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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죽음을 넘겨짚는 일

입력 2024-02-27 20:31 수정 2024-02-27 21:01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2-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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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현 사회부 기자
7년 전 어느 여름날, 눈앞으로 폐종이 더미가 쏟아졌다. 피할 틈이 없었다. 기계로 압착된 종이더미가 무쇠처럼 그의 두 발목 위를 덮쳤다. 뼈가 17조각이 날 정도의 대형 사고였다. 응급 수술을 받고도 통증이 날로 심해졌다. 퇴원을 하고 통원치료기간에 의료진을 만나 그는 "아파서 잠도 잘 못 잔다"고 했다.

재수술을 하기로 했다. 1차 수술하고 6개월 뒤였다. 그도 사고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었다. 지금 상태로는 일터로 돌아갈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수술 경과가 나쁘지 않았을까. 재활 과정을 일부 건너뛰고 그는 다시 공장으로 향했다. 영구장해 판정을 받아 걸음이 온전치 않은 두 다리를 이끌고.

그러다 지난해 4월 다른 사고가 그를 '덮쳤'다. 지게차에 실려있던 파지 원료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이다. 7년 전 사고와 비교해 부상 정도는 경미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쪼그라든 그의 입지는 스스로를 불안에 옭아맸다.



70의 나이를 앞둔 그에게 우선인 건 회사와의 계약 연장이었다. 1년마다 근로계약서를 새로 쓰는 비정규직 처지를 앞세워 만신창이가 된 몸은 애써 감췄다. 그의 가족은 "회사 요구대로 산업재해가 아닌 공상으로 처리하고, 머리에 수술 실밥을 푼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출근길에 나섰다"고 했다. 여기까지가 지난해 12월 영풍제지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하청 노동자 이봉재(68)씨의 생전 의무기록과 유가족의 이야기를 종합한 것이다.

죽음이 한 세계의 무너짐이라면, 설명 몇 가지로 타인의 죽음을 넘겨짚는 것만큼 우스운 건 없으리라. 그럼에도 어느 죽음은 설명을 보태야만 조금이나마 선명해지는 게 있다고, 감히 죽음을 기록하며 생각한다. 그는 두 다리가 바스라지고, 머리가 깨졌던 공장에서 다시 일하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조수현 사회부 기자 joeloac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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