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이슈추적] 깡통전세 피해자들 셀프낙찰 '일생일대 딜레마'

입력 2024-03-13 19:29 수정 2024-04-27 14:32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3-14 6면

겉도는 전세사기 특별법 '우선매수권'


경매 권리사용 133명 '전체 0.01%'
한푼 아쉬운데 웃돈 얹어 집 떠안아
유찰 '눈치싸움' 낙찰보증금도 부담
"기관들 사용절차 명확한 설명없어"

 

전세사기 희생자 1주기 추모제
전세사기 희생자 1주기 추모제가 열린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 회원 등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2.24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전세사기 특별법' 지원책 중 하나인 '우선매수권'을 정작 피해자들이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전세사기 피해자 133명이 우선매수권을 써 전셋집을 낙찰받았다고 발표했다. 전세사기 특별법(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된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25일까지 인천 미추홀구 등 전국에서 국토부로부터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을 받은 1만2천928명의 약 0.01%에 해당한다.

우선매수권은 경매에서 피해자가 살던 집을 먼저 낙찰받을 수 있는 권리다. 피해자들 사이에선 돌려받지 못한 전세보증금에 웃돈을 얹어 집을 떠안는 이 방법이 그나마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천 미추홀구 등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 행각을 벌인 속칭 '건축왕' 남헌기(62)씨 사건의 피해자들은 우선매수권을 사용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우선매수권 사용 시기, 낙찰보증금 부담, 특별법의 다른 지원책(주택구매자금 대출, 공공매입임대 등)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씨 사건의 피해자인 A씨는 2차 경매가 유예됐다. A씨의 전셋집 최저 낙찰가는 1억6천870만원이고,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은 8천만원이다. 경매가 다시 시작돼 2차 경매에서 우선매수권을 쓸 경우 최저 낙찰가나 그 이상으로 집을 사게 된다.

문제는 낙찰 가격에다 돌려받지 못한 전세보증금까지 고려한다면 피해자들은 주변 시세보다 훨씬 높은 집값을 치르는 셈이다. 만약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이 없어 또 유찰되면 3차 경매의 최저 낙찰가는 30% 하락한 1억1천여만원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최저 낙찰가가 더 떨어진 3~4차 경매에 참여하는 것이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경매가 다시 시작되면 곧바로 우선매수권을 사용해야 하는지, 유찰을 기다렸다가 해야 하는지 정부가 정확히 밝히지 않아 속을 끓이고 있다.

특별법엔 전세사기 피해자는 매각 결정기일 전까지 주택을 우선 매수하겠다는 신청을 할 수 있고, 최고액 입찰자가 있는 경우 최고액 입찰가로, 최고액 입찰자가 없는 경우엔 매각예정가격(최저낙찰가)으로 매수 신청을 할 수 있다고만 나와 있다.

A씨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우선매수권 사용법에 대해 질의했는데, 관계 부처인 법원행정처는 "당사자(은행 등 채권자와 전세사기 피해자)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구체적인 사안에 관하여 어느 일방 당사자와 법률상담을 하는 것은 법원의 업무 성격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겐 낙찰보증금도 큰 부담이다.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경매에 참여했다면 낙찰보증금(낙찰가의 10%)을 미리 낸 후에 법원으로부터 받은 낙찰 확인증,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피해자 결정문을 은행에 제출해야 경락대출(낙찰 비용을 빌려주는 대출 상품)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낙찰가의 10%를 마련해야 한다. 만약 비용 부담 등으로 낙찰을 포기한다면 앞서 낸 낙찰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우선매수권을 사용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특별법 지원책 중 주택구매 대출을 받아 더 저렴한 집을 구하는 것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우선매수권을 넘기는 방법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우선매수권을 사용하면 다른 지원책은 받을 수 없어 득과 실을 따져야 하는 문제도 있다.

A씨는 "우선매수권이 그나마 손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낙찰보증금을 구하는 것도 어렵고, 전세사기를 당한 집을 떠안아야 하는 금액도 너무 높다면 다른 집을 찾아봐야 하나 싶다"며 "법원행정처, 국토교통부에서도 피해자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명확히 답해주지 않아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안상미 위원장은 "현행 특별법의 우선매수권 사용 절차에 대해 설명해줄 기관이 없어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피해자들 사이에선 우선매수권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 건지 혼란이 커지고 있다"며 "향후 특별법 개정안에는 우선매수권 사용 절차를 명확히 하고, 경매에서 피해자들이 적정 가격으로 전셋집을 낙찰받을 수 있는 방안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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