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지 마세요<170>

경인일보

발행일 2007-12-19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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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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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에서 살 때의 경험을 떠올렸다. 탁자 주변에 커튼처럼 천을 늘어뜨린 후, 백열등 스탠드를 켜 두었다. 책상 아래는 마치 천막을 친 것처럼 커튼으로 드리워진 공간이 생기고 백열등에서 나온 열이 그 속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더워진 공기는 빠져나가지 않고 탁자 아래에 머물러 엉덩이 아래 부분은 이불을 뒤집어쓴 것처럼 따뜻했다. 그것은 온돌이 없는 일본에서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사용하는 고타츠 같은 것이었다.

손이 시리면 천을 들추고 백열등으로 따뜻해진 탁자 아래쪽으로 드밀었다. 그러나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다보면 어느 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려 손이 꽁꽁 얼곤 했다. 노트북 속에는 스토리가 쌓여갔고, 이야기는 가닥을 잡아 갈등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린 손을 허벅지에 갖다 대고 녹일 때면 잠시 슈바빙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전혜린이 떠올랐다. 물론 전혜린이 쓴 수필집에서 읽은 장면이었다. 난로도 피우지 못하는 추운 집에서 옷이란 옷을 죄다 껴입고 책을 보고 있는 유학생과 나를 일치시키는 것은 그런대로 낭만적이었다. 나는 가끔 다리미에 식빵을 굽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이런 것은 모두 추위와 연관된 에피소드들이었다. 겨울은 인간을 비장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짬짬이 얼어붙은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과거의 강으로 미끄러져 간 동화, 한 밤중 톰의 정원에서를 떠올리며 겨울을 찬양했다.

그러나 깊어가는 겨울 추위는 혹독했다. 특히 진눈깨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탁자 아래의 백열등이 혹시 꺼져버렸나 싶을 정도였다. 나는 이형수의 허락도 없이 그의 전기스토브와 이동식 난방기를 꺼내 와 사용했다. 추위때문에 작업을 못하는 것보다는 매너가 없다는 말을 듣는 게 나았다. 설마 이 추위에 난방기기를 좀 사용했다고 나를 비난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더이상 나를 태우기 위해 작업실에 오지 않았다. 작업실에 다니기 시작한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제 데리러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당신이 오는 시간이 가까워지면 그때부터 더 이상 글이 써지질 않아. 심하면 두 시간이나 세 시간 전부터 말이야. 내가 알아서 갈게." 그 말을 했을 때 남편은 의아한 눈빛을 서서히 내 쪽으로 돌려 나를 보았다.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 무언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남편의 그런 눈을 보았을 때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당신을 생각하면 내 자유로운 사고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려. 더이상 이야기를 만드는 상상력이 생기지 않아. 당신이 정해준 그 시간을 생각하면 창의력 같은 것은 바다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단 말이야.'

차마 이런 식으로 고백할 수는 없었다. 너그러운 남편이 늦은 밤 나를 데리러 와주는 것에 감사를 해도 부족한 지경에 말이다. 그때 남편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남편은 이해한다는 투로 말했다.

"당신이 좋을대로 해. 너무 춥거나 날씨가 나빠서 불편하면 전화를 해."

남편은 흔쾌히 말했다. 반면 내 가슴은 죄책감에 오그라들었다. 남편은 나를 속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데리러 좀 일찍 도착한 날은 추운 날씨에 차 안에서 시동을 끈채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린 날도 있었다. 남편이 왜 나를 구속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창의력과 상상력이 남편때문에 제한된다고 여겼을까. 나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남편이 도착할 시간을 떠올리는 순간에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자료가 클릭 한 번으로 단숨에 날아가듯 오솔길처럼 수없이 갈라지던 많은 이야기들이 빛이 들어간 필름처럼 깡그리 지워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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