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토마스가 묻는다

'보복·전작권 연기' 모순된 주장전에 군수뇌부는 천안함사태 석고대죄를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경인일보=]그러니까 이런 상상을 한 번 해보자. 만약 미국 애리조나에 토마스나 보그먼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한 명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날 한가롭게 거실에서 인터넷으로 뉴욕타임즈를 읽고 있던 토마스는 별 해괴망측한 기사 하나가 올라온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국제 면에 나온 그 기사에는 아시아에 있는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2012년에 환수하기로 한 전시작전통제권을 몇 년 더 미국이 행사해줄 것을 강력히 희망한다고 적혀 있다. 토마스는 잠시 생각해본다. 왜 남의 나라 전시작전통제권을 우리 미국이 갖고 있지? 가난한 나란가? 아니, 분명 한국이라고 했는데.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 컴퓨터와, 옆 집 더글라스가 몰고 다니는 자동차를 만든 나라가 맞는데, 거 참 이상하네? 이 나라 사람들이 제정신인가, 왜 자신들의 주권을 남에게 받아달라고 이렇게 생떼를 쓰지? 날이 더워서 그런가? 추신수는 그래서 메이저리그로 넘어왔나?

정말이지, 창피해서 살 수가 없다. 굳이 토마스를 상상하지 않더라도,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국민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고, 고개를 절로 수그러들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들뿐이다. 우리 군의 주요 지휘관이라는 사람들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천안함 사태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사안에 어떤 모순점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부끄럼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만약 다수의 언론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천안함 사태가 북한측의 소행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해군참모총장의 발언처럼 보복 작전을 펼치는 것에 온 국민이 합의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과연 우리가, 우리 스스로 보복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가? 안 된다는 거,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에 있는 마당에, 미국이 그렇게 손쉽게 오케이, 보복 작전의 승인을 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가? 그걸 믿는다면 당신은 지금이라도 원고지를 펼치고 동시 스무 편을 줄줄 쓸 수 있을 만큼 순진하고 순박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미국이 천안함 사태 하나만 두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승인해줄 거라곤 믿진 않을 것이다. 설사, 미국의 반대를 물리치고 우리 군대가 단독 작전을 감행했다고 치자. 그럼, 그 뒤의 일은 어떻게 되는가? 미국은 당연 한미군사협정 위반이라며 발을 뺄 게 분명하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은 우리 쪽으로 넘어오게 될 것이다. 우리 군의 주요 지휘관들은 지금 그것을 원하고 있는 것인가? 한데, 그러면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 주장은 또 뭐란 말인가? 그 사람들은 모두 반어와 모순을 즐기는 전위예술가들이란 말인가?

군 수뇌부들은 이번 천안함 사태에 대해서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할 사람들이다. 사태의 원인이 무엇이든, 46명의 고귀한 젊은이들이 스러져갔다. 그들은 용사(勇士)가 아닌, 희생자들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 또한 언제든 그런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교훈이다. 군 수뇌부들은 그런 희생자들의 제단 앞에,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이고도 어떻게 그리 허술하게 사고를 당해야만 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정부측에도 따져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좌파정부라고 부르는 지난 정권에서는 해마다 9%에 가까운 국방예산이 증액되었다. 이 정권 들어서는 과연 국방예산이 얼마씩 증액되었는지, 따져 묻고 싶다. 과연,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주권인지, 4대강 정비인지, 그것에 대한 대답도 듣고 싶다. 왜 우리의 함선 침몰 경위를 국민보다 앞서, 미국이 먼저 알아야 하는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듣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애리조나에 사는 토마스도 묻는다. 신문 기사를 보고, 한국의 역사를 구글로 훑어본 토마스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건 과연 돈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오랜 식민 근성 때문인가?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거 참 이상한 나라인 건 마찬가지다. 토마스의 질문에 나는 그저 고개를 푹 수그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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