이 분열된다는 이유를 댄다. 군색한 변명이다. 대국민 사과가 김종인 개인 사과로 전락하면서, 민주당을 이탈한 유권자가 국민의힘에 마음을 줄 수 없는 '탄핵의 강'은 그대로 남았다.절차를 무시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징계 작업과 무리한 공수처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의 퇴행이 그치지 않는다면 보수세력의 단합과 중도층으로의 확장은 불가능하며 여권의 독주는 명분을 얻는다. '현 집권세력만큼 야당 복이 있기도 어렵다'는 비아냥은 공공연하게 회자되는 말이다. 극우 태극기 세력과 결별하지 못하고 여전히 구시대적이고 반역사적 세력과의 암묵적 동행에 당의 운명을 내맡기는 정치적 감수성의 부재는 한국정치를 퇴행으로 몰아가고 있다. 제1야당의 무력함이 여당의 독주와 오만을 가능하게 하고 아직도 친박의 그늘을 거둬내지 못하고 탄핵 사과를 알량한 기득권의 손상으로 치부하는 세력의 반역사성이 허약한 야당을 결과하고 있다.헌법 절차에 따른 국정농단 탄핵에 대해 국민앞에 정식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제의(祭儀)는 부끄러운 과거와 단절하고 미래의 담지자로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의 의식 한편에 남아있는 제1야당에 대한 막연한 비토의 정체는 탄핵을 정리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책임정치의 부재다. 정치적 변곡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야당은 여권의 거친 세몰이에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정치세력으로서의 당당함은 역사를 직시하고 헌법을 중시하는 법치주의에서 나온다. 민주당이 다수 의석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이유는 법절차를 무시하는 행위를 통하여 목적을 달성하려 하기 때문이다. 집권당과 제1야당의 양당 체제에서 일방의 허약은 타방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오고 권력은 절제를 잃게 된다. 자제의 규범을 상실한 세력은 권력의 속성상 자신들만의 논리에 갇히고 진영논리는 그 구성원들의 자기검열에 의해 더욱 강고해지는 법이다.임기 말로 갈수록 집권당의 레임덕은 한국 대통령제의 숙명처럼 다가온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흔들리지만 역대 정권과 달리 아직도 지지율은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 상황의 책임 중 상당 부분은 국민의힘이 져야 한다. 국민의힘이 탄핵을 그저 잊혀질 일 정도로 여기고 탄핵 사과가 보수를 분열시킬 수 있다는 착각과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여권의 독주와 오만의 토양은 공고해진다. 10년 주기의 정권교체론의 폐기 여부는 보수야당에 달렸다. 과거와 단절할 수 있는 용기와 발상의 전환만이 보수가 살 길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2020-12-15 최창렬

[경인칼럼]"경기도는 조사를 멈추고 철수하라"

감사관·경찰·검사 직무는 공익을 추구한다그런데 '보복·표적'이 붙으면 심각해 진다대상자 '극단적선택'도… 남양주사태 보며 4년전 '李지사의 주장' 반추… 낯설고 당혹 조사·수사·감사는 공익을 추구한다. 경찰은 범죄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 감사관은 나라 곳간이 새는지, 탐관오리가 없는지 눈을 부라린다. 검사의 녹슨 칼은 직무유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여기에 '표적'이나 '보복'이란 수식어가 붙으면 문제가 생긴다. '청부'는 더 심각해진다.수년 전 수사를 받던 대기업 사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 정권의 적폐수사 대상이 된 전직 군 장성은 검찰청사에서 몸을 던졌다. 피의자가 억울하다며 격하게 반발하거나 최악을 택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법을 고치고, 사람을 바꿔도 수사나 감사가 공정하지 않다는 세간의 인식은 좀체 불식되지 않는다. '왜 나만 갖고 그래'란 말은 그래서 여전히 의미심장하다.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광화문 광장 천막에서 일주일 넘도록 단식농성을 한 적이 있다. 2016년, 성남시장 시절이다. 그는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을 두고 지방자치에 어긋난다며 반발했다. 때마침 경기도의 특별감사, 검찰의 승마장 인허가비리 수사가 이어졌다. 막사로 간부들을 불러 "부당한 감사와 수사에 응하지 말라"고 하명(下命)했다. 지방자치 죽이기에 항거하자 정부가 행정력과 검찰을 동원해 압박한다는 거다.조광한 남양주시장은 지난달 경기도 조사반에 "조사를 멈추고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감사장에 피감기관장이 난입한 초유의 사태다. 도는 11월 중순부터 3주간 일정으로 시와 산하 공공기관에 특별조사를 벌였다.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사업자 선정 불공정 행위 등 대상이 폭넓다. 조 시장은 조사 후반까지 1인 시위와 기자회견을 하며 "보복 감사 중단하라"고 외쳤다.이 지사는 "불법행정과 부정부패 청산에 여·야나 내 편 네 편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부정부패 의혹은 당연히 감사해야 한다는 게 소신이라고 했다. 잘못이 없으면 감사를 거부할 필요도, 방해할 이유도 없다는 거다. 도청 감사관도 당위성을 강조했다. "공공감사에 대한 법률 등 관련법에 따라 적법하고 정당하게 진행하고 있다"고….두 사람은 재난지원금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 이 지사는 지역화폐로 지급하자고 했다. 그런데 수원·부천·남양주시는 현금을 주기로 했다. 도는 끝까지 버틴 수원과 남양주에 특별보조금을 주지 않았다. 남양주엔 열 차례가 넘는 감사와 조사가 이어졌다. 경찰은 도시공사 임원 채용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조 시장을 검찰에 넘겼다.수개월 이어진 감사와 수사에 시 공직자들은 초주검이 됐다. 비서실 간부는 격려금으로 줘야 할 상품권을 빼돌린 파렴치범으로 몰렸다. 지역은 두 쪽이 났다. 정치권 인사들에, 지역 단체가 합세하면서 갈등과 분열은 증폭됐다.민주당 시의원과 지역 국회의원은 조 시장을 비판한다. 당당하게 조사를 받으라고 윽박질렀다. 조 시장과 같은 당에, 정치적 동지들이다. 그렇다고 얼굴을 붉힐 일이 아니다. 유불리를 따져 세(勢)가 몰리고, 구심력(求心力)이 커지는 게 세상 이치 아닌가. 시청 광장엔 꽃이 피었다. 수백 개 화환과 화분이 늘어섰다. 일부 시민과 조 시장을 지지하는 쪽에서 보냈다고 한다. "시장님 힘내세요", "정의는 반드시 승리합니다"는 격려 문구가 쓰여 있다. 보이는 여론과 바닥 민심이 늘 같은 순 없다.코로나에 놀란 감사원은 문을 잠갔다. 사헌부 관리는 모처럼 한가하다. 특명이나 중대 사안이 아니고는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 시국에 도는 비대면 지침을 뭉개고 100리 길을 달려 감사장을 꾸렸다. 뭐가 그리 중하고 급했을까. 증거인멸에 도주라도 한다는 건가.2018년 6월, 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이 지사가 남양주를 찾았다. 마지막 합동유세에서 손을 맞잡고 유권자들에 지지를 호소했다. 불과 2년이 지났을 뿐인데 같은 당 동지(同志)가 적으로 돌아섰다. 조 시장이 주장하는 '부당 감사'는 이 지사가 정부에 한 말과 다르지 않다. 4년 전 '부당한 탄압을 한다'며 곡기를 끊고 농성을 한 '피해 호소인'이 '가해 의심자'가 됐다. 이 괴이(怪異)한 사태를 지켜보는 게 낯설고도 당혹스럽다./홍정표 논설위원홍정표 논설위원

2020-12-08 홍정표

[경인칼럼]거리두기 시대의 집과 생활문화

코로나19 위기로 강요당하는 새 일상 '집콕'자족시설에서 '복합공간'으로 역주행 초래부작용 속… 도시·국가·세계로 동심원 확장대면 중요 문예생태계도 변화 효율 지원을집으로! 코로나19 위기가 강요하고 있는 새로운 일상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집의 내부를 의미하는 메인 로고와 '모두를 위해' 집에 머물러 달라는 재택 슬로건을 게시하기도 했다. 감염확산을 막기 위한 집으로의 피난현상을 국민들은 '집콕'이란 신조어로 부르고 있지만 실은 누구도 원치 않는 가택연금(軟禁)이요, 자발적 '위리안치(圍籬安置)'이다. '숙소'에 불과했던 집이 졸지에 복합공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동안 집은 침실로서 휴식공간으로 축소돼 왔다. 전통사회의 집, 특히 농촌사회의 집은 공동의 노동, 식사, 휴식과 놀이, 양육, 탄생과 죽음, 질병의 치유 기능을 갖추고 있는 자족적 공간이었지만 그 같은 기능들은 차츰 공장과 일터, 학교, 병원, 식당과 같은 '사회적 집'으로 '이양'돼 왔다. 집은 더이상 육체의 확장, 삶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수익성이 높은 투자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집이 가지고 있던 본질적 가치는 무시되고 교환가치로만 측정되기 시작한 것, 이러한 현상은 물신사회에서 모든 사물과 인간이 겪어야 하는 운명이라고 할 수 있으나, 부동산 가격 폭등과 전세난과 같은 고질적 사회문제를 초래한 원인이기도 하다.팬데믹 이후의 가족이 모두 집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사회에 양도했던 집의 기능을 회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재택' 생활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온 가족이 한 공간에서 일하고 식사하고 휴식까지 함께 해야 하니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다. 낮에는 비어 있던 집이 사무실로, 온라인 학습장으로, 식당으로, 문화공간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 같은 공간의 역주행은 마을과 도시, 국가와 세계라는 더 확장된 공간 단위에서도 동심원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재외국민들은 귀국하고, 시민들도 이동을 최소화하고 집과 집 근처로 행동반경을 축소하며 생활한다.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 가정으로, 혹은 주부들에게 전가되고 집중되면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코로나19는 문화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대면이 중요한 문화예술의 창작, 제작, 유통, 소비, 향유 등 문화예술생태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적인 봉쇄조치, 사회적 거리두기, 격리, 방역지침은 문화시설의 휴관, 공연·전시·축제 등의 취소로 이어져 문화예술활동의 중단과 심대한 위축을 가져왔다. 위기 속에서 기회도 있다. 아동청소년 도서나 투자·재테크 관련 도서에 집중되고 있긴 하나, 도서판매량이 전년도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하고 있다. 재택근무와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집에서 여가와 취미생활을 하는 '홈하비(Home Hobby)' 현상도 거리두기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이다. PC방, 노래방, 영화관 등 외부에서 즐기던 문화 소비활동이 집으로 들어왔다. 가정내 취미활동의 증가는 관련 상품 판매량 통계에 의해 확인된다. 집에서 영화관람을 즐길 수 있는 '프로젝터용품'과 영화 'DVD'의 판매량이 급증하고 유화와 드로잉 등 미술용품 신장세도 가파르다. '유화용품' 판매량이 3배 가까이 증가했고, '드로잉용품'과 '조소용품'도 늘고 있다. 사운드바를 포함한 '오디오'와 음악 감상을 위한 '음반'도 증가했다. 대표적 취미 상품인 악기 판매량도 증가하고 있다. 피아노와 트럼펫은 두 배 이상 팔리고 있다. 가정내 취미생활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활패턴으로 자리잡게 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가정내 취미활동과 예술활동은 늘어난 여가시간을 활용하고 코로나 우울증을 극복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이 같은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한다면 당면한 코로나 위기는 국민들의 문화 향유와 창조 역량을 드높이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2020-12-01 김창수

[경인칼럼]수도권매립지를 떠도는 유령

朴시장의 전략 '대체지 확보'로 생각했는데사전조율도 없이 자체매립지 발표 주객전도예전 김포·영종 해안매립장 계획에서 단서인천 안떠날 진실에 일갈… 자충수? 승부수?지난해 9월 이른바 '투 트랙' 전략을 들고 나올 때부터 아슬아슬했다. 그래도 대체 매립지 확보가 대전제이겠거니 생각했다. 자체 매립지 조성은 압박의 수단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경계가 흐려졌다. 급기야 1년 만에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12일 박남춘 시장이 인천시만의 자체 폐기물매립지 조성과 소각장 증설 계획을 공식발표한 이후의 상황은 익히 아는 바다. 야당은 물론 같은 당 국회의원과 기초지자체장들까지 분노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의원조차 사전조율 없이 후보지를 발표했다고 비난한다. 아무리 봐도 자충수다. 왜 박 시장은 이렇게 스스로를 외통수로 몰아넣는 것일까. 왜 이렇게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일에 정치적 명운을 거는 걸까.어쩌면 아주 오래전 신문기사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1987년 9월 19일 동아일보 6면 머리기사다. '정부는 경기도 김포·영종지구에 1백50년 이상 매립 가능한 2천4백만 평 규모의 수도권 대단위 해안매립쓰레기장을 건설키로 했다. 환경청이 18일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최종확정한 '수도권 쓰레기광역해안매립계획'에 따르면 1단계로 김포지구의 간척농경지 6백10만평을 사들여 89년부터 쓰레기장으로 사용하고, 2단계로 영종도와 강화군 길상면 사이 공유수면을 92년부터 사용한다는 것.(중략) 영종지구 매립장은 내년에 영종도 앞바다를 쓰레기 매립예정지구로 고시, 92년부터 1백20년 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후략)'.여의도 면적의 6배가 넘는 '6백10만평 김포지구'는 계획대로 진행됐다. 예정지구로 남겨져 있는 제4매립장까지 포함해 1천979만㎡에 달하는 지금의 수도권매립지 전체 규모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반면 김포지구 3배 크기로 1992년부터 2112년까지 120년 사용 계획을 세웠던 영종도와 강화도 사이 공유수면 '영종지구'는 신공항 건설 추진으로 없던 일이 됐다. 2개 지구를 합해 150년을 사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영구사용'을 의미한다. 같은 맥락에서 전체 계획면적의 75%를 차지하는 영종지구의 취소는 이런 원대한(?) 꿈의 소멸로 해석됐다.영원히 사라진 줄 알았던 '유령'이 여전히 수도권매립지를 떠돌고 있음을 확인한 건 지난 2010년을 전후해서다. 2009년 6월 조춘구 당시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이 매립지 영구사용의 필요성을 주장하더니 이듬해 7월엔 공사 고위 관계자가 영구사용을 기정사실화 했다.'(전략)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오는 2016년 매립기간이 종료되는 수도권매립지의 대체 부지 확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인천의 매립지를 사실상 영구 사용하는 방향으로 내부방침이 정해졌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관계자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3, 4매립장을 사용한 후 1매립장을 순환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 최소 100년은 인천 매립지 이전이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쓰레기를 자원으로 활용하는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데다 대체 매립지를 찾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인천 매립지를 영구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후략)' (머니투데이, 2010년 7월 23일). 그 뒤 2015년 4자 합의 때도, 지난해 대체 매립지 선정 용역의 발표 연기와 '밀봉' 때도, 폐기물 전처리시설 건설과 반입총량제 도입 논란 때도 유령은 어김없이 나타났다.'4자 협의체 합의'와 '대체 매립지 공모'라는 기존의 프레임을 깨뜨리자 비로소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야 그 정체를 확연히 드러낸 매립지의 유령은 100년이고 200년이고 인천 땅을 떠나지 않고 버틸 심산이다. 과연 인천시장이 "그것이 여러분이 외치는 정의고, 공정이냐?"고 일갈할 만하다. 진실과 대면했음에도 말하지 않고, 반응하지 않고, 대비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다. 자충수가 될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인천시장으로서 침묵과 방관과 회피를 택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면 모든 궁금증이 풀린다. 또 어찌 알겠는가. 박 시장의 자충수가 대마(大馬) 잡는 승부수로 바뀌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될지./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

2020-11-24 이충환

[경인칼럼]일자리와 주주자본주의

코로나 불황에 취준생 황량 들판 허수아비 인적투자 줄이고 주주가치 극대화 기업 탓1970년대 신자유주의, 이러한 논리에 날개경영인 단기성과 매몰땐 富양극화 더 심화올가을 취업시즌이 끝나가고 있다. 벽두부터 코로나19와 힘겨운 싸움으로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겨를이라도 있었는지 의문이다. 취업준비생들이 추수 끝난 들판을 지키는 허수아비 신세는 면해야 할 텐데 안타깝다.항간에서는 코로나 백신개발 낭보에 일자리 회복을 기대하는 눈치이나 예단은 금물이다. 기업들의 직원 채용방식이 수시채용으로 전환하는 터에 다른 곳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마친 경력직을 선호하고 있는 탓이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처럼 기업들이 인적자본 투자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인구감소에도 노동시장의 과잉공급이 화근이다. 한때 전국의 공단도시마다 동네 강아지들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였는데 그 많던 일자리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갈수록 위력을 더하는 주주행동주의가 배경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시카고대학의 밀튼 프리드만 교수가 1970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기고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높이는 것'이란 칼럼을 계기로 주주가치 극대화가 주목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경제 불황에 따른 기업의 성과 저조로 주주들의 불만이 커진 것이다. 기업경영의 최우선 순위는 주주들의 몫인 배당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경영학에서 주주는 '잔여청구권자'로 규정하고 있다. 상장기업들은 성과분배에서 경영자, 노동자, 공급업체, 채권자, 지주 등 여타 이해관계자들이 우선이고 꼴찌 차례가 배당으로 잔여부분이 없으면 주주들은 헛물만 켠다. 불경기일수록, 기업의 경영실적이 나쁠수록 주주들의 사기가 위축되는 것이다.프리드만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때문에 비용이 상승하는 것도 그릇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는 주주가치 극대화 논리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한국, 대만, 멕시코 등 선발 개도국들에 대한 개방 압력이 점증했는데 선진국들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장부터 해외이전을 획책했다. 그 와중에서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매김했으며 생산의 해외 아웃소싱은 1990년대 동구권의 몰락으로 절정기를 맞이했다.국내에서는 1980년대 중반 민주화에 따른 비용급증을 계기로 전국 공업단지의 공동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세계화론자들은 선진국 기업들의 이윤극대화와 개발도상국들의 일자리 확대를 들어 무한경쟁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했다. 덕분에 지구촌에는 전대미문의 저물가시대를 맞았지만 무한경쟁 이익의 대부분은 극소수 가진 자들에 집중되었을 뿐이다. 세계 곳곳에 장기저성장의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금융혁신은 주주가치 극대화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업무 전산화 등을 배경으로 높은 이율의 자유금리상품과 '머니 마켓펀드'(MMF)가 등장한 이래 금융공학은 지속적으로 금융화의 저변확대를 선도했다. 기업들의 경영전략도 변했다. 1968년에 IBM의 톰 왓슨 주니어 회장은 IBM의 3가지 우선순위로 첫째 노동자 존중과 둘째 충실한 고객서비스, 셋째 탁월함 달성 등을 들었지만 2002년 사뮤엘 팔미사노 CEO는 IBM의 주된 목적을 향후 5년 이내에 주당 순이익을 2배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단기간 내에 실적을 끌어올려 최대한 많이 현금을 뽑아내려는 전략이었다.결정적인 것은 기업들이 유보이윤으로 시장에서 자사주를 매입해 지배권을 튼튼히 하는 내용의 자사주 매입이었다. 적대적 M&A 등으로 경영권 방어에 유리하나 주주 입장에선 필요한 때에 거금(?)을 만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자사주 매입에는 배당에서처럼 벌금성(?) 세금도 없어 일거양득이다. 전문경영인들도 자사주 매입을 반긴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해서 소각하면 발행주식수 감소로 주당순이익(EPS)이 상승해 경영자들의 몫(스톡옵션)이 덩달아 커지는 때문이다.오너와 경영인들이 단기성과주의를 탐하는 한 장기적으로 부(富)의 양극화는 심화되고 투자성향은 떨어져 일자리가 더 감소하는 법이다. 1981년부터 20년 동안 미국 GE 회장을 역임한 '전설적 경영자' 잭 웰치는 2009년에 '주주가치란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아이디어'라 질타했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20-11-17 이한구

[경인칼럼]정치양극화 극복,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여 선거공학적 정책에 친문으로 세력화 야 무능·존재감 상실… 양당제 균형 무너져자제·관용·사과·반성 '정치혁신'이 없다면한국사회도 치유 불능의 분열 몰고 갈 수도절차적 민주주의는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에서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선거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예측불가능한 선거결과의 불확실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는 대통령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부 서울지역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을 앞서는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서울시장 선거는 민주당이 우세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현재의 정당시스템으로는 시민의 이해를 적절히 조정하고 사회균열을 조율해 낼 수 있는 기능이 작동할 수 없다.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여당의 수적 우세와 무능하고 존재감을 상실한 보수야당이 정립하는 사실상의 양당제에서 정치적 균형이 상실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 4월의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은 재산세나 주식양도소득세 등 정부 정책조차 선거공학적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정책과 이념의 일관성을 상실하고 있다. 또한 민주당 의원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에 도전한다는 논리로 검찰의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의혹사건 수사를 정치수사·정치행위 프레임으로 설정하고 있다. 여당과 추미애 법무장관이 대검찰청의 특수활동비를 쟁점화하는 행태도 같은 맥락이다. 여당 의원 누구도 친문이라는 이름으로 세력화된 집단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이러한 정치양극화는 한국사회를 치유불가능한 분열로 몰고 갈 수 있다. 당파적 적대감이 지속되는 한 어느 세력이 선거에 승리하더라도 정치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회의 원심력만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미국의 바이든 후보가 당선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불복으로 인한 미국 내의 심각한 양극화의 골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국제사회의 주도권 회복은 요원한 길이 될 것이다. 바이든 후보가 승리 확정 언론보도 후 당선인 명의의 첫 성명에서 "분노와 거친 수사를 뒤로 하고, 국가로서 하나가 될 때"라며 통합과 화합을 호소한 것은 비단 미국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말은 한국정치에 그대로 적용된다. 갈등의 관리는 결국 권력수단과 정책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권력집단이 시동을 걸어야 한다. 지금 민주당의 행태들은 권력의 자제와 상대에 대한 관용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전제와 다른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여야 모두 강경 세력의 지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 현실에서도 정당이기주의와 당파성을 완화한다면 강고한 지지층에 대한 설득으로 합리성과 보편성에 기반하는 정치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법원 판결에도 사과와 반성의 메시지를 내지 않는 국민의힘이나 김경수 경남지사의 댓글조작 사건에 대한 항소심의 유죄판결에 대한 여당 반응이나 시민의 관점에서는 도긴개긴이다. 이러한 매너리즘과 퇴행이 구조화된 정치구조에서 정치양극화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제도화나 행동을 실천에 옮긴다면 그 세력이 다음 대선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대다수의 시민들은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가 지향할 보편적 가치에 동의한다. 그러나 극단의 외피를 쓴 정치가 한국정치의 동력으로 기능하고, 강경 지지층을 의식한 과잉발언이 정치적 영향력 확대의 기제로 작용하는 한 정치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특히 집권세력의 일사불란한 단일대오는 과거 박근혜를 지지했던 강경보수의 이항대립자로서 설정된다.자제와 관용의 덕목을 집권 세력에게 기대할 수 없다면 보수야당이 정치양극화의 악순환을 끊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합리적 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을 보여야 한다. 이 대장정의 시작을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행태에 대한 사과와 반성에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보수야당의 중도로의 클릭이 경북·대구, 이른바 TK의 지지를 잃을 수 있다는 케케묵은 고정관념에서 깨어나지 않는 한 양극화의 단절은 물론 야당의 승리도 힘겨워 보인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2020-11-10 최창렬

[경인칼럼]철 지난 유행가, 분도론(分道論)

전국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재결합 바람'"의기투합 수도권 넘어서자" 당찬 목소리천년역사 쪼개자는 것은 '실사구시'보다'위인설관' 앞서는 주장… 세상이 달라졌다중국 당나라는 왕도(王都) 주변을 경현(京縣)과 기현(畿縣)으로 나눠 통치했다. 이후 경기(京畿)는 수도 인근 지역을 뜻하게 됐다. 고려 현종은 1018년 개성부를 폐지하면서 주변 12현을 '경기'로 구획했다. 천 년 경기의 시발이다. 충청(충주+청주), 전라(전주+나주), 경상(경주+상주), 강원(강릉+원주)이 지명에서 유래한 것과 다른 연유다.의정부지역 국회의원이 '경기도를 남북으로 갈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행정안전위의 경기도 국감장에서다. 북도 설치 관련 여론조사에서 찬성(46%)이 반대(33%)를 앞선다며 "도민의 이익은 도민이 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도지사는 '현 단계에선 바람직하지 않다'고 발을 뺐다. 직설을 피한 화법(話法)은 여당 의원에 대한 예의와 존중일 것이다.경기 분도는 도세(道勢)가 급성장한 1980년대 후반 주창됐다. 한수(漢水) 이북에 대한 차별과 홀대론이 발원이다. 1992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면서 급물살을 탔다. 이후 선거철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했으나 30여 년 지나도록 별 진척이 없다. 경제·사회·정치 비용에 상응하는 수익 창출에 회의와 의문이 여전한 때문이다.북부에서 철 지난 유행가를 부르는 사이, 인천에서는 서부 지역을 합치자고 한다. 부천·시흥·김포시를 통합해 500만 명 인구를 가진 제1 광역시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발상이다. 분도론에 휩싸인 때에 통합을 실현하지 못하면 도시통합은 영영 불가능하다고 불을 지른다. 분열의 틈새를 파고들어 반사이익을 챙겨보자는 속셈이다.도의 변방 인천은 1980년 '직할시(현 광역시)'로 승격했다. YS의 가신(家臣) 최기선 시장의 주도로 강화군과 김포 일부가 인천으로 강제 편입됐다. 지역민들의 의사를 묻는 변변한 여론조사도 없었다. 강화 출신 기업인은 요즘도 '왜 우리가 인천이냐'고 한다.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서부평야 문전옥답을 내놓으라 억지를 부린다. 그나마 힘없는 야당 인사의 입이란 게 다행스럽다.분도와 통합은 도정 이슈가 못 된다. 수면이 일렁일 뿐 아래는 고요하다. 구체화 될 만한 동력도 보이지 않는다. 당위성과 합목적성이 부족하고 주목도가 낮다. 정작 도(道)와 이 지사의 고민은 '특례시'일 거다.도내에는 인구 50만 명이 넘는 대도시가 10곳이다. 국회에서 심의 중인 관련법이 통과할 경우 전체 지자체의 3분의1이 특례시가 된다. 수부 도시 수원뿐 아니라 주요 도시가 몽땅 떨어져 나간다. 도내 인구 1천331만명 중 63%인 834만명이다. 지방세 총액은 14조4천여억원으로, 전체 25조원의 57%를 점한다. 내년 1월 시행되면 경기도는 껍데기만 남은 초라한 신세가 될 처지다.안병용 의정부시장은 특례시 반대론자다. 지방자치의 수평적 개념과 맞지 않아 지자체 간 위화감과 차별을 조성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차별이 특례시와 일반 시·군의 불균형 발전으로 전이될 수 있다. 가평·양평·연천군, 여주·포천시는 급격한 인구 감소로 30년 안에 소멸할 가능성이 높다(참고·경기도 소멸 위험지수). 이들 지역에 재정지원이 줄어드는 건 명을 재촉하는 재앙일 것이다.전국에 재결합 바람이 거세다. 대구와 경북, 전남과 광주, 대전과 세종, 충남이 뜨겁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부산·울산·경남을 묶는 큰 그림을 그리자고 한다. 메가시티를 건설해 수도권을 넘어서자는 당찬 목소리다. 방방곡곡이 이처럼 통합을 외친다. 다시 뭉쳐 덩치를 키우고 힘을 기르자고 의기투합 중이다. 그런데 거꾸로 가자고 한다. 천 년 역사를 쪼개자는 건 실사구시(實事求是)보다 위인설관(爲人設官)이 앞서는 주장이다. 해묵은 소리에 인천까지 기웃거린다.한강 이북은 수도권에 접경지, 상수원보호구역이 막아선다. 산악지역이 많고 중첩된 규제로 개발 여건이 열악하다. 독립된 광역지자체가 아니라서 발전이 더디고 불이익을 받는 게 아니다. 수원 사무실에서 연천군의 건축물대장을 열람하고, 온라인 민원상담을 한다. 세상이 달라졌다./홍정표 논설위원홍정표 논설위원

2020-11-03 홍정표

[경인칼럼]영웅서사와 사회심리

노력없이 일확천금 바라는 심리 경계하듯영웅신화 같은 대이변 기대하는것 비정상암울한 현실 영웅환상 기대 '비극의 맹아'퇴행적 심리이용 또한 '몰역사적 기만행위'위대한 신과 영웅의 이야기인 신화도 생로병사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신화의 대표적인 양식은 영웅의 일대기를 담은 영웅서사(Heroic narratives)이다. 영웅은 비범하게 태어나 성장하며 위기와 고난을 극복하여 마침내 부족이나 집단의 염원을 성취하는 인물이다. 이 영웅서사는 특수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기반으로 생성되기 때문에 지역을 넘어 확산되기도 하고, 뼈대만 남아 앙상해지는가 하면 가뭇없이 사라지기도 한다.신화는 상상력의 소산이지만 실은 스토리텔링의 산물이다. 고려의 건국영웅신화는 왕건의 선조 6대들의 내력과 자취를 다루고 있는데 대부분 기존의 전래 설화들을 개작한 것이다. 2대조인 작제건 신화의 핵심모티브는 괴물퇴치담, 용녀혼인담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이야기는 인천 백령도 배경의 거타지 설화를 주인공만 작제건으로 바꾼 이야기이다. 조선의 건국신화에 해당하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역시 조선왕조 건국의 정당성을 찬양하기 위해 세종의 여섯 할아버지들의 행적을 중국의 고공단보를 비롯한 건국 영웅들의 고사와 비교하여 찬양하는 서사시이다.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으로 쓰여진 최초의 책이라는 언어학적 의의가 크고 경천근민(敬天勤民)의 주제의식, 비유와 상징과 같은 문학적 구성요소는 주목할만하나 신성성이나 경이감을 주는 이야기로 회자되지는 않는다.신화는 공동체의 기원과 운명, 혹은 신비로운 자연현상이나 환경을 초월적 존재에 의거하여 설명하려는 고대인의 상상력이 낳은 담론체계이지만, 과학기술이 진보한 근대에서도 '신화적' 이야기는 만들어지며 또 '신봉'되기도 한다. 임경업 장군(1594~1646)은 병자호란 때의 실존 인물이지만 청나라를 치기 위해 바다를 건너다 식량이 떨어지자 가시나무 어살(漁箭)로 조기를 잡는 기적으로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의 어민들에게는 조기잡이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어살은 임경업 장군이 고안한 것이 아니라 실은 가장 오래된 전통 어로방법이다. 그리고 임경업은 친명반청(親明反淸)의 보수적 명분론에서 보면 불세출의 영웅이었으나 당시의 국제정세나 역사의 흐름에는 어두운 군인에 불과했다. 멸망 직전의 청나라를 정벌하여 병자호란의 수치를 씻겠다는 임경업의 계획은 실현 불가능한 구상이었을 뿐 아니라 조선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무모한 명분론으로 평가된다.민간신앙의 경우 주인공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일반인들의 연민도 작용한다. 바리데기 공주나 최영 장군과 같은 무속의 신격들이 그렇다. 또 일반인들의 영웅 대망론에 기댄 사이비 신화도 만들어진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 신화는 민주주의에 대한 폭압과 노동자와 국민의 희생으로 이룬 성과임에도 불구하고 영웅신화처럼 유통되고 있다. 국정농단으로 탄핵당한 박근혜 정권이 탄생하는 배경도 실은 박정희 신화 위에 지어진 신기루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신화는 없다'라는 자서전을 통해 일반인들에게는 박정희 신화와 재벌 기업 현대 신화를 환기함으로써 영웅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들의 '신화적' 이야기는 참혹한 실패담으로 전락하고 그 '영웅'들은 지금 감옥에 있다.신화를 뜻하는 '미스(myth)'란 말은 그리스어 '뮈토스(mythos)'에서 유래했다. '뮈토스'는 논리적 언어인 로고스(logos)와 대립되는 말로서 신성하고 감성적인 담화라는 의미이다. 논리와 이성 앞에서 신화는 퇴색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현대의 영웅서사들은 대부분 임경업 장군의 신격화에서처럼 실제 이야기에서 역사적 사실을 제거해버린 것(privation d'Histoire)이다. 노력이나 투자는 하지 않고 대박이나 일확천금을 바라는 심리를 경계해야 하듯이 영웅신화와 같은 신이한 대이변을 기대한다는 것 또한 비정상적인 사회심리이다. 암울한 현실 때문에 영웅을 환상하고 그 출현을 기대하는 대중심리는 비극의 맹아이며, 그런 퇴행적 심리를 이용한 행위 또한 몰역사적인 기만행위이다./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2020-10-27 김창수

[경인칼럼]라면의 기억

학창·군대·기자 시절 맛있게 먹었던 추억배고픔·결핍 채워주는 가장 원초적인 마법인천 어린형제에겐 치유하기 어려운 '악몽'어른들의 잘못 '일생의 트라우마' 어쩔건가해운대에서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다녔다. 자주 물난리가 났다. 도시의 배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였다. 만조와 집중호우가 겹치면 시장통과 주변 일대가 물에 잠겼다. 학교에선 수재의연금을 모았다. 우리 반도 성금으로 라면 세 박스를 샀다. 가장 피해가 컸던 아이가 그날 이후 등교하지 않았다. 남은 라면 한 박스를 우리 집 다락에 보관했다. 전기공사업 면허를 따내겠다며 어른들이 밤낮없이 출타 중인 까닭에 혼자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가 많았다. 아무도 급장의 비밀을 몰랐다. 아주 오랫동안, 다락의 그 수재의연금 라면까지 포함해 정말 지겹도록 라면만 먹었다. 맛있는 음식도 질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전학했다. 결혼한 큰누나 집에 얹혀산 지 삼년만이었다. 보광동 비탈진 동네에 어른들이 살고 계셨다. 서울 학생들은 까만 운동화나 구두를 신고 다녔다. 궁리하다 신고 있던 청색 운동화에 검정색 페인트를 칠했다. 덧칠하고 연탄아궁이에서 말리길 서너 달 했더니 끝내 '킹콩' 가죽신이 됐다. 깔깔 놀려대던 친구들과 함께 야채튀김을 얹은 라면을 사 먹었다. 지금의 서울지하철 4호선과 경의중앙선 이촌역 부근이었다. 배를 채운 우리는 삼각지를 지나고 남영동을 거쳐서 남산 소월로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라면으로 바꿔먹은 버스회수권의 대가가 너무 컸다. 라면은 우정이란 걸 그때 처음 알았다.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했다. 왕십리의 후배 자취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해를 넘겼다. 2·12 총선을 앞두고 DJ가 귀국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국내에선 YS가 신군부정권에 홀로 맞서고 있었다. 휴학 중인 대학생들이 1월에 대거 입영통보를 받았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은 기표한 용지를 일일이 중대장에게 보이고 투표함에 밀어 넣어야 했다. 그곳에서 증기로 익힌 라면을 처음 맛봤다. 밥 찌는 기계에 라면사리를 차곡차곡 세운 식판들을 켜켜이 쌓아 넣고 뜨거운 김으로 쪄냈다. 따로 끓인 스프국물을 찐 사리 위에 끼얹어주었다. 제대 후 몇 번 그 맛을 재현해보려 했으나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올챙이 기자 시절, 인하대 후문엔 오직 라면 하나로 승부하는 집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인천 토박이인 동기가 알려준 라면집은 가히 비교불가였다. 상호가 있긴 있었나. 가파른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탁자 3개가 전부인 식당. 부부가 화염이 사나운 프로판가스 버너에서 연신 라면국물이 끓어 넘치는 양은냄비를 들어냈다. 풀어헤친 계란이라고 해봐야 한 숟갈도 안 되고, 썰어 넣은 파조차도 있는 둥 없는 둥 한데 어떻게 그런 천상의 맛을 낼 수 있었을까. 오래전 안경 맞추러 들렀다가 라면집이 있던 골목을 찾아봤으나 반듯한 새 건물뿐이었다.라면은 가장 원초적이고 공격적인 욕구인 배고픔을 달래고, 결핍을 채워주는 구원의 기억이다. 아무리 어려웠던 날들이었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면 빙그레 미소 짓게 만드는 마법의 기억이다. 어디에서 태어났든, 어느 신병훈련소를 거쳤든, 어느 곳에서 직장생활을 했든, 똑같이 적용되는 공평의 기억이다. 라면은 그래서 한국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억이 된다. 그런데 얼마 전 참혹한 일을 겪은 인천의 열 살과 여덟 살 형제에게는 예외의 기억이 될 것 같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 치유하기 어려운 트라우마가 될 것 같다.형제는 돌봄이 필요한 위기의 아이들이었다. 한겨울 설거지하는 손이 너무 시려 고무장갑을 사러오고, 깊은 밤이 무서워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우는 형제를 보다 못한 이웃주민들이 여러 차례 신고를 했다. 지자체, 아동보호전문기관, 학교, 법원 모두가 아이들이 처해있는 위기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들 자기 앞에 그어져 있는 경계선 안에서만 움직였을 뿐이다. 그 편의적이고 형식적인 선을 뛰어넘어 형제를 보듬으려는 시도는 아예 없었다. 뒷북치는 정치권이나 총리나 대통령이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어른들의 잘못이 형제에게 추억으로 남아야 할 '라면의 기억'을 악몽으로 만들어버렸다. 일생의 트라우마는 또 어쩔 건가./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

2020-10-20 이충환

[경인칼럼]복비 손질 불가피한데…

복덕방은 주역의 '생기복덕'에서 유래했다풍수지리따라 주거 정해야 복·덕 믿음때문요즘 11억원 아파트 중개수수료만 1천만원집값연동 탓 폭등세… 요금체계 개편 절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다 보니 익숙하던 풍물과 풍습들이 사라져도 놓치기 십상이다. 동네 어귀 혹은 후미진 골목길을 지키던 복덕방이 그중 하나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봉놋방이었으나 외지에서 온 나그네들의 길잡이이자 어두운 밤길을 지키는 든든한 파수꾼이었다. 반투명의 얇은 양면괘지 사이에 먹지를 대고 작성한 부동산 거래계약서는 새털처럼 가벼웠지만 은은한 묵향(墨香)이 한층 가치를 더했다.우리 조상들은 집터와 묏자리를 정하는데 유난히 신경을 많이 썼다. 이사 날짜는 무조건 '손 없는 날'로 정하는데 이날은 사방에 잡귀들이 없어 아무 곳으로 가도 탈이 없기 때문이었다. 가옥을 소개해 주고 구전을 받는 복덕방(福德房)은 주역(周易)의 생기복덕(生氣福德)에서 유래했다. 풍수지리에 따라 주거를 정해야 복(福)과 덕(德)을 얻는다는 믿음의 소치이다.언제 복덕방이 출현했는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송종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은 조선일보의 종합잡지 '조광(朝光)' 1937년판을 근거로 구한말에 몰락한 3명의 노인들이 생계유지 목적으로 가옥중개업을 시작한 것이 효시라고 주장했다. 조선후기 서울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주택거래가 빈번해지고 이를 계기로 가옥매매를 알선하는 복덕방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던 것이다.최근 부동산 중개수수료가 너무 비싸다는 불만들이 잇따르고 있다. 손님들은 "등기확인에다 집 보여주고, 계약서 날인에 입회하는 것이 고작인데 수수료가 보통 몇 백만원"이라며 소태 씹은 표정이다. 서울에서 11억원짜리 아파트를 매매하면 중개수수료만 1천만원인 것이다. 이 아파트를 2017년에 구입했더라면 중개료는 200만원이었다. 당시 시세는 5억5천만원으로 수수료율이 0.4%였으나 지금은 시세가 급등해 0.9%(9억원 이상)로 높아진 때문이다. 복비가 3년 만에 무려 5배나 폭등한 사례이다. 수수료가 집값에 연동되는 구조인 탓이다.10억원이 넘는다고 큰 평수의 고급 아파트라 판단하면 오산이다. 지난 8월 서울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9억8천500만원으로 10평대 소형아파트의 호가가 5억~6억원인 지역이 대부분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문재인 정부 3년(2017년 5월~2020년 5월) 동안에 서울 전체 집값은 34% 올랐으며 특히 아파트값은 53%나 상승했다고 밝혔다.공인중개사들도 할 말이 많다. 거래 절벽에 규제까지 겹쳐 생존권이 위협받는 처지에 정부가 공인중개사 없이도 부동산을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전세의 월세 전환속도가 빨라지고 전·월세 전환율 하락으로 중개료가 최소 50% 이상 떨어져 채산성도 악화되었다며 선진국 수준으로 요율을 대폭 올리거나 미국, 유럽처럼 중개료 자율화까지 요구하고 나섰다.서울을 기준으로 한 최고 중개요율은 매매 0.9%, 임대차 0.8%로 경쟁국들에 한참 못 미친다. 집값 기준 미국 3.5~6%, 캐나다 3~7%, 영국 2~3.5% 등인데 중개료는 매도인 혼자 부담한다. 프랑스(3~10%)와 독일(3~6%)은 매도인과 매수인 합의로 결정하나 나라마다 중개서비스의 종류나 품질이 달라 단순비교는 곤란하다. 미국은 수수료는 비싸지만 법인 형태의 중개회사가 부동산컨설팅, 세무회계, 법률, 건축 등 원스톱 제공에다 중개물건 하자에 대한 책임에도 철저하다. 회사 직원인 각 분야 전문가들이 분담해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케이스별 소요비용은 한국보다 저렴하다.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중개사고 배상액은 중개업소당 1억원(법인 2억원)이어서 실제상황에서는 조족지혈(?)인데다 중개업체들은 중개물건 하자에 대한 책임도 거의 지지 않는다. 정부의 부동산 거래시스템 개편 방침에 10만6천여개 중개업의 공인중개사들이 강력히 반발하며 생존권투쟁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가성비 나쁜 요금체계는 중개업소는 물론 내수경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주택 매매와 임대 사이의 수수료 역전(逆轉) 문제까지 불거지는데 공인중개사제 도입 36년 동안에 수수료체계 개편은 2000년과 2015년 두 차례에 불과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20-10-13 이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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