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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보생산·정책결정 분리, 국정원 역할 재정립 고민

입력 2023-06-28 19:32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6-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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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국방부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위원
국정원은 우리나라 정보 생산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군, 경찰 등의 정보 활동에 필요한 예산을 관리·통제하고 있다. 대통령은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정보기관이 생산한 정보의 최종 소비자(consumer)이면서 동시에 정보 생산을 위한 전략적 지침을 제공하는 최초 정보 요구자(demander)이다. 대통령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정보 생산과 소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이고 동시에 대내외적 대통령 리더십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보 활용의 실패로 대통령의 리더십이 타격을 받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국 부시 대통령 시절로 2001년 9월11일 미국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 테러 사건을 예방하는데 실패하고 뒤 이은 중동전쟁 과정에서도 발생한 정보 실패 등이 있다.

대통령 정보 활용 실패는 리더십 타격
인사권 행사 정치적 중립과 별개 문제


최근 불거진 국정원 인사 문제에 대해 대통령실이 직접 조사에 착수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인사는 조직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자양분이다. 이번에 불거진 국정원 인사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정치 인사들은 과거 국정원의 정보 활동이 민주화를 지연시켰다고 판단해 국정원은 개혁의 대상이었다. 이 같은 정치적 편향에 동조하는 국정원 소속 인사들이 본연의 의무를 경시하고 정치적 활동에 동참했던 것은 국정원이 국익 증진을 위한 책무를 수행하는데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었다. 일부 국정원 인사들이 정치적인 득실에 따라 정보를 부적절한 외부 인사와 공유한 것은 사실상 존 애드거 후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미 정부와 의회 등 권력 기관 인사들의 약점을 잡아서 1924년부터 1972년까지 국장자리에서 권세를 누린 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는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이다.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여 정보기관을 변모 혹은 혁신시키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치적 득실에 따라 국정원의 위상과 역할을 규정하는 것은 21세기 정보전쟁시대에 있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특히 반세기 이상 현존하는 위협 세력과 휴전체제로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서는 더더욱 그 위험성이 높다.

 

21세기 정보 전쟁에서 승리하고 정보기관의 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정치적 중립성이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정보기관에 대해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성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리고 정보기관의 국내 정보 활동과 국내 정치 개입 역시 전혀 다른 사안이다. 인사권자의 판단에 따라 능력을 중심으로 적재적소에 인사 조치를 하는 것은 정치 개입이 아니라 정상적인 조직 운영이다. 국내 정보 활동을 통해서 국내 정치에 개입한다는 정치적 편견은 결국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국내 정보 활동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정보기관의 권한을 악용하여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의사결정 시스템에서 정치적 판단이 정보 소비와 활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정보가 왜곡되고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끔 정보가 생산되는 것은 독재 체제에서 빈번한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이다.

정책과 정치 떼어내는 건 사실상 불가
부처간 정책조정 기능 관여 득보다 실


정보의 수집, 종합, 분석, 생산, 제공은 '정보기관의 영역'이고 정보의 소비와 활용은 '정책결정의 영역'이다. 정보와 정책은 분명히 구분될 수 있지만, 정책은 정치적 의사결정에 따른 산물이기 때문에 정책과 정치를 분리시키는 것은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정원이 정부 부처 간 정책 조정 기능에 관여하는 것은 과거와 달리 득보다는 실이 크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국가 차원의 정책 현안들이 내포하고 있는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 다양한 양질의 정보가 필요하지만 정보는 민주적 정책결정 과정에서 고려할 하나의 변수에 불과하다. 정보의 양이 많다고 해서 좋은 정책적 결정이 내려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보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끊임없는 새로운 정보에 대한 갈증을 유발시키고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면 정보 실패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늘날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국정 현안을 글로벌 차원에서 시의적절하게 다뤄야 하는 상황에서 국정원 본연의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해서 '정보생산'과 '정책결정'의 분리를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박진호 국방부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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