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 일터에서의 (성)차별은 어떻게 성희롱·성폭력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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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 수원여성의전화 회원
2018년 '미투(Me Too)' 운동을 기점으로 우리는 다양한 영역에서 성희롱·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를 듣게 됐다.

2020년 전 부산시장과 전 서울시장의 위력 성폭력 사건 또한 용기 있는 피해자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가해자들의 도덕성 문제 또는 사회지도층의 성 윤리 문제로 사건을 바라보는 언론보도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가해자 개개인의 도덕적 일탈의 문제로 사건에 접근하는 것은 일터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 문제를 노동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간의 문제로 축소하면서 성희롱·성폭력을 '사적인' 문제로 오인하게 만든다.



우리 눈에 보이는 빙산 아래에는 훨씬 더 커다란 빙산이 존재하듯, 수면 위로 보이는 성희롱·성폭력 문제 아래에는 언제나 (성)차별적인 조직문화와 관행이 함께 존재한다는 점에서 (성)차별과 성희롱·성폭력은 개별적인 현상이 아니라 연속선에 놓여있는 문제로 다룰 필요가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위력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 결과를 담은 결정문에서 당시 성희롱·성폭력이 가능할 수 있었던 조직 내 (성)차별적인 구조를 찾아볼 수 있다. 2011년 박 시장 취임 이후 시장실 데스크에서 비서로 근무한 직원들은 모두 20~30대, 7~9급 여성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30대, 여성, 신입'이라는 기준으로 시장 비서실 데스크 비서가 배치된 것은 서울시의 얼굴 역할을 하고 타인을 챙기고 돌보는 노동은 여성에게 적합하다는 인식과 관행이 반영된 결과라고 보면서 직무의 숙련도나 전문성이 아닌 성 역할 고정관념에 따른 비서 배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서울시장실에서 근무한 한 직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성 비서들은 시장을 만나러 온 방문객의 퇴장을 유도할 때 그들이 불쾌해 하지 않도록 '상냥하게' 응대하는 역할을 요구받았다"거나 "시장이 피로해 할 때는 그를 달래고 응원하는 역할도 이들의 몫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데스크 비서는 시장의 일정관리 및 하루 일과의 모든 것을 살피고 보좌하는 업무 외에 아침 식사 준비, 샤워 전후 속옷 관리, 약 복용하도록 챙기기, 약 대리처방이나 혈압 재기, 명절 장보기 등 시장의 공·사를 넘나드는 업무가 요구됐다.

성 역할 고정관념에 따른 업무 배치와 공·사가 구분되지 않는 업무의 불명확함, 무엇보다 상급자의 기분을 맞춰야 하는 일명 '심기 노동', '감정수발 노동'이 요구되는 상황이 성희롱·성폭력 발생의 토대가 된 것이다.

즉 일터에서의 성희롱·성폭력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사건이나 사고가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존중과 노동권이 없는 일터에서 상징적으로 터지는 것이다.

피해자가 겪는 고통은 성희롱·성폭력 피해에 국한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성희롱·성폭력인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에만 집중하는 현실은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현재 발의 중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에서 성희롱이 차별의 한 유형으로 명시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혹자는 '남녀고용평등법', '양성평등기본법'과 같은 법이 있는 상황에서 왜 의미가 있는 것인지 궁금할 수도 있다.

현재 고용 영역에서의 성차별, 성희롱과 관련한 기본적인 법제들은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노동 현실과 (성)차별적인 조직문화와 관행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물론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이 일터에서의 성희롱·성폭력, (성)차별을 해결할 수 있는 완성된 수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 법안은 성희롱·성폭력이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성)차별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사회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보다 평등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초석이 될 수 있다.

/선미 수원여성의전화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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