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 인간 존재의 최후 보루로서의 인문학

입력 2023-03-14 19:56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3-15 18면

유성호_-_수요광장.jpg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세계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빠르게 걷힘으로써 문화들간 만남의 기회가 점점 더 넓게 확장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만남이 많아질수록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마찰과 갈등도 불가피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오랫동안 마찰을 거듭해온 갈등 주체들 사이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난민 문제나 제국-식민 사이에 일어났던 역사의 평가나 처리 문제, 지금도 현재형으로 일어나는 전쟁이나 폭력의 문제도 이러한 가능성을 여실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기존 개념으로는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그룹들 사이의 갈등이 새롭게 생성되고 있다. 이것은 부, 지식, 연령, 이념 등을 달리하는 계층과 세대 사이에서 점점 더 세분화 되어가고 있다. 그룹 세분화가 이루어질수록, 이해관계나 관점의 편차가 커질수록, 사회 곳곳에서 생겨나는 마찰은 더욱 고도화되고 은밀해진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문제군(群)에 대한 대응 방안은, 서로의 차이나 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쪽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큰 힘에 의존하여 누군가 자신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 한다면, 그러한 문제들은 언제나 인화성 높은 파생적 문제들을 양산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이해하며 공존의 방향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에 대한 이해와 관용 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인간에겐 경제적 부가가치 이익외에
정체성·자부심 같은 삶의 가치 중요


이미 2세기 전 베를린대학의 창립자 훔볼트는 성숙한 지성과 인격을 갖춘 전인적 인간의 양성을 위해 인문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근대 초기에 그가 구상했던 '인간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은 오늘날에 이르러 역설적으로 더욱 커져가고 있다. 더 많은 부, 권력, 지식, 정보를 향한 무한경쟁의 최고 피해자가 결국 인간 자신임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단일한 잣대로 재단하는 경제논리에서 보면 인간 개성과 존엄은 자연스럽게 무시되고 배제되어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배려되지 못했던 것들, 쪼개지고 멀어진 것들을 '인간'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묶고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인문학이 핵심적으로 담당해야 할 대안적 몫일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을 우리 스스로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일본 전범기업 강제징용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누가 보아도 일본에게 유리한 배상 방안을 통해 한미일 사이의 공고한 연대를 꾀하려 한 것이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당시 피해자들은 물론 국내 다수 여론은 굴욕 외교이자 참담한 자기 부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국익'이란 사사로운 개인이 아니라 국가 구성원 전체의 이익이라는 뜻일 터이다. 이번 결정은 강제징용 배상 건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양국관계를 터가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을 깔고 있다. 그러나 여론은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국가구성원 원치않는 피해 입었을때
국익은 정의감 지켜주는데서 발원
더 이상 경제논리로 포장하면 안돼


인간에게는 경제적 부가가치로 환산되는 이익 외에도 정체성, 자부심, 정의감 같은, 결코 수치화할 수 없는 삶의 가치들이 중요한 이익으로 작동한다. 국가 구성원의 심리적, 정서적 충족감은 더없는 국익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지켜내는 방향에서 진짜 국익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국가 구성원 중 누군가 원치 않은 곳에서 원치 않은 피해를 입었을 때, 국익은 그분들의 정체성과 자부심과 정의감을 지켜주는 데서 발원한다.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을 경제논리의 우산 아래 모아놓고 그것을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 안 된다.

이제 인문학은 세상의 중심은 마땅히 인간이어야 하고, 따라서 모든 학문과 예술의 최고 목적 역시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을 견고하게 세우고 확장해가야 한다. 인공지능이 창의적 부문까지 인간을 대신하리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는 시대에, 우리 정부 스스로 참담한 자기 부정에 나서는 이 암울한 시대에, 인간 존재의 최후 보루로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사유하는 까닭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