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조국 장관과 진영논리

장관 임명 후에도 정파 입장따라 갈등 계속찬반 구도 형성… 여야 지지층도 결집 양상한국사회의 분열 일으켰던 '편가르기' 우려중도층 정치 의사 반영될 곳은 점점 좁아져'포스트 조국 장관 임명' 정국의 대치는 이미 예견됐다. 자유한국당은 조국 사퇴를 압박하면서 문재인 정권 퇴진 투쟁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바른미래당 역시 조국 사퇴 이슈에서 한국당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조국 변수는 장관 임명 후에도 각 정파의 입장에 따라 복잡다단한 고차방정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정치지형의 새로운 축이 형성됐다. 보수 대 진보의 구도에 더해 조국 찬성 대 반대가 진영논리로 전환되면서 여당지지 성향은 임명 찬성, 야당 지지성향은 반대의 구도가 형성됐다. 적대적 공생의 극단적 구도가 강화되면서 양 진영의 지지층도 결집하는 양상이다.조국 후보자에 대한 찬반을 보수 대 진보의 진영 프레임에 가두는 설정은 조국 후보자에게 제기된 흠결을 덮는 효과가 있었다. 전형적 프레임 정치다. 조국 후보자와 가족, 주변에 제기된 의혹들은 정의와 공정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으며 이는 이념의 잣대로 봐서는 안된다는 논리는 보편적인 상식의 영역이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에서 조국 장관 임명에 반대하지만 진보적 의제에 동의하는 세력의 입지는 모호해졌다. 이미 진영싸움으로 번진 상황에서 조국 반대는 진보·여권 진영에서의 이탈을 의미하고, 이는 정치권과 관련 '업계' 종사자로서는 회복하기 힘든 치명상이다. 게다가 내년 총선을 의식하는 여당의원들로서는 비록 경선으로 공천을 결정한다해도 진영과 결이 다른 소신 발언은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는 자기검열이 작동할 것이다. 이는 조국 정국에서 입증된 바다. 공정과 정의, 평등 등 민주주의의 가치에 공감하지만 조국 임명을 반대한다면 이는 한국당과 동일시되며 매도되는 진영 논리는 또 다른 파시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당내 비판 세력의 부재와 맥락을 같이 하는 구태의 전형이다. 한국사회의 분열은 해방 공간의 극단적 편가르기였고, '빨갱이론'은 낙인효과로 상대를 매장시키는 살인 병기였다. 이승만과 박정희 등 독재세력의 전가의 보도였음은 말 할 나위가 없다. 진영논리는 편가르기의 다른 표현이다. 양 극단의 정치집단과 이념 사이에 분포하는 중도층의 정치적 의사가 표현되고 반영될 공간은 점점 협소해 지고 있다. 이른바 실검색어 전쟁이라고 불린 포털의 검색어도 과다대표와 과소대표의 문제를 그대로 노출시킨다. 거대 양당제의 기득 카르텔의 폐해는 조국 후보자를 둘러 싼 갈등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범여권을 지지했으나 조국 임명에 실망한 유권자가 한국당 지지로 정치 행태를 바꿀 가능성 역시 희박하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논리로 진영을 가르려는 태도는 위험할뿐더러 정치를 더욱 강대강의 적대적 구도로 몰고 갈 수밖에 없다. 식민사관이 아니더라도 조선정치는 분명 무리를 지어 당파를 형성하는 붕당정치의 폐해가 있었다.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사림정치가 남인·북인, 노론·소론으로 나뉘면서 극한적인 권력투쟁으로 이어지고 결국 목숨을 앗아가는 살육의 정치로 귀결되곤 했다. 그럼에도 조선의 사대부 정치에서는 삼사라는 언관들이 목숨을 걸고 진언과 충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른바 공론정치가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하는 강력한 시스템으로 작동한 것이다. 탄핵 받은 선비나 관료는 실체적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벼슬에서 물러났다. 탄핵을 받은 자체를 목민관으로서의 자격상실로 받아들인 추상같은 도덕성과 윤리가 작동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각 비서실에 선물했다는 춘풍추상의 글귀의 함의일 것이다. 내부견제가 작동하지 않는 권력은 진화할 수 없고, 강해지기 어렵다. 조국 사태는 한국정치에 많은 함의를 던지고 있다. 기승전 검찰개혁이 조국 장관 임명의 명분이었으나, 국민은 검찰개혁의 당위가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개혁 주체의 도덕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까. 검찰수사 결과가 조국 장관에 불리하게 나와도 정치검찰로 몰아붙이면서 검찰개혁만을 부르짖을지 지켜볼 일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9-09-17 최창렬

[경인칼럼]대통령의 선택, 의문에 빠진 민심

조국 법무장관 임명 강행 국민 미궁속으로가족 비리의혹 검찰 압수수색 무수한 해석개혁성 위선 전복 분노 진보진영 내상 심각향후 정치적 사단·결과 文대통령 책임 부담권력은 나눌 수 없다. 나눌 수 있다면 권력이 아니고, 나누는 순간 권력은 무력해진다. 부자지간에도 권력은 나누지 않는다는 정치 격언은 수 많은 역사적 선례와 현재진행형 사례로 검증된 경험칙이다. 최고 통치자의 권력은 더욱 그렇다. 조선의 많은 왕들이 자신의 보위를 이을 세자들을 쥐 잡듯이 잡았다.헌법으로 삼권분립을 천명한 민주주의 국가 통치자의 권력도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은 표면상 삼권의 말석인 행정의 수반이지만, 행사할 수 있는 실제 권력의 크기는 입법과 사법을 압도한다. 장관의 권력이 아무리 커 봐야 위성권력일 뿐이다. 그것도 인공위성이다. 수명이 다하면 폐기하고 교체되는 위임 권력일 뿐이다. 장관이든 측근이든 비선 실세든 명칭을 달리해봐야 대통령에게는 권력행사의 도구일 뿐이다. 권력의 본질은 대통령의 인격과 무관하다. 이 권력을 나눈다면 대통령은 국정을 주도할 수 없다. 대통령 권력의 누수는 국가 안보를 해치고 국가 경제를 흔들고 사회 혼란으로 이어진다.많은 국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한 것을 두고 의문을 제기한다. "한미 동맹을 살리려다 남북 관계가 망가졌다"는 문정인 대통령 특보의 발언을 차용하면 이렇다. '조국을 살리고 대통령이 망가지는 선택'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도대체 대통령에게 조국은 어떤 존재인가? 권력 작동의 상식에 어긋난 대통령의 선택에 국민은 미궁에 갇혔다.대통령은 조 장관 임명 이유를 권력기관인 검찰 개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 개혁의 주체는 대통령이다. 검찰 개혁이 정권의 과제라면, 개혁의 업적은 설계자인 조국이 아니라 대통령이 누려야 한다. 대통령의 의지만 결연하고 단호하다면, 그 의지를 받들어 실행할 장관감이 한둘이겠는가. 대통령은 또 "개혁성이 강한 인사일수록 인사청문 과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조 장관에 대한 야당의 검증 공세를 에둘러 비판했다. 하지만 '조국 사태'는 조 장관의 개혁성이 강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일가를 둘러싼 전례없는 특별한 의혹들로 인해 조 장관의 개혁성이 위선으로 전복되자 저절로 형성된 대중의 분노였다.검찰이 조 장관 가족 비리의혹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단행했을 때, 배경을 놓고 무수한 해석이 쏟아졌다. 여당은 당황했고 야당은 면죄부 수사를 의심했다. 그 틈바구니에 문재인 정부들어 승승장구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통령을 위해 조 장관 읍참마속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었다. 윤 총장에게 조 장관은 대통령 만큼이나 신세 진 사람이다. 조국 민정수석-윤석열 중앙지검장은 전 정권의 국정농단과 적폐청산의 환상적인 콤비였다. 그런 조 장관에게 칼을 겨누자니 인간적인 고통이 컸겠지만, 그래도 문 대통령을 위해 악역을 감당하고 나섰다는 해석이었다. 그의 전력과 성정을 감안할 때 대통령을 향한 '윤석열식 보은'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조 장관을 임명했고, 윤 총장의 진의는 확인할 길이 없어졌으며, 조국-윤석열은 양립 불가의 관계가 됐다. 대통령은 둘 중 하나, 최악의 경우 둘 다 잃고 그 책임을 져야 할 형국이 됐다.조 장관으로 인해 진보진영은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대중은 진보의 위선을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조 장관을 엄호하는 진영의 결속은 맹목성을 의심받는다. 무엇보다 조국 임명으로 인한 모든 정치적 사단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이 져야 하는 부담이 걱정이다. 향후 정국은 조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와 이를 둘러싼 공방으로 점철될 것이다. 대통령이 탄탄한 권력을 바탕으로 수행해야 할 국방, 경제, 외교 현안에 오롯이 집중하기 힘들게 됐다.결코 나눌 수 없는 권력도 민심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민심은 곤(鯤)과 붕(鵬) 같다. 거대한 실체를 감추던 북해의 곤이 붕이 되어 한번 날개를 떨치면 구만리 창공으로 치달아 오르듯, 일단 민심이 일어나면 권력은 가소로워진다. 대통령은 왜 자신의 권력을 덜어 조 장관을 살렸을까. 추석 연휴, 민심은 계속 고민할 것이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9-09-10 윤인수

[경인칼럼]근대문화유산과 식민잔재의 딜레마

인천 중구청 앞 조형물 일본풍 비판에 철거개항장 근대문화유산 '모순' 논란거리 첨예 동서양 문화공존 가치·일제 식민수탈 아픔 당국, 개항의 의미 진지하게 재성찰 급선무인천 중구청 앞 일본풍 조형물이 철거됐다. 인천 중구청 앞 인도에 세워진 일본 복고양이(마네키네코) 조형물 한 쌍과 인력거 동상에 대한 적절성 논란이 커지자 구청이 철거한 것이다. 이 조형물들은 중구청이 개항장 거리를 장식하는 소품으로 설치할 때부터 개항장 일대를 지나치게 일본풍으로 치장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또 조선 청년의 인력거 노역을 관광기념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높았으며 최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민원으로 올랐다. 제국주의 침략을 당한 한국의 근대문화유산은 그 자체로 논란거리이다. 문화유산이란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현저하게 기여한 유산이며, 중요한 시기의 역사적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유산을 말한다. 문화유산 가운데 일제강점기나 냉전시대와 관련되는 근대문화유산은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 된다. 일제강점기의 유산이나 유물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관점도 있다.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졌다 해도 일제의 식민통치와 직접 관계되지 않은 유산이나 유물까지 수탈의 잔재나 치욕스런 과거로 치부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거나 패배주의적 역사의식의 소산이다. 이런 논리라면 식민지 근대를 경과하면서 형성된 일체의 문화, 그 시대를 겪으며 형성된 주체인 우리의 정신까지 모두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 같은 주장이 근대문화유산의 문화재 지정으로 재산권을 침해받을 것을 우려하는 주민들에 문화재 지정 해제나 철거 요구의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한편 "아픈 과거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보존론도 일면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유태인 학살의 아우슈비츠나 히로시마 원폭 현장과 같은 부정적인 유산도 보존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은 강제 징용, 일본군 위안부 등의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나 배상을 하고 있지 않으며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한일간의 갈등도 깊다. 일제강점기의 역사유산의 경우 역사적 맥락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 오직 막연한 향수나 과거지향적 동경으로 역사 문화 자원을 활용하다가는 식민지배와 침탈의 역사를 합리화하거나 미화하는 식민사관으로 기울기 십상이다. 인천시는 문화지구로 지정되어 있는 개항장의 문화유산을 보존 활용하는 기본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개항은 모순적이다. 개항으로부터 근대가 시작되었지만 개항 이후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개항장에서 보존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보존된 유산에서 되새겨야 할 역사적 교훈이 무엇인지를 따지지 않는다면, 개항장은 싸구려 세트장처럼 훼손되거나 식민지를 미화하는 공간으로 전락하여, 관광 활성화는 고사하고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곳이 되고 말 것이다. 중구청이 예산을 들여 복원해놓은 일본인 거리도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일본인 거리는 기존의 콘크리트나 벽돌조 건축물에다 일본 상가건물의 목조기둥과 지붕 모양만 붙여놓은 모조 일본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영화 세트장과 같은 외형 복원이 한때의 눈요깃거리는 될지 모르나 지속가능한 관광상품이 되기는 어렵다.개항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중구청의 급선무는 개항의 의미를 진지하게 재성찰하는 일이다. 개항장 제물포에 일본인과 중국인을 비롯한 서양인들이 조계지를 형성하여 거주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미국과 서양의 여러 나라 문화가 공존했던 장소로서 가치가 있다. 그러나 개항장은 서구열강을 비롯한 제국주의의 패권 쟁탈장이었으며, 1905년 이후의 인천은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교두보이자 수탈의 관문이 되었으며, 당시 인천이 일본인이 지배하는 도시로 바뀐 것을 두고 조선 안의 작은 일본, '해외의 소일본(小日本)'으로까지 불렀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2019-09-03 김창수

[경인칼럼]법비(法匪)의 나라

'법 갖고 헌법 파괴한 수구 법비' 기고글조국 등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발맞춰한홍구 교수가 당위성 주장하며 쓴 표현지금은 보수측이 사용 희한한 일 벌어져요즈음 정쟁의 현장에서, 공론의 장에서,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법비(法匪)'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은 '법을 악용하여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무리'로 정의한다. 일본어사전에도 같은 단어가 있다. 뉘앙스는 좀 다르다. '법률을 절대시하여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는 관리나 법률가', '법률을 궤변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멸칭'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런 표현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건 1930년대 일제 치하 만주국에서였다고 한다. 이 흔치 않은 단어를 이 땅에서 대중적으로 쓰기 시작한 이는 아마 진보역사학자인 한홍구 교수이지 않을까 싶다. 한 교수는 10년 전인 2009년 2월 한겨레신문의 칼럼에 '법비의 난'이라는 글을 게재한다. 보름 전 발생한 '용산참사'를 다뤘다. "만주에는 마적, 공비, 병비, 토비, 산림비, 녹비, 정치비 등 온갖 비적떼가 난무했다. 만주국이 건국된 1932년 3월, 한 달 동안 비적들이 철도를 공격한 것만 해도 무려 2천여 회에 달할 정도였다. 제국주의 침략권력은 괴뢰 만주국을 세우고 법치를 내세우며 비적을 소탕했다. 일제는 경찰에게 비적으로 의심되는 자를 즉결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등 '법치'를 강화했으며, 이 밖에도 만주 현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온갖 법을 제정하여 만주를 지배했다. 법의 지배는 새로운 비적을 낳았다. 만주의 민중들, 심지어는 일제에 협력하는 만주인들조차도 법만 내세우는 일본 관리들을 법비라고 불렀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법률조문을 내세우고 법률기술을 마치 금고털이 기술처럼 써먹는 자들이 바로 법비이다."한 교수의 '법비'는 2015년 7월 같은 신문의 특별기고를 통해 다시 등장한다. '법 갖고 헌법 파괴한 그대, 수구 법비라 불러주마' 제목의 글은 당시 조국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 김상봉, 김두식, 박노자 등 40∼50대 지식인들이 제안한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의 당위성을 주창했다. "대한민국의 총리 잔혹사는 총리후보자들의 연이은 낙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총리가 된 법비들이 더 문제였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민주국가를 이끌어 갈 의지도 능력도 없는 수구정권이 공안세력에 의존하게 되면서 한결같이 법을 갖고 장난치는 법비들만 총리가 된 것이다" 정홍원, 이완구, 황교안, 김기춘, 황우여 등 내로라하는 역대 보수세력의 엘리트들을 한 교수는 '반헌법행위자'로 규정하고 이들을 통칭해 '수구 법비'라 했다. 이후 이 단어는 진보세력의 전유물이 됐다.그런데 진보세력이 살뜰하게 써왔던 이 단어를 근자에 보수세력이 쓰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지난 7월 31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변호사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공동으로 친일파 유족들의 상속세 취소소송을 대리한 사건을 언급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저서 '운명이다'에서 나는 그 당시 세속적 기준으로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면서 돈도 꽤 잘 벌었다. 법조계의 나쁜 관행과도 적당하게 타협하고 있었다 라고 했습니다. 상속세를 감면받기 위해 유언증서를 유족들이 임의로 작성하고, 위증이 다반사였던 법조계 관행을 적당하게 타협하고 있었던 것이라면 '법비'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단어는 이제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의 공통어다.공론의 장에서도 이 단어가 낯설지 않은 건 순전히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조국 서울대 교수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의 우병우 민정수석을 '법꾸라지'라고 조롱했던 민심이 이젠 그를 '법비'라고 손가락질한다. '공정'을 국정의 제1 기치로 내걸었던 현 정권의 최고실세 자녀와 관련한 수혜의혹과 특혜논란에 청년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있다. 아버지들은 아들과 딸에게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를 보장해주지 못한 자신을 못난 아비라며 자책하고 있다. 이미 장관이 되고 안되고를 넘어섰다. '법비'를 준엄하게 질타했던 글이 한껏 치켜세웠던 응원의 대상이 한순간에 '법비'로 전락해 질타당하는 기막힌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이쯤 되면 가히 '법비의 나라'라 할 만하다./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9-08-27 이충환

[경인칼럼]조물주 위에 건물주

압축성장 반세기 '부동산 폭등' 상상 초월역대 정부 규제 풀어 투기조장 '경기 부양'부동자금 시세차익만 노려 국민경제 '엉망'경제적 진보·빈곤 동반성장 토지사유제 탓지난 12일 국토교통부가 주택시장 규제의 극약처방으로 불리는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를 발표했다. 분양가 상한제란 분양가격을 평형대 별로 일정가격 이상을 받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이다. 10월부터 서울을 비롯한 전국 31곳의 투기과열지역에 적용하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14번째 부동산 대책이다. 부동산 중개업체들이 죽을 맛이다. 전국의 개업 공인중개사가 10만여 명이나 거래절벽에 과당경쟁으로 폐업이 속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들은 갈수록 인산인해이다. 공인중개사 1차 시험 접수자 수가 2013년 9만6천279명에서 2018년에는 19만6천939명으로 불과 5년 만에 무려 2배 이상 격증한 것이다. 한 응시생의 "부동산 업계가 개미지옥이나 일단 자격증을 취득하면 평생직장으로 노후대비에도 적격"이란 언급이 눈길을 끈다. "한 건만 대박 나면 된다"는 심리는 점입가경이다.한국 특유의 부동산 불패신화가 화근이다. 압축성장 반세기 동안에 상상을 초월한 땅값의 폭등이 결정적 증거이다. 1970년대 서울 강남개발이 시발점이다. 1960년대 초부터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들면서 주택문제가 점차 커지자 정부는 한촌(閑村)인 강남지역 개발에 주목했다. 1968년에 착수한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설상가상이었다. 당시 정부의 최대 고민거리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 조달이었는데 서울 영동(永東)을 개발해서 해당 지역의 땅값을 끌어올려 부족한 자금을 벌충하기로 한 것이다. 실천방안은 영동지구 구획정리사업이었다. 난개발로 방치된 일정면적의 토지를 묶어 합리적으로 구획하고 도로, 학교, 공원 등의 기반시설을 배치해서 토지의 가치를 올리는 것이다.이 무렵 서울시 도시계획분야 핵심요직에 근무했던 서울시립대 손정목 교수는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서 주목되는 발언을 했다. 박정희 정부는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강남에서 땅 투기 행각을 벌였으며 더 많은 비자금을 긁어모으기 위해 구획정리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모 도시계획국장은 청와대 자금으로 1970년 초에 강남의 땅 24만8천368평을 평당 평균 5천100원에 사들인 후, 1971년 5월까지 약 18만평을 평당 평균 1만6천원에 팔아 20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단다. 당시 20억원은 현재가치로 대략 1천억원으로 1970년 내국세 수입액의 0.7%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까지 10년 동안은 한강변 공유수면 매립 전성기였다. 이 사업으로 동부이촌동, 반포, 흑석동, 서빙고동, 압구정동, 구의동, 잠실 등이 도시화되었다. 공유지인 한강변을 택지로 조성해서 아파트를 분양하는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여서 지하경제도 덩달아 커졌다. 상당수 건설업체들이 정치권에 몇십억, 몇백억 원의 뇌물 제공을 대가로 한국을 건설공화국으로 만들었다. 이상의 개발방식은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확대재생산 되었다. 역대 정부는 불황 때마다 각종 부동산 규제를 풀어 투기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부양하곤 했다. '부동산주기 10년'설이 상징적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의 '수원 광교신도시는 로또 신도시'라는 리포트가 주목된다. 2019년 7월 현재 광교 아파트 평균 시세는 3.3㎡당 2천480만원으로 분양가 대비 1.7배로 상승해 피분양자들은 10년 만에 세대당 평균 3억8천만원을 벌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에서 생활한 것밖에 없는데 매달 300만원의 불로소득을 얻었으니 이보다 좋은 돈벌이가 있을까?우리나라 중학생들의 장래 희망 1순위가 건물주이다. 오죽했으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 했던가. 정부가 한정된 자원을 소수의 엘리트들에 몰아주어 파이를 키워나가는 후진국 공업화는 당위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부동산투기를 근절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 패착이다. 천문학적인 단기부동자금이 생산이 아닌 시세차익만 노리고 있다. 국민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토지 공개념 이론의 선구자 헨리 조지는 경제적 진보와 빈곤이 함께 커지는 이유에 대해 지대(地代)의 개인소유를 보장하는 토지사유제 탓으로 돌렸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9-08-20 이한구

[경인칼럼]광복절과 극일(克日)

日, 안보 빌미로 수출규제 계획된 프로세스극우적 사고 '아베에게 사죄' 혐오발언까지 미·중·러·일·북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기식민지배 반역사관·냉전주의 장막부터 제거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와 백색국가 제외 조치는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의 성격이 짙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북미 관계의 변화 등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안보환경의 변화는 일본으로서는 당혹스러운 것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와 아베 정권 등 자민당 정권들에게 북한이라는 외부 적의 존재는 우익의 결집에 주요 동력으로 기능했고, 이를 평화헌법 개정의 도구적 수단으로 활용해왔다.일본의 극우세력 결집을 통한 평화헌법 개정은 일본 시민의 개인적 호불호를 넘어 일본의 일관된 흐름이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전략의 근본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분위기를 부인할 수 없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기존의 안보 질서가 바뀌고 북미도 과거의 극한적 적대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남북협력의 답보와 북미 비핵화 협상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 흐름은 되돌리기 어려운 변화다. 이를 추동하는 남한 정권의 존재 역시 일본 우익 정권의 입장에서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다. 한일 간 격차 감소도 일본으로선 방치할 수 없다.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은 근인(近因)에 불과하다. 일본은 어떠한 구실로라도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고, 이는 일본의 기본 국가전략이기도 하다.물론 미시적 차원의 갈등은 조정국면을 거치면서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배와 과거사 문제는 한일관계에서 넘기 어려운 벽이다. 게다가 일본은 남한에 냉전적 수구세력이 집권하여 남북관계가 긴장상태로 회귀하고, 북미가 적대적으로 돌아서는 것이, 개헌을 통하여 '전범국가'에서 '전쟁 가능 국가'가 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경제보복은 현 집권세력의 경제성적표를 나쁘게 만들어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하게 하려는 전략적 판단도 깔려있을 수 있다. 이렇듯 일본의 안보를 빌미로 한 무리한 수출규제는 다목적이며 계획된 프로세스에서 진행되고 있다.한국현대사를 규정하는 결정적 변수는 분단이다. 분단은 일제가 패망한 해방공간이 독립으로 연결되지 못했고, 독립이 통일로 이어지지 못해서 겪는 현실이다. 1945년 맥아더 사령관이 발령한 작전명령 4호에 의하면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반도를 일본 본토와 구별하지 않고, "천황 및 일본 제국의 각종 통치 수단을 통해 통치권을 행사하라"고 요구했다. 남한에 진주한 미군 제24군단 하지 중장이 조선총독부 주요관리를 유임시키고 총독부 행정기구를 통치기구로 사용한 이유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해방 이후 전전긍긍하던 일제 협력자와 친일세력은 미군정에 편승함으로써 '친일'에서 '친미'로의 신분세탁에 성공했고, 일제 잔재 청산의 기회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승만 정권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키고 친일세력이 특위 해체를 주장하면서, 특위가 조사해서 기소하고 최종 실형을 받은 자가 고작 10여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일제 청산이 미약했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과의 이해관계의 일치로 친일세력이 국가의 요직에 다시 등용되면서 일제 잔재 청산은 사실상 무산됐다. 이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체결, 쿠데타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된 경제성장지상주의와 반공국가는 청산되지 않은 일제 잔재와 결합하면서 냉전세력을 형성했다. 친일 세력과 수구반공 세력이 동일한 역사적 기원을 갖는 이유이다. 극우적 사고의 반역사적·비민주적 행태는 '한국이 아베 총리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혐오 발언으로까지 연결되는 현실이다. 미·중·러·일과 북한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반역사적 사관의 극복과 냉전주의 장막의 제거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 없는 극일(克日) 정책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내일이 광복절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9-08-13 최창렬

[경인칼럼]위험한 '친일 정권 수립론'

국민을 '친일-반일' 구분하는 전체주의 발상일본 우익 언론인들 '망언' 무시하면 그만與, 사무라이들 주장 '공론화' 과하고 위험日과 경제전쟁 '총력전' 승리 지혜 모아야 일본이 자국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강제로 중단시켰다. 소녀상이 출품된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는 일본 정부의 외압으로 전시되지 못한 현대미술 작품을 한데 모은 기획전이다. 일 정부는 기획전을 통째로 막으면서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는 가짜 민주주의 국가의 실체를 드러냈다. 정부의 역사인식과 어긋나면 민주주의의 요체인 표현의 자유마저 유보할 수 있다니 그렇다. 자민당 정부는 민주주의로 선출된 정권의 한시성을 거부하고 군국주의 회귀를 통해 영구집권을 획책하는 반민주 집단임을 선포한 것이다. 일본의 민주적 대중이 항의하고 저항한다. 하지만 제국 시절을 몽유(夢遊)하는 자민당과 우익의 기세가 워낙 압도적이다.아베는 제국의 광기에 오염된 군국주의자들의 후예다. 미친자와 싸울 땐 같이 미쳐서 싸우면 안된다. 특히 미친자가 힘이 셀 땐 더 그렇다.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인 형세판단으로 미친자를 진정시킨 뒤 격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일 정부가 제국의 감성으로 우리를 압박한다고, 우리 마저 식민의 울분을 소환해 대처할 필요가 없다. 일 정부의 퇴행적 역사관에 같이 춤추면 미친자의 도발에 이성을 상실하고 같이 뻘밭을 뒹구는 형국이다. 그래봐야 미친자와 같이 뒹군 탓으로 미친자 취급 받을 뿐이다.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최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땅에 친일 정권을 세우겠다는 (일 정부의) 정치 야욕에서 정치 주권을 지키겠다는 것이 국민의 각오"라고 말했다. 장외에서 사견을 전제로 나돌던 일본의 '한국내 친일정권 수립론'이 집권여당의 공식회의에서 최고위원의 발언으로 현실 정치에 진입했다.'친일정권 수립론'은 전체주의적 논리구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일본이 세우고 싶은 친일 정권이 있다면 현재의 문재인 정권은 반일 정권이라는 얘기다. 이는 반일 정권인 문재인 정권을 향한 비판·비난·조롱 등 모든 표현은 친일 행위이고, 대한민국에 일본의 괴뢰정부를 세우려는 매국'행위가 되는 논리로 귀결된다. 친일정권 수립론에 담긴 '친일 대 반일' 프레임은 이 땅의 국민을 친일과 반일로 구분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그 기준이 현 정부에 대한 지지 여부라면 민주주의 상식에 어긋난다.일본이 한국에 친일정권 수립을 획책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일본 우익 조무래기 언론인들의 망언이다. 무시하면 그만인 헛소리다. 무엇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 대한민국 국민과 정당이 친일 정부를 세울 이유가 없다. 반일 프레임은 여당 뿐 아니라 야당에게도 달콤한 꿀단지다. 이명박은 독도 정상에 올라 독도영유권을 상징적으로 선포했다. 외교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떨어진 지지도는 올랐다. 박근혜는 집권 초기 아베의 구애에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 일본과의 적당한 긴장은 어느 정권에게나 효과적인 당의정이다.집권여당이 일본의 몇몇 언론 사무라이들의 주장을 근거로 '친일정권 수립론'을 공론화하는 것은 과하고 위험하다. 이미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과 언론, 학계를 친일 프레임으로 압박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여당 대표가 일식집에서 정종을 반주로 밥만 먹어도 시비에 걸리는 상황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은 총력전이다. 일본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수단을 모두 모아야 한다. 비판과 제안이 자유로워야 한다. 비판과 제안을 친일로 몰아버리면 문재인 정권 사람들이 이룩한 민주화는 의미를 상실한다.조국 전 민정수석이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반일 종족주의'를 보고 "이런 구역질 나는 책을 낼 자유가 있다면, 시민은 이들을 '친일파'라고 부를 자유가 있다"고 했다. 조 전 수석의 주장을 존중한다. 마찬가지로 정부를 비판할 자유를 친일과 매국이라는 용납할 수 없는 단어로 제한해서도 안된다. 일본은 평화의 소녀상 철거로 민주주의를 압살했다. 대한민국은 일본이 되면 안된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9-08-06 윤인수

[경인칼럼]한일무역전쟁과 아베 정권의 책략

위안부합의 무력화·강제징용배상 등 불만韓 국론분열 유도 정권교체 바라는 모양새우리가 소재 국산화 성공땐 일본도 큰 타격日 경제예속 벗어날 근본적 대책 '몰입'할때한일간 무역전쟁이 악화일로이다.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소재의 수출규제에 이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법령 개정을 즉각 강행할 전망이다.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품목의 수출 절차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전략물자를 가지고 경제보복을 확대할 경우 한국은 군사정보공유협정인 지소미아를 파기하는 것으로 결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자국의 제품 판매를 막아 우리 경제의 숨통을 죄겠다는 일본의 수출규제는 '자해 공갈'의 수법과 흡사하다. 일본 무사들의 할복이나 악명높은 가미가제 특공대의 자살공격처럼 자신을 파괴하면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는 일본 스타일이다. 일본의 책략이 단기적으로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표 집결을 노린 카드라고 보는 것은 사태의 일면만 본 것이다. 한국을 경쟁국가로 규정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헌법개정을 통한 군대의 부활이라는 일본 우익의 정치적 목표 때문이다.아베 책략의 목표 중의 하나는 한국의 정권교체이다. 한국의 국론분열을 유도하고 눈엣가시 같은 문재인 정권에 타격을 가함으로써, 향후 정권교체까지 내심 기대하는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가 합의해준 '위안부 합의'를 무력화하고 한국의 대법원이 강제징용배상 판결을 내렸는데도 '적극적' 대응을 취하지 않고 있다고 간주하고 있다. 비핵화협상과 남북정상회담으로 북미, 남북간의 관계가 급진전 과정에서 일본이 느끼는 소외감도 작용하고 있다. 북일관계는 첫 단추도 꿰지 못한 아베 총리로서는 이래저래 불만이다. 한국경제가 장기불황의 일본경제를 추격하고 있다는 불안의식도 한 원인이다. 불황의 원인을 외부에 전가하고, 실패한 아베노믹스의 면죄부까지 만들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아베 총리는 한국 대법원이 내린 일본 전범기업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한국정부가 적극적 대응 방안을 가져오면 협상하겠다고 공언했다. 한국이 대법원의 판결을 수정하거나 철회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알고 있다. 일본은 타협 없는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대화와 협상이 아니라 보복과 역보복, 추가보복의 악순환을 거듭하다가 최악의 상황에서 협상의 문은 열릴 것이다. 현단계에서 한국이 굴복 외에 일본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 낼 카드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의 배경이 단순하지 않으며 일본 우익과 아베 내각의 집권 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입체적인 대응전략을 가져야 한다.다만 일본의 경제보복이 한국과 세계 경제, 마침내 불황에 시달리는 일본 경제도 위태롭게 하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유효하다. 한국 반도체 생산의 차질은 세계 각국의 경제로 확산되고 일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만약 한국이 반도체 소재의 구매를 다변화하거나 국산화까지 성공한다면 일본의 소재 산업은 최대 판로를 잃고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된다. 미국도 결국 개입해야 한다. 아베정부가 벌이는 무역전쟁으로 중국이 최대수혜자가 되는 것은 미국에게는 또 다른 재앙이기 때문이다.한일 무역전쟁에서 시간은 한국의 편일까? 국력을 총동원하여 한일무역 역조의 주범인 부품산업의 자립화 계획을 추진하는 것이 전제된다면 전화위복이다. 우리 경제는 수출이 늘면 일본산 부품수입을 늘려야 하는 구조이다. 최근 10년간 누적된 대일적자만 307조가 넘는다. 한국이 수출로 번 돈을 고스란히 일본에 바치는 과잉의존 구조 때문에 우리 경제의 숨통을 일본이 쥐고 흔드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한일간의 무역역조를 바로잡기 위한 장기 계획을 세우고 경제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수립에 '몰입'할 때다./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2019-07-30 김창수

[경인칼럼]'인천e음카드'에는 슬로건이 없다

전세계 다양한 화폐 고유한 문화적 특성지역 주민의 철학과 가치관 내재돼 있어어떻게 설계 했으며 무엇을 배려 했는지인천지역화폐엔 고민·성찰 찾을수 없다지역화폐의 원형은 영국의 선구적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웬이 고안한 '노동증서'다. 사회주의(socialism)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협동조합운동을 창시한 오웬은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과 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가치를 노동시간으로 환산해 노동증서를 발행해주면 이를 다른 구성원이 제공하는 물품이나 서비스와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화폐와는 별개였다. 이를 위해 1832년 런던에 전국등가노동교환소까지 설립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역화폐 '레츠(LETS :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도 이 노동증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로부터 150년 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코목스밸리의 작은 마을 커트니(Courteney)에서 발행된 지역화폐가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다. 출발점은 열악한 경제상황이었다. 지역에 있던 공군기지가 이전하고, 마을주민들의 생계수단이던 목재산업이 침체하면서 실업률이 18%까지 치솟았다. 빈곤과 궁핍이 마을을 휩쓸었다. 한 세기 반 전 영국의 노동자들이 처했던 상황과 똑같았다. 이 마을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마이클 린턴이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돈이 없으니까 노동을 해주고 물품을 받는 형태의 가치교환이었다. 곧 컴퓨터를 이용해 거래관리시스템을 개발했다. 회원으로 가입한 지역주민들이 이를 이용해 노동과 물품과 기타 서비스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1983년 '레츠'의 태동이다.현재 전 세계 지역화폐는 3천여 종에 이른다. 이름도 '레츠', '녹색달러', '페이퍼', '타임달러' 등 지역별로 다양하다. 당초 노동과 물품의 등가교환 개념이었던 지역화폐는 시간이 흐르면서 본래의 역할에 충실한 '공동체 통화(community currency)'와 현금적 성격이 강화된 '지역 통화(local currency)'로 나눠지게 된다. 일본만화 '아톰'의 탄생지인 도쿄 다카다노바바에서 2004년 탄생한 '아톰 통화'는 지역, 국제, 환경, 교육 등 4개의 주제와 관련된 사회공헌활동에 참가한 주민들에게 지급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에선 재해복구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도 성공한 사례로 손꼽히는 영국 최대의 지역화폐 '브리스톨 파운드(Bristol Pound)'는 영국의 법정화폐인 '파운드'와 등가교환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현금성 지역화폐다.특히 '브리스톨 파운드'는 올해 돌연 대한민국 지역화폐의 총아로 떠오른 '인천e음카드'와 비교해서 살펴볼 만하다. 브리스톨은 영국 남서부의 경제를 책임지는 중심도시로 2018년 기준 46만명인 인구는 주변부까지 합치면 100만명에 이른다. 이곳에도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금융위기의 짙은 먹구름이 몰려왔다. '브리스톨 파운드'는 불안정한 세계경제에 대한 각성과 대응의 차원에서 이듬해인 2009년 출범했다. "우리 도시의 경제시스템이 우리의 지역경제에 위해를 가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공동체들로부터 부를 짜내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환경을 손상시키고, 불평등을 영속시키며, 인식할 수 없는 복제품들로 시내 중심가를 동질화시키고 있다. 이에 우리는 2009년 초, 한 식당 테이블에 모여앉아 뭔가를 하기로 결정했다. 브리스톨 파운드는 우리가 사는 방식과 돈을 받고 일하는 방식을 재정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동체가 주도하는 운동으로서 설립됐다" 그들이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는 출범의 취지다.전 세계 여러 국가 여러 지역의 다종다양한 지역화폐에는 저마다 고유한 문화적·인구적 특성, 그리고 지역주민의 철학과 가치관이 내재돼 있다. '브리스톨 파운드'의 슬로건 '우리의 도시, 우리의 화폐(Our City Our Money)'에는 그들이 왜 지역화폐를 생각해냈고, 어떻게 설계했으며, 무엇을 배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녹아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천의 지역화폐에는 어떤 철학과 가치관이 내재돼 있는가? 어떤 고민과 성찰이 녹아들어가 있는가? 안타깝게도 인천의 지역화폐 'e음카드'에는 슬로건이 없다./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9-07-23 이충환

[경인칼럼]긱(Gig) 이코노미 시대

경제 주축 30·40대 고용감소 1년이상 지속제조업 해외투자 속도 국내보다 2.7배 높아기업들 정규직보다 계약직 고용경향 커져사회, 밀레니엄세대 안정된 삶 경제적 도움을소득불평등과 심혈관 질환 사망률 간에 상관관계가 높단다.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성지동 교수팀이 2002년부터 2013년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토대로 17만8천812명의 수입, 건강검진이력, 사인(死因) 등을 비교한 결과 상위 소득층은 수입 변동에도 심혈관 사망률에 큰 차이가 없는 반면에 하위 소득계층의 동일 질환 사망률은 13%로 가장 높았다. 심지어 수입이 감소하는 상위 소득층보다도 3배 이상 높았다. 소득양극화는 국민건강문제인 것이다. 서민생계의 요체는 일자리이다. 지난달 취업자수는 2천740만8천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8만1천명이 증가해 17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또한 상반기 취업자 증가는 월평균 20만7천명으로 지난해의 고용 부진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양새다. 그러나 상반기의 월평균 1~17시간 초단기 취업자는 26만9천명이 늘었다.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로만 따지면 전체 취업자 수가 월평균 0.8%씩 증가하는 동안 1~17시간 취업자는 18.5% 늘어난 것이다. 1주일에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통계에 잡히는 지경이니 말이다. 제조업 일자리 점감(漸減)은 점입가경이다. 통계청의 올해 4월 산업별 취업자수 증감 현황자료에 따르면 제조업 일자리 감소는 2018년 4월부터 13개월 연속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경제의 주축인 30, 40대의 고용감소는 1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내수가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노동절약적 기술진보가 화근이나 결정적인 것은 세계화에 따른 국내기업들의 해외탈출이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 동안 국내 설비투자액은 99조7천억원에서 156조6천억원으로 연 5.1% 증가한 반면에 제조업 해외직접투자(ODI)는 51억8천만달러에서 163억6천만달러로 연평균 13.6%나 증가했다. 제조업의 해외투자 증가속도가 국내투자보다 무려 2.7배나 높은 것이다. 덕분에 제조업 일자리수는 매년 4만2천여 개씩 해외로 빠져나갔다. 올해 14분기의 순투자비율[(FDI-ODI)/GDP]은 -16.1%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과 경제규모가 비슷한 호주(2.5%), 스페인(1.0%), 캐나다(0.6%) 등은 모두 증가했다.한국경제연구원은 국내총생산(GDP) 10억원 당 취업자수를 2000년 25.8명에서 2018년 16.8명으로 추정했다. 주요 선진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확인됐다.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명 이상인 6개국의 경우 1인당 소득이 2만달러에서 4만달러로 오르면서 GDP 100만달러 당 취업자수는 19.8명에서 11.5명으로 감소한 것이다. 향후에는 인공지능(AI)에 기반한 생산성 격증이 예고되어 일자리 감소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되지도 않는다. 국내에도 '긱 경제(Gig Economy)'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기업들이 정규직보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계약직 혹은 임시직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경향이 커지는 경제를 의미한다. 지난달 한국고용정보원은 국내 플랫폼 경제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을 47만~54만명으로 추산했다. 디지털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긱 이코노미'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긱 이코노미는 자기 위주로 행동하고 정보기술(IT)에도 능한 밀레니얼 세대와도 궁합이 맞아 보인다. 관건은 이들이 안정적으로 자기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사회가 경제적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알바가 주업인 프리터(freeter)들의 경제안정 없이는 저출산 해결은 물론 자영업 악순환문제도 해소되지 않는다.핀란드 정부는 2017년 1월부터 2년 동안 일자리가 없어 복지수당을 받는 국민 중 2천명에게 매달 560유로(74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이다. 지급 대상은 무작위로 선정됐으며 기본소득 수급자는 사용처를 보고하지 않아도 되고 2년 이내에 일자리를 얻어도 기본소득 전액을 받을 수 있다.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이 빈곤 감소와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토한 뒤 성과가 확인되면 적용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혁신의 시대'는 '긱 이코노미 시대'다. 자원배분 시스템의 검토를 고민할 때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9-07-16 이한구

[경인칼럼]총선이 개혁동력을 살릴 수 있을까

시민 정치적 의사 대표성 '연동형 비례대표제'후보 선정 객관·공정·투명성 확보 성패 달려양당, 정개·사개특위 양분땐 누더기 될 수도현실주의·권력정치 변화 정합성 제도화 필수정치에는 현실주의와 이상주의가 병존한다. 근대정치학의 시조라 불리는 마키아벨리는 권력정치의 불가피성을 갈파했지만, 정치에 현실주의만 존재한다면 정치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현실과 이상, 실리와 명분이 잘 조화된다면 갈등의 조정이라는 정치의 본령에 가까이 갈 수 있다. 물론 권력구조와 정당체제의 형태, 역사적 배경과 정치문화, 경제사회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정치사회의 작동원리가 정해진다. 한국정치는 현실정치적 요인이 압도적으로 작동하는 구조이며, 사회적 소수와 약자가 과소대표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를 혁파하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지정되고 정치개혁특위 기한이 8월 말까지 연장됐으나 내년 총선에 도입될 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시민 각 계층의 정치적 의사가 비례적으로 국회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이다. 지금의 국회의원 출신 배경을 보면 고위공직자나 청와대 참모, 법조계, 정당인 등이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소수자나 청년, 노동의 국회 진출 비율은 현저히 낮다. 국회란 시민의 대표가 자신들의 이해를 반영하고 제도권 내에서 상충하는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기능을 맡은 대의기구이다. 그러나 특정 계층이 과다대표되고, 약자가 과소대표 되는 구조에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가 주권자와 유리되고 자신의 특권적 지위에 안주하여 개인의 영달과 입지만을 탐하는 권력기구로 전락한 상황이 국민소환제 공론화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선거공학에 익숙지 않지만 시민의 보편적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인사, 사회적 소수와 약자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 정치권에 충원되는데 기여할 수 있을 때 비례대표 숫자의 증원이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비례숫자의 증원은 당 지도부나 중진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불쏘시개가 될 수밖에 없다.따라서 시민의 정치적 의사의 비례성과 대표성 강화가 목적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 후보 선정의 객관성과 공정성, 투명성 확보에 성패가 달려있다. 만약 늘어난 비례대표 자리가 당 대표나 다선 의원의 자리보전에 활용되거나 계파 수장 등 파워엘리트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차라리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지역구 숫자를 늘리되 전체 의원 숫자는 줄이는 한국당 안이 더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다수제 민주주의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로 가는 정치발전과 역행하므로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문제는 거대양당에 의한 폐해는 새삼 지적할 일도 아니지만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양분한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무늬만 연동형인 누더기 제도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민주평화당이나 정의당만큼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란 점을 간과할 수 없어서다. 내년 총선은 두 가지 점에서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선 지금의 정당의석 분포는 박근혜 탄핵 전의 민의가 반영돼 있다. 탄핵은 한국 헌정사에 중대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탄핵 이후의 민의의 명시적 변화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에서 정치구도의 변화를 통해 어떠한 정당들이 등장할 것이며, 의석분포에 따라 희미해진 개혁동력 부활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둘째 지금의 정당구도는 정당 내의 불화와 갈등, 파편화된 다당제 등, 정치개혁 대상이다. 내년 선거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와 비례대표 후보 선정에서의 투명한 절차 등이 담보되느냐에 따라 정치개혁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 현실주의와 권력정치에 함몰된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 정합성 있는 제도화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9-07-09 최창렬

[경인칼럼]내부 투쟁 멈추고 밖을 바라볼 때다

중국, 시장 '열었다 조였다' 한국경제 조롱日, 한일협정이후 청구 거부한채 경제제재북, '통미봉남'… 트럼프의 '외교적 상상력'우리를 한반도남쪽에 가뒀다는 직감에 답답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 땅을 밟는 장면은 역사적이었다. 1953년 6·25전쟁 휴전 이후 66년간 이런 장면을 목격하리라고 믿었던 한국인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탈리아 기자의 역사적 오보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고, 독일은 갑자기 통일됐다. 역사는 한 국가와 민족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전과 다른 차원의 시공간으로 옮겨놓기 일쑤다.대한민국이 지금 역사적 변동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느낌에 마음이 무겁다. 태풍의 눈은 맑고 고요해 태풍의 실체를 각성하기 힘들다.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적 변동의 한 복판 역시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만 그 사실을 모른 채 무심한 것 아닌가 해서다. 김정은을 판문점으로 불러낸 트럼프의 트윗은 단 몇 줄에 불과했다. 트럼프의 판문점 군사분계선 월경(越境)은 단 몇 분이었다. 김 위원장과 50여분 회동한 트럼프가 회동내용을 설명하려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한 귀엣말은 30여초였다. 문 대통령이 이를 정리했다.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 종식을 선언한 것"이라고. 6·30 북미 정상 판문점 회동에서 벌어진 몇 토막 이벤트들이 모여 '북·미간의 사실상 종전선언'으로 귀결된 것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남북미 협상은 새로운 양상으로 진입한 모양새다.대한해협에서도 역사적 변동을 재촉하는 불길한 동력이 싹트고 있다. 일본이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족집게 처럼 집어내 경제제재에 나섰다. 한국 반도체 산업을 뒷받침 하는 일본산 소재 공급을 막겠다는 결정은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국제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일본이 자국 기업의 손해를 감수하는 자해적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 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결정에 대한 경제보복이다. 역사적 피해자인 우리가 일본의 정치·경제적 보복을 받는 가치의 전복이 황당하지만, 갈 데까지 간 한·일관계 자체는 생소한 현상이다. 이 현상이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촉발시킬지 예측하기 힘들다. 오만한 중국은 이제 경제협력의 대상인지 불분명해졌다. 시장을 열었다 조였다 하며 한국 경제를 애먹이는 수준을 지나 이제 중국이냐 미국이냐를 선택하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외세의 발호가 심각하다. 그 기세에 담긴 기운이 불온하다. 중국은 시장을 앞세워 우리를 조롱하고, 일본은 한일협정 이후의 청구를 거부한 채 한국 경제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북한은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사실상 유일한 동맹인 미국은 수시로 안보비용 청구서를 내민다. 문 대통령은 "그 상상력이 세계를 놀라게 했고 감동시켰으며 역사를 진전시킬 힘을 만들었다"며 김 위원장을 판문점으로 불러낸 트럼프의 외교적 상상력을 찬양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외교적 상상력이 대한민국을 한국인이 상상하지 못한 지경에 갖다 놓을까봐 착잡하다. 상상하지 못할 지경이 무엇인지 몰라서다.우리를 둘러싼 외세의 기운이 우리를 한반도의 남쪽에 가둔 채 소외시키고 있다는 직감에 가슴이 답답하다. 북한을 비롯해 중국, 일본은 물론 혈맹인 미국까지 나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새롭게 결정할 역사적 변동을 밀어붙이는 듯한, 이 모호한 직감이 불쾌하고 불안하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역사의 수레바퀴가 결정적인 한 순간을 향하기 위해 마지막 퍼즐 몇 조각을 맞추고 있다면 무서운 일이다.이처럼 불길한 직감이 개인적 기우에 그치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국가를 수호하는 일에 '상상'의 개입은 금물이다.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변동의 기운과 실체를 똑바로 확인하고 관리하고 대처할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잠시 우리 내부의 투쟁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볼 때다. 내부 투쟁으로 엉망이 된 나라에 불어닥치는 스산한 바람을 느낄 것이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9-07-02 윤인수

[경인칼럼]차별어로 변질한 '다문화'

원래용어는 문화적 다양성 가치 장려 근원결혼이민자·이주가족들 구분 용어로 변환당사자에게 수치심·모멸감 주는 '주홍글씨'정체성 혼란 최소화 위한 환경·정책 '시급''다문화'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자는 이색적 서명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이 용어의 오용을 거듭 지적해온 필자로선 환영하고 지지한다. 더불어민주당 다문화위원회가 주도하고 있는 이 캠페인은 애초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차원에서 재명명한 '다문화'라는 용어가 의도와는 달리 학교나 사회에서 오히려 차별과 혐오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는 현상을 다시 바로 잡는 운동이다. 연구자들이 쓴 학술논문에서도 객관적인 용어 대신 '다문화 아동' '다문화 자녀' 등의 관용어가 남발되고 있는 실정이며, 교육기관의 교사들도 학생의 이름 대신 '다문화 학생'으로 호명하고 있어, 당사자들에게 '다문화'가 수치심과 모멸감을 강요하는 주홍글씨가 되고 만 것이다.본래 '다문화'라는 용어는 문화적 다양성의 세계적 추세를 분석하는 데 사용하는 술어이며, 문화적 다양성의 가치를 주목하고 장려하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에 뿌리를 둔 긍정적인 의미의 용어였다. 문화다양성의 철학적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일반화된 것도, 이주민을 차별하는 말이 된 것도 '다문화 가족지원법'의 제정과 관련된다. 다문화주의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의미와 가치를 결혼이민자나 국제결혼가족에 국한해서 사용한 것은 논리적 오류였다. '다문화'라는 용어는 문화론적으로 깊고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개념인데 다문화나 문화다양성의 전형적 사례가 아닌 결혼이민 등을 가리키는 법률적 용어로 사용한 것이다.결국 '다문화'는 한국의 언중들에게 결혼이민자를 비롯한 이주배경 가족들과 자녀들을 구분하여 부르는 말로 바뀌었으며, '다문화'라는 용어가 지닌 본연의 적극적 문제의식도 훼손되고 만 것이다. 차라리 이 법에서 가리키고 있는 '결혼이민자, 국적법에 의거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자로 이루어진 가족,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에 의한 결혼이민자, 국적법에 의해 귀화 허가를 받은 자'라는 객관적인 표현을 나열하면 문제가 없었을 터이다.'다문화가족지원법'에서 말하는 '다문화'란 2개 이상의 국가 정체성이 공존하거나 융합된 것을 가리키는 데, 실제로는 '문화'가 아니라 '국가'를 말한다. 문화의 다양성이나 공존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문화로의 통합을 유도하는 정책이다. '다문화'에 대한 문화적 재성찰이 절실하다. 우리 문화기본법에서는 문화를 문화예술, 생활양식, 공동체적 삶의 방식, 가치 체계, 전통 및 신념 등을 포함하는 사회나 사회구성원의 고유한 정신적·물질적·지적·감성적 특성의 총체로 보고 있다. 이러한 문화를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정치적 견해,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과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받지 않고 향유할 권리를 지닌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현재 국내 체류 이주민은 2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10년 후에는 우리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500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주배경의 자녀들은 22만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이 겪어야 할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 것, 세심한 인권적 감수성에 입각하여 마련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글로벌 국가, 세계도시의 기본적 지표이다.목하 전개되고 있는 '다문화' 용어 폐기 캠페인은 '다문화'라는 말 자체를 폐기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혼이민자나 국제결혼가족을 부르는 관련 법에서 '다문화 가족'관련 조항을 사실에 입각한 설명으로 대신하거나 객관적인 용어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배려가 차별이 되고만 '다문화' 사례에서 보듯 '정치적 언어교정'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정치적 올바름' 운동은 언어적 측면과 인권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고 인위적 언어교정은 최소화하는 것이 옳다. '다문화' 사례처럼 언어혼란을 야기하면서 또 다른 차별로 기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2019-06-25 김창수

[경인칼럼]부고(訃告)기사를 읽다

세계적 신문들 인간적 관심사로 열독률 높여국내지면들 연표수준 못 벗어나 '무미건조'이름과 숫자만 나열된 '납세고지서' 같기도이희호 여사 기사 읽으며 관행 허물길 바라 지난 10일 이희호 여사가 별세했다. 언론들이 일제히 부고기사를 실었다. 경인일보도 '한국 여성운동 큰 별 지다'란 제목의 부고기사를 1면에 게재했다. 특히 인천판 1면 기사 '동일방직 여공과 함께 투쟁 여성운동 큰별 지다'는 인천지역 여성운동에 남겨진 고인의 발자취를 따로 짚어 인상적이었다. 2면에도 관련기사가 실렸다. 모처럼 부고기사가 1면과 속지에 함께 자리한 신문을 그날 나는 꼼꼼하게 읽었다.사람의 죽음을 알리고 생애를 반추하는 부고기사는 언제 등장했을까. 언론학자 미첼 스티븐스가 쓴 '뉴스의 역사'(1997)에 단서가 있다. 15세기 르네상스의 개막과 함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뉴스가 편지 형식의 문자뉴스로 바뀌기 시작했다. '뉴스레터(newsletter)'의 출현이다. 비잔틴 제국의 심장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던 오스만제국 술탄 모하메드 2세가 1481년 사망하자 뉴스레터가 소식을 유럽으로 실어날랐다. 콘스탄티노플에 사는 한 이탈리아인이 서유럽에 있는 자신의 동생에게 이 엄청난 뉴스를 편지의 형식으로 적어 보낸 것이다. 이 뉴스레터의 필사본들은 다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모하메드 2세가 죽은 지 2년 뒤인 1483년 이탈리아에서 웨일즈의 에드워드 왕자를 위해 프랑스어로 번역된 필사본이 현존한다.부고기사가 이 땅에서 첫 선을 보인 건 1920년의 일이다. 이 해 4월 6일자 동아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전 판서 이호석씨는 숙환으로 8일 통동 9번지 자택에서 별세하얏는대 14일 오전 10시 자택에서 발인하야 선산에 안장하고, 십오일 오후 5시 왕십리에서 수조(受弔) 한다더라." 조선일보는 1923년 5월 20일자 지면에 독립운동가 김인전 선생의 별세 소식을 이야기 형식의 부고기사로 게재했다. "한국노병회 소속 김인전씨는 삼일운동 이후로 상해에 건너와 독립운동에 종사하다가 우연히 토혈병에 걸려 여생을 하던 중 지난 십이일 오전 열한시 삼십분에 상해 동인의원에서 불행히 세상을 뜨다…"1851년 창간 때부터 부고기사를 게재한 뉴욕타임스는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9월 15일부터 연말까지 추모기사 '슬픔의 초상들(Portraits of Grief)'을 연재했다. 가족과 친구들이 남긴 짧은 추모의 글과 함께 3천여 명 희생자들의 프로필을 실었다. 미국사회는 퓰리처상으로 응답했다. 지난해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선 그동안 자신들이 썼던 부고기사가 백인과 남성 중심적이었다는 자체 분석을 내놓았다. 반성으로서 '간과된 여성들(Overlooked)'이란 타이틀로 인류사에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여성들에 대한 부고기사 시리즈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3월 29일자 인터넷판 첫 페이지는 특히 숙연하다. '유관순, 일제에 항거한 한국의 독립운동가'란 제목의 기사는 "1919년 봄 평화적 시위에서 한 여학생이 집단적 자유를 갈망하는 한 민족의 얼굴이 됐다"고 추모했다.부고기사는 세계적인 신문들에서 대부분 높은 열독률을 보인다. 교과서로 삼아도 될 만큼 훌륭한 문장을 갖춘 데다 사실에 바탕을 둔 인간적 관심사가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인류사의 다이제스트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지면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 연표(年表)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종종 객관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 그마저도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인물 평가에 서툴고 인색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죽어서 기록된 한 인간의 생애는 그가 살아냈던 시대를 투영하는 소중한 사회사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가치를 모르거나 간과하고 있다. 제대로 된 부고기사 대신 부고로 가득 채운 공간은 이름과 숫자만 나열된 '납세고지서'와 같다.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본사손님' 또는 '본사내방' 소식과 함께 우리 신문의 가장 권위적이고 가장 비민주적인 관행의 잔재이기도 하다. 낡은 울타리를 허물고, 공허한 허세를 떨쳐내면 거기서부터 우리 신문의 새 경계(境界)가 열릴지도 모른다. 이희호 여사의 부고기사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9-06-18 이충환

[경인칼럼]구상나무의 교훈

전세계 자국발생 데이터 해외반출 막기 비상외국기업들 국내 정보 무제한 수집 하는데국내기업들 개인정보보호법으로 활용 못해'데이터 패권주의' 종자전쟁보다 훨씬 심각세계인들에 가장 사랑받는 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이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지구촌 곳곳이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들로 화려하게 장식되니 말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트리는 소나무과의 상록교목인 전나무로 알려졌지만 진실은 한라산과 지리산에서만 자생하는 구상나무로 백 년 전 누군가에 의해 몰래 서양으로 반출돼서 크리스마스트리가 된 것이다. 구상나무 소유권을 가진 외국인이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지만 그는 매년 수십억 원의 로열티를 받고 있단다.한국은 아열대와 한대가 접하는 전형적 온대 지역으로 사계절의 기온 변화가 심해 식물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특이한 것들이 많다. 국내 자생의 4천여 종의 식물 중 400여 종은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종이나 이중 상당수가 구상나무처럼 외국산으로 둔갑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국내 생물자원들의 국적이 세탁된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 때는 토종(土種) 식량종자 소유권마저 경쟁국 육종기업들에 헐값에 넘겨져 한국인의 애용식품인 감자, 배추, 적상추, 버섯, 청양고추와 감귤 등은 더 이상 신토불이가 아니다. 육류를 제외한 농산물 종자 수입액만 매년 2천억 원을 초과하는데 한국특산식품 종자 수입금액도 상당하다.미국과 중국이 정보자료(데이터) 선점문제로 정면충돌하고 있다. 최근 3~4년 동안 구글, 애플, MS, 아마존, 페이스북, 트위터 등 미국 테크기업들이 전 세계의 데이터를 독식했다. 중국정부는 이 기업들의 중국진출에 제동을 걸기 위해 2017년에 '인터넷안전법'을 제정했다. 중국에서 생성된 모든 데이터의 국외반출 금지는 물론 필요시 중국정부가 자국민의 데이터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작년 3월 '클라우드법(Claud Act)' 제정으로 즉각 반격했다. 테러 및 범죄 수사와 같은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미국정부가 해외에 저장된 미국 기업의 데이터를 들여다볼 권한을 갖도록 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MS데이터센터에 저장된 중국인 데이터를 미국정부가 볼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미·중 양국이 데이터의 법적 관할권을 두고 힘겨루기가 한창이다.오늘날은 정보의 홍수시대이다. CCTV에 찍힌 동영상부터 차량운행 데이터, 홍체, 지문, 걸음걸이와 같은 생체데이터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활동이 인터넷을 통해 수집되면서 전 세계 데이터양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33ZB(1ZB는 1조1천억GB)에 달했는데 2025년에는 175ZB로 5배 이상 격증할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첨예한 대립은 임박한 인공지능(AI) 시대를 선점하기 위한 패권경쟁이다.세계인들은 스스로 도로상황을 판단해서 운전하는 자율주행차에 경악했다. AI가 획기적인 이유는 러닝머신(기계학습)과 같은 학습능력으로 기계가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스스로 똑똑해지는 것이다. 러닝머신은 16만 건의 기보(碁譜)를 단기간에 학습해서 천재기사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의 방식이다. 데이터는 AI의 연료이다. AI를 개발할 때 데이터양이 많을수록 성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세계 각국도 자국에서 발생한 데이터의 해외반출을 막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유럽연합(EU)은 작년 5월에 GDPR(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발표했으며 베트남도 지난해부터 데이터 국외유출 금지법안을 통과시켰다. 호주는 작년 말에 외국기업이 해외에 보관한 호주국민의 데이터에 대해 호주정부의 접근 근거를 마련했으며 지난달 러시아는 자국 내 데이터의 해외반출 시 정부검열을 받도록 했다.한국에서는 외국기업들이 국내 데이터를 무제한적으로 수집, 활용하고 있지만 국내기업들은 개인정보보호법 등 탓에 수집된 데이터마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 가관은 미국의 유튜브, 중국의 틱톡 등은 한국 이용자들에게 한국기업들의 광고를 팔아 막대한 돈을 벌면서도 한국정부에 세금도 거의 안 내고 있다는 점이다.작금의 데이터 패권주의는 구상나무 사례와 같은 종자전쟁보다 훨씬 심각하다. 되풀이되는 역사에 넋을 놓고 있는 격이어서 개운치 못하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9-06-11 이한구

[경인칼럼]한국당은 정당정치를 포기하려는가

황 대표 장외투쟁후 '정책 투쟁' 선언 불구여전히 '국회 외면' 정상화 기미는 안 보여색깔론 내세워 결집 시도 시대착오적 퇴행'민심 준엄' 밖에 머무는 시간 짧을수록 좋다정당을 제외하고 민주주의를 논할 수 없다. 민주정치는 정당정치이고, 정당이란 후보자를 추천하는 정치적 충원 기능과 시민의 이익을 집약·표출하는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당은 갈등을 조정하고, 시민사회의 균열을 제도권에 반영하여 대의제 민주주의를 운영케 하는 가장 중요한 공적영역이기도 하다.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고 가치를 지향함으로써 공동체의 통합을 꾀하는 기제로서의 정치는 가능의 예술이며 모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한국정당은 불신의 대상을 넘어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갈등을 증폭시킴으로써 시민사회의 균열과 반목을 부추기고 이를 통해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퇴행적 정당정치의 반복은 거슬러 올라가면 냉전논리와 맞닿아 있다. 적대와 혐오의 언어가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정당지지도 상승과 지지층 결집으로 연결되는 정치의 역설은 이념적 진영논리에 기인한다. 집권세력과 제1야당의 대치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개혁입법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쟁점이 없는 민생관련 입법도 진척이 없다. 내년도 총선에 정당의 모든 관심이 쏠려있는 상황과, 선거가 민주주의의 전부인 양 치부되는 정치현실에서 정당을 나무랄 수만도 없다. 정치를 비판하고 정당을 나무라는 건 국민의 권리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이 가뜩이나 기능을 상실한 정치를 더욱 왜소화시킴으로써 정치실종과 정치부재를 부추기게 된다면 비판의 실익이 없다. 여야 갈등을 보는 관점의 문제를 재정립할 때다. 여당도 야당도, 보수도 진보도 모두 정파적 이해에 매몰되어 정치공세에 몰두하는 집단이라는 인식은 일반론적인 시민사회의 동의에 기반하고 있다. 이른바 양비론이다. 그러나 최근 자유한국당의 행태로 볼 때 피상적이고 본질을 호도할 수 있는 양비론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장외투쟁을 마감하고 '정책투쟁'을 선언했으나 여전히 국회 정상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이 패스트트랙을 철회하고 사과하면 국회에 복귀하겠다는 발언은 국회복귀와 의정활동을 국민에 대한 의무가 아닌, 시혜로 생각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장외투쟁은 정치적 자원을 독점한 군사정권에 대항하고자 민주화에 대한 압도적 민심에 근거하여 저항했던 민주화 세력에게는 절실한 투쟁이었다. 물론 민주화 이후에 지금의 여당도 장외투쟁을 했으나, 국회를 외면하고 장외로 나가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리화될 수 없다.황 대표는 장외투쟁 기간 동안 여과 없이 적대와 혐오의 언어들을 쏟아냈다. 현 정권을 '좌파독재'와 '좌파사회주의'로 규정하고, '좌파폭정'과 '지옥'으로도 표현했다. 황 대표의 정치적 수사에서 국민들은 '지옥'에서 '절규'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물론 정치공세에 동원되는 언어들은 수위를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른바 막말은 특정 진영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그러나 색깔론과 냉전논리로 반정치주의를 부추겨 지지를 결집시키는 한국당 지도부의 행태는 시대착오적 퇴행이 아닐 수 없다. 한국당에 회군의 명분을 주어야 한다는 말은 맞다. 문재인 대통령이 형식을 불문하고 황 대표와의 일대일 회동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다. 국회 복귀의 명분을 주는 것이 국정을 책임진 세력으로서 합당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패스트트랙 철회와 사과를 전제로 한다면 '영수회담'을 한들 정상화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패스트 트랙은 국회법에 따른 합법적 절차이기 때문에 아무리 명분을 주어야 한다고 해도 철회와 사과는 불가능하다. 정치적 합리성의 범위 내에서 절충과 양보도 있을 수 있다. 황 대표 체제 이후 지지율 상승의 학습효과에 고무된 한국당 지도부는 집권세력과의 갈등 국면이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음직하다. 그러나 굳이 외연 확장이라는 프레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민심의 심판은 준엄했다. 집단지성의 힘이다. 투쟁은 정당성을 담보할 때 감동과 울림을 준다. 한국당이 장외에서 머무르는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2019-06-04 최창렬

[경인칼럼]우국의 시절, 정치적 대타협의 촛불을 켜자

좌우 정치 사제들은 오늘도 격렬한 소탕전우여곡절 겪은 국민들이 나랏일 근심·염려전례없는 정파 전면전, 심각한 번아웃 증후군 지식인과 한마음으로 '기구' 결성할때 됐다이념의 제단에 영혼을 고박(固縛)당한 좌우 정치 사제들은 어제도 오늘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서 격렬한 소탕전을 벌인다. 내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자신의 의지로 그들의 진영에 가담했지만, 그들이 목을 매는 전쟁의 이유는 모호하다. 국민들은 최근 깨닫고 있다. 좌우 전쟁은 정의롭지도 않거니와 막대한 전쟁 후유증만 남겼다. 삶은 팍팍해졌고 나라의 기운은 시들어간다. 좌우 사령부의 지휘에 따르다 보니 개인과 국가가 위기에 처했다. 이제 민심은 한 줌도 안되는 좌우 정치사제들이 벌이는 전쟁을 의심하고 있다.대한민국은 지금 우국(憂國)의 시절을 관통하고 있다. 국민들이 나랏일을 근심하고 염려한다. 건국 이후 대한민국이 걸어온 산업화와 민주화 역정의 고비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국민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정치세력의 대립을 대범하게 여겼던 국민이다. 수많은 위기에 단련돼 북한의 웬만한 도발에는 눈도 깜박이지 않던 국민이다. 그 국민들이 나라 걱정을 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개별적 직감이 모여 위기감은 실체가 되어가고 있다.위기의 진앙은 정치다. 적폐청산. 방향은 옳았지만 방식은 의문을 낳았다. 제도와 관행에 집중돼야 할 청산의 방식이 사람과 정당 이념을 겨냥했다. 진보 진영과 사람에 의한 보수 진영과 사람의 청산으로 변질됐다. 그 결과 적폐청산은 원한만 쌓았다. 보복의 비례성과 대칭성을 강화했다. 진보에 당한 만큼 갚아주기 위해 집권해야 한다는 보수의 복수심은 무섭다. 아니라고? 나는 술자리에서 자주 목격했다. 철없는 소리가 틀림없고 철저하게 배격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보수의 심연에 깔린 원한과 보복심리는 발화를 기다리는 또 다른 정치폭탄이다.진보 진영은 이를 잘 안다. 그래서 20년 100년 장기집권을 강조한다. 뻔뻔하다는 비판과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밟고 있는 페달을 멈출 수 없다. 문재인 정부 환경부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문체부 블랙리스트와 다르다. 전 정권 국정원 댓글조작을 처벌한 사법은 정의고, 김경수 댓글조작 관여를 처벌한 1심 재판부는 불의다. 삼성은 유죄 증거가 나올 때까지 수십번이라도 압수수색을 해야 할 적폐 재벌이지만, 민노총은 폭력행위도 용인해야 할 정의로운 단체이다. 경제가 위기라는 언론과 여론을 향해 위기를 강조하는 것이 위기라고 답한다. 집권여당의 차기 총선 제갈량 양정철이 정보수장 서훈과 장시간 만났다 들켰다. 민망해 입 닫는 대신 준엄하게 언론을 꾸짖는다.이건 전쟁이다. 좌파 진보는 멈추는 순간 동력을 상실할 것을 우려해 페달을 쉼 없이 밟는다. 우파 보수는 흉중에 보복의 칼날을 숨긴 채 익숙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장외투쟁을 벌인다. 전쟁 중에 발생하는 패륜적인 언행과 그에 따른 비난여론은 전쟁 수행 과정의 부수적인 피해로 치부한다.전례없는 좌우 정파의 전면전으로 대한민국은 심각한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는 요격이 불가능하다는데, 요격할 대책은 없고 발사체냐 탄도미사일이냐 정쟁만 있다. 미중 무역분쟁이 한국 경제의 가랑이를 찢어낼 판인데 우리 경제는 실용의 경쟁이 아니라 이념의 대립으로 신음하고 있다. 미국과는 대북외교 분야에서 신경전을 벌이고, 일본과는 총성 없는 외교전쟁 중이며, 중국의 대한민국 하대(下待)는 급기야 지명을 바꾸라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마당에 외교관은 국가기밀(정상회담 통화내용)을 누설하고 정부와 외교부는 야당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북한과 외세의 도전은 날카로운데 우리의 응전은 더디고 한가하다. 내부의 정치 투쟁으로 국가의 위기대응 능력과 국민의 응집력은 탈진됐다.좌우가 대치하고 전쟁하면 정치 보복의 악순환에 빠져 모두 패자가 돼 국가를 위협한다. 좌우가 협력하고 경쟁하면 정책 보정의 선순환을 통해 모두 승자가 돼 나라를 반석에 올릴 수 있다. 사회적 대타협이 아니라 좌우 정치적 대타협이 절실하다. 우국의 시절이다. 좌파와 우파의 상식적인 지식인들과 국민들이 우국충정의 한 마음으로 정치적 대타협 기구를 결성할 때가 됐다. 촛불을 다시 켜도 좋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9-05-28 윤인수

[경인칼럼]역할분담이 필요한 한미동맹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입장과 이해 달라결국 비핵화 협상 추진동력 발굴 우리의 몫세부사항은 당사자간 창의적으로 접근 유리신뢰회복 차원 '비핵화 2~3단계 진행' 현명최근 통일부는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 신청을 승인하고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사업에 800만 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소신있게 추진해나가겠다는 정부의 의지이다. 이 조치가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남북 관계를 대화로 전환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하노이 회담의 옵션으로 거론된 바 있지만 미국 측의 완강한 반대로 철회했다가 하노이의 좌절로 절치부심하고 있는 평양을 향해 뒤늦게, 그것도 일부를, 마지못해 꺼내든 셈이기 때문이다. 바둑에서는 돌을 놓는 순서, 수순(手順)이 승부를 결정한다. 국면을 전환하는 묘수도 수순에서 나오고 다 이긴 판을 놓치는 패착도 수순에서 나온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겪고 있는 고통과 공단가동으로 얻었던 경제적 이익이나 남북간 신뢰회복 효과까지 두루 감안하면, 개성공단 방문승인은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개성공단 재가동은 언젠가는 풀어야 할 매듭이었다. 선택지가 거의 없는 '촉진자의 결단'을 북한이 적극적으로 평가하기를 기대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북미간의 압박이 임계치를 향하고 있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 이후 한동안 칩거하던 김정은 위원장은 연일 생산현장 방문을 통해 '인민'들의 실망감을 달래는 한편, 군부와 강경파들을 의식한 저강도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 예측하지 못한 하노이 결렬로 인해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까지 손상입은 것으로 알려져 협상 테이블로의 복귀가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도 하노이 노딜의 책임을 북한의 '준비부족' 탓으로 돌리는 한편 북한의 석탄운반선을 압류하는 등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발사체 발사로 도발의 강도를 조금씩 높여나간다면 교착상태가 긴장과 갈등관계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가장 비관적 시나리오는 북한의 압박과 미국의 군사적 옵션이 서로 충돌하면서 비핵화협상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비관적 시나리오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다. 트럼프가 외교적 실패로 인한 비난을 감수한다면 미국이 잃을 것은 사실상 없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내심 결렬을 원하고 있으며, 그 대변자들인 매파들은 협상의 문턱을 높여 성사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 미국의 야당은 북미협상을 트럼프가 하는 것 자체가 불만이어서 협상 성사에 관심이 없다. 북한의 경우 비핵화 협상이 제재완화로 이어져 경제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으나, 기득권층에게 평화체제와 개방은 일종의 도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에서 한미간의 이해가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이나 결과로 구축될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입장이나 이해는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북한이 다시 협상장에 설 수 있는 명분과 미국이 비핵화 협상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발굴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유엔의 제재 대상과 무관한 사업이라면 일일이 미국의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다. 유연한 상황 관리를 위해서도 미국과 전략적 방향은 공유하되 세부사항은 당사자가 '창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유리하다. 개성공단 재개 건도 우리 정부가 결자해지의 관점에서 책임성을 가지고 접근했더라면, 그리고 미국은 한국에 판단을 위임해 두었더라면 지금처럼 신뢰의 위기는 조성되지 않았을 터이다. 미국이 선호하는 일괄타결의 가능성은 차츰 줄어들고 있다. 하노이 노딜로 신뢰의 위기는 더 심각해졌다. 빅딜을 고집할 수 없다면 신뢰회복의 차원에서라도 비핵화를 2~3단계로 나누는 것이 현명한 태도이다. 합의사항 위반시 협정을 철회할 수 있는 역진방지규칙(snapback)을 제시해 미국의 우려를 불식하는 한편, 국제기구를 통한 북한과의 식량, 환경 생태분야, 과학기술분야의 지원을 강화하는 전략의 다변화가 '촉진자'에게 절실하다./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2019-05-21 김창수

[경인칼럼]저널리즘: 권력에게 질문하기

은폐·회피·거짓말 하는 권력에 '물음'은그들의 부당함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물러난 인천경제구역청장의 속내 편지글'사퇴이유' 궁금증 풀어주는 언론은 없었다두 편의 저널리즘 영화가 있다. 2015년 같은 해에 미국에서 제작됐다. 실제 사건들을 소재로 했다. 캐스팅과 작품성이 빼어나지만 둘 다 한국에서 흥행에 실패했다. 토마스 매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Spotlight)'는 성공한 취재의 서사시다. 지난 2002년 가톨릭 보스턴 교구의 사제들이 저지른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파헤친 미국 3대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취재와 보도 실화를 토대로 제작됐다. 지역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종교권력의 추악한 이면을 끈질긴 취재정신으로 파헤치고 들어가 마침내 진실에 가까이 다가간다.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는 이듬해 이 기사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영화 제목도 그 팀의 이름을 땄다.반면 제임스 벤더빌트 감독의 첫 작품 '트루스(Truth)'는 실패한 취재의 회고록이다. 에미상 수상에 빛나는 미국 CBS 저널리스트 메리 메이프스의 회고록 '진실과 의무: 언론, 대통령, 그리고 권력의 특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아들 부시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CBS 탐사보도프로그램 '60분'은 간판앵커 댄 래더를 앞세워 부시의 병역비리 의혹을 보도하지만 오보 논란에 휘말리게 된다. 그 여파로 월터 크롱카이트의 후임으로서 24년 동안 'CBS 이브닝뉴스'를 이끌어온 댄 래더가 앵커직에서 물러나고, 메리를 비롯한 팀 전원이 해고된다. '스포트라이트'에서 보스턴 글로브의 새 편집장 마티 배런(리브 슈라이버 분)은 현존하는 지역 최고권력인 추기경에게 말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수행하려면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악한 교회권력을 추적하는 현장기자 마이크 레젠데스(마크 러팔로 분)의 외침은 간명하다. "이걸 밝히지 않으면 그게 언론입니까?" 사과가 몇 개 썩었다고 사과 상자를 통째로 버릴 수는 없지 않느냐며 조직적 은폐를 시도하는 권력의 속성을 팀장 월터 로빈슨(마이클 키튼 분)은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시스템이야. 시스템에 집중해야 해!"비록 보이지 않는 권력시스템에 패하긴 했으나 '트루스'의 저널리스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질문'이다. 오보의 당사자로 낙인찍힌 메리(케이트 블란쳇 분)는 "처음부터 질문하지 말았어야 했어…"라며 자조하지만 진심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댄 래더(로버트 레드포드 분)는 후배 저널리스트에게 질문이야말로 저널리즘의 핵심임을 확인시켜준다. "질문을 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네. 어떤 이들은 쓸데없는 일이라 하고, 어떤 쪽에서는 편파적이라고 하겠지만, 우리가 질문을 멈추는 순간 미국인들은 패배하는 것이네." 영화의 끝부분, 메리는 저승사자 같은 조사단 앞에서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는 대통령이 자신의 의무를 다했냐고 물었을 뿐이에요." 두 편의 영화처럼 저널리즘은 권력에게 묻는다. 감추고, 회피하고, 거짓말하고, 교활한 술수를 부리는 권력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질문은 부당하고 과도한 권력을 무너뜨리는 저널리즘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평상시에도 가장 효과적인 견제의 수단으로 작동한다. 중앙권력이든 지방권력이든, 종교권력이든 세속권력이든, 시민사회권력이든 노동단체권력이든, 심지어 저널리즘이 갖는 스스로의 권력까지 우리의 공동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 권력이 다 질문의 대상이다. 이들 권력에게 제대로 질문하지 않거나 질문하지 못하는 저널리즘은 가짜 저널리즘이다. 며칠 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이 사퇴(辭退)했다. 퇴임식을 대신해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속마음을 헤아려봄직한 문장을 남겼다. "꽃이 진 자리는 열매가 맺혀야 생명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할 말이 많으나 꾹, 꾹, 누른 거겠지. 그가 왜 물러나는지 궁금해하는 시민들이 있다. 하지만 지역언론 어디고 속 시원히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데가 없다. 오히려 억측만 키웠을 뿐이다. 경질(更迭)의 칼을 휘두른 권력에게 제대로 질문하고, 그래서 돌아온 답변을 시민들에게 제대로 들려준 언론이 없다. 근래 이 지역사회에서 그이만큼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공직자가 또 있었는가. 없었음에도 '질문'하지 않았는가./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9-05-14 이충환

[경인칼럼]아모르파티

새시대 띄우는 일본정부 '또 한번 굴기' 갈구고단한 현대인, 삶 포기하는 사례 비일비재자본주의는 서민의 인간미 강퍅함으로 바꿔'자신의 운명 사랑하라' 니체의 당부 눈길일본정부가 새 시대를 맞이했다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부친인 아키히토(明仁)에게서 왕위를 계승함에 따라 일세일원(一世一元)의 연호도 5월 1일부로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일본인들은 신왕(新王) 즉위를 매우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일왕은 통치는 하지 않지만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인 탓이다. 일본 재무성은 1만엔, 5천엔, 1천엔권 지폐 속 인물들을 모두 바꾸기로 했다. 2024년에 새로 선보일 1만엔권에는 '일본자본주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시부자와 에이이치(澁鐸榮一, 1840~1931)를, 또 5천엔권에는 여성 교육 개척자인 쓰다 우메코(津田梅子, 1864~1929)를, 1천엔권에는 일본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 柴三郞, 1853~1931)를 각각 확정했다. 일본국민들은 또 한 번의 굴기( 起)를 갈구하고 있다. 주목되는 인물은 '논어와 주판'(1927)의 저자 시부자와 에이이치이다. 그는 한국 역사상 종이돈 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물이다. 그의 초상은 1902년부터 일본 제일은행이 한국에서 발행하기 시작한 1엔, 5엔, 10엔짜리 3종의 은행권에 처음 등장했었는데 1세기만에 일본 최고액권에 다시 부활했다. 당시 제일은행 총재였던 시부자와는 한국의 일본 식민지화를 촉진한 핵심인물이자 일본에서 미즈호은행, 도쿄가스, 도쿄화재해상보험, 데이코쿠호텔, 도쿄증권거래소, 기린맥주, 치치부철도 등 500여 기업의 설립 및 경영을 주도했다. 그러나 메이지(1868~1912) 중기부터 다이쇼(大正, 1912~1926)에 걸쳐서 빈민가의 존재가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됐다. 도쿄에는 이전부터 만넨초, 다니야, 시바 신모우초 등 빈민촌과 곳곳에 거지굴이 있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가난은 게으름 혹은 팔자로 치부된 때문이다. 그런데 공업화와 함께 도시빈민들의 숫자가 급속히 불어난 것이다. 자본주의는 서민들의 인간미 넘치는 삶을 강퍅함으로 바꾸었다.현대인들의 삶은 훨씬 고단해서 삶을 포기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캐나다 최북단 혹한의 땅인 누나부트 준주(準州)의 주도 이칼루트는 세계최고의 청소년 자살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수천 년 동안 붙박이로 살아온 이누이트인 위주의 자치도시이나 살벌한 자본주의 문화에 적응이 쉽지 않은 터에 자신의 미래마저 불투명한 때문이다. 한국의 청춘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18년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 당 25.8명으로 OECD 35국 중 최고인데 특히 청년층의 자살이 두드러진다. 10~39세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상당한 경비에 고단함도 불사하고 해외를 전전하며 일자리를 구걸(?)하는 한국의 젊은 취업 노마드(유랑민)들이 점증하니 말이다. 대다수의 청년들은 자신들이 부모세대보다 못할 것이라며 불안해한다. 외국기업의 국내 이주 감소와 국내기업들의 국외 엑소더스가 결정적이다. 최근 10년간 국내기업들의 해외직접 투자액이 255조원에 달한다. 지난 한해 생산공장 해외이전 금액만 55조원이다. 국내시장은 협소한 반면에 무한경쟁과 보호무역 강화가 한국기업들의 국외탈출을 부추기는 것이다. 향후 국내 일자리 전망도 밝지 못하다. 전 세계 대다수 엘리트들은 무한경쟁에 따른 물가안정, 교역확대, 기술혁명 등을 들며 세계주의의 탁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화야말로 인민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진실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격이 안정되면 뭐하나, 서민들 주머니에 돈이 말라가는데. 2016년 2월 세계경제포럼의 발표에 따르면 '세상이 더 살기 좋아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미국인 6%, 독일인 4%, 영국인 4%, 프랑스인 3%에 불과했다. 절대다수의 세계시민들은 세계화가 선택받은 극소수에만 좋다고 믿는다.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티브 베넌은 2016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계주의자들은 미국 노동자들의 배를 갈라서 아시아의 중산층을 키웠다"며 분노했다.양극화 확대와 L자형 내수경기, 기술혁신에 따른 일자리 대량감소 우려 등 세계화의 덫은 전 세계가 함께 고민할 과제이나 한국은 기댈 곳이 수출밖에 없어 더 걱정이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Amore Fati)'는 철인 니체의 당부에 눈길이 간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9-05-07 이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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