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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에 급조되는 소방행정

   
▲ 강영훈 사회부
지난해 8월 서울 영등포에서 소화기로 불을 끄던 한 남성이 폭발사고로 숨졌다. 그가 사용하던 소화기는 낡은 가압식 소화기였는데, 부식이 심해 내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다.

언론이 '소화기가 낡아 폭발사고가 발생, 남성이 숨졌다'는 내용을 보도하자 소방방재청에서는 '가압식 노후소화기 안전관리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전국의 가압식 노후 소화기를 수거 및 교체한다는 내용이었다.

가압식 소화기는 지난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무려 100만개 이상 생산됐다. 일선 소방서에서는 100만개의 소화기를 전부 뒤져봐야 했다. 어떤 소화기가 노후소화기인지 '능력껏' 찾아내야 했는데, 만약 찾아내도 소화기를 수거할 강제권은 없었다. 수거예산도 마련되지 않았다. 각 소방서 '능력껏' 장비업체들과 협의, 무료로 폐기해야 했다.



같은 달, 의왕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40명이 다치고 50대의 차량이 불에 탔다. 이번에도 언론의 보도가 이어졌다.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는데, 전국의 건물 가운데 다섯 곳 중 한 곳은 소방설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전국의 소방대상물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이는 '소방특별조사 등 안전대책 추진계획'이 나왔다. 이 때문에 지금껏 전체 건물의 4~5%를 샘플 조사해오던 일선 소방서의 업무량은 20배로 커졌다.

일선 소방서에서는 안전센터 직원들까지 모두 동원했지만 목표치를 이루지 못했다. 언론의 보도에 부랴부랴 '급조'되는 소방방재청의 계획을 일선 소방서에서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소방당국이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점은 박수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언론 보도만을 금과옥조로 삼아 무리한 행정을 추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100만개가 넘는 소화기를 일일이 수거 및 폐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전국 90여만 곳의 건물을 전수조사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소방당국이 인력과 예산, 현장 대원들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한 계획을 세웠으면 한다. 조금 늦는다고 해도, 아무도 돌을 던지지 않을 테다.

/강영훈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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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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