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 슬픈 사랑 이야기

입력 2023-12-19 19:17
지면 아이콘 지면 2023-12-20 18면
'이생망' 젊은 세대 불안한 삶
'돈사랑' 어른들이 가르쳐 할말없다
자기비움·아픔공유·검소…
貧者에 대한 기쁜 사랑 하라는
예수의 말씀 늦게나마 깨달아

2023122001010004942.png
김영호 신학자
이제 2023년 한 해가 가면서 세월의 빠름에 연말 하루를 금쪽같이 쪼개 보내라 하는 식상한 말보다 오늘은 '슬픈 사랑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사실 이게 올해만의 문제는 아닌지만, 이 '사랑'이 지속적, 일방적이며 누구나 좋아하니 언급할 수밖에 없다. 여기 사랑은 바로 '돈'이란 대상이다. 아니면 돈과 연관된 '아파트, 벤츠, 루이뷔통 등등'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왠지 좀 슬프다. 왜냐면 우리가 너무 일방적으로 사랑하니 이 대상은 너무 건방을 떤다. 자존심 다 내려놓고 이놈을 그토록 좋다고 사랑하니 그 건방이 하늘을 찌른다. 그래서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 같다.

올해 가계부채 1천875조가 넘은 것 같다. 주요국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4%(영국 89%, 미국 79%, 일본 63%, 유럽 61%, 중국 60%, IMF 21.6 기준)로 우리가 세계 1등이다. 이 부채 중 주택 담보 대출이 60% 정도라고 한다. 이런 무리한 가계부채는 대출 고금리 상황에서 한국 경제를 잡는 폭탄으로 이미 적색 경고가 발동되었고 집값에 대한 거품이 꺼지면 수많은 사람이 '돈'에 집착한 사랑이 결국 '슬픈 사랑'으로, '고통스러운 사랑'으로 변할 것이다.

젊은 사람들 역시 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랑'에 불나방같이 빠져든 한 해인 듯하다. 무리한 사랑의 결과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채무 불이행자가 약 23만명(2023.9 기준)이며 작년 말 대비 약 1만7천명이 늘어난 일은 이 사랑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2024년에도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언제부터인가 젊은 사람들이 호기롭게 몰던 외제 차 물결은 거품 위에서 달린 꼴이다. 20~30대 젊은이들의 카드 연체율이 2023년 8월 말 기준 2.9%, 전달보다 0.2%, 1년 전보다 0.9% 상승했다고 하니 지금은 더할 것이다. 여기에 주택담보대출 연체율도 치솟고 있으며 경매로 나오는 아파트 중 상당수가 젊은이들 '영끌족(하우스 푸어)'의 아파트라는 뉴스가 나온다. '카푸어'와 '영끌족'의 무리한 사랑은 한계에 와 있으며, 이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슬픔의 그림자가 넘치고 있다. 이들의 불안한 삶의 모습을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불리며 미래를 포기하는 삶으로 타락하고 있다. 유튜브에 넘치는 '인생은 한 번이라며 벤츠 굴리고 골프 치고 놀고 돈만 쓰는' 내용은 더는 흥밋거리가 아니다. 어딘지 모르게 건강한 사랑은 아니다.



젊은 세대에 대해 걱정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게 어디 이들만의 잘못인가. 돈을 사랑하는 것을 다 어른들이 가르쳐준 것이니 할 말이 없다.

요즘 늙었는지 자꾸 어린 시절 기억이 난다. 엄마 목소리도 들린다. 김장 김치 담그던 어머니와 동네 아줌마들도 기억난다. 추운 겨울 초입 많은 포기를 담그면서도 웃음이 가득했고 담벼락 처마 끝에 달린 고드름은 아이스크림이었다. 비록 가난했어도 행복이 있었다. 이제 할 말은 우리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때때로 잊고 살지만, 분명한 것은 슬픈 사랑이 아닌 기쁜 사랑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좋아하는지 모르지만, 이제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앞에 놓인 예수 탄생을 기뻐했고 하얀 눈이 내린 작은 언덕 위의 교회에서 주는 사탕을 기다렸다. 우리가 아는 예수는 "자기의 욕망을 버리고 가난한 행복을 말씀하고 천국도 가난한 자의 몫"이라고 했다. '자기 비움', '이웃과 함께하는 식사'는 분명 슬픈 사랑이 아닌 기쁜 사랑이라고 했다. 이 땅 위에서 우리 존재를 타자의 존재와 일치시키고 아픔을 공유하며 검소해야 하는, 욕심을 버리고 빈자(貧者)에 대한 기쁜 사랑을 하라는 말씀이라는 것을 이제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자기 스스로 만든 '슬픈 사랑', 영원한 기쁨으로 전환하는 것 역시 자신에게 달린 듯하다.

/김영호 신학자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