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 내용이 있는 선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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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
모든 선거에는 선거를 지배하는 결정요인들이 있게 마련이다. 계층과 이념, 지역과 세대 같은 정치적 균열의 요인들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투표를 유인하는 주요한 결정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그런 이유에서 정당이나 후보의 정치적 스탠스와 포지셔닝을 결정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정치적 편 가르기(segmentation)나 타기팅(targeting), 포지셔닝(positioning) 같은 선거 마케팅의 기법들은 상업적인 마케팅의 그것과 판박이처럼 닮아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마케팅이 강해질수록 편을 가르는 맹목성은 더 높아지고, 진영 간의 경계는 더 멀어지게 마련이다.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는 요인들은 구조적인 거대담론일 수도 있고, 그저 '우리 편이냐 네 편이냐'를 가르는 일차원적인 요소들일 수도 있지만, 유권자 스스로 분명하게 '내가 왜 이 후보에게 투표해야 하는지' 명확한 이유와 논리적 근거를 갖지 못하게 된다면, 그 투표행위의 자발성은 조작되거나 동원된 자발성에 불과하다. 모든 선거에는 그 선거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 있게 마련이고, 그 시대정신은 대중에 의해 후보에게 투영되는 과정을 통해 함축된 논리의 구조를 풀어가게 마련이지만 지지의 맹목성은 대중의 요구를 응축된 시대정신으로 반영하는데 분명하게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거마케팅' 기법은 '상업마케팅'과 판박이
강해질수록 편가르는 맹목성·진영경계 심화


지난 5일 제1야당이 후보를 선출함으로써 4자 구도를 기반으로 하는 선거구도의 기본지형은 비로소 가시화됐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그 어느 때보다 특징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이 같은 이유에서 대단히 우려스러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철학과 시대정신은 사라지고 '대장동'과 '고발사주'만 남는 선거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도대체 유권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투표의 이유를 찾아야 할지 난감하기조차 할 상황이다. 투표가 온전하게 자발성에 기초한 정치행위이기는 하지만, 투표장에서 유권자들이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을 가르고 '덜 나쁜 놈'에게 투표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분명하게 불행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정책이나 이념보다 혐오와 적대(敵對)가 더 강하게 작동하는 선거를 결코 좋은 선거라고 할 수는 없다. 맹목적인 '팬덤'도 문제이거니와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를 향한 혐오를 표출하기 위해 '응징투표'에 나서는 것도 당연히 제대로 된 투표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아직까지 시대와 사회를 관통하고 우리 사회의 현재적인 정치적 균열구조를 제대로 반영하는 정책이나 메시지를 본 적이 없다.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이 있지만 '대장동'과 '기본소득' 중 어느 것이 더 크게 투표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윤석열 후보도 '공정과 정의'를 내세웠지만 '고발사주'와 그것 중 어느 것이 더 큰 결정요인으로 작동하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선거 과정에서 정책이나 공약 같은 정치적 콘텐츠가 투표를 유인하고 선거 결과를 가르는 주요한 변수로 개입될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제한되는 상황이 벌어져서는 곤란하다.

대장동이든 고발사주든 프레임 선거는 안돼
싸움에 매몰 정책 이념 확장 간과하면 안돼


정당은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하는 집단이다. 콘텐츠는 정당이 대중과 소통하는 중요한 매개요인이 된다. 콘텐츠를 생산해내지 못하고 콘텐츠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는 정당은 살아있는 정당이 아니다. 정당이나 후보가 콘텐츠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네거티브로 상대방을 찌르는 경쟁을 벌이려 해서는 곤란하다. 유권자들의 심리적인 부정편향(negativity bias)을 부추기거나 거기에 편승해 부도덕한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상황이 벌어져서는 곤란하다.

'대장동'이든 '고발사주'든, 진영 간 프레임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는 선거는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거가 본 게임에 진입한 마당에 명확하지 않은 진실이 있다면, 가려진 진실은 반드시 밝혀내고 불확실성은 분명히 줄여가야 하겠지만, 그 싸움에 매몰돼 정책의 이념 지평을 확장하고 철학 기반을 확고히 하는 노력은 간과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래도 이 같은 우려를 불식하기 어려워 보태는 말이다.

/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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