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 칼럼]'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 대한 단상

14개월 외면받다 무산… 정부 재추진 예고지자체간 특례시 설전·희망고문 등 우려속與 '전국자치분권 지도자회의' 재건 움직임21대 국회 슬기로운 의정생활로 답할 차례지난 5월1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 회의실. 20대 국회의 마지막 법안소위는 21번째 안건인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끝내 상정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의 책임과 권한을 확대하고 중앙과 지방의 협력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1988년 이후 31년 만에 처음 추진된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이 결국 무산된 것이다. 회의실 밖에 대기하고 있는 수원시를 비롯 수많은 관계 공무원들은 장탄식을 쏟아냈다. 지난해 3월 정부 주도로 발의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문 대통령이 직접 개정 필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할 정도로 정부가 공을 들여온 법안이다. 이에 정부는 20대 국회 폐회일인 5월 29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다시 입법 예고하고 지난 18일까지 의견을 수렴한 뒤 7월 초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그러나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희망 고문에 그칠 것", "중앙과 지방의 대등한 관계가 아닌 수직적 관계로 자치분권 흉내만 냈다", "지방자치단체 간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 간의 분열을 통해 정부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꼼수다" 등등…. 당장 '특례시'를 놓고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24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나머지 시를 '보통시'로 만들고 더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자체 간 갈등이나 분열을 초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또 "중앙정부로부터 지방분권을 강화해야하는데 경기도세(稅)를 이양받는 것은 집안끼리 '뺏어 갖기'하는 셈"이라고 반대했다. 도는 앞서 지난 10일 '특례시 명칭 변경', '특례시 재정 자치권 보장(도세 이양이 아닌 국세 이양·별도 특례시세 신설)' 등 2가지를 건의한 바 있다. 경기도시장군수협의회장인 안병용 의정부시장도 "지방자치단체 간 재정적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100만이 넘는 수원·고양·용인시는 '국세보다 도세 이양이 합리적'이라는 맞불 성격의 공동용역 결과를 내놓았다. 이들 3개 시는 경남 창원시와 함께 다음달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4개 대도시 시장·국회의원 간담회'를 개최하며 경기도 및 국회 압박에 나서고 있다.또 다른 목소리는 아직도 정부가 지방자치단체를 '대등한 관계'가 아닌 '수직적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해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면서 단서 조항으로 '다만,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자치단체의 정책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이같은 조항을 담은 것으로 이해되지만, 지방 자치단체로서는 저평가 받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가 "개정안을 보면 중앙이 지방을 아직 '대등한 관계'로 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고 할 정도다.이와 함께 '여전히 희망고문에 그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초 지난 1월9일 경북규제자유특구를 찾아 "지방이양일괄법과 지방자치법 개정이 국회를 통과하면 지자체와 지역주민의 자율권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희망을 표출했다. 그러나 20대 국회는 법안을 상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 희망을 뭉갰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등 지방 4대 협의체가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국회는 개정안 제출 이후 14개월 동안 외면만 했다.지난 20일 세종시청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기초 지자체장, 광역·기초의원 등 회원 500여 명이 '전국 자치분권 민주지도자 회의' 재건총회를 열었다. 제대로 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의 통과를 위해 2015년 만든 조직을 재건하는 총회다. 176석의 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등 국회가 '슬기로운 의정생활'을 통해 답할 차례다./이재규 정치부장이재규 정치부장

2020-06-28 이재규

[데스크 칼럼]무덤에서 나온 글씨

최근 정우량 선생 묘소서 발굴 묘지 2기'동국진체' 완성한 조선후기 이광사 작품문화와 문명 발전시켜 온 기록의 힘 증명새로운 인천 문화정책 구현 가늠자 되길얼마 전 인천에서는 작지만 매우 귀한 발굴 작업이 있었다. 지난 6월 11일, 인천 연수구 동춘동 영일 정씨 묘역에서 묘지(墓誌) 발굴이 이루어졌다. 우의정을 지낸 정우량(鄭羽良, 1692~1754) 선생의 묘소에서 2기의 묘지가 나왔다. 옥으로 깎았으며 글씨는 붉은색으로 새겼다. 가로 37㎝, 세로 42㎝, 두께 9㎝ 정도였다. 이번 묘지 발굴이 눈길을 끈 것은, 인천에는 무덤 밖에 세우는 묘갈(墓碣)은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을 것도 없거니와 수령들의 선정비를 모아 놓은 비석군은 4곳이나 돼 유난히 많은데 무덤 속에 묻는 묘지는 거의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특히 정우량 선생 묘지는 그 글씨가 조선 후기 명필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의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묘지는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기록이자 기념물이다. 무덤 안에 묻는다는 점에서 묘소 앞에 세우는 묘갈과는 다르다. 수해로 인하여 묘역이 훼손되어 바깥의 석물들이 쓸려 내려갈지라도 끝까지 남아 묘소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려는 목적도 묘지는 갖고 있다. 따라서 묘지는 무덤의 주인공 신원 확인을 위한 이중 장치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지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꾸민 묘갈은 묘소의 주인 행적을 약간이라도 과장하게 마련이지만, 땅속에 묻는 묘지는 죽은 이 스스로가 늘 보도록 한다는 점에서 매우 사실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묘지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자 기억의 동물이다. 사람들이 지난 일을 잊지 않는다면 머리 아프지 않고 두통 없이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이 잊지 않는다면 인공지능 컴퓨터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서 잊기도 하고, 일부러 체념하듯 잊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잊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기를 쓰고 잊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글로 남기고, 기념물을 세우고 하는 게 다 그 일환이다. 까맣게 잊고 있던 것들도 예전에 쓴 일기 한 토막이나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보고 나면 영화처럼 생생하게 다시 펼쳐지기도 한다. 이게 바로 기록의 힘이다. 인간이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기도 하다.정우량 선생 묘지에 글씨를 쓴 이광사는 추사 김정희와 함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명필이다. 이광사는 18세기 우리나라 문예부흥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서예에서의 동국진체를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이광사 집안은 강화학파의 큰 줄기를 이룬다. 하곡 정제두에게서 이광사에게로 전해진 학맥은 한 집안 관계인 이건창, 이건승, 이건방 등으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정우량 선생 묘지는 그 자체로 강화학파의 정신과 인천의 명문가 집안 내력이 하나로 뭉쳐 있는 보석이라 할 만하다.묘지는 오랜 전통의 기록문학 장르이면서 기념물이다. 주로 옥돌을 깎아 만들었으며 내용은 죽기 전에 스스로 쓰기도 했고, 잘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그 대상이나 형식도 다양하다. 고려 시대 묘지를 보면, 딸이나 부인들의 것들도 많다. 당시의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천대받지 않았음을 이들 묘지를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다. 조선 숙종 시기 호위대장을 지낸 김주신(1661~1721)은 부모의 묘역에 묻은 묘지에 한글로 덧붙이는 말을 적어 넣기도 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어 이 묘지가 드러났을 때 한글만 아는 농사꾼이나 나무꾼일지라도 부모의 묘소를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려는 방비였다.정우량 선생 묘지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전문가들에 의해 곧 밝혀질 일이다. 이번 발굴이 우리 기록 문화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원교 이광사와 강화학파, 그리고 정우량 선생이 누구인지를 살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인천은 문화 예술이 약하다는 소리를 달고 살았다. 이번에 무덤에서 나온 아주 작은 옥돌 2기가 그 긴 세월을 뚫고 새로운 인천의 문화 정책을 구현하는 가늠자가 되었으면 한다./정진오 인천본사 편집국장정진오 인천본사 편집국장

2020-06-21 정진오

[데스크 칼럼]그랜드투어(grand tour)

17세기 유럽 귀족 청년들 '견문유람' 관습현대적 의미 '패키지 여행'으로 발전 계기코로나사태 왕래 막히며 동양인차별 행태올 여름휴가는 우리문화·둘레길 탐방을…상업이나 군사적 목적이 아닌 인류가 본격적으로 해외여행에 나선 것은 17세기 말 영국과 독일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주로 재정적으로 풍요로웠던 영국과 독일의 귀족 출신 젊은이들이 유럽 일대와 멀게는 아시아 서쪽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때 생겨난 말이 '그랜드 투어(grand tour)다. 당시 유럽 귀족의 여행 목적은 여가나 휴식보다 견문을 넓히는 성격이 강했다. '그랜드 투어'의 최고 인기 여행지는 이탈리아였다. 유럽인들이 이탈리아를 최고의 여행지로 꼽은 이유는 르네상스 문화유산과 가톨릭의 본거지이기 때문이다.이화여대 남종국 교수는 공동 저서 '18세기 도시'에서 "거장의 걸작을 직접 느껴보려는 예술가들, 연구 자료를 찾으려는 인문주의자들, 영혼의 구원을 갈구하는 독실한 가톨릭 순례자들은 모두 이탈리아 여행을 간절히 꿈꿨다"며 "돈 많은 귀족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서 마차, 하인, 가이드, 숙소를 모두 제공하는 현대적 의미의 '패키지여행'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라고 했다. 18세기에는 로마, 파리, 베네치아, 밀라노를 모르면 영국 신사가 될 수 없었다고 한다.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 "영국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에 보내지 않고 곧 그들을 외국에 여행 보내는 것이 점점 하나의 관습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이 여행을 통해 일반적으로 대단히 발전해서 귀국한다"고 쓰기도 했다.여행은 낯선 곳을 찾아가는 설렘과 기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의도치 않게 전염병을 옮기는 수단이기도 했다. 인류·역사학자들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후 한두 세기에 걸쳐 남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인구 중 최대 95%가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희생된 남아메리카 원주민도 많았지만, 그들이 옮긴 질병(세균)에 희생된 원주민들이 더 많았다. 1520년 남아메리카 정복에 나선 에스파냐의 코르테스는 적은 수의 군대를 이끌고도 '천연두'로 아즈텍인들을 몰살시켰다. 코르테스와 함께 '천연두'에 감염된 노예가 멕시코에 도착하면서 유행병이 무섭게 퍼졌다. 당시 '천연두'만으로 절반에 가까운 아즈텍족이 몰살됐고, 인구 2천만명에 이르던 멕시코인은 한 세기만인 1618년 160만명으로 줄었다. 일부 백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몰살시킬 목적으로 천연두 환자가 쓰던 담요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후 1880년대 들어서 백인들이 아메리카에 자리 잡으면서 그들이 앓고 있던 병원균 중 하나인 '결핵'으로 원주민들은 연평균 9%라는 엄청난 비율로 죽어갔다.코로나19 발병 이후 상당수 나라가 급속도로 번지는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해 외국인 입국을 막았다. 이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동양인에 대한 '코로나 인종차별'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영국 정부가 조사한 결과 동남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가 코로나19 발생 직후 21%가량 증가했고, 인종차별 사고 신고 건수도 전년도 동일 기간 대비 3~4배가량 늘었다고 한다. 미국과 독일에서도 우려스러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18세기 영국과 독일의 젊은이들은 신사가 되기 위해 외국의 문물을 배우러 '그랜드 투어'에 나섰다. 일부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후손들은 자신의 나라를 찾은 동남아시아인들에게 꼴사나운 '코로나 인종차별' 행태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가 안정되더라도 해외여행은 예전처럼 활기차고 평화로운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극단적인 생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새로운 전염병이 발병할수록 동양인을 차별하는, 백인들만을 위한 '그랜드 투어'나 '패키지여행'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심각한 코로나19 사태 속에 외국 관광객을 반겨주는 나라가 얼마나 되겠는가. 올 여름휴가는 '답사기행문'을 들고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돌아보거나, 산천 곳곳에 잘 정비된 아름다운 둘레길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2020-06-17 이진호

[데스크 칼럼]경기만 갯벌을 살리는 대안… 경기도 정책

시화호·화옹지구 대단위 간척·매립사업탓갯벌 망가지며 그 많던 어패류가 사라졌다경기도·일선지자체 예산 지원에도 역부족답은 물길살리기… 道 종합적인 대책 희망 경기만 갯벌이 망가졌다. 소금 한 줌이면 젓가락처럼 긴 맛조개를 한 솥 잡아 석쇠에 구워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20년 전쯤의 이야기다. 그러나 최근 갯벌에서 낙지 등 어패류를 잡아 아들, 딸 대학 보낸다는 그런 희망은 사라졌다.물길이 바뀌면서 나타난 문제다. 그 중심에 시화호가 있었다. 1994년 완공된 시화방조제. 1977년에 반월 신도시 건설 사업으로 탄생된 시화방조제(12.67㎞)는 1985년 시화지구 매립 추진 계획과 당시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과 화성군 대부면을 연결해 1억8천t의 담수호를 만드는 계획에 의거, 건립됐다.시화방조제 준공 당시 시흥시·안산시·화성시 일대의 농업 용지 확보, 공업 용지 확보, 담수 자원 확보에 커다란 성과를 이룰 토목 사업이라고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2000년대 시화호 오염이 또 다른 사회적 문제가 됐다.1997년 3월 시화방조제의 배수 갑문을 개방해 해수까지 끌어들이는 대책이 나왔고 1998년 11월 시화호의 담수화 계획이 완전 백지화됐다. 2011년 시흥시와 안산시의 행정 경계 부근에 시화호 조력발전소를 건립, 발전을 개시했다.이후 현재 시화호엔 바닷물이 유입, 옛모습을 되찾았다.간척사업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준 사례가 됐다. 물길 변화로 갯벌이 죽어가기 시작한 것이다.또 다른 사례론 경기만 일원의 매립사업이다. 지난 1991년 화옹지구인 화성시 서신·우정·장안·남양·마도 일원 6천212㏊를 메웠고 1998년부터는 시화지구로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화성시 송산·서신면 4천396㏊에서 간척사업이 진행됐다.이후 1980~90년대 서해 갯벌에서 잡히던 망둑어류 1천763t, 낙지 263t은 현재 각각 65t, 90t으로 급감했다.수산자원 전문가들도 어종이 풍부하던 과거 모습이 사라진 이유로는 지난 1991년부터 서해안 일대에서 이뤄진 간척·매립사업을 대표적으로 꼽았다. '경기만'을 살리기 위해 경기도 등 지자체가 예산을 지원했지만 망가진 갯벌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갯벌 현장에 답이 있었기 때문이다.물길을 트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었던 것이다.인천 강화군 동검도는 50억원을 들여 2018년 1월 갯벌 생태복원사업을 완료했다. 동검도 인근 갯벌을 갈랐던 제방형태 연륙교 일부를 해수가 통하도록 교량 형태로 바꾼 것이다. 안산시 단원구 시화방조제 인근 갯벌도 조력발전을 위해 주기적으로 해수가 유입되면서 숨통이 조금 트였다.시흥 월곶포구는 물길이 바뀌면서 항내 퇴적이 심각해 배없는 항구가 됐다.경기도가 대책을 내놨다. 지난 5월 말 경기만 일원을 어업·항만 등 용도 구역별로 구분, 체계적 관리에 나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책의 주요방안은 해양 공간의 용도 특성에 적합한 관리다. 어업활동보호구역의 경우 부가가치가 높은 양식 활동을 꾸준히 지원하고, 김포 등 북부접경 평화 생태권 등 생태·역사·문화 자원을 다각적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안산과 화성 등 경기 서부연안 해양 레저권과 방아머리, 제부도, 궁평리 등 해수욕장과 바다 낚시터 등을 활용해 해양 레저 산업의 부흥을 위한 전략적 중심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지방에서도 역간척 등 갯벌 살리기에 나섰다. 취재현장에서 만난 어민들도 경기만 갯벌을 살리기 위해서는 물길뿐이라고 했다.이번 경기도의 정책이 경기만 갯벌에서 다시 낙지를 잡을 수 있는 대책이 되길 희망한다./김영래 사회부장김영래 사회부장

2020-06-14 김영래

[데스크 칼럼]'포스트 코로나' 시대 아파트

감염병 사태에 소비주체 온라인 무게 이동비대면·비접촉의미 언택트문화 일상 정착결혼기피·저출산… 대형아파트 찬밥 신세철통보안·방역에 '마음 닫힌 세상' 걱정돼아파트 단지 등 주택가에는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있다. 정해진 요일에 종이·플라스틱·비닐·캔·병 등을 내다 놓으면 다음 날 업체가 수거한다. 큰 종이상자는 테이프 등 이물질을 제거한 후 잘 펴서 차곡차곡 쌓아 놓아야 한다. 부피를 줄이는 방법이다. 종이상자를 펴는 것이 귀찮아 그냥 두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땐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일일이 펴서 정리한다.재활용 분리수거장을 관리하는 게 경비 아저씨 업무는 아니다. 내년부턴 경비 업무만 수행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들이 없으면 누가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관리할지 벌써 걱정된다.코로나19 사태로 달라진 점이 있다.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쿠팡 '로켓배송' 등 택배 종이상자가 많아진 것이다.대형 할인점에서 고객 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종이상자는 보기 어려워졌다.대형 할인점에서 포장용 테이프와 끈이 사라진 이유도 있겠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택배 방식의 물품 구매가 증가한 영향으로 보인다.최근 물류센터에서 잇따라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택배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지만, 온라인 쇼핑과 음식 배달 방식의 비대면(非對面) 소비는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정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상가의 공급 과잉을 막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소비 경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추세에서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졌으니 말이다. 온라인 소비 시장이 확대되면서 오프라인 상가 수요는 줄고 기존 상가 간 경쟁이 더 심화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비접촉을 의미하는 '언택트(untact)' 문화가 일상생활 모든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객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는 대표적인 언택트 문화로 자리 잡았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등 일부 매장에서 제공했던 드라이브 스루 서비스가 다른 분야에도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차에 탄 채 코로나19 검사를 받거나 물품을 구매하는 것은 물론 책을 빌리기도 하고 심지어 도시정비사업 조합원 총회에도 드라이브 스루 방식이 도입됐다. 해외에선 결혼식과 집회까지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열려 화제가 됐다.드라이브 스루가 어디까지 확산하고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관심이 쏠린다.사회 현상과 환경 변화는 주거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혼 기피와 저출산 문제로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소형 평형 아파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부(富)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대형 아파트는 찬밥 신세가 됐다.미세먼지가 심각한 환경 이슈로 대두하자 건설사들이 아파트 단지에 미세먼지 저감 특화 설계를 도입하고 있다. '미세먼지 마케팅'에 나서는 것이다. 실내 공간에 환기 및 외부 공기 차단 시스템을 설치하는 건 기본이다. 외부에 미세먼지 측정 센서와 저감 설비를 설치하는 아파트 단지도 나온다.그렇다면 코로나19는 주거 문화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우선 온라인 소비·수업과 재택근무에 조금이라도 장애가 없어야 할 것 같다.시스템 에어컨과 미세먼지 저감 장치에 이어 세균·바이러스 따위의 병원체를 없애는 설비까지 등장할 것이다. 머지않아 아파트 공용 현관문에 체온을 자동 측정하는 센서가 부착돼 '수상한 외부인'은 물론 '바이러스' 침입까지 방지할 날이 올 듯하다. 입주민 공용시설과 동선 설계도 대면·접촉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가족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대형 평형 수요가 증가하고, 생활 편의시설이 밀집한 도심보다 공원 등 녹지 공간이 많은 한적한 곳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언젠가는 무균실을 갖춘 고급 아파트까지 생길지 모른다. 철통 보안·방역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도 닫히는 건 아닌지 벌써 걱정된다./목동훈 인천본사 경제부장목동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20-06-07 목동훈

[데스크 칼럼]체육회 '법정 법인화'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우리 삶이 대변혁을 겪는 요즘 스포츠에서도 민간체육회장 시대를 열었다당면과제는 예산 지원을 안받는 자립 경영전국 시도협회 유기적체제 구축 결실 기대코로나19로 일상생활이 변한 요즘이다. 언제부터 아침 출근 시간에는 소지품을 챙기는 것보다 마스크를 찾느라 바빠졌고, 귀가 후에는 손 씻기와 손 소독제를 바르는 것도 잊지 않고 사는 세상이 됐다. 또 코로나19가 주춤하면서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했지만, 생활 속 방역과 사람이 많은 곳에서의 마스크 착용 등 우리네 삶은 더 팍팍해진 느낌이다.이런 혼돈의 시기에 대한민국 스포츠도 사상 최초로 민간체육회장 시대를 열었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장이 맡던 회장직을 민간 선출직으로 바꾸면서 올해 첫 민간체육회장 시대를 연 것이다. 비록 선거관리위원회가 아닌 지자체 체육회장 선거관리위원회로 일원화되면서 준비도 소홀하고 규정도 미흡했지만 진통 끝에 민간체육회장 시대를 맞았다.경기도체육회를 비롯해 도내 31개 시·군체육회도 모두 회장을 뽑으면서 이제 당면 과제는 체육회의 자립 경영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 지원을 언제까지 받을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체육회의 '법정 법인화'가 수면으로 떠오른 것이다.현재 도체육회 뿐만 아니라 대다수 시·도체육회는 예산 대부분을 해당 지자체로부터 받고 있다. 도체육회의 경우 1년 예산 약 500억원 중 450억원을 도가 지원하는 구조여서 자립도가 매우 낮다. 또 경기도사격테마파크, 경기도체육회관, 경기도유도회관, 경기도검도회관 등도 모두 도로부터 위탁받아 관리하기 때문에 사실상 도체육회가 자립 경영을 할 수 있는 기반은 없다.게다가 민간체육회장 당선자가 해당 자치단체와의 연대를 잘 이뤄낸다면 예산을 지원받는 데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임기 내내 불협화음에 따른 예산 부족으로 체육회 전반적인 운영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다.따라서 이번 민간체육회장 시대에는 체육인의 숙원 사업인 '법정 법인화' 작업을 이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도체육회를 비롯해 전국 17개 시·도체육회장이 법정 법인화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법정 법인화가 되려면 집행부로부터 예산 자립 및 확보, 체육인 처우 개선 등을 위해 추가적인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을 통한 법정 법인화 과제를 선행해야 한다. 물론 대한체육회는 예산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을 통한 법정 법인화 전환을 최우선적으로 제안한 바 있다.다행스러운 것은 민간 체육회장들의 모임인 '전국시·도체육회장협의회'가 법정 법인화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고, 그 중심에는 도체육회가 있다는 점이다. 도체육회는 그동안 '지방체육회 비영리사단법인 설립 추진 및 진행 절차' 등을 준비해왔고 이를 근거로 법정 법인화를 골자로 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 추진 전략을 마련 중이다.또 '전국시·도체육회사무처장협의회'도 조만간 가동될 전망이어서 회장과 사무처장들의 유기적인 협조 체제도 구축한 셈이다.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려면 경기도 등 지방체육회의 법률적 독립성이 강화돼야 하고 재정 안정성과 정치적 중립성도 확보해야 한다. 더불어 주무관청의 지도 감독 등에 따른 행정개입 우려와 지방체육회와의 사업추진 협조도 필요하다.이제 첫 단추는 채워졌다. 체육계는 법정 법인화의 당면 과제인 자립 경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민간체육회장의 이득이 아닌 진정한 체육인들을 위한 지원 사업의 결실이 맺어지길 기대해본다./신창윤 문화체육부장신창윤 문화체육부장

2020-05-27 신창윤

[데스크 칼럼]그 섬, 물치도

영종도 오른쪽 끄트머리 앞 '작은 섬' 하나매입한 일본 사람 '작약도'로 지었다 전해져인천 동구, 작년부터 '지명 환원' 정당성 확보온전히 시민 품으로 돌려주기 머리 맞댈 때섬은 섬에서보다 섬 밖에서 보아야 제격이다. 인천 자유공원 정상에 있는 인천기상대 역사관 언덕에서 강화도 쪽을 바라보노라면 만석고가 넘어 영종도 오른쪽 끄트머리 앞에 작은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작약도(芍藥島)다. 원래 이름은 물치도(勿淄島) 또는 무치도(舞雉島)였다고 한다. 자유공원 아래로 보이는 바다까지는 온통 공장의 플랜트 시설이 그득하고, 저 건너 영종도는 아파트 단지가 도배하듯이 차지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작약도는 사람 손이 안 타 보이는데 그게 오히려 위태롭기 그지없다.지난 21일 인천광역시지명위원회는 작약도란 이름을 물치도로 바꾸기로 하는 대단히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이는 올 하반기에 열릴 국가지명위원회를 거쳐야 최종 확정될 사안이지만 큰 문제 없이 통과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미 작약도가 속한 동구는 작년부터 '물치도 지명 환원 자문위원회'를 꾸려 작약도란 이름이 왜 물치도로 바뀌어야 하는지 그 정당성을 확보해 왔던 터다. 이를 토대로 동구지명위원회는 작약도를 물치도로 고칠 것을 의결하고, 이를 시 지명위원회에 제출한 바 있다. 일제 강점기 잔재를 정리하고 이를 통해 지역 정체성을 새롭게 세우자는 차원이었다.작약도란 이름은 그 섬의 모양이 작약꽃 봉오리처럼 생겨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드론 촬영한 작약도의 모양은 남북으로 길쭉하다. 위에서 보면 전혀 작약꽃 같지가 않다. 자유공원이나 월미도 같은 데서 보면 둥그런 것이 조금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하다. 그런데 왜 작약도란 이름이 일제 잔재일까. 물치도란 이름이 작약도로 바뀐 것은 일본 관련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 섬을 처음으로 매입한 일본 사람이 작약도라고 이름을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인천항 개항 당시 일본인들은 인천을 작은 일본으로 개발하려는 야욕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청일전쟁(1894~1895) 승리 이후 노골화했고, 그 10년 뒤인 러일전쟁(1904~1905) 승리 이후에는 현실이 되었다. 일본인들은 월미도도 통째로 차지하려고 우리 정부 고위 관료들을 상대로 극심한 로비전에 나서는 등 난리를 부렸다. 그때 자료를 보면, 월미도에 몇 가구의 조선인 민가가 있었는지도 그들은 적시해 놓고 대책 마련을 강구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월미도를 사들이려고 야단을 칠 때 작약도 매입도 염두에 두었을 게다. 작약도는 개항 당시 외세의 물결을 맨 앞에서 맞았다. 월미도와 영종도 사이의 항로로 강화도나 한강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작약도를 지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인양요(1866)나 신미양요(1871) 때 프랑스나 미국의 군함들이 작약도를 거점으로 활용했다. 프랑스 군인들은 프랑스 함대 이름을 따서 '보아제 섬'이라 했으며, 미군들은 섬에 나무가 많다면서 '우디 아일랜드'라 했다. 이 섬에서는 실제로 조선시대 영종도 군영인 영종진에 나무를 공급했다고 하니 작약도에 산림이 울창하기는 했던 모양이다.물치도라는 원래 이름 되찾기에 나선 동구나 인천시에서 앞으로도 이 섬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일본인들의 이 섬 매입 경위도 속속들이 밝혀져야 할 문제다. 향토사가 이훈익 선생의 '인천지명고'나 초대 인천시립박물관장을 지낸 이경성 선생의 회고에 보면 일제 강점기 이 섬의 소유자는 '스즈키'였다고 나온다. 이 스즈키란 인물이 개항기 인천 각국 거류지 의회 의원 '스즈키 쇼(鈴木章)'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이런 일은 작약도란 이름이 왜 일제의 잔재인지를 말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작약도는 여러 기업체로 그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관광지로 삼으려고 노력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흥하던 기업들도 오히려 작약도만 소유하면 망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어떻게 하면 물치도를 인천시민의 품으로 온전히 돌려줄 수 있을 것인가.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정진오 인천본사 편집국장정진오 인천본사 편집국장

2020-05-24 정진오

[데스크 칼럼]무관중 경기

전세계 셧다운 상황 韓 프로야구·축구 개막SK-한화 개막전 해외 언론 11곳 취재경쟁K리그1 37개국 생중계로 1900만명 지켜봐'랜선 응원'마저 다른나라선 부러운 눈길로코로나19의 팬데믹화로 전 세계의 모든 스포츠가 셧다운 된 상황에서 우리 프로야구와 축구 리그는 이달 초 개막했다.지난 5일 인천 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는 리그 공식 개막전이었다. 경기장에 관중은 없었지만, 미국과 프랑스·영국 등 11개 해외 언론들이 취재 경쟁을 했다. 미국 ESPN과 일본 스포존은 자국에 생중계했다.그로부터 3일 후 프로축구 K리그1도 관중 없이 개막했다. 8~10일 열린 K리그1 1라운드 여섯 경기는 무려 37개국에 생중계됐으며, 방송과 인터넷으로 경기를 지켜본 전 세계 시청자가 1천900만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무관중 경기'는 관중 없이 경기를 치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를 일으킨 팀에게 가하는 징계의 한 방안이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구단의 입장에선 입장료 수익이 발생하지 않아 문제가 되고, 팬에겐 경기를 직접 관람할 수 없는 페널티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처럼 무관중 경기는 선수보단 구단의 관리 미흡이나 팬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그 책임을 묻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스포츠 팬들의 관심을 끌었던 비교적 최근의 무관중 경기들을 소환해본다.2012년 4월14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K리그 15라운드 인천과 포항의 경기가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1983년 프로축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관중 없이 진행된 이 경기는 전 달에 열린 인천과 대전의 경기에서 발발한 양 팀 팬들 간 폭력사건에서 기인했다. 인천 마스코트가 도발했다는 이유로 대전 팬들이 경기장에 난입했고, 양 팀 서포터스 간 폭력으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한국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는 사건을 막지 못한 관리 책임을 물어 인천 구단에 무관중 경기 징계를 내렸다. 리그 역사상 첫 무관중 경기의 결과는 1-1 무승부였다.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우리 축구대표팀은 지난해 10월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진행된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조별리그 3차전 북한과의 경기를 관중 없이 치렀다. 북한 당국이 모든 관중의 출입을 금지하면서 자발적 무관중 경기가 됐다. 더 문제가 된 것은 미디어의 경기장 입장도 허용되지 않아 중계는 물론 취재도 없었다는 점이다. 경기 결과는 0-0이었다.벤투호(號)는 지난해 11월14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진행된 조별리그 4차전도 무관중 경기로 치렀다. 레바논의 반정부 시위가 악화하자 대한축구협회는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제3국 개최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경기 당일 AFC 측과 경기 감독관 등이 최종 회의를 한 후 무관중 경기를 결정했다. 이 경기도 0-0으로 비겼다. 극성스런 상대 응원단 없이 치러진 두 원정 경기에서 잇따라 득점 없이 비기자 축구 팬들의 원성은 극에 달했던 바 있다.1982년 출범한 우리 프로야구에서 올 시즌을 제외하곤 무관중 경기는 없었다. 150년 역사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2015년에서야 첫 무관중 경기가 나왔다. 그해 볼티모어지역의 대규모 폭동 사태로 흑인 소년이 사망한 사건이 원인이었다. 경기 도중 폭동의 재발을 우려한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4월29일(현지시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경기를 관중 없이 진행했다.올해 우리 프로야구와 축구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무관중 경기를 이어가고 있다. 선수들은 코로나19 여파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경기를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자신들의 역할을 더 잘해줘야 할 때다. 팬들 또한 랜선을 통한 응원이나마 할 수 있는 상황에 감사해야 한다. 지금 전 세계는 리그를 진행하고 있는 우리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20-05-20 김영준

[데스크 칼럼]풍경 기억 상실

옛기억은 쉽지않다 느린 변화 탓 인식못해연평균 0.01도씩 지구 온도 상승 대표사례자연·인간 질병도 알아차렸을땐 이미 늦어우리사회에도 특정집단 악용 징후 큰 위협나고 자란 곳이라 하더라도 기록 사진이나 영상물을 보지 않고 20~30년 전 풍경을 정확하게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상징적인 건축물이나 구조물이 있었던 자리나 자주 다니던 대로변의 풍경이 어떠했는지 기억하는 정도다. 도시 풍경이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조금씩 이뤄지는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다 문득 "언제 이렇게 변했지" 하고 새삼스러울 때가 있다.변화가 매우 느리게 진행되면서 과거의 풍경이 지금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깨닫지 못하는 현상을 '풍경 기억 상실(landscape amnesia)'이라고 한다. 불규칙한 변동으로 인해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데 정치학에서는 '잠행성 정상 상태(creeping normalcy)'라고 부른다.'총·균·쇠'로 잘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앞서 출간한 '문명의 붕괴'에서 "경제, 교육, 교통 체증 등 어떤 문제가 매우 천천히 악화되고 있을 경우 한 해의 평균 수준이 그 전해에 비해 아주 약간 낮아졌다는 사실을 깨닫기 힘들며, 따라서 미세하지만 한 사람이 정상(normalcy)이라고 생각하는 기준도 매년 조금씩 변동하게 된다"고 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와 같은 변화는 사람들이 깨닫는 순간까지 수십 년간 계속 진행돼 어느 순간 몇십 년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태였으며, 현재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태가 사실은 악화된 상태임을 알게 되고는 갑자기 놀라게 된다"고 했다.매년 평균적으로 약 0.01℃씩 지구 온도가 상승해왔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확인하고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도 대표적인 '풍경 기억 상실' 사례다. 문제가 제기된 이후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지구 온도 상승이 일정하게 올라가는 것이냐, 일시적인 현상이냐' 등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구 온도 변화가 해마다 불규칙한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기 때문에 미세한 차이가 누적돼 큰 차이를 보이기까지 단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사람에게 나타나는 질병도 이와 비슷하다. 암, 당뇨, 뇌·심혈관 질환 등 거의 모든 질병은 아주 서서히 진행된다. 잘못된 식습관이나 주변 환경, 스트레스 등이 신체에 충격을 주고 있지만, 워낙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일부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특정 질병으로 진단을 받을 때는 이미 상당기간 체내에서 보이지 않게 진행돼온 결과다. 바닷물이 밀려오면 신발과 옷이 젖을까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하다 조금씩 옷이 젖으면 어느새 바닷물에 반쯤 잠겨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홀딱 젖어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한여름 분수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도 처음에는 조심하는 듯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열이면 여덟아홉은 홀딱 젖고 정신 없이 논다.'풍경 기억 상실'은 주로 잘못된 일이 오랜 시간 조금씩 반복되는데 알아차리지 못하고 결국 큰 피해를 보게 된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이 현상은 자연이나 인간의 질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리 사회에서도 헌법적 가치를 무력화하고, 불건전한 사상이나 이념을 주입하기 위해 '풍경 기억 상실' 현상을 이용하려는 징후들이 보인다. 특정 집단이 추구하는 이념과 사상을 조금씩 흘려보내는 식이다. 반대 여론이 거세지면 잠시 주춤했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고개를 들며 조금씩 수위를 높인다. 시간이 흘러 여론이 둔감해지면 마치 정당한 주장처럼 떠들어 댄다. 비판적 사고를 없애고 자신들의 이념과 정책을 관철하려는 교묘한 술책이다. 특히 교육과 안보 분야에 이런 현상이 나타날 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멍이 들어서야 맞은 것을 아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2020-05-13 이진호

[데스크 칼럼]이름만 남은 송도유원지 "잘 부탁합니다"

오랜 기간 인천 랜드마크로 폐장후 지명만옥련동·동춘동 식당가 음식특화지구 추진아트플랫폼·문화마을 등 '도시재생' 시도도중고차 수출단지 이전 후 부지 변모 궁금해"(택시) 기사님, 송도유원지 부탁합니다."일을 끝내고 출입처 관계자 등 지인과 저녁을 먹을 때가 있다. 신문사는 업무 특성상 일반 직장보다 퇴근 시간이 늦다. 신문 제작이 어느 정도 마무리돼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다. 약속 장소에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벌주가 기다린다. 폭탄주 2~3잔은 훅 들이켜야 한다. 다 같이 술을 마시고 함께 취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술 문화다.점심이 아닌 저녁을 먹자는 것은 양이 많든 적든 술을 마시자는 얘기다. 그래서 주로 택시를 이용한다. 남동구 구월동, 미추홀구 관교동, 중구 신포동, 연수구 옥련동·동춘동과 송도국제도시 등지에서 만날 때가 많다. 연수구 옥련동 옛 송도유원지 주변에는 음식점이 많다. 택시 기사에게 "송도유원지 가주세요"라고 말하면 어디를 가자는 얘기인지 대부분 안다. 2011년 9월 문을 닫은 송도유원지를 가자는 것은 아닐 테고. 택시 기사가 "어느 식당으로 가면 됩니까"라고 물어본다.송도유원지는 오랜 기간 그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구실을 했다. 특히 송도유원지에 조성된 인공 해수욕장은 인천의 자랑거리였다. 인천 시민은 물론 수도권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회사 체육대회와 야유회 장소로도 인기를 끌었다. 해수욕장 주변에 텐트를 칠 수 있었고, 서해와 송도 주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대관람차는 색다른 즐길 거리였다. 코끼리 공연장이 있었는데, 코끼리 네 마리가 송도유원지를 탈출해 경찰과 소방관까지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었다. 송도유원지는 적자가 누적되면서 폐장했다. '해수욕장 물보다 사람이 더 많다'고 했던 송도유원지 자리에는 중동 국가 등 해외로 팔려나갈 중고차들만 빼곡히 들어서 있다. 송도유원지는 이름만 남은 처지가 됐다.외국인투자기업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해외 본사에서 손님이 오면 옛 송도유원지 주변 식당에서 음식을 대접한다고 했다. 옛 송도유원지 주변에 고급스러운 맛집이 많기 때문이다. 이 외투기업 직원이 이런 말을 했다. "(옥련동 식당가 일대가) 왜 송도유원지라고 불리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송도유원지도 없잖아요." 인천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옥련동 식당가 인근에 유원지가 있었다는 것을 모른다는 얘기다. 그는 "서울 강남의 '가로수길'처럼 식당가에 이름을 붙이면 좋을 것 같다"며 "옥련동·동춘동 식당가를 특색 있는 거리로 꾸미면 더 많은 사람이 찾을 듯싶다"고 했다.인천 연수구는 옛 송도유원지 일대인 옥련1동과 동춘1동 음식점 밀집 지역을 음식문화특화지구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송도유원지가 문을 닫으면서 식당 수는 줄었지만, 격식을 갖춰야 하는 모임이나 가족 행사, 비즈니스 미팅 장소로 옥련동·동춘동 식당가보다 좋은 곳은 없다. 다양한 음식점이 몰려 있어 선택의 폭도 넓다.연수구는 옥련동 식당가 인근에 있는 유휴 시설인 가천인력개발원 건물을 리모델링해 '연수아트플랫폼'(가칭)으로 활용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연수아트플랫폼은 문화예술인, 학생, 청년, 주민 등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공유 문화예술 플랫폼 기능을 하게 된다. 연수구는 연수아트플랫폼 주변에 체험·전시장, 공방·작업실 등을 만들어 이 일대를 '예술인 문화마을'(가칭)로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옛 송도유원지 주변에서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이 시도되는 것이다.옛 송도유원지 부지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송도유원지 자리에 있는 중고차 수출단지가 다른 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중고차가 떠난 후 옛 송도유원지 부지가 어떻게 변모할지 궁금하다. 유원지 기능을 되찾을지, '송도유원지'라는 이름마저 사라질지. 옛 송도유원지 부지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인천시와 연수구의 몫이다./목동훈 인천본사 경제부장목동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20-05-10 목동훈

[데스크 칼럼]재난지원금 전국민 확대, 적재적소에 사용돼야

개인 복지개념보다 긴급·기본소득이 타당상·하위계층 모두 지급 국가경제 되살리기공무원 대상 반강제적 기부금 조성 부적절가족들과 선순환 소비 국가적 고난 극복을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시작했다. 소득 하위 70% 지급과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안을 두고 당 안팎 간, 그리고 국민들 간에 논란도 일었다. 어찌 됐든 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것을 결정하고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우선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자칫 우왕좌왕하다 시간을 놓칠 뻔했지만, 긴급 지원금을 지급하게 돼 다행이다.논란의 중심에는 보편적, 그리고 선택적 복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상위 30%도 지원 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가 핵심이었다. 국민마다, 그리고 이념마다 생각이야 다르겠지만, 복지라는 개념보다 긴급 지원, 또는 기본소득의 개념으로 확대해보는 건 어떤가 싶다.이번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은 말 그대로 긴급지원이다. 각 개인의 '복지'라는 개념보다는 그 지원금을 이용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세대뿐 아니라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네 또는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한 '독감 주사'라는 의미에 무게를 두면 상황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억대 연봉의 직장인도,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도 지원금을 받게 되면 본인 거주지 동네에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사용하지 않게 되면 자동 기부가 된다니 그것도 코로나19로 생활이 어렵게 된 국민들에게 어찌 됐든 돌아가게 되는 셈이다.만약 상위계층에게 지원금을 주지 않게 되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일반 국민들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데 왜 자신은 지원금을 못 받는지에 대한 논란이다.정부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생활고를 겪고 있는 차상위 계층과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에게는 선별적 복지 지원을 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상위계층보다 현 상황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더 절실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실업은 물론 다양한 이유의 생활고까지 버티기 힘든 상황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하위 계층은 물론, 상위 계층에게도 긴급 지원금을 지급해 바닥 경제를 살려보고 국가 경제까지 다시 일으켜 보자는 것이 현 특수 상황 해결의 핵심이다.최근 재난지원금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의 주요 부처장이 "지원금을 받을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받지 않는 것이야 본인 마음대로지만 받고 난 뒤 동네 재난지원금 사용처에서 가족들과 삼겹살을 먹는다든가, 좋은 곳에 기부하고 싶다고 말했으면 더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원금이 어느 식당에서건, 상권에서건 쓰인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한편 지원금지급을 전 국민으로 확대한 뒤 '기부'라는 것에 대한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선 공공기관 내에서 공무원을 상대로 기부금 문화를 억지로 만드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어 우려되고 있다. 기부는 말 그대로 자신이 가진 것을 그냥 준다는 의미다. 본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돼야 할 기부가 기관장 또는 상관의 눈치 때문에 반강제로 이뤄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기관은 부서별 또는 과별 목표치를 정해놓고 기부 확산을 꾀한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모든 것은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지원했으면 공무원이든 일반 국민이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둬야 한다.경기도민은 이미 도의 재난기본소득을 통해 지원금을 받은 경험이 있다. 코로나19로 움츠렸던 마음도 추스를 겸 가족의 달 5월을 맞아 동네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지원받은 카드를 사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소득 상위, 하위와 관계없이 적기 적소 사용을 통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 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하루빨리 회복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조영상 경제부장조영상 경제부장

2020-05-06 조영상

[데스크 칼럼]나는 어떤 코로나 일기를 쓸것인가

고산 윤선도 손자 '지암일기' 펴낸 윤이후전염병 등 재난속 굶주린이웃 함께한 용기우리사회 팬데믹 극복 국민적 몸부림 치열자신만의 재능·지혜 공유로 나눔 실천할때그 할아버지는 누구일까. 지난 2월28일, 코로나19로 대구지역이 마비 상황에 빠지고 전 국민이 마스크를 구하려고 야단법석을 떨 때 7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인천시청을 찾아왔다. 그는 코로나19 담당 부서를 안내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반인 출입이 안 된다고 하자, 박남춘 시장에게 전달해 달라면서 봉투를 건네고 사라졌다. 봉투 안에는 '힘내세요 대구.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마스크 구입에 보탰으면 합니다. 인천 시민 드림'이라고 적힌 편지와 현금 24만원이 들어 있었다. 그는 도대체 어떤 분일까. 문득문득 떠오른다. 지금은 좀 안정을 찾았지만 지난 2월 말이면, 처음 겪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 모두가 안절부절 하지 못할 때다. 마스크 구입 문제로 사건·사고도 많았다. 마스크를 판매하는 약국에는 이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고, 마스크를 팔지 않는다면서 약사를 폭행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어떤 할머니는 길바닥에 나앉아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정말 난리 통이었다. 그럴 때, 나는 괜찮다면서 남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내놓는 그 할아버지의 용기와 이타심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감염병이나 굶주림으로 인한 재난 상황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럴 때의 행동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하게 판가름이 난다. 나만을 위하느냐, 남을 돌아보느냐. 올해 초에 번역되어 나온 윤이후(1636~1699)의 '지암일기'는 300년 이상의 세월을 뛰어넘어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암 윤이후는 '어부사시사'로 잘 알려진 고산 윤선도의 손자이자 조선 후기 선비 그림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공재 윤두서의 생부다. 54세에 과거(증광시)에 급제해 때늦은 벼슬길에 나섰으나 함평 현감에 재직 중 돌연 그만두고 낙향했다. '지암일기'는 그가 함평 현감으로 있던 1692년 1월1일부터 세상을 떠나기 5일 전인 1699년 9월9일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쓴 걸 묶은 것이다. 이때는 흉년, 전염병 같은 혹독한 재난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도적 떼도 들끓었다. 죽어 나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이 일기는 먼 시간을 가로질러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이 안내한다. 배고픔과 질병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재난 일기이기도 하다.넉넉한 형편의 윤이후는 동네의 어려운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생활이 극히 곤란한 동네 사람들을 찾아 노비 여부를 따지지 않고 벼를 2말씩 지급하기도 했다. 노비와 같은 최하층민의 곤궁한 처지까지도 돌볼 줄 안 윤이후의 마음 씀씀이에 고개가 숙여진다. 윤이후는 인천에 살던 누이도, 그 누이의 셋째 딸도 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보내야 했다. 전염병이었던 듯하다. 인천에 사는 누이 가족의 생활 형편도 아주 어려웠다.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장례를 치르지 못할 정도였다. 전국의 거리마다 굶어 죽고, 돌림병에 죽고, 얼어 죽은 이들이 즐비했다. 인천의 누이처럼 출가한 가족의 살림살이도 힘겨웠지만 윤이후는 자기 마을의 가난한 이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가난은 나라도 어쩌지 못한다고 하는데, 윤이후는 최소한 자기 동네의 굶주림만은 혼자서 막아서고 있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한 전 국민적 몸부림이 처절하다. 운동선수는 집안에서 운동하는 법을 공개하고, 예술인들은 자신의 특기로 코로나19에 주눅든 사람들을 달래고 있다. 다들 어려워하고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입장에서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내가 누리는 경제적 여유를 조금 덜어내도 괜찮고, 가진 재능을 나눠 주어도 좋다. 코로나19 이후가 보이지 않는다고 야단인데, 그 캄캄한 미래를 헤쳐나갈 지혜를 공유해도 된다. 나는 지금 코로나19 사태에서 무슨 일을 했다고 일기에 적을 것인가./정진오 인천본사 편집국장정진오 인천본사 편집국장

2020-04-22 정진오

[데스크 칼럼]파스타 몰아내기 캠페인

오늘날 선전 행태 비판적사고 무력화 경향온라인 공간서 쏟아지는 '묻지마' 의혹·주장실패로 자주 인용되는 '이탈리아의 사례''내로남불' 사람들 능할수록 진실 못 다가가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심복으로 나치 정권에서 선전장관을 지낸 요제프 괴벨스는 이런 말을 했다. "한 번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이지만, 천 번을 반복하면 거짓말은 진실이 된다."오늘날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선전 행태를 보면 요제프 괴벨스의 선전술을 기반으로 비판적 사고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 문학비평가를 지낸 미치코 가쿠타니는 저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에서 21세기 선전 행태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대중에게 정보를 쏟아붓고, 주위를 흐트릴 거리를 만들어내 관심과 집중력을 약화시키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고의로 혼란과 공포의 의혹을 퍼뜨리며 거짓말을 만들어내거나 주장하고, 반복 공격으로 신뢰할 만한 정보 전달기관이 작동하기 어렵게 만든다."관심을 돌릴만한 새로운 이슈가 발생하면 이전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게 대중의 속성이다. 그래서 선전가들은 이슈를 덮는 방법으로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낸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는 온갖 이슈를 만들어 대중을 지치게 해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게 하는 것이 21세기 선전의 특징이다.두 번째 특징은 '뻔뻔함'이다. 언론은 아무리 중대한 이슈라도 사실(팩트) 확인이 이뤄질 때까지는 보도를 자제한다. 하지만 최근 온라인 공간이나 정식 언론 매체가 아닌 곳에서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과 주장을 쏟아낸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려는 의도다.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三人成虎)다. 뻔뻔한 거짓말의 반복 효과는 이래서 무섭다.최근 특정한 주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선전술의 세 번째 특징이다. 이런 현상은 주로 대중과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온라인(특히 유튜브)에서 이뤄진다. 서로 맞받아치는 논객들의 주장에 흥분한 지지자들은 적으로 간주한 상대방들에게 실시간 분노의 감정을 쏟아낸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탈진실(post-truth) 현상'이라고 부른다.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는 '가짜뉴스' 논란은 변종 선전술이다. 역사학자인 미국 예일대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는 미국과 러시아의 정치인들을 겨냥해 "뉴스를 오락거리로 만들어 정치적 이슈를 무력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는 저서 '가짜민주주의가 온다'에서 "개혁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능이나 의지 없음에 관심이 쏠리지 않도록 시민들에게 잠깐씩 의기양양과 분노를 경험하도록 가르치고 있다"며 "처음에는 직접 가짜 뉴스를 퍼뜨리다가 그다음에는 모든 뉴스가 가짜라고 주장하고, 결국은 자기들이 연출하는 스펙터클만이 진짜라고 주장한다"고 지적했다.실패한 선전의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것이 이탈리아의 '파스타 몰아내기 캠페인'이다. 1930년대 이탈리아의 일부 급진적인 민족주의자와 파시스트들은 "파스타가 영양가 없고 먹으면 소화도 안 되고 게을러지는 음식"이라고 헐뜯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작가 필리포 마리네티는 "미국처럼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파스타 위주의 이탈리아의 식탁을 미국식 고기 위주의 식단으로 바꿔야 한다"며 파스타 몰아내기 캠페인을 벌였다. 그런 마리네티가 어느 날 식당에서 몰래 파스타를 먹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마리네티 또한 어릴 적부터 먹어왔던 파스타 맛을 잊지 못했다. 이후 캠페인은 사라졌다. 마리네티는 상대방에게는 무차별적인 비난을 하면서도 자신에게는 관대한 '내로남불'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선전에 능할수록 대중은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2020-04-19 이진호

[데스크 칼럼]NO 플라스틱

'해진 옷 무료 수선' 사지말라는 의류회사노이즈마케팅 전략 아닌 '환경 보호' 실천음식물등 오염 국내 재활용비율 절반그쳐지금이라도 '쓰레기와 전쟁'에 동참해야옷을 사지 말라고 광고하는 의류회사가 있다. 해져서 못 입는 옷이라 새로 사야 한다면 새 옷처럼 수선해줄 테니 옷을 사지 말라고 한다.아주 오래된 제품은 물론 다른 회사 브랜드의 옷도 무료로 수선해주는 원웨어(Worn Wear)서비스를 제공한다.한국에도 이 회사가 운영하는 무료 수선소가 있다. 옷을 사면 수선해 입으라고 수선 키트를 담아주고 동영상으로 수선법까지 알려준다.폐페트병을 재활용한 폴리에스테르를 옷감으로 사용하는 친환경 기업인 파타고니아(patagonia)다. 이 회사는 2011년 미국 최대 세일 기간인 블랙프라이데이에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 라는 전면 광고를 뉴욕타임스에 게재했다.광고에 실린 재킷은 폐페트병을 재활용한 폴리에스테르를 60% 사용한 상품이었다.광고는 현란한 문구도 없었고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전략도 아니었다. 환경을 생각해 재킷을 사지 말라는 말뿐이다.회사도 최대한 친환경적 공정을 추구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탄소를 배출하고 환경을 해친다며 매출의 1%(지구를 위한 1% 프로그램)를 23개 환경단체에 지원한다. 최근에는 옷감 소재로 유기농 목화로 만든 면을 고집하고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원단을 석유제품이 아닌 무, 옥수수, 사탕수수 같은 생화학 소재로 바꾸려고 노력 중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국내외 소비자들은 파타고니아를 친환경 기업으로 꼽는다.잘 알려진 파타고니아의 사례를 언급한 것은 지난 12일부터 연속 보도한 '수도권, 이대론 쓰레기에 묻힌다'에 관한 얘기를 좀 더 하고 싶어서다.쓰레기 중 가장 골치 아픈 것이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다. 종이는 2~5년, 우유팩 5년, 나무젓가락 20년, 일회용 기저귀·플라스틱 용기 100년, 스티로폼은 500년 이상 돼야 썩는다. 우리나라 플라스틱 쓰레기의 재활용 비율은 50% 정도다. 나머지 절반은 음식물이나 화학 물질에 오염돼 있거나 재활용할 수 없는 유색 용기, 제거하기 어려운 비닐 포장재를 사용한 것들이다.기업들은 자신들이 생산하는 제품의 포장재가 얼마나 환경적인지는 언급하기를 꺼린다. "100년이 지나야 썩을지 말지 모를 것 같은 재질로 포장했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제품 포장이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도 다르지 않다. 품질이 비슷한 제품이라면 고급스럽게 포장된 제품을 선택한다.플라스틱 쓰레기의 분리배출과 재활용을 혼동하는 시민들이 많다. 분리배출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재활용되지 않는다. 분리 배출된 플라스틱 쓰레기 중 재활용 비율은 50% 남짓이다. 간단한 사례를 보면 일본의 요구르트 용기는 뚜껑부터 본체까지 폴리프로필렌이라 재활용 된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알루미늄 뚜껑을 따로 뜯어야 하는데 선별장에서 이를 하나하나 뜯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상당량이 재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진다.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전 세계 나라들이 플라스틱 쓰레기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필리핀 마닐라의 남부도시 문틴루파의 비얀 마을에서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쌀로 바꿔준다.인도 히말라야에 위치한 한 학교에서는 학비를 플라스틱 폐기물로 받는다. 브라질의 쿠리치바에서는 재활용 쓰레기 4㎏ 당 1㎏의 농산물로 교환해준다. 케냐에서는 2017년 8월부터 가장 강력한 '비닐봉지 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적발되면 4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혹은 미화 4만달러(약 4천900만원)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처벌이 과할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환경 피해가 얼마나 심각하면 이런 극단적인 처방을 내놓았을까.이미 지구의 절반은 쓰레기로 묻혀 있다. 나머지 절반도 시간문제다./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2020-03-18 이진호

[데스크 칼럼]'뉴타운돌이'를 아시나요

수도권 국회의원 후보들 너도나도 약속우후죽순 지정… 장밋빛 공약 '거품으로'유권자 마음 사로잡는 '철도' 쏟아낼 듯사전검토 없이… 불확실한 기대감 '혼란'2008년 제18대 총선 때 '뉴타운돌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뉴타운 붐이 일자 국회의원 후보들이 너도나도 관련 공약을 내놓은 것이다. 뉴타운 공약으로 국회에 입성한 이들을 뉴타운돌이라고 불렀다. 당시 인천은 뉴타운보다 주택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이 대유행했다. 구도심을 중심으로 도시정비예정구역이 늘어났다. 웬만하면 도시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해주는 분위기였다. 첫 삽을 뜨는 것은 주민들의 몫으로 넘겼다. 우후죽순 지정됐던 재개발사업은 부동산 경기침체, 사업성 부족, 주민 갈등으로 장기간 정체됐다. 서울과 경기지역 뉴타운사업도 다를 바 없었다. 결국 서울·경기·인천은 출구전략 짜기에 바빠졌다. 이후 정부와 지자체의 부동산 정책은 전면 철거 방식을 지양하는 '도시재생'과 소유권보다 주거권을 강화하는 '주거복지'로 전환됐다. 공약은 지키려고 내놓은 것이지만, 여하튼 뉴타운돌이의 장밋빛 개발 공약은 '거품'으로 막을 내렸다.'철도'는 총선과 지방선거 '단골 공약'이다. 철도가 놓이면 출퇴근이 편리하고, 무엇보다 집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이보다 좋은 '사탕'이 없다. 철도는 개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임기 안에 계획 반영이나 타당성 조사만 통과하면 어느 정도 공약을 이행한 것으로 자평한다. 향후 공약 이행 평가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셈이다.오는 4월15일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철도 공약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인천은 더욱 그럴 것 같다. 지난해 8월 GTX-B노선(송도~서울역~마석)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정치인들은 보도자료나 SNS를 통해 GTX-B노선의 예타 통과 소식을 알리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GTX-B노선 예타 통과가 단 한 명의 노력으로 가능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마다 다들 '내 덕분'이라고 나서니, 머릿속이 어지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모습은 총선을 염두에 둔 '치적 홍보'라는 지적을 받았다.유권자들이 철도에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가 21대 총선을 앞두고 1천500만건의 민원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교통이 3위를 차지했다. 교통의 세부 키워드에는 GTX와 트램(Tram·노면전차)이 포함됐다. 인천 지역 민원 키워드 분석에선 '교통'이 2위에 올랐고 이와 별도로 '철도'가 7위를 기록했다.지난달 17일 당시 자유한국당 인천시당이 4대 핵심 공약을 내놓았다. 제1공약(원도심 균형발전)에 경인전철 지하화, 도심을 순환하는 인천지하철 3호선 건설, 인천역~동구~부평~인천대공원을 잇는 트램 건설이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은 지난 1월7일 2020년 신년하례회를 열고 4·15 총선 승리를 다짐했다. 총선 승리를 위해 GTX 광역철도망 구축, 도시 내부 철도망 확충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행사장에는 기차가 달리는 모습을 연출한 패널도 설치됐다.인천 유권자들이 철도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서울 접근성이 좋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집값이 서울과 경기 주요 도시에 비해 저평가된 데다, 신도시와 구도심을 활성화할 만한 획기적 수단이 마땅치 않은 영향도 있다. 인천이 철도로 거미줄처럼 연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 때문에 인천의 철도 계획이 '춤을 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타당성 조사 등 사전 검토 없이 노선 계획에 역(驛)을 끼워 넣는다든지, 개통 시기를 앞당기거나 노선을 늘린다든지, 이러한 공약은 불필요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등 혼란을 초래한다. '철도돌이'에게 현혹되는 일이 없도록 철도 공약을 꼼꼼히 살피자. 4년 후에 심판하기엔 너무 늦다./목동훈 인천본사 경제부장목동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20-03-04 목동훈

[데스크 칼럼]책장과 셰프

PC방들 인테리어·컴퓨터 높은 사양 '한계'젊은 고객 입맛맞는 메뉴로 영업전략 바꿔'책장 마케팅'이 미국 출판업계 살린것처럼요즘 '업계매출' 요리사 음식솜씨에 달렸다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기에 난데없이 '책장(冊欌)' 유행이 일어났다. 경기 불황으로 뉴욕 인쇄 출판업자들이 도산 직전에 몰린 상황에서 책장이 유행했다는 것은 의외였다. 이런 유행의 배경에는 당시에는 치밀하게 계획된 '선전 활동(프로파간다)', 지금으로 표현하면 노련한 마케팅 전략이 있었다.책장 유행을 일으킨 주인공은 전 세계 수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PR(Public Relations, 홍보)의 아버지'로 기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 1891~1995)다. 버네이스는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이기도 하다. 버네이스는 홍보를 과학과 산업으로 정립했으며 1923년 뉴욕 대학교에서 최초로 '홍보'라는 교과 과정을 가르치기도 했다. 버네이스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홍보 지침인 '프로파간다(propaganda)'를 썼으며 나치 선전 활동을 도와달라는 히틀러의 요청을 거부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출판업 자체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뉴욕의 주요 출판업자들의 구조 요청을 받은 버네이스는 "책장이 있는 곳에 책도 있게 되죠"라고 했다고 한다. '생각을 빼앗긴 세계'의 저자인 미국의 저널리스트 프랭클린 포어(Franklin Foer)는 "책장은 대부분의 미국 가정에 생소한 물건이었으며 제이 게츠비 같은 부유층에게나 어울릴만한 사치품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책의 내용을 빌리면 버네이스는 건축가들을 설득해서 실내장식 설계에 책장을 포함하게 했고 '아름다운 집', '미국 가정', '가정의 동반자' 같은 잡지들에 등장하는 기사를 통해 붙박이 책장을 알리게 했다. 포어는 "책장은 분명 장식품이었지만 단순한 장식품에 그치지 않았다. 집안에 책이 있다는 건 사회적 출세를 의미했다"며 "책은 지적 능력이 필요한 직업을 갖고 신분이 상승하는 전문직 계층이라는 표시였고 구매력을 갖춘 자들의 소비재였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책장의 보급은 출판업계에 새롭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책장 구입과 더불어 책을 모으고 진열하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얼마 전 막내아들한테 'PC방 맛집' 얘길 들었다. 인덕션, 기름 튀김기, 전기밥솥, 에어프라이어 등 화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전기제품이나 조리용 자판기를 이용한 음식을 제공하는 점포가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비빔면에 튀긴 삼겹살을 올린 '삼겹살&비빔면', 짜장 라면에 치즈와 달걀부침을 토핑한 '짜치기', 불닭볶음면에 치즈와 베이컨을 얹은 '불치베', 스팸과 마요네즈와 함께 밥을 내오는 '스팸마요' 등 기성세대에게는 낯선 메뉴들이다. 음료수는 에이드에 바카스를 섞은 '바카스에이드'가 유행이라고 한다.PC방의 매출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만큼의 시간과 직결된다. 업주의 입장에선 손님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컴퓨터를 사용할수록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고급 인테리어, 높은 컴퓨터 사양으로 손님을 유치하는 데 한계를 느낀 PC방 업주들은 젊은 고객층의 입맛에 맞는 음식 메뉴로 영업전략을 바꾸기 시작했다. 최근 PC방 프랜차이즈 업체마다 고급스럽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체적으로 셰프를 고용하거나 조리가 간편한 음식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식품 공장까지 차린 업체까지 등장하고 있다. 100여 년 전 버네이스의 책장 마케팅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미국 출판 업계를 살린 것처럼 현재의 PC방 업계의 매출은 셰프의 요리 솜씨에 달렸다. 어쨌든, 고유의 상품이나 영업방식만으로 매출을 기대하던 시대가 지난 것만큼은 확실하다./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2020-02-12 이진호

[데스크 칼럼]인천의 랜드마크는

개항기 건축미 극치 독일식 '인천각' 첫손송도 151층 '인천타워' 경기침체로 백지화세계 여섯번째 높은 448m '청라 시티타워'관광객 붐비는 '내실있는 건축물' 준비해야'랜드마크(landmark)'는 부동산 업계에서 많이 쓰는 용어다. 고층 건물 등 규모가 큰 개발사업을 소개할 때 많이 쓴다. 특히, 아파트 분양 광고물에 자주 등장한다. 광고물 내용이 맞는다면, 해당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들은 랜드마크에 사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파트를 지역의 랜드마크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랜드마크라고 생각하는 이도 없을 성싶다.관공서도 대형 개발 프로젝트를 홍보할 때 랜드마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기자들에게 배포하는 보도자료에 '○○이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등의 문장을 넣어 기대감을 높이는 방식이다. 민간은 랜드마크라는 표현이 아파트·상가 등 분양 대상의 가치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관공서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등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길 바라는 듯하다.랜드마크는 '어떤 지역을 대표하거나 구별하게 하는 표지'를 말하는데, 현시대에선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건물을 의미한다. 랜드마크라는 용어가 지역의 대표 부동산을 가리키는 단어로 굳어진 것이다.인천의 랜드마크는 어디일까.개항기 랜드마크 중 하나는 영국인 제임스 존스턴의 별장이었을 것이다. 인천의 언론인이자 향토사학자였던 고일(1903~1975) 선생은 1955년 펴낸 '인천석금'에서 '항구로 들어오는 배 위에서 인천 시가지를 바라보면 청관의 지하실이 고루거각(高樓巨閣)으로 다가왔고, 만국공원(자유공원)에 우뚝 솟은 독일식 건물 '인천각'(존스턴 별장)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고 했다. 향토사학자 최성연(1914~2000) 선생은 1959년 낸 '개항과 양관역정'에 '응봉산 서쪽 산꼭대기 비단결 같은 잔디 위에 아담스레 자리 잡은 인천각은 가까이 가면 구석구석 오밀조밀한 건축미의 극치를 이룬 귀족적 향기가 높은 영국식의 커다란 근세 전당이요! 멀리 인천 앞바다에서 바라다보면 응봉산의 아물아물한 시야 속에서도 색채가 영롱하게 도드라져 보이던 탓으로 일찍이 국내외 선원들로부터 인천 항구의 랜드마크로 불리어 왔다고 전한다'고 기록했다. 최성연 선생이 '근세 전당'이라고 극찬한 존스턴 별장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사라졌다.갯벌을 메워 만든 송도국제도시에 랜드마크를 세우는 사업도 추진됐었다. 151층짜리 쌍둥이 빌딩인 '인천타워'다. 당시에는 각국 주요 도시들의 마천루 경쟁이 치열했다. 송도 6·8공구에 계획했던 인천타워 건립사업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부동산 경기 침체 영향으로 백지화됐다. 이 일대 개발사업은 인천타워 건립이 무산되면서 아파트 단지 조성사업으로 쪼그라들었고, '송도랜드마크시티'라는 명칭만 남게 됐다. 인천타워가 계획대로 건립됐다면, 인천의 랜드마크가 됐거나 높은 공실률로 속이 텅 빈 애물단지가 됐을 것이다. 송도는 오피스 공실률이 높은 편이다. 송도국제업무단지에 우뚝 솟은 포스코타워(68층)도 포스코인터내셔널(옛 포스코대우)이 채우지 않았다면 공실이 많았을지 모른다.지난해 11월2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호수공원 음악분수 앞 야외무대에서 '청라 시티타워 및 복합시설 기공식'이 열렸다. 청라 시티타워(448m)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전망용 건물이자,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전망타워로 기록될 전망이다. 기공식에선 "지역의 새로운 발전을 이끌 랜드마크로 조성될 것" "대한민국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랜드마크가 될 것"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할 세계적인 명소가 되길 기원한다" 등 축사가 이어졌다. 진정한 랜드마크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몸집보다 내실이다. 관광객이 365일 붐비는 시티타워가 되기 위해선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목동훈 인천본사 경제부장목동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20-02-05 목동훈

[데스크 칼럼]공무원과 정치인도 기업과 같은 잣대를…

기업 CEO 처벌 법령 20년전比 42% 증가직원 범죄땐 법인·대표이사도 함께 책임국민적 '눈높이' 정치·행정분야 도입해야70여일 앞둔 21대 총선, 국민 위한 공약을# "공직자 여러분, 오늘 이 순간부터 앞으로 4년간 저와 여러분들은 일심동체입니다. ○○시민들을 위한 '(주)○○시'의 CEO와 임직원으로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입니다."지난 2010년 경기도내 한 단체장이 취임식에서 던진 사자후(獅子吼)다. 취임사의 한 토막을 더 인용하면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하는 행동과 행정, 하나하나의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저를 믿고 저와 함께 '(주)○○시'의 힘찬 미래를 위해 전진합시다." 이후 해당 지자체는 대통령 표창을 비롯 행안부 등 정부 각 부처와 경기도 등 대내외 기관으로부터 4년 동안 매년 100개 이상의 국내외 수상실적을 올린데 이어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외국 단체로부터도 적지 않은 수상 실적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직원들이 실수로 잘못을 해도 기업 최고경영자(CEO)까지 처벌하는 법령의 형사처벌 항목이 2천657개로 20년 전보다 42% 증가했다고 한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경제관련 법령 285개를 전수조사한 수치다. 이 중 2천205개는 범죄를 저지른 직원뿐 아니라 법인과 대표이사가 함께 처벌을 받는다.유예조치돼 기업들이 숨통을 돌리긴 했으나 300인 미만 기업까지 확대되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위반하면 대표이사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하도급 업체 직원이 자칫 사망할 경우에도 원청업체 대표가 징역형을 받는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등이 새로 강화된 법들이다.일부에서는 "대한민국이 점점 기업하기 힘든 나라로, 국제적 경영추세에도 맞지 않은 규제 일변도로 정부의 혁신성장과 규제개혁과도 정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고 비판한다.또 국내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기업들에는 '녹슨 칼'을 들이대면서 정작 국내 기업만 옥죄고 있다며 시대적 변화에 역행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표이사 및 경영자는 기업의 법령 준수를 총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무한하다.#기업에 대한 이 같은 국민적 '눈높이'를 정치와 행정에도 도입해야 한다. 대통령과 청와대, 국무총리와 정부 각 부처에도, 국회의 의장과 국회의원·지방의회의 의장과 지방의원에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각급 법원에도, 광역 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에도 도입해야 한다. 기업과 경영자에게는 과도하리만치 엄정한 잣대를 적용하면서 그들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치며 국민들의 삶을 좌우하는 이들이 법의 장막 뒤에 가려 있으면 안 된다.당당히 앞으로 나와 기업과 경영자가 불투명한지, 정치와 행정과 사법이 더 불투명한지 가늠해봐야 한다. 기업이 불신을 받는지, 분립돼 있는 3권(입법, 행정, 사법)이 불신을 받는지 따져봐야 한다.청와대, 국무총리실, 정부 각 부처, 국회 및 그 보좌진, 지방의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각급 법원, 광역 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소속 공무원 등이 범법을 하거나 일탈을 하거나 할 경우 그 소속의 장(長)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 직원들이 실수로 잘못을 해도 기업 최고경영자까지 처벌하는 2천657개 형사처벌 항목과 같이.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하는 행동과 행정, 하나하나의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라고 말한 한 단체장의 취임 일성과 같이.'국민들은 몰라도 된다'는 희한한 산식이 도입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국회의원을 뽑는 4·15 총선이 7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위 일성을 모든 정당, 모든 후보들이 국민을 위해 공약으로 내세우는 허망한 희망을 품어본다./이재규 사회부장이재규 사회부장

2020-01-29 이재규

[데스크 칼럼]세상 살이가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

완벽주의·결핍·어리석음의 세가지 '저주'그 착각서 탈피 못하면 만족·기쁨 못 얻어행복은 어려움 겪어본 사람이 더 잘 알아포기않고 애써 얻는 것이 '작더라도 소중'새해다보니 "행복하세요"라는 덕담을 자주 듣는다. 문득 "행복이 뭘까" 궁금해졌다. 사전을 찾아봤다. "행복(幸福)[명사] 1. 복된 좋은 운수. 2.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쓰여 있다. 또다시 궁금해졌다. 충분한 만족과 기쁨은 무엇인가. 어떤 상태가 돼야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가. 점점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 주장은 미국의 경제학자인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이 주장했다.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이라고 불리는 이 이론은 1946년부터 빈곤국과 부유한 국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국가 등 30개 국가의 행복을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스털린은 그 근거로 바누아투·방글라데시와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 국민의 행복지수는 오히려 높고, 미국·프랑스·영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행복지수가 낮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했다.200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베시 스티븐슨(Betsey Stevenson) 교수팀은 이스털린의 설문보다 더 광범위한 실증조사를 통해 이스털린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스티븐슨은 "132개국을 대상으로 지난 50년간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유한 나라의 국민이 가난한 나라의 국민보다 더 행복하고, 국가가 부유해질수록 국민의 행복수준은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두 이론 모두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느 이론이 옳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연구 내용에 어떤 기준을 포함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부패지수를 포함했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지난해 공개한 '2019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행복지수 10점 만점에 5.895점을 받아 54위에 올랐다.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 뉴질랜드, 캐나다, 오스트리아 등 순으로 10위권에 포진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대만이 6.466점으로 전체 25위에 올라 가장 순위가 높았으며 일본과 중국은 각각 58위, 93위로 조사됐다.영국의 수필가 마이클 폴리(Michael Foley)는 저서 '행복할 권리'에서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의 사람을 불구로 만드는 세속적 삼위일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세상살이가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난 성공해야 하고", "누구나 내게 잘 대해주어야 하고", "세상은 반드시 살기 쉬워야 한다"는 세 가지 기대 때문이라고 했다. 엘리스는 첫 번째 '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의 저주이며, 두 번째는 결핍의 저주이고, 세 번째는 어리석음의 저주라고 했다. 이 세 가지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인간은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얻지 못한다는 얘기다. "성공보다는 실패하는 일이 많고,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세상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엄청난 고뇌와 굴욕감을 예방할 수 있다"고 폴리는 충고했다.행복은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 더 잘 안다는 데 일말 공감한다. 바닥으로 떨어져 더는 내려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지하층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의 절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힘든 일을 겪던 시절 식구들과 함께 밥 한 끼 먹는 게 행복해 혼자 눈물을 훔쳤던 적이 있다. 노력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없다. 포기하지 않고 애써 얻은 것이 작더라도 소중한 이유다./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2020-01-12 이진호

[데스크 칼럼]한국 경제와 '눈의 꽃'

대내외적 악재·경기침체까지 온갖 어려움기업실적 부진·부동산정책 시장혼란 초래중장년층 빚더미 허덕…생활고 극단적 선택정부·지자체 '난관 극복 정책' 국민들 열망'어느새 길어진 그림자를 따라서 땅거미 진 어둠 속을 그대와 걷고 있네요. 손을 마주 잡고 그 언제까지라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눈물이 나는 걸요~그대와 내 가슴에 조금씩 작은 추억을 그리네요. 영원히 내 곁에 그대 있어요.' 우리나라 국민들이 겨울에 가장 많이 부른다는 가수 박효신의 '눈의 꽃' 가사다. 가사 내용도 좋지만 부드러운 멜로디가 겨울에 딱 들어맞는 느낌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서 다사다난했던 2019년도 이렇게 지나간다.2019년을 보내고 2020년을 맞는 우리의 마음은 왠지 불안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내외적인 악재에 경기 침체까지 우리들의 일상이 온통 경제 문제로 어려움에 처했기 때문이다. 올해 미·중 무역전쟁으로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국내 제조업 수출은 하반기 들어 일본의 수출규제로 어려움을 겪더니 결국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까지 번졌다. 자국 수출절차 우대국인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 한일 통상 관계는 급격하게 얼어붙었고, 한국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의 민낯도 드러났다. 그러나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국내 주력 산업의 취약점을 깨닫고 산업 전반을 재정비하는 전화위복의 기회도 마련됐다.이런 '전대미문의 지정학적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들의 올해 실적도 부진했다. 수출·내수가 모두 동반 침체됐고, 특히 '한국경제 버팀목'이었던 반도체는 연중 불황이 겹치며 늪에 빠졌다. 시가총액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구성된 '반도체 코리아'는 2017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슈퍼호황에 지난해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올해는 불황의 여파로 한국 경제 전체를 끌어내리는 데 일조했다. 한국은행 3분기 기업경영분석 자료를 보면 국내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4.8%로 지난해 3분기(7.6%)보다 2.8%포인트 떨어졌다고 한다. 제조업 영업이익률도 4.5%로 지난해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이런 수익성 악화에는 반도체 경기 침체 영향이 가장 컸다.부동산 시장도 국민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마치 정부와 지역 부동산의 기 싸움 같았다. 집값은 상반기에 안정세를 유지하는 듯했지만 여름 이후 강남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과열되기 시작했고 불길은 수도권 주요 지역까지 번졌다. 국토교통부는 뒤질세라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풍선효과로 상한제 미지정 지역에 집값이 다시 상승했고, 결국 초대형 부동산 대책인 12·16 대책으로 맞섰다. 세제, 대출, 청약, 공급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한 12·16 대책에 대한 시장의 대응은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더 큰 문제는 우리 경제의 허리 역할을 맡고 있는 중장년층이 취약해졌다는 점이다. 만 40~64세 중장년층 절반 이상이 금융권에 빚을 지고 있고 주택 소유자의 빚은 무주택자의 4배에 이를 정도로 큰 빚에 허덕이고 있다. 또 재취업 중장년 10명 중 6명은 한 달에 200만원도 못 번다고 하니 우리 경제의 힘든 현실을 반영해준다.상황이 이렇자 최근 들어 슬픈 소식도 들린다. 일가족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발생했고, 세상을 비관한 사람들의 무책임한 방화까지 우리 현실을 더욱 아프게 한다. 힘든 세상이 싫다고 등진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정부와 지자체는 이런 상황을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 '눈의 꽃' 가사 느낌처럼, 바람이 차가워지고 힘든 겨울이 와도 그대와 함께라면 헤쳐나갈 수 있듯이 우리도 손을 잡고 이웃을 돌봐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높은 곳만 추구하지 말고 아래를 챙기고 관심을 두는 정책이 우리 국민들에게는 더욱 절실하지 않을까 싶다./신창윤 경제부장신창윤 경제부장

2019-12-25 신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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