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좀비의 활보·가짜뉴스의 범람과 우리 사회의 비극성

홍기돈

발행일 2019-03-18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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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인과관계·역사모순 형상화 탁월
반면 국내 이념형 마타도어 횡행
5·18관련 전두환·김진태 등 뻔뻔
나경원 강성발언 개연성 확인안돼

월요논단 홍기돈2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고대 그리스의 최고 비극 작품은 무엇일까. 관점에 따라 다를 터,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전범으로 꼽고 있다. 플롯·장소·시간의 통일이 잘 이루어졌다는 것이 근거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중에서도 특히 플롯에 주목하였다. 인물들의 행동이 상호 인과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있으므로 개연성과 필연성을 획득하였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았으니 발견이 나타났고, 애초 기대했던 바와 상반되는 결과가 펼쳐졌으니 급전 또한 끌어안았다는 점도 고평 되었다. 공포와 애련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발견과 급전인바, '오이디푸스 왕'은 이를 구현하였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이다.

반면 헤겔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최고의 작품으로 내세운다. 역사 전환기에 나타나는 모순을 등장인물들 사이의 갈등으로 집약하여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혈연에 입각하여 안티고네는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주검을 매장하고자 한다. 이는 부족사회의 윤리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폴리네이케스는 매장 금지의 죄를 짓고 죽었다. 따라서 크레온 왕은 매장을 불허하는데, 이때 크레온은 국가법의 상징으로 자리하게 된다. 한편 사적 층위에서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과 약혼한 여성이 안티고네였던 것. 결국 크레온에 맞섰던 안티고네, 사랑 잃은 하이몬, 아들 하이몬을 상실한 에우리디케는 차례대로 죽음에 이른다. 그러니 헤겔은 충돌하는 역사 이행기의 두 이념이 등장인물의 전형으로 얼마나 성취되는가의 관점에서 비극을 이해하였던 셈이다.

문득 그리스 비극을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 국내 정치 상황이 도무지 현실로서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1987년 6월항쟁이라든가 2016년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민주주의의 정착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뎠다고 여겼더랬다. 그런데도 어떻게 역사의 뒤안길로 진작 사라졌어야 할 이념형의 마타도어가 버젓이 횡행하고, 이를 방관 혹은 묵인하는 세력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보건대, 5·18 당시 발포 명령을 내렸느냐는 물음에 "이거 왜 이래!" 목소리 높인 전두환 씨는 한낱 좀비에 불과하다. 5·18 북한군 개입설의 후원자를 자임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국회의원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역시 좀비에 감염된 좀비일 따름이다. '햄릿'의 망령은 그 억울함만 해명되면 다시 출몰하는 일이 없을 터이나, 저들 좀비들은 대체 어찌 처리해야 하나. 우리 정치의 비극이 바로 이 지점에서 부각된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연이은 강성 발언들 역시 지극히 퇴행적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은 개입하지 않았다. 이는 사실의 문제이다. 그런데도 이를 다양한 해석 가운데 하나로 정리해 버리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데 머무른다. "선진국에는 비례대표제가 없다"라고 주장하였는데, 37개의 OECD 가입국 가운데 24개 나라에서 비례대표만으로 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즉 나경원 대표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거짓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 "의원 정수는 300석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의 헌법 정신에 반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면 "의원 정수가 무한히 확대될 수 있다."

대북 정책에 관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극적인 변모에서는 어떤 개연성도 확인할 수 없다. 2016년 6월 비핵화에 대한 유연한 접근을 요구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제 정권이 바뀌든 안 바뀌든 일관된 우리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는 통일정책을 만들어 가야 된다"고 주장했던 나 대표다. 그러한 나 대표가 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딱지를 붙여대는 것일까. 책임지는 정치인이라면 그러한 인식 변화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명이 뒤따라야 하겠다. 해명이 없어서야 그 독기 어린 비난이 실상 전형적인 내로남불에 불과하며, 나 대표는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꾼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겠기 때문이다.

죽은 폴리네이케스가 걸어 다니면 '안티고네'는 성립할 수 없다. '오이디푸스 왕'이 가짜뉴스의 희생양이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고평했을 리 만무하다. 좀비가 활보하고 가짜뉴스가 뻔뻔하게 유포되는 지점에서 우리 사회의 덜 떨어진 비극이 펼쳐지고 있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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