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 난득호도(難得糊塗)의 교훈

입력 2022-10-04 19:36
지면 아이콘 지면 2022-10-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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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청나라 때 문신 판교 정섭(1693~1765)은 서예가로 이름이 더 높다. 우리들에게는 낯설지 몰라도 서예사에서 우뚝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난득호도'란 글귀는 정판교의 글씨 중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는 작품의 하나다. '난득호도'는 말 그대로 '어리석어지기 어렵다'는 뜻인데, 생각할수록 뜻이 깊다.

'난득호도'와 관련해서 유명한 일화가 전해져 온다. 판교가 산둥 지방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 우연히 허름한 모옥(茅屋)에서 하루를 묵어가게 됐다. 자신을 그저 어리석은 늙은이(糊塗老人) 유생(儒生)이라고만 소개한 주인집 노인이 글씨 한 점을 부탁해오자 판교는 즉석에서 '난득호도'라 써주고 자신이 3단계의 과거시험을 모두 급제했음을 알리는 이력을 쓰고 난 다음 노인에게도 빈자리에 발문 하나를 써달라고 했다. 그러자 노인은 원시 일등·향시 이등·전시 삼등이라 썼다. 알고 보니 노인은 조정에서 고위직을 지내다 은퇴한 문신이었던 것이다. 이에 자신의 교만을 크게 뉘우친 그는 평생 '난득호도'를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판교가 이 '난득호도'에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리숙하기도 어렵다. 총명한 사람이 어리숙해지기는 더 어렵다. 한 생각 버리고, 한 걸음 물러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리니 도모하지 않아도 나중에 복된 응보가 올 것이다'라는 문장을 덧붙여 쓰고 평생 자신의 책상 앞에 붙여놓았다고 한다. 내처 판교는 흘휴시복(吃虧是福), 즉 '손해를 보는 것이 곧 복'이라는 작품도 쓰고 설명도 달았다.  


대통령 실언 정치공방 국민들 답답하기만
영빈관 번복·이준석과 다툼 등 지지율 바닥


세월이 흘러 호도(糊塗)란 말은 이제 '어리숙하게 살자'는 겸양의 뜻은 사라지고, 본질을 감추고 흐리고 덮어버린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난득호도'의 호도란 말이 호도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실언과 욕설 파문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정치적 공방 차원을 넘어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안이 발의, 통과되고 청와대의 해명도 나왔다. '××'란 욕설의 대상이 미국이 아닌 한국 국회이며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는 상세한 설명이 보태지고 이를 보도한 MBC를 고발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무겁고 답답하고 그저 한숨만 나온다.



집권 초기에 대통령 지지율이 24%라는 것은 정말 매우 심각한 것이다. 지지율이 이렇게 심각하게 나오는 것은 반복되는 실언뿐 아니라 느닷없이 청와대를 옮기고 영빈관 신축과 취소를 반복하는가 하면, 욕설 파문에 이준석 전 대표와 법적 다툼을 벌이는 것을 본 국민의 마음이 싸늘하게 돌아섰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무엇인지 새 정부의 국정 목표와 방향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것도 큰 문제다. 아무런 철학도 비전도 찾을 수 없는 '그냥 정부'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 지 오래고, 이 실망은 이제 우려와 걱정으로 나아가고 있다. 집권 초기 이렇게 낮은 지지율로 앞으로 5년간 어떻게 대한민국을 이끌고 나가겠다는 것인지 걱정된다. 이 우려와 걱정이 다음 단계로 더 악화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국정 철학·비전 등 찾을 수 없는 '그냥 정부'
사회 각계각층 의견 널리 듣는 소통 노력해야


인생과 국정운영에는 예행연습이란 없다. 최근의 낮은 지지율은 명확한 국정철학과 비전이 없고 방향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했든 하지 않았든 대통령과 새 정부의 실패는 고스란히 국민과 국가에게 돌아갈 수 있으니 대통령과 정부의 국정운영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조금 더 인내를 갖고 기다려줘야 한다. 집권에 성공했다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일을 열심히 해달라는 뜻이다. 보다 낮은 자세로 또 '난득호도'의 마음으로 국민에게 더 다가서고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 원로와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널리 듣고 청취하려는 노력을 하면 좋겠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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