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만 찍은 낯선 장르' 말 많던 시절… '깊어진 미의식 발현' 옹호한 평론가

'한국 미술작품 경매 사상 최고가 낙찰' 김환기와 이경성
김환기 우주(재송)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김환기의 대표작 '우주'(Universe 5-IV-71 #200). /연합뉴스

인천시립박물관 초대관장 '석남'
'내가 그린…' 평전 발간 등 인연


한국인 미술작품 경매 사상 최고 낙찰가를 기록하면서 화제 인물로 떠오른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와 인천시립박물관 초대 관장 석남(石南) 이경성(1919~2009)과의 특별한 관계도 관심거리다.

김환기의 1971년도 작품 '우주'가 지난 23일 홍콩 경매에서 132억원(수수료 제외)에 낙찰됐다는 소식에 주말 내내 국내 미술계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한국 미술작품 경매 사상 첫 100억원대 돌파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기좌도(현 안좌도) 출신인 김환기와 이경성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이경성은 김환기의 인생과 예술세계를 평전 형식으로 다룬 '내가 그린 점 하늘 끝에 갔을까'를 1980년에 펴내고, 2001년에 이를 다시 고쳐 낸 바 있다.

이 책의 표지 디자인을 작품 '우주'에서 따왔다. 책 제목도 그 '우주'를 이야기하고 있다. 언제나 시대를 앞서가던 김환기의 그림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한 인물은 이경성이었다. 이경성은 대한민국 미술평론가 1세대 중 맨 앞줄에 선다.

나란히 일본 유학파인 이경성과 김환기는 6·25 전쟁의 와중에 부산 피란지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부산 광복동의 여러 다방에서 미술 전시회가 열렸는데 김환기의 주선으로 그 전시회 소개 글을 쓰게 되었다. 이경성은 그렇게 해서 미술평론가 1세대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1971년 9월 말, 서울 신세계 화랑에서 '김환기 근작전'이 열렸을 때 당시로는 낯선 장르였던 점만 찍어 놓은 그림들을 놓고는 참으로 말이 많았다.

그동안 보여준 김환기의 작품 세계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경성은 이때 더욱 깊어진 미의식의 발현이라면서 적극 옹호했다. 이경성이 '내가 그린 점 하늘 끝에 갔을까'에서 소개한 김환기 만년의 일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일하다가 내가 종신수(終身囚)임을 깨닫곤 한다." 고향을 생각하고, 그동안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려낸 그 수많은 점 찍기가 얼마나 힘에 겨웠으면 감옥에서 종신형을 사는 것으로 느꼈을까. 그 극한의 작업과정을 거쳤기에 상업적으로도 최고의 예술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김환기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거저 주는 일도 많았다. 홍익대학교 교수 시절, 동료 이경성의 연구실에 사슴이 그려진 그림을 들고 왔다.

벽이 썰렁하니 걸어두라는 선물이었다. 몇 년 뒤 이경성은 돈 20만원을 빌린 친구에게 그 빚 대신 이 그림을 주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그 친구는 김환기의 사슴 그림을 4억원에 팔았다. 이경성의 수필집 '망각의 화원'(2004)에 나오는 얘기다.

"내가 찍은 점이 하늘 끝까지 갔을까"라며 중얼거리고는 했다는 김환기의 작품 가격이 세계 경매시장에서 아직은 절반 정도 온 게 아닐까. 경매가로 따져서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화가가 된 김환기의 작품 세계에는 인천 출신 이경성과의 인연도 포개져 있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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