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길에서 주운 금배지

입력 2024-03-20 19:56 수정 2024-03-21 13:26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3-21 18면
2024032101000226200023521

"집집마다 방문하는 동안 어떤 집은 사람이 없었고, 어떤 집은 머리에 컬을 만 여자들과 뛰어다니는 아이들, 정원에서 일하는 남자들이 있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회고록 '약속의 땅'의 한 대목이다. 1995년 34세 오바마에게 정계의 문이 열렸다. 일리노이 출신 연방 하원의원이 성범죄로 기소되면서 치러진 보궐선거에 앨리스 파머 주 상원의원이 출마하자, 오바마에게 주 상원의원 출마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일리노이주에선 선거구 유권자 700명 이상의 추천 서명을 받아야 후보자 명부에 오를 수 있다. 오바마 부부와 지지자들은 7개월 동안 유권자를 직접 찾아가 기준 인원의 네 배에 달하는 추천서를 모았지만 뒤통수를 맞았다. 보선에서 떨어진 앨리스가 제 자리를 찾겠다며 버락의 출마를 막아선 것이다. 하지만 추천서가 운명을 갈랐다. 오바마가 두 발로 얻어낸 추천서와 달리 앨리스의 추천서는 조작된 불법 추천서였다. 오바마는 시카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고 앨리스는 사퇴했다.

오바마는 일리노이주 3선 상원의원을 지낸 뒤 2004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그해 민주당 대선 전당대회 명연설로 스타덤에 오르더니, 2008년 대선에서 승리해 44대 대통령이 됐다. 행운도 있었지만 두 발로 유권자와 교감한 현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테다. 흑인 청년 정치인이 두 발로 모은 추천서를 지켜준 공정한 제도는 오바마 기적의 모태였다. 정치의 요체는 사람과 제도다.



더불어민주당의 서울강북을 조수진 후보자가 20일 방송에서 "유시민 작가가 조변(조 변호사)은 길에서 배지 줍는다고 반농(반농담)했다"고 밝혔다. 한 유튜버도 지난 18일 "조수진 변호사는 배지를 그냥 주웠다"고 전하며 크게 웃었다. '목발 정봉주'로 실패한 '박용진 불가' 원칙을 조수진으로 관철한 상황이 '길에서 주운 금배지'다. 여야 공천을 일별하면 조수진 말고도 길에서 금배지 주운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중앙당 지도부가 공천권을 전횡하는 한국정치 제도 탓이다.

제도와 법상 금배지 주인은 유권자, 국민이다. 예전에는 선거 때면 주인으로 대접하는 척이라도 했다. 길에서 금배지를 주웠다니, 사람과 제도가 막장에 이르렀다. 도구와 적만 남은 정치가 대한민국을 절단 낼 기세다.

/윤인수 주필

경인일보 포토

윤인수 주필

isyoon@kyeongin.com

윤인수 주필 기사모음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