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흘휴시복(吃虧是福)

'손해보는 것이 복' 긍정의 역설
만남·이별 사랑노래 하시안의 '그땐'
과도한 집착 버리고 마음 비울 때
다시 사랑을 얻는다는 메시지
자연 섭리, 인생 비유 은유적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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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흘휴시복(吃虧是福)은 '손해 보는 것이 곧 복이다'라는 뜻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이해하면 이 말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금전 손실은 결코 수익과 등식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흘휴시복' 사자성어는 역설적으로 긍정적 뜻을 지니고 있다.

하시안이 부른 '그땐' (작사·고재경 작곡·앤드그루브) 노랫말에서 '흘휴시복'의 은유적 함의를 살펴보자. 가사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뭇잎은 떨어져/제 옷을 다 벗어/맨살 드러낸 나무는/스산할 따름이죠'. 겨울 삭풍에 나뭇잎이 땅에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는 법이다. 이른바 '낙엽귀근'(落葉歸根) 현상이다. 외형적으로 보면 속살을 드러낸 나무는 너무 추워서 '스산'하고 황량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뿌리로 돌아간 나무 잎사귀는 새 봄이 되면 서서히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하면서 새순을 얻는다. 그래서 화자는 소망에 가득 찬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입을 옷이 없지만/춥지는 않아요/오늘 지나면/내일이 또 오면/소생하죠'.



만물의 근원인 대자연은 '피고 지고/또다시 피고'를 반복하게 마련이다. 또한 어느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며 창조와 파괴의 순환과정을 멈추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자연의 유기적 순환 이치는 마치 물레방아처럼 돌고 도는 것과 동일하다. 인생도 똑같지 않을까 싶다. 특히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의 사랑과정은 각별히 다가온다. 그래서 화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사랑도 전부/마찬가지 아닐까요/이별을 걷는다 해도/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 있겠죠'. 계속해서 주기적으로 돌고 도는 자연의 섭리처럼 사랑의 만남과 이별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곡명 '그땐'의 화자는 일단 자신의 곁을 떠난 사랑은 일정한 기간동안 잊으라고 역설한다. 별리의 순간적 아픔이야 크겠지만 '바보처럼 미련두면' 미련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집착도 대단히 위험한 발상으로 생각한다. 어떠한 이유이든 집착은 헤어진 이에 대한 경멸과 분노의 감정 표출이다. 이러한 느낌이 강해질수록 절망감에 깊이 빠져들 수 있다. 그래서 결국 배신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방향 감각을 상실한다. 여기서 화자는 절묘한 대안을 제시한다. '커져가는 집착을/치우고 지우고 버리면/그땐/사랑을 되찾아/외롭지 않아요'. 이러한 사항을 고려할 때 떠난 사랑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 않나 싶다. 이렇게 실천할 때 훗날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 또한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의 샘물이 솟아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즉 자신을 버리고 떠나야 나중에 새로운 복을 얻는 '흘휴시복'의 사랑을 성취할 수 있다.

불가에서는 만남과 이별을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지칭한다. 인생 자체가 누군가와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거자필반(去者必返)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화자는 이러한 점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랑/정말 그런 건가요/만남 이별은/돌고 돌죠/낙엽이 다시 잎사귀로 태어나듯/먼저 날 비울 때만이/가득 채우고/사랑할 수 있어요'. 자신을 전부 비우는 행위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본인에게 손실일 수 있다. 그러나 온전히 자신을 비울 때만이 빈 곳을 채워 다시 사랑할 수 있고 이는 곧 얻음과 축복으로 이어진다. 곡목 '그땐'의 화자는 비움은 표면적으로는 손해일 수 있지만 결국 채워지는 복(福)으로 나타나는 '흘휴시복'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듯싶다.

'흘휴시복'에서 의미하는 손해는 버림이다. 강물은 자신을 버릴 때 바다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 스펜서 존슨이 그의 저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시사했듯이 사라진 치즈에 대한 미련을 빨리 버릴수록 새로운 치즈를 그만큼 빨리 찾을 수 있는 법이다. 연인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자신만을 내세우고 상대방에게 과도한 미련과 집착을 하면 대부분 실패한다. 나의 어제를 버려야 오늘이라는 세계를 만난다. 더 나아가 오늘을 버려야 내일이라는 희망의 물이 샘솟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흘휴시복'이 세상에 던지는 참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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