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노인도 이민 타령이니

이한구

발행일 2020-02-19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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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동산투기 못잡고 집값 상승만 초래
대다수서민들 근검절약으로 살집부터 마련
노후위해 여윳돈 투자 집·땅 사서 임대소득
대안없이 옥죄기만 하니 해외로 갈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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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2년 프랑스의 부자와 고급두뇌 엑소더스(해외 탈출)가 잇따랐다. 중도좌파의 프랑수아 올랑드가 그해 5월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로 제24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재정적자 보전을 들먹이며 연소득 100만 유로(13억 원) 이상 부자들에 최고세율 75%를 물리는 증세(부유세)를 단행했다. 슈퍼갑부인 루이비똥모에헤네시(LVMH) 그룹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과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벨기에 국적을 취득했다. 금융엘리트 5만여명은 런던으로 떠났다. 세금 낼 사람들이 사라지고 대규모 두뇌유출이 이어지자 당황한 프랑스정부는 부유세 과세를 포기했다. 2016년 12월 올랑드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했을 때 그의 지지율은 고작 4%였다.

16세기 종교개혁 때 가톨릭교회의 탄압을 피해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에 안착했던 위그노(개신교신자)들이 연상된다. 영세중립국 스위스의 명품 시계는 전적으로 프랑스에서 탈출한 위그노 출신 시계기술자 덕분이다. 남한 면적의 절반도 안 되는 세계 최고 강소국 네덜란드는 종교개혁 때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정부 등의 박해를 피해 이주해온 유태인과 개신교도가 중심이 되어 건국한 나라이다.

서울 강북에 사는 70대 P사장은 지난해 말에 해외 이민을 가기 위해 모 외국 대사관을 찾았다가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을 듣곤 충격을 받았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노인들이 의외로 많았던 것이다. 이민선호도가 높은 다른 외국대사관에서도 유사한 현상들이 간취되었다.

P사장은 한평생 동네 골목시장에서 식품가게를 운영하며 한두 푼씩 모은 돈과 은행에서 거액을 대출 받아 작년 초에 자신의 집을 헐고 원룸 여러 개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갈수록 가게를 찾는 손님이 주는 데다 힘도 부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에 임대건물들이 늘어나면서 공실률이 크게 늘어 은행이자 갚기도 버거운데 건강보험료만 매월 백만원 이상이어서 스트레스가 크다. 근검절약을 통한 치부(致富)가 축복이 아닌 범죄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의 지대경제와의 전쟁이 화근이다. 불로소득을 제거하고 투기를 근절해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함이다. 천정부지의 집값 안정과 위험 지경에 이른 가계부채 억제도 당연하다. 서울 전역과 경기도 주요 도시, 세종시, 부산시 등에 대해 투기지역 혹은 투기과열지구로 묶어 은행대출을 제한하고 공시지가와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줄인상에다 자금출처 조사강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한마디로 수요 죽이기이다.

문재인정부가 부동산가격을 잡는다고 법석을 떨었지만 투기는 못 잡고 집값 상승만 초래했다. 국민은행 발표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중위가격은 2017년 5월 6억635만원에서 지난 1월 9억1천216만원으로 3년 만에 무려 50% 이상 상승했다. 중위가격이란 가격순으로 줄을 세웠을 때 정중앙에 위치한 가격이다. 실거래가격이 9억원을 넘으면 1주택자여도 실거래가격 초과분에 양도소득세가 부과되고 취득세도 더 내야 한다. 12·16대책으로 서울에서는 9억원 초과 주택을 보유하면 전세금 및 중도금 대출도 못 받는다. 서울 집값 급등으로 보유세 수입이 늘어 정부만 신나게 생겼다. 노무현정부 시즌2, 아니 그보다 더 심해 명백한 정책 실패이다.

주목되는 것은 절대다수 서민들의 재산 축적 관행이다. 근검절약으로 마련한 목돈으로 먼저 살집부터 마련하고 여윳돈이 생기면 노후를 위해 또 다른 주택이나 땅을 사서 임대소득과 시세차익을 얻는 것이다. 은행에 예적금을 들어봤자 이자소득은 코끼리 비스킷인데다 각종 펀드상품은 원금까지 날릴 수도 있어 민초들이 가장 확실한 안전자산에 매달리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쥐꼬리(?)이니.

부동산투기를 근절하려면 정부가 마땅한 투자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대안 제시도 못하면서 옥죄기만 하니 중산층 노인들까지 해외이민 타령을 하는 것이다. 시중에 대기성자금이 너무 많은 탓인데 헛발질로 내수경기 위축이 큰일이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집세 상승에 대못을 박았지만 결국 임대료가 상승해서 지지자들에 실망만 안겼었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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