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정권심판론일까, 야당심판론일까

민주당, 촛불혁명 초심잃고 기득권화·실정한국당, 철학 상실·반역사적 극우 심판전망안철수 국민당, 양극단 타파땐 중도세 규합바람이 판세 좌우하는 총선 예측불허 승패선거에는 인물, 정책, 정당, 선거구도, 돌발 악재 등 여러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는 박근혜 탄핵의 영향이 가시지 않은 시기적 요인이 작용함으로써 더불어민주당 '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선거구도 즉 바람이 선거 판세를 좌우하는 선거에서는 인물과 정책 등 다른 요인들은 선거승패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지난 한 해 한국정치의 블랙홀이었던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자유한국당은 강경 일변도의 장외투쟁과 원내협상에서의 정치력 부재로 핵심 지지층을 제외한 유권자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또한 태극기 세력 및 수구 세력과 연합전선을 형성함으로써 중도층은 물론 합리 성향의 보수 유권자의 지지도 얻지 못했다. 이는 집권 4년 차 민주당 정권의 경제실적과 남북관계에서의 실적 부재에도 불구하고 제1야당의 정당지지도가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조국 사태 때 나타난 극단화된 진영정치 국면에서 한국당은 반전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당내에 체질화된 수구 DNA와 박근혜 탄핵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원천적 한계는 한국당을 수구 정당으로 빠르게 복귀시켰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도가 하락국면일지라도 여전히 한국당을 큰 차로 따돌리고 있는 상황이 이를 입증한다. 보수통합과 정당구도의 변화 등의 변수가 선거판을 크게 흔들 수 있는 상황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를 예상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이유이다. 그동안 집권여당은 제1야당의 시대착오적 인식과 무능, 수구적 양태 등에 기인한 반사이익을 누려왔다. 남북문제, 경제, 민생개혁 입법 등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집권당이 한국당에 비해 안정적 우위를 유지하는 것은 야당의 무능 이외에 설명하기 어렵다.2018년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과 관련한 청와대 인사들의 기소가 이루어졌지만 이 과정에서 법무부와 검찰의 대립구도는 확연해졌다. 지난해 조국 사태 때 시작된 검찰과 집권세력과의 갈등은 선거개입 사건과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사건, '하명 수사' 의혹 사건 등 청와대가 관련된 사건에서 더욱 증폭됐다. 이러한 사건들이 총선에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선거판세를 좌우할 선거구도가 아직 짜이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정국은 오리무중이다. 몇 가지 예상이 가능할 것이다. 우선 야당심판론의 차원에서 '수구정당 패배론'을 들 수 있다. 박근혜 정권 때의 집권세력으로서 반성은커녕 오히려 탄핵에 찬성한 보수세력을 배신자로 몰아세우는 반역사적 정당의 극우적 행태는 결국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금 논의 중인 한국당, 새보수당, 우리공화당, 전진당 등의 보수통합이 철학과 정치적 지향을 상실한 채 이루어지는 기계적 선거공학에 그치고 민의에 의해 심판받을 것이라는 '예정설'과 맞닿아있다. 두 번째는 집권 4년 차에 치러지는 선거의 기본적인 프레임 차원에서의 '정권심판론'이다. 집권세력이 촛불혁명의 초심을 잃고 기득권화하면서 제1야당의 시대착오적 행태에 기인한 기저효과를 누려왔음은 물론 검찰개혁 등을 명분으로 청와대 관련 사건 등에서 진영의 이익에만 몰두했다는 비판이 저변에 깔려 있다. 최근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검찰의 공소장 비공개 결정 등이 총선을 의식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의식이 보편화되면 여권에게는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경제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상황,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남북관계 등의 정책적 실정에 무게를 두는 전망이다. 세 번째는 '중도세력 약진론'이다. 귀국한 안철수의 '국민당'이 보수 통합과 분명한 선을 그은 채 양 극단의 기득권 정당체제의 타파를 명분으로 중도를 규합한다면 어느 때보다도 승자독식에 찌들어있는 한국정당체제에 회의적인 유권자층을 공략할 수 있다는 추론이다. 또한 호남 기반의 통합도 변수다. 그러나 집단지성에 의한 선택은 항상 예측을 뛰어넘었다. 선거는 이제 시작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20-02-11 최창렬

[경인칼럼]정권을 향하는 퍼펙트 스톰

'신종 코로나 사태' 정부 능력 검증대 올라중국인 입국금지·여행제한 놓고 우왕좌왕반도체·자동차 생산차질… 자영업자 '허덕''최악' 우려로 그칠 충분한 밑천있길 바랄뿐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먹자골목 거리는 썰렁했다. 단골 선술집도 대부분의 테이블이 휑했다. 울상인 주인장을 위로하고 시작된 수작도 좀처럼 흥이 돋질 않았다. 문득 한 친구가 "요즘 드라마 볼 맛이 난다"며 '김사부 시즌2'와 '검사내전'을 화제에 올렸다. 볼 맛이 난 이유가 의미심장하다. 드라마는 '병원이사장 대 김사부', '진영지청장 대 이선웅 검사'라는 대립과 갈등 구도로 서사를 펼친다. 친구 말로는 예전 같으면 정치적 필터링을 통해 병원이사장과 진영지청장은 보수, 김사부와 이 검사는 진보로 구분됐을 것이란다. 그런데 지금은 병원이사장과 진영지청장을 통해 진보 권력을 연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장담한다.친구의 해석을 재해석하자면 그동안 부패하고 무능하고 부조리한 기득권의 악역 전담배우였던 보수에게 진보가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기득권 대 개혁세력'의 이항대립은 가능해도, 이를 '보수 대 진보'의 이항대립으로 치환하는 '드라마 프로파간다'는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이제 진보도 혐오의 대상인 기득권이라는 결론이다. 친구는 검사내전의 진영지청장에게서 "살아있는 권력을 봤다"고 했다.문재인 대통령은 엊그제 취임 1천일을 맞아 국민에게 문자메시지를 날렸다. "돌아보면 그저 일, 일, 일… 또 일이었다"고 과로의 고통을 고백한 뒤 "지금은 신종 코로나라는 제일 큰 일이 앞에 놓여있다"고 현안을 걱정했다. 그리고 "끊임없는 일들을 늘 함께 감당해주는 국민들이 계셨다"며 "취임 1천일을 맞아 국민들께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참 미안한 얘기지만 '끊임없는 일들을 함께 감당해 준 국민'에 기꺼이 포함되길 바라는 국민이 있는가 하면, 거부하는 국민도 있는 현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을 향해 영혼을 바치는 세력과 대통령에게 분노한 세력이 양분된 극단적 정치지형에서, 국민 전체를 향한 대통령의 감사 표시는 절반의 냉소에 씻겨나갔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을 약속했던 대통령이 양분된 정치 지형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상황은 참담하다. 보수적 국민도 결코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불온한 정국의 시발은 아무래도 조국 사태였다. 조국은 법무부 장관 내정상태에서 검찰 수사대상이 되자 대통령의 분신으로 검찰과 맞섰다. 그는 대통령을 지지하는 군중을 조국기 부대로 사병화했다. 파렴치한 범죄혐의를 검찰개혁으로 덮었다. 그 반작용으로 광화문 반문 군중집회가 시작됐다. 아내 정경심 변호인단은 급기야 '논두렁 시계식 망신주기'라며 그녀의 잡스러운 범죄혐의를 노무현의 시련으로 격상시키기에 이르렀다. 찬조출연도 이어졌다. 청와대 민정비서관 최강욱은 검찰에 기소당하자 "기소 쿠데타"라며 대통령 수준으로 진노했다. 청와대 전 대변인 김의겸은 흑석동 부동산 매매차익에서 80만원을 더 기부했다며 총선 출마 허용을 간청했다.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며 조국과의 동병상련을 강조했지만, 조국기 부대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들이 국민 절반을 대통령으로부터 뺏어갔다. 대통령은 이들의 위선을 방치했다. 그 결과 '한 줌의 위선'이 '진보의 위선'으로 확장됐고 '정권의 위선'으로 고착됐다.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제 정권의 품격이 아니라 정권의 능력이 검증대에 오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신호탄이다. 중국인 입국금지, 중국 여행제한을 놓고 우왕좌왕 하고 있다. 마스크 공장 연장근로를 허용하자 노조가 반발한다. 신종 코로나는 바이러스로만 오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내부 단속을 위해서라도 밖에서 희생양을 찾을 것이다. 한국은 만만하다. 북한은 타의적인 경제봉쇄와 자발적인 코로나봉쇄로 궁핍이 극에 달한 상태다. 연초로 예고된 무력시위의 강도가 높아질 수 있다. 경제의 기둥인 반도체와 자동차는 중국 부품 공급 중단으로 생산차질을 빚고 자영업자들의 가게들은 손님들이 사라지고 있다.우리가 살려면 이 모든 일이 우려에 그쳐야 한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발 퍼펙트 스톰이 덮치면 정권의 밑천이 드러날 것이다. 정권이, 여당이 충분한 밑천을 가지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윤인수 논설실장윤인수 논설실장

2020-02-04 윤인수

[경인칼럼]거리와 사이의 역설

인간이란 존재 거리와 틈이란 이중성 지녀사랑을 '인격의 결합' 정의한 헤겔 주장처럼남녀간 밀당 아닌 '인격체' 유지거리 필연적가족 의존 극복못하면 모성회귀적 퇴행 발현거리가 요긴할 때도 있다. 북한화가 황영준 전시회장에서 그의 조선화를 보면서 거리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선묘와 점묘법을 이용한 황영준의 채색 수채화는 조금 물러나서 보아야 진가가 드러난다. '능라도 소나무 습작' 같은 작품은 가까이 다가서면 붓질의 흔적 때문에 소나무의 자태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구부정한 소나무의 등걸과 늘어진 가지, 푸른 솔잎들이 실물처럼 생동한다. 그가 만년에 그린 대작 '백두산 천지'를 비롯한 금강산의 폭포 그림들도 물러나 보면 그 생동감은 물론 물빛에 서린 서광과 신비감까지 오롯이 느낄 수 있다.그런데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물리적 공간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가 더 중요하다. 작품에 몰입하다 보면 작가의 작품세계나 주제의식을 놓치기 쉽다. 개별 작품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한 작가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에서 물러나 그가 추구했던 예술의식과 방법론이 무엇이며 시대나 사회적 맥락에서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리두기는 예술작품의 미적 가치를 제대로 향수하기 위한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특별히 미적 거리(aesthetic distance)라고도 한다. 미적 거리란 시간적·공간적 거리가 아니라 내면적 거리이다. 미적 거리는 미적 관조의 대상과 대상의 미적 호소로부터 감상자 자신을 의도적으로 분리시키는 것을 말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거리는 중요하다. 나의 한 지인은 '인간(人間)'이라는 용어가 함축하고 있는 동양적 인간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강조하는 관점을 주목하라고 일러주었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로 이루어진 사람의 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여러 가지 도구를 잘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손바닥과 다섯 손가락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이다. '사이'를 함께 주목하는 이같은 생각은 개체의 존재와 개체와 개체 사이의 무(無)가 공존하는 관계, 존재와 무의 통일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방식이다. 불교에서 세상을 특별히 '세간(世間)'이라고 부르는 것도 사람들 간의 사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일 터이다. 개인과 개인의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강조하는 것은 개체로서의 자아가 다른 자아와 숙명적으로 관계 맺는 존재, 즉 복수적 자아일 수밖에 없는 본질을 말하는 것이며, 역으로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불가피함도 동시에 설명하는 것일 터이다. 일상적으로는 거리와 틈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만 머리빗이나 그물의 틈을 보면 정반대이다. 머리빗은 빗살과 빗살 사이의 틈을 이용하려 흐트러진 머리를 가지런히 가다듬는 기능을 한다. 물고기를 잡는 그물의 기능도 그물의 빈 구멍, 즉 그물코에 달려 있다. 작은 물고기를 잡겠다면 그물코가 작은 그물을 준비해야 한다. 큰 물고기를 잡으려면 그물코가 커야 한다. 꽃게잡이 그물이나 잉어 잡는 그물은 그물코가 커야 한다. 새우잡이 그물이나 실뱀장어 그물은 모기장만큼 촘촘하다. 그런데 그물코가 너무 촘촘하면 그물질을 하기 어렵다. 물이 잘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접근이나 몰입에서 벗어나 심미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고 대상을 부정하는 무관심이나 냉소적 거리가 아니라 대상을 관조하기 위한 비평적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인간관계의 거리도 존재론적인 필연이며 가장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니 '인간(人間)'이란 존재는 거리와 틈의 이중성이라는 외줄을 타야 하는 줄타기 곡예사와 닮았다. 사랑을 자유의지를 지닌 인격의 결합이라고 정의한 헤겔의 주장처럼 남녀 간의 사랑에서조차 구애 전략상의 '밀당'이 아닌 '인격체' 사이에 유지해야 할 '거리'는 필연적이다. 또 인간관계에서 의존성을 친밀감과 구별해야 한다. 가족에 대한 유아기의 과도한 의존이 극복되지 않으면 모성회귀적 퇴행이나 누이콤플렉스의 형태로 발현할 수도 있듯이./김창수 인하대 겸임교수·객원 논설위원김창수 인하대 겸임교수·객원 논설위원

2020-01-28 김창수

[경인칼럼]한국 정치는 '멀티 페르소나'를 모른다

국민들은 다양한 정치서비스 요구하는데여야가 제공하는건 늘 획일적이고 단편적총선용 '쇼케이스' 일회용일뿐 변화 없어공약도 강요 다름없고 제3의 대안도 없다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어김없이 올해의 소비트렌드를 가늠할 수 있는 열 개의 키워드를 지난해 늦은 가을 내놓았다. 벌써 12년째 지속되고 있는 이 작업을 스스로는 '소비트렌드'라고 한정하지만 한국사회의 기저를 손으로 짚어보고, 단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함으로써 가장 가까운 미래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2020년을 관통할 것이라는 10대 키워드 중에서도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는 단연 으뜸이고 중심이다. 본디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라틴어인데 현대 분석심리학의 개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이 가져다 썼다. 개인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회가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다양하게 취하게 되고 이것을 통해 자기 주변 세계와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본래의 자아와는 또 다른 자아로서 외적으로 보이게 되길 원하는 자기 모습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멀티 페르소나'는 다중 자아, 복합 자아, 모듈형 자아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할 때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고급스러운 취향과 안목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력을 과시하고, '트위터'에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개진한다. '페이스북'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정보를 나눌 때 쓰고, 가족과 연인과의 사적 대화는 '카카오톡'을 이용한다. 이렇게 단수의 개인은 복수의 SNS에서 저마다 다른 얼굴과 목소리를 지닌 복수의 자아로 나타난다. 중국 3대 전통극 중 하나인 쓰촨성 천극(川劇)의 '변검'과 닮았다. 배우가 복합분장기법으로 극의 분위기에 따라 등장인물의 감정변화와 고유한 개성을 마치 가면을 바꿔 쓰듯 순식간에 얼굴에 바꿔 나타내는 것처럼 오늘의 소비자는 저마다 놓인 상황과 맥락에 따라 매 순간 변하고 그런 변화를 당연시하며 즐긴다.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고, 상황에 맞게 꺼내 쓴다"는 융의 정리는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절묘하다. '멀티 페르소나'는 나머지 9개 키워드와도 치밀하게 상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키워드들이 작동하는 토대를 이루고 공간을 확보하며 확장의 출발점이 된다. 이런 지평이 마련된 것은 순전히 온라인 공간의 확대 덕분이다. 선으로 묶여있던 온라인 공간이 모바일로 확장되고 다양한 기능과 특성을 가진 플랫폼들이 잇따라 출현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식, 5G에 기반한 초개인화기술에 힘입어 이러한 확대와 확장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모든 개인을 상황별로 구체화함으로써, 다시 말해 개개인의 '멀티 페르소나'를 파악 또는 확보함으로써 각 개인이 놓여있는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고 이에 꼭 알맞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일반화될 것이다. 한국사회의 변화가 이렇게 혁명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둔감한 영역이 딱 한 군데 남아있다. 다름 아닌 정치다. 낡고 관습적이며 구태라고 질타받는 행정 분야조차도 인공지능을 도입하네, 빅데이터를 활용하네 부산한데 정치 쪽은 영 딴 나라 얘기다. 바람은 이미 눈썹을 날리는데 말이다. 천 개의 페르소나를 가진 한국의 정치서비스 고객들은 저마다 놓여있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종다색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요구하거나 기대하고 있지만 정치가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그것은 늘 그렇듯 획일적이고 단편적이다. 요즘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경쟁적으로 벌이는 '쇼케이스'는 누구 말대로 '추잉껌'이고 '일회용'일 뿐 본질과 변화의 반영이 아니다. 사실상 양당제인 정치구도에서 정당들이 제시하는 공약도 말이 선택이지 강요와 다를 바 없다. 중간지대도 없고, 제3의 대안도 없다. 받아들이거나 포기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멀티 페르소나'를 위한 정치서비스는 없다. 김난도 교수팀이 자신들의 작업을 굳이 '소비트렌드'라고 일찌감치 한정한 것도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는 한국 정치를 아예 논외로 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던가 싶다. 정치서비스 또한 소비재임에도 불구하고./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20-01-21 이충환

[경인칼럼]새 경제거인의 조건

산업화시대 이끈 전설들 청춘들에 롤 모델재벌 창업자 경영스토리 '슈퍼맨'으로 묘사탁월한 경영자 불구 밀레니얼들에겐 좌절만신자유주의 카오스 재연… '新전설시대' 고대미국판 '88만원 세대' 탄생을 예고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동 직후인 2008년 11월 5일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세계 최고(最古)의 경제학 전당인 런던정경대학(LSE) 신축건물 준공식에 참석했다. 여왕은 그 자리에 참석한 세계 일류 경제학자들에게 "왜 금융위기가 발생했나?"라고 물었지만 모두 꿀 먹은 벙어리였다.2011년 4월 미국 최고의 경제학자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주목받지 못했던 선배 학자들로부터 금융위기 원인을 찾았다고 실토했다. 찰스 킨들버거 미국 MIT대 교수는 1978년에 유명한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를 저술한 경제사학자였다. 하이먼 민스키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교수는 1990년대 말에 과도한 부채가 자산가치 폭락으로 금융위기를 초래한다는 '금융불안정 가설'을 발표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영국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월터 배젓은 1873년에 저술한 '롬바드 스트리트'에서 유럽 사람들을 경악게 했던 1866년 금융위기를 분석했다. 이 책이 특히 주목되는 것은 2008년 금융위기가 이보다 142년 전에 발생한 신용공황의 복제판이었다는 점이다. 1866년의 영국 오버랜드거니와 2008년의 미국 리먼브라더스는 각각 은행에서 대출받은 단기자금으로 돈놀이하는 과정에서 고객들에게 부채 폭탄을 안겼다가 막대한 규모의 혈세(血稅)만 낭비했다. 월터 배젓은 "부도덕한 기업이 악(惡)의 뿌리"라고 결론 냈다.새해 경제전망 기사들이 눈길을 끈다. 서민들의 팍팍한 살림살이가 금년에는 나아질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미국 대선과 중국의 저성장 우려 등 복병이 도사려 예단은 금물이나 작년 세계경기가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올해는 약간 나아질 수도 있어 보인다. 한국경제가 관건이다. 국내외 기관들은 금년 경제성장률이 작년보다 개선될 것으로 점치나 조족지혈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경제가 장기부진에서 헤어날 기미가 없다는 점이다. 한국의 기업가정신도 바닥이다. 빈곤의 악순환 시절에 무(無)에서 풍요를 키운 경제 거인들이 그립다.지난달 6일 잠실 롯데호텔월드에서 제1회 상전(象殿)유통학술상 시상식이 열렸다. 위기에 직면한 국내 유통산업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한국유통학회와 롯데그룹이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을 재조명했다. 신 명예회장은 귀신보다 무서운 가난의 굴레를 벗고자 19세에 일본에 건너가 고생 끝에 롯데껌을 롯데그룹으로 키워냈으며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한국에 또 하나의 롯데를 만들어서 국내 재벌 5위의 대기업집단으로 부상시킨 살아있는 전설이다. 인류의 과거는 지식의 보물창고이자 가장 생동감 있는 교육공간이다. 런던정경대 모건 위첼 교수는 자신의 경영사 강좌를 수강하는 예비창업자들에게 "CEO가 되려면 경영전문대학원(MBA) 진학보다 역사 공부"를 당부했다. 산업화시대를 이끌어온 전설들의 리얼한 경영경험은 야심찬 청춘들에 롤 모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경영학의 큰 스승 피터 드러커는 한국과 이스라엘의 기업가정신을 극찬했다. 중국인들은 역사를 거울로 간주했다. 당면한 상황을 과거 사실에 비추어 판단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내의 재벌 창업자 경영스토리를 접하면 보통사람들은 감히 흉내낼 수도 없는 슈퍼맨으로 묘사되어 교과서로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엄청난 카리스마에다 혹독한 갑(甲)질과 신비주의는 압권이었다. 탁월한 경영자임은 분명하나 밀레니얼들에게 좌절만 안길 뿐이다.'가구왕' 잉바르 캄프라드의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리더십을 그린 '이케아 스토리'가 돋보인다. 독일 귀족가문의 후예인 창업자 잉바르는 어두운 가족사를 가감 없이 드러냄은 물론 1만원도 안되는 우표 살 돈을 분실했다며 여직원을 혼낸 구두쇠였다. 한 푼이라도 비용을 줄여 판매가를 낮추려는 배려 때문이었다. 또한 임직원들을 자신의 피붙이처럼 대하는 진솔한 가족경영으로 이케아를 세계 최고 기업으로 키워냈다. 신자유주의가 윤리에 기초한 자본주의질서를 파괴하면서 카오스가 재연되고 있다. 새로운 전설시대를 고대한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20-01-14 이한구

[경인칼럼]경자년(庚子年) 정치가 바뀌려면

불체포·면책등 '국회의원 특권' 과감 철폐공천제 바꾸고 낙하산 기관장 풍토 없애야국회, 시민대표 사명감 대의기구 인식 필요'준연동형비례제' 진영정치 완화 수단 한계미국정치에서 극단의 정치가 사라진건 건국 후 100년쯤 지난 뒤였다. 연방주의자와 공화주의자들은 상대를 경쟁자로 인식하지 않고 적으로 인식하는 정치문화가 팽배했다. 독립전쟁이 끝나고서야 정치적 반대자를 파트너로 인식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대의 진입이 상호 관용의 전통을 마련해나갔다. 그러나 노예제 폐지를 둘러싼 남북전쟁은 또다시 미국정치를 극단적 적대의 정치로 몰아갔다. 남북전쟁 세대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극단의 정치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또한 인종차별이라는 벽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면서 관용이라는 민주주의의 법칙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미국정치도 처음부터 상호 배려와 관용이 자리 잡지 않았으며 상대를 파트너로 인식하는 데 긴 시간의 기회비용을 지불했다.한국정치의 적대적 구조는 점점 강화되는 추세다. 박근혜 탄핵 이후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 국민적 에너지는 이미 사라졌고, 1980년대 군사독재에 저항했던 세력이 정권을 잡은 지금 그 세력조차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진보진영의 무기인 도덕적 순결성조차 의심받고 있다. 예단은 이르지만 이른바 '하명수사 의혹'과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선거개입 의혹 사건 등은 집권핵심의 도덕성을 의심하기에 이르렀고, 86세대의 민주화 훈장의 빛도 바랬다. 이들조차 기득권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정치는 정치의 일상 문법으로 연명하는 사회의 직업군 중의 하나로 전락했으며, 특권을 쫓는 권력지향적 집단, 인생역전을 위해 투신하는 승부의 세계로 추락했다.정치가 바뀌기 위해서 보다 본질적인 것을 고민할 때가 됐다. 의원들의 특권을 없애야 한다. 특권이라면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이 떠오른다. 이는 행정부와 입법부와의 관계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 정치적 특권들이지만, 과감하게 손 볼 필요가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화려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세비를 줄이고 여행 시 받는 지원도 없애야 한다. 그밖에 무수히 많은 개인적 차원의 특권을 줄여나가야 한다. 막스 베버가 말하는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인들로 거듭 태어나지 않으면 국회의원들의 사생결단식의 행태는 계속될 것이다. 막말과 상식을 넘는 발언들의 배경도 어떻게든 공천을 받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인지도를 높이고, 당 지도부의 마음에 들기 위한 것이다. 공천제도를 바꾸고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세속적인 이익이 생기는 자리가 아님을 보여주면 된다. 공천에서 탈락하더라도 정권이 계속되면 기관장 자리를 차고 나가는 풍토 등도 사라지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국회는 유럽의 일부 국가들처럼 평범한 시민의 대표로서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무장한 사람이 일을 하는 대의기구이어야 한다. 일정 기간 국민의 공복으로서 사명을 다하고 다시 일반 시민으로 돌아오는 자리가 국회의원이라는 인식이 팽배한다면 지금처럼 일생을 걸고 사생결단식으로 덤비는 극한의 강경 투쟁은 사라질 것이다. 타협의 정치는 이의 당연한 결과물일 것이며 정치는 시민 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가 과다대표와 과소대표의 문제를 다소 완화시킬 수는 있어도 비례대표 후보 공천이 투명하게 전제되지 않는다면 이 역시 진영정치와 극단정치를 완화시킬 수단이 되기에 한계가 뚜렷하다. 선거때마다 등장하는 물갈이 역시 정치를 바꾸는 데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단순한 세대교체로는 정치를 바꿀 수 없다는 게 입증된 지 오래다. 국회의원이 어떤 자리이며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숙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선거경쟁을 핵심으로 하지만 자부심과 자존감을 가지고 국회의원이 시민의 대표라는 인식에 대한 철학적·역사적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대한국정치 70년, 미국처럼 30년이 더 필요하다면 정치는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 공직자선거법 개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제정 과정에서 심화된 적대의 정치가 경자년(庚子年)에 강화될 것인지 여부는 4월 총선의 민의에 달렸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20-01-07 최창렬

[경인칼럼]2019 기해년 정국이 남긴 불편한 진실

한반도 평화협상, 핵보유 北-美 담판장 변질소득주도성장 '과속' 각분야 속도위반 딱지만조국사태 등 '정권 도덕성' 의심·분노 자초성찰·반성 통해 역사·국민앞에 겸손해지길기해년 새해 첫 칼럼을 '문재인 정부도 역사의 한 줄기일 뿐이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했다. 새 정권의 행보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2018년 정국은 국정 각 분야의 과속으로 진영간 갈등이 가속됐다. 세차례 남북정상회담은 전격적이고 파격적이었지만 본질인 북한 비핵화는 모호했다. 변칙적인 공론화 조사로 원전폐지가 결정됐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과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급발진했다. 연말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터졌다.모든 현안에서 진보와 보수 진영의 진지전이 가열됐고, 양 진영 모두 이념의 참호를 견고하게 구축했다. 자성하고 경고할 만한 분열현상이었다. 진영논리에 감염된 정당 권력들이 권력의 실제 주인인 국민을 분열시켜 제 잇속만 챙기는 당리당략이 만연했다. 새해 첫 칼럼에서 정국을 주도하는 문재인 정권이 역사와 국민 앞에 겸손해질 것을 요청한 건 이 때문이다. 국민이 정권을 바꾸어 가며 일구어낸 역사의 대하에서 문재인 정부는 한 줄기 지류임을 깨닫기를 기대했다.2019년 성탄절 전야다. 올해 첫 칼럼에서 정권을 향해 요청했던 당부가 순진한 희망에 불과했다는 자괴감으로 마지막 칼럼을 쓰고 있자니 고통스럽다. 올 한해 국정 각 분야에서 전년의 과속이 무색하게 지체와 정체가 심각했다.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미 삼각협상은 6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반보의 진전도 없는 실정이다. 한반도 평화협상은 핵보유국인 북한과 미국의 담판장으로 변질됐다. 북한은 핵무장을 현 수준에서 동결하는 대신 전면적 제재완화를 요구한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확고해졌다. 반면에 한국의 외교적 지위는 추락했다. 트럼프의 방위비 인상 요구는 약탈적이다. 문 대통령을 모욕하는 북한 당국의 발언은 막장이다. 한국을 속국 취급하는 중국의 안하무인은 금도를 넘고 있다. 일본에 화풀이를 해봤지만 서로 상처만 입었다.대통령과 여당과 경제부처가 올해 따먹을 수 있다고 장담했던 소득주도성장의 달콤한 열매는 열리지 않았다. 대신 소득주도성장의 쾌속질주로 각종 경제지표와 실물경제 각 부문에 속도위반 딱지만 줄줄이 붙었다. 시장은 40대의 실업으로, 자영업자의 폐업으로,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반격에 나섰다. 대통령은 해외의 신용평가와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며 소득주도성장 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지만, 기업들은 본능적으로 경제침체 장기화를 직감하고 각자도생에 나섰다.정치의 후퇴는 경제의 지체와 외교의 정체현상보다 참담했다. 정권의 도덕성에 대한 대중의 의심과 분노를 스스로 자초했다. 조국사태로 문재인 정권의 기반인 진보진영 전체가 휘청였다. 조국 일가의 각종 비리의혹은 법적 판단과 상관없이 파렴치했다. 진보가 입에 달고 사는 공정과 정의의 이면에 도사린 흉측한 기득권이 드러났다. 조국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청와대와 여당과 진보진영 명망가들의 편파적인 양심을 보여줬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은 치명적이다. 의형(義兄)의 당선이라는 대통령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하명수사, 선거개입을 했다는 의혹은 박근혜의 권력 사유화에 버금간다. "문재인 정권에 민간인 사찰 DNA는 없다"는 김의겸의 우생학적 단정에 금이 갔다. 보수정권을 희롱했던 조국의 과거 발언은 현 정권을 향한 비수가 됐다. 검찰이 정국 주도권을 행사하고, 정당은 무기력하며, 국민은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갈렸다.국민은 대통령이 약속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다운 나라'의 실체를 묻기 시작했다. 국민은 2019년 정국을 통해 문재인 정권에 내재된 기득권 진보의 실체적 진실을 마주했다. 그리고 당황하거나 분노했다.송구(送舊)의 시간이다. 집권세력에게 소중한 시간이다. 흘러가는 과거에 불편한 기억을 실어 매몰하면 안된다. 성찰과 반성을 통해 권력 내부에 기생했던 불편한 진실들을 일소할 각오를 다져야 할 시간이다. 그래야 정권이 자부했던 도덕적 권위를 되찾을 수 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요청한다. 역사와 국민 앞에 겸손해지길 바란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9-12-24 윤인수

[경인칼럼]유휴시설과 폐자원의 가치화

광명동굴입구 위치한 '업사이클 아트센터'기피시설 예술공간 재탄생 역발상의 모델환경·제조업등 결합 에코디자인센터 조성자연테마파크 '문화관광복합단지' 도전장광명동굴 입구에 위치한 광명시 업사이클 아트센터를 둘러보았다. 광명시 업사이클 아트센터는 쓰레기 소각장 관련 유휴시설과 폐자원을 재활용하여 예술작품이나 생활용품으로 재탄생시키는 문화예술공간이다.업사이클아트센터는 방문객들을 위한 업사이클 아트 전시장으로 시민들을 위한 디자인과 공예교육시설로, 에코디자인 창업지원센터로 복합적 기능을 수행하는 한편 광명시 관광 콘텐츠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는 다목적 문화공간이다. 센터를 개관한 2015년 이래 3년간 100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으며 누적 공예교육 수강생은 2만명에 달한다. 관람객과 수강생의 시설 이용 만족도도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성과로 2019년 '경기문화창조허브' 시설로 선정되었다. 주민기피시설이었던 자원회수시설을 일약 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역발상의 모델이라 할만하다. 시민들이 폐자원을 예술적 표현의 소재로 재활용하는 체험교육공간이며 폐자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주민기피시설이 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예술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문화예술인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전문인력 양성기능도 겸하고 있어 일자리 창출을 비롯한 다양한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광명시는 업사이클 아트센터와 함께 에코디자인센터를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에코디자인은 제품의 소재 선택 가공과정에서 환경부담을 줄이고 경제성을 높이면서 사회의 지속가능성도 높이는 미래지향적 핵심 기술이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제품의 기능과 품질은 최대화하는 환경 친화 디자인을 말한다. 광명시는 환경과 디자인, 제조를 결합한 융·복합 장르인 에코 디자인을 특화하여 지역 일자리를 활성화 시키고 국내 에코 디자인 기업을 성장시키고 에코 디자인 보급을 통해 국내 기업의 친환경제품 경쟁력을 높이려는 실험을 하고 있다. 광명시는 업사이클링 아트센터를 기반으로 에코디자인센터를 운영함으로써 에코사이클링 클러스터를 조성해 나가는 구상을 단계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최근 광명시는 에코사이클링 클러스터와 폐광산을 한국 최고의 동굴테마파크로 개발한 성과를 융합시킨 에코 테마파크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6천500억원을 투자하여 광명동굴과 주변 약 56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자연주의 테마파크인 '광명 문화관광복합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에코테마파크는 사업은 자연주의적 휴양 시설인 에코 힐링, 생태주의적 자원순환과 재활용 복합문화시설인 에코 사이클링, 자연과 환경친화 교육 시설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에코 에듀케이션, 어드벤처 테마파크인 에코 디스커버리 등 4가지 테마파크로 이루어진다.그동안 일본의 삿포로 모에레누마공원(ㅡ沼公園)이 쓰레기처리장을 시민놀이공간으로 조성한 최고의 성공사례로, 역발상의 대명사처럼 여겨왔다. 모에레누마 공원은 홋카이도 삿포로시 히가시구에 있는 도시공원으로 17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완성된 예술공원으로 원래는 쓰레기 폐기장이었다. 1988년 세계적인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가 설계에 참여하면서 독창적인 공원으로 재탄생해서 세계적 명소가 되었다. 공원 전체가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조성되었으며, 15개 테니스장과 육상경기장, 야외무대와 음악 연주홀 등 다양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며 겨울에는 높이 50m의 모에레산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나 스노보드를 즐길 수 있는 시민 휴양시설이다. 획기적 발상의 모에레누마 공원도 조형미를 부여한 예술적 공원일 뿐이다. 공연무대가 있으나 시민들이 스스로 문화예술을 체험하거나 교육받을 수 있는 곳은 아니며 문화예술 산업을 통한 수익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능도 없다. 쓰레기 소각장을 예술품으로 재디자인함으로써 랜드마크로 만든 오스트리아 슈피텔라우 사례가 있으나 광명시처럼 문화예술 활동공간으로 조성한 것은 아니다. 광명시의 에코테마파크 조성계획의 귀추가 더 주목되는 것이다./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2019-12-17 김창수

[경인칼럼]상복(賞福) 터졌네

강화실버영상제작단, 서울노인영화제 시장상박문여고, 미디어·정보리터러시교육 우수상17일엔 손다혜 강사의 다큐멘터리 작품상강화도미디어타운 촌장 류미례감독 특별상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 올해 상복이 터졌다. 센터에서 교육을 받았거나 센터를 거점 삼아 활동하고 있는 분들의 수상 소식이 잇따른다. 첫 번째 기쁜 소식은 계절이 가을의 문턱을 막 넘어서려는 무렵 들려왔다. 강화실버영상제작단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대룡시장을 아시나요?'가 지난 9월 하순 개최된 2019 서울노인영화제 본선에 진출해 서울시장상을 받았다. 올해로 열두 번째 맞는 이번 서울노인영화제에는 국내경쟁부문 232편, 해외경쟁 부문 15개국 61편의 작품이 각각 접수됐다. 그 만만찮은 경쟁을 뚫고 평균 연령 73.8세의 강화실버영상제작단이 수상의 영예를 누리게 된 것이다.이 작품은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인천의 노포(老鋪), 고옥(古屋), 여러 섬의 해양설화 등 인천의 문화유산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위해 3년 전부터 시작한 연중기획 '시민영상아카이브, 인천'을 통해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다. 강화도에 거주하면서 센터의 미디어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시청자제작단으로 활동 중인 7명의 어르신들이 스스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 촬영, 편집, 내레이션까지 해냈다. 강화 교동도의 대룡시장을 배경으로 실향민의 가슴 아픈 사연을 전하면서 그 섬에 얽힌 한국의 근현대사를 담담하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고 깊은 시름에 잠겨있는 강화도 주민들, 특히 어르신들께 위로가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두 번째 기쁜 소식의 주인공은 인천의 전통명문 박문여고다.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미디어교육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이 학교가 한국정보화진흥원, 한국언론진흥재단,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시청자미디어재단 등 6개 기관이 공동주최한 2019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교육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차지했다. 박문여고는 2018년도 교육부 교과중점학교 중 전국 최초로 언론홍보미디어분야 교과중점학교로 지정됐다. 하지만 척박한 미디어환경에 놓여있는 인천에서 교육이 쉬울 리 없었다.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는 다큐멘터리제작반, 홍보영상제작반, 광고반, 방송반 등 4개의 방송동아리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경인교육대학교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와 합심해 '4차 산업혁명시대 미디어 환경'을 주제로 지난 9월부터 이달까지 모두 6회에 걸쳐 미디어리터러시 릴레이 강연을 진행 중이다. 특히 정현선 교수(알고리즘 리터러시), 허경 교수(디지털기술과 컴퓨팅), 심우민 교수(미디어법제와 윤리, 가짜뉴스) 등 경인교대의 쟁쟁한 교수진,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의 학교미디어교육연구소 '스토리52팀'(미디어산업의 이해, 콘텐츠 제작), 그리고 KBS(방송직업)가 참여하는 강연퍼레이드는 중등학교 미디어교육에선 매우 드문 사례다.오는 17일엔 또 두 분이 소중한 상을 받는다. 2019 시청자미디어대상 시상식에서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손다혜 강사가 작품상을 받게 된다. 출품 작품 '지워버린 마을, 부평2동 미쓰비시 줄사택' 역시 '시민영상아카이브, 인천'을 통해 제작된 다큐멘터리다. 마침 요즘 한·일 양국 갈등과 일제 강점기 유산 보존 논란으로 미쓰비시 줄사택에 연일 언론의 조명이 집중되는 상황이어서 그 기록의 정신과 영상의 가치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다른 한 분은 지난 4월 이 칼럼을 통해 소개했던 '강화도미디어타운 촌장' 류미례 감독이다. 강화도의 청년, 어르신, 주부, 그리고 발달장애인 등 다양한 계층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자생적 미디어교육 환경 조성을 위해 열심히 활동해온 노력을 인정받아 특별상을 수상케 됐다. 강화실버영상제작단의 전담강사로서 서울노인영화제 수상에도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강화도에서 멀리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센터까지 일 년 내내 분주하게 다녔는데 신발 밑창을 몇 개나 갈았는지 한번 물어봐야겠다.그나저나 센터 회원가족들 상 받게 하는 일에 열중하느라 정작 센터 직원들은 상 받는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직원들 상 받고 못 받고는 수장의 '능력'에 달려있다고들 하던데…. 며칠 전부터 날 쳐다보는 눈매가 날카로워진 건 그런 까닭인가./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9-12-10 이충환

[기고]수석대교, 인구 50만 시대 하남의 미래를 내다보고 설계하자

수석대교 신설계획을 두고 1년 가까이 하남시가 조용할 날이 없다. 일반적으로 광역을 연결하는 건설은 단순히 두 도시의 연결이라는 의미를 넘어 교통망의 확장, 경쟁을 촉진하고 사람·경제·문화의 교류를 통해 하나의 광역연합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그런데 왜 정부의 수석대교 신설계획(안)은 갈등을 촉발하며 논쟁의 중심에 서있는 것일까.국토교통부가 원인을 제공했다. 수석대교 신설계획은 2018년 12월 18일 국토교통부 '2차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 및 수도권 광역교통망 개선방안'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비록 수석대교 신설 건이 '2차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에 포함된 부차적인 교통대책이었다고는 하지만 하남시 관계자와는 협의가 있어야 했다. 정부정책의 세심함이 부족했던 부분이다. 이로 인해 갈등의 중심에서 해명하고 수습하고 대책을 고민하는 일은 모두 하남시의 몫이 되어버렸다.두 번째 수석대교 신설계획은 남양주 왕숙지구 교통대책(안)에만 포함되어 있었다. 세심한 배려, 정부정책의 형평성이 부족했던 부분이다. 교통대책을 놓고 해석해보면 수석대교 신설계획(안)은 남양주 교통편의를 위한 대책일 뿐이다. 하남은 남양주 축제의 들러리가 되고만 것이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소외와 무시, 정책의 부당함을 경험한 시민들의 원성(怨聲)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세 번째 하남의 교통대란, 가까운 미래도 예측하지 못했다. 지금도 하남의 교통량은 도시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이미 선동 IC는 교통대란의 길목이 된 지 오래다. 하남은 서울과 인접한 지리적 요충지로 인구유입 속도가 매우 빠르다. 2014년 15만, 2019년 27만, 교산신도시가 건설되면 인구 50만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에 왕숙지구, 남양주에서 몰려든 차량들이 선동IC에서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교통지옥이다. 한쪽에는 교통편의를 제공하며, 한쪽을 교통지옥으로 만드는 수석대교를 누가 반겨 맞을 수 있겠는가. 선동IC로 막아보겠다는 행정편의적 결과, 교통대책에 대한 철학 부재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형평성이 결여된 정부정책, 가까운 미래도 담아내지 못한 정부정책, 한쪽을 교통지옥으로 만드는 정부정책을 과연 누가 반겨 맞을 수 있겠는가? 수석대교 신설계획(안)만큼은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 시간도 충분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스마트도시 계획·설계시스템' 개발 및 이에 기반한 3기 신도시 건설계획에 따라 최소 2년이 지나야 국토교통부의 '2차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이 실행가능하다. 다시 말해 우리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도 수석대교 신설계획 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그렇다면 수정(안)에는 무엇을 담아내야 함께 미래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가장 상징적인 제안부터 해보자. 정부정책은 형평성을 갖춰야 한다. 남양주 시민의 교통편의를 높이고 하남시민의 교통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장소로 수석대교의 위치변경이다. 또한 위치변경 고시와 함께 수석대교 건설과 지하철 9호선 남양주 연장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 다리아래 터널이든 다리 위로 통과하든 수석대교 건설과 9호선 남양주 연장을 함께 추진해 9호선 확장에 따른 지자체의 재정부담 해소, 도시 간 연계 강화, 교통량 분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미래비전이 담겨있어야 미래의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두 번째 국토교통부는 '수석대교 신설계획 위치 변경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서 제안한 지하철 9호선 남양주 연장 병행추진 계획과 함께 하남시의 요구를 대폭 수렴한 수석대교 인근 교통기반시설 확충계획을 담아내야 한다. 정책의 형평성과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당사자인 하남시의 의견이 중요하다. 그래야 함께 미래의 혜택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마지막으로 GTX-D노선의 조기 확정과 노선연장 계획을 담아내야 한다. 이번 왕숙지구 교통대책[안]에는 '지구 내 GTX-B노선 역사 신설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하남은 지난 10월 31일 광역교통기본구상 '광역교통 2030' 발표에 따라 GTX-D노선에 포함될 예정이다. 때문에 D노선의 조기 확정과 더 나아가 하남의 D노선을 남양주 왕숙지구의 B노선과 연결하고 수도권 광역교통망의 확장과 하나의 광역연합체로 성장하는 또 다른 미래비전을 담아내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하남은 GTX-A·B·C·D 모든 노선과 연결되고 수도권 주요 거점을 30분대로 연결하는 수도권 광역교통망의 중심, 성장의 거점에 설 수 있게 된다.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관철할 수 있을까. 시민의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과 행정이 힘을 모아도 마찬가지다. 시민과 행정, 정치가 지혜와 힘을 모아 하나의 대안으로 관철해내야 한다. 시간은 모두에게 충분하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수석대교 신설계획(안) '원점 재검토'를 선언하고, 인구 50만 시대 하남의 미래를 내다보고 설계하자. 하남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함께 미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대안과 설득논리를 개발하고 관철하자. 시민과 행정 그리고 정치의 단단한 협치로 우리의 하남을 이제 명실상부한 광역거점도시, 미래성장의 중심도시로 이끌어나가자./강병덕 강릉영동대 부총장강병덕 강릉영동대학교 부총장, 전)더불어민주당 정책위부의장

2019-12-04 강병덕

[경인칼럼]송년모임은 '군칠이집'에서

韓, 한해 1인당 알코올 10.2ℓ 섭취… 亞 2위1970년대 정점 후 줄다가 2015년 다시 증가청장년 고용불안·인건비 상승등 추운 겨울정부, 각종 혈세 뿌려도 '언 발에 오줌 누기'한국인은 술을 '마신다'가 아니라 '먹는다'고 할 정도로 술의 가치가 남다른 민족이다. 국민 10명 중 7명이 음주예찬론에 긍정적일 뿐 아니라 음주문화의 역사도 깊다.18세기 조선의 인구는 800만 명으로 서울은 30만 명이 거주하는 최대도시였다. 서울의 술집은 상점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번창했다. 한양 성안에는 주등(酒燈)이 걸린 술집이 수천호이고 술집 종사자 및 관련 인구가 수만 명으로 한양성 거주 전체인구의 10%~20%를 차지했다. 술집은 한양 어디를 가든 마주치는 도회지풍경의 핵심이었다.1766년경 종로에서 청계천 가까운 쪽에 위치한 '군칠이집'은 술독이 100여 개가 넘는 데다 각종 안주를 팔았는데 특히 개장국 요리를 잘해서 유명세를 탔다. 명성이 너무 높아 너도나도 군칠이집 간판을 걸고 장사하는 지경이어서 100년 후 한양에서 군칠이집은 서민들이 즐겨 찾는 주점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둔갑했다. 청계천 광통교 일대는 가장 번화하고 고급스러운 술집거리인데 기생이 술시중을 들고 매음도 가능한 색주가마다 문전성시였다. 술집이 성행하면서 서민들은 막걸리를, 양반들은 소주를 애용했는데 소주는 13세기 몽골침략 때 아랍에서 고려에 도입돼 조선시대 양반들 술상의 단골메뉴가 되었다. 남녀노소 모두 음주를 즐김은 물론 어린이들도 열 살 이전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갈수록 독한 술 수요도 증가해 서울은 과음의 술꾼들로 넘쳐났는데 술집의 주 고객은 중인(中人) 이하의 서민들이었다. 풍속도 퇴폐해지고 폭음문화가 사회와 가정에 큰 해악으로 부상해 18세기에는 살인사건 중 음주가 치정(癡情) 다음으로 많았다. 양조용으로 쌀이 너무 많이 소진되어 쌀값이 뛰고 덩달아 물가도 오르자 영조(재위 1724~1776)는 빈번히 금주령을 내렸지만 폭음문화는 여전했다.세계 189국 국민들이 한 해 동안 마신 술의 양이 2017년 356억ℓ로 1990년의 210억ℓ보다 무려 70%나 증가했다. 연간 1인당 알코올 섭취량도 1990년 5.9ℓ에서 2017년에 6.5ℓ로 늘었다. 금년 5월 독일 드레스덴대학의 임상심리·정신치료연구소는 전 세계인의 1인 평균 술 소비량이 2030년에는 7.6ℓ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전통적 주류소비 강세지역인 유럽과 미국에서는 술 소비가 둔화하고 있다. 세계 최고 주당대국인 러시아에서도 술 소비가 많이 줄었지만 중국, 인도, 베트남 등 중간소득국의 음주량이 급증한 때문이다. 위르겐 렘 드레스덴대학 교수는 베트남의 1인당 GDP 증가와 술 소비량 증가 사이에 상관관계가 높음을 증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술과 건강에 대한 국제현황보고서2018'에 따르면 한국인의 2015~17년 평균 알코올 섭취량은 10.2ℓ로 아시아에서 라오스(10.4ℓ)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최고 음주대국인 몰도바와 러시아, 프랑스 등에는 못 미치나 일본(8ℓ), 중국(7.2ℓ), 미국(9.8ℓ)보다 높다. 주목되는 것은 한국의 1인당 평균 알코올 섭취량이 1970년대에 정점을 찍은 후 줄어들었다가 2015년부터 다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5년의 한국인 평균 음주량을 지금보다 더 많은 10.6ℓ로 전망했다. 한국은 나라밖에서 벌어 먹고사는 고달픈 국가이다. 해외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어 국내의 산업구조 변화가 빠를 수밖에 없다. 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 그리고 생산의 디지털화 및 인공지능화 확대는 발등의 불이어서 한국 청장년들의 고용불안 스트레스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내의 대표 자영업인 도소매, 음식, 숙박업체들은 온라인업체의 파상공세에 인건비 급등은 점입가경이어서 당장 올겨울 나기도 힘겨워 보인다. 정부가 각종 구실을 붙여 취약부문에 혈세를 뿌리지만 나라살림에 경고등만 켜질 뿐 언 발에 오줌 누기이다. 집값을 잡는다고 대출에 족쇄를 채우고 저금리로 선순환을 기대하나 부동자금만 눈덩이처럼 커질 뿐이다. 불황일수록 소비가 미덕인데 절대다수 국민들이 지갑을 닫는 것이 근본원인이다. 군칠이네에서 송년모임이라도 가져야 할 판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9-12-03 이한구

[경인칼럼]정치개혁 없는 선거경쟁은 무의미하다

與 청년·여성들 당론과 다른 목소리 못내일부, 논리 안맞는 조국 정국서 두둔 일관선거제, 구체적 정치작동방식 교체 고민해야정치 재구성 선거쟁점 된다면 '개혁' 분수령21대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당의 분화와 통합 등 정치구도의 변동은 불가피하다. 이와 별개로 선거승패를 좌우하는 요인은 인물, 정당, 선거구도, 공약 등일 것이다. 내년 총선에 정권심판론의 프레임이 작동할지, 여러 실책으로 집권당과 다시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는 제1야당에 대한 부정평가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정당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정치 무관심으로 투표율이 낮아질 수도 있다. 단 선거를 가르는 쟁점 축이 새로이 형성된다면 투표율 상승은 물론 선거이후 한국사회의 지향을 제시할 수 있는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각 정당이 벌이는 이른바 '인재영입', 공천혁신 등이 정당이 시민사회의 균열을 반영하고 과소대표된 계층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구도로 바뀔 수 있는 토대가 되는가의 문제다. 대체로 선거전의 막은 인물영입 경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어느 당이 공천에서 혁신적인가에 초점을 맞춰서 평가가 이루어진다. 상대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을 한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했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압승이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제1당을 새정치민주연합에 넘겨준 것은 진박논란 등 친박이 공천에서 불공정하게 개입한 것이 주된 원인이다. 선거때마다 제기되는 세대교체와 물갈이론은 어떤가. 선거때마다 물갈이율은 낮지 않다. 대략 40%에 육박하는 수준의 물갈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공천을 혁신적으로 하고, 물갈이율이 높아도 한국정치의 작동방식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퇴행적 모습만 반복되고 있다. 선거는 유권자의 갈등을 조직화하고 표출함으로써 사회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합의를 모색할 때 의미가 있다. 선거경쟁이 없는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거가 갈등 증폭과 진영 간 대결을 강화하는 기제로 전락한다면 선거는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정치꾼들의 출세 도구로 전락할 뿐이다.21대 총선 결과는 차기 대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정당들의 경쟁은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집권당의 국정실패가 반대당의 집권찬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개혁을 통한 정치의 재구성이다. 청년·여성 등의 영입에 대한 긍정적 평가의 이유는 이들이 과소대표된다는 문제의식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원내에 진출해서 당론과 배치되는 발언도 할 수 있고 당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지 않을 때 영입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은 젊은 소장 의원들에게 당론과 다른 주장이나 청와대와 건강한 긴장을 형성할 수 있는 소수의 목소리조차 발견할 수 없다. 이철희·표창원 의원의 때늦은 자기고백은 집권당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민주당 총선기획단에 포함된 일부 현직 당직자와 과거 당직자인 청년·여성의 경우 조국 정국에서 논리에 맞지 않는 과도한 조국 두둔으로 일관했다. 민주당 내에서조차 공정과 정의를 외면한 여권의 조국 비호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이어지고 있는 마당인데도 그렇다. 물리적인 나이, 성별 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원내에서 국민들의 삶을 바꾸고 진영에 갇힌 정치이슈에서 진영과 다른 헌법기관으로서의 주장을 펼 수 있는 정당구조와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청년·여성으로 상징화·이미지화되고, 기성정치와 차별성이 없으며 더욱 빠르게 출세를 위해 적응해 갈 개연성이 높은 인사들이 어떻게 그러한 질서를 생산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중요하다. 선거제 개혁은 제도로서 기본토대를 이루고 보다 구체적으로 정치작동 방식의 교체를 고민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검찰개혁도 중요하지만 민생을 살필 수 있는 정치의 재구성이 선거의 쟁점 축이 된다면 21대 총선은 정치개혁의 분수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득권 정치는 변화보다는 현재 질서에의 편승을 선호한다. 세대와 관계없이 기득질서에 누가 더 잘 올라타느냐가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개혁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9-11-26 최창렬

[경인칼럼]이해찬의 장기집권론

당 대표 경선서 승리하고 '100년 비전' 선포한세기 통해 실현할 국가비전·정책 있어야최저임금 너무 올랐고 검찰개혁 의미 사라져지금부터라도 민심 대통령에 제대로 전달을이해찬 대표는 수시로 더불어민주당의 장기집권을 강조한다. 20년 집권론으로 지난해 8월 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하자 마자 "민주당이 대통령 열분은 더 당선시켜야 한다"며 집권의 목표를 50년으로 상향했다. 이도 성이 안찼는지 올해 초에는 21대 총선에서 압승과 차기 대선 재집권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오는 100년을 전개할 것"이라며 '100년 집권'의 비전을 선포했다.이 대표가 지난 9월 민주당 창당 기념식에서 밝힌 장기집권 이유는 명쾌하다. "정권을 빼앗기고 나니 우리가 만든 정책 노선이 아주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봤다"며 "재집권해 우리 정책이 완전히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 과제"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 대표의 장기집권론을 국민의 선거권을 무시하는 정치적 오만이라고 조롱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이 선택만 하면 민주당 100년 집권은 얼마든지 가능하다.이 대표의 100년 집권론의 문제는 따로 있다. 100년 집권을 말하려면 한 세기를 통해 실현할 국가비전과 이를 실현할 정밀한 정책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이, 민주당이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가 100년 집권을 호언할 정도로 장기적인 비전과 정책을 예비한 흔적은 없다. 오히려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 집권 전반기의 정책들을 살펴보면 마치 이번을 마지막 집권으로 여기는 듯한 조바심으로 가득하다.집권하자 학계와 산업계의 반대를 물리치고 권력의 의지만으로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원자력 산업 생태계는 무너지는 중이고, 전력 강국의 미래는 불투명해졌고, 전국의 야산은 태양광 사업자들에 의해 훼손되고 있고, 대통령은 자신이 불안해 포기한 원전을 해외에 수출하려 애쓰는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다.최저임금은 올려도 너무 올렸다. 모든 노동자의 주당 근로시간을 예외 없이 52시간으로 확정했다. 알바생은 일자리를 잃고, 알바를 내보낸 편의점주는 가족이 24시간 노동을 떠안았다. 52시간 노동자들은 가족과 저녁을 즐기는 대신 줄어 든 급여를 채우기 위해 투잡을 뛰고, 전국 상가의 저녁은 을씨년하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지지하기 위한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52시간 근로제가 소득주도성장을 직격하고 있다. 이를 가리려 쏟아부은 재정은 눈 먼 돈이 되어 효용 없이 시장에서 증발된다.검찰개혁안은 여당과 청와대가 조국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을 핍박하면서 의미는 사라지고 의도만 의심받고 있다. 윤석열에 대한 여당과 대통령의 표변으로, 여론은 공수처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많은 국민들이, 적어도 비판진영에선 지소미아 파기와 대입정시 확대를 조국 사태가 낳은 돌연변이로 여긴다.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선거법개정안은 우려한대로 지역구 의석 현행 유지를 놓고 자중지란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 난리를 치고 패스트트랙에 올린 이유가 무엇인지 모호해졌다.대통령은 김정은을 3번 만났고, 김정은과 트럼프의 2차례 회동을 주선했다. 하지만 북한은 영변핵시설 폐기와 제재해제를 교환하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 탄핵에 쫓기는 트럼프가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포기하고 스몰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말 연초면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혹시라도 완전한 북한 비핵화 로드맵 없는 완전한 대북제재 해제라면, 이는 정부가 국민에게 한 약속과 다르다.문재인 정부 전반기에 실행한 국정 각 분야의 정책들 대부분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후유증을 낳았다. 이대표가 말한대로 100년을 집권할 정당과 정권의 태도로 국민의 여론과 야당의 반대를 수렴해 신중하게 추진했다면 없었을 후유증이다. 대통령이 5년 임기에 갇혀 서두르고 조바심쳐도, 100년 집권을 추구하는 여당이 중심을 잡고 자중자애했으면 최소화 할 수 있는 후유증이다./윤인수 논설위원100년 집권의 꿈이 진정이라면, 이 대표는 지금 부터라도 5년 임기의 대통령을 향해 민심을 제대로 전해야 한다. 오늘 하루에 뜨고 지는 해 다보고 죽는 하루살이 정치가 아니라, 100년 집권 1기에 뜨는 해와 집권 20기에 지는 해를 볼 수 있는 유장한 정치를 해야 한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의 현실을 대변해야 우선 20년 집권이나마 희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윤인수 논설위원

2019-11-19 윤인수

[경인칼럼]악플방지법보다 차별금지법을

'댓글 준실명제' 익명 비방 근절 효과 기대건전한 비판·의사 표현 위축시킬 가능성도야만적 정치·선정적 보도 문화부터 바꿔야'차별·혐오 선동 표현' 처벌기준 강화 필요악성댓글 근절책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가수 겸 배우 설리의 사망을 계기로 악성댓글에 대처하기 위한 '악플방지법'(일명 설리법)이 속속 발의되고 있다. '악플'은 악성리플의 준말로 근거 없이 게시자나 특정인을 비난하거나 헐뜯는 내용을 의도적으로 게시하는 답글을 말한다. '악플 방지법'은 악성 댓글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한 노력으로 보이지만 그 타당성은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악플방지법은 댓글 준실명제라고 할 수 있다. 댓글 아이디 전체를 공개하고, IP를 드러내 온라인 댓글 작성자의 책임의식을 높이는 내용이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표시 의무를 부과해 포털별로 다르게 이뤄지던 아이디 공개 정책을 통일하도록 규정하자는 것이다. 정보통신법 개정안 중에는 혐오 표현도 불법정보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혐오표현을 삭제하도록 하는 법률안도 있다. 모두 익명의 배설공간으로 비난받고 있는 인터넷 공간을 정화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댓글 준실명제에 대한 여론은 찬성 쪽이다. 익명성에 숨어 누군가를 비방하고, 모욕하는 행위를 근절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명제로 운영되는 SNS에서도 악플은 기승을 부리고 있듯이 익명성이 악플의 뿌리는 아니다. 무엇보다 댓글 실명제가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이나 모욕행위를 막는 순기능 보다는 건전한 비판이나 일반의사 표현까지 위축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헌법재판소도 인터넷실명제를 위헌으로 판결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의사 표현 자체를 위축하여 자유로운 여론 형성을 방해한다는 이유를 들었다.악성댓글 문제는 악플방지법과 같은 대증요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 악성댓글을 재생산하는 사회구조를 둘러보면서 대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 정치 문화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가 악성 댓글의 '플랫폼' 아닐까. 정치는 권력투쟁의 '본능' 때문에 다른 정치세력이나 정치인을 비판하게 마련이지만 한국 정치에서는 합리적 논쟁이 아니라 막말이나 혐오스런 표현으로 정치 활동을 대신한다. 사안마다 진보와 보수, 좌우의 이념대립으로 대체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사회를 증오와 대결의 복마전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야만적 정치문화는 선거철이 되면 더욱 기승을 부린다.언론의 책임도 크다. '악플'로 피해가 발생하면 언론들은 남의 일인 것처럼 야단법석이지만, 정작 알권리를 빙자하여 사생활을 수집하고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언론에 보도된 연예인이나 개인의 사생활은 '악플러'들의 먹잇감이 된다. 포털 운영자의 책임을 높여야 한다. 현재 주요 포털사이트들은 악플 대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유튜브는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고 있다. 포털은 반복적인 악성댓글 게시자에게 페널티를 주고 고의성이 높을 경우 완전히 추방하는 방식으로 인터넷 게시판 관리 구조를 바꿔 나가야 한다. 혐오표현에 대한 처벌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비판은 생산적 결과를 낳을 수 있지만 비난은 관계를 파괴한다.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혐오 표현이야말로 반사회적 범죄행위 중의 하나이다.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혐오 표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위안부 동원과 같은 일제의 전범행위임을 부정하는 주장처럼 확립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혐오 발언에 대해서는 독일처럼 사회적 범죄로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렇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이야말로 혐오발언과 악플 재생산을 근절하는 대책 아닐까. 이 같은 노력과 함께 학교나 언론은 올바른 인터넷 문화의 정착을 위해 악플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공론의 장을 민주적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는 가치관을 심어주는 인권 교육과 선플 캠페인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야 한다./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2019-11-12 김창수

[경인칼럼]유령과 언론

법무부 느닷없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훈령기자협회는 언론통제 시도 즉각 중단 성명美 남북전쟁 검열의 유령 시공간 뛰어넘어 '조국전쟁'에 임장한 것이라면 달갑지 않다미국 남북전쟁은 개전 4년만인 1865년 4월, 남군의 항복으로 끝났다. 전쟁은 미국 역사의 전환점이 됐을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커다란 분기점이 된다. 승리한 북부의 자본을 중심으로 미국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윽고 맞는 1880년대는 일찍이 없었던 미국의 성장시대가 된다.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슈퍼파워'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런데 남북전쟁은 언론의 역사에서도 기억할만한 장면들을 제공한다. 특히 정부에 의한 언론검열이 체계적으로 시행된 최초의 전쟁이란 점에서 주목된다.언론검열은 주로 북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시행됐다. 첫 단계로 전쟁 초기인 1861년 북군 최고사령관 윈필드 스콧 장군은 군사적 성격을 띤 모든 전신을 금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사실 불법적인 조치였지만 연방의회가 이듬해 1월 대통령에게 공식적인 언론검열 권한을 허용할 때까지 효력이 지속됐다. 다음 단계는 검열 권한이 국무성으로부터 전쟁성으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에드윈 스탠턴 전쟁성장관은 특파원들에게 기사를 송고하기 전 헌병사령관에게 기사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군사적인 문제가 야기될 것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해당되는 부분을 삭제했다. 마지막 국면은 1864년부터 1965년 종전까지의 시기인데 기이하게도 언론 스스로 군 당국의 검열에 자발적으로 협조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군 당국이 신문 발행을 중단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1863년 6월 오하이오 지역을 담당하던 앰브로스 번사이드 장군은 시카고 타임즈에 대해 사흘간의 발행 중지 명령을 내렸다. 신문 발행인이 노예해방선언 이후 군 당국의 잇단 경고를 무시하고 링컨 대통령에 대해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며 비난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번사이드 포고' 사건이다. 이러한 신문 발행 중지 조치는 남군에 우호적인 신문들에 대해 간헐적으로 취해졌다. 언론에 대한 사령관들의 개인적인 불신과 혐오 또한 취재활동에 중대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다. 윌리엄 셔먼 장군은 빅스버그에서의 자신의 패배를 보도한 뉴욕 헤럴드의 특파원 토머스 녹스를 남군 스파이로 몰아 처형하려다 실패하자 기어코 진영에서 추방해버렸다. 우리의 근현대사 역시 언론통제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민주화 이후로는 상황이 나아져왔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올해 4월 발표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41위. 북유럽 국가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시아에선 대만과 함께 가장 높은 수준이다. 덕분에 기자회 들루아르 사무총장 일행이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 나라에서 때아닌 언론검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30일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라는 훈령을 느닷없이 발표했다. 총 35개 조항으로 돼 있는데 '검찰청의 장은 오보한 기자에 대해 검찰청 출입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조항이 언론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한국기자협회는 언론통제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전국언론노조도 언론 길들이기 내지는 언론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반대성명을 냈다. 언론학계도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수정헌법 1조를 연구하는 미국 헌법학자 빈센트 블라시(Vincent Blasi)는 정부의 언론통제는 공권력 남용을 초래하고 봉건주의 사회로의 회귀를 야기한다고 강조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과 같은 조직이 저지르는 사적인 권력 남용보다 더 심각한 악이 정부의 공권력 남용이라고 본다. 언론이야말로 이런 공권력의 남용을 감시하고 점검할 수 있는 사적 영역의 유일무이한 조직이라는 게 세계적 석학의 지론이다. 오히려 더욱더 확장된 보호가 요구되는 언론의 '점검 가치(checking value)'를 누르는 건 아시아의 언론자유 우등국가답지 않다. 국격을 깎아내리는 일이다. 더욱이 150년 전 미국 남북전쟁터를 떠돌던 검열의 유령이 시·공간의 강을 훌쩍 뛰어넘어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을 불사르고 있는 '조국 전쟁' 현장에 임장한 것이라면 영 달갑지 않다./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9-11-05 이충환

[경인칼럼]출판자본주의 그늘

갈수록 출판환경 척박 연구물 간행 불가능대학가 서점 점점 줄고 복사집만 우후죽순정부, 대중교양서 변경 학술도서지원 축소지식 다양성 압살하는데 놀아나 실망이다1846년 7월 어느 날 아일랜드의 모든 감자들이 48시간 만에 죽었다.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아일랜드 국민에게 최악의 재난이 시작된 것이다. 감자 기근은 먼저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 갔으며 다음에는 노인들을, 그 다음에는 나머지 모두의 생명을 앗아갔다. 어떤 이는 사정이 나은 곳을 찾아가다 길에서 횡사했으며 마을 전체가 사라지기도 했다. 감자역병 때문이었다. 100만여 명이 굶어죽었으며 100만 명 이상은 재앙을 피해 해외로 이민을 떠났다. 아일랜드인 4명 중 1명이 단기간에 사라진 것이다.1843년 미국 뉴욕에서 처음 발견된 감자역병이 대서양을 넘어 1845년에는 유럽의 농촌을 휩쓸었다. 1845년 9월 6일자 아일랜드 신문들은 감자역병이 상륙했다고 대서특필했는데 불과 1년 만에 아일랜드 농촌이 초토화되었다. 1800년 초에 아메리카에서 수입된 럼퍼감자(lumper potato)는 완전식품으로서 좁은 땅에서도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행운의 선물이었다. 아일랜드는 기후가 춥고 습해서 감자 말고는 잘 자라는 작물도 별로 없었다. 전국의 농촌이 감자 단작(單作)지대로 변한 상황에서 급작스런 역병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아일랜드인이 스스로 식량 다양성을 포기한 대가였다.모 탐사전문 기자가 작년 초에 책을 출판했다며 필자에게 한 권을 보냈다. 한국전쟁 무렵 호남과 제주도의 양민학살 현장을 몇 년간 손수 발품을 팔며 어렵게 모은 자료들을 책으로 만든 것으로 사료(史料)적 가치가 충분했다. 당시 그는 경상도 지역 조사와 함께 제2권을 집필 중이었지만 끝내 작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출판사들이 돈벌이가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친 것이다. 서울 관악구 낙성대 부근의 G연구소는 근래 들어 연구비지원 사업을 중단했다. 명망이 있는 노(老) 교수님이 사재(私財)를 털어 설립한 곳으로 매년 기초학문 신진들을 선발해서 소정의 장려금을 지급하고 연구 성과를 책으로 출간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갈수록 출판환경이 척박해지면서 학술출판사들조차 매출이 불투명한 서적간행을 외면하는 바람에 연구물 출판이 거의 불가능해진 것이다. 대학교수들은 학기 초만 되면 교재선정에 불편을 겪는다. 한글로 저술된 전공서적이 갈수록 줄어든 때문인데 대학교재 출판사들이 부지기수로 문을 닫았다. 교수들을 논문기계(?)로 몰아가는 교육당국의 무지(無知)가 결정적이다. 웬만한 볼륨의 학술서적 한 권을 발간하는데 원고작성에만 최하 1년여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SCI(Science Citation Index)급 논문 한편보다 낮게 평가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불법복사도 한몫 거들어 출판사 영업사원들은 절망이다."대학가에 서점이 많이 줄었습니다. 구내서점이랑 학교 밖 K대 서점 말고는 없어요. 그런데 그 옆에 복사집만 70곳이 넘습니다. 복사집이 강의계획서를 보고 교재를 구입해서 스캔한 파일을 갖고 있는 거죠. 학생이 와서 교재를 달라고 하면 바로 파일을 복사해서 줍니다." 정부는 한술 더 뜬다. 학술출판사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았던 '우수학술도서 선정사업'이 2014년에 세속적 기준의 '세종도서' 선정사업으로 바뀐 것이다. '우수학술도서 선정사업'은 대중성이 없어 출판이 어려운 기초학문 서적들이 햇빛을 볼 수 있도록 문화체육관광부가 해마다 30여억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세종도서 선정사업의 경우 예산액은 이전과 동일하나 '국민 공감'을 기준으로 선정도서수를 대폭 확대하고 여기에 우수학술도서까지 끼워 넣었다. 대중교양서를 위한 정책으로 변질되면서 학술도서 지원 사업이 현격히 축소된 것이다. 지식축적 정도와 경제발전 간에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 미국, 독일, 일본 등이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의 4차 산업혁명에 올인하는 이유이다. 선진국 정부들은 돈벌이 안 되는 양서(良書) 종류를 늘리는데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지식재산 축적의 요체는 도서 가지 수를 늘리는 것이다. 지식의 다양성을 압살하는 출판자본주에 놀아나는 정부에 실망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9-10-29 이한구

[경인칼럼]사과와 반성이 없는 적대적 공존의 정치

검찰개혁보다 '조국수호' 방점 서초동집회국론분열 아니라는 대통령, 사태 더 악화시켜집권당·내각 사과후 인적쇄신 민심다가가야박근혜탄핵 인정않는 한국당 전철 밟지않길광장민주주의와 촛불민심은 헌법을 농단하고, 권력을 사유화한 정권의 응징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었다. 한국사회에 광범하고 깊숙이 내재한 사회적 부조리와 불평등, 부정의를 척결하고 양극화를 고착화하는 사회구조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요구가 촛불로 표출된 것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득표율은 41% 였으나 임기 초기 정권 지지율이 70%에서 80%를 넘나든 것은 보수·진보의 이념적 구분과 진영의 논리가 개입될 공간이 없을 정도로 정권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지지율은 반토막이 났다. 원인이 무엇일까. 촛불시민이 요구하는 사회개혁에 대한 기대의 포기, 불신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당·정·청의 집권연합은 검찰개혁에 올인하고 있다. 지난 4월의 패스트트랙 정국 때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검찰개혁안에는 여당의 주장으로 특수부 폐지 또는 축소가 빠졌다. 오히려 특수부 폐지·축소는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요구했다. 그러나 22일 단행된 특수부 폐지·축소는 여권이 검찰개혁의 핵심의제로 들고 나오며 이뤄졌다. 검찰개혁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은 없다. 검찰개혁은 정치·교육·경제·노동·복지 등을 포괄하는 사회개혁의 하부단위다. 정권이 개혁을 기치로 내세우고 이를 통해 선거승리와 정권재창출을 시도하는 건 자연스런 정치공학이다. 그러나 정치문법에 의거한 셈법을 넘어 시민의 의사와 괴리된 과도한 시도는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지난 패스트트랙 정국에 한국당은 참여하지 않았고, 검찰개혁 등 사법개혁안 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먼저 처리하기로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 여당 등 집권세력은 사법개혁안을 먼저 처리하겠다고 한다. 사정변경의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개혁은 조국 사퇴 전에는 그를 지키기 위한 명분과 대의로, 사퇴 이후에는 사태의 책임을 모면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는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검찰개혁은 시대정신이고 당위이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는 보다 깊은 논의를 통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담보하기 위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합의가 전제되는 법제화가 필요하다. 한국당이 이에 반대하는 것도 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조국 사태는 상식과 합리의 영역에서 과도한 프레임이 설정된 사례다. 검찰의 과잉수사의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과 석달 전인 윤석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때 듣기 민망할 정도의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여당 국회의원들의 입에서 '검란', '윤석열의 난' 등 저주에 가까운 검찰비난이 쏟아진 것은 정권의 이해에 부합하기 위한 논리 비약이다. 검찰은 개혁에 저항하는 수구기득권이 됐고, 재벌개혁과 노동개혁, 교육개혁 등의 의제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서초동 촛불집회는 검찰개혁보다 조국수호에 방점을 찍었었다. 조국 이후 검찰개혁의 무대가 여의도로 옮겨온 것이 이를 방증한다. 노무현과 문재인, 조국이 등치되는 정치문법에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다는 진영의 강한 트라우마가 작용하고 있다. 검찰개혁에 동의하지만 이를 조국만이 해 낼 수 있다는 비상식에 동의하지 못하는 시민들, 조국 퇴진에 공감하지만 박근혜 탄핵 무효나 석방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는 광장정치의 희생양이다.서초동과 광화문의 양극에서 대치하는 모습에도 국론분열이 아니라는 대통령의 인식은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문재인 정권이 레임덕을 겪지 않으려면 진영내의 폐쇄성과 경직성을 떨쳐내야 한다. 권력내부에 건강한 긴장과 견제가 작동하지 않을 때 정권의 위기가 오는 법이다. 집권당, 내각 모두 정식으로 국민에 사과하고 인적쇄신으로 민심에 다가가야 한다. '수능재주 역능복주(水能載周 亦能覆周·물은 배를 띄우지만 뒤집기도 한다)'란 말에서 보듯이 민의를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 박근혜 탄핵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한국당의 전철을 민주당이 밟지 않기 바란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9-10-22 최창렬

[경인칼럼]대통령의 꿈? 조국의 희생?

'조-윤 드림커플'로 희망했던 검찰 개혁정치·경제·안보·외교 등 국정전반 '수난''헌사' 마음에 묻고 국민통합 강조했어야한쪽진영 탈피 현실봐야 새길 찾을수 있어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조국 법무부 장관을 집에 보내면서 정중한 '송별사'를 밝혔다. 국민에겐 "송구스럽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조 장관에겐 "온갖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는 자세로 검찰개혁의 큰 동력이 됐다"고 했다. 언론을 향해선 "신뢰받는 언론을 위한 자기 개혁"을 당부했다. 조국사태로 인한 국민 갈등과 사회적 진통에 대한 사과와, 조 전 장관에 대한 극진한 예우, 언론에 대한 뜬금 없는 당부가 맥락없이 나열되는 바람에 강조하고 싶었던 '검찰개혁'은 모호해졌다.그러나 개인적으로 여러번 곱씹었던 대통령의 발언은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 개혁을 희망했지만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다"는 대목이었다. 대통령은 조-윤 드림커플로 역대 어느 정권도 해내지 못한 검찰개혁을 이룰 희망에 부풀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희망이 꿈으로 끝났다니 처연하다. 문제는 희망이 꿈으로 끝난 사람이 다름 아닌 대통령인데 있다. 대통령의 희망이 꿈으로 끝나면 그 결과가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 미친다. 만에 하나라도 대통령의 희망들이 속속 무너져, '나의 모든 희망은 꿈으로 끝났다'고 토로하는 지경에 이르면, 그야말로 국가와 국민에겐 악몽이다.지금 국정 전반은 대통령의 희망과 달리 전개되고 있다. 경제분야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심각한 후유증을 양산하고 있다. 서민의 가계소득을 올려 경제성장을 지탱하겠다며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고 현금복지를 대대적으로 시행했지만, 청년 일자리는 사라지고 자영업자는 문을 닫고 경제는 활력을 잃었다. 남북문제는 대통령이 희망했던 한반도비핵화와 남북평화공존을 북한이 걷어차는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한미동맹은 모호해지고 한일관계는 역대 최악이며, 중국은 노골적으로 상전 행세를 하면서 외교적 고립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정치, 경제, 안보, 외교 분야에서 대통령의 희망이 수난을 겪고 있다.대통령이 희망을 꿈으로 끝내지 않으려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통령의 '조국 송별사'는 그런 면에서 아쉽다. 대통령은 조 전 장관이 검찰개혁의 동력이 됐다고 극찬했지만 과연 그런가.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검찰수사를 향해 여당과 진보진영이 장내외에서 보여 준 일사불란한 압력과 저항을 지켜보면서 상식적인 국민들은 여권의 검찰개혁 의도를 의심하게 됐다.여권은 검찰개혁의 제도적 완결을 위해 공수처 설치법 처리를 서두르고 있지만, 공수처가 윤석열의 검찰 처럼 여당의 압력과 수백만 지지진영의 함성에 갇힐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이는 검찰개혁의 본질이 조직의 해체와 신설이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칼을 뽑을 수 있는 검찰의 독립임을 역으로 증명한다. 대통령과 여당이 선출한 공수처장이 대통령과 여당 사람을 향해 칼을 뽑았을 때, 여당의 압력과 광장의 함성이 소용없는 수사기관의 독립 말이다. 패스트트랙에 실린 여당의 공수처법이 이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검찰개혁은 그저 헛꿈에 그칠 것이다.조국은 검찰개혁의 불쏘시개로 희생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여당이 희망했던 검찰개혁에 담긴 정치적 함의를 상식적인 대중들에게 누설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대중들은 이제 대통령과 여당이 희망했던 개혁될 검찰과 신설될 공수처가 내 편에게는 관대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지 않나 의심한다. 조국일가를 열렬히 옹호했던 여당 의원들은 이제 총선에서 조국을 변호한 자신을 변명해야 할 처지에 몰릴 수 있다. 대통령은 조국에 대한 헌사는 마음에 묻어두고 국민을 향한 사과와 국민통합을 위한 의지만 강조했어야 했다.국민은 대통령의 희망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대통령이 희망을 이루기 위해 길을 돌아가고, 수단을 달리하고, 공약을 뒤엎을지라도 이해하고 지지할 것이다. 대통령의 희망이 국민을 국가를 위한 것이라는 기본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국민의 기본적 신뢰를 믿어야 한다. 진영으로 갈린 찬반 세력의 한쪽에 서서 탄식하고 아쉬워할 때가 아니다. 진영을 벗어나야 현실이 보인다. 현실을 봐야 희망을 이뤄줄 새로운 길과 수단과 사람을 찾을 수 있다. 조국사태가 대통령에게 보약이 되길 바란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9-10-15 윤인수

[경인칼럼]다양성의 사회 혁신 가치

검찰 '개혁대상 전락'은 다양성 결핍 때문검사동일체 원칙, 독립성 가로막는 장애물단일성 피라미드 해체·내부 견제와 균형을자율·민주적 '사람의 조직'으로 거듭나야판단과 인식의 영역에서는 단순함이 미덕이다. 학문의 원리, 인식의 원리는 단순하고 명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전제는 최소화되어야 하고, 가설은 명쾌해야 한다. 윌리엄 오컴(W. Occam)은 대상을 가장 단순하면서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이 진리에 가깝다고 보았다. 만약 동일현상을 설명하는 데, 두 개 이상의 이론이 모두 타당하다면, 우리는 단순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물, 사건, 현상을 설명하는 논리가 복잡하다면 진리에 접근하지 못했거나 최소한 인식이 아직 철저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식의 대상인 세계는 오히려 다양할수록 아름답게 보인다. 다양함은 심미적 가치를 넘어 생태계의 원리이다. 생태계(ecosystem)는 상호작용하는 생명체들과 또 그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주변의 무생물 환경까지 아울러 지칭하는 말이다. 자연생태계의 이상은 다양한 생물이 함께 번성하는 종 다양성이다. 이 다양성의 공존 속에서 종들이 진화하고 때로는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 건강한 자연 생태계의 지표는 얼마나 '다른' 생물들이 공존하고 있느냐이다. 이 다양성은 개체 수준에서도 적용된다. 동물이나 식물은 영양소를 다양하고 균형있게 섭취해야 하며 필수성분이 부족하거나 일부에 편중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신체의 기관들도 마찬가지이다.한편 다양성은 인간의 창조적 사회활동의 결과이자 조건이기도 하다. 유네스코가 2001년 '문화다양성 선언'과 2005년 '문화다양성 협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각국이 문화 다양성이 교류와 혁신, 창의성의 원천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공동의 유산이라는 규정에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인식의 영역에서 단순화는 미덕이지만, 생태계나 사회 조직과 같은 현실에서의 단순화는 퇴행의 조짐이며 위기의 징표이다. 다채로움을 아름다움으로 여기는 미적 심의경향은 다양성이 삶에 유익하다는 경험의 반영일 가능성이 높다.검찰개혁이 온 나라의 화두가 됐다. 적폐청산의 '포청천'이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원인 중의 하나는 검찰조직의 비민주성인 바, 문화적으로는 다양성의 결핍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천500명의 검사가 사건을 처리하는 기준이 검찰 수뇌부와 같아야 한다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의연히 작동하고 있다. 검사가 곧 검찰이며, 또한 사회와 국가로 자신의 동일성을 확장한다. 실제로 지검, 고검, 대검, 그리고 위계질서의 정점을 형성하는 검찰총장에 대한 상명하복으로 귀결되지만 말이다. 일선 수사 검사의 입장에서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검찰권의 독립성과 공정한 행사를 막는 장애물이다. 그 점에서 검찰조직은 일종의 군집체(colony)와 닮았다. 군집체는 수천수만의 생물들이 자신의 촉수를 얽어 하나의 생명체와 형태로 생존해가는 집단생명체를 말한다. 대표적 군집체인 볼복스(volvox)는 구성요소들인 개별 세포는 단세포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수만의 단세포로 이뤄진 하나의 개체이다. 군집체에 속한 개체들은 고유의 신호전달체계를 공유함으로써 단일한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검찰개혁은 기소권 독점을 통제할 수 있는 공수처 설치로 시작되겠지만,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동일체인 '단일성'의 피라미드를 해체하고, 내부에 견제와 균형을 담보하는 '다양성'이 도입할 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법과 원칙에 의거하되 검사들의 양심에 따른 단위조직이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의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다양성이란 단순히 양적으로 많은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것'과 '차이'가 공존하는 상태를 말한다. 사회나 조직은 그 다름과 차이를 창조와 혁신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다름과 차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나 조직은 필연적으로 경직성과 배타성으로 퇴행하고 '괴물'이 되어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다./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2019-10-08 김창수

[경인칼럼]인천(仁川)이 모르는 부산(釜山)

부산 정치인등 극지연구소 이전 끈질긴 도전쇄빙연구선 취항 10주 기념행사 용역 입찰5일만에 '일정변경·규모축소'이유 돌연 취소 도대체 무슨일이… 인천은 부산속내 몰라2013년 6월 16일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대선 패배 이후 첫 행사로 선거 당시의 출입기자단과 북한산 산행을 했다. 문 의원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부산으로 이전하는데 그 가운데 극지연구소가 있다. 이 연구소를 떼놓고 부산으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부산시민들이 많이 화가 나 있다"면서 "극지연구소는 해양생태, 자원, 북극항로와 연관된다. 지리적인 위치를 봐서도 부산이 극지연구의 센터가 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해 11월 21일 해운대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 열린 한 국제심포지엄에 참석, 북극항로 개척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극지연구소의 부산 이전을 재차 강조했다.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극지연구소 부산 이전이 부산지역의 최대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다. 새누리당 서병수 시장후보가 사무총장 때 극지활동진흥법안 발의에 서명한 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무소속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장관(현 부산시장)은 "공공기관 이전 정책에 의해 당연히 부산으로 오기로 돼있던 극지연구소를 인천에 잔류시키는 법안에 서명한 것은 명백히 부산의 정책에 반하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시장이 되면 "지역NGO와 시민운동을 통해서라도 극지연구소를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오 후보는 "극지연구소 부산 이전과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부산이 동북아 해양경제수도로 가기 위한 2대 필수 과제"라며 여야후보 공동공약으로 채택하자고 제의했다.2017년 5월 대선을 앞두고 부산 지역사회가 다시 극지연구소 이전 관철을 위해 하나로 뭉쳤다. 3월 15일 서병수 시장은 '부산, 대통령 자격을 제시하다!'라는 꽤나 도발적인 타이틀이 붙은 부산시 대선공약 브리핑을 직접 했다. 40개 채택요구 공약 중 대표공약 10개를 추려 발표했는데 '제2 극지연구소 및 극지체험·박물관 건립(부산극지타운)'이 포함됐다. 부산 출신 문재인 후보 당선으로 선거가 끝난 직후인 5월 25일 부산시는 해양수산부를 방문해 극지연구소의 부산 이전을 정식 요구했다. 이어 30일에는 부산항을 사랑하는 시민모임, 부산항발전협의회 등 시민운동단체들이 극지연구소의 부산 이전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2019년 6월 17일 '극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취항 10주년 기념 부산시민 승선 체험행사'가 오거돈 시장, 김영춘 의원(전 해수부장관) 등 지역인사들과 부산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국제크루즈터미널에서 열렸다. 아라온호는 부산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건조돼 2009년 11일 인도명명식을 가진 바 있다. 행사를 후원한 한 언론사는 2분40초 분량의 동영상에서 '부산에서 건조된 쇄빙선 아라온호' '취항 10주년 맞아 고향에 돌아왔다' '극지타운 조성, 제2 쇄빙선 모항 지정 등을 교두보 삼아 동북아 극지 관문도시로 도약 목표' 등의 자막을 내보냈다. 2019년 8월 26일 국회에서 '공공기관 이전 시즌2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가 부산의 최인호 의원을 비롯한 여당의원 주최로 열렸다. 발제에 나선 이민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정부가 추가 이전해야 할 공공기관 대상 210개에 인천의 극지연구소를 포함시켰다. 국토교통부는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위한 '혁신도시 성과 평가 및 정책지원 용역'을 연내 완료할 예정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공공기관 이전 관련 용역에 극지연구소가 포함된 것으로 파악했다"고 확인했다.아라온호의 모항은 인천항이다. 인천에 아라온호를 운영·관리하는 극지연구소가 있기 때문이다. 아라온호는 지난 7월 12일 다시 인천항을 출발해 84일간의 북극항해에 나섰다. 그런데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랫말이 곧 아라온호의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지난달 20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남극과학기지 월동연구대 발대식 및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취항 10주년 기념식 행사용역 입찰공고가 떴다. 극지연구소가 오는 10월 23일 인천항 1부두 11선석에서 조촐하게 여는 행사다. 하지만 닷새 뒤 돌연 행사용역 취소공고가 게시됐다. '행사계획의 변경(일정변경 및 규모축소)'이 이유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인천은 부산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9-10-01 이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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