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 인생무상(人生無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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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문화 칼럼니스트
인생무상(人生無常)은 '사람의 삶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뜻이다. 인생의 보람이나 쓸모가 없어서 헛되고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트로트 가왕 남진이 부르고 공동 작사한 '인생은 바람이어라'(작사·남진, 이예선 작곡·이예선) 곡의 노랫말은 인생을 부는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으로 치환하여 묘사한 명곡이다. 도입부는 인생무상의 함의를 명징하게 표현한다. '잘 나갈 때는 사랑이 오더니/힘들었을 땐 싫다고 가더라'. 잘 나간다는 의미는 사회적 지위와 명망이 화려해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경제적 부를 축적하여 풍요로운 삶을 향유 한다는 뜻일까. 어떠한 의미이든 화자 자신이 '잘 나갈 때는' 원하는 사랑이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게 바로 인생이다. 삶이 가혹할 정도로 '힘들었을 땐' 찾아왔던 사랑도 이제는 싫다며 떠나가는 게 인생 아니던가.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는게 인생
어쩌다 마주친 인연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인생무상과 관련하여 명심보감의 '교우편'에 '주식형제천개유(酒食兄弟千個有) 급난지붕일개무(急難之朋一個無)'라는 말이 나온다. 술과 밥을 먹을 친구들은 천 명이 될 정도로 많다. 그러나 막상 친구가 힘겨운 일에 봉착하면 한 명도 남지 않고 전부 떠나는 현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세속적 욕망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잘 나가면 불빛만을 보고 펄럭이는 불나방들이 주변으로 모여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그 정반대의 상황에 놓이게 되면 불빛 주변의 불나방들이 한결같이 뿔뿔이 사라지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화자는 이어서 '돈 떨어지면 사랑도 떨어지더라' 라는 화두를 꺼낸다. 이와 함께 '인생이 무슨 낙엽이드냐'라고 세상을 향해 사자후를 토해낸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고토의 비애를 절감한 화자의 씁쓸한 심정이 이심전심으로 전달되는 듯하다. 돈 있으면 사랑이 오고 돈 떨어지면 사랑이 낙엽처럼 떨어져 나가는 엄혹한 현실을 이제 화자가 각성하고 지난 시절을 회고한다. 즉 '세상사'가 다 그렇게 흘러가고 있음을 인식한 화자는 후회막급이다. '그때는 영원할 줄 알았는데'. 자신이 한창 잘 나갈 때는 연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그 사랑이 지속될 줄만 알았던 화자의 뒤늦은 각성인 셈이다. 이는 마치 김만중의 고전소설 '구운몽'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저자는 '인간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꿈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으며 또한 번개와 같다'라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인생은 바람이어라' 곡의 화자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영원할 줄'만 알았던 자신의 가여운 모습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연인과 함께한 한여름 밤의 꿈이었던 과거 순간들을 회상하며 회한에 젖는다.

욕망의 장막 걷어내면
비로소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이제 화자는 바람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바람아 바람아 불어라/다시 한번 불어다오/이제 나를 찾아서/나를 찾아가리라'. 바람은 유기체인 우주가 숨을 쉬는 현상이다. 숨은 즉 생명이 다. 생명은 고귀하며 신령스럽다. 따라서 바람은 생명이기에 화자는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바람이 다시 불어 주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 사항도 찰나적인 듯싶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인생은 '바람 불면 떨어지는' 낙엽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나는 알았네/인생은 바람이어라'. 결국 화자는 인간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나약한 존재임을 개탄하지만 이러한 엄중한 현실을 수용한다. 또한 미풍에도 흔들리는 촛불처럼 사람도 바람 불면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미물임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세익스피어는 비극 '맥베드'를 통해 '인생은 걷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것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와 같아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서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갈파한다. 인생무상을 강조한 그가 환생한다면 부의 양극화가 고착화하여 욕망의 노예로 전락한 현대인에게 어떤 대안을 제시할까.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게 인생이다. 내가 스스로 바람이 되어 어쩌다 마주친 인연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인생은 바람이어라' 곡명이 시사하듯이 욕망의 장막을 걷어내는 바람이 되어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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