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탁환(소설가·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이란 페르세폴리스로 답사를 다녀왔다. 답사를 주관한 여행사에서 보낸 주의사항에는 이란 여인에게 먼저 말을 걸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테헤란 공항에 내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히잡을 두른 젊은 여인들이 먼저 다가와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머뭇거리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녀들 고운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양금!" "양금!" 하면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양금은 드라마 '대장금'의 주인공 장금의 이란식 이름이다. 작년에 '대장금'이 방영되었을 때 시청률이 무려 80%를 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30%만 넘어도 대박 운운하는데 80%라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란 어린이들은 비행기에서 내리는 일본인과 중국인을 향해서도 "양금!"이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어댔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는 질문을 받고 불쾌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페르세폴리스로 가기 위해 테헤란에서 쉬라즈로 이동했다. 호텔 직원도, 현지 안내인 페틴자드도 모두 여성이었다. 영어가 유창한 그녀에게, 여행사에서 이란 여성에게 말을 걸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적어주었다고 했더니,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누가 그런 엉터리 정보를 주었느냐고 따졌다.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이란은 일본과 함께 아시아의 두 마리 용이었으며 이슬람권 국가 중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가 가장 많으며 철저하게 일부일처제를 따르는 국가라고 했다. 자신들은 아랍이 아니라 페르시아라고 힘주어 말할 때는 세계문명이 탄생한 땅에 사는 이로서 자부심이 엿보였다.



페르세폴리스는 당대 세계 문화가 하나로 들끓는 용광로였다. 그리스 열주식(列柱式) 기둥 건축양식, 이집트 석조 건축 양식, 바빌로니아 벽돌 축조 양식, 인도의 지붕 건축양식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높이 솟은 돌기둥과 거대한 문도 웅장했지만 벽에 새긴 조각들이 더 눈길을 끌었다. 그리스 반도와 지중해를 건너 인도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무려 23개 민족의 사신들이 페르세폴리스의 주인 다리우스 황제를 알현키 위해 궁전 입구 '만국(萬國)의 문(門)' 에 줄지어 꼿꼿이 서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이나 그리스와의 전쟁을 다룬 영화에서 페르시아는 하나같이 미개하고 힘만 센 나라로 묘사되었다. 할리우드 영화 '300'에 등장하는 영웅적인 스파르타 인과 기괴하기 짝이 없는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를 비교해 보라!

'대장금'이 방영되기 전까지, 이란인들은 한국을 일본과 함께 부자 나라로만 인식해왔다. 그러나 드라마가 방영된 후 한국은 독자적인 음식 문화를 지녔으며 여성의 의로운 삶을 인정하고 포용한 아름다운 나라로 각인되었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한 자리에 모여서 즐긴 드라마 '대장금'은 일찍부터 이란에 진출했던 삼성과 LG 그리고 경차 프라이드가 더욱 이란인들의 사랑을 받는 데 일조했다.

문화콘텐츠의 힘은 무한하다. '대장금'이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를 거쳐 페르시아 문명의 본산지 이란에서 사랑받을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문화콘텐츠가 곧 한국의 미래 동력이라는 주장은 허언이 아니다. 국경과 인종을 넘어 대한민국을 사랑하게 만드는 길, 그 선봉에 문화콘텐츠가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 '대장금 루트'가 활짝 열렸다. 어렵게 개척한 이 문화의 길로 더 뛰어난 문화콘텐츠를 보내야 한다. 이란을 넘어 터키나 그리스까지 뻗어나갈 채비를 서둘러야 한다.

4월22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페르시아 특별전이 열린다. 실크로드 문화교류사에서 이탈리아 로마는 서방의 출발점이었고 페르시아는 실크로드의 허브였으며 신라 경주(당대 서라벌)는 동방 실크로드의 마지막 기착지였다. 나는 전시회에 가서 이란인의 친철과 페르시아 문명의 위대함을 되새길 것이다. 문화콘텐츠의 상호유통은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수단이 아니라 벗과 벗의 사귐이기도 하다. 벗이 먼 곳에서 찾아왔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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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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