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렌즈 말벌②

“네, 부인.”
“저런…쯧쯧…우찌에는 어디 가고?”
   

“우찌에라뇨? 아, 아르바이트 아가씨요?”
“그래. 잘해주지? 내가 특별히 부탁해 뒀는데.”
“네, 잘해줬어요. 한데, 뭐가 그리 관심이 많은지 꼬치꼬치 묻던데요.”
“꼬치꼬치?”
“네. 학생이냐? 어느 학교냐? 무슨 아르바이트냐 등등….”
“개인적인 호기심이겠지 뭐.”
시루코는 박준호가 제기한 우려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다. 그녀가 말한다.
“우찌에는 아주 괜찮은 아가씨야…친절하고, 영리하고…. 참, 오늘 바쁜 스케줄이 있다고 했지?…그래도 그렇지, 옥스퍼드 예비 대학생이 부엌에서 조리하도록 방치하다니….”
말은 그렇게 해도 레스토랑을 찾지 않아도 되는 일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박준호가 입을 연다.

“하지만 부인께서는….”
“나, 점심? 런던에서 먹었어. 외무성 장관부인이 초청한 자리라서 빠질 수 없었어.”
“외무성 장관부인이라면…일본 장관부인 말인가요?”
박준호가 묻는다. 물론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방에 처음으로 두 사람만 호젓이 자리했다는 사실이 약간은 쑥스럽고 멋쩍었기 때문에 불쑥 꺼낸 질문이다.



“아냐. 일본이 아니고 이 나라 장관부인.”
기왕 내친김에 박준호가 한마디 더 추가한다.
“영국 장관이라면 대사급 부인들만 초청할 텐데,…참사관 부인도 참석하나요?”
“왜, 내가 자격이 없어 보이니?”
시루코가 쌜쭉한 표정을 지으며 되묻는다.
“자격이 아니라 굳이 격을 따진다면 그렇다는 얘기죠.”
“격이라?…하긴 준호 네 말도 틀리진 않아. 참사관 부인이면 참사관 부인 수준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야 되는데…그런데 오늘은 공식 모임이 아닌 기금모금 회합이었단다.”

“기금모금이요?…그럼 돈 많이 기부하셨겠네요? 안 그래도 하네코가 ‘우리 엄마 재벌이다’라고 자랑 많이 했거든요.”
“물론 난 부자야. 하지만 내가 돈이 많아서 초대받았다기보다…우리 집 그이 참사관이지만, 보통 사람이 아니다, 너. 직위만 참사관이지, 실제 통상업무 실무는 죄다 그 사람 몫이란다. 오죽하면 어떤 협상에서든 오카모토만 빠지면 일본이 허수아비라는 말이 유행하겠니? 그 사람 일이라면 무서운 집념을 보이는 사람이야. 정말 두려울 정도란다. 오로지, 일 일, 일에 미친 사람이니까.”

오카모토가 가정을 버리면서까지 대일본제국의 통상업무에 집착한다는 얘기는 하네코에게 이미 귀가 닳도록 들었던 내용이다. 그래서 별반 놀라지 않는 박준호다.

“미안하다.”
시루코 역시 남편에 대한 설명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했는지, 박준호를 적이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나만 식사하고 널 혼자 기다리게 했으니…짜증 많이 났지?”
“아닙니다.”
“짜증났다고 솔직히 얘기해도 괜찮아.”
“짜증나지 않았어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어떠니, 이 방? 바다가 보여서 좋지 않아?”
“좋습니다. 사람 구경, 배 구경, 갈매기 구경…하루 종일 있어도 심심하지 않겠는데요.”
“그렇지? 그런 거 잘 보이라고 커튼도 치지 않았어. 유리창도 넓게 달고,…저건 특수 유리거든. 밖에서 안은 볼 수 없지만 안에서는 밖을 다 볼 수 있는…참, 나 지퍼 좀 내려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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