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혁의 역사산책

개성역사문화지구의 세계유산 등재

736409_315039_4131예성강과 서해가 만나는 지점에 항구가 있었다. 밤도 낮처럼 환하게 밝혀 사람들의 움직임이 가득한 항구의 이름은 벽란도(碧瀾渡)였다. 중국의 상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멀리 아라비아의 상인들과 유럽의 상인들도 벽란도에 교역을 하러 왔다. 이들은 벽란도에서 물품 교환을 하고 배를 타고 고려의 수도인 개성으로 향했다. 개성의 인구는 무려 20만명. 유럽 최고의 도시인 베네치아의 인구가 겨우 10만명에 이르던 시절에 무려 20만명이라니 이는 정말 대단한 도시가 아닐 수 없다.

송악산을 주산으로 건축된 고려왕궁은 높은 산등성이에 거대한 건축물들이 계단식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 그 어떤 건축물보다 위용이 있었다. 그리고 왕성 아래 만들어진 도시는 기와로 지어진 한옥들이 처마와 처마를 이으면서 끝없이 펼쳐졌다. 영통사(靈通寺)를 비롯한 국찰들은 도시의 한복판에서 빼곡히 들어서있는 가옥들과 조화를 이루며 백성들의 정신적 삶에 도움을 주었다. 송악산에서 이어진 성곽은 사대문과 연결하여 장엄한 도성을 이루어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천연 요새를 이루었다.

이처럼 황제를 칭하였던 자주 국가 고려의 수도 개성은 전 세계 최고의 도시였다. 훗날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개성은 국가의 중요한 도시였다. 서경이라 불리는 평양, 동경이라 불리는 경주, 남경이라 불리는 한양과 함께 개성은 개경, 혹은 중경이라고 불렸다. 개성의 숭양서원은 포은 정몽주를 모시는 서원으로 유림의 상징적인 서원이었다. 포은 정몽주가 피살된 선죽교는 전국의 모든 선비들이 찾는 명소였다. 비록 조선을 실질적으로 세운 태종 이방원에 의해 살해된 인물이기는 하지만 조선의 선비들은 오히려 정몽주의 충절을 더 높이 평가하였다.



개성은 조선 정부의 특별한 대우로 유수부로서 황해도 관찰사의 지휘를 받지 않는 독자적인 지방의 형태를 유지했다. 고려시대 이어져 온 도시의 번성은 지속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기간에도 휴전협정의 공간이었기에 그 무수한 폭격을 피해나갈 수 있었다. 그 결과, 개성지역 전체가 대한민국의 경주처럼 개성역사지구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북한은 개성지역을 세계유산에 등재할 생각을 가지고 준비하였다. 당시 경기도가 등재 추진에 도움을 주기 위해 공동작업의 제안도 했었다. 하지만 북한 내부의 사정으로 독자적인 추진을 추구하였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개성역사지구는 고려 왕조의 지배 근거지를 대표하는 유산들로 구성돼 있다", "유산은 고려가 사상적으로 불교에서 유교로 넘어가는 시기의 정치적·문화적·사상적·정신적인 가치가 도시의 풍수적 입지, 궁궐과 고분군, 성벽과 대문으로 구성된 도심 방어 시스템, 그리고 교육기관을 통해 볼 수 있다"라며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다. 세계문화유산위원회는 다음달 16∼27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제37차 회의를 열어 등재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아마도 이변이 없는 한 문제없이 개성역사지구는 세계유산이 될 것이다. 이를 기회로 다시 개성지역 관광이 재개되고 남북간의 평화가 정착되었으면 한다. 하늘이 남북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 선물을 내려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기회를 남북 모두가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김준혁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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