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시대를 앞서간 '행동하는 양심'

청년시절 'DJ'에 대한 오해들… 이제서야 망자앞에 용서 구해
   
▲ 전용배 (동명대학교 체육학과 교수)
[경인일보=]지난 화요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면(永眠)했다. 사람들은 '영욕(榮辱)의 삶을 살다 갔다'고 하지만, 역사는 그를 제대로 기억할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 가운데 가장 오해받았던 사람이 DJ였다. 아직도 그를 떠올리면 죄송한 마음부터 앞선다.

필자의 고향은 대구다.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고향을 벗어나본 적이 없다. 당시 나의 고향에서, DJ는 일부 지식인을 제외하고는 '빨갱이, 거짓말쟁이, 전라도'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생을 마친 지금도 이 프레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대학시절 그의 저서인 '김대중 옥중서신', '행동하는 양심으로', '대중경제론'을 읽었지만, 너무 '똑똑해서' 싫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당시엔 정말 그랬다. 독서량이 풍부하지 못했던 20대 초반의 평범한 학생이 어떻게 본질을 볼 수 있었겠는가. 언론마저 통제되던 시절이었으니, 세상을 보는 창(窓)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진면목은 미국강의실에서 제대로 체험했다. 체육이 전공이었지만, 한국에서 전공한 행정학을 부전공 삼아 법대, MBA, 행정학 대학원생들의 토론을 경청하다 보니, 정치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보편적 가치'에 누가 가까운가가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당시 서구에서 바라보는 제 3세계 위대한 지도자는 아웅산 수지, 넬슨 만델라, 김대중으로 압축되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박정희, 김일성은 잘 알려지지도 않았거니와, 일부 알고 있는 교수님들도 "독재자를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나, 독재자들은 공통점이 너무 많아 서로…" 정도에서 마무리했다. 당시에 받은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박정희와 김일성을 동일선상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물론 조금은 유연한 입장이기에, 서구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미얀마의 군부가 아무리 총칼로 '국민적 지지'를 받아도 아웅산 수지를 극복하기는 힘들다.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관점을 적용하면, 김대중은 세계적인 지도자이다. 오천년의 우리역사에서 한국인 중에서 전 세계에 가장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유명한 사람 하나만 꼽으라면 이론(異論)의 여지없이 DJ이다.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YS와의 경쟁구도는 국내에서만 적용될 뿐이다. '글로벌 인지도'만 적용하면, 한국정치인은 DJ와 나머지로 분류될 수도 있다.

DJ의 개인적인 영향력 때문이기는 하지만,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당당한 일원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국민의 정부'부터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다. 정책적으로도 1971년 DJ가 내놓은 4대국 보장론이나 통일정책은 당시로는 파격적이었지만, 지금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물론 DJ도 인간이기에 역사적 및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권위적이고 권모술수에 능하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또한 1987년 YS와 대통령후보를 놓고 타협하지 못한 사건은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다.

망자(亡者)에 대해서는 허물은 덮고, 공(功)만 생각하는 것이 우리네 정서이지만, DJ와 같은 역사적인 인물은 공(功)과(過) 모두 우리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DJ가 아무리 허물이 있다한들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역사적 가치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DJ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라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국가지도자가 철학이 확고하지 않으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목도(目睹)하고 있지 않는가. DJ가 남긴 수많은 어록 중에서,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사이에 있어야 한다"가 정말 가슴에 와 닿았음을 고백하면서, 청년시절 오해에 대해 이제야 용서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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