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자전거 여행이냐, 급식이냐

'어떤정책이 더 가치있는 것인지' 정부는 구체적으로 설명해줘야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경인일보=]예전에 살았던 아파트 단지에선 한때 이런 일이 있었다. 부녀회를 통해 아파트 정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분수대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것이 주민협의회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된 것이었다. 장기수선충당 이익잉여금인지 무엇인지 자세히 알 순 없으나 건설자금은 충분히 마련된 상태이니, 보기에도 좋고 여름에도 시원한 오색 분수대 하나쯤 단지 안에 만들자는 것이 몇몇 주민들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그 안건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주민들 사이에서 갈등을 야기했는데, 반대하는 쪽의 의견은 간단했다. 그렇지 않아도 주차공간이 부족해 겹주차에 단지 외곽 주차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분수대가 말이 되는 소리냐, 그럴 공간이 있다면 차 한 대라도 더 세워놓자 였다. 반대 의견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아서, 분수대는 단순히 보기 좋으라고 만드는 게 아니라,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 정서에도 좋다, 분수대 공간이라는 게 기껏 해야 차 세 대 정도 주차할 크기인데, 별 다른 영향도 없다 등등이었다.

양 진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엘리베이터 옆 게시판에 각각의 의견을 적은 A4지를 붙여놓았고, 서명을 받겠다는 둥, 다수결로 하자는 둥, 한 치의 양보 없이 서로 마주보고 달렸다. 물론 나 같은 전세 세입자에겐 의견을 개진할 기회도,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 일은 여러모로 우리 사회의 어떤 사안들과도 닮은 점이 있어, 엘리베이터 앞에 설 때마다 적잖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문제는 역시 일의 선후가 될 터인데, 어떤 쪽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 어느 의견이 더 긴급한 것인가에 따라서 각자의 입장이 바뀌는 모양이었다.

영업용 차량을 모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주차문제는 당장의 생존권에 해당되는 위치까지 오를 수 있는 일이었고, 분수대를 설치하자는 사람들은 먹고사는 일 못지않게 삶의 질 문제 또한 중요하다고 보는 쪽이었다. 결론이 나기 전에 이사를 해, 분수대가 세워졌는지 그 반대가 되었는지 알 순 없으나, 내심 나는 분수대가 세워지지 않기를 바랐다. 처음엔 그것이 삶의 질 문제보다 생존권을 우선시하는 내 나름대로의 태도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건 그냥 세입자의 시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차피 떠날 공간이니까, 그 기간 동안 만이라도 잠잠하기를 바라는, 여행자와도 흡사한 태도.



지금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4대강 사업 중에는 '자전거도로' 건설 항목도 포함되어 있다. 총 1천728㎞ 길이로 건설될 예정인 자전거도로엔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한데, 이 '자전거도로'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대부분 그 목적을 '레저용'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데 있다. 강줄기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과연 몇 곳이나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강'과 '자전거'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아무래도 '생활'보다는 '여가' 쪽에 더 기울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에서도 그 목적 중 하나가 '관광용'임을 숨기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도로가 완공된다면 아마도 일반인들의 시선 그대로 '레저용'으로 더 많이 이용될 것이 뻔해 보인다.

그러면 우리는 이 지점에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과연 다른 사안들보다 더 긴급한, 또한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해야 할 만한 일인가? 그만한 가치를 갖고 있는 일인가? 그러니까 예를 들어 초등학생들의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일보다 붉은색 자전거도로를 전국 강가 옆에 까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인가, 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어떤 가치인가? 우리는 이 질문을 정부와 정책입안자들에게 계속 던져야 한다. 그리고 정부 또한 그것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답변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한데 그런 질문들에 대해서 막연하게 '포퓰리즘 발상'이라고 답변해 버린다면, 우리는 또 다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5년 단위로 바뀌는 정권은 급식보다야, 한 번 짓고 나면 수십 년 동안 그 자리 그대로 남아 있는 도로 건설을 선호하는 게 당연하다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이 정부의 역점 사업들이 대부분 2012년을 완성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 또한 그런 생각을 더욱더 확고하게 만든다. '포퓰리즘' 정권이란 바로 그럴 때 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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