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국립현대미술관 특별전 '생의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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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대종사의 작품 '수기맹호도'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오방색을 비롯한 원색을 숭상한 우리 민족. 색은 그림에 입혀져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복을 불러들이고, 교훈을 전하며 중요한 이야기를 역사에 남기는 것과 같은 다양한 역할을 했다. 그렇게 우리의 삶에 녹아있던 채색화는 감상화를 제외한 민화, 궁중회화, 종교화 등 대부분이 그림의 용도와 기능에만 집중했다. 오랫동안 한국의 미술사에서 채색화가 소외된 이유이다.

소외됐던 한국의 채색화 재조명
'가치'를 '역할'로 흥미롭게 풀어내
이건희 컬렉션 2점도 흥미 더해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의 특별전 '생의 찬미'는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채색화를 처음으로 재조명하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채색화의 '역할'에 방점을 뒀다. 오늘날의 돌잔치, 결혼식, 장례식 등과 같은 중요한 순간에는 어떤 이미지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이 시대의 채색화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의 노래 '사의찬미'에서 착안한 '생의찬미'는 삶을 축복하던 채색화의 역할에 대해 조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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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작품 '창경궁 책가도'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전시 초입에서 만날 수 있는 스톤 존스턴 감독의 영상 '승화'는 나쁜 기운들은 통과하지 못하게 한다는 벽사의 대표적인 주제 '처용의 춤'을 표현하고 있다. 모란과 복숭아를 머리에 얹고 현재로 소환된 다섯 색깔의 처용. 사방에서 펼쳐지는 처용무와 그 안에 있는 관객이 하나가 되어 악함을 물리칠 수 있길 기원한다. 이어지는 섹션 '문 앞에서:벽사'에서는 '욕불구룡도', '오방신도', '호작도', '수기맹호도'와 같은 전통적 도상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묘하고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하며,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의미가 21세기에도 생소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대문을 지나 정원으로 향하듯 세 번째 섹션은 전통적인 길상화인 십장생도와 모란도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불로장생의 기원을 담은 장식화 십장생도는 시대와 계층을 초월한 무병장수의 꿈을 고스란히 품는다. 또 회화와 영상 등 표현을 확장한 다양한 최근 작품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불교사원 단청을 바탕으로 만들어 몰입도를 높이는 김혜경의 영상 작품 '길상', 색은 검지만 꽃잎과 이파리 하나하나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김은주의 '가만히 꽃을 그려보다', 캔버스에 아크릴로 표현해 새로움을 더한 김종학의 '현대모란도', 전통적인 수묵 방식이 아닌 초록의 색을 띤 대나무 그림 이화자의 '초여름' 등을 이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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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상의 작품 '원형상 89117-흙에서'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서가를 표현한 다른 섹션에서는 책과 기록에 대한 이야기가 흐른다. 8명의 작가가 각자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자를 작품으로 선보인 문자도와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매화 책거리도', 엄격하면서 단정하고 품격있어 보이는 '책가도', 다섯 궁궐을 주제로 조선왕실의 위엄과 일제 식민지배 아래 유원지로 전락한 창경궁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나타낸 김유진의 '창경궁 책가도', 경희궁의 전경을 그린 '서궐도'를 송규태 화백이 정교하고 화려하게 채색을 입혀 완성한 작품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이건희 컬렉션 2점을 만나볼 수 있는데, 이상범의 '무릉도원도'와 이종상의 '원형상 89117-흙에서'가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 섹션인 '담 너머, 저 산:산수화'에 전시된 두 작품 가운데 '무릉도원도'의 경우 1922년에 제작된 것으로 조선 화원의 전통 대형 청록산수화의 위상을 느낄 수 있다. 이종상의 작품은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한 벽면을 가득 채워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며, 동판 위에 안료를 얹어 구워내 불이 나도 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1989년 작가의 개인전 이후 최초로 공개되는 이 작품은 전통적인 배산임수 명당의 개념을 표현하며, 거친 산세와 흐르는 물이 태초의 기운을 전한다.

한국 채색화의 '가치'를 '역할'로 흥미롭게 풀어낸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9월 25일까지 계속 된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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