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인천시민의 날(10월15일) 기념 특별기고] 인천사람들의 힘

입력 2023-10-12 19:03
지면 아이콘 지면 2023-10-13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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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복 前 인천시 정무부시장
어김없이 돌아온 인천시민의 날(10월15일), 나라 안팎이 어려운 시기인데 인천은 여느 때보다 뭔가 도시가 꿈틀댄다는 느낌이다. 통계청 발표를 보면 작년 한 해에도 인천 인구는 2만8천명이나 순유입됐다. 서울이나 부산의 유출과 대비된다. 부산보다 인구는 30여만명 적지만 학생 수는 5천명이 많아 도시가 젊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내년이면 300만명을 넘어설 지속적인 인구 유입은 그 사유가 주택·가족·직업 등 다양하지만, 도시를 움직이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새로운 도전의 징후들도 늘었다. 서울과 경쟁해 재외동포청 유치에 성공한 후 쉬지 않고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유치에 도전한다든지, 분할과 통합이 동시적인 제물포구·영종구·검단구를 설치하는 행정체제 개편도 순조롭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선례를 따져보던 습관을 벗어나 전국에서 처음으로 정당 펼침막 규제를 밀어붙이는가 하면 영종·인천대교 통행료를 인하해 인천시장의 지지 확대 지수도 오르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있었던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도 해군 함정 시연이나 시가행진은 행사의 소재였을 뿐 주제는 '평화도시 인천'이었다. 월미도 원주민 희생자 추모식에 군 관계자들도 처음 참석해 행사의 목적이 전쟁 기념이 아닌 평화의 기억이라는 새 가능성도 보여줬다. 이참에 내년부터는 행사 제목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인천상륙작전'으로 바꿔봄 직하다.



또 반가운 것은 내항 1·8부두 우선 개방이다. '바다 없는 항구도시'라는 오명을 씻고 인천이 해시(海市)로 귀환해 해양성을 인천의 미래정체성으로 만들어 가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시민들의 호응 여부에 따라서는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 추진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 한 해 인구 2만8천명 순유입
재외동포청·정당 펼침막 규제 등
도시 움직이는 '새로운 도전' 계속
열린 태도·기득권 맞선 의지 '원천'


그러나 정신 차려야 할 것도 있다. 수도권쓰레기매립지 종료 추진은 오리무중이다. 같은 방식으로 다른 결과를 바라는 시도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 문제를 질질 끌면 다른 공든 탑들도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숭의동 축구장에 가면 인천유나이티드 서포터스들의 서포팅이 우렁차다. 그중에는 '인천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응원가도 있다. "서쪽 끝 도시의 사람들, 세상은 거칠다 말하네, 하지만 최고의 석양과 낭만과 꿈들을 가졌다네." 작사 미상의 이 노래 출처는 어디일까.

물리학자 김상욱은 그의 책 '떨림과 울림'에서 이렇게 말한다.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 보이지 않는 빛의 파동, 들리지 않는 소리의 진동이 있듯이 도시에도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바로 정체성이다.

정체성이란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게 해주는 성질이다. 깨닫게 해주는 것은 생각이다. 생각은 주관적이고, 따라서 정체성도 주관적이다. 본질은 어떤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게 해주는 성질, 즉 존재 근거다. 그 존재 근거를 깨닫게 해주는 성질들이 집단적으로 개념화돼 생각의 형태로 저장된 것이 정체성이며 이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진단하거나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인천 너는 누구냐'의 답이 정체성이다. 최근 인천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개념이 개방성·포용성·다양성이다. 틀린 말은 아니나 자세히 보면 같은 말을 나열한 언어의 포장이다. 포용은 개방의 전제이고 다양은 개방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포용성과 다양성은 반드시 공존하지도 않는다. 최근 포용성이나 다양성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화두가 되는 소이(所以)도 거기에 있다. 따라서 개방성 하나로 표현하면 충분하다.

인천에는 있고 서울에는 없는 것이 있다. 변방성이다. 인류 역사의 변혁은 모두 중앙이 아니라 변방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서울은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하고 인천은 변방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혹시 변방이라는 단어 때문에 불편해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변방을 공간적 개념으로만 보는 오해다. 신영복 선생은 '변방의 의미를 단지 주변부 의미로 읽는다는 것은 천박한 관점일 수도 있다'고 일갈했다.

변방을 변두리로만 보면 인천은 수도권의 서쪽 끝, 서울의 변방인 것이 사실이다. 변방성은 주변(공간)을 칭하는 변방과는 다른 말이다. 변방성은 중앙의 질서와 기득권에 맞서는 변방 의식이다. 따라서 인천의 변방성은 역사적이며 도전적 성질이다.

결국 인천의 정체성은 개방성에서 변방성으로 확장돼야 한다. 인천의 개방성과 변방성은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고려·조선·일제강점기·건국·산업화·민주화 그리고 선진화 과정의 역사 속에서 축적된 것이다. 이제는 수도권 변화의 주도권을 인천이 거머쥐고 있다는 역사적 흐름과 시민 의식을 변방성으로 설명해야 할 때가 왔다. 인천이 서울을 따라 하거나 닮아가면 일제강점기 경성과 인천의 관계처럼 인천은 서울의 아류가 되고 인천이 변화의 중심이 되는 역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포용의 함정 '갈등' 해결책 강구
'마계 인천' 오명 방치 할 수 없어
서울 선망 벗고 세계화 향하려면
우리 정체성 '탈주의 변방성' 필요


인천의 또 다른 정체성인 개방성은 태도나 생각이 배타적이지 않고 열려 있는 상태의 성질이고 외부인이 심리적 저항 없이 쉽게 공간 내부로 접근할 수 있는 성질이다. '인천은 간척지'라고 할 만큼 고려시대 강화도 간척을 시작으로 작금의 송도국제도시까지 간척은 외지 인구 유입을 필수 동반했다. 인천의 개방성을 한 줄로 표현한 국문학자 최원식 교수는 '토박이는 먼저 온 손님일 뿐'이라고 말한다. 인천 근대문학의 특징을 분석해 정체성에 접근을 시도하는 이현식 박사 역시 개항·노동·이주민 모두 인천의 개방성과 관련된 것들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개방성에도 함정이 있다. 포용과 다양을 포함한 개방성의 함정은 갈등이다. 따라서 인천은 갈등을 조정할 시민적 집단지성이 한층 더 필요한 도시다. 게다가 인구 구성이 합중시(合衆市)적인 인천은 주인·정주의식이 부족한 콩가루 도시로 인식될 우려를 늘 안고 있다. 따라서 인천이 세계화되려면 개방성에 더해 변방성이 인천사람들의 힘이 돼야 한다. 서울이라는 풍요의 부스러기 한 조각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바둥거리는 인천이 아니라 서울 일극·독주·독식에 맞서 도전하는 인천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천시민들의 갇혀 있는 생각을 깨는 탈정(脫井), 주변 도시 트랩에서 벗어나려는 탈주(脫走)의 변방성이 필요하다. 인천 청소년들이 서울 대치동 학원을 선망하고 어른들은 서울 상급병원으로 몰려가는 인천의 콤플렉스를 청산하지 못하는 한 그야말로 인천은 변두리 변방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근거 없이 떠도는 '마계 인천', KBS의 사건·사고 위주 보도 등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인천은 곧잘 나가는데 정작 시민들은 가난하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도 지역 내 총생산과 1인당 개인소득을 분석해 인천시가 시민들에게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일등과 일류는 다르다. 인천이 국내 고만고만한 도시 중 일등이 되려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일류도시로 나가려는 꿈을 꾸려면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해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인천에서 처음 만들어진 판이 있느냐 없느냐의 장르 경쟁에 과감하게 뛰어들어야 한다.

정명(定名) 610년 인천시민의 날에 축구장 젊은 서포터스들이 외치는 구호를 우리 모두 함께 외쳐보자. "할 수 있어! 인천."

/박영복 前 인천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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