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애국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코미디

'법의 통치' 아닌 '법에 의한 통치'라도… 최소한의 이성·논리는 존재해야 마땅
   
▲ 전용배 (동명대 체육학과 스포츠경영트랙 교수)
[경인일보=]기성세대에 편입되면서 개인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른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일을 함에 있어 남의 입장을 한번 정도는 더 생각해보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조절하기 힘들었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는 왜 그리 크던지. 그러나 이젠 내가 그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부터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 '성숙'해지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타협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누군가는 외쳐야 할 상황에서도 그 누군가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길 바랄 때도 있으니 숫제 비겁하다 못해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비약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바로 아이돌그룹 2PM의 재범과 국회인사청문회에 대한 이중적 잣대이다.

그룹 2PM의 리더였던 재범은 4년 전 힘든 연습생 시절 개인 홈페이지에 "나는 한국인이 싫다"는 내용의 글을 남긴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그룹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 사건은 집단이지메나 마녀사냥을 넘어선 '애국주의의 비극'이다. 사실 이번 사태는 그냥 하나의 해프닝일 뿐이다. 청년시절 자기가 사는 나라에 대해 푸념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는지. 그 아이돌스타가 실정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애국주의는 강요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필자는 아직도 기억한다. 2002년 월드컵 준결승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를. 수천 명의 독일응원단이 독일 국기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팀의 깃발을 흔들면서 애국주의를 경계하는 모습을. '위대한 독일'을 외칠수록 독일은 위대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이번 해프닝은 한국사회의 폐쇄성만 만천하에 드러냈을 뿐이다.

굳이 볼테르의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건 상식의 문제이다.

반면에 국회의원 출신 일부 장관 후보자들이 증여세 탈루, 다운계약서, 이중소득공제, 위장전입 등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시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이나 여론주도층들은 '의외로' 조용하다. 실정법을 위반해도 무덤덤하다.

우리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관용적이 되었는지.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는 힘없는 서민에게만 적용되는 것인지. '정의사회 구현'을 그렇게 외치던 분이 정의사회 파괴하듯이, 입만 열면 그렇게 '법치주의'를 강조하던 그 많은 분들은 '그때그때 달라요'만 외치고 있다. 그들에게 법치는 '법이 다스린다'가 아니라 '법으로 다스린다'로 이해될 뿐이다. 물론 지난(至難)한 우리역사와 개인의 삶을 생각하면, 혼자만 올곧게 사는 것이 가당치 않다는 것은 모르는바 아니다. 강자에 굴종하지 않고 '옳은 것을 옳다'고 이야기하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니까. "우리 아이들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도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반드시 남기고 싶습니다"고 '신념'처럼 외치던 전직 대통령은 자살로 그것이 '불가능'함을 증명해 보였다.

애국주의도 좋고, '법의 통치(rule of law)'가 아니라 '법에 의한 통치(rule by law)'도 좋지만, 최소한의 이성과 논리는 있어야 한다.

젊은 청년이 청소년기 때 한마디 푸념한 걸 용인하지 못하는 사회가 과연 애국주의를 논할 수 있겠는가. 실정법을 유린해도 강자라는 이유로 용인되어야 하는 사회가 이성적인 사회인가. 전혀 상관없는 아이돌 스타의 해프닝과 국회인사청문회가 필자에게만 한 묶음으로 연결되어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것인지. 마지막으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된 국가관을 심는 데는 네크라소프의 시구만큼 '유용'한 것이 없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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