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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프롬 인천·(5)] 학생에 자유 선물… 인천대건고 노봉 신부

입력 2023-07-05 15:46 수정 2023-11-02 17:13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7-06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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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건고 5대 교장인 노봉 요셉 신부.

인천 연수구 동춘동 성당 옆에 위치한 인천대건고는 본래 동구 화수동 성당 부근에 있던 중·고 통합 학교였다. 1998년 7월 학교를 옮기기 전까지 화수동 영풍아파트 자리에 있었다. 대건중·고등학교 교명은 천주교가 인수(1962년)한 이후인 1963년 2월 얻었다. '대건'은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 이름에서 본떴다. 이 학교의 전신은 1946년 미군정기 설립 인가를 받은 인천영화중학교다.

인천대건고가 천주교의 품에 들어온 이후 1970년대까지 인천대건고의 학풍은 '실력'과 '자율' 요약되는데 제 5대 교장(1966~1971년) 노봉 요셉(Joseph Gibbons·사진) 신부가 이런 기풍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빡빡머리·운동화 규율 밀어두고 자율 허용
젠틀하면서도 일률적이지 않은 면학 분위기
인천대건고 독특한 기풍 이어진 시작점
노봉 신부는 교장 부임 첫해 제물포고 출신 교사를 여러 명 영입했는데, 이중 오춘근 선생이 교감으로 부임해 주도적으로 '학력 신장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대건고는 교육 당국 허가를 받아 '입학시험 커트라인제'를 1966년도 중·고교 입학 전형부터 도입했다. 학교가 정한 성적에 못 미치면 정원이 미달할지라도 선발하지 않았다. 1966년 입학생(14회)의 졸업 인원은 24명, 1967년은 22명에 불과했다. 등록금 수입이 크게 떨어졌지만, 인천 가톨릭 교육재단과 노봉 신부가 속한 메리놀외방전교회가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여름방학 때 덕적도에서 영어회화 합숙 훈련을, 겨울방학엔 강당에서 특별 합숙 교육을 무료로 벌였다. 동급생보다 학업 성적이 크게 떨어지는 학생은 스스로 유급하거나 다른 학교로 전학을 선택하는 문화가 존재했다. 빡빡 머리에 운동화만 신게 하던 당시 대부분 학교의 규율과 달리 대건고는 두발, 신발에 큰 제한을 두지 않았다.1971년 선종한 노봉 신부 후임으로 오춘근 교감이 6대 교장(1972~1977년)에 오르면서 인천대건고의 독특한 기풍이 이어질 수 있었다.

1978년 대건고를 졸업한 김재민 전 송도고 교사는 "노봉 신부님은 학생들 되게 열심히 가르치신 분으로 들었고, 그 신부님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학풍이 1975년 평준화 이후에도 이어져 왔다"라며 "젠틀하면서 일률적으로 강제하지 않는 면학 분위기 속에서 학창 생활을 보냈다"라고 전했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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