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월요논단]공동체를 생각하는 자본권력

영화 '내부자들'에서 정치·언론과
기득권 세력형성 그중 최상층위치
삼성 뇌물·가습기사건 사례가 증명
영화는 파국을 맞지만 현실은 건재
관대·비판 둔감탓 오만자본 제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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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
영화 '내부자들'에서 자본권력과 정치권력, 언론권력은 서로 주고받으며 기득권을 확대·강화한다. 눈여겨볼 점은 대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본권력이 최상층에 있다. 미래자동차 회장은 유력한 여당 대통령 후보와 언론사 편집국장을 요리한다. 이게 영화적 상상력만일까. 한국사회에서 자본권력은 과도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재판도 다르지 않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도와달라며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받고, 18일 최종심을 앞두고 있다. 어제 대한상의 박용만 회장은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이 부회장에 대한 선처를 부탁하는 내용이다.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말에 공감할 국민은 몇이나 될까. 하지만 경제계와 정부, 언론,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동조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적법하고 엄정한 처벌을 주장했다. 그는 "뇌물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징역 20년을 받은 만큼 뇌물을 준 이재용 또한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권력자와 필부 구분 없이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법치가 바로 선다"고 덧붙였다. 상식에 부합하는 말인데 이런 목소리는 오히려 유별나게 들린다.

지난 12일 무죄 판결 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어떤가. 법원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 전·직 임원 모두를 무죄 판결했다. '공소 사실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법원은 이들이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 물질과 폐질환 사이에 인과관계를 특정할 수 없다고 했다. 앞서 옥시크린 대표는 6년형을 받았다. 재판부는 옥시크린이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와 달리 SK케미칼, 애경산업이 판매한 성분은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가습기 살균제로 숨진 사람은 1천559명에 달한다.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다. 이 사건은 2011년 4월 임산부 4명이 폐질환으로 숨지면서 촉발됐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나섰다. 그런데 이날 판결로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게 됐다. 재판부는 "추가 연구 결과가 나오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내 몸이 증거다", "사법부와 기업, 정부를 용서할 수 없다"며 절망했다. '가습기 메이트'는 SK케미칼이 제조하고 애경산업이 판매한 제품이다. 옥시 제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냈다. 지난해 10월 기준 '가습기 메이트' 피해 신고자는 833명, 이 가운데 12명이 숨졌다. 그런데 무죄라니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사회적참사 특조위는 지난해 말 종료됐다.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는 '쇼핑은 정치보다 중요하다'에서 정치적인 소비운동을 제안했다. 그는 "기업, 정부, 정치권, 언론이 악행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소비자 행동은 마지막 자구책"이라며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역지사지 수준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부도덕한 기업 제품을 보이콧 함으로써 나쁜 짓을 못하도록 제어하자는 것이다. 이런 소비 행위를 통해 자본권력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자본권력이 갖는 힘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는 지난해 한 방송에 출연해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그는 최종 편집된 방송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금기(禁忌)가 무엇인지 알았다고 했다. 대통령 비판, 미국 비판, 재벌 비판이다. 금기로 남은 세 가지 영역은 한국사회가 지닌 한계를 보여준다. 자본에 종속된 탓에 재벌을 비판하는 언론은 드물다. 오히려 광고주 입장을 헤아려 언론이 먼저 눕는다.

법원이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게 굴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판결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자본권력에 유난히 관대하고, 감시와 비판에는 둔감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세 사람은 파국을 맞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치, 자본, 언론권력은 여전히 의기양양하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공동체를 지향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오만한 자본을 제어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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