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 '훈민정음'과 보진재(寶晉齋)

입력 2022-11-08 20:03
지면 아이콘 지면 2022-11-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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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한글은 우리 문화의 정수요, 으뜸이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뜻을 지닌 '훈민정음'은 문자의 원리와 제자 등이 모두 밝혀진 세계 유일의 책이다. '훈민정음'은 천지인(天地人) 삼재를 따서 모음 즉 홀소리를 만들었고, 발음 기관의 형상을 따고 음양오행의 원리를 이용하여 자음 즉 닿소리를 만들었다. 글자에도 오행(五行)이 있는데, ㄱ·ㅋ은 목(木)이요, ㄴ·ㄷ·ㄹ·ㅌ은 화(火)며, ㅇ·ㅎ은 토(土)이고, ㅅ·ㅈ·ㅊ과 ㅁ·ㅂ·ㅍ은 각각 금(金)과 수(水)에 해당한다. 그리고 삼재사상을 따르고 있는 모음은 하늘(·), 사람(ㅣ), 땅(ㅡ)을 상징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세대 국문학자인 천태산인 김태준의 제자 이용준이 발견하고 이를 당대 최대 수집가이자 문화재 지킴이였던 간송 전형필에게 전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상주본 훈민정음'은 안타깝고 초조하게도 골동품 수집상과 문화재청의 지루한 밀당 속에서 아직 국민들의 품으로 안기지 못하고 있다. 


세종대왕의 서문·예의편·해례편으로 구성
훈민정음 해례본 최초 영인 인쇄한 '보진재'


'훈민정음 해례본'은 우리 민족을 넘어, 세계의 기록물 유산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국민들과 교육현장에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1946년 조선어학회가 간송미술관의 협조를 얻어 보진재(寶晉齋)에서 출판하면서부터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훈민정음'은 1946년 '훈민정음 해례본'을 최초로 영인한 책이다. 크기는 가로 21㎝×세로 30.5㎝에 전통적인 오침안(五針眼) 선장(線裝)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대왕의 서문과 예의편(例義篇) 그리고 해례편(解例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해례편은 제자해·초성해·중성해·종성해·합자해·용자해에 정인지 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례본' 말미에 '자헌대부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지춘추관사 세자우빈객 신하 정인지'라는 기명과 함께 정통(正統) 11년 9월 상한(上澣)이라는 날짜가 밝혀져 있어 이를 근거로 지금처럼 10월9일을 한글날로 확정할 수 있었다. 참고로 정통 11년 상한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세종 28년 1446년 9월10일이다.



그러면 '훈민정음 해례본'을 최초로 영인한 인쇄소인 보진재는 어떤 곳인가. 보진재는 1912년 대한제국 학부에서 교과서 편찬업무를 맡았던 관리 김진환(1874~1938)이 경술국치를 겪은 뒤 지금의 광화문 우체국 옆 골목에서 창업하여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출판문화를 주도하던 기업이었으나 거듭되는 적자와 경영악화로 2019년 폐업을 선언했다. 보진재는 한국출판문화의 산증인이었는바, 1924년 민간업체로서 최초로 오프셋인쇄기를 도입했고 1933년 국내 최초로 크리스마스실도 찍어냈다.

2019년 적자로 폐업… 한국출판문화 산증인
오프셋인쇄기 1933년 첫 크리스마스실 찍어


한국문학사를 주도했던 잡지 '문장'과 '청춘' 등도 이곳에서 인쇄되어 나왔다. 뿐만 아니라 박엽지라고 해서 주로 얇은 종이를 사용하는 종교 경전 인쇄에 특히 정평이 났으며 우리나라에서 나온 '성경'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인쇄됐다. 보진재라는 기업명은 창업주 김진환이 북송(北宋)시대의 서화가 미불(米비, 1051~1107)을 좋아해서 그의 서재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김진환 창업주는 창업이념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돈이 되는 사업도 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1942년 조선학회가 편찬해오던 '조선어사전' 출판을 시도하다 좌절되기도 하였으나 1945년 해방 직후 소중히 보관해두고 있었던 컷과 원고를 조선어편찬위원들에게 돌려줌으로써 '조선어사전'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배경과 창업이념이 있었기에 1946년 '훈민정음 해례본' 영인본을 출판했던 것이다. 기업이 오로지 돈만 좇거나 100년을 넘기는 업체가 극히 희귀한 우리나라 풍토에서 보진재는 오래도록 기억할만한 인쇄 출판문화의 산실이었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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