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 임(臨)괘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왕림(枉臨)이다. 왕림은 말 그대로 굽혀서 임한다는 뜻이다. 임한다는 것은 다가가거나 찾아온다는 의미이지만 특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다른 존재에 다가가거나 찾아오는 뜻을 위주로 한다.
주역에서 귀천에 관한 변통을 할 때 양귀음천(陽貴陰賤)이라 한다. 이 괘는 양은 귀하고 음은 천한데 귀한 양이 음에게 다가오고 찾아오는 것으로 뜻을 삼았다. 그래서 괘의 생김새도 양효가 아래에 둘이 있고 그 위로 음효가 넷이 있다. 왕림이란 말도 이런 뜻이다. 온도로 보면 양은 따뜻하고 음은 차가운 것인데 따뜻한 물이 아래에 있고 차가운 물이 위에 있으면 따뜻한 물이 위로 올라간다. 이처럼 따뜻한 물이 위로 올라가면서 차가운 물의 성질을 따뜻하게 변화시키는데 이런 것이 바로 임괘의 상징에 담긴 의미이다. 이런 자세로 세상에 임하면 세상을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 임괘에서 나라의 정치를 하는 고위직이나 정무직에 해당하는 효에 '지극히 임해야 허물이 없다'고 하였다. 지극하다는 '至'는 본래 화살이 땅에 떨어진 모습을 형상한 글자이다. 화살을 쏘면 목표지점에 떨어지니 이것이 '이른다'라는 '至'이다. 화살을 쏘았는데 땅에 다다르지 못하면 임한 것이 아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 하는 것이므로 국민의 실정에 다가가고 국민의 고통을 파악하는 것이 바로 지림(至臨)이다. 이래야 지극한 정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건성으로 정치를 한다면 국민에게 다가가거나 이르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지극정성으로 국민의 실정과 고통을 체감하고 다가갈 때 해법이 보이지 자기 자리에서 바라만 보아 가지고는 절대 체감할 수 없을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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