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하 (시인) |
내가 내 인생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데에 반드시 놓쳐서는 안 될 한 가닥이 있다면 다음이다.
'개자식'이야기다.
누군가 매우 고매한 어떤 분이 언젠가 무슨 일 때문에 날더러 '개자식'이라고 욕한 적이 있었다.
우선 그분의 인품으로 보아 할 만한 말이 아니어서 크게 놀란 중에 그 분은 한술 더 떠 여러 사람을 붙잡고 내가 개의 몸에서 나오는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노라고 내내 떠들어대며 욕을 욕을 하는 거였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민망하고 서러울 뿐 다른 할 말이 없었다.
모든 것이 내 탓이요 모든 것이 내 부덕의 결과로서 내가 나서서 변명하거나 마주 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여 그야말로 스스로 가슴만 치며 '내 탓이요'를 되풀이할 뿐 다른 할 말이 없었다. 그러던 중 나는 한 가지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개자식이라면 천한 짐승 같은 백성의 자식이라는 뜻이겠는데 그 백성이 만약 요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추켜세우는 '민중'이라면 어찌 되는가!)
이런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만약 참으로 '민중'이라면, 만약 참으로 그 '민중'이 성경에 나오는 이른바 저주받은 자들, '네페쉬하야'라면, 그래서 예수가 하늘나라에 가는 가장 큰 적임자라고 추켜세운 바로 그 밑바닥 민중을 뜻한다면, 내가 참으로 하늘에서 상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셈이었다.
나는 문득 가슴 밑바닥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용기와 자부심을 느끼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주변에 퍼트리기 시작했었다.
"내가 어릴 때 엄마의 젖을 제대로 못 먹어 스킨십이 부족하다. 그래서 에릭 프롬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하는 바로 그 사랑의 테크닉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나 이 부족 때문에 나는 늘 스스로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자책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그나마 그 어렵고 고통스러운 가시밭길을 어떻게든 그럭저럭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통과할 수가 있었으니 '개자식'이란 나의 악명이 도리어 나의 유일한 인생처방이 된 셈이다."
그렇다.
나는 참 모질도록 긴긴 세월을 고통과 수난을 견디며 살아왔다. 이른바 '비극적 명성'으로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나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적은 행여라도 그 헛된 명성, 그 사실은 동정심이나 봐줘서 주는 헛점수에 그만 깜박 속아 스스로 무슨 큰 인격자나 되는 듯이 착각하게 되는 가능성이 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오로지 나 자신이 언제나 결핍이 심한 사랑 밖에서 살아온, 그 일종의 '개자식'이라는 자각이 있었기에 그나마 오늘의 나에까지 이르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인생이란 때론 '새옹지마'다.
'개자식'이라는 악명이 있었기에 내가 내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고 그랬었기에 그 숱한 날 나의 그 수많은 적들 그 수많은 폄훼자들의 날카로운 배암 혓바닥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던 것이니 이제와 그분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하매 인생에 관한 가끔의 생각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기인 긴 나그네 길에서 단지 몇 번밖에 참으로 살지 못한다. 그 참다운 기회가 '개자식'의 경우와 같은 그런 교훈과 연속될 때에 인생은 참으로 값어치 있는 것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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