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광장 정치와 모바일 선거운동

입력 2024-03-11 19:49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3-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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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광장' 하면 곧바로 연상되는 명문장이 있다. "신이 죽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풍문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껍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일상이 통제되고 규제가 넘치던 억압의 시절 광장은 간절한 바람이었다. 사람들이 만나 자유롭게 소통하고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하는 '아고라'와 '아크로폴리스'가 국민적 간절함이었던 정치적 억압기가 있었다. '유신시대'와 '5공화국'이 그러했다.

아고라는 그리스 고대도시 광장으로 각종 민회(民會)·재판·시장·사교 등이 이뤄지는 소통의 공간이었으며,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의 상징이자 서구 민주주의의 원형으로 통한다. 아고라는 본래 회랑으로 둘러싸인 공간으로 본질은 장터 곧 스토어(store)였다. 스토아(stoa) 학파란 말도 이 스토어에서 나왔다. 장터에서 활발한 소통과 토론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아크로폴리스의 아크로는 높은 곳이란 뜻으로 방어를 위해 산정(山頂)에 조성한 고대도시를 뜻하는데, 후일 이것이 고대 민주주의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우리에게 광장의 정치가 허용된 것은 1987년 이후다. 1987년 11월 30일 130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여의도광장에서 김대중 후보의 유세가 있었고, 같은 해 12월 5일 그와 경쟁 관계에 있던 김영삼도 같은 곳에서 같은 규모의 군중을 광장에 모았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과 AI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 과거와 같은 대규모 광장 정치는 흘러간 과거의 풍경이 됐다.

교통 혼잡과 고비용에 비효율적인 대규모 오프라인 집회보다는 이제 모바일이나 유튜브를 이용한 선거운동이 새로운 선거운동 방식으로 정착하면서, 문자폭탄 세례와 AI 등을 이용한 가짜 영상과 딥페이크(Deepfake)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광장의 정치든 모바일 정치든 도덕성과 진정성이 없다면 그것은 포퓰리즘이며 선거공해가 될 뿐이다. 눈을 크게 뜨고 냉철한 이성으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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