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칼럼

[방민호 칼럼]봄에 통영으로

그리운 박경리 선생님의 고향
홀로 원주서 25년 '토지'와 싸우던
그분 생각하며 서피랑에 오른다
깊이 세속 물든 속물 같은 사람이
그래도 세상 끝에 와 서니 좋다
맑은 바다에 몸 깨끗이 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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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3월 이른 봄에 통영에 간다. 박경리 고향 통영이다.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전혁림의 고장 통영이요, 문학연구가 김재용의 고향 통영이다.

아침 8시 25분 용산발 케이티엑스 열차다. 옛날에는 용산에서는 호남만 갔는데, 이제는 용산에서 마산도 가고 부산도 간다. 서울역에서 목포도 간다. 참 좋은 변화다.



옛날에 시인 백석이 통영 처녀 박경련을 사모해서 그곳에 갔다 했다. 그때 마산까지 가서 거기서는 배를 타고 갔다 했다. 친구 허준의 결혼식에서 만난 그녀를 그는 마음에 두었고, 그래 세 번이나 그녀를 만나러 그곳에 갔다 했다. 친구 신현중이라는 사람이 주선을 놓았다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그가 그녀와 맺어지고 말았다. 세상에는 이런 아이러니가 많다.

마산역에서 내려서는 버스를 타고 통영으로 향한다. 한 시간 걸렸을까, 도착한 우리가 처음 찾아든 곳은 물론 식당,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점심 메뉴로 생선구이가 나왔다. 고등어는 알겠고, 나머지는 분명치 않아 묻는데, 어느 한 분께서 이건 돔이고 이건 서대고 이건 뭐라고 가르쳐 주신다. 아무래도 바닷가에서 자란 분만 같다. 이에 덧붙이는 말씀, 서대와 박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 궁금해들 하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서대는 검고 박대는 불그스름하단다. 또 말려서 찌면 서대는 박대보다 살이 깊단다. 마지막으로 서대는 남해안에서 나고 박대는 서해안에서 난다기도.

햐. 잘도 아신다. 그러자 시인 백석 생각이 바로 난다. 백석 수필 가운데 '동해'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백석은 운치 있고 맛깔스럽게 동해안 풍경을 읊어가다 말고 뜬금없이 툭 이런 말을 던진다. "……그대나 나밖에 모를 것이지만 공미리는 아랫주둥이가 길고 꽁치는 윗주둥이가 길지."

하, 공미리라. 공미리가 뭐냐. 옛날에 이 수필을 읽고 백과사전을 찾아본즉, 공미리란 학꽁치의 다른 말이라 했다. 그러자 저절로 무릎이 쳐졌다. 학꽁치와 꽁치, 생긴 것은 비슷한데 한 놈은 아랫주둥이가 더 길고 또 한 놈은 윗주둥이가 더 길다는 것이다. 문인이 이렇게 섬세하게 바다 것을 잘 아는 수도 있을까.

서대와 박대를 이렇게 간명하게 구별하는 걸 보면 세상에는 자연을 속세보다 더 잘 아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부러운 일이다.

이제 우리는 세병관으로 향한다. 통영은 옛날에 통제영이 있던 곳, 여기에 서울의 경회루, 여수의 진남관과 더불어 한국에 남은 웅장한 목조 건축물의 하나, 세병관이 우뚝 서 있다.

여기서 걸어서 조금만 가면 서문고개, 통영성의 여러 문의 하나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그곳에서 문호 박경리 선생이 세상에 났다. 우리는 박경리 선생의 생가를 찾아 큰 길에서 좁은 골목으로 꺾어든다. 리어카도 다니지 못할 작은 골목 안쪽 어디에 박경리 선생 생가라는 붉은 벽돌 두 장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박경리 하면 나는 눈물이 날 만큼 그리운 분이다. 세상 뜨시던 해 봄에 근황을 여쭈러 갔더니 말씀이 이리 흩어지고 저리 흩어졌다. 전에 없이 그러시기에 이상도 해서 어디 몸이 아프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나중에 알고 보니 '늘어놓으신' 것이었다. 연말에 회를 잘못 먹은 게 탈이 나서 이렇게 오래간다는 것이셨다. 하지만 그때 이미 선생께서는 당신의 깊은 병을 알고 계셨다.

홀로 원주 들어가 25년을 '토지'와 싸우던 그분 생각을 하며 거기서 멀지 않은 서피랑에 오른다. 바람이 따뜻한 날 답지 않게 자못 차다. 통영 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얀 건물들과 흰 물감 섞은 하늘색 물감 풀어놓은 것 같은 바다.

세상 끝에 와 있는 것 같다. 너무 깊이 세속에 물든 속물 같은 사람이, 그래도 세상 끝에 와 서니 좋다. 저 맑은 바다에 몸을 깨끗이 씻어내고 싶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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