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 한 남자의 응징

입력 2024-03-28 20:00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3-29 15면
모함에 멸문 당한 오자서의 '굴묘편시'
사마천, 그의 복수·응징 '열전'서 기록
정약용·김정희 유배 고통 통한의 마음
생명놓긴 쉬우나 살아 재기는 대장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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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원장
중국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보복은 오자서(伍子胥)의 응징이다. 춘추시대 초나라 귀족이었던 오자서의 집안은 하루아침에 역모(逆謀) 죄로 기소되어 멸문의 화를 당한다. 초나라 평왕(平王)의 신하였던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伍奢)는 간신 비무기의 모함으로 큰아들 오상과 함께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오자서는 죽고 싶었다. 혼자서 비겁하게 살아가며 마음의 상처를 평생 안고 살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가치 없는 죽음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응징할 것을 다짐하며 오(吳)나라로 망명한다. 오자서는 왕위 계승순위에서 밀려 있던 공자(公子) 광(光)을 왕으로 만들며 킹메이커로 부상하여 권력의 중심에 선다.

오자서는 권력을 남용한 초나라 평왕을 응징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결국 자신이 만든 오나라 왕 합려의 동의를 받아내어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와 함께 자신의 조국 초나라를 공격하여 수도인 영()을 함락시킨다.

자신의 가족을 풍비박산 낸 평왕이 이미 죽어 무덤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에서 평왕의 시신을 파내어 채찍으로 300대를 내리쳐 부모의 원수를 갚아준다. '굴묘편시(掘墓鞭屍)', 묘를 파내고 시신을 꺼내서 채찍으로 때린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조선의 연산군은 자신의 생모 윤씨를 참소하여 죽게 한 신하들에게 부관참시(剖棺斬屍)를 하였으니, 묘를 파내고 죽은 시신을 훼손하여 응징하는 전통은 동양의 역사에서 자주 있었던 일이다.

사마천은 오자서의 지독한 응징 장면을 묘사하면서 그의 옛 친구였던 신포서의 충고를 '사기'에 적고 있다. "그대는 이미 죽은 사람을 묘에서 파내 욕보이니 한때 신하였던 자로 너무 극악무도하지 않은가?" 이런 충고를 들은 오자서는 이렇게 대답한다. "해는 저물고 응징할 시간은 없다(日暮途遠, 일모도원). 이런 방법을 써서라도 무도한 대가를 치러야겠다(倒行逆施, 도행역시)."

자신의 부형을 죽이고, 집안을 망하게 한 사람에 대한 응징, 아마도 오자서는 그 일념 하나로 모진 세월을 견뎌왔기에 응징이 잔인하다는 친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은 한 남자의 응징은 비장하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에 두려울 것도 없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 맺힌 남자의 멋진 응징을 응원한다. 사람들은 모두 가슴 속에 응징의 대상을 하나씩 갖고 살기 때문일까.

오자서의 응징 이야기를 열전(列傳)에 기록한 사마천도 49살 나이에 아무 죄 없이 궁형을 당하였다. 억울하고, 답답하여 잠을 자다가도 몇 번이나 깨어 일어나서 입은 옷이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멍하니 생각에 젖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장이 꼬이는 고통을 받았으니 그 억울함과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무엇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정적에 의한 모함으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 정약용 선생도 억울함이 있었을 것이고, 8년간 유배지에서 고통 받은 김정희도 통한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나와 가족을 무참히 파괴하고 인생을 나락으로 몬 상대를 원망하며 살았을 것이다.

사마천은 오자서의 복수와 응징을 '열전'에 기록하며 응원한다. '오자서가 아버지를 따라 죽었다면 한낱 개미의 목숨과 무슨 구별이 있었겠는가? 끝까지 살아서 치욕을 갚아 그 이름을 후세에 남겼으니 대장부라 할 수 있다'.

인생을 살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생명의 끈을 놓아 버리는 일은 쉬운 일이나, 끝까지 살아서 재기하는 것은 대장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사마천의 평가가 귀에 더욱 선명하게 들어온다.

/박재희 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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