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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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몇 시에 도착하신다고 했지?"

나는 남편이 현관을 들어서는 것을 보며 물었다.

"리무진 버스 타고 온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어."



남편이 안방으로 들어가며 대답했다.

"원고 마감일이 한 달 후인데 바쁘게 생겼네."

나는 남편의 양복 윗도리를 받아들며 중얼거렸다. 물론 평소에는 하지 않던 짓이었다. 남편은 유치원애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옷 정도는 혼자서 처리할 수 있었다. 순전히 대화의 기술이었다. 단순히 옷을 받아 옷장 속에 넣어주는 것만으로도 남편은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하루 종일 돌봐야 하는 애도 아닌데 뭘. 집 사는 것만 도와주고 시간 내서 원고 써."

남편은 흔쾌히 말했다. 하기는 그랬다. 애도 아닌 어른을 한 달 내내 붙어서 돌봐야 할 것은 없을 터였다. 시누이는 미국으로 이민을 간지 이십년째였다. 애들이 공부를 마치면 그곳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작은 조카가 작년에 취직을 했다. 조카 둘 모두 독립을 하고보니 이제 고국으로 돌아올 준비를 해도 되겠다 싶은 모양이었다.

다음 날 오후, 시누이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여행용가방을 끌고 도착했다. 오십 줄에 막 들어선 시누이는 다소 지쳐보였다. 비행기를 타고 시차를 넘어 온 탓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애들 다 키워놓으니 이제 편한가봐. 좋아 보이네."

"그러니? 속은 타는데 겉만 멀쩡해 보이나 보다."

남편은 자신의 누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가방을 풀 때는 방 문 앞에 앉아 있었고, 시누이가 샤워를 할 때는 화장실 문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자신의 피붙이를 기다렸다. 이해가 안가는 바도 아니었다. 남편보다 열 살이나 위인 시누이는 막내인 남편에 대한 우애가 남달랐다. 남편이 미국으로 전화를 하면 "얘 요금 많이 나와. 내가 전화 하마 끊어라" 그러고는 금방 전화를 넣었다. 둘이서 한밤중에 소곤소곤 말하는 것을 들으면 마치 엄마와 아들인 듯 연인들끼리의 대화인 듯 애정이 넘쳤다.

게다가 시누이는 막내 동생이 병든 어머니의 노후를 지켰다는데 대해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있었다. 맏이로서 하지 못한 의무에 대해 죄책감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애들 공부시키고 먹고살기 바빠서 내가 사람 노릇을 못하는구나."

그렇게 말하고는 울먹였다. 참으로 선량한 분이구나. 시누이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 도리에 대해 회의를 품고, 사람에 대해서는 선뜻 마음을 주지 못하는 내 자신이 루시퍼의 사촌쯤 되는 것 같았다. 그런 기분은 유쾌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고약하기까지 했다. 나보다 우월한 것과 비교되는 느낌, 강요되는 죄의식 같은 것, 나는 왜 착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좋아할 수 없는 걸까? 내게 그런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그들에게서 때로 이질감을 느꼈다.

"요즘 불경기라 장사가 잘 안 돼."

시누이는 몇 년 전, 경기가 좋을 때 한 곳이던 가게를 두개로 늘렸다.

"가게 하나는 정리하려고 내 놨어."

시누이의 얘기를 들어보면 미국이라는 곳은 신용상태가 좋으면 무엇이든 대출금으로 해결하는 것 같았다. 집을 지을 때도 집값의 거의 80%에 육박하는 돈을 대출받아 다달이 이자와 원금을 상환한다는 거였다. 말하자면 월부인생이었다. 미리 쓰고 벌어서 갚는 구조. 모든 인생이 할부로 산 집과 물건들의 비용을 갚는데 소모되는 사회. 끊임없이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사라고 부추기는 곳. 수입원이 없으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곳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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